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直說 2025-02/ 02.01 국내파가 이룬 '딥시크 쇼크' - 02.27 성장률 1%대 중반으로 떨어진다는 우울한 전망
正論直說 2025-02/
02.01 국내파가 이룬 '딥시크 쇼크', 가공할 中 인재 양성 시스템

▲엔비디아에 HBM을 납품하는 SK하이닉스의 주가가 31일 '중국발 딥시크 쇼크' 여파로 폭락했다./뉴스1
80억원의 저비용으로 고성능 AI(인공지능) 모델을 선보여 전 세계에 충격을 준 ‘딥시크 쇼크’는 중국이 독자적인 AI 인재 양성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것을 확인시킨 점에서 더욱 놀랍다. 딥시크 창업자인 40세 량원펑은 해외 유학 없이 중국 저장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순수 국내파다. 그는 대기업 출신이나 해외 빅테크의 엔지니어를 데려오는 대신 경력 1~3년 차의 청년들로 AI 개발팀을 꾸렸다. 이번에 충격을 준 AI 모델 개발엔 139명의 엔지니어가 참여했고, 거의 전원이 중국 내에서 교육받고 경력을 쌓은 인력들이라고 한다. AI의 최첨단 혁신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천재들이 주도한다는 공식을 깬 것이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AI 인재를 배출하는 나라다. 미국의 한 싱크탱크 연구에 따르면 중국은 2022년 기준 전 세계 상위권 20%의 AI 연구원 중 47%를 배출해 미국(18%)을 압도했다. 중국 정부는 미래 패권이 달린 AI 경쟁에서 주도권을 쥐겠다는 전략 아래 2018년 이후 학부에만 2000개 이상의 AI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중국은 AI 산업과 연관된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 박사 인력을 매년 8만명씩 배출한다. AI 전사들을 대량 공급하는 강력한 인재 양성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딥시크는 중국의 7대 AI 기업 중 하나에 불과하다. 딥시크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알리바바도 챗GPT를 능가한다는 AI 모델을 내놨다. 41만명에 달하는 AI 연구자, 4300개에 이르는 AI 전문 기업, 세계 2위의 AI 특허 출원 등 중국의 막대한 인재 풀과 기업 인프라가 중국의 AI 생태계를 떠받치고 있다. 제2, 제3의 딥시크가 언제든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딥시크가 추구하는 오픈소스 AI 생태계가 완성되면 중국이 전 세계 AI 인재와 투자금을 빨아들이는 AI 허브가 될 수도 있다.
한국도 미국·중국과 함께 ‘AI 3강’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교육 현실과 인적 자원의 배분 실태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수재들은 모조리 의대로 가고, 대학이 등록금 전액 면제와 취업을 보장하는 반도체학과를 만들어도 모집 정원을 못 채워 허덕이고 있다. 이공계 인력이 부족한 속에서도 한국을 떠나는 이공계 인재들이 10년간 34만명에 달한다. 미국·중국처럼 인재가 엔지니어가 되고 창업의 길을 선택하는 혁신 국가 모델을 만드는 데 전 국가적 역량을 모으지 않으면 미래 기술 전쟁에서 패자로 전락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2.04 '이재용 무죄' 삼성 총수 10년 옭아맨 결과가 뭔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뉴스1
회계 부정 등의 혐의로 기소됐던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회장은 2015년 경영권 승계에 유리하게 주식 시세를 조종하고 회계 부정에 관여했다는 등 19개 혐의로 지난 2020년 기소됐다. 지난해 2월 1심에서 19개 혐의 전부에 무죄가 선고되자 검찰은 항소심에서 추가 증거를 제출하고 공소장을 변경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도 1심과 같은 무죄 판단을 내렸다.
이 사안은 참여연대 등이 쟁점화한 것이다. 검찰이 이를 받아 기소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 당시 검찰총장이 윤석열 대통령이고, 수사와 기소를 주도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가 이복현 현 금융감독원장이다. 이들이 죄가 아니라 사람을 표적으로 해 잡는 이른바 한국식 ‘특수 수사’ 방식으로 이 회장을 수사했다.
2020년 6월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검찰 수사심의위는 이 회장을 불기소하고 수사를 중단하라고 권고했다. 범죄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기소를 강행했다. 한 사람이 한꺼번에 19개의 죄를 짓는다는 것도 상식 밖이다. 그런 무리한 기소를 하더니 19개 혐의 전부가 무죄가 됐는데도 이 검사들 누구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
4차 산업혁명, AI 혁명이 현실화하고 세계 초일류 기업이 혁신 경쟁을 벌이는 중대한 글로벌 격변기에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그룹과 총수 이재용 회장은 10년 가까이 사법 리스크에 묶여 있어야 했다. 2017년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돼 기소된 후 이 회장은 징역 2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2021년 8월 사면으로 가석방되기까지 총 560일간 구속 수감됐다. 국정 농단도 대통령에게 ‘묵시적 청탁’을 했다는 황당한 혐의였다. 어떻게 그런 추상적 내용으로 사람을 감옥에 넣는가. 이 수사 역시 윤 당시 특검 수사팀장과 한동훈 검사가 했다.
