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午後餘談(문화일보) 2025-05/ 05-01(목) 동북아 슈퍼그리드 - 05-30(금) 대통령의 ‘경호 받는 맛’

상림은내고향 2025. 5. 14. 12:30

午後餘談(문화일보) 2025-05/

05-01(목) 동북아 슈퍼그리드

 

이철호 논설고문

 

“단 5초 만에 15기가와트(GW)의 전력 생산이 사라지면서 대정전이 시작됐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지난달 29일 전체 전력의 60%가 순식간에 사라졌다고 했다. 초기에는 이상기후와 ‘유도 대기 진동’ 현상 등이 주범으로 지목됐지만, 점점 재생에너지 과잉 의존과 ‘에너지 고립 섬’으로 무게가 옮겨가고 있다. 스페인은 풍력이 23%, 태양광이 17%나 돼 날씨와 시간에 따라 전력 생산이 들쭉날쭉하다. 지난달 16일엔 풍력과 태양광만으로 전력 수요의 100%를 초과 생산했을 정도다. 교류는 직류와 달리 전력이 과도하거나 부족하면 주파수 급변동→발전기 손상→대정전으로 이어진다.

 

보완 대책은 크게 4가지다. 우선, 양수 발전이다. 잉여 전력으로 하부 댐의 물을 상부로 끌어올렸다가 전력이 부족할 때 수력 발전을 하는 것. 둘째,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다. 셋째, 다른 국가들과 넘치거나 부족한 전기를 주고받는 전력망 공유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고립된 대표적인 ‘에너지 섬’이다. 넷째, 인프라 확충이다. 스페인은 최근 송배전 인프라 부족으로 자주 발전 출력을 제한해 왔다.

 

우리도 2011년 9월 15일 아찔한 순간을 겪었다. 무사히 여름을 넘기고 정비를 위해 원전 3기를 멈춘 사이 기록적인 늦더위로 냉방 수요가 급증해 대정전 위기를 맞았다. 대만은 2017년 8월 15일의 대정전으로 아예 국민투표를 통해 탈원전 정책을 폐기했다. 어느새 우리나라는 3∼5월이면 태양광 과잉 발전이 계절병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도 태양광 과잉으로 역송전, 변압기 과부하, 기전(棄電·전력 폐기) 등 골치를 앓고 있다. 일본 역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동북아 슈퍼그리드(전력망 공유)가 꿈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한·중·일은 에너지 섬으로 고립돼 있다.

 

암흑 세상은 가장 무서운 재난이다. 병원 환자들은 인공호흡이나 긴급 수술을 못 해 생명을 잃고, 2021년 2월 미국 텍사스주 대정전 때는 246명이 저체온증으로 숨졌다. 동북아 3국이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려면 유럽처럼 슈퍼그리드부터 구축해야 한다는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지적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더구나 한국은 반도체 공장이 많고 스마트폰이 넘쳐나는 초(超)연결사회다.

 

05-02(금) ‘검수완박 시즌2’ 자가당착

 

김세동 논설위원

 

대선 레이스 1위를 달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회 의석 170석, 조국혁신당·진보당 등 우당을 합치면 188석의 거대 여당을 거느린 지지율 90%(당 대선 후보 득표율)의 ‘이재명 대통령’은 그야말로 입법과 행정부를 통괄하는 절대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헌법재판관과 대법관 교체를 통한 사법부 장악까지 예정돼 있다.

 

그에게서 민주주의 구성·작동 원리인 삼권분립이 삼권통합으로 대체되면 유사(類似)전체주의로 가는 대로가 열리게 되는데 검찰,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국가 형사사법 체계도 문재인 정부 때의 ‘검수완박’보다 훨씬 악성으로 재편될 공산이 크다. 이 후보는 얼마 전 유튜브 채널에서 공수처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말했고, 검찰을 기소만 담당하는 공소청으로 격하하고 수사 기능을 떼 내 (중대범죄)수사청을 만들겠다는 취지도 밝혔다.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게 개혁이라면서 공수처의 수사·기소권은 놔두고 더 강화하겠다는 것도 자가당착이다.

 

앞선 민주당 정부 때도 어설픈 실험적인 개혁으로 반부패 수사 총량은 현저히 퇴보했다. 비상계엄 수사 과정에서 검·경·공수처가 보인 난맥상은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 원죄가 있다. 연 200억 원 정도 예산을 쓰는 공수처는 2020년 출범 이후 사실상 한 일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공수처장 포함해 검사 25명의 미니 조직에 대통령, 국무총리, 장·차관, 국회의원, 판·검사, 군 장성, 경무관 이상 경찰, 광역자치단체장, 교육감 등 거의 모든 고위공직자의 부패·직권남용·직무유기·피의사실 공표·공무상 비밀누설 등 거의 모든 범죄에 수사권을 준 것부터가 코미디 같은 발상이었다. 수사 연륜과 노하우가 없는 조직에 검사 정원을 어느 정도 늘려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공수처는 매몰 비용 아까워 말고 없애는 게 낫다. 정 유턴하기 민망하면 판·검사 범죄에만 국한한 수사 기구로 존치해야 한다.

 

검찰의 대통령 눈치 보기를 고려해도 수사권 폐지는 과잉 조치다. 수사권 대부분을 경찰에 넘긴 뒤에 벌어진 수사 기간 증가 등 폐해를 충분히 겪지 않았나. 검찰이 권력 눈치를 보는 건 인사권 때문이다. 검찰 개혁에 진정성이 있다면 중립적인 검사 인사권 방안부터 찾으라.

 

05-07(수) ‘투잡’ 사장과 최저임금

 

문희수 논설위원

 

생계형 ‘투잡’ 자영업자가 계속 늘어 사상 최대라고 한다. 본업만으로는 가계 자금이 부족해, 밤에 아르바이트·부업을 하는 영세 소(小)사장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것이다. 치솟은 최저임금 부담에 직원을 한 명도 못 두는 ‘나 홀로 사장’이 급증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팍팍한 자영업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자영업자는 폐업 등으로 크게 감소하고 있다. 7일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은 지난 2월 19.52%에서 3월 19.48%로 더 줄었다. 두 달 연속 역대 최저치 경신이다. 이런 와중에 임금을 받는 아르바이트형 부업을 병행하는 자영업자는 올 1분기 평균 15만1894명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2.2% 증가했다. 2014년 1분기에 비하면 증가율이 37%를 넘는다. 같은 자영업으로 분류돼, 통계에 잡히지 않는 ‘N잡러’ 사장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투잡 대상은 음식 등 배달·대리운전·청소 등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이런 일자리를 찾기가 갈수록 힘들다고 한다.

