午後餘談(문화일보) 2025-02/ 02-03(월) 현대차 美 공장 준공 ‘활용법’ - 02-28(금) 에코붐 세대
午後餘談(문화일보) 2025-02/
02-03(월) 현대차 美 공장 준공 ‘활용법’

문희수 논설위원
현대차는 미국 조지아주의 자동차 공장 준공을 앞두고 있다. 이 공장(HMGMA)은 76억 달러(약 11조 원)나 든 대형 사업이다. 현대차는 의미가 각별한 만큼 1분기에 대대적인 준공식을 열 계획이다.
흥미로운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참석이 추진된다는 점이다. 주요 장관급 인사들과 상·하원 의원들도 초청 대상이다. 바람직하다. 조지아주는 미 정치에서 민감한 지역이다. 트럼프 대통령 등 고위 인사들이 외면하기 어렵다. 유럽·일본 등은 진작부터 이런 이벤트를 교류·인맥 강화의 장으로 많이 활용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소통인 만큼 대정부 로비보다 효과도 훨씬 크다. 현대차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전기차와 배터리 보조금 축소·폐기, 대미 수출에 대한 보복 움직임 등 전방위적 압박이 예고돼 고심하고 있는 터다. 리더십 공백으로 비상인 정부로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호기다. 정부의 고위급 인사들이 준공식에서라도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의 고위 인사들과 회동하는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당선 이후 현대차의 2장짜리 브로슈어(홍보자료)가 미 정가에서 화제였다. 1986년 미국 진출 이후 총 205억 달러(약 30조 원)의 대미 투자, 57만 명이 넘는 고용 창출 등 현대차가 미 경제에 기여했던 성과들을 큼지막한 수치로 정리한 자료였다. 트럼프 당선인도 호평했다고 한다. 이번 HMGMA도 약 8500개 일자리를 만들고, 주변에 들어설 협력사 공장 등까지 합치면 1만3000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할 전망이다. 이런 기여를 적극 알리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더구나 미 상무장관 지명자가 한국과 일본이 미국을 이용한다고 언급하는 상황이다. 한국이 미국에 힘이 된다는 점을 각인시켜야 한다. 한국은 미국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나라다. 2023년 대미 투자에서 한국은 215억 달러로 1위였다. 대미 무역흑자(557억 달러)의 38%나 투자한다. 지난해 대미 수출의 51%는 반도체·자동차 부품 등 중간재다. 트럼프 행정부가 원하는 미 제조업 부흥에 필수적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즈니스에 밝다. 양국이 긴밀하게 연결돼 윈윈 효과를 낳는 파트너임을 납득시키는 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해가 쌓여야 양국 동맹이 더 진전할 수 있다.⊙
02-04 진짜 부정선거

김세동 논설위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31일 “정부·여당이 민생지원금 때문에 추경을 못 하겠다면 민생지원금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오래 주장해온 전 국민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 철회 뜻을 밝힌 것인데, 앞서 지난달 23일 기자회견 때 기본소득 등 기본사회 후퇴를 시사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선거 전술적 측면으로 보이지만 환영할 만하다. 성남시장·경기지사 때 시행한 청년소득·농촌기본소득 지급 등의 실험이 남긴 폐해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가 현금 살포 정책을 일단 접은 것으로 보이지만, 남긴 적폐는 현재 진행형이다. 설 연휴를 앞두고 일부 기초 지방자치단체가 지역민들에게 민생지원금을 뿌렸다. 나이나 소득에 관계없이 모든 주민에게 1인당 10만 원에서 50만 원까지 민생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나선 곳은 전남 영광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0월 보궐선거 때 이 대표가 기본소득 100만 원 지급을 공약한 데 따른 것으로, 영광군은 추석 때도 50만 원을 추가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이외 전남 보성 30만 원, 나주 10만 원을 비롯해 전북 김제(50만 원), 정읍·남원·완주(각 30만 원), 진안(20만 원), 경기 광명·파주 각 10만 원 지급 등이다. 재정자립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경기도 두 시가 30% 안팎에 불과하고 8개 전라도 시·군은 6.69%(진안)에서 17.67%(완주)에 그친다. 자체 수입으로 공무원 월급도 주기 힘든 곳이 다른 지자체가 낸 세금으로 주민에게 돈을 퍼주는 건 도덕적 해이를 넘어 범죄다.
10개 지자체장은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법상 중범죄인 유권자 매수라고 볼 수 있다. 벌써 강원 정선이 지난달 31일 1인당 30만 원씩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조례안을 가결하는 등 공짜 바이러스가 번져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명분으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면서 논쟁이 뜨겁다. 지난해 총선 때라면 254개 지역구 1만4259개 투표함에 가짜 투표지를 대량 집어넣어야 부정선거가 완성된다. 있었다고 해도, 중앙선관위 서버 해킹만으론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가 2020년 총선 때 코로나를 핑계로 4인 가구 기준 100만 원씩 지급한 것과 이번 지자체 설 명절 지원금 살포가 진짜 부정선거다.⊙
02-05 옥중 정치

이현종 논설위원
구속된 경험이 있는 역대 4명의 대통령 중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가장 긴 4년9개월(1736일)을 복역했다. 다음은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2년8개월(958일),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각각 2년 남짓인 750일과 767일 동안 수감됐다. 다들 사면복권으로 선고받은 형량보다는 빨리 석방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인 박정희 정권 시절 6년 수감 생활을 한 바 있다.
대통령직까지 올라갈 정도로 하루를 바쁘게 산 사람이 감옥에서 며칠도 아니고 몇 년을 산다는 것은 엄청난 정신적 고통이다. 군인 출신인 전·노 전 대통령은 비교적 수감 생활을 잘 견뎠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박 전 대통령은 각종 질병으로 병원을 자주 오갈 정도로 힘겨워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옥중 서신을 모은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라는 책 서문에 “정치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함께했던 이들이 모든 짐을 제게 지우는 것을 보면서 삶의 무상함도 느꼈다”고 털어놨다.
감옥은 형벌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사색과 성찰의 기회이기도 하다. 인도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는 딸인 인디라 간디에게 보냈던 옥중 편지로 유명하다. 네루는 1930년 10월 26일부터 3년간 옥중 생활을 하면서 간디에게 196편의 편지를 보냈다. 이 옥중 편지를 엮은 책이 유명한 ‘세계사 편력’이다.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도 투옥 중에 ‘옥중 수고’라는 명저를 남겼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6년간 옥살이를 하며 가족들에게 편지를 썼다.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의지와 자기반성, 국가와 국민을 향한 염원 등이 두루 담겨 훗날 ‘옥중 서신’을 펴냈다. 부인 이희호 여사는 DJ가 구속된 기간에 자신도 난방을 하지 않고 생활을 하다 관절염을 얻어 고생을 많이 했다.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3일 권영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나경원 의원을 접견했다. 윤 대통령은 이들에게 “나치 정권도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았는데, 더불어민주당의 독재가 그런 형태가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된다”면서 비상계엄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면회 온 의원들을 통해 메시지를 발신하며 ‘옥중 정치’를 본격화했다는 평이 나온다. 이젠 성찰의 시간도 필요해 보인다.⊙
02-06 非이재명 빅텐트論

