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韓 離脫住民(脫北民) 이야기 2024-3/ 10.11 지난달 北주민 1명 서해 '목선 귀순' - 12.19 유엔 北인권 결의 20년 연속 채택, 지금도 죽는 北 병사들것”
北韓 離脫住民(脫北民) 이야기 2024-3/
10.11 지난달 北주민 1명 서해 '목선 귀순'…"남쪽 국경 요새화" 안 통했다

▲지난해 10월 군 당국이 동해상에서 소형 북한 목선을 예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쪽과의 완전한 단절' 지시에 따라 북한이 국경 봉쇄 조치에 나섰지만, 정작 남측 루트를 통한 주민들의 귀순이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달 17일 북한 주민으로 추정되는 남성 1명이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무동력 목선을 타고 남하해 귀순했다. 지난달 20일 동해선에서 북한군이 ‘도보 귀순’을 한 지 한 달도 안 돼 귀순 사례가 또다시 발생했다.
이 남성은 발견 당시 혼자 목선을 타고 있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 군 관계자는 "군은 북한 인원 추정 1명의 신병 확보 후 관계 기관에 인계 했다"면서 "관련해 북한군의 특이 동향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군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북방에서부터 감시장비로 목선을 식별한 뒤 동선을 추적해왔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목선이 남측 해역으로 넘어온 뒤 귀순을 유도했다.
앞서 김명수 합동참모의장은 1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북한이 남북 통로 4곳을 올해 8월까지 완전히 차단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김 의장은 "외부 유입 차단, 내부의 유입·탈출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앞서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도 "견고한 방어 축성물들로 요새화 공사를 진행해 남쪽 국경을 영구적으로 차단, 봉쇄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당국이 이렇듯 철저하게 국경을 차단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음에도 정작 남쪽 루트를 통한 주민들의 탈북 시도는 잇따르고 있다. 지난 8월 8일 강화 교동도 부근에서 두 명의 남성이 서해 중립수역을 넘어 귀순을 시도했으나 1명만 남측에 도달했다. 같은 달 20일엔 동부전선인 강원 고성군에서 북한군 1명이 귀순했다. 북한이 최전방 지역에 지뢰를 다수 매설하고 있는 가운데 동해선 옆 지뢰밭을 걸어 탈북한 사례였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10.21 16년째 "북한 인권" 외친 85세 베를린 할머니
1989년 11월 9일 동서독 분단의 상징이던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1990년 3월 독일민주공화국(동독)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자유로운 선거가 치러졌다. 그해 8월 31일 동서독 통일조약이 베를린에서 서명됐고, 10월 3일 독일은 공식적으로 통일됐다. 34년 전에 벌어진 역사적 사건이다.
베를린에 우뚝 솟은 브란덴부르크 문은 동서독 분단 시절에 공산주의 체제의 억압과 통제를 상징했다. 이 문에서 남쪽으로 약 1km 거리에 독일 주재 북한대사관이 있다. 북한 인권을 촉구하는 베를린 시민들의 자발적인 집회가 지난 2009년 9월 11일부터 매주 대사관 앞에서 열리고 있다. 처음엔 단 2명이 시작했지만, 매주 목요일 오후 2시부터 1시간 동안 진행하는 집회에 적게는 5명, 많게는 10여명이 함께한다.

▲북한이 간첩 혐의를 씌워 체포한 뒤 10년 넘게 억류하고 있는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선교사. 이들은 결백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들은 무사귀환을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연합뉴스 중앙포토]

▲독일 베를린 시민들이 북한대사관 앞에서 북한 인권을 촉구하며 시위를 하는 모습. [김정삼씨 제공]
대부분 50~80대 남녀인데, 전·현직 사회복지사·의료인·교사·경제학자·가수·건축가·목사 등 다양하다. 2013년 10월 김정욱 선교사를 시작으로 2014년 김국기·최춘길 선교사까지 한국인 목회자 3명이 간첩으로 몰려 북한에 납치되자 이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로 이어졌다.
주독일 북한대사관 앞 매주 집회
"피랍 선교사 3명 석방하라" 외쳐
악을 보고 침묵하면 그 자체가 악
집회는 성경 잠언 31장 8절('너는 말 못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을 함께 봉독하면서 시작하고 구호를 외친다. "북한 기독교인들에게 자유를! 북한 주민에게 핵 대신 쌀을! 모든 주민에게 넉넉한 양식을! 모든 강제수용소 해체! 북한 주민에게 언론의 자유를! 북한 주민에게 여행의 자유를! 북한 주민의 인권 보장! 김정욱을 위한 자유! 김국기를 위한 자유! 최춘길을 위한 자유! 김일성은 신이 아니다! 김정은은 핵폭탄과 미사일을 멈춰라!" 참가자들은 피켓과 확성기를 들고 독일어와 영어로 구호를 수차례 외친다. 매번 찬송가를 부르며 집회를 마무리한다.
16년째 이 집회를 이끄는 게르다 에를리히(85) 할머니와 연락이 닿았다. 동독 출신으로 베를린 장벽과 약 400m 거리에서 살았다는 그는 북한의 종교 탄압 실상을 폭로한 강연을 듣고 마음에 와 닿아 행동에 나섰다고 한다.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 정권의 끔찍한 강제수용소 만행을 기억하는 그는 탈북자의 강제수용소 증언을 접하면서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09년 9월부터 독일 주재 북한대사관 앞에서 북한 주민의 인권 보장을 촉구하며 시위를 해온 게르다 에를리히(85)씨가 지난해 11월 김영호 통일부 장관의 서한을 읽고 있다. 에를리히 씨등 베를린 시민 10여명은 북한에 납치된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선교사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도 10년 넘게 해오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대사관 직원들이 "당신들의 행동은 무의미하다"며 협박하고 집회 사진을 촬영해 독일 외교부에 항의했지만, 지금껏 흔들림 없이 합법 집회를 계속해왔다. 할머니는 "기독교적 자선과 정의감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겸손해했다.
1972년 독일로 갔던 파독 간호사 이명숙(75)씨는 한국인 중에 유일하게 집회에 동참하고 있다. 14년째 베를린에 거주하는데 "타국민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는 마음으로 북한 인권 활동에 충실한 독일분들에게 감동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에를리히 할머니는 지난해 암 진단을 받고 수술까지 했지만, 다행히 암을 잘 극복해 지금도 집회를 이끌고 있다.
김정욱 선교사의 형 김정삼(63)씨는 "1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동생의 생사 확인과 송환을 위해 노력하는 독일 베를린 시민들의 사랑과 은혜에 큰 위로가 된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일면식도 없는 피랍 한국인 선교사들과 박해받는 북한 주민들을 위한 베를린 시민들의 용기 있는 행동을 보면서 숙연해진다. 2016년 북한인권법을 제정하고도 아직 북한인권재단을 출범시키지 않고 있는 국회의 직무유기를 생각하니 부끄러울 따름이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에를리히 할머니께 보낸 편지에서 "'악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그 자체가 악이다'라고 했던 디트리히 본회퍼(1906~1945년) 목사의 정신을 보여주신 여러분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고 했다. 김 장관은 시위 참가자 13명에게 일일이 이름을 새긴 목도리를 지난해 성탄절 선물로 보냈다.

▲1989년 11월 독일 베를린 장벽 인근 브란덴부르크 문에 모여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을 자축하는 독일 시민들. [중앙포토]
북한이 남북 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로 선언하면서 남북통일에 먹구름이 끼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에를리히 할머니는 이렇게 회신했다. "독일 통일을 되돌아보면 1989년 1월 19일 당시 동독 국가원수 에리히 호네커는 베를린 장벽이 100년 동안 더 서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로부터 10개월도 안 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독일은 통일됐어요. 예측할 수 없는 일이 하나님 말씀에 따라 이뤄졌습니다. 한국의 민주 정부 아래에서 통일이 이뤄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비폭력 투쟁과 모든 방법을 활용해 통일을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면 기도하세요."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11-08 죄수복 입은 김정은 철창 안에…스위스에 걸린 광고

