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따라 이야기 2024-2/ 07.01 ‘5060 스타배우 전성시대’ - 11.22 코미디언 서영춘의 작곡가 형, 압록강에서 죽을 뻔했던 사연
딴따라 이야기 2024-2/
07.01 ‘5060 스타배우 전성시대’
‘스몰스타’ 전성시대 속 ‘마지막 대중스타들’
⊙ 유튜브, 틱톡, SNS, OTT 등 자신이 즐기는 플랫폼에서 활약하는 ‘내 스타’들만 알지 ‘남의 스타’는 몰라
⊙ 뉴미디어 폭발과 함께 모든 ‘보편’이 사라지고 ‘단독성’의 ‘특수’가 폭발하는 ‘단독성들의 사회’
⊙ 개개인들이 모래알처럼 파편화돼 공통적 의제 설정조차 힘들어진 현실 반영
⊙ 황정민, 정우성, 마동석, 송강호, 설경구, 최민식, 이병헌 등 ‘1000만 배우’들, 50~60대
⊙ 미국에서도 톰 크루즈, 브래드 피트, 키아누 리브스, 맷 데이먼, 샌드라 블록, 줄리아 로버츠 등이 50~60대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최근 흥행작인 〈범죄도시4〉 〈파묘〉 〈서울의 봄〉. 모두 50~60대 배우들이 주연했다.
한국 영화 〈범죄도시4〉가 5월 15일 국내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6월 2일 현재까지는 누적 1127만3412명. 〈범죄도시4〉는 많이들 알다시피, 액션스타 마동석이 2017년부터 주연한 범죄 액션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 4편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근래 들어 국내 1000만 관객을 넘어서는 ‘1000만 영화’들이 꽤 자주 나오고 있다는 인상이다. 지난해 11월 개봉한 12·12 사건 소재 〈서울의 봄〉에 이어 올해 2월에는 오컬트 공포 영화 〈파묘〉가 개봉해 ‘1000만 영화’에 입성했고, 다시 4월 개봉작 〈범죄도시4〉다. 체인 식으로 계속 밀려온다.
여기서 이목을 끄는 부분이 있다. 불과 6개월 사이 연달아 탄생한 이 ‘1000만 영화’ 세 편, 〈서울의 봄〉과 〈파묘〉, 그리고 〈범죄도시4〉는 언뜻 아무런 닮은 점 없는 영화들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이들 사이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톱-빌링(top-billing) 배우, 즉 영화 크레디트에 가장 먼저 이름이 뜨는 주연배우들 ‘나이’ 부분이다. 모두가 50~60대, 이른바 ‘5060 배우’들이라는 것. 먼저 〈서울의 봄〉에서 주연을 맡은 두 배우 황정민과 정우성은 각각 6월 3일 기준 53세와 51세다. 〈파묘〉의 최민식은 50대도 뛰어넘어 벌써 62세이고, 〈범죄도시4〉의 마동석도 이제 53세다.
‘주연급 고령화’

▲작년에 514만 관객을 끌어모은 영화 〈밀수〉의 두 여주인공 김혜수와 염정아도 어느덧 50대에 접어 들었다.
위 세 편의 주연배우들만 특이한 사례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지금은 사실상 ‘5060 스타배우들의 전성시대’라 봐도 좋을 정도로 상업영화 주연급 배우들 연령대가 한참 올라가 있는 상태다. 일단 현시점 ‘한국 영화의 얼굴’처럼 여겨지는 송강호가 마찬가지 6월 3일 기준 57세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등 할리우드 영화 출연으로 글로벌 스타 이미지가 강한 이병헌은 53세,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글로벌 대성공 덕에 이제 할리우드 드라마에도 출연하기 시작한 이정재는 51세다.
이 밖에도 많다. 2000년 〈박하사탕〉 이후 꾸준히 흥행작을 내놓는 설경구가 57세, 〈7번방의 선물〉(2013)과 〈극한직업〉(2019) 등의 ‘1000만 영화’를 갖고 있는 류승룡이 53세, 지난해 ‘이순신 3부작’ 마지막 편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세 번째 이순신으로 열연한 김윤석도 57세다. 보다시피 이들 중 상당수는 불과 몇 년 뒤면 최민식의 뒤를 따라 60대로 접어든다. 50대도 아니라 60대 주연급 스타들이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는 뜻이다. 이보다 젊은 주연급이라고 크게 다를 것도 없다. 하정우 46세, 조인성 42세, 공유 44세, 현빈 41세, 강동원 43세 등. 쉽게, 지금의 한국 영화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스타들은 전반적으로 5060 중심이고, 기본적으로 40대는 돼야 신뢰할 수 있는 주연급 취급을 받는다는 얘기다. 2030 배우들에게 거대 제작비가 투입되는 블록버스터 단독 주연을 맡기는 경우는 흔치 않다.
물론 남자배우만의 얘기도 아니다. 어느 나라든 상업영화 톱-빌링을 여자배우에게 맡기는 일이 많지 않아 눈에 띄지 않을 뿐, 일단 그런 콘셉트를 취했다 하면 여자배우 쪽도 어김없이 주연급 고령화(高齡化) 현상을 겪는다. 당장 지난해 514만 관객을 끌어모은 영화 〈밀수〉의 두 주연 여자배우, 김혜수가 53세, 염정아가 51세다. 이 밖에 전도연(51세), 손예진(42세), 전지현(42세), 정유미(41세) 정도가 현시점 상업영화 단독 주연을 맡길 수 있을 법한 여자배우들이다.
“스크린이 늙어간다”

