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危機의 韓半島(外交) 2024-11-1/ 11.01 한미 공동성명에서 빠진 '북 비핵화' 정부가 동의한 건가 - 11.15 트럼프 귀환 이후 국제정치와 세계경제 풍향계

상림은내고향 2024. 11. 16. 18:23

危機의 韓半島(外交) 2024-11-1/

11.01 한미 공동성명에서 빠진 '북 비핵화' 정부가 동의한 건가

▲epa11692846 US Secretary of Defense Lloyd Austin (L) looks on as South Korean Defense Minister Kim Yong Hyun (R), delivers remarks during a joint press conference with at the Pentagon in Arlington, Virginia, USA, 30 October 2024. Secretary Austin is hosting the South Korean Defense Minister Kim Yong Hyun for the US-Republic of Korea (ROK) Security Consultative Meeting (SCM), at the Pentagon. EPA/SHAWN THEW/2024-10-31 04:11:29/ <저작권자 ⓒ 1980-2024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한미 국방 장관이 30일(현지 시각) 미국에서 내놓은 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문구가 빠졌다. 대신 ‘핵 개발을 단념시키고 지연시킨다’는 표현이 들어갔다. SCM 성명에서 ‘비핵화’ 문구는 북핵이 고도화한 2016년 이후 매년 포함됐는데 9년 만에 사라진 것이다. 논란이 일자 국방부는 “31일 한미 외교·국방 장관 회의에서 (비핵화) 입장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올 들어 미국에선 ‘북 비핵화’ 표현이 점점 줄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과 민주당이 채택한 새 정강에서 ‘북 비핵화’ 표현이 자취를 감췄다. 지난 3월 백악관 선임보좌관은 “한반도와 세계를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면 비핵화를 향한 ‘중간 조치’도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한반도 핵 문제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입장은 차이가 있다. 미국의 목표는 핵 비확산이다. 반면 한국의 지상 과제는 북 핵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근본 이익이 다른 것이다. 미국은 북 비핵화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하면 북한과 ‘핵군축’ 협상으로 전환하면서 한국의 핵 개발을 감시하게 될 것이다. 핵군축은 김정은이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 대북 제재가 해제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우리 안보에 재앙이다.

 

김정은은 31일 미국 타격이 가능한 ICBM을 시험 발사하고 “핵 무력 강화 노선을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방정보본부는 “북이 7차 핵실험 준비도 마쳤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에 누가 당선되든 비핵화 협상이 아닌 핵보유국 간의 협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에 파병한 북한이 반대급부로 핵 추진 잠수함과 ICBM 재진입 기술을 받아 전략 핵무기를 완성하면 미국은 북한과 핵 협상으로 상황 관리에 들어갈 수 있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그 가능성은 더 커진다.

 

이런 미국은 언제든 ‘북 비핵화’ 문구를 뺄 수 있고 실제 북 비핵화 목표를 바꿀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입장은 다르다. 정부가 핵무장을 포기한 상태에서 어떤 경우에도 국제사회가 북한 핵 보유를 인정하는 것을 허용해선 안 된다. 김정은이 ICBM·핵 추진 잠수함 등을 완성하면 미국이 뉴욕을 희생하면서 서울을 지키겠느냐는 물음은 더 커진다. 세계 모든 나라가 ‘북 비핵화’를 포기해도 우리는 그럴 수 없다. 한미 공동성명에서 이 문구는 그런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심지어 남북 이벤트에 몰두하던 문재인 정부 때도 SCM 성명에서 ‘북 비핵화’ 문구가 유지됐다. 그게 윤석열 정부에서 없어졌다니 어이가 없다.

조선일보 사설

 

11-01 SCM서 ‘북 비핵화’ 누락 충격…진상 밝히고 책임 물어야

한·미 국방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30일 워싱턴에서 열린 안보협의회의(SCM) 후 발표된 공동성명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문구 대신 ‘북한의 핵 위협 억제’가 들어간 것은 충격적이다. 핵 위협 축소에 집중한다는 것은 북핵 용인이 전제라는 점에서 그렇다. 군사적 최종 목표가 북핵 폐기이며 모든 방법을 동원해 관철하겠다고 해도 부족한 판에 SCM의 패배주의적 표현은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주며 추가 도발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김정은은 SCM 개최에 맞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후 “핵무력 강화 노선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했다.

북핵 폐기에 대한 한·미 양국의 결연한 의지는 2016년 SCM 때부터 늘 천명됐다. 심지어 김정은의 비핵화 사기극에 장단을 맞췄던 문재인 정부 때도 SCM엔 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표현이 있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첫해인 2022년에는 ‘북한의 비핵화’, 2023년에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로 강화됐다. 그랬는데 돌연 사라졌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최근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정강에서 ‘북한 비핵화’를 삭제한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미국이 북핵 위협 억제에 치중하겠다는 것은 북한의 핵을 인정한 상태에서 핵 군축 회담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북한의 핵무기는 용인하면서 한국의 핵 개발을 한사코 반대하는 미국을 상대해야 한다. 국방부는 “한·미가 북한 비핵화라는 공동 목표를 견지하고 있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결코 해프닝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미국 내 기류를 보면 단순한 누락으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누락이든 삭제든 미국 측 진의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공동성명 수정도 필요하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진상을 세세히 규명하고 책임을 묻는 것은 기본이다.

문화일보 사설

 

11-01 북·러 편드는 野, 안보와 국익 해친다

박동순 한성대 국방과학대학원 안보정책학과장, 재향군인회 안보교수

북한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에 끼어들었다. 고립된 외교·경제·군사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려는 탈출구를 러시아 파병에서 찾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미국은 “북한군이 최전선으로 이동한다면 그들은 러시아와 함께 이 전쟁의 공동 교전국이 된다”고 경고했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은 국제사회에 위협적인 사건이다. 가장 큰 위협은 러시아와의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이며, 다음은 북한과 70년 넘게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우리 정부는 전체적인 전황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와 연대를 통해 보조를 맞춰 나가는 ‘단계적’인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뜻을 밝힌 상태다. 국방부는 북한의 파병을 불법 행위로 보고 즉각 중단할 것을 경고하면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파병 소식을 전했다. 재향군인회도 지난달 28일 주한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북한의 파병을 규탄하는 집회를 갖고 항의했다.

이처럼 정부는 북한의 러시아 파병에 국가 안보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는데, 야당의 시각과 대응은 어처구니없고 황당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8일 정부가 북한의 파병을 계기로 한반도에 전쟁을 획책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며, “지금 행동을 보면 전혀 근거 없는 억측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심지어 남의 나라 전쟁에 왜 끼어드느냐며, “국가정보원에서 ‘심문조’를 파견하겠다고 하는데 고문 기술 전수라도 하겠다는 것이냐”고 했다. 과연 이것이 북한의 러시아 파병에 대한 제1 야당 대표의 인식인가. 몇 가지 물어보고 싶다.

첫째, 우크라이나 전쟁이 ‘남의 전쟁’인가? 현대사회는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고 경제와 문화가 하나로 연결돼 있어 사실상 ‘남의 전쟁’은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중동 전쟁도 우리의 경제·안보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또한, 대한민국은 그동안 동맹인 미국 및 나토(NATO) 등과 공조하며 우크라이나에 전쟁 물자를 지원했다. 하지만 북한은 침략국 러시아에 탄약과 무기를 지원했을 뿐 아니라 파병까지 했다.

둘째, 북한의 러시아 파병이 우리 정부의 책임인가? 북한 정권은 핵 개발로 자초한 외교·경제적 고립을 돌파하기 위해 러시아와 연대를 택했다. 즉, ‘고립의 탈피는 진영화를 통해 가능’하다는 원리를 차용했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연대를 통해 존재감을 확보하고, 첨단 군사 기술 전수를 요구할 것이다. 나아가,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의 안보 보장을 제도화할 것이다. 북한의 파병은 전적으로 김정은과 푸틴의 책임이다.

셋째, 국가정보원의 심문조 파견이 고문 기술을 전수하는 것인가? 특수작전부대를 파병한 북한과 대치 중인 대한민국의 정부 차원 ‘전황분석팀’ 파견은 당연하다. 지금도 세계 각국은 정보전이 치열하다. 동맹이나 주요 파트너 국가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북한이 이미 제공한 단거리미사일 등 무기와 탄약, 전술과 관련한 첩보를 수집 분석해 차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파병이 ‘강 건너 불’이 아닌 이유는, 러·북 야합에 의한 비정상적인 밀착이라는 데 있다. 러시아는 침략국이다. 역사적으로 침략국을 돕는 것은 정당성이 부여될 수 없다. 그리고 북한의 파병은 김정은 개인의 체제 유지를 위한 독단적 행위다. 지금 국제사회는 대한민국의 대응을 지켜보고 있다. 북한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이나 정부의 대응에 딴지를 거는 행태는 국민과 세계 우방을 실망시킬 뿐이다. 국가안보와 국익 앞에서는 당리당략을 버려야 한다.

