[김창균 칼럼] 조선일보 기자 2023

01.12 핍박 호소인 이재명, 전직 대통령 혐의 종합세트
성남 FC 후원은 박근혜, 변호사비 대납은 이명박, 부인 의혹은 노무현 닮아
불법 대선자금 이회창 측근 구속에 “사죄” 회견… 李는 “정치검찰 조작”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이 1963년 6월 26일 서베를린 강연에서 했던 말이다. 서베를린은 동독 영토 속에 섬처럼 둘러싸여 있었다. 서베를린 시민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공산주의 폭압 체제가 뺏어갈까 겁냈다.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이 당신들의 자유를 함께 지키겠다”고 안심시킨 것이다. 이후 이 표현은 폭력에 위협받는 소중한 가치와의 연대를 상징하는 말이 됐다.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짓밟으려 하자 지구촌 곳곳에서 “우리는 모두 우크라이나인이다”라는 플래카드가 펄럭였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수원 성남지청에 출두하는 현장에서 지지자들은 “우리가 이재명이다” 팻말을 들었다. 이 대표의 어떤 가치와 연대하겠다는 뜻일까. 이 나라 산업화, 민주화 혹은 선진화에 기여한 업적이 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성남시장과 경기지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탈법과 편법으로 자신의 업적을 부풀려 가며 더 높은 권력을 탐했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주변 사람들, 심지어 가족들까지 희생시켰다.
지지자들은 윤석열 정권 검찰이 없는 죄로 이 대표를 옭아맨다고 주장한다. 이 대표가 수사받는 혐의들은 모두 문 정권때 드러난 것이다. 윤 정권이 새로 들춰낸 혐의는 한 건도 없다. 문 정권 검찰과 경찰이 어떻게든 덮으려고 뭉개다가 뒤늦게 수사가 시작됐을 뿐이다.
이 대표가 소환 조사를 받은 성남 FC 후원금 의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의혹과 닮은 꼴이다. 공무원이 부정한 청탁에 대한 대가를 제3자에게 주도록 하는 ‘제3자 뇌물죄’가 적용된다는 점이 공통분모다. 이 대표는 사익을 취한 적이 없다며 무죄를 주장한다. 박 전 대통령도 개인적으로 받은 돈은 한 푼도 없다.
이 대표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변호사비 23억원을 대납받았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년형을 받게 된 핵심 혐의도 삼성이 변호사비 60억원을 대신 냈다는 것이었다. 이 대표 변호사비를 내준 의혹이 있는 쌍방울 회장은 그동안 해외 도피 중이었는데 10일 태국에서 체포됐다고 한다. 본인 대신 가족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 대표 부인 김혜경씨의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이재명 대표는 법의 심판대에 섰던 16, 17, 18대 대통령들의 핵심 혐의를 종합 세트처럼 망라했다.
뭐니뭐니 해도 이재명 사법 리스크의 대표 상품은 대장동 의혹이다. 이 대표 측근들이 대장동 일당에게 특혜를 주는 대가로 대선 및 경선 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 중이다. 이회창 한나라당 전 대표 측근들도 불법 대선 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두 사람 모두 대선에서 패배한 후 들어선 승자 정권에서 대선 자금 수사를 받았다.
차이점은 수사를 대하는 자세였다. 이재명 대표는 자신의 모든 혐의를 정치 검찰이 꾸며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회창 전 대표는 당 재정국장이 구속되자 곧장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 여러분께 무릎 꿇고 사죄 드린다”고 했다. “모두 책임은 대통령 후보였던 나에게 있다. 감옥에 가더라도 내가 가야 한다”고 했다. 당직자들이 돈을 받은 사실을 알았느냐는 질문에 “알았냐 몰랐냐는 중요하지 않다. 대선에서 뛴 사람들이 한 일은 모두 대선 후보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 신문은 소속 간부가 대장동 주모자인 김만배씨로부터 6억원+3억원을 받은 정황이 드러나자 해당 간부를 해고하고 대표이사 사장과 편집국장이 사퇴한다고 밝혔다. “부적절한 인사를 중요한 직책에 앉혔고 문제적 행동을 미리 파악하지 못해 회사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을 입혔다”고 했다. 공적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일이 터지면 구차한 변명 없이 이런 식으로 책임을 진다. 이재명 대표는 대장동 사업에 관여했던 부하 직원들이 검찰 수사를 받자 “누군지 모르는 실무자들”이라고 선을 그었다. 자신이 핵심 측근으로 인정한 김용과 정진상 두 사람마저 구속되자 “결백을 믿는다”며 계속 혐의를 부인하는 중이다. “당에 회복하기 힘든 손실을 입혔다”고 미안해한 적은 없다.
이재명 대표는 “이제 이재명이다” 대담집에서 “지금 우리는 비정상, 불법, 탈법, 부정, 비리를 저지르는 집단과 전쟁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많은 국민이 요즘 이재명 대표와 그 지지자들을 보면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01.26 우물 안에서 反日 떼쓰기, 나라 위신만 해친다
尹정부 징용 해법 내놓자 야권은 “굴욕” 몰아가기
政爭 이득 될지 몰라도 國格 어떻게 비치겠나
덩치 커진 나라가 투정 국제사회는 납득 못 해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2023.1.12/뉴스1
윤석열 정부가 일제 강제 징용 해법을 내놨을 때 솔직히 걱정스러웠다. 정부가 뭘 잘못했다는 뜻은 아니다. 대법원이 ‘사법 자제’라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걷어차서 생긴 문제였다. 일본 기업이 한국 대법원 결정을 거부해서 국제재판소로 가면 승소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리 쪽에서 매듭을 풀 수밖에 없다. 우리 기업이 낸 돈으로 배상금을 먼저 지급하는 방식 역시 상식적이고 현실적이었다. 다만 야당이 “굴욕 외교”라고 물어뜯을 것이 뻔했고, 그에 따라 국민 여론이 널뛸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동안의 경험이 그랬다.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거센 비난 여론이 일면서 궁지에 몰렸다. 문재인 정부는 그 합의를 뒤집으며 죽창가를 불렀다. 국민은 ‘NO 재팬’을 복창하며 화답했다. 일본 불매운동 한 달 만에 유니클로 매출액은 70% 급감했고, 부동의 1위였던 일본 맥주 수입은 3위로 내려앉았다. 일본과 타협하면 매국으로 몰리고, 대립 각을 세우면 박수를 받았다. 이런 풍토 속에서 강제 징용 해법은 정치적 역풍을 맞을 위험이 컸다. 그런데도 윤 정부는 정공법으로 밀고 나갔다. 민주당은 늘 그래 왔듯이 반일(反日) 화약고에 불을 붙였고, 친야(親野) 매체들은 부채질을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국민 반응이 예상보다 담담하다는 점이다. 한 대학교수는 “586의 선동에 젊은 세대가 호응하지 않고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지금의 2030은 일본에 대해서 피해 의식도 열등감도 없다고 했다. 함께 겨뤄볼 만한 경쟁자로 본다. 문 정권 때 ‘NO 재팬’에 힘이 실렸던 건 ‘아베 효과’가 작용했던 탓이라고 했다. 일본이 수출 규제라는 부당한 갑질을 한다고 느꼈기에 젊은 층들이 울컥했다는 거다.
카타르 월드컵 때 일본 경기를 시청하면서 중계진의 태도가 과거와 달라졌다고 느꼈다. 일본 상대 팀이 골을 넣으면 마치 우리 팀 응원하듯 흥분하던 편파 중계가 아니었다. 일본이 한국보다 좋은 성적을 거둘까 노심초사하는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던 촌티가 사라졌다.
요즘 젊은 층의 반감은 중국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030세대 대상 여론조사에서 중국은 압도적으로 비호감 선두다. 무역 보복과 문화 동북공정 등 중국의 힘 자랑이 반감을 부른 탓이다. 중국몽(夢)에 함께하겠다는 좌파 진영의 반일(反日) 선동이 힘을 잃어가는 이유다.
1979년에 1권이 나온 ‘해방 전후사의 인식’은 운동권의 의식화 교과서였다. 80학번 필자도 선배 지도 아래 읽었다. 독후감을 서로 나누는 세미나는 ‘기·승·전·친일(親日) 원죄론’이었다. 이승만 정권이 친일 청산을 하지 않은 게 대한민국 만악(萬惡)의 근원이었다. 첫 단추를 잘못 꿰서 나라가 온통 비틀렸다는 진단이 명쾌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은 찜찜했다. 세상사 이치가 그리 단순할까.
그때 그 친일 원죄론을 문재인 정권서 다시 듣게 됐다. 2019년 3.1절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친일 잔재 청산은 너무나 오래 미뤄 둔 숙제”라고 했다. 2021년 7월 이재명 경기지사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대한민국 수립은 친일 세력과 미 점령군의 합작으로 이뤄졌다”고 했다.
1980년 한국의 1인당 소득은 일본의 6분의 1 정도였다. 요즘은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따라붙었다. 2027년이면 순위가 뒤집힌다는 예측을 일본 경제연구센터가 내놨다. 1980년엔 일제강점기를 기억하는 세대가 성인의 절반 이상이었지만, 지금은 80대 후반 이상 극소수만 남았다. 한일 양국의 역학 관계도, 양국 국민들이 서로를 보는 눈도 크게 달라졌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의 대일(對日) 인식은 40년 전 대학생 의식화 논리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만큼 남의 시선에 신경 쓰는 국민도 드물다. 한국 문화, 한국 음식이 외국인 눈과 입에 맞는지 궁금해하고 상대가 엄지를 치켜세우면 흐뭇해한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대한민국의 좌표를 매기고 평가하는 진짜 기준은 따로 있다. 한국 전문가들은 한일 관계가 역사 문제로 꼬일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한다. 한국은 이제 엄연한 선진국이고, 해방된 지 두 세대가 훨씬 지났다. 그런데도 일본 문제만 나오면 신생 후진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덩치는 어른인데 젖꼭지 물고 투정하는 퇴행(退行)이나 다름없다. 야당 수뇌부를 차지한 586 운동권들은 무조건 일본을 비난하는 게 국격을 높이는 일인 것처럼 선동한다. 우리끼리 자뻑하고 우물 밖에선 비웃음만 산다. 국제 규범을 벗어난 반일(反日) 떼쓰기 외교는 나라 위신만 해칠 뿐이다.
02.09 北이 돈 안 받고 초청한다고? 그야말로 신작 소설
李경기지사 방북 추진은
스스로 홍보했던 사실
北은 대통령, 언론사도
통행세 내야 국경 열어줘
여권 2, 3등 약세후보에
공짜 방문 선물 줬겠나

▲2019년 1월 17일 중국 선양에서 ‘한국 기업 간담회’에 이어 열린 식사 자리에 안부수(왼쪽부터) 아태협 회장,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송명철 북한 조선아태위 부실장,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등이 참석했다./노컷뉴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자신의 방북(訪北)을 위해 김성태 쌍방울 회장이 300만달러를 북에 건넸다는 검찰 진술에 대해 “신작(新作) 소설”이라고 했다. “종전 창작 실력을 보면 안 팔릴 것”이라고도 했다. 검찰이 또 가짜 혐의를 꾸며 냈지만 국민은 안 믿을 것이라는 뜻이다.
어떤 대목이 거짓이라는 건지 아리송하다. 이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 방북을 준비했던 것은 이미 알려진 팩트다. 이 대표 측이 적극 홍보까지 했었다. 2018년 10월 말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지사의 방북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북 고위급 내달 경기도 국제회의 참석, 이재명 방북 논의”라고 보도됐다. 이 지사는 이 기사를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면서 “이화영 부지사님,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댓글을 달았다. 이 지사가 “육로로 평양에 가겠다”고 하자 북측은 “그렇게 오면 시간이 너무 걸린다. 다른 경로를 찾아보자”고 했다. 북측이 쌍방울 김 회장에게 “이 지사 방북을 위해 헬기를 띄우고, 벤츠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던 게 그 다른 경로 용도였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재명 대표는 북한에 가려고 했던 것은 맞지만, 그 대가를 북에 주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당시 이재명 지사가 대가 없이 방북하는 게 가능했을까.
김대중·김정일 1차 남북 정상회담은 당초 2000년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사흘간 열린다고 발표했었다. 회담을 하루 앞둔 11일, 청와대 대변인은 “북측이 기술적 준비 관계로 일정을 하루 늦춰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6·14 남북 공동선언이 될 뻔했는데 졸지에 6·15 선언으로 바뀐 셈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을 지낸 김은성씨는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북한에 주기로 한 방북 대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일정이 하루 늦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국정원에 보낸 전문(電文)에 “나머지 돈을 보낼 때까지 회담을 연기한다”고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현대그룹이 약속했던 4억5000만달러를 송금하는 과정에서 일부 금액의 수취인을 잘못 기재한 탓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이 미납금이 은행에 들어온 것을 확인한 후에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길을 열어줬다.
중앙일보 권영빈 전 사장은 회고록에서 1996년 북측 요구로 100달러 지폐를 가득 담은 골프채 가방을 두 번이나 건넸다고 밝혔다. 북이 첫 번째 가방이 배달 사고 났다며 다시 보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가 계획했던 ‘북한 문화 유산’ 사업과 사주 일가 방북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북한 국경을 건너려면 반드시 통행세를 내야 한다. 북을 돕는 일에도 예외가 없다. 국제 구호단체가 식량 지원을 할 때조차 국내 수송비를 별도로 요구했다. 꿩 먹고 알 먹고다. 북한 외무성은 달러로 받아낸 이 돈을 부처 경비로 쏠쏠하게 이용했다고 북 외교관 출신 태영호 의원이 저서에서 밝혔다.
이재명 지사가 방북에 시동을 걸던 2018년 말 차기 대선 판도는 이낙연, 황교안 현·전직 총리의 양강 구도였다. 여권 내에선 이낙연 총리가 두 배 이상 지지율로 앞선 가운데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지사가 2, 3위를 다퉜다. 햇볕 진영에서 대선 후보가 되려면 ‘북한과 통한다’는 이미지가 필수 과목이다. 2018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은 시·도지사 중 박원순 서울시장과 최문순 강원지사만 대동했다. 이재명 지사는 대선 출마 스펙을 위해 북한 방문에 몸이 달아 있는 상황이었다.
