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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23/조선시대 그림 이야기5/ 김홍도&신윤복 민화 호랑이 개 조선명화 불화 풍속도

상림은내고향 2020. 4. 23. 11:54

조선시대 그림 이야기5/

 

■김홍도와 신윤복

구분 김홍도(1745~?) 신윤복(1758~?)
정치력 타고난 그림 실력을 바탕으로 연풍 현감까지
지냈으나, 사람들의 평가는 별로였다.
순전히 그림을 그려 삶을 꾸렸던 순수 화가
이기에 정치력을 논할 수 없다.
지력 성리학이 지배하던 조선 사회에서 화가의
지력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성리학이 지배하던 조선 사회에서 화가의
지력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인품 아름다운 풍채에 도량이 크고 넓어 사람들이
그를 신선 같다고 할 정도였으나, 가정에 대한
책임감은 약했다.
인품을 논할 만큼 역사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평가가 불가능하다.

 

■천부적인 그림 실력을 지닌 단원 김홍도

어릴 적부터 그림을 공부하매 못하는 것이 없다. 인물이면 인물, 산수면 산수, 신선이면 신선, 동물이면 동물, 새면 새, 꽃이면 꽃 등 그의 그림은 감히 명성 있는 옛 화가들과 비교해도 가히 거리낄 것이 없다. 특히 신선과 꽃 · 새 그림을 잘 그려, 이것만 가지고도 한 시대를 울리며 후대에까지 길이 전하기에 충분하다. 또 우리나라 인물과 풍속을 능히 그려 내어 선비, 장사꾼, 나그네, 양반 가문의 여인네들이 사는 모습, 농부, 누에 치는 여자, 이중으로 된 가옥, 겹으로 난 문, 거친 산, 들의 나무 등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를 꼭 닮게 그려서 모양이 다른 것이 없으니 옛적에는 이런 솜씨가 없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은 옛 화가들이 그린 것을 보고 배우고 익혀 공력을 쌓아야 비로소 비슷하게 그릴 수 있는데, 그는 독창적으로 스스로 알아내어 교묘하게 자연의 조화를 빼앗을 수 있는 데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타고난 소질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조선이 낳은 불세출의 화가를 그의 스승이 평가한 글이에요. 사부에게서 이 정도 찬사를 받았으니 이 화가는 당대를 호령한 대단한 인물이었음이 분명해요.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조선 후기 풍속화의 대가 김홍도예요. 김홍도의 사부는 강세황이고요.


강세황이 누구냐고요? 양반 출신으로 시면 시, 그림이면 그림, 글씨면 글씨 다방면에 뛰어났던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양반 화가이자, 다른 사람 그림을 자기 관점에서 솔직하게 평가했던 명평론가예요.

호가 단원인 김홍도는 1745년에 태어났어요. 증조할아버지가 무관이었던 걸로 보아 집안이 본래는 양반가였음을 알 수 있어요. 하지만 할아버지, 아버지 대에 벼슬을 하지 못해 김홍도가 태어날 당시에는 중인으로 신분이 하락해 있었어요. 이런 김홍도가 자신의 그림 스승으로 강세황을 모실 수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대단한 행운이었지요. 왜냐고요? 생각해 보세요. 강세황은 명문 사대부 집안 출신이에요. 따라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 시대에 중인 출신 어린아이가 양반 사대부 밑에서 글공부, 그림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매우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고 보면, ‘잘될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김홍도 역시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림 실력이 특출 났기에 이런 혜택을 입었던 것 같아요
.


김홍도의 그림 실력이 분명 탁월하긴 했어요.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전국의 내로라하는 화가들이 선망하는 도화서[1] 화원[2] 이 되었으며, 1765년에는 영조 임금이 71세가 되어 대대적인 칠순 잔치를 벌였을 때, 이를 기록하는 그림(경현당수작도)을 단독으로 그렸어요. 이때 나이가 스물한 살이었으니, 그야말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젊은이가 당대의 솜씨 좋은 화가들을 모두 제치고 왕실 잔치를 그림으로 남긴 거지요.

