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5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조선일보
2021.10.15
[161] 공산당의 ‘정리정돈’
고요한 상태를 뒤흔드는 기상(氣象)의 요소는 여럿이지만 중국의 인문적 관념에서는 ‘바람’이 먼저 꼽힐 때가 많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바람 잦아들고, 물결 잠잠해지는 상황(風平浪靜)’을 매우 선호한다.
우리도 자주 쓰는 단어 광란(狂瀾)은 그 반대다. 모든 것을 휩쓸어가는 ‘미친 물결’이다. 이런 물이 도지면 곧 커다란 재난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거센 물을 잡아 잠잠한 상태로 되돌리다(力挽狂瀾)”라는 말도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드넓은 땅에 아주 다양한 사람이 섞여 있는 곳이 중국이다. 한 차례 난리가 벌어지면 되돌리기 어려운 구조여서 ‘안정’을 바라는 심리가 크게 발달했다. 따라서 이미 번진 혼란 상태를 마감하려는 의지도 그만큼 강하다.
그래서 ‘정돈(整頓)’이라는 단어가 돋보인다. 흐트러진 상태 등을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정치적 용어로 쓰일 때가 퍽 많다. 개혁·개방 뒤 잠시 혼란해졌던 상황을 정리하자며 썼던 구호 ‘치리정돈(治理整頓)’이 대표적이다.
무엇인가를 가지런히 바로잡는 경우가 ‘정(整)’이다. 그에 비해 ‘돈(頓)’은 고개를 조아리는 행위, 거기서 더 나아가 ‘내려앉다’의 새김까지 얻었다. 그래서 두 글자를 엮으면 ‘바로잡아 제자리에 놓다’라는 뜻이다.
중국 공산당이 정치적 맥락에서 쓰는 이 단어의 실제 말뜻은 훨씬 매섭다. 제 명령에 따르지 않는 대상을 ‘정리(整理)’ ‘정숙(整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분위기 뜯어고친다는 정풍(整風), 아예 제거하는 숙청(肅淸)도 비슷한 단어다.
잘나가던 민간 기업, 인기 연예인, 자산가가 요즘 줄줄이 그 대상에 오른다. 그동안 쌓인 문제를 종합적으로 ‘정돈’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그에 너무 골몰하면 전체 기세가 푹 꺾이는 ‘돈좌(頓挫)’라는 상황도 부른다. 공산당은 이 경우도 걱정해야 할 처지다.
[162] 짜이젠과 굿바이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에게/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곧 나거든 나인가도 여기소서.’ 조선시대 홍랑(洪娘)의 작품이다. 관기(官妓)였던 그녀가 최경창이라는 벼슬아치와 헤어진 뒤 보낸 시조다.
그 스토리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왜 하필 버들일까. 중국 민간 습속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오래전부터 그곳에서 펼쳐진 이별 마당의 풍경이다. 헤어져 멀리 가는 이에게 버들가지 꺾어 건네던 ‘절류(折柳)’다.
버드나무를 가리키는 류(柳)라는 글자가 ‘머물다’라는 뜻의 류(留)와 발음이 같아 그로써 석별의 정을 표현했다는 풀이가 대세다. 하지만 정설(定說)이라기에는 부족하다. 중요 경전인 ‘시경(詩經)’에 이별 정서를 드러내는 데 버드나무가 등장하며 유래했다는 해석도 있다.
좋은 이와 헤어짐은 늘 섭섭하다. 맞잡았던 손을 거둬들이는 분수(分手), 옷소매가 서로 떨어지는 분몌(分袂), 옷깃이 갈리는 분금(分襟) 등이 다 그 경우다.
먼 길 떠나는 이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 ‘조(祖)’의 조합도 있다. 배웅하는 제례 조송(祖送), 밥 자리까지 차리는 조전(祖餞)과 조연(祖筵), 그때 치는 장막 조장(祖帳) 등이다. 그 인문적 토대에서 나온 현대 중국어의 대표적 표현이 “짜이젠”이다. 우리말 “안녕”, 영어 “굿바이”, 일본어 “사요나라”에 해당한다.
뜻은 “다시 만나자(再見)”다. 한·미·일의 이별 언어에 비해 다시 만나자고 강조하는 점이 사뭇 돋보인다. 언젠가 만날 해후(邂逅)를 기대하는 심리다. 그 나름대로 상황을 관리하며 후일을 도모하려는 실리적 시선도 엿보인다.
요즘 중국을 떠나는 외국 기업이 늘고 있다. 이제껏 있었던 개방적 분위기가 돌변한 점이 큰 이유라고 한다. 그들이 중국을 떠나면서 “짜이젠”이라 말할지 궁금하다. 그저 헤어지고 말자는 정도의 “굿바이”일까 아닐까.
[163] 군중<群衆>과 우중<愚衆>
통치자와 백성의 관계를 언급한 유명한 말이 있다. 임금을 배, 백성을 물에 비유한 내용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 있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水能載舟, 亦能覆舟)”는 발언이다. 전국시대 사상가 순자(荀子)의 말이다.
만리장성(萬里長城) 등 중국인이 쌓기 좋아하는 담을 두고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백성은 함께 담을 쌓는 존재지만 때로는 그 담을 무너뜨린다. 우선 “여러 사람의 뜻으로 성을 쌓다(衆志成城)”라는 성어가 있다. 함께 담을 쌓는 백성의 사례다.
그러나 담이 흔들릴 때 아예 밀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담 무너지려 하자 여러 사람이 떼밀다(墻倒衆人推)”라는 속담이다. 통치의 정당성을 잃었을 때 백성들이 그 반대편에 서는 경우다. 각 왕조 말기에 도졌던 민란(民亂)을 떠올리면 좋다.
통치에 저항하는 폭민(暴民), 명령을 따르지 않는 조민(刁民), 이리저리 떠도는 유민(流民)은 체제에 늘 위협적이었다. 현대 중국 통치자들 또한 사람이 다수를 이룬 집단인 군중(群衆)을 관리하며 길들이는 데 지대한 관심을 쏟는다.
요즘 수도 베이징(北京)의 ‘차오양 구역 군중[朝陽群衆]’이 새삼 화제다. 정부의 장려책에 힘입어 약 14만명이 활동 중이라고 한다. 최근 유명 중국 피아니스트의 성(性) 매수 사건을 적발해 이름이 또 떠들썩하다.
1970년대 옛 소련을 상대로 벌인 스파이 고발부터 연예인들의 마약, 외국인 감시 같은 역할을 수행 중이다. 중국 네티즌들은 미 CIA, 007의 영국 MI6 등과 더불어 ‘세계 5대 정보기관’이라고 자랑도 한다.
함께 성을 쌓는 ‘착한 백성’, 즉 순민(順民) 양산(量産) 사례다. 공산당의 노련한 통치술이기도 하다. 그러나 높은 성에 갇혀 외부와 소통하지 못하는 우중(愚衆)을 길러낼 우려도 크다. 체제 안정이 최우선인 공산당으로서는 걱정거리가 전혀 아니겠지만….
[164] 兩岸에 일렁이는 풍파
정든 사람과 헤어지는 일은 서글프다. 더구나 찬바람 부는 쌀쌀한 가을날에는 말이다. 그런 정조를 읊은 중국의 유명한 사(詞)가 있다. 눈물로 임과 헤어진 뒤 배에 오르는 광경이다. 섭섭함을 못 이겨 작자는 이렇게 자문한다. “오늘 밤 술은 어디서 깰까(今宵酒醒何處)?”
스스로 짐작해보는 장소와 때는 이렇다. “버드나무 언덕, 새벽바람 속 이지러진 달(楊柳岸, 曉風殘月)”. 대중의 가창을 전제로 쓴 노랫말, 즉 가사(歌詞)에 해당하는 북송(北宋) 문인 유영(柳永)의 작품이다. 좋지 않은 기분에 폭음하는 사람들이 요즘도 즐겨 외우는 구절이다.
/일러스트=양진경
‘버드나무 언덕’의 안(岸)은 일반적으로 물과 땅이 만나는 곳에 생겨난 조금 높은 지형이다. 물길은 사람들이 이동할 때 자주 이용하지만 풍파(風波)가 잦아 경우에 따라서는 퍽 위험하다. 그 점을 곧잘 강조하는 중국인의 감성에서 물길은 ‘불안정성’의 상징으로 쓰이는 적도 많다.
거세고 험한 물길을 다니는 사람에게 뭍으로 이어지는 곳은 늘 반가우며 고맙다. 해안(海岸), 강안(江岸)이 흔한 이름이고, 깎아지른 절벽이 함께 있으면 애안(崖岸)이다. 그 모두를 일컫는 말은 연안(沿岸)이다.
종교적 의미를 보탠 경우도 있다. 피안(彼岸)이 그렇다. 생사(生死)의 경계를 넘어선 해탈(解脫)의 세계다. 모든 번뇌에 얽매이는 차안(此岸)의 반대쪽이다. 궁극과 이상을 가리키는 불교 가르침 ‘바라밀다(Paramita)’를 한역(漢譯)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이상적인 세계로 건너가는 도피안(到彼岸)이라는 말도 잘 쓴다.
‘양안(兩岸)’은 중국과 대만의 정치적 용어로도 쓰인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대만이 서로와의 관계를 적을 때 등장한다. 요즘 이곳에 풍파가 거세다. 전운(戰雲)까지 감도는 분위기다. 해탈까지는 아니더라도 ‘물가 언덕’이 지닌 평화와 안정의 의미를 속히 되찾기 바란다.
[165] 아직 ‘계몽’이 더 필요해
돼지 한 마리에 풀이 등장하는 글자가 있다. 풀로 돼지를 덮는 모습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계몽(啓蒙)의 ‘몽’이다. 뭔가에 가려 밖을 내다보지 못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그래서 어리석음의 몽매(蒙昧), 우몽(愚蒙)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지식이 짧아 사리에 어둡거나, 시야가 가려 그저 어리석은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에 자주 쓴다. 배우지 못한 어린이의 그런 상태를 동몽(童蒙)이라고 적거나, 가려서 어둡게 덮여 있는 모습을 몽폐(蒙蔽)라고 부른다.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상태를 헤쳐 열어주는 작업이 ‘계몽’이다. 때로는 해몽(解蒙), 개몽(開蒙), 발몽(發蒙)으로도 적는다. 혹은 격몽(擊蒙), 훈몽(訓蒙)이라는 말로도 이어져 예부터 무지와 어리석음을 없애려 기울인 노력이 만만찮았음을 알게 한다.
얼마 전 유명한 중국 철학자가 세상을 떴다. 리쩌허우(李澤厚)라는 인물이다. 그는 근래 120년의 중국 역사를 논하며 아직 ‘계몽’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역설했다. ‘혁명에 작별을 고함(告別革命)’이라는 글에서 그랬다.
그는 계몽이 필요할 때 계몽으로 이어지지 않은 현대 중국사를 안타까워했다. 그 이유로는 ‘멸망의 위기에서 벗어나다’라는 뜻의 ‘구망(救亡)’을 꼽았다. 역대 위정자가 모두 위기를 강조하며 백성을 독재의 틀로 단단히 묶었다는 지적이다.
정치적 구호와 선동보다는 사회의 개량(改良)을 향한 이성과 합리를 그는 더 강조했다. 1919년의 5·4운동 등 몇 차례의 계몽에 관한 각성이 위정자들의 권력 의지 때문에 물거품으로 변했던 사실도 비판했다.
요즘 공산당의 공식 행사에서 드러나듯 ‘계몽’ 기운이 감돌았던 개혁·개방 기조는 이제 완연히 꺾였다. 대신 ‘중화 민족의 부흥’이라는 거대한 구호가 자리를 잡았다. 이성과 합리를 향한 중국인들의 모색은 또 멈출 분위기다. 한 철학자의 죽음에서 생각해보는 주제다.
[166] 또 등장한 ‘옥새’
몇 년 전 한 정당의 대표가 결재 권한이 있는 도장을 들고 사라져 “옥새 들고 나르샤”라는 말을 유행시킨 적이 있다. 당시의 네티즌들은 도장 지니고 튄 행위를 ‘옥새 런(run)’이라 부르기도 해 역시 큰 화제였다.
그 ‘옥새(玉璽)’는 사실 일반명사가 아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이 만든 나라 도장, 즉 국새(國璽) 이름이다. 그에 앞서 춘추전국시대를 통해 내려왔던 권력의 상징이 사라지자 그가 유명한 옥돌을 재료로 삼아 만든 도장이다.
▲일러스트=김성규
진시황 이전 중원 지역 통치 권력을 상징했던 물건은 이른바 구정(九鼎)이다. 여기서 ‘정(鼎)’은 발 셋 달린 청동기 솥을 가리킨다. 주(周)나라 이후 통치 권력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쓰였다고 한다. 솥이 아홉 개여서인지, 아니면 솥 하나에 중국을 일컬었던 구주(九州)의 정보를 새겨 얻은 이름인지는 확실치 않다.
옥새는 달리 전국옥새(傳國玉璽)라고도 적는다. 통치의 정당성을 이어받는다는 의미다. 그래서 진시황 이후 등장한 왕조의 권력자들은 이 도장을 손에 넣고자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구정과 함께 옥새 또한 지금까지 종적을 감추고 있다.
이후 등장한 중국의 왕조 권력자는 용(龍)의 이미지를 즐겨 사용했다. 용포(龍袍), 용의(龍椅) 등 황제만이 사용하는 물건이나 그림 등으로 말이다. 불가(佛家)의 의발(衣鉢), 일반 민가의 족보(族譜)도 같은 맥락이다. 자신이 정통(正統)이자 적통(嫡統)임을 알리려는 소품이다.
중국인 의식에 깊이 새겨진 ‘정통 콤플렉스’다. 최근 공산당 최고 권력자 시진핑(習近平) 총서기가 시도한 ‘역사 결의(決議)’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흐름을 제 입장에서 해석해 정통성을 확보함으로써 향후의 연임 기반을 다지기 위함이다. ‘옥새’가 그렇게 또 등장한다. ‘지배와 복속’이라는 전제(專制)의 틀이 이어지는 중국의 변치 않는 풍경이다.
[167] 西北에 부는 돌궐 바람
“하늘은 파랗고, 들판은 아득한데, 바람에 풀이 엎드리니 소와 양이 보인다(天蒼蒼, 野茫茫, 風吹草低見牛羊)”는 옛 노래가 있다. 유목 민족의 노랫말을 한자로 옮긴 내용이다. 큰 초원이 발달한 서북 지역의 풍광을 말할 때 요즘도 중국인들이 즐겨 읊는 구절이다.
▲일러스트=백형선
그러나 서북 지역은 장성(長城) 남쪽 지역에 살던 이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가을이 닥치면 그곳에서 벌어질 전쟁 걱정이 앞섰으니 말이다. 앞서 소개했듯, 성어 천고마비(天高馬肥)는 그래서 가을의 도래와 곧 벌어질지 모를 전쟁의 공포감이 깃든 말이다.
날래고 사나운 북방 이민족은 중국인에게 ‘악몽’ 그 자체였다. 대표적 북방 민족은 우선 흉노(匈奴)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최초 통일 왕조인 진(秦), 다음을 이은 한(漢)에도 짙은 공포를 드리웠던 집단이다.
몽골(蒙古)은 더 큰 압력이었다. 줄곧 서북 지역을 침입하다가 중국 땅에 아예 원(元)이라는 왕조를 세워 운영했다. 동북에서 발흥한 만주족의 청(淸) 왕조가 결국 지금의 서북 지역을 모두 정복함으로써 그곳에 대한 중국인의 두려움은 겨우 사라졌다.
흉노와 몽골 못지않게 중국 서북 지역에서 맹활약하던 이들이 돌궐(突厥)이다. 지금은 중앙아시아 지역과 터키에서 명맥을 유지한다. 그 돌궐 문화권이 부활하고 있다. 얼마 전 터키를 중심으로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아제르바이잔 등 여섯 나라가 경제·군사로 뭉치는 ‘돌궐 국가 연맹(Organization of Turkic States)’이 출범했다. 국제 지정학적으로 큰 변수다.
중국도 긴장감을 부쩍 높이고 있다. 이 돌궐 문화권과는 언어 및 혈통적으로 유대를 부인하기 어려운 서북 변경 ‘신장(新疆) 위구르’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인권침해 이슈가 걸린 이곳에 돌궐의 새 ‘서북풍’이 가세했다. 태평양 건너온 미국발 동남풍이 이미 아주 사나운데….
[168] 판관 포청천과 미세먼지
/일러스트=김성규
“밝은 달은 얼마나 그곳에 있었는지, 술잔 잡고 하늘에 묻노니(明月幾時有, 把酒問靑天)…”라고 시작하는 노래가 있다. 북송 소식(蘇軾)의 작품이다. 술 마시다 쳐다보는 달은 문인들에게 늘 단골 화제였다.
오늘은 그가 물었던 대상, 노랫말의 ‘청천(靑天)’이 주제다. 이 단어는 직접 옮기면 ‘맑고 푸른 하늘’의 뜻이다. 그보다 색이 더 짙푸른 하늘은 창천(蒼天), 파랑이 조금 옅으면 벽천(碧天)이다. 요즘은 남천(藍天)이라는 표현이 흔하다.
그러나 중국의 인문에서는 의미가 더 깊어진다. 사람을 일컬을 때다. 보통은 ‘3대 청천’으로 부르곤 한다. 북송의 강직한 판관이었던 포증(包拯), 권력에 저항하며 부당함을 질타했던 명나라 때 관리 해서(海瑞)와 황종(況鍾) 등이다.
따라서 이들의 별칭은 ‘포청천(包靑天)’ ‘해청천(海靑天)’ ‘황청천(況靑天)’이다. 앞의 두 인물 사적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권세 있는 사람에게 굽히지 않으면서 공정한 판결과 행위로 백성들에게 큰 위안을 선사했다.
황종 또한 구조적 폐단을 혁파했고, 민생의 어려움을 개선하는 데 진지한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다. 뭇 중국인은 이들을 바라보면서 맑고 밝게 활짝 갠 하늘, 즉 ‘청천’의 이미지를 줄곧 떠올렸던 모양이다.
깨끗하고 바른 관료의 등장을 간절히 바라던 중국인의 심성이다. 단지, 그 수가 많지 않아 유감이다. 현대 중국이 들어선 뒤에도 마찬가지다. 부패와 비리가 또 넘쳐 결국 현 시진핑(習近平) 총서기는 부패 척결을 지속 연임 명분으로도 삼았다.
중국인의 그 기대를 이해한다. 그러나 인문의 ‘청천’ 못지않게 자연의 깨끗하고 맑은 하늘에도 마음을 더 써야 옳겠다. 중국발 미세 먼지로 이웃 한반도의 가을이 마냥 어둡기 때문이다. 다른 이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맑은 하늘이 품는 의로움의 뜻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169] ‘헝다(恒大) 사태’ 문화심리학
‘좋다’ ‘아름답다’를 뜻하는 대표적 한자는 ‘미(美)’다. 양(羊)과 ‘크다’는 뜻의 대(大)가 합쳐진 글자다. ‘커다란 양’이 곧 ‘아름다움’을 가리키는 꼴이다. 따라서 “뭐든지 커야 좋다”는 말이 자연스레 성립하는 곳이 중국이다.
땅도 대지(大地), 물도 대하(大河), 사람도 대인(大人)으로 적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냥 건물도 대하(大廈)로 부르고, 남의 이름은 웬만하면 대명(大名)이라 호칭한다. 군중이 모이면 바로 대회(大會), 그럴듯한 이벤트는 곧 대전(大典)이다.
그래서 큰 집, 큰 길거리, 큰 물건이 퍽 흔하다. 우선 수도 베이징(北京)의 두 상징인 왕조 시대 황궁 자금성(紫禁城)과 국가의 담 만리장성(萬里長城)이 단연 세계 최대다. 현대에도 세계 100대 고층 빌딩 중 중국 차지는 25%에 이른다.
기네스 기록 경신 열풍이 늘 가득한 곳도 중국이다.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4129㎏의 볶음밥, 274㎡ 크기의 사탕으로 만든 양탄자, 길이 30m 폭 6m의 케이크 등이 만들어져 기네스북에 속속 이름을 올리곤 한다.
크고 거창한 것에 대한 중국인의 집착은 이렇듯 별나다. 아예 “커야 좋다(以大爲美)”는 표현까지 나왔다. 크게 부풀려 공을 더 쌓으려는 취향은 호대희공(好大喜功)이다. 무분별한 확장을 경계하려는 뜻이 담긴 성어다.
큰 것을 향한 집착은 권력을 추구하는 심리다. 가능한 한 크게 짓고 만들어 남들을 누르려는 태도다. 존비(尊卑)와 등급(等級)의 관념이 짙게 밴 문화 토양이다. 전제(專制)의 틀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중국 사회 분위기다.
파산 직전인 최대 부동산 업체 헝다(恒大)의 이름이 마침 그렇다. 영원히[恒] 거창하리라고[大] 했지만 부채를 370조원 쌓아 위기에 부닥쳤다. 내실과 진정성을 결여한 발전 모델의 한계다. 중국 경제는 거기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170] 중국 공산당 남녀상열지사
인류가 후대를 낳고 기르는 생육(生育)의 토대는 우선 남녀 사이의 결합이다. 그런 둘 사이를 대개 ‘정(情)’이라는 글자로 표현할 때가 많다. 서로 사랑을 나누는 남녀는 정인(情人)이나 정려(情侶)라고 한다. 연인(戀人), 애인(愛人)은 우리도 잘 쓰는 말이다.
그 둘이 나누는 대화는 정화(情話)다. 둘 사이를 오가는 연애편지는 정서(情書)다. 둘 관계를 가를지도 모르는 라이벌이 있으면 바로 정적(情敵)이다. ‘첫눈에 반하다’라는 말의 한자어 표현은 종정(鍾情)이다. 술잔이 술을 한데 모으듯이[鍾] 감정을 오롯이 쏟아붓는다는 뜻이다.
▲일러스트=백형선
그러나 정식 혼인의 틀 밖에서 벌어지는 남녀 관계도 많다. ‘몰래 하는 사랑’을 중국인들은 보통 투정(偸情)이라 적는다. 도둑이 물건 훔치듯이[偸] 은밀하게 벌이는 애정 행각이라는 맥락이다. 남녀 사이의 애정 표현이 솔직했던 고려시대 가요를 조선 사대부들이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라고 폄하한 우리 사례도 있다.
남의 눈을 피해 몰래 만나는 일을 상중(桑中) 또는 상간(桑間)으로 적을 때도 있다. 뽕나무[桑]가 많았던 곳에서 일반 남녀의 만남이 잦았던 일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맹자(孟子)’에 나오는 유장찬혈(逾墻鑽穴)이란 성어도 있다. 담을 넘어 연인을 만나거나, 구멍을 파서 상대를 바라보는 행위다.
중국 공산당 최고 권력 엘리트인 전 정치국 상무위원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국 여성 테니스 선수와 벌인 불륜 행각이 폭로 한 달여 지난 뒤에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공산당 간부의 성 스캔들이 빈번하지만 이번에는 워낙 급(級)이 높은 까닭이다.
가랑비에 옷 젖고, 작은 개미구멍 때문에 천 리 둑이 무너진다고 했다. 중국 공산당 간부들의 ‘담치기’와 ‘천공(穿孔)’이 잦아지면 스스로 쌓은 거대한 담이 흔들릴 수 있다. 체제의 위기는 늘 안에서 오는 법이다.
[171] 제갈량식 리더십
‘삼국연의(三國演義)’에서 뭇사람들의 숭앙을 받는 인물 하나는 제갈량(諸葛亮)이다. 특히 그의 ‘출사표(出師表)’가 퍽 유명하다. “이 글을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는 충신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돌았을 정도다. 자국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타개코자 출병(出兵)하는 이유를 간곡하게 적어 촉한(蜀漢)의 당시 황제 유선(劉禪)에게 올린 글이다. 앞뒤로 두 차례에 걸쳐 냈다고 알려져 있다. 두 글에 겹쳐 나오는 글자 중 ‘궁(躬)’에 눈길이 간다.
앞 출사표 중 “신은 본래 평민으로 남양에서 몸소 농사를 짓다가(臣本布衣, 躬耕於南陽)…”라는 대목과 뒤 출사표의 “죽을 때까지 온몸을 다 바치겠다(鞠躬盡瘁, 死而後已)”는 내용이다. 따라서 ‘제 몸으로 직접 무엇인가를 하다’라는 뜻의 글자가 ‘궁’이다. 소설 속의 그는 ‘전쟁의 신(神)’이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싸움에 나섰다가 줄곧 진다. 그 대신 진지한 행정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모든 일을 직접 챙겼던 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제갈량의 캐릭터는 ‘궁’이라는 글자와 잘 어울린다.
/일러스트=박상훈
정사(正史)인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는 그 정황을 “정치에 관한 일은 크건 작건 간에 다 제갈량이 결정했다(政事無鉅細, 咸於亮)”라고 적었다. 이로부터 ‘사무거세(事無鉅細)’라는 성어가 나왔다. 지나치리만큼 온갖 일을 챙긴다는 뜻이다. 서방의 한 언론이 작은 사안에도 열중하는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의 업무 스타일을 최근 중국 상황과 연관 지어 보도한 내용이 화제다. 일부 평론가들은 제갈량의 ‘사무거세’에 곧장 그를 견주기도 한다.
권한의 위임이 잘 이뤄지지 않으면 국가 행정은 체증(滯症)에 시달린다. 개혁·개방의 퇴조(退潮)를 알리는 근간의 중국 상황이 그로부터 전혀 자유롭지는 않아 보인다. ‘리더십의 문제’도 요즘의 중국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할 낌새다.
[172] 깊어지는 겨울의 고독
겨울과 고독의 정서를 멋지게 엮은 중국 시가(詩歌)로는 당나라 유종원(柳宗元)의 ‘강설(江雪)’을 우선 꼽고 싶다. 정치적 이유로 좌천당한 그가 사실상 ‘구금(拘禁)’에 가까운 생활을 하던 무렵 쓴 시다. “모든 산에 새들이 날지 않고, 온 길에 사람 발길 끊겼다(千山鳥飛絶, 萬徑人踪滅)”로 시작한다. 이어 “외로운 배의 도롱이와 삿갓 걸친 노인, 눈 내리는 차가운 강에서 홀로 낚시 드리운다(孤舟蓑笠翁, 獨釣寒江雪)”고 맺는다.
첫 두 구절의 끝을 ‘사라지고 없어지다’라는 뜻의 절멸(絶滅)로 닫았다. 이어 ‘외롭다’의 고(孤), ‘홀로’의 독(獨)이 등장한다. 겨울의 적막함, 차갑고 시린 분위기, 홀로 서 있는 사람의 외로운 형상이 한 폭 그림처럼 떠오른다. 모진 시련을 끝내 버텨내고자 하는 사람의 의지가 우선 느껴지는 명시다. 그러나 ‘나 홀로’가 지나치면 또한 화근으로 작용할 경우가 많다. 제 혼자만의 고집과 주장으로 집단의 화합을 깨는 사람을 우리는 독불장군(獨不將軍)이라고 한다.
▲깊어지는 겨울의 고독
외나무다리는 한자로 독목교(獨木橋)다. 중국인들은 크고 넓게 펼쳐진 길의 대명사인 ‘양관대도(陽關大道)’를 그 반대말로 삼는다. 이는 당나라 무렵 서역(西域)으로 나가던 요새, ‘양관’으로 뻗어있던 탄탄대로다. 어둡고 좁은 길과 당당하며 멋진 길의 대비다.
어려운 지경에 처했어도 제 뜻을 갈고 닦으면 독선(獨善)이다. 그러나 역시 지나치면 금물이다. 홀로 끊고, 멋대로 자르는 독단(獨斷)과 독재(獨裁)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로써 일을 삼으면 독부(獨夫)라는 이름도 얻는다.
미국과 격돌하는 등 중국은 서방 세계와 순조로웠던 교류의 길을 닫아가고 있다. 내년에도 그 추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개혁·개방의 대로를 버리고 스스로 다가선 외나무다리 길이다. 그로써 중국의 외로운 ‘겨울 낚시’는 제법 길어질 분위기다.
[173] 중국 공산당의 ‘금과옥조’
금(金)은 금이라서 금 대접 받는다. 이는 세계 어느 지역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옥(玉)을 향한 중국인의 집착은 참 별나다. 그저 값어치로 따지면 금에 못 미칠지 몰라도, 문화적 함의는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그래서 한자 세계의 금옥(金玉)은 ‘가장 귀중한 그 무엇’이다. 사랑스러운 제 아이들을 지칭하는 성어는 금지옥엽(金枝玉葉)이다. 황금 가지와 옥 잎사귀라는 뜻이다. 본래는 왕실 자식들을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일러스트=김성규
금과 옥을 병렬하는 중국 성어는 풍부하다. 금옥만당(金玉滿堂)은 보물이 가득한 집을 지칭한다. 때론 훌륭한 신하를 많이 거느린 군주를 형용키도 한다. 빼어난 아이들을 일컫는 금동옥녀(金童玉女)도 같은 맥락이다.
‘세상의 넘버원’이라는 속뜻을 지녔으니 금과 옥은 정치 권력과 잘 이어진다. 금구옥언(金口玉言)이라는 성어는 ‘부처님 말씀’을 뜻했다가 ‘임금의 발언’으로 정착한다. 따라서 ‘고치거나 손댈 수 없는 방침’이라는 권력의 외피를 두른다.
금과옥조(金科玉條)도 그렇다. 요즘의 중국은 금과옥률(金科玉律)이라는 표현을 더 잘 쓴다. ‘과(科)’ ‘조(條) ‘율(律)’은 다 법 조항 등을 가리킨다. 따라서 가장 귀중한 법,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큰 원칙’ 등의 뜻이다.
몸집이 거대한 중국은 국정의 큰 지향을 잘 강조한다. ‘중심’을 설정해 불필요한 혼란을 피하려는 구조다. 따라서 ‘금과옥조’를 잘 표방할 수밖에 없다. 올해 중국 공산당은 최고 권력자의 연임, 그를 위해 만든 ‘공동부유(共同富裕)’를 내세울 전망이다.
그러나 중국이 근래 맞이한 현실과 잘 맞아야 그 나름대로 ‘금옥’이다. 그냥 교조(敎條)로 흐르면 큰 낭패다. 명(明)대 문인은 속이 썩은 감귤을 이렇게 표현했다. “겉은 금옥이나, 안쪽은 문드러진 솜뭉치(金玉其外, 敗絮其中).” 중국이 빠지지 말아야 할 함정이다.
[174] 중국정부의 붓글씨 필체
붓글씨에는 여러 필체가 있다. 관각체(館閣體)도 그 하나다. 왕조 시절 정부기관인 관(館)이나 각(閣)에서 썼던 글씨 유형이다. 때론 문체(文體)도 가리킨다. 조선에서는 홍문관(弘文館)이나 예문관(藝文館), 그리고 규장각(奎章閣) 등이 그 기관에 해당한다.
중국의 관각체 전통은 퍽 유장하다. 명대에는 대각체(臺閣體)로 불렸다가 청대에 지금 말로 자리를 잡았다. 정부의 공식 문서에 쓰는 필체라서 특징이 두드러진다. 누구든지 잘 알아볼 수 있어야 함이 우선이다.
따라서 읽기 쉬운 해서(楷書)로 써야 한다. 아울러 ‘반듯함[方], 밝음[光], 검정[烏]’을 갖춰야 한다. 공문서이니만큼 의사를 정확히 전달해야 했던 까닭이다. 나중에는 과거(科擧) 응시자들도 이를 쓰지 못하면 낙방(落榜)을 감수해야 했다.
우선 장중하고 우아하다는 장점이 있다. 황제도 읽는 문서여서 글씨를 다듬고 또 다듬었던 전통이 쌓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형식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딱딱한 공문서라서 자유로운 감성이 들어설 여지는 아예 없다.
현대 중국에서도 ‘관각체’ 위력은 여전하다. 공산당이 확정한 방침을 각급 기관이 어김없이 따라야 하는 정치적 틀이 우선 그렇다. 중앙정부가 내세우는 정책은 ‘사회 안정’이라는 거창한 명분 등에 맞춰지지만 세부적인 사정은 잘 감안하지 않는 편이다.
최근 중국의 코로나19 상황도 마찬가지다. ‘제로 코로나[淸零]’를 강조하는 공산당은 확진자가 나온 곳이면 무조건 봉쇄하고 통제한다. 형식과 규격에 내용을 억지로 짜서 맞추는 현대판 ‘관각체’ 사고가 분명하다.
그 부작용과 피로감이 아주 높아졌다. 상황에 따라 다양한 대응이 필요한데도 아직 닫고 가두는 데만 열중한다. 필체로 말하자면 겉만 화려한 관각체의 ‘해서’가 자유분방한 ‘초서(草書)’를 무겁게 짓누르는 꼴이다. 늘 그랬듯이…
[175] 요즘 중국의
지붕 아래 처마는 그 집채가 지닌 기세(氣勢)를 잘 드러낸다. 그래서 사람 얼굴 중 처마에 해당하는 부분이 주목받았던 모양이다. 이마 아래, 눈 위에 걸치는 부분인 눈썹이다. 한자로는 미(眉), 처마의 뜻을 그에 덧붙이면 미우(眉宇)다.
/일러스트=김성규
우선 미인 형용에 이 눈썹이 자주 등장한다. 나방 또는 누에와 같은 모습의 눈썹을 아미(蛾眉)라고 했다. 때로는 버드나무 잎처럼 생겼다고 해서 유미(柳眉), 유엽미(柳葉眉)다. 초승달을 닮았다는 뜻에서 미월(眉月)로도 불렀다.
눈썹과 그 아래의 눈을 함께 지칭하면 미목(眉目)이다. 안으로 품은 사람의 기운이 겉으로 드러나는 ‘창구’와 같아 역시 관심을 받았다. 달리는 미첩(眉睫)이라고도 적는다. 모두 사람의 감정이 아주 잘 드러난다고 해서 널리 쓰인 단어다.
기분이 좋아 눈썹이 이마 쪽으로 오를 때는 양미(揚眉)다. 왕성한 기운을 뱉어낼 때 모습을 함께 붙이면 양미토기(揚眉吐氣)라는 성어다. 눈썹이 날아오르고 기색이 춤을 추듯 하는 모양은 미비색무(眉飛色舞)다. 한국 테크노 가수 이정현의 ‘바꿔’라는 노래를 중국인들이 이 제목으로 바꿔 불러 공전의 유행을 타기도 했다.
화가 치밀 때는 눈썹이 옆으로 늘어나는 모양이다. 그 모습은 횡미(橫眉)다. 상황이 더욱 나빠지면 근심에 잠긴다. 수미(愁眉)는 걱정에 사로잡혀 찌푸리는 미간이다. 위기를 맞이할 때의 눈썹은 초미(焦眉)로 형용한다. 불이 눈썹에 옮겨붙을 수 있는 다급한 상황이다. 연미(燃眉) 또는 소미(燒眉)라고도 적는다.
눈썹을 치켜올리며 거세게 기운을 뽐내던 중국의 요즘 상황이 퍽 어렵다. 경기는 하강 추세를 굳히고 코로나 변종 바이러스가 다시 번진다. 곧 치를 베이징(北京) 동계올림픽도 걱정이다. “때와 형세가 모두 우리 편”이라고 했던 지난해 초 호언이 어두운 미간에 잠기는 분위기다.
[176] 풍진 세상 설맞이
요즘은 여행(旅行)이 어렵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횡행하면서 먼 길 나서는 일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여행의 앞 글자인 ‘여(旅)’의 초기 꼴은 ‘깃발 아래 모여든 사람들’ 모습이다. 따라서 전쟁 등의 행위에 참여한 집단, 즉 군대의 의미로 출발한다.
군대는 싸움을 위해 자주 이동한다. ‘군대의 출행(出行)’이라는 그 의미 맥락이 결국 지금의 ‘여행’이라는 뜻으로 자리를 잡았다. 시인 이백(李白) 등이 써서 유명한 ‘역려(逆旅)’는 나그네를 맞이하는[逆] 곳, 곧 여관이다.
같은 흐름을 보이는 글자가 정(征)이다. 역시 ‘군대 이동’의 의미였다가 차츰 먼 길에 나서는 행위 등을 지칭했다. 정도(征途)라고 하면 ‘군대가 상대를 치러 나서는 길’ 외에 ‘여행으로 나선 길’의 의미다. 정로(征路)도 그렇다.
집을 떠나 먼 길을 다니는 일은 쉽지 않다. 그 길에 따사로운 햇빛만 비치지 않기 때문이다. 비 내리고, 바람 부는 경우가 더 많다. 바람 일어 흙먼지 가득한 상황을 일컫는 말이 풍진(風塵)이다. 황사 바람이 잦은 중국의 환경으로서는 알맞은 형용이다.
우리도 “이 풍진 세상을…”이라는 노래가 유행한 적이 있다. 세상살이의 서러움과 고단함을 그렇게 전했다. 그런 타향살이의 어려움을 딛고 마침내 고향에 돌아오는 일이 중국인들의 심성에서는 매우 중요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한가위나 설 명절에는 그리운 가족이 모두 모이는 일을 간절히 꿈꾼다. 이른바 단원(團圓)이다. 지는 해 마지막 날 자정 무렵 식구 모두가 새해를 함께 맞이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올해에는 어려울 듯하다.
바이러스 확산을 우려한 당국자가 설에 고향 가려는 사람들을 “악의적인 귀향[惡意返鄕]”이라 윽박지르니 말이다. 우리도 큰 사정이야 비슷하지만, 막말 해대는 이런 못된 관료 밑에 숨죽이며 살아야 하는 중국인에게 세상은 더욱 풍진 가득한 곳으로 비칠 듯하다.
[177] ‘목탁’이 사라지는 사회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말이 나돌던 시절이 있었다. 제 무지(無知)와 몽매(蒙昧)를 깨주는 스승은 늘 고맙기만 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선생(先生)’으로 부르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이 단어는 ‘세상에 먼저 나온 사람’이다.
따라서 남을 높여 부르는 일반 경칭이었다. 지금의 스승이란 뜻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퍽 뒤의 일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을 일컫던 ‘부자(夫子)’가 스승의 호칭으로 더 일찍 자리를 잡았다. 제자들이 공자(孔子)를 그렇게 불렀던 ‘논어(論語)’ 덕분이다.
‘강석(講席)’과 ‘함장(函丈)’도 제자가 스승을 높여 불렀던 단어다. 앞은 ‘가르치는 자리’라는 뜻이고, 뒤는 배울 때 스승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거리인 장(丈·약 3m)을 가리킨다. 손짓 등이 자유로운 거리다.
문자가 일반적이지 않았던 시절, 중요한 정황을 알리는 관아의 홍보에 방울이 자주 쓰였던 모양이다. 행정 사안은 나무, 전쟁 등 군사(軍事) 소식은 쇠로 만든 방울 혀를 각각 썼다고 한다. 앞의 경우가 ‘목탁(木鐸)’이라는 말로 남아 또한 스승이란 뜻을 얻었다. 방울을 흔드는 일 ‘진탁(振鐸)’은 교직을 가리킨다.
글로 생계를 이어가는 일인 필경(筆耕)에 견줘 남 가르치는 일을 설경(舌耕)이라고도 했다. 장막을 드리우고 가르쳤다 해서 설장(設帳)이라고도 적는다. 공들여 키운 제자를 흔히 달콤한 복숭아와 자두에 비유한다. “세상에 복숭아와 자두가 가득하다(桃李滿天下)”고 하면 많은 제자를 둔 스승의 행복감이다.
요즘 중국의 선생들이 석연찮게 자리에서 물러난다. 정치적 발언을 문제 삼은 학생이 당국에 밀고(密告)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중국 선생들은 이제 제자들을 ‘복숭아와 자두’가 아닌 ‘가시나무[荊棘]’로 여겨야 할 모양이다. ‘스승과 제자’라는 중요한 인간관계가 또 무너지는 문명의 심각한 퇴보다.
[178] ‘잔꾀’ 올림픽
강태공(姜太公), 손무(孫武), 범려(范蠡), 귀곡자(鬼谷子), 장량(張良)에 이어 마오쩌둥(毛澤東)과 저우언라이(周恩來)까지…. 남과의 싸움에서 희한하다 싶을 정도의 능력이나 생각을 선보였던 중국 유명 인물들이다.
중국은 그 싸움의 생각이 깊다. 일정한 패턴이라고 해도 좋을 명맥과 체계를 갖췄다. 이른바 ‘모략(謀略)’의 정신세계다. 우리는 이를 곧장 음모(陰謀)로만 푸는데, 사실은 그보다 중립적이다. 오히려 싸움 방도인 ‘전략(戰略)’으로 이해해야 한다
/일러스트=김성규
속임수가 판치는 음모의 반대는 양모(陽謀)다. 드러내놓고 벌이는 전략의 구성이다. 따라서 모략은 어두운 속임수로 내려앉을 여지와 함께 떳떳한 싸움법으로 올라설 가능성도 있다. 심술(心術)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저 ‘못된 마음’ 정도로 이 단어를 쓰지만, 중국의 용례로는 싸움에 관한 진지한 모색이다. 역시 하강(下降)과 상승(上昇)의 가능성을 다 보이는 모략의 동의어다. 싸움에 관한 천착이 깊지 않은 우리가 그저 어두운 측면만을 봤을 뿐이다.
모략이 밝고 긍정적인 쪽으로 쓰이면 지모(智謀)다. ‘슬기로운 계책’의 뜻이다. 지혜로운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반대로 사용하면 권모(權謀)와 술수(術數)로 기운다. 룰(rule)에 아랑곳하지 않는 임의적인 속임수에 가깝다. 그 경우를 우리는 ‘잔꾀’라고 일컫는다. 어둡고 비뚤어진 생각이다. 일찌감치 모략을 집대성했던 중국은 어느 시점부터 늘 하강해 화려했던 전쟁의 사고 체계를 권모와 술수로 내려앉혔다. 지혜로의 상승이 아닌, 잔꾀로의 경사(傾斜)다.
이번 베이징(北京) 동계 올림픽의 ‘금메달 쇼’가 그 점을 잘 드러낸다. ‘주군(主君)’의 연임을 위한 관료들의 충성심이 큰 원인이지 싶다. 그로써 중국은 ‘잔꾀의 나라’ 이미지를 더 튼튼히 굳힐 듯하다. 제 문명의 퇴행적 연역(演繹)이다.
[179] 여성 납치와 인신매매
눈이 먼 산? 그렇게 오해할 수도 있는 중국 영화 제목이 있다. ‘맹산(盲山)’이다. 2007년 나왔으나 중국 국내에서는 방영 금지 조치를 받았다. 내용은 깊은 산간벽지로 납치당한 여성의 눈물겨운 탈출기다.
/일러스트=박상훈
중국 서북 지역 깊은 오지로 간 여성은 대학을 마친 인텔리다.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사기꾼 꾐에 말려 벽지로 이동해 마취를 당했고, 급기야 현지 노총각의 신부로 팔린다. 갖은 탈출 노력을 펼쳤으나 번번이 실패한다.
결국은 자신을 구하러 온 부친과 몸싸움을 벌인 ‘남편’을 살해함으로써 끝을 맺는다. 국내 방영 허가를 얻기 위해 다른 결말도 만들었으나 당초의 영화 설정은 그렇다. 이른바 ‘여성 유괴 및 인신 판매’의 심각한 범죄를 다룬 작품이다.
요즘 한(漢)을 세운 유방(劉邦)의 고향 쉬저우(徐州)가 들썩인다. 납치당해 이곳에 정착한 한 여인의 이야기 때문이다. 여덟 남매를 낳았으나 ‘정신병’을 이유로 목에 쇠사슬이 묶인 채 가축 우리 같은 곳에 갇혀 지냈다.
지난달 말 이 사건이 알려진 뒤 일거에 수천만의 조회가 몰렸고 지금까지 관심은 동계 올림픽에 못지않다. 당국의 시원찮은 조사 결과는 네티즌들의 혹심한 공격을 받고 있다. ‘약인(略人)’이라고도 했던 전통적인 인신 납치 및 판매로 1986~1989년 쉬저우에 정착한 여성이 4만8000명이라는 통계도 나왔다.
‘맹산’이라는 영화 제목이 암시하는 뜻은 ‘무언가를 보고서도 못 본 체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따라서 부조리와 범죄가 더욱 횡행하며 인권(人權)은 쉽게 짓밟히는 세상을 가리킨다. 깊고 어두운 문명의 사각(死角)이다.
중국에는 아직 여성과 아동의 납치·매매 등이 버젓이 벌어진다. 중국이 진정한 문명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꼭 넘어야 할 ‘맹산’이다. 쉬저우 피해 여성을 구제하려는 민간의 발길이 더 넓은 인권 영역으로 확산하기를 기대한다.
2022.02.25
[180] 고만고만한 나라, 中國
큰 나라라고 해서 대국(大國), 위에 있는 나라라고 해서 상국(上國)이었다. 하늘의 점지를 받은 왕조라고 해서 천조(天朝)라고도 했다.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자부하는 중국(中國)을 자타가 일컫던 호칭이다.
문명의 자긍심으로 이를 때는 중화(中華)였으나, 그 정도가 혹심해져 주변에 강압적 질서를 요구하던 일도 많았다. 이른바 중화주의(中華主義)다. 세상을 높고 낮음의 존비(尊卑)로만 바라봤던 옛 시대 시선이다.
요즘 중국인들 생각은 어떨까. 일부는 냉소적이다. 스스로 내세웠던 문명으로서의 위상을 체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나친 통제와 전제의 틀에 저항적이다. 공산당이 늘 강조하는 ‘강국(强國)’으로서의 꿈을 비틀어 ‘장국(墻國)’이라 부르는 일이 우선 그렇다.
/일러스트=김성규
‘담[墻]의 나라’라는 뜻이다. 앞의 ‘강국’과 중국어 발음이 똑같다. 인터넷 만리장성을 쌓아 외부와의 자유로운 정보 교류를 막고 사상을 통제하는 당국에 대한 비판이다. ‘부추 나라’라는 뜻의 구주(韭州)라는 말도 있다.
중국 옛 명칭인 구주(九州)와 발음이 같다. 웃자란 부분이 늘 뜯기는 부추[韭]의 신세가 꼭 저와 같다고 해서 중국 네티즌들이 만든 말이다. 공산당의 일당전제(一黨專制)를 강조한 새 조어는 중공국(中共國)이다.
중국이 제가 지닌 문명으로서의 가능성을 살리지 못하고 과도한 국가주의(國家主義)로 기울고 있다. 이번 동계올림픽에서도 지나친 자국 중심의 행위로 세계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2012년 미국과의 관계를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로 설정한 뒤 흔해진 현상들이다.
이제는 우리도 ‘중국’이라는 이름을 달리 생각하기 시작했다. ‘중심’이 아닌 대중소(大中小)의 ‘중’으로 말이다. 달리 이르자면 ‘고만고만한 정도의 나라’다. 편협한 국가주의에 빠진 중국에 대한 실망감이 요즘 반중(反中) 정서의 큰 토대다.
2022.03.04
[181] 러시아에는 늘 약한 중국
요즘 중국인들은 러시아를 ‘북극곰[北極熊]’이라 부른다. 그러나 100여 년 전에는 그 호칭이 퍽 특이했다. ‘털북숭이’라는 뜻의 ‘모자(毛子)’가 일반적이었다. 때로는 그 앞에 친근감, 또는 얕잡아 보는 의미의 노(老)가 붙었다. 지금 중국 동북 지역 사람들은 제정(帝政) 시절의 러시아와 싸움이 잦았다. 전투가 벌어지면 술을 마신 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사납게 다가오는 러시아인들이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중국인에게 러시아인들은 늘 ‘호전적인 민족[戰鬪民族]’의 이미지다.