문화일보 

 

11.01 북한의 러시아 파병과 김정은의 4대 리스크

북한의 러시아 파병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네 가지 리스크에 직면했다. 첫째는 북한군의 탈북과 탈영이다. 러시아 쿠르스크(원래 우크라이나 영토) 지역에 배치된 북한군은 특별 작전을 수행하는 정예 병력이라지만 그들의 충성심에 온전히 기댈 수는 없다. 지난 9월 공개된 김정은의 북한군 사격 훈련장 시찰 사진에서 완전무장한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는 김 위원장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는 그의 경호에 대한 불안감을 보여준다.

북한 병사들 탈영하면 큰 타격

러시아의 총알받이 신세될 수도

북한에 해피엔딩 될 것 같지 않아

 

 우크라이나 측이 주장하는 대로 약 1만2000명이 파병됐고, 이들이 모두 특수 작전부대라면 이는 북한 특수 부대의 20%가 러시아에 배치됐다는 뜻이다. 파병 규모가 수천 명이고 최정예 부대원이라면 이들 중 일부가 우크라이나로 탈영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우크라이나는 북한군을 겨냥해 한국어로 ‘이국땅에서 무의미한 죽음을 맞이하기보다는 탈영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동영상을 제작했다. 북한군의 탈영은 북한 내부에 치욕적일 것이고 러시아가 보기에도 북한의 입장이 우스꽝스러워질 것이다.

 

둘째 리스크는 북한군의 무능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이다. 북한군이 최전방에 서게 되면 수많은 전투로 단련된 우크라이나군을 당해낼지 의문이다. 우크라이나군이 도청해 공개한 러시아군들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러시아군은 북한군의 전투력을 의심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언어와 문화 장벽도 있어 오해와 실수로 이어질 수 있다. 북한군의 전투력이 형편없는 것으로 드러나면 북한이 그동안 대한민국에 가해왔던 위협도 요란한 빈 수레였음이 드러날 것이다.

 

셋째, 러시아의 부당한 북한군 대우와 사상자 발생으로 인한 정치적 리스크다. 러시아군은 인도와 네팔에서 외국인 용병을 기용했는데 이들 모두 처참한 환경과 턱없이 부족한 배급, 러시아 지휘관의 끊임없는 인종차별적 언사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의 끈끈한 우방인 쿠바도 2023년 9월 러시아의 쿠바 용병 채용을 금지했다. 러시아군의 경멸을 받으며 북한군은 총알받이로 전락해 결국 큰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다. 머나먼 타국에 파병된 특수 부대에서 사상자가 발생하면 정권 차원에서 더 위험하다. 이들은 정권이 의지하는 핵심 계층 출신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끝으로 우크라이나의 공격 가능성이다. 지난달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북한의 파병에 대해 “싸워야 할 적국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을 적국으로 규정한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대북 사이버 공격 역량이 충분하다. 러시아가 크게 의존하고 있는 북한의 탄약 제조공장은 매우 좋은 표적이다. 우크라이나가 무기를 탑재한 드론(무인기)을 선박에 실어 북한 해안의 미사일 발사 기지를 공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한국 국방부는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으로 북한군의 전투 능력이 개선되고, 핵 추진 잠수함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 진보의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우려했다. 하지만 그것은 북한이 모든 리스크를 감내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이번 파병으로 북한이 노리는 이득은 무엇일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전쟁에서 약 70만 명의 병력을 잃어 신규 징집 병력에 보너스를 두 배로 올려야 했다. 러시아 입장에서 값싼 북한 병력 확보는 매우 유용하다. 북한은 석유와 식량을 대러 교역에 많이 의존하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한 탄약의 4분의 1을 북한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북한이 이미 탄약 비축량을 소진해 무기 생산량이 대러 수출량을 따라가지 못하면 러시아의 석유와 식품 공급도 끊어질 수 있다. 이는 북한에 재앙이다. 이처럼 무기 공급의 한계 때문에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 대신 병력 배치를 제안한 것은 아닐까.

 

북한은 이번 파병 이후에 추가로 병력 배치를 요구받을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군 사상자는 최저 추정치가 하루 1000여 명이니 북한군 1만2000명으로는 2주밖에 버티지 못한다는 계산이다. 만약 러시아가 물자 공급 중단을 거론하며 북한의 파병 증원을 요구하면 북한은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파병 증원은 앞서 열거한 북한의 리스크가 더 커진다는 의미다. 아무리 생각해도 파병의 결말은 해피엔딩일 수 없다.

 

중앙일보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11.02 뉴욕의 극한직업, 北韓 외교관

▲지난 10월 24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유엔 주재 한국대표부 김성훈 참사관이 발언권을 얻어 북한대표부 발언에 반박하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북한 외무성 소속 림무성 국장. /유엔

 

미국 땅에서 북한이 외교 공관을 갖고 있는 지역은 뉴욕이 유일하다. 북한은 1991년 한국과 별개로 유엔에 가입해 자체적으로 대표부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김성 대사를 비롯해 총 11명의 외교관들이 뉴욕에 나와 있다.

 

이들이 사용하는 사무실은 유엔 본부에서 걸어서 5분 남짓이다. 한국 대표부와 한 블록 차이다. 한국에서는 군사분계선이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지만, 뉴욕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서로 코앞까지 갈 수 있다. 가끔 반북 단체들이 북한 대표부가 입주한 건물 앞에서 시위도 한다.

 

북한 외교관들은 많은 면에서 유엔의 다른 나라 외교관들과 다르다. 각국 외교관들은 대부분 자기 사정에 맞게 살 집을 구하고, ‘맛집 리스트’를 만들어 뉴욕에 있는 다양한 음식을 시도해본다. 북한 외교관들은 맨해튼과 퀸즈 사이에 있는 루스벨트 아일랜드에 모여 산다. 출근 때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보다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한다. 뉴욕의 높은 교통 비용을 조금이라도 아끼려는 목적도 있지만, 딴생각하지 못하게 서로를 감시하라는 의미도 담겼다. 식사도 대부분 건물 안에서 함께 모여 해결한다.

 

그들은 국제 외교 무대에서도 외톨이 신세다. 올해 초엔 영원한 친구인 것만 같았던 같은 사회주의 국가 쿠바도 한국과 수교를 맺었다. 다자외교의 큰 무대인 유엔에서 북한은 유령과 같다. 가령 유엔 총회 소위원회가 열려도 대부분 모습을 보이지 않고 결의안 문안 협의에도 빠진다. 가끔 회의장에 나와 한마디씩 하거나, 국제사회의 비판에 답변권을 행사하는 게 전부다. 그것도 북핵을 정당한 자위권 행사로 둘러대는 궤변 일색이다. 그나마 북한의 재래식 무기와 병력이 필요한 러시아가 가끔씩 말동무가 되어 주기는 한다.

 

이런 북한 대표부가 최근 열린 유엔 회의에서 한국의 발언에 허를 찔렸다. 한국이 북한의 러시아 파병을 두고 “병사들은 이미 북한에서 잊혀지고 버림받았다”고 면전에 얘기하자, 북한 외교관은 “북한이라고 부르지 말라”며 엉뚱하게 반박한 것이다. 외교가에서는 “오죽 당황했으면 그런 이상한 반응을 보였겠느냐”는 말이 나왔다. 다음 회의에서 북한 외교관은 발언을 하며 부들부들 떨기도 하고 말을 마친 뒤 마이크를 휙 꺾어버리기도 했다.

 

외신에서는 최근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 부대가 북한군과 교전했고, 북한군 대부분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유엔에 나와 있는 북한 외교관들도 이 소식을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유엔 무대에서 누구도 받아주지 않는 논리를 늘어놓아야 하고,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며 1960년대 한국처럼 좁은 공간에 뒤엉켜서 살아야 하는 그들. 매일 출퇴근하며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자본주의를 맛볼 꿈도 꾸지 못하는 북한 외교관들은 국가에서 버림받고 러시아에서 희생당하는 병사들의 소식을 들으며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조선일보 뉴욕=윤주헌 특파원

 

11.03 "지금 중국엔 성장 여지가 없다...가장 불확실하고 위험한 시기"

황야성 MIT 교수 "값싼 전기차, 첨단 반도체가 중국만의 기술력이란 주장은 허상"

▲일러스트=김의균

 

중국몽(中國夢)’은 꺼져가는가. 중국 정부가 마지노선으로 삼았던 올해 ‘5% 성장률’ 목표는 이미 적신호가 켜졌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같은 분기 대비 올해 1분기 5.3%, 2분기 4.7%를 기록했는데, 최근 공개된 3분기 수치도 4.6%에 그쳤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이 2029년에는 3.3%까지 쪼그라들 것으로 내다본다. ‘시진핑표’ 경제 부흥책 처방에 중국 주식 시장은 일주일 만에 20% 넘게 반짝 상승했지만, 금세 약발을 잃고 10% 가까이 떨어져 횡보세다. 글로벌 기업들은 침체 수렁에 빠진 중국 시장에서 속속 짐을 싸고 있다. 프랑스의 탄소 흑연 제조업체 메르센은 지난달 중국 내 제조 공장 문을 닫았고, 미국 유나이티드항공은 한때 하루 10편씩 운행했던 미·중 노선을 3편으로 줄였다.