이 수사는 문재인 정권의 적폐 청산 일환으로 강행됐지만 문 정권은 이 회장을 2018년 방북에 동행시키는 등 정치 쇼에도 동원했다. 사면 이후에도 이 회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 피고인으로 100여 차례 재판에 출석해야 했다. 해외 현장을 찾은 시간보다 법정에 선 기간이 더 길었다.
그 10년 동안 ‘삼성 위기론’은 현실이 돼버렸다. 사법 리스크에 짓눌린 사이 미래를 위한 과감한 투자와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인수·합병은 제대로 성사된 것이 없다. 대만 TSMC 등 경쟁국 기업들은 날아다니는데 삼성은 SK하이닉스에도 추월당했다. 2021년 초 500조원이던 시가총액은 현재 300조원이다. 지난 10년 삼성과 이 회장 때리기가 나라에 가져온 것은 무엇이었나.
조선일보 사설
02.05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경제 활로 여는 조타수 되길
‘부당 경영권 승계’ 2심도 무죄 ‘사법 리스크’ 벗어
검찰의 기업인 향한 무리한 수사 등 비판받아 마땅
‘뉴 삼성’ 재건해 신성장동력 사업 새롭게 발굴해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삼성 부당 합병 및 회계부정’ 혐의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으며 그간의 오랜 ‘사법 리스크’에서 사실상 벗어났다. 삼성전자의 핵심 사업인 반도체 분야가 어려움에 빠지고, 미국 발 ‘통상 전쟁’이 시작된 상황에서 이 회장이 경영 활동에 전념하며 강도 높은 체질 개선에 나설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무한경쟁의 글로벌 시대, 첨단 산업 투자 및 육성을 위한 삼성의 경영이 기대된다. 사람이 가치를 창출하고, 좋은 인재가 현실의 난관을 타개하며 미래를 이끌어 간다. 최첨단 과학기술을 자랑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해도 인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빅 데이터가 풍부해지고, 초연결 네트워크를 통해 인공지능(AI)이 생활 전반에 자리 잡게 되는 꿈의 사회 실현은 첨단기술력, 곧 고급 두뇌에 달려 있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 등이 첨단기술의 꽃인 AI 및 바이오 등 미래 기술개발에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유다. 미·중 무역전쟁도 무역 불균형의 개선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한 기술패권 전쟁이다.
하지만 삼성을 둘러싼 환경은 매우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사법리스크 해제’가 삼성의 위기 타개로 직결될지, 아직은 미지수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때부터 햇수로 10년. 재판 출석 100여 차례, 구속과 석방을 반복하는 동안 있었던 경영 활동 제약에서 벗어나는 것이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이 회장이 가석방된 지 3년 반이 지났지만, 지난해 주력인 반도체 사업의 영업이익이 처음으로 SK하이닉스에 추월당하며 부진을 면치 못했다. AI 시대를 맞아 수요가 폭발한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는 SK하이닉스를 추격해야 하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서는 업계 선두인 대만 TSMC와의 격차를 좁혀야 한다. 이런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예정된 멕시코와 캐나다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의 시행을 한 달 유예했지만 북미 사업 전략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할 판이다.
이번 기회에 검찰의 기업인을 향한 무리한 수사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의 경우 검찰은 최소 비용으로 그룹 계열사에 대한 이 부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른바 ‘프로젝트-지(G)’라는 승계 계획 아래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흡수·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 투자자를 상대로 거짓 정보 유포와 중요 정보 은폐·시세 조종 등 자본시장법상의 각종 부정거래 행위가 일어났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검찰이 제시한 분식회계 등 19개 혐의에 대해서는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 증거에 따라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기보다는 처음부터 삼성그룹과 이재용 기소를 목표로 정해 놓고 수사를 진행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검찰은 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까지 뒤집은 ‘끼워 맞추기 식 수사’라는 비판도 받았던 터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 측에 뇌물을 건넨 혐의인 국정농단 사건만 해도 그렇다. 솔직히 ‘살아 있는 권력’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는 기업인이 누가 있겠는가. 권력의 요청에 응했을 뿐 수동적인 면이 강했다. 어떤 기업인이라도 그 상황에서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기에 이해되는 부분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우리 사회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여하튼 삼성은 심기일전해야 한다. 현재 반도체·스마트폰·가전 등의 사업을 주력으로 삼고 있는 삼성은 이제 미래를 이끌 신성장동력 사업을 새롭게 발굴해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된 바 있다. 오너인 이 회장이 ‘뉴 삼성’ 재건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이재용 회장이 복합위기에 처한 한국 경제의 어려움 극복과 활로를 여는 조타수가 되길 희망한다.
스카이데일리 사설
02-07 AI 삼각동맹, 딥시크가 선사한 축복
이철호 논설고문
딥시크가 보여준 가성비 쇼크
온디바이스 AI 단말기도 중요
AI 변방국서 중심 진입할 찬스
한·미·일 AI칩 공동개발 추진
대만계 AI 동맹에 맞서는 연대
삼성전자 재도약 절호의 기회
“인공지능(AI)은 그동안 성능과 속도가 좌우했지만, 앞으론 비용 절감도 중요하다.” 중국 AI 모델인 딥시크에 대한 샘 올트먼 오픈AI 대표의 감상평이다.