 

/김홍도  군선도

 

29세 때의 일도 김홍도의 그림 솜씨를 짐작하게 해 줘요. 영조와 세손[3] 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이때 그린 그림이 정조의 기억에 얼마나 선명하게 남아 있었던지, 정조는 임금이 된 이후, 국가의 중요한 행사 그림은 모두 김홍도가 주관하게 했어요. 여기에 김홍도의 공을 인정하여 충청도 연풍 현감으로 발탁하기까지 했어요. 현감은 요즘으로 치면 지방행정구역인 군()의 경영을 책임진 군수이니, 중인으로서는 대단한 출세를 한 것이죠.

김홍도의 그림 세계

김홍도가 잘 그린 그림은 신선도와 풍속화였어요. 중년까지는 주로 신선도를 즐겨 그렸는데, 그가 그린 신선들은 굵고 힘차면서도 거친 느낌을 주는 옷을 입고 티 없이 맑은 얼굴에 세상 시름 하나 없는 그야말로 안빈낙도 의 이상 세계를 사는 신선들이었어요.

풍속화는 말년에 이르러서 많이 그렸는데, 조선 백성의 삶을 고스란히 알 수 있는 정경을 O형 구도나 X자형 구도 속에 빠르면서도 거친 필치로 그려 냈어요. ‘풍속화 하면 김홍도, 김홍도 하면 풍속화’가 연상될 정도로 조선 풍속화의 전형 을 이루어 냈지요. 그가 이룩한 이러한 감각의 풍속화는 김득신, 신윤복 등에게 이어지며 한국화 발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어요.

 

/김홍도의 씨름도

 

도화서에서 쫓겨난 19금 화가, 혜원 신윤복

김홍도에 감히 맞설 수 있는 풍속화가가 혜원 신윤복이에요. 그는 풍속화뿐 아니라 산수화와 동물 그림에도 능한 팔방미인 화가였어요. 하지만 신윤복 역시 풍속화로 명성을 떨쳤기에 ‘김홍도 하면 신윤복’, ‘신윤복 하면 김홍도’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둘은 풍속화의 대가이자 맞수였어요.

혜원은 단원보다 13년이 늦은 1758년에 태어났어요. 조상 대대로 화원을 배출한 집안이었고, 아버지도 도화서 화원이었기에 그 역시 어려서부터 그림 실력을 연마하여 도화서 화원이 되었어요. 다만 여느 화원들과는 다르게 요즘 말로 하면 ‘19()’에 해당하는 그림을 즐겨 그렸고, 이런 그림들이 사회 문제로 번져 정조 시대에 사헌부[6] 관리들의 탄핵을 받아 유배를 떠나기도 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신윤복은 화원으로 있을 때 남긴 그림보다, 도화서에서 나와 자유롭게 그린 말년의 작품들이 많이 알려져 있어요.

 

/신윤복  연소답청 - 봄소풍 가는 젊은이들

 

단원과 혜원의 풍속화 비교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는 여러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어요. 김홍도는 농촌 지역 서민의 일상사를 주로 그렸어요. 반면에 신윤복은 도회지 양반과 기녀의 풍류 생활을 화폭에 주로 담았어요. 이처럼 다루는 주제가 달랐기에 붓을 쓰는 방법이나 표현법 또한 크게 차이가 났어요. 예를 들어 김홍도는 배경이 거의 없이 붓을 거칠게 다루며 선을 간결하고 소탈하게 가져가서 서민들의 흥취를 드러냈지만, 신윤복의 경우는 양반과 아녀자를 주로 그렸기에 세밀하고 섬세한 필치로 채색화를 주로 그렸어요.

인물의 얼굴 모양을 표현할 때도 이런 대조적인 특징이 잘 드러나요. 김홍도는 서민의 풍모에 맞게 얼굴을 둥글고 성글게 표현했지만, 신윤복의 경우는 여자는 물론이고 남자 얼굴도 V자 형으로 엄친아 뺨치게 섬세하게 그려 냈어요.

