危機의 韓半島2022-2/
송재윤 교수 단독 인터뷰 조선일보
02.02 “文 정권처럼 꼬리 낮추면 中에 계속 짓밟혀...美·中 사이 ‘이념적 방황’ 끝내야”
“한국의 반중(反中) 감정은 어느날 갑자기 나온 돌발현상이 아니다. 진짜 기현상(奇現象)은 한국에 만연해 있던 친중 사대주의(親中 事大主義)이다. 상식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사람들은 인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인권을 탄압하는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를 절대 좋게 생각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지난달 <슬픈 중국 : 문화대반란 1964-1976>을 낸 송재윤(宋在倫·53) 캐나다 맥매스터(McMaster)대 교수의 말이다. 3부작 시리즈 중 두번째인 이 책은 중국 문화혁명(약칭 문혁·1966~76년) 당시 벌어진 최소 수 백만건이 넘는 집단 린치와 불법 구금·비자연적 사망을 포함한 실상(實相)과 전모를 파헤치고 있다.

▲2009년부터 캐나다 맥매스터대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송재윤 교수. '중국근현대사' '중국사상사' 등을 학부와 대학원에서 강의하는 그는 "문화혁명 관련 자료가 세계 학계에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대학도서관에서 클릭 몇번 하면 과거에는 접근하지 못한 중공중앙의 극비 문서와 사료(史料)들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대학> ‘정심(正心)’장의 구절처럼 ‘마음이 없으면 봐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진정한 역사 탐구는 손에 쥔 사료를 정교하게 분석해서 그 함의를 해석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송재윤 제공
◇‘중국 환상’에 사로잡힌 한국 운동권
고려대 철학과 졸업 후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11~14세기 중화제국 통치이념의 패러다임 전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한국 지식인과 엘리트들에 퍼져있는 오도(誤導)된 중국 인식에 비판적이다.
“한국인들은 한국전쟁에서 14만의 사상자(死傷者)를 내면서 대한민국을 위해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맞서 싸운 미국의 희생에 고마움은커녕 강한 반미(反美)의식을 표출한다. 이들은 중국의 인권유린에 무관심하고 중국의 횡포(橫暴)에 항의 조차 않는다. 대통령 방중 수행기자단이 집단폭행을 당해도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를 위시한 한국의 좌파 지식계와 80년대 운동권은 역사의 실상을 왜곡해 허황된 중국 혁명 신화(神話)를 썼다. 1970~80년대 논리가 아직도 한국 586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모두 리영희의 책들을 바이블처럼 읽었다고 하지 않았나.”
2016년까지 60%를 밑돌던 우리나라의 ‘반중 감정’은 2021년엔 77%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로 치솟았다. 미국 ‘퓨 리서치 센터’가 작년 6월 실시한 14개 조사대상국 가운데 일본·스웨덴·호주에 이어 네 번째로 높다. 한국민 10명 중 8명 정도가 중국을 싫어하는데, 왜 한국 정치권과 지식인·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중국에 굴종과 순응만 되풀이할까? 기자는 캐나다에 거주하는 송 교수와 지난달 하순부터 5차례 전화와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최근 저서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송재윤 교수가 쓴 <슬픈 중국>. 2020년 4월 나온 1권(왼쪽)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세종도서로 선정돼 현재 4쇄 판매 중이다. 2권은 536쪽 분량에 생동감 넘치는 문장과 풍부한 사진 및 정확한 사료(史料)·연구 자료 인용으로 학계와 시민의 호평을 받고 있다./까치 제공
- 중국은 거칠고 강한 이미지인데, 책 제목이 왜 ‘슬픈 중국’(A Sad China)인가?
“20세기 현대사에서 중국 인민들이 겪은 처절한 슬픔에 깊이 공감해서다. 마오쩌둥이 1958년부터 4년간 벌인 ‘대약진운동’ 하나로만 최대 45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1980년대 중국공산당의 자체 폭로를 보면, 마오쩌둥이 일으킨 문화혁명으로 1억1300만명이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 원래부터 중국에 비판적이었나?
“정반대이다. 서울에서 소년기부터 중국을 공부해온 나는 중국의 언어, 철학, 역사, 문학, 음악, 음식, 무술, 의학 등 모든 것을 사랑한다. 20년 넘게 깊은 우정을 쌓아온 많은 중국 친구들은 나의 소중한 자산들이다. 하지만 나는 ‘정치적 친중주의(親中主義)자’가 아니다.”
그 이유를 송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정부는 유엔헌장과 국제법에 명시된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한다. 중국인은 표현, 집회·결사, 언론출판, 거주·이전, 출산(出産)을 포함한 기초적 신체의 자유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노동자농민의 나라를 표방하지만, 1982년 재개정된 중국헌법에는 ‘파업의 권리’(노동쟁의권) 자체가 삭제돼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나로선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를 비판할 수밖에 없다.”

▲1989년 6월4일 베이징 천안문광장에서 자행된 학살 이후 모습/
http://xahlee.org/Periodic_dosage_dir/tiananmen_64_1989.html

▲중국공산당 최고 지도부의 집단 거주지이자 국무원이 있는 베이징 시내 중난하이(中南海)의 야경/조선일보DB
◇“중국의 치부 감추면 親중국 선전물”
그는 “세계 시민의 관점으로 중국 인민의 편에 서서 중국공산당 정권이 저질러온 역사적 과오를 있는 그대로 상세히 기록할 뿐”이라며 “정치적 목적으로 중국의 치부(恥部·부끄러운 부분)를 감춘다면 친(親)중국의 선전물이 되고 만다”고 했다.
-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 같은 진보 지식인들과 80년대 한국 운동권은 문화혁명을 찬양하지 않았나?
“그렇다. 1970~80년대 리영희는 <8억인과의 대화> 등에서 대약진운동을 인간개조의 혁명이라 칭송하고,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을 맹목적으로 미화(美化)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事實)은 그의 저서들이 부정확하고 왜곡된 정보로 가득 찬 허황된 중국 신화(神話)임을 확실하게 증명한다. 당시 한국 언론의 중국관련 기사들도 문혁 당시의 광기(狂氣)와 폭력을 정직하게 보도했다.”
-문화혁명은 얼마나 야만(野蠻)적, 폭력(暴力)적이었나?
“중국공산당(약칭 중공)중앙이 2년 7개월에 걸친 조사와 검증을 통해 1984년 5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문혁 10년 동안 172만8000여명이 비자연적(집단 린치, 테러 등 포함)으로 사망했다. 13만5000여명은 사형에 처해졌고 703만여명이 부상당하거나 회복불능의 불구가 됐다. 또 7만여호의 가정이 파괴됐다. 모두 공산주의 혁명에 적극 협조하지 않거나 반대하는 반(反)혁명 성향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런 문혁을 기획·사주(使嗾)하고 집행을 명령한 마오쩌둥이 과연 ‘중국의 별’인가?”

▲중국 문화혁명 시절, 폭력적인 군중집회의 한 장면. 맨 앞에 두 명이 일명 '제트기' 자세의 고문을 당하고 있고, 그 뒤에 이미 처형되어 매장당한 희생자들의 얼굴만 바닥 위로 솟아 있다. 문혁 시절의 폭력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 증거물이다./Public Domain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가 1977년에 쓴 <8억인과의 대화>. 한국의 진보좌파 지식인과 운동권의 친중 사대주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 책으로 꼽힌다./조선일보DB
◇“文 정권의 親中主義는 합리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리영희의 책들이 널리 읽힌 이유는 무엇인가? 아직도 많은 한국 지식인들은 중국에 대한 동경(憧憬)에 젖어있다.
“군부독재 시절 한국의 지식인들이 ‘대체 역사’를 찾아서 ‘중국 판타지’에 탐닉했던 듯하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리영희는 스스로의 오류를 반성하기 보다는 ‘중국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며 회피성 발언만을 남겼다. 그럼에도 1980년대 운동권 세력은 여전히 리영희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 등 권력 기관을 장악한 운동권과 문재인 정권의 정치적, 외교적 친중주의(親中主義)는 합리적이지도, 실용적이지도 않다.”
- 왜 그런가?
“시진핑 총서기는 ‘중국몽(中國夢)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고 정의한다. 인류 보편가치와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중국만의 예외주의, 중국우선주의, 중국특수주의인 것이다. 중국몽은 중국인 개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제한하는 공산당 일당독재의 논리이며, 주변국을 위협하고 압박하는 구태의연한 패권주의이다. 자유민주주의 주권국가인 한국이 ‘인류몽’이나 ‘한국몽’도 아닌 ‘중국몽’에 동참한다는 게 말이 되나?”

▲중국을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2월 15일 오전 베이징대학교에서 한중 관계를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뉴시스
- 지금 중국은 진실로 ‘떠오르는 세계적 강국’인가?
“경제규모로 중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이다. 그러나 중국의 1인당 GDP는 세계 79위에 불과하다. 2020년 5월 25일 리커창 국무원 총리는 ‘중국 인구의 40%에 달하는 6억명이 월수입 1000위안(미화 140달러) 이하의 빈곤 상태를 탈출하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중국은 세계 최고의 빈부 격차, 도농 격차, 계급 갈등, 부동산 거품, 전체주의적 통제 강화, 인권 침해 같은 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중국의 경제적 불평등은 미국보다 더 심각하다.”
- 그런데도 많은 한국 지식인들은 ‘중국 눈치’만 보고 있다.
“중국의 문제점들을 알면서도 침묵·아부한다면, 중국인들이 좋아할 것 같은가? 거꾸로 역효과만 난다. 세계인의 관점에서 중국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지적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때, 중국인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2017년 12월 14일 한국 기자단이 중국 경호원에 폭행당한 바로 다음날, 문재인 대통령은 베이징대에서 ‘중국 높은 산맥의 나라이다. 한국은 작은 나라이지만 중국몽에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그때 중국인들이 감동의 기립박수라도 치던가? 우리 정부 기대와는 달리 전혀 정반대 반응이 나오지 않았나.”

