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의 반역성 2020
11.03 국민이 권력자의 종 될 뻔한 걸 감사원이 막았다
‘최재형 감사보고서’는 탈원전 고발장
2020년 10월 20일 ‘월성1호기 조기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이란 부제가 달린 감사원(원장 최재형·사진 오른쪽)의 감사보고서가 발표되었다. 200페이지짜리 정부 문서다. 일견 지루한 공문서에 불과하지만 초반 20여 쪽만 참고 읽어나가면 곧바로 으스스한 공무원 범죄 영화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넘치는 긴장과 서스펜스, 지루할 틈이 없다. 독자는 감사원 홈페이지에서 이 보고서를 만날 수 있다. 주요 사건들의 시간적 배경은 2018년 봄에서 2019년 겨울까지. 공간적 배경은 서울의 청와대와 세종시의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경주에 본부를 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등 세 곳이다.
대통령 한 마디에 즉각 가동 중지
월성1호와 백운규, 채희봉, 문신학
정권 바뀌면 밝혀질 공무원 범죄
보고서 “정부가 원하는대로 작업”
주인공은 문재인 대통령과 사건 당시 직책 기준으로 청와대의 A보좌관, 채희봉 산업정책 비서관, 산업부의 백운규 장관, 문신학 원전산업정책관, 정종영 원전산업정책과장, B사무관, 한수원의 정재훈 사장 등 10여명이다. 월성1호기 조기폐쇄의 경제성을 평가하는 전문가 집단으로 삼덕회계법인도 무대에 오른다. 이들은 ‘판도라’ 같은 픽션 재난 영화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이 아니다. 국회가 2019년 10월 고발하고 감사원이 1년간 조사해 밝혀낸 실제 상황 속의 인물이다. 감사보고서의 결말은 ‘공무원 2명에게 징계 요구’라는 용두사미 같은 모양새였다. 용두사미는 최재형 감사원장을 포함해 6명의 감사위원이 3대 3으로 갈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그렇다 해도 정권이 바뀌면 언제든지 등장인물들을 법정에 소환해 죄를 물을 수 있는 수준의 사실적 증거와 진술들은 확보됐다. 그런 면에서 최재형의 감사보고서는 선행적 고발장, 지옥의 묵시록이라고 부를 만하다.
10.20 감사보고서는 공무원의 거짓과 은폐, 조작의 기록이다. 그 보고서엔 월성1호기라는 법령에 따라 운전되던 수조 원짜리 거대 원자력 발전기를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두 달 만에 즉시 가동정지시키기 위하여 이뤄진 거짓과 은폐, 조작의 행적들이 모아져 있다. 그들은 ‘상부의 명령에 따랐다’ ‘국가의 정책이었다’라며 범죄적 혐의를 변명하려 들지만 명령이든 정책이든 법과 절차를 지키지 않은 죄는 심각한 것이다. 감사원은 문제적 인물들이 절차적 정의, 절차적 합리성을 지키지 않은 점을 구체적으로 적시함으로써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법치사회의 정의론을 굳건히 했다.
최재형의 감사원마저 정책 수행 과정에서 대통령의 공약이라는 이유로 적법 절차를 무시하기 일쑤인 공무원들을 감싸 안았다면 이 나라는 인치(人治)의 사회가 되어버릴 뻔했다. 실제로 성윤모 현 장관의 산업부는 감사원 조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조기폐쇄 조치와 관련된 444개의 파일을 한밤중에 삭제해 징계 주문이 내려온 두 공무원을 두둔했다. 적극 행정이었는데 왜 면책 신청을 받아주지 않았느냐고 오히려 감사원에 대들었다. 하지만 무슨 적극 행정을 밤 12시 전후,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들어가서 하나. 편의적인 말장난으로 국민 앞에 뻔뻔한 죄를 더 짓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헌법 질서와 관습상 대통령 직속 독립 행정기관인 데다 수장이 부총리급인 감사원에 일개 정부 부처가 맞서는 일은 거의 있을 수 없다. 산업부가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듯하다. 인치가 횡행하면 필연코 자의(恣意)가 판치는 곳 즉, 힘 있는 자가 제멋대로 기준 없이 세상을 다스리는 전체주의로 나아가게 된다. 그런 나라에서 국민이 주권자의 위치에서 밀려나 권력자의 종의 신세로 떨어지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B사무관을 포함한 행정고시 출신의 엘리트 관료들은 444개 문서를 무단 삭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언행에서 죄의식을 감지할 수 없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컴퓨터 파일을 직접 삭제한 공무원은 “내일 감사원에 가야 하는데 감사관이 관련 자료를 요청할 때 있는데도 없다고 말씀을 드리면 켕길 수 있을 것(양심에 가책을 느낄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관련 자료가 없다고 말하기 위해서 문서 폴더를 야밤에 삭제한 것”이라는 취지의 답변을 하였다. 증거가 없다는 거짓말이 양심에 가책이 될까 봐 증거 자체를 없애 버렸다는 얘기다. 아이를 납치해 놓고 유괴하지 않았다는 거짓말이 양심에 가책이 될까 봐 아예 살해했다는 어법이다.
한편 이 공무원한테 자료 삭제를 지시한 상급 공무원은 2019년 11월경엔 “월성1호기 조기폐쇄를 추진하면서 대통령 비서실과 백운규 산업부 장관에게 보고한 자료들이 감사원에 제출되면 잘못 등이 밝혀질 것을 우려하여”라며 삭제 지시의 동기를 진술해 놓고, 막상 이 사실이 문제 될 듯하니까 2020년 9월엔 “삭제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을 번복하였다는 내용이 감사보고서에 들어 있다. 상부의 명령을 따랐던 하급 공무원은 결정적 순간에 발뺌해 자기한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상급자한테 배신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상부 명령이라도 불법적인 지시는 따르지 않아야 한다는 자명한 행동 준칙은 독일 나치 시대의 대량학살 범죄를 재판하면서 문명 세계가 확립한 보편적 도덕률이다.
2018년 6월에 이루어진 월성1호기의 ‘즉시 가동중지’ 조치는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공약으로 천명했다는 점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적법 절차와 조건 충족이라는 면에서 폭력적일 정도로 성급하고 무리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 시점은 경제성 등을 평가하여 결정하게 되어 있고, 경제성 평가는 결론을 내리기 전에 외부 전문기관에 의해 선행되어야 하며, 산업부 장관은 한수원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적절히 수렴하고, 즉시 가동중단 방침과 같은 중요한 행정지도는 구두가 아닌 공문 형식으로 투명하게 했어야 했다.
우선 2018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의 A보좌관이 월성1호기를 방문하고 돌아와 “외벽에 철근이 노출되었다”는 보고를 하자 대뜸 “월성1호기 영구 가동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인지”를 질문하였다고 한다. 대통령의 이 한마디에 채희봉 산업비서관은 행정관을 통해 산업부에 관련 보고서를 작성토록 요구했고, 산업부 해당 부서의 과장은 백운규 장관에게 “외부 전문기관에 의한 경제성 평가가 아직 착수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일정 시기까지 계속 가동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취지의 보고를 했다.
그러나 백운규 장관은 이를 질책하며 “한수원 이사회의 조기폐쇄 결정과 함께 즉시 가동 중단하는 것으로 재검토하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백 장관의 지시는 결론을 도출하기 전에 경제성 평가 등 선행 절차를 거치도록 되어 있는 법령을 무시한 것이다. 감사원은 산업부 장관이 사실상 한 가지(즉시 가동중지) 결론만 내놓으라고 함으로써 관련 부서와 한수원, 삼덕회계법인으로 하여금 연쇄적으로 부담을 갖게 했다고 보았다. 최종적으로 경제성을 평가하는 삼덕회계법인은 입력 변수를 조정해 장관의 입맛에 맞게 ‘즉시 가동중지’ 결론을 제출하였다.
감사보고서엔 산업부와 한수원의 압박으로 전문적인 외부 기관으로서 공정하고 중립적이며 객관적으로 경제성 평가를 수행하지 못한 삼덕회계법인 Y씨의 회한이 독백처럼 소개됐다. “처음에는 정확하고 합리적인 평가를 목적으로 일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한수원과 정부가 원하는 결과를 맞추기 위한 작업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기분이 씁쓸합니다.” 감사보고서를 가만히 뜯어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정책은 거짓과 은폐, 조작 같은 공무원 범죄 위에서나 가능한 것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악의 평범성, 혹은 폭력적 권력을 죄의식 없이 휘두름
/한나 아렌트(左), 예루살렘의 아이히만(右)
우리는 멀쩡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인치로 바뀌어 순식간에 전체주의로 둔갑한 역사를 알고 있다. 유대인 수백만 명을 살해하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던 괴물 정부, 1933년에서 45년까지 히틀러 총통 시대의 독일이다. 나치당 정부의 관료들에겐 지도자의 방침을 이의 없이 따르는 충성만이 요구됐다. 지도자의 지시를 수행하기 위해서라면 당원과 공무원들이 행하는 거짓이나 은폐, 조작은 장려되었다. 권력을 견제하는 장치들은 체계적으로 붕괴했다. 국민은 정치의 주체나 목적이 아니라 통치의 수단 혹은 도구였다. 기존의 법체계는 무효가 되고 ‘총통 각하’의 말이 법인 인치 국가가 탄생했다.
총통이 자살하고 패전한 뒤에도 대부분의 공직자와 국민들은 “이제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지?”를 되뇌며 패닉에 빠졌다. 히틀러 통치 12년 만에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자유 의지를 잃어버렸다. 자유 의지가 없으면 책임 능력도 없는가. 인종 대량학살 혐의로 전범 재판을 받은 나치 당원, 나치 정부의 공무원들은 한결같이 “상부의 명령에 따라”“국가의 정책을 수행했을 뿐”이라며 자기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전체주의 독일에서 행해진 잔학한 범죄들은 모두 죽은 히틀러 한 사람의 책임으로 귀결될 터였다.
나치당의 전체주의에 맞서 레지스탕스 운동을 벌였던 사상가 한나 아렌트(1906~75)는 1963년에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사진)이란 책에서 이스라엘 법정에 끌려 나온 한 나치당 간부의 정신 구조를 해부했다. 아돌프 아이히만(1906~61)은 “나는 유대인을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다. 그들을 (죽음의 장소로) 이동시켰을 뿐”이라며 ‘살인죄 아님’을 주장했는데 그가 궤변을 지어내려 한 게 아니라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는 게 아렌트의 관찰이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 같은 정신 구조의 특성을 ‘악의 평범성’이라고 이름 붙였다. 권력 집단 속의 한 인간이 폭력적 권력을 휘두르면서 양심과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상태를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고 보았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11.04 ‘월성1호’ 이후 공무원 사회에서 벌어질 일들
공문서 증거 안 남기기… 상관 지시면 다 ‘무탈’
공기업 이사진은 코드 인사로 채우기
감사원 정책감사는 겁낼 것 없어져
지난번 칼럼에서 월성1호기 관련 감사원 감사가 마피아 재판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전개되고 있다고 썼다. 진통 끝에 발표된 감사원 감사보고서를 보니 ‘월성1호 폐로’를 겨냥한 2018년 봄의 청와대·산업부·한수원의 작전은 실제 조직 범죄단 움직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①최윗선 지시는 측근 통해 선문답처럼 하달: 산업부·한수원은 조기 폐쇄가 결정되더라도 2년 반은 더 가동한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4월 2일 청와대 행정관이 비서관의 지시를 받아 산업부 원전과장에게 “대통령이 월성1호 영구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인지 질문했다”는 말을 전달하면서 산업부 방침은 바로 ‘조기 폐쇄 의결 즉시 가동 중단’으로 바뀌었다. 대통령은 궁금해 묻기만 했다는 것인데 아래서는 일사불란 움직였다.
②증거를 남기지 말라: 원전과장은 4월 4일 한수원 본부장을 호출해 ‘즉시 가동 중단’ 방침을 통보했다. 통보는 구두로 이뤄졌고 공문(公文) 형태 증거는 남기지 않았다. 5월 11·14·18일엔 산업부·한수원·회계법인이 경제성평가의 입력 변수 수정을 논의했다. 14일 회의에서 산업부 실무자는 회계법인 측 준비 자료에 ‘5월 11일 산자부 미팅 결과 수정’으로 적힌 것을 보고 “산자부가 다 바꾸라고 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며 ‘산자부’란 단어를 삭제하게 했다. 18일 회의에선 한수원 자료에 자기 이름이 적힌 것을 보고 빼도록 요구했다. 이 실무자는 감사원 감사가 진행되자 2019년 12월 1일 밤 사무실 컴퓨터에서 관련 문건 444건을 삭제했다.
③지시는 무조건 이행돼야: 회계법인은 월성1호의 이용률을 85%로 잡은 경제성평가 초안(계속 가동이 즉시 폐쇄에 비해 3427억 이익)을 작성했지만 산업부·한수원의 강요로 아홉 차례나 이용률·판매 단가를 바꿨고 최종 열 번째 평가에서 계속가동 이익을 224억원으로 축소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④공갈 협박도 불사: 산업부 원전과장은 회계법인 관계자에게 “장래 이용률은 30~40%밖에 안 될 것”이라고 억지를 부렸다. “막말로 우리가 원전 못 돌리게 하면 이용률 나올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회계법인 측 반론을 잘라버렸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정부가 원하는 결과를 맞추기 위한 작업이 돼버려 기분이 씁쓸하다”는 이메일을 한수원에 보냈다. 산업부 과장·실무자는 2018년 2~3월 한수원에서 이사회 의결 연기 얘기가 나오자 “청와대가 6월 19일 탈원전 선언 1주년 행사와 관련해 민감하게 보고 있다” “인사상 피해가 없기 바란다”고 협박했다.
⑤방해 세력은 우회, 또는 사전 제거: 월성1호 폐로는 국회 법 제정을 통해 추진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산업부는 2017년 10월 진작에 ‘한수원 이사회 의결’로 방향을 정해놨다. 그즈음 마무리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분위기(공사 재개로 결론)를 보고는 국회 토론에 부치면 성사시킬 수 없다고 봤을 것이다. 반면 한수원 이사진은 자기들 주머니 속 공깃돌이었다. 5월 초 사외이사 세 명을 교체했는데 한 명은 탈원전 활동 교수, 또 한 명은 여당 원외 인사였다. 6월 초엔 이사회 의장도 바꿨는데 원래 의장이었던 조성진 경성대 교수는 6월 15일 이사회에서 유일하게 조기 폐쇄에 반대한 사람이다. 조 교수는 “아무 사전 통지 없이 밀려났다”고 했다.
⑥변호사를 동원한 법률 대비: 한수원은 조기 폐쇄 의결 경우 이사들에게 민사상 책임과 형사상 배임죄가 적용되지 않는지 법무법인 두 군데에 문의했다. 법무법인들은 ‘가능성 낮다’고 회답했고, 한수원은 법률 검토 결과를 들어 사외이사들을 안심시켰다.
감사원은 이상의 편법·왜곡을 조목조목 밝혀내고도 ‘종합 판단한 정책’이라며 ‘조기 폐쇄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면죄부를 줬다. 이용률 60%도 ‘불합리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징계를 받게 된 것은 자료 삭제에 관여한 산업부 국장과 실무자의 두 명뿐이다. 당시 청와대 비서관, 장관도 빠져나갔다. 한수원 사장은 ‘엄중 주의’만 받았다. 핵심 행동대원이었던 산업부 과장도 면책됐다. 앞으로 감사원 정책 감사는 겁낼 게 없게 됐다.
공무원들은 이제부터 부당한 지시라도 상관이 시킨 것은 시킨 대로만 하면 뒤탈은 없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잘못된 정책에 대해선 문서 자료를 남기려 하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는 자기들이 성역이라는 걸 확인했으니 더 기고만장해질 것이다. 또 이번 일로 자기 편 감사위원들의 쓸모가 입증됐으므로 현재 한 자리 비어있는 감사위원에도 반드시 권력 추종 인사를 앉히려 할 것이다. 감사원은 원장이 ‘흰 것, 검은 것을 가려내자’고 달려들었지만, 인사권 독립 없이는 권력의 전횡과 일탈을 견제할 수 없는 기관임을 입증했다.
조선일보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11.05 檢 산업부 전격 압수 수색,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관련
검찰이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과 관련해 5일 오전 산업통상자원부 청사를 압수 수색하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검 형사5부는 정부세종청사 산업부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월성 1호기 관련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달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가 부적절하게 저평가됐다”는 내용의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원은 산업부 관계자들이 감사 당일 새벽 세종청사 사무실에 들어가 관련 자료 444건을 삭제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검찰은 산업부 에너지정책관실과 기획조정실, 대변인실 등을 대상으로 압수 수색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2017~2018년 원전 관련 업무 담당자들에 대해서도 광범위하게 압수 수색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관련 국·과장들의 자택과 휴대전화 등도 압수 수색 대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월성1호기 감사와 관련한 수사 참고 자료를 검찰에 넘길 예정이다. 감사원은 지난달 월성 1호기 관련 감사를 진행하며 수집한 관계자들의 진술서와 증거자료 등 ‘수사 참고 자료’를 검찰에 넘긴다는 방침이다.
조선일보 표태준 기자
11.09 “정부의 원전 기획살인” 전국 대학가에 나붙는 대자보
월성 1호기 폐쇄 강력 비판
▲8일 녹색원자력학생연대가 전국 대학가에 붙인 대자보 /녹색원자력학생연대
월성 원전 1호기를 조기 폐쇄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원전의 경제성을 낮게 평가하도록 조작했다는 의혹과 관련, 이를 비판하는 대자보가 전국 대학가에 나붙고 있다.
