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直說 2025-01/ 01.02(목) 수출 사상 최대, - 01.27 재정자립도 10% 안팎 野 지자체장들의 설 지원금 살포
正論直說 2025-01/
01.02(목) 수출 사상 최대, 어두운 시국 속 위안 준 한국의 저력

▲지난해 수출이 6838억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사진은 1일 부산 남구 신선대 및 감만부두에 수출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모습. /뉴시스
지난해 수출이 6838억달러로 잠정 집계돼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세계 10대 수출국 중 가장 높은 9.6%의 수출 증가율을 기록했고, 수출 순위도 세계 8위에서 6위로 뛰었다. 1위 품목인 반도체 수출액이 1419억달러로, 전년 대비 44%나 늘어난 것이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범용 메모리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HBM(고대역폭 메모리) 등 고부가 품목의 수출이 급증해 수출 증가세를 견인했다.
자동차 수출액도 708억달러로 2년 연속 700억달러를 웃돌았고, 선박(256억달러), 바이오(151억달러), 식품(117억달러), 화장품(102억달러) 등도 역대급 수출 실적을 냈다. 덕분에 2023년 100억달러 적자였던 무역수지가 518억달러 흑자를 냈다. 일본과 수출액 격차도 200억달러대로 좁혀졌다. 한일 간 수출 격차는 2008년 3600억달러를 정점으로 계속 줄어들어 이제 몇 년 안에 일본을 역전할 수 있는 수준까지 따라잡았다.
그러나 새해엔 대외 여건이 밝지 않다.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에 따른 미국발 보호무역 태풍과 중국의 수출 덤핑 확대 등 수출 환경이 급격히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정부가 공약대로 10% 보편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에 60% 보복 관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의 대미 수출이 최대 14% 감소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주력 산업 분야에서 중국의 추격이 더욱 거세져 우리의 수출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도 높다.
지금 한국 경제는 내수 침체 속에서 오로지 수출 외바퀴로 굴러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수 지표인 소매판매액지수는 10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 중이고, 계엄 이후 소비 심리는 더욱 위축돼 자영업과 서민 경제를 얼어붙게 하고 있다. 정치 리스크가 기업의 투자 감소와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가속화된다면 새해 경제 성장률이 잠재성장률(2.0%)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내수 침체 심화 속에서 수출마저 꺾이면 한국 경제는 급속히 위기 국면에 빠질 것이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머리를 맞대고 수출 호조를 유지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여야는 반도체 기업의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반도체 특별법부터 조속히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 정부는 대외 통상 외교를 강화해 미국발 관세 폭탄, 중국발 덤핑 공세를 막아낼 해법을 찾아야 한다. 혼란스럽고 어두운 시국에서도 온 국민에게 위안을 준 수출의 동력이 꺼지지 않도록 미래 수출 산업을 계속 키워나가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1.03 한국 수출 ‘새 역사’… 작년 역대 최대 6838억 달러
WTO 기준 세계 수출 순위 8위에서 6위로 상승
올해는 트럼프 2기·경제성장 저하 등 악화 우려
국정 안정과 무역보험 공급 규모 확대 등 시급

우리나라 수출에 새 역사가 새겨졌다. 지난해 연간 수출은 6838억 달러로 2년 만에 역대 최대 수출액을 경신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역수지도 전년 대비 621억 달러 개선된 518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2024년 1~9월 세계무역기구(WTO) 기준 전 세계 수출 순위도 2023년 8위에서 두 단계 상승한 6위를 달성했다. 상위 10대 수출국 중 가장 높은 수출증가율(+9.6%)을 기록한 것이다.
무한경쟁의 글로벌시대 주요 수출 대상국의 경기 부진과 치열한 시장 쟁탈전,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라는 악조건을 이기고 이룩한 ‘금자탑’이기에 상찬받아 모자람이 없다. 내용도 알차다. 15대 주력 수출 품목 중 총 8개 품목의 수출이 증가했다.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 수출은 43.9% 증가한 1419억 달러를 기록해 2023년 11월 이후 14개월 연속 증가 흐름을 이어 갔다. 자동차는 하반기 주요 완성차·부품업계 파업 등에 따른 일부 생산 차질 영향으로 전년도와 보합세인 708억 달러(-0.1%)를 기록하며 2년 연속 700억 달러 이상의 호 실적을 거뒀다.
선박은 고부가가치 선박 수출이 빛을 발했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대형 컨테이너선 수출 등으로 두 자릿수(+18%) 증가한 256억 달러를 기록했다. 석유화학은 480억 달러로 하반기 유가 하락에 따른 수출단가 하락에도 5.0% 늘었다.
하지만 올해는 우리 수출을 낙관할 수 없다. 장애 요인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성장률이 1%대로 내려앉을 것으로 전망된 데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이달 20일 출범 직후부터 관세 폭탄으로 상징되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쏟아 낼 것으로 예상되는 등 대내외적으로 파고가 만만치 않다. 2024년 말 갑작스러운 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 소추, 그로 인한 정국 불안정은 악재를 더하고 있다.
한국의 올해 수출이 어려울 것이란 분석은 경제단체‧국책 연구기관에서 제기됐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의 ‘2025년 1분기(1~3월) 수출산업경기전망지수(EBSI)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EBSI는 96.1로 나타났다. 4개 분기 만에 기준치인 100을 하회했다. 100보다 낮으면 전 분기 대비 수출이 악화할 것이란 의미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12대 수출 주력 업종 150개 기업을 상대로 조사한 ‘2025년 수출 전망 조사’는 비관적이다. 올해 수출은 작년 대비 1.4% 증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수출 악화의 주요 원인으로는 통상 환경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꼽힌다. ‘주요 수출 대상국의 경기 부진(39.7%)’ ‘관세 부담 등 보호무역주의 강화(30.2%)’ 등이 수출에 악조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얘기다.
대한민국은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 비중은 43% 안팎으로 주요 20개국(G-20) 국가 중 독일(46.1%)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율이 98.6%에 이를 정도로 우리 경제에 수출 기여도는 절대적인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올해 수출 저조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만큼 적극적인 정책 대안이 요청된다. 수출 우상향 모멘텀 유지를 위해 각국의 통상 정책을 면밀히 모니터링해 상황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역보험 공급 규모를 확대하고 급격한 환율 변동에 대응해 중소기업 수입자금 대출 보증과 환변동보험 한도 상향·환변동 보험료 특별 할인 등이 시행돼야 한다. 정보 제공·컨설팅·취득 비용 등 해외인증 원스톱 지원 창구도 넓혀 수출 기업의 편의를 제고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여야 간 소모적 정쟁을 접어 국정 안정을 기하고, 기업하기 좋은 법과 제도로 뒷받침하는 일에 힘쓰길 촉구한다.
스카이데일리 사설
01-06 서민 거주지역 ‘인프라 사업’ 펼칠 때
새해 경제 전망이 어둡다. 지난 3일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서도 최고경영자들은 경기 침체를 우려하면서 경제의 불확실성 해소와 글로벌 통상 환경 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강조했다. 정부 또한 올해 성장률을 1.8%로 하향 조정하고 재정의 70%를 상반기에 지출키로 하는 등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경제는 만만찮다. 오는 20일 출범하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과 국내 정치 혼란이 계속될 경우 성장률은 예상보다 더 낮아지고 이로 인한 금융 부실 확산과 자본 유출로 경제위기의 위험이 커질 우려 때문이다. 성장률 둔화와 내수 침체를 막기 위한 경제팀의 적극적인 대응책이 절실하다.
먼저, 내수 진작으로 미국의 보호무역 충격에 대응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1기보다 더 강력한 보호무역정책을 사용해 미국은 물론 대중(對中) 수출 또한 크게 줄어들 것이 우려된다. 실제로 그동안 수출 증대로 대미(對美) 무역 흑자는 트럼프 1기 때 100억 달러대에서 현재 500억 달러대로 크게 늘었다. 반면, 대중 무역수지는 1기 때 500억 달러대 흑자에서 적자로 바뀌었다. 미국의 보호무역으로 수출 감소와 추가 성장률 둔화가 예상되는 것이다. 정책 당국은 미·중에 편중된 수출선을 다변화함은 물론 내수를 진작해 수출 감소로 인한 성장률 둔화 충격에 대응해야 한다.
경제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기업의 투자 환경을 개선하는 일도 중요하다. 한국 경제는 정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 정치 혼란으로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경제가 정치 논리에 의해 영향을 받으면서 투자 환경이 악화하고 있다. 조세제도와 정부 규제 그리고 노동 환경 등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못 미치고 있다. 고성장 시기와 달리, 저성장 시기에는 투자수익률이 낮아 투자 환경이 글로벌 스탠더드보다 열등할 경우 기업들은 투자 환경이 우월한 외국으로 공장을 이전해 국내 투자가 감소하게 된다, 제조업 공동화(空洞化)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내수 침체가 심해지는 것이다. 정치권은 정치 혼란을 안정시켜 경제의 불확실성을 줄여주고, 정책 당국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기업 투자 환경을 개선해 내수를 진작해야 한다. 또한, 반도체와 같은 전략산업 육성을 위해 정책 지원을 늘려서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고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끝으로, 건설 경기를 회복시킬 필요도 있다. 건설업은 다른 산업과의 연관효과가 크고 미숙련 저소득층 노동자들의 고용을 늘릴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선진국도 내수 진작을 위해 건설 경기를 활용한다. 정책 당국이 저소득층 거주지역의 교통·유통·교육 인프라 구축에 재정을 투입해 건설 경기를 회복시킬 경우 소득과 부(富)의 불평등을 완화시킬 수가 있고 내수 경기를 회복시켜 금융 부실 확산과 성장률 둔화 충격을 막을 수 있다.