▲/일러스트=김성규
동북 지역 하얼빈(哈爾濱), 치치하얼(齊齊哈爾) 등은 그때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생긴 지명이다. 당시에는 이곳으로 터전을 옮겨 정착하는 러시아인도 흔했다. 그로써 혼혈인이 많아지자 중국인들은 그들을 ‘이모자(二毛子)’라고 지칭했다. 이 명칭은 다른 뜻도 포함한다. 러시아인이나 서구 열강(列强)의 백인들을 위해 이바지했던 ‘앞잡이’라는 뜻도 있다. 따라서 힘센 사람에게 붙어 충성하는 주구(走狗), 민족 배신자라는 뜻의 한간(漢奸)이라는 의미도 담겨있다.
쇠약해진 청(淸) 왕조는 급기야 동북 지역의 상당한 영토를 이 러시아인들에게 빼앗겼다. 그래서 그들의 신체적 특징을 빌려 부르는 ‘털북숭이’ 호칭에는 빈정거림과 함께 두려움도 분명히 담겨 있는 편이다. 그 때문인지 중국은 늘 러시아에 약한 모습을 보인다. 요즘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세계 주요 국가도 중국이다. 러시아는 아예 중국을 든든한 조력자로 여기는 분위기다.
일찌감치 ‘정의로운 전쟁[義戰]’ 개념을 세웠던 중국이다. 도덕의 잣대로 싸움 성격을 헤아렸던 일이다. 따라서 러시아가 제 이익에만 이끌려 벌인 우크라이나 침공에 중국이 침묵으로 일관하면 곤란하다. 자칫 러시아 앞잡이라는 뜻의 ‘이모자’라는 누명도 뒤집어쓸 수 있다.
[182] 孔子의 벗, 공산당의 친구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는 ‘논어(論語)’의 시작 어구는 매우 유명하다. 사람의 이상적 모델인 ‘군자(君子)’를 규정하면서 꺼낸 말이다. 자신의 덕행과 수행이 널리 퍼져 따르는 이가 많은 경우를 일컬었다.
‘붕(朋)’은 따라서 그저 친한 벗이 아니다. 삶의 지향(志向)이 같아야 그 반열에 든다. 나중에는 동문(同門)에서 함께 공부한 동료를 가리키는 글자로 발전한다. 이 글자처럼 ‘벗’의 의미를 지닌 우(友)는 감성적 영역에 더 가깝다. 친밀한 정도가 아주 높은 사람 사이다. 그래서 둘을 합쳐 ‘붕우(朋友)’라고 적으면 중국어에서는 ‘벗’을 지칭하는 대표적인 단어다. 그 앞에 ‘오랜’ ‘정겨운’의 뜻인 ‘로(老)’를 덧붙일 때가 많다. 우리말로 풀자면 ‘아주 친한 친구’다.

