橫說竪說(동아일보) 2024-11/ 11-01(금) “사무실로 출근해라, 아니면 해고” - 11-30(토), “尹과 골프 친 부사관, 로또 당첨된 기분”
橫說竪說(동아일보) 2024-11/
11-01(금) “사무실로 출근해라, 아니면 해고”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가 내년 1월부터 주 3일은 반드시 사무실로 출근해야 하고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해고할 수 있다고 미국 본사 직원에게 통보했다. 올해 1월부터 사무실 출근과 재택근무를 혼합한 ‘하이브리드형’ 근무제를 운용했지만, 정착이 더디자 해고까지 언급하는 강수를 둔 것이다. 실적이 뚝뚝 떨어진 스타벅스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브라이언 니콜 최고경영자(CEO)가 사무실 출근을 주도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난 이후 사무실 근무로 회귀하는 미국 기업들이 늘고 있다. 2020년 재택근무를 앞장서 도입한 구글은 최소 주 3일 사무실 출근을 권고하고 이를 인사고과에 반영한다. 메타 역시 주 3일 사무실 출근을 하지 않으면 해고가 가능하다. 아예 대면 근무로 전환한 기업도 있다. 아마존은 내년부터 사무직 직원은 주 5일 출근해야 한다. JP모건은 임원에겐 주 5일 출근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들은 재택근무를 해보니 대면 근무의 장점이 분명하더라고 말한다. 재택근무로 일상적인 업무는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 몰라도 협업을 통한 혁신이나 생산성 향상 등은 일어나지 않았다. 직원 간 피드백이 줄면서 역량이 정체되고 조직 문화를 공유하기도 어려웠다. 최근 에릭 슈밋 전 구글 CEO는 인공지능(AI) 경쟁에서 뒤처진 배경으로 재택근무를 꼽으며 “구글이 승리보다는 ‘워라밸’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논란이 커지자 그 발언을 거둬들였지만 아마 진심일 것이다.
▷하지만 재택근무의 편안함을 경험한 미국 직장인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사무실 출퇴근을 해보지 않은 MZ 직장인들은 규칙적인 출근 자체를 고통스러워한다.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설문에 따르면 아마존 직원 73%가 주 5일 사무실 출근 통보 이후 새로 구직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갑자기 회사 근처로 이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 사실상의 퇴직 강요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다. 실적이 악화한 스타벅스나 중간 관리자를 10% 감축하겠다고 밝힌 아마존이 사무실 출근을 강제한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빅테크들이 생성형 AI 보급으로 개발자 수요가 줄어들자 사무실 근무로 선회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면 근무로 속속 선회하는 회사와 재택근무를 선호하는 개인 간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면서 ‘하이브리드형’ 근무 형태가 37%로 재택근무(32%)나 사무실 근무(31%)를 앞질렀다. 미국 회사 약 9000곳의 근무 형태를 조사한 결과다. 평균 출근일은 주당 2.5일이다. 회사와 직원 간 어느 정도 절충이 이뤄진 셈인데 앞으로 어떤 근무 형태가 대세가 될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같은 시간, 같은 공간 동료와 일하며 자극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회사뿐만 아니라 개인도 성장한다는 것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11-02(토) 김도 연어도 육지에서 키우는 ‘씨팜’ 시대

한국에는 세계 시장 점유율 70%를 자랑하는 절대 강자 품목이 있다. 메모리 반도체부터 떠올리겠지만 수출 효자로 주목받고 있는 김 역시 그렇다. 동아시아를 제외하곤 ‘검은 종이(black paper)’ 취급을 받던 김은 최근 들어선 ‘슈퍼푸드’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해 김 수출액은 처음으로 연간 1조 원을 넘어섰고, 올해는 벌써 9월에 수출 1조 원을 달성했다. 급증하는 수요에 맞춰 공급을 늘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 중이다.
▷국내 물김의 연간 생산량은 50만∼60만 t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생산량을 늘리기가 만만치 않다. 근해엔 김 양식장을 추가로 설치할 해역이 마땅치 않다. 기후변화로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서 수확량이 감소하는 것도 걱정이다. 이미 일본은 김 생산량이 반토막 났는데 남의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수온이 낮은 먼바다에서 김 양식이 가능한지 연구 중이다. 아예 밭에서 채소를 키우듯 뭍에서 김을 양식하는 육상 양식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 육상 양식은 바다와 비슷한 환경의 양식장을 육지에 만들어 원초를 키우는 방식이다. 해상에서는 수온이 5∼15도인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만 수확할 수 있지만 육지에선 사계절 가능하다. 기후변화 걱정도 없고 김에 생기는 기생병 질병인 갯병도 예방할 수 있다. 국립수산과학원과 풀무원은 충북 오송에서 김 육상 양식을 위한 실증 실험을 하고 있다. ‘바이오리액터’라고 부르는 부피 9㎥의 수조 3개에서 매달 10kg의 김을 생산하고 있다. 이 밖에도 광물 성분이 풍부하고 수온이 안정적인 제주도 용암해수를 활용하는 등 땅에서 김을 키우기 위한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육상 양식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것은 김뿐이 아니다. 수산물 수입액 1위인 연어를 실내 양식장에서 키우려는 연구도 한창이다. 부산시수산자원연구소는 최근 대서양 연어 양식에 성공했고, 앞으로 연간 약 500t의 연어를 생산할 계획이다. 충남 당진에선 벼를 키우던 간척지에 연어 양식장을 조성해 양식을 시작했다. 10마리 중 9마리를 수입에 의존하는 새우도 요즘엔 수조에서 키우고 있다. 미생물로 수질을 정화하는 ‘바이오플록’ 기술을 활용한다.
▷해산물을 육상, 특히 실내에서 양식하려면 각종 첨단 기술이 필요하다. 수온과 염도를 실시간 확인하고 스마트폰으로 원격조종하는 스마트 양식 시스템을 구축한다. 수질 센서, 영상분석 장비, 자동 먹이 공급 장치 등 첨단 장비들과 유기적으로 연동된다. 노동집약적 산업인 어업을 첨단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것이다. 바다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씨팜(Sea Farm)’의 꿈이 바다는 물론 육지에서도 영글고 있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11-04(월) ‘샤이 해리스’ 美 백인 여성

미국에서 인종과 성별 상관없이 투표권이 보장된 1960년대 이후 백인 여성들이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더 많은 표를 준 건 딱 한 번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1996년 재선에 나섰을 때가 유일하다. 그의 부인 힐러리 클린턴이 출마한 2016년 대선 때도 ‘첫 여성 대통령’ 도전자보다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를 더 지지했다. 2020년 대선에서도 조 바이든 후보를 찍은 백인 여성은 46%에 그쳐 트럼프(53%)보다 적었다.
▷성별에선 약자지만 인종적으론 강자인 게 미국의 백인 여성들이다. 평균 임금을 보더라도 백인 여성은 백인 남성 대비 83% 정도지만 흑인 여성(70%), 히스패닉 여성(65%)보다는 많이 번다. 백인 여성들은 노예제 폐지나 흑인 인권운동의 수혜자이기도 하다. 1960년대까지도 백인 여성들은 직업 선택에 제약이 많았고 남성의 서명 없이는 대출이나 신용카드 발급이 어려웠다. 이런 성차별은 여성과 유색 인종이 힘을 합쳐 각종 차별 반대 투쟁을 벌인 끝에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투표장의 백인 여성들은 사회적 약자보단 주류적 인종 집단의 정체성을 더 강하게 보여왔다.
▷주로 공화당을 지지해온 백인 여성들이지만 이번 대선에선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백인 여성의 51%가 해리스에게 투표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대학 학위가 없는 여성들은 공화당 지지가 여전히 강하지만 대졸 이상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높게 나타났다. 민주당은 2016년 클린턴 후보가 패했을 때 ‘샤이(shy) 트럼프’의 영향이 컸듯, 초박빙인 이번 대선에선 민주당 지지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 ‘샤이 해리스’ 백인 여성들이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백인 여성은 미 유권자의 30%를 차지하는 최대 투표 집단이다.
▷할리우드 여배우 줄리아 로버츠가 참여한 해리스 지지 광고는 백인 여성들을 정면 공략한다. 그는 “남편 모르게 해리스에게 투표하자”면서 “투표소에서 있었던 일은 밖에선 아무도 모른다”고 속삭인다. 공화당 출신 대통령인 조지 W 부시의 딸 바버라 부시, 부시 행정부 때 부통령이던 딕 체니의 딸 리즈 체니도 해리스 지지 유세에 나서며 백인 여성 표심을 자극하고 있다.
▷백인 여성들의 변심 가능성이 높아진 주요인은 50년 만에 무력화된 낙태권이다. 이런 변화를 만든 장본인이 ‘낙태 반대’ 대법관 3명을 임명한 트럼프여서 해리스에 반사 효과가 생길 수 있다. 백인 여성들의 핵심 관심사는 경제(29%)에 이어 낙태(24%)가 두 번째로 높다. 게다가 이번 대선에선 애리조나 등 경합주를 포함한 10개 주에서 낙태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가 함께 진행된다. 하지만 ‘샤이’라는 말 자체가 주변에 속마음을 숨긴다는 뜻이다. 낙태의 영향이 얼마나 될지는 투표함을 열기 전까진 누구도 알 수 없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11-05 북촌 관광객 ‘야간통금’

