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球村 消息 2024-10/ 10.01 정치가 망가진 나라 레바논의 비극 - 12.20 아프리카서 열린 동화 같은 선거
地球村 消息 2024-10/
10.01 정치가 망가진 나라 레바논의 비극
이스라엘이 포탄을 퍼붓는데
레바논 정부는 왜 침묵할까
사익만 챙긴 정권의 무능
국민은 길바닥으로 내몰렸다

▲이스라엘군이 ‘벙커버스터’로 불리는 초대형 폭탄 등을 대거 퍼부어 헤즈볼라 지하벙커를 공격한 장면.
이스라엘이 지난주 레바논에 폭탄을 퍼부었다. 반(反)이스라엘 무장 단체 헤즈볼라 지도부를 제거하겠다고 수도 베이루트를 폭격했다. 한 주 전엔 레바논에서 무선호출기·무전기를 동시다발적으로 원격 폭발시켜 사상자 수천 명이 발생했다. 옆 나라가 공격하는데 레바논 정부 모습이 안 보인다. 그 흔한 ‘보복 천명’ 성명서 하나 안 낸다. 이유는 간단하다. 레바논 정부가 마비된 지 오래기 때문이다.
1940년대까지 프랑스 식민지였던 레바논은 기독교와 이슬람 신자가 섞여 살아 독립 후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잦은 내전으로 나라가 거덜나자 국제사회의 중재로 독특한 정치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른바 ‘종파 간 삼권분립’이다. 통상적인 입법·사법·행정부가 아니라 기독교, 이슬람 수니파, 이슬람 시아파가 대통령·총리·국회의장을 나눠 맡기로 했다. ‘트로이카’라 불리는 세 지도자에겐 모두 거부권이 있다. 국회 의석 또한 세 종파가 미리 정해진 비율로 나눠 갖는다. 유혈 분쟁 하지 말고, 행정부·입법부의 권력을 공평하게 배분하자는 취지였다.
현실은 이상(理想)과 다르게 갔다. 협치는커녕 각 종파가 ‘각자도생’에만 힘쓰고 있다. ‘파이 조각’ 비율이 정해진 판에, 유권자 마음을 얻으려 노력할 동기도 없다. 세계은행은 2016년 보고서에 “세 세력은 최소공배수를 찾아가듯, (국민이 아닌) 각자의 손익만 계산해 법안을 통과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러다 보니 통과시킨 법 수가 한 자릿수인 해가 대부분이다.
정권에 발을 들인 정치인들은 자기 배 불리는 데만 전념해 왔다. 여러 국제기구가 반복해 권고해온 금융실명제처럼, 정권의 축재(蓄財)를 방해하는 제도는 의회·정부 모두 묵살한다. 레바논 중앙은행은 2016~2019년 달러 자산을 맡기면 연 10%라는 높은 이자를 지급해 글로벌 자금을 빨아들인 적이 있다. 이는 다른 예금자의 돈으로 이자를 지급한 국가 차원의 ‘폰지 사기’로 드러났고 여느 폰지 사기의 말로처럼, 레바논은 자금 유입이 한 번 끊기자 이자를 지급하지 못하고 파산했다. 레바논 정권이 이 같은 국가적 자해(自害)를 용인한 이유가 무엇일까. 세계은행은 “기득권층도 달러 사다가 재미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레바논은 2019년까지 1인당 GDP가 1만달러에 육박하며 중동의 ‘경제 유망주’로 여겨졌다. 하지만 경제 성장의 실체가 드러나고 국가가 파산한 후인 2020·2021년 GDP가 25%, 10%씩 급감했고 이후에도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돌파구가 없지는 않다. 레바논 연안엔 적잖은 원유가 매장돼, 개발하면 괜찮은 수익이 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자기 종파에 유리한 개발사를 저마다 미는 탓에 10년 넘게 개발 허가권 승인이 안 나는 판이다.
4년 전 발생한 베이루트항(港) 창고 폭발 참사는 레바논을 침몰시킨 결정타였다. 위험 물질인 질산암모늄 2750t이 창고에서 폭발해 2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폭발의 원인이었던 질산암모늄은 몰도바 국적 선박이 2013년 항만 사용료를 내지 못해 압류당한 후 7년 동안 방치된 것이다. 항만청·세관은 최소 여섯 차례 “위험하다”고 정부에 처리를 요청했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처리 비용을 댈 돈도, ‘국민의 안전’을 신경 쓰는 책임자도 없었던 탓이다.
이란의 지원을 받은 무장 단체 헤즈볼라는 시스템이 고장난 레바논을 숙주 삼아 성장했다. 이들을 소탕한다며 이스라엘이 쏟아내는 폭탄을 보면서, 많은 레바논 국민은 도움을 청할 곳도 모른 채 길바닥에 나앉아 있다. 세계은행은 이런 레바논의 상태를 ‘정치 기득권이 일반 국민을 해친 의도적 침체’라고 표현한다.
조선일보 김신영 국제부장
10.03 "이란 정보기관의 '모사드 색출' 책임자도 이스라엘 첩자였다"
아흐마디네자드 前이란 대통령
"같은 부서 요원 20명도 첩자"
佛매체 "나스랄라 위치, 이란서 나와"
이란에서 활동하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요원들을 색출하는 이란 정보기관의 부서장이 모사드 첩자였다고, 1일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전 이란 대통령이 밝혔다. 모사드는 해외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암살 등의 작전을 수행하는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정보기관이다.
아흐마디네자드는 이날 CNN 튀르키예어 방송 인터뷰에서 “모사드 활동 감시 부서에서 이 책임자 외에도, 모사드의 이란 내 활동을 색출해야 하는 이란 정보 요원 20명이 오히려 이스라엘 첩자인 것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는 이 이중 첩자들이 이스라엘에 이란 핵과 관련된 민감한 정보들을 지속적으로 제공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2018년 4월 모사드는 이란 테헤란에서 이란이 비밀리에 우라늄 고농축을 지속해온 것을 보여주는 1000여 건의 서류를 훔쳐서 이스라엘로 가져왔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당시 이를 대대적으로 언론에 공개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018년 4월30일 텔아비브의 이스라엘 국방부에서 '이란은 거짓말을 했다'는 스크린을 배경으로 이란이 서방과의 합의를 어기고 수년간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을 강화했음을 보여주는 비밀 서류를 공개하고 있다. 이 문건은 모사드가 테헤란에서 절취한 것이었다.
네타냐후의 폭로가 있은 뒤에,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오바마 전 행정부 때 이란과 맺었던 핵 합의인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JCPOA는 2015년 오바마 행정부에서 미국ㆍ러시아ㆍ중국ㆍ프랑스ㆍ영국ㆍ독일이 이란과 맺은 핵 합의로, 이란은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의 수량과 성능을 제한하고 서방은 대(對)이란 경제 제재를 해제한다는 것이었다.
아흐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이 언급한 이란 정보기관의 모사드 담당 책임 부서장은 2021년에 정체가 드러났다. 그러나 아흐마디네자드는 “그와 그의 부하 20명은 모두 이란을 탈출해 현재 이스라엘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아흐마디네자드는 강경한 반(反)이스라엘ㆍ반유대주의자이며, 이란에서 간헐적으로 발생한 민주화 요구 시위도 잔혹하게 진압한 인물이다. 그는 이란 최고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와도 종종 의견 충돌을 빚었다. 이 탓에, 지난 6월 하메네이가 결정권을 쥐고 있는 이란 대선의 최종 출마 후보 6인에서도 제외됐다.
한편, 하산 루하니 전 이란 대통령의 고문으로 활동했던 전 이란 장관도 2022년 런던 소재의 이란어 뉴스 웹사이트 ‘마노토’ 인터뷰에서 “테헤란에 사는 고위 관리들은 모사드에게 생명을 잃지 않을까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신문 “폭살한 나스랄라 위치 정보도 이란 첩자가 귀띔”
아흐마디네자드의 이날 공개는 이스라엘이 막대한 정보력을 기반으로 이란의 대(對)이스라엘 테러 대리자인 레바논의 무장 정파 헤즈볼라 세력을 강타하고 있는 시점에서 나왔다. 지난 2주 동안 헤즈볼라 대원들이 소지한 수천 개의 휴대용 통신기기가 폭발해서 1500명의 대원이 다쳤다.
또 이미 헤즈볼라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와, 군 총사령관, 최정예 특수부대인 ‘라드완’ 부대의 사령관과 부사령관 등 수뇌부가 모두 폭살(爆殺)됐다.
이와 관련, 프랑스 일간지 르 파리지엔은 레바논 소식통을 인용해 “이스라엘은 이란에 심어둔 첩자를 통해 나스랄라의 위치를 귀띔 받았다”고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도 2일 “이란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가 라스랄라가 죽기 수일 전에 밀사를 보내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내에 심어 놓은 첩자를 통해 살해를 계획 중이니 속히 레바논을 떠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보도했다.
나스랄라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 이란 정부는 알리 하메네이를 급히 ‘안전한’ 장소로 피신시켰다.
이란은 모사드에 의해 내부 정보가 계속 뚫리자 대대적인 모사드 첩자 검거 사실을 발표하지만, 그 실체와 효과는 불투명하다.
지난 7월 30일 헬기 사고로 숨진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한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테헤란에서 살해되자, 이란은 이란혁명수비대와 군, 정보기관의 고위직 인물 25명 이상을 모사드 연루 혐의로 체포했다.
또 지난달 23일에도 이란혁명수비대는 6개 주에서 이스라엘과 공모해 이란 안보에 위해(危害)한 행동을 계획했다며, 모사드 관련 공작원 12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들의 구체적인 혐의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조선일보 이철민 기자
10.09 네타냐후 "헤즈볼라 차기 지도자와 테러리스트 수천명 제거"
후계자가 누군지는 안밝혀... 현지 언론 "사피에딘 사망"

