午後餘談(문화일보) 2025-01/ 01-02(목) K-민주주의의 저력 - 01-31(금) 딥시크 명암
午後餘談(문화일보) 2025-01/
01-02(목) K-민주주의의 저력

이미숙 논설위원
세계를 놀라게 한 12·3 비상계엄에 대해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최근 한 대담에서 “한국이 극적인 순간을 맞고 있다”며 이례적으로 소회를 밝혔다. 그는 위기관리 컨설팅회사인 유라시아그룹이 운영하는 ‘지 제로 (G-Zero)’ 팟캐스트 대화에서 “충격적인 사태가 중단된 것은 한국의 민주적 제도와 기관의 역량을 보여준다”며 이렇게 말했다. 앞서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를 TV를 보고 알았다”며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우회적으로 불쾌감을 피력했던 그가 국회와 시민들이 보여준 위기 수습 과정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이다. 윤 대통령에 대해선 언급을 피하는 형식으로 실망감을 드러내면서도 한국 민주주의의 저력에 대해 신뢰를 표한 것은 의미가 크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비상계엄 해제 직후 ‘한국 민주주의의 스트레스 테스트(A stress test for South Korea’s democracy)’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윤 대통령의 돌발적인 비상계엄에 시민들이 반대 시위를 하고 국회가 부결시키면서 한국 민주주의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견뎌냈다’고 썼다. 금융기관 재무건전성 평가 때 쓰이는 용어가 한국 민주주의 상태 진단에 동원된 것이 이채롭다. 윤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돌출 행동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저력이 드러났다는 평가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도 비상계엄 사태의 신속 종료 배경을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함에서 찾고 있다.
비상계엄 반대 시위엔 20·30 세대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태어난 젊은 층은 민주주의를 ‘마음의 습관’으로 받아들인 세대다. 이들이 ‘민주주의 지킴이’가 된다면 희망이 있다. 1955년 3월 1일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하원 고별 연설에서 “움츠리지 말고, 지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인내와 용기를 갖고 고통의 시기를 이겨내야 한다고 영국인들을 독려한 그의 연설은 어수선한 상황에서 새해를 맞은 우리에게도 울림을 준다. 민주주의는 한 번 쟁취했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계속 보수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권위주의로 간다. K-민주주의는 이제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과했다. 또 다른 정치 퇴행을 막기 위해 70년 전 처칠의 호소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01-03 우리에겐 없는 대통령들 정경

오승훈 논설위원
지난 2018년 4월 미국의 전직 대통령 네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제41대)의 부인 바버라 부시의 장례식이었다. 빌 클린턴(42대), ‘아들’ 조지 W 부시(43대), 버락 오바마(44대) 부부가 별도로 사진을 찍었는데, 아들 부시가 앞자리에 앉고 나머지가 뒤에 나란히 서서 포즈를 취하며 웃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7개월이 지난 그해 12월에 타계한 ‘아버지 부시’의 장례식 때도 마찬가지였다. 현직 도널드 트럼프와 전직 지미 카터(39대) 부부까지 5명의 전·현직 대통령 부부가 모여 추모했다.
미국에서는 소속 정당과 관계없이 고인에 대해 애도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정치적 이념과 지향이 다르고 한때는 정적으로 험한 말을 주고받은 사이여도 그렇다. 공과(功過)를 따지는 것과, 국가를 위해 복무한 데 대한 예우는 별개 문제라는 인식이 강하다. 지난 1991년 11월 로널드 레이건(40대) 기념도서관 개관식에 전·현직 대통령 5명이 모인 게 이제는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전직 리처드 닉슨(37대)·제럴드 포드(38대)·카터·레이건과 현직 아버지 부시의 축사는 서로에 대한 칭찬뿐이었다. 부시(공화당)는 행사 참석을 위해 아프리카에서 급히 귀국한 카터(민주당)에 대해 다른 평가 없이 “평화와 인권에 헌신적인 노력”만 강조했다.
오는 9일 카터 전 대통령의 ‘국가 장례식(state funeral)’이 워싱턴 국립 대성당에서 진행된다. 생전에 카터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도 “감사의 빚을 졌다”고 추모했으니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전·현직과, 예정자까지 한자리에 모인 초유의 장면이 나올 듯하다. 카터와 1976년 대선에서 맞대결을 했던 포드의 아들 스티븐 포드 등이 추모사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의 경우, 전·현직 대통령이 모인 것은 노무현 정부 때이던 2006년 전두환·김영삼·김대중 초청 만찬이 마지막이었다. 이제 그들 모두 세상을 떠나고, 이명박·박근혜·문재인 등 3명의 전직 대통령이 있다. 현직 대통령은 권한 정지 상태다. 이들을 한자리에서 보는 게 우리 정치에선 기대할 수 없는 광경인가. 카터 장례식이 열리면 부러움 반, 한탄 반으로 바라보는 일이 또 반복될 것 같다.⊙
01-06(월) 명령 따른 죄

