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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자유를 찾는 반체제 운동가들1-2/ ‘북한판 10·26’을 계획한 北 내부 혁명조직과 國情院 - 북한판 10·26 계획한 北 ..

상림은내고향 2021. 11. 24. 20:30

■ 북한의 자유를 찾는 반체제 운동가들1/ 

2018.05.23 ‘북한판 10·26’을 계획한 北 내부 혁명조직과 國情院

월간조선 06월 호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북한판 10·26’을 계획한 北 내부 혁명조직과 國情院

“박근혜 국정원, 김정은 암살하려는 북한 내 혁명조직 존재 파악하고 지원했다”

 

⊙ “당시(2016) 이병호 국정원장은 무조건 2년 안에 통일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만 당하지 않았어도, 통일이 됐을 것”(박근혜 정권 당시 국정원 대북 파트 핵심 관계자)
⊙ 김정은 암살 계획한 혁명조직의 대장은 김정일에게 150평 아파트 선물로 받을 정도의 핵심 인물
⊙ “김정은 죽이고, 박정희 같은 사람으로 북조선을 끌고 가다 통일하면 된다”(혁명조직 관계자)
⊙ 암살작전 세우고 그 실행 위한 문건에 서명까지 한 박근혜역도년과 전 괴뢰정보원 원장 리병호놈을 갈기갈기 찢어 죽여야(《우리 민족끼리》논평 중)
⊙ 북한 내부, 여전히 혁명조직 움직임 계속되는 듯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2014년 중반부터 2016년 초까지 ‘북한판 10·26’을 계획하는 소위 혁명조직의 일원(김성일)과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4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데다, 미북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이런 민감한 사안을 실명으로 공개하는 것이 부담되는 만큼 익명을 요구했다. 다만 익명으로라도 이런 사실을 밝히는 이유는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북한 내부 자유민주주의 세력 존폐(存廢)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적절한 시기에 《월간조선》을 통해 자신과 혁명조직 일원이 주고받은 메신저, 편지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 소식통이 혁명조직원과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은 혁명조직원이 먼저 연락을 취해 왔기 때문이다. 소식통은 이 조직원과 2년 가까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신뢰를 쌓았다. 그는 혁명조직원의 이야기를 믿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나도 북한 사람을 많이 만났다고 자부하는 사람인데, 나름의 검증을 통해 (혁명조직원이) 북한 엘리트 중 한 명이라고 판단했다. 대표적으로 자기가 키가 조금만 더 컸어도 호위사령부에 차출됐을 것이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북한 호위사령부는 집안 배경 등 신분이 철저히 검증된 사람만 뽑는다.
  
 
호위사령부에 선발되는 인력들 대부분 북한에서 최고의 신체 능력과 호신술, 사격술, 충성심 등으로 엄선된 자들이다. 선발 과정은 충성심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호위사령부 출신 자녀만 다니는 평양 미산 고등중학교 졸업생 위주로 뽑는다. 또한 각지에서 신체 능력과 집안 배경 등 신분이 철저히 검증된 청소년들에 한해 고등학교 졸업 전부터 특별관리를 하는 등 그 선발 과정이 매우 정밀하다.  

 
  
혁명조직의 長은 김정일의 최측근 
 

이 소식통이 말한 바로는 이 혁명조직의 장()은 김정일에게 150(495.8m²)짜리 아파트를 선물로 받을 정도의 핵심 인물이다. 또 혁명조직 요원들은 국가안전보위부(우리의 국정원)를 비롯한 여러 부서에 포진돼 있었다. 소식통은 “나와 연락을 취한 혁명조직원은 ‘혁명조직은 최고 엘리트 출신으로 구성돼 있다’고 말했다. 만만한 조직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했다”며 “김일성 대학을 아주 우습게 봤다”고 전했다.
  
 
이들은 김정은을 그대로 두고서는 북한, 북핵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스위스에서 교육받은 김정은이 개방형 리더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했지만, 집권 내내 핵·미사일 도발, 잔인한 측근 처형 등의 행태를 보면서 ‘레짐 체인지’밖에 방법이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그는 “혁명조직 일원은 김정은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방법은 죽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미국 CIA와 연결, 앉는 자리에 소량만 묻혀 놔도 1년 안에 죽는 물질을 얻어 암살할 계획인 것 같았다”며 “‘새로운 지도자가 또 독재를 하더라도, 그건 개발독재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신격화된 독재보다 낫다’면서 박정희 같은 사람으로 북조선을 끌고 가다 통일을 이루면 된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지난 2월 영국으로 망명한 한국군 대령급에 해당하는 50대 후반 강모 대좌도 혁명조직과 관계가 있다고 추정했다.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NK》에 따르면 강 대좌는 김일성의 모친 강반석(1892~1932)과 인척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반석은 김형직과 결혼해 대동강 하류 부근 만경대에서 1912년 김일성을 낳았다. 북한은 강반석이 일제 강점기에 반일부녀회를 조직하는 등 항일운동에 앞장섰다고 주장한다. 북한에는 ‘강반석 혁명유자녀 학원’을 비롯해 학교와 탁아소 중에도 강반석의 이름이 붙은 곳이 많다.
  
 
강 대좌는 중국과 러시아에서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검토하고 현지 확인 활동을 지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또한 핵과 미사일 개발 인재 육성을 위해 중국과 러시아 학자들을 북한과 연계시키는 데 대한 물밑작업도 담당했다. 강 대좌의 행적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것은 지난 2 25, 북한 해커들의 거점인 중국 선양의 한 호텔로 파악됐다.
  
 
대북 소식통은 “중국 칠보산호텔(현 중푸국제호텔)에 주둔하면서 중국과 러시아, 동남아 지역에서 활동하는 반탐국 성원들을 총지휘한 강모씨가 돌연 자취를 감췄다”면서 “도주 당시 달러를 찍는 활자판과 상당량의 외화를 소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은은 강 대좌를 죽이기 위해 직접 공작원 10명을 파견했다고 한다. 강 대좌는 김정은 입장에서는 ‘백두혈통’을 수호하는 핵심인물이었다.  

  
  
국정원, 김정은 암살 계획한 북한 내 혁명조직 존재 파악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2014년 중반부터 2016년 초까지 ‘북한판 10·26’을 계획하는 소위 혁명조직의 일원(김성일)과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월간조선》 취재 결과 당시 국가정보원(국정원)도 북한 내부에 혁명조직이 존재한다는 사실뿐만이 아니라, 이들이 구체적인 김정은 암살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다. 당시 국가정보원 대북 파트의 핵심 관계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만 당하지 않았어도, 통일이 됐을 것”이라며 “(통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 같아 두고두고 아쉽다”고 했다.
  
 
박근혜 국정원이 2015 12월 남북 당국자회담이 결렬된 후 대북 관계가 대결 국면으로 치닫자, 북한의 ‘리더십 체인지’(지도자 교체)를 목표로 하는 혁명조직을 지원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후 지원이 끊기고 조직의 계획이 끝내 무산됐다는 것이다.
  
 
국정원 측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박근혜 정권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 정도의 내용은 국정원장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한다”며 “다만 당시 상황을 봤을 때 국정원이 북한 내 혁명세력의 존재를 파악하고 지원해 줬을 것이다. 이럴 때 쓰라고 국정원 특별활동비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했다.
  
 
박근혜 정권 때 국정원 핵심 인사도 “국정원이 혁명조직을 지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당시 국정원장은 무조건 2년 안에 통일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정보 당국 수장이 ‘예상’이 아닌 ‘확신’을 가졌던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혁명조직의 ‘리더십 체인지’ 작전 실패

  앞서 언급했듯 혁명조직의 ‘리더십 체인지’(지도자 교체)는 실패했다. 김정은 암살을 계획한 혁명조직 일원(북한에서는 김성일이라고 이름 공개)의 생사는 알 수 없다. 다만 회의 때 졸았다는 이유로 군 간부를 죽이는 북한 내부 상황을 봤을 때 목숨이 붙어 있을 확률은 희박하다.
  
 
“바로 죽였든지 아니면 살려뒀다가 활용할 목적으로 정치범수용소 등지에 보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자기는 죽어도 괜찮지만, 아들만은 살리고 싶다고 했었는데…. 한번은 ‘형님, 저는 죽습니다. 저는 살려고 혁명운동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제가 인간 폭탄 역할을 해서라도 죽을 각오가 돼 있습니다’라고 하기에 ‘너 죽으면 마누라하고 자식은 어떡하느냐’고 물으니, ‘형님, 저도 그게 걱정인데, 마누라야 이혼하면 되지만 하나뿐인 자식은 마음에 걸린다. 형님이 좀 거둬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내가 서울에서 키울 테니, 지금이라도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때 막 웃으면서 기회가 되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는데….    


  
북한이 삭제한 우리민족끼리 논평 입수해 보니

▲《월간조선》 취재 결과 당시 국가정보원(국정원)은 혁명조직의 존재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내곡동 국정원 전경.

 

북한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2017 6 7일부터 30일까지 7차례에 걸쳐 연재한 ‘천인공노할 특대형국가테로범죄의 진상’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혁명조직의 ‘리더십 체인지’(지도자 교체)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현재 이 글은 인터넷상에서 완전히 증발한 상태다. 《월간조선》은 해커의 도움을 받아 당시 글을 입수했다. 북한이 선전 선동을 위해 허위로 작성한 글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국정원과 혁명조직 일원과의 관계를 짐작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공개한다.(북한식 표기 수정 없이)
  
 
2015 4월 국정원 팀장 한가놈은 김성일에게 ‘북의 최고수뇌부를 제거하자면 폭탄공격과 같은 폭력적인 방법만 생각하지 말고 아주 은밀한 방법을 생각해보라. 첫째로 방사성 물질을 리용한 방법이 있는데 사람의 인체와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 지점에 놓아도 일정한 시간 방사선을 받으면 몇달 지나서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실내이든 야외이든 최고수뇌부가 앉거나 지나갈 수 있는 위치에 방사선물질을 놓아두기만 하면 된다. 둘째로 나노형태의 독성물질을 리용한 방법인데 그 독성물질이 사람의 인체에 들어가면 일반독성물질처럼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인체의 세포를 파괴한다. 결국 사람의 로화가 급속으로 촉진되여 결국 사망하게 된다. 두 가지 물질이 모두 그 후과가 즉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6개월 혹은 1년 후에 서서히 나타나는데 그 치료는 불가능하며 치명적이다. 그러니 그런 방향에서 방도를 찾아보라’는 지령을 주었다.
  
 
2015 9월 한모놈은 김성일이 평양에 들어가 최고수뇌부에 대한 테로 및 암살에 성공하는 경우 그의 아들을 남조선으로 빼돌릴 데 대한 문제를 모의하였으며 같은 해 10 26일 김성일이 귀국하기에 앞서 수뇌부제거 작전과 관련하여 국정원 측에서 절대적인 비밀을 보장할 수 있다는 담보를 주고 차후 접선방법에 대하여 약속하였다.
  
 
2016 1 6일에는 ‘새해에 수뇌부제거를 위한 작전방안을 확정하고 필요한 테로장비와 자금들을 조달할수 있도록 해외련락거점을 꾸리라. 그리고 이제부터는 수뇌부제거라고 하지 않고 토끼사육으로 표현한다’는 지령을 주었으며 1 7일에 다시 수뇌부제거라는 표현을 ‘해어사육(HEIR死肉)(HEIR: 후계자, 계승자, 死肉; 육체를 죽인다)으로 할데 대하여 모의하였다. 한팀장놈은 2~4월 사이에 수뇌부제거 작전을 위한 비밀조직을 내오는 문제와 아주 미세하고 색도 냄새도 없는 극독성 생화학물질의 극소량을 행사장의 의자나 책상, 문 손잡이 등에 뿌려 그것과 접촉하게 하는 방법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테로방안들을 김성일놈과 여러 차례 모의하였다. 5월에는 생화학물질 분무기를 랭온풍기에 은닉시켜 결정적인 순간에 최고수뇌부의 음성에 의하여 동작시키는 음성인식 스위치에 의한 테로음모와 폴로니움이라는 방사성물질에 의한 암살방법을 모의하였다.
  
 
2016 6 16일과 21일 괴뢰 국정원팀장 한모놈은 김성일에게 ‘수뇌부제거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 로씨야 파견근로자의 부침짐을 리용하여 5US$의 공작자금을 지불하였으며 7 6일에는 우리의 최고수뇌부 주위에 비밀조직의 성원을 꼭 박아넣을 데 대한 지령을 주었다. 련이어 8 12일에는 우리의 최고수뇌부 가까이에 접근할수 있는 인물을 시급히 물색하며 ‘행사가 자주 진행되는 곳의 주변환경과 감시실태, 행사질서 등 생화학물질테로와 관련한 상세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주면 국정원에서 미중앙정보국과 협력하여 수뇌부제거와 관련한 가장 합리적이며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만들어낼 수 있으므로 될수록 보다 많은 자료를 보내라. 그리고 해외련락 거점을 꾸리는 문제는 수뇌부제거 작전에 필요한 장비와 물자, 자금의 안전한 반입통로와 비밀조직의 활동환경 조성과 관련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이므로 빨리 다그치라’고 독촉하였다.
  
 
⑤한 팀장놈은 12 5일과 6, 9일과 11, 18, 19, 26, 31일 등 한해가 다 저물어가는 마지막 날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비밀조직 성원들을 규합하는 문제, 해외련락 거점을 꾸리는 문제와 관련한 세부적인 지령을 주면서 테로 및 암살작전을 적극적으로 추진시켰다.
  
 
⑥괴뢰 국정원놈들이 김성일에게 보낸 지령문 내용의 일부만을 보자.
  
  
2017 4 4
 
최고수뇌부가 자주 리용하는 고정행사장을 관리하는 단위에 입직할 테로 및 암살실행 담당자의 입직동향을 상세히 보고할 것.
  
  
4 7
 
미 중앙정보국도 인간의 욕구와 심리상태를 계층별로 구분하여 점진적으로 포섭을 추진하니 이 매수방법을 행사장에 침투시킬 테로공범자 포섭에 참고하라.
  
  
4 13
 
수뇌부제거는 민족력사상 전대미문의 사건으로서 그 파장을 가늠하기 힘든 것만큼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이므로 수뇌부테로 및 암살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비해 놓아야 한다.
  
  
4 17
 
국정원이 수뇌부암살 및 테로장비를 납입하였다는 사실이 로출되면 그 후과가 이만저만이 아닐 테니 테로 및 암살장비의 안전한 제공을 위해 평양에 있는 테로 및 암살실행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인적사항을 보낼 것.
  
  
4 20
 
수뇌부테로 및 암살이 실패하는 경우 조선반도에서는 바로 전쟁이 일어나게 되니 테로작전에 대한 검토와 준비에 만전을 기하라.
  
 
⑦〈최근 우리의 최고수뇌부를 노린 적들의 특대형국가테로 범죄행위가 련이어 드러나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보위성, 인민보안성, 중앙검찰소는 련합성명을 발표하여 감히 우리의 최고수뇌부를 해칠 천인공노할 흉계를 꾸민 특대형국가테로 범죄자들을 극형에 처한다는 것을 내외에 엄숙히 선포하였다. 이것은 우리의 생명이고 미래인 우리의 최고존엄에 감히 도전해 나서는 자들을 추호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멸적의 의지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박근혜 정권 때 국정원 핵심 인사에 따르면 “이병호 당시 국정원장은 무조건 2년 안에 통일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2017년 2월 27일 오후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이 ‘김정남 암살’사건에 대해 보고하기 위해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지금 세계를 격동시키는 김정은숭배, 김정은열풍의 후더운 열기와 환희의 격파에 질겁하고 전율하는 미제와 남조선 괴뢰들이 우리 혁명의 수뇌부를 해치기 위해 갖은 방법과 비렬한 수법을 다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2017 5월초에 적발폭로된 것처럼 삶의 전부이고 목숨보다 귀중한 우리의 최고존엄을 해치려는 적대세력들의 최후발악은 극도에 달하고 있으며 이미 그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더욱이 엄중한 것은 이러한 암살작전에 괴뢰정보원을 비롯한 괴뢰보수패당이 깊숙이 관여되어 있으며 대북정책으로까지 작성하고 그 실현을 위해 날뛴 것이다. 력대괴뢰통치배들치고 동족대결을 일삼지 않은 자가 없지만 박근혜역도년처럼 그 누구에 대한 암살작전까지 대북정책에 반영한 극악한 동족대결분자는 없었다
  
 
지금 우리 군대와 인민은 암살작전 계획을 세우고 그 실행을 위한 문건에 서명까지 한 박근혜역도년과 전 괴뢰정보원 원장 리병호놈을 비롯한 특대형테로범죄자들을 더 이상 그대로 놔둘 수 없으며 이 세상을 다 찾아 뒤져서라도 갈기갈기 찢어 죽여야 한다고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다. 천만년이 흘러도 실현될 수 없는 개꿈을 꾸면서 분별없이 날뛴 박근혜역도년과 리병호와 같은 특대형테로범죄자들은 우리와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철천지원쑤이며 씨를 말려 죽탕쳐버려야 할 살인귀 무리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렬하고 잔악한 특대형테로범죄집단인 괴뢰보수패당의 정보모략기구들을 소탕하기 위한 정의의 타격전에 의해 특대형테로범죄자들은 자기의 대역죄의 후과를 몸서리치게 느끼게 될 것이다. 혁명의 수뇌부결사 옹위는 세상이 열백 번 바뀐대도 절대로 변치 않을 우리의 최고원칙이며 여기에서는 그 어떤 에누리도, 사소한 타협도 있을 수 없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우리의 운명이시고 영원한 승리의 기치이신 혁명의 수뇌부를 천겹, 만겹의 성새, 방패가 되어 결사 보위할 것이다. 

  
  
박근혜 탄핵 없었다면 지금 한반도 상황은?

▲박근혜 국정원은 2015년 12월 남북 당국자회담이 결렬된 후 대북 관계가 대결 국면으로 치닫자, 북한의 ‘리더십 체인지’(지도자 교체)를 목표로 하는 혁명조직을 지원하기 시작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지원이 끊겼고, 이는 결국 혁명조직의 암살 작전 무산으로 이어졌다. 2017년 3월 22일 오전 6시 55분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사실 관계가 전혀 맞지 않는 이 글에서 주목할 점은 딱 한 가지. 국정원의 개입 가능성이다. 우리에게 덮어씌우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글의 내용이 100% 거짓이라고 해도 취재 중 획득한 정보의 조각을 모은 결과 국정원은 김정은 암살을 위한 혁명조직의 존재를 파악, 지원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국정원 측은 사실무근이라 하지만, 당시 핵심 위치에 있었던 관계자들은 ‘지원’ 사실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취재를 통해 파악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혁명조직, 2014 6월에는 이미 존재 ▲국정원, 2015년 초 이 조직의 존재 파악 ▲북한, 국정원이 혁명조직을 지원, 김정은 암살작전에 앞장섰다고 주장 ▲국정원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하지만 박근혜 정권 당시 국정원,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국정원이 지원했다는 식, 또는 지원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증언 ▲당시 이병호 국정원장은 2년 안에 반드시 통일이 될 것이라고 확신 ▲혁명조직의 작전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3 10)이자 19대 대선 직전(5 9) 2017 5월 초 무산 ▲2017 6 7일 북한, ‘천인공노할 특대형국가테로범죄의 진상’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김정은 암살 미수 사실 공개 ▲2017 6 26일 일본 《아사히(朝日)신문》,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5 12월 남북당국자회담이 결렬된 후 북한의 ‘리더십 체인지’(지도자 교체)를 목표로 하는 대북 정책(국정원 주도) 관련 문서에 서명했다고 보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없었다면 지금 한반도의 상황은 어땠을까. 북한 내부에서는 현재도 혁명조직의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6일 일본의 반공우파 매체인 《유칸후지(夕刊フジ)》는 온라인판 자크자크(zakzak)를 통해 “경제 제재로 조선 인민군 전체가 굶는 상황에서 일부 간부들은 김정은 제거를 위한 쿠데타를 조건으로 명운을 걸기 시작했다”며 “김정은은 호위를 배가했지만 지금 북한은 광란 상태에 빠져있다”고 보도했다.

 

3 6일 일본의 반공우파 매체인 《유칸후지(夕刊フジ)》는 온라인판 자크자크(zakzak)를 통해 “경제 제재로 조선 인민군 전체가 굶는 상황에서 일부 간부들은 김정은 제거를 위한 쿠데타를 조건으로 명운을 걸기 시작했다(經濟制裁で朝鮮人民軍全體が飢え, 一部幹部らは正恩氏を恨み, ク一デタ一を條件に命乞いを始めた)”며 “김정은은 호위를 배가했지만 지금 북한은 광란 상태에 빠져 있다(正恩氏は護衛を倍にしたが, 狂亂狀態になっている)”고 보도했다.

 

■ 북한의 자유를 찾는 반체제 운동가들 2/ 

월간조선 2019.06월호 

■ 김정은 제거 도모 세력 있다?

도희윤 “김정은 제거 후, 박정희 같은 사람을 세워 北 끌고 가다 통일하려는 계획 수립

⊙ 북한 선전매체, ‘천인공노할 특대형국가테로범죄의 진상’이라는 글 통해 도희윤 대표 이름과 얼굴 사진 공개
2014년 중반 ‘북한판 10·26’을 계획한 北 내부 혁명조직원과 연락 닿아
⊙ 혁명조직원 김성일씨 2016년 김정은 제거 위해 北 들어갔다 발각, 잔인하게 찢겨 죽은 듯
⊙ 지금 폭로하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 요구 다 들어줬는데, 돌아온 건 기습도발
⊙ 혁명조직 대장(혁명조직의 지도자)은 김정일에게 엄청난 신뢰받은 인물
⊙ 혁명조직, 국가안전보위성·외무성 등 각계각층 엘리트로 구성
⊙ 혁명조직원, “남한 내 김정은 추종자, 北 주도로 통일될 경우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 충고
⊙ “문재인 대통령 집권 기간은 우리(북한인권운동 단체) 입장에서는 ‘고난의 행군’”

 

《월간조선》이 2018 6월호에 “북한 내부에 ‘북한판 10·26’을 계획한 北 내부 혁명조직이 존재한다”고 보도한 가운데, 우리 쪽 북한인권 및 통일 전문가가 ‘혁명조직’ 일원 1명과 오랜 기간 연락을 주고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는 2019 5 16일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혁명조직원 김성일씨와 2014년 중반부터 연락을 주고받았다”며 “그는 2016년 김정은 제거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북한에 들어갔다 잡혀 잔인하게 죽은 것 같다”고 했다.
  
도 대표는 “김씨가 말한 바로는 혁명조직의 장()은 김정일에게 어마어마한 선물을 받을 정도의 핵심인물”이라며 “김씨는 ‘혁명조직은 최고 엘리트 출신으로 구성돼 있다’고 내게 말했다”고 전했다. 도 대표는 “우리 혁명조직이 만만한 조직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며 “김일성대학을 아주 우습게 봤다”고 했다.  

 

혁명조직원들은 김정은을 그대로 두고서는 북한·북핵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스위스에서 교육받은 김정은이 개방형 리더가 될 수도 있겠다고 기대했지만, 집권 내내 핵·미사일 도발, 잔인한 측근 처형 등의 행태를 보면서 ‘레짐 체인지’밖에 방법이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도 대표는 “혁명조직 일원은 ‘김정은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방법은 그를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며 “그는 ‘새로운 지도자가 또 독재를 하더라도, 그건 개발독재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신격화된 독재보다 낫다. 박정희 같은 사람으로 북조선을 끌고 가다 통일을 이루면 된다고 했다’”고 했다.
  
그는 이런 사실을 지금 밝히는 이유에 대해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북한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자유민주주의 세력의 존폐(存廢) 여부가 결정 난다”며 “남북이 평화를 위한 대화를 시작한 것은 환영하지만, 김정은 자체를 치켜세우는 것은 북한 내 자유민주주의 세력의 씨를 말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 대표의 결심에는 지난 5 4일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발사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한미 간 중재자·촉진자를 자임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미국 ‘블룸버그통신’)이란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북한의 요구를 들어줬는데도 ‘기습 도발’을 자행한 북한을 보면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구상’은 ‘환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2014년 사무실로 걸려온 전화 한 통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와 2014년 중반부터 연락을 해온 북한 내부 혁명조직원 김성일씨. 북한 ‘우리민족끼리’ 캡처 

 

도 대표는 김정은 제거를 계획한 북한 내부 혁명조직원과 처음 어떻게 연결이 됐을까. 2014년 중반 국내 대표적 북한인권전문가인 도 대표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북한 사람이었다.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은 도 대표는 그와 2년 가까이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신뢰를 쌓았다. 도 대표에게 마음을 연 북한인은 자신을 이른바 ‘북한판 10·26’을 계획하는 이른바 혁명조직의 일원이라고 소개했다.
  
2014년 혁명조직원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군요.
2014년 중반에 이 친구가 우리 피랍탈북인권연대 사무실에 전화를 했습니다. 당시 제가 사무실에 없어서 통화를 못 했죠. 우리 직원에게 제 휴대폰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는데, 알려주지 않았나 봐요. 누군지 모르니까요. ‘정, 대표님과 연락하고 싶으면 전화번호를 남기라’고 했대요. 그랬더니 ‘알았다’면서 전화번호를 줬대요. 직원이 저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면서 전화번호를 주더군요. 전화번호를 보니까 해외였어요. 전화를 걸어, ‘나 도희윤이란 사람인데 누구시오’ 하고 물으니, ‘저는 대표님을 오래전부터 아는 사람입니다’ 하더군요.
  
―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했다고요.  
“네, 제가 출연하는 라디오 방송인데요, 대북방송이죠. 그것을 통해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10년 이상, 이 방송을 하고 있으니까,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말이 틀리진 않은 것이죠. 우리 사무실 전화번호도 그곳에 전화를 걸어 알아낸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민족방송은 KBS가 남북 간 교류협력과 문화적 이질성 해소, 한민족 네트워크 강화를 위해 송출하는 라디오 채널로, 남북관계의 변화에 발맞춰 한민족으로서 동질성을 고양하고 통일과 통일 이후를 대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방송, 남북 교류 및 화해협력의 중심 방송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그리고 뭐라 하던가요.
“‘나는 북한 사람이다. 단순한 사람은 아니다. 뭔가 일을 하려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느낌이 아주 묘했어요. 저도 북한인권운동을 하면서 북한 사람, 북한과 관련한 사람을 많이 만나서 조금 아는데, 보통 친구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관계를 좀 맺어보려는 생각에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그 친구가 제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어 신호가 간 후 끊으면 제가 다시 연락하는 식으로요. 해외 전화요금은 비싼데, 북한 친구들은 돈이 없잖아요.  


“박정희 같은 사람 내세워 北 끌고 가다 통일하면 됩니다”  

도 대표는 그와 깊숙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태블릿 PC를 보내주었다. 해외에 있는 그에게 태블릿 PC를 전달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세 번의 실패 끝에 도 대표가 보낸 태블릿 PC가 그의 손에 쥐어졌다. 시간이 흐르고 그는 도 대표를 ‘형님’이라 불렀다. 신뢰한다는 뜻이었다.
  
“제가 우리 조직에 대해서는 언젠가 이야기할 때가 있을 겁니다.
  
도 대표는 그의 정체가 너무 궁금했지만 참았다. 비밀요원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지 않듯이, 혁명조직원에게 조직의 우두머리 등 실체를 묻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그가 도 대표에게 의견을 물었다.
  
“김정은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북한은 절대 대한민국처럼 민주주의 선거로 정권을 바꿀 수 없습니다. 김정은이가 무조건 나타나는 곳이 있습니다. 핵심들만 아는 장소죠. 그때를 노리면 됩니다. 만약 새로운 지도자가 또 독재를 하더라도, 그건 개발독재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신격화된 독재보다는 낫지요. 박정희 같은 사람으로 북조선을 끌고 가다 통일하면 됩니다. 형님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혁명조직원의 두 가지 요청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와 김성일씨가 주고받은 대화 메신저 일부분. 김씨는 도 대표를 형님이라고 불렀다. 사진=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제공

 

도 대표는 “옳은 말씀”이라고 했다. 그러자 그가 도 대표에게 두 가지를 요청했다.