▲레바논 이슬람 무장 단체 헤즈볼라의 새 수장으로 유력한 하심 사피에딘. /AP 연합뉴스
레바논의 이슬람 무장 단체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가 지난달 27일 이스라엘의 폭격에 숨진 데 이어, 차기 최고 지도자로 유력했던 하심 사피에딘 헤즈볼라 집행위원장도 사망했다고 8일 이스라엘 현지 매체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사피에딘은 지난 3일 이스라엘의 표적 공습 이후 일주일째 연락이 끊기며 생사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저녁 영상 성명을 통해 “우리 군의 성공적인 작전을 통해 헤즈볼라의 기반이 크게 파괴됐으며, 최근 수 년 간 가장 약해진 상태가 됐다”며 “우리는 나스랄라의 후계자와, 그 후계자의 후계자를 포함한 수천 명의 테러리스트를 제거했다”고 말했다. 앞서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도 이날 이스라엘군 북부사령부를 방문해 “헤즈볼라는 지도자가 없는 조직이다. 나스랄라는 제거됐고 그의 후계자도 제거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와 갈란트 장관 모두 ‘나스랄라의 후계자’가 누구를 뜻하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과 하레츠 등 이스라엘 매체들은 “이는 사피에딘을 뜻한다”며 “네타냐후 총리가 사피에딘의 사망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지난달 23일부터 시작된 ‘북쪽의 화살’ 작전과 26일 본격화한 ‘새로운 질서’ 작전을 통해 헤즈볼라 최고 지도부에 대한 참수 작전을 펼쳐왔다. 이를 통해 최고 지도자 나스랄라를 비롯해 헤즈볼라를 움직이는 ‘지하드(성전) 위원회’와 ‘집행 위원회’ 간부와 헤즈볼라 군 조직의 핵심 고위 지휘관 대부분이 사망했다. 갈란트 장관은 이와 관련 “전쟁 1년 만에 하마스는 해체되고 헤즈볼라는 크게 망가졌다”며 “레바논에 포연이 걷히면 이란은 자국의 가장 큰 자산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사피에딘은 나스랄라의 사촌이자, 헤즈볼라의 집행위원장으로 외부 행사에서 종종 나스랄라를 대신해 왔다. 또 이란과의 관계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면서 차기 지도자로 유력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는 2020년 미국에 암살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과 사돈 관계다.
헤즈볼라는 아직 사피에딘의 생사 여부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매체들의 보도에 대해서도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헤즈볼라의 공식적 2인자(사무차장)인 나임 카셈은 이날 “전쟁 때문에 새 사무총장 선출이 어려운 상황이다. 선출이 완료되면 이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파리=정철환 기자
10.18 훈련생들이 '거물' 잡았다... 교전 끝 발견한 시신, 신와르로 확인
이스라엘 분대장 훈련생들,하마스 대원 3명과 전투
신와르, 막대기로 드론에 저항하다 포격 사망
다음날인 17일, 현장 수색 중 신와르 신원 확인
이스라엘, 신속 검사 위에 손가락 잘라내

▲이스라엘군이 1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 수장 야히야 신와르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체(빨간 표시)를 둘러싼 모습. 이스라엘 당국자는 이날 "신와르를 작전으로 제거했다"고 현지 매체에 밝혔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가자(Gaza) 지구의 무장테러집단인 하마스 지도자 야히아 신와르의 살해는 애초 그를 전혀 겨냥하지도 않았던 이스라엘군 분대장 훈련생들과 신와르의 조우와 교전에서 비롯됐다고, 뉴욕타임스와 예루살렘 포스트 등이 18일 이스라엘 국방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신와르는 작년 10월 7일 하마스가 저지른, 이스라엘을 기습 침범해 1200여 명을 죽이고 251명을 납치한 이스라엘 역사상 최악의 테러를 설계한 인물이다.
이스라엘과 미국 정보 당국은 신와르가 지하 깊숙이 파 놓은 하마스의 터널에 은신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그를 추적하는 데에 지난 1년 간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었다.

▲17일 저녁 이스라엘군이 하마스 지도자 야히아 신와르 살해를 공식 발표하자,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인들이 몰려 나와 기뻐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그러나 신와르를 발견한 것은 이스라엘군의 분대장 훈련생들이었다. 지난 16일 가자 지구 최남단인 라파 근처의 텔 술탄에서 이들 훈련생은 3명의 하마스 대원들과 마주쳤다. 애초 의도된 수색 작전은 아니었다.
◇신와르, 드론에 막대기 휘두르며 끝까지 저항
이스라엘군 보병의 분대장 양성 기구인 828 비슬라크 여단 소속 병력은 16일 오전 10시쯤 3명이 집 사이를 수상스럽게 이동하는 것을 발견했다. 2명이 앞서서 주변을 확인하고 나머지 1명이 따라 움직였다.
이들은 곧 드론의 지원을 받아 교전을 벌였다. 교전 과정에서 부상을 당한 하마스 대원 3명 중에서 2명은 한 건물로 피신했고, 다른 한 명은 또 다른 건물로 피신했다. 홀로 피신한 하마스 대원이 나중에 신와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지원 요청을 받은 비슬라크 여단의 전차들이 출동해 두 건물에 포격을 가했다. 신와르는 건물 2층에서 수류탄을 던졌고 이 중 한 개가 터지자 이스라엘군 보병 소대는 접근을 멈췄다. 신와르는 2층으로 접근한 이스라엘군의 드론에 막대기를 휘두르며 저항했다. 얼굴은 가려있었고, 팔에는 상처가 난 모습이었다. 곧이어 또다시 전차의 포탄이 발사돼 구석 소파에 다친 몸을 웅크리고 있던 그를 살해했다.
하지만, 피살자 중에 신와르가 있는 것을 안 시점은 교전 다음날인 17일 아침이었다. 먼지가 걷히고 건물 잔해를 수색하던 이스라엘군은 시신 중 한 구가 신와르가 놀랍게 닮은 것을 확인했다. 눈 근처의 독특한 점들과 삐뚤빼뚤한 치아를 포함해 얼굴이 신와르를 매우 닮았다. 머리와 다리를 포함해 시신 곳곳에는 심각한 상처가 나 있었다. 입을 벌린 그의 시신은 몸의 오른쪽이 건물 잔해에 끼어 있었다. 신와르는 혼자서 다른 건물로 피신했다. 나머지 2명은 그의 경호원이었다.
이 건물 주변은 신와르가 발견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던 곳이었다. 이스라엘과 미국 정보 당국은 신와르가 지하 깊숙한 곳에서 이스라엘 인질들을 주위에 ‘인간 방패’로 세우고 숨어 있다고 평가했었다.
이스라엘군은 시신 주변을 수색하면서 주위에 폭발물이 여전히 널려 있고 또 나중에 신와르로 확인된 시신에는 부비 트랩이 설치돼 있는 것을 확인해 조심스럽게 접근했다고, 이스라엘 국방부는 밝혔다.
이스라엘군의 고위 관리 2명은 사살된 하마스 대원 주변에서 돈과 무기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 그 지역에서 억류된 이스라엘 인질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스라엘군은 1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 수장 야히야 신와르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체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X
◇신속한 검사 위해, 손가락 잘라내 신원 확인
이와 관련,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신와르 확인은 DNA와 여러 검사를 통해 진행됐고, 시신이 발견된 현장 주변에 부비브랩이 설치돼 있어서 이스라엘군은 신속한 검사를 위해 신와르의 손가락을 잘라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군은 신와르의 시신을 나중에 잔해 속에서 꺼내 이스라엘로 옮겼다.