서울 종로구 북촌 야간 관광이 1일부터 금지됐다. 넉 달간 계도기간을 거쳐 내년 3월부터는 한옥이 밀집한 북촌로11길 일대를 오후 5시∼오전 10시 사이 돌아다니면 과태료 10만 원을 물어야 한다. 군부 독재 시절 잔재로나 여겨지는 야간 통행금지가 36년 만에 다시 소환된 건 ‘오버 투어리즘’(과잉 관광) 때문이다. 관광객이 몰려 삶을 침범당했던 주민들은 환영이고, 인근 상인들은 손님이 줄까 울상이다.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 사이 폭 안긴 북촌은 한옥이 오밀조밀 모인 예스러운 동네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개량 한옥이 많다. 당시 건양사라는 회사가 몰락한 조선 관료나 양반가 한옥을 사들여 필지를 나눠 여러 채를 지은 뒤 대량 공급했다. 도심 개발 붐에 하나둘 스러지던 한옥은 2000년대 들어 가치가 재평가되며 보존 사업이 진행됐고 그 모습이 지금의 북촌이다. 원래 외지인 발길이 뜸했던 곳인데 ‘북촌 8경’ 등이 방송을 타면서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지난해 북촌 거주자는 6100명. 관광객은 무려 1050배가 넘는 644만 명이 다녀갔다.
▷고즈넉한 한옥마을은 소음 피해와 쓰레기 무단 투기로 몸살을 앓았다. 요즘은 그나마 ‘소곤소곤 대화해 주세요’라는 안내판에 따라 관광객도 조심하는 분위기지만, 그간 주민들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 화장실을 쓰거나 사진 촬영 등을 하는 ‘진상’ 관광객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특히 동대문과 도심 면세점을 도는 저가 쇼핑 관광 상품에 북촌이 포함되면서 관광버스가 줄을 섰고 골목은 몸을 부딪치며 걸을 정도로 붐볐다.
▷‘오버 투어리즘’은 동네 주민을 다른 곳으로 밀어내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관광+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이어지곤 한다. 북촌 한옥마을의 인구는 최근 5년 새 27.6%나 줄어들었다. 관광객이 몰리자 한옥은 상업용으로 팔리거나 한옥스테이로 개발됐다. 버티던 주민들도 “살 수가 없다”며 떠나기 시작했다. 에어비앤비 등 공유 숙박이 번창해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주민들이 이용하던 가게가 사라져 정주 여건이 악화한 포르투갈 리스본이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뒤를 밟고 있는 셈이다.
▷유엔 세계관광기구는 올해 해외 관광객이 15억 명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관광을 막을 수도, 손님이 주인집을 차지하는 ‘오버 투어리즘’을 방관할 수도 없는 각국은 나름의 해법을 내고 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한 사람당 5유로씩 도시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고, 일본 오사카도 관광세 도입을 추진 중이다. 벨기에 브뤼허와 이탈리아 피렌체는 에어비앤비 등 신규 숙박업 등록을 금지했다. 서울이 매력적인 관광지가 된 것은 반갑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야간 통행 금지가 주민과 관광객이 공존하는 ‘서울식 해법’이 되기를 바라 본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11-06 韓 교민 간첩으로 체포하더니, 돌연 무비자 입국 허용한 中

중국 외교부가 한국인의 무비자 입국을 내년 말까지 허용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주중 한국대사관조차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전격적이었다. 무비자 입국은 통상 별도의 협정을 맺거나 상호주의 조치로 이뤄진다. 그런데 중국 정부는 한국과 별다른 협의 없이 ‘일방적 무비자 정책’을 당장 8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더욱이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이 간첩 혐의로 체포돼 양국 간에 냉기류가 흐르는 상황에 일어난 일이어서 해석이 분분하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양국의 인적 교류는 꾸준히 늘어나 2016년엔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의 절반 이상이 중국인이었고, 한국인이 방문한 해외 국가의 4분의 1가량이 중국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사드(THAAD) 배치를 빌미로 중국 정부가 한한령(限韓令)을 내린 데 이어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덮치면서 한중 간의 왕래는 끊기다시피 했다. 지난해 다소 회복됐지만 한국에 입국한 중국인, 중국을 찾은 한국인 모두 2019년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렀다.
▷현 정부 들어 양국의 외교 관계도 순탄치 않다. 대미 외교에 중점을 두는 한국 정부에 대해 중국의 불만이 커지면서 주한 중국대사가 “중국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에 날로 치열해지는 양국 간의 기술 경쟁도 갈등으로 번질 수 있는 요소다.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에서 일했던 삼성전자 출신 한국 교민이 반(反)간첩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것은 이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이를 놓고 국내에서 “이래서 중국을 못 믿는 것”, “중국 스파이 색출하자” 등의 목소리가 분출하는 시점에 나온 중국의 무비자 입국 허용 조치를 관광사업 활성화 차원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반중 정서 확산을 바라지 않는 중국 정부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외교가에선 최근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을 우려하는 중국에 한국은 매력적인 견제 카드가 될 것으로 본다. 미 대선 이후 중국에 대한 견제가 강화될 것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한시라도 빨리 한국과 거리를 좁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으로선 조변석개하는 중국의 태도가 미덥지 못한 게 사실이다. 국제정세가 바뀌면 중국이 언제 또 변덕을 부릴지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다만 이번엔 중국이 한국을 향해 손을 내민 만큼, 우리로서도 한동안 등한시했던 중국과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수는 있다. 한국 역시 북-러 밀착을 견제할 방안을 고민 중이고, 경기 회복을 위해서는 대중 수출을 활성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의 속내가 어떻든 이를 활용해 우리의 국익으로 연결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11-07 한국계 최초로 美 상원의원에 당선된 앤디 김

미국 연방 상원의원은 “한 명 한 명이 대선 후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위상이 높다. 주별로 2명씩 총 100명으로 하원의원(435명)보다 숫자는 적은 반면 임기는 3배인 6년이다. 이 중 백인이 80여 명, 아시아계는 현재 일본계(하와이)와 태국계(일리노이) 여성 의원 2명이 있다. 5일 한국계 앤디 김 민주당 하원의원(42)이 당선되면서 아시아계가 3명으로 늘었다. 아시아계로는 동부지역 최초 상원의원이고, 120여 년 한국 재미교포 역사상 첫 상원의원이다.
▷이민 2세대인 앤디 김은 외교 분야 전문가다. 시카고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미 국무부에서 이라크 전문가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고, 버락 오바마 정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을 지냈다. 2018년 뉴저지주 제3선거구에서 공화당 현역 의원을 꺾고 첫 아시아계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후 내리 3선을 했다. 하원의원으로서 78만 지역구 주민을 대표하던 그는 이제 상원의원으로서 900만 뉴저지 주민을 대표하게 됐다.
▷뉴저지주는 민주당이 52년간 줄곧 상원의원을 배출한 민주당 텃밭으로 당내 경선이 더 치열했다. 뉴저지주 토박이인 그는 “우리 가족에게 기회를 준 뉴저지와 미국을 위해 일하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한편 기득권에 도전하며 새바람을 일으켰다. 지역 정치권이 지지하는 후보 이름을 투표용지의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배치하는 관행을 소송으로 바로잡고, 경쟁자인 뉴저지 주지사 부인을 ‘남편 찬스’ 논란으로 주저앉혔다. 그는 취임하면 세 번째로 젊은 상원의원이 된다.
▷선거 유세에선 “분열된 나라를 치유하겠다”고 했는데 현지 언론은 “냉소적인 유권자조차 그 말을 믿었다”고 전했다. 2021년 1월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폭도들로 난장판이 된 연방의회 건물에서 혼자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긴 덕이다. 공화당 후보 커티스 바쇼(64)와는 품위 있는 경쟁으로 박수를 받았다. 바쇼 후보가 TV토론 도중 식은땀을 흘리며 비틀거리자 그가 바로 달려가 부축했다. 우파 팟캐스트 진행자가 앤디 김의 인종 문제를 제기했을 땐 바쇼 후보가 제지했다. “앤디 김은 평생을 공공에 헌신한 애국적 미국인이다.”
▷소아마비 환자로 한국 보육원에서 자란 그의 부친은 국비 장학생이 돼 매사추세츠공대와 하버드대에서 유학하고 암과 알츠하이머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그의 어머니는 간호사, 누나는 역사학자로 매디슨 위스콘신대 교수다. 앤디 김은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 적극 관여하도록 돕고 싶다면서도 “한국계뿐만 아니라 미국인을 대표하는 리더가 되겠다”고 했다. 이민자 가족의 대를 잇는 성공 스토리는 대선 한 번 치르려면 감시 드론 띄우고 저격수 배치해야 할 정도로 불안해진 미국의 미래를 낙관하게 한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11-08 ‘뻥’을 무기로 삼는 트럼프의 협상 기술

