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321] 혈투 예고하는 미·중 - [340] '수퍼맨' 중국 탈출기

상림은내고향 2025. 3. 28. 15:09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종로문화재단대표 조선일보

2024. 11.15

[321] 혈투 예고하는 미·중

▲일러스트=김성규

 

고대 중국의 예법에서는 주인과 손님의 행동 절차를 세밀하게 규정하고 있다. 문을 들어선 손님은 집의 서쪽에서, 그를 맞이하는 주인은 동쪽에서 각각 움직인다. 주객(主客)이 동서(東西)로 나뉘어 서서 예법을 따르는 동작이다.

 

이는 분정항례(分庭抗禮)라는 성어로 정착했다. 예법이 이뤄지는 집 뜰[庭]에 양편으로 갈라져[分] 서로 대등한[抗] 예법[禮]을 진행한다는 뜻이다. 차별 없이, 대등하게 이뤄지는 예절의 집행 장면이지만 지금은 ‘서로 대립하다’는 의미로 쓴다.

 

전쟁터에서 싸움을 독려하는 도구로는 깃발과 북이 있다. 그를 써서 기고상당(旗鼓相當)이라고 하면 ‘싸우는 기세가 서로 비슷하다’는 뜻이다. 서로 한판 붙어서 승패를 가르려는 다툼의 엇비슷한 기운을 표현하는 성어다.

 

필적(匹敵)이라는 말도 있다. 서로 맞서서 동등한 수준의 싸움을 벌일 수 있는 두 편을 일컫는 단어다. 누가 위인지, 어느 쪽이 아래인지 가리기 매우 어려운 싸움을 일컫는 단어는 백중(伯仲)이다. ‘백’은 맏이, ‘중’은 그 아래의 지칭이다.

 

대등하게 맞서는 양쪽 형세가 저울의 수평을 이룬다고 해서 나온 말은 항형(抗衡)이다. 정분(鼎分)은 ‘삼국연의(三國演義)’를 바로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위·촉·오(魏·蜀·吳) 세 나라가 천하를 삼분해서 대립하는 형국이다.

 

가을걷이 뒤의 풍요를 나눠 갖는다는 뜻의 평분추색(平分秋色)도 세력 균형을 지칭한다. 그러나 올해 가을은 중국이 그리던 모습과 영 딴판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뒤 미국은 강력한 대중(對中) 공세와 제재를 예고한다.

 

더 이상 중국과 한가하게 예법을 논할 생각 없는 미국은 중국이라는 손님을 아예 문밖으로 내쫓은 뒤 싸울 태세다. 거센 육박전의 종합 격투기(MMA)와 모양새 중심의 쿵푸가 맞붙는 구도다. 바야흐로 미·중의 다툼이 혈투(血鬪)로 번질지 모를 분위기다.

 

[322] 황제의 철밥통 식구들

▲일러스트=김성규

 

일정 기간 일한 뒤 받는 급여를 예전에는 봉록(俸祿)이라 부르기도 했다. 봉질(俸秩)과 녹질(祿秩)의 앞 글자를 합쳐 적은 표현이다. 대개는 봉(俸)과 녹(祿), 질(秩)이 옛 벼슬아치가 받은 급여의 일반 지칭이라고 보면 좋다.

 

황제가 중심에 견고히 버티면서 아주 두꺼운 관료층을 이끌었던 옛 왕조 사회의 그림자는 짙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아직 정부나 공공기관에 재직하는 사람들의 수입을 황량(皇糧)이라고 한다. 황제[皇]가 주는 식량[糧]이라는 뜻이다.

 

임금이 먹는 어미(御米), 궁중에 바쳤던 쌀이라는 공미(貢米) 등의 명칭 또한 ‘황량’과 같은 맥락으로 쓰기도 한다. 더 노골적으로는 황제가 주는 밥이라며 황가반(皇家飯)으로 적는다. 왕조의 퇴영적 이미지를 벗으려는 이름도 있다.

 

공공 부문에서 나오는 식량이라는 뜻의 공량(公糧), 그런 영역에서 일하며 얻어먹는 밥이라는 의미의 공반(公飯) 등이다. 심지어는 정부 재정에서 지출하는 음식이라고 해서 재정반(財政飯)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황량’의 수혜자들이 누리는 특권을 가리키는 말이 있다. 깨지지 않는 무쇠 밥그릇이라는 지칭의 철반완(鐵飯碗)이다. 한번 몸을 들이면 죽을 때까지 누리는 공무원들의 혜택을 비꼬는 말이다. 우리는 흔히 ‘철밥통’으로 부른다.

 

무쇠 밥그릇을 지닌 중국 공무원 등의 수가 이제 1억명을 넘었다고 한다. 그들이 이끄는 식솔(食率)까지 합하면 14억 중국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할 듯하다. 이들은 집권 공산당의 변함없는 충성 계층이지만 한편으로는 비효율과 특권의 상징이다.

 

공산당은 체제 안정을 위해 이들 수를 더 늘려야 하는 처지다. 따라서 비효율과 특권, 거기서 빚어지는 부패는 더 만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점차 늘어만 가는 무쇠 밥그릇의 무게가 중국이라는 큰 배의 순항(順航)을 가로막는 그림이다.

 

[323] 울적한 중국

▲일러스트=김성규

 

울릉도는 독도와 함께 우리 동해를 지키는 섬이다. 빽빽한[鬱] 구릉[陵]의 섬[島]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현재 울릉도의 명칭은 본래 순우리말 이름을 한자로 옮겨 적다가 생겨난 결과로 봐야 좋겠다. 그 맨 앞 글자가 참 어렵다.

 

울(鬱)은 우선 획수가 많아 외워 적기에 불편한 글자다. 그래서 한자를 간소화해 쉽게 적느라 분주한 중국은 이 글자를 아예 욱(郁)으로 줄여 쓴다. 그럼에도 본래 생김이 복잡하고 외우기 어려운 이 글자의 쓰임은 의외로 아주 많은 편이다.

 

우선 카레의 주요 재료인 강황(薑黃)을 달리 울금(鬱金)으로 적기도 한다. 노랗다 못해 샛노란 색을 띠니 짙은[鬱] 노랑[金]이라 표현했던 모양이다. 튤립을 한자로는 울금향(鬱金香)으로 옮겼는데, 강황과는 직접 관련 없는 번역어다.

