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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이야기 2023/ 09.10 모로코 강진 사망자 2000명 넘어 - 12-27 내년은 47개국 선거의 해

상림은내고향 2023. 12. 13. 18:57

지구촌 이야기 2023/

09.10 모로코 강진 사망자 2000명 넘어… 부상자 중 1400여명 위독

▲모로코 마라케시 남서쪽 산악 마을 타페그흐테에서 지진이 발생한 뒤 한 주민이 잔해 속에서 생존자를 수색하고 있다. / AFP 연합뉴스

 

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 규모 6.8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2000명을 넘어섰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모로코 내무부는 9일(현지 시각) 이번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2012명으로 늘었다고 발표했다. 부상자는 2059명으로 이중 1404명이 위독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추가 수색과 구조 작업이 이뤄짐에 따라 사상자 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모로코 정부는 3일간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모로코에서는 전날 밤 11시 11분쯤 중부 마라케시에서 약 72㎞ 떨어진 지점에서 규모 6.8 지진이 발생했다. 진앙은 북위 31.11도, 서경 8.44도, 진앙의 깊이는 18.5㎞로 측정됐다.

 

이번 지진은 120여년 만에 모로코를 강타한 최대 규모다. 내진 설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돌과 벽돌 등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무너지면서 더욱 큰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해당 지역 랜드마크 중 하나인 일명 ‘마라케시의 지붕’인 쿠투비아 모스크의 첨탑 일부가 무너지는 등 문화유산도 피해를 입었다.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규모 6.8의 지진이 발생한 가운데 한 남성이 무너진 건물 잔해가 쌓인 골목길을 내려오고 있다. AFP 연합뉴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모로코 지역에서 이 정도의 지진은 흔치 않지만 예상 밖의 일은 아니다”며 “해당 지역 내 상당수 주민들이 지진에 매우 취약한 구조물에 거주하고 있어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현재 피해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건물 밖 거리 등에서 대피 중이다. 생존자 모하메드 아조우는 “발밑의 땅이 흔들리고 집이 기울어지는 것을 느끼고 서둘러 아이들을 데리고 집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내 이웃들은 그러지 못했다”며 “안타깝게도 내 이웃의 가족들은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숨진 채 발견됐고, 아직도 어머니와 딸은 수색 중이다”라고 했다.

 

▲ 모로코 알하우즈 주 물레이 브라힘의 무너진 주택에서 구조대원들이 생존자를 수색하고 있다. / AFP 연합뉴스

 

한편 지진 이후 산사태 등으로 수색 및 구조작업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지진이 발생한 지역 대부분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산간 마을이며, 산사태로 인해 일부 도로가 막혀 수색·구조작업이 늦어지고 있다. 국제적십자연맹의 모로코 대표 대행 사미 파쿠리는 “접근이 어려워지면서 구조도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정채빈 기자

 

 

09.11 “집 위로 비행기 떨어진 줄... 지진 20초가 몇년 같았다”

모로코 대지진 현장 정철환 특파원 르포

▲9일(현지 시각) 새벽 모로코 마라케시 주민들이 광장으로 대피해 담요 등을 바닥에 깔고 잠을 청하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모로코에서 발생한 규모 6.8 지진으로 10억~100억달러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이 크다며 '적색 경보'를 발령했다./AFP 연합뉴스

 

8일 밤(현지 시각) 규모 6.8의 강진이 강타한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고도(古都) 마라케시는 지진 발생 후 이틀이 지난 10일까지도 충격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 시내 중심가 골목에는 부서진 벽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고, 건물 외벽에 구멍이 뚫려 가구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집도 있었다. 마라케시의 자랑이던 옛 시가지 ‘메디나’의 붉은 성벽 곳곳은 금이 갔고, 일부 무너진 곳도 있었다. 마라케시의 관광 명소인 제마 엘프나 광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밤새 노숙하며 몸을 휘감았던 얇은 담요를 움켜쥐고 “여진이 언제 또 발생할지 몰라 지나가는 구급차만 보며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진이 땅을 흔든 시간이 20초 정도 된다고 하는데 나에겐 몇 년 같았다”고 말했다.

 

 ▲10일(현지 시각) 마라케시의 유명 관광지 제마 엘프나 광장 인근 주택의 한쪽 벽이 허물어진 모습. 이틀 전 발생한 지진으로 해당 주택에서만 사망자 3명을 포함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정철환 특파원

 

모로코 내무부 집계에 따르면, 이날 지진으로 최소 2012명(10일 오후 1시 현재)이 숨지고 2059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부상자 중 중상이 1404명인 데다 추가 수색과 구조 작업이 아직 이뤄지고 있어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모로코 중·남부에서 규모 6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 것은 이 지역 지진 관측을 시작한 1900년 이후 처음이다.

 

지진은 8일 오후 11시 11분쯤 마라케시에서 남서쪽으로 75㎞ 떨어진 아틀라스산맥 지역의 알하우즈주(州) 오우카이메데네 마을 인근에서 발생했다. 진원의 깊이가 26㎞로 비교적 얕아 피해가 컸다. 알하우즈를 비롯해 진앙에서 남서쪽으로 80㎞가량 떨어진 타루단트 등도 피해가 커 사망자가 많이 나왔다.

 

 ▲9일(현지 시각) 모로코 마라케시 남서쪽 산악 마을에서 주민들이 지진으로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 사이로 걸어가고 있다. 전날 발생한 규모 6.8 지진이 마라케시를 비롯해 모로코를 강타했다. 모로코 내무부는 2012명(10일 오후 1시 현재)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부상자도 2059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AFP 연합뉴스

 

내진 설계가 되지 않은 건물이 많다는 점도 사상자가 늘어난 원인이었다. 특히 흙벽돌 집이 대부분인 진앙 인근 아미즈미즈, 물레이브라힘 등 시골 마을들은 집이 납작하게 무너져 내린 경우도 많았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무너진 집의 잔해에 올라 희생자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맨손으로 잔해를 뒤지고 있다고 CNN 등 외신은 전했다. 모로코 국영방송 2M은 “피해를 당한 많은 건물은 마라케시 주변의 붉은 바위산에 지어져 있었다. 이 마을들로 향하는 몇 안 되는 도로가 무너진 잔해에 막혀 구조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10일(현지 시각) 마라케시 시내 대형 병원 중 하나인 이븐토파일 병원 앞에서 환자 보호자들이 모여 오후 2시에 시작되는 중환자실 면회를 기다리고 있다./정철환 특파원

 

이 지역의 중상자들은 마라케시 시내 병원으로 분산돼 치료받고 있다. 대형 병원 중 하나인 이븐토파일 병원 앞에는 환자 보호자들이 모여 오후 2시에 시작되는 중환자실 면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압델카데르(33)씨는 “옆집 2층과 3층이 무너지면서 우리 부모님 집 안방과 거실을 덮쳤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라고 울먹였다. 그는 절박한 표정으로 메카(사우디아라비아 이슬람 성지)를 향해 계속 기도를 올렸다.

 

 ▲10일(현지 시각) 마라케시 시내 대형 병원 중 하나인 이븐토파일 병원 앞에서 중환자 면회를 기다리던 압델카데르(33)씨가 절박한 표정으로 메카(사우디아라비아 이슬람 성지)를 향해 계속 기도를 올리고 있다./정철환 특파원

 

전통 시장과 식당, 카페 등 볼거리가 많은 마라케시 관광 명소 제마 엘프나 광장은 현지 주민들의 난민 캠프처럼 변했다. 한 여성은 모로코 국영방송 취재진을 붙잡고 “남편과 아이 넷이 모두 죽었다”며 이들의 이름인 ‘무스타파, 하산, 일헴, 기즐레인, 일리예스’를 울부짖었다. 그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사라졌다. 나는 이제 혼자”라고 외치기도 했다.

 

 ▲마라케시 지진으로 무너진 만드르 카페의 10일(현지 시각) 모습. 각국에서 몰린 취재진을 현지 관계자가 막아서고 있다./정철환 특파원

 

광장엔 지진으로 집이 파괴된 주민 수백 명이 텐트나 돗자리를 빽빽이 펼치고 드러누웠다. 한쪽에선 새벽 추위를 피하려고 피운 모닥불도 여전히 타고 있었다. 광장 근처 집에서 책을 가져와 모닥불에 던져 넣던 한 주민은 “집이 기울고 현관문이 저절로 열렸다 닫혔다 하는 상황을 한번 겪고 나니 도저히 집으론 갈 수가 없다”며 “집 위로 비행기가 떨어져 내린 줄 알았다”고 했다. 모로코군(軍)은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를 통해 “여진 위험이 있으니 주의하고 안전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번 지진으로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옛 시가지 메디나의 건축물이 손상되는 등 유적 피해도 발생했다. ‘마라케시의 지붕’으로 불리며 도시의 상징 같은 역할을 해왔던 쿠투비아 모스크(이슬람 예배당)의 69m짜리 미나레트(등대 모양 탑)도 일부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고 인디펜던트는 전했다.

 

 ▲9일(현지 시각) 모로코 마라케시의 옛 시가지에서 한 주민이 지진으로 폐허가 된 집 앞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진앙 인근의 알하우즈 같은 시골 지역은 극심한 빈곤으로 내진 설계는커녕 제대로 된 건축 규정을 지키지 않은 집도 많아 피해가 특히 컸다. 전체 사망자의 65%(약 1300명)가 알하우즈에서 나왔다. 모로코 건축가협회의 전 회장인 오마르 파르카니는 뉴욕타임스(NYT)에 “많은 산골 지역 주민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건축가에게 돈을 낼 수가 없다. 직접 집을 짓는 경우가 많다 보니 건축물이 허술하고 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돌산으로 이뤄진 곳에 산자락을 따라 집이 붙어 있는 탓에 지진에 이은 산사태와 함께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집들이 속출했다. 산사태는 마을로 통하는 길마저 막아 구급차 등 구조 인력의 접근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번 지진은 1960년 남서부 해안 도시 아가디르에서 발생한 지진(규모 5.8) 이후 모로코에서 발생한 가장 강력한 지진이다. 1960년 지진은 모로코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지진으로 해당 지역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1만2000~1만5000명이 숨졌다. 지진 규모는 이번 지진보다 약했으나 진원의 깊이가 15㎞로 더 얕아 피해가 컸다.

 

NYT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주요 수입원인 관광 산업이 타격을 받고 최근엔 극심한 가뭄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수입) 곡물 가격 상승 등으로 경제가 악화한 모로코에 이번 지진은 또 다른 어려움을 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모로코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21년 3795달러에서 지난해 3528달러로 쪼그라든 상황이다.

 

한편 모로코의 사망자가 빠른 속도로 늘면서 각국 정상들의 애도와 지원 의사 표명도 잇따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0일 인도 뉴델리의 G20(20국) 정상 회의의 연설자로 나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데 대해 진심 어린 위로의 뜻을 전한다”며 “대한민국은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희생자들에 대해 “깊이 애도한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마라케시=정철환 특파원  조성호 기자  김나영 기자

 

 

09-12 폭풍우 강타 리비아 대홍수… “사망자 2000명 이상”

▲흙탕물에 잠긴 도시… 11일 리비아 북동부 마르지 지역 도심이 폭풍과 홍수로 인해 물에 잠겨 있다. 리비아 당국은 이번 폭풍우로 2000명 이상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인근 댐 2곳 붕괴로 피해 커져
내전 장기화에 구조 지연 우려

북아프리카 리비아 동부에 강력한 폭풍우가 덮쳐 2000명이 넘게 사망하고 수천 명이 실종됐다. 특히 내전 장기화 등으로 인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정부가 없는 상황이어서 신속하고 원활한 구조가 이뤄질 수 있을지 우려가 나오고 있다.

11일 알자지라 방송에 따르면 리비아 동부 지역을 강타한 폭풍과 홍수로 동북부 데르나시 등지에서 수천 명이 실종된 것으로 전해졌다. 데르나 인근의 댐 두 곳이 붕괴하면서 치명적인 홍수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비아 동부 의회가 지명한 오사마 하마드 총리는 이날 현지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실종자가 수천 명에 달하고 사망자도 2000명을 넘을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어 데르나시를 비롯한 피해 지역을 재해 지역으로 지정하고 3일간의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는 서부 트리폴리 통합정부(GNU)의 압둘하미드 드베이바 총리도 동부 지역에 대한 영향력은 없지만 같은 조처를 했다고 알자지라 방송은 전했다. 리비아는 지난 2011년 ‘아랍의 봄’ 혁명 여파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뒤 동부를 장악한 리비아 국민군(LNA)과 서부의 통합정부가 대립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리비아에 단일 정부가 없다는 것은 재앙에 대한 대응을 방해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현욱 기자 dlgus3002@munhwa.com

 
 
 

09.12 토네이도 폭풍 휩쓸고 간 리비아… 군 당국 “사망자 2000명 이상”

현지 구호단체 집계는 “최소 150명 사망”
댐 2곳 붕괴로 마을 잠겨, 익사자 속출

 ▲리비아 벵가지에서 촬영된 것으로 전해지는 토네이도 영상. /엑스(X·트위터)

 

북아프리카 리비아 동부에 강력한 폭풍우가 덮쳐 최소 150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 당국이 밝힌 추정 사망자 수는 2000명이 넘는다. 집과 차가 힘없이 떠내려갔고 일부 사막은 물바다로 변했다.

 

11일(현지시각) 알자지라 등 외신에 따르면 현지 구호단체 측은 데르나와 알마르지 등에서 홍수와 집중호우로 최소 150명이 사망했다며 이 수는 250명까지 늘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동부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리비아국민군(LNA) 측은 현재까지 2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5000~6000명이 실종됐다고 밝힌 상태다.

