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왜 짓밟혔나] 조선일보/ [1] 입법부의 입법권 남용 - [4] 오락가락 법 해석 논란
[법은 왜 짓밟혔나] 조선일보 2025
01.23
[1] 입법부의 입법권 남용
정치적 이익 따른 입법이 지금 사태 불러… 법조계 "法이 장난인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찬대 원내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남강호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22대 국회 들어 과반의석(170석)을 앞세워 여당이 반대하는 법안들을 거침없이 통과시켜왔다. 이런 입법 폭주를 들여다보면 상당수가 ‘이재명 대표’로 귀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표의 대선 가도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장애물은 제거하기 위한 ‘위인설법(특정 개인을 위해 법을 만드는 것)’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법이 특정인의 사적·정치적 이익에 따라 다뤄지고 있다” “입법이 장난처럼 희화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22일 민주당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역화폐 발행 시 중앙정부가 의무적으로 재정 지원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지역화폐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재발의했다. 이 법안은 ‘전 국민 25만원 지원금’과 함께 대표적인 ‘이재명표 법안’으로 꼽힌다. 지자체의 재정 부담 여력에 따라 보조금 예산 신청액 일부를 정부가 감액할 수 있다는 조항이 추가됐지만, 여전히 정부의 예산 편성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조기 대선 전 통과를 목표로 다시 밀어붙이겠다는 방침이다.

▲그래픽=김현국
최종 폐기된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 ‘농업 4법’도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던 법안들이다.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사들이도록 하는 양곡법 등에 대해 정부는 “국가 재정에 과도한 부담을 주고 쌀 과잉 생산을 부추길 것”이라며 반대했지만, 이 대표는 “식량 주권이 걸린 안보 전략”이라고 했다. 농촌 표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양곡법은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는 ‘안 된다’고 하다가 정권을 내주자 ‘해야 한다’고 돌아선 법이다.
민주당은 이 대표 선거법 2심 판결을 앞두고는 ‘방탄용 법안’도 대거 발의했다. ‘반인권적 국가 범죄의 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도 당론으로 정해 강행 처리했고, 재표결을 앞두고 있다. 이 법은 수사기관의 증거 왜곡과 직권남용 등을 ‘반인권적 국가범죄’로 규정하고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내용이다. 민주당은 “검찰이 이 대표 관련 사건을 조작하기 위해 증인에게 위증하도록 하고 증거를 조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법이 통과되면 이 대표 수사 관련자가 평생 공소시효 없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에 모여 대화를 나누는 모습. 민주당은 지난 21일 여론조사 업체 관리·통제를 강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연합뉴스
박희승 민주당 의원은 작년 11월 이 대표 기소의 근거가 된 ‘허위 사실 공표죄’ 조항을 삭제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내놨다.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돼 최근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다음 대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박희승 의원 법안은 사실상 이 대표 유죄 근거 조항을 없애는 것으로, 법이 통과됐다면 이 대표 2심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의견이다.
피의자가 검사 기피 신청을 하도록 하는 내용, 검찰이 수감자 소환 조사를 못 하게 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최근 발의됐다. 한 법조인은 “이재명 대표와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기소된) 이화영 전 경기부지사 수사에 대한 불만에서 파생된 ‘보복성’ 법안들”이라고 했다.
최근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밀리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여론조사 업체의 관리를 강화하는 법안을 잇따라 발의한 것도 이 대표로 귀결된다. 복수의 민주당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주 당 지도부는 비공개회의에서 최근의 여론조사 추이와 관련해 장시간 대책을 논의했고, 이 자리에서 이재명 대표가 “이유는 정확히 알아야 한다”며 분석을 지시했다고 한다. 이후 민주당은 20일 ‘여론조사 검증 및 제도개선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하지만 최근 상대적으로 공신력이 높다고 평가받는 갤럽, 전국지표조사(NBS)에서도 민주당이 문제 삼는 ‘민주당 하락세, 국민의힘 상승세’가 일관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김어준씨가 운영하는 ‘여론조사 꽃’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민주당이 문제를 제기한 여론조사 업체 중 하나인 리얼미터 대표는 페이스북에 “과거 민주당이 높게 나올 때는 왜 그러한 지적이 없었는지 되묻고 싶다”라고 했다.
[2] 불신 키우는 사법부
수사권 조정 후 늘어난 '법의 회색지대'… 여론에 휘둘리는 판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로 구성된 공조수사본부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지난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공수처 수사관들과 경찰 인력이 3차 저지선을 뚫고 관저로 향하고 있다./뉴스1
12‧3 비상계엄’ 수사는 초기부터 검찰,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중 어느 수사기관에 내란죄 수사권이 있느냐로 논란을 빚었다. 문재인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은 더 이상 내란죄를 직접수사할 수 없게 됐다. 비슷한 시기 출범했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도 내란죄는 수사 개시 범죄가 아니다. 법조계에서는 경찰이 1차 수사해 송치하면, 검찰이 보완수사를 거쳐 피의자를 기소하는 게 법과 원칙에 부합한다고 했다.