녹색원자력학생연대는 8일 밤 서울대·카이스트를 비롯해 전국 107개 대학교에 대자보를 붙이기 시작했다고 이날 밝혔다. 이 단체는 서울대·포항공대·카이스트 등 총 18개 대학의 공학 전공생들로 이뤄진 학생단체다. 이들은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촉구하는 1인 시위·길거리 서명운동·온라인 홍보 등 ‘원자력 살리기 운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날 제작·유포한 대자보에서 녹색원자력학생연대는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을 ‘현(現) 정부의 월성 원전 기획 살인 사건’으로 규정했다. 이들은 “처음부터 청와대와 산업부는 월성 원전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원전 평가 보고서를 조작했다”며 “문재인 정부가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녹색원자력학생연대는 감사원의 감사에서 드러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의 집단적·적극적 증거 인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들은 “혈세 수조원이 투입된 원전에 대한 평가가 고작 공무원 두 사람 손에 의해 조작됐겠느냐”며 “(보고서 조작과 증거 인멸) 지시는 청와대와 장관이 하고, 징계는 공무원이 받았다”고 비판했다.
▲경북 경주 양남면 월성원자력발전소의 가동이 중단된 월성 1호기(오른쪽) /연합뉴스
앞서 산업부 공무원들은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하자 관련 증거 자료와 청와대에 보고한 자료 등 444개의 파일을 조직적으로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직원의 눈을 피해 일요일 밤 11시 등 심야 사무실에 들어가 컴퓨터 파일 이름을 바꾼 뒤 삭제하는 등 복구 불능 상태로 ‘증거 인멸’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감사원은 자료 삭제 등 증거를 인멸한 공무원들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다.
▲8일 녹색원자력학생연대가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 캠퍼스에 대자보를 붙였다.
녹색원자력학생연대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관련 의혹에 대해 공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조재완(30) 녹색원자력학생연대 대표는 “검찰은 월성1호기 경제성 보고서 조작을 지시한 자들에 대해 공정하게 수사하라”고 요구하는 동시에 “공정한 수사를 해치는 더불어민주당과 여권 인사들의 검찰 압박을 규탄한다”고 했다.
대전지검 형사5부(부장 이상현)는 이 사건과 관련해 지난 5일 정부세종청사 안에 있는 산업부, 경북 경주의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대구에 있는 한국가스공사 본사 등에 대한 대규모 압수 수색을 벌이는 등 수사에 돌입했다.
▲8일 녹색원자력학생연대가 서울 성북구 고려대 캠퍼스에 대자보를 붙였다.
11월 09일 ‘월성 원전 기획 살인’ 대자보와 與 황당한 수사 음모론
문재인 정부가 월성 원전(原電) 1호기 조기 폐쇄 과정에 경제성 평가를 조작한 정황이 감사원 감사로 드러난 사실은 급기야 대학가 대자보(大字報) 사태로도 이어졌다. 서울대·카이스트 등 18개 대학의 공학 전공 학생들로 구성된 녹색원자력학생연대는 8일 “대자보 ‘현 정부의 월성 원전 기획 살인 사건’을 전국 107개 대학에 붙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처음부터 청와대와 산업부는 월성 원전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평가 보고서를 조작했다. 처음부터 정해진 권력형 비리였다’고 규정하는 내용이다.
‘혈세 수조 원이 투입된 원전에 대한 평가가 공무원 두 사람에 의해 조작됐겠느냐. 지시는 청와대와 장관이 하고, 징계는 공무원이 받았다’며 학생들이 촉구한 ‘지시한 자들에 대한 공정한 수사’는 당연하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황당한 ‘수사 음모론’을 키우며 대놓고 방해한다. 이날도 대변인이 “검찰이 개입할 수도, 개입해서도 안 되는 영역”이라며 ‘수사 성역(聖域)’으로 삼았다.
이낙연 대표가 “정치 수사로, 검찰권 남용이다. 검찰은 위험하고 무모한 폭주를 당장 멈추라”고 하고, 김태년 원내대표는 “검찰의 국정 흔들기”라며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전방위화한 막가파 식(式) 겁박의 연장선이다. 학생들도 ‘민주당과 여권(與圈) 인사들의 검찰 압박을 규탄한다’고 한 배경이다. 여권은 불법 혐의 수사를 탈원전 정책 자체에 대한 수사인 것처럼 국민을 더 속여선 안 된다. 광기(狂氣)까지 비치는 초법적 행태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11.10 바이든의 ‘원자력 동반’과 한국의 ‘탈원전’이 뭐가 비슷하다는 건가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자가 부통령 후보 카멀라 해리스와 함께 지난 7일 당선 환영 연단에 올라 환호에 답하고 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 기간 중 청정 에너지 인프라 구축에 2조달러(약 2400조원)를 투자해 2035년까지 전력 분야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은 탄소 배출 억제, 재생에너지 확대 등을 공약에 반영했으며 이는 (복지, 고용 정책도 그렇지만) 우리가 가려는 (그린뉴딜, 디지털뉴딜 등의) 길과 일치한다”고 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국회 연설에서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다”고 했었다.
바이든 미국 차기 정부와 문재인 한국 정부가 지향하는 에너지 정책이 비슷하다는 것은 착각이다. 바이든의 민주당은 지난 8월 정강 정책을 수정해 “첨단 원전 등 모든 탄소 제로 기술을 활용해 전력 부문에서 탈탄소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집중 지원하겠다는 청정 에너지원에 태양광·풍력뿐 아니라 원전을 포함시킨 것이다. 지난 50년 동안 원전에 비판적이었던 민주당이 태양광·풍력만 갖고는 탄소 중립을 달성할 수 없다는 판단에 원자력 동반 정책으로 방향을 바꿨다.
탄소 중립은 국제사회의 대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EU는 지난해 그린딜(Green Deal) 정책을 선언해 ‘2050 탄소 중립'의 흐름을 선도했고 중국과 일본도 최근 ‘2060 탄소 중립'과 ‘2050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문재인 정부는 그간 ‘그린뉴딜을 앞세우고 있지만 실제는 기후 악당 행태’라는 비판에 시달리다가 견디다 못해 ’2050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문제는 태양광·풍력만 갖고 ‘탄소 중립’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작년 기준 신재생 전기의 비율은 5.2%에 불과했다. 그걸 대폭 늘리는 것이 가능한지도 의문이지만,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전기료 대폭 인상과 국토 환경의 파괴를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와 환경단체들이 탈원전 모범 국가로 칭송하는 독일의 경우 2017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7억t(1인당 에너지 분야 배출 연 8.7t)을 넘었던 반면 원자력 전력 국가인 프랑스 배출량은 3억t(1인당 4.57t)에 불과했다. 독일은 태양광·풍력 전기를 35%까지 늘렸지만 원전 가동을 줄이느라 석탄 발전 의존도를 낮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객관적 사실을 무시한 채, 사기나 다름없는 경제성 평가를 갖고 원전을 폐쇄하면서 ‘탄소 중립’을 말하는 한국 정부 선언은 실현 가능성 전혀 없는 ‘말잔치’일 뿐이다.
조선일보 사설
11.10 판결문 같은 7000쪽 감사원 原電자료… 검사도 감탄
사건 개요에서 증거 관계·적용 가능한 법조항까지 일목요연
감사원은 지난달 20일 현 정부가 조기 폐쇄 결정을 한 월성 원전(原電) 1호기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22일 이 사건 ‘수사 참고 자료’를 검찰에 보냈다. 감사원 자료는 총 7000쪽에 육박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알려졌다.
감사원 ‘수사 참고 자료’를 받아본 검찰 내부에선 자료의 분량보다 그 형식이 더 화제가 됐다고 한다. 자료가 두서없이 나열돼 있는 게 아니라 사건 개요와 관련자들의 역할, 적용 가능 법조항 등 사건 전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는 것이다. 검찰 주변에서 “꼭 법원 판결문 같은 자료” “법률가의 솜씨”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한 원로 변호사는 “법원장 출신인 최재형 감사원장이 이 사건에 얼마나 신경 썼는지 알 수 있는 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본지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감사원은 ‘수사 참고 자료’에 2018년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5명 안팎의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관계자 등의 이름을 적어 검찰에 송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자료에서 이들이 월성 1호기 폐쇄 결정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부당 업무처리’ 정황이 있다고 밝히고, 한 명 한 명의 구체적인 역할, 지시 등을 자세하게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원 내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4월 청와대 보좌관에게 월성 1호기 가동 중단 계획을 물은 뒤, 청와대와 산업부, 한수원 관계자들이 신속하고 일사불란하게 이를 실행하려 했다고 볼 수 있는 내부 문건, 관계자 진술 등이 소상하게 적혀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감사원은 그 다음 ‘소결(小結)’ 항목을 따로 만들어 이들 행동의 ‘범죄 개연성’을 요약 정리한 뒤, 적용 가능 법조항까지 적었다고 한다. 적용 가능한 법조항에는 형법의 직권남용, 업무방해, 증거인멸 등이 적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이들 각각의 ‘부당 업무 처리’ 내용과 핵심 범죄 혐의를 적은 ‘소결’ 내용을 범죄 사실로 뽑아내고, 감사원이 적시한 적용 가능 법조항까지 참고해 영장에 담으면 되기 때문에 검찰 입장에선 보다 신속한 영장 청구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실제 검찰은 감사원의 자료가 도착한 지 14일 만인 지난 5일 100여 명의 인력을 지원받아 정부세종청사 내 산업부와 경북 경주의 한수원 본사, 대구 가스공사 본사를 동시에 압수 수색했다. 검찰이 신속히 대규모 압수수색에 나설 수 있었던 건 최재형 감사원장식 ‘판결문 참고 자료’가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영장전담판사를 지낸 한 부장판사는 “애당초 원 자료에 수사 포인트, 법률 검토 내용까지 담겨 있다면 그 내용을 추가 검토해 만든 검찰의 영장은 더 탄탄하고 세련될 수밖에 없다. 영장 발부 가능성도 당연히 더 높아진다”고 했다. 검찰이 최근 월성 1호기 사건과 관련해 법원에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은 거의 전부 발부된 것으로 알려졌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여당은 검찰의 월성 1호기 관련 수사를 “정권을 겨냥한 정치 수사”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이번 수사를 촉발한 건 ‘정치’가 아니라 국회의 감사 청구로 나온 감사원의 감사 결과라는 ‘팩트’라는 게 중론이다.
11.10 정부, 한전 자회사에 발전단가 후려치기…1조6000억 손실 떠넘겨
전기료 인상요인 감추기 위해 3년간 1조6000억 손실 떠넘겨
정부가 LNG(액화천연가스) 발전 단가를 원가보다 매우 낮게 책정, 한전의 자회사들에 막대한 손실을 떠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현 정부가 탈(脫)원전 정책으로 인한 전기료 인상 요인을 억지로 감추기 위해 ‘전기료 폭탄 돌리기’를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민의힘 한무경 의원이 한전의 발전 자회사들로부터 제출받아 9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발전 5사(남동·남부·동서·중부·서부발전)가 LNG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의 원가는 2019년에 1kWh(킬로와트시)당 평균 154.5원인 반면, 이 전기를 한전에 판매하고 받은 돈은 118.7원에 불과했다. 카타르나 미국 등에서 들여온 천연가스를 연료로 사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데 들인 비용보다 23%(1kWh당 35.8원)나 싸게 전기를 판매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전의 발전 자회사 5곳이 2017~2019년 3년간 LNG 발전 분야에서 입은 손실은 총 1조6124억원에 달했다.
발전 자회사들이 한전에 판매하는 전기료(정산단가)는 정부가 결정한다. 정부 비용평가위원회가 정해준 금액대로 발전사들은 한전에 전기를 판매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제는 발전사들의 손실이 결국엔 국민에게 전기료 부담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발전 5사의 손실은 모회사인 한전의 재무구조에 반영되고, 이는 결국 한전의 부채 증가로 이어져, 지금 원가보다 싸게 전기를 파느라 생긴 부담은 결국 국민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무경 의원은 “현 정부가 탈원전을 고집하면서 원전보다 2배 정도 비싼 LNG 발전을 늘리면서도 전기료 인상을 피하려다 보니 공기업인 한전의 자회사들에 손실을 떠넘기는 꼼수를 쓴 것”이라며 “당장 현 정부 임기 내에 전기료 인상이 없다고 선전하지만 결국 다음 정부로 전기료 인상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원가에 훨씬 못 미치는 LNG 발전 단가를 책정한 이유는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을 무마하기 위한 꼼수란 지적이 나온다. 여당은 2017년 탈원전 정책을 추진할 당시 ‘원전을 없애면 전기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여론의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 전기료 인상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했다. 2017년 7월 말 당시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현 원내대표)은 “분명히 말하는데 탈원전을 해도 전력 수급에 전혀 문제없고 전기요금 폭탄도 없다”며 “(문재인 대통령 임기인) 2022년까지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여당의 호언장담에 맞추기 위해 정부는 한전의 발전 자회사들로부터 구입하는 전기의 구입 단가를 원가 이하로 낮추고 전력 소비량 증가 예측치도 시장 전망보다 낮췄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7년 12월 발표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원전과 석탄을 줄이는 대신 재생에너지와 LNG 발전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원전보다 2배 정도 비싼 재생에너지와 LNG 발전 확대는 전기요금 인상으로 직결된다’고 지적했으나, 정부는 “전기요금 인상률이 2030년까지 9.3~10.9%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당시 정부는 전기료 산정의 구체적 근거를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 한무경 의원이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당시 정부는 2030년도 LNG 발전 단가를 1kWh당 111.17원으로 산정했다. 이는 2017년 당시 발전 원가인 1kWh당 141.6원에 비해 21.5%(1kWh당 30.43원), 2019년 발전단가인 154.5원에 비하면 28%(1kWh당 43.33원)나 낮은 금액이다. 지난해 발전 단가를 적용하면 2030년도에 LNG 발전에 드는 전력 구입비는 정부가 산정한 12조8000억원에서 17조8000억원으로 5조원이나 증가하게 된다. 그만큼 전기료 인상 요인이 발생하는 것이다.
정부가 탈원전 비용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지만 전기료 인상 요인은 계속 누적되고 있다. 2016년 한 해 12조원을 넘었던 한전의 영업이익은 2017년 4조9532억원으로 줄었고, 2018년엔 2080억원 적자로 반전했다. 작년엔 적자 폭이 1조2765억으로 급증했다. 한전의 부채는 2016년 104조원에서 작년에는 128조원으로 24조원이나 늘었다.
정부는 전기료를 인상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탈원전 정책 비용을 국민에게 전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매달 국민이 내는 전기료에서 3.7%씩 떼어내 적립한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월성 1호기 폐쇄 비용 등 탈원전 비용과 한전공대 설립 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전기사업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 중이다. 한 의원은 “전력산업 발전과 전력 수급 안정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을 정부가 탈원전 정책의 뒷수습을 위해 쌈짓돈처럼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 최현묵 기자
11월 10일 월성 1호 수사 공격은 사법방해 重罪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월성 원전 1호기 폐쇄에 따른 직접 손실만 5600억 원에 이른다.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고용 감소도 경북지역에서만 32만 명이라고 한다. 우리의 세계적인 원전 기술이 후퇴하는 계기로 작용함을 고려하면, 그 피해액은 천문학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탈원전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나온 ‘예고된 참사’다. 한수원에서 긴급 이사회를 열어 폐쇄 결정을 하려니 월성 1호기에 대한 경제성 평가를 낮게 조작한 자료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 자료를 감사한 감사원이 그 타당성을 부인하는 결과를 발표했다. 야당의 검찰 고발에 따라 수사가 진행 중이고, 관계 기관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됐다. 민주국가라면 당연한 법 집행 절차다.
그런데도 여권 고위 정치인들이 일제히 나서서 ‘정치 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정치인 총장이 정부를 흔들려고 편파·과잉 수사를 하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 맞보기로 윤석열 검찰총장의 특수활동비 집행 내역을 감찰할 것을 지시했다. 헌법에 의해 독립적 지위를 보장받은 감사원이 내린 결정에 따라 국민의 혈세가 낭비된 사건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수사기관에 대해 수사 방해를 노골적으로 하는 주체가 법무부 장관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권력형 비리 수사에 대해 그 대상들이 대놓고 압력을 행사하는 게 일상화해 가고 있다. 검찰 수사를 정치색으로 몰아가기 일쑤다. 공문서를 조작하거나 없앤 공무원들도 수사하지 말라는 말인가. 원전 산업 종사자들의 삶을 파괴하고 국민 세금을 축내면서 외국 세력의 이권과도 연결된 고리를 수사하겠다는데 “정치인 총장의 정부 흔들기”가 그 실체라는 말인가.
지난해 9월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감사원에 요구한 월성 원전에 대한 감사 결과는 탈원전의 타당성과 정치적 배경을 따지는 일과 연결된다. 이 때문에 집권 세력은 그 문제점이 드러나는 것을 철저히 봉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감사원은 감사 시한을 많이 넘기면서도 결과를 발표하지 못했고, 국회 법사위에서 최재형 감사원장을 출석시켜 고강도 압박까지 가했다. 그런 가운데서 발표된 감사 결과라면 그 신빙성은 보장된 셈이다. 그 결과에 따른 의혹을 수사하겠다는데 이젠 수사기관을 원색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국무위원이 수사에 개입하려는 의도로 벌이는 압박 행위는 헌법상 탄핵 대상인 사법방해 행위다. 미국에선 사법방해죄(obstruction of justice)를 형사처분하도록 연방 법에 못 박고 있다. 미국 하원이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처음 발의한 것도, 그의 측근이 대선 때 러시아와 내통한 의혹을 조사 중이던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트럼프 측이 회유·경질했고, 법무장관을 통해 수사에 압박을 가했으며, 증거를 은닉하고, 특검 수사에 대해 개입을 시도한 것들이 각각 사법방해 행위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선진국에선 중죄(重罪)로 취급되는 사법방해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는 여권 인사들과 법무부 장관의 행태에 국민은 분노를 넘어 절망감까지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검찰개혁을 외치는 이들이 법 집행 시스템을 이 지경으로 만들고 있으니 정말 필요한 것은 검찰개혁 이전에 정치혁명임이 틀림없다.
