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安保21/ 2021.
06월 02일 성폭력 은폐, 시제機 눈속임…文정권이 軍 이 꼴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 4년 만에 대한민국 군대는 군(軍)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에도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관련된 행사에서 최일선 군부대 행태에 이르기까지 복마전 양상을 보인다. 민·군의 신뢰는 군의 존립 근거인데, 불신을 부르는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난다. 그런데도 지휘부는 면피에 급급하다. 급기야 성폭력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회유하고, 그 때문에 여성 부사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기막힌 일까지 발생했다.
지난 3월 초 다른 선임 부사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후 공군 소속 여성 부사관은 부대에 신고를 했지만,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일” “없던 일로 덮자”는 등 되레 압박을 받았다며 두 달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 뒤에도 군은 쉬쉬하고 있었는데, 피해자 유가족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언론에 보도되자 서욱 국방부 장관은 진상조사를 지시하는 등 뒤늦게 호들갑을 떨었다.
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4월 9일 열린 국산전투기 출고식 때 등장한 KF-21(보라매) 1호기가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더 충격적이다. 시제기(機)는 위장색 도색까지 마친 상태였는데, 지금은 엔진과 공중급유장치 등을 뜯어내 동체 뼈대만 남아 지상시험 및 시험비행은 어렵게 됐다고 한다. 오직 대통령 행사용으로 가조립해서 국민 앞에 쇼를 벌인 것으로 보인다. 군에서는 또 온갖 핑계를 대겠지만, 이런 눈속임은 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높인다는 점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범죄적 행위다.
군 부대 경계는 번번이 뚫리고 있고, 장병들은 “교도소 밥보다 못하다”며 부실 급식 실태를 SNS에 폭로하고 있다.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서는 훈련병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조교들이 들고 일어나고 있다. 이쯤 되면 ‘당나라 군대’라는 조롱도 민망할 지경이다. 문 정부 들어 대적관이 무너지고, 북한 눈치를 보며 훈련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것과 직결돼 있다. 호국보훈의 달이다. 국가 안보에 다소나마 관심이 있다면, 문 대통령은 이런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국방장관 경질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 다음에 강군 육성을 위해 국민적 지혜를 모아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6.03 조리병·조교 반발에 성추행 은폐까지, 오합지졸 軍 붕괴 상태
▲1일 군인권센터 관계자들이 서울 국방부를 방문해 지난달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부사관 사건과 관련, 가해자를 엄중 문책해 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추행당한 공군 여성 부사관이 “없던 일로 하자”는 부대 측의 조직적 회유와 2차 가해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피해자는 지난 3월 초 부대 선임에게 강제 추행을 당한 뒤 바로 신고했는데도 부대 측은 가해자 조사를 미적거리며 합의 종용과 사건 덮기에 바빴다고 한다. 견디지 못한 피해자가 다른 부대로 옮겼지만 “새 부대에서도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고 ‘관심 병사’ 취급을 했다”고 유족은 주장했다. 군이 집단적으로 가해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군은 비극 발생 후에도 쉬쉬하다 유족 청원과 언론 보도가 나오자 뒷북 수사에 나섰다. 지난 석 달간 은폐·회유·무마가 아니라 피해자 보호와 수사에 지금 호들갑의 10분의 1만 썼더라도 극단적 선택은 막았을 것이다. 2013년 성추행 피해자가 숨진 이후 군은 온갖 대책을 내놨지만 매년 1000건 이상 성(性) 관련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2일에도 공군 간부가 여군 숙소에 침입해 신체와 속옷을 불법 촬영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군 기강이 총체적으로 붕괴하면 어떤 대책도 먹힐 리 없다.
지난 4년간 군대 기본인 경계 실패는 셀 수도 없고 배식마저 실패해 장병 분노를 샀다. ‘혹사당한다'는 조리병들이 들고일어났다. 훈련소 조교들이 “훈련병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공개 반발한 것은 지금 한국군이 군대가 아니라 오합지졸이란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장교들은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민원’과 싸우며 병사들 눈치를 본다고 한다. 상병이 야전 삽으로 여성 대위를 폭행하고, 만취한 남성 대위는 옷을 벗은 채 누워 잠자다 주민에게 발견됐다. 남성 부사관들이 남성 장교를 집단으로 성추행하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5분 안에 비상 출격해야 하는 전투기 조종사 16명은 대기실에서 집단 술판을 벌였다.
많은 인원이 모인 군에선 늘 사건 사고가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 이후 군은 더 이상 군대라는 말을 붙일 수도 없다. 적(敵)과 정치 이벤트 한다고 ‘군사력이 아니라 대화로 나라를 지킨다'고 선언했는데 무슨 말이 필요한가. 1년 이상 수류탄 투척 훈련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훈련 같은 훈련을 한 것이 언제인지 가물가물할 지경이다. 이런 군이 50조원이 넘는 국민 혈세를 쓰며 세계에서 좋다는 무기는 다 사들이는 돈 잔치를 하고 있다. 정신이 무너진 군에는 100조원의 무기도 고철일 뿐이다.
조선일보 사설
06.03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Freedom is not free!)”
70년 전, 5월 26일 밤이었다. 경기도 가평군 북면 화악리에서는 생사를 건 전투가 벌어졌다. 미군 포병부대 600명이 중공군 4000명을 상대로 밤을 새우며 싸웠다. 그리고 기적에 가까운 승리를 거두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이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70년 만에 사람들이 모였다.
▲가평 전투 기념비가 있는 곳에는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고 적힌 바위의 글귀가 있다. 미군 병사의 동상이 이를 향해 경례를 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가평군 북면 이곡리 카이저길 45-23. 각별한 행사가 열렸다. ‘미국 한국전쟁 참전 및 가평 전투 70주년 기념식’이다. 1951년 5월 26일 가평에서 벌어진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한국인과 미국인 99명이 5월 26일에 모였다. 참석자는 상당수 한국전 참전용사의 후손이었다. 양측은 애국가와 미국 국가를 번갈아가며 함께 불렀다.
부인과 함께 이곳을 찾은 브래드 테일러(전 하겐다즈 부사장)도 한국전 참전용사의 후손이다. 미국 유타주 출신인 그는 “당시 미국의 젊은이들은 한국을 몰랐다.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다른 나라의 자유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싸웠다”며 “그들의 희생이 거름이 됐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누리는 자유가 됐다.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보면 감격스럽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가평 전투는 오랫동안 ‘잊힌 전투’였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랬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한국전쟁맹방국용사선양사업회 최승성 회장이 사유지 3300㎡(1000평)를 내놓고 참전 기념비도 세웠다. 가평 전투에 참전한 미군 포병대대원들이 모두 유타주 출신의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몰몬교) 회원이란 사실은 최근에 테일러 씨의 조사로 처음 밝혀졌다.
브래드 테일러(전 하겐다즈 부사장) 씨는 가평 전투에 참전한 미군 용사의 후손이다. 그는 가평 전투의 역사를 조사하다가 213포병대 대원들이 유타주 출신이며, 모두가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회원이란 사실도 찾아냈다.
▲한국전쟁맹방국용사선양사업회 최승성 회장은 사유지 1000평을 내놓으며 가평 전투 기념사업을 시작했다. 기념비에서 11km 떨어진 곳에 있는 당시 전투 현장에서 최 회장이 중공군의 공격 방향과 미군의 포격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행사장을 찾은 국민의힘 최춘식 국회의원(가평)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주력 공격은 문산-서울, 조력 공격은 횡성-원주-춘천-이천을 통해 서울을 향했다”며 “가평은 북한의 조력 공격을 막는 중요한 저지선이었다”고 설명했다.
#기적의 가평 전투
처음 목적지는 한국이 아니라 독일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유럽의 독일에 미군 유타주 방위군 제213 야전 포병 대대가 배치될 예정이었다. 독일에 있던 다른 포병대대가 한국전쟁에 참전하느라 빈자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부대 배치 전에 실시한 전투력 테스트에서 213 포병대대는 아주 높은 점수를 받았다. 결국 실전 배치 결정이 났고, 이들은 당초 계획과 달리 전쟁이 발발한 한국으로 향했다.
▲가평 전투를 치렀던 미군 213야전포병대대 병사들. 대부분 20대 안팎의 젊은 나이였다. [사진 한국헬핑핸즈]
213 대대원들은 미국 유타주 출신이었다. 모두가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회원이었다. 직업 군인도 아니었다. 교사와 농부, 대학생과 탄광 노동자 등으로 주 방위군에 자원한 이들이었다. 고교 졸업 후 친구들과 함께 입대한 이들도 있었다. 대대원은 대부분 스무 살 전후의 파릇한 나이였다.
한국전쟁에 투입된 이들은 1951년 5월 26일 이른바 ‘기적의 가평 전투’를 치렀다. 한국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 남유타 주립대학에서는 다큐멘터리까지 제작했다. 미국 지상파 공영방송 PBS에서도 다룬 바 있다. 한국전쟁의 숱한 전투 중에서도 유독 이 싸움을 ‘기적의 전투’로 꼽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듬해였다. 전시 상황은 급박했다. 인천상륙작전 후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던 국군과 UN 연합군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를 거듭했다. 당시 경기도 가평은 전략적 요충지였다. 횡성-원주-춘천까지 내려온 중공군이 가평을 차지하면 수도권과 서울로 가는 길목이 뚫릴 참이었다.
▲미군 213포병대대원들이 포격과 사격을 하고 있다. 중공군과 싸울 때 240명은 총격전과 백병전까지 치렀다.
미군 213 야전 포대는 가평의 산악지대를 지키고 있었다. 앞에서 싸우는 국군을 위해 105밀리 곡사포로 지원 포격을 했다. 남춘천에서 가평으로 산을 타고 넘어오는 중공군을 막는 게 목표였다. 그런데 뜻밖의 사태가 발생했다. 포대가 지원하던 한국군 부대가 아무런 통지도 없이 후퇴해 버렸다. 포대와 적군 사이에 있어야 할 보병 부대가 사라진 셈이다.
졸지에 213포대는 고립됐다. 보병 지원도 없이 중공군을 직접 맞닥뜨렸다. 5월 26일 밤, 본부포대 360명과 A포대 240명이 있는 미군 진지로 중공군 4000명이 진격해 왔다. 숫자로 보면 승산 없는 싸움이었다. 더구나 A포대 240명은 소총 사격에다 백병전까지 치러야 했다.
당시 포대를 지휘하던 프랭크 댈리 중령은 근접 전투를 위해 포격 방식을 바꾸었다. 포탄의 신관 폭파 시간을 0.5초로 설정했다. 그럼 포탄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적의 머리 위 공중에서 터졌다. 중공군에게 치명적 피해를 줬다. 1개 포대가 1개 사단 규모의 적군을 근거리에서 물리칠 수 있었던 전술적 비법이었다.
▲가평 전투를 이끈 지휘관 프랭크 댈리 중령.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한 그의 노련한 전술 덕분에 213포병대대가 중공군 1개 사단을 물리칠 수 있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213 포병대대가 포사격을 하고 있다. 대대원들은 모두 유타주 출신이었다
전투는 밤새 계속됐다. 양쪽의 총알이 빗발치고, 포탄은 밤새 협곡을 밝혔다. 동이 트고 나서야 총소리가 잦아들었다. 중공군은 후퇴했다. A포대 레이 콕스 대위는 9명씩 2개 조를 편성해 협곡으로 정찰대를 보냈다. 중공군 전사자는 350명이었다. 협곡에 남아 있던 중공군은 미군 정찰대를 보자마자 소총을 내려놓고 항복했다. 생포한 중공군만 830명이었다. 600명의 미군이 4000명의 중공군을 격퇴한 대승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도 있었다. 격전을 치렀음에도 213포대의 전사자는 한 명도 없었다. 가벼운 부상자만 서너 명 있을 뿐이었다. 포격뿐 아니라 총격전과 백병전까지 치렀는데도 말이다. 누가 들어도 믿기지 않는 전과(戰果)였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지금도 ‘기적의 전투’라고 부른다.
213포대 부대원들은 협곡 곳곳에 흩어져 있던 중공군 전사자의 시신을 모두 거두어 땅에 묻어주었다. 그걸 본 중공군 포로가 미군에게 “죽은 사람들을 묻어줘서 고맙다”는 인사까지 했다. 그리스도교 신자인 이들의 눈에는 비록 적이지만, 중공군도 자신과 다름없는 인간이었다.
▲밤새 이어진 가평 전투는 새벽에 동이 트자 멈추었다. 중공군은 후퇴했고, 협곡에 남아 있던 중공군 병사들은 무기를 버리고 항복했다.
그해 12월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213포대에 대통령 표창을 주었다. ‘기적의 전투’에 대한 치하였다. 지휘관 프랭크 댈리 중령은 미국 정부로부터 동성무공훈장을 받았다.
‘미국 한국전쟁 참전 및 가평 전투 70주년 기념식’ 행사를 주관한 국제봉사단체 한국헬핑핸즈 오희근 이사장은 “한국전쟁에서 자유를 위해 싸우다 죽은 유엔군 전사자가 5만4000명이다. 그중 68%가 미군이다. 미군 사망자(3만7000명)와 실종자(3700명)는 4만 명이 넘는다. 부상당한 미군만 9만2000명이다. 미국은 우리에게 주요한 혈맹 관계”라며 “미국 유타주 시더시는 매년 이 기적의 전투를 기념하고 있다. 우리도 대한민국의 자유가 어떻게 지켜져 왔는지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내년부터는 국가보훈처가 참전 기념행사를 주관하기를 건의해 놓은 상태다.
▲가평 전투 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한국과 미국의 참전용사 후손들이 함께 애국가와 미국 국가를 번갈아가며 부르고 있다. 브래드 테일러의 부인 앤 테일러 여사가 지휘하고 있다.
6일은 현충일이다. 가평 전투 기념비 왼편 바위에 영어로 큰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그건 70년 세월을 관통하며 울리는 역사의 메아리였다.
가평=글ㆍ사진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06.04 도 넘은 군 기강 해이, 지휘관부터 정신 차려야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장 모 중사가 지난 2일 저녁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 압송되고 있다.[연합뉴스]
군대 기강이 말이 아니다. 장병에 대한 부실 급식 문제가 불거지더니 이젠 은폐한 군 내 성추행 사건이 연이어 폭로되고 있다. 충남 논산의 육군훈련소에서는 훈련병 인권을 중시하라는 육군 지휘부 방침에 따라 훈련병이 조교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 3월에는 동해에서 민통선이 연이어 뚫렸다. 군 곳곳에서 기강이 무너지고 있다. 이를 보는 국민은 안보를 군에 맡기기에 앞서 분통부터 터진다. 아무리 좋은 첨단무기를 가져도 기강이 무너진 군대는 희망이 없다.
은폐했던 군내 성추행 연이어 폭로
훈련 않고, 인기 위주 지휘가 문제
성추행을 당해 지난달 22일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공군 여군 부사관 이모 중사는 1년 전에도 다른 상사로부터 성추행당했던 사실이 어제 뒤늦게 공개됐다. 당시 이 중사는 성추행 사실을 보고했지만 공군은 수사는커녕 오히려 회유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 중사 유족 측 변호사는 이 사건과 관련된 2명 이상의 간부를 어제 국방부 검찰단에 고발했다. 그저께는 공군 모 부대의 하사가 여군 숙소를 무단 침입한 뒤 여군 속옷과 신체를 불법으로 촬영하다 현행범으로 적발됐다고 군인권센터가 공개했다. 하지만 공군은 현행범인 하사를 구속하지 않고 보직만 바꾸는 수준으로 사건을 무마하려 했었다고 한다.
군 기강 해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부터 ‘경계 실패→명령 불복종→군 급식 부실→성추행 사건’ 등 각종 사건·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사건 내용도 점차 악성으로 바뀌고 있다. 기강 해이가 군 전체로 깊이 확산하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 군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가. 가장 큰 이유는 훈련하지 않아서다. 남북 9·19군사합의 이후 훈련을 정상적으로 하지 않고, 장병의 인권과 복지만 강조하다 보니 군의 본분을 망각한 것이다. 군 전투력은 강도 높은 훈련과 기강, 그리고 무기에 의해 나온다. 그런데도 훈련하지 않고 기강이 무너지니 군이 군 같지 않은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은 군 지휘부의 책임이 크다. 장병 급식 문제만 해도 코로나19가 터졌을 때 국방부가 미리 조치했어야 했다. 격리되지 않은 장병들이 먼저 먹고 남은 음식을 격리 장병에게 가져다 주니 당연히 부실할 수밖에 없다. 더 한심한 일은 급식 문제가 발생한 지 한참 뒤까지도 국방부와 각 군은 현황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정치권 눈치를 보는 주요 지휘관들이 인기 위주로 부대를 운영하며 인권만 강조했다. 그러니 일선 지휘관은 병사에게 엄격한 규율을 내세울 수 없었고, 유약해진 병사들은 지휘관을 만만하게 보는 풍조가 생겼다. 이래선 안 된다. 이제라도 군을 군답게 만들어야 한다. 엄정한 군기와 인권은 함께해야 한다. 군 수뇌부부터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청와대가 정치권의 군 인사 개입을 막아야 한다. 국민은 오합지졸의 군대를 원치 않는다.
중앙일보 사설
06월 04일 성추행으로 저무는 ‘공군전성시대’…文정부 ‘공군天下’에 빨간불
▲ 2019년 9월 이성용(가운데)38대 공군참모총장이 충남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열린 이취임식에서 원인철 37대 공군참모총장과 열병식을 하는 모습. 문재인정부 들어 공군 출신으로서 합참의장 국방장관을 역임한 정경두 전 장관에 이어 원인철 합참의장은 문재인 정부 2번째 공군 출신 합참의장으로 공군전성시대를 열어젖혔다. 뉴시스
이성용 공군총장, 간부들 성추행 은폐·회유로 8개월만에 낙마
文 정부 들어 공군출신 군 요직 독식
합참의장 2명,장관 1명, 첫 안보사령관·정책실장 배출
성추행 당한 뒤 공군 간부들의 조직적인 은폐·회유 압박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여군 부사관 이모 중사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이 4일 전격사퇴함에 따라 문재인 정부 ‘공군전성시대’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 총장이 취임 8개월여만에 조기 사퇴하게 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3일 군수뇌부의 지휘 책임을 거론한 것이 결정적 배경이 됐다. 이번 사태가 조직적인 성추행에 이은 간부들의 은폐·회유에 의해 20대 꽃다운 여군 중사를 죽음으로 내몰아 국민적 공분이 들끓고 있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 공군천하(空軍天下)’ 시대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공사 34기로 합참 전략기획본부장 등 군 요직을 두루 거친 이 총장은 차기 합참의장감으로도 거론돼왔다.
그동안 육·해·공군 중 가장 규모가 작은 소군(小軍)인 공군은, 문 정부 들어 역대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이는 문 정부 출범 후 비육사·비육군 선호 인사 원칙이 암묵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 이로인해 역대정부에서 상대적으로 중용되지 못했던 공군 출신들이 크게 약진하며 요직을 독식한 것으로 평가된다.
문 정부 들어 공군 출신 장관 1명(정경두)을 비롯 대장직인 합참의장 2명(정경두·원인철)에다 그동안 공군 출신이 한번도 기용되지 못한 국방부 정책실장(정석환 현 병무청장)과, 국군기무사령부 후신인 군사안보지원사령관 1명(전제용) 등 소군으로서 군 요직을 독차지해왔다.
이처럼 장관과 합참의장, 그밖의 국방부 핵심 보직을 공군 출신이 차지하자 비공군 사이에서는 ‘공적, 사적으로 몹시 바쁘다’는 공사다망(公私多忙)의 음을 빗대어 ‘공사다망(空士多亡·공사 때문에 군이 망하게 생겼다)’이라는 말이 한때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이 총장의 사의 표명에도 불구, 군 검찰단이 초동 부실수사 등 직무유기와 지휘 책임을 물어 공군 수뇌부에 수사의 칼날을 들이댐에 따라 물러난 이 총장을 비롯해 공군 법무관실과 군사경찰 등 참모라인이 초토될 경우 내리막길을 걷는 문재인 시대와 더불어 공군천하 역시 퇴조의 길을 걸을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06.04 천안함 용사의 딸 “그 아빠에 그 딸 소리 듣고 싶어, 꼭 해군 될 것”
[그 사건 그 후…] 2010년 천안함 폭침, 아버지 잃은 김해나씨
▲2일 오후 충북 진천 우석대학교 진천캠퍼스에서 천안함 용사 고 김태석 원사의 딸 김해나씨가 제복을 입고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현재 김해나씨는 아버지와 같은 군인이 되기 위해 군사안보학을 공부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으로 아버지 김태석 해군 원사를 잃은 딸 해나(19)씨는 그때를 생생히 기억했다. 당시 천안함 침몰 12일 만에 함미(艦尾) 절단면 부근에서 발견된 김 원사의 주검이 흰 천에 덮여 구급대로 옮겨지자 해나씨는 아버지를 향해 뛰어갔다. 초등학교 2학년인 해나씨가 화상으로 일그러져 있던 아버지 얼굴을 보겠다는 걸 해군 장병들이 막자, 해나씨는 “내 아빠를 내가 왜 못 보느냐”고 소리쳤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나 해나씨는 성인이 됐다. 그는 “아버지 같은 해군 간부가 되겠다”며 올 3월 충북 진천에 있는 우석대 군사안보학과에 입학했다.
천안함에서 함정 가스터빈 정비와 보수유지 임무를 담당했던 고(故) 김 원사는 단 한 건의 장비 사고도 없었던 모범 군인이었다. 지난 2일 기자와 만난 해나씨는 “아버지는 위험한 상황이 많은 배에서 잘 웃지도 않고 엄격하셨다고 들었다. 아버지를 닮겠다”고 했다. 그는 지난 4월 해군·공군·해병대 예비장교후보생 1차 필기시험에 응시해 한번에 합격했다. 후보생 시험에 최종 합격하면, 대학 졸업 후 아버지 뒤를 이어 직업 군인의 길을 걷게 된다.
해나씨는 지난 3월 ‘서해수호의 날’에 학과 제복을 입고 대전 현충원에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그는 “제복을 입고 아버지께 거수 경례를 하면서 ‘빨리 군인이 돼 자랑스러운 딸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정말 엉덩이가 찌그러질 정도로 열심히 장교후보생 시험공부를 했다”고도 했다.
아버지 김 원사는 천안함 폭침 사건이 있기 전 ‘등굣길에 타라’며 해나씨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줬다. “출동 갔다 돌아온 아버지와 공원에 나가 자전거 연습을 했는데 혼자서 곧잘 타게 됐을 무렵 ‘그 일’이 생겼습니다. 그 뒤 5년 가까이 자전거를 탈 수가 없었어요. 기울어지면 뒤에서 잡아주던 아버지가 없으니까요.”
/故김태석 해군 원사
김 원사는 해나·해강(18)·해봄(16), 세 딸을 두고 떠났다. 두 형과 처남이 모두 해군 출신인 ‘해군 가족’에서 자란 김 원사는 세 딸 중 한 명은 꼭 해군이 되길 바랐다고 한다.
해나씨는 “천안함 폭침 사건을 바르게 기억해달라”고 여러 번 얘기했다. 그는 “어릴 땐 관심을 받는 것이 싫어 내 사진을 찍는 기자에게 가서 ‘모자이크 처리해달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며 “그런데 해가 갈수록 점점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히고 ‘천안함 행사’도 보여주기식으로 끝나 아쉽다”고 했다.
해나씨의 바람과 달리 천안함 폭침 11주기인 올해도 폭침 원인 등에 대한 가짜 뉴스와 음모론은 여전하다.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결정했다가 비판을 받고 철회하는 일도 있었다. 해나씨는 “10년 넘게 나오는 ‘좌초설’ ‘자작극설’에 유가족들은 절망한다”며 “아빠도 ‘내가 이런 말 들으려고 출동을 나갔나’ 하고 땅을 칠 것”이라고 했다.
천안함 폭침 사건이 잊히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해나씨가 해군이 되려는 이유다. “천안함 전사자의 딸인 제가 해군 간부가 되면 사람들이 한번 더 천안함 전사자 분들을 기억해주시지 않을까요? 제가 잘해서 ‘역시 그 아빠의 그 딸이다’라는 말을 꼭 듣고 싶어요.” 해나씨는 4일 대전현충원에 잠든 아버지를 찾을 예정이다. 이번에는 학과(學科) 친구들과 교수님과 함께다.
06.05 해군 지원 천안함 딸, 기관총 기증 유족, 대한민국 지키는 분들
천안함 용사 고(故) 김태석 해군 원사의 장녀 해나씨가 장교 후보생 필기 시험에 합격했다. 최종 합격하면 “해군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아빠에 그 딸이란 말을 듣고 싶다”고도 했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 주검이 흰 천에 덮인 것을 봤다. 충격으로 어릴 땐 자기 사진을 찍는 기자에게 ‘모자이크 처리해달라’고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군복을 입고 당당하게 거수경례를 한다. 인터뷰에서도 “천안함 폭침 사건을 바르게 기억해 달라”고 여러 차례 당부했다.
얼마 전 대통령 직속 군(軍)사망사고 진상규명위가 좌초설 등 온갖 괴담을 유포하던 사람의 요구에 따라 재조사하려 했다. 여론이 나빠지자 그제야 접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공식 석상에서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라고 밝힌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천안함 전사자의 백발 어머니가 문 대통령에게 다가가 “이게 누구 소행인지 말씀 좀 해주세요”라고 절규하자 작은 소리로 “북한 소행이란 정부 입장이 있다”고 했다. ‘정부 입장’이란 전 정부가 정한 것이다. 천안함 괴담에 편승하던 여권 인사 가운데 ‘그때 내가 지나쳤다’고 반성하는 경우도 본 기억이 없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 대부분은 천안함 폭침을 언급조차 않거나 얼버무리고 있고 국방장관조차 “불미스러운 충돌”이라고 했다.