▲2000년에 개봉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두 주연 이병헌과 송강호는 50대가 된 지금도 한국 영화에서 주연으로 활약하고 있다.
물론 과거에는 이렇지 않았다. ‘신성일의 시대’ 1960년대만 해도 그렇다. 1937년생인 신성일의 전성기는 그가 20~30대였을 때다. 그리고 불과 40대 초반 시절인 1970년대 후반만 돼도 주연배우로서 그의 존재감과 상업적 가능성은 희미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로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의 얼굴’이라 불리는 1952년생 안성기도 대표작들은 모두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나왔고, 역시 30대가 절정기였다. 1990년대의 대표적 흥행 스타 한석규 역시 〈은행나무 침대〉(1996) 〈접속〉(1997) 〈쉬리〉(1999) 등 대표 히트작 전체가 30대 시절 탄생했다.
여자배우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30대만 접어들어도 영화 주연급에서 내려와 TV 브라운관으로 향하기 일쑤였고, 1970년대 트로이카 여배우 중 하나였던 정윤희처럼 결혼과 함께 배우 활동 자체를 접고 연예계에서 은퇴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가 대략 2000년대 초반까지도 지속되다가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한 게 2010년대부터다. 지금 주연급으로 각광받는 저 5060 배우들만 해도 그렇다. 송강호, 이병헌, 최민식, 정우성, 이정재, 장동건, 이들은 20년 전인 2000년대 초반에도 이미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주연급 스타들이었다. 당시에는 상업영화 주연급으로 30대가 가장 ‘잘 팔리는 나이’여서 그랬다. 송강호의 〈공동경비구역 JSA〉(2000)가 나온 게 그의 나이 33세 때, 최민식의 〈쉬리〉가 37세 때다. 그랬던 이들이 20년 세월이 더해져 5060까지 그대로 스크린에서 장기 집권하는 분위기다. 그사이 이들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젊은 스타배우들은 나오지 않고, 이에 “스크린이 점점 늙어만 간다”는 얘기가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는 실정이다.
저출산·고령화의 영향?
그럼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은 뭘까. 일각에선 한국 사회 자체의 저출산·고령화 현상을 근본적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지난 1월 10일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23년 말 기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현재 연령대별 인구 현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세대는 50대로 870만 명에 이른다. 이다음이 40대 792만 명, 그리고 다음이 60대 763만 명이다. 대중문화를 한창 소비할 연령대인 20대는 620만 명, 30대도 658만 명 정도다. 미래 주(主) 소비층이 돼야 할 10대는 여기서 465만 명으로 한참 떨어진다. 수십 년 지속된 저출산으로 일단 인구 규모에서부터 40~60대 비중이 압도적이니 이들에게 인지도 높고 이들이 공감하며 동질감(同質感) 느낄 배우들 중심으로 영화 주연급이 재편(再編)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견(異見)이 있을 수 있다. 인구 구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애초에 대중문화는 10~30대가 열렬하게 소비하는 항목이니 상황이 그렇게까지 달라질 것은 없지 않으냐는 것이다. 액면 그대로는 틀리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대중문화 주 소비층에서 벗어난다는 40~60대 성향이 이제 크게 달라졌다는 관찰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한국일보》 2022년 11월 15일 자 칼럼 〈중년 된 X 세대, 새로운 소비의 주체가 되다〉를 보자.
〈미묘한 풍경 변화는 시작됐다. 중년 30년(40~69세)을 둘러싼 시장 조성의 본격화다. 전통적인 가족 부양의 소비 관행에서 벗어나 스스로 잘살고자 적극적인 본인 취향의 실현 구매가 목격된다. 조로(早老) 사회의 희생양이자 끼인 세대의 상징인 X 세대가 이미 4050 세대에 깊숙이 합류한 게 컸다. 한때 놀랄 만큼 이질적이고 느닷없는 유행을 이끌며 얄궂고 되바라진(?) 이미지를 선도한 주역이 이제 중년이 됐다. 나이만 먹었을 뿐 MZ 세대 못잖은 ‘신별종’ 중년화의 등장인 것이다. 선배 세대처럼 뒷방 퇴물의 투명인간은 철저히 부정하며 자기다움·자아실현을 소비한다. (중략) 중년화의 소비 특징은 미들엣지(Middle-Edge)로 정리된다. 중년(Middle)의 욕구(Edge)에 주목하란 뜻이다. 일본적 분석 결과로 한국에 적확하진 않으나 닮은꼴이 많아 주목해봄 직하다. ▲추억소환 ▲자아부활 ▲희망실현 등이다. 추억소환은 시간 해방적 소비 행태다. 청년 시절 유명스타의 소환이나 제한적이던 취미활동의 본격적인 리메이크 소비가 그렇다.〉
BTS에 열광하는 부모님들
결국 40~60대의 대중문화 등 취미 소비가 급격히 늘어나는 흐름에서 젊은 시절 애착을 가졌던 이런저런 대중문화 스타들을 관성적(慣性的)으로 계속 소비코자 하는 분위기도 목격된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 같은 흐름의 바탕에는, 칼럼에서도 언급하듯, “성장은커녕 생존조차 힘겨운 시대”에 “축적 자산부터 근로소득이 정점을 찍는” 46~66세의 잠재 소비력이 자리 잡는다. 그러다 보니 동세대 대중문화 스타들에의 애착을 넘어서는 아래와 같은 현상도 일어난다.
〈BTS를 보면서 열광하는 부모님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에서 팬을 맺을 수 있는 기능이 있는데 BTS의 경우 50대 이상이 12%를 차지했습니다. 팬층이 10대나 20대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중략) 전체 음원 시장으로 더 넓혀보면 중장년층의 영향력은 더 커집니다. 음원 서비스를 얼마나 많이 이용하는지 분석한 결과입니다. 40대는 27억 분, 50대는 20억 분에 가까웠습니다. 10대와 비교해보면 중장년층의 영향력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YTN 2023년 6월 13일자 보도 〈BTS 팬덤층 10%는 누구?… K팝 큰손 ‘5060’〉)
한편, 또 다른 예도 존재한다. 방송계의 ‘2049 시청률’ 집계 관련해서다. ‘2049 시청률’은 말 그대로 가구 기준 시청률이 아닌 20~49세 연령대의 개인 시청률을 가리킨다. 방송 프로그램에 광고를 내는 광고주들 입장에서 상품 구매력 높은 20~49세 시청자들이 많이 보는 프로그램을 따로 파악해 관리하려 나온 기준이다. 10대는 용돈 생활자이므로 구매력이 떨어지고, 50대는 구매력은 있어도 구매 패턴을 바꾸려 하지 않아 광고 효과가 떨어지며, 60대 이상부터는 적은 연금(年金)이나 자녀로부터 받는 용돈으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 마찬가지로 구매력이 떨어진다는 판단하에서 이 같은 집계 기준이 등장했다.
그런데 최근 필자는 한 광고업계 종사자로부터 이 ‘2049 시청률’이 점차 유명무실(有名無實)해지고 있다는 설명을 들은 바 있다. 청년 취업 불황과 함께 아예 구직(求職) 활동조차 않는 ‘일하지 않는 청년’들이 부쩍 늘어나면서 일단 20대의 구매력에 의문이 가기 시작했고, 앞선 《한국일보》 칼럼에도 등장하듯, 지금의 50대와 60대는 구매력을 갖췄으면서 각종 자아실현 소비에도 뒤처지지 않으려는 분위기라 굳이 20세부터 49세까지를 따로 살펴볼 이유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 이렇듯 대중문화시장 전반에서 10~30대 소비자의 존재감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으니 콘텐츠 전반에 걸쳐, 그중에서도 건당 유료인 데다 극장까지 가는 품이 추가로 드는 극장용 영화의 경우 더더욱 10~30대 안배(按配)가 떨어지고 40~60대 구미에 맞추려는 분위기가 만연해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여전히 현역인 실베스터 스탤론