문화일보
11월 11일 백운규 “너 죽을래” 협박과 드러나는 경제성 조작 몸통
월성원자력발전소 1호기 조기 폐쇄를 위한 경제성 조작 부분은 많이 알려졌지만,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의 전모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백운규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적극적 지시가 있었던 정황이 드러났다. 경제성 조작 및 이와 관련된 정부 문서 대량 삭제 등 가위 ‘국기 문란 범죄’의 혐의자들을 특정할 중요한 단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라 대전지방검찰청은 이런 혐의들에 대해 수사 중이다. 여권은 마치 탈원전 정책 자체에 대한 수사인 양 호도하며 ‘검찰 쿠데타’ 등으로 비난하지만, 본질을 흐리는 궤변일 뿐이다.
국회 요청으로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등을 감사한 감사원은 7000쪽에 이르는 참고 자료도 검찰에 함께 넘겼다. 이에 따르면, 2018년 4월 초 당시 백 장관은 2년 더 가동 필요성을 보고한 담당 과장에게 “너 죽을래”라는 말까지 하며 즉시 가동 중단으로 보고서를 다시 쓰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백 전 장관은 감사에서 해당 발언을 부인했지만, 담당 공무원들은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고까지 진술했다고 한다. 그 이튿날 장관 뜻대로 바꿔 보고서를 제출하자 “진작에 이렇게 하지”라면서 “청와대에 보고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인사권을 가진 장관의 이런 행태는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해악의 고지’라는 형법상 협박죄 요건에 충분히 해당될 수 있다. 협박의 내용이 실현됐음을 고려하면 더욱 죄질이 심각하다.
청와대 보고 뒤 산업부는 한수원 측에 “즉시 가동 중단 결론이 안 나오면 옷 벗어야 한다”라고 압박했다고 한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영구 정지 허가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2020년까지 가동하려 했던 한수원은 지난해 12월 월성 1호기 가동을 영구 중단했다. 백 전 장관의 지시 며칠 전인 4월 2일 문재인 대통령은 보좌관에게 “월성 1호기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하느냐”고 물었고, 이 말이 백 장관에게 전달됐다는 것이다. 경제성 조작에 관여한 한수원·회계법인 직원이나 파일을 삭제한 산업부 공무원은 ‘깃털’일 뿐이다. 검찰은 그런 조작을 통해 조기 폐쇄를 결정한 ‘몸통’까지 전모를 투명하게 성역 없이 밝혀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11월 11일 檢, 월성1호 폐기 결정 당시 靑라인 압수수색
산업부 靑 파견 행정관 2명
지난 5일 자택 등 대상 실시
휴대전화 포렌식 작업 착수
靑 직접개입 여부 집중조사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수사에 전격적으로 착수한 검찰이 원전 폐쇄 결정 당시 근무했던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실 행정관 두 명의 자택과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작업에도 착수해 청와대가 원전 폐쇄 결정에 구체적으로 개입한 혐의가 있는지 수사 중이다. 또 청와대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도 확인에 들어갔다.
11일 문화일보 취재에 따르면 대전지검 형사5부(부장 이상현)는 최근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2명에 대해 자택과 휴대전화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이들은 모두 산업부 소속으로 원전 조기 폐쇄 결정이 내려졌던 2018년에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실에 행정관으로 파견됐다. 검찰은 청와대가 원전 조기 폐쇄 결정에 구체적으로 관여한 정황이 담긴 수사참고자료를 감사원으로부터 넘겨받아 검토한 끝에 청와대 의사결정 라인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법원도 혐의사실 규명이 필요하다고 보고 검찰이 청구한 청와대 파견 행정관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수사팀은 지난 5일 산업부와 한국수력원자력 등 관련 부서와 전·현직 관련자를 대상으로 검사와 수사관 150여 명을 투입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검찰의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수사의 칼날이 청와대를 정조준함에 따라 앞으로 청와대 개입 사실 여부가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조작 지시’를 했던 것으로 결론이 나오면 문재인 정부는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4월 2일 채희봉 당시 비서관(현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산하 행정관에게 “산업부로부터 월성 1호기를 즉시 가동 중단하는 내용의 장관 재가를 거친 보고서를 받아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행정관은 산업부 실무자에게 연락해 지시사항을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부 실무자들은 “검토 결과 조기 폐쇄하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2년 동안이라도 가동해야 한다”는 보고를 백운규 산업부 장관에게 올렸고 보고받은 백 장관이 “너 죽을래. 청와대에 이따위 보고서를 어떻게 내란 것이냐”라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월성 1호기의 영구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하느냐”고 청와대 참모들에게 질문한 직후 벌어진 일이었다. 해당 발언은 행정관을 통해 산업부에 전달됐다.
이희권 기자 leeheken@munhwa.com
11-11 감사는 여당이, 수사는 정부가 자초했다
丁 총리와 秋 장관 등 여권, 원전 감사 표결 찬성
산업부 ‘청와대 보고 문건’ 한밤 삭제는 중대범죄
“국회가 감사를 요구한 사항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난센스라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조기 폐쇄와 관련한 감사를 “난센스”라고 폄훼한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의 발언을 최근 국회에서 강하게 비판했다. 감사원은 원전 감사를 왜 시작했을까.
지난해 9월 30일 국회 본회의장.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에 대한 국회의 감사원 감사요구안에 대한 표결이 있었다. 1년 전 국정감사에서 해당 의혹을 처음 제기한 장석춘 당시 야당 의원의 제안 설명 직후 여당 의원의 반대토론 없이 곧바로 전자투표가 실시됐다. 203명의 투표 의원 중 162명이 찬성해 감사요구안이 통과됐다. 반대(16명)와 기권(25명)이 있었지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동의가 없었다면 감사 착수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 감사요구안에 찬성한 20대 국회의원은 문희상 정세균 추미애 이인영 최재성 박범계 전해철 등 여당 핵심 의원들이었다.
감사요구안은 국회의 감사 요구에 감사원이 3개월 안에 감사를 한 뒤 그 결과를 국회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제도다. 2002년 11월 국회의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여야 합의로 제안해 2003년 1월부터 국회법 등에 관련 조항이 신설됐다. 당시 감사원은 “감사원의 독립성이 훼손될 소지가 다분하다”며 반대했지만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감사원이 국회 지시나 지휘를 받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 뒤 국회에서 사실상 만장일치로 해당 법안이 통과됐고, 감사원은 국회가 요구한 사행성 게임, 저축은행 비리, 4대강 사업 등의 감사를 진행해 왔다.
여당이 아무런 저항 없이 감사에 찬성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의 생각은 여당과 달랐던 것 같다. 감사원이 국회의 통보를 받고 감사에 착수하자 산업부 담당 공무원들은 대책회의를 열었다. 담당자의 이메일, 휴대전화에 저장된 원전 조기 폐쇄 관련 자료를 지우도록 했다. 감사원이 자료 제출을 요구하기 전날인 일요일 오후 11시 24분부터 다음 날 오전 1시 16분까지 약 2시간 동안 122개 폴더의 문건 444건을 삭제했다. 자신이 원전 업무를 담당할 때 사용하던 컴퓨터를 다른 직원이 사용하자 그 직원으로부터 비밀번호를 미리 받아 삭제한 것으로 단독 범행으로 보기도 어렵다. 청와대 보고 문건 등 민감한 자료부터 복구를 못 하게 삭제해 문건 120건이 복구 불능 상태다.
감사 방해 혐의는 1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할 수 있는 중대 범죄지만 감사위원회의 반대로 고발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감사원의 내부 지침은 범죄의 존재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으면 수사참고자료를 검찰총장에게 송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침상 수사참고자료에는 인적 사항, 죄명, 적용 법조, 범죄 혐의로 의심되는 행위, 자백 여부, 주요 증거, 증거 인멸 여부를 기재하고, 관련 증거자료를 첨부하게 되어 있다.
검찰은 이 자료를 근거로 거의 100%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강제 수사에 나섰는데, 여당은 “윤석열 검찰의 정치 개입”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감사원이 원전 감사에 나설 수 있도록 찬성표를 던진 곳은 여당이었고, 산업부 직원들의 증거 인멸이 없었다면 검찰 수사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검찰 수사가 멈춘다면 의혹이 사라질까. 진실은 언젠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그걸 감추려고 한 쪽이 몇 배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민주화 이후 정부들이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반복적으로 학습해 온 교훈이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11.12 “너 죽을래?” 조폭식 탈원전 협박 진원은 장관 아닌 靑
▲백운규 전 산업부장관이 2017년 10월 당시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탈원전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는 장면
2018년 4월 백운규 당시 산업부 장관이 월성 1호기를 2년 반 더 가동하겠다고 보고한 원전 과장에게 “너 죽을래?”라고 말하며 ‘즉시 가동 중단’으로 보고서를 다시 쓰게 시켰다고 한다. 산업부 실무진은 그 전까지 한수원 이사회가 월성 1호 조기 폐쇄를 의결하더라도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영구정지 허가가 나오기까지 2년 반 정도는 계속 가동시키자는 의견을 갖고 있었다. 원전 국장은 3월 15일 ‘2년 반 추가 가동’ 계획을 백 전 장관과 당시 청와대 비서관에게 보고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백 전 장관은 4월 3일 문재인 대통령이 “월성 1호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하느냐”고 질문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원전 과장에게 “너 죽을래?”라고 막말까지 하며 계획을 바꾸도록 했다는 것이다.
“너 죽을래” 질책은 마치 조폭 중간 두목이 부하에게 “보스 지시 어겼다가는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며 호통치는 상황을 보는 것 같다. 원전 과장은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고 감사원에서 진술했다. 그는 모멸감을 느끼면서도 장관이 시킨 대로 한수원 본부장을 호출해 "월성 1호기는 조금이라도 재가동은 안 된다”고 통보했다. 그는 회계법인 관계자를 불러서는 “막말로 우리가 원전 못 돌리게 하면 이용률 나올 수 없는 것 아니냐. 월성 1호 장래 이용률은 30~40%밖에 안 될 것”이라고 억지를 부려 경제성 평가를 왜곡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산업부 공무원들은 자기들 행동이 직권남용, 업무방해 등 불법이라는 걸 인식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한수원·회계법인에 압력을 가한 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회의 자료를 바꾸도록 했고 나중엔 사무실 컴퓨터의 문건 수백 건을 삭제한 것이다. 불법인 것을 알면서도 그랬던 것은 대통령 지시를 거슬렀다가는 공직 생명이 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너 죽을래’라는 말은 장관이 했지만 그 진원은 대통령이고 청와대다. 나라 돌아가는 게 왕조(王朝) 시대 비슷하게 퇴보해버렸다.
이 모든 것이 대통령 한 사람의 탈원전 집착과 오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제까지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을 내세우며 했던 얘기는 “후쿠시마 사고로 1300명 넘게 죽었다”는 식의 완전히 틀리는 내용이거나 “설계 수명이 다한 원전은 세월호와 같다”는 터무니없는 비유 정도였다. 그래놓고는 체코 대통령을 만나선 “한국 원전은 40년 사고 없이 가동했다”고 자랑해 국민을 아연케 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정책 부작용이 크거나 국민 반대가 많으면 자기 생각에 잘못된 부분은 없는 것인지 고민하면서 다각도로 검토해봐야 한다. 문 대통령은 정반대로 한다. 오히려 ‘왜 월성 1호를 빨리 폐쇄하지 않느냐’고 추궁하면서 오기를 부렸다. 공무원들은 그런 지시를 어쩔 수 없이 이행했다가 줄줄이 감사받고 징계와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르게 됐다.
월성 1호뿐 아니라 이 정부 들어 공사가 중단된 신한울 3·4호기도 내년 2월까지 공사를 재개하지 못하면 발전 사업 허가 자체가 취소된다고 한다. 신한울 3·4호기엔 이미 7900억원이 투입돼 10% 이상 공정이 진행됐다. 건설이 취소되면 한수원은 두산중공업 등에 손해를 배상해줘야 한다.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 이 돈은 전부 문 대통령 등이 내야 마땅하다.
조선일보 사설
11.12 월성 경제성평가前 “文대통령에도 즉시 가동중단 보고”
원전폐쇄 정해놓고 꿰맞춘 정황
검찰이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조작’ 사건 수사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여권과 추미애 법무장관의 비난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11일 여권에선 ‘윤석열 검찰총장 사퇴’ 주장까지 나왔지만, 검찰 수사는 사실상 청와대를 향하고 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산업통상부는 월성 1호기에 대한 외부 기관의 경제성 평가가 진행되기도 전인 2018년 4월 ‘즉시 가동 중단’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문재인 대통령에게까지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선 “청와대·산업부가 애당초 월성 1호기의 즉시 중단 결론을 정해 놓고 밀어붙였으며, 문 대통령도 사실상 이를 승인했다는 방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이날 국회에 출석해 “추가 수사로 범죄가 성립할 개연성이 있다는 부분에 (감사위원) 대부분이 동의했다”고 했다.
여러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8년 4월 4일 ‘월성 1호기 즉시 가동 중단’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청와대 김모 산업정책행정관에게 보냈다. 김 행정관은 이 보고서를 다시 채희봉 당시 산업정책비서관에게 보고했다. 현 한국가스공사 사장인 채 전 비서관은 감사원 조사에서 “월성 1호기 즉시 가동 중단 보고서가 문 대통령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들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월성 1호기 가동과 폐쇄를 결정할 외부 평가 기관의 경제성 평가는 청와대가 ‘즉시 가동 중단’ 보고를 받은 지 6일 뒤에야 시작됐다. 월성 1호기의 경제성 여부와 상관없이 청와대와 산업부가 미리 ‘즉시 중단’ 방침을 정해놓고 경제성 평가 절차를 이에 꿰맞추려 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은 채 전 비서관 등 청와대 보고 라인과 함께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등을 조만간 소환 조사할 예정이다.
추 장관은 이날 국회에 출석해 “윤 총장이 정치적 야망을 드러낸 이후 (원전 관련 수사가) 전광석화처럼 진행 중”이라며 “정부의 민주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정치적 목적의 편파 과잉 수사”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선을 넘은 윤석열은 당장 사퇴하라”는 주장이 나왔다.
秋 “尹, 사퇴후 정치해라” 與 “탈원전 정책에 개입” 공세
검찰이 지난 5일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 수사에 착수한 뒤, 더불어민주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등 여권(與圈)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퇴까지 요구하며 수사를 중단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수사가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 과제인 ‘탈(脫)원전 정책’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사실상 검찰의 칼끝이 청와대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崔감사원장 답변 지켜보는 秋법무 - 최재형(아래) 감사원장이 1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뒷줄에 앉은 추미애(위) 법무장관이 최 원장을 바라보고 있다. 최 원장은 이날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이 범죄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검찰에 7000쪽에 육박하는 수사 참고 자료를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덕훈 기자
검찰은 지난 5~6일 검사·수사관 150여 명을 투입해 원전을 관리하는 산업통상자원부 등을 압수 수색한 뒤 압수물 분석과 관련자 소환 조사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월성 원전 조기 폐쇄 당시 청와대 관련 행정관들의 자택을 압수 수색하고 휴대전화도 확보했다. 곧 이번 정부 핵심 관계자들에 대한 소환 통보가 줄을 이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장 현 정부 인사들이 줄소환되고 재판이 진행되면 탈원전 정책과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득세할 것”이라며 “당장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치명적이고 내후년 대선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부·여당은 “검찰이 손대선 안 되는 탈원전 정책에 개입했다”며 총공세를 펴고 있다. 추미애 법무장관은 이날 국회에 출석해 “상상력과 창의성으로 끌고 나가는 정책을 검찰이 수사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주권이 검찰 손에 놀아나는 것”이라고 했다. 추 장관은 “윤 총장이 정치적 야망을 드러낸 이후 (관련 수사가) 전광석화처럼 진행 중”이라며 “대권 후보 1위로 등극했다. 차라리 사퇴하고 정치를 하라”고 했다. 또 “검찰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생명”이라며 “선거 사무를 관장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대권 후보 1위라고 하면 국민이 납득하겠느냐”고도 했다.
민주당은 감사원이 월성 1호기 관련 감사를 진행했지만 정식으로 고발 조치를 취하지 않고 검찰에 감사 자료만 보낸 점, 국민의힘이 같은 사안으로 고발장을 낸 점을 들어 이번 수사를 ‘야당 청부 수사’로 규정한 상태다. 감사원이 수사를 원하지 않았는데 국민의힘이 고발하자 정치적 목적을 가진 윤 총장이 수사에 나섰다는 것이다. 추 장관은 이날 “검찰이 감사원에서 문제 삼지 않았던 청와대 비서관까지 겨냥하면서 향후 청와대도 조국 전 장관 수사 때처럼 무분별한 압수 수색을 한다면, 국민은 정권 차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할 소지가 있다”며 “정부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4선(選) 홍영표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감사원 고발도 없이 정부 정책 사안을 검찰이 수사한 사례는 없다”며 “정치적 저의가 없다면 성립하기 어려운 수사, 본질은 현 정부의 검찰 개혁에 대한 조직적 저항”이라고 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번 수사는 국민의힘이 낸 고발장이 아닌 감사원이 보낸 약 7000쪽 분량의 ‘수사 참고 자료’에 기초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감사원 자료에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과 관련해 사건 개요와 관련자들의 역할, 적용 가능한 법 조항 등 사건 전체가 총망라돼 있다고 전했다. 특히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권한을 가졌던 백운규 전 산자부 장관과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현 한국가스공사 사장) 등의 직권남용 혐의가 수사 대상으로 명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이들에 대한 수사에 나서면 탈원전 정책을 총지휘한 청와대에 대한 직접 수사가 현실화될 수 있다. 야당 법사위 관계자는 “경우에 따라서는 청와대 사람들이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검찰이 증거를 따라가며 내놓을 수사 결과가 무서워 여권이 총출동해 수사를 막으려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검찰에 제출한 감사 자료에 대해 “추가 수사로 범죄가 성립될 개연성이 있다는 부분에 (감사위원) 대부분이 동의했다”며 “수사 참고 자료를 보내는 게 감사위원회 의결이 필요한 사안이 아니지만, 이의를 제기한 위원은 없었다”고 말했다. 감사위원회에는 현 정부에 우호적 성향의 감사위원들도 포함돼 있다. 최 원장이 범죄 혐의가 있어 검찰에 자료를 보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조선일보 조백건 기자
11.12 “원전 즉시 중단 보고받고 채희봉 매우 흡족해했다”
당시 청와대 행정관 진술
산업통상자원부가 2018년 4월 4일 청와대에 보고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추진 방안’ 보고서의 핵심은 월성 원전(原電) 1호기에 대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조기 폐쇄 결정이 나오면 그 즉시 원전 가동도 중단하겠다는 것이었다. 감사원은 이 보고서 내용이 하루 만에 바뀐 것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산업부 원전산업정책 과장 등은 2018년 4월 3일 백운규 당시 산업부 장관에게 ‘월성 1호기는 조기 폐쇄하되, 다만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원전 영구 정지 허가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2020년까지 약 2년간 한시 가동한다’는 방안을 보고했다. 그러자 백 전 장관은 “너 죽을래?”라며 “즉시 중단으로 보고서를 다시 쓰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백 전 장관은 하루 전인 4월 2일 문 대통령이 “월성 1호기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하느냐”고 참모들에게 물었다는 걸 전해 들은 뒤 ‘한시적 가동’ 보고를 올린 산업부 공무원들을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산업부 원전 담당자들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추진 방안’ 보고서의 제목만 남기고 내용은 ‘한시 가동’에서 ‘즉시 가동 중단’으로 수정했다. 바로 다음 날 수정된 보고서를 본 백 전 장관은 “됐다. 이대로 청와대에 보내라”고 했고, 산업부 관계자는 이날 김모 청와대 산업정책 행정관에게 보고서를 송부했다고 한다.
