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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7/ 대중음악5/ 걸그룹1/ 걸그룹역사 - 연대기 - 걸그룹 2013 성적표

상림은내고향 2021. 2. 16. 17:16

음악 이야기7/ 대중음악5/ 걸그룹1

아이돌과 걸그룹의 역사

아이돌(영어: idol, 아이들)은 본래 우상(偶像)을 뜻하는 영어이고, 어원은 그리스어로 ιδειν이며, 이후 ειδo에서 idola로 변천 되어 최종적으로 idol로 변천되었다. 기본적으로 우상적인 존재, 인기있는 사람을 뜻한다. 청소년층의 인기인은 Teen idol로서 십대우상의 단어이다

 

아이돌 가수(Teen Idol)는 주로 청소년에게 큰 인기를 얻는 가수를 말한다. 아이돌은 영어로 성공, 미래, 창조를 뜻하며 가수, 영화 배우, 텔레비전 배우 등 연예계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 뉴 키즈 온 더 블록, 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와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후 데뷔한 H.O.T의 잇따른 성공으로 10대시장이 크게 성장하였다

 

이전에는 옛 전자신문에서 알 수 있듯이 인기 댄스 그룹, 인기가 많아 성공적인 아이돌 스타, 틴 아이돌, 하이틴 스타  틴에이지 그룹, 틴 아이돌 스타(뉴 키즈 온 더 블록, 듀란 듀란, H.O.T., 토미 페이지, 전영록 등) 등으로 잡지 면에 장식을 했고 불리었으나, 2000년 초(기사가 등장하는 시점. 인터넷이 활성화)부터 10대들에게 인기를 얻는 가수를 지칭하는 기사, 기사 문구에 다량으로 쓰이게 되며, 청소년에게 인기 끌만한 그룹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이들을 짧게 줄여서 부르는 경향이나 젊은이들에게 인기 얻는 그룹들을 아이돌이라고 부르면서 용어가 정착되어 가고 있으며 아이돌 스타(idol star, 아이들 스타) 라는 표제어로 2003국립국어원 신어 자료집에 추가되었다

 

대한민국의 아이돌대한민국 출신이거나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10청소년 또는 20대 초반의 가수들로, 10대들에게 큰 인기를 얻는 이들을 지칭하며, 주로 하이틴스타(Teen Idol)로 통한다

 

90년대말~2000년대 초반 활동한 그룹을 "아이돌 1세대"로 분류한다. 

 대표적으로 H.O.T.젝스 키스, S.E.S.핑클, 신화, god이 인기를 끌었으며 이외에도 클릭비, 베이비복스, 샤크라 등이 있다. H.O.T., 젝스 키스 해체, S.E.S., 핑클 활동 중단 등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아이돌 가수들의 인기는 줄어들고 쥬얼리, 슈가 등이 명맥을 잇는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 동방신기를 기점으로 다시 아이돌 가수가 부활하여 2000년대 중반~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그룹을 "아이돌 2세대"로 분류한다. 대표적으로 동방신기, SS501, 슈퍼 주니어, 빅뱅, 소녀시대, 원더걸스, 카라 등 많은 그룹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아이돌 2세대는 아이돌 1세대에 비해 활동그룹들도 많으며 활동기간도 길고 멤버 연령대도 다양하여 최근 데뷔한 그룹들을 "아이돌 3세대"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아이돌 2세대" 대표 그룹들이 아직 아이돌계를 이끌고 있어서 "아이돌 3세대"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의 의견이다.

 

걸 그룹(Girl Group) 혹은 소녀 그룹(少女)2000년대 후반에 생성된 신조어 대중가요에 종사하는 젋은 여성 가수의 모임을 집단적으로 일컫는 용어이다. 대체로 유사한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어린 연령인 경우가 많다. 또한 청순함이나 성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이미지를 대중에게 호소한다.

 

원래 그대로의 의미는 어린 나이의 여성으로 이루어진 음악 그룹을 말하나, 최근에는 애프터 스쿨, 브라운 아이드 걸스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많은 나이의 여성 구성원이 있는 그룹도 걸 그룹이란 칭호가 쓰여 정확한 정의가 모호하다  현재는 걸 그룹의 의미의 폭이 넓어져 "밝고 활기찬, 소녀다운 느낌을 가진 그룹"이나 "여성 댄스 그룹"을 걸 그룹이라고 부른다걸 그룹은 최근에 생긴 단어로 2000년대 중후반에 나온 여성 그룹들을 칭하는 말이었으나, 최근엔 195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에 활동했던 여성 그룹도 걸 그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19501970 

태동기의 기간인 195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대부분이 트로트 장르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시스터즈와 같은 가수들은 그 당시에는 생소했던 사이키델릭 , 소울등의 장르를 선보이기도 했다그리고 1970년대에는 몇 개의 그룹이 구성원의 결혼으로 해체되었는데, 당시 사회상이 결혼 후 연예활동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걸로 보인다억압되고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의 영향으로 인해 1970년대 바니걸스를 끝으로 소녀 그룹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현재 최초의 걸 그룹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으나, 대부분 저고리 시스터즈로 뽑고 있다

그러나, 최초로 정식 음반을 내며 활동을 한 그룹으로 김시스터즈를 뽑는다. 1953년 가요계에 데뷔한 김시스터즈는 애자, 민자, 숙자로 이루어진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활동하던 그룹으로, 빌보드 차트에 최초로 진입한 한국 아티스트로 알려져있다코스터즈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찰리 브라운〉이란 곡으로 1962빌보드 핫 100에 올랐다. 1959미국으로 건너가 라스베이거스 등에서 프랭크 시나트라, 마릴린 먼로 등의 인기 스타들과 활동을 했다

 

 김시스터즈가 유명해 진 후 현시스터즈, 정시스터즈, 영시스터즈, 이시스터즈 등의 "자매"형 그룹이 생겨났다.  

