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계의 추악한 괴물들2/ 그들은 좌파였다
2018.03.05 박진성 시인, " 고은 변명보고 경악··· 추행과 희롱을 보고 겪은 시인만 적게 잡아 수백명"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3월 2일 성추행 의혹과 관련한 고은 시인의 입장이 포함된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가디언 캡처. 조선닷컴
고은 시인이 “상습적 성추행 혐의에 대해서 부인한다”고 밝힌 가운데 박진성(40) 시인이 고 시인에 대해 또 다른 성추문을 폭로했다.
2001년 '현대시'로 등단한 박 시인은 3월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En 시인의 추행에 대해 증언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최영미 시인의 폭로는 결코 거짓이 아니라고 밝혔다.
박 시인은 자신이 본 고은 시인이 젊은 여성을 성추행하는 장면을 자세하게 묘사하며 “저 역시 방관자로서,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씁니다. 제발, 사과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말로 글을 맺었다.
아래 박 시인의 글 전문을 소개한다.
고En 시인의 추행에 대해 증언합니다.
고백합니다. 저는 추악한 성범죄 현장의 목격자입니다. 그리고 방관자입니다. 지난날의 제 자신을 반성합니다. 그리고 증언합니다.
2008년 4월의 일입니다. C 대학교에서 주최하는 고En 시인 초청 강연회에 갔었습니다. 200명 넘는 방청객들 사이에서 고En 시인은 정말 빛나는 별이었습니다. 자신의 문학적 여정을 회고하고 나아가 한국문학의 위상에 대해서 말하는 고En 시인은 저의 앞으로의 ‘미래’였습니다. 뒷자리에 앉았던 저는 한 마디라도 놓칠까 싶어 고개를 최대한 앞으로 숙여 시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대학생, 대학원생들, 여러 학과의 교수들, 그리고 인근 주민들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 행사는 ‘공개 개방 강좌’였습니다. 시인이라는 존재가 골방에만 쳐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구나,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 감동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당시 저는 H대학의 문예창작과 교수 K로부터 이 자리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고En이 오는데 자리를 좀 빛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무척 설레고 떨렸습니다. 고En을 만날 수 있다니. 뒤풀이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날 강연 전날 밤잠을 설쳤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 자리가 마냥 그런 자리로만 알았습니다.
뒤풀이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고En 시인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방이 따로 있는 그런 음식점이 아니었습니다. 고기와 맥주 그리고 소주. 그리고 술을 마시지 못하는 여성을 위한 음료수. 명백하게 ‘오픈’된 공간이었습니다. 오후 5시 경이었습니다. 술기운에 취해서였는지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 고En 시인이 당시 참석자 중 옆자리에 앉은 한 여성에게 “손을 좀 보자”고 했습니다. 고En 시인은 그 여성의 손을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손을 만지다가 팔을 만지고 허벅지를 만졌습니다. 그 여성은 당황스러워했습니다.
당시 20대였던 여성은, 단지 고En 옆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고En 시인에게 그런 ‘추행’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끔찍했습니다. 그리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이 자리는 도대체 어떤 자리지? 저는 그 당시 그 자리로 저를 오게 한 K교수에게 항의했습니다. 도대체 안 말리고 뭐하는 거냐.
그 교수는 저더러 가만히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K교수에게 밉보일까 두려웠고 문단의 대선배 고En 시인에게 밉보일까 두려웠습니다. 고En 시인은 저의 이름 정도를 알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쓰라고 격려를 해줬습니다. 그게 당일 고En 시인과 나눈 대화의 전부였습니다. 그게 고마웠습니다. 그냥 보고만 있었고 그냥 듣고만 있었습니다.
고En 시인의 추행은 이후에도 계속됐습니다. 그 여성이 저항을 하자 무안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거였습니다. 그러더니 지퍼를 열고 성기를 꺼냈습니다. 흔들었습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습니다. 이제는 알겠습니다. 그건 그냥 당시 동석자였던 여성 3명에 대한 ‘희롱’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엄청난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성기를 3분 넘게 흔들던 고En 시인은 자리에 다시 앉더니 “너희들 이런 용기 있어?” 그렇게 말했습니다.
K교수에게 항의했습니다. 대놓고 하지는 못했습니다. 이건 정말 아니다, 저 여성들은 뭐냐, 자리에서 나가겠다. K교수는 저의 항의를 묵살했습니다. 고En 시인에게 추행을 당했던 여성이 못 참겠는지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울고 있었습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다 울때까지 기다렸다가 먼저 그 여성을 택시를 태워 보냈습니다.
그 여성이 귀가했다는 사실을 K교수와 고En 시인에게 알리자 술자리가 급격한 속도로 가라앉았습니다. 그 여성은 고En 시인의 말을 빌리면 “참석자 중 가장 젊고 예쁜 여성”이었습니다. 고En 시인은 변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것도 못 보면서 무슨 시를 쓴다고. 저는 경악했습니다. 그때 당시 시간이 오후 5시였습니다. 밤이 아닙니다. 옆자리에는 다른 손님들이 있었고 우리 일행의 술자리를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K교수가 노래방에 가자는 걸 고En 시인이 싫다고 했습니다. 세 명 중 나머지 두 명 여성은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노래방으로 끌려갈지 무사히 집으로 갈 수 있을지, 그건 그 여성들의 선택의 몫이 아니었습니다. 저 포함 해당 여성들은 K교수의 지도학생이었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고En 시인은 알고 있었을까요?
도저히 어떻게 안 되겠는지 K교수는 고En 시인에게 “이만 일어나시죠, 자리가 별로 안 좋네요”하고는 둘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남은 여성 두 명과 처참한 심정을 나눴습니다. 고En 시인의 성기를 봤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해야 할까요?
그렇게 10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저와 그 당시 여성들만 당한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문단에서 굴러먹은 지 17년째, 고En 시인의 그런 만행들은 여기저기서 들려왔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2018년. “30년 전 격려 차원에서 그랬다”는 고En 시인의 변명을 보고 또 한번 경악했습니다. 30년 전이면 1988년인데, 그 이후에 제가 들은 똑같은 패턴의 희롱과 추행들은 유령이 한 짓입니까? 어제 "부끄러울 일 안 했다, 집필을 계속하겠다", 고En 시인의 입장 표명을 보고 다시 참담함을 느꼈습니다. 정말 궁색한 변명입니다. 그의 추행과 희롱을 보고 겪은 시인만 적게 잡아 수백명이 넘습니다. 수십년 간 고En 시인이 행해온 범죄입니다. 문단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을 왜 노 시인은 부정하는 것입니까.
작가회의 상임고문 직을 내려놓을 것이 아니라 수원시에서 본향으로 귀가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해야 합니다. 고En 시인에 대한 증언은 정말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는 이 세계의 왕이자 불가침의 영역이자 신성 그 자체였습니다.
고백합니다. 밉보일까 봐 당시 동석했던 여성분들께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저는 범죄 현장에 있었습니다. 저 역시 방관자였음을 시인합니다. 용서를 구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고En 시인의 시를 보고, 고En 시인의 ‘기록된’ 행적만 보고, 고En 시인처럼 되고자 했던 저 자신을 먼저 반성합니다. 최영미 시인을 응원합니다. 제가 보고 듣고 겪은 바로는 최영미 시인의 증언은 결코 거짓이 아닙니다.
며칠 전 고En 시인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또 한번 놀랐습니다.
“50대 여성 시인 D 씨는 “여성 문인 사이에선 ‘고En 옆자리에 가지 마라’ ‘손이 치마 안으로 들어갔다 윗도리로 나온다’는 말이 퍼져 있었다. 그의 기행을 ‘시인다움’ ‘천재성’으로 합리화하는 이가 많았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2018. 2. 27.)
그날, 제가 목격한 자리의 여성들은 노래방에 가서 저 범행을 당해야 했던 것입니까? "손이 치마 안으로 들어갔다 윗도리로 나오는"? 숱한 그날들. 그 여성들은 고En 시인의 ‘접대부’였던 것입니까?
"'후배 문인을 격려한다는 취지에서 한 행동이 오늘날에 비추어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된 행동이라 생각하고 뉘우친다'다고 하셨다가, "최근 의혹들에서 내 이름이 거론된 것은 유감스럽다. 내 행동으로 인한 의도치 않은 고통에 대해서도 이미 유감을 표했다"니요. (연합뉴스, 2018. 3.4.)
그 누구도 후배 문인을 격려하기 위해 성기를 흔들지는 않습니다. 복수의 증언이 있습니다. 격려라고 하셨다가 "의도치 않은 고통에" "유감을 표하신다니요". 이것은 시를 쓰는 사람의 언어가 아닙니다. 독자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대다수의 독자들은 진실을 원합니다. 그리고 고En 시인을 매해 노벨문학상 후보로 자랑스러워했던 국민들은 엄정한 팩트를 원합니다.
고En 시인의 진정한 사과를 바랍니다. 묵살하지 마십시오. 그 당시 고En 시인에게 ‘성범죄’를 당했던 여성들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실 수 있는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 방관자로서,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씁니다. 제발, 사과하시기 바랍니다. 고En 시인님.
글 | 이상흔 조선pub 기자
03.05 호의 베푼 동료 아내 능욕한 '문제의 시인'은 곡기를 끊고 숨진 시인 옆에서 반야심경을 읊조리고 있었다
동서문화사 고정일 사장이 밝힌 충격적 회고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이문열선생의 단편소설 ‘사로잡힌 악령’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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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실로 공교롭게도 내가 직접 그의 악을 확인할 기회가 왔다. 연수를 끝내고 신출내기 검사로 일 년쯤을 지내고 났을 때의 어느 날 바로 그가 관련된 사건이 내게 맡겨진 것이었다. 한 중년이 요건도 맞지 않은 고소장을 가지고 나를 찾아왔는데 그 내용은 대강 이랬다.
“상기자(上記者)는 승려였다가 환속한 자로서 약간의 글재주가 있어 시인으로 이름을 얻은 자입니다. 제 아우 권지훈도 역시 한 시인이었는데 그자의 재주를 아껴 오다 종당에는 갈 곳이 없어 떠도는 그를 자신의 가난한 단칸 셋방에 거두어 숙식까지 보살펴 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배은망덕한 상기자는 아우가 출근한 틈을 타 제수를 유혹했습니다. 제수는 아우와 팔 년 전에 결혼해 남매를 둔 평범한 주부로서 천성이 그렇게 방탕했던 것은 아니었으므로 처음에는 당연히 그의 유혹을 뿌리쳤을 것입니다. 남편이 워낙 아끼는 사람이라 바로 얘기는 못해도 그를 이만 집에서 내보내라고 아우에게 조르기도 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착한 아우는 눈치 없이 그런 제수를 나무라고 그자를 그대로 잡아두었는데 그만 일이 나고 말았습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제수가 끝내 그자의 집요한 꾀임에 넘어가버린 것입니다
.처음 시작은 그자의 겁탈에 가까운 것이었으나 거듭 정을 통하는 사이에 마음까지 주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아우가 그 일을 안 것은 몇 달이나 지난 뒤였습니다. 그러나 착한 아우는 문단에서의 체면도 있고, 또 어린 남매도 어쩔 수 없어 둘의 관계만 청산되면 없었던 일로 할 작정이었습니다. 그자도 그만 낯짝은 있었던지 순순히 물러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수였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살겠다며 남아 있더니 며칠 안 돼 결국 집을 나가버린 것이었습니다. 그자를 찾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착한 아우는 그래도 고소는커녕 제수를 찾지 조차 않고 그날부터 폭음으로만 상심을 달랬습니다. 그러다가 스무 날 만에 어느 여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는데 여관 종업원의 말을 들으면 무언가 약을 먹은 것 같습니다. 믿던 후배에게 배신당하고 문단에 웃음거리가 된데다 가정과 아내를 잃어버린 상심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 것입니다.
이왕 아우는 죽었고 또 뼈 없이 착하기만 한 아우가 평소에 워낙 여러 사람에게 그자를 용서한다는 소리를 해 놔서 제가 법에 호소해봤자 그자를 벌줄 수 없다기에 저는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렇게 죽은 아우가 가련하고 반성의 기색이 없는 그자가 미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직접 손을 댄 것은 아니나 아우는 그자가 죽인 것이나 다름없는데도 이같이 극악무도한 죄인을 벌할 법이 이 나라에는 없다는 것입니까? 저의 무지 탓인지 모르나 이 나라 법전 어디엔가는 상기자를 벌할 수 있는 조항이 있으리라 믿어 늦었지만 이제라도 상기자를 법에 고발합니다.”
바로 그의 숨겨진 죄상을 고발하는 내용으로, 힘을 얻게 된 악이 드디어 공격성을 드러낸 것이고 피해도 명백히 발생해 있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를 벌할 법적인 근거는 찾아낼 길이 없었다. 기껏해야 간통죄에나 문의할 수 있지만 그것도 친고죄라 그 착한 시인이 이미 죽어 버린 데다 평소 유서(宥恕=용서)의 의사를 여러 군데에서 밝혔다면 공소권의 발생 자체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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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이 이문열씨의 요즘은 찾기 힘든 소설을 게재한 후 이씨는 전화를 걸어와 “전문게재를 취소해달라”며 “소설의 수준이 마음에 들지않고 ‘소설’이 남을 비판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에 대해 마음이 내키지않아 내 작품집에서 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씨의 요청에 따라 본지는 ‘사로잡힌 악령들’이라는 기사를 인터넷에서 삭제했다.
그런데 과연 이 사건은 실제로 있었던 일일까, 아니면 소설적 허구일까. 이에 대해 본지는 동서문화사 고정일 사장으로부터 제보를 받게됐다. 이 소설에 등장한 문제의 부분은 사실이며 본인도 그 내용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익명으로 처리된 ‘권지훈’이라는 인물은 누구일까.
지금은 거의 기억하는 사람들이 없지만 권지훈으로 그려진 인물은1972년 사망한 시인으로 한때 김수영과 쌍벽을 이뤘다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부산 태생인 그는 러시아어에 능했으며 모 언론사의 논설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다만 다리에 장애가 있어 활동이 자유롭지 못했다고 한다.
고정일사장은 “문제의 사건은 종로구 견지동 시인의 자택에서 벌어진 사실이며 남편이 데려온 또다른 시인으로부터 능욕당한 시인의 부인은 남편을 볼 수 없어 아들 둘을 데리고 가출했다”고 말했다. ‘한국문학의 탐험’이라는 기사에는 그 시인에 대해 “가난과 불구와 가정적 불행에 목덜미를 잡힌 채 오로지 불운과 불행에 의해서만 견인되는 삶을 참담하게 끌어안고 있던 시인은 그 슬픔과 비장함을 이렇게 노래한다’고 썼다.
자신이 호의를 베푼 동료 시인에게 아내가 능욕당하고 가정이 풍비박산난 것을 이렇게 점잖게 표현한 것이다. 고정일 동서문화사 사장은 문제의 시인이 곡기를 끊고 숨진 채로 발견된 면목동 집에서 목격한 장면을 이렇게 말했다.
“우리 출판사에서 러시아어 번역을 하던 분이라 한걸음에 그 시인이 숨진 현장으로 달려갔다. 웃목에는 문제의 시인이 죽은 채 누워있었고 요즘 문제가 되는 시인(詩人)과 박모 소설가가 죽은 시인을 지키고 있었는데 광경이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커다란 자배기에 막걸리를 잔뜩 부어놓고 시신(屍身)옆에서 젓가락을 두들기며 '마하반야 바라밀다..'로 시작되는 반야심경을 읊조리고 있었다. 요즘 그의 과거 추행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폭로들을 보며 연민의 정을 느낀다.”
글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03-06 [‘안희정 성폭행’ 폭로 파문]안희정 정무비서 김지은씨 증언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지난해 12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강연하는 모습(왼쪽 사진). 5일 오후 안 지사의 정무비서 김지은 씨가 jtbc 뉴스에 출연해 지난해 6월 말부터 올 2월까지 안 지사에게 네 차례 성폭행 당했다고 폭로하고 있다. 뉴스1·jtbc 화면 캡처
“안희정 지사가 지난달 25일 밤에 저를 불러 ‘미투를 보면서 너에게 상처가 되는 줄 알았다’며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날은 안 그럴 줄 알았는데 결국 하더라고요.”
