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토리26/ 알쓸신세 5/ 2018 중앙일보
◆05.03 히틀러에 맞춘 스페인의 시간…표준시에 숨은 정치학
▲북한은 오는 5월5일부터 한국 표준시에 시간을 '통일'하기로 했다. 지난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 당일 평화의집 1층 접견실에 걸려 있던 서울과 평양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 [사진 청와대]
북한이 오는 5일부터 현재의 표준시인 '평양시간'을 한국의 표준시와 맞춥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하는 한국 표준시에 ‘통일’하는 것이지요. 서로 다른 시간대(time zone)를 썼던 남과 북은 지난 4월27일 열린 남북 정상회담의 시작 시간도 각각 오전 9시30분(남), 오전 9시(북)로 달랐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다시 만난다면 그땐 서울과 평양이 같은 시간으로 보도할 것입니다.
북한이 평양시를 도입한 것은 2015년 8월15일. 당시 북한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우리나라의 표준시간까지 빼앗았다”며 광복 70주년을 맞아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하는 평양시를 채택한다고 밝혔습니다. 불과 3년 만에 평양시를 포기하게 된 것은 남북한 화합을 도모하는 차원 뿐 아니라 실생활의 불편을 해소하려는 이유도 있어 보입니다. 대부분의 나라가 시간 단위로 시차가 달라지는 상황에서 30분을 끼워 넣어 계산하려면 아무래도 번거롭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30분 시차를 쓰는 나라가 의외로 많습니다. 심지어 네팔은 이웃 나라 인도와 시차가 15분 차이가 납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요.
알고 보면 쓸모 있는 신기한 세계뉴스-알쓸신세가 세계 표준시에 숨은 정치경제학을 파헤쳐 드립니다.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의 대형 시계가 센강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안쪽에서 찍은 사진. 이 시계는 기차역을 개조한 오르세 미술관의 역사를 드러내는 상징물이다. [사진 위키미디어]
철도 여행 활발해진 19세기에 첫 도입
세계 시간의 기준점은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입니다. 천문항해술 연구의 목적으로 찰스 2세가 1675년 런던 교외의 그리니치에 설립했지요. 지금은 몇 만 분의 1초까지 다투는 시대이지만, 농경사회 때만 해도 일상에서 시간 개념은 엄격하지 않았습니다. 시간 관리 필요성이 커진 것은 철도가 놓이고 선박 여행이 활발해진 19세기 이후입니다. 제국주의 국가들로선 동서양에 걸친 광활한 식민지 관리의 필요성도 반영됐을 겁니다.
1884년 미국 워싱턴 국제회의는 그리니치 천문대를 본초자오선으로 하는 그리니치 표준시(Greenwich Mean Time) 즉 GMT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경도 15도마다 1시간씩 시차가 생깁니다. GMT는 1972년부터 협정세계시(Universal Time Coordinated, UTC)라는 공식 용어로 대체되긴 했지만 여전히 통용됩니다. 한국의 표준시는 UTC+09:00, 즉 그리니치 시간보다 9시간 앞섭니다. 북한은 2015년부터 우리보다 30분 늦은 평양시(UTC+08:30)를 써오다 이번에 한국 시간과 다시 맞추게 됐습니다.
지구상에 수많은 나라가 있지만 모두가 경도 15도 기준으로 국경선이 나뉘는 건 아닙니다. 그럼에도 대다수는 국제 기준에 따라 시간 단위로 끊어지는 표준시를 채택합니다. 그런데 평양시처럼 30분 시차를 둔 나라가 있습니다. 이란·아프가니스탄·미얀마·인도·스리랑카 등입니다. 예컨대 인도는 UTC+05:30입니다. 특이하게도 바로 옆 나라 네팔은 UTC+5:45입니다. 인도는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하면서 30분 엇박자를 뒀고, 네팔 왕국은 접경국가 인도에 예속되기 싫어서 인도보다 15분 빠른 표준시를 채택했다고 알려집니다.
반미주의자 차베스, 30분 차이 '삐딱 선' 타
표준시가 국제 정치와 얽힌 또 다른 사례는 베네수엘라입니다. 2007년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국민에게 보다 많은 ‘적절한’ 자연채광 시간을 준다는 명분으로 표준시간대를 30분 늦췄습니다. 실제로는 완강한 반미주의자인 차베스가 제국주의자들이 마련한 국제기준을 거부해 ‘삐딱 선’을 탄 것으로 풀이됩니다. 베네수엘라는 지난 2016년 ‘전력난 해소’를 명분으로 다시 표준시를 30분 앞당겨 현재는 UTC+04:00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스페인의 시간이 가장 ‘정치적’입니다. 원래 스페인은 옆나라 포르투갈처럼 영국과 같은 시간대(UTC+0, 서머타임 땐 +1)를 썼습니다. 하지만 1940년 2차 대전 중에 나치 독일과 작전 협력을 위해 같은 시간대(UTC+1, 서머타임 땐 +2)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픽을 보면 아시겠지만 스페인의 시간대는 같은 경도상의 영국을 비껴나 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 등과 같은 기형적 형태입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2013년 스페인 의회는 표준시를 1시간 늦추는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특히 카탈루냐 자치정부가 적극적이었습니다. 프랑코 장군의 독재(1939~75) 치하에서 극심하게 탄압 당했던 카탈루냐는 “히틀러의 동맹이었던 독재자 프랑코가 우리를 나치 시간대에 놓았다”며 원래대로 돌아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카탈루냐의 시간대 개혁 자문위원회장 파비안 모헤다노는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특히 깨어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는 단지 시간대 변경이 아니라 지난 50년간 생활습관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시간대가 바뀌면 스페인 특유의 ‘시에스타’(낮잠)는 어떻게 되느냐 등 논의가 분분하다가 이후 카탈루냐 자치독립 등 다른 정치 이슈들이 불거지면서 시간대 전환 문제는 쑥 들어간 상황입니다.
표준시 원조국 영국도 변경 추진
심지어 표준시 원조국 영국도 시간대 전환을 검토했습니다. 대부분의 유럽 대륙 국가들과 1시간 시차가 나는데 그게 여러 경제·일상 활동에서 불편을 준다는 이유죠.
2011년 보수당 연립정부는 '신(新) 관광전략'을 발표하면서 `이중서머타임(일광절약시간)제' 도입을 공론화했습니다. 이중서머타임제란 현행 시간대를 유럽과 1시간 격차 그대로 유지하되 서머타임 기간에만 시계의 시침을 두 시간 앞당기는 방안입니다. 이와 함께 아예 1년 내내 시간대를 1시간 앞으로 당기는 방안도 검토했습니다.
추진자들은 아침엔 더 일찍 일어나야 하지만 활동시간 대에 해가 길어져 근로시간과 야외활동에 편리를 준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제 활성화와 건강 증진 등의 효과가 있고 난방비도 절약된다는 거죠. 무엇보다 관광객이 몰리는 여름에 주요 유럽국과 시간대가 같아져 혼란과 낭비가 없다는 점에서 관련 업계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북쪽 지방인 스코틀랜드는 시큰둥했습니다. 안 그래도 겨울철 출근시간이 어둑어둑한데 지금보다 더 일찍 나서야 하면 교통사고 및 어린이 안전사고 위험성이 커진다는 겁니다. 반대론자들은 또 해가 길어지는 게 결국 노동시간이 늘어나는 데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했습니다.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이중서머타임제는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이탈)가 가시화되면서 없던 일이 됐습니다.
▲스페인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대표작 '기억의 지속'(1931)을 형상화한 청동 조각이 2007년 영국 런던 템즈강변 국회의사당 빅벤을 배경으로 서 있다. 스페인과 영국은 1940년 전까진 같은 표준시(GMT)를 썼다.
표준시는 정부의 통치행위라는 관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크라이나(UTC+02:00)에 속했던 크림반도는 2014년 3월17일 “오는 30일부터 모스크바(UTC+03:00) 표준시를 채택한다”고 발표합니다. 전날 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률로 러시아 합병안이 통과된 직후죠. 3월18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의회에서 크림자치공화국의 러시아 병합을 선포합니다. 서방 등 국제사회가 맹렬히 규탄했지만 지금도 크림반도의 시간은 모스크바와 함께 흘러갑니다.
크림반도 병합되자 모스크바 시간대로
러시아는 동서 길이가 9000㎞에 이릅니다. 가장 서쪽의 모스크바 시간대와 극동 마가단 주의 시간대는 9시간 차이가 납니다. 그나마 11시간 시차였던 걸 2010년 9개 시간대로 줄인 겁니다. 미국도 총 9개의 공식 시간대가 있는데 알라스카와 하와이를 제외한 북미 내륙은 대체로 4개 시간대에 속합니다.
반면 중국이나 인도는 광활한 영토에 단 한 개의 시간대를 사용합니다. 중국의 경우 1912년 중화민국 성립 당시엔 5개의 시간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49년 공산당 정부가 성립하면서 베이징 단일시간대(UTC+08:00)로 통일됐습니다. 시차를 인정하면 분열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정치논리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인도도 하나의 시간대(UTC+5:30)를 씁니다. 이러다보니 북동쪽 아삼 주 같은 경우 농작물 재배에 적합한 ‘가든 타임’이 표준시와 맞지 않다며 시간대 변환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나아가 인도 전체가 표준시를 30분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UTC+6으로 변경할 경우 시간당 20억㎾의 전기 절약 효과가 있다는 2012년 연구도 있습니다.
인도처럼 요즘 시간대 변환은 경제적인 이유가 큽니다. 남태평양 사모아는 2011년 12월 30일 하루를 영원히 없애버림으로써 표준시를 1일 앞당겼습니다. 덕분에 지구상에서 ‘해가 가장 늦게 지는 나라’에서 ‘가장 먼저 아침을 맞는 나라’가 돼 관광상품도 바뀌었습니다. 북한이 표준시를 한국과 맞추는 게 북·일 수교를 염두에 두고 경제적 편익을 고려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글로벌 정치와 경제에서 앞으로 흐르기도, 거꾸로 흐르기도 하는 게 시간입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05.06 "멜라니아, 새 역사 썼다"…美 영부인 불륜스캔들 수난사
"그들은 결혼 롤 모델"…파경 직전까지 가도 이혼 않는 미국 대통령부부
“우익의 거대한 음모(vast right-wing conspiracy)다.”
남편이 27살 어린 인턴 직원과 외도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 태연할 여자가 있을까요.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과 아내 힐러리 클린턴의 얘기입니다. 까무러칠 상황에서 힐러리가 택한 건 정면돌파였습니다.
▲백악관 전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데일리메일 캡처]
1998년 1월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이 터지고 일주일 뒤 미 NBC ‘투데이 쇼’에 나와 힐러리가 한 말은 "그를 믿는다”였습니다. 누군가가 꾸며낸 악의적 스캔들이라며 남편을 옹호하고 나선 건데요.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힐러리가 클린턴을 “전폭적으로 방어(a full-throated defense)했다”고 썼습니다.
▲1998년 곤경에 빠진 클린턴을 바라보는 아내 힐러리의 모습. 이 사진은 1999년 퓰리처상 보도사진상을 수상했다. [퓰리처상위원회]
클린턴의 거짓말은 물론 오래가지 못했죠. 그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 백악관 집무실 등에서 수차례 성관계를 가졌단 걸 결국 알게 된 힐러리는 그때 느낀 배신감과 분노 그 이상의 감정을 훗날 회고록 ‘살아있는 역사(living history)’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숨을 쉴 수 없었다. 목을 비틀어 죽이고 싶었다.(I wanted to wring Bill’s neck)”.
