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칼럼/ [이용식의 시론] 2024 -01-05(금) 한동훈과 마크롱의 ‘정치교체 - 12-23 선거 ‘이기는 보수’가 진짜 보수

상림은내고향 2024. 12. 9. 18:11

[이용식의 시론] 문화일보 주필 2024

01-05(금) 한동훈과 마크롱의 ‘정치교체’

2017년 프랑스 기성정치 청산
좌우 안 가리고 좋은 정책 채택
운동권 특권정치 척결 닮은꼴

총선 압승-참패 선명히 갈릴 것
미래 지향 vs 과거 집착 대결 땐
한동훈이 이기고 ‘686’은 진다

3개월 뒤 총선은 엇비슷 아닌 압승-완패로 결판날 가능성이 크다. 양측 콘크리트 지지층 규모는 비슷하다. 전국 판세를 결정지을 수도권에서 지역·이념 등 전통적 대결 구도는 흐려지고, 정당별 우열이 뚜렷했던 많은 선거구에서는 정치적 평준화 조짐이 나타난다. 영호남 출향민 표심과 현지 표심의 디커플링도 확대일로다. 따라서 중도층 3∼5% 표심이 대다수 선거구에서 특정 정당으로 의석을 몰아주게 된다. 이미 2020년 총선과 2022년 지방선거에서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 이번엔 더 선명해질 것이다.

판세를 가를 회색 지대 유권자들의 가장 큰 관심은 정치개혁이다. 정치의 양극화·저질화가 너무 심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동훈은 혜성처럼 등판했다. 지천명(知天命) 나이이긴 하지만, 지도자로선 새파란 젊은이에 가깝다. 그럼에도 빈틈없는 정무 감각과 판단력, 탁월한 정치 언어 능력까지 겸비했다. 다만, 정치는 머리 아닌 가슴으로 하는 일이어서 ‘스마트 정치’가 지속 가능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런 한동훈이 제시한 목표가 있다. “수십 년간 386이 486, 586, 686 되도록 썼던 영수증 또 내밀며 대대손손 국민 위에 군림하고 가르치려 드는 운동권 특권 정치를 청산해야 한다”고 했다. 한동훈과 운동권 정치의 대결이 이번 총선의 최전선이 됐다.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간부 등 운동권 인사의 진출은 김대중의 정계 복귀 이후인 1996년 제15대 총선 때 시작돼 2000년 16대 총선 때 급증했고, 노무현 탄핵소추 와중의 2004년 17대 총선에서 정점에 달했다. 주요 인사 상당수가 1964년생이니 한동훈 말대로 이제 ‘686’이다.

가장 큰 폐해는, 기득권 세대가 된 지금도 40년 전 학생운동 시절 이념과 독선에 빠져 정치는 물론 국가 미래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을 장악하고, 불평등의 치유자가 아닌 불평등의 생산자이자 수혜자가 됐다는 연구 결과도 출간됐다.(이철승 ‘불평등의 세대’) 저자가 ‘추종세대’라고 부른 40대 후반∼50대 초반 세대는, 민주화 과실을 독점하는 686의 그늘에 가려 정치뿐만 아니라 노동계, 기업 등 각계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니 야권 내부에서도 퇴진 요구가 나온다. 추종세대인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출신과의 공천 내전도 같은 맥락이다.

한동훈은 2017년 프랑스 대선에서 정치 혁명을 이뤄내고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과 닮았다. 당시 39세의 신인 마크롱에 의해 프랑스 양대 정당은 몰락하고, 정치 거물은 모두 퇴장했다. 두 사람 모두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천재 소리를 들으며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대통령실에서 일한 경험이 있고 장관으로 재직하며 국정 역량을 입증했다. 마크롱은 정치운동 단체 ‘앙 마르슈(전진)’를 만들어 대선에서 이겼다. 마크롱은 저서 ‘혁명’을 통해 “반대 아닌 찬성을 추구한다”는 긍정의 정치를 내걸었다.

한동훈도 야당과의 이전투구 대신 정책 제안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번 결심하면 좌고우면 않고 모든 에너지를 퍼붓는 뚝심도, 충분히 내부 토론을 하되 최대한 보안을 유지하는 습관도 비슷하다. 이민자 문제 등 국정 관심사도 겹친다. 마크롱은 좌·우파 장점을 모두 흡수하고, 공천에서는 절반을 여성, 절반을 정치 신인을 발탁하는 파격으로 정치판 자체를 바꿨다. 2022년 재선에 성공한 마크롱은 ‘일하지 않는 유럽의 병자’ 프랑스를 다시 유럽의 중심 강국으로 만들고 있다. 연금개혁을 위해 의회 패싱(헌법 제49조 3항)도 불사했다.

한동훈의 정치는 이제 걸음마를 시작했다. 곧 시작될 총선 공천이 한동훈식 정치교체의 성패를 좌우한다. 마크롱은 자신을 장관에 기용했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도 결별했다. 한동훈과 윤석열 대통령 관계도 언젠가는 넘어야 할 산이다. 선거 국면이 본격화하면 안팎으로부터의 공격이 거세질 것이다. 마크롱은 24세 연상 부인을 둘러싼 온갖 음해에 시달렸지만, 진정성과 투명성을 무기로 극복했다. 한동훈도 젊음의 장점을 활용하고, 젊음의 약점인 실수를 줄인다면, 이재명과 686 연합과의 대결에서 지지 않을 것이다. 미래 지향 세력과 과거 집착 세력의 승부는 뻔하다. 명분도 여론도 시간도, 무엇보다 시대정신도 한동훈 편이다.⊙

 
 

01-26 예상 뛰어넘는 ‘김 여사 대책’ 필요하다

윤석열 한동훈 모두 法家 출신
국민 마음 읽는 정치엔 서툴러
韓 인기 아직 보수층 환호일 뿐

총선 승리 위해 모든 일 다해야
김영란법 위반 수사 자청 필요
TV 대담보다 기자회견 바람직

정치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일이다. 논리 이전에 공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시험 아닌 선거로 뽑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말처럼 쉽진 않다. ‘뼛속까지 검사’ 윤석열 대통령과 ‘조선제일검’ 한동훈 여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겐 더 그럴 것이다. 서로 다른 입장을 조정하는 정치와, 기준에 맞춰 합법과 불법을 가리는 법치는 상극이다. 서천 화재 현장 방문은 ‘머리 정치’였다. 함께한 것까진 좋았다. 야당 대표는 오지 못한 정치적 노 마크 찬스였다. 그런데 이재민 위로보다 갈등 봉합이 앞선 것으로 비쳤다. “재난 현장을 권력 다툼 장식품으로 삼았다”는 야당 비판이 아니더라도, 검찰 상하관계를 떠올리게 한 행동, 잠깐 둘러보고 대통령 전용열차로 돌아간 모습은 ‘가슴 정치’와 한참 멀었다.

그런 측면에서 윤 대통령은 더욱 아득하다. 김건희 여사 명품 백 문제에 대해 한사코 ‘피해자인데 왜 사과하느냐’고 한다. 합당한 주장이다. 있는 사실을 몰래 촬영한 함정 취재보다 훨씬 악랄한, 없는 사실을 날조하려 한 정치공작 범죄임은 분명하다. 당당히 사법적 대응을 하면 된다. 국민의 관심사는, 왜 친북 목사를 그런 식으로 만났는지, 그런 부류 사람들과 주로 어울리는 건 아닌지, 왜 거절하거나 돌려주지 않았는지, 제2 제3의 유사한 일은 없는지 등이다. 이런 궁금증에 답하는 것은 공인의 의무다. 김 여사 부친과의 오래된 인연 때문에 만나주었고, 선물 처리 법규에 따라 보관 중이라고 한다. 일찌감치 해명했으면 벌써 매듭지었을 텐데, 왜 미적대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해명이 새로운 논란을 만들 것이라고도 한다. 뭔가 말 못 할 사정이 있음을 자백하는 것으로 비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과했기 때문에 탄핵당했다는 주장도 한다. 억지다. 정치적·사법적 대응 기회를 번번이 놓쳤기 때문에 최악 상황으로 치달은 것이다. 명품 백 문제도 계속 실기하면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기 힘들게 됐다. 윤 대통령이 KBS TV 대담 형식으로 유감을 표명할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이젠 그 정도로는 아무 효과도 없다. 방법도 좋지 않다. 겨우 회복되려는 KBS 공정성까지 망가뜨릴 수 있다. 기자회견을 열어 가차 없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김 여사가 직접 해명하고 ‘김영란법 수사’를 자청하는 식의 특단책도 필요하다. 전화위복이 될지, 야당의 새로운 먹잇감이 될지는 ‘진정성’에 달렸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현 정치의 ‘파괴적 혁신’을 이뤄내야 할 역사적 책임이 있다. 그게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순식간에 여권 1·2인자로 만들어준 국민의 여망이다. 4월 총선에 모든 게 걸려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한 위원장은 차기 지도자 선호도에서 이재명 대표를 따라잡았다. 그런데 여당 지지도는 30%대 초·중반에서 요지부동이다.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은 전체 유권자 표의 37.4%(투표율 77.1%×득표율 48.56%)를 얻었는데, 여기에도 못 미친다. 한 위원장 인기도 아직은 콘크리트 지지층의 환호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법가(法家)는 행정엔 탁월했지만, 정치엔 서툴렀다. 춘추전국시대 상앙·한비자·이사는 권력투쟁 패배, 심지어 자신들이 만든 법규 탓에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이탈리아의 ‘마니풀리테’ 검사 안토니오 피에트로, 우리나라의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대쪽 판사’ 이회창, ‘깜놀 젊은 후보’ 이인제 등은 대권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윤·한 롤 플레이로 그런 한계를 극복해야 총선 승리를 꿈꿀 수 있다. 권력 1·2인자 관계는 늘 불편했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는 ‘우리가 키워준 동훈이’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한다고 한다. 그러나 운명 공동체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정치적 아버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을 딛고 앙 마르슈(전진)당을 만들어 정치교체를 이뤄냈다. 윤 대통령도 한 위원장의 여당 개조를 도와야 한다. 결자해지 자세로 김 여사 문제를 풀어야 한다. 가족·친인척 말썽으로 고뇌하지 않은 역대 대통령은 없다. 국민 예상을 뛰어넘는 해법이 핵심이다. 그게 가슴으로 하는 정치다. 윤 대통령도 3개월 전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참패 뒤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떤 비판에도 변명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이 다짐을 잊으면 4월 11일 새벽에는 강서구 선거의 전국화를 목도할 것이다.