한국 경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과 국내 정치 혼란이라는 이중 충격에 노출돼 있다. 이러한 충격이 계속될 경우 기업 도산과 금융 부실 확산은 물론 우리 경제의 대외신인도 하락으로 경제위기의 위험이 커질 것이 우려된다. 당국은 경제정책의 초점을 인플레이션 안정보다 내수 회복에 두고 경제가 위기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경제팀의 정책 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문화일보
01.07 위태위태한 대한민국의 미생 민주주의
K정치는 지속 가능한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냐
내부의 적 준동... 독일 모델로 재정비 필요
2중3중 방어적 민주주의 체제 갖춰야 할 때
한국의 민주주의는 늘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했다고 지난주 언급했다. 그래서 완생 민주주의 아닌 미생(未生) 민주주의라는 신조어를 지난주 제시해 봤다. 물론 저널리스틱한 용어인데, 미생 민주주의란 비유컨대 바둑을 둘 때 집이나 대마가 아직 완전하게 살아 있지 않은 상태다. 완생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인 독립된 두 눈이 없다. 따라서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놀랍다. 대한민국처럼 지속 가능한 자유민주주의 체제 구축이 절실한 나라도 없는데, 막상 이 나라는 ‘더 많은 민주주의’ 구호로 어지럽다. 누구 탓인가. 좌파를 포함한 반(反)대한민국 집단과, 여기에 동조하는 세력 탓이다. 그들은 윤석열 대통령을 조롱·저주하면서 자신들이 민주주의 수호자라는 착란까지 일으킨다. 불완전한 그 K정치는 이미 세계의 놀림감이다.
중요한 건 이 통에 누구도 민주주의를 작동시키기 위한 경제적 토태·헌법 가치에 대한 존중 그리고 분단 상황의 특수성을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면 당장 수구꼴통 소리가 되돌아온다. 그러나 냉정해지자. 가장 호의적으로 말할 경우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윤석열 대통령의 큰 그림은 아마도 정치학 교과서에서 말하는 ‘방어적 민주주의’였을 것이다. 방어적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자유민주주의는 특유의 자유분방함 때문에 내부의 적을 키우기 마련이다. 그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수호하기 위해 나타난 개념이 방어적 민주주의다. 방어적 민주주의의 잣대로 보아 최고의 모범국이 독일이고, 대한민국은 허장성세뿐인 엉터리 국가다. 독일은 체제 수호의 철갑옷으로 무장했고, 우리는 베잠방이에 짚신을 신은 꼴로 히말라야 K2봉 등반을 하겠다고 설치는 형국이다.
간단하게 비교해 보자. 독일은 기본법(헌법)에 체제 방어 장치가 이중삼중으로 철저하게 돼 있다. 일테면 대표적인 기본권인 학문의 자유부터 엄격한 단서를 붙였다. 즉 헌법에 대한 충성을 전제로 학문의 자유를 허용한다. 헌법을 무시하는 자는 학문의 자유이고 뭐고가 없다는 뜻이다. 당연히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에 반하는 내용을 대학 강의실에서 가르치는 건 위헌에 속하는데, 그 맥락에서 결사의 자유나 거주 이전의 자유도 제한을 뒀다. 제한의 기준은 헌법 질서, 즉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위협하는가의 여부다.
통신 비밀에도 제한을 둔다는 명문 규정도 있다. 이 네 개의 기본권 제한에 더해 18조에선 한 술 더 뜬다. “의견 발표의 자유 특히 출판의 자유·교수 행위(학문)의 자유·집회와 결사의 자유·재산권 또는 망명자 비호권을 자유 민주적기본질서를 공격하기 위해 남용한 사람은 기본권을 상실한다.”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다. 그 바로 뒤에 등장하는 게 바로 위헌정당 해산 조항이다. 이 대목은 통합진보당 해산 때 국내에 널리 알려졌던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대한민국 헌법에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방어하는 조항이 없지 않다. 위헌정당 해산 규정(제8조 4항)이 그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본질적 내용에 대한 침해는 안 된다”고 단서를 달았지만,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국가안보·질서 유지·공공복리를 위해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는 조항도 별도로 있다(제37조2항). 그게 전부다. 그 밖에는 우린 거의 무제한의 자유를 허용한다.
즉 우리 헌법과 독일헌법을 1대 1로 비교해 볼 경우 자유민주주의를 방어하는 장치가 우리는 딱 2개 조항인데 비해 독일은 8개 조항이다. 내용에선 비교할 수 없이 독일이 강력하다. 앞서 설명한 게 학문의 자유 제한을 비롯한 기본권 제한 조항이 6개인데, 별도로 2개 조항을 추가해 이중 삼중의 잠금장치를 마련해 뒀다. 그럼 대한민국은 완전 무방비인가? 그건 아니다.
독일에 무려 10여 개의 체제 수호 관련법이 있다면, 그 막중한 임무를 한국 땅에서 맡은 유일한 법이 바로 국가보안법이다. 특히 찬양고무죄 단죄 등을 명문 규정한 국가보안법 제5~8조의 존재로 대한민국은 방어적 민주주의의 성격을 가까스로 유지한다. 당연히 국가보안법은 국보법(國寶法)인데, 좌파가 총동원돼 이걸 뒤흔든다. 제5~8조가 위헌이라는 시비도 끊임없다.
그 결과 현재 대한민국은 체제 부정을 능사로 하는 종북좌파가 대학 사회와 민주노총 같은 조직에 득시글거리고, 그들은 제멋대로 활동하며 체제 불안을 부추긴다. 이쯤 되면 철갑옷 독일과, 베잠방이 대한민국이 더욱 더 대비돼 보일 것이다. 이런 걸 두루 염두에 둔 채 지금 대한민국 상황을 복기해 보라. 지금이 체제 전쟁 시즌2라는 말이 더 실감 날 것이다.
비상계엄 실패와 탄핵 사태의 직접적인 촉발은 윤 대통령이 한 건 사실이지만, 그걸 격렬하게 증폭시키는 건 태생적으로 불완전한 구조인 이른바 K정치의 한계다. 한국 민주주의, 정말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하다. 완생 아닌 미생 민주주의를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전환시킬까. 새해 첫 칼럼에서 그걸 되묻는다.

스카이데일리 조우석 평론가·전 KBS 이사
01-08 탄핵 정국 악화에 내수는 붕괴 위기, 기업은 파산 공포
내수 침체와 탄핵 충격파로 정부가 제시한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 1.8%가 위태로워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미국 JP모건은 한 달 사이에 전망치를 1.7%에서 1.3%로 낮췄고, 씨티그룹도 1.6%에서 1.5%로 내렸다. 어음 부도율은 19개월 만에 최고로 치솟았다. 내수 업종 위주로 지난해 8월 0.03%에서 11월 0.21%로 껑충 뛰었다. 지난해 11월까지 법인 파산 신청이 1745건, 회생 신청이 984건에 달하는 등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로 내수 업종이 붕괴 위기를 맞은 가운데 계엄·탄핵 리스크까지 가세한 형국이다. 언제 제2의 레고랜드발(發) 금융 발작이 다시 일어날지 모를 살얼음판이다.
대표적 내수업종인 건설업계부터 심각한 직격탄을 맞고 있다. 태영·금호·코오롱글로벌에 이어 시공능력 58위인 신동아까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미분양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에다 공사비 급등, 수주 절벽의 4대 악재에 갇혀 도미노 파산 공포가 확산한다. 전국 미분양 아파트가 6만5146채에 이르고, 210조 원에 이르는 PF 대출 중 11.3%가 부실채권으로 전락했다. 지방 건설사들은 풍전등화 신세이고, 주요 23개 건설사 중 절반에 가까운 11곳도 부채비율이 위험 수위인 200%를 넘어섰다. 석유화학과 2차 전지업종의 먹구름도 짙어간다.
정부가 소비 심리를 끌어올리기 위해 오는 27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해 설 연휴를 늘리는 방안까지 추진하는 비상 상황이다. 재정 조기 집행은 물론 2025년 경제정책 방향에 담긴 내수 부양 조치들부터 서둘러 시행해야 한다. 자동차·전기차 구매 시 개별소비세를 30% 깎아주거나, 소비액이 작년보다 많을 경우에 추가 소득공제를 해주려면 법 개정이 급하다. 국회가 극한 대립 중이어서 27개 입법 과제 논의가 순조로울지 걱정이다. 여·야가 정쟁과는 분리해 내수 살리기에 합심해야 한다. 더 이상 탄핵 리스크가 경제로 전염돼선 안 된다. 구조조정을 위해 옥석 가리기를 하되 내수 업종의 줄 파산은 막아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1.09 원전 1기 포기, 아직도 탈원전 망령에 붙들린 나라

▲지난달 31일 울산 울주군 새울원자력발전소 풍경. /뉴시스
인공지능 혁명 등으로 대규모 전력 공급이 필요해진 상황에서 산업부가 새로 짓기로 했던 원전 4기 가운데 1기 건설을 취소하는 수정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지난해 발표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에서는 대형 원전 3기, 소형 모듈 원전(SMR) 1기 등 원전 4기를 신규 건설하기로 했다. 하지만 원전 건설에 반대하는 민주당에 막혀 1기를 줄이는 수정안을 마련한 것이다.