▲살해된 신와르의 시신에서 사탕과 UNRWA 직원의 신분증과 여권 등이 발견됐다. /IDF
그의 시신에선 AK-47 소총과 라이터, 사탕 ‘멘토스’와 유엔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 직원 소유의 신분증과 여권이 발견됐다. 이스라엘 공영방송 칸(Kan)은 “이 여권의 주인은 UNRWA 교사로 이미 지난 4월에 라파를 통해 가자를 빠져나가 현재 이집트에 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군은 신와르가 2011년까지 이스라엘 교도소에 수감돼 있었던 탓에, 그의 지문과 치과 진료 기록 등 각종 신체 정보를 갖고 있었다. 17일 저녁 7시45분, 이스라엘방위군(IDF)와 첩보기관인 신베트[샤바크], 이스라엘 카츠 외교장관 등이 신와르의 사망을 공식 확인 발표했다.
하마스는 지난 8월29일 억류 중이던 이스라엘인 인질 6명을 일제히 처형했었다. 이와 관련, 17일 이스라엘 TV의 ‘채널 12′는 신와르가 그때까지 인질 6명과 함께 은신했으며, 그가 직접 인질 6명의 처형을 지시하고 이 지역을 떠났다고 전했다. 처형된 인질들의 시신은 이틀 뒤에 이스라엘군에 발견됐다.
작년 하마스의 기습 테러로 인해 모두 251명이 납치됐고, 이스라엘군은 이 중에서 이미 사망이 확인된 34명을 포함해 97명이 아직 억류돼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정부와의 인질ㆍ포로 교환 딜에 따라, 지금까지 인질 105명을 풀어줬다.
조선일보 이철민 기자
10.28 日 자민·공명 연립여당 과반 실패… 이시바, 한달만에 위기
자민·공명 연립여당 215석… 15년 만에 과반 확보 실패
자민 단독 과반은 12년만에 마침표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인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27일 당 본부에서 총선 결과 관련 발언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AFP 연합뉴스
일본 집권 자민당과 연립 여당 공명당이 27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15년 만에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일본 정계가 격변의 소용돌이에 휩쓸릴 것으로 보인다.
28일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191석을 차지했다. 공명당 의석수는 24석이다.
자민당과 공명당 의석수를 합치면 215석이다. 중의원 456석 과반인 233석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두 정당은 선거 시작 전 의석수가 각각 247석, 32석이었다.
자민당‧공명당 연합이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놓친 것은 2009년 이후 15년 만이다. 자민당은 2012년, 2014년, 2017년, 2021년 등 4차례 총선에서 매번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해 ‘일강다약(一强多弱)’ 구도를 유지해 왔다. 지난해 연말 불거진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 파문, 고물가에 따른 실질임금 감소 등으로 민심이 여당에 등을 돌린 결과로 분석된다.
이번 선거에서는 ‘정치 개혁’을 외치며 자민당 비자금 문제를 집중적으로 공략한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기존 98석에서 148석으로 늘었다. 제1야당이 전체 의석수의 30%에 해당하는 140석 이상을 확보한 것은 2003년 옛 민주당이 177석을 얻은 이후 21년 만에 최초다.
여기에 우익 성향 야당인 일본유신회가 38석, 국민민주당은 28석으로 나타났다.
여당이 과반을 놓치면서 정권 구성을 위한 여‧야당 공방이 시작돼 정국이 흔들릴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1일 취임한 이시바 총리는 태평양전쟁 이후 최단기간에 중의원을 해산해 총선을 치르는 승부수를 던졌으나, 선거 패배로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이시바 총리 퇴임설이 거론된다.
이시바 총리는 거취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며 “앞으로 우리가 내건 정책 실현을 위한 노력을 최대한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노다 요시히코 일본 입헌민주당 대표가 15일 도쿄 외곽 하치오지에서 총선 유세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대표는 다른 당과의 협력 가능성에 대해 “성의 있는 대화를 시작하고 싶다”며 “특별국회에 어떻게 임할지부터 논의를 시작해 그 뒤에는 당연히 내년 여름 참의원(상원) 선거전도 전망하면서 대화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내각책임제인 일본에서는 중의원에서 과반수 투표로 지명 선출된 총리가 내각을 구성한다. 입헌민주당은 내년 참의원 선거 등을 고려해 장기적으로 다른 정당과 연대를 모색하며 정권 탈환 전략을 짤 것으로 예상된다. 현지 언론은 자민당이 일단 제1당 지위는 유지한 만큼 무소속 의원 영입, 일부 야당과 연계를 통해 연립 정부를 확대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결론은 내달 열릴 ‘특별국회’에서 내려질 전망이다. 특별국회는 중의원 해산에 의한 총선거 실시 후 1개월 이내에 소집되는 국회로, 소집과 함께 기존 내각은 총사퇴해야 하며 회기 동안 총리 선출 지명과 상임위원회 등 원 구성을 새로 하게 된다. 자민당에서는 특별국회 개시일을 다음달 7일로 검토 중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조선일보 이가영 기자
11.07 막말·성추문, 두 번의 탄핵 소추, 대선 불복에도… 다시 백악관으로
[다시 트럼프 시대] 4년 만에 돌아온 트럼프
70세까지 특별한 정치나 공직 경험이라곤 없던 남자가 두 번째 백악관 입성에 성공했다. 47대 미국 대선에서 승리가 사실상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78) 전 대통령 얘기다. 그는 이로써 취임식 기준으로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의 나이를 몇 달 앞서는 미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이자 두 번째로 징검다리(연임이 아닌)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 됐다. 막말과 성 추문으로 끊임없는 물의를 빚어왔고 미 역사상 두 번 탄핵 소추된 유일한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지닌 ‘문제아’지만, 2024년 미국의 표심은 또다시 트럼프를 택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본래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던 정계의 ‘아웃사이더’였다. 젊은 시절 그는 부동산부터 식품,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거느리며 막대한 부를 쌓았다. 인기 TV 쇼에도 출연해 방송인으로 유명세를 탔다. 정계에선 반면 비주류에 가까웠다. 각종 범죄 혐의와 스캔들로 엘리트 정치판에서는 끊임없는 눈총을 받았지만, 쉽고 거침없는 화법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모으면서 2016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2020년엔 바이든에게 패했지만, 트럼프는 6일 세 번째 대선 출마 끝에 대통령 재선에 성공했다.

