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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2022-11/ 11.01 ‘이태원 참사’ 위험, 우리 주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 ‘11월 30일노사 법치’ 중대 기로… 정부와 국민 의지에 성패 달렸다

상림은내고향 2022. 12. 1. 13:51

세상사 2022-11/

11.01 ‘이태원 참사’ 위험, 우리 주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사흘 전 경찰과 용산구청,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등이 간담회를 열었지만 사실상 아무런 안전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한다. 축제 기간 성범죄와 마약 등 범죄 예방과 방역 수칙만 논의했다고 한다. 참사가 발생한 29일 인파가 10만여 명 몰렸는데도 차량 통제나 폴리스라인 설치를 통한 인도 확보 같은 대책은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 축제가 ‘주최자 없는 행사’였기 때문이다. 2년 전 행정안전부는 재난안전법 시행령을 개정해 참가자 1000명 이상인 행사에는 안전 관리 계획을 제출하도록 의무화했고, 지난해엔 안전 요원 우선 배치, 순찰 활동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관련 매뉴얼도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매뉴얼은 주최자가 있는 행사를 전제로 한 것이라 이태원 행사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이번 참사는 좁고 경사진 골목길에 대규모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발생했다. 그러나 경찰도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선 시민들이 한꺼번에 골목길로 몰리는 것을 막을 권한이 없다고 한다. 안전 사각지대였던 셈이다.

 

지난 8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세계 불꽃 축제 때는 100만명 넘는 인파가 몰렸지만 별다른 안전사고 없이 무사히 행사가 마무리됐다. 행사 주최 측인 한화그룹이 신고했고, 서울시와 구청, 소방 당국, 경찰이 종합안전본부를 설치해 대응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이태원 참사 전에 경찰과 지자체가 안전 계획을 세워 사고가 난 골목길과 연결되는 이태원로 차량 통행을 막고 이태원역 지하철 무정차 통과 조치 등을 했다면 인파가 넓게 퍼질 수 있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도 이런 최소한의 안전 관리 대책을 세울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이런 대책을 마련한다고 해도 인파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다. 압사 사고는 우리 일상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사람들로 꽉 들어찬 출근길 지하철역, 수천 명이 몰리는 환승역,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공연장 등도 압사 위험이 있다. 안전 전문가들은 1㎡당 5~6명 이상이 있을 때를 ‘위험 단계’로 본다고 한다. 1㎡당 6명이 모이면 사람들이 몸을 가누기 어렵게 되고 한꺼번에 넘어질 수 있어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번 이태원 참사 때 사상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곳에는 1㎡당 16명가량이 몰렸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1㎡당 5~6명이 몰리는 상황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발생한다. 이런 군중 밀집도에 대한 안전 기준을 만들고 국민 스스로도 질서 있게 행동하는 것을 체질화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1.01 “아이라도 구해달라던 어머니…집에 와 계속 울었다” 의인들의 트라우마

10월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 체육관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유실물센터에 유실물들이 놓여 있다. 유실물센터는 이날 밤부터 오는 11월 6일까지 운영된다. /뉴스1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위험에 빠진 이들을 도운 시민 의인(義人)이 트라우마로 일상생활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단국대학교 체육학과에 다니는 A씨는 참사 현장의 인근 가게에서 보안요원으로 일했다. 그는 건물 안으로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심폐소생술(CPR)을 하며 시민 여러 명을 구조했다.

 

A씨는 지난달 31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빼내려고 노력했다”며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양옆에서 사람들이 좁혀와 밑에 있던 분들은 어떻게 해도 뺄 수가 없었다. 일단 제 눈에 보이는 대로 최대한 빼냈다”고 말했다.

 

구한 이들 중에는 어린아이도 있었다. A씨는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라도 가게 안으로 넣어달라’고 하셔서 제가 그 아이의 겨드랑이를 잡고, 제 뒤에서는 외국인분들이 제 허리를 잡았다. (힘을 합쳐) 있는 힘껏 빼냈다”며 “아이의 팔다리를 계속 주무르면서 어떻게든 말을 걸어줬다”고 했다.

 

심폐소생술을 한 이들은 너무 많아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CPR을 하는데 입과 코에서 계속 피가 나와서 보고 있기 좀 힘들었지만, 30분이고 1시간이고 계속했다”며 “나중에는 빼낸 사람들이 계속 몰려 들어와서 CPR을 계속했다. 지금은 그분들의 얼굴조차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많은 이들의 생명을 구했지만 A씨는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지 못한 것 같은 마음에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A씨는 “그날 저는 집에 가서 어머니, 아버지 손을 붙잡고 계속 울었다”며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이어 “화장실도 혼자 가면 무서웠고, 눈을 감거나 조금이라도 어두워지면 ‘살려달라’는 분들의 눈이 보이고, 제 발목을 붙잡는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들어서 힘들다”고 했다.

 

정신적 외상인 트라우마는 불안, 공포, 공황, 우울, 무력감, 분노, 해리 증상(신체와 분리된 느낌)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는 “이런 증상들은 재난을 겪은 후 나타나는 정상적인 반응이고 저절로 회복될 수 있지만, 고통이 심하면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이가영 기자

 

11.01 용산구청장 “할 수 있는 역할 다해… 핼러윈은 주최측 없는 현상”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헌화하고 있다. /공동취재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관련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고 말했다.

 

박 구청장은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 사고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뒤 MBC를 통해 “너무 가슴이 아프다. 사망하신 분들과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사고 책임론에 대해선 “저희는 전략적인 준비를 다 해왔다”며 “(인파 예상을) 못한다. 작년보단 많을 거라고 예측했지만 이렇게 단시간에 많을 거라고는 (예상 못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건(핼러윈은) 축제가 아니다. 축제면 행사의 내용이나 주최 측이 있는데 내용도 없고 그냥 할로윈 데이에 모이는 일종의 어떤 하나의 ‘현상’이라고 봐야 된다”고 했다.

 

일각에선 박 구청장의 해당 발언을 두고 ‘면피성 발언’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난안전법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나 민간이 개최하면서 1000명 이상 참가하는 지역 축제’는 안전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주최 측이 없는 핼러윈의 경우 지자체의 대비 의무가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박 구청장은 “지금은 사고 수습이 최선”이라며 “안전 사각지대가 없도록 면밀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박 구청장은 이태원 사고가 소방청에 최초로 접수된 29일 밤 10시15분으로부터 18시간이 지난 30일 오후 4시에 공식입장을 밝혔다.

 

이를 두고 ‘무대책 행정’이란 비판이 일자 용산구는 해명자료를 내고 “이는 사고 수습이 우선이라는 박 구청장의 신념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  김자아 기자

 
 

11.01 젊은이의 양지

 핼러윈이 대체 뭐라고? 아침에 들이닥친 비보(悲報)를 누가 곧이 믿었을까. 수많은 젊은이가 죽거나 다쳤다는 급보, 그것도 좁은 골목에서 압사했다는 소식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그러나 현실이었다. 폭 3m, 길이 50여m의 좁은 회랑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폭탄이 터진 것도, 건물 붕괴도 아닌데 300여 명의 젊은이가 죽거나 다쳤다. 가슴속 응어리를 터트리고 싶었던 청년들이었다. 무겁고 엄혹한 현실에 가위눌린 세대원들과 거리를 쏘다니며 청춘 찬가를 부르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죽음이었다니. 와류로 변한 인파가 흘러든 골목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핼러윈이 대체 뭐라고. 추석처럼 우리의 명절도 아닌데? 기성세대는 낯설기 짝이 없다. 핼러윈에 젊은이가 거리로 뛰쳐나온 까닭이 말이다. 잡신과 마녀 가면을 쓰고 활보하는 청년들의 세계관을 이해할 수 없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다. 핼러윈 축제를 처음 접한 것은 아득한 유학 시절이었다. 추수감사절 막바지, 호박을 파서 만든 등불을 현관에 놓고 정원에는 해괴망측한 유령들을 매달아 동네 분위기가 한층 괴괴했다. 악령을 쫓는 행사라고 했다. 핼러윈을 전파한 아일랜드계 이주민이 가장 많은 보스턴 지역 축제는 극성맞을 정도다. 그럼에도 공감이 일지 않았다. 드라큐라 같은 서양의 악귀가 너무 낯설었다고 할까.

우리 명절도 아닌 핼러윈 축제
청춘 옥죄는 사회·경제적 악령을
내쫓는 주체적 퇴마사 되고 싶어
애도로 부족한 비극 눈물지을 뿐

그런데 왜 핼러윈인가? 한국 젊은이들의 시야엔 이미 세계가 들어와 있다. 한국적 풍습은 물론 세계 문물에 이미 익숙해졌다. 국가와 문명 경계가 사라졌다. 내가 즐기는 것은 그냥 좋은 것이다. 인터넷과 유튜브, 스마트폰 덕분일 텐데, 기성세대는 결코 물들 수 없는 K-팝에 이쪽저쪽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모습이 그것이다. 인터넷 시대 세계의 청년들은 소통의 광장을 이미 갖고 있다. 전통에 깊이 삭은 기성세대는 이해할 수 없다. 서양의 악귀는 동양의 사악한 귀신과 친척이다. 한국의 도깨비와 서양의 드라큐라도 일가(一家)다. 족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직접 참여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축제의 주체라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악귀를 쫓을 때 무당을 부른다. 무당이 집전하는 미친굿, 두린굿에 동민들은 간절히 빈다. 무속인처럼 접신 전문가가 따로 있는데 가족들이 그저 손 모아 비는 전통은 지금껏 변하지 않았다. 구경꾼일 뿐이다. 예전 서양 기독교에도 목사가 직접 축사(逐邪)를 했고, 카톨릭은 사제가 구마(驅魔)를 담당했다. 그러나 공적 퇴마의식은 교회와 성당에서 사라졌다. 악령마저 하느님의 품 안에서 구원받기를 함께 갈구하는 예배 의식으로 진화했다. 신도의 주체화다.

 

핼러윈 축제에는 사제가 없다. 참여자가 직접 귀신을 쫓는다. 악귀를 이승에서 저승으로 떠나보내는 의식에서 스스로 퇴마사가 된다. 각종 분장과 가면을 동원한다. 이웃 친지들과 먹고 노는 동안 원혼들은 무섭게 분장한 얼굴을 피해 떠난다. 설과 추석 제사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엄격한 제례를 따라야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주체의 향연, 그것도 사회적 운명을 함께 헤쳐나가는 세대원들과 나누는 공감, 연대, 위로의 행진에 왜 참여를 마다하겠는가? 10만 인파가 한국의 대표적 외국인 거리 이태원에 스스로 운집하는 현상을 그렇게 이해한다. 꽉 막힌 영토에서 짓눌린 나날들을 잠시 잊고 ‘주체적 악령’이 되고 싶은 거다.

 

한국의 청년들은 젊은 시간을 옥죄는 사회적, 경제적 악령에서 해방되고 싶다. 차단된 통로에서 벗어나고 싶다. 부모의 시간은 가난했어도 희망은 있었다. 대하드라마 ‘젊은이의 양지’가 방영된 것은 1995년이었다. 광산촌 청년의 꿈과 야망, 대기업 딸과의 사랑과 배신이 교차하는 순애보는 신분 상승과 부자 등극의 기회가 널려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런 기회를 마다하고 주체적으로 낙향하는 주인공의 스토리에 감동했다. 전후 미국,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 영화 ‘젊은이의 양지’(A Place in the Sun), 제임스 딘 주연 ‘자이언트’(Giant) 역시 비슷하다. 상승과 하락의 기회를 스스로 결단하고 선택하는 시간이 젊은이들의 꿈인데, 막혔다. 주식과 코인으로도 뚫을 수 없다. 간신히 대기업에 취업한들 자기 인생과 거리가 멀다.

 

이 시대 ‘젊은이의 양지’는 어디인가? 대학 졸업장을 따고도 비정규직을 떠돌아야 하는가? 왜 열패감을 몰래 갈무리해야 하는가? 왜 사랑하는 사람과 빈손으로 결혼을 감행하지 못하게 만들었는가? 나 자신의 인생사이클을 왜 주체적으로 기획하지 못하는가? 1인 당 국민소득 3만5000달러 시대에 왜 청년들의 꿈은 이토록 궁핍해야 하는가? 보수든 진보든 정치권의 청년 정책은 왜 어김없이 처절한 결과만 안겨 주는가?

 

젊은이의 양지는 핼러윈 축제가 열리는 이태원에 있었다. 청춘의 크레바스를 뛰어넘고 꿈을 짓밟는 악귀를 저주하러 스스로 모였다. 클럽과 카페, 음식의 거리를 누볐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 골목길에서 그런 참사가 기다릴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애도만으로는 어림없는 비극에 기성세대로서 할 말을 잃는다. 꽃다운 생명을 눈물로 보낸다.

중앙일보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 한림대 도헌학술원 원장·석좌교수

 

11.01 이태원 참사 수습 방해하는 가짜뉴스·혐오·정략 발언

제2 세월호 부추기는 자들과 돈벌이 유튜버

이상민 장관 등 면피 급급한 공무원도 문제

 

가짜뉴스와 음모론은 진실보다 그럴듯하다. 이번 이태원 참사도 그렇다. 사실 확인에는 객관적 검증을 위한 수고로운 노력이 필요하지만 가짜뉴스는 쉽게 지어낼 수 있고, 음모론은 서사 구조가 그럴듯하게 들린다.

초기 SNS에선 참사 원인이 가스 누출, 화재, 마약 등이라는 가짜뉴스가 퍼졌다. 함께 올라온 사진과 동영상은 설득력을 더했다. 수십 명의 시체가 길거리에 늘어선 모습과 아비규환을 상상케 하는 목격담이 가짜뉴스를 진실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사고 원인이 압사로 규명되자 이번엔 혐오 현상이 나타났다. 온라인에선 특정 국적의 외국인들이 밀기 시작했다거나, 처음에 ‘밀어’라고 외친 여성 또는 남성 무리가 있었다며 여혐·남혐 발언이 오갔다. 유명인이 나타나 갑자기 인파가 몰렸다는 증언이 나오자 특정 유튜버가 해당 인물로 지목돼 곤욕을 치렀다.

 

초기 가짜뉴스가 사고 원인에 초점을 맞췄다면, 다음엔 책임론으로 방향을 틀었다. 어제 다수의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엔 ‘팩트체크’라는 글이 퍼졌는데, 과거 핼러윈 때는 늘 통제가 있었고 경찰 800명을 투입했다는 내용이다. 모두 잘못된 정보였지만, 온라인에선 이미 사실처럼 확산됐다.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퍼지는 이유는 인지편향 때문이다. 자기 생각과 다른 사실은 부인하고(인지부조화), 비슷한 생각만 받아들여 확신을 높이는(확증편향) 태도가 진실의 눈을 멀게 한다. 특히 오늘날처럼 SNS 알고리즘이 이용자에게 맞는 정보만 추천해 주는 시대엔 인지편향에 빠지기 쉽다.

 

일부 유튜버는 자극적 영상과 가짜뉴스로 조회 수를 높이고 돈벌이에 활용했다. 적나라한 시체 공개로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 “참사 원인은 청와대 이전 탓”이라는 남영희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정략적 발언도 논란을 일으켰다. 참사의 비극을 자신의 이해관계에 이용했다. 비난받아 마땅하다.

 

가짜뉴스는 혼란만 키우고 사태 수습을 방해한다. 이번 사태가 유가족의 슬픔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온갖 음모론으로 사회 갈등을 부추겼던 세월호 참사처럼 흘러가선 안 된다. 시민들은 합리적 이성의 눈으로 가짜뉴스를 걸러내고, 정부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명백하게 사실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처신은 부적절했다.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는 면피성 발언은 많은 국민을 분노케 했다.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는 용산구청과 경찰도 질타를 받는다. “공직자는 국민의 안전에 무한책임이 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이 무색한 실정이다.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11.01 [단독] 해밀톤호텔 불법 건축이 '3.2m 병목' 만들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사고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왼쪽 계단과 출입구가 건축한계선을 넘은 불법 건축물이고, 벽돌과 붙어있는 분홍색 가벽도 건축물 대장에는 없는 시설물이다. 연합뉴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참사는 폭 3.2m 골목에서 일어났다. 이태원 해밀톤호텔 뒤편 세계음식문화거리에서 몰렸던 인파가 호텔 옆 50m 내리막 골목길로 내려오면서 뒤엉킨 곳이 그 좁은 구간이다. 골목 위쪽은 폭이 5m 이상이지만 아래쪽에는 3.2m로 좁아진다. 전문가들은 일종의 병목현상이라고 해석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고 다음 날인 10월 30일 오전 현장을 방문해 "거리의 폭이 얼마나 되냐”고 물었고, "3.2m"란 보고를 받자 말을 잇지 못한 채 한숨을 내쉬었다.

 

건축법상 도로는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폭이 4m 이상이어야 하고, 해당 지역 건축물현황도에도 도로 너비는 4m로 나와 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이하로 좁아졌을까. 바로 ‘불법건축물’ 때문이다.

