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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균 칼럼(조선일보) 2021/ 01.14 트럼프 광신도의 자폭 엔딩은 ‘문빠’의 미래다 - 12.30 이준석 정치, ‘보약’대신 ‘독약’으로 기억될 건가

상림은내고향 2021. 12. 27. 14:41

김창균 칼럼 조선일보  논설주간 2021

01.14  트럼프 광신도의 자폭 엔딩은 ‘문빠’의 미래다

트럼프 지지자 선거 부정 妄想

親文은 검찰 개혁 한다는 억지

“대통령 지킨다” 쌍둥이 무리수

집권 세력 ‘빠’ 광신도에 포획돼

트·공화당은 폭동 대가 치러

文·민주당도 같은 길 갈 건가

 

트럼프 미 대통령은 “대선 승리를 도둑맞았다”고 한다. 11·12월 두 달 동안 트럼프 트위터엔 “조작된(rigged)”이라는 단어가 48번 등장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법무부와 국토안보부조차 “의미 있는 부정 사례는 없었다”고 밝혔다. 트럼프 진영은 선거 부정 제소를 62번 했는데 법원은 61번 기각했다. 보수 대 진보 분포가 6대 3인 연방 대법원도 마찬가지였다. 단 한 차례 인용은 사소한 절차 문제다.

 

공화당 의원 일부는 트럼프 편에 섰다. 승부처 펜실베이니아 또는 애리조나 개표 결과 승인에 반대한 의원이 상원 8명(정원 100명), 하원 139명(정원 435명) 등 모두 147명이었다. 이들은 정말 선거 부정이 있었다고 믿었을까. 벤 새스(공화당·네브라스카) 상원의원은 페이스북에 “사석에서 선거 부정을 의심하는 공화당 의원을 본 적이 없다. 단 한 명도. 오로지 관심사는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칠까였다”고 썼다.

 

▲지난6일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미대선결과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트럼프지지자들이 저지하는 경찰의 봉쇄를 뚫고 의사당으로 들어가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의 골프 파트너였던 린지 그레이엄(공화당·사우스캐롤로이나) 상원의원은 대선 결과를 재검하자는 안건에 대해 “나는 빠지겠다. 할 만큼 충분히 했다(Count me out. Enough is enough)”며 반대했다. “바이든이 지길 바랐지만 그는 이겼다. 그는 적법하게 선출된 차기 대통령”이라고 했다. 그레이엄 의원은 트럼프 지지자들로부터 “배신자, 인간쓰레기, 세상 끝까지 널 쫓아갈 거야”라는 욕설과 저주를 들었다.

 

미국에 ‘부정 선거 망상(妄想)’이 있다면 대한민국엔 ‘검찰 개혁 억지’가 있다. 추미애 법무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추진에 고검장 6명 전원과 지방검찰청, 지청 59곳이 빠짐없이 부당하다는 성명을 냈다. 인사권자에게 내 목을 치라고 맞선 것이다. 추 장관이 구성한 법무부 감찰위원회는 “징계 청구, 직무 정지, 수사 의뢰가 모두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추 장관이 고른 2인자 법무차관은 사표를 던졌다. 법원은 윤 총장에 대한 직무 정지와 징계 자체를 두 차례에 걸쳐 기각했다.

 

대통령이 조국, 추미애 두 무법(無法) 장관을 앞세운 ‘검찰 개혁’은 윤석열 검찰이 대통령을 수사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었다. 징계 찍어내기가 불발되자 ‘윤석열 탄핵’ 카드가 튀어나왔다. 문빠들은 여당 의원들에게 ‘탄핵에 동참하라’는 문자를 수천 통 돌렸다. 검찰 수사권을 박탈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친문 단체 회원들은 여당 의원들에게 “검찰 수사권 폐지 법안을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에 통과시키겠다”는 서약서를 요구했다. 검찰 수사 대상 의원들부터 서명을 마친 서약서를 소셜미디어에 공개했다.

 

검찰 개혁에 반기를 들었다가 징계당하고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은 문빠들로부터 “배신자, 쓰레기”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여당 의원들이 아무 문제에나 검찰 개혁을 중얼거리는 것을 보면 눈먼 붕어가 생각난다”고 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윤 총장 혐의가 충격적”이라고 했다. 꼼꼼하고 치밀한 이 대표가 정직 2개월마저 기각당한 부실 징계안에 정말 동의했을까. 정세균 총리는 “추 장관이 검찰 개혁을 잘하고 있다”고 했다. 합리적이고 균형 감각이 뛰어난 정 총리가 광란의 널뛰기에 정말 공감했을까. 차기 주자를 노리는 두 사람은 당심을 쥐고 흔드는 친문(親文)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느꼈을 것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합법적으로 대선 결과를 뒤집는 길이 막히자 의사당에 난입해 바이든 당선 승인을 막으려 했다. 선거에 졌을 때 폭력으로 정권을 지키는 것은 아프리카 수준의 쿠데타다. 친문은 검찰이 대통령을 수사하지 못하게 하려고 임기제 검찰총장을 날리고, 새 수사 기관을 만들고, 검찰의 수사권을 뺏어야 한다고 아우성친다. 대통령이 법 위에서 사법 당국의 목을 눌러 수사를 막는 건 유신이나 신군부 시절 얘기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부정 선거 시비’와 문빠의 ‘검찰 개혁 타령’은 시차를 두고 대위를 이루는 변주곡이다. 공통 테마는 ‘대통령 지키기’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먼저 자폭 엔딩을 맞았다. 폭동 주모자들이 전국에서 검거되고 있다. 트럼프는 또 한 차례 탄핵에 몰렸고, 기업들은 트럼프 쿠데타에 동조한 공화당 의원들에게 후원을 끊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도 문빠들의 광기에 진절머리를 치고 있다. 4월 총선 직후 80%에 육박하던 대통령 지지율은 8개월 만에 반 토막 났다. 문빠들에게도 트럼프 광신도와 엇비슷한 ‘새드 엔딩’이 기다릴 것이다. 대통령과 집권당이 그들과 끝까지 운명을 함께할지가 궁금하다

 

01.28  헷갈리는 신호 보내고 탈 나면 부하 책임, 文의 갑질

경청 후 답 안 주는’ 文 소통이

사면혼선·조국·추윤사태 원인

국산 백신·치료제 독려해놓고

“글로벌 백신 왜 확보 안 했나”

국무회의 의결 文 기록관도 질책

책임 떠미는 최악 상사 아닌가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건의는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승부수였다. 대통령이 받아들여 사면이 성사되면 지지율 하락세를 반전시키면서 차기 주자로서 재도약하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회견에서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퇴짜를 놨다. 이 대표는 독단적으로 사면론을 띄웠을까. 이 대표 쪽은 대통령과 사전 교감이 있었다는데 청와대는 아니란다. 진실은 어중간한 회색 지대에 있을 것이다. 이 대표가 사면 얘기를 꺼내자 대통령은 ‘경청했지만 확답을 주지 않았다’는 설명이 가장 그럴듯해 보인다.

 

대통령은 “당사자 반성 없는 사면은 국민이 용납하지 않고 저 역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궁금하다. 이 대표 건의 때 이런 입장을 미리 밝혔으면 됐을 텐데 왜 듣기만 했을까. 만일 사면 애드벌룬에 국민 반응이 긍정적이었어도 대통령이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했을까. 이 대표는 대통령 의중을 잘못 읽고 헛발질을 한 것처럼 되면서 또 스타일을 구겨버렸다.

 

조국 사태부터 추·윤 갈등까지 이어진 1년 반의 난장판도 ‘듣고 가타부타 답을 않는’ 문재인표 소통에서 비롯됐다.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갓 점지한 법무장관 후보자에 대한 압수 수색을 하면서 청와대에 사전 통보도 안 했을 리는 없다. 대통령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면 천하의 윤석열이라도 브레이크를 밟았을 것이다. 대통령은 검찰의 법 집행을 막지 않았다. 대신 집권당이 ‘윤석열 난타’에 나섰다.

 

추미애 법무장관의 윤석열 징계가 법원에서 두 차례나 기각되자 권력 주변에선 “추 장관 준비가 너무 허술했다”는 뒷말이 나왔다. 법무장관이 임기제 검찰총장을 찍어내는 ‘거사’를 도모하면서 청와대와 사전 논의를 안 했겠나. 대통령도 추 장관 계획대로 윤 총장 목이 날아가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일이 헝클어지자 대통령은 “인사권자로서 사과한다”고 했다. 자신이 임명한 법무장관, 검찰총장 두 사람이 벌인 일 때문에 국민에게 송구하다는 것이다. 자신은 몰랐던 일이라는 취지다.

 

작년 말 우리나라만 코로나 백신 확보가 늦었다는 비판이 빗발쳤다. 대통령은 “그동안 백신 확보를 여러 차례 지시했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아랫사람들을 질책했다. 청와대는 백신 관련 대통령 어록을 상세히 공개했다.

 

대통령이 지난해 4월부터 13차례에 걸쳐 백신을 언급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백신 구매를 서두르라는 지시가 아니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우리 기술로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라”는 주문만 되풀이됐다. 대통령은 세계 방역 모범국을 과시하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속된 말로 ‘K방역 국뽕’이다. 대통령이 “글로벌 백신을 충분히 확보해 두라”는 말을 꺼낸 것은 작년 9월 15일이었고, 사태가 심각해진 11월 30일에야 “과하다고 할 정도로 물량을 확보하라”고 했다.

 

방역 당국자들은 대통령 지시를 듣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VIP 관심사는 K백신 개발이다. 괜히 외국 백신 사자는 말을 꺼냈다가는 눈치 없는 사람 된다. 더구나 미리 사둔 백신이 ‘꽝’ 되면 감사 받고 신세 망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국산 백신은 신기루였고 글로벌 백신은 다른 나라들이 사재기해 버렸다. 대통령은 안면을 바꾸고 “글로벌 백신을 과할 정도로 확보하라고 했잖아”라고 역정을 냈다. 차마 대꾸는 못하지만 “언제는 국산 백신 개발하라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을 것이다.

 

비슷한 장면이 또 있었다. 세종시에는 역대 대통령들을 망라한 통합 기록관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와 별도로 문 대통령 개인을 위한 기록관을 짓기 위해 172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이 보도가 나오자 대통령은 “내 뜻이 아니다”라며 백지화 지시를 내렸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불같이 화를 냈다”는 보충 설명도 곁들였다. 알고 보니 이 기록관은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심의 의결됐다. 국무회의에 부쳐질 안건은 대통령에게 사전 보고됐을 것이다. 만일 비난 여론이 없었다면 문재인 기록관 사업은 지금 순항하고 있지 않았을까. 대통령의 백지화 지시나 불같이 화를 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직장인 여론조사에서 의욕을 고취시키는 ‘최선의 상사’ 1위는 업무 방향을 명확히 알려주는 ‘방향제시형’인 반면, ‘최악의 상사’ 1위는 일이 잘못됐을 때 아랫사람 탓을 하는 ‘책임회피형’이었다. 이러라는 건지 저러라는 건지 헷갈리는 신호를 보내놓고 잘되면 내 공, 탈 나면 부하 탓하는 문 대통령이 어디 속하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02.11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 文族개조운동

선거 때 맞춰 지원금 살포

재정도 견디기 힘들지만 국민의식 추락이 더 심각

文 찍어야 공짜 돈 생긴다

단물 세례로 국민 세뇌작전

나라 멍들고 與는 연전연승

 

설 연휴가 끝나면 민주당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주리 틀기에 나설 것이다. 홍 부총리는 4차 재난지원금 가운데 전 국민 보편 지급은 어렵다고 버틴다. 코로나로 피해 입은 자영업자와 취약계층만 선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다. 4차 재난지원금은 4월 7일 서울·부산 보궐선거용이다. 당연히 전 국민 지급이 주연 배우다. 선별 지급은 코로나 극복이라는 무대 배경일 뿐이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권위주의 정권은 선거판 뒤에서 쉬쉬하며 돈봉투를 뿌렸다. 디지털 시대 민주화 정권은 마이크 잡고 “우리 당 찍어주면 전 국민에게 지원금 준다”고 공개 매표를 한다.

 

그 효과는 작년 총선 때 유감없이 검증됐다. 야당의 수도권 의원은 전통 표밭을 돌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우리 표는 걱정 말라”던 유권자들이 “야당 찍으면 지원금 안 나온다더라”며 냉랭했다. 그 불길함이 개표 결과로 확인됐다.

 

그래서 그 돈은 어디에 쓰였나. 작년 5월 지원금이 풀리자 최대 수혜 품목은 와인이었다. 전달 대비 777% 판매량이 급증했다. 둘째가 맥주였다. 와인과 맥주 마시면 코로나 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되나, 아니면 와인과 맥주가 코로나 피해 업종인가. 대통령은 “국민이 지원금으로 한우 먹었다는 소식에 뿌듯했다”고 했다. 속내 통역을 하자면 “여당이 지원금으로 선거 먹었다는 소식에 뿌듯했다”는 거다.

 

홍 부총리는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라고 했다. 독일 메르켈 총리도 “이런 수준의 재정 지원을 끝없이 지속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2023년부터 엄청난 긴축 재정을 각오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문 정권 사람들은 이런 듣기 싫은 소리 안 한다. “우리 재정은 튼튼하다”고 큰소리만 친다. “당신들이 국고(國庫) 불리는 데 한 푼이라도 보탰느냐”고 따져 묻고 싶다.

 

재정이 축나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게 국민 의식 추락이다. 지난해 1차 지원금 때만 해도 ‘전 국민 지급’ 찬성이 30.2%로 ‘하위 70% 선별 지급’ 29.8%와 팽팽했다. 올 들어 4차 재난지원금 여론조사는 전 국민 지원이 68.1%로 선별 지급 30.0%의 두 배를 넘어섰다. 한번 맛본 공돈이 뇌세포에 화학작용을 일으켰다.

 

지난해 경기도가 지원금 살포에 앞장서자 산하 시·군들도 덩달아 경쟁을 벌였다. 여주가 10만원으로 선수를 치자 이천이 “받고 5만원 더”를 외쳤다. 재정이 빵빵한 파주는 40만원으로 수퍼 베팅을 했다. 재정이 어려운 곳들도 “우리는 왜 안 주냐” 성화에 5만원씩이라도 성의를 보였다. 끝까지 버티던 남양주마저 손들면서 31개 시·군이 전부 주머니를 털었다.

 

영국 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 회원이었던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1894년이후 네 차례 조선을 방문하고 기록한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한국에서 만난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열등한 민족”이라고 썼다. 그러나 “시베리아와 만주에서 만난 한국인은 농장 경영과 유통업에서 중국인을 압도했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만난 한국인의 노예 근성과 나태함은 나라의 생명을 빨아먹는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 탓”이라고 결론 내린다. 좋은 정부만 만나면 한국인은 “길이 행복하고 번영할 민족”이 될 것이라고 축복했다.

 

1971년 전국 3만5000개 자치 마을에 시멘트 300부대씩 나눠 준 것이 새마을 운동의 시작이다. 1만7000여 곳은 제대로 썼고, 1만7000여 곳은 흐지부지 낭비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제대로 쓴 절반에게만 시멘트와 철근을 추가 지원하라고 했다. 여당은 “선거 망칠 일 있냐”며 반대했지만 대통령은 밀어붙였다. 탈락 마을들이 분발하면서 ‘우리도 잘살아보세’ 운동은 본궤도에 오른다. 새마을운동의 성공 비결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의식 개혁이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흘러 문재인 정권도 국민 의식을 바꾸고 있다. 선거 때마다 “우리 당 찍어주면 돈 봉투 준다”고 한다. 대통령 주머니에서 세뱃돈 꺼내듯 생색 내지만 모두 국민이 갚아야 할 돈이다.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돈을 안기면서 와인, 소고기 사먹으란다. “돈 쓰실 일 없느냐”고 꼬드기는 대출 브로커 수법 그대로다. 한번 맛본 단물의 유혹은 무섭다. “문재인 당 찍어야 공짜 돈 생긴다”는 세뇌가 먹혀들고 있다. 국민들은 자신과 자손의 미래가 축나는 줄도 모르고 공돈을 들이켠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옛말 그대로다. 그렇게 국가와 국민이 멍들어도 정권의 선거 승리는 계속된다. 문족(文族) 개조 운동 만만세다.

 

02.25  ‘이재명 次期’ 괜찮을까, 文의 잠 못 이루는 밤

李, 압도적 선두 질주에도 탈당설, 제3 후보론 “꿈틀”

親文이 딴 후보 찾기 때문… 인위 교체 시도 땐 與 내전

퇴임 후 더 큰 禍 부를 수도… ‘윤석열’보다 골치아픈 난제 

 

▲지난 2017년 3월 21일 마포구 상암MBC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100분 토론에 참석한 당시 문재인 후보(오른쪽)와 이재명 후보./뉴시스

 

“A를 물으면 A를 답해야지, 왜 B를 말합니까, 협조 좀 해주세요” “자기가 발표한 정책 내용이 뭔지는 아셔야 합니다.” 4년 전 이맘때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토론에서 이재명 후보가 따발총처럼 쏘아붙이자 문재인 후보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유튜브 영상에는 이런 댓글들이 달려 있다. “문재인, 눈만 껌뻑껌뻑하네” “여기서도 어리바리하네, 묻는 말에 똑바로 대답해야지” “이재명을 왜 죽일려고 하는지 알겠네”….