오승훈 논설위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우클릭’에 여념이 없는 사이, 비명계 주요 잠룡들의 행보도 활발해졌다. 잇달아 야권의 본향 같은 호남을 찾는다. 김부겸 전 총리가 가장 먼저 7∼9일 광주·전남을 찾아 지역 인사들을 만난다. “총대를 메라면 메겠다”고 한 터다. 이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2심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자, “법원, 국민을 믿고 가는 것이 정도(正道)”라고 일침 했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13∼14일에 호남선을 탄다. 인재 영입부터 접촉면 확대까지 가장 왕성한 행보를 해온 편이다.
두 사람 외에도 이 대표와 지난 대선 경선에서 맞섰던 이낙연 전 총리(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는 10일,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이 대표와 일전을 벌였던 김두관 전 의원은 11일 광주에서 각각 기자간담회를 갖는다. 김 전 의원은 다음 주에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청해 면담한다. 김 전 지사는 지난달 말 “치욕스러워하며 당과 멀어지거나 떠난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이 대표와 친명계를 공개 비판한 이후 전선의 중심에 서 있다.
이들의 목소리는 ‘이재명 일극체제 타파’로 똑같지만, 점차 구체성을 띠기 시작했다. 연대론이다. 김 지사는 지난 3일 SNS에 “정권교체, 그 이상의 교체가 필요하다”면서 “‘새로운 다수 연합’을 만들어야 한다는 조국 전 대표의 말에 공감한다”고 했다. 조 전 대표는 옥중 인터뷰에서 “사회 대개혁을 이루려면 ‘새로운 다수 연합’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이 대표의 ‘성장우선론’으로 그게 가능한지 의문이 든다”고 견제구를 날렸다. 여기에 김 지사가 맞장구를 친 것이다.
김 전 총리는 5일 언론 인터뷰에서 “탄핵의 강을 같이 건너는 세력들을 다 포괄하는 연합을 이룰 때 대한민국을 다시 탄생시킬 수 있다”고 했다. 탄핵찬성 진영 통합론으로, 아직 ‘비이재명’을 특정하진 않았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유승민 전 의원까지 포함하는 플랫폼을 구상하느냐는 질문에 “개인을 거론할 단계는 아니다”고 했다. 비명계 원외 조직 ‘초일회’는 원로들과 잠룡들을 차례로 만난다. 이들의 움직임이 미풍일지 태풍일지는 예단할 수 없다. 다만, 이 대표의 선거법 재판 2심만이 아니라 노선 갈등도 야권 분화의 중요한 변수로 부상하는 듯하다.⊙
02-07(금) 트럼프의 新언론전쟁

이미숙 논설위원
미국의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AP통신, CNN 등은 백악관을 비롯해 주요 정부 부처 브리핑이나 기자회견 때 제일 먼저 질문하는 권한이 주어지고, 브리핑 룸에서도 맨 앞줄 좌석에 앉는 특권이 관행적으로 인정된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레거시 미디어를 미 정부 당국자들이 그만큼 존중하고 존경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백악관 브리핑 룸의 좌석은 50석이 채 안 되는데 맨 앞줄은 늘 NYT 등 주류 언론의 출입기자들이 앉고 첫 질문은 늘 미국 대표 통신사인 AP통신 기자가 하는 게 불문율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 초부터 인터넷 매체들과 팟캐스트 진행자, 유튜버, 인플루언서에게 문호를 확장하겠다는 명분으로 레거시 미디어를 따돌리는 전략을 펴고 있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 NYT, WP 등 주요 신문에 대해 “망해가는 신문사”라고 악담을 퍼부으면서도 적극적으로 인터뷰를 하며 정책 홍보에 나섰지만, 2기 들어서면서부터는 완전히 달라졌다. 폭스뉴스 출신 인사들을 내각 주요 직책에 대거 발탁한 뒤 주요 신문과 방송은 외면하면서 마가(MAGA) 성향 극우 매체 띄우기에 나선 것이다. 폭스뉴스 진행자 출신인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이 취임한 뒤 국방부는 출입기자실 좌석 순환제 실시 방침을 밝히면서 NYT, NBC, 공영라디오 NPR 등에 퇴거를 통보했다. 국방부 기자실을 이용하지 못했던 신생 매체에도 기회를 줘야 한다는 논리로 기존 언론사를 내쫓은 뒤 친(親)트럼프 성향 매체인 브레이트바트 등에 좌석을 배정했다.
백악관의 변화는 더 노골적이다. 캐럴라인 레빗 대변인은 기성 미디어 중심에서 탈피, 소셜미디어 기반의 1인 미디어와 인플루언서 등 뉴미디어에 취재 기회를 주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인들이 신문·TV보다 SNS를 통해 뉴스를 얻는다는 게 이유다. 레빗 대변인은 지난 1월 28일 첫 브리핑 때 AP통신을 외면하고 인터넷 매체 브레이트바트 기자의 질문부터 받았다. 유력 언론사 기자들이 앉는 맨 앞줄엔 추가 좌석을 배치해 인터넷 매체 기자들이 앉도록 했다. 이중으로 레거시 미디어를 조롱한 셈이다. MAGA 세력을 신(新)주류로 만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 미디어의 주류 교체로 이어질지 두고 볼 일이다.⊙
02-10(월) 중증외상센터 판타지

