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1- 2013-1/ 안대희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조선일보
☆가야산을 바라보고
큰 산의 진면목을 안 드러내고
기묘한 한 모퉁이 살짝 보였네.
조물주의 깊은 뜻을 잘 알겠거니
천기를 까발려서 다 보여줄까?
夙夜齋望倻山(숙야재망야산)
未出全身面(미출전신면)
微呈一角奇(미정일각기)
方知造化意(방지조화의)
不欲露天機(불욕로천기)
―정구(鄭逑·1543~1620)
선조 시대의 저명한 유학자 한강(寒崗) 정구 선생이 지은 시다. 61세 되던 1603년 겨울에 경상도 성주에서 지었다. 그해 9월 관료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집 북쪽에 숙야재(夙夜齋)를 짓고 머물 때였다. 남쪽 멀리에는 가야산이 버티고 서 있는데 그날 따라 흰 구름이 산허리를 감싸서 산의 모퉁이만 살짝 드러났다. 산 전체를 감추고 시야를 가로막은 구름을 보면서 자연과 사회의 진실에 대해 생각해본다. 구름에 덮인 산처럼 모든 현상의 진실이 전체가 까발려져 다 드러나는 법은 없다. 그래도 기묘한 한 모퉁이는 보여주어 알 수 있는 길을 터놓았으니 친절하다. 그 모서리를 통해 숨겨진 전체와 진실을 알아가자. 조물주가 오늘 그에게 한 수 가르쳐 주었다. 오늘의 우리도 구름에 덮인 가야산을 보는 처지다. 기묘한 한 모퉁이를 통해 천기를 꿰뚫어볼 수는 없을까?
☆가을 버들
바람도 없이
떠난 잎이
'철렁!'
땅에 떨어지니
야윈 가지
한 올 한 올
저녁 안개 속에
걸려있다.
부러진 갈대
마른 연잎이랑
서로 기대 서 있을 때
원앙새는 옷이 추워
잠도 채 못 이룬다.
後秋柳詩(후추류시)
無風脫葉下鏘然(무풍탈엽하장연)
瘦影絲絲掛暮煙(수영사사괘모연)
折葦枯荷相伴住(절위고하상반주)
鴛鴦衣冷不成眠(원앙의랭불성면)
―신위(申緯·1769~1845)
19세기 전반기의 시인 자하(紫霞) 신위가 1818년 춘천에 머물 때 지었다. 조선조 제일이라는 평을 듣는 시인의 시답다. 가을이 깊어가 잎이 스스로 떨어진다. 지는 잎은 지상의 모든 조락(凋落)을 뜻하니 그처럼 떨어지는 소리가 크다. 잎을 떨구고 야윈 가지에는 부러진 갈대와 말라버린 연잎이 동병상련에 어울리는 친구라, 서로 추운 몸을 비빈다. 초목 모두 입었던 옷을 벗은 저녁, 짙은 녹음 속에서 햇볕을 즐기던 원앙이도 추위에 몸을 떨고 있다. 시를 읽으려니 낙엽이 져버린 야윈 버드나무인 양, 어느새 잠 못 드는 원앙이인 양 몸과 마음이 오싹해져 따뜻한 것을 그립게 한다.
☆가을날 농가 풍경 秋日田家卽事(추일전가즉사)
추수철이 다가오며 날씨가 서늘하니
농촌의 멋진 풍치 꼽아 봐도 좋겠구나.
통발에서 꺼낸 은어 소반 위에 회가 되고
상에 오른 검정 게는 솥 안에서 끓고 있다.
나무 가득 붉은 과일은 햇살에 반짝이고
황금빛 벼이삭은 벌써 서리를 맞았다.
처마 앞에 늙은 국화는 한결 어여뻐서
노란 꽃잎 따다가 술잔에 띄워야지.
―이응희(李應禧·1579~1651)
節近西成天氣凉(절근서성천기량)
田家風致若爲量(전가풍치약위량)
銀唇出笱肯盤雪(은순출구긍반설)
靑殼登床可鼎湯(청각등상가정탕)
滿樹丹璾方曜日(만수단제방요일)
盈枝金粟已經霜(영지금속이경상)
簷前老菊尤堪賞(첨전로국우감상)
須把黃鬚泛玉觴(수파황수범옥상)
수리산 아래 경기도 군포시 산본에서 평범한 시골 선비로 한평생을 살다 간 이응희의 시다. 노랗게 물든 가을 논을 바라보며 "장관이다, 장관이여!"라고 흐뭇하게 외친 농부가 떠오른다. 농부에게 그보다 장엄한 풍경은 없으리라. 가을의 풍성함은 눈길 돌리는 데마다 보인다. 은어도 게도 넉넉하게 밥상에 오르고, 사과도 감도 햇빛에 반사되어 붉게 번쩍인다. 술잔에 노란 국화꽃잎 하나 띄워 마실 멋도 부리게 만든다. 가을의 들녘은 해가 막 넘어가는 무렵의 낙조(落照)처럼 장관이다. 가을이 무르익는 들로 나가고 싶어진다.
☆가을의 소회 秋日遣興(추일견흥)
산에서는 나무하고 물에서는 낚시하니
세상에 구하는 무엇이 있기나 하나?
지위 낮아 세상일에 걸릴 것 없어
은덕도 원한도 주고받은 것 적건마는
때때로 문을 닫고 틀어박힌 채
이맛살 찌푸리며 갖은 걱정을 하네.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오는 식구들에게
가을을 타노라고 둘러대었네.
采山復釣水(채산부조수)
於世果何求(어세과하구)
身微不羇物(신미불기물)
而寡恩與讐(이과은여수)
時復掩闈坐(시부엄위좌)
攢眉懷百憂(찬미회백우)
家人問何故(가인문하고)
答云性悲秋(답운성비추)
―김윤식(金允植·1835~1922)
구한말의 저명한 정치가이자 학자이며 문장가로 이름 높았던 김윤식이 지은 시다. 그가 1850년대 경기도 양평 한강가에 살던 때였다. 공부하며 세상을 알아가는 가진 것 없는 20대 젊은이라 세상을 향해 큰 욕심을 낸 일도 없고, 다른 사람들과 다투지도 덕을 베풀지도 않았다. 그런 평범한 젊은이에게도 가을은 온갖 걱정이 몰려오게 만든다. 하지만 무엇을 걱정하는지 아무런 말이 없다. 문을 걸어 잠그고 걱정하는 그를 보고 식구들이 오히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는다. 속을 들킨 것 같아 가을을 타서 그렇다고 얼렁뚱땅 둘러댔으나 가슴 속 걱정이 물러난 것은 아니다. 저마다 가슴에 한 아름씩 걱정을 안고 사는 가을이다.
☆감회가 있어
농부의 별은 새벽녘 공중에서 반짝이고
안개 뚫고 서리 맞으며 동편 논으로 나간다.