해나씨는 천안함 행사가 “보여주기 식으로 끝나 아쉽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참석한 올해 ‘서해 수호의 날’ 행사는 연예인이 등장하고 고공 낙하, 함정·헬기 사열 이벤트까지 벌어지는 탁현민식 쇼로 치러졌다. 천안함 추모 행사를 철저히 무시해오던 정권이 서울·부산 시장 선거를 앞두고 득표용 행사를 연 것이다. ‘미 잠수함 관련설’을 제기했던 여당 서울시장 후보는 한마디 사과도 없이 “장병 희생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작년 현충일 추념식에 천안함 유족을 뺐다가 뒤늦게 포함시켰다. “실수”라고 했지만 실수로 5·18 행사에 5·18 유족을 안 부를 수도 있나.
문 대통령은 취임 후 3년 연속 현충일에 ‘6·25’와 전범인 ‘북한’을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충일에 6·25 남침 공로로 북한 훈장을 받은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인 것처럼 칭송하기도 했다. 천안함 폭침 주범인 김영철을 불러 국빈 대접했다. 천안함 유족을 초청한 자리에선 김정은과 손잡고 찍은 사진 책자를 나눠줬다. 유족은 충격으로 체하기까지 했다. 반면 문 대통령에게 ‘천안함이 누구 소행이냐’고 물었던 어머니는 유족 보상금 1억여원을 내놓아 기관총 18정을 해군에 기증했다. 천안함 용사의 딸은 해군의 길에 섰다. 대한민국은 이런 분들이 지키고 있다. 내일이 현충일이다.
조선일보 사설
06.05 創軍 영웅을 홀대하는 나라
여순사건 때 희생당한 장교 6명, 아직도 국가유공자 예우 못 받아
반란이 통일정부 위한 봉기라니… 도대체 제정신이 아니다
아흔을 눈앞에 둔 진기연씨는 73년 전 그날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렸다. 1948년 10월 19일 경북 영주에서 여수 수산학교로 전학 가기 위해 기차를 탔다. 부산에서 하룻밤 묵고 다음 날 여수행 기차를 탈 생각에 부풀었는데 ‘여순사건 발발’ 대자보가 나붙었다. 열여섯 살 소년은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 뒤 고향 집에 유골함이 도착했다. “형과 함께 살면서 학교 다닐 생각에 부풀었는데, 유골함으로 돌아온 형을 보고 기막혔다. 함안에는 유골도 없이 부러진 칫솔 한 자루뿐이었다.” 휴대폰으로 흘러나온 목소리가 떨렸다. 여수에서 반란을 일으킨 14연대 반군에 희생된 진도연 중위가 그의 형이다. 1947년 4월 경비사관학교(육사3기)를 졸업한 진 중위는 이듬해 5월 출범한 14연대에서 근무하던 중이었다. 그는 14연대 반란에 희생된 장교 21명 중 하나다.
육사 6기생인 최석신 전 노르웨이 대사는 1948년 7월 말 임관 직후 14연대에 부임했다. “김왈영 대대장이 포병 교육을 받으러 가라길래 훈련은 질려서 사양했다. 포병은 수학 지식이 필수적이라며 설득해서 할 수 없이 따랐다.” 반란 소식은 교육받던 진해에서 들었다. 두 달 남짓 교육을 마치고 광주 5여단 본부에 귀대 신고를 하러 갔다가 김왈영 대대장을 비롯한 14연대 장교 16명 유골과 맞닥뜨렸다. 최 전 대사는 “그때 여수에 남았다면, 대대장과 최후를 함께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14연대 반군은 남로당 무장 폭동으로 시작된 제주 4·3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동족 살상하는 제주도 출병 반대’란 그럴듯한 명분으로 병사들을 선동한 남로당 세력은 장교들을 보이는 족족 총으로 쏴 죽였다. 김왈영 대대장은 반란을 막으려 방에서 뛰쳐나오다 사살됐고, 제주도 출병 준비차 부두에 나갔던 김래수 중위는 연대장 명령에 따라 귀대하던 중 총에 맞았다. 대대장 3명 전원이 사살당한 14연대는 바로 해체됐다. 14연대 반란은 남로당 세력을 솎아내는 숙군(肅軍)으로 이어졌고 김일성 남침을 막는 디딤돌이 됐다. 전사자들이 흘린 피가 현대사의 기적으로 불리는 대한민국 탄생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14연대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 피해자를 낳은 것은 사실이다. 억울하게 죽은 희생자를 위로하고 폭도 취급을 당한 생존 피해자에 대해 정부가 보상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 비극의 책임을 져야 할 남로당의 14연대 반란을 교과서에서 ‘무장 봉기’로 가르치고, ‘항쟁’으로 불러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건 제정신이 아니다. 여당 의원 152명이 발의한 ‘여순사건특별법’이 14연대 반란에 대해 어물쩍 넘어가는 것도 도리가 아니다. 그 틈을 비집고 일부에선 남로당과 14연대 반군을 동족 살상을 막고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봉기’한 민주화운동가처럼 떠받든다.
국립묘지에 묻힌 14연대 전사 장교 21명 중 6명은 ‘국가유공자’ 예우도 못받았다. 신생 대한민국의 국군 창설에 목숨 바친 영웅이지만, 유공자 신청을 해줄 유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2016년 유족 신청이 없어도 국가보훈처가 유공자로 등록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꿨지만, 김왈영 대대장을 비롯한 장교 6명은 여전히 정부의 관심 밖이다. 대통령은 6·25 남침 공로로 북한 훈장까지 받은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인 것처럼 치켜세웠고, 과거사위원장을 맡은 교수는 얼마 전 탈북 국군 포로를 면담하면서 중공군 포로 피해에 관심 있다는 엉뚱한 말을 했다. ‘정부는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모든 분들을 끝까지 기억하고 책임지겠다.’ 며칠 전 아침 신문에 총리가 실은 호국보훈의 달 담화문이다. 우리는 정말 그런 정부 아래 살고 있나.
조선일보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월간조선 06월 호
■17년 만에 통과된 非정규군 공로금 지급
6·25 당시 맹활약 켈로부대(KLO), 공로금 받는다!
⊙ 켈로부대 등 민간인 신분 非정규군 1만8994명 대상
⊙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 “지금이라도 챙겨드릴 수 있어 다행”
⊙ 공로금 액수가 적다는 지적도
1950년 9월 15일 감행한 인천상륙작전은 6·25전쟁의 판도를 뒤바꾼 작전이다. 이 작전의 성공은 ‘팔미도(八尾島) 등대 탈환 작전’에서 시작한다. 10만명의 병력을 태운 261척의 연합군 함대가 무사히 인천항으로 진입하기 위해선 인천항에서 13km 떨어진 팔미도와 이곳의 등대를 우선 장악해야 했다.
인천은 조수(潮水)와 수로(水路), 암초 등 해안 사정이 복잡해 상륙작전이 쉽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맥아더 사령부는 특공대를 조직해 팔미도 등대 탈환 작전을 시행한다. 이 작전에는 KLO(Korea Liaison Office·미 극동군사령부 한국 연락사무소), 이른바 ‘켈로부대’가 투입된다.
켈로부대는 미 극동군사령부가 북한의 정부·군·산업 기관에 침투해 정보 수집을 하기 위해 1949년 6월 1일 만든 첩보조직이다.
‘인천상륙작전’의 숨은 주역 켈로부대
2016년 개봉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켈로부대원들의 활약상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에선 팔미도 등대 탈환 작전이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것처럼 묘사됐지만, 실제로는 인민군과 켈로부대가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실시되기까지 6일간 등대와 섬을 놓고 뺏고 뺏기는 전투를 치렀다.
9월 15일 새벽 2시20분. 켈로부대가 팔미도 등대의 불을 밝혔다. 이를 본 맥아더 사령관은 7개국의 연합함대 261척을 팔미도 해역에 집결시켰고, 곧이어 상륙작전에 돌입했다. 13일 뒤에는 서울을 되찾았다.
켈로부대는 1951년 5월 중공군이 점령한 강원도 화천의 ‘화천발전소 탈환 작전’에서도 공을 세웠다. 켈로부대는 화천발전소에 배치된 중공군의 대포와 전차가 유엔군의 정찰을 속이기 위한 위장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유엔군은 중공군 진지를 공습해 화천발전소를 탈환했다.
고려대 남광규 교수가 2018년 한국보훈학회에 제출한 논문 〈6·25 참전 KLO한국유격군 보상법안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켈로부대는 4445회 작전을 수행했고, 적 7만여명을 살상(殺傷)했다.
6·25 당시 미군은 북한군의 게릴라전을 경험하고는 유격부대의 필요성을 느꼈다. 1951년 7월 미 ‘8240부대’가 창설되자 켈로부대는 8240부대로 통합됐다. 8240부대 예하에는 유격부대가 30여 개에 이르렀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되자 8240부대는 국군으로 소속이 변경돼 ‘8250부대’로 다시 재창설됐다가 1954년 2월 공식 해체됐다.
이후 켈로부대를 비롯해 정규군이 아닌 비정규군 신분의 참전용사들은 잊혔다. 국가의 관심에서 배제된 채 50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2007년 3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까지 나서 외국군 소속 특수임무수행자에 대한 신속한 보상을 위해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17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회기마다 비정규군 신분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이들에 대한 보상 법이 발의됐다. 하지만 정부는 미군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비정규군에 대한 인정 및 보상이 곤란하다고 했다.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는 예산 추가 소요를 문제 삼았고, 국방부는 ‘개인 기록이 없어 보상과 서훈이 불가능하다’ ‘자생적으로 조직된 미군 산하 단체이므로 한국 정부의 보상 책임이 없다’ ’이미 미군 등으로부터 급여를 지급받았다’ 등의 주장을 폈다.
지난 4월 13일 ‘6·25전쟁 전후 적 지역에서 활동한 비정규군 공로자 보상에 관한 법률’이 공포됐다. 이로써 켈로부대원들도 보상받을 길이 생겼다. 법안을 만드는 데 앞장선 이는 예비역 육군 중장 출신인 국민의힘 한기호(韓起鎬) 의원(강원 춘천시 철원군화천군양구군을)이었다
한기호 의원 대표발의로 17년 만에 법안 통과
지난해 9월 9일 한기호 의원은 ‘6·25 참전 비정규군 공로자 보상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률안은 소위원회 심사 등을 거치며 ‘6·25전쟁 전후 적 지역에서 활동한 비정규군 공로자 보상에 관한 법률’로 법안의 이름과 세부 내용이 일부 수정됐다. 지난 3월 24일에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4월 13일 공포됐다. 입법 노력을 펼친 지 17년 만이다.
법안의 주 내용은 1948년 8월 14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적 지역으로 침투해 비정규전을 수행한 KLO, 미 8240부대 등의 공로를 인정해 공로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한 의원은 지난해 9월 법률 제안 이유에서 “6·25전쟁 중 자발적으로 결성된 유격대나 미 8군 및 미 극동군사령부의 첩보부대 등에 소속되어 비정규전을 수행한 공로자와 그 유족의 경우 외국군 소속이거나 정규 군인이 아닌 민간인 신분이라는 이유로 보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6·25전쟁에 참전한 비정규군 공로자의 경우, 국가 수호의 일념으로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가해 나라를 위해 희생했지만 제도적 여건의 미비로 보훈 사각지대에 있다. 특히 현재 생존자들의 대부분이 80세 이상의 고령자임을 감안할 때 더 늦기 전에 명예회복과 보상대책 마련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한 의원은 “임무 수행이나 참전 시기 등이 유사한 백골병단유격대나 특수임무수행자의 경우에는 관련 법률을 마련해 보상이 이뤄지고 있다”며 “정규 군인이 아닌 민간인 신분이라도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해 보상해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를 위해 국방부 장관 소속으로 비정규군 공로자 보상심의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비정규군의 활약
6·25전쟁 당시 활동한 비정규군은 군번과 계급도 없이 자발적으로 결성된 유격대원이다. 이들은 비정규전, 즉 게릴라전을 수행했다. 6·25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들은 주로 황해도와 평안도, 함경도 등지에서 약 30개 단위 부대로 편성돼 미 8군 및 미 극동군사령부와 연계해 유격 작전을 펼쳤다.
이들은 북한 지역 연안 일대와 적지 내륙에서 해안선 침투, 상륙작전, 공산군 배후 습격, 교량·교통망 파괴, 공중 침투 등을 벌였다. 전투를 통해 함경도와 평안도 연안에 2개 군단, 강원도와 함경도 연안에 1개 군단 등 공산군 3개 군단을 견제하는 전략적 효과도 거뒀다. 또 남포항과 원산항의 입구를 봉쇄해 동·서해 제해권 확보에 기여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이 법의 보상 대상 공로자는 ▲외국군 소속으로 첩보 수집 등의 비정규전을 수행한 부대인 켈로부대 ▲미 공군 소속 첩보부대인 미 공군 제6004항공정보대(이후 제6006항공정찰정보대로 개편) ▲자생적으로 조직된 구월산 유격대 등이다. 이들을 포함한 다수의 유격대가 전쟁 중 미 8240부대에 소속됐다. 휴전 후에는 한국군 8250부대로 전환돼 활동했는데, 총인원은 1만8994명으로 파악된다.
이 밖에도 자생적으로 조직된 유격대가 상당수 있으나 구체적인 근무 기간, 활동 내역 등에 관한 자료가 부족해 정확한 확인은 이뤄지지 못했다.
한국유격군전우회총연합회는 자체 추산으로 6·25전쟁 중 유격대원으로 활동한 인원은 총 3만2000명이라고 주장한다.
虎林부대 포함 위해 법안명 수정
▲사망한 전우들을 위한 추모식에 참석한 유격백마부대원들. 사진=최성용 제공
국방부가 공개한 ‘6·25전쟁 참전 당시 비정규군 공로자 현황’에 따르면, 1만8994명은 ▲미 8240부대→한 8250부대 전환자 1만2595명 ▲유격대원 위패 봉안자 3928명 ▲미 8240 유격대원 특별상 기장수여자 737명 ▲8250부대 장교 전환자 753명 ▲전상자(戰傷者) 명부 439명 ▲종군복무자로 확인된 8240부대원 542명 등이다.
처음 발의한 법안의 이름은 ‘6·25전쟁 참전 비정규군 공로자 보상에 관한 법률안’이지만, 6·25전쟁 이전에 유격전을 수행했던 ‘호림(虎林)부대’ 등의 공로자가 누락되지 않도록 법안명을 ‘6·25전쟁 전후 적 지역에서 활동한 비정규군 공로자 보상에 관한 법률’로 수정했다. 이 때문에 비정규군으로 인정하는 기간도 1950년 6월 25일부터가 아닌, 1948년 8월 15일로 앞당겼다.
호림부대는 월남한 서북청년단을 주축으로 1949년 2월 25일 만들어진 육군본부 정보국 직속 대북 침투 목적 특수부대이다. ‘최초의’ 북파공작원인 셈이다. 이들은 1949년 강원도 인제군에서 대북 침투 공작을 벌였고, 1950년 3월 지리산 공비 토벌 작전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이들은 대내외적 국가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현역 장병이 아닌 민간인 신분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호림부대원 252명은 6·25전쟁 발발 1년 전인 1949년 6월 말, 설악산 대청봉에 손톱과 발톱을 잘라 생무덤을 만든 뒤 38선을 넘었지만 북한 인민군에게 발각돼 2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소련군 군수 장비의 수송을 지연시키기 위해 적진으로 침투했다.
북한에서 작전을 펼치던 호림부대원 중 일부는 생포돼 1949년 9월 11일 평양 모란봉 최고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았다.
작전 중에 전사한 호림부대원(장교 2명, 병사 174명)은 병적 확인을 거쳐 숨진 지 54년 만인 2003년에야 현충원에 안장됐다. 이들은 6·25전쟁 이전에 창설됐다는 이유로 그간 보상에서도 제외돼왔다. 이들도 공로자로 인정을 받으면 공로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보상금 대신 공로금 지급
한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보상금 등’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입증의 어려움 등을 고려해 ‘보상금 등’이라고 다소 포괄적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수정 법률안은 ‘보상금 등’ 대신 ‘공로금’만을 명시했다. 현시점에서 자신이 비정규군으로 활동한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어려우므로 공적에 따라 보상액이 달라지는 보상금 대신 공로금의 형태로 보상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입장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배용근 수석전문위원은 《국회보》 기고를 통해 “합리적이고 형평에 맞는 보상을 위해 개인별 활동 기간 및 공적 등에 대한 사실 확인이 필요하나 비정규군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사람의 신분 및 계층이 매우 다양하고 정규군이 아니었던 까닭에 그 근거자료가 부족하다”며 “정전 후 60년 이상 지난 시점에서 비정규군임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기 쉽지 않아 일률적으로 공로금을 지급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고 했다.
지난해 9월 24일 국회 예산정책처는 한기호 의원이 발의한 법안의 ‘비용추계서’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법 시행 후 5년간 총 617억원, 연평균 123억4000만원의 추가 재정이 든다.
세부적으로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추정 생존자 4064명과 추정 유족 보상 신청인 1806명에 대해 1인당 1000만원 수준의 공로금 지급 ▲보상심의위원회 인건비·운영비 연 5억원 ▲비정규군 공로자 및 유족 단체 지원비 연 1억원 등이다.
일부에서는 공로금의 액수가 적다고 주장한다. 1000만원은 어떤 기준으로 책정됐을까.
한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대해 배용근 수석전문위원이 작성한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공적 등의 확인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제정안에서 규정하는 유격대와 그 활동 시기 및 공적이 유사한 ‘백골병단’을 참고했다. 이를 바탕으로 비정규군 공로자와 그 유족에게도 1000만원을 준다는 계산이다.
백골병단은 1950년 12월 ‘국민 총동원령’ 소집을 통해 육군본부 직할 결사대 제11~13연대에 배속된 유격부대이다. 당시 채명신 중령(초대 주월 한국군사령관)의 지휘하에 인민군으로 위장해 적진 후방 지역에서 교란 작전을 펼치며 많은 전공을 올렸다. 817명 중 364명이 전사했으며 283명만이 생환했다. 공로금을 지급받은 생존자는 119명이다. 백골병단의 14.5%만이 공로금을 받은 셈이다. 1인 평균 1020만원(보상금 20만원+공로금 1000만원)을 받았다. 백골병단에 대한 공로금 지급에는 총 12억1000만원이 소요됐다. 백골병단에 대한 공로금 지급은 2004년 윤후덕 의원이 발의한 약칭 ‘6·25적후방공로자법’이다. 이 법은 2016년에 폐지됐다
공로금은 1000만원
켈로부대 출신들은 공통으로 공로금의 액수가 적다고 말한다. KLO8240부대전우회총연합회 김상기 회장은 지난 4월 13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5명 중 4명 이상이 전사하며 극비 임무를 수행했는데도, 그동안 국군 소속이 아닌 유엔군 소속이라 보상을 못 하겠다고 버티던 정부가 생색내기 수준으로 그런 금액을 제시한다면 누가 납득하겠느냐”며 “국가가 방치했던 과오를 인정하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대원들에게 제대로 예우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6·25 당시 평안북도 일대에서 활약한 KLO8240유격백마부대 모임 회장을 맡고 있는 최성용씨는 “이번에 법안이 통과된 것은 다행이지만, 공로금이 너무 적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래는 보상금을 지급하려고 했으나, 액수가 줄어드는 바람에 공로금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최 회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켈로부대에 대한 보상금 지급 법안이 발의됐어요. 1인당 3000만원 수준으로 보상하고, 전체 예산은 약 1700억원 규모였습니다. 통과되는 줄 알았는데 법사위 문턱에서 막혀버렸어요. 당시 여당, 새누리당 의원들이 부정적이었습니다. 특히 검사 출신 의원 두명이 ‘예산이 너무 많이 든다’며 보상금 지급에 반대했죠.
그 사람들 인식이 ‘이런 식이면 임진왜란 때 있었던 일도 보상해줘야 한다’는 식이었죠. 제가 ‘당신들이 보수 정당 정치인이 맞느냐’며 따졌죠.
자꾸 돈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예산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우하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한 겁니다. 제주 4·3사건 희생자의 경우, 특별법을 만들고 법까지 개정해 희생자와 그 유족에게 1조원 이상을 배상하잖아요. 현재는 공로금이 1000만원 수준이라고 하지만 비정규군 등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위해 법을 개정해 보상 규모를 늘려야 합니다.”
최 회장의 부모는 모두 켈로부대 출신이다. 부친 최원모씨는 6·25전쟁 당시 유격백마부대를 이끌며 북진(北進)호 함장으로 활약했다. 북위 40도선에서 활동하며 서해에서 적선(敵船)을 섬멸하고 중공군의 식량 등을 노획했다.
전쟁이 끝나고 충남 서천에서 어업 활동을 하던 최원모씨는 1967년 연평도 부근에서 조업하다가 납북됐다. 지금까지 생사를 확인할 수 없다.
2013년 정부는 납북된 최원모씨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수훈했다. 최씨를 대신해 아들 최성용 회장이 대신 받았다.
아버지가 납북된 이후 최씨는 ‘납북자가족모임’을 만들어 납북자 구출, 국군포로 구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가 대한민국으로 귀환시킨 국군포로만 7명이다.
공로금 신청 예정 인원은 5870명
국방부는 한창 시행령을 만들고 있다. 오는 10월 14일부터 이 법이 시행된다. 이때부터 공로금 지급 대상자에게 공로금 신청을 받는다.
오는 9월에는 ‘비정규군 공로자 보상심의위원회’ 구성 등 위원회의 윤곽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공청회도 이쯤에 연다. ‘공로금의 액수는 1000만원이 맞느냐’는 물음에 국방부 관계자는 “그렇다”고 했다.
예산 규모가 617억원인 보상심의위원회는 5년간 활동할 예정이다. 617억원 중 위원회 수당과 운영비를 제외한 순수 공로금은 587억원이다. 국방부가 인정하는 비정규군인의 인원은 1만8994명인데, 왜 전체 인원의 3분의 1가량에만 지급할 수 있는 규모인 587억원일까.
국회 예산정책처는 비정규군인의 수는 1만8994명이지만, 상당수가 사망했다고 보고 추정 생존자를 4064명으로 봤다. 여기에 공로자의 유족 중 신청할 것으로 추정되는 인원을 1806명으로 추산했다. 이렇게 해서 대상 인원은 5870명이 됐다.
국방부 관계자에게 ‘공로금 신청자의 수가 5870명 이상이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 관계자는 “그렇게 되면 예비비 등을 반영할 것이므로, 공로자가 공로금을 받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추가로 ‘왜 유족 신청 추정 인원은 1806명밖에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관계자는 “비정규군인의 상당수가 젊은 나이에 전사(戰死)하는 바람에 남은 가족이 거의 없다. 또 이들은 주로 북한 출신이었기에 대한민국에는 이들의 직계 가족이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앞서 언급한 백골병단의 사례를 소개하자면, 백골병단에 속했던 817명 중 공로자의 유가족 자격으로 보상을 받은 이는 7명에 불과했다.
비정규군인이지만 훈장을 받았다면 공로금을 받을 수 있을까. 국방부는 공로금을 추가로 지급할 계획은 없다고 했다. 최성용 회장에 따르면, 1만여명이 넘는 켈로부대원 중 훈장을 받은 이는 약 30명이다.
비정규군 공로 인정, 보훈 정책에 큰 이정표
한기호 의원은 “이번 비정규군 공로자에 대한 공로금 보상법이 국가 보훈 정책의 큰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한 의원은 “6·25전쟁으로 수많은 희생을 치렀는데, 이 중에는 미처 알려지지 못한 소중한 희생도 많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켈로부대와 같은 비정규군”이라며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을 70년 가까이 제대로 챙기지도 못했는데, 지금이라도 챙겨드릴 수 있어 다행이다. 17년 만에 해결했다”고 했다.
‘공로금 액수가 적다’는 의견에 대해서 한 의원은 “법안 처리 과정에서 ‘보상금’이라는 표현이 ‘공로금’으로 바뀌고, 그 금액도 그리 많지 않아 아쉽다”면서도 “국가가 최소한의 예의를 갖췄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액수가 적다고 외면해 일을 미루기만 한다면 정작 혜택을 받아야 할 분들이 세상을 떠나고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기호 의원은 군인 출신답게 안보를 강화하고 제대로 된 보훈 정책을 펼치는 의정 활동을 하겠다고 했다.
“14~17세의 나이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소년·소녀병에 대한 예우, 6·25전쟁 당시 발생한 8만명의 국군포로 문제와 이분들에 대한 예우를 마련하는 데도 힘쓸 겁니다.”
한기호 의원실은 “6·25전쟁 당시 발생한 국군포로 문제를 해결하고 이들에 대한 예우를 마련하기 위해 국방부 등 정부 부처와 협의하며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06월 07일 ‘북한’ 언급 없고, 천안함 용사 시위하고, 軍 성추행 사과한 文의 현충일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현충일 추념사에서도 6·25 전범(戰犯)인 ‘북한’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5년 연속이다. ‘6·25’ 언급도 없었다. 현충일은 북 남침으로 6·25 참화를 당한 뒤인 1956년 전사자를 기리고자 제정한 날이다. 현충원에 잠든 영령도 대부분 6·25 전사자다. 이런 날에 국군 통수권자가 ‘북한’과 ‘6·25 남침’을 번번이 빠뜨리는 연설을 한다. 삼일절날 독립 얘기 안 하고, 5·18 기념식에서 5·18을 언급 않는 것과 뭐가 다른가.
문 대통령이 추념사를 읽는 사이 현충원 안팎에선 천안함 생존 장병들이 “천안함 폭침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라”는 시위를 했다. 문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북한 소행”이라고 밝힌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천안함 폭침 주범인 북 김영철을 불러 국빈 대접했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좌초설 등 괴담을 퍼뜨리던 사람의 요구에 따라 재조사하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보훈’을 강조했지만 천안함 생존 예비역 34명 중 국가유공자 인정은 13명뿐이다.
문 대통령은 추념식 후 성추행 피해로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중사를 조문했다. 그런데 2018년 해병대 기동 헬기 추락 사고로 5명이 순직했을 때는 영결식 직전까지 조문 인사도 보내지 않았다. 이듬해 아덴만에서 돌아온 해군이 숨졌을 때도 조화만 보냈다. 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군 내 부실 급식과 억울한 죽음을 낳은 병영 폐습에 대해 매우 송구하다”고도 했다. 지난 4년간 우리 군이 탈북민은 물론 취객과 치매 노인에게도 뚫리고 북 미사일을 놓치는 등 경계와 감시에 실패했을 때는 아무 말이 없다가 ‘급식’과 ‘성추행’에는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군 기강이 총체적으로 붕괴한 현실에 대해 해야 한다.