 

 ▲폭풍우가 덮친 북아프리카 리비아 동북부 데르나의 건물과 차량이 11일(현지시간) 손상된 모습. /AFP 연합뉴스

 

 ▲거센 물살에 차량이 떠밀려가고 있는 모습. /엑스(X·트위터)

 

리비아를 할퀸 폭풍은 앞서 지중해를 휩쓸고 온 ‘대니얼’이다. 그리스·튀르키예·불가리아를 강타해 20여명의 사망자를 냈고 전날부터는 리비아 동부로 넘어와 벵가지·수스·데르나·알마르지 등 일대 주요 지역을 때렸다.

 

특히 인구 10만 명의 데르나에서는 댐 2곳이 붕괴하면서 마을이 통째로 쓸려가고 익사자가 속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의 잇삼 아부 제리바 내무장관은 “데르나에서만 5000명 이상이 실종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지중해로 떠내려갔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엑스(X·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는 물바다가 된 현지 영상과 사진도 공유되고 있다. 거센 물살에 이미 반쯤 잠긴 자동차가 빠르게 떠내려가는 모습, 사람들이 집과 차량 지붕에 올라가 매달린 모습, 붙잡을 곳을 찾지 못해 허우적대는 한 남성의 모습 등이 담겨있다. 벵가지에서 촬영됐다고 적힌 영상에는 강한 토네이도가 천둥·번개와 함께 몰아치는 장면도 있었다.

 

 ▲폭풍우가 휩쓸고 간 뒤 물바다가 된 리비아 사막 지역. /로이터 연합뉴스

 

리비아는 2011년 ‘아랍의 봄’ 혁명 여파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뒤, 동부의 LNA와 서부의 통합정부가 대립하는 무정부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동부 측은 3곳의 피해 지역을 재난 현장으로 선포하고 국제 지원을 요청했다. 서부 정부 역시 임시 각료 회의를 통해 3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언했다.

조선일보 문지연 기자

 

 

09.14 ‘治水 실패 종합판’... 리비아 대홍수 사망자 6000명 넘었다

사막의 나라… 두 댐 붕괴로 대참사

 북아프리카 리비아 동부를 강타한 폭풍우와 홍수로 인한 사망자가 6000명을 넘어섰다. 12일 리비아 정부와 적신월사 등에 따르면 리비아 동부 연안 항구도시 데르나에서만 최소 5300명이 숨졌다.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실종자도 1만명에 달한다. 전체 인구(10만명)의 15%가 물에 휩쓸려 죽거나 실종된 것이다.

 

현지 당국자는 “여전히 많은 시신이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 갇혀 있거나, 지중해로 떠내려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AP에 밝혔다.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 중 하나로 기록될 이번 폭풍우·홍수는 기후변화에 정치 혼란이라는 인재(人災)가 결합돼 빚어진 복합 재앙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재난은 이달 초 동유럽에 큰 폭우 피해를 입힌 열대성 폭풍우 ‘다니엘’이 10일 리비아 동부에 상륙하면서 시작됐다. 열대성 저기압은 수온이 높아질수록 더 강력해지는데, 올해 지중해 해수면 온도가 예년보다 2~3도 높은 이상 고온을 보이면서 전례 없는 폭우가 쏟아졌다. 국토의 90%가 사막인 리비아는 지중해에 면한 북부 지역은 비가 내리기도 하지만 이번처럼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12일 리비아 북동부 항구도시 데르나 시가지 모습. 이틀 전 불어닥친 폭우와 홍수로 폐허가 됐다. /연합뉴스

 

 ▲이번 폭풍우와 홍수로 최소 6000명이 사망하고 1만명이 실종됐으며, 4만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사진은 홍수 피해를 당하기 전 데르나 시가지 /X

 

 ▲그래픽=김성규

 

그러나 사망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 결정적 요인은 댐의 붕괴다. 현지 당국에 따르면 데르나 남부의 댐 2곳이 붕괴하면서 순간적으로 수위가 3m까지 올라가 상당수 주민이 제대로 피할 겨를도 없이 익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비아 정부가 정상적으로 기능해 댐을 비롯한 치수 시설을 제대로 유지 보수했다면 재앙적 인명 피해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리비아는 2011년 아랍의 봄(아랍권 국가들의 민주화 시위) 여파로 벌어진 반정부 시위로 42년간 이어졌던 무아마르 카다피 철권통치가 종식됐다. 이듬해에는 다당제 자유선거가 실시됐다. 그러나 정국 주도권을 두고 군벌 간 갈등이 격화돼 내전에 돌입했고, 서부의 리비아 통합 정부(GNU)와 동부의 리비아 국민군(LNA)으로 쪼개졌다. 국제사회도 자국과의 이해관계에 따라 지지 세력이 엇갈려 정치적 혼돈은 심화됐다. 서방과 튀르키예 등이 GNU를 지지한 반면, 러시아·이집트 등은 LNA를 도왔다. 내전 격화로 무정부 상태에 빠지자 이슬람국가(IS) 등 극단주의 테러 단체의 온상이 됐다. 이번 홍수 피해 지역은 LNA 장악 지역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데르나의 병원 밖에 쌓여 있는 시신 수십구는 한 차례 폭풍우가 수년간 내전으로 침식된 리비아의 기반시설과 국가기관을 얼마나 빠르게 압도했는지를 보여준다”고 전했다.

조선일보 김지원 기자

 

 

09.25 구조대 없던 모로코 지진 현장

▲14일 강진으로 파괴된 모로코 아르헨 산골 마을./로이터 뉴스1

 

지난 11일 대지진으로 쑥대밭이 된 모로코의 한 산골에 갔다. 산사태로 망가진 산길을 한 시간 넘게 달려가 보니 가옥의 절반은 무너지고, 주민 3분의 1이 죽거나 다친 상태였다. 현장 자체도 참혹했지만, 지진 후 3일간 벌어진 상황이 더 기가 막혔다. 주민들은 “외부 도움이 없어 이웃과 가족들이 직접 시신을 발굴해 장례를 치렀다”고 했다. 부상자들은 앰뷸런스가 아닌 트럭과 버스에 실려 산 아래 도시로 옮겨졌다. 식수와 음식, 텐트 같은 구호 물품도 인근 마을의 도움으로 마련했다고 한다. 어디서도 정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마라케시에서 만난 외신 기자들은 “다른 피해 지역의 상황도 비슷하다”고 했다. 사상자의 약 90%가 이들 산골에서 발생했지만, 모로코 정부의 초기 구조 및 구호 노력은 미온적이었다. 첫 며칠간은 상당수 피해 현장이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였다. 정부가 본격적인 구조에 뛰어든 것은 해외 언론이 “정부 구조대는 어디 있느냐”는 비판을 잇달아 쏟아낸 이후였다. 모로코 정부는 이런 와중에도 이해 못 할 행보를 이어갔다. 구조대와 구호 물자를 급파하겠다는 해외 각국의 요청을 거절하는가 하면, 사망자가 3000명에 육박한 14일 이후엔 피해 규모 집계와 발표를 돌연 중단하기도 했다.

 

모로코는 ‘무늬만 국가’인 나라가 아니다. 경제력으로 따지면 국내총생산(GDP) 기준 전 세계 58위로 상위 30%에 든다. 아프리카에선 나이지리아, 이집트, 남아프리카공화국, 알제리에 이어 다섯째다. 마라케시 같은 도회지엔 전기와 수도, 인터넷, 병원 등 현대적 기반 시설이 거의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공무원과 경찰은 아랍어와 프랑스어, 영어까지 구사했다. 차선과 신호등이 부족해 무질서한 도로만 빼면 여느 중진국 못지않았다. 이런 나라가 왜 지진 발생 초기에 두 손을 놓고 있었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현장에서 만난 외신 기자들은 “결국 정치의 문제”라며 개탄했다. 모로코는 의회와 총리가 있지만 실제로는 무함마드 6세 국왕이 통치하는 나라다. 국왕은 군대와 종교를 장악하고 있으며, 의회를 해산하고 직접 총리를 맡을 수 있다. 특정 정당이 의회 의석의 20% 이상을 갖는 것도 금지된다. 이렇게 막강한 권력의 국왕을 측근들이 둘러싸 ‘인의 장막’을 치고, 정부 정책을 좌지우지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모로코 출신인 한 프랑스 매체 기자는 “이 나라 정부의 목표는 군주제 유지”라며 “재난 대비가 제대로 이뤄졌겠느냐”고 했다. 비단 모로코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21세기에도 이런 나라가 수두룩하다는게 전쟁과 재난의 시대를 다시 맞이한 이 세계의 비극이다.

조선일보 파리=정철환 특파원

 

 

10.03 자유 위해 목숨 건 토스… 망명 여성들로 처음 출전한 아프간 배구

항저우의 날개 달린 천사들

 ▲안경 쓴 배구선수 - 아프가니스탄 여자 배구 대표팀 선수들이 지난달 30일 카자흐스탄과 벌인 항저우 아시안게임 조별 리그 D조 1차전에서 상대 공격에 대비해 수비 자세를 취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아프간 여성들은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지난 1일 중국 항저우사범대학 체육관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조별 리그 D조 2차전. 사상 최초로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 여자 배구 대표팀의 미들 블로커 무르살 케디리(25·168㎝)가 경기 후 취재진 앞에서 “우리가 아프간 여성들에게 희망이 되리라 믿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아프간 여성들은 2년 전 자유를 잃었다. 2021년 이슬람 강경 수니파 무장 조직 탈레반이 집권한 뒤로 여성의 사회생활이 사실상 금지됐다. 남성 없이는 집 밖을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하고, 중·고교 여학생들의 등교가 막혔다. 스포츠는 언감생심. 저항하던 아프간 유소년팀 여자 배구 선수가 탈레반에게 살해당했다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 탈레반 정권은 “예전 같은 여성 탄압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에 여자 선수들은 목숨을 걸고 아프간을 탈출했다. 이탈리아에 정착한 여자 사이클 파리바(20), 위도즈(23) 하시미 자매는 “우리는 집 밖으로 나설 수도 없었다. 내가 계속 머물렀다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모른다”고 했다. 2020 도쿄 올림픽에 아프간 기수로 나섰던 육상 선수 카미아 유소피(27)는 이란을 거쳐 호주로 망명했다. 그는 “우리 아프간 여성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우리는 항상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아프간을 빠져나간 여자 배구 선수들은 이란에서 훈련한 뒤 항저우에 입성한 걸로 알려져 있다. 이날 일본(세계 9위)과 경기에 나선 이들은 비장한 표정에도 이렇다 할 장면은 보여주지 못했다. 하얀색 히잡을 두르고 뛰어올라 힘껏 친 공은 비실비실 상대 진영으로 넘어갔다. 그 공이 곧바로 일본의 날카로운 반격으로 이어질 때마다 아프간 선수들은 고개를 숙였다. 결국 일본에 세트스코어 0대3(2-25 0-25 5-25)으로 완패했다. 아프간이 일본을 상대로 득점한 총점 7점 중 6점은 일본이 서브 등에서 실수해 얻은 것이었다. 지난달 30일 열린 1차전에도 카자흐스탄(32위)을 맞아 0대3으로 졌고, 2일 열린 홍콩(69위)전에서도 똑같이 0대3으로 무릎을 꿇었다. 조 최하위. 8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아프가니스탄 여자 배구 대표팀 선수들이 지난달 27일 중국 항저우 훈련장에서 연습을 마친 뒤 배구공을 손가락으로 돌리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졸전에도 경기장 안은 명승부가 펼쳐지는 것처럼 환호로 가득 찼다. 아프간 선수들 분전에 관중석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 포기하지 않고 네트 앞에서 뛰어오르고 몸을 내던지는 아프간 ‘천사’들을 모두 한마음으로 응원했다. 아프간 여자 배구 선수들에겐 ‘나는 천사들(Flying Angels)’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이들에게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탈레반 정권이 아프간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보복을 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아프간 배구팀 한 선수에게 말을 걸자 “아직 아프간에 가족이 남아 있다”면서 인터뷰를 피했다. 그러나 선수들 얼굴에는 문득문득 들뜬 표정도 비쳤다.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면서 자국 상황을 알리고, 그로 인해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설렘이 아니었을까.

 

이날 로가예 무하마디(21·181㎝)는 이틀 전 오른쪽 무릎 부상을 당해 3주 휴식을 권고받았는데도 절뚝거리며 경기를 소화했다. 무하마디는 “감정이 격해져서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에게 이 경기들은 아주 중요하다”고 OCA(아시아올림픽평의회)에 말했다. 무하마디는 ‘무릎이 아픈데 남은 경기에서도 뛸 것이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여기까지 오려고 먼 길을 왔습니다. 참가한 것 자체가 기적이죠. 남은 경기도 나설 겁니다. 모든 아프간 여성, 코트에 서는 친구들과 마지막까지 뛰겠습니다.”

조선일보 항저우=박강현 기자

 

 

10-03 日, 5일부터 후쿠시마 오염수 7800t 2차 방류… 준비작업 시작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부지 안에 보관돼 있는 오염수 탱크. 연합뉴스

 

도쿄전력, 어제부터 ‘소문 피해’ 접수… 매출 감소·금수조치 배상키로

일본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정부 공식 명칭 ‘처리수’) 2차 방류를 위한 준비작업을 3일 시작한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도쿄전력은 바닷물에 희석한 소량의 오염수를 대형 수조에 넣은 뒤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트리튬) 농도를 측정한다. 삼중수소 농도가 기준치 이하인 것으로 확인되면, 예고한 대로 오는 5일 2차 방류를 시작한다.

도쿄전력은 2차 방류 기간에 1차 때와 거의 같은 양인 약 7800t의 오염수를 대량의 해수와 섞어 후쿠시마 제1원전 앞바다로 내보낼 계획이다. 소요 기간은 약 17일이며, 하루 방류량은 460t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도쿄전력은 2차 방류할 오염수의 시료에서 탄소-14, 세슘-137, 코발트-60, 아이오딘-129 등 방사성 핵종 4종이 미량 검출됐지만, 방류 기준을 만족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앞서 도쿄전력은 지난 8월 24일부터 9월 11일까지 오염수 1차 방류분 7788t을 처분했다. 아울러 도쿄전력은 오염수 방류로 인한 이른바 ‘소문(풍평) 피해’ 사례 접수를 전날부터 시작했다. 도쿄전력은 소문 피해로 수산물과 농산물 등의 가격이 하락하거나 매출이 감소했을 경우, 외국의 수입 금지 조처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비용이 발생한 경우에 배상할 방침이다.

