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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이탈주민(탈북민) 이야기9/ 탈북 지성인들이 말하는 북한8/ 주성하의 서울과 평양 이야기4/ 2018-01-11 남북 궁합론 - 12-19 통일부도 개명할 때 온 듯한데…

상림은내고향 2021. 11. 9. 20:12

북한 이탈주민(탈북민) 이야기9/ 탈북 지성인들이 말하는 북한8/

■ 주성하의 서울과 평양 이야기4/ 2018  동아일보

01-11 남북 궁합론

▲남북 장관급 회담이 11년 만에 다시 열려 새로운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9일 남북 고위급 회담 전체회의 시작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는 조명균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판문점=김재명 기자 

 

남북 관계엔 ‘궁합’이라는 게 분명 존재한다. 한쪽이 원한다고 해서 서로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미국이란 ‘시어머니’도 큰 변수가 된다.

 

셋의 궁합이 가장 좋았던 시기는 2000년이었다. 5년 넘은 ‘고난의 행군’으로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하고 경제가 완전히 파탄 난 김정일에겐 돈이 절실히 필요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노벨 평화상을 안겨준 햇볕정책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르윈스키 스캔들에서 막 빠져나온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겐 확실한 대외관계 업적이 필요했다.  

 

이 셋의 조합이 만들어낸 결과가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었다. 누구 하나라도 원치 않았다면 정상회담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때의 ‘긍정적 궁합’은 8년간 이어졌다. 

 

그러나 한결같이 좋은 운세란 없다. 2008년은 남북 관계가 ‘부정적 궁합’으로 돌변한 해이다. 막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보수 지지층을 의식해 대북 지원을 하려 하지 않았다. 미국엔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지목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있었다. 

 

남북관계가 어그러진 상징적 사건이 바로 2008년 7월 금강산 박왕자 씨 피살사건이었다. 금강산 관광을 ‘현금 퍼주기’의 상징으로 본 이명박 정부는 기다렸단 듯이 금강산 전면 철수를 단행했다. 김정일은 8월 초만 해도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을 만나 피살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등 사태를 수습하려 노력했다. 햇볕정책 시기라면 이 정도 노력이면 무난히 풀 수 있었다.

 

이때 결정적 사건이 발생했다. 8월 중순 김정일이 뇌중풍으로 쓰러진 것이다. 약 한 달 뒤 회복한 김정일의 태도는 확 바뀌었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김정일은 “지금은 외부에 문을 열 때가 아니라 문을 꽉 닫아걸고, 내부에서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줘야 할 때”라고 판단한 듯싶다. 이때부터 사망할 때까지 3년 동안 김정일이 오로지 집착했던 일은 아들 김정은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것뿐이었다.

 

결국 어느 한쪽도 원치 않았으니 남북관계는 파탄 날 수밖에 없다. 북한이 문을 닫아거는 수법은 간단하다. 도발을 하면 외부에서 알아서 ‘제재’라는 빗장을 꽉 걸어준다.

 

김정은도 집권 초기 외부 교류에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몽둥이를 휘둘러 확실하게 내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누가 엿보지도, 참견도 못 하게 집안 문을 꽉 닫아 매는 것이 필요했다. 또 어차피 남의 참견 상관없이 문을 닫은 김에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란 비싼 ‘금단의 재산’도 빨리 장만하자는 게 김정은의 속셈이었다. 그렇게 2008년에 시작된 부정적 궁합은 이렇게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하지만 올해는 부정적 궁합이 다시 긍정으로 바뀌는 때가 온 듯하다. 9일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은 어쩌면 전환점일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는 굳이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김정은에게도 이제는 문을 열고 나와야 할 절실한 필요가 생겼다. 지난 6년간 대량 숙청으로 권력도 확실히 장악한 데다, 지난해 말엔 수소탄과 미국까지 가는 ICBM을 가졌다고 주장하며 ‘국가 핵무력 완성’까지 선언했다.

 

이제 김정은의 당면 과제는 민심 달래기이다. 핵무력만 완성하면 이른 시일 내에 잘살 수 있다는 선전을 믿고 허리띠를 조이며 살아온 인민에게 희망이라도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현 상황은 완전히 반대다. 지금 중국과 해외에 파견됐던 외화벌이 일꾼들이 줄줄이 돌아오면서 북한 내부에선 “이젠 중국까지 등 돌렸으니 우린 다 죽게 생겼다”는 불안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실제로 중국이 대북제재에 적극적으로 합세하면서 최근 북한 장마당 내 식량과 휘발유 등의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다. 여기에 피복 임가공, 해산물 수출 등이 막히면서 돈줄도 말라가고 있다. 올해 봄쯤이면 북한 내부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터져 나올 판이다. 그러면 “이렇게 굶어 죽으려고 핵을 만들었느냐”는 불만의 화살이 김정은에게 향할 것이 뻔하다. 김정은은 하루속히 인민에게 곧 잘살게 될 것이란 희망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현재 유일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 남북관계다. 남한과의 급진적인 교류 재개를 보여주며 “봐라. 고생을 견디며 핵무력을 완성하니 남조선이 저렇게 황급히 머리 숙이고 들어오지 않냐. 더 참으면 미국과 일본도 다 우리에게 굴복하게 돼 있다”고 선전해야 한다. 그래야 민심을 수습할 수 있다.

회담을 하더라도 상대를 꿰뚫어 보며 마주 앉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래야 최대한 적게 주고,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궁합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연애를 하다 보면 더 많이 좋아하고, 더 간절한 쪽이 늘 먼저 양보하는 법이다. 마찬가지다. 남북이 다시 마주 앉더라도 이건 분명히 알아야 한다. 지금 더 간절한 쪽은 북한이지 우리가 아니다. 

 

01-25 북한에서 자라며 보았던 동아일보

오늘자 동아일보 지령(紙齡) 번호다. 내일(26)이면 지령 3만 호다.

2만 호 발행이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6 10 1일이었으니 3만 호 발행까지 31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 이 기간은 내가 철들어 살아온 시대와 일치한다.

지령 3만 호를 맞아 동아일보에는 ‘나와 동아일보’라는 연재 시리즈가 게재되고 있다. 주로 한국 명사들의 추억담이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남쪽에서만 영향을 미쳤던 게 아니다. 동아일보는 북에서 자란 나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나는 다행히 노동신문을 구독하는 집에서 자랐다. 노동신문은 누구나 구독할 수 없고 일정한 직책이 있어야 당에서 구독을 허락하는 신문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노동신문을 정독했는데 5면이 남조선 면이다. 1980년대 남조선 면엔 늘 각종 시위 소식이 실리곤 했다 

이 지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신문이 동아일보였다. 북한 당국도 나름 공신력을 증명하려 했던지 ‘동아일보에 따르면…’이라는 리드로 남조선 소식을 보도했다.

최근 영화 ‘1987’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 1987년 노동신문도 남조선 소식을 연일 신이 나서 보도했다.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숨졌다는 동아일보의 특종 보도에 이어 6월 민주항쟁의 생생한 장면까지, 불의에 굽히지 않은 동아일보의 용기는 노동신문에 그대로 옮겨졌다. 

최루탄으로 뿌연 서울의 거리와 곤봉을 휘두르는 백골단의 사진으로 도배하던 노동신문은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라는 김중배 당시 동아일보 논설위원의 명칼럼도 인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 나는 여러 대학에서 벌어지는 시위 중계 보도를 보면서 “남조선에서 제일 좋은 대학은 어느 대학일까” 하고 궁금해 하기도 했다.

노동신문은 가끔 독재정권의 언론 탄압을 비판하는 백서도 실었는데 이때마다 동아일보의 백지광고 사태도 빠짐없이 거론됐다. 1992년부터 발간된 김일성 회고록에도 동아일보는 자주 거론됐다. 김일성이 사망하기 전까지 회고록에서 동아일보는 19번이나 거론됐다. 김일성은 동아일보를 매우 호의적으로 서술했다. 가령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을 소개하며 “우리 부대의 모든 대원은 ‘동아일보’ 편집 집단이 취한 애국애족적인 입장과 용단에 열렬한 지지와 연대성을 보내었다”고 추억하는 식이다.

북한은 창작의 자유가 극히 제한됐지만 남쪽을 소재로 한 작품은 자주 나왔다. 그런데 여기엔 기자가 많이 등장한다. 숨기는 진실을 폭로하며 권력과 싸우는 정의로운 인물을 설정하기엔 기자란 직업이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1990년대 초반의 한 소설은 새벽까지 과음하고 늦잠을 잔 기자가 여유롭게 출입처로 출근해 당국자들을 만나 진실을 캐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그때 ‘남쪽 기자들은 늦잠 잘 때도 있고, 아무 데나 들어가 자유롭게 누구와도 만나도 되는구나’ 싶어서 한국의 기자 생활을 부럽게 상상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성()고문 사건을 폭로했는데, 나는 당연히 그가 동아일보 기자였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북한에서 성장한 내가 서울에 와서 동아일보 기자가 된 것은 확률로 설명하긴 어려운 기적이었다. 발령받은 첫 부서의 차장석엔 ‘새벽까지 과음하고 오전 늦게 출입처에 나갔다가 지금까지 회자되는 대특종을 했던’ 선배가 앉아 있었다.

어느덧 남쪽에 와서 기자가 된 지 16년째를 맞았다. 후회 없는 삶이었다. 시간을 되돌려 다시 탈북해 와도 동아일보 기자를 할 것이다.

동아일보에 대한 북한의 ‘짝사랑’이 싸늘하게 식은 지 오래다. 걸핏하면 동아일보의 보도가 입맛에 맞지 않다고 삿대질을 하곤 한다. 하지만 저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일제 통치와 독재정권하에서 목숨 걸고 기개를 지켰던 ‘100년 언론의 전통’이 그 정도의 협박 따위에 무너질 일이 절대 없다는 것을. 북한이 3대 세습 독재를 이어가고 핵과 미사일 도발을 계속하는 한 좋은 평가를 받는 일도 없을 것이란 것을.

1986
년 동아일보 창간 2만 호엔 3만 호가 발행되는 30여 년 뒤의 세상을 예측한 특집 기사가 있다. 첫 번째 예측은 “최소한 남북 간 왕래가 자유롭고 무역거래도 활발해지는 민족적 통일은 이루어질 것”이란 전망이었다. 빗나갔다

동아일보가 4만 호를 발행하려면 30여 년이 더 흘러야 한다. 내 기명 기사는 아마도 제호 3만 몇 번째에서 끝나 있을 것이다. ‘동아일보 3만 호’를 맞이하는 지금, 나의 최대 소원은 북한 사람들이 내가 쓴 기사를 직접 읽는 날을 보는 것이다. 다행히 지금까지 내가 원했던 일은 거의 이뤄졌다. 동아일보에 통일의 벅찬 감동을 전하는 나의 기사가 실릴 날도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는다.

 

02-08 떡밥만 뿌리고 가는 낚시꾼은 없다

▲7일 오전 강원 동해시 묵호항 연안여객선터미널에 정박한 만경봉92호에서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 등 예술단원들이 하선하고 있다. 동해=사진공동취재단

 

1996 11 26일 연평도로 북한 병사 정광선이 탄 목선이 표류해 왔다. 한국 경비정에 구조된 그는 조사 뒤 북으로 돌아갔다. 얼마 뒤 노동신문은 그를 ‘혁명전사의 귀감’이라며 한 개 면을 털어 크게 내세웠다. “괴뢰 놈들이 배를 끌고 가려 할 때 도끼를 휘두르며 정신 잃을 때까지 싸웠고, 집요한 귀순 회유에도 장군님 품으로 가겠다는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19세 정광선은 말단 상등병에서 바로 장교로 진급했고, 죽기 전엔 받기 어렵다는 최고의 명예인 공화국영웅까지 됐다. 함북 청진의 그의 모교는 ‘정광선고등중학교’로 개명됐다. 

그로부터 3년쯤 뒤 정광선이 술자리에서 “남조선을 암흑의 세상이라고 배웠는데, 서울에 가보니 완전히 불바다더라”라고 했고, 이를 전해 들은 김정일이 “앞으로 남조선을 암흑의 세상이라 교육하지 말라”고 했다는 말을 북에 있을 때 들었다. 실제로 이후 북한 대남 교육은 “한강 다리 아래 거지가 득실댄다”는 레퍼토리에서 “부익부 빈익빈이 극심해 살기 힘든 사회”로 바뀌었다. 

남쪽에 살던 한 탈북자는 2012년 북으로 돌아가 기자회견까지 하고도 반년 뒤 다시 탈북했다. 남조선에서 먹었던 삼겹살과 삼계탕 이야기를 했다가 보위부에 잡혀가 고문을 받았고, 숨 막혀 살 수 없어 다시 도망쳤다는 것이다. 집중 감시를 받는 줄 뻔히 알면서도 술이 들어가니 입을 통제 못 한 것이다. 진실은 자루 속 송곳과 같다.


북한이 평창 겨울올림픽을 활용해 체제 선전 공세를 펼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게 통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우리 국민을 우습게 본 것이다. 일부러 눈과 귀를 틀어막은 극소수를 빼곤 북한이 어떤 곳인지 다 안다. 오히려 북한이 체제 선전을 한다면 엄청난 역풍을 받을 게 뻔하다. 북한 예술단이 싫은 사람들이 진짜로 걱정해야 하는 것은 북한 여성들이 체제 선전 가요가 아닌, 한국 노래를 심금을 울릴 정도로 너무 감동적으로 부르는 상황이 아닐까 싶다.


따져보면 역대 최대 규모로 500여 명이나 남쪽에 내려보낸 북한이야말로 엄청난 용기를 낸 것이다. 아무리 입단속을 하고 감시를 해도 그들이 북으로 돌아간 뒤 언제 어디에서 어떤 말을 할지 알 수가 없다. 최소한 가족 형제에게는 비밀이 없다.

북한이 동포애를 발휘해 남쪽 잔치가 흥하라고 위험을 감수하며 대규모 대표단을 보낸 것이 아님은 누구나 안다. 북한이 올림픽 이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재개해 남북 관계가 지난해 수준으로 돌아간다 해도, 올림픽 기간 북한 도발을 관리해 평화적으로 대회를 치른 한국의 득이 더 크다. 그걸 북한이 모를 리가 없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평창에 간다고 했을 때는 이미 올림픽을 활용해 분위기를 바꾼 뒤 어떻게 하겠다는 구상은 서 있었을 것이다. 그걸 위해 동생 김여정까지 포함된 대규모 남한 방문단이란 떡밥을 던진 것이다.

북한은 무엇을 노리고 있을까. 떡밥의 양과 질을 봤을 때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 정도로 만족할 것 같진 않다. 또 미국의 동의 없이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 것이다. 북한의 모사(謀士)들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더구나 북은 목을 내놓고 결재받는 곳이다. 

