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비열한 이야기5/ 2020
월간조선 05월 호
■국정원 문서 확인! 韓美, DJ 비자금 의혹 3년간 합동 추적
국정원·국세청-FBI·美국세청 합동으로 DJ 비자금 추적, 계좌 등 확인!
국정원의 최종 판단
“증거 자료로 볼 때 실존 가능성 多大”
⊙ 이번에 새롭게 드러난 사실 중 핵심은 美 국세청(IRS)이 파악해 국정원에 보고한 DJ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1억1300만 달러’
⊙ “(DJ 비자금 중 일부) 클린턴 美 국무장관 정치후원금으로… 대형사건으로 認知”(IRS의 국정원 보고 내용 중)
⊙ 박윤준 전 국세청 차장이 증언한 비자금 관리자 A씨의 수상한 1억1300만 달러 조성 방식
⊙ 美 연방검찰 불려가 ‘錢主 밝히겠다’고 한 A씨 ‘내가 다 안고 가겠다’며 돌연 말 바꿔
⊙ 비자금 관련 페이퍼컴퍼니로 의심받은 中 동방가리화상무의 監事는 ‘김홍걸’
⊙ 국정원 자료엔 “北 ◦◦◦ 간부가 DJ 비자금 제보했다”는 뜻밖의 내용도 담겨
⊙ DJ 부부와 친분 있던 어느 부부의 고백 “(DJ) 부실기업 정리 및 해외 헐값 매각으로 리베이트 받아 비자금 약 10억 달러 조성”
⊙ 이희호씨의 빈번한 訪中이 ‘비자금과 관련 있다’는 국정원의 판단
⊙ 국정원 “美 당국이 은닉 비자금 조사할 움직임 보이자 (DJ 측) 중국으로의 자금 도피 작업 착수”
⊙ 국정원·국세청의 ‘DJ 비자금’ 추적이 정치적 목적이 없었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들
《월간조선》은 국정원과 국세청이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 미국 내 비자금을 추적(DJ를 뜻하는 일명 ‘데이비슨 공작’)하면서 작성한 전문(電文)과 보고서 등이 담긴 비밀 자료를 입수했다. 비자금 액수(추정치) 등은 그간 본지(本誌) 보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 추적 과정이 공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최초로 공개되는 ‘중국 비자금 첩보’ 내용
국정원 자료에는 《월간조선》(2020년 4월호)이 공개한 ‘1억 달러 수표’와 관련 있는 DJ의 미국 서부 비자금 추적 과정뿐 아니라, 동부 비자금 추적 과정도 상세히 담겨 있다. 특히 지난 14년간 설(說)로만 떠돌던 동부 비자금의 구체적인 액수와 조성 방법, 관련 계좌번호까지 적혀 있어 주목된다.
‘DJ 미국 내 비자금 의혹’은 국정원・국세청뿐 아니라 미국 FBI와 IRS(미국 국세청)도 함께 조사를 벌였다.
자료에는 FBI와 IRS가 DJ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돈이 미국 유력 정치인에게 흘러 들어간 사실을 포착한 정황도 있다. 미국 당국은 ‘대형사건’이라며 이 사안을 중대하게 받아들였다.
이렇듯 한미(韓美) 양국의 DJ 비자금 추적은 첩보영화를 방불케 할 정도로 숨 가쁘면서도 흥미롭다. 지금부터 국정원 자료를 시간 순서대로 따라가보도록 하자.
DJ 비자금 추적은 2009년 5월경 국정원이 중국과 미국에서 들어온 첩보를 입수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먼저 중국 내 첩보 내용이다. 이 ‘중국 첩보’는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국정원이 작성한 전문(電文)을 자료에서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3남 중국 내 비자금 관련자: 김진근, 박금숙, 김광호
■ 09. 5. 北 ‘○○○’ 간부 ○○○으로부터 “데이비슨이 북경에 동방가리화상무(東方可利華商貿)를 설립하고 인민폐 40억 위안(5억 불, 한화 6000억 상당)의 비자금을 확보했다”는 첩보를 제보(받았다). 이후 ○○○은 “첩보 원(原) 출처가 동방가리화상무 바지사장 김광호”라고 추가 제보.
■ 추적 결과, 동(同) 회사가 09. 6. 10. 설립된 회사(자본금 인민폐 50만 위안, 한화 8900만원)로 ‘성성(星城)국제빌딩’ 17층에 소재해 있으며 동사(同社) 대표는 ‘데이비슨’ 측근이자 동교동계와 친한 김진근(66세·심양○○호텔 사장)으로 등록되어 있으나 김진근의 고향 후배인 상기(上記) 김광호가 대표 행세를 하고 있으며….
■ 데이비슨 부부 개업식 참석. 동사 내 3남(男) 사무실 소재 동사 회계 3남에게 보고. 바지사장 김광호가 3남의 측근으로 활동하는 등 동사와 데이비슨의 연관성을 확인.
■ 동사 입주 빌딩의 소유주가 김진근의 처(妻) 박금숙(조선족)이고 이들 부부가 데이비슨….〉
전문의 핵심을 요약하면 ‘DJ가 5억 달러 상당의 비자금을 확보했고, DJ뿐 아니라 그의 3남이 관련된 동방가리화상무는 문제의 비자금과 관련이 있는 회사’라는 것이다
동방가리화상무의 ‘監事’는 ‘김홍걸’
▲‘동방가리화상무’의 임원구성. 첫 번째 인물과 두 번째 인물은 국정원 전문에 등장하는 김진근과 김광호다. 맨 마지막 ‘감사’로 등재된 ‘金弘杰’은 DJ의 삼남(三男) 김홍걸씨다. 사진=동방가리화상무 홈페이지 캡처
중국에서 들어온 DJ 비자금 관련 첩보는 국정원을 긴장시켰다. 원세훈 국정원장은 액수를 보고받고 간단한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원세훈 원장은 최종흡 3차장을 불러 ‘DJ 직계가족의 국내 차명계좌 확인’부터 지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원세훈 원장은 국내 DJ 비자금에 방점을 뒀던 것으로 보인다.
2009년 하반기, 국정원 해외첩보망은 ‘DJ 아들 김홍걸의 비자금이 중국 베이징 무역회사(전문에 기재된 ‘동방가리화상무’로 추정)를 통해 북한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다’는 취지의 첩보를 또다시 보고했다. 중국 내에 5억 달러가 있다는 보고에 이어, 그중 일부가 북한으로 들어갈지 모른다는 첩보는 국정원 입장에서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중국 첩보 전문에 담긴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짧은 전문임에도 흥미로운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가장 주목할 대목은 동방가리화상무라는 회사다. 이 회사는 지금도 실존하고 있다. 회사 인터넷 홈페이지를 확인해보면, 동방가리화상무는 한국산 식품, 주방용품, 유아용품 등을 수입해 중국에 파는 일종의 무역회사다. 기자는 회사의 임원 구성에서 눈에 띄는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金进根 执行董事
金光镐 经理
金弘杰 监事
첫 번째 인물과 두 번째 인물은, 국정원 전문에 등장하는 김진근(집행동사-우리의 상무이사 격)과 김광호(경리)다. 그럼 맨 마지막 ‘감사’로 등재된 ‘金弘杰’은 누굴까. 그는 DJ의 삼남(三男) 김홍걸씨다. 앞서 《월간조선》(2020년 4월호)은 DJ 비자금, 특히 김홍걸씨로부터 나온 것으로 의심되는 1억 달러 수표 사본을 공개했다. 김홍걸씨는 DJ 미국 내 비자금 의혹에 핵심적으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김홍걸씨가 동방가리화상무의 회계를 ‘바지사장’ 김광호로부터 보고받았다는 내용으로 보아, 김홍걸씨는 동방가리화상무의 경영에 실질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첩보 전문에는 ‘데이비슨 부부 개업식에 참석’이라고도 적혀 있다. 이 회사 ‘개요’에 따르면, 동방가리화상무는 2009년 2월 설립돼 같은 해 6월 10일 등록됐다고 홈페이지에 기재돼 있다. 전문의 내용대로라면, 이 사이 DJ 부부가 중국을 방문했다는 얘기가 된다.
실제로 2009년 5월 4일, DJ 부부는 4박 5일 일정으로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적이 있다. DJ는 5월 6일(현지 기준) 베이징대학에서 특강을 하기도 했다. 시기와 첩보의 정황상 DJ 부부는 이때 동방가리화상무 개업식에 참석한 것으로 추정된다
친북단체 간부가 ‘DJ 비자금’ 제보?
▲2009년 5월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베이징대학에서 특강했다는 한 언론 기사. 사진=프레시안 캡처
그럼 김진근·박금숙 부부는 누굴까. 이 두 사람은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다만 김진근씨가 국내 언론에 한 번 등장한 적이 있다.
2003년 중국 뤼순(旅順)에 DJ 동상이 세워졌는데, 이 동상 건립에 주도적 역할을 한 이가 바로 김진근이다. 단신(短信)으로 나온 기사에서 김진근은 ‘재중(在中) 사업가’로 소개됐다. 김진근의 아내 박금숙은 2008년 국내 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적이 있다.
이 대학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박금숙씨는 중국에서 검사(檢事)였다”며 “별명이 ‘박도끼’로 불릴 정도로 아주 매서운 검사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김진근씨는 DJ가 민주화운동을 하던 시절, DJ를 도우면서 DJ 측근들과도 어울렸다고 들었다”고 했다. 국정원은 김진근·박금숙 부부를 DJ 일가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인물로 봤다. 동방가리화상무는 DJ 비자금과 관련 있는 일종의 페이퍼컴퍼니로 판단했다.
첩보 전문에는 다소 뜻밖의 내용도 담겨 있다. ○○○이라는 친북단체 간부가 DJ 비자금 관련 제보를 국정원에 했다는 것이다.
