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지구촌 소식 2022-02/ 04.01 “우크라軍, 러시아 본토 첫 공격…석유저장시설에 미사일 타격” - 04.30 "답 없네" 푸틴 뒤통수 때렸다…러에 최악의 악몽

상림은내고향 2022. 5. 5. 16:01

지구촌 소식 2022-02/ 04

04.01 “우크라軍, 러시아 본토 첫 공격…석유저장시설에 미사일 타격

1일(현지 시각) 러시아 벨고로트 지역의 석유 저장고에서 발생한 화재를 촬영한 장면/텔레그램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 있는 러시아의 석유 저장시설이 1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군 헬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고 러시아투데이(RT) 등 러시아 언론들이 보도했다. 개전 이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를 공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일(현지 시각) 러시아 벨고로트 지역의 석유 저장고에서 발생한 화재를 촬영한 장면./텔레그램

 

타스통신에 따르면 이날 새벽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북동쪽으로 약 35km 떨어진 러시아 벨고로트 지역의 석유 저장고에서 큰 폭발음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다. 뱌체슬라프 글라드코프 벨고로트 시장은 “우크라이나 군용 헬리콥터 두 대가 저고도로 비행하다가 러시아 영토에 진입했으며 미사일로 시설을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1일(현지 시각) 러시아 벨고로트 지역의 석유 저장고에서 발생한 화재를 촬영한 장면./텔레그램

 

벨고로트시 측이 공개한 방범카메라 영상에 따르면 몇 차례 번쩍이는 플래시가 터진 뒤 폭발이 발생한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화재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다만 우크라이나 측은 자국군이 공격을 행했다고 주장하지 않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해당 시설엔 현재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으며, 창고에서 근무하던 직원 2명이 부상을 입었다. 근처 주민들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피했다.

조선일보 김수경 기자

 

04.01 “우크라 전쟁 오래 안 갈듯…푸틴 치명타 입을 수도”

세계적 전쟁 권위자 로런스 프리드먼 교수

강남규 S팀 기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한 달을 넘어섰다. 뜻밖이다. 우크라이나가 잘 버티고 있다. 러시아는 고전하고 있다. 양쪽의 평화협상도 진행 중이다. 타결되는 듯했으나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결국 장기전으로 가는 것일까? 최후의 승자는 어느 쪽일까? 전쟁 이후 세계는 어떻게 될까? 요즘 비즈니스 리더와 투자자 등이 가장 궁금해하는 대목이다. 경제 전문가나 투자 고수 등이 속 시원하게 대답하기 어려운 물음이다. 전쟁은 팬데믹처럼 경제 외적인 변수(exogenous variable)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전쟁·전략 전문가인 로런스 프리드먼 영국 런던대 킹스칼리지 석좌 교수를 줌(Zoom)으로 인터뷰한 이유다. 프리드먼 교수는 『전쟁의 미래』와 『전략의 역사 1, 2』 등을 썼다.

 

1차대전식 소모전은 양측에 부담
푸틴이 유야무야 끝낼 가능성 커

시간 끌수록 러시아 약점만 노출
전쟁 지지한 세력도 큰 상처받아

북한은 세계서 가장 퇴행적인 곳
제재와 당근, 장기적인 전략 필요

 

 러시아군 사기·보급 모두 추락

 로런스 프리드먼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떤 상태인가.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그의 장군들이 처음 세운 작전계획대로 되고 있지 않은 듯한데.

“작전계획에 전혀 근접하지 못하고 있다. 푸틴과 그의 장군들은 공격 개시 2~3일 안에 수도인 키이우와 북동부 중심지인 하르키우 등 주요 지역을 점령하려고 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러시아군의 보급과 사기, 무기 상황 등 모든 게 문제투성이다.”

 

▶최후의 승자는 어느 쪽일까.

“우크라이나 사태는 군사작전으로나 외교 담판으로 끝날 수 있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푸틴이 선뜻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결국 푸틴은 제3의 길을 선택할 전망이다. 바로 시간을 끌어 사태가 유야무야되도록 할 가능성이 있다.”

 

▶민간인 피해가 급증하고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장기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유야무야가 장기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재 우크라이나 시민과 군은 사기가 높다. 반면 러시아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수적으로 우세하다. 우크라이나 주요 거점을 놓고 치열하게 전투가 이어지고 있는 사이 평화협상 등 외교적 움직임도 보인다. 내가 보기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1차대전 참호전처럼 교착상태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모두 경제적으로 힘들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오랜 기간 버티기는 정말 어려울 것이다.”

 

1차대전은 1914년 7월에 시작됐다. 전쟁 첫해 독일군이 기세 좋게 프랑스 파리 근처까지 진격했다. 하지만 참호를 파고 공방만을 이어가는 교착상태가 1917년까지 이어졌다. 1차대전은 소모전의 대명사다. 병사 900만 명 이상이 숨졌다.

 

미국의 러시아 제재는 올바른 방향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고전하고 있다. 사진은 우크라이나군이 동부 도시 트로스얀네츠에서 러시아군을 몰아낸 뒤 28일 시내로 진입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푸틴 축출을 시사했다. 이번 전쟁으로 푸틴이 권좌에서 밀려날까.

“우크라이나와 전쟁이 러시아엔 재앙과 같아 푸틴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현재 상황이 러시아군에 너무나 치욕적이다. 러시아군, 그들이 누구인가. 2차대전 때 히틀러 군대를 물리쳤다는 자부심이 강한 세력이다. 푸틴의 권위는 이번 전쟁을 비판하며 거리 시위를 벌이는 러시아 시민뿐만 아니라 전쟁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푸틴이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보는 세력에 의해서도 위협받을 수 있다. 다만, 푸틴이 어떤 과정을 거쳐 축출될지는 현재 알기 어렵다.”

 

▶글로벌 정치지형에서 푸틴의 상대인 바이든이 지금까지 보여준 대응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바이든은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제재하면서 우크라이나를 돕고 있다. 올바른 방향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현재 미 대통령이라면 바이든만큼 푸틴을 압박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다. 그 바람에 중국 리더들이 대만 등 이웃을 공격해도 미국이 군대를 직접 파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판단하지 않을까.

“미국에는 대만보호법이 제정돼 있다. 한국은 미국과 동맹 관계다. 미국의 대응이 대만이나 동맹인 한국,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폴란드가 공격받았을 때와 우크라이나 침공받았을 때 다를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동맹이 아니다.”

 

▶G2인 미·중이 국제정치뿐 아니라 경제에서도 맞서는 와중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졌다. 이번 전쟁이 주요 강대국 사이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전쟁 이후 상당 기간 다른 전쟁을 벌이기 어려울 전망이다. 너무나 많은 약점이 노출됐다. 러시아가 더 이상 강대국으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중국의 정치인과 군사전략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들이 이번 사태로 얻을 교훈은 ‘아주 손쉽게 이길 수 있는 전쟁도 여차하면 최악의 전쟁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이번 전쟁 주목하는 이유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 등으로 러시아 탱크를 효과적으로 부수고 있다. 기갑부대의 무용론이 커지고 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공격 헬기가 등장할 때 탱크는 더 이상 쓸모없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그러나 탱크를 중심으로 한 기갑부대가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공중과 지상 엄호부대의 지원을 받는 진용을 갖춰 기갑부대를 운영했는지가 핵심이다. 러시아는 엄호부대 없이 기갑부대를 앞세우다 당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직후 많은 기업이 경제제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도 러시아에서 철수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최근 30~40년 동안 국제관계에서 유지되온 ‘경제 우선’ 대신 ‘안보 우선’ 트렌드가 힘을 얻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세계화 흐름이 끝날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팬데믹 때문에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다. 기업인들이 잊고 지낸 전쟁이란 리스크가 되살아났다.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고민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팬데믹 이전까지 글로벌 공급망은 늘 작동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지금은 전염병이나 전쟁 등 비즈니스 리더들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에 의해 공급망이 끊길 수 있다는 우려를 늘 해야 하고, 돈을 들여 대비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이제 글로벌 공급망은 고효율-저비용 시스템이 아니다.”

 

러시아 국민, 푸틴에 등돌릴 수도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제재하고 있다. 이제 러시아가 글로벌 경제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것인가. 한국 기업은 전쟁이 빨리 끝나 러시아와 교역을 다시 하고 싶어한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는 평화협상에서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푸틴은 철군 등의 조건으로 제재 해제를 내걸 가능성이 크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제재를 푸는 데 강하게 반대할 것이다. 미국은 푸틴을 권좌에서 밀어내기 위해 경제제재를 활용할 수 있다. 반면 유럽은 부분적으로 제재해제를 원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산 에너지와 원자재 등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제재의 부분적 해제는 가능하다.”

 

프리드먼 교수는 “미국과 유럽이 경제제재를 이어가면 우크라이나와 전쟁에서 자존심이 상한 러시아인들이 푸틴에게 등을 돌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제재가 너무 가혹하면 러시아 국민이 푸틴을 중심으로 뭉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어느 정도 고통을 줘야 러시아 국민이 푸틴한테서 멀어질지는 과학이 아니라 예술의 영역”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험했다. 전략 전문가로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면.