▲2017년 12월 14일, 중국 베이징에서 대통령의 방중 행사를 취재하던 한국기자단이 중국 측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관련 장면이다./조선일보DB
◇“중국에 침묵·아부할수록 역효과만 난다”
송 교수는 그러면서 중국학 대가(大家)인 위잉스(余英時·1930~2021)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얘기를 꺼냈다.
“위잉스 교수는 2000년대 들어 일관되게 중국공산당 일당독재를 비판하면서 중국의 정치 민주화를 요구했다. 중공정부는 그의 저서를 금서(禁書) 목록에 올렸지만, 중국인 학자들은 위 교수의 연구를 더 탐독했다.”
- 중국 비판이 중국공산당에 더 유익하다는 얘기인가?
“한 중국인 교수가 나에게 말했다. ‘중국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중국 정부와 ‘관시’(關係)를 터서 이득을 챙기려는 아첨꾼이 아니라 인류의 관점에서 중국의 문제를 지적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외부 비판자’라고. 진정 우리가 중국 인민과 공감(共感)한다면, 더더욱 그들 편에 서서 중공정부를 비판해야 한다.”

▲2019년 11월 11일 낮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 회원 14명이 홍콩의 반중(反中) 시위를 지지하는 침묵 행진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홍콩 시민들의 5대 요구인 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등을 요구하는 뜻에서 오른손 다섯 손가락을 펴 들었다./조선일보DB
송 교수는 “중국 지방 도시의 택시운전사도 외국인인 나에게 ‘중국엔 인권이 없다!’고 말한다. 중국인들도 자기 나라가 모순 덩어리임을 알고 있는데, 우리가 중국공산당 정부에 아부만 한다면 중국인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 세계 각국에 반중(反中) 감정이 들불처럼 퍼지고 있는데.
“코로나 팬데믹과 홍콩보안법 강행 통과가 결정적 계기였다. 2019년 12월, 리원량 등이 내부 고발을 했지만, 중공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코로나 발발 최초의 긴박한 2주일동안 은폐만 했다. 2020년 5월 전국인민대표대회는 99.9%의 찬성율로 홍콩 보안법을 강행 통과했다. 세계인이 눈뜨고 지켜 보는데, 홍콩 시민들이 누려온 자유와 민주를 강제로 빼앗는 만행(蠻行)을 저지른 것이다.”

▲중국공산당 정부의 홍콩에 대한 강압 통치와 자유 말살에 항의해 2019년 거리에 쏟아져 나온 홍콩 시민들이 "하늘이 중공을 멸망시킬 것이다"란 구호를 들고 시위하고 있다. 시위대는 왼손 다섯 손가락을 다 펴고, 오른손은 검지만 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는 '오대소구 결일불가(五大訴求 缺一不可),' 즉 다섯 가지 요구 사항 중 단 하나도 양보할 수 없다는 구호의 수신호(手信號)이다./Studio Incendo
송 교수는 “이런 마당에 자유와 민주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 그 누가 중국공산당의 인권유린을 묵과할 수 있나? 세계적인 반중(反中) 감정은 중국공산당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중국이 공산당 일당독재와 황제 리더십을 폐기하고 자유·민주·헌정을 실현하지 않는다면 반중 감정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 그 영향으로 한국내 중국어 학습자가 급감하는 등 ‘중국 기피증’이 커지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가 싫다면, 중화문명을 재창조할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 중국을 더 깊이 연구해야 한다. 우리 입장에서 중국의 위협에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해라도 중국에 대한 깊은 탐구가 더 절실하다.”
◇“야당 정치인들, ‘중국 변화’ 이끄는 비전 없어”
- 한국 정치권은 홍콩 사태, 중국의 신장위구르 인권탄압에 대해 규탄 성명이나 결의안도 내지 않았다.
“한국의 ‘진보 세력’ 또는 ‘좌파 진영’은 중국의 인권 유린과 정치적 억압을 비판하지 않는데, 야당(野黨) 정치인들까지 침묵하는 것은 눈앞의 정치적 이해만 따질 뿐, 국제공조 속에서 중국의 변화를 이끄는 거시적(巨視的)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 한국의 진보좌파는 왜 친중(親中)이 됐을까?
“1970~80년대 한국에서 반(反)독재 투쟁을 벌인 사람들이 그보다 훨씬 가혹한 중국공산당 독재를 용인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 그럼에도 한국 진보진영과 중국공산당 사이에는 커다란 정서적 공감대가 있다. 현 정권 핵심부를 장악한 주사파 운동권은 과거 NL(민족해방노선) 계열이다. 이들이 신봉(信奉)한 김일성 주체철학은 마오쩌둥사상의 변종(變種)으로 중국과 북한은 ‘운명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2019년 7월 10일 더불어민주당 산하 민주연구원의 양정철 원장(왼쪽)과 중국공산당 산하 중앙당교의 리지리지(李季) 부교장 상호 교류 협력 추진 협약을 체결했다. 중국공산당 유일의 교육연수기관 겸 싱크탱크가 한국 정당 싱크탱크와 협약을 맺은 것은 처음이다. 양측은 국가 운영 등 여러 분야에서 경험 공유, 학자·전문가 대표단 파견, 학술교류, 세미나 및 심포지엄 개최, 교육 분야 협력 등에 합의했다./연합뉴스
송 교수는 “반대로 미국 중심의 자유진영에 속한 대한민국은 중국과 북한의 공적(共敵)이다. 따라서 진보좌파가 내걸고 있는 반미(反美)와 친중(親中), 친북(親北)은 세 쌍둥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정권이 5년 내내 자행해온 ‘대중(對中) 저자세’의 밑동에는 중국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마오쩌둥에 대한 비상식적인 존경심이 깔려 있다. 구한말 숭명(崇明)사상을 능가하는 ‘변방의 중국몽’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갈구(渴求)하는 사람이나 자유주의자는 물론, 평등 지향의 사회주의자도 ‘친중사대’를 택할 수는 없다. 박정희 시대 개발독재를 비판했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중국공산당의 권위주의 일당통치를 비판하는 게 마땅하다.”
- 앞으로 한국 지식인과 엘리트, 정부는 중국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마오쩌둥은 ‘강한 적(敵)일수록 절대로 굽히지 말라’고 했다. 어린 시절 몽둥이를 들고 쫓아온 아버지에게 ‘연못에 뛰어들겠다’고 소리치자, 아버지가 주춤한 걸 보고 터득한 게릴라 전술의 심술(心術)이다. 한국 국민들이 중국을 대할 때 마오쩌둥처럼 ‘게릴라전의 지혜’를 적극 활용해야지, 문재인처럼 ‘꼬리 낮추기’를 하면 바로 짓밟히고 만다.”
송 교수는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全) 지구로 촘촘히 뻗어나간 경제규모 세계 10위의 대한민국이 반일주의(反日主義)와 반미(反美) 정서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올해 5월 출범하는 한국의 새 정부와 지식인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무익한 ‘이념적 방황’을 멈춰야 한다. 대한민국은 헌법정신 대로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확립해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가 동일한 자유민주 세력인 미국·일본과의 공조(共助)를 거부하고, 친중 사대주의(親中 事大主義)를 택할 수는 없다. 전 세계가 한국 정부의 선택을 지켜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왼쪽)이 2016년 4월 1일 미국 워싱턴DC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으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신조 아베 일본 총리가 앉아 있다/조선일보DB
- 한국이 대(對)중국 관계에서 전략적 우위를 차지할 방도라면?
“자유와 개방은 선진 대한민국을 만든 최상의 발전 전략이자 인류 보편의 가치이다. 한국 현대사는 지구 끝까지 뻗어나가 세계 대다수 나라와 경제적 공조를 강화해 온 드라마틱한 확산과 혼융의 과정이었다. 이미 세계적 네트워크 국가인 대한민국은 인류 보편가치에 맞게, 그리고 헌법정신에 따라 ‘쿼드(QUAD)’를 ‘펜타(PENTA)’로 확대하는 자유의 동맹에 동참해야 한다. 나아가 대만과 호주를 잇는 국제공조의 환(環)태평양 벨트를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당당하게 국익을 신장할 수 있다.”
조선일보 송의달 선임기자
02.07 “北 도발 규탄”에 ‘한국만 침묵’은 이번이 마지막이라야

▲10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가운데)와 미국, 알바니아, 프랑스, 아일랜드, 일본, 영국 대사들이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낭독하고 있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 트위터
유엔 안보리 8개 이사국과 일본이 5일 안보리 긴급 회의 직후 북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도발을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9국은 “북의 불법행위를 가장 강력한 용어로 규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도발의 최대 피해 당사자인 한국 정부는 동참하지 않았다. 북한이 올 들어 우리와 미국을 겨냥해 역대 최다인 7차례 미사일 도발을 하고 있는데 또 침묵했다.
안보리 이사국들은 지난달에도 두 차례 대북 규탄 성명을 냈다. EU와 독일·스웨덴 등 유럽 국가들이 릴레이 규탄에 나선 데 이어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국 외교 장관들도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여기엔 북한과 가까운 베트남·캄보디아도 동참했다. 중국·러시아를 뺀 세계 대부분 나라가 대북 규탄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세 번의 안보리 성명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다. 지난달 한·미·일 북핵 수석 대표 긴급 협의에서 미·일은 북 도발이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 비판했지만 정부는 조속한 대화 재개만 강조했다. 한·미·일 유엔 대사가 북 미사일 대응책을 논의했다는 사실도 공개하지 않았다. 미국은 북한의 군사행동을 저지하겠다며 일본·호주와 연합 공중 훈련을 하고 있지만 우리 군은 불참했다.
정부는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를 ‘도발’로 규정하지조차 않았다. 매번 ‘유감’ ‘우려’만 표명하다 북한이 괌을 겨냥한 IRBM을 쏜 후에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통해 처음으로 ‘규탄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을 앞둔 시기 북한의 연속 발사에 우려가 된다”고 했다. 안보가 걱정된다는 건지 선거가 걱정이라는 건지 알기 힘든 말이었다. 그러면서도 사우디·UAE에 대한 예멘 반군의 공격은 “강력히 규탄한다”고 했다. 우리 군은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에 대해 “과장됐다”고 축소하기 급급했다. 그러자 북한은 곧바로 속도가 마하 10으로 두 배 가까이 빨라진 미사일을 쏘았다.
2019년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도발 때도 유럽 6국은 규탄 성명을 냈지만 우리는 유엔에서 침묵했다. 작년 3월 북한의 순항미사일 발사는 공개조차 하지 않았다. 북한 미사일은 우리 안보의 최대 위협이다. 그런데 마치 남의 일인 양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대응한다. 이러니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에서 노골적으로 북한 편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미국 등 국제사회와 대북 공조마저 하지 않으면 우리 안보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북한 위협에 눈감고 변호하기 바쁜 정부의 굴종적 행태는 이것이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2.07 진영의 리더를 대통령으로 뽑을 순 없다