 

대통령 신년회견에서 “현실 경제가 어려운데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겠다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지 여쭙겠다”고 했던 기자의 소속 방송사는 1년 뒤 조건부 재허가 조치를 받고 폐업했다. 요즘 표현을 빌리자면 문 정권의 ‘뒤끝 작렬’이었다. 문 대통령과 문빠들은 이재명 경기지사의 불손했던 태도 역시 잊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이 지사는 차기 대선 주자 중 단연 1강(强)이다. 한참 앞서 있던 이낙연 민주당 대표를 따돌리고 더블 스코어 리드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도 얼마 전 방송 인터뷰에서 “탈당한다는 말이 나온다” “제3 후보가 나온다는데 섭섭하지 않으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렇게 묻는 배경에는 문 대통령과 그 세력이 이 지사에게 후계자 자리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깔려 있다. 이 지사가 “대통령 지지자들이 나를 압도적으로 지지하는데 왜 당을 나가겠느냐”고 강조한 것도 친문의 거부감을 의식하고 있다는 징표다.

 

역대 대통령들도 차기 주자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새 대통령이 들어설 때마다 전 정권 사냥이 되풀이됐기 때문이다. 아무 혐의점 없이 물러난 대통령들도 마찬가지였다. 문 대통령 입장은 더 절박할 수밖에 없다. 울산 선거 공작,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옵티머스·라임 사기 같은 정권 비위가 터져 나오는 것을 권력의 힘으로 틀어막고 있다. 임기가 끝나면 억눌렸던 마그마가 분출하게 마련이다. 문 대통령이 차기 주자에게 요구하는 필수 덕목은 퇴임 후 안전을 보장해줄 것이라는 신뢰다.

 

이재명 지사도 이런 대통령 심리를 읽고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이 코로나 위로금을 제안한 문 대통령을 “기재부 사무관만도 못하다”고 비판하자 이 지사는 “망언” “상식 밖의 모독” “구태” “호들갑” 같은 용어를 총동원해서 반박했다. 이 지사가 언제부터 문 대통령 심기 경호에 이처럼 적극적이었나.

 

만약 문재인 뒤를 이재명이 잇는다면 역대 정권 이양 중 노태우·김영삼 모델에 가까울 것이다. 직전 대선에서 맞붙었던 후보들끼리 권력을 주고받는 것도 그렇고, ‘속내를 알 수 없는 선임자’와 ‘성격 팔팔한 후임자’ 구성도 닮은 꼴이다.

 

노 대통령 측근들은 YS에게 권력을 넘기면 “반드시 험한 꼴을 당할 것”이라며 만류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YS, 사람 많이 달라졌다.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했다. “주례 회동 때 내 얼굴도 잘 못 쳐다본다”고도 했다. 노 대통령은 김영삼 정권 3년 차였던 1995년 비자금 혐의로 헌정 사상 최초로 구속되는 전직 대통령이 된다. 12·12 군사반란 혐의까지 겹쳐지면서 17년형을 선고받는다.

 

임기를 1년 남짓 남긴 문 대통령 지지율이 여전히 40%를 오르내린다. 야권 대선 후보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도 역대 정권 임기 말과 다르다. 대통령이 어떤 후보를 낙점해도 당선시킬 수 있다는 유혹을 느낄 만한 여건이다. 여권에선 대통령 최측근인 김경수 경남지사를 비롯해서 정세균 총리, 임종석 전 비서실장 등이 친문(親文) 대표 주자로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러나 선두 주자 이재명 지사를 제치고 대체 후보를 내세우려는 시도에는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 이 지사는 그대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제3 후보론과 이재명 탈당설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친문 진영에서 후보 선출 시기를 미루자는 말이 나오자 이 지사 측은 “내전(內戰)을 각오하라”고 했다. 선전포고다. 여권 내 드잡이 속에 친문 제3 후보가 당선되지 못한다면, 그래서 야당 후보 혹은 이 지사가 당선된다면 문 대통령 퇴임 후엔 진짜 벼랑 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권력 비리를 캐려는 검찰을 찍어 누르는 ‘윤석열 문제’는 단순한 1차 방정식이었다. 미덥지 않은 차기 선두 주자를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 교체에 나설 것이냐는 ‘이재명 문제’는 통제 안 되는 변수들이 작동하는 고차 방정식이다. 문 대통령은 요즘 ‘이재명 차기’ 정말 괜찮을까를 고민하며 잠 못 이루는 밤을 맞고 있을 것이다.

 

03.11  ‘보수와 악연’ 윤석열·안철수·오세훈이 野 희망 되다

朴, 李 두 전직 감옥 보낸 尹

反한나라당 선언했던 安

박원순 시장’ 원인 제공 吳

보수와 불편했던 기억이 중도 확장 잠재력 작용

야당이 품어 안고 극복해야

 

일반 국민이 윤석열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국정원 댓글 수사팀장’ 때였다. 이명박 정부 국정원의 대북 심리전 댓글이 여당 대선 후보 박근혜의 당선을 도왔다는 의혹을 수사했다. 전⋅현직 대통령을 동시에 곤혹스럽게 한 그를 보수 정권은 탄압했고, 진보 야당은 찬양했다. 윤석열은 문재인 정권 들어 서울지검장, 검찰총장으로 고속 승진하면서 박근혜, 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냈다.

 

▲윤석열 안철수 오세훈/조선일보DB

 

그 윤석열이 문재인 정부의 불법을 캐다가 미운털이 박혀 총장 자리에서 쫓겨났다. “당분간 집에서 개, 고양이를 돌보겠다”지만 정치권 진입은 시간문제다. 윤석열은 문 정부의 위선을 고발하는 상징이 됐다. 야권 대선 후보가 서야 하는 정권의 대척점, 바로 그 좌표에 정위치하고 있다. 대선 가상 대결에서 윤석열만이 여권 대선 주자들과 승부가 된다. 반문(反文) 에너지가 윤석열 한 사람에게 응축돼 있기 때문이다. 야당이 문 정권의 재창출을 막으려면 윤석열을 우회할 수 없다. 그를 품어 안거나, 그를 딛고 넘어서야 한다.

 

10년 전 가을 대한민국 정치권은 ‘안철수 태풍’에 휘청거렸다. 거센 회오리를 몰고 나타난 안철수의 일성은 “한나라당의 정치적 확장에 반대한다”였다. “한나라당은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세력”이라며 “응징을 당해야 한다”고 했다. 노골적인 반(反)한나라당 선언이었다. 서울시장 보선을 앞두고 50% 지지율로 압도적 선두였던 안철수는 지지율 5%였던 박원순을 밀어서 당선시켰다.

 

그 안철수가 10년 만의 서울시장 보선에서 야권 후보를 노린다. 자신이 만들어 준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때문에 치르는 선거다. 안철수가 판을 흔들면서 여권 절대 강세였던 수도권 싸움이 혼미해졌다. 안철수는 2012년 대선 때 보수 재집권을 막겠다며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 씨름을 했다. 이번엔 문재인 정권 재창출 저지를 위해 국민의힘과 단일화를 한다. 그 단일화 상대는 10년 전 “또다시 이상한 사람이 서울을 망치게 할 수 없다”고 했던 그 ‘이상한 사람’ 오세훈이다.

 

국민의 힘 서울시장 후보로 당선된 오세훈은 “지난 10년 동안 많이 죄송했다”고 했다. 무상급식 찬반 투표에 시장 직을 걸었던 승부수 때문에 ‘박원순 서울시정 10년’을 낳은 원죄 의식이다. 오세훈은 여성 10% 가산점을 업은 나경원 전 원내대표를 꺾으면서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앞서 가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까지 제친다면 더 강력한 뒤바람이 밀어줄 것이다. 설령 안 대표에게 지더라도 그를 지원해 당선시킨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야권 회생의 디딤돌을 놓았다는 박수를 받게 된다.

 

윤석열, 안철수, 오세훈은 보수를 괴롭게 했거나, 공격했거나, 위기에 빠뜨렸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야당 지지층에게 껄끄러운 기억을 남겼다. 그 세 사람이 문재인 정부 폭주에 제동을 걸 수 있느냐는 열쇠를 쥐고 있다. 야권의 희망이다.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는 정치판이라지만 이 정도 역설은 마주하기 힘들다.

 

넓고 비옥한 표밭을 자랑했던, 그래서 “우리끼리만 뭉쳐도 이긴다”는 예전의 보수라면, 이 세 사람은 결코 야권의 선택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야당 지지층은 보잘것없이 쪼그라들었다. 탄핵 총리를 간판으로 세워 지지층을 최대한 결집했던 작년 4월 총선이 그 참담한 현실을 보여줬다.

 

대가리가 깨져도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대깨문’이 있듯, 하늘이 무너져도 보수만 찾는 ‘태극기’도 있다. 그들 사이에, 문 정권 하는 일은 괘씸하지만, ‘탄핵 잔당’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는 중도층이 끼어 있다. 숫자는 적지만 선거의 저울추를 좌우로 움직이는 세력이다.

 

윤석열, 안철수, 오세훈이 정치사 중앙 무대에 오른 것은 ‘문 정권에 맞서면서도, 구닥다리 보수는 아니다’라는 희소 가치 때문이다. 중원으로 표밭을 넓히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야 지지층의 각성이 윤, 안, 오 삼총사를 소환했다.

 

윤석열, 안철수는 기존 정치인이 아니라는 게 대표 상품성이다. 정치판 진흙탕에서 버텨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두 사람에게 현실 정치의 플랫폼과 네트워크를, 그들이 수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제공할 책임은 제1 야당인 국민의힘에 있다. ‘기호 2번 아니면 안 된다’는 밴댕이 처신 대신, 보수 태평양 전체를 아우르는 고래의 통솔력을 보여 줘야 한다. 야권에서 오랜만에 흥행하고 있는 드라마의 성공 여부는 주인공 세 사람의 역량과 이들을 지원해야 할 제작진의 도량에 달려있다. 실패하면 국민은 ‘문재인 내로남불 시즌 2’를 5년 더 지켜 볼 수밖에 없다.

 

03.25 진화된 안철수가 10년만에 다시 정치판을 흔들다

단일화 5번 실패했던 安

이번엔 타결 실마리 풀고

吳 도와서 훗날 도모 다짐

윤석열과 野 만날 대선도

안철수 역할 주목받을 것

연출, 조연, 주연 무엇이 될지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MB 바람이 거세게 몰아쳤을 때를 제외하고 수도권은 늘 진보 진영이 강세였다. 작년 총선에선 수도권 121개 선거구 중 민주당이 103곳을 싹쓸이했다. 야당 몫은 그 10분의 1인 16곳이었다. 총선 1년 만에 열리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판세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22, 23일 조사에서 범야권 후보 오세훈은 민주당 박영선을 49% 대 29%로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와 안철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2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이덕훈 기자

 

거듭된 부동산 정책 실패 끝에 LH 투기 사태가 얹혀지면서 민주당 지지 기반인 2030 유권자의 이반을 불렀다. 추미애 법무장관을 앞세운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 무리수는 문 정권의 정당성에 생채기를 냈다. 그러나 수도권 표심을 흔들면서 여야 간 해볼 만한 싸움으로 흐름을 변화시킨 단초는 작년 12월 안철수의 서울시장 출마 선언이었다. 당시 50대 초반 지인은 “문 정권을 혼내주고 싶은데 야당에는 손이 안 간다, 안철수라면 찍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주변에 생각이 비슷한 친구들이 많다”고도 했다. 초반엔 대여 경쟁력에서 안철수에게 크게 밀리던 국민의힘 후보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간격을 좁혔다. 안철수가 견인하는 중도 표심이 보수와 합쳐지며 정권 심판 연대 구도를 만들고, 중도 확장성이 있는 오세훈이 그 위에 올라타는 것으로 단일화가 마무리됐다.

 

중도를 표방하는 안철수는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진보 또는 보수 진영과 단일화를 시도했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 2012년 대선,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서울시장 선거 등 모두 다섯 번 단일화에 나섰다. 두 차례는 스스로 후보직을 포기했고, 세 차례는 변죽만 울리다 없었던 일이 됐다. 안철수는 늘 단일화를 말했지만, 한 번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 그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안철수가 또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를 주장했을 때 “보나 마나 결말이 안 좋을 것”이라며 거부감을 나타냈다.

 

이번엔 달랐다. 단일화 협상이 늘어지며 국민들이 실망하고 짜증 날 무렵 타결의 실마리를 먼저 풀었다.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패배를 확인한 23일 “오 후보를 돕겠다”면서 “반드시 승리해서 문재인 정권을 심판해 달라”고 했다. 24일엔 국민의힘을 상징하는 빨간색 넥타이를 매고 그 당 의총에 참석했다. “안철수가 달리 보인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국 정치판에서 낯선 장면이기도 하다.

 

안철수는 지난 대선에서 실망스러운 3등에 이어, 총선서 3석 미니 정당 대표로 입지가 쪼그라들었다. 이번 단일화 승부에서 또 패배한 것은 뼈아플 수밖에 없다. 안철수는 “서울시장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만, 저의 꿈과 각오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을 도왔다가 실망한 사람들에겐 “오세훈을 도와야 한다. 그래야 오늘의 쓴맛이 기쁨으로 바뀔 수 있다”고 했다.

 

작은 패배를 어떻게 딛고 일어서느냐에 따라 정치인의 큰 승부가 갈린다. 노무현은 YS의 3당 합당을 거부한 후 부산의 총선, 지방선거에 세 차례 출마했다 모두 패했지만 2002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오세훈은 야당이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는 서울 험지에서 정치 신인에게 분루를 삼켰다가 1년 만에 서울 전체 수복에 나서고 있다.

 

오랜만에 정치판에 모습을 드러낸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는 “보궐선거만 아니었으면 내년 대선까지 그냥 아스팔트 길을 달릴 수 있었는데…”라고 했다. 이 선거 승패에 따라 대선 가도가 “자갈밭이냐, 포장길이냐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야당 입장에서 뒤집어 보면 서울 선거를 이기면 대선 승부가 해볼 만한 싸움이 되고, 지면 끝장이라는 얘기다. 야권이 서울시장 선거 고지를 넘어 대선(大選) 정상을 향하는 길목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기다리고 있다. 그가 정치권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야당과의 관계 설정이 또 한 번의 어려운 숙제로 남아 있다. 이번 단일화를 촉발하고 성사시킨 안철수가 또 한 번 주목받게 되는 국면이다.

 

안철수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2011년 가을 태풍을 몰고 정치권에 등장했다. 노무현 정권의 몰락 이후 보수 초강세 국면이었던 대한민국 정치판은 그의 출현으로 크게 출렁거렸다. 그로부터 10년 후, 안철수는 문 정권 폭정에 등을 돌린 중도층을 이끌고 또 한번 현상 타파에 나서고 있다. 거칠고 어설펐던 매너가 정교하게 진화되면서 10년전만 못한 파괴력을 벌충하고 있다. 문 정권 심판을 외치는 그의 최종 역할이 연출, 조연, 주연 어느 것으로 귀결될지는 아무도 예단할 수 없다.

 

04.08 文 정권의 코로나 복권, 1년 만에 쪽박됐다

코로나와 못난 야당 福에
작년 총선서 180석 휩쓴 與,
제 실력인 줄 착각하며 폭주
국민 지지 순식간에 탕진
상식 거스른 親文 정치 파탄,
‘포스트 文’ 경쟁 시작됐다

“민주당에 한 번 더 기회를 달라”는 김태년 원내대표의 처연한 호소는 허공에 흩어지고 말았다. 정부 부처 차관을 “X자식”이라고 윽박지르던 그의 기세등등 스타일만 구겨졌다. 사실 국민은 작년 총선서 민주당에 한 번 더 기회를 준 셈이다. 전 지구를 뒤져도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파렴치 인사 조국을 감싸고 돌며 국민을 열 받게 했는데도 심판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상 초유의 180석을 건네줬다. 국회 선진화법에서도 단독 처리가 가능한 의석이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당대표 직무대행이 7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 개표상황실에서 방송3사(KBS,MBC,SBS) 공동 출구 조사 결과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이 준 그 기회를 정권은 엉뚱한 데 썼다. 미운 털 박힌 윤석열 출마 금지법, 비판 언론 재갈 물리는 징벌적 손해배상법, 김여정 하명에 따른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 같은 것을 밀어붙였다. 하나같이 정권 이익을 챙기는 용도다. 심지어 “한 번 더 기회를 달라”는 그 순간에도 운동권 출신 자녀들까지 유공자 대접 하자는 셀프 특혜를 추진하다 된서리를 맞았다.