‘첩보의 원 출처’가 ‘동방가리화상무 김광호’라고 전문에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은 비자금 관련 첩보를 김광호에게서 전해 들은 걸로 추정된다.
참고로 ‘데이비슨 공작’에 관여했던 이○○ 전 국정원 처장은 박금숙 등 동방가리화상무 관련자들을 상대로 비자금 정보를 캐기 위해 ‘사이버 점거’ 시도를 했다는 취지의 증언을 한 적이 있다. ‘사이버 점거’란 해킹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국정원이 해킹을 통해 어떤 정보를 얻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처럼 국정원이 입수한 중국 첩보는 아주 구체적이고 상세하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 역시 상당 부분 첩보의 내용과 일치한다
미국 첩보의 핵심은 ‘13억5000만 달러’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삼남 홍걸씨.
중국 첩보가 들어온 지 약 반년이 지난 2010년 상반기, 국정원 소속 미국 시애틀 도○○ 정보관도 ‘DJ 비자금’과 관련한 한 통의 전문을 국정원 본부에 보고한다. 도 정보관의 보고 내용은 미국 내 비자금 첩보로, 이는 그간 본지가 여러 차례 보도했던 것이기도 하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시 한 번 싣는다.
〈2010년 상반기경 국정원 1차장 산하 해외공작국의 시애틀 정보관 도○○의 보고다. 한국계 미국인인 테리 스즈키의 보고 내용이다. 미국 내 DJ 비자금은 서부에 6억5000만 달러, 동부에 7억 달러가 있다. 동부는 ○○○○ 회장, 서부는 한스 루이가 관리한다. 서부 비자금은 전성식, 한스 루이, 이○○, ○○기업 전 회장이 함께 인출해야 출금이 가능하다. 그중 1억 달러가 미국 페이퍼컴퍼니, 한국 지주회사, 김홍걸이 운영하는 중국 북경·심양·청도 소재 3개 회사, 중국 연변과기대를 순차로 거쳐 북한 평양과기대에 송금되려 한다.〉
위 1억 달러는 《월간조선》(2020년 4월호)이 공개한 바로 그 수표 사본을 말한다. 본지는 테리 스즈키, 전성식, 김진경, 그리고 김홍걸 등이 문제의 1억 달러 수표와 어떻게 얽혀 있는지 자세히 보도한 바 있다.
요약하면, 미국 내 DJ 비자금 첩보를 국정원(도○○ 정보관)에게 제공한 테리 스즈키(한국인)는 김홍걸의 1억 달러 투자와 관련된 중국 선양(瀋陽) 월드트레이드센터(WTC) 건립 사업에 참여했다가 중단돼 손해를 봤다는 사람이다. 문제의 1억 달러는 김홍걸로부터 나왔다는 게 스즈키의 주장인데, 이 돈은 미국 서부 오리건주에 있는 LHL 투자회사에 입금되려고 했다는 것이다. 스즈키는 1억 달러 수표뿐 아니라 DJ 비자금 관리 상태를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WTC 건립 사업은 김진경 평양과기대 총장이 중도에 포기하는 바람에 중단됐다. 사업자금의 출처가 DJ 비자금이기 때문에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그 바람에 스즈키는 200만 달러의 금전적인 손해를 봤다면서 그에 불만을 갖고 있다가 DJ 비자금 관련 정보를 국정원에 제보한 것이다. 스즈키의 법률대리인이 작성한 내용증명에 따르면, 국정원 전문에 등장하는 전성식은 DJ 일가와 친분이 깊고 WTC 사업에도 깊게 관여한 인물이다. 한스 루이(Hans Lui)는 전성식의 후배라고 한다.
이처럼 국정원은 선양 WTC 사업과 관련해 2009년 9월부터 2010년 5월까지 도○○ 정보관을 통해 그 내용의 대강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국정원은 스즈키로부터 1억 달러 수표 사본을 제공받았다.
원세훈 “국내 것만 가지고 불가능… 북한 유입 가능성”
/원세훈 전 국정원장.
2010년 5월경, 미중(美中) 양국으로부터 넘어온 첩보를 통해 비자금 존재를 확신한 원세훈 원장은 최종흡 차장을 다시 불렀다. 원세훈 원장은 “국내 것만 가지고 (그 정도 액수의 돈이 조성)될 리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차장에게 “북한 유입 가능성도 유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시기 최종흡 차장은 이미 해외공작국 등을 통해 스즈키가 제보한 비자금에 대해 상당한 정보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 두 달 전인 2010년 3월경, 원세훈 원장은 이현동 국세청 차장(후에 국세청장)과 비자금 추적에 관해 의견 교환을 한 것으로 수사자료에 기재돼 있다.
국세청은 2009년 11월, 역외탈세추적전담센터를 개소(開所)한 바 있다. 이 센터는 국제거래를 이용한 탈세를 차단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불법적인 해외재산 반출 행위가 사전 계획하에 이뤄져 통상적인 정보수집 차원에서는 예방에 한계가 있어 센터를 만든 것이다.
원세훈 원장은 DJ 비자금을 추적하는 데 센터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최종흡 차장에게 센터장을 겸하고 있던 이현동 차장을 만나보라고 했다.
‘서부 비자금’은 테리 스즈키, ‘동부 비자금’은 브라이언
원 원장의 지시를 받은 최종흡 차장은 이현동 국세청 차장과 박윤준 국세청 국제조세관리관(국장·후에 국세청 차장)을 만났다. 만난 시기는 원세훈 원장이 최종흡 차장에게 비자금 추적 지시를 내린 직후인 2010년 5월로 추정된다.
이 자리에서 박윤준 국장은 자신이 미국에서 근무할 때부터 알고 지냈던 IRS 소속 브라이언 조(한국계 미국인)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브라이언 조가 DJ 비자금 추적에 나설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최 차장에게 한 것이다.
국정원과 국세청의 요청을 받은 IRS의 브라이언 조는 비공식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DJ 동부 비자금 추적에 나선다. IRS가 본격적인 조사에 나선 시점은 대략 2010년 5월에서 8월 사이로 추정된다. 그동안 한미 양국은 비자금에 관한 상당한 조사를 했고, 그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다.
브라이언 조는 비자금 관련 사항을 파악해 국세청(박윤준 국장)에 보고했고, 박윤준 국장은 브라이언 조의 보고 내용을 국정원에 보냈다. 국정원에서는 김○○ 방첩국장이 브라이언 조가 건넨 DJ 비자금 관련 각종 영문 자료들을 분석한 것으로 수사자료 등에 기재돼 있다.
이와 함께 최종흡 차장은 도○○ 정보관이 보고한 전문에 적힌 13억5000만 달러 추적에도 나섰다. 최종흡 차장은 김○○ 국정원 방첩국장을 통해 도 정보관이 테리 스즈키로부터 비자금 관련 물증 파악에 나설 수 있도록 독려했다.
한마디로 테리 스즈키는 DJ 미국 내 비자금 중 서부 비자금을, 브라이언 조는 동부 비자금에 관한 정보를 추적해 국정원·국세청에 제공하는 해외정보원이었던 셈이다. 중국 내 비자금 추적은 동방가리화상무 간부들을 상대로 해킹 공작을 한 것으로 보이는 이○○ 처장이 계속 임무를 맡았다
국정원 정보망에 포착된 ‘동부 비자금
그러던 중 동부 비자금의 꼬리가 국정원 정보망에 잡혔다. 2010년 7월 18일 국정원 요원이 작성한 전문 내용이다.
〈■ 재미교포 기업인, 대북 관련자 미 수사기관에 고발 (자료 번역)
2010. 5. 25. 재미교포 사업가 문○○(59세)은 06. 4월 뉴욕 플러싱 소재 ‘열린공간’ 사장(A씨) 및 공모자 E, C, B씨를 대북 지원을 위한 돈세탁·탈세혐의로 FBI 등 美 수사기관에 고발
■ 주요 내용
— 美 부동산업자 A씨, 수산물유통업 B씨, ○○○그룹 회장 C씨는 DJ 정부 출범 이후 출처 불명의 자금을 통해 각각 1억$ 이상 부동산 축적(경매 입찰 기록·수표 사본·은행 대출 문서 등 불법 의혹 서류 일체 확보)
— 특히 A씨는 B, C씨와 공모, 05. 9월 문○○ 소유 ‘서울플라자(뉴욕)’를 불법 매입 후, ‘열린공간’을 설립, 친북활동 거점으로 활용
— 열린공간에서는 “북한은 내 나라, 우리가 건설하자” “라선시 개발비 20억 불 중 5억 불 모으기” 전단지 유포 등 노골적인 친북사업 전개〉
이 전문은 본지가 입수한 국정원 자료 중 FBI가 최초로 등장하는 문서다.
도○○ 전 정보관은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원장과 차장에게 (DJ 비자금 관련 건을) 보고한 후 FBI와 합동공작을 벌였다”며 “2010년 들어선 FBI 요원을 자주 만났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었다.
상기 전문의 내용을 살펴보자(등장인물은 익명 처리함). 전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A씨가 B씨와 C씨라는 인물과 공모해 뉴욕의 서울플라자라는 건물을 불법 매입해 그곳에서 친북사업을 전개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전문만 봤을 때 비자금과는 무관해 보인다.
여기에 등장하는 이들은 14년 전, 한 재미교포 언론인이 ‘DJ 미국 비자금을 공개한다’는 취지의 폭로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한 차례 오르내렸다.
2006년 6월 8일 정의사회실천시민연합(정실련)의 대표 임모(언론인)씨는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임 대표는 “2006년 2월 뉴욕시 플러싱에 거주하는 건축업자 양모(교포)씨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이상한 일을 경험했다’며 정실련에 제보를 해왔다”고 말했다.