하지만 경찰뿐 아니라 검찰과 공수처 3개 기관이 모두 수사에 뛰어들었다. 검찰은 수사 대상인 경찰이 내란의 공범이어서 윤 대통령 등 다른 피의자도 수사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고, 공수처는 대통령 직접 수사가 가능한 직권남용의 관련 범죄로서 내란죄도 수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사권 조정 이후 졸속으로 제도를 바꾸는 과정에서 발생한 ‘법의 회색 지대(Gray Zone)’ 탓이었다.
이런 부분은 결국 법원이 법과 원칙에 따라 해결해줘야 했고 실제 그럴 기회도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도, 공수처가 청구한 영장도 모두 발부해줬다. 특히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공수처가 경찰과 검찰 사건까지 넘겨받아 사실상 독자적으로 진행했지만 법원은 이를 전혀 문제삼지 않았다. 회색 지대에서 흑백을 가려줘야 할 법원이 ‘대통령을 빨리 수사하라’는 여론 압박에 휘말려 혼란을 부추킨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수사에 욕심을 낼수밖에 없는 수사기관에 대해 판사들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수사권을 정리해줬다면, 윤 대통령 등 피의자 측 반발을 누그러뜨리고 법적 혼란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법원 스스로 수사권 논란의 빌미를 키운 것”이라고 했다.
◇‘입법 난맥’ 중심 잡아줘야 할 법원이 제 역할 못해
윤석열 변호인단 소속인 윤갑근 변호사는 23일 공수처가 윤 대통령 사건을 검찰에 다시 송부하자 “(윤 대통령 체포 및 구속은) 수사권 없는 기관이 관할권 없는 법원에서 받은 불법영장을 집행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수처 수사의 불법성을 지적한 것인데, 법원도 처음에는 공수처나 검찰이 아닌 경찰에 수사권이 있다고 했다.

▲그래픽=이철원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작년 12월 9일 국회에서 “(내란죄는 검찰의 수사가) 가능한지에 대해 내부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다”면서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남천규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검찰이 청구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러면서 “(내란죄는) 검사도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의 범위 내에 있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김 전 장관의 공범 중 한 명인 조지호 경찰청장 등 경찰공무원 범죄는 검사가 직접수사를 할 수 있어 검찰에 이번 사건 수사권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공수처가 공수처법상 이첩요구권을 들어 경찰과 검찰에서 차례로 사건을 가져오면서 윤 대통령 수사를 독자적으로 하게 됐다. 공수처는 내란죄를 직접 수사할 수 없지만, 수사가 가능한 직권남용의 관련범죄인 내란을 수사할 수 있다는 논리를 댔다. 법조계에서는 “법정형이 징역 5년 이하인 직권남용을 내세워 최대 사형까지 처해질 수 있는 내란죄를 수사한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법원은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공수처 손을 들어줬다. 서울서부지법 영장전담인 이순형‧신한미 부장판사는 작년 12월 31일과 지난 7일 공수처가 청구한 윤 대통령에 대한 1‧2차 체포 및 수색 영장을 발부했다. 같은 법원의 차은경 부장판사도 지난 19일 윤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공수처의 수사권을 인정했다.
이 과정에서 공수처가 공수처법상 ‘원칙’인 서울중앙지법 대신 서울서부지법을 선택해 ‘판사쇼핑’을 했다는 논란이 불거졌지만, 당초 경찰에 수사권이 있다고 한 천대엽 처장은 윤 대통령이 구속된 다음 날 국회에 다시 나와 “결국 개별적인 재판 사항이고, 사법질서에 따른 재판 자체는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판사가 개별적으로 수사권과 관할권을 판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백지예 대법원 재판연구관(판사)은 지난 17일 법원 내부망(코트넷)에 직권남용죄는 현직 대통령 소추 대상이 아니라며 “관련범죄(직권남용)의 명목으로 공수처의 권한이 아닌 내란죄를 수사하면 본말이 전도된 논리”라고 했다.
임병열 청주지법원장도 백 연구관 글에 대한 댓글로 “검찰에서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수사를 처음부터 다시 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공수처에서 청구한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들은 아무 책임이 없는 것인가요”라고 했다.