 

/김홍도의 춤추는 아이

 

/신윤복의 쌍검대무

 

쌍검대무란 양손에 칼을 쥐고 상대와 짝을 지어 추는 춤을 말해요. 춤추는 장면을 묘사했다는 점을 빼면 유사점보다 차이점이 더 도드라져요. 위는 장터에서 벌어지는 듯한 춤 한 마당, 아래쪽은 기방에서 벌어지는 칼춤 한 마당. 두 그림에 흐르는 흥과 멋은 각각의 개성대로 조선 사람들의 풍류를 담아내고 있어요.

 

    단원과 혜원. 두 사람은 선후배 간으로 정조 시대에 주로 그림을 그리면서 풍속화로 이름을 날렸어요. 각기 다른 필치와 세계관으로 그림을 그려 한 사람은 서민의 생활상을 담백하면서도 소탈하게, 또 한 사람은 도회지 양반의 풍류와 생활 모습을 화려하고 섬세하게 그림 속에 남겨 오늘날까지 풍속화의 대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어요. 이 둘은 ‘너 죽고 나 살자’ 할 정도로 대립했던 라이벌은 아니지만, 조선의 풍속화를 얘기할 때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실력이 비등비등했던 진정한 맞수라고 할 수 있어요

    

    민화

민화는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생활 속에서 우리 나라 사람이 그린 생활 그림을 말한다. 그림을 전문으로 그리지 않는 사람들이 그린 그림만을 가리키지만, 넓게는 직업 화가가 그린 그림도 가리킨다. 민간에서 일상 생활 양식이나 관습 등 민속적인 내용을 그린 그림으로 민화는 창작적이기보다는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소재를 특별한 기법이 없이 형식화한 유형에 따라 그려 왔다.

 
민화에는 자연의 경치, 복을 받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 종교에 대한 믿음, 생활 풍속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우리 민화에는 순수하고 소박하며 솔직한 우리 민족의 정서가 잘 나타나 있다. 또한 자연에 대한 사랑, 웃음을 잃지 않는 익살과 멋이 배어 있다. 민화의 시작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순수하고 단순한 내용으로 보아 우리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생각된다. 조선 후기에 특히 유행하여 병풍이나 족자로 만들어 사용되었다.

 
민화는 내용에 따라 화조도(꽃과 새를 그린 그림) · 어해도(물고기 등의 물 속 모습을 그린 그림) · 호작도(호랑이와 까치를 그린 그림) · 십장생도(장수를 뜻하는 해 · 달 · 물 · 구름 · 돌 · 소나무 · 학 · 거북 · 사슴 · 불로초를 모아 그린 그림) · 산수도(자연의 빼어난 경치를 그린 그림) · 풍속도(농사짓는 모습과 같은 생활의 여러 풍속을 그린 그림) · 고사도(옛이야기의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낸 그림) · 문자도(글자로 된 그림) · 책가도(책과 문방 사우를 소재로 그린 그림) · 무속도(불교 · 도교 · 유교 · 무속 등의 종교적인 내용을 그린 그림) 등으로 나뉜다.

 

/민화의 하나인 풍속도

 

/평생도. 혼례를 올리기 위해 신부 집으로 가는 신랑 행차(부분)

 

/평생도. 돌잔치 모습(부분)

 

/사람이 길들인 매 그림

 

/설화도. 하늘나라의 신선과 학 그림이다

 

/산수도. 바위 위의 정자를 그렸다

 

/죄인의 목을 베는 일을 직업으로 하던 망나니를 그린 풍속도

 

/아버지와 아들이 고기잡이하는 모습을 그린 풍속도

 

/용의 수염을 뽑는 내용을 그린 설화도

 

/서당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그린 풍속도

 

/효도와 우애를 나타낸 글자인 '효제'를 그린 문자도

 

/띠를 나타내는 열두 마리 짐승을 그런 일월십이지 그림

 

/호랑이와 염소를 그린 맹호도

 

/호랑이와 까치를 그린 호작도

 

◆옛  그림에  호랑이가  많은  이유는?

 〈송하맹호도〉는 김홍도가 스승인 강세황과 합작으로 그린 그림이다. 호랑이는 김홍도가 그리고, 소나무는 스승이 그렸다. 호랑이가 소나무 아래에서 눈을 동그랗게 '' 부릅뜨고 있는 게 여간 사나워 보이지 않는다. 또 허리를 곧추 세우고 정면을 노려보는 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무엇인가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있는데 여차하면 금방이라도 그림을 뚫고 나올 기세다.