― 요청한 두 가지가 뭡니까.
“하나는 자기네가 북한 주민들의 실제 이야기를 담아 보낼 테니 국제사회에 퍼트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북한인권 일을 하면서 국제사회와 계속 교류하고 있으니까 저를 통하면 진실이 더 빨리 알려진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항일투사 이력까지 날조하는 김일성 일가의 우상화를 뒤집는 객관적 자료를 찾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네가 만들고 싶지만, 북한에는 자료가 하나도 없다고 하더군요.
  
― 다 들어줬나요.
“그럼요. 김일성 일가 자료 때문에 고생깨나 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자료는 방대하잖아요.
  
― 김일성 일가 자료는 북한 주민들에게 배포하려고 모아달라고 했을 텐데요.  
“자기네가 알아서 뿌린다고 하기에 방법을 물으니, SD 메모리 카드를 이용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 메모리 카드에 담아서 뿌리겠다고요.
SD카드는 북한에서 하나에 5달러(장마당 가격)에 팔린답니다. 북한에서 5달러는 큰 돈이죠. 비가 올 때 (북한 내 조직원들이) 출장 가는 날이 있답니다. 그들한테 김일성 일가의 진실이 담긴 SD카드를 주면 이 조직원은 미리 구멍을 뚫어놓은 바지 주머니에 이 SD카드를 넣고 주변을 돈답니다. 그러면 카드가 자연스레 땅에 떨어지는데, 비 오는 날은 바닥이 진흙이라 뭐가 떨어졌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걸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죠. 땅이 마르면 땅에 떨어진 SD카드가 보이는데, 너도 나도 다 주워간답니다. 돈이 되니까요. 다시 팔기 위해서는 안에 파일이 있는지 확인하고 지워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김일성 일가의 민낯이 담긴 파일을 열어 읽을 수 있다는 것이죠. 이 외에도 무궁무진하답니다. 배포하는 방법은.
  
도 대표가 말을 이었다.
  
(그가) 또 다른 뭔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모두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북한에서 그런 것을 제작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면서요.
  
 ―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거기까진 제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 그 물건을 구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차선책은 있었습니까.  
“자신들이 염두에 둔 계획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상세히 물어보지 않았지만, 그 친구가 자신은 화공학을 전공했다고 하더군요. 일반 수준의 전공자가 아닌 상당히 숙련되고 전문적인 영역에까지 도달한 친구라는 느낌을 받았지요. 지난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 경호원들이 ‘평화의 집’에 미리 방문해서 방명록을 두 차례 소독하고, 방명록 쓰는 펜과 김정은이 앉을 의자의 팔걸이와 등받이, 다리까지 꼼꼼히 닦는 거 보고 그때 나눈 이야기가 생각나 소름이 돋았습니다.
 
 
― 혹시 요구한 물건이 첨단무기였나요.
 
“…. 


“형님, 제가 키만 좀 더 컸어도 호위사령부로 차출됐을 겁니다” 

― 혁명조직의 일원이라고 하는 사람은 무슨 일을 했습니까.  
“외국에 파견 나간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위치로 보였습니다.
  
― 왜 그 사람 말을 믿게 된 겁니까.  
2년 가까이 거의 매일 연락을 주고받았잖아요. 그러면서 제가 발견한 사실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무의식적으로 ‘내 방에서 뭐 뭐를 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집단에 자신의 개인 방이 있다는 건 급이 대단히 높은 겁니다. 또 제 물음에 한 답들을 보면 굉장히 수준이 높았지요.
  
― 북한 엘리트 중 한 명이라고 판단했다는 말이군요.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어요. 제가 《월간조선》에 기고할 글에 자세히 적겠지만 ‘형님, 제가 키가 조금만 더 컸어도 호위사령부에 차출됐을 겁니다’라고요. 호위사령부는 집안 배경 등 신분이 철저히 검증된 사람만 뽑지 않습니까.
  
호위사령부에 선발되는 인력 대부분은 북한에서 최고의 신체 능력과 호신술, 사격술, 충성심 등으로 엄선된 자들이다. 선발 과정은 충성심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호위사령부 출신 자녀만 다니는 평양 미산고등중학교 졸업생 위주로 뽑는다. 또한 각지에서 신체 능력과 집안 배경 등 신분이 철저히 검증된 청소년들에 한해 고등학교 졸업 전부터 특별관리를 하는 등 선발 과정이 매우 정밀하다.
  
― 혁명조직에 대해서는 절대 말하지 않던가요.
“‘이게(혁명조직) 만만한 조직이 아닙니다’라고 표현했어요. 그리고 ‘형님께 모두 밝힐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히 밝힐 수 있는 건 우리 대장(혁명조직의 지도자)이 김정일로부터 엄청난 신뢰를 받았던 사람입니다’라고 했습니다.

 

― 혁명조직 대장이 최고위층 관계자인 모양이네요.
“저는 그렇게 판단했죠. ‘조직에는 국가안전보위부(최근 보위성으로 바뀜) 소속이 많은가 봐요’라는 식으로 떠보면 ‘보위부뿐만이 아니라 외무성 등 각계각층에 다 포진돼 있습니다’라고 답했으니까요. 그런 조직을 이끌려면 최고위층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2018 2월 영국으로 망명한 한국군 대령급에 해당하는 50대 후반 강모 대좌도 혁명조직과 관계있다고 봅니다.  


김일성 모친 강반석의 인척도 혁명조직원?

― 김일성의 모친 강반석(1892~1932)과 인척 관계인 것으로 알려진 그 사람 말입니까? 그래도 김일성 모친 친척인데 혁명조직과 관계가 있을까요.  
(관계가 전혀 없다면) 왜 김정은이 이 간부를 암살하라는 지시를 내렸을까요.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NK’에 따르면 강 대좌는 중국과 러시아에서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검토하고 현지 확인 활동을 지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또한 핵과 미사일 개발 인재 육성을 위해 중국과 러시아 학자들을 북한과 연계시키는 데 대한 물밑작업도 담당했다.
  
― 혁명조직은 지금도 활동 중인가요.  
“확답할 수는 없지만, 제가 연락하던 그 ‘아우’는 자신들의 계획이 들통나 북한 당국에 잡혀갔습니다.
  
― 잔인하게 죽였겠네요.
“바로 죽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살려뒀다가 활용할 목적으로 정치범수용소 에 보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자기는 죽어도 괜찮지만, 아들만은 살리고 싶다고 했는데…. 한번은 ‘형님 저는 죽습니다. 저는 살려고 혁명운동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제가 인간폭탄 역할을 해서라도 죽을 각오가 돼 있습니다’라고 하기에 ‘너 죽으면 마누라하고 자식은 어떡하느냐’고 물으니, ‘형님 저도 그게 걱정인데, 마누라야 이혼하면 되지만 하나뿐인 자식은 마음에 걸린다. 형님이 좀 거둬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내가 서울에서 키울 테니, 지금이라도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때 막 웃으면서 기회가 되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는데….
  
 ― 아들도 죽었겠죠.
“아마 그랬겠죠.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죽였거나 같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었을 수도 있겠지요. 사람을 심문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이 뭔지 아십니까. 자식 목에 칼을 들이대는 것입니다. 고문 안 해도 다 불지요. 그게 부모 마음 아닙니까.

 
 
, 도가놈이 최고수뇌부의 암살작전 부추겨

▲북한은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가 김성일씨를 돈과 물건으로 매수, 최고수뇌부에 대한 암살작전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북한 ‘우리민족끼리’ 캡처

 

북한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2017 6 7일부터 30일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천인공노할 특대형국가테로범죄의 진상’이라는 제목의 글과 동영상을 올렸다. 도 대표의 이름도 거론됐다. 이 동영상과 글은 현재 인터넷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북한이 글을 모두 삭제한 탓이다. 《월간조선》은 해커의 도움을 받아 당시 영상과 글을 입수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피랍탈북인권련대 대표 도희윤놈을 교묘한 방법으로 접근시켜 돈과 물건으로 그를 매수한 다음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우리의 최고수뇌부와 사회주의제도에 대한 적대의식을 불어넣었다. 그해 9월 도가놈은 인편을 통해 남조선산 판형콤퓨터를 그에게 주어 온갖 반공화국 악선전과 인권모략 자료들을 시청, 열람시키면서 사상적으로 변질타락하게 하였다. (중략) 도희윤놈은 김성일(도 대표와 연락을 취하던 혁명조직 요원)의 광기를 더욱 부추겼고, 김성일은 우리의 최고수뇌부에 대한 테로 및 암살 작전을 시작하였다.

― 북한에서는 도 대표가 김성일씨를 이용해 김정은을 제거하려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거짓 선동의 일인자들 아닙니까.

도 대표는 “당시 ‘우리민족끼리’에서는 내 얼굴까지 공개했다”며 “북한은 그(김성일)를 정신병자로 몰아세웠는데, 앞서 설명했듯 그는 좋은 집안의 엘리트다. 일개 노동자가 어떻게 혼자 ‘김정은 암살’을 기획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우리민족끼리’는 김성일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도희윤놈의 눈에 걸려든 것이 바로 당시 로련주재 하바롭스크변강 림업지부 로동자였던 공화국공민 김성일이였다. 김성일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원래부터 일하기 싫어하고 공짜를 좋아했으며 특히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매우 불균형적이고 비정상적이였다고 증언하였다. 그의 문건에는 어느 한 중앙병원에서 작성한 병력서도 있었는데 거기에는 김성일의 정신상태에 대하여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자유조선, 北 혁명에는 도움 안 돼

 

도희윤 대표는 “김씨가 말한 바로는 혁명조직의 장(長)은 김정일에게 어마어마한 선물을 받을 정도의 핵심인물”이라며 “김씨는 ‘혁명조직은 최고 엘리트 출신으로 구성돼 있다’고 내게 말했다”고 전했다.

― 이런 사실을 지금 폭로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추종 세력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북한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자유민주주의 세력의 존폐 여부가 결정 난다고 생각합니다. 남북이 평화를 위한 대화를 시작한 것은 환영하지만, 김정은 자체를 치켜세우는 것은 북한 내 자유민주주의 세력의 씨를 말리는 행위입니다. 지금이라도 이런 사실을 밝히는 이유입니다.
  
― 지난 2월 발생한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습격 사건을 주도한 자유조선(옛 천리마민방위)이 ‘최고 존엄’ 김정은 타도를 외치는데, 이들도 혁명조직과 관련이 있나요.
“그들의 투쟁정신과 행동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그런데 정교하지 못한 상황판단으로 위기를 자초한 측면이 있어 안타깝습니다. 그들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사망한 김정남의 남은 아들인 김한솔을 운운하면서, 마치 자신들의 조직과 깊이 연계된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참으로 초보적인 선전술을 보는 것 같은데요. 이런 언행은 북한 내부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저항세력들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 연관이 없다는 이야기로 들리네요.
“대한민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모든 인권단체, 반북단체들이 명확히 인식을 공유했으면 하고 바라는 가치는, 해방된 자유조선, 즉 북한의 주인은 2000만 노예 주민 그들임을 한시라도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김씨 왕조와 약간의 DNA라도 섞인 당사자들은 석고대죄의 자세로 2000만 북한 주민과 대한민국에 속죄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자유조선이 김한솔을 앞세우는 것은 북한 주민을 욕보이는 것인 만큼 북한 내부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혁명조직과는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남한 내 김정은 추종자, 北 주도로 통일될 경우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할 것 

― 북한 내부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저항세력들과 마주하다가 ‘김정은 찬양’ 논란이 제기된 ‘백두칭송위원회’와 ‘위인맞이환영단’ 같은 단체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듭니까. 
“제가 접했던 북한 내부 저항세력의 말로 답을 대신하겠습니다.
  
‘지금 남조선에 김정은을 찬양하는 사람들도 있다니, 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김일성 가문이 구상하는 조국통일이란 김정은을 지금 북조선처럼 북과 남의 7000만 겨례가 받들어 모셔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북조선의 현실을 남조선에까지 펼쳐놓겠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되겠는가, 상상해보십시오. 사실 한반도 통일이라는 게 두 가지인데, 이와 같은 김일성 가문의 독재정치를 한반도 전역에 펼쳐놓는가 아니면 자유로운 민주주의 정치를 한반도 전역에 실현하는가 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김정은 정권하에 한반도 통일이 됐다고 가정할 때, 김정은을 지지 찬양하는 사람이든 반대하는 사람이든 남조선에서는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제 죽을 구덩이 제 손으로 파는 어리석은 짓은 인제 그만두십시오.’”  


운동권 출신  

우리 진보 진영은 국내의 인권 문제에 대해선 지나치다고 생각될 정도로 적극적이지만 주민을 아예 인간으로 취급하지도 않는 북한 정권의 만행에 대해선 이상하리만치 무관심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대표적 북한인권전문가인 도 대표는 운동권 출신이다.
  
― 이력을 보니, 문재인 청와대에 다수 포진해 있는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출신이더군요.
“전대협 1기죠. 우리 학교 총학생회가 이른바 어용이었어요. 전대협에 가입을 안 했죠. 당시 제가 학교 동아리연합회 회장이었는데, 전대협에는 총학생회만 가입하는 게 아니었거든요. 제가 우리 학교를 대표해서 (전대협에) 가입했죠. 고려대 총학생회실에서 발대식을 준비하는 데도 관여했습니다. 당시 의장이 이인영(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씨였어요.

 

NL(민족해방·민족주의적 친북·반미 성향) 계열이었나요.
“아니요. 저는 PD(민중민주) 계열이었습니다. 정확히 분류하면 80년대 중반 학생운동의 한 축이었던 제헌의회(CA) 노선이었죠. CA가 나중에 PD로 진화했으니까요.
  
―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복역도 했던데요.
1989 2월경에 체포돼서 만 2년여를 공주교도소에 있다가 1991년에 출소했습니다.  


덩샤오핑과 중국공산당 보고 전향  

― 북한인권운동에 투신하게 된 계기가 뭡니까.
“부정부패 척결과 민주주의를 외치는 학생들을 탱크로 짓밟아버리는 덩샤오핑과 중국공산당의 모습을 보고, ‘이건 정말 아니지 않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동유럽 공산권의 몰락도 저에겐 큰 충격이었습니다. 내 모든 이념적 가치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깨달은 것이죠. 제대로 된 통일운동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 같이 학생운동했던 동료가 ‘배신자’라고 하진 않던가요. 
“제가 완전 다른 길을 가고 있다면 모를까, 잘못된 점을 인정하고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를 북한에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운동을 하는데 ‘배신자’라고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북한 주민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저를 보고 부끄러워하는 동료가 많습니다. ‘아, 이 형님은 지금도 통일과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나는 뭐 하고 있나’라고 반성하는 것이죠.
  
― 전향하게 된 계기가 부정부패 척결과 민주주의를 외치는 학생들을 탱크로 짓밟아버린 덩샤오핑(鄧小平) 때문이라고 했는데요, 김정은이 북한의 덩샤오핑을 꿈꾼다는 이야기도 나오더군요.
“김정은이 ‘중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미국과 정상회담 및 과감한 개혁·개방에 나선 덩샤오핑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이야기… 저는 그 친구가 꿈꾸는 덩샤오핑은 톈안먼 사태를, 그러니까 주민 100만명을 죽여도 자기 권력만 유지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졌던 덩샤오핑인 것 같습니다.  


유태준 구명운동

― 대표로 계신 피랍탈북인권연대는 어떻게 설립한 겁니까.  
1991년도에 수감생활을 마치고 흥사단에서 실무자로 활동했습니다. 탈북한 분들을 자주 만났는데, 이때 보고 듣고 느낀 바를 토대 삼아 탈북자들을 위한 실질적인 일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접 나서 탈북자 구출·구명운동을 하자는 결심이 선 것이죠. 그때(1999) 《조선일보》가 특종 보도한 유태준 사건이 터집니다. 단체를 만들어 이 친구를 구명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피랍탈북인권연대가 만들어졌죠.
  
북한의 아내와 자식을 구하려고 재입북했다가 체포돼 종신 수용소에 끌려간 유태준씨는 국제사회의 노력으로 풀려나 역시 김정일의 방침을 받고 북한 사회에 재정착했지만, 그것을 뿌리치고 2001년 재탈북했다. 그는 북한의 기자회견장에서 자신의 구명운동을 벌인 남한의 어머니에게 “인간쓰레기, ○○년은 인간도 아니다”는 욕설을 하도록 강요받았다.
  
― 유태준씨는 잘 지냅니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수개월 전부터 몇몇 좌파 성향 방송인들이 이 친구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요.
  
유씨는 2004년 이복동생을 살해하려 한 혐의(살인미수)로 징역 3년과 치료감호 10년을 선고받았다. 복역을 마치고 감호소를 나온 뒤 치료감호심의위원회에서 전자발찌 부착 명령(10)을 받고 정신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다 전자발찌를 끊고 달아났다. 유씨는 2017 10 18일 검거됐다.  


최근 탈북하다 중국 공안에 잡힌 9세 女兒, 90% 北에 보내질 것  

2000년부터 지금까지 도 대표는 언제나 ‘탈북자의 지킴이’였다. 2002년 남녀 성인과 청소년이 포함된 탈북자 25명이 몸싸움 끝에 중국 스페인대사관에 진입했을 때에도 그는 현장에 있었다.
  
당시 탈북자들의 절박한 표정과 몸짓을 담아 북한의 참담한 인권 현실을 전 세계에 적나라하게 알린 사진은 그가 직접 찍은 것이었다.
  
“당시는 탈북자들에 대한 강제 북송 문제가 상당히 불거졌을 때입니다. 1990년대 말 ‘고난의 행군’ 시기(경제적 위기) 300만명이 굶어 죽는 과정에서 50만명이 중국으로 나왔는데, 대부분 잡혀 강제 북송됐지요.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희생됐습니다. 우리 단체를 포함해, 국제사회의 여러 단체가 강제 북송하는 중국과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죠. 그래서 중국 스페인대사관의 진입을 기획한 겁니다. 결과적으로 성공한 작전이었죠.
  
― 왜 하필 중국 스페인대사관이었습니까.
“당시 스페인이 유엔의 순번제 의장국이었어요. 중국 스페인대사관으로 진입하면 이런 부분이 언급될 것이고, 중국이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을 한 것이죠.
  
때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도 대표는 2010년 중국에서 몽골로 가던 탈북 여성 4명이 길을 잃고 어려움에 부닥쳤다는 소식을 접하고, 직접 몽골까지 달려가 구출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몽골 당국에 붙잡혀 유치장 신세를 지고 한 달 가까이 사실상 억류 상태를 겪어야 했다. 그런데도 도 대표는 이때 일을 가장 즐거웠던 기억으로 꼽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4명의 여성이 한국에 들어와 하나원에서 정착교육을 마쳤는데, 나올 때는 6명이 돼 있더군요. 임신한 여성이 2명 있었는데 모두 건강한 아이를 출산한 거죠.
  
― 최근 9세 여아를 포함한 탈북자 7명이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송 위기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제3국 탈북민은 통상적으로 중국 국경을 넘어 베트남라오스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잡히면 90% 이상은 중국 국경경비대에서 공안으로 인계돼 북한으로 보내집니다. 탈북민들 입장에선 최악의 경우에 빠지는 것이죠.
  
이들은 5월 초 압록강을 넘어 중국 선양 외곽의 한 은신처에서 대기 중이던 탈북자들로, 7명이 중국 공안에 체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송 위기에 처한 탈북민들을 구해달라는 제안이 잇따르고 있다. 청원인 A씨는 지난 4 30일 오후 국민청원 게시판에 ‘9살 어린 여자아이 최모양과 삼촌 강모(32)씨… 총 7명의 탈북자 강제북송을 막아 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A씨는 “중국 정부는 국제협약의 아동권리보호조약 및 국제난민에 관한 협약에 따라 9살밖에 안 된 어린 여아 또한 대한민국 대표 인권변호사이시며 노무현 대통령님의 절친이신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님께서 꼭 구해주시기를 청원한다”고 덧붙였다. B씨는 “정부에서 조금만 신경을 기울이면 부모님들 곁으로 안전하게 돌려보낼 수 있다”고 썼으며, C씨는 “탈북자들도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했다.

 

北 해외노동자들에게 4~5월이 가장 잔인한 달인 이유

▲사진=조현호

 

― 과거 글을 통해, 북한 주민에게는 4~5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는데요.
“북한의 해외노동자들에게 4~5월은 최악이죠. 해외노동자들은 노동당 직속인 대외건설지도국에 계획자금(할당금)을 내야 합니다. 그런데 겨울에는 일이 없잖아요. 날씨 때문에 공사를 중단하니까요. 그렇게 돈을 벌지 못해 내지 못한 할당금을 날씨 좋은 4~5월에 몇 배 더 일을 해서 내야 합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최근에 김정은이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했잖아요. 근데 그곳의 한 공사장에서 북한 노동자 1명이 투신자살을 했습니다. 이 노동자는 북한 당국의 과도한 노동착취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인데요.
“맞습니다. 일부 외신보도와 제가 아는 바로는 30대 후반인 북한 노동자는 4년 전 건설 노동자로 러시아에 파견됐는데, 북한 당국이 지정한 개인별 계획자금과 소속 회사 간부들의 끝없는 갈취 행위로 인해 4년간 일하고도 돈이 모이지 않자 이를 비관해 공사장 12층에서 투신했습니다. 북한 근로자들은 러시아 현지에서 1인당 매월 50만 루블, 800달러(한화 93만원) 정도를 과제금액으로 국가에 바쳐야 하는데, 일감이 적은 겨울에는 과제금액을 채우지 못하기 때문에 밀린 금액을 봄이 되면 아침 7시부터 하루 14~16시간씩 일해서라도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 문재인 대통령은 2018 9월 방북 시 “‘평양의 놀라운 발전상’에 감동했다”고 했는데, 사실입니까. 우리가 보는 화면상만으로는 신축건물도 좀 들어서고 했던데요.
“최근 북한을 다녀온 종교단체 관계자가 해준 이야기입니다. 중국을 거쳐 평양에 들어가니 새롭게 단장한 공항청사와 함께 여명거리에 마천루가 즐비하게 서 있었고, 차량이 눈에 띄게 늘어 뭔가 많이 변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 진짜 발전한 건가요.
“아니요. 대부분의 건물이 영화세트장처럼 급조된 분위기였고, 억지로 보여주려는 듯 일상적인 풍요로움 속에서 나오는 여유나 생동감들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 평양이 체제 선전을 위한 거대한 세트장 같았다는 말이군요.
“그렇죠. 이 사람이 대로변을 벗어난 저쪽 너머 담벼락에서 어린아이 한 명이 빼꼼 쳐다보기에 그쪽으로 다가갔답니다. 같은 또래 아이들이 모여 있어 주머니에 있던 사탕을 꺼내 나눠줬는데 일행을 따라다니던 보위부원이 애들을 불러 세운 뒤 사탕을 내팽개치며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고 합니다. ‘아, 이곳이 바로 지옥이구나’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김정은 정권 당장 무너져도 놀라지 않을 정도로 허약 

―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미국 ‘블룸버그통신’)이란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북의 요구를 들어줬는데도 북은 ‘기습 도발’을 자행했습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실험을 진행한 것은 자기 길을 가겠다는 명백한 신호라고 봐야 합니다. 그 길은 바로 핵보유국으로서 미국과 당당하게 협상하고 남한의 종북정권과 연합하여 주한미군 철수 등을 관철하고 종국적으로 한반도 적화통일을 완수하겠다는 것이죠. 김정은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번 도발은 제 무덤을 스스로 판 격이 될 것입니다. 대북제재를 풀라는 요구가 더는 국제사회에 먹히지 않을 테니까요.
  
― 김정은 정권은 내일 무너져도 하등 이상할 게 없겠네요.
“그런 환경이 조성된 것이죠.
  
현 정부 출범 후 탈북자 관련 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금은 잇달아 중단됐다. 통일부의 ‘탈북민 정착 사업비’ 지급액은 반 토막이 났고, 국정원·경찰군 예산으로 지원금을 받던 탈북자 단체들에도 지원이 끊겼다. 기업 후원도 사라졌다.
  
― 피랍탈북인권연대 운영비는 어떻게 충당합니까.
“사실 개인적인 빚이 많아요. 제 스타일이 누구한테 손을 잘 내밀지 못하거든요. 후원자들한테 ‘누구를 구해주고 싶은데, 우리는 돈이 없습니다’라는 말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래도 기업 후원이나 자발적으로 우리에게 후원해주는 감사한 분들이 있습니다. 이 후원금으로 운영하다가 모자라면 제 사비를 터는 것이죠.
  
― 정부 지원금이 끊겼다면서요.
“솔직히 정부 지원금은 우리 단체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만들어지고 2007년도까지 단 한 푼도 안 받았죠.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오면서 기업이 후원을 해주긴 했는데, 2000만원이 드는 행사 후원을 해달라고 하면 한 300만원 해주고 그랬어요. 박근혜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업들이 북한인권이라면 일단은 딴소리를 합니다. 다른 좌파 성향의 재단에는 후원도 많이 하면서요.  


문재인 대통령 집권 기간이, 우리(북한인권운동 조직)는 ‘고난의 행군’

― 어쨌든 현 정부에서는 운영이 더 힘들겠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고난의 행군’ 시기죠. 이 정부 아래에서는 단 한 푼도 지원받지 않고 일하겠다는 각오입니다.
  
― 언젠가 미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협의를 이룬다고 가정했을 때 실제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가 해결될까요.
“저는 북핵이나 인권 문제는 김정은이 물러나지 않고는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물론 세상에 100%는 없는 만큼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1%라도 인권 문제와 관련해 전향적인 모습을 보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두 번의 정상회담에도 북한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 북한판 10·26 계획한 北 내부 혁명조직원의 遺書

월간조선 06월 호 -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수령론’ 존재하는 이상 北 변하지 않아… 김씨 3부자 제거가 유일한 방법”

 

⊙ 북한 내부에 ‘북한판 10·26’을 계획한 北 내부 혁명조직 존재 확인
⊙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 당시 정부 통일·외교·안보 고위급 관계자들도 北 혁명조직 존재 인정
⊙ ‘수령론’은 북한을 주민이 굶어 죽는 세계 최악의 실패 국가로 만들어
⊙ 전지전능한 수령은 인류 역사상 단 한 번 태어났는데 그게 김일성과 그 자식들이란 허황한 논리
⊙ 김정은, 인권유린 행위 정당화 위해 ‘보편적 인권 받아들이면 외국에 영토 침략당할 것’이라는 거짓 선전 선동 중
⊙ 선거 때 투표함 옆에서 감시하고, 김정은에 반대표 던지면 사형
⊙ 김정은의 反인권적 범죄행위는 北 주민 투쟁에 의해 종식될 것 

 

 

《월간조선》이 2018 6월호를 통해 보도한 〈북한 내부에 ‘북한판 10·26’을 계획한 北 내부 혁명조직이 존재한다〉는 내용의 기사는 사실로 확인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물론, 당시 정부 통일·외교·안보 고위급 관계자들이 보도 내용을 인정한 데 이어, 북한 인권 및 통일 전문가인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가 북 내부 혁명조직 일원과 접촉한 사실을 폭로하면서다.
 
 
김정일의 측근인 장명학 당중앙위원회 후보위원도 2017 6 30일 《로동신문》에 《월간조선》 보도 내용을 뒷받침하는 글(‘살아 숨 쉴 곳을 찾지 말라’)을 쓰기도 했다. 장명학은 김정일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이었다.

▲북한 내부 혁명조직 일원 김성일씨가 2016년 10월 즈음 巨事를 치르기 위해 북한으로 들어가기 전 쓴 사실상의 유서. 김씨는 메신저 대화방을 통해 이 글을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에게 전달했다.

 

북한 내부 혁명조직 일원 김성일씨는 2016 10월 즈음 거사(巨事)를 치르기 위해 북한으로 들어가기 전 ‘우리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공민입니다’라는 글을 써 도 대표에게 메신저 대화방을 통해 전달했다. 그는 도 대표를 ‘형님’으로 호칭했다.
 