이현종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기회 있을 때마다 ‘제복 입은 영웅에 대한 존경과 예우’를 강조했다. 국가보훈처를 부로 격상하고 6·25 참전 용사들에게 새 제복을 지급하기도 했다. 군인·경찰·소방관 등 제복 입은 공무원들에 대한 처우 개선도 각별했다. 자신은 현역 복무를 하지 않았지만, 병사 월급 200만 원 등 군인들의 처우 개선 정책도 역대 정부에 비해 돋보였다.
그러나 수해로 실종된 주민을 수색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채 상병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군 고위층의 면책을 위해 무리한 지시를 했다는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야당이 제기한 채상병특검법에 대해 거듭 거부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해병대와 척을 졌다. 해병대는 역대 보수 정권의 탄탄한 지지 기반이었는데, 이 사건으로 상당 부분 등을 돌리게 됐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군심(軍心)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계엄 여파로 현재까지 직무 정지된 장성은 진급 예정자를 포함해 모두 9명. 박안수 육군참모총장(대장), 여인형 방첩사령관·곽종근 특전사령관·이진우 수방사령관(중장), 문상호 정보사령관(소장), 김대우 방첩사 수사단장·구삼회 2기갑여단장·방정환 전작권 전환 TF장(준장) 등이다. 계급장 별의 숫자로 따지면 19개에 달한다. 군의 최고 엘리트들이 어쩔 수 없이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이행하다가 내란죄에 연루되면서 이등병 강등과 연금 박탈 위기에 처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젊은 군인들은 생각하고 판단하고 고통을 느끼면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것 같았다”고 했다.
경찰도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이 구속되면서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이 때문인지 지난 3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체포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 갔을 때 관저를 경호하는 수방사 소속 55경비단과 경찰 202경비단이 박종준 경호처장의 지원 요청을 거절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상관이 윤 대통령 지시를 이행하다 다 구속된 마당에 적법한 영장 집행을 막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제 윤 대통령 곁에 남은 것은 경호처 경호원뿐인데, 경찰이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반대로 윤 대통령 측은 체포영장 집행에 참여한 공수처와 경찰 간부 11명을 고발했다고 한다. 누구를 위한 고발인가.⊙
01-07 가위바위보 하나 빼기

최현미 논설위원
‘오징어 게임’ 시즌2 인기에 이번엔 공기놀이와 둥글게 둥글게 게임이 세계적 열풍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게임이라면 러시안룰렛과 섞은 ‘가위바위보 하나 빼기’이다. 1화에서 참가자 모집책인 딱지남(공유)은 자신을 뒤쫓아온 사채업자 김 대표(김법래)와 부하 우석(전석호)을 잡아 묶은 뒤 가위바위보 하나 빼기를 시킨다. 진 사람의 머리엔 곧바로 6연발 권총에 총알 1개만 넣어 겨눈다. 운 좋게 목숨을 이어가다 장전된 마지막 한 발만 남은 상황에서 김 대표는 가위와 보를, 우석은 주먹을 두 개 낸다. 김 대표는 가위를 거두기만 하면 이기는데 시간 내 선택하지 못해 실격 처리돼 숨을 거둔다. 그는 왜 이길 수 있는 게임에서 졌을까. 황동혁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김 대표가 져주는 방법도 생각했다. 그건 너무 나간 것 같았다. 이 사이에서 결정 못 하는 인간적인 고통을 좀 더 그리고 싶었다. 완벽하게 져주기보다는 고민에 사로잡힌 인물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해서 최종 결정을 했다”고 했다.
가위바위보의 기원은 중국 고대 한나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 사람에게 술을 권하는 술자리 놀이로 시작됐다는 등 여러 설이 있는데, 긴 역사 동안 여러 문화권에서 손 모양으로 승패를 가른다는 원칙은 같지만, 손 모양은 매우 다양했다. 이 놀이가 17세기 일본으로 넘어가 잔켄(掌拳)이 됐고 한국으로 전해졌다. 이즈음 유럽으로도 전파됐다. 물고 물리는 이 게임을 갖고 이어령 선생은 생전에 대국주의 중국은 보자기, 경제대국 일본은 주먹, 그사이 한국은 가위라며 한·중·일이 서로 물고 물리는 상생·순환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가위바위보 문명론’을 펼치기도 했다.
오징어 게임 2는 이 상생의 가위바위보 게임에 ‘하나 빼기’를 더했다. 그저 하나를 더한 게 아니라 완전히 우연과 운에 맡기지 않고 인간의 선택과 의지라는 요소를 넣은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늘 이기기를 바란다. 경쟁적인 한국 사회에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 2가 말하듯 내가 이긴다는 건 패배하는, 때로는 목숨을 잃는 상대를 전제하는 것이다. 내가 이기기 위해 상대의 목숨을 뺏는 ‘하나 빼기’를 할 수 있는가. 모두가 이기는 게임은 불가능한가. 어렵지만 그 룰을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
01-08 ‘듣보잡’ 트럼프노믹스

이철호 논설고문
주류 경제학은 신고전학파를 중심으로 네오 케인지언(폴 새뮤얼슨, 제임스 토빈)·뉴 케인지언(그레고리 맨큐, 폴 크루그먼)·통화주의(밀턴 프리드먼)·합리적 기대 이론(로버트 루커스) 등을 일컫는다. 이들 주류 경제학의 본산이 1885년에 설립된 전미경제학회(AEA)다. 역대 AEA 회장 중 10명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AEA가 40세 이하의 경제학자에게 주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의 역대 수상자도 3분의 1 이상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지난 3∼5일 열린 AEA 연례총회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성토장이었다. “미 경제의 최대 리스크는 트럼프” “교역 축소로 세계 경제성장률이 최대 9% 감소할 것”이라는 등 비난 일색이었다. 학파들 간 줄곧 골육상쟁을 벌여온 주류 경제학이 모처럼 대동단결했다. 트럼프노믹스의 관세 폭탄·감세·이민자 추방이 물가를 자극하고, 재정적자를 늘리며, 일자리도 줄일 것이라 입을 모았다. 벤 버냉키 전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관세를 영구적이 아니라 협상 수단으로 일시적으로 올린다면 인플레 압력은 제한적일 것”이라 덕담했을 뿐이다.
트럼프 주변엔 저명한 경제학자가 없다. “관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미 연준 의장도 말 안 들으면 해고하겠다”는 등 정치적 선동에 치우쳤기 때문이다. 주류 경제학 입장에선 참기 힘든 망언들이다. 트럼프노믹스는 소득주도성장처럼 ‘듣보잡 학설’로 평가절하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대성공을 거두면 경제학 교과서부터 다시 써야 할 판이다.
앞으로 미 경제가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8년 전에도 트럼프발(發) 재정적자 우려로 1.8%대였던 10년물 미 국채금리가 1년 만에 2.6%대로 급등하는 ‘탠트럼(발작)’을 일으킨 적이 있다. 모리스 옵스펠드 미 UC버클리대 교수는 “무역수지·재정수지 적자가 확대되고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고금리가 이어지면 트럼프가 ‘제2의 플라자 합의’를 시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책 실패를 덮기 위해 한국·중국·일본 등 대미 무역 흑자국 손발을 비틀어 달러 약세를 강요한다는 시나리오다. 오는 20일 트럼프의 취임을 앞두고 태평양을 넘어 잔뜩 먹구름이 몰려올 징조다. 우리만 비상계엄과 탄핵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어도 되는지 걱정이다.⊙
01-09 ‘검수완박’ 원죄와 업보