이 지사는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 로드맵을 따랐다.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이 맡았던 대북 접촉은 이화영 부지사가 수행했다. 대북 사업을 미끼로 재정적 지원을 하는 현대그룹 역할은 쌍방울 몫이 됐다. 1년여 준비를 거쳐 2019년 말 이재명 지사의 방북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코로나 사태만 터지지 않았다면 2020년 초 언저리에 이재명 지사의 평양행이 성사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재명 대표는 자신의 방북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북한에 300만달러를 줬다는 쌍방울 김 회장의 증언을 거짓말이라고 한다. 북한은 현직 대통령의 공식 방문, 언론사의 현장 취재도 통행세 선불 완납을 전제 조건으로 내건다. 그런 집단이 뭐가 아쉬워서 당선도 불확실한 약세 대선 주자가 목을 매는 북한 방문 티켓을 공짜로 선물하겠나. 북(北)이 돈도 안 받고 자신을 초청하려 했다는 이재명 대표의 주장은 그의 표현 그대로 신작 소설이다. 이 대표의 종전 변명 실력을 보면 이번 소설도 안 팔릴 것이다.
02.23 이재명의 치밀한 두뇌, 담대하지 못한 심장
체포 동의안 부결시키면 黨도 대표도 만신창이 우려 정면승부하라 요청 쏟아져
결선투표, 특검 거부하고 대선서 초박빙 패배한 李… 총선에선 후회 않게 될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박홍근 원내대표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뉴스1
2021년 10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은 대장동 의혹으로 막판 표심이 출렁였다. 초·중반엔 이재명 후보 독주였는데 마지막 날 투표에선 이낙연 후보가 62% 대 28%로 두 배 이상 앞섰다. 합산 결과 이재명 후보 득표율이 과반 경계선이었다. 중도 사퇴한 후보들의 표를 무효 처리하면 50.29%로 이재명 후보 확정, 포함시키면 49.3%로 이낙연 후보와 결선투표였다.
그 무렵 정치부장 출신 언론인들끼리 모임이 있었다. 결선투표가 성사될 경우 누가 이길지가 화제였다. “그래도 대세는 이재명”과 “이낙연의 역전 흐름” 주장이 팽팽했다. 필자는 당 선관위가 결선투표를 결정하면 이낙연 우세, 이재명 후보가 결선투표를 수용하면 이재명 우세를 점쳤다. 그런 승부수를 던졌다면 경선 후 당심(黨心)을 하나로 묶는 데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이재명 후보가 결선투표를 거부하면서 후보로 확정됐다. 그러자 지지율이 오히려 떨어지는 역(逆)컨벤션 효과가 나타났다.
이재명 후보는 대장동 특검을 받느냐 마느냐를 놓고도 선택의 기로에 섰다. 불리한 증거가 튀어나올 수 있는 특검을 받을 리 없다는 쪽이 대세였지만, 특검 수용이 대선 승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어차피 여야가 특검 법안을 협상해서 통과시키고, 특검을 선정하고, 출범 과정을 거치다 보면 대선까지 반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진상 규명은 어려웠다. 반면 특검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켕기는 게 없고 당당하다”는 인상을 주면서 득표엔 도움이 됐을 것이다.
이재명 후보는 경선 결선투표, 대장동 특검 두 차례 갈림길에서 모두 모험을 회피했다. 만약 그때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면 0.73%p 초박빙으로 갈렸던 대선 승부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가끔은 궁금해진다.
정치인들이 위험을 무릅쓴 정면 승부로 정국의 흐름을 뒤바꾸는 장면을 몇 차례 목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로 2002년 대선 승부를 결정지었다. 단일화를 받아들일 무렵 노 전 대통령은 박빙 열세 속에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단일화에서 승패를 장담할 수 없었다. 졌다면 집권당이 후보를 못 내고 들러리를 섰을 것이다. 위험한 도박이었다. 여론조사 발표 날 노 캠프 관계자들 얼굴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2006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주자들은 민주당 강금실 후보에게 밀리고 있었다. 정치판을 떠나 있던 오세훈 전 의원이 유일하게 강 후보와 접전이었다. 그러나 오 전 의원이 3주 남은 당내 경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오 전 의원을 전략 공천하자는 일부 주장은 무산됐다. 오 전 의원은 경선 참여라는 승부수를 띄웠고 대역전극에 성공했다. 그 흐름을 타고 본선에서도 압승을 거뒀다.
민주당 박지현 전 대표가 이재명 대표에게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고 체포동의안을 가결하라”고 촉구했다. 노무현 정권서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표결 절차도 거치지 말고 “검찰에 자진 출두해 구속 심사를 받으라”고 권했다. 두 사람 모두 민주당이 다수 의석으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켰을 때의 결과를 걱정했다. 박 전 대표는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만신창이가 될 것”이라고 했고, 조 교수는 “이재명 대표가 자신을 위해 당을 희생시켰다는 비난 여론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이 대표가 정면 승부에 나서면 영장이 기각될 수도 있고, 설사 구속되더라도 당이 총선에 승리하면서 이 대표 역시 재기를 모색할 수 있다고 했다.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게 20년 넘는 징역형을 선고한 사법 체계라면 이재명 대표는 중형을 면할 길이 없다. 그러나 곽상도 전 의원, 윤미향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법원이라면 어떤 불규칙 바운드가 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대표에 대한 영장 심사는 검찰 입장에서도 위험부담이다. “검찰도 체포동의안 부결을 바란다”는 박 전 대표의 주장은 그런 면에서 일리가 있다.
이 대표는 치밀한 두뇌로 거미줄처럼 감겨 오는 사법 리스크를 헤쳐 왔다. 반면 자신의 정치 생명을 판돈 삼아 큰 승부를 모색하는 담대한 심장을 보여준 적은 없다. 그래서 이번에도 정면 승부를 피해갈 것으로 보인다. 내년 총선을 치르고 나서 이 대표는 자신이 ‘가지 않은 길’을 되돌아보며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며 한숨짓는 프로스트의 시 구절을 떠올리게 될지 모른다.
03.09 文이 회피한 법원發 폭탄, 尹이 떠맡자 비난하는 野
盧, 文도 포기했던 징용배상
뒤집은 2012년 대법원 판결
국경 밖에선 안 통하는 法理
일본 기업 배상받자는 주장
피해 당사자 희생 볼모 삼아
反日 장사 이용하는 얌체 짓

▲尹, "징용해법, 피해자와 한일 미래 발전 위한 것" ... "그간 징용피해자에 정부가 배상 해왔다"
법원이 자기 나라 과거사를 심판하는 판결은 종종 있어 왔다. 지난달 서울중앙지법은 베트남전 때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로 피해 입은 베트남인에게 한국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항소심에서 뒤집어지긴 했지만 1998년 일본 야마구치 지법 시모노세키 지부도 위안부 피해자에게 일본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그러나 법원이 다른 나라 과거사를 문제 삼아 내국인 손을 들어 준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각국 법원이 이런 ‘애국적 판결’을 남발할 경우 국제 분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정해진 이치다. 그래서 국제 관계에 영향을 미칠 판결을 삼간다는 ‘사법 자제’ 원칙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은 것이다.
몇 년째 한일 관계를 짓눌러 온 강제 징용 문제는 바로 ‘사법 자제’를 벗어난 ‘애국적 판결’에서 비롯됐다. 2012년 대법원은 강제 징용 배상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소멸됐다는 종전 판결을 뒤집고 ‘청구권이 살아 있다’는 해석을 내렸다. 주심 대법관은 “건국하는 심정으로 판결했다”고 밝혔다. ‘건국하는 심정’이 필요했던 것은 2012년까지 전개돼 온 대한민국 현대사의 연속 선상에서는 내릴 수 없는 판결이라는 뜻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과의 외교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했던 노무현 정부조차 강제 징용 배상은 어렵다고 판단했었다. 2005년 40년 만에 해제된 한일 협정 외교 문서를 7개월 동안 검토한 결론이었다. 그런 판단을 내린 민관 공동위원회 위원장은 이해찬 총리였고, 문재인 민정수석도 정부 위원으로서 참여했었다.
2012년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부 관계자들은 경악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권에서 사법부 요직을 담당했던 ‘우리법 연구회’ 출신 전직 판사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법관은 건국하는 사람이 아니라, 법에 따라 재판하는 사람”이라면서 문제의 판결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한마디로 국경 밖에선 안 통하는 우물 안 법리(法理)다.
윤석열 대통령이 강제 징용을 우리가 선도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결심한 이유도 2012년 대법원 판결이 야기한 국내 사법 문제라는 인식 때문이다. 일본의 태도 변화를 기다리자는 참모들 조언에도 해결을 서두른 것은 일본 징용 기업 자산에 대한 현금화를 대법원이 언제 결심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였다. 법원이 집행을 미뤄 놓은 현금화를 결정하는 순간 한일 관계는 되돌릴 수 없는 파국을 맞게 된다. 법원발(發) 시한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를 아슬아슬한 국면이었다. 한일 협정 전문가인 이원덕 교수도 “요 근래 한일 관계 갈등은 법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었다.
이순신 장군의 배 12척까지 소환하며 반일(反日) 마케팅에 열을 올렸던 문재인 전 대통령도 임기 4년 차엔 우리 법원 판결이 한일 관계에 부담을 준다는 입장을 밝혔다. 2021년 1월 신년 회견에서 “일본 징용 기업의 자산 현금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고 회견 며칠 전 나온 위안부 배상 판결에 대해 “곤혹스럽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이 뒤늦게나마 이런 인식을 가졌다면 징용 문제 해결에 나서야 했다. 그러나 그는 문제만 인정하고, 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대신 나서서 중재안을 냈을 때도 눈치만 보다가 여론이 심상치 않자 등을 돌렸다. 문 전 대통령의 무책임한 태도가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든 측면도 있다.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문재인 정부가 뒤집는 것을 보면서 일본은 한국 정부와의 합의는 언제든 물거품이 될 수 있다며 불신했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가 제시한 각종 중재안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윤 정부의 강제 징용 해법을 민주당은 ‘굴욕 외교’라고 비난한다. 이재명 대표는 “삼전도의 굴욕에 버금가는 최대의 치욕”이라고 했다. 자신들이 회피하고 떠넘긴 숙제를 대신 떠맡았는데 미안해하기는커녕 삿대질까지 한다. 그래서 묻고 싶은 건 그들에게 대안이 있느냐는 점이다.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조차 법적 근거가 소멸됐다고 판단한 징용 배상에 일본이 응할 가능성은 0%다. 시간이 흐르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기대할 근거도 없다. 징용 기업 자산을 현금화한들 현재까지 대법원에서 승소한 피해자 15명에 대한 배상액을 채울 수 있을지, 또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지도 불투명하다. 소송 대기 중인 나머지 1000여 명의 피해자 및 유족들의 몫은 마련할 길조차 없다. 징용 해법에 돌팔매질하는 야당과 시민 단체들은 피해 당사자들의 희생을 볼모 삼아 자신들의 반일(反日) 비즈니스를 이어가겠다는 얌체 짓을 하고 있다.
03.23 文이 자기 광낸 청구서가 나라로 몰려온다
온실가스 감축, 연금 개혁, 脫원전, 한전공대, 가덕도
자신은 박수 받고 떠나고 국가에 남긴 엄청난 부담
개인 비위보다 더 큰 폐해… 두고두고 반면교사 삼아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21년 5월 29일 오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 격려사를 하고 있다./뉴시스
‘온실가스 40% 감축’ 약속은 국가적 자해 행위였다. 2030년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40% 감축하려면 포스코 같은 기업 3곳을 멈춰 세워야 한다. GDP가 83조원 줄어들고, 경제성장률은 4% 떨어지며, 일자리 46만개가 사라진다는 분석이 나왔다. 나라 걱정하는 지도자라면 결코 꺼낼 수 없는 카드다.
2021년 10월 기후변화협약 총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공개 선언한 게 바로 그 ‘온실가스 40% 감축’이었다. 매년 온실가스 저감 속도가 미국, 일본보다 빨라야 하고 EU에 비해선 두 배 이상 과속을 요구했다. 국제사회는 “G7보다 더 과감한 목표”라며 문 대통령의 결단을 추켜세웠다.
문 정권이 떠나고 현장에 남은 기업들은 한숨을 쉬고 있다. “40% 감축”은커녕 그 3분의 1도 버겁다는 것이다. 2030년 기후변화협약 총회에 참석할 대한민국 대통령은 “40% 감축” 약속 위반을 사과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임기 7개월 남긴 문 대통령이 허세 부리고 박수 받은 대가를 대신 치르게 된다.
2017년 6월 19일, 취임 한 달을 갓 넘긴 문 대통령이 “원전은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다”고 했다. 그렇게 선언한 탈원전 방침에 지지자들은 환호했다. 탈원전은 ㎾h당 발전 비용이 60원인 원자력을 120원인 LNG와 200원인 태양광·풍력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멀쩡한 원전을 멈추고 건설을 중단하는 것은 두 배, 세 배 손해 보는 일이다. 2030년까지 손실 140조원, 그에 따른 전기 요금 인상 40%라는 산업자원부 계산서가 나왔다. 문 정부는 그 사실을 숨기고 전기 요금 인상을 막았다. 오히려 한여름 에어컨 전기료를 깎아주기까지 했다. 10조원대 흑자를 내던 한전은 문 정부 5년 동안 부채가 34조원이나 늘어났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거덜 낸 한전에 한전공대라는 혹까지 달아줬다. 한전공대 교수 연봉은 일반 국립대의 두 배 수준이다. 학생들의 등록금, 기숙사비도 면제된다. 5년 내에 대학 4분의 1이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인데 문재인 대선 공약을 위해 특혜 지원을 했다. 10년간 한전공대에 지원해야 할 돈이 1조6000억원이다. 문 정부가 한전 어깨에 지웠던 모든 부담이 전기 요금 인상으로 밀려오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도 부산 가덕도 공항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후에는 대(對)국민 사과까지 하면서 거둬들였다. 공항에서 얻을 이익이 비용의 절반이라는 경제성 평가를 보고는 국가 지도자의 양심상 밀어붙일 수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민주당 오거돈 부산시장의 성추행으로 보궐선거를 치르게 되자 또다시 가덕도 공항 카드를 꺼내 들었다. 선거 한 달 전 공항 부지를 방문해 “신공항 예정지를 보니 가슴이 뛴다”며 매표 행각도 서슴지 않았다. 문 전 대통령이 대못을 박아 둔 가덕도 공항이 2029년까지 공사비 13조7600억원으로 건설될 예정이다.