 
“형님, 이게 우리 북한의 실제 모습, 주민들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형님께서 북한 인권 일을 하면서 국제사회와 교류를 하고 있으니 이 글을 국제사회에 퍼트려주십시오.
 
 
국제사회에 북한 체제의 실상과 인권 유린의 참상을 알려달라는 부탁이었다. 도 대표는 김씨에게 메신저 대화방을 통해 받은 글을 A4용지에 그대로 옮긴 뒤 공개할 시점을 기다리며 보관해왔다. 《월간조선》은 도 대표에게서 A4용지 6장 분량의 김씨 글을 입수했다. 이 글의 주요 골자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부자’의 유일지배체제의 논리적 토대가 되는 ‘수령론’이 북한을 주민이 굶어 죽는 세계 최악의 실패 국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주체사상의 논리적 출발점이자 결론인 ‘수령론’

  주체사상의 논리적 출발점이자 결론인 수령론은 당 안에 오직 하나의 사상, 수령의 혁명사상만이 존재하고, 그 밖에 다른 어떤 사상도 허용되지 않는 사상의 단일성·일치성을 말한다. 여기서 ‘수령’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이다. 북한에서 수령 유일사상체계가 정착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중후반이다. 1967 5월 열린 당중앙위원회 제4 15차 전원회의에서 박금철·이효순·김도만 등 이른바 ‘갑산파’가 숙청되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유일사상체계 확립이 강조되고, 유일사상체계가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당시 갑산파 숙청과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주도한 인물은 김정일이다.
 
 
김정일은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주창하면서 다음과 같은 논리를 내세웠다.
 
 
“당은 수령에 의해 창건되고 지도되며 수령의 사상과 영도를 실현하는 무기이다. 그러므로 당 안에는 오직 하나의 사상, 수령의 사상만이 존재해야 하고 수령을 중심으로 전당이 굳게 통일 단결돼야 하며, 수령의 유일적 영도가 보장돼야 한다.
 
 
유일사상체계의 핵심은 수령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이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수령을 높이 우러러 모시고(신격화), 수령의 권위를 절대화하며(절대화), 수령의 사상을 신념화하고 교시를 신조화하며(신조화), 수령의 의도와 방침을 관철하는 데서 무조건성의 원칙(무조건성)을 철저히 지키는 것을 말한다. ‘충실성의 4대 원칙’으로 불리는 신격화·절대화·신조화·무조건성의 원칙은 1974 4월 김정일에 의해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 10대 원칙’이라는 행동준칙·실천강령으로까지 발전했다. 이는 오늘날 북한 주민들의 일상사를 규율하는 최고의 행위규범이다.
 
  1980
년대 주사파(主思派)의 논리를 대학가에 퍼뜨린 〈강철서신〉의 작성자였던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씨는 수령론에 대해 “완전한 허구이자 거대한 사기극”이라고 했다. 주사파 제1의 이론가였던 김씨는 1991년 북한이 보낸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해 김일성을 만났고, 이듬해 지하조직 민혁당을 결성했다. 그러나 김씨가 자기 눈으로 확인한 북한은 인민이 주인인 ‘주체의 나라’가 아니라 인민이 머슴처럼 김일성 일가를 떠받드는 봉건국가였다.
 
 
김씨는 자신이 받아들였던 주체사상과 북한의 현실이 완전히 어긋나자 사상과 행동의 대전환을 했다. 1997년 민혁당을 자진 해체했고, 1999년 “북한 동포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한다”는 사상 전향서를 쓴 뒤 북한 민주화·인권 운동에 뛰어들었다.
 
 
도 대표에게 글을 전한 뒤 북한으로 들어간 북한 내부 혁명조직 일원 김성일씨는 작전에 실패했다. 그는 심한 고문 끝에 잔혹하게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그가 도 대표에게 남긴 글은 유서가 됐다.

 
,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에 맞춰 미사일 도발 

  문재인 대통령은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에 보낸 기고문에서 “한반도에서 총성은 사라졌다”며 취임 후 남북 간에 평화 무드가 조성됐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설 등에 대해 “한반도의 봄이 성큼 다가왔다”고 했다. 9·19 남북군사합의 체결 때에는 “한반도의 하늘과 바다, 땅에서 총성은 사라졌다”고 했다. 현 정부 대북정책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자화자찬한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에 맞춰 두 번이나 미사일 도발을 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유엔 결의 위반인 동시에 ‘지상·해상·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중지한다’는 남북한 군사 합의를 어긴 것이다.
 
 
특히 지난 5 9일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북한판 이스칸데르급’ 미사일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DMZ(비무장지대) 인근에서 이 미사일을 쏠 경우 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 전역이 타격권에 들어간다. 이스칸데르 미사일의 경우 최대 고도가 50km에 불과해 최저 요격 고도가 40km인 사드로 요격하기 어렵다. 원래 북한은 한국과 미국의 정치 일정을 머릿속에 넣고 주판알을 굴려왔다.
 
 
김씨가 남긴 유서가 된 글을 보면 북한이 어떤 곳이고,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부자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 수 있다. 독자들은 물론, 북한 위주 정책을 펼치는 문재인 정부도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 전문을 공개(북한식 표기 수정 없이)한다.
 
 
북한 눈치를 보느라 북한 인권을 외면한다는 비난을 받는 문재인 정부는 김씨가 자신이 몸담은 혁명조직을 ‘참다운 인권을 지향하는 사람들’이라고 한 것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북한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가 공개한 북한 내부 혁명조직 일원 김성일씨의 신상. ‘우리민족끼리’ 영상 캡처

 

〈우리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공민입니다.

  우리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공민들이고 참다운 인권을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제는 국제사회도 잘 아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많은 반인권적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규탄 속에서도 반인권적 문제들이 없어지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 국가 통치구조로부터 발생하는 것으로써 국제사회의 압력이 계속된다 해도 없어질 수 없다는데 비극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45년 일본의 식민지 병합통치로부터 독립하여 1948년에 나라를 세웠습니다. 당시 김일성은 봉건적 계급 신분제 국가였던 리씨 조선의 국가통치체계를 비판하면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세습 군주제 국가가 아니라, 온갖 계급적 신분차별이 없는 민주주의적인 정치체제 국가로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약속하고 절대다수의 인민들 지지를 받아 국가지도자로 되었습니다. 농민들에게 토지를 분여하고 개인들의 토지소유권을 인정하였으며, 개인 농업경리와 중소기업을 장려하였습니다. 민주주의적 개혁 실천으로 인민들의 지지를 얻게 되자 점차 자기가 인민 대중의 의사와 지향을 체현한 지도자로 인식하면서, 자기가 종신 집권해야 전체 인민들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비민주주의적 론거를 내세워 점차 나라를 봉건적 계급신분제 국가로 만들고 유일적 통치체계를 세워나갔습니다.
 
 
수령은 전체 인민들의 의사와 지향을 천품으로 체현하고 있기 때문에, 수령의 의사는 전체 인민들의 의사이고, 수령의 지시는 전체 인민들의 지향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기에 수령의 의사와 지시를 거부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전체 인민들을 반대하는 것으로 된다는 론리를 기초로, 수령을 절대 정의자로 만들었고 또 이를 기초로 수령의 유일적 령도체계를 세웠습니다. 혁명적 수령관이라는 리론에 기초를 든 수령의 유일적 령도체계 국가통치는, 오늘날에 3대인 손자 대에 이르렀고 많은 반인권적 문제들을 낳았습니다. 수령관에 기초를 든 수령의 유일적 령도체계는 구조적으로 볼 때 반인권적 문제들을 발생하게 생겼습니다.


  김일성 3부자는 미래도 내다본다는 ‘수령론'

  우선 수령관을 보면, 수령은 국가의 모든 조직을 령도하는 최고지도자로써 절대정의의 안목과 판단력을 가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수령은 잘못 볼 수도 없고 잘못 판단하거나 행동할 수도 없는 인간이며 인격적으로도 가장 세련되고 나무랄 데 없는 완성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수령은 모든 인민의 속생각도 지향도 다 잘 아는 인간이며, 미래에 있을 일도 다 내다보고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라는 것입니다. 이런 능력은 태여나 성장하면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날 때부터 천품으로 타고났고, 국가를 지도하는 과정에 더 세련되여 간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수령의 생각과 행동은 전체 인민들의 생각과 지향을 다 담고 있는 절대정의이고, 다른 생각이나 행동은 부정의이므로 부정의는 정의의 징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리론입니다. 또 아무 나라 국가지도자가 다 수령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수령은 인류 력사상에 한번 태여났을 뿐인데 그것이 운 좋게 우리나라에서 태여났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수령은 육체적으로만 보통 인간이지 뇌수 능력은 이 세상 천재들을 다 합쳐도 따르지 못할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중에 수령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가는 수령만이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수령이 지정해주는 사람이 다음번 수령으로 국가를 지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과 인품을 지닌 수령이 국가를 지도해야지 다른 사람이 국가지도자로 될 수 없다는 것이 수령의 유일적 령도체계입니다. 인류 력사상에 처음으로 태어난 수령이 김일성이고 수령의 안목으로 보고 판단한 다음번 수령이 아들 김정일이고 또 그 다음번 수령이 손자 김정은이라는 것입니다. 


  허황한 ‘수령론’ 믿게 하기 위해 반대론자 끊임없이 숙청

  정상 사람의 사고로는 매우 허황한 비과학적 론리라고 할 수 있겠지만, 비극은 여기에 있습니다. 비과학적 론리인 수령관과 수령의 유일적 령도를 보장하자면, 그것을 납득하지 않거나 반대하는 사람, 불충성스럽게 받드는 사람들을 끊임없는 처형의 방법으로 없애고 강제로 인식시키기 위한 부단한 사상교양사업 위대성을 인식시키기 위한 교육을 진행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농장관리소라고 불리는 정치범수용소가 생겨나게 된 동기를 보아도 또 여기에 수감되는 사람들의 죄목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국제사회가 규탄하는 정치범수용소 운영, 련좌죄 처벌은 유일사상체계와 함께 태여났으며, 김일성 시대부터 김정은 시대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농장관리소가 수령의 유일사상체계와 유일적 지도체제를 세워주었다고 김일성도 생전에 말한 바 있습니다. 보안부나 보위부가 운영하는 각종 수감시설들에서 발생하는 구타, 고문, 폭행이 국가가 제정한 법적 규정에 의하여 금지되어 있지만, 공공연하게 행하여지는 것도 다 유일 령도체계와 관련됩니다. 그것은 국가통치기관에서 복무하는 사람들은 다 수령이 임명하였거나 그 위임을 받은 사람이나, 단위들에서 임명하였음으로 이들의 전횡이나 폭행에 대하여 항의하는 것은 이들을 임명한 수령의 안목에 대하여 항의하는 것으로 되기 때문에, 밑으로부터는 나라 내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인권유린행위를 저지시킬 수가 없고, 우로 수령만이 이들을 처벌하거나 저지시킬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외부정보 류입에 대한 통제와 처벌로 인한 반인권적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도 수령의 권위와 련관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수령이라고 하면 김일성이나 김정일, 현재 김정은을 말합니다.
 
 
김정은 정권이 바라는 것이 그를 위대한 능력이나 완성된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 인민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끊임없는 위대성 주입을 줍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주변국들의 정치, 경제, 사회생활을 비교해볼 수 있게 된다면 그 위대한 능력을 립증할 만큼 나라의 현실이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외부정보 류입행위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의 규탄에도 가차 없는 처벌을 가하는 것입니다. 김정은 정권이 국제사회의 보편적 인권을 부정하고 우리식 인권을 주장하는 것도 김정은 정권체제의 성격과 관련됩니다.
 
 
수령에 대한 인민대중의 절대적인 복종과 무조건적인 의무리행을 전재로 하는 유일적 령도체계는, 인민대중의 자유와 권리와는 상반되는 리해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국제사회의 보편적 인권이 반영하는 모든 조항을 수령의 유일적 령도체계에서는 적용할 수가 없게 되여 있습니다. 따라서 (수령의 령도를 받는 삶이 보장되는 것이 우리식 인권이다) 라는 유일적 령도체계 유지에 도움이 되는 자기식의 인권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정권 유지 위해 北 주민의 모든 것 빼앗는 김씨 3부자

구조적으로 볼 때에 김정은 정권에 의하여 자행되는 반인권적 행위에 대하여 국제적 압박이 계속된다고 해도 유일 령도체계 유지와 련관성이 없는 아동·로인·장애인 문제와 같은 것에서는 전진이나 해결을 볼 수 있지만, 직접적 련관성이 있는 정치범수용소·련좌죄·신분차별·려행과 직업선택·언론·집회·결사·시위·신앙생활과 종교활동의 자유 같은 문제들은 해결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식량권 문제에서도 정권유지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시키는 김정일, 김정은 정권의 반인민적 성격과 관련됩니다.
 
 
사회주의체제인 우리나라에는 개인들이 시장에서 량곡을 사고, 팔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인구의 60% 이상이 시장에 의존하여 식량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협동농장에서 생산된 량곡은 법적으로는 협동농장원들의 소유로 되어 있으며, 국가에 세금으로 바치는 현물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농장원들의 소유로써 농민들이 소비하고, 남는 여유분 량곡은 국가가 수매하여 다시 군대와 국가공무원 주민들에게 공급하거나 배급해주게 되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들이 가진 여유분 량곡도 시장에서 자유합의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되여 있습니다. 땅도 그 땅이고 하늘도 그 하늘인데 김일성시대에 발생하지 않던 아사자가 김정일시대에 들어와서 발생하는 것도, 김정일이 이 모든 소유관계와 류통체계를 무시하고, 군대에 협동농장원들의 소유로 되여 있는 량곡을 얼마만큼 가져가라는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협동농장원들의 소유로 되여 있는 량곡 대부분을 군대의 소유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또한 자기들의 정권유지에 종사하는 당기관·정권기관·특수기관(보위·보안·검찰·재판)·군대에 수매량정성을 거치지 않고 량곡을 징수해갈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수매량정성이 주민들에게 배급 줄 량곡을 수매할 분량이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식량배급을 받지 못한 주민들의 량곡 소유를 불법으로 만들었으며 인권유린과 대아사의 환경을 마련했습니다.
 
 
군대가 소요되는 분량의 량곡을 강제로 협동농장에서 징수해가고, 징수 운반과정에 비법적으로 량곡을 빼돌려 시장에 류통시키고, 그것을 인구의 60% 이상의 주민들이 시장을 통하여 구입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위법행위임으로 법적 통제를 받는데 결국 범죄적 방법으로 빼돌려 류통시킨 량곡을 자본주의적 시장을 통하여 구입하고, 이것이 또 사회주의적 통제를 받는 과정을 통하여 많은 반인권적 문제들을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량곡 징수과정에 모자라는 량을 채우기 위하여 집집마다 강제로 뒤지는 행위, 량곡 류출을 막기 위한 의도로 진행되는 공개총살도 이 과정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김정일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루기까지 인구의 60% 이상이 일정한 자유를 요구하는 시장활동에 의존하여 식, 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환경과, 사회주의적 혜택과 통제에 속하는 (국가가 책임지고 모든 공민에게 직업을 주며 공민은 로동할 나이까지 로동에 참가하여야 한다) 라는 환경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도의 보수도 없이 의무 로동과 정치 조직생활에 참가하면서도 비사회주의 행위인 시장활동을 통해 생계유지에 필요한 식량과 의복, 땔감 문제를 해결해야 하므로, 배급을 받지 못한 주민들의 생존활동 자체를 위법으로 만들었습니다.
 
 
체제유지 수단들인 직업선택, 거주지 이전, 통행증 제도, 의무적인 정치 조직생활 참가와 같은 장애물들을 넘는 과정에 크고 작은 위법행위들과 범죄들을 발생시키지 않을 수가 없게 되어 있고, 단속과 통제, 처벌이라는 악순환 속에서 힘들게 살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었습니다.  
 

  반대표 던진 주민 끝까지 적발해 처형

▲북한은 반대표를 넣은 유권자를 끝까지 적발, 처형한다. 북한의 공개처형 모습.

 

이 과정은 인권유린 행위의 련속 과정이고 체제유지를 위한 장애물을 넘어 시장에 접근하지 못하면 굶어 죽게 만들었습니다. 시장에 류통되는 식량이 있음에도 아사자가 발생하는 것이 이것을 말해줍니다.
 
 
형식적인 선거권, 신앙과 종교활동, 언론과 집회시위를 통해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정권의 기만성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내용적으로는 봉건적 세습군주제 국가이지만,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 국가의 틀 거리를 갖추고 있습니다. 언론, 집회, 시위는 수령의 명령 지시 관철, 수령의 권위와 위신을 선전하는 한에서만 그 활동이 가능하지, 저촉되거나 부합되지 않을 때에는 극형에 해당하는 중범죄로 농장 관리소행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의 3살 난 어린이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봉건적인 군주국가의 정체를 가리고 민주주의 국가의 흉내를 내기 위하여 진행하는 선거도, 100% 참가에 100% 찬성투표를 강압적인 방법으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김일성 시대 때부터 김정일 시대에 이루기까지 선거에 참가하지 않은 유권자를 처벌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것이고, 단일 후보자에 한하여 찬성투표만을 하게 되어 있는 선거도, 김정일 시대에 들어와서는 반대투표를 할 수도 있게 선거방법을 조금 발전시켰다고는 하나, 반대표를 넣은 유권자를 적발, 처형함으로써 선거를 통하여 김일성, 김정일 정권을 100% 지지하지 않으면 무사치 못하다는 것을 유권자들에게 인식시키고 있습니다.


 
선거함 옆에서 투표 감시

  오늘날에 와서는 국제사회의 여론을 고려하여, 먼바다 항행 중이거나 외국출자 등으로 참가률은 100%가 아닌 99.9% 이상으로 발표를 하고 있으나, 형식적으로 진행하던 비밀투표의 방법도 무시하고 선거함 옆에서 유권자들의 투표를 하나하나 감시하는 방법으로 100% 찬성투표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전체 주민이 증인으로서 반박할 여지조차 없는 인권유린범죄입니다. 이런 범죄행위는 김정은 시대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민주주의 국가들의 눈초리 때문에 대외적으로는 우리나라도 종교의 자유가 합법적으로 허용된다는 선전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종교인들을 적발, 처형하고 있어 우리나라는 종교가 죽음과 공포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라는 형식 때문에 종교탄압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가 없어 한사코 숨기려 들면서, 김정은 정권의 체제유지 때문에 그만둘 수도 없어 계속 자행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김정은 정권도 자기들의 이 행위들이 반인권적 범죄에 해당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국제사회의 조사에 불응하면서 우리나라에는 인권문제가 없다고 강 부인하는 것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또한 김정은 정권은 자기들의 인권유린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인권 우에 국권이 있다, 국제사회의 보편적 인권을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정권붕괴를 노린 압력이다, 국제사회의 보편적 인권을 받아들이면 나라가 혼란에 빠져 결국 외국의 침략세력에 령토를 침략당하게 된다, 침략을 당한 다음에야 무순 인권을 론한단 말인가’ 라고 기만선전하면서, 자기들의 반인권적 정책을 포기하면 대신 침략과 살인, 략탈이라는 보다 더 반인권적 환경이 도래한다고 인민들에게 보편적 인권에 대한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반인권적 정책 포기하면 외부세력에 침략당할 것이라 선전

▲김정은은 자신의 인권유린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반인권적 정책 포기하면 외부세력에 침략당할 것이라 선전한다. 

 

정치범수용소와 련좌죄 처벌이 없어지고 려행과 직업선택 종교활동과 신앙생활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해서 나라가 외국의 침략세력에게 점령당할 리 없고, 3대에 걸쳐 내려오는 유일적 령도체계가 무너진다고 해서 국권이 침해당할 리 없습니다.
 
 
김정은과 그 추종세력은 세습정권과 국권 인민들의 운명을 억지로 하나의 생존공동체로 결합시키면서 보편적 인권에 대한 증오감을 고취하고 있습니다. 김일성 가문도 정견과 신앙,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시위의 자유가 인간의 보편적 권리에 속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헌법에도 명기한 것입니다. 하지만 가문의 세습정권유지를 위해 자신들이 헌법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범죄 증명 자료 넘쳐나

  김일성 가문이 3대에 걸쳐 저지른 반인권적 범죄를 증명할 만한 자료는 너무도 많고 많습니다. 김정은 정권도 할아버지, 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는 정치범수용소의 운영과 련좌죄 적용, 성분규제에 의한 차별 정책에 대해 강 부인하는 것은, 자기들도 죄의식을 느끼기 때문이고 그것이 없이는 세습정권을 지탱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지금도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총체적으로 김일성 시대부터 김정은 시대에 이루기까지 3대에 내려오면서 자행된 모든 형태의 반인권적 행위들은, 전체 인민들의 정신과 육체를 자기 가문의 소유물로 인식하면서, 인민 대중의 자유와 권리를 짓밟고 유인하면서도, 인민들로부터 다함 없는 존경과 흠모를 받으며 영원히 집권하겠다는 김일성 가문의 특이한 욕심이 만들어낸 범죄입니다. 김정은 정권이 이 욕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우리나라에서는 반인권 범죄행위들이 계속 발생할 것입니다.
 
 
우리가 국제사회 앞으로 이 편지를 보내는 것은, 김정은 정권이 비열하게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반인권적 범죄행위들을 숨기기 위하여 국제사회와 우리나라 주민들의 접촉을 차단하고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내 ‘주민들의 인권증언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는 데 격분하였기 때문입니다. 김정은 정권의 반인권범죄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는 많고 많으며, 우리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주민의 이름으로 국제사회에 김정은 정권에 의하여 자행되고 있는 반인권범죄행위들을 고발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법은 멀리에 있고 주먹은 가까이에 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다운 인권을 주장하는 우리의 솔직한 목소리를 지켜줄 국제사회의 법은 멀리에 있고, 무자비한 탄압이 가까이에 있어 무기명으로 편지를 보냅니다만, 국제사회 앞으로 보내는 김정은 정권의 반인권범죄 증언 자료는, 무기명으로 된 목소리가 아니라 인권 유린 속에서 신음하는 우리나라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아 보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인권개선을 위하여 노력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주민들에게 정확히 전달되도록 라지오(라디오) 보급에 힘을 기울여줄 것을 부탁합니다. 김정일, 김정은 정권은 자기들의 반인권적 정체를 주민들이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외부정보 류입 차단조치로, 라지오에 대한 단속과 통제, 처벌을 강화하여 우리나라를 라지오가 없는 나라로 만들어 세습정권을 대변하는 목소리 외에 국제사회의 공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김정은, 2015년 자신의 국제형사재판 회부 권고 결의안 통과되자 北 주민 기만 선동

  작년(2015) 12월 유엔총회에서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에 회부할 데 대한 결의안이 압도적으로 통과(북한의 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 ICC에 회부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의 유엔 결의안 통과)되자, 전국적 범위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이를 배격하는 연설들과 시위들을 벌였습니다. 김정은 정권은 국제사회의 결정이 우리나라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반인권범죄들을 중지시키고, 주민들의 인권개선을 위해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에 기소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채택되였다는 것은 숨기고, 국제사회가 ‘우리의 체제를 전복하여 우리의 생명인 사회주의를 없앰으로써 우리 주민 모두를 죽이려고 한다, 우리는 우리의 자주권과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전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라고 주민들을 기만 선동하였기 때문입니다.
 
 
유엔총회 결정에 격분하여 토론하던 주민들 자신이 정치범수용소와 련좌죄 때문에 공포에
떨던 사람들이고, 무보수 의무 로동으로 고통을 겪던 사람들인데, 그것을 없애자는 결정에 분노하여 전쟁까지 하자고 말하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김정은과 그 추종세력이 마음 놓고 주민들에 대한 인권유린행위를 자행하지 못하도록 국제적 압력이 계속 진행되여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김정은 정권의 반인권적 범죄행위는 국제사회의 압력과 우리나라 주민들의 투쟁에 의하여 종식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위하여 투쟁할 것이며 국제사회는 우리의 투쟁을 지지해줄 것을 희망합니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서 ‘참다운 인권을 지향하는 사람들’〉⊙

 

월간조선 07월 호 - 글 :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 北 혁명조직원과의 死生決斷 대화록 ①

■ 북한판 10·26 계획한 北 혁명조직 2004년 발족, 금수저 중심의 소수 정예로 구성

⊙ 김정은 독재체제 무너뜨리는 방법 연구
⊙ 보안 이유로 소수 정예 구성… 과거 중앙당 간부 자녀로 구성된 ‘反김정일 조직’, 규모 늘어나면서 모두 적발
⊙ 북한 주민이 민주주의의 등불로 바라볼 수 있는 민주 정권의 설립자 내세워야
⊙ 북한 주민 성급히 못 나서는 이유… 南이 개입해 통일될 경우 南의 식민지인으로 천대받을 가능성 우려

희윤
1967년 출생. 연세대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 / 한국자유전선 사무총장, 뉴라이트 전국연합 북한인권특별위원장,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사무국장 역임

 

[편집자 주]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는 지난 5월 16일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내부 혁명조직원 김씨와 2014년 중반부터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도 대표는 “혁명조직 일원은 ‘김정은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방법은 그를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며 “그는 ‘새로운 지도자가 또 독재를 하더라도, 그건 개발독재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신격화된 독재보다 낫다. 박정희 같은 사람으로 북조선을 끌고 가다 통일을 이루면 된다고 했다’”고 했다. 인터뷰에서 도 대표는 《월간조선》 기고를 통해 혁명조직원과 나눈 대화 내용 등을 자세히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후 도 대표가 보내온 ‘北 혁명조직원과의 사생결단(死生決斷) 대화록’이란 제목의 글에는 그가 혁명조직원 김씨와 메신저를 통해 맨 처음 나눈 대화 등이 담겨 있었다.

 

 

10여 년 전 미국 국방부 소속 미군유해발굴사령부를 방문했을 때, ‘우리는 결코 당신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글귀를 보고 무척 부러워한 것이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는 늘 다짐했다. 우리가 모든 의례(儀禮)에서 빠지지 않고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올리듯이, 우리의 하고자 하는 일들에서 먼저 희생된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잊지 않고, 또 남아 있는 가족이 있다면 그들마저 감싸안고 성심껏 보살피는 것만이 살아남은 자들의 책무라는 것을….

살아남은 자들의 책무라는 것이 죽은 자들의 숭고한 희생에 비해 아무것도 아닌 미약한 것이겠지만, 이러한 결의는 모두의 공통된 목표를 달성하는 데 크나큰 용기를 제공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신념으로 서려는 세력은 늘 그래야만 하지 않을까. 이번에 연재하는 글도 그 연장선에 있음을 먼저 밝힌다.

그리고 우리 국민은 지금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북한 내부의 노예처럼 사는 주민들을 사람답게 살게 하려는 저항세력들이 사느냐 죽느냐 결판난다는 것을 우선 알아야만 한다.

오늘의 행동이 역사에 큰 죄악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한반도에 축복이 될 수도 있음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과연 대한민국의 국민이 지극히 당연한 문제의식을 두고 어떤 선택을 할지 조금은 서글픈 질문을 던지면서 남북 혁명가의 대화를 시작한다.(대화록은 북한식 표기 수정 없이 실음.)


혁명조직원에게 ‘최이상’이란 닉네임 지어준 이유

SNS(사회관계망서비스)상의 대화에서 우린 ‘도’ ‘최’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도는 필자를 지칭하는 것이고, 최는 닉네임으로 필자가 미리 정해서 보내준 대화명인데 ‘최이상’이라는 이름이었다. 당시 필자의 아우 김씨는 자신이 왜 최이상인지 모르고 있었을 거다. SNS상의 대화는 처음이었을 테니 말이다.

필자는 아우에게 대화명으로 ‘최고의 이상’이라는 닉네임을 붙여주기로 했다. 북한을 자유민주주의사회로 만들겠다는 것이 ‘최고의 이상’이 아니고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아마 아우에게 보이는 필자의 닉네임은 ‘인간사랑’ 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SNS상의 공간에서 만났고, 밤새 새벽이 멀다 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사소한 일에서부터 아주 큰 사상적(?) 차이로 말미암은 다툼도 여러 차례 있었다. 돌이켜보면 무슨 대화를 그렇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아마 체력이 달려서도 안 될 것 같다.