 

현시스터즈는 김명선(현미), 김정애, 현주로 이루어진 그룹으로김씨 성이 두명이었으나 김시스터즈와 구별을 짓기 위해 현시스터즈로 이름을 지었다. 그래서 현자 돌림으로 이름을 바꿔 김명선은 현미, 김정애는 현애, 현주는 그대로의 이름을 사용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활동한 정희옥, 정희숙, 정희정으로 이루어진  정시스터즈는 〈새드 무비〉, 〈검은 상처의 블루스〉 등의 히트곡을 가지고 있다

 

맥과이어 시스터스(The McQuire Sisters)의 영향을 받은 이시스터즈는 김천숙, 김명자, 이정자(후에 이정자가 탈퇴하고 김상미가 영입된다)로 이루어진 그룹이다. 짜릿짜릿한 하모니를 구사하던 이시스터즈의 등장은 소리의 변화로 대변되는 1960년대의 상징이며,  이들의 음악성은 국내 가요의 폭을 한층 넓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히트곡으로는 〈울릉도 트위스트〉, 〈남성금지구역〉, 〈워싱턴 광장〉등이 있다.

 

〈마포종점〉으로 유명한 은방울 자매1954 결성됐다.  박애경, 김향미로 시작한 그룹은 1989 김향미에서 오숙남으로 멤버를 교체하였다. 자매형 그룹은 1950년대 말 은방울 자매를 시작으로 60년대70년대 한국에서 전성기를 누렸다고 평가받는다

 

배인순, 배인숙으로 이루어진 시스터즈1968 데뷔한 그룹으로, 70년대 중반까지 인기가 매우 높았다.  그로 인해 경향신문1969에 가장 세금을 많이 낸 법인과 개인, 연예인들로 본 세태를 분석했는데 펄 시스터즈는 5위를 기록하였다.  신중현이 작곡한 펄 시스터즈의 대표곡인 〈커피 한잔〉은 젊은이들로부터 칭찬을 받았으나 기성세대에게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1976 배인순이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과의 결혼을 발표하면서 동시에 해체되었다.

 

1970년에는 가장 나이가 어린 쌍둥이 여성 보컬 그룹 릴리 시스터즈가 등장했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김성아와 김경아 자매는 청순한 외모와는 다르게 허스키한 목소리로 이목을 끌었다. 1974일본에 진출하기도 했으나 김성아가 결혼을 하면서 해체됐다.  릴리 시스터즈는 은지원라디오 스타에 나와 김성아가 자신의 어머니임을 밝히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재숙, 고정숙으로 이루어진 그룹 바니걸스 1971년 신중현이 작곡한 〈그 사람 데려다주오〉로 데뷔했다. 쌍둥이 자매 간인 두 멤버는 너무도 닮아 국악예고 입학시험 당시 사진을 내자 한 장만 내도 된다며 되돌려준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한때 군사정권외래어 사용 금지 명령에 의해 "토끼소녀"로 잠깐 개명하기도 했다.

 

19801990 

억압적,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로 인해 몇 년간 소녀 그룹은 나오지 않았다. 박정희 사망 이후인 

 

1983 7 임경희와 임성희로 이루어진 국보자매가 나오면서 그 동안의 침묵은 깨지게 되었다. 〈내 모습이 쓸쓸해요〉가 대표곡인 국보자매는 일본, 유럽 순회 공연을 돌 정도로 인기가 높았으나임경희가 도쿄음대에 복학하기 위해 출국하면서 해체했다.] 그러나 자매의 아버지 임천수가 사망하면서 임경희는 학업 및 잠정해체 계획을 취소하고 임천수의 유작을 위해 다시 활동하기로 결심한다2006 14번째 앨범을 내면서 아버지의 유작을 뮤지컬로 재현할 것을 밝혔다.

 

 이후 1987 이희정, 김정임, 우윤아로 이루어진 세또래가 결성됐다. 〈그대를 사랑해〉〈그대 여기에〉〈그대의 전화〉등 그대 시리즈로 인기를 끌었다그러나 1989 2집을 낸 이후 종적을 감췄다. 세또래의 멤버 중 이희정은 베이비 복스이가이로 예명을 정한 뒤 아이돌 그룹으로서의 이미지를 위해 나이를 10살 낮추고 활동했으나 나중에 세또래의 멤버였으며, 1968생임이 알려지면서 탈퇴했다.

 

2007 "Tell Me" 열풍을 일으킨 원더걸스.