1년여의 전문가 숙의 과정과 시뮬레이션을 거쳐 2년마다 수립되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은 모든 에너지 수급의 기초가 되는 국가 에너지 최상위 계획이다. 11차 계획은 오는 2038년까지의 전력 수요를 예측해서 발전소 건설안을 짜고 지난해 5월 실무안을 발표해서 9월 공청회까지 마쳤다. 국회 보고와 산업부 산하 전력정책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쳐 작년 말까지 확정지어야 했지만 민주당이 신규 원전 건설 등을 문제 삼아 국회 보고 일정을 잡지 않는 방식으로 정부를 압박해 안건 상정조차 못한 채 해를 넘겼다.
일부 야당 의원들이 원전 축소와 재생에너지 확대를 요구하자 산업부는 1.4GW급 대형 원전 1기를 건설하지 않고 대신 2038년까지 태양광 발전량을 확대하겠다고 수정했다. 원전 건설엔 10년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에 야당이 발목을 잡아 일정이 계속 지연된다면 나머지 신규 원전 계획 전체가 흔들릴 수 있어 고육지책으로 원전 1기 축소안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마저 민주당이 계속 어깃장을 놓는다면 확정되지 못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 탈원전을 강행하면서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고 원전 산업 경쟁력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우리보다 앞서 탈원전 정책에 주력했던 주요 국가의 에너지 정책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인공지능 시대가 펼쳐져 전기 수요가 폭증하자 오히려 원전 르네상스가 도래했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으면서도 안정적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원전 재개로 각국이 방향을 틀고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세계 흐름에 역행하면서 실패한 탈원전에만 매달리고 있다. 에너지 안보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 된 시대에 원전 없이 어떻게 질 좋고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건가. 문재인 정권이 끝난 지 3년이 돼가는데 아직도 나라가 탈원전 망령에 붙들려 있다는 사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조선일보 사설
01-09 국익 해칠 산업부-야당 탈원전 야합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5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실무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신규 원전 건설 4.9기가와트(GW)와 그보다 14배 많은 재생에너지 72GW를 늘리는 계획도 포함돼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 정도 대규모 재생에너지는 제때에 건설할 수 없을 것으로 봤다. 그런데도 그간 야당은 원전 비중이 높다는 가당찮은 의견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그런데 지난 8일 갑자기 산업부가 원전 1.4GW를 줄이고 태양광 발전을 2.4GW 더 늘리는 조정안을 국회에 보고했다.
우리는 탈원전 정책의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다. 한국전력의 부채는 100조 원에서 200조 원으로 늘어났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70% 인상됐다. 2017년 킬로와트시(kWh) 당 전력요금은 원자력이 60원, 석탄 80원, 천연가스 120원, 그리고 재생에너지가 220원이었다. 당시 전력요금이 110원 정도였으므로 원자력과 석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 인상은 불가피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에서 탈원전 인사들은 전기요금이 오르지 않는다, 올라도 맥주 값 정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2023년 전력 단가는 더 벌어졌다. kWh당 원자력이 55원, 석탄 140원, LNG 214원, 신재생 258원이다. 제11차 전기본 실무안대로 진행된다 하더라도 72GW의 재생에너지 설비를 추가하면 전기요금은 걷잡을 수 없이 오를 것이다. 빚을 내어 이자를 갚는 한전의 부채는 더 불어난다. 전기료 추가 인상은 불가피해지고 이는 산업 경쟁력의 저하로 이어진다. 전기요금은 모든 생산 요소에 영향을 주게 되므로 물가도 오를 것이다. 우리 수출 상품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공장이 해외로 나가거나 문을 닫고,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도 재생에너지를 더 늘리고 원전 건설을 줄이는 것이 나라를 위한 일인가?
산업부도 이상하다. 정부 계획을 국회에 보고하거나 공청회에 상정할 때, 그게 기술적으로 가능할지, 또 비용이 얼마나 들어가는지를 제시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지 않았던 과거에는 그래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가격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잖고는 의견 수렴 의미가 없다. 그래서 에너지정책이 정치에 휘둘리는 것이다.
한편, 산업부가 실무안을 공개한 것 자체가 ‘눈치보기와 조정’을 암시한 것이다. 지금까지 10차례 전기본 수립 과정에서 실무안을 제시한 기억이 없다. 국회 상임위 보고 절차도 핑계다.
2017년 제8차 전력수급계획을 확정할 때, 산업부는 12월 27일(수) 국회 통보, 28일(목) 공청회 그리고 29일(금) 오전에 전력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확정했다. 2020년 제9차 전력수급계획도 12월 24일(수) 국회 통보, 크리스마스 다음 근무일인 26일(금) 공청회, 주말을 지나 28일(월) 오전에 확정했다. 즉, 근무일 기준으로 하루 만에 국회 통보, 공청회, 전력정책심의위 확정이 이뤄졌고 국회에는 통보만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야당의 의견을 들어서 조정하는 것일까? 산업부는 행정부 아니라 야당의 산업부인가?
산업부가 국가관을 가지고 전기본을 수립한다고 보이지 않는다. 이를 압박하는 야당은 더 하다. 이런 차원에서 전력부문에서 발생하는 반국익 세력에 대한 위기 의식은 일정 부분 공감한다.

문화일보
01-13 “무안공항 참사는 기술 재난… 국토부 조사위 참여, 분열의 씨앗 뿌린 격”
우리는 재난을 모른다’ 저자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한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기술 재난… 기술의 복잡성 탓 책임 규명 어려워
반복되는 참사 막으려면… 투명하고 공정한 조사로
‘재난의 서사’ 완성해 공유해야
살아남은 자, 죽은 자 희생에 빚지고… 조금 더 안전해진 세상에 사는 것

▲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홍성욱 교수는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는 누적된 기술적인 취약성과 인적 오류가 결합된 전형적인 기술 재난”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보다 안전해진 기술을 누린다면 과거 참사 생존자와 유가족이 우리를 대신해 싸웠기 때문”이라며 “우리 모두가 ‘재난 공동체’라는 연대감을 갖고 이들을 지지하고 도와야 한다”고 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과학사를 가르치던 홍성욱 서울대 교수는 2011년부터 대형 재난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계기였다. 늦둥이 아이가 돌 무렵이던 2010년 겨울, 가습기 살균제 ‘세퓨’를 사용했다. 이듬해부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아이가 기침만 해도 불안감이 엄습해 덜덜 떨렸고, ‘왜 과학자인 나조차 위험을 알지 못했나’라는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홍 교수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지난해 두 권의 책으로 펴냈다. 우리 사회의 대형 사고를 기술 재난으로 정의한 ‘우리는 재난을 모른다’와 참사가 반복되는 이유를 추적한 ‘대한민국 재난의 탄생’이 그것이다. 가습기 청소를 열심히 하지 않아 아이는 무사했지만,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그 후로도 재난이 끊이질 않았다.》
―대구 지하철, 가습기 살균제, 세월호 참사 등을 기술 재난으로 정의했다. 기술 재난은 자연 재난과 무엇이 다른가.
“자연 재난은 봄 가뭄, 여름 홍수처럼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하늘 탓밖에 할 수 없으니 재난 복구 과정에서 공동체가 끈끈해지기도 한다. 기술 재난은 이와 정반대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해 화학 물질을 규제했지만 배가 가라앉고 비행기가 추락했다. 예측 불가능하다. 사람이 만들고 운용했던 기술로 발생한 기술 재난은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기술의 복잡성으로 그 책임 소재와 사고 원인을 명확히 밝히기 어렵고, 그 결과 공동체에 균열이 일어난다.”
―지난해 12월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는 기술 재난인가.
“사고조사위원회 보고서가 나오지 않았고, 블랙박스도 해독되지 않아 속단하기 어렵지만 전형적인 기술 재난으로 보인다. 기술 재난을 설명하는 이론 중에 ‘스위스 치즈 모델’이 있다. 구멍이 숭숭 뚫린 스위스 치즈를 쌓을 때 구멍 하나가 일렬로 맞는 드문 순간이 있다. 서로 연관성이 없고, 사고 확률이 낮은 취약성이 결합하는 순간 대형 사고나 재난이 발생하는 것을 이에 빗댄 것이다. 철새 도래지에 지어진 공항, 조류 충돌 예방 시설이나 인력이 부족했던 상황, 로컬라이저(방향 안내 시설)가 설치된 콘크리트 둔덕 등 구조적인 취약성이 결합한 순간, 179명 사망이라는 비극을 낳았다.”