 

이런 생생함 때문에 이 그림은 호랑이를 사실적으로 잘 그렸다고 평가되면서 명작의 대열에 들어가 있다. 하지만 이 그림의 명성이 널리 알려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김홍도 연구로 유명했던 한 학자가 이 그림을 단원 작품 중의 최고 명품으로 소개하면서 유명해졌다.

 

〈송하맹호도〉 김홍도·강세황, 18세기, 종이에 수묵, 90.4x43.8cm, 삼성미술관 리움

 

 

〈맹호도〉 작자 미상, 18세기, 종이에 채색, 96.0x55.1cm, 국립중앙박물관

 

 

또 하나의 유명한 호랑이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맹호도〉다. 아무 배경 없이 그려진 이 호랑이는 과거 외국에 한국 미술을 소개하는 전시가 열릴 때면 언제나 단골로 뽑혀갈 정도로 유명했다. 그런데 이 호랑이 그림과 김홍도의 호랑이는 언뜻 보면 매우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그림을 볼 때에는 공통점뿐 아니라 작은 차이점까지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대체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 걸까?

 

일단 두 그림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자세가 거의 같다. 무엇인가를 지켜보면서 살금살금 다가서는 모습은 모두 비슷하다. 앞발을 나란히 하고 있는 것도 꼭 같다. 다리 뒤쪽의 털을 표현한 점도 매우 비슷하다.

 

하지만 다른 점도 꽤 있다. 무엇보다 〈맹호도〉에는 배경이 되는 그림이 없다. 호랑이의 눈매도 조금 더 부드러워 보이기도 하는데 그것은 김홍도가 그린 호랑이의 눈꼬리가 좀 더 올라갔기 때문일 것이다. 뒷발을 모은 것과 벌리고 있는 것도 차이다. 더 큰 차이는 〈맹호도〉의 호랑이가 등을 더 곧추 세웠고, 등뼈가 보일 될 정도로 등의 곡선이 울퉁불퉁하다는 것이다. 배 쪽의 흰 털을 그린 모양새도 두 호랑이가 크게 다르다. 그리고 꼬리를 보면, 〈송하맹호도〉의 호랑이는 S자로 구부러지면서 하늘을 향하고 있다. 반면에 〈맹호도〉의 호랑이는 S자 형태이기는 하지만 마치 우산 손잡이처럼 끝이 바짝 말려서 아래를 향하고 있다. 조금 더 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종합해 보면 〈맹호도〉의 호랑이가 어딘가 딱딱하게 굳어 있는 모습이라면, 〈송하맹호도〉의 호랑이는 보다 부드러우면서도 사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두 그림이 그려진 시기를 살펴보면 이런 차이가 어디서 비롯된 건지 알 수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맹호도〉가 〈송하맹호도〉 보다 먼저 그려졌다. 따라서 김홍도가 스승 강세황과 함께 호랑이를 그리면서 〈맹호도〉를 직접 보고 참고하면서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 앞서 그려진 호랑이에 보이는 어색한 점을 고쳐서 조금 더 잘 그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전부터 호랑이 그림이 많이 그려졌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서부터 백호가 등장하기 때문에 호랑이는 우리 민족에게 매우 친근한 이미지가 있다. 고려 시대에 불교를 국교로 삼았을 때에는 호랑이가 불법을 수호하는 동물로 여겨졌다. 지금도 절에 가면 대웅전 밖 외벽에 부처가 호랑이를 거느리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또 민속 신앙에도 호랑이가 산신령과 함께 짝이 되어 등장하는 게 보통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궁에서 왕이나 왕비가 죽었을 때 장례를 치르면서 시신을 모시는 빈전에 사신도를 그려 설치했는데, 그중에 흰 호랑이를 그린 백호도가 있다. 그래서 학자들 가운데는 〈맹호도〉의 뿌리가 백호도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옛 그림 속의 개

