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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역사10/ 자이언트 롯데 / 가방 하나 들고온 신격호… 직원 13만명 기업 일궈 - 대한민국 랜드마크 롯데월드타워

상림은내고향 2021. 5. 10. 19:34

기업의 역사10/ 자이언트 롯데 

2017-10-11 가방 하나 들고온 신격호… 직원 13만명 기업 일궈

롯데, 50년 성장 과정 담은 그룹차원 첫 社史 발간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로 모국에서 사업할 길이 열리자마자 김포공항으로 귀국한 신격호 총괄회장의 43세 때 모습. 롯데그룹 제공 

 

롯데그룹이 창립 50주년을 맞아 사사(社史) ‘롯데 50년사’를 내놓았다. 롯데가 그룹 차원의 사사를 편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동빈 회장 체제를 굳힌 롯데가 새로운 비전을 대내외에 알리기 위해 펴낸 것으로 분석된다

10일 롯데가 내놓은 50년사에는 1967년 신격호 총괄회장이 롯데제과를 설립한 이후 유통, 관광, 화학, 금융 등으로 영역을 넓힌 롯데의 역사가 담겨 있다. 롯데는 창업 첫해 8억 원 매출, 임직원 500여 명에서 2016년 말 기준 매출 92조 원, 임직원 13만 명이 함께하는 5대 그룹으로 성장했다. 

올 초 발간된 롯데제과의 50년사에는 신 총괄회장의 창업기가 담겨 있다. 이번 그룹 사사에는 이를 포함해 아버지의 뒤를 이은 신 회장의 글로벌 경영철학과 미래 비전, 롯데월드타워 건설 기록 등을 자세히 실었다. 

신 회장은 발간사에서 “올해는 창립 50주년이 되는 해이자 ‘뉴 롯데’ 시대를 여는 전환점이다. 지속 가능한 ‘라이프 타임 밸류 크리에이터’가 돼 미래를 향해 당당히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롯데 50년사는 550쪽 분량의 역사집과 150쪽 분량의 화보집 두 권으로 돼 있다. 두 책 모두 재일(在日) 사업가 신격호 총괄회장의 귀국을 그룹의 이정표로 기록했다.

 

특히 1965년 썰렁한 김포공항에 내린 43세 신 총괄회장의 사진은 외부에 처음 공개되는 사료다. 사사는 ‘신 총괄회장은 모국에서 사업을 펼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로 길이 열리자 수행원 2명만 데리고 김포공항에 내렸다. 롯데 여정의 출발점이었다’고 적었다. 

역사집에는 롯데 반세기의 의미와 신격호 총괄회장의 경영철학, 신동빈 회장의 경영철학 등을 담아 롯데그룹의 역사와 미래를 짐작할 수 있도록 했다. 신 총괄회장이 “기업은 사회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철학으로 유통, 호텔, 석유화학으로 국내 사업을 확장했다면 신 회장은 “글로벌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는 철학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했다는 내용이다

 

/롯데그룹 창립 50주년인 올해 4월 개장한 123층 롯데월드타워(위 사진). 롯데그룹은 창업 스토리부터 롯데월드타워 건설사와 신동빈 회장의 글로벌 경영 철학 등을 ‘롯데 50년사’에 담았다. 롯데그룹 제공

 

롯데월드타워에 대한 그룹의 건설 의지와 에피소드도 자세히 묘사돼 있다. 화보집 ‘롯데의 과거와 현재’ 부분에 1989년부터 2008년까지 롯데월드타워의 디자인 설계안 변천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사진 17장이 실렸다. 설계사 선정 프레젠테이션에 참석한 신 총괄회장 사진과 롯데월드타워 홍보관에 방문객과 함께한 신 회장의 사진을 각각 과거와 현재로 배치했다. 사진 설명란에 “신 총괄회장은 설계에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신 회장은 현장의 안전을 챙기고 타워의 가치를 대내외에 알렸다. 두 경영자의 열정으로 2017 4월 롯데월드타워가 개장했다”고 적었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4월 경영혁신실 커뮤니케이션팀이 중심이 된 사사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하고 편찬 작업에 들어갔다. 신 회장이 2015년 형제간 극렬한 경영권 분쟁 이후 한일 롯데의 경영권을 확보하고 뉴 롯데를 표방하기 시작하던 시기다. 50주년을 맞은 올해는 여러모로 롯데에 의미 있는 해이기도 하다. 롯데월드타워 그랜드 오픈, 뉴 비전인 ‘라이프타임 밸류 크리에이터’ 선포, 롯데그룹 지주사 전환 작업이 이어졌다. 롯데그룹 지주사는 이달 발족할 예정이다. 

롯데 관계자는 “롯데 50년 역사를 조명하고, 창업정신과 새로운 비전을 공유해 100년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로 삼겠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2015.10.19 신격호, 그대 이름은 리어왕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약혼자가 있는 처녀를 사랑한 청년이 그 사랑이 좌절되자 권총으로 생을 마감하는 연애소설이다. 작품을 발표한 1774, 괴테는 스물다섯 살, 질풍노도의 청년이었다. 괴테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이 작품의 격정 속으로 당시 젊은이들은 단숨에 휘말려 들었다. 청년들은 베르테르처럼 옷을 입고 다녔고 수천 명의 모방 자살이 도미노처럼 이어져 이 소설이 금서(禁書)로 지정되기도 했다. 소설 속에서 이 청년이 열렬히 사모했던 여인 로테는 실제로 괴테 자신이 짝사랑했던, 친구의 약혼녀 이름이었다. 요즘 기업 승계 문제로 떠들썩한 대기업 이름 역시 여기서 빌려왔다고 한다.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사태에 매번 눈길이 가는 건 이 회사가 만든 먹거리들이 너무도 친숙하기 때문일까. 다양한 음료수와 과자는 우리의 유년과 학창 시절의 추억 속에 늘 같이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학교 매점으로 달려가 사 먹었던 아이스크림 맛이 다른 회사 제품과 유다르진 않았지만, 녹아들 듯 달콤하고 아련한 그 처녀의 이름이 아이스크림의 끝맛에 신비로운 아우라를 더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

낭만적 소설의 주인공을 자신이 세운 기업 이름으로 차용한다는 것은 그의 성품의 어떤 면, 나아가 기업 운영의 스타일까지도 짐작하게 한다. 신라호텔과 해비치호텔의 실내장식에서 소유주의 취향과 가치관 차이를 어렵잖게 유추해볼 수 있는 것처럼.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창업주는 아마도 로맨티시스트일 것이며 섬세하고 감성적 성품일 것이다. 젊은 베르테르처럼.

하지만, 계속되는 소란에 정작 떠오르는 건 베르테르가 아니라 리어왕이다. 역시 인생의 가혹한 진실에 대해선 셰익스피어가 한 수 위인 건가. 그렇다기보다는 광야를 방황하는 리어왕의 고독이 우리네 인생의 속내를 좀 더 다면적으로 비추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창업주가 거주한다는 특급 호텔이 리어왕의 황야와는 다른 듯 닮은 현대판 광야로 다가오기도 했다. 관점에 따라선 모든 게 완벽하게 갖추어진 환상적 공간일 수도 있겠지만 긴 복도 양옆으로 숫자만으로 구분되는 방이 줄지어 늘어선 곳, 인공조명 아래 시간의 흐름을 잊게 하는 그곳은 노인에겐 오리무중의 장소가 아닐까. 리어왕은 묻는다. '딸들아 말해다오.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남극과 북극처럼 멀어 보이는 베르테르와 리어왕은 이 지점에서 겹쳐진다. 사랑받고 싶어서….

종달새처럼 효성을 지저귀는 딸들에게 왕국을 나누어준 후 쫓겨나는 리어왕의 교훈은 불효에 대한 훈계도, 그러니 다 쓰고 죽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유부녀인 두 딸이 한 남자를 사랑하여 서로에게 칼끝을 겨누기도 하고 등장인물이 하나씩 죽는 데스노트를 따라가다 보면 막장 드라마의 원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따로 있다. 그건 인생의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그 사유의 끝은 바로 나 자신을 가리킨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걔와 나, 완전히 다르거든?' 생각했던 문학 속 캐릭터와 자신이 사실은 똑같다는 걸 깨닫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왕은 황량한 광야에서 비로소 묻는다. "여기 누구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가? 이건 리어가 아니야.()내가 누구라고 말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옆을 지키던 광대가 대답한다. "그건, 당신의 그림자요."

살아간다는 것은 그림자를 쌓아가는 일이다. 들여다보면 내 안에 베르테르와 리어왕이 있다. 그 둘 사이에는 또 무수한 그림자의 스펙트럼이 있다. 때론 진실에도 초콜릿 코팅이 필요함을 몰랐던 막내딸 코델리어와, 아버지보다는 왕국을 더 사랑한 거너릴의 그림자가. 왕국과 사랑을 같은 저울에 달았던 리어왕과 사랑을 갈구하는 연약한 노인의 그림자까지도. 무수히 겹쳐진 그것들이 나인 셈이며, 우리 역시 언젠가 불안한 눈을 두리번거리며 묻게 될 것이다. 여기 누구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가, 하고.
정미경 소설가

 

2017.03.24  롯데 창업 50년 신격호 시대 마감...신동빈 회장 시대 열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롯데그룹의 경영비리 관련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이 그룹의 대표 계열사 롯데쇼핑의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롯데쇼핑은 3 24일 오전 열린 제 47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지난 19일 임기가 만료된 신 총괄회장에 대한 재선임안을 다루지 않았다. 서울 영등포 롯데빅마켓 6층에서 열린 제 47기 정기주주총회는 23분 만에 마무리 됐다신격호 총괄회장은 지난 1979년 롯데쇼핑 등기이사에 오른지 38년 만에 이사직에서 물러나게 됐다그가 1967년 한국에 롯데를 설립한지 꼭 50년만의 일이다.

 

대한해협을 건너 롯데를 창업한 신격호

 한국 이름 신격호일본 이름 시게마츠 타케오인 그는 홀수 달에는 한국에서짝수 달에는 일본에 머물며 롯데를 운영해왔다. 1941년 밀항으로 대한해협을 건넌 신격호는 일본에서 와세다고등공업학교 화공학부를 졸업했다처음에는 비누포마드 등 유지류를 생산하는 공장을 차렸고 이후 특수고무 등의 물질을 연구하다가 껌을 개발했다기존의 껌들과 차별화된 질감을 가진 신격호의 껌은 금방 인기를 모았다당시 젊은 여성들을 겨냥해 껌을 만들었는데젊은 층에서는 또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인기였으므로 신격호 회장 역시 이상형이던 작품의 여주인공 ‘샤롯데’를 기업의 이름으로 지어 LOTTE’가 되었다.

/롯데제과에 따르면 1967년 회사 설립 이후 롯데 껌 제품의 판매량은 300억 통누적 매출은 약 4조원에 달한다.

 

이후 롯데는 정력적으로 사업을 확장해갔다현재는 재계 5위의 대기업이 되었다신 회장은 첫째 부인인 고() 노순화에게서 첫째 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을둘째 부인인 일본인 사게미쓰 하츠코 사이에서 신동주신동빈 형제를 낳았다이후 미스롯데 출신인 서미경에게서 신유미를 낳았다연년생인 신동주와 신동빈은 ‘현대판 왕자의 난’이라 불릴 정도로 후계자 자리를 두고 다툼을 벌였다.

 

앞서 신 총괄회장은 이미 지난 2014년 롯데리아와 롯데로지스틱스 비상무이사, 2015년 롯데상사 사내이사대홍기획 비상무이사지난해 3월엔 호텔롯데 대표이사와 롯데제과 사내이사에서 물러났고 11월엔 부산호텔 사내이사에서 물러났다그는 오는 26일 롯데건설오는 8월 롯데알미늄 기타비상무이사, 11월 롯데자이언츠 사내이사직도 임기만료를 앞두고 있다.

 

이로써 지난 1967년 한국 롯데 설립 이후 '신격호 시대' 50년 만에 마침표를 찍게 된다재계 서열 5위 그룹인 롯데가 창립 50주년을 맞은 올해 '신격호 시대'를 공식적으로 마감하게 된 셈이다신동빈 회장은 롯데케미칼롯데칠성음료 등의 사내이사로 올라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고 예정된 지주사 전환 작업에 착수할 방침이다.

 

/나란히 검찰에 출석한 롯데 3부자, 왼쪽부터 신동빈, 신격호, 신동주_사진 뉴시스 

 

경영비리의 책임을 서로 떠넘긴, 신격호 vs 신동빈

 앞서 지난 20일 있었던 검찰조사에서 ‘롯데그룹 경영 비리와 관련횡령탈세 혐의’로 기소된 신격호 총괄회장 및 오너 일가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무죄를 주장했다신격호 총괄회장 측은 회사 정책본부에서 결정한 사안이라고 주장했으며신동빈 롯데 회장은 신 총괄회장의 지시로 자신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20롯데 오너 일가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1차 공판에서 신 총괄회장 측 변호인은 "영화관 매점 임대 관련 배임급여 지급 등에 구체적으로 관여한 바 없다" "롯데그룹 내 정책본부가 업무적으로 검토하고 결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이어 "고령으로 일선에서 물러난지 오래됐고 경영에 관여하지 않아 형사처벌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 "사재를 털어 회사에 보탬이 되는 일을 했을지언정 자신의 분신과 같은 롯데에 어떤 피해나 손해를 가하는 일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검찰에 출석한 신 총괄회장은 "여기가 어딘가", "왜 내가 여기에 있는가"를 묻기도 했다.

 

 반면 신동빈 회장 측 변호인은 '신 회장은 관여하지 않았고 신 총괄회장이 직접 지시했다'고 주장했다신 회장 변호인은 "아버지를 경영인으로 무척 존경해 왔고 자식된 도리로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지만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해 말한다"면서 "신 총괄회장이 영화관 매점 임대 문제 등과 관련해 (신영자 이사장 등에게나눠주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 변호인도 "이사 선임 및 보수 지급 등은 주주총회 의결 사항으로 신 전 부회장이 영향력을 행사한 바 없다" "신 전 부회장은 한국과 일본 그룹 경영 전반에 관여해 적법했고 보수를 통해 개인적인 이익을 얻고자 한 것도 없다"고 말했다.

 

/검찰에 출석한 셋째 부인 서미경_사진 뉴시스

 

신격호 회장이 가장 많은 지분을 넘긴, 셋째 부인 서미경

 셋째 부인인 서미경씨 변호인은 "영화관 매점 임대 결정이 과연 배임 행위에 해당하는지 의문"이라며 "서씨는 롯데쇼핑 임원도 아니고 배임죄에 해당하는 신분이 아니므로 공범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그러면서 "서씨는 '수익사업이 있는 새로운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얘기했을 뿐 배임을 교사했다거나 가담했다고 볼 수 없다" "배임의 고의 자체도 없다"고 밝혔다.