―조류 충돌이 일차적인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영국 히스로 공항처럼 외국에선 인근 호수에 ‘셰이드볼’(Shade Ball·검은색 플라스틱 공)을 뿌려둔다. 새 떼가 앉지 못하도록 해 쫓아내는 역할을 한다. 무안공항 인근은 철새 보호 지역이라 가장 간단한 ‘셰이드볼’ 방법을 쓰지 못했다. 그렇다면 조류 충돌 예방 인력이라도 충분했어야 한다. 사고 당시 현장 근무 인력은 1명뿐이었다고 한다. 적자 공항이라 인력을 줄였는데 근무 시간을 무작정 늘릴 순 없으니 최소한의 인력만 투입됐을 것이다. 법령 위반은 아니라지만 로컬라이저가 안전 구역에서 몇 m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고, 더구나 콘크리트 둔덕이었다. 조류와 충돌했다고 반드시 이런 참사로 이어지진 않는다. 기술적인 취약성에 인적 오류가 결합해 벌어진 참사다.”
―공항 설계나 여객기 결함 같은 기술적 오류에 힘이 실리는데…. 어떤 인적 오류가 있었나.
“조류 충돌은 무안공항에서 6년간 10번 있었다. 자꾸 반복되니 ‘별일 아닌가’라며 무시하는 ‘일탈의 정상화’가 발생했거나, 이를 위험 신호로 인식하는 문제를 제기했으나 윗선에서 묵살됐을 가능성이 있다. 당초 환경 단체에서 철새 도래지라는 이유로 공항 위치로 부적합하다고도 했다. 인간의 사소한 부주의가 기술적 오류와 결합하면 재앙적인 참사가 발생한다.”
―기술 재난은 그 피해도 크지만 회복 과정에서 공동체를 분열시킨다고 했다.
“일본의 이타이이타이병, 한국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처럼 피해를 입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느린 재난’이 특히 그렇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초기 옥시 등 기업에서 전문가를 고용해 살균제 성분의 유해성을 반박하는 보고서를 냈다. 법원이 해당 보고서를 채택하며 재판이 중단된 적이 있다. 그사이 기업은 합의금을 제안하며 무마하려고 했고, 이는 유가족 사이를 갈가리 찢어 놓았다. 자식을 잃은 참척의 고통, 내 손으로 살균제를 샀다는 죄책감, 거대 기업과 싸우는 무력감에 시달리던 피해자 공동체가 완전히 파괴됐다. 온 국민이 애도했던 세월호 참사는 정권의 안위라는 정치적 이슈로 번지면서 우리 사회가 아직도 갈등하고 있다. 다만, 무안공항 참사는 그런 징후가 덜한 것 같다. 국가 기관이 혐오 발언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밝혔고, 포털 댓글 창에도 주의를 당부하는 경고가 바로 떴다. 과거 참사를 통해 우리 사회가 성숙해진 것 아닐까. 비상계엄 정국이 이슈 블랙홀이 된 이유도 있는 것 같다.”
―기술 재난이 공동체의 분열을 초래한다면, 어떻게 막을 수 있나.
“피해자가 신뢰할 수 있는 사고조사위원회가 꾸려지는 것이 첫걸음이다. 유가족에게 공정하다고 믿음을 줄 수 있는 외부 전문가로 꾸려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무안 제주항공 사고조사위원회에 국토교통부가 당연직으로 참여하는데 이는 분열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우려스럽다. 로컬라이저만 해도 국토부는 안전 구역 밖이므로 규정 위반은 아니라고 한다. 반면, 외국 전문가는 공항에 있어선 안 될 콘크리트 설치물이라고 한다. 이런데 유가족이 사고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수긍할 수 있겠나.”
―역대 참사의 조사가 실패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사고조사위원회는 사고가 왜 일어났고, 구조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고,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 내놓고 우리 사회가 그 서사를 공유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10년 동안 조사가 이뤄졌지만 내력설, 외력설을 반박할 기술적 분석, 책임의 크기를 가리는 사법적 판단에만 치우쳐 납득할 만한 서사를 완성하지 못했다. 그러니 음모론이 자꾸 창궐한다.”
―검경도 수사를 하지 않았나.
“세월호는 사고 원인이 전부 밝혀지기 전에 재판이 끝나버렸다. 나중에 해경의 윗선에도 책임이 있을 법한 그런 증거들이 등장하는데도 일사부재리 원칙으로 처벌하지 못했다. 조사보다 수사가 앞서다 보니 형사 처벌만 피하면 결백하다고 생각한다. 도덕적 책임,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제도적인 변화로도 이어지지 않는다. 대형 참사가 반복되는 이유라고 본다.”
―세월호 참사를 예로 우리 사회가 공유할 서사를 만들어 본다면….
“세월호는 구조 변경으로 복원성이 취약한 배였는데 과적을 하고 출항했다. 고박이 풀린 화물이 쏟아지면서 배가 45도 기울었고 환기구로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닫혀 있어야 할 수밀문까지 열려 있어서 1시간 반 만에 배가 90도로 기울었다. 선장과 선원들은 먼저 도망쳤다. 그 바람에 배에 대한 정보와 대형선 구조 경험이 없던 해경은 밧줄을 던지고 구명보트를 띄워 배에서 탈출한 사람만 건져 올렸다. 이에 앞서 뇌물을 받고 운항 허가를 내준 관리·감독기관, 배가 자꾸 기운다는 선원들의 보고를 무시한 선사, 구조 시간이 충분할 것으로 안일하게 판단한 해경 등이 있었다. 그간 축적된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서사이지만 우리 사회가 얼마나 동의할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이를 공유하지 못하면 우리는 304명이 희생된 참혹한 재난으로부터 아무 교훈도 얻지 못한다.”
―기술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기술 재난의 특징은 ‘책임의 파편화’ ‘조직된 무책임’으로 설명된다. 거대한 관료제와 복잡한 기술 체계를 따라가다 보면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기 힘든 상황이 벌어진다. 내 할 일만 또박또박 하는 게 아니라 내 주변에 구조적인 취약성이 있는지 민감성을 갖고 주의 깊게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징조가 보고됐을 때 경청하는 조직 문화도 중요하다. 가습기 살균제만 해도 ‘써 보니까 목이 아프고 이상하다’는 소비자 불만이 접수됐고, 연구 기관에서 ‘살생 물질은 따로 다뤄야 한다’는 제안이 있었다고 한다.”
―참사를 겪은 공동체의 회복을 도우려면 어떻게 애도해야 하나.
“참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모순적이다.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에서 보듯이 참사가 발생하면 누구보다 슬퍼하고, 돕고 싶어 한다. 하지만 누구보다 잊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성수대교 추모비는 강변북로 아래 숨겨져 있고, 대구 지하철 추모 공원은 시민안전테마파크로 운영된다. 가습기 살균제, 세월호, 코로나19 팬데믹 등과 관련한 제대로 된 백서도 없다. 추모비나 추모 공원처럼 영속적인 시설을 만들고, 추모제처럼 희생자의 넋을 기리며 서로 연대하는 의식이 필요하다. 기술재난연구센터 같은 공신력 있는 기구를 만드는 것도 제안한다. 이번 사고로 전국에 있는 로컬라이저를 점검하고, 단단한 구조물을 제거한다고 한다. 살아남은 사람은 죽은 사람의 희생에 빚을 진 채 조금 더 안전해진 세상에 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재난을 모른다’는 이렇게 끝난다. ‘우리가 과거보다 조금 더 안전한 세상에 살고 있다면, 그것은 재난 생존자와 유가족의 힘든 싸움이 열매를 맺었기 때문일 것이다. 재난을 직접 겪었든 겪지 않았든 우리 모두는 재난 공동체다.’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64)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과학사 및 과학철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를 거쳐 2003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3∼2015년 한국과학사학회장을 지냈고 현재 ‘과학기술과 사회 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과학기술학의 시각에서 한국 사회의 재난을 연구한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01.17 정치 불안에 못 내리는 금리, 경기 회복 위해 뭐든 해야
한국은행이 새해 첫 금리 결정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3.0%로 동결했다. 경기 부양을 위해선 금리 인하가 필요하지만, 금리를 내리면 계엄 사태 후 1480원 선까지 치솟은 원·달러 환율이 더 불안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계엄 사태와 정치 불안이 촉발한 환율 상승분이 30원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경기 상황만 보면 금리를 내리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라면서도 환율 변수가 금리 동결의 주요인이라고 했다.
이 총재는 “계엄 사태 영향으로 작년 4분기 소비, 내수 지표가 많이 떨어졌다”면서 경기 부양을 위해 15조~2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시급하다고 했다. 한은 총재가 정부에 추경 편성을 요구하고, 추경 규모까지 거론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내수 침체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다.