이인영 통일장관은 이날 “한미 훈련이 어떤 경우라도 한반도 긴장을 조성하는 걸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한미 훈련은 침략 연습’이란 북한 주장에 맞장구친 것이다. 방어 훈련이 어떻게 긴장을 조성하나. 이 장관은 “코로나 상황”도 언급했다.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은 ‘국군용’이라며 백신을 약속했고 그 백신이 도착하자 미 측은 “한미 연합군 준비 태세에 도움”이라고 했다. 코로나 걱정 없이 8월 연합 훈련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그때면 한미 연합군이 모두 백신을 맞은 후인데도 코로나 핑계를 대는 이유가 뭔가.
문 대통령은 재작년 현충일에 6·25 남침 공로로 김일성 훈장을 받은 사람을 국군의 뿌리인 것처럼 추켜세웠다. 그해 스웨덴 의회 연설에선 “남북은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눈 슬픈 역사를 가졌을 뿐”이라며 명백한 남침인 6·25를 쌍방 과실인 것처럼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비핵화 쇼’를 벌이는 사이 한미 훈련은 사실상 없어졌다. 국군은 ‘군사력 아닌 대화로 나라 지킨다’는 오합지졸로 전락했다. 현충일에 천안함 용사들이 항의 시위를 하고, 대통령은 군 성추행을 사과한다. 그 비정상적인 풍경이 참담한 군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6월 07일 ‘어 퓨 굿맨’ 배반한 법무관
방승배 정치부 차장
1992년 제작돼 한국에서도 흥행한 톰 크루즈, 데미 무어, 잭 니컬슨 주연의 영화 ‘어 퓨 굿맨(A Few Good Man)’은 실화를 바탕으로 관타나모에 있는 미 해병대 내 살인사건을 다룬 군사 법정 영화다. 고된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한 배려사병이 군 고위층에게 전출을 희망하는 편지를 보내고, 이를 안 소속부대 대령이 ‘코드레드’라는 특수기합을 명령한다. 얼차려 도중 병사가 숨지자 ‘단순 폭행치사’로 종결하기 위해 명령을 이행한 두 사병만 기소한다. 변호를 맡은 군법무관들이 구타와 사망의 조직적 은폐를 끝까지 파헤쳐 진실을 밝혀낸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어 퓨 굿 맨’은 미국 내에서 해병대가 스스로 부여한 ‘소수정예’라는 뜻이지만, 영화에서 정의를 위해 거대 조직과 맞서 싸우며 진실을 밝히는 법무관 팀을 연상시키는 중의적 의미로도 사용됐다.
30년 된 이 영화를 다시 소환하는 것은 최근 한국 공군에서 발생한 이모 중사 성추행 피해 사망사건을 얘기하기 위해서다. 영화에서 한 병사를 죽게 만들고 두 명의 병사를 희생양으로 만들며 진실을 은폐하려는 군부대의 폐쇄성과 폭력성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그나마 ‘어 퓨 굿 맨’이라도 있었지만, 이번 사건에는 ‘굿 맨’이 아예 없었다. 성추행을 당한 이후 ‘2차 가해’가 진행되는 동안 ‘벼랑 끝’에 선 이모 중사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혼자 발버둥 쳐야만 했다. 숨진 이 중사는 성추행 당시 상황이 녹음된 증거물(블랙박스 파일)을 직접 떼어내 군사 경찰에 제출했다. 이를 확보하고도 군 경찰은 가해자인 장모 중사를 구속하지 않았다. 군인이라는 신분 특성상 “부대 내에 거주하므로 도주 등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논리라면 모든 군인은 구속 수사를 하면 안 된다. 사건을 넘겨받은 공군 검찰이 가해자인 장 중사를 상대로 첫 피의자 조사를 한 건 55일 만인 지난달 31일로 파악됐다. 피해자가 사망한 이후였다. 장 중사는 성추행 사건 발생 3개월 만인 이달 2일에야 구속됐다. 그것도 지난달 31일 언론보도를 통해 이 중사 사건이 알려진 뒤 관련 수사가 국방부로 이관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중사는 국선변호인의 조력도 받지 못했다. 공군본부 검찰부는 이 중사의 성추행 신고와 관련해 피해자 조사 나흘 뒤인 지난 3월 9일 국선변호인(공군 법무관)을 선임해 줬는데 피해자 조사를 받을 때 이 중사 홀로 출석했다고 한다. 이후 국선변호인이 결혼하면서 신혼 여행을 다녀오고 코로나19 관련 격리조치 등 개인 사정 때문에 조력을 아예 못 받았다고 한다. 유족 측은 이 중사와 단 한 차례도 면담을 하지 않은 국선변호인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소했다. 명령과 복종이 강하게 요구되는 수직적 조직인 군대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21세기 한국 군대에 이런 사각지대가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 중사 어머니는 방송 인터뷰에서 “(딸이)하고 싶었던 게 군이었고, 군에 몸담았으니 군복을 입히자”며 이 중사에게 수의 대신 군복을 입힌다고 한다. 이 중사가 꿈꾸었던 군대는 폭력이 없고, 진실을 숨기지 않으며, 억울함이 있으면 해결해주는 ‘굿 맨’들로 가득한 그런 군대였을 것이다.
문화일보
06월 07일 여군 性추행 근본 대책과 强軍의 길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군이 왜 이럴까?” 불행히도 이 질문이 새삼스럽지 않다. 병사들 식사 문제로, 경계작전 실패로 국민을 실망시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때마다 군은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환골탈태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이 질문은 계속되고 있다.
이번 공군 부사관 성추행 사건의 경우 당연히 군 전체가 철저히 반성해야 하고, 사건은 물론 축소 및 은폐에 관련된 인사들에 대해서는 엄벌해야 한다. 사건 발생 후 조사와 조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점을 볼 때 공군 참모총장의 사임은 당연하고, 장관까지도 문책을 각오해야 한다. 2017년에 해군 대위, 2013년에 육군 대위가 성추행당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때도 군은 특별대책팀을 구성하거나 성범죄 근절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했었다.
이번에는 실질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방부에 성범죄만 담당하는 부서를 신설해 피해자가 전화로 보고만 하면 지휘계통과 무관히 일사불란하게 조사·처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군 내 여군의 근무 실태와 개선 노력을 6개월 단위로 종합해 국회와 국민에게 보고할 필요도 있다. 성 문제 해결 없이 혼성 군대의 전투력을 보장할 수 없다.
동시에 군 수뇌부들은 빈번한 사건 발생의 근본 원인 분석과 개선에도 노력해야 한다. 군이 실전적 훈련을 통한 전투준비태세 고양보다 정치권 눈치를 보거나 사고 예방에만 몰두함으로써 군 기강과 구심점이 약해져 이런 사건들이 발생하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최근 군 수뇌부들이 항재전장(恒在戰場) 정신이나 실전적 훈련을 강조하고 감독했던가? ‘파이트 투나이트(Fight Tonight!)’라는 구호를 구현할 수 있도록 철저히 훈련하고 즉각대응태세를 구비하도록 독려했던가? 오직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군대 육성에만 매진하라. 군의 구심점이 생기고 기강이 확립될 것이며, 각자가 맡은 직분에 충실해 불미스러운 사건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정치지도자들의 책임도 크다. 군이 전투준비태세에 매진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적(敵)’이 없어졌기 때문인데, 그들이 압박했기 때문이다. 국방백서에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지 못하게 하고, 비핵화한다면서 남북 간 군사합의를 압박하고, 북핵 대비를 약화시킨 게 정치지도자 아닌가? 휴전 상태로 대적 중인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지 못하는 ‘홍길동 군대’가 어찌 실전적 훈련에 몰두하거나 엄정한 기강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올해 초 일부 여당 국회의원들은 한·미 연합훈련을 하지 말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정부는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 노력하더라도 군은 핵무기를 포함한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데 전념하도록 정치지도자가 여건을 보장해 줘야 한다. 군사 지식에 정통하면서 강도 높은 훈련으로 부대의 전투력 강화에 매진해온 지휘관들을 진급시켜야 한다. 군부대를 방문해 전투준비태세를 점검하고, 지휘관들의 고충을 들어줘야 한다. 국군통수권자부터 자신의 과업에 충실한 다음에 군을 질책해야 한다.
군이 국민 보호라는 본연의 임무에 전념하는 과정에 실수를 했다면 상당수 국민이 양해할 것이다. 군이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오로지 국민만 생각하면서 무실역행(務實力行)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도록 정치권으로부터 군을 보호하는 것이 군 수뇌부의 최우선 임무다.
문화일보
06월 07일 “시키는 대로 해야 장기복무심사 통과”…항의하면 배신자 낙인 찍고 인사보복
■ 고질이 된 병영문화 폐습 - ① ‘까라면 깐다’ 강압문
인사권 쥔 채 위계 의한 성폭력
상부 보고되면 은폐·무마 압박
女부사관 74% “참고 지나간다”
성추행 피해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여군 부사관 이모 중사 사건과 관련해 군 인권전문가들은 군 조직 특유의 상명하복식 위계적·폐쇄적 조직문화, 이른바 ‘까라면 깐다’ 식 강압적 문화인 ‘깐다이즘’과 집단주의·보신주의를 근본 원인으로 지적했다.
앞서 군 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은 6일 현충일 추모사에서 “병영문화 폐습에 대해 매우 송구하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김은경 젊은여군포럼 대표는 지난 3일 한국국방연구원(KIDA)에서 열린 정책세미나에서 “여군 부사관 인권침해의 가장 큰 내용은 군대 예절로, 상급자가 하급자를 대할 때 반말과 마구 대하는 태도인 ‘까라면 깐다’ 식 비틀어진 위계질서를 의미하며 이 위계질서는 아래 계급으로 갈수록 더 열악한 군 복무 환경을 만든다”고 비판했다.
폐쇄적 조직문화인 깐다이즘에 항의하면 조직의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인사불이익 등 가혹한 보복을 당한다. 2년 전 공군 여군 장교 A 대위는 상관인 B 대령의 강요에 의해 술자리에 동석했다가 B 대령 지인에게 택시 안에서 성추행당해 신고했지만 가해자와 B 대령은 무혐의 처분됐다. B 대령이 A 대위의 근무평점과 성과상여급 모두 평가 최하위 인사불이익을 줬다는 의혹에 대해 국방부가 뒤늦게 감사에 나섰다.
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대부분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는 군대 내 상급자고, 피해자는 비정규직 군인이라는 열악한 위치에 있거나 계급이 낮은 군인들”이라며 깐다이즘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2013년 10월 강원 육군 모부대에서도 여군 장교 오모 대위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상관의 위계에 의한 성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부대 상관 노모 소령은 오 대위가 성관계 요구에 응하지 않자 10개월 동안 매일 보복성 야간근무를 시키고 욕설을 하는 등 오 대위를 괴롭혔고, 부대원들 앞에서 오 대위에 대해 “얼굴에 색기가 흐른다”는 등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죄질이 악질인데도 노 소령은 2년 징역형에 그쳤다. 그로부터 8년 만에 오 대위와 닮은꼴인 성추행 은폐·무마 압박에 의한 이 중사 사건이 재발했다. 군의 솜방망이 징계가 성범죄를 조장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장병 152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부사관 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군 부사관 중 성희롱을 당했거나 목격 또는 소문을 들었다고 응답한 사례는 61건에 달했다. 남자 부사관(30건)의 두 배가 넘었다.
인권침해가 발생해도 여군 부사관들은 문제 제기를 꺼린 것으로 나타났다. 실태조사에서 인권침해 대응방법으로 ‘참고 지나간다’고 응답한 사례가 156건으로 전체 여군 부사관 응답의 74.3%에 달했다. 이유는 ‘부대가 시끄러워질까봐’(28.1%) ‘시정요구가 소용없음’(21.6%) 등이 꼽혔다.
지난해 10월 더불어민주당 소병철 의원에게 제출한 군내 폭행 가혹행위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6∼2020년 총 4275건이 발생했다. 2011∼2015년 발생 건수(3643건)에 비해 600여 건이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06월 07일 5년 내내 ‘北’ 뺀 文 현충일 추념사와 천안함 장병 분노
현충일은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애국 선열과 국군 장병 등 호국 영령을 기리는 국가 추념일이다. 6·25전쟁 참전용사와 민간 희생자들을 기리는 날로 시작됐으며, 지금도 북한 김일성의 남침에 목숨 걸고 맞섰던 호국 의지를 되새기는 날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5년 임기 내내 북한의 침략 책임을 따지지 않았고, 추념사에서 ‘북한’이라는 표현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국가 지도자이자 군 통수권자로서 무엇을 추구하는지 모호하다.
임기 중 마지막 현충일인 6일 문 대통령의 추념사를 보면, 독립유공자, 참전용사, 천안함 호국 영령, 해외 참전용사를 거명했지만 이들의 희생을 낳은 북한의 도발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다. “애국심과 인류애로 무력 도발에 맞섰다”고 했을 뿐이다. 문 대통령은 2018년 추념사에선 아예 한국전쟁이라고 했다. 국립서울현충원은 6·25전쟁 전사자를 위해 1953년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마련한 동작동 국군묘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이 북한 책임을 외면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북한에 면죄부를 주는 효과를 낸다. 6·25 전범 규명·처벌은 통일을 위해 언젠가 넘어야 할 문제이지만, 지금처럼 북한 위협이 계속되고 북한 정권의 반성이 없는 상황에선 한 치도 물러서선 안 된다. 이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최우선 책무다.
천안함 생존 장병들이 현충일에도 천안함 폭침과 관련, 북한 책임에 대한 문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는데,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문 대통령은 6일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빈소를 방문해 “국가가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면서도 “병역 폐습”을 거론했다. 본인 책임부터 통감해야 한다. 어느 조직이든 내부 문제가 있지만, 군 기강 해이는 문 정권의 대적관 붕괴로 더 악화했다.
문화일보 사설
06.08 병사의 귀향, 그리고 국가의 영혼
이라크에 파병된 미 해병대원 챈스 펠프스(Chance R Phelps) 일병은 2004년 4월 고향에 돌아왔다. 이라크에서 독일로, 대서양 건너 미국, 그리고 와이오밍주 듀보이스에 이르는 긴 여정이었다. 운명의 그날, 챈스는 호송 임무 중 머리에 치명적 총상을 입고 전사했다. 19세의 꽃다운 나이였지만, 군인으로서 그의 죽음은 특별하지 않았다. 전장에서는 어쨌든 누군가 죽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9년 ‘챈스 일병의 귀환(Taking Chance)’이라는 홈 무비가 제작되었다. 챈스의 유해가 고향에 이송되는 과정을 다큐멘터리처럼 담담하게 그렸다. 전쟁 영화지만, 총 쏘는 장면 하나 없다. 그러나 눈물이 절로 흐른다.
이 영화는 전쟁 자체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하지만 정치학자의 눈에 이 영화는 특별한 점이 있다. 미국이 국가의 영혼을 어떻게 창조하고, 또 어떻게 그것을 존엄하고 고결하게 만드는지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는 저마다의 영혼을 가지고 있지만, 저절로 존엄하거나 고결해지지는 않는다. 인상적인 것은 미국민이 이 일에 스스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참여한다는 사실이다. 챈스 일병의 귀향 과정을 보자.
챈스의 유해는 비행기를 두 번 타고, 다시 자동차로 달려 듀보이스에 도착했다. 비행기에 탈 때 기장과 공항 노무자들이 도열해 경례를 올렸다. 그런 근무 수칙이 있는 건 아니다. 스튜어디스는 가족에게 십자가 목걸이를 전했다. 착륙 전 기장의 안내에 따라 승객들은 모두 조용히 자리에 머물러, 유해를 에스코트하는 군인을 먼저 내리게 했다. 대형 트레일러 운전사는 챈스의 운구차를 보자 모자를 벗고, 라이트를 켜고, 앞에서 길을 인도했다. 모든 차들이 운구차를 앞지르지 않고 전조등을 켠 채 뒤따랐다. 콜로라도의 광활한 대지와 하늘을 배경으로 작은 추모 행렬이 만들어졌다. 챈스는 가족과 친구, 주민, 참전 용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마을 공동묘지에서 영원한 안식을 찾았다. 누구도 울부짖지 않는다. 작은 흐느낌, 조용히 흘러내리는 눈물만이 유족의 슬픔을 보여준다. 강인한 절제, 그것은 죽음을 넘어선 사자(死者)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원래 미국의 시민 문화는 군대와 군인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미국민은 압도적으로 자유주의자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인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유주의 등 온갖 이념의 소유자인 것과 대조적이다. 자유주의는 군 또는 군사적인 것과 대립적이다. 자유주의는 인간 본성의 선을 믿으며, 그 핵심은 개인주의이다. 하지만 군은 인간의 내면에 악이 깃들어 있다고 보며, 본질적으로 집단주의이다. 실제로 1784년 미국 대륙회의는 상비군이 공화제 원칙에 어긋나고 전제정치의 도구로 악용된다는 데 동의하고, 독립전쟁을 치른 정규군을 해산시켰다.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며 미국민은 군에 대해 현실적 견해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자유주의의 영향력은 근본적이다. 자유주의의 이상적 군인상은 시민군(citizen-soldier)이다. 시민이 바로 군인이다. 전장에서의 죽음 또한 군인의 직업적 소명보다는 자유와 평화에 대한 시민의 헌신으로 본다. 그래서 그 사람을 영원히 잊지 않는 것, 그것이 동료 시민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챈스에 대한 시민들의 각별한 배려도 그 때문이다. 국가도 최상의 명예를 부여하고, 존엄성을 갖춰 예우한다.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도 먼저 거수경례를 한다. 미국민은 의무보다 마음으로부터 그렇게 한다. 토크빌이 말한 미국민의 ‘마음의 습관(habits of the heart)’이다. 전사자의 숭고함에 대한 그들의 기억은 유산이 되고, 마침내 국가의 영혼이 된다. 그렇게 애국심이라는 시민 종교가 탄생한다. 그 국가는 이제 ‘신성한 계약(covenant)’의 공동체로 승화했다. 이게 조국이다. 국가는 절로 조국이 되지 않는다.
영혼 없는 국가는 지속될 수 없다. 대한민국의 영혼은 안녕한가. 천안함 음모론을 믿는 한 네티즌은 “천안함 생존 쓰레기들아. 어떻게 한 마리도 양심 선언하는 놈이 없냐”는 글을 올렸다. 그 생존자 16명이 엊그제 현충일에 천안함 폭침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라고 절규했다. 전 천안함 함장 최원일씨는 “냉대와 홀대는 익숙해졌다. 우리 사회가 천안함을 잊으려고 하는 것이 두렵다”고 고백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전쟁의 위험성이 높은 나라다. 하지만 천안함조차 조롱받고 망각되는 이런 나라에서 자유와 평화가 온전할 수 있을까? 나라를 위해 몸 바친 한 명의 병사를 돌보는 것은 한 나라를 세우는 것과 같다. 산 옆 외딴 골짜기에 혼자 누운 국군이여,
“당신의 희생에 감사드립니다(Thank you for your service).”
조선일보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06.08 정략적 '가짜 종전선언'은 안 된다.
지난달 말 문재인-조 바이든 대통령 간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 관계가 달콤한 밀월로 접어든 모양새다. 문 대통령이 이끌고 간 4대 그룹 대표가 44조원의 투자 패키지를 꺼내자 바이든 행정부는 101만 회분의 얀센 백신 보따리를 보내왔다. 이번 회담에서 가장 눈길을 끈 건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를 강조했다"는 두 정상의 공동성명이었다. 중국의 가장 예민한 부분을 긁은 셈이어서 즉각적인 비난 성명이 나왔다.
중국을 향해 끊임없이 러브콜을 날려온 문 대통령이었기에 이런 언행은 참으로 의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미·중 간 균형외교에서 돌연 미국 쪽에 선 건 문 대통령만이 아니다. 그의 동지인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그랬다. 노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이어 이라크 파병까지 결행하자 진보 진영으로부터 무수한 비난이 쏟아졌다. 노 대통령이 "국민을 기만한 정권"이란 비난까지 무릅쓴 이유는 무엇이었나.
정상회담 계기 한·미 밀월 관계로
북·미 간 종전선언 물밑 접촉 소문
잘못된 협상카드 낭비, 지탄 받을 일
당시 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던 문 대통령은 자서전『운명』에서 이렇게 썼다. "당시 북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그들(미국)의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사고와 논리는 관성을 갖기 마련이다. 이번에도 같은 논리가 반복됐을 거다. 그렇다면 문 정권이 중국의 분노조차 감수하며 추진하려는 목표는 무엇일까. 그간의 언행으로 미뤄볼 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즉 남북 교류 재가동일 공산이 크다.
여기에 정권이 목을 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문 대통령이 남북관계에 올인할뿐더러 정략적으로도 매력 만점의 카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8년 두 번의 남북 정상회담 직후 문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 모두 수직 상승했다.
그래선지 요즘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한 북·미 간 물밑 교섭이 한창이란 소문이 돈다. 종전선언이란 물리적 충돌은 끝나고 평화가 정착됐음을 선언하는 정치 행위다. 평화협정과는 달리 몇 번의 회동만으로 합의할 수 있으며 법적 구속력은 없다.
그럼에도 한반도에서 종전선언이 발표되면 파급력이 엄청날 수 있다. "평화가 뿌리내렸다는 데 주한미군이 왜 필요하냐"는 물음이 나올 게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요즘 미 워싱턴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이 논의되고 있는 듯하다. 지난달 18일 미 상원에서 열린 폴 라카메라 주한미군 사령관 인준 청문회에서 종전선언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질문에 나선 팀 케인 상원의원은 "그간 한반도에서는 평화협정 논의조차 없어 북한 정권이 '곧 전쟁이 다시 날 수 있다'며 현 상황을 악용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케인 의원은 "한·미가 더는 북한과 전쟁 상태가 아니며 적대적인 관계를 원치 않는다고 선언하면 주한미군의 임무 수행에 지장을 주느냐"고 라카메라 내정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라카메라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상원의원이 그냥 종전선언 이야기를 꺼낼 리 없다. 워싱턴 내 종전선언 논의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일 터다.
평화통일이 진지하게 진행된다면 어느 시점에 종전선언이 이뤄지는 게 바람직할 수 있다. 중요한 협상 카드로 활용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 시점에 종전선언을 하는 게 맞느냐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비록 무력 충돌은 없어도 현재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말할 수 있나. 세계적 평화론자인 요한 갈퉁은 평화를 두 가지로 나눴다. 살육만 멈췄지 전쟁의 위협은 유지되는 '소극적 평화'와 양측 간의 평화적 교류와 진정한 협력이 이뤄지는 '적극적 평화'다.
우리는 무늬만 평화인 가짜 종전선언을 원치 않는다. 핵무기로 무장한 북한이 끊임없이 남측을 위협하는데 어떻게 평화 운운할 수 있나. 특히 문 정권이 정략적 술수의 일환으로 종전선언 카드를 사용하려 한다면 이는 잘못된 일이다. 진보든, 보수든 후대의 정권이 적당할 때 요긴하게 써야 할 '통일을 위한 화살'을 낭비하는 건 지탄받아 마땅할 일이다.
중앙일보 남정호 기자
06.09 이번엔 “천안함 함장이 부하 水葬” 이게 정권 본심일 것
▲천안함 최원일 함장 등 생존 장병들이 6일 서울현충원에서 시위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민주당 조상호 전 부대변인이 7일 “천안함 함장이 자기 부하들을 다 수장(水葬)시켰다”고 했다. “한미 연합 훈련 중이었는데 천안함이 폭침당한 줄도 몰랐다는 것은 지휘관 책임”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북한이 공격했다는 사실은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당시 한미 훈련이 천안함에서 170㎞ 떨어진 곳에서 이뤄졌다는 사실도 밝히지 않았다. 다른 출연자가 “함장이 수장시킨 것은 아니다”라고 했는데도 그는 ‘함장 책임’이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천안함 폭침 책임을 공격한 북한이 아니라 피해자인 함장에게 돌리는 것이다. 그는 “함장이 승진했다”고 했지만 함장은 10년 넘게 중령에 머물다 올 초 대령을 달고 바로 전역했다. 당시 정부가 관련자 승진으로 ‘무엇을 입막음하려 했다는 음모론이 판친다’고도 했다.
당의 전 부대변인을 고위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이 사람의 주장이 이 정권의 본심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얼마 전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천안함 좌초설 등을 유포하던 사람의 요구에 따라 천안함 폭침을 재조사하려고 했다. 이는 한 가지 사례일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공식 석상에서 천안함 폭침을 ‘북한 소행’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폭침 주범인 북 김영철을 불러 국빈급 대우를 했다. 천안함을 ‘우발적 사고’라고 했던 사람을 통일장관에 앉혔다. 국방장관조차 천안함 등 북한 도발을 “불미스러운 충돌”이라고 했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 대부분은 천안함 폭침을 언급도 않거나 ‘사건’ 등으로 얼버무리고 있다. 2018년 남북 이벤트가 추진되자 KBS는 ‘천안함 괴담’을 재탕해 내보내기까지 했다. 그때마다 천안함 생존자와 유족은 피멍 든 가슴을 쳐야 했다.
정권 사람들은 선거 때만 되면 유족을 위로하는 듯한 언사를 한다. 하지만 괴담을 퍼뜨리던 자신의 과거에 대해 ‘지나쳤다’고 사과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틈만 나면 ‘북한 아닌 남 탓'을 하거나 음모론을 꺼낸다. 폭침을 명령한 김정은은 이 사람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조선일보 사설
06.09 여군의 죽음
얼마 전 여성징병제, 군 가산점 논의가 한창일 때 누군가 “제대 후 보상보다 현역 때 보상에 더 신경 쓰라”는 글을 올렸다. 군대를 다녀올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게 급선무란 얘기다. 국방예산 52조원 시대에 1식 4찬 기본지침도 지켜지지 않은 부실 급식이나 성폭력 피해 여군의 사망 등 잇따라 전해진 군의 실상은 충격적이다. 신세대 장병에게 일과 후 휴대폰 사용을 허가하는 등 ‘달라진 군’은 허울뿐이었다.