 

김 원내대표는 “부동산을 겨우 안정시켜 놨는데 다시 이명박, 박근혜 시대 부동산 투기판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근로자 월급으로 서울 25평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기간이 이명박 정부 때 26→20년으로 6년 줄었고, 박근혜 정부 때 20→21년으로 1년 늘었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21→36년으로 15년이나 늘어났다. 부동산 안정이라는 말이 어떻게 입에서 나오나. LH 사태 이후 투기 의혹이 불거진 국회의원은 모두 여당 소속이고, 정권 관계자들뿐인데 어떻게 전 정권에 손가락질을 하나. “토건 세력의 부활을 막아 달라”고 했는데, 오거돈 성추행 선거를 이기겠다고 28조원을 들여 수심 17m 바다를 삽질해서 메우자는 토건 세력은 도대체 누구인가.

 

작년 총선 일주일 전 ‘文(문)의 코로나 복권, 실력인 줄 착각하면 쪽박 된다’는 칼럼을 썼다. 결론 부분은 이랬다. “정권이 코로나 복권이 가져다준 횡재를 자기 실력으로 착각하면, 그래서 여태까지 온 길을 계속 가겠다고 우기면 총선 대박이 쪽박으로 돌변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복권 1등 당첨자들의 비참한 몰락 스토리는 전 세계에 널려 있다.”

 

선거 막판 판세가 여당으로 기운다는 조짐을 느끼면서 쓴 글이었다. 조국 사태에도 불구하고 여당이 야당보다 많은 의석을 차지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겠나 짐작했다. 180석 압승은 상상도 못 했다. 더구나 야당의 잠재적 대선 주자들이 줄줄이 낙선했다. 문 정권 입장에서 ‘인생 역전’ 수준의 로또 당첨이었다. 한꺼번에 수십억 현금을 손에 쥔 격이었다. 대선까지 남은 2년 동안 탕진하기 힘들 만큼 엄청난 횡재였다. “문재인 정권, 정말 운이 따른다. 부자 몸조심 하며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정권 재창출은 땅 짚고 헤엄치기”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문 정권은 정말 놀라운 속도로 몰락 코스를 밟아 갔다. 코로나 사태와 못난 야당을 동시에 만난 행운 덕분에 총선을 이겼는데, 그걸 자기 실력으로 착각했다. 자기들 마음대로 나라를 주물러 보라고 국민이 결재 도장을 찍어준 것으로 간주했다. “선출된 권력”을 외치며 조국 사태보다 더 황당한 일들을 벌여 나갔다. 자기 분수에 넘는 행운이 닥쳤을 때 옷깃을 여며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다. DJ였으면 총선 뒤 집권당 의원들을 엄히 단속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탄핵 역풍으로 입성한 ‘탄돌이' 초선 108명이 널뛰자, 중진들은 ’108번뇌’를 다스리는 시늉이라도 했다. 이 정권은 달랐다. 대통령은 문빠의 패악질을 ‘양념’이라고 두둔했고, 여당 대표와 총리는 차기(次期) 욕심에 친문(親文)에 사탕 발림하기 바빴다.

 

4·15 총선 대박이 4·7 쪽박으로 돌변하는 데 채 1년도 필요하지 않았다. 선거 압승은 역풍의 씨앗을 품고 있다는 이치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이번 보궐선거가 야당에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2002년 6월 시·도지사 선거서 야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서울, 인천, 경기를 싹쓸이했다. 보수 정당 사상 처음이었다. 전국적으로 880만표를 얻어 민주당 487만표에 393만표 차로 앞섰다. 역대 최다 표 차 승리였다. 세 아들과 측근 비리를 다스리지 못한 김대중 정권에 대한 심판이었다. 한나라당 사람들은 “6개월밖에 안 남은 대선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했다. 그러나 12월 대선 승자는 ‘3김 정치’ 대척점에 섰던 민주당 노무현 후보였다. 4·7 선거는 상식과 양식을 짓밟은 친문 정치에 대한 심판이었다. 그리고 ‘포스트 문재인’ 시대의 깃발 주인을 가리기 위한 경쟁은 이제 새로 시작된다.

 

04.22  “백신 거지라도 문재인 보유국이라 괜찮아”

인구 150% 확보했다는데
3% 접종에 세계 100위권
文 통화로 움직였다더니
모더나는 감감 무소식
백신 정치로 눈속임 급급
성난 국민 바보 취급하나

미국 단기 연수 중인 회사 후배가 신청 8일 만에 화이자 백신을 맞았다고 소식을 전해 왔다. 대학 병원 복권에 당첨돼 백신을 맞은 유학생도 있고, 유학 중인 자녀를 만나러 갔다가 백신 맞고 돌아온 학부모도 있다. 한국에 없는 물건 구하러 미국 가는 시대가 한 세대 만에 되돌아왔다. 단톡방에서 미국과 영국 사는 동창들에게 “코로나 험지서 고생한다”고 위로한 게 불과 몇 달 전이다. 요즘은 그들의 백신 접종 체험을 들으며 부러워한다. 세계 방역 모범 국가라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백신 거지’ 신세다.

 

▲지난 17일 미 뉴욕 맨해튼의 백신 메가사이트(집중 접종소)인 '자비츠 센터'에서 시민들이 화이자 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 관찰을 위한 대기 구역에서 쉬고 있다. 군복 차림의 미 육군들이 현장 관리와 안내를 맡고 있으며, 대기 구역 너머로 100여곳의 접종 부스가 보인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작년 가을부터 백신 수급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들의 걱정을 ‘가짜 뉴스’로 매도했다. 복지부 장관은 “화이자, 모더나가 우리와 빨리 계약을 맺자고 오히려 재촉한다”고 큰소리까지 쳤다. 문빠들은 “제약사들이 방역 선진국, 대한민국의 인증을 받고 싶어 안달을 낸다”고 거들었다. 나중에 보니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백신 불안감이 다시 고개를 든 작년 말, 문 대통령이 메시아처럼 등장했다. 대통령이 모더나 CEO와 전화 통화를 27분 하자 “물량은 두 배 늘고, 시기는 석 달 앞당겨지고, 가격도 인하됐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해동 문통이 나라샤” 용비어천가였다. 백신 확보량도 4400만명, 5600만명, 7600만명분으로 순식간에 늘어났다. 친정부 언론은 “전체 국민 수의 150%를 확보했으니 남는 백신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라며 배부른 투정까지 털어 놓았다.

 

그랬던 게 석 달 전인데 지금까지 백신 맞은 사람은 전체 국민의 3%다. 세계 104번째로 접종을 시작했는데 현재 접종 비율도 여전히 100위권을 맴돈다. 하루에 국민 0.1%꼴로 백신을 맞았다. 이 속도면 전부 맞는 데 3년이 걸린다.

 

정부는 7900만명분을 확보했다는데 국내에 들어온 백신은 화이자 80만명, 아스트라 100만명분뿐이다. 국민들은 “확보라는 단어 뜻이 언제 바뀌었느냐”고 묻는다. 180만명분이면 미국 하루 접종 분량이다. 우리도 마음먹으면 하루 이틀에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매일 주사 놓는 사진을 찍으려 찔끔찔끔 놓고 있다. 대통령 전화 한 통 받고 2000만명분을 5월에 보낸다던 모더나는 안면 바꾸고 감감무소식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백신 수급의 불확실성을 확실히 낮췄다고 자신한다”고 했다. 백신 현실은 어려운데 불확실성을 낮췄다는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고 싶어진다. 아니면 대통령 말씀을 잘못 이해한 건가. 백신 수급이 늦어질 것이 확실해졌다고 고백한 것인가.

 

유동성 위기가 몰려오는데 달러가 없어서 14년 전 IMF 환란을 맞았다. 이번엔 코로나가 밀려오는데 맞서 싸울 백신이 없다. “경제의 펀더멘털은 튼튼하다”던 허세가 “K방역은 세계 모범”이라는 메아리로 돌아왔다. 미국 대통령은 “취임 100일 만에 1억 차례 접종”이라는 공약을 두 배로 초과 달성했다. 우리 대통령이 약속했던 ’11월 집단면역'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코로나 탈출이 반년 늦어지면 30조원 이상 손실이 난다고 한다. 백신 구입비 3조5000억원 지출을 망설이다 그 열 배 피해를 국가에 안기게 된다. 소고기 사 먹으라고 위로금 14조원 뿌리고, 바다 메우는 토목 공사로 28조원짜리 공항 짓겠다는 정권이 도대체 왜 그랬을까.

 

백신 부족을 타개할 묘책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정부는 백신이 없어도 괜찮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백신 늦게 맞게 돼서 다행”이라는 황당 발언을 쏟아냈던 사람을 방역기획관으로 임명했다. 또 백신 안 맞은 우리나라 확진자가 백신 맞은 나라보다 적다는 통계를 국민에게 들이민다. 맥락 없이 숫자를 떼어내 국민 눈을 속이는 야바위 수법이다. 백신 맞으면 감염돼도 중증으로 병원 가거나 사망하지 않는다. 코로나가 매년 유행하는 독감 정도로 바뀐다. 그러니 확진자가 늘어도 마스크 벗고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다.

 

정권과 문빠들은 “백신 거지라도 문재인 보유국이라서 괜찮다”고 외친다. 정신 승리를 부르짖으며 국민을 세뇌하려 한다. 문 정부의 국정 지지율이 30%를 오르내린다. 국민 열 중 일곱은 ‘문재인 보유국’보다 ‘백신 보유국’에서 살고 싶다. 아니, 문재인 없는 백신 보유국이면 더욱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05.06 문빠들이 계속 나대 주면 땡큐다

대선 승부처서 참패하고도
쇄신 몸부림 볼 수 없는 여당
문재인 보스 지키려는
대깨문에게 인질 잡힌 때문
한국 정치 망쳐 놓더니
자기 파멸로 최후 맞나 

호남을 고정 표밭으로 하는 민주당에는 대선 필승 공식이 있다. 호남에서 90% 득표, 수도권에서 5%p 이상 이기고, 부산·경남권의 열세를 4대6 정도로 막는 것이다. 그래야 영남 인구가 호남의 2.5배인 구조적 약점을 극복할 수 있다. 1997년 김대중, 2002년 노무현은 이 공식에 따라 2%p 차 내외 신승을 거뒀다.

 

지난 4월 7일 보궐선거에서 집권당은 서울에서 20%p 가까운 득표율 차로 졌다. 1년 전 총선에선 서울 지역구 49곳 중 41곳을 휩쓸었는데, 이번엔 25구 전체에서 졌다. 부산에서도 30%p 차 더블 스코어로 밀렸다. 이 표심 구도를 깨뜨리지 못하면 1년도 안 남은 대선은 해보나 마나다. 웬만한 정당이라면 대대적인 쇄신 바람이 불어야 정상이다. 당의 지도부와 노선을 갈아엎고, 완전히 새 당을 만드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오영환, 이소영, 장경태, 장철민 의원이 지난 4월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 2030의원 입장문' 발표에 앞서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작년 4월 총선에서 참패한 야당은 그랬다. 탄핵 지도부를 걷어내고 5·18 묘역에서 무릎 꿇었으며 세월호에 대한 막말에 사과했다. 거리의 극단적 태극기 세력과도 선을 그었다. 후보 선출 방식도 일반 국민 여론조사로 바꿨다. 당원 대의원의 입김이 줄면서 중도 색깔이 짙은 후보가 선출됐다. 그것이 단일화와 본선 승리의 디딤돌이 됐다.

 

지금 여당에선 변화의 몸부림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보궐선거 열흘 만에 의원총회에서 당선된 원내대표의 첫마디는 “개혁의 속도 조절은 없다”였다. 정권 불법을 덮기 위한 검찰 목조르기, 집값 폭등을 부른 부동산 실책을 그대로 밀고 가겠다는 것이다. 얼마 전 새로 뽑힌 최고위원 진용도 친문(親文) 일색이다.

 

야권 대선 주자의 선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범여권 모든 주자와의 가상 대결에서 앞서가고 있다. 야권에는 안철수, 원희룡, 유승민, 홍준표(가나다순) 등도 뒤를 받치고 있다. 이들끼리 1차 단일화를 거친 뒤 윤석열과 최종 결선을 치르면 상당한 컨벤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여권에선 비문(非文)인 이재명 경기지사 정도만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나머지 후보들은 문 대통령의 낙점을 기다리다 함께 늪 속에 빠져들고 있다.

 

집권당 내부에 위기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선거 직후 2030 세대 초선 다섯 명이 나섰다. 조국 사태에 대한 반성과 박원순, 오거돈 성추문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친문 당원들의 ‘문자 폭탄’을 맞고 조기 진압됐다. 쇄신을 요구하던 다른 목소리들도 잦아들었다.

 

지금의 민주당 모습은 조폭 집단 그대로다. 문재인 보스에 대한 절대 충성을 요구한다. 조금이라도 튀는 소리를 내면 골목으로 끌려 나가 험한 꼴을 당한다. 군기반장 노릇을 하는 친문 강경파 규모는 얼마나 될까. 청와대 게시판에서 세 과시를 하는 인원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작년 말 ‘추미애 법무장관을 재신임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정상적 뇌 구조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42만명이 지지했다. 이른바 ‘대가리가 깨져도 문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대깨문들이다. 여러 아이디로 중복 서명이 가능한 만큼 많아야 전체 유권자의 1%를 밑돈다. 집권당은 이 한 줌 문빠들의 포로가 돼 버렸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으며 시들어 가고 있다.

 

요즘 여권 사람들은 ‘윤나땡’이라는 마술 주문을 외고 있다고 한다. ‘윤석열이 야권 대선 후보로 나서주면 땡큐’를 줄인 말이다. 윤 전 총장의 장모와 처에게 심각한 결격 사유가 있어서, 대선 무대에 올라서는 순간 십자포화를 맞고 무너진다는 거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올인했다가 쪽박을 찬 ‘생태탕’ 전략 2.0이다. 윤 전 총장 처가의 문제점이 얼마나 심각한지 필자는 모른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중요한 건 윤 전 총장이 그 처가를 보호하기 위해 자기 권력을 이용했느냐는 점이다. 만약 그런 증거가 있었다면 김어준 연출, 추미애 주연 ‘윤석열 죽이기’ 드라마에서 재탕, 삼탕 우려먹었을 것이다.

 

야당 사람들은 지금 ‘문나땡’을 외치고 있을 것이다. 야당 입장에서 문빠들이 지금처럼 계속 나대주면 땡큐다. 대선을 거저 주워 먹을 수 있다. 대깨문들은 집권당을 살려 보려는 자성 목소리마저 바이러스 취급하며 일망타진한다. 문재인 보스를 지키려는 빗나간 충성심의 결과다. 이들의 과잉 면역반응이 일으키는 사이토카인 폭풍이 숙주인 집권당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지난 4년 동안 한국 정치를 황폐화시켰던 대깨문들이 자기 파멸 과정을 거치며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 있다.

 

05.20 대학가의 꼰대 감별법 “너 민주당 지지하니?”

민주당 지지자는 놀림받아
코로나 덕에 촛불 피한 것
성난 20대 달래기는커녕
경험치 부족 상대 탓 돌려
민심 내려다보며 훈계질
떠났던 지지 되돌리겠나

2년 전 기업 임원과 저녁을 먹다가 이런 대화가 오갔다.

 

 젊은 사원들이 문재인 정부에 대해 뭐라고 하나.

“욕 많이 한다. 소득 주도 성장, 탈원전 같은 정책 모두 황당하다고 한다.”

 

- 총선 앞둔 문 정부 비상 걸리겠다.

“젊은 사람들 그래도 민주당 찍을 거다. 한국당은 아예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투표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 아닌가.”

 

그 무렵 한국당 소장파 의원은 문 정부를 성토하는 젊은이를 만나 반색했다가 무안당한 경험을 털어 놓기도 했다. “한국당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거기서 왜 한국당이 나오느냐”고 핀잔을 들었다는 것이다. 한국당은 비판할 가치도 없다는 투였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국회에서 성년의날을 맞아 20대 청년들과 간담회를 갖기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선거 때 정당이나 후보를 정말 지지해서 투표하는 유권자가 얼마나 될까. 국민 열 받게 만든 정당을 혼내 주려고, 또는 저 후보에게 나라 맡겼다가 큰일 날까봐 반대편에 표를 던지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5060 세대들은 작년 총선 결과에 충격받았다. 민주당이 180석 압승을 거둘 정도로 지지 받은 이유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도 민주당이 마음에 들어 표를 준 것은 아니었다. 탄핵이라는 사형 선고를 받고도 정신을 못 차린 한국당에 화를 낸 거였다. 한국당이 선거에서 이기면 아스팔트 보수가 기세등등해질 것이 싫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야당 덕을 톡톡히 본 선거 압승을 자신들에 대한 신임으로 착각했다. 그래서 조국 사태 뭉개기, 윤석열 목 조르기, 야당 짓밟기를 서슴지 않았다. 1년에 한두 차례씩 지원금, 위로금만 뿌리면 선거 승리는 계속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민주당 20년 집권론, 심지어 50년 집권론까지 나왔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채 1년도 가지 않았다.