안희정 충남도지사(53)의 정무비서 김지은 씨(33)는 5일 jtbc에 출연해 안 지사로부터 당한 성폭행 피해를 힘겹게 털어놨다. 김 씨는 바짝 마른 입술로 “저에게 미투 언급을 하고 사과까지 한 상태에서 또다시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아, 여기는 벗어날 수가 없겠구나’ 하고 절망했다”고 말했다. 이어 “저한테 가장 두려운 것은 안 지사이다. 제가 오늘 이후 없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국민들이 저를 지켜주시고 진실이 밝혀질 수 있게 도와줬으면 하는 생각에 인터뷰에 응했다”고 밝혔다.
○ “‘미안하다’며 계속 성폭행”
김 씨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8개월 동안 안 지사에게 성폭행을 당한 시기와 장소 및 당시 상황을 상세히 증언했다. 김 씨는 “지난해 7월 러시아, 9월 스위스 출장 등을 수행하며 피해를 당했다”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지워지는 텔레그램으로 안 지사와 비밀 대화를 했다”고 말했다.
김 씨에 따르면 안 지사는 성폭행 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텔레그램의 비밀 대화방을 통해 ‘미안하다’ ‘내가 부족했다’ ‘다 잊어라’ ‘아름다운 스위스와 러시아의 풍경만 기억해라’는 등의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김 씨는 “있는 기억이지만 없는 기억으로 살아가야 했다”고 말했다.
안 지사는 미안함을 표시하면서도 성폭행을 계속했다는 게 김 씨의 증언이다. 김 씨는 “스위스 출장 때 안 지사에게 ‘아니에요’ ‘아닌 것 같아요’ ‘모르겠어요’라고 하며 머뭇거렸더니 침대에서 소파로 데려가 계속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아니에요’라는 표현이 “최대한의 방어”였다고 강조했다. 안 지사는 평소 김 씨에게 “수행비서는 모두가 ‘노’라고 할 때 ‘예스’라고 하는 사람이고 마지막까지 지사를 지켜야 한다” “네 생각을 얘기하지 말고 그림자처럼 살라”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 김 씨는 “제가 머뭇거리면서 어렵다고 했던 것은 최대한의 거절이었고 지사님은 그걸 알아들으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지사는 김 씨와의 성관계를 인정하면서도 “합의된 관계였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김 씨는 “제가 원해서 했던 관계가 아니다”라며 “지사님은 제 상사이고 그의 권력이 얼마나 큰지 알기 때문에 아무것도 거절할 수 없었다”고 반박했다.
○ “다른 성폭행 피해자들 있다”…안희정 잠적
김 씨는 안 지사의 성폭행이 계속되자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여러 번 SOS를 보냈고 한 선배에게 피해 사실을 얘기했지만 아무 도움을 받지 못했다”며 “일단 거절하라고 해서 스위스에서 거절을 했지만 결국에는…”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씨는 안 지사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 더 있다고 밝혔다. 김 씨는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국민들이 저를 지켜주신다면 그분들도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가 밝힌 성폭행 피해는 모두 최근 1년 이내 벌어진 일이어서 사실로 확인될 경우 안 지사는 형사 처벌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충남도 남궁영 행정부지사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안 지사를 만나러 도지사 공관에 갔는데 없었다. 안 지사와 통화를 했는데 ‘가능한 한 빨리 입장을 정리해 밝히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홍성=지명훈 mhjee@donga.com / 이지훈 기자
03.06 피해자, 안희정을 '우보(牛步)지사님'이라 저장한 이유
▲피해자 김지은씨에 따르면 안희정 지사는 성폭행 후 김씨에게 ‘텔레그램’을 통해 ‘괘념치 말거라’ 등의 문자를 보냈다. /jtbc화면캡처
안희정 충남지사가 자신의 수행비서였다가 현재 충남도 민정비서직을 맡고 있는 30대 여성 김지은씨는 “지난 8개월간 4차례에 걸쳐 안희정 지사로부터 성폭행 당했다”고 5일 폭로했다.
jtbc 뉴스룸에 출연한 김지은 씨는 이날 방송에서 안희정 지사와 스마트폰으로 주고받은 문자를 공개했다. 두 사람이 이용한 것은 메신저 프로그램 ‘텔레그램’이다. 기록이 남지 않는 채팅 프로그램이어서 ‘정보 보안’에 신경쓰는 이들이 주로 사용한다.
사진은 안 지사가 성폭행 후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김씨에게 ‘괘념치말라’는 등의 내용을 보낸 것을 김씨가 캡쳐해 놓은 것이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조선일보 DB
김씨는 안희정 지사를 ‘우보 지사님’이라고 저장해놨다.
‘우보’는 안희정 지사가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자주 쓰여왔다. 지난 2012년 6월 27일 안지사는 도지사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갖고 “민선 5기 2년 동안 우보호시(牛步虎視)의 자세로 일해왔다고 자평했다. ‘우보호시(牛步虎視)’는 ‘소처럼 천천히 걸으면서 호랑이 같은 눈’을 갖는다는 뜻.
안 지사는 이 자리에서 "2년 전(2010년) 제36대 도지사로 취임한 후 야당의 진보적 젊은 도지사로서 우보호시의 자세로 도정의 연속성 유지와 주권자의 권리 회복, 생동감, 생산성 높은 도정을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안 지사는 재선에 성공했고, 지난해에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와 당시 문재인 후보에게 패했지만 탄탄한 지지층을 확인, ‘민주당 차기’ 선두로 분류돼왔다. 안 지사는 지난해 12월 “7년간의 도정을 마무리하고 (충남지사직) 3선 도전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실상 ‘대권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다비 기자
안희정 충남도지사 "오늘부로 도지사직 내려놓겠다…피해자께 죄송"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6일 새벽 페이스북을 통해 “오늘부로 도지사 직을 내려놓고 일체의 정치 활동도 중단하겠다”며 “피해자 김지은 씨에게 정말 죄송하다”고 밝혔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페이스북 화면 캡쳐
앞서 김지은 충남도 정무비서관은 지난 5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안희정 지사가 지난해 6월부터 8개월간 4차례 성폭행했다”고 밝혔다.
이날 방송에서 안 지사측은 김씨의 폭로에 대해 “부적절한 성관계를 인정하지만 강압이나 폭력은 없었다”며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는 입장을 밝힌 바있다.
그러나 안 지사는 6일 자정이 지난 새벽 1시쯤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 입장은 잘못이다”며 “모두 다 제 잘못이다” 고 밝혔다.
<이하 안 지사 페이스북 전문>
모든 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무엇보다 저로 인해 고통을 받았을
김지은 씨에게 정말 죄송합니다
저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입니다.
모두 다 제 잘못입니다
오늘부로 도지사 직을 내려놓겠습니다
일체의 정치 활동도 중단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모든 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안희정 올림
조선일보 윤민혁 기자 이다비 기자
03.06 고은, 이윤택, 안희정··· '미투'를 통해 드러나는 한국 좌파의 '민낯' 과 이중성
⊙ 남성이 우월적 지위와 권력 이용해 성폭행까지 저지르는 것은 좌우를 떠나 우리 사회의 ‘적폐’
⊙ 이중성과 대중 기만, 뻔뻔함은 좌파 일부 인사의 개인적 특성만은 아니고 진영적 사고의 결과
⊙ 계급해방이라는 절대적 투쟁과제 앞에서 다른 가치들은 얼마든지 희생될 수 있다고 보는 시각
▲ 5일 jtbc ‘뉴스룸’에 출연, 안희정 충남지사로부터 반복적인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힌 김지은 충남도 정무비서. / photo by jtbc 캡처본
그 동안 그토록 정의, 평등, 사람 사는 세상 등을 외쳐온 좌파 인사들이 대거 ‘미투’ 폭로의 대상이 되면서 추잡한 성범죄 행각이 밝혀지는 것이 과연 우연스러운 일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이윤택의 끝없는 추락과 몰락이 시사하는 바는 상당히 크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남성이 우월적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여성을 희롱하고 추행하며 성폭행까지 저지르는 경우가 비단 좌파만의 문제는 결코 아닐 것이다. 크게는 좌우를 떠나서 우리 사회가 그 동안 뿌리뽑지 못한 폐단이다. 이런데 소위 ‘적폐’라는 표현이 잘 맞아떨어질 듯 싶다.
다만, 그 동안 좌파들이 부르짖어 왔던 구호와 주장과는 너무나도 괴리된 추악한 현실들은 우리에게 소위 ‘수구 좌파’의 본질을 일깨워준다고 봐야 한다. 그들의 철저한 이중성과 대중 기만, 그리고 소름이 돋을 정도의 뻔뻔함은 그냥 일부 인사들의 개인적 특성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대충 이런 사고 메커니즘이다. 물론 그들도 처음에는 자신들이 저지르는 행위들이 결코 떳떳하고 도덕적인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제어하지 못하는 욕망과 삐뚤어진 성관념을 이내 합리화, 정당화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기제로 그들은 이념을 택한다. 대충 이런 거다.
‘나는 이 사회의 정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 나는 거대 권력에 저항하는 이념적 투사야. 나는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대변하고 소외 받는 분야를 발전시키기 위해 앞장서고 있어’와 같은 식의 의미 부여다. 그러한 자기 최면을 통해 자신이 조직과 공동체 내에서 저지르는 악행들을 소소한 일탈, 또는 자기 보상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꼭 좌파만의 문제라고?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이념에 과잉적으로 경도된 보수, 우파도 분명히 이러한 사고 메커니즘을 통해 자신의 악행에 대해 변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경향적으로 한국의 좌파들이 저러한 사고체계를 가질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한국 좌파의 본질적 특성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좌파는 계급투쟁 논리를 전제로 한다. 이 사회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나눠져 있고, 일방적인 착취와 억압의 구조로 굴러가고 있다고 믿는 그들은 일종의 계급 해방, 지배권력의 붕괴만이 절대적인 이념 투쟁의 과제라고 인식한다. 문제는 그러한 과제 앞에서 다른 가치들은 얼마든지 희생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한국 좌파의 시각이다.
그러니 사회적으로는 정의와 평등을 외치면서, ‘내 주변의 평등’ 따위는 그냥 가볍게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다고 믿는 어처구니 없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일종의 ‘혁명적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 성범죄에 대한 내부 폭로와 갈등이 조직의 힘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경우, 그것을 여지없이 덮고 묵살시킬 수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팽배해진다.
어디 이것이 성범죄만의 문제일까. 생각해보자. 강남의 아파트를 투자 목적으로 구입하는 것이 투기라며 이 세상에서는 절대 있어선 안 될 악행처럼 말하는 그들이 정작 자신들은 부동산 부자들이다. 이 이중성도 마찬가지 메커니즘에서 생각할 수 있는 거다.
‘천문학적인 재산을 가진 재벌들을 때려잡는 나 정도의 인사라면 1가구 2주택은 어느 정도 용인해줄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관념체계이다. 그래서 ‘나 역시 수십억 부동산을 가진 기득권층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재벌과 거대 권력을 상대로 싸우는 투사’ 이런 논리가 되는 것이다.
물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미투 운동은 결코 좌우의 문제로만 이해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이고 고질적인 병폐다. 미투 폭로를 정치적 공작이나 정치 투쟁의 프레임으로 이해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투를 계기로 좌파의 이중성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됐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국민들 앞에서 쉽게 도덕과 정의를 논하는 사람일수록 한번 더 의심해봐야 된다는 교훈을 던져주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 해당 기사는 <제 3의 길>에 공동기고된 글임.
글 | 윤주진 영국 UCL 정치학 석사과정, 전 국회 비서관
03.07 “김기덕 합숙 숙소가 지옥” “조재현, 터질게 터졌다”…‘PD수첩’에 쏟아진 성폭력 폭로
▲김기덕 감독과 배우 조재현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여배우들의 폭로가 MBC PD수첩을 통해 나왔다. [사진 PD수첩 캡처]
6일 방송된 MBC 'PD수첩'에는 김기덕 감독과 그 주변 인물들의 성폭력 실태를 고발했다. 피해 여배우, 현장 영화 스태프, 전 소속사 직원 등 다양한 영화계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서였다.
이날 방송에서 여배우 A씨는 "김기덕 감독은 굉장히 모욕적인 말을 한다“며 "‘XX는 권력이다, XX들이 XX를 차지하기 위해 싸운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증언했다. 이어 김 감독과 배우 조재현, 여성 영화관계자와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뒤 김 감독이 자기 방으로 자신을 이끌었고, 조재현이 자신에게 '함께 올라가줘라'고 권했다고 주장했다. 또 김 감독이 "(여성 영화관계자와) 셋이 같이 자자고 요구했다. 너무 끔찍했다. 심장이 너무 뛰었다.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고 울먹였다.
이 같은 A씨의 주장에 대해 김기덕 감독은 "술자리가 늦게 끝났고, A씨가 나와 여자 관계자를 한꺼번에 방에 넣고 갔다. 무슨 일인지 몰라 관계자와 이야기를 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A씨는 "김기덕 감독은 해병대 출신이다. 말이 되냐"며 기막혀했다. 이어 김 감독이 자신과 아는 언니가 함께 있을 때 찾아와 바지를 벗은 적이 있다는 말도 이어졌다.
영화 관계자들은 "김기덕 감독은 학교에서 강의 중에도 남학생들에게 '내 것이 크냐, 네 것이 크냐'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여배우들, 여자 스태프들과도 함께 있지 못하게 했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여배우인 B씨는 김기덕 감독과 만났을 당시 그의 발언에 대해 말했다. 그녀의 유두와 성기 색깔, 자위 경험을 물은 데 이어 "너의 가슴을 보고 싶다. 몸을 볼 수 있게 따로 만날 수 있냐" 등의 제안을 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B씨는 화장실로 도망쳤다가 그 자리를 빠져나왔고, 이후 연예계를 은퇴했다고 밝혔다.
김기덕 감독은 PD수첩 제작진의 취재 요구에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김 감독은 "미투 운동이 갈수록 자극적이다.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 짓밟히고 있다. 나는 영화감독이란 지위로 개인적 욕구를 채운 적이 없고 항상 그 점을 생각하며 영화를 찍었다"며 "일방적인 감정으로 키스한 적은 있다. 이 점은 깊이 반성하며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동의 없이 그 이상의 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김기덕 감독이 PD수첩 제작진에게 보낸 문자 해명.[사진 PD수첩 캡처]
하지만 이날 제작진은 김기덕 감독과 배우 조재현에게 또다른 여배우 C씨의 증언을 받았다. C씨는 "(김 감독이) 처음 강원도 홍천의 영화 '수취인불명' 세트(빨간색 버스)에서 성폭행을 시도했다"며 ”옷을 막 찢고 날 때린 뒤 나중에 날 사랑해서 그렇다며 미안하다고 사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또 다른 영화 촬영 중의 에피소드를 전하며 영화 촬영을 하는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합숙하던 숙소가 바로 지옥 같았다고 말했다.
C씨는 "김기덕 감독과 조재현 배우, 조재현씨 매니저 세 명이 하이에나처럼 문을 두드렸다. 대본 회의를 한다며 여배우를 방으로 부르기도 했다. 방에 불려갔다가 김기덕 감독과 다른 여배우의 성관계를 목격한 일도 많았다. 노크하는 소리,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가 공포스러웠다"고 고백했다.
결국 그는 김 감독과 조재현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조재현의 매니저도 성폭행을 시도했다"며 "(김 감독이) 늘 그것(성관계)에만 혈안이 돼 있으니까 영화보다 그게 목적인 것 같았다"고 말했다.