▲이제석 광고연구소는 6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 북한 대표부 건물 외벽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감옥으로 보내야 한다는 내용의 광고 포스터를 부착했다고 밝혔다. 이제석 광고연구소는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 북한인권단체 PSCORE와 공동으로 김정은 정권의 반인륜적 인권탄압의 범죄혐의들을 국제 사회에 널리 알리고 그에 대한 법적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거리 캠페인을 전개했다. (사진=이제석 광고연구소 제공) 2024.11.07 서울=뉴시스
스위스 제네바 주재 북한대표부 건물에 내걸린 죄수복 입은 김정은 포스터가 화제다.
6일(현지 시각) 이제석 광고연구소는 제네바 북한 대표부 건물 외벽에 광고 포스터를 부착했다. 김정은을 감옥으로 보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가슴 부분에는 ‘한 명을 체포해 수백만 명을 구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는 주황색 죄수복을 걸친 채 쇠창살을 붙들고 있다. 철창에 갇힌 김 위원장 뒤에는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도 있다.
이제석 광고연구소는 과거 제네바 유엔 유럽본부에서 열린 유엔 인권위원회 회의장에서도 북한의 인권 실상을 고발했다.
이들은 ‘일가족 사살용 권총 과녁판’ 캠페인을 진행했다.
과녁판 포스터에는 말을 함부로 했다는 이유로 총살당한 북한 일가족의 실화를 담았다.
포스터는 회의가 열린 메인 홀과 각국 기자, 비정부기구(NGO) 관계자들이 회의를 지켜보는 홀의 벽면에 수십장 붙여둔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이제석 대표는 언론에 “북한에서는 죄인은 물론 직계 가족도 함께 처벌하거나 가족이 보는 앞에서 사살한다”고 했다.
이어 “인권 문제를 국내에서 다루면 정치적으로 오해받거나 대중이 관심을 두지 않아 이번에 유엔 인권위원회가 열리는 국제사회에 호소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제석 광고연구소는 북한인권단체 PSCORE와 공동으로 반인륜적인 김정은 정권의 인권 탄압 범죄를 국제 사회에 널리 알리고 있다.
[서울=뉴시스]
11.13 대북전단 살포 놓고 접경지역 ‘민·민, 민·관 갈등’
대북전단 살포를 둘러싼 ‘민민 갈등’ ‘민관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지목한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 존중을 내세워 대북전단 살포를 적극적으로 막지 않고 있다.
이런 결과, 탈북민 단체 등은 북한 주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 등을 들어 접경지역의 반대 속에서도 ‘살포 강행’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접경지역 주민들은 대북전단 살포로 인해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과 오물풍선에 시달리고 있고, 전쟁 위험에까지 내몰리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경기도 파주시에서 대북전단 살포 시도에 맞서 민통선 주민들과 시민단체가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익진 기자
경기도 파주에서는 지난달 31일 납북자가족모임이 대북전단을 공개적으로 날리겠다고 예고한 뒤 탈북민 단체와 함께 강행에 나서자 민통선 지역 주민들이 트랙터 20대를 몰고 나와 집회를 벌이고,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시위를 벌이며 물리력을 동원해 저지시켰다.
그러자 이 모임은 경찰에 다시 집회신고를 내고, 이달 중 다시 파주에서 대북전단을 날리기로 한 상태다. 이에 민통선 등 파주 주민과 시민단체 및 파주시·경기도 등 지자체는 계속 이를 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접경지역인 경기도 연천에서도 민과 관이 뒤엉켜 갈등하고 있다. 연천군의회가 전국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접경지역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조례를 제정했지만, 연천군수의 거부권 행사로 결국 폐기되자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연천군의회는 지난 9월 27일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연천군 남북협력 및 접경지역 안전에 관한 조례안’을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하지만, 김덕현 연천군수의 재의 요구로 같은 달 29일 재의결에 부치면서 결국 부결돼 조례는 폐기됐다. 김 군수는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 위배, 소관 사무 원칙 위배, 법률의 위임 없는 주민의 권리 제한 등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군의회에 재의를 요구했다.
이에 연천군 주민들은 대북전단 살포로 인한 국지적 충돌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자 조례안을 발의했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윤재구 군의원은 의회 회기가 시작되면 다음 달 중 해당 조례를 재발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실제 북한은 10년 전인 2014년 10월 한 탈북민 단체가 연천에서 대북전단이 담긴 풍선을 날리자, 풍선을 향해 고사총 사격을 가한 적이 있다. 당시 우리 군은 대응 사격에 나섰고, 고사총탄이 면사무소 마당 등에 떨어지면서 주민들이 대피소로 대피하고 남북 간 일촉즉발의 군사적 대치상황이 빚어졌었다.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 및 오물풍선 도발에 대한 대응 방안을 놓고 ‘적전 분열’ 양상으로 대립하고 있는 요즘이다. 이럴 때일수록 민민과 민관의 혼연일치 대응이 필수적이다. 정부는 사회적 논의를 열어 국론을 하나로 모아 일사불란하게 맞서기 위한 묘안을 조속히 찾아야 한다.
중앙일보 전익진 사회부 기자
11.16 "북한에서 이 방송 들었다며 모인 탈북자들… 그게 제 보람이죠"
대북 라디오 방송 20년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대표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가 지난 8일 강화도 집에서 방송용 마이크를 잡고 있다. 벽면에는 유튜브 방송 등에 활용할 생각으로 북한 사람들한테 받은 노동당 내부 자료를 빼곡히 붙여 놓았다. 항암 주사를 맞는 탓에 머리는 모두 빠졌고, 정수리 가까이엔 2017년 뇌종양 수술의 흉터가 10cm가량 남았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1962년 북한 자강도에서 출생해 두 살부터 열일곱 살에 군대 가기 전까지는 평양에 살았다. 황해남도에서 사병으로 10년, 황해북도에서 장교로 9년 복무했다. 탈북해 중국에서 3년, 한국에 들어와 서울 양천·강서에서 24년을 보냈다.
“그렇다면 서울에서 제일 오래 산 나는 명실공히 대한민국 사람 아닌가요?”
북한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김성민(62) 자유북한방송 대표를 지난 8일 강화도에서 만났다. 지난 9월 ‘길면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그는 북한 땅이 보이는 이곳에서 인생을 정리하고 있다. 평생 소원이던 시집 한 권과 자서전을 남기는 게 마지막 과업이다. 밤마다 가장 센 진통제를 먹고 잠자리에 들지만, 2004년부터 매일 두 시간씩 북녘을 향해 ‘자유의 소리’를 전하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자유북한방송은 올해 스무 살을 맞았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라는 것, 단맛과 쓴맛이 있지만 아예 모르고 눈을 감는다면 너무 억울한 거 아니에요? 북한에 있는 우리 가족들한테 알려줘야죠. 저 사람들은 자기가 짐승이라는 거 몰라요. 나도 그랬어요. 나 혼자 잘살아서는 사는 게 아니죠. 북녘 사람들 사람답게 살라고 해온 일인데, 그걸 민주화 운동이라고 하대요.”
평양 출신 탈북자는 매우 드물다. 평양에 산다는 자체가 특권층이라는 뜻. 북한 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시인이던 부친(김순석)은 김일성종합대 교수를 지냈고, 김 대표 역시 620훈련소 선전대 작가로 복무한 인민군 대위였다. 당과 수령에 충성했지만 어떤 누명을 썼고 국경을 넘었다. 먹고사는 문제가 아닌 자존심 때문이라니, 사선을 넘어선 이유치곤 낭만적이다. 듣고 보니 지난 24년의 한국 생활, 20년의 자유북한방송도 그랬다. 예고된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기엔 김 대표는 여유로웠고 활기찼고 웃음이 많았다.
◇트럼프-김정은 무조건 만날 것
탈북자들이 모여 만든 첫 민간 대북 방송인 자유북한방송은 매일 두 시간 남짓 북한에 단파 라디오 방송을 내보낸다. 김 대표는 지금도 북한과 선이 닿아 있다. 매주 토요일 북쪽 사람들과 전화 통화를 하고 생생한 분위기를 전해 듣는다. 대북 현안부터 물었다.
-트럼프 2기가 곧 시작됩니다.
“어린 김정은이하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만난 사진 한 장이 북한에 가면 선전 효과가 어마어마합니다. 김일성·김정일이가 미국 대통령 만나는 게 소원이었을지 모르는데 그걸 세 번이나 했죠. 이제 그 꼴을 또 어떻게 봐줄지....”
-미·북 대화가 다시 열릴까요.
“기정사실이라고 봅니다. 김정은은 은근히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게 자기 이미지 올리는 데 최고라는 걸 아니까. 트럼프도 김정은을 다스려 인기를 올리겠다는 생각이겠죠. 둘은 철썩 붙는 자석과 쇠붙이예요.”
-남북 정상회담도 할까요.
“윤석열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문재인 전 대통령은 남북미 대화 국면에 지지율이 높았습니다.
“김정은은 민족의 적이고 북한은 자유 통일의 대상이에요. 김정은과 마주 앉는 건 김정은 좋은 일만 하는 거예요. 북한 사람들이 ‘역시 우리 수령님 위대하다. 미국 대통령, 남조선 대통령 마음만 먹으면 다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할 텐데, 그걸 거들어줘서는 안 되죠.”
-현 정권 지지율이 20% 아래로 떨어졌는데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요.
“저는 인기가 올라갈 거라고 봐요. 윤 대통령이 추구하는 4대 개혁, 탈북자가 봐도 맞거든요. 요새 좌파들 보면, 곧 죽을 놈인 나도 꿈자리가 사나워요. 야당 떠드는 건 탈북자가 보기에도 상식적으로 안 맞아요.”

▲김성민 대표가 지난 7월 받은 국민훈장 동백장. 탈북자 정착과 인권 향상에 기여한 공으로 훈장을 받은 탈북자는 김 대표가 처음이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7월 14일 ‘북한이탈주민의 날’이 처음으로 법정기념일이 됐다. 김 대표는 그동안 탈북자 지원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 때처럼 원칙 없는 남북미 관계는 탈북자 김성민으로서는 절대 반대입니다. 윤 대통령은 자유 통일의 원칙을 계속 지켜야 할 겁니다.”
-북한은 계속 오물 풍선을 보내고 남북 연결 도로도 폭파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한국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요. 한국 드라마를 통해서요. 우리가 전단 날리고 페트병에 USB 담아 보낸 것들이 너무 많이 퍼졌어요. 김정은은 한국을 차단하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는 위협감을 느꼈을 거예요.”
-체제를 흔들 정도라는 건가요.
“그래서 두 국가론을 만들어냈고, 대한민국을 적(敵)이라고 하는 겁니다. 문제는 오물 풍선인데, 풍선은 원래 하늘에서 터뜨리는 게 목적이에요. 그런데 오물 풍선은 땅에 내리는 게 목표예요. 폭약, 화학물질을 넣는 것을 상정해 연습을 한 것으로 봅니다.”