전직 포르노 배우(예명 스토미 대니얼스)와 낯 뜨거운 불륜 스캔들에 휩싸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아내 멜라니아 트럼프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둘 뿐일까요. 은밀한 사생활 때문에 불화를 겪은 전직 대통령 부부는 더 있는데요.
'알고 보면 쓸모 있는 신기한 세계뉴스-알쓸신세'에서 '퍼스트커플'의 수난사(?)를 들여다보겠습니다.
계속되는 불화설 트럼프…부친 덕에 파경 면한 케네디?
2년 전 대통령선거 직전 음담패설 녹취록 파문이 일 때만 해도 멜라니아는 CNN에 “남자들끼리 하는 농담(boy talk)”이라며 “더럽고 못된 말을 하도록 부추김 당했다(egged on)”고 트럼프를 적극 두둔했는데요. 당시 트럼프가 성추문 곤경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데는 이런 멜라니아의 비호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음담패설 파문 관련 멜라니아 트럼프 인터뷰. [유튜브]
하지만 이제 멜라니아는 등을 돌린 듯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각종 스킨십 소동도 트럼프 대통령 부부의 불화설에 불을 지폈는데요. 트럼프가 손이라도 잡을라치면 멜라니아가 그의 손을 민망하게 뿌리치는 듯한 모습이죠. 어쩌면 트럼프 대통령의 위기는 이제부터 시작인지 모릅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처럼 달라진 멜라니아의 태도에 대해 “둘(트럼프와 멜라니아)의 관계가 수년간 떠들썩했지만, (스토미) 대니얼스만큼 그들을 흔들어 놓은 사례는 거의 없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부적절한 관계를 입막음하는 조건으로 1억원 넘는 돈을 건넸다는 의혹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던 트럼프는 최근 “선거 자금은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지급 사실조차 몰랐다던 그가 사실상 자기 돈으로 줬음을 시인한 셈입니다.
그런가 하면 멜라니아가 롤모델로 꼽은 재클린 케네디도 남편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35대)의 여성편력에 속앓이를 했는데요.
▲재클린 케네디 여사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중앙포토]
스트리퍼부터 비서, 스튜어디스까지 케네디의 여자는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재클린을 가장 거슬리게 한 인물은 단연 마릴린 먼로였습니다.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먼로는 언제라도 대중 앞에 나서 자신과 케네디 대통령 관계를 폭로하고 재클린을 조롱거리로 만들 수 있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다는 거죠.
그도 그럴 것이 먼로는 재클린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케네디와의 관계를 말하는가 하면 친구들에게 자신을 퍼스트레이디로 봐달라고 할 정도로 위협적(?)이었습니다.
마릴린 먼로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45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부른 노래. [유튜브]
두 부부는 시아버지인 조지프 케네디 때문에 가까스로 파경을 면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아들의 성공에 매달렸던 그가 당시 거금인 100만 달러(약 11억원)를 재클린에게 쥐여주며 이혼을 말렸다는 건데요. 재클린은 만약 케네디가 성병에라도 걸려 오면 결혼 유지 비용이 2000만 달러(약 215억원)로 오를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단 얘기까지 있습니다.
케네디가 강박적으로 여성에 집착한 건 병치레와 부친의 외도 등 어릴 적 겪은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아내 비서부터 친구 아내까지…퍼스트레이디가 불화설 원인 되기도
미국 유일의 4선 대통령을 지낸 프랭클린 루즈벨트(32대), 그는 여행가방에 들어 있던 편지 꾸러미 때문에 외도 행각이 발각됩니다. 그와 은밀히 연서를 주고받은 여인은 다름 아닌 아내 엘리너 루즈벨트의 비서였습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연인 루시 머서에게 쓴 편지. [뉴욕타임스 캡처]
그는 엘리너의 요구대로 비서 루시 머서와 즉각 헤어지고 다시는 아내와 한 침대에서 자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후에야 형식적인 결혼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남편에 대한 배신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엘리너는 결국 AP통신 여기자였던 로리나 히콕과 동성애에 빠지게 됐다는 설도 있네요. 엘리너가 쓴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로맨틱한(?) 문구도 많습니다.
“자기를 감싸 안고 싶어, 꼭 안아주고 싶어 죽겠어. (I want to put my arms around you, I ache to hold you close.)”
▲엘리너 루스벨트 여사(오른쪽)와 로리나 히콕. [데일리 메일 캡처]
36대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 소파에서 여비서와 성관계를 가졌는데 부인 레이디 버드 존슨에게 들키자 경호원들에게 버럭 화를 냈다고 하죠. 이후 대통령이 은밀한 시간을 즐길 때 영부인이 근처에 오면 이 사실을 알리도록 경호원 업무가 추가됐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링컨 전 대통령(16대)은 ‘헬캣’(성격 고약한 여자)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만큼 까칠한 아내 매리 토드 링컨 때문에 괴로운 결혼생활을 했던 거로 알려집니다.
▲매리 토드 링컨. [워싱턴포스트 캡처]
그는 남편의 모든 점이 마음에 안 든다며 비난을 퍼부었는데요, 링컨 얼굴에 물건을 던지는 등의 과격한 행동까지 일삼았고 미국이 남북전쟁을 겪는 동안 각종 사치품에 돈을 썼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그의 비정상적 행동들은 유전적 병 때문에 비롯됐을 수 있었다는 의학적 소견이 나오기도 했죠.
퍼스트커플이 롤 모델…멜라니아에는 “새 역사 쓰고 있다”
미국에서 대통령 부부의 스캔들이 유독 관심을 받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상징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인데요. 칼럼니스트 로빈 아브카리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퍼스트커플은 국가의 결혼(생활) 롤 모델이다. 우리는 그들이 별개의 침실을 쓰는지엔 별 상관 하지 않지만, 그들이 서로 존경과 애정을 보여주길(demonstrate) 기대한다.”
이는 대통령 부부가 ‘행복한 가정’을 연출하는 일종의 정치적 쇼를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과도 맞물립니다. 힐러리는 클린턴이 르윈스키 스캔들을 인정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온 가족이 화목하게 휴가를 떠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로이터=연합뉴스]
이혼 경력이 대선 승패를 가를 정도로 패밀리 밸류(family value)가 강조되는 미국 사회의 특성과도 무관치 않습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당선 당시 역대 대통령을 통틀어 유일한 이혼 경력자였는데 그는 이혼을 ‘당한’ 거라 당선이 가능했단 설도 있죠.
미국 사회는 특히 퍼스트레이디에겐 어떤 상황에서도 대통령 곁을 지키며 지원군이 될 것을 강요해온 측면이 있습니다. 힐러리가 초인적 인내로 견딘 것도 이 같은 영향이 있었을 겁니다.
워싱턴포스트(WP)의 헬레인 올렌은 “백악관 밖의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더 이상 여성이 그들 남편의 부속품이 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결혼한 여성이 자신의 삶과 커리어를 갖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면서 “하지만 백악관은 여전히 1950년대”라고 말합니다.
“퍼스트레이디가 단지 남편 곁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남편을 위해 자신이 하던 일을 모두 멈추길 기대한다(put her life on hold for him)”는 게 올렌의 지적입니다.
▲멜라니아 트럼프. [AP=연합뉴스]
다행인지 최근 들어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에는 “룰북(rulebook·규칙서)이 없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습니다. 성 고정관념에 따른 특정 역할을 더 이상 요구하지 말자는 거죠.
이전 영부인들과 달리 두문불출하면서도 '조용한 저항(quiet rebellion)'을 하는 멜라니아가 퍼스트레이디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05.07 트럼프의 '힘을 통한 평화'...노벨평화상 받을까
“로켓맨(김정은)과 평화를 이루다니 나는 정말이지 영리하다. 핵 버튼을 눌러 화염과 분노로 (북한을) 쓸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와 협상했다”
워싱턴포스트(WP)가 예측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가상 노벨상 수상 연설입니다.
▲2월 2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연설 전 미소를 짓고 있다. [EPA=연합뉴스]
최근 미국 정치인들이 트럼프를 노벨평화상 후보에 추천해 화제죠. 공화당의 루크 메서 하원은 17명의 의원들과 함께 추천서에 서명을 했고 이를 2일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에 발송했는데요. 트럼프의 ‘힘을 통한 평화’ 정책이 잘 작동하고 있고 이것이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고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입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올해는 아닙니다.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은 매년 1월31일까지로 그 기한이 정해져 있죠. 그 이후에 들어온 추천은 대부분 다음 해로 넘어가게 됩니다. 때문에 트럼프의 수상 여부는 2019년까지 북·미 정상회담과 북핵문제가 어떻게 진전될 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지켜봐야 할 문제라는 것이죠.
한편 시기를 떠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리틀 로켓맨'이라 조롱하고 한때는 '화염과 분노'를 거론해 전쟁의 공포를 일으킨 트럼프가 노벨평화상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미 공화당의 루크 메서 하원을 비롯한 의원 18명이 트럼프 대통령을 노벨평화상에 추천했다. [EPA=연합뉴스]
후보 추천만으로도 많은 말을 낳고 있는 트럼프. 그의 수상소감을 우리는 들을 수 있을까요?
[알고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세계뉴스 - 알쓸신세]는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과 트럼프를 비교해 보고 노벨평화상에 관한 재미있는 사실들도 알아보겠습니다.
너무 다른 캐릭터, 알고보면 비슷한 정책...오바마와 트럼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200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입니다. 대부분의 언론에 긍정적인 이미지로 나타난 오바마와 분노를 아낌없이 표현해온 트럼프.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진 두 지도자가 모두 노벨상을 탈 지 여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죠.
그러나 언론에 보여지는 인상과 달리 대북정책에 있어서 기본 골격은 비슷하다는 분석도 많습니다. 오바마의 대북정책은 한 마디로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로 표현됩니다.
▲언론에 긍정적 이미지를 표출해 온 버락 오바마(왼쪽)와 '화염과 분노'로 대변되는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두 사람의 소통방식은 완전히 다르지만 대북정책은 비슷하다는 평가도 많다. [중앙포토]
전문가들은 5가지 점에서 오바마와 트럼프의 정책이 비슷하다고 밝혔는데요.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그 요소로 ▶북한 김정은 정권과 북핵·미사일 개발을 지원하는 국가들에 대한 압박 ▶대북 군사적 준비와 능력의 강화 ▶미사일 방어능력의 증강 ▶대북 협상 가능성 타진 ▶북핵 포기 시까지 협상거부를 들었습니다.
요약해보면 북한의 핵개발을 돕는 국가에게는 불이익을 주지만 만약 북한이 핵포기 카드를 들고 나온다면 대화의 문도 열어뒀다는 의미죠.
다만 트럼프는 전략적 인내의 기본 골격은 유지하면서도 여차하면 이를 실행에 옮기겠다는 신호를 매우 적극적으로 표현했습니다.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나도 핵버튼을 갖고 있고 김정은의 것보다 훨씬 크고 강력하다"며 "내 버튼은 작동한다"고 강조한 바 있죠. 때문에 그가 ‘예방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북한보다 더 크고 실제 작동하기도 하는 핵단추가 있다’고 해 큰 파문을 일으킨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또 2017년에만 4번에 걸친 유엔안보리 결의안을 통해 경제제재를 현실화 했고 결의안을 위반한 선박과 운송, 무역회사들을 꼼꼼히 잡아내 제재 명단에 포함시켰습니다. 특히 중국과 북한의 무역 고리를 끊기 위해 올초에는 북한과 인접한 단둥지방의 중국기업에 대해 대대적인 제재조치를 취하기도 했죠.