 

최근엔 무인점포도 눈에 띄게 늘었다. 일종의 불황형 창업이다. 지난 3월 기준 프랜차이즈 무인점포 수는 9000개를 넘는데, 개인이 운영하는 무인점포를 합치면 1만 개를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무인점포는 코인 세탁소·아이스크림 판매점·스터디 카페·사진관·밀키트 판매점 등이 주류다. 창업비·운영비가 적게 들어 2030 청년 사장님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어려운 살림은 나아지지 않는다. 지난해 직원이 없는 자영업자 가구의 월평균 사업소득은 314만8615원으로, 가계지출(343만6312원)에 못 미쳤다. 이런 소득으로 직원 채용은 어림없다.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 원을 넘는 탓에, 한 명 채용하려면 4대 사회보험료를 합쳐 최소 월 227만 원이 든다. 월급 받던 직장을 나와 자영업에 뛰어든 50대 이상 사장의 48.8%는 월수입이 최저임금도 안 되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할 최저임금위원회가 최근 가동에 들어갔다. 노동계는 최저임금이 최저 생계비에 못 미친다며 지난해 인상률(1.7%)보다 더 높은 인상을 요구한다.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영세 소상공인은 한숨만 나올 뿐이다. 이젠 최저임금을 유연화할 때가 됐다.

 

05-08 트럼프와 ‘미테랑의 길’

 

이미숙 논설위원

 

프랑스 지도자 프랑수아 미테랑(1916∼1996)은 사회당 출신 첫 대통령으로서 대내적으로 사회적 단합을 이루면서 대외적으로는 유럽 통합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된다. 비전과 카리스마, 경영 능력을 모두 갖춘 정치인이라는 후한 평도 받는다. 그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이오밍 페이가 설계한 유리 피라미드를 세울 정도로 혁신적이었다. 또, 파리 외곽 센 강변에 비즈니스 구역 라데팡스를 조성해 도시의 아름다움과 효율성을 조화시키는 데도 기여했다.

 

1981년부터 14년간 이어진 미테랑 시대는 프랑스의 좋았던 시절로 꼽히지만, 미테랑의 집권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집권 초 주요 산업 국유화,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등 사회당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좌편향 정책으로 주요 경제 지표가 추락하며 경기가 얼어붙자 미테랑은 재정 긴축 정책을 펴며 실용주의 정책으로 전환했다. 공산당이 연정에서 탈퇴한 뒤엔 본격적인 정책 우클릭을 폈고, 이후 미테랑은 중도파와의 연합 정치를 통해 장기 집권 시대를 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전쟁으로 인해 대내외적으로 궁지에 몰리는 기류다. 취임 100일 지지도는 40% 이하로 역대 재선 대통령 가운데 가장 낮은 기록이다. 관세 전쟁 파장이 심해지자 트럼프는 연준(Fed) 의장 경질 압박을 접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지금이 트럼프의 미테랑의 순간인가’라는 사설에서 ‘트럼프의 행태는 40여 년 전 프랑스 사회주의자 대통령이 했던 역사적 유턴 사례를 환기시킨다’며 미테랑의 교훈을 짚었다. 시장의 반발에 부닥친 좌파 정책을 전면 폐기한 뒤 성공적으로 국정을 이끈 미테랑의 길을 가라는 권고다.

 

트럼프는 관세 전쟁이 성공하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중국이 고관세를 맞고도 버티자 초조해하는 조짐이 역력하다. 한국 등 주요국에 대한 상호관세 발표 후 90일 유예 조치를 했고, 애플·엔비디아에 대한 관세 예외도 추가로 발표했다. ‘외국 제작 영화 100% 관세 부과’ 방침도 밝힌 지 하루 만에 “아직 미정”이라고 말을 바꿨다. 갈팡질팡하며 땜질 조치를 하는 형국이다. 미테랑처럼 성공하려면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트럼프가 미테랑의 길을 갈 것인지 말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

 

05-09(금) DJ 5번 죽을 고비와 李 1㎜ 천운

 

오승훈 논설위원

 

“나는 5번의 죽을 고비와 7번에 걸친 6년의 투옥, 55차례 가택연금을 겪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1995년 정계 복귀 후 선거 유세나 행사 때 종종 했던 말이다. 정치 역경을 압축한 팩트로, 인동초(忍冬草)라 불린 배경이기도 하다. 생사의 경계들에서 “신앙이 굳어졌다”는 고백(‘나의 길 나의 사상’)도 했다. 첫 고비는 6·25 때다. “인민군에게 붙잡혀 140명이 학살당하고 80명이 탈옥할 때 나왔다”고 했다. 1971년 총선 때 차량으로 유세 지원에 나섰다가 트럭과 충돌한 사고(고의 여부 불명)가 두 번째. 보좌관을 잃었고, 본인은 평생 지팡이를 짚게 됐다.

 

1973년 중앙정보부가 벌인 일본 도쿄 호텔 납치 사건 때 세 번째, 네 번째 고비가 왔다. 호텔 욕조에서 살해될 뻔한 데 이어, 공작선에 실려 온몸이 묶인 채 바다에 수장당할 위기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하반신은 상어한테 물려도 상반신이라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다섯 번째가 1980년 신군부의 내란음모 조작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최근 DJ의 수난사를 소환했다. 지난 6일 “조봉암도 사법 살인이 됐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내란음모죄로 사형 선고를 받은 일이 있다”고 했다.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선고를 ‘정적 제거’로 규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칼 맞고) 1㎜ 차이로 살았는데, (이번에) 법률적으로 죽이려면 죽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이 후보는 이날 ‘죽다’를 21차례, ‘살인’과 ‘피살’을 각 3차례, ‘살해’를 1차례 언급했다고 한다.