“아주 고립적이고 퇴행적인 곳이 북한이다. 당장 북한 내부에서 중대한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변화시킬 카드가 거의 없다. 차라리 장기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북한이 핵을 가졌다는 사실을 한국과 미국이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당근을 제시하는 전략만이 남아 있는 듯하다.”

 

로런스 프리드먼 교수

전쟁과 군사전략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영국 맨체스터대와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했다. 국제전략연구소(IISS)와 왕립국제문제연구소(RIIA)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현재는 런던대 킹스칼리지 전쟁센터 석좌교수다. 그는 2009년 이라크 전쟁의 공식 조사단으로 활동했다. 지은 책으로는 국내에 번역·소개된 『전쟁의 미래』와 『전략의 역사 1·2』 외에도 『전쟁 억지력』 『걸프전』 『전략 연구의 변화』 『냉전』 등이 있다. 프리드먼 교수는 『적들의 선택: 미국이 직면한 중동 세계』로 2009년 뛰어난 논픽션 작품에 주는 라이오넬 겔버상을 받았다. 『전략의 역사』는 2013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책’에 올랐다.

강남규 S팀 기자

 

04.04  검은 포대에 민간인 시신 410구가... 러軍, 키이우 인근 ‘부차 대학살’

▲3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교외 부차 지역에서 검은 포대로 싼 민간인 시신이 방치돼있다. 한 구조대원은 교회 뒤편 구덩이에서 시신 57구가 묻힌 곳이 발견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AF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검찰은 3일(현지 시각) 수복한 키이우 인근 지역에서 민간인 시신 410구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리나 베네딕토바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지금까지 (러시아에 의해) 살해된 민간인 410구를 수습했으며 이 중 140구는 검사·수사관 및 법의학 전문가의 조사를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이 땅을 지옥으로 만든 짐승 같은 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전쟁 범죄를 기록해야만 한다”면서 국내법·국제법에 따라 기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베네딕토바 검찰총장에 따르면 키이우 지역에는 현재 50명 이상의 우크라이나 경찰과 검사가 긴급 수사에 투입됐다. 베네딕토바 검찰총장은 “지역 주민들은 상당히 지쳐 있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를 경험했다”면서 “어려운 작업이지만 주민들과 협력해 증인·희생자·사진 및 영상 증거를 수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2일 우크라이나 군이 탈환한 키이우 교외 부차 지역에서는 시신 57구가 묻힌 곳이 발견되기도 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이 중 10여구는 제대로 매장되지 않아 눈에 보일 정도였고, 일부는 검은 시신 포대로 싸여 있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3일 미국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의 행위에 대해 “이것은 집단학살이다. 우크라이나 전체와 국민을 말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것이 21세기 유럽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는 나라 전체에 대한 고문”이라고 비난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도 러시아가 “계획적으로 대학살을 벌였다”며 주요 7국(G7)에 추가 대러 제재를 요구했다.

조선일보  백수진 기자

 

04.05  "러軍, 보이는 사람 모조리 쐈다" 부차 생존자의 증언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소도시 부차에서 러시아군의 집단 학살 증거들이 나오는 가운데 러시아군이 민간인들을 향해 보이는 대로 무차별 사격을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소도시인 부차의 아파트 단지 공터에 급히 만든 무덤이 즐비하다. 러시아군의 점령하에 있다가 최근 해방된 키이우 인근 지역에서 410구 이상의 민간인 시신이 발견됐다. EPA=연합뉴스

 

뉴욕타임스(NYT)는 3일(현지시간) 부차 주민인 안토니나 포마잔코는 러시아군이 부차에 처음 진격한 날인 2월 27일 오전 그의 딸 테티아나 포마잔코(56)를 러시아군에 잃었다고 보도했다.

 

 부차 시민인 57세의 타니야가 4일 자신의 남편을 주택가 공터에 묻고 오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당시 테티아나는 러시아 탱크 대열이 나타나자 이를 보기 위해 집 밖 정원으로 나왔고 이를 본 러시아군은 테티아나를 향해 총을 쐈다. 총알은 집 주변의 울타리를 뚫고 테티아나를 맞췄으며 그는 즉사했다. 테티아나의 시신은 여전히 집 앞 정원에 쓰러져 있으며 76세인 안토니나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비닐과 나무 판자로 덮어 놓는 것이었다.

 

 부차 시내의 승용차 앞 유리창이 무차별 총격을 받은 모습. EPA=연합뉴스

 

살해된 테티아나의 동창인 스비틀라나 무니크는 "러시아군은 보이는 사람을 모조리 쐈다"며 "테티아나의 어머니가 집에 있는데도 가스관을 향해 총을 쐈다"고 말했다.

 

 4일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부차 민간인 희생자 시신을 교회 뜰에 묻고 있다. EPA=연합뉴스

 

세르히우 카플리시니는 지난달 10일까지 부차에서 검시관으로 일하다 탈출했고, 지난 2일 돌아왔다. 그는 부차를 떠나기 전 57구의 시신을 묘지에 묻었는데 이 중 15구만 자연사였고 나머지는 총상이나 포탄의 파편에 의한 것이었으며 3구만 우크라이나 군인이었다고 NYT에 말했다.

 부차의 자원봉사자들이 4일 러시아군에 희생된 민간인 시신을 한 자리에 모으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는 부차로 돌아온 뒤 30여구의 시신을 더 수습했는데 13구는 손이 뒤로 묶인 채 머리에는 가까운 거리에서 쏜 것으로 보이는 총상이 있는 남성이었다고 말했다.

 

부차 시 관계자들이 3일 손이 뒤로 묶인 채 살해당한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부차에는 러시아군의 시신들도 발견됐다. 부차 주민들은 러시아 탱크들이 처음 진격했을 때 드론에 의한 공격을 받았고 수십명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부차 주민인 코스티안틴 모모토프는 두명의 러시아군이 군복과 군화를 벗고 민간인 옷을 입었지만 두 사람 모두 머리에 총을 맞았다며 "길 위쪽 집 마당에 있는 시신 2구는 러시아 군일 것"이라고 말했다.

 

탱크, 장갑차 등 러시아군의 무기가 불탄채 부차 거리를 메우고 있다. AP=연합뉴스

 

 부차 주민인 로만 다비도비치는 러시아군이 자신의 집에 들어와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압수하고 자신의 가족을 집에서 쫓아내 지하실에 머물렀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군 중에는 40세쯤 되는 경험 많은 군인도 있었지만 바냐라고 불리는 19세 군인도 있었다며, 바냐는 동료들에게 자신이 부상을 입어 집에 보내지는 꿈을 꿨다는 말을 했다고 설명했다.

  

전쟁이 휩쓸고 간 부차의 폐허에 4일 주인 잃은 개가 어슬렁거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이 밖에도 45세 조각가 비탈리 시나딘은 러시아군이 기지로 사용하던 집에서 쇠막대에 묶여 있었다며 "그들은 나를 때리며 '우크라이나군은 어디에 있느냐?', '마을에 있는 영토방위군은 누구냐?'고 물었다"고 NYT에 증언했다. NYT는 그의 허벅지와 등이 검붉은 피멍으로 덮여 있었다고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4일 부차를 방문해 기자회견을 하며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AFP=연합뉴스

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04.06  “부차학살 주범은 러 64여단 중령”… 우크라 시민단체, 이름·사진 공개 

오무르베코프 중령 지목...집주소·이메일까지 공개

 ▲부차 학살의 주범으로 지목된 러시아 64여단 지휘관 오무르베코프 중령. /인폼네이팜 텔레그램

 

우크라이나의 한 시민 단체가 부차에서 집단 학살을 자행한 주범으로 당시 러시아군의 지휘관이었던 아자베크 오무르베코프 중령을 지목했다.

 

5일(현지 시각) 영국 더타임스에 따르면 러시아군의 활동을 감시하는 시민단체 인폼네이팜은 부차를 점령했던 51460부대가 러시아군의 제64차량화소총여단임을 확인했고, 이 부대의 지휘관으로 아자베크 오무르베코프 중령을 특정했다. 그의 지휘하에 있던 러시아군은 민간인을 학살하고 여성들을 강간한 혐의를 받고 있다. 부차에서 러시아군이 퇴각한 이후 시신이 집단 매장된 터가 드러났으며, 등 뒤로 손이 묶인 채 처형된 것으로 보이는 시신도 발견됐다.

 

▲4월 3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교외 부차마을에서 남편이 러시아군에게 체포돼 고문받고 학살당한 여성이 오열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인폼네이팜은 오무르베코프 중령의 이메일 주소와 전화번호, 집 주소, 사진 등 개인 정보를 텔레그램에 게시했다. 이에 따르면 오무르베코프 중령은 러시아 극동 지역 하바롭스크주 외곽의 한 마을에 거주하며 나이는 40세로 추정된다. 2014년에는 드미트리 불가코프 러시아 국방차관으로부터 훈장도 받았다.