이하경 주필·부사장
우리가 숨쉬고 사는 한반도는 강대국 세력 경쟁의 지정학적 충돌선이 통과하는 곳이다. 인구·경제력·군사력이라는 경성(硬性) 국력이 가장 센 미국·중국·일본·러시아의 이해관계가 걸린 화약고다.'
강대국들은 400여 년 전부터 한반도 분할 점령을 시도했다. 16세기 말 임진왜란 때 한양과 평양성을 점령했던 일본군의 선봉장은 세례명 아우구스티누스인 가톨릭 신자 고니시 유키나가였다. 상인 가문 출신이었고, 대동강을 경계로 조선을 나누자고 제안했다. 동아시아를 뒤흔든 7년의 국제전쟁을 기획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8도 중 남부 4도(道)를 넘겨 달라고 요구했다. 영국 킴벌리 외상은 1894년 청일전쟁 직전 서울을 통과하는 남북 분할을 제안했다. 1896년에는 일본이 북위 38도선 분할을 러시아에, 1903년에는 러시아가 39도선 이북 중립지대 안을 일본에 제안했다. 조선과 명(明), 일본과 러시아의 반대로 모두 무산됐다.
400년간 강대국 분할 점령 시도
북한 미사일 도발 거칠어지는데
여야 대선후보 대응책 합의 못해
이러고도 나라를 지킬 수 있을까
결국 일제 식민지가 된 한반도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에 의해 분할 점령됐다. 남과 북은 아직도 지구 최후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에서 중국도 지역 패권국가에서 점차 세계적 패권국가로 일어섰던 미국의 전략을 추종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미·중의 패권 경쟁과 흥정에 따라 가혹한 운명과 조우할 수도 있다. 이것이 우리의 처참한 역사이고, 두려운 현실이다.
하지만 선진국이 된 한국이라는 배는 뛰어난 선장과 정교한 나침반이 있으면 전복되지 않는다. 강대국에 시달리는 나라들은 대부분 공통의 경험과 정치적 합의를 통해 지속가능한 대외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위기에 처할수록 내부 결속력이 높아진다. 그런데 불행히도 한국은 거꾸로다. 남남갈등 때문이다.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도발 와중에 열린 지난주 대선후보 4자 토론은 이런 고질(痼疾)을 드러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사드 추가 배치와 선제타격을 주장했다. “평화는 압도적 힘의 결과”라는 것이 윤 후보의 입장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사드 추가 배치 필요 없다”는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미국 측도 필요 없다는데 중국 보복을 감수하면서 추가 배치하겠다는 건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후보는 “브룩스 전 사령관은 사드 추가 배치가 필요 없다는 얘기를 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선제타격론에 대해 “국민은 불안해 한다”고 비판했다. 윤 후보는 “적극적인 의지를 천명하는 것 자체가 전쟁을 막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위기가 고조되는데 대응책을 놓고 어떤 합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고도 나라를 지킬 수 있을까.
조선은 명·청(明·淸) 교체기의 오판(誤判)으로 병자호란을 자초했다. 임금은 삼전도의 치욕을 겪었고, 수만 명의 백성은 노예가 돼 청으로 끌려갔다. 당시 명나라 고위 관료인 황손무와 심세괴는 뜻밖에도 “숭명(崇明)의 명분 때문에 청나라에 강경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왜 그랬을까. 조선이 청나라와 충돌해 무너지면 배후가 정리된 청이 명을 더 강하게 압박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조선이 시대착오를 일으킨 것은 외교를 국내 정치의 연장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중립외교를 표방한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는 반정(反正)의 명분을 세우고, 명의 승인을 얻기 위해 강한 친명 정책으로 기울었다(『동북아 지정학과 한국 외교전략』 전봉근).
지금의 대북 안보 대응도 대선의 유불리에 따라 휘둘리고 있다.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윤석열 후보의 발언을 문제 삼아 “꼭 귀신 들린 사람 같다. 외교에 포퓰리즘이 덧씌워지면 국가 이익이 훼손된다”고 비난했다. 윤 후보의 발언은 안보 태세를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나왔는데 악마화했다. 북한이 올 들어 일곱 차례나 미사일 도발에 나서자 미국·일본·영국 등 9개국이 4일 공동으로 규탄성명을 냈는데, 정작 타깃인 한국은 빠졌다. 이러니 야당은 “문 정권의 굴욕적 대북 정책”이라며 강경해질 수밖에 없다. 여권은 상대를 공격하기보다는 단단히 잘못된 대북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 국익을 위해 정파를 초월한 합의를 시도하는 것이 우선이다.
대선후보들은 냉철해져야 한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안보 문제를 정략적으로 접근하면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의 입장을 끈기있게 경청해 단호한 대응 전략에 합의해야 한다. 유권자들도 국익을 위해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대통령다운(presidential) 인물이 누구인지 분별해야 한다.
마거릿 맥밀란 옥스퍼드대 교수는 2013년 ‘역사의 운율(The Rhyme of History)’이라는 논문에서 “강대국들이 세계 평화를 위해 협력하지 않는다면 다시 (100년 전) 세계대전의 역사가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류문명을 위협하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강대국은 여전히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했고, 세계는 리더십 부재의 상황을 맞고 있다. 그래서 백척간두에 선 한국을 책임질 통합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진영의 리더를 대통령으로 뽑을 수는 없다.
02월 07일 수출 핑계 ‘사드 3不’ 옹호의 허구성

이용준 前 외교부 북핵대사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중국의 사드(THAAD) 제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중국이 요구한 3개 대외정책을 외교부 장관이 국회 답변을 통해 천명하는 간접적 방식으로 중국 정부에 약속했다. 대중국 ‘3불(不) 약속’이라 불리는 이 조치는, △사드 요격미사일을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 주도 미사일방어(MD) 체제에 동참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동맹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중국이 반대하는 3가지 정책을 문 정부가 추진하지 않기로 일괄 약속한 주권 포기 수준의 이 조치는 대중(對中) 굴종 외교의 상징이다.
이러한 ‘3불 약속’에 대한 옹호론자들의 논거는 단 한 가지, 한국의 대중 무역의존도다. 그러나 그 논리는 허구와 과장으로 가득 차 있다. 무역의존도에 따른 국가 간 영향력은 전적으로 상호적이다. 한국이 공산품 수출을 중국에 크게 의존하는 만큼, 중국도 첨단 기술과 부품을 한국에 의존하고 있다. 많은 한국 기업의 운명이 중국 시장에 달려 있듯이, 중국 제조업의 운명도 한국 수출 기업의 손에 달려 있다.
대중 수출의존도가 한국보다 훨씬 높은 호주는 자국의 정계·학계·언론계·경제계를 친(親)중국화하기 위한 중국의 광범위한 매수와 포섭 공작에 맞서 주권을 지키기 위해, 2018년 ‘외국간섭방지법’을 제정하고 미국 주도 대중 연합전선에 앞장서고 있다. 대중 수출의존도가 호주보다 더욱 높은 대만은 중국의 공공연한 무력침공 위협 속에서도 일전불사의 자세로 분리독립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런 험악한 대중 관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양국의 대중 수출과 무역 흑자는 폭발적 증가세를 기록했다.
백 보 양보해서 한국 경제에 미치는 중국의 영향력에 관한 친중론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주권과 자주권을 자발적으로 양보해야 할 정도로 대단한 것은 아니다. 지구상에, 경제적 이익을 위해 주권과 자주권을 스스로 양보하는 나라는 없다. 대중 ‘3불 약속’ 문제의 핵심은 한국의 대중 무역의존도가 아니라, 중국의 경제적 압박과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우리 주권과 자주권을 수호하는 것이다.
불과 20∼30년 전까지 가난한 개도국이었던 중국은 이제 미국의 패권을 위협할 만큼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국력이 급성장하자 어느새 과거를 잊은 중국은 주변 약소국들을 군사력으로 겁박해 영토를 확장하고 차관 제공을 미끼로 후진국의 경제적 인프라를 약탈하는 전형적 제국주의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중국의 이런 시대착오적 민낯은 20세기 초 제국주의에 뒤늦게 합류해 무모한 팽창정책으로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을 연상시킨다.
지난주 대선 정국에서 쟁점으로 부상한 대중 ‘3불 약속’ 폐기 문제는 나라의 주권과 안보가 걸린 중대 사안이며, 우리가 주권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다. 최소한 우리의 2000년 잠재 적국(敵國)인 중국의 눈치를 보고 결정할 일은 아니다. 지금의 중국은 병자호란 때의 청국도, 을사조약 때의 일본도 아니다. 한때 다수 한국인이 막연한 호감을 가졌던 개도국 중국도 아니며, 한국인의 75% 이상이 싫어하는 고압적 중화주의 중국이다. 그 앞에 주권도 자주권도 접고 꿇어 엎드린 사대 굴종 정책은 결코 경제적 이익의 논리로 정당화될 수 없다.
문화일보
02-07 안보리 무력화한 中, 북핵 방치하면 옆구리 시한폭탄 될 것

