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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아트19/ 국가별 사진작품3/ 베트남(Don Hong-Oai) - 스위스(베르너 비숍)

상림은내고향 2021. 2. 10. 20:59

포토 아트19/ 국가별 사진작품3/

베트남

사진작가 Don Hong-Oai 사진들

 

사진작가 돈홍오아이의 사진들은 한결같이, 한 폭의 수묵화다

 

 

 

 

 

 

 

 

 

 

 

 

 

 

 

 

 

 

 

 

 

 

 

 

1929 중국에서 태어난 돈홍오아이는 베트남에서 살며 일곱  때부터 초상화 스튜디오에서 미술공부를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베트남 대학교 예술학부 시절인 1950(21)부터 사진예술에 관한 강의를 해왔다. 그러다가 베트남 전쟁으로

터전을 잃고 보트피플로 방랑하게 되었고, 1979 미국에 정착해 그때부터 지금까지 빛나는 사진작품 활동을 하고있다.

 

아름다운 베트남의 풍광을 배경으로 베트남의 여가수가 프랑스어로 노래한 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lHc0wTh-qsg&feature=player_embedded

 

 

 

 

벨기에

Ben Goossens의 작품세계

세계 최고의 상상력 작품

 

 

 

 

 

 

 

 

 

 

 

 

 

 

 

 

 

 

 

 

 

 

 

 

 

 

 

 

 

 

 

 

 

 

 

 

 

 

 

 

 

 

 

 

 

 

 

세바스티안 슈티제展 / Sebastian Schutyser 2010 0708

Flowers of the Moon

세바스티안 슈티제_Senecio adnivalis #3_젤라틴 실버 프린트_25×38cm_2005

갤러리 선컨템포러리 GALLERY SUN CONTEMPORARY 서울 종로구 소격동 66번지 Tel. +82.2.720.5789, 5728

 

 

세바스찬 슈티제는 인류의 영향을 받지 않은 지구상의 몇 안남은 지역들을 대상으로, 인류학적 시각과 미적 가치에 초점을 맞춰 사진작업을 하고 있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시작된 그의 작업은 아프리카인의 초상사진부터 아프리카에만 남아있는 특유의 건축물, 아프리카의 자연환경으로 확대되며 누구도 관심 있게 보지 않았던 곳의 위대한 문화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벨기에 브루게에서 태어난 슈티제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 후 겐트대학의 왕립미술학교에서 사진학을 공부했다. 사진학을 공부하는 동안 유년시절 그에게 큰 영감을 주었던 아프리카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게 된다. 대형카메라와 삼각대를 가지고 '떠돌이 사진가'처럼 말리 내륙을 횡단하며 여행길에서 만난 아프리카 사람들의 초상을 촬영하였고, 그 후엔 말리 니제르 강 내륙 삼각주의 어도비(Adobe) 기법으로 지어진 모스크(이슬람사원)를 촬영하게 된다. 이곳은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 중 하나로 작가는 자전거와 사진장비, 가장 기본적인 생존 수단만을 가지고 100개가 넘는 모스크를 촬영하였다. 흙으로 만들어진 이 모스크는 형태나 재료 면에서 가장 단순하지만 뛰어난 조형적 아름다움과 다양성, 정교한 솜씨와 독창적인 형태미를 보여주고 있다. 슈티제는 이 모스크 촬영을 통해 감상의 차원을 넘어 우리가 지켜가야 하는 문화유산에 대한

 

 

세바스티안 슈티제_Mount Baker_젤라틴 실버 프린트_101×151cm_2005

 

 

세바스티안 슈티제_Bujuku River #1_젤라틴 실버 프린트_101×151cm_2005

 

 