 

 서미경과 딸 신유미는 각 개인 지분과 모녀 소유회사인 경유물간 지분을 더해 6.8%의 롯데홀딩스 지분을 갖고 있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한국과 일본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사실상 ‘지주회사’다. 모녀의 지분은 당초 신 총괄회장의 것이었으나, 검찰은 신 총괄회장이 1997년 이후 모녀에게 양도, 편법 상속의 방법을 통해 지분을 넘긴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결국 현재 서 씨 모녀의 지분(6.8%)은 신 총괄회장(0.4%), 신동주 전 홀딩스 부회장(1.6%), 신동빈 롯데 회장(1.4%) 보다도 많다여기에 신동빈 롯데 회장으로부터 롯데시네마 매점을 불법 임대받아 770억원대 부당 이득을 챙긴 ‘배임’ 혐의도 받고 있다.

 

 부동산도 있다. 2015년 공시지가 기준 서미경은 약 340억원, 딸 신유미는180억원 상당의 부동산도 소유하고 있다. 모녀는 반포동 빌딩, 삼성동 유기타워, 방배동 롯데캐슬 벨베데레, 종로구 동숭동 공연장 유니플렉스 등을 갖고 있다여기에 롯데백화점 내 식당가에서 식당을 운영해 ‘일감 몰아주기’, ‘특혜’를 받기도 했다. 20일 법원에 서 씨가 출석한 것도 신 총괄회장이 모녀의 재산을 챙겨주는 과정에서 탈법 혐의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신동빈 차녀 TBS 아나운서와 화촉, 장남 결혼엔 아베 총리 참석하기도

 한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차녀가 일본 민영방송 TBS 아나운서와 5월 결혼한다는 보도가 일본의 주간지를 통해 나왔다. <주간문춘>은 신동빈 회장의 차녀 신승은씨가 TBS의 이시이 도모히로 아나운서와 결혼한다고 보도했다롯데는 현재 TBS의 스폰서 기업이다. <주간문춘>에 의하면 롯데 관계자는 "지난해 가을 무렵부터 둘째 딸 결혼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며신동빈 회장 자녀들이 할아버지인 신격호 총괄회장에게도 결혼인사를 간 것으로 들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하지만 "현재 신동빈 회장이 한국에서 출국 금지가 돼있어사내에서도 '이런 힘든 소동 속에 축하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동빈의 차녀와 결혼하는 TBS 이시이 아나운서_뉴시스
 

지난 2015 1128일에는 도쿄 데이코쿠 호텔에서 열린 신동빈 회장의 장남 결혼식 피로연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참석해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아베 총리가 재계 총수의 자녀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하는 것은 이례적이다신 회장은 아버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아베 총리 집안의 교류로 인해 일찍부터 아베 총리와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현재 롯데는 내우외환 상태다한국에서는 롯데그룹 경영비리와 관련한 롯데 총수 일가의 재판이 진행 중이며최근 롯데는 경북 성주골프장을 사드 부지로 제공해 중국으로부터 보복을 당하고 있다.

 

신동빈, 중국 사랑한다 사업 지속할 것

 신 총괄회장이 지난 50년 맨손으로 롯데를 설립해 롯데그룹의 '양적 성장'을 이뤘다면 향후 롯데그룹의 또다른 50년은 '질적 성장'을 이루겠다고 했다신동빈 회장이 지난해 대국민 사과에서 언급한 '질적 성장'은 기업의 체질 자체를 바꾸겠다는 메시지다질적 성장은 지난 시대의 관습을 버리고 준법 경영을 통해 기업의 투명성을 강화해 기업에 대한 리스크를 최소화하겠다는 신동빈 회장의 뜻이기도 하다.

 

 신동빈 회장은 24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을 사랑한다. 우리는 중국에서 계속 사업을 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오는 5 9일 대통령 선거에서는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롯데가 중국에서 사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새 대통령이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경영권 분쟁 상대인 형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에 대해서는 "여전히 화해하기를 바란다" "어릴 때 매우 가까운 사이로 자랐는데, 상황이 이렇게 돼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유슬기 조선pub 기자

 

2017.06 26  롯데그룹 ‘신격호 시대’ 70년만에 막 내리다

日 롯데홀딩스 주총서 이사직 배제… 1948년 창업 후 경영서 완전히 손떼

신동주 복귀 실패… 신동빈 체제 강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사진) 69년 만에 그룹 경영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났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24일 도쿄(東京) 본사에서 주주총회를 열고 임기가 만료된 신 총괄회장을 제외하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포함한 이사 8명을 재선임했다. 신 총괄회장은 ‘명예회장’이라는 직함만 갖는다. 한국의 대표적인 창업 1세대 중 가장 마지막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이다

신 총괄회장은 1948년 일본에서 ㈜롯데를 설립한 이래 롯데그룹을 경영해 왔다. 이날 신 총괄회장이 이사직을 잃은 일본 롯데홀딩스는 한일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회사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한국 롯데의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의 지분을 19%가량 보유하고 있다. 신 총괄회장의 퇴임은 지난해부터 계열사별로 진행돼 왔지만 이번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의 배제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는 것이 롯데그룹 안팎의 분석이다 

지난해 8월 한국 법원은 신 총괄회장의 한정후견 개시 결정을 내렸고, 올 초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신 총괄회장은 지난해부터 일본 롯데와 한국 호텔롯데, 롯데쇼핑, 롯데제과 등 주요 계열사 이사직에서 차례로 물러났다. 마지막 남은 한국 롯데그룹의 롯데알미늄 이사직도 8월 임기가 만료된다.

이날 주총에서는 경영권 분쟁을 하고 있는 형제간의 네 번째 표 대결도 있었다. 장남인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제안한 경영진 교체 안건이 부결돼 신동빈 회장의 승리로 끝났다. 롯데홀딩스 최대주주 광윤사(지분 28.1%) 대표인 신 전 부회장은 동생인 신동빈 회장 등을 해임하고 자신을 포함한 새 경영진을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종업원지주회(27.8%), 관계사(20.1%) 등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을 비롯한 현 경영진에 대한 주주들의 지속적인 신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 전 부회장은 “꾸준히 경영진 교체를 계속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 김현수 기자

 

[롯데家 수난사

2018. 09.17 뉴스룸  월간조선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①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오열한 이유는?

치매 증세 부쩍 심해진 아버지 신격호 명예회장 상태 확인하곤...

/2016 7 6일 오전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서울 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아버지는 딸을 알아보지 못했다. 되레 “네가 누구냐?”라고 따져 물었다. 딸은 그런 아버지를 보고 오열했다.

 

지난 8 29일 롯데그룹 경영비리 사건 결심 공판에 출석한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본인의 수감 기간 동안 치매 증세가 부쩍 심해진 아버지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상태를 확인하곤 재판장에서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날 서울고법 형사 8(강승준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롯데 총수 일가의 항소심 결심 공판에는 재계 순위 5위의 대기업 ‘롯데’ 오너 일가 5명이 모두 출석했다.

 

이날 검찰은 회장에게 경영비리 사건과 국정농단 사건(병합심리) 등을 포함해 총 징역 14년과 벌금 1000억 원, 추징금 70억 원을 구형했다.
 
신격호 명예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에게는 배임 등의 혐의로 각각 징역 10년과 5년을 구형했다.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에겐 개인 비리 사건을 포함해 징역 10년과 벌금 2200억 원을, 신 명예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씨에게는 징역 7년을 구형했다. 롯데지주 황각규 사장과 소진세 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 채정병 전 롯데카드 대표, 강현구 전 롯데홈쇼핑 사장에게는 각각 징역 5년을 구형했다. 롯데 총수 일가 등의 항소심 판결 결과는 오는 10 5일 내려질 예정이다.

 

/2017 12 22일 오후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이 끝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조선DB

 

이번 재판으로 ‘은둔의 경영인’이라 불렸던 대한민국 창업 1세대인 신격호 명예회장의 명예는 크게 실추됐다. 그룹의 수장인 차남 신동빈 회장은 현재 실형을 선고받고 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전 이사장 역시 2년째 옥고를 치르고 있고 신격호 명예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씨는 여자로서, 개인으로서 지켜져야 할 최소한의 배려조차 받지 못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과거사까지 세상에 모두 공개되는 치욕을 겪어야 했다.


이 모든 가족 수난의 중심에는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②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시작된 이유

진흙탕 싸움에 피로 느낀 여론, 롯데에 등 돌려

/롯데가() 신동주, 신동빈. 사진=조선DB

 

3년 넘게 끝나지 않고 있는 롯데그룹 오너 일가 수난의 역사, 그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롯데그룹은 지난 1945년 신격호 명예회장이 일본에서 작은 회사를 창업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됐다. 이 같은 태생적 요인 때문에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하고 난 이후에도 신 명예회장은 격월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원격경영, 이원(二元)경영을 이어갔던 것으로 유명하다. 롯데는 일본에서 제과업을 중심으로 사세를 키워왔고 한국에서는 유통, 식품, 화학, 관광·서비스 등이 강점을 보였다.

 

세간에서는 신 명예회장이 고령이 되어감에 따라 현역 은퇴 이후의 후계구도에 대해서 다양한 전망이 오갔다. 가장 유력한 설은 일본 롯데는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그룹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국 롯데는 차남 신동빈 회장에게 승계하는 모양새를 점쳤다.

 

하지만 호사가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장남 신동주 당시 일본 롯데 부회장이 2014 12, 일본 롯데그룹 부회장직과 롯데상사 부회장 겸 사장직, 롯데아이스 이사직에서 해임됐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신동주 전 부회장의 해임을 두고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가 경영권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듯하다”고 했다.

 

3 일본 도쿄지방재판소 민사8부가 신 전 부회장이 제기한 6 2659만 엔( 59 5000만 원) 규모의 해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모두 기각하면서 모든 실마리가 풀렸다.

 

일본 법원은 신 전 부회장이 강행한 ‘폴리카’ 사업은 타사 소매점포에서 상품 진열 상황을 ‘도촬(도둑촬영을 일컫는 신조어)’해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으로 “경영자로서의 적격성에 의문을 가지게 할 만큼 위법성 소지가 크다”고 판시했다.

 

일각에서는 이 사안을 두고 형사처벌도 가능한 중대한 범법 행위라고 지적했다그러나 신동주 전 부회장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2015 7, 신동빈 당시 롯데그룹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로 선임되자 10여 일 뒤 서울에서 전세기까지 동원해 거동이 불편한 고령의 아버지 신격호 당시 총괄회장을 대동하고 일본롯데홀딩스를 방문했다.

 

일본롯데홀딩스를 찾은 신격호 총괄회장은 일명 ‘손가락 해임’이라 불리는, 신동빈 회장을 비롯해 이사 6명을 절차도 거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즉각 해임하기에 이른다. 신동빈 회장은 일본롯데홀딩스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 이사회를 거치지 않은 ‘이사 해임 결정’ 등을 무효 행위로 규정하고 신격호 총괄회장을 명예회장으로 선임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는 신 전 부회장이 의사 결정이 완벽하지 않은 아버지를 등에 업은 행위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2015 1 13일 밤, 강서구 공항동 김포공항으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일본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사진=조선DB

 

이렇게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시작됐다.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의 분쟁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한국말을 못하는 신동주 전 부회장은 국내에 ‘분쟁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는 회사를 세우기도 했다.

이런 싸움이 계속되면서 여론은 악화됐다. 진흙탕 싸움에 피로를 느낀 여론이 롯데그룹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한 죄스러움과 그간 쌓아왔던 롯데그룹의 이미지가 ‘불투명한 지배구조’ 때문이라고 판단한 신동빈 회장은 2015 8 11,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신 회장은 ‘호텔롯데의 일본 지분율을 최소화하고, 순환출자 고리 80% 이상을 해소함으로써 지주사로 전환할 것'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검찰은 2016 6, 롯데 본사 및 호텔, 쇼핑 등 주요 계열사와 신격호 명예회장, 신동빈 회장 자택 등 총 17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③사드 부지 제공에 따른 중국의 무차별적인 보복

관세청의 점수조작은 왜 아직 조사하지 않나?

/201611 24일 면세점 사업 특혜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롯데를 압수수색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 소공동 롯데면세점 앞을 사람들이 지나고 있다. 사진=조선DB

 

경영권 분쟁으로 인해, 롯데그룹이 입은 피해는 천문학적이다. 검찰은 비자금 조성 의혹을 제기하며 ‘일본기업' 논란까지 제기한 채로 롯데그룹을 전방위 압박했다. 검찰 조사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호텔롯데 상장이 무산됐다. 미국 액시올사 인수합병도 무산됐고, 글로벌 면세 체인 M&A도 중단됐다.

 

국가를 위한 사드 부지 제공은 역풍이 돼 돌아왔다. 면세사업을 비롯해 마트, 백화점, 쇼핑몰, 화학공장 등 중국 내에서 대규모 사업을 추진하고 있던 롯데가 사드를 반대하는 중국의 보복에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지난해 2월 사드 부지 제공 발표 이후 중국 롯데마트 사업장 112개 중 87곳이 소방 점검 등으로 인해 영업이 중단됐고, 그나마 영업을 이어 가던 점포들의 매출은 80% 이상 급감했다. 두 차례 총 수천억 원가량의 자금을 긴급 수혈했지만 결국 롯데마트는 매각을 결정했다. 또 롯데가 총 3조 원을 투자해 온 선양 롯데타운 프로젝트 역시 소방 점검 등의 이유로 공사가 중단됐고 1조 원을 투입한 청두 복합상업단지도 최근 상업시설 착공 인허가가 나오기 전까지 손을 놓고 있어야 했다. 재계에서는 롯데가 사드 부지 제공으로 인해 약 2조 원 이상 피해를 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가장 큰 피해는 면세점 사업

 입은 많은 피해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이 바로 ‘면세점’ 사업이다. 롯데는 국내 면세점 1위 및 세계 2위 사업자다. 그러나 경영권 분쟁으로 인한 정부의 압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5 7, 신규 면세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특허 만료 사업장 대상 심사 결과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이 추가로 탈락했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의 모습. 사진=조선DB

 

감사원 감사결과 면세점 평가 당시 관세청이 평가점수를 부당하게 산정해 롯데 측에 불이익을 줬다는 것이 밝혀졌다.

 

한 면세업계 전문가는 “당시 최고의 노하우와 인프라를 가지고 있던 롯데가 탈락한 것을 두고 업계에서도 의아하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라며 “감사 결과 관세청이 점수를 부당하게 산정했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제대로 된 조사나 처벌도 이뤄지지 않았을뿐더러 롯데면세점이 입은 피해에 대해서도 보상해 주거나 책임질 사람이 딱히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2018

10.05 [속보]‘국정농단·경영비리’ 신동빈 2심 집행유예 선고

 어두운 표정으로 선고공판 출석하는 신동빈 (서울=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5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8.10.5

 

징역 2 6개월·집행유예 4년 선고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기소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실형을 선고받은 1심과 달리 2심에서는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8(강승준 부장판사) 4일 신 회장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신 회장에게 징역 2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신 회장은 앞서 1심에서는 국정농단 사건의 뇌물 혐의로 징역 2 6개월을, 경영비리 사건의 횡령·배임 혐의로 징역 1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신 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면세점 특허를 청탁하는 대가로 최순실씨가 지배한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뇌물로 추가 지원했다는 혐의를 인정했다.