시고 짠 세상맛은 긴 가난 탓에 실컷 맛보았고
냉대와 환대는 오랜 객지 생활에서 뼈저리게 겪었지
부모님 늙으셨으니 천한 일을 마다하랴
재주가 모자라니 육체노동하기 딱 어울린다.
경략(景略)*의 달변이 없으니 이(虱)를 문질러 잡으랴
온화한 낯빛으로 촌 노인네 마주해야지.
―이덕무(李德懋·1741~1793)
有感(유감)
農丈人星曉暎空(농장인성효영공)
烟霜衝冒稻陂東(연상충모도피동)
酸醎已熟長貧日(산함이숙장빈일)
冷暖偏經久旅中(냉난편경구려중)
親老那能辭鄙事(친로나능사비사)
才踈端合役微躬(재소단합역미궁)
談非景略何捫虱(담비경략하문슬)
姑把溫顔對社翁(고파온안대사옹)
*‘경략’은 중국 동진(東晉)의 정치가 왕맹(王猛)의 자(字). 그는 남과 대화하면서 이를 문질러 죽이는 등 방약무인한 행동을 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청장관(靑莊館) 이덕무가 20대 후반의 어느 해, 가을걷이하는 논두렁 위에서 시를 썼다. 충청도 천안에 소유한 논에서 그는 해마다 벼 열 섬씩 수확하여 생활을 꾸렸다. 그리 힘들 것도 없으련만 새벽같이 일 나가며 이런저런 감회가 밑도 끝도 없이 일어난다. 가난뱅이라서 시고 짠 세상맛도 실컷 맛보았고, 객지에서 남들의 냉대도 뼈저리게 겪었다. 불쑥 인생의 고달픔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간다. 그래도 이렇게 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 다행이 아닌가? 불평없이 몸을 움직여 일을 해야지. 아무래도 서울 샌님의 몸으로 익숙하지 않은 농사일을 하고, 낯이 선 농부들과 어울리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먼동 트는 논두렁길을 걸어가는 초보 농사꾼 선비의 서툰 몸놀림이 눈에 선하다.
☆골목길에서
밝은 해가 굴러서 서쪽으로 떨어지면
그때마다 나는 통곡하고 싶어진다.
그러려니 일상으로 여기는 세상 사람들
그냥 다만 저녁밥을 내오라 재촉한다.
衚衕絶句
白日轣轆西墜(백일역록서추)
此時吾每欲哭(차시오매욕곡)
世人看做常事(세인간주상사)
只管催呼夕食(지관최호석식)
영조 말엽의 천재 시인이자 역관인 이언진(李彦瑱·1740~1766)의 시다. 세상을 밝히던 해가 뉘엿뉘엿 떨어질 때면 시인은 통곡하고 싶어진다. 모두들 배고프다며 밥을 내오라 재촉하는 시간이다. 해가 져서 저녁밥을 찾는 그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을 시인은 왜 타박하는 걸까? 시인 자신도 그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할 텐데 말이다.
시인이 해가 질 때면 통곡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저 떨어지는 해가 인생의 끝나는 순간을 날마다 보여주기 때문이리라. 하루하루를 일상의 관성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시간의 귀함을, 그 상실의 아픔을 자각하지 못하겠지만 시인은 민감하게 느낀다. 일몰은 시인에게 조금씩 몰락하는 인생의 슬픔을 알려준다. 오늘도 해가 지니 오늘 하루의 이 귀한 시간이 사라지는 아픔에 통곡하지 않을 수 없다.
☆공부를 해보니
공부는 넓게 하는 것이 좋지만
중심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지.
온종일 남의 돈을 세어 본댔자
한 푼도 내 것이 되지는 않고
바가지 들고 문전걸식 해봤자
제 배 하나도 채우지 못하지.
재주 있다 하여 너무 멀리 나가다간
이룬 것 없는 백발이 되고 마네.
후배들에게 부탁의 말 전하노니
나 같은 늙은이는 본받지 말라.
口呼自感一首示黃莘叟耳叟德吉
學問雖在博(학문수재박)
要以約爲守(요이약위수)
終日數人錢(종일수인전)
一文非己有(일문비기유)
沿門持鉢客(연문지발객)
竟未飽其口(경미포기구)
游騎戒太遠(유기계태원)
無成至白首(무성지백수)
寄語後來者(기어후래자)
愼勿效此叟(신물효차수)
18세기의 역사학자 안정복(安鼎福·1712~1791) 선생이 황덕길(黃德吉)에게 주었다. 젊은 학자가 당대의 큰 학자를 찾아와 존경을 표하고 배우기를 청했다. 그동안 공부한 과정을 들어보니 의욕도 있고 장래도 촉망이 되는 젊은이다. 마치 걸신들린 듯이 공부하던 내 젊은 날을 보는 것 같다. 그에게 나이 들어 깨달은 것을 얘기해주고 싶다. 이것저것 펼치지만 말고 좁혀 공부하고, 남의 공부 부러워만 말고 자기 것을 만들며, 그동안 쌓아놓은 자신의 성과를 활용하고, 재능만 믿고 날뛰지 말라. 자칫하면 나처럼 이룬 것 없는 늙은이가 될 것이다. 젊은 학자를 일깨우는 노대가의 충고가
☆공주 우거에서
부귀를 이뤄보려 꿈도 꾸면서
젊을 적엔 운명을 믿지 않았지.
하는 일마다 어찌 그리 뜻과 다른지
몸은 벌써 나이 든 축에 들어가누나.
바람 부는 언덕에 올라 잎 스치는 소리도 듣고
개울가에 다가앉아 물 위에 뜬 얼굴도 살펴본다.
도포 자락 휘날리며 들판을 가는 이
멀리서도 맹 생원인 줄 바로 알겠네.