2018년 11월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네 가지 선택지를 청와대에 보고했다. 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내고 소득의 45%를 연금으로 받는 체제로는 2057년에 기금이 바닥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퇴짜를 놨다. 더 내거나 덜 받게 되는 대안들은 당장 인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더 내지 않고 미래의 목돈을 마련할 마법은 없다. 초등학교 1, 2학년 산수만큼이나 뻔한 이치다. 다른 대안을 내놓으라는 대통령 주문은 100원 주면서 150원짜리 빵 사 오고 50원 거슬러 오라는 학폭 심부름이나 다름없다. 결국 문 정부 5년 동안 연금 개혁은 없었다. 그래서 연금 기금 고갈 시기가 2055년으로 2년 앞당겨졌다. 문 대통령의 책임 회피로 미래세대에게 더 무거운 부담을 안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정권이 일본과 맺은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파기했다. “피해자 입장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그렇다면 할머니들이 원하는 합의를 위해 일본에 재협상을 요구해야 했다. 그런데 5년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더 나은 합의를 얻어낼 능력도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반일(反日) 정서에 올라탄 합의 파기로 정치적 이득만 취했다. 한일 관계 파탄에 따른 부담은 다음 정권 몫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인기와 이해관계를 나라의 장래보다 앞세웠다. 그렇게 벌인 일들이 차례차례 청구서로 날아들고 있다. 나라에 끼친 해악이 역대 대통령들의 개인 비위에 비할 바가 아니다. 명확히 기록으로 남겨 두고두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04.06 50년전 박정희가 씨앗 뿌린 100조 수주 ‘방산 코리아’
70년대초 北은 도발, 美軍 철수
군사력 열세에 소총도 못 만들어
朴대통령 “병기 개발” 총력전
땀과 기름 범벅 5개월 철야
자신들도 놀랐던 발사 성공
황무지서 일궈낸 K방산 신화

▲K2 전차 환영행사 참석한 두다 폴란드 대통령 -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6일(현지 시각) 폴란드 북부 그디니아 해군 기지에서 열린 한국산 K2 전차와 K9 자주포 초도 물량 인수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두다 대통령은“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한국 무기의 신속한 인도는 중요하다”고 말했다. /AFP 연합뉴스
1970년대 초 대한민국 안보는 백척간두에 서 있었다. 1.21 청와대 습격, 울진·삼척 침투, 국립묘지 현충문 폭파 사건... 북의 도발은 거칠 것이 없었다. 평양서는 “수령님 환갑 잔치를 서울에서 열자”는 충성 구호가 등장했다. 1972년 4월 15일 이전에 남침한다는 뜻이다. 미국은 “아시아 방위는 스스로 책임지라”는 닉슨 독트린에 이어 “주한 미군 7사단 2만명 철수”를 일방 통보했다.
영국 전략연구소는 남한 군사력이 북한에 1대3 열세라고 분석했다. 한국군 탱크는 2차 대전때 쓰던 76㎜포 장착 M-4, 북한군 탱크는 1950년대 말 배치된 100㎜포 장착 T-55, T-59였다. 한국군 전투기는 200기, 북은 최신예 미그 21을 포함해 580기였다. 12노트 속도 우리 해군 함정이 25노트 북한 함정에 나포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북은 화포, 탱크까지 생산하는데 우리는 소총 한 자루 만들 능력이 없었다.
1971년 11월 10일 박정희 대통령은 오원철 상공부 차관보를 제2 경제수석에 임명했다. 그리고 “예비군 20개 사단을 무장시킬 수 있는 병기 개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했다. “연말까지 시제품을 만들라”는 시간표와 함께. 촉박한 시한 때문에 ‘번개 사업’이라고 불렸다.
미국은 한국산 화포 개발에 “No, Gun Never”라고 반대했다. 병기가 필요하면 미국에서 구입하라고 했다. 남북 군비 확충 경쟁을 경계했던 것이다. 자체 개발밖에 방법이 없었다. 육군 장비를 분해해서 치수를 잰 뒤 도면을 작성하는 역설계에 의존했다. 부품을 잃어버릴까 야전침대를 갖다 놓고 불침범을 섰다. 미국 무기 교범을 찾으러 청계천 헌 책방도 뒤졌다.
개발팀은 집에 갈 엄두도 못 냈다. 머리와 수염을 못 깎고, 땀과 기름 범벅으로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거지 행색 때문에 ‘거동 수상자’로 몰리는 일도 벌어졌다. 인천 바닷가에 여관을 잡아 놓고 밤마다 지뢰 성능 시험을 했을 때였다. 며칠 후 소총으로 무장한 군경이 여관을 에워쌌다. 가죽점퍼 입고 고무장화 신은 괴한 10여 명이 인적 드문 바닷가에 밤늦게 나갔다 돌아오면서 “폭발물” 얘기를 한다는 신고 때문이었다.
1971년 12월 16일, 청와대에서 시제품이 전시됐다. 샹들리에 불빛을 받은 빨간 카펫 위에 60㎜ 박격포, 로켓포, 기관총, 소총이 놓였다. 처음 보는 국산 병기의 그럴듯한 겉모습에 사람들은 감격했다. 박 대통령은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했다. 뒤풀이 만찬에서 박 대통령은 오 수석에게 “오늘은 임자가 내 앞에 앉아”라고 했다. 그리고 맞담배를 권했다. 청와대 신관 30평 반지하실에 병기 진열장이 마련됐다. 박 대통령은 아침 산책길마다 들러 병기 개발 상태를 점검했다.
1972년 4월 3일, 보병 26사단에서 시사회(試射會)가 열렸다. 5개월 날림 작업으로 생산된 병기가 과연 작동할 것인가. 진실의 순간이었다. 3부 요인과 각 군 총장이 참관했다.
카빈총과 기관총 사격이 첫 번째였다. 사고가 날까 내빈석은 300m 멀리 설치됐다. 놀랄 만큼 명중률이 높았다. 표적에 달아둔 타일과 접시가 산산조각 날 때마다 함성이 터졌다. 정작 인솔 장교는 떨떠름했다. 사격 병사들의 철모를 두드리며 핀잔을 줬다. “자식들아, 미국 총 대신 국산 총 주면 어쩌려고 그래.” 국산 병기가 그만큼 못 미더웠던 것이다.
대전차지뢰 폭발 때 10m가 넘는 불기둥이 치솟았다. 내빈석으로 시커먼 캐터필러 조각들이 날아왔다. ‘악’ 하는 비명과 함께 대피 소동이 벌어졌다. 국방장관이 벌떡 일어나 “중지”라고 외쳤다. 박 대통령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쌍안경으로 폭발 지점을 관찰하더니 “순서대로 진행해”라고 지시했다. 시사회는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박 대통령은 병기 진열대로 향했다. 81㎜ 박격포 포신을 쓰다듬었다. 귀여운 자식의 뺨을 어루만지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방위 산업이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 판매 계약을 체결하며 수주 잔액이 100조원을 넘어섰다. 뛰어난 가성비와 철저한 납기 준수로 경쟁력을 인정받은 결과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작년 4월 대한민국 국회 화상연설에서 “러시아의 탱크, 배, 미사일을 막을 수 있는 군사 장비가 한국에 있다”면서 지원을 요청했다. 작년 12월 폴란드 대통령은 계약 넉 달 만에 배달된 K2 전차와 K9 자주포를 해군 기지까지 나와 마중했다. 방산 강국 코리아가 자유 민주주의의 무기고 역할을 하고 있다. 50년전 박정희 대통령이 황무지에 뿌렸던 씨앗이 맺은 열매다.
04.20 일본 노래로 세월호 추모하며 남 이마엔 親日딱지
일제 때 지명 정해졌다고 학살 현장에서 가깝다고 마구잡이로 비난하더니
일본 국민 애창곡으로 매년 세월호 기념 행사… 親日까지 내로남불인가

▲지난 16일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9주기 기억식./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2030 엑스포 유치 지원을 위해 부산에 갔다가 만찬 행사를 가진 횟집이 친일(親日) 논란에 휩싸이며 불매 운동 대상이 됐다. 친야(親野) 성향 유튜브 채널이 횟집 이름 ‘일광(日光)’을 문제 삼았다. 부산 기장군 일광읍 명칭이 일제 시대 때 붙여졌으며, 일광이라는 단어가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 모양을 연상시킨다는 주장이다. 일광읍 주민 2만8000여 명과 전국 각지에서 고향 이름을 따 ‘일광 횟집’ 또는 ‘일광 수산’을 운영하는 식당 주인들이 졸지에 친일 세력이 됐다.
기장군이 반박 보도자료를 냈다. 일광읍 명칭은 기장군 소재 일광산에서 따온 것이며, 인조 6년(1638년) 지어진 기장 향교 상량문에도 일광산이 적혀 있는 만큼 일제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고증이 동원되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백번 양보해서 일광이라는 지명이 일본 사람 머리에서 나왔다고 치자. 그렇다고 일광산에 등산하고, 일광 해수욕장에서 물놀이하고, 햇볕 쬐는 일광욕(日光浴)을 친일 행위라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야권은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강제 징용 해법을 내놓은 것을 비난하기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 윤 대통령 행적 하나하나에 친일(親日) 딱지를 붙이려 아이디어를 짜낸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윤 대통령이 방일 때 기시다 일본 총리와 친교의 시간을 가진 오무라이스 전문점 렌가테이가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장소에서 20분 거리에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역사의 맥락을 모르면 일본에 당한다”고 했다.
서울 용산공원에서 백범 김구 기념관까지는 5㎞다. 스쿨존 제한 속도 30㎞로 주행해도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용산공원터는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왜군의 보급기지였고, 청일전쟁 이후 일본군이 주둔했으며, 러일 전쟁을 거치며 조선주차군사령부가 자리 잡았던 역사적 배경이 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김구 기념관도 친일 시설로 봐야 하나.
50년 민주세력에 뿌리를 둔 지금의 야권은 문재인 정권을 거치며 국정(國政) DNA가 거세된 정쟁 집단으로 변질됐다. 오로지 ‘친일 낙인 찍기’와 ‘재난 덤터기 씌우기’로 상대 정파를 비난하는 기능만 작동한다. 문 전 대통령은 “친일 청산은 오랫동안 풀지 못한 숙제”라고 했고 팽목항 세월호 현장에선 방명록에 “미안하다, 고맙다”고 썼다. 그런데 야권의 정체성처럼 돼 버린 이 두 가지 신조가 언제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지난주 광주와 전남 교육청의 세월호 9주기 추모 행사에서 ‘천 개의 바람이 되어’가 연주됐다. 작년 8주기 때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띄워진 동영상, 민주당 의원들의 세월호 관련 인터뷰에 배경으로 깔린 음악도 이 노래였다.
‘천 개의 바람’은 팝페라 가수 임형주씨의 2009년 2월 앨범을 통해 국내에 소개됐다. 음반이 출시된 날이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일과 겹치면서 추모곡으로 헌정됐다. 그해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세월호, 핼러윈 참사 같은 국가적 비극을 위로하는 노래로 자리 잡았다.
이 노래는 일본 작곡가 아라이 만의 센노 가제니 나테(千の風になって)를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미국의 작가 미상 추모시에 멜로디를 입힌 노래다. 일본 팝페라 가수가 연말 가요제인 NHK 홍백가합전에서 부르면서 널리 알려졌고 2003년 발매된 싱글 앨범이 100만장 이상 팔렸다. 이 노래를 만들게 된 영감을 줬다는 홋카이도 오누마 공원 간판에는 ‘센노 가제니 나테’의 탄생지라는 설명이 쓰여 있다. 그만큼 일본에서 잘 알려진 노래다. 한국어판 ‘천 개의 바람’ 수익금의 절반은 일본 작곡가와 음원사 몫이다. 임형주씨는 한국 측 수익금을 세월호 유가족과 피해자에게 기부했다.
미국 작곡가가 똑 같은 추모시 가사로 교회 성가를 만든 버전도 있다. 제목은 추모시 첫 줄인 “나의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다. 미국과 유럽에서 중고생 성가대가 합창하는 유튜브 동영상이 여럿 떠있다. 마치 먼저 떠난 동년배 단원고 학생들을 위해 불러주는 노래 같다. 일본 가요가 가볍게 귀에 꽂힌다면, 미국 성가는 무겁고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개인적으로 일본 것도 미국 것도 나름의 울림이 있었다. 노래가 위로만 줄 수 있다면 국적을 따져서 무엇하겠는가. 다만 평소에 일본 근처에만 가도 병균에 옮는 것처럼 남의 이마에 친일(親日) 딱지를 붙여온 사람들이 일본 작곡가가 만든 일본 국민의 애창곡으로 세월호를 추모하는 광경이 기이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05.04 워싱턴의 ‘공감 윤석열’, 서울서도 보고 싶다
만찬장서 美 애창곡 열창, 기립 박수 끌어낸 의회 연설… 뜻 통하는 同盟 인상 남겨
국내선 소통 시도 멈추고 내 편 빼고 내치는 뺄셈 정치… 民心 얻기 다시 나서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6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만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함께 무대에 올라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돈 맥클린의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만찬장에서 부른 ‘아메리칸 파이’는 흑백 문자만 빽빽했던 우리 외교사에 알록달록한 화보를 남겼다. 미국 언론들이 정상회담 둘째 날을 전하며 뽑은 제목마다 ‘아메리칸 파이’가 등장했다. 뉴욕타임스는 윤 대통령의 열창이 2006년 미·일 정상회담 때 고이즈미 일 총리가 부른 엘비스 프레슬리의 ‘러브 미 텐더’를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백악관 저녁 행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노래의 첫 소절 “어 롱 롱 타임 어고”를 시원하게 뽑았을 때 미국 악단장은 눈동자가 커지며 환호했다. 태평양 너머 먼 곳에서 온, 문화적 배경도 다른 외국 정상이 미국인들의 애창곡을 익숙하게 소화해 내는 솜씨가 친밀감을 불러일으킨 게 아닐까 싶다. 우리가 ‘부산 갈매기’나 ‘목포행 완행열차’를 천연덕스럽게 부르는 파란 눈의 금발 아가씨를 볼 때 느끼는 정서적 유대 비슷한 것이다.