 

이 후보는 지난해 1월 부산 방문 중 범인이 개조한 칼에 목 부위가 찔리는 테러를 당했다. 얼마 후 김어준 씨의 유튜브에 출연해 상처 자국(자상 1.4㎝)을 보여주면서 “(찔린 곳이 동맥과) 1㎜ 차이였다. 의사들도 천운이라고 하더라”고 했다. 지지자들 사이에 ‘1㎜ 천운’이 퍼졌다. 최근 펴낸 책에서도 ‘하늘과 국민이 살려주셨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여기신 것 같다’고 썼다. 생명이 달린 일에 경중을 비교하거나 정치적 의미를 따질 건 아니다. 다만, DJ는 후일 “용서”를 말했고, 이 후보의 1㎜ 천운은 사법 살인 주장과 연결돼 전방위 ‘사법부 보복’의 시원이 되고 있다.

 

05-12(월) 결선투표 유용성

 

이현종 논설위원

 

매번 대선에서 겪는 고질병이 후보 단일화 진통이다. 이번에도 국민의힘이 김문수-한덕수 단일화 문제 때문에 후보 등록 막판까지 진통을 겪었다. 대선 때마다 여지없이 단일화 문제 때문에 막판까지 진통을 겪고 성사 여부에 따라 선거 결과가 달라졌다. 제15대 대선에서 DJP 단일화, 제16대 대선에서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제20대 대선의 윤석열-안철수 단일화는 성공적이었다.

 

각 진영이 단일화에 명운을 거는 것은 다당제 구조인 우리나라에서 보수와 진보가 늘 50%를 넘지 못하다 보니 중도 진영의 지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역적으로도 그동안 충청지역의 캐스팅 보트가 중요한 변수가 됐다. 이러다 보니 미국처럼 양당제가 굳어진 나라에서는 정책을 놓고 막판까지 대결을 하는 데 비해 우리는 단일화에 매몰돼 정책이 소홀히 다뤄질 수밖에 없다.

 

합종연횡이나 선거공학보다 정책에 집중한 선거가 되기 위해선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단일화 이슈가 너무 지긋지긋하고 이번 김문수-한덕수 단일화가 파국으로 치닫자 도입이 절실하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대선 결선투표의 대표적인 나라가 프랑스다. 2017년 대선에서 에마뉘엘 마크롱과 마리 르펜이 1차 선거에서 각각 24%, 21%를 얻어 결선투표가 진행됐다. 결선에서는 마크롱이 66%를 얻어 당선됐다. 2022년 선거 때도 마크롱이 27.8%, 르펜이 23.1%를 얻었지만, 결선에선 마크롱이 58.5%를 얻어 당선됐다. 극우정당 국민연합(RN)의 르펜은 1차에서 선전하지만, 결선에서 늘 패배했다. 결선투표를 하면 중도·온건 노선이 결집하기 때문에 극단적 세력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프랑스 이외에도 브라질, 칠레, 포르투갈, 루마니아, 핀란드 등이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결선투표가 도입되면 선거 때마다 논란을 벌이는 단일화 이슈가 사라진다. 반면, 비용이 두 배나 들고 투표율이 낮아지는 단점도 있다. 역대 대선 중 과반 득표를 한 것은 2012년 박근혜 후보가 51.55%로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유일하다. 과반을 얻은 대통령이 탄생한다면 집권의 안정성도 기할 수 있다. 단일화로 인한 국력 낭비와 혼란 비용은 선거비용을 충분히 대체하고도 남을 듯하다.

 

05-13 레오 14세와 AI

 

최현미 논설위원

 

새 교황이 선출된 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즉위명 정하기다. 주로 성인이나 역대 교황 중에 존경하는 이의 이름을 따른다. 즉위명은 초기 기독교 역사에선 존재하지 않다가 6세기경부터 자리 잡았다. 그 시조는 제56대 교황 요한 2세(재위 533∼535년)로 자신의 이름인 메르쿠리우스가 로마신화 속 상업과 교역의 신으로 ‘이교적’이라는 이유로 즉위명을 따로 썼다. 그 뒤로 가장 많이 사용된 즉위명은 요한(21명)이며 이어 그레고리(16명), 베네딕트(15명) 그리고 8일 선출된 제267대 새 교황이 선택한 레오이다. 사자를 뜻하는 레오는 강인함, 용기, 리더십을 상징한다. 실제로 제45대 교황이었던 레오 1세(재위 440∼461년)는 서로마제국이 외세 침략에 속수무책일 때 훈족과 반달족을 물리친 것으로 유명하다.

 

새 교황 레오 14세는 지난 10일 추기경단 연설에서 자신의 즉위명에 대해 직접 설명했다. “레오 13세(재위 1878∼1903년)가 역사적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통해 처음으로 산업혁명의 맥락에서 사회 문제를 다뤘다”며 “오늘날 교회는 또 다른 산업혁명과 인간의 존엄, 정의, 노동 수호에 새로운 도전을 제기하는 인공지능(AI) 발전에 대응해 사회적 가르침이라는 보물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혁명 초기인 1891년 ‘새로운 사태’를 통해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노동자권리, 국가의 약자 보호 의무 등을 밝힌 레오 13세를 계승해 우리 시대 새로운 혁명, 특히 AI 혁명에 대해 근본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최근 가톨릭 교회는 AI에 깊은 관심을 보여 왔다.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해 AI 위해성에 대해 연설하고 1월에는 세계경제포럼(WEF) 총회에 서한을 보내 “AI는 인간 존엄성을 해치지 않고 공동선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술이 불평등을 심화하고 갈등을 악화시킨다면 진보가 아닌 퇴보” “윤리 없는 기술은 인간을 억압한다”고 밝혀 왔다. 개인은 새 기술 익히기에 바쁘고, 제도와 법률·윤리는 기술 발달 속도에 한참 뒤지는 시대, AI 담론의 한 축을 자임한 교황의 일성은 휘몰아치는 기술 혁명 속 우리의 과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05-14 KDI의 팔정도(八正道)

이철호 논설고문

 

기획재정부는 작년 9월 “견조한 수출·제조업 중심 경기회복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고 헛다리를 짚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고금리 기조로 내수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고 했다. 결국, KDI 진단이 맞았다. 한국의 경기 사이클은 미국·일본처럼 4∼5년 주기로 순환되는데 수출 의존도가 높아 외부 충격에 더 민감하다. KDI의 경기 진단은 어떤 경제정책이 필요한지, 각 경제주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려주는 풍향계다.