 

필획이 빽빽한 이 글자는 곧잘 마음속 그늘을 가리키기도 한다. 뭔가에 눌려 갑갑해지는 경우를 일컫는 단어가 억울(抑鬱)이다. 걱정이 쌓여 도지는 심사는 우울(憂鬱)이다. 근심에 잠겨 답답해지는 상황은 침울(沈鬱)이다.

 

가슴에 빼곡하게 노여움이 겹치는 상태를 우리는 울분(鬱憤)이라고 적는다. 아예 불을 끌어들여 “울화(鬱火)가 치민다”고 말할 때도 있다. 그 답답한 마음이 쓸쓸함으로 이어지는 때는 울적(鬱寂), 불평불만이 그저 쌓이기만 하면 울적(鬱積)이다.

 

중국사회에 ‘묻지 마’식 살인이 잦아졌다. 앞서 언급한 비틀어지고 뒤틀리는 기운인 여기(戾氣)와 함께 이 ‘울’의 조어 행렬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아지지 않고 어려워져만 가는 경기(景氣)와 실업(失業)이 우선의 원인으로 보인다.

 

거기에 빽빽한 나무숲처럼 울창(鬱蒼)하다고 해도 좋을 공산당의 오랜 통제와 억압이 사람들을 마구 짓누른다. 그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길거리 범죄에 나서는 모양이다. 음울(陰鬱)과 암울(暗鬱)을 떠올리게 하는 요즘 중국이다.

 

[324] 미국은 순한 羊이 아니다

▲일러스트=김성규

 

아름답고 멋지며, 훌륭하고 예쁘다는 뜻을 모두 품는 한자가 미(美)다. 글자는 양(羊) 한 마리가 있고, 그 밑을 ‘커다랗다’는 뜻의 대(大)라는 글자가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그로써 위의 글자 새김이 나왔으리라는 추정이다.

 

그러나 이는 글자 본래 꼴을 보기 전까지의 풀이다. 125년 전 발굴한 한자 초기 갑골문(甲骨文)을 보면 이 글자는 머리에 장식을 단 사람 모습이다. 치장을 한 사람이라는 맥락에서 ‘아름답다’는 뜻을 얻었으리라 본다.

 

아무튼 이 글자가 아메리카라는 나라의 대표적 한자 명칭으로 쓰인 지는 제법 오래다. 그러나 중국은 처음 미국과 접촉하면서 그 명칭을 음에 따라 적었다. 그런 음역(音譯)에 따라 나온 초기 한자 지칭이 미국(米國) 또는 미국(彌國) 등이다.

 

화기(花旗)라는 이름도 나중에 등장했다. 이는 음역이 아닌 의역(意譯)에 가까운 말이다. 울긋불긋한 미국의 국기가 꽃[花] 같다고 해서 나온 단어다. 그에 따라 중국은 미국을 화기국(花旗國), 그곳의 인삼을 화기삼(花旗蔘)으로 적었다.

 

지금 미국 지칭에 긍정적이면서 좋은 뜻의 ‘미’라는 글자가 붙은 것은 그 뒤의 일이다. 제국주의 열강 중 하나인 미국을 자기들 나름대로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할 때였다. 양계초(梁啓超) 등 개화기 지식인들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 취임 뒤 미국이 중국을 다시 드세게 압박할 분위기다. 그 근저에는 허장성세(虛張聲勢)를 감행하며 제 패권적 욕망의 칼끝을 숨김없이 드러낸 현재 중국 당국의 실책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커다란 양을 바라보며 적잖은 군침을 흘리던 중국이 머리에 단순 치장이 아닌 전투용 헬멧을 쓰고 다가서는 미국을 보면서 당황하는 형국이다. 한번 툭 대면 그대로 터져버릴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감이 팽배한 요즘 지구촌이다.

 

[325] 흥망성쇠를 비추는 거울

▲일러스트=김성규

 

중국인에게 인기 높은 당(唐)나라 태종 이세민(李世民)은 많은 일화를 남긴 군주다. 특히 혹독한 간언으로 유명했던 신하 위징(魏徵)과 얽힌 스토리가 항상 사람들 입에 오른다. 그는 잔소리가 심했던 위징이 죽자 몹시 슬퍼했다.

 

이세민은 위징을 사람 거울, 즉 인경(人鏡)으로 비유했다. 사람이면서[人] 자신의 모자람을 비추는 거울[鏡]이란 뜻이다. 제 모습을 살피게 하는 구리거울 동경(銅鏡), 과거 사례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고경(古鏡)도 언급했다.

 

그는 구리거울 동경으로 자신의 의관(衣冠)을 살펴 행동거지의 잘잘못을 따졌고, 옛 거울인 고경으로는 흥망성쇠(興亡盛衰)의 고비를 판단했으며, 사람 거울인 인경으로는 이해(利害)와 득실(得失)을 살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장구한 왕조 역사를 지닌 중국에서는 이 거울 이야기가 풍성하게 등장한다. 북송(北宋)의 사마광(司馬光)이 편찬한 정통 역사서 이름은 ‘자치통감(資治通鑑)’이다. 정치를[治] 돕는[資] 통시대적[通] 거울[鑑]이라는 뜻이다.

 

과거 통치 사례의 옳고 그름을 헤아려 현실 정치에 참고하라는 뜻의 제목이다. 우리 ‘동의보감(東醫寶鑑)’이라는 책 이름처럼 아예 ‘고귀한 거울’이라는 말로도 나온다. 점을 쳤던 거북 껍질을 인용해 귀감(龜鑑)이라고 적어 모범적인 대상을 이르기도 한다.

 

현대 중국에서는 아예 차감(借鑑)이라고도 쓴다. 남의 사례 등을 참고해 자신을 살피라는 권유다. 다른 사례에 견줘 비춰보고 즐기라는 감상(鑑賞)이라는 말, 잘 살펴서 판단을 하라는 단어 감정(鑑定)의 우리 쓰임도 제법 많다.