미국 대통령에 재선된 도널드 트럼프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꼭 읽어 봐야 할 책이 한 권 있는데 ‘협상의 기술’이다. 대권에 도전하기 훨씬 전인 1987년에 낸 책이다. 이 책을 읽어 보면 그가 부동산 개발업을 하면서 즐겨 사용한 협상의 기술 중 하나가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상대편이 겁을 먹도록 사전에 거친 말을 쏟아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2012년 대선에 처음 출마하면서 “한국은 그들을 지켜주는 미군에 돈을 전혀 지불하지 않는다”고 말한 이후 지속적으로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이 미국에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사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팩트체크가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는 이번 재선 도전 과정에서는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이라고 불렀다. 그가 한 말의 의도는 돈을 더 내라는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도가 얼마나 잘 전달되느냐다. 그는 말이 거칠수록 의도가 잘 전달된다고 여긴다.
▷그는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후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횡설수설했다. “김정은이 약속을 진짜 지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6개월 후 여러분 앞에 서서 ‘그때 내가 틀렸어’라고 할 수도 있다. 내가 인정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내가 핑계를 댈 거다.” 그에게 말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이거나 곤경을 벗어나기 위해 아무렇게나 둘러대도 상관없는 그런 것이다.
▷트럼프가 거친 말을 자주 하니까 싸움꾼처럼 보이지만 진짜 싸움은 미국의 돈이 아까워서라도 못 할 위인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초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발사 시험에 대응해 미국이 ‘죽음의 백조’라고 불리는 B-1B 전략폭격기를 북한 동해 상공 깊숙한 곳까지 출격시켰을 때다. 문 정부는 ‘6·25전쟁 이후 최대의 위기’라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무력시위였을 뿐이다. 무력시위처럼 그의 거친 말은 돈이 많은 드는 진짜 싸움에 이르지 않기 위한 협상의 기술이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에 대한 거친 발언도 새겨서 들어야 오판하지 않는다.
▷트럼프의 재선을 위험한 성인물을 보는 기분으로 지켜봤다. 그에게 성추행당했다고 밝힌 여성이 한둘이 아니고 올 들어 거액의 손해배상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2020년 재선 도전 패배에 불복해 의사당 습격을 선동한 혐의는 곧 판결이 나오겠지만 셀프 사면이 확실시되고 있다. 말의 책임성이나 일관성 같은 것은 그에게 아예 없다. 정치가 본래 위험한 성인물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사람의 대통령 재선을 아이들에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11-09(토) 미국의 첫 여성 백악관 비서실장 ‘얼음 아가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선택한 첫 백악관 비서실장은 수지 와일스(67)였다. 선거 캠프의 좌장 역할을 했던 와일스는 “가장 덜 알려졌지만, 가장 막강한” 트럼프 사람으로 통한다. 와일스 중용은 대선 불복으로 비판받던 트럼프를 2021년 초 만난 것이 출발점이 됐다. 2016년, 2020년 대선 때 워싱턴이 아닌 플로리다주에서만 선거운동을 했지만, 와일스는 트럼프가 왜 졌는지, 뭐가 달라져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질문을 쏟아내던 트럼프는 “2024년 선거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와일스는 미 역사상 첫 여성 비서실장이다. 1953년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비서실장이 생긴 이래 30명 넘게 거쳐갔지만, 여성은 없었다. 충성심과 냉철함이 그의 경쟁력이라는 게 미 언론의 평가다. 그의 별명은 얼음 아가씨(ice baby) 또는 얼음 여사(ice maiden). 할머니 같은 넉넉함 속에 비수같이 담긴 냉철함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막후 조정을 선호하는 와일스는 언론 인터뷰에 거의 응한 적이 없다. 당선을 확정 지은 순간에 트럼프가 와일스를 행사장 연단으로 이끌면서 “(당신은) 뒤에 있는 걸 좋아하는데, 뒤에 있을 사람은 아니야”라고 할 정도다.
▷비서실장 지명은 당선 이틀 만에 발표됐다. 8년 전 트럼프의 첫 당선 때는 6일 걸렸던 일이다. 정치 신인과 다름없던 2016년과 달리 트럼프가 4년 국정 경험을 바탕으로 일처리에 속도를 낼 것이란 신호로 읽힌다. 비서실장 인선 방향도 달라졌다. 트럼프는 첫 임기 4년 동안 국정 경험 부족을 메워줄 중앙정치 명망가, 해병대 4성 장군 출신, 예산 전문가 등을 기용했다. 하지만 와일스 발탁 소식을 보면 트럼프가 실무를 꼼꼼히 챙길 행정과 정무 감각을 더 선호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트럼프 1기 백악관은 한마디로 뒤죽박죽이었다. 트럼프는 회의 때 발언 시간을 독차지했고, 개인 휴대전화로 수없이 바깥 인사들과 통화했다. 또 누구와도 상의 없이 국방장관 해임을 트위터로 공표한 적도 있다. 그 시절 존 켈리 비서실장은 동료였던 안보보좌관에게 “내가 백악관을 얼마나 떠나고 싶어 하는 줄 아느냐”고 털어놓은 기록도 있다. 와일스의 첫 과제는 내년 1월 취임하는 트럼프의 돌출행동을 통제하고, 백악관을 질서정연한 곳으로 만드는 일이 될 듯하다.
▷미 언론은 와일스가 듣기 거북한 사안을 트럼프에게 직설적으로 보고하면서 캠프가 돌아가도록 했던 일처리 솜씨에 주목하고 있다. 45년 정치 경력 동안 고위직을 맡은 적이 없는 와일스가 ‘부통령보다 중요하다’는 비서실장직을 맡은 것도 이 점을 평가받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전 세계는 트럼프 2기가 가져올 변화를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와일스에게는 과거 어떤 백악관 비서실장 못지않게 관심이 모아질 것 같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11-11(월) “내 휴대전화 집사람이 보면 죄짓는 거냐”

박성재 법무장관은 8일 국회 법사위에서 “우리 집에선 (집사람이) 제 것도 보고, 집사람 것도 제가 본다”며 “집사람이 제 휴대전화를 보면 죄짓는 거냐”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전날 기자회견에서 “(후보 시절) 아내가 아침 5, 6시인데 안 자고 엎드려서 제 휴대폰을 갖고 답하고 있었다. (잠을) 안 자고 완전히 낮과 밤이 바뀌어 그렇게 했다”고 한 말을 야당이 꼬집자 나온 답변이다.
▷박 장관은 “바쁜 경우에 간단한 답 같은 건 다른 사람을 시킬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박 장관의 발언은 논란의 핵심을 비켜간 것이다. 윤 대통령은 2022년 대선 후보 시절 입당원서에 적힌 전화번호가 노출된 뒤 문자가 쏟아졌다고 했다. 김 여사가 답변을 한 대상에 윤 대통령과 아는 사람들도 있는지, 번호가 저장돼 있지도 않은 생면부지의 사람들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부부간에 휴대폰 문자 등을 공유하는 이들이 많지도 않지만 설사 상대방 문자를 본다고 하더라도 당사자의 동의도 없이 대신 답변까지 하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 여사가 문자 상대방과 윤 대통령의 관계, 문자에서 언급된 이슈의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고 보냈는지 의문도 남는다.
▷윤 대통령은 새벽에 답장을 하던 김 여사에게 “제가 ‘미쳤냐, 잠을 안 자고 뭐 하는 거냐’ 그랬더니 (아내가) ‘이분들이 다 유권자인데…’”라고 했다는 말도 전했다. 김 여사가 밤잠 안 자고 정치권에 뛰어든 자신을 도왔다는 점을 설명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이 답변은 자연스럽게 추가적인 궁금증을 낳았다. 김 여사가 이후 당선인 시절이나 대선에서 당선된 뒤에도 ‘바쁜’ 윤 대통령을 대신해 답변한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정치인이나 대선 후보 가운데 공개를 전제로 한 SNS 관리를 참모에게 맡기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하지만 휴대전화 문자 답신은 수신자로 하여금 ‘직접 썼다’고 믿음을 주는 것이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윤 대통령의 이 발언이 알려지자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문자 답변을 받은 이들 중에선 “내가 받았던 문자가 대통령이 보낸 게 맞나” 하는 반응들도 나왔다고 한다.
▷윤 대통령의 발언만으로는 김 여사가 단순 인사만 보냈는지, 다른 내용까지 보냈는지를 알 도리는 없다. 다만 통상의 대통령 부인 역할을 넘어서는 행동을 보여온 것과 맞물리며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그런데 정작 윤 대통령은 같은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김 여사의 휴대전화를 보지 않는다고 했다. 명태균 씨 논란과 관련한 답변을 준비하면서 “아내 휴대전화를 보자고 할 수도 없는 것이라, 제가 그냥 물어봤다”고 했다. 김 여사는 대통령 전화를 통해 문자 답신까지 하는데 대통령은 김 여사의 휴대폰을 보지 않는다니 “대체 뭔지” 하는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11-12 “입 열면 다 뒤집어진다”던 명태균, 檢 조사 후엔 “너스레”라니

명태균 씨가 최근 검찰 조사를 마치고 나오며 기자들과 나눈 대화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의 특수관계를 한껏 과시하던 기존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대통령 부부와 언제까지 연락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가십거리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목소리를 높이는가 하면, 그간의 발언에 대해 “너스레를 떤 것”이라며 의미를 축소하려 했다. 그러면서 대뜸 두산중공업을 비유로 들기도 했다. “제가 두산중공업에 다닌다고 해봐요. 집사람한테 ‘우리 회사는 나 없으면 안 돼’ ‘내가 만든 회사야’ 이런 얘기할 수 있잖아요.”
▷명 씨는 윤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이 제기된 초기만 해도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것처럼 센 발언들을 했다. “김 여사와 대화, 최고 중요한 것만 까도 200개가 넘을 것” “아직 대선은 얘기도 안 했다. 입 열면 다 뒤집어진다” “김 여사가 나더러 인수위에 와서 사람들 면접 보라고 그랬다” 같은 말들이다. 그랬던 그가 검찰 조사를 받고 난 뒤엔 ‘톤 다운’을 하고 있다.
▷오락가락하는 듯한 그의 말에는 액셀과 브레이크가 있다. 한창 액셀을 밟을 땐 대통령 부부와 6개월간 매일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는 등 각별하게 상의하는 사이였다고 말하다가도, 더 파고드는 질문엔 “더 얘기하는 건 불손한 행위” “옆에서 조언해 준 사람일 뿐”이라고 브레이크를 밟는다. 함께 일했던 직원 강혜경 씨가 윤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을 제기했을 땐 “식탁 밑 강아지가 떨어지는 것만 보고 혼자 상상하는 것”이라며 깎아내리기도 했다. 애초에 입을 안 열면 될 것을 냄새만 한껏 풍겨 놓고 물러서는 걸 보면 윤 대통령 부부를 향해 “센 것을 쥐고 있는데 어떻게 나오는지 보겠다”며 거래를 시도하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엊그제 명 씨가 검찰 조사 직후 보인 태도 변화는 특히 의미심장하다. 조사 이틀 전 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공천에 관여한 바 없고 명 씨와 부적절한 일도 없었다”고 한 것에 호응이라도 하듯 기자들에게 “언론이 거짓의 산을 만들었다”고 했다. 정치자금법(정자법) 위반 사건인데 왜 허위보도에 대한 조사를 받아야 하느냐고도 했다. 국정농단과 공천 개입이 의심되는 본인 발언이나 녹음된 음성에 대해선 ‘너스레’ ‘가십’이라면서 명 씨 개인 비리에 한정되는 정자법 위반 여부에만 수사가 집중돼야 한다는 얘기다.
▷명 씨가 꼬리를 내리기까지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으로선 검찰이 엄정하게 의혹을 수사하는지 지켜봐야 할 때다. 마침 명 씨가 윤 대통령에게 취임 전날 ‘우리 김영선 의원 꼭 좀 부탁한다’고 보낸 여러 건의 문자메시지가 확보됐다고 한다. 명 씨의 말만 따라가다 보면 길을 잃기 쉽다. 증거와 팩트를 따라가며 정치 브로커에게 국정이 농락당한 게 맞는지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11-13 ‘트럼프 랠리’에 세계가 들썩이는데 韓 증시는 소외