 

KDI가 지난 12일 드디어 ‘경기 부진’을 선언했다. 5개월 연속 ‘경기 둔화’를 경고해 오다 한층 더 암울한 단계로 끌어내린 것이다. KDI는 지난주 2040년대 잠재성장률이 0%로 주저앉는다는 섬뜩한 묵시록도 내놓았다. 국책 기관답지 않게 정치권 눈치 살피지 않고 용감하게 나서는 모습이다. 지난 30여 년간 보수·진보 정권에 따라 코드 맞추느라 독립성 논란이 증폭돼온 다른 국책 연구 기관들과 비교된다.

 

한국의 본격적인 성장은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7∼1971년) 때부터다. 박정희 대통령이 총지휘자였지만, 그 밑그림을 설계한 인물이 이르마 아델만(Irma Adelman·1930∼2017)이다. 미 메릴랜드대-UC버클리대 교수를 역임한 세계적 개발경제학자다. UC버클리대는 추모록에서 ‘아델만 교수의 큰 정책적 기여는 한국에서 한 작업’이라며 ‘수출주도 성장, 관세 인하, 이자율을 두 배로 올려 인플레이션을 막아야 한다는 제안 등이 한국 경제를 크게 성장시켰다’고 평가했다.

 

그는 1972년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정부가 감사를 표하려 하자 “차라리 통도사의 ‘팔정도(八正道)’ 탑과 똑같은 석물을 KDI 정원에 세워 달라”고 했다. 양산 통도사 개산조당 앞의 이 탑은 불교 수도자들이 실천해야 하는 여덟 가지 덕목을 새겨놓았다. 정견(正見·바르게 보기)·정사(正思·〃 생각하기)·정어(正語·〃 말하기)·정업(正業·〃 행동하기)·정명(正命·〃 생활하기)·정진(正進·〃 정진하기)·정념(正念·〃 깨어 있기)·정정(正定·〃 집중하기) 등이다. 경제학자들도 올바르게 생각하고 올곧게 말해야 한다는 경구다. KDI는 서울 홍릉에서 세종시로 옮길 때 팔정도 탑부터 먼저 옮겼다. 앞으로도 KDI가 할 말을 하는 싱크탱크로 남아 있길 기대한다.

 

05-15 법복(法服) 입은 정치꾼

김세동 논설위원

 

법관대표회의가 오는 26일 ‘법원의 정치적 중립 및 사법 신뢰 훼손 문제’ 안건으로 회의를 연다. 이재명 대선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데 대해 더불어민주당이 조희대 대법원장과 대법관 9명에 대한 탄핵, 특검 수사, 청문회 등 초유의 사법부 겁박을 자행하는 와중에 결정한 일이다. 민주당의 재판 독립 침탈을 규탄하는 게 아니라 대법원장 공격이 주된 목표인 듯하다.

 

민주당은 이 후보의 허위사실공표 사건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가 2심에서 무죄로 나오자 희희낙락했다. 3심이 지난 1일로 잡혔을 때도 아무 소리 안 하다 유죄 취지 선고가 떨어지자 사상 초유의 사법부 파괴 행위를 벌이고 있다. 후보 자격 박탈형이 예고됐던 ‘범죄피고인’ 이 후보나 민주당의 반응은 그러려니 할 수도 있겠지만, 도저히 이해 안 되는 게 법관대표라는 판사들의 움직임이다. 사법부 존립을 흔드는 민주당을 규탄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손발을 맞춰 대법원장의 등에 칼을 꽂는 ‘내부 반란’ 같은 행태를 버젓이 저지르고 있다.

 

과거에도 ‘법복 입은 정치인’ 같은 판사들이 있었지만, 문재인 정부 이후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걸 거리껴 하지 않는다. 이 후보 선거법 1심 재판을 1년 4개월 끌다가 사표 낸 판사, 위증도 있고 교사도 있지만 위증교사는 아니라는 판사 등 법 원리와 상식을 깨고 정파에 복무하는 듯한 판결을 노골적으로 한 판사가 하나둘이 아니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 규정(제103조)은 버려진 지 오래다. ‘양승태 대법원’ 공격에 앞장섰던 최기상·이수진·이탄희 판사는 민주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됐고 김형연 판사는 대통령비서와 법제처장에 오른 것을 본본 것인가.

 

김주옥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지난 7일 법원 내부 게시판에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글을 올리며 법관대표회의 개최를 요구했다. 그는 “내심의 의사는 외관을 통해 추단할 수밖에 없다”며 “대법원장이 이 후보를 낙선시키려는 정치적 의도로 판결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명색이 법관이라는 사람이 대법원장의 내심을 독심술사처럼 ‘반(反)이재명 정치투쟁’이라고 단정했는데, 판사라기보단 법원에 위장취업 한 민주당 당원 같다.

 

05-16(금) K-원전 르네상스 예고

문희수 논설위원

 

미국이 중국·러시아에 뒤진 원자력 산업 키우기에 본격 나설 태세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원자력발전 용량을 2050년까지 현재의 네 배로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한국엔 조선에 이어 좋은 기회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100기가와트(GW)인 원전발전 용량을 2050년 400GW로 늘리는 행정명령을 마련했다. 내년부터 25년 동안 매년 1GW급 원전을 12기 새로 짓는 것이다. 원전 건설 속도를 높이고,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차세대 원자로에 미군의 자금 지원도 추진할 것이라고 한다. 앞서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050년까지 매년 전 세계적으로 대형 원전이 최소 16기 착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자력 르네상스가 열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국의 원전 확대는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인공지능(AI) 시대에 대응하는 동시에 중·러를 견제하려는 것이다. 미국이 차세대 SMR을 선도하는 현실도 고려했을 것이다. 미국은 1979년 스리마일 원전 누출 사고 이후 원전에 거리를 둬, 최근 30년간 가동된 원전이 3기에 불과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당시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화석연료 규제 완화를 강조한 바 있다. 미국은 94기의 원전을 가진 세계 최대 원전국가다. 트럼프 행정부가 2017년 이후 세계 원자로의 87%를 중·러에 의존하는 현 상황을 타개하겠다고 나선 것만으로도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K-원전이 도약할 기회다. 툭 하면 발목을 잡던 미 웨스팅하우스(WH)와도 이미 상생 동맹을 체결했다. 원전은 한미 관세협상과 통상 관계 재구축에도 조선과 함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최근 체코 원전 계약 서명이 프랑스의 방해로 지연되는 돌발 사태가 벌어졌다. 체코 정부는 K-원전의 경쟁력을 인정하며 한국의 수주는 변함없다고 단언한다. 그래도 안방인 유럽 시장을 지키려는 프랑스 등의 트집 잡기는 계속 시도될 가능성이 짙다. 주요 대선 후보들은 AI 산업 육성엔 한목소리다. 에너지를 늘리려면 원전은 필수다. 원전의 발전 비중은 지난해 31.6%로, 석탄·가스(각 28.1%)·신재생에너지(10.6%)를 제치고 18년 만에 다시 1위에 올랐다. 재생에너지 확대·감(減)원전 등으로 한눈팔지 말고 원전 활성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05-19(월) 트럼프家의 도둑정치