 

권력(權力)의 ‘권’은 본래 제 뜻대로 하는 임의(任意)와 자의(恣意)의 새김을 품은 글자다. 그래서 권력을 쥔 사람은 잘못을 범할 때가 많다. 기울어가는 중국, 혼란스러운 한국의 모든 정치인에게 흥망성쇠를 비출 역사의 거울이 필요한 시절이다.

 

[326] 좌천과 삭탈관직

▲일러스트=이진영

 

맹자 어머니가 아들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를 했다는 내용의 성어가 맹모삼천(孟母三遷)이다. 나쁜 짓 일삼다가 태도를 고쳐 착한 일 하는 쪽으로 행태가 변하면 개과천선(改過遷善)이다. 두 성어에 ‘천(遷)’이라는 글자가 들어있다.

 

어딘가에서 다른 한 곳으로 옮겨가는 행위를 일컫는 글자다. 모습을 달리하면서 옮기는 과정을 변천(變遷), 수도를 다른 곳으로 바꾸면 천도(遷都)라고 부르는 식이다. 장소를 옮기는 이전(移轉)은 달리 천사(遷徙)로도 적었다.

 

글자는 벼슬자리와 관련한 쓰임이 많다. 관직에서 승진하면 흔하게 교천(喬遷)이라는 말을 썼다. 높은 곳[喬]으로 이동한다는 뜻이다. 그 반대로 자리를 강등당하면 좌천(左遷)이다. 왼쪽보다 오른쪽을 더 높이 쳤던 옛 관념에서 비롯한 표현이다.

 

그래서 천객(遷客)이나 천인(遷人)으로 적으면 아예 귀양살이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있던 벼슬자리에서 쫓겨나 먼 곳에 살아야 하는 유배(流配)의 형벌은 달리 천적(遷謫)으로도 불렀다. 벼슬을 그저 낮추면 폄천(貶遷)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파면(罷免)도 파관(罷官)과 면관(免官)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둘 다 벼슬자리에서 쫓겨나는 일이다. 무거운 문책이 아닐 수 없다. 같은 개념으로는 해(解)도 있다. 요즘 말로 해직(解職)에 해당하는 말이겠다.

 

자리를 비워[除] 다른 이에게 준다(授)고 해서 관리의 임명을 제수(除授)라고 불렀는데, 그 자리에서 쫓아내는 일이 혁제(革除)다. 관직의 권한을 깎아버리거나(削), 아예 빼앗는(奪) 삭탈관직(削奪官職)은 우리도 잘 쓰는 말이다.

 

전제주의 틀에서 중국 관리의 힘은 막강하지만 부침(浮沈)도 퍽 심하다. 요즘은 잇따라 올라왔다가 부정부패로 곧장 낙마하는 중국 국방부장 자리가 큰 화제다. “높은 곳은 춥다(高處不勝寒)”고 했던 옛 시인의 말이 중국에서는 늘 사실인가 보다.

 

[327] 부패를 키운 중국인의 부뚜막

▲일러스트=박상훈

 

요즘도 세밑이면 중국인의 부엌이 바빠진다. 정확하게는 부엌의 부뚜막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신(神)이 상주한다고 중국인들은 믿는다. 그 신은 부뚜막을 관장하는 조신(竈神)이다. 달리 조왕(竈王)이라고도 한다.

 

중국에서 이 부뚜막 신을 향한 공경은 정중하며 끈질기다. 중국인의 민간 신앙은 혼란스럽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다신교(多神敎)에 속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이 부뚜막 신, 조왕은 거의 최상위 수준으로 꼽을 만한 숭배 대상이다.

 

그 부엌이 있는 가정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결정하는 유능한 신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옥황상제는 이 부뚜막 신이 매년 한 차례 올리는 ‘보고(報告)’로 그 가정의 선과 악을 판단한 뒤, 복을 줄지 불행을 내릴지 정한다는 설정이다.

 

집의 부뚜막에 거처하던 조왕은 세밑인 음력 12월 23일 하늘에 오른다고 한다. 며칠 뒤 돌아오는 여정이지만, 하늘에 그 집안의 잘잘못을 세밀하게 아뢰는 절차가 있어 사람들은 매우 긴장한다. 가정의 잘못이 까발려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 구성원은 조왕이 떠나기 전 그의 입을 막으려 노력한다. 조왕을 모시는 신감(神龕) 앞에 사탕을 잔뜩 바치는 방법이다. 달콤한 사탕을 한껏 먹어 입이 붙어버리면 ‘입막음’이 가능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달리 풍성한 음식을 그 앞에 진설(陳設)해 조왕을 회유코자 하는 떠들썩한 풍속으로 중국인들은 세밑을 보내고 새해 맞을 준비를 한다. 본래 불[火]을 소중히 다뤄야 했던 인류의 옛 습속이 이런 신앙으로 중국에 뿌리를 내렸다.

 

‘뇌물(賂物)’과 ‘밀고(密告)’ ‘감시(監視)’의 흐름이 뚜렷하다. 사람과 조왕, 하늘이 이 세 가지 행위로 서로 묶여 돌아간다. 여기서 ‘사람’은 일반 중국인, ‘하늘’은 집권 공산당, ‘조왕’은 숱한 관료 아닐까. 끊이지 않는 중국의 부정부패를 보며 든 생각이다.

 

2025.01.02(목)

[328] 궁궐에서 벌어지는 일

 ▲일러스트=이진영

 

일정한 곳에 집 여러 채가 늘어서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가 궁(宮)이다. 그러므로 이 글자의 초기 새김은 ‘집’이나 ‘거처’ 등이었다. 그러나 담으로 둘러싸인 구역에 여러 집채가 있다는 맥락에서 뒤에는 ‘궁궐’의 뜻으로 자리 잡는다.

 

대개 중국 초기 통일 왕조였던 진한(秦漢) 무렵이라고 설명한다.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의 아방궁(阿房宮)이 그런 지칭으로서는 퍽 유명하다. 아주 많은 집채가 들어서 있어 제왕의 궁궐은 흔히 구중(九重)이라는 수식이 따른다.

