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2021-1/
01.13 공무원 1만명 3곳 몰아넣고...경기도, 강제 전수검사 논란
1만2000명 검사소 달랑 3곳
“줄서다가 코로나 걸릴라”
▲13일 경기도 수원 경기도인재개발원에 마련된 코로나 검사소에서 경기도 공무원·직원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독자 제공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최근 경기도와 산하 공공기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선제적 코로나 전수 검사를 지시했다. 공무원들의 도민 접촉이 잦은 만큼, 무증상 감염자로 인한 코로나 확산을 사전에 막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1만2000명 규모 공무원·직원들을 검사소 3곳에 몰아넣는가 하면, 도내 보건소·선별진료소에서의 개별 검사를 금지하는 등 조치에 대해 공무원들은 “기본권 제약이 지나친 것 아니냐”는 비판을 하고 있다
▲13일 경기도 수원 경기도인재개발원에서 경기도 공무원·직원들이 코로나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독자 제공
경기도 공무원 코로나 전수조사는 13일 오전부터 시작됐다. 검사소가 운영된 수원 본청과 인재개발원엔 직원 수백명이 빽빽하게 몰려들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한 직원은 “날씨도 너무 추운데 찬바람을 맞으며 2시간 동안 기다렸다”며 “줄을 서다가 코로나에 걸릴 것 같다”고 했다. 일부 공무원들은 “도내 보건소나 선별 진료소에서 개별적으로 검사를 받은 뒤 결과를 제출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기도 측은 “무조건 지정 검사소에서만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휴가나 재택육아 중인 직원들에 대해서도 “검사 기간 내 지정 검사소에서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고 복수의 직원들은 전했다.
경기도 측은 13~19일 닷새 간 경기도 본청(수원), 북부청(의정부), 인재개발원(수원) 3곳으로 각 기관별로 검사를 최대한 분산했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직원들은 “개인의 자율권을 지나치게 침해하고 있다”고 했다. ‘경기도 전직원 코로나19 선제검사 추진계획’ 문건에 따르면, ’주차 상황을 감안해 가급적 버스 등 공동 차량을 이용하라’고 돼 있다. ’검진을 위해 출장이 필요할 경우, 출장 처리하되 여비 미지급’이라는 대목도 있었다.
경기도 김홍국 대변인은 조선일보 통화에서 “도내 보건소나 선별진료소는 도민들의 검사 수요가 늘어나고 있어서 부득이하게 공무원·직원들을 위한 전용 검사소를 설치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현재 공공기관에서 코로나 감염이 확산하고 있는 만큼, 이를 국가적 긴급 상황으로 인식하고 공직자로서 최대한 계획에 협조해달라는 취지”라고 했다. 휴가자 등에 대해서도 “부득이한 경우엔 부서장 승인 하에 편의를 봐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원선우 기자
01-18 이재용, 파기환송심 징역 2년 6월 실형…법정구속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1.1.18/뉴스1 © News1
동이닷컴
02.02 백신 예비 성적표 나왔다... 화이자 효능 1위 , 노바백스는 가장 안전
우리가 맞는 백신 5종 성적표 나와
우리 국민이 올 한 해 접종받게 될 코로나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화이자·모더나·얀센·노바백스 등 5종류다. 지난 29일 얀센이 마지막으로 3상 잠정 결과를 발표하면서 백신 5종류 예비 성적표가 모두 나왔다.
우리나라 1분기 접종 대상자 중 다수가 맞을 예정인 아스트라제네카는 현재 가장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백신은 독감 백신처럼 2~8도 상온에서 보관이 가능해 동네 의원에서도 맞을 수 있다. 다만 평균 예방 효과가 70.4%로 다소 낮다. 인도 공장 화재 등으로 각국에서 물량 부족 현상도 빚고 있다. 특히 65세 이상 접종 안전성 논란이 있다.
임상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65세 미만만 접종할 것을 권고했고, 이탈리아는 55세 미만으로 접종 기준을 더 낮춰 권고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65세 이상엔 효과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고 했다.
▲우리 국민이 맞을 코로나 백신 5종 해외 임상 결과
우리 식약처는 지난 31일 이 문제와 관련해 전문 자문단(8명) 회의를 했지만, 결론을 내진 못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다수 의견은 ’65세 이상 접종 가능'이었다. 전문가 다수 의견과 상반기 백신 물량 수급 상황 등을 고려하면 우리나라는 65세 이상도 이 백신을 접종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임상 자료가 더 확보될 때까지 신중해야 한다는 소수 의견도 있다. 식약처는 오는 4일 중앙약사심의위를 열어 이 문제를 더 논의하고 결과를 공개한다.
현재까지 가장 성적이 좋은 건 화이자와 모더나다. 각각 예방 효과가 95%, 94.1%다. 이미 여러 국가가 접종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화이자 접종 후 92% 예방 효과가 나타났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다만 두 백신을 원하는 국가가 워낙 많아 물량이 달린다. 최근 프랑스, 스페인 등 일부 지역은 물량 부족으로 접종을 잠정 중단했다. 우리나라는 2분기부터 모더나 2000만명분, 3분기부터 화이자 1000만명분이 들어온다. 이에 앞서 이달 중순 백신 공동 구매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를 통해 화이자 6만명분이 우선 도입된다. 두 백신의 보관은 다소 까다롭다. 화이자는 영하 70도, 모더나는 영하 20도에서 보관해야 한다. 정부는 전국에 접종 센터 250곳을 만들어 두 백신을 보관·접종할 계획이다.
노바백스는 B형 간염 백신 등 기존 백신들처럼 합성 항원 방식으로 만들어 가장 안전한 백신이란 평가다. 예방 효과도 89.3%로 높은 편이다. 최재욱 고려대 교수는 “안전성 등을 볼 때 의료계에서 기대가 큰 백신”이라고 했다. 우리 정부와 노바백스는 SK바이오사이언스 국내 공장에서 2000만명분을 생산해 사용하는 방안을 협상 중이다. 그러나 남아공발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예방 효과는 49%로 낮다.
얀센은 예방 효과가 66%이다. 코로나 감염 때 중등증·중증 환자로 갈 수 있는 사람들이 접종했을 때 예방 효과다. 다른 백신처럼 기존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예방 효과를 따진 게 아니라 단순 비교는 어렵다. 정재훈 가천대 교수는 “잠정 결과이나 코로나에 감염되면 만성 질환자나 고령자 등 중등증·중증 환자가 될 수도 있는 이들에게 어느 정도 예방 효과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2~8도 상온에서 보관이 가능한 이 백신은 1회만 맞으면 된다. 정부는 중요한 공무·경제 활동 출국자는 2분기부터 접종하겠다고 했다. 출국이 급한 이들은 1회 접종을 하는 얀센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얀센도 남아공발 변이 바이러스 예방 효과가 57%로 다소 낮다.
조선일보 김정환 기자
02.02 고령자에게 ‘아스트라 백신’ 논란…안전이 최우선이다
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이하 아스트라)가 생산한 코로나19 백신의 안전성과 효과성 검증을 위한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문단 회의 결과가 어제 공개됐지만 찬반 논란에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식약처 자문단 안전성·효과성 놓고 이견
다양한 비판 경청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65세 이상 고령층에게는 효과가 떨어진다는 ‘고령층 백신 무용론’에 대해 자문단의 다수 전문가는 만 65세 이상을 포함한 전체 대상자에게서 예방 효과가 확인됐다는 이유를 들어 아스트라 백신을 65세 이상에게도 접종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반면에 일부 전문가는 여전히 임상 등 추가 결과를 확인한 뒤 식약처 허가사항에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고위험군인 고령자에 대한 임상 자료가 부족해 예방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식약처 자문단 회의를 통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안전성과 효과성에 대해 여전히 상당한 이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만큼 무시할 일이 아니다.
앞서 지난달 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18세 이상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아스트라 백신 사용을 권고했지만, 유럽 국가들에서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탈리아 의약청(AIFA)은 55세 이상은 효능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가능하면 54세까지의 성인에게 우선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독일 예방접종위원회는 18∼64세에게만 접종하라고 권고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65세 이상에게는 무효한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한국보다 앞서 백신을 접종한 이들 국가의 경험과 판단을 충분히 참고해야 한다. 백신은 접종 속도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안전성이다. 안전성에 논란이 생기면 백신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그러면 접종 기피자가 늘게 된다. 급기야 일정 시점까지 집단면역 형성을 목표로 설정한 정부의 접종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이번 자문단 회의는 식약처가 코로나19 백신의 객관적인 허가 심사를 위해 마련한 세 단계 절차 중 첫 번째다. 이번 의견이 곧 접종 범위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오는 4일 열리는 중앙약사심의위원회와 그 이후에 있을 최종점검위원회의 논의 결과를 거쳐야 한다. 따라서 식약처는 미리 어떤 방향으로 결론을 내지 말고 다양한 전문가의 비판적 의견을 두루 수렴해야 한다.
차제에 백신 접종 우선순위를 탄력적으로 재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길 바란다. 모든 나라가 고령자를 우선해 접종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참고할 만하다. 활동성이 높은 2030세대에게 아스트라 백신을 접종하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접종을 서둘러 11월 말 이전에 집단면역을 형성하겠다는 질병관리청의 목표도 중요하지만, 일정을 기계적으로 맞추려다 백신의 안전성을 소홀히 취급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백신 행정은 국민이 안심하고 접종할 수 있도록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신중하게 결정해 신뢰를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앙일보 사설
02.03 남아공 이어 영국 변이 코로나도 국내 침투..,”4명 지역사회 감염 확인”
지난 2일 경북 구미에서 남아공 변이 지역사회 감염 사례가 처음 확인된 데 이어 3일에는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의 국내 지역사회 감염이 공식 확인됐다. 이날 중앙방역대책본부는 백브리핑에서 “지난 1일부터 국내 확진자 27건에 대해 유전체 분석을 실시한 결과 1명은 남아공 변이(2일 확인), 4명은 영국발 변이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방대본은 “5건 모두 국내에서 감염된 사례”라며 “해당 사례와 관련된 접촉자 관리 상황을 재점검하고, 해당 지역에서의 변이 바이러스 감시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4명은 ‘경남·전남지역 외국인 친척 집단발생’ 관련자로, 자가격리 입국자의 집을 방문한 친척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1명은 입국 후 가족에게 전파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변이 바이러스 감염이 확인된 사례는 입국자 등을 포함해 총 39명이 됐다.
이날 방대본은 “변이 바이러스가 국내에서 전파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볼 수 있다”며 “입국자 가족과의 접촉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선일보 배준용 기자
02월 03일 현금다발·황금계급장 절도당한 해운대경찰서장
피해 사실 축소하다 수사종결권 논란 확산
■ 해운대경찰서장 관사 절도 사건
1300만원 현금뭉치 이목 집중
서장인 경무관보다 두 계급 위
‘황금 치안정감 계급장’도 화제
고위공직자 돈다발 의혹 증폭
전자 기록 위변작·방조혐의로
피해 서장·경찰관 등 되레 입건
“경찰의 수사권은 강화되었지만
이에 맞는 역량 있는지는 의문”
지난해 부산의 한 경찰서장 관사에서 발생한 절도사건에 대해 당시 수사 담당자와 피해자 및 피해 금품에 대한 경찰청의 수사가 진행돼 관심을 끌고 있다.
3일 문화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3월 한 도둑이 부산 해운대구의 아파트를 털었다. 이 도둑은 에어컨 실외기를 타고 올라가 한 집에서 현금 1300만 원과 귀금속을 훔쳐 달아났다. 그런데 하필 이 집이 관할 해운대경찰서장 관사로 드러났다. 이 도둑은 아파트 전문털이범으로, 비슷한 시기 이 아파트 내 다른 집을 털기도 했다. 이 같은 해운대 아파트의 절도 사실은 이 도둑이 인근 금정구 관내에서 다시 여러 건의 상습 절도를 하다 붙잡혀 여죄를 추궁받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이 절도범은 구속 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고위 경찰관의 집에서 1000만 원이 넘는 돈다발이 발견된 것 자체가 이목을 집중시켰다. 요즘은 카드 및 휴대전화 전자금융거래가 일상화돼 일반 가정집에서는 현금 수백만 원을 보관하는 사례도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일단 이 돈을 누구에게서 받았는지에 대한 출처와 함께 보관 이유에 대한 궁금증도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도난품 중에 ‘치안정감’ 황금 계급장(왕태극무궁화 3개)이 발견된 것도 화제를 모았다. 이 황금 계급장은 인터넷 쇼핑몰과 금은방 등에서 순금일 경우 200만∼420만 원에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대경찰서장은 치안 수요가 많아 다른 지역 서장(총경)보다 한 계급 위인 ‘경무관’(왕태극무궁화 1개)이다. 그런데 두 계급 위인 치안정감은 치안 총수인 경찰청장 바로 아래 직급으로 전국에서 7명밖에 없다. 경무관에서 치안정감으로 승승장구하라는 의미로 누가 선물했을 가능성이 높다.
절도범을 처벌하는 것으로 조용히 넘어갈 수도 있었던 이 사건은 최근 경찰청이 해운대경찰서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다시 외부에 불거져 구설에 올랐다.
경찰청은 해운대경찰서에 대한 감찰에 나선 이후 수사로 전환해 당시 피해자인 경찰서장과 사건을 처리한 과장급·팀장급 경찰관 등 모두 3명을 입건했다. 혐의는 공전자기록 위변작 및 방조 혐의다. 이 혐의는 공무원 등이 공용 전자기록 등을 위작하거나 변작했다고 판단될 때 적용된다. 요즘은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은 형사사법정보시스템인 ‘킥스’(KICS·Korea Integrated Criminal System)에 신고자 등 관련 정보를 입력하는데, 피해자인 경찰서장이 아닌 가족의 이름을 시스템에 입력하고 일부 피해 사실을 축소한 혐의 등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내부에서는 “직속상관과 관련한 민감한 사건이다 보니 윗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경찰청은 이 돈의 출처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운대경찰서의 수사 규정 위반도 문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청 훈령에는 경찰관서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 피의자는 물론이고 피해자일 경우에도 공정성을 위해 상급자의 지휘를 받아 인접한 경찰서에서 수사하게 돼 있다. 범죄 수사규칙에도 경찰관 본인이 피해자일 경우 수사나 수사 지휘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해운대경찰서는 보고 없이 이 사건을 직접 수사했다.
이와 관련, 박철현 동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고위 공직자 집에서 현금 다발이 나왔기 때문에 상식선에서 시민들은 온갖 의혹을 갖기에 충분해 반드시 출처 부분은 정확히 소명돼야 할 것”이라며 “앞으로 경찰의 수사 권한이 더욱 확대되는 상황에서 권리가 커지면 책임도 커지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감찰 기능이 대폭 강화돼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당사자들은 “수사받는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겠느냐”며 극도로 언급을 자제하고 있지만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당시 해운대경찰서장은 “서장으로 발령받으면서 사촌 등 친척들이 영전 축하금으로 준 것이고, 수사 과정이나 결과에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최근에도 해당 서장은 “내가 엄연히 피해자인데 당혹스럽다”며 “가족도 피해 진술을 할 수 있고, 처음에는 피해품을 완벽하게 다 입력하기가 어려웠지만 나중에 다 보완했다”고 밝혔다. 또 “돈 출처 부분도 소명이 다 됐기 때문에 당시에 징계를 받지 않은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 내부에서는 “지인도 아니고 친척들이 그 많은 돈과 귀금속을 줬다는 게 납득이 안 된다.” “어떤 용도로 쓰려고 추적이 안 되는 현금을 보관했는지도 의문이다.” “너무 재수가 없다 보니 하필 절도 피해자가 된 게 큰 우환거리가 됐다”는 등의 말들이 나돌고 있다.
이에 대해 해운대가 지역구인 국민의힘 하태경·김미애 의원은 최근 “피해품의 출처와 의미에 대해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아 철저한 재수사를 통해 한 점 의혹 없이 실체적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며 “시민들은 오거돈·박원순 전 시장 성추행사건, 정인이 학대 사망사건, 이용구 법무부 차관 택시기사 폭행사건 수사 진행 상황 등을 지켜보며 경찰에 대한 불신이 상당한데, 경찰의 수사권이 강화되고 몸집도 커졌지만 이에 걸맞은 역량이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밝혔다.
부산 = 김기현 기자 ant735@munhwa.com
02.16 첫 단추부터 접종 차질, 백신 미리 확보했으면 없었을 일
▲코로나19 예방접종 대응 추진단장을 맡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중앙방역대책본부장)이 15일 오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본부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2~3월 예방접종 계획' 발표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65세 이상 고령층에게는 당분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하지 않기로 했다. 고령층에 접종 효과 논란이 있는 만큼 3월 말 임상 정보를 추가로 확인한 후 최종 확정하겠다는 것이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치명률이 높아지는 코로나 특성상 요양시설 고령층을 최우선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지만, 효과 논란이 있는 이상 고령층 접종을 미룬 것은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요양시설 고령층은 이동을 하지 않고 시설을 드나드는 종사자 등을 통해 감염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종사자만을 접종해도 효과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백신 접종을 불과 10여 일 앞두고 접종 계획이 흔들리게 됐다. 전체적인 백신 접종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달 말 올 1분기에 전체 요양시설 고령층·종사자, 고위험 의료기관 종사자 등 130만명을 접종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날 발표를 보면 1분기 접종 인원은 54만3000명이 줄어든 75만9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46%에 불과하다. 이렇게 가면 정부가 공언한 ’11월 집단면역' 형성 계획 자체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화이자 백신 도입은 이번에 또 미뤄졌다. 정부는 지난달 코백스를 통한 화이자 도입 시기를 “이르면 2월 초·중순”이라고 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르면 2월 중순 화이자 백신 6만명분이 국내에 들어온다”고 했다. 그러나 화이자 백신 도입 시기는 2월 말에서 3월 초로, 접종은 3월 8일로 늦춰졌다. 이것도 그때 가 봐야 확실해질 것이다. 지금 정부의 일처리를 봐서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한국은 여전히 코백스를 바라봐야 하는 불확실한 상황이란 사실이다. 이에 비해 일본 후생노동성은 14일 화이자 백신 사용을 승인했고 17일부터 백신 접종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정부가 백신 확보에 일찍 나서지 않은 것이 얼마나 뼈아픈 것인지 다시 한번 절감한다. 주요 선진국들처럼 화이자·모더나 백신을 조기 도입했다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논란 자체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주요국들은 이런 경우를 대비해 미리 다양한 백신을 충분히 확보해 리스크를 분산시켰다. 반면 우리 정부는 지난해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백신 계약을 미적거렸다. 그렇게 1분기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목매는 상황을 자초했다. 그러지 않아도 남아공 변이 바이러스 등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접종 계획을 바로잡고 차질 없이 집행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2.16 “철없던 시절” 변명 안 통한다, 학폭으로 추락하는 스타들
프로배구 이재영·다영 국가대표 자격 박탈… 무기한 출전 정지도
“10년이나 지난 일이라 잊고 살까도 생각해봤지만….” “12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진심으로 사과해라.”
학교 폭력 피해를 고백하는 이른바 ‘폭투(폭력+미투)’가 배구를 중심으로 한국 스포츠계에 번지고 있다. 지난해 7월 고(故) 최숙현 선수 사건이 지도자들의 폭행 실태를 고발했다면, 이번엔 선·후배나 동료 간 괴롭힘을 증언하는 것이 차이다. 피해자들이 10여 년 전 일들을 꺼내 들어도 가해자들은 시차 없이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철없던 10대 시절의 일”이라고 변명해도 소용없는 시대다.
◇”쌍둥이, 10년 전 그 짓을 기억하느냐”
배구 선수 이재영-이다영(25·흥국생명) 쌍둥이 자매의 폭투는 지난 10일 새벽 불거졌다. 자매와 같은 학교(전주 근영중) 배구부였다고 밝힌 피해자 A씨는 “10년 전 일이라 잊으려 했지만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모르고 사는 것 같다”며 21개 사항에 걸친 피해 사실을 인터넷에 폭로했다. 상습 폭행이나 욕설 외에도 칼로 협박하거나 금전을 상습적으로 갈취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겼다. 쌍둥이 자매가 폭로 글이 올라온 지 16시간 지나 “철없었던 지난날 저질렀던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많은 분들에게 상처를 줬다”며 머리 숙였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자매의 배구계 퇴출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고 구단엔 징계 요구가 빗발쳤다.
흥국생명이 심신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징계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자 이번엔 다른 피해자 B씨가 13일 추가 피해 사실을 폭로했고, 14일엔 학부모 C씨가 “중학교 시절 쌍둥이가 어머니(1988년 서울올림픽 여자배구 대표팀 세터 김경희씨) 지시 아래 둘이서만 하는 배구를 했고, 또래 선수들은 운동도 못 하고 괴롭힘만 당했다”고 증언을 보탰다.
결국 15일 대한배구협회는 이재영-이다영 자매의 국가대표 자격을 무기한 박탈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흥국생명도 무기한 출전 정지를 결정했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16일 비상대책회의를 연다.
폭투 불똥은 남자 프로배구로 튀었다. OK금융그룹의 공격수 송명근(28)과 심경섭(30)이 중·고교 시절 저지른 폭행 사실이 인터넷을 통해 재조명됐다. 두 선수는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올 시즌 잔여 경기에 나서지 않는다.
14일엔 한 네티즌이 “중학교 시절 머리를 박고 ‘가나다라’를 외우게 하거나 바가지에 눈물·콧물·침이나 오줌을 싸서라도 채우게 강요한 사람이 있었다”면서 “그의 모습을 TV로 보는 게 괴롭다”고 인터넷에 썼다. 수도권 연고 현역 여자 프로 배구 선수 D가 가해자로 거론된다.
◇피해 학생들 “합숙소가 폭력 온상”
전문가들은 “당분간 피해 신고가 잇따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국 엘리트 체육계에 폭력이 만연한다는 사실은 구문(舊聞)이다. 하지만 미디어 환경이 바뀌면서 피해자들의 대응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윤현 용인대 유도학과 교수는 “가해자가 스포츠 스타가 돼 언론 주목을 받으면 피해자들의 트라우마가 심해진다”며 “예전과는 달리 요즘엔 SNS에 한 줄만 적어도 일파만파 퍼진다. 최근 가해자들이 사과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종목에서도 피해자들이 비슷한 사례를 폭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합숙 생활이 선수 간 폭력의 온상이라는 비판도 있다. 지도자도 모르게 때릴 수 있고, 빨래·청소 등 허드렛일을 강요하면서 폭력이 대물림된다는 지적이다. 이재영-이다영 자매도 합숙소 안에서 가해가 빈발했다. 남자 배구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피해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 E씨는 “송림고교 배구부 시절 3학년 선배 F가 노래 부르라는 강요에 1학년인 내가 응하지 않자 F는 2학년 선배(송명근)를 팼고, 그(송명근)는 내 고환이 터지도록 폭행해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9년 12월 발표한 ‘학생선수 인권침해 실태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학생 21.5%, 고등학생 23.7%가 신체 폭력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합숙 경험이 있으면 폭력 피해자가 10%p가량 늘었다. 피해자들의 증언 중에는 “선배들이 스트레스를 숙소에서 후배 패는 것으로 푼다” “기량이 압도적인 ‘에이스’가 괴롭히면 감독조차 개입 못 한다” 는 내용도 있었다.