조재현의 전 소속사 관계자의 증언도 있었다. 그는 "터질 게 터졌다. 근거 없는 소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조재현에게) 이러다 진짜 큰일 난다. 가족도 있는데 어쩌실 거냐고 물었더니 알아서 해결하겠다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조재현은 당초 PD수첩의 인터뷰에 응할 뜻을 밝혔지만, 다음날 태도를 바꿨다. 조재현은 'PD수첩'에 "지금 알려진 것들이 80%가 잘못됐다. 축소된 것도 있다"며 “죄인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 조사를 받고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여배우들은 "증언해줄 사람이 없다. 맞은 것만도 얘기해줄 사람이 없다"며 억울해했다. 스태프들은 "지금 영화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다 증언을 거절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만 김기덕 감독의 전 영화 스태프라는 인물이 "방관자가 되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라며 'PD수첩'에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해변에서 정사씬을 찍는데, 김기덕 감독이 뛰어들어 여배우의 다리를 잡고 '야 다리 벌리라고!'라고 소리를 질렀다. 여배우는 얼마나 모욕적이었겠냐"면서 "영화 찍는 사람으로서 배우도 행복하게 찍었으면 좋겠다. 영화계에 환멸을 느끼는 계기가 됐다. 방관자도 가해자 아닌가라는 생각에 증언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다른 영화 스태프들은 대부분 나서지 않았다. 김 감독과 척을 져서는 영화판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웠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화감독은 "(김 감독이)직업적 가치 자체를 훼손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03.08 "정봉주, 감옥 가기 전 호텔로 불러 강제로 껴안고 입맞추려 해"
피해 여성, 2011년 상황 폭로 "파렴치한에 큰 일 맡길 수 없어"
박수현, 내연녀 부적절 공천 의혹… 朴 "허위 비방에 법적 대응 검토"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여비서 성폭행 의혹에 이어 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행 의혹 등이 추가로 폭로되면서 정치권의 '미투(Me Too)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 보도에, 정봉주 전 의원은 당시 B씨를 여의도의 한 호텔로 불러낸 뒤 강제로 껴안고 입을 맞추려 했다고 한다. B씨는 사건 발생 한 달여 전쯤 정 전 의원의 강연회에 참석했다가 연락처를 교환했는데, 이후 정 전 의원이 2011년 12월 선거법 위반 혐의로 실형이 확정되자 "감옥 가기 전에 한 번만 보고 싶다"고 해 만났다가 성추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B씨는 인터뷰에서 "이런 파렴치한 사람에게 그런 큰일(서울시장)을 맡길 수 없다"고 했다.
정 전 의원은 옛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17대 의원을 지냈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이 BBK의 실소유주'라는 의혹을 제기했다가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징역 1년형을 받았다. 정 전 의원은 2011년 김어준·주진우씨와 함께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를 진행했다. 작년 12월 문재인 정부 첫 특별사면을 통해 피선거권을 회복한 뒤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해 왔다.
▲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미투’ 선언이 나온 7일 정 전 의원 관계자가 서울시장 출마 기자회견용으로 마련했던 단상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정 전 의원은 이날 선관위에 예비 후보로 등록하면서 소속 정당을 '더불어민주당'이라고 썼다. 그러나 민주당 측은 "정 전 의원은 현재 민주당원이 아니라 당 차원의 입장은 없다"고 했다. 정 전 의원은 민주당에 입당 신청서를 낸 상태다. 백혜련 민주당 대변인은 "지금 문제 제기가 된 상황에서 (사실 관계) 확인 없이 복당시키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날 윤리심판원·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 연석회의를 열어 성범죄 연루 의혹이 있는 사람의 지방선거 공천 심사를 보류하고,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 자격을 박탈하기로 했다.
한편 민주당 충남지사 경선에 나서는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에 대한 의혹도 이날 제기됐다. 충남 공주시의 민주당원 오모씨는 이날 페이스북에 '(박 전 대변인이) 2014년 지방선거에서 내연녀를 공주시 기초의원 비례대표에 공천한 부적절함을 지적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올렸다. 박 전 대변인은 당시 공주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다. 이에 대해 박 전 대변인은 "기초의원 비례대표 공천을 받았던 분은 지역위원회 운영위원과 여성국장을 수년간 역임하며 공헌과 헌신을 인정받아 공천됐던 것"이라며 "이번 지방선거가 끝나면 그분과 결혼할 계획이지만, 2014년엔 교제하는 사이도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허위 비방에 대해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박 전 대변인은 지난 대선 경선 때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대변인을 맡는 등 안 전 지사와 가깝다. 안 전 지사의 성폭행 의혹이 불거진 뒤 박 전 대변인은 선거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박상기 기자
03.08 "안희정, 호텔로 불러 자기 지위가 버겁다며 성폭행"
['安 싱크탱크' 여직원의 증언]
비서 인터뷰 보고 충격받아 결심
"2015년 이후 4차례 성추행, 2016년 8월 이후부터 성폭행"
검찰, 안희정 직접 수사하기로… 安, 오늘 기자회견서 입장 밝힐듯
안희정(53) 전 충남지사로부터 성폭행당했다고 7일 추가 폭로한 피해자는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직원이었다. 피해자는 "1년 넘게 수차례의 성폭행과 성추행에 시달렸다"고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전성협) 측에 밝혔다.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는 안 전 지사가 2008년 만든 싱크탱크 조직이다. 피해 여성은 이곳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안 전 지사와 자주 접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전성협 소속 변호사와 처음 피해 상담을 했다고 한다. "지난해 1월 18일 안 전 지사가 여의도의 한 호텔로 와달라고 했다"면서 "호텔방에 들어서니 안 전 지사가 성폭행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서울 노원구청에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초청 강연회가 있던 날이었다. 안 전 지사에 대한 지지율이 높을 때였다.
▲작년 12월의 안희정과 비서 - 지난해 12월 안희정 당시 충남지사가 송년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도청 대회의실로 들어서는 모습. 안 전 지사 왼쪽은 안 전 지사에게 수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김지은 정무비서. /신현종 기자
안 전 지사의 성추행과 성폭행은 2015년 시작됐다고 한다. 장소는 주차장·식당·공원·종교시설·호텔 등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여성은 2015년 10월에 2차례, 2016년 5월과 7월 등 총 4차례 신체 부위를 만지는 성추행이 있었다고 했다. 또 2016년 8월과 12월, 작년 1월까지 모두 3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안 전 지사는 맥주를 사 오라고 하거나, 자신의 지위가 버겁다는 하소연을 하며 성폭력을 저질렀다"며 "비슷한 상황에서 당한 김지은씨 인터뷰를 보고 충격을 받아 고소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안 전 지사가 절대적인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와달라는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고 한다. 처음 안 전 지사 성폭행을 주장한 김지은씨와 연락하면서 피해 사실을 공개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김씨처럼 본인을 공개하지는 않고 피해 사실만 폭로했다.
검찰은 이틀 전 폭로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비서 성폭행 혐의를 직접 수사하기로 했다. 서울 서부지검은 "피해자인 김지은씨의 의사와 관할, 신속한 수사의 필요성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경찰에 사건을 넘기지 않고 직접 수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안 전 지사는 8일 오후 3시 충남도청 브리핑룸에 직접 나와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신형철 전 충남지사 비서실장은 이날 언론과 통화에서 "변호인 2~3명 정도를 선임할 계획"이라며 "안 전 지사가 국민·도민 분들께 사죄의 말씀을 올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새로운 피해자가 나오며 실제 기자회견을 할지는 불확실하다.
안 전 지사는 지난 5일 김지은씨의 성폭행 폭로 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신 전 실장은 "(우리의 대응으로) 김씨에게 2차 피해가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며 "한 식구였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섣불리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재판까지 가게 될 텐데 변호사 선임을 안 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이라는 안 전 지사의 사과문과 관련해선 "석고대죄하는 마음으로 올린 글"이라고 했다.
한편 경찰은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과 관련해 가해자로 지목된 40명의 사건을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유명인 31명과 일반인 9명이다. 청주대 교수였던 배우 조민기씨와 단원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연극연출가 이윤택씨, 미성년자 단원 성폭행 의혹이 제기된 김해 극단 '번작이' 대표 조모씨 등 5명은 정식 수사를 하고 있다. 경찰은 7일 전국 경찰서 여성청소년과장 화상회의를 열고 유명인뿐 아니라 일반인의 성폭력 폭로 사건도 조사해 사안이 중할 경우 구속 수사하기로 했다.
03.09 "정의·인권 외치던 그들, 권력이 되자 여성에 性갑질"
[문화계·정계 미투 가해자, 왜 좌파진영에서 줄잇나]
열성팬·동지였던 여성들… '저항 못할' 상대에게 성범죄 분노
과거 운동권, 남성 중심 위계질서
좌파들 가부장적 의식에 갇혀 성추행도 사소한 일탈로 치부
대의·조직 위해 개인 인내 강요
지난 6일 고은 시인의 수원 광교산 자락 저택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성 추문이 확산되면서 고은은 외부와 접촉을 끊었다. 근처 식당과 절에 들렀던 등산객들만 고은 집 대문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한마디씩 험담을 던지고 돌아섰다. 한 중년 남성은 "이런 사람이 어떻게 지금껏 떠받들어지며 살 수 있었는지 기가 찬다"고 했다.
고은·박재동·이윤택·안희정·정봉주…. 문화 예술계에서 시작해 정치권으로 번지고 있는 '미투' 운동의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 중에는 공교롭게도 여권 인사가 많다. 민족 문학계 대표 원로 시인부터 정의구현사제단 신부, 386세대 운동권 출신 정치인과 인권 운동가까지 여권 실세이거나 현 정권을 세우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의 화살이 이른바 좌파 인사들을 향해 무더기로 날아들자 더불어민주당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방송인 김어준이 열흘 전 "진보 인사들이 미투의 타깃이 될 것"이라며 '공작' 운운한 것도 여권 속사정에 밝은 그가 앞으로 미칠 파장을 염려했기 때문이란 말이 나온다.
◇말로만 性 평등, 실체는 가부장
성폭력에 좌우(左右)란 없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선언한 현 정권 아래서 미투 가해자가 속출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성추문을 폭로한 여성들이 가해자의 지지자 또는 열성 팬이었거나, 다양한 형태의 진보 그룹을 이뤄 활동했던 '동지'였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정의·평등·인권을 부르짖던 사람이 정작 추종자들의 인권은 짓밟는 데 대한 배반감이 수면 위로 분출했다는 것이다.
가해자 대부분이 그 분야의 '절대 권력'이었다는 사실도 눈에 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권력형 성 비위는 폭력이나 협박 없이도 희생자를 정신적으로 착취한다"면서 "대의명분이나 조직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고 세뇌하는 집단 분위기 때문이며 이것은 일종의 이단(異端)과도 같다"고 말했다.
◇'마초 투사'들의 왜곡된 여성 인식
여권 인사들의 잇따른 성추문 뿌리가 한국 운동권 핵심 세력 특유의 남성 중심 위계질서와 선민의식에 있다는 시각도 있다. 수행 비서에게 "괘념치 말라, 잊어라" 한 안희정 전 지사의 태도는 '내가 옳으니 나를 따르라'는 선민의식의 대표적 예다. 독재 정권에 온몸으로 맞섰지만, 가부장적 여성 의식에서만큼은 벗어나지 못한 '마초 투사'들이었다는 것도 성 추문 부메랑을 불렀다. 여성학자 권인숙의 저서 '대한민국은 군대다'에는 서클 남학생들의 팬티와 양말을 빨아주고, 하이힐을 신고 왔다가 '네가 운동하는 년이냐'는 욕을 들었던 수모, 서클룸에서 잠들었다가 강간당할 뻔했던 악몽을 털어놓은 80년대 여성 운동가들이 등장한다.
서강대 학생운동권에서 활동했던 50대 남성 직장인은 "크고 작은 성범죄가 일어났지만 사소한 일탈로 여겨 조직을 위해 덮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86학번이자 한때 사회운동에 투신했던 조주은 국회 입법조사관은 "일부 좌파 남성은 여성해방 문제를 자기들 전유물로 여기면서도 순결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페미니즘의 특성을 악용해 같은 진영 여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한 측면이 있다"면서 "현실 권력이 되고도 그 악행을 지속해온 인사들에 대한 분노가 미투 열풍의 한 축을 이룬다"고 했다. 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한 여성도 "이런 파렴치한 사람에게 (서울시장이라는) 큰일을 맡길 수 없었다"고 했다. 정치철학자 김주성 전 한국교원대 총장은 "남성 갑(甲)질이 빈번했던 좌파 문화를 참고 견뎌온 여성들이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외침이 터져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투는 좌파의 새로운 저항운동"
미투를 좌파 내부 문제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윤석민 서울대 교수는 "무명에 가까운 여배우들의 폭로는 큰 권력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미시 권력 문제를 고민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박성희 교수는 "미투는 여성 인권 문제라기보다 신(神) 또는 절대 권력에서 독립하려는 개인의 발견이란 측면이 크다"고 했다. 서울대 전상인 교수는 "어느 분야든 권력을 얻으면 거기 도취해 자기 절제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며 "미투를 통해 사회 곳곳에 만연했던 갑을(甲乙) 관계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했다.
미투를 새로운 여성주의 운동으로 보기도 한다. 홍석경 서울대 교수는 "우파 인사들에 의한 성폭력이 양적으로 더 많을 수 있는데도 크게 번지지 않는 반면, 미투는 좌파 진영 내부의 새로운 저항 운동(무브먼트) 형태로 퍼지고 있다"며 "지금 증언하는 여성들을 보면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자유롭게 한다는 진보적 가치와 공동체적 대의를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동흔 기자 수원=정상혁 기자
03.10 설마 안희정, 역시 정봉주
[魚友 야담]
▲어수웅·주말뉴스부장
트위터는 젊고 감각적인 대중이 상대적으로 많이 쓰죠. '아무말 대잔치'라는 비아냥도 있지만,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비수도 종종 숨어 있습니다. 이렇게 쓴 한 줄 요약을 보았습니다. '설마 안희정, 역시 정봉주'
진실한 정치인인 줄 알았던 충남지사의 위선이 드러났을 때의 충격에 비하면, 서울시장에 출마하겠다는 전 '나꼼수' 멤버에게는 "그럴 줄 알았다"라는 10글자 압축이죠.
안 전 지사가 피해자 비서에게 했다는 문자가 잊히지 않습니다. '괘념치 말거라'. 조선 시대 사극인 줄 알았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괘념'을 "마음에 두고 걱정하거나 잊지 않음"으로 정의합니다. 한마디로 "입 다물어라"라는 명령. 그것도 궁녀를 범한 왕이 시혜 내리는 듯한 말투로요. "권력형 성폭행범은 자신의 행위를 시혜라고 생각한다"는 중앙대 심리학과 허지원 교수의 분석을 떠올리게 만들더군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의 가해자는 당연히 좌우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최근의 폭로 대상에는 유난히 좌파와 진보 진영 인사가 많습니다. '가부장적 좌파' '진보마초의 페미니즘 착취' 등 여러 분석이 있지만, 저에게는 소설 한 권이 떠오르더군요. 공쿠르상을 받은 프랑스의 소설가 미셸 우엘벡은 장편 '어느 섬의 가능성'에서 중국의 천박한 부자 상인과 서구 신경증 좌파의 성적 욕망을 비교합니다. 요약하면 늙은 중국 상인은 벤츠 S클래스로 젊은 여성의 환심을 사려 하는데, 정의와 혁명을 앞세운 유럽의 늙은 좌파는 아직도 자신의 매력 때문에 젊은 여자들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한다는 것. 그들의 한 줌 명망에 혹 호의를 보이는 젊은 여성을 만나면 자기기만과 함께 그녀를 농락하고 비뚤어진 자존감을 충족한다는 거죠.
70~80년대 소위 진보 진영 남성들은 당시에 '큰일 하는 남자'라는 프레임으로 같은 진영 여성들의 성(性)을 소비하고 유린했다는 내부 증언들이 많습니다. 청년이었던 그들이 이제는 장년의 '큰일 하는 남자'가 됐군요. 미셸 우엘벡이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조선일보
03.10 ‘청주대 성추행 의혹’ 탤런트 조민기, 숨진 채 발견
제자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던 배우 조민기(53·사진)씨가 9일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울 광진소방서 등에 따르면 조씨는 이날 오후 4시 5분쯤 자신이 살고 있던 서울 광진구 구의동 한 주상복합아파트 지하 1층 창고입구에서 목을 맨 채로 발견됐다. 부인이 조씨를 처음 발견, 119에 신고해 건국대학교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유서는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건국대병원이 오후 5시 9분쯤 조씨의 맥박과 호흡이 정지한 것으로 최종 확인했다”면서 “조씨가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이며, 향후 정확한 사인을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 조씨는 청주대 연극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제자들을 성추행 한 혐의로 12일 경찰 소환 조사를 앞두고 있었다. 경찰은 조씨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수사에 들어가 20여 명의 피해 진술을 확보하고 조씨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내린 상태였다.