 
 

02-26  4월 총선은 제2의 건국전쟁이다

 ‘비명 횡사’ 민주적 절차 실종
‘종북 숙주’ 노릇 자처 민주당
대한민국 정체성 심각한 위협

2012년 통진당에 13석 데자뷔
당시 ‘부정 경선’ 사건도 발생
李 “선대, 우리 북한” 실언일까

대한민국이 공격받고 있다. 외부 아닌 내부 도전이어서 응전이 더 어렵다. 4·10 총선을 한 달 남짓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에서 벌어지는 일은 자유민주주의라는 국가 정체성을 전방위로 위협한다. 당내 민주주의를 허물고, 종북·괴담 세력의 숙주를 자임한다. 오늘의 번영과 자유를 일군 성실·헌신·염치 등의 가치관은 내로남불과 파렴치에 짓밟힌다. 시흥시장을 3차례 지냈음에도 부적격 판정을 받은 김윤식 전 시장은 “민주당 역사와 정신이 모두 망가지고 있다. 더는 지킬 가치도 역사도 사람도 없다”며 민주당을 등졌는데, 정곡을 찔렀다.

평생 민주화에 헌신한 민주당 원로들도 “공천이 민주적 절차와 전혀 동떨어지고, 대표의 사적 목적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성명을 내놨다. 김대중의 분신으로 불린 동교동계 맏형 권노갑, 노무현의 친구이자 TK 운동권 대부인 이강철 등이 이런 입장이라면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런 정당이 총선 승리를 노린다. 3년 뒤 대선을 기다릴 것도 없이 ‘총선 압승으로 2017년 탄핵 어게인’을 외친다. 그래서 이번 총선은 국가 명운을 가를 제2의 ‘건국전쟁’이며, 제2의 6·25 전쟁이다.

민주당 공천의 가장 큰 특징은, 이재명 대표의 친위 그룹이 아닌 인사들은 사정없이 내쳐진다는 ‘비명 횡사’다. 박용진 의원처럼 모범적 의정 활동을 해온 인사들이 하위 평가자 10∼20%에 대거 포함됐다. 하위 31명 면면은 지난해 9월 2차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당시 나돌던 ‘살생부’와 비슷하다. 이들에게는 ‘찐명’이 도전장을 냈고, 심지어 이 대표 관련 사건 변호사들이 줄줄이 출마하는 비윤리적 행태도 보인다. 여론조사 조작 논란은 범죄 혐의까지 의심된다. 성남시장 선거를 앞둔 2013년 이 대표 측 용역을 수행했던 업체가 추가 선정됐고, 선관위 등록도 되지 않은 이 업체가 실시한 조사가 특히 많은 논란을 불렀다. 2012년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사건과 닮았다.

민주당이 군소 정당과 합의한 선거연합은, 자력으로는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없는 세력에 10석 이상을 보장해주겠다는 선언이다. 진보당은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 후신으로, 지난 대선 때 김재연 전 통진당 의원을 후보로 내세웠지만, 0.1% 득표에 그쳤다. 당선권 4명을 배정받은 ‘연합정치시민회의’ 주도 인사들은 반미 시위에 앞장서고, 대법원에 의해 이적단체로 규정된 조직을 이끌어왔다. 이 대표가 2010년 성남시장 후보 때부터 맺은 ‘경기동부연합’ 등 종북 세력과의 인연도, 최근 “선대들, 우리 북한의 김정일 김일성 주석” 발언도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번 합의는, 통진당이 13석을 확보했던 2012년 총선 때보다 훨씬 나쁘다. 당시엔 단일 정당까지 가지는 않았는데, 이번엔 단일 정당을 만들고 지역구에서도 결선 경선을 갖기로 함으로써 진보당 영향력이 더 커졌다. ‘한명숙-이정희-재야 원탁회의’ 합의 당시 북한은 “야권 련대는 민중의 명령이자 승리의 열쇠”라며 크게 환영했었다.

이런 모든 현상의 끝은 ‘이재명 대표 옹위’를 향하고 있다. 평가 하위권에 포함되자 탈당한 판사 출신의 이수진 의원은 “(백현동 재판에서) 이 대표가 빠져나갈 수 없다”면서 “무기징역”까지 거론했다. 공천 규칙은 이미 의미가 없다. 원칙대로 하면 이 대표야말로 공천 배제 0순위이기 때문이다. “금품 관련 재판을 받는 것은 저 혼자가 아니다”는 노웅래 의원의 단식농성 항변은 내로남불 공천의 극치를 말해준다.

이 대표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멈추는 순간에 모든 것을 잃기 때문에 계속 달릴 수밖에 없다. 야당 대표와 국회의원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지면 대선 도전은 언감생심이고, 곧바로 감옥에 갈지 모른다. 이 대표는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든다’는 말을 좋아한다. 거대 야당의 몸통을 장악한 지금은 그런 말을 쓰지 않지만, 행태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변방의 소수 강경 지지 세력을 동원해 중앙의 다수 합리 세력을 물리치는 볼셰비키 전략이다. 이 대표는 주류 정치와는 거리가 먼 ‘개딸’을 앞세워 당권을 차지했고, 이제는 당무를 위임해도 ‘최고 존엄’ 위상에 문제가 없을 것이다. 남은 마지막 관문은 4월 10일 국민의 심판이다. 그 결과에 따라 대한민국은 전혀 다른 나라가 된다.

 
 

03-15 호남은 이재명·조국의 식민지 아니다

제헌헌법 농지개혁에 큰 역할
5·16 뒤 대선에선 박정희 지지
권력 부패와 독재 항거에 앞장

비명 횡사, 종북 숙주, 방탄 정당
DJ 정신도 호남 역사도 짓밟아
묻지 마 지지는 호남 착취 자초

지역에 따라 정치 정서가 다른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지역감정이나 지역주의가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니다. 발전 경쟁의 동력으로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40개 이상은 아예 레드(공화당)·블루(민주당) 스테이트로 분류된다. 오는 11월 대선 경우엔 스윙 스테이트가 6개 정도에 불과하다. 영국엔 스코틀랜드 독립을 내건 스코틀랜드국민당이 제3당이다. 독일의 보수 정치 세력은 기독교민주연합과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의 연합 정당 형태다. 바이에른 지역의 독특한 정서 때문에 기민련은 바이에른을 제외한 지역, 기사련은 바이에른에만 후보를 낸다. 이를 보면 영·호남 정서도 그리 유별난 게 아니다.

문제는 대의명분이다. 호남 정서의 연원에는 이순신 장군의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若無湖南 是無國家)’, 동학농민운동,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있다. 해방 뒤엔 나라의 주춧돌을 놓았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대지주였던 김성수(고창)는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면서 농지개혁을 적극 지지해 성공으로 이끌었다. 대통령제와 내각제가 혼합된 제헌헌법은 ‘김준연 헌법’이라고 할 만큼 김준연(영암)의 막판 역할이 컸다.

5·16 쿠데타 뒤 제5대 대통령선거에서 호남은 박정희를 지지했다. 윤보선과의 표차는 15만여 표였는데, 박정희는 호남에서만 35만여 표 이겼다. 산업화가 경부 축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호남 소외가 시작됐고, 박정희-김대중 대결이었던 1971년 대선을 계기로 호남의 설움이 본격화한다. 5·18을 거치면서 호남 정서는 반독재를 넘어 이념적 진보로 기울더니 1990년 평화민주당을 배제한 3당 합당으로 더 굳어졌다. 호남의 압도적 김대중 지지는 대의명분이 충분했다. 김대중은 그런 호남 정신을 위대하게 만들었다. 대통령이 된 뒤 “피해 당사자가 화해 적임자”라며 박정희·전두환·노태우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역사를 관통하는 호남 DNA는 호국·자유민주·화해이다.

이재명의 더불어민주당, 조국의 조국혁신당이 호남에서 높은 지지를 받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크게 일탈한 현상이다. 이들은 김대중 정신과 무관할 뿐 아니라 모독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김대중은 김상현·이기택 등 비주류 측에 과도한 지분을 보장해 줄 정도로 당내 민주주의를 중시했다. ‘비명횡사’ 공천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도덕적 사법적으로 파렴치한 짓을 하지 않았고, 그러니 정당을 개인 비리 방탄에 동원할 일도 없었다. 1989년 서경원 의원 밀입북 사건을 인지하자 국가안전기획부에 신고하고, 자신도 밤샘 수사를 받았다. 노태우 정부였음에도 공권력을 존중했다. 이재명과 조국은 범죄 혐의 방탄을 위해 ‘검찰 독재’ 운운한다. 종북 세력의 국회 진입 숙주 노릇을 넘어 공생 관계가 됐다. 동교동계는 물론 친노·친문 인사까지 쳐내고 이재명 친위 체제를 구축하면서 “인동초 정신”을 외친다.

이런데도 호남인들은 적극적 지지를 보낸다. 이낙연(영광)을 제쳐놓고 영남 출신인 이재명·조국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윤석열 정부와 선명하게 싸울 세력”이라고 한다. 어떤 정책이 잘못됐고 왜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각론은 없다. 반세기 이상 김대중과 후계 세력을 지지해온 관성으로 보이지만, 실제론 이재명·조국 세력에 ‘가스라이팅’당한 측면이 강해 보인다.

광주·전남의 유력 언론인 남도일보에는 지난 12일 ‘제2의 김대중을 키워야 한다’는 칼럼이 실렸다. “민주당에서 전라도 출신 정치인이 핍박받는 것은 아이러니한 현상”이라면서 기동민(장성) 박광온(해남) 임종석(장흥) 박용진(장수) 윤영찬(전주) 이수진(완주) 홍영표(고창) 등 비명횡사 명단을 열거했다. 선거 때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면서 호남 정치인은 성장 기회를 놓쳤다고 했다. ‘문재인은 데릴사위적 정치인’이었으며, 그로부터 받은 상처가 깊었다고도 했다. 노무현도 대통령 당선 뒤 ‘호남이 노무현 좋아서 찍었나, 이회창 미워서 찍었지’라며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외부 세력이 정치적 이익을 노리고 특정 지역 정치를 쥐락펴락한다면, 그곳은 정치적 식민지이다. 식민 지배를 위해서는 말 잘 듣는 관리인만 있으면 된다. ‘묻지 마 지지’가 계속되는 한, 호남 대의명분을 저버린 당권 세력의 정치적 착취도 되풀이된다.