하지만 핵이나 ICBM을 내걸지 않고 미국을 움직일 순 없다. 안 될 것도 없다. 원료 추출 시간이 오래 걸리는 핵무기보단 기술을 이미 확보해 수십 개를 얼마든지 다시 만들 수 있는 ICBM은 얼마든지 흥정판에 올려놓을 수 있다. 사실 북한은 미국까지 가는 ICBM을 굳이 가질 필요는 없다. 미국 영토에 쏴봐야 자살 행위이고, 가진 것만으로도 미국의 분노만 키울 뿐이다. 협박용 핵미사일은 주한미군만 사거리에 넣어도 충분하다. 

북한도 지금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적잖게 파악했을 것이다. 말을 얼마나 쉽게 바꾸고, 자화자찬은 얼마나 능숙하게 하는지 등을 말이다. 남한을 활용해 북-미 대화를 성사시킨 뒤 “김정은을 압박해 미국을 핵 공격 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아 냈다”는 업적을 트럼프에게 만들어준다면 흥정할 수 있다고 계산했을지도 모른다.

ICBM 포기와 함께 미국에 “신뢰를 지키면 핵무기도 폐기하겠다”는 약속도 못 할 것은 없다. 그렇게 목을 조이는 대북제재를 풀어내고, 경제협력을 하자며 남한 돈을 다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시간도 벌고 잇속도 챙길 수 있다. ICBM은 필요할 때 미국이 약속을 깼다며 다시 만들면 그만이다. 북한은 늘 임기 내 업적에 안달인 한미 대통령들을 봉으로 활용하는 데 능숙했다. 이미 한국 정부는 “말씀만 하십시오” 자세라고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평창 올림픽 이후의 대북카드는 걱정할 필요도, 급해할 필요도 없다. 고위급 대표단이나 다른 라인을 통해서 북한이 먼저 낚싯대를 던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들이 낚으려는 게 잉어인지 가물치인지 판단하면 된다. 세상에 떡밥만 뿌리고 가는 낚시꾼은 없다.

 

02-22 2차 ‘고난의 행군’은 로드맵에 없었다

한국이 핵미사일 앞에서 무방비라면, 북한의 최대 약점은 체제 위기다. 근래에 한반도라는 그라운드에서 한미연합팀과 북한팀 사이에 벌어진 게임은 늘 반()코트 싸움이었다

북한은 상대의 약점을 노린 극단적 공격 전술로 나왔고, 한미는 방어에만 급급했지 상대의 약점을 노려 반격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미연합팀 총괄감독이 버락 오바마에서 도널드 트럼프로 바뀌면서 판세가 바뀌었다. 트럼프는 상상 이상으로 북한의 약점을 파고드는 강공 작전을 구사했다. 북한의 최대 스폰서인 중국을 힘으로 압박해 지원을 못 하게 만들었다. 몇 년 안으로 북한은 굶주려 허우적대다 쓰러질 판이다. 

북한팀 감독 김정은은 상황 판단이 빨랐다. 그는 공격 모드에서 방어로 급히 전술을 바꾸었다. 이대로 가면 팀이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평창에 대규모 화해 대표단을 파견하고, 한국팀 문재인 감독을 평양에 초대한 것은 양 팀의 공수가 바뀐 상징적 사건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감독직을 세습한 김정은은 본인의 능력인지, 아버지가 물려준 코치진의 능력인진 알 길이 없지만, 지금까진 자기 팀을 잘 이끌어왔다.

부임 첫해에 선수 사기 진작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희망을 심어주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더는 허리띠를 조이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선언한 뒤 젊은 부인의 팔짱을 끼고 나와 ‘나는 가족을 중시하는 젊은 남자이니 믿어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잇따른 경제와 농업 개혁 조치 선언으로 기대감도 끌어올렸다

이듬해 장성택 처형을 통해 그는 ‘북한의 왕은 나’라고 대내외에 과시했다. 마치 잉글랜드의 위대한 축구 감독 알렉스 퍼거슨 경이 데이비드 베컴이라는 걸출한 스타플레이어를 걷어차 ‘맨유는 퍼거슨의 팀’임을 보여줬듯이 말이다. 물론 코치진이 ‘강력한 2인자를 두고 장기 집권한 독재자는 역사에 없다’고 조언해 주었겠지만, 대단한 권력의지가 아니라면 자신을 돌봐주던 고모부를 처형하긴 어렵다.

김정은이 집권 6년 내내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매달렸던 것도 ‘가진 것 없어 무시당하는 수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한미가 가장 두려워하는 핵미사일을 손에 넣고 종신 집권을 위한 통 큰 거래를 하겠다는 것이 그의 장기적 계획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재작년 말부터 예상치 못하게 어긋나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조차 예상치 못했던 트럼프의 집권을 김정은이 미리 알아챘을 리 만무하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이 거래 상대가 됐다면 김정은은 “그것도 이미 내 로드맵에 있었어”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트럼프가 집권 후에 보여준 저돌성은 더욱 놀랍다. 중국이 북한의 3대 돈줄(석탄, 수산물, 의류임가공)을 끊고, 원유 지원도 대폭 줄일 거라고 예상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 어려운 미션을 트럼프가 해냈다. 이제 와선 트럼프가 북한 공격 명령을 내리지 못할 것이라 장담할 수 있는 전문가도 점점 줄고 있다.

조급해진 김정은은 지난 1년여 동안 눈과 귀를 다 틀어막고 그야말로 ‘미친 듯이’ 핵미사일 완성에 매달렸고, 2017년이 지나가기 전에 ‘핵 무력의 완성’을 부랴부랴 선언했다. 그러곤 새해 벽두부터 핵미사일 완성 이후로 세워둔 로드맵상의 ‘흥정’ 단계로 넘어가려 한다. 

하지만 여유롭게 배를 내밀며 하려던 흥정이, 숨을 헐떡이며 시간에 쫓겨서 하게 된 이상 제대로 될 리는 만무하다. 

김정은의 장기 플랜에는 두 가지가 없었다. 첫째는 트럼프 당선, 둘째는 고난의 행군이다 

중국이 대북 압박에 동참하자 북한 내부에선 곧바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 연료가 없어 군부대가 기동할 수 없고, 고위 간부와 장성조차 추위에 떨고 있다. 춘궁기로 가면 식량 가격이 치솟아 기근이 다시 북한을 덮칠 가능성도 높다. 그러면 김정은을 ‘신뢰할 수 없는 사기꾼’으로 비난하는 내부 불만이 치솟아 역심(逆心)이 꿈틀거릴 것이고, 김정은이 제일 두려워하는 체제 위기가 현실화된다.

약점을 정확히, 매우 아프게 공격당해 순식간에 수세에 몰린 김정은은 급히 상황 반전에 나섰지만, 문제는 거래 조건이 달라졌다. 이제 김정은이 부르는 핵미사일 값은 단순 호가일 뿐, 실거래 가격이 될 수 없다. 북한이 거래를 거부하면 그건 곧 고난의 행군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김정은은 자기 처지에서 어떤 것이 최선일지를 잘 판단해왔다. 만약 김정은이 핵미사일을 부둥켜안은 채 몇 년 정도는 고난의 행군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한다면, 이는 최후의 오판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1990년대 중반 1차 고난의 행군을 체험했고 평생 북한을 지켜본 나의 판단으론, 북한은 절대 고난의 행군을 또다시 견뎌내지 못한다 

 

03-08 고은과 겨레말큰사전

▲2005년 ‘자주 평화통일을 위한 8·15 대축전’ 일환으로 열린 ‘겨레말큰사전 남북 공동편찬사업 보고회의’에서 고은 당시 사전편찬위 남측 상임의장이 연설하고 있다. 동아일보DB

나쁜 손버릇이 미투(#MeToo)로 고발되기 훨씬 전부터 난 고은을 “양심 없다”고 욕했다.

김정일 앞에선 감격에 겨워 시를 낭송하고, 북한 인권은 “가보지 않아 모른다”고 대답한 이중성도 싫었지만, 진짜 이유는 그가 매달려온 남북 공동 국어사전인 ‘겨레말큰사전’ 때문이다

고은은 2006 1월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이하 사업회) 초대 이사장이 돼 12년 넘게 자리를 지켜왔다.

나는 겨레말큰사전을 생각하면 왜 막대한 예산을 쓰며, 왜 지금 꼭 만들어야 하는지, 누굴 위해서 만드는지를 납득할 수 없었다. 2011 1월에도 이 사전을 비판했었기에 ‘언어학 문외한’이란 비난도, ‘반통일론자’로 욕먹을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할 말은 해야겠다. 지금까지 이 사전 만든다며 300억 원 넘는 세금이 들어갔다. 올해도 33억 원이 책정됐다. 고은은 2009 11월에 사전편찬 작업의 50%를 진척했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지난해 3월까지 진척도가 75%라고 했다. 예산이 투입돼 3년여 만에 50%를 한 작업을 7년이 넘도록 고작 25% 더 했다는 얘기다.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 탓에 북한 학자를 6년이나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할 순 있다. 그런데 진척도는 5분의 1 이하로 떨어졌는데도 사업회 예산 중 인건비 액수는 오히려 계속 늘어나 현재 15억 원에 육박한다.

대체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 사업회 홈페이지를 보니 북한 어느 옛 소설에서 찾아낸 ‘합태’ ‘허두하다’ ‘갈마붙다’ 등을 ‘새로 찾은 겨레말’이라고 올려놨다. 이 용어들은 올림말 44만 개가 수록된 북한 ‘조선말대사전’에도 없다. 우리가 왜 북한조차 인정하지 않는 용어까지 세금을 들여 찾아줘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사업회는 지금까지 30명 미만이 일하는 사무실 유지비와 공과금으로 50억 원 넘는 세금을 썼다. 하는 일 거의 없는 고은의 번듯한 이사장실 유지비에도 세금이 꼬박꼬박 들어가는 것을 보며 “저 사람은 명성과 달리 참 양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남북 공동 국어사전이란 업적을 만들어 노벨 문학상 타려는 욕심에 수백억 원의 세금이 탕진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마저 들곤 했다 

2013년까지 만들겠다던 사전은 2019년까지 사업이 연장됐다. 그런데 내년까지 끝날 확률도 희박하니 또 사업 기간 연장하고 매년 30억 원 넘게 정부 예산을 달라고 할 것이다. 도대체 이 사전은 몇백억 원짜리가 될지 가늠이 안 된다.

4년 전쯤 ‘남북언어비교용어집’을 직접 만들어 본 적이 있다. 언어 적용에 어려움을 겪는 탈북민을 위해 쉬는 날에 짬짬이 국어사전 6개를 다 보고 남북이 서로 다른 용어를 골라냈는데, 혼자서도 딱 3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직접 해보니 순수 우리말은 남북의 차이를 무시해도 될 정도라 훗날 남북통일이 돼도 언어 소통에 별문제가 없겠단 결론을 내렸다. 내 경험상으로도 북에 있을 때 몰래 구한 남쪽 엣센스 영어사전으로 공부했지만 이해 안 되는 것이 거의 없었다. 북한 사람이 남쪽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원인의 99%는 남용되는 외래어 때문이다

남북 공동 사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 난 이 글을 쓰지도 않았다. 난 누구를 위해 지금 이렇게 비싼 사전을 만드는지를 도저히 모르겠다.

사업회는 사전 발간 취지의 첫 설명으로 “남북의 겨레가 함께 볼 최초의 사전”이라고 했다. 아니, 한국 출판물을 보면 잡혀가는 북한 사람들에게 이 사전이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이 비싼 사전이 지금 한국의 누구에게, 도대체 몇 명에게 필요한 것인가

모르는 북한말이 있으면 ‘조선말대사전’에서 찾고, 한국어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으면 된다. 뭐가 그리 불편해 지금 수백억 원 들여 꼭 합쳐야 한단 말인가. 어차피 지금은 합의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아 어떻게 만들어도 반쪽짜리 사전밖에 안 된다. 남북이 백날 마주 앉아도 이설주라고 쓸지, 리설주라고 쓸지조차 합의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언어의 통일은 통일 이후에야 가능하다. 통일이 한국 주도로 이뤄진다면 서울말이 표준어가 되고, 북한말은 지역어가 된다. 북한 사람은 탈북민처럼 한국말을 빨리 배우기 위해 애를 쓰겠지만, 서울 아이들이 학교에서 “러시아는 북한말로 로씨야입니다”라고 배울 일은 없다는 뜻이다. 2400만 명의 표준어보단 5000만 명이 사용하는 언어가 표준어가 되는 게 순리다.

제주도말부터 함경도말까지 다 아우르는 진정한 통일 겨레말사전은 통일 후 표준어와 지역어의 지위가 분명해진 뒤에야 만들 수 있다. 또 통일 이후 남북 학자 수십 명이 함께 모여 작업하면 빨리, 매우 값싸게, 훨씬 정확하게 만들 수 있다. 지금처럼 만날 때마다 북한에 15만 달러어치씩 주면서도 1년에 고작 4번도 만나지 못해 애쓸 필요도 없다. 

 

03-22 북한인권법이 죽여 버린 북한인권단체

▲2016 9월 서울 종로구의 한 빌딩에서 통일부 북한인권기록센터 개소식이 진행됐다. 북한인권법에 근거해 북한 인권 조사를 정부가 독점하면서 오랫동안 관련 조사를 했던 민간단체는 고사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아일보DB

 

2년 전 3월 북한인권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11년 가까이 여야가 옥신각신 싸운 끝에 가까스로 통과되긴 했지만, 법은 지금까지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법은 두 가지 핵심 이행사항을 담고 있다. 하나는 통일부에 북한 인권침해 사례들을 기록하는 북한인권기록센터를 설치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북한인권재단을 출범시키는 것이었다. 기록센터는 법안 통과 직후 통일부 산하에 만들어졌지만, 인권재단은 아직도 출범하지 못하고 있다. 여야가 재단 이사 5명씩을 추천하게 됐지만, 아직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사가 무슨 대단한 벼슬도 아닌데, 그걸 2년씩이나 방치하는 이유가 뭘까. 국회의 위선이다. 북한인권법은 선거 때 활용하는 소재였을 뿐이다. 법안이 통과돼 볼 장 다 봤으니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 스스로가 “북한인권법은 북한 인권 개선에 별 영향이 없다”고 생각해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도 북한인권법의 실효성엔 의문이 든다. 2012 6월 ‘누구를 위한 북한인권법인가’라는 칼럼을 통해 “미국과 일본에서도 떠들썩하게 북한인권법이 통과됐지만, 상징적 차원에 머물러 있을 뿐 실질적 변화는 가져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난 칼럼에서 북한인권법을 이왕 만들겠다면, 딴 건 몰라도 북한 인권 침해 기록 하나만은 성실히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이것만 제대로 해도 북한 당국의 인권 침해에 부담을 주고 가해자들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어 결과적으로 북한 인권 개선에 큰 영향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또 통일되면 이런 기록은 대한민국이 활용할 수 있는 강력한 정의의 무기가 된다. 


내 판단으론 북한인권법 통과 이전에 북한 인권 조사 및 기록을 그나마 제대로 해온 곳은 북한인권정보센터(NKDB)라는 민간단체뿐이다. 나는 6년 전 칼럼에서 “북한 인권침해 사례를 최초로 기록하기 시작한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정보센터의 연구원들은 9년째 박봉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며 엄청난 자료를 축적해 놓았다”고 높이 평가했다.