정지규 경일대 스포츠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를 통해 학교 폭력은 시효 없는 중범죄임을 각인시켜 사회 전반의 인식 및 시스템 개선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02.18 세계 확진자 급감하는데 우리는 급증, 백신도 제일 늦어
이달 들어 전 세계적으로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눈에 띄게 줄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전 세계 확진자는 지난 1월 6~8일 하루 80만명 이상 나올 때와 비교해 최근 26만명대가 돼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미국의 하루 확진자가 1월 8일 30만명대에서 지난 15일 5만명대로, 일본은 같은 기간 6906명에서 1310명으로, 영국도 6만8053명에서 9765명으로 줄었다. 감소세가 뚜렷하다. 각국이 마스크 쓰기 강조 등 강력한 봉쇄 정책을 편 데다 백신 접종 영향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작년 말 1240명(12월 25일)을 정점으로 설 연휴에 300명대까지 내려갔다가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15일 457명, 16일 621명으로 확진자가 다시 늘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공장·병원 집단감염 규모가 커지고 가족 모임, 교회, 학원 등에서 산발적 감염도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설 연휴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이번 주말부터 새 확진자가 더 느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적지 않다. 대통령이 예고한 새로운 사회적 거리 두기 체계 도입과 초·중·고교의 개학을 앞둔 시점에서 다시 확산세가 커지자 자칫 3~4월에 4차 대유행이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확진자가 다시 급증하는 것은 결국 백신만이 근본적 해결책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7회원국 중 33국에선 이미 백신 접종이 한창이다. 일본은 17일 도쿄의료센터 원장을 시작으로 화이자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그런데 나머지 4국 중에서도 우리는 제일 늦은 26일에야 접종을 시작할 예정이다. 37국 중 우리가 꼴찌인 것이다. 이스라엘 같은 곳은 접종률이 50%에 육박하면서 일상 회복으로 다가가는데 우리는 아직 접종 시작도 못 하는 이유는 나중에라도 분명하게 규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 우려스러운 것은 정부의 방역 허점이 자꾸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 감염자가 처음 나온 것은 지난해 말이다. 그런데 방역 당국은 두 달 가까이 지나 변이 감염자가 100명에 육박할 때까지 변이 여부 검사 기간이 5~7일씩 걸리는 ‘거북이 검사’를 고수하다가 이제야 검사 기간을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역 단계를 높일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런 미비점이 더 없는지 점검하는 것이 먼저다.
조선일보 사설
02.18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하염없이 기다렸는데 우우 그대 말을 철석같이 믿었었는데…. ’
문 대통령 “불신 크면 우선 접종”
공언과는 달리 4월 이후 접종키로
외국 지도자 솔선수범 부럽다
기다림, 그리고 약속을 저버린 이에 대한 실망을 담은 이적의 슬픈 노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 문득 떠올랐다. 기다림과 실망, 어째 우리가 맞닥뜨린 코로나19 백신 얘기 같아서다. 손에 잡히는 희망은 백신뿐이지만 “남들보다 먼저 맞을 것”이라던 약속(문재인 대통령)이 무색하게 기다렸던 백신은 아직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
벌써 절반 가까운 국민이 접종한 이스라엘을 비롯해 이웃 나라 일본 등 세계 88개국은 이미 백신 접종 속도전에 돌입했다. 선진국·개도국 가리지 않고 각국 정부와 지도자들이 국민을 위해 진작부터 다양한 백신을 선 구매한 덕이다. 반면 백신 확보는 게을리하고 K 방역 홍보에만 열을 올리던 문재인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늦은 오는 26일, 그것도 처음 약속과 사뭇 다르게 논란 많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75만명분만으로 찔끔 맛보기 접종을 겨우 시작하게 됐다.
어쩌면 이런 참사는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량이든 속도든 백신과 관련한 비판에 직면할 때마다 문 대통령은 투명하고 신속 정확한 정보 공개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확정되지도 않은 사실(“화이자부터 도입”)을 서둘러 발표하거나 심지어 부정확한 정보(“백신 생산국이라 먼저 맞는다”)로 국민들 눈 귀를 가려왔고, 그게 결국 ‘OECD 꼴찌’라는 참담한 성적표로 이어졌기에 하는 말이다. 백신에 관한한 문 대통령의 약속이 그대로 실현된 게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불거진 “우선 접종” 논란도 그중 하나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백신 불안감이 높아지면 제일 먼저 맞는 것도 피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효능 높은 화이자나 모더나가 아니라 프랑스에서 접종 중단 사태를 빚는 등 다른 백신에 비해 여러 우려가 제기된 아스트라제네카 하나만으로 접종을 시작하는 상황이 되자 어찌 된 일인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국민 3분의 2가 “지켜본 후 맞겠다”고 할 정도로 백신을 둘러싼 불신이 커져만 가는데도 질병관리청을 앞세워 “문 대통령은 연령대(65세 이상)가 맞는 일정(4월 이후)에 따라 접종을 받게 될 것”이라고 슬그머니 흘렸다. 국민이 먼저 맞고 발생하는 문제를 한두 달 관찰한 후 대통령이 맞거나, 아니면 뒤늦게 들어오는 화이자·모더나 백신을 맞겠다는 의도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이러니 불신이 가라앉을 턱이 없다.
이런 행보는 접종 독려를 위해 먼저 자기 팔을 걷어 올린 다른 국가 지도자들과 대조적이다. 인도네시아는 아스트라제네카·노바백스 1억 회분을 계약했지만 도입 일정상 호감도가 떨어지는 중국 백신으로 우선 고령자 접종에 나섰다. 조코위(60) 대통령은 “백신 안전성을 국민에게 보여주겠다”며 약속대로 가장 먼저 백신을 맞았다.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72) 총리도 국민 3분의 1이 접종을 꺼린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국민 대상 접종 개시일 전날에 1호로 접종했다. 싱가포르의 리셴룽(68) 총리 등 각국 지도자들이 이런 솔선수범을 보인 덕분에 접종률은 올라가고 확진자는 급감하고 있다. 거꾸로 우리는 잠시 주춤했던 확진자 수가 다시 치솟으며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의 1호 접종 허언이 문제가 되는 건 백신의 신뢰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대통령부터 접종하라”는 복수의 청원이 올라왔겠는가.
다른 나라 지도자들이 보여줬듯이 불신을 잠재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통령을 비롯해 당·정·청의 주요 인사들부터 백신을 먼저 맞는 것이다. 일부에서 백신 거부 분위기마저 감지되자 이런 쉬운 방법을 젖혀두고 문 대통령은 특유의 언론 탓, 국민 탓만 또 반복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 1일 수석 보좌관회의에선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와 허위사실 유포로 국민 불안을 부추기거나 백신 접종을 방해하는 일이 있다면 엄단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기까지 했다. 허위사실 유포로 따지면 청와대야말로 가장 할 말이 없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공자는 “군자는 행동으로 말하고 소인은 혀로 말한다(君子以行言, 小人以舌言)”고 했다. 군자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일국의 대통령이라면 응당 보여줄 법한 최소한의 솔선수범을 기대하는 것조차 무리인 걸까.
‘찬 바람에 길은 얼어붙고 나도 새하얗게 얼어버렸네.’ 이적이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노래에서 읊조린 것처럼 지금 한국엔 찬 바람이 불고, 하루라도 빨리 마스크를 벗어버리고픈 국민의 희망도 새하얗게 얼어버렸다.
중앙일보 안혜리 논설위원
02.25 세계 102번째로 백신 접종, 한국이 이런 나라인가
국내 첫 신종 코로나 백신이 24일 출하됐다. 첫 접종은 26일 이루어질 예정이다. 그런데 영국 옥스퍼드대 통계사이트 ‘아워 월드 인 데이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은 전 세계에서 102번째로 코로나 백신을 맞는다. 22일 기준으로 이미 101국에서 백신 접종을 시작한 것이다. 아직 접종하지 못한 국가에는 태국, 베트남, 라오스, 필리핀 같은 동남아 국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우크라이나, 베네수엘라, 몽골, 북한 등과 아프리카 나라들이 들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7회원국 중엔 한국 빼고 미접종 국가는 없다. 우리나라가 어쩌다 아프리카·동남아 국가들과 같은 수준으로 백신 접종을 해야 하는가.
백신 조기 확보에 성공한 이스라엘은 전체 인구의 51.5%에 1차 접종을 마쳤고 33%에는 2차 접종도 끝낸 상황이다. 백신이야말로 코로나 사태를 끝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고 일상 회복의 지름길이라는 점이 접종국들에서 거듭 확인되고 있다. 우리 국민은 왜 이렇게 백신 확보가 늦었는지 이유조차 명확하게 모르고 있다. 이 정부가 K방역 홍보에만 열을 올리면서 “지금 백신은 충분히 빨리 도입이 되고 있다”며 백신 접종 시기가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늦지 않다는 식으로 우기고 있기 때문이다.
백신 확보는 여러 부처와 관련이 있고 리스크를 안아야 하는 문제여서 대통령의 관심과 결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른 나라들은 다 그런 관심과 결단을 거쳐 백신을 확보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102번째로 백신을 맞게 해놓고도 사과는커녕 접종 지연 우려 등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세계 102번째가 접종 지연이 아니라면 대체 어떤 경우가 지연인가.
조선일보 사설
02.25 백신 불안 누가 부추기나
26일 국내 코로나 백신 접종 시작을 앞두고 감염병·백신 전문가들이 한탄을 쏟아낸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고령층에 대한 효능 논란이 일면서 국민 불안이 커지고 있는데, 정치인들이 불안에 더 불을 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5.8%가 ‘접종을 연기하겠다’고 답했다. 백신을 접종하지 않겠다는 답변 비율(5.1%)을 더하면 접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절반을 넘어선다. 국민 사이에 백신 불안이 커져 접종률이 떨어지면 집단면역이 달성되는 시기는 더 늦어질 수밖에 없다.
백신 불안을 부추기는 정치인들의 ‘망언’은 지난해 말부터 쏟아져 나왔다. 당시는 정부의 백신 확보가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 나올 때였다. 여당 정치인들은 정부 실책을 무마하기 위해 백신 안전성을 문제 삼고 나섰다. 3상 임상 시험으로 안전성과 효능성이 검증된 백신에 대해 “부작용이 많다더라”며 ‘카더라’를 쏟아낸 것이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코로나 백신 접종 후 알레르기 반응, 안면 마비 같은 부작용도 보고되고 있다”고 했다. 같은 당 장경태 의원은 “무작정 투약부터 하자는 무책임한 주장은 ‘마루타적 발상’일 뿐”이라고까지 말했다.
야당도 불안을 부추기기는 마찬가지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65세 미만부터 접종하기로 한 보건 당국의 결정에 대해 국민의힘은 “65세 미만은 맞아도 된다는 근거는 어디 있느냐”고 논평을 냈다. 그럼 영국은 아무런 의학적·과학적 근거도 없이 국민의 26% 이상에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하고 있는 걸까.
정치권발(發) 망언은 백신 접종을 코앞에 두고도 계속되고 있다. 백신 불안을 덜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1호 접종자가 되어야 한다는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의 제안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통령이 실험 대상이냐”며 유 전 의원의 제안을 ‘망언’이라 규정했다. 전문가들은 “그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실험 대상이라서 맞은 것이냐”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국민은 실험 대상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야당은 여전히 ‘대통령 1호 접종’을 고집하고, 여당은 ‘대통령 1호 접종’은 아예 거론도 말라며 맞선다.
일부 정치인은 백신 불안이 커지는 책임을 언론과 가짜 뉴스 탓으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정작 거짓말과 망언으로 불안을 부추겨 온 이들은 누구인가. 전문가들은 “백신 불안의 근본 원인은 보건 당국의 미흡한 대응과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발언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한 전문가는 “정치인들은 제발, 모르면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전문가들이 수십 번 되풀이했던 호소다.
조선일보 배준용 기자
02.26 국가 순위에 동그라미 하나 더 붙인 사람들
10위권 국가가 102번째 접종… 주요국보다 계약 4~5개월 늦어
되짚어봐도 이해할 수 없는 일… 결단 내릴 리더십 부재가 원인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 정도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갑자기 동그라미 하나가 더 붙었다. 영국 옥스퍼드대 통계사이트 ‘아워 월드 인 데이터’에 따르면 이미 101국(22일 기준)에서 신종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해 우리 국민은 102번째 이후로 백신을 맞는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2억2000만명 정도가 접종하고 나서야 백신 실물을 보게 생겼다.
26일 우리나라도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하는 것은 의미 있는 변곡점을 만드는 것이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 세계 최초로 지난해 12월 8일 백신 접종을 시작한 영국보다는 석 달 가까이, 12월 중·하순 시작한 주요국들에 비해도 두 달쯤 늦은 셈이다. 다른 나라들은 백신 접종을 본격화하면서 신규 확진자 감소세가 확연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일주일 사이 전 세계 확진자가 11% 감소하는 등 6주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우리도 백신만 확보했으면 백신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의료 시스템도 잘 갖추어져 있어서 빠른 속도로 접종할 수 있을 것이다.
주요국들이 백신 계약을 시작한 시기는 지난해 7~8월이었다. 화이자·모더나 등이 1상에서 백신 접종 후 바이러스를 무력화시키는 중화항체 형성이 코로나 회복기 환자보다 2~3배 많다고 발표한 직후부터였다. 아직 1상 결과여서 리스크가 컸지만 이 데이터 등을 근거로 계약이라는 행동에 옮긴 것이다. 그 대신 여러 백신 제조사들과 계약해 실패 가능성에 대비했다.
그즈음 우리 정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얼마 전 정세균 총리 방송 인터뷰로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지난 7월 국내 하루 확진자가 100명 정도여서 백신 의존도를 높일 생각을 하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아스트라제네카와 계약한 것은 지난 11월 말, 화이자와 계약한 것은 12월 말이었다. 주요국들보다 4~5개월 늦은 것이다. 정 총리 말은 공직자 해명 중에서 그나마 솔직한 것이지만 이 말도 맞지 않는다. 백신이 코로나 사태를 끝내는 근본적인 해결책인데, 확진자 숫자가 적으니 백신 확보가 늦어도 상관없다는 논리가 어떻게 가능한가.
박능후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백신 계약이 늦은 이유에 대해 “화이자, 모더나가 너무 일방적이고 불리한 계약을 강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 회사가 우리나라에만 유독 불리한 계약 조건을 제시했을까. 아닐 것이다. 캐나다가 화이자·모더나와 백신 구매 계약을 맺은 것은 지난 8월 초였다. 캐나다 트뤼도 총리라고 계약 조건을 망설이지 않고 임상 실패에 대한 불안감이 없었을까. 하지만 “어떤 백신이 성공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과잉 주문이 예방책(over-ordering was a precaution)”이라는 전문가(맥스웰 스미스 웨스턴대 교수)들 조언을 받아들인 것이다.
우리 방역 전문가들도 지난해 여름 비슷한 얘기를 반복했다. 우리 정부는 귀 기울이지 않았을 뿐이다. 결국 우리와 캐나다는 과학적인 데이터와 주요국 흐름을 보고 결단할 리더십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 차이로 백신 계약과 확보에서 큰 차이를 보인 것이다.
이번 사태가 끝나면 코로나 백서를 쓸 것이다. 그 백서의 중요한 챕터 중 하나로 백신 구매 실패기가 들어가야 한다. 왜 늦어졌고 누가 책임져야 할지,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떤 문제나 제도를 고쳐야 하는지 솔직하게 담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 팬데믹이 오더라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 김민철 논설위원
03.02 서울대 합격 상위 20개교 중 일반고 0
올 신입생 출신고 현황 보니
2021학년도 서울대 입시에서 합격자를 많이 낸 상위 20개 고교 가운데 일반고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엔 일반고 2곳이 상위 20위 안에 들었는데, 올해는 상위권 일반고 순위가 줄줄이 하락하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 합격자를 20명 이상 낸 일반고는 지난해 3곳이었는데 올해는 없다. 작년 한 해 코로나 사태로 등교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가운데, 일반고 우수 학생들이 입시에 어려움을 겪은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본지가 1일 정찬민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2021학년도 서울대 합격자 출신 고교별 현황(최종 등록 기준)’을 분석한 결과다.
◇자사고 승소한 세화·배재고 강세
예체능 특목고인 서울예술고가 수시 70명, 정시 4명 등 74명으로 가장 많은 합격자를 냈다. 이어 영재학교인 서울과학고가 합격자 68명을 냈다. 자율형사립고(자사고)인 용인외대부고는 60명의 합격자가 나와 그 뒤를 이었다. 이어 경기과학고(53명), 하나고(46명), 대원외고(43명), 대전과학고(43명) 등의 순이다. 지난해는 서울예술고(79명), 용인외대부고(63명), 서울과학고(63명), 대원외고(58명), 경기과학고(57명), 하나고(56명) 순이었다. 올해 영재학교 강세가 두드러졌다. 전국 영재학교 8곳이 모두 상위 14위 안에 들었다. 합격자도 지난해 282명에서 올해 327명으로 45명 늘었다.
자사고 합격자도 지난해 495명에서 올해 502명으로 늘었다. 상위 30위 내 자사고는 지난해 9곳에서 11곳으로 늘어났다.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지정 취소 처분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에서 지난달 1심 승소한 세화고는 합격자가 25명(15위)으로 지난해(22명·19위)보다 늘었다. 같은 소송에서 승소한 배재고도 합격자가 지난해 7명에서 올해 19명으로 늘어 자사고 가운데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그런데 정부는 소송 결과와 무관하게 2025년 자사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겠다는 계획이다.
◇‘블라인드 평가’ 해도 일반고 약세
서울대 입시 합격자 상위권 고교를 영재학교, 특목고, 자사고가 차지한 반면 일반고 순위는 지난해보다 내려갔다. 지난해 공동 19위로 일반고 가운데 순위가 가장 높았던 단국대 사대부고(올해 32위)와 화성고(35위)는 30위 밖으로 밀려났다. 올해는 서울고·낙생고·상문고가 공동 27위로 일반고 중 가장 순위가 높았다. 일반고 최고 순위도 지난해 19위에서 올해 27위로 8계단 내렸다.
상위 20위 내 일반고는 지난해 2곳에서 올해는 한 곳도 없고, 상위 30위 내 일반고도 지난해 4곳에서 올해 3곳으로 줄었다. 상위권 일반고가 지난해보다 약세였던 것이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학생부 내 학교명 등을 가리는 ‘블라인드 평가’가 도입됐지만 일반고보다는 오히려 영재학교, 특목고, 자사고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코로나 상황에서 일반고와 자사고·특목고·영재학교의 학생부 작성과 학력 격차 등이 더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앞서 교육부는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부정 입학 의혹이 커지자 대입 공정성을 강화한다며 2021학년도 입시부터 블라인드 평가를 도입했다.
서울대 합격생을 1명 이상 낸 고교는 지난해 910곳에서 올해 942곳으로 늘었다. 고3 재학생만 응시 가능한 수시 지역 균형 선발 전형에서 수능 최저 기준을 ‘네 영역 중 세 영역 이상 2등급 이내’에서 ‘네 영역 중 세 영역 이상 3등급 이내’로 완화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정찬민 의원은 “코로나로 심화된 일반고와 특목고·자사고 등의 학력 격차가 확인된 것”이라며 “정부는 자사고, 외고를 없애 하향 평준화하지 말고 일반고 경쟁력을 높일 구체적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곽수근 기자
03.05 “LH 직원은 땅 투자 말란 법 있나” 반발, 위 아래 모두 ‘뭐가 어때’
▲<YONHAP PHOTO-3942> LH, 광명·시흥 사전 투기 의혹 관련 대국민 사과 (서울=연합뉴스) LH는 최근 발생한 일부 직원의 신도시 사전 투기 의혹에 대한 조사와 신속한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비상대책회의를 개최하고, 사전투기 의혹 발생에 대한 대국민 사과문을 4일 발표했다. 사진은 장충모 LH 부사장을 비롯한 LH 관계자들이 대국민 사과를 하는 모습.
신도시 투기가 드러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현직 직원들은 땅 구입에 사용한 대출금을 특정 농협 지점에서 받았다. 조직적인 투기일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같은 부서 근무자들도 있었다. 땅에 묘목을 심는 전형적 투기꾼 수법도 썼다. LH는 부업이고 투기가 본업이다. 다른 직원은 돈 받고 토지 경매 ‘1타 강사’로 활동한 사실도 드러났다. 그런데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LH 직원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땅 투기를 옹호하는 글을 올렸다. “LH 직원들이라고 부동산 투자하지 말란 법 있나” “다른 공기업, 공무원 중에는 없을까”라며 ‘뭐가 어떠냐'는 식으로 반발했다.
국가를 대신해 택지 개발과 주택 분양·임대 등을 하는 LH는 공기업 중에서도 임직원들의 높은 공무(公務) 의식이 요구되는 조직이다. 그런 조직에서 이런 사태가 터졌으면 모두가 잠시라도 자숙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도리어 고개를 들고 ‘뭐가 어떠냐' ‘너는 안 했냐'는 식의 반발이 나왔다. 고위 공직자들의 잇따른 부동산 투기 ‘내로남불’이 극에 달하다 보니 ‘투기 죄의식 불감증’이 번져가는 것만 같다.
조선일보 사설
03.06 "LH꼴 보려고 촛불 들었나" 영끌하던 벼락거지 분노 터졌다
“집 때문에 ‘영혼을 끌어모은다’던 지인이 ‘영혼이 털린 기분’이라더라.”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의혹에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지인의 말을 빌어 심정을 토로했다. 김씨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반응”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웬만한 인터넷 커뮤니티는 2030의 박탈감으로 ‘도배’되고 있다. “LH 꼴 보려고 촛불집회 참석했나 자괴감 든다”라거나 “국토교통부, SH(서울주택도시공사) 등 개발 정보 다루는 모든 기관 근무자의 부동산을 전수 조사하라”며 성토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벼락거지’의 분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가 지난 2일 폭로한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에 대한 2030의 분노가 심상치 않다. ‘영끌’로 누적돼 압축된 설움이 ‘영털’의 충격에 폭발해 버린 형국이다. 15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재테크 유튜버 포리얼(본명 김준영·29)은 “LH 사태는 단편적 사건에 불과하다”며 “소위 ‘빽’이나 고급 정보가 없으면 계층 역전은 불가능하다는 게 청년들의 지배적 생각”이라고 말했다.