/일러스트=김성규
중국 관영 매체는 자국에 크게 이바지한 외국인에게 곧잘 ‘중국 인민의 아주 친한 친구(中國人民的老朋友)’라는 호칭을 부여한다. 지금까지 미국, 일본 등 외국의 유명인 601명이 이 칭호를 받았다. 해외에 친중(親中) 세력을 심는 노련한 전략이기도 하다.
최근에 나온 ‘2등 미국(America Second)’이라는 영문 서적이 인기라고 한다. 미·중 수교의 물꼬를 튼 헨리 키신저 등 미국 속 ‘중국의 아주 친한 친구’들이 중국에서 어떤 이익을 취하면서 자국의 위상을 허물었는지 추적한 내용이다. ‘벗’ 개념을 활용해 국력을 뻗친 중국의 노련함, 돈에 눈이 멀어 그에 휘말린 미국의 멍청함이 교직한다.
중국은 그렇듯 ‘우의(友誼)’를 외교적 전략의 하나로 잘 구사한다. 공자(孔子)의 소박한 ‘친구’ 개념이 아니다. 그를 퇴행적으로 활용한 이해타산의 언어다. 올해가 한·중 수교 30주년이다. 현대 중국의 ‘우의’라는 속내를 아주 엉뚱하게 해석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좋겠다.
[183] 兄弟와 패거리
주민등록증, 시쳇말로 ‘민증’에 찍힌 나이를 두고 누가 형이고 동생이냐를 가리는 일은 우리에게도 제법 익숙하다. 남성들끼리 형제(兄弟) 서열을 정한 뒤 호형호제(呼兄呼弟)하면서 더 가깝게 지내기 위한 걸음이다. 따라서 ‘형제’는 단순히 핏줄에 그치지 않는다. 남성들끼리 우의를 깊이 다지는 사회적 관계 설정의 한 방식으로 쓰일 때가 많다. 그런 우리보다 몇 수 높게 이 ‘형제’ 개념을 활용하는 곳이 중국이다.