이미숙 논설위원

 

부유층이 재력으로 권력을 움직여 이권을 얻는 행태를 금권정치라고 한다. 지난해 미국 대선 때 3억 달러가량 쓰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이 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행태가 대표적이다. 머스크는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 일하면서 연방정부 시스템 접근 권한으로 수백만 미국인의 테라바이트급 기밀 데이터를 확보했다.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은 최근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테크노폴라의 역설’에서 ‘상원 보고서에 따르면 머스크가 연방정부에 대한 영향력으로 얻은 이익이 23억7000만 달러로 추산된다’고 썼다.

 

머스크의 이와 같은 행태는 트럼프 대통령 일가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권력에 대한 영향력으로 이권을 취하는 금권정치 수준이 아니라 대통령과 그 가족이 도둑정치(kleptocracy) 전면에 섰기 때문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트럼프 1기 때 이미 도둑정치 시대를 예고한 바 있다. 트럼프 주변 로비스트들로 인해 러시아에서와 같은 도둑정치가 만연할 것이라는 우려였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마이크 펜스 부통령 등 공화당 주류파의 견제로 인해 대놓고 이뤄지지 않았는데 2기 들어선 고삐 풀린 망아지 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첫 해외 순방인 중동 방문 때 카타르 왕실로부터 4억 달러짜리 보잉 항공기를 선물로 받았는데 전용기로 쓸 것이라고 한다. 외국의 초고가 선물은 누가 봐도 뇌물인데 팸 본디 법무장관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우긴다. 트럼프 가족기업은 지난달 카타르에 18홀 골프 코스를 조성하고 호화 빌라를 짓기로 계약을 했다. 카타르는 이와 함께 트럼프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의 투자 펀드에 2000억 달러를 투자한다.

 

트럼프 일가는 가상화폐 사업에도 적극적인데 아부다비 투자회사는 트럼프 가족이 운영하는 스테이블 코인 사업에 20억 달러 투자 계획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밈코인 트럼프, 퍼스트레이디는 밈코인 멜라니아도 발행, 수억 달러를 챙겼다. 이쯤 되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통령직이 우선인지 가문의 부를 늘리는 게 우선인지 헷갈린다. 미국 역사학자 앤 애플바움은 “독재와 도둑정치는 쌍생아”라고 했는데 미국이 부패한 독재자 시대로 퇴행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05-20 대선 논공행상

오승훈 논설위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16일 홍준표 전 대구시장 총리 기용설에 대해 “선거 중인데 그런 고민을 하겠느냐”면서 “누군가 어떤 직책 생각은 아직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번에는 인수위 없이 바로 정부가 출범해서 빠른 시간 안에 해야 되지만, 어떤 사람을 어떤 직책에 기용할 것이냐는 이긴 다음에 고민하겠다”고 했다. 이 후보가 대선 승리를 가정한 내각 구성에 대해 처음 언급한 것이다.

 

민주당 선거대책위는 연일 “사실이 아니다”는 공지를 하기 바쁘다. “취임 100일에 청와대 이전을 발표하는 등 하루 단위로 집권 로드맵을 준비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이재명 후보가 예비 내각 구성 준비에 착수하고, 부처별로 장관 후보군을 추천받았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18일엔 박찬대 상임총괄선대위원장이 나서 내부 입단속을 지시했다. 유력한 후보라고 해서 당선 전에 내각 구성 방안이 알려지면 오만하다고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일 것이다. “언론에 거명되면 낙마다” “골프와 선거는 고개를 쳐드는 순간에 진다”(박지원) 운운은 이 후보가 인용하기도 했다. 대선에 승리할 경우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논공행상(論功行賞)’으로 비칠까 경계하는 말들이다.

 

하지만 당 안팎에선 내각 인선 작업이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그런 작업을 하고 있지 않은 게 비정상이라는 얘기다. 지난해부터 집권플랜본부를 주도해온 김민석 공동선대위원장은 17일 방송 인터뷰에서 총리 인선 기준을 묻자 “철학”이라고 답했다. “첫째 역량, 둘째 어느 진영이냐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가려는 길이 같은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과거 불문, 미래 단합’ 기준이다.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다양한 분들이 선상에 올라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보수 인사의 파격 발탁도 가능하다는 의미로 들린다.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에게 직접 연락했다고도 했다.

 

‘화합형’보다 ‘개혁형’ 인선 전망도 많다. 강경파들의 입각설이 파다하다. 이 후보가 출마 선언 즈음엔 국민통합 메시지가 많았는데, 갈수록 강성 메시지가 많아져서다. 선대위엔 각 부문 위원회들이 즐비하다. 일종의 인재풀이다. 지난 15일에는 ‘미래교육자치위원회’가 출범했다. 싱크탱크를 자임했던 ‘성장과 통합’은 견제 등으로 간판을 내렸다.⊙

 

05-21 재판소원과 4심제

김세동 논설위원

 

이재명 대선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후 더불어민주당의 사법권 침탈 행태가 상상을 초월한다. 민주당은 대선 후 이 후보 면소(免訴)가 가능하게 허위사실공표죄를 개정해 국회 본회의에 올렸고, 선거법 외 대장동·위증교사·대북송금·법인카드 유용 등 나머지 4개 재판도 모두 중단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대선 직후 본회의를 통과시킬 태세다.

 

이 후보 한 명을 구하기 위한 초유의 위헌적 위인설법인데, 그중에서도 해악이 가장 심각한 게 대법원 확정판결도 헌법소원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헌법재판소법을 고치겠다는 발상이다. 국민 기본권 보장이라는 명분을 앞세웠으나 하필이면 지금 법안을 낸 의도는 뻔하다. 대법원에 대한 치졸한 보복과 ‘이재명 방탄’ 외에 다른 설명이 어렵다.