 
 

04-01 저질 인간들에게 지배당할 것인가

치 대 파렴치 內戰 된 총선
李+曺 과반 땐 재판부도 겁박
200석 넘기면 현 정권은 붕괴

위기 더 키우는 尹대통령 불통
호남과 40대는 묻지 마 野 지지
몰상식 세력 득세는 망국의 길

이번 총선은 보수·진보 이념 경쟁도, 실력파 대 운동권 대결도 아니다. 상식과 몰상식, 염치와 파렴치의 내전(內戰)이다. 앞에선 정의를 외치면서 뒤에선 비리를 저지른 위선자들이 이렇게 많이 나선 선거는 없었다. 주요 야당 대표들부터 그렇고, 부도덕한 후보들 상당수가 유리한 선거구에 공천을 받았다. 총선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긴 어렵지만, 그 결과에 따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망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재명+조국 세력이 윤석열+한동훈 정권에 승리하면 국민의 윤리·도덕·가치관부터 뒤집힌다.

현재로선 범야권이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여권의 1차 방어선은 ‘범여권 140석, 범야권 160석’이다. 그래도 야당은 단독으로 법률을 만들고, 장관과 판·검사 탄핵소추에 나서고, 국정조사와 특검 칼날을 휘두를 수 있다. 여권의 2차 방어선은 야권 180석이다. 국회선진화법에 입각한 저항 수단마저 무너지는 마지노선이다. 범야권 200석은 3차 방어선이라기보다 현 정권의 붕괴를 의미한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무력화, 대통령 탄핵소추, 개헌도 가능하다. 대통령이 사퇴하고 대선을 앞당기는 게 나을지 모른다. 내각제 국가에선 내각 불신임과 조기 총선이 낯선 시나리오도 아니다.

형사범죄 피고인들인 이재명·조국 대표의 전략도 이에 맞춰져 있다. 1차 목표는, 재판을 최대한 늦춰 차기 대선(2027년 3월 3일)까지 대법원 확정 판결을 막는 것이다. 판·검사 탄핵소추가 좋은 방법이다. 더 확실한 방안은 대통령 탄핵이나 개헌으로 대선을 앞당기는 것이다. 이미 2심에서도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조국은 이재명을 대통령으로 옹립해 사면을 받아내면 된다. 두 사람은 벌써 “3년은 길다”고 합창한다.

국가는 어느 날 갑자기 외부 침략을 받아 멸망하지 않는다. 이미 내부 타락과 분열로 툭 치면 쓰러질 정도로 썩어 있다. 로마 말기가 그랬고, 정조(正祖) 이후 1800년대 조선과 대한제국이 그랬다. 이번 총선을 앞둔 분위기도 그렇다. 윤 정권 출범 2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우선, 윤 대통령이 자초했다. 기자회견 거부와 김건희 여사 명품백 소동에서부터 이종섭·황상무 파문까지의 대응을 보면, 대학 시절부터 2년 전 대선 후보 때까지의 ‘열린 윤석열’은 사라지고, 불통과 오기 이미지로 바뀌었다. 여당은 물론 대통령실 참모들과도 벽을 쌓고 강경 보수 유튜버에 휘둘리는 것 같다. 총선 열세는, 한동훈 여당 비대위원장이 보수 정체성을 저버린 탓으로 여긴다고 한다. 선거에 져도 여당을 전투적 보수 인사들로 재구성하고, 거대 야당이 독주하게 놔두면 정권 재창출에 오히려 유리하다고 생각한다는 얘기까지 파다했다. ‘총선 후 김건희 특검’ 및 ‘마리 앙투아네트’ 소동 때 한 위원장 사퇴를 요구했던 사실을 보면, 아주 근거 없는 것 같지도 않다.

둘째, 이재명+조국 세력의 선동 심리전이 탁월하다. 자신의 약점에 대해 궤변으로 선공한다. 이 대표보다 더 비리·욕설 시비에 휩싸인 정치인을 찾기 어려운데, 여당을 겨냥해 “정치에 무관심한 자는 가장 저질 인간에게 지배당한다”고 한다. 포퓰리즘의 달인이면서 “아르헨티나” 운운하며 걱정하는 척한다. ‘비명횡사’ 공천이야말로 정당 독재인데, 상대에 독재 프레임을 씌운다.

셋째, 호남과 40대가 이재명+조국 세력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미스터리다. 민주당은 종북 세력의 숙주가 됐고, 조국혁신당은 범법자 소굴이라고 할 만하다. 김대중·노무현 정신을 저버리고, 친노·친문 인사들을 대거 숙청했다. 40대는 단군 이래 처음으로 배고픔을 모르고 성장한 복 받은 세대다. 윤 정권이 밉더라도 반민주·반헌법·반도덕 세력에 환호해선 안 된다.

정치는 형법상 유무죄 기준이나 1+1=2 식의 산술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2년 전 대통령선거에서 0.73%포인트 차이로 간신히 이겼음에도 양보와 타협은 무시했다. 오만과 독선으로 비쳤고, 국민 마음은 떠나갔다. 민주국가에서 정치는 무조건 국민 공감을 더 많이 확보하는 쪽이 이긴다. 절대평가가 아니라 상대평가다. 4월 11일 아침이면 어떤 나라가 될지 결판난다. 윤 정부 명맥이 유지될 것인가, 저질 인간들에게 지배당할 것인가. 윤 대통령 책임이 무겁지만, 어떤 선택이든 그 결과는 국민이 감내해야 한다.

 
 

05-03 길 잃은 보수 ‘제3의 길’ 찾을 때다

총선 참패보다 더 나쁜 무기력
英 보수당 암흑기와 유사 상황
중도 전략과 세대교체로 극복

보수는 질서 있는 변화에 앞장
성장 둔화로 분배 중요성 증폭
박정희 넘는 21세기 敍事 절실

윤석열 대통령은 방향을, 국민의힘은 중심을 잃어버린 채 표류하고 있다. 보수 정치세력은 총선에서 3연속 패배하면서 지지기반이 영남과 65세 이상 세대로 쪼그라들었다. 그럼에도 처절한 반성과 재기 노력은 고사하고 의례적 정풍·쇄신·세대교체 운동 조짐도 없다. 유신·5공 권위주의 시기의 보수 여당도 이렇게 무기력하진 않았다.

국민의힘 참패엔 패배의 동심원이 작용했다. 가장 외곽의 첫째 동심원은 대선 연합 파괴다. 이준석 대표가 ‘이대남’, 단일화 양보를 한 안철수 후보가 3040 중도 표를 끌어들여 간신히 0.73%포인트 이겼다. 그런데 이준석을 내치고 안철수를 “국정 방해꾼”이라고 비난했다. 이것만으로 대세는 결판났다. 둘째, 윤 대통령은 자신이 정치를 모른다는 사실도, 지지층이 얼마나 취약한지도 몰랐다. TK 유권자들은 지역 연고가 없음에도 좌파 집권을 막을 대안으로 마지못해 지지했다. 이번 총선에서 호남 유권자들이 윤석열에 맞설 적임자라는 이유만으로 조국을 지지한 것과 데칼코마니다.

셋째, 전공의 사태 담화와 이종섭·황상무 파문은 마지막 폭탄이 됐다. 국민 눈높이는커녕 여당 요구에도 못 미친 오만한 대응이 문제였다. 야당이 김준혁·양문석 후보를 출당시켰더라면 개헌 저지선도 무너졌을 것이다. 넷째, 마리 앙투아네트 소동과 친윤 공천을 둘러싼 한동훈과의 충돌에 김건희 여사와 비선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런 꼴불견에 보수 지지층조차 혀를 찼다. 대구 투표율이 전국 최저(제주 제외)였다.

300년 역사의 영국 보수당은 훌륭한 참고서이다. 보수당이 마거릿 대처 시대를 거치며 18년간 황금기를 누리는 동안 와신상담한 노동당은 41세의 토니 블레어를 당수로 선출했다. 블레어는 ‘제3의 길’을 내세워 3년 만에 영국 정치사상 최대 압승을 했다. 하원 의석의 63%(659석 중 418석)를 휩쓸었다. 이번엔 보수당이 무너졌다. 총선에서 3연패 당했다. 서부 웨일스와 북부 스코틀랜드에는 단 1석도 없고, 동남부 잉글랜드에만 의석을 가진 정당이 됐다. 영남에서 명맥을 유지한 여당 형세와 흡사하다.

이런 최악 상황에서 보수당은 39세의 데이비드 캐머런을 선택했다. 캐머런은 “땜질 아닌 재창당(not mend but create)”을 내걸고 ‘역방향 제3의 길’에 도전했다. 전통 보수당원은 좌파라고 맹비난했다. 캐머런이 아니라 카멜레온이라는 욕을 먹으면서도 현란한 수단을 동원해 좌표축을 중도로 옮겼다. 2010년 총선에서 단독 과반엔 못 미쳤지만 제1당에 올라 연립정부를 주도하고, 2015년엔 단독 집권에 성공했다.

지금 국민의힘 사정은 보수당 암흑기에 비하면 훨씬 나은 편이다. 윤 대통령부터 ‘보수’보다 ‘자유’를 외치고, 중도와 신세대를 대변하려는 인사도 많다. 중도로 이동해야 할 근원적 요인은 급격한 성장률 저하다. 1980년대엔 9%대, 1990년대 7%대, 2000년대 5%대, 2010년대 3%대, 2020년대 들어선 1∼2%대를 오르내리는데 지난해는 1.4%였다. 성장으로 분배 욕구를 잠재울 수 있던 시대는 끝났다. 그런데도 박근혜 후보 때 경제민주화가 잠깐 시도됐을 뿐 변하지 않았다. 그 이후 보수 정당이 총선에서 계속 패배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보수는 결코 변화를 거부하지 않는다. 보수주의는 이념(ism)이 아니라 행동 양식이나 사고방식이라고도 한다. 혁명 같은 파괴적 변화를 예방하기 위해 질서 있는 변화를 오히려 선도했다. 미국 공화당은 당대 최고의 진보적 가치였던 노예해방을 계기로 결성됐고, 영국 보수당은 정치적 불이익을 알면서도 선거권 확대에 앞장섰으며, 독일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는 사회보험 등 세계 최초로 복지국가 모델을 도입했다.

