凍土의 기막힌 이야기2/ 북한 ‘똑바로’ 알기2/
◆ 2015
◇ 01-16 북한 초등학교 1학년 ‘사회주의 도덕’ 교과서
이른바 12년제 의무교육이 실시되면서 북한의 교육당국은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회주의 도덕’(초등학교 1학년 대상) 과목을 신설했다. 그 과목을 통해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지가 궁금해 교과서를 펼쳐들었다.
첫 페이지엔 과거와 마찬가지로 ‘공부도 잘하고 도덕생활도 잘 해야 한다는 김정은의 지시’가 얹혀 있고 학교에서 지켜야 할 예절을 가르치는 등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아래와 같은 삽화 들이 등장, 6~7살 난 애들에게 ‘조직생활’과 파철 등 폐품을 모아 ‘인민군을 원호해야 함’을 강조한다. 나아가 시력을 보호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장에서도 ‘혁명의 과녁’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의 어린이들도 대한민국의 아이들처럼 자유롭고 행복해 지기를 자유를 기원해 본다.
김설송 자유북한방송 기자
◇ 02.10 해킹, 김일성대·김책공대 정규과목으로 가르친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소니사 해킹의 주범으로 북한을 지목하면서 북한의 정보기술(IT) 능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사용이 우리처럼 자유롭지 않은데 어떻게 고도의 해킹 기술을 보유할 수 있을까요. 북한의 해킹 능력은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 있어 가늠하기 쉽지 않아요. 특히 중국 등 해외를 무대로 해킹 조직과 인력을 운영하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문 틈으로 살짝 나오는 정보들을 통해 IT능력을 짐작해보는 수밖에 없지요.
평양과학기술대학에서 2011년 7월부터 6개월간 영어를 가르쳤던 수키 김이 쓴 『평양의 영어 선생님』이란 책엔 이번 얘기가 나옵니다. 한 학생이 정부 시스템을 해킹해 자신의 모든 학과 점수를 올린 일이 발각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국은 그 학생을 처벌하지 않고 모른체 넘어갔다고 합니다. 그 학생의 해킹 실력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해킹으로 올린 점수를 유지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학생들에게 “해킹은 범죄가 아니라 잘 하면 용서받을 수 있는 기술”이란 생각을 갖게한 것이지요.
/수키 김
북한에서 명문으로 꼽히는 김일성종합대학·김책공업종합대학은 아예 해킹을 정규 과목으로 가르칩니다. IT를 전공하는 대학생들은 3학년 때 대개 해킹기술을 배운다고 합니다. 우수한 학생들은 해외에 연수까지 시키면서 기술을 고도화하도록 적극적으로 관리를 하는 겁니다. 현재 노동당과 국방위원회 산하에 모두 7개의 해킹조직이 있으며 1700여 명의 해커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정부 당국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도 해커란 용어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해커는 콤퓨터지능범죄자로, 네티즌은 망시민으로 불립니다. 이밖에 학습장형 콤퓨터(노트북)·기술봉사소(PC방)·감정표(이모티콘) 같은 생경한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북한 IT의 현주소를 알 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빌 게이츠는 알아도 저커버그는 몰라요.” 평양과학기술대학 학생들이 수키 김에게 건넨 말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빌 게이츠가 만든 윈도우를 사용하지만 저커버그가 만든 페이스북은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비롯해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북한 주민들에겐 인터넷 사용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최근 인터넷에 연결된 북한 컴퓨터 수가 1만2000여 대라는 주장을 내놨습니다. 1인당 1대꼴로 사용한다고 가정할 때 북한 인구(2500만 명)의 0.05% 정도가 인터넷을 사용한다고 볼 수 있지요.
김 제1위원장은 미국 애플사 PC인 ‘아이맥’을 사용하고 있어요. 아이패드를 사용한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 가운데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2012년부터 북한이 생산한 ‘아리랑’ ‘삼지연’ ‘룡흥’이라는 이름의 태블릿 PC를 사용합니다. 이들 태블릿 PC에 ‘노블 네임(noble names)’이라는 항목이 있는데 여기로 들어가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독립된 특수문자로 등록돼 있습니다. 도드라지게 두껍게 말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자신들이 쓰고 있는 인트라넷을 인터넷으로 알고 있다고 합니다. 인트라넷은 주로 기업·학교 등에서 사용하는 내부 전산망입니다. 외부와는 연결돼 있지 않으니 인터넷과는 다르지요. 북한은 1997년 ‘광명’이라는 이름의 인트라넷을 전국적으로 개통했는데 정부 기관·공장·기업소 등 1300여 곳의 홈페이지가 광명에 연결돼 있습니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북한의 ‘IT양성지표 목록’을 보면 해킹방지 및 보안, 암호 및 인증, 정보유출방지 등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특히 보안과 관련해 지능형 인터넷 보안장치를 개발해 상품화하는 걸 추진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IT를 통해 돈을 벌고 싶어합니다. 요즘엔 애플리케이션(앱)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고 여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다지 성과를 내진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고객 마인드가 부족하기 때문이죠.
중앙일보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 02.14 학교에 가지 않는 北韓 청소년들
학교에 가지 않는 북한 아이들이 늘고 있다. 과거엔 '꼬마계획' 때문에 학교에 가지 않더니 최근엔 시장 때문에도 가지 않는다. '꼬마계획'이란 학생들에게 분담되는 각종 물자 조달을 의미한다. 약초를 캐오라고 하고, 토끼 가죽을 내라고 한다. 파철, 파동, 파고무, 파지 등을 가져오라고 하기도 한다. 명분은 그럴듯하다. 북한 사전은 '꼬마계획'을 "소년단원들이 좋은 일 하기 운동의 목표를 내걸고 그것을 수행하기 위하여 세운 계획"이라고 설명한다. '좋은 일 하기 운동'이란 학생들이 나라에 보탬을 주기 위한 차원에서 벌이는 대중운동이다. 6·25 전쟁 후 복구가 시급했던 1954년 봄 진행된 벽돌 모으기 운동에서 비롯되었다. 1970~80년대에는 경제개발계획과 맞물려 '꼬마 5개년 계획' '꼬마 7개년 계획' 등도 수립되었다.
그나마 경제가 괜찮았던 시절에는 사정이 나았지만 1990년대 경제난에 빠지면서 '꼬마계획'은 녹록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할당된 계획을 못 채우면 호된 비판을 받기 마련이었다. 당연히 숙제는 뒷전이 되었다. 고철 조각 하나, 깨진 병 하나라도 찾기 위해 온 마을 온 산을 뒤지며 다니는 일이 급했기 때문이다. 좀 사는 집 아이들은 돈 주고 사서 내기라도 냈지만 없는 집 아이들은 자연스레 학교를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 '꼬마계획'은 아직도 있다.
'꼬마계획'을 통해 모은 재원으로 무기를 만들기도 한다. 2013년 6월 함흥에선 소년단원들이 마련한 방사포 10문을 군대에 증정하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돈을 벌기 위해 학교에 안 가는 아이들이 생기고 있다. 공부 잘해서 대학에 갈 게 아니면, 돈이나 버는 것이 훨씬 낫다는 계산에서다. 그만큼 물질 만능주의가 퍼졌다는 뜻이고, 시장에서의 돈벌이 기회가 많아졌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긴 이제 북한 경제는 시장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4인 가족의 생활비는 북한 돈으로 최소한 20만원 정도 드는데 공장 나가봐야 2000~3000원 받을 뿐이다. 결국 시장에 생계를 의존해야 한다. 장사를 하든 날품을 팔든 가족 중 누군가는 시장에서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부모가 학업을 포기할 것을 부추기기도 한다. 부모는 이미 북한은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국유(國有)인 주택도 사고팔며, 시장에는 중국·동남아 물건은 물론 '철천지 원쑤'인 남한 제품도 널려 있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구할 수 있다. 어차피 당이나 군의 고위직으로 키우지 못할 자식이라면 부자를 만드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고난의 행군' 이후 시장의 확산을 보며 자라난 북한 청소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정치보다는 경제, 사상보다는 물질이 중요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세대이다. 그래서 당원보다는 '돈주'(신흥 부유층)가 되고 싶어 한다.
이런 현상은 우리 입장에서는 큰일이다. 미래 통일 한국의 한 축을 담당할 북한 아이들이 상식과 지식은 부족한 채 돈만 아는 세대로 자라난다면 통일 '재앙'일 수 있다. 자칫하면 통일 이후 북한 주민들은 단순 육체노동자로 전락하면서 심각한 남북 지역 갈등을 오래도록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나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은 식량과 영양 지원에 그치고 있다. 굶어 죽는 사람도 이젠 없고 오히려 시장에서 부를 축적하는 주민이 많아지고 있는데 최악의 경제난 시절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북한의 모든 아이가 학교를 버리는 것은 아니다. 과외까지 하면서 공부하는 학생도 많다. 아직은 시골 일부 학생의 문제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 대책이 있어야 한다. 당연히 일차적으로는 북한 당국의 책임이지만 통일 준비를 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임무이기도 하다
조동호 이화여대 대학원 북한학과 교수
◇ 02.17 북한 여배우 등장한 포르노에 김일성 배지 장면 나오자 화가 치민 김정일…
2001년 4월 말 평양시 형제산구역 상당동 시장에서는 많은 주민이 모인 가운데 교수형과 사형이 동시에 집행되었다. 사형당한 사람들은 보위사령부 잠샘무역회사 부사장이었던 김동희와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촬영가이었던 박혁이었다. 김동희는 교수형이 집행되었고 박혁은 총살을 당하였다.
많은 사람이 의아해할 정도로 그들은 북한에서 잘 나가던 사람들이었다. 김동희의 아버지는 당시 북한의 육해공군 명예위병대 대장 김병욱 대좌(대령)이었고 보위사령관의 총애를 받던 사람이었다. 박혁은 북한의 유명한 인민배우이었던 유경애와 인민연출가이었던 박학의 아들이었다. 북한에서 쟁쟁하게 나가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끌려나와 한 사람은 교수형, 한 사람은 총살을 당하다보니 많은 간부와 사람들이 의문을 가졌다.
김동희는 북한에서 골동품 장사의 창시자와 같은 사람이다.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를 졸업하고 보위사령부 잠샘무역회사에 들어가서 골동품 장사를 하여 많은 돈을 벌이며 실적을 올려 사령관의 인정을 받고 부사장으로 활동하였다. 박혁은 연극영화대학 촬영학부를 졸업하고 영화촬영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잠샘무역회사 사장은 현재 5월 1일 경기장 지배인으로 있는 김철이 보위사령부 과장 겸 사장이었다. 김동희가 한번 이동할 때에는 유술이나 태권도 등 체육인 출신들 8명 정도가 항상 신변호위로 따라다녔다. 차는 독일산 ‘아우디’가 3대 이상 같이 다녔고 북한의 고려호텔을 비롯한 좋은 호텔에는 김동희의 전용 방이 있을 정도였다. 김동희가 항상 10만달러 이상의 돈을 항상 가지고 다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돈도 많고 장성택, 보위사령관, 보안부 참모장을 비롯한 막강한 권력가들과도 인맥이 많았고 전국의 웬만한 간부들이 다 알 정도로 유명하였던 김동희는 돈이 많으니 유명한 배우들로 포르노 섹스를 조직하고 박혁은 촬영을 하여 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 팔아 많은 돈을 벌어 탕진하였다고 당시 재판과정에서 이야기하였다.
▲박혁이 촬영가로 활동한 조선예술영화촬영소의 영화 포스터/조선 DB
1990년대 말까지는 골동품 장사가 잘 진행되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북한사람들이 모조품을 많이 만들기 때문에 장사가 잘 안 되자 포르노 영화를 찍어 장사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포르노 제작물은 일본에서 상영되었는데 집안에서 촬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옷을 벽 옷걸이에 걸어놓았는데 거기에 김일성의 배지가 걸려 있어 북한 제품으로 판명된 것이다.
조총련에서 그것을 김정일에게 보내 김정일이 화가 치밀어 보안부에 무조건 잡아내라고 지시하여 평양시 만경대구역 보안서가 맡아 사건조사를 진행하여 김동희가 조직하고 박혁이 촬영한 것을 밝혀내고 그들을 체포하였다.
김동희는 본처와 이혼하고 4.25 영화촬영소의 유명한 인민배우인 리월숙과 재혼했었다. 리월숙은 ‘어서 오시라’ ‘담가소대장’ 등 많은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북한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으므로 당시 6개월간 농장원으로 혁명화를 하고 다시 배우로 복직되었지만 섹스장면을 촬영하였던 북한영화 ‘소속없는 부대’에서 여주인공으로 등장하였던 변미향은 많은 예술인이 모인 가운데 사형에 처하졌다.
김동희가 만경대구역 보안서에 구류되어 취급을 받을 때 많은 간부가 나서서 그를 구해보려고 노력하였으나 당시 만경대구역 보안서 부서장이었던 윤수경(현재는 그 사건을 잡아낸 공로로 평양시 보안국 부국장을 거쳐 인민보안부 국장으로 근무하고 있음)과 담당 취급자 허병철은 끝끝내 상급의 말도 듣지 않고 심지어 김동희를 보위사령부 사람이기 때문에 보위사령부로 이관하라는 지시도 안 듣고 많은 뇌물을 주어도 김정일의 방침관철이라고 하면서 거절하였다.
그렇게 되자 김동희의 부하들이 야간에 집으로 퇴근하는 윤수경 부서장과 허병철을 납치하여 온 가족의 생명을 위협하면서 김동희를 석방하든지 아니면 보위사령부로 이관하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굴복하지 않고 그들이 죽이려고 하자 결사적으로 격투를 벌여 탈출하는 영화와 같은 일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2001년 인민보안부 참고자료에는 ‘만경대구역 보안서의 검은 잠바부대 소탕작전’이라는 윤수경의 수기가 실리고 현재도 그 사건은 인민보안부 정치대학에서 유명사건 사례로 강의되고 있을 정도가 됐다.
▶독자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필자인 저는 북한에서 오랜 기간 중앙기관에서 근무하다가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한국식 글과 문장표현을 잘하지 못합니다. 북한식 말투와 표현을 쓰는 것 이해바랍니다. 제가 쓰는 글은 북한에서의 실제 사건들입니다. 직접 보고 체험하거나 비밀문건으로 보관되어 있는 사건 기록철을 본 것에 기초한 진실입니다. 등장인물 이름도 실명이라는 것을 밝힙니다. 추상적이거나 추리가 아닌 북한에서 발생한 실제 사건들이라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김철추
◇ 02.20 '北 해외노동자들 노예처럼 일해' NY타임스
인권단체, UN에 다음달 조사 청원
'영하 30~40도의 날씨에도 하루 21시간을 일했지만 3년간 번 돈은 고작 160달러였다.'
뉴욕타임스가 해외에서 일하는 북한노동자들의 열악한 인권실태를 조명해 관심을 끌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9일 "북한인권단체들에 따르면 중국의 공장과 시베리아의 벌목장 등 해외에서 일하는 북한의 노동자들이 노예처럼 부려지고 있다"면서 "유엔이 이같은 실태를 철저히 조사해달라는 청원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타임스는 탈북자 인터뷰와 인권단체 자료를 통해 "북한의 해외노동자 송출은 중국의 공장과 러시아의 벌목 현장, 미얀마의 군사터널공사, 아프리카 독재자들의 동상 건설, 중동의 건설현장, 피지의 고기잡이배 등 다양한 지역을 대상으로 한다"고 전했다.
2012년 북한전략센터 연구에 따르면 북한은 40개국에 6만~6만5000명의 해외인력을 파견하고 있으며 연간 1억5000만-2억3000만달러를 벌어들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권활동가들은 "김정은 집권 이후 미사일 부품 수출 등 기존 외화벌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규제가 강화되면서 해외송출 프로그램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안명철 인권단체 NK워치 대표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해외노동자들의 임금을 김정은의 사유창고를 불리는 데 이용한다. 권력층에 나눠줄 호화품 구입과 자신의 리더십을 보여주기 위해 평양의 빌딩을 짓는데 쓴다"고 말했다.
아산정책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북한이 국제 규제를 우회하는데 해외노동자 임금이 도움을 준다"면서 "금융거래 규제를 피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임금은 송금되지 않고 북한당국이 현금으로 가져간다. 귀국 노동자들이 현금을 운송하는 운반책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타임스는 "북한의 해외노동자들은 하루 최소 12시간 이상을 일하며 쉬는날은 일년에 며칠에 불과하다. 임금은 약속된 액수의 10%를 받거나 아예 못받기도 한다"면서 NK워치가 '국가주도노예(state-sponsored slavery)'에 대해 조사할 것을 유엔에 다음달 요청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청원서에는 러시아, 쿠웨이트 등에서 일했던 북한 해외노동자 13명의 인권침해 사례가 담겼다.
뉴욕타임스는 북한 해외노동자들이 ‘착취와 기만의 사슬’에 놓인 희생자들이라며 두 명의 사례를 소개했다.
1996년 쿠웨이트 건설현장에서 목수로 일한 림모 씨는 당초 월급으로 북한에서 상상하기 힘든 120달러를 약속받았으나 철조망이 쳐진 수용소같은 현장에서 정부감독관의 감시속에 아침7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일주일 내내 일을 해야 했다.
그는 "두달에 한번 금요일 오후에 쉴 수 있었지만 북한에서 가져온 위대한 지도자 영상이나 책을 읽는데 보냈다. 우리는 임금을 받은 적이 없다. 상부에 요청하면 고향에서 굶어죽는 사람들 생각을 하라며 위대한 지도자가 하루 세끼를 먹을 기회를 준것에 감사하라고 했다"고 폭로했다.
1990년대 시베리아 벌목장에서 일한 한 탈북자는 "영하 30-40도의 날씨에도 하루 21시간을 일하면서 3년간 겨우 160달러를 벌었다"면서 “임금의 나머지를 고향의 가족에게 보냈지만, 가족들은 살 물건이 거의 없는 국영상점에서 쓸 수 있는 쿠폰들을 받았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쌀밥을 먹으면서 집에서 굶주리는 아이들 생각에 눈물을 터뜨리는 사람을 보고 우리 모두 함께 울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의 하루 임금은 5.30달러로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면 한달 최대 160달러를 벌 수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중국과 러시아의 일꾼들은 하루 30달러로 자신보다 여섯배 이상 번다는걸 알게 됐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쿠웨이트에서 일한 북한감독자는 노동당이 파견 노동자들의 월급 전체보다 많은 월 50만달러를 송금하도록 지시했다면서 노동자들은 오버타임이 강요됐고 일거리가 없을 때는 임시 일을 찾기 위해 감시자들에게 뇌물을 바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타임스는 "북한에선 해외취업이 뇌물을 주면 얻는 특혜로 간주되고 있다"면서 "해외노동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과도한 생산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때나 뇌물을 바치지 못할때 집으로 돌려보낸다고 위협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쿠웨이트에서 탈출한 림 씨는 “아침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일하고 나서도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라며 일주일에 두세 번은 자정까지 일하라고 강요했다. 아무리 지쳐있어도 감독관이 나가라고 하면 모두 일하러 가야했다. 우리의 인생은 노예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북한인권활동가 김윤태씨는 "북한 해외노동자들의 인권문제가 북한 주민들에 비해 다루기 쉽다"면서 "북한 인력을 활용하는 나라들을 압박해 기본적인 노동보호를 위한 국제표준을 준수하도록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뉴시스
◇ 02.25 당·군 간부와 법관까지 마약하는 北…"함흥엔 두부집보다 마약제조집 더 많아"
“한미 군사훈련 기간에는 북한군도 대응훈련을 하는데, 한미연합훈련 때 잠을 자는 지휘관은 무능력한 지휘관으로 찍히기 때문에 각성효과가 좋은 마약을 사용합니다.”
북한군 대대장으로 근무하다 작년에 탈북한 이성국(가명)씨는 지난 15일 본지 인터뷰에서 “훈련기간 수시로 위에서 내려오는 전투정황을 처리하려면 지휘관들이 잠을 자면 안된다”며 이 같이 설명했다. 북한군 간부들이 키리졸브 등 한미 합동군사연습 때 잠을 안자고 버티기 위해 마약을 복용한다는 것이다.
▲지난 1월 27일 북한 노동신문에 보고된 북한군 기계화타격부대의 도하훈련 모습. 노동신문은 김정일이 이를 참관했다고 밝혔다./조선일보DB
그는 “김정은 집권 이후 훈련강도가 높아지면서 재작년과 작년 한미군사훈련 때 잠을 안 자려고 (나도) 마약을 복용했다. 나 뿐만 아니라 참모장도, 참모들도 먹었다”며 “업무보고차 군단지휘부에 올라갈 때는 마약과 담배를 챙겨가야 한다”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대로 돌려 보내지 않고 하루종일 잡일을 시킨다”고도 했다.
2년 전까지 북한군 인민무력부(우리의 국방부에 해당) 청사에서 근무했던 탈북자 A씨는 “무력부와 총참모부(우리의 합참에 해당) 고위간부들도 마약을 한다”며 “전당·전군·전민이 마약을 한다”고 설명했다. A씨는 “북한군 고위간부들의 일상은 오전에 출근 도장을 찍고 사우나나 고급식당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며 “식사 이후에는 오락장을 찾거나 내연녀의 집에 가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군대 뿐만이 아니다. 이미 북한 곳곳에 마약이 퍼져있다는 게 여러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심지어 북한의 법관들도 마약을 즐긴다고 한다. 작년 11월 한국에 온 함북 청진 출신의 탈북자 B씨는 “사법·검찰·보안원(경찰)들은 마약의 주요 소비층”이라며 “이들이 마약을 자주 하는 이유는 쾌락을 추구하고 각성효과를 얻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보위부(우리의 국정원)는 법관들의 마약행위 단속권한을 달라고 김정은에게 요청해 허가를 받았다”며 “보위부는 법관들을 단속해 존재감을 과시하고 마약을 이용해 돈 벌이도 한다”고 전했다.
▲물망초재단이 제공한 지난 2013년 7월 함경북도 회령 일대 야산의 양귀비 재배지 사진. 천 위에 놓여 있는 것이 양귀비이다. 북한은 외화 획득을 위해 마약을 제조, 중국에 밀수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조선일보DB
B씨는 “북한의 화학공업도시 함흥에는 두부집보다 많은 것이 마약제조집”이라며 “2009년 김정일이 함흥에서 마약소탕전을 벌였지만 김정은 시대가 오면서 다시 마약생산기지로 부활했다”고 했다. 또 북한의 매춘여성들 가운데 마약 중독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소식통은 “북한 대도시를 중심으로 매춘업이 성행하면서 매춘 여성들이 마약거래 매개자 역할과 주요 소비계층으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마약으로 인한 부작용도 심각하다고 한다. A씨는 “마약에 중독돼 잘나가던 외화벌이 회사 사장들이 하루아침에 패가망신한다”며 “북한 고위층도 마약이 인간을 타락시키고 죽음에로 몰아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지 못한다”고 했다.
탈북자들은 북한에 마약이 성행하는 이유에 대해 “마땅한 돈벌이가 없고 한번에 벼락부자가 될 수 있다는 유혹과 의약품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사회의 미래에 대한 불투명성과 불안감도 북한 고위층이 마약에 집착하는 이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 02-26 “北고위관료 자제모임 봉화조, 이권챙기기 심각”
북한이 신흥 지배계층인 '봉화조'의 이권다툼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계일보는 26일 "정통한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봉화조에 속한 이들이 최근 외화횡령 등 각종 비리 혐의에 연루돼 내사를 받는 등 지배계층 내 이권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지난해 빨치산 세력 원로인 오극렬 부위원장의 차남 오세현과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의 장남 김철 등이 동남아지역 보석광산을 매입해 공장을 건설한 뒤 고의 부도를 내고는 빼돌린 거액의 자금을 세탁해 현지 은행에 보관해오다 적발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봉화조는 북한 내 고위관료 자제들의 모임으로 2000년대 초반 김정은의 친형인 김정철 주도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게 세계일보의 설명이다.
김정일의 비자금을 관리한 리철 전 스위스 대사의 장남 리일혁, 강석주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의 장남 강태성, 조명록 전 국방위 제1부위원장 장남 조성호 등도 봉화조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신문은 "최근 김정은이 참석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이례적으로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하는 내용이 담긴 결정서를 채택한 것도 봉화조의 권력 남용에 따른 이권다툼이 만연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는 평가다"라며 "전문가들은 장성택 숙청 이후 새로운 기득권으로 부상한 봉화조의 다툼과 봉화조와 군부의 파벌싸움이 내부 균열로 번져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을 허물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서울=뉴시스】
◇ 02-26 평양-무산행 열차 전격중단...함북 주민들 고립
▲북한 함경북도 회령역에 정차한 한 여객열차의 유리창들이 모두 비닐로 가려져 있다.
북한의 평양-함북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대중교통수단 평양-무산행 (9)열차 운행이 전격 중단돼 주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함경북도 소식통은 25일 자유북한방송과의 전화 통화에서 “그동안 전력사정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 꼴로 다니던 평양-무산 행 열차가 2월 중순부터 운행을 완전히 멈췄다”며 “이 때문에 지역 특산물을 타지방으로 나르며 그나마 생계를 유지해오던 함북도 사람들은 결국 '섬'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고 전했다.
변변한 도로조차 없는데다 개인이 자동차를 소유할 수 없는 곳에서 오직 기차만을 교통수단으로 여기던 주민들이 하루아침에 이동이 차단되었다는 불만을 터놓은 소식통은 “전력사정이 심각해 전력성과 철도성이 9열차(평양-무산)와 10열차(무산-평양) 노선자체를 완전히 없애는데 합의한 것 같다”고 전했다.
북한에는 평양-혜산 (1열차), 평양-만포 (3열차), 평양-무산 (9열차)를 비롯해 평양-청진, 평양-신의주, 평양-고원, 평양-두만강 등 평양을 중심으로 변경 및 내륙을 연결한는 기차 노선이 있다. 여기서 평양-혜산, 평양-무산행 열차같은 경우 지역 특성상 열차가 아니면 주민들의 교통수단이 전무해 지는 환경이다.
하지만 90년대부터 전력이 부족해 현재까지 단 한번도 정시도착, 정시출발을 해본 적 없는게 북한의 열차상황이다.
소식통은 “출발역에서 출발한 기차가 정해진 역이 있어도 중간에 전력공급을 받지 못하면 이틀이건, 일주일이건 그 자리에 정차해 있어야 하는 것이 여기 대중교통현실인데 그것마저 중단 돼 식량가격을 비롯한 모든 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1kg에 5000원으로 거래되던 식량가격이 5500원으로, 옥수수는 1500원에서 1800원으로, 콩은 4000원에서 4500원으로 상승했다”며 “간부들의 말에 의하면 그(김정은)가 탈북한 사람들 대부분이 무산과 회령이라는 보고를 받고 ‘의리없는 배신자들’이라고 한 말이 운행노선을 없애는데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현재 평양-무산 행 노선으로는 중국에 수출하는 정광을 실은 화물열차만 일주일에 한번 운행되고 있다”며 “그동안 물물교환으로 타지방을 다니던 장사꾼들은 화물기관사에게 뇌물을 주고 정광을 실었던 화물칸이라도 타기위해 역전에서 며칠씩 대기하고 있어 아수라장이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이 밖에도 평양-청진 행은 전기기관차에서 내연기관차로 바뀌였다”며 “기차가 운행을 중단하자 기업들에서 저마다 서비차를 운영해 돈벌이에 나섰고, 이를 단속하기 위해 도로에는 경무부(헌병), 보위부 10호초소, 보안서, 등 2중 3중의 단속초소가 생겼다”고 덧 붙였다.
기관사, 기업소, 단속기관, 등 저마다 평민들의 뇌물을 받아 주머니를 털어내고 있는 지금 주민들의 삶은 나날이 궁핍해지고 있으며 악에 받친 일부 주민들은 김정은을 향해 “흘러넘치는 볼 살로 텔레비죤에 웃으며 등장하는 돼지새끼”라고 야유하고 있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이석영 자유북한방송 기자
◇ 02.28 北 국영기업 중 10%만 정상 경영
554개 주요 국영기업 분석 "대동강맥주 등 몇곳만 경쟁력"
북한 당국이 운영하는 주요 국영기업 554개 중 40% 이상이 평양과 그 인근 지역에 몰려 있고, 전체 기업의 3분의 2가량은 중화학 업종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 주요 기업 중 흑자를 내거나 정상 경영이 가능한 기업은 전체의 10% 이하인 50개 안팎인 것으로 추정됐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27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통일국가자산연구포럼'에서 이 같은 내용의 북한 기업 심층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북한 기업의 지역별·업종별 현황이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처음이다. 최이섭 캠코 창조전략개발원 책임연구원은 기조 발제에서 "북한 산업·기업 관련 각종 자료와 북 언론에 공개된 기업 정보(2010~2012년)를 토대로 북한 기업에 대한 데이터 분석을 한 결과 554개 기업 중 64.1%인 355개가 기계·금속·건축자재·화학·조선·군수·자동차 등 중화학 업종이었고, 126개(22.7%)는 식료품·섬유·제지 등 경공업 기업이었다"고 했다. 서비스업(30개)과 IT산업(15개)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중공업에선 기계공업(23%)과 건축자재(18%), 화학공업(15%) 등의 비중이 높았고, 경공업에선 식료품업(54%)과 신발산업(25%)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지역별로는 평양특별시에 가장 많은 141개 기업이 몰려 있었다. 평양과 가까운 평안남도에는 81개, 평안북도에는 63개 기업이 집중됐다.
기업 활동의 측면에서도 '평양 공화국'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평양과 평안남·북도에 이어 기업이 많은 곳은 함경남·북도(133개·24.0%)였고, 황해남·북도(52개·9.4%)와 강원도(39개·7.0%), 자강·양강도(38개) 등은 기업 활동이 크게 뒤떨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군수 기업은 안보상의 이유로 내륙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현재 북한 기업은 과거 동독 기업보다 경쟁력이 훨씬 떨어지며, 최 연구원은 "북한 기업 대부분은 낙후된 기술 수준과 설비 노무화로 사실상 경쟁력을 상실, 이익이 거의 나지 않고 있다"며 "주요 업종별로 상위 5개사, 전체적으로 50여개사 외에는 경영 정상화가 어려운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대동강맥주 등 몇 개 기업 외에는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문성민 한국은행 북한경제연구실장도 "매각이나 구조조정을 통해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보다 청산될 기업이 훨씬 많을 것"이라고 했다.