우여곡절 끝에 2016년 북한인권법이 통과된 뒤 나는 슬픈 광경을 보게 됐다. 북한인권법 통과의 최대 수혜자가 되길 바랐던 NKDB가 오히려 최대 피해자가 된 것이다

북한인권법으로 북한인권기록센터라는 산하 기관 하나를 더 갖게 된 통일부는 탈북자 조사를 독점하고 NKDB의 탈북자 면담 조사는 거의 막아버렸다. 15년 동안 사명감 하나로 버텼던 NKDB는 고사 위기에 내몰렸다. 현재 북한 인권 조사는 정부가 급히 공모해 뽑은 신입 조사원들이 맡고 있고,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NKDB 조사원들은 하나둘 센터를 떠나 새 일자리를 찾아 헤매게 됐다. 북한 인권 조사는 몇 년만 공백이 생겨도 나중에 메우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하나원을 졸업하고 전국에 흩어진 탈북자들을 다시 찾아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NKDB는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매년 ‘북한인권백서’를 발간해왔다. 그런데 통일부는 아직 백서조차 발급하지 않으니 얼마나 성실히 조사하는지도 알 수 없다

잘할 것이라 믿고 싶지만, 정작 눈에 보이는 건 그렇지 못한 사례들뿐이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만들어진 국정원개혁위원회는 탈북자동지회 지원금부터 잘라버렸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탈북자동지회를 만든 이후 역대 정부는 이 단체의 상징성 때문에 사무실 월세와 일부 인건비를 지원했다. 19년째 이어지던 지원은 현 정부 출범 한 달 만에 완전히 끊겼고, 탈북자동지회는 일개 민간단체로 전락해 유명무실하게 됐다. 정부는 평창 올림픽에 북한 인사들이 내려오자 태영호 전 공사 등 탈북 인사들을 ‘압박해’ 언론에 등장하지 못하게 했다. 통일부가 발간한 통일 교육 교재도 올해부터 북한 인권 관련 부분을 대폭 축소하고, ‘독재’ ‘세습’ ‘공개처형’ ‘정치범수용소’ 등의 단어와 설명이 모두 삭제됐다.

이런 정부가 북한 인권 기록만큼은 성실히 하고 있을까. 솔직히 신뢰가 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북한 인권 조사 기관이 남북대화에 나서는 통일부에 있는 것 자체가 문제다. 앞으로 북한은 북한인권기록센터를 없애라며 강경하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 과거 동독도 서독 정부가 운영하는 잘츠기터 중앙기록보존소의 폐지를 양국 관계 진전과 연계시켰다. 북한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서독은 끝내 버텼다. 하지만 통일부는 버틸 것 같지 않다. 그러니 남북대화가 본격화되기 전에 미리 북한 인권 업무를 법무부에 넘기는 게 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북한 인권 조사와 기록은 반드시 정부와 민간이 함께 해야 한다. 그래야 정부가 태만해도 민간이 커버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정부는 NKDB의 하나원 접근을 전면 허용해 주길 바란다. 

 

04-04 김정은도 감동했다는 평양의 환호

▲평양 동평양대극장에서 1일 진행된 한국 예술단의 공연 시작 전 무대 스크린에 홀로그램으로 쓴 ‘봄이 온다’란 제목이 뜨고 있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오늘밤 테레비에서 남조선 공연을 방영한대.

소문은 바람처럼 빨랐다. 어린 나도 어른들 따라 일찌감치 TV와 마주앉았다. 그때가 1985 9월이었다. 분단 이후 최초의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 교환방문 행사가 진행됐고, 북한은 이를 생중계했다

내가 본 첫 남쪽 예술이었다. 그러나 부푼 기대는 이내 바늘에 찔린 풍선처럼 피식 빠졌다. 예술인처럼 보이지 않는 노인들이 느릿느릿한 가야금에 맞춰 이상한 발성으로 목청을 뽑았다.

어머니는 전통 가야금과 판소리라고 말해주었다. 참고로 북한은 1960년대에 가야금을 기존 12현에서 21현으로 개량했고, 판소리는 음악계에서 퇴출시켰다.

난 공연을 보다 잠들었다. 그렇게 졸음을 부르는 음악은 처음이었다. 이후부터 “예술은 북쪽이 훨씬 앞섰다”란 당국의 선전을 확실히 믿었다. 내가 봤으니까.


그러다 1997년 겨울 평양행 열차에서 ‘홀로 아리랑’을 만났다. 당시는 전력난으로 기차가 수백 km를 가는 데 일주일씩 걸렸다. 사람들은 밤이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노래를 부르며 추위와 무료함을 달랬다. 어느 밤 객차 앞쪽에서 청년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노래와 창법이었다. 사람들은 연방 재청을 외쳤고, 나 역시 그랬다. 전율을 느낄 만큼 좋았다. 탈북해서야 그날 밤 청년이 부른 노래들이 한국 가요였고, 그중 하나가 홀로 아리랑이란 걸 알았다. 어둠에 얼굴을 숨겼던 그 청년은 노래를 참 잘했다. 그가 어디서 배웠는지는 알 수 없다. 초기에 탈북해 중국에 갔다 왔던 청년은 아니었을까. 

그로부터 20여 년이 흘렀고, 지금은 북한 사람들도 웬만한 한국 노래는 다 안다.

남북 간 예술 교류도 적잖았다. 가장 화려했던 공연은 2005 8월 조용필 평양 공연이 아니었나 싶다. 공연은 훌륭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홀로 아리랑’을 부르며 조용필은 “함께 불러요. 다 아시죠”라고 객석에 호소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객석의 7000여 평양 시민 중 이 노래를 모를 사람은 거의 없었겠지만, 누가 간 크게 호응한단 말인가. 

카메라에 비친 얼굴들은 썰렁한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눈물 가득한 눈은 감동으로 파르르 떨렸고, 입술은 따라 부르고 싶은 욕망을 참느라 오물거렸다. 급기야 마지막엔 몇 명이 조용히 따라 불렀다. 카메라에 잡힌 이들이 보위부에 끌려가지는 않을까 걱정됐다. 

예전엔 평양 가는 가수들에게 “당신이 들려주고 싶은 곡이 아니라, 탈북 예술인들과 상의해 그들이 듣고 싶은 곡을 선정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중에 이런 생각도 바뀌었다. 

가령 2002 9월 윤도현밴드가 평양에 갔을 때 “저 록(Rock) 버전 아리랑을 북에서 소화할 수 있을까” 우려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탈북한 평양 청년은 “처량한 줄로만 알았던 아리랑이 저렇게 신나는 노래가 될 수도 있구나 싶어 전율을 느꼈다”고 말했다. ‘너를 보내고’는 북한 국민가요가 돼 버렸다. 얼마 전 마이클 잭슨의 공연 영상을 몰래 보고 미치도록 황홀했다는 탈북 예술인도 만났다. 평양은 마이클 잭슨도 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평양 사람들도 친지끼리 모이면 남한 사람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잘 놀고 잘 춤춘다. 한민족 특유의 음주가무 DNA가 어딜 가겠는가

평양에서 공연한 이들은 객석의 무반응에 당황한다. 지금까진 부르르 떨리는 눈동자와 꾹 다문 입술이 평양에서 받을 수 있는 최대의 찬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 한국 예술단의 평양 공연을 보며 난 평양이 또 많이 바뀌었음을 느꼈다. 공연장의 평양 시민들은 김정은 앞에서 노래에 맞춰 손도 흔들고 소리도 질렀다. 김정은이 직접 “우리 인민들이 남측의 대중예술에 대한 이해를 깊이하고 진심으로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벅차고 감동을 금할 수 없었다”고 말할 정도면, 이건 대단한 파격이다. 다만 과거엔 이런 공연을 생중계하던 북한이 이번엔 중계를 하지 않았으니 말과 행동의 괴리는 크다. 한국 노래만 불러도 여전히 잡혀 갈 것이다.

그럼에도 13년 만에 재개된 평양 공연을 보며 새삼 느꼈다. 평양의 예술혼은 잠들지 않았고, 잠든 적도 없었고, 다만 억눌려 있었을 뿐이다. 평양의 얼어붙은 가슴들을 깨워주는 이 봄이 참 좋다!   

 

04-18 북한 동화 ‘황금덩이와 강낭떡’의 교훈

▲북한에서 출판된 동화 ‘황금덩이와 강낭떡’ 표지. 강낭떡을 쥐고 웃는 머슴에게 지주가 금덩이를 몽땅 주겠으니 떡 하나와 바꿔 먹자고 사정하는 장면이다. 사진 출처 우리민족학교 홈페이지

북한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김일성이 들려주었다는 ‘황금덩이와 강낭떡’ 동화를 배우며 자란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옛날 어느 마을에 대홍수가 나자 지주는 제일 소중한 황금덩어리들을 보자기에 싸 들쳐 메고 나무에 올라갔다. 그의 머슴은 강낭떡(옥수수떡)을 싼 보자기를 메고 옆 나무에 올라간다. 비는 며칠이고 그칠 줄 몰랐다. 점점 배가 고파진 지주는 머슴에게 황금 한 덩이와 강낭떡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머슴은 한마디로 거절한다. 날이 갈수록 지주가 주겠다는 황금덩이 수는 늘어가고, 마침내는 금을 몽땅 줄 테니 떡을 하나만 달라고 사정사정하지만, 머슴은 끝내 ‘난 금이 필요 없다’며 거절한다. 굶주린 지주는 결국 정신을 잃고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다. 홍수가 끝난 뒤 머슴은 지주가 남긴 황금을 차지하고 팔자를 고친다. 

이 동화를 통해 북한은 황금만능주의는 강낭떡 한 개보다 쓸데없는 욕심이라고 아이 때부터 세뇌하고 있다. 또 머슴보다 어리석은 지주와 자본가는 탐욕만 부리다가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요즘 한반도 정세가 돌아가는 것을 보니 어렸을 때 배웠던 이 동화가 불쑥 생각났다. 바로 지금 김정은이 먹지도 못할 황금덩이를 부둥켜안고 점점 정신이 혼미해가는 지주의 신세이기 때문이다. 

국력을 총동원해 핵과 미사일을 만들어 보따리에 싸 들었지만, 그것으로 배를 채울 수는 없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는 무서운 홍수처럼 언제 끝날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김정은은 황금덩이를 꺼내선 미국과 한국을 향해 떡을 바꿔 먹자고 손을 내민 형국이다. 


문제는 아직 북한이 동화 속 지주처럼 굶주려 정신이 혼미해진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김정은은 지난달 중국에 가서 “한미가 선의로 우리의 노력에 응해 평화 안정의 분위기를 조성해 평화 실현을 위한 단계적, 동시적인 조치를 한다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생각과 거리가 있다. 그의 속내는 “단계적 접근 방식을 택한 과거의 협상이 모두 실패했고, 북한이 시간을 버는 것을 허용하는 협상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선언하고, 최소한 먼저 핵시설을 불능화한 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수용하기를 기대할 것이다.

이렇게 북-미의 견해차가 많이 클 때 김정은이 떠올려야 할 것이 바로 ‘황금덩이와 강낭떡’이란 단순한 동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굶주린 사람에겐 먹을 것을 쥔 사람이 갑이다. 그래서 홍수가 나자 지주와 머슴의 갑을 관계가 바뀌었다

대북제재로 굶주려가는 북한은 이대로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아직까진 당당하게 ‘단계적, 동시적 조치’를 주장하고 있지만, 앞으로 점점 목소리에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김정은 역시 시간이 자기편이 아님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아직 기운이 있는 바로 지금 최대의 양보로 최대의 실리를 택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다. 가끔 억울한 생각이 들 때면 할아버지 김일성이 들려줬다는 이 동화를 떠올리면 좋겠다. 핵을 꼭 부둥켜안고 놓지 않으면 결국 목숨도 핵도 다 잃게 된다.

어른이 돼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김일성이 각색한 이 동화는 한편으로 매우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동화이기도 했다. 머슴은 갑이 되자 눈앞에서 지주란 사람이 굶어 죽어가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지주 자본가는 무조건 죽어야 한다는 북한식 계급 노선만 반영됐을 뿐, 생명존중 사상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이 동화의 한국판은 좀 다르다. 지주는 금을 몽땅 내어주고 머슴에게서 강낭떡 하나를 얻어먹을 수 있었다. 난 머슴이 남의 불행을 이용해 뜯어내는 데서 지주보다 더 영악한 기질을 보인 이 결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서로 떡을 나눠 먹고, 욕심 많던 지주도 뉘우치고 개과천선해 홍수가 끝난 뒤 둘이 사이좋게 지낸다’ 이렇게 바뀌면 훨씬 더 인간적인 동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현실성이야 제일 떨어지겠지만, 아이들을 교육하는 동화 아닌가. 동화가 아닌 현실에선 김정은과 트럼프의 만남은 어떤 마무리로 끝날지 참 궁금하다.

 

05-02 10년만 본 父, 50년을 보는 子

▲2010 10월 김일성광장 주석단에 오른 김정일(오른쪽)이 후계자 김정은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다음 해 12월 김정일은 사망했다. 동아일보DB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한 달 앞두고 북한 권력자가 탄 특별열차가 중국에 갔다. 집권 후 첫 중국 방문이었다. 그는 베이징에서 중국 수뇌부를 만나 대남정책 선회 배경을 설명했다. 남북관계 개선으로 살길을 찾겠노라 역설했으리라.

이것은 2000 5월 김정일의 중국 방문 이야기다. 한 달 뒤 평양에선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남북 정상이 포옹했고 획기적인 6·15 남북 공동성명도 발표됐다. 지난달 27일 판문점에서 봤던 것과 판박이다. 

그 이후의 역사는 모두가 안다. 북한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날 김정은의 파격도 아버지의 쇼와 다를 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난 18년 전 김정일과 지금의 김정은 처지는 전혀 다르다고 본다.

김정은이 3월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길을 빨리 걸었어야 했는데”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알고 보면 김정일도 18년 전에 ‘북한의 덩샤오핑’이 되려고 결심했다. 그때는 사람들이 굶어죽을 때라 절박함은 더 했을지도 모른다. 2001 1월 상하이에 간 김정일은 푸둥지구, 증권거래소, 제너럴모터스 자동차공장, 농업개발구역을 차례로 돌아봤다. 그의 입에선 “중국이 천지개벽을 했다”는 극찬이 나왔다.


귀국한 김정일은 ‘신사고’를 주문했고, 변화하는 현실에 맞게 경제관리방법을 개선하라고 지시했다. 이듬해 획기적인 경제개혁인 ‘7·1경제관리개선 조치’가 발표됐다. 두 달 뒤인 9월 중국계 네덜란드인 양빈을 초대 행정장관으로 한 신의주특구개발계획도 발표됐다. 특구에 입법 행정 사법권을 모두 다 준 개방에 가까운 결단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김정일의 ‘덩샤오핑 되기’는 딱 거기까지였다. 그는 더 나아가지 않고 얼마 뒤 주저앉았다. 중국이 국경에 마카오를 능가하는 거대한 도박 도시가 설 것을 우려해 양빈을 구속하자 김정일은 분노했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악의 축으로 낙인찍자 김정일은 좌절했다. 2004 4월 김정일 암살 시도로 보도된 평북 용천역 대규모 폭발 사고가 터지자 그는 도입했던 휴대전화 서비스를 다시 금지했다. 이때쯤부터 북한은 7·1개혁 조치의 동력을 잃었다. 2004 8월 부인 고용희마저 암으로 죽은 뒤부턴 김정일은 모든 의욕을 잃은 듯했다.