소비는 작년 3월 이후 9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고, 산업 생산도 3개월째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여기에 계엄 사태까지 겹쳐 고용 쇼크가 발생하고 있다. 계엄 사태가 있었던 작년 12월, 건설 부문 취업자 수가 1년 전보다 15만7000명이나 줄었고, 전체 근로자 수도 5만명 넘게 감소했다. 전체 취업자 감소는 코로나 사태 절정기였던 2021년 3월 이후 3년 10개월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정부는 경기 부양책의 일환으로 상반기 중 전체 예산의 67%를 조기 집행하기로 했다. 정부는 예산 조기 집행 효과부터 살펴 보고 판단하자며 추경 편성을 미루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선용’ 추경은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 한은 총재 말대로 경기 부양용 추경을 할 거면 “가급적 빨리” 하는 게 효과가 더 클 것이다. 여야정 정책 협의회를 열어 추경 편성 방안부터 논의할 필요가 있다. 추경안에는 경기 진작 파급 효과가 큰 건설 경기를 살리는 방안이 포함돼야 할 것이다.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율을 5%포인트 더 올리는 K칩스법, 중소·중견기업 투자 세액 공제 적용 기한을 2년 연장하는 법안, 전통시장 신용카드 공제율 확대 등 국회에 막힌 각종 민생 법안들도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1.17 탈원전 원조국 독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풍력·태양광 56%의 나라
지난달 전력 요금
한국의 10배까지 치솟아
제조업은 구조조정 중
경제는 2년 연속 마이너스
17기 원전 폐로가 결정적 실책

▲2024년 12월 울산 울주군 새울원자력발전소의 모습. /뉴시스
‘원전 4기 추가 건설’을 내용으로 했던 정부의 전력계획안이 국회 심의에서 건설 물량 축소 쪽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사실은 ‘원전 4기 추가’도 상당히 부족하다. 그런데 산업부가 민주당이 칼자루 쥔 현재의 정국 상황을 감안해 ‘원전 감축, 태양광 증설’의 대안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AI, 전기차 등으로 전력 수요 폭증이 너무 뻔한데 또 한번 탈원전, 반원전이란 집단 착각의 길로 방향을 잘못 잡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판단 착오를 막기 위해 탈원전 원조국 독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볼 필요가 있다. 독일은 냉전 시절 미국·소련의 핵무기가 집결해 핵전쟁 시의 국가 파멸 공포에 짓눌렸다. 거기에 핵무기와 원전의 근본 차이를 식별 못하는 대중 착시가 겹쳐 1979년 ‘10만명 하노버 반(反)원전 시위’ 등으로 이어졌다. 17기의 원전 폐쇄는 그런 역사적 축적으로 형성된 원자력 배척의 집단적 감성 구조가 반영된 것이다.
지난달 12일 독일의 전력 공급 도매가가 오후 한때 kWh당 0.936유로를 기록했다. 작년 한국전력 1~10월 평균 판매 단가의 8.7배다. 하루 뒤 13일 스팟 거래가는 10배를 넘었다. 독일은 태양광·풍력의 재생 전력 비율이 56%에 달한다. 그런데 지난달 11~13일 사흘간 태양광·풍력이 맥을 못 췄다. 바람은 희미했고 구름이 하늘을 덮었다. 독일에서 ‘어둡고 고요하다’는 뜻의 ‘둥켈플라우테(Dunkelflaute)’라고 부르는 상황은 9월, 11월에도 벌어졌다.
태양광·풍력이 전기를 못 만들 경우의 이상적 대체 수단으로는 배터리와 수소가 있다. 그러나 독일이 10일분 전력(16TWh, 1TWh는 10억kWh)을 저장할 배터리 설비를 갖추려면 대략 1조6000억달러(약 2300조원)가 필요하다. 배터리 가격이 많이 떨어졌는데도 그렇다. 2021년 문재인 정부도 탄소 중립에 소요되는 배터리 비용을 780조~1200조원으로 계산했다. 게다가 배터리는 방전 때문에 전기를 오래 저장해둘 수 없다. 뭣보다 2023년까지 생산된 전 세계 전력 저장용 배터리(ESS)를 다 끌어모아도 0.19 TWh밖에 안 된다. 배터리 저장 장치는 먼 미래 얘기다.
수소는 에너지 장기 저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수전해기(electrolyser)를 이용해 전기를 수소로 만들면 30% 에너지가 소실된다. 수소로 다시 전기를 생산할 때 남은 에너지 중 40%가 또 없어진다. 송전 손실(5%)까지 감안하면 ‘전기→송전→수소→전기’ 과정을 거치면서 60% 에너지가 사라진다. 호주, 중동의 태양광을 이용해 만든 수소를 바다로 운반해오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영하 253도 냉각 액화의 부담 때문에 최종 에너지 효율은 20~25%까지 떨어질 것이다. 합리적 대안이 아니다.
그래서 태양광·풍력의 변동성을 보완하는 현실적 대안으로 스위치를 켠 후 전력 생산까지 반응 시간이 짧은 가스발전을 백업용으로 쓰게 된다. 백업용 가스발전기는 평소엔 놀려 둔다. 태양광·풍력이 늘면 ‘노는 가스발전기’를 더 많이 갖춰놔야 한다. 가스는 원래 비싸기도 하지만 이런 이중(二重) 비용이 발전단가를 더 높이게 된다. 작년 3월 기준 독일의 산업용 전기 요금은 미국의 1.6배, 한국의 1.9배, 중국의 2.7배였다. 에너지 집약도가 높은 화학, 자동차 산업 주축의 독일 제조업이 허덕댈 수밖에 없다. 가정용 전력요금도 미국의 1.8배, 한국의 2.6배, 중국의 4.5배에 달했다. 게다가 가스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화석연료다.
독일에는 또 하나의 전력 보강 수단으로 ‘광역 전력망’이 있다. 전력이 부족하면 프랑스의 원자력 전기와 노르웨이·스웨덴의 수력 전기를 받아 쓴다. 이때 전력망 연결국 전기 요금도 ‘가격 전염’으로 덩달아 오른다. 지난달 12일 독일 전기가 kWh당 0.936유로까지 오르자 노르웨이 남부, 스웨덴 남부 지역도 0.7~0.9유로까지 따라 올랐다. 노르웨이 에너지장관은 “X 같은 상황(shitty situation)”이라고 짜증냈다. 스웨덴 장관은 “(독일 탈원전으로) 10분 샤워에 5달러를 내게 됐다”며 “독일에 분노한다”고 했다. 한국은 이런 광역 전력망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된 ‘에너지 섬’이다.
독일 경제의 대표주자인 완성차 업계의 폴크스바겐과 철강 기업 티센크루프가 대대적 구조 조정에 나섰다. 독일 경제는 2023년, 2024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다. 과중한 에너지 비용이 제조업을 짓누르고 있다. 독일 탈원전에 대해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역사적 실책(historical mistake)’이라고 했다. 한국이 독일이 밟아온 경로를 보면서도 원전 배척이라는 실책의 길로 따라 들어선다면, 그건 뇌가 없는 국가의 경제적 자해(自害) 행위일 뿐이다.
조선일보 한삼희 환경칼럼니스트
특집 / 난파한 보수,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
01.18 유럽·미국의 대중적 우파 정치에서 배워라
어설프게 좌파 노선 모방·타협하는 것 멈춰야
⊙ 보수 우파 정치의 가장 큰 적은 내부에 자리 잡은 관료주의·보신주의·기회주의
⊙ 유럽 우파 정당들, 극우 프레임 벗어나 실용주의·대중주의 어젠다 제시 성공
⊙ 보수 정당, ‘중-수-청’ 공략보다 ‘지역 대 수도권’ 구도 만들어야
⊙ 보수를 과거의 유물이 아닌, 현재와 미래를 준비하는 정당으로 인식하도록 해야
⊙ 보수의 정치적 자산 부정하지 않고 계승하는 태도가 보수 정치 재도약 첫걸음
沈揆珍
1978년생.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미국 미시간주립대 텔레커뮤니케이션 석사, 시러큐스대 뉴하우스스쿨 매스커뮤니케이션 박사 / 청주방송(CJB) 기자, 미디어다음 뉴스파트장, 여의도연구원 데이터랩 실장, 싱가포르 경영대 교수, 호주 멜버른대 교수, 現 스페인 IE대학교 교수 / 저서 《73년생 한동훈》

▲스페인 Vox는 유럽에서 성공한 우파 정당 중 하나다. 사진은 2022년 3월 19일 마드리드에서 열린 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당 대표 산티아고 아바스칼. 사진=AP/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의 불발 계엄령 이전에도 이미 한국의 보수 우파(保守右派)는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었다. 엘리트 관료주의에 매몰되고 시대의 변화를 외면한 결과, 보수 우파는 이제 ‘노년–영남–극우’라는 비아냥을 듣는 처지가 되었다. 젊은 세대와의 소통 부재, 좌편향된 미디어 환경, 지역사회와의 유대 약화, 경제적 불평등과 젠더·세대 갈등에 대한 설득력 있는 비전 부재(不在)는 국민적 신뢰 상실로 직결되었다.