요즘 증권가에 나돈 우스갯소리가 있다. 최고의 자산이 뭐냐고 물었더니 코인 투자하는 사람은 ‘비트코인’, 미국 주식 하는 사람은 ‘엔비디아, 테슬라’라고 하는데 한국 주식 가진 사람은 ‘건강’이라고 답하더란다. 희망 없는 국내 증시를 두고 ‘국장(國場) 탈출은 지능순’이란 말이 회자되더니 이런 자조적 유머까지 나온 것이다. 지난주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이 확정된 뒤 이는 더 현실이 되고 있다. 세계 금융시장이 트럼프 수혜 자산에 베팅하는 ‘트럼프 트레이드’로 들썩이는데 한국 증시만 소외돼 있어서다.
▷뉴욕 증시의 3대 지수는 미 대선 다음 날부터 나흘 연속 최고 기록을 새로 썼다. 엔비디아를 새로 품은 다우존스지수는 11일 44,000 고지도 밟았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경험했던 글로벌 자금이 더 독해진 트럼피즘을 앞두고 미 증시와 달러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법인세 감면, 규제 완화 등 트럼프가 내세운 친기업 정책도 투자 심리에 불을 지피고 있다. 트럼프가 “슈퍼 천재”라고 추켜세운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는 나흘 새 40% 가까이 폭등했다.
▷가상자산 대장주 비트코인도 연일 최고가 행진 중이다. 10일 사상 처음 8만 달러를 넘더니 12일 오전 8만9000달러까지 돌파했다. 비트코인 시가총액은 한국 코스피 시총 규모도 뛰어넘었다. 3년 전만 해도 비트코인을 사기(scam)라고 했던 트럼프는 이번 대선 과정에서 “가상화폐 대통령(crypto president)”이 되겠다고 선언했고, 중앙은행이 금을 비축하는 것처럼 미 정부가 비트코인을 보유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이와 달리 한국 증시는 ‘남들 오를 때 못 오르고, 떨어질 땐 폭삭 주저앉는’ 게 뉴노멀이 됐다. 비실대던 코스피는 12일 2% 가까이 급락하며 3개월 만에 2,500 선이 붕괴됐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증시 저평가) 이슈가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더 강력해진 보호무역주의가 한국 경제를 짓누를 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산된 탓이다. 트럼프 1기 때 한국 증시를 빠져나간 글로벌 자금이 23조 원인데, 이미 외국인은 석 달째 국내 주식을 내다 팔고 있다. 미국 증시로 ‘주식 이민’을 떠나는 개미도 갈수록 늘고 있다.
▷투자자들이 한국을 등진다는 건 국내 기업이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 성장하고 일자리를 만들 기회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증시 이탈을 막으려면 경제 기초체력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몸집이 훨씬 큰 미국에 잠재성장률을 역전당할 만큼 성장 엔진은 식었고, 주력 산업은 혁신 기업의 등장 없이 수십 년째 제자리다. 세계 꼴찌 수준의 주주 환원과 후진적 기업 지배구조도 달라진 게 없다. 이를 그대로 두고 한국 증시가 활력을 갖기를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11-14 '극한 직업’ 수능 감독관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 감독관을 했던 A 교사는 시험 다음 날 낯선 전화를 받았다. “나 변호사인데, 당신이 내 딸 인생을 망가뜨렸으니 당신 인생도 망가뜨리겠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A 교사는 전날 한 여학생이 시험 종료 벨이 울린 뒤에도 답안지를 마킹하는 부정행위를 하자 이를 제지했는데 그 학생 아버지가 걸어온 협박 전화였다. 며칠 뒤엔 수험생 어머니까지 학교로 찾아와 ‘A 교사 파면’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다. 올해부터 수능 감독관들이 이름이 아닌 일련번호가 적힌 명찰을 차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사건이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매년 수능 후엔 수험생들 민원이 수백 건씩 쏟아진다. “감독관 잠바가 바스락거려 신경이 쓰였다”부터 “감독관이 한곳에 너무 오래 서 있어 방해가 됐다” “자꾸 돌아다녀서 집중이 안 됐다”는 상충되는 불만까지 가지각색이다. 극히 예민할 수밖에 없는 수험생들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니 교사들은 감독은 하되 ‘공기’처럼 존재하기 위해 기침도 참고 부동자세로 서 있는다.
▷수능 감독관은 보통 3교시, 많게는 4교시를 들어간다. 한 교시마다 70∼100분이다. 시험 시간을 칼같이 못 맞추거나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기면 소송을 당할 수 있고, 집단 커닝 같은 부정행위라도 벌어지면 징계를 받을 수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점심시간은 50분인데 앞 교시가 지연되고, 뒤 교시 시작 10분 전부터 대기하려면 20∼30분 안에 식사를 마쳐야 한다. 이러니 매년 11월 찾아오는 수능 감독 업무를 교사들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 한다. 보통 저연차 순으로 차출되고, 고3 자녀를 둔 교사들은 감독관에서 제외돼 부러움을 산다.
▷올해 수능은 감독관 구인난이 여느 해보다 심했다. 고3 재학생이 지난해보다 많고, 의대 증원 영향으로 N수생도 늘어나 응시생은 전년 대비 1만8000명 증가한 반면 감독관은 7600명이 줄었다고 한다. 시험실 한 반에 배치되는 수험생 인원은 24명에서 28명으로 늘어나 감독관들 부담이 더 커졌다.
▷중고교 교사들은 대학이 학생을 뽑기 위해 치르는 수능에 왜 우리만 동원되느냐고 불만이다. 응시생의 35%가량이 N수생이니 대학 교직원들도 감독을 나눠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직원들은 그들대로 수시전형을 관리하느라 여력이 없다고 한다. 얼마 전 연세대에선 논술고사 감독관이 시험 시간을 착각해 문제지를 잘못 배포하는 바람에 시험 무효 소송과 경찰 수사로까지 번졌다. 무서워서 감독관 하겠느냐는 말이 나올 법하다. 시험 한 번에 청춘들 인생이 걸린 우리의 과열 입시가 감독관을 ‘극한 직업’으로 만들어버렸다. 수능일인 오늘(14일)은 52만 명 수험생 못지않게, 7만 명의 감독관에게도 고단한 하루가 될 것이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11-15 연방교육부 폐지한다는 트럼프… 한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주요 공약 중 하나가 연방 교육부 폐지다. 그는 “미국 학생들은 막대한 교육비를 쓰고도 전 세계 또래들보다 뒤처지고 있다”고 했다. 또 “교육부가 여러분 자녀들에게 허튼 훈계를 늘어놓는 데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며 “연방 교육부를 없애버리겠다”고 했다. 이는 그가 2016년 대선 때도 공약했으나 실행하지 못한 정책이다.
▷트럼프는 연방 교육부를 폐지하고 그 권한을 주 정부에 돌려주겠다고 했는데 미국 교육은 헌법상 주 정부 권한이고 실제로도 주 정부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신입생 선발과 교육과정 운영, 학교 설립 인허가권은 주 정부에 있고 연방 교육부는 학자금 지원 같은 제한된 업무만 한다. 1957년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을 발사하자 충격을 받고 수학 과학 교육에 연방 예산을 지원하기 시작했지만 학교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도 안 된다. 교육부를 폐지하든 않든 학교 현장에 주는 영향은 크지 않은 셈이다.
▷연방 교육부 폐지는 1980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처음 시도했다. 교육부는 1979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보건교육복지부에서 교육을 떼어내 13번째 부로 신설했는데 주 정부 권한을 침해하는 데다 대선 당시 교원단체의 지지에 대한 답례 성격이어서 집권 민주당에서도 반대가 나왔다. 레이건이 집권하자마자 폐지를 시도했으나 뜻밖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교육부 관료, 의회 교육위원회, 교육 단체들이 ‘철의 삼각(iron triangle)’ 동맹을 맺고 막았다. 연방 교육부의 지원금 정책은 양당 의원들이 모두 좋아해 이번에도 교육부 폐지안이 의회 표결을 통과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 교육 정책은 양당이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 빌 클린턴 정부가 공화당의 성과 위주 정책을 채택한 이후 학교 선택권 보장과 학업 성취도에 따른 학교 책임 강화 기조가 초당적으로 유지돼 왔다. 트럼프의 교육부 공약은 교육 정책이라기보다 문화 전쟁에 가깝다. 현 정부의 성 소수자 보호 정책에 대해 보수적인 유권자들은 “학교를 타락시키고 있다”며 반발하는데 교육부 폐지도 이런 표심을 의식한 정치적 수사라는 분석이다.
▷국내에서도 “교육부가 없어야 교육이 산다”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한국 교육부는 막강한 권한으로 교실 크기부터 강사 수업 시수까지 시시콜콜 간섭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런 교육부는 폐지해야 한다”고 했고, 이주호 장관도 입각 전엔 “대학을 교육부 산하에서 떼어내야 한다”고 했다. 교육부 말고도 17개 시도교육청에 국가교육위원회까지 있는데 누구 하나 개혁다운 개혁 과제를 챙기지 않고, 문제가 생기면 서로 책임만 떠넘긴다. 교육부 폐지 논의가 어느 곳보다 필요한 나라가 한국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11-16(토) 앤디 김, 영 김, 매릴린 순자 스트리클런드, 데이브 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연방 하원의원에 도전한 데이브 민 후보(48)가 13일 당선됐다. 이로써 수도 워싱턴의 연방 상·하원에서 일할 한국계 당선인은 4명으로 늘어났다. 한국계 최초 상원의원이 된 앤디 김(42)과 함께 하원의 영 김(62), 매릴린 순자 스트리클런드(62)가 그들이다. 아직 개표 중인 미셸 박 스틸(69)까지 당선되면 한국계는 5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93%가 개표된 가운데 스틸 후보는 50.03%를 얻어 200여 표 차 초박빙 우세를 지키고 있다.
▷5명이 당선된다면 하원의원 4명을 당선시켰던 2년 전 기록을 깨는 것이다. 한국계의 끊임없는 도전은 2년 전 하원 선거에 출마한 5명을 다룬 다큐멘터리 ‘초선(영어 표기는 Chosen)’에 잘 담겨 있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의사당 앞에서 “네게 모든 걸 선사한 미국을 사랑하고 가슴에 새기라”는 말씀을 들었던 소년은 3선 하원 의원을 거쳐 상원 의원으로 성장했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방화 폭동을 아버지의 가게 한 구석에서 목격한 꼬마도 정치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변호사가 된 데이비드 김은 라틴계가 다수인 지역구에서 3번 연속 고배를 마셨다.
▷첫 한국계 연방의원은 김창준 전 하원의원(85)이었다. 그가 6년간 3선을 마치고 물러난 1999년 이후 20년 가까이 한국계는 없었다. 그럼 왜 늘어난 걸까. 한국계 미국인 등록 유권자는 110만 명을 기록하고, 미 의회에서 일하는 한국계 보좌관이 10년 사이에 20여 명에서 70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제 워싱턴 정치무대에서 존재감이 생겨난다는 해석이 많다. 또 한국의 국력 신장과 함께 이민자의 자녀들이 공직과 정치를 더 선택하는 경향도 생겼다.
▷미 의사당의 백인 중심주의에도 변화가 생겼다. 상원 100명, 하원 435명 의원 가운데 1980년 현재 백인은 95%를 차지했다. 백인 유권자가 80%이던 시절이다. 그랬던 것이 2022년 중간선거 이후 백인 의원이 75%로 줄었다. 백인 유권자는 59%로 축소됐다. 현재 한국계를 포함하는 아시아계 의원은 18명으로, 전체의 4% 수준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이번 대선에서 불법 이민 이슈를 부각시키고, 백인끼리 뭉치자는 ‘정체성 투표’를 강조한 것도 세가 줄어드는 백인 정치가 배경이 됐다.
▷워싱턴 정치무대에서 한국계 중진은 아직 없다. 앤디 김이 6년, 영 김이 4년 의정 활동을 했으니, 꿈틀거리기 시작했다는 쪽에 가깝다. 그럼에도 미국 대중은 한국계를 기득권이나 군림보다는 봉사의 존재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앤디 김 의원이 3년 전 폭도들의 미 의회 난입 때 깨진 유리조각과 쓰레기를 홀로 치우는 장면은 강렬한 기억을 남겼다. 낮은 자세로 임하는 정치인이 박수받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다를 게 없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11-18(월) “아파도 내 집에 있겠다”는 노인들의 독립선언