최현미 논설위원
‘중증외상센터’는 말 그대로 중증외상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다. 전문인력이 24시간 상주해 교통·추락 등 각종 사고 환자를 신속하게 진단하고 응급수술과 치료를 진행한다. 우리 중증외상센터 역사는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된 삼호주얼리호를 구한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부상당한 석해균 선장을 살려낸 이국종 당시 인하대 외상외과 교수(현 국군대전병원장)에게 빚지고 있다. 석 선장을 치료하는 45일 동안 단 하루 집에 갔다는 그를 통해 3D 중 3D인 외상외과 현실이 알려졌고, 이듬해 ‘이국종법(중증외상센터 설립을 위한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현재 17개 권역외상센터가 있다.
요즘 넷플릭스 비영어권 1위인 드라마 ‘중증외상센터:골든아워’는 이 교수를 모델로 드라마적 MSG를 잔뜩 뿌렸다. 전장을 누비던 천재 외과전문의 백강혁(주지훈)이 한국대학에 부임해 귀신같은 실력으로 환자들을 살려낸다. 그는 총탄 사이를 달리고, 헬기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오고, 흔들리는 차 안에서 개두술을 한다. 수술은 속전속결, 환자를 보자마자 상태를 알아맞히는 건 기본이다. 현직 의사인 원작자는 어려운 현실을 뚫고 나가려면 이 정도 초감각 의사라야 했다고 했다. 그래서 원작자도 이를 판타지 드라마라고 했다.
현실은 판타지와 다르다. 지난주 ‘중증외상센터’가 인기를 누리며 넷플릭스 신규 가입자를 잔뜩 늘려 놓고 있을 때 중증외상 전문의 산실인 고려대 구로병원의 중증외상 전문의 수련 센터는 운영 중단 위기에 처했다. 보건복지부가 매년 지원해온 5억 원이 삭감됐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5억 원을 긴급 지원하겠다고 나서면서 급한 불은 껐지만, 근본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항시 대기에 일은 힘들고 지원과 보상은 부족한데 의료사고 위험은 크다 보니 외상전문의는 매년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전국 외상전문의는 371명. 5년마다 하는 전문의 자격 갱신에서 올해 58명 중 12명만 갱신했다. 20.7%로 역대 최저다. 닥터헬기도 전국에 8대뿐이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 우린, 계속 뛰어야 한다!”는 의사 백강혁은 판타지지만, 그가 현실에 있다 해도 한 명의 히어로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의정 갈등 1년을 넘기며 지지부진하게 끌려가는 의료 개혁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02-11 트럼프와 북한 동영상

이철호 논설고문
2019년 2월 미북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됐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재수 없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때문”이라며 “인디언을 죽이던 백인 기병대장이 생각난다”고 극언했다. 좌파들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사전 공작이라거나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방미해 “비핵화 없는 대북 지원 반대”라며 재를 뿌렸다고 비난했다.
볼턴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을 보면, 의외로 두 개의 동영상이 변곡점이었다. 회담 보름 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본 첫 동영상은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모두 “북한과 대단한 협상을 이뤄냈다”고 자랑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뒤 북한이 어떻게 미국을 속여 왔는지 설명한다. 마지막은 소련을 붕괴시킨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확고한 태도를 고수하는 게 무조건 양보하는 것보다 낫다”고 강조하는 장면이다. 이 영상을 뚫어지게 보던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주도권을 쥐겠다”며 “언제라도 협상장을 박차고 나오겠다”고 다짐했다.
사흘 뒤 다른 동영상이 상영됐다. 전반부는 북한의 선전 영상에서 발췌한, 여전히 강력한 북한의 기동훈련 화면들로 채워졌다. 미군이 한반도 군사훈련을 유보하던 후반부 장면과 극명하게 대비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영상을 한 부 복사해 달라”며 관심을 보였다. 그는 10여 일 뒤 하노이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집요한 ‘스몰 딜’ 요구에 “그러면 내가 2020년 재선에서 질지 모른다”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실제로 “내 비행기로 북한까지 태워줄 수 있다”며 협상장을 박찼다.
좌파 쪽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제한 협상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다. 하지만 7일 미일 정상회담 성명에 ‘완전한 북 비핵화’가 명시됐다. 일부에선 일본 총리의 ‘아부 외교’ 산물이라고 깎아내린다. 하지만 2기 외교·안보 라인이 충성파들로 채워진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동영상을 통해 북한 핵 사태 본질을 꿰뚫고 있는 느낌이다. 더는 재선에 목맬 입장도 아니고, “김 위원장에게 다시 연락해 보겠다”는 뉘앙스도 6년 전과 다르다. 오히려 김 위원장이 “핵 무력 고도화”를 외치고 미사일 실험을 하는 게 오판이 아닐까 싶다.⊙
02-12 두 최측근 2심 중형과 李대표

김세동 논설위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최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지난 대선 때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이 후보 경선 자금 등을 받은 혐의로 지난 6일 열린 2심에서도 1심과 똑같은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이 대표가 성남시장 때 시의원을, 경기지사 때 도청 대변인을 지내는 등 이 대표 스스로 분신 같은 사람이라고 했던 김용이 ‘이재명 대통령 후보’를 만드는 과정에서 불법 자금 6억 원을 받았고, 그 돈이 1조 원 가까운 천문학적인 이익을 낸 대장동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이 대표에게 주는 타격이 작지 않다.
김용 2심 판결문에서 ‘이재명’이 131번, ‘경선 자금’이 29번 언급되면서 이 대표 책임론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재판부는 “개발사업은 성남도시개발공사와 성남시에서 결정해 추진한 것으로 보이고, 김용이 받은 정치자금 대부분은 (이재명의) 정치활동을 위해 쓰였다”고 했다. 심지어 김용이 2014년 받은 1억 원을 뇌물로 볼 수 없다며, 그 이유로 “자신의 시의원 재선보다 이재명 성남시장의 재선에 더 주력하고 있었던 점을 더하고 보면 이재명 선거운동 자금이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김용의 불법 정치자금·뇌물 수수 재판에서 알리바이를 조작하는 위증도 논란이 됐는데, 이 대표의 위증교사 재판을 연상시킨다. 김용 측은 유동규로부터 불법 자금을 받은 날 다른 장소에 있었다며 구글 타임라인을 제시했지만, 재판부는 조작 가능성이 있다며 배척했다. 특히, 그날 김용을 자신의 사무실에서 만났다고 주장하며 휴대전화 일정표를 찍은 사진을 증거로 제출했던 전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장은 사후에 위조한 것으로 드러나 기소됐다. 이 대표가 위증과 관련한 이들의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재판 상황을 공유 받고 변론 방향을 지시한 정황도 드러났다.
분신 같은 최측근이 대장동 일당에게서 거액을 받아 대선 지방 조직 구축 작업을 한 것을 이 대표는 전혀 알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쌍방울그룹에 이재명 경기지사의 방북 대가와 대북사업 비용 800만 달러를 대납하게 한 사실이 인정돼 2심에서 징역 7년8개월 중형을 선고받은 이화영 전 경기부지사 사건도 이 대표는 몰랐다고 한다. 이화영 재판에서도 이 대표와 민주당은 진술 조작·회유 의혹을 제기했지만,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02-13 중대재해처벌법 무용론