2030의 분노에는 자조적인 신조어가 총동원되고 있다. 이번 정부에서 유독 많이 만들어진 말들이다. 폭등하는 집값과 주식을 쫓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 했고, 집과 주식을 가진 친구들 앞에서는 ‘벼락거지’(갑자기 거지 신세가 됐다는 의미) 기분이었던 2030이 LH 직원들의 반칙에 공분을 일으킨 것이다.
“2030 이탈 핵폭탄급일 것”
2030의 분노는 정책 책임자와 정치권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4월 7일의 서울·부산 시장 선거와 내년 대선 등 선거에 대한 의견 표출이 잇따르는 이유다. 한 네티즌은 “이번 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여당은 추후 선거 기대하면 안 될 듯”이라고 적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이번에 LH 직원들 처벌 못 하면 상대적 박탈감이 큰 2030 유권자들의 이탈은 핵폭탄급일 것”이라는 전망도 했다. “이번 정권의 최대 악재가 부동산인데 LH 사안에 명운이 달린 듯하다”는 분석도 내놨다.
/LH 본사 전경. 연합뉴스
LH 직원들의 투기가 현 정권만의 문제겠냐는 지적도 많다. 진보 성향 커뮤니티의 한 이용자는 “몸속에 큰 병이 있을 때 당장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앞선 정부 때 생긴 종양들이 이제야 터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30대 남성 박모씨는 “LH 직원들이 실명으로 대담하게 투기했더라.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는 기관들의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팽배해 있었는지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논란 부추긴 LH 직원 ‘적반하장’
▲LH 직원들이 사들인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소재 농지에 작물이 매말라 있는 모습. 뉴스1
LH 소속 직원이 지난 4일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LH 직원이라고 부동산 투자하지 말란 법 있나”라는 글을 올리면서 2030의 분노지수는 더 높아졌다. LH 직원은 “내부정보를 활용한 투기인지, 공부를 토대로 한 투자인지는 법원이나 검찰에서 판단할 사안”이라고 주장했지만, 네티즌들은 “적반하장”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과 LH 임직원의 사과에는 “악어의 눈물”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땅 투기 당시 LH 사장이었던 변 장관이 사과 회견 뒤 “(LH 직원들이) 개발 정보를 알고 땅을 미리 산 건 아닌 것 같다. 신도시 개발이 안 될 거로 알고 샀는데, 갑자기 신도시로 지정된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한 것도 네티즌들의 분노에 불을 질렀다.
사회적 분노는 ‘고발’ 현상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LH 투기 의혹의 시작도 제보였다. 폭로 기자회견을 한 서성민 변호사는 이번 사건 제보와 관련해 “제보자는 ‘LH 직원들이 산 땅이 신도시에 포함돼 놀랐다. 확인해달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서 변호사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자 회견 이후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전국적·포괄적으로 정치인과 공직자의 투기 의혹에 대한 제보가 수십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권력·정보 가진 자에 낙오된다는 불안”
여권은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연이틀(지난 3, 4일)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정세균 총리도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헌신해야 할 공공기관의 직원이 이런 부적절한 행위로 국민 신뢰를 저버리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국민들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국회에서는 업무 중 취득한 정보로 이득을 챙기면 최대 5배까지 벌금을 물리거나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 등이 제안되고 있다. 그러나, 청년의 분노를 진정시키기엔 역부족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LH 사태로 표출되는 공분은 비단 부동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들은 현재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못한 데 대한 분노를 지속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그 예로 ‘조국 사태’ 등을 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곽 교수는 “취업·승진 등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권력과 정보를 가진 자로 인해 낙오될 수 있다는 불안이 사회 전반에 깔렸다”며 “열심히 돈을 벌어도 집을 살 수 있는 희망마저 사라진 상황에서 ‘영끌’ ‘빚투’ 등 투기성 투자를 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과도 연결된다”고 진단했다.
김지혜 기자 kim.jihye6@joongang.co.kr
03.08 LH 사태, ‘눈 가리고 아웅’ 대책으로 때우려 하나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어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투기 문제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대책을 내놨다. 투기 행위가 확인된 직원에겐 수사 의뢰 등의 무관용 조치를 하고, 부당이득은 반드시 환수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토지 개발, 주택정책 관련자는 토지 거래를 신고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일요일 오전에 행정안전부·국토교통부 장관, 국무조정실장, 국세청장을 옆에 세워놓고 거창하게 발표했으나 국민이 기대했던 진짜 대책은 하나도 없었다.
무관용 조치, 부당이득 환수 등 말만 거창
검찰 동원한 전방위적 수사로 진상 밝혀야
수사·징계를 통한 제재는 지난주 내내 정부와 여당이 했던 약속이다. 국민은 LH 직원이 신도시 건설 예정 지역에 땅을 샀다는 이유만으로 처벌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런 법이 없다. 내부 정보를 이용했거나 불법 대출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야 처벌이 가능해진다. 무관용 운운하지만 실제로 징계 또는 처벌을 받을 이는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다.
부당이득 환수도 마찬가지다. 땅을 팔거나 보상금을 받아야 이익이 실현되는데 그게 언제인지 알 수 없다. 부당한 이익이라는 것을 입증하기도 쉽지 않다. 부동산 관련 공직자와 공기업 직원의 토지 거래 신고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는데, 친인척 명의로 거래하면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다. 부총리가 목에 힘주고 이야기했지만 ‘혼내주고 앞으로는 못하게 하겠으니 믿어 달라’는 말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은 이런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대응이 아니다. 많은 시민이 비단 광명·시흥에 국한된 일이었겠느냐,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도 투기판에 끼어들지 않았겠냐고 묻는다. 대규모 부동산 공공개발 지역에 대한 철저한 조사·수사가 먼저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국토부와 신설 경찰 조직인 국가수사본부에 진상 규명 작업을 맡겼다. 이런 수사에 많은 경험을 가진 검찰은 배제했다. 이미 드러난 선에서 조사를 마무리하고, LH 직원 외의 고위 공직자에까지 수사가 번지는 일은 막겠다는 심산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광명·시흥 개발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는 여론도 비등하다. 쉽게 뒤집을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부동산 정책을 대폭 수정해야 하고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불공정과 불의를 바로잡기 위해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극약 처방이기도 하다. 정부가 깊이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인데 홍 부총리는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았다. ‘차질 없는 주택공급 추진’만 되뇌었다.
지난 주말에 실시한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국민 지지가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재난지원금 ‘약발’이 듣지 않았다. 부동산 문제로 분노와 좌절감에 휩싸인 국민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라도 청와대·정부·여당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바란다. 총체적 불신으로 공동체가 위기를 맞고 있다.
중앙일보 사설
03.08 시흥 1개 동 등기부등본 열자, LH직원 이름 쏟아졌다
▲3기 신도시로 추가 확정된 광명?시흥 지구에 LH 공사 직원의 땅투기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3일 오후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의 모습. 장진영 기자
과림동 3년간 땅거래 분석해보니
93억원대 11개 필지 1만7500여㎡
소유주와 LH 직원 명단 10명 일치
LH “동명이인 여부 확인 못해줘”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이 경기 광명시흥 신도시의 토지를 신도시 지정 전에 매입한 정황이 추가로 드러났다. 지난 2일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제기한 의혹과 별개로 3기 신도시 지정 전 시흥시 토지를 매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LH 직원 10명이 더 나온 것이다. 이번 조사는 신도시 지정 지역 중 한 개 동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LH 직원의 땅 매입 사례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중앙일보는 7일 국토부 실거래가 시스템 등을 통해 2018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의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일대 토지 실거래 내역을 분석했다. '협의 양도인 택지'(단독주택 용지), 대토보상(현금 대신 토지로 보상하는 것) 등을 받을 수 있는 ▶농지(전답) ▶1000㎡ 이상인 조건을 충족하고, 투기 의혹을 받는 앞선 사례처럼 ▶공유자가 2인 이상인 필지의 등기부 등본을 확인했다. 앞서 참여연대 등이 발표한 사례는 제외했다.
이 기준을 충족하는 과림동 토지 거래는 17건인데, 이 중 LH 직원으로 추정되는 소유주(LH 직원 명단과 일치하는 이름) 10명이 참여한 거래는 7건(동일인이 3개 필지를 동시에 매입한 경우 1건으로 분류)이었다. 이 가운데는 현재 LH 수도권 본부에서 보상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도 2명 포함됐다. 이들이 소유한 토지는 필지 기준으로 11개, 1만7500여㎡이며, 매입 대금은 93억원가량이다. 2018년 2건, 지난해 5~7월 사이 거래가 5건으로 나타났다.
특정 조건에 맞는 일부 토지 거래만 조사한 것인데도, 절반에 가까운(41%) 거래에 LH 직원이 연루된 흔적이 보였다. 참여연대·민변은 지난 2일 의혹을 제기하면서 "전체를 조사하면 LH 직원들의 토지 매입 사례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는데, 등기부 등본을 열람해보니 실제로 LH 직원 이름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동명이인 가능성을 확인해달라는 본지 요청에 LH는 "해당 직원의 개인정보라서 확인해 줄 수 없다"며 "정부 조사 결과를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LH직원 시흥 과림동 토지 추가매입 정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하지만 추가로 드러난 정황을 보면 앞서 밝혀진 사례와 유사한 점이 많다. 지인, 가족, 직장 동료 등 여러 명의 공유자로 등재돼 있고, 매입 대금의 절반 이상을 대출로 충당하는 식이다.
지난해 7월 거래된 과림동 논(답) 2285㎡의 경우 공유자 5명이 지분 457㎡를 똑같이 나눠 가졌다. 이 중 3명의 이름이 LH 직원 명단과 일치했다. 12억 2000만원에 토지를 매입하면서 9억원 가량(채권최고액 10억 8000만원)을 대출로 충당했다.
진입로가 없어 토지활용도가 떨어지는 '맹지'도 일부 포함돼 있으며, 거래 직후 지번을 분할한 곳도 있었다. 지번 분할을 하는 건 지분 공유자가 최대한 많은 보상을 받기 위해서다. 신도시 개발 지역에 1000㎡ 이상의 땅을 갖고 있으면 단독주택 등을 지을 수 있는 '협의 양도인 택지'를 받을 수 있다. 주거지역 60㎡, 상업·공업지역 150㎡, 녹지지역 200㎡, 기타 60㎡ 이상의 토지를 갖고 있으면 같은 개발 지역 내의 다른 토지로 보상받을 수 있는 '대토보상'을 신청할 수 있다.
지난해 6월 거래된 논 1583㎡의 경우 거래 직후 3개 지번으로 분할됐다. 이렇게 나뉜 3개 필지 가운데 2곳을 김모씨 등 LH 직원 2명이 각각 소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2월 LH 직원 장모씨 등 7명이 과림동 3개 필지를 매입한 뒤 4개로 지번 분할한 사례가 참여연대·민변의 의혹 제기를 통해 사실로 밝혀지기도 했다. 다만 앞선 의혹에선 대부분 60년대생 간부급 직원이 토지 매입에 관여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30~40대 젊은 직원의 이름도 등장했다.
정부 합동조사단은 지난 5일부터 LH 본사에 대한 현장조사를 진행 중이다. 조사단은 국토부(4000여명)와 LH 직원(1만여명)뿐 아니라 3기 신도시 업무를 담당하는 지자체와 지방 주택 도시공사 직원과 배우자, 직계존비속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조사대상자만 수만 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는 “토지소유자 현황은 택지지구 내를 원칙으로 파악하되, 토지거래는 주변 지역까지 조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합동조사단은 이번 주 내로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할 방침이다.
참여연대·민변은 7일 "정부의 전수조사 결과에 대한 전 국민적인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합동조사단 조사와 별개로 수사기관의 강제수사나 감사원의 감사 등도 병행돼야 한다"고 논평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전국에 걸쳐 수십건의 제보가 들어왔다"며 "관련자가 많이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시흥=김원·권혜림·여성국 기자 kim.won@joongang.co.kr
03월 08일 LH 투기 사태 ‘셀프조사 쇼’ 말고 檢 특수본 당장 만들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한 문재인 정부 대응이 ‘쇼’로 흐르고 있다. 정부는 일요일인 7일 긴급 관계장관 회의를 열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국민께 드리는 말씀’ 자료를 배포하는 호들갑을 떨었지만, 실효성이 없는 것을 넘어 엄정한 조사를 방해할 가능성도 있다. 홍 부총리는 ‘무관용’ ‘환수’ ‘발본색원’ 등의 강한 단어를 나열했을 뿐 부동산 투기 조사·수사의 기본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전수 조사의 책임자 격인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최근 “직원들이 개발 정보를 미리 안 것도 아니고 이익 볼 것도 없다” 등의 주장으로 투기 가능성을 배제했을 때 ‘셀프조사 쇼’의 결론은 정해진 것과 마찬가지다.
정부는 국토부와 LH 직원, 지방 주택 및 도시공사 직원들 동의서를 받아 3기 신도시 지역 토지 소유 여부를 확인해 경찰 국가수사본부에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한다. 시간도 의지도 역량도 의문이다. 우선 ‘투기한 사람 손 들어 보라’는 식이다. 대상자만 수만 명에 이르는 ‘전수 조사’가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미공개 정보 이용 여부를 판단하기는 더 어렵고, 벌금만 내면 시세차익을 몰수할 방법도 없다. 진짜 투기꾼은 실명으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1, 2기 신도시 합동수사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지금 조사 방식은 투기꾼들에게 증거인멸의 시간만 줄 뿐이다.
2기 신도시 수사 때 의정부지청 검사로 수사에 참여한바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국토부)자체 조사로 시간을 끌고 증거인멸하게 할 것이 아니라 즉각적이고 대대적인 수사를 해야 한다”며 “직원을 전수 조사할 것이 아니라 돈 되는 땅을 전수 조사하고 매입 자금을 따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연한 수사 방식이다. 이 문제를 폭로했던 민변과 참여연대조차 7일 다시 성명을 통해 ‘제 식구 봐주기 축소·소극 조사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크다’며 감사원 감사를 거듭 요구했을 정도다.
여당은 경찰 수사를 주장한다.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 수사 대상 6대 범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다. 이번 사태만 봐도 검찰 수사권 축소가 투기범들에게는 천국을 만들어 주는 잘못된 조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번 범죄는 공무원 뇌물 수수, 비밀누설, 직권남용 등에도 연루될 수 있다. 부동산 투기 엄벌 진정성이 있다면 당장 검찰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해 수사하게 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3.08 “공적 정보로 도둑질, 망국 범죄” 검찰이 LH 수사하라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도의 공공 개발로 집값 잡겠다며 2·4 대책을 내놓은 지 한 달도 안 돼 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이 불거졌다. 내 집 마련에 속 끓이던 2030 세대가 그 어느 세대보다도 특히 분노하고 있다. 인터넷에는 “우리는 벼락거지, LH는 벼락부자” “집 때문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뜻) 투자도 감내해야 하는데 신의 직장 LH의 땅 투기에 ‘영털’(영혼까지 털린) 심정” “스포츠팀 승부 조작과 다를 게 뭐냐” 등 2030 세대의 분노 글이 올라와 있다.
2030 세대는 취업과 내 집 마련에 애간장이 끓는다. 문재인 정부 들어 특히 심각해졌다. 일자리 구할 기회가 바늘 구멍처럼 좁아졌다. 어렵사리 취직해도 월급 모아 내 집 장만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예전엔 차곡차곡 돈을 모아 월세에서 전세 갈아타고 전세 자금에 은행 대출 보태면 내 집 마련할 날이 언젠가 올 거라고 믿었다. 이 정부가 대출 한도를 줄이고 규제 일변도 부동산 정책만 쏟아내면서 집값은 역대 최고로 치솟았다. 다급해진 2030 세대들이 앞다투어 집 구입에 나섰다. 대출을 옥죄니 이리저리 다른 경로로 돈을 끌어모아 집 장만하느라 ‘영끌’ 투자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영끌’ 투자조차 힘든 청년들은 스스로를 ‘벼락거지’라고 자조했다.
이렇게 달아오른 2030세대 분노에 LH 직원들의 불공정 반칙이라는 불똥이 튀었다. 10여명이 배우자, 가족 명의를 이용해 가며 거액의 대출을 끌어들이고 필지를 쪼개 가며 수십억대 거래를 했다. 확실한 개발 정보를 손에 쥔 채 땅 짚고 헤엄치는 기분으로 투기를 벌인 것이다. 국민들의 주거 안정을 책임져야 할 기관 사람들이 이런 짓을 벌였으니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 맡긴 격이다. 어떤 LH 직원은 “LH 직원이라고 부동산 투자하지 말란 법 있나”라는 내부 글을 올려 가며 염장질을 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LH 사건을 가리켜 “공적 정보를 도둑질해서 부동산 투기하는 것은 ‘망국의 범죄’”라고 했다. 대대적 수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LH 직원들의 투기는 회사 내부 정보를 이용하는 주식 내부자 거래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자신이 LH 사장으로 있을 때 벌어진 범죄 행위에 대해 “개발 정보를 알고 투자한 것은 아닌 것 같다”고 감싸는 변창흠 국토부 장관, 정권 아픈 곳은 감추고 덮기 바쁜 경찰에게 조사나 수사를 맡겨 본들 헛일이다. 검찰이 전 정권 적폐를 처단했던 그 엄정함으로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3.09 “검찰이었다면 벌써 LH 압수수색 했을텐데” 대검 직원의 한탄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혹 관련 지난 8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 설치를 지시한 가운데, 스스로 대검찰청 직원이라고 밝힌 인물이 투기 의혹 수사방법에 대해 작성한 글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글쓴이는 “만약 검찰이 (수사) 했다면, 아니 한동훈 검사장이 했다면 오늘쯤 국토부, LH, 광명시흥 부동산업계, 묘목공급업체, 지분쪼개기 컨설팅업체를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했을 것”이라며 “논란이 나온 지가 언제인데, 이제서야 범죄자인 국토부와 합동수사단을 만드느냐”고 지적했다.
◇대검 직원이 쓴 수사 기법 화제, “한동훈이 했다면 벌써 압수수색”
전날 직장인 익명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는 자신을 대검찰청 직원이라고 밝힌 한 인물이 ‘검찰 수사관의 LH 투기의혹 수사지휘’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스스로 생각한 수사방법을 밝혔다. 해당 애플리케이션은 소속 직원 여부를 기관 이메일로 인증한 뒤 아이디(ID)를 부여하고 있다.
글쓴이는 “앞으로는 검찰 빠지라고 하니 우린 지켜보는데, 지금까지 상황에 대해 한마디 쓴다”며 “이 수사는 망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뭐 대통령이 광명시흥 포함해서 3기 신도시 토지거래 전수조사하라, 차명거래 확인하라, 등기부등본이랑 LH직원 대조하라, 정세균 총리가 뭐 투기한 직원들 패가망신시켜라 이런 얘기하는데 이거 다 쓸데없는 짓”이라며 “헛짓거리”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발언을 인용해 “어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말씀하셨다”며 “‘공적(公的) 정보를 도둑질해서 국민에게 피해를 입히고 증거인멸할 시간 벌어준다' 이 발언에 답이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LH 직원들 투기의혹 지역
◇신도시 계획 관여 인물 위주 수사 강조
그는 “(현재로선) 전수조사는 필요 없다”며 신도시 계획에 관여한 인물 위주로 압수수색을 포함한 강제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수사 기법을 제시했다.
글쓴이는 “일단 두개팀 나눠서 이번 지구단위계획이 기안되고 중간결재, 최종결재되는 라인 그리고 이 정보를 공유했던 사람, 관련 지구계획 세부계획 짰던 사람, 2011년 보금자리 지정했다가 해제하고 이번에 다시 추진했던 결재라인, ‘다른 고양 남양주보다 광명이 적격이다’라고 결정했던 부서와 사람, 이 정보가 유출됐을 것을 감안해서 회사 내 메신저 이메일, 공문결재라인과 담당자 통신사실 1년치 이거 먼저 압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른 한팀은 최근 5년간 광명시흥 토지거래계약자들, 금융거래 압수수색해서 연결계좌 확인하고 돈이 누구한테 와서 토지거래 최종 된 것인지 도표 만들고 입금계좌 계속 따라가고 이렇게 투트랙으로 가다가 두팀 수사경과 보다가 (수사팀) 부장(검사)이 볼 때 일련의 흐름이 보이면 ‘야 여기다’ 하고 방향 설정하면 그대로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윗선 차명으로 빠져나가고 피라미만
그는 현재 정부 조사방식으로는 “선배들은 똑똑하게 차명으로 쏙 빠져나가고 후배만 다 걸릴 게 뻔하다”며 “피래미 직원밖에 안 나온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 뭐 서로서로 차용증 다시 쓰고 이자 지급 확인서 주고받고 이메일 삭제하고 하면 증거가 없다”며 “그거 논의하기 전에 (관계자들을 검찰 소환조사)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끝으로 “난 그렇게(압수수색) 준비하는 줄 알았더니 뭐 전수조사하고 차명거래 확인한다 해서 진짜 글렀구나 싶어서 답답함에 글을 쓴다”며 “검찰은 이런 거 하고 싶어하는 검사랑 수사관들 너무 많은데 안타깝다. 법치가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이정구 기자
03.09 LH 사태가 드러낸 검찰 개혁의 허망한 실상
지금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무실과 시흥·광명 신도시 예정지 및 주변의 땅을 산 LH 직원들에 대한 압수수색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3기 신도시 지역의 토지 거래 기록 확보에도 착수했을 것이다. 검찰이 예전처럼 주요 사건 수사를 책임지고 있다면, 정권이 정면 돌파를 결심했다면 이미 밟고 있을 수순이다. 그런데 현실은 국토교통부의 자체 조사에 머물러 있다. 사실상 수사는 시작도 안 했다. 경찰의 국가수사본부(국수본)에서 수사를 맡는다는데 1차 조사 자료가 국토부에서 넘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합동수사본부 만든다면서도 검찰은 배제
국민이 피해 보는 엉터리 개혁 실체 탄로
이 시간에도 증거는 속속 사라지고 있을 것이다. 직원들의 스마트폰이 새것으로 바뀌고, 문서들이 하나둘 파쇄기로 들어가고, 관련자들의 ‘입 맞추기’가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수사 지연은 증거 은닉·은폐를 부추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뒤늦게 호들갑을 떨며 여기저기 뒤지고 파헤쳐 본들 헛심 쓰는 꼴이 된다.