한 在美교포의 폭로, “DJ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돈 가방 날랐다”
임 대표는 이날 양씨의 증언이 담긴 녹음테이프를 공개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제보자 양씨는 2001년 뉴욕에 거주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 측근들이 수차례 한인(韓人)타운 외곽 롱아일랜드 등지에서 모임을 갖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형사 생활을 했다는 양씨는, DJ 측근들의 지시를 받고 2001년부터 2004년 중반까지 수차례에 걸쳐 007가방으로 거액의 돈을 나르는 일을 했다고 한다. 뉴욕 맨해튼·뉴저지에서 측근들의 사무실이 있는 뉴욕 플러싱 지역으로 돈을 나르는 일이었다고 한다.
녹음된 내용에 따르면, 양씨가 측근 중 한 명에게 ‘무슨 가방이냐’고 물었더니 ‘돈을 벌게 해주는 돈 가방’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번은 양씨가 가방을 나르고 우연히 사무실에서 가방을 여는 광경을 보게 됐다고 한다. 봤더니 “가방 안에 100달러 뭉치가 가득 들어 있었다”고 양씨는 주장했다.
양씨는 또 “나는 2001년부터 2004년 중반까지 이 일을 했으며, 월(月) 봉급을 1만2000달러를 받았는데 가방을 한 번 나를 때마다 2000~3000달러를 더 받았다”고 했다. 그는 녹음테이프에서 이런 취지의 말도 했다.
“그 사람(DJ 측근 추정 인사들)들은 무서운 사람들이다. 내가 과거 한국에서 무엇을 하다 왔는지 신원조사를 다 했다. 경찰 생활을 한 것을 다 알고 있었다. 돈 가방 배달을 그만둔 이유는 3년6개월 동안 새벽이고 밤이고 불려 다니는 내 모습을 보고 아내가 너무 무서워했고 일이 잘못되면 DJ 측으로부터 위해(危害)를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되어 그만두게 되었다.”
임 대표는 문제의 돈은 DJ 비자금이고, 관련자들은 DJ 측근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DJ의 측근으로 거명된 인사는 A씨(재미 사업가), B씨(뉴욕 모 시민단체 부회장), C씨(모 기업 회장), D씨(전 ○○재단 상임이사), E씨(DJ 수행비서 출신 인사의 형) 등 총 5명이다. 이 중 B씨와 C씨는 현재도 국내와 미국에 상당한 규모의 회사와 빌딩 등을 소유하고 있다.
양씨의 주장이 처음 폭로됐을 당시, 근거가 없는 일방적인 주장으로 비쳐 이 기자회견은 국내 언론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기자도 임씨가 확보한 양씨의 폭로 내용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임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
“(A~E씨 중) D씨가 2006년 기자회견 직후 나를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D씨는 ‘DJ 비자금이 있다는 게 증명이 됐으니 이제는 좀 가만히 계셔달라’고 하더군요. 이 말은 비자금이 실재(實在)한다는 얘기잖아요. DJ의 알아주는 측근이 이런 얘기를 하니 되려 당황스럽더군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전직 국정원 간부도 연락해 ‘(비자금은) 국정원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니까요.”
이렇듯 미국 내 비자금 추적이 조금씩 가시화하던 2010년 9월 초, 최종흡 차장은 돌연 차장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가 비자금을 추적한 기간은 대략 4개월 남짓이다.
이때까지 최 차장이 했던 업무를 정리하면 ▲김○○ 국정원 방첩국장에게 지시해 도○○ 시애틀 정보관으로 하여금 테리 스즈키로부터 미국 내 DJ 비자금 의혹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물증을 확보하도록 독려한 것 ▲이○○ 국정원 처장에게 지시해 중국 내 고정 첩보망을 통해 DJ 비자금이 중국 옌볜에서 북한으로 넘어가는지를 확인하도록 한 것 ▲김○○ 방첩국장에게 박윤준 국장을 통해 미 IRS 요원(브라이언 조)의 활동 내용을 확인하도록 지시한 게 거의 다다
최초로 드러난 동부 비자금의 구체적인 규모
최종흡 차장은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미국 내 DJ 비자금 추적은 계속 이어졌다. 2010년 9월 말 국정원은 IRS 정보원이 조사한 비자금과 관련된 결정적인 내용을 보고받는다.
국정원 김○○ 방첩국장은 이 정보를 바탕으로 〈해외 비자금 수사 관련 국세청 담당국장 접촉 결과〉라는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 보고서에는 앞서 등장한 A씨를 비롯해 DJ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자금 조성과 관련된 국내 은행, 계좌번호까지 상세히 적혀 있다. 이 내역은 본지를 통해 최초로 공개되는 내용이다. 보고서의 내용 중 일부다.
〈■ 조사 경위
— 2010. 3월 미 IRS는 미국 내 불법 비자금 조성(관리인: A, B, C) 관련 고발장을 SK NEW YORK LLC社 문○○ 회장으로부터 접수, 2010. 5월 1차로 A에 대한 공식 수사 착수(10. 5월 고발 내용 기보고)
■ 주요 진행상황
[美 IRS]
— A의 비정상적 재산 형성(1억1300만 불) 과정을 확인하고 재산 대부분(8500만 불)이 C 및 캐나다의 미상처로 전달된 사실 확인
— 캐나다에 정보교환 요청하는 한편 C 수사를 통해 용도를 확인하고 A에 대한 플리바겐을 통해 자금 실소유주 자백 유도 추진〈표〉
[국세청 의견]
— 새로운 거래가 계속 발견되어 확인에 시간이 소진되므로 추가 재산 규모 파악은 확대하지 않을 방침
(중략)
[우리(국정원-기자 주) 측 의견]
— 이미 확보된 범죄 증거를 토대로 미 사법당국의 범죄 수사와 병행한 국내 동시 조사는 정치적 오해와는 무관
(중략)〉
IRS가 1억1300만 달러(113.43M)의 존재를 국정원과 국세청에 구체적으로 알려왔다는 건 동부 비자금 역시 서부 비자금과 마찬가지로 실체가 있다는 뜻이 된다.
이 1억1300만 달러는 A씨 한 사람만 봤을 때다. B씨와 C씨의 재산 규모도 예사롭지 않다. 2011년 7월 29일 국정원이 작성한 보고서는 A씨 재산을 총 1억3000만 달러라고 적었다. B씨는 1억600만 달러, C씨는 1억2000만 달러를 소유하고 있다고 했다. 이를 합하면 총 3억5600만 달러다. 이 세 사람이 미국 뉴욕을 근거지로 활동한 점으로 보아, 국정원이 파악한 동부 비자금은 3억 달러 이상인 셈이다.
‘빈털터리’ A씨는 어떻게 1억1300만 달러를 조성했나?
/ 이현동 전 국세청장.
박윤준씨는 2018~2019년 ‘DJ 뒷조사 사건’으로 이현동, 최종흡 등이 기소되자 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박윤준은 국정원의 DJ 비자금 추적을 도왔다는 혐의로 불구속 기소). 이 자리에서 박윤준씨는 동부 비자금 조성 방식에 대해 증언했다. 박윤준씨는 이 돈의 대출 방식을 두고 ‘이상한 거래’라고 주장했다. 그의 증언이다.
〈추가자료(상기 ‘해외 비자금 수사 관련 국세청 담당국장 접촉 결과’ 보고서) 이런 것을 보면 지금 봐도 사실은 이상한 거래입니다. 자산관리공사, 중국계 은행에 대출을 받고, 산업은행이 지급보증을 하고, 이런 형태의 여러 기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은 이상한 거래입니다…. 추적을 할 필요성은 있었습니다〉
박윤준씨는 문제의 A씨를 언급하며 이런 말도 했다.
〈…A가 조성한 돈이 1억 달러가 넘습니다. 그것이 대부분이 한국계 은행에서 부동산 담보대출을 받는데 담보 가치를 어떤 것은 거기 자료를 보니까 250%, 100원짜리를 담보로 하고 250원을 받고, 또 1000만 불씩 신용대출도 받고, 그다음에 중국계 은행이 대출을 하는데 산업은행이 지급보증을 하고, 내용만 보면 이상한데 그런 자료들이 한 1억 불 가까이, 결국은 이 사람(A씨-기자 주)이 다 떼어 먹고 한 1억1000만 불 이상을 만든 것입니다.〉
이 부분은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상기 은행 대출 건 중,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확인된 건 〈표〉 맨 위에 기재된 ‘기업은행의 476만 달러’ 대출 건이다.
은행 대출 받아 갚지 않고 디폴트 하는 수법
/최종흡 전 국정원 차장.
국내외 미공개 정보를 보도하는 ‘시크릿오브코리아’는 2010년 12월 13일, “기업은행이 건물 매입가의 88%를 대출해줬다가 디폴트(default·지급불능) 처리돼 법정소송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기사를 요약하면, 기업은행 뉴욕지점은 2007년 12월 20일 A씨와 그의 아내 소유 법인인 ‘Village Group 30 Inc.’(이하 빌리지그룹)에 456만 달러를 대출해줬다. 두 사람은 같은 날 미국 뉴저지주 펠리세이즈 소재의 한 부동산을 매입했는데, 등기소 확인 결과 매입가는 520만2000달러였다. 매체는 “기업은행이 부동산 담보 모기지 대출 때 통상 거래액의 70%를 대출해주는 것보다 훨씬 높았다”고 보도했다. 즉 기업은행은 부동산 매입가의 88%에 달하는 돈을 A씨 부부에게 대출해준 셈이다.
기업은행은 또 그로부터 약 9개월 뒤 다시 20만 달러를 빌리지그룹에 신용대출함으로써, 빌리지그룹 전체 대출액은 476만 달러가 됐다. 이는 건물 매입가의 91.5%에 육박한다.