일본이 오염수 방류를 시작한 이후 중국은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전면 중단했고, 러시아도 금수를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오염수 방류에 따른 소문 피해 규모가 현재 100억 엔(약 907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도쿄도는 오는 27일부터 12월 8일까지 도내 초밥 상점이나 생선가게에서 해산물을 먹거나 구입하는 사람에게 최대 1000엔(약 9000원) 상당의 포인트를 주는 행사를 진행한다. 도쿄도는 같은 기간에 후쿠시마현을 여행하는 도내 거주자나 통근자 등에게 경비 일부를 지원하는 행사도 실시할 계획이다.
문화일보 노기섭 기자

 
 
 

10.06 성큼 다가온 '트럼프 대통령' 시즌2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1일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열린 공화당 정치집회에서 2024년 대선 캠페인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설마'했는데 진짜로 미국 하원의장이 3일 해임됐다.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 출신 케빈 매카시 의장이 공화당 강경파 8명의 반란표에 저격당했다.

 

미국 정치가 강경 극한대립으로 치달은 결과다. 매카시 의장도 원래 강경파다. 그런데 의장이 되는 과정에서 '더 강경파' 20명이 반대하는 바람에 15번이나 투표를 거쳐야 했다. 더 강경파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의장 해임안 제출권'이라는 당근을 주었다. 그 바람에 이번에 해임결의안이 제출됐고, 더 강경파 중 '초강경파' 8명이 해임찬성표를 던졌다.

 

민주당이 전원 해임찬성표를 던진 것도 그간 쌓인 여야 강경대립의 산물이다. 매카시는 민주당과 행정부를 배려한 예산처리과정에서 공화당 강경파의 공격을 받게됐다. 민주당은 매카시를 철저히 외면했다.

 

미국 정계의 강경대립으로 '트럼프 대통령 시즌2'가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앞으로 의회에서 공화당 강경파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에게 여러모로 유리하다.

 

사실 트럼프는 이미 공화당 대선후보나 마찬가지다. 내년 11월 대선 공화당 후보 가운데 트럼프는 50%대 지지율로 압도적 1위다. 2위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10%대에 불과하다.

 

트럼프의 재선은 이미 유력하다. 재출마를 선언한 바이든 대통령보다 앞서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조사결과 트럼프 지지율 51%, 바이든 42%. 워싱턴포스트는 칼럼에서 "트럼프 재선을 막기위해 바이든은 재선 출마를 포기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당내 바이든 대안도 마땅치 않다.

 

'설마' 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트럼프 대통령 시즌2를 대비해야 한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10.08 이스라엘 사상자 1650명 넘어...“하마스 숨은 모든 곳 무너뜨릴 것”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한 건물이 7일(현지 시각)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의 로켓포 공격을 받아 불타고 있다. /로이터

 

토요일인 7일 아침(현지 시각)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의 남부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교전에서 사망자 최소 250명, 부상자 1400여명이 발생했다고 이스라엘 당국이 밝혔다. 교전이 계속되고 있어 사상자는 늘어날 전망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전쟁 중이며 싸워서 이길 것”이라고 선포한 뒤 이스라엘군도 반격에 나섰다. 이에 따라 팔레스타인 측에서도 공습과 총격전으로 최소 234명이 사망하고 1600여명이 다쳤다고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발표했다. 10여 시간 만에 양측에서 약 35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50년 간 이스라엘 영토에 대해 발생한 가장 광범위한 침공 중 하나”라며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이 가자에서 텔아비브를 포함한 주요 도시에 로켓 공격을 재차 가했고 이스라엘군은 이스라엘 도시에 침투한 무장 세력을 제거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가자 지구 도시들에 대한 대규모 공습에 나섰다”고 전했다.

 

하마스는 이날 예루살렘을 포함한 이스라엘 도시에 수천 발의 로켓포 공격을 가했고, 22개 이스라엘 도시와 군 기지에 침투해 민간인과 군인을 납치했다. 이스라엘의 반격으로 가자 지구도 검은 연기에 휩싸였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 27일 예루살렘에서 내각 회의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7일 밤 연설에서 “우리는 이 전쟁에서 승리하겠지만 그 대가는 참기 힘든 것”이라며 교전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힘겨운 날들”이 다가올 것이라면서도 “하마스가 숨어서 작전을 하고 있는 모든 장소를 무너뜨려 잔해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하마스 지도자인 무함마드 데이프는 사전 녹화된 영상에서 하마스가 “작전”을 개시했다면서 “적들은 아무 책임 없이 날뛰는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조 바이든 대통령도 이날 별도의 대국민 연설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비극적 순간에 이스라엘과 세계, 각지의 테러리스트들에게 미국은 이스라엘과 함께 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우리는 그들(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데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스라엘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받고 계속 자국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은 이스라엘에 침투해 이스라엘 군인 뿐만 민간인들을 거리와 집에서 죽였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늘 아침 네타냐후 총리와 통화하면서 이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에 맞서 미국은 이스라엘 국민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자국과 자국민을 방어할 권리가 있고 테러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한 우리 행정부의 지원은 굳건하고 흔들리지 않는다”면서 “오해가 없어야 할 것이다. 미국은 75년 전 이스라엘이 건국된 지 11분 만에 이스라엘을 (외교적으로) 승인했던 첫 번째 국가가 되었던 그 순간과 똑같이 이스라엘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 대한 대국민 방송을 하고 있다. 뒷편에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서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날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 엘리 코헨 이스라엘 외교장관, 블링컨 장관은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도 통화를 했다.

 

국무부는 블링컨 장관이 이스라엘 측과 “이스라엘의 안보를 강화할 조치를 논의하고, 이스라엘의 자위권에 대한 미국의 흔들림 없는 지지를 강조했다”고 전했다. 국무부는 또 블링컨 장관이 압바스 수반에게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테러 공격을 분명히 규탄하고 역내 모든 지도자가 그들을 규탄할 것을 촉구했다. 또 팔레스타인 당국이 (가자 지구) 서안의 평온과 안정을 되찾기 위한 조치를 지속하며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고 전했다.

 

미국은 확전을 막기 위해 요르단, 이집트, 터키, 사우디 아라비아, 조지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와 유럽연합(EU) 등 주변국과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이란에 더욱 강경하게 대응하지 못해 이란의 지원을 받는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는 국내적 비판이 거세질 전망이다.

조선일보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10.08 '세계최강 안보' 모사드의 굴욕… 하마스 '철조망 기습' 몰랐다

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대대적인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큰 인명 피해가 발생하자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미 CNN 방송은 이스라엘 양대 정보기관인 신베트(국내 첩보)와 모사드(해외 첩보), 방위군의 자산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누구도 하마스의 대규모 공격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중동 지역에서 가장 광범위한 첩보망을 구축하고 충분한 자금력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사드는 첩보영화에도 자주 등장할 정도로 익숙한 정보기관이다.

 

이스라엘 방위군의 조너선 콘리커스 전 국제담당 대변인은 CNN에 "전체 (방위) 시스템이 실패했다"며 "이스라엘 시민들에게 필요한 방어를 하지 못한 것이 명백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에 진주만(일본의 기습)과 같은 순간이 현실이 됐다"고 했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현재 교전과 시민 생명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이번 사태가 '정보 실패'에 해당하는지 언급을 피하고 있다.

 

철통같아 보였던 이스라엘의 국경 방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는지도 의구심을 낳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통치하고 있는 가자 지구에서 2005년 철수한 이후 하마스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수십억달러를 투입했다.

 

로켓 공격을 막기 위한 저고도 방공망 '아이언 돔'을 도입한 게 대표적이다. 또 수억달러를 들여 감지장치를 갖춘 스마트 국경 체계와 지하 벽을 2021년 말 만들었다.

 

하지만 하마스의 이번 기습에 이런 시스템은 '무용지물'이었다. 하마스는 무장대원들이 국경 철조망을 뚫거나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이스라엘에 진입했다. 이스라엘 당국은 하마스가 발사한 수천발의 로켓포탄 가운데 몇 발을 요격했는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 내에서는 중앙정보국(CIA) 등 미국의 정보력에 대해서도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하마스의 공격 징후를 파악해 사전에 경고하지 못한 탓에 이스라엘 군인과 민간인 등 최소 수십명이 침투한 하마스 대원들에 의해 인질로 끌려갔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스라엘과 미국 당국은 며칠 안에 빠뜨리거나 잘못 해석한 정보가 있는지, 양국이 알지 못했던 사각지대가 있었는지를 담은 보고서를 작성할 계획이라고 CNN은 전했다.

김지혜 기자 kim.jihye6@joongang.co.kr

 

 

10.09 불시에 당한 ‘중동판 진주만 공습’, 전쟁은 예고 없이 닥쳐온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7일(현지 시각) 이스라엘 여러 도시를 동시다발적으로 기습 공격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새로운 중동전쟁으로 확전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대규모 선제 공격하고 이스라엘이 즉각 보복에 나서 중동 전쟁이 시작됐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 무장 세력 헤즈볼라도 이스라엘 공격에 가담해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면 전쟁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이번 사태는 유가 급등과 세계 경제 불안을 초래하고 우리 안보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스라엘이 공격 정보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하마스는 유대교 안식일 새벽에 5000여 발의 로켓포탄을 퍼부었지만 세계 최고의 정보 수집력을 자랑한다던 이스라엘 모사드는 공격 징후 탐지에 실패했다. 하마스는 무장 대원들을 이스라엘에 침투시켜 군인·민간인을 납치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수십억 달러를 들여 ‘아이언 돔’ 로켓 방어 시스템을 도입하고, 무장 세력 침투를 막기 위해 스마트 국경 시스템과 지하 벽을 설치했지만 하마스는 이를 무력화시키며 이스라엘 영토를 유린했다. 이스라엘로선 아랍의 기습 공격에 대비하지 못한 1973년 4차 중동전쟁 이후 최악의 정보 실패로, ‘이스라엘판 9·11 테러’ ‘중동판 진주만 공습’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태는 김정은 정권이 2019년 미·북 하노이 협상 결렬 후 더욱 호전적으로 나오는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우리로서도 가볍게 볼 수 없다. 지난해 북한은 “국가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하며 핵 선제 사용을 법제화한 데 이어 지난달 ‘핵무기 고도화’를 헌법에 명시했다. 핵무기의 다종화, 실전 배치도 진행되고 있다. 지난 8월 김정은은 우리 계룡대 타격을 상정한 훈련에서 “남반부 영토 점령”을 강조했다. “(대한민국의) 군사 지휘 거점과 군항·비행장, 혼란 사태를 연발시킬 수 있는 핵심 요소들에 대한 동시다발적 초강도 타격을 가해야 한다”는 구체적 지시도 내렸다.

 

이스라엘 사태는 전쟁은 언제든지 예고 없이 벌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어느 때보다 호전적인 북한이 하마스처럼 동시에 수천 발의 로켓포탄을 휴전선 너머로 쏘아 올리고 백령도 점령에 나서는 시나리오를 터무니없다고 배제할 수 있나. 김정은의 일거수일투족과 북한군의 움직임을 면밀히 감시하며 유사시 북한군 포탄이 단 한 발도 우리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하는데 우리가 그만한 태세를 갖추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군과 정보 당국은 신뢰를 주지 못하고, 여야 정치권은 온통 정쟁(政爭)에만 몰두해 있다. 국가정보원은 올 들어 1급 간부 보직 인사가 번복되며 어수선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군사훈련 도중 발사한 현무 미사일이 뒤로 날아가는 황당한 사고가 벌어지는 등 군의 기강도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중동의 화약고에 불이 붙었는데도 국가안보실은 안보상황점검회의조차 열지 않고 강 건너 불 보듯 했다. 세계 정세는 점점 불안정해지고 북한은 대결 태세를 강화하고 있는데 우리의 상황 인식은 안이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조선일보 사설

 

 

10.09 사우디·이스라엘 수교 판 흔든다, 하마스의 노림수 3가지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하마스 공격, 뭘 노렸나’

 ▲8일 이스라엘 남부 아쉬글론에서 이스라엘의 아이언돔 대미사일 시스템이 가자지구에서 발사된 로켓을 요격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하나인 초막절(추수감사절)이 끝나는 축제의 날 안식일 새벽,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예상 보유량을 넘는 수천 발의 미사일을 발사하는 전면전 수준의 도발이었다. 하마스는 지상으로도 직접 침투, 이스라엘 국민 수십 명을 포로로 잡아 가자지구에 억류했다. 처음 있는 일이다. 이날은 욤키푸르 전쟁(4차 중동전쟁) 50주년 다음 날이었다. 당시 아랍 연합군의 공격 징후를 놓쳐 패배 직전까지 갔던 이스라엘의 트라우마가 떠오른다. 그만큼 하마스가 이번 공격을 오래 준비했고 상징성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왜 하마스는 이번 공격을 자행했을까? 먼저 팔레스타인 정치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도가 보인다. 최근 이스라엘의 일부 극우 각료들이 서안지구 병합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현지 정정(政情)은 불안해졌다. 올해만 700여 건의 폭력 충돌이 있었다. 하지만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파타 자치정부는 무력했다. 2007년 파타와 싸우다 가자지구로 밀려났던 하마스가 공세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팔레스타인 대중에게 ‘우린 다르다’며 다가가는 것이다. 일종의 대비 효과다.