 

구중궁궐(九重宮闕), 구중심처(九重深處) 등이다. ‘구중’의 앞 글자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의 뜻으로 이해해야 좋다. 그러니까 ‘구중’은 아주 많은 겹을 가리킨다. 그 안에선 길을 잃기 쉬워 미궁(迷宮)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법하다.

 

제왕이 직접 거주하는 곳을 법궁(法宮)이나 정궁(正宮)이라 했다. 그보다는 조금 떨어지는 궁궐은 이궁(離宮)이나 별궁(別宮)이다. 정궁을 대체할 수 있는 곳이다. 행궁(行宮)은 임금이 자주 행차하는 곳에 지은 건축이다.

 

왕조의 다음 세대를 이어갈 세자(世子)가 머무는 곳 또한 중요했다. 보통 동궁(東宮)이라 적었고, 달리 춘궁(春宮)이라고도 했다. 세자의 별칭인 저(儲)를 써서 저궁(儲宮)으로도 적었다. 정궁 못지않게 중요한 곳이었다.

 

요즘 해외 중국어 언론들이 핍궁(逼宮)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한다. 우리 쓰임은 아예 없는 표현이다. ‘궁을 압박하다’의 뜻이다. 실제로는 쿠데타, 반란(叛亂), 반역(叛逆), 역모(逆謀)의 뜻이다. 중국 군부의 동정이 수상하다는 관측이다.

 

중국은 “예쁜 꽃도 백일은 못 넘긴다(花無百日紅)”는 말을 곧잘 쓴다. 우리 ‘화무십일홍’과 같다. 어떤 권세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중국도 혼란에 휩싸이는지, 나라 안팎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329] 운때가 온다 한들

▲일러스트=박상훈

 

우리는 운때라는 단어를 잘 쓴다. ‘운(運)’이라는 한자와 순우리말인 ‘때’의 합성어다. 맥락이 비슷한 한자 단어로 적으면 시운(時運)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러나 자신에게 닥치는 것의 순서로는 시간이 먼저일까, 운이 우선일까.

 

중국에서는 시래운전(時來運轉)이라는 성어를 즐겨 사용한다. 때에 이르러서는 운도 따라 바뀐다는 뜻이다. 홍콩에서 만든 영화의 제목으로도 쓰이면서 우리에게 익숙해진 성어다. 현재 처한 역경(逆境)에서 벗어난다는 의미가 강하다.

 

‘산굽이 돌자 새 길이 나타난다(峰回路轉)’는 뜻의 성어도 있다. 북송의 구양수(歐陽修)가 ‘취옹정기(醉翁亭記)’라는 글에서 사용했다. 답답한 길의 굽이를 돌자 새로 나타나는 풍경을 그렸다. 역시 어려움이 평안함으로 바뀐다는 의미다.

 

막다른 산에서 앞이 보이질 않고, 물길마저 끊기는 경우가 있다. 망연한 그때 버드나무 우거진 그늘 밑, 화사한 꽃무리로 시선을 옮기다가 새 길을 찾는다. 그로부터 나온 성어가 유암화명(柳暗花明)이다. 남송 시인 육유(陸游)의 시에서 나왔다.

 

혹독한 삶 속에서 기대고 싶어지는 말들이다. 그만큼 중국인의 인생길은 참 고단했던 듯하다. 예나 지금이나 중국 민간이 좋아하는 금붙이 장식을 보면 그 점이 충분히 느껴진다. 대개가 다 ‘시래운전’을 기원하는 장신구들이다.

 

그러나 운때라는 것이 온다 한들 대비하지 않는 사람은 그를 놓치기 십상이다. 그래서 어려운 때일수록 더 준비에 힘을 쏟을 필요가 있다. 국내외로 맞이하는 정치·경제 환경이 모두 열악해져 큰 난국(難局)을 맞이한 중국이다.

 

그럼에도 집권 공산당은 출로(出路) 찾을 준비에 바쁘다. 운과 때가 닥치면 국면을 전환할 능동적인 채비다. 그에 비하자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한국의 상황은 난국(亂局)이다. 방향을 가늠조차 하기 어려우니 그저 첩첩산중(疊疊山中)이다.

 

[330] '거짓'이 망치는 중국 음식

 ▲일러스트=박상훈

 

요리(料理)라는 단어는 뭔가를 이치에 맞게 다룬다는 뜻의 동사로 읽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덧 먹고 마시는 음식의 대명사로 자리를 잡았다. 일본어 영향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제는 중국 음식을 중국요리나 중화요리라고 곧잘 부른다.

 

중국인들이 ‘음식 만들기’를 지칭할 때 즐겨 쓰는 단어 하나는 팽조(烹調)다. 익히고[烹熟] 맛내는[調味] 두 행위의 종합이다. 팽임(烹飪)이라는 단어도 일반적인 뜻의 ‘음식 만들기’지만 두 글자 모두 ‘익히다’라는 의미다.

 

훌륭하게 만든 음식은 고량(膏粱)으로 적기도 했다. 앞은 기름진 고기, 뒤는 맛좋은 밥의 뜻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성어가 고량자제(膏梁子弟)다. 좋은 집에서 태어나 기름진 음식을 먹고 자라는 부잣집 아이다.

 

이제 중국요리에는 흔히 채(菜)라는 글자가 붙는다. 그러나 본래 뜻은 채소로 만든 음식을 가리켰다. 고기를 넣지 않은 요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요즘 중국은 반(飯)과 섞어서 ‘반채(飯菜)’라고 한다. 먹는 밥과 요리의 통칭이다.

 

우리가 잘 쓰는 말은 반찬(飯饌)이다. 앞의 ‘반채’와 같은 뜻이다. ‘채’에 해당하는 다른 글자는 효(肴), 진(珍), 수(羞) 등이 있다. 진수성찬(珍羞盛饌)이라는 성어는 우리가 곧잘 쓴다. 미효(美肴), 가효(佳肴), 주효(酒肴) 등은 술안주다.

 

중국음식을 이야기할 때는 산해진미(山海珍味)라는 말을 곧장 떠올린다. 땅과 물에서 나는 재료로 화려하고 장중하게 차린 음식이다. 손님을 접대하는 자리에 늘 따라다니는 수식이다. 심한 경우는 용간봉수(龍肝鳳髓)라고도 한다.