2006 1월 그의 세 번째 중국 방문은 이를 입증해준다. 그때도 김정일은 대표적인 개방 지역인 광둥성과 후베이성에서 전자 첨단산업 현장을 둘러봤다. 중국이 대규모 경제협력도 제안했지만 김정일은 5년 전과 달리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한 가닥 가졌던 개혁의 의지가 이미 그의 몸에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환갑을 넘겼을 때 김정일은 몸과 마음이 다 늙고 병들어 있었다. 그가 2008 8월 뇌중풍으로 쓰러진 뒤 건강이 악화된 것처럼 알려졌지만, 사실 그는 50세 이후부터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 아픈 사람은 만사가 귀찮은 법이다.

애초에 방향을 잘못 정한 북한이란 배가 이대로 가다간 경제난이란 빙산에 부딪쳐 가라앉을 수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그는 키를 돌리지 않았다. 모름지기 그는 “내가 죽을 때까진 빙산에 부딪치지 않을 것이고, 1020년만 버티면 된다”고 판단한 듯하다. 죽을 때까지 가진 것을 움켜쥐는 길을 선택했다. 지도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이기적인 선택이었다. 

그렇게 북한은 침몰이 예고된 방향으로 계속 나아갔다. 그리고 김정일은 북한이 붕괴되기 전에 죽었다. 

키를 넘겨받은 김정은은 아버지와 처지가 전혀 다르다. 그는 젊고, 자신만만하며 추진력도 있다. 무엇보다 최소한 50년쯤 더 선장을 해야 하는 처지다. 10세도 채 안 된 세 자녀의 미래까지 생각한다면 더 멀리 봐야 할 것이다.

지금 갑자기 키를 돌려도 빙산을 피할 수 있을지, 배가 통제력을 잃어 전복되진 않을지 등 각종 불안한 마음도 없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대로 가면 침몰할 수밖에 없고, 키를 돌려야만 살 확률이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바로 지금이 아니면 더 이상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10년만 본 김정일과 50년을 내다봐야 하는 김정은의 근본적 차이이다. 난 김정은이 이번엔 목숨을 걸고 필사적으로 방향을 바꿀 것이라고 믿는다. 김정은의 현명한 결단이 계속 이어지길 기대한다. 

 

05-16 북한 재건에 통찰력을 더하라

▲북한을 미래형 국가로 도약시키기 위해선 선택과 집중을 통한 지역 개발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 지도는 개인적으로 상상해 본 북한 권역별 스마트 메가시티 조성 구상이다.

요즘 남한 언론을 열심히 본다고 하니,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위시한 북한 지도부가 이 글도 자세히 읽어줬으면 좋겠다.


북한이 북-미 수교를 통해 정상국가로 나가면, 남한과 국제사회의 투자도 활발해질 것이다. 역사상 처음 오는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절대로 허겁지겁 지원을 받아오는 것에만 급급해선 아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지도자의 통찰력과 결단에 따라 똑같은 지원으로 몇 배의 효과를 만들 수도 있고, 물에 풀린 설탕처럼 지원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평소에 북한 개발과 관련해 생각했던 것 중 세 가지만 적어본다. 


첫째로, 12조의 효과가 나는 분야에 외부의 지원을 집중하길 바란다.

실례를 든다면, 남북관계 개선과 더불어 남쪽에선 한반도 통합 교통망 실현이 우선적 과제로 꼽히고 있다. 그런데 담당 부처인 국토교통부에서 지난해 만든 ‘한반도 통합철도망 마스터플랜’을 보면 비전문가인 나는 이해 불가다. 경의선 고속철도 건설 비용을 무려 245100억 원으로 계산했다. 노선 길이는 더 길고, 터널과 교량이 70%나 되는 경부선 고속철도(KTX) 건설에도 20조 원 정도 든 걸로 아는데, 평야가 대다수인 경의선이 더 비싸다. 

북한에선 총사업비의 3050% 정도인 토지 수용비도 필요 없고, 인력은 값싸고, 환경영향평가나 반대 시위와 같은 사회적 비용 지출도 없다. 중국의 고속철 km당 건설비를 단순 대입해도 10조 원 이상 나올 수 없다 

그럼에도 남쪽에서 24조 원을 투자해주겠다면, 북쪽은 여러 필수 사업을 철도 건설과 동시에 해결하면 된다. 가령 이왕 땅을 파는 김에 지하에 가스관과 전력선을 함께 묻게끔 설계하고, 그 위에 고속도로와 철도를 같이 건설할 수 있다. 13조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도로 밑에 전력선을 묻으면, 나중에 자동충전식 자율주행차 도로로도 쉽게 개조할 수 있다. 


둘째로, 대담하게 농경사회에서 벗어나 ‘스마트 메가시티’ 시대로 도약하길 바란다.

현재 북한의 농축산·어업 종사자는 약 440만 명. 가족까지 포함하면 농촌에 1000만 명 이상 묶여 있다. 그런데 1년 곡물 생산량은 500 t도 안 된다. 농가 인구 530만 명이 매년 곡물 4 t 이상을 생산하는 미국과 비교하면, 북한 농업은 비효율의 극치다. 북쪽은 농사에 적합한 지형도 아니다. 농촌을 버려야 북한이 산다.

강력한 인구 이동 통제 정책으로 북한의 도시화율은 남한의 1970년대 수준에도 한참 못 미친다. 남한의 현재 도시화율은 90%에 육박한다. 도시화 진행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북한도 빨리 도시화를 해야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재건비가 많이 드는 낡은 소도시와 농촌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스마트 메가시티’를 받아들여 도입해야 한다. 정보기술(IT) 강국인 남한은 이를 도울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 


북한은 인구 300만 명 규모의 권역 6개 정도만 집중 건설해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다.

동해엔 인구 수억 명의 중국 동북 지역을 배후로 한 청진-나진 권역, 자원 개발이 유망한 단천 권역, 일본을 겨냥한 함흥-원산 권역을 키우면 된다. 또 서해엔 남쪽과 협력하는 해주-개성 권역, 중국을 배후로 한 신의주 권역, 대규모 공단 조성이 가능한 평양-남포 권역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지역을 선택해 투자를 집중하면 막대한 개발비를 줄일 수 있다.

 

셋째로, 자존심을 버릴 땐 과감히 버려야 한다.

가령 현재 북한에 제일 시급한 것은 전력인데, 발전소를 새로 건설하려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든다. 반면 남쪽은 1년에 며칠을 제외하면 1000 kW 이상의 전기가 남아돈다. 200 kW로 버티는 북한이 흥청망청 쓰고도 남을 양이다. 남한도 전력 공급을 중단하면 북한이 순식간에 멈춰 서는, 일종의 대북 지렛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전력 공급에 인색하진 않을 것이다. 북한에 충분한 발전소를 지을 때까지 자세를 낮추며 남한과 사이좋게 지내면 북한 경제를 최대한 빨리 재건할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다. -미 수교에 자신이 있다면, 이제 경제 및 국토개발 계획도 제대로 상상하며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북한이 고속 성장의 기적을 쓰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05-30 김정은에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깜짝’ 남북 정상회담을 가진 뒤 밖으로 나오고 있다. 동아일보DB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한다는 편지를 보낸 날. 북한에 있는 사람들은 즉시 알 수가 없었지만 해외에 나와 있는 대사관, 주재원, 파견 근로자 사회엔 소식이 즉각 전달됐다.


해외에 체류 중인 한 북한 사람은 24일 밤 쓰린 가슴 달랠 길이 없었던지 내게 연락해 이렇게 하소연했다.

“정말 충격입니다. 어떻게 될까요. 너무나 예측 불가능한 대상들이니…. 제 주변에서도 깜짝 놀라 말로는 ‘쪼잔한 놈들’ 이러면서도, 모두 ‘정세가 또 긴장해져 많이 힘들겠구나’ 하며 걱정입니다. 저도 마음이 그냥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 북한 사람들은 정말 그냥 이렇게 살라는 운명인가요. 정말 허무합니다.

북한 사람 대다수가 이런 침통한 심정일 것이다. 

최근 행보를 보면 김정은도 자신에게 쏠린 2400만 북한 인민의 기대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김정은이 “미국의 요구를 도저히 받을 수 없어 다시 허리띠를 조여 매자”고 하면 인민은 그를 더 이상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허약한 권위의 마지막 한 꺼풀이 벗겨지는 것이다. 

 

지금 김정은에게 어떠한 양보를 해서도 북-미 수교를 이루라고 압박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닌 북한에서 나온다. 번영의 기회를 차버리는 순간 온순한 인민은 사라진다. 

 

태영호 전 공사는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인플레이션을 잡아 김정은의 후계구도를 공고히 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9년에 진행됐던 화폐개혁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대대적인 저항이 일어났다. 상점들이 문을 닫고 시장에서 상품이 없어졌다. 평양시 당 책임비서 김만길이 주민들 앞에서 사과하고 모든 상업 활동을 재개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주민들의 반발에 김정일은 크게 놀랐다. 북한 지도자의 한마디에 벌벌 기던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저항할 줄은 내다보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김정일은 한 달 만에 박남기 재정경제부장을 간첩으로 몰아 공개처형하고 주민들에게 사과해야 했다. 

 

부친의 인생 최대 수모와 실패를 후계자 신분으로 곁에서 지켜봤을 김정은은 “생계를 건드리면 무소불위의 독재자 아버지조차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김정은은 집권 후 시장 통제를 포기했다. 그 결과 북한 시장은 무섭게 커졌고, 그 나름대로 정교하게 분업화됐다. 

 

북한 시장의 표준 격인 통일시장은 의복류, 곡물류, 육류, 화장품류 등으로 품목별 판매 구획이 엄격히 나눠진다. 의복류 구획은 다시 양복, 남자 옷, 여자 옷, 어린이옷 등으로 세분됐다. 상인들은 구획별로 통일된 옷을 입고, 가슴엔 이름과 업종을 소개한 배지를 달고 있다. 한국의 마트 못지않은 체계를 갖춘 것이다. 시장 주변엔 상인에게 돈을 받고 고객을 끌어들여 먹고사는 일명 ‘몰이꾼’이 우글거린다.

 

북에는 시장이 500개가 넘고 100만 명 이상이 장사에 종사한다. 휴대전화 보급률이 가장 높은 집단이 상인들이다. 

 

시장은 체계적인 공급 시스템도 갖췄다. 가령 평양 사람들은 저렴한 옷을 사려면 서성구역 하당장마당을 찾아간다. 이곳에 ‘가대기’로 불리는 싼 옷을 공급하는 옷 생산자들은 인근 남포시 강서구역에 몰려 있다. 평양에 신발을 공급하는 최대 생산지는 평남 순천이다. 평양에 소비품을 공급하기 위해 지역별로 업종이 특화된 것이다. 

 

시장에서 돈을 번 ‘신흥 돈주’들은 국영상점을 사들이고, 소기업을 만들어 몸집을 키운다. 이렇게 번 돈으로 각종 공사에 ‘충성의 자금’을 내면 노력영웅 칭호까지 받는다.

 

김정은이 통치하는 인민은 바로 이런 ‘장마당 인민’이다. 한번 잘살아 본 이들은 다시 허리띠를 조이려 하지 않는다. 시장이 말라 죽는 순간, 김정은의 권위도 함께 죽는다.

 

앞에서 언급했던 해외 체류 근로자는 정상회담이 다시 열린다는 소식에 이렇게 전해왔다.

 

“모두들 깜짝 놀라 좋아합니다. ‘원수님 정말 외교력이 대단하시다’ ‘세계를 잡아 흔든다’고 하는데, 겉으로만 그러는 게 아니라 사실 대다수가 진심으로 김정은이 위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물을 먹은 이들이 이러하면, 북한 안에 사는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김정은에겐 인민의 칭송을 받을 밝은 희망이 열려 있다. 오직 다른 선택의 여지만이 없을 뿐이다.  

 

06-13 김정은, 이젠 진심을 보여주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1일 오후 9시 이후 숙소를 떠나 싱가포르 주요 관광지들을 깜짝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은 “싱가포르의 훌륭한 지식과 경험을 많이 배우려 한다”고 말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전했다. 사진 출처 조선중앙통신

 

싱가포르로 날아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보며 18세기 연암 박지원이 쓴 ‘허생전’을 떠올렸다. 외진 산골에 박혀 있던 허생은 굶주린 아내의 질책에 7년 만에 집을 나서더니, 서울 최고 부자에게서 1만 냥을 빌려 순식간에 100만 냥을 만들었다.


김정은도 집권 7년째에 문을 열고 나와, 전국을 휘젓고 다닌 허생처럼 남쪽에도 오고 중국에도 갔다. 시골 선비인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카메라 앞에서 보여준 행동거지, 임기응변은 외교 신인답지 않다. 

12일 세기의 북-미 정상회담으로 김정은이 판을 짠 외교 행보는 설계대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이 과정에서 김정은은 ‘운전자’가 되고 싶은 문재인 대통령을 적절한 시점에 두 번이나 활용했고, -미 ‘빅딜’에 불안감을 느끼는 중국 대륙의 황제도 두 번이나 찾아가 안심시켰다. 두 달 동안 네 차례의 숨 가쁜 정상회담을 연 끝에 드디어 세계 최강국 미국의 수뇌와 마주 앉는 데 성공했다

김정은은 원했던 합의문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함께 얻었다. 특히 이미지 세탁에 성공했다. 지난달 25일 김정은과 만난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이 한국에서도 아주 인기가 많다”고 말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4·27 남북 정상회담 전후로 대학생 19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김정은에 대한 긍정 이미지는 회담 전 4.7%에서 약 10배인 48.3%로 급증했다. 부정적 이미지는 87.7%에서 25.8%로 크게 감소했다.

싱가포르에서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김정은에 대한 세계인들의 부정적 이미지도 크게 희석됐을 것이다. 

뉴욕타임스도 6일 “수개월 사이 김정은은 핵에 미친 사람에서 숙련된 지도자로, 현대 외교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신을 달성했다”고 평가했다. 고모부와 이복형까지 죽인 살인적인 독재자이자 핵 미치광이라는 이미지를 각국 정상들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합리적 지도자의 이미지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김정은은 충분히 자신감을 가질 만하고, 뿌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자신이 왜 이 길을 떠났는지, 출발선에 선 심정으로 되돌아볼 때이다. 이번 결행의 목적이 이미지 세탁이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인정을 받기 위한 건 아닐 것이다. 가난한 북한과 자신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떠난 길일 것이다. 


김정은의 희망대로 북한을 발전시키려면 이제 외부 투자를 받아야 한다. 핵까지 내놓은 진짜 이유가 바로 이걸 위해서다. 하지만 남의 돈은 좋은 이미지만으론 절대 받을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자를 받으려면 성공에 대한 확신과 함께 나를 믿어도 된다고 투자자를 이해시켜야 한다. 특히 가진 것이 없을수록 투자자의 신뢰를 진실된 마음으로 얻어내야 한다. 