김 행정관은 감사원 조사에서 “당시 채희봉 산업정책비서관은 보고서를 조목조목 따지는 스타일인데 그 보고서는 열람 후 곧바로 청와대 내부 보고망에 올리라고 했다” “채 비서관이 매우 흡족해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희봉 전 비서관(현 가스공사 사장)도 감사원 조사에서 “이 보고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으로 들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이때는 외부 평가 기관의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가 시작되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산업부가 청와대에 월성 1호기 ‘즉시 중단’ 방침을 보고한 지 6일이 지난 2018년 4월 10일에야 한수원은 S회계법인에 월성 1호기의 경제성 평가를 맡겼다. 법조인들은 “월성 1호기의 경제성 평가는 요식 행위였고 답은 정해져 있었다는 뜻”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조백건 기자
11.12 최재형 “원전 폐쇄는 범죄 성립 개연성… 감사위원 대부분이 동의”
검찰에 감사자료 제출 이유 밝혀… 與의 ‘야당과 공모’ 음모론 반박
더불어민주당은 11일 윤석열 검찰총장뿐 아니라 최재형 감사원장에게도 공세를 폈다. 감사원이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감사 관련 자료를 검찰에 보낸 것을 두고 감사원이 국민의힘, 검찰 등과 ‘공모(共謀)’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최 원장은 “추가 수사 여부에 따라 범죄가 성립할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돼 자료를 보낸 것”이라고 맞섰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최재형 감사원장의 답변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최 원장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검찰에 수사 참고 자료를 제출한 경위를 묻는 민주당 양기대 의원 질의에 이같이 밝히면서 “추가 수사로 범죄가 성립할 개연성이 있다는 부분에 (감사위원) 대부분이 동의했다”고 했다. 월성 1호기 폐쇄 결정에 관여한 정부 관계자들의 범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검찰에 관련 자료를 보냈다는 것이다.
양 의원은 이날 감사원이 지난달 20일 원전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이틀 뒤인 22일 검찰에 ‘수사 참고 자료’를 보낸 것에 대해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수사 참고 자료를 보낸 것은 의도가 있다. 모종의 음모적 프로세스에 의해 이런 일이 진행된 것”이라고 했다. 양 의원은 국민의힘이 감사 결과가 나오자 지난달 22일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을 검찰에 고발한 것을 두고도 “사전에 (감사원·검찰과)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교감이 있지 않았느냐”고도 했다.
그러나 최 원장은 “10월 20일 감사 결과를 공개할 때 수사 참고 자료를 검찰에 보내겠다고 이미 언론에 이야기한 사안”이라며 이와 관련한 회의록도 남아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측 고발과 무관하게 감사원 내부적으로 이미 검찰에 자료를 보내자는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최 원장은 그러면서 감사원과 야당, 검찰의 공모설에 대해 “감사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심히 훼손하는 것”이라며 “감사원의 업무상 독립성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최 원장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근거가 된 경제성 평가가 조작됐다는 언론 보도와 관련해 “경제성 평가가 불합리하게 저평가됐고,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들이 그 내용을 알고 있었는데도 경제성 평가를 담당한 회계 법인에 (경제성이 저평가된) 변수를 사용하도록 요구했고, 이를 토대로 즉시 가동 중단 결정을 했다”며 “이를 조작으로 볼 것인지 아닌지는 상식적으로 평가하면 되겠다”고 했다. 조작 가능성에 무게를 실은 것이다. 최 원장은 또 “국가의 중요 정책도 수립·집행 과정에서 적법한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에선 원전 조기 폐쇄 결정이 문재인 대통령의 ‘통치행위’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사실상 어떤 국가기관도 이를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양이원영 의원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는 대통령의 정당한 통치행위”라고 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정책 결정이니까 통치행위 개념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고 했다.
11.12 ‘2등 국민’은 침묵하지 않는다
국가가 범죄를, 그것도 조직적으로 저지르는 현장을 목격한 시민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개인에게, 그것도 권력 편이 아닌 ‘2등 국민’에겐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 조성진 교수(경성대 에너지학과)의 ‘모범 답안’을 소개한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강행은
거대한 국가 권력의 조직범죄
‘정의의 평범성’이 잡아냈다
조 교수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에 대한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를 끌어낸 숨은 공신이다. 그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상하고 비상식적이며 비정상적인 결정’에 질끈 눈을 감았다면 감사원 감사도, 검찰 수사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는 2016년 9월부터 2018년 7월까지 약 2년간 한국수력원자력의 사외이사를 지냈다. 그는 친(親)원전론자다. 신고리 5, 6호기 공사 중단과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때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그의 반대표가 언론의 관심을 불렀고 그 바람에 월성 1호기의 경제성 평가가 조작됐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완전범죄로 끝날 뻔한 국가 권력의 조직범죄가 꼬투리를 잡혔다.
그는 지난달 감사원 감사 결과가 발표됐을 때 “내심 실망했다”고 했다. 관련자 처벌 수위가 너무 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페이지의 감사보고서를 읽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보고서는 어떻게 누가 왜 월성 1호기의 숨통을 끊었는지 낱낱이 기록하고 있었다. 조작과 짜 맞추기로 점철된 월성 1호기 폐쇄의 흑막 속엔 구린내가 진동했다.
보고서 완성엔 조 교수의 공이 컸다. 그는 끊임없이 한수원과 정부를 두드렸다. 묻고 따졌다. 조작의 증거를 찾고 수소문했다. 공개적으로 제보를 받았다. 각종 세미나에 참석했고 국회에 나가 증언도 했다. 여당 의원에겐 “국정감사가 소신 밝히는 자리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그렇게 수집한 자료와 녹취록을 감사원에 전달했다. 그게 단서가 됐다. 결코 덮을 수 없던 진실은 그렇게 드러났다.
그는 감사보고서를 보고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왜 2년 전 그날(2018년 6월 15일), 월성 1호기 폐쇄를 결정한 한수원 이사회가 열린 그날, 의장이던 자신이 통보도 없이 잘리고 다른 사람으로 전격 교체됐는지, 왜 회의록이 조작됐는지, 왜 회계법인의 경제성 평가는 한 달 만에 1000억원 흑자에서 수백억원 적자로 둔갑했는지, 산업부와 청와대가 무슨 짓을 했는지. 지난 2년여 그가 수없이 물었지만 대답을 듣지 못했던 의문들이다.
그는 “당시엔 아무것도 모르고 반대했다. 이상해서, 한수원에 큰 손해라 반대했다. 국가에, 국민에게 손해라서 반대했다. 지금 보니 당시 나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 부품 하나였다. 아무 생각 없이 돌아가는 부품”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부품이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국가 조직범죄에 대한 단죄는 이제 시작이다. 감사원은 정치적 외압과 전·현직 관료들의 조직적 저항에 밀려 절충과 타협을 택했다. 대신 검찰이 단죄의 칼을 이어받았다. 대선 공약이란 이유로, 대통령 말씀이라는 이유로 법과 규정을 무시하고 국가의 백년대계를 허문 범죄가 유야무야 묻혀서는 안 된다. 그런 나라는 나라도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일제히 검찰 수사에 반발하고 나섰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정치인 총장이 정부를 흔들려고 편파·과잉 수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것은 정치수사이자 검찰권 남용”이라며 “검찰은 당장 무모한 폭주를 멈추라”고 했다. 조성진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나는 탈원전에 반대하는 ‘2등 국민’이다. 아무리 외쳐도 꿈쩍 않는 정부에 절망했다. 하지만 내 앞에서 일어난 일에 눈 감을 수는 없었다”고 했다. 한나 이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말했지만, 나는 조성진 교수에게서 ‘정의의 평범성’을 봤다. 잊지 않으려 여기 기록한다. ‘2등 언론인’이 할 수 있는 게 또 뭐가 있겠나(나는 탈원전 정부가 들어선 이래 1년에 한 번씩 조 교수의 행적을 이 칼럼에 기록해 왔다.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바란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11.13 감사원이 힘겹게 새겨넣은 진실의 조각들
탈원전 보고서엔 ‘대통령’ 단어가 두 번 등장한다
최재형의 감사원이 혼신의 힘을 다해 진실의 작은 조각을 새겨 넣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 부총리의 사표를 반려하며 밝힌 재신임 사유가 말문을 막히게 했다. 문 대통령은 홍남기 부총리가 “코로나 경제 위기 극복에 큰 성과를 냈다”고 했다. 홍 부총리가 도대체 무얼 했는지, 세금 풀고 현금 뿌린 것 말고 생각 나는 게 없다. 아마도 문 대통령은 4차례 추경과 전 국민 재난 지원금, 세금 일자리 사업 같은 일련의 재정 확장 정책을 지칭한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성과가 아니라 해임 사유다. 재정 방어에 목숨이라도 걸어야 할 경제 부총리가 정치적 압력에 번번이 굴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홍 부총리를 칭찬하며 신임한다고 한다. 나라 살림이야 어찌되든 곳간을 활짝 열어준 것이 잘했다는 것이다.
홍 부총리는 작금의 전세 대란에도 책임이 큰 사람이다. ‘임대차 2법’을 주도해 이 난리를 만들어놓고도 “확실한 대책이 있다면 벌써 다 했겠죠”라며 무책임의 극치를 드러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그가 “적임자”라 한다. 하는 족족 실패해 별명이 ’23전 23패'인 국토부 장관도 경질할 계획이 없다고 한다. 두 장관은 집값을 천정부지로 급등시켜 무주택자 서민들을 절망시킨 장본인이다. 이들을 신임한다는 문 대통령 말은 집값은 못 잡아도 좋으니 ‘부동산 정치’를 계속하라는 지시나 마찬가지다. 부동산 참사의 꼭대기에 대통령이 있다는 자기 고백에 다름 아니었다.
경제 망치고 민생 피폐하게 하는 정책 실패가 반복돼도 대통령의 진심은 그게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국민을 못살게 하려는 대통령이 어디 있단 말인가. 무능한 청와대 참모진과 장·차관들이 문제라고 여겼다. 이들이 잘못된 진단과 왜곡된 보고로 대통령의 눈·귀를 가렸기 때문이라 믿고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경제 파이를 쪼그라트리고, 못사는 사람을 더 못살게 만들고, 사사건건 편 갈라 싸움 붙이는 국정 자해의 정점에 대통령이 있었다. 법치를 흔들고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민주주의 파괴도 대통령의 뜻과 무관치 않았다. 이 모든 ‘처음 경험하는 현상’의 기획자이자 연출자가 대통령이란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다.
‘배후의 대통령’을 드러낸 대표적 사안이 탈원전 자해극이다.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근거 자료가 왜곡·조작됐음이 감사원 감사에서 확인됐다. 애초 회계법인은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이 있다고 판정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되느냐”라고 묻자 놀란 산업부 장관이 주도해 ‘경제성 없음’으로 뒤바꾼 사실이 드러났다. 대통령 발언 이후 산업부·한수원은 일사천리로 가동 중단 절차를 밀어붙였고 두 달 만에 결정이 내려졌다. 산업부 공무원들은 감사원 감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증거 자료를 무더기 파기했다. 간이 콩알만 하다는 공무원들이 대놓고 범죄를 저질렀다. 대통령이 뒤에 있으니 겁날 것도 없었을 것이다.
검찰이 수사에 나서자 여권은 “정책 판단에 검찰이 끼어든다”며 펄펄 뛰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정책이 아니라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저지른 수치 조작과 직권 남용, 증거 인멸 등이다. 명백한 범죄 행위가 있는데 검찰이 방관하면 그것이야 말로 범죄다.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할 국가의 기간 정책이 국민을 속인 채 밀실 안에서 조작되고 왜곡됐다. 그 배후에 대통령이 있었다. 여권이 검찰 수사에 저토록 필사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검찰총장 가족 사건을 끄집어 내고, 특활비 운운하면서 치졸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대통령까지 번지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의 그림자는 울산 선거 개입 사건에도 어른거리고 있다. 문 대통령의 30년 지기를 당선시키려 청와대가 총동원돼 공작을 벌였다. 정무·민정수석실을 포함한 8개 조직이 나서 여당 후보 공약을 만들어주고, 야당 후보의 비위 첩보를 경찰에 넘겼으며, 경선 상대방을 매수하려 했다. 모든 사실과 증거들이 참모들의 상급자인 그 한 사람을 지목하고 있다. 검찰이 정권을 겨냥하자 여권은 윤석열 총장을 거세하려 혈안이 됐다. 추미애 장관이 선봉에 서서 폭주하고 있지만 그 역시 하수인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자의 뜻을 너무나도 충실하게 이행한 것이 추 장관의 죄라면 죄일 것이다.
탈원전을 감사한 감사원 보고서는 200쪽 분량에 달한다. 이 중 문 대통령을 지칭한 ‘대통령’이란 단어는 109쪽, 161쪽에 딱 두 번 등장한다. 그 두 번의 ‘대통령’은 죽어가는 사람이 범인을 알리려 남긴다는 ‘다잉(dying) 메시지’와도 같다. 정권의 갖은 압박에 죽을 지경이 된 최재형의 감사원이 혼신의 힘을 다해 진실의 조각을 새겨 넣었다. 작지만 분명한 그 단서가 출발점이 되어 탈원전 자해극의 실체를 드러내 줄 것이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아무리 권력의 힘으로 눌러도 영원히 진실을 숨길 수는 없다. 임기 말이 다가올수록 국정 폭주의 진짜 배후를 알리는 진실의 ‘다잉 메시지’는 온갖 곳에서 터져 나올 것이다.
조선일보 [박정훈 칼럼]
11월 13일 월성 1호 경제성 조작도 통치행위라는 秋·與 혹세무민
검찰의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 수사가 본격화하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물론 여당 인사들까지 총출동하다시피 나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맹비난하고 나섰다. 이들의 주장은 5갈래다. 첫째, 대통령 통치행위에 대한 도전이자 문재인 정부에 대한 공격이다. 둘째, 탈원전 정책에 대한 수사다. 셋째, 감사원 고발도 없는데 수사하는 ‘야당 청부 수사’다. 넷째, 현 정권에 대한 조직적 저항이다. 다섯째, 여론조사 지지도가 높게 나오자 윤 총장이 대놓고 수사를 자신의 정치 수단으로 삼는다.
그러나 한결같이 견강부회도 넘어 혹세무민을 의심해야 할 정도의 궤변이다. 경제성 조작 혐의는 감사원 감사 이전에도 여실히 드러났고, 감사원 감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이런데도 수사하지 않으면 그것이야말로 검찰의 직무유기다. 그럼에도 양이원영 의원은 11일 국회에서 “월성원전 1호기 폐쇄는 대통령의 정당한 통치행위”라고 했고, 추 장관도 “정책 결정이니까 통치행위 개념과 유사하다”고 했다. 수사 대상에 대한 본질을 헷갈리게 하는 전형적인 물타기 논리다. 경제성 조작과 정부 문서 무더기 삭제·은폐 행위가 통치행위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통치행위 적법성을 둘러싼 논란이 많지만, 설혹 통치행위라고 하더라도 과정의 명백한 불법성은 수사 대상이다. 추후에 처벌 경감이나 사면 등의 사유는 될지 모른다.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는 탈원전 정책이 아니라 월성원전 1호기의 경제성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 등이 수치를 조작하거나 자료를 삭제·은폐한 불법행위에 대한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더욱이 지난해 9월 여야 합의로 국회 표결(162명 찬성)을 거쳐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한 것이다. 당시 여당 의원이던 추 장관, 정세균 국무총리 등도 찬성표를 던졌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추가 수사로 범죄가 성립될 개연성이 있다는 부분에 (감사위원) 대부분이 동의했다”며 “자료를 보내는 데 대해서도 이견이 없었다”고 했다. 통치행위라는 논리까지 들이대는 여권 행태는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의구심을 키울 뿐이다.
문화일보 사설
11월 13일 국내 정책은 ‘통치행위’ 될 수 없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논란이 많았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례 등으로 인해 그 위험성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수십 년을 투자해 궤도에 올린 원전 기술과 모든 노력을 수포로 돌리는 데 대한 비판도 거셌다. 이런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이른바 공론화위원회가 구성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모든 논의를 수포로 돌리는 게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였다.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됐다는 점이 확인됐을 뿐 아니라, 관련 서류의 무단 폐기 등은 탈원전 정책 집행 과정에서의 불법과 비리를 의심케 한다.