 

법원 판결이 헌법소원 대상이 되면 대법원 판결로 재판이 종결되는 3심제가 4심제로 바뀌게 된다. 국가 사법체계가 근본부터 뒤틀리는 것은 물론이고 소송 남발, 재판 지연으로 인한 시간과 재산 낭비, 막대한 재판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부자들만 유리 등 심각한 문제들이 벌어진다. 연평균 4만 건 이상 대법원에 올라가는 상황에서 9명의 헌법재판관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사건이 헌재에 폭주할 것이다. 무엇보다 4심제는 헌재를 대법원 위에 올리는 헌법 위배적 발상이다. 헌법 제101조 제2항은 ‘법원은 최고 법원인 대법원과 각급 법원으로 조직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4심제가 되면 최고 법원이 헌재가 된다.

 

조기 대선 직전에 여론 반발을 감수하고 이런 위헌적 입법을 시도하는 건 ‘이재명 재판중지법’ 등에도 안심하지 못해 한 번 더 방탄입법을 두르겠다는 속셈으로 보인다. 이 후보의 유죄는 사실상 확정됐고 형량 결정만 남은 파기환송심 선고가 나오면 헌재에 제소해 무죄를 받아내겠다는 계산 같다. 대통령·대법원장·국회가 각 3명씩 헌법재판관을 지명·선출하는 규정상 171석인 민주당 정부에서 헌재 장악은 어렵지 않다. 4심제는 지금도 충분히 정파적인 헌재만 장악하면 대법원을 비롯한 사법부 전체를 민주당 정부 발아래에 둘 수 있어 삼권분립이 삼권합일로 변질하는 명실상부한 독재국가가 된다. 민주당과 이 후보가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국민이 저항해 막아야 한다.

 

05-22 절실한 ‘청년 일자리’ 공약

 

문희수 논설위원

 

고용 절벽이 심각하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지만, 이젠 위험 수위다. 특히, 좋은 일자리의 간판 격인 제조업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어 더욱 우려된다.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 중 제조업 비중은 올 들어 4월까지 15.5%까지 뚝 떨어졌다. 통계 집계 이후 최저치다. 지난달 취업자는 1년 전보다 12만4000명이나 줄어 2019년 2월 이후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제조업 취업자 비중은 산업화 시대엔 20%를 웃돌았고, 2000년대 중반 이후까지도 16∼17%를 유지했지만, 코로나19 이후엔 하락세가 가팔라지는 추세다. 반도체 경기가 회복되고 있지만, 내수 침체에다 미국발 관세 전쟁까지 겹쳐 고용 위기를 더욱 키우고 있다. 이젠 20대 취업자 비중이 60대에 뒤지는 역전 현상이 고착화한 실정이다.

 

고용 한파는 실업급여 급증으로 이어진다. 1조 원을 넘은 게 3개월째다. 지난달 고용보험 상시 가입자는 1년 전에 비해 1.2% 증가에 그쳤다. 4월 기준으로는 2020년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낮다. 4월 신규 신청자도 2.0% 늘었다. 정규직·비정규직 구분 없이 취업난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외국인 가입자가 1년 전보다 2만2000명 증가한 반면, 제조업과 건설업은 각각 19개월과 21개월 연속 감소세다.

 

이에 따라 실업급여는 2∼4월 1조 원대로 크게 확대됐다. 고용보험기금이 2022년·2023년 연속 흑자를 냈지만, 고갈 우려가 여전하다. 문재인 정부 때 자금이 바닥나 정부에서 빌린 돈이 10조3000억 원이나 돼, 누적 적립금(2023년 기준 7조8000억 원)을 훨씬 웃도는 탓이다.

 

주요 대선 후보들은 인공지능(AI) 육성 등 경제에 중점을 둔 10대 공약을 발표했다. 그러나 청년층에 가장 절실한 일자리 대책은 사실상 공백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오히려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주 4.5일제 도입 등 기득권층 보호를 더 중시하고,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일자리 대통령’이라며 여러 방안을 제시하지만, 무게감이 없는 게 현실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역시 최대 전략층인 청년 고용대책이 안 보인다. 고용이 최대·최선의 복지다. 일자리가 없는 청년들에겐 결혼·주거·출산·육아 등의 지원은 남의 일이다. 일자리를 경쟁하는 대선이 절실하다.

 

05-23(금) 얼치기 ‘호텔 경제학’

 

이철호 논설고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의 이른바 ‘호텔 경제학’이 갈수록 가관이다. 18일 토론에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에게 “돈만 돌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괴짜 경제학” “무한 동력이냐”는 십자포화를 맞아 비틀거렸다. 한계소비성향이 ‘1’이 돼야 한다는 지적에 “너무 극단적” “단편적인 생각”이라며 역공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후가 더 문제다. “경제는 순환이 중요하다는 취지였다”며 꼬리를 내릴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정면 대결을 선택했다. 20일에는 “‘승수효과’를 모르면 바보”라며 굽히지 않았다. 21일에는 “(호텔 경제학을) 이해 못 한다면 바보이고, 곡해하는 것이라면 나쁜 사람”이라는 독설을 날렸다.

 

대선에 때아닌 경제학 논쟁이 붙었다. 하지만 ‘호텔 경제학’은 2017년에 ‘사이비’로 정리된 지 오래다. 당시 이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 맞서 인터넷에 밈까지 올렸으나 줄기차게 ‘까였다’. 경제학자들은 애초 투입한 10만 원과 동일한 금액의 소비가 거듭된다는 가정 자체가 케인스의 ‘승수이론’에서 벗어난 것이라 했다. 소비자들이 번 돈을 모두 소비하지 않고 일부는 저축하기 때문에 ‘한계 소비 성향=1’도 비현실적 가정이라 비판했다. 거꾸로, 호텔 예약이 취소되면 반대 방향으로 메커니즘이 작동할 수 있다는 비난도 받았다.

 

가장 큰 문제는 단순화시킨 그림이었다. 경제학자들은 “케인스 재정정책과 거리가 멀다”며 “오히려 금융위기 때 구제금융 투입과 비슷한 아이디어”라고 선을 그었다. 친문 진영에서조차 “무한동력 창조경제”라 비아냥거리자 이재명 캠프는 당황했다. 결국, “비전공자인 지지자가 가볍게 그린 그림까지 정색해서 이론적으로 따지는 건 지나치다”며 물러섰다. 그렇게 없던 일이 됐던 ‘호텔 경제학’이 다시 무덤에서 돌아온 것이다.