 

세계 경제 양대 축인 중국이 휘청이는 가운데 WEEKLY BIZ는 미국 최고의 중국 전문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황야성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 경영대학원 국제관리학 교수와 최근 화상 인터뷰했다. 베이징에서 태어나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중국계 미국인인 황 교수는 직설 화법으로 말했다. “나는 미래를 내다보는 수정 구슬을 갖고 있지 않지만, 중국이 가장 불확실하고 위험한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신껏 말하자면 지금의 중국엔 성장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래픽=김성규

◇中경제, 근본적 체질 개선해야

-최근 중국이 경기부양책을 쏟아냈는데.

“중국 정부는 아직도 ‘정부 주도 성장’이 가능하다고 믿는 듯하다. 증시를 자극하고, 부동산 대출을 푸는 것은 과거에나 통했던 공식이다. 국내총생산(GDP)이 해마다 6~7%씩 성장하고, 돈이 많을 땐 정부 주도 성장이 가능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중국의 경제 성장은 둔화하고 있고, 정부 재정은 온통 적자다. 이전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을뿐더러 이대로 간다면 경제가 무너지는 것은 안 봐도 뻔하다.”

 

중국 정부는 최근 두 달 사이 금리 인하, 부동산 대출 완화, 내년도 예산 조기 투입 등과 같은 각종 경기부양책을 쏟아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 9월 말 경기 대응적 조정을 강화하라는 메시지를 낸 이후 경제 관련 부처들이 앞다퉈 부양책을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부양책의 구체성이 떨어지고 과거 정책 재탕이 많아 약발이 오래가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이 경제 위기를 헤쳐나가려면.

“한국을 보라.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옛날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완전히 제도를 바꿨다. 그중에서도 금융과 정치를 분리하는 게 정말 중요한 과정이었다. 그 덕에 한국은 사(私)금융이 발전했고, 기업들이 다양하게 생겨났다. 스타트업이 늘어나고, 문화도 자유로워졌다. 이런 체질 개선은 한국이 가진 경쟁력의 밑바탕이 됐다. 중국도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통치 방식을 개혁개방이 이뤄졌던 1978년 당시로 되돌려놔야 한다. 정치적인 분권, 경제적인 자유가 있어야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

 

▲그래픽=김성규

 

-중국의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얘긴가.

“물론 기존에도 중국의 정치는 경직돼 있었다. 정치 체제에 대한 비판이 용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외에는 대체로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했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기업의 혁신, 기술의 수용 등을 두고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얘기할 수 있었다. 이건 혁신에 큰 도움이 됐다. 그래서 GDP가 엄청나게 성장했고, 기술이 발전했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선 토론이 사라지고 지금까지의 성공 공식과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중국이 발전의 길을 역행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민주주의를 택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중국이 자유민주주의를 택했다면 더 많이 발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엔 수많은 학자나 학파가 자신들의 사상을 논하는 백가쟁명(百家爭鳴)을 통해 사상과 기술이 발전했다. 민주주의가 꼭 아니더라도 중국 사회에 더 많은 자유가 있었다면 더 발전했을 것으로 본다. 만약 자유가 있었더라면 핀둬둬(전자 상거래업체)는 구글만큼 커지고, 알리바바는 아마존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꼭 민주주의가 정답이라고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민주주의 역시 많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권위주의 체제라도 더 많은 생각의 자유와 민주적인 지도력이 밑바탕돼야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픽=김성규

◇미 대선 이후 미·중 관계

-오는 5일 미국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대중 제재 측면에선 누가 당선되든 대동소이할 것이란 전망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민주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공화당)은 대(對)중국 전략이 크게 다를 것이라고 본다. 둘 다 대중 제재는 이어갈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중국을 절대적인 라이벌로 보는 반면, 해리스는 중국을 라이벌이자 필요한 동반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예컨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선 중국이 필요하다는 식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나 해리스는 선을 지키는 걸 중시한다. 중국을 지나치게 자극하려고 하진 않을 것이다. 반면 트럼프의 공화당은 오히려 중국을 자극하고 싶어한다. 중국의 눈을 찌르고, 상처를 입히고 싶어하는 듯하다.”

 

-트럼프는 60%의 대중 관세 등을 공약했다.

“트럼프는 당선되면 (중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엄청나게 올릴 것이라고 했다. 해리스는 관세를 낮추진 않겠지만, 올리지도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해리스는 관세를 마구 올리면 미국 경제에 되레 안 좋다는 인식도 있고, 중산층 살림살이엔 안 좋다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미국 등 서방 세계와의 갈등 관계를 풀려면) 중국이 먼저 행동해야 한다고 본다. 대만에 대한 적대감을 줄이고, 러시아를 지지하지 말아야 한다. 중국이 러시아를 지지하는데 유럽에 어떻게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겠나. 중국은 북한에 있는 지도자를 돕고 있다. 중국이 북한을 두둔하고 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북한과 관계를 완전히 단절할 필요는 없겠지만, 중국이 북한의 경제 구조를 전환시키는 등 좋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북한과 러시아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겠나. 없다. 서방국가들, 일본, 한국과 관계 개선을 하는 게 중국에도 훨씬 도움이 된다.”

 

-러시아나 북한을 적대시하란 얘긴가.

“적대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서방 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먼저 해야 한다는 뜻이다. 경제적으로 중국한테도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한때 중국 기업들의 기술력을 뒷받침해주던 엄청난 파트너였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은 중국에 엄청 부정적이다.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갖는 나라가 미국만이 아니다. 일본, 이스라엘, 유럽 등 각지에 다 퍼져있다. 한 집단 안에서 모든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중국 ‘기술 굴기’는 허상”

최근 중국의 반도체 기업 SMIC는 3나노(10억분의 1미터·작을수록 우수한 공정으로 평가한다) 반도체 생산에 도전하고 있다. 중국의 전기차 기업 비야디(BYD)는 글로벌 시장의 테슬라의 판매량을 넘어서는 등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높은 기술력에 저렴한 가격까지 앞세운 중국 기업 공세에 글로벌 기업들은 긴장한다. 그러나 황 교수는 중국의 ‘기술 굴기’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그는 “중국만의 기술력이라는 개념 자체가 허상”이라고 했다.

 

-중국 기업들 기술력이 좋아져 첨단 분야에서 속속 성과를 내지 않나.

“중국의 기술력이라는 것 자체가 허상에 가깝다고 본다. 비야디가 어떤 소프트웨어를 쓰나. 테슬라의 소프트웨어를 그대로 쓴다. 5나노 반도체를 만든다는 SMIC는 네덜란드 ASML의 구형 제조 장비로 연명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40년 동안 글로벌 기업들과 손잡고 기술을 배웠다. 그 유산으로 오늘날의 성과를 내는 것이지 중국 고유의 기술력은 거의 없다고 본다.”

 

-중국 정부가 첨단 기술에 집중 투자해 성과도 있지 않았나.

“인공지능(AI)이 중국에서 나왔나? 거대언어모델(LLM)이 중국에서 나왔나? 아니다. 중국 정부는 첨단기술 분야에 지원하지만, 이미 발명된 기술만 지원한다. 반면 미국에선 정부가 기초과학을 뒷받침했다. 발명되지 않은 기술까지도 지원하는 것이다. 일부 기초과학만 첨단기술로 성장하기 때문에 이런 결정은 쉽지 않을 수 있다. 반면 중국은? 3나노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정부가 엄청나게 많은 돈을 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1나노 반도체를 개발할 수 있을까? 세상에 없는 걸 만들어낼 수 있을까? 만들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중국은 뒤늦게 따라잡기 위해 발 빠르게 투자를 하지만 새로운 발명은 못하고 있다. 중국의 기술력이 뛰어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MIT에 초청하고 싶다. 5분 만에 생각을 바꿔줄 수 있다.”

 

▲황야성 매사추세츠공대(MIT) 국제관리학 교수/MIT 제공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중국의 성공 방정식

황 교수는 최근 ‘중국필패’(한국판 저서명)란 책을 내고, 역사적으로 중국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공식으로 ‘E·A·S·T’란 개념을 제시했다. E는 시험(Examination), A는 독재(Autocracy), S는 안정(Stability), T는 기술(Technology)이다. 그는 “과거 중국은 커쥐(科擧·과거)라는 ‘시험’을 통해 사람들에게 하나의 사고방식을 주입하고 관료들을 키워 ‘독재’ 속에서 ‘안정’을 만들어냈다”며 “통일성을 강조한 덕에 중국이라는 큰 나라가 지금껏 살아남았지만, 생각의 자유가 제한되면서 ‘기술’ 발전이 막히는 바람에 오늘날까지 중국 경제 성장엔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했다.