다만 그러면서도 “대통령이 먼저 요구해 수동적으로 응했고, 불응할 경우 기업활동 전반에 불이익을 받을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며 “의사결정의 자유가 다소 제한된 상황에서 뇌물공여 책임을 엄히 묻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경영비리 사건과 관련해서는 롯데시네마 매점에 영업이익을 몰아줬다는 일부 배임 혐의를 1심과 마찬가지로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총수 일가에 공짜 급여를 지급했다는 횡령 혐의에는 1심과 달리 “신격호 총괄회장의 지시에 따라 급여가 지급되는 것을 용인했을지언정 공모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로 판단을 바꿨다. 

유죄로 인정된 배임 혐의도 신격호 총괄회장의 책임이 무겁고, 수동적으로 가담한 것에 불과해 책임이 상대적으로 가볍다고 판단했다.
< 연합뉴스

 

2020.01.20  83엔 들고 일본행… '롯데껌'으로 시작, 115조 기업 일군 巨人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 별세]
롯데 창업주 신격호, 韓·日서 롯데 신화 쓰고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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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꿈은 문학도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여주인공 이름서 기업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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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행낭에 자금 숨겨와 한국 투자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 투자 요청… 롯데호텔에 15000만달러 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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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의 애도

"한일 경제교류 힘써준 辛명예회장, 그의 타계는 큰 아픔과 손실"

 

신격호 명예회장은 1942년 단돈 83( 870)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78년 만에 자산 115조원, 매출 90조원, 세계 20여국에서 직원 18만명을 거느리는 글로벌 기업 '롯데'를 일궜다. 특히 1960년대 이후 우리 산업이 중화학공업과 전자, 자동차 등 대규모 장치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할 때, 국민 실생활과 직결되는 유통과 식품, 관광 등 분야를 개척하고 발전시킨 기업인으로 평가받는다.

 

/롯데월드타워 건설 현장을 불시 방문해 공사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2016 12월 완공된 123(555m)짜리 롯데월드타워는 신 명예회장이 30년 동안 추진한 숙원 사업이었다. /조선일보DB

 

◇일본에서 시작해 한국에서 꽃피워

1942년 스물한 살 신격호는 울산에서 일본 시모노세키(下關)로 떠나는 배에 홀로 올랐다. 1921 10월 울산시 울주군 삼남면에서 평범한 농민 집안 5 5녀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공부하고 돈을 벌어 집안을 일으키겠다"며 일본행을 선택했다. 한국에 첫 배우자 노순화(1951년 사망)씨와 태중(胎中)의 첫딸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을 남겨둔 채였다.

신 명예회장은 우유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와세다대 야간부 화학과를 다녔다. 본격적인 사업은 1948년 직원 10명과 시작한 껌 공장이었다. 회사 이름 '롯데'는 어릴 적 꿈이 문학도였던 그가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이름 '샤를로테'에서 따 지었다. 1952년 일본 유력 가문의 딸 시게미쓰 하쓰코 여사와 재혼해 동주·동빈 형제를 낳았다.

한국 진출은 그가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키운 꿈이었다. 한국 사업은 19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나면서 시작했다. 변변한 산업 시설과 자본이 없던 시절, 박 대통령은 성공한 재일 동포 사업가였던 고인에게 한국 투자를 요청했다. 그렇게 1967년 서울 영등포에 세운 롯데제과가 한국 롯데의 뿌리가 됐다

 

 

고인은 호텔업에 진출하며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했다. 1973년 박 전 대통령은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던 서울 소공동 반도호텔이 대규모 적자를 내자 신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38층 호텔을 신축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일본에선 "롯데가 일본에서 번 돈을 한국으로 빼돌린다"는 시선이 팽배해 있었다. 결국 자금을 여러 법인으로 쪼개서 들여와야 했다. 외교 행낭에 몰래 자금을 숨겨 들어온 경우도 있었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의 지분 구조가 복잡해진 데는 이런 이유가 크다"고 말했다. 그렇게 6년 동안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에 버금가는 15000만달러를 투자해 1979년 롯데호텔을 완공했다.


"평생 한국 국적 유지하며 한·일 사업"

신 명예회장 사업의 출발은 일본이었지만, 꽃은 한국에서 피웠다. 고인은 평생 양국을 오가며 사업했으나, 한국 국적을 버린 적이 없다. "한국 롯데에서 얻은 이익은 한국에 재투자하는 원칙"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는 "관광산업을 일으켜야 한다" 1989년 서울 잠실에 롯데월드를 만들었다. 2016년 완공한 123층짜리 롯데월드타워는 신 명예회장이 30년 동안 추진한 숙원 사업이었다. 롯데 관계자는 "고인은 한국에서 번 돈을 모두 한국에 재투자한다는 사실이 일본에 알려지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럼에도 한·일 양쪽에서 늘 찬사와 의심을 함께 받으며 경계인으로 살아야 했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들은 "최근 한·일 관계가 어려운 가운데 양국 경제 교류에 힘써준 신 명예회장의 타계는 큰 아픔과 손실"이라며 "그의 열정과 도전정신은 지금까지도 많은 기업인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고 애도했다.


◇말년엔 아들 간 분쟁에 휘말려 '시련'

80대 후반까지도 왕성히 활동한 고인도 말년엔 시련을 겪었다. 신 명예회장은 아흔 살이 되던 2011년 초 차남인 신동빈 당시 부회장을 회장으로 승진시키고 자신은 총괄회장이 되면서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났다. 2013 12월 서울 소공동 집무실에서 넘어져 고관절 수술을 받은 후 기력 이 급속히 쇠진했다고 한다. 고인은 2015년 불거진 동주·동빈 형제 간 경영권 갈등에 휘말렸다. 또 배임 등 혐의로 3년 실형을 선고받는 과정에서 휠체어를 탄 채 재판정을 드나들어야 했다.

그는 '거인(巨人)'이라는 말을 좋아해, 야구단 이름도 '롯데 자이언츠(giants· 거인)'로 지었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이제 그 자신이 거인이 돼 무대에서 물러났다.

조선일보  이성훈 기자  한경진 기자  

 

 

 

 

 

 

 

 

 

 

 

조선일보

 

◆형제의 난

2016.06.11 형제 분쟁이 부른 롯데 수사

 

재계 순위 5위인 롯데그룹이 1967년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롯데는 역대 정권마다 특혜 시비에 휘말려 왔지만 그룹 전반이 검찰의 본격 사정 대상에 오르기는 처음이다.  

검찰, 신동빈 회장 정조준
자택·계열사 등 17곳 압수수색
수백억대 비자금 조성 혐의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4(부장 조재빈)와 첨단범죄수사1(부장 손영배) 10일 오전부터 서울 소공동 롯데그룹 정책본부와 호텔롯데 본사, 신동빈(61) 롯데그룹 회장의 집무실과 평창동 자택 등 17곳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이 지난 8일 대우조선해양에 이어 롯데그룹까지 압수수색을 단행하면서 집권 후반기 본격적인 사정정국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이 수사관 200여 명을 투입해 대기업의 주요 계열사를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신 회장의 자택까지 압수수색한 것은 사실상 신 회장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만큼 검찰이 수사 성과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검찰이 공식적으로 밝힌 수사 이유는 ‘비자금 조성 의혹’이다.

검찰 관계자는 “롯데 계열사 간 자산거래 과정에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가 있어 압수수색을 집행했다”며 “경영진의 횡령·배임사건이 핵심”이라고 전했다. 검찰은 불법 비자금 규모를 수백억원대로 보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말부터 롯데그룹의 비리 의혹에 대한 내사를 진행해 왔다. 이 과정에서 계좌 추적을 통해 롯데쇼핑·롯데홈쇼핑·롯데정보통신 등에서 비정상적인 자금 흐름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의 핵심은 두 가지다. 신 회장이 비자금 조성에 얼마나 관여했는지, 조성된 비자금이 일본 롯데로 흘러 들어갔는지 여부다.

롯데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지난해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이 기폭제가 됐다. 롯데는 수십 년간 창업주 신격호(94) 총괄회장 아래 차남 신동빈 회장이 한국 롯데를, 장남 신동주(62)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일본 롯데를 맡는 식으로 경영돼 왔다. 그러다 지난해 신 전 부회장이 한·일 롯데 주요 직위에서 전격 해임되면서 신 회장이 ‘원(one) 리더’ 지위로 부상했다. 그러나 이후 신 전 부회장이 아버지는 자신을 지지한다며 후계자임을 자처해 ‘형제의 난’이 본격화됐다. 형제간 분쟁으로 베일에 싸여 있던 한·일 롯데그룹의 지배구조가 일부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롯데 측에 한·일 관계사들의 지분 구조 현황을 제출하도록 요구했고, 이를 통해 한국 롯데의 지주사 격인 호텔롯데의 지분 99%를 일본 측이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롯데그룹을 놓고 국적 및 국부 유출 논란이 벌어진 배경이다.

특히 지난해 12월 신 전 부회장 측에서 신 회장을 검찰에 업무방해와 재물은닉 등의 혐의로 고소하면서 검찰에 제출한 자료들이 압수수색의 결정타가 됐다.

검찰 관계자는 “내사 과정에서 신 전 부회장과 그가 세운 SDJ코퍼레이션 측이 제출한 롯데의 회계장부가 주요 자료로 활용됐다”고 말했다.

검찰은 당초 지난 4월 총선 직후 롯데 수사를 본격화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총선에서 여소야대의 결과가 나오면서 자칫 검찰 사정을 활용해 국정을 장악하려 한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봐 시기를 늦췄다는 게 검찰 측 설명이다.

문병주 기자   이소아 기자

 

06.18 전격 압수수색·총수 정조준… 롯데 수사, 3년 전 CJ와 닮은꼴

장기간 자료 축적 후 속전속결식 수사… 손 쓸 겨를도 없었다

지난 10일 시작된 롯데그룹 수사는 3년 전 CJ그룹 수사와 여러 면에서 닮았다. 대규모 압수수색과 동시에 그룹 오너를 정조준하고 있고, 내사(內査) 기간이 길었던 만큼 수사가 빠르게 전개되며, 두 그룹 모두 수출보다는 내수(內需) 중심 기업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검찰 한 관계자는 "롯데 수사가 지난해 포스코 수사처럼 지지부진하게 끝나는 거 아니냐"는 물음에 "절대 그럴 일 없을 것"이라며 "오래 준비했다"고 했다.

 

 

롯데와 CJ 수사 '닮은꼴'

3년 전인 2013 5 21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CJ그룹 본사와 경영연구소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신호탄으로 두 달간 CJ그룹에 대한 수사를 벌였다. 수사 착수 35일 만에 이재현 회장이 소환돼 그다음 날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며, 법원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이 회장은 7 1일 구속됐다. 이 회장에겐 회사 돈 963억원 횡령 및 569억원대 배임, 546억 조세포탈 혐의가 적용됐다. 당시 CJ 측에선 "속전속결 수사에 미처 손써볼 겨를도 없었다" "눈 깜짝하고 나면 손 하나 발 하나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라고 했었다.

지난 10일 오전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와 첨단범죄수사부는 롯데그룹 정책본부, 호텔롯데·롯데쇼핑 등 핵심 계열사를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했다. 이날 압수수색엔 CJ 사건에 동원된 인력(80여명) 3배인 240여명의 검사와 수사관이 투입됐다. CJ 이 회장 자택은 본사 압수수색이 끝나고 8일 후에 압수수색이 이뤄졌으나, 이번 롯데 신격호·신동빈 회장 자택은 첫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롯데 수사가 더 빠르고 강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롯데의 한 고위 임원은 "매일매일 뻥뻥 터지다보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했다.

CJ
사건은 새 정부 새 검찰총장 체제에서의 첫 기업 수사였다. 통상 새 정권이 출범하면 강력한 사정(司正) 의지를 밝히며, 검찰 역시 전열을 정비한다. 그리고 준비된 수사팀부터 포문을 연다. 이때 검찰 지휘부는 각 수사 부서의 준비 정도와 사건 전개 예상 등을 검토하고 최종적으로 '발포' 명령을 내리게 된다. 첫 수사가 실패로 돌아가면 수사팀은 물론 검찰 조직까지 타격을 입기에 그만큼 신중하게 '타깃'을 고르는 것이다. 조직 새 수장인 총장이 바뀌었을 때도 새 정부 출범 때처럼 조직에 긴장감이 돈다. 새 총장 체제의 첫 수사는 그만큼 부담이 따르며 총장의 힘이 실리게 된다는 것이다.

롯데 사건도 새 총장 체제에서의 첫 수사다. 작년 11월 취임한 김수남 총장은 최근 거의 동시에 대우조선해양과 롯데 수사에 나섰는데, 이미 대부분의 비리가 노출된 대우조선해양보다는 롯데 사건에 많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 기업 비리와 부패 수사에 능통한 김 총장은 수사에 앞서 롯데 수사팀의 준비 정도를 꼼꼼하게 체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내수 기업에 대한 충분한 첩보

두 사건은 수사 이전에 많은 첩보가 축적됐고 그만큼 내사가 길었던 사건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CJ 비자금은 수사 5년 전인 2008년 이재현 회장의 재산관리인 이모씨 사건에서 꼬리가 잡힌 적이 있다. 2009 '박연차 게이트' 사건 때도 CJ 비자금 문제가 거론됐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으로 수사가 보류됐다. 국세청이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를 세무조사했을 때도 CJ 측이 홍씨를 통해 거액의 미술품을 거래한 사실이 알려지는 등 CJ 비자금은 잡힐 듯 말 듯한 상황이 연속됐다. 그런 첩보는 검찰에 고스란히 축적됐다. 그래서 검찰은 정권이 바뀌자마자 첫 카드로 CJ를 뽑았다. 수년간 비축한 실탄이 쏟아졌고, CJ그룹은 나눠 맞아야 할 매를 한 번에 맞은 셈이 됐다.

롯데 역시 과거 수차례 의혹이 제기됐지만 그룹 차원에서 제대로 수사받은 적 없는 기업이었다. 최근 수년간 급성장 과정에서 롯데홈쇼핑 뇌물 사건, 2롯데월드 인허가 의혹, 중국 투자 비리 등 숱한 의혹이 있었으나, 이따금 단발적 수사만 있었을 뿐이다. 검찰 관계자는 "그만큼 첩보가 쌓였다는 의미"라고 했다.