공자(孔子)의 ‘논어(論語)’에는 “세상 안에서는 모두 형제다(四海之內皆兄弟也)”라는 어구가 나온다. 당시 중국의 범주는 매우 작았겠지만, 그 안의 사람은 모두 형제처럼 평화롭게 잘 지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형을 일컬을 때 요즘 중국인들은 “거거(哥哥)”라고 한다. 그 한자(漢字)는 남의 성씨(姓氏)를 얕잡아 부를 때 쓰는 우리 용례와 많이 다르다. 본래는 당(唐)나라 무렵에야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외래어라는 설명이 있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많거나 경험이 풍부한 사내를 호칭할 때도 많이 쓰인다. 복수(複數)를 뜻하는 문(們)이라는 글자를 붙여 ‘가문(哥們)’이라고 적으면 혈연 관계를 넘어서 ‘뜻을 함께하는 사내 집단’이라는 의미로 변한다. 그러나 대개는 ‘강호(江湖)’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겉으로는 의리를 내세우지만 속으로는 같은 이익으로 묶인 패거리 모임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죽음을 각오하고 똘똘 뭉쳐 행동하는 그룹인 ‘사당(死黨)’도 그와 비슷한 말이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의 행보가 큰 관심이다. 경제나 군사적으로 중국의 후원을 크게 기대하는 눈치다. 중국이 러시아와 전략적으로 이해관계가 깊다 하더라도 그에 호응하면 곤란하다. 국제적으로 위상이 크게 추락하기 때문이다. 푸틴의 불장난에 맞장구친 그의 ‘가문’과 ‘사당’의 패거리로 말이다.
[184] 바다에 성을 쌓다
“바다가 육지라면…배 떠난 부두에서 울고 있지 않을 것을”이라는 노랫말이 있다. 1970년대 유행했던 우리 대중가요다. 바다의 큰물 앞에 선 사람의 절망과 비탄이 섞여 있다. 뭍에 묶여 살았던 중국인들의 바다 공포증은 더 심한 편이다. 싸움의 꾀를 다룬 ‘삼십육계(三十六計)’의 첫 계책에도 바다가 먼저 등장한다. ‘하늘을 속여 바다를 건너다’라는 뜻의 만천과해(瞞天過海)다. 이미 소개했듯이 바다 앞에서 겁에 질린 황제를 술과 파티로 속여 어느덧 바다를 건너게 했다는 내용이다.