 

1990년대 초반에는 남성 아이돌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R.ef, 솔리드나 혼성 그룹 룰라가 인기가 높은 때였다.그러나 1997S.E.S. 1999핑클이 등장하면서 걸 그룹이 점차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특히 S.E.S.는 데뷔 이후 총 음반 판매량이 약 350만 장을 기록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음반을 팔아치운 그룹이기도 했다.

 

2000–현재 

2008 "One More Time" 열풍을 일으킨 쥬얼리

 

이후 S.E.S 와 핑클은 2000년대 초반 이후 활동이 없었으며, 걸 그룹들의 발판을 마련한 뒤 거의 해체를 하게 되며 대신 다른 걸 그룹들이 생겨나고, 자리를 채웠다

 

특히 1997년에 데뷔한 베이비복스가 몇몇 히트곡들을 내 중화권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해외 활동도 활발히 하였지만, 2006년 해체를 맞이하게 된다

 

 2000년대 중반에 와서는 4인조 여성 그룹 쥬얼리가 〈니가 참 좋아〉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고 "Super Star" 1위를 차지하며 대한민국 대표 걸 그룹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천상지희 <부메랑>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며 주목을 받게되고, 2006 11월 〈열정〉 활동 때 그룹명을 변경한 천상지 그레이스 2007년 〈한번 더, OK〉로 1위를 차지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실력파 여자 아이돌 그룹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천상지희는 걸 그룹의 침체기였던 일본에서도 엄청난 성적을 내며 아시아 대표 걸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잠시 주춤했던 여자 아이돌의 팬클럽 역시 천상지희의 팬클럽 샤플리가 10만명 규모를 돌파하면서

 

후에 원더걸스의 원더풀, 카라의 카밀리아 그리고 소녀시대의 소원의 대형 걸 그룹 팬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2006년에는 4인조 여자 그룹 브라운 아이드 걸스가 데뷔하였지만, 대중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2008년부터 인지도가 높아졌다. 특히 나르샤가인이 대표적으로 브라운 아이드 걸스를 알린 멤버로 주목하고 있다.

 

이듬 해인 2007에는 많은 걸 그룹이 등장하였는데 2007 2원더걸스를 시작으로 카라, 소녀시대를 순으로 데뷔하였다. 특히 2007년 말 원더걸스의 "Tell Me"가 대한민국에서 대 히트를치며 '텔미 신드롬'이라고 불리기도 할정도로 인기를 얻었고 소녀시대 와 함께 대한민국의 대표 걸 그룹으로 불리게 되며 아이돌형 걸 그룹의 시초가 된다

 

이후 2008년 맴버들의 탈퇴로 인한 해체 위기를 맞았던 쥬얼리 2월에 5집을 발매하며 "One More Time"으로 대한민국에 일명 "ET " 열풍을 불어넣으며 화려하게 컴백을 하였고, 직뱅크에서는 7주 연속 1위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해 원더걸스는 텔미에 이은 "So Hot", "nobody"를 연속 히트시키며 2008년 말 MKMF시상식에서 동방신기, , 빅뱅 등의 후보들을 이기고 대상을 타며 명실상부 최고의 걸 그룹으로 인정받았다

 

2009에는 소녀시대를 시작으로 수 많은 걸 그룹의 등장과 함께 본격적 열풍이 불었는데 1월 소녀시대의 "Gee"가 뮤직뱅크에서 9주 연속 1위를 하며 쥬얼리의 기록을 갈아치웠고 연말 각종 시상식 MKMF, 골든 디스크, 하이원 서울가요대상등에서 대상과 이외에 많은 상을 수상하며 'Gee 신드롬'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스키니진 패션도 유행하는등 최고의 그룹으로 자리잡는다

 

같은 달 기존의 걸 그룹과는 달리 '섹시, 파격' 등의 컨셉과 대한민국 최초 입학·졸업 시스템으로 화제를 모았던 애프터스쿨 "AH"로 데뷔 하였고 

 

3 "Lollipop"으로 데뷔전부터 화제를 몰고다녔던 투애니원 "Fire"를 통해 데뷔하였고 데뷔하자마자 인기가요에서 뮤티즌송을 타는 등 인기를 얻으면서 소녀시대의 자리를 위협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포미닛, 티아라등이 등장하였고 연말에 시크릿, 레인보우가 데뷔 해 2010년 현재 걸 그룹 열풍은 계속 이어졌다최근에는 소녀시대, 카라를 필두로 많은 걸 그룹들이 일본, 아시아로 진출하고 있다.

 

미국 

미국의 대표적인 걸 그룹인 푸시캣 돌스의 공연 모습.

 

미국에서는 1950대 이후 젊은 여성 가수 끼리 모여 팀을 이루어 , 디스코등 여러 장르에서 활동하는데 그 종류로는 2000년대 이후 주로 젊은 대중들을 대상으로하여 팝, 알앤비, 힙합 장르를 주로 이용하는 그룹으로 TLC이 있고 이후에 좀 더 대중적인 3인조 여성 그룹인 데스티니 차일드가 등장하였지만, 2005년 공식 해체를 하게 되었다. 후에 푸시캣 돌스가 등장하게 되는데 1PCD를 발매하고나서 거의 세계적인 그룹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 그룹은 로빈 안틴에 의해 제작되었는데 비슷한 시기 다른 그룹 걸리셔스도 제작되어 "Like Me", "Stupid Shit"등의 싱글을 발표하였다. 그 밖에 많은 걸 그룹이 있으며 데니티 케인, 수프림스 등이 있다.