딥시크는 값싼 저사양 AI칩으로 챗GPT에 버금가는 성능을 선보였다. 그 밑에는 세 가지 비밀이 숨어 있다. 첫째, 사전 학습을 건너뛰고 강화 학습만으로 성능을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기존 AI들이 많은 돈을 들여 대규모 데이터로 사전 학습을 시킨 뒤 강화 학습을 통해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 것과 다른 방식이다. 둘째, 전문가 혼합(Mixture of Experts) 아키텍처(시스템 구조)로 효율성과 속도를 높였다. 복잡한 작업을 작고 쉬운 여러 개 작업으로 쪼개 꼭 필요한 부분만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셋째, 현재의 표준인 32비트 단정밀도(부동소수점)를 8비트로 확 끌어내렸다. AI 모델이 붕괴하지 않는 수준에서 최대한 정밀도를 낮춰 비용과 시간을 줄인 것이다.
올트먼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지난 4일 급거 방한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3자 회담을 했다. 미국에서 5000억 달러(약 732조 원) 규모의 ‘스타게이트’를 발표한 직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원 아래 천문학적인 자금과 엄청난 전력까지 이 프로젝트에 쏟아붓기로 했지만, 역사상 가장 큰 도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딥시크에 밀려 자칫 막대한 돈만 삼킨 채 과잉 투자로 끝나는 악몽을 막기 위해서다.
오픈AI-ARM(최대 주주가 손 회장)-삼성전자 연합은 새 AI 칩을 만들기 위한 삼각동맹이다. 대만계 AI 동맹(엔비디아-TSMC-AMD)에 맞서는 구도다. 스타게이트가 데이터센터 설치 비용을 줄이려면 엔비디아의 값비싼 그래픽카드(GPU) 독점부터 깨트려야 한다. 삼성전자로선 절호의 기회다. TSMC는 그동안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전략으로 애플·엔비디아·퀄컴 등의 대형 주문을 독식했다. 이 큰손들은 경쟁 제품을 만드는 삼성전자·인텔에 대해 “반도체 설계 정보를 유출할지 모른다”고 의심해 왔다. 하지만 AI 업계의 오픈AI·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 등은 삼성전자와 사업 영역이 겹치지 않는 새 고객층이다. 잘만 하면 파운드리 시장의 64.9%를 장악한 TSMC를 추격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딥시크가 모델 경량화로 온디바이스 AI의 신천지를 연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소형 AI를 스마트폰·자율주행차·드론 등에 장착해 자체 연산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올트먼도 연일 “새로운 AI 전용 단말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삼성에는 꽃놀이패다. 삼각동맹의 새로운 AI용 단말기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가전제품들이 재조명받을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이미 삼성전자는 구글·퀄컴과 동맹을 맺고 ‘서클 투 서치’ 기능 등을 탑재한 갤럭시 AI폰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여기에 지지부진하던 엑시노스 AP와 NPU(Neural Processing Unit) 개발 속도도 끌어올릴 수 있다.
딥시크발(發) 혁신은 한국 AI 업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하드웨어에서 밀려도 뛰어난 소프트웨어로 데이터 처리와 알고리즘을 최적화하면 저비용으로도 빅테크들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동안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거대언어모델(LLM)’을 내세워 개발자 중심의 AI 시대를 주도했다면, 앞으로는 뛰어난 가성비의 ‘소형 AI 모델’에 기반한 사용자 중심의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미국의 초격차에 눌려 AI 변방 국가로 밀려났던 한국에는 천문학적 투자가 없어도 재도전을 꿈꿀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은, AI 경쟁이 세계 패권을 놓고 진영 간 대항전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딥시크가 오픈 소스에 무료 공개한 것은 사용자와 데이터를 늘리려는 전략이다. 이에 맞서 미국을 중심으로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서 딥시크 금지령이 확산하고 있다. 보안 우려와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 때문이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대만계 AI 동맹에 철저하게 왕따 당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TSMC가 미국 반도체 산업의 100%를 뺏어 갔다”며 부정적 인식을 내비치고 있다. 한·미·일 AI 삼각동맹은 중국은 물론 대만계 AI 동맹과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연합군인 셈이다. 어쩌면 딥시크가 선사한 축복의 선물일지 모른다.
문화일보
02.08 자원 개발도 정치화 된 나라, 무슨 일을 하겠나

▲웨스트카펠라호가 포항 앞바다에서 약 40km 떨어진 대왕고래 구조에서 탐사시추 작업을 벌이고 있다./한국석유공사 제공
‘대왕고래 프로젝트’로 불리는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사업의 1차 시추에서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정부는 “가스 징후는 발견했으나 경제성을 확보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발표했다. 정부는 이번에 확보한 시료를 정밀 분석한 다음, 외국 기업과 손을 잡고 나머지 6개 유망 지점에 대한 추가 시추를 추진할 계획이다.