▲북한 김정은이 낸 ‘국가경제발전전략’. 김 대표가 북한 사람에게 받아 제본한 비밀 자료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통일하지 말자? 간첩인가?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통일하지 말자’는 얘기를 했는데.
“그 사람 간첩 아니에요? 나 진짜 그렇게 생각했어요. 임종석은 (1989년) 평양에 임수경을 보낼 때부터 북한이 생각지도 못한 일, 김일성이 기대하지도 않은 일을 했어요.”
김 대표가 김형직사범대학에 다니던 때였다. 대학생들도 ‘장군님의 혁명 전사가 남조선에서 저렇게 열심히 활동하고 있구나’라고 감격했다고 한다. “임수경이 와서 북한 사람들에게 통일의 희망을 줬거든요. 장군님을 따라 허리띠 조이면 얼마든지 통일할 수 있다는 무력 통일을 말하는 겁니다. 그 허황된 꿈에 부채질을 한 거예요.”
-통일 포기론이 김정은의 두 국가론과 맞닿아 있다고 보나요.
“지금 북한 사람들은 김정은의 두 국가론에 얼떨떨해 있어요. 갑자기 김일성·김정일의 말을 다 뒤집어 버린 거니까요. 김정은도 내부 설득이 필요해서 헌법 개정 같은 세부 내용을 공개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런데 남한에서도 ‘통일하지 말자’고 한다? 김정은을 따르라 말고 달리 해석할 게 있나요.”
-북한에서 두 국가론이 흔들리는 건 아닌가요.
“북한은 김정은이 말하면 그대로 하는 겁니다. 토를 달 수 없어요. 북한 헌법절인 12월 27일에 개헌 내용을 공표할 것 같아요. 그사이 북한 사람들을 세뇌하고 있다고 봅니다. "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북한의 김정은과 만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유튜브
-김정은이 선조의 뜻을 뒤엎을 정도로 자신감이 붙은 건가요.
“자신감과 체제에 대한 위험. 비중은 후자가 더 크다고 봅니다. 자기가 곤란해질 수 있다는 공포가 더 큰 거예요. 김여정, 김주애도 자리 잡게 해야 하지, 여러 불안이 있을 겁니다.”
-김주애가 후계자인가요?
“북한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면 맞는 거예요. 북한 사람들은 주애가 처음 나올 때부터 후계자라고 봤어요. 그렇게 생각하라고 김정은이 주애를 데리고 나온 거죠. 김정은은 백두혈통 유지가 가장 큰 목표거든요. 북한 사람들은 김주애 이름도 몰라요. ‘사랑하는 자제분’이라고만 하니까. 김일성 때 김정일을 공개하고, 김정일 때 김정은을 내비친 방식이 그랬어요.”
-북한군 러시아 파병은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북한은 17세에 군에 가서 일반병은 10년, 특수부대는 13년 복무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나갔겠죠. 아무리 전쟁터여도 외부 소식을 주입해야 하잖아요. 저희가 ‘자유를 찾아서 전선을 탈출하라’ 이런 요지의 콘텐츠를 만들어 우크라이나 대사관 등을 통해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쿠르스크 전선에서 맞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북한군 병력 /그래픽=양인성
◇탈북자들의 맏형 된 평양 엘리트
한국에 들어올 때만 해도 북한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게 될 줄은 몰랐다. “탈북자 중에 자주포를 다루던 대위는 내가 처음이다 보니 정착금을 남보다 3배 더 받았어요. 그걸로 탈북자들에게 밥과 술을 사주면서 ‘백두한라회’라는 소모임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황장엽 선생이 ‘김진(김 대표가 북한에 있을 때 본명)이 데려오라’고 했답니다.”
-황장엽 선생이 후계자로 지목했다면서요.
“그건 과장된 얘기일 겁니다. 그렇지만 황 선생 따라 탈북자동지회 사무총장을 하면서 방송도 시작하게 됐지요. 그 할아버지 안 만났으면 내 인생도 달라졌겠죠. 냉면집 하고 돈도 많이 벌고 했을 텐데(웃음).”
-황 선생이 탈북자들의 구심점이었죠.
“지금도 못 잊는 게 있어요. 황 선생 북에 있는 가족과 친척까지 몰살됐다고 소문이 많았잖아요. 저희가 우연히 6촌 되는 분을 찾았어요. 제가 중국까지 직접 가서 그 가족을 모셔왔더니, 황 선생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나한테는 다 가족이지. 탈북자가 다 가족이야.’ 어, 미치겠더라고요.”
이 대목에서 김 대표는 눈물을 글썽였다. “여하튼 그런 분이셨어요. 탈북자들을 다 가족이라 생각했고 북한 인권 운동가로 키우려 하셨죠. 북에서 높은 지위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말해온 인간 중심의 철학에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어 존경을 받았습니다. 탈북자 중에 제일 훌륭한 사람은 일 열심히 하고 돈 많이 번 사람, 고향 가서 떳떳하게 ‘남조선에서 돈 벌어 왔수다’ 하는 사람이라고 하셨죠.”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고 황장엽(오른쪽) 노동당 비서의 양아들로 불렸다. /조선일보 DB
자유북한방송 20년 동안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탈북자들이 직접 증언하는 ‘독재의 하수인에게 경고한다’라는 코너가 있었어요. 북한 애들을 살기등등하게 비판했지요. 그것 때문에 미 국무부의 재정 지원이 끊길 수도 있었는데, 예산과 지조 사이에서 고민하다 그래도 방송 계속하자고 결심했어요.”
이 방송을 듣고 탈북했다는 사람이 많이 찾아왔다. 하나원에서 나와 일주일 만에 일하겠다고 온 탈북자도 있었다. “군대 제대한 놈도 6개월은 논다”고 돌려보냈는데 한 달 만에 다시 왔다. 나중에 남파 간첩이라는 게 들통나 북으로 달아났다. 신변 보호를 받을 만큼 위험한 순간이 많았다. “북한 주민과의 네트워크를 계속 관리해 왔고 성과도 많았어요. 평양시 주민등록 자료, 공개 총살 동영상, 북한 신종 화폐 같은 ‘특종’도 많이 했지요(웃음).”
-처음엔 한국에서 무엇을 할 계획이었나요.
“삼촌이 두 분 계신데 내 또래 자식들이 있을 테니, 만약 그 사람들 힘들면 내가 도와주리라 생각하고 왔어요. 북에서 군 복무 19년인데 뭔들 못 하겠냐며. 또 시집 한 권 내겠다 생각했어요. 당시 북한에선 김정일이 허락해야 시집을 낼 수 있었거든요.”
-탈북자들의 맏형으로 불리는데.
“밥 사주고 나눌 수 있는 거 나누고 그게 전부입니다. 하나 자부하는 건 악질 강도 사건 빼고는 탄원서 다 써줬어요. 50대 초반부터 주례를 섰는데, 지금까지 100커플쯤 했나 봐요. 내 담당 경찰 서너 명이 결혼할 때도 주례를 맡았고요.”
-평양 출신 엘리트가 왜 탈북했나요.
“하자면 긴 얘기인데, 누명을 썼어요. 작가적 양심, 자존심을 뭉개버리니 창피하고 치욕스러워서. 남한에 가서 내가 당한 얘기 북에다 떠들겠다고 생각했어요.”
-중국에서 금방 공안에 붙잡혔죠.
“그때는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중국에서 바나나를 처음 먹어봤어요. 껍질 벗기는 것도 몰랐는데 원숭이가 바나나를 껍질 벗겨 먹는 걸 보고 내가 짐승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상? 그까짓 거는 그 순간 산산조각 납디다.”