/수렵도(부분), 고구려 무용총 주실 서벽, 5세기 후반, 중국 집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그림이다. 오랜 세월 교과서에 빠짐없이 실렸기 때문이다. 중국 집안 지역에 있는 무용총의 '수렵도'인데, 5세기 후반 고구려 무사들이 훈련 삼아 호랑이 사냥을 하는 모습이다. 무사들은 말을 탄 채 달려가는 호랑이를 향해 화살을 겨눈다. 북방 고구려 사람들의 거친 기상이 물씬하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개를 발견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기마 인물과 호랑이에 시선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중앙의 검정 말 아래를 보면 검은 개가 무사와 함께 호랑이를 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꼬리가 펼쳐져 있고 보폭이 크다. 개는 늑대를 조상으로 하는 동물이라 지구력이 호랑이보다 뛰어나다.  
  
개는 인류역사의 거의 전 시대에 걸쳐 사람의 친구였다. 이 그림을 통해 고구려 시대에도 개가 사람의 반려였음을 알 수 있다. 다가오는 2018년은 개의 해 '무술년(戊戌年)'이다. 옛 그림 속에 등장하는 개의 모습을 찾아보자.   

 

/부억, 고기간, 차고(부분), 고구려 안악 3호분 동실 북벽, 357년, 황해 안악

 

고구려 그림을 하나 더 보자. 황해도 안악에 있는 고분 벽화다. 기록을 통해 그림을 그린 시기가 서기 357년으로 확인됐다. 그림은 부엌을 그린 것인데, 무덤의 주인이 살던 곳을 그렸다고 봐야 할 것이다.  
  
부엌 아궁이에는 불이 활활 타고 아낙네가 큰 솥을 걸어 놓고 요리를 하고 있다. 그 앞에 개 두 마리가 보인다. 흐릿하지만 검고, 귀가 뾰족하며, 꼬리는 말리지 않고 펼쳐져 있는 모습이 뚜렷하다. 위 수렵도에서 사냥터를 누비는 개와 거의 같다. 고구려의 사냥개는 임무를 마치고 나면 저런 공간에서 휴식했던 모양이다.        
  

/문배도, 서울 개인장

 

조선 민화의 한 종류로 개를 그린 '문배도'(門排圖)다. 문배도는 문에 붙이는 그림이라는 뜻으로 액운을 막아준다고 믿었다. 대문에 이런 그림이 붙어 있으면 한결 생동감 있고 예술적 운치가 있었을 것이다.  
  
조선의 민화에는 동물이 다양하게 등장했는데, 호랑이, 사자, 개, 용, 잉어 등이 주인공이었다. 민화에는 모두 액을 막고 경사가 오기를 바라는 믿음이 담겨 있었으나 차차 장식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

 

/문배도, 서울 개인장

 

이 그림도 문배도다. 범이나 상상 속의 동물을 그린 것 같다. 개 그림에 비해 화려하다. 

 

/김홍도의 삼공불환도(부분), 1801년, 133.7cm cm 418.4cm, 서울개인장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란 영의정·좌의정·우의정 삼공이 전원의 생활을 누리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김홍도가 그린 이 그림은 길이가 4m가 넘는 대작인데 담장 너머에는 산과 들판과 바다가 펼쳐지는 자연을 그리고 있다.  
  
기와집 안에는 삼공이 각기 기거하고 노루와 학, 닭 등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는데 역시 개가 빠지지 않는다. 처마 아래 두 마리의 개는 닭이 모이를 쪼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림에서 빠졌다면 허전했을 것이다.      

 

/김홍도 풍속화첩 중 '점심'

 

조선 민초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논밭인지 작업장인지 알 수 없으나, 모두 흡족하게 먹고 마시고 있다. 총각 하나는 술병을 들고 어른들의 시중을 기다리고, 갓난아기도 엄마 젖을 빨고 있다. 그리고, 개도 있다. 물론 순서는 좀 기다려야 한다. 저 선량한 사람들은 개도 배불리 먹일 게 틀림없다. 개는 그것을 아는 듯 보채지 않고 점잖게 기다린다.      