첫 번째 교신

▲도희윤 대표가 북한의 내부 혁명조직원인 김씨(최이상이라 표현)에게 처음으로 보낸 메신저의 캡처 이미지. 사진=도 대표 제공

 

첫 번째 교신에 성공한 이야기다. 대화방에 남아 있는 그대로를 옮긴다.

도: 하이
도: 이제 시작합시다.
도: 이게 가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도: 기도합니다.
도: 여기는 sk(south korea)!
도: nk(north korea) 나오세요.
도: 제발 되어야 할 텐데요.
도: 이게 보이면 되는 건데요.
도: 아직 안 되는 거 같은데요.

한참을 혼자서 미친 듯이 문자를 날렸다. 아직 저쪽에서는 답장이 없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아우의 신변에? 아니, 아니 조금 전에 통화는 했으니까. 그러면 기계에 문제가 생긴 걸까? 그러면 정말 곤란해진다. 이 기계가 전달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데 말이다. 그걸 다시 해야 한다면 아이고 정말이지 큰일이다. 어쩌지. 아아~.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마침내 연락이 왔다.

최: 지금 통화 가능합니까?
도: 오호 되네요.

도: 된다!
도: 오호!!

도: 축하합니다. 이것은 별도의 라인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안전은 최고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말은 이것으로 하면 됩니다. 사진도 보낼 수 있고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이걸로 하면 됩니다.

도: 사진 보이죠? (필자는 사진전송이 가능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몇 개의 사진을 보낸다.)
최: 보입니다.

도: 좋아요^^
최: 대표님 오늘은 시험통신으로 그치고 래일 기본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도: 아예 알았습니다. 편히 쉬세요.

손에 땀을 쥐는 첫 교신은 이렇게 아쉽게 끝났지만, 필자는 성탄절에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서 조금 전의 고뇌는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덩실덩실 춤을 췄다. 아직은 서로 존칭을 사용하는 수준으로, 처음 SNS로 연락이 시작된 2014년 10월 23일의 밤 교신내용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꼬박 하루가 지나고 온 답변

▲도희윤 대표는 최이상과의 첫 대화와 관련 “신혼여행을 떠난 부부마냥 서로에게 향하는 들뜬 마음으로 새벽까지 메신저를 했다”고 전했다.

 

첫 교신 다음 날인 10월 24일 필자는 출근을 서두르면서까지 문자를 보냈다. 최이상이 볼 수 있을 시간에 확인하고 답장을 보내라는 일종의 신호였다.

도: 이제 전화보다는 이것(메신저)으로 연락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박 선생(아우는 자신을 박씨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물론 가명이지만 말이다)을 뵈러 11월에 그쪽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몇 가지 조치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것은 먼저, 상호 간 안전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전화상으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그쪽에서 우리를 주목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나라를 대상으로 하는 일들이 아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되나, 박 선생의 신변에는 관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며칠 내로 저와 통화를 하면서 논쟁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뭐냐 하면 전화로 상호 간 다투는 거죠. 말로 싸움을 하고. 우리 관계가 단절된 것처럼 보일 필요가 있겠습니다. 약간의 연기인 셈이죠. 그곳에서 만나더라도 특정장소에서 긴급히 의견 나누면 큰 무리는 없을 거로 예상합니다.

모쪼록 안전이 최우선이니까요. 저는 박 선생과 연결된 것이 하늘이 내린 우리 민족의 소중한 기회라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 기회를 상호 간 꼭 살려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전을 첫째로 두고 우리 두 사람이 서로를 굳게 믿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자유의 파도가 되어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함께 갑시다. 언제나 시작의 마음으로.

최이상은 하루가 거의 지나서야 답장을 했다. 그때 시각이 한국시각으로 오후 10시경이었다. 그날의 대화는 신혼여행을 떠난 부부처럼 서로에게 향하는 들뜬 마음으로 진행했다. 대화를 마무리한 시각은 새벽 2시를 넘어서였다.


“만나게 될 날짜와 시간 장소는 본인의 의견을 따라달라”

▲도희윤 대표가 공개한 최이상의 라디오. 북한 당국은 ‘우리민족끼리’ 유튜브 방송에서 최이상을 일개 중졸의 노동자라 했지만, 최이상은 스스로 라디오를 만들 수도 있고 자기 혼자 쓰는 독방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사진=도 대표 제공

 

이렇게 우리는 서로를 더욱 깊이 알아가기 위해 노력했고, 한반도의 명운이 우리에게 달린 양 숙연하고도 무거운 대화를 이어나갔다.

최: 대표님의 의견에 동감입니다. 두 가지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이곳의 당국이 잠을 자고 있지 않다는 데 대하여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정이 넘어서 서울과 통화한 내용을 그들이 못 들었을 리 없습니다. 그들의 감청원들도 한국어에 능한 이곳의 사람들이 아니고 북한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여 우리의 생각과 생활 문화까지 다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갑자기 서로 다투고 의절하는 것으로 연기하면 그들이 더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폭탄 테러리스트들입니다. 그러니 며칠 지나서 대표님이 저에게 전화를 여러 번 걸고, 제가 몇 번 거절하다가 평양으로 돌아가니 후에 다시 만나자고 하면서 헤여지면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사용하던 전화기는 작동을 멈추겠습니다. 다음으로는 대표님과의 만남인데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 시간입니다. 사람의 모든 행동은 24시간에 분할되여 일대일 대응되게 됩니다. 이 시공간을 따지는 것이 수사학의 초보적 공식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만나게 될 날짜와 시간 장소는 저의 의견을 따라주었으면 합니다. 우리 조직이 대표님과 만나게 된 것은 하늘이 준 행운입니다. 앞으로 나의 고향 평양에 자유와 민주주의 깃발을 휘날릴 때까지 손잡고 싸워나가기를 바랍니다.

도: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곳을 방문할 때는 무엇보다 박 선생의 의견에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 봅니다. 호텔이나 기타 만나는 장소와 방식 등은 지금부터라도 생각해두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김씨 독재체제를 무너뜨리는 방법 연구하는 조직”

최: 대표님에게 몇 가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어문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우리 동무들과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글로 남긴 적은 없기 때문에 저의 이야기가 매우 산발적이고 체계성이 없더라도 리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도: 그럼요. 그렇게 해주세요. 편하게 천천히 쓰시면 됩니다.

최: 우리 조직은 평양에 존재하는 김씨 독재체제를 무너뜨리는 방법을 연구하는 조직입니다. 이를 위하여서는 독재체제가 어떻게 자기의 존재를 유지하는가를 깊이 연구하여야 합니다. 다시 말하여 어떤 기계를 조립한 조립도가 있어야 그 기계를 분해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다음으로는 독재체제를 분해하는 데서 어느 부분이 분해의 시작점인가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보안상 소수 정예로 구성

도: 예 이런 식으로 보내시면 됩니다. 제가 받고 충분히 이해하고 답장을 하겠습니다.

최: 우리 조직은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되여 있고 조직의 보안관계로 더는 늘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제가 조직성원들의 소속과 직무,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것은 우리 조직의 보안원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독재체제에 개인적인 원한이 있어서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운 좋게 나무랄 데 없는 계급적 토대를 가지고 태여났고, 또 우리의 부모들 역시 독재체제를 위하여 한 생을 성실하게 일해 왔습니다. 그러나 독재체제가 오직 자기 개인의 영원한 집권과 영원한 세습이라는 욕심 때문에, 너무나 많은 사람에게 불행과 고통을 가져다주는 화의 근원이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 인식했기에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우리 스스로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조직의 공식명칭은 없고 활동원칙과 활동목적이 있을 뿐입니다.

최: 독재체제가 어떤 시스템으로 자기의 존재를 유지하는가에 대하여서는, 우리만 아니고 남한에 있는 많은 북한문제연구소나 단체들이 자기 나름대로 연구를 하고 있고 자기의 견해들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90% 이상이 우리와 의견을 동일시하고 있는 데 대하여 우리도 놀랐습니다. 단지 차이나는 것은 남한의 전문가들은 북한은 주민들의 내부 반정부 폭동이나 시위는 기대할 수 없고, 권력층 내부의 반변이나 쿠데타에 의한 가능성만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우리는 의견을 반대로 가집니다. 독재체제는 자기의 특성으로부터 권력층 내부의 반란이나 쿠데타는 불가능하고 일반주민들의 반독재 폭동만이 가능합니다.


권력층 내부 쿠데타 아닌, 주민 폭동으로 김정은 체제 무너질 수도

최: 그러면 그 시점이 언제인가에 대하여 설명하겠습니다. 국가안전보위부정치대학의 심리정보강좌의 한 교수가 로므니아 사태(루마니아 사태)에 대하여 강의를 하면서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차우세스크 정권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는가? 이 질문에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소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권의 교체가 선거에 의하여 진행됩니다. 국민이 정권이 교체되여야 한다고 생각하면 다음번 선거 때를 기다려 선거를 통하여 새 정권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정권은 선거를 통하여 교체할 수 없기 때문에 폭발적인 폭동에 의하여 교체됩니다. 일반적으로 정권은 인민들 모두가 100% 지지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정권은 상시적인 반항력을 지탱해내야 합니다. 그 반항력이 정권 유지력보다 크면 무너집니다. 비유해 말하면 물의 압력을 받는 언제(댐)와 같습니다. 그래서 정권을 언제에 비유합니다. 그러나 차이나는 것은 물은 언제가 넘어가든 안 넘어가든 상시적으로 언제를 밀고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권에 불만이 있어도 정권이 무너질 것 같지 않을 때에는 행동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쪽에서 소요가 일어나고 정권이 무너질 조짐이 보이면 반정부 폭동에 급작스럽게 합류합니다. 자그마한 불꽃이 급작스럽게 커집니다. 이를 막기 위하여서는 정보기관이 주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만이 어느 정도인가를 상시적으로 장악해야 합니다. 그다음은 폭동진압 군사력이 강해 폭동에 나서야 정권은 무너지지 않으며 죽음밖에 차례지지 않는다는 인식을 주어 불만이 행동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정권이 대중적 지지를 받는다는 인식을 주어 정권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나 한 사람뿐이고 다른 사람들은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는 인식을 주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여 대중으로부터 환호와 지지를 받는 행사를 자주 연출해야 합니다.

시간은 금세 밤 12시가 됐다. 최이상은 그칠 줄 몰랐고 봄날의 봇물 터지듯 속에 품은 많은 이야기를 오늘로 끝장을 낼 것같이 계속 쏟아냈다.

최: 차우세스크 정권은 이 점을 놓쳤습니다. 대중의 불만이 어느 정도인가를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부인인 엘레나 차우세스크가 국가안전위원회위원장을 하였지만, 그의 무능으로 해서…. 이상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독재정권은 자기를 유지하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北 주민이 민주주의의 등불로 바라볼 수 있는 정권 설립자 만들어내자

도: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제 신경 쓰지 마시고 계속 글을 쓰실 거면 편하게 보내세요.

최: 피곤하지 않으시다면.

도: 저는 상관없는데. 박 선생이 피곤하시겠어요. 그리고 저와 상관없이 쓰시면 됩니다. 저는 피곤하면 자고 일어나서 확인하면 되니까요. 가능한 한도 내에서 얼마든지 보내세요. 이게 이 점이 좋아요. 언제든 확인하면 되니까요.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최: 북한주민들의 체제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다달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넘길 만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고 다음으로는 행동으로 넘길 방향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남한사람의 경우에는 매우 단순하게 대답할 것입니다. ‘독재체제를 무너뜨린 다음 대한민국에 귀속되면 될 텐데’라고. 그러나 이것은 남한의 욕심이고 북한사람들의 대부분은 북조선이 남조선에 먹히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적어도 50년간은 한국의 식민지로 한국의 2부류 국민으로 천대를 받을 것이라는 공통된 심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1년 겨울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우리 조직에서 평양 시민을 상대로 은근히 여론 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27살밖에 안 된 어리신 전하께서 이제 위대한 수령이 됐으니 앞으로 우리나라가 이대로 나가다가는 5살 난 어린애를 수령으로 모시는 나라로 될 수 있다’고 물었더니 그래도 장성택이나 최룡해가 위대한 수령 되느니 김정은이가 낫다는 답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누가 수령이 되든 김정일이를 본 따 더한 독재자가 될 뿐 우리나라를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여론을 접하고 우리는 ‘아직 북한이 로므니아(루마니아)나 동독과 다르구나’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조직은 두 가지 결론에 도달했는데, 첫 번째가 ‘북한에는 아직 반독재 투쟁이 일어날 조건이 성숙되지 않았다’고 두 번째가 ‘북 주민들이 민주주의의 등불로 바라볼 수 있는 자유롭고 민주주의적인 정권의 설립자를 만들어 내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실현하자면 같은 동족의 나라인 대한민국의 도움을 받는 것 외 방법이 없으므로 이렇게 글을 씁니다.


혁명조직 발족은 2004년 즈음

▲과거 북한 내부의 혁명조직은 김정일의 무능함을 무기명 투서로 김일성에게 보내는 방식으로 투쟁했는데, 이는 자신들의 필적을 남기는 치명적 실수였다. 이들은 모두 적발됐다.

 

도: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박 선생의 조직에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제가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조직이 언제부터 구성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것은 박 선생이 말씀하신 인민들의 항쟁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해답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조직이 어떤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것은 조직이 박 선생 주변의 인원들로 구성된 것인가 하는 것과 독재체제의 탄압 속에 희생된 여러 조직과의 연계성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일 것입니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명칭도 아니고 인원수도 아닙니다. 다만 이 같은 조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며, 이 같은 소중한 조직을 목숨으로 사수하고 지키고 승리하게 도와드리고 싶은 저의 마음입니다. 이 점은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북한 보위부 출신의 탈북자가 이야기한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조사를 담당했던 사건 중에 대학생들로 구성된 반체제조직이 있었는데, 끝까지 조직의 보위를 지켰으며, 김정일이 이들의 장엄한 모습을 보고 경악하면서 조사에 참여한 성원들에게 ‘이들의 존재를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지시하고 만약 누설이 되면 그들과 똑같이 처리하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때 전율을 느꼈던 것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그래서 박 선생께 물어보는 것입니다.

최: 우리 조직이 발족한 것은 한 10년 전입니다. 제가 구태여 우리를 ‘○○○’이라고 자칭한 것은 공식명칭을 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리유가 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이미 전에 존재하였던 여러 개의 반독재 운동단체의 교훈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독재 단체는 크게 두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체제에 개인적 원한을 품은 사람들의 조직이고, 다른 한 가지는 우리와 같은 부류입니다. 첫째 부류의 조직은 주로 물리적인 파괴활동으로 독재체제에 흠집을 내자는 것이고 이는 1980년대 중엽까지 거의 사멸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80년 6차 당 대회 이후 김일성종합대학과 중앙대학들에서 김정일의 정치가 아버지인 김일성의 정치제도 구상과 다르게 나가자, 주로 중앙당과 중앙기관의 간부들의 자녀들로 구성된 원시적인 조직체들이 김정일의 무능함을 무기명 투서로 김일성에게 보내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는데, 이는 자기들의 필적을 남기는 실수를 하여 모두 적발되었습니다. 1990년 이후에 쏘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하자, 공산주의가 인류의 배척을 받은 주의라는 것을 인식한 리과대학의 학생들과 평양시의 중앙대학생들로 이뤄진 반체제 조직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활동은 주로 잦은 모임을 통하여 학술토론의 방법으로 변화의 진리를 깨닫는 사람들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운동의 폭을 넓히려고 하였습니다.


과거 혁명조직, 규모가 확대하면서 발각돼

도: 잘 알겠습니다. 그쪽 시간이 3시를 넘겼는데 쉬시는 게 어떠신지요.

최이상의 계속되는 기세가 조금은 두려웠다. 혹시라도 발각이 된다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 게 뻔한데, 시작부터 너무 무리하지 말자는 노파심의 발로였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최: 이들의 뜻과 기개는 장하나, 조직이 확대될수록 폭로의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조직을 확대하여 정면 대결로 나가기도 전에 소멸할 수 있다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래일 계속하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도: 예 알았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최이상의 조직이 하고자 했던 일들은 참으로 단순하면서도 대단한 발상이었다. 다음 호(《월간조선》 8월호 7월 17일 발간)에서는 그들이 하고자 했던 일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08월 호

■ 北 혁명조직원과의 死生決斷 대화록 ②

■ 北 내부 혁명조직원이 공개한 김정은 제거 후 북한의 청사진

⊙ 어둠의 땅 북한을 변혁하려 했던 혁명가의 피어린 투쟁
⊙ 김정일의 최측근이 혁명에 나선 이유
⊙ “북한에는 실수에 대한 보상은 죽음이라는 말 있어”
⊙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사생활 자료 수집
⊙ “남한에 왜 노예사회인 北을 추종하는 한심한 무리가 많은지 도저히 이해 가질 않아”


[편집자 註]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는 2019년 5월 16일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내부 혁명조직원 김씨와 2014년 중반부터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도 대표는 인터뷰에서 “혁명조직 일원은 ‘김정은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방법은 그를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며 “그는 ‘새로운 지도자가 또 독재를 하더라도, 그건 개발독재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신격화된 독재보다 낫다. 박정희 같은 사람으로 북조선을 끌고 가다 통일을 이루면 된다고 했다’”고 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도 대표는 《월간조선》 기고를 통해 혁명조직원과 나눈 대화 내용 등을 자세히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도 대표가 보내온 ‘北 혁명조직원과의 사생결단(死生決斷) 대화록’ 제목의 글에는 그가 혁명조직원 김씨와 메신저를 통해 나눈 대화 등이 담겼다.

 

《월간조선》 7월호를 통해 북한의 아우와 대화한 내용을 공개한 이후 많은 분의 격려를 받았다. 이런 일이 있었는지 정말 몰랐다며, 제대로 성공했으면 한반도의 역사가 바뀌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분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아우와의 대화록을 공개하기로 결심한 것은 벌써 1년 전의 일이었다.

당시 필자의 머릿속에는 오직 두 개의 개념만 남아 있었다. 하나는 나의 아우가 그래도 살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적폐청산의 이름으로 대대적인 정치적 숙청과 체제 탄핵이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엄중한 현실에서, 결코 용기를 잃지 말고 이름 없이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우리의 동지들을 기억하자는 일념뿐이었다. 여전히 나의 아우의 안전 여부는 밝혀진 것이 없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도 아우는 물론이고 함께했던 혁명동지들이 살아남아 다시금 못다 한 일들을 도모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연재의 글에서는 그들 조직의 보위와 안전이라는 차원을 항상 염두에 두면서,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고 아쉬운 점이 있더라도 그런 차원의 고민이 고려되고 있음을 독자분들이 충분히 이해하리라 스스로를 위로하며 두 번째 대화록을 이어간다.

다시금 정리해보는 아우와의 이야기지만 이렇게까지 마음이 아파져올지 사실 몰랐다. 차분히 생각하며 글을 쓴 것이 아니라 늦은 밤 손가락으로 열심히 스마트폰을 두드리는 그 모습들이 오죽했을까. 마음은 급하고 주변에 신경은 신경대로 기울여야 했으며, 지우고 다시 쓰기보다는 그냥 한 글자라도 빨리, 많이 보내야겠다는 생각에서의 글들이 오늘도 이렇게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이 글은 단순한 수필이나 칼럼이 아니다. 어둠의 땅 북한을 변혁하려 했던 남북 혁명가들의 피어린 투쟁의 현장이자, 목숨을 건 전쟁터의 종군일기다. 부디 독자분들도 그런 마음으로 우리의 발걸음을 함께 걸어보기 바라보면서 1편에 이어 2편을 시작한다.

다음 이야기를 듣기 위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필자는 아우에게 문자를 연신 보냈다.


목숨을 건 전쟁터의 종군일기

해외에 있는 지인으로부터 매번 전달받았던 북한의 대외홍보 선전물이다. 《로동신문》보다는 정치적 색깔이나 선동성이 다소 떨어지지만, 국제사회에 북한의 이미지를 좀 더 우호적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로 제작되는 일종의 홍보물이라고 보면 되겠다. 사진=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제공

 

도: 박 선생님, 조직 차원에서 만들어둔 기관지가 있는지요? 만약 기관지든 아니면 대비하고 있던 내용의 자료나 메모 등이 있으면 사진을 한번 찍어보세요. 사진 찍는 방법은 제가 거기에 적어뒀습니다. 일단 사진을 찍으시면 저에게 보내는 방법을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참, 그리고 저에게 보여줄 물건이 있다고 하셨죠. 그것도 사진으로 찍어두세요. 제가 이번에 갈 때 조직을 보다 확실히 지원할 방법을 강구해서 가도록 하겠습니다.

도: 또한 제가 그곳에 갈 때 꼭 필요한 것들을 말씀해주세요. 가능한 한 필요한 물품이나 지난번 말씀하신 깡통 물건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에 있는 저의 형님이 계속 보내주는 저놈들의 홍보물입니다. 물론 박 선생도 알고 계시겠지요. 저는 이 홍보물을 자주 검토합니다.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차원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보고 생각하고 있죠. 원하는 것들이 있으면 이렇게 사진으로 모두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최: 저희 조직은 이미 전에 존재했던 반독재 조직들과는 련관성이 없습니다.

아우의 이야기는 군더더기 없이 어제의 이야기로 바로 진입했다.

최: 질문하신 것은 제가 오늘 말씀드리려던 내용입니다.


혁명조직이 그린 새 조국의 청사진

최: 우리 조직이 하려는 일은 간단합니다. 지금의 김정은 정권은 반인민적인 독재정권이라는 것을 폭로하고, 인민을 위한 자유롭고 민주주의적 정권의 수립을 위하여 ○○○○이 발족했다는 것을 온 세상에 알리기 위하여 혁명기관지를 발간하는 것입니다.


먼저 혁명기관지 ○○○○은

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과장되고 화려하게 꾸며진 력사를, 거짓으로 엮어진 내용과 진실된 내용을 병행하여 련재하여 인민들에게 알린다. 그리하여 인민들이 그들은 초인간적인 능력을 가진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보통 사람에 불구하며, 오늘날에 김씨 가문은 이 땅의 모든 것을 소유한 대지주이며, 대 독점 재벌이며, 대 노예 소유주들로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1차 타도 대상이며, 민주주의의 원쑤라는 의식이 들게끔 대중을 계몽한다.

② 앞으로는 이러한 력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헌법을 가진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려고 한다. 이를 위하여 인민들 모두가 우리의 위업에 동참하도록 호소한다. 또한 앞으로 서게 될 국가가 실시하는 제반 민주개혁의 법령 초안들을 공개한다.(▲신분제도의 철폐 ▲려행과 거주지 이동의 자유 ▲개인재산권의 인정과 시장활동의 자유 ▲무보수 강제 로동제의 철폐와 주 40시간 로동제 ▲북과 남 사이의 자유로운 이동과 북과 남의 거주지 선택의 자유·정당 창립과 활동의 자유·5년제 의무군사 복무제의 실행 등)

③ 이러한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하여 투쟁하는 방법에 대하여 알려준다.(▲혁명기관지 ○○○○의 내용을 읽어보고 가족끼리, 친구끼리, 동무끼리 서로 토론하며 의견들을 나눌 것 ▲합법적인 방법으로 독자적인 처사에 의견을 표시하며 각종 수탈과 무보수 강제 로동에 태만할 것 ▲독재체제에 동조하는 권력계층의 비리를 사회적으로 문제시하는 여론을 환기할 것 ▲앞으로의 새 생활은 누가 가져다주지 않으며, 우리가 꾸준한 로력과 은밀한 투쟁 및 공개적인 투쟁을 통하여 이루어야 함)

아우의 조직은 참으로 새로운 북한을 건설하려는 혁명조직임이 분명해 보였다. 말 그대로 혁명공약을 지금 필자에게 보내오는 게 아닌가. 이들은 자신들이 건립할 새 조국의 청사진을 그렇게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사생활 자료 요구

 

아우는 필자에게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사생활 자료 수집을 부탁했다.

 

최: 이를 위하여서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정확한 략력과 그들의 사생활 자료가 필요합니다. 제가 인터넷을 통하여 자료를 모으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고 또 어떤 자료는 날조된 것도 있습니다. 정확한 자료만이 북 인민들을 납득시킬 수 있습니다.

도: 박 선생님, 알겠습니다. 자료는 여기로 보내드릴까요, 아니면 문서로 필요하신가요. 박 선생께서 활용하기 좋고, 운반하기 좋은 방법으로 염두에 두고 말씀해주세요.

최: 자료는 우선 제가 여기서 검토해보고 필요한 것만 골라야 하니까 대화방으로 보내주면 좋고, 제가 좋다고 하는 내용만 골라서 SD카드에 넣어서 대표님 오실 때 가지고 왔으면 합니다.

도: 알겠습니다. 빨리 준비하겠습니다.
최: 저녁에 다시 뵙겠습니다.

아우는 저녁에 다시 보자며 일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아침부터 아우도 필자와 마찬가지로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직급이 높은 사람일지라도 항상 감시체계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외국과의 교신에 신경을 기울이는 것은 보통 결심이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또다시 대화는 시작됐다.


“남한에 왜 북한을 추종하는 한심한 무리가 많은지 이해 안 가”

김일성에게 직접 명령을 받고 남파된 성시백은 1948년 4월 백범 김구 선생을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협상에 참석하도록 설득한 장본인이다. 그는 북한에서는 무용지물이 된 화폐를 대량으로 실어 날라, 먼저 남한의 지하당 구축에 투입했다고 알려져 있다.

 

도: 박 선생님, 어제 말씀하신 질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밤 아우는 남한에 왜 노예사회인 북한을 추종하는 한심한 무리가 많은지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다면서 그의 연유에 대해 물어왔었다. 필자의 평소 생각을 가감 없이 아우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도: 남한 종북(從北) 세력에 대해서입니다. 남한 종북 세력은 의외로 역사가 깁니다. 한마디로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박 선생도 알고 계시겠지만 1947년 12월 북한은 극비리에 화폐개혁을 단행합니다. 물론 당시 남한의 이승만 정부는 전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죠. 그 후 4개월 후인 1948년 4월에서야 북한의 화폐개혁 사실을 알고 남한도 화폐개혁을 단행합니다. 하지만 거의 5개월 이상 남한에서 사용 가능한 북한의 이전 화폐를 어떻게 활용했겠습니까. 그것의 용처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당시 성시백이라는 무역업자로 위장한 고정간첩이 선박을 이용하여 북한에서는 무용지물이 된 화폐를 대량으로 실어 날라, 먼저 남한의 지하당 구축에 투입하고 두 번째 일본 조총련을 건립하는 데 투입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지금의 일본 조총련과 당시 남한 지하당 차원으로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은 세력이 세계적인 대기업이나 자산가가 되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이렇게 지금까지 암약하는 고정간첩의 뿌리는 아주 깊고 치밀하다고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소위 남한에서는 군사정권 시절을 거치면서 민주화 욕구가 처음에는 대학에서 그다음으로는 노동현장으로 이어집니다. 이때 북한의 직접 지령을 받는 소위 주체사상파라는 학생 종북 조직이 1980년대 만들어집니다. 이들에게 막대한 자금과 사상적 지도가 뒤따른 것은 당연하겠지요. 이들은 교묘하게 대중투쟁, 생활정치라는 명분으로 합법적 공간까지 그 영역을 넓혀나갔으며, 전체 숫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하여도 핵심 세력은 굳건히 김씨 왕조와 연결되어 한반도를 야금야금 좀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제 말씀드린 대로 북한의 통일전선부와 225국(대외연락부에서 명칭이 바뀐 조직으로 핵심 지하당 구축을 담당한 간첩양성 부서임)의 공작사업은 이런 식으로 우리 남한 내에서 성공을 거뒀다고 보시면 됩니다.