 

 

 ▲그래픽=송윤혜

 

둘째 이스라엘 정치의 혼란상을 활용하려는 노림수다. 사법제도 재편을 둘러싼 이스라엘 내 분열이 심각하다. 여론은 첨예하게 갈렸고 시위는 끊임없었다. 군을 포함한 고위직들도 이 정책에 반대했다. 정치의 혼돈은 안보 약화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하마스는 그 약한 고리를 파고들었다. 이스라엘 정보 당국은 하마스의 공격 징후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셋째 지정학적인 포석이다. 미국이 공을 들이고 있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 움직임을 막으려는 의도로, 가장 핵심적인 동기다. 2020년 아브라함 협정으로 아랍 형제국들이 줄줄이 이스라엘과 수교할 때 팔레스타인은 고립무원이었다. 여기에 아랍 이슬람권의 맏형 격인 사우디마저 이스라엘과 손을 잡으면 팔레스타인의 존립 기반은 더욱 위태로워진다. 판을 흔들기 위한 도발을 한 셈이다.

 

 ▲그래픽=김현국

 

미국과 사우디는 당혹스러울 것이다. 미국은 한동안 갈등 관계였던 사우디를 다시 품기 위해 공을 들여왔다. 그 핵심이 사우디와 이스라엘을 엮어 미국이 주도하는 친미 진영을 복원하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인해 제동이 걸렸다. 사상자가 늘어나면 사우디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해야 한다. 반면 미국은 이스라엘을 편들 수밖에 없다. 사우디는 최근까지 이스라엘과의 수교를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받아낼 것들을 계산하고 있던 차에 돌발변수가 나타난 셈이다. 반면 오랫동안 하마스를 지원해왔던 이란은 내심 반가울 것이다. 일단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 회복을 막아내는 효과가 크다. 하마스의 후견국이자 반서구 저항의 담론을 이끄는 이란의 소프트파워를 내세울 수 있다. 이란 배후설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는 아직 이르다. 압도적 우위의 무력을 가진 이스라엘의 강력한 대응이 시작되면 곧 상황이 종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두 가지 고민이 있다. 자국민이 포로로 잡혀있는 상태라는 것, 그리고 지금은 대부분 하마스를 비난하지만 보복공격에 의한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피해가 늘어날 때 비난의 화살이 이스라엘로 향할 가능성이다. 지난 수년간 각고의 노력으로 아랍과 화해하며 안정적 안보 환경을 만들어온 이스라엘엔 부담이다. 종교에 매몰된 극단주의 정파가 적대적 공생을 하게 되면 최악이다. 싸움이 격화되면서 이스라엘 초정통파 유대교 세력의 팔레스타인 궤멸 논리가 힘을 얻고, 이슬람 극단주의 하마스가 이스라엘 소멸론을 주장하며 이란을 포함하는 반시오니스트 연대를 강화하는 시나리오다. 상대를 배척하는 종교의 교리가 담긴 종말론 즉 아마겟돈의 서사다. 이 서사는 현실이 되면 안 된다. 비유로만 남아야 한다.

조선일보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10-09 아프간 20년만의 최악 강진… “2000여명 숨져”

규모 6.3 지진 발생뒤 8차례 여진
“9000여명 부상, 집 1300채 파손”

▲‘강진 피해’ 아프간 마을 폐허로 7일 아프가니스탄 북서부 헤라트주에서 강진이 발생해 최소 2000명 이상이 숨졌다. 지진 다음 날인 8일 헤라트주 젠다얀 지역의 모습. 건물이 완전히 무너져 폐허로 변했고 시민들이 이 현장을 둘러싸고 있다. 계속된 여진으로 헤라트 전체가 대혼란에 빠져 인명 및 재산 피해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젠다얀=AP 뉴시스

 
 

아프가니스탄 북서부 헤라트주 일대에서 7일(현지 시간) 강진이 발생해 2000명 이상이 숨졌다. 수십 년째 거듭된 분쟁으로 국가 기반 시설이 낙후된 데다 2021년 미군 철수 및 수니파 무장단체 탈레반의 집권으로 국제 구호단체의 활동 또한 중단돼 구호 여건 또한 열악한 상태다. 여진 또한 계속되고 있어 사상자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지질조사국(USGS)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11분경 헤라트주에서 규모 6.3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후 규모 4.3∼6.3의 여진이 8차례 이어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물라 자난 사예크 아프간 재난부 대변인은 8일 “최소 2053명이 숨지고 9240명이 다쳤다. 가옥 1329채가 파괴됐다”고 밝혔다. 헤라트주 당국은 사망자의 상당수가 여성과 어린이였다고 공개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헤라트 지역 최소 12개 마을에서 가옥 600채 이상이 파손됐고 약 4200명이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AP통신은 이번 지진이 아프간에서 발생한 20년 만의 대지진이라고 전했다. 진앙은 주도(州都) 헤라트에서 북서쪽으로 36km 지점이며 진원 깊이는 14km로 비교적 얕았다.

 
 

아프간, 의료시설 낙후-구조여건 열악… 사상자 늘듯

20년만의 최악 강진
탈레반 집권뒤 국제단체 구호 중단
“식량-식수-의약품 등 필요” 호소

 

WHO에 따르면 헤라트주에는 공중보건 시설 202곳이 있는데 시설 대부분이 작고, 이 외딴 지역으로 물품을 들여오는 물류망에 차질이 생겨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헤라트주 보건부 관계자는 시신이 여러 병원에 분산돼 있어 사망자 수를 확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지 소셜미디어에는 헤라트 일대의 주요 병원 야외에 희생자들을 수용하기 위한 침대가 대거 놓여 있는 모습이 등장하고 있다. 수하일 샤힌 카타르 탈레반 정치국장은 “구호와 구조를 위해 식량, 식수, 의약품, 의복, 텐트가 시급히 필요하다”며 전 세계에 도움을 호소했다. 피해 지역 주민들은 지진으로 인해 공황 상태에 빠졌다고 전했다. 한 주민은 로이터통신에 “사람들이 집을 떠나고 우리 모두는 거리로 나와 있다”며 “여진 또한 여전하다”고 전했다.

 

이란 국경에서 동쪽으로 약 120km 떨어진 헤라트는 아프간 3대 도시이자 문화수도로 꼽힌다. 2019년 세계은행 기준 인구는 약 190만 명이다. 인구 밀집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인 데다 사회기반 시설 등도 워낙 노후화해 지진 발생 직후부터 큰 피해가 우려됐다.

아프간과 파키스탄 국경지대는 대륙판인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이 만나는 지역에 있어 힌두쿠시산맥을 중심으로 지진이 잦다. 지난해 6월에는 아프간 남동부 파키스탄 국경 인근 팍티카주에서 규모 5.9의 지진이 일어나 1000여 명이 숨졌다.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꼽히는 아프간은 1979년 옛 소련의 침공 이후 내부 분쟁이 이어지면서 국민들이 인도주의적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2021년 미군 철수 이후 탈레반이 권력을 장악하자 미국과 동맹국들은 보유 중인 아프간 외환보유액 약 70억 달러(약 9조4400억 원)를 동결하고 자금 지원을 중단했다.

여성을 억압하는 탈레반에 반대해 국제 구호단체들은 지난해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탈레반 정권은 구호단체들의 여성 인력에게도 “일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인력과 자금 어려움 등이 커지자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올 8월 “자금 제약 탓에 아프간 병원 25곳에 대한 재정 지원을 중단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10.11 하마스, 앞에선 ‘이스라엘판 햇볕 정책’ 따르는 척... 뒤로는 납치 훈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하마스, 어떻게 이스라엘 뚫었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나흘째로 접어들면서 이스라엘의 막강 정보력과 군사 장비를 무너뜨린 하마스의 전략이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10일(현지 시각) 로이터와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하마스는 이번 공격을 위해 수개월 전부터 경계의 취약점을 살피기 위한 정보 수집에 나서는 한편, 팔레스타인 주민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일자리를 요구하는 등 마치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듯한 기만전술을 펼치며 이스라엘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렸다.

 

 ▲불도저로 철책 무너뜨리는 하마스 -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는 이스라엘 기습 공격을 앞두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변 철책의 취약점을 파악하려고 수개월간 이스라엘군(軍)의 순찰 빈도·시점 등을 분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7일(현지 시각) 하마스 대원들이 불도저로 가자지구 철책을무너뜨리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가자지구와 이스라엘을 잇는 유일한 관문인 에레즈 검문소에서 일어난 일은 하마스의 전략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이곳은 최첨단 카메라, 동작 인식 스캐너, 군용(軍用) 통신 시설 등 디지털 장비가 촘촘히 설치돼 있는 데다 이곳을 지나려면 미로 같은 통로를 통과해야 돼 ‘호랑이 덫’이라고 불려 왔다.

 

하마스는 공격의 시작과 함께 에레즈 검문소부터 무너뜨렸다. 이스라엘군의 통신부터 무력화하려는 작전이었다고 로이터는 분석했다. 대전차 미사일로 이스라엘이 수십억 달러를 들여 구축해놓은 첨단 통신 장비가 파괴되면서, 이스라엘군의 연락 체계가 와해돼 소통에 큰 차질을 빚었다.

 

하마스가 이처럼 기습적인 공격에 나설 수 있었던 배경엔 수개월에 걸친 사전 준비가 있었다. 외신들은 하마스가 국경의 관문이 어디인지를 비롯해 이스라엘군의 순찰 패턴을 분석해 철책의 취약점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래픽=박상훈

 

가디언은 특히 이스라엘의 감시망이 가자지구 안쪽으로만 향해 있어서 피해는 더욱 컸다고 분석했다. 하마스 전투병이 패러글라이더 등을 동원해 가자지구 장벽을 넘어서자 감시와 요격 수단은 약화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군의 방어를 믿던 장벽 인근 민가는 하마스에 의해 유린됐다. 하마스는 민간인 사살과 납치라는 공격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연습도 철저히 진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주민들의 마을을 모의로 꾸미고 집집마다 무장 대원이 습격하는 연습까지 했다. 군부대를 공격하기 위해 탐지되지 않고 도달할 수 있는 동선까지도 미리 확인했다고 한다.

 

치밀한 기만전술에 넘어간 이스라엘의 오판도 하마스에 유리하게 전개됐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노동자에게 경제적 이득을 주면 주민들의 생활이 안정돼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전제로 가자지구 임금의 10배에 달하는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일자리 허가증을 2021년 이후 수천 장 발급해왔다. 하마스는 이런 경제적 지원이 가장 큰 관심사인 것처럼 속였다. 이스라엘의 한 보안 소식통은 로이터에 “하마스 지도부는 가자지구의 또 다른 무장 단체 이슬라믹 지하드가 지난 2년에 걸쳐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을 때도 참전하지 않아 비판을 받으면서도 군사 작전을 자제했다”며 “하마스가 새로운 전쟁이 아닌 경제적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려 한 연막작전이었다”고 분석했다.

 

수개월에 이르는 준비를 하면서 보안엔 철두철미했다. 레바논 일간 로리앙르주르에 따르면 하마스는 이번 공격을 레바논 무장 세력 헤즈볼라 등과 사전에 논의하긴 했지만 정확한 공격 시점에 대해선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하마스의 (군인이 아닌) 정치 지도자들도 공격 시점은 알지 못했다. 모의 이스라엘 민가 공격을 훈련했던 대원들은 이들이 어디를 공격하게 될지조차 몰랐다고 한다.

 

주요 거점에 대한 미사일 발사와 패러글라이더를 활용한 공중 침투, 장벽을 부수고 들어온 오토바이 돌격이 동시에 이뤄지며 이스라엘군을 크게 당황시켰다. 가디언은 “세계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된 군대 중 하나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제 모습을 찾았지만, 그 몇 시간은 하마스가 학살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분석했다. 관건은 하마스가 향후 진행될 이스라엘의 대규모 소탕 작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다. 하마스 고위급 지도자인 살레 알아루리는 CNN에 “우리는 지상군 투입을 포함한 최악의 시나리오에도 대응할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조성호 기자

 

 

10.11  777년 만에 이뤄진 교황의 역사적인 몽골 방문

“교황의 몽골 방문, 러키세븐 3개인 777년이 걸려”

⊙ 몽골 인구 330만 명 중 가톨릭 신자는 인구의 1%도 되지 않는 1450명 남짓

⊙ “교황님의 몽골 방문은 베이징과의 우호적 관계 발전의 촉매 역할”(몽골 거주 외국인 가톨릭 성직자)
⊙ 중국 정부, 선빈 주교를 상하이 교구장에 바티칸의 동의 없이 임명… 바티칸의 권위와 전 세계 천주교인들을 무시하는 도전
⊙ 몽골 국립칭기즈칸박물관, 작년 10월 11일 개관… 외국 원조 없이 自力으로
⊙ “한국인과 몽골인들은 열정의 기운과 흥(興)도 닮아. 몽고점이 동일성의 증거”


柳鐘守
1962년생. 연세대 보건학 박사 / 美뉴욕플러싱 YMCA 이사장, 뉴욕가톨릭재단 부총장, 유엔재단 새천년개발사업 고문, 現 바레인왕국 국가보건의료최고위원회 고문, 남미개발은행(IDB) 남미국가 진단검사역량 강화사업 수석책임역, 서울의과학연구소(SCL) 국제사업 고문, 연세대 보건대학원 초빙교수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9월 3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의 스테프 아레나에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도착하자, 많은 신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경이롭지 않습니까? 러키세븐 3개인 777년의 세월을 기다렸습니다!”

칭기즈칸의 손자인 몽골제국의 세 번째 황제 귀위크칸이 제180대 로마 교황 인노첸시오 4세(재위 1243~1254)에게 답장을 보냈을 때가 1246년이었다.

그러니까 한 해 전인 1245년 교황 인노첸시오 4세가 귀위크칸에게 ‘유럽의 그리스도교 왕국들을 위협하거나 침략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기독교로 개종을 권하며, 교황권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는 친서와 함께 플라노 카르피니의 요한 신부를 사절단으로 보냈던 것이다. (플라노 드 카르피니, 윌리엄 루브룩 신부가 쓴 《몽골 제국 기행》이 2015년 국내 번역 출판되었다.)