 

중앙일보가 확보한 건축물현황도에 따르면 해밀톤호텔은 대부분 건축한계선을 넘어 지어졌다. 건축한계선은 도로에 접한 부분에 건축물을 건축할 수 있는 선이다.

 

그런데 해밀톤호텔은 골목길 중간쯤에 건축한계선을 침범한 건물 출입구(계단 포함)가 설치돼있고, 골목 하단부에는 분홍 철제 가벽(假壁)이 도로에 바로 붙어 10m가량 이어져 있다. 이번 참사 때 이 계단 위 공간으로 피신한 사람들은 위기를 모면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건축사는 "이 호텔은 대부분이 건축한계선을 넘어 지은 흔치 않은 건물"이라며 "특히 골목길 중간 출입구는 건축한계선을 침범한 명백한 불법 건축물"이라고 설명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해밀톤호텔이) 오래된 건물(1970년 준공)이라 변경된 도시계획 등이 반영되지 않아 건축선을 초과한 상태로 유지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명했다. 다만 용산구청은 공개공지 점유 및 도로 점유, 그리고 불법 건축물 해당 여부 등 자세한 사항에 대한 질의에는 31일 자정까지 답을 주지 않았다.

 

도로 경계선에 바짝 붙여 설치된 분홍 철제 가벽도 통행 흐름의 방해 요소로 작용했다. 현행 법률 및 조례상 해밀톤호텔과 같은 대형 건축물은 통행 흐름 등을 방해하지 않도록 인접한 도로의 가장자리선(경계선)으로부터 3m 거리를 두고 지어야 한다. 하지만 해밀톤호텔이 가뜩이나 좁은 도로에 도로 경계선에까지 가벽을 설치했고, 그 결과 폭 3.2m 도로가 탄생한 것이다. 이동호 인천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골목 밑으로 내려올수록 호리병처럼 단면이 축소되면 병목 현상으로 통행 흐름이 떨어지는 것은 역학적으로 당연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 건축사는 "오래전에 지어진 건물일지라도 사후관리는 현행 법령에 맞춰 해야 하는데 그런 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해밀톤호텔은 이 가벽을 그동안 쇼핑몰로 통하는 통로로 활용해 왔다. 해밀톤호텔 관계자는 "10여년 전부터 가벽을 설치했는데, 용산구청으로부터 단속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 포털사이트 지도 서비스를 통해 확인해보니 2010년에도 비슷한 형태의 가벽이 설치돼 있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이 가벽에 대해 "천정(지붕)이 없는 형태라 건축물로 보긴 어려워 불법증축물 단속 대상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 지방자치단체 건축인허과 담당 공무원은 "'달아낸 건물'이라고도 하는데, 가벽을 설치해 실제 건축물처럼 활용하면서도 지붕을 없애 규제를 교묘하게 피하는 방법"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안전을 위한 도로 폭이 최소 4m 이상이고, 그 골목은 이태원 내에서도 인파가 가장 많이 몰리는 곳임을 고려할 때 용산구청 측이 가벽 철거 등의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했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건국대 건축학과 안형준 전 교수는 "법으로 규정된 4m 도로 폭이 확보되지 않았다면 지자체에서 '사람이 몰리면 위험할 수 있다'는 식의 경고 문구라도 가벽에 표시했어야 한다"며 "사고가 일어난 골목길 반대편 상가의 경우에도 도로 폭이 확보되지 않았다고 판단됐다면 인허가를 내주지 말아야 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건축물대장상 반대편 상가 곳곳이 '위반건축물'로 노란 딱지가 붙어있다. 골목 맞은편 일부 상가들도 도로 일부를 불법으로 점유한 것이다.

 

 ▲해밀톤호텔 별관(B동)은 건축물대장에 위법건축물로 지정돼 있다. 앞 유리부분이 불법 점유 공간이다. 함종선 기자

 

해밀톤호텔도 건축물대장에 위반건축물로 등록돼 있다. 이 건물은 쇼핑몰과 호텔이 있는 본관과 한 커피전문점에 통째로 임대한 별관(B동)으로 이뤄져 있는데, 건축물대장을 확인해보면 두 건물 모두 위반건축물이다. 특히 별관의 경우 건물 전면 부분(49㎡)이 지난 2017년 불법 증축됐고, 용산구청이 매년 이행강제금을 부과해도 시정되지 않고 있다.

함종선·김원 기자 ham.jongsun@joongang.co.kr

 

11.01 주최자 없던 이태원 참사, 그럼 책임은 누가?…판례 보니

할러윈 데이(31일)를 앞둔 주말이던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10만여명의 인파가 몰리면서 150명이 넘게 숨지는 최악의 압사 참사가 빚어졌다. 그러나 행사 주최자가 따로 없는 자발적 모임인 탓에 법적 책임 소재를 규명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해석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다만 지방자치단체나 국가의 ‘배상 책임’은 인정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 호텔 부근 도로에 시민들이 몰려 있다. 이날 핼러윈 행사 중 인파가 넘어지면서 다수 사상자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➀ 폭 3.2~5m‧총 길이 50m 골목길은 누가 관리?

사고가 벌어진 곳은 해밀톤 호텔 뒤편 세계음식특화거리에서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쪽으로 내려오는 폭이 5m→3.2m로 좁아지는 경사로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에 규정된 중대시민재해로 볼 여지가 있지만, 적용하기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법상 공중이용시설은 지하역사, 일정 규모 이상 여객터미널,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의료기관 등 주로 ‘책임자’나 ‘관리자’가 있는 공간이나 준공 후 10년이 지난 도로 교량이나 터널 등으로 규정하고 있어서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적용 범위를 넓히면 결국은 모든 장소가 해당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법의 명확성이 없어진다”며 “법률은 그 적용 대상자에게 자신이 적용대상임을 예견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이 경우까지 적용할 경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➁ 자발적 시민 모임, 현장 안전 책임은?

이번 핼러윈 행사의 특징은 지자체나 특정 단체 주도로 행사를 주최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10만명이 넘는 군중이 몰렸다는 점이다. 주최자가 없이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경우 안전관리계획 신고는 재난안전법상 의무사항이 아니다.

 

지난 2005년 1만여명이 일시에 몰리면서 11명이 숨진 경북 상주 콘서트 압사 사고 때는 상주시와 MBC라는 ‘주최자’가 있었다. 이때 대법원은 상주시 공무원 등에게 유죄를 인정하며 전문적인 경력과 능력을 갖추지 못한 업체를 선정함으로써 사고를 발생시켰고, 경비인력 및 장비가 확보되지 않아 무질서와 혼란이 야기돼 사람이 사상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판시했다. 당시 상주시장과 시 공무원들, MBC 관계자들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다.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튼호텔 옆 골목길. 김성룡 기자

 

그러나 주의 의무가 있는 주최자가 없는 이태원 현장의 형사 책임을 공무원들에게 폭넓게 묻기는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개별 공무원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옳은 방향도 아니거니와 사고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게을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국가나 지자체에 배상 책임을 물을 가능성은 남아 있다. 국가배상법은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때’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공무원의 법령 위반’에 대한 대법원의 해석 역시 넓어지는 추세다. 최근 대법원은 “인권존중·권력남용금지·신의성실 등의 준칙을 위반한 경우를 포함해 널리 객관적인 정당성이 없는 행위를 한 경우를 포함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법원은 성폭력 범죄 전과로 전자발찌를 착용하고도 잇따라 성폭행·살인 등 범죄 행각을 벌였던 ‘중곡동 살인사건’에 대해 재범을 막지 못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

 

한 현직 판사는 “공무원의 ‘부작위(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도 인정된다”며 “결국 법령과 조례 해석을 통해 지자체가 자발적으로 모인 군중 안에서 개인의 안전을 보호해야 할 공무원의 의무가 도출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이 ‘예측 가능했나’, ‘공무원들의 고의나 과실이 있었는가’는 작위(적극적 행위)가 규명돼야 할 부분이라는 이견도 있다. 한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이는 누군가 사고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었다고 일부러 보고하지 않았다거나 보고했지만, 윗선에서 이를 임의로 묵살했다거나 하는 식”이라며 “최소한의 사회상규가 위반된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➂“5~6명이 밀기 시작” 사실이라면, 처벌 가능성은?

사고 현장에 있던 목격자나 생존자들 사이에선 누군가 고의로 밀었다는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증언이 사실이라면 고의로 밀기 시작한 이들은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수많은 인원이 운집한 경사로에서 사람을 밀었다면 누구나 ‘사고’를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며 “과실치사나 상해치사가 적용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검찰 출신 변호사 역시 “‘너 죽여버릴 거야’라는 말만 했다면 단순한 화풀이일 수 있지만, 흉기를 들고 쫓았었다면 살인 미수일 수 있듯 ‘밀어, 밀어’라고 한 상황과 경위가 조사돼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현직 판사도 “신원이 특정되면 처벌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미는 행위와 반대쪽 행인들이 넘어지고 다치거나 숨지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인과관계가 상세히 규명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책임 규명 앞서 안전 문화 만들어야”

‘마지막 대검찰청 중수부장’인 김경수 변호사는 “작은 행위가 큰 위험을 발생시킬 수 있는 대량 위험의 사회에서 젊은이들의 핼러윈 문화와 결합해 빚어진 안타까운 대형사고”라며 “형사적이든 민사적이든 법적 책임을 묻기 쉽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고 했다. 그는 “책임 규명은 분명히 하되 단순히 처벌로 개인의 책임을 돌리는 게 아니라 안전 문화를 고도화하고 정교하고 치밀하게(精緻) 만들어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무원의 과실과 사고 사이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다면 형사처벌이 아니라 징계 등 행정적 책임을 규명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라며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공무원 개개인에게 형사 책임을 묻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김수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11월 02일 참사유족 상처 덧내는 가짜뉴스 · 2차 가해 엄단해야

서울 이태원에서 155명이 압사한 국가적 참사를 두고 희생자를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2차 가해성 글과 영상·사진, 가짜뉴스가 무분별하게 떠돌고 있다. ‘놀러 갔다가 죽은 것’이라는 등 희생자를 조롱하는 글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상처를 덧내는 것으로서 엄단해야 한다. “칼에 수억 번을 찔린 것 같다”는 유족에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사고 수습과 재발 방지 대책에 국가적 역량을 쏟아야 할 때 사실 확인 없는 가짜뉴스도 심각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31일 사고 현장을 찾아 “왜 이번엔 과거에 했던 진입 통제도 없고, 일방통행 관리도 안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고, 방송인 김어준 씨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태원 축제에 진입 통제를 한 적이 없다. 지난해에 인파가 한 방향으로 움직인 것처럼 보인 것은 코로나 방역 게이트를 설치해 통제했기 때문이다. 경찰도 숫자상으로 예년에 비해 많이 투입됐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정부나 경찰·자치단체의 책임이 면해질 수는 없다. 더욱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경찰 인원이 더 배치됐다고 막을 수 있는 사고가 아니었다”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인 것이 아니다”는 등의 발언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문화일보 사설

 

11.02 참사 4시간 전 “압사당할 것 같다”는 112 신고 무시한 경찰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3시간 전 이태원 카페거리 인파 모습. /이태경 기자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 현장의 심각성을 알리는 112 신고가 다수 있었던 것을 확인했다”며 “이 신고를 처리하는 현장 대응이 미흡했다”고 했다. 사고 당일인 지난 29일 오후 6시무렵부터 사고가 발생한 밤 10시 15분쯤까지 이태원 일대의 안전 문제와 관련한 112 신고가 11건 접수됐지만 ‘일반적인 불편 신고’로 판단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고 내용엔 당시의 위급한 상황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경찰이 이날 공개한 신고 내용을 보면 오후 6시 34분 “압사당할 것 같다”는 첫 신고가 들어온 이후 “사람들이 몰려 쓰러진다” “통제가 안 된다” “아수라장이다” “대형 사고 일보 직전”이란 신고가 연이어 접수됐다. 사고 4시간 전부터 사고 위험을 알리는 신고가 들어왔는데 사실상 방치한 것이다. 10만여 명이 몰린 이날 이태원 일대엔 137명의 경찰이 있었지만 그나마 대부분 범죄 예방 활동에 집중돼 있었다. 너무 안일하게 대응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경찰에 신고된 11건 중 6건에 대해선 일선 경찰이 현장에도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사고가 임박한 밤 9시 이후 접수된 7건의 신고 중 4건도 경찰이 현장에 나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마지막 신고인 밤 10시11분에는 신고자의 목소리 뒤로 ‘아’ 하는 비명 소리도 들렸다. 경찰이 소극적으로 대응해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참사의 원인을 경찰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이태원을 관할하는 서울 용산구도 이태원 축제가 ‘주최자 없는 행사’라는 이유로 별다른 안전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법 규정만을 따진 것이다. 용산구가 적극적으로 안전 대책을 세웠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참사 당일 지하철 이태원역과 인근 녹사평역 승하차 인원은 16만여 명으로 지난해 핼러윈 때보다 배 이상 많았다. 이 시간에 이태원역 지하철 무정차 통과 조치만 했어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태원 상인회 측은 부인하지만 경찰은 참사 사흘 전 구청, 상인회 측과 간담회를 했을 때 상인회 측이 과도한 경찰력 배치 자제를 요청했다고 말하고 있다.

 

대형 참사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특정 기관을 희생양 만들듯이 비난하면 사고의 진상을 제대로 밝히기 어렵다. 윤희근 청장은 “독립적인 특별기구를 설치해 투명하고 엄정하게 사안의 진상을 밝히겠다”고 했다. 경찰만이 아니라 정부와 서울시 차원에서도 엄정하게 조사해 사회 전반의 안전 시스템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1월 02일 “압사 위험” 반복 신고 뭉개고 거짓말 의혹도… 경찰 맞나

 156명이나 희생된 이태원 핼러윈 참사 3∼4시간 전부터 ‘압사 위험’ 112신고가 11번 반복됐는데도 경찰이 적절한 대처를 하지 않은 사실은 충격적이다. 특히, 사고 발생 3시간41분 전인 29일 오후 6시 34분에 해밀톤호텔 인근에서 최초의 신고자는 “좁은 골목인데, 이태원역에서 올라오는 사람들, 골목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엉켜서 압사당할 것 같으니 진입로에서 인원 통제를 해 주셔야 될 것 같다”고 했는데, 실제 사고가 일어난 장소와 내용이 똑같다. 경찰이 제대로 대처했다면 젊은 생명의 허망한 죽음을 막거나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경찰이 사태의 심각성을 오판하고 “대형사고 일보 직전” “아수라장” “난리” 등을 언급한 다급한 신고를 ‘불편신고’ 정도로 치부한 것도 문제지만, 6건에 대해서는 출동 약속을 지키지 않는 등 목숨이 경각에 달린 신고자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의혹도 심각하다. 경찰이 맞나 싶다. 실제 출동했다는 4건도 ‘시민 통제’ ‘인도로 안내’ 등의 조치를 한 것으로 돼 있어, 화급한 현장 상황을 이해했는지 의문이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사고 1시간21분이나 지나 밤 11시 31분에서야 집에서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참사 사흘 전인 지난달 26일 용산경찰서 112상황실은 안전사고 위험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상부에 올렸고, 용산서 정보과의 보고서에도 같은 내용이 담겼고 경찰 내부망에 공유됐다. 이런데도 용산서, 서울경찰청, 경찰청 어느 곳에서도 사고 위험 가능성에 대처하지 않은 것은 심각한 직무유기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특별기구를 통해 감찰과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했지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경찰 수뇌부의 거취가 걸린 사안에 대해 경찰이 제대로 조사할지 의문이다. 문재인 정권의 위헌적 ‘검수완박’법에 따라 대형참사는 검찰이 직접 수사에 나서기도 쉽지 않다. 총리실 산하 범정부기구라도 구성해 사고 원인과 행안부·경찰·지자체의 부실 대응 이유를 명명백백히 밝혀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11월 02일 용산경찰서 · 용산구청 · 서울경찰청 대상 … 경찰 ‘전방위 강제수사’ 예고

■ 경찰 수사본부, ‘특수본’으로 전환

501명 규모로 독립기구 구성
서울청 책임도 묻겠다는 의지
‘대기발령후 본격감찰’도 거론
지휘부 책임론 등 거세질 전망

‘이태원 핼러윈 참사’의 사고원인 및 책임소재 규명에 나선 경찰이 전방위 강제수사를 예고하고 나섰다. 경찰청은 관할 담당인 용산경찰서·이태원파출소·용산구청 등은 물론, ‘독립수사본부’를 새로 꾸려 지금까지 수사를 이어온 서울경찰청에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감찰·수사 결과에 따라 용산구청장과 용산경찰서장·서울경찰청장 등 서울 경찰 주요 라인 전체에 대한 경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2일 경찰청은 독립적 특별기구를 만들어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윤희근 경찰청장의 뜻에 따라 경찰청에 특별감찰팀을 꾸려 대규모 감찰에 착수하는 한편, 서울경찰청이 지휘해오던 수사본부를 특별수사본부(특수본)로 전환했다. 윤 청장은 수사팀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한편, 수사팀이 요청하면 수사를 받겠다는 입장이다. 윤 청장은 향후 예상되는 야당의 국정조사와 특검 요구뿐 아니라 사건 송치 후 검찰의 보완 수사에서도 한 치의 수사 허점이 드러나지 않도록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특별감찰팀은 전날부터 용산서 감찰에 착수, 용산서와 이태원파출소가 11건의 사전 위험신고에도 왜 사고 위험성을 예측하지 못했는지, 현장에 실제 출동은 했는지 등을 따지고 있다. 현장 경찰은 11건 중 4건에 대해서만 현장에 나가서 질서 유지 조치를 했다는 취지의 기록을 남겼는데, 그나마도 실제는 이보다 더 소극 대응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특수본은 용산구청 등 행정당국의 부실 대응 여부와 참사 직전 일부 시민이 앞사람을 밀어 사고를 촉발했다는 의혹, 피해자 모욕·명예훼손 사건 등을 전반적으로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특수본은 손제한 경남 창원중부서장(경무관)을 본부장으로 모두 501명으로 구성됐다.