통일 과정에서 북한 기업 처리 방안과 관련, 캠코는 "기업 소유권을 국가에 일괄 귀속시킨 뒤 2년간 실사(實査) 및 시장 가치 평가 과정을 거쳐 단기간 내 흑자 경영이 가능한 1·2등급 기업은 매각 등을 통해 민영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또 체코의 국가자산기금이나 폴란드의 국가투자기금처럼 북한기업관리기금을 만들어 북한 기업에 대한 신속한 구조조정과 매각 등 민영화 작업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배성규 정치부 차장
◇ 03.02 북한에서의 공개재판과 공개사형
북한에서는 간부들과 주민들이 반 당, 반 국가범죄를 감행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공포를 주는 공개재판과 공개처형을 자주 진행한다. 공개재판을 하는 경우에는 재판소, 검찰소, 보안부에서 사전에 미리 공모를 하여 가지고 피고인에게는 주민들이 많이 모인데서 자기 범죄를 인정하고 반성을 잘하면 용서를 해주거나 형량을 감소시켜준다고 하면서 준비를 철저히 시켜가지고 나온다.
총살이나 교수형을 진행하려면 중앙검찰소와 최고재판소의 승인이 되어야 하는데 일단 당 안전위원회에서 결정을 하고 중앙당에 문건을 올려 보내면 거의가 다 비준되도록 되어있다. 실례로 2010년 평양시 형제산구역 하당시장에서 한국드라마와 영화를 집에서 컴퓨터로 복사하여 USB와 CD를 팔다가 잡힌 45세 가량의 여성을 공개재판 하였는데 평양시 재판소판사가 한 명, 인민참심원 두 명, 평양시 검찰소 여성검사 한 명, 평양시 변호사협회에서 변호사 한 명 참가 하에 진행하였다. 그 날은 오후 2시부터 시장을 중지하고 평양시 보안국과 형제산구역 보안서에서 나온 수백 명의 보안원들이 임시로 차려놓은 공개재판장을 둘러싸고 앞에서 50m정도 떨어진 곳에 수천 명의 주민들이 나와 공개재판에 참가한다.
공개재판을 하기 10여 일 전부터 기관, 기업소와 인민반들에 포치하여 공개재판에 참가하라고 공지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도록 하기 위하여 공개재판은 주로 일요일에 진행한다. 공개재판장 옆에 주석단을 차려놓는데 그 곳에는 평양시 당과 보안국 간부들이 앉아서 재판과정을 지켜본다. 재판을 시작한다는 판사의 개회사가 있고 기소검사가 피고인의 죄행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서 한국드라마와 영화를 복사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썩어빠진 남조선의 자본주의 생활실상을 배포시키었다고 낭독한다.
/북한의 공개처형 공고문/조선 DB
그 다음 변호사가 피고인에게 자기의 범죄를 인정하는가 질문을 하고 앞에 모인 군중들을 향하여 왜 이런 범죄를 감행하게 되었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도록 발언하라고 한다. 피고인은 반성을 잘 하면 용서를 해줄 것이라는 기대로 자기가 김일성, 김정일의 교시, 말씀과 당정책 학습을 잘하지 않고 조직생활에도 성실히 참가하지 않았으며 개인이기주의에 물들어 오직 돈 밖에 모르다보니 남조선영화라는 것을 알면서도 복사하여 배포하였다고 말하면서 엄중한 범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그 어떠한 형벌도 달게 받겠다고 하면서 발언한다.
발언을 끝내면 피고인의 마이크를 회수하고 양 옆에 두 명의 보안원이 선다. 검사는 피고가 자기의 범죄를 다 시인하였다고 하면서 썩어빠진 남조선의 영화를 배포시키는 것은 용서 못할 범죄이므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형법 몇 항, 몇 조와 인민보안부 포고 몇 호에 의하여 사형에 처할 것을 제기한다고 말한다. 그 순간 피고인이 깜짝 놀라 격렬히 저항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러면 보안원들이 달려들어 피고인을 재판장 뒤에 임시로 설치한 가설막 안에 끌고 들어간 뒤 마구 폭행해 입에 재갈을 물리고 눈까지 가린 다음 다시 끌고 나온다.
그러면 검사의 기소와 함께 보안원들이 피고를 데리고 들어간 사이에 휴회를 선포하였던 재판관이 다시 나와 검사의 기소가 맞고 피고도 자기의 범죄를 시인하고 그 어떤 형벌도 달게 받겠다고 하였다고 하면서 앞으로도 이런 범죄가 나타나면 엄벌에 처한다고 군중들에게 이야기하고 사형에 처한다고 판결한다. 그리고 본 재판에 대하여서는 상소를 할 수 없으며 본 판결을 평양시 인민보안국에서 이 자리에서 즉시로 집행할 것을 위임한다고 한다. 그러면 보안원들이 개울방향으로 말뚝을 박고 그 말뚝에 피고의 가슴, 배, 다리를 묶는다. 그 다음 사형지휘관의 구령에 따라 3명의 보안원들이 자동보총을 메고 피고인의 5m정도 앞에 선다.
▲탈북하려다 체포된 북한 주민에 대한 공개 재판 및 공개 처형 현장/조선 DB
다음 사형지휘관이 ‘사격준비’ 하고 구령을 외친 다음 ‘민족반역자 누구를 향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이름으로 단발로 쐈’ 하고 명령을 한다.
이후 다른 보안원들이 와서 천으로 시체를 말아서 차에 싣고 지정된 장소에 가서 묻어버리며 친척들에게 위치를 알려주지 않게 되어 있다. 국가반역자란 이름으로 사형되었기 때문에 추석 때에도 친척들이 제를 지내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그냥 매몰해버리고 만다.
한편 살인자들의 경우 대부분 교수형에 처해진다. 역시 위와 같은 방법으로 공개재판을 하고 교수형에 처한다고 판사가 판결하면 보안부에서 준비해 가져가는 조립식 교수대를 세우고 목을 매달아 죽인 후 보안원들이 천으로 싸서 차에 싣고 가서 매몰해 버린다.
그러나 당, 정부, 인민무력부, 보위부, 보안부 등 간부로 근무하던 사람들에 한해서는 공개총살을 하면 오히려 주민들에게 주는 영향이 나쁘다고 보고 대체로 평양시 순안구역 석박동에 있는 강건군관학교 사격장에서 해당 간부들의 참석 하에 비공개 사형을 진행한다. 사형지휘관의 구령에 군복 입은 보위원들 6명이 자동보총에 15발을 장착하고 나오는데, 사형지휘관이 ‘반 당, 반 혁명분자 누구를 향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이름으로 점발로 쐈’ 하고 명령을 내리면 1인당 15발씩 즉 6명이 총 90발을 쏜다.
그러나 공개 처형 대상이 아닌 사형 대상자의 경우, 대남, 대외 공작원이나 해외반탐보위원들의 ‘담력을 키워준다’는 목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들이 칼로 찔러죽이는 등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그래야 공작 나가서 사람을 죽여야 할 일이 있을 때 주저 없이 행동할 수 있다는 이유 아래 훈련 과정의 하나로서 조용히 진행되곤 한다.
김철추
◇ 03.04 평양에서 토막 살해사건 발생하자
2005년 6월 어느 날 아침 공장으로 출근하던 행인이 평양시 동대원구역에 있는 동평양 경기장 담장 옆에 뭔가 들어 있는 마대를 발견했다. 그는 누가 밤에 도둑질하다 들키자 버리고 간 마대로 생각했다. 뭐든 좋은 것이 들어 있지 않나 하여 누가 볼세라 몰래 집으로 가지고 들어와서 살펴보고서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대에는 나체 여성 시체가 들어 있었는데 문제는 머리와 팔, 다리를 각을 내어(토막이 난 채) 담겨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여성이 7개월 가량 된 아이를 임신한 상태로 살해당한 것이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동대원구역 보안서 수사과에서는 범인이 그 여성의 목을 졸라 죽이고 시체를 토막내 버린 것으로 판명하고 수사를 진행했다. 보안서 담당자는 살해당한 여성의 동거인이었던 김형직사범대학출신으로 평양강철공장에 현장 실습중이던 27세 김 모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또 범죄자라는 확증을 들이밀어 이틀 만에 그를 체포했다.
그의 진술을 따르면 살해된 여성은 25세로 동거중이었고 임신 했다며 결혼하자고 하자 홧김에 여성을 목 졸라 살해하고 마대에 넣으려고 하다가 들어가지 않아 토막내 버렸다는 것이었다.
김 모는 7형제 중 막내였는데 부모들은 이미 다 죽고 부모들이 살던 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그래서 살해한 여성뿐만 아니라 여러 여자들을 집에 데리가 성폭행을 일삼았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형들 6명이 모두 평양시 중앙기관에서 간부로 근무하면서 재정적 지원도 해주고 막강한 권력으로 밀어주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의 맏형은 국가안전보위부에서 국장으로, 둘째형은 인민보안부에서 부국장으로, 셋째형은 중앙검찰소 검사로 등 다른 형들도 사법, 검찰기관에서 근무하고 있어 누구도 자신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는 배짱으로 마음 놓고 비(非) 법적으로 생활했다.
그가 체포되자 형제들이 총 동원되어 나섰다. 만약 동생이 살인자로 판명날 경우, 즉 북한식으로 말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이름으로 총살을 당하면 형제들 전부가 연좌제를 적용받아 간부직에서 해임, 철직(면직)되게 되어 있기 때문에 형제들로서는 좌시할 수 없는 문제였다.
때문에 형제들이 동원되어 그가 여자를 토막살해하는 데 사용한 칼을 없애 증거를 인명했다. 또 동생에게 동대원구역 보안서 수사과와 예심과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 살해 사실을 강요받아 어쩔 수 없이 살인했다고 인정했다고 진술하도록 했다.
그리고 재판소 판사에게 뇌물을 주고 권력의 힘으로 압력을 가했다. 결국 재판에서는 증거가 명백하지 않다며 김 모가 살인자가 아니며 무죄 판결을 받았다. 더구나 형제들은 사회주의사회에서 죄 없는 사람을 체포하여 고문하며 인권을 유린하였다고 하면서 사건을 담당하고 그를 체포하였던 동대원구역 보안서 수사과 수사원과 그를 예심 하였던 예심원은 당에서 출당시키고 면직시켜 온 가족과 함께 18호 관리소에 이주민으로 보냈다.
▲김정일의 지시로 재조사하게 된 갑질 판결/조선 DB
당시 보안서장은 연좌제로 면직되어 량강도 백암군으로 추방하였다. 수사원과 예심원은 관리소에 이주민으로 들어가 나올 수도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서장은 3개월 후 몰래 평양으로 들어와 혼자 숨어다니면서 6개월에 걸쳐 사건을 재검토 수사하였다.
수사 결과 김 모가 살인자라는 확고한 단서를 갖게 됐다. 그는 어느 날 저녁 술 3병과 고기를 사들고 김 모 집에 찾아갔다. 그와 술을 마시면서 자기가 형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사건을 승인하였다가 결국 이렇게 면직되었다며 신세를 한탄하면서 서로 나눈 대화를 녹음하였다. 김 모는 술에 취한 채 자기 형들의 힘이 막강하다고 자랑하면서 누구도 나를 잡을 수 없다고 호언장담했다. 또 사건 당시 형들이 감옥에 몰래 찾아와서 어떻게 하라고 말해주었고 특히 다섯째 형이 칼을 먼저 찾아서 증거물을 없애버렸다는 사실을 죄다 말해버렸다.
그 다음 날 보안서장은 자기가 6개월에 걸쳐 재수사한 수사보고서와 김 모와의 대화과정을 녹음한 테이프를 가지고 중앙당 신소과(민원실)에 찾아가 김정일에게 직접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그 신고서를 본 김정일은 중앙검찰소에 지시하여 다시 구체적으로 재조사하라고 지시하였다.
김정일은 중앙검찰소에서 재조사 결과 김 모가 살인자가 맞고 형들에 의해 판결이 잘못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김정일은 당과 대중을 이탈시키는 행위로서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비열한 살인 사건이라고 하면서 김 모와 칼을 없애버린 당시 평양시 보안국 감찰처에서 근무하던 다섯째를 공개재판하고 사형에 처하고 나머지 형들은 온 가족과 함께 18호 관리소에 이주민으로 보내고 당시 사건재판을 하였던 판사와 사건을 조작하는데 관련된 모든 사람을 출당 면직시키겠다는 중앙검찰소 보고를 승인하였다.
그 사건으로 18호 관리소에 들어갔던 사람들과 면직 해임되었던 모든 사람을 자기의 원래 직무에 복직시키도록 했다. 이 사건은 억울하게 손해 본 인민들에 대해 김정일이 언제나 한량없는 사랑을 베푼다는 또 하나의 일화를 낳게 했다.
이것이 2007년 12월 혹한속에 많은 사람을 모아 놓고 김정일의 어버이 사랑을 선전하고 공개재판 사형이 집행된 사건이다. 결국 김 모의 7형제 중 2명은 사형을 당하고 나머지는 18호 관리소 이주민으로 온 이주민으로 온 가족이 추방되면서 사건은 결말났다.
김철추
◇ 03.06 “범인 처형을 남파 간첩 살인 훈련으로 활용”
▲지난 2005년 3월 1일 회령시에서 공개처형이 진행됐다. 북한 주민들이 동원된 모습이다.
지난해 12월 7일, 강원도 원산시 갈마시장에서 또 한 명의 북한 주민이 총살을 당했다. 공개 총살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김정은이 집권한 지 3년이 지났다. 평양 시민, 소위 특별시민이 아닌 일반 주민들의 생활은 여전히 곤궁하다. 상황이 이런데 김정은은 강원도 마식령에 초호화 스키장을 짓는 데 신경을 쓰더니, 이제는 아버지 김정일의 동상을 여기저기 세우는 데 열심이다.
동상을 세우기 위해서는 동(구리)이 필요하다. 각 기관, 기업소와 인민반을 통해 충성심을 본다면서 동을 바치라는 명령이 거듭 내려왔다. 심지어는 전국의 유치원생부터 대학생 등 학생들한테까지 재촉이 이어질 정도였다. 아니 집 마당에 구리 광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동을 어디서 자꾸 구하겠는가. 주민들 사이에서 원성이 높아졌다.
그러던 2014년 10월의 어느 날, 원산에 사는 한 주민 A씨가 김일성 동상에 화풀이를 할 계획을 세웠다. 폭약은 구하기 힘드니 뼁끼(페인트) 한 통을 구해놓았다. 그는 개선동에 있는 김일성 동상 주변을 정찰해 봤다. 낮에만 보초가 있고 밤에는 보초가 보이지 않았다.
A씨는 밤을 틈타 뼁끼를 들고 김일성 동상으로 접근했다. 그러나 곧 잠복근무 중이던 보안원에게 잡히고 말았다. 보안원이 동상을 지키기 위해 낮에는 공개적으로 보초를 서지만 밤에는 몸을 숨기고 잠복근무를 선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북한 전역에 김일성 동상이 있지만 개선동에 있는 김일성 동상은 의미가 남다른 동상이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광복한 후 김일성은 기차를 타고 러시아에서 북한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일본 패잔병들이 기차 터널을 폭파했다. 김일성은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 군함을 타고 원산항으로 들어왔다. 이걸 기념한다고 하면서 항구가 있는 지역의 이름을 ‘개선동’으로 바꿨다. 김일성 동상도 크게 세웠다.
그런 의미가 있는 동상에 뼁끼를 뿌리려 한 것이다. 보안부에 구속되어 예심을 받으면서 A씨는 아무래도 죽으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래서 죽는 김에 할 말을 다 하기로 했다.
‘김정은과 당은 말로만 인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한다. 김정은은 정권을 잡고는 자기 아버지 김정일을 우상화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동상을 세우는데 그 돈이면 북한 사람들이 이밥(쌀밥)에 고깃국을 먹을 수 있다.’
공개 총살로 끝난 뼁끼 사건
결국 A씨의 동상 뼁끼 사건은 특대사건으로 인민보안부에 보고됐다. 인민보안부 예심국에서 직접 내려와 예심을 진행했다. 김정은에게까지 보고가 올라갔다. ‘감히 조선의 태양이신 김일성의 동상을 훼손하려고 한 반당,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혔고, A씨는 원산시 주민들 앞에서 공개 총살을 당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족과 친척들 모두 인민보안부 교화국에서 관리하는 18호 관리소로 보내졌다.
18호 관리소가 어떤 곳인가. 원래 18호 관리소는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14호 관리소와 마주하고 있었다. 18호 관리소에서 나오는 석탄과 나무는 각각 채광량이 많고 질이 좋기로 유명했다. 인민보안부는 석탄과 나무를 싼 가격에 중국으로 수출해 수입을 올렸다. 내각에서는 이걸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북창화력발전소는 평양시 지하철도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였는데, 18호 관리소에서 나오는 석탄과 나무를 북창화력발전소로 공급하기 위해 내각은 김정일에게 몇 번이나 소를 올렸다. 결국 내각 석탄공업성에서 18호 관리소가 있던 봉창지구의 관리를 이전받았다. 18호 관리소는 개천시로 이주했다. 지금은 시멘트를 위주로 생산하고 있다.
A씨를 공개 총살할 때 강원도와 원산시 전역에 사는 주민들 수천 명이 총살을 지켜볼 것을 명령받았다고 한다. 일장 연설이 시작됐다. 이런 내용이었다.
‘당의 품속에서 자라면서, 키워준 은혜를 망각하고 조선의 최고 존엄인 김일성의 동상을 남조선정보기관의 사촉을 받고 훼손하려 했다.’
한국 정부가 배후에 있다고 들이민 것이다. 북한이 흔히 내세우는 논리다. 원래 북한에서 교양을 받은 주민들은 다 충성분자인데, 간혹 나타나는 배신자들은 남한의 사주를 받은 결과라는 식이다.
가혹한 인권유린행위로 세계가 북한의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에 기소하자고 하고 있다. 북한은 제대로 된 재판 과정도 없이 한 사람의 주민을 이런 식으로 공개 총살해 버렸다. 그러면 북한의 재판 과정 자체는 공정한가? 살펴보자.
북한의 재판 과정
북한에서 재판 과정은 3단계로 나눠져 있다. 각 구역, 군 재판소가 1단계 재판소이고, 평양시와 각도 재판소가 2차 단계 재판소다. 최고재판소가 최종심이다. 원래는 매 구역, 군에 재판소가 있는 게 아니라, 3~5개 구역, 군을 묶어 지구재판소가 있었다. 일명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각이한 형태의 범죄 사건이 많이 발생하고, 이혼율이 많아지면서 형사재판과 민사재판 사건이 많이 진행되었다. 그런 이유로 2000년도부터 매 구역, 군에 재판소가 설치됐다.
형사재판은 각이한 범죄를 저지르고 보안서나 검찰에서 예심을 받은 사람들을 재판한다. 민사재판은 이혼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돈을 대부하고 돌려주지 않는 등의 민사 사건을 재판소나 변호사에게 직접 고소해 진행하는 재판이다.
구역, 군보안서의 예심과와 검찰소에서 사건을 취급하면 구역, 군 재판소에서 재판이 진행된다. 재판에서 본인이 구형받은 형기가 억울하다고 상소를 하면 도 재판소로 이송되어 도 보안국이나 도 검찰소에서 재 예심을 하고 2차 재판이 진행된다.
도 재판에서 받은 구형에 다시 상소하면 최고재판소로 이송된다. 이때는 인민보안부 예심국이나 중앙검찰소에서 다시 재 예심을 하는데, 최고재판소는 판결을 할 때 본 재판 결과에 대해 상소할 수 없다는 것을 미리 선언한다.
여기에서 알아둬야 할 게 있다. 북한에서는 일단 상소를 하여 범죄인이 무죄로 되거나 형벌이 낮아지면, 그 전에 체포한 수사과나 감찰과 보안원이나 혹은 검찰소의 검사와 예심을 진행한 예심원이 철직된다. 즉 본인이 조사한 범인이 상소 결과 형량이 낮아지면 자리를 내놔야 한다는 얘기다. 자연히 상소를 못 하도록 압박을 하게 된다.
상소하면 형량 2배 뻥튀기
피의자가 무조건 상소를 해 2차 단계까지 간다고 치자. 초록은 동색이라고 재판소가 피의자의 편을 들어줄 리가 없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자기 범죄에 대한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다’는 이유를 들어, 1차 재판에서 받은 구형보다 2배까지의 중형을 선고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 때문에 사실상 상소는 거의 못 한다고 보면 된다.
상소를 하기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구해 재판 전에 판사나 검사에게 뇌물을 먹이는 게 좋다. 가장 큰 효과를 얻으려면 재판으로 넘어가기 전에 담당 예심원에게 뇌물을 먹이는 게 좋다. 뇌물을 적절한 사람에게 잘 전달하면, 심지어 살인자도 교양처리 혹은 노동단련대로 끝낼 수 있다.
범죄자를 체포하면, 가족의 신원을 먼저 확인한다. 직계형제 중에 중앙당,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미그-21 이상 비행사, 잠수함이나 974친위대에서 근무하는 사람, 재일본 조총련 간부와 친척이 되는 사람들이 있으면 일단 먼저 중앙당에 보고를 해야 한다.
위의 분야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형제들이나 가까운 친척들 중에 교화형을 받으면 철직 제대된다. 그 사람을 철직시킬 상황이 아니라면, 아무리 중범죄자라도 가족 덕에 한번은 교양처리를 받고 나올 수 있다. 다시 재범을 하면 그 집 가문의 동의를 받아 가족명단에서 삭제하고 83호 병원으로 보낸다.
83호 병원은 인체해부실험을 진행하는 곳이다. 형제들 중에 계속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 자기네가 징계를 받지 않고 직위 유지를 위해 가문에서 삭제한다는 보증서를 쓰고 보내게 된다. 혹은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거나, 나중에 심하게 앓거나 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된 사람,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사람 구실을 하기 힘든 사람’이 되면 그 형제들은 ‘이 사람을 더는 찾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83호 병원으로 보낸다. 특히 평양 사람들은 평양에서 지방으로 이주되지 않기 위해 이런 관행에 철저히 따른다. 한번 83호 병원에 가면 다시는 살아서 나오지 못한다.
변호사는 있으나 마나
북한의 모든 사무실과 주민들의 살림집을 비롯해 모든 방과 회의장들에는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가 걸려 있지만 재판장에는 국장만 걸려 있다. 구역, 군 재판소에는 판사 겸 소장 한 명과 전문판사 1명, 서기 2명 외에 직원들이 몇 명 있고 변호사 1명이 있다. 대체로 전문판사가 재판을 진행하고 소장이 특별히 부탁받은 것은 직접 재판을 진행한다.
형사재판이나 민사재판을 진행할 때에는 판사와 인민참심원 두 명이 기본 앞 석에 앉는다.
인민참심원은 구역, 군 당위원회에서 공장, 기업소들에서 성실하다고 평가되는 노동자, 농민, 일반사무원들이나 인민반장들 가운데 선출해 임명한다.
아래 석에 서기가 앉아 재판 과정을 기록하고, 기소검사가 좌측에 앉는다. 우측에 변호사가 앉고 판사 앞에 죄인이 재판 전 과정 서 있으며 양옆에 두 명의 계호보안원들이 앉아 있다가 피고가 혹시라도 반항을 하면 제지시킨다.
대체로 먼저 판사가 지금부터 피고 김모의 범죄 사건에 대한 재판을 시작한다고 선포하고 기소검사가 피고의 범죄사실을 읽는다. 그리고 피고의 범죄가 적용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법 몇 항, 몇 조에 의하여 몇 년의 교화형에 처할 것을 제기한다고 발언한다.
그다음 변호사가 발언하는데 변호사는 피고에게 검사가 말한 모든 범죄사실을 인정하는가 질문하고 인정한다고 하면 본인이 범죄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에 최소의 형량을 판결해 달라고 형식상 말하는 것으로 끝낸다.
북한에서는 모든 재판에서 변호사의 역할은 전혀 없다.
판사가 잠시 휴회를 선포하고 나가서 인민참심원들과 검사와 같이 약 5분 동안 토론을 하고 들어와 거의 대체로 검사가 제기한 대로 형벌을 적용하는 것으로 재판이 끝난다. 공개 재판이 아니고는 재판장에 다른 사람이 들어갈 수 없다. 판사는 판결을 하고 본 재판에 대하여 상소할 수 있다고 말하며 상소기일은 15일을 준다. 15일이 지나면 구류되어 있던 구류장에서 지정된 교화소로 이관된다.
2008년 중앙통계국에서 중앙당 지시로 인구조사를 진행하면서 확인한 결과, 1995년 이후부터 식량공급이 되지 않아 먹고살기 위한 각종 범죄가 많이 일어났다. 평양시와 도 소재지인 도시를 제외한 북한의 모든 지방에서 40세 이상의 사람들 중 50% 정도가 교화소나 노동단련대 출소자들이었다.
이런 형편이니 당과 보위부, 보안부, 사법검찰기관에 한을 품고 이제 전쟁이 일어나면 자기를 조사했었던 사람을 먼저 쏘아죽이겠다는 말이 나돌 정도에 이르렀다. 김정일은 새로운 형사소송법을 제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형량을 2배 정도 감하는 방향으로 법률이 개정됐다. 결국 2011년부터는 새로운 형사소송법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간부들과 주민들이 반당, 반국가범죄를 감행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보는 이에게 막대한 공포를 주는 공개 재판과 공개 처형을 자주 진행한다.
몇 가지 ‘치사’한 방법이 동원된다. 공개 재판을 하는 경우에는 재판소와 검찰소, 보안부에서 사전에 미리 짠 다음, 피고인에게 이런 제안을 한다.
‘주민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자기 범죄를 인정하고 반성을 잘하면 용서를 해주거나 형량을 감해주겠다.’
드라마 CD 팔았다고 공개 총살
▲2005년 3월 1일 함북 회령 인근의 강변에서 탈북하려다 체포된 11명의 북한 주민이 공개재판장으로 끌려가는 모습.
총살이나 교수형이 진행되려면 중앙검찰소와 최고재판소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일단 당 안전위원회에서 결정을 하고 중앙당에 문건을 올려보내면 거의 다 통과된다.
실제 2010년 평양시 형제산구역 하당시장에서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집에서 컴퓨터로 복사하여 USB와 CD로 팔다가 잡힌 45세가량의 여성 B씨를 공개 재판한 적이 있다. 평양시 재판소 판사가 한 명, 인민참심원 두 명, 평양시 검찰소 여성검사 한 명, 평양시 변호사협회에서 변호사 한 명이 참가해 진행했다.
그날은 오후 2시부터 시장을 파하게 하고, 평양시 보안국과 형제산구역 보안서에서 나온 수백 명의 보안원들이 임시로 차려놓은 공개재판장을 둘러쌌다. 5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수천 명의 주민들이 모여 공개 재판을 참관했다.
공개 재판을 하기 10여 일 전부터 기관, 기업소와 인민반들에 공지해 공개 재판에 참가하라고 지시를 내린다. 많은 사람이 참석하도록 하기 위하여 공개 재판은 주로 일요일에 진행한다.
공개재판장 옆에 주석단을 차려놓는데 그곳에는 평양시 당과 보안국 간부들이 앉아서 재판 과정을 지켜본다.
B씨의 재판 과정을 보자. 재판을 시작한다고 판사가 개회사를 했다. 기소검사가 피고인의 죄행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서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복사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썩어빠진 남조선의 자본주의 생활 실상을 배포시키었다고 낭독했다.
그다음 변호사가 피고인에게 자기의 범죄를 인정하는지 물었다. 그런 다음 왜 이런 범죄를 감행하게 되었는지 앞에 있는 사람들이 듣고 교훈으로 삼을 수 있도록 발언하라고 했다.
피고인은 반성을 잘 하면 용서를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수령님과 장군님이 내려주신 교시, 말씀과 당정책 학습에 충실히 따르지 않고 조직생활에도 성실히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극단한 개인이기주의에 물들어서 오직 돈밖에 몰랐습니다. 남조선 영화라는 것을 알면서도 복사하여 배포했습니다. 엄중한 범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그 어떠한 형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발언을 끝내고 피고인의 마이크가 회수됐다. B씨의 양옆은 두 명의 보안원이 지키고 있었다. 검사는 본인이 자기의 범죄를 다 시인하였다고 하면서 썩어빠진 남조선의 영화를 배포한 용서 못 할 범죄이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법 몇 항, 몇 조와 인민보안부 포고 몇 호에 의하여 사형에 처할 것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그 순간 B씨는 깜짝 놀랐다. 분명 죄를 인정하면 형을 감해준다는 약속을 받았기 때문이다. B씨는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보안원들은 재판장 뒤에 임시로 설치한 가설막 안으로 피고인을 끌고 들어가 반죽음에 이를 정도로 때려서 입에 자갈을 물리고 눈까지 가린 다음 다시 끌고 나왔다.
보안원들이 피고를 데리고 들어간 사이에 휴회를 선포하였던 재판관이 다시 나와 판결을 내렸다.
“검사의 기소가 맞고 피고도 자기의 범죄를 시인하고 그 어떤 형벌도 달게 받겠다고 하였으니 앞으로도 이런 범죄가 나타나면 엄벌에 처한다. 피의자를 사형에 처한다. 본 재판에 대하여서는 상소를 할 수 없고 본 판결을 평양시 인민보안국에서 이 자리에서 즉시로 집행할 것을 위임한다.”
공개 처형의 상황은 이렇게 이뤄진다. 개울 방향으로 말뚝을 박고 거기에 피고를 묶는다. 사형지휘관의 구령에 따라 3명의 보안원이 자동보총을 메고 피고인의 5m 정도 앞에 선다. 사형지휘관이 ‘사격준비’ 하고 구령을 외친 다음 ‘민족반역자 누구를 향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이름으로 단발로 쏴’ 하고 명령을 내린다. 가슴팍을 먼저 쏘고 배, 다리 순서로 각각 3발씩 쏘면 묶였던 끈이 끊어지면서 9발의 총알을 맞은 피고인이 쓰러진다.
사형지휘관은 권총을 뽑아 범인에게 다가간다. 발로 차서 죽었는지를 확인하고 조금이라도 살았다고 생각되면 그 자리에서 머리에 7발을 쏘아 죽인다.
보안원들이 와서 천으로 시체를 말아서 차에 싣고 지정된 장소에 가서 묻어버린다. 친척들에게도 그 위치를 알려주지 않게 되어 있다. 국가반역자로 처단되었기 때문에 추석 때에도 친척들이 제를 지내지 못하게 한다. 개죽음을 당한 후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매몰’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비공개 처형은 공작원 훈련 과정
살인자들은 주로 교수형으로 처벌한다. B씨와 같은 방법으로 공개 재판을 한 다음, 교수형에 처한다고 판사가 판결하면 보안부에서 준비한 조립식 교수대를 그 자리에 세운다. 목을 10분 정도 매달아 죽이고 보안원들이 천으로 싸서 차에 싣고 가서 매몰해 버린다.