▲외출할 때는 벙거지를 쓰기도 한다. 김성민 대표가 집 현관에 앉아 햇볕을 쬐며 웃고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맛없는 커피에 오늘도 놀란다
그는 강제 북송되는 열차 화장실에서 몸을 던져 살아남았다. 그날부터는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해 왔다. 의사인 조선족 여성을 만나 결혼했고, 딸(28)을 하나 얻었다. 강화도 그의 방 침대 맡에 딸 사진이 꽂혀 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제일 잘한 게 있다면 딸 잘 키운 것, 그거 하나예요. 돈이 없어 학원도 못 보냈는데 국어는 늘 100점 맞았어요. 연구원인데 제1저자 논문이 댓 개 됩니다.”
-아버지 하는 일을 돕기도 하나요.
“다른 아빠들처럼 자랄 때 신경을 못 썼어요. 처도 그렇고 딸도 어릴 적에는 제가 방송에 나오는 걸 싫어했어요. 지금도 제 기사는 아예 안 본대요.”
-한국에 와서 제일 놀란 게 있다면.
“지금도 매일 놀라요. 엊그제는 칸타라고 편의점에서 파는 커피요. 아니 이렇게 맛없을 수가 있나 하고.”
폭소가 터졌다. 구태여 맛없는 것까지 만들어내는 풍요가 놀랍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음료수 몇 개나 있는지 아는 사람 있을까요. 하나원에서 음료수를 넣어주는데 열 달간 매일 바뀌더라고요. 무한한 정치적 자유는 또 어떻고요. 대선 때였나, 잡지에 주요 정치인 ‘9룡’을 꼽아놨더라고요. 9명이 나가면 한 놈은 되고 8명은 죽겠구나 생각했어요. 이렇게 모든 게 넘쳐나는데 대통령 지지율은 17%가 나오는 이상한 나라죠(웃음).”
-아쉬운 거라면요?
“섭섭한 거, 아쉬운 거 없어요. 여기 와서 못 해본 것도 없어요. 자유북한방송 오래 하는 거 만만치 않다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지켜졌고요.”
인터뷰하는 동안 그의 휴대전화가 계속 울렸다. 하도 사람에 부대끼다 보니 공기 좋은 곳으로 피했는데, 요즘도 손님이 많다. 지난 6월 그의 생일에는 100명쯤 모였다고. 2017년 뇌종양 수술을 받고 깨어나니 ‘폐암에서 전이됐고 그게 더 심각하다’고 했다. 두 번째 덤으로 사는 삶이었다. 얼마 전 병원은 그의 간에도 3cm짜리 병변이 9개로 늘었다고 진단했다.
“이번에 시한부 판정 받았을 땐 나흘간 물도 못 마셨어요. 그러다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준비할 시간이 6개월이나 남았다는 뜻이잖아요. 차근차근 정리하고 남은 역할 하고, 좋은 책 내고 갈 거예요. 나는 이렇게 살았노라, 이렇게 살기 위해 한국에 왔노라, 말하고 싶어요.”
이날 아침 썼다는 시 ‘盟誓(맹세)’는 이렇게 흘러간다. “다름 아닌 내 것임에도/ 날 때부터 우리에게 없었던 그것/ 시장통의 물건이 아니면서도/ 우리의 부모들이 빼앗긴 그것/ 그것 없이는 살아도 죽은 목숨인/ 숨결이며 가치인 자유는/ 고향으로 안고 갈 우리의 盟誓.” 그가 쓴 시마다 ‘고향’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짐승도 죽을 때 되면 난 자리로 돌아간다고 하잖아요?”
평양에 살 때 옥류관 냉면은 원 없이 먹었다고 했다.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냉면집은 필동면옥. 기자도 ‘평냉’을 그곳에서 배웠다 하니 다음엔 거기서 만나자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톡이 왔다. “서울 나가면 연락드릴게요. 필동! 기대하세요.”
오늘도 김 대표는 마이크 전원을 켤 것이다.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보내드리는 자유북한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조선일보 강화=김경화 기자
11.19 가을 감을 먹으려다 문뜩 떠올리는 남북한 체제 차이
사유 재산 인정되는 남한은 겨울철에도 딸기‧수박 생산 가능
비료‧농약 부족하고 집단농장 위주인 북녘에선 간부용만 생산
독재의 땅에서는 과일 한 알도 절대 제대로 생산할 수 없다
감 따는 계절 가을이 왔다. 갑자기 웬 감 소리냐 하실 분도 있겠지만 나는 한반도의 과일 중에서 감을 제일 좋아한다. 물론 한국에서는 감 외에도 사과·배·포도·귤·무화과·밤·대추 등 수많은 과일이 나오지만 나는 감을 제일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 온 후부터 가을 하면 푸른 하늘과 빨간 단풍을 먼저 생각하는 다른 사람과 달리 달달한 감을 먼저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의 가을은 감처럼 달콤한 계절이라고 말한다. 맛있는 감이 없다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가을 하늘과 가을 단풍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나는 감이 무르익는 가을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아마 나 혼자서 해마다 감을 30㎏ 이상씩 소비할 것이다. 그래 봤자 10㎏짜리 3박스다. 하루 나가서 일하면 1년 동안 실컷 사 먹을 만큼의 돈을 버는 땅이니 부담도 없다. 또 고마운 분들이 보내 주는 것도 많다.
북한에서 내가 한 달 노임 280원을 받아 장마당에 나가면 겨우 사과 다섯 알을 사고 30원이 남던 때와 비교하면, 하루 8시간 일해서 1년 내내 과일을 사 먹을 수 있는 한국이 바로 천국이다. 한국 국민은 이미 천국에 사는 셈이다.
북한엔 과일이 없으니까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이 와도 평범한 인민은 과일 한 알도 먹어 보지 못한다. 오히려 북한에서의 가을은 춥고 배고픈 이 겨울을 또 어찌 살아남을 것인가를 걱정하는 근심과 걱정의 계절이다. 그래서 나는 당당히 말한다. 한국은 생천국이고 북한은 생지옥이다. 인간이 살아서 맛보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뜻이다.
한국에 와서 처음에는 살이 딱딱한 단감은 안 먹고 홍시만 사 먹었다. 이제는 단감도 좋다. 그래서 한국의 가을은 정말 단맛 나는 계절이다. 내가 좋아하는 술 안주도 감 몇 알이면 더 바랄 게 없다.
모든 것이 풍족한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당연한 걸 가지고 뭘 이리 수선을 떠나며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국 사람 중에는 자기들이 얼마나 좋은 땅에서 사는지 모르고 이 땅을 ‘헬(지옥)조선’이라고 헐뜯는 어리석은 자들이 있기에 이런 글을 쓴다.
사실 나는 북한의 무역 일꾼으로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많은 과일을 먹어 봤지만 정작 한반도에서 나는 감은 한국에 와서야 처음 먹어 봤다. 북한에서는 감을 구경도 못 했다. 물론 북한에도 감은 있다. 황해남도 연선 지대에서 조금 난다. 하지만 일반 백성이 감을 먹는 건 꿈도 못 꾼다. 이제는 평양에서도 감나무를 일부 재배하지만 정원의 관상용 정도다.
물론 탈북인 중엔 북한에서 감을 먹어 본 사람이 있겠지만 북한 주민 2300만 명 중에는 감을 보지도 못한 사람이 90%가 넘을 것이다. 북한의 대중적인 과일은 사과·배가 거의 전부다. 밤도 거의 없어서 추석 때는 장사꾼들이 중국에서 들여와야 제삿상에 겨우 몇 알 올린다.
대한민국 국민은 정말 복 받은 사람들이다. 한국 사람들은 한반도의 절반인 저 북한에서는 이 아름다운 가을철에도 과일 한 알 먹어 보기 힘들다고 하면 믿지 못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한국과 북한은 기후 차이가 크기 때문에 북녘엔 과일이 적을 수밖에 없다고 아는 척을 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남북한의 기후 차이는 조금 알아도 북한이라는 사회를 너무 모르기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남북한의 모든 차이는 기후나 온도의 차이가 아니라 서로 다른 정치 체제가 빚어낸 불행한 결과라는 것부터 알아야 한다. 북한도 한국처럼 토지 개인화(사유화)를 허용하고 농산물 생산과 판매의 자유를 주었다면 주민이 저렇게 1년에 과일 한 알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거지 나라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에는 그 자유가 있었기에 농민이 스스로 각종 과일을 재배하여 동지 섣달에도 딸기·수박·바나나를 먹을 수 있는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진짜 기적을 이루어 낸 것이 아닌가. 북한에도 그런 자유가 있었다면 황해남도 지역에서 감 농사를 대대적으로 하여 얼마든지 감을 먹을 수 있었을 게 자명한 일이 아니가.
물론 북한도 집단농장마다 과수 작업반을 두어 포도나 배 과수원을 가꾸기는 한다. 그러나 비료와 농약이 턱없이 부족하고 농민이 자기 것처럼 가꾸지를 않으니 과수 재배란 사실 말뿐이고 간부용으로 조금 생산할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감 소리를 하다가 남북 간의 정치 문제로 넘어간 것은 우리가 항상 먹는 과일 한 알에도 자유가 깃들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즉 과일도 독재의 땅에서는 절대로 날 수가 없다는 그 평범하고도 위대한 진리를 배부른 한국 국민에게 알리고자 함이다.
하루빨리 북한에도 자유화의 따뜻한 바람이 불어서 사랑하는 나의 자식과 형제들도 달콤한 감을 원 없이 먹는 그날이 오기를 오늘도 하늘에 간절히 빈다.
다음은 2016년 휘문고 주관 제48회 희중문학상 시(詩) 부문 대상인 ‘월탄상’을 수상한 박상현 군의 ‘연시(軟枾)’ 전문이다. 고유어로는 연감인 연시는 ‘물렁하게 잘 익은 감’을 뜻한다.
“나는 또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당신 말 끝 초롬한 이슬처럼/ 꿀처럼 달근히 떨어지는 말투에/ 나는 또 넋을 놓아 버렸습니다// 눈에 잠겨 새하얀 옥상에/ 발자국을 삼기며 딛는 걸음과/ 뭉근한 그리움으로 내 밤은 또 하얘집니다.”

▲ 김태산 前체코주재북한무역 대표·남북함께국민연합 상임대표스카이데일리
11-21 유엔총회, 20년연속 북한 인권결의안 채택
“러 파병 숨긴 北정권, 무책임”
북한 내 인권 침해 문제를 규탄하는 북한인권결의안이 20년 연속 유엔총회 제3위원회(인권 문제 담당)에서 채택됐다.
유엔총회 제3위원회는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회의를 열고 북한인권결의안을 컨센서스(표결 없는 전원합의)로 채택했다. 유엔 회원국들은 “북한이 지난 1월 대한민국과의 통일을 더는 추구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며 “이산가족 문제를 포함한 인권 상황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또 3대 악법(반동사상문화배격법·청년교양보장법·평양문화어보호법)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한다며 폐지 또는 개정을 요구했다.
딜런 랭 제3위원회 미국 고문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사실을 언급하며 “북한 정권은 주민들에게 파병 사실을 숨기고 있다”며 “북한 정권이 자국민에 대해 책임감 없이 행동하는 또 다른 사례”라고 비판했다. 로버트 킹 전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이날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글로벌코리아포럼에서 “북한 주민의 복지를 우려하는 나라로서 북한의 적법성에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하원은 이날 북한인권법 재승인법안을 가결 처리했다. 이 법안은 연장되지 못해 2022년 8월 30일 종료됐다가 2년여 만에 되살아났다. △북한인권특사 임명 △북한 내 정보 자유를 위한 방송 매체 지원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 등이 골자다.
권승현 기자 ktop@munhwa.com
11-21 북한인권법 뭉개는 野, 20년 연속 유엔 결의도 부정하나
유엔이 북한의 조직적인 인권 유린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20년 연속 채택함으로써 북한 인권 개선에 대한 회원국들의 단합된 의지를 재확인했다. 유엔 제3위원회는 20일 한국 등 61개국이 공동 제안한 결의안을 컨센서스로 채택했다. 국제법상 구속력은 없다 해도 유엔 회원국의 단합된 요구라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 유엔은 2005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고, 2013년엔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를 설립해 다음 해엔 북한의 반인도주의 범죄 시정 요구 보고서도 냈다.
12월 유엔총회 본회의에 보고될 북한인권결의안에는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 규정이 이산가족 등의 인권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지적이 추가됐다. 한류를 차단하기 위한 북한의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이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위반된다고 비판하면서 폐지 또는 개정도 권고했다. 결의안에는 북한의 인권침해와 학대문제 관련 고위급회의 개최를 권고하는 내용을 담아 대북 압박 강도를 높였다.
정작 한국에선 2016년 북한인권법이 제정됐지만, 실태 조사 등 북한 인권 증진 활동을 위한 북한인권재단 설립(제10조)은 8년째 이뤄지지 않는 일탈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재단 설립을 외면했고, 지금도 더불어민주당은 이사 추천을 회피하는 꼼수를 부린다. 통일부는 19일 국회에 이사 추천 요청 공문을 보냈는데, 이번이 14번째라고 한다. 인권 문제는 보편적 관심사이지만 진보 진영이 더 관심을 두어왔다. 민주·진보 정당을 자처하는 민주당의 이런 기류는 김정은 심기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종북 행태 아니고는 설명하기 힘든 개탄스러운 일이다.
문화일보 사설
11.25 수백만 北 주민 구하려 김정은을 '철창'에… 나의 '생쇼'는 계속된다
<<제네바서 北 인권 시위한 이제석>>
수감된 김정은 포스터 부착
러에 군대 파병한 金 비판
北 인권은 전쟁과 세계 평화의 문제
흙수저 출신의 광고계 스타
20년 가까이 공익 광고 제작
'굴뚝 총' '이순신 동상 가림막'
'한미 동맹 70년' 등 숱한 화제작
"모두를 살리는 광고 만들 것"