‘바다를 보며 탄식하다’라는 뜻의 망양흥탄(望洋興嘆)이라는 성어도 있다. 속뜻은 ‘거대함 앞에서의 자기 성찰(省察)’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그 설정 또한 ‘바다를 앞에 둔 사람’이다. 상고시대 유명 전설에서는 그 바다를 아예 원망(怨望)으로 대한다. 바다에 빠져 죽은 이 넋이 ‘정위’라는 새로 변해 초목을 물어다가 바다를 메꾼다는 스토리다. 성어로는 정위전해(精衛塡海)다. 사전에서는 천연의 장애에 무릎 꿇지 않고 그를 이겨내는 사람의 의지를 표현했다고 풀이한다.
그러나 달리 보자면 이 역시 바다를 향한 공포와 울렁증의 표현이다. 그래서 차라리 바다를 메꾸려는 생각에 골몰하는 분위기다. 바다 너머 더 너른 대양(大洋)으로 나아가기 힘든 ‘땅 집착 형’ 심리 구조다. 그런 전통은 오늘날에도 이어진다. 동남아와 중국이 공유하는 남중국해의 산호초를 메꿔 군사 기지로 만드는 작업이다. 베트남, 필리핀 등과 영유권 분쟁이 심한데도 중국은 마침내 이곳에 군사기지를 거의 완성한 모양이다.
바다 메꾸기를 넘어 전쟁을 위한 ‘축성(築城)’까지 마쳤으니 전통의 계승과 발전일까. 그러나 국제 해양법과 공해 상 통항(通航)의 자유라는 지구촌 룰을 정면으로 어기는 행위다. 그로써 우리 천연자원 수송량의 절대치를 차지하는 이 바다에 전운(戰雲)마저 감돈다.
[185] 들판에 번지는 불길
큰 벌판이 적잖은 중국에서는 뭔가 널리 퍼지는 것에 대한 주의(注意)가 늘 따랐다. 우선 ‘바람[風]’을 꼽을 수 있다. 앞으로 닥칠 현상의 조짐으로도 쓰이지만, 때로는 널리 퍼지는 무엇을 가리킨다. 물이 도저하게 흘러 퍼지는 ‘유행(流行)’ 개념이다. 바람 따라 이곳저곳에 번져 일정한 습속으로 자리 잡으면 풍습(風習)이나 풍속(風俗)이다. 풍미(風靡)라는 단어는 불어오는 바람의 결을 따라 풀이 납작 엎드리는 경우를 그렸다. 번짐이 크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불씨가 번져 들판의 풀을 태우는 일을 지칭하는 말도 있다. 막아내기 매우 힘든 상황을 설명할 때 잘 쓴다. 유교 경전인 ‘서경(書經)’에 등장한다. 들판을 태우는 불길, 요원지화(爎原之火)라는 성어로 적는다. 만연(蔓延)도 비슷하다. 넝쿨 등이 조금씩 자라다가 더 큰 면적을 차지하는 상황을 일컫는다. 초목의 일종인 띠의 하얀 꽃이 들판에 맹렬하게 퍼지는 모양은 여화여도(如火如荼)라고 표현한다.
물길이 차츰 번지다가 아예 큰 변화로 이어지는 상황은 연변(演變)이다. 서양이 민주와 자유의 가치를 이식해 자기들을 변화시키려 한다는 음모론을 중국 당국은 ‘화평연변(和平演變)’이라며 대단히 경계한다. 모두 유행, 전파(傳播) 또는 전염(傳染) 등을 가리킨다.
너른 땅에 번지는 낯선 요소에 대한 중국인들의 우려는 늘 깊다. 견고한 담을 쌓아 그를 막으려는 방어 심리는 예나 지금이나 같다. 그러나 코로나19를 향한 당국의 대처는 퍽 우악스럽다. 무조건 도시나 구역을 봉쇄하고 사람들을 격리한다.
그 나름대로 효과를 거뒀지만 결국 요즘의 재확산을 못 막았다. 인구 2500만명의 상하이(上海)가 봉쇄에 들어가고 곳곳이 난리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이라서 여파가 대단할 듯하다. 집권 공산당의 통치력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186] 생각이 늘 복잡한 중국
숙고(熟考), 재고(再考), 숙사(熟思)…. 거듭 생각하는 행위다. 사실 이는 중국 인문에서는 거의 ‘강박’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생각이 널리 미쳐야 위기에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식의 경구(警句)가 퍽 발달한 곳도 중국이다. 우선 공자(孔子)의 ‘논어(論語)’에 등장한다.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가까운 곳에 걱정거리가 생긴다(人無遠慮 必有近憂)”는 말이다. 위기에 민감한 유가(儒家)의 전통적 사고, 이른바 우환의식(憂患意識)의 흐름이다.