특히 성추행 피해를 신고했지만, 구제는커녕 2차 가해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부사관 이모 중사 사건은 참담함을 자아낸다. 혼인신고 당일 세상을 등졌다. 2013년 육군, 2017년 해군에서도 유사한 비극이 있었다. 그때마다 군은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각종 대책을 내놓았지만 소용없었다. 이번에도 공간 분리 등 피해자 보호 매뉴얼이 철저히 무시됐다. 가해자는 두 달 넘게 조사 한번 안 받았고, 피해자는 국선변호사 면담 한 번 하지 못했다. 부대 전체가 조직적 은폐에 나서 "살릴 수 있는 사람을 군이 죽인"(군인권센터) 사건이다. 군 경찰은 성추행 피해는 빼고 '단순 변사'로 국방부에 보고했다.
피해자보다 가해자 감싸기 급급
상명하복 조직문화가 만든 비극
미온적 군사법정, 셀프수사도 문제
공군은 2년 전에도 성추행 방조 사건을 덮고 피해자에게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가해자가 공군 경찰 부사관인, 여군 숙소 침입ㆍ불법촬영 사건도 수사를 미루다가, 군인권센터 폭로가 나오자 구속 조처했다. 이명숙 국방부 양성평등위원장의 말대로 "(군에 성폭력 관련) 제도는 넘치는데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게 문제"다.
여군을 동료 아닌 여성으로 성적 대상화 하는 마초 문화, 군 기강과 인권은 공존할 수 없다는 믿음, 상명하복ㆍ 자기 보전 본능이 강한 폐쇄적 조직문화 등이 군을 성폭력의 온상으로 만드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군 성폭력 사건을 군 수사기관이 '셀프 수사'하는 모순, 계급장 붙인 군인들이 판ㆍ검사를 맡는 군사법원의 미온적 처벌도 문제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2015년~2020년 6월 군 형사사건으로 입건된 성범죄 사건 총 4936건 중 기소된 사건은 44%(2173건)에 그쳤다. 어렵게 기소되더라도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는 10.2%였다. 같은 기간 민간인들의 1심 실형 선고 비율(25.2%)보다 15% 포인트 낮았다.
차제에 군사법원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군 기밀 누설·군무이탈 등 군사범죄 아닌 일반 형사범죄는 민간 법원이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019년 보통군사법원에 접수된 사건 중 군사범죄는 8%에 불과했다(형사정책연구원). 독일·네덜란드는 군사법원과 민간법원을 혼합 운영해, 성범죄 같은 일반 형사범죄는 민간법원이 맡는다. 미국·영국에는 군사법원이 있지만, 2심부터는 민간법원이 맡는다. 특히 미 바이든 행정부는 군 성폭력 사건의 수사ㆍ기소를 군 지휘체계에서 분리해 독립적 군 검찰에 맡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세계적으로는 프랑스· 일본· 대만처럼 아예 평시 군사법원을 운영하지 않는 나라가 더 많다.
최근 우리 사회는 여성징병제라는 의제를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성 평등에 대한 반대급부로 여성 징집을 주장하는 목소리에 정치인들이 호응하면서다. 젊은 여성들도 전향적이다. 그러나 지금 같은 남성 중심적 군사문화가 완고한 가운데, '여자도 군대 가라'는 주문은 빗나가도 한참 빗나갔다. 징병제든 모병제든 여자도 얼마든지 군대 갈 수 있지만, 성 평등하고 인권 친화적 병영 문화가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2013년 상관의 성추행과 협박, 가혹 행위 등에 시달리다 약혼자를 두고 생을 마감한 육군 오모 대위는 "저는 명예가 중요한 이 나라의 장교입니다. 정의가 있다면 저를 명예로이 해주십시오"라는 마지막 글을 남겼다. 누군가 죽어야만 그 고통에 귀 기울이는 사회는 너무도 잔인한 사회다. 당시에도 조직적 축소ㆍ은폐 의혹이 있었고, 유서가 발견된 뒤 수사가 시작됐다. 결국 징역 2년 확정판결이 나왔으나, 1심 군사 법정은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중앙일보 양성희 기자
06.10 敵 없다고 하고 훈련도 안 하는 軍, 1인당 1억 쓰는 오합지졸
서욱 국방부 장관은 성추행당한 공군 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당일 ‘단순 사망 사건’으로 알았다고 9일 밝혔다. 사흘 뒤에야 진상을 보고받았다고 했다. 성폭력 관련 사망 사건은 내용을 바로 보고해야 한다는 규정이 국방장관에게도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중사의 비극도 가해자 분리 등 규정과 규율이 제대로 지켜졌으면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국방부가 ‘뒷북 수사’에 나서자 육·해·공에서 성추행 피해 신고가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군 기강이 총체적으로 붕괴한 군대 모습이다. 어떻게 전쟁에 이길 수 있나. 부실 급식과 조리병·조교 반발 등도 군기 문란의 결과다. 북한 선전 도구가 이날 성추행과 부실 급식 등을 거론하며 “남조선군의 고질적 병폐”라고 조롱하는 지경이 됐다.
지금 대한민국에 군(軍)이 있나. 공군 법무관은 7개월간 19일밖에 정상 출근하지 않고 무단 결근, 허위 출장 등을 일삼다 적발됐다. 일부 군의관은 실리콘으로 지문을 뜬 뒤 ‘대리 출퇴근’을 해오다 들켰다. “엄마가 화나게 한다”는 핑계로 3년 새 124번이나 지각한 군의관도 있었다. 상병이 야전삽으로 여성 대위를 폭행하고, 남성 부사관이 남성 장교를 집단으로 성추행하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장교들은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민원’과 싸우며 병사들 눈치를 본다고 한다. 병사 부모 수만 명이 가입한 인터넷 사이트엔 ‘부대 민원 넣는 법’ 등이 올라온다. ‘군부모’들은 자식 군 생활에 시시콜콜 간섭하고 간부들은 이런 부모 요구에 휘둘린다. 군대가 유치원인가. 어떻게 적과 싸워 이기나. 싸우기나 할 수 있나.
우리에게는 북한이라는 명백한 적(敵)이 있다. 핵무장 등 중무장을 한 120만 군을 보유한 적이다. 합리성을 결여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폭력 집단, 범죄 집단이다. 수많은 도발을 자행해 해친 우리 국민이 부지기수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이런 적이 갑자기 없어졌다고 한다. 국방 백서에서 “북한은 적”이라는 표현을 뺐다. 남북 평화 이벤트로 표 얻는 데만 골몰한다. 북한이 싫어한다고 한미 연합 훈련도 안 한다. 이런 대통령에게 장군들은 아첨하며 진급할 욕심에 여념이 없다. ‘군사력 아닌 대화로 나라를 지킨다'고 선언했다. 세계 역사에 전무후무할 일이다. 눈앞의 적을 보지 않기로 한 군대, 훈련 안 하는 군대에 기강이 있을 리 없다. 지금 한국군이 그렇다.
수류탄 사고 한번 났다고 1년 이상 수류탄 투척 훈련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 사이 입대한 병사들은 수류탄을 던져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40㎞ 행군에 부대원 530명 중 230여 명이 아프다고 빠졌다고 한다. 연병장에 나온 300여 명 중 180여 명은 물통만 찼고 100여 명은 빈 군장을 들었다. 지휘관이 제대로 훈련하라고 지시하자 ‘병사에게 고통을 준다’며 해임하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요즘 병사는 18개월이면 제대한다. 군인으로서 야전의 기본 능력을 갖출 만하면 전역한다. 병종(兵種) 간 호흡도 맞을 리 없다. 이젠 지휘관 명령도 먹히지 않는다. 보통 일이 아니다. 국방 예산이 50조원을 넘는다. 50만 군대가 1인당 1억씩 쓰는 막대한 액수다. 그 돈으로 무엇을 했나. 국방이 튼튼해졌나. 오합지졸 군대는 ‘국민 혈세 먹는 하마’일 뿐이다.
조선일보 사설
06.10 ‘천안함 수장’ 조상호, 페북 사과… 생존장병 “끝까지 책임 묻겠다”
/더불어민주당 조상호 전 부대변인이 지난 7일 방송 패널로 출연해 천안함 관련 발언을 했다. /채널A
천안함 최원일 전 함장을 향해 “생때같은 자기 부하들을 수장(水葬)시켰다”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킨 조상호 전 더불어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이 9일 페이스북에 “천안함 유가족과 피해 장병께는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했다.
그러나 최 전 함장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어 ‘반쪽 사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천안함 생존장병은 조 전 부대변인 글에 직접 댓글을 달고 “마지못해 하는 사과는 필요 없다”고 했다.
조 전 부대변인은 이날 “제 주변 분들의 애정어린 권고가 있었다”며 “제 표현 중 혹여 순국한 46 용사의 유가족, 특히 아직도 시신조차 거두지 못한 6인의 유가족과 피해 장병들에게 고통스런 기억을 떠올리게 한 부분이 있다는 지적, 깊게 받아드린다(받아들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처로(를) 떠올리신 유가족과 피해 장병께는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다시 한 번 46 용사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조상호 전 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이 9일 올린 사과문. /페이스북
이에 대해 천안함 생존장병 안재근씨는 댓글을 달고 “사태가 심각해지니 마지 못해 주변 권고로 그것도 SNS에 글로 하시는 사과는 필요 없다”고 했다.
안씨는 “수장, 함장 책임 등에 대한 생각에는 변화가 없으실 텐데 천안함 폭침 원인은 북한의 기습 어뢰 공격이었다고 표명하시고 함장님께, 유가족분들께, 생존 장병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세요”라고 했다.
안씨는 또 “내뱉으신 막말에 책임지시기 바란다”며 “외상후 스트레스로 지금까지 고통받고 있는 장병들, 유족들, 고인을 욕되게 하셔 놓고 이정도로 마무리 하려 하시네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천안함 생존장병 안재근씨가 조상호 전 민주당 부대변인 게시물에 댓글을 달았다. /페이스북
조 전 부대변인은 지난 7일 한 방송에서 천안함 희생자들 처우와 관련, “최원일 함장이라는 예비역 대령, 그분도 승진했다”며 “그분은 그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왜냐하면 그때 당시 생때같은 자기 부하들을 다 수장시켜놓고, 그 이후에 제대로 된 책임이 없었다”고 했다.
발언 파문이 커졌지만 조 전 부대변인은 당일 밤 페이스북에 “도대체 뭐가 막말이냐”며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몰라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는 군사 격언이 있다”고 했다. 또 “함장 지휘관이 폭침으로 침몰되는데도 뭐에 당했는지도 알지 못했다”며 “결국 46명의 젊은 목숨을 잃었다. 근데 함장이 책임이 없나”라고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9일 항의 방문한 최 전 함장과 유가족을 만나 “당대표로서 죄송하다. 조 전 부대변인의 잘못된 언어 사용에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고용진 당 수석대변인은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함장이 수장시켰다는 식으로 발언한 것은 사과해야 한다고 (조 전 대변인에게)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동하 기자
06월 10일 미8군 77년과 한국의 전략적 가치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평화와 민주주의연구소장
강대국의 전략적 판단 중요성
6·25 직전 애치슨라인이 입증
‘감수할 위험’이 잘못된 신호
美 군사력 덕분에 北야욕 좌절
전산놀이 같은 한미훈련 한심
북한에 또 잘못된 신호될 우려
한 국가에 닥치는 위기의 성격과 상황은 각기 다르지만, ‘비(非)강대국’의 운명이 강대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은 동서고금을 통해 불변이다. ‘제노사이드 팩스’는 1994년 1월 유엔 르완다 평화유지활동을 총괄한 로미오 달레어 사령관이 집단학살 경고를 위해 유엔본부로 보낸 중대한 정보였다. 하지만 유엔은 이를 그저 상존하는 종족 분쟁으로 치부했다. 이후 강경파 후투 정부군에 의한 투치족과 후투 온건파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로 80만 명 이상이 희생됐는데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거부권을 가진 미국은 개입에 반대했다. 1991년 소말리아 내전 개입 실패의 후유증에다 르완다는 미국에 전략적 가치가 없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6·25전쟁 전에도 북한의 남침 조짐에 대한 숱한 경고가 있었다. 그중 일본 주재 미국 극동사령부(FEC) G-2(정보관)인 찰스 윌로비 소장은 1950년 3월 ‘G-2 리포트’를 통해 구체적 정황을 보고했으나 워싱턴은 간과했다. 북한군의 움직임을 일상적인 활동의 연장선에서 ‘감수할 만한(tolerable)’ 위협이라 판단한 것이다. 당시 스탈린의 핵실험 성공, 마오쩌둥(毛澤東)의 중국 대륙 장악 등으로 세계 질서의 판이 요동치자 미국은 유럽과 인도차이나에 전략적 무게추를 뒀다. 하지만 잦은 남침 경고는 ‘거짓 소동(cry wolf)’으로 치부됐다. 이는 (애치슨선언과 더불어) 미국 개입을 우려해 김일성의 남침을 허락하지 않던 스탈린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줬다.
전쟁이 발발하자 안보리가 즉각 열렸고, ‘잠정조치’(즉각 정전과 병력 철퇴 요청)를 취하는 결의안 제82호가 채택됐다. 통상 이런 결의안은 일종의 권고이고, 유엔의 임무 수행 수단은 없었다. 따라서 소련은 남침과의 ‘무관계성’을 입증해 미국과의 정면 대립을 피하고자 안보리에 불참,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후속 결의안 제84호에 따라 미국이 유엔의 이름으로 참전 결정을 한 것은 소련에는 예상치 못한 악재였다. 유엔 집단안보 원칙이 처음 실현돼 16개국이 참전했지만, 한국군(49%)과 미군(46%)이 유엔군 대부분을 차지했고 나머지 파병국은 상징적 성격이 컸다. 게다가 한국군 전투 장비는 모두 미국에서 지원받았다. 결국, 북한과 소련의 적화야욕을 좌절시킨 것은 막강한 미국의 군사력이었다.
6·25전쟁에 가장 먼저 투입된 것은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창설돼 일본에서 군정을 담당하던 미8군이었다. 물론 미국의 개입은 한국을 방치해 소·중 주도의 공산화 도미노로 이어지는 것을 막으려는 자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미8군 예하 장병들은 듣도 보도 못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참전했다.
오늘은 미8군 창설 77주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 육군, 즉 미8군에 대한 찬반론이 분분하다. 지난 4년간 문재인 정부는 북한을 의식해 기동훈련 없이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의 한·미 연합지휘소훈련(CPX)을 해왔다. 더욱이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훈련 취소·축소가 잇따르자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은 한·미 훈련이 전산놀이가 됐다고 개탄했다. 정부·여당은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우리 군에 백신을 지원한 것은 동맹을 중시한 뜻깊은 선물이라 했지만, 그 행간에는 코로나19 핑계 대지 말고 연합훈련을 제대로 해 보자는 미국의 취지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조만간 워싱턴에서 ‘세계적 방위태세 검토(GPR)’ 보고서가 발표될 예정이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북한의 장거리 투발 수단과 핵무기 소형화 기술이 진화하고는 있으나 ‘감수할 만한 위협’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대신, 중국의 대만 침공을 상정해 유사시 인도·태평양사령부의 전략적 유동성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일본은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해 미국과 대중 견제의 보조를 맞추려 하고, 유엔사 후방지휘소인 주일미군의 규모와 역할도 확대되는 추세다. 한편, 2020년 2월 재소집된 미 5군단은 러시아 견제를 위한 나토(NATO)군의 보강 방안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우리의 전략적 가치를 어떻게 볼지, 미8군의 인력과 예산이 축소되는 건 아닌지, 북한에 잘못된 시그널을 주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
문환일보
06.11 호국 후회의 달
▲지난 2일 오후 충북 진천 우석대학교 진천캠퍼스에서 천안함 용사 고 김태석 원사의 딸 김해나씨가 제복을 입고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현재 김해나씨는 아버지와 같은 군인이 되기 위해 군사안보학을 공부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지난 4일 김해나(19)씨가 대전현충원 어느 묘비 앞에서 거수경례를 했다. 지난 2010년 천안함 폭침으로 전사한 아버지 김태석 해군 원사의 묘였다. 11년째 찾는 곳이지만, 올해 해나씨는 제복 차림이었다. “아버지 뒤를 이어 해군 간부의 길을 걷겠다”며 올 초 한 대학 군사안보학과에 입학했다. 지난 4월 해군 예비장교후보생 1차 필기 시험에도 합격했다. 후보생 시험에 최종 합격하면 대학 졸업 후 해군 장교가 된다.
아버지를 바다에서 잃은 해나씨가 바다를 지키겠다고 나선 건 아버지의 전우였던 해군 장병들의 격려 때문이었다. 그들은 늘 “해군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고 한다. 해나씨는 “군인 삼촌 중에 제가 군인되겠다는 것을 말린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며 “나라를 지킨다는 자부심, 애국심이 멋있게 느껴져 자연스럽게 해군을 선망하게 됐다”고 했다.
천안함 생존 장병 16명은 지난 6일 서울현충원을 방문했다. 국가 유공자 자격으로 초대받은 게 아니었다. 사건 1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국가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생존 장병들의 유공자 지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기 위해서였다. 천안함 생존 예비역 34명 가운데 21명은 여전히 국가 유공자가 아니다. 한 생존 장병은 “군인 여러분, 국가를 위해 희생하지 마세요. 저희처럼 버림받습니다”라고까지 했다.
이들은 현충일 행사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천안함 폭침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을 명확히 밝혀라’라는 문구의 피켓을 들었다. 최근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북한 소행으로 결론 난 천안함 폭침 원인을 재조사하자고 했다가 논란이 되자 철회했다. 좌초설, 자작극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데도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천안함 폭침은 북한 소행’이란 자명한 사실을 제대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 부대변인을 지낸 인사는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에게 “자기 부하들을 다 수장시켰다”는 막말까지 했다.
해나씨는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19년, 천안함 폭침 당시 기사를 모두 검색해 읽었다고 한다. 아버지를 잃은 뒤 일부러 보지 않으려 애썼던 것들이었다. 천안함 행사가 있는 매년 3월이면 ‘천안함이 어떻게 침몰이야, 좌초지’라는 얘기를 번번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라를 사랑한 아버지라도 이런 상황을 보시면 ‘이러려고 출동했나’ 땅을 치고 후회하실 것”이라며 “음모론을 말하는 이들에게 ‘천안함을 바르게 기억해달라’고 말하려면 나부터 모든 걸 빠짐없이 알아야 한다”고 했다.
‘나라를 지킨 이를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6월을 호국 보훈의 달로 지정했다. 하지만 천안함 생존 장병, 전사자 유가족들에게 지금의 6월은 ‘후회의 달’일 뿐이다. ‘이러려고 군인이 됐나’ ‘이러려고 내 아버지를 바다로 보냈나’ 하는 후회 말이다.
조선일보 강다은 기자
06월 14일 6·25와 김일성 회고록
장재선 문화부 선임기자
경기 용인의 새에덴교회가 6·25전쟁에 참전한 해외용사 초청행사를 오는 23일 연다. 지난 2007년부터 매년 진행해왔는데, 올해는 감염병 사태 탓에 작년에 이어 온라인 행사라고 한다.
이 소식을 들으니,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방미(訪美) 중 6·25 참전용사 앞에서 무릎 꿇은 자세를 취한 것이 떠올랐다. 문 대통령의 자세와 관련, 청와대 의전 비서관은 “바이든 대통령의 제안에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의도된 쇼가 아니라고 강조한 것인데, 문 대통령 의지가 아닌 외교적 예우였다는 점도 드러났다. 그렇더라도 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켜준 용사에게 경의를 표한 것은,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다. 인지상정 측면에서도, 한국의 반미(反美) 세력에 대한 미국 내 우려를 누그러뜨린다는 점에서도.
현 정권 주도세력인 586은 대학생 때인 1980년대에 6·25전쟁과 관련해 반미 세례를 받았다. 미국 사주를 받아 이승만 정권이 전쟁을 유도했다는 설(說)이 그 핵심이었다. 반공(反共)에 편향된 사상의 고무줄을 왼쪽으로 당긴다는 매혹적인 주문(呪文)이 곁들여졌다. 그러나 1990년대에 옛 소련과 중국 기밀문서가 풀리면서 이 주문은 힘을 잃었다. ‘매혹’이 아니라 ‘미혹’이었다. 30대 권력자 김일성이 오판으로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이 자료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스탈린이 중국과 미국을 끌어들여 서로 싸우게 하려는 옥셈으로 북의 개전을 허락했다는 것도 분명해졌다.
김학준 단국대 석좌교수에 따르면, 근년에 6·25를 연구한 국내 학자들은 양민학살 등 전쟁의 ‘안’을 심층 분석했다. 그중 미군의 오폭 피해를 다룬 것도 있다. 참상의 실체를 규명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런데 미군의 과오는 좌파 진영에 의해 과장되기도 했다. 피카소의 그림 ‘한국에서의 학살’ 사례가 그것이다. 좌·우익 민간인이 충돌한 신천 사건을 북한 공산당이 미군의 학살이라고 선전하자, 유럽 좌파가 반미 메시지를 담은 그림을 주문한 것이다. 피카소는 나중에 “반미 아닌 반전(反戰)을 담았다”고 했으나, 이 그림은 좌파의 선전 도구로 오랫동안 활용됐다.
앞으로도 6·25전쟁 실체에 대한 연구가 다양하게 이뤄질 것이다. 그러나 김일성의 오판이 참상을 낳았다는 본질은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땅에서 ‘김일성 회고록’을 출간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은 그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김일성 회고록이 그의 행적을 과장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6권에 나오는 보천보 전투 등은 김일성이 죽고 난 뒤에 그를 영웅시하려는 자들이 적은 것이다. 그런 왜곡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해방 전까지만 기록한 탓에 전쟁 오판으로 한반도를 초토화시킨 것에 대한 참회가 없다는 것이다. 그걸 굳이 한국 땅에 내밀며 남북 화해를 초든 것은, 전쟁 때 희생된 이들에 대한 모독이다.
그보다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가능하도록 자유민주주의를 지켜 준 이들을 기리는 데 힘써야 한다. 그게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마땅한 도리이다. 참전용사 초청행사는 그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국가보훈처도 새에덴교회를 따라 매년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 공동체가 가야 할 길을 민간이 열어 보인 셈이다.
문화일보
06월 14일 買票(매표)엔 펑펑 쓰면서 6·25 용사 약값 깎은 文정부 反호국
6·25전쟁에 참전해 나라를 지켰던 호국 용사들의 약값 예산까지 깎았다는 소식은, 문재인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인지 의심케 할 정도로 국민 개탄을 자아내고도 남는다. 며칠 뒤면 6·25 발발 71주년이라는 점에서 더욱 참담하다. 전국의 생존 유공자들은 26만여 명(5월 기준)에 달하고, 매년 2만여 명이 세상을 떠난다. 대부분 80∼90대 고령인 생존 유공자들은 약값으로만 한 달에 수십만 원씩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정부는 이를 외면한다.
참전 용사들이 국가로부터 약값을 지원받으려면 전국에 6곳뿐인 보훈병원에 직접 가야 한다. 참전 용사들이 많이 이용하는 전국 421곳의 민간 위탁병원에서는 진료비만 지원될 뿐 약값은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매월 34만 원의 참전 명예수당이 나오지만 대부분 약값으로 나간다고 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19년 국가보훈처에 위탁병원 진료에도 약제비 지원을 받도록 제도 개선을 권고했지만 2년째 그대로다. 연간 70억∼110억 원 수준인 예산안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예산 부족을 핑계로 전액 삭감했다고 한다. 보훈처와 기재부의 책임 떠넘기기가 가증스럽다.
문 정권은 선거를 앞두고 전 국민 지원금이나 가덕도 신공항처럼 득표를 노린 사업엔 예산을 펑펑 쓴다. 매표(買票)를 위해선 그렇게 하면서 호국 유공자 약값 예산은 사정없이 잘라냈다. 반(反)호국 패륜이다. 그러지 않아도 문 정권은 독립·호국·민주화 등 3대 보훈 대상 중 호국 유공자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홀대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문화일보 사설
06.14 최원일, ‘천안함 막말’ 휘문고 교사 고소...“제적 요구할 것”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이 14일 “천안함이 벼슬이냐”며 막말과 욕설을 한 서울 휘문고 교사 정모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최 전 함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민주당 전 부대변인에 이어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까지 사회 지도층의 망언과 욕설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어 이렇게 고소를 하게 됐다”며 고소장 접수 사실을 밝혔다.
최 전 함장은 “함께 분노해 주시는 국민께 감사드린다”며 “천안함 전우, 유가족뿐 아니라 나라를 지키는 군인 전체의 명예를 위하고 대한민국 국민과 군인의 분노가 희망으로 바뀔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향후 조상호 (전 민주당) 부대변인은 제명, (정모) 교사는 제적, 학교 징계를 강력히 요구하겠다”고 했다.
▲휘문고 교사 정모씨가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천안함 전 최원일 함장을 향해 쓴 메시지. /정씨 페이스북
휘문고 교사 정씨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천안함이 폭침이라 ‘치면’, 파직에 귀양 갔어야 할 함장이란 새X가 어디서 주둥이를 나대고 지X이야”라며 “천안함이 무슨 벼슬이냐? 천안함은 세월호가 아냐 병X아. 넌 군인이라고! 욕 먹으면서 짜X 있어 십X아”라고 올렸다.
정씨는 최 전 함장이 법적 대응 의사를 밝히자 게시물을 삭제하고 “앞에서 뵈었으면 하지도 못했을 말을 인터넷 공간이라고 생각 없이 써댄 행위를 반성한다”며 사과했다. 조상호 전 부대변인도 최근 방송에서 “천안함 함장이 생때같은 자기 부하들을 다 수장시켰다”고 했다가 논란이 일자 천안함 피해 장병과 유족들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최 전 함장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교육바로세우기운동본부, 자유민주통일교육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4일 서울 휘문고 앞에서 정모 교사 즉각 파면 및 천안함 망언방지법 제정 촉구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휘문고 앞에선 시민단체 회원들이 교사 정씨의 파면을 촉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천안함생존자 예비역 전우회장 전준영씨는 페이스북에 “휘문고 학생들을 위해 책을 보내야겠다”며 작년 출판한 ‘살아 남은 자의 눈물’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천안함 생존자들의 고통과 울분을 담은 이 책에서 전 회장은 “다시 태어난다 해도, 천안함 생존자로 살겠다”고 했다.