‘제 식구’인 경찰에 대한 감찰·수사의 경우 통상 장기간 감찰과 숙고의 시간을 거쳐 수사로 전환되지만, 이번엔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빠르게 수사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다. ‘선 대기발령 조치’ 후 본격 감찰이라는 카드도 거론된다. 경찰 관계자는 “윤 청장이 칼을 빼 들겠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윤 청장이 전날 “제 살을 도려내는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고강도 감찰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경찰 안팎에서는 특수본 전환이 서울청을 타깃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 용산서가 이미 감찰 대상이 된 마당에 함께 참사 당일 상황 대응을 했어야 하는 서울청이 수사 주체인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경찰의 업무상 과실 문제가 중요한 수사 대상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셀프 수사’와 ‘제 식구 감싸기’ 의구심을 떨쳐내는 것도 경찰의 몫이다. 일각에서는 경찰이 아닌 다른 주체가 수사에 나서야 한다는 말이 나오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다. 지난 9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불리는 검찰청법 개정 이후, 대형참사는 검찰이 수사를 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2014년 세월호 참사 때처럼 검경의 수사 역량을 모아 특별수사팀이나 합동수사본부를 꾸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이 경찰의) 업무상과실치사 등을 들여다보는 것은 송치 이후의 문제”라고 말했다.

수사 결과에 따라 지휘부에 대한 책임론도 거세질 전망이다. 이임재 용산서장, 김광호 서울청장은 직접적인 사고대응에 대한 책임론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우에 따라, 윤 청장 역시 참사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할 가능성이 있다.
문화일보 송유근·김보름 기자
 

 

11월 02일 [속보] 경찰, ‘이태원 참사’ 서울청·용산서 등 8곳 압수수색...용산서장은 대기발령

 ‘이태원 압사 참사’ 부실 대응에 관한 수사가 본격화된 가운데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2일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 용산구청 등 8곳에 대해 강제수사에 나섰다.

특수본은 이날 오후 2시부터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 용산구청, 서울시소방재난본부, 서울종합방재센터, 용산소방서, 서울교통공사, 다산콜센터, 이태원역 등에 수사팀을 보내 참사 당일이던 지난 달 29일의 112 신고 관련 자료와 핼러윈 경비 계획 문건 등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경찰이 이번 참사와 관련해 강제수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관련 경찰청은 이날 용산경찰서장을 대기발령하기도 했다.

특수본은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자료를 통해 참사 전 4시간 여 동안 11건의 신고를 받은 담당 경찰관들이 직무상 책임을 다했는지, 신고 상황을 전파받은 각급 지휘관과 근무자들의 조치는 적절했는지 등을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핼러윈 시기 인파를 관리할 경찰력 투입 계획 여부 등 전반적 준비 상황을 재확인해 사고 당일 용산경찰서가 취한 안전관리 조치의 적절성도 살펴볼 예정이다.

또 용산경찰서가 핼러윈를 앞두고 기동대 경력 지원을 요청했지만 서울경찰청이 거부했다는 의혹도 제기돼 이에 관한 사실관계 등도 따져볼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용산구청과 관련해선 구청장실과 안전재난과 등 관련 부서에서 자료를 확보 중이다. 참사 사흘 전인 지난달 26일 용산구청이 경찰서와 이태원역 등과 ‘핼러윈 안전 대책 간담회’를 하고도 적절한 인원 안전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는 의혹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용산소방서와 서울종합방재센터 서울소방재난본부, 다산콜센터는 각각 상황실을 압수수색해 참사 관련 신고 내역 등을 확보 중이다.

박준희·송유근 기자 vinkey@munhwa.com 

 

11.03 대통령보다 늦게 보고받은 서울청장, 지금 경찰 정상 아니야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브리핑룸에서 이태원 사고와 관련한 입장표명에 앞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2022.11.1/뉴스1

 

서울 치안의 사령탑인 서울경찰청장이 이태원 참사 발생 1시간 21분 뒤 용산경찰서장에게 첫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보고를 받은 29일 밤 11시 36분경은 압사 사고와 관련한 언론 보도가 나올 무렵이었다. 소셜미디어에선 생중계하듯 사고 내용을 전파하고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보고받은 시각도 그보다 35분 빨랐다. 국정상황실을 통해 경찰이 아닌 소방청 상황실의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서울청장이 그날 밤까지 서울 도심 집회의 경비를 지휘했다고 해도 적어도 사고 직후에 보고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도 서울청장에게 전화 한 통 한 사람이 없었다. 경찰이 소속된 행정안전부 장관도 경찰이 아닌 소방에서 첫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경찰의 현장 대응은 더욱 심각한 수준이었다. 첫 112 신고자는 “이태원역에서 굉장히 좁은 골목으로 사람들이 밀려오고 있다”며 “내려오는 사람, 클럽에 줄 선 사람과 섞여 압사당할 것 같다”고 했다. 혼란한 상황에도 위기 현장을 경찰에 정확하게 설명한 것이다. 이 신고자는 “경찰이 (지하철역에서 올라오는) 사람을 통제해 (골목 안) 사람을 일단 뺀 다음 들어오게 해 달라”고도 했다. 참사 3시간 41분 전에 접수된 내용이다. 1시간 42분 전엔 “사람들이 밀치고 넘어져 다치고 있다”며 현장 영상을 경찰에 보낸 사람도 있었다. “일방통행하게 해 달라”는 요청도 접수됐다. 현장 시민들이 해법까지 경찰에 알려줬다.

 

늦지 않은 시각이었다. 신고자 요청대로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골목 진입로만 통제했다면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경찰 10명이면 가능한 일이다. 시민이 요청한 최소한의 조치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참사 다음 날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경찰·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고 했다. 경찰은 “이태원 핼러윈 축제처럼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선 시민들이 골목길로 몰리는 것을 막을 권한이 없다”고 했다. 권한이 없으면 ‘죽을 것 같다’는 신고가 들어와도 경찰이 방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경찰청장이 “현장 대응이 미흡했다”고 하자 현장 경찰이 “경찰 만능주의를 극복하겠다는 취임사는 전부 거짓말이었냐”며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국민에게 사과도 하지 말라는 지경이다. 경찰이 만든 내부 문서가 하루 만에 유출돼 인터넷에 떠도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경찰국 논란’ 이후 경찰 내부 기강이 흐트러졌다지만 이럴 수는 없다. 지금 경찰은 정상이 아니다.

조선일보 사설

 

11월 03일 무능 무책임 경찰의 전면 개혁 시급성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이태원 압사 참사 발생 4시간 전부터 시민들은 해밀톤호텔 골목에서 많은 인파로 큰 사고가 날 것 같으니 빨리 통제해 달라고 경찰에 112신고를 시작했다. 그때가 10월 29일 오후 6시 34분이었다. ‘압사’ 가능성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한 심각한 내용이었다. 비슷한 신고가 계속됐는데도 다중밀집 인파 통제를 위한 경찰력 배치는 이튿날 0시 25분에야 처음 이뤄졌다. 실제 신고 내용처럼 압사 사망자가 이미 수십 명 이상 발생한 뒤였다. 더군다나 이 상황 보고는 대통령에게 오후 11시 1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11시 20분, 서울시장에게 11시 20분, 경찰청장에게 0시 14분에 이뤄졌다. 경찰청장이 대통령보다 참사 상황을 늦게 파악했다니 어처구니없다.

 

물론, 이러한 경찰의 지연 보고와 112신고에 대한 부실 대응을 이번 참사의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파를 예측해 버스정류장 운영을 조정하고 지하철 무정차 통과를 하거나, 골목의 위법한 시설물을 제거하고 경찰통제선을 사전 설치하는 등의 군중 관리 자체가 아예 없었다. 재난 및 안전 대비 자체가 사전에 없던 게 이번 참사의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참사 당일의 경찰의 행태는 국민의 따가운 비판을 비켜 갈 수가 없다. 현장에서 압사 위험의 심각성을 알리는 11건의 112신고에 대해 경찰은 사실상 묵살하고 의례적 답변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경찰은 아무런 조치 없이 뒷짐만 쥐고 있었던 셈이다. 정말 실망스럽고 충격적이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5조에 따르면, 국민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가 있을 수 있는 극도의 혼잡 등 위험한 사태에 대해 경찰은 명령과 강제라는 경찰권을 발동할 수 있다. 경고·억류·대피 등 여러 형태의 조치를 할 수 있었다.

또한, 대규모 경찰 인력 배치가 필요함을 용산경찰서나 서울경찰청 상황실을 통해 요청했어야 했다. 용산구 근처에 혼잡 경비를 담당하는 기동대도 있었다. 감찰조사 결과를 통해 밝혀야 할 내용이지만, 그냥 아무런 일 없이 지나가겠지 하는 식의 관성적으로만 112신고에 응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10만 명 가까이 모여 있는 현장 상황에 대해 불과 10여 명의 파출소 인력으로 대응하게 한 용산경찰서장 및 서울경찰청장의 안이한 태도다. 무책임하기까지 하다고 할 수 있다. 종합적 상황 판단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지휘관이 판단을 그르치면 현장에서의 초동 조치라는 것은 이번 용산경찰서 사례처럼 쉽게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외국 언론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한국 경찰을 다소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다. 다름이 아니라, 정치집회나 노동집회에 대해 능숙하게 관리하는 역량을 가진 우리 경찰이 왜 이번에는 군중 관리 및 통제에 실패했는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당일 해밀톤호텔 골목에서 수백 명의 압사 상황이 벌어지는 동안 112상황실을 통한 보고 라인은 작동하지 않았고, 용산서장과 서울청장은 단순히 집회 통제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압수수색을 통해 수사가 막 개시됐다. 철저한 진상 규명을 통해 경찰 지휘보고 체계의 붕괴 및 이로 인한 늑장 대응 등 이태원 참사의 원인을 모두 밝히는 시작점이어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11.05 해도 너무한 경찰 간부들의 기강 해이와 태만

 이태원 참사 당일 경찰의 현장 대응과 보고 체계 문제가 총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압사 4시간 전부터 위급 상황을 알린 112 신고가 묵살된 일이 알려지더니 이태원 치안을 책임진 용산 경찰서장은 사고 발생 45분 전 현장이 위험하다는 보고를 받고도 한참 뒤에야 현장에 도착했다고 한다. 또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장은 상황실이 아닌 자기 사무실에 있다가 사고 발생 후 1시간 24분이 지나서야 첫 보고를 받았다. 이 때문에 치안 총책임자인 윤희근 경찰청장은 참사 당일 밤 11시쯤 잠이 들 때까지 사고를 전혀 몰랐다. 그는 충북 제천에서 지인들과 등산한 뒤 캠핑장 숙소에서 잠이 들었다고 한다. 재난 대응과 보고, 지휘 체계가 아래부터 위까지 다 허물어진 것이다.

 

용산 경찰서장이 저녁 식사 중 “이태원 상황이 위험하다”는 보고를 받고 식당을 떠난 시각은 오후 9시 30분쯤이었다. 사고는 오후 10시 15분쯤 발생했다. 그가 서둘러 현장에 도착해 상황 정리에 나섰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는 오후 10시40분쯤 이태원 근처에서 차에서 내렸고, 오후 11시가 넘어 참사 현장에 도착했다고 한다. “차가 많이 막혀서 도중에 내려 걸어가느라 늦었다”고 했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그가 서울경찰청장에게 상황 보고를 한 것도 사고 발생 후 1시간 21분이 지난 밤 11시 36분이었다.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은 더 어이가 없다. 상황실장은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야간 사고 신고 및 대응 조치를 총괄한다. 그런데 사고 당시 그는 자기 사무실에 있었다. 상황팀장 보고를 받고 그가 상황실로 복귀한 시각은 오후 11시 39분이었다. 용산경찰서장으로부터 첫 보고를 받은 서울경찰청장보다 더 늦게 보고를 받은 것이다. 이미 수백 명이 쓰러져 이태원 일대가 아비규환으로 변했던 시간이었다. 경찰은 8년 전 “위험에 처한 국민에겐 단 1초도 절박한 순간”이라며 112신고 총력 대응체제를 구축하겠다고 했는데 말뿐이었다.

 

경찰이 이 지경이다 보니 정부 보고 체계는 거꾸로 작동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참사 46분 만에 가장 먼저 보고를 받았고, 65분 만에 행안부 장관이 상황을 파악했다. 윤 대통령은 소방청 상황실에서 온 참사 보고를 국정상황실장에게서 받고, 행안부 장관은 비서관이 전한 행안부 내부 알림 문자를 봤다고 한다. 그사이 제대로 일을 한 경찰 간부는 한 명도 없었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대형 참사를 경찰 탓으로만 돌릴 순 없지만 이번 참사로 드러난 경찰 내부의 심각한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몇 사람 징계하거나 처벌하고 끝낼 일이 아니다. 서울경찰청 상황실 근무도 이번만이 아니라 항상 태만하게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 미사일 발사 때문에 공습·경계 경보가 내린 지난 2일 울릉군의 경찰서장은 조기 퇴근해 텃밭에서 상추를 뜯었다고 한다. 우리 경찰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경찰의 근본적인 체질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1.05 “믹스커피 밥처럼 먹고 발파 소리 들으며 버텼다” 하늘 되찾은 광부들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 매몰 사고로 고립됐던 광부 2명이 10일만인 4일 오후 11시3분쯤 무사히 구조돼 구급차로 옮겨지고 있다./경북소방본부

 

경북 봉화군 광산 매몰사고로 고립됐던 두 작업자가 생환했다. 사고 발생 9일 만으로, 고립된지 221시간만이다.

 

경북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4일 오후 11시 3분쯤 조장 박모(62)씨와 보조 작업자 박모(56)씨가 구조대원들과 함께 갱도 밖을 걸어나왔다. 지난달 26일 박씨 등은 지하 190m의 제1 수직갱도에서 채굴 작업을 하다 고립됐다. 사고 초기 구조 당국이 생존 신호를 확인하기 위해 진행한 시추 작업이 2차례 실패하고, 구조 작업도 장기화되자 작업자 가족들은 박씨 등의 건강 상태를 염려하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건강 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하 190m 깊이 제1 수직 갱도 내 최초 작업 지점 내 비닐텐트 안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있던 상태로 발견됐다. 작업자들이 발견된 지점에는 지하수가 흐르고 있었고, 믹스 커피 봉지 등도 발견됐다. 구조 당국이 진입로를 확보하기 위해 발파 작업을 하며 내는 소리도 모두 들렸다고 한다. 구조당국 관계자는 “(작업자들이)믹스 커피를 밥처럼 먹으며 버텼고, 구조 진입로 확보를 위한 발파 작업 소리를 들으며 버텼다고 하셨다”면서 “두 분이 서로 의지하면서 희망을 잃지 않으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 등 작업자 두 명은 구조 직후 구급차에 실려 인근 안동병원으로 이송됐다. 구조 당국 관계자는 “건강 상태는 좋았지만, 만일을 대비해 두분이 정밀 진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작업자들의 가족은 고립됐던 박씨 등이 구조되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조장 박씨의 아내는 “처음에는 구조 연습을 하는 줄 알았다”면서 “그저 기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보조 작업자 박씨의 조카는 “삼촌이 너무 보고 싶고, 얼른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작업자 생환 소식이 알려지자 윤석열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참으로 기적같은 일”이라며 “생사의 갈림길에서 무사히 돌아오신 두분께 감사하다”고 했다.

조선일보 이승규 기자 

 

11.07 “국민 희망 돼 다행” 생환한 이도, 구해낸 이도 모두가 영웅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 매몰 사고로 고립됐던 광부 2명이 10일째인 4일 오후 11시3분쯤 무사히 구조되고 있다.2022.11.5/ 소방청

 

경북 봉화 광산 매몰 사고로 지하 190m 갱도에 갇혔던 광부 2명이 생환했다. 사고 발생 열흘째, 221시간이 지나서였다. 건강도 큰 문제 없다고 한다. 반갑고 고마운 소식일 수밖에 없다. 동료 부축을 받으면서도 스스로 갱도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에 온 국민이 환호했다. 구조된 이들은 “내 생환이 국민들에게 희망이 됐다니 다행”이라고 했다.