이상은 모두 일반 인민들에 해당하는 얘기다. 당, 정부, 인민무력부, 보위부, 보안부 등 간부로 근무하던 사람들은 공개 총살을 하면 오히려 주민들에게 주는 영향이 나쁘다고 보고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비공개로 처형한다.
평양시 순안구역 석박동에 있는 강건군관학교 사격장에서 해당 간부들의 참석하에 사형을 진행한다. 비공개로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특별재판소에서 나와 김정일이나 김정은의 크나큰 정치적 신임으로 간부로 임명되었으나 그 신임을 배반하였기 때문에 반당, 반혁명분자로 낙인하고 사형에 처한다고 공표를 한다. 사형은 대체로 보위부가 집행한다.
사형지휘관의 구령에 군복을 입은 보위원 6명이 자동보총에 15발을 장약하고 나온다. 사형지휘관이 ‘반당, 반혁명분자 누구를 향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이름으로 점발로 쏴’ 하면, 1인당 15발씩 3번에 걸쳐 점발로 6명이 총 90발을 쏜다.
그러나 공개 처형 대상이 아닌 사람은 보위부에서 사건 취급을 끝내고 대남, 대외 공작원이나 해외반탐보위원들이 칼로 찔러 죽이거나 몽둥이로 때려 죽이게 해 살인에 대한 담력 강화에 이용한다.
그래야 공작을 나가서 사람을 죽여야 할 일이 있을 때 주저 없이 행동할 수 있기 때문에 훈련의 일환으로 진행한다. 곧 죽을 사람까지 끝까지 착취한다고 할까.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 03.09 北, 주민과의 일문일답 "김기종을 어떻게 생각하나"
흉기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습격한 김기종에 대해 북한주민들과 비밀리에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상대는 국경지역의 북한주민 3명과 군인 2명. 자유북한방송에서 준비한 질문 내용은 동일했고 아래, 북한주민 5인의 상이한 답변을 간추려 보았다.
* 편의에 따라 북한주민은 1, 2, 3으로, 국경경비대 군인은 4, 5로 칭함 (편집자 주)
질문 : 미국대사를 피습한 남조선 사람 이름 알고 있나
답변 : 1, 2, 3. 4 : 모른다. (5번은 안다로 답함)
어떻게 생각하나?
1, 2 : 영웅이다.
3, 4, 5 : 또라이(정신이상자에 대한 비속어/ 북한 속어), 미친놈이다.
왜 영웅으로 생각하나?
1 : 죽을 각오로 미국을 반대하지 않았나?! 말로가 아니라 실천행동으로 미국에 맞서 싸웠다. (남조선에선 그 정도 행동으로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들을 때까지 설명함. 내용은 생략)
(3에게) 왜 또라인가?
3 : 그게 어디 제정신 있는 놈이나. 미국 대사를 칼로 찌른다고 미국이 (남조선에서)나가나? (부상정도가)그 정도였으니 말이지 진짜 미국 대사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미국이 가만있겠나? 그런××, 확 손목 떼기 분질러 놓아야 한다.
(5에게) 왜 미친놈인가?
5 : 대사면 외교관이다. 외교관을 칼로 찌른다는 게 말이 되나. 난 8년 동안 미국놈들과 목숨 걸고 싸워야 한다는 교육만 받아온 군인이지만, 전쟁도 아닌 평화시기에, 그것도 외교관을 향해 칼질을 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해보았다. 완전 미친××다.
이번에 주한미국대사를 습격한 인물이 금강산도 관광했고 개성도 방문하는 등 여러 차례 북조선을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과 연계성이 있다고 생각하나?
1 : 당연히 있지. 우리나라(북한)에서 그런 사람들을 그냥 놔두나.
2 : 앞날을 미리 내다 보는 거다. 이런 때 써 먹으려고.
3 : 옛날 (6.15이후)에 하도 많이 남조선 사람들이 (북조선에)왔다 갔으니까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당국과 연계됐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4 : 북조선에 다녀갔다고 해서 다 그런 행동을 한다면 남조선에 미국사람 남아있을 리 있나. 다 칼을 맞았겠지. (웃음)
5 : 통전부 같은데서 저런 미치광이들을 흡수할 수가 있다. 충분히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
2010년엔 독도문제 등과 관련해 일본대사에게 주먹만 한 돌을 던진 적도 있다. 참고로 독도지킴이 대장이다.
1 : 잘했네. 일본도 우리의 원쑤아닌가. 역시 영웅이다.
2 : 영웅도 2중 영웅이다. 국가보안법 철폐까지 웨치면 딱 3중 영웅 감이다.
3 : 독도 지킴이 좋아하네. 그런××가 지키지 않아도 독도는 우리 땅이다.
4 : 우리가(북한이) 말하는 독도문제와 남조선에서 말하는 독도문제가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일본을 워낙 미워하니까 그런다 치고 남조선에서는 ‘한일관계’를 훼손하기 위해 독도문제가 부각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 전에도 독도문제, 종군위안부 문제가 남조선과 일본과의 관계를 파탄시키는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내부강연이 있었다.
5 : 외국 대사에게 돌을 던지고도 펀펀히 살아있다는 게 믿어지질 않는다. 왜 그런 일이 있었을 때 처벌하지 않았나. 북조선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당장 공개총살이다. 중국이나 로씨야 대사에게 돌을 던졌다고 생각해 보라. 안 그런가.
김정일이 죽었을 땐 서울한복판에 김정일의 분향소 설치를 시도했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천안함 사건(폭침)때와 전시작전권 전환문제가 제기 됐을 때는 그쪽(북한) 국방위원회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1 : 동지네 동지.
2 : 3중 영웅이 맞네. 일을 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3 : 북조선 다녀가고, 일본과 미국 대사관 책임자 테러하고, 공화국 입장 지지하고, 더 나아가 김정일 분향소 설치하고...임무 받았네.
4 : 남조선 대단하다. 그런 놈들 그냥 살게 하고. 여기 같으면 딱 정치범 감이다. 그런 거 (김정일에 대한)존경심 없으면 하나.
5 : 여기(북한에)서 미국을 반대하는 남조선민심의 반영이라고 하든데, 그런말 들어 싸네. 그런 놈들 가만히 내버려 두니까 이번 사건도 발생하는 거지. 여기선 강도는 살려줘도 정치범은 절대 살려두는 법 없다. 그쪽(남)에서도 이쪽(북)에서 배울 건 배워야 한다.
테러범의 이름이 김기종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김기종은 유독 북한과의 연계성에 대해서만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 일부에서는 정신이 이상한 김기종이 개별적으로 벌인 일이라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1 : 당연하지. 임무 받은 사람이 '임무를 받았다'고 말할 리 있나.
2 : 끝까지 반미, 전쟁반대를 웨쳤다고 텔레비죤이 보도했다. 그렇게 용감한 사람이 뭘 꺼리고 망설이고 하나. 그냥 질러버리지. 그래야 진짜 공화국 영웅이 된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다.
3 : 그거 이상하지 않나. 그렇게 용감한 ××가 다른 건 다 인정하면서 그것(북한과의 연계 설)만 부인하는걸 보면 뭐가 있기는 있는 거 같다.
4 : 정신이 이상하긴. ‘만덕산의 검은 그림자’ 못 봤나? 간첩들이 정신병자 행세를 하며 임무를 수행한다는 건 세 살 난 애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만덕산의 검은 그림자 : 7~80년대에 북한에서 유행하던 반 간첩 그림책, 책에서 남조선 간첩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정신병자로 행세함/ 편집자 주)
김성주 자유북한방송 기자
◇ 03.17 김정은 경호원들의 실체는?
김정일은 집권 전 기간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불복의 기미만 나타나도 불안감과 과대망상증에 걸려 너무나도 많은 사람에게 죄 아닌 죄를 뒤집어 씌워 죽였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친척들이나 친지들을 비롯한 반대세력에서 언제든지 보복의 총탄이 날아올 것이 두려워 신변경호에 최선을 다했다. 일반적으로는 지금까지 김정일이 호위국의 경호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실질적으로 호위국은 중앙당과 김정일의 초대소, 별장들의 외곽경비만 맡아 진행했다. 김정일의 근접경호와 자택이나 초대소, 별장, 정문초소에는 974부대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는 친위대가 경호를 맡았다.
지금 김정은의 경호도 역시 974부대가 진행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김정일은 호위국을 신뢰하지 않았다. 김정일이 어느 단위나 군부대에 대한 현지시찰을 나가기 한 달 전부터 그 단위에는 비상동원이 걸리고 행사장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들을 보위부가 선발해 놓는다. 중앙당 선전선동부 행사과와 평양시 보통강 구역에 있는 국가안전보위부 5총국(행사총국)에서는 현지시찰 보름 전부터는 현장에 나가서 폭팔물이 설치되어 있는가 하는 검사를 하고 그때부터 24시간 초비상사태에 돌입하여 현장을 지킨다.
2000년에 평양~남포고속도로가 완공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김정일이 직접 시찰했다. 김정일이 도로공사참가자 중에 중앙당과 보위부가 선발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기념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행사 예정시간이 초과하면서 김정일이 철수하기 전에 행사가 취소된 일이 있었다. 뼈가 빠지도록 일을 하였는데 자기들은 행사에 안 참가시키고 군관(장교)들 중에서도 선발된 사람들만 행사에 참가했다며 화가 치밀어 있었다. 행사가 취소되자 개통된 도로에 나왔던 인민보안부 산하 8총국(도로국)부대 병사들은 도로로 질주해오는 고급승용차를 보고 막고 차를 세웠었다. 그런데 그 차에는 행사를 마치고 도로시험을 해보기 위해 급속주행하던 차로 김정일이 타고 있었다. 급속 주행하는 바람에 다른 간부들의 차와 호위차량은 따라오지 못했다.
군인들이 차가 좋다고 하면서 차를 만져도 보고 누구차인가고 하면서 간부들은 좋은 차만 타고 다닌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 중 한 병사가 차 타이어가 좋은 것이라고 하면서 발로 차보았는데 후에 그 병사는 총살당했다. 뒤로 달려오던 다른 간부들과 호위차량이 오면서 자기 전사들이라고 말하던 병사들에게 둘러 막혀 차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부들부들 떨던 김정일은 고속으로 차를 달려 중앙당 자기 사무실에 들어와 얼마나 혼이 났는지 중앙당 행사과장, 보위부 행사 총국장, 8총국장과 그날 행사에 관여하였던 간부들을 다 해직시켜 버렸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 방북때 김정일과 그를 호위하는 974부대원./조선 DB
김정일을 호위하는 974부대는 자기들의 경호구역에 미리 통보되지 않은 사람들이 접근하는 경우에는 예고도 없이 무조건 총으로 쏴 죽인다. 심지어 외곽경비를 서는 호위국병사들이 신입시절에 잘 몰라서 자기네 경비구역으로 들어왔다고 쏴 죽인 일도 수없이 일어났다. 2005년도 경에는 김정일이 인민군 부대의 현지시찰이 있었는데 김정일이 온다고 총알도 없는 총을 차고 영접하는 훈련도 많이 한 연대장이 김정일의 차가 부대에 들어서자 영접하려고 달려가던 중 옆구리에 찬 권총이 총알이 없는 빈 총이지만 무게가 있어 흘러내리자 추켜올리느라고 달려가면서 손을 옆으로 가져갔는데 그 순간에 7발의 총탄이 그의 몸을 관통해 연대장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가 김정일을 테러하기 위해 권총을 뽑으려고 한 것으로 착각한 김정일의 경호원들이 그를 사격한 것이었다. 애매한 연대장을 죽였으나 경호원들은 제때에 대처하였다고 칭찬을 받고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 김정일이 군부대 현지시찰시 장교들은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몰라 빈 총이지만 총을 찬 옆에는 손도 가져가지 못하고 있다. 2006년경에는 김정일이 자강도 희천시에 있는 희천공작기계공장을 현지지도 하였다. 행사 명단에 들어 있던 기사장(군대에서 참모장과 같은 직무)이 공장의 바쁜 업무를 보고 김정일이 공장에 도착하자 행사가 시작 된 지 5분 정도 늦게 행사장으로 달려가다가 경호원 총에 맞아 사살되는 사건도 있었다. 이렇게 김정일이 소위 현지지도를 나갔다가 죽은 사람들의 가족들도 어디 가서 하소연도, 말도 못하고 속을 앓으며 살고 있다.
974부대는 중대 단위로만 되어 있고 13년 만기복무기간에 부모들이나 친척, 친구들에게 편지도 할 수 없게 되어 있으며 참지 못해 몰래 집에 편지했다가 총살된 병사도 있으며 제대될 때에는 자기가 가고 싶은 대학에 갈 수 있는 특권과 대학을 졸업하면 대체로 당 간부로 될 수 있는 확률이 높고 군관(장교)들은 30살에 장가를 갈 수 있는데 자기 마음대로 여자를 선정하는 것이 아니고 중앙당 담당 부서에서 사진을 보여주고 결혼을 시키며 가족들은 평양시 룡성구역 화성동에 있는 부대가족들의 집에서 살면서 부모는 물론 외부인원들과 접촉을 하지 못하게 하고 생활필수품은 중앙당에서 최대로 잘 해주고 있다.
974부대는 화물차까지도 독일산 벤츠이고 차 번호도 중앙당 차 번호 04나 05를 달고 다니며 김정일의 초대소나 별장 차들은 2163333번호를 공동으로 달고 다녔는데 북한에서 김정일의 생일인 216을 차 번호 앞에 있는 차는 중앙당 후보위원 이상 고급간부들만 다는 번호다. 이 때문에 아무 차나 세우고 검열할 수 있는 10호 초소들에서도 그 차들만은 세우지도 못한다. 이렇게 김정일은 항상 테러의 위험 속에서 살면서 자기를 경호하는 974부대는 중앙당 5과(지금은 6과)로 선출된 사람들로 친위대라고 부르며 최우선의 대우와 특권을 주고 자기를 무조건 호위하도록 했다. 친위대는 지방 초대소 별장 지키는 사람들까지 다 합하여 6000명가량 된다. 지금도 김정은이 현지시찰을 나가면 옆에 총을 들고 서서 주의를 살펴보는 장성, 군관들은 다 974부대 친위대이다.
김철추
◇ 03-20 물난리 본 김정일 “상하수도 시설을 하지 않은 덕을 톡톡히 본다”
북한이 평양에 아파트 10만호 건설을 추진하면서 상하수도 시설 때문에 깊은 고민에 빠졌다. 대규모 아파트 건설은 이번이 처음이라 상하수도 시설을 미처 준비하지 않고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3만호 정도 준공한 상황이지만 상하수도 시설이 급해졌다. 여름철에 장마라도 찾아오면 큰 일이다. 북한은 우선적으로 중국산 상하수도 시설을 들여오려고 하지만 북·중 관계가 냉랭해져 그마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회간접자본(SOC) 가운데 기본은 상하수도 시설을 잘 건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하수도 시설을 잘 건설해야 장마가 오더라도 물이 제때에 빠지고 오수에 의한 도시의 오염을 막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평양과 함흥시의 경우 도시를 건설하면서 상하수도 시설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아파트만 많이 건설하다보니 비가 조금만 와도 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고 도로에 물이 차서 주민들의 생활에 적지 않는 지장을 주었다.
2007년 8월 평양의 보통강이 범람해 많은 도로가 물에 잠겼다. 김 국방위원장은 건설부문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아 그런 일이 생겼다고 질책하기도 했다. 그가 “지금까지 상하수도 시설을 제대로 하지 않은 덕을 톡톡히 본다”고 말할 정도였다.
북한은 도시를 개선하는데 제일 고민거리는 과거에 건설해 놓은 상하수도 시설이다. 지금 평양도 마찬가지다. 김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다른 건설은 당분간 하지 말고 상하수도 시설을 보수·정비하는데 달라붙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그래서 10만호를 짓는 과정에서 이 문제까지 해결하려고 하니 자재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건설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그래서 최근 새로 나온 구호가 ‘평양 속도’다. 이 말은 1958년 평양시를 건설할 때 등장했던 말인데 올해 재등장한 것이다. 속도를 내다보면 부작용도 따라오기 마련인데 지금은 속도가 최우선이다.
북한은 한국에 여러 차례 상하수도 시설을 보내달라고 정부가 아닌 민간인들에게 요청했다. 그래서 한국산 상하수도 시설이 북한에 전달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태부족이다. 북한은 중국산보다 한국산으로 선호해 만족도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산은 친환경적이고 중국산보다 통수성과 시공하기가 좋아 북한에서 인기다. 따라서 유지보수가 필요 없을 정도로 반영구적이고 경제성도 높다.
상하수도 시설 등을 포함해 북한의 SOC 건설은 한국 건설회사의 새로운 기회다. 최근 해외에서 고생하는 한국 건설회사들이 남북 관계가 개선돼 평양에서 제2의 경제 성장의 주역이 될 날을 기다려 본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 04.03 "北, 미사일 실험보다 위험한 자본주의 실험 중"
"수개월에 한 번꼴로 북한은 대대적 선전과 함께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한다. 그런데 최근에 북한은 이보다 훨씬 더 위험한 자본주의 실험을 조용히 진행하고 있다. 외부와 철저하게 격리되어 '석기시대 공산주의(Steinzeitkommunismus)'라는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식량이 부족해서 나무껍질이나 곤충을 잡아먹는 주민들의 실상과는 동떨어진 분위기가 최근 북한에서 감지된다."
평양에 자동차 광고가 등장하고, 스마트폰 앱스토어가 생기는 등 '위험한 자본주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고 독일 시사 주간지 슈테른(Stern)이 1일자 최근호에서 보도했다. 슈테른은 북한 주민에게 기업가 정신과 자본주의 교육을 하는 독일인 닐스 바이젠제(35)씨를 인터뷰해 이렇게 전했다.
바이젠제씨에 따르면 최근 평양에는 북한산(産) '평화자동차' 광고가 등장하고, 2012년 자체 개발한 태블릿PC인 '삼지연(三池淵)' 상점, 네일숍과 고급 레스토랑, 스마트폰 앱스토어도 생겼다. 인터넷이 차단되어 있는 북한에서 앱스토어는 오프라인 상점 형태다. 직접 상점을 방문한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케이블을 연결해 프로그램을 내려받는다.
슈테른은 "이런 현상은 경제 자유화의 신호탄이며, 배후에 북한의 1세대 기업가들이 있다"고 언급했다. 중국 상하이에서 커피숍 두 곳을 운영하는 바이젠제씨는 2013년부터 싱가포르에 본부를 둔 북한 교육 기관인 '조선교류'의 명예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조선교류는 2007년 북한 젊은이들에게 정치·경제·법률에 관한 지식을 가르치고 이들과 교류하기 위해 생긴 비영리단체다.
미국 미네소타주 햄린대학교에서 정치와 언론학을 전공한 바이젠제씨는 통신사 기자 생활을 한 적이 있고, 2012년 독일 DAPD통신사에서 1년간 상하이 특파원으로 근무했다고 자신의 이력을 밝히고 있다. 바이젠제씨는 자기 커피숍에서 노트북 컴퓨터로 평양 카페를 검색하는 손님을 우연히 만나게 됐다. 이를 계기로 손님과 얘기가 이어졌고, 3개월 뒤 그는 평양에서 커피 강연을 하게 됐다.
바이젠제씨는 "처음엔 회사 설립·관리 방법에 대해서만 강연하려고 했는데, 정작 북한 사람들은 '장사에 성공하려면 레스토랑 벽면을 무슨 색으로 칠해야 하느냐'며 구체적 질문을 쏟아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북한 시내에 벽면을 밝은 색으로 칠한 카페가 많아졌다"며 "김정은이 커피에 대해 긍정적으로 언급한 영향도 크다"고 했다. 조선교류는 1일 "평양에 카푸치노와 아이리시 커피 등을 파는 메이저 커피 체인점이 들어섰다"고 밝혔다.
바이젠제씨는 최근에는 북한 젊은이들에게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과 기업가 정신, 자본주의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북한 주민 800여 명이 그의 강의를 들었다. 강연에서는 초등학교 수준의 시장경제 원리를 가르친다.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상표는 왜 필요한지, 근로자에게 동기를 부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한다. 그동안 북한의 계획경제에서는 필요 없었던 내용이다. 바이젠제씨는 "북한 정권은 많은 신제품이 필요하며, 기업가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허락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슈테른은 아직 북한 내부에서 개혁이나 경제 개방을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고 전했다
한경진 산업부 기자
◇ 04월 03일 北, 최고급접대·감세로 투자유치 뒤 ‘먹튀’
北 ‘외화벌이 사기’ 백태
온갖 감언이설로 外資 유인 후
기술 빼가고 일방적 자산 몰수
개성공단 임금인상도 동일행태
북한이 최근 개성공단에서 일방적으로 북측 근로자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전형적인 북한의 ‘외화벌이 사기’ 행태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각종 감언이설로 투자를 유인한 뒤 북한에 공장이 세워지면 기술을 절취하고 결국에는 자산을 몰수하는 방식으로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3월 20일 중국 선양(瀋陽)에서 개최한 원산·금강산 국제관광 투자설명회에서도 높은 투자지분율과 낮은 세금, 값싼 인건비 등을 내세우면서 투자 유치에 열을 올렸지만, 중국 당국이 피해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기업들에 대북투자 경계령을 내린 것으로 3일 알려졌다. 북한 경제에 정통한 대북 소식통도 이날 문화일보와 전화통화에서 “비공개로 열린 원산·금강산국제관광 투자설명회에서 북측 인사들은 온갖 유리한 투자조건과 감언이설을 늘어놓았고, 5월 중 금강산에서 투자설명회 개최도 약속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의 이 같은 ‘사기’ 행각에 당한 기업이 줄줄이 나오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기업은 중국 500대 기업 중 하나인 시양(西洋)그룹이다. 시양그룹은 북한 황해남도 옹진군의 옹진철광에 2억4000만 위안(약 430억 원)을 투자해 철광석 선광 공장을 건설했다가 2012년 북한의 일방적 계약 파기로 한 푼도 건지지 못하고 쫓겨났다. 시양그룹은 대북투자 실패 사례를 ‘10대 대북투자 악몽’이라는 제목으로 공개하며 경계령을 내렸다. 이에는 △유리한 조건으로 유인 △최고급 접대 △불충분 및 부정확한 정보 제공 △갖은 핑계로 투자 확대 △생산일정 재촉 △기술 절도 △강제적 계약파기 △양봉합영회사(합작회사) 사업등록증 말소 △중국인 강제 철수 △초기 생산된 철강 판매대금 미분배 등 투자에서부터 강제 철수까지 북한의 행태가 잘 드러나 있다.
현대아산의 금강산관광사업도 비슷한 수법으로 북한에 당한 사례다. 북한은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자 2011년 4월 관광사업 관련 계약을 일방 파기한 뒤 남측 자산을 일방적으로 동결·몰수했으며, 2011년에는 자체 금강산국제관광특구법을 채택하면서 관련 시설을 사실상 국유화했다. 또 북한은 1999년 남포에 남북 합영기업 방식으로 설립된 평화자동차 운영권도 2013년 무상으로 가져갔다.
최근 개성공단에서 북한이 임금인상과 노동규정 개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결국 북한의 전형적인 일방적·퇴행적 행태다. 2013년 3∼4월 일방적으로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했고, 지난해 7월에는 질서위반을 이유로 통행을 제한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일방적 행위가 도를 넘어선 것으로, 북한이 개성공단마저 이렇게 취급한다면 어떤 기업도 북한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보영 기자 boyoung22@munhwa.com
◇ 04.10 "김정은 3살 때 사격배워 9살 땐 백발백중"
북한이 이달초 새학기를 맞아 각급 학교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를 우상화한 책자를 배포했다고 데일리NK가 10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책자는 150여쪽 분량 ‘김정은 혁명활동 교수지침서’로 2012년 ‘김정은 동지의 혁명력사를 명확하게 정립한 기록을 만들라’는 북한 내부지침에서 비롯됐다.
이 책자엔 김정은이 3살 때부터 사격을 시작해 9살 때는 3초 내에 10발을 쏴 모두 명중시켰다고 적혀 있다. 김정은이 6살 때 승마를 배워 기마수보다 말을 더 잘 탔고, 8살 때는 승용차로 포장이 되지 않은 도로를 질주했다고 나온다. 김정은이 시속 200km로 배를 몰아 외국 전문가와 경주에서 이겼다는 내용도 나온다.
교수지침서에는 이 같은 우상화 내용을 25시간 분량으로 나눠 구체적인 교육방법을 지도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책자 배포를 북한이 어린 학생들에게 김정은을 우상화하는 조기 세뇌 교육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 04.22 일본 교수 아프리카 북한 불법 무기 수출 현장 취재
▲북한의 우간다 특수경찰 훈련 모습. 현지 언론이 촬영한 사진으로, 미야모토 교수 제공.
2014년 7월 기자는 미야모토 사토루(宮本悟) 세이가쿠인(聖學院) 대학 교수와 연락을 시작했다. 기자는 일본의 대표적인 북한 전문가로부터, “‘북한의 해외 무기 불법 거래’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가 있는데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이메일, 전화 등으로 미야모토 교수와 교류를 시작했다.
당시 미야모토 교수는 본지 2014년 5월호 ‘집중분석, 유엔이 파악한 북한의 무기 불법거래 실태-北, 제3세계 국가들과 무기 거래 중’ 기사와 관련한 자료를 요청했다. 기자는 해당 기사 작성을 위해 수집한 자료를 미야모토 교수에게 전달했다.
미야모토 교수는 “북한 군사 문제를 주로 연구해 왔다”며 “2000년대 북한의 무기 생산이 정상화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해당 무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조사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아프리카 등 제3세계 국가에 무기를 수출하고 있다는 《월간조선》 기사를 읽고 실체를 확인하고 싶다”고 밝혔다.
2014년 8월 기자와 북한의 무기 수출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던 중 미야모토 교수는 “직접 아프리카에 가서, 《월간조선》 보도 내용을 확인하고 북한의 무기 수출 상황을 심층 연구하겠다”고 전했다.
그는 2014년 8~9월 사이에 본지가 의혹을 제기한 북한의 군사 원조를 받고 있다고 의심되는 탄자니아, 우간다, 에티오피아 등을 방문해 국제사회의 초미(焦眉)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북한의 해외 무기 확산 실태를 추적했다.
국제사회가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북한이 테러 지원국 혹은 독재 국가에 무기를 수출해 국제 분쟁을 확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 등 국제사회는 이러한 북한의 움직임을 추적해 왔다. 그러나 의혹을 받고 있는 국가들은 북한으로부터 무기를 사들인다는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 아프리카 군사 시장 진출”
국제사회는 북한의 제3세계 군사 원조에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나아가 북한이 적극적으로 무기 시장에 나서면서 세계 안보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프리카 방문을 결심하게 된 배경에 대해 미야모토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북한의 무기 수출은 과거 냉전(冷戰) 시절에 국제사회에서 큰 문제가 되었어요. 그러나 냉전이 끝난 이후에 아무도 관심이 없어요. 과거 미국이나 이스라엘 정부가, 북한이 중동에 미사일을 수출하는 것을 국제 문제로 봤어요. 그런데 핵 개발 의혹이 커지면서 북한 무기 수출에 대한 관심은 북한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줄어들었어요. 중동의 무기 시장은 매우 복잡해요. 시리아, 이집트, 이란 등의 나라가 북한의 무기를 수입했어요. 그러나 해당 국가들의 경우 국력이 많이 약해졌죠. 북한이 이러한 상황 때문에 냉전 시절 무기를 수출했던, 아프리카 국가들을 상대로 무기 수출을 늘리거나 군사 시장에 새롭게 진출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됩니다. 실제 유엔 안보리 보고서 등에서 이러한 우려를 경고하고 있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정보가 많이 부족해요. 부족한 정보를 수집하려고 직접 아프리카로 향했습니다.”
2014년 9월 우간다(Uganda)를 방문한 미야모토 교수는 우간다 핵심 관계자로부터 북한과 우간다 사이의 군사 교류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들었다고 전했다.
“우간다와 북한은 현재의 무세베니 대통령 이전부터 오랜 기간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어요. 2007년, 2010년, 2013년 우간다 경찰은 북한 인민보안부로부터 훈련 교관 파견을 받는 계약을 체결했어요. 교관은 약 100명 규모였으며, 한 명당 500달러의 월급을 줬어요. 계약에 따라, 2007년 5500명, 2010년 5500명, 2013년 5700명이 훈련을 받았어요. 우간다 경찰은 약 4만3000명 정도 됩니다. 교육 받은 경찰 가운데, 해양경찰도 포함되어 있어요. 한국 정부 역시 우간다 정부에 경찰 훈련을 시켜 주겠다고 제의한 적이 있어요. 당시 우간다 정부는 거절했어요.”
아프리카에서 경찰과 군대의 구분은 사실 큰 차이가 없다. 《월간조선》 2014년 5월호에서 공개했던, 북한의 우간다 무기 원조 사진을 보면 우간다 경찰은 사실상의 군대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무기를 제공하기보다, 교관 등을 파견하는 인력 원조 방식이 눈길을 끈다.
이와 관련해, 2000년대 초반의 북한 고위급 탈북자는 “과거 김일성 비밀 교시를 보면, ‘깜둥이들은 줄 때만 (좋아)하고 안 주면 끝나니, 계속 줄 수는 없고 다른 쪽으로 연구해 보라’는 내용이 있었다”며 “무기 원조보다는 정권을 유지·보호하는 경호원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원조의 방식이 변하게 된 배경이다”고 설명했다.
한국·북한, 우간다 회유 경쟁
▲미야모토 사토루 세이가쿠인 대학 교수.
우간다는 북한에 우호적인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자유아시아방송(RFA) 등에 따르면, 2014년 10월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은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나 “북한은 오랫동안 우간다를 도왔다”며 양국 관계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했다. 특히 무세베니 대통령이 “북한이 우간다군의 탱크 부대 창설 당시 군사 훈련을 제공하고 전투기 조종사 역시 훈련시켰다”고 말한 부분이 화제가 됐다. 북한이 우간다 전투기 조종사 양성을 지원한 것이 공식 확인된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북한 매체들 역시 무세베니 대통령과 김 상임위원장 간의 회담 소식을 전하며 “양국 간 친선 협조 관계 발전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보도했다.
미야모토 교수가 전한 우간다 관계자의 증언 가운데 주목되는 부분은 “한국 정부도 우간다에 경찰 교관 파견을 제의했다”는 부분이다.