 

재정 만능주의는 위험하다. 재정 승수효과도 2014년 0.8에서 최근 0.4로 떨어졌다. 민주당 대선 캠프도 호텔 경제학 역풍에 “짜장면 경제학이든 치킨 경제학이든 경기 진작이 핵심”이라며 열심히 물타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 후보 입에선 “나라가 빚을 지면 안 된다는 건 무식한 소리”라는 등 더 거친 표현들이 쏟아지고 있다. 호텔 경제학이 이 후보 대선 가도에 최대 리스크로 떠올랐다.

 

05-26(월) 영부인의 명품백

 

이현종 논설위원

 

“나는 단지 옷을 입은 것이 아니었다. 그 옷은 내가 누구이고, 누구와 함께하고 싶은지를 말해주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는 자신의 회고록 ‘비커밍’에서 패션에 대한 의미를 이렇게 정의했다. 패션은 가치관과 사회적 메시지를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재임 중 미셸은 전담팀을 구성해 옷과 가방, 보석 등에 엄청나게 신경을 썼다. 미셸의 전담 스타일리스트인 메레디스 쿠프는 브랜드 선정, 정치적 메시지, 가격과 이미지 조율 등을 담당했는데 J.Crew, 탈보츠, 제이슨 우 등 미국산 다양한 브랜드를 매칭했다. 미셸이 이런 옷과 가방 등을 착용하면 곧바로 이들 브랜드를 홍보하는 것이기도 했다. 패션이 곧 자국 산업 육성의 의미를 가진 것이다.

 

지난 2020년 8월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후보의 지지 연설에 등장한 미셸은 ‘VOTE(투표)’라는 글자가 들어간 목걸이를 하고 나왔다. 원하는 글자를 조합해 목걸이를 꾸밀 수 있는 제품이다. ‘투표하라’는 직설적 단어로 정치 메시지까지 전달한 것이다. 미셸의 목걸이 메시지는 폭발적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은 브로치를 회담 등이 있을 때마다 의미 있는 것을 꽂고 나와 ‘브로치 정치’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낼 정도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는 취임 당시에만 하더라도 이런 미셸을 벤치마킹해 국내산 저가 브랜드의 옷을 입고 공개 석상에 나타났다. 취임하기 일주일 전인 2022년 5월 3일 김 여사가 충북 단양 구인사를 방문했는데 당시 하얀색 셔츠와 함께 입은 검은색 A라인 치마가 5만4000원짜리여서 화제가 됐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통일교 측 인사가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샤넬백’ 사건을 보면 이것이 다 ‘쇼’였나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김 여사가 직접 받았는지 확인되진 않았지만, 1000만 원이 넘는 고가의 백과 6000만 원짜리 명품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이 직접 전달된 의심을 사고 있다.

 

김 여사는 사석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옷 사건을 비난하며 자신은 특활비 아닌 자기 돈으로 옷을 사겠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디올백, 샤넬백,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으로 더한 비난과 수사에 직면했다. 소문이 사실이라면 참담한 일이다.

 

05-27 경험의 멸종

 

최현미 논설위원

 

10대 청소년들이 친구와의 다툼을 고소·고발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최근 4년간 명예훼손죄 피의자 중 만 18세 이하 미성년자는 2021년 162명, 2022년 189명, 2023년 254명, 지난해 283명으로 늘어났다. 상당수 미성년자가 미성년자를 고소한 경우이다. 절반 이상은 범죄 요건도 성립되지 않아 불송치로 종결됐다고 한다. 10대들의 딥페이크, 사이버 불링 등이 심각해진 탓도 크지만, 갈등이 곧바로 고소·고발로 이어지는 세태도 생각해볼 거리다.

 

우리 청소년들의 친구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한국교육개발원의 최근 발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된다. 개발원이 만 15세 학생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6개국과 비교해 보니, 학습 능력에서는 수학·과학 2위, 국어 3위로 최상위였지만 친구 관계 형성에선 36위로 꼴찌였다. 삶의 향유 항목에서도 일상생활 27위, 여가생활 36위로 최하위였다. 공부는 잘하지만, 일상에선 행복하지 않다는 말이다. 실제로 서울시교육청의 최근 ‘서울학생종단연구’에서도 최근 3년간 초중고등학생 모두 우울감이 높아졌다.

 

동시에 나온 이들 경고에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원인은 소셜미디어였다. 자아 개념이 불완전한 청소년들이 SNS나 유튜브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소통하면서 관계 맺기가 어려워지고 심리적으로도 취약해진다는 것이다. 미국 문화 역사학자 크리스틴 로젠은 책 ‘경험의 멸종’에서 역사적으로 기술은 인간의 감각을 증폭시켜 왔지만, 오늘날엔 직접 경험을 앗아간다고 했다. 사람들은 SNS와 유튜브로 보고 듣고 만나고 심지어 맛보고, 기억은 데이터로 저장한다. 급기야 전 세계 청소년의 53%는 좋아하는 기술을 잃느니 후각을 잃겠다고 답했다. 살아있는 육체를 통한 직접 경험의 멸종 위기다.

 

05-28 되살아나는 ‘카터 악몽’

 

이미숙 논설위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난해 12월 100세로 타계한 지미 카터 제39대 대통령은 정치적 성향과 소속 정당은 다르지만, 주한미군 문제에 관한 한 공통점이 있다. 카터 대통령은 1976년 대선 때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공약으로 제시한 뒤 취임 후 밀어붙였다. 1979년 6월 서울 한미정상회담은 박정희 대통령과 카터 대통령이 주한미군 및 한국 인권 문제를 놓고 맞붙은 회담으로 기록된다. 카터 대통령은 한국의 군사비 증액을 요구하며 주한미군 감축을 압박했고 박 대통령은 “지금은 시기가 아니다”며 버텼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2월 공화당 소속 주지사협회 만찬 때 “왜 우리가 한국에 수많은 미군을 배치해서 그들을 지켜주느냐”면서 “그들은 제대로 비용 부담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선 패배 후 와신상담하던 그는 지난해 4월 ‘타임’ 인터뷰 때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할 것이냐’는 질문에 “왜 우리가 부유한 국가를 방어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주한미군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카터식(式) 부정적 인식은 당시만 해도 ‘현금인출기’ 같은, 한국에서 더 뜯어내기 위한 카드 정도로 이해됐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한 ‘주한미군 4500명 철수 검토’ 기사엔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할 대북 협상 관련 비공식 정책 리뷰 차원의 구상’이라는 대목이 있다. 미 국방부는 다음 날 “한미 간 논의된 사실이 전혀 없다”며 부인했지만 좀 찜찜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후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일방적으로 밝혀 논란이 일었던 일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카터 행정부 때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를 지낸 리처드 홀브룩(1941∼2010)은 2008년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정책을 변화시키기 위해 국무부에서 2년을 소진했다”고 했다. 박정희 시해 사건 이후 정세 변화와 관료들의 설득으로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감축 정책은 최종적으로 철회됐다. 홀브룩 같은 베테랑 외교관들이 대통령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땀 흘린 덕분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주변의 충성파들은 주한미군 문제까지 대북 협상 칩으로 쓰라고 아첨하는 형국이다. 한미동맹 여건은 북핵 위협 등으로 카터 시대보다 더 어려워졌는데 한국의 대미 외교는 멈춰 선 상태다. 큰일이다.