 

-E·A·S·T가 중국의 발목을 잡는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E·A·S·T가 역사적으로 중국이라는 큰 나라가 살아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건 사실이다. 과거 제도는 중국에서 6세기쯤 도입됐는데, 이때부터 중국에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만 존재하는 ‘통일성’이 생겼다. 하지만 통일성은 달리 말하면 획일성이다. 중국 소년들은 어린 나이부터 공자라는 위대한 스승의 사상과 가르침이 주입됐다. 생각의 자유, 의견을 나누는 토론 문화가 약해졌다. 통일성은 나라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지만, 획일성은 기술 발전엔 걸림돌이 됐다.”

 

-생각의 자유가 제한된 탓에 기술력이 뒤처졌단 얘기인가.

“그렇다. 유럽을 예로 들어보자. 유럽은 통일된 이데올로기가 없어 로마제국이 무너진 이후 여러 나라로 나눠졌지만, 현대에 와서는 오히려 자기들끼리 기술 교류를 하고 시너지를 내며 빠르게 발전했다. 반대로 중국은 틀을 깨는 사고가 막혀 있는 데다, 사회적 다양성이 없어 기술 개발이 더뎠다.”

◇피부로 느낀 두 나라의 차이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은 미국으로 진학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나.

“한국 학생들도 미국으로 많이 공부하러 가지 않나. 이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교육 수준이 높아서 갔다. 특히 나에겐 ‘자유’가 중요했다. 생각의 자유, 비판의 자유. 중국에 있을 땐 권위주의가 잘못됐다고 생각했고, 미국에 건너와선 민주주의 문제점이 보였다. 태생적으로 비판적인 면이 나에게 있던 것 같다. 중국에 남아 있었더라면 학자로서의 소신을 지키고 성장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미국과 중국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뭐였나.

“중국엔 57개 민족이 있다지만 사실상 90% 이상이 한족(漢族)인 단일민족 국가에 가깝다. 하지만 미국엔 백인, 흑인, 동양인, 히스패닉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똑같은 이슈에 대해 너무나 달리 본다는 게 정말 새로웠다. 어떤 사람은 경제 발전이나 GDP에 관심을 갖지만, 누군가에겐 춤추고 노래를 부르는 게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 이걸 인정해야 한다. 지금 중국은 이와 같은 다양성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중국에서 이런 변화가 가능할까.

“아직 중국은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할지 모른다. 나는 학자다. 학자로서 소신껏 말하자면 이대로의 중국은 성장의 여지가 없다. 중국이 달라져야 한다.”

☞황야성 교수

황야성 교수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 경영대학원에서 국제관리학을 가르치고 있다.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난 그는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 경영학부에 진학해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그는 미시간대와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교수를 지냈고, MIT에서는 인도·중국 연구소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그의 책 ‘중국적 특색의 자본주의: 기업가 정신과 국가’는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선정한 2008년 최고의 책에 꼽히기도 했다.

조선일보 채제우 기자

 

11-04 中 ‘일방적 비자 면제’ 발표와 한중관계 정상화 正道

중국 정부가 8일부터 한국인에 대한 단기 비자 면제 조치를 시행한다고 지난 1일 저녁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은 이례적이다. 비자 면제는 상호주의 차원에서 외교적 협의를 거쳐 이뤄지고 동시 발표하는 게 관례지만, 주중 한국대사관은 발표 때까지 해당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고 한다. 외교부도 관련 브리핑을 하지 않았다. 전격적으로 이뤄진 정황을 볼 때 중국 수뇌부 차원의 결단인 듯하다.

중국의 비자 면제 조치는 1992년 수교 후 32년 만인데 현 국면에서 꺼낸 것은 의아하다. 효과를 고려했다면 10일부터 페루에서 열릴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중 정상회담이나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양국 관계 정상화 의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카드를 일방적으로 내민 것은 그만큼 다급하다는 의미도 된다. 중국 경제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관광객 확대가 필요했을 수 있다. 올해 중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2019년 관광객 3100만 명의 3분의 1수준이다. 중화권 이외 국가 중 중국을 가장 많이 방문해온 한국 관광객이 급감한 상황에서 한국 기업인이 간첩죄로 체포되고, 한국 내 반중 여론이 80%에 달하는 상황도 고려됐을 것이다.

중국이 무비자 조치를 시혜를 베풀듯 꺼낸 것은, 현재의 한중 관계 전반을 고려할 때, 마냥 환영할 일은 아니다. 시진핑 주석은 2014년 7월 방한 후 10년째 한국을 외면하면서 사드 보복을 해왔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도 러시아의 대북 제재 무력화를 거든다. 글로벌 공급망 문제도 있다. 중국이 한중 관계 정상화를 원한다면 깜짝 꼼수를 쓸 게 아니라 정상외교부터 정상화하는 게 정도(正道)다.

문화일보 사설

 
 

11.04 北 참전의 감당 못 할 나비효과

▲우크라군 SPRAVDI가 러시아군 장비를 수령하는 북한군의 모습이라며 공개한 영상 중 일부. /우크라군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 엑스계정 갈무리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전선 투입을 바라보는 유럽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1962년대 미국과 소련 간에 벌어진 ‘쿠바 미사일 위기’의 유럽판이란 말도 나온다. 양측의 교전이 벌어지고 다수의 사상자가 나오는 순간, 이 전쟁에 대한 유럽인의 시각이 크게 변화하리란 것은 자명해 보인다. 소셜미디어 일각에선 벌써부터 “13세기 몽골의 유럽 정벌 이후 800년 만에 동아시아 군대가 유럽 땅에 들어왔다”는 해석이 나온다. ‘위험한 확전’이라는 시각을 넘어, 북한군 파병에 문명·역사적 의미마저 부여하려 하고 있다.

 

참전은 무기 지원과는 차원이 다른 행위다. 주권국가로서 전쟁의 당사자가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 만큼 다양한 문제를 파생한다. 만에 하나 우크라이나가 북한에 대한 보복 공격을 하려 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북한군이 우크라이나군에 발포하는 순간, 우크라이나는 북한 본토 공격을 포함한 다양한 자위권 행사의 명분을 갖게 된다. 우크라이나가 평양 주석궁이나 북한의 핵시설을 타격 목표로 삼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를 검토하는 것만으로 한반도엔 상당한 후폭풍이 몰아칠 것이다.

 

북한군 사상자와 포로를 어떻게 처리할지도 골치 아픈 문제다. 우크라이나는 북한군 포로를 자국 포로 교환에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 주민은 우리 국민이다. 북한군 부상자와 포로 처리 문제를 놓고 인도주의적, 법적 논란이 일게 될 것이다. 1953년 이승만 정부의 6·25 반공 포로 석방 같은 일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지 말란 법도 없다. 이는 남·북 간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큰 이슈가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대규모 무기 지원 같은 ‘대가’를 요구받을 가능성도 배제 못 한다.

 

인권 의식이 부족한 북한 병사들이 민간인이나 포로를 상대로 비인도적 행위를 하게 될 가능성도 걱정된다. 현실이 될 경우 그 반향은 심각할 수 있다. 유럽의 극우는 중동·아프리카 이민자의 유입을 ‘문명적 침탈’로 보아왔고, 최근에는 중국의 ‘경제적 침략’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고 있다. 여기에 북한의 ‘유럽 침공’이라는 새로운 스토리 라인이 등장할 판이다. 북한군이 잔혹 행위를 했다는 영상 하나만 돌아도 이 전쟁엔 루소포비아(Russophobia)와 황화론(黃禍論)이 결합된 인종주의 요소가 개입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군 참전이 일으킬 나비효과는 하나하나 따져보기도 힘들 만큼 많다. 합쳐지면 무기 지원과 병력 파견에 계속 선을 그어온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들의 입장도 어느 순간 변화할 수 있다. 절박한 러시아가 이런 리스크를 제대로 따져보기는 커녕, 북한군 파병을 ‘병력 아웃소싱’ 정도로 가벼이 여기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중국 역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러시아와 북한이 지금이라도 ‘회군’을 고민해 보길 바란다. 쿠바 위기 때도 결국 뱃머리를 돌린 것은 소련이었다.

조선일보 파리=정철환 특파원

 

11.06 러시아 용병 파견과 김정은의 미래

 절박한 두 남자가 판돈을 합쳤다. 김정은은 러시아에 포탄을 팔다 이제는 사람까지 투자했다. 푸틴은 판돈을 키워 서방에 ‘너희가 물러나라’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타이밍도 맞췄다. 미국 대선 전에는 유권자의 표를 겨냥했고, 이제는 새롭게 선출된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한다. 푸틴의 도박은 성공할까. 만약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다면 휴전이나 종전이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유럽 나토 회원국이나 미국 내부의 반대에 부딪혀 의도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유럽 국가들이 방위 비용을 더 많이 부담하는 조건으로 타협되리라는 전망이 많다. 이 경우는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전쟁은 계속된다.