2014년 10월은 유엔에 제출된 북한 인권결의안의 표결이 임박한 상황이었다. 결의안은 북한 인권상황을 고발하고 그 책임자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도록 권고하고 있었다. 우간다를 방문한 김 상임위원장은 우간다 정부에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져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세베니 대통령은 30년 가까이 장기 집권하고 있다. 당연히 독재 정권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2014년 9월 제69차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유엔본부에서 무세베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당시 박 대통령은 “우간다가 유엔총회 의장국을 맡게 된 것을 축하하고, 앞으로 국제평화와 ‘2015년 이후 개발 목표’ 등 국제사회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야모토 교수가 확보한 증언 등을 종합할 때, 한국 정부는 북한에 우호적인 우간다를 회유하기 위한 일련의 노력을 해 온 것으로 보인다.
원조가 아닌 비즈니스
▲우간다에 있는 북한 대사관. 미야모토 교수 제공.
그렇다면, 북한의 무기 수출은 왜 세계 안보에 위협이 되는 것일까. 미야모토 교수의 설명은 이렇다.
—북한의 제3세계에 대한 군사 원조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요.
“군사 원조가 아니라, 군사 비즈니스입니다. 무상(無償)이 아니라 돈 받고 파는 것이죠. 외화벌이 수단의 하나입니다. 북한 무기의 가격은 싸지만, 품질은 좋습니다. 제3세계 국가의 경우 (군사적) 분쟁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무기 구입할 곳이 마땅치 않아요. 그러니까 북한 무기를 구입하는 것입니다. 국제적으로 분쟁과 테러가 늘어나면 북한 무기가 더욱 많이 팔리겠죠.”
—북한이 핵무기 등을 수출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 의견을 말씀해 주세요.
“북한은 대량살상 무기를 갖고 있지만, 대량살상 무기 확산을 금지하는 국제 조약에는 가입하지 않고 있어요. 핵무기는 가격이 비싸고 관리도 어렵기 때문에 핵위협이 없는 국가는 굳이 가지려 하지 않죠. 이러한 이유에서 수출까지 예상하기는 힘들고요. 다만 화학무기와 미사일은 확산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북한 무기 수출이 문제가 되는 것이죠. 이는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입니다.”
—북한의 무기 수출을 제어할 방법은 없을까요.
“북한과 무기 거래를 하는 나라들은 특징이 있어요. 냉전 시대부터 거래하던 국가라는 특징이죠. 이런 이유에서 무기 시스템의 일부가 이미 ‘북한식’으로 되어 있어요. 무기 시스템을 바꾸려면 많은 비용이 들어요. 따라서 계속 북한 무기를 수입해서 써야 하는 것이죠. 그렇게 하는 것이 경제적입니다. 북한 무기와 군사 고문단에 드는 비용이 싸기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마저 제3세계 국가에 경쟁력이 없는 실정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북한 무기를 제한하는 방법으로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 등을 이유로 강력하게 경고하는 방법이 있어요. 그러나 중동,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러한 경고에 크게 신경 쓰지 않죠. 유엔 안보리는 미국, 중국, 유럽 등 강대국이 주도하는 것이죠. 때문에 강대국에 반발하는 중동, 아프리카 나라들은 이러한 경고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입니다. 차라리 무기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대신에 북한 무기를 사지 말라고 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북한의 군사 능력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요.
“북한의 무기 생산 능력이나 성능은 정확한 수치가 없어요. 그래서 평가가 어렵습니다. 다만 북한은 일반 경제보다 군수 경제에 역점을 둔 국가입니다. 따라서 일반 제품의 품질을 기준으로 북한산 무기의 품질을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미 김일성은 북한의 일반 생산품보다 무기가 해외에서 수요가 많다고 말했어요. 이런 점에서 북한의 무기는 국가 경제력에 비해 성능이 좋은 것이죠. 특히 북한은 미사일과 핵무기를 개발한 나라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무기 성능과 관련해 북한 무기의 경쟁력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생산된 전차를 북아프리카에 가져가면 쓸모가 없을 거예요. 너무 무겁고 세밀한 부품을 쓰기 때문에 사막에서는 금방 고장 나요. 실전(實戰)에서는 싸고 단순한 무기가 비싸고 복잡한 무기보다 훨씬 쓸데가 많아요. 북한은 군수 산업에 국가의 많은 자원을 사용하고 있어요. 결과적으로 무기 생산량은 경제 규모에 비해 매우 높을 겁니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전체주의 국가입니다. 지도부가 국가 자원의 많은 부분을 통제합니다. 북한 지도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국가 자원을 필요에 따라 사용해 무기 생산을 얼마든지 늘릴 수 있는 것이죠.”
최신 유엔 보고서, 우간다 정부 北 원조 인정
▲북한의 우간다 특수경찰 훈련 모습.
이와 관련해, 지난 3월 초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이 연례 보고서를 발간했다. 유엔 안보리 산하에는 대북제재위원회가 있다. 해당 위원회 밑에 ‘전문가 패널’이 있다. 2009년 채택된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 1874호에 의거 설치된 조직이다. 해당 위원회는 대북 제재 조치의 이행을 감시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회원국들로부터 이행 보고를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사안에 따라서는 직접적인 방문 조사까지 하고 있다. 이번 보고서는 38개 유엔 회원국, 15개 유엔 기구들과 협의했고, 262건의 정보 요청을 해서 116건의 응답을 받았다.
해당 보고서에는 북한으로부터 불법 원조를 받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우간다 정부의 공식 답변서 역시 첨부되었다. 2014년 12월 19일 작성된 우간다 정부의 답변은 이러하다.
▲우간다 정부가 유엔 대북제재위원회에 보낸 답변서.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보고서.
〈우간다와 북한은 상호협력협정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우간다 경찰은 북한에 의해 3가지 영역에서 훈련을 받았다. 해당 분야는 특수경찰(the field force unit), 해양경찰(marine policing), 무술(martial arts) 등이다.
*특수경찰
북한 교관은 우간다 특수경찰에 두 가지 코스를 제공했다.
두 코스 모두에서 소총(AK 47), 칼(Dagas-fighting knives), 방패, 곤봉, 표적 등이 사용됐다.
- 첫 번째
훈련소: 카발레(kabalye) 경찰훈련소(police training school)
참가자: 724명
기간: 2013년 7월 12일~2014년 4월 16일
- 두 번째
훈련소: 부티아바(butiaba) 훈련소
참가자: 1029명
기간: 현재까지 진행 중
*해양경찰
북한 교관에 의해 두 가지 코스가 진행됐다. 보트와 다이빙 장비가 훈련에 사용됐다.
- 첫 번째
훈련소: 키고(kigo) 훈련소
참가자: 41명
기간: 2010년 6개월
내용: 잠수, 항해
- 두 번째
훈련소: 키고 훈련소
참가자: 68명
기간: 2013년 6개월
내용: 잠수, 항해
*무술 훈련 등
- 첫 번째 무술 훈련
참가자: 32명
기간: 2009년 1월~2009년 11월
- 두 번째 무술 훈련
참가자: 65명
기간: 12개월(2011, 2012년)
- 범죄 분석 코스
참가자: 81명
기간: 2014년 4개월
참가자: 우간다 각지에서 파견된 경찰관
해당 코스에서 화학 분석기, 지문 감식기 등 사용〉
상업용 일본 ‘비행 감시 장치’로 탄도 제작 가능
지난 3월 초 공개된 유엔 전문가 패널 보고서는 북한이 유엔의 대북 결의에 따른 의무 사항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또 유엔 회원국들이 대북 제재를 잘 이행하고 있는지 보고한다. 무기와 사치품 금수 조치, 화물 검색, 여행 금지, 자산 동결, 금융 조치 같은 대북 제재에 대해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안보리에 권고 사항을 전달한다. 최근 보고서에서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2012년 발사된 장거리 로켓 은하 3호 잔해 조사
잔해에서 압력전송기 2개가 발견되었는데, 북한 무역회사가 타이완에 등록한 기업으로부터 2006년과 2010년에 각각 조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판매 회사는 북한 측으로부터 석유 산업에 쓸 목적으로 압력전송기가 필요하다는 설명을 들었다며, 장거리 로켓 제작에 쓰일 줄은 몰랐다고 해명.
*2014년 한국에서 발견된 무인정찰기 4대 잔해
최소한 6개국에서 생산된 부품 발견. 엔진은 체코, 전지와 카메라는 일본, 위성항법장치와 연료펌프는 미국, 비행제어 컴퓨터는 캐나다 제품으로 조사됨. 모두 상업용을 제작된 것으로, 특히 일본에서 제작된 비행각도 감시 장치는 탄도 미사일 관련 부품으로 쓰일 수 있기 때문에 대북 금수 조치 대상으로 포함시킬지 조사 중.
*북한 무기 수출 관련
2009년 몽골 회사가 미그-21기 관련 부품을 북한에 팔려다 적발된 사건과 관련해, 몽골 정부가 2014년 5월에 구체적인 이행계획서를 제출. 해당 몽골 회사는 러시아에서 판매하는 것으로 서류를 위조해 북한에 밀매를 시도했는데, 몽골 사법 당국이 이를 적발해 모두 실형을 선고.
北, 탄자니아 공군 지원 의혹
▲에티오피아에 있는 북한대사관. 미야모토 교수 제공.
2014년 8월 미야모토 교수는 탄자니아(Tanzania)가 북한으로부터 기술자를 지원 받아, 공군기 보수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현지 추적했다.
2014년 유엔 안보리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8월 북한 기술자 18명이 탄자니아 F-7 전투기 정비 사업에 참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왔다. 므완자(Mwanza) 공군기지 등에 북한 기술자들이 들어가 격납고 등을 증설했다는 의혹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탄자니아 현지 언론사를 방문해 확인한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현지 언론사를 방문해 관련 의혹에 대해 문의를 했어요. 확인해 보니, 탄자니아 국방장관은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느 나라든 군사와 관련해서는 비밀이 많아요. 아프리카 역시 예외는 아니죠. 아프리카와 북한과의 커넥션을 알기 위해서는 아프리카 군인과의 인맥이 필수입니다.”
▲1987년 북한이 건설한 것으로 알려진 에티오피아 군수공장 정문과 간판. 미야모토 교수 제공.
아프리카를 직접 방문했던 미야모토 교수의 지적처럼, 북한과의 커넥션을 의심받고 있는 국가들은 여러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북한의 재래식 무기 수출 문제는 과거 냉전 시대부터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 확산에 주목하고 있다. 올해 1월 독일의 주간지 《슈피겔》은 시리아(Syria)가 농축 우라늄을 확보해 핵무기 개발 시설물을 지하에 건설했고, 해당 시설엔 영변 원자로의 북한 기술자인 ‘최지부’가 연루됐다고 밝혔다. 당시 기사를 보면 위성 첩보 사진 판독 결과 연료봉의 배열 순서가 북한 영변 시설과 유사한 것을 근거로 북한의 기술 지원으로 핵 시설물을 만든 것으로 추정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시리아는 농축할 경우 3~5개의 핵무기를 만들 천연 우라늄 50t을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에는 시리아 반군의 일파(一派)인 이슬람 무장 조직 IS(이슬람 국가)가 북한 무기를 사용하고 있어 국제적 논란이 되고 있다. 2014년 12월 북한 전문 매체 NK 뉴스는 IS가 북한 탱크와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 등을 사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IS가 2014년 9월 시리아 북부 쿠르드족 거주 지역 코바니를 공격할 때 동원한 탱크가 구소련 탱크를 북한이 개량한 T-55이고, IS 대원이 쓰는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MANPADS)도 북한제라는 주장이다. 당시 해당 매체는 이러한 무기들이 북한과 시리아 간 동맹 관계 때문에 IS에 유입되었다고 분석했다. 김일성 생존 당시인 1970년대부터 시리아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 온 북한이 구소련제 T-55를 개량한 탱크와 지대공 미사일 등 각종 무기를 수출했는데, 이것을 IS가 탈취해 전투에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탈북 군인, “IS 소총 북한 것 확실”
▲에티오피아 수도 쿠바(Cuba)공원에 설치되어 있는 조형물. 1980년대 후반에 북한이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야모토 교수 제공.
실제 기자가 접촉한 북한 군인 출신 탈북자는 “소총의 경우 개머리판 등을 쉽게 접을 수 있는 등의 모습으로 볼 때 북한에서 개조한 것이 확실하다”고 증언했다.
그렇다면, 시리아와 북한은 어떤 관계인가. 나아가 IS가 북한 무기를 사용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연구센터장은 북한과 시리아의 커넥션에 대해 “부자 세습을 통한 독재 정권이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우호를 이어 오고 있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북한과 시리아 우호 관계가 지속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북한 시리아 모두 부자 세습 독재 정권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돈이 되는 모든 불법행위를 하고 있어요.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권력 세습에 성공한 왕조 체제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두 나라의 독재자들은 지난 수십 년간, ‘왕가’의 구성원이 아니면서 지도자의 자리를 노리는 이들을 숙청해 잠재적 경쟁자들을 제거해 왔어요. ‘대’를 이어 온 유대감이 크게 작용한 것이죠. 뿐만 아니라 이해관계도 맞았어요. 시리아 정부는 무기가 필요했어요. 반면 북한은 경제적 이득이 있는 것이죠. 시리아 반군을 인터뷰해 보면, 전투에서 북한 군인을 목격했다는 증언이 계속되고 있어요. 북한이 단순히 시리아 군을 훈련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참여하고 있다는 의혹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슬람 무장 조직 IS가 북한에서 생산된 무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있나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시리아 정부군의 무기를 탈취했거나, 과거 이라크군이 남겨 놓은 무기를 획득했을 수 있어요. IS 입장에서는 북한은 적국(敵國)입니다. 북한은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죠. 시리아 반군의 일파(一派)인 IS 입장에서는 북한 때문에 시리아 정부를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죠.”
시리아보다, 북한 인권이 더욱 참혹
▲북한과 시리아 사이의 유착 의혹을 보도한 《월스트리트저널》 기사. 2013년 9월 북한을 방문한 시리아 대표와 기념촬영하는 김정은 사진을 소개했다. 《월스트리트저널》 온라인판 캡처.
이와 관련, 장지향 센터장의 〈북한과 시리아 인권 침해 실태 비교 분석〉 보고서는 북한과 시리아의 인권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시리아보다 북한에서 더 지속적으로 인권 침해가 이루어져 왔다.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의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정치적 권리와 시민적 자유 지수는 지난 40년간 한번도 변한 적이 없는 반면, 시리아에서는 1970년대와 2000년대 중반 제한적이나마 개혁이 이뤄졌다.
2. 시리아 정권은 권위주의적 제도와 조직을 통해 소수의 지배 엘리트를 보호하는 데 치중하는 데 비해, 북한 정권은 전체주의적 기제를 통해 주민의 완전 통제를 체계적으로 추구해 왔다. 북한 김정은은 인권 침해 기관들을 단일 지도 체계 틀 속에서 직접 관리한다. 하지만 시리아의 지휘 체계하에서는 대통령과 가해 기관 간에 명령 및 보고 단계가 서로 중첩되고, 강압 기구 조직 체계가 파편화되어 있다.
3. 시리아보다 북한에서 더 많은 유형의 반인도 범죄가 자행되었다. 북한에서는 말살, 노예화, 박해, 강제 이주 등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에 관한 로마규정 제7조상 반인도 범죄를 구성하는 모든 유형의 반인도적 행위가 이루어진 반면, 시리아 정권은 여섯 개 유형만 위반했다.
4. 북한이 보다 체계적이고 제도화된 인권 유린을 자행하고 있음에도 국제사회는 시리아의 인권 현실에 더 관심을 보인다. 이러한 모순은 북한이 시리아보다 에너지, 안보 지정학적 면에서 중요성이 떨어지고 외부 세계로부터 더욱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문가들도 북한에서 더 참혹한 인권 침해가 일어나지만 국제사회의 관심은 정작 시리아에 더 쏠린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북한 무기 수출은 세계 안보 위협
최악의 인권 침해 국가로 알려져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시리아보다, 북한의 인권 상황은 더욱 나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이슈에 대한 관심은 시리아 사태에 비교할 바 못된다. 시리아 사태는 중동 각국과 서방 주요 국가의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북한은 아직까지는 한반도에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북한이 무기 수출과 군사 원조를 통해 테러와 분쟁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미야모토 교수의 아프리카 취재에서 드러난 것처럼 북한과 제3세계 국가 사이의 관계는 군사 원조 단계를 넘어 비즈니스로 발전했다. 이제 북한 문제를 단순히 한반도에 한정시키지 말고, 세계 안보 위협 측면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유이다.
출처 | 월간조선 4월호 글 | 이정현 월간조선 기자
◇ 04-22 “北, ‘세계 최악의 언론검열국’ 2위”
북한이 전 세계에서 가장 언론검열이 심한 두 번째 나라로 꼽혔다고 22일 미국의소리(VOA)가 보도했다.
VOA는 미국의 비영리 단체인 '언론인보호위원회(CPJ)'의 '세계 10대 언론검열국 보고서'를 인용해 이 같이 전했다.
보고서는 "북한은 헌법 53조에 언론 자유를 명시하고 있지만 독재 정권의 3대 세습 과정에서 언론 자유는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평양에 주재하는 미국 AP통신도 독자적인 뉴스원(news source)에 대한 접근이 극도로 제한적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의 12개 주요신문과 정기간행물, 그리고 방송의 대부분이 정치 지도부의 성명과 활동에 집중하는 관영 조선중앙통신에서 받은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VOA는 이에 대해 북한에선 인터넷과 휴대전화 역시 철저히 통제된 가운데 사용이 가능하다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언론 자유를 더욱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CPJ의 보고서는 이러한 와중에도 "독립적 정보를 원하는 북한 주민들은 외국TV와 라디오 방송, 외국 DVD 등을 구해서 보고 있다"며 "중국제 휴대전화를 통해 외부소식에 접근이 가능하기도 하다"고 전해 당국의 정보차단 조치에 헛점이 있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 보고서에는 아프리카의 에리트레아가 언론검열이 가장 심한 국가로 꼽혀 1위를 기록했으며 에티오피아, 아제르바이잔, 베트남, 이란, 중국, 미얀마, 쿠바 등이 10개국에 포함됐다고 VOA는 전했다.
(서울=뉴스1)
◇ 04.30 빨치산 뺨치는 北 꽃제비…
▲꽃제비가 대담해지고 있다.
북한의 부랑아를 일컫는 꽃제비들이 최근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대범한 절도·강도 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는 “최근 5~6명으로 조직화된 꽃제비들이 트럭 부품 등을 훔쳐 연계된 판매책에게 넘겨 돈을 벌고 있다”고 30일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평안남도의 한 소식통은 “장마당이나 옆 앞에서 음식과 돈을 구걸하며 하루하루 연명하던 꽃제비들이 과거와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면서 “예전에는 주로 혼자 방랑했지만, 지금은 소집단으로 돈벌이 대상과 판로를 뚫어 돈을 벌고 있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이어 “날렵한 청소년들 5~6명이 패를 지어 매일 돈벌이 계획을 짜는데, 차 부속품을 떼거나 타 지역으로 이동하는 상품 운송 서비차(트럭)에 몰래 올라 타 물건을 훔치는 식”이라고 덧붙였다.
범행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소식통에 따르면, 꽃제비들은 대낮에도 신형 20톤 대밖차(대형 트럭)가 오르막길에 들어서면 옆에 붙어 배터리 커버를 떼 15달러(한국돈 약 1만6000원)를 받고 판매책에게 넘기는데, 암시장에서는 20달러 쯤에 거래된다.
대낮에 달리는 차에 올라타 부속품을 떼어내는 10대 소년·소녀를 보며 북한 주민들조차 “특수부대 뺨친다”며 경탄하고 있는 상황. 소식통은 “가난이 만들어낸 김정은 시대의 소년빨치산이라고 비웃는 주민들도 있다”면서 “사회 개선이 없다면 북한의 미래는 마피아식 사회주의가 될 것 같다는 조소가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 05.01 유엔 인권 행사장에서 북한 대표 '추태'
/TV조선 캡처
북한 외교당국 대표들이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북한 인권 행사’ 진행을 방해해 회의가 10여분간 중단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탈북자들이 북한 인권 상황을 고발하는 증언을 발표하는 행사 순서 도중 북측 대표로 참석한 이성철 참삭관이 막무가내로 미국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큰소리로 읽은 것이다. 결국 북한 대표들은 야유를 받으며 쫓기듯 회의장을 나갔다고 한다.
다음은 TV조선 보도 원문.
[앵커] 유엔에서 열린 북한 인권 행사에서 북한 대표들이 막무가내로 추태를 부리는 바람에 회의가 10여분간 중단되는 소동이 발생했습니다. 결국 북한 대표들은 온갖 야유를 받으며 회의장에서 쫓겨났는데, 국제적인 망신이 따로 없었습니다. 이정민 기자입니다.
[리포트] 현지시간 30일, 미국 뉴욕의 유엔보부에서 열린 '북한 인권 행사'. 탈북자들이 증언을 통해 북한의 인권상황을 고발하는 순서에 탈북자 조셉 김의 발언 직후, 갑자기 연단 밑 청중석에 있던 북한 대표 이성철 참삭관이 돌연 큰소리로 준비한 성명서를 읽어내려갑니다.
사회자 "좀 기다리시겠어요? 발언권을 나중에 드리겠습니다." 사회자가 발언권을 주겠다며 제지해도 막무가내입니다.
이성철 / 북한 대표 외교 참사관
"이는 미국에서 매일같이 일어나는 인권침해의 빙산에 일각일 뿐이고..."
결국 보다 못한 서맨사 파워 미국 유엔 대사가 마이크를 꺼달라며 상황을 제지하는데 나서고
서맨사 파워 / 유엔 미국대사 "허용된 공식 프렌젠테이션이 아닌만큼 마이크 좀 꺼주세요.기술팀, 마이크좀 꺼주세요 "
그래도 북한 대표가 들은체만체 성명을 계속 큰소리로 읽자 경비원을 부르겠다며 초강수를 둡니다.
서맨사 파워 / 유엔 미국대사 "유엔 경비원을 불겠어요. 발언을 마무리지어주세요 아니면 방에서 내보내겠습니다."
회의장에 참석했던 탈북자들도 일제히 야유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야유에 못 이겨 북한 대표들이 쫓겨나듯 회의장을 빠져나가자 박수가 쏟아집니다. 박수 북한 대표들이 퇴장한 후에야 탈북자들 증언이 이어졌습니다.
김혜숙 / 탈북자 "(강제수용소는) 4m의 철조망으로 돼 있고 그 안엔 330kw의 전기가 흐릅니다. 그 속에 왜 어린 아이를 잡아 넣는지..."
북한 대표들의 막무가내식 추태로 행사는 10여분간 중단됐고 북한은 또 한번 국제사회에서 망신을 당했습니다.
TV조선 이정민입니다
◇ 05.14 "김정은 공포政治 당장은 효과… 결국 독재 체제 위기 부를 것"
장성택 숙청한 세력도 제거, 신생 친위 세력 구축 노려… 5년간은 피바람 계속될 것
"나도 저렇게 당할 수 있다" 軍엘리트 불안·분노 쌓여… 모반 등 극단 사태 올 수도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공포정치'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지배 체제 강화를 강화하고 있지만, 결국 장기적으로는 군 엘리트들의 불만과 분노가 축적되면서 근본적인 체제 불안정에 직면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이 과정에서 '모반' 등의 극단적인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점쳐졌다.
◇"당장은 동요보다 복종 분위기"
전문가들은 반발 세력을 가차없이 제거하는 '김정은식 숙청'이 극도의 불안감을 지렛대로 체제를 일시적으로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봤다. "당 간부들의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은 약해질 수 있지만, 당장 동요하기보다는 복종하는 쪽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정보 당국)는 것이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지금 김정은의 정권 유지 양대 축은 '공포정치'와 '전쟁 분위기 조성'이다. 공포정치로 고위층을 단속하고, '남조선 괴뢰와 미제가 북침 전쟁에 매달린다'는 선전을 통해 주민들 불만을 억누르는 것"이라고 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는 "민주주의와 달리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찍어누르면 눌러진다. 체제의 효율성이 떨어지더라도 당장 안정은 시킬 수 있다"며 "이 때문에 김정은은 피바람이 불가피하다고 본 것 같다"고 했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는 "숙청이 한 번만 있었던 것도 아니지 않으냐. 외부에서 보기에는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지만 북한 내부에서는 '또 한 명 혼났구나' 정도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고 했다.
특히 김정은은 선대(先代) 인물들을 제거하고 명실상부한 '신생 친위 세력'으로 주위를 채울 수 있는 집권 5년 차 때까지 이런 숙청 작업을 계속할 것으로 전망됐다. 유동열 원장은 "김정은은 장성택의 추종 세력뿐 아니라 장성택 숙청에 관여했던 현재의 세력까지 싹쓸이할 것으로 본다. 지금 친위 세력도 결국 자기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장기적으로 지배 체제 흔들릴 가능성"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김정은 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내가 다음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모반 등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김정은이 권력 기반을 구축하려면 도와줄 사람들이 필요한데 지금과 같은 공포정치하에서는 그런 인물들이 보이지 않는다. 동생 김여정도 아직 그만한 힘이 없다"고 했다.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 연구위원은 "김정은은 '강력한 통치'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미숙한 통치'"라며 "충성을 바쳐 봤자 작은 잘못으로 잔혹하게 처형되는 상황에서 누가 장기적으로 김정은을 따르겠느냐"고 했다.
김영수 교수는 "장기적으로 나만 살고 보자는 의식이 측근들에게 나타나게 되면 김정은은 고립될 것"이라며 "이런 측근들로 둘러싸이게 되면 그게 체제 붕괴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결국 북한을 탈출하거나 저항하려는 무리가 생길 것"이라며 "북한 체제상 단체로 저항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모반 시도' 등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정영태 연구위원도 "주변 인물들의 두려움이 커지면 모종의 거사를 계획할 수 있다"고 했다.
김경화 기자
◇ 05.14 체포 사흘 만에 재판없이 처형 … “소신 말하려면 목숨 내놔야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2013년 12월 8일 열린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출당조치를 받은 직후 체포당하고 있다. 현영철 인민무력부장과 김격식 국방위원(앞줄 오른쪽부터)이 고개를 돌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뒷 모습 군관 왼쪽은 최근 숙청당한 것으로 파악된 한광상 당 재정경리부장. [조선중앙TV 캡처]
지난달 30일 평양 북부 순안구역 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 14.5㎜ 고사총의 총신 4개가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향했다. 66세인 그는 남측 국방부 장관에 해당하며 북한에서 황병서 총정치국장 다음인 군 서열 2위다.
현 부장의 가족을 포함한 참관인들은 “고개를 숙이지도 말고 눈물을 보이지도 말라”는 북한 당국의 지시에 따라 총살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국가정보원이 입수한 복수의 첩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모습이다. 국정원은 13일 현 부장이 “체포 사흘 만에 숙청됐다”고 확인했다. 다만 처형됐는지 여부에 대해선 “첩보상으론 그렇지만 아직 단정할 순 없다”고 했다. 숙청된 시점인 지난달 30일 이후 최근(5월 5~11일)까지도 조선중앙TV에 현 부장을 삭제하지 않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영상물이 방영됐기 때문이다. 정보 당국의 한 관계자는 지난달 29일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에서 15인 처형 사실을 알린 뒤 북한 당국이 체제 내부의 문제가 과도하게 노출되는 것을 우려해 입단속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 부장이 처형됐다는 복수의 상세 첩보가 다양한 경로로 정보 당국에 입수됐다고도 했다. 처형된 게 사실일 경우 ‘(노동)당 정치국 결정’이나 재판도 진행하지 않아 즉결 처형에 가깝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 역대 정권에서 이렇게 속전속결로 고위급 인사가 처형된 사례는 없다고 정보 당국은 설명했다. 현 부장은 올해에만 김 위원장의 공개 활동을 14회 수행해 북한 고위급 중에서도 4위를 기록했다.
지난달엔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해 러시아 국방장관을 면담한 일도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김정은의 독단성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공포통치의 정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간부들 사이에서도 내심 김정은의 지도력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김정은 시대 처형 방식은 잔인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총살한 뒤 화염방사기로 시신을 태운다는 증언도 다수 나왔다고 한다. 처형을 지켜본 참관자들 사이에선 “똑똑히 하라우, 고사총 앞에 서보겠는가”라고 자조 섞인 말을 하거나 “다음 처형 때는 미사일이 나오지 않겠나”라는 말도 한다고 정보 당국은 전했다. 정보 당국에 입수된 2014년 북한 내부 문건엔 반역자들에 대해 “불줄기로 태우고 탱크로 짓뭉개 흔적을 없애 버리는 것이 군대와 인민의 외침”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가족에게까지 고통이 대물림되는 것도 김정은 시대 처형의 새로운 모습이다. 출판·영상물에서 이름·사진이 삭제되는 ‘흔적 지우기’ 작업이 진행됨과 동시에 가족에겐 연좌제를 적용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하거나 지방으로 추방하고 혁명화 교육을 받도록 하는 처벌이 내려진다.
국정원 관계자는 “‘김정은에게 소신 있게 의견을 제시하려면 목숨까지 내놓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간부들이 눈치보기·몸사리기로 ‘제 살 궁리’에 몰두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처형으로 인한 공포심 때문에 김정은 정권의 기반은 여전히 확고하다고 한다.
현 부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목한 시점부터 승승장구했다. 2011년 5월과 8월 김정일의 중국 방문과 군부대 방문 때 신뢰를 얻어 2012년 총참모장(차수)으로 승진했다.
김정일이 김정은의 군부 내 세습기반 구축 및 세대교체를 염두에 두고 발탁한 것으로 국정원은 분석했다. 그러나 2013년 5월 전방 5군단장(상장)으로 좌천된 뒤 이듬해인 지난해 인민무력부장(대장)으로 복귀하는 부침 많은 인생이었다. 북한 최고 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 위원 자리에도 앉아 김정은을 밀착 수행했다. 현 부장이 지난달 러시아를 방문하는 등 북한 내 ‘대러 전문가’로 통했다는 점도 정보 당국이 주목하는 점 중 하나다. 대중 전문가인 장성택 처형에 이어 전문가인 현 부장을 숙청한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다.