조씨의 제자 성추행 의혹은 지난달 20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관련 글이 게시되면서 알려졌다. 익명의 게시글 작성자는 "청주의 한 대학 연극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조씨가 수년간 여학생들을 성추행했다"며 "혐의가 인정돼 교수직을 박탈당했는데 기사가 나오지 않는 것이 의문"이라고 폭로했다. 이어 청주대가 조씨를 성희롱 행위로 지난해 12월 정직 3개월 중징계를 내린 것이 확인되면서 ‘조민기 성추행’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조씨는 당초 “명백한 루머”라며 성추행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지만, 피해자들의 폭로가 잇따라 나오자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조씨는 결국 의혹 제기 일주일 만인 지난달 27일 소속사를 통해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제 잘못”이라고 사과했다. 그는 “저로 인해 상처를 입은 모든 피해자분들께 진심으로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앞으로 제 잘못에 대하여 법적, 사회적 모든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03.10 “민병두 의원이 10년 전 노래방서 강제로 키스”…미투 폭로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에게 2008년 성추행을 당했다는 폭로가 10일 제기됐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건강한 서울 만들기' 정책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민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개인별 휴먼게놈지도 발급, 헬스 산업을 위한 전문대학원 설립, 관계형-시장형 어르신 일자리 제공 등의 건강정책을 제안했다. [뉴스1]
이날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사업가 A씨(60·여)는 “2008년 5월 노래방에서 강제로 키스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2007년 1월 가족들과 히말라야 트래킹 여행을 갔다가 동료 의원들과 여행을 온 민병두 의원을 알게 됐다. A씨는 “민 의원과 내가 같은 58년 개띠라서 여행지에서 친구처럼 지냈다”고 말했다. 그 후1년여간 3~4차례 만났다고 한다.
문제는 민 의원이 18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인 2008년 5월 발생했다고 A씨는 주장했다. A씨와 민 의원은 저녁을 먹고 간단하게 맥주를 마셨다. 민 의원이 평소와 다르게 노래방에 가자고 제안했고, 따라갔더니 술이 나오는 노래주점이었다고 한다.
A씨는 노래주점에서 종업원이 맥주를 놓고 나가자 민 의원이 테이블을 밀어 입구를 막은 뒤 블루스를 추자고 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갑자기 (민 의원이 키스를 했다) 혀가 들어왔다”며 “너무 당황스러워서 어떻게 할 줄을 모르고 가만히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러다 어떻게 수습이 되고 나왔는데 바지 지퍼가 열려있었다”며 “(민 의원)이 열었겠죠. 나는 연 적이 없으니까”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 의원은 “저는 문제 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기억한다”면서도 “의원직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추인영 기자
03.11. ‘미투’로 본 사과의 기술
‘미투(#MeToo·나도 당했다)’와 ‘사과’는 짝패다. 미투 운동에 여지없이 따라붙는 것이 바로 ‘사과’다. 미투가 터져나오면 즉각적이든 뜸을 들이든 대개 ‘공식 사과문’이 발표된다. 3월 7일 현재, 각계 각층에서 미투 가해자들이 내놓은 사과문은 스무 개 가까이 된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뻔한 속담을 들먹이지 않아도 사과의 힘은 크다. 마음을 담은 진심 어린 사과, 피해자의 고통을 헤아리는 사과는 용서와 화해의 여지를 제공하지만, 변명으로 일관한 사과, 하나마나한 사과는 오히려 분노를 부른다.
이번 미투 사과문들은 대체로 후자다. 반쪽짜리 사과, 하나마나한 사과로 피해자는 물론 오랫동안 성차별적 문화에서 고통받아온 이들을 더 분노케 했다. 미투 사건이 벌어진 상황은 백인백색일 텐데, 사과문은 신기하리만큼 천편일률적이다. 김형희 한국바디랭귀지연구소장은 “미투 사과문들이 하나같이 형식적이고, 진정성이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사과문에서 일정한 패턴이 발견된다. 서론, 본론, 결론이 있다. 서론에서는 ‘제 잘못입니다’ ‘부족한 탓입니다’, 본론에서는 ‘무엇을 잘못했고, 괴로웠습니다’, 결론에서는 ‘자숙하겠다’ ‘반성하면서 살겠다’ 식이다. 대부분 소송을 염두에 두고 법률 자문을 받은 듯하다.”
심지어 사과문을 내놓기까지의 패턴도 엇비슷하다. 대체로 이렇다. 일단 부정→강경 대응→추가 폭로→결국 사과.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을 때 코너에 몰린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사과문을 내놓는 분위기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 죄의 경중을 떠나 어떤 사과는 피해자를 진정시키고 여론을 잠재우지만, 어떤 사과는 오히려 분노를 부른다. 대표 사례가 배우 오달수와 한재영의 차이다. 피해자에게 눈물로 사죄한 배우 한재영은 용서의 여지로 이어졌지만, 오달수의 사과문은 두고두고 언론과 대중의 뭇매를 맞고 있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 좋은 잘못, 나쁜 잘못은 없지만 분명 좋은 사과와 나쁜 사과는 있다.
사과의 시작은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이고, 사과의 끝은 용서다. 죄의 속성에 따라 용서받을 수 있는 사과가 있고, 용서받기 어려운 사과가 있다. 미투의 사과는 용서받기 어려운 부류의 사과라는 것을 분명히 해둔다. 이유는 두 가지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일방적으로 고통을 주었고 피해자가 고백하기 전에는 가해자에게 사과의 의지가 없었다는 점, 또 하나는 성차별의 문화를 오랫동안 견뎌온 여성들의 한(恨)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비명이라는 점이다.
좋은 사과, 나쁜 사과
사과학 연구의 역사는 길지 않다. 1970년대 들어서야 사과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고, 1990년대 후반에는 사과의 구체적 방법론과 심리학 연구를 접목한 본격 연구가 진행됐다. 사과학 연구자들에 따르면 21세기는 사과의 시대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일상화된 투명사회에서는 숨을 곳이 없다. 여기저기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넘쳐난다. 언론과 미디어에서도 사과 보도 횟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한 중앙일간지의 보도를 보면 1990년대 10년간 1000건에도 미치지 않았던 사과 횟수가 2000년대 들어서는 3200여건으로 늘었다. 2010년대 들어서는 1만건 이상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좋은 사과에는 5R이 있어야 한다. △잘못의 확인(Recognition) △책임감의 인정(responsibility) △양심의 가책 표현(remorse) △원상복구를 위한 배상 제시(restitution) △재발 방지의 다짐(repetition). 5R은 어디까지나 이론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과의 진정성’이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호씨의 저서 ‘쿨하게 사과하라’에 따르면 사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고, 진정성이 느껴지기 위해서는 ‘공감’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용서의 심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이다. 즉 상대방의 분노와 상처를 떠올리고 공감해야 진심어린 사과가 나온다.
그런 면에서 배우 한재영과 사진작가 배병우의 사과문에서는 비교적 진정성이 느껴진다는 지적이 많다. 한재영은 이번 사태에서 유일하게 당사자에게 직접 전화해 용서를 구했다. 피해자 박씨는 한씨의 전화를 받고 자신의 SNS에 “한재영에게 직접 사과 받았다”며 “한재영에 대한 일은 털고 웃으며 살고 싶다. 그가 열심히 연기하는 모습을 봐도 이제 아플 것 같지 않다”는 글을 올렸다. 배병우 작가의 경우 즉각적인 인정과 반성으로 여론을 잠재웠다. 미투가 터지자마자 작가실을 통해 “작가님이 해당 사실을 모두 인지하고 반성하고 있다”며 “성폭력 교육을 이수하고 새로운 사회 분위기에 맞춰 가겠다”고 표명했다. 이 둘은 비교적 좋은 사과에 속한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경우 사과문 자체만으로 보면 좋은 사과에 속한다. “모든 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라며 일절 변명 없이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고, “오늘부터 도지사직을 내려놓겠다, 일체의 정치활동도 중단하겠다”며 도의적으로 책임지는 자세도 취했다. 그러나 워낙 ‘바른 생활 사나이’ ‘깨끗한 정치인’으로서 이미지를 다져온 안희정에 대한 국민적 배신감이 커 어떤 사과문으로도 충격을 덜어내기 힘들어 보인다.
반면 나쁜 사과도 있다. 사과 전문가들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싶다면 네 가지를 피하라고 한다. 먼저, ‘사과하겠다’ ‘사과하고 싶다’는 모호한 표현을 피하고 ‘사과한다’는 분명한 표현을 써야 한다. 둘째, 사과 뒤에는 ‘그러나’ 같은 말을 덧붙이면 안 된다. “미안합니다. 하지만 그때는…” 식의 사과는 사과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갈등만 유발한다. 셋째, ‘~다면 미안해’ 식의 조건부 사과는 피해야 한다. 이는 피해자가 예민하거나 속이 좁아 보이게 하는 역효과를 낳는다. 넷째, “실수가 있었습니다” 같은 수동태 표현. 이는 주체를 모호하게 만들어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변명, 조건부 사과, 유체이탈 화법…
배우 오달수의 사과는 나쁜 사과의 종합세트다. 오달수의 사과문이 발표되자 “마치 피해자처럼 행동한다” “변명으로 일관한다”는 비난이 쏟아져나왔다. 법적 조치를 염두에 둔 사과문일지 몰라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사과문에 대중들은 화가 났고, 오달수에 대한 이미지는 더욱 추락해버렸다. 결국 안 하느니만 못 한 사과가 되고 말았다. 사과문을 구체적으로 보자. “상처를 받으신 분들에 대한 기억이 솔직히 선명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해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조차 모른다는 것을 드러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의 내용과 제 기억이 조금 다른 것이 사실이었습니다”라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가장 분노를 유발한 대목은 “잠시나마 연애감정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란 부분이다. “호감이 있었다” “순간은 진심이었다”는 성폭력 가해자들의 단골 멘트로 위험한 변명이다. 연애감정은 상호적이어야 한다.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리지 않은 채 ‘너를 좋아해서 그랬다’는 식의 일방적 감정은 스토커나 성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다. 여기저기 유체이탈 화법과 책임회피 표현이 눈에 띈다. “(피해자가) 상처를 안고 살아온 것에 안타깝고 죄스럽다”는 말은 유체이탈 화법이자 조건부 사과다. ‘자신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피해자가 상처를 안고 살아왔다고 하니 안타깝다’는 뜻으로 읽혀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안타깝다’는 표현은 가해자가 잘못을 뉘우칠 때의 어휘가 아니다. 제3자로 인한 고통에 위로를 보낼 때라면 몰라도 ‘유감이다’ ‘안타깝다’는 표현은 진정한 사과의 언어가 아니다. “금방은 힘들겠지만 그 상처 아물길 바란다”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유체이탈 화법으로, 가해자의 표현으로 적절치 않다. 가해자의 반성의 언어가 아니라 제3자의 위로의 언어다.
자신의 괴로움을 과하게 드러낸 것도 거슬린다. 오달수는 사과문에서 “가슴이 터질 듯이 답답했습니다” “저는 이미 덫에 걸린 짐승처럼 팔도 잘렸고, 다리도 잘렸고, 정신도 많이 피폐해졌습니다” “행운과 명성은 한순간에 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세상 이치는 알고 있습니다”라며 자신의 고통과 처지를 호소했다. 이나미 서울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진정성 있는 사과를 위해서는 최대한 자기 감정을 절제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너도 괴롭지만 나도 괴롭다는 식의 표현을 드러내면 반성과 사과가 물타기가 돼 버린다”는 지적이다.
이윤택의 ‘사과 리허설’은 진정성 없는 대표적 사과다. 사과문만으로는 문제없다. 좋은 사과문의 조건인 ‘5R’을 골고루 갖추었고, 태도도 좋았다. 하지만 사과 회견문 발표를 위해 “노래 가사를 쓰듯, 시를 쓰듯이” 사과문을 만들었고, 표정까지 연습했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사과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리허설까지 한 가해자의 사과는 진정한 사과가 아니라 사과를 연기한 것에 불과하다.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배우 조민기, 조재현의 사과문 또한 비난을 받았다. 무엇을 내려놓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해명 없이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책임 소재를 애매하게 회피한 측면도 있고, 자신의 분야에서 대단한 일가(一家)를 이룬 사람이 쓸 법한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표현을 써 거만해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타이밍의 과학
천주교에서 터져나온 미투에 대한 사과문은 하나마나한 사과문이라는 것이 중평이다. 김희중 대주교는 200자 원고지 10매가 넘는 장문의 사과문을 통해 사제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 사과했지만, 구체적 정황에 대한 재발방지 약속 없이 “국민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안겨드린 데 대해 용서를 구한다” “사제들이 겸손하게 살아가도록 이끌겠다” “부끄럽고 송구스럽다”는 식의 일반론적 표현을 나열해 뜬구름 사과문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웠다.
사과 전문가들에 의하면 자신의 언어로,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솔직하게 사과할수록 용서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인간인 이상” “남성들은 원래” 식의 일반론적인 전제는 분노를 유발한다. 의료 과실로 사망케 한 한 의사가 사과문에서 “의사도 인간인 이상 실수를 한다”고 하면 피해자 가족의 심정이 어떨까. 이 말을 하는 순간 용서는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한편 전문가들은 책임 당사자가 나서지 않고 대타를 보내거나 이메일 사과는 하지 말라고 한다. 피해자를 직접 찾아가는 사과가 가장 바람직하고, 그것이 불가능할 때는 전화나 편지로 할 것을 권한다.
사과의 타이밍에도 과학이 있다. 덜 심각한 경우라면 즉시 하는 사과가 효과적이고, 심각한 사건일수록 분노를 식힐 시간이 필요하다. 즉 우연히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사과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투 사과와 관련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오랫동안 사과하지 않았다고 죄가 희미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피해자의 아픔이 깊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간조선 김민희 기자
03.11 공안사건 '제헌의회 사건'의 부부 연루자 민병두-목혜정 부부
그간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인사 중 부인이 직접 나서 남편 두둔한 경우는 목혜정씨가 처음... 옆 지역구인 안규백 의원도 민 의원 '지원사격'
▲1987년 제헌의회 사건 당시의 신문 보도. 민병두-목혜정 부부의 이름이 적혀 있다.
성추행 사건에 휘말린 남편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보듬겠다’고 부인 목혜정씨가 나서자 이들 부부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인사 중 부인이 직접 나서 남편을 두둔한 경우는 목씨가 처음이다. 민병두-목혜정은 대표적인 운동권 출신 부부로 1987년 제헌의회(CA) 사건에 함께 연루된 적이 있다.
'제헌의회(CA) 사건'이란?
1987년 2월 검찰은 레닌 이론에 따라 공산주의 혁명을 기도해온 직업혁명가 조직인 제헌의회(CA) 일당 32명을 검거하고, 그중 24명을 국가보안법 위반(반국가단체 구성 등) 혐의로 구속하고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CA는 1981년 전민학련 사건 관련자인 최민(서울대 국사학과 졸)이 전민학련 관련자 6명과 함께 레닌의 혁명당 조직 원칙에 따라 만들어진 전위 조직 이라고 한다. CA는 산하에 ‘임시정치학교’라는 사상학습기관을 개설하고 조직원을 의식화하고 서울대 등 8개 대학교에 민민투(민족민주학생투쟁위원회)조직을 장악했다.
폭력성 띤 공산혁명 전위 그룹
특히 CA 조직원들은 노동자·농민이 연대한 무장봉기로 현 정부(전두환 정부-주)를 전복한 뒤 ‘임시혁명 정부’를 수립하고 혁명전위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헤게모니를 장악, 소위 ‘제헌의회’를 소집함으로써 1단계 혁명을 완수한다는 투쟁논리를 체계화 했다고 한다. 그후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켜 그동안 연대해왔던 지식인·소시민 계급을 제거하고 무산혁명 대중이 지배하는 공산사회를 설립한다는 계획을 세웠다는 게 공안당국의 설명이다.
민병두-목혜정은 CA 사건 '부부 연루자'
CA는 노동자해방투쟁동맹 등과 연계, 신길동 가두투쟁 등 각종 시위를 배후조정하며 ‘임시혁명정부 결성 및 제헌의회 소집’ 등 폭력시위를 선동하기도 했다. 이 조직의 잔존세력은 이후 지하조직인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과 혁명적노동자계급투쟁동맹(혁노맹)으로 이어졌다.
CA 조직의 특징은 특이하게도 부부가 함께 연루된 경우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민병두-목혜정 부부라고 한다. 목혜정씨는 이화여대 사학과 출신으로 1982년 반정부 유인물 살포 기도를 해 경찰에 적발된 적도 있다. 민병두씨는 CA 사건으로 1987년 11월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을 선고 받고 이듬해 12월 21일 ‘잔형 사면 특별복권’ 됐다.