 

영국 

역사상 가장 높은 판매고를 올린 걸 그룹 스파이스 걸스.

 

영국에서는 1990년대 스파이스 걸스라는 5인조 걸 그룹이 등장해 "Wannabe", "2 Become 1", "Spice Up Your Life" 등의 히트곡을 내며 인기 대열에 올랐다. 스파이스 걸스는 이후 영화 출연, 광고 모델 그리고 콘서트 매진 등 영국에서는 비틀즈 이후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그룹으로 기록된다스파이스 걸스는 1990년대 가장 높은 판매고를 올린 팝 음악 그룹으로도 역사에 남았다

 

스파이스 걸스의 첫 데뷔 앨범 Spice는 세계적으로 약 2,3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여자 그룹 중 가장 높은 판매고를 올린 음반으로 기록되어있다모든 음반 판매량을 합쳐서는 세계적으로 8천만 장을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타임스》와 《BBC 뉴스》는 이 그룹을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여자 그룹이라고 기사를 보도했었다.

 

2000년대에도 영국에서 인기를 얻고있는 걸 그룹이 있었는데, 아토믹 키튼 2000 "Whole Again" 1위에 오르며 인기를 얻었다

 

또한 슈가베이비스걸스 어라우드 2000년대 초반에 각광을 받았다. 걸스 어라우드의 "Sound of the Underground"와 슈가베이비스의 "Round Round"는 프로듀서 제노매니아에 의해 작곡되었는데, 2000년대 영국 팝 비평가들은 "거대하고 혁신적인 히트"라고 말했다. 슈가베이비스는 맴버들을 도중에 바꿨으며, 6개의 영국 1위 싱글, 14개의 상위 10위권 싱글, 4개의 플래티넘 인증 앨범 등을 만들어냈다걸스어라우드는 20개의 상위 10위권 싱글(4개의 1위 싱글 포함) 그리고 두 개의 넘버원 앨범 등을 만들어냈다. 걸스 어라우드 다섯 개의 정규 앨범 중 세 개의 앨범이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으며, 컴필레이션 앨범 The Sound of Girls Aloud는 백만 장 이상을 판매했다이와 같은 영국 걸 그룹들의 성공은 2007년 데뷔한 새터데이즈에게 영향을 끼쳤다. 2011 년 또한 새로운 소녀 그룹 Stooshe, Little Mix.

 

걸그룹 연대기

가요계 역사와 함께 흘러온 추억의 걸 그룹 '저고리 시스터'에서 현재 대중을 이끌어가는'소녀시대'까지. 그들이 남긴 발자취를 통해 대중문화를 읽어본다.

걸그룹 탄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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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1  

 원조 걸그룹은?

거센 한류 바람의 중심에는 걸그룹이 있다

 

그런데 걸그룹의 원조는 누굴까?

 

걸그룹의 원조는 일제강점기였던 1940년 안팎에 활동했던 ‘저고리씨스터’.

  

팀의 리더 이난영의 대표곡인 ‘목포의 눈물’은 ‘황성 옛터’, ‘타향살이’, ‘애수의 소야곡’과 더불어 우리 대중가요 초창기 온 국민이 애창했던 원조 ‘국민가요’로 전해지고 있다.

 

올해는 이난영이 태어난 지 꼭 100, 생일인 6 6일에 맞춰 목포와 서울에서는 헌정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와 함께 그에 대한 재평가작업이 활발하다.

  

이난영은 단지 가수뿐만 아니라 그 자신 선구적인 연예기획자로도 활동했으나 그동안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SBS 뉴스토리]]는 이난영 100주년 행사를 위해 미국에서 방문한 이난영의 딸이자 김씨스터즈의 리더 김숙자 씨를 동행 취재해 한류와 아이돌 걸그룹의 역사 등 한국 대중 가요사에 숨겨진 이야기를 당시의 영상과 함께 구성해 보았다.    

 

<br>출처 : SBS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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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링크 :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619961&plink=TEXT&cooper=DAUM&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원조 걸그룹은 SES·핑클? 바로 '저고리씨스터'

한류바람이 거센 요즘이다. K-POP의 인기도 드높다. 그 중심에 걸그룹이 있다. 뛰어난 춤과 노래 솜씨, 빼어난 외모. 걸그룹의 원조는 누굴까. SES? 핑클? 천만에. 우리나라 걸그룹의 원조는 그 이름도 정겨운 '저고리씨스터'.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1939, 그러니까 일제 강점기에 등장한 그룹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성들이 떼로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은 대중들에게 큰 관심이자 화제꺼리였나 보다. 정확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지만 각종자료를 종합해보면 멤버도 딱히 정해진 게 아니라 5~9명 정도로 들고났고, 활동시기도 꽤 오랜 기간, 지금말로하면 기수 내림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트로트, 신민요, 만요, 재즈 등 일본과 서양의 유행가들을 우리 것으로 만들기 시작한 대중가요 초창기의 모습이다.