 

침착한 대응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사고 직후 이들은 탈출구를 발견하기 위해 괭이로 암벽을 부수면서 스스로 길을 열었다고 한다. 공기가 들어오는 쪽, 물이 흘러나오는 쪽으로 이동하고 갱도 내 파이프를 때리고 소리를 질러 지상에 신호를 보냈다. 갱도 작업용 비닐과 나무로 천막을 만들고 모닥불을 피워 바람과 추위를 막았다. 밥 대신 가지고 있던 커피믹스를 먹으면서 버텼다고 한다. 매몰된 장소에 가만히 있지 말고 스스로 위험을 피해 대피 장소를 마련하라는 안전 매뉴얼대로 행동했다는 것이다. 매몰자 중 한 명은 25년 광업 경력의 62세 조장이었다. 몸에 밴 매뉴얼이 생존의 탈출구를 열어주었다.

 

밖에서의 구조 노력도 평가받을 만하다. 사고 후 구조대는 매몰자의 생존을 확인하기 위해 지하 172m까지 천공 작업을 진행했지만 실패했다. 업체가 보유한 갱도 지도가 22년 전 그대로였기 때문에 천공 위치가 빗나간 것이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지하 140m 수직 갱도 아래에서 325m에 달하는 진입로를 확보해 구조에 성공했다. 언제든 추가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현장이었다. 하지만 구조대는 “매몰자가 살아있다는 믿음, 가족의 애타는 심정을 생각하면서 길을 뚫었다”고 했다. 매몰자들은 “길을 내는 기계 소리에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고 했다.

 

두 달 전에도 같은 광산에서 붕괴 사고가 일어나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이번에 또 사고가 일어나자 업체 측이 자체 구조를 한다면서 신고를 늦췄다고 한다. 이번 사고 역시 업체의 안전 의식과 대처 문제가 원인일 수 있다. 수사를 통해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암흑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버틴 생존자와 포기하지 않고 구조한 소방대, 시추와 탐사를 담당한 육군 장병이 보여준 드라마는 이태원 참사로 슬픔에 빠진 한국 사회에 적지 않은 희망을 전했다. 그들이 영웅이다.

조선일보 사설

 

11.07 목 터져라 구조하고 “더 못 구해 죄송합니다” 울먹인 김 경사

참사 속 구조 인력
우리 곁 영웅들
손발만 바쁜 경찰 조직
지휘부는 오작동
기강 해이 바로잡아야
국민 안전 지킨다

기자 초년 시절, 사회부에 배치돼 군대 문화 비슷한 ‘지휘-보고 체계’의 일상에 익숙해지는 것이 낯설고 힘들었다. 사건·사고를 다루는 사회부 경찰 출입 기자들은 서울 전역을 몇 개 권역으로 나눠 담당한다. 첫 출입처가 종로-성북-종암 경찰서였다. 새벽부터 밤까지 경찰서, 소방서, 관내 대형 병원을 챙기며 작은 사건·사고도 놓치지 않고 보고하는 것이 일과였다. 한 줄 기사감도 안 되는 자잘한 사건·사고를 챙기면서 이 직업을 계속 해야 하나 고민에 빠진 적도 있었다. 말단 경찰 기자가 해내는 몫이라는 게 업무량은 과중해도 중요도는 그리 크지 않은, 작은 한 조각이었다. 그래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큰 사건 놓치면 안 되니 긴장의 연속이다.

 

▲지난달 29일 밤 이태원 참사현장에 출동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울부짖으며 인파를 다른 길로 유도하고 용산경찰서 이태원 파출소 소속 김백겸 경사. /유튜브 '니꼬라지TV'

 

훨씬 중요하고 힘든 일은 경찰 기자의 현장 지휘관인 ‘시경캡’ 고참 기자의 몫이다. 유능한 시경캡은 후배 기자의 사소한 현장 보고도 허투루 듣지 않고 꼼꼼히 취합해 중요한 단서를 찾아내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취재 지시를 내린다. 대형 사건·사고가 터지면 신속히 부장, 국장에게 보고하고 타 부서와 협조해 대응한다.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베테랑 기자로 책임질 것이 많아지는 ‘고달픈 자리’다. 일개 신문사도 이런데, 세금으로 월급 받으며 국민의 삶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들이 느껴야 할 책임과 긴장도는 직급이 높아질수록 그 10배, 100배가 되어도 부족할 것이다.

 

4일 공개된 BBC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이태원파출소 소속 김백겸 경사가 이태원 참사 당시의 심정을 토로하며 "더 못 구해 죄송하다"며 눈물을 보였다./BBC코리아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목이 터져라 “안 된다. 돌아가라” “도와주세요. 제발!”이라고 외치는 30대 초반 경찰관의 모습을 누군가 영상에 담아 유튜브에 올렸다. 이태원파출소 소속 김백겸 경사다. 7년 차 경찰인 김 경사는 시비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고 동료 경찰관 2명과 함께 출동했다가 인근의 압사 현장을 인지하고 즉시 인파 통제와 구조에 나섰다. 소음이 심한 거리에서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자 높은 곳에 올라가 “이쪽으로, 사람이 죽고 있어요”라고 간절히 외치는 모습이었다. “감사하다” “영웅”이라는 반응이 쏟아졌지만 김 경사의 말은 한결같았다. “혼자서 교통 통제를 했던 것으로 비춰지는데 동료 경찰관과 소방구조대원들도 함께 했고요. 대부분의 시민들이 협조에 잘 따라줬고 도움을 청하니 수십 명이 달려나와 4인 1조로 환자를 이송했어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고요. 그 당연한 조치가 너무나도 부족했고 제 부족함으로 더 많은 분을 살려내지 못해 유족들께 너무 죄송하고 면목이 없습니다.” 김 경사는 서둘러 파출소에 들러 확성기를 챙겨갔다면 좀 더 빠르게 인파를 통제하지 않았을까,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에 지금도 잠을 못 이룬다며 “제 판단이 미흡해서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울먹였다.

 

울먹이며 잠 못 이뤄야 할 사람은 김 경사가 아니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는 온 힘을 다해 구조 활동을 벌였던 일선 경찰관과 소방구조대원, 시민들의 사연이 쏟아진다. 실시간 인명 피해 상황을 현장 브리핑한 용산소방서장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마이크를 쥔 손이 덜덜 떨렸을 정도로 절박했다. 그날 현장에는 김 경사 같은 영웅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들의 존재에 우리는 슬픔 속에서도 위로받는다.

 

하지만 김 경사 같은 손발이 현장에서 아무리 열심히 뛰어봤자 머리 역할을 맡은 윗선의 ‘지휘 체계’가 제대로 작동 안 하면 몸만 고달프지, 성과는 미흡한 헛수고가 되기 일쑤다. 판단력과 책임감 흐리멍텅한 윗분들이 자리만 누리고 있으면 순식간에 나사 빠진 무능한 조직이 되고 만다. 사전에 인파 통제가 됐더라면 안타까운 참사를 피할 수도 있었겠지만, 설령 사전 대비를 못했어도 당일 책임자들이 사고 징후를 기민하게 파악하고 대응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장의 ‘김 경사’들이 동분서주하는 동안에 드러난 ‘경찰 윗분’들의 행적은 황당했다. 위험 상황을 보고받고도 걸어서 10여분 거리를 차 타고 가느라 1시간 늦게 도착한 용산 경찰서장, 윗선 보고도 늦었던 그의 판단력, 사고 신고 쏟아져 들어오는 동안 상황실 비우고 자기 사무실에 있다 상황 파악도, 청장 보고도 늦었던 서울경찰청 112 상황관리관, “112 신고 처리 대응이 미흡했다”고 부하들 탓을 했는데 알고 보니 자신은 지방 가서 등산하고 캠핑장에서 잠자느라 문자 보고도, 전화도 못 받은 경찰청장....

 

애도 기간 매일 분향소를 찾은 윤석열 대통령은 150여 명 젊은이의 목숨을 지키지 못한 것이 얼마나 참담한 일인지 느꼈을 것이다. 5000만 국민의 안위를 책임진 대통령의 자리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새삼 느꼈을 것이다. 당일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경찰 간부는 물론이고, 대통령보다도 사고를 늦게 인지한 행안부 장관, 경찰청장에 대해서도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참사 못지않게 참혹한 기강 해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국민들은 계속 불안에 떨며 살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1.07 “군중 압사는 선·후진국 안 가려, 이태원 참사는 징후 간과한 탓”

[군중 행동·심리 전문가 클리퍼드 스토트 교수]

특정 공간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리면 대형사고
만원 버스 등에 익숙한 한국 문화적 특성 때문 아냐
사고 장소 ‘과거’ 조사해보면 전에도 비슷한 상황 있었을것
현장 경찰 책임 묻기보다 이번 재난을 변화 계기로 승화
권위주의 시대의 경찰은 ‘군중의 위협’에서 사회를 보호
민주화된 지금 시대엔 군중을 위협에서 지키는 존재

▲클리퍼드 스토트 영국 킬(Keele)대 교수는 이태원 참사의 원인을 ‘군중’에 대한 한국의 관심 부재에서 찾았다. 그는 “한국 정부와 지자체, 경찰이 군중 과학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려는 노력을 하려 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또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경찰이 군중을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변화가 일어났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맨체스터=정철환 특파원

 

이태원 핼러윈 참사는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줬다. 축제 때 군중이 몰려 한꺼번에 156명이 사망하고 172명이 부상한 인명 피해가 국내에서 전례가 없었던 데다, K팝과 영화 등에서 최근 글로벌 유행을 주도하는 ‘문화 선진국’에서 벌어진 비극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동안 치안과 안전 등에서 세계 정상급 수준을 보여줬지만 이번 사고로 ‘안전한 나라’라는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게 됐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경찰 등의 책임 공방 속에, 사고 4시간 전부터 약 80건의 신고 전화를 받고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경찰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 당시 사고의 상황적 원인에 대해 여러 분석과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중간에 빠져나갈 곳이 없는 좁은 경사로에 1㎡당 12명에 달하는 사람이 몰렸고, 양방향에서 동시에 진입하려는 압력이 가해지면서 중간에 끼인 많은 이들이 질식사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 더 나아가 참사는 막을 수 없는 것인지, 우리 사회가 그동안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에 대한 정밀한 진단이다.

군중 행동 및 군중 관리 분야의 세계 최고 전문가 중 한 사람이자 군중에 대한 사회심리학 연구로도 명성을 얻고 있는 영국 킬(Keele) 대학의 클리퍼드 스토트(Stott·57) 교수를 지난 2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만나, 좀 더 근본적이고 광범위한 분석과 처방을 들었다.

 

선·후진국 모두 벌어질 수 있는 사고

-이번 사고를 처음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한국처럼 발전한 국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는 사람이 많다.

“나 역시 큰 충격을 받았다. 97명이 사망한 1989년 영국 힐즈버러(Hillsborough) 경기장 사고와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군중 압사(crowd crush) 사고는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언제 어디서든 벌어질 수 있다. 특정 공간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밀집도가 어느 수준을 넘어가면 나타난다. 이 상황에서 군중은 물리적 압력과 에너지에 의해 움직이는, 마치 유체의 파동 같은 움직임을 보인다. 군중 속 개개인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다.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군중 전체에 작용하는 ‘군중의 물리법칙(crowd physics)’이 상황을 지배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태원 사고가 보여주는 눈에 띄는 특징이 있나.

“주최자 없이 일상적 시간, 일상적 장소에서 발생한 사고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전에는 아슬아슬하게 피해 갔을 여러 악조건이 겹친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초대형 복합 위기) 상황이었다고 본다. 신종 코로나가 끝나면서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몰렸다. 이벤트 산업의 발전, 소셜 미디어와 같은 대중 영향 매체의 발전으로 한꺼번에 더 많은 사람이 더 쉽게 모일 수 있게 됐다. 현장에 사람의 흐름을 막는 여러 요소도 있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별개 문제다. 한국이 군중 과학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는지, 또 군중 과학을 정책에 반영해 다양한 안전 규정과 전략을 개발해왔는지 궁금하다.”

 

▲지난달 29일 밤 서울 용산구 해밀톤호텔 인근 골목에 몰려든 사람들의 모습. 이곳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로 156명이 숨졌다. /연합뉴스

 

-한국인이 콩나물시루 같은 만원 버스·지하철 등 사람이 붐비는 상황에 익숙한 탓에 위험을 인지하는 게 늦었다는 시각도 있다.

“문화적 요소가 의미가 없지는 않지만 결정적 원인은 군중 심리(crowd psychology)다. 인종과 문화를 막론하고 인간은 자신이 이해와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에 속해 있다고 믿으면 붐비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축구 경기나 록 콘서트의 관중, 거리 응원의 군중 등을 보라. 그날 이태원에도 (갖은 분장을 하고 핼러윈을 즐기려는)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모여 있었다. 인간은 또 북적거리는 공간과 장소에 모여 타인들과 일체감을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이를 즐기기 위해 일부러 붐비는 곳을 찾는다. 이태원도 그런 장소였다. 이번 사고를 ‘문화의 실패’라고 봐서는 안 된다.”

 

스토트 교수는 “사고가 난 장소의 과거(history of place)를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래 붐비지 않던 곳에서 갑자기 이런 사고가 나지 않는다. 이태원의 과거 사례를 잘 조사해 보라. 분명히 비슷한 사고가 날 뻔한 적이 있었지만, 운이 좋아 피했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위험을 제때 발견하지 못함으로써 공간을 재설계하거나, 다른 대비책 마련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그는 “이태원처럼 전반적으로 사람이 붐비는 지역은 지자체와 경찰이 이미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연구를 통해 체크했어야 하는 지역”이라며 “과거 한국 정부와 지자체는 그런 노력을 해오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원인과 해결책 모두 ‘군중 심리’에 있어

-사람들이 우측 통행을 철저히 지키거나 사람 간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더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설사 그랬다 하더라도, 군중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군중 심리에 사람들이 경계심을 잃어버릴 수 있다. 문제의 원인은 군중에 있지 않다. 극도로 제한된 크기와 용량의 공개적 공간에 대한 흐름 조절이 실패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이런 위험과 함께 여러 다양한 다른 요인이 결합하면서 참사가 벌어진다.”

 

-당시 수많은 사람이 소리를 지르면서 위험을 알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계속 모여들었고, 뒤에서 “빨리 전진하라”고 미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는 군중은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 불과 몇m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이 좁은 거리로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려든다. 개개인이 위험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역설적이지만 이런 상황에 있을 때 사람들은 군중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개인과 소그룹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각자 판단해 발버둥치는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군중이지만, 심리적으로 군중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일사불란함이 없어 결국 사고가 난다. 이런 상황에서의 핵심적 문제는 군중 심리의 부재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했어야 하나.

“이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만드는 것, 즉 역으로 군중 심리를 일으키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전체 집단의 일부로, 심리적 군중의 일부로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군중 전체가) 하나로 소통이 되면서 일체감 있게 움직여 ‘군중의 물리법칙’을 이겨 낼 수 있다. 그 공간에 있는 사람 모두가 자기 통제 능력을 발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각 개인이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공간 내 군중이 모두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현장의 군중이 모두 볼 수 있는) 대형 표지판이나 신호, 구호 등을 동원해 명확한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대형 전광판을 동원해 ‘뒤로 돌아 전진하면서 물러나’라고 외치라고 지시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용어를 사용하는가도 중요하다. 예컨대 ‘고객’이나 ‘관중’이 아닌 ‘통행자·행인(passenger)’으로 사람들을 지칭해야 한다. 이는 현장의 군중이 머무는 사람이 아닌, 지나가는 사람이라는 공통된 인식을 만든다.”

 

-역으로 군중 심리를 활용하는 것인가.

“그렇다. 우리는 보통 군중 심리를 부정적으로 본다. 사람들이 모이면 군중 심리에 휩쓸려 폭력적 상황이 생기고, 죽고 다치는 사람이 생긴다고 인식한다. 하지만 군중 압사가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군중 심리를 형성함으로써,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군중의 물리법칙을 극복할 수 있다.”