▲24세 때인 1986년 〈탑건〉을 찍었던 톰 크루즈가 60세이던 2022년 주연을 맡은 〈탑건2–매버릭〉도 흥행에 성공했다.
사실 이렇게만 보면 모든 것이 위 논리대로 단박에 해석될 듯싶기도 하다. 그런데 실제로는 좀 더 복합적인 상황이다. 위 배경도 스타배우의 고령화 현상 원인 중 하나일 수 있지만 전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가까운 반론 사례로, 세계 대중문화의 메카로 여겨지는 미국에서도 한국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미국 할리우드에서 근 5~6년래 히트작을 내놓은 배우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먼저 여전히 가장 믿음직스러운 두 흥행 배우,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가 각각 61세와 60세다. 마블 슈퍼히어로 ‘아이언맨’ 역할로 박스오피스 황제 자리에 오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59세, 1980년대의 실베스터 스탤론과 아널드 슈워제네거 관계처럼 현시점 액션스타 라이벌로 꼽히는 쌍두마차(雙頭馬車) 드웨인 존슨과 빈 디젤이 각각 52세와 56세, 〈매트릭스〉 시리즈에 이어 〈존 윅〉 시리즈로 또다시 흥행 정점에 올라선 키아누 리브스가 59세, 이밖에 맷 데이먼 53세, 조지 클루니 63세, 조니 뎁 60세, 크리스천 베일 50세 등이다. 이보다 젊은 축이라 해봐야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49세, 브래들리 쿠퍼 49세, 크리스 프랫 44세, 라이언 레이놀즈 47세, 라이언 고슬링 43세 정도다.
전반적으로 한국보다도 주연급 스타배우들 연령대가 높아 60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여기에 벌써 77세에 이른 〈록키〉 〈람보〉의 실베스터 스탤론도 여전히 왕성한 현역이고, 가장 극단적인 사례로는 스파게티 웨스턴의 중심이자 〈더티 해리〉 시리즈 주역이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있다. 무려 91세에도 주연영화가 등장했고, 94세가 된 올해 역시 감독을 맡은 스릴러 영화가 또 개봉될 예정이다.
한편 여자배우들도 진배없어서, 근래 히트작을 내놓은 주연급 여자배우들 중 샌드라 블록이 59세, 앤젤리나 졸리 48세, 스칼렛 요한슨 39세, 제니퍼 로페즈 54세, 줄리아 로버츠 56세 등이다. 여기에 〈핼러윈〉 리부트 시리즈로 흥행 전선에 복귀한 제이미 리 커티스는 벌써 65세다.
미국 배우들도 고령화
당연히 얘기지만, 미국 역시 과거에는 이렇지 않았다. 할리우드가 지금의 글로벌 산업 형태로 구축된 1980년대만 해도 시대를 이끈 스타배우들, 실베스터 스탤론, 에디 머피, 톰 크루즈, 멜 깁슨, 아널드 슈워제네거 등은 당시 20~30대였다. 가장 나이 든 슈퍼스타라 해봐야 당시 고작 40대였던 해리슨 포드 정도였다. 여자배우들도 마찬가지다. 당대를 주름잡던 데브라 윙거, 시고니 위버, 캐슬린 터너, 킴 베이싱거, 골디 혼 등은 대부분 20대, 많아봐야 30대였다. 이러던 것이 지금은 남자배우들은 5060, 여자배우들도 4050 정도가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단독 주연을 맡길 만한 배우들로 바뀌어 있다.
다들 알다시피, 미국은 한국만큼 저출산·고령화가 심각한 사회는 아니다. 일단 합계 출산율부터 역대 최저라 해봐야 2020년의 1.63명이었고, 지금은 또 1.66명으로 반등(反騰)한 상황이다. 한국의 지난해 0.72명과는 차이가 크다. 거기다 여전히 영국, 프랑스, 일본, 독일, 이탈리아 등 여타 선진국들과 비교해 노인 인구 비율도 상대적으로 낮다. 유럽계 백인 인구만 따지면 낮은 출산율로 초고령 사회 분위기지만, 특히 히스패닉 인구의 급속한 증가로 전체적인 초고령 사회 진입은 2030년대는 넘어서야 이뤄질 전망이다. 이렇듯 한국의 현황과는 사뭇 다른 미국인데 왜 스타배우들 고령화가 한국과 같은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는 걸까.
이쯤 되면 또 다른 원인도 생각보다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바로 지금 저 5060 스타배우들은 사실상 ‘마지막 대중스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리송하게 들릴 수 있지만 풀어보면 쉽다.
2010년대 들어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폰이 상용화되고 그 기반으로 유튜브나 틱톡 같은 온라인 동영상 전문 서비스, 각종 소셜미디어(SNS), OTT 등 뉴미디어 플랫폼이 연달아 등장하면서 미디어 플랫폼 자체가 수적으로 대폭발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그러자 이들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대중문화 콘텐츠 역시 불특정 다수를 타깃으로 성립되던 ‘대중상품’ 개념이 점차 휘발(揮發)되고 늘어난 플랫폼만큼이나 대중의 잘게 나뉜 선호와 취향에 맞춰 성립되는 수많은 ‘작은 시장’ 상품들로 갈라지는 추세다. 그러다 보니 소위 ‘대중스타’는 사라지고 수많은 ‘스몰스타(small star)’들의 전성시대로 옮아가고 있다.
한국을 예로 들어보면, 모두가 지상파 방송 3사만 바라보며 대중문화를 소비하던 1990년대까지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당시는 방송 3사 프로그램에만 나왔다 하면 하루아침에 전국구(全國區) 스타가 되는 일도 적지 않았지만, 지금은 지상파 방송 프라임타임 프로그램에 6개월 넘게 고정 출연해도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다. 각자 보는 미디어 플랫폼이 잘게 나뉘어 갈라졌기 때문이다. 설령 같은 유튜브 플랫폼이라 해도 ‘지상파 3사’ 수준이 아니라 수천수만 채널들로 잘게 갈라져 각자의 문화적 경험은 모두 판이하게 달라진다.
‘단독성들의 사회’의 ‘마지막 대중스타들’
더 있다. 그 소비자들 역시 이제는 카카오톡 등의 모바일 메신저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위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만 소통하며 정보를 주고받게 된다는 점이다. 낯선 타인과의 대화에서 사라지게 된 건 모두가 민감해하는 정치나 종교 관련 화제뿐만이 아니게 됐다는 뜻이다. 가볍게 주고받던 대중문화 화제조차 이제는 ‘끼리끼리’ 나누는 정보가 돼 있다.
이러면 당연히 ‘대중스타’라는 개념도 점차 의미를 잃어간다. 젊은 세대 내에서조차 그렇다. 아프리카TV 같은 인터넷 방송 비제이(BJ)들만 소비하는 이들은 이제 음원 차트 1위를 달리는 아이돌이나 떠오르는 영화계 신성(新星)이 누군지 모른다. 같은 드라마 팬이라도 지상파 드라마 팬, OTT 드라마 팬, 유튜브에 업로드되는 웹 드라마 팬이 각각 따로 있다. 이렇게 자신이 즐기는 플랫폼에서 활약하는 ‘내 스타’들만 알지 ‘남의 스타’는 모르게 된다.
이 같은 시대 변화를 두고 독일 문화이론가 안드레아스 레크비츠는 저서 《단독성들의 사회》에서, 뉴미디어 폭발과 함께 맞이한 지금의 세계는 모든 ‘보편’이 사라지고 ‘단독성’의 ‘특수’가 폭발하는 ‘단독성들의 사회’가 돼가고 있다고 설명한다. 산업 기술이 근대 사회 보편화를 이끌었다면 디지털 기술은 이렇게 단독성의 사회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경로를 통해 대중문화계는 이제 ‘대중스타가 사라진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5060 스타배우들의 전성시대’도 함께 찾아온 셈이다.
이 5060 스타배우들은 ‘단독성들의 사회’가 찾아오기 전, 그러니까 최소 2010년대 이전, 대부분은 2000년대 이전에 이미 스타덤에 올라 훨씬 제한된 미디어 플랫폼 내에서 전국구 인지도를 쌓은 이들이기 때문이다. ‘스몰스타 전성시대’가 찾아오기 전 입지를 다진 마지막 ‘모두가 아는 얼굴’ ‘마지막 대중스타’들인 것이다.
‘보험용’ 5060 스타들