▲그래픽=김현국
1946년 뉴욕 퀸스에서 태어난 트럼프는 부동산 임대 사업으로 성공한 아버지 밑에서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 교사에게 주먹을 날려 얼굴을 멍들게 할 정도로 사고뭉치였다. 트럼프의 아버지는 이런 그를 바로잡기 위해 규율이 센 뉴욕군사학교에 보냈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을 졸업한 뒤엔 아버지 사업에 본격 합류했다. 1971년엔 회사를 물려받아 ‘트럼프 그룹(Trump Organization)’으로 사명(社名)을 바꾸고 사업 확장을 시작했다. 호텔과 카지노, 골프장을 인수·설립하고 1983년에는 뉴욕 맨해튼 중심에 자신의 이름을 딴 ‘트럼프 타워’를 세웠다.
트럼프는 이후 엔터테인먼트·미디어 분야로까지 사업을 확장한다. 1996년 세계 최고의 미녀를 뽑는 ‘미스 유니버스’ 조직위원회를 사들여 미인 대회를 열었고, 2004년부터는 NBC방송의 인기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견습생)’에 출연했다. 2021년엔 자신이 직접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이란 이름의 소셜미디어를 만들었다. 지난 3월엔 이를 운영하는 모회사 ‘트럼프 미디어&테크놀로지그룹(TMTG)’을 상장시키는 데도 성공했다.
트럼프가 대권을 향한 야망을 처음 드러낸 것은 1988년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다. 그는 이 자리에서 “내가 대권에 도전하면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그는 2016년 7월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역사상 최다 득표로 대통령 후보에 선출됐다. 2016년 11월엔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과 맞붙어 45대 대통령에 당선되는 이변(異變)을 연출했다. 선거 전날까지도 미 언론과 조사 기관 대부분은 클린턴이 승리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그는 저학력 블루칼라 백인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당선을 확정 지었다.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그는 줄곧 각종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임기 중인 2019년과 2021년엔 러시아와의 내통 의혹 등으로 탄핵 위기를 맞았다. 모두 상원에서 부결되긴 했지만 미국 역사상 두 번 탄핵 소추된 대통령은 트럼프가 유일하다. 2020년 대선에서 현재 대통령인 조 바이든에게 패배했을 땐 불복 연설을 해 흥분한 극렬 지지자들이 의회 의사당에 난입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그는 현재 ‘대선 뒤집기 시도 혐의’ 등으로 4건의 형사 기소를 당한 상태다. 지난 5월엔 성 추문 입막음 사건으로 유죄 평결을 받았다.
끊임없는 스캔들 메이커였음에도 그는 올해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됐다. 지난 7월 버틀러에선 유세 도중 피격을 당했다. 당시 총알은 트럼프의 오른쪽 귀를 뚫고 지나갔으나 그는 금세 피 흘리는 얼굴로 일어나 주먹을 쥐고 “싸우자”라고 외쳐 지지자들을 결집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족벌주의(nepotism)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가족들에게 정치적으로 중요한 자리를 맡겨온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세 번의 결혼에 다섯 자녀를 뒀다. 현재의 아내는 2005년 결혼한 슬로베니아 모델 출신의 멜라니아다. 첫 번째 아내와의 사이에선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장녀 이방카, 차남 에릭, 두 번째 아내와는 차녀 티파니를 뒀다. 멜라니아는 늦둥이 아들 배런을 낳았다.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트럼프그룹의 수석부회장이자 2016년 대선 이후로 줄곧 트럼프의 정치 활동을 총괄해 온 인물이다. J D 밴스를 부통령 후보로 추천한 것도 장남인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 아들 에릭 트럼프 역시 트럼프그룹의 부사장이며, 각종 선거 캠페인과 모금 활동에 참여해 왔다.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약혼한 예비 며느리 킴벌리 길포일은 폭스뉴스 앵커 출신이다. 2020년 대선에선 트럼프 선거 캠프의 모금 책임자이자 법률 고문을 맡았다. 에릭 트럼프와 2014년 결혼한 라라 트럼프는 CBS 프로듀서 출신으로 공화당 전국 대회의 공동 의장이다.
장녀 이방카는 2016·2020년 대선 당시 트럼프의 주요 캠페인 광고 인물로 활약했고, 트럼프 정부에선 ‘퍼스트 도터’로서 남편 재러드 쿠슈너와 함께 백악관 상임고문을 맡았다. 올해 대선 유세장엔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으나, 아버지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만큼 이방카 역시 조만간 정계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조선일보 유지한 기자
11.07 해리스 승복연설 "트럼프 승리 축하...선거 결과 받아들여야"
선거 다음 날 승복 연설
"선거 결과 우리가 원했던 것 아니지만..."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6일 오후 워싱턴DC 하워드대에서 패배 승복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와 패배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6일 패배 승복 연설을 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모교인 워싱턴DC 하워드대에서 연설을 갖고 “우리는 이번 선거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며 “오늘 오전 나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과 통화해 그의 승리를 축하했다. 또한 트럼프 당선인과 그의 팀을 도와 평화로운 정권 이양에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날 오후 4시30분쯤 나타난 해리스는 밝은 표정으로 그를 기다리던 지지자들에게 “사랑한다”고 한 뒤 “오늘 내 마음은 가득 차 있다. 오늘 제 마음은 여러분이 저를 믿어주신 것에 대한 감사로 가득 차 있고, 조국에 대한 사랑과 결의로 가득 차 있다”고 했다. 이어 “이번 선거의 결과는 우리가 원했던 것도 아니고, 그 결과를 위해 우리가 싸운 것도 아니고, 우리가 투표한 것도 아니다”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우리가 계속 싸우는 한 미국의 약속의 빛은 항상 밝게 타오를 것”이라고 했다.
해리스는 “미국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선거에서 패배하면 결과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라며 “이 원칙은 다른 어떤 원칙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를 군주제나 폭정과 구별한다”고 했다. 이어 “대중의 신뢰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 원칙을 존중해야 하며, 미국에서는 대통령이나 정당이 아니라 미국 헌법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리고 우리의 양심과 신에 대한 충성이 내가 이 선거에 임하는 이유”라고도 했다.
지난 2020년 대선 당시 결과에 불복해 선거 뒤집기에 나선 혐의로 기소됐던 트럼프를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해리스는 이번 결과에 승복한다면서도 “나는 이 (대선) 캠페인의 원동력이 되는 싸움을 양보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어 “자유, 기회, 공정성, 모든 사람의 존엄성을 위한 싸움, 우리 나라의 중심이 되는 이상, 미국을 가장 잘 반영하는 이상을 위한 싸움을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미국인들이 자신의 꿈과 야망, 열망을 추구할 수 있는 미래, 미국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을 내릴 자유를 갖고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 미래를 위해 싸우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총기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싸움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조선일보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11.10 옌볜조선족자치주를 덮친 문화대혁명의 광기
중공군, 옌볜의과대학에서 3000여 명 학살
⊙ 마오쩌둥의 조카 마오위안신이 옌볜의 문화대혁명 주도
⊙ 조선족 지도자 주덕해를 ‘주자파’ ‘간첩’으로 몰아 숙청
⊙ 중공군 지역 지휘부, “옌지시를 피로 물들이고 토문관을 돌파하여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삐라 날조해 조선족 공격
⊙ 옌볜 조선족 政法 계통 간부·경찰 175명 외국 간첩으로 지목… 12명이 맞아 죽고 82명이 불구 돼
⊙ 조선어 신문·방송 문 닫고, 학교에서 조선어 교육도 폐지

▲1962년 9월 옌볜조선족자치주 성립 10주년을 기념하는 주덕해(가운데). 조선족 지도자였던 그도 문화대혁명의 광풍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올해는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1992년 한중(韓中) 수교 이래 양국은 빠른 관계 발전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2016년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보복과 외교적 고압적 태도 및 공격적인 전랑(戰狼) 외교 행각을 실감하면서 한국인의 대중(對中) 인식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특히 미중(美中) 간 패권(覇權) 경쟁과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한국인의 반중(反中)·혐중(嫌中) 감정은 최고치에 달한 상황이다. 중국이 2000년대 초반부터 추진하여온 동북역사공정(東北歷史工程)과 그 후속으로 등장한 문화공정은 한국인의 반중감정을 부추겼다. 이 와중에 중국 조선족(朝鮮族)의 정체성(正體性) 문제와 민족문화도 화두(話頭)가 되곤 했다.
2022년 2월 4일 베이징(北京) 동계올림픽 개막식 공연에 중국 조선족 여성이 한복(韓服) 차림으로 등장하는 영상이 전 세계로 송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주한 중국 대사관에서 “전통문화(한복)는 한반도의 것이며 동시에 중국 조선족의 것”이라는 입장을 표했다. 한국 내에서는 이를 중국이 전통 의상인 한복을 중국 55개 소수(少數)민족 문화 중 하나로 간주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파장이 커졌다.
중국 내부에서 중국 조선족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이나, 중국이 표방하는 소수민족 우대 정책의 본질은 어떠한 것일까? 1960년대 중국 대륙을 10년간 휩쓸었던 문화대혁명 당시 옌볜조선족자치주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통해 그 이면(裏面)을 파헤쳐 보도록 하겠다.
‘조반단’의 결성
문화대혁명의 불꽃이 베이징대학(北京大學), 난징대학(南京大學)에서 처음 일어났듯이 옌볜(延邊)의 문화대혁명도 옌볜대학과 옌볜농학원의 일부 학생이 집회를 열어 베이징대학과 난징대학의 혁명적 교직원과 학생들을 지지하고 혁명적 군중을 저지한 옌볜대학 공산당위원회 선전부장 김지운(金址雲)을 해임하라는 대자보를 붙이면서 처음 일어났다.
1966년 6월 20일 중국 공산당 옌볜조선족자치주위원회 문화대혁명 영도소조(領導小組)가 결성되었다. 7월 12일에는 자치주 부주장(副州長) 조용호가 인솔한 문화대혁명 공작대가 처음으로 옌볜대학에 파견되었다. 이후 8월 초부터 비판 투쟁에 들어갔으나 얼마 뒤 공작대가 갑자기 해체되면서 ‘반동적인’ 비판 투쟁은 잠시 중단되었다.
이후 옌볜에서 문화대혁명의 기세는 날로 타올랐다. 이를 적극 지지하는 층은 청년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문화대혁명에 앞장서면서 마오쩌둥(毛澤東)과 그의 사상을 보위하기 위한 홍위병(紅衛兵)을 조직하였다. 홍위병에 가입하는 청년 학생은 출신 성분이 좋아야 했다. 그들은 ‘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풍속, 낡은 습관’ 등을 타파하는 활동을 벌여 명승고적과 문물을 무차별 파괴하였다.
옌볜의 문화대혁명은 조반단(造反團·‘반란단’이라는 의미)이 조직되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1966년 8월 하순 베이징, 다롄(大連), 하얼빈(哈爾濱) 등지에서 공부하던 조선족 대학생들이 ‘혁명적 연계(革命串聯)’를 맺기 위해 옌볜에 들어왔다. 그들은 옌볜대학, 옌볜의학원, 옌볜농학원 등의 대학생들에게 조반단을 조직하여 자체적으로 혁명할 것을 선동하였다. 이에 많은 옌볜의 학생이 동조하였다.
마오위안신의 등장