 

젊은 층, 특히 20대의 민주당 이탈이 확연하다는 여론조사가 나오고 있다. 그 수치를 뒷받침하는 목소리를 민주당 청년 간담회에서 들을 수 있었다. 21학번 대학생 신입생은 “요즘 ‘너 민주당 지지하니’라고 묻는 것은 조롱하는 말”이라고 했다. 젊었을 때 진보, 나이 들면 보수가 되는 것은 동서고금의 공통 현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청년이 꼰대처럼 말하면 야당 지지자로 손가락질 받거나 “태극기냐” “일베냐” 같은 비아냥 듣기 일쑤였다. 그런데 지금 대학가에서 민주당 지지자가 그런 처지가 됐다는 거다.

 

“조국, 윤미향 사태를 보며 민주당에 실망했다”면서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벌써 촛불을 들었을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라고 자랑해온 문재인 정부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젊은 세대의 지지를 회복할 수 있을까. 야당은 총선 참패 후 탄핵의 강을 건넜고, 극단적인 태극기 세력과 선을 그었으며, 5·18과 세월호에 대한 막말에 대해 사과했다. 그래서 2030 눈높이에서 인간 지위를 회복했다. 보궐 선거 승리는 그래서 가능했다. 민주당도 하기 나름일 것이다. 청년 간담회에서 그 열쇠에 해당하는 주문이 나왔다. “민주당은 민심을 받아들여야지, 가르치려 들지 말라”는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던 민주당 박영선 후보는 20대가 지지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역사의 경험치가 낮아서”라고 했다. 야당 청년 유세단에서 즉흥 연설을 했던 20대들은 박 후보의 역사치 발언에 가장 분노했다. “보수 정부 때 반공 교육을 잘못 받아서”라고 했던 민주당 의원의 진단과 비슷한 맥락이다. 전교조 교육을 잘못 받은 젊은이들이 걱정이라고 했던 과거 보수와 판박이다. 한마디로 지지를 못 받는 민주당 잘못이 아니라, 지지하지 않는 20대 탓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의 주축을 이루는 586들은 대학 시절 6월 항쟁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냈던 경험을 자랑스러워 한다. 20대 때 몽매한 기성세대를 깨우쳤다는 사람들이 이제 기성세대가 되자 20대를 내려다보며 훈계질 하려 든다. 전형적인 꼰대 스타일이다.

 

민주당의 회생 여부는 민심의 회초리를 아프게 받아들이고 변화를 모색하느냐에 달렸다. 보궐선거 직후 조국 사태에 대한 반성을 촉구했던 초선의원들은 “감히 조국을 건드려”라는 열성 지지층의 양념질에 혼쭐만 나고 주저 앉았다. 지금의 민주당은 높은 곳에 계신 문재인 아버지, 독생자 조국 그리스도, 성령 김어준의 삼위일체를 믿는 신도 집단이 돼 버렸다. 세 명의 신적 존재가 이끄는 정당이 어찌 인간 세계의 하찮은 미물들의 투정 소리에 흔들릴 수 있겠는가.

 

06.03 조국의 극진한 ‘자기 사랑’, 나라에 毒일까 藥일까

회고록 전체가 의혹 합리화
위선마저 궤변으로 감싸
與 주자들 조빠 눈치보며
민심 걱정하는 당과 엇박자
자신만 생각하는 曺 행태가
정국엔 어떤 영향 주게 될지

조국 전 법무장관의 회고록 ‘조국의 시간’을 읽는 내내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했다는 ‘나르시스’를 떠올렸다. 책 서문의 절반이 자신을 응원해준 지지자들의 모습이다. 건물 승강기에서 “힘내세요”라고 안쓰러워한 시민들, 누군지 알아보고 요금을 받지 않은 택시기사, 밥을 먹고 나오는데 주차장까지 따라와 편육과 김밥을 차 안에 넣어 준 식당 주인, 포장 주문을 찾으러 갔더니 “몇 개 더 넣었습니다”라며 봉투를 건넨 빵집 할머니… . 가슴 찡한 사례가 수십 건 열거돼 있다.

 

그는 자신과 가족에 대한 의혹을 검찰, 언론, 야당 카르텔의 창작품이라고 했다. “보수 카르텔이 마음만 먹으면 그 칼날을 피할 수 있는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다. 우선순위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조국 자신은 검찰 개혁의 깃발을 든 괘씸죄 때문에 우선순위 맨 앞자리로 끌려나온 희생양이라는 주장이다.

 

잘못을 인정한 대목도 있다. ‘과거 진보적 학자로서 했던 말과 실제 삶이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방점은 ‘완벽히’라는 단어에 찍혀 있다. 99%는 언행 일치했지만 1% 그러지 못한 대목도 있었다는 거다. 차고 넘치는 내로남불과 위선만은 철벽 방어가 어렵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조국이 죗값을 온전히 치를 사람은 아니다. 자신을 감싸준 한겨레 신문 칼럼에서 양형 감경 사유를 찾아냈다. “역설적이지만 위선이야말로 선을 닮고 싶은 우리의 또 다른 본성을 증거한다. 위선은 역겹지만 위선마저 사라진 세상은 야만이다.” 위선에 대해 “그래도 최악은 아니다”라고 한 수 접어주는 얘기는 태어나서 처음 들어 본다. 위선도 조국과 한 몸으로 묶인 덕분에 팔자를 고쳤다.

 

조국은 자신의 희생 제물 이미지를 반사해 줄 거울이 필요했다. 조국은 주변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과 똑 같은 일을 겪고 있다”고 위로했다고 한다. 조국은 자신에 대한 수사가 ‘공소권 없음’으로 귀결되기를 희망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주장도 회고록 속에 담았다. ‘공소권 없음’은 피의자가 극단적 선택을 했을 때 수사가 중단되는 상황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그렇게 종결됐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일’에 책 서문을 쓰게 돼서 감회가 남다르다고 했다. 마치 우연히 날짜가 겹쳤다는 투다. 자신의 처지가 노무현과 닮은 꼴이라는 연상 작용을 독자들에게 반복적으로 주입시킨다.

 

노무현이라는 거울 하나로 성이 차지 않았던 걸까. 회고록에는 천주교 신앙 때문에 고초를 겪었던 18세기 실학자 정약전이 등장한다. “나는 정약전의 처지가 됐다. 정약전이 흑산도로 귀양갔을 때 왜 물고기만 연구하며 자산어보를 썼는지 이해가 간다”고 했다. 정약전을 소재로 한 영화 ‘자산어보’가 개봉됐을 때 아들과 보러갔다고 한다. 영화가 끝나자 아들은 “우리 집 이야기 같네요”라고 했다. 그래서 아들의 등을 두드리며 영화관을 나왔다는 것이다. 21세기 내로남불 거사의 동병상련 파트너로 소환된 정약전의 심정이 궁금해진다.

 

조국은 회고록을 “전국에서 개최된 촛불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바친다고 했다. 그 규모가 수백만명이라고 했는데 여권 사람들 들으라는 무력시위다. 그 효과는 당내 경선 사정이 다급한 대선 주자들 반응에서 곧장 확인된다. 이낙연 전 총리는 “가슴이 아프고 미안하다”고 했고, 정세균 전 총리는 “가슴이 아리다”고 했다. 본선 민심을 더 신경 써야 하는 당 사정은 다르다. 송영길 당 대표는 허겁지겁 조국 사태에 대한 사과 입장을 밝혀야 했다. 여당 사람들은 사석에서 “야당에서 이준석 돌풍이 부는 최악의 시점에서 조국 회고록이 나왔다”고 속을 끓인다. 문 정권이 ‘조국의 시간’이라는 늪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교보문고 판매대에 놓인 회고록이 모두 팔려 카운터에 비치된 견본을 들고 왔다. 조국은 판매 하루 만에 10만부가 팔렸다고 자랑하는 글을 올렸다. 정가 1만7000원의 10% 인지대만 받아도 벌써 1억7000만원 수익을 확보했다. 조빠들이 회고록 판매 부수로 그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몇 권씩 구매하며 인증샷을 올린다고 한다. 앞으로 20만, 30만부 고지를 넘을 때마다 조국의 나르시시즘은 어김없이 소셜 미디어를 타게 될 것이다. 선한 의도가 좋은 열매를 담보하지 못하듯, 좋은 열매가 반드시 선한 의도에서 싹트는 것도 아니다. 조국의 극진한 ‘자기 사랑’이 나라 전체로는 독(毒)이 될지, 약(藥)이 될지 궁금해진다.

 

06.17 이준석 플랫폼에 올라타는 2030, 野 경선이 결승전 되나

서울시장이어 野 대표도
선택하고 당선시킨 2030,
대선서 시대 뒤집을 기세
野 는 마이크 건네는데
與는 親文이 발언 검열
청년이 어느 쪽서 놀겠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여러분이 나를 당 대표로 만들어 주셨다”는 말로 수락 연설을 시작했다. 유권자가 주어, 자신은 목적어라고 했다. “여러분이 저와 함께 역사 속에 발을 들여 놓았고, 우리가 만들어 나갈 역사 속에 지분을 갖고 있다”고도 했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선출과, 그 후보가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 2030 유권자들을 적극 개입시키겠다는 예고다.

 

이 대표는 이미 그 예비 실험을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4월 보궐선거 때 화제를 모았던 2030 시민참여 유세단이 그의 작품이다. 청년들이 신청만 하면 사전 검열 없이 마이크를 잡게 해줬다.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유세차에 올라선 2030들이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과 ‘불공정’을 신랄하게 성토했다. 기성 정치인들의 지원 연설은 1, 2만 조회 수가 고작이었는데 청년 연사들의 거칠고 투박한 울분 토로가 수십만 명씩 손님을 끌어 들였다.

 

“민주당 박영선 후보는 20대가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를 역사의 경험치가 없어서라고 했다. 20대가 민주당을 찍지 않는 진짜 이유를 알려 드리겠다. 첫째, 미래 세대에게 빚만 떠넘기고 태양광 친환경 사업, 자기들끼리 해먹는 행태에 분노한다. 둘째, 토착 왜구니 건물주니 하며 국민을 이리저리 쪼개는 분열의 정치에 신물이 난다. 셋째, ‘평등 공정 정의’를 떠들더니 4년 동안 목격한 것은 조국, 윤미향 사태, 그리고 여비서 성추행 뿐이다.” 137만 조회 수를 기록한 동영상 ’27세 취업 준비생이 박영선을 찍을 수 없는 이유'에 나오는 내용이다.

 

▲민방위 대원인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5일 오전 서울 노원구 한 병원에서 코로나19 얀센 백신을 접종했다. 병원에 도착한 이 대표가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준석 대표는 “2030세대가 정치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응원한 오세훈이 당선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번 재미를 맛본 2030들이 36세 이준석을 보수 정당 대표로 밀어 올렸다. 야당이 이들과 대선까지 동행하면 무조건 이긴다는 게 이 대표 계산이다.

 

투표권을 보유한 만 18세 이상 2030세대는 전체 유권자 중 34%다. 적지 않은 숫자지만 4050세대 38.7%, 60대 이상 27.3%을 압도한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40대는 강한 여(與) 지지, 60대 이상은 강한 야(野) 지지, 50대는 그 중간 식으로 어느 정당을 어느 정도 밀어 줄지가 고정돼 있다. 화투 용어를 빌리자면 짝이 미리 정해져 있는 굳은자다. 반면 2030은 진영 귀속감이 약해서 그때그때 지지 정당을 바꾼다. 작년 총선 땐 집권당에 몰려가 180석을 안겨 줬고, 지난 보궐선거에선 오세훈 시장에게 20%포인트 차 압승을 안겼다.

 

플랫폼은 기차를 타고 내리는 곳이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플랫폼에 좌판을 깔면 물건이 잘 팔리고, 그래서 사람들이 더 몰려든다. 부익부 빈익빈이다. 구글,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초일류 기업들은 모두 독보적인 플랫폼을 장착하고 있다. 플랫폼은 정치 흐름도 바꾼다. 2002년 대선은 당초 이회창 야당 후보가 이인제 여당 후보를 안정적으로 앞서가는 판세였다. 이인제는 이회창을 이길 수 없고, 이인제를 대체할 여당 후보도 나오기 힘든 구도가 굳어지고 있었다. 판을 뒤집은 것은 국민참여경선이라는 플랫폼이었다. 당의 보스나 당원, 대의원이 아닌 일반 국민에게 처음으로 대선 후보 선택권이 주어졌다.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그날 치러진 시·도 경선 결과가 생방송으로 발표되면서 국민의 눈길을 모았다. 민주당의 심장 광주에서 단기필마 노무현이 대통령 측근들이 미는 이인제를 꺾는 이변이 발생하면서 거센 노무현 돌풍이 불기 시작했다.

 

이준석 대표 체제 출범 이후 국민의힘 입당 신청자가 10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대부분 2030세대다. 서울시장과 제1야당 대표를 당선시킨 세대가 이준석 플랫폼에 올라타고 있다. 내년 대선에서도 발언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2030세대들이 20년 만에 시대를 또 한번 뒤집을 기세다.

 

이준석 돌풍에 당황한 민주당이 허둥대고 있다. 청년특임장관 아이디어까지 내놨다. 그러나 효과는 미지수다. 플랫폼의 경쟁력은 누구나 기차에 오르내릴 수 있는 개방성에서 나온다. 민주당은 문·조(文曺)파 어깨들이 완장을 차고 거들먹대는 조폭형 질서가 지배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조국 전 법무장관을 비판했다가는 곧장 뒷골목으로 끌려나가 린치를 당한다. 재기발랄한 2030들이 이런 어두침침한 세상에 흥미를 가질 리가 없다. 민주당이 친문 패권주의를 청산하지 못하면 내년 대선은 해보나 마나다. 2030 축제 형식으로 펼쳐질 야당 경선이 실질적인 대선 결승전이 될 것이다.

 

07.01 文정권의 반칙과 특권이 ‘젊은 매력 보수’ 불러냈다

권력 연줄 있어야 진학ㆍ취직고달픈 2030 세대 분노 불러끼리끼리 나눠 먹는 정권 대신이준석 외치는 능력에 끌려활력 잃고 늙어가던 보수에文이 새 숨결 불어 넣은 셈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경선을 일주일 앞두고 “(자신을) 영입해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고맙지만, 탄핵은 정당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심을 좌우하는 대구 합동연설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최대 고빗길에서 역풍을 각오한 도박이었다. 정면 승부를 걸었고 돌파했다. 이로써 야당이 ‘탄핵의 강’을 건너게 됐다고 이 대표는 자평한다.

 

작년 4월 총선 직후 ‘개표 조작설’이 제기됐을 때 야당 사람들은 ‘소극적 방관’ 자세였다. 적극 반박에 나선 사람은 한두 명이었다. 서울 노원병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신 이준석이 그중에서도 선봉이었다. 조작설을 철석같이 믿었던 야당 적극 지지층은 그를 맹비난했다. 그래도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조작설은 ‘보수가 저런 집단이구나’라고 실망만 안긴다. 집권의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 공화당은 트럼프의 대선 부정 시비에 어정쩡하게 동조하면서 정치적 늪 속에 빠져들었다. 대한민국 보수가 같은 함정에 빠지지 않게 된 데는 이준석의 공을 인정해야 한다

 

▲국민의힘 이준석(오른쪽) 대표가 30일 서울 중구 TV조선 스튜대오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변인 선발을 위한 토론 배틀 '나는 국대다(국민의힘 대변인이다)' 4강에 오른 신인규(왼쪽부터), 김연주, 임승호, 양준우 후보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 대표는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폄훼하지 않겠다”고 했고, 광주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은 가장 상징적이고 처절했던 시민들의 저항”이라고 했으며, 백범 기념관에서 “보수가 백범 김구의 업적을 기리는 데 소홀함이 있었다면 잘못”이라고 했다. 하나같이 보수 정치인이 찾아가기 쭈뼛대던 곳이고, 꺼내기 힘든 말이었다.

 

이 대표의 파격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보수가 스스로를 가두고 속박했던 굴레를 벗어던진다는 평가도 있지만, 진보를 흉내내며 표를 구걸하는 ‘얼치기 보수’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준석 현상이 야당에 진짜 희망이 되려면 보수의 핵심 가치에 대해서도 통찰력과 용기를 보여줘야 한다. 그가 깃발로 내건 ‘공정한 경쟁’의 성패가 그 가늠자가 될 것이다.

 

야당의 대변인 네 명을 뽑는 토론 배틀에 564명이 지원했다. 경쟁률 141대 1이다. 유튜브 중계 조회수가 100만 건을 넘어섰다. 정당 이벤트로는 이례적인 흥행 몰이다. 2030 세대 참가자들은 “계급장 떼고 실력과 능력만 보고 자리 주겠다는 말에 끌렸다”고 했다.