▲일본 영화 〈돌아온 위험한 형사〉의 두 주연배우 다치 히로시는 74세, 시바타 교헤이는 72세다.
상황이 이렇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업적으로 리스크가 큰 영화, 거대 제작비가 투입되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제작하려 할 때 대중소비자들이 안심하고 선택할 수 있는 공통분모(共通分母) 격 ‘모두가 아는 얼굴’, 십중팔구(十中八九) 이들 나이 지긋한 5060 스타배우들을 찾게 된다. 아무리 젊은 세대가 중심이 되는 영화라도, 〈파묘〉 주연을 맡은 최민식의 경우처럼, 소위 ‘보험’용으로라도 저 모두가 아는 5060 스타배우 하나쯤은 영화 포스터에 얼굴을 크게 박아둬야 대중소비자들도 투자자 측도 모두 안심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열린 게 영화계 ‘5060 스타배우들의 전성시대’다. 그러니 이 같은 현상은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마찬가지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나아가 뉴미디어가 보편화된 환경이라면 세계 어디서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결국 유사한 광경을 연출하게 된다. 예컨대 홍콩 영화계만 해도 그렇다. 최전성기 1980~90년대에 흥행 스타였던 주윤발, 유덕화, 양조위, 곽부성, 장학우 등은 2020년대에 이른 지금까지도 꾸준히 주연급 영화들을 매년 발표한다. 각각 69세, 62세, 61세, 58세, 62세다. 올해 70세인 성룡조차 여전히 쿵후영화 신작을 거의 매년 공개하며 흥행 성공을 맛본다.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돌 가수의 영화계 주연급 캐스팅이 많아 그나마 다소 젊은 분위기가 살아 있긴 하지만 대세를 거스르지는 못한다. 당장 지난 5월 넷째 주 일본 흥행 1위를 차지한 영화도 1987년부터 시작된 영화 시리즈 〈위험한 형사〉의 8편 〈돌아온 위험한 형사〉였다. 두 주연배우 다치 히로시는 이제 74세, 시바타 교헤이도 72세다. 이 밖에도 많다. 프랑스든 독일이든 영국이든 모두 크게 다르지 않다. 스타배우들의 고령화 현상은 사실상 전 세계적 추세다.
저출산·고령화 시대 ‘공기’의 반영인가
당연히 이 같은 분위기는 문제가 많다. 과거에는 스크린 속에 온통 젊은이들만 가득하고 중장년층은 소외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지만, 지금은 정반대로 5060들이 ‘시도 때도 없이’ 대형 영화 중심에 버티고 서서 2030 배우들을 보조 역할 정도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상업적 매력이 충만해 많은 관객들에게 선택되는 영화에서 젊은 세대들만의 달라진 풍속도(風俗圖), 농밀한 소통, 집요하게 파헤쳐진 갈등과 고민 등을 접해볼 기회는 크게 적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접근은 이제 대중소비자들 손에 닿기 힘든 저예산 독립영화들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제 상업성 높은 대형 영화들은 점차 모든 시청층을 배려하기 위해 10대부터 80대까지 전(全) 세대가 중심 인물들로 등장하는 TV 주말 가족드라마처럼 바뀌어가고 있다는 비평도 심심찮게 나온다. 그만큼 다분히 작위적(作爲的)이고 어색한 설정이라는 비판도 함께 말이다. 어쩌면 젊은 층에서 급속도로 극장 관람이 줄어드는 극장가 현실도 이런 점 탓에 비롯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중문화를 통해서나마 젊은 층의 현실과 정서를 가늠해보려 하는 중장년층 기성세대의 의도도 그렇게 무산(霧散)된다.
보다 큰 관점에서 이 같은 ‘5060 스타배우들의 전성시대’는 자체로 한국 사회 곳곳에서 펼쳐지는 저출산·고령화 국면의 사회적 공기(空氣)를 여실히 드러내준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로 인한 갖가지 딜레마까지 함께 말이다.
예컨대 청년 인구 감소로 주연급 스타배우 고령화가 이뤄졌다는 해석에선, 어딘지 공직선거 결과에서 같은 원인으로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 세대 목소리는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오직 1, 2차 베이비붐 세대, 즉 1955~1974년 출생 세대들의 각축전(角逐戰)만 남아버린 현실이 떠오른다는 인상이다. 건국 이래 최초로 청년 문화가 전반적 사회 문화 흐름을 쇄신(刷新)시키지 못하고 주류적 사고와 정서 체계의 환기에도 실패하는 모습 역시 같은 맥락의 풍경이다. 청년 세대 자체가 수적으로 크게 열세(劣勢)이기에 벌어지는 일이라는 얘기다.
‘예술은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
한편, ‘단독성들의 사회’가 낳은 서로 간 공통분모 격 대중문화 콘텐츠 및 스타의 부재 상황은 그대로 개개인들이 모래알처럼 파편화(破片化)돼 공통적 의제 설정조차 힘들어진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세대 간 갈등도 아니라 같은 세대 내에서조차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가벼운 사적(私的) 소통조차 점차 버거워지는 상황인데 공적(公的) 영역에선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만큼 수없이 잘게 나뉜 각 소집단 내 소집단주의만 팽배(澎湃)해져 전에 없던 소집단들 간 신종(新種) 갈등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수면으로 떠오르는 추세다.
흔히 “예술은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이는 비단 예술 콘텐츠 내적 소재와 주제 차원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둘러보면, ‘5060 스타배우들의 전성시대’처럼, 콘텐츠를 구성하는 갖가지 조건과 환경을 통해서도 현 사회가 놓인 딜레마의 윤곽을 엿볼 수 있다. 해결책 모색과 같은 본격적 논의 이전, 일단 현 상황의 본모습을 가늠하기 위해서라도 대중문화 콘텐츠를 둘러싼 갖가지 면면에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의외로 지금껏 거론돼본 적 없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딜레마들이 그곳에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월간조선 07월 호
07.16 "손대면 톡 하고"...'봉선화 연정' 부른 가수 현철 별세

▲가수 현철. /뉴스1
‘봉선화 연정’ ‘싫다 싫어’ 등 1980~1990년대 히트곡들로 이름을 알린 가수 현철(본명 강상수·82)이 15일 별세했다. 16일 과거 고인의 매니저로 함께 일한 정원수 작곡가는 ‘현철이 15일 밤 서울 광진구 소재 혜민병원에서 지병으로 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고인은 1969년 곡 ‘무정한 그대’로 데뷔했다. 하지만 당대 인기를 끈 가수 남진, 나훈아 등과 달리 오랜 무명생활을 거쳐야 했다. 고인은 1974년 팝송 리메이크 그룹 ‘현철과 벌떼들’을 결성해 고향인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고인의 전성기는 1980년대 곡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사랑은 나비인가봐’를 연이어 히트시키며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가 1985년 가수 나훈아와 함께 리메이크한 ‘청춘을 돌려다오(원곡 가수 신행일)’는 대중에게 고인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1988년 발표곡 ‘봉선화 연정’은 고인을 정상급 가수 반열에 오르게 한 히트곡이었다.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로 유명한 가사를 고인 특유의 구성진 창법으로 잘 소화해냈다는 호평이 잇따랐다. 고인은 이 곡과 1989년 대표곡 ‘싫다 싫어’로 ‘KBS가요대상’의 영예를 2년 연속 품에 안기도 했다. 그는 첫 가요대상 수상 당시 20년 간 무명 시절을 겪은 경험을 회상하며 “한 달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한 달만 더 사셨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눈물을 쏟아냈다.
인은 이후에도 ‘사랑의 이름표’ ‘당신 없인’ 등 왕성한 신곡과 방송 활동을 펼쳤고, 설운도, 태진아, 송대관 등 동료 가수들과 ‘트로트 가수 4대 천황’이란 수식어로 불렸다. 하지만 2020년대부턴 가요 무대와 방송 활동 대부분을 멈췄다. 뇌경색과 경추 디스크 수술 후유증으로 오랜 기간 투병을 이어온 탓으로 전해졌다. 가요 관계자들에 따르면 고인은 수년 전부턴 ‘KBS 전국 노래자랑’에 다수 출연하며 각별한 연을 맺은 고(故) 송해, 가수 현미의 장례식도 함께 하지 못 할 정도로 병세가 악화됐다고 한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1남 1녀가 있다.
조선일보 윤수정 기자
07-16 故현철 아내, “‘내 마음 별과 같이’ 들으며 편하게 영면…가수라서 행복했다고”

“‘내 마음 별과 같이’를 들으며 모두의 사랑 속에 편안히 가셨습니다.”
15일 세상을 떠난 가수 현철의 아내는 고인의 마지막 순간을 이렇게 전했다.
현철은 이 날 서울 구의동의 한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향년 82세. 고인의 아내는 16일 “폐렴으로 입원해서 두 달 간 중환자실에 계셨다”면서 “본인이 가장 아끼는 노래인 ‘내 마음 별과 같이’를 아들이 귀에 가까이 들려드렸고, 아끼는 손자들을 모두 보신 후 편안하게 가셨다. 모두의 사랑, 그리고 은혜 덕분”이라고 그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1942년 부산에서 태어난 현철은 1969년 ‘무정한 그대’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하지만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했고 고향으로 내려가 밴드 현철과 벌떼들을 결성해 활동했다. 1980년 밴드 해체 후 다시 솔로로 전향했고 그 직후 발표한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 주목받으며 대중들에게 각인됐다. 이후 본격적으로 트로트 시장에 뛰어들었고 ‘사랑은 나비인가 봐’, ‘내 마음 별과 같이’ 등을 연이어 히트시켰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후반은 현철의 전성기였다. 1988년 발표한 ‘봉선화 연정’으로 그 해 KBS 가요대상을 수상했고, 후속곡인 ‘싫다 싫어’ 역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으며 또 다시 가요대상을 거머쥐었다. 이 시기 현철은 송대관·설운도·태진아 등과 함께 ‘4대 천왕’으로 불리며 트로트 시장을 호령했다
하지만 현철은 지난 2018년 방송된 KBS1 ‘가요무대’에서 몸이 불편한 듯한 모습을 보인 후 방송 활동을 중단했다. 2020년 방송된 KBS2 ‘불후의 명곡’에 ‘레전드 가수’로 참여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고인의 아내는 과거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경추 디스크 수술한 후 인지 기능이 저하돼서 수술 받은 후 재활 운동을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현철은 ‘미스터트롯’ 시리즈로 인해 대한민국에 트로트 열풍이 풀 때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후배 가수들이 고인의 명곡을 부르며 존경심을 표하는 모습을 TV를 통해 지켜보면서 흐뭇해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연말 고인의 이름을 단 ‘현철 가요제’에 열리자 “자식 같은 후배들이 한바탕 놀아준다니 가슴이 벅차다. 함께하지 못해 너무 안타깝고 서운한 마음”이라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고인은 눈을 감는 순간까지 무대를 그리워했다. 아울러 그와 그의 노래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항상 뿌듯하게 여겼다. 아내는 “무대가 굉장히 그립고 아쉽지만 이제 괜찮다고 했다. 유튜브 가짜뉴스조차 현철을 잊지 않았다는 의미이니 이 또한 감사했다”면서 “손자뻘 되는 후배들이 현철의 노래를 불러주는 것을 보고 ‘내가 가수라는 게 굉장히 행복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전했다.
한편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16일 오후부터 조문을 받고 18일 발인한다.
문화일보 안진용 기자
07.24 "무관심이 불의 키워" 美서 북한 인권 외친 배우