도: 그렇다면 대학생들이 왜 김일성 주체사상에 경도되었느냐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학생운동 세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먼저 주체사상파를 줄여서 주사파(NL파)와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따르려던 민중민주주의파(PD파)로 구분되는데, 주사파는 말 그대로 종북 세력들로 지속적인 암약에 성공했으며, PD파는 대부분 그들이 추구하는 사회주의 노선을 포기하고 대한민국의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세력으로 변화했습니다. 정치인으로 보면 얼마 전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부류가 바로 주사파, 경기도지사 출신의 김문수 전 의원이나 김용태 국회의원 등이 PD파로 보시면 됩니다. 저 자신도 PD 계열 소속으로 학생운동을 했다가 2년여의 감옥생활도 했습니다. 이들은 마르크스 이론 중 자본주의의 무한경쟁과 부패 등에 분노하고, 소위 말하는 휴머니즘에 매료되어 지하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 이후 소련과 동구공산권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습과 휴머니즘과 하등 상관없는 공산 세력의 사악한 독재성을 목도하면서 스스로 변화해갔죠. 하지만 주사파는 북한이라는 그래도 하나의 국가라는 조직이 뒤에서 받쳐주는 관계로 지금까지 그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결국 북한 김씨 왕조와 운명을 같이하는 세력이라고 봐야겠죠. 숙주를 제거하면 나머지도 함께 소멸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설명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북한 내부의 저항작가 반디 선생

아우 최이상이 필자에게 보내온 요상한 사진들 중 하나. 스스로 뭔가를 제작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는데, 독재를 무너뜨리기 위한 소중한 물건임은 분명해 보였고, 필자는 그의 아이디어에 감탄했다. 사진=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제공

 

아우 최이상은 잠시 무언가를 열심히 준비하는 듯이 보였다. 조금 전에 보냈던 질문의 답장에는 바로 반응은 없었고 대뜸 사진을 보내는 방법을 물어왔다.

최: 대표님, 사진전송 방법 알려주세요.
도: 잠시만요.

사진 전송방법을 알려주자 금세 수십 장의 사진이 도착했다. 무언가 열심히 스스로가 제작한 물건임이 틀림없었다. 아직도 이런 물건들에 대한 북한 당국의 대응이 확인된 바가 없기에 보내온 사진의 실물은 한 장 외에 비공개로 한다.

도: 우와 많이 옵니다.
도: 아 이거구나. 좋네요.
도: 제가 가면 선물로 꼭 주세요. 좋아요, 좋아.

최: 대표님께 드리겠습니다. 저희 조직의 고심이 어린 것이니 부디 소홀히 하지 말아주십시오.
도: 당연합니다. 참으로 귀한 겁니다. 깊이깊이 소중히 진행해보겠습니다.

최: 조금 전 대표님의 설명을 하나하나 음미해보았습니다. 20분 후에 상세히 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일단 아우 쪽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므로 무조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거의 30분이 지나서야 문자가 왔다.

최: 대표님 지금 통화 가능합니까?
도: 예 사진 보고 있어요. 볼수록 좋네요.
최: 물건에 대한 설명은 뒤로 미루고, 제 이야기를 먼저 드리겠습니다.

최: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떻게 생각하실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대표님이 대북방송을 통해 반디 선생의 소설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대표님에게 전화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2011년에 우리 조직의 수뇌부 중 한 사람이 나에게,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현실이 국가체제 자체의 특성으로부터 발생하는 필연적 결과라는 데 대하여 론문을 하나 쓰자고 저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무실에서도 쓸 수 없고 집에 들어와서도 쓸 수 없는 환경이어서 여기 나올 때까지 쓰지 못했는데, 대표님 방송에서 반디 선생 이야기가 나와서 제가 서둘러 대표님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해외에서 한국으로부터 전해져오는 대북방송을 열심히 청취하던 최이상은, 필자의 방송분 중에 북한의 솔제니친 반디 선생의 《고발》 소설집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세심히 들었던 게 분명했다. 반디 선생은 한반도 역사 최초로 자신의 글을 북한 밖으로 보내 현재 30여 국가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최근에는 두 번째 작품인 시집이 발간되어 곧 영문으로 번역, 출판될 예정이다.


남한 사람 전화번호 하나 알려다 적발돼 북송된 북한인 처형

반디 선생이 외부로 보낸 원고지 묶음과 김일성, 김정일 노작들이다. 그리고 옆의 사진은 고발 소설집을 번역·출판한 나라들의 국기와 책표지를 모아둔 자료들이다. 사진=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제공

 

도: 예, 저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만남입니다. 반디 선생의 고발 책은 제가 SD카드에 담아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반디 선생은 조직화한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냥 개인 차원의 의식화된 지식인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박 선생 조직에서 뭔가 일을 만드신다면 큰 성과물이 될 것입니다.

최: 실제로 여기서 한국 전화번호 한 개를 알려고 시도하다 적발되여 북송된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본인은 처형되었고 온 가족과 친척들은 수용소로 보내졌을 겁니다. 남한분들은 왜 이런 안타까움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까. 방송으로 전화번호 하나 알려주는 것이 그리도 품이 들어 아까운 사람을 죽게 한단 말입니까. 저는 대표님에게 처음 만나서 부탁한 다음 이제나저제나 전화번호 소개가 나올까 기다렸습니다.

도: 전화번호 소개요? 아, 한민족방송에 말이죠. 제가 방송할 때라도 일부러 전화번호를 넣도록 하겠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최이상은 조금은 필자와의 대화에서 긴장이 풀렸는지 그동안 억누르고 있던 자신의 감정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필자에게 연락을 취하기 위해 여기저기 백방으로 전화를 걸었던 최이상은, 당시의 안타까움을 이렇게 쏟아냈다. 필자와의 연락도 방송국에서조차 가르쳐주지 않자 결국 사무실 전화번호 하나를 받아들고 조심스레 문을 두드린 것이었다.

최: 작년에 북송되여 처형된 사람은 29살의 갓 결혼한 청년이고 1살짜리 아들이 있습니다. 체포되던 순간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말한 줄 아십니까. 1살 난 아들은 이제 곧 죽겠구나. 그 친구는 남한에 있는 자기의 큰아버지를 찾아보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최이상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마치 자신의 아들과 가족이 처형장에 끌려간 듯이 그렇게 말이 없었다.

도: 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최: 대표님, 우리가 왜 이 길에 나선지 아십니까. 우리 ○○○ 동무는 ○○○○년 김정일의 배려에 의하여 커다란 선물 주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눈뜨고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죽음과 수용소를 각오하고 이 길에 나선 겁니다.

도: 잘 압니다. 저도 학생 시절에 목숨을 각오한 적도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박 선생 조직과 같이 그 정도의 상황은 아니었지요. 제가 왜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분위기는 숙연했다. 마치 서로의 신앙이든 신념이든 각자의 조건에서 기도를 올리듯이 말이다. 필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오랜만에 흘리는 뜨거운 눈물이었다. 최이상도 분명히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게 뻔했다. 다른 하늘을 바라보며 남북의 혁명가들은 그렇게 뜨거운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된 듯 최이상은 이내 특유의 단도직입적 태도로 돌아왔다.


실수에 대한 보상은 죽음

최: 그럼 본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우리가 도움을 받자는 것은 지하신문사, 말하자면, 손전화(휴대전화) 신문을 만들자는 것으로써, 다량의 mini SD카드가 필요해서입니다. 아직 이보다 더 작은 기억매체는 없고, 제가 돌아갈 때 다량의 mini SD카드와 여러 가지 김씨 가문의 실체를 북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자료와 약간의 프로그램, 그리고 우리가 계속 련계를 취할 수 있는 믿음직한 루트. 다시 말하여 우리는 다량의 SD카드를 정상적으로 공급받아야 머리 굴리는 조직에서 행동하는 조직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북한의 모든 상황에 대한 우리가 아는 정보입니다. 물론 독재체제를 무너뜨리는 범위에 한하여 말입니다.

도: 좋습니다. 박 선생 조직의 활동과 정보들이 공유된다면 참으로 귀한 연계가 됩니다. 저는 그것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든든한 후원그룹을 조직하고 말입니다. 믿음직한 루트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 거 같습니다. 그게 중요하지요. 단발로 끝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겁니다. 저 또한 어릴 때부터 보안의식에 대한 남다른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공개와 비공개의 부분을 철저히 조직과 함께 고민하고 진행할 것입니다.

최: 제가 대표님이 오시는 것을 조금 미루라고 한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생각해두었다가 한 번의 상면으로 해결해야지 대표님을 자주 오시게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제가 귀국을 하면 20일 전에는 평양에서 통보를 해주니, 준비만 해주셨다가 제가 알려드리면 제때에 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도: 예, 일단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고 신중히 고민해보겠습니다.

최: 우리 아직은 시간도 있는데 좀 더 토론해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북한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덤비면 죽는다. 실수에 대한 보상은 죽음이다.

여전히 최이상은 모든 것을 필자에게 말하고 있지는 않았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돌다리도 두들겨보듯 그렇게 최이상은 한 발 한 발 필자에게 그리고 대한민국에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09월 호

■ 北 혁명조직원과의 死生決斷 대화록 ③

■ 北 혁명조직원이 밝히는 김정은의 해외 노동자 인권유린 참상

 

“쇠줄로 이빨을 묶어 소리치지 못하게 제압한 후 北으로 압송”

⊙ 충격적인 해외파견 보위부 강습 내용… 도주 꿈꾸는 노동자, 다리 쓸 수 없게 만들어
⊙ 선친 유언 때문에 南에 편지 보냈다 발각된 해외노동자 속옷만 입히고 3일 굶겨
⊙ 어린 아들 포함, 北에 있는 가족들 연좌제 적용해 모두 처형
⊙ 혁명조직원, 도희윤 대표와 김일성 일가 사생활 폭로하는 일명 ‘비둘기 작전’ 계획
⊙ 혁명조직원이 동료에게서 “악질 빨갱이가 어떻게 반공분자가 됐어”라는 농담 들은 이유

 

 

세 번째 연재 글을 쓰는 시점이, 강제징용 배상문제로 시작되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발표한 일본과의 갈등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이후 최악의 길로 치닫는 상황이라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무거워 온다.

필자는 이미 많은 칼럼을 통해 한일(韓日) 외교문제와 한·미·일 삼각동맹의 중요성에 대해 너무 많이 이야기해왔다. 심지어 미국 국가기관에 초청받아 강연할 때도 현 정권의 반일(反日) 의식이 언젠가 크나큰 동맹의 위기로 다가올 것이라 강력히 경고해, 행사에 참가한 한국 정부 대표단으로부터 항의를 받은 적도 있다. 얼마 전 일본 초계기 사건 때도 이런 대응방식, 의식구조 자체가 한일 축구경기처럼 무조건 자국을 응원하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고 외쳐댔지만, 정부마저 나서서 ‘죽창가’를 운운하는 상황이고 보니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분위기여서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다.

필자는 학창 시절 독립운동 단체 흥사단 활동을 하면서, 친일(親日) 규탄(糾彈)보다는 항일(抗日) 숭모(崇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고 극일(克日)에 종국적인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거침없이 주장해왔다.


친일문제는 김일성도 大사기극으로 막 내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북한 노동자. 사진=BBC 캡처

 

친일문제는 정통성을 자랑하는 북한의 김일성조차 자유롭지 못해 대사기극으로 막을 내린 거 아닌가. 그리고 언제까지 토착왜구니, 친일 반민족이니 하는 구태 프레임에 갇혀 있어야 하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세력들이 오히려 토착왜구에 가까운 행적을 가진 자들이 많다는 것은,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감추려는 피해의식에서 발로하는 대(對)국민 사기극이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우리는 항일의 숭고한 정신을 한시도 잊으면 안 된다. 그 정신은 약육강식의 정글 세상에서, 그것도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의 한반도에 있어서 반드시 가져야 할 생존정신이다. 누구의 노예도 되지 않겠다는 자유인의 당연한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과거의 친일 행각을 파헤치는 데만 매몰된다는 것은, 오히려 항일의 미래 역사를 잊고 우리끼리 아귀다툼의 아수라장으로 빠져들어 가는 꼴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이번 9월호에서는 러시아 벌목공 노동자의 안타까움이 절절히 담긴 사연을 가감 없이 공개한다. 당시 필자의 아우는 이 같은 구체적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 만큼, 이것을 공개하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러나 외국에 나와 있는 북한 노동자들의 범죄행위, 특히 대한민국과 연결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어떤 식의 인권유린이 자행되며, 이들을 북한으로 압송할 때의 너무나 참혹한 이야기들은 국제사회의 경각심을 위해서라도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북한의 아우와 나눈 대화는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험천만한 평화상태의 총소리들이다. 자기 자신이 연루되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독재자의 주구들도 인간적일 수 있고 변화될 수 있으며, 이들이야말로 독재를 무너뜨리는 최전선의 전사가 될 수 있음을 호소하는 최이상의 외침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의 여정을 따라가보자.


남한 국민 각성해야

구 소련의 프룬제 군사아카데미 생도 기념사진. 사진=피랍탈북인권연대

 

도: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 한 가지 부탁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혁명사업을 하다가 안타깝게 희생된 분을 잊지 않는 것이 살아 있는 우리의 책무라고 봅니다. 앞에서 말씀하신 청년도 그렇고요. 그래서 이런 분들에 대해 가능한 한 정확한 정리를 부탁드립니다. 그분들의 시체를 넘고 넘어 우리는 가야 합니다. 그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6군단 사건이나 프룬제 사건이나 그 어떤 사건도 말이죠.

필자는 북한에서 세습 독재왕조와 싸우다 희생된 개인이나 조직들을 절대 잊지 말자는 취지의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여기서 6군단 사건을 간략히 소개한다.

〈6군단 사건은 1995년 함경북도 청진에 있던 6군단 정치위원(중장)과 지휘관들이 김정일 정권 타도를 위해 쿠데타를 기획했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일망타진된 사건으로 알려졌음. 사건의 내용과 규모가 과장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실제 처형된 정치위원을 비롯한 핵심 연루자들의 신원이 일체 비밀에 부쳐지고, 6군단 또한 9군단에 병합되어 지금도 존재가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김정일 정권에 상당한 충격을 준 사건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최: 그들을 잊지 않는 것은 자유의 그날까지 끝까지 싸워야 하는 것으로 리해하겠습니다.

도: 독재타도를 위해 희생된 그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의 신념입니다. 저는 그들의 자료가 있으면 여기 남한에서 그분들을 위한 추모제라도 매년 열고 싶습니다. 끊이지 않고 매년 되새기며 각오도 새롭게 하고 남한 국민도 각성케 하고요. 이 편한 세상에 우리만 잘 먹고 잘살면 뭐합니까. 남한 국민 각성시켜야 합니다.

최: 알겠습니다. 제가 기억을 정리해서 래일 알려드리겠습니다.


6·25전쟁으로 北에 홀로 살게 된 노병의 유언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확인했다. 거의 밤을 새우면서 작성했을 것 같은 아우의 글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소설 형식을 빌려 작성된 글이지만 이름이나 사건 전개과정 전체가 실제 있었던 일이기에, 만약을 위해 실명 등은 수정했음을 밝힌다.

최: 나는 죽어도 좋습니다. 제발 아들만 살려주십시오! 2012년 12월 31일, 그해도 다 지나간 마지막 날에 31세의 청년이 한 말이다. 한 청년이 2012년 1월 추운 겨울에 로씨아(러시아)의 원동 지역으로 일하러 왔다. 그가 로씨아 땅에 들어선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그의 아버지는 6·25전쟁 때 의용군으로 입대하여 북에 들어왔다. 그 아버지의 고향은 서울이다. 서울에는 큰아버지(아버지의 형님)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며 고모가 두 분 계신다. 전쟁 전에 고모들은 출가를 가고 집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큰아버지 한 분이 계셨다. 16살에 의용군에 입대한 그의 아버지는 어린 나이였지만, 전선에서 잘 싸웠고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복구건설과 사회주의 건설에서 노력적 위훈을 세워 여러 개의 훈장과 메달을 받은 전쟁 로병이였다. 전쟁으로 하여 그의 아버지는 가족과 떨어져 북에서 홀로 가정을 이루고 살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전쟁이 끝나면 인차 가족과 모여 살 줄 알았다. 그러나 그의 바람은 60년 세월이 흐르도록 이루어지지 못했고, 2010년 분단과 리별의 고통을 안은 채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림종의 시각에 아들을 불러 앉힌 아버지는, 편지 한 장을 쥐여주며 이렇게 유언했다.

“○○아. 나는 종래 고향에 못 가보는구나. 통일이 언제 되겠는지. 이제는 너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세상을 뜨셨을 게다. 고모들은 소식을 모르지만 너의 큰아버지만은 서울에 내가 살던 집에서 나를 기다릴 것이다. 내가 의용군에 입대하여 집을 떠나던 날 너의 할머니가 내가 돌아올 때까지 집을 옮기지 않고 기다리겠다고 말씀하셨다. 이게 아버지가 살던 서울의 주소다. 그리고 이건 이 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쓴 편지다. 큰아버지는 아직 살아계실 수 있으니 나 대신 이 편지를 전해다오.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듣자니 중국이나 로씨아에서도 남한에 맘대로 려행도 하고 편지도 주고받고 전화도 하는 세상이 됐다더라. 남들은 다 그렇게 잘들 사는데, 우린 편지 한 장 주고받을 길이 없구나. 요즘 아라사(러시아의 한자 표현)에 보내는 일꾼들을 뽑는다는데 어떻게 돈을 좀 질러주고라도 거기에 갈 수 없겠니. 아라사에 가면 서울에 있는 집에 편지를 보내거라. 그리고 부디 조심해라. 남한에 편지를 보내다가 들키면 온 집안이 망하는 판이다. 제 고향에 소식을 띄우는 것이지만 지금 세월이 어디 그렇니. 일이 잘못되면 어떡하겠니. 돌 지난 ○○이가 불쌍하지 않으냐” 하고는 눈도 감지 못하고 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세상을 떠났다.

○○이는 처음으로 본 그의 아들이었다. 아버지를 겨우 알아보는지 이따금 벌죽벌죽 웃는 아들애였다. 그런 사연이 있기에 그는 고된 로동 속에서도 이따금 만나는 고려인 동포들을 만날 때마다 누가 들을세라 조심조심 물었다.


노병의 아들이 로씨아 일꾼으로 간 이유

2009년 12월, 도희윤 대표와 러시아 노동자 출신의 탈북자가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김정일을 인권범죄자로 고발하기 위해 방문했다. 사진=피랍탈북인권연대

 

“저 여기서 남조선에 편지를 보낼 수 있나요.” “남조선이 뭐예요?” “유주느이 까레야.” “아, 한국! 여기서는 한국이라면 모르는 사람 없어요. 당연히 보낼 수 있지요.”

편지를 보낼 수 있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 그는 무작정 달라붙어 사정했다. 그가 왜 그렇게 사정하는지, 속사정을 알지 못하는 고려인 동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편지 써서 우체통에 넣으세요. 그러면 미국이든 카나다(캐나다)건 한국이건 정확히 전달돼요” “회답 편지가 오면 어떻게 받지요?” “그야 받는 사람의 주소를 밝혀야지요.”

최: 그 동포는 당연한 걸 가지고 답답하다는 듯 말했고 그는 수신인의 주소를 밝힐 수 없는 사연을 그 동포에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그 동포는 전화번호를 알면 편지를 보낼 게 있느냐며 자기의 전화를 꺼내 들었다. “여기서 한국에 전화가 돼요?” 그가 신기해서 물어보자, 세상물정 너무나 모르는 그와 이야기하기 답답해서인지 자리를 피하였다.

편지도 보낼 수 없게 된 그는 한국에 아무 데나 전화를 걸면, 서울에 있는 할머니의 집 주소를 대주며 자기의 큰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소식을 전달해달라고 부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만나는 고려인 동포들에게 한국에 전화를 걸 수 없겠는가 하고 부탁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전화를 할 수는 있는데 한국 누구에게 전화하겠는가 묻는 것이었다. 그는 할 수 없이 처음 만났던 동포에게 사례비를 내겠으니 그 사람의 주소로 편지를 보내고 회답편지를 받으면 다른 사람들 눈에 뜨이지 않게 자기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다.

최: 그렇게 해서 서울까지 보낸 편지였으나 60여 년 전 주소로 보낸 편지는 로씨아로 되돌아왔다. 그 청년이 사는 나라의 실정을 전혀 모르는 고려인 동포는, 그가 그렇게 당부했건만 그 편지를 그가 거처하는 숙소로 찾아와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 “한국에 보냈던 편지인데 주소가 잘못되어 되돌아왔다고 전해주세요.” 이 한마디의 말은 그 청년뿐만 아니라 온 가족, 온 친척에게 내려진 사형 판결문이었다. 그 청년은 그 시각에 작업장에 나가 있었고 숙소에는 ‘로동안전지도원’이라는 위장직업을 가진 보위부원만이 있었는데 편지가 그 사람 손에 들어갔다.

최: 래일 계속…

너무 잔인한 해외파견 보위부 강습 내용

도: 뭐라고 드릴 말이 없네요. 분노와 안타까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우는 필자가 문자를 확인하고 답장을 하자마자 써놓았던 글들을 또 보내기 시작했다.

최: 로동안전지도원은 편지를 받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편지의 겉봉에는 분명히 ‘대한민국’이라는 우편국 확인도장이 찍혀 있었다. “○○이 이 자식이 나를 죽이자고 잡도리를 했구나.” 그도 그럴 만했다. 그의 임무가 외국이나 남조선으로 도주 및 망명을 시도하는 자, 그러한 생각을 가진 자를 제때에 색출하여 미리 체포하거나 유인, 랍치하여 조국으로 호송하는 것이었다. 그가 사는 나라에서는 전체 인민을 믿지 않는다. 그렇기에 외국에 인력으로 내보내는 일꾼을 뽑는 원칙이, 첫째가 도주할 생각을 할 수 없는 사람을 기준으로 삼는다. 리혼한 경력이 있는 자, 부부간에 의가 좋지 못한 자, 자식이 없는 자, 이런 자들은 철저히 배제하고 외국에 나가 있어도 외국에 련계를 취하거나 외국으로 도주할 사람이 아니라는 확인 서명을 5명 이상 받아야 선발될 수 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한단 말인가.

최: “오늘 이 편지가 내 손에 들어왔기 망정이지 그 자식 손에 들어갔으면 내가 죽을 뻔했구나.” 그 나라는 질서가 그렇게 서 있었다. ○○이와 같은 사람을 잡지 못하면 보위원이 대신 죽어야 한다. 그러니 오늘은 ○○이에게는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지만, 보위원에게는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자기와 온 가족의 목숨을 끌어올린 날이었다. 보위원은 서둘러 작업장으로 나갔다. ○○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체포할까 생각해보았으나 생각을 달리했다. ‘여기는 남의 나라 땅이다. 루스끼들도 보고 있으니까 재미없을 수 있다.’ 아직은 본인이 모르니 일없을 것 같았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오면 체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이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해외파견 보위부 강습에서 받았던 내용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았다.

▲첫째, 보위원은 위장신분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세계 모든 나라는 적지(원쑤의 땅)다. 신분은 부사장, 부지배인, 부소장, 부단장으로 한다. ▲둘째, 보위원은 자기가 담당한 단위에 체포한 자들을 구금할 수 있는 비밀감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셋째, 보위원은 체포한 자를 감금하고 소지품을 모두 압수하며 도주할 수 없도록 속내의만 입혀놓아야 한다. ▲넷째, 조국까지의 호송은 체포한 보위원이 책임지고 하며, 호송 도중 범인을 도주시켰을 경우 도주한 자와 같이 취급한다. ▲다섯째, 호송방법은 범인의 두 다리 무릎 관절을 나무와 석고 붕대로 고정해 두 다리를 쓸 수 없게 만들고, 환자로 가장하여 운반하여야 하며, 범인이 주재국 말을 잘 아는 경우 범인의 웃이(윗니)와 아랫니를 쇠줄로 고정해 호송 도중 비행장이나 기차역에서 소리를 칠 수 없게 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호송 도중 주재국 경찰이나 유엔 단체 같은 단속조사 기관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南으로부터 반송된 편지 발각돼 체포된 노병의 아들

▲북한의 혁명조직원이 보내온 SD카드의 모습. 오른쪽은 도희윤 대표가 혁명조직원에게 보낸 드론 사진. 사진=피랍탈북인권연대

 

북한인권운동에 앞장섰던 필자로서도 이렇게 생생한 해외노동자 체포 과정과 해외노동자 감시를 위해 파견된 보위부 요원의 행동요강을 본 적이 없었다. 움직일 수 없게 두 다리를 고정하고 환자로 위장하며, 심지어 소리를 지를까 봐 윗니와 아랫니를 쇠줄로 고정한다는 증언에서는 모골이 써늘해졌다. 이게 바로 해외에 나와 있는 북한 노동자들이 처한 끔찍한 실상이기에 가감 없이 공개한다.

최: “래일은 설날인데 작업 구만 하자.” 작업 책임자의 구령 소리는 저녁 8시가 넘어서 울렸고, 숙소로 들어오자 그는 잡혔다. 비밀감방에 들어서서야 일이 잘못된 것을 짐작했다. ‘아버지가 림종의 순간에 그렇게 당부했는데….’ 자기에게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다는 생각보다도 요람에 누워 자기를 올려다보며 벌죽벌죽 웃던 아들 ○○이가 생각났다. ‘이 아버지가 너를 죽게 만들었구나.’ 그는 억이 막혔다.

최: 감방 규정대로 그는 속옷 바람에 굶은 채로 앉아 있었다. 3일을 굶겨 아예 맥을 못 추게 하는 것도 규정이다. 새벽 2시가 넘어서자 12월의 마지막 날의 추위에 얼어 죽을 것만 같아 창문의 살창문을 당겼다. 예상외로 살창이 흔들리면서 떨어져 나갔다. 살창을 넘어서 도망을 치던 그는 어디로 갈까 하고 생각해보았으나 갈 데가 없었다. 로씨아의 12월 추위는 밖에서 10분을 못 견딘다. 이대로 있으면 알몸뚱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얼어 죽는다. 그 순간에도 아들애가 생각났다. ‘내가 이대로 죽으면 우리 ○○이가 죽는다. 차라리 돌아가서 사정해보자. 지금까지 우리 아버지도 전쟁 로병으로 미국놈들과의 싸움에서 부상도 많이 당했고 공로도 세웠다. 나도 10년 넘게 고스란히 군사 복무해오지 않았는가. 우리 집안이 이런 집안인데 아버지의 유언이 고향에 편지 한 장 보내는 것이어서 몰래 편지를 보냈는데, 죽을죄를 지었으니 용서해달라고 사정하면 혹시 용서해주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그는 감방으로 되돌아왔다. 감방에 돌아온 그는 다음 날 아침 초벌조사를 하는 보위원에게 어제 있은 일을 이야기하고 제 발로 돌아왔다고 말하였다. 어젯밤에 하려고 마음먹었던 이야기를 하였다.


공로 집안이 적지에 편지질을 해!

그의 말을 들은 보위원은, “그렇게 공로를 많이 세운 집안이 적지에 편지질을 해! 이건 조국 반역이고 적지 내통, 간첩죄에 속해. 적지의 원쑤들과 소통하는 것은 형법 60조에 해당하는 조국 반역죄라는 걸 몰라!!” “원쑤들과 내통하다니요. 큰아버지를 찾아보려고 했을 뿐인데요.” “큰아버지, 큰아버지! 적지에 살면 다 원쑤지, 계급적 원쑤가 따로 있어! 그게 바로 계급적 원쑤야!” “그 계급적 원쑤와 소통하려 했으니 너도 지금 이 시각부터 계급적 원쑤고 혁명의 원쑤야.” 보위원에게는 ○○이가 자기와 온 가족을 죽이자고 덤벼든 용서할 수 없는 원쑤였다. 바로 그랬다. 그가 사는 나라는 서로 원쑤가 되어 내가 너를 죽이지 않으면 네가 나를 죽이게 되는 그런 환경이었다. 서로 감시하고 질시하고 너를 죽여야 내가 사는 환경 속에서 오직 한 분만은 한없이 자애로운 미소와 따뜻한 사랑, 바다와 같은 폭넓은 인자한 도량으로 만민을 한품에 안아 친어버이 심정으로 보살펴주고 계신다. 우리가 안겨 사는 세상의 둘도 없는 한없이 고마운 우리의 제도를 지켜주고 계신다. 그리하여 28세의 그분은 천만 군민의 다함 없는 존경과 흠모를 오늘도 받고 계시는 것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둘도 없는 인권 불모의 사각지대를 만들어 인민들에게 안겨주시고도 천만 백성의 머리 우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은, 그 땅을 통치하는 잘 만들어진 통치 프로그람의 덕이다. 모든 행복은 제가 만들어내고 모든 악은 남이 만들어내게 하는, 하여 서로 싸울 때 그것을 바라보며 한없이 인자한 웃음을 지울 수 있는 환경이다. 뿌리 깊은 력사를 가지는 그 악의 통치 프로그람은 할아버지 때부터 만들어져 아버지대에 와서 잘 다듬어지고 완성되어 손자에게까지 물려 이러한 악(惡)을 만들어낸 것이다.