 

군중에 대한 경찰 인식 바뀌어야

-한국 경찰이 군중을 다루는 데 있어 여전히 권위주의 시대 방식, 즉 ‘시위대를 다루는 방식’에서 발전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 말도 일리는 있다. 경찰은 흔히 ‘군중의 위협’으로부터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특히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경찰이 그렇다. 그런 경찰은 ‘군중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행동하고, 언제든 무질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본적 인식이 여전히 바뀌지 않고 남아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제 경찰의 생각이 달라져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시대의 경찰은 군중을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 그렇게 변화하는 데는 특별한 계기와 시간, 노력이 필요하다. 교육과 경험, 경찰 조직 및 운영 방식의 변화가 절실하다. ”

 

-경찰을 향한 비판과 책임론은 비켜갈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현장의 경찰에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과거에도 비슷한 상황이 여러 번 있었겠지만, 운이 좋아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에 올게 왔다고 봐야 한다. 한국 경찰이 이전에 공공 안전에 중점을 둔 구조적 전환을 했다면, 더 이른 예방 조치가 가능했을 수 있다. 사람이 더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해 소셜미디어나 긴급 문자로 위험 지역을 알린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라도 이러한 재난에 대해 배우고 성찰하고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

 

-앞으로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번 재난을 변화의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 한국 경찰과 한국의 거버넌스, 한국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핵심 중 하나가 군중에 대한 인식과 개념을 바꾸는 것이다. 군중 과학을 연구하고, 이를 국가와 지자체, 경찰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CCTV 등을 이용해 계속 모니터링하고 연구해야 한다. 익명의 스마트폰 위치 정보를 이용해 군중의 밀도를 파악해 사전 경고 지표로 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클리퍼드 스토트 교수

플리머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엑서터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회심리학 분야의 대가로 군중에 대한 경찰 통제와 대규모 군중 모임에서 사고가 벌어지는 이유 및 예방책 등을 연구했다. 포르투갈 정부와 유럽축구연맹(UEFA) 등의 자문에 조언했고, 지난 5월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벌어진 군중 소요에 대해 현재 조사 중이다. 영국 BBC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대중에게도 알려져 있다. 이번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관련, 뉴욕타임스(NYT) 등과 다수 인터뷰를 했다.

조선일보 파리=정철환 특파원

 

11.07 "우리 경찰 그렇게 엉터리냐?" 尹의 1만자 질책 모두 공개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대통령이 아니라 한 시민으로서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며 경찰을 매섭게 질타했다. 또 철저한 진상규명과 그 결과에 따른 엄정한 책임 추궁을 다짐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비공개회의에서 나온 윤 대통령의 중간·마무리 발언을 날 것 그대로 모두 공개했다. 분량만 1만자에 달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이처럼 자세히 공개하는 건 전례가 드문 일로, 윤 대통령의 “국민에게 가감 없이 회의 내용을 전달하라”는 지시로 이뤄졌다. 윤 대통령은 경찰을 질타하면서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등에게 제기되는 책임론과 관련해선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라며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지라는 건 현대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정확하게 가려달라”고 선을 그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가안전시스템점검회의에 참석,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이날 대통령실이 공개한 윤 대통령의 발언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정말 숨도 못 쉴 정도로 죽겠다고 하면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있잖아요. 그걸 조치를 안 해요?”
“아비규환의 상황이 아니었겠나 싶은데, 그 상황에서 경찰이 권한이 없다는 말이 나올 수 있습니까?”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냐는 이거예요.”
“안전사고 예방할 책임 어디에 있습니까. 경찰에 있어요.”
“용산서가 모른다는 것은 상식 밖이라고 생각합니다. ”
“현장에 나가있었잖아요. 112 신고 안 들어와도 조치를 했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태원 참사가 제도가 미비해서 생긴 겁니까. 저는 납득이 안됩니다.”

 

윤 대통령은 이 밖에도 회의에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우리나라 경찰이 그렇게 엉터리입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며 “도로 차단 조치로 인파들에 통행 공간만 넓혀주면 압력이 떨어져서 해밀턴 호텔 골목에서 내려오려는 사람들의 숨통이 터질 수가 있었다”며 참사의 세부적인 원인까지 일일이 따져 물었다. 또한 “현장에서 상황을 인지한 사람들이 최고위층까지 즉각 동시에 보고할 수 있는 이런 중첩적 보고 체계가 매우 중요하다”며 관련 체계에 대한 시스템화도 주문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제8차 전체회의에 출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뉴스1

 

이날 회의는 국가애도기간이 끝난 뒤 윤 대통령이 주재한 첫 번째 회의였다. 향후 국정운영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자리라 윤 대통령의 메시지엔 더 큰 무게가 실렸다. 현장엔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등 관계부처 책임자들과 함께 민간 전문가와 경찰·소방의 실무자들도 참석했다. 대통령실의 한 참모는 발언 공개의 배경에 대해 “윤 대통령도 국민들 만큼이나 참사에 분노하고 있고, 그 마음을 그대로 전달 드리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회의에서 윤 대통령에게 이번 사고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보고했다. 112와 119 신고 처리 절차를 통합해 보고 체계를 효율화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하지만 회의 석상에서 책임의 추는 윤희근 경찰청장으로 상징되는 경찰에 쏠려있었다. 윤 대통령의 질타가 현장 대응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회의에서 “도로가 푹 꺼지든가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는 시설이 무너져 내리거나 해서 사람이 다치면 자치단체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며 “그러나 상황에 대한 관리가 안 되어서 거기에서 대규모 사고가 났다고 하면 그것은 경찰 소관이다. 이걸 자꾸 섞지 말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청장은 질타를 듣고 “엄중한 책임감을 갖고 임하겠다”는 답을 했다고 한다. 현장에 있던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청장은 두 시간 회의 내내 고개 한번 제대로 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재차 사과한 尹, "죄송한 마음"

 윤 대통령은 이날 모두 발언에서 ‘경찰의 대대적인 혁신’도 공언했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위험에 대비하고 사고를 예방하는 경찰 업무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참사와 관련하여 진상 규명이 철저하게 이루어지도록 하고, 국민 여러분께 그 과정을 투명하게 한 점 의혹 없이 공개하겠다”며 “결과에 따라 책임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엄정히 그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경찰의 수사 상황을 엄중히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재차 사과도 했다. 윤 대통령은 “말로 다할 수 없는 비극을 마주한 유가족과 아픔과 슬픔을 함께하고 있는 국민들께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라며 “다시 한번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께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영가 추모 위령법회’에서 “대통령으로서 너무나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밝힌 이후 두 번째 대국민 사과다. 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정부가 공식 석상에서 사용해왔던 ‘사고’와 ‘사망자’ 대신 ‘참사’와 ‘희생자’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국민들이 일상을 회복하고 일상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정부가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경찰의 현장 대응을 질타하며 ‘선 진상조사 후 책임자 처벌’을 언급하며 정치권에선 이상민 장관의 유임설에 힘이 실렸다는 해석이 나왔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이 장관의 거취를 묻는 말에 “책임을 지우는 문제는 누가 얼마나 무슨 잘못을 했고, 권한에 맞춰 얼마만큼 책임을 물어야 할지 판단한 다음에 이뤄질 것”이라며 일단 거리를 뒀다. 한 친윤계 핵심 의원도 “책임을 묻는다면 현장 지휘 책임이 있는 서울경찰청장 정도가 적절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여론의 추이는 중요한 변수다. 리얼미터가 미디어트리뷴 의뢰로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4일까지 닷새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52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7일 발표)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34.2%로 전주보다 1.5%포인트 하락했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여권 관계자는 이 장관 거취와 관련해 “이 장관의 사퇴나 경질 없이는 이번 사태가 수습이 안될 것이란 관측이 대통령실 내부에도 있기 때문에 아직 가타부타 확실하게 말할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11월 08일 대통령실 “일부 경찰 썩었다… 권한에 맞는 책임 묻겠다” 인식 확고

이태원 참사와 경찰 미스터리

윤석열 대통령 “한점 의혹없게 진상 밝혀야” 입장이 수사 본격화의 ‘트리거’… 경찰, ‘112 녹취록’ 전격 공개
경찰 부실 대응 놓고 ‘오판’이냐 ‘회피’냐 수사결과 관심… 정치권은 ‘재난의 정치화’중단해야

이태원 참사 때 관할 서장을 포함한 일부 경찰 간부들은 “죽을 것 같다. 살려달라” “경찰력을 증원해 달라”는 사고 현장과 일선 경찰의 목소리를 외면했고 윗선 보고를 지연했다. 경찰청장 등 수뇌부는 속수무책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경찰 112상황실에 쏟아졌던 참사 직전의 위급 상황 신고 내역 전격 공개를 지시하면서 진상 규명을 위한 수사의 물꼬가 터졌다. 윤 대통령은 7일 회의에서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실과 여권은 ‘정치적 책임론’ 등으로 두루뭉술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지금은 ‘구체적 책임’을 밝히는 게 더 시급한 과제라는 것이다.


◇경찰의 미스터리 행태

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 A 씨는 “이태원 참사는 정무적·도의적 책임 운운하며 두루뭉술 넘어갈 일이 아니다. 경찰 대응의 문제가 드러난 만큼 구체적으로 누가, 어느 대목에서, 어떻게 잘못했는지 철저히 수사해 권한에 맞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밤 참사 4시간 전부터 서울경찰청 112상황실에는 신고가 쏟아졌다. 이태원 치안 책임자였던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은 당일 대통령실 부근 집회·시위가 오후 8시 30분쯤 끝난 후 적어도 9시부터는 시간도, 유휴 경찰병력도 있었다. 이 전 서장이 최초 보고를 받은 오후 9시 30분부터 참사가 발생하기 시작한 오후 10시 15분까지 45분이면 서장이 상황을 판단하고 경찰력을 보내 핼러윈 인파를 통제·유도·안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이게 첫 번째 미스터리다.

두 번째 미스터리는 서장의 이동 경로와 행태다. 그는 첫 보고를 받고 1시간 35분 만인 오후 11시 5분에야 현장 부근에 도착했다. 도보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차 안에서 1시간이나 허비했고, 뒷짐 진 채 천천히 걸어 다녔다. 이태원파출소 옥상에서 젊은 생명이 멸(滅)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 과정에서 직속상관인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보고는 해태했다.

서울경찰청 112상황실 책임자였던 류미진 총경의 처신도 미스터리다. 분초를 다투는 상황실이 아닌 어딘가에 있다가 참사 1시간 24분이 지나서야 첫 보고를 받았다. 이 때문에 112시스템을 매개로 한 보고·전달체계는 ‘먹통’이 됐다. 제때 상황을 상부에 보고하고 조치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치안 총책임자인 윤희근 경찰청장은 보고를 받지 못한 채 당일 오후 11시쯤 잠이 들었다. 대통령실 A 씨는 “일부 경찰이 썩었다”고 말했다.


◇‘오판’이냐 ‘회피’냐

일부 경찰 간부들의 참사 당일 미스터리 행태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오판’, 둘은 ‘적극적 조치의 회피’. 고검장 출신 B 변호사는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첫째라면 과실치사상, 둘째라면 살인방조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 전 서장은 경찰대 9기로 전남 함평 출신이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총리실 공직복무관실에 파견 근무를 했다. 경찰 고위간부 출신 C 씨는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이낙연 초대 총리 시절 이 전 서장은 ‘이 총리와 가까운 사이’라며 친분을 과시하고 다녔다”고 말했다. 이 전 서장은 2018년 초 총경으로 승진했는데, 동기에 비해 2년가량 빨랐다고 한다. 이후 전남 구례서장을 지내다 대선 한 달여 전인 지난 2월 경찰 보직 중 요직으로 통하는 용산서장으로 발령받아 문 정부에 ‘빚’을 많이 진 상황이었다.

국민의힘 중진 D 의원은 “일부 경찰 간부들이 윤석열 정부 들어 이상할 정도로 집단적인 직무 태만 상태에 빠졌다”고 말했다. 온라인상에서는 더 흉흉한 말도 나돈다. 지난 7월 총경들에 의한 ‘제복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 제대로 처벌하지 않은 후과(後果)가 이번 참사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권에서는 ‘일부 경찰이 정치화됐다’는 인식이 형성된 지 오래다. ‘직업=소명’인데 ‘정치경찰’은 소명의식은 없고, 줄 타고 파벌 짓고 배지 다는 것에만 혈안이 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관기 경찰직장협의회장의 행태도 눈길을 끈다. 그는 지난 7월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 과정에서 삭발농성을 했던 인물이다. 그가 지난 2일 윤 경찰청장과 면담한 후 ‘윤 청장이 곧 사퇴한다’는 글이 SNS상에 퍼졌다. 민 회장은 자신이 작성한 글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그가 언론 플레이를 했다는 말이 돌았다.


◇尹 “책임 있는 사람에게 책임을”

참사 수사가 본격화한 것은 누구보다 먼저 참사 상황을 파악한 윤 대통령의 체질화한 감각 때문이었다. 윤 대통령은 참사 46분 만에 보고를 받았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보다 19분, 김광호 서울경찰청장보다 35분, 치안 총수인 윤희근 경찰청장보다 73분 빨랐다.

윤 대통령이 참사 전 압사 위기에 몰린 시민들의 112신고 녹취록을 공개하게 한 것은 수사 본격화의 ‘트리거’가 됐다. 당초 경찰 수뇌부는 녹취록 공개를 놓고 전전긍긍했지만, 관련 보고를 받은 윤 대통령이 “한 점 의혹이 없도록 공개해 철저히 진상을 밝히라”고 지시하면서 수사가 급진전했다. 이상민 장관에게 시민의 절박했던 호소가 담긴 112신고 녹취록이 사전 보고됐더라면 “경찰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라는 경솔한 말로 비난을 자초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무엇보다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있어 한 치의 허술함도, 인정의 이끌림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그런 맥락에서 7일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다… 책임 있는 사람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A 씨는 “‘구조적 원인’도 찾아야겠지만 ‘구체적 책임’도 가려야 한다”고 했다.

다만 윤 대통령은 경찰 수뇌부나 이 장관의 사퇴 문제는 수사 진행 과정을 지켜보면서 시기를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 상설특검 발동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소모적인 검경 갈등이나 정치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재난의 정치화’

한국 정치에서 ‘재난의 정치화’는 반복된다. 일부 정치권은 재난을 대할 때 타인의 아픔을 치유하는 지혜로 삼는 게 아니라 타인을 찌르는 무기로 삼는다. 윤 대통령의 112 녹취록 공개 지시와 몇 차례에 걸친 사과, 특별수사본부의 본격적인 수사 착수에도 불구하고 “국민을 내팽개친 1분 1초까지 밝히겠다”면서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야권의 태도가 그렇다.


■ 용어설명

‘미필적 고의’는 특정 행동의 결과가 반드시 발생하는 건 아니지만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하면서 ‘그 결과가 발생해도 상관없다’는 심리로 행동하는 것. 고의범과 과실범을 나누는 기준.

‘제복의 반란’은 7월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을 둘러싼 현직 경찰들의 집단 반발. 당시 총경을 중심으로 경찰국 신설이 경찰 독립성을 해칠 것이라며 피케팅 등을 동반한 철회 투쟁을 벌임.


■ 세줄 요약

경찰의 미스터리 행태 : 대통령실, 참사 관련 “권한에 맞는 책임 밝히는 게 급선무” 입장. 관할 경찰서와 112상황실 책임자들의 대응 미비, 민원 무시, 보고 해태 등 미스터리 행태 난무. 대통령실 “일부 경찰 썩었다.”

‘오판’이냐 ‘회피’냐 : 일부 경찰 간부들의 미스터리 행태는 ‘오판’과 ‘회피’ 둘 중 하나. 법조계 “첫째라면 과실치사상, 둘째라면 살인방조 내지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 될 수도” 지적. 경찰의 정치화 문제도 커.

尹 “책임 있는 사람에게 책임을”: 尹 “한 점 의혹 없게 철저히 진상 밝히라” 지시 후 경찰이 112 녹취록을 공개한 게 수사 본격화의 ‘트리거’로. 정치권이 재난을 타인을 찌르는 무기로 삼는 ‘재난의 정치화’는 사라져야.

문화일보 허민 기자

 

11.08 툭하면 탈선에 사망 사고 코레일, 이러다 큰일 터진다

▲7일 오전 무궁화호 탈선사고가 난 영등포역 주변 철로에서 복구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6일 밤 용산역에서 출발해 익산역으로 향하던 무궁화호 열차가 탈선하면서 30여 명의 승객이 부상을 입었다./ 장련성 기자

 

최근 코레일(한국철도공사)에서 작업 중 사망 사고와 열차 탈선이 잇따라 발생했다. 이태원 참사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지지 않을까 국민 불안이 커지고 있다. 지난 5일 경기 의왕시 오봉역에서는 화물열차 연결·분리 작업 중 코레일 직원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지난 3월 대전의 열차 검수고에서 근로자가 숨졌고, 7월과 9월에도 작업 중 근로자가 열차에 치어 사망했다. 올 들어 벌써 네 번째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서 코레일 사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형사 입건 상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공공기관장 중에선 처음이다.