이러한 실행가능성이 차이를 낳았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는 실질적으로 북핵문제를 '방치'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게다가 취임한 지 10개월 만에 상을 받아 '성과없는 수상자'라는 비판도 함께 받았죠.
하지만 트럼프는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습니다. 오바마와 비교해 대북문제에서 만큼은 가시적인 성과를 낼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겁니다.
"말은 부드럽게 하되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다녀라"...1906년의 트럼프, 시어도어 루즈벨트
트럼프와 비슷한 캐릭터를 갖고도 노벨평화상을 받은 미국 대통령은 또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죠. 둥글둥글한 외모와 '테디'라는 별명 때문에 그를 매우 유순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루즈벨트 역시 노벨평화상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습니다.
“말은 부드럽게 하되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다녀라”는 그의 신조가 성격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WP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본 드렐은 칼럼을 통해 루즈벨트와 트럼프가 닮은 꼴이라고 평했습니다. 그는 "막무가내에, 부유하고, 자화자찬이 심한 뉴욕 출신 공화당 대통령"이란 점에서 둘을 비슷한 지도자라고 주장했죠.
루즈벨트는 외교적으로 약소국에 대한 제국주의 노선을 고수해 '전쟁광(war-monger)'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베네수엘라 문제, 카리브해 문제에 개입하는 등 남아메리카의 여러 정부에 압력을 넣기도 했죠. 외교문제에서 국력을 과시하는 면모는 트럼프와 닮은 꼴입니다.
이런 그가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러일전쟁을 중재한 공로로 19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당시 스웨덴 언론은 "알프레드 노벨이 무덤에서 돌아눕겠다"며 비꼬기도 했었죠.
▲러일전쟁 종료를 위해서 영국 포츠머스에서 개최된 평화회담.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인정하는 것으로 끝났으며,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런 '국제평화'를 이끈 공로로 190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우리나라를 제물로 삼은 국제평화였다. [사진제공=미국 국립문서보관소]
그러나 노벨평화상 위원회는 그가 러일전쟁을 중재해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을 이룬 점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만큼 한반도 문제는 당시에도 중대한 사안이었습니다. 한반도의 지배를 놓고 청일전쟁, 러일전쟁이 연속으로 일어났으니까요. 지금도 그때도 한반도 안보는 곧 태평양 지역의 역내 안보와 직결된 사안이었습니다.
루즈벨트 역시 처음에는 지금의 트럼프처럼 '화염과 분노'로 일본을 공격할 작정이었으나 일본이 청나라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하는 것을 보고 일본을 부담스럽게 여기게 됐죠. 포츠머스 회담과 이에 앞서 체결된 '태프트-가쓰라' 밀약으로 인해 미국은 일본이 조선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도록 인정하게 됐습니다.
이후 적어도 일시적으로 한반도를 차지하기 위한 주변국 간의 전쟁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에 반드시 항구적이고 실질적인 평화, 그리고 고귀한 인격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조선인들의 수많은 희생은 철저하게 간과됐습니다.
중재자 공로 '나중에'...캠프데이비드의 기억
트럼프가 '힘을 통한 평화' 정책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중재했지만 그 공로를 당장은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갈등 당사국을 대통령 별장에 불러 화해시키고도 자신은 뒤늦게 노벨상을 받아야만 했던 트럼프의 전임자가 있기 때문이죠. ‘캠프데이비드 협정’으로 유명한 제 39대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입니다.
▲캠프데이비드 협정
1978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두 명이었습니다. 한 명은 무하마드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었고 다른 한 명은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였습니다. 1948년부터 30년이나 이어진 중동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했다는 이유에서였죠.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감정의 골을 생각해보면 두 사람의 만남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1973년 이스라엘을 선제공격해 4차 중동전쟁을 시작한 장본인이 바로 사다트였기 때문입니다. 사다트는 1973년 10월 6일 이스라엘의 종교 축제일인 '사죄의 날(욤키푸르)'을 노려 75만 병력과 3200대의 탱크 등 이집트 군 전력을 총동원해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개전 이틀만에 이스라엘 17개 여단이 전멸했죠. 앞서 1~3차 중동 전쟁에선 이집트가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런 갈등이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는 취임 직후부터 중동 평화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카터는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로 사다트와 베긴을 초대해 9월 5일부터 17일까지 장장 13일에 걸쳐 회담을 진행했습니다. 거의 2주 간이나 회담이 길어진 것은 그만큼 양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했기 때문이었죠. 카터는 애초에 두 지도자의 성격차가 큰 것을 인지했고 국무부와 중앙정보국(CIA)에게 지시해 두 사람의 심리 분석까지 준비했습니다. 또 양쪽과 개별 협상을 통해 조문을 만들고 최종 서명 순간까지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캠프데이비드 회담[지미 카터 도서관]
그 결과 이집트는 아랍연맹에서 처음으로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한 국가가 됐고 1979년 워싱턴 D.C.에서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공식적으로 평화 협정을 체결하게 됐죠. 베긴 이스라엘 총리는 협상이 끝난 조인식에서 “캠프 데이비드 회담은 지미 카터 회담으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노력에도 그 해의 노벨평화상은 사다트와 베긴에게 돌아갔습니다. 노벨평화상은 받지 못했지만 퇴임 이후에도 카터는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결국 2002년이 되어서야 그간의 공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반도 문제와 핵폐기...노벨 평화상의 '바로미터'
노벨 평화상 위원회가 한반도 문제를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카터가 2002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도 한반도 문제를 중재한 공을 인정받아서였죠. 그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불거진 1차 북핵위기 때 김일성을 직접 만나 협상했습니다. 부인인 로잘린 카터와 함께 휴전선을 넘었고 결국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1994년 체결된 제네바 협약은 1차 북핵위기를 끝내는 데 기여했습니다.
당시 북한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 라며 위협하고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핵시설을 공습하라는 명령을 검토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습니다. 또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도 북한과의 화해 협력을 위한 노력으로 대한민국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죠.
다른 하나는 핵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수상자들을 종합해보면 비핵화에 힘을 쓴 개인과 단체들이 유독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년에는 핵무기 폐기 국제 운동(ICAN)이, 1995년에는 아인슈타인과 함께 핵폐기 운동을 전개한 조지프 로트블랫과 그가 세운 퍼그워시회가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이 외에도 "핵무기를 만들지도, 갖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라는 비핵 3원칙을 주장하며 핵무기 비확산 조약에 참여한 사토 에이사쿠 전 일본총리가 1974년에, 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IPPNW)도 1985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죠.
노벨평화상 위원회의 한반도 문제와 핵문제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감안할 때 트럼프가 추진하고 있는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가 가시화 된다면 그의 2019년 노벨평화상 수상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입니다.
알프레드 노벨은 자신이 발명한 폭약이 전쟁에 쓰이는 것이 안타까워 평화상을 만들었다고 하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는 폭약공장이 평화회의보다 먼저 전쟁을 끝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며 힘의 균형에 의한 평화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힘을 통한 평화’를 추구하는 트럼프와 노벨의 속마음은 어쩌면 조금은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평가기준 주관적인 노벨평화상...히틀러, 스탈린 추천되기도
노벨평화상 후보를 추천할 수 있는 사람은 각국 정부 관료, 국회의원, 대학교수, 과거 노벨평화상 수상자, 전·현직 노벨위원회 위원이면 가능합니다. 추천 대상에 있어 제약은 딱히 없죠. 때문에 황당한 후보들이 추천된 적도 있습니다.
1939년 스웨덴의 한 의원은 히틀러를 후보로 추천했다가 얼마 뒤 '웃자고 한 일'이라며 편지를 보내 자신의 추천을 거둬들였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무솔리니와 스탈린과 같은 독재자들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적이 있죠. 한국의 전두환 전 대통령도 1988년 3월, 유럽의회 의원들에 의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적이 있습니다. 재임기간 중 있었던 아웅산 묘역 테러사건과 KAL기 폭파사건 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세계평화에 큰 공을 세웠지만 수상자가 되지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무려 5차례나 후보로 추천됐지만 한 번도 수상 하지 못한채 1948년 암살되고 말았습니다. 그해 노벨위원회는 “아무도 살아있는 후보 가운데 적절한 대상이 없다”며 그를 기렸고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얀헬멧'으로 잘 알려져 있는 시리아 민방위대는 2016년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지만 아쉽게 마누엘 산토스 콜럼비아 대통령에게 상을 양보해야 했습니다. 라에드 살레흐 대장은 "우리에겐 인명구조가 가장 중요한 상"이라며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05.09 LA에 오스카가 있다면, 뉴욕엔 메트 갈라가 있다
지난 7일(현지시간) 올해도 어김없이 화려한 레드카펫 사진이 뉴욕타임스(NYT)·CNN·BBC 등 외신을 도배했습니다. 매년 5월 첫 번째 주 월요일 미국 뉴욕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리는 ‘메트 갈라(Met Gala)’입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모금 행사 ‘메트 갈라’
매체들은 셀럽이 박물관 계단에 깔린 레드카펫에 선 현장을 생중계하고, 사진을 수백장씩 내보냅니다. 더구나 셀럽들은 ‘예술’을 입었다고 할 정도로 눈부시게 화려하고 극적인 드레스 차림이죠.
눈을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림’이 흥미롭긴 한데, 대체 메트 갈라의 레드카펫은 무엇을 위해 깔린 걸까요? 영화제나 시상식처럼 상을 주고받는 이벤트도 아닌데 말이죠.
그래서 [알고보면 쓸모 있는 신기한 세계뉴스]에서 알려드립니다.
매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화려한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 맞먹는다며 ‘동부의 오스카’라 불리는 메트 갈라가 어떤 행사인지 말입니다.
▲지난 7일 열린 메트 갈라에 참석한 리아나. '천상의 몸: 패션과 가톨릭의 상상력'이라는 주제에 맞춰 주교관 같은 모자를 쓰고 등장했다. 그가 입은 가운은 마르지엘라가 디자인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129억원 모금…박물관의 현금인출기
메트 갈라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의상연구소(Costume Institute)가 기금 조성을 위해 여는 모금 행사입니다. 그해 의상연구소가 개최하는 전시의 오프닝을 알리는 홍보 행사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메트 갈라 참석자들은 전시 주제에 따라 의상을 입어야 하죠.
올해의 주제는 ‘천상의 몸:패션과 가톨릭의 상상력(Heavenly Bodies: Fashion and the Catholic Imagination)’입니다. 같은 제목의 전시가 오는 10일부터 10월 8일까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리고요.
주제에 맞춰 셀럽들은 종교적 상상력을 동원해 관을 쓰거나 베일을 두르고, 날개옷을 입은 채 레드카펫에 등장했습니다.
이 자리가 딱히 ‘누가누가 잘 입었나’ 경쟁하는 자리는 아닙니다만, 주제가 주어진 만큼 누가 가장 잘 소화했는지 해마다 평가가 이뤄집니다.
올해의 베스트드레서는 최근 수년간 ‘메트 갈라의 여왕’으로 불렸던 팝스타 리아나였는데요, 조명에 반짝이는 보석이 촘촘히 박힌 은빛 의상으로 온몸을 감싼 그는 교황이 의식을 치를 때 쓰는 주교관처럼 생긴 모자를 쓰고 나타났습니다.