요양시설에 입소하든, 병원에 입원하든 돌봄을 받는 처지가 되면 내 몸은 내 몸이 아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먹어야 하고, 졸리지 않아도 자야 하고, 마음대로 누굴 만날 수도 없다. 자녀의 돌봄 부담을 덜어주려 입소했다가 ‘친절한 감옥’이라며 집에 돌아온 어른도 봤다. 오래 산다기보다 느리게 죽는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더욱이 콧줄을 꽂거나 기저귀를 차기라도 하면 내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하나도 가질 수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3년 노인 실태조사를 조목조목 분석해 발표했다. 그 보고서 내용은 우리나라 노인들의 ‘독립선언’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몸이 아프더라도 ‘자녀 또는 형제자매와 같이 살겠다’는 응답은 2.5%에 불과했다. 가급적 ‘살던 집에서 계속 살고 싶다’(48.9%)고 했고 자녀와 같이 살기보다 차라리 노인 요양시설에 입소(27.7%)하거나 노인 전용주택으로 이사(16.5%)하겠다고 했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인 삶을 유지함으로써 노후에 존엄을 잃지 않고 자녀의 돌봄 부담도 덜어주고 싶다는 뜻이다.
▷1990년대만 해도 내 집에서 나이 들고, 내 집에서 죽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2000년대 들어선 20%대에 머물고 있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인 돌봄 수요가 커졌고, 노인장기요양보험 도입으로 요양시설이 급증했다. 돌봄과 죽음은 자연스럽게 집 밖으로 밀려났다. 우리 사회가 고령화에 적응한 방법이었겠으나 노후 삶의 질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는 해법은 국민 대다수가 ‘병원 객사’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내 집에서 살다가 존엄한 임종을 맞이하려면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지역사회에 기반한 통합돌봄 체계를 구축해 내 집에서 나이 들고 죽을 권리를 보장하는 해외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네덜란드는 돌봄평가기관(CIZ)이 노인마다 맞춤형 케어 프로그램을 짜서 가까운 시설과 연계해 준다. 만약 치매 노인이라면 주간 돌봄시설에서 텃밭을 가꾸고, 친구를 만나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식이다. 일본은 몸이 불편해 이동이 힘든 노인 대신 의사와 간호사가 집집마다 왕진을 다니는 의료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노인들이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유지하며 오래 집에서 머물도록 돕는 것이다.
▷노인들의 독립선언은 결국 내 집에서 ‘웰빙’을 하다가 ‘웰다잉’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다. 소박한 한 끼를 스스로 차려 먹고, 가족이나 친구와 담소를 나누고, 질병과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하루가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특별한 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노인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이제 요양시설이나 병원을 무작정 늘려 돌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돌봄과 죽음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11-19 우크라戰 1000일… 휴전說에 더 치열해진 ‘국경선’ 싸움

오늘(19일)로 개전 1000일을 맞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불공정 전쟁’의 대명사로 기록될 듯하다. 우크라이나는 서방에서 공격용 무기를 제공받았지만 국경 너머의 러시아 목표물을 공격할 수 없고, 자국에 들어온 적에게만 쓸 수 있다. 덴마크 네덜란드가 준 전투기 F-16도 그렇고, 미국의 지대지 미사일(에이태큼스)도 그랬다. “러시아 내부를 때리면 무기 공여국을 교전국으로 간주한다”는 러시아의 엄포 때문이다. 반면 러시아엔 제약이 없다. 1945년 미국의 첫 핵실험 이후 핵무장국은 본토를 공격받은 일이 없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1000일이 지나서야 사거리 300km인 에이태큼스로 러시아 영토를 공격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1차 목표는 러시아 땅 쿠르스크 내 러시아 및 북한군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쿠르스크 지역은 영토 20%를 러시아에 빼앗긴 우크라이나가 유일하게 러시아 내부로 진격한 곳으로, 러시아는 북한 병사 1만2000명을 이곳에 투입했다. 2022년 2월 개전 이후 우크라이나를 방치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화끈하게 돕지도 않았던 바이든이 퇴임 2개월을 앞두고 이렇게 결정한 건 내년 1월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를 의식한 결과로 해석된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 전쟁 중단’을 공언해 왔다. 트럼프 캠프의 휴전 구상은 ‘지금 위치에서 총을 내려놓고 현재의 전선에 비무장지대(DMZ)를 설치하고, 우크라이나는 20년간 나토에 가입하지 않는 대신 미국은 방어용 무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국제사회는 물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도 전쟁 피로감이 커진 건 사실이다.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쟁 장기화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인명 피해가 컸다. 유엔 추정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11만5000명이 사망하고, 50만 명이 부상을 입었다. 우크라이나군은 절반쯤 되는 5만7000명이 전사했고, 25만 명이 다쳤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트럼프발 휴전 가능성은 전쟁을 더 뜨겁게 달구고 있다. 쿠르스크가 최대 격전지로 부상하고 있다. 북한군이 이미 투입됐고, 미국이 장거리 미사일 공격을 허용한 곳이다. 북한군이 여기로 자주포 50문, 방사포 20문을 갖고 왔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 당국은 미사일 공격을 허가하면서 “참전한 북한군이 위험해졌다. 북한에 추가 파병을 멈추라는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가 미국제 장거리 미사일로 러시아와 북한군을 공격하면 푸틴은 보복에 나설 것이다. 여타 전쟁처럼 휴전을 앞두고 한 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국경선’ 공방은 뜨거워질 것이다. 이 와중에 북한군에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할 경우 전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도 예측하기 힘들어진다. 개전 1000일, 이번 전쟁은 러시아의 최초 구상과는 정반대로 누구도 이길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11-20 공직사회 벌써 복지부동 만연