정부와 여당이 LH 직원 투기를 포함한 3기 신도시 건설 관련 비리를 발본색원하겠다는 뜻을 정말로 가지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검찰을 투입해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령 때문에 검찰에 전적으로 수사를 맡기기가 어렵다면 어제 정세균 총리가 만들겠다고 한 특별수사본부에 검사들을 파견 형식으로 넣으면 된다. 헌법에 따라 압수·체포·구속 영장은 검사만이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수사본부 밖에 검사가 있으면 강제 수사가 신속히 이뤄지기 어렵다. 수사 내용을 잘 모르는 검사가 영장 청구에 주저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정 총리는 국수본·국세청·금융위원회로 수사본부를 꾸리겠다며 검찰을 기어이 배제했다.
정부의 궁색한 입장이 이해는 된다. 검사를 투입하면 수사 주도권을 그들이 쥐게 되고, 결국 검찰 수사의 효과와 필요성을 입증하는 결과가 된다. 청와대·여당이 바라지 않는 그림이다. 일이 이렇게 꼬인 것은 ‘윤석열 검찰’ 괴롭히기에 매몰된 검찰 개혁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청와대가 제시한 수사권 조정 관련 시행령 초안에는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으면 이른바 6대 범죄에 속하지 않는 중요 사건에도 직접 수사에 나설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다. 그런데 보름 뒤 법무부가 이 시행령을 입법 예고할 때는 그 대목이 사라졌다. 추미애 장관 재직 때의 일이다.
조국·추미애 전 장관이 앞장섰던 검찰 개혁은 마구잡이로 진행됐다. 제대로 된 설계도가 없었고, 계획이 수시로 변경됐다. 일관성이 있었던 것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식물 만들기라는 방향뿐이었다. 그 결과가 전 국민의 공분을 부른 LH 사태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모습과 도대체 수사가 되고 있기는 하냐는 시민들의 원성이다. 엉터리 개혁의 실체가 벌써 탄로났다. 그에 따른 피해가 국민에게 고스란히 간다는 것도 드러났다.
중앙일보 사설
03월 09일 LH 투기는 文정권 ‘부패와 위선’ 축소판일 뿐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투기 파문은 문재인 정권의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약속했지만, 고위 공직자와 권력 실세(實勢)들부터 그 공약을 파기해왔다는 점에서, 윗물이 흐리니 아랫물이 맑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LH 직원들이 경기도 광명·시흥 등 3기 신도시 지정을 미리 알고 토지를 매입한 것은 ‘윗물’을 빼닮았다. 성범죄로 물러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공약했는데, 그 일가는 공항 부지와 가덕도 길목에 대규모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문 대통령 부인의 친구라는 손혜원 씨도 국회의원 시절 목포 구도심 개발 정보를 미리 알고 차명으로 부동산을 매입한 혐의로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된 현실은 더욱 국민 억장이 무너지게 한다. 일부 LH 직원들은 LH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거액의 대출을 받아 토지를 매입했다고 하는데, 김 전 청와대 대변인이 관사로 이사하면서 전세금에 대출까지 총동원해 흑석동 상가주택에 투자해 1년 만에 8억8000만 원의 수익을 얻은 것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다. 똑똑한 강남 1채를 고집했던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청와대 인사수석으로서 ‘뉴노멀’이라는 1주택 여부를 검증하다가 청와대를 나오자마자 오피스텔 2채를 매입한 조현옥 주독일 대사 등을 보면서 공직자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김조원 전 민정수석과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 등은 물론, 인사청문회에서 부동산 문제가 없었던 장관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이러니 LH뿐만 아니라 지역 공무원과 시의원 등이 투기 대열에 합류한 게 이상하지 않다. LH 직원 일부는 “우리는 투자도 못 하느냐”고 반문했다. 허위 인턴증명서와 고등학생의 의학 논문 저자 등록이 문제가 되자 “남들도 다 그렇게 한다”고 우기고, 증거인멸을 증거보전이라는 궤변을 쏟아낸다. 그래도 문 대통령은 ‘마음의 빚’ 운운했다. LH 직원들이 계획을 몰라서 땅을 샀는데, 갑자기 지정됐다는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뻔뻔함도 만연한 부패 의식과 위선적 태도가 아니면 설명하기 힘들다. 태양광 투자 등 다른 복마전도 수두룩하다. LH 비리는 문 정권 비리의 축소판이자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문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엄정히 이런 비리들을 척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화일보 사설
03.10 LH 직원 “한두달 지나면 잊혀질 것, 부러우면 이직하든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이 확산되는 가운데, LH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차명 투기하면서 정년까지 편하게 다닐 것. 부러우면 이직하든지”라는 글을 올려 공분을 사고 있다.
/블라인드
9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LH 직원으로 추정되는 A씨가 쓴 ‘내부에서는 신경도 안씀’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커뮤니티는 LH 소속 직원임을 인증한 사람만 글을 작성할 수 있다. A씨는 익명 게시판에 글을 올렸으나, 게시글 캡처 화면이 퍼지면서 논란이 됐다.
A씨는 “어차피 한두 달만 지나면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져서 물 흐르듯 지나갈 것이라고 (LH 직원들) 다들 생각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라며 “털어봐야 차명으로 다 (신도시 부지를 매입) 해놨는데 어떻게 (투기 증거를) 찾겠는가”라고 적었다. A씨는 “(국민들이) 아무리 화낸다고 하더라도 열심히 차명 투기하면서 정년까지 편하게 다닐 것”이라며 “이게 우리 회사만의 혜택이자 복지. 부러우면 우리 회사로 이직하든지”라고 했다. 이어 “공부 못해서 못 와놓고 꼬투리 하나 잡았다고 조리돌림한다”고 했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할말을 잃었다” “심각하다”는 반응을 내놨다. “KBS 시즌2인가”라는 반응도 있었다. 앞서 KBS 수신료 인상안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KBS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지난달 온라인 커뮤니티에 ‘밖에서 KBS 욕하지 말고 능력되면 입사하라’고 글을 올렸다가 KBS가 공식 사과한 바 있다.
▲지난 8일에는 LH 직원으로 추정되는 B씨가 동료들과 나눈 카카오톡 대화가 네티즌들의 공분을 샀다
.
당시 LH 본사에는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등에 소속된 농민 50여명이 기자회견을 열고 항의 집회를 벌였다. LH 직원, 그들의 가족 등이 매입한 땅의 98% 이상이 농지라고 알려지자 농민들은 “LH는 ‘한국농지투기공사’로 이름을 바꿔라”고 시위하는 중이었다.
이에 B씨는 사무실에서 집회 장면을 촬영한 사진을 올리면서 “28층이라 (층수 높아서 시위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린다. 개꿀”이라고 적었다.
▲지난 8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LH 직원으로 추정되는 이의 게시글. /블라인드조선일보 이세영 기자
03.10 LH 사태도 박근혜 정부 탓하려는 건가
▲청년진보당 관계자들이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 본부 출입문에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을 비판하는 문구가 인쇄된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LH 직원들 사기행각, 이게 문재인 정부에서 이야기한 평등한 기회인가’ ‘월세 내려고 50만원 벌 때, LH는 묘목 심고 수십억 꿀꺽!’ 등이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어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에 대해 “충격적인 소식에 실망감과 배신감마저 느꼈을 국민 여러분에게 고개 숙여 사과한다”고 말했다. 앞서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유감의 뜻을 밝혔고, 더불어민주당도 “정말 송구하다”(이낙연 대표)고 했다.
전형적인 물타기에 1주일 지나 압수수색
“하위직 몇 명 벌금으로 끝날 쇼” 조롱도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을 빼곤 정부·여당 수뇌부가 모두 나서 사과한 셈이지만 성난 민심을 달래기엔 역부족이다. 국민의힘은 물론 정의당도 “문 대통령이 실망하고 배신감을 느끼는 국민에게 마땅히 사과해야 한다”(심상정 의원)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집권세력이 공개적으론 “철저한 진상 규명”을 천명하지만 속내론 4월 재·보선을 앞두고 정치적 타격을 줄이기 위한 미봉책으로 급급하고 있다는 불신 때문이다. 그제 조사 대상 기간을 3기 신도시 입지 발표 5년 전인 2013년 12월 거래까지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정한 것도 의구심을 더한다. 박근혜 정부 1년 차부터 보겠다는 것인데, 문제가 된 3기 신도시는 문재인 정부 2년 차인 2018년 9월에야 처음 조성계획이 나왔다. 그해 12월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인천 계양 지구가 발표되고 이듬해 5월에야 고양 창릉, 부천 대장 지구가 공식화됐다. 이들 지역에서 토지 거래가 급증한 것도 그 무렵부터다. 박근혜 정부 때엔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위례·한강신도시 등 2기 신도시 입주가 마무리도 안 됐던 시점이다. 그런데도 굳이 박근혜 정부를 욱여넣었고, 여당에서 “오래전부터 계속 반복됐을 것”(김종민 최고위원)이라고 ‘물타기’했다. 부동산값 폭등이 박근혜 정부 탓이라더니 투기도 박근혜 정부 탓을 하려는 건가. 박근혜 정부 때의 잘못이 드러난들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다”(문 대통령)던 현 정부가 들어선 지 이미 4년여 아닌가. 염치없는 일이다.
사실 이번 사안에 대한 집권세력의 접근법은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다. 합동조사반이란 명목하에, 사실상 수사 대상인 국토부에 ‘셀프 토지거래 전수조사’를 맡겨 1주일을 허송했다. 합동특별수사본부를 꾸렸으나 조사 먼저 하고 수사한다고 했다가 여론의 반발이 계속되자 조사와 수사를 병행하겠다고 번복했다. 1주일이 지나서야 경찰이 LH 본사와 의혹을 받는 직원들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이러니 “LH 수사 망했다. 피라미 직원밖에 안 나온다. 윗선은 누락되고 유출한 놈은 살고 하위직 몇 명 벌금 때리고 끝난다. 다 쇼”(검찰 익명 게시판)란 조롱을 받는 것이다.
이제라도 문재인 정부의 명운을 진상 규명에 걸어야 한다. 특수본에 검사를 파견하는 등 국가의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감사원의 감사도 요청해야 한다. 부동산을 사상 최대로 폭등시켜 ‘투기공화국’을 만든 원죄가 있지 않은가.
중앙일보 사설
03월 10일 ‘꼬우면 입사해라’ 文정부 들어 더 무너진 공기업 윤리
공기업은 대부분 고임금에다 직장 안정성도 보장된다는 점에서 ‘신(神)의 직장’으로 불려 왔다. 이 때문에 선망의 직장이 됐지만, 낙하산 인사와 방만 경영, 노조 특권, 아래위를 가리지 않는 부패 문제 등이 끊이지 않았다. 역대 정권들이 공기업 개혁에 나섰음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만큼 공기업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 들어 그런 개혁 노력은커녕 오히려 역주행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대표적 공기업이다. 그런데 LH 분위기를 보면, 최소한의 윤리 의식도 사라진다는 우려를 낳게 한다. 회사 인증을 필요로 하는 직장인 커뮤니티에 9일 게재된 글은 상징적이다. ‘한두 달만 지나면 물 흐르듯 지나가겠지’ ‘차명으로 해놨는데 어떻게 찾을 거임?’ ‘혜택이자 복지인데 꼬우면 니들도 우리 회사로 이직하든가’ ‘공부 못해서 못 와놓고’ 등의 내용이다. 지난 8일 ‘한국농지투기공사로 이름을 바꾸라’는 시위에 대해 ‘28층이라 하나도 안 들림’이라 조롱하고, 지난 2일 ‘LH 직원은 투자하지 말라는 법 있나’라는 글도 올라왔다. 최근 KBS의 방만 경영이 논란이 됐을 때 ‘연봉 1억, 능력 되면 우리 사우님 돼라’라던 글과 같은 맥락이다.
최근 ‘그 남자는 차도 있고 집도 있어, 너는?’이라는 여성을 향해 남성이 ‘LH 다녀’라고 하는 블랙 유머가 많은 공감을 얻으며 전파됐다. 문 정부 들어 낙하산은 더욱 심해졌다. LH 이사회 임원 중 4명이 ‘캠코더’로 파악됐다. 연봉 1억 원에 달한다는 상임감사는 노무현재단 상임대표와 2012년 문재인 캠프 특보 출신이다. 김정호 비상임 이사는 문 대통령이 공동대표를 지낸 부산인권센터 운영위원을 지냈고, 전숙희 비상임 이사는 노무현시민센터를 설계했다고 한다. 지난 1월 감사원은 2019년 LH 재무제표와 관련해 ‘주의 조치’를 했다. “상장사였으면 상장 폐지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도는 수준이다.
문화일보 사설
03월 11일 양이원영 김경만 문다혜…권력층 ‘일탈’ 끝은 어디인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에서 시작된 투기 의혹이 여당으로 확산했다. 내부 정보 이용뿐만 아니라 권력형 비리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익명 커뮤니티에는 ‘여당 정치인들이 LH 측에 정보를 요구해 투기한 것을 봤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모친은 2019년 경기도 광명시 땅 66㎡를 지분 공유 형식으로 매입했다. 김경만 의원 부인은 2016·2018년에 시흥시 임야 179㎡·142㎡를 각각 구입했다. 광명·시흥은 신도시가 들어설 지역으로 지난달 발표됐다. 양·김 의원 모두 “몰랐다”면서 “팔겠다”고 했다. 양향자 의원은 기업 재직 당시이던 2015년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임야 3492㎡를 4억7520만 원에 매입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딸 다혜 씨를 둘러싼 의혹도 예사롭지 않다. 야당이 문 대통령 퇴임 후 사저 부지에 대해서 불법 매입·편입 의혹을 제기하는 와중이다. 다혜 씨는 태국에 거주 중인 것으로 알려졌던 2019년 5월 서울 양평동의 다가구주택을 7억6000만 원에 매입했다가 지난달 5일 9억 원에 되팔았다고 한다. 그 사이 서울시는 주변을 지구단위 계획구역으로 지정했다. 거주하지 않은 주택을 사고팔아 1년9개월 만에 1억4000만 원의 시세 차익을 얻은 셈이다. 이미 LH 직원 수십 명, 광명·시흥시 등 공무원, 시의원, 국회의원 등이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고 있다. 이들은 본인·가족 실명으로 구입한 사람들이다. 차명 거래한 진짜 ‘꾼’들은 드러나지도 않을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은 LH 의혹이 터진 직후인 지난 4일 “개인적 일탈이었는지, 뿌리 깊은 부패 구조에 기인한 건지 준용해서 발본색원하라”고 지시했다. 어느 쪽이든 정권 책임에선 비켜 나가는 논리다. 10일 여당 원내대표단과 만나서도 “공직자의 투기는 공정과 신뢰를 무너뜨리는 비리”라고 했다. 공직자 투기가 없었던 적은 없지만, 문 정권 들어 권력층의 부동산 일탈은 유독 심각하다. 최소한의 염치라도 있다면, 그 문제부터 사과해야 할 텐데, 남 얘기하듯 말한다. 검찰과 감사원을 이번 조사·수사에서 배제한 것도 권력형 투기범은 봐주겠다는 신호가 아닌지 의심될 정도다.
문화일보 사설
03.11 무섭게 확산되는 공직자 땅 투기 의혹, 수사본부에 검사 한 명도 없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에서 시작된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공무원, 지방 공기업 등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 가족과, 광명·시흥시 공무원 14명이 신도시 예정지와 인근에 땅을 매입한 사실이 확인됐고, 지방 공기업 직원들의 투기 의혹도 적발됐다고 한다. 경찰 수사는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각 기관의 자체 조사나 제보, 언론 취재를 통해서 드러난 것만 40명에 육박한다.
이것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3기 신도시 후보지 발표 직전 경기 남양주와 하남·인천 등지에서 이뤄진 토지 거래 중 딱지를 노린 이른바 ‘지분 쪼개기' 비율이 42%에 달했다. 하남 교산 지구는 3개월간의 거래가 100% 지분 쪼개기였다. 내부 정보가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4 공급 대책 등에서 신규 공공택지로 지정된 광주광역시와 대구, 부산 등지에서도 택지개발 허가가 나기 직전에 투기 의혹이 짙은 거래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종시의 국가산업단지 예정지 일대엔 보상을 노리고 급조한 조립식 주택 100여채가 흉물스럽게 늘어서 있다.
이들이 땅 짚고 헤엄치기로 돈을 벌고 있는 사이 서민과 청년 세대는 내 집 마련 꿈을 포기하고 절망에 빠졌다. 그런데 정부 대처는 이해할 수가 없다. LH 직원들에 대한 폭로가 나온 지 일주일 후에야 경찰의 압수수색이 시작됐다. 이미 증거 자료는 상당 부분 사라졌을 것이다. 뒤늦게 경찰 중심으로 770명 규모의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기로 했지만 지능형 경제범죄 수사의 노하우를 보유한 검찰은 철저히 배제됐다. 수사본부에 검사는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정권의 눈은 수사가 아니라 선거에 가 있을 뿐이다.
조선일보 사설
03.11 불공정 난장판 만든 文이 “공정” 운운, 공정 가치에 대한 모독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LH 사태 책임자인 변창흠 국토부 장관 경질 여론에 아무 언급을 하지 않았다. 예견된 일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LH 사건이 “우리 사회의 공정과 신뢰를 바닥으로 무너뜨리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취임 이후 나라를 ‘불공정' 난장판으로 만들어온 장본인이 ‘공정’을 강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다. 작년 9월 청년의 날 기념식에선 무려 37번이나 ‘공정’을 말했다. 하지만 이 정부에서 실제 일어난 일은 정확히 그 반대다. 조국 전 법무장관의 자녀는 허위 인턴 증명서와 위조 상장, 논문으로 대학에 들어가고 의사까지 됐다. 세상에 이런 불공정이 있나. 그런데 문 대통령은 “조국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했고 여권은 온갖 궤변으로 조국을 감쌌다.
추미애 전 장관 아들은 일반 병사들은 상상할 수 없는 휴가 특혜를 누렸다. 대통령을 ‘재인이 형’이라 불렀다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은 명백한 비리 의혹이 적발됐지만 정권 실세들이 모두 나서 무마해 줬다. 오히려 자리 영전까지 시켰다. 민주당 윤미향 의원은 위안부 할머니를 이용해 돈을 챙기더니 배지까지 달았다. 그러면서 정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 딸 가족의 해외 이주를 도운 이상직 의원은 수백억원대 횡령·배임 혐의에다 직원 임금 체불과 대량 해고 사태까지 일으켰지만 수사도 제대로 안 받고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선거 공보물에 명백한 허위 사실을 넣은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검찰은 그 이유도 밝히지 않았다. 비슷한 혐의로 고발당한 다른 의원 14명은 기소되고 이 중 8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대통령 친구를 당선시키려고 경쟁 야당 후보가 공천받는 날 경찰이 그 사무실을 덮쳐 압수 수색을 했다. 이게 문재인식 공정인가.
산업부 공무원들은 월성 원전 경제성을 조작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휴일 한밤에 자료 파일 수백 건을 삭제했다. 그런데 총리는 그런 산업부를 찾아가 상을 줬다. 대통령은 산업부에 차관 자리를 3개로 늘려주겠다고 했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 운전사 폭행 사건을 덮으려 했던 서초경찰서는 최근 일선 경찰서 성과 평가에서 최고인 ‘S등급’을 받았다. 정권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면 상을 받는다. 민주당 잘못으로 치르는 선거엔 후보를 내지 않겠다는 당헌을 만들더니 민주당 시장들 성범죄 선거가 생기자 당헌을 없애고 후보를 냈다. 그 선거를 이기겠다며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새 공항에 28조원을 쏟아붓겠다고 한다. 재난지원금도 선거에 이용하고 있다. 대통령이 선거 중립 의무를 가장 먼저 어긴다.
박원순 자살에 민주당은 ‘임의 뜻 기억하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서울 전역에 걸었다. 피해자가 그것을 보고 어떤 심정이 들었겠나. 문 대통령은 그 피해자 앞에서 “공정” 운운해 보라. 관련 범죄 혐의자는 전원 면죄부를 받았다. 박원순에게 피소 사실을 알려준 사람이 누군지 아직까지 오리무중이다. 이 모든 범죄 혐의에 대한 수사를 대통령 수족 검사 한 명이 길목을 막고 방탄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고도 그 입에서 “공정”이 나오나.
정부가 부동산과 전쟁'을 선포했을 때 청와대 대변인은 부동산 투기를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최근 의원직 쪼개기라는 신종 수법으로 국회의원까지 됐다. 선거 때 다주택 후보는 집을 팔겠다는 공개 서약을 하고서 선거 뒤 무시했다. 알고 보니 청와대와 내각에 다주택자투성이였다. 지금 민주당 양이원영 의원과 김경만 의원, 양향자 의원의 투기 사례도 드러나고 있다. 문 대통령이 ‘공정'을 입에 올리는 것부터가 공정에 대한 모독이다.
조선일보 사설
03.12 대통령의 LH 엄포가 공허한 까닭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는 카이사르를 “사익을 공익과 교묘하게 결부짓는 능력의 소유자”라고 평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카이사르는 대대장이나 백인 대장들한테 돈을 빌려 병사들에게 보너스로 준다. 총사령관의 선심에 감격한 병사들이 충성을 바치는 것은 당연지사. 지휘관들은?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태가 생기지 않도록 역시 열심히 싸웠다. 요즘 같았으면 영락없는 독직(瀆職) 행위지만, 그때야 그런 기준이 있었겠나. 나름 일석이조 묘수다.
정치 무능·위선 속 각자도생 판쳐
공익과 사익 경계는 갈수록 흐릿
오염된 공정 언어가 먹힐 수 있나
2000여 년을 격한 지금 한국 사회는 반대로 공익을 사익으로 연결하는 능력들이 경이롭다. 선거를 앞두고 이런저런 명목으로 세금을 뿌리는 행위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얼마 전 선거 중립 의무가 있는 대통령이 가덕도 앞바다에서 “가슴이 뛴다”고 한 것도 그 예가 되리라. 카이사르와 차이는 있다. 공·사익을 연결하는 방향도 반대지만, 솜씨도 한 수 아래다. 너무 속 들여다보이는 짓이어서 ‘교묘하다’고 하기는 힘들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혹에 대해 연일 비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용납할 수 없는 비리 행위’ ‘발본색원’ 등 어휘도 강도 높다. 전매 특허 같은 ‘공정’이란 말도 동원했다. 그러나 어딘가 공허하다. 물에 기름 뜨듯 겉도는 느낌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익과 사익의 경계가 흐릿하다 못해 아예 섞어 버렸던 여당과 측근들의 행태는 한 번도 제대로 짚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손끝의 곪은 종기 하나 짜내지 못하면서 마치 남의 일 이야기하듯 국책 공기업에 엄포를 놓는 게 국민에게 먹힐까.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문제가 생기면 일단 장관부터 날리고 시작했다. 정치적 쇼맨십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지금 국민의 분노는 그런 희생 제의라도 바라고 있는지 모른다.