과거 개발에 성공한 동해 가스전도 11번째 시추에서 성공했고, 노르웨이 북해 유전은 33번째 시추에서 유정을 발견했다. 이번 1차 시추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를 놓고 성공, 실패를 말한다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 그런데 벌써 ‘사기극’이라는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1차 시추만을 놓고 ‘사기극’이라고 한다면 세계의 거의 모든 유전이 사기극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 시추를 정치 문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공사가 물리탐사 자료를 토대로 석유 발견 가능성을 기대해온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석유공사와 산업자원부 차원에서 차분하게 진행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작년 6월 윤 대통령이 갑자기 나서서 대국민 깜짝 발표를 했다. 발표도 “최대 140억 배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는 등 내용을 부풀렸다. 산업자원부 장관은 “최대 매장량이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라고 한 술 더 떴다. 실제 유전이 있어도 시추 성공률이 희박한 것이 유전 개발 사업인데 ‘가능성이 높다’ ‘시가 총액’ 운운은 정치적 수사에 가까웠다. 그러자 민주당은 총선 패배와 지지율 하락에 따른 국면 전환용 카드라고 비판했다. 실제 그런 측면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심하고 개탄스러운 것은 이렇게 모든 것이 정치 싸움으로 귀결되는 나라에서 무슨 일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이 일을 하면 저 당이 반대하고, 저 일을 하면 이 당이 반대한다. 이명박 정부가 해외 자원 개발을 추진했는데, 박근혜·문재인 정부가 난데없이 적폐 대상으로 단죄하면서 어렵게 뚫은 자원 개발 프로젝트가 대부분 무산된 바 있다. 이후 희토류 가격이 폭등하면서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겼다.
자원 개발은 희박한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많은 실패를 거쳐야 결실을 거둘 수 있는 분야다. 지금의 동해 시추 사업도 시추 성공률이 최대 20% 정도라서, 최소 5개의 시추공을 뚫는 것을 전제로 시작한 사업이었다. 전문가들은 1차 시추에서 확보한 시료와 지질 데이터가 향후 시추 과정에서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는 정보로 활용될 것이라는 점 등을 들어 무의미한 실패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국가적 사업은 정치에서 해방시키고 과학과 경제 논리로만 추진했으면 한다.
조선일보 사설
02.10 광주형 일자리, 예정된 비극

▲지난 1월 10일 오후 광주광역시청 앞에서 열린 금속노조 광주글로벌모터스 지회 파업선포 기자회견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제1호 상생형 일자리’ 광주글로벌모터스(GGM)의 파업 여부는 산업, 노동계의 큰 관심사였다. 이 회사는 노사민정이 ‘저임금, 무파업’을 일정 기간 지속하기로 협정을 맺은 새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약속 이행 여부는 상생형 일자리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 짓는 핵심 잣대였다.
그러나 회사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지난달 파업했고 결국 약속은 깨졌다. 올해 갈등이 봉합된다 해도 내년에도 같은 문제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예정된 실패다. 애초부터 저임금과 무파업은 양립하기 어려웠지만, 기획자인 문재인 정부는 상생형 일자리 같은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이를 포장하기 바빴다. 더욱이 ‘노사민정 대타협’에서 노(勞)의 주체는 한국노총이었다. 민주노총은 GGM 설립에 반대해 협정에서 빠졌다. 회사 설립 후 민주노총 노조가 들어서고 파업 위협이 있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당시에도 제기됐고, 결국 이 우려는 현실화됐다.
현재 이 실패에 대한 짐은 낮은 임금을 받는 평균 나이 31세 직원들이 고스란히 지고 있다. GGM 주주단은 “파업이 계속 이어지면 투자 회수와 사업장 폐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발언을 내놨고, 지역 사회에선 “세금으로 임금을 보전해 줬더니 파업으로 갚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을까. GGM 태동이 결정된 2018년은 지방선거가 있는 해였고,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2017년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었다. 당시 여권은 GGM을 일자리 부족, 노사 갈등, 지역 균형 발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사한 답안으로 여겼다. 현대차를 협상 테이블에 앉히고 결국 선거를 2주가량 앞둔 2018년 6월 1일 문재인 정부는 현대차로부터 GGM 관련 투자 의향서를 받았다. 한 인사는 이를 두고 “정부가 현대차의 팔을 비튼 것”이라고 표현했다.
겉으로 드러난 GGM의 성과는 적지 않다. 현대차의 경형 SUV 캐스퍼 1종만 위탁 생산하면서도 2023년 기준 매출 1065억원, 영업이익 236억원을 기록했다. 기업의 대표적 이익 지표인 영업이익률이 22%로 세계 선두 업체 테슬라를 앞선다.
그러나 신생 기업이 이 정도 실적이 가능했던 건 현대차와의 기울어진 수익 배분 계약 때문이다. 차량 1대를 팔 때, 현대차보다 GGM이 이익을 더 많이 가져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GGM의 목줄을 현대차가 쥐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를 감안하면 향후 GGM에서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다. GGM 직원 근속 연수가 올라가면 임금 상승 압력은 점차 커질 것이다. 그러나 현대차가 파업 등을 감내할 이유는 없다. 언제든 대체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GGM 직원들에게 놓인 선택지는 현 체제를 감내하고 일하는 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걸 상생형 일자리라고 말하는 건 너무 거창하고 무책임한 표현 아닌가.