최근 공직 사회는 상시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용산’과 가까운 곳일수록 더욱 그렇다. 에이스 공무원들의 승진 코스였던 대통령실이나 국회 파견은 손을 드는 사람이 없다. 되레 몸이 아프다는 등 갖은 핑계를 대며 손사래를 친다. 자칫 ‘순장조’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이른바 ‘대왕고래 프로젝트’(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사업)를 추진할 산업통상자원부 태스크포스(TF)도 지원자가 없어 애를 먹고 있다. 시추해도 성과가 없을 경우 정권이 바뀌면 곤경에 처할 수 있어서다.
▷정부·여당 지지율이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공직 사회에서는 복지부동, 보신주의가 팽배해 있다. 이제 겨우 임기 반환점을 돌았건만 분위기는 벌써 임기 말이다. 4대 개혁 등 정부의 핵심 정책에 전혀 힘이 실리지 않는다. 용산에서 업무 지시가 내려오면 공무원들은 절차상 문제가 없는지부터 따진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책 담당자들이 감사, 수사로 탈탈 털리는 것을 본 학습효과다. 책임 면피를 위한 대비는 일상화됐다. 윗사람 지시를 녹음하고, 보고서는 누구 지시로 수정했는지 표시해 둔다.
▷‘어차피 뭘 해도 안 된다’는 자괴감도 크다. 공무원은 법률로 일하는데, 아무리 정책을 열심히 만들어도 여소야대 국회에서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정책을 내놓으라고만 할 뿐 정치적 실타래를 풀어 정책의 추진동력을 높일 노력은 제대로 하지 않는다. 야당은 정부의 발목을 잡고, 정부는 거부권으로 응수하는 멱살잡기 식 국정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니 일을 안 해도 티가 나지 않는다.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엇박자, 부실 논란에 휩싸인 것도 공직사회의 힘을 빼고 있다. 연구개발(R&D) 투자 축소 논란 등에서 보듯 대통령이 불쑥 언급하면서 설익은 정책을 내놨다가 여론이 안 좋으면 180도 뒤집는 일이 반복됐다. ‘가계부채 관리’와 ‘서민 지원 확대’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라는 모순된 지시 속에 주택 대출 정책은 오락가락했다. 정부의 정책 철학과 방향성이 모호하니 부처 간 긴밀한 업무 협조는 사라지고 각자도생의 이기주의가 확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은 구조개혁이 지지부진하다며 연말까지 성과를 내라고 닦달하고 있다. 갑자기 임기 후반부의 우선 국정목표로 ‘양극화 해소’를 제시한 뒤 정책을 가져오라고 다그친다. 하지만 몰아붙이기만 한다고 해서 좋은 정책이 나오고 느슨한 공직 기강이 잡히는 건 아니다. 적당히 하는 시늉만 하다가 일이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대통령부터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 국민 신뢰를 회복하고 정치를 복원하지 못한다면 바짝 엎드린 공무원들을 일으켜 세우긴 쉽지 않을 것같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11-21 노노 상속 급증… 부도 늙는다

노인 연령을 ‘65세 이상’으로 규정한 노인복지법이 제정된 1981년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66.1세였다. 20대 초에 결혼했다 해도 그 시절 부모가 타계할 때 자녀들의 나이는 40대 중반을 넘지 않았다. 그해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826달러. 대대로 재산을 물려받은 극소수 부유층을 제외하면 자녀에게 물려줄 만한 재산이 있는 집도 거의 없었다.
▷지난해 상속세가 부과된 피상속인(사망자) 중 80세 이상인 경우는 1만712건으로 전체 상속 건수의 53.7%였다. 이들이 물려준 재산은 20조3200억 원으로 사상 처음 20조 원이 넘었다. 사망자 연령을 고려할 때 재산을 물려받은 자녀들의 나이는 적어도 50대 중반이 넘을 것이다. 한국인 남성과 여성의 올해 평균 기대수명은 각각 86.3세와 90.7세. ‘노노(老老) 상속’은 이미 우리 사회의 보편적 현상이 됐다.
▷문제는 노인이 돼버린 자녀가 물려받은 재산은 좀처럼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녀 양육 및 교육, 주택 구입 등 제일 돈이 많이 드는 시기가 지나 버렸기 때문이다. 한국보다 20년 앞서 같은 일을 겪은 일본이 2년 전부터 ‘부(富)의 회춘’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다. 일본은 피상속인 중 80세 이상 비중이 70%가 넘고, 상속인의 52%는 60세 이상이다.
▷생전에 일찌감치 재산을 물려주도록 유도하는 게 일본 정책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부모 사망일 7년 이전에 자녀에게 연간 110만 엔(약 985만 원)까지 물려준 재산에 대해서는 세금을 면제해 준다. 60세 이상 조부모가 18세 이상 손자녀에게 준 교육비는 1500만 엔까지, 결혼·육아비는 1000만 엔까지 세금 면제다. 한 세대를 건너뛰어 젊은이들에게 노인층의 돈이 신속히 전달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높은 세율은 부의 이전을 어렵게 한다. 한국의 상속·증여세 최고세율 50%는 일본(55%)에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다. 수입이 적은 청년층은 서울에서 집 한 채를 상속받을 경우 내야 할 수억 원의 세금을 감당하기 어렵다. 고령층이 남긴 재산 중 절반은 자신이 살던 아파트 등 건물이어서 상속 절차가 복잡해지는 문제도 생긴다.
▷조만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한국에선 소비 침체가 만성화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 가구 순자산의 44%를 쥐고 있는 60세 이상 가구주의 지갑은 닫혀 있고, 소비 성향이 강한 청년과 돈 나갈 데 많은 30, 40대는 쓸 돈이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사회적 합의만 가능하다면 부의 세대 간 이전이 그 해법이 될 수 있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11-22 남의 얼굴에 두꺼비 사진 합성하면 모욕죄

모욕죄도 시류를 탄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한 시청 공무원이 부하 직원에게 “확찐자가 여기 있네”라고 말했다가 모욕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외부 활동 감소로 체중이 급격히 불어난 사람을 ‘확찐자’라고 부르곤 했는데 직장 상사가 사무실에서 이런 표현을 쓴 건 모욕감을 주기 충분하단 이유에서였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수사가 진행되던 2017년에는 회사 동료들끼리 다투다가 ‘네가 최순실이냐’ ‘최순실 같은 ×’이라고 말한 사람에게 모욕죄가 인정되기도 했다.
▷최근 대법원은 남의 얼굴에 두꺼비 사진을 합성한 유튜버에게 모욕죄 유죄 판결을 내렸다. 보험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그 유튜버는 경쟁 관계인 유튜버를 자신의 영상에 등장시키며 모자이크 처리 대신 두꺼비 사진을 덧입혔다. 그는 “일종의 가면으로 얼굴을 가려주려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인정되지 않았다. 법원은 피고인이 단순히 사진을 합성한 것에 그치지 않고 “두꺼비처럼 생긴 그 ×× 있죠” “두꺼비는 원래 습하고 더러운 데 있다. 더러운 ×이니까 그렇다”고 말하는 등 상대를 비하·조롱하려는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에는 남의 얼굴을 개 모양으로 합성한 유튜버가 모욕죄로 재판에 넘겨진 일도 있었다. 이 사건에선 무죄 판결이 났다. 영상에 개 그림을 사용한 것 외에, 상대를 개라고 지칭하거나 모욕적인 표현을 하지는 않았다는 점이 참작된 결과였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무례한 방법을 쓰긴 했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다소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모욕죄는 타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훼손할 목적으로 경멸적인 감정이나 추상적인 판단을 공공연하게 표현하는 행위다. 피해자가 주관적으로 모욕감을 느낀 것만으론 부족하고 객관적인 잣대로 보더라도 모욕적이라고 판단될 때 적용된다. 누군가를 모욕할 방법은 다양하고, 시대와 문화권에 따라 달라진다. 말이나 글이 아니더라도 비언어적·시각적 수단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모욕을 줄 수 있다. 서구인이 동양인을 향해 눈을 옆으로 찢는 제스처를 한다면 누가 보더라도 모욕이다.
▷이번 ‘두꺼비 판결’은 최근 영상 편집과 합성 기술이 발전하면서 딥페이크 등 신종 범죄가 급증하는 세태에 대한 경고로 볼 수 있다. 이미지를 위변조해 타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엄격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모욕죄가 되려면 해당 표현이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될 수 있다는 공연성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처럼 SNS나 개인 방송이 활발한 환경에선 비방 게시물이 순식간에 번진다. 파급력이 강해 피해자가 느낄 모욕감도 예전보다 훨씬 크고 오래간다. 자기표현 수단이 많아진 만큼 타인에 대한 평가는 더욱 절제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11-23(토) 美 작은정부십자군 “저항 세력에 망치가 떨어질 것”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만들기로 한 ‘정부 혁신 기구’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그 조직의 공동 대표로 지명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53)와 공화당 대선 주자였던 인도계 억만장자 비벡 라마스와미(39)는 20일 신문 기고를 통해 “작은 정부 십자군”이 조직을 주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머스크가 구인 공고를 냈던 “무보수로 주당 80시간 일할 매우 높은 IQ 소유자들”이 그들이다. 12세기 전후로 십자가를 품고 이슬람 정벌에 나섰던 기독교 기사단을 뜻하는 십자군이란 표현이 눈에 띈다. 물러서지 않겠다는 머스크의 결기와 기존의 엘리트 공무원을 적대시하는 트럼프의 생각이 묻어난다.
▷머스크와 라마스와미는 재택근무 중단과 규제 개혁을 제시했다. 코로나 때 정착한 재택근무를 폐지해 주 5일 출근을 불편하게 느끼는 공직자에게 퇴직을 유도하겠다고 했다. 연방 공무원 230만 명 가운데 110만 명이 재택근무가 가능하고, 23만 명은 100% 재택근무를 해도 된다고 한다. 머스크는 또 행정 규제를 철폐해 부처마다 규제 담당자 숫자를 크게 줄이고, 연방 정부 조직을 수도 워싱턴 밖으로 옮겨 공직자 퇴직을 유도하겠다고도 했다.
▷누구나 공감하지만, 손대지 못한 것이 정부 개혁이다. 하지만 두 억만장자의 생각은 다른 듯하다. 머스크는 400개가 넘는 정부 기구를 99개로 줄일 수 있고, 국민 세금을 매년 2조 달러(약 2800조 원) 절감할 수 있다고 말해 왔다. 라마스와미 역시 주(州) 경찰 및 교육자치청과 업무가 겹치는 연방수사국(FBI)과 교육부 폐지를 요구해 왔다. 이들의 주장은 “정부는 문제를 풀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 그 자체”라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취임사와 맥을 잇는 것이다.
▷미 언론 댓글에선 놀라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눈에 띈다. 두 사람이 각각 전기차 혁신과 신약 개발 투자로 어마어마한 성취를 이뤘지만, 이들의 성공 공식이 정부 개혁에 그대로 적용될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머스크는 업무에 관한 한 자신에게 가혹하고,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다고 그를 2년간 관찰한 전기작가는 기록했다. 게다가 이들 둘은 남들이 나만큼 우수하지 못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는 천재형 창업가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부 개혁을 “우리 시대의 맨해튼 프로젝트”로 부른다. 미국이 핵 개발에 성공하면서 전쟁과 국제 관계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처럼 자신도 그만한 변혁의 주도자로 기억되고 싶은 것이다. 트럼프나 머스크나 결국 상식을 뛰어넘되 지나치지 말아야 하는 모순적 과제가 주어졌다. 머스크는 “(개혁 저항 세력에) 망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망치를 가진 자에게는 무엇이든 못으로 보인다’는 미국 속담이 있다. 머스크의 성공 여부는 그가 얼마나 망치를 섬세하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11-25(월) “트럼프는 왕이 아니다”