CJ
와 롯데가 내수 중심 기업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박근혜 대통령 등 정부가 경제 활성화에 올인하는 국면에서 검찰이 해부할 살아있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의 경제 민주화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기업을 수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CJ와 롯데는 외국 기업들과 혈투를 벌이는 수출 중심 기업이 아니라 내수 중심 기업이라는 점에서 검찰에겐 경제 피해라는 부담을 덜어주는 측면이 있다. 검찰 관계자는 "롯데의 대다수 사업 영역이 다른 기업에 의해 쉽게 대체가 가능하다"면서 "수사로 인한 롯데의 일시적 피해가 다른 수출 중심 기업과 달리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CJ도 빵집·편의점·음식점 등을 운영하며 수출 기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골목상권 침해 기업이라는 지적을 받았었다.


주식 수사와 부동산 수사

물론 두 사건 수사가 조금씩 다른 면도 있다. CJ 사건에선 주식 관련 비리에 검찰 화력이 집중됐지만, 롯데 사건에선 부동산 비리 수사가 주력이다. 롯데는 대표적인 땅부자 기업이었고 이를 사고팔며 사세를 키우고 비자금을 조성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CJ 사건에서 주식과 탈세 비리의 경우 국세청 등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롯데 부동산 비리는 수사팀이 독자적으로 파헤쳐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롯데 신동빈 회장과 갈등 중인 신 회장의 친형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이 검찰 우군(友軍)을 자처하는 점은 이번 수사를 수월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신동주 회장 측은 압수수색 직후 "신동빈 회장을 중심으로 한 현 경영 체제의 문제점이 드러났다"면서 "검찰 쪽의 자료 제출 요청이나 출석 요구가 있을 경우 적극 협조하겠다"고도 했다. 지난 1년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신동주 회장 측은 중국 사업에 대한 과도한 지급 보증과 해외 호텔 구입 관련 과다 지출 등 롯데 계열사 전반에 부당 회계와 부실 경영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신동주 회장 측이 확보한 롯데 내부 자료가 이미 검찰에 넘어가 분석을 마친 상태"라는 얘기도 나온다.

롯데그룹 내에도 신동주 회장과 가까운 인사들이 섞여 있어, 이들이 수사에 협조하면 혐의 입증이 쉬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형제 혹은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을 겪은 두산·효성 등 재벌들은 어김없이 검찰 수사로 이어졌고, 재판에 넘겨진 이후에도 대부분 유죄를 선고받았다. 신빙성 높은 내부 고발에 따른 수사는 빗나갈 가능성이 적다는 얘기다.


물타기 수사 아님을 입증해야

검찰이 롯데 수사를 잘해야 하는 내부적 이유도 있다. 최근 불거진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회장이 몰고 온 법조 비리 사건과 진경준 검사장의 주식 매매 의혹을 덮기 위한 수사가 아니었다는 점을 수사 성과를 통해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재계뿐 아니라 일부 언론에선 내부 비리를 물타기하기 위해 롯데를 택한 게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번 수사로 법조 비리와 진경준 검사장 사건이 언론 조명을 덜 받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검찰은 물타기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오히려 수사 시점이 늦어졌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검찰은 새 검찰총장이 부임한 지 7개월이 지났지만 그동안 이렇다 할 수사가 없었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홍만표·진경준 사건을 물타기하려 했다면 조금 더 일찍 수사를 시작했지 지금에야 수사에 나서겠느냐"면서 "물론 이 수사로 법조 비리의 남은 사건이 묻히는 효과가 있겠지만 새 총장 들어서고 8개월 만에 특수 수사에 나선 것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고 했다.

롯데그룹 내에선 그룹 2인자인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이나, 황각규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 소진세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사장) 등이 방어막을 치면 신동빈 회장을 보호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앤장뿐 아니라 세종·태평양 등 국내 대형 로펌을 선임해 거대 변호인단을 꾸릴 예정이라고 한다. CJ 사건 당시에도 호화 변호인단이 꾸려졌으나 "거물 변호인을 쓰나 국선 변호인을 쓰나 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었고, 결과도 비슷하게 나왔다.

검찰은 신격호·신동빈 회장 자택 압수수색을 통해 이번 수사 목표가 어디인지 충분히 암시했다. 법원은 검찰이 청구한 자택 압수수색 영장을 무조건 발부하지 않는다.  재계 5위 그룹의 오너 자택이라면 더욱 꼼꼼한 잣대로 발부와 기각 여부를 결정한다. 적어도 그 오너가 범행에 관여했다는 구체적 진술이나 정황이 확보돼야 자택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해준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는 움직이는 생물이라고 하지 않느냐. 어떤 변수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면서 "최대한 빠른 수사를 주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훈 기자

 

2016-07-07 ‘롯데家’ 첫 구속된 신영자, “내 처지가…” 법정서 대성통곡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맏딸이자 유통업계 ‘대모’로 불리는 신영자 롯데 장학재단 이사장(74)이 롯데면세점과 롯데백화점 입점 명목으로 35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신 이사장은 검찰이 롯데그룹 수사에 착수한 후 롯데그룹 오너 일가 중에서 나온 첫 구속자다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부장 박찬호) 35억 원대 배임수재와 40억 원대 횡령 혐의로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 신 이사장을 7일 새벽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했다. 6일 신 이사장의 구속 여부를 심사를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부장판사는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신 이사장은 네이처리퍼블릭을 비롯한 롯데면세점 입점 업체들로부터 매장 관리에 편의를 봐 달라는 청탁과 함께 35억여 원을 받은 혐의(배임수재). 또 자신이 실질적으로 소유한 면세컨설팅 업체 BNF통상에서 임직원 급여 명목으로 40억 원을 빼내 자신의 딸들에게 준 횡령 혐의도 받고 있다 


롯데그룹의 ‘황녀’로 불리며 그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신 이사장이었지만 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대성통곡을 했다. 신 이사장은 영장심사 중 감정이 복받친 듯 40분에 걸쳐 신세 한탄을 했다. 통곡 소리는 법정 밖까지 들려왔다. 특히 그는 건강이 좋지 않은 아들 장재영 씨(48) 이야기가 나온 대목에서 “아들에게 미안하다”며 흐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장 씨는 면세통상업체 BNF를 소유했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고도의 경영판단이 요구되는 기업 경영이나 컨설팅을 하기는 어려운 상태다 

 

신 이사장은 오후 130분경 심사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다가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법정을 떠났다. 신 이사장은 영장심사를 앞두고 우황청심환을 먹으며 마음을 달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은 7일 롯데그룹의 광고계열사인 대홍기획에서 거액의 비자금이 조성된 정황을 잡고 자회사 2곳과 거래업체 7, 8곳을 압수수색했다. 특히 검찰은 대홍기획의 자회사와 거래업체를 통해 조성된 비자금 수사에 특별수사2(부장 김석우) 소속 검사를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2017.03.21 법정에 선 95세 기업인

"여기가 어디냐, 여기 있는 분들은 누구냐, 누가 나를 기소했느냐?"

 20일 서울중앙지법 재판정에 휠체어 타고 들어온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은 재판을 받고 있다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듯 엉뚱한 소리를 했다. 그는 "책임자가 누구냐. 나를 이렇게 법정에 세운 이유가 무엇이냐"고도 했다. 지팡이를 던지고 일본 말을 하기도 했다. 이날 신 총괄회장은 아들인 신동빈 롯데 회장과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 장녀 신영자씨, 사실혼 관계의 서미경씨 등 가족과 함께 경영 비리 혐의로 기소돼 첫 재판을 받았다. 판사가 신 총괄회장을 향해 "재판 중인 건 아세요?"라고 할 정도로 재판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신 총괄회장은 95세 고령에다 치매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이다. 그는 권리 행사를 제한하는 '한정후견' 관련 1·2심 재판에서 치매 상태라는 판정을 받았다. 롯데 관계자들은 "형사소송법상 치매라고 해도 재판에는 출석해야 한다"면서 "신 총괄회장을 치매로 인정한 한정후견 재판은 민사재판이기 때문에 형사재판에는 직접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20일 재판 출석을 위해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김지호 기자

 

13만명의 종업원과 매출 90조원을 자랑하는 한국 5대 기업 창업자라고 해도 죄가 있다면 재판을 받고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치매를 앓아 자신이 처한 상황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신 총괄회장에게 이날 재판은 범죄 유무를 따지는 재판정이 아니었다. 치매 환자를 윽박지르고 공개 망신을 주는 자리였을 뿐이다. 일본 등 고령화 선진국에서 치매 환자에 대한 배려는 인권 문제이다.

가족이 함께 기소돼 재판정에 함께 서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동정론도 나온다. 롯데는 정부의 사드 배치 정책에 호응해 골프장 부지를 교환해주었다가 중국의 집중적인 보복도 당하고 있다. 10조원의 중국 사업이 날아갈 위기에 처했지만, 총수는 출국금지에 묶여 중국 내 사업현장도 방문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검찰이 신 총괄회장에 대해 조사를 벌이자 일본에서도 화제가 됐다. 일본 잡지인 사피오는 작년 11 '너무나 가혹한 한국의 재일(在日)동포 차별'이라는 특집 기사를 통해 롯데에 대한 검찰 수사를 재일동포 출신 기업인에 대한 차별이라고 비난했다.

사피오는 "검찰이 검찰 고위 간부 금품 스캔들과 (한국)재벌 기업에 대한 비판을 모면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재일동포 기업인) 롯데를 선택했다"고 지적했다. 사피오는 자본 부족에 시달리던 빈곤국가 한국에 일본에서 어렵게 번 돈을 들여와 경제 성장에 기여한 신 총괄회장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색한 평가도 비판했다.

 

1960~70년대 재일동포 자본 유치를 위한 정부의 각종 특혜가 롯데의 급성장으로 이어졌다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롯데가 한국에 진출했을 당시 한국 정부는 롯데뿐만 아니라 국내 대기업에도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특혜를 제공했다. 사피오의 해당 기사에는 일부 과장된 표현, 사실왜곡, 견강부회(牽强附會)의 논리가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유통거인(流通巨人)' 신격호 총괄회장의 공에 대한 평가는 인색하고 허물에 대해서는 가혹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차학봉 산업1부장

 

2016.07.05 위기의 롯데 신영자&서미경 신유미 모녀

 

롯데그룹의 파란이 몇 년에 걸쳐 지속되고 있다. 시작은 ‘형제의 난’이었다.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회장의 경영권 다툼이 출발이었다. 2014년 말에 시작된 이 경영권 분쟁은 신 전 부회장의 해임, 2015 7월 신동주 전 부회장의 반격과 신동빈 회장의 재반격 등으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그러다 주주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신동빈 회장의 우세로 일단락이 됐다.


이후 신동빈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렸지만 다시 삐끗하는 분위기다. 최근 신 회장의 누나인 신영자 롯데복지장학재단 이사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다. 검찰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로비를 받아 롯데면세점 입점 특혜를 준 혐의로 신 이사장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신영자, 형제들에겐 여전한 영향력

신 이사장은 그룹 경영에 가장 깊숙이 개입돼 있는 여성이다. 그룹 오너의 장녀라는 사실 자체가 든든한 배경이 됐다. 그룹 내외에서 평가도 좋았다. 1973년 호텔롯데에 입사한 신 이사장은 1979년 롯데백화점 설립에 참여했다. 이후 백화점을 알짜 계열사로 키워냈다. 롯데백화점은 신영자가 키웠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여기에 면세점까지 일궈내, 유통업계 대모로 불린다. 신 이사장은 2012년 신동빈 회장이 전면에 나서면서 롯데그룹 계열 문화재단 이사장으로 물러났지만, 여전히 그룹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평가다.


정운호 대표는 이런 신 이사장의 지위와 영향력을 재빨리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정 대표의 로비 요지는 롯데면세점 내 네이처리퍼블릭 매장 자리 변경. 얼핏 대수롭지 않게 보이지만, 매장 내 위치에 따라 매출은 천지 차이다. 특히 2012년 이후 몰려든 중국인 관광객으로 인해 면세점 입점 자체가 흥행 보증수표가 되면서, ‘목 좋은 자리 선점’에 대한 요구는 더 커졌다

 

검찰은 정 대표가 브로커 한 씨를 통해 신 이사장에게 접근한 뒤 면세점 내 매장 위치 변경을 위한 로비에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부당한 금품이 오고 갔는지가 수사의 핵심이다

 

신 이사장은 지난 ‘형제의 난’에서도 칼자루를 쥐고 있던 인물이었다. 초반에 그는 어느 한 쪽에도 무게를 싣지 않다가, 지난해 7월 신 전 부회장 편에 힘을 싣는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신 회장 측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올 초,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신격호 총괄회장에 대한 성년후견인 심판청구에서도 신 회장과 뜻을 함께했다. 올해 3월 말 열린 일본 도쿄 롯데면세점 오픈식에도 신 회장과 나란히 참석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신 이사장은 올해 열린 호텔롯데 주주총회 당시 신 총괄회장이 등기이사에서 물러나는 와중에도 이사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면서 “여기에는 신 회장의 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신 회장이 이처럼 신 이사장을 ‘배려’하는 것은 신 이사장이 보유한 롯데그룹 계열사 지분이 후계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검찰의 압수수색 중에도 그는 여전히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적어도 ‘형제’들에게는 말이다

 

서미경 모녀 부동산도 집중 조사 

신 이사장에서 시작된 수사는 8일 만에 오너가 전체로 확대됐다. 이에 그룹 전체가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수사가 전 계열사로 확대되면서 수습불가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은 그간 불투명한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 그러던 중 형제의 난을 통해 구조가 일부 알려지면서 논란이 가중됐다. ‘사실상 일본기업’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지배구조가 추가로 공개될 수 있다. 이럴 경우 경영권 분쟁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그룹의 앞날이 오리무중인 셈이다.


검찰의 비자금 수사가 전방위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서미경 씨와 그의 딸 신유미 씨까지 수사선상에 올랐다. 서미경은 신 총괄회장의 세 번째 부인이다. 서 씨 모녀는 그동안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앞서 ‘형제의 난’에서 모녀의 입김에 따라 우세가 갈릴 수 있는 상황이었을 때에도 둘은 그 어떤 입장도 드러내지 않았다.


최근 검찰에서 이 모녀가 소유한 부동산이 신 총괄회장의 비자금 통로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들 모녀의 자산이 재조명되고 있다

 

서 씨 모녀는 1천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대부분 신 회장에게서 증여받은 자산이다. 서울시 강남구 방배동에 위치한 전 유원실업 사옥과 주차장 부지( 750), 서울 반포동 서래마을 노른자위 땅에 위치한 현 유원실업 사옥 건물(656.6), 강남구 신사동의 부동산(606.2), 서울 동승동의 유니플렉스 공연장(760.04)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 지역 외에도 김해 등지에서 롯데그룹이 개발하던 지역 인근의 토지 약 30만㎡(9750)의 소유권도 보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동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서 씨가 갖고 있는 부동산은 대부분 특수성이나 희소성, 상품성에 있어 임대사업을 펼치기 적격인 곳들”이라고 평가했다. 서미경 씨는 자산 대부분을 딸 신유미 씨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

 

취재 결과 이 둘의 부동산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본지에서는 지난해 8, 두 모녀의 숨겨둔 부동산인 ‘오산 땅’에 대해 단독보도 했었다. 오산시 부산동 일대에도 두 모녀는 상당한 크기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었다. 대략적으로 파악한 부지만 부산동 ××-1, ×××-1 포함, 5000㎡가 넘는다. 확인 결과 이 지목 또한 신격호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지목은 ‘임야’다. 실제로 찾아간 주소지에는 수풀이 무성했다. 한데 곧 개발을 앞두고 있다. 롯데쇼핑에서 35백억원을 투자해 2015년 착공하고, 2017년 완공을 목표로 하는 복합쇼핑몰 ‘펜타빌리지’가 건립될 예정이다. 또한 2020년에는 제2외곽순환도로가 들어설 계획이기도 하다. 땅값 상승폭이 매우 크다는 의미다.