 

용의 간, 봉황의 골수라는 뜻이다. 접대 문화가 매우 발달한 중국다운 과장이다. 그런 호들갑에 이제는 불량한 식재료가 판쳐 큰 문제다. ‘거짓’이 횡행하면서 중국음식의 명성이 망가진다. 국제사회에서 외면당하는 요즘 중국의 처지와 닮았다.

 

[331] 과음과 숙취, 그리고 인사불성

▲일러스트=김성규

 

됨됨이가 아주 크고 멋져서 다른 이와 잘 어울리는 사람의 마음을 흔히 아량(雅量)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그러나 의외의 새김도 있다. ‘술 잘 마시는 이’의 뜻이다. 본래는 이 단어가 큰 술 그릇을 가리켰던 데서 비롯했다는 설명이 있다.

 

7되들이 술 그릇은 백아(伯雅), 6되짜리는 중아(仲雅), 5되 정도는 계아(季雅)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아(雅)’는 술 그릇의 고정 명칭으로 자리를 잡았고, 주량(酒量)이 대단한 사람에게는 ‘아량’이라는 별칭이 따랐다고 한다.

 

집의 문(門)을 가리키는 호(戶)도 마찬가지다. 대호(大戶)는 살림이 넉넉한 집이라는 뜻과 함께 술 잘 마시는 사람이라는 새김도 있다. 그 반대는 소호(小戶)다. 역시 가난한 집이라는 의미 외에 주량이 적은 이를 지칭한다.

 

옛 동양의 술은 대개 증류주가 아닌 탁주 위주였으니 한 말들이 술인 두주(斗酒), 그것을 사양치 않는 두주불사(斗酒不辭) 등의 표현이 가능했을 듯하다. 그런 기세로 술을 많이 마셔 크게 취하는 경우를 일컫는 단어가 명정(酩酊)이다.

 

특히 우리는 술을 마신 뒤 횡설수설하거나, 남에게 불편을 끼치는 행위를 가리켜 “주정(酒酊)을 부린다”고 한다. 의외의 표현이지만, 취향(醉鄕)도 술을 마시고 몸조차 잘 가누지 못하는 모습을 지칭하는 단어다.

 

미훈(微醺)은 약간의 취기가 있는 경우, 숙정(宿酲)은 지난밤 술이 아직 깨지 않은 숙취(宿醉)와 같은 말이다. 술에 만취해 정신을 못 차리는 곤드레만드레는 ‘흠뻑 취하다’는 뜻의 난취(爛醉)라는 단어가 곧장 어울릴 듯하다.

 

전날 들이켠 술에 미처 깨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작취미성(昨醉未醒)이다. 그로써 인사불성(人事不省)에 이르면 개인사도 나랏일도 다 엉클어진다. 중국도 고량주를 과음했는지 큰 몸집이 퍽 흔들린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명정, 숙취, 난취가 다 겹친 듯하다.

 

[332] 악명 높은 중국 관리 '도필리'

▲일러스트=김성규

 

칼과 붓이 함께 등장하는 도필(刀筆)이라는 말이 있다. 종이가 없어 죽간(竹簡) 등에 글자를 썼던 시절의 이야기다. 붓으로 죽간에 글을 쓰다 틀리면 그를 긁어내서 다시 써야 했으므로 칼과 붓은 늘 함께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이 단어는 공무 집행하는 사람을 가리켰다. 도필리(刀筆吏)라고 하는 명칭이다. 이는 과거 왕조시대 공식 관원(官員)을 돕는 하위 공무 종사자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흔히 아전(衙前)이라 했던 사람들이다.

 

지금과 다르지만, 과거에는 우리도 ‘벼슬아치’와 ‘구실아치’를 구분했다. 앞은 공식 선발 과정을 거쳐 뽑은 고위직, 뒤는 그 절차 없이 지방 관아에 발을 들인 하위직 공무원이다. 여기서 ‘구실’은 백성이 내는 세납(稅納)을 가리킨다.

 

지방 공무 체계의 바탕인 이들 아전은 보통 향리(鄕吏) 또는 서리(胥吏), 이속(吏屬) 등으로도 부른다. 그러나 ‘도필리’는 아전 중에서도 문자(文字)를 취급하는 쪽이다. 따라서 서리(書吏), 부사(府史)라고도 불렸다.

 

중국에서는 이 ‘도필리’의 명성이 아주 좋지 않다. 이들은 주로 형벌(刑罰)과 소송(訴訟)을 다루면서 권력을 보좌했던 참모 그룹이다. 옛 형명(刑名)을 다루는 일이니 지금으로 치면 사법(司法) 종사자를 일컫는 말이다.

 

청(淸)대에 이들은 각종 송사(訟事)를 주무르며 글자 하나로 사람 생명도 해치고, 막대한 이권을 삼키는 일로도 유명했다. 옳고 그름의 시비(是非)를 뒤흔들고,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며, 증거를 날조하는 행위로 특히 악명을 떨쳤다.

 

공산당을 보조하는 중국의 사법체계도 이 ‘도필리’의 부활을 경계한다. 그러나 이젠 한국 일부 판사·율사 등 법조인들이 그 흉내를 낸다. 벌써부터 다음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그런지, 계엄 사태 이후 줄곧 혼란만 부추긴다. 마음이 아주 음험했던 옛 ‘도필리’들이 환생한 듯하다.

 

[333] 봄 같지 않은 봄

▲일러스트=박상훈

 

중국인들이 비운의 절세 미녀로 꼽는 사람이 있다. 한(漢)나라 때의 왕소군(王昭君)이다. 황실 궁녀로 대궐에 들어갔다가 북방 흉노에게 끌려가 일생을 보냈다는 여인이다. 그녀의 한(恨) 많은 곡절에 중국인들은 가슴을 친다.

 

궁중의 화가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은 그녀 모습은 추하게 그려졌다. 궁녀의 초상화를 보고 추녀(醜女)를 선발하려는 사전 작업이었다. 이어 흉노의 위협에 못생긴 궁녀를 바치기로 한 결정에 따라 그녀는 고국을 떠나 먼 이역에 끌려간다.