김세동 논설위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에 나섰다가 경호처의 저지로 5시간 30분 동안 대치하는 장면이 세계에 생중계됐다. 느닷없는 12·3 비상계엄 선포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 국회 가결로 당한 국제적 망신이 계속되고 있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의 법 집행 거부에 1차 책임이 있지만, 무능한데도 무리한 욕심까지 낸 공수처 잘못도 크다. 공수처는 체포영장 집행에 실패한 뒤 사전 협의도 없이 경찰에 집행을 일방적으로 떠넘겼다가 경찰이 거부하자 철회했다.
더불어민주당의 행태도 가관이다. 체포영장 만료 시한인 6일 국회 행안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를 찾아가 조속한 영장 집행을 촉구했다. 하지만 경찰은 공수처의 영장 집행 일임에 법적 결함이 있어 집행이 어렵다고 난감해했다. 공수처는 ‘구속영장은 검사의 지휘에 의하여 사법경찰관리가 집행한다’는 형사소송법 제81조를 근거로 “공수처 검사도 검사이니만큼 경찰로 집행 이양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문재인 정부 때의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검사의 경찰 지휘가 폐지된 만큼 위 조항의 사법경찰관리는 검찰 수사관만을 지칭한다고 보는 게 맞다.
윤 대통령은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의 수사가 불법이라며 수사와 체포영장 집행에 불응하고 있는데, 검찰 수사권 박탈에 눈이 멀어 졸속으로 수사권을 조정하면서 대한민국 형사사법체계를 엉망으로 만든 민주당의 업보가 크다. 공수처가 대통령의 직권남용 혐의 수사를 할 수 있다고 해놓고 내란죄 수사는 경찰만 가능하게 만들어놨다. 대통령은 헌법 제85조에 의해 내란·외환죄로만 소추되는데도 정작 내란죄를 공수처 수사 대상에서 빼놨다. 무성의·무책임에 기가 막힌다.
기업인의 배임·횡령 등 작은 혐의 수사에서 고위 공직자 뇌물 사건이 터져 나오는 과거 대형 게이트를 보면 공직자의 계급과 직군에 따라 수사기관을 달리한다는 게 얼마나 가당치 않은지 알 수 있다. 처장과 차장을 포함해 검사 정원이 25명으로, 능력도 인력도 부족한 공수처에 국회의원, 장·차관, 판·검사, 장성급 군인, 경무관 이상 경찰관 등의 수사를 맡긴 건 고위층 범죄에 면죄부를 준 셈이다. 민주당이 여당이 될 가능성이 생긴 지금 ‘검수완박’을 반성하고 재검토할 적기다.⊙
01-10(금) 우주 쓰레기 공포

문희수 논설위원
지난해 12월 우리 군의 세 번째 정찰위성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우주군기지에서 발사돼 궤도에 안착했다. 같은 중대형인 4∼5호기가 오는 5월까지 추가 발사되고, 이후엔 2030년까지 소형·초소형 위성 50∼60기 발사가 계획돼 있다. 이렇게 되면 30분마다 북의 미사일 기지·핵실험장 등 특정 타깃을 정찰할 수 있다.
물론 변수도 적지 않다. 당장 미국 캘리포니아·플로리다의 3개 로켓 발사장이 거의 포화 상태라고 한다. 미국에서 로켓 발사 횟수는 2020년 37회에서 지난해 145회로 4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중국·남미 등까지 합친 전 세계 발사 횟수도 같은 기간 114회에서 263회로 늘었다. 스타링크 계획을 실행 중인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지난해 134회 발사로 압도적인 1위였다. 현재 위성은 6700기로, 목표(4만2000기)에 한참 못 미친다. 여기에 아마존도 총 3000기 이상의 위성을 목표로 한 카이퍼 프로젝트에 따라 올해 본격적인 발사에 나선다.
우주 쓰레기 문제도 심각하다. 유럽우주국(ESA)에 따르면 현재 크기 10㎝ 이상의 우주 쓰레기가 2만9000개나 된다고 한다. 이 쓰레기들은 속도가 총알보다 10배나 빨라, 충돌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1957년 우주비행 시작 이후 폭발·충돌 등이 650건 이상 발생했다. 2009년 미국의 통신위성 이리듐과 러시아의 퇴역 군통신위성 코스모스 충돌 사고가 대표적이다. 이 일로 총 2500여 개의 파편이 쏟아졌고, 아직도 고도 500∼1300㎞ 사이에서 떠돈다. 2021년에는 러시아의 자국 위성 공격 시험으로 1500개 이상의 파편이 생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은 우주 파편이 충돌해 더 많은 파편을 만드는 ‘케슬러 신드롬’ 확산을 우려한다.
중대형 위성보다 비용이 싼 소형·초소형이 선호되지만, 수명은 중대형이 10년 안팎인 데 반해 소형·초소형은 기껏 3년 정도다. 머지않아 많은 위성이 쓰레기가 돼 다른 위성들을 위협하고, 충돌로 위성항법시스템(GPS)·통신·인터넷 등의 불통이 빈번해질 수도 있다. 지구 상공이 우주 쓰레기에 덮이면 달·화성 탐사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당장 우주 쓰레기를 줄일 세계협약이라도 맺어야 한다. 공상과학영화처럼 우주 쓰레기 수거 업체를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01-13(월) 트럼프 ‘캐나다 합병’ 망상