대통령은 얼마 전까지 LH의 책임자였던 변창흠 국토부 장관에게 “문제를 대단히 감수성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시했다.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걸까. “국토부가 가덕도 공항에 반대하는 것처럼 비쳐 죄송하다”고 했던 것처럼 “LH에 비리가 있는 것처럼 비쳐 죄송하다”고 넘어가라는 건가. “(스크린도어 사고를 당한) 걔만 신경을 썼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될 수 있었을 텐데”라는 발언의 주인공에게 어떤 감수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번 사태를 보며 유독 걸리는 대목이 있다. 익명성에 기댄 일부 LH 직원들의 반응이다. “이게 우리 회사만의 혜택이자 복지인데, 꼬우면 우리 회사로 이직하든가.” 복종과 일상에서 악이 평범해지듯, 선민의식과 관행 속에서 윤리 감각이 마비됐다. 고구마 줄기보다 더 얽혀 튀어나오는 투기 의혹이 그 증거다. “여당 정치인들이 우리 쪽에 정보를 요구해 투기한 것도 봤다. 왜 우리만 갖고 X랄하나”는 반응도 있었다. 현 정부 부동산 정책 설계자는 분명 “부동산은 끝났다”고 했는데, 이 무슨 아수라장인가.
청계재단, K재단·미르재단. 공익을 빙자한 사익이라고 비난받았던 전임 정부의 유적들이다 문재인 정권은 이런 유산을 극복하겠다는 호기로 출발했다. 기대가 배신감으로 변하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온갖 기득권으로 ‘가족 사랑’을 실천한 장관 일가, 아들의 군 휴가 특혜 시비에 휘말린 후임 장관, 정의라는 이름으로 위안부 할머니를 이용한 시민운동가, 개발 정보를 이용한 관광지 투자를 문화유산 보호라고 우긴 여당 의원. 대통령이 그런 측근에 대해 ‘마음의 빚’이 있다고 고백한 순간, 공정이란 말은 오염돼 빛을 잃었다.
다락처럼 오른 집값, 말라버린 일자리에 질린 사람들은 국가가 내 삶을 책임질 수 없다는 걸 이미 깨달았다. 정부가 능력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는데, 반복되는 헛발질을 보노라니 이젠 의지마저 의심스럽다. 절박해진 사람들은 4자 진언(眞言)을 외운다. 각·자·도·생. 이 길에선 공익-사익의 경계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커진 정부에서 기회도 커졌다. 기회는 찬스다.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03.12 “패가망신” 엄포 놓더니 고작 7명 추가, 입으로만 하는 LH 조사
정부 합동 조사단이 국토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 1만4000여 명을 1차 전수 조사한 결과, 3기 신도시 예정지에 땅 투기 했다는 의심자 7명을 추가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민변과 참여연대가 광명·시흥지구 전체 면적의 0.2%만 조사해 13명을 찾아냈는데, 정부는 6개 부처·기관이 동원됐는데도 고작 7명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청와대도 “비서관급 이상 간부들을 전수 조사한 결과, 투기 의심 거래는 없었다”고 발표했다. 이를 믿을 국민은 없을 것이다.
애초 정부가 검찰이나 감사원에 맡기지 않고 투기 의혹의 주범 격인 국토부를 앞세워 ‘셀프 조사’ 하겠다고 할 때부터 예상됐던 결과였다. 합조단 조사는 국토부·LH 직원들에게 정보 제공 동의서를 받은 뒤 신도시 지역 내 토지 소유자와 명의가 일치하는지만 대조한 겉핥기 조사에 불과했다. 남의 이름으로 한 차명 거래는 물론 배우자나 부모·자녀, 형제 명의의 땅 매입은 아예 조사 대상조차 아니었다. 하나 마나 한 조사인데도 서둘러 발표부터 했다. 그래 놓고 “걸리면 패가망신” 운운하며 입으로만 엄포 놓고 있다.
LH 에서 시작된 땅투기 의혹은 전국적으로 번져 국회의원과 공무원, 지방 공기업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각 기관의 자체 조사나 제보, 언론 취재 등으로 드러난 것만 40명에 육박한다. 3기 신도시 후보지 발표 직전 경기도 남양주와 하남 등지에서 전형적인 투기 수법인 ‘지분 쪼개기’ 거래가 전체 토지 거래의 42%에 달했다고 한다. 하남 교산 지구는 3개월간의 거래가 몽땅 지분 쪼개기였다. 신도시 정보가 새어 나갔다는 의미다. 민주당 의원 모친, 배우자 등도 ‘지분 쪼개기’ 신도시 땅을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뿐이겠나.
정부가 미적대는 사이 수사의 골든 타임은 다 놓치고 있다. 770명 규모의 합동수사본부를 꾸렸지만 1·2기 신도시 투기 수사를 맡아 수백 명의 투기꾼을 구속했던 검찰은 아예 배제시켰다. 경찰은 LH 직원들의 땅 투기 폭로가 나온 지 일주일이 지나서야 압수 수색에 나섰다. 증거 인멸 시간을 준 것이다. 이미 “이 수사는 망했다”는 소리가 나왔다.
정부는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찰에 맡길 수 없다지만, 바뀐 제도로도 얼마든지 검찰이 수사할 수 있다. 국회의원과 공무원 연루 의혹이 속속 불거져 나오지 않나. 진짜 의도는 선거에 불리한 LH 사태의 파장을 축소하려는 생각뿐일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3월 12일 검찰 수사권 뺏으니 ‘진짜 도둑’ 발 뻗고 자는 나라 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에 대한 조사·수사가 예상대로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가 되고 있다. 정부가 말로는 ‘패가망신’‘발본색원’ 엄포를 놨지만 수십 년 전 검찰이 주도한 1·2기 신도시 투기 수사 때보다 수사 역량과 방향에서 모두 퇴행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의 ‘검찰 수사권 뺏기’ 차원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 검찰을 배제하다 보니 언론 취재와 시민단체 조사만도 못한 결과를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합동조사단이 11일 국토교통부와 LH 직원 1만 4000여 명을 전수조사한 결과라며 내놓은 땅 투기 의심자는 달랑 7명에 그쳤다. 민변이 폭로한 13명을 합쳐 20명이다. 청와대는 비서관급 이상 전수조사한 결과 한 명도 없다고 했다. 뭔가 한 것처럼 보이려는 쇼에 불과하다. 수도권 8곳 신도시 예정지의 토지소유자와 조사 대상자 명단을 대조하는 단순 조사 방식인데, 진짜 투기꾼은 그렇게 실명으로 하지 않는다. 이번 방식으로 적발된 20명은 순진하거나 투기 초보자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언론이 현장 확인을 통해 취재한 것만 40여 명에 육박한다.
전문가들은 돈 되는 땅을 조사하고 매입자금을 따라가야 하며, 신도시 지역이 아닌, 이익이 더 큰 인근 지역까지 뒤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수사를 총괄하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도 수사 의지와 역량부터 의문이다. 사실상 정부가 건네준 조사 결과를 놓고 수사하겠다는 것인데, 그래선 진짜 투기꾼 근처에 가기도 힘들 것이다. 압수수색 영장도 일주일 만에 발부받아 증거인멸의 시간만 줬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검찰 수사권을 뺏어 놓고 “수사권이 있을 때는 뭐 했느냐”고 되레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엉터리 검찰개혁으로 국가 수사 역량이 얼마나 붕괴하는지 드러나고 있다. 투기 수사도 이 지경인데, 권력형 범죄나 금융 범죄 등 고난도 수사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미 울산 선거공작, 원전 경제성 조작, 옵티머스·라임 펀드,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등 수사는 흐지부지 조짐을 보인다. 거악(巨惡) 범죄자들이 발 뻗고 자는 나라가 되고 있다.
문화일보 사설
03.15 신속하고 제대로 된 LH 수사로 추가 비극 막아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두 명이 잇따라 숨졌다.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 사건과 관련한 극단적 선택으로 추정된다. 두 사람 모두 정부가 전수조사로 밝혀낸 투기 의혹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면서 700명 이상을 투입한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의 역량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LH 관계자 둘 잇따라 극단 선택
경험 많은 검사 투입해 보완하길
대형 비리 사건을 많이 수사했던 전직 검찰 고위 간부는 “신속한 수사로 혐의자를 분류해야 하는데 변죽만 울리면서 시간을 끌면 오히려 관련자들의 불안감을 키우게 된다”고 분석한다. “위법행위가 빨리 특정되면 변호인의 도움을 받아 처벌 가능성과 형량을 파악하게 돼 과도한 염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전문가 얘기도 비슷한 취지다. 현재 의혹이 제기된 ‘사전 정보를 활용한 투기’의 경우 유죄 판결을 받아도 형량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 수준임을 고려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폭로 이후 13일이 지났지만, 정부의 대대적인 합동조사 결과는 초라하다. 참여연대 등이 제보를 바탕으로 일부 지역만 조사해 찾아낸 의혹에서 고작 7건을 추가했다. 시민단체만도 못한 수사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발본색원하라”고 지시했다. 정세균 총리는 “LH 임직원은 실제 사용 목적 이외의 토지 취득을 금지하겠다”고 했다. 말로는 엄정한 대처를 강조했지만, 실상은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이번 사태에 막중한 책임을 느껴야 할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계속 버티다 전 LH 전북본부장이 사망한 날에야 사의를 표명했다. 합동조사가 부실하다는 지적에도 귀를 닫고 있다.
지금까지 대형 부동산 투기 범죄 수사는 검찰이 지휘해 왔다. 그만큼 전문성이 축적됐다. 한데 검찰이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최적화된 수사 역량을 십분 활용하지 않는다. 합동특별수사본부에 유능한 검사들을 대거 투입해 경찰과 협력해서 혐의를 추적하는 방식은 현행 제도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 수사권 조정 직후임을 고려하면 시행령을 일부 수정해 문제를 보완하는 방식도 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를 비롯해 여당에서 특검 수사 주장이 나오는 것만 봐도 합동특별수사본부의 역량이 신뢰받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특검 수사는 수사와 기소가 한 몸처럼 움직인다. 특히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와 검찰 수사관이 핵심 역할을 한다.
여당에서조차 수사력 강화가 절실하다고 느낀다면 더는 정쟁에 매몰되거나 명분에 집착해 실기해선 안 된다. 검찰과 경찰을 망라해 가장 뛰어난 역량을 지닌 검사와 수사관을 투입해야 한다. 그래야 추가 비극도 막을 수 있다. 지금은 이제 막 수사권을 갖게 된 경찰에 수사 실습과 지휘 훈련을 시킬 때가 아니다.
중앙일보 사설
03.15 혀 내두르게 하는 與 의원들의 부동산 재테크
이용득 민주당 상임고문이 국회의원이던 2019년 배우자 명의로 서울 재개발 구역의 도로를 7억원에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도로는 거주할 수도, 임대를 줄 수도 없지만 재개발 때 분양권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전문 투기꾼 뺨치는 수법이다. 일반인이라면 이런 제도가 있다는 것 자체를 알지 못할 것이다. 노총 위원장을 지낸 이 고문의 가족은 도로 매입 당시 아파트와 주택, 오피스텔 2채, 상가 4채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재개발 도로에까지 돈을 묻었다. 노동 운동을 했다는 정치인의 부동산 탐욕이 혀를 내두르게 한다.
LH 사태 이후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는 민주당 의원은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6명이다. 양이원영 의원은 모친이 신도시 인근 땅을 ‘지분 쪼개기’ 방식으로 구입한 데 이어 땅값도 최대 9분의 1로 줄여 신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양향자 의원은 배우자와 함께 신규 택지 인근 토지를, 김경만 의원의 배우자는 신도시와 가까운 임야를 매입했다. 부천이 지역구인 서영석 의원은 도(道)의원 시절 부천 신도시 부근 땅과 건물을 지인과 사들였다. 김주영 의원(김포갑)의 부친은 화성 뉴타운이 있는 땅을, 전남이 지역구인 윤재갑 의원의 배우자도 평택 논을 보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윤 두 의원의 땅은 수십 명이 공동 소유한 ‘쪼개기’ 형태였다.
이들은 논란을 빚자 약속이나 한 듯 “나는 몰랐다” “신도시와 무관하다”고 했다. “가족이 속은 것 같다”며 피해자 행세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 땅 대부분은 신기할 정도로 신도시 등 개발 지역과 가깝다. 무슨 ‘신내림’이라도 받았나. 집 지을 땅이라면서 도로와 떨어진 ‘맹지’를 사기도 했다. 정상적인 투자라고 보기 힘들다.
수도권의 민주당 소속 지방의원들도 신도시 발표 전에 땅을 샀다고 보도됐다. 야당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불거진 투기 의혹은 유독 여당에 집중되고 있다. 왜 그런가. 수도권 신도시 계획처럼 돈이 되는 정보는 권력을 가진 쪽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지금 민주당은 2016년 총선을 시작으로 대선·지방선거·총선에서 연거푸 승리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선 수도권 지방의회를 90% 이상 장악했다. 국회도 맘대로 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조선일보 사설
03월 15일 文정부가 만들고 키운 LH 사태
이민종 산업부장
불공정·신종 부패의 폐해 노출
公的 정보 악용 私益 추구 급급
불안 심리 팽배 청년·서민 우롱
국민 복리 증진할 기본도 망각
정부 부동산 정책 신뢰 치명타
금융거래 추적 규명·수익 환수
지난해 6·17대책에도 불구하고 서울·수도권 집값 상승과 전세 품귀 현상이 나타났을 때, 문재인 정부 주택정책 실패의 문제점을 오적(五賊)으로 요약해 이 난에 소개한 적이 있다(2020년 7월 8일). 다섯 도둑은 ‘뒷북 정책과 무능’ ‘과도한 규제와 시장 왜곡’ ‘다주택자 관료·의원의 불공정성’ ‘공급 부족’ ‘투기꾼’이었다. 불행히도 8개월 만에 기우나 허언을 한 게 아니었음을 확인하게 됐다. 조금씩 실체가 드러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투기는 부패와 불공정을 함축하고 있다. ‘이게 나라냐’라고 5년 전 외쳤던 민심이 ‘이건 나라냐’라고 들끓는 도화선이 됐다.
내부 공적 정보를 발 빠르게 악용한 투기 의혹은 비단 LH 직원에 머물지 않을 태세다. 11일 정부 합동조사단이 1차 전수조사 결과 수사 대상자를 LH 직원 20명이라고 했지만, 빙산의 일각이라는 데 이의가 없는 흐름이다. 신도시 땅을 매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LH 직원이 추가로 또 무더기로 있다. 광명·시흥시, 포천시, 여야와 지방의회 등 정치권 인사와 그 가족들의 땅 매입을 둘러싼 이면에 ‘시한폭탄’ 성격의 의혹이 숱해 보인다. 앞서 지난해 고위공직자 재산신고를 본보가 살펴봤더니 3기 신도시 노른자위에 땅을 가진 전 고위공직자, 기초단체장·광역의원만 11명으로 파악됐다.
‘영끌’ 주택 매입이 보여주듯 10∼20년 후를 보는 청년층, 서민·중산층의 불안한 미래심리는 최고조에 달해 있다. 대기업 64%가 채용계획도 못 세울 정도로 고용 전망은 시계 제로이고, 실업률은 치솟은 상태다. 24차례에 걸친 반(反)시장적 정책에 따른 집값·전셋값 폭등, 맞벌이 부부를 절망에 빠뜨리는 열악한 보육환경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런 와중에 개발정보를 사전에 인지하지 않았다면 엄두도 못 낼 수십억 원대 대출을 통해 땅을 사들이고 지분을 쪼개 보유하고 보상금을 더 받겠다고 촘촘하게 묘목을 심었다. 공정성에 비수를 꽂는 행위라는 표현은 차라리 점잖은 수사 아닌가.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명백한 부패행위다. 국민 혈세를 받는 이들이 공공복리에 활용돼야 할 국가, 공적 정보와 권한, 권력을 사적 이익의 증대·편취에 활용했다. 더 충격적인 일은, 그런 사실에 둔감하거나 아예 자신들이 누려야 할 특권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가 없다는 사실은 고금의 진리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규제 만능주의, 오도된 정책적 판단만으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고 세금을 동원해 미봉하는 정책에만 몰두했다. 투기를 근절할 의지가 없었다는 점도 드러나고 있다. 2019년 말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이미 LH 직원 땅 투기 의혹을 고발하는 글이 올라왔지만, 민정수석실은 ‘패싱’했다고 한다. 그래 놓고 난파선에 쥐 끓듯 문제가 터지자 뒤늦게 발본색원이니 호들갑을 떨고 있다.
해법과 대응은 이미 나와 있다. 실행해야 신뢰를 얻는다. LH와 국토교통부의 관리·부실에 대해선 머뭇거리지 말고 강도 높은 문책, 경질 조치를 해야 한다. 투기 대상자들이 속으로 코웃음을 칠 ‘자발적’ 전수조사는 시간 낭비다. 친인척이나 지인 명의를 빌리거나 법인 명의로 개발 예정지의 땅을 사들인 행위를 찾기 위해 조사 대상 범위를 확대하고 검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투입해 매입자금을 쫓을 수 있도록 금융거래 내역에 대한 정교하고 신속한 조사,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 투기 수익은 법·제도를 정비해 모두 거둬들여야 한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 곧 망각할 것이란 대한민국의 ‘법칙’이 재현되는 한 이 망국적 투기 행태는 결코 뿌리 뽑을 수 없다.
차제에 부동산 정책에 대한 획기적 전환도 시도해야 한다. 노태우 정부 시절 토지공개념 3법을 추진한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은 회고록 ‘명(明)과 암(暗) 50년-한국경제와 함께’에서 “많은 부동산 정책이 있었지만 대부분 규제적 성격이었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 규제적 대책을, 하락하면 완화책을 내놓았다. 부동산 정책을 경기정책의 수단으로 쓰면서 온탕냉탕을 반복해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왔다. 이런 식의 정책은 그만둬야 한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문 정부는 계속 거꾸로 가고, 국민 주택 고통도 커질 것 같다.
문화일보
03월 15일 ‘LH 국가범죄’ 검찰이 수사해야 한다
김상겸 동국대 교수·헌법학
현 정부에 들어 가장 큰 이슈는 부동산 가격 폭등이다. 끝도 모르게 오르는 부동산 값을 보면서 많은 국민은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일부 직원의 3기 신도시를 중심으로 한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이 발생했다. 아직 수사가 본격 진행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투기 의혹 대상자의 규모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LH 내부에서 극단적 선택자가 나올 정도여서 의혹은 더욱 커질 것 같다.
신도시 투기 사건은 과거 1, 2기 신도시 때도 있었다. 시간이 흘렀고 국가도 발전하고 사회도 변했으며 정부도 바뀌었는데 투기 의혹 사건이 발생했으니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신도시 건설은 국가의 국토개발계획으로 국민을 위한 것인데, 사전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 투기로 사욕을 채운다면 그런 계획은 안 세우는 게 국민을 위하는 길이다.
이번 사건이 과거와 다른 점은, 토지 개발과 주택의 공급 등을 주 업무로 하는 LH가 진원지라는 데 있다. LH는 법에 따라 설립된 공공기관으로, 자본금은 전액 정부가 출자했고 정부를 대신해 업무를 수행하므로 국가기관에 준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다. 비록 LH의 일부 직원이 투기 의혹을 받고 있다지만, 국민의 신뢰가 추락한 만큼 사건의 규모나 구체적 내용을 밝혀내야 한다.
정부 합동조사단이 국토교통부와 LH를 전수조사한 후, 투기 의심자 등을 대상으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중심이 된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가 수사하고 있다. 국가적 의혹 사건인 만큼 국가 수사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 부동산 투기 사건은 해당 부동산뿐만 아니라 인근 부동산을 전부 조사하고 관련 자금추적을 신속하게 해야 한다. 부동산 투기는 차명도 많으므로 진상을 밝히려면 수사 의지만으론 안 된다. 다양한 수사 기법과 축적된 경험 및 관련 법과 제도에 대한 이해 등 폭넓고 체계적인 수사 역량이 필요하다. 시민단체들도, 공직자들의 개인정보도 수사하고 자금추적을 신속하게 해야 하는 투기 사건의 특성을 보면 전문 수사기관인 검찰이 주도하고 경찰이 함께 참여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검찰이 배제된 가운데 합수본이 수사하고 있다. 하지만 신도시 건설계획을 악용해 부동산 투기한 사람들은 법망을 피해갈 모든 방법을 동원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번 사건은 신도시 부동산 투기 사건에 경험이 많은 검찰이 수사해야 한다. 여당 일각에서도 검찰 투입 또는 특검을 실시해야 한다는 등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부동산 투기 의혹이 아니라 국가계획을 도둑질해서 사욕을 채우는 국가범죄 사건이다. 우리 사회가 부동산 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국가의 부동산 개발 정보가 이해 당사자들을 통해 사전에 유출돼 이렇게 악용되기 때문이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수사해 투기자들을 엄벌하고 불법이익을 전부 환수해야 한다.
검찰개혁은 수사권 폐지가 아니라 정치적 중립과 독립이다. 검찰의 수사권 배제는 국가작용의 효율성이란 측면에서도 헌법에 합치된다고 보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LH 일부 직원만의 투기인지, 이와 함께한 투기 세력은 없었는지 검찰의 경험을 활용해 수사해야 한다.
문화일보
03.16 투기 책임이 과거 정부와 검찰에 있다는 억지
▲3기 신도시 투기 사태의 파장이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15일 오후 충북 청주시 LH 충북 지역본부 앞에서 청주청년회가 '청년은 월세 전전 LH는 투기 전전'이란 피켓을 들고 땅 투기 전수조사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김성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이 정부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 그 책임을 마치 과거 정부에 돌리는 듯한 발언을 했다. 문 대통령은 신도시 투기 사태에 대해 “우리 정치가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문제”라면서 “(부동산 적폐 청산은) 우리 정부를 탄생시킨 촛불정신을 구현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 “투기는 오랫동안 해결못한 문제”
추미애는 검찰 탓, 박범계는 들러리 세워
문 대통령은 “정치권은 이 사안을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LH 사태의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바로잡는 역할을 맡겠다는 프레임을 짠 것이다. 앞서 14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부동산 시장의 부패 사정이 제대로 되지 못한 데는 검찰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책임을 검찰에 돌렸다.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의 파장이 커지자 최근 여권에서는 이처럼 반성하고 책임지겠다는 태도는 실종되고 면피성 억지와 궤변이 난무하고 있다. 급기야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갑자기 투기 관련 특검 도입을 주장해 초점 흐리기라는 지적도 받았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어제 행보도 느닷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박 장관은 ‘3기 신도시 부동산 투기 의혹 사태 대책’을 논의한다면서 전국 고검장 간담회를 소집했다. 투기에 대한 대응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적어도 이날 간담회는 형식과 의도 면에서 어색했고 충분히 공감을 얻기 어려워 보였다.