 

경쟁은 정치 비즈니스에서 안 팔리는 품목이다. “강자 대변하는 거냐”라는 ‘배 아픈’ 정서에 걸려들면 몰매 맞기 일쑤다. 메신저들이 1970년대에 머물러 있다는 낡고 고루한 이미지가 메시지 전달을 어렵게 만드는 측면도 있다. 그래서 나라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제발 ‘젊고 매력 있는 보수’가 나타나 주기를 고대해 왔다. ‘이준석 현상’에서 그 씨앗이 싹트고 있다.

 

경쟁이 짓눌린 사회에선 혁신도 숨 쉬지 못한다. 나라는 활력을 잃고 뒷걸음친다. 쪼그라드는 국가의 한정된 자원은 권력자들의 친소 관계에 따라 배분된다. 경쟁이 쫓겨난 자리를 반칙과 특권이 채우게 되는 것이다. ‘평등, 공정, 정의’의 가면을 쓴 정권 아래서 지난 4년간 벌어진 일이다.

 

대통령 아들은 예술인에 대한 국가 지원금을 2년 연속 1400만원, 6900만원 최고액을 받았다. 대통령 고등학교 동기가 이사로 있는 문화재단에서도 3000만원을 챙겼다.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세계적 예술인”이라는 낯 뜨거운 헌사까지 바쳤다. 문 정권을 상징하는 인사의 딸은 ‘반칙과 특권’의 결정판을 보여준다. 아빠 찬스와 엄마 위조로 황금 스펙을 장착한 덕분에 거듭 낙제를 하고도 장학금을 받으며 의전원을 졸업했고, 공기업 산하 재단이 운영하는 병원 인턴 자리까지 꿰찼다. 25세 대학생은 고시에 패스해도 25년 걸려야 한두 명 도달할 수 있는 공무원 1급, 그것도 권력의 정점 청와대 비서관이 되는 벼락 출세를 했다. 집권당 지명직 최고위원을 한 경력이 유일한 디딤돌이었다. 분노한 2030들은 경쟁이 아무리 고달프고 피곤해도 반칙과 특권보다는 낫겠다는 심정이다.

 

엊그제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이야말로 능력과 경쟁이라는 시장 지상주의를 경계해야 할 때”라고 했다. 아들보다 두 살이나 어린 야당 대표가 외치는 구호가 어지간히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은 정치인 노무현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그의 취임사에도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사회는 이제 끝나야 합니다”라는 구절이 담겨 있다. 노무현 시즌2라는 문재인 정권에서 ‘반칙과 특권’이 창궐하고, 그래서 노무현이 그토록 적대시했던 보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게 된 이중 역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07.15 지원금 살포에 억지로 꿰맞춘 ‘政治 방역’의 탈선

확진자 느는데 방역 완화2주 새 액셀, 급정거,후진지원금 지급 먼저 정하고방역이 뒤따르다 탈 난 것국정 홍보에 정적 때리기도코로나가 정치 마술봉인가

 

“7월 1일부터 수도권 모임 6명까지 허용”(6월 27일) “5인 이상 금지 1주일 연장”(6월 30일) “5인 이상 금지 계속 유지”(7월 5일) “12일부터 3인 모임 금지”(7월 9일). 코로나 방역 지침이 요동친 지난 2주치 신문에 나오는 기사 제목들이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중앙방역대책본부장)이 14일 오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50대 예방접종 사전예약 오류 개선 등과 관련한 긴급 브리핑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사적 모임의 인원 제한을 4명에서 6명으로 완화한다는 방침이 발표 사흘 만에 유보됐고, 8일 만에 없던 일이 됐으며, 12일이 지나자 정반대로 4명에서 2명으로 줄인다는 결정이 나왔다. 방역 완화 액셀을 밟았다가 급정지를 하고, 심지어 후진하는 일이 불과 두 주 사이에 벌어진 것이다.

 

더욱 이상한 건 코로나 확진자가 계속 늘어나는 가운데 방역 완화가 결정됐다는 점이다. 6월 초 300 내지 400명이었던 하루 확진자가 500명을 넘어선 20일쯤부터 6인 모임 허용 얘기가 나오더니 발표가 난 28일 직후엔 700명대에 진입했다.

 

7월 6일부터 1000명을 넘어서는 4차 대확산 국면에 접어들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7월 말에 2000명이 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감염, 격리, 사망, 회복을 변수로 하는 예측 모델을 통해 3주 후 확진자 수의 최대치를 추정한 것이다. 뒤집어 보면 7월 초 1000명이 넘을 수 있다는 예측을 6월 중순에 할 수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바로 그 시점부터 방역 완화 조치가 추진됐다.

 

이 상식 밖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힌트도 2주치 신문 속에 있었다. “연 소득 1억원 가구까지 1인당 25만~30만원 지원”(6월 29일). 정부와 여당이 소득 하위 80% 가구에 재난 지원금을 지급한다는 발표가 나온 것은 6인 모임 허용 발표가 나온 바로 이틀 뒤였다. 재난 지원금과 방역 완화 논의가 신문에 처음 등장하는 시기도 6월 중순에 비슷하게 겹친다.

 

대통령은 신년 회견에서 “코로나 상황이 진정되면 재난 지원금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었다. ‘코로나 사태 진정’이 지원금의 전제 조건이다. 반대로 코로나가 확산됐으니 지원금은 중단돼야 한다. 그런데 무조건 ‘고’를 외친다. 지원금 살포를 먼저 정해놓고 코로나 사태 진정 및 방역 완화를 거기에 끼워 맞추는 식이다. 마차가 먼저 달려 나갔는데 말이 반대 방향으로 틀면서 탈선된 것이 이번 4차 대확산이다.

 

작년 총선서 집권 세력은 “선거에서 이기면 전 국민에게 지원금을 나눠 드리겠다”는 공개 매표 전략으로 톡톡히 재미를 봤다. 이후 핑곗거리만 생기면 지원금 뿌릴 궁리만 한다. ‘우리에게 표를 주면 주머니에 공돈이 생긴다’는 세뇌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국민을 돈 봉투 보고 침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 취급한다. 올 11월 집단면역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또 지원금 얘기가 나올 것이다. 그래서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코로나 종식을 기념하는 재난 지원금 결정판이 전 국민 식탁에 오르게 된다. 이번 지원금은 메인 디시의 입맛을 돋우는 애피타이저다.

 

문 정권에 코로나는 종합선물세트다. 그 속엔 재난 지원금만 있는 게 아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K방역’이라는 정권 홍보도 대통령이 애호하는 품목이다. 청와대는 얼마 전 G20 국가 정상들이 문 대통령을 일제히 가리키는 사진을 공개하며 “방역은 당신이 최고”라는 칭찬을 들었다고 자랑했다. 작년 말엔 대통령의 전화 한 통화로 모더나 백신 공급 물량이 2000만명분(4000만회)으로 두배 늘고, 도입 시기는 3분기에서 2분기로 앞당겼다고 발표했다. 약속했던 2분기가 훌쩍 지나갔는데 현재까지 도입된 모더나 백신은 86만회(약속 물량의 2%)고, 8월 초까지 예상 물량을 합해도 185만회(5%) 정도다. 며칠 전 모더나 예약이 먹통으로 시작해서 대란으로 끝난 이유다. 청와대는 대통령 전화 한 통화의 기적이 부도난 사태에 대해 아무 설명이 없다.

 

코로나는 문 정권에 미운털이 박힌 적폐 세력에 ‘방역 방해’ 딱지를 붙이는 구실도 제공했다. 작년 2, 3월 1차 확산 때는 대구, 신천지 탓을 했고, 8월 2차 확산은 광화문 집회가 죄를 뒤집어썼다. 집회 참가자에 대해 대통령은 “방역을 조직적으로 방해한 세력에게 공권력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라”고 했다. 청와대 비서실장은 “살인자”라는 극단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이번 확산 때 민노총은 8000명이 집회를 강행했다. 그런데도 공권력의 엄중함도 실종됐고, 살인자라는 비난도 들리지 않는다. 코로나 4차 대확산은 대통령 말처럼 모두의 책임이 아니다. ‘정치의, 정치를 위한, 정치에 의한’ 문재인표 방역 탓이다.

 

07.29 시·도지사 6명이 심판대에 선 정권, 사과커녕 성낸다

성범죄 3명, 선거사범 3명
職 박탈 걸린 법정 다툼에
지방 행정 3분의 2가 공백
보궐선거로 839억 낭비
석고대죄해도 모자라는데
특검·대법원에 화풀이만

김경수 경남지사의 유죄 확정판결이 나자 친문(親文) 교향곡 ‘지·못·미’의 3악장이 울려 퍼지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조국 전 법무장관에 이어 김 지사마저 사법 심판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것이다. 그 채무 의식이 엉뚱한 대상을 향해 분노로 표출되고 있다.

 

허익범 특검은 법정을 나서다가 문빠들에게 “천벌을 받을 X”이라고 욕설을 들었다. 지은 죄가 너무 무거워 인간이 아닌 하늘이 내리는 벌을 받게 될 거라는 저주다. 허 특검에게 죄가 있다면 김 지사가 드루킹의 킹크랩 시연을 봤다는 물증을 추적해서 찾아낸 것뿐이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에게는 “꿩(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못 잡고 자살골만 넣었다”는 원망이 쏟아지고 있다. 추 전 장관은 민주당 대표 시절인 2018년 1월 17일 “인터넷 공간에서 대통령을 ‘재앙’과 ‘죄인’이라 욕하는 범죄 집단을 반드시 찾아내 고발하겠다”고 했다. 거악(巨惡)을 응징하겠다는 사명감에 흥분한 모습이었다. 머릿속에선 일베 또는 아스팔트 보수에게 수갑을 채우는 상상을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놀랍게도 석 달 후 경찰에 검거된 드루킹 일당은 민주당 권리당원이었다. 그리고 이들에게 댓글 조작을 주문한 사람이 김경수 지사로 밝혀졌다.

 

드루킹이 김 지사에게 성능 시범을 보인 킹크랩은 초고속 댓글 조작 시스템이다. 수작업이면 2분 걸릴 댓글 작업을 1, 2초에 해낸다. 이 첨단 무기 덕분에 분대 규모 드루킹 조직이 한 달에 댓글 4100만건을 조작할 수 있었다. 문 정권 사람들이 부정선거라고 성토한 이명박 정부 댓글 조작이 일부 소총수의 일탈이었다면, 드루킹 일당은 오로지 선거 조작을 위해 장비와 훈련을 갖춘 다연발 기관총 부대였다. 만일 추미애 대표가 추적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그래서 2018년 4월 드루킹 일당이 검거되지 않았다면, 그해 6월 치른 지방선거에서 킹크랩이 실전에 투입됐을 것이다.

 

드루킹 일당은 2017년 대선 때부터 문재인 후보를 도왔다. 선거 한 달 전 민주당 경선 투표장에서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경인선도 가야지, 경인선 가자”며 경인선을 다섯 번 외치는 장면이 유튜브에 남아 있다. 경인선은 드루킹이 운영하던 문재인 지지 모임이었다. ‘경제도 사람이 먼저’라는 뜻을 담고 있다. 드루킹 일당은 대통령 부인도 알고 있었고, 대통령 최측근 참모는 함께 선거 부정을 공모했다. 만약 보수 정권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광화문광장이 ‘탄핵’을 외치는 촛불로 메워졌을 것이다.

 

안희정 충남지사, 오거돈 부산시장, 박원순 서울시장에 이어 김경수 지사까지 이 정권 들어 시·도지사 네 명이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법의 심판을 받았거나 심판을 앞두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다른 정권에선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송철호 울산시장도 청와대 참모들이 대거 가담한 선거 공작 피고인 신분이다. 김명수 법원의 지연 작전이 없었다면 이미 운명이 결정됐을 것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선거 TV 토론에서 허위 사실을 말해 2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받고도 7대5 대법원 결정으로 ‘목숨’을 부지했다. ‘적극적인 거짓말은 아니었다’가 훈방 조치의 명분이었다.

 

시·도지사 17명중 무려 6명이 심판대에 섰다. 검·경이 자발적으로 수사한 게 아니다. 세 명은 성범죄 피해자가, 두 명은 선거 상대방이 고발했고, 한 명은 자기편이 발등을 찍었다. 문 정권의 임기 말 지지율 선방에 대해 청와대는 “부패가 없기 때문”이라고 자랑했다. “부패 수사를 못 했기 때문”이라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진단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시장, 도지사 목이 걸린 재판이 진행되는데 시청, 도청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나. 서울(966만), 부산(339만), 울산(113만), 경기(1342만), 경남(334만), 충남(212만) 인구를 합하면 3306만, 전체 인구 5182만의 63%다. 여당 단체장의 비위 때문에 전체 3분의 2에 해당하는 지방 행정에 공백이 생겼다. 지난 4월 7일 서울·부산 보궐선거를 치르느라 국고 839억원도 낭비됐다.

 

국민에게 이런 피해를 끼치고도 문 정권 사람들은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다.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진상을 밝힐 것이냐는 기자 질문에 여당 대표는 “XX 자식”이라고 했다. 친문의 정신적 지주라는 김어준씨는 김 지사 판결을 내린 대법원 판사들을 겨냥해 “개놈 XX들, 갑자기 열 받네”라고 했다. ‘OO 놈이 성낸다’는 속담 그대로다.

 

08.12 “민주당 세상 되면 집값 더 오를 거야, 한 채 사둬”

집값 떨어진다 협박하더니
아파트 93% 급등, 11억 돌파
부동산 차익 범죄 취급하며
민간 再건축·개발 막은 탓
與주자, 盧·文 실패 코스 답습
재집권하면 폭등 시즌3 오나

국토교통부 장관이 “내년 4월까지 시간을 드리겠다. 사는 집이 아니면 파시라”고 겁을 줬던 게 정부 출범 석 달 만인 2017년 8월이었다.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이 “이달 말에서 다음 달 초면 집값 안정을 체감하게 될 것”이라고 했던 건 작년 이맘때였다. 한두 달이 그냥 흐르자 “올 연말, 늦어도 내년초엔 반드시 집값이 잡힌다”는 장담이 뒤를 이었다. 지난 6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앞두고 “매물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더니 그 전망도 어긋났다. “집값 물어 간다”고 문(文) 정권 양치기들이 예고했던 늑대는 결국 오지 않았다.

 

경실련 조사 결과 문 정부 4년간 서울 아파트값이 93% 올랐다. KB부동산의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은 11억원을 돌파했다. 미화(美貨)로 환산하면 백만달러다. 서울 아파트 한 채 있으면 부자라는 뜻의 ‘백만장자’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근로자 월급을 모아 서울 25평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기간이 박근혜 정부 21년에서 문재인 정부 36년으로 15년이나 늘어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동산 빼놓고는 꿀릴 게 없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부동산 때문에 죽비로 맞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엘튼 존의 “미안하다는 말은 정말 하기 힘들어”를 주제가처럼 여긴다. 좀처럼 잘못을 인정하는 법이 없다. 그런데도 부동산값 폭등만큼은 변명할 도리가 없었던 모양이다.

 

물건 값이 치솟는 건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서다. 사람들이 살고 싶은 아파트가 충분하면 집값이 오를 이유가 없다. 노태우 정부 때 200만호 정책으로 부동산 시장이 10년 이상 안정됐다. 새 아파트를 지으려는 주택조합은 지금도 사방에 널려 있다. 재개발, 재건축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면 언젠가 아파트값은 꺾이게 마련이다. 노 정부도, 문 정부도 이 해법을 거부했다. 집값으로 돈 버는 꼴을 보기 싫어서다.

 

홍남기 경제 부총리는 “주택을 통한 불로소득은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김부겸 총리는 “집값이 오른 것은 불로소득이고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했다. 부동산 양도 차익을 범죄 취급한다.

 

투기꾼들은 걸러내고 선량한 실수요자에게만 집을 공급하겠다고 한다. 자신이 거주할 집을 찾는 실수요자도 앞으로 값이 오를 만한 집인지를 먼저 따진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보유 자산 중 부동산 비율이 절반을 훨씬 넘는다. 집값 전망을 신경 안 쓰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실수요와 투기 수요가 뒤엉켜 있는 게 부동산 시장이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고리대금업자는 돈 못 갚은 채무자에게 살 1파운드를 도려내라고 요구한다. 판사가 “살 1파운드 베어가라. 대신 피는 한 방울도 흘리면 안 된다”고 하자 포기한다. 실수요자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투기 수요만 도려낼 방법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문 정부의 주택 공급은 시세 차익이 나지 않는 공공개발 방식만 고집한다. 오랜 세월을 기다린 대가를 챙기려는 주택 조합원들은 “그럴 바에는 재개발, 재건축 안 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발표했던 대규모 공급 대책이 헛바퀴만 도는 이유다. 자산 가치를 불리고 싶은 자연스러운 욕구를 범죄로 몬 것이 아파트 수급 불균형을 낳고, 집값 폭등을 불렀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올리는 ‘시무 7조’로 유명해진 논객 조은산이 쓴 ‘신(新) 대깨문의 일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내가 사는 서울 아파트 값이 20억원을 돌파했다. 지난 총선 직후, ‘민주당이 득세했으니 집값이 더 오를 것이여. 자네도 얼른 하나 사놔’라는 지인의 권유에 전세에서 자가로 갈아탄 덕분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부가 세금과 규제로 집값을 잡겠다고 으르렁댈 때마다 집값이 뛴다는 걸 온 국민이 알게 됐다. 그런데도 집권당 대선 후보들은 노무현, 문재인 정부가 실패한 그 코스를 그대로 따라가겠다고 다짐한다. 선두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집값은 강력한 규제가 답”이라고 대놓고 말한다.