특히 이번 전시에 선보일 르웬조리(Rewenzori)는 나일강의 발원지로서 거대한 식물군으로 유명한 곳이다. 작가는 원시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 적외선 필름으로 신비롭고 아름다운 사진을 만들어낸다.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소멸되어가는 우리 환경과 인간의 조화, 그리고 자연의 순수성이다. 이제껏 '원시적이고 미개하다'는 서구 중심적인 왜곡된 시각에 의해 아프리카의 문화는 숨은 진주처럼 베일에 싸여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슈티제가 오랜 시간을 아프리카에 천착하며 작업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작가의 말대로 아프리카는 '유전학적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의미로도 인류의 발상지이며 식민지 정책으로 인한 많은 문화적 파괴에서 불구하고 아프리카는 새롭게 깨어나며 다시 창조되는 곳이다. 하여 아프리카의 자연환경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함으로 지구환경의 마지막 보루'인 것이다. 이곳이 오래전부터 식민주의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구획지어 놓은 분계선에 의해 국가 간, 민족 간 분쟁의 불씨가 아직도 꺼지지 않고 있지만 태고의 순수함을 간직한 자연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예술적 감흥과 종교적 감응, 정신적 자양을 제공해왔다. 슈티제 또한 르웬조리에서 자연의 특별한 혜택을 누렸을 것이고, 그곳의 아름다움과 신성함, 자연이 들려주는 지혜의 소리를 담아내는데 초점을 맞추게 되었을 것이다. (자연)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쉼이 없이 움직이고 있다. 바로 살아서 숨 쉬는 유기체인 것이다. 숲 속의 맑은 물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나무들이 수런거리며 뱉어내는 숨소리를 듣지 않고 어떻게 우리가 자연의 심오한 진리를 깨우칠 것이며 카메라의 초점을 맞출 수 있을 것인가.

 

 

세바스티안 슈티제_Senecio forest_젤라틴 실버 프린트_38×25cm_2005

 

 

세바스티안 슈티제_Lobelia wollastonii_젤라틴 실버 프린트_101×151cm_2005

 

 

내 생각에 예술은 본질적으로 자연 환경적일 수밖에 없다. S.T.코울리지(1772~1834, 19세기 영국낭만주의 문학의 대표적 이론가)가 언급했듯 '위대한 문학은 시인의 상상력에서 배태된 씨앗으로부터 시작하여 시인의 감정(느낌)과 감각경험의 다양한 재료들을 동화시켜 다른 부분과 그리고 전체와 통합적으로 관계되는 유기체적 전체로 전화하는 스스로 창조한, 그리고 스스로 구성하는 과정'이라고 간주하였다. 이렇게 해서 예술작품은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 부분과 전체, 형식과 내용, 다양성과 통일성이 하나가 되고 융합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장의 사진은 태양열이 저장된 에너지이고, 언제나 새로운 이미지로 재생시킬 수 있는 창조적 유기체이다. 특히 슈티제에게 사진은 이미 무한정의 창조적 에너지를 저장하는 위대한 녹색 창고가 된다. 그는 사진작품을 통해 생태계와 자연 질서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생명과 조화의 미학을 창출하여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관람한다는 것은 나무를 천천히 길게 바라볼 시간이 없는 현대인들에게 온몸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느끼게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올 여름 숲을 즐기고 싶다면, 슈티제의 작품 앞에 서보자. 세상살이에 대한 근심이나 걱정, 인공으로 찌든 감성의 그릇은 비워내고 슈티제가 담아온 르웬조리의 숲이 주는 신비로움을 만끽하자.  박이찬

 

 

세바스티안 슈티제_Bujuku River #2_젤라틴 실버 프린트_101×151cm_2005

 

 

세바스티안 슈티제_Bigo Bog_젤라틴 실버 프린트_101×151cm_2005

 

 