목혜정씨, 성추행 휘말린 남편 두둔
지난 10일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사업가 A씨(60·여)는 민병두 의원으로부터 “10년 전 노래방에서 강제로 키스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최근 민 의원이 서울시장에 출마한다고 언론에 자주 등장해 성추행 사실을 밝히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이에 민 의원은 "제가 모르는 자그마한 잘못이라도 있다면 항상 의원직을 내려놓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며 국회의원직 사퇴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목혜정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 글을 올리고 “그 여성 분이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면 사과해야 마땅하다”면서도 최근 잇따르는 '미투'와 남편의 사례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목씨는 지인들이 전화를 걸어와 왜 의원직 사퇴까지 하느냐고 했지만 남편다운 결정이라고 믿는다며 권력을 이용한 성추행, 성희롱은 근절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 후배이자 옆 지역구인 안규백 의원도 지원사격
더불어민주당의 서울시당위원장인 안규백 의원도 민 의원 지원사격에 나섰다. 안 의원은 10일 “사실관계가 명확지 않은 상황에서 의원직을 내려놓는 것은 의원으로 선출해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며 민 의원에게 의원직 사퇴 입장을 철회해 달라고 요청했다. 민 의원과 안 의원은 성균관대학교 동문으로 민 의원이 안 의원의 대학 선배다(민 의원은 경제학과, 안 의원은 철학과). 지역구 또한 서울 동대문으로 민 의원은 동대문을, 안 의원은 동대문갑이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03.12 정봉주 "성추행 없었다...대국민 사기극"
‘여대생 A씨 성추행’ 의혹 정봉주, 기자회견 열고 ‘전면 부인’
진실공방 양상…폭로→부인→추가 폭로→鄭, 기자회견
鄭, “서울시장 출마의사 유지” 민주 “鄭 복당, 원칙대로 처리할 것”
정봉주 전 의원은 12일 자신을 둘러싼 성추행 가해 의혹에 대해 “(의혹과 관련된) 기사에 등장하는 A씨를 성추행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했다. 현직 기자인 A씨(당시 대학생)은 2011년 12월 여의도 한 호텔에서 정 전 의원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며 한 인터넷 매체를 통해 주장한 바 있다. 정 전 의원은 이에 대해 보도자료를 통해 부인했지만 A씨는 정황 증거 등을 제시하며 이를 반박했고, 정 전 의원이 이에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재반박한 것이다.
▲정봉주 전 의원이 1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 전 의원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는 (A씨가 주장한) 2011년 12월 23일이든, 2011년 12월 24일이든 A씨를 만난 사실도 없고 성추행한 사실도 없다. 그 전후에도 A씨를 성추행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은 “이 사건은 전 국민과 언론을 속게 한, 기획된 대국민 사기극”이라고도 했다.
정 전 의원은 우선 A씨가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2011년 12월 23일 행적을 공개했다. 정 전 의원은 “23일 오후 2시30분 명진스님을 만났고, 명진스님과 헤어진 후 ‘나는 꼼수다(팟캐스트)’ 멤버들과 고기를 먹으러 갔다. 모든 일정에는 변호인들과 보좌진이 함께햇다”고 했다. 정 전 의원은 그러면서 당시 지인들과 찍은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정 전 의원은 2011년 12월 24일의 행적도 밝혔다. 이는 A씨가 처음에는 사건 발생일을 2011년 12월 23일로 주장했다가, 2011년 12월 24일로 사실상 정정했기 때문이다. 정 전 의원은 “2011년 12월 24일에는 문익환 목사 묘소를 참배하고 근처 설렁탕집에서 나꼼수 멤버들과 점심식사를 했다 그 이후 광진구 W호텔에서 커피를 마시고 부인과 함께 광진구 근처 카페로 이동했고, 미권스(정 전 의원 팬카페) 담당자들을 만나 수감 이후 대책을 논의했다. 그 이후 집으로 이동해 대책회의를 이어나갔다”고 했다. 정 전 의원은 당시 만났던 지인들의 성씨 등을 밝히기도 했다.
정 전 의원은 그러면서 “A씨와 해당 보도를 한 기자가 같은 학교 친구들인데, 2011년 경희대 강연에서 이들이 ‘열렬한 지지자’라며 자신들을 소개해 처음 알게 됐다”며 “이후 저는 이들을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정 전 의원은 “보도 과정에서 사건 발생일, 사건 내용 등 주요내용이 계속 변경됐다”, “보도 시기가 의도적으로 계산된 것으로 보인다”, “기자, A씨, A씨의 지인 등은 다 친구인데, 친구라는 사실을 숨기고 객관적인 제3자의 추가폭로가 있는 것처럼 작성한 기사는 신뢰할 수 없다”고도 했다.
정 전 의원은 “해당 언론사의 무책임한 보도를 통해 큰 타격을 입었다”며 “해당 언론사를 상대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 중인 정 전 의원은 또 “허위보도로 인해 이미 많은 것을 잃었지만, 여기에 좌절하지 않고 서울시장 출마의사를 유지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렇듯 정 전 의원 성추행 의혹은 진실 공방으로 흐르고 있는 모양새다. 앞서 현직 기자인 A씨(당시 대학생)는 정 전 의원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인터넷 매체를 통해 두 차례에 걸쳐 주장했고, 정 전 의원 역시 두 차례에 걸쳐 해당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A씨의 첫 폭로는 지난 7일 이뤄졌다. 한 인터넷 매체는 7일 2011년 12월 23일 여의도 한 호텔 카페 룸에서 정 전 의원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A씨의 주장을 보도했다. 정 전 의원은 이날 당초 서울시장 출마 기자회견을 열려고 했으나, 해당 보도가 나오자 기자회견을 갑자기 취소했다.
정 전 의원은 이틀 뒤인 9일 보도자료를 내고 “저는 (A씨가 성추행을 당한 날짜라고 지목한) 2011년 12월 23일 해당 호텔 룸에 간 사실이 없고 호텔 룸에서 A씨를 만난 사실이 없다. 따라서 호텔 룸으로 A씨를 불러서 성추행을 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정 전 의원은 이 보도자료에서 2011년 12월 22일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이후부터 23일까지 자신의 행적을 밝히며 “2011년 12월 23일 호텔 룸에서 A씨를 만난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정 전 의원의 보도자료가 나온 직후 A씨는 인터넷 매체를 통해 당시 자신이 남자친구 등 지인에게 보낸 정 전 의원으로부터 받은 성추행 피해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이 담긴 이메일을 추가로 공개했다. A씨는 이메일에서 ‘마지막 포옹을 하고 악수를 나누는 데 정 전 의원이 저에게 입을 맞췄다. 놀라서 그 사람을 밀쳐내고 나왔다’, ‘‘네가 마치 애인 같구나, 어느 언론사 전형을 진행 중이냐, 성형도 해 줄 수 있다, 일이 이렇게 풀리지 않으면 졸업도 축하해주려 했었다’는 그 사람의 말은 저에게는 모욕 그 자체였다’고 했었다.
A씨는 또 “(성추행 당한 날짜가) 크리스마스이브였고, 정 전 의원은 감옥행을 2일 앞둔 날”이라고 했다. 사건 발생일이 당초 자신이 주장한 12월 23일이 아닌, 12월 24일이었다고 정정한 것이다. 보도 매체는 이에 대해 “정 전 의원의 수감일이 26일이었는데, A 씨가 (앞선 보도 때는) 수감일을 25일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한편, 정 전 의원의 복당 심사를 진행 중인 민주당은 원칙에 따라 정 전 의원 문제를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민주당은 ‘피해자 우선’, ‘불관용’, ‘재발방지 및 제도문화 개선’이라는 3대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당 관계자는 “사실 관계가 명확히 가려져야 한다”면서도 “성추행 의혹에 휩싸인 정 전 의원의 경우 현재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당장 복당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이옥진 기자
2018.03.24 여배우 상습 성폭력 혐의 이윤택 구속
극단 여배우들을 성폭행·성추행 한 혐의를 받는 연극연출가 이윤택(66)씨가 구속됐다. 지난달 첫 미투(Me Too·나도 당했다)폭로가 나온 지 38일 만이다. 이언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3일 오후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피의자의 지위, 피해자의 수, 추행의 정도와 방법 및 기간 등에 비춰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연극연출가 이윤택씨가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고성민 기자
이날 오전 10시 20분쯤 회색 코트와 검은색 목도리 차림으로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이씨는 “(피해자의 주장에는) 사실도 있고 왜곡도 있다. 그런 부분들은 재판을 통해서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다. 측근을 동원해 피해자들에게 고소 취하를 종용했느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저으면서 “제가 회유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아무 것도 없고, (저는) 혼자 있다”고 답변했다.
이씨는 재산을 은닉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서울 강북구 건물을 급매(急賣)한 것이다. 그는 이 대목에서는 웃음을 보이면서 “그건 제 소관이 아닙니다. 제가 회계 담당관이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피해자들을 위해서 손해배상을 포함해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다해서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연극계 대부’로 군림해온 그가 약 18년이나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극단원들을 성(性)노리개로 삼았다는 ‘미투 폭로’는 문화예술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달 19일 자신을 겨냥한 폭로가 잇따르자 기자회견을 자청한 이씨는 “죄의식을 가지면서 제 더러운 욕망을 억제할 수 없었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성관계는 했지만 성폭행은 아니다” “안마는 제가 시켰지만 예전에는 남자건 여자건 다 했다” “내게 성폭행당한 뒤 낙태했다는 피해자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관련 혐의를 부인했었다.
이 기자회견 이후 극단 내부에서 “이씨가 ‘노래 가사를 쓰듯이, 시를 쓰듯이’ 사과문을 만들었고, 당원들과 함께 기자회견 리허설을 했다”는 추가 폭로가 나왔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1999년부터 2016년 6월까지 여성 연극인 총 17명을 성추행·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이 조사한 그의 성추행 혐의만 62건. 이 가운데 24건을 영장에 적시했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가 그렇게 말했다면 사실일 것”이라며 혐의를 대체로 인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 범죄사실에 대해서는 “기억이 안 난다” “연기지도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윤택 성폭력 폭로 이후 한국사회 ‘미투 운동’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고은 시인, 극작가 오태석, 배우 고(故) 조민기, 영화감독 김기덕, 배우 조재현, 배우 오달수, 사진작가 배병우 등에 대한 미투 폭로가 꼬리를 물었다.
이씨는 ‘미투 운동’ 이후 두 번째로 가해자가 구속된 사례다. 지난 1일에는 미성년 단원들을 성폭행 한 혐의로 김해 극단 번작이 대표 조증윤(50)씨가 구속된 바 있다.
고성민 기자
03.28 ‘성추행 의혹’ 정봉주, 호텔 카드 내역 나오자 고소 취하
“호텔에 간 적도 없다”며 한 달간 피해자와 공방한 정봉주
사건 당일 호텔 카드 내역 나오자 ‘고소 취하’
“기억 안 나지만 호텔 간 것은 사실” 성추행 자체 인정하는지는 아직
성추행 의혹을 받는 정봉주 전 의원이 자신이 허위 보도를 했다며 고소한 인터넷 언론사에 대한 고소를 취하한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이는 정 전 의원이 피해자가 정 전 의원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지목한 시점인 2011년 12월 23일 서울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서 자신의 카드 결제 내역을 확인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여대생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정봉주 전 의원. /뉴시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이날 “정 전 의원이 전날 늦은 밤 고소 취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정치권과 경찰 등에 따르면 정 전 의원이 소를 취소하게 된 결정적 배경은 정 전 의원이 그동안 사건 당일 호텔에 간 사실 자체가 없다고 부인해왔지만 스스로 이와 배치되는 정황 근거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정 전 의원은 이날 오전 입장자료를 내고 “저는 27일 직접 카드내역을 확보해 검토해 본 결과 2011년 12월 23일 렉싱턴 호텔에서 결제한 사실을 확인하고 즉시 스스로 경찰측에 자료를 제공한 뒤 곧 바로 고소를 취소했다”고 했다. 정 전 의원은 “7년전 일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저도 너무도 오래된 일이어서 기억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아, 객관적인 근거를 찾으려 노력하던 중 제 스스로 2011년 12월 23일 오후 6시 43분경 렉싱턴 호텔에서 결제한 내역을 찾아냈다”며 “여전히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저는 이 사건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기억이 없는 것도 제 자신의 불찰이라고 판단한다”고 했다.
다만 정 전 의원은 당시 호텔에 간 것과 별개로 성추행 행위 자체를 인정하는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정 전 의원의 취소장 제출과는 별개로 정 전 의원과 인터넷 언론사 사이의 법적 분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 혐의는 반의사불벌죄(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처벌할 수 없는 범죄)가 아니다. 인터넷 언론사 측도 정 전 의원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맞고소했다. 경찰 측은 “수사는 그대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 전 의원의 성추행 의혹은 지난 7일 처음 제기됐다. 현직 기자(사건 당시 대학생) A씨가 2011년 12월 여의도 한 호텔에서 정 전 의원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며 한 인터넷 매체를 통해 주장했고, 정 전 의원은 이를 부인했다.
정 전 의원은 의혹이 제기된 뒤 수차례 기자회견, 보도자료, 페이스북 메시지 등을 통해 “A씨를 성추행한 사실이 전혀 없다”, “이 사건은 전 국민과 언론을 속게 한, 기획된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나는 (A씨가 주장한) 2011년 12월 23일이든, 2011년 12월 24일이든 A씨를 만난 사실도 없다”, “호텔에 간 적도 없다”고 주장했었다. 정 전 의원은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를 통해 사건 당일 자신의 행적을 보여주는 사진 780여장을 공개하기도 했다.
한편, 6월 지방선거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 중인 정 전 의원이 이를 계기로 출마를 접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옥진 기자
'증거가 유리하다면 덮을수도 있다', 정봉주가 왜곡한 #미투
...저는 유리한 증거가 많이 있다는 생각에 덮고 가고 싶은 유혹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제 스스로의 눈으로 결제내역을 직접 확인한 이상 기억이 잘못되었음이 객관적으로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저와 변호인단은 기억이 아니라 사진이라는 기록으로 결백을 입증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만큼, 결제내역이라는 명백한 기록이 저의 당일 렉싱턴 호텔 방문을 증거하고 있는 이상 이를 스스로 공개하는 것만이 이 모든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모든 책임을 지는 길이라 판단했습니다. -정봉주 보도 자료 中
유리한 증거가 많다는 생각에 덮고 가고 싶었다
28일 정봉주가 내놓은 보도 자료의 일부다. 그는 2011년 12월 23일 자신의 카드 내역에 렉싱턴 호텔에서의 결제 내역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그가 시종일관 주장했던 ‘그날 렉싱턴 호텔에 가지 않았다’를 뒤집는 증거다. 그는 언론사를 상대로 냈던 고소를 취소했다. 이로써 지난 3월 7일부터 계속된 진흙탕 싸움이 마무리 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해프닝일까. 지난 20여 일 동안 계속된 알리바이 공방은, 건전한 진실공방이라기 보다는 #미투의 본질을 묻게 되는 시간이었다.
진실공방은 3가지 양상으로 나타났다. 첫째, 익명의 미투는 #미투의 본질을 훼손한다. 둘째, 증거가 없는 미투는 미투가 아니다. 셋째,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미투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첫 번째 양상은 피해자와 이 사실을 보도한 기자에 대한 신상털기로 나타났다. 정봉주의 서울시장출마 기자회견을 앞두고 보도한 것에 대해 정치공작설도 돌았다. 피해자가 있고, 피해증언이 있음에도, 피해자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이어졌다. 정봉주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피해자는 기자회견에서 “왜 수많은 이들이 ‘익명’으로 미투할 수 밖에 없는지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사이비 미투로 몰렸던 익명 미투
이 과정에서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이를 “사이비 미투”라고 규정했다. 3월 15일 자신의 SNS에 쓴 글에서 그는 “한 남성과 여성 사이의 일회적인 성추행..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 한 여성이 한 번 경험한 것은 미투가 아니라 Me only”라는 주장을 폈다. “익명에 기댄 폭로는 정치를 시궁창에 처박는다”며 미투를 하려거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실명을 공개’하라고 했다.
정봉주에게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가 실명과 신상을 공개했다면 이는 좀 더 참다운 미투일까. 혹은 폭력의 강도와 횟수가 #미투의 잣대가 될 수 있을까. 그날 정봉주 의원을 만났다는 증거를 제시하라는 요구는, 만난 시간을 정확히 기억해 내라, 그 시간에 있었다는 호텔에 증거를 대라로 이어졌고, 피해자가 호텔에서 찍은 사진을 공개하자, 정봉주가 호텔에 있었다는 증거를 대라, 호텔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밝히라는 요구로 이어졌다.
이런 공방이 이어진 이유는 정봉주 전 의원이 수감 전 날의 행적을 모두 데이터로 가지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면서부터였다. 그는 780장의 사진으로 자신의 하루를 재구성했다. 이를 공중파 프로그램인 <블랙 하우스>에서 공개하기도 했다. #미투의 본질은 알리바이 싸움으로 재구성됐다. 정봉주는 사진을 근거로 ‘호텔에 간 기억이 없다’에서 ‘호텔에 가지 않았다’로 주장을 강화했고 서울 시장 출마 선언도 이어갔다.