당면 정치지형은 물론 시대적 흐름을 보더라도 한국판 제3의 길 이외의 대안은 없다. 6070 원로 보수는 3040 젊은 보수를 돕는 병풍 역할로 물러서야 한다. 신세대 정치인을 이해하고 키워야 한다. 반세기 전 40대 기수론 때도 구상유취라고 비판했지만, 젊은 세대가 옳았다. 건국전쟁 100만 관객, 천안함 딸 편지 영상 1000만 뷰에 머물러선 안 된다. 이승만·박정희·정주영·이병철을 대체할 21세기 보수의 서사(敍事)가 필요하다. 보수+자유 대연합 없이는 윤 정부 성공도, 다음 대선 승리도 꿈꿀 수 없다.

 
 

05-24 한동훈의 난, 우원식의 난

尹·韓 놓고 보수 지지층도 분화
서로 약점까지 잘 알아 역이용
대선연합 세력 동시다발 균열

비명횡사 공천 벌써 위력 상실
李 추락 기대하는 인사 수두룩
새로운 정치리더십 요구 확산

현재 정치 지형은 겉보기보다 매우 불안정하다. 지진이 발생하기 전에 미세한 지각 진동, 지하수 수위 변화, 땅밑 가스 방출, 동물 떼 움직임 같은 전조가 나타난다는데, 정치권 곳곳에서 그런 현상이 감지된다.

여권의 경우,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 관계는 매우 심각하다. 인간적 섭섭함 차원을 넘어 지지층도 확연히 갈라졌다. 한동훈 지지자들은 윤석열을 ‘보수 궤멸자’라며 탈당까지 요구하고, 다른 쪽에선 한동훈에 대해 ‘좌경화’를 우려한다. 한동훈이 여당 대표에 선출되면 윤석열이 탈당할 것이라는 얘기도 근거 없는 풍문만은 아니다. 지난 1월 김경율 비대위원이 김건희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빗댔고, 한동훈은 김경율의 서울 마포을 출마를 지지했다. 윤석열 부부는 격노했으며, 비대위원장 사퇴 요구로 번졌다. 총선 뒤 박영선 총리-양정철 비서실장 카드와 함성득·임혁백 막후 대화가 공개되면서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넜다. 대구의 유력 언론인은 “윤석열 지지자 중 절반 정도가 이탈했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그곳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로 그런 조짐이 상당하다. 검사 한동훈에 의해 옥고를 치른 박근혜 정부 고위 인사는 “개인적으론 밉지만, 좌파 집권을 막으려면 한동훈 외에 대안이 없다”고 했다. 시사 방송에서 한동훈 동향이 언급되면 시청률과 접속자 수가 늘고, 윤석열 경우엔 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한동훈은 윤석열과 적당히 타협하기보다 독자적으로 당권을 노릴 것이다. 윤석열과 함께 일했던 경험에 비추어 양보하기보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게 낫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한다. 게다가 지난 대선 때 승리를 견인했던 이준석은 이미 이탈했고, 안철수도 등을 돌리는 등 동시다발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야권이라고 다르지 않다.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서 추미애 당선인이 낙마하고 우원식 의원이 선출된 것은, 우 의원 본인도 놀랐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당선인 이심전심 결과여서 더욱 그렇다. ‘비명횡사’ 비난까지 감수하며 친위대 공천을 했는데 헛일이 됐다. 개딸도 호남 민심도 믿기 힘들게 됐다. 개딸은 이재명을 위해 싸우긴커녕 조국혁신당으로 몰려간다. 비례대표 선거에서 호남은 민주당보다 조국당을 선택했다.

이재명 추락을 기대하는 세력이 당 안팎에 수두룩하다. 조국, 김경수, 이낙연, 김부겸, 박용진과 친명·586·호남 낙천자 등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다음 달 이화영 재판 1심 선고, 8월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추대 여부, 선거법·위증교사 재판을 거치며 출렁일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이재명은 강성 지지층에 기대겠지만, 이는 지지기반을 위축시키는 자해적 악순환을 부른다.

‘권력자’윤석열·이재명 입장에선 이런 현상은 정치적 반란이다. 그러나 다수 국민은 윤석열·이재명의 적대적 공존을 걱정한다. 앞으로 3년 동안 야당의 입법 독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반복될 것이다. 국정은 표류하고 국가는 뒤처진다. 일하는 정부, 생산적 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고조된다. 그럼에도 여야 내부의 원심력이 당장 정계개편으로 연결되긴 어렵다. 자연현상인 지진과 달리 정치는 추진 주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이 인물을 만든다. 정치사에서 그런 사례는 에이브러햄 링컨에서 에마뉘엘 마크롱까지 수없이 많다. 20세기 미국 토대를 닦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쟁이 없다면 위대한 장군을 얻을 수 없고, 중대한 사건이 없다면 위대한 정치가를 얻지 못한다”고 했다.

뒤 강물이 앞 강물을 밀어내듯 기성세대는 신진 세대를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진실을 오래 가릴 수 없다. 한동훈은 김경율·함운경 등을 영입하며 중도 확장을 시도했다. 6070 보수는 ‘싸가지 없다’고 비판하지만, 50대인 한동훈은 장유유서보다 원칙과 실용을 중시하고, 30대인 이준석은 ‘싸가지’ 개념 자체가 없다. 좋든 싫든 지금 젊은 세대가 그렇다. 야권 경우엔 선동 정치꾼보다 합리적 세력이 주도해야 2027년 집권을 노릴 수 있을 것이다. 시대 흐름과 여론 지형을 보면 상당 기간 국회는 분배를 중시하는 진보세력이, 정부는 안보와 성장을 앞세운 보수세력이 장악할 가능성이 크다.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를 제대로 키워내느냐에 다음 선거 승패도, 국가 미래도 달렸다.

 
 

06-14 이재명 맞춤형 나라, 그 끔찍한 상상

李 대권 맞춤형으로 당헌 개정
사사오입개헌 3선개헌 닮은꼴
국회는 사법리스크 방탄 장치

대통령 당선 땐 무소불위 권력
다음 총선까지 1년 맘대로 입법
나치 독재는 집권 5개월에 완성

이재명은 2021년 11월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만들어나가겠다”고 외쳤다. 꿈은 이뤄졌다. 대선 패배에도 물러서긴커녕,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 대표 당선, 비명횡사 공천, 친위세력의 당·국회 요직 장악을 통해 1인 중심 정당을 만들어냈다. 탁월한 정치력이다.

이제 대권 가도의 걸림돌을 제거할 차례다. 대선 1년 전 대표 사퇴 조항에 예외를 두는 당헌 개정에 나섰다. ‘특별하고 상당한 사유’라는 표현은 법규라고 하기도 민망할 만큼 모호한데, 그나마 인정 여부를 대표가 위원장인 당무위원회에 위임했다. 부정부패에 연루돼 기소된 당직자 직무를 정지하는 조항은 아예 폐지하기로 했다. 이 대표의 지방선거 공천권을 지키고, 자격 시비를 원천 봉쇄하려는 맞춤형 개정이다. 1987년 민주화 투쟁의 산물인 현행 헌법은 ‘임기 연장 등을 위한 개정은 당시 대통령에 대해선 효력이 없다’고 규정했다(제128조). 개헌이 현 권력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민주당 당헌 개정은 이와 정반대이고, 이승만·박정희 집권 연장용이었던 사사오입 개헌, 3선 개헌과 닮았다.

국회 상황을 보면 더 선명해진다. 이재명은 7개 사건, 11개 혐의로 4개의 재판을 받는다.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출마할 수 없다. 사법 리스크가 가중되는 가운데, 법사위원회는 이재명 변호인단이라고 할 정도의 친위대로 채워졌다. 이재명 수사와 재판을 가로막는 법안을 쏟아내고, 검사와 판사에 대해선 탄핵소추를 통해 직무를 정지시키겠다고 한다. 정통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방송을 친야 세력 수중에 놓을 법안도,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을 제한할 입법도 준비 중이다. 청문회·국정조사·탄핵소추는 언제든 동원 가능한 3종 공격 무기다. 이렇게 이재명 맞춤형 국회의 막도 올랐다.

지금 이재명은 차기 대선 레이스에서 선두를 달린다. 2027년 3월 당선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통령 거부권 장애물이 사라진다. 개헌을 제외하고 무슨 법률이든 창작할 수 있다. 검찰 인사권을 행사하고 사법부 구성에도 영향력을 발휘한다. 중형을 선고받은 측근들 사면은 기본이고, 수사 지휘권을 활용하면 자신에 대한 공소 취하도 가능하다. 나치 독일도 선거와 입법을 통해 성립됐다.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총리가 된 뒤 ‘수권법’을 통과시키고, 언론과 비(非)나치 단체들을 굴복시켰다. 히틀러가 독일 민주주의를 완전히 박살 내는 데 5개월도 걸리지 않았다.(폴 존슨 ‘모던타임스Ⅰ’ 533쪽) 이재명이 대통령에 취임하면 1년 이상 압도적 여대야소 국회가 유지된다.

대통령이라는 최종 고지에 올라서면 달라질까. 어려울 것이다. 친위그룹과 강성 지지층이 용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호랑이 등에서 내릴 수 없는 기호지세(騎虎之勢) 신세다. 이재명 맞춤형 민주당과 국회가 국가 차원에서 작동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대의민주주의 근간이 흔들린다. 오랜 의회 정치의 산물인 국회 선진화법은 이미 무력화했다. 둘째, 정당민주주의는 강성 소수의 먹잇감이 된다. 인민민주주의로 흐를 수도 있다. 셋째,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는 위협받고, 적반하장은 판친다.