 

우크라이나로 파병되기 전인 지난해 11월에는 러시아 정교회 신부로부터 강복을 받기도 했다. 더타임스는 당시 중령이 예배에 참석해 “역사는 우리가 대부분의 전투를 우리의 영혼을 다해 치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 우리 선조가 성취한 것과 같은 것들을 해내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현재 수백명의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강간·약탈·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부차에서 사망자는 330∼340명에 달한다.

 

인폼네이팜은 오무르베코프 중령과 함께 복무한 러시아 군인들의 사진도 공개했지만, 신원이 확인된 동료들은 전쟁 범죄에 대한 책임을 부인했다. 그중 한 남성은 “나는 그저 평범한 러시아 시민이다. 어떠한 군사 작전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조선일보  백수진 기자

 

04.06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은 인류 존엄 짓밟는 전쟁범죄다

3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이 철수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소도시 부차에서 시 직원들이 거리 등에 방치된 민간인 희생자의 시신을 검은색 비닐백에 수습해 옮기고 있다. 이날 부차의 한 교회 앞마당에서는 최소 118구의 시신이 매장된 집단 매장지가 발견됐다. [AFP]

 

 야만의 시대로 되돌리는 잔혹 행위

우리도 국제연대 더 적극 동참해야

 

시곗바늘을 수십 년 전으로 되돌리지 않는 다음에야 다시는 목격할 일이 없을 것이라 믿었던 현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러시아군이 한 달여 동안 점령했다가 퇴각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도시 부차의 참혹한 모습은 인류의 양심과 존엄에 대한 믿음에 의문을 던진다.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이 집단으로 살해당한 뒤 암매장된 무덤은 전쟁 범죄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동시에 후세 사가들이 이번 전쟁을 문명과 야만의 전쟁으로 규정짓게 하는 유력한 근거가 될 수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참사가 빙산의 일각이 아니기만을 바랄 뿐이다. 더 이상의 비극은 없어야 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내건 명분이 무엇이든,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침공 자체를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했다. 영토와 주권의 불가침을 규정한 유엔 헌장을 거스르는 행위였다. 침공 과정에서 이미 반인도적 전쟁범죄의 전조들이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집속탄과 열압력탄 등 사용이 금지된 무기를 서슴지 않고 사용한 것이 그랬고, 병원·학교 등 비군사시설을 가리지 않고 집중 폭격과 포격을 가한 것이 그랬다. 여기에 더해 결정적으로 민간인 학살과 집단적 여성 성폭행 등의 증거가 속속 드러난 것이다.

 

전쟁의 역사는 인류 탄생의 역사만큼이나 길다. 상대방을 못 이기면 내가 죽는 무자비한 전쟁을 거듭한 끝에 인류는 전쟁에도 최소한의 규범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이를 넘어서는 행위를 전쟁범죄로 규정했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지금 전 세계 여론은 푸틴을 전범으로 규정하고 국제 체포영장을 발부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지만 당장 이를 실행할 수단은 없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효과적인 책임 규명을 보장하기 위해 독립적인 조사가 필수적”이라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실효적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야만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연대는 더욱 굳건해져야 한다. 한국 정부도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는 대열에 동참하는 것에 인색해선 안 된다. 러시아와의 교역 및 대북정책 협력 등을 의식해 국제 연대에 소극적인 태도로 뒷짐을 지는 것은 힘들게 쌓아올려 성취한 선진국으로서의 위상을 스스로 반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하며 지지를 표명한 것은 시의적절한 일이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이 한국 국회에서 화상 연설을 하게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인 것도 잘된 일이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공하고 민간인을 학살하는 비극이 21세기에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중앙일보 사설

 

04월 08일  우크라이나 전쟁…유엔 존재 이유 뭔가

 오준 경희대 석좌교수 前 駐유엔 대사

요즘 종종 성난 전화를 받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뉴스를 보다가 21세기에도 저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있어야 하는 무력감과 분노 속에 주변에서 유엔을 제일 잘 알 것 같은 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화풀이하는 것이다. “도대체 이러려면 유엔은 왜 존재하나요” 하는 질문이 가장 많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국제사회는 유엔을 창설했다. 그전에 있던 국제연맹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반영하려 했다. 즉, 국제연맹은 집단안보를 위한 강제력이 없어서 독일과 일본의 침략행위에 대응하지 못했다. 유엔은 안전보장이사회라는 강력한 기구를 만들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력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그러나 이때 유엔을 만든 5개 강대국은 그러한 강제력의 칼날이 자국(自國)을 향하지는 못하도록 안전장치를 만들었다.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제도가 그것이다.

유엔의 집단안보 개념은 어느 국가가 침략행위를 하면 다른 모든 회원국이 단합해 이에 맞선다는 것이다. 1950년 6·25전쟁 당시 결성된 유엔군처럼 회원국들이 집단안보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안보리가 승인해 준다. 안보리 승인이 없거나 자위권의 행사가 아닌 모든 무력 사용은 국제법적으로 불법이다. 그러나 상임이사국은 불법적 전쟁을 일으켜도 유엔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가 없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있었던 유엔특별총회 결의와 같은 조치가 가능하지만 립 서비스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세계 평화를 위한 인류의 집단적 노력을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최소한 다음 3가지 정도의 긍정적인 분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첫째, 판을 새로 짤 가능성이다. 국제사회에서의 새로운 움직임은 항상 참혹한 전쟁 후에 나타났다. 77년 전 강대국들을 유엔에 참여케 하려고 부여한 특권이 그들의 전유물이 돼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국력은 시간이 지나면 변하기 때문에, 국력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특권 부여 방법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다만, 집단안보와 같은 중대사를 1국 1표 다수결로만 결정하자고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현실과 이상을 조화시키는 합리적 제도를 만드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둘째, 상호의존적 경제관계와 민주주의의 힘이다. 미국이나 유럽이 러시아에 부과한 강력한 제재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효과를 보일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어느 국가도 외부와 단절돼 살 수 없다. 20세기 2차례 세계대전을 시작한 독일이 프랑스와 다시 싸울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것은 그들의 상호의존성이 너무 크고 민주주의가 지배하기 때문이다. ‘민주국가는 서로 싸우지 않는다’는 칸트의 말을 믿지 않더라도, 대러 제재가 유엔의 군사 개입보다 더 큰 압박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셋째, 언론과 정보통신의 힘이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은 CNN과 텔레그램에 생중계되고 있다. 그러니 누가 범죄를 저질렀는지 판단하기 위한 전범재판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전 세계 시민들이 판정할 수가 있다. 역사가 기록되는 방법이 달라진 만큼 역사는 더 이상 강자 편이 아니다. 어쩌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평화를 지키는 데 필요한 것이 유엔보다는 세계시민의 공론(公論)임을 알려주는 신호탄인지도 모른다.

문화일보   

 

04월 08일  ‘부차 학살’ 러시아, 유엔 인권이사회서 퇴출…93개국 찬성

한국 찬성, 北·中 반대…러, 역대 두번째 인권이사회 퇴출 불명예
3월 러 침공 비판 결의안 때보다 찬성표 줄어…러, 통과 직후 자진탈퇴 선언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러시아가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사실상 퇴출당했다.

유엔총회는 7일(현지시간) 긴급 특별총회를 열어 러시아의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을 정지하는 결의안을 찬성 93표, 반대 24표, 기권 58표로 가결했다.

표결에 불참하거나 기권한 나라를 제외한 유엔 회원국 중 3분의 2 이상이 결의안에 찬성함에 따라 러시아는 인권이사국 자격을 박탈당하게 됐다.

이로써 러시아는 지난 2011년 반정부 시위대를 폭력 진압한 리비아에 이어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쫓겨난 두 번째 나라가 됐다.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유엔 산하 기구에서 자격 정지된 것은 러시아가 처음이다.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을 이유로 미국이 추진한 이번 결의안에 서방 국가들과 한국 등이 찬성표를 던진 반면 북한, 중국, 이란은 반대표를 행사했다.

지난달 유엔총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한 결의안과 인도주의적 위기를 초래한 책임을 지적한 결의안에 모두 반대한 북한은 이날 표결 직전에도 김성 유엔대사의 연설을 통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공표했다.

이날 결의안 통과는 우크라이나 부차 등에서 러시아군이 민간인 수백 명을 집단 학살했다는 증거가 드러난 것을 계기로 이뤄졌다.

심각하고 조직적인 인권침해를 저지른 나라는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을 정지할 수 있다는 유엔 규정이 그 근거가 됐다.

결의안은 “우크라이나에서 진행 중인 인권과 인도주의 위기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러시아의 인권침해 사례들을 적시했다.

표결에 앞서 세르게이 끼슬리쨔 주유엔 우크라이나대사는 “러시아의 행동은 도리를 벗어났다. 러시아는 인권침해를 저지르는 나라일뿐 아니라 국제 평화와 안보의 토대를 흔드는 나라”라며 결의안에 찬성할 것을 호소했다.