▲정봉주 전 의원이 1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연트럴 파크에서 6.13 지방선거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며 눈물을 닦고 있다. 뉴시스

▲10일 후 SNS통해 출마 포기선언한 정봉주 캡처
정봉주의 20일 간의 공방 , #미투의 본질을 왜곡시키다
정봉주 스스로 자신의 카드 내역을 공개하면서 그가 호텔에 간 사실이 입증되었다. 그럼에도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고, “기억이 나진 않지만, 간 적은 있다”고 마무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문장은 “유리한 증거가 많이 있다는 생각에 덮고 가고 싶은 유혹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라는 부분이다. 이는 그가 여전히 #미투가 ‘진실의 싸움’이 아니라 ‘증거싸움’임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 증거가 유리하다면 #미투를 이길 수 있는 싸움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성추행을 주장하는 피해자는 기자회견에서 “고작 입술 한 번 스친 것으로 전도유망한 정치인의 앞길을 막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즉, 그가 한 일이 모두 진실이라고 해도, 성추행을 폭로한 사실 자체를 비난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카드 내역이 공개된 오늘도, 피해자에게 “운이 좋았다”는 식의 댓글이 달린다. "성추행은 성추행이고 정치는 정치이니 정봉주는 정치를 계속하라"는 댓글도 있다. 정봉주는 앞으로 자신의 행보를 차차 밝히겠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그의 행보가 어떠하든, 그가 #미투의 흐름을 미세하게 왜곡시켜 그 본질을 탁하게 만든 건 분명해 보인다.
글 | 유슬기 조선pub 기자
#미투와 문화예술계... “문화 권력, 교수 권력에 안주하며 ‘배부른 돼지’로 변해”
⊙ 한국 문단은 ‘힘의 숭배’가 작동하는 공간
⊙ 이윤택은 수직적 위계 조직인 연희단거리패의 제왕(帝王)
⊙ 영화감독은 배우의 신(神)… 오디션 보기 위해 수백 명의 배우가 감독 앞에 줄 서
⊙ 연예계 ‘미투’ 진원지는 대학… 중견 배우와 문인, 너나없이 교수 자리 넘봐
▲ 2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성추행,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윤택이 공개사과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회견이 ‘리허설까지 한 연극’이라는 폭로가 나왔다.
‘미투(Me Too·나도당했다)’로 불거진 문화예술계의 성추문 사건은 결국 권력의 문제로 귀결된다. 갑과 을의 문제, 권력을 지닌 주류 문인과 연극연출자, 영화감독, 방송PD, 기획사 대표에 의한 (성)폭력의 문제다. 몇몇 개인의 여성관이 잘못된 게 아니라 조직문화의 문제이다.
한국의 예술계는 전반적으로 마초(macho) 문화의 속성이 강하다. 문화 권력을 주로 남성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신인 작가나 여배우에게 속물적인 권력을 행사한다. 이들의 작품 내용도 대개 남성중심적이다.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보면 ‘가부장적 남근주의’ 속성이 짙다. 그들의 왜곡된 시각이 여지없이 작품 속에 투영된다.
KBS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2016)에는 여주인공(수지 분)을 남성이 발로 걷어차고 번쩍 들어 멘다. 심지어 여성을 번쩍 안아 올려 쓰레기통에 내던지는 장면도 등장한다. 이 드라마는 호러나 액션물이 아니다. 여성에게 가하는 언어적, 물리적, 정서적 폭력이 ‘막장 드라마’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대개 드라마 속 여성은 ‘아무렇게나 막 대해도 괜찮은’ 존재로 묘사된다.
KBS 예능 〈개그콘서트〉의 ‘명훈아’ 코너는 남성(이명훈)이 못생겼거나 뚱뚱한 여성 3명(김민경·오나미·이현정)의 외모를 끊임없이 비하하며 웃음을 준다.
김민경 “아, 마음이 무겁다.”
이명훈 “몸도 무겁잖아.”
김 “봄도 오는데 어떤 남자가 내 마음을 사로잡을까. 섹시남? 매력남? 짐승남?”
이 “(여성을 밀치며) 성질남! … 야~.”
약간 건강하거나 덜 예쁜 여성은 남성의 우스갯거리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무의식적으로 심어 준다.
여배우들을 성폭행한 의혹을 받고 있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뫼비우스〉(2013)는 노골적으로 남근(의 권력)을 내세운 영화다. 남편의 외도를 증오하는 아내는 남편을 거세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대신 아들을 거세한다. 남근 거세는 가정내 권력 전복을 상징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성기를 이식받고, 어머니는 아들의 욕구를 해소시킨다. 그걸 본 아버지는 아들을 거세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충격을 받은 아들은 스스로 거세한다. 지저분한 이 영화의 바닥에는 김기덕의 왜곡된 남근의식이 깔려 있다. 외도한 남편의 남근을 거세하려는 아내, 남근을 잃어버린 아들, 자신의 남근을 아들에게 이식하는 아버지, 아들에게 이식한 남편의 남근으로 욕망을 채우는 아내….
막장 스토리에는 마초 문화의 속성이 배어 있다. 예술계의 권력을 쥔 이들(주류 문인·연극연출자·영화감독)이 대개 남성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 폭력을 정당화한다.
최근 시인 박진성이 2008년 4월에 일어난 고은의 성추행을 ‘미투’했다. 고은의 만행은 C 대학교가 주최한 고은 시인 강연회의 뒤풀이에서 일어났다. 박 시인에 따르면 “고은 시인은 참석자 중 옆자리에 앉은 여성의 손과 팔, 허벅지를 만졌다”며 “여성이 저항하자 지퍼를 열고 자신의 성기를 꺼내 3분 넘게 흔든 뒤 ‘너희들 이런 용기 있어?’라고도 말했다”고 한다. 고은은 자신의 성기를 문단 권력과 동일시한 것이다.
문인들에게 치외법권을 주자고 주장한다면…
▲성추문 논란의 당사자들. 위부터 시인 고은, 연출가 오태석 이윤택.
한국 문단은 ‘힘에 의한 숭배’가 작동하는 공간이다. 또 학문적 봉건주의와 분할주의가 팽배한 곳이다. 한때 백낙청·김병익·김윤식·유종호 선생은 문단(평단)의 ‘빅4’로 불렸다. 이들의 영향력은 문단에서 절대적이었다. 지금은 권력의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다. 대신 이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문학적 세례를 받은 자들이 대학과 문예지 등에서 문단 권력을 ‘대리’하고 있다. 문지(문학과지상사)의 창립 ‘4K’(김병익·김현·김치수·김주현)의 좌장격인 김병익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은 사태’를 이렇게 말했다.
“과거 프랑스의 극작가 장 주네(1910~86)는 남색질, 도둑질, 강간을 저질렀다고 고백했다. 그런데도 사르트르는 장 주네를 세인트 주네라고 부르며 그에 대한 700쪽 분량의 연구서를 썼다. 고은 시인이 잘했다는 게 아니다. 예술과 도덕은 같이 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김병익의 생각은 ‘문인 신비주의’와 관련이 있다. 그가 지닌 한국 문단의 권력 내지 영향력을 생각하면 그의 말을 흘려버릴 수 없다.
‘문인 신비주의’는 문인을 일상적인 삶의 공간을 넘어선 신비로운 존재로 규정한다. 문인이 삶의 공간에서 보여주는 행태 모두를 초월적이며 예외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권력(영향력)을 지닌 작가는(예컨대 고은은), 어느 정도의 반(反)지성적 일탈 내지 기행을 ‘작가적 호방함’ 관점에서 눈감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고은의 성추행은 그가 정치인도 관료도 아닌 시인이기에 달리 볼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윤리적 일탈의 범주를 어디까지 허용할지는 누구도 규정하기 어렵다. 문단의 큰 어른인 김병익이 고은을 두둔하는 시각은 사회적 통념으로 이해되지 않는 매우 우려스런 발언이다. 기자와 만난 문지 출신 한 시인의 말이다.
“고은이 문단의 권력을 지녔기에 이해해 주자는 말로 읽힙니다. ‘문인 신비주의’의 시각에서 고은을 보자는 얘기죠. 비슷한 논쟁이 2000년도 초에 일어난 적이 있어요.”
— 문인의 기행을 어느 선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요.
“문학적 허용과 문인의 기행은 차원이 다르죠. 상상력에 의한 예술적 실천은 포괄적으로 볼 수 있지만 작품 외적인 문인의 습속까지 이해하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는 “예술인을 상식 수준의 윤리에서 예외적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만큼 위험한 주장도 없다”고 했다.
“문인들이 ‘위대한’ 창작자이기에 어느 정도 치외법권을 주자고 주장한다면 그건 일반 상식으로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체제에 저항하는 문제라면 달리 볼 수도 있지만 성윤리의 문제라면 논의할 가치가 없는 사안입니다.
문단 내 어른들의 기행을 ‘장유유서의 관행’으로 용인해 온 문단의 문화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문학적인 것, 문학 행위자에 대한 인식이 왜곡된 결과입니다. 문단의 참사인 것이죠.”
부산에서 활동하는 시인 노혜경이 2001년 쓴 《페니스 파시즘》(개마고원 刊)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 잔디가 탐스럽게 깔린 교정의 어느 잔디밭이다. 서울에서 내려온 유명 시인을 둘러싸고 우리가 앉아 있다. 나는 들뜬 목소리로 내가 생각하는 시와 문학이란 것에 대해 열과 성을 다해 그 시인에게 말하고 있다. 인정받고 싶은 나의 욕망이 그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윽고 그 시인이 말한다. “자네 오늘 밤 나한테 수청 들지 않겠나?” 나는 유명시인과 더불어 ‘시를 말하기 위해서라면’ 밤을 새울 용의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내 말은 말이 아니라 다만 재잘거림이 되고 만다. 남성의 귀를 즐겁게 만들어 줄, 다만 소리로서의 내 말. 옆에서 선배라는 남자가 말한다. “너 좋겠다. 낙점을 받았네.” …〉(p.14)
“수청 들지 않겠나?”라는 말이 그저 농담이었다고 해도 성희롱의 범주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폭력이다. 노혜경 시인은 서울에서 온 ‘유명시인’이 누군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문단 내 크고 작은 미시 권력들이 촘촘히 존재해”
▲서울 광화문 서울시청 내 서울도서관에 자리한 고은 시인 기념관인 ‘만인의 방’의 철거 전 모습이다.
문단의 ‘빅4’에게 문학적 세례를 받은 주류 문예지의 ‘에디터’, ‘기획위원’, ‘편집위원’들은 살아 있는 문단의 권력이다. 이들의 권력은 과도하다. 문인에게 원고청탁을 하거나 문학상(신인상) 심사, 각종 문예지원금을 받을 때의 심의권, 출간 검토까지 모두 이들의 손에 좌우된다.
그런 주류 문단의 권력은 누가 줄까. 바로 작가들이 준다. 문인들은 그들의 권력에 기대어, 혹은 유착해 ‘권력의 온실’ 속에서 작품성을 인정받길 원한다.
사실,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할 기회는 소수의 작가들에게 돌아간다. 누구나 그 ‘소수’가 되길 원한다. 기자와 통화한 중견 소설가의 말이다.
“해외 작가들이 그 나라 문예지의 에디트와 술 먹고 어울리며 유착되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어요. 그들과 어울린다고 좋은 작품을 생산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렇다 보니, 문단은 크고 작은 패거리로 나눠져서 그들 내부에 대한 비판이나 견제 장치는 존재하지 않죠. 자기들끼리 밀어 주고 평론가를 끌어들여 자기편의 문인을 띄워 줍니다. 함께 망하자는 것이죠.”
작가는 집필 주제와 기간, 분량까지를 맞춤형으로 편집위원들에게 지시를 받으며 문예지 발표 시스템에 자동적으로 길들여진다. 그러나 그런 문단 권력이 거대해 보이지만 출판시장에서 전혀 통용되지 않는다. 몇 해 전 보도에 따르면 창비(창작과 비평)와 문학동네의 매출이 200억여 원 대로 중소기업 수준이다. 독자들이 문학 서적을 외면하는데도 문단 권력 논란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시인 이성미는 지난 2월 28일 국회에서 열린 ‘문단 내 성폭행’ 토론회에서 “문예지가 적자를 감수하면서 계속 발행되는 이유는 문예지가 권력 집중 구조의 중심적 역할을 하며 문예지를 통해 문화 권력을 획득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학 독자에게 외면 받는 문예지가 천편일률적 모양새로 지금까지 존속하게 된 데는 10여 년간 문예진흥기금이 투입된 문예지 발간 지원 사업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 과정 혹은 소멸 과정을 밟지 못한 채 문예지는 작품 청탁권이라는 권력을 놓지 않았고 문예지 수는 더 많아졌어요.”
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이자 시인·문학평론가인 김명인은 “한국 문단이 정체를 넘어 어떤 위기 상태에 도달해 있다”고 규정했다.
“하나의 기득권 제도이자 비즈니스 세계가 되어 각종 미시 권력 관계가 가로세로 얽혀 있는 한국 문단의 기본 구조 속에서 이와 비슷한 일들(문단 내 성폭력)은 언제든지 재발하게 되어 있어요. 각종 인맥과 서열 관계, 그로부터 발생하는 크고 작은 미시 권력들이 다른 사회집단과 다를 바 없이 촘촘히 존재하면서 ‘자율성’의 이름으로 은폐되거나 보호받은 문단은 해체되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위계도 차별도 발 들여 놓을 수 없는, 진정으로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문인 작가들의 수평적 네트워크를 상상할 때가 됐어요. 그것이 문제 해결의 진정한 출발점입니다.”
독재자(연출가)가 어느 순간 딴마음을 먹으면…
▲연극 연습 중인 밀양연극촌 단원들. 앞줄 왼쪽부터 하용부 이윤택씨.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이윤택의 성폭행 사실이 드러났다. 여성 피해자가 16명이나 되고 이들의 형사고소를 지원하기 위해 변호사가 101명이나 뛰어들었다. 이윤택은 연희단거리패를 이끌며 밀양연극촌으로 이주한 지난 2000년부터 성폭행을 벌여 왔다고 한다.
경남 밀양에 자리 잡은 연희단거리패는 이상적인 연극 공동체를 표방해 왔다.
이 공동체의 특징은 철저한 기수제다. 기수가 높으면 나이가 어려도 깍듯하게 선배라 불러야 한다. 수직적·집단주의 경향이 매우 강하다. 연희단에서는 선배가 후배를 집합시키고 훈계하거나 혼을 내는 경우가 자연스러운 일이다. 주로 육체적인 노동은 막내 단원에게 돌아가고, 선배 단원은 단원들을 관리하고 단체의 유지에 책임을 진다. 연희단이 18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은 위계질서 때문이다. 기수에 의한 상하의 서열 의식이 매우 중요한 기능을 차지한다. (2016년 발표된 서울대 인류학과 권정은씨가 쓴 논문 〈개인을 넘어서는 그 자리: 연희단거리패의 의례로서의 연극과 자아의 재구성〉 참조)
연희단거리패의 예술감독 겸 연출가는 이윤택이다. 조직 내에서 그의 지시와 명령을 거역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윤택의 말 한마디, 손짓 하나에 조직 전체가 집단적으로 반응했다.
그의 권력은 낮뿐 아니라 밤에도 이어졌다. 미투 운동에 참여한 배우들의 증언에 따르면 여성 단원들은 돌아가며 밤마다 그를 위해 ‘봉사(안마)’했다. ‘봉사’를 위해 선임이 자는 후배를 깨워 이윤택의 방에 들여보냈다. 그의 손길을 거부하면 캐스팅에 불이익을 받았다. 연희단에서 그는 절대권력자이자 제왕(帝王)으로 군림했다.
기자와 통화한 중견 배우 K씨는 “몇 해전 밀양연극촌에 한 달간 기거하며 연극을 한 적이 있다. 마치 감옥과 다름 없었다. 배우들이 하루 종일 노동을 하더라.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고 했다.
연극배우협회 한 관계자는 “연극축제 때 밀양(연극촌)에 머무른 적이 있다. 밥을 먹는데, 단원과 이윤택의 밥상이 다르더라. 단원들의 밥상은 너무 부실했다. 공동체 밥상에서조차 위계를 느낄 수 있었다. 이윤택, 하용부는 절대권력자였다”고 회고했다.