윤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도 26번의 기립 박수를 이끌어 냈다. 영어 발음이 현지인 수준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상대방에게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되도록 부단히 연습했다는 느낌을 줬다. 어떤 메시지가 미국인들의 감정선을 건드리게 될지 고민한 흔적도 느낄 수 있었다. 연설 초반 윤 대통령이 “민주, 공화 어느 쪽 의석에 앉아 있든 여러분 모두가 대한민국 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했을 때 의원들은 일제히 일어나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윤 대통령이 이번 방미 주제로 삼은 ‘강철 같은 한미 동맹’을 압축적으로 담아낸 대목이었다.
윤 대통령은 워싱턴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우리와 마음이 맞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줬다. 지루한 수업 시간에 끌려 나온 고등학생 같은 표정으로 실무자가 적어준 대사를 암송하던 전임 대통령보다 공감 지수를 크게 끌어올렸다. 그것만으로도 정상회담에서 얻은 것이 있다고 본다.
어느새 까마득한 옛일처럼 느껴지지만 윤 대통령이 국내 현장에서도 사람들 마음에 성큼 다가서는 모습을 보여준 시절이 있었다. 취임 첫 달 용산 집무실 앞 잔디 광장에서 ‘중소 기업인 대화’를 가졌을 때였다. 행사 시작 무렵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주최 측은 물론 500명이 넘는 참석 기업인들도 안절부절못했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야외 행사를 빗속에서 진행해도 좋을지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때 대통령이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비가 오네요. 이런 날씨에 술 한잔 하면 기분 좋지 않습니까.” 순간 “와” 하는 함성과 함께 긴장이 풀리며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대통령은 50곳이 넘는 테이블을 빠짐없이 들르며 막걸리를 돌렸다. 행사는 정겨운 대화 속에 예정보다 한 시간 넘게 이어졌다. 이 광경을 필자에게 전해준 기업인은 “대통령이 사람들 기분을 흥겹게 하는 소질을 타고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윤석열표 소통’은 얼마 가지 않아 자취를 감췄다. 몇 차례 말실수와 인사 실패에 대해 비판이 일자 대통령은 감정 섞인 대응을 했다. 그리고 국민 시선을 피해 무대 뒤로 몸을 감췄다. 대통령의 접촉 반경도 좁혀지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취임 일주일 만에 국회 시정연설을 했을 때만 해도 야당 의석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악수를 청했다. 우리도 야당과 대화하는 대통령을 보게 되나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정파의 벽을 뛰어넘기는커녕, 여권 내에서도 확실한 친윤 그룹만 끌어안고 나머지 우군 세력을 모두 내쳤다. 역대 정권을 패망으로 이끈 뺄셈 정치다.
국민들은 지난주 국제 무대 한복판에서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발산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목격했다. 익숙지 않은 언어와 문화 환경 속에서 움츠러들던 과거 지도자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피해자 코스프레로 국제사회에 부담을 주던 관성을 떨쳐 내고 미래를 선도하는 진취성을 과시한 대통령에게 자부심을 느꼈다는 국민이 적지 않다.
워싱턴에서 빛을 발했던 ‘공감 윤석열’의 모습을 서울에서도 보고 싶다. 수십 번 고쳐 쓴 원고로 미 의원들의 기립 박수를 이끌어 냈듯,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에 대해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노력과 정성을 쏟아 냈으면 좋겠다. 사사건건 시비 걸기 바쁜 야당을 향해서도 설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야당은 끝내 고개를 돌리고 뿌리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지켜본 국민은 대통령 편에 설 것이다. 동맹과 소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대통령이라면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못 할 일이 무엇이 있겠나.
05.18 文 정부서 탈탈 털린 김관진, 北 金씨 부자 떨게 한 죄
7가지 혐의 중 6건 무혐의, 무죄
A4 한 장 댓글 보고서 봤다고 정치 관여 2년 4개월형 선고… 5년 동안 44회 재판 시달려
主敵에 원칙 대응 사명 다한 게 北 심기 경호 정권에 미운털

▲북한이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가 2013년 공개한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을 겨냥한 훈련 사진. 이 사진의 제목은 '미친개 김관진놈을 가상한 표적을 무자비하게 물어제끼고 있는 군견들'이다. /우리민족끼리
으르렁대는 군견(軍犬)들이 김관진 국방장관 가면을 쓴 인형을 쓰러뜨리고 물어뜯는다. 북한군들이 김 장관 얼굴 밑에 ‘김관진 놈’이라고 쓴 표적지를 향해 사격 훈련을 한다. “김관진 XX 같은 전쟁 대결 광신자 때문에 남조선 인민들이 큰 변고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 인터뷰가 뒤따른다. 2014년 4월 방영한 북한 방송 내용이다.
국방장관실로 배달된 협박 편지엔 “김관진은 더러운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할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북한 조평통 대변인이 “김관진은 가소로운 망동을 멈추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북이 대통령도 아닌 특정 인사를 이처럼 집요하게 공격한 사례는 없었다. 김 전 장관이 눈엣가시였다는 뜻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김관진 국방장관 내정을 발표한 것은 2010년 11월 26일이었다. 북의 연평도 포격 사흘 뒤였다. 김 장관은 북이 도발 핑계로 삼았던 서해 포격 훈련을 다시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북이 재도발을 위협하면서 하루하루 긴장이 고조됐다.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주한 미군 사령관까지 자제를 요청했다. 김 장관은 물러서지 않았다. 훈련 개시에 맞춰 전투기에 미사일을 장착하고 출격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미사일을 쏘지 않고 돌아오면 착륙 때 폭발 위험이 있다고 부하들이 말렸지만 밀어붙였다. 북에도 이 사실을 일부러 흘렸다. 훈련 전날인 12월 19일, 김정일이 북한군 지휘부에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린 사실을 정보 당국이 포착했다. 김 장관의 기세에 겁먹고 움츠러든 것이다. 김관진 국방장관 재임 기간 북의 추가 도발은 없었다. 미 국방부는 이를 김관진 효과(effect)라고 불렀다. 김 장관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유임된 데 이어 국가안보실장까지 지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김관진 사냥’이 시작됐다. 사드 추가 반입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청와대 조사가 신호탄이었다. 사드가 추가로 들어온 것은 언론 보도로 천하가 아는 사실인데 대단한 은폐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떨었다. 군 정치 댓글 지시, 세월호 조작, 세월호 유족 사찰, 계엄령 문건, 차기 전투기 기종 결정, 제주 해군기지 정치 중립 위반 등 김관진을 겨냥한 혐의가 차례차례 등장했다. 이 혐의가 안 되면 저 혐의, 그것도 안 되면 또 다른 혐의를 들췄다. 함께 수사받던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김관진에 대해 불라는데, 없는 걸 어떻게 만드나. 할복이라도 할까”라고 하소연했다. 그리고 며칠 후 극단적 선택을 했다.
실질적인 수사 지휘부는 문재인 청와대였다. 청와대 행정관은 군 기밀 자료를 영장 없이 열람한 후 2014년 무혐의 처리된 군 댓글 혐의를 재수사하도록 몰아갔다. 인도 순방 중이던 대통령이 기무사 계엄 문건 별도 수사팀을 만들라고 특별 지시하기도 했다.
억지로 엮다 보니 전체 혐의 7가지 중 5가지가 수사 단계에서 무혐의 처분됐다. 세월호 조작도 1심, 2심, 대법원 모두 무죄판결이었다. 군 댓글 사건은 구속, 적부심 석방, 재영장 청구, 기각 등을 거쳐 2심에서 2년 4개월형을 선고 받았다. 2011~2013년 사이버 사령부 댓글 78만건 중 8800여 건이 정치적 내용이며, 김 전 장관이 매일 아침 책상에 오르는 보고서 10여 건 중 댓글 보고서를 읽었다는 갈매기 표시를 남겼다는 게 유죄 근거였다. 달랑 A4 용지 한 장으로 요약된 보고서를 읽어봤다 한들, 하루 평균 1000건 내외 댓글 내용을 어떻게 알 수 있었다는 것인지 납득이 안 된다. 대법원이 일부 무죄 취지 파기 환송한 2심이 곧 재개될 예정이다. 김 전 장관이 2018년 이후 출석한 재판은 댓글 사건으로 28회, 세월호 사건으로 16회 등 총 44회다.
김 전 장관은 정파적 인물이 아니다. 2010년 12월 장관 인사청문회를 지켜본 민주당 의원들은 “장관 잘 뽑았다” “확고한 자세가 든든하다”고 호평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야당을 자극할 정치적 언행을 한 적도 없다. 그런데도 김 전 장관에 대한 영장이 기각됐을 때 당시 국방장관이 “다행”이라고 하자 민주당 의원들이 벌 떼같이 일어나 장관을 질타했다. 도대체 뭣 때문에 그토록 밉보였을까.
김 전 장관이 도드라지게 한 일이 있다면 북의 도발에 원칙적 대응을 한 것뿐이다. 임기 5년 내내 김정은 심기 경호에 올인한 문 정권 입장에선 그것이 대역죄였던 모양이다. 대한민국 국군을 지휘하는 사령탑이 주적(主敵)의 수괴를 떨게 만든 ‘죄과’를 혹독하게 치러야 했다.
06.15 그들이 꿈꾸는 대한민국의 ‘다른 100년’
베트남도 우크라이나도 “한국 경제 성공 배우자”… 우리 교과서만 애써 외면
市場 무시, 中國 추종으로 새로운 백년 열자는 좌파… 나라 맡기면 어찌 될지

▲/일러스트=이철원
2000년대 초 베트남에 발령받은 외교관은 공산당 간부들이 끼고 다니는 100페이지 남짓 소책자의 정체를 알고 놀랐다. 1970년대 대한민국 경제 발전 과정을 담은 것이었다. 박정희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씨가 IBRD 의뢰를 받아 작성했다. 너도나도 ‘한강의 기적’을 배우겠다고 책을 구했는데 영어가 서툴러 답답해하고 있었다. 주베트남 한국 대사관이 베트남어 번역본을 만들어 줘서 감사 인사를 받았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고등학교 교과서에 한국을 소개하는 독립 항목이 생긴다는 소식이 얼마 전 조선일보에 실렸다. 앞 부분이 이렇게 시작된다. “대한민국은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다. GDP 기준 세계 10대 경제 국가에 속하고, G20과 OECD의 일원이 됐다. 한국 경제의 기적을 이룬 결정적 요인은 자본 집중이었다. 국가는 첨단 기술에 필요한 국내 자본의 집중을 허용했다. 1950년대부터 형성된 재벌은 소유주 가족의 단독 통제와 관리 아래 다양한 산업에 진출했다.” 교과서 필자 중 한 명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은 경제 발전을 꿈꾸는 세계 각국의 모델이 되는 나라”라고 했다.
전 세계가 놀라고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의 경제적 성취가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과서에선 어떤 대접을 받고 있을까. D출판사 한국사 교과서에서 ‘6·25전쟁 이후 현대사’ 부분은 4·19 혁명, 유신에 대한 저항, 5·18 민주화 운동, 6월 민주 항쟁, 평화적 정권 교체, 확대되는 민주주의 등 여섯 장에 걸쳐 민주화 관련이 먼저 나온다. 그 뒤에 ‘경제성장과 사회 변화’가 딱 한 장으로 다뤄진다. 그나마도 ‘고도성장으로 재벌이 형성되다’ ‘노동자 삶이 나아지지 않다’ ‘농민들, 농촌을 떠나다’ 같은 부작용이 절반가량 차지한다. 다른 출판사도 구성이 비슷하다. 민주화 성과를 집중 홍보하면서 산업화는 마지못해 구색을 맞췄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민주화 세력에만 부여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대한민국 고도성장의 공로가 박정희를 비롯한 산업화 세력에 돌아가는 것이 못마땅하다. 친일(親日) 인명 사전을 만든 연구소가 제작한 동영상 ‘백년 전쟁’에서 그런 심리가 잘 나타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미국과 일본의 꼭두각시로 묘사한다. 미국은 소련과 체제 경쟁을 위해, 일본은 한국을 경제적 속국으로 만들려고 한국의 경제성장을 지원했으며 박 전 대통령은 두 나라가 시키는 대로 따라 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남이 시키는 대로 해서 경제 기적을 일궜다는 환타지 소설이다. 그렇다면 지난 20년간 전 세계가 75조원이라는 전무후무한 원조를 쏟아붓고, 미국이 국가 건설 작업을 총력 지원한 아프가니스탄의 처참한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셈인가.
좌파는 100년 단위로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습관이 있다. 시진핑은 건국 100주년을 맞는 2049년까지 미국을 추월한다는 중국몽을 제시했다. 그 꿈을 이루려는 중국의 분투 과정을 담은 책 제목이 ‘100년의 마라톤’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혁신위원장으로 지명했다가 9시간 만에 거둬들인 이래경씨의 직함은 ‘다른 백년’ 명예이사장이다. 그는 저서 ‘다른 백년을 꿈꾸자’ 속에 자신이 그리는 대변혁의 청사진을 담고 있다. ‘다른 백년’이라는 표현 속에는 건국 75년을 맞은 대한민국이 잘못된 경로를 거쳐 왔다는 아쉬움을 담고 있다.
‘천안함은 자폭’이고 ‘코로나는 미국산(産)’이라는 이씨는 도대체 어떤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문재인 정책과 이재명 대선 공약이 뒤범벅된 가운데 좀 더 황당한 내용이 가미돼 있다. 우리 복지 재정은 200조 남짓으로 GDP 10%인데, 이씨는 이를 3배가량인 30%로 늘리자고 했다. 그 재원은 상속, 증여 최고 세율 50%에서 80%로 인상, 복지 용도로 한정된 국가 화폐 발행 등으로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주 1표 주주 중심에서 1인 1표라는 가치 중시로”라는 이씨의 구호는 문 전 대통령의 경제관과 판박이고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시대는 저물고, 중국이 대국의 면모로 포효한다”는 국제 정세관은 두 손을 모은 공손한 자세로 국장급 중국 대사의 훈시를 듣는 이재명 대표의 모습과 교차된다.
압도적 국회 의석으로 국정을 쥐락펴략하는 민주당이 이런 허무맹랑한 로드맵에 따라 ‘혁신’될 뻔했다. 지난 대선에서 0.74%p 차 승부가 엇갈렸다면 대한민국 전체가 생체 실험 대상이 됐을 수도 있다. 머리털이 곤두설 정도로 으스스해진다.