 

저고리씨스터는 태평레코드와 함께 당시 대중음악계를 좌지우지하던 오케레코드에서 철저히 기획한 걸그룹이었다. 음반회사가 유명가수를 전속하던 시절이니 지금의 연예기획사들이 소녀시대, 브아걸, AOA 같은 걸그룹을 기획하는 것이 비단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한국 최초의 걸그룹, 걸그룹의 전설 저고리씨스터의 중심인물은 이난영이다. 요즘으로 치면 팀의 리더인 셈이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숨어드는데~'. 이난영은 '목포의 눈물'(1935)이라는 노래로 당대 최고의 히트를 쳤다. 이애리수의 '황성옛터'(1928), 고복수의 '타향'(타향살이, 1934),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1937) 등과 함께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백성의 애환을 함께 한 국민가요로 기록된다.

 

올해는 이난영이 태어난 지 100년 되는 해다(생일 6 6). 서울에선 최근 시스터즈의 계보를 잇는 미미시스터즈와 바버레츠가 기획한 헌정공연이 열렸고, 고향이자 노래의 배경인 목포에선 특집 난영 가요제, 토크 콘서트, 자료 전시회, 시민 토론회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 재평가 작업도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이난영을 단순히 구성지고 애수 띤 목소리의 트로트 가수로만 알았다면 그건 몰이해다. 이난영은 가수를 넘어 연출가로 제작자로, 나아가 글로벌 마인드를 가진 한류공연 기획자였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대구에서 부산으로 가는 피난기차 안에서 이난영은 '김시스터즈'라는 아이돌 걸그룹을 기획한다.

 

김시스터즈는 이난영의 딸 숙자 애자, 조카 민자로 구성된 한국 최초의 아이돌 걸그룹이다. 이들의 주요무대는 미군부대였다. 양주로 출연료를 대신하던 시절이었다. GI쇼 한 번에 위스키는 네 케이스, 맥주는 열두 케이스를 받았다고 한다. 이걸 집에 두면 자전거를 끌고 온 어떤 아저씨가 쌀과 교환해갔다.

 

이난영 100년 기념사업을 위해 잠시 한국을 찾은 김시스터즈의 리더 김숙자 씨는 기자와 만나 이렇게 회고했다. 제보를 받았는지 가끔 미군 헌병(MP)이 집으로 들이닥치곤 했다. 그런 날이면 어머니(이난영)는 양주를 감춰둔 방문 바로 앞에서 우리 7남매를 잠들도록 했다. 그러면 미군 헌병이 문을 열다가도 아이들을 보고 그냥 돌아갔다.

 

1959, 한류가 꿈틀거리는 순간이 다가왔다. 김시스터즈의 미국진출이었다. 이때 나이가 열아홉, 열여덟, 열일곱. 김시스터즈는 아시아 최초로 미국에 진출한 아이돌 걸그룹이자 원조 한류로 기록됐다.

 

김숙자 씨는 그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톰 볼이라는 미국 연예 에이전트가 도쿄에서 대상을 물색하다가 우리 얘기를 들었나 봐요. 원래 4주 계약으로 라스베이거스에서 쇼를 하는 조건이었어요. 반응이 좋으면 4주 더 연장한다는 옵션이 있었지만."

 

그런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당시 미국에서 인기를 누리던 CBS-TV 프로그램 에드 설리번 쇼는 이들을 22회나 출연시켰다. 라스베이거스의 스타더스트 호텔은 당시에도 지금의 신용카드처럼 생긴 플라스틱 룸 키를 사용했는데, 한쪽 면에 김시스터즈의 사진을 새겨 넣을 정도였다. 김시스터즈가 다시 한국 땅을 밟은 건 그로부터 11년 뒤인 1970년 서울시민회관에서 가졌던 귀국공연이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어머니 이난영은 무섭도록 연습을 시켰다. 미국에는 실력파 가수들이 너무 많으니 노래만으론 성공할 수 없다. 악기를 함께 다뤄야한다. 그래서 멤버 누구나 10개 정도의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게 됐다. 김숙자 씨는 피아노, 트럼펫, 트럼본, 테너섹소폰, 기타, 만돌린, 벤조, 클라리넷 등 13가지 악기를 다룬다고 했다.

 

또 하나의 지시사항은 '노 데이트'. 남자친구를 사귀면 연습을 게을리 하게 되고 팀워크는 흔들린다. 4년 동안 절대 남자를 사귀지 마라. 사실 김숙자 씨에게는 벤이라는 미국 남성이 끊임없는 구애를 해왔다. 하지만 어머니와의 '노 데이트' 약속을 깰 수 없었다. 그 사람에게 사정 얘기를 했고, 그는 2년을 기다렸다. 마침내 1962 12월 이난영이 8개월 일정으로 미국에 왔을 때 식사를 함께 해도 된다는 허락을 얻었고, 함께 식사를 한 뒤 클럽에서 트위스트를 신나게 췄던 기억이 있지만 결혼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했다.

 

인기, , 명예를 얻었지만 그리움은 더해갔다. 서울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면 눈물부터 쏟아져 말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였다. 국제전화 요금이 엄청나게 비싸던 시절이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에이전트가 왜 비싼 국제전화를 걸어놓고 말을 하지 않고 울기만 하냐며 놀렸다고 한다.