 용병 파견으로 양극단 위험 증가

핵·경제 병진 성공할 수도 있지만

북한 체제 붕괴 가능성 또한 증가

지금은 신중히, 위험도 대비해야

 

전쟁이 지속된다면 푸틴은 러시아 청년 대신 북한 젊은이를 전쟁에 더 투입하고 싶을 것이다. 김정은도 이미 전쟁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에 푸틴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울 테다. 그렇다면 두 정상은 무엇을 주고받으려 할까. 현재 김정은의 일차적 관심은 외화다. 북한은 대중 무역에서 연 20억 달러 정도의 적자를 보고 있다. 이 중 절반은 다른 수단으로 충당할 수 있겠지만, 절반은 여기저기의 외환을 털어 메울 수밖에 없다. 올해 상반기 북한의 대중 수입액은 코로나 이전인 2019년 상반기 수입액의 3분의 2에 불과하다. 더욱이 코로나 기간에 필요한 재화를 수입하지 못했던 점을 고려하면 아주 적은 액수다. 그런데도 현재 달러당 원화의 시장 환율은 올해 초 수준의 2배로 폭등했다. 북한 정권이 쓸 수 있는 외화가 크게 부족하다는 신호다. 만약 한 명당 월 2000달러를 받고 4만 명의 군인을 전쟁터에 보낸다면 당분간 외환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김정은에게는 유혹적인 제안이다.

 

전쟁이 지속되면 김정은에게 최선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기회가 생긴다. 푸틴은 김정은과의 거래를 경제와 재래식 군사기술 분야로 국한하고 싶을 것이다. 첨단 군사기술을 전수한다면 남한과 서방뿐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큰 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과 전쟁공동체 관계를 유지하려면 첨단 군사기술도 이전해 달라는 요구를 무시하기 어렵다. 더욱이 내년에는 푸틴의 군비 주도 성장에 한계가 올 것이다. 지금까지는 러시아의 국부펀드 적립금으로 전쟁 비용을 무리 없이 조달했다. 그러나 내년에는 현재 500억여 달러에 불과한 국부펀드의 유동자산이 바닥날 전망이다. 총 재정지출의 40%, 18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되는 막대한 군사비와 치안 비용을 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국채를 발행한다면 금리가 오르고, 통화를 증발한다면 인플레이션이 유발된다. 이쯤 되면 푸틴도 돈보다 첨단 군사기술을 주는 편이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 돈과 첨단무기를 동시에 쥔 김정은은 핵·경제 병진이 성공했다고 믿을 것이다.

 

반대로 김정은에게 최악의 시나리오가 벌어질 수도 있다. 사상자가 많아진다면 북한 내부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 것이다. 전장에서 대규모 이탈자가 발생해도 큰 부담이다. 외부 세계를 경험한 젊은 군인의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도 걱정거리다. 큰돈이 들어오면 권력 간 이권 충돌도 증가한다. 푸틴과 운명공동체가 되어 같이 넘어질 수도 있다. 전황이 불리해지면 러시아에서 푸틴에 대한 반대 여론이 드세질 것이다. 푸틴이 핵을 사용한다면 확전이 불가피하다. 그러면 김정은의 미래도 푸틴과 연동된다. 또 푸틴은 북한을 전쟁에 묶어두기 위해 첨단 군사기술을 한꺼번에 주기를 꺼릴 것이다. 그 과정에서 둘 사이가 틀어질 수도 있다. 그때는 자신의 운명이 폭풍 치는 바다의 작은 배 같음을 김정은도 알 것이다.

 

미국 대선 이후에 전쟁이 조기 종결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북한의 가치는 급락한다. 푸틴은 전후 재건 사업에 수십만 명의 북한 근로자를 고용하는 의리의 사나이가 될 것인가. 대러시아 제국이란 야망을 이루기 위해 북한과 전쟁공동체로 계속 남으려 할 것인가. 아니면 경제를 살리기 위해 북한을 버릴 것인가. 전문가의 의견은 나뉜다. 하지만 이때는 푸틴이 김정은의 미래를 좌지우지한다는 점은 확실하다. 한미와 우방국은 종전이나 휴전 협정 조항에 러시아가 기존의 유엔 결의를 준수한다는 내용을 삽입해 북한 근로자의 고용을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북 제재는 무력화된다. 북·중·러 중 가장 변동성이 큰 지각판은 북한이다. 이 판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붙들어 매야 한다.

 

사방이 지뢰밭이다. 밤까지 짙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체성을 나침반 삼아 나아가야 한다. 지금이 우크라이나에 살상용 무기를 한국이 직접 공급할 정도로 어두운 밤인가. 그렇다면 미국 및 유럽 우방국과 긴밀히 조율하고 같이 행동해야 한다. 동시에 아시아 우방국과의 안보협력을 제도화해야 한다. 그러나 빛이 있어 주변을 볼 수 있다면 방향을 잡되 지형을 확인하며 한발 한발 움직여야 한다. 아직은 밤이 아니다. 볼 수 있는 때다. 그러니 용감하기보다 신중해야 한다.

 

중앙일보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경제학부

 

11.07 트럼프 2기, 경제·안보 충격파 오겠지만 기회로 만들어야

▲미 동부 시각으로 11월 6일 오전 2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플로리다에 위치한 웨스트팜 비치 별장에서 승리를 선언하며 웃고 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해 집권 2기를 맞게 됐다. 대선과 함께 치러진 상·하원 선거에서도 공화당이 모두 승리했다. 행정부뿐 아니라 상·하원까지 모두 장악, 사실상 트럼프 세상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앞으로 4년간 최강대국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 안보·경제 지형까지 그의 손에 좌우되게 됐다.

 

트럼프 집권 1기는 일방적 미국 우선주의 정책과 돌발 행동으로 인한 충격의 연속이었다. 트럼프는 중국과 무역 전쟁을 선언하고 주변국에도 끊임없이 경제적 압박을 가했다. 동맹국들엔 수시로 안보의 대가를 내라고 요구했다. 두 번째 임기도 그대로일 것이다. 미국과 경제·안보적으로 동맹을 맺어온 우리로선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됐다.

 

지금 우리는 미·중 무역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여파로 제1 수출 시장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2기의 보호 무역 강화는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될 것이다. 지난해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445억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럽·일본·베트남보다는 작지만 한국도 트럼프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는 모든 수입품에 기본 관세 10~20%를 물리고, 중국산에는 최고 60% 고율 관세를 공언했다. 미·중 간 관세 전쟁이 벌어지면 한국이 중국과 미국에 수출하는 중간재 수출까지 줄 수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미·중 관세 전쟁이 벌어질 경우 수출이 최대 448억달러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리나라 총수출의 7%에 해당한다. 수출이 이 정도 타격을 받으면 국내총생산(GDP)도 0.4% 안팎이 줄 수 있다고 한다.

트럼프는 또 미국 내 반도체·전기차·배터리 공장을 짓는 외국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정책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등 반도체·배터리 업체들은 미국이 보조금을 약속해 미국에 공장을 지었는데 트럼프가 보조금을 없애면 사기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내 기업들이 받을 보조금은 12조원이 넘는다. 트럼프가 공약대로 미국 외 지역에서 생산된 차량에 100% 관세를 부과할 경우 자동차 업체도 타격을 입을 것이다. 국내 자동차 수출 중 미국 비율은 50%에 이른다.

 

우선 대미 무역 구조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트럼프가 석유·가스 산업을 키우겠다고 밝힌 만큼, 미국산 원유·천연가스 수입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도 있다. 트럼프가 국가 전략 산업의 대중 수출 전면 통제를 공언한 점은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반도체 분야 등에서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는 데 시간을 벌어주고, 장기적으로 우리 산업 경쟁력과 수출을 늘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대외 정책은 미국의 안보 지원에 대해 돈을 내라는 것이 핵심이다. 그가 동맹국을 바라보는 기준은 가치가 아니라 돈이다. 그런데 내라는 돈의 규모가 너무 일방적이다. 그는 입버릇처럼 한국을 ‘머니 머신’이라 부르면서 “100억달러는 내야 한다”고 했다. 방위비 분담금을 9배 인상하라는 것이었다. 트럼프를 제외한 미국 관계자 거의 모두는 한국이 합리적인 주한 미군 주둔비 분담금을 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트럼프에겐 통하지 않는다. 취임하면 곧바로 이 문제부터 꺼낼 것이다.

 

우리가 만족스러운 답을 내놓지 않으면 미군 감축 카드를 커낼 가능성이 크다. 집권 1기 때 실제로 ‘주한 미군 철수’를 얘기했고 측근들이 “두 번째 임기 우선순위로 하자”고 겨우 말렸다. 주한 미군 철수 카드에 어떻게 대응할지 큰 숙제가 던져졌다. 한·미·일 간 경제·안보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바이든 행정부의 캠프 데이비드 선언 또한 종잇장이 될 수 있다.