/일러스트=양진경
‘좌전(左傳)’에 나오는 대표적 경구도 이미 소개했다. “평안할 때 위험을 생각하라(居安思危)”는 말이다. “대비가 있으면 환란을 겪지 않는다(有備無患)”는 그 뒤 구절은 우리가 1970년대 안보 상황을 거론하면서 자주 썼다.
문학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천 리 밖을 내다보고자, 다락 한 층을 더 올라가다(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라는 아주 유명한 시구도 있다. 당(唐)나라 시인 왕지환(王之渙)의 ‘관작루에 오르다(登鸛鵲樓)’라는 작품이다.
모두 넓고 큰 틀에서 상황을 조율하려는 전략(戰略)의 시선이다. 숱한 전쟁에서 키워진 전통 사유, 즉 모략(謀略)의 표현이다. 깊은 생각과 먼 곳에 미치는 사고, 심모원려(深謀遠慮)라는 중국 성어는 우리도 곧잘 쓰는 말이다.
그러나 재고, 따지고, 견주기에만 바쁜 평면적 시선이어서 어딘가 부족하다. 마음 깊숙한 곳의 각성(覺醒)은 없다. 그래서 불가(佛家)의 요소를 수용했을 듯하다. “살생의 칼을 놓으면, 바로 성불한다(放下屠刀 立地成佛)” 식의 가르침 등으로 말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중국이 또 좌고우면(左顧右眄)이다. 러시아를 두둔한다면 반(反)인류의 전쟁 범죄를 중국이 돕는 꼴이다. 선악(善惡)을 가르는 불가의 단호함을 아직 제대로 익히지 못했는가 보다. ‘생각 많은 중국’이 곧잘 빠지는 함정이다.
[187] 흔들리는 중국 대도시
도시의 형성 과정에서 군사적 요소는 매우 중요하다. 우선 안전해야 사람들이 몰려들어 삶의 터전을 이루기 때문이다. 전쟁을 숱하게 겪었던 중국의 경우는 더 두드러진다. 도시를 뜻하는 영어 ‘city’를 곧장 ‘성시(城市)’로 번역한 사례를 봐도 그렇다. 그 성(城)은 분명한 군사적 건축이다. 외부의 침략을 상정해 지은 담장이다. 게다가 정치와 행정의 요소가 덧대져 지금처럼 자리 잡은 곳이 현대 중국의 도시들이다.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광저우(廣州) 등이 대표적이다.

요즘 중국의 그런 ‘성’을 여닫는 일이 화제다.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에 따라 최근 부쩍 유행하는 말은 ‘봉성(封城)’이다. 오미크론이 번진 상하이처럼 도시 전체를 아예 봉쇄하는 일이다.
중국 도시를 일컬을 때 중진(重鎭)이라는 단어도 자주 등장한다. 우리는 어떤 영역의 주요 인력을 가리킬 때 자주 쓴다. 그러나 본래는 ‘핵심[重] 지역[鎭]’을 일컫는 말이었다. 특히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 즉 전략 요충(要衝)과 같다. 진(鎭)은 작은 행정단위의 호칭으로 많이 쓰이나 원래 군사적 행위와 관련이 깊다. 따라서 이 글자는 누군가를 제압한다는 뜻의 진압(鎭壓), 불을 끈다는 진화(鎭火), 마음을 누른다는 진정(鎭靜) 등의 조어로 이어진다.
‘성’과 ‘진’을 합치면 성진(城鎭)이다. 현대 중국에서는 크고 작은 도시들을 모두 통칭하는 단어다. 그러나 각 도시의 경쟁력은 천차만별이다. 국가 차원의 대단한 경쟁력을 지녔으면 ‘중진’이라 부를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
그런 중국 도시의 대표적 ‘중진’들이 코로나 확산 위기에 휘청거린다. 상하이에 이어 베이징, 광저우, 선전(深圳)도 불안하다. 국내외 상황이 모두 악화하면서 개혁·개방 이전의 계획경제 틀로 회귀하려는 중국의 발걸음은 더 빨라질 듯하다.
[188] 일통과 통일
중국에서 숙성한 정치적 사고는 대개 위계(位階)와 배열(排列), 순서(順序) 등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통치의 틀을 촘촘하게 펴서 큰 땅을 지배하는 데 힘을 쏟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크게 주목을 받는 개념의 하나는 일통(一統)이다.

우리는 이 단어를 접할 때 우선 통일(統一)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린다. 비슷하며 서로 섞이기도 하지만 ‘일통’과 ‘통일’은 조금 다르다. 앞은 만물의 근원, 근본 등의 뜻을 지닌다. 그에 가장 가까운 개념은 정통(正統)이다.
중국 역사 속 대부분의 왕조 등이 즐겨 썼다. 그러나 일반 중국인이 가계(家系)를 세울 때도 이 ‘일통’과 ‘정통’의 개념은 뚜렷하게 등장한다. 적장(嫡長)을 중심으로 종법(宗法)의 체계를 세워 이어가는 작업으로 말이다.
그에 비해 ‘통일’은 중심 가닥을 잡아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것들을 하나로 묶는 행위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며 한국인 모두가 목메어 부르던 노래에 잘 담겨 있다. 찢기고 나뉜 것을 모두 모아 합치는 통합(統合)이다.
진시황(秦始皇) 이후 무수한 왕조들이 등장했다 사라진 중국에는 ‘일통’을 세워 혼란한 국면을 ‘통일’하려는 심리구조가 매우 강하다. 공산당이 중국을 이끄는 방식 또한 그와 같다. 늘 ‘중심’과 ‘핵심’을 강조하며 ‘안정’의 중요성을 되뇐다.
이번에는 시장을 통일한다는 구상을 내놨다. 이른바 ‘시장 통일[統一大市場]’ 정책이다. 우선은 큰 방향만 제시해 세부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생산과 유통, 소비 등에서 정부의 전반적인 개입과 통제를 예고했다. 자국에 불리해진 국제 환경에 대응키 위한 내부 정리와 결속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첨단 IT 기술과 AI 기술 등의 축적으로 자신감을 쌓은 중국의 새 ‘디지털 계획경제’ 시도일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189] 중앙과 조정
‘한가운데’라는 뜻을 지닌 한자 단어가 중앙(中央)이다. 우리말 쓰임도 많아 전혀 새롭지 않다. 그러나 한자 둘의 본래 꼴과 새김은 색다르다. 앞의 중(中)은 전쟁터 군대가 쓰는 깃발의 모습이다. 진영 복판의 사령탑을 가리켰을 듯하다.

뒤의 앙(央)은 의외다 싶을 정도다. 죄수가 목에 차는 형구(刑具), 즉 칼을 차고 있는 꼴이다. 따라서 처음에는 ‘재앙(災殃)’의 새김이 컸다고 추정한다. 나중에는 목에 차는 칼의 나무 양쪽이 딱 맞아떨어지는 모습에서 ‘가운데’의 의미를 얻었다고 본다.
그러나 정치권력의 무게가 덧대지면 이 단어는 대단한 위력을 지닌다. 특히 ‘가운데’와 ‘언저리’의 차별성이 매우 심한 중국에서 그렇다. 모두 ‘중심(中心)’과 ‘핵심(核心)’을 강조하는 문화 토양 때문이다. ‘중앙’은 따라서 왕조 통치 집단이었던 ‘조정(朝廷)’과 동의어다.
사회주의 건국에 앞서 중국을 지배했던 국민당(國民黨) 통치 시절에 이 단어는 일찌감치 유행했다. 국민당 기관지는 아예 이름이 중앙일보(中央日報), 통신사는 중앙사(中央社)였다. 당시 당중앙(黨中央)은 집권당 지도부로, 최고의 권력을 상징했다.
공산당 집권 후에도 마찬가지다. 중공중앙(中共中央)은 곧 공산당 최고 지도부를 일컫는 말이다. 무시무시한 권위를 지닌 그룹이다. 국무원 소속의 대표 방송인 CCTV는 한자로 중앙전시대(中央電視臺)다. 공산당 전위인 공산주의청년단(共産主義靑年團) 지도부는 단중앙(團中央)으로 불리며 역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개혁·개방 이후 조금이나마 하방(下放) 흐름을 탔던 ‘중앙’의 권력이 최근 급격히 세지고 있다. ‘권력의 집중[集權]’ 현상이다. 수많은 문제가 불거져도 최고 지도자의 지시를 어김없이 실천하는 상하이(上海) ‘제로 코로나’가 그 사례다. ‘탈(脫) 중앙’의 세계적 흐름과는 전혀 다른 중국의 행보다.
2022.05.06
[190] 중국인들의 외침
“잘사는 집 문에는 술과 고기 썩는 냄새, 길에는 얼어 죽은 이 해골. 잘살고 못사는 모습이 지척으로 갈리니, 슬퍼서 더 이상 적을 수가 없네(朱門酒肉臭, 路有凍死骨. 榮枯咫尺異, 惆悵難再述)”라는 유명 시구가 있다

▲유광종의 차이나 별곡 / 중국인들의 외침 / 일러스트=김하경
당나라 두보(杜甫)의 작품이다. 이른바 ‘안사(安史)의 난’이 벌어졌을 때 백성들의 삶이 처했던 정경을 읊었다. 가난하고 힘없는 민초들의 삶이 막바지로 몰리는 극한의 상황이다. 그렇듯 체념으로 고난을 견디다가 말없이 사라지는 백성들이 중국에서는 많았다.
모든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역경(逆境)에서 취하는 삶의 자세가 우선 체념적이다. 어려움에 도전하거나 제대로 해결하지 않은 채 그냥 제 본분으로 받아들이며 쉽게 만족하는 태도다. 흔히 ‘안분(安分)’과 ‘지족(知足)’이라 일컫는다.
그러나 사람인 이상 마냥 참을 수만은 없다. 소리부터 새 나오는 경우가 있다. 공평치 못하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번지는 목소리다. 흔히 불평지명(不平之鳴)이라는 성어로 적는다. 우리가 자주 쓰는 ‘불평하다’와 관련이 있는 말이다.
급기야 큰 소리로 울부짖는 외침이나 절규(絶叫)가 이어진다. 중국에서는 흔히 눌함(吶喊)으로 적는다. 중국 현대문학의 문호(文豪) 노신(魯迅)의 소설집 이름이기도 하다. 무기력했던 당시 중국 사회에 각성을 촉구하는 메시지가 담겼다.
그러다 마침내 백성들이 저항을 시작한다. 몽둥이를 들고 집 문을 나서는 경우다. 흔히 ‘게간(揭竿)’이라고 하는데, 거대한 왕조를 무너뜨리곤 했던 민란(民亂)의 시작이다. 통치 집단이 가장 두려워했던 현상이다.
오미크론 확산의 참상을 기록한 ‘상하이 외침(上海吶喊)’이라는 동영상이 큰 화제라고 한다. 상하이 사람들의 끓어오르는 민원(民怨)을 담았다. 사회 안정을 국정 최대 목표로 두고 있는 중국 당국자에게는 그 외침이 아주 크게 들릴 듯하다.
[191] 더욱 견고해지는 통제
먼저 움직여 남을 누르는 일은 중국 성어 표현으로 선발제인(先發制人)이다. 줄여서는 ‘선제(先制)’라고 적는다. 남과의 싸움이나 다툼을 상정하는 상황에서 흔히 사용한다. 어떻게 하면 사람을 내 뜻에 맞춰 컨트롤할 수 있느냐는 통제(統制)에 관한 고민이다.