 

‘부모 찬스’에 빚까지 끌어 모아 집을 사는 20대가 늘어나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 젊은 층이 앞으로 집값이 오른다고 보고 있다는 얘기다. 전세로 신혼집을 마련하려다 ‘영끌 구매’로 방향을 튼 청년에게 이유를 물었다. “정권 바뀌면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대선판이 심상치 않아요.” 아파트값 폭등 시즌 3에 대비해 보험 드는 심정으로 집을 샀다는 뜻이다.

 

08.26 文 정권이 찍을 때마다 제 발등, 언론 징벌은 다를까

盧 정권이 올인한 친일 규명
드러난 후손은 여권 인사뿐
드루킹 쫓다 김경수 발목
선거법도 명분, 실리 다 잃어
조국 보복하려는 언론법
정권 친위 매체 목 죌 수도

노무현 대통령은 “친일(親日) 했던 사람들은 3대가 떵떵거린다”며 친일 규명에 앞장섰다. 쉽게 말해서 ‘친일파 후손 찾아 망신 주기’였다. 정권이 총력을 쏟았다. 그래서 “친일파 후손이 야당 쪽에서 쏟아질 모양”이라고 짐작했었다. 2004년 광복절 직후 최초로 확인된 친일 후손 정치인은 집권당 대표였다. 부친이 일본군 헌병 오장(하사)으로 한국인 징병 기피자들을 찾아 다녔다. 2탄 역시 부친이 일본군 헌병이었던 집권당 상임중앙위원이었다. 집권당 지도부 5명 중 2명이 “3대가 떵떵거린다”는 친일 집안이었다. 이 밖에도 집권 세력 조상이 일제 때 특무경찰, 금융조합 서기, 동학란 원흉으로 꼽히는 고부 군수 등으로 확인됐다. 야당 쪽에선 이렇다 할 친일 계보가 발견되지 않았다. 노 정권 주변에선 “친일 몰이로 제 발등만 찍었다”는 탄식이 들려 왔다.

 

2018년 1월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인터넷에서 남북 단일팀 비판 여론이 고조됐다. 문 정권 상왕이신 김어준 가라사대 “정부를 비방하는 댓글 조작단이 뛰고 있다”고 했다. 이 말씀을 받들어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일당을 찾아내 엄단해야 한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일베 또는 태극기 부대로 구성된 현장 조직과 야당 배후 세력을 머릿속에 그렸을 것이다. 경찰에 검거된 드루킹 일당은 민주당 당원이었고, 이들에게 지령을 내린 사람은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김경수 경남지사였다.

 

2019년 연말 국회에서 집권당은 제1 야당이 결사 반대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겉으로 내건 목적은 군소 정당 의석을 늘려 표의 등가성을 제고한다는 거였고, 속셈은 제1 야당 의석을 빼앗아 집권당의 2, 3중대에 나눠준다는 거였다. 제1 야당이 자구책으로 비례 정당을 만들자 집권당도 따라 했다. 그 결과 거대 여야 정당 의석은 더 늘어나고 군소 정당은 쪼그라들었다. 집권 세력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었다.

 

▲'언론중재법' 반대 손팻말 정리하는 법사위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사위 관계자가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뒤 남겨져 있던 언론중재법 반대 손팻말을 정리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법과 제도는 처벌이나 혜택을 누가 받을지 미리 알 수 없어야 한다. 그게 법치(法治)의 기본이다. 문 정권은 대놓고 “나는 이익, 너는 손해’ 보도록 법과 제도를 만든다. 그러다가 곧잘 제 발등을 찍는다. 운이 없어서가 아니다. 문 정권 DNA에 새겨진 위선과 내로남불 때문이다. 대낮 광장에서 비난했던 행동을, 불 꺼진 밀실에서 자신이 한다. 조국 전 법무장관이 저지른 모든 비행(非行)이 자신이 비난했던 조만대장경 속에 예언서처럼 담겨 있다. 이러니 적폐를 겨냥해 쏜 화살이 자기 등 뒤에서 날아온다.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은 청와대 대변인 시절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8억8000만원의 부동산 차익을 얻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문 정권이 “사는 집이 아니면 파시라”며 부동산 투기와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한겨레 기자 출신인 김 의원은 MBC 기자가 야당 대선 주자 뒤를 캐기 위해 경찰을 사칭한 것을 감싸기 위해 “우리 때는 흔했던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한겨레 후배로부터 ‘김의겸의 감수성’이라는 질책을 들었다. 그런 사람이 ‘언론 선진화’를 위해 ‘언론징벌법’에 앞장서고 있다.

 

김 의원은 라디오 대담에서 진중권씨로부터 “MBC의 검언 유착 보도와 한겨레의 윤석열 별장 접대 기사는 손해배상 대상이냐,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김 의원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얼굴을 감쌌다. 두 보도 모두 허위였고, 중대 과실이 있었으며, 고의성이 농후했다. 김 의원이 추진하는 법에 따르면 딱 떨어지는 손해배상감이다.

 

윤석열 별장 접대 기사를 썼던 기자는 2016년 12월 7일 자 한겨레 1면 톱에 ‘박근혜, 세월호 가라앉을 때 올림머리 하느라 90분 날렸다’는 기사를 썼다. 국회 탄핵안 표결을 사흘 앞둔 시점이었다. 박 전 대통령을 지탄하는 후속 보도와 사설도 뒷받침됐다. 특검은 수사 결과 발표에서 “세월호 당일 대통령의 머리 손질 시간은 평소 절반가량인 20~25분”이라고 밝혔다.

 

사기꾼 김대업이 주도한 이회창 병풍, ‘뇌송송 구멍탁’ 광우병 공포, 천안함과 세월호를 미군이 폭침했다는 괴담… 언뜻 떠오르는 대형 오보 사례들이다. 모두 허위, 중대 과실, 고의성 요건을 갖추고 있고, 예외 없이 이 정권 친위 매체들의 작품이었다.

 

언론징벌법은 조국 전 장관이 언론 때문에 억울하게 희생양이 됐다는 문빠들의 복수 혈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비판 언론들을 손보겠다는 의도가 법조문 곳곳에 나타나 있다. 이 법이 결국 누구 발목을 찍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09.09 윤희숙 일가가 타임머신 타고 투기했다는 건가

KDI 정보 부친 건네 투기?
땅 구매는 예타 3년반前
尹 제부가 朴 정권 핵심?
文 국정 어떻게 미리 아나
이재명 공약 저격한 尹에
‘아니면 말고’ 앙갚음 공세

윤희숙 의원과 그 일가는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하는 모양이다. 윤희숙 투기 의혹이 성립하려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초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경기지사 캠프는 윤 의원이 부친에게 세종시 개발 정보를 건네 땅 투기를 도왔다고 의심한다. 이 지사의 수행실장이 “윤 의원 부친이 산 땅과 윤 의원이 근무했던 KDI는 모두 세종시에 있다”고 냄새를 피웠다. 캠프 대변인은 보다 확실한 연결 고리를 제시했다. “윤 의원 부친이 매입한 땅은 ‘세종시 국가 산업단지’ 인근으로, 산업 단지 예비 타당성 조사를 KDI가 맡았다. 당시 윤 의원은 KDI에 근무했다.”

 

▲부친의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국회의원직 사퇴의사를 밝힌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8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시스

 

기획재정부가 문제의 세종 산업단지를 예타 대상으로 선정한 것은 2019년 10월, KDI가 예타에 착수한 것은 2019년 12월이었다. 윤 의원 부친이 세종시 땅을 산 것은 2016년 3월이다. 윤 의원이 KDI 예타 정보를 빼낸 게 사실이라고 쳐도 무슨 재주로 3년 9개월을 거슬러 올라가 부친에게 전달할 수 있나.

 

KDI 출신들은 ‘KDI 예타 정보로 땅 투기를 했다’는 의혹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한다. 예타 대상은 주무 부처 내부 심의를 거쳐, 기재부가 결정한다. 그 과정에 지자체와 국회의원도 적극 개입한다. 수많은 사람을 거쳐 예타가 결정돼 KDI로 넘어올 무렵이면 그 개발 정보는 선도가 한참 떨어진 상태다. KDI에서 예타를 담당했던 학자는 “첫 현장 실사를 나갈 때마다 눈에 띄는 것이 ‘예타 대상 확정’이라는 플래카드”라고 했다. 지역 국회의원이 자신의 공을 자랑하려고 내거는 홍보용이다. 국회의원들이 KDI 예타보다 몇 걸음 앞서 개발 정보를 접한다는 뜻이다.

 

윤 의원 대신 윤 의원 제부를 정보 소스로 보는 두 번째 시나리오도 있다. 이재명 캠프의 선대위원장은 “윤 의원 제부가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다”고 했다. 수행실장은 “윤 의원 제부가 박근혜 정부 최고 실세였던 최경환 부총리의 핵심 측근”이라고 했다. 윤 의원 동생의 남편인 장모씨는 박근혜 출범 직후인 2013년 2월 청와대에서 한 달, 2014년 하반기부터 최경환 기재부에서 정책 보좌관으로 1년 반 근무했다. 세종시 산업단지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7월 국정과제로 채택돼 추진됐다. 이재명 캠프 주장대로 장씨가 박근혜 정부의 핵심 중 핵심이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 해도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지, 또 그 정권에서 어떤 지역사업이 추진될지 무슨 재주로 미리 알 수 있나.

 

문 정권의 상왕이라는 김어준씨는 이재명 지사와 차기 정권 파트너십을 체결한 것처럼 움직인다. 김씨는 “윤 의원 부친이 구입했을 때보다 현재 땅값이 5배 내지 6배로 뛰었다”고 했다. 윤 의원 부친은 2016년 3월 땅 다섯 필지를 구입했는데 당시 공시지가가 ㎡당 3만4600~3만6600원이었다. 올해 공시지가는 5만900~5만6400원이다. 공시지가 기준으로 1.5배 정도 올랐다. 5배, 6배는 아무리 봐도 지나치다.

 

구입 1년 전인 2015년 공시지가는 1만8600~1만9800원이었다. 땅 값이 두 배 가까이 뛴 직후 뒷북 투자를 한 셈이다. 윤 의원 부친이 땅을 산 후 공시지가는 4년 동안 찔끔찔끔 오르다 지난 한 해 갑자기 급등했다. 무슨 호재가 있었을까. 2020년 7월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 연설에서 “국회, 청와대, 정부 부처가 모두 세종시로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총리 출신 당대표도 “국회, 청와대까지 이전해야 행정수도의 완성”이라고 거들었다. 윤 의원 부친이 세종시 땅으로 재미를 본 것은 KDI 정보가 아니라, 집권당이 느닷없이 꺼낸 천도론 덕분이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4년 후 국회 연설 내용을 미리 들은 건가.

 

이재명 캠프가 대선 경선을 치르는 그 바쁜 와중에 야당 초선 의원 하나 잡겠다고 총출동했다. 배경은 짐작이 간다. 이재명 지사의 대표 공약이었던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대출 시리즈가 윤희숙 의원의 조준 사격으로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됐다. 분을 삭이고 있던 차에 윤 의원 부친 땅 문제가 터진 것이다.

 

윤희숙에게 본때를 보여줘서 대선 기간 동안 입을 틀어막겠다는 계산이 작용했을 것이다. 의도가 뚜렷한 의혹 제기다. 캠프 관계자들이 돌아가면서 나섰다는 점에서 반복성도 확인된다.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의 선후 관계를 무시했다는 점에서 중대 과실에 해당한다. 윤희숙 의혹은 언론재갈법 징벌적 손해배상의 세 가지 요건에 딱 맞아떨어지는 가짜 뉴스다.

 

10.07 ‘버럭’ 이재명이 유동규의 ‘배은망덕’에 왜 잠잠할까

성남시장, 경기지사 10년간

요직 앉히며 신뢰 쏟았는데

투기 세력 결탁, 대박 챙기며

恩人의 대선 가도에 재 뿌려

성질 못 다스리는 李 지사가

유씨에게 화 안 내는 까닭 궁금

 

유동규씨가 이재명 경기지사의 측근인지 아닌지는 두 사람이 판단할 문제다. 제3자가 가타부타 할 일이 아니다. 다만 이 지사가 유씨를 유난히 아끼고 챙겨왔다는 건 복수의 ‘팩트’로 확인된다.

 

이 지사가 성남시장에 처음 당선된 2010년 지방선거 직후 유씨는 성남 시설관리공단(성남 도시개발공사 전신) 기획본부장에 임명된다. 당시 성남시의회는 리모델링 조합장 출신인 유씨가 공직 경험이 전혀 없다며 자격을 문제 삼았지만 이재명 시장이 밀어붙였다. 이 시장이 2014년 재선에 도전할 때 유씨는 선거 캠프에 갔다가 기획본부장 자리로 돌아왔다. 그사이 기획본부장 자리는 비어 있었다. “기획본부장 감투가 유동규 개인 몫이냐”는 말이 나왔다.

 

이재명 성남시장 1기 때부터 유동규씨 위세가 대단했던 모양이다. 이 지사의 형 이재선씨는 2012년 6월 이 지사 아내 김혜경씨에게 전화를 걸어 “동생 주변엔 어떻게 유동규 같은 사람밖에 없느냐”고 했다는 녹취록이 공개됐다. 그 통화에서 이재선씨는 “(동생이 보낸) 문자를 보니 유동규 많이 사랑합디다”라는 말도 했다. 이재선씨는 제수보다 먼저 동생에게 유동규씨 ‘험담’을 늘어 놓았는데, 이재명 시장은 형에게 유동규씨를 감싸고 편드는 답글을 보내왔다는 뜻이다.

 

이재명 성남시장 1기 때부터 유동규씨 위세가 대단했던 모양이다. 이 지사의 형 이재선씨는 2012년 6월 이 지사 아내 김혜경씨에게 전화를 걸어 “동생 주변엔 어떻게 유동규 같은 사람밖에 없느냐”고 했다는 녹취록이 공개됐다. 그 통화에서 이재선씨는 “(동생이 보낸) 문자를 보니 유동규 많이 사랑합디다”라는 말도 했다. 이재선씨는 제수보다 먼저 동생에게 유동규씨 ‘험담’을 늘어 놓았는데, 이재명 시장은 형에게 유동규씨를 감싸고 편드는 답글을 보내왔다는 뜻이다.

 

훗날 이 지사는 형과의 불화 원인에 대해 “성남시의 인사 문제까지 개입하려 들었다”고 설명했다. 녹취록을 보면 인사 문제의 당사자가 유동규씨였던 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 지만씨가 최순실씨를 누나에게서 떼어놓으려다 남매 사이가 소원해졌다는 사연을 떠올리게 한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2018년 경기지사에 당선되자 유동규씨는 차관급인 경기관광공사 사장으로 영전한다. 이 지사가 중앙대 선배이자 떡볶이 먹방을 함께 찍었던 황교익씨를 앉히려 했던 바로 그 자리다. 이 지사가 유씨에게 임명장을 줄 때 주변 사람들을 물리며 “동규야, 이리 와라”고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2019년 1월, 이 지사는 트위터에 ‘유동규 경기관광공사 사장의 국내 초 파격 출산책 화제’라는 기사를 올렸다. 그러면서 “산하 기관들도 이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듯하다”는 촌평을 달았다. 유 사장이 일 잘한다고 공개적으로 칭찬한 것이다. 같은 해 10월엔 “3년 만에 금한령 방패 뚫은 이재명·유동규의 투트랙 비법”이라는 기사도 트위터에 공유했다. 이재명, 유동규 이름이 나란히 제목에 등장하면서 파트너십 관계처럼 비친다. 기사에는 “유 사장은 이 지사의 복심이자 측근”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이 지사가 이 기사를 트위터에 소개한 것은 내용에 공감하고 만족한다는 뜻이다.

 

이 지사가 이렇게 알뜰하게 챙겨온 유동규씨가 이 지사를 궁지에 빠뜨렸다. 화천대유가 대박을 터뜨린 것은 유동규씨가 기획본부장 시절 수익 배분 구조를 그렇게 설계했기 때문이다. 지분이 (50%+1주)인 성남 도시개발공사는 1822억만 먼저 확보한 뒤 나머지 수익은 7% 지분을 가진 화천대유와 관계사인 천화동인에 돌아가도록 만들었다. 공사에서 대장동 사업을 담당했던 개발 2처장은 화천대유에 “과도한 수익이 돌아갈 수 있다”며 안전장치를 만들자고 건의했다. 유 본부장은 담당을 2처에서 1처로 옮기면서 화천대유 횡재 구조를 유지시켰다. 유 본부장은 그 대가로 700억원을 약속받았다는 녹취록이 있는가 하면, 구속영장에는 이미 5억원을 뇌물로 받았다는 대목도 나온다.