이에 대해, 여당의 이낙연 대표가 월성 1호기 관련 검찰의 수사를 “정치 수사이자 검찰권 남용”이라고 비판한 데 이어 양이원영 의원은 “대통령의 정당한 통치행위이자 정책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야당 시절 대통령의 통치행위 주장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던 민주당에서 이런 주장을 했다는 게 놀랍다.
‘통치’라는 개념 자체가 전제군주국가에서 왕이 나라 전체를 지배하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하지만 현대 민주국가에서는 국민의 주권과 국가기관의 통치권을 구분하되, 통치권은 권력분립에 의해 입법권·집행권·사법권이 엄격하게 나뉜다. 그런데도 군주의 대권에서 유래된 ‘통치행위’라는 것이 여전히 인정되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상황 때문이다. 즉, 고도의 정치성 때문에 사법적 판단이 곤란한 경우에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이 통치행위다.
이러한 통치행위는 법치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국내 정치행위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다만, 외국과의 관계에서 나라의 위신 및 국익이 심각하게 문제 될 수 있는 상황에서는 통치행위라고 봄으로써 사법적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이다. 과거 헌법재판소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금융실명제 도입를 위한 긴급재정경제명령에 대해 통치행위라고 보면서도 이에 대한 사법심사를 진행했던 반면, 노무현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는 고도의 정치성을 이유로 사법적 판단을 내리지 않았던 것은 이런 맥락에서 설명된다.
그러므로 탈원전 정책을 통치행위라고 주장하는 데는 매우 심각한 오류가 있다. 애초에 통치행위의 개념을 잘못 사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통치행위는 사법심사를 배제하는 것이지 수사 자체를 하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님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즉, 통치행위 여부의 판단권은 법원 또는 헌법재판소에 있는 것이지 국회나 검찰에 있는 게 아니다.
또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중요한 정책이기 때문에 수사 대상이 돼선 안 된다는 주장도 이해할 수 없다. 대선 공약에 대해서는 어떤 불법과 비리가 있더라도 수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더욱이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4대강 정책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감사원을 동원해서 파헤치고 나서도 다시 검찰을 투입해 수사하지 않았던가?
정말로 통치행위에 대한 오해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은 이런 억지 주장을 통해서라도 감춰야 할 무엇이 있는 건 아닌지 우려한다. 과거 정권들에서도 그런 일이 적지 않았기에…. 만일 그렇다면, 그 책임은 이 순간을 모면한다고 해도 결코 회피할 수 없을 것이다.
문화일보
11.14 ‘월성원전, 경제성 낮게 하겠다’ 산업부가 靑에 올린 보고
산업부, 가동중단 결론내고 보고
2018년 산업통산자원부가 월성 원전 1호기(이하 월성 1호기)의 경제성 평가 과정에 적극 개입해 경제성이 낮다는 평가 결과가 나오도록 하겠다는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산업부는 경제성 평가를 시작하기도 전인 2018년 4월 4일 ‘즉시 가동 중단’ 방침을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감사원 감사에서 밝혀졌다. 현 정부가 월성 1호기에 대해 ‘즉시 가동 중단’이라는 방침을 사전에 정해 놓았을 뿐 아니라,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액션 플랜’까지 만들어 청와대에 보고했던 것이다. 검찰은 최근 당시 산업부 원전(原電) 담당 국장과 과장 등을 소환해 이 같은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13일 알려졌다.
본지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과장은 2018년 5월 2일 ‘에너지전환 후속조치 추진현황’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엔 ①월성 1호기 가동으로 인한 안전 비용 등 경제성 저하 요인 (평가 기관에) 적극 설명 ②산업부 원전산업국장이 한수원 사장과 월성 1호기 이용률 (하향 책정) 적극 협의 ③월성 1호기 ‘즉시 가동 중단’ 관련 추가 비용은 경제성 평가에서 제외 등의 내용이 담겼다. 월성 1호기의 ‘계속 가동’ 경제성은 낮추고, ‘즉시 가동 중단’ 필요성은 높이겠다는 실행 계획을 담아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것이다.
그해 5월 30일 산업부는 ‘한수원 사장에게 요청할 사항’이란 문건을 또 작성했다. 이 문건엔 ‘월성 1호기 가동의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나올 필요’란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한수원 관계자들은 검찰에서 “산업부가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나지 않으면 한수원에도 후폭풍이 있을 것’이라고 압박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검찰은 ‘에너지전환 후속조치 추진현황’, ‘한수원 사장에게 요청할 사항’ 등 두 문건이 모두 삭제된 것을 확인했다. 두 문건은 작년 12월 1일 산업부가 삭제한 444개 파일에 포함된 것이다. 검찰은 444개 문건을 삭제한 산업부 원전 담당 서기관(4급)을 상대로 감사 정보가 사전에 누설됐는지를 수사 중이다.
文 한마디에 산업부 “월성 즉시중단”, 한수원 압박해 경제성 조작
정부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는 문재인 대통령의 한마디가 발단이 됐다. 문 대통령이 ‘언제 가동 중단하느냐’고 묻자 곧바로 산업부와 한수원이 법적·절차적 정당성이 없는 조기 폐쇄를 밀어붙였다.
13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산업부는 월성 1호기 원전(原電)을 조기 폐쇄하기 위해 ‘경제성을 축소하겠다’는 내용을 2018년 5월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청와대가 월성 1호기 폐쇄 과정의 전말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물론,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의뢰로 월성 1호기의 경제성 평가를 맡았던 삼덕회계법인도 ‘경제성이 있다’고 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성 1호기를 폐쇄하기 위해 공무원 조직이 총동원된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검찰과 감사원 조사를 받은 복수의 청와대·산업부·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월성 1호기 ‘즉시 가동 중단’ 추진의 발화점이 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질문’이었다. 2018년 4월 2일 월성 1호기를 방문하고 돌아온 문미옥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은 그날 청와대 내부 보고망을 통해 ‘(월성 1호기) 외벽에 철근이 노출돼 있었다’는 보고를 올렸다. 그날 문 대통령이 이를 보고, 참모들에게 “월성 1호기 영구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하느냐”고 물었고, 대통령의 질문은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실을 통해 당시 백운규 산업부 장관 등에게도 전달됐다. 문 대통령은 이보다 10개월 전인 2017년 6월 19일 고리 원전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 참석, “탈핵(脫核) 국가로 가는 출발”이라며 “월성 1호기는 전력 수급 상황을 고려해 가급적 빨리 폐쇄하겠다”고 선언했었다.
대통령의 폐쇄 선언이 나온 지 1년이 다 된 2018년 4월까지 산업부와 한수원은 월성 1호기를 폐쇄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언제 문 닫느냐’고 묻자 바로 다음 날인 4월 3일,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과장은 ‘월성 1호기는 조기 폐쇄하되, 원자력안전위의 원전 영구 정지 허가가 나올 때까지 2년 6개월 더 가동할 필요가 있다’고 백 전 장관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백 전 장관은 “너 죽을래”라며 크게 화를 내고, “즉시 가동 중단으로 보고서를 다시 쓰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뒤 산업부 원전과장은 ‘월성 1호기 즉시 가동 중단’으로 보고서를 고쳐 올렸고, 백 전 장관은 “됐다. 이대로 청와대에 보내라”고 해서 청와대 보고까지 이뤄진 것이다. 문 대통령이 월성 1호기 관련 질문을 한 지 이틀 만에 산업부의 방침이 ‘즉시 가동 중단’으로 확정된 것이다.
그런데 월성 1호기를 즉시 가동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안전성 혹은 경제성에 문제가 있어야 했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가 2015년 2월에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며 계속 운전 승인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를 뒤집기 어려웠다. 그래서 경제성을 문제 삼을 수밖에 없었고, 4월 10일 한수원은 삼덕회계법인에 경제성 평가를 의뢰했다. 한수원이 경제성 평가를 의뢰한 이날은 청와대에 ‘즉시 가동 중단’ 보고를 한 7일 후였다. 즉시 가동 중단 결정을 하고, 짜맞추기 경제성 평가에 들어갔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경제성 평가를 맡은 삼덕회계법인은 처음 원전 이용률 85%를 적용한 경제성 평가모델을 제시했다가 2018년 5월 4일 산업부, 한수원과 회의 후 이용률을 70%로 낮췄다. 그러나 70% 이용률을 적용한 경제성 평가도 계속 가동이 즉시 폐쇄보다 1778억원이나 이익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5월 11일 산업부·한수원과의 회의 후 60%로 다시 낮췄다. 그 결과 사흘 후인 5월 14일 최종 보고서에서 계속 가동 이득은 224억원으로 급락했다. 이렇게 이용률과 판매 단가를 불합리하게 낮추고도 계속 가동이 폐쇄보다는 이득이라는 결론이 나왔지만 그런데도 한수원은 6월 15일 이사회를 열어 조기 폐쇄를 의결했다.
삼덕회계법인이 이처럼 두 차례에 걸쳐 경제성을 낮춰 잡은 배경에는 산업부가 2018년 5월 2일 청와대에 보고한 ‘에너지전환 후속조치 추진계획’이 있었다. 산업부의 추진계획에는 ‘월성 1호기 가동이 경제성이 없다는 평가 결과가 나오게 하기 위해 한수원과 삼덕회계법인을 압박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후 산업부는 군사작전 하듯 월성 1호기 ‘즉시 가동 중단’ 작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산업부 공무원들은 “장관의 지시다.
월성 1호기 가동의 경제성이 높게 나오면 안 된다” “즉시 가동 중단 결론을 청와대에도 이미 보고했다”며 한수원을 압박했다. 관가(官街)에서 “월성 1호기 가동 중단의 시작과 끝은 문 대통령”이란 말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11.16 우긴다고 ‘조작’ 못 덮는다
2년 전 한국수력원자력이 “안전성엔 문제가 없지만 경제성이 없다”면서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을 내렸을 때 ‘검찰 칼끝이 탈원전 향할 날’이란 칼럼을 썼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에 이명박 정부 해외 자원 개발에 대해 재수사를 의뢰한 것처럼 무리한 탈(脫)원전 역시 언젠가 검찰 수사를 받을 날이 올 것이란 내용이었다. 그날은 생각보다 일찍 왔다.
당시 월성 1호기 폐쇄를 결정한 한수원 이사들은 ‘조작’된 경제성 평가 보고서조차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 그저 민형사상 책임을 피할 수 있는지만 묻고는 한수원 결정에 손을 들어줬다. 한수원 관할 부서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는 한수원이 자체적으로 판단해 결정한 것일 뿐 정부가 개입하거나 강제한 사안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감사원 감사는 이런 산업부 해명이 거짓말이란 점을 반증했다.
그동안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의 부당성에 대한 기사를 낼 때마다 산업부는 “허위 보도에 대해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면서 협박성 대응으로 일관했다. 올 초 월성 1호기 경제성이 3707억원(한수원 보고서)→1778억원(삼덕회계법인 중간보고서)→224억원(산업부·한수원·삼덕회계법인 3자 회의 뒤)으로 산업부 손길을 거치면서 마술처럼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지적했을 때도 산업부는 발뺌했다. 감사원이 감사를 통해 이 내용이 ‘팩트’라는 점을 확인해줬는데도 산업부는 사과나 반성은커녕 “조직적 은폐는 아니다”라고 우기고 있다. “감사보고서 어디에도 경제성 평가가 조작됐다는 표현이나 판정은 없다” “‘산업부가 경제성 분석 과정에 관여해 경제성을 불합리하게 낮췄다’는 감사 결과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억지를 쓰고 있다. 그렇게 당당한데 왜 산업부 원전 담당 공무원은 일요일 한밤중 사무실에 들어가 월성 1호기 관련 자료 444건을 삭제했는지 모르겠다.
산업부가 본질을 외면하고 자구에 집착하면서 “경제성 평가 조작이란 말은 없다”고 떼를 쓰니,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얼마 전 최재형 감사원장에게 “감사보고서에는 ‘경제성 평가가 조작됐다’는 표현이 쓰이지 않았다”면서 추궁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에 대해 최 원장은 한수원이 경제성 평가를 왜곡해 가동 중단 결정이 내려졌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를 조작으로 볼 건지 상식적으로 평가하라”고 답했다.
7000억원 들여 고쳐 멀쩡하게 돌아가던 발전기(월성 1호기)를 “영구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할 것인가”란 대통령 한마디에 폐품으로 둔갑시키는 흉계는 하나둘 폭로되고 있다. 2015년 95.8%에 달했던 월성 1호기 이용률을 60%까지 낮추고, 평균 kWh당 63.8원이던 전력판매가도 일부러 51.52원으로 낮춰서 계산한 뒤 결과적으로 월성 1호기를 돌릴수록 손해인 발전소로 낙인찍어 문을 닫게 했다. 이런 게 조작이 아니면 뭘 조작이라고 부르겠는가.
11월 18일 통치행위는 없다
이도운 논설위원\
헌법 조항 어디에도 ‘統治’ 없어
協治 외면 국정 장악 수단일 뿐
정책 결정의 불법은 처벌 대상
文정권, 탈원전을 통치 행위 주장
최재형 원장·윤석열 총장 맹공
감사·수사, 국익 自害 드러낼 것
대한민국 헌법의 본문 10개 장(章) 130개 조(條), 부칙 6개 조를 아무리 찾아봐도, 제4장 제1절 대통령 조항의 66조부터 85조를 눈을 씻고 뒤져봐도 나오지 않는 단어가 있다. 통치. 통치가 없으니 당연히 통치행위란 말도 헌법에는 없다. 통치는 법적 용어가 아니라 정치적 주장이다. 정치학에 나오는 통치(統治·reign)는 정책 결정이 특정 개인·소수 집단에 좌우되며, 강제력을 동원해 사회를 장악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공포 정치(reign of terror)가 대표적 통치 행태다. 통치의 반대 개념이 자치 또는 협치(governance)다. 따라서 어떤 정치 세력이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인 비헌법적 통치를 운운하게 되면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자치·협치와는 멀어진다는 뜻이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가 통치행위라고 강변하며 감사원과 검찰을 비난하는 문재인 정권의 행태가 정확하게 보여준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세 차례 통치행위 논란이 있었다. 첫째, 1993년 감사원의 율곡(군 무기 획득) 사업 및 평화의 댐 감사. 율곡사업 감사의 핵심은 1991년 공군 차세대 전투기 기종이 F-18에서 F-16으로 바뀐 과정에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관여했는지 여부. 평화의 댐 감사의 핵심도 1987년 북한의 수공(水攻) 능력을 과장하는 데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관여했는지 여부였다. 감사관들은 ‘통치행위는 감사하지 않는다’는 감사원 내규 때문에 주저했다. 그러나 대법관 출신 이회창 원장은 헌법이 규정하지 않는 통치행위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고, 두 전직 대통령을 서면으로 감사했다. 감사원이 처음으로 전직 대통령이라는 성역을 깨면서 이후 검찰이 내란죄 등으로 두 사람을 수사하는 중요한 선례가 됐다.
둘째, 대북 송금 수사.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대중 정부가 북한에 4억5000만 달러를 송금하도록 했던 사실이 2003년 감사원과 특별검사를 통해 드러났다. 김대중 정권 사람들은 “통치행위였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회담 자체는 사법 심사의 대상이 아니지만, 송금의 불법은 처벌 대상이라고 판결했다. 관련자들은 외국환거래법 등 위반 혐의로 처벌됐다. 셋째, 4대강 사업. 2013년 10월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의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주무 장관이었던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VIP 통치행위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답변했다. 감사원 내규의 ‘중요 정책 결정은 감사 대상이 아니다’는 조항을 지목했다. 그러나 성용락 감사원장 직무대행은 단서 조항에 정책 결정의 기준이 되는 사실·자료·정보의 오류는 대상으로 적시했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례를 통해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첫째, 탈원전 과정의 불법과 비리는 당연히 감사와 수사의 대상이 된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회계 법인의 경제성 조작,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의 공문서 무단 삭제는 물론이고, 그 과정에서 산업부와 청와대 관계자의 역할 또한 조사해야 한다. 둘째, 정권의 대표 정책에 대한 감사와 수사에는 당연히 거센 저항이 뒤따른다.
율곡사업·평화의 댐 감사 당시 정보기관 요원들은 감사원 출입기자들까지 찾아다니며 이회창 원장의 비리를 캤다. 대북송금 특검으로 동교동계와 호남 일부가 반(反) 노무현으로 돌아서 정권의 지지 기반이 흔들렸다. 4대강 감사와 수사는 보수 정당 내 친이·친박 세력의 갈등을 여전히 아물지 않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전 정권 감사·수사도 그 정도인데, 살아 있는 정권의 대표 정책에 법적 잣대를 대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탈원전 감사는 최재형 감사원장을 친문 세력의 공적으로 만들었으며, 수사는 안 그래도 미운털이 박힌 윤석열 검찰총장을 몰아내는 데 여권이 총출동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세 차례 통치행위 논란을 이겨냈던 감사원은 탈원전 관련 감사 내용을 꼼꼼하게 기록해 검찰에 넘겼다. 검찰이 수사를 통해 감사 결과를 확인하면 탈원전 정책의 실상이 적지 않게 드러날 것이다. 정책 평가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탈원전은 다르다. 과정뿐만 아니라 정책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류 에너지 전문가들이 입을 모은다. 수사 결과도 탈원전이 통치행위가 아니라 국익 자해라는 평가를 뒷받침할 가능성이 크다.