 

북한보다 더 가난했던 1960년대에 가난한 조국을 후대에 물려주지 않겠다는 집념으로 가득했던 한국의 40대 지도자가 바로 그랬다. 1963년 서독을 방문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총리를 만나 호소했다.  “

 

우리 국민 절반이 굶어 죽고 있다. 빌린 돈은 반드시 갚는다. 도와 달라. 우리 국민 전부가 실업자다. 라인강의 기적을 우리도 만들겠다.” 

 

이 말을 하며 박정희는 눈물을 흘렸고, 이 말을 옮기던 통역관도 함께 울었다.

 

진심은 통한다. 광복 후 최초의 차관(借款)을 주었던 서독은, 박정희와의 만남 이후엔 담보도 필요 없는 막대한 추가 지원으로 고속성장의 밑천을 마련해 주었다.

 

1960년대 한국의 구세주가 ‘라인강의 기적’을 이뤘던 서독이었다면 오늘날 북한의 구세주는 ‘한강의 기적’을 만든 동포의 땅 한국이 될 것이다. 남쪽의 많은 사람이 김정은의 이미지가 아닌 진심에 감동할수록, 한국은 큰 내부 갈등이 없이 북한 발전의 최대 후원자가 될 것이다. 

 

이제 박정희의 눈물을 김정은이 흘려야 하고, 박정희의 길을 김정은이 가야 한다

“김정은은 나라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 유능한 사람”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평가가 맞는다면, -미 회담의 다음 행보로 그가 한국 언론 앞에 나서길 바란다. 단독 회견이든, 기자회견이든 상관없다. 그 자리에서 남한 국민을 향해 이렇게 호소해야 한다.

 

“북한은 가난하다. 도와 달라. 한강의 기적을 우리도 만들겠다.

 

06-27 김정은, 아버지의 마지막 꿈을 기억하라

▲2011 8월 생애 마지막 해외 방문길에 오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러시아 아무르주를 시찰한 뒤 난간이 있는 경사판을 걸어 전용열차로 힘겹게 다시 오르고 있다. 동아일보DB

 

2011 8월 김정일은 뇌중풍(뇌졸중) 후유증으로 절뚝거리며 힘겹게 생애 마지막 해외 방문에 나섰다. 나흘 동안 열차로 3900km를 이동해 간 곳은 러시아 아무르주.


이곳에서 그는 서울 면적(6 ha) 3배가 넘는 빈 땅 20 ha를 임차해 농사를 짓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그는 그해 10월에도 아무르 주지사를 평양에 불러 임차 계획을 구체화했다. 그러나 김정일이 두 달도 안 돼 사망하면서 그의 마지막 꿈은 물 건너가는 듯했다. 

북한이 2013년 아무르주에 1000ha 규모의 작은 시범농장을 시작하고 이듬해까지 운영했다는 것까진 알려졌지만 이후 소식이 없다. 작황도 시원치 않았던 것 같고, 대북 제재로 대규모 인력 파견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은 북한의 식량 문제를 풀려고 농지 임차 계획을 세웠겠지만, 만약 이 구상이 지금 현실화됐다면 다른 시각에서 탁월한 선택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 세계 두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치르면서 대두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국이 50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제품에 25%의 수입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하자, 중국이 내달 6일부터 미국산 대두에 25%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중국은 미국산 대두 3300 t, 139억 달러어치를 수입했다. 문제는 미국산 대두에 관세를 부과하면 중국인의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돼지고기와 식용유 가격도 덩달아 오르게 된다. 

중국은 미국산 대두를 대체할 수입처를 찾지 못했다. 동북 지역을 활용해 내수로 대체하려 해도 경작지가 많지 않고, 시간도 꽤 걸린다. 하지만 러시아 극동(원동)의 광활한 땅은 중국의 대두 공급처로 적합하다. 

북한이 20 ha에 콩을 심었다면 최대 40만∼50 t을 생산했을 것이다. 러시아 극동의 1ha당 콩 생산량은 유기농 1t, 일반 콩은 최대 3t을 넘지 못한다.


극동에선 콩 보리 밀 귀리를 한 세트로 순환 재배를 한다. 이 작물들은 높이가 비슷해 한 콤바인으로 경작이 가능하다. 옥수수는 높이가 달라 콤바인을 새로 사야 한다. 극동에서 쓰는 농기계는 미국산이 많다. 한국 농기계는 작아서 광활한 극동의 농사엔 적합지 않다. 극동에 경작지가 늘면 미국 농기계도 대거 팔릴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자국 농가들에 직접적 피해가 될 러시아 극동 농지 개간을 반길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생산량 100 t 정도는 북한과 러시아만 결심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중국을 경계하는 러시아는 극동에 북한 외에 딱히 갖다 쓸 만한 노동력이 없다.

러시아산 곡물은 한국인과도 밀접히 연관될 수 있다. 2년 전 러시아는 유전자변형동식물(GMO) 금지법을 채택했다. 러시아산 곡물은 Non-GMO라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연간 1000 t GMO 곡물을 수입한다. 인구 1인당 쌀 소비량이 65kg인데, GMO 소비량은 45kg 세계 최대 수준이다. 한국에선 GMO 대두 100 t이 독성 물질인 헥산을 사용하는 유기용매 추출 방식으로 식용유 생산에 쓰인다.

GMO 유해성은 과학적 논쟁의 대표적 주제다. 한쪽에선 한국이 GMO를 수입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 이후 자폐증 대장암 발병률 세계 1, 유방암 치매 증가율 1위가 됐으며, 출산율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쪽에선 GMO 부작용이 전혀 근거가 없다고 한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모른다. 다만 북한에서 살다 온 나는 왜 같은 민족인데 남쪽엔 자폐증과 치매 환자 등이 너무 많은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북한은 GMO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고, 콩기름도 전통적 압착 기법으로 생산한다.

수입 GMO 곡물을 러시아산 Non-GMO 곡물로 대체하면 최소한 손해 볼 일은 없다. 깨끗한 공기와 더불어 안전한 먹을거리 역시 한국인의 사활적인 관심사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러시아 방문 때 농업 교류를 좀 더 중요하게 다뤘어야 했다. 이미 극동 지역엔 한국 농업인들이 진출해 10 ha 이상 경작하고 있다.

 

극동 농업은 노동력 때문에 북한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러시아는 김정은에게 9월 이전 자국을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다. 만약 간다면 농업 교류를 먼저 추진하길 바란다. 이는 강대국들의 사활적 이해관계에 북한이 뛰어들 수 있는 카드이기도 하다. 김정은이 아버지의 마지막 꿈을 기억하기 바란다.  

 

07-11 베트남은 북한의 롤모델이 아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현지 기업인 모임 참가자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을 향해 “‘베트남의 기적’을 따르라”고 촉구했다. 주베트남 미국대사관 제공

 

지난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빈손으로 평양에서 돌아온 것을 보며 미국이 북한을 깊이 ‘학습’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전리품에만 관심이 있지, 전 재산을 도박판에 올려놓은 북한의 심정을 깊이 고려하지 않고 있다.


북한으로선 종전협정을 맺고 핵 목록 신고를 하면 적어도 북-미 대표부 정도는 개설하고, 미국에 핵 검증을 맡기면 북-미 수교와 체제보장 선언 정도는 받아낼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반면 미국은 요구는 섬세하지만, 보상에 대해선 ‘일단 빨리 다 내놓으면 그 다음은 만사 오케이’라는 식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8일 베트남에서 한 발언이 대표적 사례다. 그는 “김정은이 기회를 잡는다면, 미국과의 정상적 외교 관계와 번영으로 가는 베트남의 길을 따라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 기회를 잡으면 베트남의 기적은 당신(김정은)의 기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언론은 ‘미국이 베트남의 기적을 북한의 롤모델로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베트남이 미군 유해 송환으로 신뢰를 쌓고 미국과 국교 수립을 했고 각종 제재를 푼 뒤 국제기구에 가입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전형적인 미국의 시각이다. 그러나 김정은의 시각에서도 보자. 베트남은 30년 넘게 개혁개방 정책을 펴고 있는 나라지만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은 2000달러 남짓(세계 130위권)이다. 과연 김정은의 눈에 베트남이 ‘번영의 기적을 쓰고 있는 롤모델’로 보일까. 

특히 베트남은 1979년 ‘신경제정책’을 발표한 뒤 1986년 ‘도이머이 정책’을 내놓기까지 4차례나 공산당 지도부가 바뀌었다. 보수파와 개혁파의 치열한 권력투쟁 끝에 전임 지도부에 실수와 능력 부족의 책임을 확실히 물은 뒤 개혁개방의 노선을 확정했다. 지도자가 실수할 수도 없고, 책임질 일도 없는 북한으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모델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에 베트남을 롤모델로 언급한 것은 그만큼 미국이 얼마나 북한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 또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중동에서 수없이 되풀이된 미국의 특정 국가에 대한 몰이해, 그로 인한 실패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북한에서 반복될까 봐 우려스럽다. 


차라리 미국이 26년 동안 집권하며 싱가포르의 번영을 이끈 리콴유의 길을 따르라 했다면 김정은은 더 솔깃했을 것이다. 리콴유는 장남인 리셴룽이 총리가 된 뒤에도 90세 가까이 ‘선임장관’이란 이름으로 나라를 실질적으로 통치했고, 죽은 뒤에도 ‘국부’로 추앙받고 있다. 싱가포르는 북한과 마찬가지로 강국에 둘러싸여 늘 안보 위협 속에 살아왔음에도 일당독재를 유지했고, 국가가 기업을 경영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성장에 성공했다. 김정은이 매력을 느낄 요소가 베트남에 비교할 바가 없이 많은 나라다. 


그 밖에도 김정은이 롤모델로 참고할 나라는 많다. 싱가포르처럼 가난한 어촌에서 세계적 도시로 성장한 중국의 ‘선전((,)) 모델’은 어떤가. 리콴유도 “선전의 미래는 곧 중국의 미래”라고 예언했다. 선전은 중국식 시장경제의 시험무대로 대성공을 거두었고, 중국 개혁개방의 기관차가 됐다. 북한에도 개성, 신의주, 나선처럼 선전의 역할을 할 도시들이 있다. 또 선전을 만든 덩샤오핑(鄧小平)이 모방했던 박정희식 개발모델도 있다. 

 

위의 사례들은 모두 세계에서 평가받는 모델들이지만, 다 과거일 뿐이다.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사는 김정은은 새로운 ‘김정은식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가령 김정은은 좁은 국토와 부족한 자원을 4차 산업혁명 인재 양성으로 극복해 가는 에스토니아 모델도 적극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2007년 앨빈 토플러는 “한국 학생들은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 않을 직업을 위해 매일 15시간씩 낭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11년이 지난 지금도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벗어날 힘도 없어 보인다. 북한이 4차 산업혁명 인재 양성 시스템을 제대로 갖춘다면 2030년 뒤 한반도의 주도권을 가질 수도 있다. 

 

김정은에게 보여줘야 할 미래는 베트남이 아니라 이런 것들이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북한 주민들을 위해 다른 미래를 볼 것이라는 진심을 보았다”고 했다. 그 진심을 나도 보았기에, 진심으로 이런 글을 쓰는 것이다. 

 

07-25 김정은도 덥고 답답하다

4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만찬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다.


“제가 오래전부터 이루지 못한 꿈이 있는데 바로 백두산과 개마고원을 트레킹하는 것입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 소원을 꼭 들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제가 퇴임하면 백두산과 개마고원 여행권 한 장을 보내주겠습니까.

그러자 김정은은 엉뚱한 답을 한다. 

“오늘 내가 걸어서 온 여기 판문점 분리선 구역의 비좁은 길을 온 겨레가 활보하며 쉽게 오갈 수 있는 대통로로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해 나가야 합니다.

왜 그랬을까. 내 생각엔 김정은이 ‘트레킹’이란 외래어를 알아듣지 못했을 것 같다. 북한에선 안 쓰는 단어다. 머릿속에 “개마고원에서 뭘 하고 싶다고?”라는 궁금증이 생기니 즉답을 못 했을 것이다. 만약 “개마고원을 걷고 싶다”고 했다면 김정은은 별것도 아니라며 흔쾌히 응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가을에 평양에 오시면 개마고원도 같이 갑시다”라고 역제안을 했을지도 모른다. 

김정은은 돌아가서 트레킹이 뭔지 찾아봤을 것이다. 이달 그의 삼지연 방문을 보며 그랬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김정은은 삼지연에서 관광구획 건설과 함께 예전과 달리 특별히 생태환경 보전을 강조했다. “산림을 파괴하는 현상이 나타나면 안 된다. 봇나무를 많이 심으라”고 구체적인 지시까지 했다. 어쩌면 김정은은 “남조선 대통령까지 백두산과 개마고원에 오고 싶어 한다니, 여길 원산 관광지와 엮어서 결합하면 좋은 관광 코스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개마고원은 트레킹, 산악자전거, 산악자동차 대회 등을 유치해 전 세계 관광객을 모을 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하지만 대북 제재가 풀려야 가능한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난 이후 김정은은 모두 세 차례의 현지 시찰을 했다. 간 곳들을 보면 콩밭에 가 있는 김정은의 마음이 읽힌다.

그가 지난달 말 찾은 신도군과 신의주는 북한의 1순위 특구 개발 예정지다. 그가 작은 모터보트를 타고 위태로운 선착장을 올라, 구두에 진흙을 묻히며 걸었던 곳에 황금평 경제특구가 있다. -중이 2011 6월 성대한 착공식까지 열었지만, 그뿐이었다. 하지만 대만 폭스콘이 최근 황금평에 400만 달러 투자 의사를 밝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 다른 방문지 삼지연은 백두산을 끼고 있어 향후 원산과 더불어 매우 중요한 관광자원이다. 

그가 일주일 전에 세 번째로 방문한 청진과 어랑은 모두 북한이 지정한 경제개발구다. 김정은은 유명한 주을온천과 염분진해수욕장의 호텔 건설장에도 들렀다

김정은이 시찰한 세 곳은 북한이 지정한 25곳의 경제특구 중에서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들이다. 김정은의 시찰은 현지 요해(파악)와 군기 잡기로 포장돼 있지만 실제 그는 “과연 여길 열어도 될지, 환경과 분위기는 어떨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봐야겠다”는 속셈이었을 것이라 본다. 

하지만 대북 제재가 유지되는 한 그의 구상은 이뤄질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협상 부진으로 화를 낸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사실 더 조급한 것은 김정은일 것이다. 미국인 인질도 보내고, 핵실험장과 미사일 발사장을 없애고, 미군 유골도 곧 보내기로 했지만 미국은 시원하게 해주는 것이 없다. 체제 안전 보장이나 제재 해제, 경제 지원 등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을 언제 얻을지 기약도 없다.