검찰의 수사권을 빼앗아 놓고 검찰을 투기 수사에 들러리로 세우려는 의도라는 불만이 당장 검찰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인사권을 쥐고 있는 법무부 장관이 조남관(대검 차장) 검찰총장 직무대행을 건너뛰고 일선 고검장들을 소집해 군기 잡는 모습을 연출한 것도 이례적이고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박 장관이 다녀간 날 대검에 ‘부동산 투기 수사 협력단’을 설치하고, 앞으로 검사들은 경찰 주도의 LH 수사 과정에서 영장 청구 등 지원 업무를 맡는다고 한다. 이미 경찰 주도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부동산 투기 사범 특별수사단을 가동 중인데 뒤늦게 검찰을 지원 인력으로 참여시키는 것이 얼마나 효율적일까. 과거 1, 2기 신도시 투기 사태 당시 수사 성과와 경험이 풍부한 검찰의 전면 수사가 없는 상황에서 거대한 투기 집단의 실체를 제대로 찾아낼지도 의문이다.
어떤 일이든 제대로 권한과 역할을 주고 사후 책임을 묻는 것이 순서다. 권한을 빼앗고 책임만 묻는다면 누구도 수긍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검찰 개혁을 내세워 검경 수사권을 조정하면서 투기 범죄 수사 전문가 집단인 검찰에게서 수사의 칼을 빼앗았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과 국회의원 등의 신도시 투기 책임이 검찰에 있다고 여론몰이에 열을 올리니 누가 공감하겠나.
중앙일보 사설
03.16 “수입 없는데 건보료까지 내라니…” 은퇴자 1만8000명 한숨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대폭 오르면서 은퇴자 1만8000 명이 오는 11월부터 매달 건강보험료 평균 12만원을 새로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그동안 집 1채를 재산으로 갖고 있었고, 이 집 공시가가 상대적으로 비싸지 않아 자녀 건강보험에 이름을 같이 올릴 수 있었지만, 공시가가 오르면서 더 이상 이런 지위를 유지할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15일 공개한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안(案)에 따르면 이 같은 은퇴자를 포함, 공시가 상승으로 건보료가 인상되는 집단은 127만1000가구다. 반면 재산 공제 폭을 추가하면서 237만3000가구는 건보료가 떨어진다.
▲공시가격 오르면 건보료 얼마나 오르나
◇강남 아파트 보유자, 매달 1만원 올라
15일 국토교통부·기획재정부·행정안전부·보건복지부 등이 발표한 ’2021년 공동주택 공시가격안'에 따르면, 올해 공시 대상 공동주택은 1420만5000가구다. 공시가격은 작년보다 19.08% 상승한다. 정부가 시세 반영이 낮은 공시가격을 현실화하기로 해 공시가 상승 폭이 커졌다. 문제는 공시가 상승에 따라 건보료가 연계되면서 충격이 커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부산 북구 전용면적 84㎡짜리 A아파트 보유자는 이번에 공시가가 4000만원(2억7000만원→3억1000만원) 오르면서 원래는 매달 1만원 넘게 건보료를 더 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저가 주택에 한해 건보료 상승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지역가입자 보험료 산정 시 재산 규모에 따라 500만원을 추가로 더 공제해주면서 건보료가 내려가게 됐다. 이에 따라 이 아파트 건보료 상승은 매달 1만원에서 5000원가량(10만7800원→11만2630원)으로 낮아진다. 공시가가 5억9000만원인 서울 관악구 B아파트 보유자도 건보료 인상 분은 5000원 정도다.
다만 고가 아파트는 이 같은 공제 효과가 없다. 건보료는 재산 과세 표준을 60등급으로 나눠 매기는데, 500만원을 공제해봐야 등급이 똑같기 때문이다. 이에 올해 공시가격이 15억5000만원으로 오른 강남구 76㎡짜리 C아파트 보유자의 경우 건보료는 매달 1만원 정도 오르는 것으로 계산된다.
◇공시가 15억원 넘으면 피부양자 자격 잃어
문제는 고가 아파트에 의지해 노후를 보내온 은퇴자들이다. 이번에 공시가가 크게 오르면서 ①보유한 주택 공시가격이 9억~15억원 사이에 속하면서 연소득이 1000만원을 초과하거나 ②공시가격이 15억원(시세 약 21억원) 넘는 사람은 피부양자 자격을 잃는다. 이에 자녀의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돼 건보료를 내지 않던 사람들도 지역가입자로 전환돼 새로 보험료를 내야 한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2021년 공시가격 톱10 공동주택
예컨대 서울 서초구의 113㎡ 아파트에 사는 70대 은퇴자 E씨는 올해 아파트 시세가 22억원으로 오르고 공시가격도 15억5000만원 수준으로 오르자 피부양자 자격을 상실했다. 원래 E씨는 11월부터 건보료를 21만원 내야 하지만, 정부는 “공시가 상승으로 피부양자 자격에서 제외되는 이들이 대부분 고령층인 점을 감안해 신규 보험료를 50%만 적용해 부담시키로 했다”는 설명이다. 결국 10만5000원을 내야 한다는 뜻이다. 복지부 담당자는 “신규 보험료 절반만 내도록 하는 조치는 내년 6월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되며, 내년 7월부터는 건보료 2단계 부과 체계 개편에 따라 공시가격에 따른 보험료 변동 영향은 크게 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김성모 기자
03-16 공시가 19% 인상, 정부가 올린 집값에 세금폭탄 맞는 국민
국토교통부가 작년보다 19% 오른 전국 아파트, 연립·다세대주택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어제 발표했다. 14년 만에 가장 큰 상승폭으로 전국적 집값 폭등의 후폭풍이다. 종합부동산세 세율 인상과 공시가격 현실화율 상승까지 겹쳐 공시가 9억 원(시세 약 12억∼13억 원) 초과 공동주택 보유자들은 종부세 ‘세금 폭탄’을 맞게 됐다.
여당이 불을 지핀 ‘천도론’ 영향으로 세종시 공시가격이 71%나 뛰었다. 24% 오른 경기도를 비롯해 서울 대전 부산 공시가도 20% 안팎 급등했다. 정부 규제로 전국 대도시로 퍼진 집값 ‘풍선효과’ 탓에 종부세, 재산세,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보험료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이 급등한 것이다. 이날 정부는 종부세 부과 대상인 ‘공시가 9억 원 초과 공동주택’이 전국에선 3.7%, 서울에서는 16.0%에 불과하다고 애써 강조했다. 세금을 올릴 때마다 반복해온 ‘편 가르기’의 재탕이다.
이번 인상으로 서울 아파트 168만 채 중 41만3000채, 4채 중 한 채꼴로 공시가격이 9억 원을 넘어 종부세 대상이 됐다. ‘극소수 고가, 다주택자’에 징벌적으로 물린다는 종부세의 취지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공시가 12억 원(시세 약 17억1000만 원) 아파트는 종부세, 재산세를 합쳐 작년보다 43% 늘어난 432만5000원의 보유세를 내야 한다.
웬만한 직장인 한 달 치 봉급이다. 자녀 등의 건강보험 혜택을 받던 1만8000명도 피부양자 자격을 잃고 매달 11만9000원의 보험료를 내게 됐다. 4년간 서울 아파트 값을 78% 끌어올린 부동산 정책 실패의 부담을 주택 보유자들이 세금 등으로 떠안게 됐다. 종부세 세수(稅收)는 2017년 1조6500억 원에서 올해 5조1100억 원으로 3배로 늘었다.
급증하는 보유세 부담은 집 한 채만 보유하고 다른 소득은 없는 은퇴자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지난달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1가구 1주택자 종부세 부담을 줄이는 법안을 냈지만 정부 반대로 심의조차 못 했다. 집값이 아니라 애먼 국민만 잡는 부동산 세제는 서둘러 손을 봐야 한다.
동아일보 사설
03.16 정부가 집값 올려놓고 국민에 세금 폭탄, ‘부동산 0점’도 후하다
국토부가 주택 보유세의 산출 근거가 되는 올해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평균 19% 올렸다. 2007년(23%) 이후 14년 만의 최대 인상 폭이다. 세종시가 71%, 경기도가 24%, 서울·부산·대전이 20% 오르는 등 10개 광역시·도의 공시가격을 두 자릿수로 인상했다. 잘못된 정책으로 집값을 역대 최악으로 올려놓고는 세금 폭탄을 때리겠다는 것이다.
4년 전 6억원 정도이던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지금 9억원을 넘어 10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작년 기준으로 서울 평균값인 시가 9억9000만원(공시가격 6억9000만원) 아파트 한 채만 있어도 재산세 부담이 183만원에서 238만원으로 30% 늘어난다. 종부세 부과 대상인 공시가격 9억원을 넘기면 1년 만에 보유세 상승률이 40%대에 이른다. 집 한 채 갖고 사는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나. 공시가에 연동되는 건강보험료도 따라 오른다. 자영업자 127만 세대의 건강보험료가 오는 11월부터 인상되고, 현금 소득이 없는 은퇴자나 고령자 2만명이 월 12만원가량의 건보료를 새로 부담하게 된다. 집을 팔라는 강요나 마찬가지다. 집이 두 채인 사람은 보유세만 1억원이 넘을 수 있다고 한다. 집을 팔려고 해도 양도세 등이 워낙 높아 팔고 다른 곳으로 가기도 어렵다. 국민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들고 있다.
‘미친 집값’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정(失政)이 가져온 대참사다. 시민단체 경실련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44개월 중 40개월 동안 집값이 쉼 없이 올라 작년 말 기준으로 서울의 아파트 값이 78% 뛰었다. 그래 놓고 집값 올랐으니 국민들한테 세금도, 건강보험료도 더 내라고 한다. 잘못은 정부가 저질러놓고 부담은 집 가진 국민들한테 떠넘긴다.
그동안 집값 급등 비판에 대해 국토부는 전국 아파트 값 상승률이 7.6%에 불과하다는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인용하면서 “별로 안 올랐다”고 해왔다. 그래 놓고 공시가는 정부 통계보다 2.5배나 올렸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심지어 어제 배포한 공시지가 보도자료의 맨 첫 줄에 “공동주택의 92%는 공시가격 6억원 이하”라고 적었다. 공시가격 6억원 이하의 재산세를 1만~10만원 깎아준다고 생색을 냈다. 국민을 ’92대 8′로 이간질하는 것이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는 국민 대다수를 패자로 만들었다. 그냥 살던 집에 세금 폭탄을 맞게 된 주택 보유자들로선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보다 더 큰 피해자는 6억원 이하 주택 소유자나 집 없는 사람들이다. 집값 양극화로 무주택자나 서민들은 따라가기 불가능할 정도로 자산 격차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보유세 폭탄은 피했다지만 집값 급등에 따른 ‘자산 인플레이션 세금’을 매년 수억원씩 무는 셈이다. 본지 여론조사에서 서울 시민의 34%가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100점 만점에 ‘0점'이라고 응답했다. 공직자의 부동산 보유 실태를 폭로해온 경실련 본부장은 “0점도 아니고 마이너스”라고 했다. ‘0점'도 후하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3.16 투기 엄단한다는데 ‘내부자들’은 웃고 있다
투기는 중독성이 강하다. 1990년대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에 희생돼 신용불량자로 살아가는 노인조차 “기회만 오면 투기를 다시 하겠다”고 말했을 정도다. 앞서 1·2기 신도시 건설 때 각각 987명과 455명의 투기 사범이 구속됐다. 지금 3기 신도시 관련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과 국회의원들의 투기 의혹이 포착돼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3기 신도시 투기는 국민 배신 행위
청와대·정부·국회·공기업 조사를
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 집권 이후 부동산 투기를 발본색원하겠다며 지난 4년간 25차례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25전 25패’라는 혹평을 받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LH 투기 의혹이 터져 국민은 허탈함을 넘어 배신감까지 토로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수도 이전과 혁신도시를 내걸어 전국에 부동산 광풍을 일으켰다. 재미 좀 봤다는 고백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도 판박이다. 2016년까지 대체로 안정세를 보이던 부동산 시장을 이 정부 들어 요동치게 했다. 이들은 부동산 띄우는 법을 아는 것 같다. 강남 부동산을 때리면 정권의 지지율이 오르고 풍선효과로 주변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 1가구 1주택과 실거주 요건을 강화할수록 수도권으로 수요가 몰린다. 결과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신도시 개발 수요가 형성된다. 표도 얻고 정권의 지지도 챙기는 양수겸장이다.
문재인 정부는 다 계획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동안 전문가와 언론이 공급대책을 촉구해도 외면했다. 그러던 정부가 지난 2월 4일 마치 토지 매집이 끝났다는 듯이 갑자기 대규모 공급 계획을 발표했다. LH 집단 투기 사태는 이 정부가 마련한 계획의 실마리를 보여주는 듯하다.
문 정부가 대외적으로 부동산 투기 억제를 강조하는 동안 내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나. ‘내부자들’은 2018년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그해 7월 청와대의 한 고위 공직자는 13억여 원의 빚을 얻어 서울 흑석 뉴타운 개발 구역에서 25억여 원짜리 건물을 매입했다. 문 정부 장관 절반이 다주택자라는 비판에도 꿋꿋하게 주택 세 채를 끝까지 보유하다 임기를 마친 여성 장관도 있었다. 한 수석비서관은 2019년 5월 청와대를 나온 직후 오피스텔 두 채를 사들이고 대사로 부임했다.
투기에 뛰어든 것은 고위 공직자뿐만이 아니었다. 공공이란 명분으로 규제를 틀어쥐고 사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면 가관이다. 2020년 9월 철도역사 이전 사업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했던 공무원이 수십억 원을 대출받아 부지 인근 토지와 건물을 매입했다. 공공주택 보급을 책임지는 LH 임직원이 합심해 부동산 투기에 나섰다.
가계 부채 종합대책이라면서 집을 사지 못하도록 서민의 손발을 칭칭 묶어 놓고 LH 임직원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들은 경기도 광명·시흥의 토지 7000평을 사들였다. 토지 매입 시점은 2018년 4월부터 지난 2월까지였다. 국토부가 2월 24일 광명·시흥 3기 신도시 개발 계획을 발표했으니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성추행이 드러나 물러난 전직 부산시장의 친인척이 가덕도 신공항 부지 인근 땅을 소유한 것으로 드러나 투기 의혹이 커지고 있다. LH 직원은 “우리만 부동산 투자를 하지 말란 법이 있느냐”고 반박하다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았다. 청와대부터 장관, 국회의원, 광역 단체장, 고위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에 이르기까지 투기에는 예외가 없어 보인다.
철저한 조사와 엄정한 법적 처벌이 따라야 한다. 부당 이득은 모두 환수해야 한다. 이런 조직적인 투기 조사를 국토교통부나 총리실에만 맡길 수 없다. 사전에 개발 정보를 알았을 가능성이 높은 곳은 모두 조사 대상이다. 부정부패를 척결해온 검찰의 칼을 검찰개혁을 구실로 빼앗는 동안 투기의 몸통과 내부자들은 웃고 있다. 기가 찰 노릇이다.
중앙일보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03.18 “집값 별로 안올랐다” 강변하더니 공시가는 천정부지로 올려
지난해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이 3%에 불과하다고 말해온 정부가 공시가격은 19%나 올리자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간 정부는 한국부동산원의 매매가격지수를 공식 통계로 인용해왔다. 작년에 시민단체 경실련이 “문재인 정부 3년간 서울 아파트값이 52% 올랐다”고 비판하자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이 통계를 근거로 내세우며 “3년간 서울 집값은 11%, 서울 아파트값은 14%밖에 안 올랐다”고 반박했다. 심지어 한국부동산원 통계 가운데 덜 오른 것처럼 보이는 통계만 인용하면서 집값 급등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집값이 폭등했다며 공시가격을 급등시켰다. 경실련은 “앞뒤가 맞지 않는 부동산 통계 조작”이라고 했다. 경실련에 따르면 정부는 서울 아파트값이 4년간 17% 올랐다고 주장했는데 같은 기간 공시가격은 59% 올렸다.
정부 통계로 서울보다 부산 아파트값 상승률이 높은데 공시가격 인상률은 서울이 더 높다. 세종시의 작년 집값 상승률은 44%였다는데 공시가격은 70%나 인상했다. 서울 노원구 집값 상승률은 4.74%인데 공시가격은 그 7배나 되는 34.66% 올렸다. 한 동네에 나란히 있는 같은 평형대 아파트인데 공시가격이 수천만원씩 차이 나고 더 비싸게 팔린 아파트인데도 공시가격은 더 낮게 책정된 경우도 있다. 그야말로 들쑥날쑥이다.
정부는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건강보험료 등을 책정한다. 공시가격을 급격히 올리면 모든 부담이 같이 올라간다. 그런데 공시가 산정 기준이나 과정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4월 공시가격 산정 기초자료를 공개하겠다지만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시가격 이의 신청도 급증했다. 2018년 1290건에 불과하던 공시가격 이의 신청 건수가 2019년 2만8735건, 2020년 3만7410건으로 급증했다. 공시가격을 14년 만에 최대로 올린 올해는 더 폭증할 것이다. 구멍가게 가격 책정도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3.20 “꼬우면 너도 하든가” 그 조롱을 4년 내내 들었다
조롱글 주인 찾겠다며 정권이 길길이 날뛰지만
국민은 더한 조롱을 지난 4년간 견뎌야 했다
“어차피 한두 달만 지나면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져서 물 흐르듯이 지나가겠지 다들 생각하는 중.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털어봐야 차명으로 다 해놨는데 어떻게 찾을 거임?ㅋㅋ 니들이 암만 열폭해도 난 열심히 차명으로 투기하면서 정년까지 꿀 빨면서 다니련다ㅎ 이게 우리 회사만의 혜택이자 복지인데 꼬우면 니들도 우리 회사로 이직하든가~ 공부 못해서 못 와놓고 꼬투리 하나 잡았다고 조리돌림 극혐ㅉㅉ.”
▲익명의 LH 직원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SNS 글./블라인드
어떤 악재에도 끄떡없을 것 같던 정권이 LH 사태로 휘청거리게 된 데는 익명의 LH 직원이 쓴 글 하나가 적잖은 역할을 했다. 이 회사 직원들이 신도시 개발 정보를 미리 빼내 투기했다는 소식에 국민들이 분개하는 와중에 공개된 이 글은 ‘조롱이란 무엇인가’ 책을 쓴다면 첫 장에 들어갈 만하다. 형식적인 면에서 글쓴이는 ‘^^’ ‘ㅋㅋ’ ‘ㅉㅉ’ 같은 이모티콘과 초성체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읽는 이의 분노를 증폭시킨다. 하지만 이 글이 마치 뺨을 후려치는 듯한 불쾌감을 안기는 것은 그 형식 때문이 아니라, 한 줄 한 줄 모두 반박할 수 없는 사실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글쓴이 말대로, 정부는 피라미 몇 명을 희생양 삼아 사건을 마무리할 것이고, 이 일도 시간이 지나면 대중들의 머릿속에서 잊힐 것이며, 나머지 투기꾼들은 공기업이 제공하는 안락함을 누리며 정년까지 철밥통을 즐길 것임을 다들 알고 있다.
하지만 죄가 성립하는지도 확실치 않은 잡글 하나에 정부가 이토록 길길이 날뛰는 이유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았을 뿐, 이 정권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4년 내내 국민을 조롱해댔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A: “털어봐야 이미 흑석동 집 팔고 배지도 달았는데 어떻게 할 거임?ㅋㅋ 니들이 암만 열폭해도 난 열심히 억대 연봉 받으면서 임기 채우련다ㅎ 이게 청와대 출신만의 혜택이자 복지인데 꼬우면 니들도 180석 하든가~”
B: “털어봐야 이미 검사들 좌천시키고 우리 편 판사로 깔아놨는데 어떻게 할 거임?ㅋㅋ 니들이 암만 열폭해도 난 열심히 시장 노릇하면서 소원 성취하련다ㅎ 이게 대통령 친구만의 혜택이자 복지인데 꼬우면 니들도 검찰 개혁 하든가~ 친구도 제대로 못 사귀어놓고 꼬투리 하나 잡았다고 조리돌림 극혐ㅉㅉ.”
C: “털어봐야 이미 졸업장 받고 인턴까지 됐는데 어떻게 할 거임?ㅋㅋ 니들이 암만 열폭해도 난 의사 대접 받으면서 잘 먹고 잘살련다ㅎ 이게 우리 가족만의 혜택이자 복지인데 꼬우면 니들도 우리 아빠 딸 하든가~ 부모 잘못 만나서 의사 못 돼놓고 꼬투리 하나 잡았다고 조리돌림 극혐ㅉㅉ”
D: “털어봐야 이미 기부금 다 빼돌리고 할머니들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할 거임?ㅋㅋ 니들이 암만 열폭해도 난 국회의원 하면서 정의로운 척하련다ㅎ 이게 시민 단체 출신만의 혜택이자 복지인데 꼬우면 니들도 하든가~”
이런 식의 특권과 반칙, 선택적 정의와 암묵적 조롱이 힘 있는 자들에 의해 반복되다 보니, 보잘것없는 공기업 직원까지 조그만 특권을 자랑하며 대놓고 국민을 조롱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니 국민의 분노를 정말 이해한다면, 그리고 정의와 공정이 살아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면, 익명의 LH 직원이 아니라 A, B, C, D 같은 이들이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는 게 훨씬 쉽고 빠른 길이다. 암호화된 익명 앱에 숨은 LH 직원은 아무리 난리 법석을 피워봐야 찾아내기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이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당장에라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잘 모르겠다면,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그 이름들을 알려줄 것이다.
조선일보 최규민 기자
03.20 공급주택 15채 싹쓸이한 LH직원, 다른 公社 감사책임자로 영전했다
전국 각지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급 주택 15채를 수의 계약 등의 방식으로 사들여 징계 받았던 전직 LH 직원 A씨가 국토교통부 산하 다른 공기업(공사)에 재취업해 감사 책임자로 근무 중인 것으로 19일 나타났다. 그는 재취업 과정에서 LH에서 징계받은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고 공사 측은 전했다.