▲천안함생존자 예비역 전우회장 전준영씨가 작년 출판한 '살아 남은 자의 눈물'을 휘문고 학생들에게 보내겠다고 밝혔다. /페이스북
조선일보 김동하 기자
06.15 국정원 출신 與 김병기 “천안함 막말에 울컥, 욕 튀어나왔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시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5일 최근 여권 등에서 터져 나온 ‘천안함 막말’과 관련해 “대한민국 국민이면 상상하기 어려운 막말이 계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가정보원 출신인 김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46명의 순국하신 분들의 잘못이라면 이런 자들의 안위도 지키겠다고 성실히 복무한 죄밖에 없을 것”이라며 “갑자기 순직한 국정원 동료들이 오버랩되면서 울컥하며 욕이 튀어나왔다”고 했다. 같은 당 조상호 전 부대변인이 지난 7일 “함장이 당시 생때같은 자기 부하들을 다 수장시켰다”고 한 발언 등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로마는 패장을 처벌하지 않은 반면 로마의 적수 카르타고는 패장을 십자가형에 처했다”며 “지중해를 제패했던 카르타고가 로마에게 절멸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했다. 또 “91년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그 유명한 ‘사막의 폭풍’ 작전을 성공시킨 미국 장군들 중 다수는 월남전에서 매복 등에 걸려 팔, 다리를 잃은 군인들이었다”며 “미군은 매복에 걸려 부하를 잃은 책임보다 매복에 걸리고도 살아남은 경험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했다.
김 의원은 “천안함과 같은 폭침은 세계 2차 대전 이후 처음이었다고 한다”며 “46명의 군인이 순국했지만, 생존 장병들은 배가 두 동강 날 정도로 일격을 당한 극도의 혼란 속에서도 함장의 명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퇴함했을 정도로 훈련이 잘된 정예군”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최원일 함장은 아마 세계에서 폭침 경험을 가진 유일무이한 장교일 것”이라고 했다.
김 의원은 “승패는 병가지상사, 책임질 만큼만 져야 하는데 최 함장에게 과도한 책임만 물었을 뿐 만회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 같아 참 아쉽게 생각한다”며 “우울한 하루였다”고 했다.
이와 관련, 민주당 조상호 전 부대변인은 방송에서 했던 ‘천안함 수장’ 발언이 논란이 되자 천안함 피해 장병과 유족들에게 사과하면서도 최 전 함장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서울 휘문고 교사 정모씨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천안함이 폭침이라 ‘치면’, 파직에 귀양 갔어야 할 함장이란 새X가 어디서 주둥이를 나대고 지X이야”라고 욕설을 담은 막말을 올렸다. 정씨는 논란이 커지자 게시물을 삭제하고 사과문을 게재했다.
06.15 “북이 남한 혁명통일 포기” 해석은 정세 오판이다
북한이 지난 1월 치른 제8차 노동당 대회에서 당 규약을 개정한 데 대해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남한 혁명통일론’을 버렸다고 해석했다. 그는 북한이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이라는 표현을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발전을 실현한다’로 바꾸었고, ‘우리 민족끼리’ 대신 ‘우리 국가 제일주의’를 내세웠다는 사실을 판단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견강부회다. 좌파 세력은 이런 아전인수식 해석을 지렛대로 삼아 북한이 원하는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을 띄우고 있어 우려스럽다.
좌파, 노동당 규약 개정 내용 왜곡
김정은 전략 의도 제대로 읽어야
지난 2004년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김정일 위원장이 북핵이라는 무모한 선택을 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북한은 이후 6차례 핵실험을 강행하고 핵무장 국가의 완성을 선언했다. 북한이 2018년 4월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2017년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실험 성공에 따라 ‘핵 국가 완성’을 선언하면서 핵실험의 불필요성을 천명하자, 남쪽의 햇볕 정책론자들은 북한이 핵 포기를 선언했다고 왜곡·과장·홍보하는 역할을 했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지난해 8월 국회 보고에서 ‘김여정 위임 통치설’을 제기했지만, 이번 당 대회에서 김여정은 기존 직책이던 정치국 후보위원에서도 빠졌고 당 부장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처럼 햇볕론자들이 계속 오판하는 가운데 북한은 6·15 남북정상회담 20주년 다음날이던 지난해 6월 16일 개성 연락 사무소를 폭파함으로써 남측을 무시하고 조롱했다.
좌파의 곡해와 달리 8차 당 대회의 실질적 의미는 남북한 체제 경쟁에서 김정은이 절반의 승리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 절반의 승리란 군사·외교적 승리이고 남은 과제는 경제·문화적 문제와 통일 문제로 상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북한은 2018년 핵무장 국가 완성을 선언했고, 2018년 6·12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6·19 북·중 베이징 정상회담 등의 성과를 기반으로 스스로 전략 국가임을 자처했다. 이에 따라 이번 8차 당 대회 규약 개정에서는 체제 자신감에 기초해 전체적으로 과거의 거친 표현들을 현대적 표현으로 수정한 것이 본질이다. ‘우리 국가 제일주의’도 2012년 집권한 김정은이 북한식 사회주의국가 체제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 민족 제일주의와 충돌하는 개념도 아니다.
당 규약 개정 논란 중에 중요한 문제는 북한 주도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햇볕론자들이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다. 북한은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여 조선반도의 안전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하며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투쟁한다’고 명시했다. 강력한 국방력이란 표현도 핵 무력을 순화해서 표현한 것일 뿐이다.
2018년 이후 한반도 정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이 핵보유국, 즉 전략 국가를 자처하고 있는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수우파는 20세기 구 냉전시대 반공·반북주의에 기초한 ‘북한 체제 붕괴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진보좌파는 20년 전 탈냉전시대에나 부분적으로 통했던 햇볕정책의 변종인 북한의 ‘남한혁명 포기론’으로 정세 오판을 부채질하고 있다.
지금 동아시아 정세는 미·중 신냉전 시대가 심화하면서 대만 충돌론이 부상하고, 한반도 정세도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북한의 ‘남한혁명 포기론’을 내세워 한반도 정세가 엄중한 시점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철없는 불장난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략적 이해에 따라 북한의 현실과 전략을 오판하게 만들고 국가안보를 위기에 빠뜨리는 행위는 백해무익할 뿐이다.
중앙일보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06.15 300조 빚내 펑펑 뿌린 정권이 6·25 유공자 약값 없다니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4일 첫 공식 일정으로 대전현충원을 찾아 천안함 용사 묘역을 참배하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남편을 잃은 유족은 “(천안함 왜곡 등으로) 고등학생 아들이 상처를 많이 받았다”며 울먹였다. 희생 장병 아버지는 “아들들의 명예가 실추되지 않도록 신경 써달라”고 했다. 이 대표는 “누구보다 앞장설 것을 약속드린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유족과 생존 장병은 여전히 ‘상처’와 ‘명예’를 호소하며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게 대한민국 현실이다.
이 대표는 민주당을 향해 “5·18 왜곡에 대해 엄정하게 대응하는 만큼 천안함 피격 등도 편향 없이 가려야 한다”고 했다. 얼마 전 민주당 전 부대변인은 “천안함 함장이 자기 부하들을 다 수장(水葬)시켰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공격했다는 사실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천안함 폭침 책임을 공격한 북한이 아니라 피해자인 함장에게 돌리는 것이다. 함장이 ‘막말’ 징계를 요구했지만 민주당은 아무 조치도 안 하고 있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천안함 좌초설 등을 유포하던 사람의 요구에 따라 천안함 폭침을 재조사하려고도 했다. ‘북한 아닌 남 탓’을 하려는 게 정권 본심일 것이다. 최근엔 서울의 고교 교사가 “천안함은 세월호가 아니야 병X아. 십X아”라는 욕설까지 올렸다. 이게 이들의 속마음이다.
그런 한편으로 정부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6·25 참전 용사들의 약값마저 제대로 지원하지 않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참전 유공자들이 약값을 받으려면 전국 6곳뿐인 보훈병원을 가야 하는데 거동이 어려운 80~90세가 대부분이라 30만원 남짓한 참전 수당을 근처 병원에서 약값으로 소진한다는 것이다. 연간 100억원 정도면 해결된다고 한다. 이 정권은 선거용으로 현금 수십조원을 살포하고 타당성 조사까지 없앤 매표(買票) 공사에도 막대한 세금을 퍼붓고 있다. 정권 4년 동안 낸 빚이 무려 300조원이다.
운동권 사람들을 유공자로 지정하고 가족에게까지 의료·교육 지원 등을 하는 ‘민주 유공자 예우법’을 만들려고도 했다. 그렇게 펑펑 뿌리면서 6·25 유공자 약값에 쓸 돈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6·25 때 나라를 지킨 진짜 유공자들은 이제 26만여 명만 남았고 매년 2만명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보훈은 전몰 군경과 유족을 돕는 데서 시작했다. 적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려다 희생된 분의 공훈에 보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정권은 북한 침략을 막아낸 6·25 유공자와 북한 공격에 희생된 천안함 용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보훈을 우선시한다. 정권이 임명한 광복회장은 6·25 영웅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을 가로막기까지 했다. 천안함 유족은 아직도 눈물을 흘리고 6·25 참전 용사는 약값이 부족하다고 한다. 통탄할 일이다.
조선일보 사설
06.16 [단독]"軍, 천안함 폭침 징후 알고도 조치 안했다" 문건 공개
지난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을 앞두고 군 당국이 북한군의 공격 징후를 사전에 포착했던 정황이 담긴 문건이 15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공격 징후 사전 포착, 국방부 보고
’천안함 음모론’ 근거 없다는 방증
“특별한 조치 안해” 군 기강 지적
해군 수뇌부, 해당 문건 파기 지시
공격 징후는 북한군이 치밀하게 준비한 뒤 천안함을 폭침했다는 단서가 된다. 동시에 그간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당시 민주당 추천) 등이 제기했던 좌초설 등의 음모론을 부인하는 방증도 된다.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은 폭침 사건 당시 군 당국이 북한의 공격 징후를 포착해 군 지휘부에 관련 보고를 했는데도 적절한 조치에 나서지 않았던 정황을 담은 문건을 15일 중앙일보에 공개했다.
▲군 당국이 천안함 폭침 관련 북한의 공격 징후를 사전에 파악했다는 문건. 사진 최원일 전 천안함장 제공.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 일행 부대방문 행사 결과’라는 제목의 한장짜리 문건에는 김종태 전 기무사령관이 “천안함 사건 발생 며칠 전 사전 징후를 국방부ㆍ합참에 보고했으나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고 답한 내용이 적혀 있다.
김 전 사령관의 발언은 지난 2010년 8월 12일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점검회의) 위원단이 해군 2함대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나왔다.
구체적인 사전 징후와 관련해선 “수중 침투 관련 징후”라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이는 통상 한ㆍ미 연합군이 포착한 북한 지역 군사 활동과 관련된 신호정보”라고 풀이했다.
▲지난 2010년 3월 26일 북한 잠수정의 어뢰공격으로 전사한 장병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46용사 합동묘역. 김성태.
현장 토의에서 김 전 사령관은 “합참의장에게 조처를 하도록 여러 번 요구했으나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군 기강이 해이해졌다. 침투 징후를 예하 부대에 전파하지 않았고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점검회의는 천안함 사건 직후인 2010년 5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로 창설됐다. 이후 3개월간 안보 역량 전반, 위기관리 시스템, 국방 개혁 등을 면밀히 검토했다.
천안함 사건 발생 당시 기무사령관을 지낸 김 전 사령관은 이후 점검회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사전 징후 포착과 관련한 김 전 사령관의 발언이 나온 적이 있으나 군
당국의 문건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25일 최원일 전 천안함장(오른쪽 첫 번째) 등 천안함 유족 및 전우회 관계자들이 감사원 앞에서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규명위)의 '천안함 재조사' 결정 및 번복 경위에 대한 국민감사를 청구하기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최 전 함장은 “이 문서는 회의 직후 해군 수뇌부가 곧바로 파기를 지시해 지금까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의 ‘천안함 재조사’가 음모론에 불을 지피면서 최근 조상호(전 더불어민주당 상근부대변인), 정해욱(휘문고 교사) 등의 극단적인 발언들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이런 터무니 없는 주장들에 대한 반론 차원에서 문건을 공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군 당국과 정부가 무엇을 은폐했는지 국민께 알릴 필요가 있다”며 “사건의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전사한 46명의 용사들과 58명의 생존 전우의 명예 회복을 위해 국가 및 국방부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상진ㆍ박용한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
06.18 천안함 장병·유족 “같은 배에서 전투… 누군 유공자, 누군 아니라니”
최원일 함장 등 78일째 국방부 앞 시위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 최원일 천안함 함장을 비롯한 천안함 생존자와 순직 장병 유족 등 9명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었다. 거기엔 ‘군인 여러분, 국가를 위해 희생하지 마세요. 저희처럼 버림받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천안함 최원일 함장 등 생존 장병들이 6일 서울현충원에서 시위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천안함 생존자 예비역 전우회와 천안함 유족회가 국방부뿐 아니라 청와대 인근 등에서 이런 시위를 벌인 것은 이날로 78일째다. 무엇이 이들을 거리로 나서게 만든 것일까. 먼저 이들은 정부가 천안함 폭침 재조사를 결정했다가 철회한 것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또 하나는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했다가 거부당한 동료 생존 장병을 위해서였다.
천안함 전우회에 따르면, 그간 천안한 생존 장병 34명 중에서 22명이 등록을 신청했는데 현재까지 국가유공자로 인정된 사람은 모두 13명이다. 13명 중 11명에 대해선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이 인정됐다. PTSD는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 심각한 사건을 당한 뒤 겪게 되는 심리 질환이다.
신청자 중 나머지 8명이 국가보훈처의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가운데, 지난 4월 생존 장병 김윤일(33)씨가 PTSD를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다른 생존 장병들은 “같은 배에서 같은 일은 겪었는데 누구는 인정되고 누구는 안 되는 게 말이 되느냐”며 격앙했다. 이런 분노가 70일이 넘는 시위로 이어진 것이다.
국가보훈처는 “핵심 증상인 ‘사건에 대한 지속적 회피’가 보이지 않는다”며 김씨의 PTSD를 인정하지 않았다. 김씨가 시민단체 초청으로 안보 강연을 꾸준히 해 왔다는 게 그 근거였다고 한다. 김씨가 안보 강연을 할 만큼 천안함 사건을 회피하지 않고 있으니 PTSD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일부 허리 부상만 인정될 것이라고 한다.
김씨는 황당하다고 했다. 그는 본지에 “힘들어도 내 경험이 도움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안보 강연을 한 것”이라며 “수시로 분노를 폭발하고 악몽에 시달리거나 비행기를 탈 때마다 죽을 것 같은 극심한 공포에 시달리는 지난 10년의 심적 고통은 모두 무시당했다”고 했다. 고향이 제주도인 그가 안보 강연을 위해 비행기를 자주 탔던 게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한 셈이다. 김씨는 이의 제기를 할 예정인데 그때까지 최소 6개월은 걸릴 것이라고 한다.
생존 장병 중에는 2010년 PTSD로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다가 탈락한 뒤 2019년 재신청을 해 인정받은 전준영(34)씨도 있다. 전씨는 “수년간의 의무 기록을 내가 정리해야 했고 재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며 “국가가 부여한 임무를 수행하다 다쳤는데, 그 고통을 입증하라는 또 다른 임무를 받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천안함 생존자들은 사건 자체의 충격뿐만 아니라 ‘나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일부 음모론과 망언으로 인한 고통까지 겪었다”며 “PTSD를 폭넓게 인정하고, 장애 등급도 높게 책정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개인이 아닌 국가가 PTSD를 입증해 국가유공자로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또한 유공자로서 대우받아야 할 이들을 국가가 직접 찾아나서는 제도도 시행 중이다. 우리와 정반대인 것이다.
06.19 “北, 원전·핵연료 기술 원자력硏 해킹” 국정원, 북 소행 숨길 궁리 말라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18일 국회에서 한국원자력연구원 내부 시스템의 북한 추정 해킹 사건에 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
국회 정보위 소속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18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북한 추정 세력에 해킹당했다”고 밝혔다. 민간 기관을 통해 공격 IP를 추적해보니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커 조직이 썼던 서버로 연결됐다”고 했다. 범인 꼬리를 찾은 것이다. 그런데 국정원은 연구원 전산망이 뚫렸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누가 범인이고, 무슨 기밀이 얼마나 털렸는지는 “관련 부처와 확인 중”이라고 했다.
해킹 사건은 한 달여 전에 발생했다. 해킹 속성상 피해 파악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범인 흔적도 민간 기관이 이미 확인했다. 그럼에도 국정원이 여태 “확인 중”이라고 하는 건 범인이 북한이고, 우리의 어떤 핵(核) 정보가 넘어갔는지 국민에게 알리지 않으려는 것이다. 원자력연구원은 원전과 핵연료의 핵심 기술 등을 보유하고 있다. 적이 빼갔다면 국가급 기술 유출을 넘어 우리 안보에 치명적 위협이 된다. 2014년 원전 도면이 해킹당한 적도 있다. 국정원이 국민을 속이고 북한 소행임을 감춰줄 궁리를 하고 있다면 용납할 수 없다.
국정원은 올 초 “북한이 코로나 백신, 치료제 관련 기술 탈취를 시도했다”고 했다. 한·미·영국 제약사들이 공격 대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북한 해커가 사용한 이메일 중 문정인 전 대통령 특보의 아이디도 발견됐다고 하 의원은 말했다. 북한이 문재인 정권의 핵심 외교·안보 인사들을 대상으로 전방위 해킹 공격을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북한을 들락거리며 온갖 남북 쇼를 벌였던 사람들이다. 이들에겐 대북 보안 의식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북은 1990년대부터 핵·생화학과 함께 사이버 무기를 ‘3대 비대칭 전력’으로 발전시켰다. ‘북 해커의 제1 타깃이 한국’이란 미 국가정보국(DNI) 전 국장의 경고처럼 북 해킹은 주로 우리를 노렸다. 북은 2016년 국방데이터센터를 해킹해 A4 용지 1500만장 분량의 군 정보를 훔쳤다. 김정은 참수 작전 계획과 미군이 제공한 기밀 자료까지 탈취했다. 한국 암호 화폐 거래소를 공격해 최소 6500만달러(735억원)를 털기도 했다. 우리 ATM(현금지급기) 암호망을 뚫고 현금 1억여원을 빼돌린 적도 있다. 지금 북 해킹은 북핵만큼 위협적이다.
유엔 대북제재위가 2019년 보고서에서 35건의 국제 해킹 피해 중 한국이 10건으로 가장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어느 국민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정부가 제대로 알린 적은 없다. 국정원이 간혹 ‘북 해킹 시도가 있었는데 잘 막았다’고 보고한 게 전부다. 국민이 큰 피해를 보았고 더한 피해가 예상되는데도 북한 눈치를 보느라 계속 쉬쉬하는 것이다. 북이 무슨 범죄를 저지르고 우리에게 무슨 피해를 입히든 이 정권은 이를 다 감싸고 남북 쇼를 다시 벌일 생각뿐이다.
조선일보 사설
06.21 “국군포로들 배상금 못 주겠다” 임종석이 대표인 경문협의 궤변
“보관중인 돈은 北정부 아닌 조선중앙방송위 소유”
국내 매체들이 북한 방송 영상 등을 사용하고 지불한 저작권료를 걷어온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이 국군 포로들에게서 “북한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린 배상금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당하자, 법원에 ‘북한 정부 재산과 언론사 재산은 별개’라는 답변서를 제출한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북한 언론은 실질적으로 당에 귀속된 선전 기관임에도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취지의 답변을 한 것이다
작년 7월 법원은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돼 강제 노역을 했던 국군 포로 노사홍씨와 한재복씨에 대해 “북한과 김정은은 둘에게 총 42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후 노씨 등은 경문협이 법원에 공탁을 걸어놓은 북한 저작권료 23억원으로 배상받으려 했으나 경문협이 거절하자 소송을 냈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경문협은 지난 2월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국군 포로들의 배상 요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조선중앙방송위원회’를 동일시하는 오류”라며 “KBS를 대한민국 정부와 동일시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경문협이 법원에 공탁을 걸어놓은 저작권료는 ‘조선중앙방송위’ 소유이지, 북한 정부 소유가 아니라는 뜻이다. 조선중앙방송위는 조선중앙TV를 비롯한 북한의 국영방송을 총괄하는 내각 직속 기관이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북한의 조선중앙방송위는 북한 노동당에 귀속된 국가 선전 기관”이라며 “조선중앙방송위가 KBS처럼 독립적인 소유권을 갖는다는 건 궤변”이라고 했다.
임종석 대통령 외교·안보 특별보좌관(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대표로 있는 경문협은 2005년 북한과 계약을 맺고, 국내 방송사가 사용하는 북한 조선중앙TV 영상 등에 대한 저작권료를 징수해왔다. 최근 법원에 맡겨 놓은 공탁금 중 일부가 ‘공탁 기간(10년) 만료’로 국고에 귀속될 상황에 처하자, 재(再)공탁하는 방법으로 이를 막기도 했다.
조선일보 권순완 기자
06.22 천안함 진정서 기한 지나자… 규명위, 날짜까지 고쳐 재조사
실무진이 이미 반려한 사건을 좌초설 주장
신상철이 항의하자
기한 맞게 날짜 바꿔 재접수
직권남용·허위공문서 혐의
경찰, 규명위 간부들 수사착수
지난해 대통령 직속 군(軍)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진상규명위)가 ‘천안함 좌초설’을 주장했던 신상철(63)씨의 진정을 접수해 ‘천안함 폭침 사건’ 재조사를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위법이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 경찰이 수사 중인 것으로 21일 전해졌다. 신씨에겐 진정인 자격이 없었다고 실무진이 판단해 반려했는데도, 당시 진상규명위 이인람 위원장과 고상만 사무국장 등이 법적 접수기한이 지난 시점에 날짜를 고쳐 접수하도록 지시하는 등 직권남용과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혐의가 있다는 의혹이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신씨는 지난해 9월 7일 “천안함 전사자 사망 원인 등에 대한 재조사가 필요하다”며 진상규명위에 진정을 냈고, 진상규명위 실무진은 나흘 뒤인 11일 이를 반려 처분했다.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는 ‘사고를 당한 사람과 친족이거나 특별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진정을 제기할 수 있는데 신씨에게 진정인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신씨는 줄곧 ‘천안함 좌초설’ 등을 주장했던 인물이다.
한 달쯤 뒤인 작년 10월 중순 신씨는 진상규명위의 고상만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반려 처분에 대해 항의했다고 한다. 그러자 이인람 당시 위원장과 고 국장은 실무진에게 “다시 접수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는 진정인 자격 문제뿐 아니라 특별법상의 접수 기한(9월 14일)도 지난 시점이었다. 실무진은 “접수 기한이 지났다. 날짜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하자 진상규명위 윗선에서 “당초 접수 날짜인 9월 7일로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 진정에는 진상규명위에 접수된 진정 1786건 가운데 가장 마지막 사건번호가 붙었다. 진상규명위의 한 관계자는 “접수 일자가 9월 7일인데, 이후에 접수된 사건보다 후순위 사건번호가 부여된 것은 날짜가 소급된 조작의 증거”라고 했다.
이후 진상규명위는 작년 12월 이 진정에 대해 ‘조사 개시’ 결정을 내렸다. 당시 진상규명위는 안건 명에 ‘천안함’이라는 글자를 쏙 빼고 ‘ 외 45명 사건’이라고만 적어 의결했다. 복수의 진상규명위 관계자는 “조사 과정에서도 진상규명위 간부들의 압박이 계속됐다”며 “‘당신 야당 쪽이냐' ‘왜 빨리 진행하지 않느냐’며 수시로 독촉해 조사관들이 힘들어했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 3월 말 진상규명위의 재조사 사실이 언론 보도로 알려졌고, 피해자 유족과 생존 장병들이 반발했다. 진상규명위는 4월 2일 긴급 임시회의를 열고 이 진정 사건을 뒤늦게 각하했다. 각하 이유는 “진정인이 천안함 사고를 목격했거나 목격한 사람에게 그 사실을 직접 전해 들은 자에 해당한다고 볼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당초 실무진이 반려 처분했던 것과 같은 이유였다. 비난이 쇄도하자 같은 달 20일 이 위원장은 사퇴했다.
이런 의혹에 대해 천안함 함장이었던 최원일 예비역 대령과 천안함 피해자 유족·전우회 등은 지난달 이인람 전 위원장, 고상만 사무국장 등을 고발했고,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지난 18일 최 전 대령을 고발인 자격으로 조사했다. 이와 관련, 고상만 사무국장은 본지에 “신씨의 항의 전화를 위원장에게 보고했더니 ‘위원회 규칙에 반려된 사건도 진정인이 계속 접수를 요구할 경우 접수해주도록 돼 있다’고 해서 담당자에게 전달했을 뿐”이라고 했다. 이 전 위원장은 본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06.22 우리 인력도 없는데, 반년간 개성공단에 전력 보냈다
한국전력이 지난해 1월 개성공단에서 남측 인력이 모두 철수한 이후에도 수개월간 개성공단에 전력을 공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6월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이후에도 송전(送電)한 의혹까지 불거졌다. 대한민국이 생산한 공공재를 북한이 유용할 수 있게끔 정부가 방치했다는 논란이 일 전망이다.