리아나를 보는 순간 ‘가톨릭의 상상력’이라는 주제를 단박에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바자 등 패션지들은 “진짜 교황 같다”고 평가했죠.
▲7일 뉴욕에서 열린 메트 갈라에 날개가 달린 베르사체 의상을 입고 등장한 케이티 페리. [AP=연합뉴스]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2018 메트 갈라'가 열렸다. 올해 주제인 '천상의 몸:패션과 가톨릭적 상상력'에 맞춰 다양한 헤어 액세서리를 착용한 셀럽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비욘세의 동생이자 가수인 솔란지 놀즈, 배우 다이앤 크루거, 가수 자넬 모네, 배우 릴리 콜린스, 모델 로지 헌팅턴 휘틀리, 배우 올리비아 문. [UPI=연합뉴스]
이처럼 메트 갈라는 패션이 중심이 되는 행사입니다. 하지만 잘 차려입고 사진이나 찍자고 모이는 건 아니고, 핵심은 돈입니다.
티켓을 판매해 의상연구소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행사입니다. 올해 티켓 가격은 1인당 3만 달러(약 3300만원), 테이블 가격은 27만 5000달러(약 3억원)였습니다.
표를 팔아 번 돈은 모두 의상연구소로 갑니다. 전시기획 등에 필요한 예산으로 흡수되는 겁니다.
지난해의 경우 1200만 달러(약 129억 5000만원) 넘게 벌어 재원을 충당했죠. 메트 갈라가 ‘메트로폴리탄의 ATM(현금인출기)’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2015년 메트 갈라에 참석한 리아나. 당시 주제인 '거울을 통해 본 중국'에 맞게 황금색 의상으로 등장했다. [AP=연합뉴스]
▲2017년 메트 갈라의 주제였던 일본 디자이너 레이 카아쿠보의 드레스를 입은 리아나. 생존하는 디자이너를 주제로 삼은 건 처음이었다. [로이터=연합뉴스]
세계 제일의 박물관 중 하나인 메트로폴리탄이 예산·후원이 부족해 표를 파는 건 물론 아닙니다.
원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패션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1946년 별도로 존재하던 의상예술 박물관을 합병하고서야 박물관 내에 의상 연구소가 생긴 겁니다.
지금이야 당연히 패션을 예술의 한 분야로 여기지만 당시만 해도 패션은 예술인 듯, 예술이 아닌 애매한 분야였습니다.
박물관에서 변방의 존재인 패션으로 전시를 기획하려면 자금을 조달해야 했고, 그래서 1948년부터 메트 갈라를 열기 시작한 겁니다.
트럼프, 메트 갈라에서 멜라니아에 청혼
▲돌체 앤 가바나를 입고 2018 메트 갈라에 참석한 사라 제시카 파커. [AP=연합뉴스]
▲베르사체를 입은 블레이크 라이블리. [AP=연합뉴스]
▲장 폴 고티에를 입은 팝스타 마돈나. [로이터=연합뉴스]
▲베라 왕을 입을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 [로이터=연합뉴스]
70년 역사를 가졌지만 메트 갈라가 흥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1995년 ‘패션계의 교황’으로 불리는 미국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가 행사 위원장을 맡고 나서입니다.
그가 메트 갈라를 이끌면서, 뉴욕의 자선행사에 지나지 않았던 행사는 패션·영화·정치·경제계 등 각 분야를 망라한 셀럽이 모이는 궁극의 파티로 거듭났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퍼스트레이디인 멜라니아에게 프로포즈한 장소도 2004년 메트 갈라였다고 하고요.
당연히 메트 갈라 티켓은 가장 구하기 힘든 티켓 중 하나가 됐고, NYT에 따르면 대기 명단도 있다고 합니다.
다른 자선행사와 달리 메트 갈라는 초청장이 있어야만 참석할 수 있는데, 표값을 치른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이때 오늘날의 메트갈라를 만든 주인공, 윈투어의 막강한 영향력이 드러납니다.
참석 대상을 결정하는 자는 오직 윈투어뿐입니다. 홍보 차원에서 테이블을 통째로 구매한 기업이라도, 누가 앉을지 결정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반대로 전도유망한 신진 디자이너라면, 표값이 없어도 윈투어의 초청을 받아 참석할 수 있습니다.
▲7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메트 갈라에 참석한 미국 보그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오른쪽). 왼쪽은 윈투어의 딸인 비 샤퍼다. [AP=연합뉴스]
돈 줘도 못 사는 표…모든 결정은 안나 윈투어가
그럼 대중에게 공개되는 레드카펫 너머, 파티장 안은 어떤 모습일까요.
NYT 표현대로라면 “절대 비밀”입니다. 내부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것도 금지 사항입니다. 전해 들을 도리밖에 없다는 얘기죠.
그나마도 구체적이진 않습니다. ‘일단 전시를 둘러보고, 칵테일을 나눈 뒤 만찬이 이어진다. 공연도 곁들여진다’ 이 정도가 전부입니다.
이처럼 안팎을 철저히 나눈 정책이 메트 갈라의 주가를 올려줬을지 모른다고 NYT는 분석합니다.
플래시가 터지는 레드카펫은 완벽한 패션 홍보의 장, 내부는 아무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진정한 파티장.
메트 갈라야 말로 참석자와 구경꾼 모두가 행복한 궁극의 파티가 아닐 수 없다는 겁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05.28 물삼킬까 수영장도 닫는 라마단, 끝나면 최대쇼핑
16억 무슬림 한달간 금욕 수행 … 극단주의 테러로 빛 바래기도
▲이슬람교의 성월 기간인 라마단을 맞아 지난 25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터키문화원에서 준비한 이프타르(일몰 후 식사). 라마단 기간 무슬림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 물도 마시지 않는 금식을 수행하고 해가 진 뒤에 가족, 친지들과 음식을 푸짐하게 나눠먹는 풍습이 있다. 강혜란 기자
지금 세계 16억 무슬림들은 라마단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슬람 달력(히즈라력) 9월에 해당하는 라마단은 선지자 무함마드가 첫 번째 계시를 받은 달을 기리는 것으로 올해는 대략 5월 17일부터 6월 15일까지입니다(나라마다 하루 정도 차이 있음). 이 한달간 무슬림 대부분은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물도 마시지 않고 욕망을 억누르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수행을 합니다.
이 신성한 라마단이 최근 테러로 얼룩졌습니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에선 9살 딸까지 동원한 일가족 자폭테러가 라마단 시작 직전 벌어져 공포를 자아냈습니다. 중동에선 미국이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긴 날(5월14일)과 맞물리면서 팔레스타인의 시위가 격화하고 유혈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이 같은 테러나 폭력은 라마단의 정신과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잇따른 테러 때문에 해마다 이 기간 중동 및 이슬람권 아시아의 긴장은 고조돼 왔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라마단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알고 보면 쓸모 있는 신기한 세계뉴스-알쓸신세]가 라마단을 통해 드러나는 이슬람의 문화와 정치, 고민을 들려드립니다.
▲라마단 첫 금요일인 18일(현지시간)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무슬림들이 단체 기도를 하고 있다. '금식 성월'인 라마단 한달간 무슬림들은 해질 때까지 물을 포함한 일체의 음식을 금하고 욕망을 절제하며 이웃을 돌보는 의무를 진다. [AP=연합뉴스]
월드컵 출전 축구선수들 '달밤에 훈련'
동양문화권에 음력이 있듯, 이슬람 문화권에는 이슬람 달력 즉 히즈라력이 있습니다. 이슬람력도 1년은 12개월이지만 354일 또는 355일입니다. 라마단이 어떤 때는 겨울이고, 어떤 때는 여름이기도 한 이유입니다. 여름에 라마단을 맞으면 해가 길기 때문에 하루 중 금식해야 하는 시간도 길어집니다. 단 전쟁 중인 군인, 임신부나 환자, 15세 미만의 어린이, 장거리 여행객은 금식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원칙적으론 해질 때까지 물 마시는 것도, 껌 씹는 것도 안 되기 때문에 애로사항이 상당합니다. 월드컵을 앞둔 축구 선수들은 해가 진 뒤에야 ‘점심’을 먹고 달밤에 훈련한 뒤 자정께 ‘저녁’을 먹습니다. 때론 세속의 대의를 위해 종교적 결단을 하기도 합니다. 소말리아 출신으로 영국에 귀화한 장거리 육상 영웅 모하메드 파라(35)는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기간이 라마단과 겹치자 금식 의무를 미뤘습니다. 수분 보충이 장거리 선수에게 무척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파라는 “대회를 마친 뒤 못 다한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했고 당시 은메달을 땄습니다.
이란 등 일부 국가에선 이 기간 수영장 문도 닫습니다. 물을 삼킬 수 있어서라는 ‘썰'이 있습니다. 수영장만이 아니라 주요 관공서·학교도 일찍 닫고 일반 기업도 대부분 단축 근무합니다. 이 기간 이 지역에 출장이나 여행을 갈 경우 점심에 문 연 식당을 찾지 못해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외국인에 한해 제한된 장소에서 음주를 허용하는 국가라도 라마단 기간엔 술을 팔지 않고 음악 공연이나 노래방 영업도 할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고요한 낮, 거룩한 낮’이 한달간 이어집니다.
▲라마단 첫날인 17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의 무함마드 알아민 모스크에 달의 여러 모습을 형상화한 장식물이 빛을 발하고 있다. 이슬람력으로 9월에 해당하는 라마단 한달간 무슬림들은 금식, 금욕하며 수행에 집중한다. [EPA=연합뉴스]
해 지면 성대한 '이프타르'…사교 모임 활발
그렇다고 일상생활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해진 후엔 오히려 더 많이 먹습니다. 이 기간 무슬림들은 새벽 서너시쯤 일어나 해 뜨기 전 죽과 같은 음식을 간단히 먹습니다. 해지는 시각에 맞춰 저녁기도를 마친 뒤 대추야자 등으로 허기를 잠시 달랩니다. 이후 가족, 이웃, 친구를 초대해 성대한 저녁(이프타르)을 심야까지 먹습니다. 때문에 오히려 이런 풍습을 잘 활용하면 라마단 기간에 더 깊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무슬림들은 조언합니다.
금식과 이프타르는 라마단의 중요한 규칙인데 이를 ‘악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무슬림 권익단체인 미국이슬람관계위원회(CAIR)는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교정복합시설에서 무슬림 죄수들이 라마단 기간에 적절한 음식을 제공받고 있지 못하다고 법원에 소송을 냈습니다. 무슬림 죄수에게 금식 후 제공되는 식사 열량이 1100칼로리 정도로 성인 남성의 일일 섭취 권장량(2500칼로리)에 훨씬 못 미치는데다 식단에 돼지고기까지 들어있다는 겁니다.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이슬람교에서 이런 식사는 사실상 ‘폭식 시위’와 비슷한 모욕이지요. 이것이 자유로운 종교활동의 방해를 금지하는 수정헌법 1조 등을 위반했다며 CAIR이 소송을 내자 미 연방법원은 심리에 앞서 교정당국에 ‘부적절한 식사 제공’을 즉시 금하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라마단 의무는 금식만이 아닙니다. 라마단이 끝나면 무슬림은 ‘자카트’를 행합니다. 자카트란 이슬람 5대 의무 중 하나로 일 년에 한 번 자기 재산의 2.5% 이상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입니다. 현금으로 낼 수도 있고 가축·곡물·공산물로 대체할 수도 있습니다. 자카트의 수혜 대상은 코란에 명시돼 있는데, 고아와 가난한 자, 자선을 구하는 자, 자카트 모금에 헌신하는 자, 이슬람을 위해 일하는 자(이슬람 선교, 교육, 문화사업 종사자 등), 여행자, 노예, 죄수들입니다.