조선일보 사설
02-10 연금 재앙, 2년 뒤 시작된다
권도경 사회부 차장
국민연금이 삼성전자와 현대차 주식을 매물로 내놓았다. 연금수지(보험료 수입-연금 지급액)가 적자로 전환한 데 따른 것이다. 그해 거둬들인 보험료로는 그해 국민연금을 줄 수 없었다. 자본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이 자산을 팔자 ‘오버행(잠재적 매도 물량)’ 공포가 금융시장을 덮쳤다. 자산 매각은 한국 경제를 강타했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채권, 부동산을 팔자 해외 투자자들도 앞다퉈 동반 매도했다. ‘셀 코리아’로 국내 자산 가치는 폭락했다. 연금 재정 고갈 시점도 더 빨라졌다. 국민연금 매물을 모두 받아낼 곳이 없자 시장은 무너졌다. 이른바 ‘멜팅다운(melting down·시장붕괴)’이다. 이 섬뜩한 시나리오는 국민연금 개혁이 실패할 경우 2030년 생길 일이다. 국민연금 중기재정전망은 적자 전환 시기를 2027년으로 3년 앞당겼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전 세계 유례없는 저출생·고령화 탓에 국민연금 총수입보다 총지출이 많아지는 속도는 가팔라졌다. 이미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 감소세는 본격화됐다. 2023년부터 국민연금 가입자는 2년째 감소했다. 지난해 10월 말 국민연금 전체 가입자 수는 약 2181만 명으로 전년에 견줘 57만 명 이상 줄었다. 감소 규모도 전년(11만 명)의 5배 이상으로 많았다. 반면, 연금을 받는 사람은 빠르게 늘고 있다.
지연된 개혁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37년 전 도입 당시 국민연금은 내는 돈보다 많이 받는 구조로 설계됐다. 연금 개혁 필요성은 수십 년간 제기됐다. 개혁은 두 차례뿐이었다. 마지막 개혁은 2007년 이행됐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소득대체율만 50%에서 40%로 낮췄다. 이후 19년간 그대로다. 보험료율은 28년째 9%다. 선진국들이 30∼40년에 걸쳐 국민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연금 제도를 서서히 고친 반면, 우리에겐 잃어버린 시간만 남겨졌다. 그사이 인구구조는 악화했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반길 리 없는 개혁안만 남았다. 역대 정권이 개혁을 차일피일 미룬 결과다.
연금 개혁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앞으로 선거 정국이 이어지면 연금 개혁 논의는 다시 미뤄질 수 있어서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더 고통스러운 개혁안이 ‘청구서’로 날아올 수밖에 없다.
개혁안은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2∼45% 인상으로 좁혀진 상태다. 날 서게 맞섰던 재정안정파와 소득보장파 수장도 퇴로를 열었다. 이들은 각각 소득대체율 40%와 50%를 고집했지만, 개혁의 절박함 앞에선 물러섰다. 숫자에 매몰돼 개혁이 좌초되는 게 치명적인 손실이라고 판단해서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야는 기싸움 중이다. 정치권은 연금 재정안정과 노후 소득보장 등 진영 논리에 갇혀 수없이 실기했다. 여야가 다투던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의 방향성은 같다. 지속 가능한 연금이다. 내는 돈과 받는 돈을 조정하는 모수개혁을 하지 않고선 구조개혁으로 넘어갈 수 없다. 구조개혁을 추진할 시간을 벌려면 여야는 이달 내 모수개혁 합의안을 내놔야 한다. 연금 재정을 불안해하는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기도 하다. 표만 의식하면 공멸을 불러올 뿐이다. 가장 좋은 개혁은 빠른 개혁이다. 국민연금 개혁은 더더욱 그렇다.
문화일보
02.20 '반도체 주 52시간 예외', 한시법으로 시행해보자
반도체 특별법이 ‘주 52시간 근로제’ 예외 조항을 둘러싼 여야 의견 대립으로 무산됐다. 더불어민주당이 노조를 의식해 반대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반도체 산업이 직면한 위기는 주 52시간제 때문이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경직적인 주 52시간 규제가 산업 경쟁력을 훼손시킨다는 것은 입증된 사실이다. 대한상의 조사에서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연구·개발(R&D) 성과가 줄었다는 기업이 4곳 중 3곳에 달했다.
지금 어영부영하다가는 30년 전 일본 반도체의 몰락을 뒤따르게 된다. 삼성의 경쟁자인 대만 TSMC는 10년 전 파운드리 공정 기술에서 삼성에 밀리자 위기를 느끼고 R&D를 하루 24시간 풀가동하는 ‘나이트호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오늘날 TSMC가 세계 1위로 도약한 핵심 비결이다.
민주당은 반도체 특별법에서 “반도체의 몸통이라 할 수 있는 전력망, 용수, 도로, 인력 양성 지원 문제를 먼저 처리하겠다”고 했는데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모르고 하는 얘기다. ‘주 52시간’ 문제는 반도체 특별법의 꼬리가 아니라 몸통에 해당한다. 반도체는 수천억 원을 들여 신제품·신기술을 개발한다. 개발이 끝난 시점에도 문제가 발견되거나 고객 요청이 있으면 가용 인력을 다 투입해 신속하게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 미적대면 바로 시장을 뺏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보조금이나 세금 공제 같은 금전 지원보다 주 52시간 예외 적용이 더 절실하고 긴박하다고 호소하는 이유다.