북한의 전기 유용 정부가 방치 의혹
야당 “북이 쓰게 방치한 배경 뭐냐”
전문가 “군사전용했다면 제재 위반”
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판매 기록도
한전 “서류상 수치, 폭파 뒤 안보내”
21일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전력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와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한전은 지난해 1~6월 총 898㎿h의 전력을 개성공단에 판매했다. 한전의 분류 기준으로는 ‘산업용’ 4곳, ‘주택용’ 1곳, 이밖에 상업시설 등에서 쓰는 ‘일반용’ 9곳 등 14곳에서 전기를 사용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와 지원시설, 정배수장ㆍ폐기물처리장ㆍ소방서를 비롯해 숙소ㆍ식당ㆍ생활단지 등에서 쓰였다. 수치와 사용처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가운데 정배수장으로 보낸 전기는 북한 개성 주민에게 공급할 하루 1만5000t의 물을 정수하고 공급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에서 지난해 북한이 폭파시킨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왼쪽 붉은 원)와 폭파 시 충격으로 훼손된 개성공단지원센터(오른쪽 붉은 원)가 1년 째 방치되어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지난해 1월 이후 개성공단을 관리ㆍ점검할 남측 인력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2016년 북한의 무력도발에 따른 개성공단 폐쇄로 기업인들은 일찌감치 철수했고, 2018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이후 파견된 인력도 지난해 1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정부는 “개성공단으로의 전력 공급은 북측에 대한 전력 제공이 아니라, 연락사무소 운영과 우리 인원들의 편의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결국 남측 인력은 한명도 없는데, 북한에서 산업용ㆍ일반용ㆍ주택용 등 남측의 전기를 쓰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해당 전기 요금은 전액 남측에서 부담한다. 개성공단 업무에 관여했던 전직 공공기관 임원은 중앙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2018년 이전에도 북한이 개성공단에서 남측의 전기를 무단으로 끌어다 써서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1~6월 개성공단에서 사용한 전력량은 월평균으로는 약 150㎿h다. 지난해 서울에 거주하는 가구의 월평균 전력 사용량을 감안하면 약 640여 가구가 한달동안 쓸 수 있는 전력량이다.
윤영석 의원은 “그나마 이는 개성공단 현지 검침이 불가능해 추산한 수치로, 실제 전력 사용량은 더 많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 의원은 이어 “공기업인 한전이 대북 송전을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라며 “전선만 연결하면 얼마든지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는데 북한이 무단으로 전기를 쓰게끔 방치한 배경이 뭔지, 북한에 보낸 전력이 이밖에도 더 있는지 등을 정부가 밝혀야 한다”라고 말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비록 대북 인도적 지원 성격이 있더라도, 구체적인 상황을 국민에게 이를 충분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어야 했다”며 “투명하게 대북정책을 추진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뭔가 숨긴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대북정책의 신뢰성만 떨어뜨린다”라고 설명했다.
한전은 누가 어떻게 전력을 사용했는지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전 측은 “전기를 보내고, 요금을 징수하는 것 외의 일은 한전의 업무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며 “해당 전력은 시설 유지를 위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설명했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한전이 통일부의 지침에 따라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것이고, 세부적인 내용까지 관여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야당에서는 지난해 6월16일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후에도 한전이 개성공단에 전력을 공급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나섰다. 당시 정부는 “폭파 직후 전기 공급을 완전히 차단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지만 문서 상에는 지난해 7월 50㎿h, 11월 904㎿h 등 총 954㎿h의 전기를 판매한 것으로 나와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11월은 개성공단 내에서 이례적인 인력ㆍ자재ㆍ차량의 움직임이 포착된 때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당시 관련 위성사진를 공개하며 “개성공단 내 전기ㆍ전자 회사와 섬유제품 생산구역 인근 공터 등 최소 12곳에서 인원이나 물체가 포착됐다”고 전했다. 윤 의원은 이와 관련 “이번에 드러난 대북 송전과의 연관성을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전의 개성공단 전력 판매량.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러나 한전은 지난해 6월 이후 개성공단에 보낸 전력은 없다고 분명히 못을 박았다. 954㎿h의 전력은 내부 결산을 위해 기록한 서류상의 수치라는 게 한전의 설명이다. 한전 측은 “개성공단 14곳 각각의 정확한 전력 사용량을 구하려면 개성공단에 설치된 계량기를 봐야하는데, 검침이 불가능했다”며 “내부적으로 판매 실적을 집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2~6월에 전년과 똑같은 전력량을 사용한 것으로 보고, 차액을 추후에 일괄 청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전기공학과 교수는 “개성공단으로 전기를 보내는 문산변전소를 관리하는 급전분소의 로그시트(운영기록지)를 확인하면 6월 이후 송전이 이뤄졌는지, 그간 송전량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한전의 설명은 ‘전력을 보내긴 했는데 개성공단에서 얼마나 많이 썼는지 정확한 집계는 힘들다’는 뜻인데, 정부의 개성공단 전력 관리가 그만큼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얘기”라고 짚었다.
일각에서는 남측 관리 인력이 없는데도, 전력을 보낸 것이 유엔(UN)의 대북제재를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력 자체는 대북 수출금지 품목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다만 전력이 군사용으로 전용됐다는 정황이 있다면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안 2270호의 캐치올(Catch-All) 규제를 적용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세종=손해용ㆍ김남준 기자 sohn.yong@joongang.co.kr
06월 22일 軍 성범죄 다룰 3大 특단책
정충신 정치부 선임기자
지난 5월 21일 혼인신고 후 자신의 죽음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이모 중사의 억울한 죽음에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유족들의 국민청원과 언론 보도가 없었다면 ‘단순 변사’ 사건으로 묻혔을 것이다. 이 중사와 가족들에게 합의를 종용하고 회유·무마 압박한 가해자와 상관들이 구속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 성추행 때는 침묵한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에는 유족들을 급히 찾아 사과하고 지휘부 책임론을 거론하고서야 공군 참모총장이 사퇴하고 국방장관이 움직였다.
2011년 윤 일병 폭행치사 사건, 2013년 오 대위 성추행 사망사건 등으로 국민의 공분을 살 때마다 성고충상담관 제도 도입 등 시늉만 하다가 땜질처방에 그쳤다. 이후 군 성폭력 범죄는 갈수록 증가세다. 지난해 군내 성폭력 범죄 건수는 771건으로 2016년 304건에 비해 약 2.5배로 늘었다. 지난해 병사 간 동성 성폭력 범죄 및 군내 디지털 범죄 역시 전년도에 비해 각각 1.3배로 늘었다. 이 중사는 성추행 피해 이후 곧바로 신고하고 비디오 녹화 증거까지 제시했음에도 2·3차 가해로 ‘조직적 살해’를 당했다. 그동안 가해자는 2·3차 가해를 한 뒤 범행 92일 만에야 체포됐다. 누가 병영을 성폭력의 복마전으로 만들었는가.
가해자와 직속상관, 지휘관은 물론 공군본부 법무실·군사경찰 조직 전체가 공모자 또는 방관자 역할을 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군인권센터는 공군본부 군사경찰단 실무자가 국방부 조사본부에 올릴 보고서에 사망자의 ‘성추행 피해’ 사실을 기재했지만 군사경찰단장 등이 4차례나 성추행 피해 부분의 삭제를 지시했다는 내용을 폭로했다. 사실이라면 수사 지휘라인이 작심하고 사건 은폐를 지시한 셈이다.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이 사건 배후에 공군 수사책임자와 가해자 측 변호인이 유착된 ‘군 법조 카르텔’이 개입됐다고 주장한다. 국정조사를 통해 밝혀야 한다. 계급과 조직의 위세와 회유·무마 협박, 신고 시 받을 집단 따돌림과 2차 가해로 신고할 엄두조차 못 내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군 성범죄의 질긴 고리를 끊어내려면 3가지 결단이 필요하다. 첫째, 대만처럼 평시 군사법원 제도 폐지가 최선이다. 정전 상태인 안보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적어도 성범죄·폭력범죄 등 일반 범죄만큼은 민간 사법체계에 맡겨야 한다. 군 검찰이 군사법원에 귀속되고, 모두 지휘관이 관리 감독하는 참모다. 군 판사·검사, 국선변호인이 한 사무실에서 일하고 돌아가며 관리하는 군사법원 체계 등 피해자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는 기형적 제도를 그대로 두고 성폭력이 사라지기를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다. 둘째, 군내 성폭력·폭력범죄는 이적죄로, 계급강등·연금박탈까지 포함해 엄중 처벌해야 한다. 전우의 성을 착취하는 군인은 적보다 더 해롭다. 성추행 피해 신고가 전우애와 군조직을 해친다고 회유하고 협박하지만 그 반대다. 성폭력이 군 기강 저해와 전투력 약화의 주범이다. 셋째, 성폭력·폭력범죄 발생 횟수보다 얼마나 잘 대처했는지를 기준으로 지휘관을 평가해야 한다. 성폭력 발생 후 합의 종용, 무마·회유 압박을 한 지휘관은 공범에 준해 처벌해야 한다.
문화일보
06월 22일 간첩 안 잡고 院訓石(원훈석)엔 신영복체, 국정원 친북기관 됐나
대한민국 체제 수호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헌신했던 전직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21일부터 서울 서초구 국정원 앞에서 무기한 릴레이 시위에 나서는 참담한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직접적 계기는 지난 4일 제막한 새 원훈석(院訓石)에 새겨진 글씨가 ‘신영복체’라는 것이지만, 지난해 말 대공수사권 포기 등 국정원법 전면 개정과 최근 문재인 정권의 국가보안법 폐지 움직임 등으로 국정원 존립 이유가 붕괴한다는 우려도 심각하다.
창설 60주년을 앞두고 국정원은 새 원훈을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으로 바꾸고 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원훈석 제막 행사를 가졌다. 당시 국정원 측은 원훈석 글씨체에 대해 ‘고(故)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의 어깨동무체’라고 했었다. 이와 관련해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들이 규탄대회를 갖고 철거를 요구하자 국정원 측은 죽전 송홍범체라는 식으로 둘러대기도 했지만, 반발을 무마하려는 억지일 뿐이다. 문 대통령은 ‘신영복 존경’ 뜻을 밝혔고, 대선 슬로건인 ‘사람이 먼저다’도 신영복체이며, 청와대의 ‘춘풍추상’ 액자도 신영복 교수가 쓴 것이기 때문이다. 간첩 전력자의 글씨체로 원훈석을 새긴 것은 국정원의 자기부정과 다름없다. 그는 1968년 통혁당(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된 후 1988년 출소했으며, 그 뒤 “전향서는 썼지만 전향을 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통혁당은 북한 조선노동당의 지시로 대한민국 전복을 목표로 했던 지하당이다.
최근 여당 의원은 찬양고무죄 폐지를 담은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국가보안법 폐지 입법청원도 국회 법사위에 상정됐다. 국정원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가 아니라 마치 남북대화를 보조하는 기구로 추락한 듯하다. 신영복체 원훈석은 이미 친북기관이 됐음을 상징하는 것과 같다. 그렇지 않다면 당장 원훈석부터 철거하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06.23 김여정 시키는 대로 다 하고도 돌아오는 건 조롱과 경멸
▲김여정이 22일 담화에서 '대화'에 나설 것이란 일부 관측에 대해 "꿈보다 해몽"이라며 "잘못 가진 기대"라고 했다. /연합뉴스
외교부가 22일 한·미 간 대북 정책 조율 채널이던 ‘워킹 그룹’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미국과 대북 현안을 신속하게 논의한다며 워킹 그룹을 꾸렸다. 그러나 지난해 북한 김여정이 “친미 사대의 올가미”라고 비난하자 워킹 그룹을 ‘장애물’로 취급했다. 대통령 특보부터 장관까지 “남북 관계를 제약” “(미국의) 간섭이고 월권”이라고 했다. 북에 뭘 주려고 해도 워킹 그룹이 유엔 제재를 걸어 방해한다는 것이다. 외교부 차관은 워킹 그룹이 폐지되면 “당연히 북한에 시그널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여정이 원하는 대로 했으니 북의 긍정 신호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여정은 이날 “잘못 가진 기대는 자신들을 더 큰 실망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대화도, 대결도 준비한다’는 김정은 발언을 백악관이 “흥미로운 신호”라고 평가한 것에 대해 “꿈보다 해몽”이라고 일축했다. 주민 식량난을 호소한 김정은이 ‘대화’에 무게를 둘 것이란 기대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워킹 그룹 폐지 정도로는 ‘3년 전 봄날’ 같은 비핵화 쇼나 평화 이벤트는 꿈도 꾸지 말라는 뜻이다.
이 정권은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김여정이 지시한 건 다 들어주다시피 했다. 작년 6월 대북 전단을 비난하며 “(금지)법이라도 만들라”고 하자 정부는 4시간 반 만에 “준비 중”이라고 했다. 전단 보낸 탈북 단체를 처벌하라고 하자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통한 엄정 처리”를 다짐하기도 했다. 옛 공산권까지 전단 금지법을 비판했지만 들은 척도 안 했다. 김여정이 우리 장관을 비난하면 교체했고, 한미 훈련을 없애라고 하면 “북과 협의하겠다”고 했다. 북한 인권 결의안에는 3년 연속 불참했다. 그랬는데 김여정이 준 건 “미국산 앵무새” “머저리” “삶은 소 대가리” 같은 막말이 전부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날 ‘대화’를 촉구하면서도 대북 제재를 1년 더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G7, 나토 정상 회의 등도 ‘검증 가능한 북핵 폐기’와 ‘대북 제재 이행’ 원칙을 강조했다. 그런데 북핵 최대 피해국인 한국 정부만 딴판이다. 대통령은 유럽 순방 기간 “북 백신 공급”, 통일부 장관은 “식량 지원”을 언급했다. 그런데도 돌아온 메아리는 ‘잘못 가진 기대’였다. 김칫국 마시지 말라는 것이다. 김정은 남매는 오래전에 문재인 정권을 버렸는데 문 정권 사람들만 그걸 모르는 모양이다.
조선일보 사설
06.23 천안함 서류 조작해 재조사, 위조 전문 정권인가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가 작년 천안함 폭침 사건 재조사 결정 과정에서 자격 미달로 반려된 진정서를 기한이 지난 후 조작된 사건번호를 붙여 처리했다고 한다. ‘천안함 좌초설’을 주장해온 신상철씨가 작년 9월 7일 낸 ‘재조사 진정’에 대해 진상규명위는 ‘사고 당사자나 친족, 특별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므로 자격 요건이 안 된다며 나흘 만에 반려했다. 신씨는 10월 중순 진상규명위 간부에게 항의했고, 민변 출신인 이인람 위원장은 “다시 접수하라. (안 되면) 최초 접수 날짜로 처리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특별법상 진정 접수 시한(9월 14일)이 한 달가량 지난 시점이라 재접수는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규명위는 접수 시점과 다르게 맨 마지막 사건번호(1786)를 붙여 조사 결정을 내렸다. 또 안건명에서 ‘천안함’이란 글자를 빼고 ‘OOO 외 45명 사건’으로 적어 의결했다. 사건번호도 사건명도 조작해 자기들 마음대로 접수하고 통과시킨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선 문서 위조와 자료 조작이 밥 먹듯이 이뤄져 왔다. 산업부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라는 청와대 지침에 따라 원전의 경제성이 없는 것처럼 조작했다. 감사원 감사에서 들통나게 되자 산업부 서기관은 휴일 한밤에 몰래 사무실에 들어가 수백 개의 파일을 삭제했다. 교육부는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를 집필자 동의도 받지 않고 정권 입맛에 맞게 213곳이나 마음대로 고쳤다. 그러곤 가짜 민원을 넣고 회의록을 조작하고 집필자 도장까지 도둑 날인했다.
일자리와 소득, 부동산 관련 통계도 자기들 입맛에 맞게 조작하고 분식했다. G7 정상회담 사진도 문 대통령이 돋보이게 편집했다. 조국 전 장관의 아내 정경심씨는 남편과 공모해 딸 진학을 위해 동양대 총장 표창장과 인턴확인서 등 4건의 문서를 위조했다. 증권사 직원을 시켜 증거도 인멸했다. 조국의 동생은 웅동학원 재산 수십억원을 빼돌리기 위해 10건의 문서를 위조했다. 조국 본인의 출생 연도와 키, 딸의 생일도 바뀌었다. 최강욱 의원은 조국 아들의 인턴증명서를 허위로 발급해 줬다가 유죄를 선고받았다. 조작된 게 너무 많다 보니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구분하기도 힘들다. 위조 전문 정권이라 불려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6.23 ‘만신창이’ 한국군… 대통령과 수뇌부, 위기의식부터 가져야
항모 배치한 中 서해 압박… 北, 연말 핵탄두 100개 보유한다는데
‘병사 보육원’ 된 한국군, 성추행·부실급식까지 곳곳서 사건 터져
‘대화로 나라 지킨다’는 비상식부터 버리고 환골탈태 절박감 가지라
/중국 해군 랴오닝 항공모함 전단/연합뉴스
“앞으로 한국 해군은 동경 124도 선을 넘어오지 말라.”
지난 2013년 7월 중국을 방문한 최윤희 당시 해군참모총장에게 우성리(吳勝利) 당시 중국 해군 사령원(사령관)은 이렇게 요구했다. 동경 124도 선은 백령도 바로 옆 해상을 지나 우리 해군의 작전권에 속하는 곳이었다. 이에 최 전 의장은 “동경 124도는 국제법상 공해이고 북한의 잠수함이나 잠수정이 동경 124도를 넘어 우리 해역에 침투하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한 작전을 할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중국은 그 뒤 우리 해군 함정이 동경 124도를 넘어 서쪽으로 이동하면 “즉각 나가라”고 경고 통신을 하는 등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에 맞춰 중국이 서해를 자신들의 안마당으로 삼으려는 ‘서해 내해화(內海化)’도 가속화하고 있다. 여기엔 중국 북해함대의 위상 강화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북해함대는 대만해협을 담당하는 동해함대 사령부, 남중국해 분쟁을 담당하는 남해함대 사령부에 비해 한동안 찬밥 신세였다. 하지만 중국 첫 항모 랴오닝함이 칭다오(靑島) 인근의 위츠(漁池) 해군 기지에, 아시아 최대의 전투함으로 불리는 최신예 055형 구축함(중국판 이지스함) 2척이 함대 3개 중 북해함대에 가장 먼저 배치되면서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중국은 지난해부터 백령도·대청도·흑산도 서쪽 해역에 경비 함정 5척을 상시 배치하고 있다고 한다. 앞서 중국은 124도 인근 해역에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대형 부표 8개를 설치했다. 잠수함과 무인 잠수정 등 수중 전력의 활동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늘에선 서해 방공식별구역(KADIZ) 무단 진입도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앞으로 해상 민병 등을 동원해 서해를 서서히 잠식해가는 ‘회색 지대 살라미’ 전술을 강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픽=백형선
우리 군이 직면해 있는 안보 위협은 중국의 서해 도발만이 아니다. 현존 최대 위협인 북한은 외형상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및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핵실험 등 이른바 고강도 전략적 도발은 자제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전쟁’ 사이버전에선 우리를 향한 공격이 쉴 새 없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엔 원전과 핵연료 원천 기술 등을 보유한 최상위 국가 보안 시설인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북한 해커로 추정되는 세력에게 해킹당한 사실이 야당 의원의 공개로 밝혀졌다. 우리 해군의 모든 잠수함을 건조한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지난해 해킹 시도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의 핵 시설은 가동돼 핵무기 숫자는 늘고 있고, 미사일 등 신무기 개발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적 안보 싱크탱크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지난 14일, 북한이 올 1월 기준 핵탄두 40~50개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보다 10개가량 증가한 수치다. 일부 연구 기관은 북한이 올해 말까지 핵탄두를 최대 100개가량 가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 당 8차 대회에서 전술핵무기, 핵추진 잠수함, 극초음속 무기, 다탄두(多彈頭) 및 고체 연료 ICBM 개발 등을 공식화했다. 북 체제 특성상 북한의 국방과학기술자들은 김정은의 이런 지시를 이행하려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이 지난 3월 시험 발사에 성공한 KN-23 개량형 미사일(최대 사거리 600㎞)은 이미 전술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런 미사일과 신형 방사포 수십 발을 ‘섞어쏘기’하면 기존 한미 미사일 요격망으론 속수무책이다.
북한은 물론 주변 강국의 안보 위협은 커지고 있지만 이에 맞서야 할 한국군은 현재 사실상 만신창이 상태다. ‘걸어 다니는 종합 병동’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각종 무기 체계 등 하드웨어와 군 기강 등 소프트웨어, 고위 간부부터 말단 병사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사건이 터져 나오고 앓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최근 불거진 공군 성추행 부사관 사망 사건과 부실 급식 논란은 그 상징적인 사례다.
▲지난 1월 14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8차대회 기념 열병식에서 선보인 단거리 탄도미사일 '북한판 이스칸데르'의 개량형. 2021.3.25 [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연합뉴스
그러다 보니 군 수뇌부와 간부들에게서 북한과 주변 강국의 안보 위협에 대응하고 유사시 ‘어떻게 싸울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준비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한 예비역 장성은 “요즘 군 간부들은 적과 싸워 이기는 부대를 육성하는 것보다 병사들에게 약점이 잡히지 않도록 조심하며 임기를 마치거나, 부하 병사들을 사실상 보육원이 된 군에서 사회로 전역시키는 게 주 임무가 됐다”고 한탄했다.
스티븐 비들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저서 ‘군사력: 현대전에서의 승리와 패배’에서 1·2차 세계대전과 걸프전 주요 전투의 사례 분석을 통해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 무기 수준이나 병력 규모가 아니라 ‘어떻게 싸우느냐’, 즉 전투력 운용의 현대적 체계에 있다고 밝혔다. 정연봉 전 육군참모차장(예비역 육군중장)은 저서 ‘한국의 군사혁신’에서 미국·독일·이스라엘의 군사 혁신 성공에는 군 지도부의 위기의식(감), 국가 또는 군 차원의 핵심 역량, 군 지도부의 변혁적 리더십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위기의식이 클수록 군사 혁신에 성공했다고 강조했다.
지금 군 통수권자를 포함해 우리 군 수뇌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이런 위기감, 위기의식이다. 북한과 주변 강국의 위협에 맞설 군사력은 미사일 지침 해제에 따른 신형 미사일 개발 등 하드웨어만으로 갖출 수 있는 게 아니다. 통수권자와 군 수뇌부가 ‘군사력이 아닌 대화로 나라를 지킨다’는 자세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한국군의 환골탈태를 위한 절박감부터 갖기를 바란다.
조선일보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06월 24일 北정권·종북 감시가 국정원 제1 임무
염돈재 前 국정원 1차장, 前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의 일이다. 김영삼 정부는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전신)의 국내정치 개입을 금지하는 대신 안기부가 산업정보 활동을 적극 추진토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언론도 무한경쟁의 시대에 대응한 올바른 업무 방향이라고 칭송했다. 그러나 결과는 엉뚱하게 나타났다. 세계 언론들이 한국이 산업스파이 활동을 본격화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국정원에 산업스파이 활동을 시키겠다고 공식 천명한 것이니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그 후 우리나라는 중국·러시아·이스라엘 등과 함께 세계 10대 산업스파이 위험 국가로 지목돼 엄청난 감시를 받게 됐다.
정보기관이 새로운 업무를 추진할 때는 세 가지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첫째, 반드시 국가가 담당해야 할 업무인지 여부다. 둘째, 꼭 비밀활동, 비합법 활동이 주(主)임무인 정보기관이 담당해야 할 업무인지 여부다. 셋째, 정보기관 업무 가운데 우선순위가 높은 업무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김영삼 정부가 그런 기초적인 원칙도 무시한 채 정보기관 개혁을 추진하다가 산업스파이 위험 국가라는 오명만 얻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하는 일을 보면 김영삼 정부의 데자뷔다. 지난 4일 국정원을 방문한 문 대통령은, 국정원이 우주정보 등 현대 과학기술을 접목한 미래형 정보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면서 우주 공간에서의 정보활동은 국정원만이 할 수 있고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이니 마음껏 역량을 발휘해 달라고 했다. 우주정보는, 위성 등 우주 자산(資産)에 관한 정보, 우주에서의 위해(危害) 요인에 관한 정보, 위성을 통해 수집한 정보라는데, 국정원이 우주안보를 위한 기술 연구개발(R&D)에도 주력하겠단다.
박지원 원장은 향후 국정원 정보활동은 사이버가 핵심이고 예산의 절반을 국가 사이버 안전에 투입하겠다고 언급했다. 또, 국정원은 코로나19 백신 확보 지원, 각국 발병 성향과 대응 동향을 모니터링했다고 발표했다. 최근 북한의 한국원자력연구원과 대우조선해양 해킹, 이스라엘 모사드가 코로나 백신 확보에 기여했다는 보도 등을 고려하면 전혀 잘못된 것이라고 탓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북핵으로 국가안보가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이때, 국정원이 사이버 안전과 우주정보에 주력하겠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시중에는 현재 국정원이 추진 중인 대북 공작은 북핵 대응이나 북한 개방이 아니고 남북관계 복원이라는 얘기가 파다하다. 이건 통일부의 일이다. 박 원장은 이제 국정원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명확해졌다고 자평한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간첩 검거 실적을 보면 더욱 그렇다. 노무현 정부 19명, 이명박 정부 23명, 박근혜 정부 9명인데, 문 정부는 2건에 불과하다. 그것도 박 정부 때 적발한 것이다. 북한이 진정성 있게 대화에 나오도록 하려면 튼튼한 안보태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박 원장의 관심은, 완벽히 준비해 대공수사권 이관을 ‘되돌릴 수 없도록 하는 일’이란다.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말이 있다. 우선 자기 발밑을 조심하라는 말이다. 국정원이 원훈(院訓) 교체나 우주정보 수집보다 북한과 종북 세력의 동향 파악과 견제에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06.25 文 “김정은 솔직, 열정, 결단, 국제감각”, 聖君이라는 건가
▲<YONHAP PHOTO-2477> 문재인 대통령, 타임지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타임(TIME)지 표지 촬영과 화상인터뷰를 했다고 24일 밝혔다. 사진은 타임지 표지(왼쪽)와 인터넷판 기사. 2021.6.24 [타임지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금지] jjaeck9@yna.co.kr/2021-06-24 10:08:42/< 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과 인터뷰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매우 솔직하고 열정적이며 강한 결단력을 가진 사람이고 국제적 감각도 있다”고 말했다. 2018년 평양 방문 당시 능라도 연설을 회상하면서 “북한 주민의 눈빛과 태도를 통해 평화에 대한 열망이 크고 매우 달라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타임지는 문 대통령 발언을 전하면서 김 위원장은 자신의 고모부와 이복형을 냉혹하게 살해했으며 몰살·고문·강간 등 반인륜 범죄를 주도한 인물이라고 했다. 또 과거 다섯 차례 비핵화 합의에 서명했지만 모두 어겼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현실 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공개적으로 “살인자”라고 규정했다. 문 대통령은 푸틴보다 몇 배는 더한 김정은을 마치 성군(聖君)인 양 묘사했다. 도를 넘었다.