빌리지그룹은 이 돈을 갚지 않고 2009년 3월 디폴트 선언을 해버렸다. 기업은행은 2010년 8월 빌리지그룹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은행이 빌리지그룹의 디폴트 선언 전까지 회수한 원금은 9만 달러에 불과했다고 매체는 전했다 (보도 시점 기준).
박윤준씨도 법정에서 A씨가 부동산 담보로 대출을 받으면서 담보가액을 초과하는 대출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국정원 보고서에 담긴 〈표〉에 기재된 ‘부동산 담보(180%)’ ‘부동산 담보 초과대출’이 이를 의미한다.
심지어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도 ‘무담보 대출’을 해줬다. 중국계 은행(CTB)에서는 ‘건설자금’ 명목으로 대출을 받는데, 국책은행(산업은행)이 지급보증을 해주기도 했다. 자본이 거의 없는 한 개인(A씨)에게 해준 대출금치곤 엄청난 규모다. 이렇게 조성한 돈 중 8500만 달러는 C씨와 캐나다로 넘어갔다는 게 국정원 보고서 〈표〉의 내용이다
박윤준 “누군가가 대신 갚아주었다는 의심”
/박윤준 전 국세청 차장.
박윤준씨는 ‘누군가가 대신 갚아주었다는 의심이 든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박씨의 말이다.
〈…어떻게 1000억원 이상씩 아무런 담보력도 없는 사람, 그러면 어떤 의심을 가질 수 있느냐면 누군가 대신 갚아주었다는 의심을, 왜냐하면 이것은 다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모(母) 은행이나 본점에서 이것을 대신 갚아줄 수 있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결국은 자금조성을 사실상 누가 했느냐는 측면의 조사이고, 하나는 1억 불 이상을 조성하였는데 수사 당시에 A가 ‘빈털터리입니다. 돈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당연한 의심은 ‘아, 이 사람(A씨-기자 주)은 보호관이었고 누가 쓰는 사람이 있겠거니’ 하는 의심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은행이 이렇게 멍청하게 앉아가지고 개인 사업자하고 마찬가지인 사람한테 더구나 한국계 은행들만 그렇게 1000억원 이상씩 손해를 본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누군가 대신 갚아주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하는 것이고, 대신 갚아준 사람이 누군가를 찾아 들어가면 그 사람의 돈이 이쪽으로 사실상 넘어간 것이고, 그런 식으로 여러 갈래로 조사를 하고….〉
박윤준씨의 증언으로 보아 실제 전주(錢主)는 은행을 움직일 힘이 있는 다른 누군가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A씨의 대출로 구멍이 난 막대한 은행 여신을 메워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굴까?
이런 수상한 자금 조성 방식에 의문을 품은 박윤준씨는 A씨가 조성한 비자금 1억1300만 달러 중 일부인 8500만 달러가 캐나다 등지로 넘어간 사실을 포착했다. 이는 비자금의 전주를 규명하는 데 있어 실마리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박씨는 재판 과정에서 “8500만 불이 캐나다로 간 것은 추적을 하려면 할 수 있다”고 했다. 캐나다의 자금 수신자를 확인하면 전주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현동 당시 국세청장은 “박윤준 국장으로부터 의견을 보고받고 동의를 표하며 최대한 빨리 미국과 의견 조율, 동시 조사를 추진시키는 방향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부분은 수사를 통해 밝혀질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다만, 박씨는 미국과 캐나다의 은행 거래 시스템상 (자금을 추적하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부분이었다고 지적했다.
박씨는 A씨를 언급하며 “자백하겠다고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구 돈이라고 자백하겠다고 그래서 그것도 약속도 잡고 하였는데 입장을 바꿔가지고 자백 안 하겠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앞서 국정원 보고서에는 ‘플리바겐을 통해 A의 자백을 유도하겠다’는 요지의 기술이 있다. 플리바겐(plea bargain)은 피의자가 유죄를 인정하거나 증언을 하는 대가로 형량을 감경(減輕)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클린턴 국무장관에 대한 정치후원금 제공 문제…
2011년 1월 9일 국정원 전문에는 A씨와 관련된 더욱 상세한 내용이 적혀 있다.
〈○○ 비자금 관련 미 국세청(IRS) · 연방검찰의 수사 현황
■2011. 1. 10 미 연방검찰은 자국 국세청 이첩 ○○ 비자금 건을 대형사건으로 판단, 전면 재수사 후 금년 6월경 우리 국세청과 SCIP(동시범죄조사약정·Simultaneous Criminal Investigation Program)에 의한 공조수사 전망.
■ 2010. 8. 11 역외탈세행위에 대한 한미 동시 세무조사 및 조사정보 공유 체결.
미 국세청(IRS)은 A(49세)가 2010. 9. 30. 조사 시 “전주(錢主)를 다 밝히겠다”고 플리바겐에 응할 태도를 보이다 10. 12. 검찰 출두 시 “다 뒤집어쓰겠다”라며 돌변하자, 미 국세청 지휘부에서는 불법 자금 조성 부분을 제외하고 사기 등 일부 범죄사항에 대해서만 검찰에 고발키로 결정.
*美 SK NEW YORK LLC社 문○○ 회장이 2010. 3월 불법 비자금 조성 혐의로 A, B, C 등 ○○ 비자금 관련자들을 미 국세청에 고발.
■ 검찰은 IRS의 이첩자료 검토 결과, 한국 전직 대통령의 문제, ○○ 측의 클린턴 미 국무장관에 대한 정치 후원금 제공 문제 이외에도 FBI의 ‘대북송금 사항’까지 확인되자 대형사건임을….〉
국정원 자료에 따르면, 미국 연방검찰은 A씨를 탈세 및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A씨의 기소로 국정원은 1억1300만 달러의 비자금의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했다. 국정원은 관련 보고서에서 “연방검찰의 A씨 기소는 소문만 무성했던 데이비슨(DJ)의 재미 비자금 의혹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썼다. 이 기대감은 수포로 돌아갔다. 상기 전문대로 A씨가 마음을 바꿨기 때문이다. A씨가 왜 돌변했는지는 현재로선 알 수가 없다.
더욱 흥미로운 대목은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국 국무장관에게 정치 후원금을 제공했다는 부분이다. 후원금 제공 주체는 익명으로 가려져 있지만, 문맥상 DJ 측으로 보인다. 즉 DJ 측이 비자금 중 일부를 클린턴 장관의 후원금 조로 제공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전문에 적힌 ‘FBI의 대북송금 사항’은 테리 스즈키가 제보한 서부 비자금 1억 달러를 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리하면 DJ 비자금 문제는 ▲북한뿐 아니라 미국 내 유력 정치인과도 연결돼 있고 ▲미국 FBI・IRS・연방검찰까지 인지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런 이유 때문에 미국 당국도 전문에 적힌 대로 이를 ‘대형사건’으로 본 듯하다
1억1300만 달러의 행방
미국 연방검찰이 DJ 비자금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이번 취재를 통해 새롭게 드러난 부분 중 하나다. 연방검찰은 FBI와는 다른 조직이다. FBI가 수사를 담당하는 조직이라면 연방검찰은 기소권을 갖고 있는 조직이다. 연방검찰은 우리와 달리 검찰총장이 따로 없고, 법무부 장관이 총장을 겸임하는 구조다.
동부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1억1300만 달러가 어디로 흘러갔는지도 미스터리다. IRS는 그 돈 중 일부인 8300만 달러가 C씨와 캐나다로 유입됐다고 봤다. 박윤준씨는 재판 과정에서 판사와 이런 문답을 나눴다.
〈문: 증인이 해외정보원으로부터 받은 정보 중에 국정원의 대북공작이나 대북사업과 연결될 만한 내용이나 단서가 있었는가요. 이것이 아까 A씨 부분은 있었다는 것이지요.
답:그렇습니다. 제 기억에 A가 조성한 자금 중에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일부가 B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World Culture Organization인가 하는 대북지원단체, 그것이 어떤 지원을 하는지는 저도 수사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그것은 모르는데 그 사람에 지원된 부분이 있었습니다.
문: ‘B가 대북사업을 하는 사람이다’ 이런 말을 해외정보원이 직접 언급해준 사실도 있는가요.
답: 그렇습니다. World Culture Organization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압니까.〉
B씨와 관계가 있어 보이는 ‘World Culture Organization’이 실재하는지, 과거에 이러한 명칭을 쓰던 대북지원단체가 있는지 여부를 찾아보았지만, 일치하는 단체는 찾을 수 없었다.
국정원이 파악한 동·서부 비자금의 실소유주
국정원 자료에서는 동·서부 비자금에 관한 분석이 담긴 전문도 발견된다. 2011년 7월8일자 전문이다
〈자금 형성 및 성격〉
■ 在美 전성식이 관리 중인 비자금(12억~13억 불)과 뉴욕 A 등이 관리 중인 자금(3억6000만 불)은 자금 형성 과정과 비자금 관리 인물이 전혀 다른 별개의 자금으로 별도의 추적이 필요.
■ 이희호 지휘 아래 전성식이 관리 중인 자금(12억~13억 불)은 데이비슨 부부가 비자금 관리자(전성식·Hans Lui)를 직접 면담한 정황 등으로 보아 데이비슨이 직접 동 자금을 조성(조풍언?) 관리하다 데이비슨이 사망하자 이희호가 관리 중인 것으로 판단.
■ 동 자금 집행 시 데이비슨 집사 이○○(전 ○○컴퓨터 명예회장) 등의 공동 승인이 필요한 점을 감안 시 데이비슨이 은퇴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계속 유지할 목적으로 조성한 공적 자금으로 보임.
■ 최근 이희호(07년부터 40회 방중)가 동 자금을 중국으로 도피시키려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는데 06. 4. 문○○의 고발로 김홍업 미 비자금(3억6000만 불)이 폭로되고 동 건을 계기로 미 당국이 데이비슨의 미 은닉 비자금을 조사할 움직임을 보이자 07년부터 중국으로의 자금 도피 작업에 착수.