▲마오쩌둥(毛澤東)의 조카인 마오위안신(毛遠新).
이들의 주도로 1966년 8월 27일 옌볜대학 여학생 기숙사 앞마당에서 ‘8·27 혁명조반단’이 조직되었다. 옌볜대학의 학생들 외에 일부 교수도 가담하였다. 그런데 이와 별도로 외지에서 온 학생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학생과 교직원들은 같은 날 ‘혁명조반단’을 결성하였다. 혁명조반단은 이후 ‘홍기전투연군(紅旗戰鬪聯軍)’이라는 이름으로 변경했는데, 일명 ‘홍련(紅聯)’이라 불렸다. 결국 옌볜에서 문화대혁명을 주도한다고 자임하는 조직이 두 개 탄생하였다.
이 두 조직은 문화대혁명 주도권을 두고 격렬히 대립하였다. 특히 1967년에 들어서서 옌볜일보사를 둘러싼 쟁탈전이 벌어졌다. 1967년 1월 4일 상하이(上海)의 조반단들이 모든 권력을 장악했다는 소식을 접한 8·27 혁명조반단 측은 선전기구를 먼저 탈취해야 한다며 옌볜일보사에 쳐들어가 이곳을 접수하였다.
소식을 들은 홍련 측 군중 수천 명은 이를 반대하는 집회를 개최하고 옌볜일보사로 가서 신문사를 포위하였다. 8·27 혁명조반단 측도 옌볜일보사로 모여들었다. 두 조반단의 충돌은 피했으나, 이후 8·27 혁명조반단 측이 홍련에 가담했던 군중 100여 명을 옌볜대학에 잡아다 가두고 심문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후 옌볜에서는 보다 과격한 조반단이 조직되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조카인 마오위안신(毛遠新)이 1967년 1월 25일 옌지(延吉)에 왔다. 그는 본래 하얼빈군사공정학원(哈爾濱軍事工程學院)의 1964년도 졸업생이었다. 그는 마오쩌둥의 조카라는 ‘밑천’을 가지고 문화대혁명이라는 정치무대에 등장하여 동북 3성[헤이룽장성(黑龍江省), 지린성(吉林省), 랴오닝성(遼寧省)]에서 ‘태상황(太上皇)’ 노릇을 하던 사람이었다.
‘주덕해를 타도하라!’

▲문화대혁명 기간 중 홍위병들은 ‘혁명무죄 조반유리’라는 구호 아래 스스로 ‘조반파’를 자처했다.
사인방(四人幇)의 사주를 받은 마오위안신은 문화대혁명을 선동하는 7편의 문장을 발표하여 진정한 조반단을 식별하는 기준은 주덕해(朱德海·1911~1972년·옌볜조선족자치주 초대 주장)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달렸다고 하면서 주덕해를 타도하고 옌볜에서 진정한 반란파(造反團)를 새로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마오위안신과 옌볜군사관제위원회(延邊軍事管制委員會)의 지지하에 옌지시와 각 현(縣)에서 각 계통의 ‘홍색조반자혁명위원회(紅色造反者革命委員會)’라는 새로운 반란 조직이 만들어졌다. 이 위원회는 옌볜의 조선족민족지도자인 주덕해를 타도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았다.
한편 홍색조반자혁명위원회에 반발하는 새로운 단체가 또 생겨났다. 즉 주덕해를 보호하려는 여러 군중 조직이 연합하여 ‘노동자혁명위원회(工人革命委員會)’ ‘농민혁명위원회’ ‘상업계통혁명위원회’ 등을 결성한 것이다. 옌볜의학원의 ‘베쑨 공사’, 옌지시 2중의 ‘항대(抗大)’ 등의 학생 조직도 여기에 가담하였다. 이들은 ‘주덕해는 좋은 간부’라면서 옌볜자치주의 또 다른 핵심 간부인 김명한과 남명학 타도를 외쳤다. 이 결과 옌볜에서는 8·27 혁명조반단, 홍련, 홍색조반자혁명위원회, 노동자혁명위원회 등 4개의 파벌이 상호 대립하였다.
홍색조반자혁명위원회는 주덕해의 ‘죄상’을 집요하게 추궁하였다. 1967년 4월 초, 이들은 주(州)당위원회, 주인민위원회, 시(市)당위원회, 시인민위원회, 주공안처, 시공안처 등 기관들과 연합하여 기관홍혁회(機關紅革會)를 결성하였다.
기관홍혁회는 1967년 5월 초부터 주덕해의 지도하에 오랫동안 일해온 주당위원회, 주인민위원회 등 조직의 주요 간부 100여 명을 납치하고 주덕해의 ‘죄상’을 말할 것을 강요했다. 이는 집요하게 전개되었다. 1967년 5월 30일 홍색조반혁명위원회와 대립하였던 노동자혁명위원회 측이 주당위원회 청사에 쳐들어가서 자치주 핵심 간부 전인영(田仁永·한족) 등을 구출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기관홍혁회에서는 주덕해의 ‘죄상’을 끌어내기 위해 구금하고 있던 간부들을 주인민위원회 청사로 옮기고 ‘죄상’ 밝히기 작업을 계속 진행하였다.
‘주자파’ ‘매국 역적’이 된 주덕해
1967년 6월 중순에 옌지 시내에서 조반단 간의 상호 무장 대립이 심해지자 홍색반란자혁명위원회(紅色造反者革命委員會) 측에서는 간부 40여 명을 둔화현(敦化縣)의 추리구 임장으로 몰래 빼돌려 거기서 기존의 작업을 계속하도록 했다. 이때 홍색반란자혁명위원회 측에서는 간부들을 구타하는 등 강압적인 방법을 동원하였다. 여기서 주덕해의 ‘죄상’을 담은 자료를 만들었다. 이들은 주덕해에게 ‘옌볜에서 으뜸가는 주자파(走資派·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집권파)’이자, ‘외국과 내통한 매국 역적’이라는 죄명을 씌웠다.
‘죄상’ 밝히기 작업은 1967년 말에야 끝이 났다. 주덕해의 ‘죄상’은 대자보나 팸플릿, 군중을 대상으로 한 연설을 통해 대중에게 선전되었다. 이 팸플릿을 제작한 옌볜농학원동방홍공사(延邊農學院東方紅公社)는 홍색조반자혁명위원회 계열이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홍색조반자혁명위원회는 옌볜군사관제위원회[주임 고봉(皋峰)]의 지지를 받았다. 이들은 이를 바탕으로 우세한 무장력을 동원하여 ‘반국폭동(叛國暴亂)’이라는 누명을 씌워 1967년 8월에는 노동자혁명위원회 측을, 이듬해 봄에는 8·27 혁명조반단 측을 제압하여 옌볜의 최강자가 되었다.
〈불! 불! 불! 피! 피! 피!〉