▲통일부 북한인권홍보대사인 배우 유지태 씨가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통일부와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NED) 등 공동 주최로 열린 '2024 북한인권국제대화'에서 영어로 연설하고 있다. /미국민주주의진흥재단
영화배우 유지태씨가 22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2024 북한인권 국제대회’에서 영어로 6분간 연설했다. 통일부와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NED)이 공동 주최한 이 행사에 유씨는 정부의 북한 인권 홍보대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그는 “불의를 키우는 건 불의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무관심이다. 우리의 행동이 북한 주민들의 고통스러운 상처를 치유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유씨는 “북한 인권 문제는 북한에 관한 것이란 이유 때문에 특정한 색깔로 칠해지는 경우가 있다”며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북한 내부의 사람들”이라고 했다. 전 세계 진보·좌파들의 주요 관심사인 북한 인권 문제가 북한 인권의 당사국인 한국에서만 일부 세력에 의해 공격받는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유씨의 북한 인권 운동은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이뤄졌다. 그는 10여 년에 걸쳐 탈북민들을 만나 그들을 주제로 한 웹툰의 시나리오를 직접 집필했다. 그는 몇 년 전에는 국내외 불우 어린이들을 10년 이상 후원한 공을 인정받아 국제구호개발 NGO가 주는 ‘제1회 대한민국 착한 기부자상’을 받기도 했다. 기부 활동이 북한 인권 운동으로 확장된 것이다. 평소 기부 활동을 많이 했던 영화배우 차인표씨도 2012년 탈북자 북송 반대 집회와 콘서트를 개최했고, 많은 동료 예술인의 참여를 이끌었다.
국내에서 북한 인권은 무관심을 넘어 정치적으로 왜곡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국회는 2016년 북한 인권 침해 실태 조사와 북한인권재단 설립 등을 위해 북한인권법을 통과시켰지만, 아직도 재단은 출범하지 못했다. 20대 총선 이래 제1당의 위치를 점유한 민주당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일부 인사들은 탈북민을 “변절자” “쓰레기”로 부르며 매도하기도 한다. 민주당 등은 북한 인권을 말하면 북한 정권을 자극해 북한 주민에게 해가 된다고 주장한다. 북한 주민의 참상은 이미 그런 논리로 눈감을 수준을 넘어섰다. 북한 정권의 인권 유린 목적은 단 하나 김정은 권력 유지다. 북한 인권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김정은과 그의 폭압을 돕는 불의일 뿐이다. 민주당도 이제는 낡은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8.03 박정희 다큐 영화 만든 김흥국 가수

▲박정희 전 대통령과 부인 육영수 여사에 관한 다큐 영화 〈그리고 목련이 필 때면〉이 8월 15일 개봉된다. 제작사는 ‘호랑나비’로 유명한 가수 김흥국씨의 ‘흥.픽쳐스’.
김흥국씨는 “평소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존경해왔는데, 우연히 윤희성 감독(사진 왼쪽)을 만나 작품 내용에 대해 듣고 온몸에 전율이 와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전체 영화 분량의 70%를 실록 영상으로, 나머지 30%를 재연 영상으로 구성했다. 박 전 대통령, 육영수 여사 등 재연 배우들은 오디션으로 선발했고, 배우 고두심이 작품의 내레이션을 맡았다.
김흥국 대표는 “대한민국을 잘사는 나라로 만든 인물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며 “이 영화를 통해 소탈하면서 굳은 신념을 보여준 박 전 대통령과 항상 겸허한 자세로 내조했던 육영수 여사의 인간적 면모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08.23 최민식 '영화값' 저격한 교수 "강남좌파의 위선, 한심해서 한 소리"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가 영화관 티켓값 인하 필요성을 주장한 배우 최민식을 공개적으로 ‘저격’한 배경을 밝히며 거듭 최민식을 비판했다. 이 교수는 “한심해서 한 소리” “강남 좌파의 위선” 등 날선 발언을 쏟아냈다.
이 교수는 22일 페이스북을 통해 올린 ‘나는 왜 최민식을 저격했나?’라는 제목의 글에서 “나는 최민식의 연기를 좋아한다”며 “개인을 저격한 게 아니라 그의 발언의 비논리성을 지적한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그의(최민식의) 발언, 많은 정치인의 발언에 늘 불편한 건, 반기업 선동. 기업의 고마움을 모른다는 것”이라며 “한국 영화가 이처럼 커지고 배우들이 지금처럼 대접받는 시절이 온 것은 누가 뭐래도 대기업들이 국민의 소득 수준에 걸맞은 극장 사업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영화를 보게 유인하는 기업이 없다면 영화산업도, 배우의 고수입도, 한류 열풍도 없다”고 했다.
이어 “영화 관람료가 비싸다고 내지르기 전에 지금 극장 사업을 하는 그 기업들의 재무제표라도 한번 살펴보았나. 그들의 수익성이 얼마나 된다고 영화표 가격 올려서 독과점 초과 이익을 내는 양 주장하는 것인지 한심해서 한 소리”라고 했다.
또 “재무제표는 볼 줄 모른다고 치자. 그럼 자기가 일하는 산업의 중요한 기업이고 영화관 시장 점유율 1위 기업 CJ CGV의 주가에는 관심이 있을 것 아닌가. 그 주가를 보면 그간 영화관 사업이 팬데믹,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의 부상, 최저임금과 인플레이션 압력에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는 일반 시민보다 본인이 더 잘 알 것 아니냐”고 했다.
이 교수는 “(최민식은) 우리가 ‘강남 좌파’라고 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사고 체계다. 남의 돈으로 선심 쓰는 발언을 하고, 박수받고 주목받길 바란다는 것”이라며 “극장 회사가 가격을 내리라는 것은 그 회사 주주들이 돈을 내라는 것인데, 그 인심은 본인이 쓴다는 것이다. 강남 좌파들 위선의 언어의 전형”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지난 20일 최민식의 ‘영화값’ 발언을 공개 비판했다. 앞서 최민식은 지난 17일 MBC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해 “극장 가격이 많이 올랐다. 좀 내려라. 나라도 안 간다”고 했는데, 이에 이 교수는 “최민식은 출연료를 자신의 영화를 상영해주는 극장을 위해 기부라도 했었나”며 “영화관 사업을 자선사업으로 알고 있느냐”고 지적했다.
글로벌 가격 비교 통계사이트인 ‘눔베오’에 따르면 지난 1년 간 한국의 영화 평균 티켓값은 11.23달러(약 1만4900원)으로 96개국 중 27번째로 높다. 티켓값이 가장 비싼 곳은 스위스(약 3만1300원)로 나타났고, 미국(1만8700원), 영국(1만7300원), 일본(1만6500원) 등이 한국보다 비싸다.
조선일보 김자아 기자
08.27 원로배우 오승명 별세… '제1공화국' '여명의 눈동자' '허준' 출연

▲원로배우 오승명(78)이 별세했다.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순풍산부인과’ ‘허준’ 등에 출연했던 원로배우 오승명(78)씨가 별세했다.
26일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전날 새벽 6시쯤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전남 함평 출신인 고인은 1964년 극단 민예극장 단원으로 연극계에 데뷔했다. 이후 1970년 MBC 문화방송 특채 연기자로 방송에 입문했고 1981년 ‘제1공화국’을 시작으로 굵직한 드라마에 다수 출연했다. 60년간의 연기 인생에서 그가 촬영한 드라마만 100여 편에 달한다.