넷째, 공인 의식과 도덕성 마비를 부른다. 법인카드 유용에서부터 위증 및 위증 강요, 대북 송금 의혹까지, 한 가지만으로도 정계 은퇴를 해야 할 정도인데, 버티면 대통령도 된다. 가수 김호중이 억울하다는 얘기까지 회자된다. 다섯째, 지역감정이 악화한다. 김대중·노무현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노력했지만, 이재명은 호남 정서를 자극하고, 과거보다 더한 싹쓸이를 했다.

“선거에서 이기면 좋지만 늘 이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패배하더라도 다음에 대한 희망을 남기는 패배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대의나 원칙을 지키면서 임해야 한다. 특히, 명분을 버리면 안 된다. 대의도 원칙도 명분도 다 버리고 선거에 임하면 이기기도 어렵고, 패배 후의 희망까지 잃게 된다.”

노무현이 한결같이 강조했던 말이다(‘문재인의 운명’ 367쪽). 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정치인 모두가 새겨들어야 할 명언이자 예언이다. 총선은 정권을 심판하는 회고적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대선은 대의명분과 비전이 중요한 전망적 선거다. 이재명 맞춤형 나라에 대한 상상이 필요한 이유다.

 
 

07-08 제2 민주화운동 필요한 때다

민주당의 민주주의 위협 심각
헌법 8조 ‘민주적 정당’에 위배
여당은 김건희 수렁서 허우적

헌정 수호 최전선 된 검찰.법원
국민과 함께 법치주의 지켜야
6070세대 또 한번 애국심 절실

더불어민주당은 헌법에 의해 ‘법률의 보호와 국가의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민주적 정당’인가. 그런 정당이 되려면 목적·조직·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고, 목적·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면 정부 제소와 헌법재판소 심판에 의해 해산된다(헌법 제8조). 통합진보당 사례가 있다. 민주적, 민주적 기본질서, 그리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헌법 전문) 개념을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 다양한 견해가 있다. 물론 정당의 자유가 폭넓게 인정돼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런 법리를 따질 필요도 없이, 초등학교 반장 선거의 눈높이에서만 보더라도, 지금 민주당은 민주적 정당에서 이탈해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한다.

대외적으로, 이재명 사법 리스크에 비례해 검찰 공격을 강화하더니, 이젠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를 뒤흔들 수준에 이르렀다. 검사들에 대한 탄핵소추는 상징적이다. 탄핵소추는 직무집행에 있어서 파면할 만큼의 중대하고 명확한 헌법·법률 위배(헌법 제65조)를 입증해야 한다. 민주당 탄핵소추안은 이런 기본과 거리가 멀다. 대부분 근거 없는 ‘카더라’ 주장에 기대고 있다. 일단 머릿수만 앞세워 탄핵소추를 의결하면, 해당 공직자들은 권한행사가 정지된다는 점을 노린다. 엉터리 소추안을 내놓고 ‘법사위 조사’ 형식으로 해당 검사들을 닦달하려 든다. 기소 이후에 수사하는 식의 본말전도다. 법사위에는 이재명 관련 사건 변호인 출신들도 있다. 적반하장 행태다.

국회 권능을 남용한 행정·사법권 침해도 심각하다. 예산편성권은 정부에 있고, 국회에는 심의·의결권만 부여됐음에도 전 국민에게 현금을 주라는 법률을 만들려 한다. 행정권을 제약하는 ‘처분적 법률’은 아주 불가피한 예외적 경우에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데, 현 정부 정책을 뒤집거나 야당 정책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삼으려 든다. 대통령이 재의 요구(거부권)한 안건이 재의결 요건을 갖추지 못해 폐기되면, 재발의 않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더 개악한 법률안을 밀어붙인다. 대북송금 사건 등 불리한 판결을 한 재판부 퇴출 겁박도 서슴지 않는다 .

대내적으로, 국회 의석이 170석이나 되는 거대 정당임에도 이재명 유일 체제로 치닫는다. 이미 이재명 맞춤형으로 당헌 개정을 마쳤다. 2026년 6월 지방선거 공천권을 행사하기 위한 포석이다. 부정부패에 연루돼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토록 한 ‘정치개혁 조항’은 아예 없애버렸다. 이 조항을 엄밀히 적용하면 이재명은 이미 대표 자격도, 대통령 후보 자격도 없다.

이재명에 대한 충성 행태는 북한 ‘최고존엄’을 뺨칠 수준이다. 60세 동갑인 어느 최고위원은 “더불어민주당의 아버지”라고 했고, 최고위원 후보들과 당 간부들도 앞다퉈 ‘이재명 결사옹위’ ‘이재명 대통령’을 외친다. 사당화를 넘어 우상화로 치닫는다. 이재명 찬반투표 방식을 고민할 정도로, 들러리 후보가 있든 없든 대표와 대선 후보까지 사실상 결정된다. 이재명의 대표 출마 선언은 대선 출사표를 겸할 것이다.

한 사람의 권한 강화를 위해 당헌을 바꾸고, 범법 혐의를 벗기기 위해 검사·판사를 공격하고, 선심 공약을 위해 행정권 침해를 불사한다. ‘이재명의, 이재명에 의한, 이재명을 위한’ 정당이다. 그런 정당은 우중의 묻지 마 지지를 먹고 자란다. 포퓰리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와 경제의 동반 파탄이 불가피한 이유다. 남미와 그리스, 튀르키예 등 여러 곳에서 확인됐다.

기성세대가 된 6070 세대는 신민당·신한민주당과 함께 유신·5공 시절을 견디고, 1987년 직선제 투쟁 당시엔 넥타이 부대로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1인당 소득 100달러에도 못 미치던 보릿고개·초근목피 최빈국에서 태어나 3만 달러가 넘는 선진국에서 은퇴한다. 오늘의 자유와 번영은 그들이 흘린 피땀의 결실이다. 그들이 사랑했던 반독재·민주화 정당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여당이라도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엉뚱한 ‘김건희 수렁’에서 허우적댄다. 오늘의 자유와 번영을 일군 세대부터 일모도원 심정으로 또 한번 애국에 나서야 한다. 민주주의도 민주당도 구할 제2 민주화운동이 필요하다. 세계사적 대전환기다. 우물 안 정치를 놔두면 구한말 비극을 후대에 물려준다. 여야 모두를 향해 회초리를 들어야 할 때다.

 
 

07-26 박정희-노무현 호감도 역전과 한동훈의 길

‘좋아하는 대통령’ 1위 노무현
보수층은 이해 힘들지만 현실
중도 확장 없이는 패배 되풀이

논리 아닌 정서적 눈높이 중요
당내 기득권과 용산 비선 심각
보수판 ‘제3의 길’ 개척해야

역대 대통령 중에서 누구를 가장 좋아하는가. 지난달 설립 50주년을 맞은 한국갤럽은 5∼10년마다 같은 설문으로 여론조사를 해왔다. 30주년이었던 2004년에는 박정희(48%) 김대중(14%) 노무현(7%·현직) 순이었다. 그때까지 대다수 조사에서 박정희는 부동의 1위였다. 2014년 조사에서 대반전이 일어났다. 노무현(32%) 박정희(28%) 김대중(16%) 순으로 뒤집혔고, 지금까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올해 조사 결과는 노무현 31%, 박정희 24%, 김대중 15%로, 그 비율도 대체로 유지됐다.

보수 성향이 강할수록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박정희 시대를 함께했던 60대 이상도 그럴 것이다. 실제로 세대 단층선이 뚜렷하다. 올해 조사에서 60대 이상에서만 박정희(49%)가 1위였고, 다른 세대에선 모두 노무현이 1위였다. 지역별로는 영남에서만 박정희가 노무현을 앞섰다(대구·경북 49 대 19, 부산·울산·경남 40 대 36). 호남에선 노무현·김대중이 각각 41%였고, 박정희는 1%뿐이었다.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국민의 정치 정서가 2010년을 전후해 급변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보수 정당이 최근 총선에서 연전연패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이런 변화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보수의 성지라는 TK 지역 60대 이상 세대의 이승만·박정희 존경은 흔들림이 없다. 이런 정서에 의존한 정치는 ‘낙동강 전선’바깥 지역, 50대 이하 세대엔 통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계속 패배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7·23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보수 정치의 새로운 이정표가 됐다. 한동훈 대표는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으로의 외연 확장을 외쳤고, 압도적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과감한 변화가 자동으로 계속되는 건 아니다. 작은 변화를 결집해 변화의 태풍으로 만들 수 있느냐에 한 대표의 성패가 달렸다. 실제로 정치는 바람이기도 하다. 한 대표는 “스스로 태풍이 되어 당을 이끌겠다”고 했다. 이승만과 박정희보다 노무현과 김대중 인기가 높은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그런 점에서 51세인 한 대표는 장점을 갖고 있다. 60대 이상은 ‘하면 된다’는 박정희식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한동훈 세대는 다르다. 공정과 과정을 중시한다. 성장이 둔화하면서 분배중요성이 커졌다. 기성세대는 ‘삼국지 읽지 않는 사람과는 대화하지 말라’고 하는데, 한 대표는 “삼국지 게임의 맹획 캐릭터를 좋아한다”고 한다. “인생은 마음대로 안 되기 때문에 스트라이크 존을 넓혀놔야 한다”고 할 정도로 구사하는 언어도 다르다.

한 대표가 보수 재구축을 이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지기반이 약하고 서로 충돌하는 과제도 많기 때문이다. “웰빙 정당 소리 나오지 않게 하겠다”며 체질 개선을 외쳤지만, 뒷짐 진 현역 의원들을 견인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경쟁자들을 끌어안는 화합과 기득권 박탈이 전제인 개혁은 상충한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관계” 설정도 말처럼 간단치 않다. 윤 대통령의 각별한 김건희 여사 사랑, 그 주위의 비선 사조직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국회를 장악한 야당에 맞서는 일은 더욱 어렵다. 유일한 방법은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얻는 것인데, 야권에는 선동과 술수의 귀재가 수두룩하다. 보수의 가치와 품격을 지키면서 그들을 능가하려면, 몇 배 더 노력하고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많은 국민이 경청했던 대표 수락 연설에 빠진 게 있다. 논리적 구성에선 빈틈이 없었지만, 긴 장마와 무더위로 고생하는 국민, 특히 서민의 어려움에 대한 위로의 메시지는 한마디도 없었다. 그런 삶의 경험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에겐 논리적 눈높이보다 정서적 눈높이가 더 중요하다. 헌법 앞에 국민정서법이 있다. 그게 정치와 수사의 차이다. 윤 대통령이 맥주 대신 제로 콜라를 마시는 한 대표에게 “문상도 많이 가고 밥을 자주 먹는 등 의원들과 스킨십을 늘려 달라”고 당부한 것도 같은 취지다.