일각에선 미국이 북한의 시간 끌기 전술에 말렸다고 하지만, 반대로 김정은의 처지에서 생각하면 그가 시간을 끌어 얻을 이득이 무엇이란 말인가. 고작 시간이나 끌려 했다면 자신이 직접 한국과 중국, 싱가포르를 오가며 초대형 쇼를 벌일 필요까진 없었다.

정상회담 결과들을 북한 내부에 최근 몇 달간 선전한 이상 김정은도 인민에게 보여줄 실질적 성과가 시급하다. 지금 북-중 국경에서 밀거래가 다시 활발해진다고 하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돈줄인 광물·수산물 수출과 의류 임가공에 대한 제재를 풀지 못하면 북한은 오래 버티기 어렵다. 시간은 트럼프의 편도 아니지만 김정은의 편은 더욱 아니다. 

 

마음은 이미 제재를 푼 이후에 가 있지만 미국 말만 믿고 전 재산인 핵을 선뜻 내놓기 두려운 것이 김정은의 현재 심정 아닐까. 열대야로 푹푹 찌는 지금, 김정은은 평소 여름마다 애용하던 원산 별장에 머무르고 있을 것 같다. 어디에 있든 몸과 마음이 참 덥고 답답할 듯하다.  

 

08-08 평양의 ‘궤도택시’와 ‘무궤도택시’

김정은이 새로 만든 무궤도전차를 보며 크게 만족해하는 사진이 4일 북한 매체들에 실렸다. 김정은은 “대부분의 부품을 국산화하고 손색없이 잘 만들었다”고 치하하고 “인민들이 낡아빠진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며 불편을 느끼고 거리에는 택시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볼 때마다 늘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제는 전망이 보인다. 정말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를 보니 3년 전 김정은이 자체로 만들었다는 새 지하 전동차를 둘러보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도 그는 “수입병이라는 말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것을 실천으로 확증해줬다”며 흥분했다. 나중에 들으니, 중국에서 전동차를 수입하려 했는데 너무 비싸 김정은이 200만 달러를 줘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기관차도 만들었는데 전동차 하나 못 만들겠는가”라며 내리먹이는 지시에 몇 달 만에 급히 만들다 보니 주요 부품을 모두 중국에서 사 와서 조립한 것에 불과했다. 평양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3년이 지난 지금 북한제 전동차는 딱 한 개 편성만 뛴다고 한다. 부품 사올 돈이 없으니 그 이상 만들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3년 뒤 김정은이 이번엔 버스를 보고 똑같이 기뻐하고 있다 

사실 오늘 칼럼은 버스 부품 국산화율이나 따지려 쓰는 게 아니다. 김정은이 대중교통 문제의 해법을 새 버스에서 찾았다면 현실을 모르고 있다.

평양에서 가장 ‘자본주의화’된 곳 중의 하나가 바로 대중교통이다. 평양엔 표 받는 차장이 없는 버스도 많다. 북한에서 쌀 1kg이 약 5000원인데 버스비는 5원밖에 안 되니 차장이 없어도 차표를 잘 낼 수밖에 없다 

사실상 공짜 버스인데 버스 운전사들의 처지에서 보면 아무리 일해 봐야 남는 것이 없다. 그렇다고 배급을 제대로 주는 것도 아니고 월급도 있으나마나다.

결국 운전사들은 역이 아닌 곳에서 사람을 태워주거나 내려주고, 또 장사 물건을 옮겨주는 것으로 가외로 벌어 먹고산다. 평양 버스는 뒷문으로 탑승하는데 가다가 도로에서 손을 드는 사람을 앞문으로 태워주고 보통 1000원을 받는다. 이미 평양에는 교통보안원이나 단속대가 있는 곳을 피해 운전사와 시민들 사이에 무언의 약속이 이뤄진 노선별 탑승 장소도 다 정해져 있다. 1000원을 내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도 없고 언제든 시간 맞춰 타고 내릴 수 있어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막차 시간인 오후 11시 이후 버스는 ‘아무 곳에서 세우고 타는 초대형 택시’로 변한다.


평양 사람들은 이런 버스를 ‘무궤도택시’ 또는 ‘궤도택시’라고 부른다.

전기로 운행되지 않는 다른 노선버스는 출퇴근시간에만 다닌다. 나머지 시간에는 합법적 택시와 장사 물건 운반 버스가 된다. 이들의 명분은 이렇게 돈을 벌어야 출퇴근시간에 뛸 수 있는 연료와 부품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에서 줄 수 없는 것이라 통제도 못 한다. 

 

평양에는 국영버스 외에 대중교통 노선을 따라 달리며 돈을 버는 기업 외화벌이용 ‘벌이차’도 많다. 보통 북에서 ‘롱구방’이라 불리는 미니버스다.

벌이차는 정전이나 혼잡으로 대중교통이 마비되는 시간을 노려 사람을 태우고 다니는데 평양역에서 광복역까지 약 6km 5000원을 받는다. 그래도 기본료가 2달러(북한 돈 약 17000), 이후 1km 0.5달러씩 오르는 택시보단 훨씬 싸다. 특히 시내 변두리로 향하는 노선에 벌이버스가 많은데 서평양∼낙랑 노선의 부흥역 앞, 지체되기로 악명 높은 선교∼만경대 노선의 역전백화점 앞에 벌이차가 제일 많다. 이 밖에 통일거리엔 ‘통통이’라고 불리는 중국식 삼륜 전동차가 근거리 운송의 최강자로 부상했다. 

평양엔 시외버스터미널 역할을 하는 곳도 여러 군데다. 대표적으로 서성구역 ‘3대혁명전시관’ 앞 등에 가면 ‘몰이꾼’이라 불리는 호객꾼들이 저마다 자기 버스를 타고 가라고 사람들을 잡아끈다.

이렇게 평양의 교통체계는 자연발생적으로 시장화하고 있다. 

평양 대중교통의 공공성을 회복하려면 무엇보다 전기 문제와 국영 운전사에 대한 보상 현실화가 시급하다. 또 국영 교통체계를 보조하는 벌이차, 택시, 통통이도 더 많이 경쟁시켜야 한다. 버스는 중국에서 사와도 된다. 골동품 공장 몇 개를 겨우 가동하면서 아직도 제품을 국산화했느냐 안 했느냐를 따지고 있는 북한이 참 안쓰럽다.  

 

08-22 남한은 은행 피서, 북한은 ‘지하철 피서

올여름 한반도의 기록적 폭염이 가장 끔찍했을 사람들은 아마 북한 주민이 아닐까 싶다. 수치로는 남쪽이 더 더웠지만, 한국은 에어컨이 많아 대다수 사람이 직장과 집에서 헉헉대며 살지 않아도 됐다.


북한엔 에어컨을 쓸 수 있는 사람은 한 줌도 안 되고 선풍기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전기가 부족하다.

이 와중에 북한은 9 9일을 맞아 집단체조를 한다며 평양 시민과 학생 수만 명을 불러내 야외 훈련을 시키고 있다. 밖에 10분 서 있어도 땀이 뚝뚝 떨어지는 폭염에 확확 단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꼼짝 못 하고 강제로 몇 시간씩 훈련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나도 예전에 평양에서 겪었던 일이지만, 이 무더위에 그런 훈련은 정신 나간 짓이라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남쪽의 은행처럼 들어가 몸을 식힐 데도 없으니 노인들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다.

그나마 평양에서 누구나 몸을 식힐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지하철이다. 지하 100m 이상 파고 들어간 지하철은 에어컨이 없어도 시원한 느낌이 든다. 평양 시민에게 여름에는 무더위를 식혀주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몸을 덥혀 주는 곳이 바로 이 지하철이다. ‘소()보수날’로 지정된 매월 첫 일요일을 빼고는 항상 운행된다. 게다가 싸기까지 하다. 평양 지하철은 2012년부터 지하철 카드라는 것을 도입했는데, 카드 가격은 쌀 1kg을 살 수 있는 5000원이고 별도로 승차 요금을 충전한다. 하지만 운임이 5원에 불과해 1000원만 충전하면 200번을 탈 수 있다. 

평양 지하철은 2개 노선이며, 총길이 34km에 정차역은 16개이다. 아마 요즘도 평양 지하철역마다 무더위를 이기기 위해 들어와 머무는 사람들이 가득할 것이다. 다만 그런 사진은 공개되지 않는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외국인이 참관할 수 있는 역은 승리역이나 영광역, 개선역 정도로 제한돼 있고, 이런 역은 통제가 된다.


북한 사람은 지하철에서 동영상과 사진 촬영이 금지된다. 사진 찍다 걸리게 되면 사진기나 휴대전화를 빼앗기는 것은 물론 직장에 통보되고 보안 기관에 불려가는 등 각종 시끄러운 일을 당하게 된다. 아무리 외국인이 우대되고 자국민이 천시되는 북한이라지만 이 문제에 대해선 평양 사람들조차 불평이 크다.

근래엔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를 보는 사람이 늘었다. 하지만 지하철엔 통신망이 없어 전화를 할 수 없고 대다수가 미리 내려받은 도서를 보거나 게임을 한다.

 

지하철에 들어가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시간은 개장 시간인 오전 5 30분부터 오후 10 30분쯤까지이다. 평양 지하철은 입장 마감이 오후 9 30분인데 2년 전쯤 30분이 더 연장됐다. 

9 30분 정각에 평양 지하철을 관리하는 지하철도운영국 군인들이 입구를 막는다. 여단 규모의 이 부대는 평양에서 근무하니 권력자의 자식들이 모이는 ‘꿀보직’이며, 여군의 비율이 높아 ‘임신 사건’이 가장 많이 나오는 부대이기도 하다.

평양 지하철은 ‘누구도 뒤에 남겨두지 않는다(No one left behind)’는 미군의 신조를 떠올릴 만한 독특한 관습이 있다. ‘누구도 지하에 남겨두지 않는 것(No one left underground)’이다.

종점에서 막차는 오후 9 30분에 들어온 사람이 플랫폼에 올 때까지의 시간을 계산해 9 45분에 떠난다. 그리고 환승역인 전우역이나 전승역에 와서는 다른 노선에서 내린 사람들을 기다리느라 20분 이상 정차한다. 그래서 막차를 타면 집에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막차를 타면 단 8개 역을 가는 데 1시간 이상 걸리지만, 그래도 걸어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막차가 지나는 중간 역에선 10시가 넘어도 전철을 탈 수는 있다. 그 대신 9 30분 이후엔 군인들에게 담배 한 갑 정도는 찔러줘야 한다.

평양 지하철은 전쟁이 나면 평양 시민을 위한 ‘전시 대피호’로 사용하려고 땅속 깊이 뚫었다. 대피호로 쓰인 적은 없지만, 다행히 지금과 같은 무더위 속에선 시민을 위한 ‘폭염 대피소’로 제격이다. 북한 당국이 요즘 같을 때는 전철 운행 시간이 지나도 역사 안에서 무더위를 식힐 수 있게 개방 시간을 늘려주면 찬사를 받을 것이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은 시민과 아이들에게 더위를 먹게 하지 않는 것이다. 요즘 같은 살인 더위에 집단체조 훈련이 웬 말인가. 

 

09-19 “트럼프가 흠모하는 원수님” 만드는 법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처음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동아일보 DB

 

지난달 22일 칼럼에서 북한 평양 시민 수만 명을 무더위 속에서 집단체조 훈련에 내모는 것을 비판했다. 칼럼이 나간 지 3일 뒤인 25일 오후 10시 김정은이 극비리에 몰래 집단체조 시연회에 나타났다. 워낙 비공개로 다녀가 집단체조 참가자들도 그날 왜 오전 3시까지 훈련해야 했는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그가 다녀간 뒤 집단체조 내용이 대폭 수정됐다.


이번 공연엔 예전과 달리 ‘중국장’이라고 불리는 한 개 장이 특별히 추가됐다. 이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겨냥한 서비스였을 것이다. 8 25일만 해도 김정은은 시 주석의 9 9일 방북을 확신했던 것 같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틀 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을 전격 취소하며 중국 책임론을 거론하자 시 주석의 방중은 무산됐다. 결국 리잔수(栗戰書)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9일 공연을 대신 봤다.

김정은은 매우 아쉬울 것 같다. 김정은이 올해 3월부터 6월까지 세 차례나 중국을 찾아가자 북한 엘리트층에선 ‘굴욕적’이란 여론이 돌았다. 그래서 김정은은 이번엔 시 주석을 어떻게든 데려와야 체면이 선다고 타산했을 것이다.

 

김정은이 북-미 싱가포르 회담 이후 5년 전 중단된 집단체조 공연을 다시 시작하라고 지시한 것은 올해 중에 한미중 정상을 모두 평양에 불러올 수 있다고 봤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에서 이들 정상에게 집단체조만큼 확실히 자신 있게 보여줄 상품은 없다. 공연이란 장르를 통해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상대의 정신까지 쏙 빼놓을 수 있다.  

싱가포르 회담 뒤 김정은은 미국 중간선거 전에 트럼프 대통령을 평양 시민 수만 명의 떠나갈 듯한 환호 앞에 세울 계획을 세웠던 것 같다. 비록 지난 몇 달 새 일이 좀 꼬였지만 만약 그 시나리오가 현실화됐다고 하면 시각적 메시지를 너무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며 트위터를 통해 얼마나 두고두고 자랑할 것인가 

 

김정은은 외교 성과뿐만 아니라 확실한 내부 선전 소재도 만들 수 있다.

지금 북한은 초급 당 비서 이상 당 간부들과 2급 이상 행정기관 책임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간부학습반 강연회에서 이런 선전을 하고 있다.

 

“트럼프는 푸틴이나 시진핑과 만나서도 강력한 악력으로 상대의 손을 잡아당긴 뒤 그 사진을 내돌리며 자신이 세다고 시위하는 ‘악수 외교’의 선수다. 하지만 이번엔 (김정은) 원수님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존경의 뜻을 표했다.”

“원수님을 얼마나 흠모했던지 절대 비밀인 대통령 전용차 내부까지 다 보여주고 타보라고 권하기까지 했다. 초대국의 대통령도 이렇게 존경하는 분이 우리 원수님이다.

“트럼프는 원수님보다 두 배 넘는 거리를 달려왔다. 너무 떨려 방에 박혀 회담 준비에만 몰두했지만 원수님은 하루 늦게 도착하고도 여유 있게 시내 관광까지 했다.

중앙당 강사들은 슬쩍 “동무들한테만 해주는 말인데…”라며 강연 자료에도 없는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회담 때 트럼프가 원수님에게 핵무기가 몇 개 있냐고 물었다. 원수님이 수령님 대에 수백 개, 장군님 대에 수백 개, 내가 만든 것까지 하면 1000개 정도 있다고 대답하자 그는 너무 놀라 입을 딱 벌리고 핵 폐기가 아니라 서로 공존하는 방향으로 회담 의제를 돌렸다. 

북한은 공식 강연에서 차마 낯 뜨거워 하기 힘든 얘기는 추가로 소문을 만들어 퍼뜨린다. 

 

“트럼프는 비록 군수독점 재벌의 대변인에 불과하지만 오래전부터 원수님을 매우 존경했고, 꼭 만나보고 싶어 했다. 원수님을 가장 흠모하는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됐다.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에 능통한 원수님은 트럼프와 40분 넘게 영어로 단독 회담을 했다.”