 

트럼프는 김정은과 친분을 과시하며 “핵 가진 지도자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했다. 취임 후 언젠가는 김정은과 마주 앉을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은 지금 러시아 파병의 대가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군사위성, 핵잠수함 등 첨단 군사 기술을 러시아에서 이전받으려 하고 있다. 트럼프가 이런 김정은과 어떤 타협을 할지 우리로서는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는 ‘미·북 정상회담 쇼’를 통해 미 본토를 노리는 북 ICBM 폐기와 핵 동결 조치로 미국이 안전해졌다고 포장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한국민 안보엔 별 관심이 없을 것이다. 김정은은 이를 노리고 그와 ‘밀당’을 할 것이다. 이러면 우리는 이름뿐인 미국의 핵우산만을 갖고 북핵과 맞서야 한다. ‘이익을 주고받는(give & take)’ 트럼프 식 거래 외교를 역으로 활용하는 발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트럼프가 주한 미군 철수를 앞세워 비상식적인 방위비 인상을 요구한다면 거꾸로 그 대가로 한국 독자 핵무장 등을 요구할 수 있다.

 

트럼프가 내년 1월 백악관에 입성하면 윤석열 정부는 앞으로 2년여간 그와 호흡을 맞춰야 한다. 개성이 강하고 칭찬을 좋아하는 트럼프 같은 지도자와는 개인적 관계가 중요하다. 아베 전 일본 총리는 트럼프가 당선되자마자 금 장식 된 골프 드라이버를 선물하고 트럼프를 극진히 대접했다. 윤 대통령이 그런 관계를 만든다면 김정은과 위험한 거래나 주한 미군 철수, 한국에 대한 무역 제재와 불이익 같은 일을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경제·안보 정책 전반을 면밀히 파악하고 사안마다 대책을 미리 세워야 한다. 그럴 수 있다면 트럼프 재집권으로 인한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도 있다.

조선일보 사설

 

11.07 美 대선 후 대한민국… 이제 국격에 맞는 책무 수행해야

지금 국제 정세는 민주 對 반민주
중·러·이란 등 권위주의 거세지만 자유·민주는 인류사의 도도한 흐름
美 대선 미칠 결과 염려하지만 단기적 국익만 따지는 管見
10대 부국이라면 걸맞은 책임 필요
한미 동맹 위한 분담금 늘리고 자유주의 국제 질서 공헌해야

전쟁 같은 선거였다. 미국은 청홍으로 양분됐다. 경합 지역 표심은 박빙으로 점쳐졌다. ‘동전 던지기(toss-up)’나 다를 바 없다 했다. 세계 최강 국가의 최고 권력을 다투는 싸움이니 그야말로 진검승부였다. 힘센 정치인, 돈 번 기업인, 목청 높은 언론인, 책 파먹는 지식인, 인기 있는 연예인, 입 큰 유튜버까지 혼탁한 선거판에서 실시간 ‘말의 전쟁(war of words)’을 벌였고, 인플레에 시달리는 평범한 시민들도 일터에서, 마을에서, 온라인에서 갑론을박하며 각개 전투를 치렀다. 결과는 트럼프의 넉넉한 승리였다.

 

2017년 2월 이래 미국의 간판 언론 ‘워싱턴포스트’는 1면 제호 아래 “민주주의, 어둠 속에서 사망하다”란 구호를 내걸고 있다. 극심한 분열과 살벌한 투쟁이 그러한 발상을 부추기지만, 좌충우돌의 극한 대립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민낯이다. 민주주의는 이해관계와 가치관이 상충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한 표씩 던져서 정권을 형성하는 데서 시작된다. 바로 그 점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죽긴커녕 꿈틀꿈틀 생동하고 있다. 1788년 최초의 헌법이 공포된 이래 236년의 세월 동안 미국 시민들은 4년마다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모두 60회에 걸쳐 대통령 선거에 참여해 왔다. 헌법의 준엄한 명령에 따라 치러진 선거의 결과에 그 누구도 감히 불복할 순 없다. 게임의 규칙은 엄격하며 실정법은 강력하다.

 

입헌주의와 민주주의를 결합한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는 인류 정치사의 경험과 지혜를 집약하고 있다. 18세기 말 영국의 식민지 아메리카의 연방주의자들은 고대 그리스 민주정과 로마 공화정은 물론 서유럽 근세 정치사의 선례를 샅샅이 뒤져가며 열띤 논쟁을 거쳐 헌법의 초안을 짰다. 군주정을 부정하여 공화정을 수립한 미국의 국부들은 국가 권력의 집중을 막기 위해 정부를 셋으로 쪼개고, 다수당의 전횡을 막기 위해 의회를 둘로 나눴으며, 다수 독재와 폭민 정치를 막기 위해서 ‘법의 지배’를 명시했다. 최소 62만 명이 목숨을 잃은 남북전쟁(1861-1865)을 치르고서 지켜낸 50개 주의 연방(union)이기에 지금도 미국 대선은 전국 득표율과 어긋날 수 있음에도 선거인단 투표제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최초의 헌법이 공포된 지 3년 후에 10개 수정안을 담은 권리장전을 채택했으며, 이후 200여 년에 걸쳐 17개 수정안을 추가로 인준하여 공화국의 헌정사를 중단없이 이어왔다.

 

세계 최초의 민주 국가 미국에서 선거 민주주의가 여전히 작동되고 있다는 사실은 세계사적 중대성을 갖는다. 민주주의 퇴조가 두드러지는 시대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동구,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여러 나라는 혼란과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엘살바도르, 헝가리, 세르비아, 튀니지. 튀르키예 등의 민주주의는 질식 상태에 이르렀고, 보츠와나, 조지아, 온두라스, 인디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스리랑카의 민주주의도 표류 중이다. 그 틈에 러시아, 중국, 이란, 북한은 ‘악의 동조’를 이루고 반자유의 선전전을 펼쳐서 ‘글로벌 사우스’(개발도상국)의 독재화를 유도하고 있다.

 

다시금 국제 정세는 민주와 반민주의 대결 양상이다. 권위주의의 도전이 거세지만 민주주의는 놀라운 탄력성을 보인다. 지난 8월 방글라데시 시위대는 15년간 군림하던 독재자 셰이크 하시나를 몰아냈다. 수백 명이 죽고 2만 명 이상이 다치면서 얻어낸 민주의 승리였다. 베네수엘라에서도 자유의 투사들은 지난 7월 재집권한 마두로 정권에 대항하여 부정선거의 숱한 증거를 밝혀내며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어가고 있다. 표면상 독재정권은 강력해 보이지만, 민주주의는 쉽게 사망하지 않는다. 인류 공동의 지혜가 빛의 속도로 전파되는 디지털 정보혁명의 시대이기에 더더욱 자유와 민주의 확산은 인류사의 도도한 흐름이다.

 

일각에선 과민한 논객들이 트럼프가 당선되면 한반도에 재앙이 닥칠 수도 있다며 염려증을 보이지만, 단기적 국익만 따지는 관견(管見)일 뿐이다. 10대 부국이라면 그에 합당한 책임 의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한미동맹의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면 기꺼이 분담금을 늘리고, 국제적 원조로 큰 혜택을 입은 만큼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강화에 물심양면으로 공헌해야 할 때다. 대한민국은 유엔군의 도움을 받아서 공산 전체주의의 침략을 물리치고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채택하여 두 세대 만에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를 이룬 세계사에 보기 드문 모범국가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11.07 尹 "트럼프에 한국 기업 피해 우려 전달… 트럼프 '잘 풀어가겠다' 답해"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7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한 미국 대선 결과와 관련해 “우리의 국민 경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하면 미국이 수입 관세를 20%까지 인상하고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칩스법 등을 폐지하거나 한미 FTA 재재협상을 요구해 한국 경제에 불확실성이 가중될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바이든 행정부 때와 똑같다고 할 수 없지만 이미 리스크 헤징(위험 회피)을 위한 준비를 한 지 오래됐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에서 미국이 한국에 ‘돈 더 내라’라고 하는 데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는 이차적인 것이고, 미국이 중국에 대해 (관세율 최대 60%의) 슈퍼 관세를 물려 중국이 (미국에 수출하지 못한 상품을) 국제 시장에 덤핑하게 되면 우리 물건이 (국제 시장에서) 안 팔리는 간접적인 효과가 더 문제”라고 진단했다.