리더십의 부재와 끊임없는 노선 투쟁은 내부 갈등과 분열을 장기화시키며, 사실상 공멸적이고 자해적인 정치적 내전(內戰)을 초래했다. 이처럼 변화 없는 과거 방식에 머물러서는 정치적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는 시점에 도달했다. 한국 보수 우파는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실용주의–대중주의 어젠다 제시

▲2024년 6월 10일 ‘이탈리아형제들’ 선거위원회에서 유럽의회 선거 승리를 보고하는 멜로니 총리. 사진=AP/뉴시스
미국과 유럽의 대중적 우파는 변화와 혁신을 통해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을 만들어냈다. 미국의 트럼프 현상과 유럽의 복스(Vox·스페인), 스웨덴민주당 사례는 기존 보수 정치의 틀을 깨고 국민적 관심과 신뢰를 회복한 대표적 사례다. 이들은 대중의 요구를 포착하고 실용적 정책을 제시하며 전통적 가치를 현대적 맥락에 맞게 재해석했다.
한국의 보수 우파도 이제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고 대중적 지지를 얻기 위해, 젊은 세대와 공감할 수 있는 정치적 비전과 실용적 정책을 통해 과거의 회고적 이미지를 벗어나야 한다. 정치적 생존이 아닌, 미래를 설계하는 보수 정치로 거듭나야 할 때다.
가장 성공적인 보수 정당으로 꼽히는 이탈리아 집권당 ‘이탈리아형제들’은 극우(極右) 정당이라는 주류 언론의 레이블과 달리, 성공적인 대중적 우파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요한 것은 결국 민생(民生)과 직결된 우파적 정책이다.
이탈리아형제들은 ‘이탈리아인의 이탈리아를 되찾자’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전통적 가족 가치를 부각시키는 동시에, 현대적 경제정책으로 국민적 신뢰를 구축했다. 이들은 소규모 기업과 자영업자를 위한 세금 감면, 기업 규제 완화, 에너지 자립을 위한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와 같은 실용적인 경제 대책을 제시하며, 지역경제 활성화에 주력했다.
스웨덴민주당은 이민자 복지 축소와 자국민을 위한 노동시장 우선권 정책을 통해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췄고, 이를 기반으로 기존 정치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젊은층을 효과적으로 흡수했다.
스페인 우파당 복스는 ‘스페인은 하나다’라는 슬로건 아래 카탈루냐 독립운동 등 지역분리주의를 강하게 반대하며, 국가 통합과 민족 정체성(正體性)을 재조명해 국민적 지지를 얻었다.
현대적 가치와 전통적 가치의 연결
한국 보수 우파도 이러한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신냉전(新冷戰) 시대에 접어들며 안보 이슈가 더욱 중요해졌다. 과거식의 북풍(北風)몰이나 소모적인 이념 논쟁이 아니라, 실용적이고 대중적인 의제로 안보 이슈를 재구성해야 한다. 예컨대 국방력 강화를 통한 경제적 파급효과, 첨단 방위산업 육성, 기술 안보 강화 같은 현대적 접근으로 국민에게 실질적 이득을 제공할 수 있는 방안들을 효과적으로 홍보해야 하는 것이다.
경제정책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저성장 시대를 맞아 내수(內需)시장을 살리고 자영업자와 블루칼라 노동자를 보호하는 정책을 통해 실질적인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최저임금 제도의 유연화, 자영업자의 부담을 덜어줄 세제 혜택, 소규모 제조업과 지역경제 지원 정책은 보수가 새로운 경제적 기반을 구축하는 데 필수적이다. 특히 암호화폐와 같은 신흥 자본시장에 대한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며, 전통적 경제질서를 존중하되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보수는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가치를 조화롭게 연결해야 한다. 전통적 안보와 경제적 안정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블루칼라와 청년 세대가 체감할 수 있는 실용적인 변화를 제시해야 한다. 이는 국민이 보수를 과거의 유물이 아닌, 현재와 미래를 준비하는 정당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페미니즘’에서 ‘패밀리즘’으로
최근 트럼프의 미 대선 승리에서 가장 두드러진 이슈는 젠더(gender)였다. 다양성과 성(性)소수자에 대한 관용이 법적 우대와 제도적 인정으로 자리 잡은 미국에서, 전통적 가족 가치를 수호하려는 세력과 이를 공고히 하려는 세력 간 대립이 선명해졌다. 트럼프가 러스트벨트(Rust Belt)에서 예상 이상의 지지를 얻고 백인 가정주부와 흑인·히스패닉 남성들 사이에서 지지율을 높인 것은 이러한 ‘가치 충돌’이 선거의 핵심 축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글로벌 워크(Woke) 문화는 전통적 가치와 새로운 사회적 요구 간 갈등을 야기하며, 극단적인 정치적 올바름(PC)을 강요하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 보수 우파는 이러한 문화적 흐름 속에서 전통적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세대와 젠더를 관통하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극단적 페미니즘이나 PC 의제가 좌파 정치와 결합하면서 인간의 보편적 가치인 가족과 공동체가 훼손되고 있는 만큼, 이를 보수 우파의 새로운 정책 기조로 삼아야 한다.
‘페미니즘’에서 ‘패밀리즘’으로 정책적 전환을 이루고, 전통적 가족 가치를 수호하면서도 현대사회의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용하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가족 중심 사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육아·출산·교육 지원을 확대하고, 젊은 유권자들에게 전통적 가치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실질적 해법임을 설득해야 한다.
젠더 갈등 해소를 위한 대안(代案)도 마련해야 한다. 젊은 남성층이 역(逆)차별로 인식하는 각종 할당제 재검토와 군복무자에 대한 사회적 혜택 강화 등, 공정성을 회복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전통적 가족과 공동체의 미덕을 되살려 젠더와 세대 간 간극을 줄이는 전략은 단순한 정치적 선택을 넘어, 사회적 통합을 위한 필수 과제다. 이는 한국 보수가 Woke 문화와의 전선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대중적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수도권 집중 현상은 보수 정치의 노령화(老齡化)와 세대 간 단절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중앙·수도권 중심의 틀을 깨고, 청년들이 일하고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지역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는 수도권 집중화를 해소함과 동시에 중앙정치와 주류 언론 의존에서 탈피하는 것을 의미한다.
혁신은 변방에서 시작된다
청년 정치인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중앙 정치권과 언론의 영향력, 낙하산식 트로피 공천 시스템에 갇혀 자생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잃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특히 과거 보수 정치의 중심지였던 영남 지역에서 두드러진다. 한때 대한민국의 경제와 정치 중심지였던 영남은 수도권 집중화로 인해 경제적·정치적 쇠퇴를 겪고 있다. 지역경제는 활력을 잃었고, 정치적으로는 과거의 명성에만 의존하며 새로운 동력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수도권 집중이 심화되면서 좌파의 정치적 근거지가 호남에서 수도권으로 옮겨갔다. 이로 인해 ‘영남 대(對) 호남’의 패권(覇權) 구도는 무너졌고, 보수의 기반인 영남 정치권은 수도권에 대한 극심한 피해의식을 키워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수도권 대 지방 구도는 보수 우파가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현재 보수 우파가 펼치고 있는 ‘중–수–청’ 공략 기조는 이미 좌파 우위의 운동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상황을 초래하며, 보수의 근거지 몰락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 판을 바꾸기 위해서는 ‘수도권 대 지역’ 프레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방안은 영남과 호남의 청년 보수 연대(連帶)라는 어젠다로 구체화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수도권 중심의 정치 판도를 바꿀 동력을 마련하고, 선명한 우파 가치 동맹을 기반으로 새로운 정치적 지형을 만들어야 한다.
혁신보수 실천 강령: 구체적 비전과 행동 지침
1. 과거 실패를 극복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라
- 엘리트주의를 혁파하라: 기존 관료적 엘리트주의에서 탈피하고, 국민과 직접 소통하며 대중적 공감을 얻는 우파 정치로 전환하라.
- 기회주의와 보신주의를 청산하라: 정치적 책임과 신념을 바탕으로 일관성 있는 리더십을 구축하라.
- 대중주의 우파 어젠다를 설계하라: 국민의 삶과 직결된 경제·안보·복지 중심의 실질적 정책으로 우파의 비전을 구체화하라.
2. 지역정치의 청년 할당제를 도입하라
- 청년 리더십 배양: 지역 의회와 지방자치 활동에 청년 정치인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청년 할당제를 적극 시행하라.
- 정치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라: 지역 기반에서 정치적 경험을 쌓고 성장할 수 있는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라.
3. 지역 대학에 집중 지원하라
- 지역 대학을 혁신의 중심으로 전환하라: 지역 대학과 연구소를 청년 정치·경제 인재의 인큐베이터로 발전시키라.
- 연구와 혁신에 투자하라: 지역 대학에 대한 국가 주도의 연구 펀드와 슈퍼스타 연구자 지원 프로그램을 신설하라.
- 산학협력을 활성화하라: 지역 산업과 대학 간의 협력을 통해 지역경제와 청년 고용을 동시에 활성화하라.
4. 지역과 수도권 간의 균형을 우파 어젠다로 해결하라
- 지역–수도권 격차 해소: 지역경제 활성화와 균형발전을 우파의 대표 어젠다로 설정하라.
- 지역경제 성장 모델 제시: 인프라 개발, 혁신산업 유치, 일자리 창출을 통해 지역을 새로운 경제 거점으로 전환하라.
5. 영호남 패권주의를 넘어 지역 연대로 나아가라
- 지역 우파 정치의 연대를 구축하라: 영호남 청년 정치인들이 협력하여 지역 재건과 발전을 위한 초당적 비전을 제시하라.