주 52시간 예외 조항을 반도체 산업 중에서도 연구개발 분야에만 국한해 근로시간 총량을 늘리지 않는 범위에서 노사 합의를 전제로 적용하자는 데도 민주당은 무작정 노조 편만 들며 반대하고 있다. 노조는 한번 예외가 주 52시간제 전체를 무너뜨린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반도체 연구·개발에 국한해 주 52시간 예외를 3년간 한시적으로 시행해 볼 수 있다. 그 3년 동안 노조 주장대로 노동 조건 후퇴 등의 문제가 발견된다면 얼마든지 수정하거나 조항을 폐기하면 된다.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은 원래 경제 중심 정당”이라고 했다.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변하지 않으면 바보”라고도 했는데 민주당과 이 대표 스스로를 가리켜 하는 말 같다. 이 말이 조금이라도 설득력을 가지려면 반도체 주 52시간제 예외의 실험적, 한시적 시행이라도 수용하면 된다.
조선일보 사설
02.21 주차료 정산에 120명 정규직, 모두 국민 부담

▲인천국제공항 주차장 전경./뉴스1
문재인 정부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1호 사업장인 인천공항공사의 방만한 경영 문제가 또 하나 드러났다. 문 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첫 외부 활동으로 인천공항을 방문해 ‘비정규직 제로’를 약속했다. 인천공항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세 자회사를 설립해서 용역 회사 소속이던 비정규직 근로자 9500명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현재 자회사 세 곳은 인천공항 일감을 독점하고 자회사 직원 수에 비례해 인천공항공사에서 돈을 받는다. 이윤 10%가 보장된다. 그러다 보니 인천공항은 주차 요금 정산만 하는 정규직 인원만 120여 명이다. 최근 주차장은 대부분 무인화돼 있고 국민도 익숙해져 있는데 이곳에선 정규직 120여 명이 이 단순한 일을 하면서 월급을 받고 있다. 모두 국민이 낸 돈이다. 버스표를 파는 정규직도 20명이나 된다.
무인 방식으로 바꾸면 비용을 연 73억원 줄일 수 있는데도 고용 유지를 위해 무인화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니 인천공항의 공항 운영 업무 처리당 비용은 2017년에 비해 2023년에는 80%나 증가했다. 심지어 코로나 사태 당시 인천공항은 1조9000억원을 적자 냈는데도 자회사는 이윤을 10% 보장받아 흑자를 냈다.
인천공항과 경쟁하는 싱가포르 창이 공항, 일본 나리타 공항,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 등은 수하물 운반, 외부 유리 청소, 셔틀, 주차 등에 로봇 및 자동화 기술을 속속 도입하면서 경영 효율성을 높여나가고 있다.
당연히 ‘노조 리스크’로 이어지고 있다. 인천공항 자회사 3곳의 노조 조직률은 62~90%로, 강성 노조인 현대차(59.9%)보다도 높다. 자회사 노조는 공항이 분주해지는 시기에 파업하거나, 파업을 볼모 삼아 사측에 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인천공항 경쟁력 강화 방안은 거의 모두 반대하고 있다. ‘비정규직 제로’는 합리를 버리고 이념을 택한 시대착오 정책이다. 그 후유증은 모두 사용자인 국민 부담이다.
조선일보 사설
02.22 무너지는 한국 '초격차', 벼랑 끝 몰린 주력 산업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이 20일 연임 취임식에서 "한국 경제가 벼랑 끝에 놓여 있다"고 진단하면서 성장엔진 되살리기가 시급하다고 말했다./한경협 제공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에 재선임된 류진 회장이 취임식에서 “한국의 기업 환경은 1997년 외환 위기 때보다 열악하다”고 했다. 류 회장은 또 “첨단 산업 육성 법안들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성장 엔진을 되살릴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한국 경제는 갈림길이 아니라 벼랑 끝에 서 있다”고 했다.
같은 날 열린 여야정 국정협의회는 반도체 특별법, 추경예산 편성, 연금 개혁 등 민생 현안에 대해 또 결과 없이 막을 내렸다. 미국의 트럼프 2기 정부가 관세 폭탄을 쏟아내고, 대통령 탄핵 사태에 따른 국정 리더십 공백이 겹쳐 반도체·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와중에도 정치권은 선거를 의식한 작은 다툼만 벌이며 ‘민생 골든타임’을 허비하고 있다.
전 세계에 충격을 안긴 중국의 인공지능(AI) 모델 딥시크 출현 이후, AI, 양자컴퓨터, 자율 주행 등 미래 첨단 산업 분야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국 간 기술 경쟁에 더욱 속도가 붙고 있다. 미국에선 오픈AI가 한층 진화한 AI 모델 딥리서치를 공개했고, 테슬라는 AI 그록3 모델을 새로 내놨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양자컴퓨터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인 ‘마요나라1’을 공개했다.
반도체 부활을 위해 국가 총력전을 벌이는 일본에선 키옥시아가 세계 최초로 332단까지 쌓아 올린 낸드 메모리를 내놓으며 적층(積層) 경쟁에서 한국을 앞질렀다. 중국 화웨이는 세계 최초 3단 폴더블 스마트폰을 선보이며 ‘세계 최초’ 경쟁에서 처음으로 삼성전자를 제쳤다. 중국 전기차 기업 BYD는 세계 최고 자율 주행 성능을 앞세워 현대차는 물론, 테슬라까지 제치고 전기차 수출 1위로 도약했다. 한국이 기술 초격차를 유지해 온 반도체, 스마트폰, 자동차 분야에서 경쟁국에 밀리기 시작했다.