A few years ago Sebastian Schutyser invited us to view his magnificent black and white photographs from the adobe mosques in Mali. The images fascinated not only for their quiet and sober monumentality. With almost scientific precision the artist also realised a documentary project: an inventory of an architecural typology on the brink of extinction. The resulting book Banco, in which Schutyser collected over 500 constructions, turned out to be an instant in memoriam. The photographer travelled in 2004 and 2005 to the Rwenzori Mountains, in the heart of Africa and published his book Flowers of the Moon with his surprising photographs. These largely magnified landscapes are framed in elegant anthracite, which enhances their grain, depth and wide array of gray tones. As he did before, Schutyser realized a set of paradoxical images. The display of color of the exuberant and unreal vegetation of these Mountains of the Moon, considered by the Ancient Greeks to be the source of the river Nile, is no more than a surmise. Oddly enough the artist is setting the scenery in black & white. Even more: he uses infrared film to depict the primeval looking gigantic plants and flowers, which grow up to 8 meters height. The effect is striking. The skies turn dark, water coagulates to black obsidian, leaf green is lighting up in bright radiation. Everything seems wrong, yet all is right. These mountains and valleys could be the setting of a science fiction version of Lost. Nevertheless all this is very real, at least for as long as it lasts: the eternal snows on the peaks are melting away, and ongoing deforestation gnaws at the foot of the mountains. Regrettably, these unforgettable images are not the only paradox.  ERICMIN

 

 

세바스티안 슈티제 'Sacred Stones'

 

 

크리스토프 길버트 = 사진작가

 

 

 

 

 

 

 

 

 

 

 

 

 

 

 

브라질

세바스치앙 살가두

심금을 울리는 사진

 

사진의 역사에서 수많은 영웅들이 있었다.  영웅들 중에서도 상당히 앞자리에 이름을 올릴 이가 바로  사진을 찍은 사진가다.

 

동료 사진 기자가 지갑에 품고 다녔을 만큼 보도 사진가라면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사람 사는 세상의 단면을 저렇게 잡아 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작품 이상으로 매력적이었던 것은  사진가의 남다른 인생 행로였다.

 

파라가우 방목 캠프의 딩카족, 2006, 남부 수단

 

 

1971 국제커피기구에서 일하던 스물아홉살 경제학자가 아내와 함께 농업 지원차 아프리카 땅을 밟았다.

젊은 부부의 눈앞에 펼쳐진 아프리카의 현실은 슬픔  자체였다.

 슬픔을 직면한 경제학자는 아내가 갖고 있던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이, 아프리카가 그의 운명을 바꿨다. 경제학자는  대신 카메라를 잡고 다큐 사진가가 되었다.

 사람이 바로 세바스치앙 살가두(1944~).

살가두는 온몸으로 세상을 사는 이들을 사진으로 찍었다. 유럽으로 이주했던 그는 사진을 만난  자기 조국 브라질로 돌아갔다.

 

그리고 중남미를 누비며 원주민들을 찍은 <다른 아메 리카인들>(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시리즈로 세계적 사진가로 등장한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잘라내 사람들 눈앞에 들이댄 <노동자들> 시리즈였다.

 

특히 주목받았던 사진이사람들이이 마치 개미처럼 일하는브라질 세라 페라다 금광 노동자들의 모습이었다.

 

 

피라미드를 만들고 있거나 진시황의 무덤을 파고 있는 고대 노예 같은  사람들이

문명이 정점에 올랐다는 20세기 후반의 모습이었다는데 사람들은 놀랐다.

 

그의 사진은 세계 사람들을 놀래켰고, 슬프게 했고, 그의 사진에 사로잡히게 했다.

그는 선진국 사람들이 즐겁게 사서 주고 받는 ,  금으로 상징되는 풍요로움의 이면을

 어떤 다큐멘터리 보다도 처절하게  장의 사진으로 보여줬다.

 브라질 광산 사진으로 그는 당대 최고의 다큐 사진가 반열에 오른다.

이후 그는 7년에 걸쳐 세계 각국 노동자들을 찍은 시리즈로 자기 작품세계를 확실히 구축했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사진가 집단인 매그넘의 일원이 되어 현대 사진의 흐름을 이끄는 작가로 떠올랐다.