▲원로배우 오승명. /연합뉴스
1990년대엔 ‘여명의 그날’ ‘여명의 눈동자’ ‘걸어서 하늘까지’ ‘제3공화국’ ‘마지막 승부’ ‘사랑을 그대 품안에’ ‘장희빈’ ‘임꺽정’ ‘순풍산부인과’ ‘허준’ ‘왕과 비’ 등에서 연기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야인시대’ ‘영웅시대’ ‘장길산’ 등에 출연했고 2002년엔 영화 ‘공공의 적’에도 나왔다. 가장 최근작은 2011년 방영된 일일극 ‘남자를 믿었네’다.
유족으로는 아내와 두 자녀가 있다. 빈소는 경기 안산시 안산제일장례식장 102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7일이며 장지는 화성 함백산 추모공원이다.
조선일보 문지연 기자
09.28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 '청춘의 꿈' 가수 김용만 별세, 향년 89

▲김용만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 ♪♬”
'청춘의 꿈' '남원의 애수' '회전의자' 등으로 1950∼60년대 인기를 누린 가수 겸 작곡가 김용만이 별세했다. 향년 89.
27일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등 가요계에 따르면, 김용만은 이날 오전 9시30분께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1935년 경기민요를 하던 국악인 김대근의 5남4녀 중 3남으로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동생인 김용남 역시 대금 연주와 악기를 제작한 국악인 집안이었다. 1953년 친구가 일하는 악기점에 드나들며 '개나리 처녀'의 작곡가 김화영을 만났다. 이를 계기로 '남원의 애수'를 녹음,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춘향전을 모티브로 애틋한 절개와 사랑을 담은 가사로 히트했다. 이 노래의 노래비가 남원에 세워져 있다.
이 노래의 성공에 힘입어 신신레코드 전속가수로 발탁됐다. 이후 '효녀 심청'·'청춘의 꿈'·'삼등 인생'·'생일 없는 소년'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우리 가락을 접목한 민요와 만요(漫謠) 등으로 점차 음악의 스펙트럼을 넓혀갔다. 이 때문에 그는 무대에서 종종 '민요 가수' 혹은 '만요 가수'로 소개되기도 했다. 박 평론가는 "감칠 맛 나는 창법과 흥겨운 멜로디로 다소 어렵고 멀게 느껴질 수도 있는 민요를 대중화시킨 공로 또한 크다"고 봤다.
싱어송라이터로 변신해 '명동 부르스', '후라이 맘보' 등을 발표했다. 특히 가수 백야성과 콤비를 이뤄 그의 대표곡을 여럿 만드는 등 작곡가로도 활약했다.
'잘 있거라 부산항'을 비롯해 '항구의 영번지', '못난 내 청춘', '마도로스 도돔바' 같은 백야성의 노래가 모두 김용만의 작품이다. 두 사람은 듀엣으로 '김군 백군'도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김용만은 드라마 주제가 '회전의자' '적자 인생' '토정비결', 영화 주제가 '무적자' '꿩 먹고 알 먹고' 등을 내놓는 등 OST 분야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박 평론가는 "김용만은 항상 구수한 입담과 흥이 넘치는 노래로 만년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무대에 올랐다. 늘 이웃집 아저씨처럼 소탈하고 넉넉했다"고 기억했다.
한 달 전에 부인을 먼저 떠나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는 김계홍 SBS미디어넷 전 대표가 있다. 빈소 서울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장례식장 특7호, 발인 29일 오전 8시.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09-28 청춘의 꿈’ 부른 김용만, 오늘 별세…향년 89세
‘청춘의 꿈’ ‘남원의 애수’ ‘회전의자’ 등을 부른 원로 가수 김용만이 별세했다.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에 따르면 고인은 27일 오전 9시 30분경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89세.
고인은 1950년대~1960년대 서민적 해학과 풍자로 민요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그는 국악인 김대근의 5남 4녀 중 3남으로, 종로에서 태어났다. 고인은 18세였던 1953년 ‘개나리 처녀’ 작곡가 김화영을 만난 계기로 ‘남원의 애수’를 녹음,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한양 천리 떠나간들 너를 어이 잊을소냐 / 서낭당 고개마루 나귀마저 울고 넘네 / 춘향아 우지마라 달래었건만 / 대장부 가슴 속을 울리는 님이여’ 하는 춘향전을 모티브로 애틋한 절개와 사랑을 담은 가사로 당시 히트했고, 현재 이 노래의 노래비가 남원에 세워져 있기도 하다.
고인은 ‘남원의 애수’ 성공에 힘입어 신신레코드 전속가수로 발탁됐고, 이후 ‘효녀 심청’, ‘청춘의 꿈’, ‘삼등 인생’, ‘생일 없는 소년’ 등을 연이어 발표하며 인기 가수의 대열에 합류했다.
직접 작사·작곡을 하는 가수가 드물었던 1950년대, 그는 지방 무대를 다니는 틈틈이 노래를 만드는 열정을 보였다고. 특히 가수 백야성과 콤비를 이뤄 그의 대표곡을 여럿 만드는 등 작곡가로도 활약했는데, ‘잘 있거라 부산항’을 비롯해 ‘항구의 영번지’, ‘못난 내 청춘’, ‘마도로스 도돔바’ 같은 백야성의 노래가 모두 김용만의 작품이다. 두 사람은 듀엣으로 ‘김군 백군’을 발표하기도 했다.
박성서 평론가는 “구수한 입담과 흥이 넘치는 노래로, 만년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무대에 올랐던 원로 가수 김용만 선생님”이라며 “늘 이웃집 아저씨처럼 소탈하고 넉넉한 그였지만 한 달 전에 부인을 먼저 보내고 쓸쓸한 날을 보내던 중이었다, 신랄한 세태 풍자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정이 느껴질 정도로 매우 친근하고 서민적이었던 가수 김용만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며 애도했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아들 김계홍 SBS 미디어넷 전 대표가 있다. 빈소는 서울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장례식장 특7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29일 오전 8시다. 장지는 동산추모공원
(서울=뉴스1)
10.14 '야인시대'의 이승만 역… 평생 연극배우 권성덕 별세

▲평생 연극 무대에 헌신한 배우 권성덕(84)씨가 1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2022년 연극 '햄릿'에 '무덤파기 2' 역으로 출연했을 때의 모습. /신시컴퍼니
‘야인시대’, ‘영웅시대’ 등의 드라마에서 이승만 대통령 역할로 널리 알려진 연극배우 권성덕(84)씨가 13일 오후 3시 50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생전에 “난 미련해서 정통 연극만 했다”고 했던 연극 배우. 평생 200 편 넘는 연극무대에 서며 힘 있으면서도 정확한 화술, 인간미를 드러내 보이는 선 굵은 연기를 보였다. 카리스마 넘치는 권력자로부터 현실을 고민하는 지식인, 관객을 폭소하게 하는 희극적 인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간상을 표출했다. 특히 스스로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처럼 악역을 맡았을 때 훨씬 더 신이 난다”고 했을 만큼 독한 악역이나 고집센 노인, 재벌 회장 등 강한 캐릭터의 배역에 강했다. 2002년 제12회 이해랑연극상을 받았다.
1940년 일본 효고현에서 태어나 3살 때 귀국한 뒤 전남 나주에서 성장했다. 배움에 목말랐던 소년 권성덕은 16살에 상경, 구두닦이를 하며 야학을 다녔다. 야간 고교를 다닐 땐 세브란스병원에서 의료기구 소독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배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일찍이 연극에 빠져, 집에는 “국문과에 갔다”고 둘러대고 중앙대 연극과에 입학했으나, 학비를 내지 못 해 중퇴했다. 그는 “내가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늙은이 역을 많이 했다”고 말하곤 했다.
1963년 2인극 ‘동물원 이야기’에 추송웅의 상대역으로 데뷔했다. 1965년 극단 가교의 창단 멤버가 됐고, 1972년 국립극단에 입단한 뒤 1994~95년엔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을 지냈다. 드라마 ‘풀잎마다 이슬’ ‘산 너머 저쪽’ 등에도 출연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드라마 속 역할은 ‘무풍지대’의 이기붕 역과 이후 ‘야인시대’, ‘영웅시대’, ‘서울 1945′ 등의 이승만 역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을 연기할 당시 호통치는 모습은 지금도 ‘인터넷 밈’으로 쓰일 만큼 화제를 모았다.
2014년 자전 에세이 ‘대통령도 되고 거지도 되고’를 펴냈을 때 그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철학이 없는 시대에 그나마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곳이 연극판”이라고 말했다. “돈 굴러가는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리는 데지만, 그래도 계속 모시옷 한올 한올 짜듯 수공업적으로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말년에도 연극 ‘햄릿’(2016·2020), ‘로물루스 대제’(2018) 등의 무대에 꾸준히 올랐다.
동아연극상 남우주연상(1972.1992), 백상예술대상 남우주연상(1975), 한국연극예술상(1982) 등을 받았다. 2001년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유족은 부인 이명자씨와 아들 기흥(하이닉스 차장), 딸 영주, 현주씨.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 16일 오전 9시.
조선일보 이태훈 기자
10.26 '일용 엄니'로 시작해 '수미 누나'로 마쳤다…'역행자' 김수미
연기파 배우 김수미 별세
제작진도 걱정한 30대의 할머니 연기
첫방송 후 '일용 엄니'에 눈길
최불암 "촬영장에 열가지 김치와 밥 가져와 나누더라"