한 대표의 출발은 신선하나 앞길은 험난하다. 거친 파도가 유능한 선장을 만들고, 혼돈의 시대에 위대한 리더가 탄생한다. 보수판 제3의 길을 시작하고, 정국 구도를 윤석열 대 이재명에서 한동훈 대 이재명으로 바꿀 수만 있어도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08-23 죽창가 반일은 제2 국치 부를 매국

8월 29일 국치일 뼈저린 역사
이승만 김구 불굴의 抗日 투쟁
克日 앞장선 박정희와 김대중

대등한 한일관계 선열 꿈 실현
국민은 식민지 콤플렉스 탈피
親日 反日 선동은 시대착오적

조선은 전쟁 없이 식민지로 전락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군대 해산은 물론 외교권·사법권 등을 야금야금 침탈당한 끝에 1910년 8월 22일 ‘한국 황제는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국 황제에게 양여한다’는 조약이 체결되고, 일주일 뒤 공포됐다. 국치일(8월 29일)은 다 잘린 나무에 마지막 도끼질이 가해진 날일 뿐이다. 해방도 독립전쟁의 결실이 아니라 태평양전쟁에서 일제가 패망한 결과로 주어졌다. 중국에서 임시정부를 이끌던 김구 주석은 ‘백범일지’에 “왜적이 항복한다는 소식은 희소식이라기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 수년 동안 (광복군) 참전을 준비한 것도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는 심경을 남겼다. 이런 사정 때문에 독립기념일 또는 건국일이 아니라 광복절이 됐고, 한일관계에도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파란만장한 한일 관계사를 돌아보면, 이승만 대통령은 확고한 반일 대통령이었다. 6·25전쟁 당시 미국은 전투 경험이 풍부했던 일본군 전역자들을 유엔군에 편입시키려 했는데, “국군은 일본군부터 격퇴한 다음 공산당과 싸울 것”이라며 거부했다. 부산 임시수도 시기임에도 평화선을 선포해 무력 충돌을 불사하며 동해를 지켰다.

일본은 6·25 특수에 힘입어 빨리 일어섰다. 전쟁 중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주권을 회복하고, 미·일 안전보장조약으로 국방 비용을 줄였으며, 병참 기지 역할을 하면서 경제는 급성장했다. 반면, 대한민국은 전쟁의 상처가 깊었다. 그나마 이 대통령이 ‘광인 전술’로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교육에 투자해 문맹을 퇴치하고 고등교육도 대폭 확대했다. 역설적으로 4·19 혁명은 그런 토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5·16이 일어났던 1961년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89달러로 125개국 중 101위로 최빈국 그룹에 속했으며, 북한은 320달러로 50위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일본의 기술과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한일 수교를 결단한다. 대국민 담화에서 “어제의 원수라도 오늘과 내일을 위해 필요하다면 손을 잡아야 하는 것이 국리민복을 위한 현명한 대처”라면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느냐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느냐는 우리의 자세와 각오에 달렸다”고 호소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지지층 반대를 무릅쓰고 “우리 국민과 문화의 저력을 믿는다”며 일본 대중문화 개방 결단도 했다. 그런 점에서 김 대통령은 가장 친일적 대통령이다. 30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한일관계는 국력 측면에서 대등해졌고, 문화 국경은 사실상 사라졌다. 후쿠시마 원전 방류수 논란에도 상반기 일본을 찾은 한국인은 444만 명으로, 하루 평균 2만5000명 가까이 된다. 일반 국민, 특히 미래 세대에게 대일 콤플렉스는 없다. 이승만과 김구의 항일, 박정희와 김대중의 극일 꿈이 실현된 것이다.

시대정신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구한말에는 조선의 근대화 혁명, 일제 식민지 시기에는 항일 독립투쟁, 해방 뒤엔 자유민주 국가 수립, 6·25 시기엔 호국, 1960년대엔 빈곤 탈피와 산업화, 1980년대엔 민주화, 4차 산업혁명시대엔 경제·기술 일류국 만들기가 시대정신이다. 반일·친일의 개념과 정당성도 시대에 따라 변천한다.

21세기 정세는 식민지 때와는 상전벽해가 됐다. 북한 중국 러시아 등 비정상 국가에 맞서 일본과 안보·경제·기술 등 전방위로 협력해야 한다. 그런데 밀정, 내선일체, 조선총독 등 교활한 구호와 근거 없는 괴담이 난무한다. 과거사를 잊어선 안 되지만, 미래의 발목을 잡게 해선 더욱 안 된다. 죽창가 배경은 동학농민전쟁의 우금치전투다. 기관총으로 무장한 일본군과 관군에 농민군은 죽창으로 맞섰다.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 살육이었다. 부적을 태워 마시고 총탄 피하는 주문을 외우며 돌격했다. 국민을 위하는 지도자라면 해선 안 될 일이다.

뼈저린 피지배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면서 교훈을 얻고, 그 시대를 견뎠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공과의 정도를 제대로 따져 합당한 대우를 해야 할 때다. 국가 지도자에 대한 평가 역시 당대에 필요한 일을 제대로 해냈느냐가 최대 기준이 돼야 한다. 침소봉대 식의 닥치고 친일 몰이야말로 역사를 왜곡하고 제2 국치를 부를 사악한 매국 행태다.

 
 

09-20 김 여사 목에 방울 달기

 국정 동력 위협하는 尹 지지율
공무원 복지부동과 여권 분열
李 유죄 판결 땐 사생결단 불사

여론 악화 金여사가 취약 지점
최근 적극 행보로 여론 부메랑
사과·부속실·감찰관으론 부족

여론조사는 특정 집단의 특정 시기 생각을 찍은 스냅 사진이다.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잣대도, 가야 할 곳을 알려주는 지도도 아니다. 그러나 국가 지도자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지지율이 낮으면 국정 신뢰와 동력이 사라진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저점을 찍었다. 한국갤럽의 정기 조사(9월 둘째 주)에서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는 응답률은 20%에 간신히 턱걸이했다.

윤 대통령은 야속할 것이다. 오직 국민과 미래를 위해 거야 국회와 기득권층 반발을 무릅쓰고 ‘4+1 개혁’에 나섰는데, 정작 국민은 몰라주기 때문이다. 압도적 지지를 받았던 의대 증원과 관련, 최근 비판 여론이 지지 여론을 앞서기 시작했다.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해서도 반대(41%)가 찬성(37%)보다 많은 것으로 이번 조사에서 나타났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근원적 문제는 ‘정치인 윤석열’의 실패다. 간신히 대통령에 당선됐음에도 지지 기반을 스스로 허물어왔다. 이준석·안철수와의 선거 연대 해체, 나경원 등 비윤 계열 내치기에 이어 한동훈 대표와의 불협화도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지지율의 대반전이 없으면 공직 사회의 복지부동과 야당 눈치 보기가 급속히 악화한다. 선거법 공소시효 만료(10월 10일) 뒤엔 여당 의원 행보가 더 자유로워지고, 미래 권력을 중심으로 한 원심력과 차별화 주장도 커질 것이다.

김건희 여사 문제는 불난 집에 기름을 뿌리는 격이다. 온갖 튀는 정책·인사의 배경에 김 여사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윤 대통령 초청 모임에 함께한 김 여사가 어떤 언행을 했는지, 한남동 비선이 누구이며 어떤 자리를 노리는지 등에 대한 경험담을 비롯해 별의별 얘기가 필자 귀에도 들린다. 야당의 정치 공세 이전에 여당 인사들 사이에도 김 여사가 국정에 직간접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생각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행보는, 선거법 위반 및 위증교사 1심 판결이 나오는 10∼11월에 변곡점을 맞는다. ‘탄핵 촛불’ 장외 투쟁 포석도 곳곳에 깔고 있다. 윤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11월 10일)을 전후한 11월 위기설까지 나돈다. 이 대표는 취약한 고리부터 때릴 것이다. 김 여사 문제다. 실체적 진실이나 사법적 책임을 따지기에 앞서 여론이 매우 나쁘기 때문이다. 위헌성에도 불구하고 ‘김건희특검법’이 상당한 지지를 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필자는 2년 전에 ‘김 여사 목에 방울 달기’(2022년 9월 19일 자 시론) 칼럼을 게재했다. 당시에도 민주당은 김여사특검법을 발의했는데, 이를 정치적 스토킹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진짜 문제는 문제 그 자체보다 대응 방식’임을 지적했었다. 김 여사 문제는 언터처블이라는 얘기가 나온다는 사실을 소개하고, 윤 대통령도 국민도 모두 들을 수 있는 ‘방울’을 달지 않으면, 사소한 약점이 거대한 둑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불행히도 상황은 더 나빠졌다. 김 여사는 최근 명품백 문제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수사에서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는 와중에 행보를 적극화했다. 감사원도 관저 공사 비위와 관련해 김 여사에게 면죄부를 줬지만, 여론은 악화일로다.

김 여사는 전두환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와 함께 구설에 가장 많이 시달린 영부인에 속한다. 이 여사의 삼촌도 연루된 장영자 사건이 권력형 스캔들로 번지고, 그러지 않아도 정통성이 약했던 전 대통령에게 큰 부담이 됐을 때의 생각을 이렇게 남겼다. ‘당신이 대통령 끝나실 때까지만이라도 우리 따로 헤어져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말로 이혼 아니 목숨이라도 끊고 싶은 심정이었다.’(이순자 자서전 335쪽)

김 여사가 한국의 힐러리 클린턴을 꿈꾸더라도 그것은 자유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남편과 윤 정부와 나라를 위하는 길인지 심사숙고할 때다. 윤 대통령도 직접 나서긴 힘들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장인의 ‘미전향’ 문제에 대해 “아내와 이혼하란 말인가”라며 방어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김 여사 스스로 방울을 다는 게 최선이다. 이제는 대국민 사과나 제2부속실·특별감찰관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그래도 진정성만 있으면 아직 방법은 많다. 더 늦어지면 시도할 기회조차 날아간다. 실정법은 물론 국민정서법 무서운 줄도 알아야 한다.