 

05-29 지지 선언 봇물의 명암

 

오승훈 논설위원

 

지난 27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은 온종일 각양각색 단체·모임의 대선 후보 ‘지지 선언’으로 북적였다. 노선을 갈아탄 ‘정치 철새’를 제외하고도 총 21건. 오전 9시 20분부터 오후 4시 40분까지 7시간 동안 20분 간격으로 이어졌다. ‘다문화 가정 및 귀화 국민’ ‘보건의료인 1만 명’ ‘청년과학자’ ‘청년모임’ ‘사회적경제인’ ‘평화 염원 목회자들’ ‘태권도단체’ ‘태양광 발전사업자’…. 28일엔 16건의 지지 선언이 있었다.

 

각 정당은 시민단체는 물론 직업·기능별 직능단체들을 대상으로 선거운동을 벌인다. 단체들도 민원 해결, 정책 수용 등을 조건으로 지지 선언을 한다. 합법적으로 집단 이익을 관철하는 방법이 된다. 법정단체인 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만 해도 가입 단체만 290여 개이고, ‘750만 직능인과 350만 소상공인을 대표한다’고 할 정도이니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폴리페서들과 법조인, 의사, 약사, 노동조합 등은 항상 등장하는 단골이다.

 

최근엔 급조된 듯한 임의 조직이나 사적인 모임까지도 총동원되는 분위기다. 국회 기자회견장 사용은 의원이 주선해야 한다. 본인들의 의지도 있지만, 의원이 주도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각 당 선거대책위는 사회·경제·문화·체육 등 전 분야로 조직화가 돼 있다.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만 해도 총괄본부 산하에 조직·직능·여성·노인·청년·대학생·장애인·농어민·종교로 나뉜 본부가 있다. 먹사니즘·잘사니즘·편사니즘·꿈사니즘·조국혁신·기본소득·2030·불평등타파 등의 전문가 그룹도 있고, 그 밑에 사회적경제·소상공인·보건의료·인권·다문화·문화예술·한반도평화 등 40개가 넘는 위원회가 있다.

 

이들의 주된 역할은 정책 개발은 물론 분야별 지지세력 조직화다. 선거 기여도를 계량화하는 데 지지 선언 ‘유치’만큼 좋은 것은 없다. 충성도와 실적 지표가 된다. 조직 주체도 성격도 막연한 ‘전문가 및 주권자’ ‘활동가’ ‘○○만들기모임’ ‘전국 점주’ ‘2030 청년’ 등의 명의로 기자회견을 하는 풍경이 늘어난 배경일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에 나서려는 사람들의 ‘증빙’ 수요도 적지 않아 보인다. 선거판에선 세 사람만 모이면, 누구나 무엇을 하건 모임을 만든다는 ‘3의 법칙’이 딱 들어맞는 말 같다.

 

05-30(금) 대통령의 ‘경호 받는 맛’

 

이현종 논설위원

 

대통령에 취임하면 가장 달라지는 것이 경호다. 대통령이 ‘경호’에 맛을 들이면 불통이 시작된다고 한다. 이전에는 편하게 인사도 하고 만날 수 있는 관계도 경호원이 배치되면 쉽지 않다. 대통령에게 직언하기 위해 만났던 정치인들도 대부분 경호의 기세에 눌려 아무 말도 못 하고 나왔다는 경험담을 들은 바가 있다.

 

오는 6월 3일 대선 투표와 개표가 이뤄지고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대통령 당선을 확정하면 그 순간부터 대통령경호처의 경호가 시작된다. 인수위 없이 취임하기 때문에 즉각 경호가 시작된다. 그때부터 “내가 대통령이 됐구나” 하고 실감한다고 한다.

 

대통령경호처는 27일 서울 강서구 대통령경호처 경호안전교육원에서 경호시범 행사를 열고 1963년 경호처 창설 이래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 과정에서 경호처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비등해지고 더불어민주당이 공약으로 경호처 축소를 내걸고 있다 보니 이런 행사를 통해 존재감을 과시하겠다는 의도다.

 

이날 행사 중 압권은 ‘퍼레이드 모터케이드’(Motorcade·의전 및 경호 목적 차량 행렬). 대통령이 이동할 때 경호는 맨 앞에 선도 차량이 교통정리를 한다. 그 뒤로 경찰 오토바이가 교차로 차단이나 주변 감시를 담당한다.

 

다음으로 경호 SUV(캐딜락 에스컬레이드)에 무장요원이 탑승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다. 대통령이 탄 차량은 ‘마이바흐 S650’으로, 6.0ℓ에 V12 엔진, 630마력으로 각종 테러에 대비할 수 있는 중방탄 차량이다. 현대차에서 만든 방탄차도 보유 중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경호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특히, 최측근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초대 경호처장을 맡으면서 과시형 의전에 신경을 많이 썼다.

 

이날 훈련에서 경호처는 승용차 4대가 약 30㎝ 간격으로 바짝 붙어 고속 주행하는 초고난도의 경호 운전 기술을 선보였다. 이를 위해 경호관들은 무선으로 소통하며 동시 제동, 동시 가속 훈련을 지속적으로 받는다고 한다. 호흡이 맞지 않으면 바로 차량이 추돌한다.

 

매일 죽는 연습을 한다는 경호관들은 목숨 바쳐 국가 원수를 경호한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이들의 명예를 훼손시키지 말아야 한다.⊙

 

午後餘談(문화일보) 202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