다른 극단은 어떨까. 한국 연극계는 여성 연출자 수가 적다. 대개 남성이 작가 겸 연출을 도맡는다. 연출가는 갑을 관계처럼 배우의 개성을 존중하기보다 독재자이자 권력자가 된다. 작품을 연습하는 과정에서 여성 배우를 가학적으로 다루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영미 대중예술 평론가는 한 인터뷰에서 “이윤택도, 오태석도 배우들의 몸에 대한 장악력이 굉장히 높은 연출가다. ‘어떻게 저 배우가 고통의 선을 넘어 저기까지 표현할까’ 싶을 정도로 가학성이 강하고, 예컨대 벗는 것(연기)도 감수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것이 비평계에서 좋은 선례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배우의 육체와 영혼을 장악한 독재자(연출가)가 어느 순간 딴마음을 먹으면 배우들은 쉽게 굴복할 수밖에 없다.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된다. 연출가라는 권력에 육체를 굴복당한다.
김기덕 감독, 여배우에게 “야, 다리 벌려, 다리 벌리라고”
▲여배우를 성폭행한 의혹을 받고 있는 김기덕 감독.
지난 3월 6일 방송된 MBC ‘PD수첩’에서 영화감독 김기덕의 민낯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한 스태프는 해안가에서 정사 장면을 촬영할 때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날 김 감독은 여배우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여배우에게 다가가 치마를 들추면서 “야, 다리 벌려, 다리 벌리라고”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모든 스태프가 지켜보는 상황이었다. 그 여배우는 이름 없는 조연배우였다.
김기덕 감독과 함께 영화를 찍었던 여배우들은 김 감독과 배우 조재현에게 잇달아 성폭행을 당했다거나, 성관계를 거부하자 해고당했다고 주장했다.
여배우 A씨는 “김 감독의 성관계 요구를 거절하자 촬영 현장에서 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또 “영화를 찍을 당시 김 감독이 굉장히 모욕감을 줬던, 내가 정말 싫었던 말이 ‘XX(남자 성기)는 권력’이라는 말이었다. 기분이 정말 더러웠다”고 했다.
여배우 B씨는 김 감독과 작업한 후 아예 영화계를 떠났다. 그녀는 “당시 김기덕 감독이 ‘네 가슴을 봐도 되겠느냐’, ‘유두 색깔이 핑크색이냐, 검은색이냐’, ‘내 성기가 어떤 모양일 것 같냐’, ‘네가 스스로 네 성기를 본 적이 있느냐’고 했고 급기야 ‘내가 너의 몸을 보기 위해 같이 가서 확인할 수 있느냐’고 말하길래 무서워서 화장실에 간다고 하고 도망쳤다”고 고백했다.
여배우 C씨는 “김 감독이 ‘너를 알아 가야 한다’며 옷을 벗겼고, 온몸으로 저항했더니 따귀를 10대 때리고는 ‘너를 사랑하는데 표현이 서툴러서 그런 것 같다’는 식의 문자를 보냈다”고 폭로했다. 또 “여자를 겁탈하려는 하이에나처럼 조재현 배우, 조씨 매니저 등이 방문을 두드렸다. 매일 그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매일 몸싸움을 해야 해서 힘들었고 무서웠다”고 했다.
여배우들의 증언은 충격적이다. 따지고 보면, 영화계 역시 위계가 엄격한 피라미드식 구조다. 영화판에서 감독은 신과 같은 절대자다. 꼭두각시 인형처럼 감독을 정점으로 모든 스태프가 보이지 않는 줄로 연결되어 있다. 캐스팅 권한을 쥔 권력자에게 신인 배우는 굴복할 수밖에 없다. 매니지먼트 회사들은 신인 배우들을 눈여겨봐 달라고 감독에게 프로필을 보내고, 또 신인 배우들이 직접 영화사를 찾기도 한다. 오디션을 보려고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의 배우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감독 앞에 대기하는 게 현실이다. 어떤 배우를 선택하느냐는 감독과 제작자의 고유 권한이다.
김기덕이 여배우들에게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감독과 자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펴도, 집요하게 잠자리를 요구해도 응할 수밖에 없다. 응하지 않으면 배역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기자와 만난 중견 배우 L씨는 이런 말을 했다.
“여성이 연극계, 영화계에서 여배우로 성장한다는 것은 온갖 굴욕과 수치를 다 견뎌 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감독과 연출자는 물론 스태프들에게 (배우가) 성적 수치심을 느끼기 일쑤죠. 만약 요구를 거절하면 무안을 주고 작은 실수에도 폭언을 듣게 됩니다. 또 부당하게 대우해 스스로 포기하게 하거나 배역을 바꿔 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최근 미투 폭로로 구설수에 오른 조근현 감독(최근 영화 〈흥부〉 개봉)은 자신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 위해 면접을 온 여성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배우는 연기력이 중요한 게 아니다. 배우 준비하는 애들 널리고 널렸고 다 거기서 거기다. 여배우는 여자 대 남자로서 자빠뜨리는 법을 알면 된다.”
“깨끗한 척해서 조연으로 남느냐, (감독을) 자빠뜨리고 주연을 하느냐, 어떤 게 더 나을 것 같아? 영화라는 건 평생 기록되는 거야, 조연은 아무도 기억 안 해.”
조 감독의 이런 발언을 듣고 이 여성은 “발끈하고 싶었지만 상대가 자신보다 힘이 센 남성인 탓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무서워서 그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조 감독의 이런 발언은 위계에 의한 부당한 압력 행사다. 자신의 지위(감독)를 이용한 갑질이자 폭력이다.
2016년 10월 21일 박효선 영화감독의 트윗으로 ‘#영화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시작됐다. 그날부터 열흘 동안 모인 77개의 영화계 내 성폭력 사례가 모아졌다고 한다. 77개의 사례 중 실명 거론은 두 건이었는데, 성폭력으로 영화계의 커리어를 포기한 여성이 총 12명이나 됐다. 이들은 섭외를 하는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편집실에 갇혀 기나긴 작업 시간을 견뎌 내야 하는 ‘포스트 프로덕션’까지, 영화를 만드는 모든 과정마다 성폭력이 존재했음을 고백했다.
이 같은 사실은 작년 1월 17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계술계 내 성폭력’ 토론회에서 신희주 감독에 의해 처음 공개됐다. 신 감독은 “가장 놀라운 사실은 촬영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여성 동료에게 (성폭력이) 가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도제 시스템이 아직 인습적으로 남아 있다는 점과 (영화계가) 스태프의 역할과 중요도에 따라 계급화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영화계가 권력 구조라는 얘기였다.
문화예술계는 교수가 되려는 ‘문화적 풍토병’에 사로잡혀
▲최영미 시인의 미투 고백 이후 문단 내 성폭력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2016년 5월 23일 프레스센터에서 한국문학 진흥을 위한 문학 5단체장 공동 기자회견 모습이다. 왼쪽부터 한국소설가협회 김지연 이사장,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상문 이사장, 한국작가회의 최원식 이사장, 한국문인협회 문효치 이사장, 한국시인협회 최동호 이사장.
흥미롭게도 연예계 ‘미투’ 운동의 진원지는 대학이다. 성추문에 휩싸인 황지우·박재동·김태웅(한예종), 윤호진(단국대), 김소희(홍익대), 오태석·한명구(서울예대), 조재현(경성대), 최용민(명지전문대), 최일화(세종대) 등이 모두 대학교수로 재직 중이다. 여학생을 은밀히 불러 밀실(密室) 성폭력을 행사한 이도 명지전문대 연극영화과 교수(박중현)다.
이들은 교수라는 ‘지식 상인’ 자리를 빙자해 학생들을 유린했다. 교수 지위나 권력을 최소한의 ‘상도덕’조차 지키지 않아도 무방한 자리로 착각한 것이다. 순진한 학생들은 절대권력자인 교수의 요구를 거절할 경우 겪을 부당함과 싸울 힘이 없었다.
문단 내 성폭행도 창작 교육 과정이라는 스승과 제자의 위계에서 발생한다. 문학을 동경하는 어린 학생들이 성폭행을 당해도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권력 구조 때문이다. 문학 창작 환경이 사교육-예고(藝高)-대학의 문예창작과·국어국문과로 이어지는 수직 구조, 교육자-저자-심사위원-문학상 수상자 등으로 촘촘히 계열화한 구조와 관련이 있다. “이 위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문단 내 구조가 피해자들을 폭력에 저항하거나 고발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시인 이성미)이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의 위력은 막강하다. 대학이 대단해서가 아니다. 대학입시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교수의 위상이 올라간다. 문창과도 그렇지만 연극영화과도 엄청난 경쟁을 뚫어야 합격할 수 있다. 스타가 되는, 좁디좁은 ‘바늘 길’을 뚫기 위해선 인맥 학맥이 좌우한다. 아무리 대학가에 개인주의가 판을 쳐도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밀어 주고 끌어 주는 특정 학과 출신 학생들은 교수의 부당한 지시에 침묵할 수밖에 없다.
한국 문화예술계는 대학교수가 되려는 ‘문화적 풍토병’에 사로잡혔다.
중견 배우들과 문인들은 너나없이 교수 자리를 넘보고 있다. 교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엄청난 로비를 한다. 학연 패거리 안에서 교수 권력을, 문화 권력을 쥐고 싶어 안달이다. 1980~90년대 괜찮은 작품·평론을 썼던 작가, 비평가들은 대개가 ‘지식 상인’(교수)이 됐다. 연극과 영화로 유명세를 탔던 중견 배우들도 영화나 TV에서 잘 볼 수 없다 싶으면 어디선가 교수 행세를 하고 있다. 교수가 된 뒤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는지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는 전무하다. 문화 권력에 안주하며 ‘배부른 돼지’가 된 것이다.
한국의 문화예술계는 차별과 억압을 용인하는 권력 구조로 안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 ‘미투’가 불러온 파장이 문화 권력 해체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출처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03-29 안희정 구속영장 기각…법원 “증거인멸-도주 우려 없어”
검찰 “사유 검토후 재청구여부 결정”
수행비서였던 김지은 씨(33)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3·사진)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서울서부지법 곽형섭 영장전담판사는 28일 오후 11시 20분경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와 피의자 태도 등을 비춰 볼 때 증거 인멸이나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곽 판사는 “지금 단계에서 구속하는 것이 피의자 방어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이에 검찰은 기각 사유를 면밀히 검토해 재청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안 전 지사 측은 이날 오후 2시에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영장에 적시된 혐의를 대부분 부인하고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지사 측 변호인은 “관계가 있었다는 건 인정했으나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기존의 입장대로 소상히 진술했다”고 말했다.
앞서 검찰은 23일 안 전 지사에 대해 형법상 피감독자 간음과 강제추행,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당초 영장실질심사는 26일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안 전 지사는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고 법원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틀 뒤인 28일 다시 일정이 잡히자 안 전 지사는 “검찰과 법원의 판단에 따르겠다”며 출석했다.
한편 피해자 김 씨를 지원하는 전국성폭력상담협의회(전성협)는 이날 성명을 내고 안 전 지사가 피해자를 회유하고 증거를 인멸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전성협은 성명에서 “(고발 후) 안희정은 주변 참모를 활용해 피해자들에게 연락을 시도하고 주변에서 돕는 사람들에게 회유와 협박을 했다. 자신이 범죄 시 사용하던 휴대폰이 아닌 다른 휴대폰을 제출했다. 피해자가 사용하던 수행 업무폰은 검찰 압수수색 전 모든 내용이 지워졌고 유심칩까지 교체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안 전 지사 측 변호인은 “김 씨에게는 안 전 지사의 아들이 전화했다. 두 사람은 대선후보 경선캠프에서 함께 일한 사이였다. 피해자를 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휴대전화 버튼을 잘못 눌러 그렇게 됐다고 한다”고 해명했다. 이어 “업무폰은 김 씨가 가지고 있었는데 오히려 본인이 유심칩을 없애지 않았나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블랙리스트 논란으로 본 좌파의 문화 권력
⊙ 블랙리스트는 대통령의 합법적 국정 수행… 민주주의 전복 세력에 1원도 혈세 지원 안 돼
⊙ 노무현 정부는 가장 적극적으로 좌익 문화인과 단체에 돈·감투를 집중
⊙ 좌파 정부 10년간 원로 영화인 모두 쫓겨나… 현역 원로감독이 봉준호·박찬욱·김기덕
⊙ 좌파 세력이 영화를 선동의 도구로 활용… 주사파 필독서인 《영화예술론》이 근간
⊙ ‘선거용 기획영화’는 ‘문화테러’… 대중에게 대한민국을 혐오하게 만들어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검찰에 넘긴 블랙리스트(문화예술인 지원배제 명단) 수사자료만 2만 쪽이 넘는다”고 밝혔다. 또 “블랙리스트와 삼성 재판은 전 세계가 관심을 갖는, 세기의 재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법리 공방이 치열하리라는 걸 특검도 예상한다는 의미다.
우파적 시각을 지닌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특검의 블랙리스트 수사에 노골적 불만을 드러낸다. 문화 권력 내지 문화예술계의 생태계가 노무현 정권 5년을 지나며 좌파에게 완전히 장악됐다는 점에서 일부 예술인들의 ‘지원 배제’ 주장은 오히려 “피해자 코스프레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고영태 일당’이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특검이 블랙리스트 칼자루를 마구 흔드는 상황에서 우파적 시각을 드러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청주대 연극영화과 이용남(李龍南·46) 객원교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문화예술계를 바로잡는 일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교수와의 만남은 대면과 서면 인터뷰로 진행됐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광우병 선동처럼 ‘실체하는 사실’이 아닌 ‘상상의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의 ‘피해의식’이 만든 촌극입니다. 한마디로 피해자 코스프레예요. 문예계 블랙리스트가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논하는 것은 무의미해요. 모든 국가와 정부에 블랙리스트는 존재합니다.”
― 블랙리스트가 필요하다는 얘기인가요.
“미국은 국민이 낸 세금을 지원받아 선동과 거짓의 국가 비방에 나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좌파 문화예술단체와 시민단체들은 끊임없이 대한민국 체제를 흔들어 왔어요. 국가보안법 철폐, 제주해군기지 반대, 광우병 촛불선동, 천안함 폭침 부인 등이 대표적이죠. 이들에게 예술지원금과 국고보조금이 흘러들어 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블랙리스트는 ‘문화안보 리스트’가 돼야 해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 질서를 비판하고 전복하려는 세력들에게 단 1원도 혈세를 지원해선 안 됩니다. 이런 원칙을 준수한 문화안보 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이유로 (김기춘·조윤선을) 구속했다는 사실이 국정농단이자 내란입니다. (특검 수사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공직과 각종 정부 위원회에까지 진지 구축
편향된 이념 세력들의 블랙리스트 공세가 무서울 정도로 거세다. 현직 문체부 장관이 구속되고 문체부 공무원들마저 눈치를 보는 상황이다. 이용남 교수는 “좌파 문화 권력이 하루아침에 생겨난 게 아니다”고 말한다.
“1980년대 386운동권들이 기동전(機動戰·적의 군사력을 심리적으로 마비시켜 최소 전투로 승리를 달성하는 전투방식)을 벌였으나 소련의 붕괴와 공산주의 와해로 효과가 사라지자 각 분야별로 진지 구축에 나섰었죠. 첫 번째 진지가 바로 문화예술 분야였어요. 서서히 그리고 집요하게 저변을 넓혀 1990년대 후반부터 헤게모니를 잡기 시작하더니 노무현 정부 들어 확고하게 좌파 문화 권력을 형성했어요.”
― 그 사실을 어디서 확인할 수 있나요.
“진지 구축은 (문화) 현장에도 있지만 공직과 각종 정부 위원회에까지 침투했다고 봅니다. 이번 탄핵사태에 대한 각계의 신속한 반응을 통해 알 수 있어요. 문화예술계는 물론 언론, 법조, 정치권, 교육계와 민노총의 대중 동원(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전국 1500여 개 시민사회단체) 등 사회 전 분야에서 좌파 헤게모니의 힘을 보여주지 않았나요?”
― 이명박 정부에서 문화예술계 기관장을 교체하는 등 우파의 노력도 있었어요.
“노무현 정부는 가장 적극적으로 좌익 문화인과 단체에 돈과 감투를 집중시켰어요. 문화계에 좌익 진지를 구축한다는 명제하에 노골적이고 편파적으로 돈과 조직을 좌파에 집중했던 것이죠.