그는 또 결의안 찬성은 “선택이 아닌 의무”라며 “반대표는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에 맞서 겐나디 쿠즈민 주유엔 러시아차석대사는 “조작된 사건에 근거한 우리에 대한 거짓 혐의를 부인한다”며 부결을 촉구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다만 이날 표결은 3월 러시아의 침공을 비판하는 2건의 결의안이 각각 141표, 140표의 압도적인 찬성 몰표를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후퇴한 결과로 분석된다.

반대표와 기권표, 아예 표결에 불참한 나라를 모두 합치면 193개 유엔 회원국의 절반을 넘는다고 AP통신이 지적했다. 인도, 브라질,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인도네시아 등 기권한 나라도 많았다.

러시아는 결의안 통과에 따라 앞으로 스위스 제네바 소재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결의안을 제기하거나 표결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발언권도 잃게 된다.

자격정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명목상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으로 남아있을 수 있지만, 쿠즈민 차석대사는 결의안 채택 직후 “불법적이고 정략적인 조치”라고 반발하며 이날 곧바로 탈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끼슬리쨔 우크라이나 대사는 “해고된 후에 사표를 낼 수는 없다”며 러시아의 행동을 비판했다.
<연합뉴스> 

 

04.09  푸틴을 사랑한 獨 엘리트들

러시아군이 키이우 인근 ‘부차’에서 저지른 민간인 학살이 확인된 지난 3일(현지 시각),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4년간 계속된 대러 양보 정책의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메르켈과 사르코지를 부차로 초청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반대해 무산시키고, 이후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연결 같은 대러 유화책을 계속한 것을 비판하는 발언이었다. 이틀 후인 5일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도 인터뷰에서 “독일은 이 전쟁을 막는 데 실패했다. 푸틴을 오판했다”고 실패를 인정했다.

 

 ▲8일(현지 시각)독일 베를린 브란데부르크 문 앞에서 러시아에 대한 석유 금수 조치를 지지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집회가 열리고 있다./AP 연합뉴스

 

사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취재하며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도 독일의 대러 정책이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시절인 2005년 러시아와 노르트스트림2 프로젝트에 서명한 뒤, 실제 가스관이 완공된 지난해까지 이를 중단할 만한 사건은 얼마든지 있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간 조지아를 침공(2008년)했고,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2015년)했으며,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방사성 물질 ‘폴로늄’이나 화학무기 ‘노비촉’ 같은 것으로 정적(政敵) 제거를 시도했다. 푸틴을 믿을 수 없었던 미국과 우크라이나, 폴란드 등은 노르트스트림2에 줄곧 반대했다. 그런데 슈뢰더에 이어 메르켈까지 16년간 독일은 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 경제적 이유도 있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패닉한 독일인들은 탈원전을 서둘렀다. 그런 와중에 독일이 쓰는 천연가스의 30%를 공급하던 네덜란드가 최대 가스전의 폐쇄를 결정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은 독일이 직면한 에너지난을 해결할 손쉬운 해법이었다.

 

그럼에도 1225km의 가스관으로 독일과 러시아를 꼭 연결할 필요는 없었다. 도대체 왜 독일인들은 유럽의 안보를 쥐고 흔들 수단을 러시아의 손에 쥐어주려 했던 것일까.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지난달 28일 “푸틴의 유용한 독일 바보들”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메르켈을 포함해 “’오스트폴리틱(동방 정책)’이나 ‘교류를 통한 변화’ 같은 1970년대 데탕트 정책의 향수에 눈먼 동세대의 모든 독일 정치인”이 문제였다고 분석했다. 구소련 공산권과의 대화·교류가 냉전 종식으로 이어졌다는 일종의 ‘전설’에 심취한 독일 엘리트들의 노스탤지어가 대러 정책을 그르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화와 교류로 적대적 상대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란 감성, 가스관 연결로 상호 의존도를 높이면 평화가 온다는 근거 없는 믿음, 그 감성과 믿음을 공유하는 한 세대의 정치인들. 모두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였다. 적어도 독일은 직접 그 대가를 치르지는 않았지만,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조선일보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04.18  상하이 봉쇄와 하이난의 시진핑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랑셴핑(郎咸平)은 중국의 유명 경제학자다. 차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후보로 손꼽힐 정도다. 한국에도 『국가는 왜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하는가』 『자본전쟁』 등 그의 여러 저작이 번역돼 나와 있다. 그런 그도 코로나 19로 인한 상하이 봉쇄의 비극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지난 11일 그는 중국판 트위터인 자신의 웨이보(微博) 계정에 모친의 슬픈 사망 소식을 알렸다. 신장 질환이 있던 98세 노모가 상하이 고급 병원인 산쟈(三甲)의원 응급실을 찾았지만,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와야 진료가 가능하다는 규정에 막혀 네 시간 동안 검사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다 끝내 사망했다는 것이다.

 

▲중국 상하이는 지난달 28일부터 전면 봉쇄와 부분 봉쇄를 거듭하는 강력한 방역 정책을 펴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여느 때와 같이 의사의 주사 한 방이면 해결될 문제였지만 융통성 없는 병원의 조치 탓에 “엄마가 영원히 내 곁을 떠났다”고 그는 애통해했다. 그 자신은 사정사정 끝에 봉쇄된 집에서 나올 수 있는 허락을 받았지만 이번엔 상하이 전체가 봉쇄돼 있는 탓에 병원으로 가는 택시를 잡을 수 없어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고 한다. 12일엔 상하이의 또 다른 죽음이 중국에 충격을 안겼다. 상하이 훙커우(虹口)구 위생건강위원회 정보센터 주임인 첸원슝(錢文雄)이 업무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인터넷 공간엔 부인도 남편의 뒤를 따랐다는 소문이 퍼지며 상하이의 민심이 흉흉해졌다. 그러자 환구시보(環球時報) 전 편집인 후시진(胡錫進)이 나서 부인 사망은 사실이 아니라고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중국 상하이의 신국제전람센터가 병상 4만 개의 임시 격리시설로 탈바꿈했다. [신화=연합뉴스]

 

상하이에선 최근 하루 평균 2만여 명 이상의 코로나 감염자가 발생한다. 누적 확진자는 20만 명을 넘어섰지만, 중증 환자는 열 명 남짓이고 사망자는 두 명 정도다. 한데 2500만 상하이 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전체 봉쇄와 부분 봉쇄를 거듭하면서 코로나로 인한 사망이 아닌 애꿎은 이유로 숨지는 이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경직된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 빚는 비극이건만 중국 당국은 요지부동이다. 관영 매체와 전문가를 동원해 제로 코로나 정책 유지가 1) 중국 공산당의 집권 이념에 부합한다. 2) 중국의 현실 국정(國情)에 부합한다. 3) 수많은 생명이 죽는 걸 막을 수 있다는 3대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 상하이의 한 도로가 지난달 28일부터 시작된 봉쇄 정책의 영향으로 텅 비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중국 당국의 3대 선전과는 달리 상하이의 현실에선 3대 붕괴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상하이 의료체계의 붕괴이고 두 번째는 물자공급 부족으로 인한 상하이 시민의 심리붕괴다. 이는 코로나가 발생해 봉쇄 정책이 펼쳐질 때마다 생기는 오래된 문제다. 한데 여기에 최근엔 언론 붕괴가 더해졌다. 코로나 방역의 성과만 보도하는 정규 매체의 보도가 전혀 신뢰를 얻지 못하는 가운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개개인이 발신하는 메시지가 상하이 시민의 공감을 사고 있는 것이다. 지난 11일 중국 인터넷 공간에선 봉변을 당하는 리창(李强) 상하이 당서기의 시찰 모습이 화제가 됐다.

 

 ▲리창 중국 상하이 당서기는 최근 봉쇄 지역 시찰에 나섰다가 “당신은 국가에 죄를 짓고 있다”는 비난을 들었다. [둬웨이망 캡처]

 

봉쇄 구역으로 민정 시찰을 나선 리창이 물자공급 상황을 점검하고 방역 전선의 간부와 자원봉사자, 그리고 일부 주민을 격려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그가 정해진 구역에서 벗어나 이웃 단지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벌어졌다. 휠체어에 앉은 노부인이 리창을 향해 “보름 동안의 봉쇄 기간 당근 2개와 감자 2개, 양파 2개를 받은 게 전부”라며 불만을 쏟아냈다. 옆에 있던 또 다른 여인은 “당신들은 국가에 죄를 짓고 있다. 선열에 부끄럽고 하늘과 땅에 부끄러운 줄 알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앞서 리창이 방문한 곳은 물자공급이 비교적 괜찮고 또 주민들에겐 200위안(약 3만 8000원)씩을 줘 지도자 방문에 미리 대비했던 지역이다.