▲북한이 17일 평양 순안공항 일대에서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 KN-24.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8일 “17일 동해상의 섬 목표를 정밀 타격하는 전술유도탄의 검수사격시험이 진행됐다”며 KN-24 발사 장면을 공개했다. 조선중앙TV 캡처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가 4일 열렸지만 어떤 결과물도 내놓지 못한 채 종료됐다.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에 올해 들어 세 번째 열린 안보리 회의였지만 이번에도 이사국 과반의 단호한 공동대응 요구에 대해 거부권을 쥔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중국 측은 북한의 도발을 규탄하기는커녕 오히려 미국을 향해 “북한의 우려사항을 수용하는 정책과 행동을 보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안보리 회의에선 사거리 5000km의 IRBM 도발을 논의한 만큼 이전 두 차례 단거리미사일 때와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 2017년 북한의 무더기 핵·미사일 도발 때 안보리는 중거리급 도발에도 북한 기관과 개인을 대북제재 명단에 추가하는 등 적극 대응했다. 하지만 북한이 다시 4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위의 도발을 벌였는데도 안보리 차원의 성명 한 장도 나오지 않았다. 중국 측이 이번엔 언론성명 초안을 본국에 보내 검토한다지만, 이 역시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
안보리 대응이 무산된 뒤 미국을 포함한 9개국은 공동성명을 내고 북한의 불법행위를 강력 규탄했다. 여기엔 안보리 이사국이 아닌 일본도 참여했지만 한국은 빠졌다. 성명은 특히 “안보리의 침묵은 북한을 더욱 대담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은 이미 금지선을 넘는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까지 협박하고 있다. 이 모든 게 중국이 감싸주고, 러시아가 거들고, 한국이 뒷짐 진 탓에 벌어지는 일이다.
세계 평화와 안전의 보루라는 유엔 안보리가 이처럼 무력화된 데는 미중 간 패권경쟁과 미-러 간 군사대치 같은 국제적 대결 정세와도 무관치 않다. 북한도 이런 신(新)냉전 기류에 편승해 도발을 일삼고 있다. 하지만 지금 북한의 핵 질주에 제동을 걸지 못하면 중국도 제 옆구리에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차고 사는 신세가 된다. 시진핑 주석이 굵직한 국제행사를 열 때마다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로 잔칫상에 재를 뿌렸던 게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동아일보 사설
02.10 유엔서 목소리 잃은 한국
지난 연말 뉴욕 맨해튼 한 호텔에서 주유엔 한국대표부가 각국 외교관을 초청해 화려한 리셉션을 열었다. 오는 2024~25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이 되기 위해 선거운동에 나선 것이다. ‘간장에 졸인 소갈비’ 같은 고급 한식에 샴페인을 대접하고, 한미 시차에 맞춰 보도자료를 뿌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 1월 3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를 개최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안보리는 유엔 회원국에 법적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실세 기관이다. 5개 상임이사국이 아니더라도 2년마다 새로 뽑는 비상임이사국 10국에만 들어도 입지가 달라진다. 한국은 1996~97년, 2013~14년에 이어 세 번째 이사국 진출을 노린다. 올해 우리 유엔 예산 분담률이 세계 9위로 올라선 만큼 자격이 충분하고, 리셉션이 필요하면 몇 번이라도 열어도 된다.
정작 문제는 유엔의 중요한 외교·안보 무대에서 한국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리셉션 이후 유엔총회의 북한인권결의안 통과 때는 논의의 당사자여야 할 한국이 무려 60국이 참여한 공동 제안국에서 빠졌다. 현 정부 들어 2019년 이후 3년 연속 불참이다. 답은 뻔하지만 왜 그랬냐 물으니 “반대는 안 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올 들어 북한이 미사일을 7번이나 쏘자 안보리는 급박하게 돌아갔다. 미국·영국·프랑스는 물론 자유 진영에 속하는 비상임이사국들과, 이사국도 아닌 일본까지 10국 유엔 대사가 대북 추가 제재를 논의하려 했지만 러시아와 중국이 틀어막았다. 미국 등이 회의장 밖에서 회견을 열었는데 한국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이 이사국 하겠다면서 이런 기본 입장조차 못 정하느냐”는 싸늘한 분위기가 흘렀다.
보다 못한 미국의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대사가 1월 말 한·일 유엔대사를 관저로 초청했다. ‘북한 미사일 발사 관련 3자 협력을 논의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실은 토머스-그린필드의 트위터로 알려졌다. 우리 대표부는 “미국이 만나자길래 30분 만났다”고 하고 입을 닫았다. 한국은 31년 전 미국의 도움으로 피땀 흘려 유엔에 입성했다. 도대체 뉴욕까지 와서 누구 눈치를 이렇게 보는 것인가.
유엔은 아직 20세기 힘의 논리가 판치는 전쟁터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쿠바·이란 등과 스크럼을 짜고 자기 편의 대량 살상 무기 유통과 사이버 해킹, 마약 거래를 정당화한다. 한국보다 분담금도 적게 내는 러시아가 ‘북한의 안보리 결의 위반’ 지적에 “70년 전 유엔이 한국전에 개입한 게 유엔 규정 위반”이라며 억지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유엔은 한국의 경제·문화적 매력으로만 힘의 구도를 바꿀 수 있는 장이 아니다. 한반도 종전 선언 같은 순진한 망상이 먹히는 곳은 더더욱 아니다. 이렇게 계속 설 자리를 잃으면 돈만 내고 명분과 실리를 모두 놓치는 ‘국제 호구’가 될 수도 있다.
조선일보 뉴욕=정시행 특파원
02.11 중국, 그 영원한 질곡(桎梏)
일본에 과시하는 결기 10분의 1만이라도 중국에 보일 수 있어야
자유·인권·문화력의 한국, 전체주의 中이 못 따라와
스스로 존중하는 나라가 남에게 존중받는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편파 판정이 거대한 반작용을 불러오고 있다. 국제 스포츠 대회엔 주최국 텃세가 있기 마련이지만 이번처럼 올림픽 정신을 위협하는 사례는 드물다. 중화(中華)의 영광을 위해 공정 경쟁의 근본 규범을 무너트린 ‘대국(大國)’의 막무가내 행태와 이에 열광하는 중국인들의 ‘애국심’에 세계가 경악했다. 스포츠 민족주의로 중화 제국을 과시해 시진핑 주석의 영구 집권을 굳히려는 무리수가 중국몽의 실체를 폭로한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에 이어 베이징올림픽은 중국이 최강 패권국이 될 때 한반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미리 보여주는 리트머스시험지다.
구한말 위안스카이(袁世凱·1859~1916)는 조선의 상왕(上王)으로 행세했다. 총영사급 20대 청년이 주차조선총리교섭통상사의(駐箚朝鮮總理交涉通商事宜·통상대표지만 실질적 조선 총독)로서 고종을 윽박질렀다. 고종이 러시아에 도움을 청하자 위안스카이는 고종을 폐위시키려 했다. 조선이 1887년 미국에 전권공사를 파견할 때 위안스카이는 황당한 조건을 강요한다. ‘조선 공사는 청국 공사의 안내로 주재국에 신임장을 제정하며, 청국 공사보다 낮은 자리에 앉고, 청국 공사와 중요 사안을 협의하고 지시를 따른다’는 ‘영약삼단(另約三端·세 가지 이면 약속)’이 그것이다.
한국은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결의로 선진국으로 분류된 경제 대국이자 문화 강국이다. 위안스카이가 ‘조선대국론(朝鮮大局論)’에서 비꼰 ‘자주 불능의 약소국 조선’과는 전혀 다른 나라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한국 국민들의 피와 땀 덕분이다. 하지만 한국 지도층 뼛속 깊이 각인된 중국에 대한 소국 의식과 변방(邊方) 의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중국이 이끄는 동양 문명이 서양 문명보다 앞섰으며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나라였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2017년 베이징대학 연설이 단적인 증거다.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 같은 대국’으로 칭송하면서 ‘작은 나라 한국이 중국몽과 함께할 것’이라는 문 대통령 발언은 대한민국 국격을 결정적으로 훼손했다. 중국이 우리를 우습게 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문재인 정권이 중국에 약속한 ‘3불’(사드 추가 배치 금지, 미국 미사일 방어체제(MD) 편입 불참, 한·미·일 군사동맹 비추진)은 오늘의 영약삼단이다. 3불 약속은 중국의 한한령(限韓令)도 해제하지 못한 데다 대한민국 안보 주권을 포기한 외교 참사였다. 문 정권 초대 주중 대사 노영민이 시진핑 주석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면서 쓴 ‘만절필동(萬折必東·황하가 만 번 꺾여도 반드시 동쪽으로 흐른다)’이 중국 천자에게 바치는 제후국(번방·蕃邦)의 충성 맹세였다는 사실(史實)이 충격적이다. 명나라 멸망 수백 년 후에도 만동묘(萬東廟) 제사로 명을 기리던 조선 성리학자들의 중화주의 중독을 빼닮았다.
올림픽 편파 판정이 부른 반중(反中) 민심에 편승한 한국 정치인들의 과잉 대응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경제를 빌미로 줄곧 친중 노선을 펴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영해 불법 침범 중국 민간 어선 격침’ 운운은 생뚱맞은 데다 국제법과도 충돌하는 극언에 불과하다. 내연(內燃)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반중(反中) 정서에 기름을 끼얹는 포퓰리즘적 발언은 국익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한반도의 대(對)중국 2000년 종속 역사의 질곡을 끊고 우뚝 서는 일이다. 중국과의 경제적 상호 이익 관계는 최대한 살리되 내정(內政) 간섭과 주권 침탈엔 단호히 맞서야 한다. ‘베이징올림픽을 비판하는 한국 언론과 정치인들이 반중 정서를 선동하는 데 대해 엄중한 우려를 표한다’는 주한 중국 대사관의 적반하장을 그냥 넘기면 안 된다. 우리가 일본에 과시하는 결기의 10분의 1이라도 중국에 보일 수 있어야 한국은 진정한 주권국가다.
한국은 미국과 굳건한 동맹 위에 일본 및 자유세계와 연대하고 중국과도 선린(善隣)해야 한다. 중국은 반만년 역사의 패권국(Hegemon)이지만 한국은 중국이 달성 불가능한 보편사(Universal History)의 성취를 이룬 매력 국가다. 서유럽 전체보다 큰 중국의 근육 자랑이 따라올 수 없는 자유와 인권, 풍요와 문화력(文化力)의 앙상블이 만든 선진국이 대한민국이다. 현대 한국인은 전체주의 국가 중국 앞에 당당해져야 한다. 스스로를 존중하는 나라만이 남에게 존중받는다는 것이 역사의 철칙이다.
조선일보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정치철학
02.15 중국에 ‘노’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중국 압박·국내 여론에 따라 국익 원칙 갈팡질팡하지 말아야
표심 좇아 춤추는 외교 공약… 대중 정책도 포퓰리즘 우려
문재인 정권 출범 넉 달 전인 2017년 1월 베이징의 한 호텔방. 더불어민주당 방중단을 이끌고 온 송영길(현 당대표) 의원이 늦은 밤 몇몇 특파원과 술잔을 기울였다. 그 자리에서 “사드와 북핵이라는 난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송 의원은 “우리가 (정권) 잡으면 다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라는 거듭된 물음에 그는 “여하튼 우리가 하면 다 풀 수 있다”고 자신했다.
두 달 뒤 베이징에서 만난 한 일본 외교관은 “한국에서 외교관으로 태어나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사드 보복이 본격화될 때였다. “지리적으로 한국이나 일본이나 오십보백보 아니냐”는 물음에 그는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와 일본은 엄청나게 다르다”며 “한국의 대중 외교가 훨씬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해 5월 문재인 정권이 출범했고, 이 정권의 대중 외교는 호텔방의 호언장담과 달리 시종 지리멸렬이었다.
지난 얘기를 꺼낸 건 차기 정부의 대중 외교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현 정권의 친중 저자세 노선을 그대로 계승하겠다던 여당 후보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으로 국내 반중 정서가 들끓자 ‘중국 어선 격침’ 운운하며 초강경 반중으로 돌변했다. 젊은 층 반중 정서에 호응해온 제1 야당 후보는 사드 배치부터 단언했다. 중국발 후폭풍이 어떨지, 그걸 감당할 전략적 계산이 섰는지는 솔직히 믿음이 안 간다. 두 후보를 보면서 ‘대중 외교도 포퓰리즘’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올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 3연임으로 장기 독재에 본격 돌입한다. 시 주석은 경제 양극화에 인내심이 바닥난 민심을 달래며 집권 연장의 초석을 다져왔다. 지난해엔 내수 시장에서 거대한 부를 축적한 자국 플랫폼 기업들을 때려잡고, ‘공동 부유’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중국 대기업들은 앞다퉈 기부 선언을 하며 납작 엎드렸다. 이 과정에서 중국 사회 기풍은 갈수록 퇴행하고 있다. 사회경제 모순에 대해 투표로 정권 책임을 묻는 정치적 분출구가 없는 중국 네티즌들은 중화주의에 도전하는 해외의 개인이건 기업이건 가리지 않고 ‘사이버 돌팔매’를 하고 있다. 반추도 성찰도 없는 그들의 행위는 중국 지식인들도 걱정할 지경이다.
반면 중국을 향해 ‘인권,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라’는 서구 사회의 요구는 더욱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공정’을 중시하는 우리 젊은 층의 중국을 보는 시각이 갈수록 차가워지고 있다. 산업면에선 한국은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핵심 파트너로 떠올랐다. 중국은 지난해 바이든 미 대통령 취임 이후 열린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공급망 강화를 위한 구체적 협력 내용이 긴 정상회담 발표문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내용이 없었던 미·일 정상회담은 글로벌 공급망이라는 관점에서 한국의 위상을 더 돋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중국으로선 생존을 위해서 한·미 공급망 동맹의 빈틈을 어떻게든 파고들려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중국을 상대로 한 한국의 외교를 어렵게 만드는 조건들이다.
중국에서 만났던 제3국 외교관들, 특히 대중 외교에서 우리보다 한 수 위로 평가받는 일본이나 싱가포르 외교관들의 조언은 한결같았다. ‘정권에 따라, 국내 여론에 따라, 중국의 압박에 따라 국익의 잣대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 ‘누가 지도자가 되든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국익의 우선순위가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원칙이 서면 중국에 대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외교가 가능하고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는 그럴 힘이 있다. 대중 포퓰리즘은 해법이 될 수 없다.
조선일보 이길성 기자
02월 18일 우크라 위기가 일깨운 동맹의 가치