재계 한 소식통은 “신 총괄회장이 서 씨 모녀에게 증여를 하는 형태로 여러 땅과 지분을 지원해왔다”며 “부동산 자산만 따지면,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보다 가치가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딘가 수상한 모녀의 부동산?

검찰은 우선, 서 씨와 롯데건설의 부동산 거래에서 비자금이 조성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서 씨는 2002년 보유 중이던 서울 서초구 반포동 5층 건물을 롯데건설에 넘겼다. 그는 이후 2012, 유원실업을 통해 이 빌딩을 다시 사들였다. 롯데건설과 유원실업은 법적으로 특수관계인이 아니어서 자산 거래가 공시 대상이 아니다. 이 같은 이유에서 외부에 거래 내역이 알려지지 않았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비자금이 조성된 정황이 있는지를 살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원실업은 서 씨 모녀의 지분이 100%인 회사다. 롯데시네마의 서울 및 수도권 매점 운영권을 독점하며 연 2백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서 씨는 유원실업의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오너 일가 ‘일감 몰아주기’의 전형이다

 

롯데 측은 서 씨 모녀가 롯데시네마 매점 사업권을 확보·운영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된 것은 이미 시정된 사안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2012~2013년 국감 등에서 ‘일감 몰아주기’ 등의 지적을 받고 유원실업 등에 대한 매점 사업권을 회수하며 정리를 끝냈다는 것.

 

실제로 지난 2013년 국세청은 롯네시네마를 운영하는 롯데쇼핑에 대한 세무조사를 통해 세금 탈루와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로 6백억원대의 추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당시 롯데시네마의 서울·수도권 매점을 운영하던 유원실업은 이와 관련된 특혜를 받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서 씨가 지분을 갖고 있는 유기개발 소유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유기타워도 의혹의 대상으로 지목됐다. 현재 유기타워에는 롯데의 창업전문 투자법인 롯데액셀러레이터가 입주해 있다. 롯데액셀러레이터는 롯데가 청년창업을 돕기 위해 신동빈 회장의 사재 1백억원, 롯데쇼핑 등 주요 계열사 출연분 2백억원으로 자본금을 마련해 만든 회사다.


검찰은 롯데액셀러레이터의 유기타워 입주가 주변 시세보다 더 비싸게 됐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비자금 조성 창구가 아닌지 의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유기개발 역시 롯데백화점 식당 영업권을 가지고 있어 일감 몰아주기로 지적됐었다. 이와 관련해 롯데그룹 측은 거론된 유원실업과 유기개발은 그룹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회사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검찰은 서 씨 모녀가 유기개발을 통해 부동산임대업 등을 유지하며 롯데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만큼 신 총괄회장의 비자금 창구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그룹의 핵심조직인 정책본부가 서 씨 모녀 관련 회사를 관리했다면, 사실상 계열사와 같은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통상 대기업의 비자금은 부동산 거래나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던 만큼 서 씨 모녀에 대한 검찰의 수사 강도는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서미경, 신유미는 지금 

신 총괄회장은 서미경을 특히 아꼈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그간 이들 모녀의 부동산 자산은 ‘애정의 증표’ 정도로만 인식됐었다.

 

현재 신 총괄회장은 고열로 서울대병원을 거쳐 아산병원에 입원 중이다. 입원하기 전까지는 롯데호텔 34층에 기거했다. 신 총괄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만나고 있는 측근에 따르면, 최근까지 서미경이 호텔에 종종 찾아왔었다고 한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됐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여담이지만, 옆에서 지켜봐 온 결과 신 총괄회장이 진정으로 사랑한 여자는 서미경 씨”라면서 “서미경 씨 얘기를 할 때면 눈빛이 반짝거릴 정도”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또 “서미경 씨 또한 마찬가지다”면서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어떻게 30년 동안 은둔생활을 했겠느냐”고 말했다

 

신유미 또한 엄마의 전철을 밟아 철저히 베일에 싸인 삶을 살고 있다. 지난 2010년에는 호텔롯데 고문으로, 2012 7월에는 롯데삼강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리며 롯데가의 딸로서 존재감을 알렸지만 외부활동은 극히 제한적인 편이다. 실제로 롯데호텔의 한 관계자는 “호텔 고문이라고는 하지만 그룹 행사나 모임 때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면서 “아직까지 고문으로 올라가 있는지 확인을 해봐야 할 정도로 호텔 내에서 묘연한 인물로 통한다”고 귀띔했다

 

신유미는 현재 일본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에는 출산 소식도 전해졌다. 신 총괄회장의 측근은 “신유미 고문이 일본으로 건너가 지난 12월에 출산했다”면서 “현재 서 씨는 (신유미 없이) 혼자 방배동에 머물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신유미 남편의 신상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철저히 베일에 싸인 모녀. 특히 서미경은 그간 신 총괄회장의 호적에 오르지 못해 법적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들 모녀가 보유한 회사가 일감 몰아주기와 각종 특혜에도 한동안 자유로웠던 이유다.

 

서미경·신유미는 누구?

 서미경은 어린 시절부터 무대 체질이었다. 7살에 TBC 어린이 합창단을 시작했고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1969, 영화 <피도 눈물도 없다>에 출연하면서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푸른 사과>, <김 선생과 어머니> 등을 통해 서서히 아역배우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서울 금호여중 재학시절. 서 씨는 인생 역전 드라마를 찍는다. ‘미스롯데’ 선발대회에 나가면서다. 1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미스롯데로 당당히 선발됐다. 대회는 롯데그룹과 TBC TV가 공동으로 개최했는데, 서미경이 선발된 해가 첫 회였다. 미스롯데 1호가 된 셈이다. 당시 뽑히기만 하면 곧바로 탤런트가 될 수 있어 경쟁률이 300 : 1에 이를 만큼 치열했다. 서미경 이후에는 원미경, 이미숙, 안문숙, 채시라, 이미연 등이 이 대회를 통해 배출됐다.


서 씨는 롯데 전속모델로 활약했다.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의 카피를 가장 먼저 히트시킨 주인공이 됐다. 당시 그는 ‘서승희’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다. 안양예고에 진학했고, 드라마와 MC, 영화에 광고까지 두루 섭렵했다. 합창단 출신답게 노래와 율동을 하는 쇼 프로그램에도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그렇게 차세대 유망주로 입지를 다져나갔다.


잡지 표지모델도 종종 했다. 1979년 서 씨가 표지모델을 했던 <선데이서울>에서 그는 “스케줄이 너무 많아 피곤하다”면서 “마음껏 잠 좀 잤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시절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서 씨는 21살이었다. 그러던 1981. 방년 22. 돌연 은퇴선언을 했다. 공식적인 이유는 “유학 가서 공부를 하겠다”는 거였다. 은퇴식도 성대하게 치렀다. 한 공중파에서 그의 은퇴에 대한 특집 프로그램을 내보낼 정도였다. 서 씨는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고,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렇게 서 씨는 홀연히 사라졌다. 세간에서는 서 씨의 행방에 지속적으로 물음표를 달았다. 실제로 1981 3 9일자 <동아일보>는 “서승희가 4월에 유학을 떠난다. 강력한 기대주인 상황에서 별안간 유학을 가는 것은 ‘강력한 스폰서’가 있다는 의미”라는 기조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몇 년 후. 그가 신격호의 연인이 됐다는 얘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신격호 회장과 데이트를 하고 있더라는 목격담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은퇴 직후 서미경은 “당숙이 도쿄에 살고 있어 일본으로 건너온 것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서 씨의 아버지 또한 당시 한 언론을 통해 스폰서는 가당치도 않은 소리라며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1988. 은퇴 7년이 되던 해, 풍문은 사실로 드러났다. 신 회장과의 사이에서 출생한 신유미(1983년생)가 호적에 오르면서부터다. 신 회장과 서 씨의 나이 차는 무려 37살이다. 신 회장에겐 이미 본처와 전처가 있는 상황이었다

 

신 회장은 예순이 넘은 나이에 막내딸을 봤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신유미는 중학교를 한국에서 졸업한 뒤 고등학교에 가면서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어렸을 때부터 이목구비가 뚜렷한 서구형 미인으로 서미경과 꼭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고 전했다.

박지현 여성조선 기자

 

2019.10.19 신동빈을 공격하는 신동주가 노리는 것

롯데그룹 ‘형제의 난’이 점입가경에 이르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일방적 승리’로 귀결될 것으로 여기던 형제간 재산 싸움이 다시 불거졌기 때문이다.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의 이번 작전은 치밀했다. 지난 8월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에서 동생인 신동빈 회장에게 일격을 당한 후 40여일만에 반격을 가한 것이다. 신 부회장은 일단 한국에 SDJ코퍼레이션이라는 특수목적법인을 만들었다. 한국에 특별한 직함이 없던 그는 한국에서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할 법인을 설립했다. 이 법인에서 신동빈 회장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2015 10 8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아내 조은주씨와 변호인단이 함께 참석했다. /조선일보 DB


지난 8일 신 부회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천명했다. 지난번 기자회견의 실패를 거울삼아 이번 회견은 조선호텔에서 격식을 갖춰 진행했다. 다국적 홍보대행사인 ‘웨버 샌드 윅’을 앞장세워 기자들에게 사전고지까지 했다. 기자 회견도 신 부회장이 직접 나선 모양만 취하고 실질적으로는 부인(노은주씨)을 내세웠다. 그의 회견문을 ‘한국인’인 부인이 낭독하는 모습을 취했다. 지난 7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어를 사용했다가 역풍을 맞은 사실을 의식한 셈이다.또한 국제 금융전문가인 민유성 전 산업은행 지주회사 회장을 고문으로 영입, 전문가 그룹이 자기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내외에 과시하기도 했다. 기업 자문 전문 변호사와 기업 인수합병(M&A) 전문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진용을 갖추고 나왔다.


지난 16일엔 첫 실력행사에 돌입했다. 롯데호텔 34층에 머물고 있는 신격호 총괄회장을 이용한 ‘부친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다. 신동빈 회장측에서 장악하고 있는 롯데 호텔 34층을 자신이 직접 관리하겠다고 천명, 행동에 돌입했다. 신 총괄회장을 기자들 앞에 세우는 치밀한 작전도 마련했다. 이 작전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 정신이 온전치 않다는 세간의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신 총괄회장이 건강함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이 과정에 형제간 충돌이 일어날 뻔했으나 롯데그룹 측에서 양보함으로써 ‘볼썽 사나운’ 모습은 연출되지 않았다.

지난 14일에는 일본 도쿄에서 '1인 주주총회'를 열고 본인을 광윤사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이날 참석한 주주는 신동주(지분율 50%) 부회장 단 한 명이었다. 광윤사는 롯데 신격호 총괄회장 일가가 지분 100%를 갖고 있는 가족회사다. 신동주 부회장은 자신이 갖고 있는 지분에 부친인 신 총괄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1주를 더해 ‘전격적’으로 주총을 열고 신동빈 회장의 이사직 해임과 자신의 대표이사직 승인 안건을 통과 시킨 것이다.

신 부회장은 이 여세를 몰아 사실상 롯데그룹을 장악하고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 경영권을 되찾겠다고 벼르고 있다. 롯데홀딩스는 광윤사(28.1%), 종업원지주회(27.8%), 5개 관계사(20.1%), 투자회사 LSI(10.7%), 오너일가(7.1%), 임원지주회(6.0%), 롯데재단(0.2%) 등이 지분을 나눠갖고 있다. 광윤사를 손에 넣은 신 부회장은 종업원 지주회를 설득, 롯데홀딩스를 지배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신동빈 회장측은 광윤사의 신동주 부회장 장악에 대해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광윤사와 신동주 부회장이 갖고 있는 지분을 제외한 70%를 신동빈 회장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도 신동주 부회장측의 거듭된 그룹 이미지 실추 작업에 대해서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15일 롯데월드몰 개장 1주년을 맞아 계열사 및 협력사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케잌 커팅식을 포함한 ‘조촐한’ 기념식을 열었다. 이 기념식에는 신동빈 회장의 참석도 고려됐지만 이인원 부회장이 참석하는 선에서 행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형과의 갈등이 없었다면 거창한 기념식을 갖고 롯데그룹의 재도약을 선언할 참이었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롯데월드몰은 롯데그룹이 야심차게 진행하고 있는 숙원사업 중 하나다. 롯데월드몰은 123, 555m 초고층 빌딩인 롯데월드타워로 구성된 제2롯데월드라는 최대의 프로젝트에 속해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평생의 사업으로 대대적인 홍보를 했던 사업이다. 지난 5월과 9월 신 총괄회장이 롯데월드타워 공사 현장을 직접 찾는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2롯데월드는 어쩌면 롯데그룹의 사활이 걸린 사업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신동빈 회장 역시 제2롯데월드를 최우선 현안 중 하나로 꼽고 있다. 그는 경영권 1차 분쟁이 막 불거지기 시작한 지난 8 3, 일본에서 귀국한 직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 신격호 총괄회장 집무실을 인사차 들른 데 이어 롯데월드타워 107층 공사현장을 찾았다. 그만큼 신 회장이 제2롯데월드에 적지 않은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러한 숙원사업의 잔칫날 신동주 부회장이 재를 뿌린 격이 되고 말았다.<②편에 계속>

 

신동빈 회장이 노심초사하고 있는 이유

<①편에서 계속>
문제는 신 부회장의 향후 행보가 그룹을 더욱 힘들게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 키는 전적으로 신격호 총괄 회장이 갖고 있다. 현재 신동주 부회장은 부친을 전면에 내세우는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지난 16일 이후 신동주 부회장이 사실상 신 총괄회장을 ‘보호’하고 있다. 신동빈 회장으로서는 난감할 수 밖에 없다. 지난 국회 국정감사에서 롯데호텔 상장과 같은 중요한 사안을 부친에게 보고하고 허락을 받았다고 밝힌 적도 있다. 신 총괄회장의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말을 대놓고 할 수도 없는 처지다. 부친에 대해 각별한 생각을 갖고 있는 그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일본 광윤사의 새 이사로 선임된 이소베 데쓰 전 롯데홀딩스 이사의 역할은 또 하나의 변수다. 이소베 이사는 지난 20년 이상 비서로서 신격호 총괄회장을 보좌해온 인물로 알려졌다. 신 부회장측은 이를 앞세워 일본 롯데홀딩스 지주회를 설득할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 롯데홀딩스 경영권을 놓고 신 총괄회장의 복심이 어디 있는가를 판가름하겠다는 심산이다.