그러나 복수의 정보당국 관계자들과 안보 전문가들에 따르면 술을 좋아하고 인간관계가 넓은 그가 김정은의 통치 방식에 불만을 보였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동국대 고유환(북한학) 교수는 “현 부장이 (감시가 엄중한 상황임에도) 총대를 메고 사적인 자리에서 불만을 얘기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당국이 감시망을 좁혀오는 과정에서 지난달 24~25일 김정은이 주재한 조선인민군 제5차 훈련일꾼대회에서 김 위원장 오른쪽에 앉아 조는 듯한 모습이 포착돼 ‘불경죄’의 빌미를 제공했다. 서강대 김영수(북한정치) 교수는 “현 부장은 김정은에게 충복이었다”며 “북한 체제가 폭풍 전야인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이와 관련해 북한이 도발에 더 적극 나설 가능성을 우려했다. 김정은에게 잘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이기 위한 ‘실적’을 쌓기 위해 대남 도발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관련해 북한이 강경 입장을 보이고 실제로 13일 저녁 서해 NLL 인근에서 포사격 훈련을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북한이 더욱 적극적으로 도발에 나설 수 있어 우려된다”고 전했다.
전수진 기자·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chun.sujin@joongang.co.kr
◇ 05.15 "군부와 利權다툼 벌이던 경제관료들 공모" 분석도
경제엘리트, 金 집권후 득세… 자원·돈 배분 놓고 軍과 갈등 黨출신 황병서와 교감 가능성
북한의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숙청은 군부(軍部)와 경제 관료 간 정책 방향을 둘러싼 갈등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왔다.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은 14일 존 메릴 전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 동북아 담당 국장을 인용, "(김정은이) 자원과 돈을 어디에 투입할지를 놓고 (군부와) 이견이 생겼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메릴 전 국장은 북한 군부 고위 인사들이 여럿 숙청된 데 반해 경제 관료들은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경제 분야 최고 사령탑 박봉주 내각 총리는 김정일 시대에 실각(失脚)했다가 지난 2013년 4월 내각 총리에 재임명되면서 부활,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사이 군부 서열 1·2·3위인 총정치국장, 인민무력부장, 총참모장은 모두 한 번 이상 교체됐다. 인민무력부장은 재임 기간이 평균 8개월에 불과했다.
정부 관계자는 "김정은은 집권 이후 경제 관료 출신들을 내각보다 상위 기관인 노동당의 부장, 부부장으로 보내는 등 경제 엘리트들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성택 사망 이후 그가 관리하던 이권(利權)을 놓고 군부와 경제 관료 사이에 갈등이 생겼고, 이 과정에서 평소 김정은에게 밉보인 현영철 등 군부 인사들이 이를 빌미로 숙청당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경제 관료들은 군 수뇌부를 쳐낼 만한 힘은 없기 때문에 당 출신인 황병서 총정치국장이나 조연준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과 손을 잡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김정은이 경제난으로 인한 주민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지도부 숙청이라는 초강수를 연달아 두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켄 고스 미국 해군분석센터(CAN) 국제분석국장은 "김정은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지만 여전히 경제 분야에서 중요한 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이를 상쇄하기 위해 정치 투쟁을 선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대진 정치부 기자
◇ 05-16 ‘명박’ 이름 北주민 개명신청 늘어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같은 이름의 북한주민들이 잇따라 개명신청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자유아시아방송은 16일 "남한의 전직 대통령 이름과 같은 명박이라는 이름을 가진 북한주민들이 최근 줄줄이 개명신청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최근 중국을 방문한 평양 주민소식통은 자유아시아방송에 "지금까지 명박이라는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바꾸겠다고 개명신청을 한 사람이 전국적으로 20여명에 달한다는 얘길 들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북한에서는 국가에서 강제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한번 등록된 이름을 바꾼다는 게 보통 시끄러운 일이 아닌데 이상하게도 명박이라는 이름을 개명하겠다고 신청한 사람들은 제까닥(즉시) 처리를 해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가에서 강제하지도 않은 개명신청을 하는 이유는 남한의 체제를 싫어하고 남한과 전혀 관계없다는 사상성과 충성심을 보여주려는 목적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평안북도의 주민 소식통은 자유아시아방송에 "명박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주변 사람들이 괜히 반동이라고 놀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아예 이름을 바꾸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 05.18 북, 남한 마약범 데려다 필로폰 제조 … 황장엽 암살 지시도
북한 당국이 한국의 마약 제조자들을 밀입북시켜 필로폰을 제조하게 하고, 이들에게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2010년 사망) 등 반북 인사 암살 지령까지 내렸다고 검찰이 밝혔다. 이는 국가정보원이 최근 탈북자로 위장해 귀순한 북한 인민무력부 산하 정찰총국 출신 공작원 장모씨를 신문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백재명)는 필로폰 제조와 암살 지령 등을 위해 장씨를 접촉한 김모(62)·방모(68)·황모(56)씨를 마약류관리법 위반, 국가보안법상 특수잠입·탈출 및 살인예비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17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방씨 등은 공작원 장씨의 지령을 받고 2000년 7월 북한에 밀입국해 황해도 사리원 인근 모처에서 필로폰 70㎏을 제조했다. 국내 ‘필로폰 제조 기술자’로 활동하던 방씨가 또 다른 공작원 A씨로부터 동업 제의를 받으면서다.
방씨는 지인 김씨·황씨를 끌어들였다. 북한이 제조 장소를 제공하고 필로폰 1t을 만들면 절반인 500㎏을 넘겨주기로 했으나 실제로는 70㎏(수백억원어치)을 제조했다. 방씨 등은 “필로폰 제조에 필요한 반응로·냉각기 등 설비는 중국에서 구입하고, 필로폰 원료는 국내에서 구입해 북한으로 들여갔다”고 진술했다. 밀수에는 중국 단둥~북한 신의주 간 국제화물 열차와 부산~나진항 화물선이 이용됐다. 이들은 압록강을 건너 북한을 오갈 때 고무보트를 이용했으며, 공작원 장씨가 동행했다고 한다. 북한 보위부 소속 군인들의 보호도 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경제난에 시달리던 대남 공작 조직이 국내 필로폰 조직을 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 조사 결과 북한 당국은 필로폰 제조에 가담했던 이들에게 반북 인사 암살까지 지시했다. 공작원 장씨가 2009년 10월 김씨에게 “남한 내 안전가옥에 머무르는 황장엽 전 비서와 강철환(탈북자 출신 북한 체제 비판 활동가)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렸다고 한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그해 11월 정찰총국 소속 공작원 김명호씨 등 3명도 황 전 비서 살해 지시를 받았다. 살해 지시자는 정찰총국장인 김영철 상장(우리의 중장)이었던 것으로 2010년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장씨 역시 국정원 신문에서 “당시 정찰총국 본부 차원의 지시가 있었다”고 진술했다.
이후 김씨는 2010년 10월까지 10여 차례 중국에 건너가 황 전 비서의 암살 실행 방법, 진행 상황 등을 장씨에게 보고했다. 활동비조로 10여 차례 온라인 송금, 현금 등으로 4만 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김씨는 “국내에서 특수 부대원 출신, 조직 폭력배, 청부살인업자 등을 접촉했다”고 진술했다. 이동 중인 황 전 비서를 차량으로 쳐서 사고사로 위장하거나 흉기를 이용해 사살하는 방법이 고안됐다고 한다. 2010년 10월 황 전 비서가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하기 불과 한두 달 전 구체적인 ‘실행 날짜’까지 나왔던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김씨가 장씨에게 요구했던 공작금 100만 달러를 제때 받지 못하면서 일정이 미뤄졌고, 실제 암살 시도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 밖에도 2013년 5월 ‘2012-2013 한국군 무기연감’을 구해 장씨에게 건네고 남한 내 가스 저장소, 열병합발전소 위치 등의 정보를 제공한 뒤 장씨로부터 건당 1000달러를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또 다른 필로폰 제조책 황씨도 장씨로부터 2004년 4월 의사 출신 북한 인권 운동가인 독일인 노르베르트 폴러첸(57)을 암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폴러첸은 1999년 7월~2000년 12월 북한에서 의사로 활동하다가 체제 비판을 이유로 추방됐다. 북한 당 차원에서 폴러첸 암살 계획 중단을 결정해 실행까지 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현행법상 영리 목적을 위한 마약 제조는 공소시효가 15년이다. 검찰은 시효 만료(2015년 7월)를 2개월 앞두고 이들을 기소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 06-12 “40번도 넘게 北 가봤지만 주민들 일상은 미스터리”
내셔널지오그래픽 기자 구텐펠더, 5월 방북때 찍은 사진 공개
NYT, 홈피에 한글기사 실어
▲북한의 상류층 자제들이 다니는 평양 경상유치원에서 원생들이 제 몸집만 한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 출처 뉴욕타임스
미국 뉴욕타임스(NYT) 인터넷판은 10일 세계 섹션 머리기사로 ‘북한에서 보낸 6일’이라는 제목의 한글 기사를 게재하며 북한의 가장 최근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 13장과 동영상을 실었다.
사진과 동영상은 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 데이비드 구텐펠더가 지난달 24일 미국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 등 ‘위민크로스DMZ’ 대표단과 함께 북한에 동행하며 찍은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사진은 인공기를 제작하는 평양 김정숙 공장 전경, 옥류아동병원 벽면에 그려진 은하 3호 로켓 만화, 평양 최고급 산부인과 평양산원에 설치된 영상통화 면회실, 시내 상점에 걸린 수영복, 새벽녘 김일성 광장 등이다. 이 가운데 평양유치원에서 원생들이 병원놀이 수업을 하는 모습은 지난해 신화통신이 공개한 사진과 거의 흡사하다. 피아노 2대가 나란히 놓인 상류층 가정집 내부, 와이드숏으로 찍은 개성고속도로 사진도 새롭다.
퓰리처상 수상 경력이 있는 구텐펠더는 AP통신 아시아총국 지국장 출신으로 40회 이상 방북 경험이 있기 때문에 북한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는 기사에서 “북한은 세계적으로 베일에 싸인 곳들 중에서도 가장 밝혀지지 않은 곳“이라며 “정치적으로 짜깁기되지 않은 주민 2500만 명의 일상생활이야말로 꼭 밝혀야 할 미스터리”라고 강조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10일 ‘고슴도치 이쑤시개와 북한의 물건들’이란 기사에서 다양한 북한 생활용품을 공개했다. [1] 고슴도치 바늘에 나무 손잡이를 이어 붙인 고슴도치 이쑤시개. ‘효능: 치담, 치염에 특효’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2] 북한 통신사 고려링크의 3세대(3G)용 USB 에어 카드. 외국인이 자신의 휴대전화에 이 장치를 넣으면 북한 내에서도 통화할 수 있다. 사진 출처 뉴욕타임스
‘고슴도치 이쑤시개와 북한의 물건들’이란 별도의 기사에서 구텐펠더는 2000년 이후 찍은 북한의 물건들을 공개했다. 고슴도치 바늘에 나무 손잡이를 이어 붙인 이쑤시개, 1983년 발간된 기자 지침서,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과 함께 방북할 때 받은 고려항공 탑승권, 조선인민군공훈합창단 CD 등이다.
이번 기사는 NYT가 지난달 7일 뉴욕 한인 네일살롱 업체들의 노동력 착취를 고발한 기사에 이어 두 번째로 한글로 작성한 기사다. 한글 외에 영어와 중국어로도 작성됐으며, 페이스북이 주요 언론 기사를 모아놓은 ‘인스턴트 아티클스(Instant Articles)’ 코너에서도 볼 수 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06월 19일 메르스’ 비난하는 北의 의료 수준
송봉선 / 고려대 겸임교수·북한학
북한의 대남 공작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최근 “남조선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죽음의 공포가 떠도는 수라장이 된 것은 전적으로 박근혜정부의 무능과 반인민적 통치가 가져온 필연적 결과”라고 주장했다.
또, 지난 6월 초에는 정의화 국회의장이 ‘남북 의료 교류 증진법안’을 발의하면서 “열악한 북한의 의료 현실 속에 북한 주민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일 것”이라고 언급한 부분에 대해서도 비난을 했다. 노동신문 보도를 통해 “남조선에서는 호흡기성 전염병이 급속히 퍼져 사람들을 극도의 불안과 공포 속에 몰아넣고 있는데 험담질을 하고 있다”고 한 것이다. 정 의장이 한 말은 비정치적인 분야인 의료 협력을 통한 남북 대화를 염두에 둔 것으로, 결코 북한의 체면을 구기기 위해 한 말이 아니다. 북한은 김정은 정권이 집권한 이래 남측의 인사가 남북 문제에 대해 언급만 하면, 남측이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온갖 욕설을 동원해 비난하는 것이 일상화했다.
북한이 거의 1년 만에 대화 제의를 해왔지만,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지난 4일에는 기대를 모았던 한국의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가입도 북한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동안 북한은 중동지역 외화벌이 사업으로 쿠웨이트 4000명, 카타르 3000명, 아랍에미리트 2000명, 리비아 400여 명 등의 북한 인력이 나가 있어 남쪽에다 대고 ‘메르스’에 대해 큰소리칠 처지가 아니다. 질병으로 남측이 고통을 받을 때 한민족으로서 이를 비난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북측은 최근 개성공단 출입자들에 대한 메르스 감염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열 감지 카메라와 마스크를 지원해 달라고 했다. 한쪽으로는 지원을 받으면서도 고자세로 임하는 북은 항상 ‘갑’의 입장이고, 우리는 ‘을’의 입장이다. 북한의 예방의학은 위생 방역 주거 환경 개선을 통해 전염병과 각종 질병을 예방한다고 하지만, 의료 환경은 매우 나쁘다.
‘무상 치료제’는 말뿐이고 주민들에게 사회보장비 명목으로 임금의 1%, 복지 후생비 명목으로 임금의 10%를 의무적으로 내고 있다. 우리의 의료보험 체계와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열악한 의료 수준은 말할 바가 아니다. 북한은 ‘의사 담당 구역제’를 시행하고 있다. 동네의 ‘리’ 단위까지 진료소를 설치해 의사 한 사람이 한 지역씩을 맡아 책임지고 순회 진료를 한다. 리 단위에 ‘진료소’, 군 단위에 ‘군 병원’, 시의 구역 단위에 ‘구역 병원’, 시·도 단위에 ‘시·도 병원’이 있다. 하지만 시설이나 의료기구가 낙후되고 약품이 없다. 북한 진료소에서는 감기나 간단한 상처 치료만을 할 수 있을 뿐이고, 시·도 병원에서는 아무리 급한 환자라도 진료 대상과 신분급수가 다를 때에는 치료를 받지 못한다. 평양에 있는 큰 병원에는 조금 나은 의료진과 현대식 의료 장비 등이 갖춰져 있지만, 일반 주민은 갈 수가 없다. 일반 주민은 진료소나 군 단위 병원이나 구역 병원에 가야 한다.
최근에 탈북한 북한 고위 인사는 “북한의 가장 의료시설이 좋다는 봉화진료소마저 치료 약이 제대로 없어 당 간부조차 치료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일반 의료시설은 더더구나 말할 바가 아니다. 북한의 핵심부 인사나 가족들은 중질환이 있을 경우 중국이나 프랑스, 싱가포르 등의 병원에서 은밀히 치료를 받는다. 북한은 지난해 에볼라 전염병 확산 위험 관계로 대외활동 고위층까지 격리 수용했던 것은 의약품이나 방역 체계가 열악해 확산 시 걷잡을 수 없는 정권 위험 때문이다. 북한은 내부에 의료 위기 상황이 오면 도와줄 곳은 대한민국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메르스 대남 비난을 즉각 중지해야 한다.
문화일보
◇ 06.27 北, 주민들 외국 영상물 시청은 처벌하면서 간부들에게는 제공해 원성
북한 당국이 한국이나 외국의 영상물을 본 주민들을 처벌하면서 고위 간부들을 위해서는 외국 영화를 볼 수 있는 TV 채널을 따로 만들어 제공해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26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RFA는 자강도 한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당국이 지난해 중앙당 비서급 간부들이 살고 있는 평양 대동강구역 은덕촌에 이어 올해 중구역 영광거리·만수대거리·창광거리에 있는 중앙당 과장급 이상 간부 아파트에 유선 TV망을 따로 설치했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참고통신’이라 불리는 이 TV 통로(채널) 가운데에는 외국 영화와 외국 기록영화(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는 통로가 따로 있고, ‘이 시각 세계’라는 전문 보도 통로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시각 세계’ 채널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를 보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참고통신’을 켜면 ‘본 통신에서 제공하는 영상물의 내용을 외부에 발설할 경우 엄격한 법적 처벌을 받는다’는 경고 문구가 뜬다”며 “외국 영화를 제공하는 ‘참고통신’에서도 한국 영화나 음악은 볼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함경북도 한 소식통은 “중앙당 과장급 이상 간부 가정에 ‘참고통신’이라는 방송이 따로 제공되고 있다는 사실이 평양 주민들 사이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며 “주민들이 한쪽으로는 불법 영상물을 단속하면서 간부들에게만 따로 외국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특별히 배려한 김정은 정권의 이중성에 매우 격앙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외국 영화를 방영하는 ‘만수대 텔레비죤’이 따로 있는데 그나마도 평양 주민들만 시청할 수 있고, ‘만수대 텔레비죤’에서 방영한 외국 영화를 지방 주민들이 볼 경우 불법 영상물을 시청한 죄로 엄히 처벌받는다”고 부연했다.
소식통들은 그러면서 “고급 간부들만 외국 영상물을 볼 수 있게 해 놓고 인민들에 대해서는 ‘자본주의 황색바람을 차단한다’고 단속하는 김정은 정권에 대해 주민들은 ‘자본주의 황색바람도 간부들에게는 불지 않는 거냐’며 비난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경필 기자
◇ 07.04 긴장완화가 北의 가장 큰 개혁… 南과 교류하면 年2~5% 성장
北의 시장화율 83% 넘지만
장마당 통해 생계 유지
남북교류 끊어지자 씨감자 못구해 옥수수 심어
-쇄국정책에 가뭄까지
韓·中 가뭄 지원까지 거부
北의 20개 경제 특구 중 개성공단만 겨우 작동
북한은 계획경제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론 주민 대부분이 장마당 등 자생적 시장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북한의 시장화(市場化)율은 83%를 넘는다. 16세 이상 인구 1737만명 중 1448만명이 시장을 통해 경제활동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북한 경제는 자생적 시장에 의해 간신히 유지되고 있지만 핵·미사일 개발 등에 따른 국제적 고립과 폐쇄적 정책 때문에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쇄국 고집, 스스로 목 죄는 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집권 초 경제 개혁·개방을 적극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장성택과 현영철 처형 등을 거치며 개혁·개방 정책의 탄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우선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가장 큰 돈벌이 수단이었던 석탄 수출이 큰 타격을 입었다. 대북 소식통 A씨는 "올해 6월 세관을 통한 북한의 대중(對中) 석탄 수출은 전월보다 26%, 철광석 수출은 23%나 줄었다"며 "중국에서 들어오는 돈이 줄면서 노동자들의 생활고가 심각하다"고 했다.
대북 사업가 A씨는 "그나마 번 돈도 그동안 전시성 건설 사업에 써 버렸다"며 "경제를 책임지는 박봉주 내각총리가 '재정이 단돈 100만달러도 없다'고 한탄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라고 했다.
북한 주민들의 식량 사정도 악화되고 있다. 대북 소식통 B씨는 "최근 가뭄 등으로 6월 말에 수확한 감자와 보리 작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의 식량 지원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란 소문까지 돌면서 시장 쌀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류 끊기자 모내기 방식까지 바뀌어
북한이 빗장을 닫아걸고 남북 경협도 중단되면서 농촌의 모내기 방식까지 바뀌었다. 과거 북한은 '주체 농법'이라는 이름 아래 쌀과 옥수수만을 '밀식(密植)' 재배했다. 땅에 화학비료를 쏟아붓고 작물을 빈틈없이 빽빽하게 심는 방식이다. 자연히 지력(地力)이 약해져 1990년대 이후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리게 됐다. 2000년대 초반 남북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북한은 남한 단체들로부터 콤바인 등 농기계를 공급받아 '이앙법'을 배우고 현대적 농법으로 전환했다. 연간 40만t의 쌀 증산 효과를 봤다. 또 옥수수만 심던 밭에는 바이러스 없는 씨감자를 심는 등 작물을 다양화했다.
그러나 남북 교류가 중단된 후 다시 밀식 재배가 시작됐다. 씨감자를 못 구해 감자밭은 옥수수밭으로 돌아갔다. 그 결과 2010년 북한의 곡물 생산량은 411만t으로 전년도보다 20만t 이상 줄었다. 대북 지원 단체 관계자는 "북한 정권은 교류가 끊긴 후 '그동안 남한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컸다'면서 오히려 내부 통제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시장 양성화·개방으로 활로 뚫어야"
북한은 개방을 통해 특구를 개발하겠다고 했지만 그 대상은 중국 등으로 한정돼 있다. 그나마 체제 동요를 우려해 전면적인 개방도 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20개 특구 중 현재 제대로 작동되는 곳은 개성공단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개혁·개방 정책을 얼마나 적극적이고 유연하게 추진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북한이 행정력과 사회 통제력을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데 사용한다면 시장경제가 급진전될 수 있다"고 했다. 통일연구원 박형중 연구본부장은 "북한에 가장 중요한 경제 개혁은 주변국과의 긴장 완화"라며 "그래야 외부로부터 자본, 기술을 들여올 수 있다"고 했다.
이태훈 기자
◇ 07.06 김정은체제 무너지는 소리...일본에서도 들린다
일본 내 유일한 북한서점이자 북한체제홍보의 거점역할을 해온 도쿄의 ‘코리아북센터’(이하 센터)가 지난 6월 폐점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관련 소식통에 따르면 이 서점은 지난 70년대에 설립되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와 궤를 함께 해온 북한관련 서점이다.
센터는 그간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전집을 비롯한 1만 여권의 도서와 수천 점의 체제 홍보용 화보, 음반 및 비디오 등을 소장, 판매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리아북센터의 폐간관련 안내문
하지만 지난 2014년 일본정부가 조총련 중앙본부 산하 신용조합이 627억 엔을 북한에 갖다 바치는 등 총련 계 신용조합의 경영책임을 물어 조총련 의 건물과 토지를 경매에 붙이면서 ‘보금자리’를 잃게 되었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이후 조총련 본부에서 나와 여기 거처를 옮겨 다니던 센터는 6월초, 관련 도서와 소장했던 자료 전체를 헐값에 내 놓고 이른바 ‘땡 처리’를 시도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고, 곧 센터의 폐점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주 일본에서 센터관계자를 만나보았다는 고신대학교 임창호 교수는 “코리아북센터는 과거 일본에서 북한도서판매뿐 아니라 각종 화보와 영상물 등을 통해 북한체제를 미화하고, 홍보대사역할을 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폐점과 관련해선 “무너져 버린 조총련의 위상과 무관하지 않다”면서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소장했던 출판물과 영상자료 전부를 파쇄, 파기 했다고 하는데 조총연 산하 기관이나 단체의 특성상 개인적으로 이런 일을 개인이 결정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7월 3일 본방송 도쿄통신원이 만나본 센터 관계자도 ‘북한 도서의 파쇄와 파기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센터 측 결심에 따른 것인지 조총연 중앙본부나 북한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답을 회피했다.
경위야 어찌됐든 지난 반세기동안 일본에서 북한을 찬양하고 홍보하는 일에 앞장서온 ‘코리아북센터’가 소멸되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또 파쇄 된 1만여 건의 도서가운데 김일성-김정일-김정은 노작과 관련 사진첩도 있었다고 하니 이번 도서 파쇄 건도 ‘조직적인 결정’임이 확실해 보인다.
[북한에서 김 씨 관련 사진과 영상물이 훼손되었을 경우 개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처 방법은 당 조직에 반납하는 것뿐이다. 이른바 훼손된 영상물은 이후 당 조직책임자의 입회하에 파쇄 되거나 소각시킨다는 노동당의 원칙이 있다. 편집자 주]
어쩌면 일개 서점의 폐쇄라고 평가 절하할 법도 한 이번 일을 두고 조총련과 민단 내 반응이 뜨겁다.
도쿄 분쿄쿠의 한 민단 관계자는 “한마디로 총련이 무너지고 있다는 방증이다”고 말했다. 현지에서 본방송 통신원이 만나본 조총련의 한 관계자는 “1945년 해방과 함께 전국적인 규모로 조직되었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는 지금 소리 없이 무너지고 있고, 그 예가 코리아북센터의 폐점이다”고 말했다.
김설송
◇ 07.09 남한 60년대 같은 北 주민들 '일상'
/북한 주민들이 트럭 짐칸에 잔뜩 올라타 이동하고 있다
/아기를 등에 업은 엄마가 씩씩하게 계단을 오르고 있다.
/신혼부부인 듯한 남녀가 손을 잡고 광장을 걷고 있다.
러시아 사진작가 알렉세이 게르만(55)씨가 작년 9월 21일부터 10월 5일까지 평양·개성·남포·원산·백두산·묘향산·금강산 등을 오가며 촬영한 것이다. 게르만씨는 지난 5월 모스크바에서 북한 사진전을 가졌으며, 지금은 벨고로트에서 열고 있다.
◇ 07-24 “전쟁 나면 40세 이상 북한남성 절반 총구 북쪽으로 돌린다”
▲집단체조공연 ‘아리랑’의 한 장면. 북한은 북한식 일심단결의 시각적인 예로 ‘아리랑’ 공연을 내세운다.
북한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게 ‘아리랑’ 대집단체조 공연이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인간의 물결을 보고 있으면 여러 생각이 든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집권 시기 때부터 ‘일심단결’을 강조해 왔다. 수령을 중심으로 당과 인민대중이 철석같이 똘똘 뭉쳐야만 조선의 위력이 발휘된다. ‘일심단결’이야말로 어떤 핵무기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큰 힘의 원천이라는 주장이었다.
북한 인민들의 단결은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가장 최신형의 무기라는 선전도 잊지 않았다. 그토록 북한이 강조하는 일심단결은 현재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북한식 일심단결의 정수 아리랑
▲2013년 7월 27일 전승절(정전협정체결일)에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대규모 열병식. 열병식에는 주로 군사학교 출신이나 재학생들을 동원한다.
2005년까지 최고위 간부들을 비롯해 북한의 모든 정치, 경제, 군사 분야 중견간부들의 70% 이상은 일제 식민지 시기를 살아봤거나 6·25전쟁에 참여했던 인물들이었다. 이들이 북한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나라를 빼앗겨 봤기 때문인지, 이들은 자신들이 6·25전쟁 시기 피로 지킨 사회주의의 붉은기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을 강하게 갖고 있었다.
이들이 나이를 먹고 권력의 자리에서 대다수 물러난 후, 50년대 이후에 출생한 사람들이 북한 간부급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일명 ‘고난의 행군’ 시기가 찾아왔다. 사회주의 분배 원칙이 허물어졌다. 자기 자신과 가족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걸 주민들은 깨닫게 됐다. 지도자와 당과 인민들이 한마음으로 단합해야 할 이유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밝혀졌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북한식 ‘일심단결’이 가장 극적으로 표출될 때는 ‘아리랑’ 공연을 할 때와 각 명절의 ‘정주년’ 때다. 정주년은 70주년, 85주년처럼 다섯 해나 열 해 단위로 숫자가 꺾어지는 해를 말한다. 4·15와 4·25나 9·9, 10·10명절의 정주년은 특별한 해로 기념해 열병식이나 군중시위에 평소보다 더 공을 들인다.
‘아리랑’ 대집단체조에는 10만여 명의 인력이 동원된다. 학생들은 6개월간 공부도 못 하고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 훈련을 한다. 학업에 지장이 있으니 웬만한 간부 집 자녀들은 여러 가지 핑계를 대고 참가하지 않곤 했다. 일반 주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김정일은 ‘아리랑’ 공연에 자녀들을 참가시키지 않은 간부들을 철직(해직)시켰다. ‘아리랑’에 참가한 학생들에게는 100달러어치의 선물을 지급했다. 주로 중국산 모포와 각종 식료품이었다. 생활이 어려운 주민과 학생들을 물건으로 유혹한 셈이다.
그다음부터는 매해 참가자들에게 ‘아리랑’이라고 쓰여 있는 중국산 색TV(컬러 텔레비전)와 재봉기를 지급했다. 선물로 유혹하는 동시에, 정치행사에 참가하지 않는다며 참가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협하기도 한다. 온갖 고생을 하며 공연에 참여하다가 방광염에 걸리는 이들도 있다.
군사열병식이나 100만 군중시위도 마찬가지다. ‘그 어떤 핑계도 댈 수 없는 1호 행사’라며 참가자 명부를 각 당위원회에서 점검한다. 참여 여부를 정치적으로 평가하겠다고 하기 때문에 무조건 참가해야 한다. 참가하는 군인과 평양시민의 불만은 날이 갈수록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북한의 정주년 명절이 되는 해가 되면 살기가 너무 힘들다고 노골적으로 말할 정도다.
선거도 북한식 일심단결을 보여주는 장이긴 마찬가지다. 피선거권자 중 100%가 투표에 참가해 100%가 찬성하는 선거 결과. 북한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이 기묘한 투표 결과를 ‘이것이야말로 그 어떤 다른 나라들에서는 볼 수 없는 오직 북한에서만이 할 수 있는 일심단결의 위력’이라고 선전해 왔다.
김정은 추대일에 통행 금지령
이 외에도 주민들의 일심단결 정신을 시험하는 일은 일상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2008년 7월경, 김정일이 강원도 원산시에 건설된 원산청년발전소를 시찰하려고 가던 길이었다. 도로 옆에 있는 아파트 베란다에 소위 ‘김정일화’로 불리는 꽃의 화분이 놓여 있는 걸 김정일이 보았다. ‘유리에 막혀 꽃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하며 전국의 아파트에 설치된 베란다 유리를 다 떼어내라고 지시를 내렸다. 아파트가 많은 평양의 주민들의 분노와 불만이 고조됐다.
2010년도에는 김정일이 중국에 갔다 오더니 ‘평양시 거리에도 중국처럼 꽃 화단을 조성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평양시 당에서는 각 구역별로 경쟁을 붙였다. 매 가구, 직장, 학교, 유치원과 탁아소별로 돈을 강제로 거두기 시작했다. 생화가 모자라 비닐로 꽃을 만들기도 했다. 평양시민들 사이에서 ‘눈 가리고 아웅 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2009년 12월 불시에 선포한 ‘화폐개혁’은 당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게 만든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한 가구당 구 화폐 30만원을 바치게 하고 신 화폐로 1000원씩만을 지급한 것이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국가가 식량도 주지 않으면서, 주민들이 아득바득 살겠다고 노력하여 피땀으로 모은 돈을 몰수했다는 원색적인 비난이 터져나왔다.
먹고사는 문제가 달린 일이었다. 평양시민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폭동이나 시위 등을 우려해 김정일은 인민보안부 내무군사령부 산하에 3000명의 기동타격대를 편성했다. 이 기동타격대를 평양시 각 구역에 분산 배치시켰다.