백악관과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취임 첫날부터 강하게 밀어붙이려는 듯 역대 정부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충성파’ 인사들을 주요 요직에 지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법무장관으로 지명했던 맷 게이츠 전 연방 하원의원이 자진 사퇴하면서 처음으로 제동이 걸렸다. 견제는 진영 내부에서 나왔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는 왕이 아니다”라고 논평했다.
▷게이츠 전 의원은 법무장관 지명 전부터 미성년자 성매수 등 각종 의혹에 휩싸였지만 트럼프 당선인의 신뢰는 굳건했다. 하지만 각료 인준 권한을 가진 상원에서 부정적 분위기가 퍼졌다. 트럼프 당선인이 상원의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지지를 당부했지만 인준에 필요한 표를 확보하지 못했고, 결국 게이츠 전 의원에게 자진사퇴를 종용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위세 등등한 당선인 신분임에도 상원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미국에선 대통령이 장차관, 연방판사, 대사, 군 장성 등 1200여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땐 상원에서 과반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공화당은 상원 100석 가운데 53석을 확보했지만, 단 4표만 이탈해도 과반이 깨진다. 뉴욕타임스는 최소 4명의 의원이 게이츠 전 의원의 인선에 반대했다고 전했다. 여성인 리사 머카우스키, 수전 콜린스 의원은 트럼프 1기 때 대통령 탄핵소추에도 찬성표를 던졌다. 공화당의 전통 노선을 상징하는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와 기후위기 회의론과 싸워 온 존 커티스 당선인도 부정적이었다. ‘보편관세’에 공개적으로 반대해 온 존 슌 의원이 차기 상원 원내대표로 당선된 것도 의미심장하다. 외교, 무역 등 사안에 따라 상원이 트럼프 2기 행정부를 막아설 가능성이 있다.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이던 트럼프 1기 때도 상원은 수차례 대통령의 독주를 제지했다. 임기 초인 2017년 ‘오바마 케어 폐지’ 법안이 공화당 의원 6명의 반대로 무산됐다. 2019년 3월엔 예멘 내전에서 미군의 개입을 중단하는 결의안과 국경 장벽 건설을 위한 비상사태 선포를 무력화하는 내용의 결의안이 연이어 상원에서 가결됐다. 공화당 상원의원들의 ‘반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미국 상원(Senate)의 명칭은 고대 로마 공화정에서 집정관을 견제한 원로원(元老院·Senatus)에서 따왔다. 임기가 6년으로 긴 상원의원들은 소속 정당의 방침이나 여론의 눈치를 덜 보고 ‘국가 지도자(statesman)’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노련한 참모들인 ‘어른들의 축’이 과도한 트럼피즘을 견제했던 트럼프 1기와 달리 젊은 충성파들로만 채워진 트럼프 2기에서, 상원이 미국 민주주의를 지킬 어른의 역할을 해낼지 주목된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11-26 이제야 개인 폰 바꾼 대통령 부부

최고 권력자라고 휴대전화 욕심이 없을 리 없다.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개인 폰을 휴대한 버락 오바마는 블랙베리 마니아였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당시 아이폰 3대를 썼는데 이 중 하나는 보안 칩을 넣지 않은 개인용이었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약 100명의 전화번호가 저장된 개인 폰을 휴대했고,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은 개인 폰으로 여친과 문자를 주고받았다. KGB 출신으로 보안 의식이 철저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휴대전화를 멀리한 거의 유일한 예외다.
▷윤석열 대통령도 도감청 방지 기능이 있는 보안폰과 별도로 검사 시절 쓰던 개인 휴대전화를 계속 이용해 왔는데 최근 김건희 여사와 함께 기존에 쓰던 개인 휴대전화와 번호를 교체했다고 한다. 김 여사가 명태균 씨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제가 명 선생님께 완전 의지하는 상황” “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 용서해주세요” 등이 공개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7일 기자회견에서 김 여사가 개인 폰으로 외부와 소통하며 국정에 개입해 왔다는 의혹에 대해 “저도, 제 처도 휴대폰을 바꿨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개인 폰을 쓰면 보안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개인 폰으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게 3차례 전화를 건 사실이 드러났는데 그때도 수사 외압과는 별개로 보안 문제가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폰은 중국에, 메르켈 총리 폰은 미국에 도청당한 전례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블랙베리는 전화를 걸 수도 문자를 보낼 수도 없고, 그저 걸려 오는 전화를 받고 극소수 사람들이 보내는 이메일만 수신할 수 있는 ‘세 살짜리 애들이 갖고 노는 수준’이었다.
▷개인 휴대전화를 교체한 정도로 윤 대통령이 언급한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번호를 바꿔도 기존 연락처는 다 남아 있다. 새 휴대전화로 계속 문자 주고받고 통화하면 바꾸나 마나 아닌가. 개인 휴대전화가 없어도 마음만 먹으면 내밀한 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특검 수사 과정에서 당시 청와대 행정관의 차명폰으로 40년 지기 최순실 씨와 570여 차례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대통령 부부의 개인 휴대전화 교체는 국정 쇄신을 약속한 후 처음 나온 가시적 조치다. “인재 풀 물색과 검증에 들어갔다”던 인적 쇄신은 “상당한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여사 라인’은 건재하고, 제2부속실 설치와 특별감찰관 임명도 속도를 못 내고 있다. 개인 폰 교체에 대해 “유일한 국정 쇄신” “증거 인멸”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온다. 휴대전화가 아니라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11-27 獨-美-日 자동차 강국들의 구조조정 도미노

유럽 최대 자동차 기업 폭스바겐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독일 공장 3곳을 폐쇄한다는 비상 경영을 선언해 충격을 주더니,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줄을 잇고 있다. 미국 ‘빅3’ 중에선 GM을 제외한 두 곳이 이달 들어 대규모 감원 계획을 알렸다. 포드는 유럽 전체 직원의 14%에 해당하는 4000명을 내보내기로 했고, 지프·크라이슬러가 속한 스텔란티스는 미국 공장 직원 1100명을 줄인다고 한다. 내연기관 중심의 자동차 시장을 이끌어 가던 ‘레거시 기업’들이 전기차 전환의 격변기를 맞아 생존 경쟁에 내몰린 것이다.
▷굴지의 일본 자동차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일본 기업들의 구조조정은 동남아 최대 자동차 생산기지로 ‘아시아의 디트로이트’라 불리는 태국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3대 자동차 업체 닛산은 전 세계 직원의 7%를 해고하고 차량 생산의 20%를 축소한다는 계획을 내놨는데, 태국 현지 직원 1000명을 줄이고 태국 공장 한 곳의 생산을 중단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혼다와 스즈키도 내년에 태국 현지 공장의 가동을 멈춘다고 한다.
▷전통 자동차 강호들이 대대적인 정리해고와 생산 감축에 나선 건 중국 전기차의 파상 공세 때문이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을 중국 차에 뺏긴 데 이어 수십 년간 ‘안방’으로 호령하던 동남아, 유럽에서도 턱밑까지 추격당했다. 몇 년 전만 해도 동남아는 일본 차 브랜드 점유율이 90%를 웃돌았지만 전기차 시장에선 판이 뒤집혔다. 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포르 등에서 중국 전기차가 1위를 휩쓸고 있다. 유럽에서도 중국산 전기차 점유율이 벌써 20%를 넘어섰다.
▷중국 차가 더 위협적인 건 싸기만 한 ‘짝퉁 차’ 꼬리표를 떼고 기술력까지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중국 최대 전기차 기업 비야디(BYD)가 60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 올해의 차’ 최종 후보에 오른 사실은 상징적이다. 전기차 성능을 좌우하는 배터리는 물론이고 차량용 반도체, 모터, 전장부품 같은 핵심 부품과 소재를 자체 조달하는 게 경쟁력이다. 이를 발판으로 BYD는 판매 대수에 이어 분기 매출까지 테슬라를 추월했고, 샤오미는 전기차 출시 1년도 안 돼 10만 대 생산을 돌파했다.
▷중국 전기차 공습에 전통 강자들이 하나둘 무릎을 꿇으면서 한국 기업에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적잖다. 국내 한 증권사는 “현재 온전한 자동차 기업은 현대차, 도요타, GM뿐이며 테슬라와 BYD를 더해 5곳이 최상위 경쟁을 벌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에 품질까지 갖춘 BYD의 국내 판매가 내년부터 본격화되면 한국 시장도 언제 잠식당할지 모른다. 중국의 전기차 굴기에 맞서 국내 기업들이 초격차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이유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11-28 트럼프 최측근 “장관 하려면 돈 내세요”