▲이슬람 성월 기간인 라마단을 맞아 21일(현지시간) UAE 두바이에서 무슬림들이 금식을 마친 뒤 저녁식사(이프타르)를 준비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터키 출신으로 온라인매체 ‘하베르 코레’ 편집장인 알파고 시나씨는 “한 달간 금식하다 보면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서 “라마단 이후에 자카트를 하는 것도 그런 심리가 반영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알파고는 다음달 라마단이 끝나면 터키 난민을 돕는 해외단체에 자산의 2.5%에 해당하는 현금을 송금할 거라고 합니다. 자산 계산은 본인이 알아서 한다고 합니다. 이 기간 집값이 올랐으면 오른 집값만큼 자카트 규모도 커지는 거지요.
이집트 '가자지구' 봉쇄 풀고 죄수 대사면
자카트에 담긴 자비심은 개인을 넘어 국가적으로 반영되기도 합니다. 라마단이 시작된 지난 17일 이집트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출입문을 여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습니다. 200만 인구가 살아가는 가자지구는 사방이 높이 8m, 길이 700㎞에 이르는 콘크리트 장벽으로 막혀 있습니다. 총 5개의 출입문 중 4개는 이스라엘이, 나머지 1개는 이집트가 관리하는데 이스라엘 쪽은 출입을 엄두내지 못할 정도로 통제되지요. 그런데 2013년 시나이반도 테러 이후엔 이집트 역시 무장정파 하마스 대원이 넘어오는 것을 막겠다며 이 출입문을 사실상 봉쇄했습니다. 그러다 이번 라마단 한달 내내 열어둔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라마단 첫 금요일인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무슬림들이 이슬람 성지인 알 아크사 모스크의 바위 사원(Dome of the Rock)에 모여 기도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이집트 대통령 압델 파타 엘시시는 트위터를 통해 “가자지구 형제들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국경을 개방한다”고 밝혔습니다. 사실상 ‘거대한 감옥’에 갇힌 채 생활해온 가자지구 주민들은 이번 조치 덕에 병원을 찾아가거나 친인척을 만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집트 언론에 따르면 엘시시 대통령은 ‘라마단 특별사면’으로 수백 명의 죄수도 풀어줄 거라고 합니다. 인내와 자비라는 라마단 정신을 발휘함으로써 무슬림들의 지지를 끌어내는 고도의 통치술인 거죠.
쇼핑몰 매출 급증…호화 관광상품도 인기
라마단은 또 이슬람권 최대 ‘대목’이기도 합니다. 라마단 기간엔 이프타르를 겨냥한 식료품 매출이 급등하고 집안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TV, 위성안테나, DVD 등 영상기기와 콘텐츠 수요가 치솟습니다. 부유층의 자선용 쇼핑도 확 늘어납니다. UAE, 카타르 등 부유한 국가에선 초호화 이프타르를 포함시킨 호텔 관광상품도 인기입니다.
라마단이 끝나도 쇼핑은 계속됩니다. 사흘 간 이슬람 명절(이드 울피트르)이 이어지기 때문이죠. 명절 첫째 날 무슬림들은 아침에 새옷으로 갈아입고 큰 이슬람 사원에 가서 예배를 올립니다. 그리고 친척과 친구들을 방문하고 선물을 교환합니다. 이를 겨냥한 의류·완구류 판촉이 치열합니다. 식당, 카페, 쇼핑몰들은 영업시간을 새벽까지 연장합니다. 라마단 종료 후 생활소비재 판매가 연매출의 30~40%에 이르고 가전제품 판매도 평균 20% 이상 증가할 정도입니다(코트라 2010년 8월 보고서 통계).
▲올해 라마단 첫 금요일인 18일(현지시간) 인도 하이데라바드의 모스크에서 한 무슬림이 기도하고 있다. '금식 성월'인 라마단 한달간 무슬림들은 해질 때까지 물을 포함한 일체의 음식을 금하고 욕망을 절제하며 이웃을 돌보는 의무를 진다. [AP=연합뉴스]
최근 들어선 라마단이 다른 이유로 서구 언론에 자주 오르내립니다. ‘피의 라마단’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 기간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가 급증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2014년 시리아내전을 틈타 정부 수립을 참칭한 이슬람국가(IS)가 ‘라마단 테러’를 조장해 왔습니다.
IS는 2014년 라마단 첫날인 6월29일을 ‘정교일치의 칼리파 국가를 수립한 날’이라고 선언했습니다. 해마다 라마단 개시 전에 지도자 혹은 대변인 육성의 ‘순교’ 메시지를 전하며 자살폭탄테러를 부추겼습니다. 2016년 라마단 기간엔 팔레스타인 난민촌과 예멘, 터키,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IS 추종자들의 잇단 테러로 300명 이상이 숨졌습니다.
'공포 효과' 노려 IS 테러 집중
이들은 왜 라마단 순교(테러)를 장려하는 것일까요. 굳이 문헌학적으로 기원을 찾는다면 선지자 무함마드가 라마단월에 메카를 정복했기 때문에 이를 이어받는 뜻에서 비이슬람에 대한 투쟁을 벌인다고 합니다. 선동가들은 이 때 순교하면 더 많은 축복을 받는다는 식으로 추종자를 꼬드깁니다.
실제로는 이 기간에 테러를 하면 공포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라마단 때 사람들이 예배 장소 등에 많이 모이고 서방 언론의 관심도 높아지는 걸 노리는 거죠. 금식 등의 이유로 치안이나 경계가 허술해지는 것도 배경일 겁니다.
하지만 이런 테러는 라마단의 근본 정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무슬림들은 입을 모읍니다. 오히려 폭력·화·시기·탐욕·중상 등을 삼가야 하는 시기라면서요.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터키문화원의 후세인 이잇트 원장은 “1년에 한달씩 라마단을 보내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이웃을 배려하는 것이 이슬람 사회를 안정·발전시켜온 원동력”이라고 말합니다.
한국에도 외국인 무슬림을 포함해 이슬람교 신자가 20만명을 헤아린다고 합니다. 이들이 라마단 기간 금식하고 수행하는 것을 존중하고 배려한다면 더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하는 느낌으로 라마단 인사를 건네보는 건 어떨까요. "라마단 카림" "라마단 무바라크"!
▲이슬람교의 성월 기간인 라마단을 맞아 지난 25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터키문화원에서 준비한 이프타르(일몰 후 식사). 라마단 기간 무슬림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 물도 마시지 않는 금식을 수행하고 해가 진 뒤에 가족, 친지들과 음식을 푸짐하게 나눠먹는 풍습이 있다. 강혜란 기자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07.08 해삼 잡고 멜론 서리 … 일본 야쿠자 어쩌다 좀도둑 전락했나
▲일본 최대 규모의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치구미 6대 조장(두목) 시노다 겐이치. [ 중앙포토 ]
“시대가 어려워지고 있다. 더이상 명성에만 의지할 수 없다.”
정부 단속에 보호비 뜯기 어려워져
생계 막막, 조직원 50년새 6분의1로
바다선 고속정 타며 해경과 추격전
수확 앞둔 농민들 순찰대 만들기도
2013년 7월 일본 야쿠자(조직폭력배) 전용 잡지인 ‘야마구치구미 신보’에 이런 내용의 글이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최대 규모의 야쿠자 조직 야마구치구미의 두목 시노다 겐이치였는데요. 전국 조직원들에게 뿌린 8쪽짜리 잡지에서 우두머리가 “야쿠자로 먹고사는 시대는 끝났다”는 위기의식을 드러낸 겁니다.
최근에는 야쿠자가 다소 ‘모양 빠지는’ 사건에 연루됐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돈에 쪼들려 멜론 서리에 나서고 해삼을 잡으러 다닌다는 건데 어째 야쿠자답지 않죠. 자금난 앞에선 이들도 별수 없는 걸까요.
야쿠자가 100년 넘게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세계 기업 부럽지 않은 규모의 수익이 한몫했다고 봐야 할 텐데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알고 보면 쓸모 있는 신기한 세계뉴스-알쓸신세]에서 야쿠자의 세계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지난 2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최근 일본에서 수확을 앞둔 농가가 야쿠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돈이 궁한 야쿠자들이 멜론이나 포도, 망고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겁니다. “멜론 100개를 훔쳐봤자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최대 30만엔(약 303만원)”이라는 데도 말이죠.
농민들의 노력도 눈물겹습니다. 좀도둑 야쿠자들을 감시하기 위해 순찰대까지 구성했다고 하니 말입니다.
바다에서는 칼 대신 스쿠버 장비로 무장한 야쿠자들이 고속 보트를 타고 나타나 해삼 잡기에 열을 올린다고 하네요. 어두운 밤이면 해상보안정과 야쿠자 간 추격전이 벌어지는 이유입니다. 야쿠자들은 해삼에서 각성제 성분을 추출한 뒤 나머지를 가공업체에 넘겨 부당이득을 취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워낙 빠른 속도로 도망치는 데다 잡히더라도 해삼을 바다로 던져 버려 증거물을 없애는 탓에 적발에 여간 애를 먹는 게 아닙니다. 영국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지난해 야마구치구미 두목은 60t의 해삼을 불법 포획해 1억엔(약 10억원)의 벌금을 부과받기도 했습니다.
50대 야쿠자 2명이 나고야시 슈퍼마켓에서 수박, 쌀, 장어 등 7만6000엔(약 77만원)어치의 물건을 훔치려다 지난해 붙잡힌 적도 있죠. 야마구치구미에서 떨어져 나온 고베 야마구치구미 소속이었는데요. 범행 동기는 “조직이 너무 빈곤하다. 음식을 훔칠 수밖에 없다” 였습니다. 홋카이도에서는 3대 야쿠자 조직인 스미요시카이 40대 간부를 포함한 3명이 연어 37마리와 연어 알 40㎏ 때문에 쇠고랑을 차는 일도 있었습니다.
야쿠자를 ‘총을 가진 골드만삭스’라 묘사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수조 원의 돈을 굴리며 일본뿐 아니라 미국의 금융시장까지 뒤흔들 정도로 세계의 큰손 행세를 했기 때문인데요.
▲일본 야쿠자 변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1989년 경찰이 추산한 야쿠자의 연매출은 오늘날 환율로 100억 달러(약 11조원)가 넘었습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에서 범죄 전문기자로 활동했던 제이크 아델스타인은 “도박에 능숙한 야쿠자에게 일본 주식 시장은 거대한 카지노와 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고 정부가 단속과 제재를 강화하며 위기가 닥칩니다. 2011년 일본 전역에서 시행된 폭력단배제조례는 큰 전환점이 되는데요. 야쿠자에게 이익을 제공하는 이를 처벌하는 내용을 담았는데 이 때문에 술집이나 음식점 등에서 보호비 명목의 돈을 뜯기 어려워졌고, 기업들도 거래를 거부하면서 행동반경이 좁아진 겁니다. 야쿠자 관계자는 은행 계좌를 신설하지 못하고 보험도 들 수 없습니다. 제프 킹스톤 미 템플대학 아시아 연구소 교수는 “일본 기업들이 ‘잃어버린 10년’의 결과로 겪은 어려움과 똑같은 감정을 지하세계가 느끼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상납금을 마련하지 못해 조직을 떠나는 이들은 해마다 늘고 젊은 층도 외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2016년 말 야쿠자 수는 1만8100명으로 집계됐는데요.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58년 이래 처음으로 2만명 이하로 떨어진 겁니다. 10만여명으로 정점을 찍었던 1963년과 비교하면 대폭 쪼그라든 셈이죠. 이제 야쿠자 세계는 일부 승자만이 생존하게 되는 일강 체제로 변했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실정입니다.