 

‘단군 이래 최대 공익 환수’라던 이재명 지사의 대표 상품이 ‘단군 이래 최대 한탕 투기’로 곤두박질쳤다. 이 지사는 투기 세력을 때려잡지 못하는 공무원 탓을 해 왔는데, 이 지사의 부하 직원은 아예 투기 세력과 한탕 대박을 공모했다. 이 지사가 자신의 발 밑에서 벌어진 일을 까맣게 몰랐다고 주장하면서 “이재명이 일 잘한다”는 신화도 허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모두 유동규씨 때문이다.

 

이재명 지사는 심사가 뒤틀리면 불같이 화를 낸다. 형수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하고, 기자들이 껄끄러운 질문을 한다고 귀에 끼었던 수신기를 빼고 인터뷰를 중단하기도 했다. 유동규씨는 이 지사의 신뢰를 투기 세력과의 야합(野合)에 이용했다. 평소의 이재명 지사라면 유씨의 ‘배은망덕’에 분을 삭이지 못하고 갖은 폭언을 퍼부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잠잠하다. 자신에게 “관리 책임이 있다”는 절제된 표현을 쓰며 유씨에 대해선 싫은 소리 한마디 안 한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이재명 지사가 유동규씨의 심사를 살펴야 할,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것일까.

 

10.21 대장동 대박 예보, 2년 전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이재명, “설계했고 문제없다”

실패 대비 확정수익 선택 주장

화천대유 1000배 대박 합리화

2년 전 재판 땐 “성공 90~100%”

특혜 아니면 뇌물 근거도 흔들

유동규 왜 감옥에 있는 건가

 

이재명 경기지사의 국정감사 답변을 듣고 가장 황당해한 쪽은 검찰이었을 것이다. 유동규씨가 이 지사 몰래 화천대유에 대박을 몰아준 것으로 시나리오를 짜놨는데 이 지사가 “내가 한 것”이라고 ‘자백’했다.

 

유동규씨는 ‘배임 및 뇌물’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구속 영장은 “성남개발공사의 배당금 상한액을 1822억원으로 제한해서 화천대유와 관계사인 천화동인이 나머지 배당금 전액을 받도록 했다”면서 “공사 측에 수천억 원의 손실을 끼치는” 배임을 저질렀다고 했다. 이런 특혜를 주는 대가로 배당 수익의 25%를 약속받고 수억 원을 이미 받았다면서 뇌물죄도 적용했다.

 

▲이재명(가운데) 경기지사가 지난 2010년 성남시장 선거를 앞두고 선거 사무소에서 자신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분당 리모델링추진위원장협의회 관계자들과 함께 서 있다. 이 지사의 오른쪽이 당시 연합회장을 맡았던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다. 당시 협의회 측은“분당을 재도약시키고 성남을 부흥시키겠다는 포부와 약속을 믿고 이 지사를 지지한다”고 했다. /성남투데이 홈페이지

 

검찰이 밝히려는 대장동의 진실은 그동안의 수사 궤적을 통해 대략 짐작이 된다. 검찰은 ‘그분’에 대한 단서가 담겨 있을 유동규 휴대전화를 며칠째 못 찾고 헤매는 시늉을 했는데 경찰이 한나절 만에 “여기 떨어져 있네”라며 주워 오다시피 했다. 성남시청 압수 수색을 미루고 미루다 “절차를 밟고 있다”는 경계 경보까지 울리더니 막상 가장 중요한 시장실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중심 못 잡고 비틀대는 슬랩스틱과 과장된 동작으로 눈속임하는 할리우드 액션이 뒤범벅된 저질 코미디였다. 검찰과 사전 교감을 마치고 귀국한 냄새를 풍긴 남욱 변호사는 묻지도 않았는데 “이재명 지사는 ‘그분’이 아니다”라고 친절한 주석을 달았다.

 

이재명 지사에게 불똥이 튀지 않도록 이중 삼중의 방화벽을 세심하게 설치했다. 유동규 주범을 중심에 놓고 ‘그분’ 배역에 적당한 윗선을 얹고 공범 한두 명을 곁들이는 식으로 범죄 조직도가 그려진다. 이렇게 짜 맞춘 수사 설계를 이 지사가 뭉개 버렸다. 상무가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고 잡아들였는데 CEO가 “그 결정 내가 했다, 뭐가 잘못이냐”고 나섰다.

 

검찰은 외통수로 내몰렸다. 수사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유동규에게 들이댔던 배임 혐의를 이재명 지사에게 적용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반대로 이 지사가 배임이 아니면 유동규씨도 배임이 될수 없다. 그렇게 되면 뇌물 혐의도 함께 삐끄덕 거린다. 검찰은 유동규씨가 화천대유에 ‘특혜’를 줬고 그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 지사는 화천대유의 수천억 수익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감수한 정당한 몫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폭등 덕분에 기대밖의 횡재를 했을 뿐이라는 거다. ‘특혜’가 없었으니 그 대가도 있을 수 없다. 대가성이 없는 돈은 뇌물이라고 부를 수 없다. 유동규씨가 지금 왜 감옥이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워 진다.

 

이 지사가 유동규씨를 희생양으로 삼는 수사 설계를 거부한 이유가 뭘까. “나는 몰랐다”고 하면 법적인 책임은 면할 수 있을 지 모른다. 그 대신 ‘단군이래 최대 공익 환수’라는 대장동 신화와 ‘당차고 일 잘하는 이재명’이라는 정치적 자산을 함께 포기해야 한다. 이 지사 본인이 사업 설계를 승인했다는 증거가 뒤늦게 튀어나올 위험성도 신경쓰였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했고, 잘못 없다” 좌표에 방어 진지를 구축했다. 화천 대유 1000배 대박을 합리화 하려니 꼭 필요했던 논거가 ‘대장동 사업 불확실성’이다. 성공할 지 실패할 지 사전에 알 수 없기 때문에, 확정 수익을 안전하게 보장받을 수 있도록 계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공공 부문은 그래야 한다”고 했다. “초과이익 환수 조항을 왜 포함시키지 않았느냐”는 야당측 추궁에 “집을 5억원에 팔기로 해놓고 나중에 잔금을 치를 때 집값이 올랐으니 나눠 갖자고 하면 계약이 깨지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대장동 사업 전망은 선거법 위반 재판때도 쟁점이었다. 2018년 지방선거때 대장동 사업은 착공조차 되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이 지사는 선거공보에 “결제 한번으로 5503억원 수익을 환수했다”고 썼고, 유세 때는 “그 돈을 내가 팍팍 썼다”고 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과거 시제로 업적을 홍보했으니 허위사실 공표라는 게 검찰 논거였다. 이 지사측은 대장동 사업은 성공이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반박했다. 2019년 1월 1심 공판에서 이 지사는 “이 사업의 성공은 거의 90~100% 확정된 것이었다”고 했다. 변호사는 “대장동 사업은 한국판 비버리힐스라고 불릴 정도로 사업성이 높이 평가됐고 천재지변이 없는 한 이 사업은 실패하지 않는다”고 했다. 2년전 재판때는 “호우 가능성이 90~100%”라고 하더니 지금은 “가뭄에 대비해야 했다”고 한다. 이재명 지사의 대장동 수익 예보는 그때 그때 다르다.

 

11.04 김정은의 死活적 거리 두기, 文은 막무가내 들이대기

北이 초청장 안 보냈는데또 교황에 “북한 가 달라”

극단적인 北 코로나 공포… 교황 방북단 수용 불가능

金은 생존 위해 피하는데 막무가내 스토킹 文 딱해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바티칸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환담하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교황에게 비무장지대(DMZ) 철조망으로 만든 ‘평화의 십자가’를 선물하며 “북한을 방문해주신다면 한반도 평화의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했고, 이에 교황은 “(북한이) 방북 초청장을 보내주면 평화를 위해 기꺼이 갈 것”이라고 답했다. /교황청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이 교황에게 방북을 제안한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3년 전 이맘때도 대통령은 교황에게 북한 방문을 권했다. 교황은 이번과 마찬가지로 “북이 초청장을 보내주면 검토하겠다”고 했다. 북은 초청장을 안 보냈고 그래서 흐지부지됐다. 문 대통령이 두 사람을 꼭 만나게 하고 싶었다면 교황이 아니라 김정은 쪽을 두드려야 했다. 그래서 “교황이 오시면 열렬히 환영”이라는 3년 전 립 서비스 대신 공식 초청장을 받아 내는 게 순서였다.

 

교황 초청에 대한 북 입장은 3년 전과 달리 긍정적일까. 그럴 만한 여건 변화가 있었을까. 아니 그 정반대다. 평양 정상회담 직후였던 당시는 한반도 기상도가 ‘맑음’이었다.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먹구름이 드리웠다.

 

남북 관계 악화보다 더 고약한 장애물이 코로나다. 어느 나라나 방역 때문에 국경 출입이 까다로워졌지만, 북은 거의 편집증 수준이다. 코로나 이후 북한에서 나간 사람은 있지만 들어온 사람은 없다. 베이징 북한 대사관에는 대사만 3명이 있다. 현(現) 대사 외에 전(前) 대사와 김정남 암살로 추방당한 말레이시아 대사가 동거 중이다. 평양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국경을 넘어오는 들짐승, 날짐승까지 사살하라는 특명이 내려졌다고 한다. 북은 요즘 화물선을 몇 달씩 놔뒀다가 짐을 내린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죽기 기다리는 것이다. 생명체 숙주가 없으면 바이러스는 72시간 내에 99% 소멸한다. 그런 과학적 상식이 북에선 통하지 않는다.

 

대역(代役)설이 나돌 정도로 홀쭉해진 김정은 체형도 코로나 공포증을 방증해준다. 비만일수록 코로나 치명률이 높아진다. 체질량지수(BMI)가 30 이상이면 40%, 40 이상이면 90% 증가한다고 영국 공중보건기구가 발표했다. 작년 봄 코로나에 감염돼 중환자실 신세를 졌던 존슨 영국 총리는 체중이 111㎏, BMI는 36이었다. 완치 후 존슨 총리는 살 빼기에 돌입했다. 패스트푸드 야간 광고 금지, 칼로리 표기 의무화 등 비만 척결 정책도 시작했다. 김정은은 신장 170㎝에 몸무게 130㎏ 내외였다. BMI가 40을 훌쩍 넘는 초고도비만이다. 코로나로 죽을 확률이 정상 체중에 비해 거의 두 배다. 김정은이 20㎏ 이상 급격한 감량을 결심한 데는 코로나 공포증이 작용했을 것이다.

 

교황이 북한 땅을 밟는다면 수행 인원과 보도진을 최소화해도 수십 명이 따라붙는다. 교황은 김정은을 직접 만날 것이고 상당수 주민들과 스킨십도 나눌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북한이 그런 상황을 감내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반년 안에 코로나가 종식될 가능성 역시 현재로선 희박하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1년 전부터 대북 백신 지원 공포탄을 쏘아 올렸다. “부족해도 북과 나누자”며 동포애를 내걸었지만, 북을 코로나에서 해방시켜야 빗장을 열 수 있다는 계산도 했을 것이다. 막상 북은 “필요 없는 물자”라며 백신 지원을 거부했다. 방역 청정국이라는 허풍이 들통날까 겁이 났을까, 손 벌리기 싫다는 자존심 때문일까. 북이 백신을 거부하는 데는 또 다른 공포증이 작용했을지 모른다.

 

백신이 국민 통제 수단으로 악용될 거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백신을 통해 칩을 인체에 심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는 황당한 시나리오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백신 유통 경로 파악을 위해 지표를 붙이겠다고 한 것이 오해를 증폭시켰다. 문명 국가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이런 음모론에 휘둘린다. 북한은 우물 속에서 하늘만 쳐다보는 폐쇄 사회다. 더구나 “모두 우리를 죽이려 한다”는 피해 의식에 찌들어 있다. 외부에서 주겠다는 백신을 수상쩍게 여기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문 정권 사람들은 북한에 대한 ‘내재적 접근’을 주장해 왔다. 북한을 이해하려면 내부자적 관점에서 북한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랬던 사람들이 북한의 코로나 공포증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김정은의 코로나 거리 두기는 ‘사회적’이 아니라 ‘사활적’이다. 김정은 자신의 생물학적 목숨과 체제의 존폐까지 걸려 있다. 김정은은 생존을 위해 접촉을 피하는데 문 대통령은 제발 만나 달라며 조르고 매달린다. 정상회담 한 번 더 하자는 거다. 그 애피타이저 격인 교황 방북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인다. 김정은에게 들이대기가 거의 스토킹 수준이다. 눈치 없는 정도가 지나쳐 딱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만일 안 될 줄 알면서도 벌이는 이미지 관리용 쇼라면 대(對)국민 사기다.

 

11.18 尹 뒤에 ‘닥치고 일렬종대’ 野, 찜찜하고 불길하다

‘손바닥 王'과 ‘개 사과’ 악재

캠프 검열 기능 오작동 탓

국정 이해 부족 드러난 토론

공부 권하는 참모도 없어

후보 줄서기 바쁜 보수 정당

집권해도 ‘불통’ 대통령 예약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경선 과정에서 숱한 실수를 저질렀다. 그중에서도 ‘손바닥 왕(王)자’와 ‘개 사과’ 논란은 상당히 타격이 컸다. 내용 자체도 악성이지만, 윤석열 캠프의 오작동을 드러냈다는 점이 더 문제였다.

후보 손바닥에 선명한 매직 글씨로 쓰여진 왕(王)자를 아무도 모르고 지나쳤을 리는 없다. 그런데도 “TV 토론 나가기 전에 지우셔야 한다”고 말린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다. 말렸는데 후보가 뿌리쳤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심각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정치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속내를 드러내 놓고 말하는 정치인은 없다. 선거 직전이라면 더욱 그렇다. 윤 후보는 더구나 평가 주체로 ‘호남 분’들을 끌어들였다. 생각이 다른 호남 유권자들은 당연히 격분했다. 그래서 실언의 파괴력을 배가시켰다. 그래 놓고 “내 말의 진의가 왜곡됐다”고 버티면서 화를 키웠다. 이틀 만에 “현명하지 못했다”고 사과했는데 바로 그날 밤 후보 소셜 미디어에 ‘개에게 사과 주는 사진’을 올렸다.

 

몇 단계를 거치며 악재를 입체적으로 증폭시켰다. 오죽하면 “후보가 스스로 낙선 운동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두 사건 모두 윤 후보 아내가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도 확인해 주지 않았지만 정설처럼 돼 버렸다. 그래서 캠프가 통제할 수 없었다고 한다. 소셜 미디어와 TV 토론 외모 관리는 후보 이미지에 영향을 준다. 그런 영역을 선거본부 공조직을 제쳐 두고 후보 가족이 주무른다는 것은 상식 밖이다. 더구나 후보 아내가 ‘언터처블’ 성역이라는 핑계로 후보가 입을 타격을 알고도 모른 척했다면 선거 캠프 자격이 없다.

 

경선 과정에서 윤 후보가 보여준 토론 실력은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질문을 이해 못 하고 동문서답하는 장면도 제법 나왔다. 여당 쪽에선 낄낄거리며 조롱했다. 이재명 후보는 “우울할 때마다 야당 토론을 봤다”고 했다. 윤 후보를 꼭 집어서 “학습과 체득이 안 돼 있다”고 저평가했다. 본선 토론에서 ‘압승’할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윤 후보 지지자 중에서도 “이재명을 상대로 잘 버티겠느냐”고 걱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TV 토론에서 말싸움 이긴다고 선거에 도움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대통령이 국정 현안에 대해 시시콜콜 세부적인 사항까지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굵직굵직한 정책의 기본 뼈대와 자신이 공천받은 정당의 핵심 입장 정도는 숙지해야 한다. 윤 후보처럼 정치할 생각 없이 평생 딴 일을 해 온 사람은 몇 달 벼락치기 공부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데 윤석열의 면학 에피소드는 들은 기억이 없다. 현안 보고서를 계속 올렸더니 떨떠름해 하며 귀찮아 하더라, 1시간 집중 토론 준비를 하고 갔는데 “빨리 끝내고 저녁이나 같이 먹자”더라, 이런 얘기들뿐이다. 임금이 경전 읽는 공부 시간을 게을리한다고 쓴소리를 한 신하들의 이야기가 조선실록에 널려 있다. 대선 고시를 코앞에 둔 수험생 윤석열에게 “국정 공부 하셔야 한다”고 다그치는 야당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는지 궁금하다.