이듬해인 2010년 4월 17일에 드디어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중앙당 앞에 1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몰려가 김정일에게 항의 신소를 한 것이다. 경위는 이러했다. 평양시 인민위원회 산하 장성무역회사에서 ‘중국에 나가게 해준다’며 수백 명의 평양시 여성들에게서 많은 외화를 받았다.
3년이 지났는데, 중국에 나가기는커녕 돈도 안 돌려주자 이들이 당으로 몰려간 것이다. 김정일은 기동타격대에 ‘시위하는 이들 전원을 잡아 가두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평양의 민심은 밑바닥부터 흉흉해지기 시작했다.
2010년 9월 28일 당 제4차 대표자 회의에서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 추대했다. 나이도 어린 김정은을 후계자로 올리는 데 반대하는 시위라도 일어날까 걱정됐는지, 회의 당일 지시가 내려왔다. ‘평양시민들은 일절 거리에 나오지 말고 집에 있으라’는 지시였다. 평양시 곳곳에 보위부와 보안부 성원들이 배치되었다. 지시를 어기는 자가 있는지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지방 사는 장년 남자 절반이 전과자
▲일본의 후지TV가 2004년 공개한 북한 함남 요덕정치범수용소의 모습. 북한 전역에는 수용소뿐 아니라 교화소도 여러 군데 있다.
온갖 혜택을 다 받으며 일심단결의 표본으로 치켜세워지는 평양시민들이 이런데 지방 사람들은 어떨까.
2009년에 국방위원회 산하 인민보안부가 각 도, 시, 군 보안서들을 통해 조사한 걸 보면 상황이 심각하다. 평양시를 비롯해 교화소에 잡혀가면 가족 전체가 추방되는 신의주, 원산, 남포, 평성시 등 몇 개의 도시를 제외한 전국의 군에 사는 주민들 중 40세 이상 남자들의 거의 50%가 교화소 출소자들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살인이나 강간 등 강력범죄는 그렇다 치더라도, 먹을 것이 없어 남의 물건에 손을 댄 생계형 범죄까지 엄하게 처벌한 결과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이들이 총구를 남쪽이 아닌 북쪽으로 돌릴 수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일심단결을 자랑하는 북한의 현실이 이렇다는 걸 보고받은 김정일은 지시를 내렸다. ‘사회주의의 적을 많이 만들지 말라’는 지시였다. 구체적으로는 형법을 수정해 형량을 축소하도록 했다.
사법, 검찰, 보안부에서 사람들을 뽑아 ‘형법요해그룹’을 만들었다. 일종의 법개정위원회였다. 거의 1년간 토의한 끝에 형량을 대폭 줄인 형법이 탄생했다. 2011년부터 개정된 형사소송법으로 재판이 진행됐다.
‘불패의 일심단결’로 이루어졌다는 인민군대의 실상은 어떨까. 북한의 인민군대는 ‘관병일치’를 군의 기본목표로 내세운다. 군관(장교)과 병사들과의 일치단결이 보장되어야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다며, 인민군대에서는 그것이 이뤄졌다고 선전하고 있다.
실제로 그럴까? ‘전쟁이 일어나면 자신들을 악착같이 착취한 사관들과 지휘관들을 먼저 쏘아 죽이겠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병사들이 있을 정도다.
북한에서는 병사들을 일당백의 용사로 키운다고 하면서도 제대로 먹이지도 않고 강도 높은 훈련에 내몰고, 국가대상건설과제가 제기되면 연약한 병사들이 밤낮으로 공사 현장에 내몰린 지 오래다. 일반 병사들은 영양실조로 병원에 입원하고, 약도 없어 부모들이 약과 영양식을 가져다 먹이면서 겨우겨우 10년의 군복무 기간을 버텨내는 현실이다.
당연히 탈영을 시도하는 병사들이 많다. 어떻게 해서라도 군복무를 피해보려고 하지만, 의무복무제도라고 하면서 무조건적인 군복무를 강요하니 주민들의 불만은 날로 높아지는 현실이다.
성분이 좋은 집안에서도 군복무 제도에 대한 반감은 높다. 북한에서 계급배경이 좋고 육체적 조건도 좋은 집안의 자녀들은 전연부대(전방부대)로 간다. 전연부대에서 자기의 소대장과 분대장을 쏘아 죽이고 남북 분계선을 넘어 투항하는 병사가 등장했다. 전방이 이런데 후방은 어떨까.
군대에서 뇌물 안 바치면 맞아 죽어
▲지난 2009년 김정일이 북한군 제7보병사단을 시찰하는 모습. 김정일은 인민군대를 ‘토벌대’라 비난하며 기강을 잡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군관(장교)들 내부의 상황도 심각하다. 군 지휘관들과 정치 지휘관들의 악화상태는 이미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군 지휘관들은 병사들에게 명령을 하여 훈련을 시키고 일을 시키는 것밖에 하지 않지만, 정치 지휘관들의 권한은 막강하다. 북한군이 가장 중요시하는 입당문제, 승급문제, 표창문제, 제대 후 대학 가는 문제, 군관학교로 가는 문제 등 중요사업을 다룬다. 병사들과 그 부모들이 정치 지휘관들에게 뇌물을 많이 바치고 그들의 말만 따르기 일쑤다. 군 지휘관들은 부대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것의 원흉으로 정치 지휘관들을 지목하고 있다.
북한의 고위 간부들도 이런 상황을 다 알고 있다. 그러기에 군사열병식에도 부대병사들이 아닌 각 군사학교 학생들 위주로 열병식에 내보낸다. 부대병사들이 참가하는 경우에는 정치부와 보위부가 철저하게 검토한 뒤에 참가시킨다. 일반 사병들은 입당을 허가받는 전제하에 모든 고생을 극복하며 참가한다.
노동당에 입당하려고 하는 것은 당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서가 아니다. 군대에서는 입당을 해야 좋은 곳에 자대배치를 받을 수 있고 대학에 갈 수 있으며 간부로 승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려면 뇌물을 주고라도 입당을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집에서 부모들이 보내주는 돈으로는 뇌물을 바치기에 부족하니, 부대주둔지구 마을 집들을 습격하는 일이 빈번하다. 돈을 빼앗고 물자를 강탈한다. 일반 주민들은 자기 자식들도 군대에 가 있지만 군대만 보면 치를 떨고 피하곤 한다. 신고받고 나온 보안원들이나 경무부(헌병)에 잡혀 군복무를 더 이상 못 하고 교화소에 가는 군인들이 많다.
통신병들이 통신설비를 보호하지 않고 오히려 통신선을 절단하여 그 속에 있는 구리를 팔아 돈과 물자를 정치 지휘관들에게 뇌물로 바치다가 들통이 나서 교화소로 가기도 한다.
강도질을 해서라도 뇌물을 바쳐야 하는 이유는 뭘까. 뇌물을 적당히라도 바치지 않으면 부대에서 왕따를 당해 같은 분대병사들이나 지휘관들에게 계속 매를 맞아 죽게 되기도 한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도맡아서 하게 되기 때문에 병에 걸려 죽는 일도 잦다.
김정일이 이런 보고를 받고, ‘인민을 보호하는 군대가 아니고 인민을 약탈하는 토벌대다’라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아무리 군대의 기강을 바로잡으라고 호통을 쳐도 이미 군인들의 식생활도 보장하지 못하고 영양실조 환자가 많이 배출되고 있는 북한의 현실은 바뀌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들 때문에 북한의 당, 무력부, 보위부, 보안부와 정권기관들 사이의 알력 관계는 이미 그 한계를 넘었다. 반목이 무장충돌로 이어지고 다시 반목이 깊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다.
군인들과 보안부 사이에 수없이 총격전이 발생했다. 많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오죽하면 ‘군대와 보안부는 고양이와 쥐 사이’라는 야유가 나오는 형편이다.
북한 군인들은 보안원들을 경원시한다. 간부 집에 태어나 자기들처럼 힘들게 군복무를 하지 않고 편하게 보초나 서고 인민들을 단속하여 뇌물이나 받아먹는 아주 나쁜 인간들이라고 생각한다.
2014년 8월 말, 강원도에서 인민보안부 7총국(공병총국) 병사들과 인민무력부 군인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3명이 맞아 죽고 총격전 직전까지 갈 정도로 심각했다.
이 사건으로 보안부장 최부일이 징계를 받았다. 이미 평양시 평천구역에서 일어난 아파트 붕괴 사건의 책임을 물어 별이 하나 강직되어 상장(중장)이었는데, 여기에 다시 두 개가 더 강직되어 소장(준장)이 됐다. 이것이 북한식 일심단결의 현실이다.
출처 | 월간조선 7월호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 08.04 북한은 어떻게 마약천국이 되었나?
불량국가 북한에서 김정일의 직접적인 지시로 당국이 조직적으로 마약을 생산하고 위조화폐를 만들기 시작한데 대해 낱낱히 고발한 전 북한 노동당 연락소 해외파견조에 근무했던 탈북자 A씨의 생생한 증언 (2012년 탈북)
김정일, 국고 보충 위해 마약생산 지시
1980년 말 북한 김정일은 “제국주의 봉쇄와 국제적 압력, 동구라파 사회주의 국가붕괴로 지원이 끊긴 것과 관련해 자금 확보를 위한 마약생산을 비밀리에 진행하라”는 지시를 중앙당(노동당)에 내렸다.
특히 김일성 생일 60돐을 맞으며 전국 어린이, 인민학교(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에 ‘사랑의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국고를 탕진하고 서해갑문건설, 남한 수재민구제, 제13차 세계청년학생 축전 이라는 정치적 목적에 의해 북한의 국고가 심각한 자금난을 겪게 되자 이 같은 지시를 내리게 되었다.
하여 90년대 초 정무원 강성산 총리를 “나라살림살이를 잘 하지 못했다”는 루명을 씌워 해임 하고, 국고보충을 위한 출로를 찾기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북한군내에 ‘백도라지’(아편)를 대대적으로 재배하는 부대가 비밀리에 조직되어 함경북도 부전군, 장진군, 황해남도 장연군 몽금포 리 에 아편재배농장을 만들었다.
당시 여기에서 생산된 아편은 가마에서 축출하여 아편진으로 만들어 졌으며, 완성품을 80년대 후반 북한 군 보위사령부 장생무역회사 박윤호(당시 50세)사장이 2000만 달러를 들여 극비밀리에 타이(태국)에서 마약 제조업자 3명 납치, 마약제조설비를 구입하였고, 아편완성품을 가지고 함경북도 나진에 있는 라남제약공장에서 아편분말생산에 착수했다.
전쟁준비 명분으로 마약생산 시작
포장단위는 너비 30cm, 길이 40cm의 크라우트지(북한 길주팔프공장에서 생산한 종이)에 포장하여 상표(라벨)에는 ‘백도라지’라고 밝혔으며 중앙당 3호청사에서 파견한 공작원들에게 공작비와 당 자금을 마련하라는 지시와 함께 제조된 마약완성품이 전달되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1985년 조선노동당 6부 직속 130연락소(김정일정치군사대학)를 졸업한 김상복(당시 23세)에게 전문마약지식을 습득시켜 홍콩과 마카오의 마피아, 중국 삼화패 에 침투시켰다.
1990년부터는 남포연락소 소속 연락선인 ‘수근호’ 배를 통해 공해상에서 김상복에게 마약을 조달하였으며 김상복은 1년에 3000만달러를 당 자금으로 김정일에게 상납했다.
당시 조선노동당 6부 부장은 오극렬(현재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였으며 해당 조직을 책임진 자는 부부장 정해룡(6.25당시 최고사령부 변신과장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현재 사망)이다.
1990년에 들어 이라크 전쟁에서 다국적군이 전승을 이룩하고 이라크군이 투항하자 김정일은 “제국주의 연합세력들의 다음 목표물은 우리 공화국이다. 때문에 전쟁준비를 완성하라”는 지시를 내렸으며 이에 근거하여 국가과학원 의학과학연구원 약학연구소에서는 ‘강심지혈제’(파인디아)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또한 전투부상으로 인한 통증을 극복하기 위해 일명 ‘총탄’(병사들이 약을 흡입한 후 총알처럼 목표만을 향해 돌진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부르는 화학합성제인 ‘덴다’마약도 대대적으로 제조하기 시작했다.
한편, 노동당 간부들에게 마약생산의 정당성을 합법화하기 위해 함흥화학공대 변상호 교수, 장생무역회사 박윤호 사장은 김정일에게 “진통진정제로는 ‘총탄’을, 강행군과 극도의 피로를 극복할 수 있는 각성제로는 ‘얼음’(일명 아이스 또는 빙두)을 개발해야 된다”는 제의서를 올린다음 북한당국은 전쟁준비를 위한 명분을 가지고 대대적으로 생산을 시작했다.
마약유통 실상과 판매루트
북한 당국은 생산된 마약을 판매하기 위해 국내에 “태국마약배가 ‘쌍사자’라는 덴다 마약을 싣고 공해상 에서 침몰하였으며, 조선인민군 해군사령부 ‘수로국’에서 훈련 중 우연히 발견하여 인양했다.
이 물건이 마약이라는 것이 밝혀져 정부에선 모두 회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일부 지휘원들이 그 것을 몰래 빼돌렸다”는 소문을 평양시 부터 퍼지도록 비밀리에 조작했다.
하여 당시 국가의 계획을 수행하지 못하여 책임추궁을 받고 있던 각 외화벌이 단위들에서는 계획수행을 위해 해군 지휘관들이 빼돌렸다는 마약을 입수하여 해외로 판매하기 위한 루트를 개설하기 시작했다.
1997년부터는 국가가 몰래 흘린 마약이 국내 시중에 나돌게 시작되었고, 호위사령부, 보위사령부, 중앙당 연락소, 인민무력부, 인민보안부를 비롯한 권력기관들에서 마약판매를 위한 해외진출의 각축전이 벌어졌다.
이와 함께 당시 마약제조에 동참하였던 기술자와 노동자들이 생산기지에서 해임되자 이들은 사회에 진출하여 마약을 제조하기 시작했으며 평성, 함흥, 원산, 청진, 혜산, 신의주 등지에 마약이 퍼지기 시작했다.
2000년 이후 북한 전지역, 마약의 늪에 빠지다 1990년에 시작한 마약생산은 1993년까지 “인민군대가 전쟁에 사용할 ‘진통진정제’(총탄)와 각성제(빙두), 강심지혈제(파인디아) 생산을 끝마쳤다”는 보고가 김정일에게 전달되었으며 ‘계획한 것 보다 과잉생산 된 마약은 해외에 은밀히 판매’할 데 대한 김정일의 지시가 내려진 것이다.
당시 생산에 동원되었던 기술자, 과학자, 노동자들에게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의 명의로 된 “적들의 노골적인 전쟁도발에 대처하기 위한 싸움준비완성에 높은 공헌을 한 과학자, 기술자, 노동자들을 높이 평가한다”는 감사문이 전달되었으며 이후 해체하라는 지시에 의해 사회로 진출되었다.
이들은 처음 마약을 연구하고 시험생산을 한 평양시 상원군 마장리 연구소에서부터 대량 생산을 시작한 흥남제약공장, 라남제약공장, 평양 선교제약공장에 몸을 담았던 사람들이다.
김정일의 독재와 폐쇄정치 속에 북한 주민 200만~300만이 굶어죽던 ‘고난의 행군시기’ 국가로부터 마약생산에 동원되었다는 이유로 식량을 공급받으며 근심걱정없이 살던 이들은 하루아침 국가의 공급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배고픔이 무엇인지?, 식량 1kg가격이 얼마인지? 모르고 살던 이들은 그동안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장생활 노하우를 터득한 일반인들을 따라가기는 무리였다.
하여 ‘배운게 도둑질’이라는 북한 속담에 근거하여 이들은 은밀히 마약을 만들어 유통시키는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2000년 이후 북한 전 지역은 마약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었다.
일반주민들도 마약생산 및 판매
마약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평성과 함흥을 비롯한 일반주민들도 마약생산기술을 전수받아 필로폰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미세한 기술적 차이로 최고급 마약은 A급, B급, C급으로 나눠져 판매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에 입학 할 나이인 8살 어린이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부모의 손에 이끌려 학교가 아닌 산에서 고사리를 채취하고, 바다에서 조개를 잡아오다 ‘마약이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돈을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고, 이들이 ‘장마당세대’ 로 불리면서 마약운반, 마약제조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2002년부터 마약은 함북도, 양강도, 평북도를 비롯한 국경지역에서 불법밀수를 통해 대대적으로 중국에 넘어가기 시작했으며 당시 마약(필로폰)1kg은 미화(5600$)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국경을 통해 대량의 마약들이 중국에 유입되자 중국 당국은 마약(필포폰) 비법거래를 차단하기 위해 군(해방군)을 전 국경에 배치했으며, 중국 당국의 국경통제가 심화되자 북한주민들은 내부에서 마약(필로폰)을 소비할 수 있도록 ‘각성제’, ‘흥분제’로 성분을 분리하는데까지 이르렀으며 그 기술은 다양하게 발전하기 시작되었다.
2006년~현재까지 북한주민들 속에서는 마약(필로폰) 0.1g이 북한돈 5000~7000원에 거래되었으며 최근에는 중학교 학생들까지 마약을 소지하는데 이르렀다.
마약이 성행하자 결혼식 부조금으로 현금이 아닌 마약을 선물하는 현상도 공공연히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대학입학, 승진 뇌물로도 마약을 최고의 ‘선물’로 여기기 시작했다.
그 단편적인 예는 함경남도 함흥시 동흥산구역 보안서(경찰서) 서장 최성남은 자기 관활구역에 있는 노동 단련생들을 이용하여 동흥산구역 보안서 부업기지에 마약(필로폰)생산기지를 차리고 마약을 생산했다.
최성남은 생산된 마약수량이 많아지자 자신의 권력과 인맥을 동원해 청진을 비롯한 국경지역에 밀수 밀매를 전문적으로 담당한 방조자들을 두고 대량적으로 판매 유통하였다.
2011년 4월15일 최성남의 지시로 마약을 생산하던 동흥산 구역 류정리 마약(필로폰)기술자 김지연이 폭발사고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최성남은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유가족들에게 ‘반역자’라는 있지도 않은 누명을 씌워 온 가족을 정치범 수용소에 보냈다.
이처럼 김정일의 욕심으로 북한사회 전반이 ‘마약공화국’으로 변했으며 마약을 위해서라면 권력자가 일반인을 생산자로 부리고, 일반인은 권력자를 속여 마약을 판매하는 등 각종 살인, 강도 범죄가 끊이질 않고 있다.
마피아와의 마약거래를 통해 위조화폐 돈세탁
1990년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미국정부에서 달러를 교체(북한에서는 왕 달러라 불림)하기 시작하자 북한 당국은 이 기회에 달러를 확보할 목적으로 중국 요녕성 화건무역회사 총경리 김광일(조선족)을 통해 ‘양면복사기’로 불리는 화폐 기계를 들여와 조선노동당 통일전선사업부 소속 101연락소(일명 중앙당 출판사로 불림)에 생산 지시를 내렸다.
당시 101연락소는 거듭되는 가달러 생산 실패를 만회하고 진짜와 같은 달러를 만드는데 성공했으며, 이들은 생산된 달러를 들고 위조화폐 검증기기에 통과시켜 보거나 불법환전 장사꾼들에게 건네 진가를 검증했으며 통과하지 못한 가달러를 가져다 다시 수정하는 방식으로 완성품을 만들어냈다.
이를 통해 당시 사회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로 복귀하면서 정치적 불안정과 사회무질서로 진통을 겪고 있는 유럽국가들 의 실태를 악용하여 1997년부터 조선노동당 대외연락부, 통일전선사업부, 작전부, 사회문화부 소속 공작원들에게 ‘유럽 국가에 가 달러를 유통시키라’는 지시가 내려지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김정일로부터 “가달러 100만불을 유통시켜 정품달러 50만불을 국가에 상납할 것”을 지시받았다. 유통방식은 정품 1만불당 가달러 1000불을 섞어 물자를 사고 다시 물자를 되파는 식의 돈세탁을 진행했다. 이 밖에도 마약거래를 하는 마피아, 삼화패에도 마약을 주고받으며 돈세탁을 하였고, 서해안의 각 외화벌이 기관들에서도 중국으로부터 물자를 받으면서 가달러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돈세탁을 활성화 시켰다.
화건무역회사 총경리로부터 양면복사기를 넘겨받은 자는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일명 통전부)산하 과장 김성일(당시 60세)이며 이자는 당시 평양시 무역관리국 순화강 회사 사장으로 신분을 세탁했다.
북한 당국은 위조화폐를 평양시 중구역 련화동(고려호텔 앞에 있는 중앙당 6대기 차사업소 건물 맞은편에 위치)에서 만들어냈다.
당시 위조화폐 총책은 조선노동당 통일전선사업부 101연락소 부소장 고대호(당시 55세)다.
글 | 이석영 자유북한방송 기자
◇ 08-28 北고려항공, 4년연속 세계 최악 항공사
▲북한의 고려항공이 4년 연속 세계 최악의 항공사로 평가됐다.
세계 최대 공항 및 항공사 서비스 평가기관인 영국의 스카이트랙스가 최근 전 세계 600 개 항공사를 대상으로 한 평가 결과를 공개했는데, 고려항공은 조사대상 중 유일하게 별 1개로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고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28일 전했다. 별이 많을수록 등급이 높으며 최고는 별 5개다.
스카이트랙스는 노후화 등 비행기의 효율성, 공항 탑승 편의, 기내 봉사, 제공되는 식사의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점수를 매긴다.
스카이트랙스는 고려항공에 대한 자세한 평가 내역을 공개하지는 않은 채, 별 1개를 받은 항공사는 평가 영역 전반에 걸쳐 형편없다는 것을 뜻한다고 밝혔다.
스카이트랙스의 평가에서 최고점인 별 5개를 받은 항공사는 우리나라의 아시아나항공, 중국의 하이난항공, 일본의 전일항공 ANA, 홍콩의 캐세이 퍼시픽 항공, 인도네시아의 가루다항공, 카타르항공, 싱가포르항공 등이다.
이와 관련해 며칠 전 영국의 텔레그래프는 고려항공 여객기 일류신 IL-18의 내부와 기내식 등을 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신문에 따르면 여객기는 매우 낡고 협소했으며 승객 좌석은 뒤로 젖혀지지도 않았다. 기내식은 탕수육 덮밥과 생선튀김, 후르츠칵테일, 케이크 등이 제공됐다.
고려항공은 얼마 전까지 기내식으로 햄버거를 제공했으나 지난달 20일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유명한 고려항공 버거는 더는 제공하지 않는다”며 이제부터 김밥을 제공한다고 공지했다. 또한 새로 완공된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 초콜릿 간식, 인터넷 서비스와 함께 쇼핑의 기회도 제공받을 수 있다고 선전했다. 북한은 7월 1일 최첨단 국제공항으로 건설한 평양 순안국제공항 제2청사 준공식을 거행했다.
고려항공은 국내선 외에 국외 직항노선으로 중국 베이징·상하이·선양과 러시아의 모스크바·블라디보스토크,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프루, 태국 방콕 등에 취항하고 있다.
한편 유럽연합은 현재 고려항공의 역내 취항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지난 2006년 취항 규제 항공사 명단을 내기 시작한 이래 고려항공을 계속 ‘취항 금지 대상’으로 분류하다가 2010년부터 ‘운항 제한 대상’으로 바꿨다. 북한이 2010년에 러시아에서 TU-204 항공기 두 대를 새로 도입하자, 이들 항공기 두 대에 대해서만 제한적인 운항을 허용했다.
박해식 동아닷컴 기자 pistols@donga.com
◇ 09.12 北주민들 "김정은은 '흡혈귀'…일제도 이렇게 착취하지 않았을 것"
북한 주민들이 하루가 멀게 당국으로부터 내려오는 사회적 과제와 현금거두기 지시에 잔뜩 화가 나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흡혈귀'에 비유하고 있다고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이 12일 보도했다.
RFA에 따르면 김정은 정권은 라선시의 홍수 피해 복구 명목으로 만 17세 이상 주민에게 북한 돈 2000원씩과 함께 각 가정에 장갑과 된장 등 각종 물자도 바치라고 지시했다.
양강도의 한 소식통은 “돈과 현물을 거두는 것 외에 김정은이 할 줄 아는 게 도대체 뭐냐는 비난이 인민 속에서 거세게 일고 있다”며 “이 나라(북한)엔 왜 임꺽정이 없느냐고 인민들이 탄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8월 한 달 동안 인민군 지원과 노동당 창건 70돌(10월 10일)을 경축하기 위한 건설사업, 인민군 열병식 훈련을 하고 있는 군인을 위해 김정은 정권이 지시한 현물 과제는 각 가정당 중국 돈으로 40위안 정도라고 한다. 올해 들어서만 이런 식으로 거둔 현금과 현물은 각 가정당 중국 돈으로 환산하면 300위안이 넘는데 가장 많이 거둔 것은 된장이고 ‘충성의 외화벌이’ 물자, 장갑, 산나물 순이라고 소식통을 밝혔다.
자강도의 한 소식통도 “일제 강점기에도 이렇게까지 인민을 착취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김정은과 비교하면 사회적 과제를 많이 내줘 인민들의 원성이 높았던 김정일은 점잖은 편에 속한다”고 말했다. 소식통들은 “사회적 과제가 떨어질 때마다 인민들은 ‘중앙에 있는 흡혈귀들’이라는 욕설을 퍼붓고 있다”며 “정해진 이름이 아니고 ‘흡혈귀들’이라는 복수의 표현을 쓰지만 그 ‘흡혈귀’는 다름 아닌 김정은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주장했다.
강영수 기자
◇ 09.18 “남조선 잘사는 것 안다, 근데 왜 자살하는 사람 많은가”
“삼성을 알고, 중국 사람들로부터 들어 남조선이 잘사는 것도 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자살하는 사람이 많은가.”
북한 함경북도 나선시에 사는 40대 남성의 말이다. 그는 다큐멘터리 촬영차 북한을 방문한 계명대 조현준(34·언론영상학)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도 발전하게 되면 가까운 미래에 남조선 생활수준의 중간급 정도는 될 것”이라고 했다.
조 교수가 17일 이런 내용의 북한 주민 인터뷰를 공개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삐라’를 만들어 17~24일 경기도 고양·파주시 일원에서 열리는 ‘제7회 DMZ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 출품하면서다.
다큐멘터리는 2013년 11월 조 교수가 직접 찍은 북한 주민들의 모습 위주로 구성했다. 다큐멘터리에서 교사 출신이라는 40대 남성 가이드는 남한 탈북자단체 등의 삐라 살포를 비판했다. “(풍선에) 좋은 것, 쓸 수 있는 것을 넣어 날린다지만 그 사람들이 왜 보내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좋은 것, 쓸 수 있는 것’이란 삐라 풍선에 함께 든 의약품 등을 말한다. 조 교수가 “인도적인 차원에서”라고 하자 이 남성은 “그렇다면 차라리 적십자를 통해 공식적으로 하지 왜 상대방이 인정할 수 없을 만큼 불법적인 방법을 택하느냐”고 반문했다.
핵에 대해서는 ‘자위수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핵이 있기 때문에 미국이 우리를 치지 못한다”며 “이라크가 핵을 가지고 있었으면 미국이 못 덤벼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핵이 있기 때문에 전쟁이 안 일어나고 있다”고도 했다.
조 교수는 다큐멘터리에 없는 내용도 소개했다. 중국·러시아와 접경지역인 나선시의 장마당에 있던 40대 후반 여성은 “돈을 많이 버느냐”는 질문에 “하루에 50위안(약 8700원)쯤 벌 때도 있고 전혀 못 버는 날도 있다”고 답했다. 조 교수는 이 여성에 대해 “환전상처럼 보였다”고 했다.
관광지에서 근무하는 30대 여성들은 “남조선에 가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제주도를 첫째로 꼽았다. 이들은 “서울보다 제주도 경치가 좋잖아요. 빨리 통일이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경성군의 한 마사지업소에서 일하는 20대 후반 여성은 조 교수에게 “남한에서는 어떻게 연애를 하느냐. 우리는 주로 공원에 가는데…”라고 질문했다.
조 교수는 “주민들 모습에서 활기가 느껴졌고 식량이 부족하다곤 하지만 큰 고통을 겪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처음엔 북한의 인권 실상을 파악하려 했는데 취재 과정에 삐라 살포가 남북 간에 긴장을 초래하는 면이 있다는 점을 알게 돼 거기에 초점을 맞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캐나다 국적을 가진 조 교수는 중국 여행사를 통해 북한에 들어갔다. 호주·영국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 5명과 함께 일주일간 함경북도 나선·청진시 등지를 여행하며 촬영했다. 취재를 마치고 중국으로 나갈 때 북한 검문소에서 영상이 저장된 자신의 컴퓨터를 조사했지만 비밀 폴더에 저장해 발각되지 않았다고 한다.
조 교수는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부모를 따라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2009년부터 1년여 동안 미국 방송사 ABC에서 교양프로그램 PD로 일했다. 중앙대·동국대 강사를 거쳐 이달 초 계명대 교수로 임용됐다.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 ‘삐라’는 18일 경기도 고양시의 메가박스 백석에 이어 22일 파주시 메가박스에서 상영된다.
대구=홍권삼 기자 honggs@joongang.co.kr
◇10.01 北 노동당 70돌, 우방국조차 외면 '안방 잔치'
총력외교에도 줄줄이 불참 "도발 우려, 부담 크기 때문"
中·러 사절단 규모 불투명… 외교관에 행사자금도 요구
최근 밀수사건 급증 추세 "이러다 탈북자 되갔어" 한숨
북한의 노동당 창건 70돌(10월 10일) 기념행사에 초청받은 해외 주요 인사들이 줄줄이 방북 거절 의사를 밝혀 북한 외교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또한 북 당국이 행사 비용 조달을 위해 해외 공관에 충성 자금 상납을 강요하면서 북한 외교관들이 불법 외화벌이에 내몰려 있다고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이 30일 전했다.