▲문화대혁명 기간 중 ‘주자파’로 몰린 이들은 홍위병들에게 모진 학대를 당했다.
그 당시 옌볜에 주둔한 군부대를 통솔하는 옌볜군사관제위원회에 의해 무고한 옌볜 시민들이 학살되고 ‘만인갱(萬人坑)’이 발생하는 일도 있었다. 특히 ‘반역폭동’ 누명 사건은 조선족의 민족성을 진압하기 위해 대량 학살한 전형적인 사례이다.
1967년부터 고봉은 조선족은 신뢰할 수 없다는 여론을 내내 퍼뜨렸다. 그는 옌볜군사관제위원회 회의에서 “옌지시를 피로 물들이고 토문관을 돌파하여 고향으로 돌아가자(血洗延吉市, 突破圖們關, 打回老家去)”라는 날조된 삐라를 꺼내 들며 노동자혁명위원회와 8·27 혁명조반단에 누명을 씌워 사람들을 미혹했다. 그들은 또한 스스로 인쇄한 날조된 신문에 “반역자들은 외국으로부터 들여온 총 300정, 중기관총 2문, 경기관총 6문, 각종 소총 300정을 가지고 있다”는 선동 글을 작성해 여기저기에 퍼뜨렸다. 그러면서 고봉은 즉시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고 선포했다. 대학살의 예고였다.
1967년 8월 5일 이른 아침, 옌볜군사관제위원회는 3168군 장병 1만여 명을 동원하여 옌지를 포위했다. 여기에는 안투(安圖) 주둔군도 동원했다. 옌볜병원입원과와 옌볜의과대학은 3000여 명의 군대에 포위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옌볜군사관제위원회는 확성기로 ‘노동자혁명위원회’에 ‘엄중경고’와 ‘방화범·살인자 검거 통고’를 발표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조국 동북(헤이룽장성, 지린성, 랴오닝성) 국경에서 끔찍한 반혁명 반란이 일어났다〉와 〈불! 불! 불! 피! 피! 피! 반혁명 반란의 기록〉이라는 전단을 만들어 배포했다.
학살
전단을 만든 저우비종(周必忠)은 “전단의 사진과 글은 모두 거짓이다. 일부는 터무니없는 혐의로 죄를 뒤집어씌웠고, 일부는 날조된 사실이고 옳고 그름을 혼동시키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옌지시를 피로 물들이고 두만강을 건너 고향으로 돌아가자’라는 선동 구호는 그들에게 강제로 죄를 씌우기 위해 조작된 것이다”라고 밝혔다.
1967년 8월 16일 새벽 3시, 마오위안신과 고봉은 최전선 사령부 정치위원 류장위(劉章宇)를 소환해 군사지도를 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주 폭발 지점은 입원실 북쪽에 있다. 폭발이 성공하면 돌격대는 즉시 건물로 진입하라!”
1967년 8월 16일 오전 11시, 옌볜의과대학 연구실 벽이 폭파되면서 입원환자과에 구멍이 생겼다. 돌격대는 즉시 건물에 진입해 기관총을 쏘아댔다. 그 자리에서 수많은 학생이 죽었다. 그들은 총검으로 사람들을 찔렀고 3000여 명의 무고한 시민이 학살되었다.
홍색조반자혁명위원회를 지지하던 옌볜군사관제위원회 주임 고봉은 이후 옌볜에서 문화대혁명 기간 최고위직을 차지하였다. 이에 따라 문화대혁명 기간 거의 내내 주덕해의 죄상을 추적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문화대혁명 시기 옌볜 지역을 비롯해 기타 조선족 지역에서 간첩, 반역자, 민족주의 분자 등의 누명을 쓰고 많은 조선족이 박해와 살해를 당했다. 특히 6·25 시절 북한에 갔거나 북한에 친인척이 있는 사람, 북한과 통신이나 연락이 있거나, 북한에 대해 좋은 말을 했던 사람, 심지어 북한 대표단의 통역을 했던 사람마저 북한 간첩으로 간주하여 투옥을 당했다. 당시 헤이룽장성 하얼빈시의 조선족 간부 32명이 북한 간첩으로 심사를 받았다. 하얼빈시 공안국의 23명 조선족 간부 가운데 18명이 북한의 간첩과 반역자라는 죄명으로 심사를 받았다.
계급대오 정리학습반’
1968년 4월 처음으로 옌볜자치주공안국, 자치주 검찰원, 자치주 법원에 계급대오(階級隊伍) 정리학습반이 개설되면서 다시 한 번 피비린내 나는 숙청이 시작되었다. 이 학습반에서는 소위 외국 간첩이라는 죄명으로 51명을 ‘계급의 적’으로 적발, 각종 형벌을 받게 했다. 이 중 3명은 형벌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했으며, 10여 명은 불구가 되었다. 조선족 정법(政法) 계통의 간부와 경찰 175명이 외국 간첩으로 지목되었다. 이 중에서 12명이 학습반 기간에 맞아 죽었으며 82명이 불구가 되었다.
수많은 조선족 간부와 지식인, 그리고 일반인까지도 변절자, 간첩, 반혁명분자, 불순분자로 지목받아 비판을 당하고 혹자는 감옥에 갇히고, 혹자는 조반파가 임시로 설치한 이른바 ‘소 우리’에 구금되어 인신(人身)의 자유를 잃은 ‘죄인’이 되었다.
불법으로 고문실을 차려놓고 수십 가지 형구(刑具)로 형벌을 가하여 ‘지하 국민당 파내기’ 운동을 전 자치주로 확산시켰다. 그 결과 이른바 ‘국민당 지하 당원’ 1453명을 색출했다. 이 가운데 148명이 심사 과정에서 맞아 죽거나 자살했다. 1930년대 초부터 혁명에 참가하였고 옌볜대학 창설 준비위원회 때부터 줄곧 대학을 운영해온 임민호 총장도 이때 제자들에게 맞아 끝내 사망했다.
수많은 간부와 지식인이 마오쩌둥의 이른바 1966년 5·7 지시에 따라 농민으로부터 재교육을 받는다는 명분으로 농촌으로 하방(下放)되었다. 사실은 간부와 지식인에 대한 노동 개조였다.
조선어 교육 폐지
문화대혁명으로 말미암아 조선어 책, 신문, 잡지, 참고 자료 문헌 등은 소각되거나 압수당했고 출판이 중지됐다. 도서관의 조선어 책은 폐기되거나 열람할 수 없게 되었다.
1967년 중공군이 문화대혁명에 참여하면서 옌볜일보사에도 1개 중대 병력이 진주하여 군사통제가 실시됐다. 2월 25일 결국 《옌볜일보》는 폐간됐다. 조선어 신문·잡지 등은 대부분 정간(停刊)되었으며 조선어 방송은 폐지됐다. 조선족 언론인들은 대거 투옥되거나 숙청됐다.
조선어를 존중하는 행위를 수정주의(修正主義) 또는 투항주의(投降主義)라고 비판했고, 조선어 무용론(無用論)을 내세웠다. 이로 인해 옌볜조선족자치주 공문서에서 한글이 사라지고 학교의 조선어문 교육도 폐지됐다.
조선족은 문화대혁명을 통해 인명과 재산상의 피해만 받은 것이 아니라 족보와 서적 등 귀한 자료가 불태워지는 등 조선족의 민족 전통과 문화의 계승, 발전이 중단되었다. 이후 조선족 사회는 마오쩌둥에 대한 개인 우상(偶像) 숭배 세뇌 교육이 철저하게 실시되었다.
1982년 한 보고에 의하면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옌볜에서 4000여 명이 처형되었고, 5000여 명이 부상당했으며, 수만 명이 투옥, 격리되거나 심문을 받았다고 한다. 계급 투쟁이 진행되던 이 시기는 현대인으로서는 이성(理性)과 지성(知性)이 상실된 광란(狂亂)의 시기였다. 적지 않은 이들이 비인간적인 박해를 받다가 울분을 이기지 못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어떤 이는 시달림 끝에 원한을 가슴에 안은 채 세상을 떠났다.
옌볜 지역은 중국의 그 어느 지역 못지않게 문화대혁명이 치열하게 전개되었기 때문에 그만큼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와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피해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 여파로 옌볜의 사회적 심리 형성에 심각한 타격을 안겨줬다.
1976년 마오쩌둥의 죽음과 함께 문화대혁명은 끝났다. 이후 중국은 개혁·개방과 함께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은 여전하다. 중국은 겉으로는 소수민족 우대를 내세우면서도 역사적으로 다양한 민족을 탄압하고 하나의 잣대로 동화시키는 정책으로 일관해왔다. 조선족을 비롯한 소수민족 언어 말살 정책도 계속되고 있다.⊙
월간조선 11월 호 글 : 지명광 자유아시아연대 대표
11.11 트럼프의 우크라 휴전案 "현상태 동결… 1200㎞ 국경은 유럽軍이 지켜라"
우크라 20년간 나토 非가입…러 전쟁 확산 못하게 '억제' 무기는 공급
바이든은 트럼프 취임 전, 70억 달러 나머지 군사원조액 신속 집행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안보 참모 쪽에서 나오는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안의 하나는 현 상태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1200㎞에 달하는 양국간 국경에 나토의 유럽 회원국가들 병력을 두 나라의 국경 완충 지대에 배치하는 것이다.
트럼프 한 측근은 “미국은 훈련과 기타 지원은 맡겠지만, (완충지대에서) 총을 드는 것은 폴란드ㆍ독일ㆍ영국ㆍ프랑스 등 유럽의 나토 병력이어야 한다. 미국 병사는 보내지 않는다”고 월스트리트저널에 최근 말했다. 대신에 미국은 러시아가 평화협정을 깨고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우크라이나에 억제 효과가 있는 수준의 무기는 계속 공급한다는 것이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또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도록, 우크라이나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포함한 어떠한 형태의 동맹체에도 앞으로 20년간 가입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영국의 텔레그래프는 “러시아가 기존에 점령한 영토를 통제하도록 하고, 우크라이나에겐 분명한 안보 보장이 포함돼 있지 않는 휴전안은 우크라이나에선 별로 지지가 없으며, 휴전 협정 체결 시 우크라이나에서 새 선거를 초래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의 정치분석가인 볼로디미르 페센코는 이 신문에 우크라이나로서는 원조 중단의 위험 때문에 트럼프의 휴전안 수용 압력을 거부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현재 동부 전선에서 러시아군 주력부대 병력을 전혀 빼지 않고도, 북한군의 지원을 받아 5만 명의 병력을 규합해 우크라이나가 점령한 러시아 남서부 쿠르스크 주의 탈환에 나선 시점에서 이 휴전안에 동의할지는 의문이다. 반면에 우크라이나는 2014년 러시아에 강제 합병된 동부 돈바스 일부 지역과 크림반도를 포함해서 1991년 독립 당시 국제사회에서 승인 받은 전(全)영토의 수복을 목표로 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취임 전에, 의회가 이미 승인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액 중 나머지 70억 달러의 신속한 집행을 꾀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여기엔 패트리어트 방공(防空) 시스템에 사용될 500기 이상의 요격 미사일과 노르웨이와 미국 방산업체 레이시온이 공동 개발한 사거리 15~30㎞의 지대공 미사일 NASAMS이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방공 시스템과 F-16 전투기의 관리ㆍ보수에 필요한 계약업체들도 트럼프 집권 전에 보내려고 하고 있다.