 

중국 언론이 리창의 격려 모습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반면 SNS에선 리창의 봉변 영상이 빠르게 퍼지다 단속에 걸려 삭제되고 있는 게 중국의 현실이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상하이 당국은 당초 둥팡(東方)위성TV를 통해 성공적인 방역을 자랑하는 특별 프로그램을 내보내려다 연기했다. 상하이 노동자들이 10여일 넘게 배를 곯고 있는데 이들 월급의 200년 또는 1000년에 해당할 부(富)를 축적한 스타가 나와 노래를 부르는 게 무슨 위안이 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홍콩에선 성역에 해당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지방 시찰에 의문을 제기하는 글이 나와 눈길을 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1일 하이난다오 시찰에 나서 전통복장을 한 주민들로부터 환대를 받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홍콩 명보(明報)엔 지난 14일 ‘시진핑 하이난(海南) 행보의 진정한 목적’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시 주석은 집권 이후 세 번째 하이난다오 시찰에 나서 싼야(三亞)의 종자실험실과 중국해양대학 등을 방문했는데 지난 2018년 두 번째 방문 때와 일정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또 열대우림공원이나 마을 시찰도 2013년 첫 번째 시찰 코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시진핑이 하이난다오를 찾은 이유는 뭔가. 하이난다오는 아열대 기후로 중국의 대표적 휴양지다. 2015년엔 전 국가주석 장쩌민(江澤民)의 일가 3대가 함께 이곳을 찾아 화제가 됐다. 장쩌민은 이번 여행이 헛되지 않다(不虛此行)”는 감탄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1일 하이난다오 시찰에서 제로 코로나 유지를 위해 요행 심리나 느슨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중국 신화망 캡처]

 

한데 시진핑이 이곳을 찾은 게 모두 4월이다. 4월의 베이징은 날씨가 따뜻해졌다 추워지기를 반복하고 황사에 이어 꽃가루가 날려 호흡기 질환을 가진 이들이 질색하는 달이다. 4월은 또 중국의 연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가 3월에 끝나 정치적으로 큰 이슈가 없기도 하다. 따라서 시진핑의 하이난다오 시찰은 휴식의 성격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칼럼의 요지다. 중국의 경제 수도인 상하이가 봉쇄를 거듭하며 2500만 시민의 삶이 엉망이 됐는데 최고 지도자는 바람 쐬러 휴양지를 찾았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시 주석은 이곳에서 제로 코로나의 당위성을 역설하며 “투쟁하기 싫어하는 정서, 요행 심리, 느슨한 마음가짐을 가져선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참으로 잔인한 중국의 4월 풍경이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you.sangchul@joongang.co.kr

 

04.21  우크라이나, 그 땅에는 신이 있는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과정과 한반도 영향

3일내 끝내려던 러시아 계획 실패

전쟁 목표 축소 수정 불가피해져

우크라 전역→남부·돈바스 점령으로

푸틴, 이기든 철수하든 쇠락의 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을 보면 넷플릭스 시리즈물 가운데 하나인 ‘그 땅에는 신이 없다’는 제목이 생각난다. 러시아군이 거쳐 간 우크라이나 도시에서 손발이 묶인 채 수백 명씩 발견되는 시신, 골조만 앙상하게 남은 우크라이나 도시의 아파트, 이미 자욱한 연기 속에 폐허가 된 도시로 계속 날아오는 러시아의 보복성 미사일 등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참혹한 전쟁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도 ‘신성한 전쟁’이라며 푸틴을 치켜세운 러시아정교회 키릴 총대주교의 신은 '악의 화신'인가.

 

러시아 흑해함대의 기함인 모스크바함(만재 1만1490t)이 지난 13일 우크라이나 남부 해안도시 오데사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쏜 대함 미사일 넵튠 2발을 맞고 침몰하고 있다. 2010년 재취역한 모스크바함은 미사일 순양함으로 가격은 7억5000만 달러다. 사진은 트위터에서 공개된 모스크바함의 침몰 전 모습. 상당히 신빙성이 있지만 진위가 파악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러시아는 사고라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 국민이 러시아의 푸틴이라는 강력한 악(惡)의 공격에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다. 현재까지는 미국과 영국 등 유럽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은 간접 지원만 하고 있다. 핵무기를 가진 러시아와 직접 전쟁을 벌이거나, 혹시라도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될까 봐 우려해서다. 마치 강도가 대낮에 많은 사람이 오가는 길거리에서 행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아무도 다가가서 직접 말리지 못하고 안타깝게 바라보고만 있는 상황과 유사하다. 오랜 역사의 현장에서 자주 그래왔지만, 스스로 힘이 없으면 정의(正義)는 먼 곳에 있다.

 

푸틴, 정치적 판단과 군사전략 치명적 오류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마냥 승리하고 있지만은 않다.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과 만행으로 종국엔 나락으로 떨어져 오랜 세월 쇠퇴의 길을 걸을 것이다. 푸틴이 자신의 권력과 과도한 안보 이익을 지키기 위한 정치적 판단과 군사전략 수행에 큰 오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당초 푸틴의 전쟁 배경은 두 가지였다. 러시아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해보면 정치적으로는 러시아로부터 결별하고 서유럽으로 돌아서려는 우크라이나 길들이기였고, 군사적으로는 흑해함대 등 러시아 군부대가 위치한 크림반도를 지키는 것이다.

 

러시아에 흑해함대는 해양전략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1837년 크림반도 남단 항구도시 세바스토폴에 배치된 흑해함대는 크림전쟁(1853년)을 시작으로 1·2차 세계대전, 욤키푸르전(1973), 조지아전(2008), 시리아 내전(2011~현재) 등 러시아의 해외 참전에 거의 동원됐다. 흑해함대는 흑해·지중해·대서양을 오가며 남유럽 등을 견제해왔다. 이런 흑해함대를 위해 러시아는 크림반도에 군부대 10여개를 배치해두고 있다.

 

흑해함대는 2014년부터 위기를 맞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2월 자유·민주화 바람인 유로마이단 혁명 직후 흑해함대를 크림반도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러시아는 그해 2월 말 곧바로 크림반도를 침공해 합병했다. 지난해부터는 우크라이나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겠다고 하자 러시아는 다시 본격적인 침공을 강행했다.

 

흑해함대 상수원과 군수지원로 확보 목표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한 뒤 크림반도의 상수원과 육상 군수지원로를 차단하면 흑해함대의 철수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크림반도의 상수원 86%는 우크라이나 드네프르 강에 연결된 운하로부터 공급된다. 또 흑해함대 등 러시아 군부대 유지를 위한 군수지원은 마리우폴을 경유하는 우크라이나 남부 해안도로에 의존한다.

 

따라서 푸틴의 이번 전쟁 목표는 일차적으로 상수원 운하가 연결된 드네프르 강 남쪽 지역과 마리우폴을 중심으로 하는 남부 해안도로 지역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차적 목표는 우크라이나가 다시는 흑해함대 철수를 입 밖에 꺼내지 못하게 굴복시키기 위해 수도 키이우를 함락해 정치적 항복을 받아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드네프르 강 동쪽을 완충지대로 만들고, 우크라이나를 중립화하려 했다. 푸틴은 72시간의 단기간 속전속결로 목표를 달성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개전 초기 언론들은 보도했다.

 

그러나 그의 의도는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러시아군이 2월 24일 우크라이나 영토를 침공한 지 거의 두 달이 되도록 마리우폴을 점령하지 못했고, 키이우에선 아예 철수했다. 당초 쉽게 점령할 거로 생각했던 러시아의 산업 배후지이면서 친러 지역인 돈바스 지역도 완전하게 확보하지 못하자 병력을 재집결해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크림반도의 상수원도 안전하지 않다. 러시아군이 퇴각하면 우크라이나가 언제든 운하를 차단할 수 있다.

 

예기치 못한 사이버전과 정보작전 실패

러시아의 초기 전쟁 실패 원인은 우크라이나를 우습게 본 푸틴의 착오와 국제사회의 반작용이 컸다. 푸틴의 전쟁수행은 하이브리드전(Hybrid Warfare)에 따라 ①사이버전 ②정보작전 ②군사력 투입 등 3단계로 진행했는데 모두 실패했다. 사이버전은 초반엔 성공했지만, 막상 전쟁이 시작되면서 어나니머스 등 국제 해커들이 연합전선을 펼쳐 러시아를 공격했다. 러시아가 벌인 전쟁이 부당하다는 차원에서였다. 그러자 도리어 러시아의 사이버 인프라가 마비됐다.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이 실패하면서 2단계인 정보작전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다. 정보작전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난하는 내용 등의 왜곡된 정보로 우크라이나에 정치적 혼란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론 머스크가 제공한 위성통신 스타링크를 통한 SNS로 전쟁 상황이 전 세계로 전파되면서 우크라이나 국민의 항전의식이 되살아났다. 푸틴이 예상치 못한 반전이다.

 

우크라이나 국민이 거의 모든 도시에서 항전하니 러시아의 기갑부대인 대대전술단(BTG)이 시가전에서 맥을 추지 못했다. 특히 미국 등 서방에서 제공한 대전차 미사일 제블린 등의 효력이 주효했다. 4월 16일 현재 러시아군은 병력 2만여명, 전차 760여대, 전투기 160여대 등을 잃었다. 심지어 흑해에선 흑해함대의 기함(지휘함)인 모스크바함(1만1490t)이 오데사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쏜 지대함 미사일 넵튠에 맞아 어이없이 침몰했다. 미사일을 잔뜩 실은 7억5000만 달러짜리 모스크바함엔 적 미사일을 요격하는 방어무기도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BTG가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를 점령하지 못하면서 전쟁은 지연되고, 전투지역에 있는 러시아군의 식량과 연료는 동이 났다. 푸틴은 위기에 몰리자 전쟁 목표를 축소 수정했다. 일단 키이우에서 철수하고, 러시아 거점인 돈바스와 남부 해안도로 중심인 마리우폴이라도 차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게 현재 상황이다. 물론 부담이 크지만 생화학무기와 전술핵무기를 사용하면 전황은 달라질 수 있다.