이미숙 논설위원
태평양과 대서양, 미국과 알래스카 등에 접해 있는 캐나다는 인구가 4000만 명 정도지만, 국토 면적으로는 러시아 다음으로 큰 나라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4년 국내총생산(GDP)은 2조2000억 달러, 1인당 GDP는 5만3000달러 수준이다. 3억4000만 명 인구에 GDP가 29조 달러인 미국 때문에 골리앗 옆의 다윗 같아 보일 뿐, 세계 9위의 경제 대국이다. 캐나다는 유엔 창립 회원국으로서 주요 7개국(G7), 주요 20개국(G20) 멤버이자, 나토(NAT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다. 한국과는 국력 수준이 엇비슷해 국제 무대에서 중견국으로 협력해온 우방이기도 하다.
취임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캐나다가 미국과 합병하면 위대한 국가가 될 것”이라고 거듭 밝혀 논란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캐나다가 불법 이민 및 마약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취임 후 관세 25%를 부과하겠다고 협박하면서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는 게 어떠냐”고까지 했다. 반발하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를 ‘주지사(Governor)’로 부르며 모욕하기도 했는데, 이후 트뤼도 총리는 사임 발표를 했다. 트럼프의 외교적 막말이 재무장관 사퇴 등으로 실각 위기에 몰린 트뤼도 총리의 정치 생명을 끊은 셈이다.
최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캐나다가 트럼프 시대 미국의 합병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법은 유럽연합(EU) 가입”이라면서 “EU가 캐나다를 28번째 회원국으로 초대해야 한다”고 했다. 캐나다가 EU 품에 안기면 트럼프 측의 합병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고, EU는 과밀 인구를 캐나다로 분산할 수 있어 윈윈이 된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의 캐나다 합병 언급에 대해 “불필요한 분란만 키우는 외교적 괴롭힘”이라고 지적했다. 또, “캐나다가 51번째 주가 되면 제2의 캘리포니아가 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캐나다는 ‘북미의 유럽’으로 불리는 유럽식 복지 국가인데, 미 연방이 된다면 민주당 지지 주가 될 게 뻔하다는 얘기다. 지난해 캘리포니아주 인구는 3897만 명으로 선거인단은 54명이다. 캐나다가 미 연방이 될 경우, 캘리포니아만큼의 선거인단을 갖게 되어 공화당의 대선 승리는 물 건너갈 수도 있다. 트럼프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 아닐까.⊙
01-14 대통령감 1위는 ‘유보’

오승훈 논설위원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정당 지지율 구도가 3주 만에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으로 되돌아갔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이어지며 아전인수식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한국갤럽의 1월 2주(7∼9일) 조사에서 국민의힘이 34%, 민주당은 36%였다. 직전 조사인 12월 3주(17∼19일)의 국민의힘 24%, 민주당 48%로 24%P였던 차이가 2%P로 급감했다. 국민의힘 약진은 대구·경북(33→52%)과 서울(21→40%), 60대(31→ 53%)가 주도했다. 갤럽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안 가결, 내란죄 제외 등으로 인한 보수 결집을 요인으로 들었다.
민주당은 보수층 과다표집을 지적한다. 12월 3주 조사 대상 1000명 중에 보수는 267명, 중도 250명, 진보 357명이었다. 이번엔 1004명 중 보수 331명, 중도 274명, 진보 293명이었다. 응답자 구성 비율에서 보수가 7%P, 중도가 2%P가량 늘어난 것은 맞다. 하지만 정치 성향은 상황에 따라 변동한다. 보수층이 적극적으로 응답한 결과로 추정되지만 보정할 기준도 없다. 지난 6∼8일 전국지표조사(NBS)에서 민주당 36%, 국민의힘 32%로 집계된 것을 보면, 보수 결집은 전반적인 추세다. 휴대전화 면접 조사 결과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다만, 장기 추세 여부는 두고 봐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여론의 초점이 탄핵 찬반 속에 점차 대선으로 옮아가는 점이다.
갤럽 조사에서 ‘장래 대통령감’(자유 응답)을 묻는 질문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32%로 1위였는데, 사실 가장 많은 응답은 ‘의견 유보’(33%)였다. 민주당 지지층 중에선 이 대표를 선택한 응답자는 75%였고, 15%는 ‘의견 유보’였다. ‘탄핵 찬성’이 지난번보다 11%P 빠진 64%였는데, 그중에서도 49%만이 차기 주자로 이 대표를 지지했다. 탄핵에는 찬성하지만, 이 대표에는 부정적인 그룹이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조기 대선의 정치공학이 패착을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여당은 반대로 ‘이재명 집권 포비아(공포)’가 극단 그룹을 중심으로 보수층 결집 효과를 냈지만, 거기에 함몰돼가는 게 난제로 보인다. 조정훈 국민의힘 전략기획특위 위원장은 “계엄이라는 내부의 고름을 아프지만 짜내야 한다”며 “영남·강남·기득권 프레임에 갇혀서는 더 큰 정치를 할 수 없다”고 했다.⊙
01-15 카톡 계엄령