蓼寓雜律
富貴曾思力(부귀증사력)
少時未信天(소시미신천)
事何多背意(사하다배의)
人已向衰年(인이향쇠년)
聽木臨風岸(청목임풍안)
觀身坐石泉(관신좌석천)
白衣飄野逝(백의표야서)
遙認孟生員(요인맹생원)
18세기의 시인 서명인(徐命寅·1725~1802)이 1763년 잠깐 공주에 내려가 있었다. 우연히 사건에 휘말려 하는 일 없이 세월을 보냈다. 무료하게 지내려니 밑도 끝도 없이 온갖 생각이 일어난다. 지금은 포기했으나 한때는 부귀를 쟁취하겠다고 애쓴 적도 있고, 운명을 믿지 않고 덤빈 적도 있다. 그러나 뜻대로 된 일 하나 없이 이제 곧 40줄이다. 발길 가는 대로 언덕에 올라 잎새에 스치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여도 보고, 개울가에 앉아 얼굴을 뜯어보기도 한다. 그 순간 흰 도포 자락 펄럭이며 들판을 가로질러 가는 사람이 보인다. 맹 생원이다. 저리 가는 것을 보면 좋은 일이 있어 들뜬 기분일까? 그는 아직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관악산 꽃 무더기 (冠峀花層·관수화층)
앞다퉈 핀 철쭉꽃 위로 躑躅花爭發(척촉화쟁발)
아침 햇살 내려 쪼인다 朝曦又照之(조희우조지)
온 산 가득 붉은빛이라 滿山紅一色(만산홍일색)
파란 데가 외려 멋지다 靑處也還奇(청처야환기)
제철 만난 산꽃은 어여쁘게 得意山花姸(득의산화연)
한 무더기 또 한 무더기 꼭대기까지 에둘렀다 簇簇繞峨嵯(족족요아차)
봄이 저물까 걱정일랑 아예 말게나 莫愁春已暮(막수춘이모)
단풍 들면 붉은 빛이 더 퍼질 테니 霜葉紅更多(상엽홍갱다)
—신경준(1712~1781)
1760년 봄에 철쭉이 만발했다. 실학자 신경준(申景濬)이 한강 북쪽에 위치한 첨학정(瞻鶴亭)에 앉아 관악산을 바라보니 철쭉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온 산은 벌겋게 불이 난 듯했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붉은 철쭉! 그런데 붉은색 일색이라 그런지 군데군데 파란 빛깔로 보이는 곳이 꽃보다도 사랑스럽다. 제철 만나 산을 뒤덮은 철쭉도 철 지나면 사라질까. 천만에. 그런 반전(反轉)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여름 지나 가을이 되면 단풍은 더 붉게 산을 태우리라.
이 시는 관악산을 붉게 물들인 철쭉꽃 찬미가가 분명하다. 그런데 그 붉은색 관악산을 본 시인의 눈에 권력을 독점한 당파의 전횡이 오버랩됐다. 붉고 푸른 빛깔은 당파의 색목(色目)이다. 시인은 푸른 빛깔의 소수당 소속이라, 자기 연민에 사로잡힌다. 계절이 바뀌면 달라질까. 천만에. 단풍이 산을 뒤덮듯 주도권을 쥔 세력은 때가 되면 다시 모습을 나타낸다. 봄날의 붉은 꽃에도 정치는 살아있다
☆괴석
이 한 마리를
창가에 매달아 놓고
뚫어지게 바라보면
수레바퀴처럼 커 보이네.
이 돌을 얻은 뒤로
나는 더 이상
화산(花山) 쪽으로
앉지도 않는다.
怪石(괴석)
窓間一蝨懸(창간일슬현)
目定車輪大(목정차륜대)
自我得此石(자아득차석)
不向花山坐(불향화산좌)
―최립(崔 ·1539~1612)
선조 때의 저명한 문인 간이(簡易) 최립이 젊은 시절 황해도 옹진군에서 벼슬살이할 때 지었다. 시에 나오는 화산은 옹진군에 있는 산이다. 작은 괴석을 얻어 관아 안에 놓아두었다. 이제는 발품 팔며 명산을 구경하러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괴석을 뚫어지게 바라보면 그 돌이 점차 불어나 화산처럼 거대하게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옛날 기창(紀昌)이란 자가 활 쏘는 법을 배웠다. 이 한 마리를 소털에 묶어 남쪽 창가에 매달아 놓고 날마다 쳐다보았더니 이가 갈수록 크게 보이더니 나중에는 수레바퀴 크기로 보였다. 그래서 활을 당겨 이를 쏘았더니 그 심장을 관통했다. 바닷가의 외진 고을에 머무는 동안 오로지 한 가지 일에 집중하여 거장이 되겠다는 집념이 서려 있다. 누구에게나 창가에 깨알같이 작은 이를 매달아놓고 뚫어지게 바라보면 작은 이가 수레바퀴처럼 크게 보이는 순간이 온다.
☆국화 앞에서
벗이 있어 함께 술잔 기울여야
그게 정말 제격이나
벗이 없어 홀로 술잔 기울여도
좋지 않다 못하리라.
술병이 바닥을 보이면
노란 꽃이 비웃을까 봐
책을 먼저 잡히고
또 옷을 잡히러 보내네.
菊
有客同觴固可意(유객동상고가의)
無人獨酌未爲非(무인독작미위비)
壺乾恐被黃花笑(호건공피황화소)
典却圖書又典衣(전각도서우전의)
1839년 자하(紫霞) 신위(申緯·1769 ~1845)가 국화를 앞에 두고서 시 14편을 지었다. 가을이 짙어가니 그의 '눈앞에 펼쳐진 사물 가운데 시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 없다(眼前無物不宜詩).' 노랗게 핀 꽃을 보고 있자니 70세 시인에게 흥분과 낭만의 감정이 물씬 일어난다. 멀리했던 술이 간절하다. 뜻에 맞는 친구가 있어야 술맛이 나는 법, 오늘은 국화가 술친구다. 한 잔 두 잔 기울이다 보니 술병이 벌써 바닥을 보인다. 그만 마신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마는 멋이 없다느니, 이젠 늙었다느니 국화가 핀잔을 늘어놓을 것만 같다. 에라! 모르겠다. 책이든 옷이든 전당포에 잡혀서라도 마시자. 오늘은 국화에게 졌다. 무덤덤하게 지내온 일상을 요란하게 깨트린 것은 국화 탓이다.
☆그림자
훌쩍 갔다 문득 오며 밤마다 나타나고
신선도 귀신도 아니고 또 사람도 아니네.
주렴 너머 말이 없으면 알아보기 어렵지만
달이 뜨면 뒤를 따라 절친한 척 다가오네.
등불 아래 손님인가 황홀하게 의심하고
물에 비친 나인 듯이 어슴푸레 보이네.
헛것의 종적이라 찾으면 간데없어
매화 핀 창가에서 진실을 물어본다.
影(영)
倐去忽來每夜因(숙거홀래매야인)
非仙非鬼又非人(비선비귀우비인)
隔簾無語渾難接(격렴무어혼난접)
得月相隨故欲親(득월상수고욕친)
怳惚初疑燈下客(황홀초의등하객)
依稀還作水中身(의희환작수중신)
子虛蹤跡尋無處(자허종적심무처)
更向梅窓問假眞(갱향매창문가진)
―홍한주(洪翰周·1798~1868)
19세기 문인 해옹(海翁) 홍한주가 온갖 사물을 읊은 연작시의 하나이다. 전기가 없던 시절에는 낮이고 밤이고 그림자가 자신을 따라다녔다. 그림자는 늘 나란 존재를 자신에게 각인시켜주는 또 다른 나였다. 내 그림자에 부끄럽지 않게 살고자 애쓸 수도 있었고, 외로울 때면 내 그림자를 향해 삶을 물어볼 수도 있었다. 불빛이 휘황하여 그림자가 내 뒤를 따르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며 사는 시대이다. 그림자에 대한 의문을 품을 수 있는 옛 시인이 오히려 행복해 보인다.
☆길을 가다가
풀이 연해
소가 송아지를 부르고
냇물이 불어나
황새가 물고기를 쪼고 있네.