■ 09. 6 북경가리화무역 설립을 시작으로 홍콩 KIQ 설립….〉
국정원은 동부 비자금과 서부 비자금의 관리인이 다르기 때문에 별도로 추적해야 한다고 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앞서 언급한 동부 비자금 3억6000만 달러의 실소유주를 DJ의 차남 김홍업씨로 본 대목이다. 이 부분에 관해선 국정원이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아, 차후 면밀한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국정원은 또 전성식이 관리하는 비자금 12억~13억 달러의 실소유주는 고 이희호씨라고 판단했다. 이희호씨의 빈번한 중국 방문이 비자금과 관련 있다는 기술도 있다. 국정원은 DJ 측이 2006년 동부 비자금의 폭로로 인해 수사가 진행될 움직임이 보이자 비자금을 중국으로 유출시켰다고 본 것이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단서가 바로 앞서 언급한 동방가리화상무라고 국정원은 밝히고 있다.
참고로 전문에 등장하는 조풍언(2014년 사망)은 DJ와 동향(同鄕)인 재미 사업가로, 생전 DJ 비자금 관리자라고 의심을 받았다. 1999년 DJ가 대통령으로 재임할 당시, DJ의 경기도 일산 사저(私邸)를 매입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DJ 부부와 친분 있는 이○○ 목사 부부의 놀라운 이야기
그로부터 20여 일 후인 7월 29일 국정원 요원은 동·서부 비자금에 있어 한발 더 나아간 전문을 작성한다.
〈‘데이비슨’ 비자금 추적 중간보고
■ 11국장이 미주 동북아재단 상임이사 이○○(목사)·이○○ 부부를 방한 초치. 2회(7. 22, 7. 25) 접촉하여 파악한 데이비슨 및 박○○ (김홍업) 재미(在美) 비자금 추적 중간보고임.
■ 11국장은 이○○ 부부와 2002년부터 각별한 친분관계를 유지
추적 결과
금번 이○○ 부부를 통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데이비슨은 IMF 당시 대한생명보험 등 부실기업 정리 및 해외 헐값 매각으로 리베이트를 받아 비자금 약 10억 불을 조성한 후 2001년부터 전성식 등을 영입·본격 관리해오다.
■ 06. 4 뉴욕 서울플라자 인수 관련 고발로 데이비슨 비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전성식이 추적 회피를 위해 07년부터 중국 내 WTC 건립 투자를 명분으로 중국 이전(移轉)을 획책해온 것으로 확인.
■ 전성식은 WTC 투자 협의 과정에서 이○○ 부부 및 김진경에게 2차례에 걸쳐 자신이 데이비슨 비자금 10억 불을 관리 중임을 직접 밝힌 바 있으며,
■ 이○○ 부부는 퇴임 이후 방미(訪美)한 데이비슨 부부와 포틀랜드에서 3박 4일간 함께 지냈을 당시 데이비슨 부부가 전성식을 높이 평가하는 것을 보고 전성식의 언급이 사실임을 재확인….〉
국정원 국장이 DJ 부부와 친분이 있는 미주 동북아재단 관계자인 이○○ 목사 부부를 통해 확인한 내용은 주시해볼 필요가 있다. DJ가 어떤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는지를 추측할 수 있는 중요한 증언이기 때문이다. 이○○ 목사가 속해 있는 동북아재단은 서부 비자금 사건에 등장했던 김진경 평양과기대 명예총장이 이사장으로 있던 그 단체를 말한다.
‘DJ가 대한생명보험 등 부실기업을 해외에 헐값 매각해 그 대가로 리베이트를 받아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이○○ 목사 부부의 이야기는 놀랍다. 대한생명보험은 DJ 정권 때 해체된 신동아그룹의 주력 계열사였다.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은 2009년 12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그룹 해체는 DJ 정권의 시나리오에 의해 실행됐다”고 폭로해 파문을 일으켰다. 대선(大選) 때 DJ를 돕지 않아 보복을 당해 그룹이 해체됐다는 취지였다. 물론 국정원의 첩보는 확인을 요하는 수준으로, 사실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최순영 전 회장은 인터뷰에서 동부 비자금 건에 등장했던 D씨를 언급하기도 했다. D씨가 어느 모임에서 ‘(대선 때) 정치자금도 안 내고 도와주지도 않았는데 손 좀 보자’는 식의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룹 해체 뒤 신동아그룹 계열사들은 헐값에 매각됐다.
국정원의 최종 판단 “증거자료로 볼 때 실존 가능성 多大”
전문을 보면, 이○○ 목사 부부는 DJ 부부와 제법 친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중 미국 포틀랜드에서 DJ 부부와 함께 지냈다는 기술이 주목된다. 실제로 DJ 부부는 대통령 퇴임 후 두 차례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를 방문한 적이 있다. 한 번은 DJ가 생존해 있던 2008년 4월이고, 또 한 번은 DJ 사후(死後)인 2010년 9월이었다. 이때는 이희호씨만 방문했다.
공교롭게도 포틀랜드는 서부 비자금 중 1억 달러가 예치될 계획이었던 페이퍼컴퍼니(국정원 추정) LHL Investment의 소재지이기도 하다. ‘DJ 비자금 관리자’로 지목된 전성식은 포틀랜드주립대 교수를 지냈다고 하며, 김진경이 이사장으로 있던 동북아재단과도 인연이 깊다.
국정원은 전성식이 “중국 내 WTC 건립 투자를 명분으로 중국 이전을 획책해온 것으로 확인”이라고 전문에 적었다.
《월간조선》(2020년 3월호)은 전성식이 테리 스즈키에게 “중국 선양(瀋陽)에 월드트레이드센터(WTC)를 건립하기 위한 자금 1억 달러를 ‘김홍걸로부터 조달받기로 했다’”며 “WTC 사업 참여를 권유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DJ 미국 내 비자금에 대해 국정원은 최종적으로 ‘실재할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 내렸다. 국정원 방첩국은 〈특명공작 사안별 진행현황 중 DJ비자금 내사 부분〉이란 보고서에서 “DJ 비자금 실체 평가 보고: 증거자료로 볼 때 실존 가능성 다대(多大) 평가”라고 적시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2012년 DJ 비자금에 대한 추적을 중단한다. 중단 이유에 대해 국정원 보고서는 “대선 임박 시점에서 DJ 비자금 문제 공론화 시 오해를 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2012년 8월 모든 협조망에 대해 잠복 조치하는 한편 대선 직전, 사업(DJ 비자금 추적 등) 관련 철을 폐기하고 핵심내용만 보관”이라고 적었다. 국정원·국세청이 주도했던 약 3년간의 미국 내 DJ 비자금 추적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2018년 검찰은 최종흡 전 국정원 3차장과 김승연 전 대북공작국장을 DJ를 ‘뒷조사했다’는 혐의(국고 손실 등)로 구속했다. 두 사람은 보석으로 풀려났다가 지난 2월, 2심에서 각각 징역 1년6개월과 2년의 실형(實刑)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기자는 이번 취재 과정에서 안면이 있는 법조 기자를 통해 최종흡 차장의 1·2심 판결문을 구할 수 있었다. 읽어보니 1·2심 판결문 내용 대부분이 국정원의 회계 처리 미비(未備)에 관한 내용이었다. 비자금의 실체에 관한 내용은 사실상 전무(全無)했다. 그나마 2심 판결문은 김승연 국장, 국정원 이○○ 처장의 진술을 인용했는데, 이마저도 모두 최 전 차장에게 불리한 내용들이었다. 적게는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1조원에 달하는 DJ 비자금 의혹을 대하는 재판부의 시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법부와 검찰이 간과한 사실
최종흡 전 차장은 줄곧 DJ 비자금이 ‘대북 관련성이 있었다’며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돈이 북한으로 유입되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상황에서 이를 조사한 건 직무 관련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은 국정원의 DJ 비자금 추적이 ‘정치적 목적을 두고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이 논리는 최 전 차장의 유죄(有罪) 근거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번에 입수한 자료에는 오히려 정치적 목적이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여럿이다.
전술(前述)한 두 건의 국정원 보고서가 이를 뒷받침한다. ‘대선 임박 시점에서 오해를 줄 수 있다’는 2012년 보고서의 한 대목과 IRS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국정원 문건에 적힌 ‘미 사법당국의 범죄 수사와 병행한 국내 동시 조사는 정치적 오해와는 무관(하다)’이란 기술이 그것이다.
국정원이 정보 제공의 대가(代價)로 테리 스즈키가 요구한 ‘10만 달러’를 거절한 것도 마찬가지다. 수사기록에 따르면, 도○○ 정보관은 스즈키가 돈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김○○ 국정원 차장에게 보고했다. 김 차장은 “리스크가 크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서 돈을 지불할 수 없다”며 스즈키의 요구를 거절했다. 만약 국정원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었다면, 스즈키를 돈으로 매수해 어떤 식으로든 DJ 비자금을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정황은 보이지 않는다.
분명한 사실은 한미(韓美) 양국의 정보기관(국정원), 수사기관(FBI) 그리고 비자금 추적 전문 기관(국세청·IRS)이 해외 첩보망을 통해 입수된 정보를 통해 비자금을 조직적·전방위적으로 추적했고, 그 과정에서 DJ 비자금으로 유력해 보이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자금이 발견됐다는 점이다.