귀위크칸은 꼭 1년을 기다려 교황의 요구에 반박하는 답장을 보내왔다.

“신(神)의 도움이 없이 인간의 힘만으로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해가 뜨는 곳에서 해가 지는 곳까지 모든 땅이 우리에게 정복되었으므로 이것이야말로 신의 뜻이다. 로마는 당장 몽골 제국에 항복하고, 교황을 비롯한 모든 영공 또한 나에게 복종하라.”

페르시아어로 쓰인 귀위크칸의 서한은 현재 바티칸 국가문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 사본 역시 몽골 칭기즈칸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지난 9월 1일(현지시각)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가 4박 5일 일정으로 몽골을 찾았다. 777년 만에 이뤄진 역사적 순간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몽골 울란바토르의 칭기즈칸 국제공항에 도착해 바트뭉크 바트체첵 몽골 외무장관의 영접을 받았다. 몽골 인구 330만 명 중 가톨릭 신자는 인구의 1%도 되지 않는 1450명 남짓이다. 역대 교황 최초의 몽골 방문이었다. 호사가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몽골을 찾은 이유에 대해 설왕설래했지만 로마와 몽골 사이에 777년의 세월이 있음에 놀라워하는 반응이었다.


바티칸은 베이징에 상주대표부 설치 희망

▲프란치스코 교황과 우흐나 후렐수흐 몽골 대통령이 9월 2일 울란바토르 수흐바토르 광장에서 몽골 전통복을 입은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유럽에서 내륙의 몽골을 방문하려면 러시아 상공을 통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만큼 비행시간이 단축되기 때문이다. 이번 교황의 몽골 방문은 달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푸틴 대통령이 국제사법재판소에 범죄자로 체포 대상이 된 상황에서 교황의 전용기는 중국 하늘 길을 택했다. 중국 상공을 지나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중국인에게 안부 메시지를 보냈다. 베이징 정부 또한 유화적인 메시지로 화답했다.

바티칸 외교 활동을 잘 아는 몽골 거주 한 외국인 가톨릭 성직자는 “교황님의 몽골 방문은 베이징과의 우호적 관계 발전의 촉매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했다. 바티칸 정부는 베이징에 바티칸 상주대표부 설치를 희망하고 있기에, 중국에 관련한 표현들을 가급적 우호적이고, 완곡하게 하고 있다고 한다.

예컨대 중국 정부가 천주교 신자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해달라는 표현 대신 중국 신자들에게 보내는 격려의 의미를 담아 “좋은 크리스천이자 좋은 시민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의 반응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작년 11월 로마 바티칸과 협의 없이 난창시의 5개 교구를 통합해 장시(江西) 교구를 설립하고 지오반니 펑 웨이자오 주교를 이 교구 보좌주교로 임명한 바 있다. 지난 4월에도 중국은 중국 천주교 주교단의 선빈 주석을 상하이 교구 주교로 임명을 강행했다.

익명의 한국인 가톨릭 선교사는 바티칸의 비둘기파에 대한 우려를 다음과 같이 에둘러 표현했다.

“현재 바티칸의 제2인자인 국무원장 피에트로 폴리나 추기경은 중국과 관계 개선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중국에 대한 유화적인 정책을 지지하는 비둘기파들은 중국 정부가 교황청의 주교 임명권을 무시하고, 임명한 선빈 주교를 우선은 인정해주자는 쪽입니다.”


“중국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 교회와 바티칸만 따르는 지하교회의 갈등”

▲지난 9월 4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몽골 사목방문 마지막 일정으로 울란바토르의 ‘자비의 집’을 찾았다. 전통의상을 입은 몽골 어린이가 교황에게 환영 꽃다발을 전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이는 2018년 교황청과 중국이 체결한 ‘주교 임명에 대한 잠정 협정’에서 정한 주교 임명권과 교구 설립의 최종 결정권이 바티칸에 있다는 합의를 위반한 것이다. 중국 정부 기관인 ‘중국주교 협의회’ 회장을 역임하고, 장쑤성 하이먼 교구장을 지낸 중국 가톨릭의 떠오르는 별인 선빈 주교를 상하이 교구장에 바티칸의 동의 없이 임명한 것은 바티칸의 권위와 전 세계 천주교인들을 무시하는 도전이었다. 계속된 한국인 가톨릭 선교사의 말이다.

“중국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 교회와 바티칸만을 따르는 지하교회의 갈등이 심각합니다. 한편으론 중국 정부의 지하교회 탄압이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적인 면도 있지요. 천주교회는 박해와 탄압과 순교 속에서도 신앙의 빛과 구원의 은총을 구현해내었습니다.”

로마 바티칸 교황청은 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대만과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정부다. 세계에서 대만과 정상적인 국가 간 수교관계를 유지 중인 13개 나라 중 하나다. 심지어 이 중 7개국이 남미에 위치한 가톨릭 신앙 국가들이다.

중국 정부의 정책은 ‘하나의 중국’이다. 로마 바티칸이 대만과의 수교관계를 단절하고, 중국과 외교관계를 만들면 대만의 중국 편입이 수월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지난 9월 3일 몽골에서 신축된 아이스하키 경기장에서 교황이 미사를 집전했다. 한국과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에서 온 각국 주교단이 함께 자리했다.

이날 약 300여 명의 대만 가톨릭 신자들이 경기장을 찾아 자국 깃발과 바티칸 깃발을 흔들며 “비바 파파!” 를 연신 외쳤다.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이들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때의 두려운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신앙적 기둥인 바티칸만은 중국의 세속적인 영향력에 편입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중국은 바티칸과의 국교정상화나 베이징 내 상주대표부 설치를 요청할 때마다 대만과의 국교 단절을 주장해왔다.


“새로운 정치와 행정수도 건립 추진 중”

▲현 몽골국립의대 총장인 쿠렐바탈 박사.

 
 

몽골 보건부 장관을 역임하고 현 몽골국립의대 총장이자 칭기즈칸박물관 건설의 막후 실력자인 쿠렐바탈 박사는 몽골 정부가 주최한 교황 방문 행사에 이경률 연세대 총동창회장과 길태기 변호사(법률법인 광장 대표), 필자를 초대했다. 쿠렐바탈 총장은 이 자리에서 몽골의 부흥(復興)을 이야기했다.

“인간의 짧은 시야로는 도도한 역사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몽골 민족의 조상은 하늘의 도움으로 세계를 정복하는 위대한 제국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몽골은 다른 국가에 제압되고, 분단되고, 점령되었죠. 이젠 굴레에서 벗어나 자본주의 민주국가로 부흥해야 합니다.”

쿠렐바탈 총장은 잠시 한국 손님들을 의식하며 “한국인들이 훌륭한 지도자와 함께 불굴의 노력으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듯이, 몽골은 엄청난 자원이 있는 나라다. 한국 및 제3의 이웃 국가들과 협력해 몽골의 기적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쿠렐바탈 총장은 우흐나 후렐수흐 대통령과는 막역한 사이라고 한다. 국가 리딩 그룹의 주요 멤버인 그는 칭기즈칸을 국가 혁신과 부강한 몽골 만들기의 정신적인 주인공으로 부각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몽골 대통령은 새 몽골 건설을 위해 칭기즈칸의 고향에 정치와 행정수도 건립을 결정했다.

수도인 울란바토르의 집중 해소와 경제 다변화를 위해 울란바토르 남쪽 50km에 위치한 신공항 배후 지역인 쿠싱밸리 개발을 추진 중이다. 쿠싱밸리를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해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과학·금융·의료·대학·관광 기능이 복합된 인구 15만 명 규모의 신도시로 개발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또 정부부처 이전도 추진할 예정이다

오르혼밸리는 울란바토르에서 서쪽으로 360km 떨어진 곳이다. 옛 수도 카라코룸이 위치해 있다. 몽골은 이곳에 신도시를 지으려 하고 있다. 쿠렐바탈 총장의 말이다.

“칭기즈칸이 탄생한 고향에 새로이 만들어질 정치 및 행정수도에 80만 명 정도의 주민들이 거주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울란바토르는 구(舊)소련에 의해 인구 50만 명 정도가 살 수 있는 도시로 설계되어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200만 명 이상이 살며, 교통체증과 대기오염으로 정상적인 수도의 기능을 하기 어렵습니다.

울란바토르에서 서북쪽으로 360km 떨어진 거리의 칭기즈칸의 위대한 삶이 만들어진 지역에서, 칭기즈칸 웅지(雄志)를 이어받은 21세기 동북아를 밝히는 몽골의 정치와 행정 수도를 만들 것입니다. 공항 건설을 위한 예비작업이 시작되었고, 대통령궁과 의회를 건설하는 설계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몽골 정부가 칭기즈칸박물관을 건립한 이유는…

몽골 국립칭기즈칸박물관은 지난 2019년 첫 삽을 떠 작년 10월 11일 신축 개관했다. 울란바토르의 정중앙에 똬리를 튼 정부청사 인근에 위치해 있다.

몽골의 대표 유물 1만3000여 점을 전시 중이다. 현재 몽골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 칭기즈칸박물관은 칭기즈칸을 포함한 거대한 스텝초원 지역에서 활약한 부족들과 왕조들의 역사와 혼(魂)을 담고 있다. 외국 원조를 받지 않고, 몽골 정부와 몽골인들의 힘만으로 건립했다.

“칭기즈칸박물관은 세계사에서 위대한 정복자 중 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칭기즈칸의 리더십과 탁월한 성공의 기록과 유물들을 포함해 5세기에 활약했던 훈족의 유물들까지 위대한 스토리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헝가리에서 중국까지 펼쳐진 스텝초원 지역에서 활약한 막강했던 유목민족의 이야기 말이죠.”

몽골인들은 중국과 소련에 의해 작은 나라로 축소된 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청(淸)나라가 중국 중원을 지배할 무렵 몽골 역사와 문화를 혹독하게 탄압하는 정책을 폈다. 그런 이유에서 훗날 몽골인들은 ‘청왕조’라 부르지 않고, ‘만주인들’이라 칭한다. 쿠렐바탈 총장의 계속된 말이다.

“속도전으로 칭기즈칸박물관을 건설했지만, 이탈리아의 대리석들과 유럽의 건축자재들을 사용하고, 몽골의 국보급 조각가들과 화가들이 전력을 다해 일했습니다. 전시품들을 제작하고 복원하는 데 사용된 수천 kg의 순금들은 몽골에서 특별 생산했습니다. 코로나19로 국제여행이 중단된 덕분에 오히려 박물관을 신속하게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몽골 공항과 병원 및 상수도 시스템 등 다수의 공공시설이 외국 원조로 건설되었지만, 몽골 민족의 자긍심을 나타내는 칭기즈칸박물관만은 100% 몽골인 자력으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일치된 결단이 있었다.

“몽골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칭기즈칸뿐만 아니라 몽골의 훌륭한 예술품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한국어 및 영어 통역 안내도 있습니다. 전시장 내 유물 보관 케이스들과 습도 및 온도 조절 장치들은 한국에서 수입해왔습니다. 지난번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할 당시 환영 만찬을 칭기즈칸박물관에서 가졌죠. 마크롱 대통령도 박물관의 디자인과 품격에 감탄했습니다.”

 

“러·중에 둘러싸인 몽골, ‘제3의 이웃 나라’와의 관계 강화 노력”

▲바트뭉크 바트체첵 몽골 외무장관과 류종수 박사.

 
 

바트뭉크 바트체첵 몽골 외무장관은 두 아들과 이탈리아에서 대학에 다니는 딸을 가진 여성 장관이다. ‘제3의 이웃 국가들’과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넓혀 가는 데 가장 앞장서는 정치인 출신 장관이다.

― 제3의 이웃 국가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러시아와 중국에 둘러싸인 몽골은 ‘제3의 이웃 나라’와의 관계 강화를 위한 노력을 꾸준히 전략적으로 해오고 있습니다. 몽골은 러·중 두 나라를 가장 중시하고, 두 나라 사이에서 중립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3의 국가들과의 협력으로 두 이웃의 영향력이 안정적이고 균형 있게 몽골에 미치도록 해야겠지요. 강대국 사이에 끼인 약소국은 타국과의 갈등을 미연에 예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러·중과 신뢰와 우의를 늘 나누는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과 미국, 일본, 독일, 캐나다, 프랑스 등과의 교류와 협력으로 몽골의 경제력을 배양하고, 이 지역의 평화와 국가들의 공동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활동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지난 2월에 몽골 총리로서는 10년 만에 어용에르덴 롭상남스라이 총리가 바트뭉크 장관과 함께 몽골 산업계 대표단을 인솔해 한국을 찾아 고맙게도 2030년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 지지 선언을 했다. 경제통상 발전과 희소금속 및 광물 공동 개발, 관광산업 인프라 확대 등 여러 가지 산업 분야에서 전략적인 협력을 하기로 했다.

앞서 지난해 8월 한국·몽골 양국의 광물 자원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희소금속협력센터를 설립하기로 합의하고 올해 5월 센터 조성 사업을 시작한 상태다. 바트뭉크 바트체첵 장관의 말이다.

“지난 5월에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해 양국이 에너지 연대를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몽골은 세계 12번째로 많은 우라늄 광산을 소유하고 있고, 프랑스 에너지 회사들은 1997년부터 몽골과 합작해 우라늄 탐사 및 개발 사업들을 전개해오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탄소 중립 에너지 기술을 지닌 세계적인 리딩 국가입니다. 몽골은 프랑스의 도움으로 탄소 중립 신재생 에너지와 신에너지 기술들을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한국 내 몽골인 근로자 5만 명… 장기고용, 재고용 원해

▲팝페라 가수 임형주는 교황 집전 미사의 엔딩 프로그램을 맡았다. 무대에서 ‘아베마리아’ ‘유 레이즈 미 업’ ‘생명의 양식’ 총 3곡을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 미국과도 자원 협력을 강화하고 있더군요.
“지난 8월 초 저는 어용에르덴 총리와 미국을 방문해 해리스 부통령과 회담을 가졌습니다. 블링컨 국무장관, 오스틴 국방장관 등과도 만나 양국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발전시키기로 했지요.