 

윤 대통령은 이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을) 직접 만나봐야 한다. 트럼프 당선인도 봐야 하지만, 실제 정책을 구체적으로 수립해서 밀어붙이는 참모들을 만나야 하고, (미국의) 정책 우선순위에 대응해야 해서 정부가 바쁘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또 국제 외교 무대에서 만난 미국 정치인들로부터 “윤 대통령과 트럼프 당선인이 ‘케미’(화학적 결합)가 맞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고, 트럼프 당선인과 가까운 미국 정치인들이 “다리를 잘 놔서 트럼프 당선인과의 관계를 잘 묶어주겠다”는 이야기를 오래전부터 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트럼프 당선인과의 관계 수립을 “별문제 없이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 앞서 트럼프 당선인과 통화하게 된 사정도 소개했다. 윤 대통령은 “어제(6일) 트럼프 당선인 당선이 유력하던 시점부터 (미국 측의) 여러 인사가, ‘트럼프 대통령이 전화할 수 있게 (내) 전화번호를 달라’고 해서 어제 오후쯤 전화번호를 보내줬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은 트럼프 당선인과의 통화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이야기하는 정책들은 우리 기업에 굉장히 불리하다. 참 걱정이다”라고 했고 트럼프 당선인이 “걱정하지 마라. 한국 기업에 크게 피해가 가지 않게 잘 풀어가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또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먼저 북한을 화제로 꺼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트럼프 당선인이 ‘북한이 오물 쓰레기 풍선을 보내 한국 국민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고, GPS를 교란하고 ICBM(대륙 간 탄도 미사일)·SRBM(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을 마구잡이로 쏜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또 트럼프 당선인과 한·미·일 협력에 관한 이야기도 나눴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중 빌 해거티 상원의원이 있는데, 얼마 전 한국에 와서 제 아내와 함께 청와대 상춘재에서 저녁을 모신 적이 있다”며 “해거티 의원이 주일대사를 하면서 한·미·일 기업 협력 구조를 잘 짜놨고, 이것이 한·미·일 경제안보 협력으로 이어졌고 공동의 글로벌 리더십을 펼쳐가는 데 도움이 됐다고 트럼프 당선인에게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에 대해 트럼프 당선인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며, “한·미·일 3각 협력은 잘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선일보 김경필 기자

 

11-07 [속보]트럼프 “빨리 보고 싶다” 尹 “대승 축하”…尹, 트럼프와 12분 통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와 전화통화를 하는 모습. 대통령실 제공 

尹·트럼프, 이른 시일내 회동 합의

윤석열 대통령은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전화 통화를 하고 당선을 축하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전 7시 59분부터 약 12분 동안 트럼프 당선인과 윤 대통령 간의 전화 통화가 이뤄졌다”며 “조만간 이른 시일 내에 날짜와 장소를 정해 회동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과 트럼프 당선인은 한미일 협력과 한미 동맹,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김 차장은 전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한미일 협력 관계가 나날이 견고해져 왔고, 이런 협력이 캠프데이비드 3국 협력 체계로 구축될 수 있었던 데에는 1기 재임 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기여도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한미동맹이 안보와 경제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긴밀한 파트너십을 이어가자”고 했다.

이에 트럼프 당선인도 “한미 간 좋은 협력 관계를 이어가길 기대하고 있다”며 윤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 두루 잘 듣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통화에서 윤 대통령에게 ”빨리 보고 싶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또 트럼프 당선인에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 슬로건으로 대승을 거둔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앞으로 리더십으로 위대한 미국을 이끌어가길 기원한다“고 축하했다.

이에 트럼프 당선인은 ”아주 감사하다“며 한국인들에게도 안부를 전했다고 김 차장은 전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6일에도 사회관계망서비스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서도 트럼프 당선인의 재집권을 축하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보여준 강력한 리더십 아래 한미동맹과 미국의 미래는 더욱 밝게 빛날 것“이라며 ”앞으로도 긴밀하게 협력해 나가길 기대하겠다“고 적었다.
문화일보 박세영 기자

 

11-07 세지고 더 독해진 美 트럼프 2기 열린다

―‘예측불허 동맹’ 대응 전략 새로 짜야―

▲미국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6일(현지시각) 플로리다 웨스트팜비치에서 승리 선언을 하고 있다. 2024.11.06. [웨스트팜비치=AP/뉴시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5 대선에서 승리해 ‘트럼프 2기 시대’를 열게 됐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번 대선 결과를 좌우할 남부 경합주를 잡은 데 이어 최대 승부처 펜실베이니아에서 승리하면서 승부를 결정지었다. 트럼프는 승리 연설에서 “미국의 진정한 황금시대를 열겠다”며 “미국을 우선시하는 데서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공화당은 이번에 상·하원까지 다수당을 차지해 이른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2기는 지금의 민주당 행정부와는 전혀 다른 미국을 예고한다. 4년 전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을 글로벌 리더로 복귀시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제 다시 미국은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건 일방주의적 대외정책으로 회귀하게 된다. 트럼프는 취임 즉시 국경을 봉쇄하고 불법 이민자에 대한 대추방 작전을 수행한다고 공언해 왔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의 담 쌓기와 추방은 국제사회로부터의 재이탈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것이다.

트럼프 2기는 트럼프 1기와도 다를 것이다. 1기 때만 해도 트럼프 주변엔 이른바 ‘어른들의 축’으로 불리는 인사들이 트럼프의 좌충우돌 변덕을 억제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새로 구성될 내각과 참모진은 트럼프 충성파 일색이 될 것이어서 미국 우선주의 색채는 훨씬 강해질 게 분명하다. 여기에 공화당의 상·하원 의회 장악은 물론이고 트럼프 시절 임명된 연방 판사들로 사법부마저 보수 우위 시대여서 트럼프의 폭주를 제어하기는 더욱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트럼프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바이든 시절 벌어진 유럽과 중동 두 개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24시간 내’ 조기 종결을 장담했지만 우크라이나와 유럽 국가들의 반대에 쉽사리 휴전을 끌어낼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특히 트럼프 복귀를 계기로 과거 그와 잘 지내던 독재자들로선 호기를 맞았다는 판단 아래 기존 세계 질서를 교란하기 위한 모험주의적 행동에 들어갈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런 대표적 위험인물이 바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다. 김정은은 이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 대규모 병력을 보냈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같은 고강도 핵·미사일 도발로 트럼프 당선에 사실상 ‘다걸기(올인)’한 상태다. 김정은은 6년 전 자신을 국제 외교무대에 세워준 트럼프와 함께 북핵 직거래 외교 이벤트를 다시 꿈꾸고 있을 것이다.

나아가 동맹도 거래 관계로 보는 트럼프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1기 때보다 훨씬 강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을 대놓고 ‘머니 머신(현금인출기)’이라고 부른 트럼프다. 한미 정부가 이미 합의한 분담금 특별협정을 백지화하는 것을 넘어 주한미군 철수 또는 감축을 압박하며 그 몇 배의 청구서를 들이밀 수 있다.

우리 경제에도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모든 수입품에 10∼20%,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선 6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한국 제품의 대미 수출, 나아가 중국에 대한 중간재 수출에 타격을 줄 수 있다. 게다가 트럼프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칩스법)을 비판하며 보조금 폐지를 거론해 왔는데, IRA 혜택 등을 기대하고 미국에 대거 진출한 우리 기업이 피해를 볼 수 있다.

트럼프 2기를 앞두고 한미 관계는 불가피하게 급격한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미국 새 행정부 측과의 긴밀한 정책 조율을 통해 대북 안보태세부터 유지해야 한다. 나아가 북한군 파병 등 북-러 밀착에 맞선 기존 대응 전략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대의 ‘트럼프 리스크’는 그 불가측성에 있다.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기민한 대처가 중요하다.

동아일보 사설

 

11-07 ‘동맹도 거래’ 美 변화 대비해 북핵·방위비 新전략 짜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7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거래 본능’을 새삼 드러냈다. 윤 대통령과 트럼프 당선인이 “이른 시일 내 회동”과 “좋은 협력 관계 지속”에 합의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면서 트럼프 당선인은 대뜸 “한국의 세계적인 군함과 선박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으며, 선박 수출뿐만 아니라 보수·수리·정비 분야에 있어서도 한국과 긴밀하게 협력할 필요가 있다”면서 후속 대화를 희망했다. 이번 통화는, 트럼프 당선인이 2017년 1월∼2021년 1월의 첫 집권기에 보여준 대로, 그의 자서전 ‘거래의 기술’에서 거래를 통해 인생의 재미를 느낀다고 했던 것처럼, 내년 1월 취임하면 한·미 관계는 물론 다른 동맹관계에 대해서도 거래 방식으로 접근할 것임을 거듭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미 공화당은 상원에 이어 하원에서도 다수당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 역시 보수 법관이 많아 행정·입법·사법부 모두에서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을 넘어서는 정치적 자산을 갖게 된다. 미국 우선주의 강화로 글로벌 불확실성은 훨씬 커질 것이다. 한미동맹 역시 마찬가지다. 트럼프 당선인은 1기 집권기에 “한국이 미국을 벗겨 먹는다”고, 이번 유세 때는 “한국은 머니 머신”이라고 했다. 한국으로부터 많은 돈을 받아낼 수 있다는 의미다.