문 대통령은 이번에도 “김정은이 ‘우리 아이들까지 핵을 머리에 이고 살게 할 수 없다’고 진지하게 말했다”며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강조했다. 김정은은 올해 노동당 대회에서 핵을 36차례나 언급하며 핵잠·전술핵 등 개발을 지시해놓은 상태다. 지금 세계 지도자 중에서 김정은에게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믿는 사람은 문 대통령이 유일할 것이다. 김정은 스스로도 자신에게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의 입장이라면 핵을 포기하겠나. 김정은은 핵을 갖고 있으면 죽고, 핵을 버려야만 살 수 있을 때 핵을 포기한다. 문 대통령 같은 사람이 있는데 김정은이 왜 핵을 포기하겠나. 5100만 국민의 안위를 책임진 대통령의 헛된 생각은 심각한 문제다.
조선일보 사설
06.25 멕시코 군인 10만명도 6·25전쟁서 싸웠습니다
▲지난 4월 24일(현지시간) 멕시코시티 주멕시코 한국대사관저에서 열린 멕시코 한국전쟁 참전용사회 출범식에 참석한 멕시코 참전용사들. 왼쪽부터 로베르토 시에라 바르보사, 호세 비야레알 비야레알,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알마다./연합뉴스
멕시코는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식량과 의료품을 지원했지만, 유엔의 깃발 아래 참전한 16국에는 공식적으로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멕시코인과 멕시코계 미국인이 미군 소속으로 참전했다. 당시 미국과 멕시코가 맺은 병역 협력 협정에 따른 조치였다. 미군 참전 용사 180여만명 중 10% 정도인 18만명이 히스패닉이었고, 이 중 10만명 이상이 멕시코 참전 용사일 것으로 추정된다. 미군 중에 멕시코인만으로 구성된 부대가 있을 정도였다.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라틴계 미군 3700여명 중 상당수가 멕시코인 또는 멕시코계 미국인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 깃발 아래 싸운 멕시코인들의 희생은 역사 속에 묻혔다.
전쟁 이후 멕시코에서는 6·25전쟁에 참전한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3편이 만들어져 상영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 싸운 용사들의 존재는 점점 잊혀지고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멕시코 외교부 동료의 아버지인 로베르토 시에라 바르보사 씨도 6·25전쟁 참전 용사였다. 그는 전쟁 중 겪었던 고통을 가족에게 얘기한 적은 없지만 가끔 혹독했던 전장(戰場)을 떠올리며 눈물짓곤 했다고 한다. 어렸을 적부터 뵌 친구의 아버지는 전쟁 후유증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앓았다. 그는 갑자기 트럭이 지나가든지 어딘가에서 큰 소리가 나면 갑자기 얼어붙어 몇 분 동안 귀를 막곤 했다.
지난해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계기로 미군 소속으로 참전한 멕시코 용사들의 존재가 뒤늦게 알려지면서 멕시코 주재 한국 대사관은 ‘숨은 영웅’ 찾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한국 대사관은 홈페이지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70년 전 한국을 위해 싸운 멕시코 참전 용사들에게 감사를 전하기 위해 찾는다'는 내용의 포스터를 게재하고 현지 일간지에 광고를 냈다. 한국의 보훈처는 이렇게 찾은 참전 용사 4명에게 ‘평화의 사도 메달’을 수여했다. 멕시코 정부도 한국 대사관과 협력해 생존 참전 용사들과 가족들을 찾아 한국의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 기반 마련에 기여한 공헌을 재조명하기로 했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지난 4월 24일 멕시코시티의 주(駐)멕시코 한국대사관에서 ‘멕시코 한국전 참전용사회’가 결성됐다. 아흔 살 전후의 생존 참전 용사 3명과 가족, 작고한 참전 용사 가족 등이 참석했다. 거동이 불편한 참전 용사 한 명은 화상으로 출범식을 함께했다. 그동안 ‘잊힌 존재’로 지내던 노병(老兵)들은 ‘대한민국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글귀의 목도리를 목에 걸자 “70년 전 우리 형제와 친구들은 자유를 위해 싸웠다. 이렇게 기억해 주니 자랑스럽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산도발 멕시코 국방장관은 축사에서 “6·25전쟁에 참전하고 희생한 여러분 덕분에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알게 됐다. 여러분의 명예와 용기, 그리고 희생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내년 한·멕시코 수교 60주년을 맞아 서울에서 멕시코 참전 용사들의 활동을 담은 전시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초대 회장으로 선출된 호세 비야레알 비야레알 씨는 참전용사회가 출범한 후 일주일 만인 지난 5월 1일 향년 90세로 별세했다. 1950년 9월부터 18개월 동안 참전한 그는 ‘한국에서 한 멕시코인의 기억’이란 회고록을 펴내기도 했다. 황기철 보훈처장은 “회장님의 유지를 받들어 멕시코 참전 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을 미래 세대와 함께 기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추모했다. 이제 6·25전쟁은 멕시코에서 ‘잊힌 전쟁’이 아니며, 비야레알 회장은 더 이상 역사 속에 버려진 존재가 아니다.
조선일보 브루노 피게로아 주한 멕시코 대사
06.25 권력자의 무지가 낳은 비극 되풀이 말아야
6·25전쟁 발발 71주년을 맞는 국민의 심경은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아무리 국제정세가 복잡하였더라도 민족상잔의 피와 한으로 점철된 통일을 단숨에 이루어내겠다는 북한 정치지도자의 유치한 결정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부적절하였던가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되겠다. 38선을 넘어 대한민국을 단숨에 삼켜버리겠다는 김일성의 경솔한 판단은 결국 미국과의 전쟁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었다는 상황의 논리를 망각한 무지의 소치였던 것이 곧바로 증명되었다. 그러한 김일성의 오판에 동조했던 스탈린이나 마오쩌둥의 경우도 주요국 지도자의 상황 오판이나 무지의 대가가 얼마나 큰 것 인가를 역사는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김일성, 미국 참전 예상못하고 오판
동조한 스탈린·마오쩌둥도 큰 실수
6·25에서 교훈 못얻고 핵강국 지향
김정은, 한·미와 조율하는 지혜를
왜 이렇듯 국제정치의 중요한 전환기인 1950년에 지도자들의 오판이 속출하게 되었는가? 2차대전에서 연합국의 승리를 이끌며 전후 질서 수립에 앞장선 미국의 국민이나 지도자에 대해 대부분 국가의 이해 수준이 지극히 미흡하였던 것도 오판의 원천적 이유라고 생각된다.
미국과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김일성의 결심이나 결정이 있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있지 않다. 북의 남침 결정은 무식이 오히려 모험의 힘이 되었다는 한편의 역사적 사례였다고 하겠다.
김일성의 남침계획을 승인한 스탈린이나 이에 동조한 마오쩌둥의 경우도, 그들이 미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북한의 1950년 6월 25일 남침에 동조한 상황적 여건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소련의 경우에는 1949년 핵실험에 성공함으로써 미국에 이어 핵 강국의 위치를 확보하였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1945년 2차대전 종전 시 연합국의 합의에 따라 한반도 북위 38도선 이북에서 일본군의 항복을 접수한 군사적 우위를 이용하여, 북한 정권과 체제의 출범을 총괄 지휘한 정치적 기득권 소유국이라는 자부심도 작동하고 있었다. 한편, 마오쩌둥의 경우에도 1949년 중국 내전에서 승리하여 국민당 세력을 대만으로 축출한 여세를 몰아 북한 정권의 한반도 통일 전쟁을 당연히 지원할 자세가 정립되어 있었다.
/이홍구 특별기고 그래픽
결국, 스탈린의 소련이 지원한 탱크부대를 앞세워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38선을 넘어 남한으로 침입할 당시 김일성은 북한군이 비교적 단시일에 서울을 점령하고 남쪽으로 진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뿐, 미군의 개입 가능성은 무게 있게 고려되지 않았다.
아마도 1950년 초에 한국을 미국의 방어선에 명시하지 않은 채 발표한 이른바, ‘애치슨 라인’이 혼선을 조장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전 개전 직후부터 미국의 참전활동은 즉각 시작되었고, 확고한 미국의 대응 결정이 워싱턴에서 내려진 것은 김일성, 스탈린, 마오쩌둥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던 상황의 전개였다.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첫째 트루먼 대통령의 특수한 리더십, 둘째 동서냉전 초기부터 미국 정부에서 구축된 소련 팽창전략에 대한 확고한 대항전략과 이를 주도한 조지 케넌(George Frost Kennan) 대사의 공헌, 셋째 2차 세계대전 후의 미국의 국제정치 주도권은 국제연합을 중심으로 강화하겠다는 기본정책을 한반도 사태에 적용하는 데 기여한 필립 제섭(Philip Jessup)교수의 활동을 중심으로 돌아볼 수 있다.
첫째, 루스벨트 대통령의 서거로 1944년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마지막 역할을 담당하게 된 트루먼 대통령은 ‘위대한 지도자’라기 보다는 가장 미국적 전통과 가치를 충실히 지켜갈 수 있는 리더였으며, 특히 미국 서부지역 주민들의 개척자적 가치를 체질화한 대통령이었다. 백악관을 떠나 오랜만에 주말을 고향인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에서 보내기 위해 도착한 트루먼 대통령은 한국시간 6월 25일 새벽에 한반도에서 러시아제 탱크부대를 앞세운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남한으로 전면 침공을 시작하여 서울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 치열한 전투가 진행되고 있으며 북한군의 기세가 우세하다는 보고를 받았다.
트루먼 대통령은 모든 시민이 잠든 일요일 아침에 한국을 기습한 북한의 도발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범죄적 행동이며, 확실히 응징해야 할 것이라는 즉각적 반응을 보였다. 대통령은 국제법을 인용하기보다는 이러한 비겁한 행동은 절대로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단호한 입장을 미국 서부인의 개척자적 전통에 따라 표현하였다고 한다. 다음날 워싱턴으로 귀환하기 전, 도쿄의 맥아더 사령관에게 미국의 한반도 참전을 적극적으로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백악관에 도착하여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하였다. 바로 그 회의에서 트루먼 대통령은 1949년부터 4년간 대통령의 외교고문 겸 무임소대사를 역임한 필립 제섭 교수의 의견에 따라 한국전에 즉각 참전하는 미군은 유엔군 사령부에 소속하기로 결정하였다. 1948년 유엔의 결정과 감시 아래서 한반도 38선 이남에서 진행된 자유 선거의 결과로 유엔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 합법 정부라는 인정을 받고 탄생한 대한민국 정부를 기습적으로 공격한 북한의 침략에 대해 유엔의 깃발 아래 집합하는 유엔회원국과 한국의 군대는 유엔군사령부의 지휘에 따라 행동한다는 결정이다. 이로써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은 국제질서와 정의를 수호하는 특별한 전쟁의 성격을 갖추게 되었다.
1950년 6월 25일로부터 71년이 지난 작금의 세계정세, 즉 한반도와 미국·러시아·중국 등 주변 강대국의 관계는 새로운 양상과 동력을 갖게 되었다. 올해 초 출범한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강대국 관계, 특히 미·중 관계에 새로운 외교, 경제 및 안보전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한 국제정치의 전환기에서 동북아의 러시아·중국과 더불어 새로운 핵 강국을 지향하는 북한의 동향이 계속 국제적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6·25전쟁을 시작한 김일성 시대처럼 미국을 제대로 모르고 돌진하기보다는 미국의 입장과 북한의 바람, 그리고 한국의 위치를 함께 조율하는 지혜를 김정은 시대의 북한이 보여주는 것이다. 러시아나 중국 및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가 동참하여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게 될 이 시점에서 또다시 북한만이 예외가 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중앙일보 이홍구 전 국무총리·유민문화재단 이사장
06월 25일 文의 金 칭송과 大法 병역거부 판결…6·25 영령 모독이다
과거를 잊은 나라에 미래는 없다. 특히 비극의 역사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 들어 6·25전쟁의 교훈을 망각하고, 심지어 침략 전범(戰犯)과 세습 독재자들을 떠받드는 분위기까지 횡행한다. 호국 영령들을 모독하고 국가 안보를 뒤흔드는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북한 김일성의 6·25 남침 71주년을 앞두고 보도된 문 대통령 인터뷰와 대법원 ‘병역거부 무죄’ 판결은 더 참담하다.
문 대통령은 24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 홈페이지에 ‘마지막 제안(Final Offer)’ 제목으로 보도된 인터뷰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매우 솔직하고 열정적이며 강한 결단력을 보여줬다. 국제 감각도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이) 우리 아이들까지 핵을 머리에 이고 살게 할 수 없다고 진지하게 말했다”고도 했다. 김정은 말을 그대로 믿었다면 무지한 것이고, 실체를 알면서도 미화했다면 반역적이다. 김정은은 올해 노동당대회에서도 핵잠수함과 전술핵 개발을 지시했고, 남북·미북 회담 중에도 쉬지 않고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사실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타임이 인터뷰 기사에 ‘김정은은 자신의 고모부와 이복형을 냉혹하게 살해하고 고문·강간 등 반인륜 범죄를 주도한 인물’이라고 부연했을까.
문 대통령 취임 후 친정권 성향의 인사들로 대거 충원된 ‘김명수 대법원’은 24일 병역거부 사유를 더욱 확대하는 판결을 했다. 2018년 ‘여호와의 증인’ 신도에 대해 병역거부를 인정했는데, 이번엔 입영을 거부한 정모 씨에 대해 ‘반폭력주의와 반전주의가 내면에 깊이 자리 잡고 있고 실체가 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민변 회장 출신인 김선수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이번 판결은 반전 시위 참여, 페미니즘 논문 등을 ‘양심’의 근거로 삼았다. 법리적으로 ‘양심’을 증명할 수 없는 것은 물론, 6·25 같은 국란에 대비하기 위한 병역의무 헌법 취지도 흔든다.
이런 움직임이 문 정권 곳곳에 만연해 있다. 같은 날 문 대통령이 보훈 가족을 초청해 ‘국빈 의전’을 제공했지만 공허하다. 6·25 침략과 이제는 핵 위협까지 하는 북한 정권 책임은 얼버무리고 그냥 ‘예우’만 강조했기 때문이다.
문화일보 사설
06.26 예우할 시간, 얼마 안 남았다
/25일 오전 광주 남구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기념식에서 참전유공자들이 묵념하고 있다./연합뉴스
취재하면서 알게 된 6·25 참전 유공자가 있다. 강원도에 사는 그에게 며칠 전 전화를 걸었는데 아들이 대신 받았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 중인데 위독해 통화가 어렵다”고 했다. 작년 그 참전 유공자는 대한민국 보훈(報勳) 정책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었다. 전국 6곳에 불과한 보훈병원에 가지 않으면 6·25 참전 유공자에게 약값조차 지원하지 않는 나라에 대한 얘기였다. 힘든 몸에도 “정부에 민원을 제기했다”고 했다. 나이 80~90된 노병(老兵)에게 약값은 곧 목숨값이다. 온몸에 아프지 않은 데가 없고, 감기만 걸려도 자칫 폐렴으로 이어질까 노심초사 한다.
이 나라가 참전 유공자에게 주고 있는 혜택은 실상 대단치 않다. 월 34만원 참전 명예수당을 주는데 대부분 약값으로 나간다. 수당 이름처럼 ‘명예’는 없다. 참전 유공자가 위탁 병원에 가면 진료비 90%를 지원해주지만 이를 혜택이라고 할 수는 없다. 65세 이상 모든 국민건강보험 가입자는 동네 의원에서 1만 5000원 이하는 진료비 중 1500원만 낸다. 참전 유공자는 고궁, 독립기념관, 국·공립박물관 입장료가 무료다. 그러나 이는 65세 이상이면 원래 받는 혜택이다. ‘참전 유공자 예우란 게 있느냐’는 얘기가 나올 법하다.
참전 유공자들이 약값을 지원받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는 2019년 국가보훈처에 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건 없다. 선심성 예산은 펑펑 쓰는 정부가 “예산이 없다”고 말한다. 이 나라가 무엇을 우선하는 국가인지 알 수 없다.
국가보훈처는 인사혁신처·법제처 등과 함께 국내 5개 처(處) 중 하나다. 직원 수와 사업 규모에서 기획재정부·교육부 같은 18개 부(部)에 밀린다. 구조적 한계로 예산 집행에서도 뒷순위다. 미국은 ‘제대군인부’가 보훈을 담당한다. 국방부 다음으로 큰 부처다. 국가 예산에서 보훈 관련 비율이 3% 가까운 미국·호주·대만 등과 달리, 우리는 1.7%에 그치는 것도 이런 이유가 작용한다. 보훈 단체에선 참전 용사 약값 문제 해결에 연간 70억~110억원의 예산이 들 것으로 추산한다. 문재인 정부 4년간 나랏빚이 300조원 늘었다. 참전 유공자에게 약값을 지원하는 예산이 정말 해결하기 어려운 금액인가.
한 참전 유공자는 기자에게 “우리들이 불쌍하지 않으냐”고 했다. 한 몸 바쳐 나라를 지킨 분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현실이 안타깝다. 생존을 위해 최소한의 약값을 지원해달라는 참전 유공자들의 요구가 한낱 노인들의 하소연으로 전락하고 있다. 매년 참전 유공자 2만명이 세상을 떠난다. 현재 남아있는 26만1360명이 대부분 75세 이상이다. 예우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조선일보 김동현 기자
06.26 12만 중공군이 에워싼 장진호, 그날의 후퇴는 ‘진격’이었다
/데스퍼레이트 그라운드
햄프턴 사이즈 지음|박희성 옮김|플래닛미디어|432쪽|2만5000원
6·25 발발 후 첫 6개월 동안 전쟁의 판세를 뒤집은 상륙작전이 두 번 있었다. 인민군을 궤멸 직전까지 몰아간 인천상륙작전과 유엔군의 전면적 후퇴로 이어진 원산상륙작전이다. 이 책은 이 중 1950년 10월 원산에 상륙해 개마고원 깊이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포위 섬멸 작전에 걸려들었던 미 해병 1사단의 기적 같은 생환 이야기를 담았다. 훗날 장진호 전투로 알려진 퇴각 작전에서 저자는 미 해병 1사단이 무슨 수로 자기들보다 8배나 많은 중공군이 겹겹이 친 포위망을 뚫고 귀환할 수 있었는지 추적했다.
저자는 그 비결로 먼저 해병 1사단장인 올리버 스미스 장군의 뛰어난 리더십을 주목한다. 그의 용병술은 함께 원산에 상륙한 10군단장 에드워드 아몬드 장군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아몬드는 전장에서 나오는 정보에 무심했다. 그러면서도 승리에 집착했고 장병의 희생을 강요했다. 반면, 스미스 장군은 ‘닥치고 돌격!’ 방식의 지휘를 ‘가짜 영웅들의 에너지 낭비’라며 혐오했다. 매일 발생하는 사상자 수를 일기장에 기록할 정도로 장병의 희생을 줄이려 애썼다. 예리한 판단력도 더해졌다. 장병들은 적진으로 들어갈 때 강에 교량이 있으면 반색했다. 스미스는 달랐다. 퇴각하는 적이 다리를 끊지 않은 이유를 의심했고 매복을 경계했다. 실제로 중공군 12만 대군이 장진호 주변을 에워싸고 미군이 발을 들여놓기만 기다렸다. 장진호 전체가 중공군이 파놓은 함정, 미군의 사지(死地)였다.
▲함흥과 장진을 연결하는 황초령 고갯길을 넘고 있는 미국 해병대원들. 미 해병 1사단은 8배나 많은 중공군과 혹한을 뚫고‘역방향 진격’이라 불렀던‘퇴각’에 성공했다. /플래닛미디어·미국 해병대
스미스는 멀리 보는 지휘관이었다. 맥아더와 아몬드의 명령을 받고 마지못해 장진호에 들어갈 때부터 퇴각에 대비했다. 중공군의 포위를 뚫을 힘은 병참에서 나온다는 판단도 정확했다. 장진호 인근 하갈우리에 병참용 수송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활주로를 건설했다. 체감온도가 영하 50도까지 곤두박질치는 추위 속에서 50㎝ 아래까지 꽝꽝 언 땅을 파는 악전고투였다. 아몬드는 “이런 곳에 왜 비행장을 만드느냐?”고 스미스를 질타했다. 11월 28일 장진호 일대에서 전투가 시작되자 활주로의 가치가 빛을 발했다. 전투가 지속된 보름여 동안 수송기가 부상자를 후방으로 실어 날랐고 탄약과 식량, 강추위를 막을 솜옷을 공수해 왔다. 아몬드는 그제야 스미스가 잠도 안 자고 공사에 매달린 이유를 깨달았다.
스미스는 조직의 도전 목표를 제시할 줄 아는 탁월한 지휘관이기도 했다. 장진호에서 흥남으로 이어지는 좁은 퇴로를 따라 내려오는 동안 그는 ‘후퇴’라는 표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대신 이 전투를 ‘역방향 기동’ 또는 ‘후방 진격’으로 규정하며 해병대원의 긍지를 지키려 애썼다.
스미스 리더십 못지않게 예하 부대 장교와 사병들의 헌신도 빛났다. 덕동고개, 유담리 등에서 미군은 들판이 일제히 일어나 달려드는 착각을 줄 정도로 까맣게 밀려드는 중공군과 맞닥뜨렸다. 10배 넘는 병력에 맞서 닷새간 혈투를 벌인 폭스 중대의 덕동고개 전투는 처절했다. 중공군이 쏜 총알에 턱을 관통당할 때 충격으로 한쪽 눈알이 튀어나온 병사는 흙 묻은 눈알을 눈구멍에 끼워 넣고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장교들은 총탄에 골반뼈가 으스러진 채로 참호를 기어다니며 전투를 독려했다. 100여 명밖에 남지 않은 폭스 중대를 구출하기 위해 지원 부대가 죽음을 무릅쓰고 야간 행군을 감행하는 대목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는 듯한 뭉클함까지 전한다.
미국은 사투 끝에 돌아온 군인들을 영웅으로 맞이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역대 최고의 전투 후퇴”라고 치하했다. 사사건건 스미스와 충돌했던 아몬드도 “어떤 전쟁에서도 이들보다 용감하게 싸운 군인은 없다”고 했다. 언론은 ‘역방향 공격’ ‘바다를 향한 전투 행군’이란 제하의 기사를 쏟아냈다. 모두가 성공적 퇴각을 축하했지, 중공의 꽹과리 부대 따위에 밀렸다고 비난하지 않았다.
마침 6·25전쟁 71주년이다. 책 읽는 내내 우리 현실이 겹쳐 떠올랐다. 6·25전쟁 영웅이자 국군 창군 주역의 1주기조차 외면하는 나라와, 천안함 폭침을 좌초라 우기고 장병을 조롱하며 함장에겐 부하를 수장했다고 막말하는 국민은 미 해병 1사단 같은 영웅들을 가질 자격이 있는가.
조선일보 김태훈 논설위원
06.26 백선엽 장군 1주기, 정부 아닌 시민들이 성금 모아 추모식
내달 10일이 1주기인데 정부·軍은 공식 행사 계획 없어… 시민들, 6·25 맞아 추모식 열어
▲25일 오후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열린 6.25전쟁 71주년 기념식과 백선엽 장군 서거 1주기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이 백선엽 장군 추모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6·25전쟁 영웅이자 창군(創軍) 원로인 고(故) 백선엽(1920~2020) 장군을 기리는 추모식이 25일 오후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열렸다. 백 장군은 국립 대전현충원에 묻혀 있고, 다음 달 10일이 1주기다. 정부나 군에서 따로 행사를 준비하지 않는다고 하자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백 장군이 승리를 거둔 다부동 전투 기념관에서 그를 기리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이날 행사는 사단법인 국가원로회의와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로 구성된 추모위원회가 준비했다. 이동수(67) 추모위 대구경북지부장은 “그의 영혼이 머물고 있는 이곳 칠곡 다부동에서 장군과 6·25전쟁을 잊지 말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좌석 200개가 마련됐지만 300여 명이 몰렸다. 헌화와 분향, 각계 인사들의 추도사와 추모 영상, 결의문 낭독이 이어졌다. 국가원로회의 상임의장인 이상훈(88) 전 국방부 장관은 “지금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상당히 위험하다”며 “다부동 전투가 나라를 살리는 반격의 시발점이 된 것처럼, 오늘 백 장군 추도식이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발판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국가 영웅을 기리지 않는) 후배들이 참으로 한심해 매일 밤 잠을 못 이룰 지경”이라고 했다. 권영해(84) 전 국방부 장관은 “돈과 물자에 빚을 졌다면 갚을 수 있지만 생명의 빚은 갚을 수가 없다”면서 “(백 장군과 다부동 용사들의) 뜻을 생각하며 매일 헌신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추모위 공동대표를 맡은 송영근 전 국군기무사령관은 “자유민주주의 기틀이 흔들리고, 한미 동맹이 악화되며, 국군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시면 (백 장군이) 많이 불편하실 것”이라며 “종북 친중 위주 대외 정책, 반일 국수주의 준동, 파묘 논쟁과 묘역 이정표를 없애는 망동을 (백 장군이) 어떻게 지켜보고 계실지…”라고 말했다.
칠곡 다부동은 백 장군을 상징하는 곳이다. 1950년 8월 낙동강 다부동 전투에서 그가 이끈 육군 1사단이 승리하면서 낙동강 전선 방어에 성공했다. 당시 백 장군은 “내가 앞장설 테니,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쏘라”고 말하며 북한 인민군이 점령한 고지로 돌격해 패퇴 직전의 전세를 뒤집었다. 이후 인천상륙작전으로 반격 계기가 마련되자, 백 장군과 1사단은 그해 10월 평양으로 진격했다. 그는 1952년 육군 참모총장에 임명돼 이듬해 우리 군 최초로 4성 장군이 됐다. 1959년 합참의장을 지냈고 이듬해 예편했다.