이현종 논설위원
몇 해 전 한 언론사의 베이징 특파원이 6월 4일 ‘톈안먼 사태’를 취재하기 위해 서울에 있는 본사와 SNS를 주고받았다. 이 특파원은 톈안먼 광장에 한 번 나가보겠다고 취재 계획을 본사에 알렸고, 데스크도 허락했다. 그런데 이렇게 소통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중국 공안이 이 특파원 집에 들이닥쳤다. 다짜고짜 노트북을 압수하고 그를 연행해 조사를 벌였다고 한다. 6월 4일 즈음이 되면 중국은 인터넷 검열 시스템인 일명 ‘만리 방화벽’을 가동해 톈안먼, 6·4 등을 집중 검열해 이 특파원에게 한 것처럼 무단으로 연행해 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비상계엄이라는 단어를 잊고 산 지 오래됐는데 윤석열 대통령 ‘덕분’에 되살려 냈다. 책에서 비상계엄을 배운 세대야 느낌이 덜 하겠지만, 50대 후반에서 60세 이상 된 국민에게는 ‘계엄=학살’이라는 도식으로 통한다. 1980년 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기억이 있는 사람에게 비상계엄은 트라우마와 같다. 비상계엄도 황당한 일인데 이젠 더불어민주당이 뜬금없이 카톡을 뒤져 내란 선전을 단속하겠다고 한다.
전용기 민주당 국민소통위원회 위원장은 “커뮤니티, 카카오톡을 통해 가짜뉴스를 퍼 나르는 것은 충분히 내란 선전으로 처벌받는다. 일반인이어도 단호하게 내란 선동이나 가짜뉴스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 이후 국민의힘은 물론 MZ세대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여기가 공산주의 국가인가요”라는 비판 글이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내란 선전을 규정하기도 애매모호한데 유튜버들뿐만 아니라 일반인까지 단속하겠다는 것에 대해 ‘카톡 계엄령’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 정도로 비판이 거세면 당 지도부가 조절할 텐데 이재명 대표는 13일 한술 더 떠 “카톡이 가짜뉴스 성역인가”라며 “가짜뉴스에 기생하고 기대 나라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에 대해서는 민주당 역량을 총동원해 엄정히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면서 ‘종북좌파를 일거에 쓸어버리겠다’고 했는데, 이젠 이 대표가 카톡의 가짜뉴스를 일거에 단속하겠다고 한다. 종북좌파를 무슨 기준으로, 누가 판단할지도 의문인데, 가짜뉴스도 민주당이 알아서 판단할 것인가. 이런 면에서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닮은 점이 많다.⊙
01-16 老배우의 눈물

최현미 논설위원
세계적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84) 감독이 지난해 아카데미 평생 공로상을 받았다. 감독이든 배우든 60∼70세를 넘어 노배우·노감독으로 불리기 시작하면 공로상 대상이 된다. 그쯤 돼야 평생 업적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노배우 셜리 매클레인(91), 로버트 레드퍼드(89), 더스틴 호프먼(88)도 각종 공로상을 받았다. 하지만 누구도 최전성기에 공로상을 받진 않기에 빛나는 ‘영광’과는 별개로 아릿한 ‘황혼’의 느낌이 난다.
“60살 먹어도 잘하면 상 주는 거다. 공로상이 아니다. 연기를 연기로 평가해야지 인기나 다른 조건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 1935년생 구순의 이순재 배우가 13일 ‘2024 KBS 연기대상’에서 드라마 ‘개소리’로 대상을 받은 뒤 이렇게 말했다. 한글 장단음을 완벽하게 구분하는 유일무이한 배우답게 그는 ‘공로상이 아니다’는 상의 의미를 정확하게 발라냈다. 젊어서 중·노년 역을 맡은 탓에 40대부터 숱한 공로상을 받은 노배우가 연기인생 69년에 ‘연기대상’을 받았다. 야윈 모습에 부축을 받으며 오른 그는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네”라며 “늦은 시간까지 지켜봐 주신 시청자 여러분, 평생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다. 감사하다”며 울먹여 모두의 눈시울을 붉혔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연기를 시작한 그는 요즘 객석을 자주 울린다. 지난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건강상 이유로 하차하기 전까지 노배우의 투혼에 늘 가슴 뭉클한 기립박수로 끝났고, 백상예술대상 무대에서 선보인 짧은 연극은 지금도 회자된다.
당시 오디션에 참가한 원로 배우 역을 맡은 그는 “무대는 존재 의미이며 살아가는 이유”라며 ‘배우는 어때야 하냐’는 질문에 “항상 새 작품, 역할에 도전해야 한다. 공부하고 고민하는 게 배우다”며 “예술은 완성이 없다. 완성을 향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도전하는 게 배우의 숙명”이라고 말해 객석을 또 울렸다. 세상은 변하고, 삶은 굽이치고, 시간 앞에 육체는 나약하지만, 흔들림 없이 자기 일을 사랑하고 스스로 채찍질하며, 오늘도 또 앞으로 나가는 인간에 대한 경의일 테다. “몸살감기로 누워 있다가도 ‘레디 고’ 하면 벌떡 일어난다”는 구순의 현역 배우에게 존경을 보내며 관객으로 시청자로 그를 기다린다.⊙
01-17(금) 대륙의 실수, 대륙의 실력