김영목 前 코이카 이사장 前 駐이란 대사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위기는 세계 금융·에너지 시장을 뒤흔들고 있고, 우크라이나 국경에 배치된 대규모 러시아 군의 위협은 먼 나라 얘기로 치부하기엔 너무 가까운 일이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미국과 러시아가 직접 총부리를 겨누게 되면 제3차 대전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지난 1991년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하던 당시부터 러시아로부터의 완전한 독립과 서유럽의 일원이 되기를 갈망해 왔다. 2013년 유럽연합(EU) 가입을 거부한 당시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결국 2014년 국민 저항에 부닥쳐 망명해야 했고, 우크라이나는 정책적으로 EU 가입은 물론 나토(NATO) 가입을 헌법에 명시하는 등 자유세계로의 합류에 대해 그 어느 나라보다 강한 열망을 표시해 왔다.
지난 2013년 가을, 우크라이나 국민의 친서방 봉기를 보고 있던 러시아는 크리미아를 침공 합병했으며,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인정한 민스크 협약에도 불구하고 도네츠크 분리독립주의자들의 무력 봉기를 지원했고,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낸 이후에도 양국 사이에는 작은 전투와 소요가 계속돼 왔다.
이런 상황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대유럽, ‘서방’에 대한 호소를 더욱 간절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물론 러시아도 할 말은 많다. 유럽은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다. 독일은 천연가스의 70% 정도를 러시아에 의존한다. 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의 절반 가까이는 우크라이나를 통과하고 나머지는 발틱해의 노르드스트림 I, II 등을 통해 직접 독일로 향하게 돼 있다. EU와 나토의 주도국 중 하나인 독일의 러시아 가스 의존도는 나토의 단호한 대응을 어렵게 한다.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력침공과 전쟁을 반길 나라는 없다. 우크라이나는 물론, 동유럽의 여러 나라와 미·영·독·프 등도 전쟁은 피하고 싶어 한다. 심지어 러시아도 직접 침공할 경우 얻을 것과 잃을 것에 대한 셈법이 복잡하다.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발트 3국의 안전보장과 독립에 대한 국제적 호소는 경제·에너지 위기와는 차원이 다른 생존에 관한 호소이고 도덕적 호소다. 우리가 일제에 강점당하기 전 헤이그에 가서 망해 가던 약소국으로서 민족자결을 호소하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폴란드가 왜 나토 동맹과 미국과의 협력에 최우선을 두고 있는지도 명확해진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양자 간 조약에 의한 동맹국이 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사례다. 공산 진영의 침략을 받아 수백만 명의 사상자를 내고 나라가 잿더미가 된 대가로 이 동맹을 얻었다. 그리고 이 동맹 덕분에 한반도에서 평화를 유지하고, 북한은 물론 주변 강대국들의 고압적인 행동과 망상들을 억제해 왔다.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부국, 7대 수출국, 5대 해양대국, 에너지 수입국이 될 정도로 성장한 배경에는 한미동맹, 연합 방위 체제가 있었음을 새삼 되새겨본다.
정치·군사적 안보와 동시에 대외무역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에너지·경제안보가 국가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앞으로 나라를 이끌어 보겠다는 대선 후보들은 물론 모든 국민이 우크라이나 국민 울분과 고통을 생각해 봐야 할 상황이다.
문화일보
02월 18일 잘못하면 한국이 ‘제2 우크라’ 된다

이미숙 논설위원
푸틴 협박에 밀린 유럽 국가들
우크라이나 ‘핀란드化’도 거론
2차대전 직전 히틀러 연상시켜
文정부 5년 내내 중국에 굽실
여당 후보는 ‘사드 3不’도 계승
외골수 친북·친중 고리 끊어야
베이징동계올림픽 와중에 러시아가 국제 정세 교란의 핵심축으로 떠올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올림픽 개막식 때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이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최고조로 높였다. 나토에 가입하려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안보 우려부터 감안해야 한다는 게 내건 요구다. 그러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러시아의 우려 해소법으로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를 꺼냈다. 지난 7일 모스크바로 가는 기내에서 취재진에게 이런 발언을 한 뒤 파장이 일자 ‘핀란드화를 언급한 건 아니다’고 물러섰다. 그러나 푸틴이 “현실적인 안”이라고 한 것을 보면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를 골자로 한 논의가 오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에는 여전히 전운이 감돌지만 푸틴이 다시 외교 협상을 얘기하는 것을 보면 러시안룰렛 식의 벼랑 끝 전술이 통한 듯하다. 마크롱의 행보는 강대국들이 언제든 약한 나라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938년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에게 체코 일부를 넘기는 식으로 타협한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을 연상시킨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뮌헨:전쟁의 문턱에서’ 영화에는 체임벌린이 “독일은 더 이상 영토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히틀러 서약서를 흔들며 “평화가 왔다”고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체임벌린의 모습은 푸틴을 만난 마크롱과 오버랩 된다.
히틀러가 뮌헨회담 6개월 후 폴란드, 체코 침공에 나섰듯이, 마크롱의 제안대로 유럽연합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포기시키고 사실상 러시아의 영향권 국가로 간주한다 해도 푸틴의 야욕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협박이 통했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구소련 국가들을 상대로 또 싸움을 걸 게 분명하다. 미국의 패권 약화 속에 중·러의 도발이 두드러지는 요즘 세계가 2차 대전 발발 전야 1930년대 같다고 ‘정글의 귀환’에서 분석한 미 역사학자 로버트 케이건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푸틴이 무력시위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시도를 저지한 것과 같은 일이 아시아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육·해상 연합군사훈련까지 하며 반미 연대를 공고히 해온 만큼 시진핑이 푸틴의 방식을 그대로 한반도에 대입할지도 모른다. 이미 중국은 사드 배치 때 안보 우려를 앞세워 문재인 정부로부터 ‘사드 3불(不)’ 약속을 받아냈다. 이후 문 정부는 냉전 시대 핀란드가 소련에 거스르는 행동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단 한 번도 중국에 대들지 않았다.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가 코로나19 발발 직후 “중국인 입국을 막지 말라”고 주문하자 그대로 따랐고, 야당 후보의 발언을 비판하는 정치 개입 행태를 보여도 묵인했다. 미국이 안보상의 이유로 중국 통신장비기업 화웨이를 퇴출해도 문 정부는 기업 판단에 맡기는 형식으로 시장 진입을 허용했다. 중국발 요소수 대란 때는 항의조차 안 했다. 반면, 중국은 지난 5년 내내 사드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날로 점증하는 북한의 핵 위협과 탄도미사일 무력시위엔 눈감았다.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도발과 관련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논의까지 무력화시켰다.
북한의 핵·미사일을 두둔하면서 사드만 문제 삼는 것은 중국이 한국 편이 아니라 북한 편이라는 증거다. 이런데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사드 3불이 적정하다고 하는 것은 문 정부처럼 중국을 받들겠다는 선언이다. 3·9 대선을 통해 친중·친북 시대를 끝내지 않으면 중국은 3불보다 더한 요구를 할 것이다. 차기 정부가 쿼드 가입을 하려 할 때 시진핑은 푸틴이 침공 위협으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주저앉힌 것처럼 안보 우려를 앞세워 실력 행사에 나서거나, 러시아를 거간꾼으로 내세워 ‘한국의 핀란드화’를 획책할지도 모른다.
이제 문 정부의 외골수 친중 고리를 끊어야 한다. 한·중 관계 리셋의 첫 관문은 우리의 주적인 북한을 감싸며 자유민주주의 국제 질서를 훼손하는 중국에 노(No)라고 말하는 것이다. 중국의 경제보복 위협에 겁먹지 말고 한미동맹을 강화하면서 대중 공조의 범위와 한계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진통이 크겠지만, 그것이 문 정부 안보 적폐를 청산하고 대한민국을 정상화하는 길이다.
문화일보
02-18 중국몽, 악몽이 되는 순간…140년 전 임오군란의 교훈