푸른 숲이 멀지 않으니
틀림없이 좋은 마을 나타나겠지.
송아지는 풀을 뜯고
어미 소는 냇물을 마시네.
할 일이 없어진 목동은
풀잎모자 덮어쓰고 잠을 청하네.
道中卽事
草軟牛呼犢(초연우호독)
溪深鸛啄魚(계심관탁어)
靑林望不遠(청림망불원)
定有好村居(정유호촌거)
小犢方含草(소독방함초)
大牛方飮川(대우방음천)
牧童無一事(목동무일사)
蘆笠蓋頭眠(노립개두면)
―권용정
19세기 시인 소유(小遊) 권용정(權用正·1801~1861)이 길을 가다가 눈에 들어온 풍경을 시로 읊었다. 녹음이 지어가는 무렵이면 나그네의 시선을 잡아당기는 풍경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연한 풀을 찾았는지 어미 소가 송아지를 부르고, 불어난 냇물에서는 황새가 물고기를 잡고 있다. 유난히 짙푸른 숲이 시야로 들어오니 살기 좋은 마을이 곧 나타날 것만 같다. 또 한 곳에서는 풀을 뜯고 있는 송아지 곁에서 어미 소는 물을 마시고 있다. 소 치는 아이는 이제는 할 일이 없어졌다. 갈대로 만든 모자를 눌러쓰고 낮잠을 늘어지게 잔다. 먼 길 재촉하던 나그네의 바쁜 마음이 갑자기 한가로워진다. 잠깐 걸음 멈추고 들녘에 감도는 평화로운 풍경에 젖어든다.
☆김장 蓄菜(축채)
시월이라 바람 세고 새벽 서리 매서워져
울 안팎의 온갖 채소 다 거둬 들여놓네.
김장을 맛나게 담가 겨울나기 대비해야
진수성찬 아니라도 하루하루 찬을 대지.
암만 봐도 겨우살이는 쓸쓸하기 짝이 없고
늙은 뒤로는 유난스레 감회에 깊이 젖네.
이제부터 먹고 마실 일 얼마나 남았으랴
한 백 년 세월은 유수처럼 바쁜 것을.
十月風高肅曉霜(시월풍고숙효상)
園中蔬菜盡收藏(원중소채진수장)
須將旨蓄禦冬乏(수장지축어동핍)
未有珍羞供日嘗(미유진수공일상)
寒事自憐牢落甚(한사자련뇌락심)
殘年偏覺感懷長(잔년편각감회장)
從今飮啄焉能久(종금음탁언능구)
百歲光陰逝水忙(백세광음서수망)
―권근(權近·1352~1409)
고려 말·조선 초의 저명한 학자인 권근이 음력 10월에 김장을 하고 나서 지었다. 늦가을이 훌쩍 다가오자 채소를 거둬 겨울을 날 채비를 서두른다. 말리거나 절여서 겨울 내내 먹을 음식을 장만하고 보니 안도감과 함께 이제는 한 해도 저물었다는 느낌이 엄습해온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김장을 하는 연중(年中)행사도 무심히 지나갈 수가 없다.
김장은 여느 음식 장만과는 다르게 인생의 무게를 담은 듯하다. 600년이 흐른 지금도 이 한시에 담긴 감상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묵직함이 느껴진다.
☆꽃씨
만 리 넘어 가지고 온
한 주머니 봄소식
시인의 가벼운 짐에는
생기의 빛이 찬란하네.
북경 성의 나비들은
넋이 온통 빠졌겠네.
동풍 불면 불어올 향내
몇 말이나 줄었을 테니.
題錫汝壁
萬里携來春一囊
(만리휴래춘일낭)
騷人輕橐爛生光
(소인경탁란생광)
燕城蛺蝶魂應斷
(연성협접혼응단)
失却東風幾斛香
(실각동풍기곡향)
-이정주(李廷柱)
19세기 여항(閭巷) 시인 몽관(夢觀) 이정주(李廷柱·1778~1853)의 작품이다. 친구가 북경에 갔다가 돌아왔다. 인사를 하러 친구 집을 들렀더니 짐 보따리에 들어있는 것은 꽃씨 한 주머니뿐. 가기 힘든 곳을 가서 남들처럼 고가의 사치품을 마구잡이로 가져오는 대신 꽃씨를 가져왔다. 저속한 사람이라면 바보라고 비웃겠지만 시인은 그의 무욕과 멋스러움을 그냥 넘길 수 없어 벽 위에 시를 써놓고 왔다. 만 리 길 되돌아온 친구의 가벼운 짐 보따리에서는 생기가 넘쳐흐른다. 봄꽃을 피울 꽃씨가 가득 들어 있어 그 광채가 벌써 느껴진다. 봄바람이 불면 북경에서는 꽃향기가 많이 사라져 나비들은 넋이 빠질 만큼 슬픔에 잠기리라. 대신 조선 땅 한양의 나비들은 꽃향기에 취해 훨훨 날겠지. 온 마을을 꽃향기로 채운 친구야말로 진정한 부자요 사치를 부릴 줄 아는 사람이다.
안대회 |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낙엽시
천지는 거대한 염색 가게
환상의 변화를 어쩜 저리 서두를까?
발갛고 노란 잎을 점점이 날리는 바람
붉은 꽃과 흰 버들솜에 불어왔었네.
봄과 가을 번갈아 바뀌어도
태양은 양쪽 어디에도 머물지 않네.
공(空)과 색(色)이 뒤집히는 동안
성큼성큼 세월은 흘러가누나.
落葉詩
天地大染局(천지대염국)
幻化何太遽(환화하태거)
丹黃點飄蘀(단황점표탁)
紅素吹花絮(홍소취화서)
春秋迭代謝(춘추질대사)
光景兩無處(광경양무처)
空色顚倒間(공색전도간)
冉冉流年去(염염유년거)
1825년 자하(紫霞) 신위(申緯·1769 ~1845)가 낙엽을 읊은 시 8편을 지었다. 가을이 되면 천지는 거대한 염색 가게로 바뀐다. 이 염색 가게에서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환상적 변화는 그 속도를 따라잡기가 힘들 만큼 빠르다. 온갖 빛깔 낙엽을 한 점 한 점 허공에 날려버리는 바람은 지난 봄철 현란한 꽃을 피웠던 바로 그 바람이다. 그처럼 봄과 가을이 번갈아들며 염색 가게를 차지해도 태양은 스쳐 지나가기만 할 뿐 자취도 주소도 남기지 않는다. 공과 색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염색 가게를 열었다 닫았다 한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간다. 벌써 염색 가게가 문을 닫으려 한다.
☆난초
밭에다 곡식은 심지 않고
힘들여 난초를 심었다네.
가을 되어 난초가
열매를 맺지 않아도
거문고 품에 안고
후회는 하지 않네.