 

이제 푸틴은 전쟁에서 이기든 철수하든 러시아와 함께 쇠락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푸틴은 이미 전범으로 지목됐고,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된 처지다. 러시아 외환보유고는 동결됐고 경제는 바닥이다. 전쟁 과정에서 러시아의 경제적 손실은 6000억 달러로 추정하고 있다.(포린 폴러시 4월12일자) 전쟁 비용으로도 매일 200억 달러 이상 지출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러시아 경제는 소련 해체 직전인 1990년 이후 최악으로 침체할 공산이 크다. 이런 경제 여파로 러시아에 정치체제 변화가 올 것이란 전망(파리 정치연구소 세르게이 구리예프 교수) 도 나온다. 러시아 정치 변화는 민주화로의 일보 진전과 푸틴의 몰락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푸틴 퇴조,북·중·러 공조체제에 영향

시간의 문제이지만 러시아의 퇴조는 중국과 북한에도 영향을 준다. 푸틴과 국제적 공조체제를 이루던 중국 시진핑 주석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북한도 러시아에서 노동으로 돈을 벌었고 국제적 지원을 받았지만, 더는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북·중·러 공조체제의 약화는 북핵 해결의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북·중·러가 건재를 과시하기 위해 도발적 행위를 시도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부당한 폭력적 행동에 대한 반작용으로 국제사회에서 강력한 경계심이 생겼다. 반작용은 중국의 대만 침공이나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견제력으로 확대될 수 있다. 푸틴이 몰락하고 러시아가 쇠퇴할 경우 북극항로의 국제협력 개발 가능성도 커진다. 그동안 러시아는 2030년쯤 열릴 북극항로를 독점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한국은 우크라이나 자유를 지원하기 위한 유엔 등 다양한 요청에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반도에 불어올 후폭풍에도 철저하게 대비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러시아처럼 불법적인 폭력 행사에는 반드시 혹독한 대가가 따라야 하지 않을까. 정의는 미약하지만 종래에는 승리했다.

중앙일보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

 

04.27  과거가 파괴한 러시아의 미래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파괴한 것은 우크라이나뿐만이 아니다. 그는 러시아의 미래도 파괴했다. 소련 해체 전인 1990년 러시아의 경제규모는 미국의 10% 정도였다. 지속적인 경제 침체와 루블화 약세로 1990년대 말에는 미국의 2∼3%로 하락했지만 2000년대 들어 회복하면서 2013년에는 14%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장기 경제성장의 핵심 요인인 인재가 떠나고 외국 자본이 이탈함으로써 러시아의 미래는 망가졌다. 푸틴이 계속 집권하는 한 인재와 자본이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전조가 있었다. 2011년 필자는 모스크바의 한 대학 총장을 만났다. 그는 당시 총리였던 전(前) 대통령 푸틴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의 뒤를 이어 다시 대통령이 될 것을 염려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러시아가 권위주의로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없다. 푸틴이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나라를 떠날 것이다.” 실제 푸틴이 재집권한 1년 후에 그는 러시아를 완전히 떠났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에 따르면 2014∼19년 동안 5만 명에 달하는 과학자가 연구와 일을 위해 외국으로 향했다. 푸틴이 일으킨 전쟁은 이들이 러시아로 돌아올 가능성을 현저히 줄였다. 그뿐 아니다. 미국 시카고대의 러시아 출신 경제학자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열흘 만에 20만 명의 러시아인이 외국으로 떠났다고 추산했다.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는 전쟁이
러시아의 미래를 파괴하고 있어
제재로 전쟁 중단시키기 어려워
이런 슬픈 전쟁, 이번으로 끝날까

맥도널드도 러시아를 버렸다. 1990년 1월 모스크바 중심가에 처음 매장을 연 후 맥도널드는 미국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빅맥을 맛보고 자유와 풍요의 분위기를 느끼려 혹독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남녀노소가 수백 미터 줄에서 몇 시간이나 기다렸다. 그런 맥도널드가 러시아 내 매장을 폐쇄했다. 현재까지 670여 개에 달하는 외국 기업이 러시아에서 철수하거나 영업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응해 러시아는 비우호적 국가의 기업이 철수할 경우 기업 자산을 러시아 소유로 이전한다는 내용의 법안 제정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이런 법을 만들고 집행한다면 러시아의 미래는 더욱 파괴된다. 자산을 빼앗긴 외국 기업이 다시 러시아에서 사업을 하고 싶을까.

 

문제는 당장 전쟁을 중단시킬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대(對)러시아 제재도 그만큼 강력하진 못하다. 러시아 일부 은행을 스위프트(swift) 결제망에서 퇴출했지만 다른 러시아 은행이나 중국 등을 이용한 결제는 가능하다. 서방에 예치된 러시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 접근을 차단했으나 러시아는 금과 위안화 표시 외화로 당분간 버틸 수 있다. 더욱이 러시아는 가장 중요한 수출품인 석유와 가스로 계속 외화를 벌 수 있다. 석유와 가스 수출은 전체 수출의 절반을 차지하며 그로 인한 재정 수입은 정부예산 수입의 40%에 달한다. 그런데 미·영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서방 국가는 자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를 여전히 수입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과 인도 등이 수입을 오히려 증가시킬 수도 있다.

 

석유 수출의 중요성은 1990년대 말 러시아의 금융위기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1998년 러시아는 외채상환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했으나 이듬해 경제는 크게 반등했다. 금융위기가 루블화 가치를 떨어뜨린 데다 세계 유가가 상승해 석유 수출액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막대한 비축유 방출은 유가 상승을 억제해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출 뿐 아니라 러시아의 외화 수입이 증가하지 못하게 막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모든 국가가 러시아 석유와 가스 수입을 전면 금지할 수 없는 구조에서 제재가 당장 경제를 무너뜨릴 만큼 효과를 내기는 어렵다. 북한의 주력 수출품인 광물을 모든 유엔 회원국이 수입하지 못하게 금한 대북(對北) 제재보다 대러시아 경제제재의 효과는 작을 수밖에 없다.

 

전쟁을 근본적으로 막는 힘은 시민의식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독립적인 여론조사기관인 레바다 센터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푸틴에 대한 지지도는 오히려 크게 올랐다. 올해 초의 70%에서 지난 3월에는 83%로 상승했다.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응답도 69%로서 1990년대 조사가 시작된 이래 최고로 높다. 이처럼 현재 러시아를 과거 소련과 혼동하는 인식 불일치가 미래를 망치고 있다. 1992년 러시아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도입하기 시작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많은 러시아인은 초강대국 소련의 향수를 간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푸틴은 대국민 담화에서 슬라브족의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며 과거를 소환했다. 그는 자신이 ‘영광의 시대’를 재현할 수 있을 것처럼 호도하며 이를 비판하는 언론을 탄압한다. 실제 민주주의 다양성 지수는 2021년 러시아의 언론 검열 정도가 중국 수준으로 높아졌다고 추정한다.

 

서방의 제재도, 러시아인의 시민의식도 막지 못하는 전쟁은 군사적으로 끝나야 끝날 듯하다. 이미 사라진 과거를 위해 살아야 할 미래를 죽이는 슬픈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런 슬픈 전쟁이 과연 이번만으로 끝날 수 있을까.

중앙일보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04.30  국가부도의 날...약한 나라들이 소리없이 쓰러진다

 개도국 41곳 연쇄 디폴트 위기

인도양 섬나라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는 요즘 반(反)정부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바리케이드가 세워진 거리 곳곳에서 시민들은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든 채 경찰과 대치 중이다. 대통령 집무실 앞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시위대의 텐트촌이 됐다. 최루탄 가스로 뿌옇게 덮인 도심에선 시위대를 향한 물대포가 쏟아진다. 스리랑카가 민중 봉기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것은 팬데믹 사태로 주 수익원인 관광 수입이 끊긴 후 경제난에 허덕이다 최근 인플레이션까지 겹치면서 국가 부도가 났기 때문이다. 외화 부족으로 해외에서 물자를 사올 수 없게 되자 스리랑카 국민들은 식량과 의약품, 에너지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스리랑카뿐만이 아니다. 파키스탄, 이집트, 튀니지 등 경제 체력이 취약한 전 세계 수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세계 경제에 날아든 매서운 ‘강펀치’ 세례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대고 있다. 팬데믹 사태를 거쳐 작년부터 시작된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이를 잡기 위한 주요국의 금리 인상 행렬, 우크라이나 사태 등이 숨 고를 새 없이 이어지면서 개도국들은 ‘연쇄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에 빠진 상태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개도국을 비롯한 저소득 국가 73국 중 56%인 41국이 심각한 부채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했다. WEEKLY BIZ가 개도국을 휩쓸고 있는 디폴트 위기의 배경과 향후 전망 등을 분석했다.