국민의힘 황보승희 의원실에 따르면 A씨는 LH에 근무하던 2012~2017년 본인과 가족 명의로 수원, 동탄, 목포, 대전, 논산, 포항, 창원, 진주 등지에서 LH 공급 주택을 무더기로 사들였다. LH 공급 주택 취지는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 기여’다. 그런데 LH 직원인 A씨가 가족 명의까지 동원해서 순번 추첨 수의계약, 추첨제 분양으로 15채나 ‘쇼핑’하듯이 사들였다는 것이다. 이후 A씨는 LH 내부 감사에서 의무 사항인 분양 내역 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이 적발돼 징계에 부쳐졌다. 그는 “모친의 안정적인 생활비 마련을 위한 월세 수입 목적으로 지방의 미분양 주택을 다수 취득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결국 견책 징계가 내려지자 2018년 LH를 퇴사했다.
A씨는 이듬해인 2019년 국토교통부 산하 또 다른 공기업에 재취업했다. 당시 채용 공고에 따르면, 경력 증명서에 전(前) 직장 등에서의 상벌 내용, 퇴직 사유를 필수적으로 기재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A씨는 경력 증명서에 상벌 내용을 기재하지 않았고, 재취업에 성공해 입사 1년 만에 감사를 총괄하는 책임자급(2급)으로 승진했다. 이 공기업은 최근까지도 A씨의 LH 공급 주택 대거 매입, 징계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재취업 과정에서 LH 징계 사실 등을 밝히지 않은 것과 관련해 “입사에 불이익을 받을까 싶어 그랬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A씨의 ‘LH 공급주택 15채 취득’ 사례는 A씨가 재취업에 성공한 2019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거론된 적이 있다. 당시엔 언론의 관심을 크게 받지는 못했는데, 최근 LH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다. 그런 A씨가 징계를 받고 LH에서 퇴사한 후 또 다른 공기업에 재취업했고 지금은 감사 책임자로 근무하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해당 공기업 측은 A씨가 재취업 과정에서 LH 시절 징계 이력을 밝히지 않아 몰랐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야당은 “부동산 투기 의혹이 짙은 사람이 다른 직원들의 비위를 적발하는 감사 책임자로 근무하는 블랙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A씨가 징계내용을 감춘 것은 불합격 사유에 해당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취업 당시 채용 공고에는 ‘응시원서 허위 기재, 허위 증빙 자료 제출 시 불합격 처리한다’고 적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사 측은 “A씨 사례가 채용 취소에 해당하는지 검토하기 위해 법적 자문을 의뢰한 상태”라고 국회에 보고했다. 황보승희 의원은 “A씨 경우는 문재인 정권의 공직 기강에 큰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라며 “망국병인 부동산 투기가 공직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겠다”라고 했다.
조선일보 김형원 기자
03.20 "주인없는 무덤까지 활용했다"… 전문가도 놀란 LH 직원 땅투기의 기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을 두고 전문가들은 "대단한 솜씨"라며 혀를 내두르고 있다. 동원된 방법이 매우 다양하면서도 하나하나가 규정의 빈틈을 노리는 ‘신의 한 수’라는 것. 하지만 이들이 사용한 방식 말고도 ‘땅 투기’를 하는 이른바 선수들의 꼼수는 무궁무진했다. 남의 무덤을 이용해 보상을 받는가 하면 오리와 개를 동원하기도 한다. 투기의 천태만상을 살펴봤다.
◇ 남의 무덤으로 수억원 받아내기도
20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대규모 택지개발의 경우 통상 맹지나 농지에 이뤄진다. 농지의 경우 경자유전(耕者有田·실제 농사짓는 사람만이 농지를 가질 수 있다) 원칙을 규정한 농지법 제6조 제1항에 따라 취득할 시 지자체에 농업 경영계획서(영농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LH 직원들은 신도시 예정지의 농지를 매입한 후 논·밭에 벼나 고구마, 옥수수 등을 재배하겠다고 신고했다
▲경기 시흥시 과림동의 LH 직원 투기 의혹 토지에 나무 묘목들이 심어져 있다/연합뉴스
농지가 아니더라도 자손이나 관리해 줄 사람이 없는 무연분묘(無緣墳墓)가 있으면 거짓말을 통해 땅 지분을 주장하기도 했다. 개발 대상지 안에 무연분묘를 가족의 묘인 것처럼 속여 보상금을 타내는 수법이다. 이 경우 보상금뿐 아니라 분묘 이전비와 보조비도 함께 타낼 수 있는데, 이 금액이 최대 수억원에 이를 수 있다.
이미 지난 2012년 LH 직원이 무연분묘 81기의 위치를 브로커에게 넘기고 그 대가로 2600만원을 받아 실형이 선고됐다. 이 브로커는 가짜 유족들을 불러모아 3억5000만원의 이전 보상금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에 의혹이 불거진 광명·시흥 신도시 지역에서도 일부 공인중개사들이 묘지로 가득 찬 토지를 쪼개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땅을 확보했다면 보상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토지 지분을 바꾸는 ‘쪼개기’와 ‘합치기’ 작업이 시작된다.
지분 쪼개기는 보통 건물이나 땅의 지분을 나눠 구분 등기를 해서, 개발 시 아파트 분양권이나 대토(代土)보상을 많이 받아내는 행태를 뜻한다. 투기 의혹을 받는 LH 직원들 가운데 일부는 구입한 토지를 1000㎡로 쪼갰다. 1000㎡가 LH의 보상을 받기 위한 최저기준이기 때문이다.
현행 규정상 개발 관련 공고일 이전부터 1000㎡ 이상의 땅을 받으면 대토 보상이나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있다. 시흥·광명 신도시 부지에서 투기 의혹을 받는 5000㎡가량의 부지는 1000㎡의 4개 구역으로 쪼개졌다. 이 경우 분양권을 4개까지 늘려 받게 된다. 고양 창릉 등 다른 3기 신도시 예정지에서도 ‘쪼개기’ 의심 사례가 확인됐다.
1000㎡가 채 안 되는 토지들은 ‘합치기’를 통해 기준을 맞췄다. 경기도 과천 미니신도시 예정지에서는 LH 직원이 다른 2명과 함께 대상 517㎡ 필지 2개와 208㎡ 필지 1개 등 3개 필지를 12억원에 매입했다. 이들은 두 달 후 필지 3개를 하나로 합쳐 1350㎡의 땅을 만들었다. 업계에서는 이를 보상 기준인 1000㎡를 넘기기 위한 작업으로 이해하고 있다.
◇ 나무 심고 개 키워 보상금 추가로 타내
투기꾼들은 땅의 크기와 형태가 정해졌다면 추가 투자를 통해 가치를 올리는 시도를 한다. 보상받는 땅의 가치가 높아야 보상금도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땅으로 수익 행위를 해왔다면 토지보상법에 따라 수익 행위에 해당하는 만큼의 보상을 해야 한다. 때아닌 유명세를 탄 ‘용버들’, 속칭 왕버들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LH 직원들은 영농계획서를 통해 농지에 벼·옥수수 등을 재배하겠다고 신고했지만, 실제로는 용버들이나 에메랄드그린 등의 묘목을 심었다. 용버들 등 수목(樹木)이 벼 등의 작물보다 보상 가치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수목 보상을 위한 감정을 할 때 감정평가사들은 조달청 ‘조경수목 단가표’를 참고한다. 따라서 조달청의 단가가 비싸게 책정돼있거나, 단가표에 등록되지 않은 희귀수종이라 보상액을 과다 책정할 수 있는 수목을 고르는 것이 유리하다. 보상 시 나무 1주당 이식 비용의 2배를 우선 보상하기 때문에 나무의 수가 많은 것도 중요하다. 또 크고 두껍게 자라야 이식 비용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용버들은 이 조건을 거의 완벽하게 충족하는 수종이다. 묘목은 1그루당 3000원 안팎에 불과하지만, 병충해에 강하고 특별한 관리 없이도 빠르게 성장한다. 이렇게 자라난 용버들은 조건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2~3년만 지나도 최대 수만원까지 가치가 올라간다.
용버들 나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3.3㎡당 1그루 정도 심는 것이 적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LH 직원들은 1㎡당 20그루 가깝게 용버들을 빽빽하게 심었다. 그래도 용버들 나무는 큰 무리 없이 자라고 있었다. 이렇게 광명·시흥 신도시 부지 일대에 심어진 왕버들의 보상가는 대략 8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나무 외에도 동물이나 비닐하우스 등도 동원된다. 지난 2010년 위례신도시 토지 보상이 이뤄질 당시 LH는 위례신도시에서 투기 목적의 비닐하우스 1700여동, 무단으로 반입한 벌통 8000여개를 적발했다.
미사·감일·감북지구 등에서도 토지 보상을 노린 770건의 불법 설치물과 닭 921마리, 개 640마리, 오리 504마리 등을 적발했다. 현행 규정은 나무의 이식 비용 보상처럼 ▲닭 200마리 ▲개 20마리 ▲오리 50마리 이상을 기르면 땅값과 함께 축산업 손실비와 이전비 등을 보상하도록 했는데 이를 노린 것이다.
▲경기 광명시 한 공무원이 매입한 노온사동의 토지에 지난해 12월 설치한 지하수 시설이 보이고 있다. 그 옆으로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비닐하우스가 세워져 있다. 이곳은 지난해 이 공무원이 밭 1천322㎡를 취득한 곳이다/연합뉴스
◇ ‘간접보상’까지 받아내면 투기의 완결
사전 투기의 보상은 이것 외에도 더 있다. ▲이주자 택지 ▲생활대책 ▲협의양도인택지 등 간접보상이 그것이다.
‘이주자 택지’는 신도시 예정지 공람공고일(발표일) 이전 1년 전부터 집을 갖고 있으면서 거주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택지다. LH 직원들이 속칭 ‘벌집’이라 불리는 임시 조립식 주택을 지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이 주택들은 수도·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투기 의혹을 강하게 받고 있다.
‘생활대책용지’는 토지 수용으로 생계 수단을 상실한 사람에게 생계를 영위할 수 있는 상업용지에 대한 우선 분양권을 주는 것이다. 일반 분양가보다 싼 가격에 신도시 상가를 분양받을 수 있는데, LH 직원들이 쓰지도 않을 비닐하우스를 지은 것이 생활대책용지 때문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협의양도인택지’는 토지 1000㎡를 가진 토지주가 토지 보상에 적극적으로 임하면 제공하는 일종의 단독주택용지 매입 권리다. 집과 땅을 수용당하는 대가로 현금 보상을 받을 수 있는데 이 중 일부 금액만큼 다가구주택이나, 상가주택을 지을 수 있는 단독주택용지를 우선 분양받게 된다. 이 경우 싼값에 신도시 땅을 살 수 있고, 이렇게 산 땅을 전매할 수도 있어 부동산 전문가들은 협의양도인택지를 노리고 투기에 나선 이들이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 개발 관행은 지난 1980년대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만든 법과 제도에서 비롯됐다"면서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한 법률로 과거의 개발 관행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 근본적 문제"라고 했다. 그는 "대표적인 것이 ‘묻지마 결정’ 후 수용을 강제하는 비밀주의"라며 "사업 일정이 다소 지연되더라도 투명성을 강화하고 보상이 정당히 이뤄질 수 있도록 사업 공개주의 원칙을 도입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조선비즈 유병훈 기자
03.20 “성희롱·갑질·폭언 하기만 해봐라”… 일상이 된 녹음
“자기방어 수단” vs “무섭다, 불신 조장” 엇갈려
김민기 기자
서울의 한 대학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이모(30)씨는 작년 11월 지인에게 ‘사원증 녹음기’를 선물받았다. 목걸이형 사원증처럼 생겼는데, 사원증 뒷면의 버튼을 누르면 곧장 녹음이 시작된다. 이씨는 “주로 환자가 언성을 높이거나 욕설을 할 때, 하루 4~5번 정도 기록을 남긴다”며 “최근엔 술 취한 사람이 동료 간호사에게 ‘속옷 사이즈가 뭐냐’ ‘가슴 사이즈가 뭐냐’고 하기에 녹음해놨다”고 했다. 그는 “녹음은 일종의 소극적 방어”라고 했다. 사원증 녹음기 제품을 만든 업체의 오광빈(30) 대표는 “병원에서 폭언·성희롱에 대응하겠다며 100~1500개씩 단체 주문하기도 한다”고 했다.
대한민국이 ‘녹음(錄音) 공화국’이 되고 있다. 직장인, 대학생, 의사, 판사, 자영업자, 영업 사원을 불문하고 각자 스마트폰이나 각양각색 녹음기를 품은 채 몰래 녹음하는 이가 많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말, 배달원에게 ‘공부 잘했으면 배달하겠냐’고 폭언한 어학원 직원 등 최근 일련의 사건 역시 ‘대화 녹음’ ‘통화 녹음’이 도화선이 됐다. 대표적 녹음 앱인 ‘삼성 음성 녹음’ 앱의 지난달 이용자는 550만명. 자신의 모든 통화를 녹음하고 싶어 하는 이가 늘면서 삼성은 2017년부터 스마트폰 설정에 ‘모든 통화 녹음’ 기능을 추가했다. 이용자들은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상생활에서 자기방어와 결백 증명 수단”이라고 말한다. 반면 상대방 불신을 넘어 자칫 불법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의 전자랜드. 한 녹음기 전문 매장에는 볼펜형은 기본이고, 시계, 단추, 벨트형 등 30여 종의 초소형 녹음기가 진열돼 있었다. 업체 사장 현모씨는 “4㎝ 정도 되는 녹음기를 밴드로 손목에 딱 고정하면 티 나지 않게 녹음이 가능하다”고 귀띔했다. 그는 “3년 전쯤부터 직장인들이 부쩍 소형 녹음기를 찾더라”며 “예전에는 직장 내 갑질, 폭언에 침묵했는지 몰라도 요즘은 아니다”고 했다. 소셜커머스 업체 티몬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7~12월) 소형 녹음기 판매액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3% 늘었다.
녹음하는 이유도 저마다 다르다. 가전제품 매장 판매 사원 이모(30)씨는 출근할 때 항상 ‘시계형 녹음기’를 찬다. 그는 “손님이 언짢아하거나 시비가 붙을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슬며시 녹음 버튼을 누른다”며 “녹음본을 아직 공개한 적은 없지만 ‘최소한의 방어’라고 생각하고 녹음한다”고 했다. 한 유통 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인모(29)씨는 바지에 USB형 녹음기를 고리로 달고 다닌다. 출근할 때 켜고, 퇴근할 때 끈다. 인씨는 “16GB(기가바이트) 용량이 2주 정도면 꽉 찬다”며 “2주에 한 번 녹음본을 컴퓨터에 옮겨놓고, 파일 제목에 날짜를 적어서 보관한다”고 했다. 그는 “올해 초 직장 상사가 ‘안아주고 싶다’고 말한 것이 다 증거로 남아 있다”며 “언제든 우발적으로 그런 식의 말을 할 수 있으니 지금처럼 계속 ‘일상 녹음’을 할 생각”이라고 했다.
녹음 문화의 밑바탕에는 ‘불신’이 있다. 경기도 용인시에 사는 직장인 이모(32)씨는 병원에 갈 때마다 휴대전화 녹음 기능을 켜놓는다. 의사·간호사들 발언을 그대로 저장해 놓는 것이다. 이씨는 “요즘은 의사·간호사도 다 녹음을 한다는데 그 사람들이 하면 나도 해야지, 나라고 못 할 건 뭐냐”고 했다. ‘녹음에 녹음’으로 대응한 것이다. 학원 강사 이지윤(30)씨는 “직업 특성상 강의 내용을 일일이 녹음하는 학생도 많다”며 “심지어 녹음하는 것을 알아도 부담이 되는데, 나도 모르게 지인의 녹음기에 내 음성이 기록된다면 서로 어떻게 말을 편하게 하겠느냐”고 했다.
자칫 불법이 될 수도 있다. 법무 법인 더도움의 이수경 변호사는 “본인이 참여한 대화 녹음은 불법성이 없고 추후 분쟁이 생겨도 증거가 될 수 있다”며 “본인이 참여하지 않은 제3자 간 대화를 녹음하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음성·영상에 익숙한 젊은 직장인들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증거를 확보한다는 심리로 녹음하는 것”이라며 “자기방어도 중요하지만 녹음은 상대방 권리와도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신뢰 형성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단기간에 이런 분위기가 바뀌기 어려운 만큼 관련 기관들이 일종의 ‘녹음 지침’ 만들기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03.22 멀쩡한 검찰·감사원 놔두고 LH 특검 정치쇼 하겠다니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과 공무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의혹에 대한 특별검사 법안 논의가 이번 주 시작된다. 원래 특검은 정권 편인 검찰과 감사원을 믿지 않는 야당이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여당이 부득부득 특검을 하자고 한다. 정권 불법을 수사해온 검찰과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을 감사한 감사원이 곧이곧대로 정권의 아픈 곳을 파헤칠까 겁나서다. 여당이 무작정 밀어붙이니 야당도 받긴 했다. 하지만 효과가 의심스럽고 수사 타이밍만 놓치는 ‘시간 끌기 특검’이 될 공산이 크다.
그동안 부동산 투기 수사는 검찰이, 공직 감찰은 감사원이 맡아왔다. 검찰은 노태우·노무현 정부 때 1·2기 신도시 땅 투기를 수사해 수백 명의 투기 사범을 구속했다. 그만큼 수사 역량과 경험이 쌓여있다. 이런 공식 국가기관을 멀쩡하게 놔두고 난데없이 특검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정부는 합동조사단 구성 때부터 경찰·행안부·국세청·금융위·국토부는 넣고 검찰과 감사원은 쏙 빼버렸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공무원이 아닌 LH 직원의 부동산 투기는 경찰 소관이라는 억지스러운 이유였다. 하지만 정부 조사에서 이미 30명 가까운 공무원 땅 투기가 적발됐다. 공무원 범죄는 검찰 수사 대상이다. 그런데도 지난달 발족한 국가수사본부가 수사를 총괄하고 있다. 경찰은 LH에 대한 압수수색도 1주일이 지나서야 했다. 증거 인멸에 충분한 시간이 지난 뒤였다. 비난이 커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과 경찰이 협력하라고 했다. 그 결과 달랑 검사 1명이 파견됐다.
특검은 법안 통과와 임명·구성에 최소 한 달은 걸린다. 일러야 내달 중순 이후에나 수사에 들어갈 수 있다. 내달 7일 서울·부산시장 선거 때까진 여당에 불리한 수사 결과가 나오는 걸 미룰 수 있다는 계산일 것이다. 특검의 수사 인력은 2000명 이상의 검사가 있는 검찰, 770명 규모의 경찰 합동수사팀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여당은 LH 특검 대상에 부산 엘시티와 이명박 정부 뉴타운까지 넣자고 한다. 전형적인 물타기이자 시간 끌기다.
여야는 국회의원과 청와대, 지방자체단체장과 지방의원 등에 대한 부동산 전수조사도 하자고 했다. 공직 감찰이니 감사원이 맡으면 자연스럽다. 그런데 여당은 한사코 반대하면서 자신들이 다수인 국회 윤리위나 여당 의원 출신이 수장인 국민권익위에 맡기자고 한다. 자기편에 맡겨 ‘편파·면죄부 조사’를 하려는 속셈이 뻔하다. 국민이 마냥 속을 줄 아는 모양이다.
조선일보 사설
03.22 아스트라 백신 하나에 목매는 K방역의 처량한 신세
유럽의약품청(EMA)이 “아스트라제네카(AZ) 접종과 혈전 생성의 연관성이 매우 낮다”며 접종을 권고하면서 우리 정부도 이 백신을 계속 접종하기로 했다. 23일부터 요양병원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65세 이상에 대해 AZ 접종을 시작할 예정이다. 유럽의약품청은 AZ 접종을 권고하면서도 “매우 드문 혈액 응고 장애 보고가 있어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AZ 백신이 100% 안전하다고 확답하지 않은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AZ 백신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일자 이 백신 접종을 중단하고 의약품청의 검토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이 나라들도 백신 부족을 겪고 있긴 하지만 다른 백신들이 있었기 때문에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올 상반기 확보한 백신의 대부분이 AZ 백신이라 그럴 처지가 못 된다. 조기 백신 확보 실패 여파가 방역 당국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나라 가운데 104번째로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7회원국 중 꼴찌였다. 미국·유럽 등보다는 두 달 정도 늦었고 동남아·아프리카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나마 백신이 부족하다 보니 접종에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지난달 26일 백신 접종을 시작해 20일까지 인구의 1.32%인 67만6900명을 접종하는 데 그쳤다. 23일 동안 하루 평균 2만4300명꼴로 맞은 셈이다. 이 속도대로 인구의 70%가 맞아 집단면역을 형성하려면 8년 가까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백신 확보는 앞으로도 문제다. 올 2분기 1150만명에게 접종하는 것이 정부 목표인데, 확보한 백신은 805만명분에 그쳐 345만명분을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주요국들은 이런 경우를 대비해 미리 다양한 백신을 확보해 리스크를 분산시켰다. 반면 우리 정부는 지난해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백신 계약을 미적거리다 지금과 같이 AZ 백신에 목매는 상황을 자초했다. 이 정권은 가덕도 신공항이나 4차 재난지원금같이 선거에 도움이 되겠다 싶으면 번개같이 결정해 발표했다. 그런데 정작 국민 안전에 필수적인 백신 확보는 왜 이렇게 늦었는지, 왜 AZ 백신 하나에 목매게 만들었는지 나중에라도 분명한 규명이 필요하다.
조선일보 사설
03.23 "회의하는 척 도면 찰칵, 신도시 정보 새는 곳 따로 있다"
특별검사 수사와 국정조사가 거론되면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관련 신도시 투기 사태의 판이 커지고 있다. 성범죄 사건 때문에 치르는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양성평등 이슈보다 부동산 투기 논란이 더 뜨겁다.
문제점과 해법을 찾기 위해 부동산 전문가와 서울시 행정에 밝은 전직 관료를 만났다. 고종완(64)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특임교수와 목영만(62) 건국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다. 고종완 교수는 부동산학을 처음 공부한 1998년부터 23년간 이론과 현장을 두루 경험한 '투자의 고수'로 불린다.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으로 활동하며 다음 달『살 집 팔 집』을 출간한다.