▲지난 19일 서울 변두리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난 이제석 소장. 최근 제네바 북한 대표부 건물 외벽에 부착했던 김정은 철창 포스터를 자신의 스튜디오 벽에 붙이며 활짝 웃었다. 세계적인 그라피티 예술가 뱅크시가 떠오른다고 하자 "내가 뱅크시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광고로 노벨상을 받겠다"며 웃었다. /고운호 기자
자기 업을 ‘생쇼’라 부르는 이 남자는 얼마 전 스위스에서 ‘목숨 건 생쇼’를 했다. 지난 6일 제네바 주재 북한 대표부 건물 외벽에 철창에 갇힌 김정은 포스터를 붙여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죄수복 가슴팍엔 다음 같은 문구가 적혔다. ‘ARREST ONE, SAVE MILLIONS(한 명을 체포해 수백만 명을 구하라).’
막 귀국한 이제석을 창 밖으로 무덤이 보이는 서울 변두리 작업실에서 만났다. 자칭 ‘대구 촌놈’인 그는 20대에 세계 유수 광고상을 휩쓸며 ‘뉴욕을 씹어 먹은 광고 천재’로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 목숨 걸고 한 ‘생쇼’
-위험천만한 일을 했더라.
“나도 당황스러웠다. ‘도시락 폭탄’ 제조가 내 임무인데, 폭탄 던지는 일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다(웃음).”
-국제 인권 단체 피스코어(PSCORE)가 주도한 캠페인인데.
“제네바 유엔 본부에서 UPR(북한 인권에 대한 보편적 정례 검토 심사)’이 열리기 하루 전 단행하기로 한 건데, 피스코어 회원들이 갑자기 현지에 올 수 없다고 해서 내가 직접 한 것이다. 달리기도, 싸움도 못 하는 내가(웃음).”
-초록색 철문이 진짜 교도소처럼 보였다.
“북한 대표부 건물의 여러 출입구 중 찾아낸 곳이다. 막다른 골목이라 차라도 한 대 들어오면 꼼짝없이 갇히는 구조인 데다, 북한 직원이 네댓 명씩 나와 있어 타이밍 잡기가 어려웠다.”
-붙잡히면 큰일 아닌가.
“총을 쏘진 않겠지만 물리적 충돌은 벌어지겠지. 마침 직원들이 모두 자리를 비운 사이에 포스터를 붙이고 영상으로 촬영할 수 있었다.”
-’한 명을 체포해 수백만 명을 구하라’는 문구는 직접 만들었나?
“이번 캠페인 핵심 주제다. 대북 전단의 ‘때려죽일 X’ 같은 표현은 국제사회에서 설득력을 얻을 수 없다. 북한 주민들은 우리가 품고 가야 할 대상이고, 그들이 거대 사이비 집단의 교주에게서 벗어나길 희망하며 만들었다.”
-반향이 매우 컸다.
“욕먹을 각오로 만들었다. 한 체제의 수장을 감방에 넣자는 것부터가 폭력적 접근 아닌가. 그런데 북한이 러시아에 어린 군인들을 총알받이로 파병한 때문인지 해외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국내도 마찬가지였다. 댓글이 거의 국민 단합, 국민 통합 수준이더라(웃음).”
-북의 표적이 될 수도 있는데.
“그래서 우리 작업실 위치를 어디 가서 공개하시면 안 된다. 하하!”

▲지난 6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 북한대표부 철문에 '철창에 갇힌 김정은' 포스터를 붙여놓은 모습. 주황색 죄수복의 가슴팍에 '한 명을 체포해만 수백만 명을 구하라'는 의미의 영문 글귀(ARREST ONE, SAVE MILLIONS)가 담겼다. /이제석광고연구소 제공
◇ 北 인권은 ‘방 안의 코끼리’
-이번이 처음이 아니더라. 2014년엔 제네바 유엔 본부 회의장에 ‘일가족 사살용 권총 과녁판’ 포스터를 수십 장 부착해 화제가 됐다.
“정치범 수용소 출신의 탈북자 신동혁씨 증언을 바탕으로 NKDB라는 단체와 함께 제작했다. 말을 함부로 했다는 이유로 총살당한 북한 일가족의 실화를 담았다.”
-’어떤 아기들은 감옥에서 태어난다’는 제목의 설치물도 있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는 가족 단위 수감자가 많아 거기서 태어나는 아기들이 있다. 아무런 죄도 없이 수용소에서 태어나 그곳을 집이라 믿고 평생을 사는 아이들 이야기다. 철창으로 만든 요람에 사람이 다가갈 때마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게 했다.”
-유학 시절이던 2009년엔 ‘미사일 대신 옥수수를(Meals, Not Missiles)’이란 문구의 광고가 워싱턴포스트지에 실렸다.
“옥수수 먹으라고 준 돈 다 어디에 썼냐고 물으며 북 정권을 비판한 광고였다.”
-북한 인권 문제에 왜 관심을 갖게 됐나?
“나도 처음엔 관심이 없었다. 여성, 장애인 문제도 여전하고 이제 동물의 권리까지 중요해진 마당에 굳이 북한까지 갈 필요가 있나 생각했다. 그러나 탈북자들 증언을 들으니 역사책에나 나올 만큼 끔찍하고 심각한 일들이 자행되고 있었다. 이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면 우파로 보는 시선이 있다.
“나는 환경, 반전(反戰) 광고를 훨씬 많이 만든 사람이다. 왼쪽도 오른쪽도 아니면 중도라고 하던데, 왼쪽 오른쪽을 다 하는 것도 중도라고 생각한다(웃음).”
-북한 인권 문제를 불편해하는 정권도 있다.
“그래서 그런가 지난 정부에선 일감을 거의 얻지 못했다(웃음). 그러나 북의 인권은 이념 문제가 아니다. 전쟁과 세계 평화의 문제다. 영어식 표현으로 하면 ‘방 안의 코끼리’. 방 안에 거대한 코끼리가 한 마리 있는데도 우리는 마치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제석이 제작한 국제환경단체 NRDC 홍보용 옥외광고. '대기오염으로 한해 6만명이 사망합니다'란 문구가 적힌 이 광고는 일명 '굴뚝총'으로 불리며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인 2007년 원쇼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제석 광고연구소 제공

◇ 사람을 살리는 광고
-돈 안 되는 광고를 왜 줄기차게 하나?
“그건 왜 사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모두를 살리는 광고, 세상을 바꾸는 광고를 만들고 싶다고 했더라.
“뉴욕 시절 ‘시티 하비스트’라는 식량 기부 자선단체와 일할 때 배고픈 사람 밥 먹게 해주고, 얼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옷을 입혀주는 광고를 만들며 공익 광고의 힘에 매료됐다.”
-스물다섯 살이던 2007년, 대기오염을 경고한 ‘굴뚝총’으로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인 원쇼 페스티벌에서 수상하며 광고계 총아로 떠올랐다. 뉴욕 초대형 광고 회사에서 스카웃돼 일했는데 왜 한국으로 돌아왔나.
“빚도 못 갚는 사람들에게 신용카드 만들라고 강요하는 광고, 껍데기만 살짝 바꿔놓고 신제품이라고 떠벌리는 광고를 만들며 죄책감을 느꼈다. 아이디어는 봇물 터지듯 분출하는데 회사가 시키는 일만 하자니 답답하고 괴로웠다.”
-한국 유명 광고 기업의 스카우트 제안도 거절했더라.
“높은 연봉과 직책은 탐났지만 당시 피크였던 나의 감성과 아이디어만 갖다 바치고 버림받을 것 같더라(웃음). 망하더라도 내 이름을 걸고 차곡차곡 쌓아가고 싶어 편의점 테이블 3개 가지고 창업했다.”
-이제석 광고의 80%가 공익 광고라던데, 돈은 어디서 벌어 충당하나?
“간판 대행, 인테리어, 자동차 정비 등 여러 일을 한다. 이 건물 1층이 공장이다. 내가 하고 싶은 광고를 만들기 위해 직접 목장갑 끼고 ‘노가다’ 하는 현장이다(웃음).”