도: 제가 보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소설처럼 써놓은 것인지요. 정말 글 솜씨도 대단하시네요.
최: 원래는 자료만 렬거하려고 했던 것이 나도 모르게 흥분하여 소설처럼 됐군요.

도: 아무리 생각해도 아우께서는 북한의 변화를 위해 태어나신 분 같습니다.
최: 저는 죽어야 할 사람입니다. 저의 경력에 대하여 모두 아신다면 실망할 것입니다.

도: 실망이라니요. 한창 좋은 나이시니 영광을 보실 겁니다. 인민과 함께하는 영광 말입니다.

아우는 자신의 신분을 알면 독재체제를 유지케 하는 최일선에 있다는 것에 실망할 것이고, 자신이 저지른 악행에 대한 보상은 죽음밖에 없음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었다.


어린 아들도 연좌 죄목 씌워 죽여

▲南에 편지를 보냈다 적발된 해외 노동자의 경우, 北에 있는 가족 모두 연좌제를 적용해 처형당한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없음.

 

최: 분노가 사라지기 전에 마저 쓰겠습니다. 고려민항의 비행기는 한 주일에 두 번 있다. 새해 들어서서 첫 비행기로 그는 그리도 가고 싶어 했던 아버지가 묻힌 땅으로 끌려갔다. 끌려가던 날 그가 소리쳤다. “나는 죽어도 좋습니다. 제발 아들만 살려주십시오.” 그의 피나는 절규가 차디찬 원동의 하늘 가로 울려 퍼졌다. 이 글을 마감하면서, ‘누가 나의 이 글을 보고 사실인가’ 묻는다면 나는 그때의 환경을 함께 목격한 30명의 증인을 내세울 수 있다. 오늘 보도를 들으니 또 무슨 인권문제를 가지고 유엔에서 론의가 있은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유엔에 호소하고 싶다. “우리는 배고파도 좋습니다. 로임 없이(급여 없이) 일해도 좋습니다. 매를 맞고 고문을 당해도 참을 수 있습니다. 제발 죄 없는 사람까지 죽이는 련좌죄 법만 없애주시오.” 2013년 3월. 로씨아 원동에서


김일성 가문 실체와 사생활 폭로 준비

도: 장문의 내용을 작성하시느라 고생하셨고요. 앞으로 많은 글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제 본격적인 자료준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을 차분히 정리해주시고요. 저희도 신문을 만드는 것이 있는데 ○○○○에 참고하시도록 보내드리겠습니다. 사진이 오면 그 사진을 먼저 손으로 누르면 사진만 나타납니다. 그때 엄지와 검지를 대고 손가락을 양옆으로 펼치면 사진이 점점 커지게 됩니다. 알고 계실 수 있지만, 설명드리오니 참고하십시오.

최: 북한 통치의 기본 밑뿌리는 김일성 가문의 우상입니다. 대표님이 김씨 가문의 위대성에 대하여 직접 듣지 못한 것이 유감입니다. 정말 탄복할 정도로 잘 꾸몄습니다. 우리는 우선 김씨 가문의 사람됨에 대한 옳은 인식을 가지도록 그 가문의 실체와 사생활에 대하여 폭로하려고 합니다. 그 자료를 부탁했는데, 준비하고 있는지요.

도: 예,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 기본적인 기초자료들은 대표님께서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도: 알겠습니다. 세상에서 나도는 일반자료보다는 제대로 연구하고 축적된 자료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보내드릴 카드를 배포할 방법에 대해서는 많이 연구하고 계시지요?

최: 김일성 광장의 비둘기를 잡아다가 발목에 카드를 달아주면 광장으로 날아가 거기에 돌아치면 카드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비둘기를 붙잡아도 비둘기보고 누가 카드를 달았는가 하고 묻겠습니까?

도: 하하하 대단합니다. 주로 평양을 위주로 계획하시는 거죠?
최: 밤에 대학가를 향해 무인기를 날리면 카드를 탑재하고 300메터는 비행하여 마당에 착륙할 수 있습니다.

최: 지방들에는 우리가 출장을 가서 바지 주머니에 가득 넣고 작은 구멍을 뚫은 다음 걸어가면서 바지 구멍으로 하나씩 떨구면 바지 가랭이를 타고 신발 등으로 해서 바닥에 떨어지는데, 비 오는 날을 선택하면 흔적도 남지 않습니다. 즉시 혼잡한 벌이 버스(우리의 시외버스)를 타고 지방 도시를 빠져나옵니다.

도: 좋은 생각입니다.


“악질 빨갱이가 어떻게 반공분자가 됐어”

최: 자전거를 타고 재빨리 기동하면서 뿌릴 수 있고. 북한은 밤이면 캄캄 세상입니다.
도: 저희도 예전에 버스 환풍기를 열고 전단을 두면 버스가 출발하면서 전단이 뿌려졌었죠.

최: 대표님도 경험이 많으시군요.
도: 예, 저도 민주화니 머니 하면서 감옥에 2년을…. 인생에 큰 경험이었습니다.

최: 대표님께서 2년간 감옥살이를…. 어쩐지 대표님은 저와 인생경로가 어떤 부분은 비슷합니다. 우리 조직 내부에서 나보고 “악질 빨갱이가 어떻게 반공분자가 됐어” 하고 롱담을 하였던 생각이 납니다.
도: 그러게요. 저도 맑스주의를 신봉했다가 반공분자가 되었습니다.

최: 맑스주의는 애국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쉽게 매혹됩니다. 그리고 배신감을 느끼었을 때 더더욱 분노하여 반공의 길을 걷게 되는 것 같습니다.
도: 그렇습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도 많고요. 저도 정이 많은 편입니다. 하하.

최: 그렇지 않으면 인권운동에 몸바치실 수 없습니다.

아우와 필자는 서로에 대한 공감대를 이렇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겪었을지도 모르는 해외 노동자의 압송과정을 그리며 함께 분노했고, 남한의 학생운동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북한에서 목숨을 건 혁명운동의 시작을 아우는 그렇게 실천하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10월 호

北 혁명조직원과의 死生決斷 대화록 ④

“체제를 바꾸려는 反독재세력은 체제를 지키려는 독재자보다 더 노력하는가?

⊙ 김일성 주체조선, 김정일 선군조선은 인류 최악의 노예사회
⊙ 로동단련대에서의 인간 이하 대접… 다녀오면 무보수 노동에 감사
⊙ 베니 어키데즈 동작, 인민군 교육요강에 포함
⊙ 인민의 일심단결, 반대세력 모두 죽인 결과
⊙ 김정은 ‘유일적 령도체계’의 허점

 

세상을 살아가면서 존경하는 스승을 만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임이 틀림없다. 제자다운 제자가 없는 요상한 시절의 무상함도 있지만, 스승 같은 스승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 같은 요즘에는 더욱 허망한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이번 호에선 필자의 아우가 처음으로 자신과 관련이 있는 북한 내부의 핵심 권력기관을 지칭하며 자신의 스승이라고 소개하는 내용이 나온다. ‘같은 조직성원인가’라는 필자의 물음에는 아니라고 단호히 언급했지만, 그 인연이라는 것이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인간사의 흐름으로 봐서도 예사롭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추석명절을 조금 지나 출간될 연재물이어서 그런지 스승에 대해 잠시 묵상을 하며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필자와는 아무런 학연·지연이 없는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분에 넘치게도 귀하신 스승님을 일주일에 한 번 찾아뵙고 귀동냥이라도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있는데, 그분께서 얼마 전 한국 국민을 향해 유서와 같은 메시지를 남기셨다. 바로 대한민국 22대 국무총리를 지낸 노재봉 전 총리의 ‘한국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글이다.

그분께서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지난 수년간의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침몰 상황을 지적하면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이제 행동해야 함을 유서를 남기듯 포효하셨다.

“文의 머릿속에 대한민국이란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文은 나치스의 선전술까지 써가며 국민을 현혹하는 것인가라는 한탄이 나온다. 남북한이 생명공동체라면 그것에 따르는 반생명적 요소들은 제거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이것이 여기서 말하는 적폐청산이란 이름의 숙청이고 그 범주에는 대한민국 71년의 역사까지 포함된다. 그리고 나아가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 갇혀 있는 인간들은 인권보호의 대상이 되지 않음도 당연하다. 저들의 혁명(필자는 반역으로 해석)이 성공하면 대한민국은 없어진다”고 말이다.

마치 여기에 대답이라도 하듯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회에서 이렇게 설파했다.

“한국의 기적은 자유국가의 병력이 1953년 진격했던 곳, 이곳으로부터 24마일 북쪽까지에만 미쳤습니다. 그리고 기적은 거기에서 멈춥니다. 거기서 모두 끝납니다. 번영은 거기서 끝나고 북한이라는 교도 국가가 시작됩니다. 북한은 김정은 당신의 할아버지가 그리던 낙원이 아닙니다.

우리는 역사상 최악의 잔혹이 이곳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이 땅은 우리가 지키기 위해 싸우고 생명을 걸었던 땅입니다.”


혁명조직원의 스승

▲2015년 9월 28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엔총회 회의장에서 유엔총회 일반토의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북한인권 문제를 공식 제기했다.

 

이제 우리가 대답할 차례이다. 남북한 혁명가와 잠시 동행해보자.

최: 보위사령부에 근무하는 저의 스승이 있습니다. 그에게서 다양한 지식을 섭취했다는 말을 듣곤 합니다.
도: 그분도 아우님과 같은 조직성원이신지요?

최: 아닙니다.
도: 대단하시네요. 그래서 아우님의 과거를 알면 실망할 거라고 말씀하셨군요.

최: 참, 그분은 2007년 김정일이가 2014년 전에 죽을 것이라는 예언을 했고, 다음 번 수령이 누구인가 하고 묻자, 성형수술을 해서라도 김일성과 같은 사람을 만들 것이라고 했는데, 신통히도…. 이런 사람은 우리 내부에 많습니다.

(2011년 12월 17일 사망한 김정일에 이어 등장한 김정은은, 할아버지인 김일성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6번에 걸쳐 성형수술을 받았다는 설이 있다. 김정은의 어린 시절 사진들이 워낙 드문 상황에서 정확한 변형 과정을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이 같은 움직임이 벌써 존재했다는 사실은 보위사령부 소속의 고위 인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도: 귀한 분들입니다.
최: 절 보고는 제명을 다 살지 못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뭔가 일을 치다가 뜻대로 안 되면 자결한다나요, 하하.

도: 왜요? 혁명가의 목숨이란, 그만큼 강직하다는 뜻이겠지요. 그분은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겠지요. 잘될 겁니다. 편히 쉬세요. 건강도 챙기시고요.
최: 감사합니다.

북한 내부에서 진행될 기술적인 부분들을 언급한 내용을 제외하고, 왠지 위의 대화는 필자의 아우가 마치 자신의 미래를 예언한 듯한 것이어서 잠시 기술하였다. 돌이켜보면 수년 전부터 시작된 김정은의 최고 권력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은, 필자의 아우와 연관된 많은 혁명조직원의 색출작업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가슴이 아파온다.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꺼내 든 필자는, 거의 밤잠을 자지 않고 보냈을 아우의 장문 내용을 확인하고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아우의 글에서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대북정책의 이야기들이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최: 박근혜 대통령의 유엔 연설에서 북의 영유아 문제, 임산부 문제, 북 주민들의 배고픔 문제를 북 인권 문제의 이슈로 거론하였는데, 우리 주민들의 고통을 너무나 모르는 발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공식 제기하였는데, 당시 유엔총회 현장에는 북한의 리수용을 비롯한 유엔대표부 관계자들이 맨 앞좌석에 자리를 잡아 강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하였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앞선 3월 독일 드레스덴 선언을 통해 밝힌 북한 영유아·임산부 지원 프로젝트에 전 세계가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김씨 체제의 치명적 약점

평양 시민들이 지하철역 입구를 지나는 모습.

 

최: 김씨 체제의 가장 치명적 약점은 자기의 유일적 령도 체계를 세우기 위하여 자기의 명령지시에 무조건 복종시키는 질서를 세워놓은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수령의 명령일하에 전당, 전군, 전민이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강한 조직규칙을 세워, 세계 어느 국가지도자도 보여줄 수 없는 정치실력을 보여주었다고 자랑하면서, 일심 단결된 정치체제는 필승불패라고 떠벌리는데 실은 이것이 가장 큰 약점이고, 북한의 인권 문제가 발생하는 근원입니다. 상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최: 독재자는 말하기를, 수령 한 사람이 나라의 모든 사람을 상대로 일일이 지시를 내릴 수 없기 때문에, 자기의 의도와 명령지시, 자기의 의도가 담겨 있는 당의 결정지시는 곧 자기의 명령지시이며, 이를 거부하거나 태만하는 것은 자기의 명령지시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를 무조건 집행하는 과정이 유일적 령도 체계를 세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최: 이로 인하여 우로는 중앙당의 지시가 도당으로, 도당에서 군당으로, 군당에서 리당, 마을 부락당, 말단 당세포에 이르기까지 독재자의 지시가 세분화되어 내려옵니다.

례로 김정은이 2014년 10월 25일 친필 비준 지시로 평양시 각도, 시군 구역, 동 인민반 마을 앞마당에 잔디를 심을 데 대한 지시를 내려보내면, 유일적 령도 체계에 의하여 무조건 집행되며 그 과정에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려운 정도의 많은 반인권적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최: 우선 절기적으로 추위가 닥쳐오는데, 모든 사람이 잔디를 심기 위한 땅을 파기 위하여 삽과 곡괭이를 메고 잔디 심을 장소로 나갑니다. 집에서 작업장까지 가야 하는데 그러자면 작업공구를 메고 뻐스나 지하철을 타야 합니다. 뻐스나 지하철 입구에는 단속성원들(보안원)이 있습니다. 이들의 임무는 산뜻한 옷차림으로 거리에 나서지 않는 사람들을 단속하는 것입니다.

최: 작업공구를 메고 지하철을 탈 수 없기 때문에 단속을 당합니다. 방침관철을 위하여 작업공구를 메고 간다고 말하면, 작업공구 멘 자도 단속하라는 것도 방침관철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잔디 심으러 가지 말라는가라고 하면, 그것은 네가 받은 방침이고, 내가 받은 방침은 단속하라는 방침뿐이라고 하면서 그 사람들을 단속한 다음, 벌금을 물게 하고 3시간 내지 5시간 정도 구류시키겠다고 합니다. 여기에 반항하면 진짜 보안서로 끌려가고, 잔디 심으려고 가자면 단속성원에 0.5달러 정도의 돈을 질러주고 지하철을 리용하여 작업장까지 가야 합니다.


로동단련대의 실체

단속원들이 지나가는 주민들과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살피고 있다. 사진=피랍탈북인권연대 제공

 

최: 그러면 단속원이 몰라서, 나쁜 놈이 돼서 그런 생트집을 잡고 단속했는가. 아닙니다. 뻔히 압니다. 단속원의 한 달 수입은 쌀 12kg, 강냉이 7kg이 전부이고, 돈으로는 0.3달러 정도입니다. 보안원의 수입도 김정은의 배려에 의하여 특별히 많이 받는 것이 그렇습니다. 북한의 물가는 남한보다 공업 품값은 높고, 눅거리(값싼 물품) 식품값이 좀 낮을 뿐입니다.

최: 처자를 먹여 살리자면 할 수 없다. 보안원의 단속 권한을 리용하여 주민들의 주머니를 털어내야 한다. 방도는 유일적 령도 체계를 활용하여 방침에 걸어 단속해야 한다. 돈을 내면 잔디 심기도 방침관철이니 보내준다고 하고, 안 내면 단속하라는 방침을 집행하기 위하여 단속한 다음 보안서로 끌고 가 5시간 동안 강제 로동을 시키면 된다. 하루에 단속해야 할 사람의 수는 계획되어 있습니다. 무조건 3명 정도는 끌고 가야 하는데, 단속에 걸려드는 시간도 아침 출근시간이니 1시간 동안에 될수록 많은 트집을 잡아야 돈도 벌고 방침도 결사 관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최: 주민의 입장에서는 만일 돈이 없어 보안서로 끌려가는 경우, 오전 작업에 참가 못 합니다.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되면 보안서 감찰과의 호출을 받게 되는데, 자주 무단결근했으므로 6개월간 로동단련대로 보내겠다고 합니다. 돈을 주면 무마되고 못 내면 진짜 끌려갑니다. 감찰과는 또 그래야 돈을 벌 수 있는데 될수록 많은 사람이 무단결근할수록 돈도 벌고 로동단련대 입대생 수도 채울 수 있습니다. 이것도 한 달에 몇 명 단련대로 보내야 한다는 계획이 있습니다.

최: 로동단련대는 몰라서 죄를 지은 자가 아니라 알면서도 지은 자들이기 때문에 그 로동강도가 말할 게 못 됩니다. 여기는 일반 강도사기 폭력 범죄자들이 가는 곳이 아니고, 순수 6개월 이상 일하러 나오지 않은 사람들을 가두어 놓고, 무보수 로동을 태만한 자들에게 보다 더 강도 높은 무보수 로동과 구타, 인간 이하의 수치를 줌으로써 직장에서의 무보수 로동이 행복했구나 하는 인상을 주자는 게 기본 목적입니다. 그러기에 단련대를 마치고 나온 사람들의 말이, 집에서 자면서 직장 나가 일하고 배급 못 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단련대에 가보면 알게 된다고 말을 합니다.

최: 이것은 단순한 것이고, 당 기관이나 군부의 인민들에 대한 수탈과 행정기관, 근로단체기관, 사법검찰기관의 형형색색의 모든 수탈행위는 다 방침관철 과정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으며, 여기에 반항하지 못하는 것은 유일적 령도 체계에 도전하는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자행되며, 독재자는 오히려 이것을 자기의 정치실력에 의하여 모든 인민이 모든 권력기관의 지시에 잘 복종하고 있다고 흐뭇해하고 있는데, 이 같은 일심단결을 위한 총대 정치가 모든 반인권적 행위들을 발생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인민들의 일심단결은 반대세력 모두 죽여 얻은 결과

최: 김정일은 자기의 정치실력이 뛰어나 인민들의 지지에 일심단결을 이루어냈다고 자랑하는데, 이것은 자기의 독재정치를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것일 뿐입니다. 남한도 북한처럼 지리산의 인적 없는 곳에 정치범수용소를 만들고, 제주도와 거제도를 하나의 수용소로 만든 다음, 대통령을 조금이라도 비난하는 말을 하면, 본인은 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불을 질러 죽인 다음, 죽은 사람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시켜 자기 아들이 죽어 응당하다는 연설을 시키고, 독재자를 비난하는 현수막을 내건 사람들을 화염방사기나 기관총으로 쏘아 죽인 다음, 죽은 사람과 친척 간인지도 모르는 사람까지 제주도나 거제도, 지리산 속에 처박아 평생 노예살이를 시키면, 처음에는 의견이 있어 들고일어나겠지만 들고일어나는 족족 죽이고 수용소에 처넣어, 반항하는 사람은 모조리 죽이고 온 가족을 수용소에 보내는 것을 한 50년쯤 하면, 나중에는 박근혜 대통령 지지하는 사람만 남게 되고, 남한에도 박 대통령 결사 옹위의 우렁찬 만세 소리 하늘땅을 진감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 하지만 그것이 독재자 개인에게는 좋겠지만, 그것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이 처형되어야 하고, 만 사람을고통 속에 살게 한 대가로 이루어져야 하기에, 이 세상 누구도 하지 않는 정치를 하면서도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데 모든 인권문제의 근원이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위하여 모든 사람을 복종시키는 독재질서만 무너지면, 착취와 수탈도 없어질 것이고, 착취와 수탈이 없으면 빈곤도 영유아, 임산부 문제도 저절로 해결될 것입니다.


김정은으로부터 파생한 권력, 말단 공무원까지 남용

최: 정리를 해드리면, 독재 권력은 김정은만이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가 200이라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도당위원회 책임비서는 20이라는 권력을 가지고 있고, 군당위원회 책임비서는 1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아래로 하부 말단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세분화되여 나누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정은의 권력은 자기의 것이고 그 아래 권력은 김정은이 림시로 빌려준 것이라는 겁니다. 김정은의 지시가 도당에 내려지면 도당은 거기에 자기의 지시를 조금 섞어서 군당에 내려보내고, 군당은 또 자기의 지시까지 조금 더 섞어서 말단 공무원에게 전달되며, 말단 공무원은 자기의 의도까지 섞어서 김정은의 지시라는 명함으로 직접 집행대상인 인민에게 전달합니다. 김정은만이 자기의 권력을 리용하여 사치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지 않으며, 도당도, 군당도, 말단직 공무원도 무조건 집행되는 유일적 령도 체계를 리용하여 자기의 리익을 실현합니다. 김정은 하나의 사치함을 보장하는 데도 수많은 사람이 굶주려야 하는데, 도당으로부터 말단 관료에 이르기까지 뜯기기만 해야 하는 인민들의 생활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김정은의 지시를 권력계층의 관료들이 잘 집행하는 것은, 그 과정에 아래 단위에 자기의 지시도 결사 관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유일적 령도 체계는 권력계층의 리익과 결부되여 북 인민들에 대한 착취와 수탈로 이어지며, 그 과정에 인권문제라는 것도 발생하는 것입니다.

최: 인권문제는 크게 2가지로, 정치범수용소 문제와 여기에 세부항목으로 고문, 처형, 강제락태 등이 속하는데, 이것은 사상의 일색화와 령도의 유일성을 실현하자면 필수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최: 다음으로 강제노역, 이동의 자유 문제, 아사 문제, 영유아와 임산부 문제 등인데, 이것은 유일적 령도 체계에 준하여 독재자의 명령지시에 독재 지시 집행자의 지시까지 섞여진 것을 강제집행하느라, 자기의 생업활동에서 리탈되여 소수 특전계층의 리익만을 위하여 종사당하는 과정에 발생하는 일들입니다. 그러자면 인민들이 거주지를 이동한다든가 자유로운 려행 등이 독재 지시 집행에는 몹시 장애가 되는 것입니다.

최: 이렇게 인권문제는 본질을 까밝혀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령도자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라, 강제로 충성심을 인민들로부터 받아내다 보니 잘 충성하지 않는 사람들을 수용소에 몰아넣게 되는데, 령도자에게 충성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유일적 령도 체계를 리용하여 인민들을 착취하고 특권층에게 무제한적인 권한을 부여하여 수탈을 조장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사, 영유아, 임산부 문제도 해결될 수 있으며, 강제적으로 일심단결을 만들어내지 말아야 려행의 자유와 거주지 이동의 자유도 보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최: 이렇게 사상의 일색화와 유일사상 체계에 의한 유일적 령도 체계라는 일심단결을 만들어내자면, 수용소도 운영해야 하고 이동의 자유도 승인할 수 없으며, 이따금 발생하는 정치적 적수들을 제거하자니 공개총살도 고문도 하지 않으면 그것을 실현할 수 없으니 필수적으로 있게 됩니다. 그렇기에 20세기에 들어와서 령도자에 대한 일심단결을 만들어낸 나라는 히틀러의 나치스 독일과 김일성의 주체조선, 김정일의 선군조선뿐입니다.


베니 어키데즈의 팬

미국 액션배우인 베니 어키데즈가 홍콩의 성룡과 함께 있는 모습. 베니 어키데즈의 액션 동작은 인민군 교육요강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우가 보낸 글은 북한인권운동을 하는 필자에게도 너무나 소중한 내용이었다. 참고해야 할 내용은 많고도 많았다. 아마도 쉬는 날이기 때문에 아예 작정을 하고 글을 쓴 거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아우의 글을 자세히 살펴본 필자는 거의 처음으로 서로 개인생활에 대해 물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실제 이 부분의 대화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도: 거의 밤샘을 하셨군요. 보내주신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독재자의 말로도 같게 해야 할 텐데 말입니다.
최: 저의 이 글을 인권활동에 적용하시렵니까.

도: 오늘은 일요일이라 차분히 생각해보겠습니다. 어느 부분을 활용해도 되겠습니까?
최: 인권문제 발생의 기본 근원은 활용해주십시오.
도: 잘 알겠습니다.

도: 일요일은 별다른 일이 없으신가요. 개인적인 취미가 있으신지요.
최: 없습니다. 누워서 책을 읽는 것 외에 다른 취미는 없습니다.

도: 저는 집에 있는 것도 좋지만, 영화 보는 거, 축구 하는 거, 그런 거 좋아합니다. 스트레스 해소책이랄까요. 요즘은 통 축구를 못 해서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하하.

최: 저는 유도를 좋아합니다.
도: 유도를요, 잘하시나요?

최: 조금 취미가 있을 뿐입니다. 저는 미국의 프로선수 베니 어키데즈의 팬입니다. 북한에서는 이 선수의 동작을 인민군 교육요강에 포함합니다. 자기 특유의 특수한 동작들로 구성된 무술을 합니다.


김정일 탄생 왜곡 질문했다 혼난 기억

▲러시아인의 주식인 흘레브.

 

도: 특수한 동작요? 하하 아우님은 뭐든지 과학적으로 분석하시네요.
최: 아닙니다. 제가 원래 성미가 까다로워 김일성의 력사를 배울 때에도 자꾸 질문하여 꾸중을 듣곤 했습니다. 제가 꾸중 듣던 이야기해볼까요?

도: 예, 들려주세요. 오늘은 아우님과 하루를 시작하겠습니다.
최: 김일성이 1941년부터 1945년까지 북 하바롭스크 원동군 야영기지에서 훈련했다고 했는데, 어떻게 되여 1942년에 부대를 이끌고 나와 백두산 소백수에서 장군님을 낳았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많던 대부대가 1945년 소련군이 라진항으로 상륙할 때 같이 나오지 않고 모두 어디에 두었는가 하고 물었다가 혼나던 생각이 납니다.

도: 헉, 그게 바로 왜곡된 역사의 시작인데요. 유라의 탄생. 탄생은 좀 그렇네요, 출생.
최: 모든 것은 론리성이 있어야 하는데 도저히 리해가 안 돼서, 또 원동군 훈련기지에서 군관생활을 할 때 장군님께 흘레브밖에 대접 못 했다고 했는데, 백두산에는 언제? 했다가 혼났습니다.

도: 대단하십니다. 흘레브가 무엇인가요?
최: 흘레브는 로씨아(러시아)의 빵입니다. 특징은 돌처럼 딱딱한 것인데 그래야 제 맛이 난다더군요.

도: 제가 몽골 감옥에서 먹은 거군요, 하하.
최: 대표님이 잡수신 몽골빵 그것은 학대해서가 아니라 정상 대접입니다. 그 사람들은 대통령도 그것을 먹습니다.

도: 이빨 부러지는 줄 알았습니다.
최: 그게 제 맛인데 스탈린이 흘레브 먹고 위탈(배탈) 만났다는 사람 있으면 자기 앞에 데려오라고 했다더군요.

최: 제가 군복무 시절에 일본의 로동자 월평균 월급이 3000달러라고 말했다가 정치부에 불려가 혼나던 생각이 납니다. 어디서 들은 소리인가고 묻더군요. 로동신문에 그렇게 쓰여 있다고 대답했더니, 로동신문 어디에 그런 기사가 있는가 하더군요.