漫吟
有田不種穀(유전불종곡)
努力種蘭草(노력종난초)
蘭草秋不實(난초추불실)
抱琴無悔懊(포금무회오)
-이희사(李羲師)
18세기 후반 경기도 양평에 살았던 취송(醉松) 이희사(李羲師·1728~ 1811)의 시다. 평생 벼슬하지 않고 시를 짓고 살아가던 그가 불쑥 떠오른 생각을 시로 지었다. 난초를 심은 사연이다.
밭이 생겼으니 남들 하듯이 곡식을 심어야 했다. 그러나 곡식을 심지 않는 대신 열심히 난초를 심었다. 가을이 되었다. 난초는 쌀이나 보리, 그도 아니면 밤과 대추처럼 먹고 살아갈 열매를 맺지 않았다. 이제는 후회하고 반성해야 할 때다.
그러나 그는 후회는커녕 거문고를 안고 난초를 노래한다. 시인은 한 평생 남과는 다른 길만 선택했고, 반대로만 살았다. 곡식을 심지 않았고, 열매를 맺지 않았으며, 후회하지 않았다
.
난초는 시인의 인생을 닮았다. 난초를 심고 가꾼 인생의 선택, 후회하지는 않겠다.
☆네 가지 기쁜 일 共人賦四喜詩(공인부사희시)
가난한 집 급한 빚을 이제 막 해결하고
장맛비로 지붕 새는데 날이 문득 개어오네.
파도에 휩쓸린 배가 언덕에 정박하고
깊은 산속 길 잃었는데 행인을 만나네.
책 읽다가 난해한 것을 별안간 깨우치고
시구 찾다 좋은 소재 홀연히 떠오르네.
용한 의원 처방하자 묵은 병이 사라지고
봄날씨가 추위를 몰아내니 만물이 소생하네.
窶家急債券初了(구가급채권초료)
破屋長霖天忽晴(파옥장림천홀청)
駭浪飄舟依岸泊(해랑표주의안박)
深山失路遇人行(심산실로우인행)
讀書斗覺微辭透(독서두각미사투)
覓句忽驚好料生(멱구홀경호료생)
良醫對症沉痾去(양의대증침아거)
和煦破寒品物亨(화후파한품물형)
―윤기(尹愭·1741∼1826)
우리 18세기의 시인 무명자(無名子) 윤기의 시다. 그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나이 쉰을 넘기도록 공부만 하다가 겨우 문과에 급제했다. 무던 애를 써서 만년에 거둔 성과였다.
그가 겉으로는 이룬 것이 거의 없던 서른 나이에 이 시를 지었다. 상상은 현실을 드러낸다. 실제로는 지붕 새는 집에서 빚더미에 앉아 거센 파도에 휩쓸려 길을 잃고 헤매는 상황이리라. 짝수 구(句)의 끝 글자인 '맑게 개고[晴]' '다니고[行]' '살아나고[生]' '형통하는[亨]' 결말을 꿈꾸더니 시인은 결국 그 꿈을 이루었다. 살아가기가 어려울 때 행복한 상상이라도 없다면 견디기 어렵다.
☆노정을 따져보니
노정을 따져보니
지금쯤이면 벌써 집에 도착하여
일마다 똑같이 벌어지는 걸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겠지.
어린 아들은 문을 뛰쳐나와
좋아라고 웃고
노친께선 문을 열고
기쁜 내색 반에 걱정이 반일세.
멀리 있는 자식 걱정하는
어머니를 위로하고
궁지에서 잘 견딘다고
다부지게 말씀드리네.
산수가 가로막혀 길이 멀어도
넋은 잘도 다녀오니눈
발이 날리는 밤하늘에
나 홀로 시를 읊네.
計程(계정)
計程今已到家中(계정금이도가중)
事事眞如眼覩同(사사진여안도동)
稚子出門欣笑色(치자출문흔소색)
老親臨牖喜愁容(노친임유희수용)
慰來慈念長思遠(위래자념장사원)
道得剛腸善處窮(도득강장선처궁)
神去不知山水遠(신거부지산수원)
夕天飛雪獨吟風(석천비설독음풍)
―심로숭(沈魯崇·1762~1837)
정조 순조 연간의 문인 심로숭이 유배지인 경상도 기장에서 고향을 그리며 쓴 시다. 정조의 사망 이후 권력자에게 밉보여 몇 년을 유배지에서 보내야 했다. 날이 추워지자 갈 수 없는 먼 고향, 그곳의 가족들이 더 그리워진다. 몸은 기장에 있어도 넋은 훨훨 날아 산과 물을 건너서 고향집 문을 열고 들어간다. 반가워하고 걱정하는 가족들, 그들의 표정 하나하나까지 눈앞에 있듯이 떠오른다. 위로와 당부의 말도 입에서 맴돈다. 그러나 퍼뜩 망상에서 깨어나면 몸은 여전히 유배지에 있고 하늘에는 눈이 펄펄 날린다
☆누이를 보내고 別妹(별매)
아침에 해남으로 누이를 보냈는데
하루 종일 몹시도 날이 차구나.
오누이로 태어나 처음 헤어져
강산은 갈수록 멀어만 가네.
스산한 바람은 거세게 불고
밤들어 슬픔은 아련히 밀려오네.
지금쯤 어느 주막에 들어가
집 생각에 눈물을 쏟고 있을까?
海南朝送妹(해남조송매)
終日苦寒之(종일고한지)
骨肉生初別(골육생초별)
江山去益遲(강산거익지)
陰陰風勢大(음음풍세대)
漠漠夜心悲(막막야심비)
知爾宿何店(지이숙하점)
思家也涕垂(사가야체수)
―신광수(申光洙·1712~1775)
조선 영조 시대의 저명한 시인인 신광수가 누이를 시집으로 보내고 지은 시다. 충남 서천군에 살던 그의 누이동생은 멀리 해남으로 시집을 갔다. 그 누이는 다른 이가 아니라 여류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부용당(芙蓉堂)이다. 누이가 시집가는 것이 본래 슬퍼해야 할 일은 아니나 남매로 태어나 함께 지내다 이제부턴 거의 얼굴도 보지 못할 곳으로 떠나 살아야 한다. 보내는 오빠의 마음이 착잡할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 날씨까지 추워진 것은 꼭 누이를 보낸 시인의 쓸쓸한 마음 같다. 시인의 넋은 길 떠난 누이의 뒤를 따라가 어느 주막집 호롱불 밑에서 울고 있는 누이와 함께 울고 있는가 싶다.
☆눈과 달
큰 눈이 온 마을 뒤덮어
큰 집이 북풍에 떨고 있네.
꽁꽁 언 얼음 아래 샘물이 울고
삼나무 가지 끝에 달이 올라가네.
홀로 있는 밤이라 잠들지 못하고
옷을 껴입은 채 문 열고 내다보니
푸른 산은 벌써 깨진 기와 걷어내고
어느새 백옥으로 지붕을 얹었네.