그런 까닭에 중국인들의 시선은 곧잘 남의 ‘급소’에 머문다. 앞서도 얘기했듯, 우선 요령(要領)이라는 단어가 그렇다. 두 글자는 각각 허리[腰]와 목 부위 주변[領]을 가리킨다. 이곳을 남에게 잡히면 옴짝달싹하기가 매우 힘들다. 따라서 ‘사안의 핵심’이라는 뜻을 얻었다.
옆구리도 마찬가지다. 이곳을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았을 때는 곧장 치명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자로는 보통 협(脅)이라고 적는 곳이다. 그 부위를 직접 힘으로 압박하거나 무기 등으로 노리는 행위 등은 협박(脅迫), 위협(威脅)이란 말로 잇는다.
팔꿈치도 그렇다. 뭔가를 하려 할 때 남에게 이곳을 잡히면 손을 움직이지 못한다. 따라서 일을 망가뜨릴 수밖에 없다. 그 경우를 철주(掣肘)라고 적어, 간섭(干涉)이나 방해 등으로 일을 그르치게 만드는 상황을 표현한다.
감독하며 관리하는 경우를 중국에서는 보통 ‘감관(監管)’이라는 단어로 곧잘 적는다. 앞 한자는 그릇에 물을 담아 스스로를 비춰보는 행위에서 비롯했다가 이제는 대상을 살피는 동작으로 자리를 잡았다. 뒤 글자는 ‘자물쇠’ 등의 뜻에서 발전해 열고 닫음의 개폐(開閉), 더 나아가 상황 등을 관리한다는 뜻으로 정착했다.
최근 공산당 정치국 단체 학습 자리에서 시진핑(習近平) 총서기는 금융, 자본, 과학 등 모든 영역에서 ‘감관’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 단어는 무려 26차례나 등장해 큰 화제였다. 통제를 전 방위로 넓히겠다는 뜻이다. 코로나19 봉쇄·격리와 함께 중국의 향후 행보를 짐작하게 하는 언어 행렬이 아닐 수 없다.
[192] ‘내빼기’에 몰리는 민심
두 가지 대립적인 개념을 한데 엮는 단어 구성은 중국의 언어 전통에서 퍽 돋보인다. 음양(陰陽), 강약(强弱), 노소(老少) 등이 사례다. 그런 맥락에서 잘나가는 학문이나 학설을 현학(顯學), 그 반대를 은학(隱學)으로 적을 때가 있다. ‘두드러짐[顯]’과 ‘가려짐[隱]’의 뚜렷한 콘트라스트다.

/일러스트=김성규
법가(法家)의 토대를 이룬 전국시대 한비자(韓非子)는 당시의 ‘현학’으로 두 학설을 꼽았다. 유가(儒家)와 묵가(墨家)다. 전자는 한(漢)에 이르러 관학(官學)의 위상을 차지한 뒤 줄곧 중국인의 삶을 지배한 대표적 학문이다.
그에 비해 다른 이에게도 사랑을 실천하라는 겸애(兼愛)의 가르침을 지닌 묵가 학설은 잠시 유행을 탔다가 가려진 학설인 ‘은학’, 다시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하는 ‘절학(絶學)’으로까지 내동댕이쳐졌다. 중국 문명사의 굵은 미스터리다.
‘현학’ 개념은 영역별로 자주 등장했다. 유명 소설 ‘홍루몽(紅樓夢)’ 연구가 바람을 타면 ‘홍학(紅學)’이 그 자리를 차지했고, 서역으로 향하던 길목의 둔황(燉煌) 동굴 문서가 인기를 얻으면 그에 관한 학문이 당대 ‘현학’의 타이틀을 거머쥐는 식이었다.
요즘 중국 인터넷을 달구는 최고의 인기 학설은 ‘윤학(潤學)’이다. 언뜻 보면 ‘삶을 윤택하게 하는[潤] 학설[學]’로 보이지만 실제 뜻은 전혀 다르다. 앞의 ‘윤’은 로마자로 적는 중국 발음 표기가 run이다. 중국어 발음은 ‘룬’이지만, 이때는 그냥 영어 run으로 읽는다.
물론 그 뜻은 ‘뛰다’ ‘내빼다’다. 현재 중국의 ‘현학’으로 떠오른 이 ‘윤학’은 결국 중국으로부터 내빼는 방법에 관한 여러 궁리와 모색을 가리킨다. 삶의 터전을 아예 외국으로 옮기는 이민(移民)의 트렌드다. 개혁·개방의 퇴조, 강해지는 정부 통제와 감시에 대응하려는 민간의 심리다. 요즘 중국인 삶이 꽤 만만찮은 모양이다.
[193] 침묵하는 지식인들
말이 벼룩 등의 벌레에 물려 갑자기 날뛰는 경우가 있는가 보다. 그 상황을 적는 한자는 ‘소(騷)’다. 이 글자의 우리 용례도 제법 많다. 소란(騷亂), 소동(騷動), 소요(騷擾) 등의 사례다. 소객(騷客)이라는 단어도 있는데, 흔히 시를 읊는 문인을 일컫기도 한다.

▲일러스트=김성규
글자만을 보면 ‘소란을 떠는 사람’ 정도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유래는 문학작품이다. 고대 중국 남방문학의 대표에 해당하는 ‘초사(楚辭)’의 ‘이소(離騷)’편이다. 정의롭지 않은 세상사에 대한 원망을 작자 굴원(屈原)이 낭만주의 시풍으로 그려낸 걸작이다.
그 작품의 후대 영향이 아주 커 무릇 시를 짓는 사람들은 ‘소객’이라고 불렸다. 때로는 둘을 한데 엮어 곧장 ‘시인소객(詩人騷客)’ 등으로도 적었다. 이 호칭에는 떨어지는 잎사귀에도 눈물 흘리는 시인의 다감(多感), 부조리에 저항해 목소리를 내는 지식인의 비판의식이 담겼다.
그와 비슷한 말은 묵객(墨客)이다. 먹[墨]을 다루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벼루에 먹을 갈아 시문(詩文)을 짓는 지식인 전체의 통칭이다. 그래서 흔히 ‘문인묵객(文人墨客)’으로도 부른다. 앞의 ‘소객’을 조금 변형해 붙인 ‘소인묵객(騷人墨客)’도 곧잘 쓰는 표현이다.
문사(文士), 아사(雅士) 등도 그런 호칭이다. 책을 끼고 살아간다는 뜻에서 쓰는 서생(書生), 독서에만 빠져 지낸다고 해서 적는 서치(書癡) 등도 있다. 때로는 풍류에 끝없이 빠져드는 단점도 드러냈지만 나름대로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데 노력했던 집단이다.
따라서 이들이 가을날 매미처럼 소리를 멈추면 곤란하다. 요즘 중국의 지식계가 ‘겨울’ 분위기다. 개혁·개방이 멈추고 과거로의 회귀가 뚜렷해지자 다양한 목소리를 내던 ‘소인묵객’은 사라지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묵객(黙客)’만이 가득하다. 중국의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194] 중국의 5월 35일
과거 베이징(北京)을 일컬었던 여러 호칭 중 하나는 베이핑(北平)이다. 북쪽 지역의 평온(平穩)과 안정(安定)을 염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중국인은 보통 그 둘을 줄여 ‘평정(平定)’이라는 단어로 곧잘 적는다.

전란과 재난을 잔혹하리만치 자주 겪은 중국인의 심성에 평온과 안정을 향한 꿈은 아주 견고하다. 이른바 ‘태평(太平)’을 갈구하는 심리다. 달리 태평(泰平)이라거나 승평(昇平), 또는 승평(承平)으로도 적는다.
수도(首都)의 대명사처럼 쓰는 장안(長安)이라는 말이 우선 그 맥락이다. 우리도 “장안의 화제다”라며 곧잘 사용한다. 이 단어는 ‘태평’을 향한 심리가 정치적으로 영근 이름이다. 본래 ‘오래도록 다스리며 안정을 이루다(長治久安)’라는 말에서 나왔다.
베이징의 얼굴인 천안문(天安門) 이름도 마찬가지다. ‘하늘의 명을 받아 나라를 잘 다스리다(受命于天 安邦治國)’라는 말에서 글자를 뽑았다. 예나 지금이나 치세(治世)를 지향하는 중국 통치 권력의 뚜렷한 정치적 상징이다.
마침 천안문 앞에 동서(東西)로 55㎞인 장안가(長安街)가 지난다. 베이징의 또 다른 상징인 이 도로는 옛 황궁인 자금성(紫禁城)의 남북 축선 중 천안문과 겹치면서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둘의 이름 모두 평온과 안정의 ‘평정’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남쪽의 천안문 광장에서 1989년 6월 4일 청년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당국은 이들을 총칼로 진압했다. 민주와 자유를 향한 젊은 중국인들의 꿈이 치세를 유지하려는 무형의 정치적 구조물에 걸려 사그라진 ‘6·4 천안문 사태’다.
중국 당국은 이를 동란(動亂)으로 규정해 기념식 등을 막고 있다. ‘6·4′라는 숫자의 포털 검색 등도 금지한다. 그래서 민간은 그 날을 5월 35일로 적어 기념한다. 중국에서만 유독 긴 그 5월이 ‘태평’의 적막감 속에서 또 저문다.
[195] “나는 마지막 세대 중국인”
몸집보다 머리가 큰 아기를 형상화한 한자가 ‘자(子)’다. 나중에는 ‘아들’이라는 뜻을 얻지만, 본래의 출발점에서는 그저 갓 낳은 아기를 지칭했다. 그 아이 옆에 실[糸]을 붙인 글자가 ‘손(孫)’이다. 후대가 실처럼 이어진다는 뜻이다.

둘을 합치면 자손(子孫)이다. 자자손손(子子孫孫), 세세대대(世世代代), 자손만대(子孫萬代) 등의 언어를 발전시킨 중국은 지나치리만큼 자손을 향한 애착이 강하다. 부모님께 불효(不孝)함에 “후대를 잇지 못함이 가장 크다(無後爲大)”고 했을 정도다.
그 혈통의 이어짐을 보통은 세대(世代)라는 말로 표현한다. 세(世)는 흔히 30년을 주기(週期)로 잡는다. 나중에는 한 사람의 일생(一生)을 가리키는 뜻도 얻었다. 금세(今世)는 이번 삶, 내세(來世)는 다음 생이다.
대(代)는 그 ‘바뀜’을 지칭한다. 본래는 왕조 중심으로 역사 시기를 구분하는 조대(朝代)나 역대(歷代) 등의 단어로 쓰였다. ‘삼대(三代)’는 하(夏)·상(商)·주(周)의 중국 고대 세 왕조를 일컫는 말이었으나 이제는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를 지칭한다.
스스로 중국인임을 거부하는 경우가 잦아진다. 2007년 홍콩의 한 중국인이 자국 문화를 비판하며 ‘다음 생에는 중국인으로 태어나지 않겠다(來生不做中國人)’는 책을 펴내고 해외로 이주해 큰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코로나19의 방역 과정에서 집에 들이닥쳐 “검사 거부하면 후대가 불리하다”며 PCR 검사를 강요하는 경찰에게 상하이(上海) 한 젊은 남성이 “(중국인으로는) 내가 마지막 세대(最後一代)”라고 쏴붙였다.
무겁고 사나운 전제(專制)의 틀에 비틀거리다 절규하듯 내뱉은 이 한 마디는 동영상으로 퍼져 대단한 관심을 모았다. 핏줄의 전승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중국인들에게도 이 말은 큰 공명(共鳴)을 일으킨 모양이다.
[196] 당나라와 중국
당나귀와 당면. 두 단어 앞에 붙은 ‘당’은 과거의 중국을 가리켰던 글자 당(唐)에서 비롯했다는 설명이 지배적이다. 그런 씀씀이의 ‘당’은 제법 많다. 중국인을 당인(唐人), 그곳의 물품을 당물(唐物), 그 학문을 당학(唐學)으로 지칭했던 사례들이다.