▲일용 엄니’ ‘욕쟁이 할머니’로 TV와 스크린에서 종횡무진 활약한 배우 김수미씨가 25일 세상을 떠났다. 음식 만들어 지인들과 나눴던 그는 ‘요리하는 연예인’의 원조 격이다. /김지호 기자
산업화로 치달으며 농촌이 급속히 해체되던 시절, 당대 최고 차범석 작가가 극본을 쓴 ‘전원일기’가 1980년 방송을 시작했다. 드라마는 양촌리 유지인 김 회장(최불암) 집과 가난한 일용이(박은수)네 두 가정을 통해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웃음은 주로 ‘일용 엄니’ 담당이었다. 홀몸으로 아들을 키운 ‘일용 엄니’는 가난했고, 까막눈이었으며 질투심이 많고 엉뚱했다. 그 ‘일용 엄니’ 김수미(본명 김영옥)씨가 25일 세상을 떠났다. 75세.
예기치 못한 죽음이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김수미씨가 25일 서초구 방배동 자택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오전 8시께 119구조대에 의해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김씨의 마지막을 발견한 사람은 아들 정명호씨였다. 정씨는 “경찰이 어머니의 사인을 ‘고혈당 쇼크사’라고 전해왔다”고 했다. 김수미씨는 피로 누적 등으로 지난 5월부터 활동을 중단해왔다.
극중 65세 일용 엄니를 맡은 김수미의 나이는 당시 31세였다. 아들 역의 박은수보다 두 살이 어렸다. ‘김 회장’ 최불암씨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이연현 PD와 캐스팅을 논의하면서 김수미가 해내겠나 하는 의구심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녹화 첫날, 김수미가 흰머리로 분장하고 이 하나에 검은 칠을 딱 하고 나타난 거다. 그리고 대사를 하는데 ‘아, 이건 되겠다’ 싶었다. 첫 방송부터 김수미가 가장 주목받았다.”
‘30대 할머니’는 배우로서 매우 위험한 선택이라 김수미도 처음엔 배역을 거절했다. “김수미가 안 하면 일용네 집안을 모두 빼버린다”(담당 PD)는 승부수, “네가 하지 않으면 다른 탤런트들까지 피해를 입지 않겠느냐”(김혜자)는 설득에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1949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마친 뒤 가족과 함께 상경했다. 숭의여중고를 마친 김수미는 고 3 때 봄가을로 양친이 세상을 뜨는 바람에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대학 국어국문과에 합격했으나 등록금 25만원을 내줄 사람이 세상에 한 명도 없어 울었다”고 했었다.

▲고향의 맛과 인간미, 때론 격정과 슬픔이 있었던 농촌드라마 '전원 일기'에서 일용이네 집은 가난한 농촌 가정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일용엄니 김수미씨가 25일 세상을 떠났다. /MBC
1970년 김영애, 안옥희, 염복순, 허진 등과 함께 MBC 공채 탤런트 3기에 합격하며 연기자가 됐다. 1971년 이후 ‘수사반장’ ‘행복’ ‘아다다’ ‘민비’ ‘113 수사본부’ ’새아씨’ 등에 출연했다.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개성 강한 외모의 김수미는 ‘조신한 타입’을 선호하던 당시 취향 탓에 주연 대신 조연을 주로 맡았다. 김수미의 연기력은 ‘전원일기’를 통해 비로소 피어나, 당시 조연 배우로는 드물게 MBC 연기대상과 백상예술상 등 여러 연기상을 받았다.
22년간 ‘일용 엄니’ 인생이 끝난 후 ‘배우 김수미’의 인생이 새로 시작됐다. 김수미는 준비된 ‘B급 오락물’의 주연이었다. 2005년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카리스마 있는 뱀파이어 역할을 시작으로, ‘욕쟁이 할머니’의 탄생을 알린 영화 ‘마파도’ ‘가문의 영광 3-가문의 부활’은 김수미의 연기 폭이 얼마나 더 확장될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이후로도 수많은 ‘욕쟁이 할머니’ 캐릭터가 나왔지만, 그 원조는 단연 김수미였다.
가수 정훈희의 주선으로 만나 결혼한 사업가 정창규씨와의 결혼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고백하면서도 억척스럽게 가정을 지키고 돈을 벌었다. 교회 간증을 통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남편을 미워했고 증오했다. 늘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고 나니까 옛날에 연애할 때의 감정으로 돌아갔고,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풀리지 않던 앙금이 다 없어졌다.”

▲배우 최불암과 김수미. /유튜브
김수미는 ‘요리하는 연예인’의 원조 격이다. 최불암씨의 회상. “우리가 ‘전원일기’ 스튜디오 촬영분을 일주일에 한 번 아침 9시부터 자정까지 찍었는데, 어느 날 김수미가 총각, 열무, 배추, 파 등 김치 열 가지와 밥을 해 갖고 왔다. 다들 맛있다고 난리가 났다. 그랬더니 그다음부터 매주 밥과 김치를 갖고 와 그걸 기다리는 맛이 있었다”고 했다.
2005년 간장게장 사업을 시작해 ‘간장게장 김수미’로도 유명했고, 2018년 tvN에서 방송된 ‘수미네 반찬’을 통해 요리 실력을 뽐냈다. 연예인들 사이에서 ‘밥 잘해주는 누나’로 불릴 만큼 음식으로 동료와 선후배를 챙겨왔다. ‘전원일기’에서 김 회장네 둘째 아들로 나왔던 배우 출신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스타를 잃었다기보다는 가족을 잃은 것 같은 슬픔”이라며 “후배 배우들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했다. ‘일용 엄니’로 시작해 ‘욕쟁이 할머니’를 거쳐 ‘수미 누나’로 기억될 의미 있는 역행, 김수미의 일생이다.
유족으로는 아들 정명호 나팔꽃에프앤비 대표, 딸 주리씨, 며느리 서효림(배우)씨. 장례식장은 한양대학교 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7일 오전 11시.
조선일보 박은주 기자
10-29 로제, ‘아파트’로 빌보드 싱글 8위… “세상에 이런일이”