06.29 강남 좌파 ‘킬러 문항’ 이중성 제대로 겨누긴 했는데
수험생 겁줘 자기 진영 돈벌이
카르텔 깨자는 데 공감하지만 느닷없는 수능 변경 방침이 새로운 혼란 부를까 우려도
정책은 속 내용뿐 아니라 전달 방식 따라 평가 좌우돼

▲(서울=뉴스1) 김명섭 기자 =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사교육 경감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2023.6.26/뉴스1
첫째가 대입을 준비하던 무렵 논술을 가르치겠다고 기출 문제집을 들여다본 적이 있다. 제시된 여러 지문 속 공통 주제어를 찾아 문제를 푸는 방식이 많았는데, 그 공통 주제어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모범 답안을 읽어 봐도 납득이 안 됐다. 해당 대학 졸업생들이 언론사에 들어오겠다고 제출한 논술 답안지 수준을 뻔히 아는데, 대입 수험생들이 이런 문제를 푼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우리 대학은 이런 수준이야’라고 폼 잡고 겁 주는 느낌이었다.
대학 동기들 단톡방에서 언론에 보도된 수능 ‘킬러 문항’이 화제가 됐다. 마지막으로 본고사를 치른 학번이라 국·영·수 과목의 어렵다는 문제를 많이 경험해 본 세대다. 그런데도 “대입 시험에 이런 문제가 나오느냐”고 놀라거나 “이게 국어 문제냐, 수학 문제냐”고 갸우뚱하는 반응이었다. 수험생들이 시간에 쫓기는 긴장감 속에 처음 보는 전문 용어들을 접했을 때 느낄 당혹감이 짐작이 됐다. 그래서 ‘킬러 문항’이라는 섬뜩한 용어가 나왔나 보다.
“약자인 아이들 데리고 장난치는 것”이라는 윤석열 대통령 분노에 공감한다. 대학에 가려면 학교 수업에서 듣도 보도 못 한 유형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니 수험생들은 사교육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1년에 수십억, 수백억을 번다는 일타 강사들이 “킬러 문항을 없애라”는 대통령 지시에 집단 반발하는 것이다. 강남 학부모들이 주도하는 맘 카페 반응도 험악했다고 한다.
킬러 문항이 사교육을 배양하는 메커니즘은 수험생의 불안과 학부모의 재력이라는 양대 기둥 위에서 작동한다. ‘공포 마케팅’과 ‘강남 때리기’가 전공인 민주당이 마음껏 누빌 수 있는 운동장이다. 수십만 수험생 부모들을 8대2 또는 9대1로 갈라쳐서 총선 표를 챙길 수 있는 기막힌 소재다. 그런데 놀랍게도 민주당은 킬러 문항 폐지를 “최악의 교육 참사”라고 비난한다.
민주당은 특목고, 자사고 육성이나 학력 진단 평가 같은 수월성 교육 정책에 늘 반대해 왔다. 평등을 깃발로 내걸었으니 당연한 선택이다. 그런데 사교육과 수능 출제 경향에서는 이상하게 목소리가 잦아든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EBS 수능 출제 비율을 높이면서 사교육 부담이 줄어들었는데 문재인 정부 때는 정반대 흐름이었다. 그 원인은 86세대 민주당 핵심 지지층이 사교육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교육 출신 정치인은 모두 민주당 소속이기도 하다. 국민을 위한다는 정책을 내걸고 뒤로는 자기 진영 먹거리를 챙기는 위선이 여기서도 확인된다.
수험생들의 연약한 심리 상태를 인질 삼아 천문학적 수익을 추구하는 사교육 카르텔 구조를 깨자는 윤 대통령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국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강남 좌파의 이중성을 정확히 겨눴다는 점에서 총선용 적시타가 될 잠재력도 갖췄다.
그런데도 ‘킬러 문항’ 논란을 지켜보는 국민은 미심쩍은 반응이다. 대통령이 교육부 장관을 질책하자, 교육부 대입 국장이 경질되고, 교육과정평가원장이 물러나는 사태가 급박하게 전개됐다. 국민들은 “수능이 다섯 달 남은 시점에 뜬금없이?”라며 의아해했다. “대통령은 진작에 킬러 문항을 없애라고 했는데, 이 지시가 6월 모의고사에서 지켜지지 않았다”고 해명하지만 대입 수험생과 학부모조차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초등학교 입학 연령, 대통령 방미 준비, 탈(脫)원전 폐기 문제 등으로 대통령이 화를 내고 정책 부서 책임자가 옷을 벗는 장면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이런 기시감이 ‘킬러 문항’ 사태를 불안하게 느끼게 만든다. 수능 출제 방식을 바꾸라는 대통령의 설익은 지시가 오히려 혼란을 야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한 기업인은 “좋은 취지인 줄은 알겠는데 왜 늘 이런 식으로 정책을 딜리버리(배달)하느냐”고 했다.
국민은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배달되는지 모른다. 또 알 필요도 없다. 그저 국민 삶이 더 행복해지고, 나아지면 그만이다. 좋은 레스토랑은 맛있는 음식과 더불어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쁜 모양으로 접시 위에 올린 음식을 내놓으며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이면 맛을 보기 전에 이미 군침을 삼키게 된다. 반면 주방에서는 “왜 시킨 대로 하지 않느냐”는 고함이 들려오고, 어떤 음식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그냥 믿고 기다리라는 식이라면 고객은 찜찜한 기분이 든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고민해가며 내놓는 정책을 왜 스스로 흠집 내나.
07.13 ‘초밥 10인분’ 이재명家, 평생 생선 끊을 각오 섰나
“광우병 소 No” 외쳤는데
미국 쇠고기 최대 수입국
오염수로 생선 ‘세슘 범벅’
차라리 × 먹겠다는 민주당
票 욕심에 마구 지른 괴담
뒷감당 대책 있는지 궁금

▲야당 의원으로 구성된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 저지 대한민국 국회의원단이 10일 오후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NRA)를 방문,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투기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2023.7.10/더불어민주당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한 여배우는 “미국산 쇠고기 먹느니 청산가리를 입에 털어 넣겠다”고 했다. 그 한마디로 ‘개념 연예인’ 반열에 올랐다. 그녀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햄버거 먹는 동영상이 논란을 일으켰다. 광우병 사태 전에 촬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청산가리보다 위험한 음식을 입에 털어 넣은 걸 뒤늦게 알게 됐다는 얘기다. 잠복기 10년 동안 얼마나 불안했을까 싶다. 그 공포의 세월을 박원순 서울시장 추모 글 올리고, 윤미향 의원 유세 지원 하면서 이겨냈다.
김대중 정권 때 농림부 장관을 지낸 인사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느니 “조류독감에 걸린 닭고기를 끓여 먹자”고 했다. 그로부터 3년 후 그가 햄버거를 먹으며 미국 여행을 한 사실이 공개됐다. 그는 미국 판매 쇠고기는 20개월령 미만이라, 한국 수입용 30개월령 이상과 달리 안전하다고 했다. 우리가 먹는 한우도 괜찮고, 미국 사람이 먹는 미국산도 괜찮은데, 한국이 수입하는 미국산 쇠고기만 위험하다는 것이다. 먹거리의 안전성마저 정쟁 맞춤용으로 절묘하게 조절된다.
두 사람은 우연히 미국 햄버거 먹은 사실이 알려졌을 뿐이다. 2021년, 2022년 대한민국은 미국산 쇠고기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가 됐다. 음식점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구워 먹는 주변 손님들을 슬그머니 쳐다보곤 했다. “광화문에서 촛불 켜고 ‘뇌 송송, 구멍 탁’을 외치던 사람들은 아닐까.”
“미국산 쇠고기를 먹느니…” 공포 마케팅이 15년 만에 “후쿠시마 오염수를 마시느니…”로 패러디되고 있다. 민주당 의원은 “차라리 X를 먹겠다”고 했다. 후쿠시마 방류수가 우리 바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없다고 설명하면 “그러면 너희나 마시라”고 한다.
민주당 사람들은 앞으로 수산물을 입에도 대지 않고 살 태세다. 우리 바다가 방사능 범벅이 된다니 거기서 잡히는 생선도 독극물일 것이다. 인분보다 해롭다고 했으니 못 먹는 게 당연하다. 총선 때 재미 좀 보려고 이렇게 세게 질러 놨는데 그들의 수산물 금식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궁금해진다.
광우병은 쇠고기 국적따라 생사가 갈린다는 식이었다. 오염수 괴담에는 국경선도 없다. 일본산, 한국산 할 것 없이 모두 ‘세슘 범벅’이라고 민주당은 주장한다. 그래 놓고 어떤 생선이라도 입에 넣는다면 자신들이 내뱉었던 말을 부정하는 꼴이다.
광우병은 동물성 사료 금지나 위험 부위 제거 같은 안전 조치가 시효 끝난 괴담을 내다 버릴 핑계를 제공했다. 후쿠시마 방류는 그런 퇴로가 없다. 민주당은 오염수를 방류해도 된다는 IAEA 판정을 “깡통 보고서”라고 했고, 오염수를 마셔도 된다는 전문가들을 “돌팔이”로 몰았다. 오염수 괴담으로 재미 본 뒤 탈출할 동아줄을 스스로 끊어버렸다.
1, 2년 안에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후쿠시마 오염수는 탱크 1066개에 132만t 분량이 저장돼 있다. 일본은 30년 동안 하루에 120t씩 나눠서 방류한다는 방침이다. 그렇게 태평양 쪽으로 흘러나간 오염수는 해류 방향을 따라 미국 알래스카, 캘리포니아, 하와이를 거치며 크게 한 바퀴 돈 후 4, 5년 뒤엔 동해와 서해 쪽으로 흘러들 것으로 예측된다. 세월이 지날수록 방류량 누적치는 늘어난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한반도 해역의 방사성 물질 농도도 점차 높아질 것이다. 30년 후 마지막으로 방류된 오염수가 한반도에 도착하는 시점이 2057,8년이 된다. 1964년생 이재명 대표가 나이 90을 넘겼을 시점이다.
이재명 대표 가족은 한 번에 생선 초밥을 10인분씩 집으로 배달시켰다. 비밀 선거 캠프용이 아니었다면 네 가족이 2인분 이상씩 먹었다는 얘기다. 이런 집이 앞으로 35년간 생선을 끊고 산다는 게 상상이 안 된다. 타개책은 두 가지다. 첫째, 이재명표 말 뒤집기다. “존경하는 박근혜라고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며 자기가 했던 말에 침을 뱉었다. 불체포 특권 포기도 대선 공약, 국회 연설로 두 번이나 약속하더니 퉁쳐 버렸다.
둘째, 앞에선 ‘세슘 생선’ 토하는 시늉 하고, 뒤돌아서 몰래 먹는 방법도 있다. 단식 제대로 하면 열흘 남짓이 한계라고 한다. 좌파 진영엔 수십 일씩 안 먹고도 멀쩡하게 일상으로 복귀한 투사가 수두룩하다. 민주당 국회 부의장은 일본 규탄 결의안을 통과시킨 날, 일본 여행 계획을 핸드폰 문자로 주고받았다. 그 문자에는 ‘한국 여행객이 드문’ 일본 여행지 정보가 적혀 있었다. 이재명 대표도 거기가 어디인지 궁금할 것이다.
07-27 일진 비위 맞춘 文, 반장 단짝 맺은 尹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회담
국제 위상 또 한번 격상 계기
일본과 관계 정상화 주도로
미국 핵심 파트너 복귀한 덕
중러에 굽신대다 체면 구긴
평화 프로세스 실패와 대비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5월21일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장인 그랜드 프린스 호텔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대통령실
1990년대 중반 워싱턴 특파원 시절, 한국 관련 이슈를 귀동냥하기 위해 국무부 정례 브리핑에 참석하곤 했다. 필자를 비롯한 외국 특파원들이 브리핑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국무부 대변인과 미국 주요 매체 기자들이 동시에 입장했다. 그들끼리 내밀한 정보를 주고받는 사전 미팅을 갖는 듯 했다. 공식 브리핑에선 암호 해독이 필요한 선문답이 오갔다.
1995년 4월 미국 오클라호마 연방 빌딩 폭탄 테러 현장을 취재하러 갔다. 현장엔 3단계의 통제선이 설치돼 있었다. 일반인들은 맨 바깥 통제선, 필자 같은 외국 특파원은 두 번째 통제선, 미국 매체 기자들은 세 번째 통제선에서 각각 멈춰서야 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와 미 지상파 TV 매체들은 마지막 통제선 내부까지도 출입이 가능했다. 미국 사회도 영향력과 친밀도에 따라 엄격한 차별이 적용됐다. 1인 1표 민주주의는 교과서에나 나오는 허상이었다.
2010년 11월 서울에서 주요 20국(G20) 정상회의가 열렸다. 준비 과정에 관여했던 우리 측 관계자는 “국제사회가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속살을 들여다봤다”고 했다. “미국이 사전에 소집한 몇몇 핵심 국가가 미리 결론을 내려 놓더라. 국제회의는 거기서 정해진 대본에 따라 진행되는 연극일 뿐”이라고 했다.
내달 미국 대통령의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이 개최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국이 미국의 Top-tier(최상위) 동맹으로 격상됐다”고 했다. 미국의 친소(親疎) 관계 동심원의 맨 안쪽에 한국이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캠프 데이비드는 미국이 1978년 중동 평화 협정을 비롯해 외교적 돌파구를 마련할 때 활용해온 무대다. 이곳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갖는 것은 미국이 한국과 일본 두 나라를 동북아 현안을 풀어나가는 핵심 파트너로 선정했다는 뜻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유럽 안보 동맹체인 나토 정상회의에 작년에 이어 올해도 2년 연속 참석했다. 이명박 대통령 때 G20에 진입한 대한민국이 G7 확장 멤버가 되는 2차 도약이 가시권 내에서 어른거린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 합참본부는 1948년 2월 미국 안보를 위한 전략적 가치 면에서 한국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판단을 내렸다. 한국을 태평양 방어선에서 제외한 애치슨 라인이 그렇게 그려졌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대일 강화 조약 48개 상대국에 한국은 끼지도 못했다. 그때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2023년 한국의 외교적 위상은 역사적 반전이다.