미국 워싱턴 매사추세츠가에 위치한 주 워싱턴 한국문화원 외벽에 한미동맹 70년 기념 게시물이 설치돼 있다. 1953년 미국 의장대와 2023년 대한민국 의장대가 각각 성조기와 태극기를 들고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통해 한미동맹의 역사와 소중함을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했다. /대통령실 제공

이제석 광고연구소가 제작한 경찰청 옥외광고 '누나만 믿어'.
◇ 나를 짓밟아준 사람들에게 감사
-이제석 광고는 재미있다. 광화문 이순신 동상 가림막 광고 ‘장군님은 탈의 중’이 대표적이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재미없는 광고는 만들지 않는다. 탈의 중인 장군님은 점잖은 서울시 공무원들, 근엄한 교수님들 호통에 무산될 뻔했는데 오세훈 시장이 오케이해 성사될 수 있었다.”
-’누나만 믿어’ ‘총알같이 달려가겠습니다’ 등 경찰청 광고도 히트했다.
“제가 만나본 공무원 중 가장 열려 있고 크리에이티브(창의적)한 그룹이 경찰이었다. 상식을 뛰어넘는 범죄자들을 잡아야 해서 그런가?(웃음)”
-좋은 광고의 기준은?
“의뢰인의 과녁, 대중의 과녁, 나 자신의 과녁을 다 뚫어야 베스트다.”
-비결이 있나?
“단순 명쾌한 돌직구가 사람의 뇌를 찌른다.”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설치한 현대차 광고도 베스트 중 하나인가?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을 발판 삼아 전광판을 레이싱 게임 보드로 만든 경우다. 게임을 하려고 몰려든 행인들 자체로 엄청난 광고 효과를 일으켰다. 평범한 걸 다르게, 특별하게 봐야 성공한다.”
-공간을 활용하는 엠비언트 기법을 특히 좋아한다고.
“‘있는 것 활용하기’가 광고쟁이 최고의 능력이다. 발상의 전환, 무가치한 사물을 쓸모 있게 만드는 희열이 있다. 스포츠 중에서도 유도를 제일 좋아한다. 유도는 땅, 지구의 중력을 이용해 상대를 넘어뜨리는 최고의 격투기다.”
-작년 4월 윤석열 대통령 방미 때 한미 의장대가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나란히 선 형상의 ‘한미 동맹 70년’ 광고도 워싱턴 한국문화원 외벽을 활용한 것이었다.
“건물 위에서 나부끼는 국기를 보고 떠올린 아이디어다. 1953년 미국 의장대와 2023년 한국 의장대를 대비해 70년 동안 변치 않은 동맹의 굳건함을 강조했다.”
-기발한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오나?
“표현 욕구? 배고프면 젖병을 냅다 던지는 아기였단다(웃음). 청개구리 기질도 강했다. 남들이 우르르 몰리는 데는 안 간다. 아무리 맛집이어도 줄 서서 먹는 집엔 안 간다.”
-작업실 문에 ‘생각’이란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더라.
“광고는 몰입 싸움이다. 그 주제에 빙의될 때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목덜미가 찌릿해지는 순간이 있다. 물론 사인이 잘못 올 때도 있다, 하하!”
-학창 시절 문제아였다던데.
“공부 못하고 수업 태도도 불량해 많이 맞았다. 만화를 잘 그려 계명대 미대에 갔고, 뒤늦게 공부에 맛 들여 수석으로 졸업했는데 국내 기업들은 원서를 받아주지 않더라. 500달러 들고 뉴욕으로 날았다.”
-뉴욕에서 출세한 뒤 복수하는 심정으로 돌아왔겠다.
“스펙으로 검증할 수밖에 없는 기업들 심정도 이젠 이해한다(웃음).”
-’광고 천재 이제석’이란 책의 마지막 문장이 압권이더라. ‘국밥집 사장님을 포함해 나를 짓밟아준 분들께 이 책을 바친다.’
“나를 비웃고 냉대하고 문전박대해 준 사람들 덕에 판을 뒤엎을 힘을 얻었다. 벼랑 끝까지 올라간 자만이 달콤한 열매를 맛볼 수 있다.”
-82년생치고는 꼰대 같은 말이다.
“대구 촌놈이 뉴욕에서 살아남은 건, 모든 공모전에 뛰어들어 죽자 사자 경쟁했기 때문이다. 거저 주어지는 거 말고, 산꼭대기까지 올라가 쟁취하는 트로피를 좋아한다. 감동의 크기는 고난에 비례한다.”
-’생쇼’ 못하는 대통령실에도 한 말씀.
“권력은 이미지에서 나온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흙수저 출신의 광고천재로 숱한 화제작을 만든 이제석 소장은 "나를 비웃고 냉대하고 문전박대해준 사람들 덕에 판을 뒤엎을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이제석
1982년 대구 출생. 계명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SVA)에 편입해 광고를 전공했다.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인 원쇼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뒤 클리오 어워드, ADDY 어워드 등 국제 공모전에서 29개 메달을 땄다. JWT, BBDO 등 미국의 초대형 광고회사에 다니다 2009년 이제석 광고연구소를 창업, 환경·인권·장애 등 공익광고를 제작하고 있다.
조선일보 김윤덕 기자
12. 03 北 강제실종 범죄 뒤엔 국가보위성
“알아볼 것 있으니 잠깐 가자”… 어른·아이 안 가리고 체포
⊙ 강제실종 이유? 탈북 관련-연좌제-한국 등 외부 접촉-체제 비판 순
⊙ “패고픈 대로 패고, 때리고 싶은 대로 때려”(2019년 탈북민)
⊙ 체포·구금되면 가족들도 생사·행방 몰라
⊙ 주 제네바 북한 대표부에 포스터 광고… ‘한 명만 구속되면 수백만 명 해

▲11월 6일 주 제네바 북한 대표부 철문에 부착된 광고 포스터. ‘ARREST ONE, SAVE MILLIONS(한 명만 구속되면 수백만 명이 해방될 수 있다)’라는 글귀가 보인다. 사진=이제석광고연구소
북한 강제실종자의 80% 이상이 북한의 비밀경찰·정보기관인 국가보위성 담당하에서 실종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인권 조사기록 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이 지난 10월 31일 공개한 ‘북한 강제실종범죄 조사’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강제실종은 국가의 지원·묵인 등으로 개인을 납치·감금한 뒤 생사나 소재지를 은폐하는 것을 뜻한다. TJWG는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62명을 3년 5개월간(2021년 1월~2024년 5월) 심층 면담한 뒤 113명의 강제실종 과정을 확인했다.
탈북민 62명 면담… 113명 강제실종 분석

▲탈북 관련’ 혐의가 강제실종의 가장 주된 이유로 지목됐다. 사진=《존재할 수 없는 존재》
이들의 강제실종 이유를 분류해 보면 ‘탈북 관련’(45명, 39.8%), ‘연좌제’(29명, 25.7%), ‘한국 등 외부 연락·접촉 혐의’(10명, 8.8%), ‘김정은 일가와 체제 비판 혐의’(8명, 7.1%), ‘종교적 혐의’(6명, 5.3%) 등이었다. 이 중 특히 김씨 일가와 체제 비판 혐의로 체포될 경우 처형이나 정치범수용소 수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서는 짚었다.
보고서는 강제실종이 김정은 시대에도 여전하다고 밝혔다. 보고서가 분석한 실종자 113명 중 35명(31.0%)은 김정은이 집권한 2011년 12월 이후 사라졌다. 김정은 집권 이전과 비교해 강제실종 범죄가 늘었는지 줄었는지 가늠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이 같은 반인권 범죄가 대를 이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은 확인된 셈이다.
실종자의 연령대는 20~30대 청년층이 38.9%(44명)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충격적인 것은 10세 미만 아동도 전체 실종자의 11.5%(13명)나 차지했다는 점이다. 진술인들은 이들 아동의 강제실종 이유로 ‘탈북 시도’ ‘탈북 준비’ ‘연좌제 처벌’ 등을 꼽았다. 보고서는 “부모와의 동반 탈북 시도나 부모와 함께 연좌 처벌돼 강제실종되는 아동들의 문제에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개질의, 명시적 비판, 강력한 행동이 특히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종자 성별은 남성 66명(58.4%), 여성 47명(41.6%)으로 나타났다. 여성 비율은 북한처럼 강제실종이 심각한 중남미(6〜30%)에 비해서도 높은 수치다. 여성 비중이 유독 크게 나타난 이유로는 ▲중국으로 탈북한 뒤 체포·송환된 사례 ▲가족 구성원 체포 당시 여성이 동반 수감되는 연좌제 ▲명시적인 기준 없는 무분별한 강제실종 등이 꼽혔다.
진술을 철회한 1명을 제외하고 면담에 응한 61명의 최종 탈북 연도는 김정은 시기(2012년~현재)가 36명, 김정일 시기(1994~2011년)가 25명이었다. 실종 전 주 거주 지역은 양강도(28명), 함경북도(16명), 평안남도(5명) 순이었으며, 평양 출신도 1명 있었다.
국가보위성, 체포영장 남발
강제실종 피해자를 최초로 체포·연행한 ‘가해 기관’으로는 국가보위성, 국경경비대, 인민군 보위국, 사회안전성, 비사회주의검열그루빠 등이 지목됐다. 실종자 113명 중 절반이 넘는 62명(54.9%)은 국가보위성에 의해 사라졌다. 체포·연행 이후 피해자에 대한 가해 주체를 추적한 결과까지 합산하면 국가보위성이 범죄에 개입한 사례는 92명(81.4%)까지 늘어났다. 국가보위성은 북한 국무위원장 직속 정보기관이자 비밀경찰기관이다. 내각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이라 할 수 있다.
체포 이유와 피의사실의 고지를 받을 권리,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독립된 사법부의 통제 등 자유 박탈에 필요한 ‘적법절차’ 전반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2016년 황해북도 사리원시에서 패싸움에 연루된 한 남성이 임의동행으로 집을 나섰다가 실종된 사건이 발생했다. 한 진술인은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道)보위부와 시(市)보위부 사람, 동 담당 보위원이 연행하러 온 거예요. 와서 족쇄를 채우지는 않고, ‘그냥 알아볼 것이 있으니까 잠깐 가자, 옷 입고 나와라, 문을 다 잠그라’ 해가지고 차 태워서 갔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는 거예요. 다시는 못 돌아왔다는 거예요.”
중국산 휴대전화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여러 번 조사를 받은 적 있다는 한 진술인은 국가보위성 관계자와 임의동행하고서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이렇게 설명했다. 이 진술인은 2019년 양강도 혜산시에서 탈북했다고 밝혔다.
“(무엇 때문에 데리고 가는지) 이야기 안 해주죠. 집에 와서 ‘알아볼 게 있는데 같이 가자’ 하면, 저 같은 경우는 ‘어디서 잘못됐네’ 생각하죠.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일단 확인할 게 있어서 그러니까 같이 가자’ 해서 들어가면 그제야 이야기를 하거든요. ‘너 중국 핸드폰 내놔라.’ 없다고 하면 그다음부터 패고픈 대로 패고, 때리고 싶은 대로 때리죠.”
진술처럼 북한에서는 체포·연행 단계에서부터 강제실종이 시작되는 경우가 흔하다. 북한의 형사소송법은 영장 없는 체포를 금지하고 있다. 다만, 영장은 사법부 재판관이 아니라 검사가 발급할 수 있게 했다. 수사기관이 법원 승인 없이 사람을 체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더욱이 국가보위성은 자체적으로 검찰국을 보유하고 있어 국가보위성 소속 수사원이 신청만 한다면 얼마든지 체포영장을 남발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러나 김정은 말 한마디에 국가 조직 전체가 좌우되는 북한 현실에서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피구금자 생사·행방 몰라