중국 역사에서 극성기(極盛期)를 맞았던 당 왕조로 인해 생겨난 개념이자 호칭이다. 따라서 중국인 스스로도 자신의 정체성을 이 글자로 곧잘 적는다. 해외의 중국인들이 몰려 사는 ‘차이나타운’을 대부분 당인가(唐人街)로 적는 점이 대표적이다.
1970년대를 풍미했던 쿵후 스타 리샤오룽(李小龍)의 영화 ‘당산대형(唐山大兄)’의 ‘당산’은 해외로 이주한 중국인들이 제 고향을 일컬을 때 자주 사용했던 일반명사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허베이(河北) 동북 지역에 있는 인구 769만 명의 도시를 지칭하는 고유명사이기도 하다.
1976년 7월 리히터 규모 7.5의 지진이 발생해 약 30만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그때의 피해가 아주 참혹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곳이다. 도시 이름은 당 태종 이세민(李世民)이 고구려를 치기 위해 이곳을 한 차례씩 오간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요즘 이 도시가 큰 화제다. 술집에서 남성 폭력배 9명이 성추행에 저항하는 여성을 잔인하게 폭행한 사건 때문이다. 현장에 있던 어느 누구도 이들을 제지하지 않았다고 한다. 공권력의 부패와 무능, 그에 따른 폭력배의 발호, 국민 의식의 퇴보 등 사회 안전과 관리의 수준에서 현재 중국의 총체적 치부를 드러낸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당’은 왕조 이름이자 중국 정체성을 대변하는 글자이기에 앞서 ‘거짓말’ 또는 ‘어이없다’의 뜻을 지닌 글자다. 황당(荒唐), 당황(唐慌) 등의 조어가 그래서 나왔다. 경제성장의 거품에 가려졌던 중국의 진짜 모습을 지켜보자니 아주 황당하며 당황스러운 요즘이다.
[197] 무릉도원의 꿈

중국인이 꿈꿨던 이상향(理想鄕)은 도화원(桃花源)이다. 한국이나 일본은 흔히 무릉도원(武陵桃源), 중국은 보통 세외도원(世外桃源)이라고 적는다. 쾌락과 환희의 뜻으로도 쓸 수 있지만 본래 ‘사람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곳’의 지칭이다.
동진(東晋) 시인 도연명(陶淵明·365~427년)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비롯했다. 어느 날 고기잡이 어부가 물길 따라 계곡으로 들어가다 복숭아꽃 흐드러진 숲을 만난다. 이어 더 깊은 골짜기 안쪽에서 마주친 곳이 ‘도화원’이다.
이곳에서 어부는 세상과 동떨어진 사람들을 만난다. “진(秦)나라 때의 난(亂)을 피해 이곳으로 왔다”는 주민들은 어부에게 “지금이 어느 세상이냐?”고 반문한다. 그 다음에 들어선 왕조는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인심은 푸근했다. 음식을 가져와 어부와 함께 나눠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씨, 낯선 사람 반겨주는 심성의 소유자들이다. 주민들끼리도 격의 없이 소통하며 서로 챙기는 분위기다.
도연명이 글에서 나열한 이 몇 가지는 중국인들이 그리는 ‘이상향’의 조건이다. 삶을 위협하는 전란(戰亂) 등이 없고, 나름대로 자족(自足)할 수 있는 물질적인 환경을 갖춰 원만하고 따뜻한 사람 사이의 사회관계를 구성할 수 있는 곳이다.
그 기준으로부터 요즘 중국은 더 멀어졌다. 우선 강대국 지향의 ‘중국 꿈[中國夢]’이 외부와 큰 마찰을 불렀다. 나아졌던 경제는 끈질긴 관료 부패 등의 덫에 걸려 휘청거리고, 전제주의의 완고한 틀은 사람이 서로 불신하는 사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도연명 글 속의 어부는 살던 곳으로 돌아오며 표지를 남겨 다시 도화원을 찾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중국인의 도화원은 늘 ‘실종 상태’다. 이러다가 말의 속뜻도 ‘아예 갈 수 없는 곳’으로 변할지 모르겠다.
[198] 야비함과 고상함

유비(劉備)가 초야에 있던 제갈량(諸葛亮)을 세 번 찾아가 제 진영으로 끌어들인 ‘삼고초려(三顧草廬)’의 고사는 퍽 유명하다. 제갈량은 그때를 회고하면서 “돌아가신 황제께서 제 미천함을 따지지 않으시고(先帝不以臣卑鄙)…”라고 적었다.
유비가 세상을 뜬 뒤 북벌(北伐)에 나선 제갈량이 새 황제 유선(劉禪)에게 올린 ‘출사표(出師表)’에 담겼다. 여기에 등장하는 비비(卑鄙)라는 단어는 ‘신분이 낮으며[卑], 지식 견해 등이 부족함[鄙]’을 의미했다.
앞 글자는 높고 낮음의 존비(尊卑)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뒤의 ‘비(鄙)’는 정상적인 문물을 갖추지 못한 ‘야만(野蠻)’의 상태를 가리킨다. 본래는 권력의 중추와 일반인들이 사는 성읍(城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지칭했다.
따라서 두 글자를 합친 ‘비비’는 어감이 썩 좋지 않다. 미천한 신분에 지식이나 견해가 얕은 사람을 형용한다. 제갈량이 한껏 자신을 낮춰 적은 표현이다. 그러나 이 단어의 현대 중국어 쓰임은 조금 다르다.
성격이나 행동이 천박한 ‘야비(野鄙)’나 ‘비루(鄙陋)’에 가깝다. 그로써 드러내는 도덕적 타락도 의미한다. 형편없는 인격,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품 등의 소유자도 가리킨다. 이 단어를 써서 중국 사회의 문제를 지적한 시가 있다.
베이다오(北島)라는 필명의 시인이 쓴 ‘회답(回答)’이다. 그 첫 구절은 “야비함은 야비한 자의 통행증, 고상함은 고상한 이의 묘지명(卑鄙是卑鄙者的通行證, 高尙是高尙者的墓誌銘)”이다. 타락한 자들의 발호, 의젓한 이의 몰락을 그렸다.
1966~1976년의 문화대혁명 시기 중국 사회를 고발한 시다. 현재의 중국은 그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까. 야비함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고상함은 늘 그렇듯 땅에 묻힐까. 부패한 관치(官治)에 짓눌려 신음하는 민생(民生)을 보면 시인의 절규는 아직 유효한 듯….
[199] ‘바람과 나무’의 노래

표준(標準)이라는 말은 자주 쓴다. 앞의 표(標)는 나무의 맨 윗가지를 가리킨다. 그에 견줘 사물의 높낮이를 파악할 수 있다. 뒤의 준(準)은 물 있는 곳의 수면을 지칭한다. 이로써 사물의 기울기를 헤아릴 수 있다. 그래서 단어는 기준, 규범 등의 뜻을 얻는다. 그렇듯 우뚝 솟은 나무의 꼭대기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곧잘 닿는다. 그곳에 거센 바람이 걸려 나무가 몹시 흔들릴 때는 더욱 그렇다. 오늘은 흔히 ‘풍목(風木)’이라고도 적는 바람과 나무의 이야기다.
성어로는 우선 풍목지비(風木之悲)가 떠오른다.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는 중국 속언에서 유래했다. 그다음 구절이 “자식은 모시려고 하지만 부모는 기다리지 않는다(子欲養而親不待)”다.
그래서 부모 여읜 자식의 슬픔이 속뜻이다. 그러나 바람과 나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자식의 애달픈 효성에만 멈추지 않는다. 바람을 견디는 나무, 바람을 불러들인 나무에도 주목한다. 우선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려…”라는 우리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한 구절이 아주 유명하다.
기초가 튼튼하면 웬만한 시련은 견딘다는 말이다. 왕조 통치의 근간을 굳건히 다진다는 뜻을 담았다. 그러나 나무가 괜히 몸집을 키워 바람을 불러들인다는 점에도 착안한다. 수대초풍(樹大招風)의 중국 성어가 그렇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우리 속담과 같다. 넘치는 동작 등으로 비난이나 오해를 부른 이가 그 대상이다. 요즘 중국이 꼭 그런 꼴이다. 대외 확장의 기세가 지나쳐 지구촌 곳곳에 반중(反中) 정서가 가득하다.
몸집 키웠다고 으스대던 중국이라는 나무가 거센 바람을 부른 형국이다. 이러다가 잎사귀 다 떨군 나목(裸木)의 지경에까지 닿지 않을까 걱정할 형편이다. 어제와 오늘, 중국의 이미지가 크게 뒤바뀌고 말았다.
07.15
[200] 총리가 사라졌다

“자르려 해도 끊지 못하고, 다듬고자 하나 더 헝클어지니(剪不斷, 理還亂)…”라는 노래가 있다. 망국(亡國)의 군주였으나 문재(文才)가 아주 빼어났던 남당(南唐) 이욱(李煜)의 사(詞)에 나온다. 나라 잃고 적국에 포로로 잡혀와 지은 작품이다.
없어지기는커녕 더욱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것은 제 나라와 헤어진 슬픔, 즉 ‘이수(離愁)’다. 요즘의 중국인들도 자주 읊는 명구다. 얽히고설켜 좀체 가닥을 잡지 못하는 상황을 이 노랫말로 표현할 때가 많다.
무엇인가 자르는 행위를 전(剪), 엉킨 실타래 등을 매만져 가닥 잡는 일을 이(理)로 묘사했다. 뒤 글자 쓰임새는 아주 많다. 머리카락 다듬는 이발(理髮)을 먼저 떠올리면 좋다. 영어 ‘Prime Minister’를 번역한 한자어 ‘총리(總理)’도 눈에 띈다.
번역어로 쓰이기 전 이 단어의 새김은 ‘어떤 일을 총괄하다’였다. 의미만으로는 ‘총독(總督)’과 동의어다. 처음에는 지방 관청의 부분 책임자도 지칭했으나 차츰 왕조 중앙 권력의 중요한 통솔자란 뜻을 얻었다.
청나라 때 생긴 최초의 외교부 명칭은 ‘총리각국사무아문(總理各國事務衙門)’이다. 대외 업무를 모두 처리하는 기관이라는 뜻이다. 열강이 중국에 외교 공관을 세우자 그에 대응코자 만든 부서다. 이런 곡절을 거쳐 단어는 지금의 ‘총리’라는 말로 정착했다.
요즘 중국의 총리는 규정상 행정부의 모든 일을 이끈다. 그러나 권력 서열 1위인 공산당 총서기(總書記)의 그늘에 늘 가린다. 총서기 시진핑(習近平)의 1인 권력이 강해지면서 총리의 존재감은 더욱 약해졌다.
하강하는 경제, 높아지는 실업률 등에도 속수무책이다. 최근에는 은행 예금 인출 사태와 그를 강제 진압하는 일까지 빚어진다. 매만지려 해도 더 헝클어지는 형국이다. ‘총리’의 기능이 사라진 탓일까. 꽤 불안해 보이는 요즘 중국의 ‘관리(管理)’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