◇당 창건 70돌 '안방잔치' 될 듯
이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올해 초 "(해외의) 웬만한 고위급은 당 창건 행사에 몽땅 초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따라 북 외교 당국은 해외 고위급 초청을 외교 활동 1순위에 두고 총력전을 펼쳐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방국에서조차 방북 의사를 밝힌 거물급 인사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방북을 약속했던 메가와티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베트남 공산당 서열 12위의 응오 반 주 당중앙감찰위원장도 최근 방북 일정을 백지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형제국' 쿠바의 경우 레오폴도 신트라 파리아스 혁명무력부 장관의 방북설이 돌았지만 아직 확답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방북 경험이 있는 안토니오 라치 이탈리아 상원의원은 북한의 체제 선전에 이용당할 것을 우려해 방북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美인권재단 ‘한국의 북한인권법안 통과’ 촉구 - 미국 인권재단(HRF)이 3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연 북한인권법안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서 오릿 코펠 지미 웨일스(맨 오른쪽) 재단 대표이사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외교가의 관심사는 중·러가 어느 수준의 사절단을 파견할지에 쏠려 있다. 이와 관련,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행사가 열흘 남았는데 아직 중국이 북한에서 공식 초청장을 받았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 등 전략적 도발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교 소식통은 "이번 유엔총회 기간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북한의 도발 움직임에 대해 공개 경고를 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중국 고위급 인사를 불러놓고 미사일을 쏜다면 중국의 체면이 완전히 깎이게 될 테니 북도 (초청을) 주저하는 것 같다"고 했다.
◇北외교관 "이러다 탈북자 되갔어"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앞두고 동남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지에서 북한 외교관이 연루된 각종 밀매·밀반입 사건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 3월 방글라데시에선 북 외교관이 금괴(27㎏)를 갖고 입국하다 공항 세관에 적발됐다. 4월엔 파키스탄에서 위스키를 밀매하던 외교관 부부가 경찰에 붙잡혔고, 5월 모잠비크에선 북 외교관이 코뿔소 뿔(4.6㎏) 밀매 혐의로 체포됐다 보석금(3만달러)을 내고 풀려났다. 중남미의 북한 외교관들은 쿠바산(産) 시가 밀매에 뛰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외교관 신분을 가진 북한 무역일꾼들의 불법 외화벌이는 일상이 된 지 오래지만 올해는 정통 외교관들까지 합세하는 총력전 양상"이라며 "당 창건 70주년 행사 자금 조달을 위해 북한 당국이 해외 공관과 지사·상사에 '충성 자금' 상납을 닦달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했다.
실제 북한 당국은 충성 자금 상납 실적이 저조한 해외 근무자들을 본국 소환 조치 등으로 압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동남아 지역에 주재하던 한 북한 외교관은 사석에서 "무슨 놈의 상납금이 이리 많아. 이러다 내래 탈북자 되갔어"라고 말했다가 소환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대 후반 동유럽 지역 북한 공관에 근무했던 탈북자 K씨는 "김정일 시대 북한 당국이 해외 근무자들로부터 뜯어내던 상납금은 연간 1억달러 정도였는데 김정은 시대 들어 두 배가 됐다"며 "당 창건 70돌 행사 자금까지 내라니 외교관들 불만이 극에 달한 것"이라고 했다.
베이징=안용현 특파원 이용수 기자
◇10.03 北, 黨창건 70돌 축하 해외사절단에 "1인당 매일 70유로씩 참가비 내라"
"경제난 시달리는 북한… 외빈에 돈 뜯어야할 처지"
북한이 노동당 창건 70주년(10월 10일)을 맞아 해외 각국의 축하 사절단을 7박8일 일정으로 초청하면서 "1인당 매일 70유로(약 9만2300원)씩 참가비를 내라"고 요구한 것으로 2일 확인됐다. 8일간 평양에 체류할 경우 1인당 560유로(약 73만8500원)를 부담하라는 얘기다.
옛 소련에 속했던 A국가의 정부 당국자는 이날 본지 인터뷰에서 "북한이 당 창건 70돌을 맞아 우리 대표단을 10월 7일부터 14일까지 평양으로 초청했는데 항공권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숙박, 교통, 식사, 행사 참가비 조로 매일 70유로를 내라고 하더라"고 했다. 2012년 4월 김일성 100회 생일에도 방북했다는 이 당국자는 "북한이 그때는 우리 대표단 100여 명을 초청하면서 항공료와 숙박비 일체를 부담했다"며 "요즘 북한의 경제 사정이 최악이라는 정보를 접했는데 이번에 실감했다"고 했다.
실제 북한은 2012년 태양절을 대대적으로 치르느라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 당국에 따르면 당시 북한은 48개국 110개 대표단 1만여 명을 초청해 경축 행사, 특별 배급 등을 하는 데 약 10억달러를 썼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각종 물놀이장과 초고층 아파트 단지 건설 등 토목공사에도 10억달러를 투입했다고 한다. 정부 소식통은 "김정은은 올해도 2012년에 버금갈 정도의 규모로 치르고 싶어 하지만 2012년에 자금을 탕진한 데다 올 초부터 해외 공관원들을 동원한 외화벌이 성과도 미미해 해외 축하 사절들로부터 돈을 뜯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고 했다.
이용수 기자
◇10.13 北 공개총살 사라지고 극형등장
▲ / photo by 사진자료 (구글이미지)
최근 북한정권은 공개처형을 감추고 극형이라는 최고형을 비공식으로 단행하고 있다. 양강도 혜산에 거주하고 있는 통신원은 뉴포커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지금 북한은 김정일 정권때 오히려 평화시기라고 느낄만큼 김정은의 공포정치에 휩쌓이고 있다"고 말했다.
통신원은 "북한주민들에게 공개총살은 심심치않게 볼수 있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최근들어 그 흔한 광경을 목격할 수 없다. 일부 주민들은 '김정은의 광폭 정치가 낳은 조치'라며 착각하고 있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처형방법은 더 잔인해 졌다. 바뀐 것이 있다면 공개 처형에서 비공개 처형으로 바뀐 것 뿐"이라고 강조했다.
'한 명을 처형하여 100명을 교양하자'가 북한 정권의 공포정치 방식이었다. 이를 현실화 하기위해 북한 정권은 공개처형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공개총살은 모든 계급을 장악하여 정권의 의도와 목적 달성에 결정적인 통치적 역할을 해왔었다. 북한의 공개처형은 주민들에게 공포심을 각인시킨다. 그러던 공개처형이 비공개로 바뀌었다. 분명한 북한 정권의 의도가 숨어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북한 양강도 혜산 통신원은 "전세계가 북한인권 문제를 놓고 항의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때문에 북한 정권 입장에서는 해외언론을 잠재우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바로 공개처형을 멈추는 것이다. 그렇다고 실지로 처형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공개처형이 사라지면서 '극형'(무기징역)이 등장을 하였는데, 이는 실제적인 비공개 처형이나 마찬가지다. 재판이 끝나고 극형을 선도받은 피고들은 독감방에서 훨씬 잔인한 방법에 의해 처형된다. 예컨데 폭형(고무망치로 머리 타박상을 안기는 형벌), 참수 등이다.
얼마 전 양강도 혜산에서 인심매매로 5명이 공개재판을 받았다. 4명은 최대 5년 형의 교화형을 선도받았다. 나머지 1명은 주범으로 몰려 '극형'을 선도받았다. 재판 판결문을 인용하면 '주범자는 7명의 북한 주민을 탈북시켜 중국위안 2만5천을 챙겼다. 그 결과 공화국 헌법에 준하여 최고형인 '극형'에 처한다'고 했다. 예전대로라면 공개재판이 끝난뒤 총살되어야 했다.
하지만 방법만 바뀌었을 뿐, 사형은 은밀히 집행됐다. 극형을 선도받은 이 후 피고의 가족들이 거금을 들여 그의 생사여부를 확인했는데 이미 죽었다는 것이다. 재판에서는 극형을 선도받았지만, 그의 처형은 사전에 결정된 사안이었다. 보안당국 관계자는 최근 김정은의 지시내용인 '배신자들에 대한 처벌을 더 엄격할데 대하여'를 증언했다.
그가 증언한 김정은의 지시문은 "조국을 배반하고 정권의 방침에 비동조 하는 자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면 안되는 인간 추물들이다. 이런자들에게는 마땅한 징벌을 안겨야 한다. 이런 자들은 죽어도 묻힐 곳을 제공해서는 안된다. 머리카락 한올이라도 조국의 땅에 뿌려져서는 안된다. 추호라도 이런 대상들에 대하여 동정심을 유발하는 자들도 똑같은 징벌대상으로 규정된다"고 밝히고 있다.
끝으로 통신원은 "공개처형에서 극형으로 바뀌었다고 주민들의 공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그나마 공개처형은 말 그대로 공개처형이어서 비교적 규정과 틀을 갖추어 사형을 집행했지만 극형에는 그런 형식마저 사치로 간주된다.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영문모를 죽음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극형은 물증보다 심증하나만으로도 처형 대상이다. 대부분이 탈북시도, 한류 영상 및 라디오, 정권에 대한 불만자들이다"고 강조했다.
출처 | 뉴포커스 글 | 이철무 뉴포커스 기자
◇10.14 김일성은 모래로 쌀 만들고, 김정일은 하늘의 옥동자?…北 교과서, 왜곡 넘어 날조
북한 김일성 주석이 항일 무장 투쟁 시절 모래로 쌀을 만들고 솔방울로 총알을 만들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어린 시절 세계 지도에서 일본을 까맣게 칠했더니 일본의 하늘이 암흑천지가 되면서 폭우가 쏟아졌다?
모두 북한 교과서에 실제로 나오는 황당무계한 내용들이다.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거센 가운데, 북한 교과서는 왜곡을 넘어 날조에 가깝다는 주장이 새롭게 제기됐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서옥식 초빙연구위원이 11월 출간 예정인 ‘북한 교과서 대해부-역사와 정치사상교육을 중심으로’라는 저서는 북한의 역사 왜곡 사례를 상세히 분석했다.
북한의 교과서 왜곡의 목적은 분명하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이어지는 세습 구도를 신격화하려는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일제시대 항일 빨치산 운동을 했다는 배경을 들어 권력의 정통성을 주장해왔다. 그 과정에서 우상화를 위해 없는 사실은 만들어내고 있는 사실은 왜곡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있다.
김일성 주석이 항일 투쟁 시절 축지법을 썼으며 가랑잎을 타고 큰 강을 건넜다는 얘기처럼 소설에 가까운 것도 있으며, 김정일 위원장이 “하늘이 낸 옥동자”로 “백두밀영에서 출생했다”고 하는 사실 왜곡도 있다. 백두밀영이라는 곳은 김일성 주석의 항일무장투쟁 조직인 조선인민혁명군 총사령부가 있었던 곳으로, 북한이 신성시하는 곳이다. 그러나 만주군 문서 및 옛 소비에트연방 정부 기록 등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은 북한이 주장하듯 1942년 2월16일에 백두밀영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1941년 2월16일 연해주 우수리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 사이에 있는 하마탄이란 마을에서 태어났다. 하마탄을 실제로 답사한 한 역사학자는 익명을 전제로 본지에 "하마탄에서 김정일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며 "김정일 위원장은 이곳에서 러시아 이름인 '유라'로 불리며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말했다.
신격화를 위한 교과서 왜곡은 김정은 위원장에게까지 이어졌다. 현재 북한의 고급중학교(남측 고교 과정에 해당) 재학생들이 배우는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 혁명활동 교수 참고서’에는 “3살 때 총을 쏘았다”거나, “3살 때부터 운전을 시작해 8살도 되기 전엔 굽이와 경사지가 많은 비포장도로를 몰고 질주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3세의 신체적 발달 정도를 고려해봐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내용이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11-13 RFA “北, 혼자된 젊은 여성 ‘고위간부 몸종’ 차출”
북한당국이 결혼 경력이 있고 자식이 있는 홀로된 젊은 여성을 ‘중앙당 5과’ 대상으로 선발, 고위간부들의 ‘몸종’으로 배치해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고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자유아시아 방송(RFA)이 13일 보도했다.
중앙당 5과는 전국에서 제일 미모가 뛰어난 여성들을 뽑는 조직. 이들이 선발하는 ‘5과 대상’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당과 권력기관의 비밀스런 직종에 종사하는 인원으로 북한당국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한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RFA는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함경북도의 한 소식통은 “온성군과 새별군에서 중앙당 ‘5과 대상’으로 젊은 여성 3명이 뽑혀 올라갔다”며 “이들은 모두 남편과 사별했거나 이혼을 했으며 자식이 한두 명씩 있는 30세 미만의 여성들”이라고 RFA에 전했다.
이 소식통은 북한당국이 1980년대 초반까지 이런 식으로 각 도에서 젊은 여성을 뽑아 고위간부의 간호사나 안마사로 배치했으며 선발된 여성의 자식은 ‘강반석 혁명학원’에 보내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호위총국에 군악대와 예술선전대가 조직된 후 더 이상 자식이 있는 여성들을 ‘5과 대상’으로 선발하지 않게 되었다며 ‘기쁨조’도 호위총국 예술선전대원들 중에서 선발했는데 최근 다시 결혼 전력이 있는 젊은 여성들을 뽑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른 얘기도 있다. 자강도의 한 소식통은 “1980년대 중반 이후에도 자식이 있는 젊은 여성들을 중앙에서 많이 데려갔다”며 “다만 대남공작이나 특수임무 수행도중 남편이 사망해 홀로 된 여성들을 데려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금은 북한의 대남공작과 특수임무가 많이 줄어들어 남편을 잃는 여성이 드물어 졌다며 임무도중 사망한 사람의 아내를 뽑아 올라가는 것을 두고도 사망한 영웅들을 모욕하는 행위라는 비난이 주민들 속에서 끊이질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런 비난을 감안해 북한은 유공자의 아내가 아닌 결혼 후 홀몸이 된 젊은 여성들로 ‘5과 대상’을 다시 선발하는 것 같다며 일단 선발대상이 되면 중앙에서 신체검사와 인물심사를 통과해야 ‘5과 대상’으로 최종 확정된다고 그는 주장했다.
소식통들은 “과거부터 ‘5과 대상’으로 확정되면 본인의 선택 여지가 없었다”며 “특히 ‘5과’로 올라 간 여성들은 고위간부들의 ‘몸종’이 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해 ‘5과 대상’으로 끌려가는 여성들에 대한 북한주민들의 부정적 시각을 강조했다.
동아닷컴 디지털뉴스팀 기사제보 dnews@donga.com
◇12-02 北찬양 열올리던 黨지도원 “南 재봉설비 구할 수 있나
▲단둥 北근로자들 활기 실제 주인이 한국인인 중국 단둥의 의류공장에서 북한 파견 근로자들이 재봉틀 앞에서 작업하고 있다. 단둥 지역에서만 600명 이상의 북한 파견 근로자가 한국인 사장에게 고용돼 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단둥=김용균 채널A 기자 ydydrbs@channela-mt.com
지난달 16일 중국 랴오닝(遼寧) 성 단둥(丹東)세관 앞 ‘조선 한국 민속거리’. 한국산 내복을 한참 동안 고르고 있는 북한 보위부 요원을 만날 수 있었다. 인근에서 취재진에게 자신을 당 지도원이라고 소개한 북한 주민은 “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원수님의 덕으로 강성대국에 나아갈 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북한을 찬양하다가도 “남조선의 재봉 설비를 구할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조선족이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남한과 북한, 조선족 사업가들이 나란히 앉아 아침식사를 하는 이곳에선 북한에 불고 있는 개방의 훈풍을 가장 먼저 엿볼 수 있었다.
○ 북한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한국 상품
평안북도 신의주시와 단둥을 잇는 압록강철교 위로 ‘평북’ 번호판을 단 북한 화물차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갔다. 단둥세관 안에는 검은색 옷을 맞춰 입은 북한 여성 수십 명이 신의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랴오닝 성 내 공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이었다. 세관을 가득 메운 북한 사람 중 ‘김일성 배지’를 단 사람은 거의 없었다. 취재에 동행한 탈북자 출신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장은 “과거에는 북한 사람이라면 모두 김일성 김정일 배지를 착용했고, 행동도 훨씬 조심스러웠는데 요즘엔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세관을 통과한 북한 화물차를 따라가 봤다. 20분쯤 지나 하차장에 도착한 화물차는 까맣고 하얀 가루를 담은 포대를 한가득 내려놓았다. 하차장의 중국인 근로자는 “신의주에서 생산한 철광석”이라고 설명했다. KOTRA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최대 수출 품목은 석탄, 철광석 등 광물이다. 15억6800만 달러 상당을 수출했는데 그중 97.4%가 중국으로 들어갔다.
하차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물류창고에선 북한으로 들어갈 화물을 트럭에 싣고 있었다. ‘태양열 발전기’를 실은 트럭이 물류창고를 빠져나갔다. 북-중 무역상인 북한 출신 화교 정모 씨(52·여)는 “북한의 좋지 않은 전력사정 때문에 겨울철에는 난방용품이나 태양열 발전기가 인기”라고 했다.
단둥세관 앞 민속거리 상점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 사이에 가장 분주했다. 화물차가 출발하기 전 한국 제품을 사려는 북한의 운전사들 때문이다. 한 상점에선 점원이 한국산 분유의 상표 부분을 검은색 사인펜으로 덧칠하고 있었다. 중국인 점원은 “북한 주민들에게 한국 분유가 인기인데 그대로 들여가면 문제가 된다”며 “한국 제품이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 상표를 가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재력가나 고위층은 중국을 오가는 보따리상을 통해 한국 물건을 구입한다고 한다. 보따리상에게 제품 사진을 찍어 주문하는 식이다. 한 보따리상은 “최근 ○○유업의 커피믹스와 ○○화장품의 염색약을 주문받았다”고 했다. 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한국 제품은 전기밥솥이었지만 최근엔 인기가 식었다고 한다. 한 상인은 “한국 밥솥을 살 여유가 있는 사람은 이미 다 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몇 년만 고생하면 윤택하게 살 수 있다”
단둥에서 북한 근로자 150여 명을 고용해 의류를 생산하는 A무역상사. 서류상 사장은 조선족 황모 씨지만 실제로는 한국인 사업가 정진호(가명·58) 씨 소유의 업체다. 정 씨는 1990년대부터 중국에서 북한 근로자를 고용해 공장을 운영해 왔다.
정 씨는 “5·24 대북제재 조치 이후 직접 대북 투자를 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해온 노력이 아까워 편법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씨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공장을 방문해 업무 보고를 받는다. 공장 운영은 주로 조선족 사장 황 씨와 북한 근로자들을 관리하는 북한 관리자가 공장에 상주하며 결정한다.
정 씨가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 근로자를 고용한 것은 저렴한 인건비 때문이다. 북한 근로자들에게 지급하는 한 달 임금은 우리 돈으로 40만 원 정도. 북한 당국이 이 중 60%를 가져가고 나머지가 근로자들 몫이다. 북한 근로자들은 기숙사 비용 등을 제외한 월급 대부분을 북한의 가족에게 송금한다. 공장 주변에는 북한에서 파견된 보위부 직원이 머물고 있어 주말에도 북한 근로자들은 기숙사 밖을 돌아다니기가 쉽지 않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중국으로 나와 일하는 북한 근로자는 2만여 명에 이른다.
조선족 사장 황 씨는 “아파도 병원에 가기가 쉽지 않고 항상 서로 감시하며 공동생활을 해야 하지만 북한 근로자들의 표정은 언제나 밝다”며 “몇 년만 고생하면 가족들이 윤택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라고 말했다.
단둥=김유림 rim@donga.com
◇12.14 "리허설 본 中 공연 내용 수정 요구에 현송월, '김정은 작품' 직접 철수 지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만든 ‘친위 걸그룹’ 모란봉악단이 지난 12일 중국 베이징 공연을 돌연 취소한 배경을 놓고 다양한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모란봉악단과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 간 공연 내용을 둘러싼 격렬한 갈등이 핵심 원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14일 자유북한 방송은 베이징(北京)의 한 대북소식통이 “진싼팡(金三胖ㆍ’김씨 세 번째 뚱보’라는 의미로 김정은을 비하할 때 쓰는 말)의 ‘수소폭탄 보유 발언’이 나온 후 중국 당국의 모란봉악단에 대한 태도가 변했기 때문이란 말도 있지만, (공연 예정 장소였던) 중국 국가대극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흐르고 있다”며 “모란봉악단과 이들의 공연을 주관한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와의 갈등은 처음부터 격렬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전날 모란봉악단의 리허설을 보고 나서야 공연의 핵심을 파악한 중국 관계자들은 “예술에 사상을 섞으면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중국 사람들도 북한에 대해 알 만큼 알고 있으니 공연에서 ‘죽어도 혁명정신 버리지 말자’와 ‘우리는 누구도 두렵지 않아’와 같은 종목들은 공연 프로그램에 넣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에 단장인 현송월을 비롯한 모란봉악단의 핵심 관계자들은 “우리의 공연은 원수님(김정은)께서 직접 보아주시고, 지도해 주신 작품이기 때문에 점 하나, 토 하나 뺄 수 없고, 빼서도 안 된다”고 맞받았고 지재룡 주중 대사 등 대사관 관계자들도 이에 동참해 리허설 이후의 분위기는 악화일로를 치달았다고 한다.
소식통은 “이런 사실이 평양까지 보고됐고, 보고를 받은 김정은은 지재룡에게 ‘현송월을 비롯한 악단 관계자들의 결심을 믿겠다’는 취지의 지시를 내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와 선전부는 북한에서나 통할 ‘김정은 업적 찬양’, 나아가 북한에 대한 중국의 태도에 일침을 가하는 듯 한 내용이 공연에 포함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이런 내용이 포함되는 한 공연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자유북한방송은 전했다.
소식통은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던 가운데 현송월이 불쑥 중국 측 ‘국가대극원’ 관계자의 말을 문제 삼았고, 현송월은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와 선전부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연단 철수’명령을 내렸다”고 전했다.
‘국가대극원’ 관계자는 모란봉악단 공연의 조명보조를 맡았던 대극원 기술팀의 일원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함께 일하던 모란봉 악단 조명사들에게 “북조선 인민들이 잘 살려면 중국을 본받아야 한다” “김정은이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된 것을 당신들도 알고 있느냐”고 말한 게 빌미가 됐다는 것이다.
앞서 모란봉악단은 지난 12일 오후 7시 30분(현지 시각) 베이징 국가대극원에서 첫 해외 공연을 할 예정이었으나, 3시간여 전인 오후 4시 7분쯤 북한 고려항공편을 이용해 베이징을 떠났다.
갑작스러운 공연 무산에 대해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공작(업무) 측면에서 서로 간의 소통 연결에 (취소) 원인이 있다"고 밝혔지만 '소통 문제'가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처럼 북·중 당국이 모두 분위기 띄우기에 나섰던 공연이 갑자기 무산되자 그 이유를 놓고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베이징 외교가에선 김정은의 “수소폭탄 보유” 발언과 중국 측 공연 관람 인사의 '급(級)'을 놓고 북·중이 충돌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중화권 매체에서는 "모란봉악단 단원 중 2명이 망명을 시도하다가 적발된 것 같다", "북한 장거리로켓 발사 장면이 등장하고, 미국을 승냥이로 표현하는 공연 내용에 중국 측이 제동을 걸었을 것", "김정은 옛 애인으로 알려진 현송월 모란봉악단장의 자유분방한 발언과 그녀에 대한 해외 매체의 과도한 관심이 김정은 심기를 건드렸다" 등의 분석이 나왔다.
강영수 기자
◇12.15 프놈펜의 북한 봉사원 ‘순이’의 눈물
▲ 프놈펜 평양랭면관에서 공연 중인 북한 봉사원들.
지난 12월 5일 저녁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평양아리랑관’. 캄보디아 국방부 인근 대로변에 위치한 이 북한 식당은 초저녁인 6시 무렵인데도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약 80석 규모의 1층 홀 절반 가까이가 찼다. 오후 7시가 되자 손님들이 계속 들어와 빈 좌석이 없을 정도였다.
손님들은 한국인, 중국인, 캄보디아인 등 다양했다. 캄보디아 여성들의 손을 잡고 들어서는 서양 사람들도 보였다. 식당 안에서는 하얀색 윗도리와 하늘색 물결 치마를 입은 북한 여성 ‘봉사원’들이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20대로 보이는 봉사원들은 하나같이 늘씬한 키에 빼어난 외모였다. 일부 봉사원들은 높은 콧날, 짙은 쌍꺼풀 등 성형수술 흔적이 뚜렷했다. 가슴에 달린 한글 이름 명찰은 가로로 붉은색과 파랑색 선이 그어져 북한 인공기와 흡사했다. 일부 봉사원들은 특유의 북한식 억양으로 식사하는 손님들 옆에 붙어서서 말 상대를 해줬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한 손님이 ‘취기’에 봉사원의 몸을 만졌는지 “이러지 마시라요”라며 면박을 주는 목소리도 들렸다.
메뉴는 한식 일색이었다. 볶음, 구이, 탕, 조림 등 서울의 식당에서 접할 수 있는 웬만한 요리는 다 갖춰져 있었다. ‘단고기(개고기의 북한식 표현) 수육’ 등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메뉴도 있었다. 대체로 회 종류가 가격이 비쌌다. 다금바리회 한 접시 가격이 40달러. 1인당 GDP가 1000달러 남짓한 나라에서 요리 한 접시로는 엄청난 가격이다. 한 봉사원은 “2층에 VIP룸이 4개 있는데 사전 예약이 필수”라며 “룸에는 가라오케 시설도 갖춰져 있다”고 했다. 룸에 들어가려면 술과 음식 비용으로 100달러 이상은 지불해야 하는데 이와는 별도로 룸값 30달러를 받는다고 한다.
저녁 8시, 음식을 나르던 봉사원들 중 일부가 한복으로 갈아입고 홀 한편에 마련된 무대 위로 올라갔다. 무대에는 전자 오르간과 장구, 기타 등의 악기가 놓여 있었다. 봉사원들은 “환영한다”는 인사말과 함께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했다. 빠른 템포의 전자오르간 반주와 춤사위가 곁들여진 북한식 아리랑이었다. 30분간 이어지는 무료 공연의 막이 오르자 일부 한국인 손님들이 흥에 겨워 “언니”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프놈펜에는 ‘평양아리랑관’ 같은 북한 식당이 현재 모두 5개나 영업 중이다. 2003년 12월 문을 연 ‘평양랭면관’을 시작으로 ‘대동강식당’(2008년), ‘평양고려식당’(2011년), ‘평양릉라도식당’(2013년)이 차례로 문을 열었고, 작년에는 1월과 11월에 ‘평양아리랑관’과 ‘모란봉식당’이 각각 영업을 시작했다. 이 중 대동강식당은 지난 4월 문을 닫았지만 최근 재개관을 위해 공사 중에 있다.
가장 오래된 평양랭면관은 앙코르와트가 있는 시엠레아프에도 2005년 같은 이름의 식당을 냈다. 시엠레아프에는 2004년 프놈펜 인근 해변 휴양지인 시아누크빌에 처음 문을 열었던 ‘평양친선관’이 옮겨와 영업 중이기도 하다. 시엠레아프까지 포함하면 인구 1500만명 정도의 동남아 후진국인 캄보디아에 무려 7개의 북한 식당이 몰려 있는 것이다. 현지 한국 교민이라야 프놈펜 3000명을 비롯해 5000명 정도, 북한 사람들도 캄보디아 전체에 수백 명 불과한 점에 비춰 보면 이례적인 북한 식당 러시다.
캄보디아에 몰려든 북한 식당은 김정은 정권에서 새로운 돈줄로 부상하고 있는 북한의 해외 식당 사업의 전형이다. 2012년 출범한 김정은 정권에서 해외 북한 식당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주간조선이 입수한 정부 자료에 따르면, 2013년만 해도 100여개에 불과했던 해외 북한 식당은 현재 129개에 이른다. “함경남도 도당위원회만 해외에 북한 식당을 두지 않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북한의 각 기관마다 해외에 차리는 식당을 주요한 외화벌이 수단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별로 보면 중국이 95개로 가장 많이 진출해 있고 러시아 9개, 캄보디아 7개 순이다. 캄보디아가 숫자로는 세 번째로 북한 식당이 많은 나라다. 이밖에 베트남 4개, 아랍에미리트 4개, 몽골 3개, 태국 2개 등이 있고 인도네시아, 네팔, 말레이시아, 미얀마, 라오스 등에 각각 1개씩 진출해 있다. 해외 북한 식당의 국가별 숫자가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캄보디아에 북한 식당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은 캄보디아가 북한의 전통적인 우호국일 뿐더러 사업 환경이 좋아서라고 한다. 캄보디아는 2012년 사망한 시아누크 전 국왕과 김일성이 생전에 남다른 친분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유명하다. 북한 식당 사정에 밝은 프놈펜의 한 한국 교민은 “북한의 해외 식당은 현지 합작 파트너를 두고 운영하는데 캄보디아의 북한 식당은 5 대 5 방식으로 합작해 인건비와 식자재, 임대료를 빼고 남는 수익을 절반씩 나눠 갖는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캄보디아에 들어와 있는 대만과 중국 자본이 북한의 합작 파트너로 나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 프놈펜 북한 식당서 손님들 시중을 들고 있는 봉사원들. 손님들이 식사하는 도중 옆에 붙어서서 말 상대를 해준다.
캄보디아만 7곳… 세계에서 3번째
북한 식당이 가장 많이 진출해 있는 중국의 경우에는 요즘 자신들이 수익의 7을 갖고 가는 7 대 3 방식의 합작을 북한에 요구하기 때문에 캄보디아로 눈을 돌리는 북한 기관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북한 측에서 우선적으로 보장해주기를 원하는 봉사원들의 인건비가 중국인을 쓰는 것보다 두 배 이상 비싸기 때문에 북한과의 식당 사업에 나설 중국 투자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한국 교민들은 “앞으로도 캄보디아에는 북한 식당이 계속 늘어날 전망”이라고 했다.
해외 북한 식당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적지 않은 규모로 알려져 있다. 현지 교민들에 따르면, 캄보디아에서 가장 장사를 잘하는 프놈펜 평양랭면관에서 평양으로 보내는 이른바 ‘충성자금’이 한 해 최소 30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0만달러로 계산할 경우 129개 해외 북한 식당에서 한 해 4000만달러 가까운 돈을 김정은에게 헌납하는 셈이다. 미국의 온라인 매체인 워싱턴프리비컨(WFB)은 2013년 해외 북한 식당이 “스파이의 소굴”이라며 “북한 정권에 1억달러 이상의 경화를 보내는 본거지로 활용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 전문가인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한푼의 달러가 아쉬운 북한 입장에서 4000만달러는 무시할 수 없는 큰 규모”라며 “정상적인 수출을 제외한 북한의 연간 외화벌이 40억달러를 기준으로 하면 1% 정도의 비중”이라고 했다. 올해 초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외화벌이 기관들에 10월 10일 당 창건 70돌까지 조달하라고 지시한 충성자금 규모도 50만달러 정도였다. 유동열 원장은 “북한의 연간 외화벌이는 해외파견 노동자 인건비 수입 20억달러, 도박 등 사이버 수입 10억달러, 위조지폐·마약밀매·무기수출 5억달러, 개성공단 수입 1억달러, 관광수입 1억달러, 일본인·탈북자 송금 등으로 구성되는데 해외 식당의 외화벌이는 해외파견 노동자 인건비 수입에 포함된다”고 했다.