김상운 문화부 차장
수년 전 중국 지린(吉林)성 류허(柳河)현 신흥무관학교 터를 여럿이 답사했을 때의 일이다. 한적한 시골 벌판에서 학교 흔적을 찾고 있는데, 낯선 중국인이 이쪽을 한참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다가와 이곳에 왜 왔는지, 무엇을 찾는지를 집요하게 캐물었다. 당시 일행 중 한 교수가 지안(集安) 광개토대왕릉비 답사 때 중국 공안이 계속 따라다니며 자신을 감시한 경험을 들려줬다. 신흥무관학교는 이회영 안창호 신채호 등이 1911년 설립한 항일투쟁 기지로, 3500명의 독립투사를 양성한 곳이다. 중국이 소수민족 동향에 민감하다고 하지만, 민간 학술조사까지 감시하는 행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국가와, 사회 전반에 노골적인 감시체제가 작동하는 국가 사이에는 거대한 심연(深淵)이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닐까.
제2차 세계대전의 변곡점이 된 1941년 나치의 소련 침공 당시 스탈린이 보낸 지원열차가 여전히 독일을 향하고 있었다. 독소 불가침 조약에 집착한 스탈린이 나치의 침공 가능성이 높다는 소련 정보당국의 보고를 끝까지 무시했기 때문이다. 미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는 저서 ‘외교(diplomacy·1994년)’에서 대독 유화책으로 대응한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와 스탈린 모두 히틀러의 본성과 의도를 오판해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그만큼 전환기 국제관계에서는 기존의 판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국가의 진의(眞意)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이는 동아시아 지역정세의 판도를 바꾸려는 중국에도 해당되는 얘기다.
최근 베이징 겨울올림픽에서 반중 정서를 계기로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논의가 다시 불붙고 있다. 중국의 부상이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에 위협이 될지에 대해선 학계에 상반된 시각이 존재한다. 예컨대 국제정치학자 데이비드 강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는 과거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조공질서가 안정적으로 운영됐음을 상기시키며, 부상하는 중국과 주변국의 협력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중국은 이미 19세기 청나라 때부터 동아시아에서 팽창주의로 돌변했다는 시각도 있다. 김기혁 전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UC데이비스) 교수는 지난달 국내에 번역 출간된 ‘동아시아 세계질서의 종막’에서 19세기 후반 청은 종주국으로서 의례적 권한만 행사할 뿐, 조공국 내정에 간여하지 않는 조공체제 전통을 어기고 팽창주의를 추구했다고 썼다. 아편전쟁 후 서구 열강에 침략당한 중국이 일본, 러시아에 맞서 조선을 확보하기 위해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조선 내정에 깊이 개입했다는 것. 이홍장(李鴻章)은 임오군란 직후 청군 파병과 대원군 납치를 주도하며 수도 베이징과 가까운 한반도는 자국 안보에서 ‘핵심 완충국’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로부터 68년 후 6·25전쟁 때 주변 참모들의 반대에도 마오쩌둥(毛澤東)이 참전을 결정한 이유와 정확히 같다.
국가안보를 위한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경제보복으로 응수하는 중국의 행태는 주변국에 신뢰는커녕 불안만 안겨줄 뿐이다. 중국몽의 이면에 도사린 진의에 경각심을 갖고, 끊임없이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김상운 문화부 차장 sukim@donga.com
02.23 美 네이비실 ‘참수작전’ 훈련에…北 “임기 말에 살인귀 무리 끌어들여”

▲작년말 미 해군 특수전부대 네이비실의 방한 훈련 모습을 주한미군사령부가 지난 7일 공개했다/주한미군사령부 페이스북
북한이 유사시 ‘대북 참수작전’을 수행하는 미 해군 특수전부대(네이비실)의 방한(訪韓) 극비 훈련에 “임기 말에 살인귀 무리를 끌어들였다”며 반발했다. 작년 말 국내에서 비공개로 실시된 네이비실의 훈련을 거론한 것으로 풀이된다. 훈련에 참가한 네이비실 부대는 2011년 5월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에 투입되는 등 유사시 ‘대북 참수작전’을 수행하는 핵심 부대로 알려졌다.
북한 선전 매체 메아리는 23일 “지난해 11월부터 12월말 사이에 남조선에서는 미 해군 특수부대의 혹한기 해상 및 지상 영역 준비 태세 훈련이라는 것이 극비밀리에 강행됐다”며 “여기에 남조선 해군의 특수부대가 머리를 들이민 사실이 얼마 전에 사진과 함께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고 밝혔다.
메아리는 “그 누구를 놀래려는 심산 밑에 공개한 이 훈련에서는 유사시 우리 공화국의 내륙 깊이 침투한 미국과 남조선 해군의 특수부대가 주요 인물들과 시설들을 사살, 파괴하거나 비행대의 폭격을 정밀 유도하는 임무 수행을 숙달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훈련에 참가한 미 해군 특수부대의 사명과 구성, 광고하는 전과 자료만 보아도 이 훈련의 위험성과 무모함을 잘 알 수 있다”며 “이러한 살인귀 무리를 조선반도에 끌어들여 전쟁 연습을 벌려놓고 거기에 머리를 들이민 남조선 군부의 처사야말로 끝까지 우리와 맞서보려는 흉심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임기가 끝나가는 마지막까지도 외세와 야합해 위험천만한 침략 전쟁 연습에 몰두하며 동족 대결을 고취하는 것은 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격화시키는 극히 무분별한 군사적 광기”라며 우리정부를 비난했다.
앞서 주한 미 특수전 사령부는 지난 7일 페이스북을 통해 “2021년 11월과 12월에 미 해군 특수전부대(네이비실) 대원들과 함께 혹한기, 해상 및 지상 영역 준비태세 훈련의 기회를 얻었다”며 관련 사진 2장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해변에서 부대원들이 육지로 전개하는 모습, 눈 쌓인 산악지대에서 부대원들이 흰색 위장복을 걸치고 경계 중인 모습 등이 담겼다.
부대원들은 북한과 최대한 흡사한 지형에서 후방 침투 후 핵심시설 파괴 또는 수뇌부 제거 임무를 숙달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조선일보 김명성 기자
02월 23일 안보 ‘최악 상황’ 대비 않은 우크라 비극과 文 평화 타령
러시아 군대가 22일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을 침공함으로써 우크라이나 사태는 친러 반군 지역에서의 국지전이냐, 우크라이나 전역의 전면전이냐, 서방까지 가세한 국제전이냐의 갈림길에 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침공 명령을 내리면서 우크라이나가 원래 러시아 속령(屬領)인데 지금 ‘미국의 식민지’가 됐다고 규정함으로써 그 목표를 분명히 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최대한의 경제 제재에 나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 은행들의 미국 내 거래를 전면 금지했고, 독일은 노르트스트림2 천연가스관 중단을 결정했다. 일본 역시 러시아 채권의 일본 내 유통 금지 등의 조치를 취했다.
우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주권국가에 대한 불법적인 전쟁 행위다. 전 세계가 규탄하고 함께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우크라이나의 책임도 크다. 푸틴이 2014년 자국 영토인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병합했을 때 제대로 싸우지도 못했다. 그 후 동부 지역에서 분리 독립 움직임이 가시화했지만, 효율적으로 대응하지도 못했다. 정치권과 지도층은 부패와 분열을 거듭했고, 핵탄두 폐기를 계기로 작성된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를 믿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지 않았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서방 국가들 책임이 없지 않지만, 스스로 안보 의지가 없으면 누구도 지켜줄 수 없음이 재확인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외치며 끝없이 북한의 도발에 절절매고, 중국 등에도 굴종해왔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 및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 연석회의를 주재했지만, 러시아의 침공을 직접 규탄하지 않고 “미국과 서방국가들은 (러시아를) 규탄하며 제재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며 남 얘기하듯 했다. 전쟁이 시작됐는데도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면서 “우크라이나 정세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노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만 했다.
북한과 중국은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유심히 지켜볼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이미 한국이 중국의 일부였다고 발언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의 불구경 행태는 동맹의 불신을 살 것이고, 동맹의 강도(强度)가 약해지면 시진핑 역시 푸틴처럼 한국을 몰아붙일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2월 24일 對러 제재戰 시작, 美는 ‘동맹 리스트’에서 文정부 뺐다
미국은 22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하고, 동맹·파트너 국가들과 연대해 강력 대응에 돌입했다. 침략국 러시아에 맞서 연합국을 형성한 것이다. 일단 군사 개입보다는 경제 제재에 초점을 맞췄지만, 일촉즉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경제 세계대전’ 양상을 띠면서 동맹국이냐 아니냐가 구분되기 시작한 점이다.
미 행정부 당국자는 전화 브리핑에서 대러 제재 논의와 관련해 “유럽연합과 영국, 캐나다, 일본, 호주 등과 협의했다”면서 국가명을 열거했다. 그런데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한국은 빠졌다. 문재인 정부는 24일 오전까지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다. 미 국방부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한반도 영향 질문에 “한국에 대한 약속에 변화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도 우크라이나 지지 성명을 공개적으로 내놓은 것에 주목한다”고 덧붙였다. 외교부 대변인 명의로 지난 22일 발표된 ‘우크라이나의 주권 영토 보전을 일관되게 지지해 왔다’는 것인데, 무력 침공이 현실화한 이후엔 없다는 뉘앙스가 숨어 있다.
청와대 측은 외교 채널에서 협의 중인 사안이라고 밝힌다. 지난 12일 발표된 한·미·일 외교장관 공동성명에는 ‘우크라이나 주권과 영토 보전 지지 및 러시아의 긴장 고조 억지를 위한 협력’이 명시됐다. 지금은 전쟁 상황이다. 적과 우군이 확실하게 나뉜다.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단절하면 엄청난 피해를 감내해야 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힘을 합치는 것은, 러시아 같은 행위를 용납하면 국제질서와 세계평화가 깨지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들이 6·25전쟁 때 도와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도 핵·인권 등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런데도 문 정부는 자유민주 동맹에서 이탈하려 한다. 그나마 임기가 2개월 남짓 남았다는 사실이 다행이다.
문화일보 사설
02.27 “과거 침략당해 원조 받아놓고…” 韓 러시아 제재 지연에 쏟아진 비판
“미 동맹국 명단에서 눈에 띌 정도로 빠진 것 현명하지 않아”
“소심하고 미온적, 부끄러운 일”
“한국 고개만 숙이고 자체 경제적 이익만 집중”
바이든 대통령도 “장기적으로 한국도 (제재) 동참”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 가운데 유일하게 대러 제재 동참을 유보하다가 지난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기 직전에야 제재 동참 의사를 밝혔다. 그러면서도 한국은 독자 제재엔 선을 그었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 등 등 국제사회가 추후 부과할 경제 제재를 이행하는 것을 ‘제재 동참’이라고 한 것이다. 한국 정부의 대처를 두고 미 전직 관리들은 26일(현지 시각) 미국의소리(VOA) 방송 인터뷰에서 ‘소심’ ‘미온적’ 등의 표현을 쓰면서 비판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가운데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26일 서울 마포구 성 니콜라스 정교회 성당에서 공동 기도회에 참석해 기도하고 있다. /뉴시스
미 국무부 핵(核)확산금지담당 부차관보를 지낸 마크 패츠패트릭은 이날 “한국의 소심하고 미온적(timid, tepid)인 접근은 솔직히 부끄러운 일이고 또 어리석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 명단에서 눈에 띌 정도로 빠진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라며 “이는 수치스럽기도(shameful) 하다. 왜냐하면 한국은 (북한 등) 과거 침략의 피해자로서 과거 대대적인 원조를 받았고 그런 일이 또다시 벌어지면 그런 도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독자 제재 여부와 관련,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전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리가 독자적으로 뭘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라며 “미국과 유럽이 제재를 하면 우리도 연결돼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동참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피츠패트릭 전 부차관보는 “한국은 러시아보다 더 큰 경제 규모를 갖추고 있다. 한국은 이런 위기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며 “그런데도 가만히 앉아서 다자간 조치만을 취하겠다고 말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국제사회의) 다자적 제재는 이미 시행되고 있다. 미국의 다른 모든 동맹들 일부는 독자적 조치를 취했다”며 “한국도 나서서 똑같이 해야 한다”고 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범한 지 이틀째인 25일(현지 시각) 폴란드 프셰미실 중앙역에 설치된 임시수용소에서 한 우크라이나 피란민이 피해 소식에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스캇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한·미정책국장은 “한국은 진정으로 물러서지 않아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고 했다.
한국 외교부는 지난 24일 오전 출입기자단에 발송한 문자메시지에서 “러시아가 어떠한 형태로든 전면전을 감행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대러 수출 통제 등 제재에 동참할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었다.
정부는 이 전날까지만 해도 러시아와의 관계를 들어 제재 동참에 소극적이었는데, 하루만에 제재 동참으로 입장을 급히 선회한 것이다. 이를 두고 “미 정부가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을 공개 경고하는 등 군사행동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이 움직임에 주저하다가 등 떠밀리듯 뒤늦게 발표하는 것은 외교적 실수”란 비판이 나왔었다.
스나이더 국장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과거 한국은 고개만 숙이고 자체 경제적 이익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라는 것”이라며 “이번 한국의 조치는 한국의 성장통과 더불어 현재 한국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중요성에 부응해야 하는 일종의 도전을 드러내고 있다”고도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이날 공개된 유명 유튜버 브라이언 타일러 코헨과의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내 목표는 모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나토를 분열시킬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러시아는 심각한 대가를 치를 것이며, 장기적으로 유럽 뿐 아니라 인도·태평양 지역의 일본과 한국, 호주에서도 그러하다”며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이 함께한다면, 혼란이 좀 더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대러 제재를 통해 한국 등 동맹국들이 뭉쳐야 한다는 주장으로 해석됐다.
조선일보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02.28 “우크라 대통령은 조롱하고, 러 제재엔 미온적” 비판받는 대한민국