문희수 논설위원
안전사고를 줄인다며 사후 처벌을 강화한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가 없다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진다. 2022년 1월 도입돼 시행 3년을 넘겼지만, 건설 현장 등의 재해·사고를 줄이는 효과가 전혀 없다.
12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상위 20위 건설사 공사 현장에서 사망한 근로자는 35명으로 전년(28명)보다 25% 증가했다. 첫해인 2022년(33명)보다 많다. 사망자와 부상자를 합쳐 봐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868명으로, 2022년(1666명)보다 늘었다. 제조업, 운수·창고·통신업 등 다른 산업 역시 사망자가 첫해보다 더 늘어나는 추세다. 사전 예방이 아니라 사후 처벌을 강화해 사고를 줄인다는 법의 취지가 원천적으로 잘못임을 보여준다.
반면, 기업들의 부담은 갈수록 커진다. 산업 현장에서 사망 등 사고가 발생하면 경영 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으로 무겁게 처벌하지만, 현실적으로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중소·영세기업 피해와 부담이 막심하다. 이 법 시행 3년간 유죄를 선고받은 29건 중 약 90%(26건)는 중소기업이었다. 적용 대상이 50인 미만 영세기업까지 확대되면서 폐해가 더 심각하다. 그러지 않아도 회사 대표가 1인 다역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 소요되는 예산은 고사하고, 안전 전문 인력을 추가로 채용하라는 것은 감당이 안 되는 탓이다. 그런데도 지난해부터는 공사비 50억 원 미만 소규모 공사장까지 포함됐다. 이들 기업의 77%가 “법 준수를 마치지 못했다”고 하소연한다. 대기업의 대비도 사고 예방보다 대표이사의 형사 처벌을 피하는 쪽으로 더 집중되는 실정이다.
중대재해법은 3년 만에 반(反)기업·반민생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시행 전부터 우려했던 대로다. 무용론이 확산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사후 처벌이 아니라, 사전 예방을 강화해야 재해·사고를 줄일 수 있다. 적어도 원청 업체·하청 업체 간 안전 관리 의무와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다. 이 법을 주도한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 실용주의를 강조하지만, 벌써 우클릭 진위가 논란이다. CEO 범죄자를 양산할 뜻이 아니라면 이제라도 이 법을 폐기하고 예방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수정·대체해야 한다.⊙
02-14(금) 워싱턴포스트의 추락

이미숙 논설위원
30대 현장 기자 시절 레바논과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저서에서 중동에서 보고 들은 얘기를 자주 소개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베두인족 노인과 칠면조 도둑 일화다. 칠면조를 잃어버리고도 대수롭지 않은 일로 넘기면 그다음엔 낙타와 말을 잃게 되고 종국에는 딸까지 도둑에게 강간을 당하게 된다는 얘기다. 작은 것을 잃었을 때 별일 아니라고 넘기지 말아야 큰 것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교훈이다. 도둑은 상대가 허술하게 대응하면 더 대담해진다.
베두인족 노인 일화는 도널드 트럼프 2기 시대 워싱턴포스트(WP)의 상황과 오버랩 된다. WP는 지난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앞서 사주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를 비롯해 마크 저커버그 메타 창업자 등 빅테크 거물들이 트럼프 동상에 돈 꾸러미를 바치는 만평을 자진 삭제해 논란이 됐다. 만평가는 “자유 언론에 위험한 일”이라고 주장하며 사표를 냈다. WP 편집진이 사주의 심기를 고려했을 것이란 얘기가 돌았다. WP는 반세기 가까이 지속된 대선 후보 지지 사설 게재 관행도 지난해 11월 대선 때 깼다. 트럼프 당선이 유력한 상황에서 반대 사설을 써서 굳이 미움을 살 필요가 없다는 현실적 판단을 한 듯하다. 이에 반발해 논설위원들이 사퇴하고, 종이신문 유료 독자가 10%가량 절독하는 등 후유증이 컸다.
WP가 만만하게 생각됐던지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SNS에 “WP 칼럼니스트 유진 로빈슨은 무능하다”면서 “즉시 해고돼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로빈슨이 WP에 쓴 국제개발처(USAID) 해체 반대 칼럼을 문제 삼아 아예 해고를 압박한 것이다. 로빈슨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베테랑 저널리스트로, 이 칼럼에서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DOGE) 수장의 USAID 폐지를 막지 못한 공화당 의원들을 비판했다. 베두인족 노인 일화에 비유하자면, WP는 도둑의 심기를 헤아려 칠면조와 낙타를 헌납했는데, 도둑은 이제 딸마저 내쫓으라고 요구하는 셈이다. WP는 ‘미국을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읽는 신문’이다. 뉴욕에서 뉴욕타임스가 ‘더 타임스’로 불리듯 워싱턴에서도 WP는 ‘더 포스트’로 불린다. 워싱턴 사람들이 자부심을 갖는 간판 신문이 이제 현대판 베두인족 노인이 되는 형국이다.⊙
02-17(월) ‘여의도 신사’ 유감