/롯데월드 타워를 찾은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왼쪽)과 지난 8월 롯데월드 타워를 찾은 신동빈 롯데 회장. /조선일보 DB


신동빈 회장은 일본 기업인 롯데홀딩스에 의해 한국 롯데그룹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사실이 또다시 불거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신동주 부회장과의 ‘전쟁’이 다시 여론의 지탄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롯데그룹은 다음달부터 실사가 시작되는 롯데면세점 특허권을 방어해야하는 입장이다. 면세점이 특허를 필요로 하는 사업이라는 측면에서 여론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를 경우 특허권 수성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경쟁업체인 신세계와 두산 등은 롯데와의 일전을 위해 거사적으로 덤비는 형국이라 더욱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롯데그룹의 형제의 난은 어쩌면 일본 문화와 한국 문화의 충돌로 야기된 측면도 있다고 일부 경영학자들은 지적한다. 일본의 기업 문화는 ‘승자독식’이다. 가업을 이을 때 가족 구성원중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에게 경영권을 주고 나머지 가족들은 주주로서 역할만 할 뿐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가족 중 유능한 경영인이 없으면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일임한다. 몇 세기를 이어오는 가업이 일본에 즐비한 이유다.

그러나 한국은 승자독식이 아닌 ‘분가형’ 기업문화가 팽배해 있다. 즉 후손들끼리 적당하게 기업을 분할해 통치하는 방식이다. 삼성 그룹 이병철 회장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창업주 후손들은 기업을 분할 받아 따로 경영하고 있다. 일본식 경영에 익숙한 이병철 창업주만 3남인 이건희 회장에게 삼성그룹을 통째로 맡겨 운영토록 했다. 한국 기업의 역사가 일천한 이유도 있지만 장수 기업이 별로 없는 한 원인이기도 하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처음에는 일본롯데와 한국롯데를 형제간 분할 경영하는 구도를 짰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하나의 롯데, 하나의 리더’로 바뀐 것으로 해석된다. 장남인 신동주 부회장은 한국식 분할형을 요구한 반면, 신동빈 회장은 승자독식을 주장, 충돌했다는 분석이다.

어쨌든 이번 신동주 부회장의 반격으로 타격을 입은 것은 신동빈 회장을 비롯한 롯데그룹의 주주들과 임직원들이다. 형제간의 이전투구로 국내 재계 랭킹 5위 그룹이 멍들어가고 있는 구도다. 결국 그 부메랑은 한국 경제에도 지대한 악역향을 끼칠것이 틀림없다. 언제까지 ‘후진국형’ 후계 구도가 한국 재벌 사회에 존속할 것인가. 신격호 회장 일가들은 이 부분에 대한 물음도 분명하게 답해야 할 것이다.

홍성추의 재벌가 인사이드 

 

탄압

2017.12.23 [롯데 1심 판결]

10년 구형→집유, 벌금 3000억→35억… 검찰의 무리수였나

검찰, 넉달간 400여명 뒤지고도… 1심서 9명 중 7명 무죄·집유


신동빈 혐의 6건 중 4건 무죄… 서미경씨 모녀에게 특혜 준 매점 운영권과 공짜 월급은 유죄
, 원래 타깃인 비자금 안나오자 증여세 700억 포탈 내세웠지만 이 혐의도 법원서 무죄 판결
신동빈, 국정농단 연루 재판 남아

 

법원이 22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검찰이 적용한 범죄 혐의의 기본 전제가 맞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검찰은 "신 회장이 경영권 강화를 목적으로 범행의 주도적 역할을 했고, 실질적인 최대 수혜자"라며 징역 10년을 구형(求刑)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범행 대부분이 신 회장이 롯데그룹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기 전인 '신격호 시대'에 발생했고, 신 회장이 얻은 직접적·경제적 이익이 없다"고 했다.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신격호(왼쪽)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신동빈(오른쪽) 롯데그룹 회장이 2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이 끝난 뒤 각각 법원을 나서고 있다. 이날 법원은 신 회장의 혐의 중 일부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신 총괄회장에겐 징역 4년에 벌금 35억원이 선고됐으나 건강상 이유로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다. /김지호 기자

신 회장은 175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신 회장의 6가지 혐의 중 2가지에 대해서만 유죄를 선고했다. 신 회장이 누나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신격호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에 있는 서미경씨 모녀에게 롯데시네마 매점 운영권 특혜를 줘 회사에 778억원 피해를 주고, 서씨의 딸에게 공짜 급여를 준 혐의다. 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피해 금액이 778억원이라는 점이 입증되지 않고, 2가지 혐의 모두 신격호 총괄회장의 지시에 의해 범행이 시작됐다" "(실형을 선고해) 신 회장을 경영에서 격리시키는 것보다 잘못된 관행을 개선해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신격호 총괄회장에 대해 "그룹 창업자이자 총수로서 범행을 결심하고 전 과정을 장악했다"면서 징역 4년에 벌금 35억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신 총괄회장도 6가지 혐의 중 2가지만 유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이 '수사의 최대 성과'라고 했던 신 총괄회장의 증여세 700억원 포탈 혐의는 무죄가 나왔다. 신 총괄회장은 신영자 이사장과 서미경씨에게 일본 롯데홀딩스 차명주식을 넘겨주면서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해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신 이사장의 경우 공소시효가 만료됐고, 서씨는 실질적으로 일본에 거주해 세법상 국내 거주민이 아니어서 무죄"라고 했다.

 

 

사건의 핵심인 신동빈 회장, 신격호 총괄회장의 혐의가 절반 넘게 무죄가 나오면서 다른 피고인들에겐 줄줄이 집행유예 또는 무죄가 선고됐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가 초라한 재판 결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검찰은 지난해 6 10일 검사와 수사관 240여명을 동원해 신격호 총괄회장 집무실과 신동빈 회장 거주지, 롯데그룹 정책본부 등 17곳을 압수수색했다. 검사 20명으로 대규모 수사팀도 꾸렸다. 검찰은 "롯데 총수 일가의 3000억원대 횡령·배임, 비자금 조성 혐의가 수사 대상"이라며 "내사(內査)를 충분히 했기 때문에 속전속결로 수사를 끝낼 것"이라고 했다. 검찰이 수사 초반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러나 4개월여 수사 기간 동안 10여 차례 압수수색이 반복되고 롯데 임직원 400여명이 소환됐지만 비자금은 나오지 않았다. 작년 8 '롯데 2인자'로 불린 이인원 부회장은 '롯데에 비자금은 없다'는 유서를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검찰이 청구한 신동빈 회장의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검찰은 작년 10월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재계 5위 대기업 수사를 4개월 만에 마쳤다" "심각한 수준의 기업 사유화·사금고화 폐해를 확인했다"고 했다. 검찰이 밝힌 성과는 비자금이 아닌 신 총괄회장의 증여세 포탈 혐의였다. "비자금 수사가 난관에 부딪히자 탈세 수사로 방향을 틀었다"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증여세 포탈 혐의도 무죄가 나왔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징역10년을 구형했는데 집행유예가 나왔다면 수사가 부실했다는 말밖에는 안 된다"고 했다.


신 회장은 집행유예 선고로 일단 큰 위기는 피했지만 국정 농단 사건 연루 혐의가 남아 있다. 신 회장은 이 사건과 별도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측에 70억원 뇌물을 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 14일 이 사건에서 신 회장에게 징역 4년을 구형했다.
박상기 기자

 

2018.02.14 '롯데그룹 잔혹사'

'롯데그룹 잔혹사' 형제의 난→K스포츠 후원→中 사드보복→총수구속...끝없는 시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1심 공판에서 2 6개월의 실형을 받고 법정구속되면서 롯데는 창업 51년만에 처음으로 총수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게 됐다

지난 2015 1월 신 회장과 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간 ‘형제의 난’이 시작된 후 3년여간 롯데는 끝없는 수난을 겪어왔다. 법정에선 총수 일가의 치부가 파헤쳐지고, 정부의 일방적 결정에 따라 제공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부지는 중국의 보복으로 되돌아와 그룹의 중국 비즈니스에 치명타를 입혔다. 재계에선 “지난 3년간 신 회장과 롯데가 겪은 일들은 한국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 일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신격호(왼쪽부터) 총괄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연합뉴스 제공

 

◇ 형제의 난→K스포츠 후원→中 사드보복→총수구속...끝없는 시련

긴 시련의 신호탄은 20151월 시작된 ‘롯데 형제의 난’이었다. 당시 신동빈 회장의 형인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맡고 있던 모든 직위에서 해임되며 롯데그룹 후계구도에 지각변동이 일었다. 이후 7월 신동주 전 부회장은 아버지인 신격호 총괄회장을 앞세워 복귀를 노렸으나 도리어 신 총괄회장마저 퇴진당했다. 이후 신격호·신동주·신동빈 3부자간 고소 고발이 오가며 형제의 난은 깊어져갔다.

2016 6월 검찰은 검사와 수사관 240여 명을 대거 투입해 롯데 총수 일가의 주거지와 사무실,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 32곳을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했다. ‘롯데 총수일가 비리’ 수사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당시 검찰은 대대적인 압수 수색을 실시하면서 “오랜 기간 내사를 진행해 왔다”고 했다. 

검찰은 9월 신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기각되자, 신격호·신동빈 등 롯데그룹 관련자 24명을 2791억원에 달하는 배임·횡령·조세포탈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한다. 이후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수사가 이어지며 신 회장은 일주일에 이틀은 법정을 오가게 됐다.

형제의 난이 벌어지는 와중 롯데그룹과 오너 일가에 대한 국민감정은 악화되고 있었다. 사면초가에 몰린 롯데에 정권의 ‘검은 손’이 다가온 것도 이때다. 2015 11월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이 특허 재심사에서 탈락한다. 해를 넘겨 2016 3, K스포츠재단 관계자가 롯데측에 지원금을 요구하고, 곧이어 신 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독대한 후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후원하게 된다. 신 회장이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이유다. 

롯데는 “잠실 면세점이 특허 경쟁에서 탈락해 특혜와 거리가 멀고, 서울 신규 면세점 추가 승인 가능성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신 회장의 독대 이전부터 거론돼 독대 결과라고 볼 수 없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법원은 “신동빈 회장이 (면세점 특허 등) 롯데 현안과 관련해 대통령이 유리한 방향으로 영향력을 끼칠 기대를 품고 후원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신 회장의 뇌물죄를 인정, 2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국정농단' 사건 1심 선고가 열린 1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20년의 '비선실세' 최순실 씨(왼쪽), 징역 26개월 실형으로 법정구속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가운데)이 각각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또 징역 6년에 벌금 1억원을 선고받은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이 이날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 중국 사업 타격, 지주사 전환 유보, 신시장 개척 중단... ‘신동빈의 뉴롯데’ 위기

총수 일가 비리 수사가 계속되고, 정권의 K스포츠재단 후원 요구가 계속되던 2016 9월 롯데는 사드 부지로 경북 성주군 초전면 성주골프장을 국방부에 제공한다.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 정부의 보복 대상으로 롯데가 지목된 계기다. 이후 중국 정부는 중국 내 87개 롯데마트를 영업정지 조치했다. 이어 2017 3월 중국인 관광객의 단체관광을 금지한 금한령(禁韓令)을 내리며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던 면세점 업계는 긴 고통의 터널 속에 빠진다.

롯데마트의 지난해 매출 감소폭은 12000억원에 달했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9월 전면 철수를 선언하고 매각 작업을 진행중이지만 매수 희망 기업들이 중국 정부의 눈치를 살피고 있어 협상이 지지부진하다. 롯데면세점은 수익성 악화 속에 이날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철수를 결정했다.

롯데그룹 지주사 전환의 마지막 단계인 호텔롯데 상장도 무기한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거래소는 기업 상장 요건 심사 때 회사의 경영 투명성 결격 사유를 주요 평가 항목으로 본다. 호텔롯데 상장이 무산되면 지주사 체제 완성은 물론 일본 롯데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도 여의치 않게 된다.


롯데그룹의 신시장 개척 작업도 빨간불이 켜졌다롯데그룹이 현재 해외에서 추진 중인 굵직한 사업 규모만 100억달러( 108000억원)가 넘는다.

재계의 고위 관계자는 “이번 신동빈 회장의 실형 판결은 이재용 부회장의 2심 판결과 상충되는 면이 있다”며 “정권의 의지를 기업이 거스르기 힘든 현실 속에서 권력자의 피할 수 없는 요구에 응하던 롯데가 총수 구속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고 말했다.
윤민혁 기자

 

2018.10.05 '국정농단·경영비리’ 신동빈 2심 집행유예 선고

▲ 어두운 표정으로 선고공판 출석하는 신동빈 (서울=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 측에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5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8.10.5

 

징역 2 6개월·집행유예 4년 선고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기소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실형을 선고받은 1심과 달리 2심에서는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8(강승준 부장판사) 4일 신 회장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신 회장에게 징역 2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신 회장은 앞서 1심에서는 국정농단 사건의 뇌물 혐의로 징역 2 6개월을, 경영비리 사건의 횡령·배임 혐의로 징역 1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신 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면세점 특허를 청탁하는 대가로 최순실씨가 지배한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뇌물로 추가 지원했다는 혐의를 인정했다.

다만 그러면서도 “대통령이 먼저 요구해 수동적으로 응했고, 불응할 경우 기업활동 전반에 불이익을 받을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며 “의사결정의 자유가 다소 제한된 상황에서 뇌물공여 책임을 엄히 묻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경영비리 사건과 관련해서는 롯데시네마 매점에 영업이익을 몰아줬다는 일부 배임 혐의를 1심과 마찬가지로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총수 일가에 공짜 급여를 지급했다는 횡령 혐의에는 1심과 달리 “신격호 총괄회장의 지시에 따라 급여가 지급되는 것을 용인했을지언정 공모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로 판단을 바꿨다. 