▲우크라이나에서 2015년 방송된 공익광고의 한 장면. '우리도 한국처럼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유튜브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와 여당 정치인들의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 침공을 자초했다는 식의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다. 이 후보는 TV 토론에서 “6개월 초보 정치인이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돼서, 나토 가입을 공언하고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충돌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공동 선대위원장인 박용진 의원은 “잠깐 인기 얻어 대통령이 된 코미디언 출신”이라고 했고,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대통령 잘못 뽑는 바람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거주 네티즌이 영미권 커뮤니티에 “한국의 집권당 대선 후보가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를 자극해서 전쟁을 촉발시켰다’고 말했다”고 소개하자, 각국 네티즌들은 “일본의 한국 침략도 한국 탓이냐”고 이 후보 발언을 문제 삼았다.
MBC 유튜브 채널 엠빅은 “우크라이나 대통령, 위기의 리더십”이라는 영상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정치 경험이 전무한 코미디언 출신”이라며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아마추어 같은 그의 정치 행보도 비판받고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우크라이나 출신 모델은 “젤렌스키를 지지하고 투표한 우크라이나 국민 72%는 바보라고 생각하느냐”며 MBC를 “오만한 언론”이라고 했다.
미 전문가들은 과거 침략의 피해자로서 대대적인 원조를 받았던 한국이 러시아 제재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 가운데 유일하게 대러 제재를 유보했다가 러시아의 전면 침공이 임박하자 동참 의사를 밝혔고, 독자 제재엔 선을 그었다. 미 국무부 핵 확산 금지 담당 부차관보를 지낸 마크 패츠패트릭은 “한국의 소심하고 미온적인 접근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한국은 과거 침략의 대대적인 피해자로서 과거 대대적인 원조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 한·미 정책국장도 “한국은 진정으로 물러서지 않아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고 말했다.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침공에 분노하면서, 목숨을 걸고 저항에 나선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내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의 피신 권유를 뿌리치고 수도 키예프에 남아 국가적 항전을 지휘하는 모습도 그의 지도력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한국의 집권 세력이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야당 대선 후보를 비판하려는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이 국제사회에 어떻게 비칠 것인가. 북한의 침공을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극복해낸 한국이 우크라이나가 처한 똑같은 위협을 외면하는 태도는 또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 우크라이나 사태 속에서 대한민국의 국격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조선일보 사설
02.28 “러시아 푸틴과 중국 시진핑, 독재하기에 편리한 세상 원해”
[김진명이 만난 사람]
우크라이나 침공 앞서
‘푸틴 독트린’ 분석한 앤절라 스텐트 교수
“자유로운 국제질서 폐기 추구
新얄타체제 등장할 듯”
앤절라 스텐트(75) 미 조지타운대 명예교수는 요즘 미 워싱턴 DC에서 가장 바쁜 러시아 전문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후해 그를 찾는 곳이 많아 5번이 넘는 일정 변경 끝에 어렵게 만남이 성사됐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직후인 24일(현지 시각) 화상으로 스텐트 교수를 만났다.

▲워싱턴 최고의 러시아 전문가 중 한 사람인 앤절라 스텐트 조지타운대 명예교수는“러시아와 중국은 독재 정치를 하기에 안전한 세계를 만들고 싶어 할 것”이라며“한국에는 미국과의 동맹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브루킹스 연구소
그는 지난 1월 말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글 ‘푸틴 독트린’에서 “푸틴의 궁극적 목적은 유럽연합, 일본과 미국이 촉진해 온 냉전 이후의 자유롭고 규범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폐기하고 러시아가 통제하기 쉬운 체제로 바꾸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새 체제는 19세기 강대국 간 협조 체제와 비슷할 수 있고 러시아, 미국, 중국이 세계를 3극 영향권으로 분할하는 얄타 체제의 새로운 재현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유럽 문제에 밝은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프레더릭 켐프 회장은 이 글의 필독을 권하며 “스텐트 교수는 러시아에 대해 최고의 통찰력을 지닌 학자 중 한 명”이라고 했다.
문제는 우크라이나의 통제권
- 미국과 유럽연합이 러시아에 가혹한 제재를 경고했지만 전쟁을 막지 못했다. 미국이 왜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제재의 의미는 러시아가 벌인 일을 처벌하는 데 있다. 제재가 없다면 유럽에서 중대한 전쟁을 일으키고도 아무 후과 없이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미·러 두 핵 보유국이 직접 충돌해서는 안 된다. 미군이 우크라이나에 가서 러시아군과 싸우면 핵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 전쟁 책임은 분명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있지만,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려 해서 러시아를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떻게 보나?
“나토 확장은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진짜 문제는 푸틴이 구소련 국가들에 대한 통제권을 회복해서 소련 붕괴의 결과를 되돌리려고 한다는 데 있다. 처음에 푸틴은 나토 확장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고 (발트해 3국 등이 나토에 가입한) 2004년에도 그랬다. 이것은 그가 나중에 추가한 (우크라이나 침공의) 핑계일 뿐이다. 진정한 문제는 구소련 영토에 대한 통제권 회복이고 더 구체적으로는 우크라이나의 통제권이다.”
- 침공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더 있었을까?
“나토 동맹국들이 사전에 방어를 강화한다든지 뭔가 더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냉전 이후 유럽에서 미군이 많이 철수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 합병 이후 일부만 다시 유럽에 보냈다. 우리가 뭔가 실수를 했다면, 러시아가 소련 붕괴 이후 정착된 질서를 받아들이리라 가정했던 것 같다. 러시아가 그러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이해하는 데 너무 오래 걸렸다. 푸틴은 15년 전 (2007년) 뮌헨 안보 회의에서 미국이 패권 국가이며 러시아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때 사실 지금 위협하는 모든 일을 계획했다. 푸틴이 얼마나 굳게 결심했는지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 푸틴이 “우크라이나 점령을 계획하고 있지 않다”며 “비무장화, 비나치화하겠다”고 했는데 무슨 뜻인가?
“비나치화란 우크라이나가 나치에 지배되고 있다는 뜻인데 언어도단이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유태계다. 비무장화란 우크라이나군의 제거를 뜻한다. 푸틴이 정말 원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의 정부 교체고, 그것이 아마도 우리가 보게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규모 군대 동원이 필요한 우크라이나 장기 점령은 러시아에 너무 값비싼 일일 것이다. 군사시설을 폭격해 우크라이나군을 불능화하고 나토나 유럽연합 가입에 관심이 없는 친러 정부를 집권시킬 것이다.”