雪月(설월)
大雪擁一村(대설옹일촌)
高堂北風寒(고당북풍한)
泉鳴石氷底(천명석빙저)
月高老杉端(월고노삼단)
獨夜不能寐(독야불능매)
攬衣開戶看(남의개호간)
靑山已破瓦(청산이파와)
忽作白玉巒(홀작백옥만)
―김숭겸(1682~1700)
17세기 말엽의 시인 김숭겸(金崇謙·1682~ 1700)이 지었다. 열세 살 되던 해의 한겨울 몹시 추운 날 큰 눈까지 내렸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었다. 그래도 얼음 아래로 물은 흐르고, 고목 위로 달은 환하게 떠올랐다. 어린 소년에게는 눈으로 뒤덮이고 얼음에 갇혀도 움츠리지 않고 활동하는 것이 귀에 들리고 눈에 보였다. 눈이 내려도 아무렇지 않게 모두 잠에 빠졌건만 소년만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우연히 밖을 내다본 그의 눈에 대대적인 공사가 끝난 것이 보였다. 그 짧은 사이에 산이 깨진 기왓장 다 걷어내고 백옥으로 새로 지붕을 덮어놓은 것이다. 열세 살 소년은 몸이 움츠러들어도 예민한 상상력은 움츠러들지 않았다.
안대회 |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느낌이 있어서
학은 길고 오리는 짧아도
모두가 새이고
오얏꽃은 희고 복사꽃은 붉어도
하나같이 꽃이지.
직책이 낮은 탓에
상관에게 욕을 자주 듣나니
갈매기 훨훨 나는 바닷가로
차라리 돌아갈까 보다.
有所感(유소감)
鶴長鳧短皆爲鳥
(학장부단개위조)
李白桃紅摠是花
(이백도홍총시화)
官賤頗遭官長罵
(관천파조관장매)
不如歸去白鷗波
(불여귀거백구파)
―김니(金柅·1540~1621)
조선 중기의 관료 유당(柳塘) 김니가 지은 시다. 관북 출신 시인들의 시선집인 '관북시선(關北詩選)'에 실려 있다. 황해도 관찰사까지 지냈으므로 고위직을 역임한 분이다. 그는 서울 태생이기는 하나 함경도에서 성장한 관북 사람이었다. 그 시대는 상대적으로 관서·관북 지역에 대한 차별이 적었던 때인데도 그는 차별을 많이 느끼고 불만을 시로 표현했다. 크고 작은 차이가 있고, 희고 붉은 차이가 있어도 그것이 차별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되지 않는다. 차이는 사람을 갈라놓는 칼이 아니라 오히려 모두를 꽃피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차별의 표적이 된 그는 욕만 실컷 얻어먹고 자연히 고향의 바닷가로 가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세상의 변방으로 떠날 사람을 많이 만든다.
☆단풍
가을은 노을을 잘라내어
옅은 색 짙은 색 붉은 천을 만들고
서슬 퍼런 서리는 웬 정이 많은지
끝도 없이 솜씨를 보인다.
저무는 낙조 아래로 점점이 불에 타오르고
이 산 저 산 속에 층층이 화폭이 펼쳐진다.
몇 줄의 사연은 심사를 구슬프게 만들며
이런저런 시름 끌고 저녁 바람에 떨어진다.
깊어가는 가을 향해 조락을 원망하지 말자.
봄바람은 또 시든 풀숲에서 풀을 엮고 있을 게다.
紅葉
秋霞翦作淺深紅
(추하전작천심홍)
靑女多情巧不窮
(청녀다정교불궁)
點點欲燒殘照外
(점점욕소잔조외)
層層如畵亂山中
(층층여화난산중)
數行書字悲心事
(수항서자비심사)
幾 牽愁落晩風
(기개견수낙만풍)
莫向秋深怨零落
(막향추심원영락)
東君應又綴殘叢
(동군응우철잔총)
김시습(金時習·1435~1493)은 청산을 떠도는 비애를 즐겨 읊었다. 단풍을 보면 늘 마음이 설렌다. 형언할 수 없는 단풍의 아름다움은 가을 하늘을 수놓은 노을의 변신도 같고, 서리의 짓궂은 장난도 같다. 시선은 단풍잎 하나하나에 머물다가 어느새 산의 위아래로 옮겨간다. 낙엽에는 숨겨놓았던 사연이 몇 줄 쓰여 있는 듯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어수선하게 바람에 나부낀다. 그렇다고 이 가을에 너무 조락만을 말하지 말자! 죽은 풀숲 곳곳에서 봄바람은 또다시 생명을 키워내고 있을 테니까.
☆달력
산에 살기에
애초부터 달력 따윈 필요 없나니
날이 차면 곰은 겨울잠 자고
날이 따뜻하면 개구리는 깨어나지.
이 책이 생긴 뒤부터
귀찮은 일 한 가지 불어났으니
이웃 사는 늙은이
몇 년생인지도 기억하네.
題時憲書(제시헌서)
山家元不識容成(산가원불식용성)
寒則熊藏 蟄驚(한즉웅장난칩경)
自有此書多一事(자유차서다일사)
隣翁能記某年生(인옹능기모년생)
―강진(姜?晉·1807~1858)
검서관(檢書官)을 지낸 19세기 전기의 시인 대산(對山) 강진이 달력에 적어둔 시다. 1847년에 강원도 철원군의 작은 고을인 안협(安峽)의 현감으로 재직할 때 지었다. 현감이라고는 하나 깊은 산골짜기 고을이라 서울을 벗어나 사는 여유가 있다. 날씨가 추워지니 겨울이 왔나 보다 하면 되고, 날씨가 더워지니 여름인가 보다 하면 그만이다. 연말이 되어 남들은 얻기도 힘든 달력을 얻었다. 그런데 기쁘기는커녕 되레 답답하다. 달력이 있어 달마다 날마다 얻는 정보는 정확해지고 해야 할 일은 꼼꼼하게 기억하게 됐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그런 것들로부터 벗어나 살면 안 되는 걸까? 계절이 흘러가는 것에 몸을 맡기며 내 삶에 충실하게 살고 싶다.
☆달을 샀다는 아이에게
아이 종이 나를 속여 말했네.
"오늘 밤 달을 사다 매달아 놨소."
어떤 시장에서 샀는지는 모르겠으나
달 값을 몇 문(文)이나 주었지?
答奴告買月
僮僕欺余曰(동복기여왈)
今宵買月懸(금소매월현)
不知何處市(부지하처시)
費得幾文錢(비득기문전)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인 무명자(無名子) 윤기(尹愭·1741∼1826)가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썼다. 평범해 보이지만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작품이다.
아이 둘이 지붕 위로 솟아오른 달을 보고 있다. 어린 종이 장난기가 동해서 자기가 달을 사다 허공에 매달아 놨노라고 뻔한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이라 대꾸한다면 정말 멋이 없는 대답이다. 어린 윤기는 "얼마 주고 샀는데?"라고 되받아친다. 네가 거짓말하는 줄 다 안다는 말을 저렇게 재치 있게 표현했다.