 

왕소군은 춘추시대 서시(西施), 삼국시대의 초선(貂蟬), 당(唐)나라의 양귀비(楊貴妃) 등과 함께 중국의 ‘4대 미녀’로 꼽힌다. 경우에 따라 실존한 흔적이 없는 초선이 빠지고 항우(項羽)의 우희(虞姬)가 대신 꼽히기도 한다.

 

서시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말은 침어(沈魚)다. 빨래터에 있던 그녀의 미모를 보고 물고기들이 가라앉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왕소군은 낙안(落雁)이다. 그녀의 용모를 보려고 기러기들이 내려앉았다는 얘기다.

 

초선은 폐월(閉月), 양귀비는 수화(羞花)다. 달이 낯을 가리고, 꽃조차 부끄러워한다는 뜻이다. 모두 대단한 과장이지만 문학적 수식이어서 지금까지 사람들 입에 곧잘 오른다. 특히 왕소군의 슬픈 인생은 문학적 소재로도 많이 쓰였다.

 

그중 시 한 편에는 우리에게도 제법 잘 알려진 글귀가 나온다. 당나라 동방규(東方虬)는 낯설고 물선 땅에 들어선 그녀의 심사를 이렇게 상상했다.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네(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북녘 땅이라고 해서 왜 꽃과 풀이 없을까만, 불우한 처지에서 맞이하는 봄이 그저 스산할 뿐이라는 ‘춘래불사춘’의 푸념은 공감대가 크다. 미국의 거센 압박에 직면한 중국의 봄이 그렇고, 혼란 속에 미궁으로만 접어드는 우리의 봄이 더욱 그렇다.

 

[334] 동쪽 창에서 꾸미는 모략

▲일러스트=이철원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로 시작하는 우리 시조가 있다. 조선 숙종(肅宗) 연간에 활동했던 남구만(南九萬)의 작품이다. 밝은 아침이 왔으니 어서 일에 나서라는 권농(勸農)의 노래다.

 

여기서 ‘동창(東窓)’이 건네는 이미지는 퍽 긍정적이다.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는 햇빛, 그리고 활기 넘치는 아침, 맑고 밝은 에너지 등이다. 우리 정서적 맥락에서 집의 동창은 대개 이 같은 의미를 크게 넘어서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인에게 동녘으로 난 이 창은 우리와 견줄 때 아주 별나다. 뭔가 꾸미다가 남에게 들켜버리는 경우를 일컫기 때문이다. ‘동창사발(東窓事發)’이라는 유명한 성어의 작용 때문이라고 해야 옳다. 남송(南宋) 시절 이야기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는 간신(奸臣) 진회(秦檜)가 주인공이다. 그는 명장 악비(岳飛)를 모함해 죽음에 몰아넣음으로써 북방 여진족의 금(金)나라에 왕조를 굴종케 한 혐의를 받는다. 나라 팔아먹은 희대의 간신 취급이다.

 

진회는 아내와 함께 동창 아래에서 그런 음모와 계략을 짰던 모양이다. 급기야 진회는 죽어 지옥에서 심판을 받을 때 “동창의 일이 탄로 났다”며 당황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나온 성어가 ‘동창사발’이다. 문학 작품에 등장해 유명해진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중국은 일을 꾸미는 획책(劃策)에 능하다. 좋게 말하면 깊이 생각하고 널리 따지는 심모원려(深謀遠慮), 나쁘게 표현하면 속임수에 가까운 권모술수(權謀術數)다. 중국인의 ‘동창’은 그 점에서 새겨볼 만한 단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거센 압박에 중국은 ‘딥시크(DeepSeek)’ 등으로 대응한다. 나름대로의 혁신을 담고 있는 기술이라지만, 그 속에 어떤 ‘동창’의 요소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중국은 세계인들이 품는 그런 의구심을 아직 풀지 못한 상태다.

 

[335] 수상쩍은 요괴 문화

▲일러스트=박상훈

 

서역에 가서 불경(佛經)을 얻으려는 현장 법사 일행 앞에는 숱한 요괴(妖怪)가 등장한다. 그중 요즘 말로 ‘좀비’에 해당하는 백골정(白骨精) 스토리가 유명하다. 이 요괴는 시골 아가씨, 부인(婦人), 늙은이로 둔갑해 나타난다.

 

마음 착한 현장 법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를 수행하는 손오공은 단번에 요괴임을 알아본다. 손오공은 뛰어난 무공으로 현장 법사를 잡아먹으려 다가서는 백골정을 물리치지만 법사에게 꾸지람을 듣다 쫓겨난다는 내용이다.

 

중국 4대 기서(奇書)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이 ‘서유기(西遊記)’의 설정이 그렇듯 중국은 요괴 스토리가 매우 풍성한 나라다. 요괴 세계에 관해 요즘 가장 풍부한 콘텐츠를 자랑하는 일본도 중국에 비해서는 한 수 아래다.

 

일부 추계에 따르면 현재 일본이 발굴한 요괴의 70% 정도는 중국이 원류라고 한다. 중국은 고대 ‘산해경(山海經)’ 이후 요괴 관련 설화를 꾸준히 발전시켜 온 곳이다. ‘서유기’는 명대(明代)에 그를 집성한 소설에 불과하다.

 

요괴 세계는 대개 사람 모습을 한 요(妖), 인간과는 다른 정(精), 혼백과 유령인 귀(鬼), 이상한 물체의 괴(怪) 등으로 나눈다고 한다. 과거 중국 민간의 풍성한 문화유산으로 이어졌으나 근대 이후 일본에 선두를 뺏겼다는 것이다.

 

최근 이 요괴 세계를 배경으로 한 중국 애니메이션 ‘나타(哪吒)2’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다. 탄탄한 구성, 할리우드에 뒤지지 않는 그래픽 기술로 대단한 흥행몰이에 나서고 있다. 중국 요괴 전통의 화려한 부활이다.

 

그러나 요괴는 사람의 ‘수상한 짓’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중국이 첨단 기술로 남의 것을 훔쳐 나르는 일이 꽤 빈번해졌다. 통신 장비 업체 화웨이(華爲), AI 분야의 딥시크 등이 그런 의심을 받는다. 중국의 요괴 문화는 영화 ‘나타2’에 앞서 일찌감치 기지개를 켠 듯하다.