 

/김득신의 성하직리, 간송미술관

 

김득신(金得臣, 1754~1824)은 조선 후기의 화원으로 그의 그림은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한 사진을 보는 것 같다. 병아리를 물고 도망가는 들고양이와 이에 놀란 닭, 이를 긴 담뱃대로 잡으려는 남성이 포착된 '야묘도추'가 대표적이다. 
  
'성하직리'(盛夏織履)란 여름날의 짚신 삼기다. 장년 사내가 근육을 꿈틀거리며 짚신 삼기에 몰두하고 있다. 노동으로 뭉쳤을 장딴지와 팔의 알통이 대단하다. 그를 지켜보는 아버지는 노쇠했으나 눈빛만은 형형해 아들이 제대로 하는지 지켜보고 있다. 손자도 그 뒤에서 아버지의 작업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족, 개가 지켜본다. 여름이니까 덥다. 혀를 빼물고 꼬리를 파닥파닥 부채처럼 흔들고 있다.      

 

/신윤복의 이부탐춘, 간송미술관

 

'이부탐춘'(嫠婦耽春)은 '과부가 봄빛을 탐한다'고 옮길 수 있겠다. 높다란 담장을 넘어오는 매화나무에 하얀 꽃이 만발했으니 봄이 한창이다. 그러나 과부는 매화 따윈 관심도 없다. 눈 앞에 펼쳐진 개들의 짝짓기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  
  
두 여인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개 한 쌍이 교미하는 걸 바라보고 있다. 한 마리는 담장 아래 개구멍을 통해 들어왔을 것이다. 과부는 소복을 하고 있으나 다리를 복잡하게 꼬고 입술은 알듯 모를 듯 미소를 흘리고 있다. 옆의 계집종은 놀란 표정으로 손은 자기도 모르게 마님의 종아리를 꼬집고 있다. 분위기에 일조하려는 듯 참새 한 쌍도 짝짓기가 한창이다.     
  
이쯤 되면 과부가 탐하는 봄빛은 그냥 봄빛이 아니다. 높다란 담장 안에 펼쳐진 질펀한 '춘정'을 즐긴다고 옮기는 것이 옳지 않을까. 춘화를 방불케 하는 이 그림은 국보 135호로 지정된 혜원풍속도첩의 30장 그림에 포함되어 있다.  

 

/이암의 모견, 국립중앙박물관

 

이게 과연 개의 표정인가 싶다. 새끼들이 어깨에 기대고 젖을 빠는 모습을 바라보는 어미 개의 얼굴이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 여인과 다르지 않다. 조선 중기의 화가 이 암(1507~1566)이 그린 '모견도'(어미 개와 강아지)다. 옛사람들은 집에 이런 것을 걸어 두고 그림과 같은 평화와 복을 기원했을 것이다.     

 

/이암 화조구자, 서울 개인장

 

이 암의 다른 그림 '화조구자'(花鳥狗子)다. 새가 앉은 꽃나무 아래 세 강아지가 세상 편하게 쉬고 있다. 강아지들의 색이 모견도와 같다. 이 강아지들은 이 암의 전속 모델로 실존했던 게 아닐까. 

 

/김두량의 긁는 개, 국립중앙박물관

 

검은 개가 나무 아래 앉아 뒷다리를 들어 몸통을 벅벅 긁고 있다. 제법 나이 들어 보이는 개는 시원한지 눈매가 게슴츠레해졌다. 한올 한올 정밀하게 그린 수북한 털이 다리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는 것 같다. 자연스럽고 생동감 넘치는 명작이다. 
  
작가 김두량(1696~1763)은 조선 영조 시절의 도화서원이었다. 인물, 풍속, 산수, 동물 등 모든 분야에 능해 왕으로부터 '남리'(南里)라는 호를 받기도 했다. '긁는 개'는 김두량의 그림 중에서도 대표작이다.         

 

/김두량의 삽살개, 일본 개인 소장, 이 사진은 1995년 기자가 일본 도쿄 출장갔을 때 한 골동품상에서 직접 촬영한 것이다. 황금색 비단 바탕의 족자로 보관되어 있었다. 최정동 기자

 

김두량의 다른 개그림 '삽살개'다. 몸통과 꼬리의 털이 생동감 있게 표현된 것은 '긁는 개'와 마찬가지다. 그러나 무언가를 향해 입을 크게 벌려 짖고 있어 분위기가 다르다. 이 그림이 유명한 이유는 영조가 화제(畵題)를 직접 써 주었기 때문이다. 왕은 1743년 김두량이 그린 개 그림을 보고 이렇게 썼다.  
  