오승훈 논설위원
우원식 국회의장이 최근 ‘백봉신사상’(白峰紳士賞) 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와 함께 박정·박홍근·이재명·전재수·정성호(더불어민주당·가나다순), 장동혁·주호영·추경호(국민의힘), 이준석(개혁신당) 의원이 ‘신사의원 베스트 10’에 뽑혔다. 이들이 이른바 ‘모범적인 국회의원’인 셈이다. 독립운동가이자 국회 부의장 등을 지낸 백봉 라용균 선생을 기리기 위해 1999년 제정된 상이다. 매년 12월에 시상해오다 이번에는 해를 넘겼다.
선정은 의원, 국회 사무처, 국회 출입 기자 등 600여 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기초로 이뤄진다. 최다 득표자가 대상이다. 조사는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한 달간 진행됐다. 12·3 비상계엄 선포 사태 이후 상황은 반영되지 않았다. 우 의장은 SNS에 “현직 국회의장으로서 처음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국회의원이면 꼭 받고 싶은 상”이라고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신사’로 선정된 데 대한 반응이 아직 없다. 2023년에도 선정됐으니 2년 연속이다. 이준석 의원은 배지를 달자마자 신사가 됐다.
기준이 무엇일까. “국회를 잘 알고, 속까지 들여다본 사람들의 평가가 모이는 상”(우원식)이 맞을까. 백봉정치문화연구원은 “정직성, 국가·사회·국민에 대한 헌신, 언어 구사, 의회민주주의 실천, 정치적 리더십, 보편적 세계관과 인류애 등 6개 분야에 대한 평가”라고 했다. 세부 항목이 더 눈길을 끈다. ‘자기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필요와 감정을 더 중시함’ ‘자존심을 내부에 간직한 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음’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음’ ‘원칙이 없는 처신이나 원칙에 집착하는 것을 모두 지양함’ ‘세상을 흑백논리로 보지 않고 밝음과 참됨을 추구함’ 등이다.
다른 의원들은 차치하더라도, 대권을 꿈꾸는 이 대표와 이 의원은 과연 이 기준에 어느 정도 부합하게 활동해왔나, 고개를 갸웃하는 반응이 많을 듯하다. 이 대표는 다른 재판들도 있지만 당장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정치 행로가 걸려 있다. 이 의원은 당내에서 진흙탕 싸움의 내홍을 겪었다. 설문조사가 인기투표나 정치 영향력 평가였던 것은 아닌지. 백봉신사상 최다 수상자는 15회를 받은 정세균 전 총리다. 2011년 작고한 김근태 전 의원은 7회의 최다 연속 수상을 기록했다.⊙
02-18 장외집회 착시

이현종 논설위원
정치인에게 장외 집회의 유혹은 마약과 같다고 한다. ‘내가 가진 힘이 이 정도이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보여 주는 방법이 장외 집회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위기에 있다가도 장외 집회가 성공하면 이를 바탕으로 역전을 노리기도 한다. 장외 집회의 원조는 1987년 직선제 헌법 개정 이후 치러진 12·16 대선 국면이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후보는 연일 여의도, 보라매 공원에서 엄청난 군중을 동원해 집회를 열었다. 그땐 ‘100만 군중 집결’이라는 신문 제목이 흔하던 시절이다.
100만 명이면 서울시민의 10분의 1이 모인 것인데 누가 정확하게 집계하는 것도 아니어서 ‘믿거나 말거나’ 였다. 이후 대형 집회는 이 정도는 아니지만 몇만 명 규모로 광화문, 숭례문, 서울역 앞 등지에서 계속 열렸다. 그러나 이런 집회는 착시 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1987년 대선 당시 DJ와 YS의 단일화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보라매 집회의 성공을 맛본 DJ는 ‘4자 필승론’을 앞세워 단일화를 포기했다. 결국 대선에서 3위 득표로 낙선했다. 이희호 여사는 자서전 ‘동행’에서 “엄청난 군중이 운집한 것이 독이 돼 단일화의 기회만 놓치고 말았다”고 자책했다.
주말마다 기독교 단체인 ‘세이브코리아’가 주최하는 집회가 화제다. 지난 8일 대구 동대구역 광장 집회에 경찰 추산 5만 명의 인파가 결집한 데 이어 15일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집회에도 3만 명이 모였다고 한다. 광주에서 보수 성향의 단체가 연 집회에 최다 참석 인원이 1000명 정도였던 데 비하면 어마어마하다. 광주행 KTX 표가 매진될 정도였다고 하니, 타지에서 간 사람도 많았겠지만, 그 역시 의미가 없지 않다. 전한길 한국사 강사는 “비상계엄은 계몽령”이라며 윤석열 대통령 석방을 거듭 요구했다.
이런 집회 성공에 국민의힘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당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은 좋기는 하지만 1987년 보라매 집회처럼 착시 현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2019년에도 광화문에 모인 엄청난 인파를 보고 제21대 총선에서 200석 압승을 전망했지만, 결과는 103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을 거둔 바 있다. 지금은 여론조사에서 잡히지 않는 진짜 민심을 파악하는 정치 세력이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밖에 없다.⊙
02-19 커피와 불황