문화일보
11.21 문건 444개 삭제에 "너 죽을래"…첩보영화 뺨친 '월성 폐쇄'
중앙일보 윤석만
11.23 탈원전 외치던 정부, 北엔 원전건설 지원 추진했다
[단독] 산업부 삭제 파일 444건 안에 ‘北 원전 건설’ 보고서 10여 건 나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작년 12월 감사원의 월성 원전(原電) 1호기 감사 기간에 삭제한 내부 문건 444건 중 ‘북한 원전 건설 추진’ 보고서 10여 건이 포함된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북한 원전 관련 문건은 모두 2018년 5월 초·중순 작성된 것이다. 문건 작성 시기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1차 남북 정상회담(4월 27일) 직후이자, 2차 남북 정상회담(5월 26일) 직전이었다. 현 정부는 ‘탈(脫)원전 정책’을 밀어붙이며 “새 원전 건설은 없다”고 했으나, 북한에는 원전을 새로 건설해주는 방안을 비밀리에 검토했던 것이다.
여러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북한 원전 건설 관련 보고서는 ‘북한 지역 원전 건설 추진 방안’ ‘북한 전력 인프라 구축 협력 방안’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업무 경험 전문가 목록’ 등의 제목이 붙은 10여 건으로 알려졌다. KEDO는 한국과 미국·일본이 1995년 설립한 기구로,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북한에 전력 공급용 경수로 2기를 제공하는 사업을 추진한 기구다. 이 보고서들은 우리 정부가 2018년 5월 당시 북한 전력 지원 차원에서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는 방안을 또다시 검토했음을 보여주는 문건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우리 정부는 ‘국내 원전 추가 건설은 없다’는 입장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신규 원전 건설은 없고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도 없다”는 탈원전 공약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이런 문 정부가 국내에 더 짓지 않겠다고 한 원전을 북한 지역에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한 셈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통일 등을 염두에 둔 장기 관점에서 미리 검토한 보고서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관가(官街)에선 “시기가 묘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산업부가 ‘북한 원전 건설 추진’ 보고서를 10여 건 만들어낸 2018년 5월 초·중순은 그해 1차 남북 정상회담이 있은 직후였다. 또 이 보고서들을 만든 직후였던 그해 5월 말엔 현 정부의 2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전직 경제 부처 고위 관계자는 “현 정부의 1·2차 남북 정상회담 사이에 산업부가 북한 지역 원전 건설 관련 보고서를 집중적으로 만들고, 북한 경수로 지원 사업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까지 물색했다면 단순한 장기 전망 보고서로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관련 감사를 진행 중이던 작년 12월 2일 산업부 원전 담당자들의 PC를 압수해 그 안에 저장된 문서 파일 444건이 삭제된 것을 확인했다. 감사원은 이 중 324건을 복원해 이 중에서 2018년 5월 초·중순에 작성한 북한 원전 건설 추진 관련 보고서를 10여 건 발견했다고 한다. 감사원은 이 보고서 10여 건을 포함, 산업부가 삭제한 내부 문건 목록 444건을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에 최근 송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조백건 기자
11월 24일 탈원전 안 바꾼 탄소중립은 허구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2050 탄소중립 목표 당차지만
10년도 못 돼 파탄 날 탁상공론
미·영·독·일 타산지석 삼아야
전량 수입 LNG에 의존은 위험
바이든, SMART 원자로에 투자
제2의 고리·월성 ‘폐쇄’ 막아야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탄소중립이란, 탄소를 배출한 만큼 흡수해 상쇄시킨다는 것이다. 국내 제조업의 비중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뭇 당찬 목표다. 석탄과 원전의 빈자리는 가스(LNG)로 메울 수밖에 없다. 2년 후면 원전을 모두 닫고 러시아 LNG에 기대게 된 독일을 돌아볼 필요도 없다. LNG 수입에 무역수지가 역전되면서 원전을 다시 돌리려는 일본을 건너다볼 필요도 없다. 풍력·태양과 함께 원전을 지킨 미국과 영국도 감당하기 힘든 중차대한 선언이다.
결국, 다음·다다음 정부가 국민과 함께 끌어안고 가야 할 멍에를 지워 준 것이다. ‘앞으로 30년 허리띠를 졸라매고 가시밭길을 가야’ 한다면 그나마 다행, 이대로라면 10년도 못 가서 발병 날 상황이다. LNG는 해외에서 전량 수입하는 데다 공급과 가격이 불안정해 안보 측면에서 부정적이다. 더욱이 LNG는 탄소중립에도 이바지하지 못한다. 석탄에 포집·이용·저장 기술을 적용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면서 온실기체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을 병행하는 과학적·실용적 탄소중립 정책을 세워야 한다.
지구 평균기온은 지상 2m에서 1889년 당시 섭씨13.5도가 믿을 만한 출발점이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산업혁명 이전에서 1.5도 상승을 상한치로 잡으면 지구 평균기온을 15도 밑으로 묶겠다는 것이 국제 기후협약의 골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2016년 11월 발효된 파리기후협약을 올해 탈퇴하기로 한 것은 다른 이유보다 자국의 셰일가스 채굴과 수출을 통한 국부 창출을 기후협약보다 중시한 미국 우선주의의 산물이었다. 물론 새해 조 바이든 행정부는 민주당 75년의 관행을 깨고 원자력발전, 특히 국내 원자력안전위원회가 2012년 인증한 ‘다목적 일체형소형원자로(SMART)’와 같은 중소형로에 투자하면서 파리기후협약에 재가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운동과 과학 기술을 공히 존중한 결과다.
탄소중립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국제적 흐름이다. 현재 70개 넘는 국가가 선언했고, 30개 넘는 나라가 동참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은 2060년까지, 일본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탄소중립은 기후협약의 산물이다. 세계적으로 폭염·산불·태풍 등의 피해가 늘어나고,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다. 인류의 실존적 위협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기온은 이미 1도 올라 14.5도를 웃돌고 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350PPM(100만 개 분자 중 350개) 밑으로 유지해야 하지만, 이미 425PPM에 다가가고 있다. 루비콘강을 건너기 직전이다.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앞으로 매년 10%씩 줄여 나가야 한다. 매년 서울 시민이 때는 화석연료를 모두 청정연료로 바꿔야 한다. LNG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으로 세계 경제가 침체한 상황에서도 온실기체 감축은 8%를 밑돌 거라는 전망을 보면 정부 발표가 얼마나 탁상공론인지 들여다보인다. 목표치보다 더 시급한 것은 제도적·기술적 틀을 갖추는 것이다. 구체적 정책을 내놔야 기업이 움직이고, 국민이 따를 것이다. 악마는 각론(各論)에 있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태운 화석 연료량은 에베레스트산 4개에 상당하고, 앞으로 1.5도 밑으로 묶으려면 에베레스트산 1개 반, 2도 밑으로 묶으려면 2개를 더 태울 수 있다. 2020년 현재 에베레스트산 50개 분량의 석탄·석유·가스가 남아 있지만, 이젠 화석의 젖을 뗄 때가 됐다. 인류가 석기시대를 벗어난 것은 세상에 돌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동(銅)과 철(鐵)과 조우한 것이었다. 20세기 인류는 핵(核)을 발견했다. 물론 핵무기의 그림자를 제치고 나온 원자력도 있지만, 태양·풍력·수력 또한 태양 핵융합과 지구 대기층의 합작품이다. 신재생과 함께 원자력을 재구성하고, 원자로를 재설계하고, 핵연료를 재생산해야 한다.
막연히 불안하다는 이유로 원자력을 접는 것은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는 역사에 희생양으로 기록될 것이다. 제2, 제3의 고리와 월성 원전이 나와선 안 된다. 원조인 미국과 캐나다가 40∼60년을 돌리는데…. 더구나 원자로를 새로 집어넣은 월성 1호기가 경제성이 없다니 참으로 어불성설(語不成說) 아닌가.
문화일보
12.01 ‘월성 1호’ 구속 방침 직후 尹 배제, 다음 날 산업부 포상, 우연 아니다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을 수사 중인 대전지검이 감사 도중 심야에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 444개 파일을 지운 산업부 공무원 등을 구속하겠다고 했지만 대검 반부패부가 계속 승인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신성식 대검 반부패부장은 대표적인 ‘문재인 검사'로 알려진 사람이다. 서울중앙지검 3차장 때 채널A 기자 녹취록에도 없는 내용을 KBS에 흘려줘 오보를 유발시킨 장본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공무원들의 조직적 증거인멸이 수사 본류가 아니라며 반대했다고 한다. 경제성 평가 조작의 행동대 역할을 한 산업부 공무원들의 조직적 증거인멸, 노골적 감사 방해가 수사 본류가 아니면 무엇이 본류인가. 이를 보고받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보강 수사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에 대전지검은 지난 23일 대검 반부패부에 다시 영장을 청구하겠다고 구두 보고한 뒤 24일 구속 관련 자료를 보냈다. 그러자 추미애 법무장관이 오후 늦게 느닷없이 윤 총장에 대한 직무 배제·징계 청구 발표를 했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윤 총장에 대한 직무 배제 발표가 급작스레 이뤄진 바로 다음 날 정세균 국무총리가 월성 1호 조작 행동대인 산업부를 직접 찾아가 상(賞)을 주는 극히 이례적인 행동을 했다. 거의 보지 못한 일이다. 이 모든 이상한 일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문제는 바로 ‘월성 1호'다.
문 정권이 제시한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사유는 하나같이 터무니없고 절차는 불법이다. 징계하겠다고 먼저 발표하고 그 후에 징계 사유를 찾는다며 압수수색을 한 정도다. 왜 이렇게 앞뒤도 없이 서두르는지, 왜 이토록 막무가내인지 많은 국민이 궁금해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월성 1호기 조작 수사를 막기 위해 급히 윤 총장을 제거하려다 벌어진 일인 것이다.
문 정권이 월성 1호 조작 수사에 이토록 민감한 것은 문 대통령 본인이 관련됐기 때문이다. 이 터무니없는 조작의 출발점은 “월성 1호기는 언제 폐로하느냐”는 문 대통령의 언급이다. 빨리 폐쇄하라는 것이다. 그 후 멀쩡한 월성 1호를 조작으로 폐쇄해 7000억원을 날리고 생산할 수 있었던 양질의 전기까지 없앴다.
이에 대한 검찰 수사로 어떤 ‘결정적 증거’가 포착됐을 가능성이 있다. 문 대통령이 이 수사를 중단시킬 방법은 윤 총장을 해임하고 대전지검 수사팀을 공중분해시키는 수밖에 없다. 이미 문 대통령은 청와대 울산 선거 공작, 조국 비리 등 정권 범죄 혐의를 수사하던 검찰팀을 공중분해시킨 바 있다. 그 일에 추 장관을 앞세우고 있는 것뿐이다. 민주당은 윤 총장을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억지까지 쓰고 있다. 정권 전체가 나서 월성 1호 조작 수사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범죄 혐의 피의자가 수사관들을 쫓아내는 이 기막힌 일이 국민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12월 02일 原電자료 폐기 “신내림” 궤변까지 나온 윗선 은폐 공작
월성 원전(原電)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관련 자료를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불법 폐기했을 뿐 아니라, 그 윗선 은폐를 위한 공작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PC에 저장된 문건 444개의 폐기를 실행한 공무원은 검찰과 감사원 조사에서 “감사원이 PC 제출을 요구할 것이라고 사전에 알려준 사람은 전혀 없다. 자료 삭제 다음날 감사원이 PC를 들고 갔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나도 ‘내가 신내림을 받았나’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2일 보도됐다.
해당 공무원은 지난해 12월 1일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사무실로 가서, 문재인 대통령 재촉대로 결론이 나오도록 조작한 증거일 파일을 대거 없앴다. 그것이 감사와 무관하고, 지시한 배후도 없다고 둘러대기 위해 황당한 “신내림” 궤변까지 동원한 것은 윗선 존재를 감출 방법을 더 찾기 어렵다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하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8월 승진 발탁한 신성식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 대전지검의 구속영장 청구 승인 재신청을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정지 기간에 반려한 것도 그 연장선으로 비친다.
대전지검이 윤 총장 지시로 보완 수사를 거쳐 지난달 24일 오전 승인을 재신청한 당일 오후, 추 장관은 윤 총장 직무정지를 명령했다. 영장 보고서에 감사방해죄 외에 더 중요한 혐의가 담겼는데도, 반부패부는 “감사방해죄로 구속된 전례가 거의 없다”며 피의자를 감쌌다. 이제라도 대검은 영장 청구를 지체 없이 승인해야 한다. 자료 폐기 배후는 물론 윗선 은폐 공작도 수사 성역(聖域)은 있을 수 없다.
문화일보 사설
12.03 닮은꼴, 윤석열과 월성1호기
2019년 12월 1일 일요일 오후 11시24분36초~다음 날 오전 1시16분30초. 보통 사람이면 잠자리에 들었을 시간이지만 산업통상자원부 소속 공무원 G는 이 시간에 사무실로 들어가 업무용 PC에 저장된 월성1호기 원전 관련 자료를 삭제했다. 해당 PC가 다른 동료 직원에게 넘어갔음에도 비밀번호를 받아 자료 삭제를 했다.
임기제 총장 억지 해임은 법치 파괴
원전 자료 삭제 공무원은 반면교사
내일 징계위, 상식에 따라 결정해야
“자료가 있는데도 없다고 말씀드리면 마음에 켕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10월 감사원이 공개한 감사자료 보고서 각주에 달린 공무원 G의 진술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자료 삭제는 G의 상관인 국장이 지시했고, 과장은 “삭제는 주말에 하는 게 좋겠다”는 말까지 했다.
공무원 G는 자료를 삭제하기 위해 수차례 기회를 봤다. 낮에는 다른 직원이 PC를 쓰고 있고 평일 저녁엔 야근하는 사람이 많아 부담이 됐다고 한다. 하지만 12월 2일 감사원 감사관과의 면담이 잡히자 삭제를 결행한다. 왜 마음이 켕겼을까.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을 자신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당시 사건에 관여한 국장과 과장, 공무원 G는 이후 승진하거나 영전했다. 만일 과거 정부에서 했던 유사한 자료 삭제가 지금 들통났다면 관련자들은 벌써 징계를 받거나 감방에 갔을 것이다.
/서소문포럼 12/3
월성1호기는 2012년 11월 설계수명이 만료될 예정이었지만, 5925억원을 들여 설비를 보강하고 수명을 10년 연장했다. 여기에 수명 연장이 적법하냐를 놓고 소송이 진행 중이었다. 2022년 11월이면 자연스럽게 폐쇄할 수 있고, 법원 판결에 따라 시기가 빨라질 수 있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공약에 따라 조기 폐쇄를 감행했다.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난 것은 예정대로 원전을 운영했을 때의 경제성 평가를 의도적으로 낮춰 평가의 신뢰성을 저해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대통령 공약을 이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 역시 적법 절차를 따라야 한다. 담당 공무원이 켕기는 마음에 심야에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들어가 자료 삭제를 해야 할 정도였다면 뭔가 문제가 있다.
수명이 정해진 월성1호기처럼 검찰총장도 임기제다. 내년 7월이면 윤 총장의 임기가 끝나고 정권이 원하는 사람을 새 총장에 앉힐 수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휘두르는 인사권과 수사지휘권에 윤석열 검찰총장은 식물상태가 됐다. 그런데도 감찰과 징계위를 통한 윤 총장 쳐내기 수순으로 들어갔다. 지난달 초 원전 조기 폐쇄 의혹 수사를 담당하는 대전지검이 대대적 압수수색에 나선 것과 관련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급하게 먹은 밥이 체한다는 말처럼 윤 총장 쳐내기는 절차나 명분이 너무 미흡했다. 오죽하면 윤 총장 감찰을 담당한 이정화 대전지검 검사(법무부 파견)가 “판사 문건은 죄가 안 된다고 했는데 이 부분이 보고서에서 삭제됐다”고 문제를 제기했을까.
윤 총장은 취임 초 특수부 출신만 챙긴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런데도 전국 59개 지검과 지청의 평검사가 모두 참여해 윤 총장에 대한 징계청구와 직무배제가 부당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를 검사들의 집단 이기주의로 몰아가는 것은 현실을 부정하는 행위다. 추 장관과 가깝다는 조남관 대검 차장도 “저를 포함한 대다수의 검사는 총장님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쫓겨날 만큼 중대한 비위나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법무부 감찰위원회도 지난 1일 출석 위원 7명 전원 의견으로 징계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뜻을 모았다. 서울행정법원도 윤 총장이 낸 직무배제 집행정지신청을 받아들였다. 재판장인 조미연 부장판사는 결정문에서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에게 맹종할 경우 검사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유지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총장이 명을 거역했다며 소리를 높이던 추 장관에 대한 ‘강렬한 한방’이다.
정치인들은 유불리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겠지만 판사와 검사·공무원은 정치인이 아니다. 밤중에 사무실에 들어가 몰래 자료를 파기하고, 불리한 내용을 빼버리고 징계 서류를 만드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원전 자료를 삭제한 공무원을 반면교사로 삼기 바란다.
윤 총장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지만 법조계에선 임기제 총장을 이런 식으로 몰아내는 것은 부당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본다. 진영 논리가 첨예한 세상이지만 상식의 눈을 감고 양심의 귀를 막아선 안 된다. 명단도 공개되지 않은 검사징계위원들에게 이 말은 꼭 전하고 싶다. "당신은 공무를 수행합니다. 마음에 켕기는 게 있다면 그런 일은 하지 마세요.”
중앙일보 김원배 사회디렉터
12.03 양재천 국장, 죽을래 과장, 신내림 서기관…원전 영장 산업부 3인방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을 수사하는 대전지검 형사5부(부장 이상현)가 지난해 12월 벌어진 444건 자료 삭제와 관련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산업통상자원부의 A 국장, B 과장, C 서기관 등 3명은 백운규 전 장관의 측근으로 불렸던 인물들이다. 산업부 주변에선 수사 과정에서 밝혀진 이들의 역할과 발언 등을 감안해 이들을 ‘양재천 국장' ‘죽을래 과장' ‘신내림 서기관'이라고 표현하는 말도 나온다.