국정원·국세청은 미국 당국과의 합동조사 결과, 비자금의 실존 가능성이 ‘다대하다’고 했다. 그 자금의 상당 부분은 대북(對北) 관련성이 의심되는 게 사실이다. 재판부는 이처럼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는 간과해버렸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07.28 김대중·김정일 회담 대가로 30억달러 지원 밀약 사실인가
박지원 국정원장 내정자가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당시 사전 준비회담 남측 대표로서 북측에 30억달러 경제 지원을 약속했다는 합의 문서를 야당이 공개했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다. 2000년 당시 박지원 문화부장관과 북측 아태위원회 부위원장 송호경이 각각 서명한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엔 '남측은 북측에 2000년 6월부터 3년 동안 25억달러 규모의 투자 및 경제협력차관을 제공하고, 정상회담을 계기로 5억달러를 제공한다'고 적혀 있다. 박 내정자는 이 합의서에 서명한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나를 모함하기 위해 조작된 문서"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 합의서는 이미 공개된 다른 합의서와 북한식 표현, 활자체, 그리고 박 내정자와 송 부위원장의 서명 필체가 일치하고 있다.
1차 정상회담 대가로 4억5000만달러를 북측에 송금한 사실로 박 내정자는 징역형을 살았다. 그것과 별도로 25억달러 투자 및 차관을 약속했다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된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 식량 차관, 무상 지원, 투자 등의 명목으로 북에 지원한 금액이 11억달러, 남북 교역 및 금강산 관광 규모는 9억달러 정도였다. 단기간에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20억달러가량이 북에 흘러간 것이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정상회담에 따른 25억달러 추가 지원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차별 속성 지원이 이뤄진 셈이다. 4억5000만달러 대북 송금을 밝힌 전 산업은행 총재는 회고록에서 '(정부가) 현대그룹 외에 S그룹에도 대북 사업 참여를 압박했다'고 썼다. 이 모든 정황은 이날 공개된 30억달러 대북 지원 합의 문서를 뒷받침하고 있 다.
박 내정자가 이런 밀약을 20년 동안 숨겨 왔다면 국정원장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한다. 비밀 합의서의 또 한쪽을 보관하고 있을 북은 그것을 빌미로 박 국정원장을 협박해서 우리 대북 안보의 최일선을 무력화시키려 할 것이다. 정부는 당장 20년 만에 불거진 남북 비밀 합의의 진위 여부를 철저히 가려야 한다. 마음만 먹으면 몇 시간도 걸리지 않을 일이다.
조선일보 사설
07.28 주호영 "박지원 30억달러 이면합의서, 전직 고위공무원이 제보"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28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에 대해 “여러 가지 점에서 부적격”이라고 밝혔다.
野 “박지원 북한과 내통 증거”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의 2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미래통합당은 2000년 4월 8일자로 작성된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가운데)를 공개했다. 북한에 25억 달러의 투자 및 차관(위쪽 빨간 네모)과 5억 달러(아래쪽 빨간 네모)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뉴스1]
주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YTN 라디오에 출연해 “국정원장은 안보기관의 수장이지, 북한과 대화하고 협상하는 기관이 아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그는 전날 박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장에서 자신이 제기한 대북송금 ‘이면 합의서’ 의혹을 다시 꺼냈다. 주 원내대표는 “박 후보자는 서명한 사실을 부인했지만, 특검과 대법원 판결로 확인됐던 대북송금 문제이다. 판결문에 의하더라도, 이것은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북한 측과 내통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주 원내대표는 “정보기관끼리는 정보 교류를 하는데, 수장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고급정보를 주지 않는다”며 “그런 점에서 박 후보자에 대해 미국 등으로부터 (공유된) 정보의 보안이 지켜질 것이냐, 이런 데 대한 확신을 못 주고 있다”고 했다.
주 원내대표는 문건의 출처에 대해선 “믿을 수밖에 없는 전직 고위공무원이 사무실에 찾아와 줬다”며 “청문회에서 이것을 문제 삼아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 후보자는 처음엔 기억이 없다고 하다가, 사인하지 않았다고 하다가, 오후엔 위조한 것이라고 했다”며 “후보자가 원본을 제시할 수 있느냐고 하는데 그 원본은 평양에 한부, 우리나라에 한부가 극비로 보관돼 있지 않겠느냐. 이건 사본이다”라고 했다.
대북송금 ‘이면합의서’ 논란은 박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주 원내대표가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란 제목의 문서를 꺼내며 불이 붙었다. 이 문건엔 남과 북의 합의 사항으로 ‘남측은 민족적 협력과 상부상조의 정신에 입각해 북측에 2000년 6월부터 3년 동안 25억딸라 규모의 투자 및 경제협력차관을 사회간접부문에 제공한다’ ‘남측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해 5억딸라분을 제공한다’고 적혀 있다. 문서 아래엔 2000년 4월 8일이란 날짜와 함께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던 박 후보자와 북한의 송호경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의 서명이 담겼다.
박 후보자는 공개로 진행된 청문회에선 “사인한 적 없다” “저와 김대중 정부를 모함하기 위해 위조한 서류”라고 주장했다. “문서 복사본을 주면 수사 의뢰하겠다”는 말도 했다. 통합당 소속의 한 청문위원은 “박 후보자는 비공개로 전환된 뒤엔 ‘남북 관계가 진전되면 민간 기업이 아시아개발은행 등을 통해 20~30억불 투자가 가능할 것이란 원론적 이야기를 했다. 합의문은 절대 작성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해명했다”고 전했다.
당시 대북 송금 특검 수사 결과는 남북 정상회담 성사와 현대의 대북사업 대가로 현대그룹이 5억 달러(4억5000만 달러+현물 5000만 달러)를 북한에 보냈으며 정부는 현대그룹의 대출과 송금을 도왔다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 박 후보자는 당시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주 원내대표가 공개한 문건이 진짜라면 대북 송금의 주체가 정부가 되고 액수도 30억 달러로 늘어나는 셈이다.
野 “박지원 부적격”…與 “단독 채택”
▲28일 오전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가 서울 여의도 자택을 나서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야 의원들은 이날 오전 10시 국회 정보위를 열어 박 후보자의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을 논의를 논의 중이다. 앞서 통합당 소속 정보위원들은 이날 오전 자체 회의를 열어 박 후보자에 대한 ‘부적격’ 뜻을 모았다. 하태경 정보위 간사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박 후보자의 학력 위조 의혹이고, 또 하나는 30억불 관련 문제”라며 “교육부의 감사 촉구, 또 문재인 대통령이 이면합의서의 진위를 확인할 때까지 박 후보자의 국정원장 임명을 유보해야 한다”고 했다.
하 의원은 또 “(공개된 문건이)진짜 문서라면 북한도 갖고 있을 것”이라며 “박 후보자가 임명되면 북한이 ‘공개할 테니 우리 말 들어달라’는 협박 카드가 될 수 있고, 박 후보자는 약점 잡혀 (북한에) 휘둘릴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이면합의서의 진위를 알고 있는가. 바로 옆의 서훈 국가안보실장에 물어보면 (진위를)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 안보실장은 당시 국정원 실무책임자였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병기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에서 “통합당이 응하지 않는다면 (청문 보고서를) 단독으로 채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07월 28일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면 합의 與否 투명하게 밝혀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를 계기로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20년 전 남북정상회담의 ‘이면 합의’ 문제가 공론의 무대로 소환됐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27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열린 박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비밀리에 작성됐다는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 문건을 공개했다.
우선, 진위 여부(與否)부터 가려야 한다. 박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모함하기 위한 위조”라면서 “서명한 사실이 있다면 국정원장 후보직 사퇴를 포함해 제 인생의 모든 걸 책임지겠다”고 했다. 문건이 사실이라면, 사상 첫 정상회담을 ‘매수’했다는 의미여서, 매우 심각한 국기 문란 범죄 행위다. 박 후보자 말대로 누군가 위조했다면 그 역시 심각한 범죄행위다. 박 후보자의 국정원장 직책까지 걸린 일이 됐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국민 앞에 신속히 투명하게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한다. 시효 문제 등으로 수사가 어렵다면 국정조사나 특별위원회 구성 등도 가능할 것이다.
이 문제와 별개로, 대가로 의심될 만한 논의들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심각한 일이다. 박 후보자는 문건은 없었지만 유사한 내용의 논의는 있었다는 식으로 비공개 청문회에서 답변했다고 한다. 당시 회담을 전후해 대가성 시비가 많았다. 자세한 전후 맥락이 낱낱이 공개됨으로써 통상적으로 오갈 수 있는 수준의 협상이었는지, 아니면 돈 주고 정상회담을 구걸한 것인지, 국민이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번 일이 남북 대화·협상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계기가 돼야 한다. 남북 대화는 그동안 ‘통치권’ 등의 핑계로 집권세력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지만 더 이상 재발해선 안 된다. 이제는 남북 관계도 다른 국제관계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스탠더드와 국민 동의를 확보한 뒤에 추진되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월간조선 08월 호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와 DJ 비자금 의혹과의 연관성
국정원 ‘DJ 비자금 의혹’ 관련 보고서에 등장한 박지원
⊙ 국정원 보고서 “(DJ) 차남 김홍업 및 박지원 비자금 관리책 A씨 기소”
⊙ 국정원, DJ 비자금 관련해 작성한 要圖에 ‘박지원’ 기재
⊙ DJ 부부의 訪中이 비자금과 관련 있다고 본 국정원… 박지원도 同行
⊙ “아는 사실이 없고 관련이 없기에 답변을 거부합니다”(박지원 후보자)
/박지원 신임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사진=조선DB
문재인 정부 2대 국정원장으로 발탁된 박지원 후보자가 김대중(DJ) 전 대통령 미국 내 비자금 의혹 관련 자료에 등장한 것으로 나타나, 비자금 의혹과 박지원 후보자와의 연관성이 주목된다.
박지원 후보자가 등장하는 자료는 《월간조선》이 지난 4월 입수한 국정원이 작성한 DJ 비자금 의혹 관련 보고서와 2018년 입수한 이현동 전 국세청장 공판조서다.