 
 

10-11 혹독할 윤석열의 겨울

임기 반환점 대통령 사면초가
한심한 유유상종 후유증 증폭
이재명도 버거운데 韓과 충돌

전반기 허송세월 남 탓 말아야
특단의 결단 없인 후반 더 험난
金여사 수사나 유배 자청하길

김건희 여사 문제는 여권의 ‘목에 걸린 가시’이다. 대수롭지 않아 보여도 빨리 제거하지 않으면 식도에 염증을 유발하고 세균이 인근 대동맥으로 침투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질 수 있다. 김 여사를 둘러싸고 이미 명품가방, 도이치모터스, 양평 고속도로, 관저 공사, 천공 등 시비가 끊이지 않았지만, 최근의 명태균·김대남 파문은 차원이 다르다. 녹취록과 문자 대화가 등장하고, 그것들은 윤석열 대통령 배후에서 김 여사가 국정·인사·공천에 관여한 물증처럼 비친다.

원래 정치권에는 별의별 사람이 몰려들지만, 대부분 정치 뒷골목을 배회하다 사라진다. 분별력이 있는 사람은 금방 그들의 속성을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 여사와 교류한 사람들은 다르다. 대통령실의 엉뚱한 대응을 보면, 참모들도 실상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 위법 여부를 따지기도 전에 부적절한 인사와의 유유상종만으로도 국민 눈길은 싸늘해졌다. 머지않아 무속인 녹취록이 나온다는 소문도 나돈다.

윤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이 코앞인데, 이런 일이 동시다발로 벌어진다. 전반기 동안 목표만 제대로 설정했을 뿐, 실적 측면에선 허송세월에 가깝다. 탈원전 폐기와 노동 현장 불법 척결 같은 성과가 기억에 남지만, 없던 길을 개척한 적극적 업적이 아니라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소극적 업적에 불과하다. 정작 의대 증원과 연금개혁 같은 미래 과제들은 표류하고, 국정 기관차인 공직사회는 얼어붙었으며, 정치적 엔진인 여당은 지리멸렬해졌다. 거대 야당의 폭주도 거세지면서 윤 대통령은 사면초가 신세다. 그렇다고 누구를 탓해서도 안 된다. 대통령은 원래 무한책임을 지는 고독한 자리다.

꼭 1년 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는 민심의 1차 경고였다. 윤 대통령은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했지만, 행동에 옮기진 않았다.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김기현 아바타 체제’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자 혁신위원회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이번에도 그뿐이었다. 김 여사에 대한 비판 여론 급등에도 감싸기로 일관했다. 온갖 인사와 정책에 김 여사 그림자가 더 짙어졌다. 그 결과는 개헌 및 대통령 탄핵소추 저지선만 겨우 지킨 최악의 패배였다.

그런데도 바뀌지 않았다. ‘액년 3년만 버티면 대운이 열린다’는 주술에 걸린 듯하다. 오는 16일의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도 정국에 파란을 일으킬 것이다. 민심이 총선 때와 달라졌다고 한다. 낮은 투표율 때문에 지지층 투표가 관건인데, 야당은 필사적인 반면, 여당 지지자들의 열의는 미지근하다고 한다. 지난 총선 때도 그랬다. 전반적 상황도 더 나빠졌다. 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한국갤럽 2023년 10월 둘째 주 정기조사)은 33%와 34%에서 23%와 31%(지난 9월 넷째 주)로 동반 하락했다.

올겨울은 윤 대통령에게 더 혹독할 것이다. 이재명 한 사람 상대하기도 벅찬데, 같은 편인 한동훈과의 갈등을 더 걱정해야 할 판이다. 윤 대통령은 ‘술도 안 마시는’ 한동훈 검사를 키워주고, 법무부 장관에 비대위원장까지 시켜주었다며 배신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한동훈은 검사 윤석열의 명성은 자신의 수사 능력 덕분에 빛날 수 있었다고 본다. 지는 권력과 뜨는 권력의 투쟁은 더 노골화할 것이다. 이런 충돌의 뿌리에도 김 여사라는 ‘목엣가시’가 있다. 윤 대통령은 공자가 말한 무신불립(無信不立) 이치부터 깨달아야 한다. 내각제에서 20%대 지지율은 정권 붕괴 임계점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그 수준에서 물러났다.

혹한이 닥치기 전에 방한복을 준비해야 한다. 지지율을 반전시키지 못하면, ‘이재명 대통령’을 방조하게 된다. 엄정한 재판과 수사를 해야 할 판·검사들은 물론 일반 공직자들도 인기 없는 정권보다 야당을 더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더 늦기 전에 한남동 비선을 내치고 공조직을 살려야 한다. 김 여사 문제 대책이 시금석이다. 사과, 부속실, 특별감찰관 같은 뻔한 방안을 뛰어넘는 특단의 결단이 아니면 소용없다. 특검 수사나 정치적 유배도 자청해야 할 판이다. 동양 정치학의 고전인 논어의 자장 편에 이런 내용이 있다. 지도자의 잘못은 일식 월식 같아서 감추려 해도 결국 모두가 보게 되지만(過也見之), 잘못을 고치면 그를 우러를 것이다(更也仰之).

 

11-08 대통령의 ‘아내를 위한 변명’

사과의 기본과 동떨어진 회견
金여사 문제엔 사과 아닌 반박
적극 소명보다 증거 가져오라

대통령은 국민 관점에서 봐야
아내 감싸면 회견도 별무효과
통념 넘는 더 과감한 조치 시급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래서 사과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패자 아닌 승자의 언어라고도 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장 자크 루소, 레프 톨스토이가 남긴 3대 참회록은 고전으로 읽힌다. 최근 사과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졌고 학문으로 정립될 수준에 이르렀다. 사과학 선구자인 아론 라자르가 2004년 ‘사과에 대하여(On Apology)’를 출간한 뒤 많은 연구가 이뤄졌는데, 대체로 일치하는 원칙이 있다. 실수는 숨기면 커지고 밝히면 작아진다. 사과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사과받는 사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대중을 향한 공개 사과에는 몇 가지가 추가된다. 변명을 덧붙이지 않는 게 좋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적시해야 한다. 미안·유감 등의 말은 감정 표현일 뿐 사과가 아니다. 보상 방안을 내놓고, 재발 방지를 분명히 약속해야 진정성을 인정받는다.(김호·정재승 저 ‘쿨하게 사과하라’)

윤석열 대통령의 7일 담화와 회견은 이런 원론에 충실한 사과와는 거리가 멀다. 윤 대통령은 여러 차례 본인의 불찰·책임·부족함 등을 거론하며 고개를 숙였고, 초심으로 돌아가 더 노력하고 소통하고, 고칠 부분은 고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작 핵심 화두였던 김건희 여사 문제만 나오면 격해졌다. 사과는 고사하고 해명·변명도 넘어 반박이었다. “국정 잘하기를 바라는 일들을 국정농단이라고 한다면 국어사전을 다시 정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침소봉대는 기본이고 제 처를 많이 악마화시킨 것은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밤새도록 김 여사가 자신의 휴대전화로 온 메시지에 답했다고 소개했지만, 명태균 파문과 관련해선 “아내 휴대폰을 보자고 할 수 없어 물어봤다”고 했다. 이날 회견과 관련해서도 “(김 여사가) 국정 성과만 얘기하지 말고 사과를 좀 많이 하라고 했다”면서 “이것도 국정 관여고 농단은 아니겠죠”라고 했다.

“365일 24시간 노심초사하면서 국민 삶을 챙기려 했다”는 윤 대통령 말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관점부터 문제다. 국민 요구는 김 여사의 ‘보이지 않는 역할’에 대한 의구심을 분명하게 없애달라는 것이다. 어느 기자가 “사과하지 않아도 될 일인데 바깥에서 시끄러우니까 사과하는 것으로 비친다”면서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 구체적으로 밝혀달라고 요구했는데, 사과의 원칙에 충실한 질문이었다. 윤 대통령은 “딱 집어서 잘못한 것 아니냐고 해 주시면 딱 그 팩트에 대해 사과를 드리겠다”고 일종의 역공을 했다. 얼마 전 한동훈 대표에게는 “누가 어떤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비서실장이나 정무수석에게 전달해 달라”고도 했다. 한남동 내실에서 필요한 남편의 관점이다. 대통령은 맞은편의 국민 관점에서 사물을 봐야 한다.

일반인이 아내를 감싸는 것은 미담이지만, 대통령이라면 달라진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현재 검사가 아니라 10%대 지지율의 대통령이라는 사실도, 왜 회견했는지도 잊어버린 것 같다. 그런 질문이 없더라도 국민이 납득할 만한 조치를 선제적으로 해야 할 처지다. 이번 회견은 하지 않은 것보다 낫지만, 별다른 효과가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러지 않아도 윤 대통령 부부의 사과는 이미 신뢰를 많이 잃었다. 윤 대통령은 “장모가 사기를 당한 적은 있어도 누구한테 10원 한 장 피해를 준 적 없다. 내가 약점 잡힐 게 있었다면 정치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장모는 잔고증명서 위조로 징역 1년이 확정됐다. 김 여사는 대선 과정이던 2021년 12월 당시 허위 경력 논란 등에 대해 사과하면서 “조용히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겠다.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했다. 최근 폭로되는 ‘오빠’ ‘명 선생께 완전히 의존하는 상황’ 등의 문자 메시지, 마포대교 시찰 사진 등은 불신을 자초했다. 윤 대통령은 명태균 씨와 통화하면서 “공관위에서 들고 왔길래 김영선 해줘라 했는데 당에서 말이 많네”라고 하는 육성까지 공개됐는데도 팩트 자체에 대한 소명 없이 장황하게 뭐가 문제냐고 둘러댔다.