몽골이 많이 가진 희토류 개발과 자원 협력에 대한 합의도 있었습니다. 1921년 소련에 의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공산국가가 된 몽골이 이제는 민주주의와 신자본주의 여정을 미국과 함께 나아가는 전략적 파트너 국가가 되었습니다.”

― 한국에서 몽골인 근로자들이 많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인과 몽골인들은 신체적·정신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아요. 열정의 기운과 흥(興)도 닮았지요. 몽고점이 동일성의 증거죠. 한국에 약 5만 명 정도의 몽골인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제가 받는 정보에 의하면 우리 몽골 일꾼들이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한국의 고용주들이 법적으로 허용되면 재고용이나 장기고용의 기회를 가지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합니다. 한국 정부가 외국 노동 인력을 국가별로 제한된 숫자대로 배당하고 있기에, 인구가 350만 명밖에 안 되는 몽골이 받을 수 있는 쿼터는 무척 제한적입니다.

한국에서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기에, 몽골이 호주 정부와 개발한 교육과 노동을 병행하는 프로그램 모델을 한국과 몽골 간의, 몽골 젊은 인력 송출 프로그램으로 만들면 좋겠습니다.”

 

― 여성 외무장관으로서 가정과 국가 업무를 어떻게 균형 있게 하실 수 있나요.
“한때 레슬링 챔피언이자 지금은 인쇄업을 하는 남편이 든든하게 외조를 잘하고 있어 고마워요. 해외 출장이 너무 많아 가끔 힘이 들지만 가족 채팅방에서 기운을 차리죠. 큰아들은 아버지의 사업을 도우는데 곧 결혼합니다. 고등학생인 둘째는 아빠를 닮아 장신에 거구입니다. 스포츠를 좋아해 유도 특기생으로 일본고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할 예정입니다. 딸은 이태리 대학에서 공부 중인데 대학원에서 엔터테인먼트 경영을 전공하려 합니다. 한국 음식과 한국 문화 콘텐츠를 무척 좋아해 한국의 대학원으로 유학가는 것도 고려하고 있죠.

가족들은 다른 몽골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말 타기를 좋아합니다. 도시에 사는 몽골 가족의 절반은 시골에 농장을 가지고 말들을 기르고 있습니다. 유목민에다 기마(騎馬)민족의 후손이어서 그런가 봅니다.”


“21세기 몽골은 다를 것”

▲프란치스코 교황이 9월 1일(현지시각) 몽골 울란바토르의 칭기즈칸 국제공항에 도착해 바트뭉크 바트체첵 몽골 외무장관의 영접을 받고 있다. 역대 교황 최초로 몽골을 방문했다. 사진=뉴시스 

 
 

한반도 면적의 7배나 되는 몽골은 약 350만 명의 몽골계 민족이 살고 있기에, 말을 타고 달릴 수 있는 평원이 많다. 한반도 6배 크기의 내몽골은 중국 영토인데 약 2200만 명의 주민 중 18% 정도가 몽골계 주민이다. 반면 한족이 80%나 된다.

바트뭉크 바트체첵 장관은 “21세기 몽골은 다를 것”이라며 “작지만 강한 국가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몽골은 17세기에서 20세기까지 한 발자국도 능동적으로 나가기가 어려운 암울한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21세기 몽골은 다를 겁니다. 생명의 땅에 가득한 정기(精氣)로 작지만 강한 국가로 만들 것입니다.

부처의 가르침 중에 ‘지혜로운 자는 베푸는 것을 기뻐한다’는 말이 있어요. 몽골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한국을 비롯한 제3의 이웃들의 국민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잘 보호하겠습니다. 세계인들이 힐링할 수 있는 최고의 자연으로 함께 나누겠습니다.”

작은 키에 부드러움과 야무짐을 겸비한 몽골 외무장관과 만나면서 칭기즈칸 제국의 여장군이 느껴졌다.⊙

월간조선 10월 호

 

 

10-13 일가족 몰살, 참수, 악마의 무기… 용서받지 못할 전쟁범죄

▲10일 이스라엘 군인들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와 인접한 ‘크파르아자’ 키부츠에서 하마스에게 살해된 민간인의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이 곳에서 영유아, 노인 등을 포함해 최소 100명 이상의 민간인을 잔혹하게 살해했다며 전쟁 범죄라고 규탄했다. 크파르아자=AP 뉴시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에서 민간인이 집단 학살당한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다. 남부의 한 마을에서만 100구 이상의 시신이 발견됐다. 온 가족이 침실 등지에서 총에 맞아 몰살된 사례가 확인됐고, 수색 중 발견된 아기 시신이 40구에 이른다는 증언이 나왔다. 숨진 어린이들의 목이 잘려 있었다는 주장도 외신에 보도됐다.

‘피의 보복’을 다짐한 이스라엘의 집중 폭격으로 팔레스타인 측 민간인 희생 또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병원과 학교, 유치원까지 공격당하면서 가자지구에서 숨진 어린이만 26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재를 뒤집어쓴 채 피 흘리는 노인과 아이들의 모습은 처참하다. 이스라엘이 ‘악마의 무기’로 불리는 백린탄을 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대량의 열과 섬광을 발생시키면서 인체에 달라붙어 뼈와 살을 녹이는 독성물질을 살포하는 백린탄은 민간인 밀집 구역에서 사용이 금지된 무기다.

보복과 맞보복의 악순환 속에 벌어지고 있는 양측의 살상은 점점 잔혹해지는 양상이다. 오랜 무력 분쟁으로 누적돼온 증오에 공포심을 유발하려는 심리전 전술까지 더해지면서 전쟁터는 광기가 휩쓰는 대학살의 현장이 되어가고 있다. 하마스가 여성들을 성폭행한 사례, 사람들이 숨어 있는 민가를 불태운 사례도 보고됐다. 이에 맞서 “하마스 궤멸”을 공언한 이스라엘은 지상전을 앞두고 가자지구 내 수도와 전기, 의약품, 물, 식량 공급을 끊어버렸다. 봉쇄된 상태에서 벌어질 인도적 참사의 희생자 규모 또한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동아일보 사설

 
 
 

10.19 가자 병원 폭발로 최소 500명 사망... 美·팔레스타인 회담 취소

바이든 美대통령은 이스라엘로 출발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 지구 중심의 알아흘리 아랍 병원에서 17일(현지 시각) 대규모 폭발이 발생해 수백 명이 사망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8일 이스라엘 방문을 위해 워싱턴DC를 출발하기 몇 시간 전에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서 미국도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됐다.

 ▲17일(현지 시각) 기자 지구 중심의 알시파 병원 바닥에 알아흘리 아랍 병원의 폭발로 부상당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앉아 있다. 이날 하마스 측이 운영하는 가자 지구 보건부는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알 아흘리 아랍 병원에서 폭발이 발생해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AP 연합뉴스

 

하마스와 하마스의 영향력 아래 있는 가자 지구 보건부는 “최소 500명이 사망했다”며 “수백 명이 다치고 수백 명이 아직 건물 잔해 밑에 있다”고 밝혔다.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당국은 이를 이스라엘 방위군(IDF)의 공습 탓으로 돌렸다. 이스라엘군이 이 병원을 폭격한 것이 맞다면, 2008년 이후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가자 지구에서 발생한 가장 큰 피해다.

 

 ▲17일(현지 시각) 팔레스타인의 가자 지구에 있는 알아흘리 아랍 병원이 대규모 폭발로 불타고 있다./ X(트위터)

 

그러나 이스라엘 방위군은 “단언하건대 우리는 어떤 민감한 시설도 의도적으로 폭격하지 않으며 병원은 결코 공습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또 “(하마스의 라이벌 세력인) 이슬라믹 지하드의 실패한 로켓포 공격이라는 정보를 갖고 있다”고 했다. 이슬라믹 지하드도 로켓포 공격 사실을 부인하면서, 누구의 공격으로 인해 병원이 폭발했는지는 당장 확인되지 않고 있다.

 

18일 요르단 암만으로 이동해 바이든 대통령을 만날 예정이었던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병원 대학살”이 발생했다며 회동을 취소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오후 워싱턴DC 인근의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이스라엘 텔아비브를 향해 출발했지만, 출발 직전 백악관도 “요르단 방문은 취소됐다”고 확인했다.

조선일보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10.28 이스라엘, 가자 역대 최대 대규모 공습… “인터넷·통신 두절”

▲27일(현지시각) 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규모 공습이 가해지고 있다./AFP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간 전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27일(현지시각) 밤 국경 인근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규모 공습이 가해졌다.

 

CNN과 AF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밤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IDF)의 대규모 공습이 벌어졌다. IDF 대변인 다니엘 하가리 소장은 “오늘 밤 지상군이 가자지구 내 작전을 확대하고 공격을 매우 의미 있는 정도로 강화하고 있다”며 “가자지구와 주변을 계속 공격할 계획이니 주민들은 남쪽으로 대피하라”고 발표했다.

 

▲27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지상작전 확대에 불바다 된 가자지구 /AFP=연합뉴스

 

폭스뉴스 등 여러 외신은 지난 7일 하마스의 선제공격으로 전쟁이 발발된 이후 지금까지 발생한 공습 중 가장 강도 높은 폭발이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가자지구 내 인터넷과 통신망도 마비된 상태다. 하마스는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전역에서 통신과 대부분의 연결을 끊었다”며 “이스라엘이 공중·육상·해상에서 유혈 보복을 자행하려 이 같은 조처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터넷 모니터링 업체 넷블록스도 “실시간 네트워크 데이터를 보면 가자지구 지역의 인터넷 연결이 두절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팔레스타인 이동통신 업체 자왈 모바일 역시 “지난 한 시간 동안 강한 폭격으로 가자지구와 밖을 연결하는 모든 국제 통신이 파괴됐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총리실의 마크 네게브는 이번 작전과 관련, “종료되고 난 후의 가자지구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며 “하마스는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고, 우리는 오늘 밤 되갚음을 시작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지상전 본격 개시 여부가 큰 관심을 모으는 가운데 이스라엘군은 “지상군이 가자지구에서 작전을 확대 중”이라는 짤막한 발표만 내놓았다. 스푸트니크 통신은 하가리 소장 말을 인용해 “이번 지상작전 확대는 공식적인 지상 침공 시작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도 “이스라엘은 아직 지상전 개시 선언을 하지 않았다”며 “가자지구에 대한 공습을 강화하고, 지상군의 활동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 이스라엘군의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27일 가자지구 칸 유니스 난민캠프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무너진 집 잔해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펴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반면 인접국 요르단은 이스라엘이 지상전을 개시했다고 주장했다. 요르단 외무장관 아이만 사파디는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지상전을 시작했다”며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의 결과는 앞으로 수년간 엄청난 규모의 인도주의적 재앙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서 가장 큰 병원인 시파(Shifa) 병원이 하마스 테러 활동의 본부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곳에 대한 공습 가능성도 시사했다. IDF는 엑스(옛 트위터)에 시파 병원 지하에 마련된 하마스 시설물 그래픽을 올린 뒤 “시파 병원은 가자 지구에서 가장 큰 병원일 뿐만 아니라 하마스 테러 활동의 본부 역할도 하고 있다”며 “IDF는 테러리스트 기반시설을 찾아내기 위해 작전을 펼칠 것”이라고 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본격 침공해올 경우 이를 격퇴하겠다는 입장이다. 하마스 정치국 고위 관리인 에자트 알 리샤크는 텔레그램을 통해 “네타냐후가 가자 진입하기로 결정했다면, 저항군은 준비돼있다”며 “네타냐후 병사들의 유해가 가자 땅에 삼켜질 것”이라고 했다.

 

한편 앞서 이날 하마스는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에 수차례 로켓포 공격을 가했다. 이로 인해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조선일보  문지연 기자  박선민 기자

 
 
 

11.16 바이든 “경쟁이 충돌로 가면 안돼” 시진핑 “양국 관계 미래 밝다”

1년만의 회담, 양국 참모 12명씩 배석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5일 오전(현지 시각)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근처의 파이롤리 에스테이트 저택 앞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5일 오전 11시 18분(현지 시각) 캘리포니아주(州) 샌머테이오 카운티의 파이롤리 에스테이트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시작했다. 모두발언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중 간의 경쟁이 충돌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고, 시 주석은 “중·미는 문화, 사회제도, 발전궤도가 다르지만 상호 존중, 평화 공존, 협력 공영을 견지한다면 차이를 뛰어넘어 양대 대국의 정확한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40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유서 깊은 저택 앞에서 도착한 시 주석이 차에서 내리자, 바이든 대통령이 몇 걸음을 걸어 손을 내밀었다. 두 정상은 가볍게 웃는 얼굴로 악수를 나눴다. 두 사람은 저택 문 앞에서 기자들을 위해 다시 악수를 나눈 뒤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의 이번 만남은 지난해 11월 G20(20국) 정상회의가 열린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첫 대면 정상회담을 한 지 1년 만의 두 번째 대면 회담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2021년 취임한 후 시 주석이 미국을 방문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시 주석이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 회담하기 위해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를 방문한 이래 6년 만의 방미이기도 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5일 오전 11시 18분(현지 시각) 캘리포니아주(州) 샌머테이오 카운티의 파이롤리 에스테이트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시작했다/AP 연합뉴스

◇바이든 “경쟁이 충돌로 가면 안 돼”, 시진핑 “공영 때 바른 길 찾을 것”

회담 시작 전 모두 발언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언제나 그렇듯 (정상 간의) 대면 회담을 대체할 수 없는 것은 없다.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솔직했고 그 점을 감사하고 있다”면서 “지도자 간에 오판이나 소통의 오류 없이 서로를 분명히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경쟁이 충돌로 번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경쟁을 책임 있게 관리해야 하며 미국은 그렇게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각자의 국민과 세계에 대한 책임이 있다”며 “기후 변화, 마약 차단, 인공 지능 등의 글로벌 도전도 우리 공동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그는 “이 회담을 고대하며 미국에 다시 오신 것을 환영한다”며 약 2분 간의 모두발언을 마쳤다.