 

동생 애자 씨는 김치를 못 먹어 황달까지 생겼다고 한다. 의학적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김숙자 씨는 그렇게 말했다. 지금과 달라서 당시만 해도 주위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웠거니와 김치를 구하기는 그야말로 하늘에서 별을 따는 일만큼이나 어려웠다. 하루는 서울 어머니가 총각김치를 담가 보냈다고 연락해왔다.

 

시카고에서 공연할 땐데 공항에 물건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한걸음에 달려 나갔는데, 글쎄 이게 웬일인가. 포장이 잘못돼 김치 국물이 흘러나왔고, 고약한 냄새에 식품이 상한 줄 안 공항직원이 폐기처분해버린 게 아닌가. ". 이 양반아. 그건 썩을수록(삭을수록) 맛있는 거야." 소리를 치며 항의했지만 엎질러진 김치였다. 포장기술이 형편없던 시절이라 어머니 이난영이 깡통을 구해 김치를 차곡차곡 넣은 뒤 국물이 새나올까 용접까지 했건만 불상사가 생기고만 것이다.

 

김치는 가버렸지만 이렇게 세상에 나오게 된 노래가 바로 '김치 깍두기'. '머나먼 미국 땅에 십년 넘어 살면서 고국생각 그리워. 아침 저녁 식사 때면 런치에다 비후스텍 맛좋다고 자랑 쳐도 우리나라 배추김치 깍두기만 못하더라~'. 김치 사연을 전해들은 이난영의 오빠 이봉룡이 작곡한 노래다. 지금 가사내용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오지만, 그땐 얼마나 절박했을까. 이봉룡은 목포의 눈물과 함께 지금도 호남지역에서 애창되는 '목포는 항구다'를 작곡하기도 했다.'

 

이난영은 1965년 마흔아홉 짧은 삶을 뒤로한 채 세상을 떴다. 항간엔 알콜중독이다, 약물중독이다 말이 많지만 확인된 건 심장마비라는 사실이다. '오빠는 풍각쟁이', '선창', '다방의 푸른 꿈' 등 당대의 명곡을 작곡한 남편 김해송은 앞서 한국전쟁 때 북한군에 의해 납북되던 중 총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숙자 씨는 1969년 이탈리아계 미국인과 결혼해 1 1녀를 두었다. 지금도 라스베이거스에서 살고 있다. 이젠 아이들도 결혼해 어느새 손주를 둔 일흔일곱의 할머니가 됐다.

 

뿌리 없는 나무가 있다던가. 한류도 그렇다. SM, YG, JYP, SES, 핑클이, 소녀시대가 어디 한순간에 튀어나왔겠는가. 지금의 한류가 있기 전 그 어디에선가 아무도 몰라주던 코리아를 알렸던 선배들의 역사가 있었음을.

김희남 기자hn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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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고리 시스터

 

서울패밀리 - 한국 최초 걸밴드

 

김시스터

 

펄시스터

 

바니걸스

 

 

걸그룹 총 집합 12.12.28 KBS

 

아이돌 그룹이름의 뜻

아이돌그룹 이름은 영어단어 몇 가지를 조합해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 남성 4인조 아이돌밴드 ‘씨엔블루(CNBLUE)’가 대표적. 이는 ‘Code Name BLUE’의 줄임말로 여기서 블루는 ‘파랗다’는 의미가 아니라, Burning(열정적인), Lovely(사랑스러운), Untouchable(손댈 수 없는), Emotional(감정적인) 등 멤버 각각의 개성을 표현한 영어단어의 첫 자를 가져온 것.

남성 5인조 아이돌그룹 ‘비원에이포(B1A4)’는 ‘Be the One, All for One’의 줄임말로 한 가지 목표를 위해 멤버 전원이 하나가 되자는 의미. 하지만 동시에 ‘혈액형이 B형인 멤버가 1, A형인 멤버가 4명’이라는 허망하고(?) 재기발랄한 사연을 담고 있기도 하다

 

함수 f(x)에서 변수 x의 정체는?

여성 5인조 아이돌그룹 ‘에프엑스(f(x))’는 수학에서 함수를 뜻하는 기호 f(x)를 본떠 그룹이름을 정했다. 변수 x의 값에 따라 결과 값이 달라지는 함수 f(x)처럼 멤버들이 재능과 매력을 발휘해 매번 다양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미. 남성 6인조 아이돌그룹 ‘엑소케이(EXO-K). EXO’는 태양계 외행성을 뜻하는 ‘Exoplanet’에서 앞 세 글자를 따온 것이다. , 태양계가 아닌 우주 저 멀리 어딘가 미지의 세계에서 온 새로운 스타라는 의미.

 

여성 2인조 아이돌그룹 ‘다비치(Davichi)’에 숨겨진 뜻은?

언뜻 영어문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연관된 미술문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국어문제. 다비치는 우리말 ‘다 빛이’를 소리나는 대로 옮겨 적은 것. ‘그룹이 하는 모든 일에 다 빛이 비추었으면 한다’는 멤버들의 간절한 바람이 담겼다.