 

정치 현장에서 몇 걸음 떨어져 있다 보니 실시간으로 야당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지는 못한다. 그런데도 몇 달 새 되풀이해서 들은 단골 메뉴가 있다. 윤 후보는 얘기를 잘 들으려 하지 않고, 주변에선 윤 후보를 어려워해서 할 말도 못 한다는 것이다. 윤 후보가 주재하는 회의는 검찰총장이 부하 검사들을 지휘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경선 기간 캠프에서 윤 후보를 부르는 명칭도 ‘총장님’이었다. 3, 4선 의원들도 윤 후보에게 껄끄러운 주제 꺼내기를 주저한다고 한다. 윤 후보가 호출하지 않으면 캠프가 있는 광화문 빌딩에 불쑥 들어서지 못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난 7월말 윤 후보가 입당하자 마자 소속 의원들이 떼 지어 몰려들었다. 경선이 윤 후보 승리로 끝나고 가상 대결에서 여당 후보를 앞서가고 있다. 윤석열 사령관의 지휘 구령과, 국민의힘 부대의 복창 소리는 더욱 우렁차질 것이다.

 

5년마다 대선을 앞두고 보수 정당은 늘 이런 모습이었다. 변화무쌍 유연한 상대를 만나면 경직된 몸을 가누지 못해 뒤뚱거렸다. 운 좋게 지리멸렬한 상대를 만나면 파죽지세 압승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탄생한 대통령은 예외 없이 ‘불통(不通)의 늪’에 빠져들었다. 후보 뒤에 ‘닥치고 일렬종대’로 늘어선 야당을 보면서 찜찜하고 불길하다.

 

12.02 윤석열 캠프에서 김칫국 냄새가 진동한다

김종인·이준석과 감정 싸움
여당 놔두고 식구끼리 험담
人事는 국민 마음 얻는 수단
尹 후보는 편한 사람만 골라
선거 만만히 봐 생기는 일
싸늘해진 민심 눈치 못 채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뒤끝 처신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그는 “주접을 떤다”는 심한 말을 퍼부으며 윤석열 캠프에 등을 돌렸다. 자신도 함께 마시려 했던 우물에 침을 뱉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종인 리더십이 반드시 필요했느냐는 판단부터 의견이 분분했다. 다만 김종인 영입이 무산되면서 윤석열 리더십에 생채기가 난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를 총괄 선대위원장으로 하는 캠프 설계도를 제시한 것은 윤 후보 자신이었다. 결과적으로 김종인 원 톱과 맞바꾼 셈이 된 김병준·김한길 투톱은 캠프에 무슨 보탬이 될지도 설명이 안 된다. 두 사람의 인선은 국민에게 전혀 감동을 주지 못했다.

 

당초 윤 후보와 윤 후보 측근들은 대선 때마다 승자 편에 속했던 김종인 카드를 어떻게든 손에 쥐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선거 판이 쉽게 이길 수 있는 것처럼 흘러가자 버겁고 골치 아픈 상전을 내치는 쪽으로 마음을 고쳐 먹은 듯하다.

 

이준석 대표의 당무 보이콧 시위는 철부지 투정으로 비친다. 집안 대사를 앞두고 가족 전체가 손님 맞이에 정신이 없는데 장남이 “내 밥상 누가 치웠냐”고 어깃장 놓는 모양새다. 이 대표는 정권 교체라는 당의 지상 과제보다 개인 정치를 앞세웠다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그러나 이 대표가 피해 의식을 갖도록 몰아간 책임은 윤 후보 쪽에도 있다. 윤 후보는 하필 이 대표가 지방 출장을 간 날에 기습 입당한 것을 비롯해서 ‘이준석 패싱’을 의심할 만한 일들을 벌여 왔다. 윤 후보 측은 이준석 대표를 ‘버릇없는 어린 것’ 취급하며 길들이려 한다는 인상을 준다. 윤 후보가 이 대표 반대를 무시하고 영입한 인사가 “나도 30대 아들이 있다”며 당대표를 애 취급하는 것이 그런 정서를 대변한다. 이 대표는 지난 4월 서울 보궐선거 때 2030 시민 유세단을 기획하고 실행하면서 늙고 낡은 야당에 새바람을 몰고 왔다. 윤 후보가 대선 승리를 위해 당의 모든 역량을 끌어모으겠다는 절실한 심정이었다면, 그래서 이 대표를 자신의 취약 포인트인 젊은 층 공략에 도움을 줄 소중한 자산으로 여겼다면 지금과 같은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요즘 야당 사람들은 이재명 여당 후보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치고받느라 바쁘다. 마이크에 대고 같은 편 험담을 하고, 익명 인터뷰로 동료 등에 칼을 꽂는다. 이런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는 원인은 한 가지다. 대선 승리가 눈앞에 다가온 것으로 착각하고, 전리품을 서로 챙기느라 아귀다툼을 벌이는 것이다.

 

경선 이후 윤 후보가 내놓고 있는 각종 인선에도 비슷한 상황 인식이 드러난다. 정치인이 하는 인사에는 국민 마음을 얻기 위한 메시지가 담겨야 한다.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면 더욱 그렇다. 미국 대선 후보는 배경과 성향 면에서 자신과 대비되는 러닝메이트를 고른다.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주는 효과도 있고, 포용력과 유연성을 과시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 그런 의외의 선택은 유권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윤 후보는 자신에게 익숙하고 편한 사람을 골라 쓴다. 이런저런 물의와 관련돼서 평판이 안 좋은 사람들을 쓰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다. 국민 눈을 신경 쓰는 감수성이 부족하거나, 어떻게든 선거는 이길 것이라는 방심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선거 초반 판세는 윤 후보 쪽 흐름인 것이 맞는다. 후보 개인 경쟁력 덕분이 아니다. 운동장이 윤 후보가 골을 넣기 쉽게 기울었기 때문이다. 정권 교체 여론이 상당히 큰 차이로 정권 유지 여론에 앞서고 있다. 여당은 텃밭인 호남 인구가 영남의 절반에 못 미치는 핸디캡을 극복하려면 수도권에서 적어도 5%p이상 우세를 점해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 실패와 이재명 후보의 대장동 의혹 때문에 서울 민심은 야당 쪽으로 기울었고, 이 후보가 지사를 지낸 경기도마저 백중세다. 여당은 청·중년층, 야당은 장·노년층에서 늘 강세였는데 20대가 보수색을 띠면서 세대별 구도도 야당에 유리한 편이다.

 

경선 직후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가 이런 선거 구도를 확인해 주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윤 후보 집안 사람이 선거 승리를 확신하더라는 말도 돌아 다닌다. 정치 세력이 민심을 자기 주머니 속 공깃돌 취급하는 순간, 민심은 싸늘하게 돌아서서 심판을 준비한다. 한두 주 새 발표된 여론조사에 이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윤석열 캠프 사람들은 대선 축하 떡을 이미 예약해 놓은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 그래서 서로 먼저 떠먹겠다고 국자 싸움을 벌이는 김칫국 냄새가 사방에 진동한다.

 

12.16 文의 분신 공수처, 무능·위선·파렴치도 빼닮았다

공약 내걸고 法 통과도 압박
출범하자 권력 견제 대신
野 후보 표적 수사에 총력
임기 끝나도 공수처는 존속
함량 미달 헛발질 지켜보며
次期 대통령 반면교사 삼길

노태우, 전두환 부고 사설을 한 달 간격으로 준비하면서 두 전직 대통령의 핵심 공과를 되짚어 보게 됐다. 문재인 정권 5년을 결산할 때가 오면 어떤 업적이 꼽히게 될까도 궁금해졌다. 집권 전반기엔 대북 정책이 대표 상품으로 꼽혔는데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허상이 드러났다. 어떻게든 종전 선언을 성사시켜 보겠다고 지금까지 몸부림치고 있지만 불씨는 이미 사그라들었다. 문 대통령의 유일한 자랑거리로 남은 것은 ‘K방역’이었다. 얼마 전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이 잘한 것을 물으니 “없다”가 37%로 제일 많았고, 코로나 대응이 23%로 그다음이었다. 그러나 대선 일정을 의식한 성급한 ‘위드 코로나’가 확진, 중증, 사망 3종 세트 신기록을 쏟아내고 있다. 일본은 우리 인구의 두 배 이상인데 관련 수치는 50분의 1 수준이다. 현시점에서 방역 한일전은 100대1로 열세다. 죽창가를 부르며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고 했던 문 정권의 다짐이 무색해졌다.

 

문 정권이 잘못한 일을 읊으려면 숨이 찰 지경이다. 부동산 정책은 아파트 한 채 사기 위해 월급 한 푼 안 쓰고 모아야 할 기간이 20년에서 38년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는 통계 하나로 족하다. ‘비정규직 제로’를 내걸었던 정부에서 청년 첫 일자리의 47%가 1년 미만 계약직이었다. 영화 ‘판도라’에서 비롯된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그린피스 창립자는 ‘폰지 사기극’이라고 불렀다. 조국 사태는 대통령 취임사 속 ‘평등, 공정, 정의’를 무참하게 짓밟았다.

 

정권을 종합 평가하자면서 취임 때 맨 앞자락에 내걸었던 약속을 비껴갈 수는 없다. 문 대통령은 2012년 첫 출마 때부터 검찰 개혁이 대표 공약이었고, 그 제도적 완성이 공수처였다. 집권 3년 차인 2019년 3월 버닝썬, 김학의, 장자연 사건이 한꺼번에 불거졌을 때 문 대통령은 “특권층 불법행위에 대한 부실 수사와 외압을 뿌리 뽑으려면 공수처가 해답”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공수처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스토킹 하듯 국회를 압박했다. 그해 연말 집권 여당이 군소 정당들과 손잡고 공수처법을 강행 처리하자 조국 전 법무장관은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기쁘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분신으로 탄생한 공수처는 올 한 해 정말 많은 얘깃거리를 만들어 냈다. 출범 두 달 만에 대통령 대학 후배인 서울 지검장을 공수처장 관용차로 모셔와 조사했다. 언론 취재를 피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였다. 첫걸음부터 권력에 친절한 공수처였다. 공수처는 현재 고발사주 의혹을 비롯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겨냥한 수사를 4건 진행 중이다. 공수처는 야당 후보를 전담 수사하는 윤수처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이런 편파 수사에도 불구하고 다행인 것은 공수처가 정권 입맛에 맞는 결과를 내놓을 능력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고발사주 의혹에 윤 후보를 엮기 위한 연결 고리인 손준성 검사 영장은 세 차례나 기각됐다. “손 검사와 성명 불상 검찰 간부가 성명 불상 검찰 공무원에게 고발장 작성을 지시했다”는 식으로 영장 속에 ‘성명 불상’이라는 표현이 23번 등장한다. 기본적인 팩트도 제시하지 못한 영장을 어떤 판사가 발부해 주겠나. 그래 놓고 공수처 2인자인 차장은 “우리는 아마추어인데 10년 이상 특별 수사를 한 손 검사가 수사를 방해한다”고 했다. 표적 수사에 걸린 피의자가 공수처가 짜놓은 각본에 따라 죄를 불지 않는다고 징징대며 투정하는 모습이다. 공수처가 자신들을 비판 보도한 기자들의 통신 기록을 조회한 사실도 줄줄이 드러나고 있다. 공수처 수사 대상도 아닌 언론을 감찰했다는 의혹이 나오는데 가타부타 변명도 하지 못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신년회견 때 퇴임 후 “잊혀지고 싶다”고 했다. 요즘 국정 상황을 보면 그런 말을 할 만도 하다. 정권 임기가 끝나고 나면 일자리, 주택 정책 같은 세세한 분야의 잘못들은 대부분 잊힐 것이다. 그러나 내년 5월 차기 정권이 출범해도 공수처는 그대로 남게 된다. 공수처 철폐도 입법 사항인데 지금의 의석 구조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공수처는 무능, 위선, 파렴치, 유체 이탈 같은 문 정권의 특성을 한 몸에 담고 있다. 정권이 바뀐 뒤에도 함량 미달 수사 인력 93명이 연간 200억 예산을 쓰면서 저질 코미디 속편을 써나갈 것이다. 이재명, 윤석열 두 사람 중에 누가 되든 차기 대통령은 공수처의 헛발질을 지켜보며 나는 저런 유산만큼은 절대 남기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12.30 이준석 정치, ‘보약’대신 ‘독약’으로 기억될 건가

자기 당 후보 공격에 온 힘
자해능력으로 존재가치 증명
박빙으로 지면 李 독박쓸 것
서울 보선서 청년風 몰고 온
기획력 활용않는 尹도 아쉬워
풍운아 기대, 허망한 끝 보나

지난 6월 국민의 힘 전당대회가 임박했을 무렵, 정치권 중진급 인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김대중 정부 때 집권당 소속이었지만 지금은 문재인 정권 재창출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이준석 대표의 당선이 확실시되는 상황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이 대표를 가까이서 지켜봤다면서 “재주 있고 똑똑하지만 ‘트러블 메이커(말썽꾼) 기질도 다분하다”고 했다. “대선을 앞둔 결정적인 순간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지 모른다”고 했다. 당시는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는데 요즘 그 얘기가 자꾸 귓가를 맴돈다.

 

대선 국면에 접어든 이후 이 대표가 주로 해 온 일은 윤석열 후보와 측근 저격이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총구를 겨눈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적진에서 날아오는 대포보다 내부 소총질이 훨씬 아픈 법이다. 게다가 사수가 당대표라면 그 파괴력은 몇 곱절 늘어난다. 친여 성향 매체들의 야당 내분 부채질에 이준석 대표는 고정 불쏘시개로 동원되고 있다.

 

이 대표를 보면 김대중 정부 초기 주목받았던 30대 참모가 떠오른다. 아이디어와 기획력이 뛰어나 김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지만 자기주장이 강해서 종종 설화를 일으켰다. DJ는 “잘 쓰면 보약, 잘못 쓰면 독약이 될 친구”라고 했었다.

 

이 대표가 윤석열 후보의 보약처럼 보였던 순간이 있었다. 윤 후보와 이 대표가 울산 회동으로 갈등을 수습한 다음 날, 두 사람은 함께 부산 서면 젊음의 거리를 누볐다. 수백 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300m 전진하는 데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두 사람이 커플처럼 입은 빨간 후드티에 노란색 글씨로 ‘사진 찍고 싶으면 말씀 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이 대표는 “앞으로 이 빨간 티에 자기만의 노란색 메시지를 준비해 오시면 앞으로 모셔서 소개해 드리겠다”고 했다.

 

이 장면은 지난 4월 서울 보궐선거 당시 이준석 뉴미디어 본부장이 주도했던 2030 시민유세단을 생각나게 했다. 젊은 청년들이 유세 차량에 뛰어 올라와 문재인 정권을 성토했다. 그 영상이 유튜브에서 수십만 회씩 조회를 기록하면서 2030 지지가 오세훈 후보에게 쏠리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청년들이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를 적은 빨간 티를 입고 윤 후보와 어깨동무하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런 동영상과 사진이 몇 차례 언론에 보도되면 상당한 효과가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어쩐 이유에서인지 그날로 끝이었다. 젊은이들은 “뭘 주겠다”는 선심보다, “함께하자”는 제안에 마음을 연다. 윤 후보는 자신의 허한 부분인 젊은 층 지지를 메워줄 보약을 왜 마다했던 걸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후보를 둘러쌌다는 ‘윤핵관’들이 이준석의 ‘설치는 꼴’을 보기 싫어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뿐이다.

 

며칠 전 방영된 예능 프로에서 이 대표는 ‘이준석 대통령 되기’와 ‘윤석열 대통령 되기’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 대표는 “내가 되는 게 좋다”고 했다. 보통 때라면 젊은 정치인의 솔직함으로 받아들여 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준석의 ‘나밖에 몰라’ 행태에 열이 오를 대로 오른 야당 지지층 반응은 험악했다.

 

이준석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현명한 답안은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윤석열 후보가 낙선하면 나는 정치적 사망 선고를 받는다. 내가 대통령 꿈을 꾸려면 먼저 윤 후보를 당선시켜야 한다.” 이것이 이 대표가 지금 처해 있는 실제 상황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이재명 대신 윤석열 까기’를 하는 이유를 ‘실패한 대통령’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만일 윤 후보가 넉넉하게 앞서가는 상황이라면 이런 변명이 어느 정도 통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대표는 물이 목까지 차올라 허우적대는 윤 후보를 더 깊은 곳으로 밀어 넣고 있다. 윤 후보를 상대로 “내 입맛에 못 맞추면 이재명 후보가 돼도 어쩔 수 없다”고 벼랑 끝 싸움을 벌이고 있다. 현재까지 이준석 혼자 날려 버린 표가 최소 50만 표는 넘는다고 본다. 윤 후보가 대선에서 진다면 일차적 책임은 윤 후보 몫이겠지만, 만약 승부가 미세하게 갈린다면 이 대표가 독박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

 

불과 몇 달 전 이준석은 곰팡내 나고 숨 막히던 보수 정당에 청량한 바람을 몰고 온, 말 그대로 풍운아였다. 그랬던 이 대표가 자신이 속한 집단에 얼마나 피해를 줄 수 있는지 ‘독약’ 성분으로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이준석 정치가 그런 식으로 결산을 맺는 것은 너무나 아쉽지 않은가.◎

김창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