 

▲디폴트(채무불이행)와 인플레이션으로 최악의 경제위기에 빠진 스리랑카에서는 연일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수도 콜롬보의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시위에 참가한 스리랑카 여성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연쇄 디폴트 위험 커지는 개도국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로 고통받는 개도국은 특정 지역에 국한돼 있지 않다.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남미 등에 걸쳐 폭넓게 분포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지난 12일 디폴트를 선언한 스리랑카를 비롯해 파키스탄, 이집트, 튀니지, 페루, 엘살바도르, 가나, 에티오피아 등을 조만간 백기(白旗)를 들 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지목하고 있다. 에콰도르와 레바논, 잠비아 등은 이미 IMF에 구제 요청을 하고, 부채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마르첼로 에스테바오 세계은행(WB) 글로벌 디렉터는 “채무 상환을 지속할 수 없는 개도국이 연내 12국가량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개도국과는 결이 다르지만,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강력한 경제·금융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 역시 미국 등 서방 진영 은행들로부터 달러 송금을 거부당하면서 1918년 이후 104년 만에 디폴트 위기에 놓였다. 러시아는 최근 달러 송금에 실패하자 루블화로 이자를 갚으려 했으나 신용부도스와프(CDS) 시장 감독기구는 러시아가 채무 변제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IMF가 팬데믹 기간 ‘국제 채무상환 유예 프로그램’의 대상이 된 개도국 및 저소득 국가 73국을 조사한 결과, 절반이 넘는 41국(56%)이 사실상 디폴트 초입에 들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만 해도 해당 국가들 중 빚을 갚지 못해 허덕이는 국가들의 비율이 27%였는데 팬데믹 이후 2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세계은행은 73개의 개도국이 올 한 해 해외 채권자들에게 갚아야 할 빚이 350억달러(약 43조39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2020년과 비교해 2년 만에 109억달러(약 13조5100억원) 늘었다.

 

디폴트 위험이 고조되면서 주요 개도국들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개도국들은 브라질, 러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신흥국과 달리 자국 내에서 충당할 수 있는 자원이 거의 없어서 가격이 급등한 원자재나 주요 물품을 외국에서 들여와야 한다. 여기에 통화가치마저 크게 떨어진 탓에 생활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스리랑카와 파키스탄의 지난 2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각각 18.7%, 11.9% 상승했고, 튀니지와 이집트도 7~8%대의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에티오피아에서는 33.6%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이 나타났고, 가나와 페루도 각각 15.7%, 6.8%의 상승률을 보였다. 베네수엘라와 레바논에서는 무려 200%가 넘는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이들 국가에서는 극심한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파키스탄에서는 야당이 물가 폭등과 경제 파탄의 책임을 물어 지난 9일 임란 칸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가결시켰다. 이라크·이집트 등 이슬람권에서는 금식 기간인 라마단 전부터 식료품 가격 상승에 항의하는 대규모 거리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페루에선 연료·비료 가격 상승에 항의하는 트럭 운전기사와 농부들이 고속도로 봉쇄 시위를 벌이고, 정부는 시위를 막기 위해 통행금지령까지 내리며 대치 중이다. 튀니지에선 상점 식료품 진열대에서 설탕, 밀가루 등이 동났고 정부는 공무원 임금 지급을 미루는 형편이다. 영국 경제 분석 기관인 캐피털 이코노믹스(CE)의 윌리엄 잭슨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개도국일수록 가계 소비에서 식료품과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민생이 파탄에 이른 것”이라고 말했다.

 

 

◇저금리로 빚잔치 벌이다 팬데믹 충격

개도국의 디폴트 위기가 갑자기 찾아온 것은 아니다. 팬데믹 이전 10년여간 저금리·저물가가 이어지자 개도국들은 무리한 인프라 투자와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며 대외 부채를 꾸준히 늘려왔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1026달러(약 127만원)에서 1만2475달러(약 1543만원) 사이에 있는 ‘중소득(middle income) 국가’ 110국의 2020년 대외 부채는 8조5231억9290만달러(약 1경541조원)에 달한다. 5조5651억9500만달러(약 6883조원)였던 2012년 대비 53%나 늘었다. 해당 국가들의 수출액 대비 대외 부채 비율도 2012년 82.5%에서 2020년 122.9%로 급증했다.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에 비해 너무 많은 빚을 졌다는 의미다. 개도국의 GDP(국내총생산)에서 기업 부채가 차지하는 비율도 꾸준히 증가해 2000년 51.3%에서 2020년 119.8%로 2배 넘게 불어났다. 레베카 그린스판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사무총장은 “기후변화를 비롯한 끊임없는 위기로 중·저소득 국가들은 지난 수년간 재정 여유는 줄고, 부채 부담은 늘어나는 악순환에 빠졌다”고 했다.

 

빚더미에 대한 경보음이 울리는 시점에 터진 팬데믹 사태는 개도국들을 더욱 깊은 수렁에 빠뜨렸다. 정부와 기업이 경기 침체와 도산을 막기 위해 무리해서 채권을 발행했고, 감당 못 할 부채는 끝도 없이 증가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개도국(신흥국 및 저소득국 포함)들의 지난 2020년과 2021년 국채 및 회사채 발행 규모는 각각 3000억달러(약 370조원) 안팎으로 1600억달러(약 197조원) 수준이던 2018년과 비교해 2배 가까이 불어난 상태다. 세계은행은 지난 1월 발표한 경제 전망에서 “전체 저소득 국가의 약 60%가 채무 재조정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나마 팬데믹 이후 주요 20국(G20)이 개도국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2020년 5~12월 사이에 개도국이 갚아야 할 빚의 만기를 작년 말까지 연장해줬기에 숨통이 트일 수 있었다. 이 조치로 42국이 127억달러(15조7000억원)에 달하는 채무 상환 유예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다시 빚을 갚아나가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국의 금리 인상은 이자 부담을 가중시켜 디폴트 도미노의 도화선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에도 주요국의 금리 인상 사이클이 시작되면서 개도국들은 큰 위기를 맞은 바 있다. 지난 1993~1994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2년여 만에 3%포인트 가까이 올리자(3.0%→5.8%) 당시 경상수지 적자에 허덕이던 멕시코는 디폴트를 선언하고, IMF에 손을 벌렸다. 멕시코 위기의 여진은 중남미 전역으로 퍼졌고, 결국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로까지 이어졌다. 영국 더타임스는 “외국 자본과 달러 부채 의존도가 높은 개도국은 금리 인상이 치명적”이라며 “이들은 미 연준과 인플레이션 간 싸움의 희생양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디폴트 도미노, 지정학적 위기 부른다

세계 경제에서 개도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 보니 이들의 경제 위기를 개별 국가들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연쇄 디폴트가 일어나더라도 전 세계 소비나 금융 시장에 끼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실제로 상위 20국이 전 세계 GDP의 80%를 차지하고 있고, 70여 개도국의 비중은 2%도 되지 않는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대부분의 개도국은 자원이 풍부하지 않기 때문에 세계인의 일상과 생산 및 공급 체계에 당장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도 거의 없다. 마르첼로 에스테바오 WB 글로벌 디렉터는 “30년래 최대 규모의 신흥국 연쇄 디폴트가 벌어지겠지만, 1980년대 남미 외채 위기 같은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더라도 디폴트가 발생한 개도국과 활발히 금융 거래를 하는 인접국이나 해당 지역에 생산 거점을 두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통상 디폴트가 발생하면 채권자와 협상을 거쳐 채무 일부를 탕감하는 절차를 밟기 때문이다.

 

또 현재 개도국 연쇄 디폴트 위기가 인플레이션과 결합돼 있어 자칫 2010년 튀니지를 기점으로 확산됐던 ‘아랍의 봄’같은 지정학적 위기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영국 투자회사 애버딘의 빅터 자보 매니저는 “에너지와 식량 가격 인상이 개도국들의 사회 불안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며 “아랍의 봄이 식량 가격 급등에서 촉발됐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고 했다.

 

지정학적 관점에서 연쇄 디폴트 위기를 바라볼 때 빼놓을 수 없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은 2010년대 들어 ‘일대일로 (一帶一路·중국의 육해상 실크로드)’라는 이름의 경제 영토 확장 프로젝트를 펼쳐 왔는데, 이 과정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대륙의 수많은 저개발 국가를 포섭했다. 작년 상반기 기준 중국과 일대일로 업무협약(MOU)을 맺은 140국 중에는 최근 디폴트를 선언한 스리랑카를 비롯해 파키스탄, 이집트, 잠비아, 레바논, 라오스, 미얀마, 방글라데시 등 부채 위기를 겪는 국가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해당 국가에는 중국 자본이 대거 투입돼 철도와 공항, 항만 등 교통·물류 인프라와 댐이나 발전소 등 에너지 기반 시설 등이 건설됐다. 일대일로 프로젝트 수는 2020년 상반기 기준 1824건, 투입 금액은 2조3000억달러(약 2844조원)에 달한다.