이철호 논설고문
‘대륙의 실수’는 중국산 제품이 의외로 뛰어난 완성도를 갖고 있을 때 붙이는 표현이다. 그 원조는 2010년의 사운드매직 PL30이다. 2만 원대 착한 가격의 이어폰이 역대급 음질을 뽐내며 ‘대륙의 명기’로 올라섰다. 이후 DJI의 드론, 샤오미의 스마트폰 등이 꼬리를 물었다. 요즘 ‘대륙의 실수’ 상징은 국내 로봇 청소기 시장을 장악한 ‘로보락’이다. 진공 흡입에다 물걸레 청소, 걸레 세척과 건조까지 다 알아서 하는 150만 원대 고급 제품이다. 뒤늦게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경쟁 제품을 내놓았으나 역부족이다.
한국 소비자들의 호응에 자신감을 얻은 중국 기업들은 올 들어 아예 집단 공습에 나섰다. BYD는 3000만 원대 준중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인 ‘아토3’, 샤오미는 최신 스마트폰 ‘14T’, TCL은 QLED TV를 내세워 떼 지어 몰려드는 중이다. “싼 게 중국산”은 옛말이다. 지리차는 볼보, 하이얼은 미국 GE 가전사업 등을 인수하며 품질을 끌어올렸다. 글로벌 시장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분야가 시진핑 주석이 집중적으로 미는 전기차·배터리·태양광이다. 유럽 자동차 업체들은 중국 전기차에 밀려 아예 공장 문을 닫고 있다. 일론 머스크도 “중국 전기차가 수입되면 미국 자동차 회사는 다 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당황한 유럽이 중국산 전기차에 45%, 미국은 100%의 관세를 매기기 시작했다. BYD가 한국 등 대체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것도 미·유럽의 관세 폭탄과 일시적 수요 정체(캐즘)를 피하기 위해서다.
중국산 공습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다. 정부의 지원금을 바탕으로 과잉 생산이 넘쳐나고, 그 돌파구로 저가 수출에 눈을 돌리기 때문이다. 이런 ‘디플레이션 수출’은 상대 국가를 자극하고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 우리도 지난달 중국산 석유수지 제품에 반덤핑 관세를 때렸고, 열연강판과 후판에 대해 반덤핑 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제 시작일뿐, 앞으로 전면전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중국산 가전은 폄하가 아니라 무서워해야 할 대상이다”(조주완 LG전자 사장), “중국 제품을 보며 하루하루 더 절실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LS그룹 구자은 회장)…. ‘대륙의 실수’가 어느새 ‘대륙의 실력’을 넘어 ‘대륙의 공포’까지 자아내고 있다.⊙
01-20(월) 악용되는 헌법의 틈새

김세동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과정에서 헌법 곳곳의 허점이 드러났다. 현직 대통령의 위헌적 계엄이 1987년 개헌의 아버지들이 예상하지 못한 사태이기도 하지만, 국회 압도적 다수당의 관례와 상식을 벗어난 독선 독주에 헌법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어 권력구조에 대한 개헌이 이뤄지면 탄핵 조항도 꼼꼼히 손봐야 한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 맞고 헌법은 더 말할 것도 없지만, 다수당이 아전인수로 법을 해석하는 바람에 예상 가능한 모든 경우를 가정해 만들어야 하는 지경이 됐다.
우선,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소추 의결정족수부터 정리해야 한다. 헌법 제65조 2항에 따르면, 대통령 탄핵소추 가결엔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200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니 권한대행 탄핵에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는데, 더불어민주당과 그 당 출신 국회의장은 일반 탄핵 기준인 재적 과반(151석 이상)이 맞는다며 192명이 찬성한 한덕수 권한대행 탄핵소추 가결을 선언했다. 후임 대통령 권한대행인 최상목 경제부총리 탄핵도 야당이 겁박하는 만큼 윤 대통령 탄핵심판보다 빨리 권한대행의 탄핵소추 가결 기준을 정리해줘야 하는데, 지난 13일 한 총리 첫 변론준비기일을 연 헌재가 다음 달 5일 2차 기일을 예정하는 등 전혀 서두를 기색이 없다.
탄핵소추된 공직자는 헌재 심판 때까지 권한행사가 정지된다는 헌법 제65조 3항도 문제다. 윤 정부 출범 이후 민주당은 탄핵소추안을 29건 발의해 감사원장, 방송통신위원장, 행정안전부 장관, 서울중앙지검장 등 13건을 통과시켰는데 대부분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중대하게 위배한 게 없어 보인다. 직무정지만을 노린 정략적 탄핵소추를 막기 위해선 대통령 이외의 탄핵소추 가결 정족수도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어렵게 하거나, 국회의 탄핵소추 가결만으로 직무가 정지되지 않게 해야 한다.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84조는, 기왕에 재판을 받던 후보자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재판이 중지되는지 아닌지 새로 규정돼야 한다. 선거법 위반 등 8개 사건 12개 혐의로 5개 재판을 받는 이재명 대표가 조기 대선에 당선되면 큰 논란거리다.⊙
01-21 뜨는 아르헨, 지는 브라질