류진 회장 말처럼 주력 산업들이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인데도 돌파구를 열어야 할 정치권은 노조에 아첨하는 기업 규제에 열심이다. 반도체 연구 개발을 위한 ‘주 52시간 예외 조항’ 하나조차 못 풀고 있다. 계속 이대로 가면 정말 외환 위기를 넘어서는 경제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조선일보 사설
02.25 세금 아닌 징벌, 상속세법 전면 개정해야 한다
상속세법 개정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상속세 공제 한도를 늘리고, 기업 상속 최고세율을 낮추는 법안을 제출했지만 민주당 반대로 무산됐다. 조기 대선이 유력해지자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세금 때문에 집 팔고 떠나지 않고 그 집에 머물러 살 수 있게 하겠다”며 상속세 완화를 들고나왔다. 현행 ‘일괄 공제 5억원, 배우자 공제 5억원’을 ‘일괄 공제 8억원, 배우자 공제 10억원’으로 높이겠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서울과 수도권에서 18억원짜리 집을 갖고 있어도 상속세 면세 대상이 된다. 그러면서도 이 대표와 민주당은 상속세 최고세율 50%를 40%로 낮추자는 정부와 국민의힘 방안에는 ‘초부자 감세’라며 반대하고 있다.
우리나라 상속세는 세금이라기보다는 징벌에 가깝게 변질됐다. 상속세 공제 한도는 1997년부터 28년간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서울 아파트 50평형이 5억원이던 시절에 공제 5억원으로 설정한 것을 그대로 두었으니 당시엔 소수 부유층이 내던 상속세가 이제는 중산층도 내야 하게 됐다. 그러니 이 대표와 민주당이 조기 대선을 앞두고 중산층을 겨냥해 상속세 공제 한도를 높여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선심을 쓰는 듯하지만 미국은 2024년 기준 1292만달러(약 184억원)까지는 상속세를 물리지 않는다.
이것 못지않게 시급히 고쳐야 할 것이 세계에서 제일 무거운 기업 경영권 상속세 문제다.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 세율은 50%로 OECD 국가 중 둘째로 높지만 기업 최대 주주에게는 할증까지 붙여 실제 최고 세율이 60%까지 올라간다. 최대 주주에게 할증까지 붙이는 건 기업 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 보고 징벌적 과세를 하는 것이다. 두 세대에 걸쳐 기업을 승계한다면 기업이 사실상 국유화될 수 있다.
높은 상속세 부담 때문에 대주주가 세금 내려고 회사를 팔아야 한다면 그 세금 액수보다 국가 경제에 미칠 악영향이 더 클 것이다. 그 기업이 문제없이 경영을 계속해서 근로자를 고용하고 법인세를 내는 것이 국민 전체에게 더 이익이다. 나중에 대주주가 기업 경영권을 매도한다면 그때 세금을 물려도 결코 늦지 않다.
일본의 경우, 상속세율이 명목상 55%로 높지만 일정 요건을 갖추면 상속세와 증여세를 면제해 주는 파격적인 사업 승계 특례 제도를 도입했다.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라도 징벌적 상속세를 OECD 국가들 기준에 맞게 합리적 수준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 사설'
02.27 "1% 저성장이 우리 실력"이라는 암울한 고백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9%에서 1.5%로 대폭 내린 뒤,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9%에서 1.5%로 낮췄다. 내년 성장률도 1.8%로, 2년 연속 1%대 저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창용 총재는 “그게 현재 우리의 실력”이라고 했다. “그동안 구조 조정도 하지 않고, 새 성장 동력이 될 만한 산업도 키우지 않은 채 기존 산업에만 의존해 왔기 때문”이란 것이다.
고착화된 저성장은 창조적 파괴와 혁신을 이루지 못한 채 있는 것만 까먹고 있는 한국 경제의 병(病) 때문이다. 중국의 공세에 밀려 경쟁력을 잃었는데도 구조 조정을 미루는 바람에 조선, 해운업이 위기를 겪은 데이어 최근엔 철강·석유화학이 곤경에 처해 있다. 이런 산업이 앞으로 줄을 이을 것이다.
뼈를 깎는 구조 조정 대신 각종 금융 지원으로 연명시켜준 탓에 상장 기업의 3분의 1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좀비 기업’ 상태다. 부실 부동산 프로젝트(PF)에 대한 정리 작업을 계속 미루면서 건설 산업도 기약 없는 늪에 빠져 있다.