▲앤절라 스텐트 조지타운대 명예교수가 지난 2019년 2월 출간한 저서‘푸틴의 세계’표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오른쪽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보인다. /아마존
푸틴의 야심, 어디까지인지 몰라
-러시아군이 폴란드에 접한 우크라이나 서부 국경까지 갈까?
“푸틴은 항상 역사적으로 러시아에 속한 우크라이나는 동부 지역이라고 말해왔다. 서부 지역은 과거 폴란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일부였다. 그래서 러시아가 얼마나 깊이 들어갈지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 키예프 주변에는 러시아군을 주둔시킬 것 같다.”
- 서부 지역을 점령하지 않고 친러 정부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면 통제 수단이 필요하지 않은가.
“푸틴이 우크라이나 분할을 원하는 것은 분명하다. 우크라이나 대부분을 차지해 러시아와 매우 가깝게 연계시키려고 한다. 그러면 서부에 작게 조각난 나라가 남을 텐데, 푸틴은 그 부분이 폴란드에 합병돼야 한다고 말한 적 있다. 그렇게 되리란 뜻은 아니다. 푸틴이 서부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분명치 않다.”
유럽에서 더 큰 충돌 가능
- 푸틴은 2000년 집권 후 22년간 러시아군을 현대화했고 주변 국가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푸틴이 지닌 야심의 정점일까. 뭔가 더 있을까.
“그것도 모호하다. 러시아가 작년 12월에 나토에 제시한 조약 초안을 보면 나토군이 나토 확장 전 1997년의 태세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바르샤바 조약이 폐기된 뒤 중부 유럽과 동유럽이 고아가 됐다고 말한 적 있다. 즉 ‘마더 러시아’를 잃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푸틴이 구소련 국가를 넘어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중·동부 유럽에도 일정한 영향력을 회복하려고 한다는 것을 뜻한다.
문제는 이 국가들이 나토 회원국이란 것이다. 지금껏 러시아는 그 점을 이해하고 나토와 충돌할 뜻은 보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중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폴란드나 발트해 국가들에 영향을 주는 일이 있다면 행동할 것이라고 바이든은 말했다. 그러면 나토와 러시아 충돌의 가능성이 생긴다. 물론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다만 우리가 푸틴의 야심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서쪽까지 손을 뻗칠지 모르는데 중·동부 유럽도 포함한다는 힌트가 있다.”
- 유럽에서 더 대규모 무력 충돌도 있을 수 있나?
“가능하다고 본다.”
시진핑도 푸틴과 비슷
- ‘푸틴 독트린’을 읽으며 푸틴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세계관·역사관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푸틴은 소련의 영광 복원을, 시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추구한다. 시도 푸틴처럼 작은 나라들은 완전한 주권을 행사할 수 없고, 인근 강대국 뜻에 복종해야 한다고 믿는 것 같은데 어떻게 보나?
“그렇다. 중국도 작은 나라들의 역할에 대해 (러시아와) 비슷한 시각을 가진 것 같다. 차이라면 푸틴이 더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이다. 중국이 현 사태(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다. 최근 열린 뮌헨 안보 회의에서 왕이 중국 외교장관이 ‘모든 국가가 영토와 주권을 보전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말하기는 했다. 중국은 지금 서구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크라이나와 대만에 대한 (러·중의) 조율된 행동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은 대만에 대해 그들만의 시간표를 갖고 있다.”
- 푸틴은 2008년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는 진정한 국가가 아니다”라고 말했고, 시진핑은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했다. 중국도 러시아처럼 인근 지역에서 특권적 영향권을 형성하려고 할까?
“그렇다. 나는 ‘푸틴 독트린’에서 그 한 형태로 삼각 얄타 체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미국, 러시아에 중국의 영향권을 포함하는 것이다. 중국의 장기 목표는 모르지만, 누가 알겠나. 중국은 경제적 부상에 따라 아주 천천히, 체계적으로 외교 정책 전략을 설계해 왔다. 그것(특권적 영향권 형성)이 장기 목표 중 하나일 수 있다. 분명히 러시아와 중국은 독재 정치를 하기에 편리한 세계를 만들고 싶어 할 것이다. 그들은 미국과 미국의 유럽, 아시아 동맹들이 믿는 국제 질서를 폐기하고 싶어 한다. 다만 중국이 얼마나 장기적인 시간표를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한국, 美 중심 연합 더 참여해야
-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 중심으로 이뤄지는 유럽연합, 캐나다, 호주, 일본 등의 연대에 더 참여해야 하나?
“모든 예측 불가능성을 고려할 때 그러는 편이 한국을 위해서 좋다고 생각한다. 한국에는 미국과의 동맹이 중요하다. 역내의 다른 파트너들도 중요하다. 그런 것들이 분명 강화해야 할 것이다.”
- 푸틴이 핵을 포기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 북한이나 이란에 안 좋은 교훈을 줬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러시아가 북한의 비핵화를 원한 적이 있다면 그렇게 침공하지 말았어야 한다.”
☞앤절라 스텐트
1947년 런던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과 현대사를 전공한 뒤 런던정경대에서 국제관계학 석사, 하버드대에서 소련학 석·박사를 받았다. 지난 2004~2006년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의 러시아·유라시아 담당 국가정보관을 지냈다. 75세인 현재도 조지타운대 유라시아·러시아·동유럽학 센터의 선임 고문이자 브루킹스 연구소 비상주 선임 연구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조선일보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02월 28일 文 ‘對러 동맹 32國’서 배제, 李는 우크라 조롱…기막히다
러시아 침공에 처절하게 맞서는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소련제 탱크와 중공군 지원을 받는 북한군에 맨손으로 저항하다시피 했던 6·25전쟁 초기의 대한민국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미국 등 자유 진영 국가들은 신속하게 초강력 대(對)러시아 제재를 단행하고,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등 침략군 응징에 나섰다. 특히, 주요 7개국(G7)은 27일 러시아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배제하기로 합의했고, 하루 앞서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EU) 등도 같은 결정을 했다. SWIFT 배제는 ‘금융 핵폭탄’으로 불릴 정도로 러시아를 세계 금융에서 고립시킬 수 있다. 러시아 거부권으로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정장애에 빠짐에 따라 유엔은 28일 긴급 특별총회를 열어 규탄 결의안을 채택할 예정이다.
이와 별개로 미국 상무부는 24일 대러 수출통제 조치를 전격 발표했다. 그런데 ‘예외 인정 32개국’ 명단에 한국은 빠졌다. 미국은 대러 제재에 적극적인 영·일·호주·EU 등 32개국은 동맹으로 예우했지만, 대러 독자 제재에 선을 그은 문재인 정부는 배제했다. 이에 따라 대러 수출 때 일일이 미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지경이 됐다.
한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 25일 TV토론에서 “6개월 초보 정치인이 대통령이 돼서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충돌했다”고 했다. 러시아의 침공 1차 책임이 우크라이나에 있다는 황당한 취지여서 국내는 물론, 한국 대선을 지켜보는 세계 외교가를 경악시켰다. 뒤늦게 “윤석열 후보의 불안한 외교안보관을 지적한 것”이라고 그 책임을 엉뚱하게 야당 후보에게 돌린 셈이다.
그러지 않아도 현 정권의 친북·친중·친러 행태가 심각한 상황이다. 미국의 관심이 러시아에 쏠린 틈을 타서 북한 김정은은 27일 중거리탄도미사일 도발을 하고 ‘정찰위성 개발용 시험’이라고 당당히 발표했다. 이런데도 청와대는 ‘유감’뿐이다. 문 대통령이야 두 달 남짓 지나면 퇴임하지만, 여당 후보 인식까지 이러니 문제가 심각하다.
문화일보 사설
02월 28일 푸틴·김정은 행태와 강력 제재 당위
김영호 성신여대 정외과 교수 국제정치학
대한민국은 국제정치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나라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왜곡된 ‘러시아판 역사공정’을 내세워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서 탈냉전 이후 세계질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3월 9일 치러질 대선의 후보들은 확고한 국가관과 안보관을 갖고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난 25일 열린 대선 후보 TV토론은 아쉬움이 컸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우크라이나 초보 정치인에게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말을 했다가 거센 비판이 일자 이를 ‘표현력 부족’이라고 사과하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국제적 망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무력에 굴복하게 될 경우 탈냉전 이후 유럽 안보 질서가 크게 흔들릴 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 안보 구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조약(條約)이 국가안보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에서 주변 강대국들은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안전을 보장해 주기로 철석같이 약속했다. 러시아가 이 약속을 어기고 2014년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했을 때, 국제사회는 제대로 대응도 못 했다. 또, 1938년 뮌헨조약은 아돌프 히틀러의 약속을 믿고 평화가 찾아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것은 완전한 착각이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도 이번 TV토론에서 ‘종전선언’을 둘러싼 논란이 완전히 정리되지 못한 것은 큰 문제다.
북한의 핵무기가 단 한 발이라도 한국에 떨어지면 우리 국민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보게 된다. 그러므로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한 물샐틈없는 억지 체제 구축이 중요하다. 한국이 자체 개발한 L-SAM을 하루빨리 실전 배치하는 것은 중요하다. 동시에 미국이 자국의 예산으로 한국과 주한미군을 보호하기 위해 사드(THAAD)를 추가 배치한다고 하면 그것도 다층 방어망을 구축하기 위해 환영해야 할 일이다. 일부 후보들이 중국 눈치를 보면서 사드 배치에 반대 주장을 펴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예방전쟁(preventive war)과 달리 선제타격(pre-emptive strike)은 북한의 공격이 임박했을 때 북한 핵과 미사일을 선제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발사 왼편 전략(left of launch)’으로 선제타격을 전략으로 채택하고 있다. 국가 생존을 위해 필요한 선제타격론을 두고 ‘그럼 전쟁하자는 것인가’라는 식으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은 그릇된 ‘평화 지상주의적 안보 포퓰리즘’이다. 북한은 올해 들어 8번에 걸쳐 실전 배치된 미사일을 다양한 장소에서 시험발사하는 ‘검수 사격’을 강행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제타격 전략뿐만 아니라, 그것보다 더욱 강력한 수단만이 북한의 도발을 억제할 수 있다.
최근 미국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가 조사한 여론조사를 보면,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한국이 독자 핵 개발을 해야 한다는 응답이 71%다. 이는 2021년 통일연구원의 조사와 2020년 아산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와 일치한다. 유권자들은, 대선 후보들이 국제정치의 큰 흐름을 보고 국가안보의 구체적 비전을 제시해 주기를 기대한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