 

 

자금이 부족한 개도국 입장에서는 중국 돈으로 국토 개발을 하니 나쁠 것이 없었다. 선진국과 달리 돈을 주면서 부패 방지 방안 마련, 민주화 등을 요구하지 않는 것도 이들이 기꺼이 중국과 손을 잡은 이유다. 하지만 중국은 돈을 빌려주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개발 사업에 대한 시공 및 운영권을 독식했고 이자도 높게 받으며 잇속을 챙겼다.

 

경제 기반이 약한 나라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자금을 높은 이자로 빌려 쓰다 보니 빚을 갚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고, 중국은 이를 볼모로 해당 국가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른바 ‘부채의 덫(debt-trap)’ 전략이다. 스리랑카·캄보디아·우간다·이집트 등이 모두 이런 식으로 중국 돈을 빌려 썼다가 주요 자산에 대한 운영·소유권을 잃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채무 상환 유예 대상이 된 73국의 대외 부채 중 중국 자금 비율은 작년 기준 18%에 달한다. 2006년(2%)의 9배다. 같은 기간 73국의 민간 부문 대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도 3%에서 11%로 증가했다.

 

문제는 중국에 빚을 많이 진 개도국들이 줄줄이 부도날 경우 미·중 간 패권 경쟁에 불을 붙이는 촉매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군사·안보적 요충지가 많은 일대일로 편입 국가들이 디폴트에 빠질 경우 중국이 채무 조정 등을 명분으로 영향력 확대에 나서고,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 등 서방 진영과 갈등이 고조되면서 무역이 쇠퇴하고 자원 민족주의가 부상한다는 시나리오다. 가뜩이나 미·중 패권 경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자유주의 대 비자유주의 진영 간 대립이 격화하는 시점이어서 이런 시나리오에 설득력을 더한다.

 

NH투자증권 신환종 FICC(채권·외환·파생상품) 리서치센터장은 “디폴트로 개도국들의 친중 정부가 몰락하고 친서방 세력이 집권할 수도 있는데 이 과정에서 열강들 간 세력 다툼이 일어나 세계 경제에 긴장감을 불러올 수 있다”며 “디폴트 도미노를 단순히 금융시장에 끼칠 단기적 영향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김지섭 기자

 

04.30  "답 없네" 푸틴 뒤통수 때렸다…러에 최악의 악몽 안겨줄 나라 [지도를 보자]

아래는 한 국가의 지도입니다. 어느 나라일까요?

 힌트

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 등장한 마지막 여행지.
② 이 나라 국민들이 부르는 국명은 ‘수오미’입니다. 수오(Suo)는 우리말로 ‘숲’, 미(Mi)는 ‘호수’를 의미.
③ 한국에도 잘 알려진 영화 ‘카모메 식당’의 배경이 된 나라.

 

눈치 채신 분들이 많으시겠죠? 다시 한번 지도를 통해 확인해봅시다.

 

주변 나라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네, 맞습니다. 북유럽의 강소국 ‘핀란드’입니다. 국토 면적은 한국의 3배가 넘는데 인구수는 10분의 1 수준인, 넓고 여유로운 나라죠. 유엔이 매년 출간하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5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1위를 차지한 부러운 나라이기도 합니다. 한국은 59위였습니다.

 

 

 

국가별 행복도 순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서울과 헬싱키의 직선 최단거리는 7053㎞인데,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 영공이 막히면서 북극항로로 우회하다보니 훨씬 멀어졌습니다.

 

한국과 핀란드간 기존항로와 우회항로.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핀란드, 논란의 중심에 서다

산타클로스와 무민, 그리고 자일리톨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핀란드가 최근 세계 뉴스의 중심에 섰습니다. 바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둘러싼 논란 때문인데요. 중립국을 표방해온 핀란드가 이르면 다음달 중순, 미국·서유럽 중심의 군사동맹체인 나토에 가입 신청서를 낼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방에선 핀란드의 나토 가입 추진에 대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시적 정의(poetic justice·인과응보)”(션 모나한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라며 반기는 분위기입니다. 반면 러시아는 “발트해에 핵무기를 배치하겠다”(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면서 위협적 언사를 쏟아내고 있죠.

 

 핀란드의 나토 가입 추진 일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정학적 위치

이처럼 상반된 반응이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입니다. 핀란드와 러시아는 1340㎞의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핀란드가 나토 동맹국이 되면, 나토 동맹국과 접한 러시아 국경 길이는 두 배 이상 늘어나죠. 나토의 동진(東進)에 히스테리에 가까운 거부감을 보여온 러시아에게는 재앙인 셈입니다.

 

미국 외교안보전문지 포린폴리시의 선임 특파원 마이클 허시는 “터키가 나토의 남쪽을,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이 나토 동쪽 국경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쪽의 핀란드까지 나토에 가입하면 푸틴이 두려워했던 바로 그 ‘거대한 동맹’이 실현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의 전 고위관리이자 프린스턴대 교수인 아론 프리드버그는 “(푸틴은) 그의 나라를 ‘셀프 포위’하는 치명적 전략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죠.

 

 스웨덴·핀란드까지...나토의 동진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막강한 군사력, 막대한 군사정보

서방이 핀란드의 나토 가입에 주목하는 이유는 핀란드의 막강한 군사력 100년 이상 러시아를 방어하며 쌓아둔 막대한 군사정보 때문입니다. 핀란드는 정규군 28만명, 예비군 90만 명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12개월 징병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신체·정신적 질병,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제외한 전체 핀란드 남성 4분의 3이 군필자죠.

 

핀란드 국방분석가인 스테판 포스는 “핀란드 군대는 전 유럽에서 손꼽힐 정도로 유능하다”면서 “핀란드는 매년 대규모 징집병을 모집해, 러시아의 주요 공격에 방어하는 방법을 훈련시킨다”고 설명했다. 핀란드가 나토 가입 논의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이 안보동맹의 보호를 받으려는 게 아니다. 기여자가 될 것”이라고 큰소리 친 배경이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두달 이상 이어지면서 서방이 가장 원하는 시나리오는 우크라이나의 승리와 핀란드의 신속한 나토 가입이란 얘기가 나옵니다. 전직 미국 외교관인 제임스 도빈스는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와 핀란드를 모두 잃는 것은 푸틴에게 최악의 악몽이 될 것”이라고 포린폴리시에 전했습니다.

 

러시아가 등떠민 나토行

사실 핀란드는 우크라이나처럼 나토 가입을 절실히 원하진 않았습니다. 1995년 유럽연합(EU)에 가입하고, 나토와 파트너십을 맺어왔지만 나토 동맹국에 정식 가입하는 것보다,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러시아와 건설적 안보 관계를 발전해나가길 희망했습니다. 발트 3국이 2004년 EU와 나토에 동시 가입할 때도 군사적 비동맹주의를 유지하는 것에 논쟁조차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목격한 핀란드는 러시아가 ‘제국의 야망’을 버리고 변화할 거란 기대를 포기했습니다. 또 “영토 방위에 관한 한 나토 가입 외엔 대안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초토화되는 우크라이나 상황을 본 주변국이 ‘알아서’ 나토를 피해갈 것으로 기대했던 러시아의 생각과 정반대 상황이 벌어진 거죠.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오른쪽)와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 연합뉴스

 

 굴욕의 역사 ‘핀란드화’

나토 가입과 함께 굴욕의 용어인 ‘핀란드화(Finlandization)’의 굴레도 벗을 것으로 보입니다. 핀란드화라는 단어에는 핀란드와 러시아의 오랜 악연의 역사가 담겼는데요. 과거 핀란드는 1809년부터 1917년까지 108년간 러시아제국 지배 하에 있다가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때 독립했습니다. 이후 2차 세계대전 중 소련의 침공을 받아 겨울전쟁(1939~40), 계속전쟁(1941~45)을 치르며 국토가 초토화됐죠.

 

핀란드는 이때의 역사를 교훈삼아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며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외교안보 전략을 철칙으로 삼아왔습니다. 인접한 강대국의 눈치를 알아서 살피고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자국의 국익을 양보하는 핀란드의 전략을 국제정치학에서 ‘핀란드화’라고 불러왔죠.

 

핀란드의 나토 가입은 ‘핀란드화’ 전략의 종식으로도 볼 수 있을 겁니다. 다만 러시아를 과도하게 도발하지 않기 위한 전략으로 ‘노르웨이 모델’을 택할 가능성은 큽니다. 나토 동맹국이 되더라도 자국 내 해외 군사기지를 설치하지 않는 방식입니다.

 

러시아 항거 역사 담긴 ‘핀란디아’

러시아와 핀란드의 긴 악연은 핀란드 국민음악가  시벨리우스(1865~1957)의 ‘핀란디아’에도 담겼습니다. 1899년에 작곡한 이 교향시는 러시아제국의 압제와 수탈에 맞선 핀란드인의 항거와 민족의식 고취를 담고 있어 핀란드인의 ‘마음 속 국가(國歌)’로 불린답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