1994 그는 매그넘을 탈퇴해 자신만의 에이전시 아마조나스를 만든다

 

 얼핏 보면 바톤을 건네는것처럼 보이는  .

뒤이어 올라오는 짐꾼을 향한  손은 무얼 말하는걸까. 


이후 그는 분쟁과 환경 재앙의 희생양이 되어 고향을 떠나 살아가는 난민들의 세계를 사진으로 찍으며 치열한 참여 정신을 보여줬다.

 

살가두는 다큐멘터리 사진이 초기의 고발과 기록 정신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관심을 돌리고

내면 세계에 열중하고 있을  다시 시대정신을 담은 사진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처절함으 다루면서도 그의 사진은 아름다웠다.

인간의 가장 슬픈 모습 속에서 묘하게 드러나는 인간의 아름다움, 그게 살가두 사진의 힘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진 이상으로 그의 인생에  매력을 느꼈던 것은 그가 강력하고

놀라운 사진 이상으로 치열하게 실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살가두는 아내와 함께 조국 브라질의 숲을 살리고 있다.

무분별한 벌목으로 망가지는 열대우림을 살리기 위해 `인스티투토 테라' 재단을 만들어 나무를 심는 작업을 벌여오고 있다.

 

환경 문제를 찍어 알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직접 나선 사진가, 반하지 않을  없었다.

 

 

  친구의 등에 공책을 대고 공부하는 아이들 모습


 살가두가 가장 오랫 동안 다뤄온 주제가 `아프리카'. 그를 사진가로 만든 ,  곳의 모습을 그는 30여년 동안 찍어왔다.

 

살가두의 아프리카 사진은 처절한 노동자나 난민 사진들과 맥을 같이 하지만 더욱 서정적이다.

 

이방인의 호기심으로다룬 것이 아니라 2 고향으로 삼아 수십년 동안 찍어온 세월이  속에 담겨 있다는 점에서

그의 아프리카 사진은 다른 사진가들의 아프리카 사진보다  아름답고,  슬프다.

 

 마타 차밭에서 일하는 아이, 1991 르완다.

 


그는 "아프리카모습을찍은사진을보고동정심이생긴다면사진을잘못이해하고있다"말한있다.

그러나 살가두에게 미안하게도 나는  사진들을 보며 동정심을 억누를 수가 없다.

 

그의 말처럼 `동정심'보다 `동료애' 우리에게 자리잡기 위해서는 그런 감정 단계를 거쳐야  것이다.

 

 

 

 

 

일본 전시회에서  인터뷰어가 살가두에게 물었다. 
"일본과 아프리카는 언뜻 보기에 전혀 다른 나라처럼 보이는데 공통점이 있습니까?"


살가두는  사진처럼 엄마와 아이의 이야기로 답했다. 
"일본의 엄마들은 아이가 아프면 아파하지 않습니까? 
아프리카 엄마도 그렇습니다. 


그런 점이 같고,  일본 여러분들은 평화와   나은 생활을 추구하는데, 
그것도 역시 아프리카도 같습니다."


일본을 한국으로 바꾸면 우리도 똑같은 질문을 하게   모른다.

 

 

 

 

 

 

 

스웨덴

스웨덴 사진작가 칼레 스톨츠가 케냐에서 촬영한 광고 작품- 굶주리는 이들에게 관심을 갖자는 의미

 

 

시각 예술가 배르틸 닐슨 - 런던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스웨덴 작가

 

 

 

 

 

 

 

 

 

 

 

 

 

 

스위스

베르너 비숍 (1916~1954. 스위스)Werner Bischof - 휴머니즘

 

 2 세계대전  전쟁의 상처를 찍은 매그넘 소속 사진가/포토저널리스트

 

비숍은 스위스의 취리히(Zürich)에서 태어나 1932-36년까지  곳에서 예술과 기술공부를 했으며, 1942 광고사진 작업실을

열어 활동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초창기 그가 찍은 사진은 빛과 어둠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아름다운 광고사진이었다.