 

6일 밤엔 서울 영등포역 부근에서 무궁화호 열차가 탈선하는 사고가 나 35명이 다쳤다. 용산을 떠난 무궁화 열차가 영등포역으로 진입하다 선로를 이탈해 열차 6량이 궤도를 이탈한 것이다. 앞서 1월 KTX-산천 객차가 경부선 영동역과 김천구미역 사이에서, 7월 SRT 열차가 대전조차장역 인근에서 탈선한 데 이어 올 들어 대형 탈선 사고만 세 번째다. 열차 탈선 사고는 대규모 인명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영등포역 열차 탈선 수습 과정도 난맥 그 자체였다. 탈선 여파로 7일 오후까지 서울 구로~용산역 구간 열차 운행을 못 하는 등 수많은 열차 운행에 차질을 빚었다. 그런데도 서울시와 영등포구청은 6일 밤 9~11시 사이 “조치 완료” “복구 완료” 같은 내용의 재난 문자를 보냈다. 코레일과 지방자치단체가 의사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7일 아침 이를 믿고 출근길 열차를 타러 나온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사망 사고와 탈선이 한두 번이 아니라 반복되는 것을 보면 코레일 임직원들의 업무 기강에 문제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 단호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코레일은 하나에서 열까지 다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전 정권이 임기 말에 알박기 식으로 임명한 나희승 코레일 사장은 남북철도 연결 전문가라고 한다. 남북철도 연결은 문재인 정권이 추진하던 것으로 정권이 바뀌었으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옳다. 그는 조직 장악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다른 기관장들처럼 버티고 있고 이 와중에 코레일 운영은 엉망이 되고 있다. 국토부와 코레일은 최근 사고를 강력한 경고음으로 생각하고 더 큰 사고로 이어지기 전에 안전·탈선 관련 사항들을 정밀 점검해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1.12 우리는 지금 ‘환멸의 바다’를 건넌다

도시 재난 이태원 참사
대통령 호위에 급급한 관료
‘망자 정치’ 시동거는 민주당
대중은 몽둥이 들고 감성 놀음

2022년 10월 29일 오후 11시 56분, 뒤늦은 재난 문자가 발송됐다.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 호텔 앞 긴급 사고로 현재 교통 통제 중. 차량 우회 바랍니다.> 이 문장 어디에 죽음의 그림자가 있던가. 도시 참사는 그렇게 고지됐다. 그로부터 13일 만에 이태원 사건 관련자로 입건된 용산서 정보계장이 숨졌다. 참사 사망자 157명, 거기에 다른 죽음이 보태졌다.

▲국가애도기간 마지막 날인 5일 밤 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 시민들 조문이 이어지고 있다. 2022.11.5/뉴스1

 

사고 이튿날, 대통령이 마이크를 잡고 ‘국민 애도 기간, 특별재난지역’을 말했다. 유가족에게 공무원을 1대1로 매칭해 돕겠다고 했다. 늦지 않았고, 메시지도 괜찮았다. 딱 그 순간뿐이었다.

 

SNS로 중개된 죽음을 보고 ‘제2의 세월호’를 떠올리는 사람이 적잖았다. 걱정하는 사람도, 기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불안’에 영혼을 잡힌 정부 여당은 잇달아 패착하고, ‘기회’를 잡겠다는 야당은 연일 망발한다. 국민을 혐오의 구덩이로 몰아간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국민의 안전은 국가의 무한 책임”이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세월호 사건을 바닥에 깔고 하는 말이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전임자와 토씨까지 똑같은 표현을 썼다. 좌우 가릴 것 없이 대통령이 되면 ‘나만 믿으라’고 호언장담한다. 오만이다. ‘국민 안전은 국가의 최우선 의무(primary duty)’라는 외국 정부의 표현이 겸손하고, 현실적이다.

 

윤 정부는 ‘참사 희생자’ 대신 ‘사고 사망자’ 표기를 고집한다. 국민의 ‘말’을 ‘공문서(公文書)’로 단속할 수 있다는 낡고, 위험하며, 무용한 생각은 대체 무슨 발상인가. 총리는 외국 기자들과 사고 관련 기자회견을 하면서 영어 회화 능력을 뽐내다 빈축을 샀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첫 반응은 ‘국가는 책임 없다’는 것이었다. 국민은 정치 동물이다. 국민보다 대통령을 먼저 챙긴다는 느낌을 받았다. 경찰청장, 용산서장, 용산구청장 모두 ‘면피’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그들의 공포도 이해가 간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세월호 사건을 거치며 사법을 동원한 ‘공무원 토벌(討伐)’이 흔해졌다. 파직은 다행이고 옥살이가 예사다. 대중의 분노로 펄펄 끓는 기름솥, 그 위에 걸린 외줄, 공무원들은 지금 그 외줄 위를 걷고 있다. 사망한 경찰이 느꼈을 압박감에 마음이 저리다.

 

야당 행태는 일부만 열거하겠다. “윤석열 정부는 이태원에서 젊은이들을 사지에 좁은 골목으로 몰아넣고 떼죽음을 당하게 만들었다.” “공포탄이라도 쏴서 길을 내든지….” 민주당 당료를 오래 한 양경숙 의원 주장이다. 이런 망언이 나오는 건, ‘애도 비즈니스’ 전문가인 진보 세력이 정부의 ‘애도 선점’에 허를 찔렸기 때문이다.

 

어김없이 괴담을 양산 중인 김어준씨가 방송을 통해 ‘전략’을 제시한다. “책임을 묻지 않고 떠나보낼 수 없다.” 이후 ‘진정한 애도는 분노’ ‘희생자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자’는 주장이 쏟아진다. 급기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여기 올라탔다. “고인 이름을 부르는 게 패륜인가?” 속셈을 감추고 망자를 동원하는 것, 그게 패륜이다. 신원 공개를 두고 곧 유가족들은 분열되고, ‘꾼’들은 ‘윤석열 퇴진’ 집회용 관광버스 대절에 분주할 것이다.

 

‘무책임의 몽둥이’를 든 대중은 한 입으로는 “다 잡아 처넣으라”면서, 소방 공무원 입건을 두고는 ‘불쌍하다’고 반발한다. “손을 벌벌 떠셨는데…”가 이유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정치와 종교다. 정치는 진영 지지자를 대리전에 참전시키고, 종교인도, 지식인도, 글쟁이도 진영에 봉사하면서 굉음을 낸다. 누구의 손을 잡고 이 환멸의 바다를 건널 건가. 다행인 건, 바다의 끝은 육지라는 사실이다.

조선일보 박은주 에디터 겸 에버그린콘텐츠부장

 

11.15 ‘전용기 추락 기도’ ‘희생자 명단 일방 공개’ 이제 病的 행태까지

▲시민언론 민들레' 홈페이지 갈무리.

 

성공회 신부 한 사람이 14일 윤석열 대통령의 동아시아정상회의 발언을 소개하며 “전용기가 추락하길 바라 마지않는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온 국민이 ‘추락을 위한 염원’을 모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동시에 양심을 모으면 하늘의 별자리도 움직이지 않을까”라고 했다. 다른 천주교 신부도 윤 대통령 부부가 전용기에서 추락하는 합성 사진을 올리고 ‘기체 결함으로 인한 단순 사고였을 뿐 누구 탓도 아닙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라고 썼다. 일반인이라도 해서는 안 될 저주를 성직자라는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한다. 정쟁에 빠져 제정신을 잃은 사람들이 신부 옷을 입고 있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 순방도 이태원 참사와 연결 지어 공격한다. 상근부대변인은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에서 심장병을 앓는 현지 어린이를 방문한 것과 관련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시신 사진을 올리고 “대한민국 청년들이 압사당했는데 영부인이란 사람이 이러면 될까요”라고 했다. 김 여사의 이 일정을 두고 민주당 최고위원은 “김건희 여사의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라고 했다. 과거 영부인 중 취약 계층을 찾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오죽하면 민주당 내에서도 ‘김 여사 스토킹은 그만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이 이날 한 인터넷 매체에 의해 일방적으로 공개됐다.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이 필진으로 참여한다는 이 매체는 “유족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은 양해를 구한다”고 유족 동의가 없었다고 인정했다. 사망 희생자의 이름을 제3자가 멋대로 공개하고 있다. 그것도 희생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정쟁에 필요한 도구로 쓰기 위해서였다. 동의 없는 개인 정보 공개는 불법이라는 사실도 아랑곳 않는다. 이 때문에 정의당도 반대했다. 오로지 민주당만 이재명 대표가 공개를 요구했다. 그러자 민주당과 가까운 사람들이 속한 매체가 공개했다. 이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유튜브와도 명단 공개를 협조했다고 한다. 참사를 정치에 이용하는 것도 정도가 있다. 상식과 정도를 벗어난 재난의 정략화는 결국 역효과를 낳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11.17 세월호 이은 이태원, 또 희생을 낭비할 텐가

 부모 주검은 산에 묻고 자식 주검은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치유와 망각 없는, 세상사에서 가장 비통한 슬픔이 생때같은 자식들을 앞세우는 일일 테다. 아들 잃은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던 시인 김동리는 ‘진이 한 조각 구름 되어 날아간 날/ 하늘엔 벙어리 같은 해만 걸렸더라…’고 했고, 작가 박완서는 ‘당신은 과연 계신지, 계신다면 내 아들은 왜 죽어야 했는지… 한 말씀 해보시라’고 절대자를 향해 절규했다.

 

대한민국이 그 무게와 깊이를 측량조차 할 수 없는 참혹한 슬픔과 고통의 늪에 빠졌다. 선미 끝자락만 물 위로 삐죽 솟아 있던 세월호의 참담한 기억이 생생한데 이번엔 서울 한복판에서 158명의 곱디고운 젊음이 산화했다. 형언할 수 없는 참척(慘慽)의 굴레가 남은 자들의 가슴을 짓누른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주지 못했다는 자책이 회한으로 돌아온다. 이 어이없는 죽음의 원죄로부터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우리 모두는 묵언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태원 골목길을 지날 때면 그날 밤처럼 숨 막히고, 천막 광장에 놓인 희생자들 넋에 국화 한 송이 헌화조차 가슴 아리다.

유족 동의없는 희생자 명단 공개
비극마저 정권 겁박의 수단 삼나
정치, 세월호 참사 낭비한 책임 커
여권, 책임론 차단 급급해 화 키워

그런데 위정자들 세상은 딴판으로 굴러간다. 슬픔과 공감하지 못하는 희한한 일들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책임 떠넘기기, 희생양 찾기에서 이젠 비통한 희생조차 제물로 삼으려 한다. 야당 정치인과 친야 성향의 전직 기자가 ‘언론’이랍시며 급조한 인터넷 매체가 유가족 동의 없이 희생자 155명의 명단을 공개하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희생자들을 호명하며 ‘추모 미사’를 열었다. 유가족 2차 가해 논란과 재난의 정치화 공방이 정치권을 달군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어떻게 이름도, 얼굴도 없는 곳에 온 국민이 분향하고 애도하는가”라고 했는데, 문상객이 상주 나무라는 격이다. 어불성설이다. 명단 공개를 원치 않는 상당수의 유가족 가슴에 비수 꽂기다. 희생자 한 사람 알지 못해도 가슴속 심연에서 솟아오르는 납덩이 같은 가위눌림을 경험했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러니 추모도, 애도도 그들에겐 고작 정치 놀음과 정권 겁박의 수단일 뿐인가 탄식하게 된다. 벌써 광장에선 ‘촛불’ ‘퇴진이 추모’ 구호가 들려온다. “희생자들을 익명의 그늘 속에 묻히게 함으로써 파장을 축소하려 하는 것이야말로 재난의 정치화이자 정치공학”이란 야당의 주장은 역설적으로 희생자 실명 공개가 그들의 정치공학적 이해득실에서 나온 것임을 일깨운다.

 

추모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참사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정치가 여기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뜻이다. 애도에 몰두하고 증오를 키운다고 저절로 안전한 사회가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이태원 참사는 8년 전의 세월호 참사를 낭비한 데도 그 원인이 있다는 걸 정치는 직시해야 한다. 비극을 정치 놀음에 허비한 참혹한 대가에 숙연해져야 한다.

 

세월호 조사는 아홉 차례, 572억원을 쓰고도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과학의 영역이어야 할 침몰 원인에 대해서조차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해 ‘내인설’과 ‘외압설’의 2개 보고서로 마감했다. 조사위 조사관으로 참여했던 박상은씨는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에서 “책임자 처벌에 매달리지 않고 사회구조적 원인 규명을 임무로 생각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며 “누가 잘못했는지가 아니라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질문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특조위와 사참위에서 활동한 김민후 변호사 역시 “특정인과 특정 세력을 타기팅해 의혹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정치적 이득을 채우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 같다”며 “‘박근혜 7시간’을 놓고 싸우는 바람에 정쟁에 빠졌다”고 비판했다.

 

이태원 참사가 ‘제2의 세월호’가 돼가는 데는 정부 여당의 무능과 책임이 크다. 그들 주장대로 설사 ‘예견하지 못한 사고’였다고 쳐도 사고 발생 3주일이 다 되도록 그들이 보인 실망스러운 모습이 분노를 촉발한다. 정부 컨트롤타워와 위기 대응 매뉴얼의 부재, 경찰 지휘부의 태만과 실무자에게 책임 떠넘기기, 잇따른 설화에도 자리 지키기에 급급한 장관, 그리고 ‘여당이 장관 하나 못 지키나’는 윤핵관의 때아닌 결사옹위…. 내 눈엔 책임론 불 끄기에 급급한 모습이 오히려 집권세력 스스로를 ‘박근혜 7시간’의 프레임에 옭아매는 자충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또 한 번의 희생이 낭비된다면 ‘안전한 사회’는 언감생심일 뿐이다. 그러니 정말로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무엇이 문제였는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부터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 칸트의 비유를 빌리자면 진상 규명-책임자 처벌 없는 재발 방지는 공허하고, 재발 방지를 견인하지 못하는 진상 규명-책임자 처벌은 맹목적인 것이다.

 

참사에서 교훈을 얻어 안전사회를 만든 선진 사례가 여럿 보도됐다. 미국 시카고의 초등학교(our lady of the angels) 화재 사건, 일본 효고현 아카시시 불꽃놀이 관람객 압사 사건 이후 각각 화재 대피 훈련, 다중 밀집 대응 매뉴얼이 정착됐다. 완전하진 않지만 ‘좀 더 안전한 사회’가 된 건 틀림없다. 문명국가는 이렇듯 희생을 낭비하지 않는다.

이정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11.17 4·16에서 10·29, 기자가 변했다

 악당, 영웅, 무고한 희생자. 참사 현장에서 기자의 눈과 발은 여기로 쏠린다. 초년병 시절에 그렇게 단련된다. 악당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부실한 제도, 그릇된 관행이 단두대에 올려지기도 한다. 영웅은 자기 직분에 충실했거나 위험을 무릅쓰고 인간애를 발휘한 보통 사람인 경우가 많다. 무고한 희생자는 비극적 사건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에서 비롯됐는지를, 그리고 그 변고가 어쩌면 나와 내 가족에게 닥쳤을지도 모르는 것이라는 끔찍한 현실을 실감케 한다. 

 

이태원 참사에도 언론은 악당과 영웅을 쫓았다. 제 할 일 하지 않은 경찰 간부와 구청장이, 그 좁은 골목을 더 좁게 만든 호텔과 그것을 방치한 공무원들이 여론의 심판대에 올려졌다. 현장에서 고군분투한 김백겸 경사와 다수의 시민이 영웅으로 조명받았다. 그런데 무고한 희생자의 이야기를 담은 보도는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다. 158명의 희생자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아픈 사연을 안고 세상을 떠났을 것이고, 그 참사의 비극이 가족과 주변 사람에게 애절한 고통을 안겼을 터인데도 무심하게 보일 정도로 이에 대한 보도가 적었다.

 

정치적 파장을 줄이려는 협잡이 이 현상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정권이 배후에 있다는 음모론까지 덧붙였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은 희생자의 실명을 쓰며 유족을 인터뷰해 보도하는데 한국 언론은 희생자 명단조차 전하지 않는다며 억지를 부렸다.

 

권력과의 유착, 어림없는 얘기다. 그런 주문을 하면 머지않아 세상에 다 공개된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면 바보다. 가정에 가정을 거듭해 그런 요구가 있었다고 해도 그걸 현장의 젊은 기자에게 전달할 만큼 언론사 간부가 어리석지 않다. 대형 사건의 한복판에서 뛰는 기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하다. 사(邪)가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다.

 

참사 발생 직후에 희생자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유흥지 인상을 강하게 주는 사건 발생지와 낯선 서양 풍습인 군중 밀집 요소가 그런 분위기에 일조했다. 희생자 이름을, 그가 누군지 추정할 수 있게 하는 정보를 전하는 데 기자들이 몹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희생자 사연 보도가 드물어졌다.

 

더 근원적 이유는 대형 참사를 대하는 언론계 전반의 태도 변화다. 잠시 8년 전 세월호 참사 현장에 있었던 기자가 쓴 글을 보자. ‘가족들의 반응만 영상에 담기에 바빴다. 등 뒤에서는 아이들이 바다에 빠져 죽고 있는데 내 카메라는 실종자 가족들의 눈물만을 향해 있었다. (중략) 수많은 매체는 그들이 통곡할 때마다 모기떼처럼 매달려서 상황을 붙잡고 있었다. (중략) 어느 순간부터 취재기자나 나나 그들의 눈물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방송기자연합회가 낸 책 『세월호 보도…저널리즘의 침몰』의 한 대목이다.