싱가포르에서 몇 시간 만나고 이 정도니, 미중 정상이 평양에 가면 어떤 위대한 김정은을 만들어 낼까. 전 세계 강대국 지도자들이 앞다퉈 장군님을 흠모해 달려온다고 선전할 게 뻔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도 당연히 좋은 선전 소재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평양에 가지 말랄 수도 없고, 북한 보고 사기 치지 말랄 수도 없고…. 씁쓸하다. 북한은 저렇게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까지 때는데…. 그 대신 우리는 실리라도 확실히 챙겼으면 좋겠다.  

 

10-10 평양을 강타한 인도 열풍의 비밀 

▲올해 북한에서 엄청난 인기를 모았던 인도 영화 ‘바후발리’의 포스터. 2015년과 2017 1, 2부가 제작된 이 영화는 왕위 찬탈 과정을 다루고 있다. 동아일보DB

 

북한에서 한류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올해 평양 여성들은 인도 영화 ‘바후발리’의 남주인공 프라바스에게 푹 빠져버렸다. 남자들은 영화의 여주인공인 타만타 바티아와 아누슈카 셰티에게 열광한다. 올해는 한류가 아니라 인도 열풍이 평양을 강타한 해였다.

 

바후발리는 올해 1월 1일부터 평양 시내 ‘정보봉사소’들에서 일제히 판매됐다. CD 2장에 북한 돈 1만5000원(약 1.8달러). 고가임에도 처음 발매한 수만 장이 순식간에 다 팔려 다음 날 구할 수 없게 됐다. 그리고 10월인 지금까지 평양 사람들은 유치원에 다니는 애들까지도 그 영화를 보고 또 본다. 

 

영화를 직접 보니 남녀 주인공이 미남, 미녀인 점도 이유가 됐겠지만 북한에선 상상할 수 없었던 영화의 화려한 영상미와 액션, 촬영기술 등이 열풍의 근원이라 생각된다. 평양에 가면 이 영화에 노래가 열몇 개 나오고, 춤 동작은 어떻고 하며 전부 외우고 있는 젊은이도 많다. 휴일에 모란봉에 가면 인도식 춤을 추는 남녀도 꽤 볼 수 있다. 

 

영화는 형제끼리 왕위를 찬탈하는 과정을 그렸는데, 김정남 암살 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라 영화 내용을 놓고 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5월부터 일요일마다 두 개 부씩 방영된 중국 드라마 ‘붉은 수수밭’(60부)도 인기가 많았다. 북-중 관계가 경색됐을 때는 중국 드라마를 보는 것도 처벌 대상이었는데, 김정은 방중 이후인 4월 ‘모안영’이란 영화가 방영된 것을 계기로 중국 드라마가 조금씩 방영된다. 몇 달 전 ‘불순물’인 중국 드라마를 봤다고 평양에서 추방된 사람들은 너무 억울할 듯싶다. 그럼에도 ‘불순’ 녹화물이나 출판물에 대한 통제가 훨씬 강화돼 지금도 여전히 걸리면 무조건 노동교화형이고, 평양은 가족이 지방으로 추방된다. 그래서 평양 사람들은 이젠 한국 드라마는 거의 보지 않는다. 그 대신 북한은 인도 영화나 중국 드라마의 사례처럼 선택적으로 높게 세웠던 문화적 방화벽을 차츰 낮추고 있다.

 

여기서 가장 주목할 점은 TV에서 새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방영하기 전에 일단 국영 ‘목란비데오사’에서 제작한 CD부터 시중에 판매된다는 것이다. 새 중국 드라마의 경우 8개 부가 담긴 DVD가 북한 돈 8000원(약 1달러)에 팔린다. 또 휴대전화 게임이나 프로그램을 넣어주고 사진 인쇄, 일반 인쇄, ‘왁찐’(백신) 봉사 등을 하는 정보봉사소에서 돈을 받고 휴대전화에 드라마를 넣어준다. 드라마 1부 또는 중국 소설 1권당 보통 북한 돈 800원이다. 인증 번호를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파일을 주고받을 순 없다.

 

판매 이익금은 당국과 정보봉사소가 7 대 3의 비율로 나누어 가진다. 즉, 드라마 1개 부를 팔면 봉사소가 240원을 갖고, 나머지 560원은 상부에 바친다.

 

정보봉사소는 평양에 약 100개가 있는데 소속이 노동당 39호실이다. 39호실은 김정은 비자금 관리를 비롯해 노동당 자금을 관리하는 곳이다. 쉽게 말하면 노동당이 외국 드라마 장사를 시작한 셈이다. 

 

불순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권한도 노동당에 있다. 바후발리도 몰래 보다가 잡히면 불순 영화를 봤다는 죄명으로 교화소에 갔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당이 판매한 이상 더 이상 불순 영화가 아니다. 

 

8월 20일부터 평양에서 ‘산과의사’라는 중국 소설이 판매되기 시작했다. 찾아보니 아닌 게 아니라 중국에 산과의사라는 의학 드라마도 있었다. 그럼 다음 수순은 뻔하다. 평양에서 곧 그 드라마 CD도 판매될 것이다. 그러고 나서 TV로 방영될 것이다.

 

산과의사는 중국의 어느 성급 대학부속병원 산과의사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점은 이 드라마 주인공들이 삼성 휴대전화를 무척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삼성 로고를 어떻게 처리할지도 궁금하다.

 

노동당이 대북 제재로 말라가는 돈줄을 보충할 기막힌 방법을 찾아낸 것인데 기를 쓰고 통제하던 외부 드라마를 들여다가 돈을 버는 아이디어는 나도 상상하지 못했다. 중국만 해도 매년 수백 편의 드라마가 만들어지니 이걸 들여다가 자막을 입혀 팔면 마를 줄 모르는 돈줄이 될 것이다.

 

이왕 재미를 본 김에 한국 역사물 드라마나 영화 장사도 한번 해보면 어떨까. 중국 드라마보다 10배 비싸게 불러도 엄청나게 잘 팔릴 것 같다.

 

10-24 서울보다 더 비싼 평양의 전기세

▲올해 3월 말 북한 평양 시내 고려호텔 앞 창광거리 야경. 가로등조차 켜지 못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전력 사정이 많이 나아진 모습이다. 동아일보DB

 

많은 사람이 북한에 전기세가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전기사용료라고 불리는 전기세가 있는 것은 물론,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드는 누진세까지 존재한다. 국정전기를 다 쓰고 나면 시민들이 ‘야매전기’라고 부르는 누진세 구간에 돌입하는데, 200kW까지는 kW당 북한돈 500원, 200kW를 초과하면 1000원을 내야 한다. 한국은 1단계는 300kW까지 93.3원, 300∼500kW 사이 2단계는 187.9원, 500kW 이상은 280.6원을 낸다. 3단계 요금이 1단계의 3배 정도인데, 북한은 3단계 요금이 1단계의 29배나 되는 것이다. 

 

  한국은 300kW를 사용하면 2만7790원을 낸다. 북한은 300kW에 북한돈 17만6700원을 낸다. 이를 북한의 달러 환율 8300원으로 계산하면 21.3달러 정도 되는데, 한국 환율 1130원을 대입할 경우 한화 2만4000원 정도 된다. 전기세가 한국과 별 차이가 없다. 올해 7, 8월 한국전력의 한시적 누진제 완화 조치로 가구당 평균 19.5%의 전기요금이 절약됐음을 고려하면, 올해 평양의 전기세는 경우에 따라 한국보다 더 비쌌다. 한국은행 추산 2016년 북한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146만 원으로, 남한의 2016년 1인당 GNI 3212만 원의 22분의 1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의 전기세가 얼마나 높은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대부분 평양 시민들은 고액 전기세를 내도 좋으니 전기만 계속 들어오면 좋겠다고 말한다고 한다.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은 평양 가정에 에어컨 장만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갖게 했다. 당국도 올해 개인주택 에어컨 사용 금지령을 전격 해제했다. 북한에선 원래 김정은이 하사한 이른바 ‘선물주택’ 외엔 개인 집에 에어컨을 놓는 것이 허가되지 않았다. 은하수악단이나 국립연극단 등 예술인 아파트나 평양시 중심부 봉화역 옆의 ‘선물아파트’ 등이 대표적인데, 이런 아파트는 에어컨이 설치돼 있다. 게다가 선물주택은 kW당 35원인 ‘국정전기’를 한 달에 300kW까지 공급해 주기 때문에 전기세 걱정이 크게 없다. 다른 일반 주택은 국정전기를 월 50kW까지만 쓸 수 있다. 그 이상 사용하면 전기세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북한은 누진제를 지난해 말 전격 도입하면서 제대로 고지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평소처럼 생각하고 겨울에 전기담요를 켜놓고 살던 가정들이 봄에 수십만 원, 심지어 100만 원 가까운 ‘전기세 폭탄’을 맞은 사례가 속출했다. 한국 같으면 촛불시위라도 일어날 상황이지만, 저기는 평양이니까 억울해도 방법이 없다. 전기세가 끔찍하게 높아졌지만, 올해 평양에선 에어컨이 없어서 팔지 못했다. 중국에서 밀수한 수백 위안 정도의 싸구려 에어컨도 500달러 이상에 팔렸다.

 

평양이 에어컨 사용을 허가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올해 전기 사정이 많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가정보원 격인 북한 보위성은 지난해 중국에서 각각 20만 kW 능력의 화력 발전설비 2대를 밀수해 들여갔다고 한다. 서해를 통해 배로 들여갔는데, 제재를 피하려고 군사작전 같은 극비 운송이 이뤄졌다고 전해진다.

 

1대는 올해 초 평양화력발전소에 설치했는데, 여기에서 현재 19만 kW가 생산된다고 한다. 기존 북한의 실제 전력생산량이 130만 kW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발전설비 1대를 설치해 15% 정도의 전력 증산이 이뤄진 셈이다. 나머지 1대 설치도 조만간 마무리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생산된 전기는 평양에 공급되지만, 연쇄적으로 지방의 전력 사정까지 많이 좋아졌다.

 

북한은 평양시내 ‘숫자식 적산전력계’ 설치도 올해 완료했다. 적산전력계 설치는 10년 전부터 추진됐지만 많은 시민이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는 데다 공짜도 아니고 30달러씩 내야 설치해 주기 때문에 응하지 않고 있었다. 올해는 각종 불이익을 준다는 역대 최강의 ‘협박’이 이뤄지면서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황당한 사실은 서울보다 더 비싼 전기세를 받고 있고, 그 밖에도 각종 명목의 사용료가 존재하는 북한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세금이 없는 나라’라고 외부에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4월 1일은 ‘세금 제도 폐지의 날’이라는 북한 기념일이다. 

 

11.07 목숨 내걸어야 하는 평양∼개성 철도 

▲북한의 한 지방 기차역 모습. 일정한 간격으로 촘촘히 설치돼 있어야 하는 철로 침목이 듬성듬성하게 놓여 있다. 동아일보DB

 

해마다 6, 7월이면 황해도에서 ‘보리수송 전투’가 벌어진다. 이 보리는 유명한 대동강맥주의 주원료이고 황해남도 강령과 옹진에서 생산된다. 수송량이 많아 열차가 투입되곤 한다.

 

평양∼사리원∼해주∼개성을 연결하는 철도는 평소엔 기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다. 침목도 빠진 곳이 너무 많아 시속 20km 이상 달리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언제 탈선해 목숨을 잃을지 몰라 기관사들이 온몸에 식은땀을 흘린다.

 

평양 이남 철도 수준은 일제가 용산∼신의주 철도(경의선)를 개통했던 1906년 이전으로 돌아가 있다. 사정이 이런데 이달 말에 남북 철도 연결 착공식을 한다니, 이는 이벤트 이상의 의미를 지니긴 어렵다. 평양∼개성 철도는 아예 새로 깔아야 할 판이니 한반도 횡단 열차의 꿈은 언제 실현될지 요원하다.

 

그나마 북한에서 지금 쓸 만한 선로는 일제가 건설한 평양∼신의주, 평양∼나진 노선이다. 북한이 광복 후 70년 넘게 건설해 온 노선은 쓸 만한 것이 남아 있지 않다. 철로는 평양∼나진 구간이 평양∼신의주 구간보다 더 좋다고 한다. 김정은이 하룻밤 새 함경북도에서 평양까지 옮겨 가는 일이 빈번한 것을 보니 이 구간은 시속 80km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도 평양∼나진 구간에서 일반 열차들은 평소 시속 40km를 넘기기 힘든데, 그 이유는 기관차 때문이다. 북한은 전기기관차를 자체로 생산하는데, 전동기 개수에 따라 4축, 6축, 8축 기관차로 나눈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기관차들은 전동기 한 개를 돌리며 다니기 일쑤였는데, 전동기가 고개를 넘다 고장 나면 수백 명씩 사망하는 대형 참사로 연결됐다. 지금은 그때보다는 사정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전동기 4개 이상 가동하는 기관차는 거의 없다고 한다.  

 

평양∼나진 노선에서 마의 구간은 평안남도와 함경남도를 나누는 북대봉산맥과 함경남도와 함경북도를 나누는 마천령산맥이다. 북대봉산맥을 넘어가기 전에 열차는 평남의 전역인 양덕역, 또는 함남의 전역인 거차역에서 멈춰 서서 하루 이틀 지체하곤 했다. 이를 북한 사람들은 거차대기 또는 양덕대기라고 한다. 이 산맥은 기관차 2대가 앞뒤에서 끌고 밀어야 통과하는데, 이를 북에선 ‘복기’ 운행이라고 한다. 북한에서 열차 우선 통과 순위는 여객열차보다 화력발전소로 향하는 석탄열차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양덕에 도착하면 빨리 영(嶺)을 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어야 한다.

 

마천령에서도 일명 ‘여해진대기’를 거치다 보면 평양에서 나진까지 2, 3일 안에만 도착해도 만세를 외친다. 

 

그런데 2015년 평양∼청진, 평양∼신의주, 평양∼원산 구간에 ‘써비열차’가 도입됐다. 북한에서 써비차란 돈벌이를 위해 운영되는 차를 말하는데, 공공영역인 철도에도 돈을 벌기 위한 열차가 도입된 것이다. 평양에서 청진까지 써비열차 운임 요금은 국정 가격의 100배 정도인 13만 원(한화 약 1만7000원)을 받았다. 일주일에 보통 한 대 편성되는 이 열차를 타면 평양에서 청진까지 하루 안에 도착했다. 평양∼신의주 구간은 써비열차가 매일 운행했다. 써비열차는 철도성이 전기기관차가 아니라 내연기관차를 도입했기에 가능했다. 철도성은 기름값과 정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싼 값을 받는다고 했다. 차표 값이 국정 가격의 100배라 해도 최단 시간 내에 운행되니 주민들의 만족도는 크게 높아졌다.