▲9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영상. /인스타그램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46)는 10일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미국 군사 경제 원조가 곧 끝날 것이라는 내용의 조롱을 담은 동영상을 인스타그램에 공유했다. 38일은 미국 대선에서 뽑힌 각주의 선거인이 워싱턴 DC에 모여서 선거 결과에 따라 자신의 표를 던지는 날인 12월17일까지 남은 기간을 의미한다.
그는 젤렌스키의 얼굴 사진과 함께 ‘관점(POV): 당신, 용돈 끝나는 날 38일 남았어”라는 동영상을 공유했다.
이 동영상은 애초 전(前) 알래스카 주지사로 2008년 미 대선에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이 게재한 것으로, 트럼프와 나란히 선 젤렌스키의 어두운 얼굴 표정에 포커스를 맞추며 점차 화면이 흑백으로 바뀐다. 곧 젤렌스키 앞으로 달러 지폐가 떨어지며 ‘38일 남았다’는 메시지가 뜬다.
트럼프 주니어는 이전에도 우크라이나군이 미국과 유럽에서 제공받은 서방 미사일로 러시아 깊숙이 공격하는 것은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트럼프는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계속 비판했으며, 젤렌스키를 “지구상에서 가장 훌륭한 세일즈맨”이라고 불렀다. 또 미국은 최단 시일 내에서 이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에서 빠져나올 것임을 약속했다.
트럼프는 2023년 10월 우크라이나가 무기 부족으로 곤경에 처했던 때에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 610억 달러가 포함된 총 1060억 달러 어치의 우크라이나ㆍ타이완ㆍ이스라엘 군사 지원 법안에 대해 미 공화당 연방 상하의원들에게 압력을 가해 이의 통과를 수 개월 지연시켰다.
한편,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는 미 대선 이틀 뒤인 7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하고 “확전하지 말라”고 얘기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하루 만에”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그는 2023년 7월에도 자신의 전쟁 종식 방안과 관련해 “젤렌스키에게는 ‘더 이상은 안 된다. 당신 이제 딜(deal)을 맺어야 돼’라고 말하고, 푸틴에게는 ‘당장 딜을 하지 않으면, 젤렌스키에게 더 많이 줄 거야. 우크라이나가 받은 것보다도 더 많은 것을 줄 거야’라고 말하면 된다. 하루면 딜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 하루면!”이라고 말한 바 있다.
조선일보 이철민 기자
11.17 "러시아 편드는 中에 반격"... 나토 항모들, 美 공백 메우러 아·태로
[최유식의 온차이나]
佛 핵 항모 드골호, 伊 이어 아태행
내년엔 영국 웨일스호 항모 들어와

▲프랑스 해군의 샤를 드골 핵 항모. 올 연말 아태지역에 도착한다. /프랑스 국방부
프랑스 해군 핵 항모 샤를 드골호가 올 연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투입된다는 소식에 중국이 긴장하고 있습니다. 드골호는 미국 이외 국가가 보유한 유일한 핵 항모로 유럽 최강의 전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죠. 중국과 영토 분쟁 중인 일본과 필리핀을 처음으로 방문하고 미 항모전단과 합동 훈련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미군은 지난 6월 시어도어 루스벨트호 항모를 중동 지역에 급파한 이후 아태 지역에 항모가 한 척도 없는 공백기를 거쳤죠. 우크라이나와 중동 전쟁에 동시에 대처하느라 손발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지난 6월 이탈리아 경항모 카보우르호를 아태 지역에 파견한 데 이어, 이번엔 제대로 된 전력을 갖춘 드골호를 배치하기로 했어요. 내년엔 영국 프린스 오브 웨일스 항모가 온다고 합니다. 중국 내에서는 유럽 주요국 항모가 아태 지역에 상시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와요.
◇유럽 최강 전력의 핵 항모
국제 해군 전문지 네이벌 뉴스(Naval News)는 11월1일 “드골호 항모 전단이 지중해에서 시작해 홍해, 인도양을 거쳐 아태 지역으로 가는 수개월간의 훈련에 돌입할 예정이며 이 기간에 일본과 필리핀을 방문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프랑스 해군도 11월4일 “드골호 항모 전단이 아태 지역 배치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어요.
드골호는 지난 9월말까지 4개월간 정기 점검과 장비 개선, 핵연료 교체 등의 작업을 거쳤다고 합니다. 10월초에는 지중해에서 작전 능력 회복을 위한 3주간의 훈련을 했어요. 휴식과 보급이 끝나면 지중해를 출발한다고 합니다.
드골호는 취역한 지 24년이나 됐고 배수량은 4만t 정도에 불과해요. 6만t급인 중국 랴오닝호 항모보다 덩치가 작습니다. 하지만 핵 항모인데다 미국식 증기식 사출장치(캐터펄트)까지 갖추고 있어서, 미 항모에 탑재되는 F/A-18 호넷, C2 그레이하운드 수송기 등도 이륙시킬 수 있다고 해요.
함재기로는 라팔 전투기 30대와 E-2C 호크아이 조기경보기 2대를 탑재합니다. 여기에 방공구축함과 방공호위함, 공격형 핵잠수함 등이 따라붙어요. 옛소련식 스키점프대 이륙 방식을 쓰고 있어 조기경보기 탑재가 불가능한 중국 항모는 따라가기 어려운 성능을 갖고 있습니다.