오늘날 국제사회는 미국이 설계하고 주도해온 질서에 중국과 러시아라는 현상 변경 세력이 도전하는 모양새다. 중·러 두 나라는 자신들이 힘깨나 쓰던 시절을 되살리려고 미국 헤게모니를 헝클어뜨리며 이웃에 대한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북한 김정은 왕조를 끌어안고 그 뒷배를 봐주는 중·러의 환심을 얻어내려는 총력전이었다. 학교 폭력을 뿌리 뽑는답시고 일진들의 비위를 맞추는격이었다. ‘중국은 큰 산봉우리, 한국은 작은 나라’라는 낯 뜨거운 헌사까지 바쳤다. 그래서 돌아온 건 혼밥 8끼 푸대접이었다. 불량배 떠받들면 대놓고 똘마니 취급하는 법이다. 문 정부의 동맹 궤도 이탈을 바라본 미국 관계자들은 ‘제2의 애치슨 라인’을 검토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 중심 체제에 대한 적극 협조로 노선을 틀었다. 한·미·일 3각 협력을 촉구해온 미국 구상에 발 맞추기 위해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대만 위협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며 미국을 지원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중·러를 자극하는 “자해 외교를 했다”며 국민에게 겁 주고 있다. 진짜 나라 걱정을 해서가 아니다. 대통령 때문에 나라가 위험해진 것처럼 공격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민주당 기대와 달리 중·러는 이렇다 할 보복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겁줘서 고분고분해질 상대가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괜히 미국 쪽에 더 가까이 갈지 모른다는 걱정도 했을 것이다. 반장과 단짝 맺으면 일진도 조심하는 게 세상 이치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라고 했고,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는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고 베팅하는 이들은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 양쪽에서 한국을 압박해 온다. 어느 편에 줄 설지 선택하는 것이 외교의 출발점이다. 세상 이치를 잘 모르는 어린 학생들도 반장과 일진 중 누구와 짝이 되는 게 현명한지 정도는 상식적으로 판단한다.
08.10 감옥 안 가려고 출마, 슬기로운 대선 생활
트럼프, 대선 불복 등 기소… 복수 혐의 이재명 닮은꼴
거짓말 논란, 등 돌리는 측근… 일반인이면 이미 철창 신세
대선 주자 신분 덕 보호받아 죄짓고 대선 방패 선례될라
“재검표를 해라. 나를 찍은 1만1780표를 새로 찾아내라.” 트럼프 미 대통령이 같은 공화당 소속 조지아주 국무장관과 통화한 내용이다. 민주당 바이든 후보에게 1만1779표 차로 패배한 조지아주 선거를 1표 차로 뒤집으라는 주문이었다. 미시간주와 펜실베이니아주 공화당 지도부에도 비슷한 요구를 했다. 승부처였던 이 세 곳 개표 결과를 바꾸면 트럼프가 승자가 됐을 것이다.
트럼프는 개표 조작이 뜻대로 안 되자 펜스 부통령에게 “대선 결과를 승인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펜스가 의장을 맡을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대선 승자를 확정하는 의사봉 방망이를 두드리지 말라는 거였다. 말도 안 되는 억지였고 펜스는 거부했다. 트럼프는 최후 수단으로 열성 지지자들을 선동했다. 상하원 합동 회의장 습격이 그렇게 벌어졌다. 표 바꿔치기와 폭력배 동원이 극성이었다는 자유당 시절 부정선거를 떠올리게 한다.
지난주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대선 불복 혐의로 기소된 내용들이다. 미 전직 대통령 사상 처음으로 ‘형사 피고인’ 딱지가 붙은 게 벌써 세 번째다. 포르노 배우에게 성관계 입막음용 13만달러를 준 혐의로 지난 4월 기소된 게 시작이었다. 지난 6월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서 핵 프로그램을 비롯한 국가 기밀 정보를 사저로 유출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건들에 대한 재판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공화당 예비선거도 2024년 1월 15일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시동이 걸린다. 트럼프는 양쪽을 오가며 빡빡한 일정을 보내야 한다. 세 혐의 모두 최종 재판 결과는 2024년 11월 5일 대선 본선전까지 나오기 어렵다. 트럼프는 공화당 대선 주자들 사이에서 압도적 선두다. 본선을 치를 바이든 현 대통령과 가상 대결에서는 지지율 43% 대 43%로 팽팽하다. 만일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자기 혐의를 셀프 사면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생기고, 트럼프는 실제 그렇게 할 것이라고 예고해 왔다.
트럼프가 처한 상황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많이 닮았다. 두 사람 모두 지난 대선에서 박빙 격차로 패배했고 다음 대선에서 재도전을 노리고 있다.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 위반과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으로 기소돼 있고,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과 백현동 및 정자동 특혜 개발 의혹으로 수사 선상에 올라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두 사람이 거짓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점이 특히 눈에 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이 패배한 대선을 뒤집으려는 무리한 시도로 참모와 측근 대부분이 등을 돌렸다. 트럼프가 지난 대선을 도둑맞았다는 주장에 여전히 동조하는 여섯 명만이 공범자로 남아 있다. 이재명 대표의 각종 혐의를 공모했거나 뒷받침했다는 사람 중 유동규를 비롯한 대장동 일당, 대북 송금에 관여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 등은 이 대표의 범죄를 증언하는 위치로 돌아섰다. 몇몇은 괴로움을 못 견디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김용과 정진상 두 사람만이 이재명의 마지막 방패로 남아 있다.
이렇게 막다른 골목에 몰려서까지 정치를 계속하는 이유가 뭘까. 실은 바로 그런 처지 때문에 정치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공화당 군소 주자인 윌 허드는 “트럼프가 출마한 것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공약 때문이 아니다.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다”라고 했다. 트럼프의 해결사였던 코언 변호사는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나오면 감옥에 가야 하기 때문에 대선 패배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는 “내가 대선에서 지면 없는 죄 때문에 감옥에 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 이 대표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당대표 경선에 출마하지 않았다면 구속 심사를 면키 어려웠을 것이다.
0.73%p 차로 갈린 지난 대선을 떠올리면 아찔해진다. 12만명만 반대 선택을 했어도 결과가 바뀔 수 있었다. 그랬다면 대장동, 백현동, 정자동 공모 사기꾼들이 수천억 원 특혜를 꿀꺽하고 이재명 대통령은 단군 이래 최대 치적이라고 우겼을 것이다. 쌍방울을 통해 김정은에게 건넨 수십억 원을 종잣돈 삼아 ‘더러운 평화’도 거래했을 것이다.
법적, 도덕적 결함이 심각한데도 국민 절반 가까이가 표를 던졌다. 일반인이었으면 철창 신세를 졌을 사람이 유력한 대선 주자라는 정치적 신분 때문에 보호받고 있다. 자신의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를 정치적 탄압이라고 덮어씌우기까지 한다.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이재명의 ‘슬기로운 대선 생활’이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될까 걱정스럽다.
08.24 윤석열의 ‘독단’ 혹은 ‘결단’
무모해 보였던 징용 해법, 한미일 3자 협력 이끌어
소신과 결단 對 일방적… 대통령 보는 상반된 시각 國政 흐름 따라 계속 변해
최종 평가 역사가 내릴 것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8.18/ 대통령실
1952년 12월 이승만,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만남이 역사상 첫 한미 정상회담으로 기록돼 있다. 6·25전쟁 종결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한국 현장에 들른 것이 계기였다. 두 사람이 제대로 격식을 갖춘 회담을 가진 것은 2년 후인 1954년 7월 미국에서였다. 회담 분위기는 사뭇 껄끄러웠다고 한다. 한일 관계에 대한 두 정상의 입장이 충돌했기 때문이다.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고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하면서 미국의 아시아 정책은 전체주의 세력의 확장을 억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아이젠하워는 이 목표를 위해 한국과 일본이 함께 뭉치기를 바랐는데 이 대통령이 이를 거부한 것이다. 미국이 한일 간의 역사적 갈등 때문에 속앓이를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바이든 미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에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를 초청해 개최한 3국 정상회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외교적 꿈이 마침내 실현됐다”고 평가했다. 아이젠하워 이후 70년 동안 미국이 풀지 못했던 숙제가 해결됐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칼럼은 “한·미·일 정상회담은 2년 전 만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역사적 고충을 넘어선 용기 있는 한국 대통령과 실용적인 일본 총리가 찬사를 받아야 한다”고 썼다. 어느 쪽 지도자에게 더 방점이 찍혔는지는 ‘용기’와 ‘실용’이라는 단어 선택이 짐작하게 해준다. 기자회견에서 기시다 총리는 “한일 관계 개선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지난 3월 윤석열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해법을 발표했을 때 정권 내에서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았다. 정치적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삼전도의 굴욕에 버금간다”고 비난했다. 여론조사에서 반대가 60%, 찬성이 30%였다. 윤 대통령은 “여론은 신경 쓰지 않는다. 국민만 보고 가겠다”며 밀어붙였다. 일시적으로 지지율이 떨어져도 장기적인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찬성보다 반대가 두 배인 정책을 선택하는 것은 모험이자 도박이다. 그 부담을 견뎌낸 덕분에 성사시킨 한·미·일 세 나라의 협력 체제에 대해 ‘아시아판 준(準)나토’ 결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처럼 근본적인 국제질서 변환에 한국이 당사자로 참가하는 차원을 넘어 촉매 역할까지 했다. 미국 대통령의 일본 방문 일정이 잡히면 어떻게든 한국에도 들르게 만들려고 발을 동동 구르던 구차한 처지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코리아 리서치등 4개 언론기관이 공동 실시해 지난 17일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 이유로 가장 높은 것은 ‘결단력’(18%)이었다. 반면 부정평가 이유로는 ‘독단적이고 일방적’(16%)이 둘째로 높았다. 여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로 돌진하는 대통령 스타일이 지지자들의 찬사를 이끌어내는 동시에, 반대 세력으로부터 비판받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정책 내용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대통령이 그것을 추진해 나가는 방식에 대해서는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필자 역시 그 부류에 속하는 편이다. 다만 이번 캠프 데이비드의 성과를 지켜보면서 ‘인간 윤석열’의 장점과 단점을 따로 분리해서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인지 되새겨보게 됐다. 인생 최고의 승부에서 성공한 성인 남자가 남의 충고를 듣고 변화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망한 일이기도 하다.
“100년 전 일로 일본에 ‘무조건 무릎 꿇어라’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대통령 인터뷰가 국내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야당은 “일본 총리가 한 말인 줄 알았다”고 비꼬았다. 국정 지지율에 분명 부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발언이 국제사회에선 다른 반응을 일으켰다. “한일 관계를 과거사로부터 해방시키겠다는 윤 대통령의 진정성을 확인했다”는 쪽이었다. 그래서 주춤거리던 일본을 압박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윤석열의 결단과 뚝심이라는 장점을 뒤집어 보면 독단과 일방적이라는 단점으로 비춰질 수 있다. 검찰총장 때 책상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정권에 할 말을 하던 모습은 용기와 담대함이었는데, 대통령의 비슷한 행동은 거칠고 무례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 안팎의 모습이 모두 윤석열이고 그래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강제 징용 해법과 캠프 데이비드 회담의 인과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엔 일방적인 독단으로 비판받았던 선택이 현재는 용기 있는 결단이라고 재평가받는 상황이다. 물론 ‘독단’이냐 ‘결단’이냐에 대한 최종적 판단은 역사의 몫일 것이다.
09.07 단식·괴담·조작·재난… 쉰내 나는 레퍼토리의 헛발질
광우병 세월호 兵風 의혹 등 십수 년 전 정치 공작 再소환
무소불위 거대 野 대표가 단식하며 약자 코스프레
과거 한 번 속은 국민들 똑같은 수법에 고개 돌려
민주당이 지난주 국회 행안위에서 핼러윈 참사 특별법을 단독 처리한 것은 ‘세월호 어게인’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렸다는 뜻이다. 박근혜 정권은 2014년 4월 16일, 그날을 기점으로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마침내 탄핵이라는 종착지에 이르자 민주당 문재인 대선 후보는 세월호 방명록에 “미안하다, 고맙다”고 썼다. 국가적 비극을 정치적 이해관계로 계산한 속내를 감추지 못한 것이다. 민주당의 그 저급한 인식이 작년 10월 핼러윈 참사 직후 또 확인됐다. “세월호에 버금갈 파장” “최소한 2년 갈 이슈”라고 시시덕거렸다. 그러나 국민들이 ‘핼러윈’에 느끼는 아픔의 크기는 ‘세월호’와 차이가 있었다. 민주당이 밀어붙인 희생자 명단 공개도, 추모 공간 설립도 흐지부지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 처리수 방류를 태평양전쟁이라고 불렀다. 2008년 갓 출범한 이명박 정부를 뇌사 상태에 빠뜨린 광우병 파동을 리바이벌해 보려는 것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미친 소 너나 먹어”를 외친 단체들이 ‘죽창가’를 부르며 다시 뭉쳤다. 그때는 미국 햄버거 먹방 찍었던 여배우가 청산가리 발언을 했는데 이번은 오사카 맛집 순례를 했던 여자 밴드 보컬이 “방사능비 내리는 지옥에 분노한다”고 했다.
유튜브에 그녀가 출연한 동영상이 10편가량 떠있다. 초밥 전문점에서는 “너무 맛있어요”를 연발하고 청어 소바집에서는 국물 맛에 “아 예술이다”라고 감탄한다. 촬영 시점은 2016년이다. 일본이 아무 안전 조치 없이 하루 300톤씩 오염수를 방류한 지 5년 됐을 때다. 당시 일본 바닷물이 방사성 물질을 걸러내거나 희석해 방류하는 이번 오염 처리수보다 위험도가 1000배는 됐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거센 빗줄기 속을 뛰어다니며 즐거워한 사람이 뒤늦게 내리는 이슬비 방울이 옷에 튄다고 화를 내고 있다.
민주당과 응원 세력들의 공포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노량진 수산 시장 매출은 오히려 늘었다고 한다. 불매운동 대상이 된 아사히 맥주, 유니클로 같은 일본 제품도 전혀 타격을 받지 않는 분위기다. 4년 전 ‘노 재팬’ 캠페인을 이끈 좌파 사이트엔 “이젠 끝인가요”라고 탄식하는 글이 올라왔다.