인공지능(AI)·빅데이터·블록체인 등 디지털 혁신에 기반한 신산업은 기득권 이익 집단의 저항과 이들에게 영합하는 정치권의 규제 탓에 태동 단계부터 부진하다. 세계 100여 국이 하는 승차 공유 서비스 ‘우버’ 영업이 한국에선 금지됐다. 이를 우회하는 사업 모델로 개발된 차량 호출 서비스 ‘타다’는 회원 170만명을 넘어설 만큼 호평을 받았지만 택시 업계가 반발하자 정치권이 금지법을 만들어 사업을 원천 봉쇄했다. 선진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보편화된 원격 의료가 한국에선 의사 단체의 저항에 발목이 잡혔다. 변호사와 사건 의뢰인을 인터넷으로 연결해주는 서비스는 변호사 단체가 숨통을 죄고 있다. 반값 부동산 수수료를 앞세운 부동산 중개 플랫폼도 공인중개사 단체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반도체 연구 주 52시간 예외는 노조에 막혔다.
정치권은 이해 관계자 간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를 통해 혁신 산업의 돌파구를 열어줘야 한다. 그게 정치의 할 일이다. 그런데 한국 정치권은 어느 쪽에 표가 많은 지만 따진다. 혁신이 발붙일 수 없는 나라다. 그 결과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 사업 모델 중 57개가 한국에선 아예 창업이 불가능한 황당한 규제 환경을 갖기에 이르렀다. 산업의 역사는 혁신 역주행이 소비자 피해로 돌아오고, 미래 세대의 기회를 박탈한다는 걸 보여준다. 1%대 저성장은 환자가 약 대신 설탕물을 먹은 우리의 자업자득이다.
조선일보 사설
02.27 성장률 1%대 중반으로 떨어진다는 우울한 전망
한은·KDI·英이코노믹스 韓성장률 하향 조정
美 관세 부과·탄핵 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요인
글로벌 개방형 혁신과 인재 양성이 성장 동력
통상 신규 일자리 증가가 ‘0’이 되는 수준을 경제성장률 2.5% 내외로 본다. 그런데 우리 경제에 짙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2025년도 성장률이 작년(2.5% 예상)보다 떨어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이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1.9%에서 1.5%로 낮췄다. 민간소비 회복이 느린 가운데 미국 관세 부과에 따른 자동차와 반도체 수출 둔화 등을 선(先)반영한 것이다. 이에 앞서 영국의 연구기관인 캐피털 이코노믹스(CE)는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1%에서 0.1%p 낮춘 1%로 하향 조정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미 기존보다 0.4%p 낮은 1.6%로 내렸다. 비상계엄·탄핵 사태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과 미국 정책 변화 등이 하방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비관적 경제성장률 하락은 경기와 구조 두 가지 문제에 의해 발생한다. 먼저 정치권이나 정책 당국이 경기 활성화에 매몰돼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점이다. 경기 활성화 정책은 표를 의식한 이전지출 정책에 집중돼 효과도 없이 부작용만 커지고 있다. 반도체법을 다루면서 주52시간제 탄력 적용 문제 하나 채택하지 못하고 있다. 혁신 경험이 없는 정치인들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장기적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정이 안정되어야 하고 비전과 실천력을 갖춘 지도력이 필요하다.
통화 당국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건설 업체들의 부도설이 나돌고 신용 경색이 발생하면서 사실상 금리를 적정 수준으로 올리지 못했다. 금리의 조기 인하로 환율이 치솟을 수밖에 없었고, 무분별한 탄핵 정국으로 환율은 더 불안하게 움직였다. 소득이 증가해 상승한 물가를 감당할 때까지 수요 부진으로 경기 활성화가 지체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35조 원 정도의 추가경정예산안도 기대 난망이다. 세수 부족으로 이번 예산안도 실행하는 데에 어려움이 적잖다. 2023년 56조4000억 원의 세수 결손에 이어 작년에는 30조 원의 세수 펑크가 났다. 올해에도 나아질 조짐은 없다. 추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예산의 조기 집행을 추진했던 정부의 발목을 잡게 된다. 지출 구조의 변화가 없는 단기 처방은 현안을 해결하지 못하고 재정 문제를 악화시켜 향후 경제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릴 것이다.
세수 규모에 맞춰 세출 규모를 줄여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세출 규모를 갑자기 줄이는 것은 정책의 지속성과 정치적 수용성을 훼손시킨다. 국회와 정부가 만들어 낸 각종 보조금과 복지 정책을 수행하는 데에도 재정을 충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균형을 유지하려 해도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상황이기 때문에 성장 동력을 확충하기 위해 재정을 지출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2기가 시작되면서 자동차 산업과 반도체 산업이 바뀌고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는 새로운 시대에 정치권은 해묵은 재벌 비난으로 세상 변하는 줄 모르고 지낸 지 오래다. 당장이라도 대책이 마련돼야 하지만 정치적 불안정이 장기화하고 있어 정부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성장 동력은 기업과 기업에서 활동하는 인재가 만들어 낸다. 인력의 혁신이 성장 정책의 방향이 돼야 한다. 대만의 TSMC는 세계 유수의 대학원에서 실험적으로 디자인된 반도체를 만들어 준다. TSMC는 세계와 함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실리콘 밸리에는 인재가 모이고 자금이 쌓인다. 반면 우리나라는 수월성과 글로벌 인재 유치를 버리고, 천편일률적인 산업 정책과 혁신 정책으로 실패만 답습하고 있다. 글로벌 개방형 혁신과 인재 양성이 성장 동력의 추진체임을 재인식할 때다. 인재들이 활동하고 헌신할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것이 글로벌 시대의 성장 정책이다.◎
正論直說 202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