- 지역 패권주의 극복: 지역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지역 발전을 중심으로 한 협력 모델을 제시하라.
6. 지역 언론의 디지털 진출을 지원하라
- 지역 언론의 디지털화: 디지털 플랫폼 확장을 통해 지역 언론이 새로운 공론장을 형성하도록 지원하라.
-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하라: 디지털 미디어 기술과 교육을 지원하여 지역 언론이 중앙 언론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라.
- 보수 우파 메시지의 전달 채널을 구축하라: 지역 언론과의 협력을 통해 보수의 정책적 비전과 메시지를 전달하라.
영호남 청년 보수가 함께하는 지역 재건 어젠다
영호남 패권 구도를 넘어 영남과 호남 보수가 연대하는 지역정치의 부활은 시대적 요구다. 지역을 더 이상 중앙정치의 하위 개념으로 보지 말고, 청년들이 기회를 창출하며 정치적 리더십을 배양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새로운 인프라와 플랫폼을 통해 지역은 청년 정치의 출발점이자 정치적 실험과 성장을 도모할 중심지로 자리 잡아야 한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드러난 호남 20대 남성의 변화는 우파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난 대선을 4개월여 앞두고 실시된 지역 여론조사에서 전남 20대 남성은 윤석열 46.7%, 이재명 28.6%를 기록하며 기존의 호남 정치 지형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리서치뷰 2021년 8월 22~23일 조사). 또한 ‘광주의 강남’이라 불리는 봉선2동에서는 윤석열 후보가 39.11%의 대선 득표율을 기록해 과거 박근혜의 11.3%를 크게 웃돌았다. 이는 고가(高價)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 주민들의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만을 반영한 결과다. 이는 젠더와 민생 이슈로 분절된 계층의 이익을 반영한 우파 어젠다로 설득해 나가는 것이 과거사에 매인 사죄와 지지 구걸보다 훨씬 효과적임을 시사한다.
현재 지역정치는 지역 기득권에 의한 복마전으로 인식되며, 중앙정치에 종속된 구조를 띠고 있다. 이를 개선하려면 청년 할당제를 도입해 투명하고 실력에 의거한 경쟁 구도를 정립해야 한다. 지역정치가 청년 인재의 등용문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혁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보수 우파 청년 정치인들의 상실감
보수 우파 청년 정치인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피해의식도 간과할 수 없다. 흔히 ‘좌파는 충성에 보답하는 구조를 갖췄다’는 속설이 있지만, 보수 우파는 청년들을 단기적으로 소비하고 방치한다는 통설이 강하다. 특히 이준석 사태 이후 청년들이 장기적 파트너가 아닌 기성 정치권의 위협으로 간주되는 경향은 문제의 핵심이다. 청년정치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는 구조를 타파하고, 대기업이나 전문 직업군처럼 차근차근 경력을 쌓고 검증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절실하다. ‘바람’이나 ‘라인’에 따라 쓰이고 버려지는 소모적 구조가 아닌,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청년정치 배양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 배지를 단 청년의 ‘수’가 아니다. 보수 우파는 좌파의 ‘선거용 깜짝 스타’ 전략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 선거철에 갑작스레 등장하는 청년 인물이 아닌, 꾸준히 헌신하고 성과를 쌓은 인물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공정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 해답은 ‘풀뿌리 지역정치 구조’에 있다. 지역정치에서 내공을 쌓아 중견 정치인으로 성장할 기회를 청년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청년 할당제를 통해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고, 이를 지역 정가(政街)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정상화하는 혁신의 시작점으로 삼아야 한다.
영남과 호남의 청년들이 협력해 새로운 정치적 어젠다를 제시하는 날, 지역정치는 중앙정치에 종속된 변방이 아닌 대한민국 정치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할 것이다.
지역 인프라 재편
청년들이 지역으로 눈을 돌릴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은 단순히 정책적 구호로 끝나선 안 된다. 수도권으로 몰린 청년들을 지역으로 유인하려면 실질적이고 매력적인 기회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청년 일자리 창출이다. 스타트업 지원과 규제 완화를 통해 청년들이 자율적으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지역경제와 청년 세대가 만나는 접점이 형성된다면 지역정치에도 활력이 생길 것이다.
또한 ‘청년과 지방자치’ 프로젝트 같은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청년들이 지역 의회나 지방자치 활동에 참여하면서 정치적 리더십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면 지역정치와 청년 세대 간의 연결고리는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청년들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 지역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지역 대학과 연구소는 청년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중요한 공간이다. 이들을 단순히 학문의 장으로 남겨두지 않고, 청년 정치·경제 인재를 키워내는 인큐베이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는 청년뿐 아니라 블루칼라 청년과 노년 세대까지 포함한 지역사회 전반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정책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미국은 이를 이미 잘 실현하고 있다.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NIH) Grants나 National Science Foundation(NSF) Grants 같은 연구기금은 지역 거점 대학들의 경쟁력을 키우고 슈퍼스타 연구자를 발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도 이와 같은 국가 주도 펀드 프로그램을 통해 수도권 대학 중심의 간판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학문적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지방대학’에서도 스타 학자가 탄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언더독과 블랙십의 시대를 열어라

▲2024년 7월 15일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도널드 트럼프(왼쪽)는 J. D. 밴스 연방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오늘날 청년 세대는 명분보다는 실리(實理)를 중시한다. 보기 좋은 간판보다 실제로 투자 대비 성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을 찾는다. 지역 대학과 지역 기반 인프라가 실리적 대안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면, 이는 보수적 정책의 성공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과거 이명박 정권의 고졸 직원 채용 할당제가 좋은 예다. 명문 실업고교와 졸업생들이 새로운 기회를 얻으며 주목받았던 사례는 오늘날 지역 인재 정책에도 큰 교훈을 준다. 마찬가지로 지역 기반 인재들에게도 더 많은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 지역의 명문고나 상업고등학교를 활성화하고, 이들이 미국의 유수 대학으로 이어지는 스펙을 쌓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미국의 젠슨 황(엔비디아 창업자)이나 트럼프의 러닝메이트 J. D. 밴스 같은 인물들은 비주류 아시아 이민자 혹은 러스트벨트 출신 극빈층의 한계를 딛고 지역 주립대 출신으로 글로벌 무대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에서도 지역 청년들이 중앙이나 글로벌 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스펙과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결국 지역정치와 교육, 그리고 경제를 연결하는 플랫폼은 청년들에게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도전 기회를 줄 뿐만 아니라, 지역경제와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지역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가 중앙과 글로벌로 이어지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순간, 청년들은 더 이상 수도권이라는 좁은 무대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디지털 언론, 청년 정치인들에게 기회 제공
지역정치와 언론의 연결은 단순히 정보 전달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에 지역 언론은 보수 정치와 청년 정치인을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품고 있다. 특히 지역 언론의 디지털화는 기울어진 여론 지형을 바로잡고 새로운 공론장을 형성하는 데 핵심적이다.
충주시가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성공적으로 구축한 ‘충주맨’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이는 지방정부가 디지털 커뮤니티 문화를 접목하여 젊은 세대와 소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모델은 단지 지역정부의 성과에 그치지 않는다. 지역 언론과 정치가 협력하여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한다면, 중앙 언론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영향력 있는 보수 우파 스피커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이러한 디지털 언론 인프라는 보수 정치와 지지층 간의 ‘직거래 시스템’을 가능하게 한다. 더 나아가, 디지털 공론장에서 성장한 청년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새로운 스타로 떠오를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유럽 우파 정치의 부상은 디지털 미디어의 활용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스페인의 복스와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소셜 미디어와 디지털 커뮤니티를 통해 젊은 유권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정치적 입지를 넓혔다. 이들의 성공은 단순히 메시지 전달에서 그치지 않고 지역정치와 디지털 미디어를 결합한 전략의 효과를 입증한다.
유럽의 지방자치 제도와 지역 언론 지원 정책도 청년 정치 참여를 촉진하는 강력한 플랫폼으로 작용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지방의회 선거에서 16세부터 투표권을 부여함으로써 청소년들에게 정치 참여의 문을 열어주고 있다. 또한 주요 정당들은 청년 조직을 운영하며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를 체계적으로 장려한다. 독일의 ‘소셜시티 프로그램’은 지역 언론과 협력해 지역 주민과 다양한 주체가 소통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제공한다. 이는 지역 통합을 촉진함과 동시에 청년들의 정치 참여를 장려한다. 핀란드의 산나 마린 총리처럼 젊은 정치 리더들이 부상할 수 있는 환경은 이러한 구조에서 비롯된다.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와 프랑스 국민연합(RN)의 조르당 바르델라 역시 지역 기반 정치와 당내 활동을 통해 성장하여, 청년 정치인이 지역정치에서부터 배양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처럼 지역 언론과 지방자치 제도가 긴밀히 협력하면, 지역정치의 부흥과 청년 정치인의 성장이 서로를 촉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한국 보수 정치의 미래는 지역에서 시작돼야 한다. 지역 언론의 디지털화는 단순한 생존 전략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젊은 세대와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새로운 공론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는 핵심 도구다. 동시에, 청년 정치인들이 지역 기반에서 성장하며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지지층과 직접 소통하는 정치적 직거래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보수 정치는 과거의 회고적 이미지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지역 언론의 디지털화는 좌파 편향의 온라인과 언론 환경을 극복하는 효과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이 기회는 길지 않다. 지난 지방선거의 승리와 현 정권이 가진 행정권력은 지역과 청년 정치를 활성화할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지역에서 시작된 보수의 혁신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한국 정치의 미래를 바꿀 열쇠가 될 것이다.