독재자를 없애기 위해 독재자만큼 땀 흘리는지 돌아봐야

최: 있습니다. 인제는 날짜는 기억 안 나는데 제목은 기억납니다. ‘자본주 사회의 반인민적 선거 제도에 대하여’인데, 일본인 경우 국회의원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자면 150만 달러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로동자가 한 푼도 쓰지 않고 일생을 꼬박꼬박 모아야 한다고 하면서, 그러니 150만을 12달로 나누고 다시 한 40년으로 나누면 월 3000달러는 되지 않습니까 하고 기사는 채일출 기자가 썼다고 했습니다.

도: 참으로 대단하시네요. 아우님 앞에선 당해낼 재간이 없겠습니다.

북한의 아우는 그랬다. 자신을 공학도라고 소개하면서 모든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라디오며 SD카드든 뭐든지 간에 정확하고 과학적인 방법과 방향으로 체계적인 접근이 아니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누차 강조하고 있었는데, 김일성 왕조의 신화라는 것도 이 같은 과학적 접근으로 그 뿌리를 해체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이어서 아우는 대뜸 북한의 변화가 언제쯤 일어날 것 같은지 물어왔다.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는 아우의 대답은, 우리도 독재자만큼 땀을 흘리고 있는지 냉정히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언가 쇠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이 들었다.

최: 북한의 변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도: 아우님과 그 조직성원들을 만난 것, 이것이 변화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중앙당 강연 직접 들어보면 北의 선전·선동술 알게 될 것

최: 북한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그것만 연구하니까요. 제가 질문할까요? 지금 이대로 나가면 언제쯤 김씨 왕조가 무너질 것 같습니까?
도: 5년 안에 무너지겠는데, 탈북자들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대답도 많습니다.

최: 남한 전문가들은 5년이고 북 사람들은 안 무너지고. 왜 이렇게 생각이 다를까요? 그리고 북한에서는 남한의 하나원도 다 압니다. 중앙당 강연회에서 알려주어서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탈북을 하면 하나원에 가는데 거기를 졸업하면 집도 주고 정착금도 준다고 중앙당에서 알려주어 모두 압니다. 북한이 왜 이렇게 솔직하게 주민들에게 알려준다고 생각하십니까?
도: 김정일 때는 도망갈 사람들은 다 가라는 심산도 있고, 가더라도 적응 못 할 것이라는 기대 아닌 기대도 있을 테고.

최: 주민들을 설득시키는 데서는 북한이 남한보다 훨씬 고단수의 소유자입니다. 여기서는 남한의 실력이 모자랍니다. 대표님이 중앙당 강연을 직접 듣지 못하는 게 유감입니다. 만일 들었으면 대뜸 김씨의 신봉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하.

최: 독재자는 우수한 언변과 설득력으로 북 주민들을 그렇게 잡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북한과 남한의 사람들을 이해시켜야 합니다. 우리의 목소리를 대표님이 남한의 전문가들에게 전달해주기 바랍니다.
도: 예,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아우님 조직의 대변인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최: 리씨 왕조의 조선도 512년간 유지하였습니다. 그것도 저절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 외세, 즉 일본이 군사력으로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니 김씨의 독재왕조도 500년 못 갈 것 없습니다.
도: 500년을 간다고요?


최: 예, 이대로 간다면 500년은 문제없습니다.
도: 5년 내에 아우님 조직이 끝내시죠.


안간힘을 쓰는 쪽이 승리하게 돼 있어

최: 서산대사의 시를 아십니까? ‘농부의 직업은 밭을 갈고 씨를 뿌려 곡식을 가꾸는 것이고, 불도의 직업은 부처님의 덕을 빌어 불교 신자를 늘리는 것이고, 임금님의 직업은 룡상을 지키고 세습시킴이라.’

최: 독재자의 직업은 체제를 유지하는 것인데 왜 무너지겠습니까?
도: 다 무너지고 김씨만 남은 거 아닌가요?

최: 그렇게 하자면 사람들을 잘 설득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노력해야 합니다. 독재자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않습니다. 인민들을 굶기면서도요. 그런데 반독재세력은 김씨만큼 노력했는가. 누가 더 안간힘을 쓰고 있는가. 더 안간힘을 쓰는 쪽이 이기게 되어 있는데, 이 원리를 모르고 앉아서 기다리면 5년 안에 무너져요? 아닙니다.
도: 옳으신 말씀입니다.

최: 경기에서도 이기는 자는 언제나 땀을 많이 흘린 자이지요. 우리는 독재자만큼 땀을 흘리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최: 그럼 오늘은 그만하고 쉬는 게 어떻습니까. 제가 이제부터 글을 쓰겠으니 래일 보십시오.
도: 알겠습니다. 아우님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건강 챙기셔야 합니다.

최: 고맙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도: 예 쉬세요. 요즘 참 행복합니다. 아우님 덕분입니다.

최: 저도 삶의 보람을 느낍니다. 제가 빨갱이 시절에도 일을 좀 잘해서 평가를 받곤 했는데. 악질로 소문이 좀 났댔지요.

거의 밤을 새우고 난 뒤에 몇 시간째 대화를 나눴지만, 아우는 또다시 장문의 글을 쓰겠다고 했다. 마치 독재자보다 더 많은 땀을 흘려야만 한다는 조직의 각오를 실천하듯이 말이다. 아우를 생각하며 오늘도 자신에게 자문해본다. 과연 소시오패스 반역 정권에 대항해서 제대로 땀을 흘리고 있는지를.
(다음 호에 계속)⊙

 

11월 호

■ 北 혁명조직원과의 死生決斷 대화록 ⑤

■ 일본인 강제 납북자, 중앙당 對日 련락소서 첩보원 양성 교관으로 근무

⊙ 日 被拉者들이 北 정치범수용소로 갔다는 주장은 억지
⊙ 日, 모든 행불자를 다 北이 납치했다며 찾아내라는 식으로 밀어붙여
⊙ 對日 단기 첩보원 양성 훈련교원으로 써먹으려 소수 납치했을 듯
⊙ 김정일은 일본인 납치 몰랐을 수도… “일본 수역으로 련락소 잠수정 보냈다”는 식으로 보고했기 때문
⊙ “로씨아에서 수많은 北 사람 행불”

 

나라가 완전히 두 동강이 나는 형국이다. 법을 수호해야 할 자리의 수장이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가족들이 모조리 수사 선상에 올라 있음에도 마치 개혁의 화신인 양 설쳐대는 것도 모자라, 아예 대한민국을 고스란히 말아먹을 작정으로 국민을 갈등과 대결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소위 진보라는 미명하에 70년 동안 분단의 현실을 외면한 채 끊임없이 악선전과 분탕질로 기만하던 세력들의 실체를, 대한민국 국민이 적나라하게 볼 기회가 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그래서 국가권력을 국민의 신성한 권리이자 의무인 선거를 통해 어느 한쪽에 쥐여주는 것이, 자칫 잘못하면 나라가 송두리째 사라질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는, 총알보다도 무서운 국민의 한 표임을 무겁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현 정권의 기만책은 일찍이 공산 전체주의 세력에서 발호하여 나치즘으로 극에 달했던 선전·선동술에 다름 아닌데, 그 막장의 끝을 우리는 바로 휴전선 너머 북한에서 확연히 확인할 수 있다. 거의 한 세기 동안 북한 주민들을 꼼짝달싹 못 하는 권력의 노예로 만든 통치술이니 얼마나 대단한가.

그런 암흑의 땅에서 체제를 뒤엎으려 했던 북한의 혁명조직원인 필자의 아우는, 이번 연재물에서 ‘열대메기 양식장을 늘리라’는 김정일의 지시를 빗대 농담 아닌 농담으로 글을 시작한다. 하지만 글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실을 기반으로 웃지 못할 희극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농담에 대한 기준이 조금은 다른 남북한의 상황을 감안해, 먼저 농담이 시작되는 배경에 대해 추가 설명을 첨언해보았다.


열대메기 캠페인

아우는 필자가 평소 궁금해하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솔직하게 답변하고 있다. 대부분의 북한 주민과 대화한 경험을 기초로 보면, 자신이 아는 것보다는 조금 과장되게 언급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아우는 질문자의 의도나 기대치를 우선하여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 기초하여 답변하려는 모습으로 오히려 필자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또 북한 내부의 혁명조직이 하고자 하는 활동의 신뢰도를 더욱 높여주었다.

우선 아우가 서로 대화과정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농담에 대한 배경을 먼저 언급하자면, 실제 북한은 김정일 생전에 그의 지시로 평양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메기 양식장이 생겨났다. 김정일은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에게 해외출장까지 보내 메기 요리법을 습득하게 해서 직접 시식할 정도로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것도 토종 메기보다는 몸집이 큰 열대메기를 대상으로 했다. ‘조선중앙TV’ 등 북한의 전 매체가 총동원되어 열대메기의 영양과 요리법을 알리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 결과로 평양의 주요 호텔과 고급 식당가에서는 수십 가지 열대메기 메뉴가 등장하는 등 난리법석을 떨었다. 한동안 북한 전역을 난장판으로 만들었지만, 정작 열대메기라는 것이 외래종으로 북한의 기후 환경에 맞지 않고, 전력 사정의 열악함 등으로 주민들에게 외면받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인 김정은이 사라진 메기를 다시금 불러들였다. 김정은은 한술 더 떠 “지금 일부 일꾼들이 아직도 이런저런 조건 타발(불평불만)만 하면서 메기 양식에 혁명적으로 달라붙지 않고 있다”고 질책하면서 몰아붙였으니, 유머가 사라진 어둠의 땅에 웃지도 울지도 못할 희극은 이렇게 시작된다.

당시 2014년 남한의 언론 매체인 연합뉴스는 “김정은이 지난해 ‘메기가 몸에 좋다’며 생산을 독려한 데 대해 북한 언론 매체들은 평양시 평양면옥에서 열린 ‘급양봉사부문 메기요리경연’에 40여 개 기관이 참가해 무려 70여 가지의 창안(창작)요리를 선보였으며, 메기껍질 종합냉채, 과일즙을 가미한 메기튀김, 생강간장 즙을 넣은 메기찜 구이, 메기껍질 묵, 버섯소매기 구이 등이 새롭게 개발된 메뉴로 소개됐다”고 보도했다.

또한 북한의 대외 선전용 매체 ‘조선의 오늘’은 경연대회 개최 소식을 전하면서 “현장에서 만들어 전시한 요리들은 모두 하나의 예술작품 같았다”고 극찬했으며, 조선중앙통신도 “원자재인 메기의 풍미를 돋울 수 있게 보조자재들을 여러 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잘 조화시킨 버섯소매기 구이, 메기레몬향 튀김, 메기 감자전 등의 요리들도 참가자들의 관심을 모았다”고 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평양 메기공장과 여러 단위에서 내놓은 맛좋은 메기 훈제품들과 메기껍질 묵, 메기꼬리 튀김, 메기대가리 보쌈 등 부산물 요리들이 경연을 더욱 이채롭게 하였다”고 덧붙였다.

앞서 김정은은 평양 메기공장을 비롯해 5월 9일 메기공장, 삼천 메기공장 등 지난해 메기 양식장만 3차례나 시찰했으며, 지난해 10월 평양 메기공장을 찾은 자리에서는 “야외 못들에서 욱실거리는 메기들을 보니 물보다 물고기가 더 많은 희한한 풍경”이라며 기뻐하였다.

이 정도면 대충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되었으리라고 보고, 북한 아우의 열대메기와 관련한 농담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기로 하자.


정신 나간 우리 장군님

최: 대표님 오늘 저녁에는 우스갯소리 한마디 할 테니 이것을 보면서 쉬십시오. 제목은 ‘아무래도 우리 장군님께서 정신이 나가셨군’입니다.

2011년 10월 어느 날이었는데, 하루는 평양시의 성 중앙기관에 위대한 장군님의 2011년 10월 5일 방침을 전달한다면서 회의실에 모두 모이게 하였다. 방침내용은 ‘최근 우리 인민들 속에서 열대메기 료리를 잘 만들 줄 몰라 메기로 남비탕이나 끓여 먹고 있는데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메기로 남비탕을 끓여 먹을 것이 아니라 메기 샤부샤부를 만들어 먹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라고 전달한 다음, 장군님의 말씀대로 메기 남비탕만 끓여 먹지 말고 메기 샤부샤부 료리를 해먹으라고 말하면서 방침전달을 끝냈다. 모두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면서 메기 샤부샤부가 어떤 료리인지 아느냐고 서로 물었다. 하지만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어떤 료리인지 알아야 해먹을 것이 아니냐고, 장군님께서 많이 잡수어본 료리를 우리가 어떻게 알아야 해먹을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었다.

다음날부터 온갖 류언비어들이 나돌았는데, 누군가가 메기 샤부샤부란 료리는 메기의 살코기를 모두 발라내여, 고기는 버리고 순수 뼈다귀만 가지고 그것을 소금 하나 두지 않고 맹물에 삶아서, 뼈다구를 씹으면서 이따금 뼈다구 우린 맹물을 컵에 담아 마시는 료리를 메기 샤부샤부 료리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앞에서는 말을 못 하고 뒤에 돌아앉아서 끼리끼리 말하기를, “아무래도 우리 장군님께서 정신이 나가셨나 보다. 일 년에 한두 번 먹어보는 메기마저 고기는 못 먹게 하고 뼈다귀만 먹이려고 하시다니…”.

최: 참 대표님, 메기 샤부샤부라는 게 어떤 료리에요. 뼈다귀 씹는 료리 맞아요?
도: 하하. 저는 메기 샤부샤부라는 요리는 처음 들어봅니다. 샤부샤부라는 요리는 끓는 물에 고기나 야채, 해물 등을 넣어 건져 먹는 요리를 말합니다.

최: 북 사람들은 맹물에 삶은 뼈다귀 씹는 료리로 알고 있습니다. 며칠 지나서 당중앙위원회 지시문이라고 하면서 ‘메기 샤부샤부에 대한 말을 하지 말데 대하여’를 전달했습니다.
도: 푸하하하. 참으로 엉터리 같은 당 중앙입니다.

얼핏 들으면 재미있는 농담일 수 있겠으나, 북한에서의 모든 방침관철이라는 것이 수령에 대한 무오류의 원칙,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지침이라도 당이 결심하면 무조건 한다는 식의 북한판 가미가제를 연상케 하는 부분들이 아닐 수 없다. 아우는 이 같은 방침이나 지시 등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그래서 하루빨리 이런 사회를 뒤엎어야 한다는 것을 열대메기 농담을 빌려 이야기한 것이었다.


일본인 납치자들과 관한 질문

 

북한 혁명조직원은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와 주고받은 문자 대화를 통해 일본 납치자들이 북한 정치범수용소로 갔다는 주장은 억지라고 했다.

 

아우는 이런 농담을 던져놓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 짓고 있었다. 필자는 평소 아우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한 가지 있었다. 개인적인 의문이기도 하고, 다른 차원에서는 아우가 어느 정도 고급정보들을 가지고 있을지에 대한 유도질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간단히 언급한 후 내일 다시 이야기하는 것으로 정리했는데, 북한으로서는 상당히 민감한 사건인 외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행되던 납치범죄와 관련한 질문들이었다.

도: 아우님, 접니다. 어제 말씀드린 거 다시 질문드릴게요. 일본인 납치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알고 계시는 것이 있는지요. 2002년 김정일과 고이즈미 총리가 만나 5명의 일본 납치피해자와 함께 귀국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들 일본 납치피해자들은 대부분 노동당 핵심부서에 근무하고 있어 공개하기가 어렵다는 것과 정치범수용소 수용 내지 굶주림과 탄압으로 사망했다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래서 이런 실태를 알고 계시는 것이 있는지와 국제사회가 이 문제에 접근하려면 어떤 전략전술이 요구될 수 있을지 아우님의 생각을 여쭤봅니다.

최: 일본인 랍치 피해자 문제는 우리 조직의 관심 밖에 일이므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지 못합니다. 다만 조금 아는 것과 저의 소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2002년에 김정일과 고이즈미 총리와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회담 때, 고이즈미가 김정일에게 ‘우리 일본 국민에게 한 가지만은 명백한 해답을 주어야 국교를 맺을 수 있는 조건이 이루어집니다’라고 랍치자 문제에 대하여 질문하자, 김정일이 ‘나도 최근에야 알았는데 우리의 일부 개인영웅주의자들이 일본에 몰래 가서 사람들을 데려다 일본어 교원으로 채용한 모양입니다’라고 인정하여 북에 의한 랍치 피해가 공식 인정된 모양입니다.

최: 5명은 그때 데려오고 아직도 많은 랍치 피해자들이 북한의 로동당 특수부서에서 근무하거나 혹은 정치범수용소로 갔거나 일반사회에서 굶어 죽었다고 예상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최: 우리가 알기에는 중앙당의 대일 련락소에서 특수훈련을 받은 사람이 사회에 나와서 자기가 체험한 사실들을 몰래 말한 것이 사회에 퍼진 것이 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특수아지트에서 철저한 밀봉교육이 이루어지는데 주로 일본어 회화와 일본식 생활을 재현한 실습훈련이고, 그 훈련교관들이 일본인들 같았다는 것입니다. 훈련과 관련한 것 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물어볼 수도 없었지만, 일본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아는 것으로 보아 일본사람들 같았다는 것입니다.


일본인 납치자, 중앙당 대일 련락소서 교관으로 근무

▲일본에서 귀국한 북송교포들을 환영하는 북한주민. 사진=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제공

 

최: 모든 과목의 훈련교관들이 다 일본사람은 아니지만, 최종 검열을 하는 시험관들은 일본사람들인 것 같았다는 것인데, 그래서 자기는 이 일본사람들이 어떻게 여기로 왔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일본인 랍치에 대하여 소리가 나자 ‘아! 그 사람들이구나’ 하고 생각났다는 것입니다. 또 거기서 청소부로 일하는 50세쯤 되어 보이는 부인이 하루는 자기보고 ‘아저씨 이제 일본에 가요?’ 하면서 자기가 일본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자기가 일본사람이면 일본에 가고 싶지 않은가 하고 묻자, 여기가 좋다고 대답하며 자기는 원하면 아무 나라나 다 구경하고 올 수 있다고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최: 김정일이 자기도 몰랐다고 하는데 그 말이 사실일 수 있습니다. 왜냐면 일일이 누구를 데려온다고 보고하지 않았을 수 있고, 다만 작전을 위하여 ‘일본수역으로 련락소 잠수정을 파견하려고 한다’ 이 정도로 보고하였을 수 있습니다.

도: 예 그렇군요. 제가 지금 집에 가는 중인데 들어가서 답장하겠습니다. 편하게 글 남겨주세요.

최: 일본이 랍치 피해자로 추정되는 백수십 명의 명단을 북한에 제출하며 그들의 생사를 밝히라고 한다는데 그것은 무리입니다. 일본도 1억의 인구를 가진 대국인데 무슨 범죄인들 없겠습니까. 모든 행불자를 다 북한의 소행이니 찾아내라는 식으로 밀어붙이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특히 ‘바닷가에서 놀던 철부지 처녀애나 늙은이를 데려다 어디에 리용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납치자는 대일 단기 첩보원 양성 훈련교원일 뿐

▲요코타 메구미의 1977년 실종 이전 모습. 사진=마이니치

 

최: 그것도 주먹치기식으로 아무나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대상파악을 한데 기초해서 일본까지 잠수함을 보내야 하니, 얼마나 품이 드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본인들은 단지 대일 단기 첩보원 양성 훈련교원으로 써먹을 목적 외에 다른 목적으로는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실제 납치한 사람의 수가 몇 명 안 될 수 있습니다.

최: 또는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졌거나 탄압, 굶주림으로 사망했다고 추정하는데 거의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굶주림으로 사망했다면 일반사회인으로 생활했다는 것인데, 실지로 보안부 주민등록국에 일본인들이 등록된 적이 없으며, 그들과 같이 생활했다는 자료는 더더욱 들은 적이 없습니다. 특히 정치범수용소로 말하면 아무나 들여보내는 데가 아닙니다. 대표님 자체가 수용소에 대하여 너무나 모르시고 있으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우는 필자에 대해서도 과장된 것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정치범수용소와 관련된 이야기 중에 북한인권운동가를 앞에 두고, 인권유린의 대명사인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식의 핀잔 아닌 핀잔은 필자에게는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아우는 유독 정치범수용소와 북한 보위부에 대한 필자의 언급에 대해 상당히 민감한 반응들을 보였는데, 그것은 자신과도 관련되었을 수 있는 사안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어서 여기서는 이 정도로 언급하기로 한다.

최: 그들이 로동당 핵심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설(說)이 맞을 수 있으며, 그 수는 불과 몇이 안 되고 또 대접을 잘 받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대일 첩보원 양성과 대일 첩보자료 분석과 종합과 같은 중요한 일을 담당하였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니 많은 비밀을 아는 그들을 절대로 돌려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최: 모든 일본의 행불자가 다 북한의 소행이라고 밀어붙이는 것은 억지이며, 또 그들이 북한에 의해 랍치됐다는 증거도 없는 조건에서, 만일 국제사회가 일본인 랍치 피해자라고 의심되는 사람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하려고 한다면, 행불자 중에서 북을 위해서 일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만 골라서 명단을 제출하여, 이 중에서 현재 북에 있거나, 있었으며, 년로하여 사망하였으면 있다 없다 이 정도라도 확인해달라는 식으로 한 발자국씩 접근해나가야 조금이라도 전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랍치 피해로 말하면 北이 최대 피해국

▲1977년 북한에 납치된 딸 요코타 메구미(당시 13세)의 부모 시게루(왼쪽)·사키에 씨가 지난 2014년 3월 17일 도쿄 인근 가와사키시(市)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소 짓는 모습. 이 부부는 지난 10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메구미가 북한에서 낳은 딸 김은경씨를 만나고 돌아왔다.

 

도: 현재 국제사회에서 김정은 압박의 가장 선두국은 일본과 미국입니다. 미국도 일본의 영향력으로 예전과 다르게 더욱 적극적으로 변화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일본은 유엔에서의 영향력도 막강합니다. 앞으로 북한과 일본의 대결로 예상치를 뛰어넘는 파장이 나올 수도 있다고 보입니다. 그래서 여쭤본 것이고 정치범수용소도 그곳에서 탈출했거나 나왔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만 듣고 판단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많은 문제점과 부족함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아우님께서 바로잡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최: 8·15 광복 전에 조선인들과 결혼한 재일본 교포들의 귀국 사업 때 같이 들어온 일본인들도 랍치 피해자라고 하는 것은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랍치 피해로 말하면 북한이 최대 피해국입니다. 실지로 로씨아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행불되었는데 그들이 모두 로씨아를 위하여 전화 감청원으로 일하거나, 3국에서 행불된 수많은 사람이 지금 CIA를 위하여 일하지 않는다는 담보가 어디 있습니까. 로씨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접을 잘 받는다고 합니다. 북한도 이것을 모르지 않지만, 증거가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을 뿐입니다. 이상입니다.

도: 아우님 말씀은 우리의 신뢰관계를 떠나서도 참으로 믿음이 갑니다. 항상 실사구시(實事求是) 하려는 모습이 아주 좋고요. 제가 많은 공부를 하게 됩니다.

앞으로도 저의 굳어진 사고에 대해 가감없이 자신의 생각과 주장들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최: 단지 저의 소신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도: 아우님, 제가 드리는 질문에 대해서는 남한이나 저희 같은 인권운동가들이 잘못되게 생각하는 부분을 남김없이 말씀해주시면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제가 많이 배우도록 가르쳐주십시오. 북한 주민의 자유와 해방은 아우님과 그 조직원들, 지지자들이 성취하는 것이고, 저희는 손을 잡고 함께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희가 잘못 생각하거나 전략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을 정확히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최: 잘 알겠습니다. 대표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도: 아우님의 사명을 완수할 때 평양에 꼭 가야지요. 예전 김대중, 노무현 정부 당시 평양에 갈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평양만큼은 김정일에게 돈 갖다 바치면서까지 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우님께서 초청할 때는 한걸음에 달려가겠습니다.
최: 내 나라 한반도가 통일되는 날 평양에 초청하겠습니다. 서울 구경을 시켜주시겠습니까.
도: 꼭 상호 방문합시다. 제 고향 부산에서부터 전국 방방곡곡을 구경시켜 드리겠습니다.

 

▲북한 혁명조직원은 “로씨아에서 수많은 北 사람이 행불되었다”며 “랍치 피해로 말하면 북한이 최대 피해국”이라고 주장했다

 

아우는 갑자기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고 하면서 한번 둘러보고 오겠다고 하고선 대화의 자리를 일어섰다. 잠시 후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는 대뜸 지난번에 언뜻 나누었던 스포츠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최: 아 참 대표님, 축구를 좋아한다고 하셨지요. 축구경기에서 어떤 위치를 맡으십니까.
도: 아 예, 요즘은 통 하질 못하고 있는데 제 포지션은 공격입니다. 제가 골을 좀 잘 넣습니다. 하하.

최: 저는 축구에서 항상 수비를 맡습니다.
도: 서로 잘 만났습니다. 언제 한번 남북시합을 하시지요.

최: 저는 공격을 저지시키는 것이 제일 재미있습니다. 수비에서 기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도: 독재의 질주를 저지시키는 것, 멋있습니다. 중심, 중심이 깨지면 다 깨진다. 그다음은 흐름…. 서로 무지하게 머리싸움을 하지요.

최: 옳습니다. 그것입니다. 공격수의 생각을 미리 알아맞히는 것입니다.


혁명조직원의 부모는 모두 고인

도: 아우님, 우리 꼭 이렇게 합시다. 일을 하다 보면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축구도 마찬가지죠. 그때도 굳건히 서로 믿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다 깨집니다. 기다려주고 격려해주고, 제가 그럴 수 있고, 아우님의 평양 일도 그렇습니다. 우리 꼭 그렇게 합시다. 저는 이걸 아우님과 나의 중심이라고 믿습니다. 시작의 마음으로 굳건히.

최: 예 알았습니다. 돌아가신 저의 부친께서 생각의 40%만 수행돼도 성공한 인생이다, 이렇게 이야기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도: 아버님이 작고하셨습니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도 작년에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갑자기 생각나네요. 눈물 납니다. 제가 불효자식이거든요. 생전에 한 번도 마음 편히 못 해 드렸어요.
최: 그렇습니까. 제가 군 복무 때 아버님이 돌아갔을 때 집에 못 갔댔습니다.

도: 어머님은 생존해 계십니까. 아우님 모친 말입니다.
최: 어머님도 3년 전에….

도: 아 그래요, 저는 어머님은 생존해 계십니다. 마음이 허전하시겠습니다. 그래도 부모님께서 자랑스러워하실 겁니다, 아우님을요.
최: 오히려 마음이 가볍습니다. 만일 우리 일이 잘못돼도 부모님들을 하늘나라에서 데려다 수용소에 보내겠습니까. 어머님께 효도하십시오. 떠나면 그때는 후회만 남습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자신이 하고자 한 일들이 발각되거나 실패로 모두가 죽게 되었을 때, 자신들만 죽으면 되지 아직도 서슬 퍼렇게 살아 있는 연좌제라는 죄목으로 죄 없는 부모님, 처자식까지 처벌되는 살벌한 세상에 남아 있는 나의 아우. 어머님 한 분이라도 생존해 계실 때 효도하라는 이야기는 여전히 불효자인 필자에게 비수로 가슴에 꽂혔다. 《월간조선》의 표지에 나온 필자를 누군가에 의해 전해 듣고서, “제발 위험한 일 안 하면 안 되느냐”며 나지막이 꾸짖으시던 어머님이 떠올라 그렇게 눈물을 삼켰다.

도: 그래요. 그런 점에서는 그럴 수 있겠습니다. 부모님께서 하늘나라에서 도우실 겁니다. 우리 서로 힘냅시다.

아우 자신도 눈물을 삼키고 있을 게 뻔했다. 얼핏 자신의 모친이 북한에서는 유명한 공훈배우였다면서 어머님을 따라 수많은 배우를 만난 이야기를 한 것이 떠올랐다. 빨갱이 집안으로 자신의 계급적 토대와 과거를 알면 크게 실망할 거라는 이야기도 말이다. 아우는 곧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뭔가 마음에 부담되는 일이 있을 때 곧잘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이곤 했다. 필자를 세뇌시키려고 단단히 마음먹은 듯이 말이다.