국정원 보고서와 공판조서 등에 ‘박지원’이란 이름 석 자가 기재됐다고 해서, 박 후보자와 DJ 비자금 의혹이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단정할 순 없다. 검찰 수사 등을 통해 정확히 규명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朴과 관련 있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없다고 볼 수도 없어
그렇다고 신빙성이 없다고 볼 수도 없다. 국정원만 DJ 미국 내 비자금 추적에 나선 게 아니기 때문이다. 2009년에서 2012년까지 약 3년간 이뤄진 비자금 추적에는 우리나라 국세청은 물론 미국 FBI(연방수사국)와 IRS(국세청)도 참여했다. 한미(韓美) 양국이 매우 광범위하게 추적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내 DJ 비자금 추적은 크게 ‘동부 비자금’과 ‘서부 비자금’ 두 갈래로 나뉜다. 국정원은, 미국 현지 정보원이 입수한 정보를 통해 서부 비자금은 DJ의 삼남(三男) ‘김홍걸’씨와, 동부 비자금은 차남 ‘김홍업’씨와 관련 있다고 파악했다.
국정원이 박지원 후보자와 관련이 있다고 본 부분은 ‘동부 비자금’이다. 국정원은 동·서부에 예치된 DJ 비자금의 총액을 13억5000만 달러 상당이라고 추정했다
2012년 9월 11일 국정원이 작성한 보고서를 보자
〈美 연방검찰은 (2012년) 1월 17일 데이비슨의 차남 김홍업 및 박지원 비자금 관리책 A을(를) 탈세 및 사기 혐의로 기소하였으며, 검찰은 플리바겐을 통해 A이(가) 모든 혐의를 인정하였으며 검찰은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 벌금 250만 불 구형 방침.〉
여기서 ‘데이비슨’은 국정원이 DJ 비자금을 조사하면서 붙인 공작명(데이비슨 공작)이다. 국정원은 미국의 부동산업자 A씨를 DJ 비자금 관리책으로 본 것이다. 참고로 미국 연방검찰은 A씨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약 1억1300만 달러의 재산을 축적했다고 판단해 A씨를 기소했다.(A씨에 관한 설명은 후술)
국정원은 ‘차남 김홍업 및 박지원 비자금 관리책 A’라고 보고서에 기재했다. 국정원이 김홍업씨와 박 후보자에 대해 비자금을 공유(共有)하는 사이로 봤는지, 아니면 별도로 봤는지 문맥상 그 의미가 뚜렷하진 않다.
이현동 공판조서에도 등장하는 박지원
이명박 정부 시절 국세청장을 지낸 이현동 전 국세청장 공판조서에도 박지원 후보자의 이름이 두 번 등장한다. 이현동 전 청장은 국정원의 ‘DJ 비자금 추적에 조력(助力)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지난 1월,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2018년 5월 18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열린 이현동 전 청장 공판에는 김승연 전 국정원 대북공작국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날 김승연 전 국장은 ‘데이비슨 공작’과 관련해 DJ 비자금 의혹과 관련 있는 인물들의 ‘요도(要圖)를 만들었다’고 진술했다. 다음은 공판조서 중 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변호인 반대신문)
문: (국정원 처장) 이○○은 인터넷 검색 결과, A씨가 2004년경 미국 플라자 건물을 매수했는데 매도인이 건물 관련 소송에서 패소하자 매도인이 매수인(A씨)을 고발했다. 건물 인수 자금이 돈세탁된 비자금이라며 이 고발사건이 세무 수사관인 해외정보원이 제공한 내용이라고 말했는데.
답: 해외정보원 이름이 기억난다. 미국 국세청(IRS) 첩망(諜網) 내용인 거 같다. 제가 기억하는 얼개와 맞는 거 같은데 김홍업이 아니라 이○○ 진술에 의하면 박지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문: 증인은 데이비슨 요도(要圖)에 등장인물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그 요도에 박지원 등의 인물이 나왔다고 하면서 관련 인물을 이니셜로 표시했다고 진술했다. 맞나.
답: 그렇다.
문: 요도에는 데이비슨 등 사업명칭을 직접 표시하지 않고 김홍걸은 ‘HK’ 등으로 표시했다고 말했는데 맞나.
답: 맞다.〉
‘데이비슨 공작’ 관련 요도에 김홍걸(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씨와 함께 박지원 후보자도 등장했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DJ 비자금 의혹이 김홍업, 김홍걸씨뿐 아니라 박 후보자와도 관련이 있다고 본 셈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비자금 추적의 실무를 맡았던 이○○ 국정원 처장이 진술했다는 부분이다. 이○○ 처장이 ‘뉴욕 플라자 관련 비자금과 소송이 김홍업씨가 아닌 박지원과 관련이 있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국정원 처장이 뉴욕 플라자 소송이 박지원 후보자와 관련 있다고 판단한 이유는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 추정컨대, 비자금 추적 과정에서 박 후보자와 관련된 정보를 확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지원 등장하는 국정원 要圖의 신빙성
/DJ 미국 내 비자금 의혹’을 조사했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진=조선DB
이날 공판에서 김승연 전 국장은 문제의 요도를 ‘2011년 여름경 만들었다’며 요도를 만든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2011년 7월, 김○○ 방첩국장이 대전지부장으로 내려가서 원장(원세훈)이 (‘데이비슨 사업’을) 인수하라고 지시했다. 인수도 제가 한 게 아니라 우리 처장(이○○)이 가서 했다. 그래서 이○○ 처장으로부터 그 보고를 받고, 요도를 만들어보라고 해 요도를 원장에게 보고했다. 그때 원장이 ‘사업 종합 보고하라’고 해서 원장실에서 대면 보고를 했다. 그때 원장이 이 내용을 ‘국세청장님에게 보고하라’며 제가 있는 자리에서 국세청장에게 전화하더라.〉
김승연 전 국장은 그로부터 두 달 뒤 ‘미국 LA 첩망에서 보고해온 게 있었다’며 ‘(요도의 도표를) 업그레이드시켰다’고 진술했다.
〈그래서 2011년 9월경에 (요도를) 다시 보고를 하게 된다. 처음 보고한 건 사업을 인수해서 하게 된 ‘종합보고’였고 두 번째는 ‘대책보고’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 사업을 공작국에서 운용하겠습니다’라는 취지의 대책보고를 9월에 원장에게 드린 거다.〉
국정원은 원내(院內)의 두 부서를 통해 ‘투 트랙’으로 미국 내 비자금 의혹을 조사했다. 김승연 전 국장의 설명이다.
〈처음 저희가 이 사업을 인수받았을 때, (DJ 비자금 추적을) 해외정보국에서 추진하는 게 있었고, 방첩국에서 추진하는 게 있었다. 그 두 가지를 저희가 다 넘겨받은 건데 해외정보국과 방첩국 조사 내용 중, 종합된 게 없었다. 국세청은 그 종합 내용을 알지 못해 (원세훈 국정원장이) 7월에는 ‘종합 내용을 알려주라’고 저한테 이야기하신 거고, 9월에는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거니까 이 부분에 대해 (국세청과) 협력하고 협조를 받으라’고 이야기하셨어요.〉
국정원이 해외정보국과 방첩국, 두 부서를 통해 비자금을 추적했다는 건 그만큼 치밀하게 조사가 이뤄졌다는 의미다. 두 부서가 얻은 정보를 종합해 요도를 작성했고, 그 요도에 박 후보자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DJ 부부 訪中 수행한 박지원… 비자금과 관련?
전직 국정원 관계자(전직 차장)도 DJ 비자금 의혹에 박지원 후보자가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인사는 《월간조선》과의 만남에서 “DJ와 이희호씨가 방중(訪中)했을 때 박지원 후보자가 수행했던 적이 있다”며 “당시 원세훈 국정원장은 이들 세 사람의 방중이 중국 내 비자금과 관계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DJ 비자금 추적의 출발은 2009년 5월경, 국정원이 중국에서 입수한 첩보였다. 첩보의 요지는 “중국 베이징에 ‘동방가리화상무(東方可利華商貿)’란 회사가 있다. 이 회사가 인민폐 40억 위안(5억 불, 한화 6000억 상당)의 비자금을 확보했는데 이 돈이 DJ 일가와 관련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본지 확인 결과, 이 회사의 ‘감사’로 등재된 이는 김홍걸씨였다.
국정원은 미중(美中) 양국으로부터 들어온 첩보를 바탕으로, DJ 비자금 중 일부가 북한, 특히 평양과기대로 유입되려는 정황이 있다고 판단했다. DJ 비자금이 ‘대북(對北) 관련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국정원 보고서에 따르면, DJ 부부가 동방가리화상무 개업식에 참석했다고 한다. 동방가리화상무는 2009년 2월 설립돼 같은 해 6월 10일 등록됐다고 이 회사 홈페이지에 기재돼 있다. 보고서의 내용대로라면, 이 사이 DJ 부부가 중국을 방문했다는 얘기가 된다.
실제로 DJ 부부는 동방가리화상무 개업에 즈음해 중국을 방문한 사실이 있다. 2009년 5월 4일, DJ 부부는 4박 5일 일정으로 중국 베이징을 찾은 것이다. DJ는 5월 6일(현지 기준) 베이징대학에서 특강을 하기도 했다. 시기와 첩보의 정황상 DJ 부부는 이때 동방가리화상무 개업식에 참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DJ 부부를 수행한 이 중 한 명이 바로 박지원 후보자였다. DJ 부부와 박 후보자는 시진핑(習近平) 당시 중국 국가부주석과 만나 함께 사진 촬영을 하기도 했다.
이듬해엔 이희호씨가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자격으로, 3월 6일부터 5박 6일 일정으로 중국 선전(深川)과 홍콩을 방문했다. 이 시기는 DJ 사후(死後)로, 이희호씨만 방중길에 올랐는데 이때도 박 후보자가 이씨를 수행했다.