달 아래 두 아이가 익살맞게 주고받은 대화를 글로 옮겨 적으니 바로 훌륭한 시가 되었다. 두 명의 어린 시인이 탄생했다. 달을 보면 자연스럽게 시인이 되던 시대의 밤 풍경이다.
☆담백함(澹泊)
담백함은 가난뱅이가 살아가는 법 澹泊貧家事(담박빈가사)
등불 없어 달 뜨기만 기다린다 無燈待月明(무등대월명)
꽃을 꺾자니 사랑스러운 것을 어떻게 없애고 折花難割愛(절화난할애)
풀을 베자니 산 것을 차마 해치랴 芟草忍傷生(삼초인상생)
백발은 당연히 내 차지고 白髮應吾有(백발응오유)
청산은 어느 누가 욕심을 낼까 靑山復孰爭(청산부숙쟁)
미친 노래 부르다가 한 해도 저무나니 狂歌當歲暮(광가당세모)
가을의 기운 검처럼 서슬 퍼렇다 秋氣劍崢嶸(추기검쟁영)
—허필(1709~1768)
한평생 곤궁하게 살다간 허필(許�B)이란 시인이자 화가가 있다. 어느 날 그가 당당하게 가난을 고백했다. 담백함이야말로 가난한 자가 가진 고귀한 재산이라는 것이다. 가난을 담백함이라고 표현하니 멋지다. 어둠을 밝힐 등불이 없는 자는 달이 뜨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무소유(無所有)니 살아가는 것이 하나같이 자연스럽다. 이것저것 고민할 필요가 없다.
가난하니까 덤으로 얻는 것도 많다. 가난하기에 꽃가지 하나 함부로 꺾지 않고 풀포기 하나 해치지 못한다. 그뿐 아니다. 남들이 소유하기 싫어하는 것은 온통 내 차지다. 사람들이 다 싫어하는 백발도 내 차지고, 모두 살기 좋은 명리(名利)의 도시 서울로 몰려드느라 내팽개쳐 버려둔 푸른 산 역시 내 차지다. 사람들이 버렸다고 해서 가치 없는 것은 아니다. 가진 것 없다고 비웃지 마라! 나는 가난한 것이 아니라 담백하다.
☆되게 추운 날
북악은 높이도 깎아지르고
남산은 소나무가 새까맣다.
솔개 지나가자 숲은 오싹하고
학이 울고 간 하늘은 새파랗다.
極寒
北岳高戌削(북악고술삭)
南山松黑色(남산송흑색)
隼過林木肅(준과임목숙)
鶴鳴昊天碧(학명호천벽)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 1805)이 어느 몹시도 추운 겨울날 서울의 풍경을 묘사했다. 제목은 '극한(極寒)'인데 춥다는 말 한마디 없다. 늘 보던 북악의 큰 바위가 오늘따라 더 날카롭게 솟아 보이고, 남산의 소나무는 파랗다 못해 검게 보인다. 그렇잖아도 오싹하는데 솔개가 지나가자 숲은 더 움츠러들어 적막하다. 그 적막한 창공을 가르며 학이 날다가 '꽥!' 우는 소리에 새파랗게 질린 하늘도 금이 갈 듯하다.
기온이 급강하한 서울의 산과 숲과 하늘과 새를 보여주었을 뿐인데 보는 이는 소름이 돋을 만큼 한기(寒氣)가 엄습해 온다. 원문의 시어(詩語)가 대부분 입을 다문 소리라서 너무 추워 입을 악문 듯한 상태를 표현했다. 시를 읊기만 해도 춥다. 되게 추워 아무도 나다니지 않는 적막한 겨울 풍경이다.
☆들사람
들사람은 농사철을 소중히 여겨
일찍 일어나 사립문을 열고 나섰더니
안개를 뚫고 산중턱이 솟아올랐고
새벽별 사이로 까치가 짝지어 난다.
삼이며 벼는 키를 재며 무성히 자라고
마누라와 자식들은 함께 나와 일한다.
밭 틈에서 풀이 언뜻 움직이더니
메뚜기가 풀쩍 뛰어 옷자락에 가득하다.
野人
野人重農節(야인중농절)
早起開柴扉(조기개시비)
淸霧半峯出(청무반봉출)
晨星雙鵲飛(신성쌍작비)
禾麻爭彧彧(화마쟁욱욱)
妻子共依依(처자공의의)
乍動田中草(사동전중초)
阜螽跳滿衣(부종도만의)
정조 시대의 명사 나열(羅烈·1731 ~1803)이 농촌 생활을 읊었다. 뙤약볕 아래 한창 곡식이 무르익는 철이다. 농부는 그 철을 어기는 법이 없다. 일찍 일어나 밖을 나서니 새벽안개 속에 산봉우리가 솟아 있고, 지는 별 사이로 까치가 난다. 일터로 가면서 농부가 잠깐 즐기는 산수 감상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치요 허영이다. 농부에게는 들녘 여기저기서 다투듯이 자라고 여무는 곡식들이야말로 진정한 감상거리다. 처자식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예술이다. 땅에 붙어 일하는 들녘이 너무 적막하고 심심해선가, 메뚜기가 풀쩍 뛰어 옷깃에 가득 달라붙는다. 허리를 피고 하늘을 쳐다볼 때다. 작은 파장이 스치고 지나간 들녘에는 말없은 노동이 이어진다.
☆딸을 잃고 처음 강가로 나갔다
집의 좌우에
약초밭과 화원이 있어
어딜 가든
따라오지 않은 적이 없었다.
마음이 아파도
책은 펼쳐보지 않는다.
책을 말리던 그날
네가 받쳐 들던 모습이 떠올라서다.
喪兒後初出湖上 悲悼殊甚 詩以志之
藥圃花園屋左右(약포화원옥좌우)
閑居何處不從行(한거하처불종행)
傷心未忍開書帙(상심미인개서질)
日他時憶爾擎(쇄일타시억이경)
영조 시대에 천재로 알려진 지산(芝山) 심익운(沈翼雲·1734~?)이 어린 딸을 잃고 썼다. 사는 집의 좌우 양편에는 약초밭도 있고 화원도 있어 한가로이 집에 머물 때면 자주 나가봤다. 그때마다 딸은 꼭 뒤따라 나와 함께 걸었다. 이제는 집에 틀어박혀 있어도 약초밭이고 화원이고 가질 않는다. 그나마 아픈 마음을 잊기에는 책을 읽는 것이 좋을 텐데 그 책도 펼치지 않는다. 햇볕에 책을 말리던 날 제가 도와준다고 날라 오고 받쳐 들고 법석을 떨던 생각이 떠올라서다. 집 안팎 어디에도 딸이 남긴 추억이 서리지 않은 곳이 없다. 자리를 박차고 마포 강가로 나갔다. 딸의 흔적이 없어도 흐르는 눈물 주체할 수 없다.