[3] 재판 지연 3가지 이유
민사 1심에 평균 437일… '지연된 정의'가 국민들 분노 불렀다

▲2018년 12월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참석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재형 대법관, 조희대 대법관, 김명수 대법원장, 이기택 대법관. /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은 2023년 12월 취임사에서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지는데도 법원이 이를 지키지 못하여 국민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했다. 조 대법원장 취임 후 1년이 지났지만 ‘재판 지연’ 문제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24일 나타났다. 소송을 내도 재판부가 6개월 이상 기일을 잡지 않거나, 1년 반을 기다린 재판이 10분 만에 끝나는 일도 있다. 법조계에서는 “전임인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부터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작년 기준 민사 1심 합의부 사건 평균 처리 기간은 437.3일이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298.3일)보다 46.6% 늘어난 것이다. 2020년(309.6일), 2021년(364.1일) 2022년(420.1일)에 이어 2023년에는 473.4일을 기록했다. 작년 형사 1심 합의부 사건 처리 기간도 198.9일로 2019년(158.7일)보다 25.3% 늘었다.

▲그래픽=송윤혜
조 대법원장 취임 후 통계상으로 조금 개선된 것으로 보이지만, 소송 당사자와 변호사는 체감하기 어렵다고 한다. 한 변호사는 “작년 7월에 손해배상 사건을 맡아 법원에 소송을 냈는데 반년이 지났는데도 기일 한번 안 잡혔다”며 “피고 측은 답변서 하나 내지 않는데 재판부가 아무런 소송 지휘도 하지 않고 방치한다”고 했다. 수도권의 한 법원에선 형사사건 항소심을 접수한 지 1년 6개월이 지나 첫 재판이 열렸는데, 10분 만에 끝났다고 한다.

▲그래픽=송윤혜
법정 다툼을 벌이는 쌍방 당사자들이 판결에 불복하는 항소율은 4년 연속 증가 추세다. 민사 1심 합의부 사건의 항소율은 2020년 32.5%에서 2021년 41.7%, 2022년 45.3%, 2023년 48.5%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형사 1심 합의부 항소율도 60%대 중반을 맴돌고 있다. 재판이 늦어지면서 재판에 대한 불복 비율도 높아진다는 해석이 나온다.
①‘포퓰리즘’에 무너진 사법 행정
전현직 법관들은 재판을 잘하면 상을 주고 부족하면 질책하는 방향으로 ‘사법 행정권’이 행사되지 않으면서, 재판 지연이 심각해졌다고 지적한다.
김 전 대법원장은 ‘사법의 민주화’를 명분으로 고법부장 승진제를 없애고, 후배 판사들의 투표로 법원장이 되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 등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일선 판사들이 열심히 일할 동기가 사라졌다는 비판이 꾸준히 나왔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등 특정 성향 판사들이 법원행정처 주요 보직을 차지하기도 했다. 법원 내 엘리트로 꼽혔던 고법부장·고법판사들은 이 기간 매년 십 수명씩 법원을 떠났다.
조 대법원장은 취임 직후 법원장 추천제를 시행하지 않았고, 작년 11월에는 사실상 폐지하겠다고 했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이미 망가진 사법 시스템을 회복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②법관 선발 변화와 ‘워라밸 문화’
법관 선발 방식이 바뀌면서 일에 몰두하던 법원 문화가 사라진 것도 재판 지연 원인 중 하나다. 과거 사법시험 시절에는 사법연수원 성적이 특출난 20대 후반 인재들이 법원에 몰렸다. 이들은 선배 판사에게 새벽까지 도제식으로 교육받으며 재판을 진행하고 판결문 쓰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로스쿨 도입 후 법관 선발 시 ‘5년 이상’ 등 경력을 요구하게 되면서 이런 교육은 어려워졌다고 판사들은 말한다. 한 부장판사는 “요즘 신임 법관들은 로펌에서 일하다 온 30대 중반인데, 가정도 있고 자신만의 업무 습관을 이미 갖고 있어서 일을 새로 가르치기 어렵다”며 “과거와 달리 판사직을 일반 공무원처럼 생각해 ‘워라밸’을 찾아 법원에 오는 것 같다”고 했다.