유죄로 인정된 배임 혐의도 신격호 총괄회장의 책임이 무겁고, 수동적으로 가담한 것에 불과해 책임이 상대적으로 가볍다고 판단했다.
< 연합뉴스> 

 

대한민국 랜드마크

2017년 03월 17일  123층 ‘롯데월드타워’ 붓끝 모양 디자인에 30년·3000억

  그래픽 = 전승훈 기자 jeon@


내달 3일 개장 
연면적 80만㎡ ‘축구장 115개’ 
취업 2만명·경제효과 10  
규모 9 강진에도 안전
 

오는 4 3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롯데월드타워 단지에 한반도에서 가장 높고, 세계에서는 5위에 기록될 초고층 마천루가 선보인다. 롯데그룹이 모든 역량을 쏟아부으며 ‘도시와 소통하는 대한민국 랜드마크’란 캐치프레이즈 끝에 완성한 30년 대역사(大役事)의 산물인 롯데월드타워다. 공사 기간에 롯데월드타워를 가슴 졸이며 올라 봤거나, 최근 사전 공개된 세계 3위 높이(500m) 123층 전망대에 서본 이들은 한결같은 소감을 전하고 있다. 서울 전경은 물론, 멀리 50여㎞ 떨어진 인천 앞바다, 송도신도시와 남쪽으로 아산만 당진제철소 공장까지 관망하며 가슴 한편에 내심 국격과 품위, 자긍심을 떠올리게 된다고 한다. 국내 건축사에 획을 긋고 대한민국 관광 활성화에 의미 있는 전기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는 롯데월드타워의 기획부터 완공 과정과 각종 기록, 눈여겨볼 이채로운 시설, 경제적 파급 효과 등을 짚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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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는 얼마 걸렸나 

롯데월드타워는 1987년 롯데그룹이 롯데월드 부지 바로 옆에 108층 규모의 제2롯데월드를 구상하면서 시작됐다. 중간에 여러 차례 높이, 층수 변경과 함께 서울공항의 이착륙 안전 문제로 난항을 겪다가 2009 3월 건축허가를 취득했고 2010 11월에 착공했다. 모두 42000억 원이 투자됐고 연인원 500만 명이 투입돼 준공까지 만 6 3개월, 2280일이 소요됐다. 일반적으로 수익성이 떨어지는 초고층 프로젝트를 공적 차원이 아닌, 민간기업이 주도해 진행한 것은 롯데월드타워가 처음이다. 롯데그룹은 그룹 창립 50주년을 맞아 오는 4 3일 그랜드 오픈식을 준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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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건축사에 주는 의미는 

지하 6, 지상 123층 규모인 롯데월드타워의 높이는 555m로 준공시점 기준으로 보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다. 세계 최고층 건축물은 828m 2010년에 준공된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163). 롯데월드타워는 준공될 건물 기준으로 보면 내년에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에서 완공될 ‘펄 오브 더 노스’(111층·565m)에 이어 10위가 된다. 앞서 롯데월드타워는 2014 4월에 국내 건축물 최고 높이인 305m에 도달했고 2015 3월에는 국내 처음으로 100(413m)을 돌파했다. 2015 12 22일에 국내에서 가장 높은 123층에 대들보(마지막 철골 구조물)를 올리는 상량식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지난해 10월에 2만여 개의 커튼월과 4만여 장의 유리창으로 이뤄진 외관을 완성했다. 107( 435m)부터 전망대 구간(117~123)을 거쳐 최상부 랜턴(555m)까지 120m의 초대형 다이아그리드(Diagrid)도 돋보인다. 이강훈 롯데물산 상무는 “국내 초고층 건물에 적용한 최초의 시도이자 다이아그리드 공법이 적용된 초고층 건물 중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록”이라며 “건물의 외관을 더욱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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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과정 ‘진기록’ 쏟아져 

롯데월드타워 건설에 쓰인 철골은 5t에 달한다. 파리 에펠탑을 7개 지을 수 있는 분량이다. 사용된 콘크리트는 22만㎥로, 105(35평형) 아파트 3500가구를 지을 수 있다. 건설 현장에 투입된 40여 만 대의 레미콘 차량(8m 길이)을 한 줄로 세우면 서울과 부산을 3번 왕복하고도 남는다. 단지 전체의 연면적은 805872(243776)로 축구 경기장 115개를 합친 규모다. 75t에 달하는 무게는 서울시 인구 1000만 명(체중 75㎏ 기준)과 맞먹는다. 건설 기간 중 현장 식당에서 근로자들이 소비한 쌀은 1480t, 공기밥으로 환산하면 14800그릇 분량이다. 


4 디자인은 어떻게 완성했나 

롯데월드타워는 상부로 올라갈수록 점차 좁아지는 원뿔 형태다. 서예 붓 끝의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형태를 연상케 한다. 커튼월 사이의 수직 안전핀(Vertical fin)이 빛 반사를 저감하면서 건물의 외관을 고급스럽고 은은한 분위기로 감싼다. 현재의 모습이 나오기까지는 30년 동안 ‘당간지주’ ‘방패연’ ‘삼태극’ ‘대나무’ ‘엽전’ ‘전통 문살’ ‘첨성대’ ‘가야금’ ‘도자기’ 등 무려 24차례나 다른 디자인으로 바꾸는 산고를 거쳤다. 대한민국 랜드마크를 표방한 만큼 한국의 미()를 살릴 수 있는 전통적인 요소를 모티브로 삼아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셈이다. 디자인 변경에만 3000억 원이 쓰였을 정도다. 롯데물산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까지는 세계적인 랜드마크로 여겨졌던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파리의 에펠탑 등에서 영감을 받은 서구적인 디자인이 대상에 올랐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잠실 일대를 해외 고가브랜드 매장이 즐비한 뉴욕 5번가나 파리의 최대 번화가인 샹젤리제 거리처럼 꾸미기 위해 검토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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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된 공정·기술은 

롯데월드타워는 75t의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지하 38m 깊이까지 터를 파 화강암 암반층에 길이 30m, 직경 1m의 파일 108개를 설치했다. 그 위에 5300대의 레미콘 차량을 동원해 32시간 동안 8t의 고강도 콘크리트를 타설해 좌우 길이 72m, 두께 6.5m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기초 매트(MAT)공사를 진행했다. 이는 매트 두께가 3.7m인 부르즈 칼리파보다 1.8배 더 두껍고 콘크리트양은 2.5배 많은 규모다. 롯데건설은 건설 때 일반 콘크리트의 3배 이상에 달하는 고강도이자 화재 발생 시 최소 3시간 이상 버틸 수 있는 고내화 콘크리트를 사용했다. 건물의 뼈대 역할을 수행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코어월(Core Wall) 8개의 메가컬럼(Mega Column)을 세워 수직 중력을 지탱하게 했다. 또 건물 40층마다 1개씩 중심부 기둥들을 묶어 벨트 역할을 하는 첨단 구조물 ‘아웃리거’와 ‘벨트트러스’를 설치해 규모 9의 지진과 순간 초속 80m의 강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했다. 최상층 첨탑부까지 120m 높이의 초대형 다이아그리드 구조물을 설치해 건물의 무거운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했다.

 

  인천 앞바다가 보일 정도로 조망이 뛰어난 롯데월드타워의 롯데호텔 시그니엘 서울 그랜드디럭스룸(왼쪽 )과 라운지 조감도. 롯데호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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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정전·지진 등 대책은 

롯데월드타워에는 초고층 건축물의 구조상 피난 및 대피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피난안전구역이 22, 40, 60, 83, 102층에 마련돼 있다. 피난안전구역은 내화 및 불연 재료로 돼 있고 가압 제연설비 시스템이 적용돼 벙커에 버금갈 정도로 견고하다. 화재용 마스크와 공기호흡기, 휴대용 비상조명등, 심장 충격기 등이 구비돼 있고 안전한 대기를 위해 화장실과 급수시설, 방재센터와의 직통전화 등도 설치돼 있다. 

국내 최초로 비상상황 발생 시 61대의 승강기 중 19대가 피난용으로 전환, 운용된다. 피난용 승강기는 화재 발생 시 연기유입을 차단하는 가압 제연설비가 적용돼 있다. 정전 발생 시에도 비상 발전기를 이용해 응급전원을 공급할 수 있도록 2중 안전 시스템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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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는 어떤 시설이 들어오나 

1층부터 12층까지는 ‘포디움(Podium)’으로 금융센터, 메디컬센터, 피트니스센터, 갤러리 등 로비와 복합서비스 시설이 입주한다. 기존 에비뉴엘 건물 8, 9층과 타워의 8, 9층이 연결돼 면세점이 추가로 확장될 예정이다. 14층부터 38층까지는 ‘프라임 오피스(Prime Office)’로 다국적 기업들의 아시아 본부 등이 들어서 ‘글로벌 비즈니스의 허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42층부터 71층은 업무와 사교, 거주와 휴식을 겸할 수 있고 6성급 호텔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그니엘 레지던스(Signiel Residence)’가 들어선다. 모두 223가구가 입주할 수 있다. 76층부터 101층까지는 국내 최고 높이와 최고급 랜드마크 호텔인 ‘시그니엘 서울(Signiel Seoul)’이 자리한다. 이 호텔에서는 50㎞ 떨어진 인천 앞바다가 보인다. 108층부터 114층까지 7개 층은 1개 층을 모두 쓸 수 있는 국내 최고의 프라이빗 오피스 시설이자 사교 공간인 ‘프리미어 7’이 각각 들어선다. 그 위에 전망대가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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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경험 못한 이색 시설은 

세계 최고 높이의 ‘스카이 데크’를 비롯해 서울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시설이 설치됐다. 스카이 데크는 타워 118층에 설치된 시설로, 벽면과 바닥 전체가 유리로 돼 있다. 478m 아래로 서울과 한강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스릴 만점의 시설이다 

전 세계 초고층 빌딩에 설치된 같은 시설물 중에서는 최고 높이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됐다. 스카이 데크 외에도 서울 경관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인 ‘서울 스카이’가 117층부터 123층까지 들어선다. 서울 스카이는 오픈 시점을 기준으로 세계 3위 높이(500m). 120(486m)에 마련된 야외 테라스에 나가면 건물 외부에서 탁 트인 서울의 전망을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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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생산·부가가치유발 효과는 

롯데월드타워는 건설 단계에서부터 약 44000억 원에 달하는 생산유발 효과를 냈고, 현장에는 일 평균 3500여 명이 투입돼 고용창출 효과를 거뒀다. 앞서 2014 10월에 문을 연 롯데월드몰에서는 파트너사를 포함해 6000여 명의 고용이 창출됐다. 이 가운데 1529세의 인원만 60%로 청년 일자리 창출에 대한 기여 정도가 특히 돋보였다 

박현철 롯데물산 대표이사는 “롯데월드타워가 본격적으로 운영되면 생산유발 효과 21000억 원과 부가가치유발 효과 1조 원뿐만 아니라, 취업유발 인원도 21000여 명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를 통해 창출되는 경제효과는 한 해 약 10조 원으로 추정했다. 송파구를 찾는 해외 관광객은 타워 오픈 후 2021년까지 연평균 500만 명 정도로,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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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대형 건축물 효과는

한국산업개발연구원에 따르면, 롯데월드타워와 같은 대형 건축물의 경제적 효과는 해외 사례를 통해 여러 차례 입증됐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452m)’ 완공 당시인 1998년에 556만 명이었던 외국인 관광객 수는 이듬해 793만 명으로 42.6% 늘었고 2000년에는 28.9% 증가해 1022만 명이 됐다. 대만의 ‘타이베이 101(508m)’이 완공된 2003년 외국인 관광객 수는 225만 명이었으나 2004년에는 22.4% 증가한 275만 명을 기록했다. 2005년에는 이보다 22.8% 증가한 338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대만을 찾았다. 싱가포르의 ‘마리나 베이 샌즈(200m)’가 개장한 2010년 외국인 관광객 수는 전년 대비 19.6% 늘었다
이민종·박준우·최재규 기자 horizon@munhwa.com

 

2017.05.12  창립 50주년 맞은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 부자(父子)의 30년 집념이 세계 5위 초고층 건물 완공”

4 2일 롯데월드 매직아일랜드 하늘로 불꽃 3만개 치솟아
4 3일은 롯데 창립 50주년이자 매직아일랜드 개관일
⊙ 청년 신격호 1942년 관부연락선 타고 도일 … 아르바이트하며 고학(苦學)
⊙ 성실성 지켜본 일본인의 투자로 첫 사업 … 미군기 폭격으로 잇달아 좌절
⊙ 껌과 초콜릿 시장 제패하며 자수성가형 한국기업가로 우뚝
⊙ 한일수교 후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쇼핑·유통·중화학공업까지 투자
⊙ “한국 찾은 관광객에게 고궁만 보여줄 순 없다”며 매직아일랜드 구상 밀여붙여
10조원의 경제창출 효과에 청년 일자리의 산실(産室)

 

 4 3일 개장한 롯데월드타워는 세계 5위의 초고층빌딩으로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

 

4 2일 저녁 서울 잠실 일대가 불야성(不夜城)처럼 환하게 변했다. 3만여 발의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은 것이다. 이 불꽃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몰린 인파만 30만명이다. 이 장관을 보기 위해 강변북로와 올림픽도로를 질주하던 차량들이 10분간 멈춰섰을 정도였다. 주변 관람인구까지 합치면 100만명을 훌쩍 넘었다.
  
 
불꽃축제가 열린 롯데월드 매직아일랜드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가슴이 벅찹니다. 드디어 (신격호 총괄)회장님께서 그토록 염원하고 고대하시던, 대한민국 랜드마크인 롯데월드타워의 완성을 보게 됐습니다.” 그는 감격에 겨운 표정이었다.

 

/4 2일 밤 롯데월드타워의 개관을 축하하는 불꽃축제에는 30만명 이상의 인파가 몰렸다.

 

다음 날인 3일은 롯데그룹에 뜻깊은 날이다. 롯데가 1967년 한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한 날이기 때문이다. 이제 롯데는 재계 5, 매출 100조원에 달하는 거인으로 성장했다. 또 이날은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의 30년 숙원이던 롯데월드타워가 완공돼 개관한 날이기도 하다.
  
 
신동빈 회장은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역사적 순간을 함께하게 돼 가슴이 벅차다. 1967, 50년 전 오늘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님이 롯데제과를 설립한 이래 롯데는 고객들에게 행복을 전하고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새로운 변화에 과감하게 도전해 100년 기업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4 3일 개관한 롯데월드타워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30년 염원의 결과물이다.

  
  
롯데 창립 50년사  

  롯데그룹은 1967년 롯데제과를 창립해 식품 산업에 진출한 이후, 호텔과 백화점을 설립해 국내 관광·유통 산업의 발전을 이끌어 왔다. 석유화학 및 건설 산업 등으로 사업 영역을 지속적으로 넓혀 왔다. 지금의 롯데그룹은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을 빼놓으면 설명할 수 없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식민지 시대 일본 유학 중 소규모 식품업으로 출발해 한일 양국에 걸쳐 식품·유통·관광·석유화학 분야의 대기업을 일궈 낸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일본에서 성공한 신격호 총괄회장은 한일 수교 후 한국에 대한 투자의 통로가 열리자 1967년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호텔롯데, 롯데쇼핑, 호남석유화학 등을 잇달아 창업하거나 인수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1922 10 4일 경남 울산 삼남면 둔기리에서 55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배움을 열망하던 청년 신격호는 1942년 관부(關釜) 연락선을 타고 도일(渡日), 신문과 우유배달 등으로 고학생활을 시작했다.
  