자유민주주의 통일 시 北 주민들의 운명

▲미국에서 열리는 납북자 규탄대회에 앞서 대책회의를 하고 있는 귀환납북자들과 필자(맨 왼쪽). 사진=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제공

 

최: 대표님, 감사합니다. 다음번에는 ‘자유민주주의 통일 시에 차려지게 될 북 주민들의 운명에 대하여’라는 강연을 해드리겠습니다. 대표님께서 우선 들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남한 국민이 알아야 합니다.

도: 강연료를 어떻게 얼마나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명강연자이신데요.
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기세가 오릅니다.
도: 아우님의 강의가 대단합니다. 많은 가르침을 주십시오.

다음 호에는 위에서 언급한 아우의 강연 내용을 고스란히 옮겨놓을까 한다. 우선 제목을 보면, ‘남한식의 자유민주주의로 통일될 때 북한 주민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라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 당국이 북한 내부에서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자신들의 체제가 남한보다 더 우월한가’를 설득시키는 것으로, 만약 북이 남에 흡수되었을 때 북한 주민 모두는 지금보다 더한 노예로 전락할 것임을 아주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선전·선동술을 필자나 남한 국민이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당시 기억을 떠올려보면 아우의 이 글이 너무나 기다려졌고, 막상 그 글을 보았을 때 담긴 내용에 엄청난 충격을 받아서 아직도 여운이 있다. 세상은 넓고 배울 것은 참으로 많다.
(다음 호에 계속)⊙

 

12월 호

■ 北 혁명조직원과의 死生決斷 대화록 ⑥ 北 혁명조직원이 말하는 김씨 일가의 선전법

■ 김정일 “남한 위주의 통일 되면 우리 모두 죽는다”

⊙ 김일성 시대와 김정일 시대의 선전 차이
⊙ ‘김정일판’ 카스트제도… 사회주의 체제의 허구성 드러나
⊙ 김정일, 미국을 적으로 몰아 동맹관계인 남한도 주적이라 주입
⊙ “모두 실업자 되거나 죽기 싫으면 좋든 싫든 우리 체제를 따르라”

 

참으로 바쁘게 지나간 한 달이다. 바쁜 만큼 의미가 있었다. 영국 런던에서 ‘북한의 솔제니친’ 반디 선생 시집 발간 북 콘서트가 있었다. 대한민국 서울에서 처음으로 홍콩·대만·일본과 신장 위구르 지역 등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에서 자유·인권을 위해 헌신하는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동북아시아의 영속적인 안녕과 평화유지를 위해 존재해온 한·미·일 삼각 안보동맹이 파괴됨과 동시에, 기적의 대한민국적 가치가 훼손되고, 자유민주 체제가 합법이라는 미명하에 전복되고 있는 비상상황에 인식을 함께했다.

중국과 북한이라는 반(反)자유, 반문명, 반평화 공산 전체주의 세력의 준동으로 야기되는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은, 미·중 문명전쟁이라는 새로운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이런 국제적 소용돌이 속에서 아시아 자유민주주의 세력의 결집을 통해 지역안보의 군사동맹과 경제동맹에 이어 시민이 앞장서서 시민동맹(civil alliance)을 구축하고, 동북아의 안정적 번영과 항구적 평화에 대한 도전을 극복함으로써, 공산 전체주의 세력으로부터 한반도의 자유통일을 이룩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그 현장을 함께한 필자에겐 아직도 잔잔한 감격의 여운이 있으며, 한반도 자유통일을 위한 대장정에 남북 혁명가의 대화록을 통해서나마 다시 한 번 동참할 수 있어 행복하다.


김일성 시대의 선전과 김정일 시대의 선전

지난 호를 통해 약속한 대로 이번 호에는 북한의 아우가 그 내부에서 각계 계층을 대상으로 북한 체제를 선전하는 방식들을 고스란히 옮겨놓을까 한다. 약간의 오해도 있을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하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찬찬히 살펴본다면 서로 조금씩 수긍하는 공감대가 형성되리라 확신한다. 여섯 번째 대화를 따라가 보자.

최: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통일 시 북한의 주민들에게 차려질 운명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북과 남은 분단 이후로 지금까지 서로 체제에 대하여 자기의 것이 우월하다고 상대방에게 선전하며 서로 제도를 비방하여 왔습니다. 말하자면 자기의 나라가 더 사람이 살기에는 좋다는 것이다, 그 좋다는 것을 선전하는 데는 방향이 있는데, 하나는 안쪽으로 하는 것이고 하나는 바깥쪽으로 하는 것입니다. 안쪽으로 하는 것은 자기 국민이나 자기 인민에게 하는 것이고, 바깥쪽으로 하는 것은 남에서는 북의 인민들에게, 북에서는 남의 국민에게 자기의 제도가 더 좋다고 너희 것은 나쁘다고 선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의 경우 선전의 시대를 김일성 시대와 김정일 시대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어쨌든 남의 국민은 설득시키지 못했어도 자기 인민들만은 거머쥐었기에 아직도 두 개 제도가 북과 남에 시퍼렇게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북한이 자기의 인민들에게 자기의 체제가 남한 것보다 더 좋다는 것을 어떻게 교육하는가를 보기로 합시다. 김일성 시대에는 “북의 모든 인민이 다 같이 골고루 잘사는 사회이고, 남조선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돈 있고 권세 있는 자들만을 위한 제도이기 때문에 우리의 것이 더 좋다” 이렇게 설득했습니다. 그때에는 그것을 안 받침 (입증)할 수 있는 사회적인 조건들이 있었는데, 우선 모든 사람이 직위 고하에 관계없이 자기의 거주지에 있는 식량배급소에서 식량을 받았고, 또 모든 생활용품들과 식품들을 거주지의 상점들에서 국가가 지정한 가격으로 샀습니다. 위로는 내각과 중앙당의 일군들부터 아래로는 탄광이나 건설사업소의 로동자에 이르기까지 한 달 한 사람이 받는 식량의 양은 같았고 월급도 비슷했으니 이러한 사회에서는 사회의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평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정일 때 불평등 시작

▲혁명조직원은 김일성 때보다 김정일 때의 선전이 교활하다고 했다.

 

최: 오히려 중로동 부분의 로동자들이 월수입에서 간부계층의 사무원들보다 높은 경우가 많았으며, 이때에는 자기의 제도에 대하여 선전하기도 쉬웠고 또 계층별 사람들에게 따로따로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때에는 북한은 “평등을 맛보려면 북으로 오라”고 선전했고, 남한은 자기의 제도가 평등하다고는 말할 수 없으니, “남한은 자유가 보장된 나라이고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고 또 능력과 재능을 발휘하면 부자가 될 수 있으니 자유를 누리려거든 남한으로 오라”고 선전했습니다. 남한의 이 선전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꾸준히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는 데 비해서 북한은 시대가 달라지면서 선전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서로 자기의 것이 좋다는 기본 골자가 하나는 평등해서 좋다는 것이고, 하나는 자유로워서 좋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사람은 모든 사람의 능력과 재능, 열심히 일하려는 근로정신 이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자유를 주면 점차 사람들의 능력의 차이로 인하여 빈부 격차가 생기기 때문에, 이 불평등을 없애자면 국가 권력의 힘으로 골고릅게(공평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존재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평등하자면 자유로울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유로우면 불평등해진다는 것입니다.

남한의 자유민주주의보다 북한의 사회주의가 계속 좋은 사회로 되자면, 계속 평등한 사회로 남아 있어야 하겠는데, 북한이 자기의 제도가 좋다고 하는 데서 평등만 빠지면 결국 자유도 없고 불평등한 사회로 되며, 평등을 보장하기 위하여 존재한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정의로운 사명도 결국은 불평등과 자유의 억압이라는 부정의의 독재로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김정일 시대에 들어와서 이 평등이 서서히 불평등으로 변하였습니다.


불평등, 김정일이 중앙당 근무 성원들만 챙기면서 시작

최: 변화의 시작은 김정일이 창광거리라는 중앙당 근무 성원들만이 따로 모여 사는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면서 시작되었는데, 물론 여기에 눈가림으로 한두 채의 아파트는 체육인들에게 주었으나 대부분은 중앙당 아파트였습니다. 중앙당 사람들만 따로 모여서 식량공급소도 별도로 만들고 부식물 공급도 특별히 생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본을 떠서 성(省) 중앙기관·무력부의 본청사 성원들과 특수기관 성원들, 이들마저 주택단지를 따로 짓고, 식량 및 물자공급소들을 따로 가지고 자기들만 특별히 잘 먹고 잘살기 시작하였지요. 결국 불평등의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원래 북한은 대부분 산림이고 논농사는 얼마 없으므로 모든 북 주민들이 이밥(쌀밥) 먹기 어렵지요. 산이 많으니 축산업을 하면 고기야 먹을 수 있겠지만…. 잘 먹어야 5대(對)5의 잡곡밥인데 실제 잠깐 존재하고 영영 지나가버리긴 했지만, 평등의 시대 때는 모든 북 주민들이 지위고하에 구별 없이 잡곡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밥 먹어야 할 계층과 강냉이밥을 먹어야 할 계층이 구별된 세상이 되었습니다. 평등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착취제도의 싹이 자라나지 못하게 제압하기 위하여 존재한다는 프롤레타리아의 독재도, 이제는 권력계층의 리익을 지켜 근로 인민 대중을 억압하는 부정의의 무기로 자기의 계급적 성격이 변하였다고 볼 수 있죠.

이쯤 되면 절대다수의 북반부 인민들이 평등 대신에 자유를 선택하여 남한 쪽으로 마음이 쏠릴 것 같은데, 왜 아직도 자기들의 리익보다는 얼마 안 되는 특권계층만을 위한 북한의 체제를 지키는가, 자기들이 지키는 체제가 자기들의 굶주림과 무권리 착취만을 지속시키는데도 왜 자기들의 고통의 시대를 계속 지속시키려고 하는가 하는 의문점이 들게 됩니다.

여기에는 북한 선전 당국의 그럴듯한 해설과 론리로 이제 더는 평등한 사회라고 말할 수 없는 독재사회를 지지하고 따르도록 북 주민들을 교양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북한의 선전 당국이 매 계층별 사람들에게 무엇이라고 하는가를 들어봅시다.


더욱 교활해진 김정일 시대의 당 선전부

▲북한의 주민교양사업은 가정, 직장, 학교 등 전역에서 매일 실시된다. 김정은이 지난 2019년 6월 4일 인민무력성에서 군복 차림의 어린이, 한복 차림의 여성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도: 잘 읽었습니다. 아우님은 강단에 서도 아주 탁월한 교수님이 되겠습니다. 아직 쓰실 내용이 많으실 거 같은데 상황 보시면서 천천히 보내주세요.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됩니다.

최: 김일성 시대에는 우리나라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 뿐 아니라, 세상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라고 선전하였지요. 외부정보가 차단된 북한의 인민들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볼 수 없는 상황에서 그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김정일 시대에 들어서자 1995년 이후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라는 것이 시작되어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했기에, 이제 더는 세상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 평등한 세상이라고 교양하기는 틀렸다고 판단한 북한의 당 선전부는, 북 주민들을 일정한 부류로 나누어 솔직하게 말해주어야 할 계층에게는 솔직하게 털어놓고, 또 얼려 넘겨야 할 계층에게는 거짓 약속을 하는 식으로 자기의 체제를 따르도록 하려고 교양사업과 선전사업의 전술을 바꾸었습니다.

북한의 주민구성은 크게 4개의 계층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인민들의 머리 위에 군림해 있는 김씨 왕족 가문이 있고, 그 밑에 있는 최고위층 관료들이 1부류의 특권계층에 속합니다. 실례를 들면 최룡해나 황병서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 인물들이고, 중앙당의 비서·부장·부부장 이상급, 내각의 총리나 부총리, 성의 당비서 이상급, 각급 지도국장들과 지도국 책임비서 이상급, 군대와 특수기관의 중장 이상급의 장령들, 각 도·시·군 당 위원회의 책임비서·조직비서·선전비서 이상급 등등이 속합니다.

2부류 계층으로서는 그 밑에 급의 고위관료들로서 내각의 부장·부상, 중앙당의 과장 이상급, 2급 기업소 이상의 지배인·당비서, 군대와 특수기관의 대좌(대령) 이상급, 각 도·시·군 당 위원회의 부장·부부장 이상급이 속합니다.

3부류 계층으로서는 국가기관의 일반 공무원들, 당기관의 일반 지도원들, 군대와 특수기관의 중좌(중령) 이하의 군관들과 국가기관의 과학자, 대학교 이상의 교육기관에서 근무하는 교육자들이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4부류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로서는 나머지 모든 사람이 속한다고 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남한에서 말하는 장마당 세대가 여기에 속합니다.


남조선 같은 자본주의 되면 모두 실업자 된다고 선전

최: 선전사업의 기본은 아무런 자유도, 대의명분으로 내세웠던 평등도 없는 국가의 체제를 어떻게 하면 자기들이 살아야 할 삶의 터전으로 생각하게 할 것인가였습니다. 여기서 1부류나 2부류에 속하는 특권 계층에게는 김일성 시대 때보다 오히려 독재체제를 따르게 하기가 김정일 시대의 상황이 더 쉬웠습니다. 그것은 불평등과 독재만이 남은 조건에서 이것이 4부류 계층에게는 빈곤과 아사를 가져다주었지만, 그만큼 1, 2부류의 계층에게는 호화 부와 사치, 특권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기본은 1부류 고위 특권 계층인데, 이들에 대한 교양사업이나 설득은 할 필요가 없었지요. 오히려 이들의 책무가 2부류 계층에게 현재의 김정일 독재정치가 인민들에게는 좀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특권층이 살기에는 김일성 시대 때보다 더 좋지 않으냐 하는 식으로 솔직하게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실례가 있습니다. 1997년엔가 중앙당에서 무력기관과 사회의 당 일군들, 정치 일군들의 강습을 조직한 자리에서 중앙당 선동선전부 과장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여기에 모두 당 일군들만 모였는데 내 동무들에게 한 가지 물어봅시다. 우리가 사회주의 제도를 지켜내지 못해 우리의 체제가 전복됐다고 합시다. 남조선 같은 자본주의가 됐다고 합시다. 그러면 동무들 같은 당 일군들은 모두 직업을 잃은 실업자가 되겠는데 그러면 어떤 직업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나 당 일군 아니더라도 다른 직업으로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다’는 동무 손들어 보시오.

또 ‘우리 단위에서 당 비서는 나 말고는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은 당 비서를 시켜주어도 하지 못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동무 있으면 손들어보시오. 또 ‘당 비서 직에서 해임하게 해서 다른 기사나 설계사, 교원을 시켜도 자신 있게 할 수 있다’ 하는 동무 손들어보시오. 고난의 행군 시에 당 비서가 굶어 죽은 것을 본 사람 있다면 손들어 보시오. ‘승용차가 없어서 나 매일 걸어 다닙니다’ 하는 동무 있으면 손들어 보시오. ‘나 당 비서인데 집이 없어서 남의 집에 동거(셋방) 살이 합니다’ 하는 동무 있으면 손들어 보시오.

보십시오. 한 동무도 없습니다. 당 비서나 정치 일군은 과학자나 기술자, 연구사나 대학의 교원들과 같이 특별한 능력이나 실력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시키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모인 동무들은 당 비서를 그만두면 당장 먹고살 대책도 없는 실업자가 되고 맙니다.

우리가 만일 사회주의를 지켜내지 못하여, 우리의 체제가 전복되거나 개혁개방의 길로 나가 남조선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하게 된다면, 제일 먼저 굶어 죽을 대상들은 바로 동무들입니다. 자기의 지식이나 육체 기능으로 생활하는 기술자나 로동자들의 경우에는 지금의 환경보다 자본주의적 환경이 오히려 먹고살아가는 데는 더 나을 수 있겠지만, 동무들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릅니다.”


고난의 행군은 3, 4부류 인민들에게만 고통 줘

최: 이렇게 1부류에 속하는 고위 특권 계층은, 2부류에 속하는 특권 계층에게 만일 남한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의한 한반도의 통일이라는 환경이 도래하면, 자기들의 특권적 지위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없어지며, 또 3부류나 최하층 4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개혁과 개방 변화의 쪽으로 쏠릴 수 있으니 막아야 한다고, 고난의 행군이라는 고난은 3부류나 4부류에 해당하는 인민들에 한한 것이지, 자기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것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음으로써 독재와 불평등만이 남은 북한의 체제를 변함없이 받들도록 교양하는 것입니다.


3부류 계층(통제 계층)에 대한 교양사업

최: 다음으로는 3부류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독재정권을 지키도록 선전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3부류 계층의 기본 구성원은 주로 군인과 사법검찰·보위·보안에서 종사하는 하급 군관들이거나 하급 공무원입니다. 이들에게는 특권적 지위는 보장되지 않지만, 식량 공급과 그리고 여러 가지 생활보장의 혜택들이 차려지고 있으며, 또 잘하면 1부류의 계층에는 속할 수 없지만 2부류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희망이 있는 대상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들에게는 나라의 현실에는 상관하지 말고 사회주의의 수호자이며 운명이신 장군님만 결사 옹위해야 한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통일이 도래하면, 주로 정권유지에 종사하던 3부류의 계층은 청산되거나 처형당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도 독재체제를 지키는 것입니다. 1부류와 2부류는 주로 독재체제로 변한 북한의 사회주의에서 지도 계층에 속한다면, 3부류는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에서 통제의 기능을 수행하는 통제 계층에 속하기 때문이지요.

사실 이 3부류 계층은 북한이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에 따라 통일되는 경우 1부류, 2부류와는 달리 자기의 처지가 불리해지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불리해질 수도 있고 유리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독재자도 3부류 계층에 대한 교양사업에 매우 신경을 쓰고 있는데, 만약 이들이 흔들리면 반드시 전체적인 파동의 시작점이 되기에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최하층에 속하는 4부류 계층에게는, 북한의 선전 당국이 사회주의가 사람 살기가 좋아서 지키고 지지해야 한다고 선전하거나 교양할 수 없습니다. 이들에게는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통일이 도래하는 경우 그들의 처지가 개선될 수밖에 없습니다. 4부류 계층은 국가로부터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이들의 생산 활동의 창조물은 그들의 몫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1부류, 2부류, 3부류의 생활을 보장하는 데 전부 돌려지기 때문에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통제와 제한 속에서 무보수 로동 외에 추가로 진행하는 시장활동으로 근근이 살아가기 때문에, 시장활동의 자유와 로동에 대한 보수가 법적으로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야말로 이들이 지금의 북한 상황에서 바라고 바라는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교양사업은 1부류, 2부류와도 달라야 하며, 3부류와도 달라야 합니다. 사실 인구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4부류의 계층에게는 북한의 제도가 김일성 시대처럼 세상에서 제일 잘산다느니 평등하게 골고루 산다느니 하는 선전이 더는 통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남한에 의해 통일이 되면 모두 무참하게 죽게 된다고 선전하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이들을 납득시킬 만한 그럴듯한 론거가 있습니다.


공포를 무기로 활용

최: 6·25전쟁 당시 미국은 북한 지역에 무차별적인 폭격을 퍼부어 수많은 민간인을 살해하였습니다. 미국의 민간지역에 대한 폭격은 상대방의 전쟁 수행 능력을 없애려는 목적을 넘어, 북의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더 죽이려는 의도로 리해될 수 있을 만한 공격이었습니다. 만일 미군이 지금과 같은 정밀 폭격 능력을 6·25전쟁 당시 가졌다면 아마 북 주민들이 대부분이 소멸하였을 것입니다.

아우와 북한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가장 곤혹스럽고 치열하게 논쟁까지 진행되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다. 사실 모든 목표와 방향, 미래에 대한 비전 등 대부분이 일치된 의견을 가졌지만, 유독 미국에 대한 반감만큼은 어느 정도 인식의 차이가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아우와 대화를 하면서 느낀 의문에 대해 조심스럽게 문의해본 전문가분이 있었는데 그분의 말씀이 기억이 난다. 북한에서 혁명하겠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무턱대고 미국의 도움을 요청하는 식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절대로 믿지 말라고 당부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 민족끼리 혁명하자는 것 정도는 이해해도 미국 힘을 빌리자고 하는 것은 대부분 돈을 바라거나 다른 목적이 있어 그런 것이니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나의 아우는 미국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이야기했다. 거의 논쟁 수준까지 갔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나의 아우에게 믿음이 갔다. 기회가 된다면 논쟁 수준까지 진행된 미국에 대한 의견들을 소개할까 하니, 너무 속단하지 말고 북한의 혁명세력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찬찬히 한번 살펴보기를 권고한다.


죽기 싫으면 사회주의 싫든 좋든 지켜라

▲김정일은 통일 시 남한이 미군과 군사적 동맹관계에 있으므로 북 지역에 미군이 들어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북 주민들을 한명도 살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선전했다. 황해도 신천의 신천박물관에 전시된 기념물.

 

최: 지금 유엔 무대에서 미국이 북한 정권의 인권유린 행위에 대하여 떠들어도 북한 사람들이 별로 반응하지 않는 리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말하자면 미국이 하는 소리는 틀린 데는 없지만, 미국의 입으로 떠드는 소리는 듣기 싫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북한 주민을 모두 죽이려고 작정했던 나라이지만, 북한의 독재정권은 수용소를 운영해도 북한 사람 모두를 수용소에 보낸 것은 아니고, 모두를 굶겨 죽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다른 나라가 북한 정권의 수용소 실태나 아사에 대하여 말한다면 공감하여 우리의 처지를 동정하여 도와주려 하는구나 하고 공감할 수 있지만, 미국은 북의 아사나 수용소에 대하여 말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북한 주민들의 반미감정은 북한의 선전에 의하지 않더라도 대단히 높습니다. 여기에 북한이 선전으로 약간만 부채질하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지게 되지요.

그런데 그 자유민주주의가 미국과 함께 서 있는 것입니다. 6·25전쟁 당시 북한 지역으로 남한의 국군과 미군이 북상하여 차지한 시간이 50일 정도이지만, 국군에 의한 북의 민간인 학살은 기록된 것이 없고, 북한의 선전 당국도 없는 사실을 지어내지는 않았습니다.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통일 시 남한이 미군과 군사적 동맹관계에 있으므로 북 지역에 미군이 들어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북 주민들을 한 명도 살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선전함으로써, 북한의 사회주의는 싫든 좋든 지켜야지 그렇지 않으면 무참한 죽음이 차려질 것이라고 4부류 계층의 사람들을 교양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北 주민의 증오 대상

▲북한은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통일이 도래하면, 인민들은 청산되거나 처형당할 것이라고 선전했다. 황해도 신천의 신천박물관에 전시된 기념물.

 

최: 우리가 이 자리에서 주한미군의 문제에 대하여 말한다고 해서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하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의 독재자가 정권을 유지하는 데는 미국이 크게 도와주는 셈이지요. 또 대한민국은 북 사람들의 증오의 상대인 미국과의 군사적 공조 때문에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정일 시대에 들어와서는 이 감정을 잘 활용하여 지금까지 불평등과 독재만이 남아 있는 자기의 체제를 가지고도, 자유가 보장됐다고 하는 남한에 쏠릴 수 있는 민심을 자기가 거머쥐고 자기의 독재체제를 용케도 지금까지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남한이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하지 않고 단독으로 북의 군사력을 제압한 상태에서 북 주민들에게 자유민주주의에 대하여 잘 납득시킨다면, 통일의 그날이 빨리 오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고 북한 주민들의 감정을 무시하고 미국과의 군사적 공조로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한 상태에서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이루려고 시도한다면, 북한의 모든 계층의 주민들은 아마도 계속 김씨 왕조를 따를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도: 조직의 분석능력과 아우님의 설명능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충분히 이해가 가고 어떤 전략으로 접근해야 하는지도 그림이 그려지네요. 그만큼 조직의 활동이 중요하리라 여겨집니다. 긴 글 쓰시느라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감동 그 자체입니다. 미국 문제는 두고두고 상의하도록 하시지요.


혁명조직 상급자의 이야기

최: 제가 옛날 이야기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저희 조직의 상급이 해준 이야기입니다.

옛날 조선시대 때 있었던 이야기인데, 어느 한 마을에 10명의 젊은이가 모여서 몹시 흥분하여 떠들어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웃 마을의 어느 한 집에 불을 지르자고 하고 있었는데, 사연은 알 수 없으나 그들의 기세로 보아 말린다고 들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10명 중의 1명의 젊은이가 생각하기를 아무래도 남의 집에 불을 지르는 것이 잘된 일 같지 않아서, 9명의 사람을 말리려고 마음먹었으나 흥분하고 결심도 확고한 이들을 말려낼 것 같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이들을 말리려 들다가는 분별을 잃은 9명에게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를 판이였는데, 이들을 말리기는 글렀다고 생각하고 이들과 합세하여 이웃 마을의 어느 한 집에 불을 지르는 데 합세하기로 하였답니다.

9명은 흥분에 떠 그냥 불을 지르러 가자고 막 떠날 판이였는데, 1명은 “흥분하여 그러지 말고 불을 제대로 지르자면 잘 생각도 해보고 준비도 잘해서 떠나야 실수가 없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분담이 이루어졌는데, 누구는 기름을 준비하라고 했고, 그 리유를 매번 설명해주었습니다. “어제 비가 왔으니 지붕이 젖어 그냥은 불이 잘 안 댕기니 기름을 뿌려야 한다”고 했는데 듣고 보니 그 말이 맞아 기름을 준비했습니다.

그다음은 몇 명에게 몽둥이를 준비하라고 했는데 그 리유는, “만일 우리가 불을 지르면 영문을 모르는 이웃 동리(동네)의 어르신들과 마을 사람들이 무작정 말리려 들 테니 그들을 때려눕혀야 할 게 아닌가” 하고 했습니다.

듣고 보니 그 말이 맞아 다음은 칼과 창, 활을 준비하자고 했습니다. 그 리유는 “우리가 불을 지르고 이웃 동리의 어르신들과 사람들을 때려눕히면 어떤 사람이 관가에 알릴 터인즉, 그때에는 관가의 포졸 군사들이 달려들 텐데 그들과 싸우자면 무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도: 점점 흥미로워집니다. 결말이 너무 궁금해지네요.

최: 듣고 보니 그 말도 맞아서 모든 준비가 완료되자 구체적인 분담이 이루어졌습니다. 누구는 기름을 뿌려 불을 지르고, 아무개와 아무개는 동리 사람들을 때려눕히고, 누구는 동리 입구에서 망을 보다가 군사들이 달려오면 알려주고…. 이렇게 매 사람당 임무가 할당되고 길을 떠나자고 하였습니다. 늦게 참여한 1사람이 이제는 준비가 완료됐으니 길을 떠나자고 하였는데, 주객이 바뀌여졌습니다. 피동이 주동이 되고 주동분자들이 피동으로 되었습니다.


김정일만 욕해도 김일성 신화 무너져

최: 길을 떠나자고 재촉하니 9명은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불만 지르자고 했는데 불을 지르자니 아무래도 이웃 동리 어른들이랑 사람들을 해치지 않으면 일이 성사될 것 같지 않고, 또 사람을 해치고 관가의 포졸군사들과 전투까지 치러야 하니 아무래도 자기들이 하려는 일이 잘하는 일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9명 중 어떤 사람이 입을 열었습니다. “그만 포기해야 할 것 같아, 잘하는 일 같지 않아.”

모두 곰곰이 생각해보니 흥분도 가라앉았고 리성도 되찾았습니다. 그래서 그만두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집으로 헤어져 갔습니다.

1명은 생각했습니다. ‘처음부터 말리려 들었다가는 지금쯤 나는 9명에게 뭇매를 맞아 병신이 됐을 것이고, 이웃 동리에는 불이 났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도: 하하. 의미심장하네요.

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상급이 이야기의 뜻을 풀이했습니다. 우리가 주민들을 계몽하는 데 있어서 절대로 김일성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9명에게 뭇매를 맞을 수 있다. 처음에는 그를 민족의 영웅으로 추어올리고 아들만 비판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히 아버지도 같은 사람으로 된다. 우리 입으로 비판하여 깨우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느끼게 해야 한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