 

그 전대미문의 대참사에 언론은 늘 했던 대로 행동했다. 구사일생으로 생환한 학생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며 친구들 사망에 대한 감정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넋 놓고 바다만 바라보는 실종자 부모에게 아픈 가족사를 들춰내는 질문을 집요하게 던졌다. 언론 매체가 폭발적으로 늘어 사연 발굴 경쟁이 과열됐고, 포털 조회수라는 당근이 그걸 부추겼다.

 

여기에 초기의 ‘전원 구조’ 오보 사태까지 겹쳐 언론이 원성을 샀다. ‘기레기’라는 신조어가 널리 퍼지며 트라우마를 남겼다. 언론계는 반성을 담아 ‘재난보도준칙’을 만들었다. 길게 쓰여 있지만, 핵심은 피해자와 주변 사람의 상처 치유가 최우선이라는 것이다. 8년 전 팽목항과 안산시에 있던 신참 기자가 어느덧 중견 기자가, 당시의 지휘 책임자들이 언론사 주축이 됐다. 그들은 ‘사연 캐기’라는 관행과 헤어질 결심을 했다.

 

세월호 참사 뒤에 별로 변한 게 없다고들 말한다. 다행히 언론은 이렇게 다소나마 진화했다. 희생자 명단을 내걸고, 상처에 소금을 뿌리며 장사를 하는 자칭 언론도 있지만, 세상은 분명 달라졌다.

중앙일보 이상언 논설위원 

 

11.19 정녕 지구를 위한다면

“유통기한 한 달 지난 라면을 먹어도 되나요?” 시판되는 일반 라면이라면 특별한 문제 없다. 유통기한이란 말 그대로 유통을 허락하는 기한이다. 생산해 소비자에게 판매하기 직전까지 기한인데, 소매자가 얼마만에 취식할지 가늠할 수 없으니 지극히 보수적으로 타산한다. 예를 들어 유통기한이 6개월인 라면의 실제 소비기한은 8~9개월을 넘는다. 우유나 요구르트 같은 유제품도 냉장 상태만 유지한다면 일주일쯤 지나도 역시 문제없다. 식용유, 참기름, 냉동만두 같은 경우는 1년 지나도 괜찮다.

 

▲소비자기후행동 회원들이 지난 6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소비기한표시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소비기한표시제가 소비자에게 식품 폐기 시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식품 낭비를 줄여 환경보호를 할 수 있다며 제도 도입을 촉구했다. 2021.6.16/뉴스1

 

사실 유통기한은 소비자가 아닌 판매자를 기준으로 설정한 기한이다. 그 시점이 지나면 팔지 않고 수거하겠다는 뜻인데, 안전 책임을 판매자 측에 맡긴 것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다행히 내년 1월부터는 이런 혼란이 사라진다. 40년간 우리 사회에 유통되던 유통기한이란 용어가 사라지고 ‘소비기한’이 자리를 대신한다. 소비기한은 소비자들이 소비해야 할 안전의 권고 기한이다. 유통기한보다 길게 책정되고 실생활에도 더 맞는다. 늦었지만 칭찬할 일이다.

 

문제는, 유통기한이든 소비기한이든, 그 시점이 지나면 곧장 부패하는 줄 아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물론 판매자는 기한을 철저히 준수해야겠지만 유통기한이 하루만 지나도 큰일이 벌어지는 줄 알고 가정에서 내버리는 모습을 보면 혀를 끌끌 차게 된다. 환경 전문가 마이클 셀렌버거가 쓴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은 우리가 지구를 위한다면서 벌이는 여러 행위의 앞뒤 안 맞는 모순을 지적한 책이다. 그 착각은 물론 따뜻한 착각이지만 생활 속에 정작 지킬 것은 지키지 않고 거대 담론에만 몰두한다면 때로 위선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정말 지구를 위한다면 가장 가까운 일은 알뜰하게 사는 것이고, 최대한 버리지 않는 삶을 실천하는 것 아닐까. 오늘도 편의점에서 유통기한 내에 팔리지 않은 주먹밥과 햄버거를 무더기로 버리면서 내가 짓는 죄를 돌아보곤 한다.

 

차제에 소비기한을 보다 현실화할 것을 제안한다. 지금 유통기한을 정하는 식품위생 관련 법규는 1980~90년대에 제정한 것이 대부분이다. 당시 우리나라 생산 및 유통 환경은 꽤 열악하여, 유통기한도 엄격히 보수적으로 설정했다. 지금은 생산 유통 전 과정에 콜드 체인 시스템이 과거에 비할 바 없어, 어떤 마트나 편의점에 들어가면 내부가 오싹하게 추울 정도이다. 세상은 21세기 한복판을 향해 달려가는데 식품 안전 기준은 권위주의 시대의 것을 답습하며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자꾸 버리게 만들고 있으니 이 무슨 거대한 모순인가. 여러 배경이 겹쳐있긴 하지만 우유 유통기한을 늘리자는 제안을 낙농업자들이 가장 반대하는 이유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자꾸 버리고 새로 구입하길 기대하는 것이다.

 

현재 법규는 상품을 유통하는 온도까지 세세하게 정한다. 이것도 시대에 맞게 변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유통기한이 고작 하루 정도인 삼각김밥을 비롯한 즉석식품까지 굳이 냉장 유통을 강제해야 할까. 과거에는 일괄 통제의 필요 가운데 정했다지만, 지금처럼 상품 유형이 다양화된 시대에는 좀 더 유연할 필요가 있다. 상온(常溫)에서 판매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보다 좋은 상태로 제공할 수 있는 상품을 굳이 냉장해 재가열하도록 함으로써 맛이 떨어지고 에너지 낭비 또한 촉발한다.

 

먹거리를 버리는 일뿐일까. 생활 속 변화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이 많은데 우리는 언제나 ‘큰 것’에만 함몰하는 경향이 있다. 환경, 위생, 안전과 관련한 많은 것들이 그렇다. 정녕 지구를 위한다면 자신부터 바꿔야 한다. 지구인 모두가 우리처럼 쓰고 버린다면 지구는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 봉달호 편의점주

 

11월 25일 반감 부르는 ‘강요된 추모’

 유회경 전국부장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서 숨진 한 희생자 어머니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가족 등에 대한 국가 배상이 논의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이거 줄 테니까 위안 삼아서 그만 진상 규명 외치고 가만히 있으라는 뇌물인가. 10조 원을 받아도 그것이 국가 배상에 합당한 금액인가 생각할 정도다. 그런 뇌물이면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가족이 원하는 것은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와 진상 규명이라며 추모공간을 달라고 했다. 관련 댓글들을 봤다. 놀랍게도 하나같이 부정적인 내용 일색이었다. 한 이용자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순간에 아들이 사고로 죽음을 당했다면 마음이 너무 아프겠지요. 그게 다입니다. 대통령이 무슨 연관이 있길래 이런 유의 사고가 있을 때마다 대통령직을 그만둬야 하고 잡혀 들어가야 하고 끊임없이 사과해야 하고 예산 할당해 추모공간을 만들어 줘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댓글을 올렸다. 또 다른 이용자는 ‘추모공간이라니. 왜 슬픔을 강요하는가’라고 했다. 유족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어 누구는 이를 악성 댓글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언론사가 이를 의식, 자발적으로 관련 기사 댓글창을 닫아놓기도 했다. 하지만 드루킹 같은 댓글 조작단이 일부러 작업하지 않았다고 전제하면 악의적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악성 댓글이라고 규정하기에는 여론의 흐름이 너무 크고 명백하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며 일정 수준의 진상 규명이 필요하지만 세월호 때처럼 정쟁으로 흘러선 안 된다. 추모에 진심인 분위기가 형성되면 많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그 슬픔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세월호 때와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 이태원 참사와 세월호 사고는 성격상 많이 다르지만, 세월호 유족 혹은 관련 단체 그리고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정치권 행태가 우리 사회에 남긴 경험 탓 아닌가 싶다. 서범수(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안산시는 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지난 2017년부터 6년간 총 110억 원 규모의 피해 지원 사업비를 받은 뒤 일부를 ‘지역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 명목으로 각종 시민단체에 지급해 활동을 맡겼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안산청년회라는 시민단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주제로 한 세미나를 열고 제주도 2박 3일 출장 비용으로 쓴 것으로 나타났다.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1000만 원을 받아 수영장이 있는 대부도 펜션에서 자녀들과 1박 2일 여행을 한 사례도 있었다.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세월호 사고 진상 규명 역시 마무리되지 않았다.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국가기관 조사만 8년간 9차례 하고도 진상 규명을 완료하지 못했다.

 

책임 추궁에 몰두하다 보니 근본적 원인을 찾는 데 실패한 것이다. 그럴 거면 조사는 왜 했나 이 말이 입안을 맴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사람들을 냉소적으로 만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정쟁을 싹 뺀’ 추모공간이 생겼으면 한다. 우리와 우리 후배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우리 사회의 미진한 부분과 우리의 어리석음과 경솔함을 돌아볼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 그런 공간은 우리 공동체 존속을 위해 꼭 필요하기도 하다.

문화일보 

 

11월 25일 화물연대 운송 방해부터 민 · 형사 책임 끝까지 물어야

 한국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년 한국 경제 성장률을 각각 1.7%와 1.8%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경기가 반등할 것이란 기대는 무너지고, 안정적 일자리가 사라지고 소득도 사실상 줄어드는 ‘경제 빙하기’에 진입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많은 대기업조차 유동성 위기와 실적 악화로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기술 경쟁력과 생산성 향상으로 수출을 늘리는 것 외엔 활로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지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시리즈 파업’은 설상가상으로 위기를 증폭시킨다. 화물연대 파업이 결정타다. 상황의 엄중함에 비춰보면 그 방법이 적절하진 않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밤 페이스북에 ‘업무개시명령을 포함해 여러 대책 검토’를 밝힌 것은 불가피한 대응이다. 특히 ‘지역별 운송 거부와 운송 방해 등 모든 불법적 행동은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히 대응하겠다’면서 ‘다른 차량의 출입을 차단하고 정상 운행에 참여한 동료를 괴롭히는 것은 타인의 자유를 짓밟는 폭력 행위’라고 규정함으로써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

화물연대 파업 여파는 벌써 심상치 않다. 파업 첫날 전국 12개 항만의 컨테이너 반출량은 평상시보다 60%나 줄었다. 수도권 물류 허브인 경기도 의왕 내륙컨테이너 기지는 평소 하루 605대의 화물차가 운행하는데, 이날은 불과 2대였다고 한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은 화물연대 출정식 여파로 정문 앞 도로가 막혀 출하가 전면 중단됐고, 포항공장도 마찬가지다. 시멘트 업계 역시 트레일러 운행이 대부분 멈춰 레미콘업계와 건설 현장이 위기에 처했다.

이제 윤 대통령의 말이 빈말에 그치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정부가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제14조)상의 업무개시명령 발동을 주저할 이유는 없다. 집단 운송 거부를 넘어 명백한 불법인 운송 방해·협박 등의 행태가 벌어진다고 한다. 이런 불법행위부터 예외 없이 민·형사상 책임을 끝까지 물어야 한다. 과거처럼 파업이 끝났다고 흐지부지 없던 일로 넘겨선 안 된다. 업무방해엔 손해배상도 청구해야 한다. 법치에 입각한 원칙적인 대응이 기본이다.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면 전화위복 기회가 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11.27 애국심은 경멸하면서 ‘대한민국’은 이용해 먹는 사람들

영화 ‘국가대표’와 태극 마크월드컵과 ‘통 큰’ 애국주의 

 ▲일러스트=유현호

 

일곱 살에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1970년생 차헌태(하정우). 동생과 함께 입양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았다. 스키를 잘 타서 고등학생 시절 미국 주니어 알파인 대표팀 선수로 활약할 정도였지만,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에 시달리다가 결국 백수로 살고 있다. 그의 유일한 희망은 단 한 번이라도 생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에 왔다.

 

그런 헌태에게 자꾸 따라붙는 사람이 있다. 어린이들을 가르치며 근근이 먹고사는 스키 코치 방종삼(성동일). 전북 무주가 미국의 솔트레이크시티와 동계올림픽 유치 경쟁을 벌이는 중인데, 한국은 대중적 동계 스포츠도 얼마 없고 대표팀도 쇼트트랙 등 몇 종목으로 한정되어 있어서 불리하다. 자기들끼리 싸우고 와해되지만 않으면 다행일 것 같은 급조된 인원에게 태극 마크를 붙이고 국가대표로 세운다. 김용화 감독의 영화 <국가대표> 줄거리다.

 

헌태는 전 미국 국가대표. 국적이 미국이다. 엄밀히 따지면 한국인도 아니다. 게다가 애국심은커녕 원한을 가득 품고 있다. 달라붙는 종삼에게 독기 어린 표정으로 내뱉는다. “내가 말했잖아요. 찢어버리고 싶다고, 대한민국. 나 미국 갈 때 동생이랑 나랑 삼천만원에 팔았어요, 한국이. 그런데 나 버린 나라에 다시 국가대표, 웃기는 거 알죠?” 종삼은 대답한다. 국가대표가 되어 금메달을 따면 유명해져서 엄마를 금방 찾을 수 있다. 나라에서 아파트도 한 채 준다. 아주 노골적인 제안이다. “그러니까 너도 이용하라고, 대한민국.”

 

애국심이란 무엇일까? 우리 한국인에게 애국심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개념이다. 반도체와 K팝의 성공에 어깨 으쓱해지지 않을 한국인이 누가 있겠는가. 전통적으로 애국과 충성을 강조하는 보수 진영뿐 아니라, 국가를 벗어난 사고를 중시하는 진보 진영에 속하는 이들도,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하면 애국심이 투철한 편이다. 그렇다 보니 마치 물고기가 물에 대해 생각하지 않듯 한국인은 애국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미국은 사정이 다르다. 이민자들이 만든 나라이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 지속적으로, 애국심을 강조해 왔다. 그런데 미국의 전후 세대, 이른바 ‘베이비부머’들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미국은 자랑스럽지 않다. 그 엄청난 힘을 바탕으로 세상을 지배하면서 온갖 악행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특히 지식인이라면 애국주의에 휩쓸리지 말고 세계 시민주의 관점을 취해야 마땅하다. 이는 미국의 진보 지식인들이 가진 표준적 세계관이 되고 말았다.

 

<철학 그리고 자연의 거울>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등의 저서로 잘 알려진 미국의 좌파 철학자 리처드 로티가 그 흐름에 반기를 들었다. 1994년 2월 13일 자 뉴욕타임스에 “애국심 없는 학계”(The Unpatriotic Academy)라는 칼럼을 기고한 것이다. 그가 볼 때 미국의 강단 좌파는 모순에 빠져 있었다. 모든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면서 애국주의만은 가차 없이 경멸하고 있다. “좌파에게는 문제가 있다. 애국심이 없다는 것이다. ‘다양성의 정치’라는 이름 아래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나라를 기꺼이 여기려 들지 않는다. 그들은 국가적 정체성이라는 관념과 국가적 자부심이라는 감정을 부정한다.”

 

미국은 처음부터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지닌 이민자들이 만든 나라다. 다원주의(pluralism)를 사회 근간에 깔고 있다. 하지만 1990년대 미국 대학가를 휩쓴 것은 “미국의 전통적 다원주의가 아닌, 이른바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라는 새로운 운동이다.” 마틴 루서 킹 목사는 흑인도 백인도 모두 같은 미국인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반면 좌파는 그러지 않다. 애국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면서 인종, 성별, 성 정체성 등 다양한 차이만을 부각한다.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거부하는 좌파는 그 나라의 정치에 영향을 끼칠 수 없고, 결국 경멸 대상이 되고 말 것이다.” 이 칼럼을 확장하여 1998년 <미국 만들기>(Achieving Our Country)를 펴낸 로티는 트럼프의 당선을 예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를 생각해 보자. 대한민국은 미국과 달리 단일한 정체성을 지닌 민족국가였다. 오늘날은 저출산, 고령화, 이주민 증가를 경험하는 중이다. 다원주의, 심지어 다문화주의에서도 배울 건 배워야만 할 절박한 상황이다. 피부색, 언어, 관습 등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통 큰 애국주의가 필요하다. 올바른 사고를 정립하고 그 위에 더 큰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정치다. 대한민국은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거부하는 좌파가 정치에 영향을 끼치는 나라다. 국정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150여 명이 목숨을 잃는 비극이 벌어지자 안전을 위한 토론장을 여는 대신 유가족 동의 없이 명단을 공개하며 집회를 빙자한 저주의 굿판을 벌인다. 해외 순방을 나간 대통령 전용 비행기가 추락하라고 기도하는 성직자들만 해도 기막힌데, 그런 세력이 주도하는 집회에 야당 정치인들이 얼굴을 비친다. 그러면서 세금으로 월급 받고, 몇몇은 변변한 소득도 없이 자녀를 해외 유학까지 보낸다. <국가대표>에서 종삼이 내뱉은 말이 귓전에 쟁쟁 울리는 것 같다. “그러니까 너도 이용하라고, 대한민국.”