MB 정권 들어 균형을 맞춰보려고 사령관(기관장)을 교체하려 했어요. 그러나 깨달은 결론은 사령관이 바뀐다고 저변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죠. 조직 안에서 그들끼리 힘을 모아 사령관을 내쫓는 현상이 빚어졌어요. 박근혜 정부는 사령관 교체만으로 좌파 문화 권력을 바로잡을 수 없다고 판단, ‘지원’의 문제에 접근하기 시작했어요. 한마디로 비정상적인 지원을 정상화시키려고 노력했는데 그게 바로 ‘문화융성’이란 슬로건이었습니다.”
― ‘문화융성’ 때문에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지 않았나요.
“문화융성을 깊이 이해 못 했던 ‘고영태 일당’이 말도 안 되는 블랙리스트를 만들었기에 말썽이 생겼던 겁니다. 저는 블랙리스트 실체를 아직 보지 못했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리스트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문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저런 엉성한 리스트를 만들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 왜 그런가요.
“적어도 블랙리스트라고 하면 대한민국 문화체제를 흔들 수 있는 중요인물이나 단체가 들어가야 하는데, 현재 떠도는 리스트엔 A급 인물들이 별로 없어요. 파급효과도, 파장력도 약한 단체나 인물들로 리스트가 꾸며졌더군요. 정말이지 문화계를 아는 분이라면 그렇게 안 만들었을 겁니다.”
― ‘문제적’ 예술인이 따로 있다는 의미인가요.
“그렇죠. 파급력 있는 거물은 앞에서 조직이 지켜주고, 추종 세력이 뒤에서 비호합니다. 특정 정치인이나 대선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진 않아요. 지금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은 모두 박원순·문재인 같은 정치인을 공개 지지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도종환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한때 서정 시인으로 불리던 더민주 도종환(都鍾煥) 의원이 블랙리스트 의혹을 집요하게 부추겼어요.
“전교조 출신인 도종환 의원은 2001년 임수경과 함께 방북한 전력을 갖고 있는 좌파 문화인이죠.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의 국회의원이기도 하고요. 방북 당시 정부와의 약속을 어기고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 앞에서 열린 개막식에 참석했어요. 당시 정부에 ‘불참서약서’까지 제출하고도 한반도가 공산화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념물에 헌화한 것입니다.”
방북 이후 도 의원은 승승장구한다. 2002년 민예총 충북지회장, 2006년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 2008년 민예총 부회장,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2012년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을 거쳐 그해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다. 이 교수의 계속된 말이다.
“도종환은 좌파 문화계의 ‘비밀병기’로 조용히 성장해 왔어요. 블랙리스트가 터지기 전까지 그는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어요. 명계남·문성근 같은 이들이 키 플레이어 역할을 하다가 도 의원에게 바통을 넘긴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민예총이 적극 반겼다는 후문입니다. 예산을 많이 따올 것으로 벌써 기대하고 있어요. 지역구에 있는 충북문화재단이 전국 규모 지원사업에서 3~4개를 따왔다고 하더군요.”
이 교수는 “결론적으로 말해 블랙리스트는 도 의원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모략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도종환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회의록을 보고 블랙리스트를 확신했다’고 주장합니다. 문화예술위가 보관하고 있는 지원내역과 탈락 사유서만 확인해도 블랙리스트 논란은 쉽게 정리될 수 있어요. 그런데 문화예술위가 공개를 꺼립니다.
여당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아무리 요구해도 안 내놓아요. 도 의원이 그런 자료를 가진 것은 미스터리입니다. 도 의원이 자료 요청을 하면서 뭔가를 많이 푸싱한 것 같아요. 문화예술위 측이 그런 압력을 피하려 몇 가지 (자료) 요구를 수용하면서 일이 벌어진 게 아닐까요?”
이 교수는 이런 말도 했다.
“도종환 의원의 비례대표와 재선 이후 충북 민예총의 국고지원금과 지자체보조금, 민예총과 한국작가회의에 대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한국콘텐츠진흥원・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금 수혜 내역을 면밀하게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이런 의심을 하는 배경은 지금의 상황이 지난 좌파 정권에서 체험했던 문화 권력 장악 계략과 너무 흡사하기 때문이죠.”
―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는 일종의 ‘통치행위’라는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대통령은 헌법에서 명기한 대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어긋나는 활동을 하는 개인이나 단체에 대해 국민세금 지원을 배제할 수 있어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부정하고 위협하는 개인과 단체에 대해 혜택을 주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는 권한의 불법행사나 직권남용이 아니라 대통령의 합법적 국정 수행이죠. 더는 국민혈세가 불순세력이나 좌파 문화 권력의 부를 창출하는 창구가 돼선 안 됩니다. 이제라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올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문화생태계 중추를 장악, 문화 권력 시스템의 완성체를 만들려는 전략
― 블랙리스트 문제는 예술지원금의 배분과 관련이 있어요. 누가 어떤 이가 신청할 수 있나요. 기준이 뭔가요.
“문화예술지원사업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대개 비영리민간단체나 전문예술단체여야 합니다. 또 3년 이상의 실적이 있어야 해요. 그런데 블랙리스트를 보면 개인이 많아요. 과연 지원 자격이 되는지 의심스러워요. 하지만 부당하게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니 말이죠.
사실 보통의 문화예술 인사들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색깔을 안 드러내려고 합니다. 왜냐? 이유는 하나죠. 정부가 바뀌어도 지원을 받아야 하니까. 실적이 높거나 오래된 단체일수록 자신의 색깔을 절대 안 드러내려 합니다.”
― 블랙리스트 해법은 무언가요.
“간단합니다. 블랙리스트와 문화예술지원사업 선정 리스트를 대조하면 아주 손쉽게 정확한 답이 나옵니다. 특검은 왜 이리도 쉬운 방법을 선택하지 않고 여론몰이에만 집중했는지 모르겠어요. 그 이유는 블랙리스트가 음모론이기 때문이며, 사회분열과 분란을 조장하는 선동도구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일부 편향된 문화예술인들은 문화생태계의 중추를 장악해 문화 권력 시스템의 완성체를 만들겠다는 전략을 세워둔 게 아닐까요? 장악 이후 여소야대의 국회를 통해 문화예술지원기관의 독립성을 법제화하려는 계획까지 세워두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사용했던 문화 권력 장악 전략의 평행이론이죠.”
― 문화계 이면의 싸움이 치열하네요.
“모든 것은 프레임입니다. 프레임을 지배하는 것은 생각의 방향을 지배하는 것이고 대중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죠. 이념 싸움이란 무엇보다 프레임 싸움입니다. 프레임 싸움에서 지면 이미 절반은 진 셈이죠.
프레임 싸움에서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은 악용됩니다. 종북 좌파들은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을 존중한다고 합니다. 헛소리예요. ‘내로남불’의 사고로 그들만을 위한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만 존재할 뿐이죠. 그들과 다른 의견이나 생각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가당착과 견강부회(牽强附會)로 가득 차 있어요. 그 위선의 가면을 직시한 폴란드 출신 북한인권운동가 요안나 호사냑은 ‘남한 종북좌파는 외국에서 조롱당한다’고 말했어요.”
요안나 호사냑은 이런 말도 했다.
“‘그들(좌파 세력)’이 지식과 정보를 얻는 경로는 편향적이며, 항상 집단으로 여론을 내고, 다른 의견은 묵살해 버린다.”
― 근본적으로 문화예술 지원금 체계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연극 공연의 70%는 각종 문화지원금으로 운영됩니다. 한국문화예술위와 각 지역 문화재단, 전국 예총과 민예총에 내려보낸 돈이나 기업들의 메세나 사업을 통해 지원금을 받죠. 문제는 지원금이 책임질 필요가 없는 돈이라는 사실이에요. 그러니 경쟁력 있는 창작품을 뽑아내기보다 기존 작품을 재탕 삼탕 합니다. 기존의 세트, 의상, 장비 등이 있으니까요. 이미 국내 관객의 눈높이가 올라간 상황에서 기존 작품을 되풀이하는 공연은 외면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대중에게 버림받는 상황이 된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관객을 동원해야지만, 계량화된 수치를 만들어야만 다음해 지원금을 받을 수 있어요. 작품의 질보다는 몇 명이 보러 왔고, 몇 차례 공연을 했느냐만 관심사입니다. 그러니 공짜 표를 돌려서라도 관객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어요. 이쪽 극단이 저쪽 극단을 품앗이하고 객석을 채워주죠. 그러니 작품 내용의 피드백이 있을 수 없어요.”
한국영화, 볼거리는 많지만 머릿속에 남는 건 없는 영화
― 이제 영화 얘기를 해보죠. 전국에 연극영화과 수가 얼마나 되나요.
“김대중 정부 전까지 전국 4년제 연극영화과는 한양대, 동국대, 중앙대, 청주대, 경성대 5곳이었어요. 전문대로는 서울예술대가 있었죠.
그때만 해도 졸업하면 취업이 가능했어요. 중앙대와 동국대는 방송 쪽으로, 서울예대는 예능 쪽으로, 한양대와 청주대는 영화 쪽으로, 경성대는 독립영화 계열로 많이 진출했어요. 대학마다 색깔이 달랐어요. 제가 소속된 청주대는 ‘충무로 마피아’라는 소릴 들을 정도로 동문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전국에 100곳이 넘는 학과가 생겨나면서 색깔들이 없어졌어요.”
― 경쟁이 치열해졌네요.
“놀 수 있는 놀이터가 한정됐는데 들어가려는 이는 많아요.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좋은 에너지가 분출되면 좋은데 워낙 배출 인력이 많다 보니 라인을 형성하는 줄 세우기가 만들어졌어요. ‘내 말을 들어라. 그러면 먼 미래가 열린다’는 식으로. 그러면서 A급 예술인을 중심으로 분파들이 나눠졌어요. 그 분파가 경쟁을 통한 질 좋은 작품을 만든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그러나 작품대결보다 문화 권력 헤게모니를 휘어잡으려 해요. 연극판에서는 시쳇말로 ‘팬티를 빨아줘도 A급 인사가 있는 극단에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B급으로 가면 실력이 뛰어나도 답이 안 나온다는 얘기입니다.”
― A급 영화인은 누군가요. 원로배우나 원로감독들인가요.
“유감스럽게도 영화계는 원로가 다 없어졌어요. 아니 쫓겨났죠.
좌파 정부 10년간 원로 영화인들을 모두 쫓아냈죠. 지금 대한민국의 원로감독이 봉준호·박찬욱·김기덕 같은 감독이라면 믿기십니까.”
― 초로화(初老化) 현상이 심각하네요.
“아버지 세대의 영화인을 부정하는 인적 교체가 이뤄졌는데 이것이 아버지 세대와 다른 색깔로 형식적·내용적 발전을 이뤄냈다면 모를까 권력싸움에 의해 그들을 배척하고, 그 이전의 한국영화를 부정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점이 안타까워요.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만든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제 아시아 감독 중에 누가 칸에 올 수 있나’고 반문할 정도입니다. 한국 작품이 해외 영화제에 나가 감독상이나 배우상은 받아도 작품상은 못 받아요. 영화제의 그랑프리는 작품상입니다. 콘텐츠 생산이 세계 10위권이라지만 알맹이는 너무 부족해요. 대개 할리우드 영화를 벤치마킹한, 볼거리는 많지만 보고 나서 머릿속에 남는 건 없는 그런 영화가 돼 버렸어요.”
‘선거용 기획영화’는 사실상 ‘문화테러’
― 선거 때마다 기획영화가 판을 치고 있어요.
“일부 좌파 세력이 영화 매체를 선동의 도구로 활용하는 방법은 주사파(主思派)의 필독서인 《영화예술론》을 근간으로 하고 있어요. 괴벨스의 말처럼 영화는 ‘인간의 무의식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매체’인 것이죠.”
17대 대선 이후 정치색 짙은 영화로는 〈한반도〉(2006, 강우석), 〈화려한 휴가〉(2007, 김지훈), 〈부러진 화살〉(2011, 정지영),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추창민), 〈26년〉(2012, 조근현), 〈남영동1985〉(2012, 정지영),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2012, 오멸), 〈유신의 추억-다카키 마사오의 전성시대〉(2012, 이정황), 〈백년전쟁〉(2012, 김지영), 〈MB의 추억〉(2012, 김재환) 등이 있다.
또 국정원 해체를 주장하는 〈자백〉(2016, 최승호), 〈무현, 두 도시 이야기〉(2016, 전인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제작 지원한 영화 〈광인〉(2016, 조재형·윤수안), 송강호와 독일을 대표하는 배우 토마스 크레치만이 주연한 〈택시운전사〉(2016, 장훈)도 있다.
이 교수의 말이다.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지만 대개 ‘우리민족끼리’류의 민족의식이나 반미감정, 박정희·전두환 정권 등 보수 정권에 대한 반감을 조장하는 내용이나 노무현 정권에 대한 우호적 의식을 담고 있는 영화들이죠.”
― 정치색 짙은 영화들이 나오는 이유는 뭔가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정권교체를 꼽을 수 있어요. 문화 권력을 확장하기 위해서죠. 둘째, 미래 권력 유지와 확보를 위해 필요합니다. 이는 문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죠. 마지막으로, 문화시장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이익입니다. 이를 위해 허상의 민중과 민족 개념을 상품화한 영화들이 러시를 이루고 있어요.
‘선거용 기획영화’는 사실상 ‘문화테러’입니다. 문화테러는 사회분열을 먹고 자라죠. 영화 매체를 통한 지속적인 문화테러는 대중으로 하여금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비하하는 말과 행동을 하게 합니다. 문화테러를 테러로 인식하지 못하는 대중은 어느새 대한민국을 혐오하는 국민이 돼 버렸어요.
영화는 사실 그대로의 기록이 아닙니다. 문화소비자인 대중은 영화를 보면서 ‘영화가 지지하는 관점이 무엇인지’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되고 기능하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봐야 합니다. 보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것이니까요. 영화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전달되는 선동에 속수무책으로 동화될 수밖에 없어요.”
안보·안보의식 범위, ‘국가’와 ‘통일’에서 ‘문화’로 확장돼야
이 교수는 ‘문화안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위협하는 반(反)대한민국 이념과 정서에 대항해 대한민국 정통성과 정체성을 수호하는 것이 문화안보의 핵심이다. 이념 편향성 없는 건강한 문화생태계를 조성하는 것도 문화안보 범주에 든다.
“좌파 문화 권력이 문화예술 콘텐츠를 통해 왜곡된 반대한민국 정서를 국민에게 전파하고 있는 현실에서 안보와 안보의식 범위는 ‘국가’와 ‘통일’에서 ‘문화’로 확장돼야 합니다.”
― 지금의 문화계 현실은 어떤가요.
“야당은 촛불 시위로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고, 북한은 남한에 혁명정권 수립 기회가 왔다며 홍보합니다. 지금 종북 세력과 애국 세력 싸움은 대한민국 대(對) 반대한민국의 투쟁이죠.
지금이라도 문화안보 의식을 진단하고, 위협에 대응할 방어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좌파 문화 권력에 오염된 문화생태계에서는 어떠한 문화정책도, 문화의 다양성도, 표현 자유도 모두 공염불이죠. 문화안보는 대한민국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입니다.”
― 요즘 어떤 일을 하세요.
“두 가지인데요, 태극기 집회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어요. 또 〈부역자들〉이란 제목의 다큐도 준비 중입니다.”
― 누가 부역자인가요.
“부역자는 한마디로 배신자들이죠. 바른정당 의원들 말이에요. 좁혀 말하면 김무성·유승민·하태경 의원이죠. 영화는 세월호 참사부터 시작해 4·13총선을 앞두고 벌인 새누리당 공천파동, 최순실 게이트, 탄핵, 바른정당 분당 등 굵직한 사건들을 하나씩 들춥니다.”
― 제작비는 어떻게 마련합니까.
“크라우드 펀딩을 하면 돈 벌려 한다는 오해를 살까 봐 지인들로부터 후원금을 받아 충당하고 있어요. SNS상에 하소연했더니 본 적도 없는 분들이 후원해 주셔서 힘들지만 재미있게 찍고 있어요. 3월 말이나 4월 초에 유튜브나 인터넷 방송을 통해서 공개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물론 무료예요.”
― 다큐는 누가 찍고 있나요.
“4명이 땀을 흘리고 있어요. 최공재 감독과 탈북자 출신 김규민 감독이 전면에, 제가 프로듀서와 촬영 겸 제작지원, 음정현씨가 조감독을 맡아 도와주고 있어요.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이 다큐가 문화안보의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월간조선 2017년 4월호 / 글=김태완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