캄보디아의 북한 식당들은 현지에서 번 돈을 환치기 수법으로 송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만달러 이상을 송금할 경우 캄보디아 당국에서 왜 돈을 보내는지 설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보통은 중국을 이용해 환치기를 한다는 것이 현지 교민 사업가들의 말이다. 북한 식당들은 프놈펜 북한대사관과 공조해 사실상 밀수도 한다. 식당에서 파는 북한산 술과 약 등을 외교행낭을 통해 들여오는 식이다. 북한대사관은 물품을 반입해주는 대가로 북한 식당들로부터 컨테이너당 얼마씩 돈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놈펜 북한대사관의 궁핍함은 현지 교민 사회에 잘 알려져 있다. 대사관 건물은 시내 한복판 과거 시아누크 국왕의 생가(生家)를 무상으로 임대해 쓰고 있지만 그 번듯한 집에서 대사 이하 직원들이 숙식을 함께 해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교민은 “2007년 북한 대사가 몰던 벤츠 차량이 앞차를 추월하려다 맞은편에서 오던 한국수자원공사 주재원의 승용차와 충돌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북한 측이 실수를 인정하고 수리비를 배상한다고 해놓고 끝내 돈을 주지 않았다”고 했다.
기자는 프놈펜에 머물면서 북한의 외화벌이 현장을 들여다보기 위해 영업 중인 5곳의 북한 식당 중 ‘평양릉라도식당’만 제외하고 네 군데의 식당을 가봤다. 북한 식당들은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됐다. 20대 여성 봉사원들이 시중을 들면서 매일 밤 무료 공연을 선보이고, 식당 2층에는 가라오케 시설이 구비된 별도의 룸을 갖췄다.
돈벌이만 되면 뭐든…
룸값으로 30달러를 받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일부 식당들은 100달러 이상의 음식을 먹으면 무료로 룸을 사용하게 했다. 식당들은 가격이 만만치 않은 한식 요리를 권하면서 북한에서 공수해온 100달러 안팎의 각종 ‘조국 술’을 판다. 현지 한국 식당과 달리 직접 담근 김치도 한 접시에 3달러씩 받는다. 일부 식당은 북한판 비아그라인 ‘양춘삼록’ 등 북한산 약들을 팔기도 한다. 프놈펜의 평양랭면관에서는 감기약 크기만 한 양춘삼록 한 갑에 45달러를 받았다.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계산을 할 때 달러화만 받는데, 평양고려식당만 50달러 이상 결제 조건으로 비자카드를 받았다. 모든 북한 식당들은 실내 촬영도 금지했다. 손님들끼리 찍는 건 눈감아줬지만 봉사원들 얼굴을 찍으려고 하면 제지하거나 얼굴을 돌렸고, 조명을 끄고 진행되는 공연 장면을 촬영해도 급하게 달려와 카메라를 가로막았다.
현지 북한 식당이 장사가 되는 이유는 봉사원들 덕분으로 보였다. 봉사원들은 하나같이 빼어난 외모의 20대 여성들이었고 친절했다. 식사를 하는 테이블 옆에 붙어서서 말 상대를 해주는 것은 기본 서비스였다. 단골이 되면 남자 손님들에게 ‘오빠’ ‘아빠’로 부르며 스스럼없이 대한다고 한다. 특히 남자 손님들은 이들 봉사원들의 ‘은밀한 접대’를 기대하고 가라오케룸을 이용한다는 것이 현지 교민들의 말이다. 현지 교민들 사이에서는 “아리랑관 아가씨들이 제일 화끈하게 논다” “모란봉 아가씨들은 순진하다” 등 식당별로 평가도 달랐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중국 등 일부 해외 북한 식당에서는 업주가 봉사원들에게 성매매를 강요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기자는 프놈펜에서 가장 최근에 문을 연 모란봉식당의 가라오케룸을 가봤다. 오후 3시가 다 된 시간에 가라오케룸을 예약하러 이 식당에 들렀다. 모란봉식당은 프놈펜 시내 한복판에 3층짜리 집을 빌려 운영하고 있었다. 다른 북한 식당들처럼 큼직한 한글 간판이 내걸려 있었다. 식당에 들어서자 노랫소리가 들렸다. 한 봉사원이 “방 하나를 차지하고 낮술을 마시는 손님들이 있다”고 귀띔했다. 봉사원들이 주방에서 방으로 음식을 부지런히 나르는 모습이 보였다.
이 식당은 특이하게 식사시간 외에는 1층 홀에서 커피도 팔았다. 새로 생긴 식당이라 돈벌이라면 뭐든지 하는 것 같았다. 이 식당 봉사원들은 지난 9월 중순 한국에서 비행기가 오는 저녁 시간에 맞춰 프놈펜국제공항에 한복을 입고 나타나 홍보 전단을 나눠준 일도 있었다고 한다. 북한 식당 봉사원들이 공공장소에 나타나 전단지를 나눠 주는 일이 이례적이라 당시 교민사회에서 화제가 됐었다. 모두 7명이 근무한다는 이 식당 봉사원들은 평양아리랑관 봉사원들보다 앳돼 보였다. 한 봉사원에게 나이를 묻자 “스무 살”이라며 “대학에 다니다가 왔다”고 했다. 이 봉사원은 “남조선 나이로 하면 스물한 살”이라면서 웃었다. “저녁에 와서 가라오케를 쓰려고 한다”면서 파는 술을 보여달라고 하자 “100달러 이상만 드시면 방값을 따로 받지 않는다”면서 술 진열장으로 데려갔다. 진열장에는 ‘들쭉술’ ‘황구렁이술’ ‘장뇌삼술’ ‘송이버섯술’ 등 북한산 술로 가득했다. 한국산 소주나 양주도 있지만 “조국 술을 팔아달라”는 게 봉사원들의 요청이었다. 한국산 소주는 5달러를 받는다고 했다.
가라오케룸의 여성 봉사원들
▲ 프놈펜 북한 식당 간판들. 북한 식당들은 건물을 통째로 빌려 봉사원들의 숙소로도 사용한다.
저녁 시간, 모란봉식당을 다시 찾자 봉사원들이 알은체를 하면서 2층 가라오케룸으로 안내했다. 이 식당에는 1층에 두 개, 2층에 하나의 VIP룸이 있다. VIP룸은 한국의 중식당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널찍한 방에 6~7명이 앉을 수 있는 둥근 테이블과 술 진열장이 있었다. 별도의 화장실을 갖춘 방도 있다고 한다. 벽에 붙어 있는 모니터와 가라오케 시설을 가리키며 “어느 나라 제품이냐”고 묻자 “금영”이라고 한다. 한국산 금영 가라오케를 중국에서 사왔다는 것이다. 한국과 북한, 중국 노래, 심지어 팝송까지 다 들어 있다고 한다.
이 식당의 술과 음식 맛은 괜찮은 편이었다. 80달러짜리 송이버섯술은 송이버섯향이 진했다. 직접 만들었다는 두부, 순대 요리는 감칠맛이 났다. 봉사원들은 “우리는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며 “4명의 주방일꾼들이 전부 평양 최고 호텔인 고려호텔 요리사들”이라고 했다.
봉사원들은 자리에 앉지도, 술을 같이 마시지도 않았지만 노래를 시키자 흔쾌히 응했다. 특유의 낭랑한 톤으로 북한 노래를 주로 불렀는데 두 명의 봉사원 중 나이가 어린 ‘동생’은 ‘울고 .넘는 박달재’ ‘굳세어라 금순아’와 같은 한국의 ‘계몽가요’(트로트의 북한식 표현)도 능숙하게 불렀다. 이들에게 “북한 노래를 부르는 한국 손님들도 있느냐”고 묻자 “‘심장에 남은 사람’과 ‘휘파람’이 인기”라고 했다. 1980년대 북한 영화 주제곡인 ‘심장에 남은 사람’은 얼마 전 재미동포 신은미와 황선 전 통진당 대변인이 이른바 ‘종북 콘서트’에서 불러 논란이 된 노래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을 찬양하는 영화의 주제곡이라 이 노래를 부른 것 자체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특히 이 노래는 신은미가 직접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유튜브에 올라 한국 사람들에게도 꽤 알려졌다.
술을 따라주면서 음식을 나르는 종업원들은 웃는 표정이어도 처음에는 한국 손님들을 경계하는 눈치였다. 말을 붙여도 짧게 대답할 뿐 말을 길게 섞지 않으려 했다. 두 시간 가까이 서서 시중을 드는 봉사원들에게 “아무도 없는데 좀 앉으라”고 권해도 “규정”이라며 내내 서 있었다. 현지 교민들은 “북한 봉사원들이 중국인이나 현지인들에 비해 한국 손님들에게는 매우 조심스럽게 응대하는 편”이라고 했다. 두 명의 봉사원 중 ‘언니’에게 “한국 손님들을 싫어하느냐”고 묻자 “나쁜 손님들이 가끔 있다”고 했다. “우리를 헐뜯고 무례하게 구는 사람들이 있어요. 식사하러 와서 자기네 제도를 강요할 필요는 없잖아요.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거지. 근데 왜 ‘깡지’를 놓는지 모르겠어요. 나쁘게 대하면 우리도 정을 주지 않아요. 그래서 중국 손님들이 더 편해요.” 이 봉사원에게 ‘깡지’가 뭐냐고 묻자 “속을 긁어 놓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여성 봉사원들은 기자 일행 중 2003년 북한을 다녀온 사람이 평양을 화제로 삼자 훨씬 태도가 누그러졌다. ‘언니’ 봉사원은 “2003년이면 우리가 소학교 다닐 때인데 그때와 비교해 평양은 많이 바뀌었다”며 “일제시대 판잣집이 많아 더럽던 보통강도 지금은 많이 깨끗해졌고 건물들을 다 헐고 새로 지은 거리가 많다”고 했다. 두 명의 봉사원들은 모두 평양 출신이고, 집도 중구역 등 좋은 동네에 있었다. ‘언니’ 봉사원은 일행 중 한 명이 “남포에 가봤다”고 하자 “평양~남포 간 고속도로가 고난의 행군 시기에 청년들이 마대를 지고 건설한 청년영웅고속도인 걸 아느냐”고 묻기도 했다. 20대인 이들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아기들이었다”고 한다.
▲ 프놈펜 북한대사관. 시아누크 전 국왕 생가를 무상으로 임대했다. 홍종철 대사와 세 명의 직원이 숙소로도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 장철구상업대학 출신이 대부분
이들 여성 봉사원들은 모두 평양 장철구상업대학 출신이었다. 대학 선후배 사이라는 것이다. 한 명은 이미 졸업을 했고, 한 명은 아직 대학생이라고 했다. 대학을 마치지 못한 ‘동생’은 캄보디아에서 3년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면 대학을 다시 다닐 예정이라고 했고, ‘언니’는 “식당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들에 따르면, 장철구상업대학은 여성들이 다니는 3년제 대학으로 요리, 피복, 봉사, 관광 등의 전공을 두고 있다고 한다. 여성 봉사원들은 “북한 최고의 신붓감이 나오는 대학”이라고 자랑했다. 이들은 “장철구가 누구냐”는 질문에 “일제시대 수령님께서 항일투쟁을 하실 때 사령부 자취부를 책임지던 여성 영웅”이라고 소개했다. “엄동설한에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도 수령님께 성의껏 음식을 만들어줬고, 수령님의 음식에 독이 든 것도 발견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여성 봉사원들은 “우리 식당의 봉사원들은 전부 장철구상업대학 출신”이라며 “캄보디아 봉사원 중 일부 봉사학원 출신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 학교 출신”이라고 했다.
북한 식당들은 결국 이들 여성 봉사원들의 인건비를 착취하면서 돈을 버는 것 같았다. 여성 봉사원들은 한 달에 150~ 500달러의 월급을 받는다. 춤과 노래, 악기를 다루는 기량에 따라 월급 수준이 다르다. 캄보디아 주재 북한대사의 월급이 500달러 선인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돈을 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는 팁 수입도 있다. 단골들이 쥐여주는 팁을 모아 공동경비를 제하고 같이 나누는데, 평양랭면관처럼 장사가 잘되는 곳은 한 사람당 한 달에 많게는 200달러의 팁 수입을 올린다.
하지만 이러한 수입이 온전히 봉사원들의 몫은 아니라고 한다. 각종 명목으로 업주들이 떼가기 때문이다. 한 교민은 “단골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봉사원들이 3년간 평균 1만달러 정도를 모아 귀국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정도면 한 달에 300달러에도 못 미치는 수입이다. 더욱이 장철구상업대학에 들어가면 해외 봉사원 기회가 쉽게 주어지기 때문에 입학할 때부터 2000~3000달러의 뇌물을 바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이런 비용까지 감안하면 3년간 일하고 7000~8000달러를 벌어가는 셈이다.
임금은 박하지만 이들 여성 봉사원들은 한눈에 보아도 고된 근무를 이어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자가 들른 모란봉식당 종업원들도 음식을 나르고 술을 따르다가 손님이 부르면 홀로 달려가곤 했다. 여기저기서 요청하면 노래를 부르다가 공연시간이 되면 옷을 갈아입고 무대에 올랐다. 한 교민은 “봉사원들이 돌아가면서 일주일에 한 번 쉰다고는 하는데 쉴 틈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교민들에 따르면, 북한 식당은 연중 문을 닫는 날도 없을 뿐더러 현지 인력도 절대로 쓰지 않는다. 식당에서 봉사원들이 같이 먹고 자면서 청소와 빨래까지 해야 한다. 식당마다 한 명씩 나와 있는 국가안전보위부 요원의 감시 감독을 받으며 합숙을 한다. 외출도 함께 해야 하고 TV도 위성안테나를 통해 들어오는 북한중앙방송만 봐야 한다. 유일한 낙은 일 년에 한두 번 프놈펜 인근 해변 휴양지인 시아누크빌 등에 당일치기로 놀러가거나 외출할 때 2달러 남짓 주고 구해오는 CD 드라마 시청이라고 한다. 모란봉식당의 ‘동생’ 봉사원은 “캄보디아에 온 지 1년 됐는데 시아누크빌에 다들 같이 놀러가 피자를 사먹은 기억이 난다”며 웃었다.
3년간 복무하고 1만달러 벌어가
현지 교민사회나 우리 대북 정보기관은 캄보디아 북한 식당들이 단순한 돈벌이용은 아닐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경우 북한의 공작 거점으로도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대북 정보기관에 따르면, 캄보디아는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 사업 중 하나인 사이버 도박과 해킹의 거점이다. 캄보디아의 북한 해커들은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불법 토토’나 ‘온라인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돈을 버는 것은 물론 한국인들의 금융정보를 몰래 빼내 범죄에 사용하고 있다.
실제 작년 4월 캄보디아 당국은 프놈펜에서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던 북한 해커조직을 검거해 재판에 넘기기도 했다. 이러한 사이버 도박, 해킹 조직을 운영하는 주체는 정찰총국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 한 교민은 “프놈펜에는 무역회사, 은행 직원 등으로 소개하는 북한 사람들이 꽤 있는데 실제 뭘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현지 북한 사람들은 식당 운영 책임자를 포함해 모두 일주일에 한 번씩 대사관에 모여 총화를 갖는데 군인들만은 열외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캄보디아 북한 식당들 역시 돈벌이 외의 다른 목적에 이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북한 봉사원들은 영업이 끝나고 열리는 총화 시간에 동료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한편 한국 손님들을 상대하면서 들었던 내용을 보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교민은 “한국 손님들이 명함을 주면 100% 봉사원을 통해 북한 해커들의 손으로 넘어가는 것으로 우리는 본다”고 했다. 이와 관련 2011년 9월 네팔 정부가 자국 내 북한 식당인 ‘옥류관’을 탈세 혐의로 압수수색할 때 식당 컴퓨터에서 한국 손님들의 대화 내용과 신상자료가 담긴 보고서가 발견된 적도 있다. 유동열 원장은 “해외 북한 식당은 외화벌이 외에 우리 해외 교민, 체류자 및 관광객 대상 심리전과 정보수집, 대남공작 등 다목적용으로 운영된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캄보디아의 ‘붉은 자본가’ 허대식·김일화 부부
현지서 식당 3개 운영
50만달러 재력가로 통해
캄보디아의 북한 식당들은 표면적으로 운영 주체들이 북한의 각 기관으로 돼 있다. 예컨대 프놈펜의 평양랭면관은 북한체육위원회, 평양아리랑관은 대성무역 소속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4월 문을 닫았다가 현재 재개관을 위해 공사 중인 대동강식당은 당초 운영 주체가 대동강맥주회사였지만 앞으로 재개관을 하게 되면 운영 주체가 바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표면적인 운영 주체들 외에 북한 식당을 운영하며 실제로 돈을 벌어가는 북한 사업가도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평양에 한 해 30만달러의 충성자금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진 평양랭면관 운영자 허대식(54)이다.
현지 교민사회에서 ‘캄보디아의 붉은 자본가’로 통하는 그는 상당한 규모의 충성자금을 보내서인지 평양 정권에도 ‘말발이 먹히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한 현지 교민은 “몇 년 전만 해도 그의 가족 전부가 캄보디아에 나와 있었다. 부인 김일화(53)도 캄보디아에 와서 식당 운영에 관여하고 있고 아들 허세룡(30)도 프놈펜 평양아리랑관을 차려 운영하고 있다. 해외 사업을 할 경우 보통 ‘인질’ 격으로 가족 한 명은 평양에 두기 마련인데 가족이 전부 프놈펜에 나와 있어 다들 파워가 상당하다고 수군댔다”고 했다.
허대식 일가가 그동안 캄보디아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번 돈은 평양으로 송금하는 충성자금을 제외하더라도 50만달러에 이를 것이란 추측이 나돈다. 평양에서 10만달러 이상만 갖고 있으면 부유층 소리를 듣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부를 쌓은 셈이다. 한국 단체 관광객들이 몰리는 시엠레아프에서도 평양랭면관을 운영 중인 허대식 부부는 한국인 가이드 생일을 챙겨주고 한국 단체 관광객들을 데리고 온 가이드에게 커미션을 주는 등 사실상 자본주의화됐다는 말을 듣고 있다. 한 교민은 “처음에는 허 부부가 커미션을 달라는 한국 여행사의 요구에 ‘손님들이 많이 오면 일이 더 많아지는데 왜 뒷돈을 줘야 하느냐’는 반응을 보였지만 지금은 달라졌다”며 “2007년 말 시엠레아프 한국 여행사협회가 평양랭면관 음식 단가를 내려줄 것을 요구했다가 응하지 않자 한 달간 불매운동을 벌인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허대식은 1998년 북한의 국제태권도연맹(ITF) 동남아시아 위원장 자격으로 태권도를 가르치기 위해 현지에 왔다가 식당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캄보디아에 오기 전에는 리비아에서 고위층 경호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인 김일화는 부모가 배우로, 아버지가 최고인민위원회 대의원을 지냈다고 한다.
허대식 일가가 운영하는 평양랭면관과 평양아리랑관은 프놈펜 북한 식당 중에서는 규모가 큰 편이다. 봉사원들의 수도 다른 식당의 두 배가량이나 된다. 특히 평양랭면관은 가장 오래된 식당답게 “공연이 짜임새 있고 훌륭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15명의 봉사원 중 최고 대우를 받는 강진아는 월북한 무용가 “최승희의 제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고 한다. 강진아는 3년의 복무를 마치고 곧 평양으로 돌아갈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평양랭면관은 지난 9월 일부 봉사원이 노동허가증 없이 일하다 발각되어 수만달러의 벌금을 물기도 했다.
기자가 점심을 먹기 위해 들렀을 때 평양랭면관 안에는 ‘킬링 미 소프트 위드 히즈 송’ 등 익숙한 팝송이 내내 흘러나왔다. 동행한 교민은 “1~2년 전까지만 해도 ‘내나라 내조국 제일로 좋아’와 같은 북한 노래가 홀에 흘러나왔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며 “몇 개월 단위로 공연 내용도 바뀌는데 지난번에는 탭댄스를 춰 놀란 적도 있다”고 했다.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이 식당 봉사원들도 한결같이 미인들이다. 일부 봉사원들은 단골 한국 손님들에게 “봉사 부문 일꾼들에게는 국가가 쌍꺼풀 수술을 해준다”며 성형수술을 시인한 적도 있다고 한다. 기자는 평양랭면관에서 허대식을 찾았으나 봉사원들로부터 “시엠레아프에 갔다”는 말을 들었다. 일행이었던 현지 교민은 “요즘은 허대식이 사업차 평양에 주로 머물고 캄보디아 식당은 부인 김일화가 돌본다”고 했다.
캄보디아와 북한 관계
앙코르와트 박물관 입장 수입 놓고 갈등 중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께서는 시아누크 폐하와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가장 숭고하고 고결한 의리관계를 맺었고 이는 조선과 캄보디아 두 나라 인민 사이의 친선과 연대성, 협조관계의 영원한 초석이 되고 있다.”
2012년 10월 시아누크 전 캄보디아 국왕이 사망했을 때 북한이 보낸 조전 내용이다. 김일성과 시아누크는 1961년 말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처음 만났고 4년 후 시아누크가 평양으로 초대되면서 관계가 돈독해졌다. 시아누크가 1970년 3월 군사쿠데타로 실각하고 평양을 찾았을 때 김일성은 그를 국왕으로 예우했다. 김일성은 1974년 평양 중심에서 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장수원 저수지 옆에 시아누크를 위한 영빈관을 지어줬다. 지난 6월 북한 호위사령부 출신 고위 탈북자가 월간지 ‘통일한국’과 가진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시아누크는 장수원 영빈관의 20대 관리원인 황수옥과 결혼했으며 아들을 뒀다고 한다. 김일성은 1991년 시아누크가 13년간의 해외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캄보디아에 돌아갈 때 북한 경호원 40명을 딸려 보냈는데 시아누크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1994년 프놈펜 외곽에 있는 도로를 ‘김일성대원수로(路)’로 명명하고 자신의 생가를 북한대사관에 영구 무상임대했다. 이 때문에 시아누크가 만든 훈신펙당이 제1당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을 때에는 한국과 캄보디아의 수교가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였다. 1997년 훈센 현 총리의 친위쿠데타로 훈신펙당의 영향력이 축소된 후에야 한국과 정식 외교관계가 수립됐다.
캄보디아와 북한의 관계는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북한은 1500만달러를 들여 2011년 8월부터 앙코르와트에 건설·운영·양도(BOT) 방식으로 ‘그랜드 파노라마 박물관(Grand Panorama Museum)’을 짓기 시작해 작년 초 이를 완공했지만 아직까지도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북한 만수대창작사가 착공한 이 박물관은 북한이 해외에 투자한 가장 큰 규모의 건설 사업. 현재 북한은 앙코르와트 관광객들이 이 박물관을 통해서만 입장할 수 있도록 기존 매표소 위치를 옮겨줄 것을 캄보디아 측에 요구하고 있다. 손쉽게 박물관 입장료 수입을 올리겠다는 속셈이지만, 외국인 관광객에게 이미 20달러의 앙코르와트 입장료를 받는 캄보디아 정부가 이에 반대하면서 양측이 갈등을 빚고 있다.
출처 | 주간조선 2386호 글 | 정장열 주간조선 부장대우
◇12.21 미얀마의 北대사가 보석상 기웃거린 이유는
▲북한이 10월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핵배낭 부대를 공개하고 있다. /뉴시스
올해 북한 외교관들은 노동당 창건 70주년(10월 10일)을 맞아 압박에 시달렸습니다. 충성자금을 부치라는 김정은의 평양 발(發) ‘말씀’ 때문입니다. 실제 상납 실적이 저조한 해외 근무자들은 본국으로 소환됐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동남아 지역에 주재하던 한 북한 외교관은 사석에서 “무슨 놈의 상납금이 이리 많아. 이러다 내래 탈북자 되갔어”라고 토로했다고 합니다. 마땅한 외화벌이 수단이 없다 보니, 북한 외교관들은 각종 밀수(密輸)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올해만해도 지난 3월 방글라데시에서 북 외교관이 금괴(27㎏)를 갖고 입국하다 공항 세관에 적발됐고, 4월엔 파키스탄에서 위스키를 밀매하던 외교관 부부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5월 모잠비크에선 북 외교관이 코뿔소 뿔(4.6㎏) 밀매 혐의로 체포됐다가 보석금(3만달러)을 내고 풀려났습니다.
10월 브라질에서는 북한 외교관 2명이 1억5000만원에 달하는 최고급 쿠바산(産) 시가 3800개비를 상파울루 공항에 들여오다가 망신 당했습니다. 북한 김정은은 외교관들이 이렇게 모은 외화를 강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지에서 호화생활을 즐기는 일부도 있습니다. 바로 미얀마에 주재하는 북한 외교관입니다. 무기밀매로 상당한 리베이트를 챙기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미얀마 근무는 북한 외교관들 사이에서 ‘꿈의 보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대북 관계자의 말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0월 10일 오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해 중국 류윈산(오른쪽)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과 함께 사열하고 있다. /뉴시스
무기 리베이트 받아 챙긴 혐의로 제재 리스트 오른 北대사 “김석철 미얀마 대사가 (북한 무기 회사인)조선광업개발과 미얀마 국방 관련 인사들 간의 접촉을 주선하고 대가를 받았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조달 네트워크를 제재하기 위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 지난달 13일 미국 재무부는 김석철 주(駐) 미얀마 북한대사를 특별제재대상(SDN) 리스트에 올리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미 정부가 외국에 주재하는 북한 대사를 제재리스트에 올린 것은 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대사(大使)가 무기밀매에 앞장섰다는 뉴스도 전례가 없지요. 현지 외교관계자는 “김 대사가 무기거래 리베이트로 벌어들인 돈만 최소 200만 달러(약 23억 6000만원)를 훌쩍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대사관은 우리의 강남 고급 주택가쯤 되는 미얀마 양곤시내 7마일 지역에 자리한 3층짜리 저택입니다. 김석철은 월세만 7000달러(약 826만원)에 이르는 이 집에서 가족들과 살고 있습니다.
또 그는 양곤 시내 5성급 파크로얄호텔의 회원권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석철이 매일 호텔 피트니스에서 땀을 흘리고 사우나 시설을 이용하는 모습이 교민들에 의해 자주 목격됐습니다. 입맛도 까다로워서 최고급 일본산 소고기(와규) 등을 고집하는 등 북한 주민들과는 격(格)이 다른 음식을 즐긴다고 합니다. 양곤에 거주하는 교민 A씨는 “자기네 주민들은 굶어 죽을 정도로 쥐어짜면서, 지도부라는 사람들이 리베이트로 사치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분노가 일었다”고 말했습니다.
미얀마 사람들은 북한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습니다. 1983년 북한 정찰국이 자행한 ‘아웅산 테러’로 우리정부 수행단과 현지인 21명이 사망한 일을 잊지 않는 까닭입니다. 당시 미얀마 군부 실권자 네윈은 북한과의 모든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북한의 국가 승인마저 취소했습니다. 국가승인취소는 선전포고 직전에나 생각할 수 있는 극단적인 조치입니다. 그러나 미얀마 군부와 북한 김씨 일족은 미국의 경제제재를 당하면서 동병상련의 처지가 됐고, 2007년 국교를 정상화했습니다. 그때 부임한 초대대사가 김석철입니다. 지금까지 무려 8년째 미얀마 대사직을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석철 자리 보전의 배경에는 막대한 상납이 있다고 현지 외교관계자들은 입을 모읍니다. 북한이 내세우는 선군(先軍)정치의 과실을 일부 지도층만 공유하는 것입니다. 실제 지난해 7~8월 이용수 북한 외무상의 미얀마 방문을 앞두고, 김석철이 상납용 보석을 구하기 위해 귀금속 가게를 드나들어 구설에 올랐습니다. 현지 보석상들에 따르면 당시 김석철은 보통 고객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2만 달러(약 2360만원) 상당의 최고급 보석을 들여다봤다고 합니다. 이 같은 ‘상납 피라미드’ 정점에는 김정은이 있습니다.
▲미얀마 양곤 시내에 자리한 북한 대사관저. 김석철 대사가 가족과 함께 거주하는 3층짜리 저택은 한달 월세만 7000달러(약 826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의 현지 외교관계자들은 자금의 출처를 불법 무기거래 리베이트로 보고 있다. /양곤(미얀마)=김형원 특파원
北 무기회사 간부가 미얀마에서 ‘외교관’ 활동
미국 정부는 대(對) 미얀마 무기거래의 핵심은 김석철 대사가 아니라 3등 서기관인 김광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북한 무기회사 조선광업개발(KOMID·창광무역) 간부인 김광혁은 지난해 ‘외교관’ 신분으로 미얀마에 부임했습니다. 조선광업개발은 탄도미사일과 핵무기 확산에 관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이 회사 소속 요원들이 이란·시리아 등지에서 무기거래로 외화벌이를 하는 것으로 보고 있지요. 김광혁의 임무는 미얀마에 판매한 무기를 사후 관리하는 한편 새로운 무기거래 판로를 뚫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지 외교관계자는 “공적으론 ’외교관 김광혁’이지만 사실상 불법 무기판매상이나 다름 없는 일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김광혁의 직함은 외교관 가운데서 가장 낮은 3등 서기관이지만, 김석철 대사에 밀리지 않는 호화생활을 누렸습니다. 양곤 시내 고급 주택가에 자리한 그의 집은 잔디밭이 딸린 2층짜리 신축저택으로 월세만 월2000달러(약 236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일본 자동차 회사인 마쯔다의 SUV차량(CX5)을 몰고 다니면서 부인과 함께 한인 미용실을 이용하는 모습이 목격됐습니다. 다른 국가에 파견된 북한 외교관들이 보통 월 300달러에 불과한 생활비를 받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대북소식통은 “본국에 충성자금을 바치고도 여분이 남을 정도로 김광혁이 충분한 무기 거래 리베이트를 챙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움직임을 탐지한 미국 측은 줄곧 “김광혁을 본국으로 돌려보내라”고 북한을 압박해 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북 소식통은 “주(駐) 미얀마 북한 대사관이 김광혁을 송환하지 않고 버티자, 미국이 김광혁은 물론이고 그를 감싼 김석철 대사까지 모두 제재 리스트에 올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미 제재대상에 오르면 미국 금융시스템 내의 자산은 동결되며 미국인과의 거래도 금지됩니다. 무엇보다 김광혁의 실명(實名)이 공개됨으로써 미얀마 군부가 북한과의 무기거래에 부담을 느낄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실제 김광혁은 미국의 제재 대상에 지정된 직후인 지난달에 본국으로 급거 송환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양곤(미얀마)=김형원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