 

어울리지 않게 태극마크를 단 ‘국가대표’들 생각은 달랐다. 하나같이 이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버림받은 존재다. 눈 쌓인 슬로프에서 뛰어본 적도 없는 그들이 메달을 따고 군 면제를 받는 것은 허황된 꿈이다. 스스로도 잘 알지만 기꺼이 국가대표의 짐을 짊어지고, 사비를 들여 올림픽에 나간다. 왜?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도 안 하려고 하니까, 아무도.” 나라가 책임져주지 않는 사람들이 두 팔 걷어붙이고 나라를 책임지려 드는 이 대책 없는 사랑, 그것을 우리는 애국심이라 부른다.

 

월드컵 조별 예선이 한창 뜨겁게 진행 중이다. 이제 두 경기가 남았다. 자신들이 정권을 잡지 못했다는 이유로 나라 망하라고 악쓰는 그 추한 목소리를 몽땅 덮어버릴 수 있도록, 국가대표 축구팀과 우리 스스로를 위해, 한마음 한뜻이 되어 ‘대한민국’을 외쳐보자.

조선일보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11월 28일 또 쇠구슬 테러 … 화물연대 不法에 ‘무관용’ 관철할 때다

 노동자에게 파업할 권리가 있다면 ‘파업하지 않을 권리’도 기본권으로서 존중돼야 한다. 파업 참가자가 파업에 불참했다는 이유로 위협이나 폭행을 가하면, 해당 파업의 정당성을 스스로 허무는 일이 되는 것은 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심각한 범죄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파업이 이어지는 가운데, 26일 파업 불참 화물차에 쇠구슬로 추정되는 물체가 날아와 대형 앞유리가 깨지고, 운전자가 유리 파편에 부상을 입는 일이 발생했다. ‘살인미수’로도 볼 수 있는 명백한 테러다. 아직 범인이 검거되지 않아 당장 진상을 알긴 힘들다. 그러나 과거 화물연대 파업 때도 쇠구슬 발사, 돌 투척, 브레이크 호스 뽑기 등을 동원한 운송 방해가 있었다. 반드시 범인을 잡아 중대 범죄로 일벌백계해야 한다.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집단 운송거부로 이뤄지는 화물연대 파업은 묵과해선 안 될 수준에 도달했다. 불법 파업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27일 기준 전국 12개 항만의 컨테이너 반출입량이 평소의 17%로 떨어졌고, 석유화학 업체가 밀집한 전남 여수산업단지, 현대제철 소재지인 충남 당진 등도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시멘트 업계의 출하량은 계획 대비 9%까지 떨어졌다.

정부와 화물연대는 28일 협상을 시작한다고 한다. 당장 급한 불만 끄자는 식의 무원칙 타협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를 영구화하고, 시멘트·컨테이너 외에 5개 품목 추가를 요구하고 있다. 시장경제 원칙을 흔들고, 경제 정의 차원에서도 문제가 심각하다. 화주(貨主)는 물론 국민 부담도 늘리는 데다, 자동차 운반 차주 소득(유류비·세금 등을 제외한 순소득)이 월평균 527만9000원에 달하는 등 화물연대 차주 소득이 일반 근로자 평균(320만 원)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운임제 시행 뒤 사고가 늘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윤석열 정부는 ‘국가 정상화’ 각오로 대응해야 한다. 지난 6월 파업 이후 5개월 동안 사실상 손 놓고 있었던 책임도 가볍지 않다. 화물연대 행태를 보면, 안전운임제 3년 연장도 가당찮다. 업무개시 명령만으론 부족하다. 국민 불편과 경제 충격의 책임에 대해 국민에게 설명하고 ‘불법 무관용’을 관철해 노·사 관계 선진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11월 29일 철도·지하철까지 파업…더는 ‘노조 떼법’ 용인해선 안 된다

 기득권 노동조합의 무소불위 행태는 문재인 정부 시절 더욱 악화했는데, 40여 년 전 미국과 영국을 힘들게 했던 ‘노조병(病)’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주도로 진행되는 운송·철도 파업은 물류 마비라는 국가의 급소를 노린다는 점에서 1981년 미국 항공관제사 파업과 흡사하다.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48시간 내 업무복귀 명령을 내리고, 이를 지키지 않은 1만1000여 명의 관제사를 전원 해고했을 뿐만 아니라 평생 연방공무원이 되는 것을 막았다. 산업혁명 발상지인 영국의 노조는 수시로 정부도 붕괴시킬 위력을 발휘했지만, 1984년 마거릿 대처 총리는 막강했던 탄광노조 총파업에 1년 동안 단호히 맞서 법치와 원칙을 관철했다. 이를 계기로 영국과 미국의 노동운동은 근본적 체질 개선이 이뤄졌다.

민노총은 지난 22일 총파업 투쟁을 선포하면서 “전체 노동자 투쟁으로, 전 민중의 투쟁으로 확산시키겠다”(양경수 위원장)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대한민국을 바꾸는 사회 대전환을 이뤄낼 것을 결의한다”고도 했다. 민노총은 이번 연쇄 파업을 통해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을 뿌리째 흔들어 버리겠다는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다. 합법 파업의 대상이 아닌 공공기관 민영화 반대까지 내걸었다.

화물연대 파업이 이어지는 가운데 같은 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인 서울교통공사노조와 전국철도노조도 각각 30일과 다음 달 2일 전면 파업에 돌입한다. 윤 대통령은 29일 우선 벌크 시멘트 트레일러(BCT) 운송사업주와 종사자(차주)를 상대로 업무개시 명령을 발동했으나, 효과는 미지수다. 그러잖아도 민노총 산하 단체의 폐해는 수인 한도를 넘었다. 건설 현장은 무법천지처럼 된 지 오래이며, 사업장 점거도 일상화한다. 특정 정치집단의 지지는 사실상 이를 부채질한다. 더불어민주당이 불법 파업 행위에 책임을 묻지 못하도록 해 위헌 소지도 큰 노란봉투법을 강행 처리하기로 방침을 굳힌 것도 그 일환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28일 “대한민국은 노조공화국이 아니며, 헌법은 떼법 위에 있다”고 했다. 정확한 현실 인식이다. ‘노조 떼법’을 더 이상 용인하면 국가 미래는 암담하다. 많은 국민도 민노총에 등을 돌렸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다. 단호하고 정교한 정부 대응이 절실하다.

문화일보 사설 

 

11월 29일 정부 무책임이 키운 ‘불법 파업’ 病

 김준용 국민노동조합 사무총장

또다시 화물연대가 ‘파업’에 들어갔다. 2002년 ‘화물연대’가 생긴 이래 연례행사가 되다시피 했다. 더구나 올해 들어서는 지난 6월에 이어 두 번째다. 이들의 요구는 다음 달 도래하는 ‘안전운임제 일몰’ 폐지와 대상 품목 확대다. 현 정부가 안전운임제 3년 연장을 약속하는데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런데 화물연대는 노동조합이 아니다. 화물운송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주로 자신의 화물 차량을 가지고 운수회사와 운송계약을 하는 개인사업자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집단 파업은 ‘집단 운송 거부’로서, 노동관계법의 보호를 받는 파업과는 거리가 멀다. 화물연대는 설립 다음 해이던 2003년 2차 총파업 때 조직원들이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비조직원들을 상대로 운행 중인 화물차에 쇳조각을 날리는 등 테러에 가까운 폭력을 자행해 세상을 경악하게 했다. 2012년 비조합원 화물차량 12대에 연쇄 방화하는 만행을 저지른 화물연대는 이번에 또 쇠구슬 테러를 저질렀다.

그렇다면 대체 이들은 얼마나 절박하기에 이런 불법행위도 마다하지 않는가?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1년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월평균 임금은 320만 원이다. 그런데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국민경제를 담보로 잡고 있는 화물연대의 화물기사들의 월평균 순소득은 530만 원 수준이다. 안전운임제를 적용해 달라는 요구가 무색하다. 게다가 지금까지 시행해 본 결과 이들이 핑계 삼는 안전사고도 줄어들지 않았다.

화물연대의 불법 파업이 계속되는 것은 그때마다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법치주의를 수호해야 할 정부와 정치세력이 무사안일주의로 일관하며 임기응변으로 대처한 결과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한시적’ 안전운임제가 대표적이다. 시장 혼란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3년의 시한을 정한 데서 보듯 이들은 경제에 미칠 파장을 뻔히 알면서도 ‘폭탄’을 만들어 다음 정부로 떠넘겼다.

‘안전운임제 폭탄’ 제조 주범인 더불어민주당은 지금 화물연대의 불법 파업을 ‘합법화’하기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 이번 정기국회 중점처리법안으로 정한 일명 ‘노란봉투법’이 그것이다. 근로자의 범위 확대가 주요 내용인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화물연대도 ‘근로자’에 포함돼 이들이 저지르는 불법 파업이 ‘합법’ 파업으로 둔갑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노란봉투법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이 커지자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명칭을 ‘합법파업보장법’으로 바꾸자고 한다. 민주노총이라는 정치화된 강성 거대 노조에 기대 ‘사법 리스크’ 올무를 끊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꼼수다. 노동조합법은 합법적 파업에 대해선 이미 완전한 민·형사상의 면책권을 주고 있다.

화물연대 파업이 불법 행위인 이상 관계 당국의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 대응은 당연한 책무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은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업무개시를 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만약 정부의 29일 업무개시 명령에도 불응하는 불법 행위자가 있다면 형사소추는 물론 운송면허 취소와 손해배상 청구 등 필요한 모든 조치를 통해 엄단해야 한다.
 

 

불법 파업으로 인한 국민경제의 손실은 최대한 줄이고, 불법 세력의 운송 거부로 인해 피해를 보는 저소득 근로자들과 영세자영업자들의 구제에 힘쓰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문화일보

 

11.30 업무개시명령은 불가피, 파업 장기화는 막아야

정부 그동안 어떤 노력 기울여왔나도 성찰해야

불법과 불법 아닌 것 잘 따져 법과 원칙 세우길

 

화물연대 파업 엿새째인 어제 정부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시멘트 분야의 운송 거부자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상 업무개시명령 발동은 관련 법이 시행된 2004년 이후 18년 만에 처음이다. 명령을 송달받으면 다음 날 24시까지 집단 운송 거부를 철회하고 업무에 복귀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운송 업무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운행·자격 정지뿐 아니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까지 처벌받을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경제는 한번 멈추면 돌이키기 어렵고 다시 궤도에 올리는 데는 많은 희생과 비용이 따른다”며 “민생과 국가 경제에 초래될 더 심각한 위기를 막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국무회의 직후 관련 부처 합동 브리핑을 열고 불법 집단행동의 악순환을 끊겠다면서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 대응을 강조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불법 집단행동에 대해 엄정히 대응하지 않고 민생, 물류, 산업의 어려움을 방치한다면 경제위기 극복이 불가능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번 업무개시명령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 이후 시멘트 출고량이 평소보다 90∼95% 감소했고, 시멘트 운송 차질과 레미콘 생산 중단으로 전국 대부분의 건설 현장에서 공사가 중단될 것으로 우려했다. 가뜩이나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어 있는데 파업으로 공기가 지연되면 건설원가와 금융비용이 늘어나 건설업 위기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 부재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화물연대가 연간 두 차례나 파업하고 업무개시명령이라는 초유의 조치가 나올 때까지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나.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는 화물연대의 파업은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데 정부는 그간 어떤 대책을 마련했는가. 매번 화주(貨主) 대신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그걸로 정부 역할을 다한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태원 참사에 보이지 않던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에도 잘 보이지 않았다.

 

화물연대를 비롯한 노동계와 야권은 강력히 반발했다. 화물연대는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계엄령에 견주면서 반(反)헌법적 명령에 응하지 않을 것이며 강력한 투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노동계가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면서 파업 사태가 장기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부가 대화 창구를 열어두는 등 상황을 잘 관리해야 한다. 정부는 화물연대의 화물차 출입로 봉쇄나 비조합원 운송 방해 행위, 업무개시명령 불이행 같은 불법은 엄단하되, 파업 자체를 불법으로만 몰아가는 무리수는 피해야 한다. 노조원에게 운송 거부를 강요하거나 다른 사업자의 운송을 방해하는 행위가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없는지를 비롯해 정부는 법 위반 행위를 엄밀히 골라내 원칙대로 대응하길 바란다. 그게 이 정부가 강조하는 법과 원칙에 맞는다.

중앙일보 사설

 

11.30 불가피한 업무개시명령, 노동·연금·교육 개혁도 좌우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유관기관 장관 등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화물연대 운송 거부 관련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희근 경찰청장, 방문규 국무조정실장,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추 부총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 /뉴스1

 

정부가 29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화물연대의 총파업과 관련해 사상 첫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윤 대통령은 “물류 중단으로 산업 기반이 초토화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삶과 국가 경제를 볼모로 삼는 것은 어떠한 명분도, 정당성도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임기 중에 노사 법치주의를 확실하게 세울 것이며 불법과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업무개시명령을 1차 위반하면 자격정지 30일, 2차 위반의 경우엔 자격 취소를 할 수 있다. 이 제도는 2003년 노무현 정부가 화물연대 파업을 겪은 후 더 이상은 안 되겠다며 만든 것이다. 당시도 1차 파업에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양보했다가 8월 2차 파업을 당한 이후에야 단호하게 대처했고, 그러자 운송 거부 차주들이 복귀를 시작했다. 윤 정부의 원칙 대처는 늦었지만 불가피한 길이다.

 

업무개시명령은 2004년 법 시행 후 처음 실시되는 것이다. 전례가 없는 만큼 정부가 치밀하게 접근해야 한다. 1차 우편 송달, 2차 공시 송달 등 단계마다 적법 절차를 정확히 밟아야 한다. 지자체와의 오차 없는 협동 작업이 필요하다. 허점을 보였다가는 불필요하고 지리한 법적 공방으로 실효는 거두지 못하고 혼란만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은 민노총 지휘 아래 산하 공공 노조들이 일제히 동원된 연쇄 파업으로 정부의 대응 능력을 시험해보는 것이다. 화물연대 파업이 주력 부대 역할이다. 지하철과 철도도 파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번에 이들에게 또 양보할 경우 5년 내내 민노총에 끌려다니게 될 가능성이 크다. 업무개시명령으로 인해 화물연대 파업이 극한 투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노조 불법 폭력 파업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국민과 기업이 두려워하지 말고 인내심으로 견뎌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하는 노동 개혁, 연금 개혁, 교육 개혁에서도 매번 기득권 집단의 반대와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에서 정부가 미숙하고 허약한 모습을 보이면 5년 동안 아무런 개혁도 못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11월 30일노사 법치’ 중대 기로… 정부와 국민 의지에 성패 달렸다

 화물연대의 운송 거부에 맞선 윤석열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 발동은 단순한 화물차 파업 차원을 넘어 중대한 국가적 의미를 갖는다. 그동안 역대 정부는 물론 기업과 사회 각계도 강성·기득권 노조의 무소불위 횡포에 휘둘렸는데, 이번 조치는 잘못된 노·사 관행을 바로잡을 첫걸음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화물연대의 상급 단체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연쇄 파업 방침을 밝힌 뒤 착착 실행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최악 요인이 노조 강경투쟁과 노동 경직성이라는 점은 누누이 제기됐다. 노사 관계의 법치주의만 바로 세우더라도 대한민국이 4차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선, 정부의 결연한 의지가 중요하다. 윤 대통령은 29일 국무회의에서 시멘트 수송차(BCT)에 대한 업무개시 명령을 확정하면서 “임기 중 노사 법치주의를 확고하게 세울 것이며 불법과는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30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미복귀자에 대한 법적 제재 방침을 분명히 했다. 노무현 정부 때 개정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은 1차 불응 시 30일 운행정지, 2차 불응 땐 면허취소를 규정하고 있다. 여론이나 온정에 휘둘리지 말고 한 치의 오차 없이 집행해 법치의 엄중함을 보여야 할 시점이다.

화물연대는 업무개시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가처분 신청 얘기도 나온다. 명령서 수령을 회피하라는 식의 지침을 내린 것으로도 전해졌다. 차주들이 개인 사업자들이어서 명령서 전달이 간단하지 않고,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도 예상된다. 그러나 국토교통부 등 관련 기관이 협력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방해 행위에 대해선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엄단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단호한 의지다. 서울교통공사 노조가 30일 파업에 돌입하고, 전국철도노동조합도 2일 파업에 나설 예정이어서 지하철과 철도를 이용하는 국민 불편도 예상된다. 유조차 기사의 집단 운송거부로 휘발유 공급도 차질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정부는 국민에게 실상을 정확히 알려야 한다. 필요하면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이해를 구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정부와 국민의 이런 의지 여부가 노사 법치주의 확립의 성패를 결정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