[부동산·행정 고수가 진단한 신도시와 서울시]
"정치인 고액 후원 토호에 신도시 정보 유출 가능성"
"특정 진영 예산 나눠먹기 서울시 행정 이념화 심각"
부동산 실정, 신도시 투기로 번져
계좌·통화내역·SNS 다 조사해야
서울 시민의 삶, 행정에 종속 심해
공공 주도 개발로는 집값 못 잡아
그는 "신도시 투기의 씨앗은 이미 잉태돼 있었는데, 터질 게 터졌다"고 진단했다. 신도시 개발 방식이 ^비밀주의인 데다 ^공공이 독점해왔고 ^계획부터 실행까지 단기간에 졸속으로 추진해온 데 원인이 있다고 비판했다. "투기꾼들 눈에 몇년만에 추진하는 신도시보다 더 좋은 먹잇감이 없다. 내부 정보만 빼내 땅을 선점하면 끝이다." 그의 진단은 통렬하다.
그는 대안으로 일본 도쿄의 도쿄 롯폰기힐스, 미드 타운, 신마루노우치 개발 사례를 배우자고 조언했다. 1986년에 마스터 플랜을 짜서 17년 만에 마무리한 도심 개발 사업이다. 미리 개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지정하고 정부가 토지를 수용해 투기꾼이 발붙일 틈이 없었다고 한다.
그의 눈에 비친 지능적이고 조직적인 신도시 투기 행태가 특히 궁금했다. "반드시 내부 정보를 갖고 한다. 고급 정보가 있으니 베팅하듯 대량으로 집중적으로 매입한다. 대규모 대출을 받는다. 선심 쓰듯 정보를 공유해 지인을 참여시킨다. 개발과 보상 업무를 담당해 내부 정보를 잘 아는 LH 직원은 건설사나 부동산 개발회사의 브로커로 영입될 가능성이 있다. 차명으로 거래하고 법인을 세우거나 건설사 등과 이면계약을 맺는다. 정보 제공 대가를 받거나 지분만큼 투자 이익을 챙긴다."
먹이사슬처럼 얽힌 신도시 기획부터 발표까지 과정도 다시 보자. 3기 신도시는 2018년 12월에 발표됐다. 그 전에 주관부처인 국토부가 LH에 후보지 물색을 요청해 LH 지역 본부로 내려갔다. LH와 경기도, 경기주택도시공사(GH), 기초 지자체가 후보지를 협의했다. 통상 기획재정부·환경부·농림축산식품부·국방부 등과도 협의한다. 중간에 청와대·총리실에는 수시로 보고된다. 통상 당정 협의에는 국토부 장관과 여당 정책위의장, 국토교통위 간사가 참석한다. 그만큼 정보 유출 범위가 넓다는 얘기다.
그는 "지자체 협의 단계에서 시·도 의회에 보고된다. 이 단계에서 지방 유지, 건설 토호 세력에게 정보가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고액 후원자가 개발 정보를 요구할 때 국회의원 등 정치인은 거절하기 어려운 구조다. 후원회를 반드시 들여다봐야 한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2018년 9월 당시 국토교통위 소속 여당 의원은 과천·광명·시흥 등 수도권 8곳을 신규 택지 후보지로 검토한다는 내부 자료를 공개해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정보 유출자는 당시 경기도에 파견 나갔던 국토부 소속 공무원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보가 술술 샐 만큼 내부 통제가 허술하다니 충격적이다. "협의할 때 휴대전화로 도면을 슬쩍 찍으면 된다. 도로를 따라 땅값이 결정되니 개발 도면에서 도로 계획을 보면 돈 되는 땅을 유추할 수 있다. 이런 특급 정보를 입수하면 공자·부처·예수 등 성인군자가 아닌 보통 사람은 유혹을 견디기 어렵다. 내부 정보를 이용한 주식투기보다 걸릴 위험이 낮아 더 안전하고 수익률은 10~20배 더 높으니 더 짜릿하다."
그렇다면 숨어 있는 투기꾼을 찾는 방법은 없을까. 고 교수는 "혈연·지연·학연 등 인적 네트워크를 찾아내고 금융 계좌와 통신 내역을 추적해야 한다. 휴대전화와 SNS도 조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본인과 아내, 부모와 장인·장모와의 100만원 이상 거래만 찾아도 드러난다고 한다. 그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데 변창흠 국토부 장관 취임 2~3개월 전에 거래된 땅을 집중 조사하면 많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투기 광풍의 근본 원인에 대해 고 교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이념을 앞세워 시장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인간의 근원적 욕구 등 주거 정책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다. 수도권 주택 보급률은 105%가 적정한데 101%라 공급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수요 억제 규제에 치중하다 보니 대책이 먹히지 않았다. 강남을 때리면 집값이 잡힌다고 착각했다. 도미노 풍선효과만 키웠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답습해 불평등만 심화시켰다."
바람직한 부동산 정책은 무엇일까. "주택은 행복 여부를 결정하는 1순위다. 집은 거주·자산·연금 등 3가지 기능을 한다. 그런데 지금은 공공임대주택 천국이 됐다. 하지만 임대주택은 30년 거주한 뒤에는 나가야 하니 빈손 신세가 된다. 자기 집이 없으면 주택연금도 가입하지 못한다. 그럴 경우 노후에 임대주택 거주자를 위한 국가 차원의 복지 비용만 커진다. 따라서 미래의 중산층인 3040 세대엔 임대주택보다 장기저리 융자를 통한 자가 보유를 권장해야 한다. 주거 사다리를 올라타게 해줘야 한다. 대신 빈민층에겐 공공임대 주택을 보급하고 고소득층은 시장 자율에 맡기면 된다."
▲서울시에서만 27년간 잔뼈가 굵은 목영만 한양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는 "공공이 독점하는 지금의 도심 재생 정책은 자원 배분의 왜곡을 초래해 궁극적으로 집값을 안정시키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장세정 기자
목영만 교수는 1981년 행정고시 25회로 공직에 입문해 서울시청에서만 27년간 일한 행정 베테랑이다. 서울시 행정과장·환경국장, 맑은 서울 추진본부장 등을 거쳐 행정안전부 차관보를 역임했다. 그는 지난 1월『서울을 서울답게』란 책을 발간했다. 전직 공무원이 관(官) 주도 행정을 신랄하게 비판해 놀랐다. "시장이든 공무원이든 시민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오만한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기반을 조성하고 민간이 잘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는 주택 정책을 대표적 실패 사례로 꼽았다. 주택을 살고 싶어 하는 공간으로 이해하고 이런 욕구를 충족해주는 정책을 펴야 하는데, 그동안 정책은 거꾸로였다는 것이다. 절차·소유권·가격·세금 등 4대 규제를 가하고 공공이 민간에 개입하니 공급이 제대로 안 되고 집값만 폭등했다는 진단이다. "집값 폭등의 비극은 2013년에 잉태됐다. 박원순 시장은 재개발(뉴타운)과 재건축 등 민간이 주도하던 주택 사업 182곳 중 150곳을 조사해 114곳의 지구지정을 해제했다. 이에 따른 충격으로 당시 민간 주택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이후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폭등을 초래했다."
3선 시장의 시정 10년에 대한 평가를 묻자 "1000만 시민의 삶이 행정에 종속됐고, 민간의 공공 종속이 고착됐다"는 혹평이 돌아왔다. 실제로 세계 150개 도시를 평가한 결과를 보면 서울의 도시 경쟁력은 2015년 11위에서 지난해 17위로 떨어졌다. SH 사장으로 박 시장과 호흡을 맞췄던 변창흠 국토부 장관의 도심 재생 사업 등 공공 주도 개발에 대해 그는 "사실상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질타했다. "자원 배분의 왜곡을 초래해 양질의 주택 공급에 차질을 빚을 우려가 크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민선 이후 서울시장 자리가 대권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전락하면서 행정이 이념화·정치화됐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서울시는 조직·예산 등 행정 시스템을 통한 분배에 몰두했다. 박 시장이 만든 민주주의위원회가 예산 배분 등 의사결정에
개입했고 사회적기업 지원센터를 통해 이념이 맞는 특정 진영이 예산 나눠먹기 사업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1995년 민선 시장시대가 열린 이후 조순·고건 전 시장 때는 달랐다고 한다. 행정과 정치가 8 대 2의 대원칙을 지켰는데 박 시장 때 와서 깨졌다는 것이다. 그는 "비대해진 시장 비서실이 실·국을 장악하면서 공직사회의 집단지성이 무너졌다"고 안타까워했다.
두 전문가는 누적된 부동산 실정이 3기 신도시 투기 사태를 초래했다고 진단했다. 시장의 수급 원리와 인간의 원초적 주거 욕구를 무시한채 이념에 집착한 나머지 수요 억제와 공공 독점 정책에 몰두하다 국민 고통만 키웠다는 두 전문가의 분석에 십분 공감했다.
▲고 박원순 시장의 성범죄 사건 때문에 4월 7일 보궐선거를 치르는 서울시청 본청 전경.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03.23 정부發 공기업 방만의 결과, 빚더미 LH 펑펑 복지에 투기까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2019년 막대한 부채에도 불구하고 사내복지기금에 474억원을 출연했다. 다른 시장형 공기업 16곳과 준정부 기관 96곳의 출연액을 모두 합한 액수(386억원)보다 많았다. LH 임직원의 평균 성과급도 2017년 708만원에서 작년 992만원으로 40%나 늘었다. 경영 상황은 엉망인데 성과급 잔치는 더 크게 벌인 것이다.
LH는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에서 3년 연속 ‘투기’ 신용등급을 받을 만큼 부실하다. LH의 부채는 2019년 현재 127조원으로, 자기 자본 대비 부채 비율이 254%에 달한다. 공공 기관 평균인 167%를 크게 웃돈다.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인 공공 임대주택 사업에서 큰 적자를 본 데다 불필요한 인력을 대거 늘렸기 때문이다. LH 직원 수는 무려 30% 넘게 급증했다. 연간 인건비도 5800억원에서 7600억원으로 치솟았다. 반면 직원 1인당 매출액은 33%나 줄었다. 그만큼 과잉 인력이 많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문 정부는 LH에 최우수 A등급을 주었다. 임원 성과급도 공기업 1위를 차지했다. 경영 성과나 내부 도덕성은 도외시하고 직원 수를 늘리는 등 정부 코드에 맞춘 것만 따진 것이다. 한전이나 건강보험공단도 ‘낙제’ 경영 실적을 내고도 정부 코드에 충실했다는 이유로 상위권 평가를 받았다.
문 정부는 애초 공기업 개혁이 아니라 그 반대였다. 공기업의 방만 경영을 수술하기는커녕 “정부가 최대 고용주”라며 공기업에 일자리 늘리기 책임을 떠넘겼다. “낙하산은 없을 것”이라더니 온갖 공기업의 사장·감사며 사외이사 자리를 정치인과 선거 캠프 출신의 비전문가들로 채워 넣었다. 공기업들은 비대해지고 방만 경영을 견제하는 시스템은 붕괴됐다. LH 직원들의 투기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 LH와 같은 도덕적 해이는 지금 전국 수백 곳의 공기업에서 동시다발로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3.27 인구 대재앙, 지금부터 대비해도 늦다
작년 中 천만, 日 83만명 출생… 우린 27만, 전쟁 없이도 첫 純減
집값 폭등에 일자리까지 줄면 출산율 회복은 기대 어려워
이제 이민 개방 고민할 때… 모병제 검토, 연금 개혁 시작해야
2020년 출생아 27만명, 사망자 30만명, 한국에서 사상 최초로 전쟁이나 질병이 아닌 자연적인 이유로 인구가 줄었다. 예상보다 9년 앞섰다. 합계출산율 0.84명은 OECD 평균 1.6명의 절반 수준으로 주요국 중 가장 낮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번 수치에 코로나 영향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혼인 건수가 사상 최저인 21만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금년 저출산은 안 봐도 비디오다. 이렇게 인구가 줄어들면 나라가 쇠퇴할 수밖에 없다. 저출산이 세계적 추세라고 해도 지난해 중국에서는 1000만명, 일본에는 83만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우리가 무슨 수로 버티겠나.
저출산이 뿌리내리면서 먼 훗날로 생각했던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장 직격탄을 맞는 곳은 대학이다. 정원 채우기가 어려워졌다. 합계출산율 2명이 무너진 1984년부터 학령인구 감소가 예견되었음에도 대학 설립 기준을 완화하면서까지 대학을 100개 이상 늘린 것이 화근이었다. 5년 후에는 대학 학령인구가 또 60여만명 줄어드는 데다가, 코로나 계기로 비대면 강의가 확산될 추세라서 대학의 앞날은 극히 어둡다.
경제는 이미 본격적 침체에 들어갔다. 코로나가 본질을 가리고 있어 보지 못할 뿐이다. 일본은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잃어버린 20년간 GDP는 제자리에 머물고, 세수는 40%가 줄었다. 집값은 반값이 되었고, 주가는 4분의 1로 떨어졌다. 우리 인구 절벽은 90년대 일본보다 더 가파른데 과연 비켜 갈 수 있을까? 국민연금은 더 위태롭다. 지금 태어난 아기가 한참 일할 때인 30대 중반이 되면 연금 재정은 고갈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안보다. 군 입대 자원인 18세 남자는 20년 전 43만명에서 지난해 27만명으로 줄었고, 또 20년 후에는 15만명이 된다. 현재 57만명 병력 유지는 아예 불가능이다. 앞으로 이 나라는 누가 지키나?
저출산의 파고가 쓰나미처럼 밀려오는데 우리 사회의 인식은 참 안일하다. 오히려 역행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생산가능인구는 향후 10년간 340만명, 20년간 870만명이 감소하는데, 전국에 고층 빌딩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금도 공실률이 11%가 넘는데 앞으로 누가 채우나? 얼마 전 새만금에 27만명 정도 신도시를 건설한다고 발표했는데 이 역시 누가 채우나? 사람이 없어 기존 공항도 폐쇄 위기에 있는데 가덕도공항을 건설하고, 지방대학은 고사 위기인데 한전공대를 신설하는 것 등 모두 난센스이다.
2005년 이후 수백조원을 쓰며 추진한 저출산 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원인이 워낙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MB 정부 시절 출산율이 2001년 수준인 1.3%까지 회복된 적이 있는데 여기서 단서를 찾을 필요가 있다. 당시 집값 안정과 경제 활성화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지금처럼 집값 폭등에 일자리마저 감소하면 출산율 회복은 기대하기 어렵다.
모든 것이 늦었고, 다른 대안도 없는 만큼 이제 이민을 고민할 시점이 된 것 같다. 이민자는 우리 직업을 빼앗고, 세금을 축낸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민자는 오로지 잘살겠다는 꿈을 가지고 오기 때문에 열정적으로 일한다. 나라 경제에 많은 도움이 된다. 구글, 인텔,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테슬라 등도 이민자들이 일궈낸 성과다.
중국 조선족이나 베트남 청년들을 지방대학에 유학시키고 국적을 주면 어떨까? 사실 이나마도 쉽지는 않다. 요즘 조선족 청년들은 중국에 훨씬 기회가 많기 때문에 굳이 한국에 올 마음이 없다고 한다. 더 늦기 전에 베트남 청년들이라도 잡자.
저출산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학의 경우 과감한 구조조정과 함께 출구를 만들어 주자. 그 땅을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훨씬 낫다. 지방 교육 재정도 차제에 개선하자. 지난 10년간 학령인구는 26%가 줄었는데 재정 규모는 66%가 늘어나는 기이한 모습이다.
국방력 공백을 생각하면 한·미·일 안보 동맹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 모병제를 검토할 때가 되었다. 국민 정서상 힘들지 몰라도 안정된 일자리가 늘어나는 부수적 효과도 작지 않다. 국가 부채를 줄이고, 연금도 개혁해야 한다. 지금처럼 가면 인구가 줄어드는 미래 세대가 감당할 수 없다. 이 외에도 할 일이 태산 같지만 무엇 하나 진전되는 것이 없다. 국가 미래보다는 눈앞의 정권에만 집착하는 정치권의 책임이 크지만 사회의 무관심이 더 문제다. 이러다가 결국 인구 대재앙이 현실화될 것 같다.
03.27 ‘라면왕’ 농심 창업주 신춘호 회장 별세
▲신춘호 농심회장./농심 제공
‘라면왕’ 농심 창업주 신춘호 회장이 27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농심은 “신 회장이 이날 오전 3시 38분 지병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신 회장은 1930년 12월 1일 울산에서 태어났다. 롯데 창업주인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과 형제 사이다.
신 회장은 1965년 농심을 창업해 신라면과 짜파게티, 새우깡 등의 제품을 개발했다. 신라면은 전세계 100 여개국에 수출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신 회장의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에 차려진다. 발인은 30일 5시.
조선일보 오경묵 기자
03.30 LH 수렁에 빠진 정권
‘사원용 아파트를 빼돌려 분양받은 사회지도층 600여 명을 적발하고, 40여 명은 구속·파면했다.’ 1978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압구정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이다. ‘투기는 불공정의 형제이며 악행의 아버지다’(조지 워싱턴). 백번 맞는 말이지만, 탐욕은 인간의 본성. 투기가 끊이지 않는다. 90년 1차 신도시(분당·일산), 2005년 2차 신도시(검단·동탄) 때도 후보지마다 난장판이 됐다. 예나 지금이나 파렴치하고, 수법도 비슷하다. LH 사태도 수많은 투기 사건의 하나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예전과 사뭇 다르다. 4·7 선거판을 단숨에 흔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개입 논란에도 가덕도까지 가서 “가슴이 뛴다”고 한 게 무색해졌다. 왜 이렇게 됐을까. 우선,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이 너무 올랐다. 서울 25평 아파트값은 이 정부에서 6억6000만원에서 11억9000만원으로 뛰었다(경실련). 국민이 참다 참다 폭발한 것이다. ‘마지막 지푸라기가 낙타의 등을 부러뜨린다’는 서양 속담처럼.
LH 특권층, 공허한 민심에 불질러
‘난 노력해도 안 되는데, 넌 뭐냐’
이 정권 사람들 똑같은 특권층일 뿐
대통령 유체이탈·갈라치기 안 통해
일도 없고, 집도 없는 젊은이들은 결혼을 포기한다. 지난해 결혼은 21만3500건으로 70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다. “주거나 고용 등 여건이 어려워지면서 만혼, 비혼이 늘고 있다”(통계청 인구동향과장). 오피스텔이나 원룸을 어렵사리 구해 결혼해도 아이를 안 낳는다. 아니, 키울 엄두가 안 나 못 낳는다. 세계 최저 출산율(2020년 0.84명)의 원인 중 하나가 집 문제다. 25~49세 국민은 이상적인 자녀 수를 2.05명이라고 생각한다(KDI 최슬기 교수). 이 소박한 꿈을 부동산이 막고 있다. 세계 10위권 부자 나라의 가난한 젊은이들이다.
좌절감이 큰 만큼 공정에 민감하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데, 저 사람은 쉽게 하네.’ 이건 참을 수 없다. LH 직원이 블라인드 앱에 올린 경솔한 글이 기름을 부었다. ‘차명 투기하면서 정년까지 꿀 빨면서 다니련다.’ ‘꼬우면 우리 회사로 이직하든가. 공부 못해 못 와놓고.’ 차명 투기는 범법 행위다. 더 섬뜩한 건 익명 뒤에 숨어 있는 고약한 심성과 뒤틀린 우월감이다. 이쯤 되면 이런 공기업을 그냥 놔두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
문 대통령의 경남 양산 사저도 불공정에 불을 질렀다. 농지 형질변경이 논란이 되자 그는 “좀스럽다”고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내로남불. 국민 입장에선 좀스러운 일이 아니다. ‘대통령은 쉽게 바꾸는데, 나는 왜 안 되나.’ “농지 취득 심사를 강화하라”는 29일 대통령 발언은 민망할 지경이다.
정부는 처음에 ‘정권과 LH는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현안에 대체로 침묵하는 문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신속했다. 즉각 “발본색원하라”고 지시했다. 이런 유체이탈 화법으로는 성난 민심이 잦아들지 않는다. 그러자 임기 내내 즐겨 쓴 ‘갈라치기’를 시도했다. 문 대통령은 “불공정의 뿌리인 부동산 적폐를 청산하는 것이 국민의 요구”라고 말했다. 정세균 총리도 “권력, 자본, 정보, 여론을 손에 쥔 특권세력이 대한민국을 투기장으로 만들었다”고 거들었다. LH 사태를 과거 적폐의 탓으로 돌리면서, 책임지는 위치에서 단숨에 심판하는 위치로 프레임 전환을 꾀한 것이다. 2006년 노무현 정부 때 이백만 홍보수석이 “일부 건설업체와 중개업자, 금융회사, 언론 등 부동산 세력이 시장을 교란했다”고 책임을 떠넘긴 것과 비슷하다.
이번엔 갈라치기가 전혀 먹히지 않는다. 다급해지자 ‘투기=친일파’ 프레임에 “소급 몰수” “정치 유불리 따지지 말고 파헤쳐야”까지 나왔으나 여론은 싸늘하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탓하나. 이 정권 사람들이 바로 부동산 적폐 아닌가.’ 재개발 투기 의혹으로 사임한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직 대신 집’을 택한 김조원 전 청와대 민정수석. 양도세를 줄이려고 꼼수를 쓴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목포시 차명 투기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은 손혜원 전 민주당 의원… 임종성·양향자·양이원영·윤재갑·김경만·서영석·김주영·김한정 등 하루가 멀다 하고 민주당 의원들의 투기 의혹이 나온다. ‘5% 상한’ 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틀 전에 전셋값을 14%나 올린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행보는 치명타다.
“위는 맑은데 바닥에 가면 잘못된 관행이 남아 있다”는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의 말은 불쾌하다. 위가 맑은지 여부는 차치하고, ‘자신들은 위, LH는 바닥’이라는 인식 자체가 오만하고 천박하다. LH 직원으로부터 조롱받는 국민은 바닥도 안 된단 말인가. 문재인 정권 4년을 겪으면서 국민은 죄다 알게 됐다. 그들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진보로 위장했지만, 권력과 정보를 탐욕스럽게 독점한 특권층이라는 것을. 조국·윤미향·박원순·오거돈 모두 진보 간판을 교묘하게 이용한 특권층이라는 것을. 78년 군사독재정권 시절 현대아파트를 분양받은 특권층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적어도 도덕적으로는 보수보다 좀 나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오십보백보. 누가 적폐이고, 누가 정의인지 헷갈린다. 배신감을 느낀다. ‘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나.’ 씁쓸하고 공허한 민심에 ‘정년까지 꿀 빨겠다’는 또 다른 특권층, LH가 불을 지른 것이다. LH 사태가 한 달 지나도록 잦아들지 않는 이유다. ◎
중앙일보 고현곤 논설주간 겸 신문제작총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