최현미 논설위원
모닝커피는 많은 한국인의 루틴이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인은 1인당 1년에 평균 405잔의 커피를 마셨다. 세계 평균(105잔)의 4배에 이르고 미국(318잔)보다 많다. ‘카페인 각성’이 필요한 과다 경쟁의 ‘K-일상’ 덕분이지만 우리의 커피 사랑 역사는 꽤 오래됐다. 커피에 대한 첫 공식기록은 미국 작가 퍼시벌 로웰의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이다. 보빙단 서기관이었던 로웰은 1884년 1월 경기 관찰사 김홍집 집에 초대돼 저녁 식사 후 한강 변 누각에서 ‘조선에 알려지기 시작한 최신 문물’ 커피를 마셨다고 썼다.
가배 혹은 가베로 불리며 고종의 애호품으로 널리 알려진 커피는 근대엔 모던걸 모던 보이의 기호품이었고, 6·25전쟁 후엔 쌀값보다 비싸도 인기였다. 1955년 쌀 한 되가 70환이던 시절, 여름이면 100환을 훌쩍 넘는 아이스커피를 마시기 위해 줄을 섰다고 한다. ‘커피 아키비스트(archvist)’ 진용선 작가는 ‘커피 이토록 역사적인 음료’에서 고려 초·중엽부터 생긴 식후에 숭늉 마시는 식문화가 1960년대 전기밥솥 등장으로 누룽지가 사라지면서 그 자리를 자연스레 커피가 차지하게 됐다고 했다. 강도의 차이가 있지만 둘 다 탄 맛이다.
100년 넘는 역사의 ‘커피 사랑’이 경기 한파에 된서리를 맞았다. 지난해 불황 속에 사람들이 가장 먼저 줄인 것이 커피였다. 한국신용데이터의 ‘2024년 4분기 소상공인 동향’에 따르면 이 시기에 외식업 중 카페 매출은 3분기보다 9.5% 급감했다. 양식(8.8%), 일식(5.5%) 등 일반 식당 매출은 3분기보다 외려 늘었다. 당연히 카페를 운영하는 자영업자 매출도 전 분기보다 1.8% 줄었다.
국내 커피전문점 수는 2022년 기준 10만729개로 5년간 연평균 8.37% 성장해 왔다. 주요 종사자 수는 27만1794명에 이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집 건너 하나가 카페라 할 정도로 호황이었다. 초기 투자비용이 적고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도전이 가능하기에 은퇴자들의 로망이었던 카페가 이제는 살벌한 ‘생존게임’이 됐다.
얼어붙은 경기는 풀릴 기미가 없다. 대동강 얼음도 녹는다는 우수도 지나며 적어도 국회에서는 민생과 경제에 몰두해 주길 바라게 된다.⊙
02-20 트럼프·시진핑 테크 전쟁

이철호 논설고문
지난달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은 미 5대 빅 테크 CEO들이 트럼프 대통령 바로 뒤에 앉은 장면이 압권이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애플의 팀 쿡,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창업자,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가 장관 후보자들까지 제치고 앞에 앉았다. 좁은 취임식장인데도 저커버그와 베이조스는 부인과 약혼녀까지 대동했다. 이들 기업 시가총액은 12조 달러(약 1경8000조 원), 5명의 개인 재산만 1조 달러(약 1500조 원)에 이른다. 그 기술과 자금력을 총동원해 글로벌 패권을 거머쥐겠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포석이다.
한 달여 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반격에 나섰다. 지난 17일 ‘레드 테크(붉은 기술)’ 수장들을 불러모아 세를 과시하는 좌담회를 연 것이다. 샤오미의 레이쥔 회장, 유니트리(휴머노이드 로봇업체)의 왕싱싱 회장, 화웨이의 런정페이 창업자, 세계 1위 전기차인 비야디(BYD)의 왕촨푸 회장, 배터리 1위인 CATL의 쩡위친 회장 등이 시 주석 연설을 열심히 받아 적었다. 인공지능 딥시크를 개발해 ‘국민 영웅’으로 떠오른 량원펑, 5년간 시 주석 눈 밖에 났던 알리바바의 마윈까지 참석했다.
그동안 시 주석은 국진민퇴(國進民退)로 민간기업을 억압했다. 반(反)간첩법으로 외국 자본도 대거 탈출했다. 미국이 관세 전쟁을 도발해오자 시 주석이 다시 레드 테크 CEO들과 손잡은 것이다. 과거 좌담회 단골손님이던 부동산 재벌은 모두 빠졌다. 시 주석은 이날 국진민진(國進民進)으로 급변침을 선언했다. “민영 기업은 중국 경제 발전의 중요한 구성 요소”라며 앞으로 부동산보다 첨단기술 쪽으로 경제를 대(大)개조하겠다고 밝혔다.
친(親)기업 훈풍에 레드 테크들의 주가가 치솟고 있다. 지난 3주간 홍콩 증시에서 알리바바, 텐센트, 샤오미, BYD 주가는 30%씩 폭등했다. 좌담회 이후 불길이 상하이 증시로 옮겨붙고 있다. 부동산 거품에 짓눌려온 중국 증시가 전기차, 배터리, 로봇, 인공지능 등에서 대약진을 이뤄냈다며 환호하고 있다. 하지만 승패를 가리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미·중 관세 전쟁이 양국 빅 테크들의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머지않아 중국의 기술 굴기(굴起)가 실제 성공했는지도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02-21(금) ‘금기어 정치’ 진풍경

오승훈 논설위원
야당 의원 모임 ‘미래를 여는 의회민주주의 포럼’이 지난 19일 ‘헌법에 대한 민주적 이해 방법’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다. 정치권의 개헌 논의와 관련해 큰 관심이 쏠린 행사였다. 더구나 친명계 좌장인 정 의원을 비롯해 핵심 인사가 여럿 포진한 모임이다. 하지만 교수들이 발제자로 참석했는데, 이상하게도 현장에 배포된 자료가 없었다. 의아하단 반응이 나오자 정 의원이 “사실 일부러 뺐다”고 했다. “준비했는데 탄핵 국면에서 자료가 나가면 친명들이 무슨 개헌을 추동하기 시작했다고 할 것 같아서”라고 했다. ‘개헌’이란 단어가 금기시되는 민주당의 기류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이재명 대표는 요즘 개헌 관련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란 극복이 우선”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국민의힘의 개헌 주장엔 ‘국면 전환용’이라고 일축해버린다. 당내에서 김경수 전 경남지사, 김동연 경기지사 등이 개헌의 시급성을 주장해도 현실성 없는 ‘흔들기’ 정도로 흘려듣는다. 정대철 전 의원이 주도하는 헌정회는 물론 ‘7공화국을 여는 사람들’ ‘대화문화아카데미’ 등 중도·진보 단체들의 개헌 요구에도 귀를 막았다. 개헌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60∼70% 정도로 높지만 모르쇠다. 현행 헌법 그대로 조기 대선이 벌어지면 가장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TV에 출연해서는 “지금 개헌을 말하면 빨간 넥타이 매신 분들(보수 세력)이 좋아한다”고 잘랐다.
국민의힘에선 ‘조기 대선’이 금기어다. 주로 친윤계, 반탄(탄핵 반대)파 의원들이다. 윤석열 대통령 호위 운동에 나서고 있으니, 파면을 전제한 조기 대선을 입 밖으로 낼 수가 없다. 그런 와중에도 잠룡들의 대권 행보는 시동이 걸렸다. 한동훈 전 대표가 16일 “머지않아 찾아뵙겠다”며 활동 재개를 예고했다. 저서 출간도 한단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12일 지방분권 개헌을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는 여당 의원의 절반에 가까운 48명이 참석해 대선캠프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도 대선 출마에 “생각이 없다”더니 완연하게 기류가 바뀌었다. 19일 노동개혁 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했는데, 60명의 여당 의원이 모였다고 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정치’의 진풍경이다.⊙
02-24(월) 정략적인 野 상속세 개편