검찰은 2일 오후 8시쯤 지난해 12월 1일 오후 10시쯤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과 PC에서 월성 1호기 관련 문건 444건을 삭제하는데 관여한 혐의로 이들 3명에 대해 대전지법에 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이들에게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감사원법 위반(감사방해), 방실침입 등 3가지 혐의를 적용했다. 구속영장실질심사는 4일 오후 2시 30분 오세용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대전지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들은 산업부 내에서 백 전 장관의 최측근 인사로 불렸다. 산업부와 검찰 등에 따르면 ‘양재천 국장'이라 불리는 A국장은 백 전 장관과 양재천 산책을 함께 다닐 정도로 각별한 사이로 알려졌다. 그는 원전산업정책관을 맡은 뒤,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내기도 했다. ‘죽을래 과장'인 B 과장은 백 전 장관에게 월성 1호기 폐쇄와 관련해 2018년 4월 한시적 가동 필요성을 보고했다가, “너 죽을래”라는 말을 들었던 이다. 그는 당시 “월성 1호기는 조기 폐쇄를 하되, 그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원전 영구 정지 허가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2020년까지 2년간은 원전을 가동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그러자 백 전 장관은 “원전을 그때까지 가동하겠다고 청와대에 보고하란 말이냐. 어떻게 이따위 보고서를 만들었느냐” “너 죽을래?” 하며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그러면서 “즉시 가동 중단으로 재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신내림 서기관' C서기관은 444건의 자료를 직접 삭제한 인물로, 감사원과 검찰이 ‘감사원 감사 전에 어떻게 알고 자료를 삭제한 것이냐’고 추궁하자, “윗선은 없다. 나도 내가 신내림을 받은 줄 알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당시 중요하다고 보이는 문서를 복구하더라도 내용을 알아볼 수 없도록 파일명 등을 수정한 뒤 삭제하다가 자료가 너무 많다고 판단해 단순 삭제하거나 폴더 전체를 지운 것으로 조사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모습
검찰은 C서기관이 다른 직원의 컴퓨터가 있는 사무실에 침임한 행위를 ‘방실(房室)침입’ 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방실침입 행위는 징역 3년 이하로 형사 처벌될 수 있다. 다만 이것이 증거인멸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자신의 범죄혐의를 숨기기 위해 증거를 인멸하는 것은 처벌 대상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초 대전지검은 감사방해 혐의만 적용해 이들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한다고 대검에 보고했으나, 대검은 감사 방해 단일 혐의는 형량이 낮고(1년 이하) 영장이 기각될 위험성이 크다며 보완 수사를 지시했다.
이들이 구속되면 검찰의 수사는 본격적으로 자료 삭제와 경제성 평가 조작을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는 ‘윗선’을 겨냥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조만간 백운규 당시 산업부 장관, 대통령산업정책비서관을 지낸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 등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할 계획이다.
12월 04일 백운규·채희봉 소환 가까워진 原電 수사와 與의 훼방
유형무형의 온갖 수사 방해 행위에도 불구하고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조기 폐쇄 과정의 불법 행위 수사에 상당한 진전이 있어 보인다. 대전지검은 2018년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과 지난해 12월 관련 파일 444개 삭제에 관여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3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2일 청구했으며, 4일 오후 영장 실질심사가 열린다. 이들은 백운규 당시 장관의 지시에 따라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을 낮추는 조작을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고 한다.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4월 2일 문재인 대통령이 “월성 1호기 가동은 언제 중단되느냐”고 보좌관에게 물었고, 이튿날 이를 전달받은 백 당시 장관이 담당 공무원들에게 즉시 가동 중단 방안을 만들도록 지시했고, 한국수력원자력에도 뜻이 전달됐다고 한다. 채희봉 당시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현 한국가스공사 사장)도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검찰 수사는 백 전 장관과 채 전 비서관을 향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성 조작의 실무 지휘자들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 자택과 휴대전화 압수수색도 이뤄져 소환 조사가 임박했다고 한다. 청와대 압수수색 얘기도 나온다.
성역 없는 수사는 당연하다. 그런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 18명은 3일 기자회견문을 통해 산업부 공무원들에 대한 영장 청구에 대해 ‘윤석열 검찰총장의 정치 공작’이라면서 수사의 즉각 중단을 요구했다. 이미 뚜렷한 범법 혐의들이 드러났음을 고려하면, 사법 방해 범죄에도 해당될 수 있다. 감사원 감사가 국회 요청으로 이뤄졌음을 고려하면 더 황당하다.
문 대통령이 전날 백 전 장관 변호인이었던 이용구 변호사를 법무부 차관에 임명한 것도 고약하다. 그는 윤 총장 직무가 배제됐던 지난달 24일에는 대전지검의 백 전 장관 휴대폰 포렌식을 참관하면서 수사에 항의했다고 한다. 여당은 오는 9일 위헌적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에서 야당의 비토권까지 삭제해 더욱 악법으로 만든 개정안을 강행하는 한편, 윤 총장과 가족을 상대로 특검까지 추진하겠다는 위협도 한다. 불법 행위를 수사하는 검찰을 훼방하는 것은 또 다른 범죄를 형성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12-05 법원, 조직적 증거인멸 인정…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수사 속도
‘자료삭제’ 산업부 공무원 2명 구속
檢-변호인 ‘증거인멸’ 5시간 공방
“교묘한 삭제” “오해 살 자료 정리”
청와대 등 ‘윗선’ 수사 탄력“증거 인멸 수사를 지나 경제성 평가 조작 수사로 가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월성 1호기 원자력발전소 조기 폐쇄 의혹에 연루된 산업통상자원부 국장 등 공무원 3명 중 핵심 관계자 2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4일 발부되자 검찰 안팎에서는 이 같은 평가가 나왔다. 지난달 5일 검찰이 산업부 등에 대한 대대적 압수수색에 착수한 지 한 달 만에 핵심 관계자가 구속돼 검찰 수사에 더욱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특히 대전지검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 복귀 이튿날인 2일 윤 총장의 승인에 따라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해 구속 여부에 더욱 관심이 쏠렸다. 법원이 조직적 증거 인멸을 인정하면서 영장을 발부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관련 문건 삭제 경위 및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과 관련된 ‘윗선’ 수사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 “조직적 증거 인멸” vs “자료 정리했을 뿐”
대전지법 오세용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산업부 문모 국장과 김모 서기관 등 2명에 대해 “범행을 부인하고 있고,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문 국장은 지난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업무를 총괄하는 원전산업정책관이었고, 김 서기관은 문 국장의 지시를 받고 증거를 인멸했다. 원전산업정책과장을 맡았던 정모 국장의 영장은 “범죄 사실을 대체로 인정하고 있다”며 기각했다.
4일 오후 2시 30분부터 약 5시간 동안 진행된 영장실질심사에서 양측은 거센 공방을 주고받았다. 검찰은 문 국장 등 3명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경위가 담긴 각종 문건을 조직적으로 인멸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또 이들이 휴대전화를 초기화하는 등 주도면밀하게 실체 규명을 방해하려 했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들의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해 원전 조기 폐쇄 의혹과 관련된 여러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문 국장 등은 “산업부의 최종 의사결정이 나기 전 자료 등에 관해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는 자료는 정리하자는 취지가 전부였다”고 주장했다.
김 서기관은 “삭제한 문건 중 월성 1호기 관련 문건은 별로 없다”며 “검찰에 휴대전화도 제출했고 비밀번호도 알려줬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서기관은 감사원 조사에서는 감사 하루 전 문건을 삭제한 경위를 묻는 질문에 “제가 신내림을 받은 것 같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국장과 정 국장, 김 서기관은 지난해 12월 2일로 예정된 감사원 조사 하루 전인 12월 1일 오후 11시 24분부터 약 2시간 동안 정부세종청사 산업부 사무실 PC에 저장된 원전 조기 폐쇄 관련 자료 444개를 삭제한 것으로 조사됐다. 삭제된 문건 중에는 ‘BH(청와대) 보고’ 문건인 ‘에너지 전환 후속조치 추진계획’ 등도 포함됐다.
○ 청와대 등 ‘윗선’ 규명 수사 탄력
문 국장 등 산업부 간부 2명이 구속되면서 검찰 수사는 청와대 등 ‘윗선’을 향하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검찰은 백 전 장관과 당시 대통령산업정책비서관이었던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 등 주요 관계자에 대한 조사를 본격 시작할 계획이다.
당시 원전산업정책관이었던 문 국장은 백운규 당시 산업부 장관과 함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을 내린 산업부 지휘 라인이었다. 정 국장은 대통령산업정책비서관실 행정관으로부터 조기 폐쇄 계획을 보고하라는 지침을 전달받았고, 백 전 장관에게 관련 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각종 실무를 맡았다. 당시 문 국장과 정 국장 등 산업부 간부들은 한국수력원자력과 경제성 평가 용역을 맡은 회계법인 측에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을 낮게 평가해 달라고 여러 경로로 요구한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배석준 eulius@donga.com / 대전=박상준 기자
12.07 ‘월성 조작’ 공무원 구속, 이제라도 탈원전 자해극 멈춰야
월성 원전 1호기 문건 444개를 삭제한 혐의를 받는 산업부 국장과 서기관이 구속됐다. 이들이 삭제 대책 회의를 갖는 등 자료를 은폐했다는 검찰 수사 결과를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두 사람과 달리 혐의를 인정한 산업부 과장이 구속을 면한 것은 검찰이 제시한 물증이 그만큼 충분했다는 의미다. 구속된 이들은 월성 1호기 가동 중단에서 청와대와 산업부 사이의 ‘연결 고리’ 역할을 했다. 구속된 서기관은 ‘누구 지시였느냐’는 감사원·검찰 추궁에 “신(神)내림” 운운했던 인물이다. 이런 말장난은 든든한 ‘윗선’을 믿지 않으면 나올 수가 없다. 법원의 영장 발부는 ‘윗선’을 제대로 밝히라는 것이다.
그러자 원내대표 출신의 여당 중진이 법원을 항해 “도를 훨씬 넘었다” “인내에 한계를 느낀다”고 공격했다. 원전 경제성 조작 범죄에 눈감지 않으면 판사도 험한 꼴을 당할 것이란 노골적 협박이다. 이 정권은 대전지검이 월성 1호 관련 공무원의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고 대검에 보고하자 그날로 윤석열 총장에 대한 직무 배제를 단행했다. ‘월성 조작’을 방어하던 변호인을 검사 징계위원인 법무부 차관에 앉힌 것도 윤 총장 제거를 밀어붙이겠다는 의미다. 반면 ‘조작 공범’인 산업부에는 상(賞)을 나눠주며 ‘3차관 신설’이란 자리 선물까지 내밀었다. 범죄 은폐를 거부하면 채찍을, 협조하면 당근을 주겠다는 것이다.
지금 정권 전체가 무리수와 궤변을 거듭하는 건 탈원전에 대한 대통령 한 사람의 오기 때문이다. 월성 1호는 7000억원이나 들여 새 설비나 다름없이 보수한 원전인데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 직후부터 정비 명목으로 멈춰 섰다. 대통령이 월성 1호를 ‘세월호’에 비유했으니 담당 공무원들은 재가동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산업부 장관은 한시적 가동 재개를 보고한 과장에게 “너 죽을래”라는 막말까지 했다. 이후 벌어진 경제성 조작과 수사 방해 등의 씨앗은 결국 대통령이 뿌린 것이다.
문 정권이 월성 원전 수사를 막으려 하면 할수록 직권남용 혐의만 쌓게 된다. 이제라도 조작, 협박, 뭉개기를 멈추고 국민에게 해명해야 한다. 탈원전으로 잘못된 건 월성 1호뿐이 아니다. 신한울 3·4호에도 최소 7000억원이 들어갔지만 공정률 10%대에서 멈춰 서 있다. 정부가 2029년까지 폐쇄하겠다는 멀쩡한 원전도 10기에 달한다. 지금이라도 탈원전 자해극을 중단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2.07 “서울역 택시 일단 타라” 007같았던 원전폐쇄 이사회 그날
검찰 조사로 서서히 드러나는 그날
월성 1호기 조기 폐쇄가 결정된 것은 2018년 6월 15일 원전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의 이사회 의결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에 따르면 당시 이사회는 개최 시간과 장소, 의장을 갑자기 바꾸며 ’007 작전' 하듯 진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대전지검 형사5부는 이와 관련해 당시 한수원 이사회 의장 이모씨 등 이사들을 소환해 조사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한수원 노조는 2018년 6월 13일쯤 긴급 이사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경주 한수원 본사와 서울 사무실 등 회의장을 점거하고 폐쇄했다. 그 전 이사회는 6월 7일 열렸다. 일주일 만에 이사회가 다시 열린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한수원 노조 관계자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수원이 불합리한 근거를 내세워 월성 1호기 폐쇄를 밀어붙인다는 첩보를 입수해 이사회를 막고자 했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한수원 측은 시간과 장소를 모두 바꿨다. 이사회는 6월 15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렸다. 한수원 측은 당일까지 이사들에게 장소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전날에서야 시간을 공지하고 서울역으로 오라고만 전했다고 한다. 최근 검찰 조사를 받은 한수원의 한 이사는 “서울역에 도착하니 한수원 직원이 대기시켜놓고 있던 모범택시에 일단 타라고 한 뒤로 가본 적 없는 곳으로 데려갔다”면서 “이사회장은 보통 알아서 가곤 했는데 이게 무슨 007 작전인가 싶었다”고 말했다. 한수원 이사회 규정에는 ‘이사회 개최 예정일로부터 7일 전까지 전 임원에게 통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돼 있다. 다만 ‘긴급을 요하는 경우 그러하지 않다’고 예외 조항을 뒀는데, 한수원은 이날 회의를 긴급을 요할 경우라고 판단한 것이다.
한수원 측은 이사회 시작 전 의장을 조성진 교수에서 이모씨로 교체하기도 했다. 조 교수가 임시 의장이었기 때문에 정식 의장에 이씨를 임명한다는 취지라고 했다. 조 교수는 13명의 이사 중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에 반대하는 유일한 인사였다. 그는 회의장에 도착해서야 의장 교체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한수원 안팎에선 조 교수가 월성 1호기 폐쇄 안을 아예 안건에 부치지 않을 것을 우려해 의장을 교체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1시간 20분간 이뤄진 회의 끝에 결국 월성 1호기 폐쇄 안은 가결됐다. 참석한 12명 이사 중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조 교수는 곧바로 사퇴했다. 한 관계자는 “의장 교체는 산업부와 한수원 측에서 미리 맞추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긴급한 의사회 소집부터 의장 교체 등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진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김아사 기자
12-07 조직적 증거인멸 인정된 원전수사에 더는 시비 말라
월성 1호기 원자력발전소 조기 폐쇄 결정과 관련해 청와대 보고 문건 등을 삭제하는 데 관여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2명이 4일 구속됐다. 지난해 12월 감사원 감사관과의 면담 하루 전날인 일요일 밤늦게 사무실로 나와 관련 문건 파일 444개를 무더기로 삭제한 행위에 대해 법원이 조직적인 증거인멸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한 것이다.
그동안 여권은 감사원 감사에 이은 검찰의 원전 수사에 대해 “검찰이 정부 중요 정책에까지 손을 대려는 심각한 검찰권 남용행위”라며 크게 반발해왔다. 그러니 검찰개혁을 더욱 강력히 밀고 나가야 하며, 검찰권 남용을 주도하는 윤석열 검찰총장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여권의 인식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걸었고 취임 이후 중요 정책으로 추진한 탈원전정책을 이른바 ‘정치검찰’이 앞장서서 훼방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부 공무원 2명의 구속 사유는 정부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생산된 중요 문서들을 함부로 파기하고 감사원 감사를 방해하는 범법행위를 저질렀으며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검찰 수사는 감사원이 감사과정에서 확인한 문건 파기 행위 등을 수사 참고자료 송부 형식으로 사실상 수사의뢰를 함으로써 시작됐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 담겨 있기에 휴일 한밤에 서둘러 대량으로 문건을 파기했는지,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 조사해 확인하는 것은 감사원이든 검찰이든 사정기관으로서는 당연히 해야 할 책무다.
대통령 공약이든 중요 정책이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적법하게 추진하는 것이 바로 법치다. 대선 승리로 국민의 뜻이 실린 공약을 이행하는 정부 핵심 정책이니 불법행위가 있어도 털끝 하나 건드리지 말고 묵과하라는 인식이야말로 정치권력이 사법을 덮으려는 법치 훼손 행위다.
심지어 여권 일각에선 법원의 영장 발부에 대해서까지 ‘사법권 남용’이란 말이 나왔다. 민주당 우원식 의원은 그제 페이스북에 “정권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한 감사원, 검찰의 행태에 법원까지 힘을 실어준 것은 참으로 유감”이라며 이를 사법권 남용이라고 비난했다. 정권의 뜻에 거스르면 감사원이든 검찰이든 법원이든 매도부터 하는 편 가르기식 진영논리다. 최근의 민심 이반은 민주화세력을 자처하는 여권이 도리어 민주주의의 기본인 법치를 외면하는 행태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꾸만 검찰 수사에 어깃장을 놓으려 할 게 아니라 정책의 정당성과 불법행위를 구분할 줄 아는, 집권세력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동아일보 사설
12.09 백운규, 靑 원전 지시 묻자 "그걸 어떻게 말할 수 있나"
“내가 데리고 있던 산업부 공무원이 2명이나 저렇게 된 마당에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나"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8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원전 수사와 관련해 착잡한 심경을 드러내며 한 말이다. 산업부 공무원 2명은 월성 1호기 원전 관련 내부 자료를 무더기 삭제하는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혐의로 지난 4일 구속됐다. 이후 백 전 장관이 자신의 입장을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원전 수사 핵심인물 백 전 장관, 중앙일보와 통화
“공무원 2명 구속된 마당에 무슨 말 더 하겠나”
백 전 장관은 다만 통화에서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을 낮게 평가하는 과정에 청와대 지시를 받았거나 산업부 공무원에게 지시했는지 여부 등 물음에는 구체적인 답을 피했다.
“靑 지시 받았나” 질문에 “감사보고서에 나온다”
백 전 장관은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과 함께 월성 1호기 조기폐쇄에 청와대 개입이 있었는지를 밝히기 위한 수사선상의 핵심 인물로 꼽힌다.