 

과당경쟁 아이돌 작명 요지경

2016년은 한국 아이돌 그룹 20주년이다. H.O.T.(하이파이브 오브 틴에이저스) 1996년 데뷔했다. 젝스키스(6개의 수정) 9 10, 11 16년 만의 단독공연을 연다. 에이전트7은 이런 시점에 구구단, 아이오아이, 블랙핑크, C.I.V.A처럼 듣는 이를 멍하게 만드는 작명(作名)으로 지구 아이돌 무력화를 기도하는 어두운 세력의 존재를 감지했다. 휴업 중인 에이전트7이 다시 슈트를 차려 입기로 이만큼 적절한 때는 없어 보였다.


○ “대표님, 사… 사랑합니다.

크나큰, 소나무, 가물치, 풍뎅이, 칠학년일반…. 최근 몇 년 새 이 판에 창궐한 기이한 작명 붐은 믿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다. 크나큰(KNK·3월 데뷔) 185cm로 평균 신장이 크나큰 남성 그룹이다. 소나무(2014년 데뷔)는 바르고 곧게 성장하겠다는 포부를 지닌 여성그룹. 7인조 걸그룹 칠학년일반(2014년 데뷔) 멤버들에겐 반장부터 ‘빵 셔틀’까지 학급 내 위치가 부여돼 있다. 2013년 싱글 ‘알탕’으로 데뷔한 풍뎅이는 3인조 여성그룹.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작명의 주체부터 살펴야 했다. 일반적으로 가수 이름 짓기에 가장 큰 발언권을 지닌 것은 가요기획사 대표다. H.O.T.부터 NCT까지 20년간 10여 개의 모든 그룹 작명에 직접 아이디어를 낸 SM 이수만 회장이 대표적이다. 사내 공모, 사외 공모도 흔한 절차다. 이때도 최종결정권자는 임원진이나 대표다.


남성그룹 가물치(K-MUCH·2014년 데뷔)는 크롬 엔터테인먼트(크레용팝 소속) 전 대표의 작명이다. 이 ‘대물급’ 그룹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포털 사이트에 검색했다가 급한 마음에 제일 위에 뜬 ‘보신원’ 홈페이지를 클릭할 뻔했다. 특급 미끼에 낚시 전문지 ‘월간 낚시21’도 반응했다. 2014 3월호에 가물치 인터뷰 기사를 실은 것.


○ “튀려다 얻는 오명보다 튀어서 얻는 득이 많아….

핑클(Fin.K.L·‘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것을 끝낸다’는 의미를 담은 Fine Killing Liberty의 약자), 젝스키스 때는 뭔가 멋져 보이려는 몸부림이라도 보였건만…. 일견 일차원적이고 무성의해 보이는 이름의 범람은 2014년부터 시작됐다. 아이돌 과당경쟁 체제 때문이다. 웹진 아이돌로지의 ‘아이돌 연감 2015’에 따르면 작년에만 60(324)의 아이돌 그룹이 데뷔했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를 만났다.


“이름이 우습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리스크보다 수많은 그룹 중에서 이름으로라도 튈 때 나타나는 효용성이 더 높다는 게 기획사들의 계산일 겁니다. ‘헛발질’들은 그러다 나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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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여성그룹 구구단을 데뷔시킨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를 찾았다. 성시경 박효신 서인국 빅스를 보유한 이 번듯한 회사가 도박 같은 작명을 한 이유는 뭘까.

 

“신중했습니다. ‘튀어봐야지’란 의도는 없었어요. ‘아홉 매력을 지닌 아홉 소녀가 모인 극단’이란 콘셉트를 잘 표현할 이름이죠.(김숙경 젤리피쉬 홍보이사)


사내 공모를 거쳐 뽑힌 세 가지 작명 안(‘두근두근’ 등) 가운데 구구단을 누구보다 지지한 것은 황세준 젤리피쉬 대표였다. 특이한 사례도 있다. 댄스가수 NS윤지의 이름은 도올 김용옥의 솜씨. 그가 지어준 예명 ‘새혼(New Spirit)’에서 앞 글자를 딴 것이다.


조사가 거듭될수록 눈에 띈 것은 한국어 이름이 영어 이름에 비해 턱없이 박한 평가를 받는다는 점이었다. 가요기획사 임원진의 각별한 한국어 사랑 역시 눈물겨웠다. 아이돌 그룹 이름에는 왜 영어가 대체로 잘 어울릴까. 두툼한 신경언어학 서적을 펼치며 언어학의 세계적 석학에게 막 국제전화를 걸려던 찰나…. 복도 끝에서 요원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휴업 중인 요원은 어떤 사안에도 개입하지 않는다.’ 조직 지침서 귀퉁이에 적힌 문구가 머리를 스쳤다. 그런데, 아뿔싸. 반사적으로 몸을 숙여 들어간 책상 밑에서 뭔가와 눈이 마주쳤는데…. (다음 편에 계속)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걸그룹도 욕망한다, 우리에게 금지된 것을…”

아이돌 그룹은 지구적 욕망의 결정체다. 명성과 부를 단숨에 이룬 선망의 대상. 늙어가는 자아를 위로할 욕망의 존재. 국가마저 한류라는 브랜드를 내세우기 위해 틈만 나면 그들을 소환하고 소비하니까. 그렇다면 욕망의 대상인 본인들은 이 무수한 화살표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들의 욕망은 뭘까.