▲국제 해군 전문지 네이벌 뉴스는 11월1일 프랑스 핵 항모 샤를 드골호가 인도·태평양 지역에 배치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네이벌 뉴스
◇중, 미 항모 비운 사이 쌍항모 훈련
프랑스 해군은 이번 항해 기간에 인도, 인도네시아, 호주, 일본 해군과 합동 훈련을 할 예정이에요. 새로 도입한 첨단 장비의 성능 시험도 진행합니다. 미국 항모 전단과의 합동훈련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어요.
미국은 11척의 항모를 보유하고 있지만, 유지보수 중이거나 임무지역으로 이동하는 항모 등을 제외하면 실제 작전에 투입하는 항모전단은 3~4개 정도입니다. 지난 5월 아태 지역에 배치됐던 레이건호 항모가 유지·보수를 위해 미국으로 복귀하고, 6~8월 루스벨트호와 링컨호가 나란히 중동에 배치되면서 아태 지역은 미국 항모가 한 척도 없는 상태가 됐죠.
나토는 이 시점에 이탈리아 항모 카보우르호를 아태지역으로 보냈습니다. 배수량 2만7000t인 이 항모는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F-35B와 해리어 전투기 등 16대를 탑재할 수 있지만, 중국이 두려워할 만한 전력은 아니었죠.
중국은 미 항모전단이 없는 동안 한껏 여유를 부렸습니다. 10월 하순에는 랴오닝호와 산둥호 항모 전단을 동시에 동원해 남중국해에서 사상 처음으로 쌍항모 훈련을 진행했어요. 중국 관영 매체는 “아시아 최강의 수상함 전대’라고 자랑을 했습니다.

▲중국 해군 항모 랴오닝호와 산둥호가 10월말 남중국해에서 처음으로 쌍항모 훈련을 벌이는 모습. /연합뉴스
◇항모 순환 배치로 중국 견제
드골호의 아태 지역 배치 소식은 그 직후에 나왔어요. 미 본토에 머물렀던 조지 워싱턴호 항모도 10월18일 샌디에이고에서 출발해 11월초 아태 지역에 배치됐습니다. 올 연말에는 워싱턴호와 드골호가 아태 지역에 동시에 머무르는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보여요.
나토는 사실상 유럽 항모의 아태지역 순환 배치에 돌입했습니다. 이탈리아 항모가 돌아간 뒤 드골호가 배치되고, 드골호가 내년 상반기에 떠나면 영국 프린스 오브 웨일스호가 와요. 우크라이나와 중동, 아태 지역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미국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중국의 대만 침공과 남중국해 공세를 견제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브렌트 새들러 미국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위원은 “미 해군이 모든 수요에 대응하려면 15척의 항모가 필요하지만, 실제 보유한 건 11척으로 함선과 선원들에 대한 압박이 크다”면서 “해군이 이런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어요. 지금처럼 중동 항모 배치가 시급할 때는 유럽 항모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식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조력자”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국이 러시아 편을 든 것에 대한 반격이라는 분석도 나와요. 지난 7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나토 정상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국은 러시아에 대한 결정적인 조력자”라면서 “나토의 안보에 대한 구조적 도전을 가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중국은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입니다. 미국 항모 전단에 나토 항모가 더해진다면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겠죠. 관영 환구시보는 11월4일 중국 전문가의 발언을 인용해 “나토 국가가 아태 지역에 대한 군사력 배치를 늘리는 건 잘못된 신호를 주는 것으로, 이 지역의 평화와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비판했지만, 그 강도는 높지 않았습니다. 나토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분위기였어요.

▲프랑스 핵 항모 드골호의 아태 지역 배치에 대해 분석한 중국 관영 환구시보의 11월4일 동영상. /환구시보
조선일보 최유식 기자
11.27 이스라엘·헤즈볼라 휴전… 416일만에 포성 멈췄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AP 연합뉴스
26일 이스라엘 안보 내각이 레바논 친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와의 휴전안을 승인했다. 양측간 전쟁이 발발한지 416일 만이다.
CNN·하레츠 등에 따르면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소집한 이스라엘 안보 내각은 오후 5시30분(현지 시각)부터 2시간30분 가량 회의 끝에 헤즈볼라와의 휴전을 최종 승인했다. 이에 따라 27일 오전 4시부터 60일간 양측의 공습과 교전이 중단된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휴전 승인 직후 대국민 연설에서 휴전을 결정한 세가지 이유를 직접 설명했다. 그는 “첫째, 이란의 위협에 초점을 맞추고 둘째, 이스라엘군을 재충전하고 보강하며 셋째, 전선을 단절시켜 가자지구에 하마스를 고립시킬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헤즈볼라를 수십년 후퇴시키는데 성공했다”며 “수장 하산 나스랄라와 고위관리, 수천명의 테러리스트들을 모두 제거했으며 그들이 국경 인근에 구축한 군사 기반시설 대부분을 파괴했다”고 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또 “헤즈볼라가 휴전 협상에 어긋나는 재무장을 시도할 경우 우리는 모든 형태의 군사력을 사용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핵심 쟁점이었던 ‘헤즈볼라가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이스라엘이 대응할 자유’를 보장하라는 이스라엘 측 요구를 중재자인 미국이 받아들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이스라엘과 레바논은 이날 휴전 협상 타결 직전까지도 공습을 주고 받았다. 이스라엘방위군(IDF)에 따르면 헤즈볼라는 이날 오후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 지역에 로켓 15기를 쏘아올렸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는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10명이 사망했다.
조선일보 김지원 기자
12.20 아프리카서 열린 동화 같은 선거
세계 70여 국에서 대선·총선·지방선거 등을 치르고 총유권자만 40억명에 달해 ‘글로벌 수퍼 선거의 해’로 불린 2024년이 저물고 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라지만 여러 나라에서는 선거발(發) 혼돈이 되풀이됐다.
미국 대선은 극한의 진영 갈등 속에 유력 후보 암살 시도라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영국·프랑스·일본에서는 집권 세력이 정국 안정을 위해 조기 총선 승부수를 던졌다 소수파로 전락하며 혼란이 가중됐다. 러시아와 베네수엘라에서는 집권 세력의 노골적 개입으로 독재 연장 수단으로 악용됐다. 선도적 민주주의 국가로 꼽혀온 한국에서는 선거 시스템을 불신한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선거관리위원회에 군인을 투입하는 믿기 힘든 상황이 펼쳐졌다.
하지만 지구촌 선거 뉴스가 부정적 일색만은 아니었다. 면적은 한반도의 2.7배, 인구는 대구보다 조금 많은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지난 10월 선거를 돌이켜 본다. 대통령 선출권을 가진 국회의원 57명을 뽑는 선거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독립 후 58년 동안 집권했던 여당 보츠와나민주당이 기존 34석에서 30석을 잃으며 참패했다. 소수 야당 연합체인 민주변화연합이 36석을 쓸어 담으며 압승했다.
보츠와나는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보석’으로 불려왔다. 세계 최대 규모로 매장된 다이아몬드가 창출하는 국부를 바탕으로 의회민주주의가 정착했고 사회는 안정된 데서 유래됐다. 그런데 경기가 침체하고 실업률이 급등하며 민생이 악화하자 유권자들은 가차 없이 표로 집권 세력을 심판했다. 예상을 뒤엎은 결과에 국제사회까지 긴장했다. 부정선거·선거 불복·쿠데타·내전 등을 겪으며 최빈국으로 전락한 비극을 겪은 다수 아프리카 나라처럼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제기됐다.
하지만 집권 여당은 곧바로 결과에 승복했다. 집권당을 이끌던 모퀘에치 마시시 대통령은 정적이자 후임 대통령인 두마 보코 야권 연대 대표에게 축하 인사를 보내고 신속한 정권 인계 절차를 진행했다. 미국이 국무부 성명으로 당선자를 축하하면서도 평화적 정권 이양에 나선 대통령에게까지 찬사를 보낼 정도였다. 보츠와나의 정권 교체는 집권 세력의 내부 분열로 여당 유력 인사들이 야권에 가세하는 등 ‘정치공학적 측면’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통령 임기가 최대 10년인 이 나라에서 최초로 선거로 여야 정권이 바뀌면서 대통령이 5년 만에 물러나는 자체가 ‘처음 가보는 길’이었다.
이 순조로운 정권 교체는 아프리카에 대한 통념을 깨는 데 일조했다.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보석’이라는 명성에 조금의 흠집도 나서는 안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보츠와나는 2014년 북한의 한반도 평화 위협과 인권 유린을 비판하며 선제적으로 외교 관계를 끊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위기에 처한 선거가 그래도 민주주의의 꽃임을 몸소 보여주며 혼돈의 지구촌에 작지만 강한 울림을 줬다.
조선일보 정지섭 기자
地球村 消息 202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