☆마을을 바라보고
청산 아래 마을이 터를 잡고서
맑은 시내 주변으로 동산이 있네.
집집마다 저물 무렵 베틀 돌리고
곳곳에서 밥 연기가 피어오르네.
세금 내니 남은 것은 얼마 안 되나
질항아리 두드리며 자연 즐기네.
전쟁이 휩쓸고 간 이 땅 위에서
태평 세상 다시 볼 줄 어찌 알았으리?
村望(촌망)
村住靑山下(촌주청산하)
園林綠水邊(원림녹수변)
家家鳴夕杼(가가명석저)
處處起炊煙(처처기취연)
官租輸餘幾(관조수여기)
陶盆樂自然(도분락자연)
何知兵火地(하지병화지)
重見太平天(중견태평천)
선조와 광해군 시대를 살다 간 동계(桐溪) 정온의 시다. 시인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강직한 신념과 불굴의 지조로 국난에 대처하여 존경을 받았다. 참혹한 임진왜란이 지나간 뒤 영남과 한양을 오가던 중 시인은 어떤 마을 풍경에 시선이 갔다. 집집마다 베틀이 돌아가고, 밥 짓는 연기가 지붕으로 올라온다. 없는 살림이지만 질항아리를 두드리며 장단 맞춰 노래도 한다. 전쟁 통에 잃었던 일상이 다시 시작되는 모습이다. 병화(兵火)가 아무리 큰 상흔을 남겼어도 인간의 삶은 계속된다는 것이 그에게 안도감이랄까 놀라움이랄까를 주었나 보다. 일상은 그것이 깨진 뒤에야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마음을 적다
중년 되어 고향으로 되돌아오니
작은 집은 앞 들녘을 내려다보네.
학을 기르자 바로 친구가 되고
책을 펼치자 저절로 책둥지 되네.
산 스님은 산나물을 한 움큼 나눠주고
개울가 노인은 물고기를 한 바구니 보내네.
그 풍미에 나는 사뭇 만족하노니
귀한 음식 부러워한 적 언제 있었나?
書情(서정)
中年還舊隱(중년환구은)
小築俯前郊(소축부전교)
養鶴聊成友(양학요성우)
攤書自作巢(탄서자작소)
山僧分菜把(산승분채파)
溪叟送魚包(계수송어포)
風味吾差足(풍미오차족)
何曾羨綺庖(하증선기포)
―김이만(金履萬·1683~1758)
영조 때의 시인 학고(鶴皐) 김이만이 서울에서 벼슬하다 충청도 제천으로 낙향하였다. 중년의 나이에 자리를 잃고 보니 버틸 힘도 없고 의욕도 사라졌다. 상실감과 무료함을 달래려고 학이나 친구처럼 기르고, 책에나 파묻혀 둥지를 틀고 칩거하였다. 그런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고향 사람은 말없이 산나물도 보내오고 물고기도 건네주었다. 잊고 지냈던 내 고향의 풍미를 되살아나게 하는 인심과 음식이다. 내가 언제부터 값비싼 진수성찬에 맛을 들였던가? 마음을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할지 알 것만 같다
☆매천의 묘소
대지에는 까마득히 호겁(浩劫)의 재난 한창이고
서대(西臺)에는 달도 지고 저문 강엔 날이 차다.
지금 붓을 잡은들 땅이 없어 시름하노니
봄바람이나 그리고 난초는 그리지 말자.
梅泉墓(매천묘)
大地茫茫劫正蘭(대지망망겁정란)
西臺月落暮江寒(서대*월락모강한)
秖今筆下愁無土(지금필하수무토)
但畵春風莫畵蘭(단화춘풍막화란)
—이건방(李建芳·1861~1939)
구한말의 항일 우국지사 이건방이 매천 황현(黃玹·1855~1910) 선생의 묘소에 올라 시를 지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매천의 묘소를 홀로 올라 참배하고 사방을 둘러보니 어둠에 묻힌 대지는 온통 큰 재난의 기운에 뒤덮여 있다. 망국을 개탄하며 자결한 지사의 무덤은 어둡고 춥다. 그 앞에서 나 같은 글쟁이는 무엇을 써야 하나? 선비의 고결한 자태를 상징하는 난초는 그리지 말자. 난초는 땅을 함께 그려야 하건만 국토(國土)를 잃은 망국민의 처지가 아닌가? 일단 땅을 밟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봄바람이나 그리자. 땅을 되찾는 그날에는 난초를 멋지게 그리리라. 매천의 무덤 앞은 땅을 잃은 무토(無土)의 지사가 울분을 토해내기 좋은 곳, 고결하고 매서운 두 지사(志士)의 영혼에 옷깃이 여며진다.
*서대: 중국 송나라의 충신 사고(謝皐羽)가 원나라에 패해 죽은 문천상(文天祥)을 애도한 장소.
☆물구경
아침 되어 물을 보러 누각에 올랐더니
비는 내려 어둑어둑 늦어서도 아니 갠다
높은 물결 덮쳐와서 작은 섬을 뒤흔들고
포효하는 물소리는 미친 우레 구르는 듯
행인은 말 세우고 강 건너기 걱정하고
어부는 배 옮기나 힘에 부쳐 고생한다
성 밑으로 아이들은 앞을 다퉈 낚시하여
작은 붕어 어렵잖게 버들가지에 꿰어 간다.
―심육(沈錥·1685~1753)
觀漲(관창)
朝來觀水上層臺(조래관수상층대)
一雨暝暝晩不開(일우명명만불개)
高浪忽翻掀小島(고랑홀번흔소도)
大聲如吼轉狂雷(대성여후전광뢰)
行人立馬愁難渡(행인입마수난도)
漁子移舟力未回(어자이주역미회)
城下兒童爭設餌(성하아동쟁설이)
細鱗容易柳穿來(세린용이유천래)
조선 영조 때 저명한 학자인 심육이 26세 때 관서 지방을 여행하다가 큰 비를 만났다. 대동강에 큰물이 지니 누대(樓臺)에 올라 불어난 물을 구경하였다. 낚싯줄을 드리우고 물고기를 낚은 것을 보면 홍수 걱정은 없었을 것이다. 장마 때나 태풍이 불 때면 으레 볼 수 있는 것이 물구경이었다. 범람하지만 않는다면 장관을 연출하기에 옛날에는 그것을 '관창(觀漲)'이라 불러 여름철 풍광의 하나로 여겼다. 도도하게 흘러가는 흙탕물을 보고 한편으로는 '범람하면 어떡하나' 조마조마해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멀리 바다로 떠나는 상상도 했다. 얕게 흐르던 강물이 잔뜩 불어 거세게 흘러가는 광경은 보는 이의 혈관에도 힘차고 억센 피가 흐르게 만드는가 보다.◎
가슴으로 읽는 한시1- 2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