 

그의 피사체가 바뀐 것은 1942년 스위스 잡지 ’(Du)의 편집장 아르놀트 퀴블러를 만나면서부터다.

 

 

1945년에 프랑스, 독일, 폴란드 등지의 피난민을 찍어 유럽의 전쟁참상을 보도하면서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았으며, 1948년에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를 여행하며 취재한 작품들이 '라이프(LIFE)'잡지에 실리면서 대호평을 받았다.

 

흑백사진으로 표현된 비숍의 예술적 재능은 정평이 나 있는데, 사건에 잠재되어 있는 인간 내면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노력하였고, 더불어 조형적인 바탕위에 국제적 감각과 시인의 감성이 고도로 융합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멕시코를 취재하고 칠레를 거쳐 페루를 여행하던  1954 5 16, 안데스의  낭떠러지에 추락하면서 불행하게도  교통사고를 당하였고, 치료를 받던  5 24 그의 나이 겨우 38세로 사망하였다.

 

쿠스코로 가는 , 페루.1954

 

 

전쟁 반대.이탈리아.1947

 

 

ROMANIA, 1947, Village of Homorod

 

 

소중한 달걀. 헝가리.1947

 

 

적십자 열차.부다페스트.헝가리.1947

 

 

우리는 죽어가고 있습니다.비하르주.인도.1951

 

 

Famine_stricken_area__State_of_Bihar,_India

 

 

Famine_stricken_area__State_of_Bihar,_India

 

 

Famine stricken area, State_of_Bihar,_India

 

 

INDIA. 1951, May, Town of Jamshedpur

 

 

INDIA, 1952, State of Tamilnadu. Town of Madras

 

 

INDIA. 1951, Bengal region. The port of Calcutta

 

 

 

 

INDOCHINA. 1952, Barau, a Meo (or Hmong) village)

 

 

Indochina.1952

 

 

 

CAMBODIA_1952_Farmer_shading_himself_as_he_looks_after_his_grazing

 

 

구룡반도, Hong Kong.1952

 

 

Hong Kong. 1952

 

 

Hong Kong. 1952

 

Hong Kong. 1952

 

 

 

 

 독창적인 자신의 예술적 감수성과, 참여하는 증언자로서의 유럽적 저널리즘 전통을 결합하여 사진의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 뛰어난 포토저널리스트이다. 슬픔을 담은 인간의 얼굴에서 활력있는 인간의 정신까지, 전쟁과 기아의 상흔에서 전통문화의 단순한 진정성까지, 그의 시대를 용기와 사랑으로 찍어 나간다. 그는 인간과  문제에 대한 열렬한 증언자였고, 그의 작업은 사진이 의식을 고양시킬  있으며, 그래서 변화를 일으킬  있고  나은 세계를 만들  있다는 믿음을 원동력으로 하고 있다.

 

<Werner Bischof (베르너 비숍) - 열화당 사진문고  >

 

 

 

 

 

 

 

 

 

 

 

 

 

 

 

Village of San Jang Ri, Korea. 1951

 

 

 

국제 보도사진반.개성, Korea. 1951

 

 

The youngest member, 거제도, Korea. 1952

 

 

거제도, Korea. 1952

 

 

거제도, Korea. 1952

 

 

U.N. Re-education camp, 거제도, 1952

 

 

거제 포로수용소, Korea. 1952

 

 

부산, Korea.1952

 

 

JAPAN. 1951, Tokyo

 

 

Okinawa, Japan. 1951

 

 

Tokyo, Japan. 1951

 

 

 

잠자는 미녀. 취리히.스위스.1941

 

 

The Bharat Natyam dancer_Anjali Hora getting ready for a per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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