“柴門夜直(사립문에서 밤을 지킴이) / 是爾之任(네 소임이거늘), 
 如何途上(너는 어찌하여 길에서도) / 晝亦若此(대낮에도 짖어대느냐).” 
  
시끄러운 개를 꾸짖는 소리로 들리지만, 이 화제에는 정치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해석된다. 즉 영조 대에 더욱 심화하는 붕당정치를 해결하기 위해 왕은 탕평책을 실시하였는데 정치 주도세력인 노론이 사사건건 방해를 하고 나서는 것을 겨냥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조의 속마음은 이랬을 것이다.  
  
"관리라면 각자 주어진 소임을 다하면 그만이거늘, 어찌 왕이 행하는 정책에 사사건건 개 짖듯이 시비를 걸고 나서느냐."      
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朝鮮 名畵

/보물 547 -5/ 金正喜 影幀 조선정조 絹本設彩. 국립중앙박물관

 

 

/중요민속자료 17/ 國師堂의巫神圖, 조선시대

 

 

/국보 300/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화, 조선 현종, 불화 

 

 

/국보 240/ 윤두서상尹斗緖像, 조선 숙종, 초상화

 

 

/국보 217/ 금강전도金剛全圖, 산수화, 조선 영조, 호암미술관 

 

 

/국보 239/ 송시열상, 조선 효종, 초상화,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249/ 동궐도, 조선 순조, 고려대박물관/동아대박물관 

 

 

/보물 744/ 正祖大王筆菊花圖, 정조, 조선시대, 동국대학교

 

 

/보물 782/ 檀園畵帖 중 산수도, 김홍도, 조선 정조, 호암미술관

 

 

/명 칭 : 보물 782/ 檀園畵帖 중 산수 부분도-2첩帖

 

 

/보물 527/ 檀園風俗圖帖二十五幅, 김홍도, 조선시대,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80/ 완당세한도阮堂歲寒圖, 산수화, 조선 헌종

 

 

/국보 217/ 금강전도金剛全圖, 산수화, 조선 영조, 호암미술관

 

 

 

 

 

 

 

 

 

 

 

 

/옥계십이승첩중 설리대적

 

 

/'평생도'중  소과 응시 장면과 합격증인 백패

 

■불화

 

 

 

 

 

종합

/강희연이 그린 조선 후기 선비들의 일상- 사인시음

 

 

/공재 윤두서의 석공 공석도

 

 

/김규진(1868-1933)의 월하 죽림도

 

 

/김상원 소나무

 

 

/김은호의 미인도 - 조선조의 마지막 궁중 화가작픔으로 미국 뉴욕 콜롬비아 대학 도서관 소장

 

 

/남농 허건의  산수6곡 일지 병풍

 

 

/노숙의 참새와 대나무

 

 

/등용문 약리도

 

 

/문봉선  '난'

 

 

/문자도 = 충

 

 

/박상우의 매화

 

 

/변관식의 옥류천

 

 

/설중매

 

 

/소전 손재현 (1903 - 1981 )의 1945년 작 승설암도 - 서예가

 

 

/솔거의 노송도  새들이 떼죽음한 전설

 

 

/신사임당 작 원추리 꽃

 

 

/유덕자의 설죽

 

 

/윤덕희의 독서하는 여인

 

 

/이상범의 하경산수

 

 

/이유신 포동춘자

 

 

/이정신 산수화

 

 

/장승업-유묘도

 

 

/정선필 = 산수인물도화첩- 염계상련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청명상하도 - 중국북송시대 그림으로 (1120) 그림의  끝자락에 고려복장의 상인 행렬이 등장

 

 

/해강의 대나무 병풍

 

 

/허달재의 매화그림

 

 

/현재 심상정- 삼일포

 

 

/화원 김희겸 석천한유도,조선시대풍속화

 

■朝鮮時代 風俗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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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그림 이야기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