문희수 논설위원
한국의 상속세는 글로벌 룰과 동떨어진 징벌적 세금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상속세를 폐지한 나라도 많은데, 최고세율이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일본(55%) 다음으로 높으니 그렇다. 더구나 최대주주 지분 매각 땐 20% 할증이 붙어 60%까지 올라간다. 중견·중소기업 창업주·오너들은 세금이 너무 많아 가업을 물려주려 해도 할 수가 없다며 애를 태운다. 세금을 내려면 기업 규모를 절반 이하로 줄이거나, 아예 기업을 팔고 손을 떼야 할 지경이니 기가 찰 일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근 이런 상속세를 개편하겠다고 나섰다. 이 대표는 “세금 때문에 집 팔고 떠나지 않게 하겠다”며 18억 원까지는 상속세를 내지 않게 세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1주택 보유자를 염두에 두고 현재 일괄 공제 5억 원, 배우자 공제 5억 원인 것을 각각 8억 원과 10억 원으로 증액해 감세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핵심인 최고세율 인하는 빠졌다. 이 대표는 ‘부자 감세’라고 일축하며, 중견·중소기업의 숙원을 거듭 외면했다. 지친 중견·중소기업 사이에선 상속세를 내느니 차라리 25%의 양도소득세를 내고 중국에 팔겠다는 반발까지 나온다. 경제의 뿌리인 중소기업이 외국으로 넘어갈 판인데도, 네 탓 공방이나 하며 방치하는 정치권이 너무 무책임하다.
야당이 부자 감세 타령을 반복하면서, 부동산 상속세만 콕 찍어 인하하려는 저의는 뻔하다. 조기 대선을 겨냥해 핵심 지역인 서울 등 수도권의 환심을 사려는 정략적 포석이다. 중도층을 공략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민주당 내 민주연구원은 최근 계엄 사태 이후의 정당 지지율 조사 동향을 분석하며 중도층 우선 공략 전략을 지도부에 보고했다는 보도다. 민주당의 실용정당 천명과 성장 강조, 논란을 빚는 이 대표의 우클릭 등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핵심이 빠진 상속세 개편은 주 52시간 근로 예외가 빠진 반도체특별법만큼이나 공허하다. 주택 상속세 감세도 형평성 논란이 따른다. 현재 1주택자도 공시가격 12억 원 이상이면 매년 재산세 외에 종합부동산세를 낸다. 한 번 내는 상속세는 1주택자라도 고가 주택은 세금을 내는 게 옳은 방향이다. 진정성 없는 환심 전략은 공감을 사지 못한다.⊙
02-25 코리아 해방과 카사블랑카

이미숙 논설위원
80년 전 한반도가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데에는 미국·영국·중화민국 정상의 카이로회담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제2차 대전 이후 국제질서를 논의하기 위해 1943년 11월 카이로에서 만난 세 정상이 회동 후 발표한 선언엔 ‘코리아가 적절한 절차를 거쳐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될 것을 결의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런데 당시는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내걸고 전장(戰場)을 중국 및 동남아에서 미얀마, 인도로까지 확장하던 시기다. 그런 일본이 어떻게 일순간에 모든 점령지와 식민지를 내놓게 됐는지에 대해선 역사적 공백으로 남아 있다.
김명섭 연세대 교수는 20일 서울대에서 개최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연례학술회의에서 “미·영 정상이 1943년 1월 카사블랑카에서 만나 아시아와 전쟁을 끝내는 방식으로 무조건 항복 원칙에 따른 징벌적 재조정 원칙에 합의하면서 한반도 해방의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미·영이 전후 처리 원칙과 관련해 ‘전쟁 이전 상태로 돌린다’는 수준으로 합의했다면 제1·2차 대전에 앞서 강제병합된 한반도는 일본의 일부로 남게 되는데 무조건 항복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태평양전쟁 이전의 조약도 모두 무효가 되면서 해방의 근거가 마련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카이로회담 10개월 전에 열린 미·영 정상의 카사블랑카회담 합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견지한 카사블랑카 원칙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게 계승됐고, 미국은 일본과 별도의 종전 협상 없이 아시아와 중국·한반도에 진주한 일본군 무장해제 작전에 돌입, 코리아가 해방된 것이다.
김 교수는 회의에서 “역사는 전(前) 과거와 과거를 함께 봐야 제대로 보인다”고 했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E H 카의 말과 거리가 있는 발언으로, 8·15해방은 현재적 시각이 아니라 그 전의 국제질서 속에서 봐야 한다는 제언이다. 아프리카 북단 모로코의 최대 도시 카사블랑카는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먼 주연의 영화로 유명하다. 2차 대전 당시 자유세계로 가려던 이들의 중간 기착지였던 그 도시에서 처칠과 루스벨트가 전후 국제질서의 근간과 코리아 해방 원칙을 만들었다니 해방 80년을 맞은 올해 새삼 카사블랑카가 친근하게 다가온다.⊙
02-26 다가오는 ‘헌법 84조’ 충돌