한때 100여명을 거느렸던 야쿠자 조직 호시가와구미의 두목은 지난해 “야쿠자로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라면서 조직 해산을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또 야쿠자 조직원 가운데 20대는 5%도 되지 않는 반면, 50대 이상은 10명 중 4명을 차지할 정도로 조직도 늙어버렸습니다.
야쿠자를 관둬도 현실은 냉혹합니다. 이른바 ‘5년 규칙’이라고 하는데 야쿠자를 이탈해도 5년 가량은 야쿠자 관계자로 여겨져 여러 제약이 따릅니다.
3년 전만 해도 야마구치구미 계열 조직에 몸담아 많게는 30명 이상의 부하들을 거느렸던 60대의 전 야쿠자 두목은 최근 일본의 저널리스트 이마니시 노리유키와의 인터뷰에서 “조직을 해산하고 나오니 이제는 ‘전 야쿠자’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닌다. 세상 풍파가 얼음장 같다”고 토로했는데요.
결국 불법 약물 매매에 손을 대는 등 하는 일은 야쿠자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사는 이들도 있다고 하네요.
야쿠자의 사회 복귀 지원 문제가 과제로 떠오르자 후쿠오카현은 야쿠자 출신을 고용하는 기업에 지원금을 준다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나쁜 짓을 해온 이들을 왜 지원해야 하냐”는 반발이 있는 게 현실입니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옛 명성은 사라진 지 오래, 야쿠자들의 수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07.24 “내가 죽으면 날 먹어도 좋아”…영화보다 극적인 ‘세기의 생존’
“기적인지 과학인지 뭐라고 말할 수 없다.”
우루과이 럭비팀 인육 먹으며 72일 버텨
우물 빠진 18개월 아기 58시간 만 구조
최근 태국에서 펼쳐진 각본 없는 드라마를 두고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깜깜한 동굴에 갇혔다 17일 만에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축구팀 소년 12명과 코치의 이야기인데요. 사흘간의 작전 끝에 임무를 완료한 태국 당국이 밝힌 소감이었습니다.
그만큼 보고도 믿기 어려운 얼떨떨한 순간이었다는 거겠죠. 과학이 동원된 기적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시계추를 돌려보면 이런 ‘세기의 생존’ 사례가 꽤 된다는 사실, 알고 계시는가요. 감동과 희망을 전파했던 순간들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볼까 하는데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를
[알고 보면 쓸모 있는 신기한 세계뉴스-알쓸신세]에서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내가 죽으면 나를 먹어도 좋다”
▲안데스 산맥 항공기 추락 사고 생존자들. [EPA=연합뉴스]
먼저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때는 1972년 10월, 불길하게도 이날은 ‘13일의 금요일’ 이었습니다. 우루과이 럭비팀 등 45명을 태운 비행기가 칠레에 도착하기 전 안데스 산맥을 넘다 추락했죠.
날개와 꼬리가 잘린 채 동체만 남은 비행기는 해발 약 4000m의 눈 덮인 산악지대에 고립됩니다. 영하 40도의 혹한에 공기마저 희박한 이곳에서 살아남은 33명의 처절한 생존투쟁이 시작됩니다. 구조 당국은 이들이 사망했을 것이라 판단하고 수색을 일찌감치 포기했죠. 시간이 지날수록 한 사람씩 쓰러져 최후의 생존자는 16명으로 줄었는데요. 죽음의 기로에 선 생존자들은 결국 극한의 선택까지 하게 됩니다. “눈 위에 있는 건 그냥 고깃덩어리야, 식량!” “난 안 할래. 차라리 죽겠어.” 논쟁 끝에 죽은 동료의 인육을 먹기로 한 건데요. 이들은 결국 “내가 죽으면 나를 먹어도 좋다”라는 말까지 하게 됩니다.
▲안데스 산맥에서 항공기 생존자들이 사망한 동료의 무덤에 흙을 뿌리는 모습.[AP=연합뉴스]
생존자 중 한명인 로베르토 카네사는 훗날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I had to survive)』란 제목의 회고록에서 “살기 위해 친구를 먹어야 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처럼 느껴졌지만 내 친구가 자신이 갖지 못한 생존 기회를 내게 주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는데요. 당시 교황청에서는 “생존을 위해 인육을 먹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발표하기도 했죠.
장장 72일간의 사투를 끝내고 이들이 구조의 빛을 볼 수 있었던 건 로베르토와 난도 파라도가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열흘간 걷고 또 걸어 산을 내려가면서입니다. 칠레 쪽 마을에 도착해 이들은 산속에 14명이 살아있음을 알렸고, 즉각 출동한 헬기가 나머지 동료들을 구해낸 겁니다.
영화 ‘얼라이브(Alive)’에서 로베르토 카네사와 난도 파라도가 구조 요청을 위해 산을 내려가는 장면. [유튜브]
당시 의대생이었던 로베르토는 현재 심장병 분야의 유명한 전문의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추락사고가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일깨워줬답니다. 이들의 꿈 같은 생존은 1993년 영화 ‘얼라이브(Alive)’로도 제작됐습니다.
전설의 33인, 희망을 쏘다
“Mucha fuerza(꿋꿋이 버텨라).”
태국 동굴 소년팀에 스페인어로 이런 메시지를 보낸 이가 있습니다. 마리오 세풀베다인데요. 그는 8년 전 칠레 산호세 광산에서 붕괴사고로 지하 700m(후에 구조 대기장소인 지하 622m 지점으로 이동)에 매몰됐다 생환한 33명의 광부 중 한 명입니다. 누구보다 소년들의 심경을 잘 알았겠죠.
▲지난 2010년 칠레 광산에 매몰됐다가 구출된 광부 마리오 세풀베다가 태국 동굴에 고립됐던 소년들과 코치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AFP=연합뉴스]
당시 칠레 정부가 추정한 광부들의 생존 가능성은 2%였습니다. 마리오도 “우리는 죽음의 대기실에 있었다. 차분히 죽음을 기다렸다”고 회고했었죠. 이들을 구조하는 작업은 “700m 거리에 있는 모기를 맞히려고 총을 쏘는 것 같았다”는 게 지질학자 마카레나 발데스의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구조대가 지하로 내려보낸 줄에 “피신처에 있는 33명 모두 괜찮다”란 쪽지가 딸려 옵니다. 매몰 17일 만이었죠. 칠레의 한 작가는 광부로부터 절반의 권리를 얻어 이 쪽지를 지적재산권으로 등록까지 했다고 하네요.
▲세바스찬 피녜라 전 칠레 대통령이 매몰된 광부들이 스페인어로 ’피신처에 있는 33명 모두 괜찮다“고 써서 지상으로 올려 보낸 쪽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광부들을 구하기 위해 단단한 암반을 뚫는 작업도 만만치 않았는데요. 칠레의 기술력으로는 구조까지 최소 넉 달 이상 걸릴 것이란 전망도 나왔었죠. 69일 만에 모두 탈출에 성공한 건 전 세계에서 최첨단 기술이 총동원된 결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광부들을 한 명씩 태우고 올라온 지름 54㎝, 높이 2.5m, 중량 250㎏의 구조 캡슐 ‘피닉스(불사조)’는 칠레 해군이 미 항공우주국(나사)의 도움을 받아 고안했다고 하죠. 땅속에 있는 생존자들에겐 나사가 개발한 특수 음식도 제공됐는데요.
일본 항공우주당국은 지하 습기에 강한 우주인용 속옷을 보냈다죠. 당국은 전화나 편지 등 통신수단으로 지하생활을 버틸 수 있게 애썼는데 한 광부는 이때 여자 친구로부터 프러포즈를 받기도 했답니다. 어둠에 익숙한 이들을 위해 구조작업은 밤중에 진행됐습니다.
무엇보다 긍정의 힘으로 상황을 이겨낸 광부들이 기적을 일군 주인공일 텐데요. 특히 작업반장 루이스 우르수아의 리더십에 전 세계가 찬사를 보냈죠. 태국 동굴에서 소년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 축구코치처럼 말입니다. 그의 지휘 하에 기록, 유머, 의학 담당이 생길 정도였는데요. 10인이 열흘간 먹을 식량으로 17일을 버틴 탓에 평균 8㎏씩 체중이 줄었지만요.
매몰된칠레광부들이구조되는장면. [PBS 뉴스아워]
매몰 광부 중 한 명은 볼리비아인이었는데 오랜 시간 사이가 안 좋았던 양국은 마음을 합해 돕다 관계를 회복했단 뒷얘기도 들립니다.
‘우주 미아’ 될 뻔한 3인의 생환 드라마
인류 최초로 달에 첫발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 못지않게 우주 탐사 역사상 길이 남을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1970년 4월 쏘아 올려진 미 우주선 아폴로 13호의 생환 이야기인데요.
▲무사 귀환한 아폴로 13호 승무원들. [사진 미 항공우주국(NASA)]
달에 근접했을 무렵 갑자기 우주선의 산소탱크가 터지죠. 우주 미아가 될 처지에 놓인 3명. 이때부터 달이 아닌 지구 귀환을 목표로 악전고투를 벌입니다.
“휴스턴, 문제가 생겼다.” 당시 텍사스 휴스턴의 나사 지상 관제본부에 선장 짐 러벨이 무전으로 전한 말은 미국에서 관용어로 쓰일 만큼 유명합니다. 산소와 전력 부족, 궤도 수정의 문제 등 여러 위기가 있었지만 “가장 심각한 건 이산화탄소가 쌓이는 것이었고, 그것은 우리를 죽일 수 있었다”는 게 짐 러벨의 말인데요. 이산화탄소를 걸러내기 위해선 직사각형의 깡통을 원형 장치에 끼워 넣어야 했는데 우주선에 있던 비닐봉지, 테이프, 양말, 골판지가 힘을 발휘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요.
▲비행사들의 양말, 테이프, 골판지 등을 이용해 만든 이산화탄소 제거 필터인 ‘메일 박스(Mail Box)’. [사진 미 항공우주국(NASA)]
지상 요원들은 이 도구만을 가지고 임시 에어 필터인 ‘메일 박스(Mail Box)’를 만들 수 있도록 우주인들에게 알려줬습니다. 이후에도 고비는 있었지만, 결국 우주선은 무사히 태평양 상에 떨어지게 되죠. 이 과정은 전부 생중계됐는데 영국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이를 숨죽여 본 시청자는 2860만명에 달했다고 하네요.
물웅덩이 빠졌다 구출된 두 살배기
▲7m 아래 우물에 빠졌던 제시카 맥클루어가 구조될 당시의 모습. [AP=연합뉴스]
1987년 10월 14일 미국 텍사스주 한 집의 뒷마당에서 놀던 18개월의 제시카 맥클루어는 지름 20㎝의 구멍에 빠져 약 7m 아래 작은 우물로 떨어졌는데요. 구출되기까지 58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제키사는 체중이 1.5㎏가량 빠졌다고 하죠.
“미국인 모두가 제시카의 대부, 대모였다.” 간절한 마음으로 텔레비전 앞을 지킨 국민을 상대로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서른을 넘겨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제시카는 정작 당시 기억이 없다고 하네요.