여성 K-팝 가수 신기록
곡 발표 열흘 만에 대박
“내 꿈이 현실이 된 거야.”
29일 걸그룹 블랙핑크의 로제(사진)가 신곡 ‘아파트’(APT.)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 8위로 진입하며 여성 K-팝 가수의 신기록을 썼다. 로제는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정말 대단해. 고마워요. 우선 블링크(블랙핑크 팬덤), 모두들. 이건 당신을 위한 거예요”라고 SNS에 글을 올렸다.
이날 미국 빌보드는 SNS를 통해 로제의 ‘아파트’가 빌리 아일리시의 ‘버즈 오브 어 페더’(Birds Of A Feather·3위), 사브리나 카펜터의 ‘에스프레소’(Espresso·5위) 등 글로벌 스타와 함께 ‘핫 100’의 ‘톱 10’에 올랐다고 전했다. 솔로·그룹을 통틀어 여성 K-팝 가수의 ‘톱 10’ 진입은 처음이다. 앞서 이 차트에 ‘톱 10’으로 진입한 방탄소년단·지민·정국(1위), 싸이(2위)에 이은 5번째 가수가 됐다. 빌보드 메인 차트의 ‘톱 10’은 현지 마니아층을 넘어 대중 시장까지 파고들었다는 의미. 로제가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듀엣으로 이 곡을 내놓은 지 약 열흘 만이다.
로제의 ‘아파트’는 이번 주 빌보드 글로벌 차트에서도 돋보였다. 전 세계 200개국의 스트리밍·판매 데이터를 집계하는 ‘글로벌 200’과 미국을 뺀 글로벌 지표를 보는 ‘글로벌(미국 제외·Excl. US)’에서 모두 1위다. 로제가 두 차트 정상에 오른 것은 2021년 ‘온 더 그라운드’에 이어 2번째이고, K-팝 여성 가수 중 최초로 2차례 같은 기록을 냈다. 빌보드와 함께 세계 양대 차트로 꼽히는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톱 100’에서도 4위로 들어가 최상위권에 안착했다. ‘아파트’는 로제가 오는 12월 6일 출시하는 첫 솔로 정규 앨범 ‘로지’(rosie)에 수록된 곡이다.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11.02 로제 '아파트' 영국 싱글차트서 2위
역대 K팝 여성 가수 중 가장 순위 높아

▲걸그룹 블랙핑크 로제가 지난 10월 18일 세계적인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협업으로 싱글 '아파트'(APT.)를 발매했다. /더블랙레이블
블랙핑크 로제와 미국 팝스타 브루노 마스의 듀엣곡 ‘아파트’(APT.)가 영국 오피셜 싱글차트 ‘톱 100′에서 2위를 차지했다.
이에 로제는 영국 싱글차트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한 K팝 여성 가수로 등극했다. 1일(현지시간) 공개된 최신 순위에 따르면 ‘아파트’는 지지 페레즈의 ‘세일러 송’(Sailor Song)에 이어 2위에 올랐다. K팝 가수가 이 차트 정상에 오른 사례는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일하다. 향후 ‘아파트’가 차트 1위를 달성할 경우 로제는 영국 싱글차트와 앨범차트에서 모두 1위를 경험한 최초의 K팝 가수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조선일보 곽아람 기자
11.22 코미디언 서영춘의 작곡가 형, 압록강에서 죽을 뻔했던 사연
1950년 국군과 함께 북진했던 '정훈공작연예대' 이야기

▲작곡가 서영은의 동생인 코미디언 서영춘(1928~1936). /https://blog.naver.com/jungsh1793/120166323707
‘서영은’이란 분을 아십니까?
‘먼 그대’를 쓴 소설가 서영은, 걸그룹 케플러의 멤버 서영은을 아시는 분도 있겠습니다만, 여기서 쓰게 될 서영은(徐永恩·1927~1989)이란 분은 작곡가로서, 코미디언 서영춘의 형입니다. 이들 형제와 남매는 7남 4녀였는데, 서영춘의 동생 서영환과 서영수도 코미디언으로 활동했습니다. 서영춘의 늦둥이 딸이자 서영은의 조카가 개그우먼 서현선입니다.
서영은이 작곡한 대표적인 노래로는 오기택의 ‘고향무정’, 쟈니 리의 ‘뜨거운 안녕’, 유주용의 ‘부모’, 송춘희의 ‘진정이라면’, 최희준의 ‘이별의 플랫폼’ 등이 있습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은 얼마 전 신문사를 방문한 한 노신사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안평선(88) 전 KBS 춘천방송 총국장으로, 옛 동아방송(DBS)에서 1979년 일세를 풍미한 라디오 드라마 ‘창밖의 여자’를 연출했던 분입니다. 조용필의 노래 ‘창밖의 여자’가 바로 이 드라마의 주제곡이었습니다.
그는 제게 “더 늦기 전에 이 사연을 꼭 전해야겠다”고 했습니다. “1950년 6·25 전쟁 때였습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탈환한 국군과 유엔군은 38선을 돌파하고 북으로 진격했죠.” 당시 시골로 피란 갔던 작곡가 박시춘이 상경하는 버스 안에서 곡을 구상하고 가사를 붙였다는 노래가 ‘전우여 잘 자라’였고, 이것이 서울 수복 축하공연에서 주제가처럼 불렸다고 합니다.
악극단에서 활동했던 작곡가 서영은은 이 무렵 적 치하 90일 동안 흩어져 있던 악극단 동료 10여 명을 다시 모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가수 이인권, 배우 이예춘(이덕화의 부친), 코미디언 우연이를 비롯해 연주인과 무용수였습니다.

▲1950년 정훈공작연예대 소속으로 국군과 함께 북진했던 배우 이예춘(왼쪽). 앞에 보이는 어린이는 이예춘의 아들 이덕화.
“이제 국군이 북진을 합니다. 꿈에 그리던 통일이 곧 이뤄질 순간입니다. 우리도 가만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서영은은 그들을 설득해 ‘정훈공작연예대’를 결성하고 국군 8사단 27연대에 편입해 국군과 함께 북진 대열에 올랐다고 합니다. 서영은은 이 연예대의 단장을 맡았습니다.
국군은 황해도 평야를 달려 평양에 입성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평양 시민의 환영을 받으며 연설을 했습니다. 서영은의 종군 연예대는 국군과 함께 평안북도 희천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27연대장이 기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내일 만포진에 도착할 겁니다!”
환성이 터졌습니다. 만포진. 그곳은 바로 압록강과 인접한 곳입니다. 국토 끝까지 다다랐다는 건 통일이 목전에 다가왔다는 의미였습니다. 연대장은 “이제 만포진에서 압록강 기념 축화 회식을 마련하겠습니다. 여러분도 공연을 준비해 주세요.”
이때가 12월 초순이었습니다. 평안도의 겨울 날씨는 매섭게 추웠습니다. 연주와 행군에 녹초가 된 대원들은 만포진을 기대하며 깊은 잠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녘, 모두들 잠에서 깨 기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쾅!” “쾅!”
갑자기 포탄 터지는 소리와 폭격 소리가 온 세상을 부술 듯 요란하게 일어났습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중공군의 습격으로 부대가 포위당하는 상황이 벌어졌던 겁니다.
“긴급 후퇴! 후퇴!” 군인들은 대오를 갖춰 조직적으로 후퇴했지만 종군 연예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아직 동 트기도 전이라 어둠 속에서 갈팡질팡 밭으로 산으로 뛰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대원들은 이렇게 다들 낙오돼 흩어졌습니다.
어느 정도 정신이 든 서영은은 대원들을 찾아 점검하려 했지만 참담한 상황이었습니다. 바이올린 주자로 가수 금사향의 오빠인 최모, 여가수 주경선, 가수 이인권의 아내인 이순옥 등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최모는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고 이순옥은 생사불명 상태가 됐다고 합니다. 서영은은 더 이상 수습할 겨를이 없어 남은 대원들과 함께 무작정 남쪽으로 걸었습니다. 그리고 1·4 후퇴 이후엔 각자 따로 피란길에 올랐습니다.
전쟁 중 종군한 연예대는 여럿 있었으나, 이렇게 국군으로 따라 ‘북진’한 연예대는 이들이 사실상 유일했다는 것입니다.
15년의 세월이 흐른 1965년 봄에 동아방송 전속악단을 지휘하던 서영은은 동아방송 프로듀서였던 안평선씨에게 이 얘기를 들려 줬다고 합니다. 이 스토리는 작가 한운사씨가 대본을 써서 연속극으로 방송됐다고 합니다. 안평선씨는 “청취자들은 실화라기보다 드라마로 착각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평선 전 동아일보 PD. /채널A
“총 대신 악기와 노래로 부대에 편성돼 종군했던 그분들의 희생 역시 명예롭게 여겨져야 합니다.”
한운사 극본의 라디오 드라마는 지금은 소실돼 찾을 길이 없습니다. 다만 안평선씨가 전해 준 종군 연예대의 북진과 희생 이야기를 여기에나마 이렇게 적어 기록으로 남겨 두려고 합니다.
※서영은씨의 사진을 찾아 보려고 했습니다만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혹 아시는 분이 있다면 제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