 

재미를 본 철도성은 최근 철도관광회사를 만들어 중국에서 수입한 침대차를 평양∼청진 구간부터 운행할 계획을 중앙에 올렸는데 아직 승인은 떨어지지 않았다. 현재 평양∼신의주 사이 침대열차 운임 요금이 35달러인 점을 고려할 때, 평양∼청진 침대열차는 그 두 배는 될 것이다. 겉은 사회주의인데, 이제는 기차여행조차 지불한 달러 액수에 비례해 더 빠르거나 더 편안하게 되는 셈이다.

 

북한은 기관차뿐만 아니라 레일과 침목 문제도 심각하다. 김정은 집권 이후부터 중량레일 생산을 국책과제로 정했지만, 코크스 수입 제재 때문에 성공 못 하고 있다. 중량레일은 1m에 50kg 이상인 레일을 말하는데, 북한이 자랑하는 무연탄 기반의 ‘주체철’로는 절대 중량레일을 만들 수가 없다. 부식을 막기 위한 기름 등이 부족해 침목도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문제인데, 남북회담에 나선 북한 철도 담당자들이 남쪽에 무엇부터 요구할지가 궁금하다.

 

11-21 국영은행 눌러버린 북한 개인은행들 

▲공공 금융이 사실상 마비된 북한에서 ‘이관집’이라고 불리는 개인 은행이 번창해 북한돈은 물론 외화 송금까지 대행해주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 사진은 북한의 지폐들. 동아일보DB

 

북한 시장경제의 진화를 보면 놀라운 일들이 정말 많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감탄스러운 것은 ‘개인은행’의 진화다. 북한도 사람이 사는 곳이니 돈이 유통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이 돈을 전달하는 곳은 은행이 아닌 ‘이관집’이라고 불리는 송금 전문 개인은행이다.

 

가령 내가 지방에 갔다가 갑자기 평양에 돈을 보낼 일이 생긴다면 은행을 찾지 말고 주변에 ‘이관집’이 어디냐고 수소문해야 한다. 이관집에는 전화를 할 수도 있고, 직접 찾아갈 수도 있다. 전화로 하면 어디에서 보자고 연락이 온다. 직접 찾아가도 집에 절대 들여놓지 않는다. 대문 앞에서 현금을 확인한 뒤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하고 집 안으로 사라진다.

 

조금 있다가 주인이 나타나 “이송이 끝났으니 그 돈을 어디 가서 찾으라”며 평양의 전화번호를 넘겨준다. 그러면 나는 그 돈을 받아야 할 평양 사람에게 그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그러면 그 사람이 해당 전화번호로 연락해 돈을 찾는다. 빠르면 몇 시간 내로 송금 절차가 끝난다. 

 

요즘 북한에서 공식 이관비는 1% 정도다. 100만 원을 보내면 1만 원을 수수료로 떼는 셈인데, 북한처럼 신용이 바닥인 사회에서 송금 수수료가 이 정도로 낮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1.5%로 뛰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이관집으로 보내면 사기당할 일이 거의 없다. 큰돈을 들고 며칠씩 오가는 기차를 탔다간 소매치기 당할 가능성이 높다. 돈을 갖고 이동할 수 있는 사람도 이관집을 통해 목적지로 먼저 돈을 부치기도 하는 이유다.  

 

물론 북한 주민들이 유일하게 알고 있고, 또 이용할 수 있는 조선중앙은행에도 송금 서비스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를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돈 찾으러 가면 “아직 돈이 없으니 기다리라”는 말만 하는데, ‘써비’라고 불리는 뇌물을 주지 않으면 제풀에 지치기 십상이다. 뇌물을 주며 은행을 이용할 바에는 이관집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정확하다.   

 

이관집은 한국의 은행처럼 전산망을 통해 돈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고정 거래하는 평양의 상대 이관집에게 “얼마를 받았으니 얼마를 전해 달라”고 전화로 말하면 끝이다. 평양 이관집은 또 지방에 돈을 보내야 할 때 같은 방식을 쓴다. 이렇게 돈이 오가다 한쪽으로 너무 몰리면 자기들끼리 네트워크를 사용해 돈을 적절히 분배한다.

 

이관집은 장마당 경제의 발달과 함께 2000년대 초반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열차를 타고 출장을 다니는 사람이나 열차원, 자동차 운전사 등이 돈을 날라 주었다. 그러나 사람이 운반하는 방식은 아무래도 사고가 잦을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지역 간 송금을 담당하는 이관집이 등장한 것이다.

 

이런 이관집은 신용이 중요하기 때문에 주로 가족 단위로 운영되고 있다. 평양에 사는 언니와 원산에 사는 동생이, 또는 개성에 사는 딸과 신의주에 있는 친정 부모가 서로 연계를 가지는 방식이다. 지방의 이관집 중에는 특정 지역 구간에 전문으로 특화돼 한꺼번에 거액을 보낼 수 있는 곳도 적지 않다.

 

현재 북한에선 미국 달러나 중국 위안화가 북한 화폐 못지않게 사용되기 때문에 외화를 다루지 않는 이관집은 거의 없다. 시장경제의 진화와 함께 이관집의 몸집도 점점 커지고 있는데, 수백만 달러씩 주무르는 이관집도 적지 않다.

 

이렇게 큰돈을 다루려면 권력과 공생이 필수다. 권력이 뒤를 봐주지 않는다면 ‘비사회주의 현상’과의 투쟁을 내건 각종 검열을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 북한의 이관집들을 보면 노동당, 사법기관 간부의 가족이 대다수이다. 간혹 무역 기관 일꾼이 이관집을 하기도 한다.

 

이관집이 없어진다면 북한 장마당은 당장 마비된다. 이관집은 시장경제의 혈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북한 당국도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다. 외화까지 신속 정확하게 전달하며, 신용과 비밀을 보장해 주는 이관집과의 경쟁에서 국영은행이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즘 몸집을 키운 이관집들은 대부업까지 진출하고 있다. 북한에서 월 이자는 5∼10%에 이른다. 돈을 빌려주면서 사람이나 부동산 담보를 받는 개념도 이관집이 처음 도입했다. 북한의 개인금융이 앞으로 얼마나 더 비대해질지, 국영은행이 개인금융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12-05 뜻이 있는 곳에 철길이 있다 

▲북한에서 운행되고 있는 증기기관차. 북한은 전시 예비용으로 이런 증기기관차들을 보관해두고 있다. 동아일보DB

 

2016년 5월 북한 노동당 7차 대회 도중 평양 철도국장과 정치부장이 체포돼 처형됐다. 대회 기간에 음주 금지령을 어기고, 밤에 몰래 술을 마시고 숙소에서 주정한 것이 걸렸다. 다음 날 김정은이 회의장에서 이들을 거론하며 격노했고 두 사람은 대회장에서 직위 해제와 출당을 당한 뒤 체포됐다. 참가자들은 이들이 처형될 것임을 예감하고 두려움에 떨었다.

 

아무리 북한이라고 해도 술주정으로 처형시키긴 어려우니, 이들은 반동으로 둔갑했다. 사형 판결문엔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증기기관차는 전쟁 때 한몫 단단히 하니 전시 예비용으로 잘 보관 관리하라고 하셨는데, 이자들은 언제 이런 고물을 다시 쓰겠는가 하면서 수십 대를 파철(고철)로 팔아먹었다”고 적시됐다고 한다. 2009년 처형된 김용삼 철도상도 전시 예비용 증기기관차들을 못 쓰게 만들었다는 것이 그 사유였다. 

 

이쯤 되면 요새 남쪽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장혁 북한 철도상의 최대 관심사가 무엇일지 짐작이 갈 것이다. 고물 증기기관차를 운행이 가능하게 보관하는 일에 목숨이 걸려 있다. 

 

김일성 시대엔 전기가 끊겨도 석탄으로 달릴 수 있는 증기기관차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때는 폭격을 받아도 터널 안에 숨으면 안전했다. 하지만 스마트 폭탄이나 벙커버스터가 활용되는 요즘, 북한이 전시에 철도를 활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철도 간부들도 그 정도 상식은 알고 있으니 증기기관차에 별로 관심을 돌리지 않았을 것이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 철도 노동자들은 보관 중인 증기기관차에서 구리와 알루미늄으로 된 부품을 훔쳐 중국에 팔았다. 김 철도상은 이를 막지 못해 죽었고, 평양 철도국 간부들은 쓰지도 못할 증기기관차가 눈에 거슬리니 고철로 중국에 팔다가 걸려 죽었다. 

 

북한 당국도 이제는 증기기관차가 필요 없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증기기관차를 잘 보관하라는 김일성의 유훈이 존재하니 시대착오적인 관리를 계속하고 있다. 그렇다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 “이젠 그만 없애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유일하게 유훈을 수정할 수 있는 김정은은 아직 그런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지금 북에 올라간 한국 조사단의 눈에는 낡은 노반과 레일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철도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인식 변화가 없다면 아무리 한국이 새 철도를 깔아줘도 제대로 사용하긴 어렵다.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북한 철도의 일면이다.

 

김두얼 명지대 교수는 지난달 30일 발표한 글에서 “북한 철도 발전은 1970년대 이후 멈춰 있는 게 아니라 1945년 이후 거의 변화가 없다”며 “경제 발전보다 정치적 목적을 우선시한 결과 철도 투자에 거의 나서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옳은 말이다. 북한 지도부의 우선적 관심사에서 멀어진 철도는 인프라뿐만 아니라 인력까지 다 망가졌다. 요즘은 신체나 가정환경 때문에 군에 가지 못하면 할 수 없이 가는 곳이 철도다. 주는 것도 없는데 군대와 같은 규율을 세운다고 들볶으니 기피 1순위다. 지방 철도 종사자에겐 텃밭 가꾸기가 주업이고, 철도 일은 부업이다. 위에서 아래까지 관점을 확 바꾸지 못하면 새 철길을 만들어도 계속 사고만 터질 것이다.

 

요즘 한국에선 북한 철도를 개량하느냐, 새로 깔아야 하느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북한 철도 실태를 제대로 안다면 답은 간단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머물러 있는 북한 철도는 새로 건설하는 것밖에 답이 없다. 그전까진 어차피 없어질 철도를 약간 보수해 쓰면 충분하다. 북한 신규 철도 건설비를 우리 기준으로 계산해 10조 원이 넘느니 마느니 하면서 떠들 필요도 없다. 요즘엔 철도 옆 북한군 주둔지 이전 토지보상비용까지 줘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판인데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린 장비나 기술 보조만 하면 된다. 

 

북한이 새 철길을 만들겠다면 부지는 그들이 해결해야 한다. 인력이 부족하면 군 병력이라도 투입하는 성의 정도는 마땅히 보여야 한다. 이는 북한이 과거의 잘못된 철도관(鐵道觀)에서 벗어나려 하는지 판단하는 시금석이기도 하다. 밥상을 같이 차릴 순 있지만 밥을 억지로 떠먹일 수는 없다.  

 

12-19 통일부도 개명할 때 온 듯한데…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통일부. 1969년 국토통일원으로 개원해 1990년 통일원으로 바뀌었고, 1998년 지금의 통일부로 개칭했다. 동아일보DB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이 5월 26일 판문점 북측 지역 판문각에서 가진 2차 남북 정상회담 때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북한 체제를 확실히 인정할 테니 안심하고 함께 교류와 협력을 하자는 명백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1차 남북 정상회담의 하이라이트인 판문점 도보다리 밀담에서도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불안감 해소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 것 같다. 

 

만약 방명록에 ‘평화와 번영’ 대신에 ‘통일’이란 단어를 썼다면, 매우 어색한 문장이 됐을 듯싶다. 왜냐하면 한반도 통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나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갈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상과 체제가 다른 상황에서 통일은 이뤄질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북에 사상과 체제를 양보할 생각이 조금도 없고, 북한 역시 그렇다. 결국 통일은 둘 중 하나가 사라져야 궁극적으로 완성될 수 있다. 엄청난 열세인 김정은의 처지에선 통일은 죽음과 연관되는 단어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상대와 만나 공존과 상생을 약속했는데, 이를 담당할 주무부서의 이름이 통일부인 것은 아이러니하다. 공존과 통일은 반대의 뜻이다. 그런 점에서 통일부도 명칭 변경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가령 남북교류협력부로 할 수도 있고, 남북관계부라고 할 수도 있다. 

 

이는 크게 세 가지 점에서 필요한 일이다. 

첫째는 시대정신에 맞기 때문이다. 통일은 김정은만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남쪽에서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외치던 세대가 사라져가고 있다. 그 대신 남북이 교류하고 협력하다가 나중에 여건이 되면 통일을 하자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기자 역시 통일은 소리쳐 외칠수록 멀어진다고 생각한다. 굳이 상대를 자극하며 만날 필요는 없다. 통일부는 통일이 된 뒤 만들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통일부의 장기적 미래를 위해서이다. 통일부는 정부 부처라고 하기엔 인원과 예산이 너무 적다. 10년 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사라질 뻔하기도 했는데, 보수 정권 10년 동안 크게 위축됐다. 지난해 예산은 정부 전체 예산 중 겨우 0.1% 정도인 약 4600억 원 수준. 서울의 여느 구청 예산보다도 적다.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2200억 원은 남북협력기금으로 쌓아둔 것이고, 424억 원은 인건비이다. 나머지 사업비 약 1900억 원 중에 70% 이상을 탈북자와 북한 인권 관련 항목에 지출했다. 탈북자 업무가 없었다면, 통일부는 돈 쓸 데도 거의 없다는 뜻이다.

 

통일부는 내년에 예산 1조 원 시대를 열려 하지만, 그래 봐야 내년 정부 예산 470조 원의 ‘몇백 분의 1’이다. 통일부가 돈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일을 한다고 하기도 어렵다. 요즘 남북 협력 사업이 많아지고 있지만 통일부는 약방의 감초 역할을 주로 하는 것 같다. 지금처럼 가면 군사 관련은 국방부가, 철도 도로 연결은 국토교통부가 하는 식으로 주요 협력 사업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회담 지원 백업 부처로 전락할지도 모르겠다. 조직을 새로 정비하고 남북 관계 주도권을 장기적으로 확보할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셋째는 탈북자와 북한 인권을 위해서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보수 정권 시절 탈북자 정착 및 북한 인권 업무는 통일부 존치를 좌우할 중요한 일이었지만, 요즘엔 짊어지고 있기엔 무거운 짐이 된 듯하다. 통일부가 북한하고 친해지면서 탈북자 정착과 북한 인권 개선까지 한다는 것은 심히 모순이다. 결국 하나는 버려야 하는데, 답은 정해져 있다. 올해 북한인권재단 예산이 108억 원에서 8억 원으로 준 것이 대표적 사례다. 탈북자도 통일부에 인질처럼 잡혀 있고 싶지 않다. 남북 교류협력 시대엔 탈북자와 북한 인권 업무는 행정안전부나 법무부 등 다른 부처로 분산시키는 것이 맞다. 통일부 이름을 바꾸면 명분이 생긴다. 통일부일 때는 탈북자와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는 것이 당연했지만, 교류협력부가 되면 당연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통일부의 북한 상대는 통일전선부다. 이 역시 매우 시대착오적인 이름이다. 다음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정신에 맞춰 두 부처를 동시에 개명해 보자고 제안한다면 북한도 선뜻 찬성할 듯하다. 새 술이라면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