지난해 3월 대선 사흘 전 윤석열 국민의 힘 후보를 대장동 몸통으로 지목한 언론 보도가 전 언론노조 위원장과 대장동 사업 대주주가 공모한 허위 조작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02년 대선 때 민주당은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겨냥해 병역 비리 은폐, 기양건설 10억 수수, 안기부 예산 선거 전용, 해외여행 경비 20만달러 의혹 등을 쉴 새 없이 쏟아냈다. 재판에서 모두 사실무근으로 판명 났지만 이 후보가 낙선한 뒤였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내내 시끄러웠던 ‘오세훈 생태탕 의혹’도 개표가 끝나자 신기루처럼 증발했다. 좌파는 진실을 난도질해 표와 맞바꾸는 일에 아무 죄의식이 없다.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을 맞던 1983년 5월 18일 야당 지도자였던 김영삼은 민주화 5개 항을 요구하며 단식에 돌입했다. 언론 통제 때문에 ‘정치 현안’ ‘정가 관심사’ 같은 암호문으로 보도된 이 단식이 23일간 이어지며 전두환 철권통치에 작은 균열을 일으켰다. 지난주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무기한 단식을 시작하면서 “폭력 정권에 맞서는 마지막 저항 수단”이라고 했다. 1983년에나 통할 수 있는 말이다. 지금은 소셜미디어에 한 줄만 올려도 온 국민에게 전달된다. 더구나 윤석열 정권의 장관을 마음대로 탄핵할 수 있는 거대 의석이 이재명 대표의 주머니 공깃돌이나 다름없다.
한국 국민의 스마트폰 교체 주기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짧다고 한다. 싫증을 잘 내고 뭐든지 새 상품을 선호한다. 총선 때마다 각 당 공천과 본선을 거치면서 절반 이상씩 물갈이가 이뤄진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민주주의 국가에서 현역 의원들이 대부분 재선에 성공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런 정치판에서 민주당은 9년 전 세월호 재난, 15년 전 광우병 괴담, 21년 전 병풍 조작, 심지어 40년 전 단식을 재소환했다. 그야말로 쉰내 풀풀 나는 레퍼토리들이다. 예전에 한번 속은 국민들이지만 똑같은 수법에 계속 넘어갈 리가 없다. 손쉽게 우려먹어 보려던 얕은 꾀가 번번이 헛발질이다. 정치 공작 솜씨만큼은 귀신 같다던 좌파의 총기와 상상력이 고갈된 모양이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관리에 총력전을 펴느라 기진맥진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10.05 영장 앞에 머리 조아린 정치
‘박근혜 구속’ 외쳤던 이재명 ‘제 운명 달렸다’ 기각 읍소
나라 미래 걸린 총선 리더십… 과거사 법률 판단으로 결정
대선 심판받은 사법 리스크… 국민에게 재고 요청하는 건가
9월 26일 오전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법원에 출석할 때만 해도 영장 발부를 각오한 분위기였다. “옥중 출마, 옥중 결재도 해야 한다”는 유시민씨 발언에 이 대표는 “좋아요”를 눌렀다. 만일 이 대표가 영장 기각을 기대했다면 “왜 재수 없는 악담을 하느냐”고 언짢았을 것이다. “감옥에 가게 될 것 같은데, 그렇더라도 대표직을 내놓지 말고 버티라”는 유씨의 말을 고마운 격려로 받아들인 것이다.
친명 지도부도 비관과 체념에 빠져 있었다. 그날 영장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새 원내 대표를 뽑았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후보들에게 “이재명을 지키겠다고 공개 선언하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약속하고 당선된 홍익표 신임 원내대표는 “이재명 체제 아래서 총선을 치르겠다”고 했다. 정, 홍 두 사람 발언은 이 대표 구속에 따라 새 원내대표가 당을 이끌게 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었다. 영장이 기각되면 내년 총선은 당연히 이재명 체제로 치르게 되고, 원내 대표가 이 대표를 지킬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들도 영장에 대해 같은 전망을 하고 있었다. 이 대표 체포 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다음 날 발표된 갤럽 조사에서 “구속영장 청구가 정당하다”는 응답이 46%, “부당하다”는 응답이 37%로 격차가 9%p였다. 2020년 총선 당시 유권자 수 4400만명 기준으로 영장 청구가 정당하다고 믿는 사람이 부당하다는 쪽보다 396만명가량 많다는 뜻이다. 전국 단위 선거에서 한쪽 정당이 압승을 할 정도로 여론이 쏠린 경우다.
27일 새벽 2시 23분, 판사가 내놓은 결론은 ‘영장 기각’이었다. 영장 심사 결과에 대한 설명은 보통 길어야 200자 내외라고 한다. 이 대표 영장은 800자에 가까웠다. “일부 혐의가 소명되지만 방어권을 배척할 정도는 아니다”라는 식으로 이쪽 저쪽 빠져나갈 구멍을 남겨 놓았다. 전직 대선 후보이자 야당 대표에 대한 구속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심리적 압박이 엄청났을 것이다. 이 대표는 마지막 진술 기회가 주어지자 “수사받고 있는 모든 사건에 대해 형이 선고되면 50년은 받을 것”이라며 “판사님의 결정에 제 운명이 달렸다”고 했다. 목이 멘 목소리의 읍소였다고 한다. 이 대표에게 이렇듯 공손하고 처량한 면모가 있었는지 생소하기만 하다. 6년 전 “박근혜를 감옥에 보내야 국격이 올라간다” “부인하니까 더 구속시켜야 한다”는 강성 발언으로 단박에 대선 주자로 부상했던 이재명 성남시장의 활약상이 떠오른다.
이 대표가 구속을 피하면서 민주당은 내년 총선을 이재명 체제로 치르게 됐다. 이 대표가 2선으로 후퇴하면서 비상대책위가 지휘봉을 맡게 되는 게 아닌지, 그럴 경우 비대위 대표는 친명과 비명이 타협해서 추대하는 중립적 인사인지, 아니면 이 대표의 수렴청정을 받는 꼭두각시인지 같은 불확실성이 단박에 사라졌다. 2027년 대선도 이재명의 리턴매치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 정국의 최대 변수였던 야당 리더십이 서울지방법원 영장 판사에 의해 선택됐다. 동전 던지기 앞·뒷면처럼 영장 발부냐 기각이냐로 정해진 것이다. 고도의 정치적 선택을, 정치가 개입되면 절대 안 되는 법률 판단에 맡긴 셈이다. 이치에 안 맞는 일이고 수치다. 집권당 대선 후보가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온갖 범법 의혹 때문에 낙선한 뒤, 감옥에 갈까 두려워 불체포 방탄조끼를 입으려고 국회의원 재보선에 출마하고 당대표까지 되다 보니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재판을 통해 유무죄가 가려지는 것을 기다리면 되는데 구속 먼저 시키겠다고 안달을 낸 검찰의 집착도 이 꼴을 만드는 데 한몫을 했다.
민주당은 비명 원내대표마저 내쫓으면서 완벽한 친명 독식 체제가 됐다.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반란에 가담했던 비명 의원들에겐 피의 숙청이 기다리고 있다. 이 대표와 친명은 사법 리스크의 긴박성을 해소하는 동시에 방탄에 대한 비난도 덜게 됐다. 단기적으로 행운이 깃든 것만은 분명하다. 침울, 울분이 감돌던 기류가 의기양양, 기세등등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야권 전체 차원에서 총선 승리와 더 나아가 정권 교체에 긍정적으로 작용할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탄핵으로 정권을 내주고도 탄핵 총리를 앞세웠던 자유한국당이 4년 전 총선에서 받았던 참담한 성적표를 모두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로 정권을 잃고 똑같은 이재명 간판으로 나서는 민주당이 국민 눈에 어떻게 비치겠나.
10.19 이럴 거면 뭐 하러 용산 이전 고집했나
질 선거 판 키워 곤경 자초… 민심 모르고 내부 불통 탓
대통령 일방통행 반감이 國格 제고 업적 뒤덮어
군림 청와대 떠난다더니 最强 제왕적 운영 아닌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승패는 뻔했다. 보궐선거는 원래 집권당의 무덤이다. 더구나 현직 대통령 부정 평가가 60%에 육박한다면 말할 것도 없다. 한 자릿수 차이 패배면 선전이라고 예상했는데, 역대 최고 사전 투표율을 보고 그것도 어렵겠다 싶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사전투표를 많이 하는 쪽은 진보 좌파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 대해 유일한 관심은 윤석열 대통령이 패배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였다. 대통령과 통화했다는 외부 인사는 “많이 낙담하고 있더라”고 했다. 취임 이후 그렇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처음 들었다는 것이다.
참모 중 한 사람은 “대통령이 선거가 잘될 수 있다고 기대했던 모양”이라며 “그런데 너무 다른 결과가 나오니 당황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대통령이 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바랐다는 점에 오히려 놀랐다고 했다. 민심을 몰랐고, 여권 내부 소통도 안됐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여당은 일찌감치 이번 선거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선거 의미를 축소하거나 아예 후보를 내지 않는 방안도 검토했다. 여당 소속 구청장이 비밀 유출 유죄 판결을 받아 보궐 선거 원인을 제공한 터라 핑곗거리도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사면 조치와 재출마 독려로 분위기를 몰아갔다. 여당은 대통령 지침에 따라 180도 태도를 바꿨다. 지도부가 총력 지원에 나섰다. 이 모습을 지켜본 야당 지지층이 “본때를 보이겠다”며 투표장에 몰려나왔다는 게 현장 사람들 얘기다. 대통령이 승산 없는 선거판을 키워서 곤경을 자초한 셈이다.
대통령은 국제무대에서 나라 위상을 끌어올린 업적을 평가해주지 않은 표심이 야속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공(功)에 박수를 보낸 국민들조차 고개를 젓게 만든 과(過)도 만만치 않았다. 대통령 또는 김건희 여사와 “어떤 사이냐”를 묻게 만드는 인사(人事), 이준석 전 대표와의 결별은 어쩔 수 없었다손 치더라도 나경원, 안철수까지 폭력적으로 내치며 억지로 밀어 올린 김기현 체제, 홍범도 흉상 철거의 정당성을 주입하려는 이념 잣대 등이 지지율을 깎아 먹었다. 투표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한다. 17%p 차 여당 완패는 대통령이 한 일에 대한 채점이 아니라, 대통령이 일하는 방식에 대한 반감의 산물이었다.
대통령은 “당정 소통을 강화하라”고 했다. 국민들이 듣고 싶었던 것은 대통령의 이런 지시가 아니라 자신부터 달라지겠다는 다짐이다. 여권 개편으로 그 약속을 믿게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에게 싫은 말도 할 사람을 전면에 등장시키면 된다. 그런 불편한 선택을 해야 국민들이 “대통령이 바뀌려 하는구나”라고 기대한다. 꽁꽁 얼었던 민심이 그때부터 풀리기 시작한다.
여당은 임명직 당직자들이 모두 사퇴하는 것으로 보선 심판에 응답했다. 물러나고 들어 온다는 당직자들이 누군지 국민들은 모른다. 관심도 없다. 김기현 대표는 “내년 총선에서 패배하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김 대표가 자신의 위상과 처지를 착각하고 있다는 게 국민 반응이다. 이렇듯 현 체제를 추슬러서 총선을 치르겠다는 게 대통령 방침인 듯하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청와대 시대를 마무리하겠다.” 20대 대선 선거운동 첫날이었던 작년 2월 15일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의 메시지였다. 집권하면 제왕적 대통령제를 상징하는 청와대를 떠나겠다는 것을 출정식 화두로 삼았다. 윤 대통령의 집무실 이전 결심을 이해하고 지지했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의 실패가 대통령을 고립시키는 청와대의 구중궁궐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신념대로 새 정부는 취임 첫날을 용산 집무실에서 맞았다. 대통령과 참모들의 공간적 거리가 가까워지며 접촉 횟수가 늘어났는지는 모르겠다. 문제는 의사 소통이 한쪽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에게 ‘59분 대통령’이라는 탄식 조의 별명이 생겼다. 한 시간 회의하면 대통령이 59분 동안 혼자 얘기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는 대통령이 화내며 고함친다는 얘기가 자주 들려온다. 그래야 참모들이 움직인다는 게 대통령 판단이라고 한다. 대통령의 강한 자기 확신은 상대방 입을 닫게 만든다. 그래서 여당 지도부가 대통령 눈치만 살피다 성난 민심이 타오르는 보궐 선거판에 볏짚을 지고 뛰어든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 안 하려고 청와대를 탈출한다더니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제왕적 국정 운영을 하는 역설을 목격 중이다. 그래서 너무나 궁금하다. 이럴 거면 무엇 때문에 집무실 이전에 그토록 집착했던 것일까.
11.16 이준석이라는 ‘어린 놈’
열살 차 韓장관 건방지다는
宋에 “낡은 꼰대” 비웃으며
이준석의 싸가지 매도에는
나이 벼슬 작용한 것 아닌가
與가 李 밉다고 집단 린치
2030의 실망감 읽고 있나
“이준석 플랫폼에 올라타는 2030, 野 경선이 결승전 되나”, “文정권의 반칙과 특권이 ‘젊은 매력 보수’ 불러냈다.” 2021년 초여름,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던 ‘이준석 돌풍’을 응원했던 두 편의 칼럼 제목이다. 진심으로 이준석이 한국 정치의 희망이라고 믿었다. 이 대표가 쉰내 나고 숨 막히는 보수 정당에 청량한 새바람을 몰고 오면, 수십년 586 운동권 프레임에 갇혀 있는 진보 정당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년이 흐른 그해 연말 “이준석 정치, ‘보약’ 대신 ‘독약’으로 기억될 건가”라는 칼럼을 쓰게 됐다. 석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 판세가 오락가락하는 긴박한 국면에서 이 대표의 내부 총질에 화가 난 보수 지지층의 심정을 담았다. 그로부터 또 반년이 흘렀을 무렵, “자해(自害)로 무너진 이준석, 그를 짓밟는 보수의 자해”라는 칼럼을 썼다. 정치 초우량주로 꼽히던 이 대표가 고속도로처럼 펼쳐져 있던 자신의 정치적 장래를 스스로 뭉갠 것도 안타깝지만, 이 대표를 상대로 분풀이 정치를 하며 윤석열 대통령을 0.73%p차로 당선시킨 2030과 6070의 세대 연합을 허무는 국민의힘도 한심하다고 지적했다. 정치인 이준석이라는 똑같은 소재로 불과 1년 사이에 주제가 오락가락하는 칼럼을 썼던 셈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대표의 성품을 진작에 파악 못한 점은 잘못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이 그를 품고 가는 큰 정치를 해야 한다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이 대표의 ‘싸가지’ 없는 발언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그에 대한 인내심에도 한계가 왔다. 대통령에게 이준석을 한 번 더 포용하라고 권할 자신이 없어졌다. 최근 연이어 불거진 이 전 대표의 “미스터 린턴” 발언과 “안철수씨, 조용하세요” 일화가 이런 심정을 더욱 굳히게 만들었다.