 

시 주석은 “지난 50년 간 중미 관계가 순풍에 돛 단 배처럼 오지는 않았다. 항상 여러 문제가 있었고 여러 곡절 가운데 전진해 왔다”고 말했다. 또 “양대 대국이 교류하지 않아서는 안 되고, 상대방을 바꾸려 하는 것은 실용적이지 못하며, 충돌과 대항의 후과는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 지구는 중미 양국을 모두 수용할 수 있으며 각자의 성공이 서로에게 기회가 된다”고 했다. 이어 “중국과 미국은 역사, 문화, 사회 제도, 발전 궤도가 다른 것이 객관적 현실이다. 그러나 서로가 상호 존중, 평화 공존, 협력 공영하면 완전히 차이점을 뛰어 넘어 양대 대국이 함께 하는 바른 길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시 주석은 또 “중미 관계의 전도는 밝다고 믿는다”면서 “나와 대통령님은 중미 관계의 조타수로서 인민에 대한, 세계에 대한, 역사에 대한 매우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 중미 관계의 전략성, 전국성(全局性·전체 국면과 관련된 성질), 방향성 문제와 세계 평화 발전에 관련 있는 중대한 문제들에 대해 깊이 있게 의견을 교환해 새로운 공식을 달성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15일(현지 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양측 고위 당국자들과 함께 확대 정상회담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다. /AFP 연합뉴스

◇오찬 겸한 4시간 회담 예정, 美 “생산적 회담 고대”

두 정상은 오후 3시쯤까지 약 4시간에 걸쳐 실무오찬을 겸한 회담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롤리 에스테이트 내에 1.6km의 산책로가 있어 두 정상이 함께 산책을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차이치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판공청 주임,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만 배석하는 ‘소인수 회담’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안보·기술처럼 쟁점이 되는 사안별로 회담을 쪼개서 진행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회담 전 기자들에게 “생산적인 회담을 고대하고 있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부통령-부주석 시절부터) 시 주석과 긴 역사를 갖고 있으며 그들의 대화는 직접적이고 직설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런 복잡한 관계를 관리하는 데 있어 정상 간의 대면 외교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회담을 마치고 오후 4시15분쯤(현지 시각) 기자회견에 나설 예정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5일 오전 11시 18분(현지 시각) 캘리포니아주(州) 샌머테이오 카운티의 파이롤리 에스테이트에서 미·중 정상회담 직후 산책을 하며 취재진들에게 인사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軍 소통 채널 복원, 수출 통제, 펜타닐 차단 등이 의제

이번 회담에서는 군사 소통 채널 복원, 수출 통제 등 경제 사안, 펜타닐 확산 차단, 책임 있는 인공지능(AI) 개발 등이 주요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미국 측은 미·중 간의 경쟁이 우발적인 무력 충돌 등으로 번지지 않게 관리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미·중 군(軍) 간의 소통은 양국 관계의 긴장 고조와 함께 점차 줄어들다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 거의 중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남중국해·동중국해 공역에서 위협적 공세를 계속하고 있는 만큼, 오판을 막기 위한 군 소통 채널의 복원이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반면 중국 측은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와 대중 투자 제한 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측이 ‘하나의 중국’ 원칙 준수를 요구하며 미국의 대만에 대한 무기 수출이나 정치·문화 교류 강화를 비판할 가능성도 높다. 설리번 보좌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회담에서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비전을 제시할 것”이라고 했다.

백악관은 펜타닐 확산 차단을 위한 중국 측의 협력을 얻어내는 것도 중시하고 있다. 중국은 멕시코와 함께 미국 사회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펜타닐 원료의 주요 공급·유통원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북·러 군사 협력도 논의할 듯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 협력 등의 세계 문제도 의제로 올라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관련해서 바이든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하마스의 후원국인 이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이란산 원유의 주요 수입국 중 하나다.

 

설리번 보좌관은 “바이든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이란이 긴장을 고조시키며 안정을 저해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으며, 중동 지역의 안정이 약화되는 것은 중국이나 다른 어떤 책임 있는 국가의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11.16 "상대방 믿느냐" 돌발 질문에, 바이든·시진핑 대답은 달랐다

366일만에 마주 앉은 '글로벌 수퍼파워' 미국과 중국의 정상이 나란히 ‘상대를 신뢰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각자의 방식으로 미묘한 속내를 드러냈다. 특히 조 바이든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의 회담을 “중요한 진전”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회담 직후 시 주석을 재차 ‘독재자’로 칭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1년만에 대면해 정상회담을 했다. AFP=연합뉴스

 

상대를 믿느냐는 질문은 시 주석이 먼저 받았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샌머테이오 카운티에 위치한 파이롤리 에스테이트에서 진행된 정상회담을 현장 취재하던 한 미국 기자는 시 주석의 공개 발언 직후 중국어로 “바이든 대통령을 신뢰하느냐”고 물었다.

 

회담장에서 나온 돌발 질문에 시 주석과 마주 앉아 있던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측 배석자들의 시선은 일제히 해당 기자 쪽으로 쏠렸다. 그러자 시 주석은 질문이 나온 쪽을 잠시 응시한 뒤 별도 답변 없이 옅은 미소만을 지어 보였다.

 

바이든 대통령도 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는 4시간여 진행된 시 주석과의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시 주석을 신뢰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옛말에 나오는 것처럼 (시 주석을)믿되 검증을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입장”이라며 “미국과 중국의 경쟁을 합리적이고 관리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 나의 책임”이라고 답했다.

 ▲미국 ABC 소속의 셀리나 왕 기자가 X에 올린 사진. 셀리나 왕 기자는 15일(현지시간) 진행된 미중 정상회담 도중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중국어로 ″바이든을 신뢰하느냐″고 물었지만, 시 주석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즉답을 피했다. X캡쳐

 

바이든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갔다. 그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회견장을 빠져나가려다 “회담 이후로도 시 주석을 ‘독재자’로 칭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오자 가던 길을 멈추고 “그는 독재자”라고 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어 “그는 미국과는 완전히 다른 공산국가를 이끄는 남자”라며 “1980년대 이래로 독재자였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언급한 ‘1980년대’는 1989년 6월 4일 중국 당국이 민주화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 천안문(天安門ㆍ텐안먼) 사태를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있다. 천안문 사태는 중국 공산당이 자행한 인권탄압의 상징으로, 중국은 천안문 사태 자체를 비롯해 사건이 발생했던 ‘89년’, ‘6월 4일’ 등을 사실상 금기할 정도로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육상 100m 허들 경기 중 찍힌 선수들의 모습. 예선전에선 1989년을 연상시키는 숫자 8과 9가, 결승전에선 6월 4일을 연상시키는 숫자 6과 4가 우연히 함께 찍혔는데, 중국 당국은 해당 사진들 모두 삭제하면서 '천안문 사태'를 의식한 조치라는 관측이 나왔다. 사진 X(옛 트위터) 캡처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을 독재자로 칭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 6월 한 모금 행사에서 시 주석을 독재자로 불렀고, 당시 주미중국대사관은 성명을 내고 “진지한 조치를 즉각 취할 것을 촉구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난 7월엔 중국 정부를 ‘악당’으로 칭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회견 도중 질의를 한 기자를 구별하지 못하거나, 시 주석과 관련한 정확한 연도를 언급하지 못하고 말을 흐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5일 발표된 뉴욕타임스의 여론조사에서 미국의 유권자 71%가 바이든 대통령에 대해 ‘대통령 업무를 수행하기에 나이가 너무 많다’고 답하는 등 80세인 바이든의 나이는 재선에 최대 걸림돌로 꼽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시 주석을 재차 '독재자'로 칭했다. REUTERS=연합뉴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11.18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왜 ‘수박’으로 단결하나

 수박은 팔레스타인의 상징이자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를 드러내는 과일로 부상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X(옛 트위터), 틱톡 등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수박 그림이나 이모지(emoji·그림문자)를 올리는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급증했다. 중동·북아프리카·유럽·북미 등 세계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폭격과 지상전 반대 시위에서는 수박이 그려진 깃발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수박이 그려진 깃발은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폭격과 지상전 반대 시위에서 목격된다./X

◇국기 못 들게 하자 수박 들었다

수박이 팔레스타인의 상징이 된 직접적 이유는 색깔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국기는 빨강·초록·검정·흰색 4가지 색으로 구성된다. 수박을 잘랐을 때 드러나는 과육·겉껍질·속껍질·씨의 색과 같다.

 

수박이 팔레스타인의 상징이 된 건 1980년부터로 알려졌다. 1967년 6일 전쟁(제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을 점령하고 동예루살렘을 합병했다. 이후 이스라엘 정부는 이들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국기 사용을 형사 범죄로 규정하고 금지했다.

 

1980년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에 있는 ‘79 갤러리’에서 팔레스타인 예술가들의 전시회가 열렸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국기가 그려져 있거나 정치적 의미를 담은 작품들을 압수하고 전시를 폐쇄했다. 전시에 참여했던 화가 슬리만 만수르(Mansour)는 당시 일화를 회고했다. “전시를 폐쇄한 이스라엘군 장교가 ‘팔레스타인 국기뿐 아니라 국기에 들어간 색을 써도 안 된다’고 했다. 그에게 ‘빨간색·초록색·검은색·흰색을 사용해 꽃을 그리면 어떠냐’고 묻자, 장교는 분노하면서 ‘압수당할 것이다. 당신이 수박을 그린다 하더라도 압수당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칼레드 후라니 작품 '팔레스타인 깃발의 색'./인스타그램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수박은 팔레스타인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벌어진 인티파다(反이스라엘 저항운동)에 참여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이스라엘군의 탄압과 구속을 피하려 국기 대신 수박 조각을 손에 들었다.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는 오슬로 협정을 맺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국기 사용을 허용했다. 하지만 금지법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단지 수박 조각을 들고 있었다는 이유로 팔레스타인 소년이 이스라엘군에 체포되기도 했다.

 

팔레스타인 예술가 칼레드 후라니(Hourani)는 이 사건에 분노한 팔레스타인 주민 중 하나였다. 그는 2007년 국기 사용 금지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담아 수박 한 조각을 그린 ‘팔레스타인 깃발의 색(The Colours of the Palestinian Flag)’을 제작했다. 그림은 곧 유명해졌고, 많은 예술가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표시로 수박을 그렸다.

 

◇전쟁으로 되살아난 인기

수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불안정한 평화가 유지되면서 한동안 잊혔지만,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인기(?) 가 되살아났다. 주로 온라인에서다.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해외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은 이스라엘 정부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X(옛 트위터) 등 플랫폼 기업들의 검열을 우회하기 위해 온라인에서 수박 이미지와 이모지를 활용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은 SNS 플랫폼 기업들이 팔레스타인 관련 게시물에 대해 비판적 알고리즘을 적용한다고 의심한다. 전체 인구의 70% 이상이 30세 이하인 팔레스타인에서는 “팔레스타인 지지 게시물 수백만 건이 SNS에서 삭제됐다”고 주장한다.

 ▲팔레스타인 아티스트 칼레드 후라니의 또 다른 작품./인스타그램

 

플랫폼 기업들은 “기술적 결함”이라고 항변하지만, 많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자신들이 “SNS에서 오랫동안 불리하고 불합리하게 검열·차단당하고 있다”고 분노한다. 팔레스타인 디지털 권리 운동가들은 “메타 등 SNS 기업들의 AI는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을 미국 흑인 활동가들과 마찬가지로 취급한다. 계정을 차단해 버린다”고 주장한다.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지지자들은 게시글 삭제나 계정 차단을 피하기 위해 수박 이미지 외에도 민감한 단어의 철자 일부를 누락하거나, 문자기호로 대체하거나, 배열을 다르게 하는 방법을 활용한다. ‘Palestine(팔레스타인)’을 ‘P@lestine’으로 표기하는 식이다. 국제 시민단체 아바즈(Avaaz)의 파디 쿠란(Quran) 디렉터는 “아랍의 봄(2011년 아랍권을 휩쓴 민주화 혁명)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SNS가 혁명가들보다 억압자들의 도구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12.01 민심 잃은 시진핑 정권, 어디로 가고 있나

中 인구 6억 월소득 20만원 미만
이런 상황인데 미·중 패권 경쟁?
인민 눈으로 보면 어불성설
부동산 시세 폭락하면서
매달 100건 중 전역서 시위
개혁·개방 요구하는 세계 압박
중국은 결국 견딜 수 없을 것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5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미국 기업인과의 만찬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날 시 주석은 "중미 관계의 문은 닫힐 수 없다"며 "중미 관계의 희망은 인민에 있고 기초는 민간에 있으며 미래는 청년에 있고 활력은 지방에 있다"고 말했다. 2023.11.16/로이터 연합뉴스

 

샌프란시스코에서 서방 자본가들을 향해 중국에 투자해달라 호소하는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를 보면서 작년 이맘때를 되돌아본다. 지난해 10월 14일 베이징의 한 육교에서 “나라의 역적[國賊] 시진핑을 파면하라!” 외치는 ‘브리지맨’의 1인 시위가 벌어졌다. 11월 말엔 중국 전역 17개 주요 도시에서 최소 23건의 집단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백지를 손에 든 청년들은 “공산당 퇴진, 시진핑 하야!” 를 부르짖었다.