도널드 트럼프를 10년 가까이 보좌해온 법률 고문 보리스 엡스타인(42)은 ‘트럼프의 투견’이라고 불린다. 트럼프의 대선 불복, 기밀 유출, 성추문 입막음 등 주요 사건의 소송과 여론전을 엡스타인이 주도했다. 변호사이자 정치전략가인 그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초기 공보 책임자였고 백악관에서 나온 뒤에도 막후 실세로 활약했다. 최근 트럼프 재선과 함께 검찰이 줄줄이 기소를 취소한 것도 그의 공이 컸다. 엡스타인은 취임 준비가 한창인 트럼프의 마러라고 사저에 가장 오래 머무는 문고리 권력으로 알려져 있다.
▷보스인 트럼프처럼 논란 일으키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엡스타인이지만 최근 2기 내각 인선을 두고 궁지에 몰렸다. 그가 장관을 희망하는 인사들에게 사적으로 연락해 발탁되도록 도와주는 대가로 10만 달러(약 1억4000만 원)를 요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최근 재무장관에 내정된 스콧 베센트도 몇 달 전 엡스타인으로부터 “트럼프에게 추천해줄 테니 컨설팅비로 매월 3만, 4만 달러를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가 추천한 것으로 알려진 인사 중에는 맷 게이츠 법무장관 후보자도 있다. 게이츠는 미성년자 성매수 의혹 등으로 공화당 내에서도 반대에 부딪혔고, 상원 통과가 어려워 보이자 지명 8일 만에 사퇴했다. 엡스타인은 게이츠와도 모종의 거래를 했을 것이란 의심을 받고 있다. 그는 정권 재창출의 일등 공신인 일론 머스크와도 갈등을 빚고 있는데 이런 부적격 인사 추천이 주된 이유라고 한다.
▷트럼프는 엡스타인의 매관매직 의혹을 조사하라고 캠프에 지시했지만 최측근인 그를 냉정하게 쳐낼 진 의문이다. 의혹을 입증할 증거가 발견됐다는 뉴욕타임스(NYT) 보도가 나오자마자 트럼프는 ‘오보’라며 사과를 요구했다. 미국에선 대선 캠프 고액 기부자를 고위직이나 대사로 앉히는 관행이 남아 있는데 그런 면에서 트럼프는 여느 대통령보다 도가 지나쳤다. 1기 행정부 때 교육부 장관 등 고위직 38%가 고액 기부자들에게 돌아갔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으로 공석이 된 연방 상원의원 자리를 돈 받고 팔아넘기려 한 일리노이주지사를 사면한 것도 트럼프다.
▷정권 주변에는 대통령과의 친분을 내세워 이득을 취하려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권력의 신임이 두터울수록 이들이 부르는 ‘가격’도 높아진다. 대통령이 이런 측근들을 단호히 내치지 않으면 충신의 입지는 좁아지고 한몫 챙기려는 간신들에게 둘러싸이게 된다. 이들이 득세하는 한 트럼프가 머스크 같은 기업인을 정부효율부 장관으로 중용한다고 한들 정부 효율이 좋아질 리 없다. 최고 권력자가 자신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는 사람을 가까이에 뒀다가 낭패를 보고 정권마저 흔들리는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11-29 부모 자녀 동시 부양에 허리 두 번 휘는 ‘70년대 생’

1970년대생은 산전수전 다 겪은 세대다. 10대엔 고도성장기 풍요를 만끽한 X세대, 20대엔 외환위기와 닷컴 버블 붕괴로 취업난을 겪은 IMF세대였다. 직장에선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선배와 그런 선배를 꼰대라 부르는 MZ세대 사이에 낀 세대다. 중년에 접어든 후로는 생애 주기상 돌봄 부담의 정점에서 부모와 자녀를 동시에 부양하느라 허리가 두 번 휘는 세대라고 한다.
▷원래 돌봄 부담이 큰 세대로는 60년대생이 꼽힌다.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라는 뜻에서 ‘마처세대’라 불린다. 그런데 마처세대보다 돌봄과 노후 불안이 큰 세대가 70년대생이다. 재단법인 ‘돌봄과 미래’가 최근 60년대생과 70년대생(70∼74년생) 15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70년대생이 노후 준비는 덜 돼 있는 반면 부모와 자녀를 이중 부양하는 비율은 25%로 60년대생보다 10%나 높았다. 이중 부양자의 월평균 지출액은 60년대생이 164만 원, 70년대생은 155만 원이었다.
▷70년대생은 특히 자녀 부양 부담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60년대생은 자녀가 평균 2명, 70년대생은 1.8명인데 월평균 지출 규모는 70년대생이 107만 원으로 60년대생(88만 원)보다 컸다. 아직 자녀 교육이 덜 끝난 탓도 있겠지만 남다른 교육열도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70년대생이 취업할 무렵 경제는 저성장기에 접어들고 기회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안정된 직장을 위한 스펙의 중요성을 절감한 70년대생은 적게 낳아 투자를 몰아주는 저출산 1세대 부모가 됐다. 취업 연령이 갈수록 늦어지는 세태도 부양 부담을 키우고 있다.
▷한국인의 노동 소득은 43세 무렵 정점을 찍는다. 수입이 줄어들기 시작하는 시기에 노부모 생활비 병원비와 자녀 학비까지 대야 하니 자기 몸을 돌보거나 노후 준비할 여유가 없다. 앞선 설문조사에서 70년대생의 주관적 기대수명은 83.3년으로 60년대생(85.6년)보다 오히려 짧았다. 70년대생은 65세가 돼야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는데 정년을 못 채울까 걱정이고, 일 그만두고 나면 연금 수령 시기까지 ‘소득 크레바스’를 어찌 견딜까 걱정이라고 한다.
▷해외의 경우 삶의 만족도는 나이 들수록 떨어지다 중년에 바닥을 찍고 올라간다. 그런데 한국은 30, 40대에 정점을 찍은 후 계속 내리막이다. 노년의 곤궁함과 무관하지 않다. 70년대생은 그나마 자산 축적 속도가 빨라 부모 세대 수준으로 따라잡은 세대다(서울연구원 자료). 자산 형성은 어려운데 고령화와 만혼으로 은퇴 세대 연금과 자녀를 책임져야 하는 기간이 길어진다면 ‘70년대생이 우리보단 나았다’는 80년대생이 나올 것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11-30(토), “尹과 골프 친 부사관, 로또 당첨된 기분”

권력자 주변에선 아부 경쟁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미국 백악관에도 ‘아부의 드림팀’이 있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즉흥적이고 위험한 제안을 할 때면 참모들은 “대통령님 본능은 언제나 옳다”고 맞장구쳤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재미 없는 농담에 가장 큰 소리로 제일 마지막까지 웃은 사람은 앨 고어 당시 부통령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참모들도 백악관 드림팀 못지않다. 민망한 아부를 밖에서 다 듣도록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28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통령이 휴가 기간에 골프를 쳤느냐는 질문에 “8월 8, 9일 구룡대(계룡대 내 골프장)에서 운동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8월 24일 이전엔 친 적 없다’는 대통령실 해명을 뒤집은 것이다. 김 장관은 당시 경호처장으로 대통령 휴가 일정을 직접 챙겨놓고도 골프 라운딩에 대해선 “모른다”로 일관해 왔다. 그간의 거짓 해명에 대해 사과해야 했지만 김 장관은 ‘휴가 기간에 장병들을 위해 함께 운동한 게 비난받을 일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부사관 한 분은 ‘대통령님하고 라운딩할 줄 꿈에도 생각 못 했다.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국민에게 머리 숙여야 하는 타이밍에 충성 발언으로 대통령 욕보이는 참모들이 있다. 홍철호 정무수석은 대통령의 최근 기자회견에서 ‘무엇에 대해 사과하는지 명확히 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이 “무례”라고 했다가 “대통령이 왕이냐”는 비난을 샀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에 대해 “유럽도 20% 넘기는 정상들이 많지 않다”고 했다가 “정신승리 오지다”는 비아냥거림을 들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입시에 대해서는 (대통령께) 제가 많이 배운다”는 발언으로 ‘킬러 문항 배제’ 후폭풍을 키운 적이 있다.
▷사람은 아부에 약하다. 못난 사람은 아부를 들으면 ‘남이 비위를 맞춰줄 정도로 난 중요한 사람’이라며 우쭐하고, 잘난 사람은 ‘아부하는 사람 안목이 뛰어나다’고 착각한다. 아부가 오글거릴수록 보상은 커진다. 제 평판 망치면서까지 내 편 들어주니 얼마나 고맙겠나. 다들 ‘디올백’이라 할 때 혼자 “쪼만한 백”이라 했다가 기자 30년 인생 부정당하고 KBS 사장 자리에 오른 이가 대표적 사례다.
▷아부엔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선의의 아부도 있다. 대통령과 골프 라운딩을 한 부사관은 감사의 뜻에서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선의의 아부를 맥락이 다른 곳에 인용하면서 악의의 아부로 만들어 버렸다. 현명한 리더는 중요한 일을 맡길 사람, 같이 술 마실 사람을 가려 쓴다. 귀에 다디단 악의의 아부꾼을 술 마실 때도, 중요한 일 할 때도 쓰는 데서 리더와 조직의 위기가 온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橫說竪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