국정원 역시 이희호씨의 잦은 방중이 비자금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서에 기재했다. 2011년 7월 18일 국정원이 작성한 보고서 중 일부다.
〈최근 이희호(07년부터 40회 방중)가 동 자금(비자금-기자 주)을 중국으로 도피시키려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는데 06. 4. 문○○의 고발로 김홍업 미 비자금(3억6000만 불)이 폭로되고 동 건을 계기로 미 당국이 데이비슨의 미 은닉 비자금을 조사할 움직임을 보이자 07년부터 중국으로의 자금 도피 작업에 착수.
박지원의 ‘비자금 관리책’으로 지목된 A씨의 실체
/김승연 전 국정원 대북공작국장(오른쪽). 김승연 전 국장은 ‘DJ 비자금’ 관련해 국정원이 작성한 要圖에 박지원 후보자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 보고서에서 눈길을 끄는 건, 앞서 언급한 동부 비자금 3억6000만 달러의 실소유주를 DJ의 차남 김홍업씨로 본 대목이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이○○ 국정원 처장은 DJ의 미국 내 비자금 중 ‘동부 비자금’을 박지원 후보자와 관련이 있다고 봤다.
국정원이 본 동부 비자금의 ‘관리책’은 전술(前述)한 A씨였다. 위 ‘이희호씨’ 관련 국정원 보고서에 등장하는 문○○씨는 뉴욕 플라자 건물 거래 건으로 A씨를 고발한 인물이다. 이제 A씨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국정원 보고서에 따르면, A씨는 2006년 4월 뉴욕 플러싱 소재 ‘열린공간’이란 곳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돈세탁과 탈세 등의 혐의를 받았다. 이는 재미(在美) 사업가 문○○씨가 FBI에 고발함으로써 세상에 드러났다. 2010년 7월 18일 국정원이 작성한 보고서의 내용이다.
〈■ 재미교포 기업인, 대북 관련자 미 수사기관에 고발(자료 번역)
2010. 5. 25. 재미교포 사업가 문○○(59세)은 06. 4월 뉴욕 플러싱 소재 ‘열린공간’ 사장(A씨) 및 공모자 B, C씨를 대북 지원을 위한 돈세탁·탈세혐의로 FBI 등 美 수사기관에 고발
■ 주요 내용
‐ 美 부동산업자 A씨, 수산물유통업 B씨, ○○○그룹 회장 C씨는 DJ 정부 출범 이후 출처 불명의 자금을 통해 각각 1억$ 이상 부동산 축적(경매 입찰 기록, 수표 사본, 은행 대출 문서 등 불법 의혹 서류 일체 확보)
‐ 특히 A씨는 B, C씨와 공모, 05. 9월 문○○ 소유 ‘서울플라자(뉴욕)’를 불법 매입 후, ‘열린공간’을 설립, 친북활동 거점으로 활용
‐ 열린공간에서는 “북한은 내 나라, 우리가 건설하자” “라선시 개발비 20억 불 중 5억 불 모으기” 전단지 유포 등 노골적인 친북사업 전개〉
요약하면 A씨 일당이 문씨 소유의 뉴욕 플라자를 불법 매입해 이를 ‘열린공간’이란 곳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문씨는 이에 불만을 품고 A씨가 돈세탁과 탈세를 했다는 혐의로 FBI 등에 고발했다. 뉴욕 플라자는 앞서 국정원 이 모 처장이 박지원과 관련이 있다고 한 건물이다.
DJ 비자금을 추적했던 박윤준 전 국세청 차장(국세청 국제조세관리관)은 수사기관에서 A씨에 대해 “(확인해보니) 빈털터리다. 돈이 아무것도 없다”며 “A씨가 거액의 부동산을 사들이는 데 수상한 부분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A씨가 매입한 건 뉴욕 플라자뿐이 아니었다. A씨는 2005년 9월 이후 뉴욕에 있는 대형 건물 3개를 매입했다. 매입대금은 480억원(계약분 포함)에 달했다. 또 뉴욕 인근의 대형 호화주택들이 들어서 있는 롱아일랜드의 주택을 280만 달러(약 28억원)에 매입하기도 했다. A씨는 이런 식으로 1억 1300만 달러의 거액을 조성했다는 게 국정원과 국세청의 판단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열린공간’에서 벌였다고 하는 이른바 ‘친북사업’이다. 확인 결과,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열린공간에서는 특별한 이념적 메시지를 담은 행사보다는 한인(韓人)들을 위한 전시회나 강연회가 주로 열렸다.
A씨 부부는 은행으로부터 ‘이상한 방식’의 대출을 받아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기업은행 뉴욕지점은 2007년 12월 20일 A씨와 그의 아내 소유 법인인 ‘Village Group 30 Inc.’(이하 빌리지그룹)에 456만 달러를 대출해줬다.
두 사람은 같은 날 미국 뉴저지주 펠리세이즈 소재의 한 부동산을 매입했는데, 등기소 확인 결과 매입가는 520만2000달러였다. 이를 두고 한 매체는 “기업은행이 부동산 담보 모기지 대출 때 통상 거래액의 70%를 대출해주는 것보다 훨씬 높았다”고 보도했다. 즉 기업은행은 부동산 매입가의 88%에 달하는 돈을 A씨 부부에게 대출해준 셈이다.
기업은행은 또 그로부터 약 9개월 뒤 다시 20만 달러를 빌리지그룹에 신용대출해줌으로써, 빌리지그룹 전체 대출액은 476만 달러가 됐다. 이는 건물 매입가의 91.5%에 육박한다.
빌리지그룹은 이 돈을 갚지 않고 2009년 3월 디폴트 선언을 해버렸다. 기업은행은 2010년 8월 빌리지그룹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은행이 빌리지그룹의 디폴트 선언 전까지 회수한 원금은 9만 달러에 불과했다고 매체는 전했다.(2010년 당시 기준
국내외 은행, ‘빈털터리’였던 A씨에게 거액 대
박윤준 전 차장도 법정에서 A씨가 부동산 담보로 대출을 받으면서 담보가액을 초과하는 대출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박 전 차장은 이렇게 디폴트된 돈을 ‘누군가가 대신 갚아주었다는 의심이 든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박윤준 전 차장이 법정에서 한 증언 중 일부다.
〈…어떻게 1000억원 이상씩 아무런 담보력도 없는 사람, 그러면 어떤 의심을 가질 수 있느냐면 누군가 대신 갚아주었다는 의심을, 왜냐하면 이것은 다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모(母) 은행이나 본점에서 이것을 대신 갚아줄 수 있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정원은 IRS가 보내온 자료에 의거해 A씨가 받은 대출 건을 보고서에 〈표〉로 정리했다. 이 〈표〉(오른쪽)를 보면 기업은행, 우리은행, 조흥은행, 제일은행 등이 A씨와 관련 있는 미국 내 법인에 적게는 250만 달러에서 많게는 2100만 달러까지 대출해줬음을 알 수 있다.
이 대출들은 거의 ‘부동산 담보(180%)’ ‘무담보 대출’ ‘부동산 담보 초과대출’이었다는 게 IRS와 국정원의 판단이었다. 심지어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도 ‘무담보 대출’을 해줬다. 중국계 은행(CTB)에서는 ‘건설자금’ 명목으로 대출을 받는데, 국책은행(산업은행)이 지급보증을 해주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A씨가 대출받은 돈의 액수는 총 1억1300만 달러에 달한다. ‘빈털터리’로 불린 A씨에게 해준 대출치고는 엄청난 액수다.
국정원 보고서에 따르면, ‘플리바겐을 통해 A의 자백을 유도하겠다’는 요지의 기술이 있다. 플리바겐(plea bargain)은 피의자가 유죄를 인정하거나 증언을 하는 대가(代價)로 형량을 감경(減輕)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IRS가 국정원에 보고한 보고서를 보면, A씨는 2010년 9월 30일 조사 시 “전주(錢主)를 다 밝히겠다”고 플리바겐에 응할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A씨는 그러나 같은 해 10월 12일, 미국 연방검찰 출두해 “다 뒤집어쓰겠다”며 돌변했다. A씨가 돌변하자 미국 국세청은 불법자금 조성 부분을 제외하고 사기 등 일부 범죄사항에 대해서만 검찰에 고발키로 결정했다.
박지원 후보자 “아는 사실 없고 관련이 없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보자. 핵심은 국정원이 DJ 비자금 의혹 관련 보고서에 A씨를 언급하며 박지원 후보자를 명기(明記)했다는 점이다. 국정원은 해외정보국과 방첩국에서 입수한 DJ 비자금 관련 정보를 종합해 요도를 작성했고, 거기에도 박지원 후보자를 기재했다. 국정원은 박 후보자(또는 김홍업)의 ‘비자금 관리책’으로 A씨를 지목했는데, A씨는 수상한 대출을 통해 거액의 돈을 조성한 의혹을 받았다. 그로 인해 A씨는 미국 연방검찰에 기소까지 됐다.
구체적인 확인이 요구되는 부분이 더러 있지만, 국정원이 DJ 비자금 의혹과 박 후보자가 서로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박지원 후보자의 입장을 들어볼 차례다. 기자는 지난 7월 11일 박지원 후보자에게 문자메시지와 카카오톡 메시지를 발송해 ▲박 후보자와 A씨와의 관계 ▲국정원이 A씨를 박 후보자의 ‘비자금 관리책’으로 본 이유 ▲국정원이 DJ 부부의 방중이 비자금과 관련이 있다고 본 데 대한 입장 등을 구체적으로 물었다.
이에 대해 박지원 후보자는 “저는 아는 사실이 없고 관련이 없기에 답변을 거부합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글 :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chosh760@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