이준석 집단 매도에 대한 동참 결심을 급작스레 흔든 것은 송영길 민주당 전 대표의 “한동훈, 이 어린 놈이” 발언 파문이었다. 자신들은 30대부터 젊은 피 수혈이라는 특혜 코스로 정치 기득권층에 진입한 후 20년 넘게 부와 명예를 동시에 누려온 사람들이 50세 장관을 ‘열 살 차 나이 벼슬’로 찍어 누르려는 행태가 우습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문득 나를 포함한 꼰대 세대가 이준석 전 대표를 비난하는 논거도 결국 “이 어린 놈이” 프레임과 다른 것인가라는 불안감이 고개를 쳐들었다.
지난 대선 승부의 분수령이 된 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2022년 1월 6일 국민의 힘 의원총회에서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다시 손을 잡은 대목이었다. 윤 후보가 “이준석에 대한 분노가 임계점을 넘었다”는 일반의 예상을 깨고 다시 그를 포용한 것이다. 이날 이 대표는 자신이 모는 자동차에 윤 후보를 ‘모시고’ 다음 일정 장소로 이동하면서 자신이 정치는 더 선배라면서 이런저런 훈수를 뒀다고 한다. 이 순간 윤 후보가 “더 이상은 이 자식과 안 되겠다”고 결심을 굳혔다는 후문이다. 필자도 이 일화를 전해 듣고 이준석에 대해 절망감을 느꼈었다. 그런데 만일 이준석이 윤 후보보다 나이가 열살쯤 많은 연배였다면 윤 후보도 필자도 같은 반응을 보였을까.
이준석과 이준석을 대하는 국민의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30대(여성)가 이런 답을 보내왔다. 필자와 비슷한 연배의 조선일보 독자들에게는 이준석 사태를 바라보는 2030세대의 관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일부분을 옮겨 적는다.
“이준석이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는데, 젊은 사람에게 정치를 바꿀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주어졌는데, 그 동력을 스스로 소진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이준석이 말 못되게 하는 것도 인정한다. 그런데 우리도 정치인들 보면 솔직히 좋은 말이 안 나온다. 이준석이 그 광경을 내부에서 보면서 느꼈을 혐오감, 절망감을 상상할 수 있다. 그래서 그 멸시하는 눈빛과 날 서 있는 말투가 한편으로 이해가 된다. 이준석은 나를 대신해서 정치인의 면전에서 정치 혐오를 외쳐 주는 사람이었다. 나의 속이 시원한 만큼 이준석의 정치 수명은 짧아질 수 있겠지만 이준석이 말하는 방향이 우리나라 정치가 회복되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준석을 집단 린치로 내모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의힘은 청년을, 개혁세력을, 소수자를 저런 식으로 대하는구나라는 생각이 각인됐다. 성 상납이라는 그럴 듯한 명분을 뒤집어씌웠다고 착각하겠지만 사람들은 윤석열과 국힘 할배들이 이준석 꼴 보기 싫어서 내쫓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11.30 이재명 지사의 휴일 수라상, 모닝 3종 세트, 일제 샴푸
52시간 연장 비난하더니
週末 식사 준비 공무원 몫
집에서 고급 일본산 쓰며
밖에 나가 ‘노 재팬’ 선동
말과 행동 따로 노는 게
좌파들의 첫째 덕목인가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국민권익위원회·개인정보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과거에 구매했다는 일본제 샴푸와 트리트먼트를 들고 김홍일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에게 '이 대표 법카 의혹'을 질의하고 있다./뉴스1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어린 시절 가난을 대표 브랜드처럼 내세웠다. 경기도 지사 때 찍은 떡볶이 먹방에서 “맹물에 소금 간을 맞춘 국물에 끓인 수제비를 자주 먹었는데 너무 맛이 없었다”면서 “수제비를 보면 몸서리가 쳐진다”고 했다.
이 방송을 마산에서 찍은 2021년 6월 17일은 경기도 이천 쿠팡 화재가 발생한 날이었다. 당초 1박 2일이었던 출장이 당일로 단축되면서 경기도청 의전팀은 비상이 걸렸다. 이 지사의 6월 18일 아침 식사를 긴급 주문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지사는 1년 365일 아침에 샌드위치 2개, 닭가슴살 샐러드, 컵 과일 2개로 구성된 ‘모닝 샌드위치 3종 세트’만 먹었다. 당뇨인 이 지사는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야채를 두 배로 늘리는 대신 가격을 올린 ‘이재명표 샌드위치’를 도청 10분 거리 카페에서 전날 사전 주문하는 방식으로 조달했다.
3종 세트 가격이 3만원. 한 달 치 비용이 90만원이어야 하는데 실제는 150만원가량이 들었다. 이 지사가 아침 식사를 수내동 자택, 도청 관사인 굿모닝 하우스, 또는 지방 출장을 떠나는 교통편 어디서 할지 모르기 때문에 복수로 주문하는 일이 잦았다. 이 지사는 눅눅해진 샌드위치를 극도로 싫어해서 남은 분량은 폐기 처분됐다. 결과적으로 하루 평균 5만원이었던 아침 식사는 호텔 조식 뷔페와 값이 맞먹었다. 공무와 상관없는 혼밥 비용이 모두 도청 예산에서 지불됐다.
이달 초 발간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법카’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재명 지사 부부가 경기도 법인 카드로 사적 비용을 결제했으며, 도청 공무원들을 개인 심부름에 동원했다고 폭로한 7급 공무원 조명현씨가 쓴 책이다. 경기도 의전팀은 ‘이 지사 담당 팀’과 ‘김혜경 사모님 담당 팀’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조씨와 조씨를 지휘한 5급 공무원 배소현씨는 ‘사모님 팀’이었다. 행정안전부는 지자체장 배우자를 공무원이 수행하거나 의전 지원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사모님 팀의 운영부터가 불법인 셈이다. 사모님 팀은 이 지사 부부의 가사 도우미나 마찬가지였다. 조씨의 하루 일정은 굿모닝 하우스 2층 화장실에서 시작됐다. 이 지사가 벗어 놓은 속옷과 양말을 세탁기에 돌리고 와이셔츠는 세탁소에 맡겼다. 일제 쿠오레 샴푸, 에르메스 로션, 왁스, 면도기 등이 제자리에 있는지, 분량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채워 넣는다.
쿠오레 샴푸는 서울 청담동 소재 이 지사 단골 미용실이 추천한 것으로 500ml 기준 8만원이었다. 올해 1월 생필품 가격 급등 기사에서 유명 대기업 샴푸 값이 1만1900원이었는데 그 7배 가격이다. 이 지사가 그 샴푸로 머리 감을 때 민주당은 유니클로 같은 저가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벌였다. 더구나 단골 미용실이면 한 달에 한 번씩은 들렀을 텐데 경기도 광주에 사는 조씨가 휴일에 30km 떨어진 청담동까지 가서 대신 구입하곤 했다. 이 지사 자신이 샴푸를 직접 사 들고 나오는 것은 모양이 빠진다고 여겼거나 개인 돈으로 샴푸 값을 지불하기 아까웠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남다른 특권 의식이긴 마찬가지다.
샴푸, 로션을 비롯해서 이 지사 부부가 쓰는 고급 일상 용품은 법인 카드 결제가 불가능했다. 조씨가 개인 카드로 쓴 뒤 비서실에 청구하면 경기도 공무원 출장 경비 중 갹출해서 모아 둔 돈으로 처리해 줬다. 사기업의 비자금 조성 수법과 똑같다.
이재명 지사는 주말 휴일도 ‘굿모닝 하우스’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아내 김씨도 동행하곤 했다. 이런 날은 의전 팀도 당연히 출근해야 한다. 오전 10시 반에 음식을 주문하고 지하 주방에서 밥그릇, 국그릇, 접시에 옮겨 담아 지사 부부가 있는 2층으로 옮긴다. 30, 40분 후에 올라가 밥상을 치우고 저녁 시간이 되면 같은 일을 반복한다. 이 업무를 ‘굿모닝 하우스 휴일 수라상 의전’이라고 불렀다. 이 지사 부부는 도청 의전 팀 공무원을 주 7일 168시간 동안 자기 소유 노비처럼 부렸다. 그랬던 이 대표가 윤석열 정부가 주 52시간 근로를 69시간까지 탄력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하자 “반역사적 퇴행”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가 대선 주자급으로 급부상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한 사이다 발언 덕분이었다. “정치인은 국민을 모시는 머슴인데 자신들이 주인인 줄 착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쩌면 이렇게 말과 행동이 완벽하게 따로 놀 수 있을까. 그것이 대한민국 좌파의 첫째 덕목인가.
12-14 추락하는 이재명은 ‘尹 폭망’ 구명줄만 기다린다
사법 리스크·비호감 겹치며
차기 지지율 1년 넘게 하락
2위와 격차 오차 범위 박빙
총선서 與 초토화돼야 희망
정권 심판 vs 미래 대결
대통령 총선 대처가 관건
지난주 발표한 차기 지도자 지지율 조사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19%로 1위를 지켰다. 지지율이 5%만 넘어도 의미 있는 대선 주자로 꼽힌다. 19%는 그 네 배에 가깝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이번 조사 결과에 반색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현재 지지율이 어느 좌표에 찍혔느냐보다 중요한 게 지난 지지율과 비교한 추세다. 대선 승패를 예측하는 도박판이 있다면 15%에서 10%로 떨어진 주자보다 1%에서 5%로 뛰어오른 주자에게 베팅하는 편이 현명하다. 이 대표는 작년 9월 첫 차기 주자 조사에서 27%를 기록한 이래 23%, 22%, 21%를 거쳐 이번 19%까지 줄곧 내리막길이다. 반면 첫 조사부터 9%로 2위였던 한동훈 법무장관은 이번 16%까지 오름세를 타고 있다. 18%p였던 1·2위 격차가 1년여 만에 오차 범위 이내인 3%p로 좁혀졌다.
호재, 악재 따라 등락하는 지지율 흐름에는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반등 없는 지속적 하락은 위험 신호다. 어느 순간부터 상승 동력을 상실해 버린 이 대표 지지율이 그런 경우다.
가장 큰 원인은 사법 리스크일 것이다. 이 대표 관련 뉴스는 수사 아니면 재판으로 채워진 지 오래다. 검찰 독재 정권의 야당 탄압이라는 항변에 국민은 동의하지 않는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당한 수사”라는 응답이 55% 내외인 반면 “보복 수사”라는 응답은 40%를 밑돈다. 지난 9월 이 대표에 대한 영장 청구에 대해서도 “정당하다”는 응답이 46%, “부당하다”가 37%였다. 이 대표가 실제 불법을 저질렀으며 감옥에 가야 한다고 보는 국민이 그러지 않는 국민보다 훨씬 많다는 뜻이다. 이 대표의 혐의들은 20년 확정판결을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보다 몇 곱절 심각하다. 이 대표 스스로 영장 판사에게 “혐의가 모두 인정되면 50년형을 받을 것”이라고 했을 정도다. 뒷받침하는 물증 및 증언도 차고 넘친다.
사법 리스크 자체뿐 아니라 대처 방식도 문제다.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보궐선거, 당대표 출마로 이어지는 상식 밖 선택을 하면서까지 야당을 자신의 방탄에 총동원한 데 대한 피로감이 상당하다. 지난 9월 정치인 호감도 조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한동훈 장관, 홍준표 대구시장 등 여당 인사들이 나란히 1,2,3위에 오른 반면, 이 대표는 비호감 61%로 역주행 선두권이다.
이 대표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팎이 뒤얽힌 미로에 갇혀 있다. 사법 리스크를 벗어나려면 대선 승리로 재판 절차를 무력화해야 하는데, 대선 승리에 필요한 지지율 반등을 사법 리스크가 발목 잡고 있다. 자력 탈출이 불가능하다면 구명줄은 하나뿐이다. 정치판의 제로섬 원리를 믿고 상대방의 자멸을 기다리는 것이다.
민주당에서 나오는 “총선 200석도 가능” “국민의 힘을 100석 밑으로” 같은 발언은 “그랬으면 좋겠다” 수준의 희망 사항이 아니다. 이 대표의 대선 승리에 반드시 필요한 디딤돌이다. 일상적으로 흘러가는 정국에서 한 장관과 여당 주자들이 경선을 거쳐 최종 후보가 결정되면 지금의 이 대표로는 승산을 기대하기 어렵다. 집권당을 핵폭탄 맞은 그라운드 제로처럼 초토화해야 한다. 그래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문재인 후보가 승리를 거저 주운 상황을 다시 불러올 수 있다.
당혹스러운 엑스포 성적표, ‘혹시나’ 출발이 실망만 더 키운 ‘역시나’ 혁신위, 찜찜하게 어른대는 대통령 부인 리스크…. 여당을 불안하게 하는 여론조사 결과도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선거 결과는 폭넓은 스펙트럼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본다. 변수는 총선에 임하는 대통령의 자세다.
대통령이 총선 지휘부와 전략, 그리고 공천까지 모든 선택권을 자기 손에 움켜쥐려 한다면 선거는 “윤석열 정부 중간 심판” 구도로 치러진다. 야당 대표의 온갖 허물은 뒷전으로 밀린다. 지난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가 확대 재생산되면서 이 대표는 구명줄을 타고 정치적 재비상을 시작한다.
반면 대통령이 여권의 차세대들에게 상당한 재량권을 위임하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면 총선은 여야 미래 세력 간 대결로 바뀐다. 1996년 총선 때 김영삼 대통령은 불편하게 갈라섰던 이회창 전 총리, 2012년 총선 때 이명박 대통령은 여당 내 야당이었던 박근혜 전 대표에게 각각 총선 지휘봉을 맡기며 예상 밖 선전을 이끌어 냈다. 창창한 앞날이 기다리는 여당 인재들과, 과거 범죄 수렁에서 허우적대는 야당 대표가 맞붙는 경쟁이라면 국민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 쏠리겠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