 

급기야 작년 오늘 시진핑은 시위를 언급하며 제로-코비드 정책의 후퇴를 암시했고, 일주일 후 중국 당국은 방역 해제를 발표했다. 철권 통치의 빅브러더도 성난 민중은 두려웠던가 보다. 물고기처럼 민심의 바다를 헤엄치라는 마오쩌둥의 충고라도 떠올랐을까.

 

냉전 시대 유수 언론과 학계 전문가들은 군사력 증강을 근거로 미·소 경쟁의 미래를 예측했다. 그 때문에 소련 해체 직전까지도 미국 학계는 물론 중앙정보부(CIA)조차 소련의 체제적 안전성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군사력 강화가 곧 체제 유지라는 고정관념이 패착이었다. 소련 인민의 참혹한 생활고를 훤히 알면서도 민심 이반이 체제 붕괴를 초래한다고 보는 전문가는 드물었다.

 

미·중 대결에 관해서도 같은 실수가 반복되고 있진 않나 의심스럽다. 중국의 GDP(국내총생산)가 일본을 따돌리고 세계 2위에 올라선 2010년 이후 “중국이 대체 언제 미국을 따라잡나?” 에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몇 년 전까지도 중국이 10년 안에 미국을 추월한다는 낙관론이 팽배했었지만, 최근 2년 사이 부동산 버블, 지방정부 부채, 높은 청년 실업률, 인구 절벽 등 중국 경제의 뇌관들이 잇따라 터지면서 중국은 결코 미국을 넘어설 수 없다는 비관론이 득세했다. 실제로 2년 전 미국의 75% 수준까지 치고 올라왔던 중국의 GDP는 올해 3분기 미국 경제가 호조를 보이면서 다시 64%까지 주저앉은 상태이다.

 

미·중 경제의 미래를 예측하기는 지난하다. GDP만으로는 양국의 경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중국의 GDP가 미국과 대등해지더라도 인구가 미국의 4.35배인 중국의 1인당 GDP는 미국의 22.9%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인 네다섯 명의 소득을 모아야만 미국인 한 명의 소득과 같다는 얘기다. 미·중 경쟁을 분석할 때 GDP를 따지는 이유는 국제정치의 행위자는 각 나라 정부이며, 경제 규모가 가장 편리한 국력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한 나라 경제의 현실을 보려면, 그보다는 GDP의 수치가 은폐하는 인민 생활의 실상에 주목해야 한다.

 

얼마 전 사망한 리커창 전 총리는 2020년 5월 중국 인구의 42%에 달하는 6억명의 월 소득이 1000위안(약 140달러) 이하라고 발표했다. 경제 규모 세계 2위 중국의 빈곤상을 까발리는 충격적 폭로였다. 국가 중심적 관점을 버리고 인민의 눈으로 본다면, ‘미·중 패권 경쟁’이란 문구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경제적 위기에 몰린 중국 정권은 인권과 자유를 더욱 옥죄고 있다. 격화되는 인권 탄압은 들불처럼 번지는 사회적 불만의 방증이다. 프리덤하우스의 보고에 따르면, 삼엄한 감시와 철저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작년 6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중국에선 부동산 시세가 폭락하면서 1777건 이상의 시위가 이어졌다. 매달 100건의 시위가 전국 276개 도시에서 산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지난 8월에는 100여 건의 노동자 시위가 발생했다.

 

1989년 톈안먼 대학살이 벌어진 후 중국 안팎의 지식인들은 중국이 머잖아 민주화될 것이란 희망 섞인 예측을 무수히 쏟아냈었다. 지금까지 그들의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아직 결론을 내리기엔 이르다. 1946년 최초로 ‘냉전’이란 신조어를 만든 오웰은 소련이 민주화되거나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썼다. 그 예언이 실현되기까진 45년의 세월이 걸렸다. 내년은 톈안먼 대학살 35주년이다. 반세기 앞서 소련의 몰락을 내다봤던 오웰의 혜안은 놀랍거니와 앞으로 최소 10년 더 중국의 사회 현실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백지를 손에 들고 시위를 하는 청년들을 보면 중국은 희망의 대륙이다. 세계시장을 가진 중국이기에 참된 개혁과 개방을 요구하는 세계의 압박을 중국은 견딜 수가 없다. 희망이 현실로 바뀌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정치적 진화에서 시간은 늘 희망의 편이었음을 인류의 역사가 웅변한다.

조선일보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12.13 1400년 묵은 화약고에 찾아온 평화

▲지난 9월 27일(현지 시각)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분쟁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아르메니아의 국경도시인 코르니조르에 도착하고 있다. 아르메니아 총리실은 이날 오전까지 4만7천115명이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떠나 아르메니아로 입국했다고 밝혔다./로이터 연합뉴스

 

국경을 맞댄 앙숙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나라가 옛 소련에 속했던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다. 아시아와 유럽·중동의 교차점인 남캅카스에 위치한 두 나라는 면적이 각각 한반도의 40%(아제르바이잔), 13.5%(아르메니아)에 불과하다. 하지만 1992~1994년 사망자 3만명과 난민 100만명을 낸 전면전을 치른 이래 수차례 유혈 충돌을 벌이며 지구촌의 대표적인 화약고가 됐다. 이 화약고에서 총성이 완전히 멈출 가능성이 커졌다. 두 나라가 지난 7일 적대 관계를 청산한다는 공동성명을 냈다. 두 나라는 교전 과정에서 억류하고 있던 포로를 맞교환하고, 평화협정도 연내 체결하기로 했다. 정상 외교도 빠른 시일 내에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전격 발표에 국제사회는 환영하면서도 놀라는 분위기다. 그만큼 두 나라가 불구대천의 원수였기 때문이다. 국민 대다수가 시아파 무슬림인 아제르바이잔, 정교회 기독교도인 아르메니아의 갈등의 중심에 아제르바이잔 내 아르메니아계 다수 거주 지역 ‘나고르노카라바흐’가 있다. 이곳을 둘러싼 두 나라의 악연은 14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르메니아 거주 지역이 7세기 페르시아에 점령돼 무슬림들이 정착하면서 반목의 씨앗이 싹텄다. 19세기 제정 러시아가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을 대거 이주시키면서 전운은 더욱 짙어졌다. 켜켜이 쌓인 종교·인종 갈등은 소련 붕괴 직후 아르메니아의 선제공격으로 전쟁이 발발하며 폭발했다.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수차례 맞붙은 두 나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유엔·유럽안보협력기구와 미국·러시아·프랑스 등 강대국이 여러 차례 협상 테이블을 차렸지만, 포연은 가시지 않았다. 영원히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눌 것 같았던 양측에 극적인 데탕트(긴장 완화)를 가져온 동력은 ‘압도적 힘’이었다. 국제사회에서 나고르노카라바흐 영유권을 인정받은 아제르바이잔은 2020년 6주간 치른 전면전에서 아르메니아계 점령지 상당 부분을 탈환하며 승기를 잡았다. 아제르바이잔은 지난 9월에는 지뢰 공격으로 이 지역에서 자국민이 숨진 데 대한 보복으로 군사작전을 개시했다. 불과 하루 만에 모든 상황이 종료될 정도로 아제르바이잔의 압도적 승리였다. 러시아 중재로 체결된 휴전협정에서 아르메니아계 세력은 군사 행동을 중단하고 자치 세력도 해체하겠다고 밝혔다. 완전히 백기를 든 것이다.

 

‘보복은 없다’는 아제르바이잔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아르메니아계 주민 대다수가 국경을 넘어 탈출했고, 아제르바이잔은 승전 퍼레이드를 벌였다. 상황이 이렇게 빠르게 종료된 데에는 힘의 절대 열세를 뼈저리게 인식한 아르메니아 측의 상황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다. 승패가 갈린 뒤 빠르게 안정 국면으로 접어드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상황에서 냉정하면서도 명확한 국제사회 법칙이 읽힌다. 평화를 가져오는 가장 확실한 수단은, 협상 테이블도, 그럴싸한 언사(言辭)도 아닌 압도적 힘이라는 것을 말이다.

조선일보 정지섭 기자

 

 

12-20“내란 가담 트럼프, 대선 경선 출마 금지”…콜로라도州 대법원 판결

트럼프 캠프 측, 연방 대법원에 즉시 상고 의사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내란을 선동하고 가담했기 때문에 콜로라도주(州)에서 진행되는 대선 경선에 출마할 수 없다는 주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1년 ‘1·6 의사당 난입 사태’와 관련해, 트럼프의 내란 선동 혐의를 인정해 그의 대선 경선 출마를 금지한 첫 판결이다. 다른 주에서도 같은 판결이 이어지면, 그의 대선 레이스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19일(현지시간) 워싱턴 포스트(WP),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 2021년 1·6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 가담 등 내란 선동 혐의를 인정해 콜로라도주 대통령 예비선거 출마를 금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주 대법관 7명 중 4대3 의견으로 이렇게 판결했다.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 수정헌법 제14조 3항에 따라 대통령직 수행 자격이 없다는 것이 법원 다수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콜로라도주에서는 대통령 예비선거 투표용지에 트럼프를 후보자로 올리는 것은 법에 위배된다고 했다.

수정헌법 제14조 3항은 내란에 가담하거나 연방 헌법을 위협한 적을 지원하면 공직을 맡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1868년 채택된 헌법 내란죄 조항을 근거로 특정 대통령 후보를 투표용지에서 제외시킨 첫 번째 판결이다.

주 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평화적인 권력 이양을 방해하기 위해 폭력과 불법적인 행동을 선동하고 장려했다”며 “2021년 1월 6일 미 국회 의사당에 대한 공격이 ‘반란’이라고 판단하는 데 거의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이어 “(2020년 대선 이후) 트럼프가 여러 주에서 공화당 관리들에게 결과를 뒤집도록 압력을 가했다는 ‘상당한 증거’가 있다”고 했다.

주 대법원은 “그는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격이 없으므로 콜로라도주가 그를 대통령 프라이머리(예비선거) 투표용지에 후보자로 등재하는 것은 선거법에 따라 부당한 행위가 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 판결은 콜로라도주 내에서만 해당되며, 트럼프가 다른 주 경선에 출마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의 상고를 감안해 판결 효력을 내년 1월 4일까지 유예하도록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상고 의사를 밝힌 만큼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판결의 효력이 더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 콜로라도주의 공화당 대선 경선 프라이머리는 내년 3월 5월에 잡혀있다.

지난 11월 콜로라도 지방법원 새라 월리스 판사(1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자격을 박탈해달라’는 시민단체 주장에 대해 “수정헌법 14조 3항은 대통령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결했었다. 왈리스 판사는 이 조항이 상·하원 의원이나 대선 선거인단 등 활동 금지 대상이 나열된 만큼 대통령직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그러나 이들은 항소했고 주대법원은 1심과 반대로 판단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이날 콜로라도주 대법원 판결에 불복, 즉각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캠프의 스티븐 청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완전히 결함 있는 판결”이라며 “미 연방 대법원에 상고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는 연방 대법원이 신속하게 우리에게 유리한 판결을 하고 마침내 비(非) 미국적인 소송을 끝낼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현재 미 연방 대법원은 보수 성향 대법관이 6대3으로 다수를 점하고 있다.

이번 콜로라도주 대법원 판결이 다른 주에서 진행 중인 ‘트럼프 대선 출마 불가’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된다. AP등에 따르면 25개 이상의 주에서 트럼프의 후보 자격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송이 제기된 상태다.

조유경 동아닷컴 기자 polaris27@donga.com

 

 

12-27 내년은 47개국 선거의 해… “AI 가짜뉴스 쓰나미 온다”

이미 트럼프 가짜이미지 등 확산

음성·영상 조작 민의 왜곡 우려
전문가들 “선거판 흔들 것” 경고

워싱턴=김남석 특파원 namdol@munhwa.com

2024년 새해를 맞아 한국을 비롯해 미국·인도·유럽·러시아 등 전 세계 47개국에서 국가 단위 선거가 예정된 가운데 인공지능(AI)발 가짜뉴스가 선거 판도를 뒤흔들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생성형 AI 기술로 클릭 몇 번에 가짜 영상·이미지·음성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반면, 각국 정부·기업의 관련 규제는 미비해 “가짜 뉴스가 쓰나미처럼 덮칠 것”이라는 우려까지 제기됐다.

26일(현지시간) AP통신과 국제선거제도재단(IFES) 등에 따르면 내년에는 한국 총선(4월 10일)을 비롯해 미국 대통령선거(11월 5일), 인도 총선(4월 30일), 유럽의회 선거(6월 6일), 러시아 대통령 선거(3월 17일) 등 전 세계 47개국에서 선거가 진행된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 차원의 선거가 생성형 AI 기술 보급 이후 첫 번째 선거가 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가짜뉴스가 어느 때보다 판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쏟아지고 있다. AI 전문가인 오런 에치오니 워싱턴대 명예교수는 “잘못된 정보가 쓰나미처럼 밀려올 것으로 예상한다”며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대통령이 병원에 실려 가는 모습을 볼 수도 있고, 어느 후보자가 실제로 한 적 없는 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 유권자들도 AI발 가짜뉴스 확산을 우려하고 있다. 11월 초 공개된 시카고대 해리스공공정책대학원과 AP·NORC 공동여론조사에서 미국 성인의 58%는 내년 대선에서 AI가 거짓 정보 확산을 증가시킬 것으로 우려했다.

AI가 만든 가짜뉴스는 이미 각종 선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슬로바키아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자유주의 진영 후보가 맥주 값 인상·선거조작 계획을 논의한 것처럼 조작된 AI발 음성녹음이 확산한 사례가 있다. 3월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수의 뉴욕 경찰에 체포되는 AI발 가짜 이미지가 SNS 등 온라인상에서 확산했다.

반면 AI 기술 발전이 가장 빠른 미국에서도 관련 규제가 아직 마련되지 않은 데다 SNS 기업의 자체 규제는 오히려 과거보다 축소돼 가짜뉴스가 선거판을 뒤흔들 것이라는 우려가 더 커졌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