문희수 논설위원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남미를 대표하는 자원 대국이다. 포퓰리즘이 극성인 국가로도 유명하다. 이런 두 나라가 대조적인 행보로 명암이 극명하게 갈려 관심이다. 지금까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22차례나 받아, 남미의 병자로 불렸던 아르헨티나가 고강도 경제 개혁을 통해 기사회생한 것이 발단이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가 지난 10일 “최근 역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례 중의 하나”라며 극찬했을 정도다.
아르헨티나 부활의 주역은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다. 그는 ‘전기톱 구조개혁’을 표방하며 취임 1년 만에 나라를 대변신시켰다. 살인적인 고물가도 잡았다. 지난해 4월 289%로 치솟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개월 뒤인 12월 117%로 뚝 떨어졌다. 밀레이 대통령이 부처 통폐합과 공무원 등 정부 일자리 축소, 에너지·교통비 보조금 삭감 등 정부 지출을 줄이고, 암시장 환율 폭등을 진정시키려고 자국 페소화의 가치를 54%나 낮추는 등 개혁을 밀어붙인 결과다. 1년 새 주가는 160% 올랐고, 무역수지는 흑자로 전환했다. IMF가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3.7%에서 올해 5%로 상향할 정도로 향후 전망도 밝다.
브라질은 이런 아르헨티나의 반전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중남미 좌파의 대부 격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이 3선에 성공해 2023년 취임한 이후 인프라·공공서비스·복지 등의 지출을 늘린 결과, 경제가 휘청인다. 재정 적자는 2년 만에 두 배가 됐고, 헤알화 가치는 1년 새 27% 급락했다. 강력한 조치 없이는 공공부채가 지속 불가능한 수준이 될 것이라는 게 외신들의 경고다.
경제엔 묘책이 따로 없다. 원칙을 어기면 경제가 타격받고, 한 번 경제가 무너지면 혹독한 청구서가 뒤따른다. 아르헨티나도 회생 과정에서 2023년 12월 44%였던 빈곤율이 3개월 만에 54.8%까지 높아졌다. 지난해 하반기엔 36.8%로 완화됐지만, 서민층일수록 고통이 더 클 게 분명하다. 상반된 행보로 국운이 엇갈리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포퓰리즘은 결국 독배’라는 엄중한 교훈을 새삼 상기시킨다. 올해 예상되는 조기 대선에서 포퓰리즘이 더욱 기승을 부릴 우려가 큰 우리로서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전 정부 때의 실패를 반복해선 안 된다.⊙
01-22 US스틸과 고려아연

이미숙 논설위원
US스틸은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가 존 피어폰트 모건과 손잡고 1901년 설립한 철강 회사다. 20세기 미국의 산업화를 이끈 핵심 기업으로, 제2차 대전 때 전투기와 군함, 탱크, 총, 폭탄에 들어가는 철강은 대부분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US스틸 덕분에 미국이 2차 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이 회사에 대한 미국인들의 자부심도 남다르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일본과 유럽, 중국 철강회사의 공세에 밀리며 쇠락했고, 결국 지난 2023년 말 일본제철에 149억 달러(약 21조 원)에 매각하기로 결정됐다.
US스틸 주주들도 거래에 찬성해 인수전은 순항하는 듯했으나 지난해 대선을 거치며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문제는 산으로 가기 시작했다. US스틸 본사가 경합주(州)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탓에 민주당·공화당 양측 모두 US스틸 매각에 반대했다. 결국, 20일 퇴임에 앞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는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며 매각 불허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대중(對中) 견제를 위한 공급망 동맹을 내걸고 ‘프렌드 쇼어링’ 정책을 추진했던 바이든 행정부가 이런 결정을 한 것은 과도하다. 그럼에도 미국 대표 기업을 동맹국에 넘길 수 없다는 국민 정서 때문에 정치적 결정을 내린 것이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막바지에 도달했다. 고려아연과 영풍 대주주의 뿌리 깊은 갈등에서 시작된 싸움에 사모펀드 MBK가 개입하면서 ‘한국판 US스틸 매각전’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기고문에서 ‘MBK 주요 투자자 중에는 중국투자공사(CIC)가 포함돼 있다’면서 ‘고려아연의 핵심 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갈 위험이 있다’고 썼다.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의 핵심 인사가 고려아연 사태에 우려를 표한 것은 이례적이다.
공급망 분리가 가속화하는 신냉전 시대 세계 2위의 정련아연 생산 기업인 고려아연이 중국에 넘어갈 경우 후폭풍은 엄청날 것이다. 대통령 탄핵소추 사태로 정국이 어수선한 가운데 23일 열리는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를 앞두고 국민연금이 집중투표제를 제안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하지만 이사 선임은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핵심 기업을 지키는 게 이토록 힘들다.⊙
01-23 이재명식 실용주의

오승훈 논설위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요즘 ‘실용주의’가 화두다. 22일 당 대표 회의실엔 ‘회복과 성장, 다시 大한민국’ 문구의 걸개가 새로 설치됐다. 윤석열 정부가 내건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와 겹친다는 지적이 일자,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이 쓰던 구호면 어떤가. 제가 쓰자고 했다. 쥐만 잘 잡으면 된다”고 했다. ‘흑묘백묘론’이다. “이제는 탈이념, 탈진영의 실용주의로 완전하게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첫날부터 쏟아진 전방위 리스크와 관련해서도 “실용적인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시로 ‘한미동맹’을 언급한다. 조셉 윤 주한미국대사 대리를 만나선 “한미동맹으로 한국이 성장 발전했고, 한미동맹을 더 강화 발전시키겠다”고 했다. 민주당 의원 82명이 제출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미동맹 지지 결의안’에도 참여했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외교·안보와 통상 전략을 마련해 대응해야”(20일)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으며 한미동맹은 더욱 강화될 것”(17일). 지난해 말 이임을 앞둔 필립 골드버그 전 주한미국대사를 만나선 “한미동맹은 한미관계의 기본”이라더니 “한미일 간의 협력관계도 계속될 것”이라고도 했다. 골드버그 전 대사가 “감사드린다”고 했을 정도였다.
미즈시마 고이치 주한일본대사 접견 땐 자신이 “일본에 애정이 매우 깊은 사람”이라며 “적대감을 갖고 살았지만 변호사 시절 일본을 방문했다가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정치세력 간의 담합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윤 정부 노선을 견제했지만, “양국 관계의 중요성은 변함없다. 한일, 한미일 협력관계가 더 발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첫 번째 탄핵소추안에서 한미일 공조를 탄핵 사유로 삼았던 정당의 대표는 사라진 듯하다. 겉만 보면 “중국에 그냥 셰셰하면 되지”라던 기류가 아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지지율 하락, 트럼프 진영의 따가운 시선이 신경 쓰였을 것이다. 정치에서 실용주의는 이념이나 가치 지향에 대한 반대말로 통한다. 하지만 모든 대상을 자기 편의대로 수단·도구화하고, 오류를 실용으로 합리화하는 경향을 띤다. 윤 정부의 국정 운영 원칙 중 하나도 실용이었다.⊙
01-24 리플리 증후군