감사원의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4월 2일 당시 산업부 원전정책 관련 부서 과장이었던 A씨는 “월성 1호기를 즉시 가동중단하는 것으로 산업부 장관까지 보고해 확정한 보고서를 받아보라”는 청와대 지시를 받았다. 이 지시는 당시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실 소속 행정관을 통해 A씨에게 전달됐다.
하지만 A씨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운영변경 허가 전까지 약 2년 반 동안 월성 1호기를 계속가동하는 안을 4월 3일 백 전 장관에게 보고했다. 한국수력원자력에서 계속가동을 원하는 데다 자체 평가에서도 월성 1호기를 당장 멈추는 것보다 경제성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감사원 감사에서는 당시 보고를 받은 백 전 장관이 A씨를 크게 질책하며 “즉시 가동중단하는 것으로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A씨는 감사원 조사에서 당시 백 전 장관이 “‘(원안위) 운영변경허가 전까지 가동할 수 있다는 뜻으로 대통령비서실에 보고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이후 월성 1호기는 사실상 즉시 가동중단으로 답을 정해 놓고 조기폐쇄가 추진됐다. A씨는 백 전 장관 지시대로 보고서를 수정하고, 4월 4일 한수원 관계자들을 불러 “즉시 가동중단하는 방안으로 대통령비서실에 보고할 예정”이라고 했다.
청와대가 월성 1호기 조기폐쇄와 관련해 언질 준 것이 있나.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그런 걸 어떻게 말할 수가 있나.
청와대 지시를 받은 건 없었다는 뜻인가.그건 감사보고서에 다 나와 있지 않나. 청와대 지시로 관련 보고를 장관에게 하라고 했다고 나와 있다.
그건 A씨가 받았다는 지시고, 백 전 장관에게 청와대가 따로 언질 준 것은 없나. 청와대가 장관을 건너뛰고 과장한테 바로 지시한 건가.내가 한 기관 수장이었는데, 그런 것까지 어떻게 말할 수 있나. 수사 중인 사안이고 나는 내가 데리고 있던 공무원들이 저렇게 된 게 너무 가슴이 아프다.
백 전 장관은 큰 틀에서 감사원 감사 결과를 부인하진 않았지만 청와대 등 윗선의 관여나 지시 여부 등에 대해선 계속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경제성 평가 축소 지시 여부엔 “상식 선에서 생각하라”
백 전 장관은 월성 1호기 즉시 가동중단 근거가 된 경제성 평가를 축소하라고 지시했느냐는 질문에도 말을 아꼈다. 산업부 공무원과 한수원 관계자들은 감사원 감사에서 백 전 장관 지시로 “즉시 가동중단으로 결론이 나오게 경제성 평가를 진행했다”고 진술했다.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임현동 기자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산업부 원전정책 관련 국장급 공무원 B씨는 “백 전 장관이 월성1호기 즉시 가동중단을 결정하면서 (한수원의) 경영상 자율성을 침해했을 수 있고, 의사결정에 부담을 줬다”고 했다. A씨도 “나도 장관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웠는데, 한수원 직원들도 동일하게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당시 산업부 과장 A씨가 장관 지시로 월성 1호기는 조금이라도 재가동이 안 된다고 해 용역은 즉시 가동중단이 가장 경제성이 있다는 결과를 도출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고 진술했다.
감사원도 이런 진술을 바탕으로 “백 전 장관이 즉시 가동중단하는 방안 외 다른 방안은 고려하지 못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감사원 발표 직후 백 전 장관은 “경제성 평가 같은 세세한 것에 장관이 관여하지 않는다”고 반발했었다.
산업부 공무원들이 경제성 평가 축소에 장관 지시가 있었다고 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사실인가. 수사 중인 사안이고 내가 지금 이런 걸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감사 발표 직후에는 경제성 평가 같은 세세한 것은 장관이 지시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해주면 좋겠다. 어쨌든 내가 데리고 있던 산업부 공무원 2명이나 저렇게 된 마당에 내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나.
검찰 안팎에선 백 전 장관과 채 사장 등 핵심 인물에 대한 소환 조사가 곧 이뤄질 거란 전망이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백 전 장관 소환 조사 결과에 따라 수사가 윗선으로 더 확대될 수 있을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12.16 2050 탄소중립의 중대한 착각
원자력 없이 탄소중립 이루려면 태양광·풍력 설비, 지금의 60배 이상 돼야
‘수소 제조 원전’ 연구 막고 수소 수입해오겠다니
‘2050 탄소 중립’이 15일 국무회의에서 국가 장기 비전으로 정식 채택됐다. 탄소 중립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인지를 정부가 인식하고 있나 의문이다. 2050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뭐가 필요한 것인지를 안다면 지금처럼 대뜸 구호부터 외쳐놓는 식으로 달려들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 구체 로드맵 작성 단계에서 큰 혼란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전체 에너지 소비 가운데 전력 비율은 대략 20%다. 나머지 80%는 석탄·석유·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다. ’20대80′ 비율은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다. ’20% 전력'은 에너지원(源)에 따라 다시 화석연료, 원자력, 신재생으로 구분된다. 신재생을 늘리느냐, 원자력을 없앨 것인지, 가스는 얼마로 유지할 것인지 등의 그간 전력 믹스(mix) 논란은 ’20% 전력' 내에서의 얘기다. 2050 탄소 중립을 목표로 삼으면 완전히 관점이 달라지게 된다. ’20% 전력'만 태양광·풍력으로 공급해서 되는 게 아니다. 나머지 ’80% 비전력'까지 모두 무(無)탄소 에너지로 공급해야 한다. 정부가 원자력을 배제한다고 했으니 태양광·풍력만으로 이뤄내야 한다.
따라서 2050 탄소 중립은 ’20% 전력'을 무탄소화하는 1단계와, ’80% 비전력'을 전력화(electrification)하면서 동시에 그 전력을 무탄소화하는 2단계로 구성된다. 1단계보다 2단계가 백번 더 도전적 과제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 9월 400쪽짜리 관련 보고서(Energy Technology Perspective 2020)를 발간했다. IEA는 거기서 “전력 부문만 바꾸는 것으로는 탄소 중립 목표의 3분의 1밖에 못 간 것”이라고 했다. 보고서 결론은 ’2050 탄소 중립을 위해선 수송, 빌딩, 산업 등 비전력 에너지의 전력화가 필수적이며 이 경우 전력 수요는 지금의 2.5배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얼핏 봐선 20%였던 전력으로 전체 100% 에너지를 충당하려면 5배로 늘어나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전기가 화석연료보다 효율이 좋아 같은 열량이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기차는 석유차의 2배 에너지 효율을 낸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임재규 박사가 IEA 보고서를 참조해 2050 탄소 중립을 위한 한국의 전력 에너지 수요를 시산(試算)해본 결과 역시 2.5배 전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2018년 총 전력 생산량 가운데 태양광·풍력의 비율은 2.2%에 불과했다. 지금은 4% 정도로 늘었다고 가정할 때, 원자력 없이 태양광·풍력만으로 전체 에너지 250%를 감당하려면 설비를 지금의 60배 이상 규모로 늘려야 한다. 2050년까지 에너지 수요 자체가 크게 는다고 보면 실제론 60배보다 훨씬 더 많이 설치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토지란 토지는 다 태양광으로 채워넣어야 한다.
그래서 나오는 얘기가 ‘수소 수입’이다. 수소차가 주목받고 있지만 더 지켜봐야 한다. 경쟁 상대인 배터리차가 수소차보다 효율이 두 배다. 수소가 미래에 진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산업 분야일 것이다. 제철 산업은 국내에서 연 1억2000만톤의 엄청난 온실가스를 배출해왔다. 제철소에선 석탄을 쪄서 만든 고순도 탄소인 코크스를 갖고 철광석을 환원시켜왔다. 수소 환원 제철 기술은 코크스의 탄소(C)가 아니라 수소(H)를 갖고 철광석의 불순물인 산소(O)를 떼어내자는 것이다. 그러면 부산물로 이산화탄소 대신 물이 나온다.
시멘트(연 온실가스 4000만톤 배출)나 석유화학(5000만톤) 분야에서도 수소를 쓰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자면 막대한 수소가 필요하다. 수소를 만드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으려면 태양광·풍력 전기로 물을 분해하는 수전해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 국내의 빈약한 태양광·풍력 자원으로는 어림없다. 그래서 광대한 사막 지대가 있는 호주에서 태양광 전기로 생산한 수입 수소를 들여오자는 것이다. 그러나 수소를 영하 253도 이하에서 액화시킨 후 특수 선박으로 한국까지 운반해 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또 수소 환원 제철 기술부터 완성시켜야 하는데, 연구가 시작된 지 몇 년 안 됐다.
원자력을 활용한다면 2050 탄소 중립으로 가는 훨씬 쉬운 대안(代案) 경로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원자력연구소에서 개발해온 초고온가스로는 950도의 열을 만들어내 전기 생산의 중간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이다. 그러나 초고온가스로 프로젝트는 현 정부 들어 거의 지원이 끊겼다. 수소 대량 제조의 쉬운 길을 스스로 막아놓은 채 ‘수소 경제’를 거론하고, 태양광·풍력만 갖고 에너지를 전부 공급하겠다는 것은 2050 탄소 중립의 중대한 착각이다.
조선일보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12월 18일 ‘탈원전의 저주’ 1~2인 가구 전기料부터 덮친다
드디어‘탈(脫)원전의 저주’가 한국 원자력 산업과 관련 기업 차원을 넘어 일반 국민에게도 덮치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에 따른 온갖 심각한 부작용을 눈속임해 왔지만, 이젠 전기료(料) 인상이라는 국민 부담을 더는 미룰 수 없게 된 것이다. 정부와 한국전력이 17일 발표한 ‘전기요금 개편안’은 그 신호탄이다. 가장 먼저 1∼2인 가구의 전기료 할인제가 폐지된다. 유가나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면 전기료도 오르는 연료비 연동제가 시행되고, 기후환경 비용도 별도로 부과된다. 전기요금을 둘러싼 여러 논란이 있지만, 값싸고 질 좋은 발전원인 원자력을 배제하고, 부담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은 오로지 문 정부 책임이다. 산업 경쟁력 저해 문제도 심각하다.
게다가 개편안을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정부의 정치적 의도가 교묘하게 숨겨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정부는 4000원까지 할인해주던 1∼2인 가구의 공제 제도를 내년 7월부터 축소·폐지키로 했다. 이는 4월 중 실시 되는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대도시 가구 중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 1∼2인 가구를 의식한 조치나 다름없다. 그대신 연료비 연동 제도는 내년 1월부터 3개월 단위로 시행된다. 코로나19로 현재 국제유가 등이 낮은 수준임을 고려하면 내년 1∼3월엔 일단 전기요금이 내린다. 정부도 “내년 1월 요금은 지금보다 인하될 것”이라며 상반기 전체로 총 1조 원의 인하 효과가 있다고 홍보했다.
기후환경 비용은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생산비를 반영하는 것으로, 가장 큰 요인은 탈원전에 따른 비용 증가다. 문제는 탈원전의 저주가 막 시작됐을 뿐이라는 점이다. 기후환경 비용은 2015년의 1조 원에서 2019년 2조6000억 원으로 갈수록 급등세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탈원전 시 전력 단가는 최소 50% 오른다. 본격적인 상승 부담은 차기 정부 몫이라는 점에서 더 사악해 보인다.
문화일보 사설
12.19 전기요금 개편…탈원전 고지서 아닌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후폭풍이 눈앞에 닥쳤다. 산업자원부와 한국전력이 추진해 온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이 17일 확정돼 내년 1월부터 적용되면서다. 이에 따르면 3개월마다 연료비 변동분이 반영되는 원가연계형 전기요금 체계가 도입된다. 또 기후·환경 비용도 전기요금에 추가된다. 당장은 코로나19 사태로 국제유가가 안정돼 있어 요금이 크게 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언제든 유가가 오르면 전기요금도 연동해 오르는 구조다. 정부는 과도한 인상을 막기 위해 요금 변동에 상·하한 제한을 둔다는 방침이지만, 탈원전 정책으로 발생한 국민의 추가 부담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유가 오르면 함께 올리는 연동제 도입
탈원전 정책 비용 국민에 떠넘기는 셈
정부의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은 지난 15일 공개된 전력수급 기본계획과 맥을 같이한다. 이 방안에는 원전을 신규 및 수명연장 금지를 통해 2024년 26기에서 2034년 17기까지 줄인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설계 수명이 모두 끝나는 2083년에는 원전 제로(0)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30년 넘게 가동한 석탄발전소도 30기를 폐기한다.
그 대신 액화천연가스(LNG)와 신재생에너지는 대폭 늘린다. LNG 설비용량은 올해 41.3기가와트(GW)에서 2034년 59.1GW로 확대한다. 또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는 탈원전과 코로나19 이후 그린뉴딜 정책을 반영해 2030년 20.1GW에서 2034년 77.8GW로 늘어난다. 요컨대 원가가 가장 값싼 원전을 줄이고 LNG·신재생의 비중을 높이면서 전기요금이 오르는 구조다. 현재 LNG는 글로벌 경기 침체와 셰일가스 발굴 여파로 가격이 안정돼 있다. 그러나 경기 변동과 국제 정세, 자원 무기화 정책에 따라 1970년대 오일쇼크와 유사한 상황이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다음 달부터 분리고지되는 기후·환경 비용도 결국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비용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구조다.
탈원전 원리주의자들에게 둘러싸인 현 정부는 원전 축소는 안전과 관련된 것이고, 전기요금 체계 개편과는 관계가 없으며 국민의 뜻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국민의 생각은 다르다. 한국원자력학회가 네 차례나 실시한 국민 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72.8%가 원전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전기요금이 저렴하다는 것도 인상의 필요성으로 꼽는다. 가정용 전기요금은 독일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러나 60년간 쌓아올린 원전 기술 덕분에 저렴한 전기를 누려왔다는 사실을 망각해선 곤란하다. 독일은 풍력이 발달했지만 전기요금이 너무 올라 국민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최근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더구나 문 대통령은 2050년 온실가스 순배출량 제로(0)라는 탄소 중립 목표를 선언했다. 원전 활용 없이는 사상누각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상보다 현실에 적합한 정책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다.
중앙일보 사설
12.22 전기료 농간까지…탈원전 거짓말 행진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산업통상자원부가 ‘원가연계형 요금제’를 골자로 하는 전기요금 개편안을 지난 17일 발표했다. 연료비가 오른 만큼 전기료를 올리겠다는 것이다. 탈원전 정책을 해도 전기요금이 오르지 않는다던 약속은 간데없다. 전기 1kWh당 60원인 원자력 발전과 80원인 석탄 발전을 각각 120원과 200원인 가스 발전과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바꾸는데 전기료가 안 오를 수 있겠는가? 연료비 연동은 연료의 가격뿐만 아니라 종류가 바뀐 것도 포함하는 것이다. 애초에 전기요금이 오르지 않는다고 하지 말았어야 했다.
탈원전 정책을 에너지전환정책이라고 포장만 바꾼다고 속을 사람이 있을까? 지금은 원자력 기관의 장이 된 환경운동연합 출신의 한 인사는 탈원전 정책을 해도 ‘맥주 한 잔 가격’밖에 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잔이 매우 컸던 모양이다. 재생에너지가 비싸다는 비판에 백운규 전(前) 장관은 미국의 재생에너지 가격을 브리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달성되지 않는 가격이다. 사기였다. 이후 ‘당분간 전기 가격이 오르지 않는다’고도 했다. 국민이 알고 싶은 건 당분간이 아니라, 탈원전 정책이 마무리된 뒤의 전기요금이다. 또, 그 당분간이 이렇게 짧은 시간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에너지전환재단이 ‘이제 국민이 합당한 전기요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냄새 풍길 때부터 뭔가 나오지 않을까 싶긴 했다. 그래도 ‘현 정부 내에서 전기가격이 오르지 않는다’고 했었는데, 급기야 ‘연료비 연동제’를 발표한 것이다. 이제 전기료가 오른 게 아니고, 연료비 증가분과 탄소세를 받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조삼모사(朝三暮四)의 극치다.
다음날 산업부의 해명 자료에서는 ‘소비자에게 가격 신호를 제공하고, 원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합리적인 전기요금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소비자가 발전원(源)을 선택할 수 없는데, 정보 제공이 무슨 말인가? 소비자가 원자력발전을 원하면 소비한 전력 1kWh당 전기요금 60원에 공급하고, 재생에너지를 원하면 200원에 제공해야 선택권을 준 것이다. 발전원 구성은 산업부 멋대로 하고 비용만 국민에게 전가하면서 정보 제공이라 한다. 또, ‘합리적인 전기요금 체계’란 결국 전기료를 올린다는 말 아닌가.
2017년, 제8차 전력수급계획을 세울 때도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더니 결국 12월 27일 국회 보고, 28일 공청회 그리고 29일 오전에 원안대로 전력정책심의회를 통과시키는 초고속 처리를 했다. 이번 제9차 전력수급계획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난달 전력정책심의회에서 이대로 가면 전기요금이 얼마나 오르느냐는 질문에 산업부 담당과장은 계산해 보지 않았다고 버텼다. 2050년 탄소중립은 달성되느냐는 질문에는 2034년까지 계획이기 때문에 모른다고 외면했다. 신한울 3·4호기를 제외한 것도 다른 부서의 업무여서 모른단다. 오는 24일 온라인 공청회를 마치면 올해 안에 일사천리로 진행할 것이다.
상관으로부터 ‘죽을래?’ 하는 협박을 받지 않기 위해, 또 ‘신이 강림하여’ 어쩔 수 없이 거짓 자료를 작성해야 했던 공무원의 심경은 어떨까. 정권이 바뀌어도 직업공무원은 남아서 국정을 계속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정권에서 거짓말쟁이가 된 행정부가 앞으로 어떻게 나라를 바로세울 수 있을지 걱정이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