트럼프–머스크, 새로운 政經관계 제시
한국 정치에서 ‘정경유착(政經癒着)’은 오랜 기간 부정적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정치와 경제가 부도덕하게 얽힌 관계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정치와 경제는 불가분의 관계다. 이제는 이를 새로운 방식으로 정의하고 활용해야 한다.
‘정경유착’을 넘어 ‘정경동맹(政經同盟)’이라는 생산적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정경동맹은 정치와 경제가 공통의 가치를 공유하며, 국가 발전이라는 목표 아래 협력하는 관계를 뜻한다. 예를 들어 친환경 정책, 첨단 산업 육성, 지방 균형 발전 같은 어젠다에서 정치와 산업이 손을 맞잡는 것이다.
이러한 정경동맹은 단순한 용어 변화가 아니라, 정치와 경제가 국민 삶의 질 향상이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협력하는 모델이다. 이를 통해 경제적 역량을 국민에게 환원하고,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투명성과 공공성을 강화하여 과거의 부정적 이미지를 완전히 극복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일론 머스크는 정치와 경제의 새로운 협력 모델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그는 캘리포니아의 높은 규제를 피해 본사를 텍사스로 이전하며 친기업적 환경을 조성했다. 동시에 친환경 정책을 지지하면서도 과도한 규제와 노조 친화 정책에는 단호히 반대했다. 과거 민주당을 지지했던 머스크는, 좌파적 윤리 기준으로 혁신적 기업가를 홀대하는 민주당의 태도를 경험하며, 산업적 혁신을 이루기 위해 ‘자유시장경제’라는 근간의 이념과 정치철학이 필수적임을 깨달았다.
머스크의 접근은 정치와 경제가 공통의 가치를 기반으로 협력하는 실용적 모델을 보여준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머스크를 정부효율부 장관으로 내정한 사례는 기업가 정신과 정치적 효율성을 접목해 정부 운영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순간이었다. 트럼프–머스크 연대는 보수 진영이 재계와 산업을 우군으로 확보하며 대중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정경유착에서 정경동맹으로
반면, 한국에서는 기업들이 좌파 상업주의에 기대어 좌파 언론과 문화권력에 지원을 아끼지 않아온 결과, 경제적 경쟁력이 약화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대표적으로 탈원전 정책은 에너지 안정성을 해치고 기업 운영 비용을 증가시켜 제조업 경쟁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또한 삼성 노조 문제는 기업의 자율성을 훼손하며 내부 효율성을 저하시켰다. 이는 기업들이 정치적 중립을 상실하고 특정 이념에 편향될 때 기업 생존과 혁신이 얼마나 위협받는지를 보여준다.
정경유착에서 정경동맹으로의 전환은 위기에 처한 한국 보수 우파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재계의 명사와 스타들이 좌파적 상업주의에 치우치는 것을 넘어, 자유 우파적 이념과 통치질서가 기업의 생존과 혁신에 필수적임을 인정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과거의 적폐 이미지를 극복하고, 산업화의 기적을 이룬 기업가 정신과 애국심의 결합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과 비전을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보수 비전이 자리를 잡을 때, 정경동맹은 보수 정치의 가장 강력한 자산이자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보수 정치가 경제적 생존과 혁신의 동반자임을 증명할 때, 국민은 더 이상 과거의 부정적 프레임이 아닌 미래의 가능성으로 보수를 평가할 것이다.
‘보수 내 보수 혐오’ 청산하라
한국 보수 정치는 과거의 실패와 비극적 사건들로 인해 자존감을 잃고 위축된 상태다. 그러나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고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보수 진영이 과거의 성과를 재조명하고 이를 기반으로 당당히 미래를 설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좌파 편향적인 언론과 문화는 보수 지도자들의 사법적 비극과 역사적 단죄를 부각시키며 보수를 끊임없이 약화시켜 왔다. 문제는 보수 내부에서도 이러한 흐름에 동조하거나 이를 부추기며, ‘보수 내 보수 혐오’라는 내부 분열이 심화되었다는 점이다. 이처럼 스스로의 자산을 부정하는 행태는 보수의 정체성을 약화시키고 대중적 신뢰를 무너뜨린다.
과거 고성장 시대에는 느슨한 결속 속에서도 다양한 인적 자원과 노선 투쟁이 보수 진영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오늘날 저성장과 경제 양극화, 국제적 불확실성 속에서는 강력한 리더십과 단합된 결속이 필수적이다. 내부가 분열된 보수는 단합된 좌파 진영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보수는 수세(守勢)적 태도를 버리고 대한민국 주류 세력으로서 자부심을 되찾아야 한다. 이승만의 건국, 박정희·전두환의 산업화, 김영삼의 민주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선진화 같은 보수 우파의 역사와 성과는 대한민국 발전의 중요한 자산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과 글로벌 경제위기 대응, 박근혜 정부의 한류(韓流) 확산과 복지정책 확대 같은 업적은 보수가 지켜야 할 유산으로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
보수는 이러한 성과를 ‘대한민국 보수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내부 결속을 다지고, 과거의 성과에 기반한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윤리적 당당함과 대중적 신뢰를 바탕으로, 보수는 새로운 길을 열어갈 수 있다. 자산을 부정하지 않고 이를 계승하는 태도가 보수 정치의 재도약을 위한 첫걸음이다.
지역과 세대 아우르는 연대 구축해야
보수 우파 정치의 가장 큰 적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자리 잡은 관료주의, 보신주의, 그리고 기회주의적 습성이다. 국민과의 소통 없이 엘리트 의식에 갇힌 보수는 더 이상 국민적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보수의 혁신은 국민의 삶 속에서 신뢰를 구축하고, 선명한 우파 철학과 가치 노선을 통해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선 보수 우파가 생존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설프게 좌파 노선을 모방하거나 타협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대신 우파 본연의 강점을 기반으로 청년·지역·미디어와 연대하는 지속 가능한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전략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구조적 혁신의 과정이다. 청년 세대와 중장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정치적 전선을 형성하고, 우파의 철학과 리더십을 중심으로 지역과 세대를 아우르는 연대를 만들어갈 때, 보수는 과거의 무거운 이미지를 벗어나 새로운 세대를 위한 정치적 대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보수의 혁신은 국민적 신뢰를 되찾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것에 달려 있다. 이 길이야말로 보수가 단순히 생존을 넘어 승리를 거두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정치세력으로 거듭나는 유일한 길이다. 보수의 본질로 돌아가 국민과 함께 걸어갈 때, 비로소 보수는 더 큰 미래를 열 수 있을 것이다.⊙
월간조선 01월 호 글 : 심규진 스페인 IE대학교 교수
01.27 재정자립도 10% 안팎 野 지자체장들의 설 지원금 살포
일부 기초 지방자치단체가 설 명절을 앞두고 지역민들에게 민생 지원금을 뿌린다. 경기도 2곳, 전북 5곳, 전남 3곳 등 총 10곳이 재정 자립도가 10~30%대에 불과하거나 심지어 10%도 안 되면서 전 주민에게 돈을 지급하기로 했다.
1인당 20만원씩 나눠주는 전북 진안군은 지난해 재정 자립도가 6.69%에 불과해 전국 최하위권이다. 각각 1인당 30만원씩을 나눠주는 전남 보성군(7.61%), 전북 남원(8.68%), 전북 정읍(9.69%) 역시 재정 자립도가 10%도 안 된다. 1인당 50만원을 지급하는 전북 김제(10.02%), 설에 50만원, 추석에 5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전남 영광군(11.72%), 10만원씩 지급하는 전남 나주(16.79%)와 , 30만원씩 주는 전북 완주군(17.67%)은 10%대에 머물고 있다.
경기도 광명시와 파주시 역시 1인당 10만원의 지원금을 설 연휴를 앞두고 주민들한테 지급한다는 방침이다. 광명시와 파주시의 재정 자립도는 각각 34.75%와 29.71%로 전남·전북 지자체들보다는 높지만 경기도 재정 자립도(55.09%)에 비하면 현저히 낮다. 파주시와 광명시는 인구가 각각 51만명, 27만명으로 510억원, 270억원이 든다.
설 명절 지원금을 뿌리는 지자체장들은 모두 민주당 소속 초·재선 기초 지자체장들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1인당 25만원’ 공약과 대표 정책인 ‘지역 화폐’에 맞춰 대부분 지역 화폐 형태로 지원금을 지급한다는 방침이다.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나. 재정 자립도 낮은 지자체는 다른 지역 주민들이 낸 세금에 의존하는 신세다. 그걸 가져다 자기 동네에 뿌리는 건 양심 불량이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사설
#正論直說 202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