 

[336] 낮고 초라한 중국 백성

/일러스트=김성규

 

한자의 초기 꼴을 살피다 보면 속으로 놀랄 적이 꽤 많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행위가 때론 아주 끔찍하다 싶을 때가 적잖기 때문이다. 평범한 일반 사람을 일컫는 민(民)이라는 한자 또한 그런 사례로 꼽을 만하다.

 

글자의 초기 꼴에는 전쟁 포로나 범죄자로 보이는 사람의 눈이 크게 등장한다. 아울러 그 아래에는 날카로운 꼬챙이로 여겨지는 물건이 함께 나온다. 이 글자의 초기 모습은 따라서 ‘일반 사람’의 새김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이 글자의 풀이는 대개 일치한다. 전쟁 포로나 범법자 등의 눈을 꼬챙이로 찌르는 동작이다. 그로써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는 뜻이다. 눈이 멀어 무기력해진 포로 등의 처지, 혹은 그런 행위의 결과인 맹(盲)을 가리킨다.

 

글자는 이후 전쟁으로 붙잡혀서 눈이 먼 사람, 더 나아가 그런 신세로 전락한 노예의 뜻을 얻는다. 임금 밑의 관료인 신(臣)이라는 글자 또한 붙잡혀 온 포로의 눈을 지칭했던 흐름과 흡사하다. ‘신’ 또한 초기 새김은 ‘노예’였다.

 

백성(百姓)은 흔히 통치자의 지배를 받는 뭇사람을 일컫는 단어다. 따라서 글자 ‘민’과는 뜻이 같다. 그러나 ‘백성’은 본래 성(姓)을 지닌 귀족 집단을 가리켰다가 전국시대 이후에야 지금의 의미로 자리를 잡았다는 설명이다.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의 사람들을 ‘검은 머리’란 뜻의 검수(黔首), 여민(黎民)으로 지칭한 적이 있다. 이 또한 나중에 백성과 같은 뜻으로 정착했다. 평범한 이를 하찮은 풀에 빗대 만든 초민(草民), 수가 많아 불렀던 서민(庶民)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 집권 공산당은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자 알리바바, 딥시크 등 자국 민영 기업의 역량에 다시 주목한다. 최고 권력자가 나서서 새삼 좌담회까지 열었다. 예나 지금이나 노예 취급받는 중국 민간의 기업들이 그런 공산당의 독려에 얼마나 호응할지 지켜볼 일이다.

 

[337] '농단'의 계승과 발전

/일러스트=김성규

 

중국 문명의 아침 녘 어느 무렵에 언덕을 열심히 오른 사람이 하나 있다. 그는 여기저기 널린 저자 거리의 흥정을 유심히 살폈다. 이어 남보다 매우 유리한 조건으로 물건을 이곳저곳에 옮겨 팔았다. 그로써 전체 시장을 지배했다.

 

높은 곳에 올라 시장 상황을 살펴 재빠르게 이익을 취했던 그의 스토리가 바로 농단(壟斷)이라는 단어의 유래다. 봉긋하게 높이 솟은 언덕(壟), 그곳에서 가격을 좌지우지(斷)한다는 엮음이다. 전국시대 ‘맹자(孟子)’에 등장하는 얘기다.

 

이 단어는 요즘 경제 용어인 독점(獨占)과도 통하는 말이다. 손아귀에 모든 것을 움켜쥐고 상황을 제 마음껏 주무르는 일이니 결코 좋은 뜻은 아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등장한 아이디어 하나는 이 단어보다 훨씬 고약하다.

 

천고의 명재상이라고 일컫는 춘추시대 관중(管仲)은 ‘농단’의 사고에 관해서는 원조다. 그는 ‘이익은 한 구멍에서 나와야 한다(利出一孔)’는 국가주의를 제창한 주인공이다. 이익의 출처가 여럿이면 급기야 나라가 망한다고까지 했다.

 

이어 재물을 주거나 뺏음으로써 백성의 가난과 부유함을 통제하는 모든 권력이 제왕의 통일적 지휘 아래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사고는 결국 진(秦)나라를 부흥케 한 상앙(商鞅)으로 이어져 법가(法家) 사상의 토대를 이룬다.

 

“당이 모든 것을 이끈다(黨領導一切)”는 중국 집권 공산당의 모토는 춘추전국시대에 굳어진 ‘농단’식 사고의 변함없는 계승(繼承)이다. 아울러 그 안에 담긴 ‘약민(弱民·백성을 약하게 만듦) 사상’의 현대적 구현이기도 하다.

 

민의를 대변한다고 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와 정치협상회의(政協)가 또 열렸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은 농단의 ‘언덕’을 너무 올라 이제 구름 위에 앉은 형국이다. 민의를 가장(假裝)한 요식의 정치 이벤트로 중국이 미국발(發) 태풍을 이겨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338] '뒤끝 작렬'의 중국

/일러스트=김성규

 

흰자위를 많이 드러내는 눈 모습이 있다. 한자 단어로는 흔히 백안시(白眼視)라고 한다. 쉽게 말하자면 흰자위가 커진 눈으로 상대를 흘겨보는 동작이다. 그 정도가 심할 때는 남을 매우 질책하는 듯한 시선으로 여겨진다.

 

사람의 동공(瞳孔)은 감정에 따라 크기가 달라진다. 낯설고 싫은 상대를 바라볼 때는 눈동자가 작아지고 흰자위가 커지는 백안(白眼)으로 변한다. 그러나 아기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동자는 커진다. 그런 눈빛은 청안(靑眼)이다.

 

째려보는 눈을 일컫는 다른 한자 단어는 애자(睚眦)다. 남을 책망하는 ‘애자’의 눈길로 나를 봤다고 해서 앙갚음을 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그렇듯 남의 작은 실수도 응징하려는 경우를 일컫는 중국 성어가 애자필보(睚眦必報)다.

 

우직한 늙은이가 산을 옮긴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 바다에 빠져 죽은 소녀가 새로 변해 바다를 메꾼다는 정위전해(精衛塡海)의 설화 배경도 보복이다. 통행을 가로막는 산, 위험한 바다를 향한 복수심이 큰일을 이룬다는 설정이다.