이현종 논설위원
지난해 세상을 떠난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은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로 불린다. 1960년 그의 첫 주연작인 ‘태양은 가득히’는 25세 알랭 들롱을 알린 작품이다. 조각 같은 외모에 다부진 몸, 서늘한 눈빛을 가진 매력적인 ‘나쁜 남자’였던 알랭 들롱은 전 세계 여성의 마음을 훔쳤다. 그러나 이 영화는 욕망에 사로잡힌 젊은이의 끔찍한 범죄를 다룬 영화인데 주인공이 알랭 들롱이다 보니 범죄마저 멋있게 보였다.
가난한 주인공 ‘톰 리플리’는 부잣집 아들 ‘필립’을 동경하지만 멸시당하다 결국 필립을 살해한다. 죄책감도 잠시, 필립처럼 살고 싶어 그의 신분증과 서명을 위조해 백만장자의 삶을 살아간다. 거짓말을 계속하다 보면 자신도 이를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다. 미국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에서 유래된 ‘리플리 증후군’은 거짓말을 반복하다가 결국 거짓말을 현실로 착각하는 정신질환 일종이다.
대개 거짓말을 하면 말을 더듬고 얼굴이 빨개지며 심박수가 올라가지만, 리플리 증후군을 앓고 있으면 전혀 변화가 없다고 한다. 거짓말을 듣는 상대방도 워낙 당당하면 진실인 것처럼 믿는다. 지난 21일 헌법재판소 변론에 출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대행으로부터 2가지 질문을 받는다. 12·3 계엄 선포 당일 최상목 경제부총리에게 건넨 쪽지에 적힌 비상입법기구의 의미와 본회의장에 있는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는지 여부다. 쪽지는 이미 최 대행이 국회와 경찰 수사에서 당시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직후 “참고하라”고 말을 했고, 옆에 있는 직원이 건넸다고 증언했다. 쪽지도 증거로 제출했다. 의원들 끌어내라는 말과 이재명·한동훈 대표 체포 지시는 수방사령관, 방첩사령관, 특전사령관, 경찰청장, 국정원 1차장 등이 모두 한결같이 증언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윤 대통령은 “쪽지를 준 적도 없고, 계엄 해제 후 이런 메모가 나왔다는 것을 기사로 봤다”고 부인했다. 의원들 끌어내라는 지시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 말이 진실이면 최 대행을 비롯해 많은 인사가 짜고 대통령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모함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현재까지 드러난 상황을 보면 윤 대통령이 내란죄 핵심 사안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리플리 증후군’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01-31(금) 딥시크 명암

이철호 논설고문
중국 인공지능(AI)인 딥시크는 충격과 공포였다. 미국 빅테크들의 시가총액은 지난 27일 하루 사이에 1조 달러(약 1400조 원)나 증발했다. “중국 AI발(發) 스푸트니크 모멘트”라는 낭패감이 가득하다. 발작은 세 단계로 일어났다. 첫째, 딥시크가 챗GPT의 10% 개발 비용으로 대등한 성능을 뽐내면서 단번에 오픈AI·구글·메타를 위협했다. 둘째, 값싼 저사양 AI칩과 빅테크 대비 5% 정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들로 성공해 엔비디아를 뒤흔들었다. 셋째, 그동안 수조 원을 들여 데이터센터를 구축해온 아마존 같은 하이퍼스케일러들은 물론, 엄청난 전기 판매로 대박을 꿈꾸던 전력회사들까지 폭망했다. 과잉 투자 의심을 받게 된 것이다.
미국은 헐뜯기 총력전에 나설 태세다. 딥시크가 엔비디아의 첨단 칩은 물론 오픈AI의 데이터까지 몰래 훔쳤다는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다. 톈안먼 사태 등을 물어보면 ‘입꾹닫’한다며 검열 의혹도 제기하고, 부정확한 응답 비율을 공개하며 성능까지 깎아내린다. 돈세탁이나 폭탄 제조 방법을 알려주는 등 범죄에도 취약하다며 몰아세운다. 한마디로 중국산 ‘깡통’이란 것이다.
중국의 과학기술 굴기(굴起)는 벌써 심상치 않은 조짐이 있었다. 세계 최고 학술지인 네이처 발행회사가 2023년 학술논문의 수와 영향력을 조사한 ‘더 네이처 인덱스’에서 중국이 1위를 차지했다. 미국은 2위로 떨어졌다. 베이징대·칭화대·난징대·저장대의 연구 성과는 미국의 하버드·스탠퍼드·매사추세츠공대(MIT)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중국 연구자들이 집중 투고하는 학술지들도 임팩트 팩터(IF:인용지수)가 가파르게 치솟으며 상위권을 휩쓸었다.
미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은 지난해 8월 “중국이 강력한 추진력과 전략적 투자로 미국의 AI를 따라잡거나 능가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번에 딥시크를 개발해낸 주역들도 중국 명문대를 갓 졸업한 토종 천재들이었다. 문제는 한국이다. 사실상 미국과의 거대언어모델(LLM) 개발 경쟁은 포기한 상태다. 미국의 봉쇄망 속에서도 무서운 속도로 치고 나가는 중국의 과학기술 굴기와 대비된다. 자칫 한국이 미국의 초격차와 막대한 자금력, 중국의 기술 추격전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신세가 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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