김세동 논설위원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아도 조기 대선에 출마해 당선되면 대법원 재판이 연기된다고 주장해 논란이다. 이 대표는 26일 열린 선거법 2심 결심공판을 일주일 앞둔 지난 19일 방송에 출연해 “대통령에 당선되면 형사재판이 정지된다고 보는 게 다수 의견”이라고 말했다. 보통 사람이면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엔 이렇게 노골적으로 속을 드러내지 못하는데, 이 대표는 달랐다.
이 대표 주장의 근거는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에 기댄 것이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소추(訴追)는 검사의 기소만을 의미한다는 주장 대 재판까지 포함한다는 확대해석으로 갈려 있다. 법제연구원의 법령용어 검색에 따르면, 소추는 ‘형사사건의 재판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문언대로 해석하면 이 대표가 현재 받는 선거법 위반 사건을 포함해 위증교사, 대북 송금, 대장동·백현동·성남FC, 경기도청 법인카드 유용 등 8개 사건, 12개 혐의의 5개 재판이 계속 진행되고, 하나라도 당선 무효형이 선고되면 대통령직도 상실한다고 봐야 한다. 반면, 소추는 기소와 공소유지까지 포함한 개념이므로 재판까지 정지된다는 주장도 있다. 이 경우라도 대통령 임기를 마치면 재판이 속개된다는 점엔 이의가 없다.
논란은 이 대표가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재판까지 정지된다’는 게 “다수설”이라고 단정하면서 발생했다. 유죄가 선고된 범죄 피고인이 대통령에 당선된 전례가 없어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 판례가 있을 리 없고, 그런 만큼 이 주제에 대한 헌법학자의 연구논문이 드문데도 이 대표가 ‘다수설’이라고 장담한 것이다.
이 대표가 사실과 다르거나 별 근거가 없는데도 단정적 주장을 한 경우는 이번만이 아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가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니다. 민주당 의원 요청으로 국회도서관이 조사한 결과 영국, 프랑스, 일본과 미국 16개 주가 허위사실 공표 후보자에게 금고나 벌금형을 선고하고 당선을 무효화하고 있다.⊙
02-27 ‘책 정치’ 시즌

이현종 논설위원
조기 대선이 열릴 가능성이 커지면서 대선 잠룡들의 ‘책 정치’가 본격화하고 있다. 단발적인 인터뷰 등으로는 자신의 정치철학이나 인간미 등을 제대로 알릴 수 없기에 긴 호흡으로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이 책 출판이다. 출판사들도 인기가 있는 잠룡을 잡기 위해 경쟁이 치열한데 출판계가 워낙 침체해 있다 보니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는 단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서전 ‘조국의 시간’이 압도했다. 공식 출간 하루 만에 10만 권을 돌파했고 5주 연속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당시 조국 사태로 진영이 첨예하게 나눠 대결할 때 조 전 장관에 대한 팬덤이 형성되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현재까지 깨지지 않는 것은 안철수 의원이 2012년 정계 입문하면서 펴낸 ‘안철수의 생각’이다. 보름 만에 50만 권이 팔려나갔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안랩’ 창업자인 안 의원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면서 오픈 런까지 벌어져 기자들이 서점과 출판사에 대기하고 있다가 출간과 동시에 기사를 쓰기도 했다. 안철수의 ‘새 정치’에 대한 관심이 클 때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관계 등을 담은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을 내면서 인기를 끌었다. 책을 좋아하는 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경남 양산에 책방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아직 책을 내지 않았다. 휴가 때면 독서 목록을 발표하던 전직 대통령과도 달랐다. 책보다는 유튜브에 빠지다 보니 12·3 비상계엄 사태도 촉발했다.
최근 홍준표 대구시장이 페이스북 등에 쓴 글을 모아 ‘정치가 왜 이래?’를 펴냈고, 오세훈 서울시장도 자서전 발간을 준비 중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이재명이 꿈꾸는 대한민국’을 펴냈는데, 26일 ‘국민이 먼저입니다’는 책을 낸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공교롭게도 같은 출판사(메디치미디어)다. 최근 정치인이 낸 책 중에 한 전 대표의 자서전은 예약 6시간 만에 1만 권을 넘기고 오픈 런도 벌어졌다. 조 전 장관과 안 의원의 기록을 깰지 관심이다. 계엄 당일과 그 후의 기록, 그리고 자신의 정치 비전을 담았는데 구매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정치인들도 시간이 지나면 버리는 것이 아닌 윈스턴 처칠의 책처럼 명저를 남길 수는 없을까.⊙
02-28(금) 에코붐 세대

최현미 논설위원
모든 세대는 제각각의 이유로 문제적이다. 에코붐(Echo Boom) 세대도 그렇다. 이들은 베이비붐 세대(1950년대 중반∼1960년대 초 출생)의 자녀 세대로 ‘전후 출생 붐’이 2세 출생 붐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의미에서 ‘에코(메아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시기적으로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후반에 태어난 이들인데 이 중 1991년에서 1996년 사이에 태어난 2차 에코붐 세대가 요즘 주목받고 있다. 당시 매년 출생아 수는 70만 명대를 기록했다.
2차 에코붐 세대는 풍요로운 선진국에서 태어난 디지털 네이티브지만, 사회로 나왔을 땐 불황으로 취업이 어려워진, 첫 ‘삼포세대’다. 2010년대 ‘헬조선’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이들을 대변하는 인물로 장강명 작가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의 20대 직장인 계나가 떠오른다. 그는 경쟁에 지쳐 퇴사하고 호주로 이민을 떠난다. 그는 이렇게 토로한다. “나더러 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던데, 조국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거든. 솔직히 나라는 존재에 무관심했잖아?”
하지만 이들은 그 속에서도 지금의 글로벌 K-컬처를 만들어낸 자신만만하고 문화적인 세대이기도 하다. 방탄소년단(BTS) 멤버 7명 중 6명이 2차 에코붐 세대다.
이들이 이번에 매우 귀한 골든타임 세대로 떠올랐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출생아 수는 23만8300명으로 8년 연속 하락 흐름을 뒤집고 전년보다 8300명(3.6%) 증가했다. 합계출산율도 0.75명으로 9년 만에 처음으로 증가했다. 바로 2차 에코붐 세대 덕분이다. 코로나 기간에 미뤘던 결혼과 출산이 한꺼번에 이뤄진 기저 효과도 있지만, 수적으로 다수인 이들이 본격적으로 결혼·출산 연령이 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 이후 1997년 출생아 수가 다시 60만 명대로 떨어진 뒤 급락을 거듭한다는 사실이다. 지금이 골든타임인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합계출산율은 2022년 기준 1.51명으로 우리의 두 배 이상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개인의 ‘의무’도 ‘기본’도 아닌 시대다. 결혼과 육아가 오히려 부담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개인의 삶과 사회적 구조가 연결된 복잡한 문제다. 그만큼 차근차근 세밀하게 대책을 세워 추진해 나가야 한다. 골든타임을 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