▲10월 31일 발간된 《존재할 수 없는 존재》 보고서. 사진=전환기정의워킹그룹
국가보위성에 의해 체포·연행되면 피해자의 생사나 행방은 그야말로 오리무중(五里霧中)이 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진술인들은 인맥을 동원하거나 뇌물을 바치는 등 불법 수단을 동원하지 않고는 면회는커녕 피구금자의 소재나 생사조차 알기 어렵다고 한다. 또 당국에 문제나 의문을 제기할 생각도 하기 어렵다고 한다. 문제를 제기했다가 본인들도 끌려가 강제실종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북한 형사소송법은 ‘체포, 구속처분결정을 하였을 경우에는 피심자에게 알려주며 체포, 구속한 때부터 48시간 안으로 체포, 구속의 사유와 구속장소를 그의 가족과 소속단체, 해당 사회안전기관에 알려준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이 또한 유명무실이다.
2011년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형부와 함께 체포됐다가 조사받고 혼자 풀려난 한 진술인은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자신이 체포돼 있었다는 사실을 가족들이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진술인의 말이다.
“(중국에 갔다가 돌아오기로 한 날짜가) 지나도 안 오니 집에선 속 타는 거죠. 5일 더 지나도 안 오니까 (우리 가족은) ‘분명 무슨 일이 생겼다’고만 생각했대요.”
2000년 양강도 혜산시에서는 중국으로 북한 서적을 넘겨 팔던 한 남성이 밤중에 끌려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 진술인에 따르면, 그의 친척 중 한 명이 보위지도원들을 잘 알고 있어서 부탁해 보니 그가 구금된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2015년 중국에서 북송된 아들이 함경북도 청진시 도보위부에 구금된 것을 보위부에서 근무하는 지인을 통해 알게 된 한 진술인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도보위부는 면회 같은 거 없어요. (아들이) 결핵이 왔는데 서 있는 것도 힘들어한다는 거에요. 그 보위부에 있는 사람 통해서 돈 줘서 알아보니까 자기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거지. 그래서 ‘빼어만 달라, 요구하는 돈을 여기서 어떻게든 내보낼 테니까 빼어만 달라’ 사정해도 힘들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몇 달 있다가 다시 알아보니까 완전히 다 죽어가는 사람을 정치범수용소로 보냈다고 그러는 거예요. 살 것 같지 못하다고 그러더라고요.”
국가보위성 담당하에 구금 중이던 사람이 사망한 것으로 진술인이 이해한 사례는 총 9건이었다. 이 중 2건만 사망 통보를 받고 나머지 7건은 사망 통보조차 받지 못했다. 그마저도 9건 중 8건은 당국이 가족에게 시신을 인도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고 시신 인도 사례는 1건에 그쳤다.
탈북주민 강제실종엔 러·중도 책임
보고서는 23명(20.4%)의 강제실종이 중국과 러시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분석했다. 따라서 중국과 러시아 정부도 강제실종 범죄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은 국제사회의 우려와 비판에도 1990년대 이후 한결같이 탈북 난민을 검거해 북송하는 정책을 유지해 왔다. 북한이 코로나–19로 2020년 1월 국경을 전면 봉쇄해 강제송환을 중단한 상황에서도 중국 당국은 중국 내 각지에 머물던 탈북민을 감시했고, 이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경우 검거하거나 구금해 왔다. 그리고 2023년 북한이 국경 일부를 다시 열자 이들의 강제송환을 재개했다. 2023년 10월경 중국은 탈북민 500~600명을 대거 북송했다.
러시아 정부는 북한 사람에게 난민 지위 인정심사 신청을 원천봉쇄하지는 않으며, 일부는 제3국을 통해 한국으로 보내지기도 한다. 하지만 러시아 인권단체 시민지원위원회에 따르면, 2011~19년 북한 사람 207명이 러시아에서 난민 지위 신청을 했으나 러시아 당국은 그중 2011년 1명에게만 난민 지위를 부여했다. 같은 기간 북한 사람 305명이 임시망명을 신청해 213명만 승인받았는데, 임시망명 신청 건수도 2011년 43건, 2012년 64건에서 2018년 23건, 2019년 20건으로 감소했다. 러시아 법원은 북한 사람에게 추방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러시아 내 북한 국가보위성 요원에게 인계해 북송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北 극단적 군사화로 기본 자유 억압”
우리 정부는 지난 11월 7일 스위스 유엔 제네바 사무소에서 열린 북한의 제4주기 ‘보편적 전례 인권검토(UPR)’ 에서 북한 인권 실태에 일침을 가했다. UPR은 유엔 회원국 193개국이 돌아가면서 자국의 인권 상황과 권고 이행 여부 등을 동료 회원국에 심의받는 제도다.
외교부·통일부·법무부 북한인권기록보존소 관계자로 이루어진 정부 대표단은 이 자리에서 “북한이 극단적 군사화로 기본적 자유를 억압하고 부족한 자원을 북한 주민의 민생이 아닌 불법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탕진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 착취마저 이뤄지고 있다”고 직격했다.
이어 억류자와 강제송환 탈북민 문제에 대해서도 따져 물었다. 정부 대표단은 “북한은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이산가족 문제를 즉각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라며 북한에 10년 넘게 억류된 김정욱·김국기·최춘길 선교사 등 우리 국민 6명의 신속한 석방을 촉구했다. 여성과 여아를 포함한 강제송환 탈북민들이 고문과 같은 비인도적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할 것도 권고했다.
반면 북한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 북한 대표단 수석대표인 조철수 주 제네바 북한 대표부 대사가 ‘중앙재판소 디렉터’라고 소개한 박광호 국장은 이날 사법 분야 답변에서 “공화국에는 정치범도, 정치범수용소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에서 이른바 정치범수용소를 운운하는데 우리 형법과 형사소송법에는 정치범이나 정치범수용소라는 표현이 없으며 반국가범죄자와 교화소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또 정치범수용소나 교화소에서 온갖 고문·학대를 겪은 경험을 국제사회에 알린 다수 탈북자에 대해서는 “비법적으로 국경을 넘는 이들 중 대다수는 훈계하고 다시 안착할 수 있게 돌봤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악행을 일삼다가 쫓겨난 자들과 조국을 배반하다 못해 전복하려는 ‘인간쓰레기’들도 있다. 이들은 준엄한 심판을 결코 면할 수 없다”고 했다.
‘철창 속 김정은’ 공익 포스터
▲지난 11월 6일 유엔 제네바 사무국 앞에 걸린 김정은 광고 포스터. 사진 속 인물은 우크라이나 출신 모델 마리아 첼노주코바(서울 락스퍼국제영화제 홍보대사·오른쪽)씨. 사진=허은도 감독
한편 UPR을 하루 앞둔 6일, 수의(囚衣)를 입고 철창 속에 갇힌 김정은의 모습이 담긴 광고 포스터가 제네바 북한 대표부 건물 문에 부착됐다. 북한인권 전문 민간단체 PSCORE와 이제석광고연구소가 공동으로 북한의 인권 탄압에 항의하고 그 실태를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한 공익광고 포스터를 제작해 주 제네바 북한 대표부 철문에 부착하는 공익 캠페인을 벌인 것이다.
포스터에는 수의 차림의 철창 속 김정은 모습 옆에 ‘한 명만 구속되면 수백만 명이 해방될 수 있다(ARREST ONE, SAVE MILLIONS)’라고 영어로 썼다.
앞서 10월 29일에는 제네바 북한 대표부 앞에서 우리 측 북한인권 단체들의 피켓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국제탈북민연대, 징검다리, 보이스오브노스코리안유스(Voice of North Korean Youth), 국군포로가족회,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등은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점검 허용 ▲국제사회의 구호물자 반입 및 국제기구 실사 허용 ▲정치범수용소·성분제 폐지 ▲반동사상문화배격법·청년교양보장법·평양문화어보호법 등 3대 악법 폐지 등을 북한에 촉구했다.⊙
월가조선 12월 호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12.04 “다음 노벨상, 공산 전체주의에 저항하는 北에서 나올 것”
⊙ 《채식주의자》 번역한 데버라 스미스, 반디 《고발》 번역
⊙ “출간 뒤 北 반디 색출 작업… 北 관계자 우리 측에 위장 접근”(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 “기만과 허위와 학정과 굴욕의 이 땅에서의 탈출을 말이네”(〈탈북기〉 中)
▲반디의 소설집 《고발》. 사진=월간조선
지난 10월 한국 문학계는 전례 없는 경사를 맞았다. 소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등을 쓴 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의 작품세계를 두고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강의 소설을 영어로 옮긴 영국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의 역할도 컸다. 스미스는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번역해 2016년 세계적인 권위의 문학상인 맨부커상(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한강과 공동 수상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스미스는 2017년 북한 작가의 소설을 영어로 옮겨 해외 문단에 소개하기도 했다. 바로 반디의 소설집 《고발》이다. 이 책은 7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출신성분 좋은 北 거주 남성 작가
반디는 필명이다.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 남성이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탈북 작가가 아닌 북한에서 활동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 체제를 비판하고 고발하는 작품을 남몰래 써왔다.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글을 쓰는 탈북 작가는 여럿 있지만, 북한에 거주하면서 이런 글을 쓰는 작가는 사실상 반디가 유일하다.
반디는 ‘출신성분’도 좋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에 들어가려면 글솜씨는 물론 출신성분도 고려 대상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작가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이유다.