나이지리아 출신 20대 청년인 해리슨 오케네는 2013년 5월 대서양에서 선박이 전복돼 바다 밑에 갇혔지만, 에어포켓(선체 내 산소가 확보된 밀폐된 공간) 덕에 생존해 사흘 만에 구조됐죠. 탄산음료를 마시며 60시간을 버틴 것으로 전해집니다.
2013년 선박 전복 사고로 바다 밑에 갇혔던 유일한 생존자 나이지리아 출신 해리슨 오케네는 배 내부 에어포켓에서 60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유튜브]
영국 옥스퍼드대 임상심리학자인 제니퍼 와일드는 태국 동굴 소년들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게 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칠레 광부는 “광산의 기억이 불로 지진 듯 지워지지 않는다”며 많이 자도 4시간이면 눈을 떠 결국 수면제에 의지한다고 토로하기도 했었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들의 생환 스토리가 끝까지 해피엔딩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갈 길이 아직 남았다는 얘기일 겁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08.08 "점심 하시죠" 농반진반 트윗에 응한 독재자 에르도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최악 위협”이라던 에르도안, SNS로 젊은층과 소통 활발
최고령 지도자 말레이 총리도 셀카 올리는 등 적극적
국제적 트렌드가 된 ‘마초이즘(남성성 과시)’ 지도자로 거론되는 대표적 인물들입니다.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보인다는 이유에서죠. 이들을 묶는 또 다른 키워드가 있으니 바로 소셜미디어(SNS) 입니다.
최근 하버투르크 등 터키 언론은 “트위터에 트럼프가 있다면 페이스북에는 모디, 페리스코프(실시간 동영상 스트리밍 앱)에는 에르도안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영국 BBC에 따르면 트럼프는 하루 평균 7차례 이상 폭풍 트윗을 날릴 정도로 ‘트윗광’인데요. 이에 못지않게 모디 총리와 에르도안 대통령 역시 SNS에서 맹활약하고 있다는 겁니다.
“많은 나라의 리더들이 조간신문이나 저녁 뉴스가 아닌 트위터·페이스북에 빠진 세대에게 그들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분석도 같은 맥락일 텐데요.
이번 [알고 보면 쓸모 있는 신기한 세계뉴스-알쓸신세]에서는 스트롱맨의 SNS 정치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SNS 슈퍼스타, 나야 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앙카라에 있는 일디림 베야지트 대학교 기숙사에서 학생들과 사후르 식사를 하는 모습. [데일리 사바 캡처]
“친애하는 대통령님, 우리의 게스트가 되어 함께 사후르(라마단 금식 전 식사)를 할 수 있으신지요.”
터키 일디림 베야지트대학 치대생인 균골 아탁이 지난 5월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보낸 트윗입니다. 이 밑도 끝도 없는(?) 초청에 “(마실) 차가 준비되면 가지요.” 이런 트윗을 에르도안이 보냈는데요.
다음 트윗에는 그가 실제 학생들을 만나 사후르 식사를 하는 영상이 올라왔죠.
한 대학생의 농반진반 트윗에 대통령이 흔쾌히 응한 것인데요. 이례적인 모습은 큰 화제가 됐습니다. SNS가 사회에 “최악의 위협”이라 지적하던 에르도안인데 말이죠. ‘언론 탄압 독재자’라는 이미지를 쇄신하려는 노력인 걸까요.
이 소식을 전하면서 터키 일간 데일리 사바는 “에르도안은 SNS에서 가장 활발하고 영향력 있는 세계 지도자 중 한 명”이라며 “젊은 유권자의 마음을 끌기 위해 SNS를 활용해왔다”고 평가했습니다.
에르도안은 트위터의 생방송 앱인 페리스코프를 특히 애용한다고 하는데요. 최근엔 청년들과 기술을 주제로 한 미팅 현장을 터키어, 영어, 아랍어, 러시아어 등 4개국 언어로 실시간 중계하기도 했습니다. 페리스코프에서 그의 팔로워는 7만명을 넘어서는데, 세계 지도자들 가운데 ‘넘버 원’이라는 게 데일리 사바의 설명입니다. 시청자 수도 웬만하면 10만명을 거뜬히 넘는다고 합니다.
▲터키 정부과 관리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실시간 중계 홍보 영상 화면. [트위터 캡처]
사실 진정한 SNS의 달인은 따로 있는데요. ‘트위터 황제’ 트럼프도 페이스북에선 따라가지 못하는 인물이 있으니 모디 인도 총리입니다. 트위터 팔로워 순위로는 전 세계 정치 지도자 가운데 3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트위플로머시 2018), 페이스북에서는 가장 많은 추종자(약 4300만명)를 거느리고 있다고 하니 말입니다.
깨끗한 인도를 만들자는 ‘클린 인디아’ 캠페인을 위해 직접 빗자루를 들고 거리를 청소한 뒤 전후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 화제 몰이를 했죠. 2016년 취임 2주년을 기념해 처음 총리 공관에 90대의 어머니를 초대한 사진도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지난 2014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뉴델리에서 빗자루로 거리를 쓸며 ‘클린 인디아’를 몸소 실천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모디는 젊은 세대의 열망에 맞춰 ‘(IT) 기술에 능한 리더’로서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성공적으로 사용해왔다. 정치적 언급은 최소화하고 가벼운 인사나 애도 표현 등 일상적인 메시지를 주로 게시했다”는 게 조요지트 팔 미시간 인포메이션 스쿨 부교수의 설명입니다.
외교 무대에서도 SNS를 적극 이용했는데요.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 직후에는 트위터에 한국어로 축하 인사를 올리기도 했죠. 2015년에는 앙숙인 파키스탄을 방문해 나와즈 샤리프 총리를 만난다는 계획을 언론이 아닌 트위터로 깜짝 발표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장관 해고나 각국 정상회담 소식, 무역정책 등 메가톤급 이슈를 100자 내외 트위터로 알려왔듯 말입니다.
WSJ의 ‘어떻게 인도 나렌드라 모디가 소셜미디어의 슈퍼스타가 되었나’란 기사에 따르면 모디 총리에겐 청년 20명으로 구성된 전담팀이 따로 있어 그의 SNS 계정 관리에 도움을 준다고 하네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자신의 휴대폰으로 셀카를 찍고 있는 모습.[로이터=연합뉴스]
가짜 팔로워 논란이 일 정도로 페이스북 인기에 집착(?)하는 스트롱맨도 있습니다. 33년째 캄보디아를 통치해왔고 최근 또 집권 연장에 성공하면서 세계 최장수 지도자 자리를 넘보는 훈센 총리이죠. 그는 민생 행보뿐 아니라 휴가 기간 러닝셔츠 차림으로 해변에 있는 모습 등 사생활까지 일거수일투족을 거침없이 포스팅합니다. 그를 팔로잉하는 사람은 지난 4월에만 해도 캄보디아 20세 이상 인구와 맞먹는 975만명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100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그의 팔로워와 글에 달린 ‘좋아요’ 수치가 인도네시아 등의 ‘클릭 농장(click farm)’에서 구입한 가짜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를 페이스북 본사가 밝혀 달라며 지난 2월 미 캘리포니아주 법원에 소송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휴가 기간 해변가를 찾은 훈센 캄보디아 총리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페이스북 캡처]
세계에서 가장 고령의 지도자인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는 어떨까요. 15년 만의 재집권을 위해 이번 총선에서 10명 중 4명 가량을 차지하는 20~30대의 밀레니얼 세대로부터 지지를 얻는 게 필수적이었는데요. SNS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합니다. 총리의 트위터 계정 매니저인 사이예드 사디크 사이예드 압둘 라만은 “그저 입력만 도울 뿐, 총리가 모든 걸 다 한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지난해 12월에는 영화 ‘스타워즈:라스트 제다이’를 본 뒤 “다크포스와 싸울 영감을 얻으려면”이란 말과 함께 아내와 찍은 셀카를 올렸습니다. 특유의 재치로 젊은 감성을 드러내 보려는 흔적이 엿보이지 않나요. 게시물은 크게 바이럴 됐고, 8500건의 리트윗과 1만5000건의 ‘좋아요’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가 영화 ‘스타워즈:라스트 제다이’를 본 뒤 아내와 셀카를 찍어 SNS에 올린 사진. [트위터 캡처]
이를 두고 아디브 잘카플리 브라이언스 앤드 파트너스 애널리스트는 “그(마하티르)는 다시 태어났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독재자 마하티르’는 찾을 수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외에 필리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도 “소셜미디어의 힘으로 권력을 장악한 대통령”(CNN)이란 말이 따라붙는 인물입니다.
▲‘트위플로머시 2018’ 보고서에 따른 세계 지도자들의 트위터 팔로워 순위. [버슨마스텔러]
SNS가 외교 장외 전쟁터 되기도
SNS는 때로 치열한 외교전이 펼쳐지는 장외 무대가 되기도 합니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은 ‘브로맨스’를 연출해온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 선언을 했는데요. 당시 프랑스 외교부는 백악관이 게시한 트위터 영상에 “파리 협정을 떠나는 것은 미국과 세계에 좋지 않다”라는 입장을 밝혀 공개적으로 동맹국을 책망했고, 이는 1만9000건 이상 리트윗됐다고 합니다.
아이티, 엘살바도르 등 중미와 아프리카 국가들을 겨냥해 트럼프가 ‘거지소굴(shithole)’이라고 한 데 대해 해당국들은 "우리는 그런 모욕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트위터를 통해 표명하기도 했었죠.
디지털 외교가 중요해진 만큼 외교 당국도 SNS에 소홀히 할 수 없는 현실인데요. 실제 ’트위플로머시 2018’ 보고서에 따르면 유엔 193개 회원국 가운데 131개국의 외교 당국과 107명의 외무장관이 트위터 계정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영국 주재 러시아 대사관이 트위터 계정에 올린 게시물. [트위터 캡처]
앞서 영국에서 발생한 러시아 이중 스파이 독살 기도 사건 관련 외교관을 맞추방하는 식으로 양국의 갈등이 치달았을 때 러시아가 반격 창구로 활용한 것도 SNS였습니다. 영국 주재 러시아 대사관이 공식 트위터 계정에 얼음에 꽂힌 온도계 사진을 올리면서 “영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영하 23도로 떨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적었는데요. CNN은 당시 “러시아가 서방의 공격에 맞서 프로파간다용 조롱과 풍자를 (온라인상에) 쏟아내고 있다”고 썼습니다.
세바 구닛스카이 토론토대 정치학과 부교수는 “통치자는 체제의 안정성과 힘을 끌어올리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점점 많이 이용한다”며 “소셜미디어는 상대적으로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민심을 읽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지지자에게 효과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 담론의 윤곽을 형성하는 편리한 수단이라고도 덧붙였죠.
최근에는 SNS가 전 세계적 문제로 떠오른 가짜뉴스의 확산 통로로 지목돼 각국이 골머리를 앓는 상황입니다. SNS에 세금을 물린다거나(우간다) 가짜뉴스를 방치하는 소셜미디어 기업에 최고 650억원의 벌금을 물리기로 하는(독일) 등 말입니다. 영국에선 출처 식별을 위해 디지털 날인을 의무화한다고 발표했죠.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이라는 말이 SNS 정치에도 예외가 아니란 의미일 겁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08.27 트럼프와 푸틴은 그 결혼식에 갔을까 못 갔을까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참석한 어느 결혼식 사진이 세계인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오스트리아 남동부의 슬로베니아 접경 마을에서 열린 결혼식의 신부는 카린 크나이슬. 53세의 현직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이죠. 그가 사업가인 볼프강 메일링어와 웨딩 마치를 울리는 자리에 푸틴 대통령이 참석해 신부와 축하 댄스까지 춘 것은 매우 이례적인 나들이로 여겨졌습니다.