 
남다른 부지런함으로 문학도의 꿈을 불태우던 청년 신격호는 ‘조선인’이라는 불리한 여건을 성실과 신용으로 극복하고, 평소 그를 눈여겨 지켜보던 한 일본인 투자자의 출자로 1944년 커팅오일을 제조하는 공장을 세우면서 기업 경영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신 총괄회장은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숱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뛰어난 안목, 신용과 성실성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도전해 오늘날의 롯데신화를 창조해 냈다. 신 총괄회장이 얼마나 신용을 중시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신 총괄회장은 당시 우유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했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배달시간이 한결같았다. 소문이 나다 보니 주문이 늘어나 배달시간을 못 맞추게 되자 신 총괄회장은 자기가 직접 아르바이트를 고용했다. 배달 시간을 정확히 맞추기 위해서였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하나미쓰라는 일본인이 사업을 권유하며 당시 돈 5만 엔을 내주었다. 이 돈으로 시작한 공장이 미군기 폭격으로 가동도 못해 본 채 전소(全燒)하고 말았다. 어렵게 재기했는데 다시 폭격을 당했다. 그래도 하나미쓰의 신 총괄회장에 대한 신뢰는 변함이 없었다고 한다. 신 총괄회장은 이후 재기에 성공해 일년 반 만에 이 돈을 모두 갚고 고마움의 표시로 하나미쓰에게 따로 집을 한 채 사 주었다고 한다.  


  
롯데의 탄생

 

일본 와세다 대학까지 고학했던 청년 신격호는 허물어진 군수공장에서 비누를 만들어 내면서 진정한 사업가의 길에 들어선다. 워낙 물자가 부족한 시절이라 1년도 채 안 되어 적지 않은 돈이 들어온다. 사업가 신격호의 타고난 재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건 바로 이때부터다.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자 껌이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신격호는 껌 사업에 뛰어든다. 워낙 껌이라면 없어서 못 팔던 시절이라 신격호 총괄회장은 큰돈을 번다. 그는 드디어 자본금 100만 엔, 종업원 10명의 법인사업체를 만들게 됐고, 이때 회사이름 ‘롯데’가 탄생했다. 문학에 심취했던 청년 신격호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이름(샤롯데)에서 롯데라는 이름을 따 왔다. 신 총괄회장의 감수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천재적 마케팅 감각 - 풍선껌과 초콜릿 시장 제패

서구문명의 상징인 껌에 일본 성인들은 비난을 퍼부었지만 신격호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일본에서 껌의 핵심 타깃은 바로 어린이였다. 롯데는 비판에 움츠러들기는커녕 오히려 아예 풍선껌을 작은 대나무 대롱 끝에 대고 불 수 있도록 풍선껌과 대나무 대롱을 함께 포장했다. 변변한 장난감이 없던 터여서 롯데의 풍선껌은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이벤트와 미디어로 소비자의 눈길을 끌어당긴 사례는 무수히 많다. 껌 포장 안에 추첨권을 넣고 당첨자에게 1000만 엔을 준다는 광고를 내기도 했다. 이제 롯데 껌을 사기 위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상점 앞에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 같은 천재적 감각은 경영학 강의와 교재에서 배운 게 아니라 그의 감수성과 창의성에서 나온 것이다.
  
  1961
년 신격호 총괄회장은 일본 가정에서 손님 접대용 센베이가 초콜릿으로 대체될 기미를 포착했다. 초콜릿 산업은 과자사업 중에서는 중공업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만큼 제조방법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신 총괄회장은 유럽에서 최고의 기술자와 시설을 들여와 초콜릿 시장을 장악했다. 이것은 롯데가 종합메이커로 부상하는 밑거름이 된다. 이후 롯데는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부문에도 진출해 성공을 거듭한다.  

  
  
고국투자 - 현해탄 경영의 시작

/신격호 총괄회장이 롯데제과 공장을 순시하고있다.

 

“새롭게 한국롯데 사장직을 맡게 되었사오나 조국을 장시일 떠나 있었던 관계로 서투른 점도 허다할 줄 생각되지만 소생은 성심성의, 가진 역량을 경주하겠습니다. 소생의 기업이념은 품질본위와 노사협조로 기업을 통하여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1967년 한국롯데제과 설립 당시 신격호 롯데 사장 인사말)
  
 
일본에서 성공한 신격호 총괄회장의 꿈은 조국 대한민국에 기업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신 총괄회장은 기업보국(企業報國)이라는 기치 아래 폐허의 조국 어린이들에게 풍요로운 꿈을 심어 주고 싶었다. 한일 수교로 한국에 대한 투자의 길이 열리자,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해 모국 투자를 시작했다.
  
 
롯데그룹은 1970년대에 롯데제과에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으로 국내 최대 식품기업으로 발전했다. 호텔롯데와 롯데쇼핑을 설립해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유통·관광 산업의 현대화 토대를 구축했다. 또 호남석유화학과 롯데건설 등으로 국가 기간산업에도 본격 진출했다.
  
 
‘한국의 마천루! 1973년 당시 동양 최대의 초특급 호텔로 6년간의 공사 끝에 문을 연 롯데호텔에 붙여진 찬사였다. 지하 3, 지상 38층의 고층 빌딩으로 1000여 객실을 갖춘 롯데호텔을 짓는 데 6년여 기간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에 버금가는 15000만 달러가 투자됐다.
  
 
그 당시에도 막대한 투자자금을 한 개 회사가 감당할 수 없어 일본에 설립된 롯데제과를 포함한 다수의 일본 롯데 계열 기업이 투자회사 형식으로 롯데호텔 건설에 공동투자했다. 이때 투자된 자금들은 다시금 롯데 계열 기업들에 투자되어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호텔사업 구상은 신 총괄회장과 롯데그룹에 대단한 모험이었다. 당시에는 산업기반이 취약한 데다 국내에 외국손님을 불러올 국제 수준의 관광상품도 별로 없었다. 관광업은 산업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뒷순위였다. 그러나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입국을 이뤄야 한다는 게 신 총괄회장의 신념이었다. 이런 결단으로 탄생한 롯데호텔은 2010년 러시아 모스크바에 한국 호텔로는 처음 해외 체인을 오픈할 만큼 성장했다.  

  
  
롯데쇼핑의 탄생

/신격호 총괄회장이 1979 12 17일 롯데쇼핑센터 개장식에서 테이프를 커팅하고있다.

 

한국전쟁 이후 정부는 1970년대 후반 제4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77~1981)을 진행했다. 국민소득이 향상되면서 자연스럽게 소비욕구와 구매패턴이 다양해졌지만 유통업을 대표하는 백화점의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미흡했다. 1970년대 우리나라 백화점은 대부분 영세하고 운영방식이 전근대적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은 백화점 사업에 도전하게 된다.
  
 
롯데쇼핑센터(현재의 롯데백화점 본점) 건립공사는 1976년 시작해 1979 12월에 완료됐다. 규모는 연면적 27438m², 영업면적 19835m²의 지하1, 지상 7층에 이르렀다. 이는 기존 백화점의 2~3배에 달하는 규모였다. 롯데쇼핑센터는 개점 당시부터 고객의 많은 관심을 받았고 우리나라 1위 백화점의 위치를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석유화학산업으로의 진출

/1989 7 12일 개관한 서울 잠심 롯데월드 개관식에 참석한 신격호 총괄회장.

 

애초에 신 총괄회장은 기간산업에 투자해 모국의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뜻을 품고 있었다. 제철사업에 관심이 많았지만 정부가 제철사업은 국영화한다는 방침을 정하면서 이러한 희망을 접었다.
  
 
이후 호남석유화학을 인수하면서 비로소 신 총괄회장은 중화학기업에의 꿈을 이루게 된다. 호남석유화학은 정부가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의 일환으로 여천석유화학단지를 조성하면서 설립한 국영기업이었다. 단지조성 후 정부는 호남석유화학을 민영화한다고 발표했고 롯데는 공개입찰을 거쳐 1979년 이를 인수했다.
  
 
그해 호남석유화학은 여천단지 내 3개의 공장을 완공하고 전선 등에 사용되는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보온병 등에 쓰이는 폴리프로필렌(PP), 화장품 재료가 되는 에틸렌글리콜(EG)의 상업생산을 시작하며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을 이끌어 나가게 됐다.
  
 
호남석유화학은 케이피케미칼 등 국내 유화사와 말레이시아의 타이탄케미칼 등을 인수하며 롯데그룹 성장의 한 축으로 성장했고 2012년 ‘롯데케미칼’로 사명을 바꾸고 글로벌 화학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1990 3 24일 롯데월드 매직아일랜드 개관식에는 김대중, 김종필, 나카소네 야스히로 등 한국과 일본의 정계 요인들이 참석했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 취임 이후 철저한 내실경영을 바탕으로 주력업종과 연관산업에 대한 효율적인 투자를 실행하며 안정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특히 2009년 ‘Asia Top 10 글로벌 그룹’이라는 비전을 발표한 이후, 적극적인 사업확장과 해외진출 가속화를 통해 당당한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갖춰 오고 있다.
  
 
주력사업인 석유화학 부문에서 잇달아 1조원이 넘는 대규모 인수·합병(M&A)을 성공시키며 핵심사업 경쟁력을 강화했으며 중국 및 러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지역에 현지 진출한 사업을 안정궤도에 올려놨다.
  
 
롯데그룹의 변화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거버넌스(governance) 강화를 중점전략으로 삼아 미래성장을 준비하고 각 사업 부문별로 옴니채널, AI 기술 도입 등 4차 산업혁명 대비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그룹사 간 사업연계를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해 나가려는 노력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자의 집념이 만들어 낸 롯데월드타워

/신동빈 회장은 롯데월드타워 건설 과정에서 안전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롯데월드타워가 완공된 30년의 경과는 롯데 50년의 역사와 같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롯데월드타워는 1987년 사업지 선정 후 지난 4 3 30여년 만에 서울 하늘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우뚝 섰다.
  
 
롯데월드타워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염원과 관광산업에 대한 식견, 신동빈 회장의 강한 집념이 합쳐졌기에 가능했던 프로젝트다. 1987년 사업 부지를 매입한 이후 신격호 총괄회장은 수시로 사업진행 상황을 챙기며 “서울에 오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궁궐만 보여줄 수 없다. 세계적인 명소 하나쯤 있어야 뉴욕이나 파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롯데월드타워 프로젝트는 마스터플랜만 23, 세계적인 디자인 회사들이 제안한 디자인도 수십 번 바꿔 가며 ‘자랑스러운 명소’ 만들기로 진행됐다. 사업 진행과정에서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 간의 이견도 있었다.
  
 
신동빈 회장은 “초고층 사업은 수익성이 없다. 대신 주상복합 아파트를 지어 분양한다면 수조 원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이 “후세까지 길이길이 남을 기념비적 건축물을 세워 해외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관광명소가 돼야 한다”고 강조해 신동빈 회장도 뜻을 굽혔다고 한다.


  
()를 이은 롯데월드타워 사랑

/롯데월드타워는 2010년 착공 이후 완공까지 6 3개월이 걸렸다.

 

이후 신동빈 회장은 롯데월드타워 건설에 매진했다. 신 회장은 롯데월드타워 공사 중 안전문제가 한창 불거졌을 때 직접 장비를 착용하고 건설현장을 수시로 찾아 점검하며 작업자들에게 안전을 강조하기도 했다. 경영권 사태가 한창이던 2015 8월에는 일본에서 현안을 정리하고 일주일 만에 귀국한 후 가장 먼저 롯데월드타워를 방문해 현장을 챙겼다. 또한 자신의 모교인 미국 컬럼비아 MBA 학생들을 매년 롯데월드타워로 초청해 견학시키고 국내외 귀빈들도 수시로 현장에 초청하기도 했다.
  
 
롯데월드타워는 1987년 사업지 선정 이후 2010 11월 착공해 연인원 500만명 이상이 투입되어 지난 2 9일 서울시로부터 사용승인을 받을 때까지 만 63개월, 2280일이 걸렸다.
  
 
롯데월드타워는 2014 4월 국내 건축물 최고 높이인 305m에 달하고 2015 3월에는 국내 최초로 100(413m)을 돌파하며 우리 건축사를 매번 새롭게 써 왔다. 2015 12 22일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123층에 대들보를 올리는 상량식을 성공적으로 진행했으며 지난해 10월엔 2만개 이상의 커튼월로 외관을 완성했다.
  
 
단지 전체의 연면적은 80m²로 축구경기장 115개를 합친 규모며 75만톤의 타워 무게는 서울시 인구 1000만명과 맞먹는다. 타워 123층 전망대(500m)인 ‘서울스카이’에서는 맑은 날이면 서쪽으로 50km가량 떨어진 인천 앞바다나 송도 신도시, 남쪽으로는 아산만 당진 제철소 공장을 볼 수 있다.
  
 
롯데월드타워의 최상부인 117층부터 123층까지는 전망대인 ‘서울스카이’가 들어서며 108층부터 114층까지 7개 층은 1개 층을 모두 사용하는 프라이빗 오피스인 ‘프리미어7’이 들어선다. 76층부터 101층까지는 국내 최고 높이, 최고급 랜드마크 호텔인 ‘시그니엘서울’이, 42층부터 71층은 업무와 사교, 거주와 휴식을 겸하는 ‘시그니엘 레지던스’ 223세대가 분양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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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부터 38층까지는 다국적기업들을 유치해 글로벌 비즈니스의 허브가 될 ‘프라임 오피스(PRIME OFFICE)’로 구성되며, 롯데물산은 지난 2 13일 최초로 19층에 입주했다. 1층부터 12층까지는 로비이자 원스톱 리빙이 가능한 ‘포디움(PODIUM)’으로 금융센터, 메디컬센터, 피트니스센터 및 갤러리 등이 입점할 예정이며 기존 롯데월드몰 8층과 9층의 면세점이 확장할 계획이다.
  
 
롯데가 총 4조원가량을 투자한 롯데월드타워는 건설 단계에서 일 평균 3500여 명의 근로자가 투입됐다. 당시 생산유발 효과만 44000억원에 이른다. 2014 10월 오픈한 국내 최고의 복합쇼핑몰인 롯데월드몰에서는 파트너사를 포함해 6000명가량의 고용이 창출됐으며 이 중 15~29세의 인원만 60%로 청년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했다.
  
 
롯데월드타워는 기존 롯데월드몰과의 시너지로 생산유발효과 21000억원과 부가가치 유발효과 1조원, 취업유발 인원도 210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며 이를 통해 창출되는 경제효과는 연간 약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오픈 후 2021년까지 연 평균 500만명의 해외 관광객들을 잠실과 송파구로 불러모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들의 체류기간을 증가시키고 소비지출액을 늘리는 등 지역상권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국내외 관광객을 모두 합치면 연간 5000만명 이상이 롯데월드타워를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평생 집념을 쏟은 신격호 총괄회장은 휠체어를 타고 2015 4월과 12월 롯데월드타워를 방문한 이후 건강악화로 더이상 찾지 못하자 신동빈 회장은 그 뒤를 이어 막중한 책임감으로 끝까지 롯데월드타워를 완공했다. 밤하늘에 쏟아지는 불꽃의 의미와 감격이 더욱 남다른 이유다.

출처월간조선 2017년 5월호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