당의 입맛에 맞춰 글을 쓴다면 최소 밥 굶는 일은 없다. 나름대로 안락한 생활을 거부하고 반디는 ‘역사적 트라우마’에 정면으로 맞서 글을 썼다. 그가 쓴 원고는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와 중국과 북한을 오가는 브로커 등의 도움으로 국내로 들어올 수 있었다. 이 원고는 지난 2014년 《고발》 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됐다.
당초 도 대표는 반디에게 탈북을 권유했다고 한다. 그러나 반디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처자식이 딸려 있어 혼자만 나올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가족과 동반 탈북도 제안했지만, 성공 가능성이 희박해 단념했다.
김일성 체제는 ‘마귀의 마술’
▲영국의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 사진=뉴시스
“오씨는 다시 한 번 몸서리를 쳤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오늘까지 바로 그 마귀의 마술 속에서 진실과는 판이한 완전히 전도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고발》 속 단편 〈복마전〉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복마전〉은 ‘1호 행사’로 불리는 김일성 수령의 지방 순시 때문에 기차 등 교통에 불편을 겪는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묘사한 작품이다. 작품에서 반디는 김일성 체제를 ‘마귀의 마술’에 비유한다.
또 다른 단편 〈탈북기〉에선 “기만과 허위와 학정과 굴욕의 이 땅에서의 탈출을 말이네”라는 날 선 표현도 등장한다. 〈탈북기〉는 아내의 외도를 의심했던 한 남자가 아내의 일기를 읽으며 오해를 풀고 북한을 탈출할 결심을 일기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고발》은 선명한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북한 체제를 직격한다. ‘최고 존엄’에 대한 한마디 불평에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북한에서 이 같은 글을 쓴다는 건 그야말로 자살행위에 가깝다.
하지만 이 책의 묘미는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데만 있지 않다. 그는 여러 문학적 장치를 활용해 작품에 깊이를 더했다. 다음 장면은 ‘암흑의 땅’에도 인간 본연의 감정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걸 보여준다.
“그날 한 번도 쓸 일이 없었던 권척(줄자)은 호주머니가 아니라 온종일 내 명치 끝에 괴롭게 매달려 있었네.”(〈탈북기〉 중)
“이곳에서 자식의 태를 묻게 된 오늘까지도 귀가의 꿈이 사라지지 않은 명철에게 있어서 그 한 쌍의 종달새는 고향의 푸른 하늘이었고 황금빛 잔디밭이었다.”(〈지척만리〉 중)
“짧지 않은 기자 생활에서 그가 얻은 경험에 의하면 모든 인간들의 진면모는 일터에서보다 그들의 가정생활에서 더 잘 엿보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빨간버섯〉 중)
《고발》은 현재 전 세계 27개국에서 번역, 출간됐다. 《고발》의 해외 출판을 도왔던 이구용 KL매니지먼트 대표는 “북한에 살며 북한 체제를 고발하는 현역 작가라는 점이 이색적이었다”며 “체제 비판뿐만 아니라 단편 하나하나가 문학적 완성도가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 인권 문제나 사회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파급력을 지닌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가장 먼저 프랑스에서 관심을 보였다. 불어 번역은 재불 작가 임영희씨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임씨는 소설을 한 줄 한 줄 꼼꼼히 읽으며 이를 불어로 옮겼다. 책이 빽빽할 만큼 메모로 가득했다고 한다.
영어 번역은 데버라 스미스씨가 맡았다. 북한식 표현이 많아 어려울 법도 했지만 스미스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번역을 끝냈다.
2017년 스미스씨는 영국 펜(PEN) 번역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3월 국제 출판 관계자들과 인권운동가들은 임진각 자유의 다리에 모여 자신들의 언어로 번역된 《고발》 낭독 행사를 가졌다. 이후 소설은 미국 아스펜 문학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해외 문단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또 반디는 유럽연합(EU)이 주관하는 사하로프 인권상 후보에도 올랐다.
“반디 같은 작가 또 있을 수도”
북한은 이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도 대표는 “‘모략이다, 책동이다’ 떠드는 게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이 될 수 있단 걸 북한도 잘 안다”며 “함구하는 쪽이 이득이 될 거란 계산을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도 대표는 “국내에서 책이 출간된 뒤 반디가 누구인지 색출하려는 북한 당국의 시도가 있었던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관계자가 우리 쪽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반디의 또 다른 작품이 있으니 받으러 와달라’는 식의 접근이 있었다”며 “우리는 일절 응하지 않았다. 우리 라인이 아닌 다른 라인을 통해 들어온 정보는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도 대표는 “북한 관계자들의 접근은 반디를 색출하는 작업이 북한 내부에 있었다는 걸 확인한 계기였다”고 했다.
《고발》은 김일성 통치기였던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에 쓰인 소설로 알려진다. 그가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하는지, 《고발》 이후 완성한 또 다른 작품이 있는지 등은 알 수 없다. 도 대표는 “만약 반디가 살아 있더라도 나이가 많아 거동조차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도 대표는 반디처럼 북한 체제를 고발하는 다른 작가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도 대표는 “《고발》 출간 이후 한 탈북민이 찾아와 ‘반디가 우리 오빠인 것 같다’고 말한 적 있다”고 했다. 소설 속 배경이 된 장소나 문체가 익숙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확인 결과 반디와 가족 관계가 아니었지만, 이는 반디 같은 작가가 북한에 또 있을 수 있다는 단서가 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도 대표는 “다음 노벨문학상은 공산 전체주의에 저항하는 북한 작가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고발》 원고가 ‘탈북’해 책으로 출간된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목숨을 담보로 글을 썼지만, 반디의 이름과 그의 작품은 여전히 국내에서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반디는 《고발》 원고를 전하며 “이 글이 널리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바랐다고 한다. 그런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적힌 시집 《지옥에서 부른 노래》 머리글을 옮겨 적는다.
〈북녘땅 50년을
말하는 기계로,
멍에 쓴 인간으로 살며
재능이 아니라
의분으로,
잉크에 펜으로가 아니라
피눈물에 뼈로 적은
나의 이 글
사막처럼 메마르고
초원처럼 거칠어도,
병인처럼 초라하고
석기처럼 미숙해도
독자여!
삼가 읽어다오.〉⊙
월간조선 12월 호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12.19 유엔 北인권 결의 20년 연속 채택, 지금도 죽는 北 병사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군이 파병된 북한군 전사자의 신원을 은폐하기 위해 시신을 불태우는 장면이라며 공개한 사진.
17일 유엔총회에서 북한 정권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결의안이 표결 없이 컨센서스로 통과됐다. 2005년 첫 결의 이후 20년 연속으로 유엔총회에서 북한 인권 결의안이 채택된 것이다. 유엔 회원국들은 올해 결의안에서도 “북한이 자국민의 복지보다 불법적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우선하는 것”을 규탄했다. 올해 초부터 북한이 추진해 온 반통일(反統一) 정책과 관련해 “이산가족을 포함한 인권 상황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다”는 표현도 새로 들어갔다.
이 결의안이 채택되던 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파병된 북한 병사들의 신원을 감추기 위해 전사자의 얼굴까지 소각하고 있다”며 영상을 공개했다. 같은 날 미군 당국자는 파병된 북한군 수백 명이 우크라이나군과의 교전 중 죽거나 다쳤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군 한 병사는 “북한 병사들은 드론이 폭격하는 곳에 좀비처럼 다가왔다. 쉬운 표적이었다”고 말했다. 총알받이나 다름없었다는 뜻이다.
우크라이나 언론이 공개한 북한군 부상병들의 영상을 보면 가여울 뿐이다. 이런 젊은이들이 1만여 명이나 이역만리의 전장에 끌려가 있다. 왜 싸우는지, 무엇 때문에 죽는지도 모르는 채 얼어붙은 주검이 되고 있다. 그들의 목숨을 대가로 김정은은 러시아에서 돈과 무기, 군사기술을 넘겨받는다. 김정은과 푸틴, 두 독재자의 탐욕을 위해 너무 참담한 일들이 저질러지고 있다.
20년간 유엔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김씨 일가의 압제를 멈추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이 결의안이 중요한 것은 북한 사람들이 어떤 고통 속에 살고 있으며,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세계가 다 알고 있고 지켜보고 있다는 ‘역사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현대사회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반인도 범죄”가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다면서, 북한의 “최고위층”에 그 책임이 있다고 했다. 또 이들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거나, 임시로 특별 국제재판소를 만들어서라도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언젠가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내년 유엔 북한 인권 결의안에는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의 비극도 기록돼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北韓 離脫住民(脫北民) 이야기 2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