③법원별 업무량 다른데 분석도 못 해
재판 데이터와 업무 부담 평가 등에 기반한 명확한 원인 분석이 없어 지연 문제가 수년간 악화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김두얼 명지대 교수 등이 발표한 ‘법원 업무의 현황과 과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법원별 판사 1인당 사건 수는 서울남부지법이 654건으로 가장 많았고, 춘천지법이 330건으로 그 절반에 그쳤다. 사건마다 특성이 다른 점을 고려해도 법원별 업무 부담의 편차가 너무 크다. 사실상 법관 인력 배치에 실패해 특정 법원에 일이 몰려 재판이 더 지연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교수는 “법원별 또는 판사당 업무 부담과 재판 지연 상황이 모두 다를 텐데, 법원이 매년 공개하는 일률적인 ‘사법 연감’ 통계로는 이를 파악하기 어렵다”며 “세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원인을 분석하는 일종의 ‘재판 처리·지연 백서’를 정기적으로 펴내고, 이를 바탕으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4] 오락가락 법 해석 논란
막판에야 "법대로"… 무원칙 대응으로 혼선 자초한 법원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뉴스1
법원이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윤석열 대통령 구속영장 기간 연장 신청을 두 차례나 불허한 이유는 한마디로 공수처가 기소를 요구한 윤 대통령 내란 혐의에 대해 검찰은 보완 수사를 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초기 법률상 내란 수사권이 없는 검찰과 공수처가 청구한 체포·구속영장을 광범위하게 인정했던 법원이 윤 대통령 탄핵과 수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커지자 뒤늦게 ‘법대로 하겠다’는 식으로 입장을 바꿨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론 따라 오락가락한 법원 판단
서울중앙지법 최민혜 판사는 지난 25일 검찰의 윤 대통령 구속 기간 연장 재신청을 불허하면서 전날 같은 법원 김석범 영장전담 부장판사와 비슷한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공수처 검사는 기소권이 없는 사건을 수사했을 때 증거물 등을 서울중앙지검에 송부해야 하고, 검찰청 검사는 공소 제기 여부를 공수처에 신속하게 통보해야 한다’는 공수처법 조문을 ‘엄격하게’ 본 것이다. 법 조항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 검찰은 기소를 할지 말지만 판단하면 되지, 추가로 보완 수사를 할 권리는 없다고 한 것이다.
이를 두고 법원이 여론에 따라 법 해석 재량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비상계엄 사태 초반 윤 대통령을 탄핵하고 수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을 때는 검찰과 공수처의 수사권을 폭넓게 인정하다가, 이후 공수처의 무리한 수사와 탄핵 심판 진행 등으로 윤 대통령 측에 유리한 여론이 조금씩 늘어나자 수사권을 엄격히 해석하는 쪽으로 다시 방향을 튼 것 아니냐는 것이다.
앞서 법원은 지난달 10일 김용현 전 국방장관의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검찰의 내란죄 수사권을 인정했다. 내란죄는 검찰이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가 아니지만, 조지호 경찰청장 등 경찰관의 범죄는 검찰의 직접수사 대상이어서 이들의 공범인 김 전 장관 등도 수사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법원은 이후 공수처의 내란 수사도 인정했다. 공수처에 내란 수사권이 없고, 영장 청구 법원도 법률상 관할인 서울중앙지법에 하지 않아 위법하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서울서부지법은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수색·구속 영장을 차례로 발부했다. 서울중앙지법도 윤 대통령이 청구한 체포적부심을 기각하고 공수처 손을 들어줬다.
▲그래픽=김현국
◇법원 내부 비판도 계속돼
이런 행태를 두고 법원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임병렬 청주지법원장은 최근 법원 내부게시판(코트넷)에 “판사들이 상대해야 하는 것은 대법원도, 동료 판사도 아닌 국민”이라며 “국민이 의혹을 갖고 있다면 해소해줄 의무가 있다”고 했다. 서울서부지법이 지난 12일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한 15자(字)짜리 윤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사유가 “국민을 설득하기에 충분치 않다”고 한 것이다.
전직 고법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앞으로 검찰은 수사가 부실하면 부실한 대로 공수처가 송부한 사건을 기소할지만 판단하라는 것인데 검찰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며 “공수처법이 허술해서 발생한 일인데 법원이 지금껏 제대로 정리를 하지 않아 발생한 문제”라고 했다.
◇구속 기간 만료 시점도 논란
법원의 윤 대통령 구속 기간 연장 불허 결정은 ‘구속 기간이 언제까지냐’는 새로운 논란 거리도 만들었다. 26일 윤 대통령 변호인단 소속인 윤갑근 변호사는 윤 대통령 구속 기간이 지난 25일 자정에 끝나 즉시 석방해야 한다고 했다. 검찰이 체포 및 구속한 피의자의 1차 구속 기간은 기본 10일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오전 10시 33분에 체포됐고, 체포적부심(10시간 30분)과 구속영장 실질심사(33시간)에 걸린 시간(총 43시간 30분)이 이틀(48시간)이 되지 않아 지난 15일부터 11일째인 25일 자정까지만 구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지난 수십 년간 형사 실무상 구속 기간은 시간이 아닌 날짜 단위로 계산해 왔고, 구속영장 실질심사에 사흘(지난 17~19일)이 걸린 만큼 체포적부심을 제외해도 구속 기한은 27일까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