AOA
를 택했다. 설현을 포함해 7인조 AOA 중에서 셋이 따로 뭉친 유닛(미니그룹)인 ‘AOA 크림’의 세 멤버, 유나 혜정 찬미를 만나보기로 했다. ‘질투 나요 BABY’로 유닛 활동을 막 마친 시점이라 풍성한 얘길 들려줄 것 같아서다. AOA 크림과 크림 생맥주 한잔’이란 ‘아재 개그’도 쓰고 싶었다. 23일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의 주점, 크림 생맥주를 앞에 두고 그들과 대화 시작.


○ 식욕과 다이어트

안주가 나오자마자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부터 허겁지겁 채웠다. 젓가락들의 군무. 도착 10분 만에 도미머리 조림엔 머리뼈, 새우튀김엔 머리와 꼬리만 남았다. “활동 기간엔 주로 하루 한 끼를 샐러드나 샌드위치로 때우거든요.” 절식(節食)도 회사 계약 사항? “자기 선택이죠. 늘 카메라 앞에 서니 알아서 빼게 돼요.

활동 기간의 일과를 물었다. (오전) 34시에 샵(헤어 메이크업 숍)에 가 준비한 뒤 방송국에서 리허설과 본방. 끝나면 라디오나 TV 예능 프로그램 촬영…. 숙소에 가서 23시간 자고 나와 다시 비슷한 하루 시작….” 스케줄 없는 날엔 개인레슨을 받거나 취미생활을 조금 한다고 했다. “영화 보기.” “강아지와 산책.” “서울 시내 여행.” 막내 찬미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혼자 돌아다니는 걸 즐긴다. 셋은 “활동 안 할 때 더 예쁘다”며 웃었다. “스트레스 없고 잠을 많이 자서요.

 

 

○ 스트레스 받는 날엔 친구들과 ‘짠!

다음 안주인 해물떡볶이 역시 순식간에 바닥을 보였다. 스트레스 받는 날엔 학생이나 직장인인 ‘일반인’ 친구들과 술 한잔씩 한다고 했다. 그들과 진짜 속 터놓고 하는 얘기는? “친구들은 직장 상사, 회식 얘기를 많이 해요. 저는 ‘업무 환경’이 특수하니 보편적인 그들 얘기를 오히려 들어주는 편이에요.” “‘너희(AOA)가 잘돼서 너무 기분 좋다’는 문자를 받을 때 눈물 날 정도로 고맙죠.

합숙 중인 멤버들끼리 술잔을 기울이는 경우가 더 많다. AOA 일곱 멤버는 서울 강남구의 30평대 아파트 두 곳에 각각 4, 3명이 같이 산다.

‘거국적’으로 건배를 청한 뒤 요즘 진짜 고민을 물었다. “미래죠. 아이돌이 영원한 건 아니잖아요. 꿈을 이룬 건 행복하지만, 2의 삶을 준비하고 싶어요.” “팬일 땐 저희도 몰랐어요. 오전 6시부터 리허설을 하는지도, 일종의 극한직업인지도….

‘시간을 돌려 다시 진로를 택한다면?’이라는 질문에 셋 중 둘은 다른 길을 가볼 거라고 했다.


○ 성적 대상, 욕망의 주체

남성들의 성적인 시선에 대해 본인들은 어떻게 느낄까. “가끔 마음은 아프지만 그런 관심도 감사하죠.

그룹 내 특정 멤버가 더 부각되면 어떨까. 에두른 질문에 이들이 먼저 설현 얘기를 꺼내준다. “전 그거 완전 좋아요. 군대 간 친구가 설현 사인을 받아달라고도 하죠. 주목받는 멤버가 있어야 팀 전체도 살아나잖아요.” “저희는 서로 싸울 수 없는 구조예요. 지금은 (설현) 언니가 주목을 받지만 회사가 기회를 분배하는 구조거든요.” 셋은 ‘우리 언니들’이란 표현을 자주 썼다. 한지붕 밑에서 살아온 가족애가 느껴졌다.

한창 연애할 나이다. 20대 초중반. 봄꽃이 핀다. “아아아악!! 완전 만나고 싶죠.” “(일반인) 친구들은 남친 얘기 다 하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전화해 주는, 그런 사람 있었으면 좋겠어요.


○ 신데렐라 언니도 이런 기분?

, 갑자기 좀 우울해 보였다. 화려해 보이는 아이돌의 속.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스케줄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부터 시작돼요, 우울한 기분. 옷도, 신발도 저희 것이 아니니 벗어야죠.” “화장 지우고 거울에 비친 제 민낯을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청소하다 갑자기 눈물을 쏟기도 해요.” “진짜 내 모습으로 섰을 때 날 사랑해줄 사랑이 몇이나 될까…. 아마, 신데렐라 언니도 이런 느낌이었겠죠?

 

이들은 “종일 회사 일에 지친 스트레스가 저희한테 다는 댓글로 풀린다면 괜찮다”고 했다. “이 친구들도 (직장인으로서) 오늘 나만큼 힘든 하루를 보냈겠구나, 이런 생각만 한 번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마음 약한 두 요원, 웃음과 눈물을 가슴에 담고 술자리에서 일어섰다. 2차 대신 편의점을 찾은 둘은 진열장에 놓인 청량음료를 향해 손을 뻗었는데…. (다음 회에 계속)

김윤종 zozo@donga.com  ·임희윤 기자

 

걸그룹 2013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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