웨딩 하객의 정치외교학
▲지난 8월18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카린 크나이슬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의 결혼식에 참석해 신부 크나이슬 장관과 축하댄스를 추고 있다.[AP=연합뉴스]
‘조문 외교’라는 말에 비해 ‘하객 외교’란 말은 흔치 않습니다. 일단 현직에서 결혼하는 정치·외교인이 흔치도 않고 아무리 유명인이라도 장례식에 비해 결혼식은 훨씬 가족적이고 친밀한 행사로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최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당시 현직)의 자녀 결혼식에 여야 정치인이 집결한 것처럼 이따금 공개되는 정치인 가족의 결혼식은 화제와 메시지를 낳기도 합니다.
[알쓸신세-알고 보면 쓸모 있는 신기한 세계뉴스]가 웨딩 게스트의 정치&외교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오바마도 트럼프도 로얄 웨딩 초청 못 받아
지난 4월 영국 왕실 사무를 담당하는 켄싱턴궁 대변인은 “다음달 열리는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결혼식에 정치인은 일절 초대되지 않는다”고 발표했습니다. 굳이 이렇게 못 박아 밝힌 이유는 결혼식을 둘러싼 한가지 루머 때문이었습니다. 해리 왕자가 ‘절친’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초청하고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은 제외할 거라는 루머였죠.
해리 왕자는 2014년 열린 첫 번째 상이군인 올림픽 ‘인터빅스 게임’에서 이를 후원한 오바마와 친해진 뒤 우정을 이어왔습니다. 반면 트럼프와는 개인 친분이 없어 굳이 결혼식까지 부를 이유가 없었죠. 게다가 신부인 마클이 해리와 만나기 전 평범한(?) 배우였을 때 TV 인터뷰에서 트럼프 당시 대선 후보를 가리켜 “여성을 혐오한다”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의 눈이 쏠리는 ‘로얄 웨딩’에 오바마만 부르는 건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왕실은 테리사 메이 총리 등 자국 정치인도 일절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5월19일(현지시간) 열린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세기의 결혼식엔 왕실 방침에 따라 정치인은 일절 초대되지 않았다. [AP=연합뉴스]
사실 영국 왕실은 그 전에 결혼식 하객 초청 여부를 놓고 곤욕을 치른 바 있습니다. 2011년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 때 보수당 출신 총리였던 존 메이저와 마거릿 대처는 초청장을 받은 반면 노동당 출신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은 초청받지 않아 차별 논란이 벌어졌거든요. 당시 왕실 측은 메이저 전 총리가 초청된 것은 총리 자격이 아니라 다이애나 왕세자비 사후 윌리엄 및 해리 왕자의 후견인으로 지명됐던 인연이었다고 설명했지만 노동당의 불만을 잠재우진 못했습니다.
앞서 1981년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결혼식 당시에는 해럴드 맥밀런, 앨릭 더글러스-홈, 해럴드 윌슨, 에드워드 히스, 제임스 캘러헌 등 전 총리들이 모두 초청받았다고 합니다. 물론 이에 대해 왕실 측은 “왕세자 결혼식과 왕세손 결혼식의 의전이 같을 순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럼에도 언론에선 “블레어의 부인 셰리 여사가 왕실 인사들에게 무릎을 굽혀 절하는 것을 거부한 것 등 때문에 왕실이 블레어나 브라운 전 총리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다이애나비 스토킹하듯 구애"
트럼프 본인이 해리 왕자 결혼식에 초대되길 원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와 영국 왕실 사이에 숨겨진 ‘악연’이 영국 선데이타임스를 통해 보도된 바 있습니다. 고 다이애나비와 친분이 있던 영국의 유명 방송진행자 셀리나 스콧에 따르면 다이애나비가 찰스 왕세자와 결별한 뒤 트럼프로부터 스토킹에 가까운 구애 공세를 받았다고 합니다. “트럼프가 하나에 수백 파운드씩 하는 꽃다발을 융단폭격하듯 켄싱턴궁(다이애나비의 거처)에 보냈다”는 거죠. 꽃과 난초가 쌓이자 다이애나비가 “소름이 끼친다”면서 대책을 묻기도 했는데 스콧은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조언했다고 합니다.
▲고(故)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 [중앙포토]
이게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트럼프가 다이애나비에 대해 호감을 가졌던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트럼프는 1997년 발간한 자서전 『거래의 기술』에서 "여성과 관련해 단 한 가지 후회가 있다면 다이애나 스펜서와 연애를 해보지 못한 것이다. 다이애나비는 매력이 넘쳐흘러 그 존재만으로도 방을 환하게 밝히는 진정한 공주였다"고 썼습니다.
아베 총리까지 동반해 결혼식 깜짝 등장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생면부지의 사람들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하기도 했다는 것, 아시나요.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후인 지난해 6월10일(현지시간) 뉴저지주 베드민스터 골프클럽에서 열린 한 결혼식의 피로연에 불쑥 나타났습니다. 깜짝 놀란 하객들이 트럼프를 에워싸고 "U.S.A."를 연호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과 기념 사진도 찍었습니다. 일부 지지자 하객들에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가 적힌 트럼프 빨간 모자를 선물하기도 했답니다.
그가 이 결혼식에 나타난 건 베드민스터 골프클럽이 자신의 소유이기 때문이었죠. 트럼프는 종종 베드민스터에서 주말을 보내는데 대통령 취임 전에도 ‘클럽 오너’로서 일반인의 결혼식에 쇼하듯 등장하곤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 결혼식장 홍보 브로셔에는 한 때 “트럼프가 기회가 되면 당신의 경사에 참석할 수 있다”는 안내문구까지 있었는데 이제는 이 문구가 삭제됐다고 하네요.
▲2017년 6월 자신이 소유한 뉴저지주 베드민스터 골프클럽에서 열린 일반인의 결혼식 피로연에 깜짝 나타나 흥겨운 시간을 보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인스타그램]
트럼프는 앞서 취임 직후인 지난해 2월 자신의 소유인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결혼식에도 깜짝 참석했습니다. 신부의 부모가 오랜 동안 마라라고 클럽 회원인데다 트럼프에게 거액의 정치후원금도 보낸 지지자라는군요. 그런데 혼자 간 게 아니라 당시 마라라고를 방문 중이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였습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마이크를 잡고 인사말을 통해 "오늘 (마라라고 리조트) 잔디밭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그들을 봤고, 그래서 내가 아베 총리에게 '신조, 같이 가서 인사합시다'라고 제안했다"며 피로연 참석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다만 이날은 공교롭게도 북한이 트럼프 취임 후 첫 미사일 발사 도발을 한 날이었습니다. 미·일 정상의 만찬 도중 들려온 발사 소식에 양국 안보 관계자들이 자국 정상에게 다가가 사태를 긴급 보고 하는 등 긴장감이 일었죠. 트럼프와 아베는 이 만찬장에서 북한 미사일 규탄 회견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소 한가하게 결혼식 피로연을 나란히 찾아간 사실을 두고 미국 언론이 비판적으로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2017년 2월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한 후원자 자녀의 결혼식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인스타그램]
▲2017년 2월 자신이 소유한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일반인의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해 다른 하객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인스타그램]
왕실 혹은 정치인의 결혼식은 공개적으로 치러질 경우 그 자체가 국민들에게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기도 합니다. 지난해 1월 네팔의 비디아 데비 반다리 대통령의 차녀 결혼식이 그러합니다.
네팔 전 국왕의 8년 만의 '외출'
당시 결혼식엔 2008년 왕위에서 축출되고 평민으로 격하된 갸넨드라 전 국왕이 참석해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수도 카트만두의 나라얀히티 왕궁을 떠나 칩거하며 살아온 갸넨드라 전 국왕이 정부 요직 인사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비춘 건 무려 8년 만이었습니다. 전직 군주로서 품위를 잃지 않은 채 갸넨드라는 새로 결혼한 커플과 반다리 대통령을 축하했다고 합니다.
갸넨드라는 2001년 왕세자의 총격으로 비렌드라 국왕 부처를 비롯한 왕실 일가족이 몰살당한 ‘피의 만찬’ 이후 왕위를 승계해 네팔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폭정에 항거한 마오이스트 반군과 이들을 지지하는 민주화 시위에 무릎을 꿇고 권력을 선출직 공화국 정부에 이양했습니다. 그런 이후 껄끄러울 수밖에 없던 집권당 관계자들과 전 국왕이 대통령 혈육의 결혼식을 통해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인 겁니다. 네팔 현지에선 국민의 지지를 잃어가고 있는 집권 여당(CPN-UML)이 국민들의 왕정에 대한 향수를 끌어들이려 한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이런 정치적 분석은 이번 푸틴 대통령의 오스트리아 외무장관 결혼식 참석에서 더욱 극명해집니다. 푸틴과 크나이슬 장관 사이에 어떤 개인적 친분이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푸틴이 지난 6월 오스트리아를 방문했을 때 크나이슬 장관이 그를 결혼식에 초대했다고 합니다. 푸틴은 이 초청을 받아들인 이유로 신랑인 메일링어가 “유도 선수 출신”이라며 “이것이 우리를 하나로 만든다”고 말했답니다. 스포츠광인 푸틴은 국제유도연맹(IJF)이 인정한 유도 8단이기도 합니다.
▲지난 8월18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카린 크나이슬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의 결혼식에 참석해 신랑 신부의 답례 인사말을 듣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푸틴, 슈뢰더-김소연 결혼식에도 참석?!
그럼에도 이례적으로 다른 나라 장관 결혼식까지 참석한 것을 두고 정치적 해석이 나옵니다.
무엇보다 크나이슬 장관이 오스트리아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극우 자유당 소속으로서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관계 강화에 공을 들여왔다는 점에서 단순히 개인적 초청으로 볼 수 없다는 거죠. 오스트리아 야권에서는 중립국으로서 위상을 저해시킨 행위라며 크나이슬 장관을 성토하고 나섰습니다. 러시아 내에서도 비판 여론이 나오자 푸틴은 “(결혼식은) 흥겨운 행사이긴 했지만 크나이슬 장관,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와 '사업 얘기'를 할 기회이기도 했다”면서 놀러간 게 아니라는 취지로 강조했다는군요.
그런데 ‘결혼식 하객’ 푸틴을 어쩌면 올 가을에 다시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10월 5일 한국인 김소연씨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푸틴과 워낙 친밀한 관계란 건 널리 알려져 있는데요, 러시아 언론이 최근 “푸틴이 슈뢰더 전 총리의 결혼식 축하연에 참석할 수도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사실 트럼프 정부 들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방위금 분담 문제 등으로 미국와 유럽 관계가 껄끄럽고, 이 와중에 독일과 러시아가 에너지 문제 등으로 부쩍 친밀한 모습을 보이는 중이라 푸틴의 나들이는 또 다른 정치적 해석을 부를 듯 합니다. 이에 대해 크렘린(대통령궁) 측은 "현재로선 아무 정보가 없다. 아무 결정도 내려진 게 없다"고 밝혔습니다. 혹시 푸틴 대통령이 결혼식에 참석하면 신부 김소연씨와도 축하 댄스를 추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