김 여사 문제가 완전히 해소됐다는 믿음을 줄 파격적 조치가 필요하다. 내재적 관점을 외재적 관점으로 옮겨서 숙고하기 바란다. 그러고도 뭘 할지 모른다면 좋은 남편은 틀림없지만, 좋은 대통령 되기는 힘들다.

 

12-09 윤석열도 이재명도 법 위에 있지 않다

尹의 자폭 李에겐 정치적 횡재
非탄핵적 조기 퇴진 나선 여당
젊은 세대 반발 예상보다 심각

尹 수사 본격화 땐 李 방탄 흔들
제로섬 정치 극복할 대안 절실
여당은 조기 대선 공포 버려야

대통령 윤석열은 이미 ‘정치적 사형 선고’를 받았다.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7일 저녁 가까스로 폐기되고, 다음 날 한동훈 여당 대표와 한덕수 총리가 “질서 있는 퇴진”과 “공백 없는 국정”을 국민 앞에 약속했음에도 정국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윤 대통령의 헌법상 지위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그런 식의 국정 운영이 가능할지, 무엇보다 다수 국민이 수용할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여당의 당론 반대는,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의 찬반 분열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트라우마 때문일 것이다. 일부 친윤 세력과 당 밖의 강경 보수세력 압박에 당내 입지가 약한 한 대표가 밀린 측면도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실질적 배경은, 윤 대통령 퇴진과 차기 대통령선거를 최대한 늦추지 않으면 다음 정권을 그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헌납할 것이라는 불안감이다.

여당 의원들의 국회 본회의장 이탈이 부적절한 것은 사실이지만, 탄핵소추안 부결 역시 국민이 만들어준 국회 의석 분포에 따른 결과인 만큼 존중돼야 한다. 계엄 선포를 위헌으로 보면서도 탄핵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도 적지 않다. 야당이 탄핵소추안을 속전속결 처리하려는 배경엔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확정판결 이전에 대선을 실시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계엄 사태 전에는 입법·예산·탄핵·특검 폭주 등 ‘이재명의 민주당’에 의한 헌법 가치 유린이 더 심각했다. 야당이 유사한 탄핵소추안을 무한 재발의하겠다는 것은 본질적으론 계엄 사태와 다름없는 반헌법적 횡포다.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및 위증교사 사건의 대법원 확정판결 때까지, 짧으면 반년 길면 1년 정도 야당의 사생결단이 예상된다. 당장 정국 향방을 가를 중요 변수는 한 대표의 정치력이다. 탄핵소추 거부에 따른 여론 역풍이 만만찮다. 10대·20대·30대 젊은층이 탄핵 집회에 몰리기 시작한 것은 보수 정당으로서는 특히 뼈아픈 일이다. 계엄 사태 직전까지 민주당의 장외 집회는 시들시들해지고 있었다. 시민 동참이 저조하자 민주당을 상징하는 푸른색 옷을 입지 못하게 하는 블랙코미디까지 벌일 정도였다.

이렇게 수세에 몰려 있던 이 대표는 ‘아닌 밤중에 횡재’를 했다. 윤 대통령은 왜 이런 바보 같은 정치적 자폭을 저질렀을까. 대통령 주변 인사들 설명을 종합하면 극단적 유튜버와 김건희 여사 특검법 문제가 도화선이었던 것 같다. 계엄 담화와 포고령, 계엄군 움직임을 보면 그런 유튜버 주장과 판박이다. 윤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친 유튜버는 S, K, L, K, J 등 5명 정도라고 한다. 김 여사 명품 가방 문제와 특검 논란이 본격화한 지난해 말부터 대통령실 참모들에게서 ‘대통령이 유튜브 못 보게 할 방법이 없겠느냐’는 하소연이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엔 ‘쌍무지개 소멸’ 같은 주술적 예언 때문에 불안해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와 함께 합당한 책임을 지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한 명태균 씨와 관련된 여러 의혹도, 김 여사 또는 가까운 친인척이 등장하는 온갖 녹취록 내용도 한결같이 심상치 않다. 윤 대통령은 헌법상 특권에 숨지 말고 적극적 자발적으로 수사에 응해야 한다. 압수수색도 출두 요구도 회피해선 안 된다.

급류를 건널 때는 발밑에 집중해 한발 한발 내디디고, 먼 산을 바라보며 방향감각을 유지해야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을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이 그런 처지다. 계엄 사태 격랑을 슬기롭게 넘을 집단 지성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현직 대통령에게도 성역 없이 엄정한 법 집행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야당 대표에 대한 수사와 재판 역시 마찬가지다. 판검사 겁박과 탄핵소추, 국회와 정당을 사법리스크 방탄에 동원하는 행태에 경종을 울리는 일, 그것이 윤 대통령의 마지막 애국일지 모른다. 윤석열도 이재명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입증한다면, 국가 차원에선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한국 정치에 주는 교훈도 명확하다. 현재 무한 정쟁의 근원은 거대 양당 체제가 고착화하면서 더욱 악화해온 ‘제로섬 정치’에 있다. 이를 개선할 정치적 각성과 제도적 개혁이 절실하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조기 대선 필패’라는 과도한 공포에서 벗어나 사즉생 각오로 먼 산을 보는 일도 중요하다.

 

12-23 선거 ‘이기는 보수’가 진짜 보수

쓰나미 덮쳐도 무사안일 여당
영남 정당 안주하는 행태 심각
신장개업 정도론 위기 못 넘어

윤석열·박근혜 실패 속에 활로
불통·독선 탈피와 대연합 절실
미래 정당 탈바꿈 땐 전화위복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이 3중 쓰나미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중이다. 제1파는 계엄 쓰나미다. 젊은 세대는, 6070 세대가 45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는 ‘10·26-12·12-5·18’처럼, 수십 년 뒤에도 국회에 진입한 계엄군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생중계로 지켜본 세월호 침몰의 안타까운 참상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국민의 뇌리에 생생히 남아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런데도 친윤 주류는 대충 뭉개고 지나가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한동훈 등 계엄 반대 세력을 내침으로써 ‘계엄 정당’을 자임하려 든다.

제2파는 지지기반 위축 쓰나미다. 원래 보수 정당은 전국 정당으로서 건국·호국·산업화에 앞장섰고, 3당 합당으로 민주화 세력과 결합했다. 민주화 이후 보수 정당의 전성기는 2008년이었다. 한나라당이 단독 과반인 153석을 얻었고, 보수 성향의 자유선진당이 18석, 친박연대가 14석을 얻었다. 수도권 의원(82명)이 영남(63명)보다 많았다. 그런데 지난 4월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75석, 조국혁신당이 12석을 확보했다. 16년 만에 정반대 상황이 됐다. 국민의힘 지역별 의원 비중도 수도권 19명, 영남 59명으로 뒤집혔다. 현재 추세라면 부산·경남도 무너지고 곧 TK(대구·경북) 정당이 된다. 그럼에도 영남 의석수엔 별다른 변화가 없으니, 그쪽 의원들은 무사태평이다. 민심보다 공천이 주된 관심사가 됐고, 웰빙·기회주의 정당으로 전락했다.

제3파는 분배 쓰나미다. 과거엔 성장으로 분배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지금은 저성장과 AI 시대가 겹치며 소득·일자리 양극화를 피할 수 없고, 분배 요구는 강해진다. ‘보수는 성장, 진보는 분배’ 프레임을 바꾸지 못하면, 이승만·박정희 신화를 아무리 외쳐도 선거에서 이기기 어렵다.

윤석열의 실패가 보수 정치의 몰락, 대한민국의 추락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 급선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 영국 보수당과 미국 공화당의 역사는 좋은 등대다. 모두 보수 정당으로서 200년 가까이 변화에 적극 대응하면서 ‘질서 있는 변화와 발전’을 선도해왔기 때문이다.

영국 보수당은 왕당파 귀족과 지주 계급에 기반을 두고 있었지만, 곡물법 폐기를 통해 곡물 관세를 철폐하고, 불리한 줄 알면서도 유권자를 확대하는 선거법 개정에 앞장섰다. 보수당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오두막이 행복하지 않으면 궁전도 안전하지 않다”면서 노동조합법, 공중위생법, 아동노동금지법 등으로 사회개혁을 주도했다. 비우호적인 노동자·여성 유권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초롱불 강연, 영화 트럭 등 기발한 방법을 궁리해 실행했다.

미국 공화당도 과감한 변신을 피하지 않았다. 20세기 초강대국 미국의 초석을 닦은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지금도 깨지지 않는 최연소 대통령(42세) 기록을 갖고 있는데, 공화당이 산업자본을 대변하고 있었음에도 반독점법(셔먼법)을 강력히 시행해 ‘트러스트 파괴자’ 별명을 남겼다. 미국 역사상 첫 대통령 주재의 노·사·정 회의를 열었고, 세계에서 처음으로 국립공원 지정 제도를 만드는 등 환경보호에도 앞장섰다.

국민의힘은 당명이나 대표를 바꾸는 신장개업으로 위기를 넘을 수 없다. 건물만 다시 짓는 재건축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기반 시설까지 싹 바꾸는 재개발 방식이어야 한다. 윤석열·박근혜 두 대통령은 모두 불통과 독단으로 자멸했다. 그 반대 방향에 보수 정당의 활로가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애국 세력 대연합을 만들어야 한다. 젊은 보수도, 6070 보수도, 아스팔트 보수도, TK 보수도 모두 소중한 자산이다. 서로 손가락질하기에 앞서 나도 책임이 있다는 인식부터 공유해야 한다. 선명한 발언을 쏟아내면 속은 시원하겠지만, 지지 기반은 줄어든다. 계엄 반대 및 탄핵 찬성 여론이 70%를 넘는다. 분노를 가슴에 담고 ‘50%+1표’를 얻도록 해야 한다. ‘화풀이 보수’보다 ‘이기는 보수’가 진짜 보수다.

지금보다 더 나빠질 일도 없는 만큼 과감한 정치 실험을 시도할 적기다. 궁즉통·사즉생 각오로 지지 기반을 넓히고, 21세기형 따뜻한 보수 노선을 제시하는 등 AI 시대 정당을 추구한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가능성만으로도 보수는 재결집하고, 야당과의 맞대결도 해볼 만할 것이다.

# 이용식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