 

중국 언어에서 그런 복수 심리는 자주 등장한다. 같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함께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의 불구대천(不俱戴天)이나 불공대천(不共戴天)은 잘 알려진 표현이다. 부모를 살해한 원수 등에게 곧잘 쓰는 표현이다.

 

겨울에 내리는 눈은 설(雪)인데 때론 ‘씻다’라는 동사로 쓴다. 제가 받은 모욕을 잊지 않고 되갚는 행위가 설치(雪恥)나 설욕(雪辱)이다. 섶에서 쓸개를 핥으며 복수를 꿈꿨던 사례가 와신상담(臥薪嘗膽)이다. 풍성한 언어만큼 중국은 ‘뒤끝 작렬’을 보일 때가 많다.

 

요즘 중국의 복수심이 또 불탄다. 미국의 전방위 압박에 절치부심(切齒腐心)의 기술 혁신으로 맞선다. 그러나 미국의 압박을 자초(自招)한 제 잘못에는 아주 둔감하다. 그마저 혁신을 이룬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나라로 발전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339] 反中 정서 부르는 하류 이미지

/일러스트=이진영

 

우리 영화 가운데 ‘하류인생(下流人生)’이라는 작품이 있다. 밑바닥을 전전하며 성공에 다가선 한 사람의 생애를 영화로 만들었다. 그 ‘하류’는 물 흐름의 한 구간이라는 단순한 뜻 외에 사람의 비천한 지위도 함께 일컫는다.

 

중국에서는 일찍이 모든 사회 구성원의 등급을 분류하려 했다. 이른바 삼교구류(三敎九流)라는 구분법이다. 앞의 ‘삼교’는 우선 종교적이며 이념적인 지향을 말한다. 유교(儒敎)와 불교(佛敎), 도교(道敎) 등의 영역이다.

 

그다음 ‘구류’는 사람의 지위나 직능에 따른 구별이다. 높낮이를 매기는 상중하(上中下) 개념이 그에 가세했다. 첫째 상구류(上九流)는 황제를 포함한 고위 관료, 귀족 등을 지칭한다. 다음은 중구류(中九流)다. 지방 관료와 지식 계층이다.

 

맨 아래가 하구류(下九流)다. 사회 저층의 일반 백성과 바닥을 떠도는 유랑자, 예인(藝人), 무속인 등을 망라한다. 상중하의 각 ‘구류’는 사회의 상층부터 하층까지를 촘촘한 등급 개념으로 분류하고 차별화했던 토대다.

 

물 흐름에 불과했던 글자를 사회 구성원의 각 등급에 맞춰 ‘사람 집단’의 지칭으로 발전시킨 단초는 이렇듯 중국에서 비롯했으리라 본다. 나중에는 유파(流派) 등의 개념으로도 발전했다. ‘하류’는 ‘말류(末流)’로도 쓴다.

 

최상의 공산당 집권층은 전제(專制)에만 집착하고, 두꺼운 관료층은 부패에 절었다. 지식층은 그들에게 아부하느라 정신이 없다. 밑바닥 대중은 통치층이 펼친 국수주의(國粹主義)에 빠져 제 문제를 성찰할 줄 모른다. 중국의 요즘 풍경이다.

 

상중하 세 ‘구류’가 죄다 ‘말류화(化)’함으로써 현대 중국의 이미지가 망가진다. 그로써 지구촌에는 반중(反中) 정서가 계속 확산한다. ‘생산력의 질적 향상(新質生産力)’과 더불어 중국이 먼저 깊이 고민하며 다뤄야 할 나라와 국민의 수준이다.

 

03.28 

[340] '수퍼맨' 중국 탈출기

/일러스트=이진영

 

가지에서 떨어진 낙엽이 뿌리로 돌아간다는 고즈넉한 관념은 사실 잘못이다. 그를 말해주는 성어는 낙엽귀근(落葉歸根)인데, 떨어진 잎사귀가 뿌리로 돌아가기까지는 실제 장애가 많다. 우선 낙엽을 휘날리게 만드는 가을바람이 있다.

 

그 또한 성어로 남았으니 이른바 추풍낙엽(秋風落葉)이다. 차츰 거세지는 서북풍 영향으로 늦가을 나무들의 잎사귀는 마구 흩날리기 십상이다. 바닥에 떨어졌어도 겨울을 예고하는 강한 가을바람에 낙엽은 이리저리 휩쓸려 다닌다.

 

대륙 남단 차오저우(潮州)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발흥한 세계적 중국인 부호 리카싱(李嘉誠)이 요즘 아주 뜨거운 화제다. 2013년에 이미 중국 이탈 조짐을 비쳤던 그는 2023년에 이어 올해에는 아예 중국 내 자산을 대부분 정리했다.

 

최근에는 자신이 소유했던 파나마 운하 양단의 항구 경영권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 호응하는 미국 기업에 매각했다. 이로써 미국과 벌이는 대결을 두고 이곳에 전략적 사활을 걸었던 중국 공산당 정부에 큰 충격을 던졌다.

 

바람이 불면 무엇보다 먼저 눕고, 그 바람 지나가면 또 다른 어느 것보다 빨리 일어서는 질기고 질긴 경초(勁草)의 상인 기질이다. 그는 탁월한 경영 능력으로 중국 최고 부자에 이어 세계 10~20위 반열의 부호로 늘 이름을 올린다.

 

리카싱은 그런 빼어난 기회 포착과 위기 대응 능력으로 중국 사회에서는 ‘수퍼맨(超人)’으로 불린다. 올해 나이 97세인 그가 혈연과 지연의 뿌리로 돌아오라는 공산당식 ‘낙엽귀근’의 청유를 저버리고 ‘추풍낙엽’처럼 더 멀고 자유로운 서구로 떠났다.

 

그는 마침 자유와 평등의 옛 홍콩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중국이 홍콩의 활력을 없앰으로써 그 국제적 지위를 상실케 한 데 이어 홍콩의 상징적 인물마저 제 품에서 떠나도록 하고 말았다. 중국의 이런 실패는 누구 이름 앞에 적어야 할까.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