백 장군은 지난해 7월 별세 전 “전사한 전우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뜻을 남겼다. 그는 전투복을 수의(壽衣)로 입고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관 위에는 다부동 등 8대 격전지 흙이 뿌려졌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는 그의 영결식에 불참했고, 일부 친여 단체는 안장식 때 반대 집회를 했다. 보훈처는 지난 2월 백 장군 묘 안내 표지판을 철거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서울 광화문광장에 청년 단체가 마련한 백 장군 분향소에는 추모객 1만여 명이 다녀갔다.
이날 추모식에 남영신 육군 참모총장이 보낸 조화가 놓여 있었지만, 국방부와 보훈처가 보낸 조화는 보이지 않았다. 예비역 육군 준위 박만록(73)씨는 “시민들은 백 장군을 끝까지 기억한다는 걸 보여주려고 참석했다”고 했다. 이동수 지부장은 “백 장군을 명예 원수로 추대하는 운동을 벌일 예정”이라고 했다. 이날 한 참석자는 만세 삼창을 하면서 “광화문광장에 백 장군 동상이 서는 날을 고대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이승규 기자
06월 28일 국제사회 조롱거리 된 文정권의 끝없는 김정은 찬양
내일(29일)은 제2연평해전 19주년이 되는 날이다. 북한군의 기습공격에 해군 참수리 357호가 파괴되고 윤영하 소령 등 6명이 전사했지만, 즉각 반격해 북한 함정들을 대파했다. 또, 지난 16일은 개성연락사무소 폭파 1년인 날이었다. 김일성의 6·25 남침일까지 겹쳐 6월 하순은 호국 의지를 다질 때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권 인사들이 끝없이 김정은 찬양을 늘어놓는 것은 참담한 일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문 대통령 인터뷰 기사에서 ‘김정은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일편단심은 망상에 가깝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는 25일 문 대통령의 도 넘은 김정은 감싸기를 비판하면서 “다행스럽게도 한국인들은 북한 정권에 대한 문 대통령의 망상을 간파해 왔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대북 인식이 국제사회는 물론 국민과도 동떨어져 있다는 조롱이다. 김부겸 총리는 26일 제주포럼 폐막사에서 북한에 대화 재개를 요청하면서 ‘간절히’‘간곡히’라는 표현을 반복했다. 개성 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국민을 총살 소각한 것에 대해선 함구한 채 저자세로 대화를 구걸한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대선 캠프 외교안보 좌장인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김정은을 “절대군주와 CEO 자질을 겸비한 실용적 리더”로 칭송했다는 점이다. 굴종적 대북정책을 지속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문화일보 사설
06월 28일 병역기피 길 넓힌 大法의 안보 허물기
김태규 변호사 前 부산지법 부장판사
이스라엘 침공을 반대하는 기독교 단체 기도회 참석,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수요시위 참석, 6·25전쟁 60주년 평화기도회 반대 시위 참여. 이 정도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의 이념적 성향을 안다. 또, 김선수 대법관, ‘뇌 송송 구멍 탁탁’이라는 광우병 파동에 동조, 민변 변호사로 활동, 노무현 정권 때 청와대 사법개혁 비서관으로 근무, 법관 경력이 없는데도 이념 편향성 시비 속에서 현 정권에서 대법관으로 임명. 대강 이런 정도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의 이념적 편향성이 추론된다. 물론 법관의 정치적 성향이 피고인의 정치적 성향과 맞아떨어진다고 해서 법관이 그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할 것으로 속단해선 안 된다.
그렇지만 현 정권의 대법원에서 유독 그 정치적 성향에 따라 판결의 내용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고, 이 경향은 일반 국민에게도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법원(주심 대법관 김선수)은 지난 24일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피고인이 현역병 입영을 거부해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에서,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하는 것으로 보아,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로 인정해 무죄를 확정했다.
병역법 제88조 1항은 “현역입영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과거 판결의 태도와 달리 근래에는 종교적 이유도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리고 위 판결은 더 나아가 단지 신념을 이유로 하는 경우에도 정당한 사유로 봤다.
병역거부의 처벌은, 국민개병제를 채택하는 나라에서 병역의무를 국민의 소중한 의무로 규정, 형사처벌을 통해서라도 강제한다는 피치 못한 선택의 결과다. 국민의 종교나 신념을 국가가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그러면서도 국가마다 처한 사정이 다르고 안보는 포기할 수 없다는 점을 알기에, 국민의 소중한 기본권을 양보시키면서까지 병역의 의무를 강요하는 것이다.
대통령과 정권의 주요 인사들은 정권 내내 ‘북한 바라기’로 국정의 에너지 대부분을 북한 심기 다독이기에 쏟았다. 북한은 핵무기로 위협을 더해가고, 군 기강은 무너져 병영 내 성범죄와 사고가 뉴스를 채운다. 종교를 이유로 병역의무를 완화하는 것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데, 오히려 모호한 신념을 이유로 병역기피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번 사건 피고인이 북한 정권의 핵실험을 비판한 적이 있으며, 전범인 김일성과 그 자손들을 비판한 적이 있는가. 무정형의 신념을 이유로 병역거부를 허락하면, 앞으로 북한 정권을 지지해서 그들을 상대로 총을 겨눌 수 없다는 이유로 병역을 거부도 허락해야 한다. 종교를 이유로 병역의무를 완화하는 데도 신중했어야 하는데, 그것을 허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념을 이유로 한 병역거부도 허락해 버린다. 안보를 무시하는 정권과 궤를 같이하며, 법원도 안보 무너뜨리기에 한몫하는 모양새다.
신성한 병역의무를 이행한 국민의 노고가 비양심적 행위로 폄훼돼서는 안 된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아니라, 종교나 신념을 이유로 한 병역기피의 범위는 지극히 제한돼야 한다. 확실한 종교적 이유가 있는 정도에 그쳐야 한다.
문화일보
06.29 [단독]천안함 폭침 왜곡땐 처벌…야당판 '5·18 처벌법' 나왔다
“그날 이후 정상적인 삶은 포기했습니다.”
제2연평해전(2002년 6월 29일) 당시 참수리 357호의 병기병이었던 김상영(40, 당시 일병)씨는 19년 전 북한군이 전우들의 목숨을 앗아간 그날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파편창으로 꿰맨 다리의 상처를 바라볼 때는 물론 시도 때도 없이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그를 괴롭히고 있어서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대상
PTSD 치료 돕고, 취업 시 가점 부여
'좌초설' 등 음모론에 벌칙 규정도
5년 이하 징역, 5000만원 이하 벌금
▲지난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 당시 북한 경비정의 기습 공격에 격침된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가 침몰 53일 만인 그해 8월 21일 해군 해난구조대(SSU)에 의해 인양되고 있다. 참수리 357호는 선체 오른쪽 바닷물과 선체가 만나는 부분의 흘수선에 포탄 구멍(원내)이 있었으며, 선체 곳곳에 포탄 자국이 보였다. 이 사건으로 윤영하 정장 등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김씨는 부상 정도가 경미하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 심사에서 번번이 떨어졌다. 김씨는 “매달 주기적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느라 정상적인 직장 생활을 할 수 없었다”며 “생계를 위해 정말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 보니 늘 비정규직으로 전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라를 위해 이런 일을 겪었는데도 계속 힘들게 사니 답답하고 좌절감만 든다”고 토로했다.
비단 김씨만의 얘기가 아니다. 제2연평해전 참전 장병 중 4명, 천안함 폭침 사건을 겪은 예비역 34명 중 21명은 꾸준히 피해를 호소하고 있지만, 국가유공자가 되지 못했다.
제2연평해전 19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한기호 등 국민의힘 의원 21명은 이들처럼 북한 도발로 피해를 봤으나 국가유공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의료나 취업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장병들을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안을 국회에 냈다.
당초 천안함 폭침 사건에 한해 지난해 7월 발의했던 내용을 고쳐 제1ㆍ2 연평해전과 연평도 포격 도발 등으로 지원 대상을 확대한 법안이다.
▲제6회 서해수호의 날을 10여일 앞둔 지난 3월14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 제2연평해전 전사자 합동묘역에 고인들을 추모하는 국화가 놓여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법안에는 지원 대상 장병이 보훈병원뿐 아니라 보훈처가 지정한 전국의 위탁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대부분 참전 장병들이 PTSD를 겪고 있는데, 보훈병원 가운데 전문 치료가 가능한 곳은 서울의 중앙보훈병원뿐이기 때문이다.
또 피해 장병들에게 취업 가점을 주는 내용도 법안에 들어갔다. 이는 5ㆍ18 민주화운동 피해자의 경우 신체적 피해를 보지 않은 보훈 대상자도 취업 가점을 부여받는 것을 본떴다.
이번 법안에는 천안함 폭침 등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규정도 담았다. ‘좌초설’과 같은 음모론(허위 사실)을 유포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는 내용이다. 이 역시 지난 1월 시행에 들어간 ‘5ㆍ18 역사 왜곡 처벌법’의 처벌 기준을 준용했다.
이와 관련, 안종민 천안함 전우회 사무총장은 “음모론으로 ‘천안함 재조사’를 주장해온 신상철씨는 물론 민주당 전 부대변인, 휘문고 교사 등 다양한 인사들이 최근까지도 도가 지나친 발언으로 유가족과 생존 장병들을 모욕하고 있다”며 “특별법 통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기만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6·25전쟁 71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 서울도서관 서편 외벽에 참전 용사 이름을 새긴 대형 현수막이 게시돼있다. 현수막에는 6·25 참전용사는 물론 제2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도발 등에 참전한 서해수호 55용사의 이름이 담겼다. 임현동 기자
국민의힘 측은 이번 특별법과 별도로 피해 장병들이 군무원 경력경쟁 채용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군무원인사법 개정안’도 이날 함께 발의했다. 김상영씨처럼 적령기에 취업 기회를 상실한 장병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두 법안을 대표 발의한 한기호 의원은 “수차례 국방부, 국가보훈처와 내용을 협의해 수정안을 마련한 것인 만큼 법안이 빨리 통과돼 국가를 위한 희생이 제대로 예우받길 바란다”며 “향후에도 북한의 도발로 인한 유사 사례가 발생하면 이 법에 따라 지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진ㆍ박용한 기자 kine3@joongang.co.kr
06.30 우리 안보를 왜 세계가 대신 걱정해 주나
6·25 때 우방 도움 받은 이후 남이 지켜주는 것 당연히 여겨
북한 눈치나 보면서 평화 타령… 왜 우리 걱정을 남이 해주는가
‘나라는 남이 아닌 내가 지켜야 한다’는 말은 재론 여지가 없는 당위다. 그런데 이 나라에선 우리가 피 흘려야 할 자리에서 남이 대신 피 흘리고, 우리가 걱정해야 할 안보 사안을 세계가 대신 우려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6·25가 터지고 한강 다리가 폭파되던 날부터 그랬다. 일본에 주둔해 있던 맥아더 장군이 워싱턴에 이런 전보를 보냈다. “미국의 행동이 몹시 더디다. 한국은 이미 위험이 눈앞에 닥쳤다.” 한반도에 날아와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선 기자들에게 이런 말도 했다. “내게 두 사단만 주면 한국을 지킬 수 있다.” 그는 마치 자기 나라가 위험에 빠진 것처럼 한국의 안전을 걱정했다.
/지난 2016년 열린 한미 연합 상륙훈련 모습/해병대
북한 청천강에서 맞닥뜨린 중공군에 한국군이 무력하게 밀렸다. 한 미군 장교는 ‘점토로 빚은 군인들’이라며 싸울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였다고 했다. 미 8군 사령관 리지웨이 장군은 패퇴하는 한국군 트럭을 보면 무장한 미군 헌병들에게 막아서게 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꾸짖었다. “전선으로 돌아가라!” 남이 와서 네 나라를 돕는데 너희는 도망이나 가느냐는 질책이었다. 중공군 수십만 명이 물밀듯 남하하자 ‘미국은 한국을 버릴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다. 이 대통령도 불안했던지 리지웨이에게 철군할 거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한국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 후로 70년, 어느새 우리는 미군이 우리 국방을 책임지는 걸 당연한 권리로 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남북 화해라는 미명 아래 전방 초소를 폭파하고 국방의 핵심인 한·미 훈련조차 천덕꾸러기 취급할 수 있는가. 이런 한국을 향해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2년 전 “북한은 한·미 연합군의 역량이 부족하다거나 약점이 있다고 인식할 경우 모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미 연합 방위 태세 약화 걱정을 우리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미국이 한다. 다음 달 2일 이임하는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도 “평시에 땀 흘려야 전시에 피를 흘리지 않는다”면서 “2018년 이후 컴퓨터 게임으로 하고 있는 한·미 훈련을 야전 훈련으로 돌려놔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 또한 미군이 컴퓨터 게임으로 하자고 해도 우리가 단호히 반대해야 하는데 거꾸로 됐다.
북한 핵무장을 가장 앞서서 저지해야 할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사태평하고 오히려 국제사회가 이 나라의 안보를 걱정한다. 지난 3월의 쿼드 성명, 다음 달 미·일 공동성명, 이달 나토(NATO) 공동성명이 모두 ‘북한 비핵화’를 요구했다. 그런데 우리가 끼어들면 ‘북한 비핵화’가 ‘한반도 비핵화’로 바뀐다. 이달 G7 공동성명과, 지난달 한미 정상의 공동성명이 그랬다.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을 걷어치우라는 북한 요구와 흡사하다.
이 나라 대통령은 현충일에 북한의 침략 행위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미국 타임지 인터뷰에선 한반도 적화 야욕을 포기한 적 없는 독재자를 ‘솔직하고 의욕적이며 강한 결단력을 가진 지도자’라고 치켜세웠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금강산에서 국제 골프 대회를 하자며 어떻게든 대북 제재 풀 궁리만 한다. 이 정부는 북한 비핵화 추진 과정에서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한미 워킹그룹도 김정은 남매가 비판하자 종료해버렸다. 나라를 지키는 게 아니라 북한 왕조 눈치 보기 바쁘다. 국가인권위는 미국 대사관저 담을 뛰어넘은 단체가 대사관저 앞에서 벌이는 1인 시위를 보장하라고 경찰에 권고하고, 대학가에선 평양을 이상적 사회주의 도시라고 찬양하는 전시회가 열린다. 이 모든 게 국가 수호의 사명을 타국에 맡긴 나라에서 벌어지는 어이없는 풍경이다.
조선일보 김태훈 논설위원
06월 30일 공군총장 하루 만에 보류…文 ‘난장판 인사’ 상징이다
공군 참모총장 인사가 발표 하루 만에 보류되는 희한한 사태가 벌어졌다. 정부가 공식 발표한 군 수뇌부 인사를 국민에게 분명한 사유를 설명하지도 않고 뒤엎는 것은, 유례가 없을 뿐 아니라 국민을 모욕하는 일도 된다. 국방부는 지난 28일 박인호 공군총장 지명을 알리는 보도자료에서 “29일 국무회의 심의 의결을 거친 후 30일 군 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할 예정”이라고 구체적 일정까지 밝혔다. 그러나 돌연 이 안건은 29일 국무회의에 올려지지 않았고, 30일로 예정된 취임식도 취소됐다.
문 대통령의 인사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수많은 사례를 통해 드러났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청와대와 국방부의 민정·인사 라인이 초보적 기능조차 발휘하지 못한 ‘난장판 인사’의 결과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인사는 전임 총장이 이모 중사 성추행 피해 사망 사건 책임을 지고 물러난 지 24일 만에 발표됐다. 당연히 더욱 긴장감을 갖고 검증했어야 했고, 그럴 시간도 충분했다. 박 내정자가 공군사관학교 교장 재임 시절 성범죄 사건 등을 미흡하게 처리한 것 등의 소문이 나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더욱 심각하다. 공군 총장 후보군이 많은 것도 아니다. 공군 중장은 5명이고, 이 가운데 총장 후보는 2∼3명밖에 안 된다. 공사 교장 재임 시기도 최근인 2019∼2020년이다. 공군 안팎에 소문도 파다했던 사안이다. 기본적인 조사만 했더라도 바로 확인될 사안이다.
청와대 인사 난맥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김기표 전 반부패비서관은 부동산 투기 혐의가 있는데도,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은 만취 상태에서 택시기사를 폭행하고 무마까지 했는데도 임명됐다. 대통령이 ‘내 사람’만 챙기니 청와대 비서실은 최소한의 기강도 없이 끼리끼리 적당히 면피하며 봐주는 사조직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공군 총장 인사는 안보와도 직결된다. 모두 문 대통령 책임이다.
문화일보 사설
06월 30일 최원일 “11년째 천안함 음모론과 전쟁… 文대통령이 ‘北 소행’ 말해야 끝난다”
▲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이 지난 28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해군 동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영원한 천안함 함장으로서 숭고한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고 국가를 위한 헌신을 자랑스러워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아래 사진은 최 전 함장이 전쟁기념관에 보관된 북한산 어뢰 ‘CHT-02D’를 살펴보는 모습. 신창섭 기자
■ 현안 인터뷰 - 최원일 前 천안함 함장
음모론적 공격은 ‘심리적 어뢰’
책 써서 인세받고 유튜브 운영
팩트가 나와도 그만두지 않아
대응가치 없다고 놔두면 확대
文, 2015년전까지 음모론 동조
대통령 된후 모호한 태도 일관
음모론 막으려면 공식입장 내야
‘천안함이 벼슬이냐’ 막말 교사
사과했지만 진정성 없어 고소
피붙이같은 배·부하 잃은 죄인
영원히 ‘천안함 함장’ 남을 것
최원일(53·해사 45기) 전 천안함 함장은 ‘비운의 함장’으로 불린다. 2010년 3월 26일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초계함 천안함(PCC―772)에 승선한 부하 장병 46명을 잃었다. 그는 “제 몸과 같은 배와 제 피붙이 같은 부하들을 잃은 죄인”이라며 “죽을 때까지 ‘영원한 천안함 함장’으로 남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지난 2월 28일 예비역 해군 대령으로 예편했다. 하지만 그는 북한보다 훨씬 더 위험한 천안함 음모론자들과의 ‘전투’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는 음모론자들의 공격을 ‘심리적 어뢰’라고 표현했다. 천안함 음모론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고 있어 음모론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6·25전쟁 71주년을 맞아 지난 28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최 전 함장을 만났다.
―30년 군 생활을 마감한 심정은.
“전역 후 4개월이 짧다면 짧은데,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이 벌어졌다. 전역 후 정리도 할 겸 책을 쓰려고 했는데, 매일같이 일이 생겼다. 집필하려다가 일이 너무 많이 터져 다른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천안함 생존 장병과 유족의 명예 회복을 위해 싸우고 있다.”
―집필하려던 책은 어떤 책인가.
“천안함 피격 사건 후 3년간 쓴 일기와 그동안 언론에 나온 천안함 관련 기사를 빠짐없이 스크랩하며 연구했다. 무엇이 문제여서 천안함 음모론이 생겨나고 생존 장병들이 상처받고 유족들은 고통받는지 되짚어보는 책이다. 2010년 정부가 발간한 ‘천안함 백서’는 상급부대 잘못을 하나도 짚지 않았다. 우리나라 교훈집이나 백서는, 당대의 잘못을 빼버리는 문제점이 있다. 앞으로 이 같은 불행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내년 천안함 12주기를 발간 목표로 생각하고 있다.”
―천안함 관련 악성 루머와 음모론이 가라앉기는커녕 11년째 번져가고 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북한은 2009년 11월 한국 해군에 패배한 대청해전의 보복으로 천안함 사건을 일으켰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북 강경 모드로 나가고, 이후 김대중 대통령 서거 후 남북관계 개선 국면에서 천안함 피격 사건이 발생했다. 보수는 ‘천안함 진실을 못 믿느냐’며 밀어붙였고, 진보는 ‘보수가 무조건 천안함 프레임을 씌운다’고 맞섰다. 국방부 민군합동조사단 발표를 지방선거 직전에 한 것을 두고 당시 야당에선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11년이 지나면서 정부가 2번 바뀌었는데 진보 정부는 천안함 사건을 부각시키면 남북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 봐 북한 소행이라고 말을 못 하는 실정이다.”
―최근 조상호 전 더불어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이 ‘천안함 함장이 장병들을 수장(水葬)했다’는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켰다.
“그분은 변호사이고 법조인인데 안타깝다. 나중에 또 여당 공천을 받으려 할 것 같은데, 그런 분이 국민을 선동하고 자신의 주장을 정치 선동에 활용하는 것은 크게 잘못됐다. 46명의 천안함 전사자와 유족, 58명의 생존자를 2번, 3번 죽이는 행위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사과했지만 조 전 부대변인에 대한 제명 요구는 수용하지 않고 있다. 조 전 부대변인은 나중에 사과하면서 ‘유족에게는 죄송하다’고 했는데, 함장과 유가족·생존자를 갈라치기하는 행위다.”
―‘천안함이 벼슬이냐’며 입에 담기조차 힘든 과도한 욕설과 막말을 SNS에 올린 휘문고 교사가 사과했지만 명예훼손 및 모욕죄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고소한 이유는.
“제가 참을 수 없었던 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학생들이 보는 페이스북에 써놓고는, 누군가 댓글에 ‘왜 그렇게 썼나’고 물으니 어처구니없게도 ‘스트레스 해소’라고 써놓은 것이다. 페이스북 메신저에 사과글을 올렸는데 진정성이 안 보였다. 본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아야 하는데 그걸 모르는 게 더 문제다.”
―천안함 괴담이 숱하게 많다. 신상철 전 조사위원은 아직도 동영상을 보여주며 잠수함 충돌설을 주장하고 있다.
“배가 침몰하면서 수압으로 터진 구명정이 조류에 흘러 왔다 갔다 한 영상을 잠수함이라고 주장한다. 당시 음력 2월 11일 달빛에 비쳐 구명정에 음영이 생겼다. 바다 위 구명정에 달 그림자가 생긴 것을 교묘하게 잠수함 모양으로 만들어 보여준 것이다. ‘이스라엘 잠수함’이란 주장은 거짓이란 게 최근 ‘PD수첩’ 방송을 통해 드러났다. 교묘하게 편집해서 잠수함으로 보이게 할 수는 있지만 길이가 채 5m 정도밖에 안 된다. 그렇게 작은 잠수함은 세상에 없다.”
―음모론자들이 끊임없이 괴담과 음모를 퍼뜨리는 의도는.
“괴담을 주장하는 음모론자들은 책을 써서 인세도 받고 유튜브 방송도 하고 있다. 음모론자들은 끊임없이 세인의 관심을 끌려고 시도한다. 천안함 음모론을 방송하는 유튜브만 14개다. 구독자가 몇십만 명인 방송도 있다. 음모론자들을 계속 초청해 방송하는 방식으로 음모론을 확대 재생산한다. 이들은 음모론을 직업으로 삼는다. 그래서 확실한 팩트가 나와도 음모론을 그만두지 않는다. 국방부는 ‘지금까지 대응할 가치가 없어서 안 했다’고 하더라. 하지만 가만 놔두면 음모론은 계속 확대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국립서울현충원 올해 현충일 추념식에서 “천안함 폭침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라”고 피켓 시위를 벌인 이유는.
“문 대통령은 2015년 이전까지 음모론에 동조했다. 2015년 군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천안함 피격이 북한 소행’이라고 처음 이야기했다. 이후 대통령이 되고 나서 ‘정부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만 했지 북한 소행이라고 직접 이야기한 적이 없다. 대통령 자격으로 직접 ‘북한 소행’이라고 해야 집권 여당 내 음모론자들이 생기지 않는다.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다. 국군을 보호하는 사람이다. 물론 북한에 자극을 줄까 봐 그렇게 하는 것이란 이해는 간다. 그럼에도 음모론을 막으려면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입장을 내야 한다.”
―지난 17일 서욱 국방부 장관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유족분들과 생존자들이 하늘에 가서 아들과 전우들을 만났을 때 웃을 수 있도록 그런 날을 만들어 보겠다”고 했다. 어떤 의미인가.
“지금 유족들은 전사자의 아버지이고 어머니란 것이 떳떳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생존 장병들은 ‘같이 있으면 재수 없다’는 소리도 듣는다고 한다. 같은 배를 타고 나간 장병들이 그런 말을 한다고 한다. 생존자들이 사회에 나와서도 음모론을 듣고 있다. 생존 장병들에 대한 2·3차 가해를 멈춰야 한다.”
―생존 장병 상이연금과 관련해 무엇이 문제인가.
“최근까지 유족 네 분이 돌아가셨다. 고 민평기 상사 모친인 윤청자 여사의 남편은 스트레스로 3년 전 돌아가셨다.고 김선명 병장 부친, 고 박석원 상사 부친인 박병규 전 천안함유족회장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몇 년 전 돌아가셨다. 상이연금과 관련해서는 국방부에서 세밀히 살펴서 추진한다는 약속을 받았다. 생존 장병, 유족 중에는 이름까지 고치고, 이민 가서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도 있다.”
―제2의 천안함 피격 사건을 막기 위해 우리 해군이 가장 시급히 할 일은.
“천안함과 같은 급의 함정이 아직 남아 있는데 하루라도 빨리 퇴역시켜야 한다. 천안함과 장비와 성능이 똑같다. 천안함은 고속정의 지휘함 개념이다. 대잠(對潛) 성능은 아주 기초적인 것만 달고 있다. 기본적으로 초계함이다. 천안함은 1988년에 건조됐다. 선령의 문제가 아니고 장비에 문제가 있다. 천안함급에 성능이 좋은 소나 장비를 달기에는 배가 너무 작다. 천안함급 옛 함정은 빨리 퇴역시키고 신형 함정으로 교체해야 한다.”
―북한의 잠수함 위협 대비책은.
“북한의 잠수함·정은 70여 척이나 된다. 도발 시점이 되면 잠수함들은 동력을 끄고 있어 탐지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이지스함을 만들 때 북한은 잠수함을 만들었다. 바닷속은 온도도 다르고 밀도도 다르다. 물고기 소리 같은 변수도 많다. 백령도 같은 경우는 조류 소리 때문에 탐지가 정말 곤란하다. 일본이 100대의 대잠 초계기를 운영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수상함 건조를 강조하는 데서 벗어나 대잠 전력을 더 키워야 천안함 폭침 재발을 막을 수 있다.”◎
문화일보 인터뷰 = 정충신 선임기자, 정철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