이같은 ‘동맹도 거래’ 발상을 한국 안보를 강화하는 쪽으로 역이용할 준비를 해야 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북 하노이 회담 때 김정은에게 북핵의 완전한 공개·폐기를 내걸었다가 ‘노 딜’로 파탄난 적이 있다. 이를 되살려 완전한 북핵 폐기를 다시 내걸도록 하거나, 북핵 동결로 선회한다면 한국의 자체 핵 개발을 요구할 수 있다. 최근에 타결된 방위비 분담금 8.3% 인상 합의도 뒤집을지 모른다. 인상을 압박할 경우, 일정 부분 수용하되 다른 분야에서 더 받아낼 수 있는 등의 새로운 접근법을 구사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11.07 격랑의 한반도 안보 상황이 심각하다

북한판 작전계획 ‘3일 전쟁 시나리오’ 등 주목
북한군 러 파병… 한반도 유사시 러軍 개입
국제사회 공조 강화와 실효적 대북제재 강구를

한반도 안보 상황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최근 2015년 포격 도발을 주도한 인민군 부대를 찾은 자리에서 서울 공격을 거론하며 위협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이 주권을 침해하면 물리력을 조건에 구애됨 없이 거침없이 사용하겠다”며 서울이 표시된 작전지도를 펼쳐 놓고 군사행동 지침까지 내렸다.

 

북한의 무력 도발이 잇따르는 가운데 남북 간 군사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2013년 북한이 공개한 북한판 작전계획(작계) ‘3일 전쟁 시나리오’ 역시 새삼 주목받고 있다. 과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6일 전쟁’을 언급하며 군사 훈련을 독려했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를 단축한 ‘3일 전쟁’을 내세워 특수부대를 강화하는 변화된 전략을 세웠다.

 

북한 인민군의 특수부대가 선제공격을 시작해 남한의 정부기관·핵심 기관·군 연대급 이상 지휘부와 주요 시설 등을 타격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미국대사관을 습격해 직원들을 인질로 삼아 미군 개입을 막는다는 작전도 병행한다는 계획이다. 선발대의 기습 공격으로 우리 군의 지휘 체계를 마비시키고 이어 북한군 최전방 배치 1·2·5군단이 밀고 내려오면서 본격 전쟁에 돌입한다는 시나리오다.

 

북한은 5일 전술핵을 탑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600㎜ 초대형 방사포(KN-25)를 남쪽과 가까운 사리원에서 쐈다. 한반도 남해안까지 거의 사정권에 포함된다. 2일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동해상으로 쐈다. 평양 일대에서 고각 발사돼 약 1000㎞ 날아가 일본 홋카이도 배타적 경제수역 밖에 떨어졌다. 김정은은 핵 무력 강화 노선을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북한은 또 풍계리 핵실험장의 내부 준비도 끝내 언제든 7차 핵실험을 할 수 있다.

 

세계가 경악할 북한의 국제적 도발도 가시화됐다. 북한이 러시아 군 소속으로 특수작전부대인 일명 ‘폭풍군단’이라 불리는 육군 11군단 소속 병력 3000여 명을 대 우크라이나 전에 투입했고, 연말까지 1만여 명을 파병할 계획인 것으로 정보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북한군 파병은 6월 북·러가 체결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조약’의 이행 조치로 풀이된다. 해당 조약엔 한 국가가 전쟁 상태에 놓일 경우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명시돼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에 대한 지원을, 북한은 한·미·일의 공동 압박에 대한 보호막을 얻으려 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는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가 개입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한국에 잠재적 위협이었던 러시아가 실질적 위협 대상으로 격상될 수 있다는 의미다. 파병 대가로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군사·경제적 지원은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안보 지형이 급변하는 전환점에 서 있다. 북한의 전방위 도발이 현실화하는 만큼 외교·안보·군사를 아우르는 비상한 대응이 필요하다. 한·미 국방부 장관이 10월30일(현지시간) 연례안보협의회(SCM) 이후 연합 작전계획에 북한의 핵 공격 시나리오를 반영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시의적절하다.

 

이제 북한이 무모한 도발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걸 깨닫게 해야 할 때다. 한미동맹 강화와 한·미·일 협력 등 국제사회 공조에 힘써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대북제재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세계 랭킹 10위권 경제력과 방산 능력을 자주국방 능력으로 급전(急轉)시킬 때다. 동시에 대내적으로는 남남 갈등을 부추기는 대북 동조 세력을 철저히 뿌리 뽑는 한편, 북한 내부에 우리의 자유화 물결과 한국 문화 능력의 대북 침투를 강화함으로써 핵에 맞서는 ‘비대칭적 공세’를 취해야 한다. 이 길이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 역사를 도모하는 길이 될 것이다.

스카이데일리 사설

 

11.07 현실이 된 ‘트럼프 리스크’, 치밀한 전략으로 국익 지켜내길

▲미국 공화당 후보로 47대 대통령에 도전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거 다음날인 6일 플로리다 팜비치 컨벤션에서 부인의 손을 잡고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공화당 트럼프, 어제 47대 미 대통령에 당선

미국 우선주의로 동북아 질서 급변 가능성

신속한 트럼프 채널 구축, 한·일 공동대응을

 

 도널드 트럼프(78) 공화당 후보가 5일(현지시간) 진행된 47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됐다. 트럼프 당선인은 어제 “우리는 역사를 만들었다. 45, 47대 대통령 당선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승리 선언을 했다.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22, 24대) 이후 132년 만에 ‘징검다리 대통령’의 탄생이란 기록을 썼다. 미국 대선에선 상대 후보가 패배를 인정한 뒤 승리를 선언해 왔는데, 트럼프는 이런 관례도 깼다.

 

특히 트럼프는 “몸에 힘이 남아 있는 한 강력하고 번영하는 미국을 만들 때까지 쉬지 않겠다”며 “미국을 가장 위대한 국가로 되돌려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당선은 미국 대외 정책의 급변을 예고하고 있다. 그가 선거 기간 동안 밝혔던 미국 우선주의(Make America Great Again)를 재확인하면서 향후 국제 및 동북아 안보 질서의 격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트럼프는 동맹국이 적국보다 미국을 이용했다고 인식해 왔다. 그래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미국의 막대한 지원으로 진행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조속히 종결시키겠다고 공언했었다. 한·미 동맹을 토대로 북한과 ‘강 대 강’ 대치 중인 한국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매우 걱정되는 대목이다. 실제 트럼프는 선거 기간 한반도를 향해 “자신이 대통령을 할 때(1기)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없었다. 전쟁을 막았다”고 했었다. 지난해 캠프 데이비드 선언 등 한·미·일 협력을 통한 대북 억제와 현재의 동북아 안보 구도의 재편을 시사한 것이다. ‘트럼프 리스크’가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한·미가 이미 합의한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도 우리엔 부담이다. 한·미는 2026년부터 5년 동안 적용할 방위비 분담금의 기준을 지난달 확정했다. 2026년엔 올해보다 8.3% 인상한 1조5192억원을, 이후엔 매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한다는 조건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한국은 부자다. 현금인출기(money machine)”라며 현재보다 9배가량 늘어난 100억 달러(약 13조9700억원)를 요구하겠다고 했다. 트럼프는 1기 때도 한국에 100억 달러의 분담금을 요구했고, 한국이 거부하자 50억 달러로 줄인 청구서를 보냈다. 청구서엔 대북 무력 시위를 위한 전략폭격기의 한국 전개, 인공위성의 한반도 상공을 비행하는 것조차 담겼다는 전언이 있다. 특히 그가 북한과 직거래에 나서 북한 핵을 인정하고 군축 협상에 나선다면 한국 입장에선 재앙에 가깝다.

 

윤석열 정부는 국내 정치 상황 관리 못지않게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관계 설정이 발등의 불이 됐다. 윤 대통령은 어제 SNS를 통해 “축하드린다. 그동안 보여주신 강력한 리더십 아래 한·미 동맹과 미국의 미래는 더욱 밝게 빛날 것”이라며 “앞으로도 긴밀하게 협력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이른 시일 안에 트럼프 측과 소통하며 완벽한 안보 태세를 구축하겠다는 입장이다. 하루 빨리 트럼프를 직접 만나거나 공화당 핵심 인사들과 소통하며 양국이 동시에 이익을 추구할 치밀한 논리를 전달해야 한다. 트럼프 1기 때 협상 경험과 자료도 활용하길 바란다. 동시에 한·일 협력을 통해 공동으로 대응하고, 한국과 유사한 입장의 국가들과 다자 및 양자 구도를 갖추는 게 시급하다. 뉴저지에서 당선된 앤디 김 상원의원을 비롯해 미국 내 친한 인사들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트럼프가 취임하는 내년 1월 20일까지 향후 70여 일은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시간이다. 여유가 많지 않다.

중앙일보 사설

 

11.08 트럼프 "K조선과 협력" 트럼프 2기 기회 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세계적인 한국의 군함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다. 선박 수출뿐 아니라 보수, 수리, 정비 분야에서도 긴밀한 양국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 분야에 대해 구체적으로 윤 대통령과 이야기를 이어가길 원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도 미국의 경제와 안보를 위한 일이기 때문에 적극 참여하려고 한다”고 화답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 증시에서 조선 업체들 주가가 급등했다.

 

한국 조선업과의 협력을 바란다는 트럼프의 요청은 미국 조선 산업이 경쟁력을 잃은 상황을 반영한다. 미국에서 건조한 선박만 미국 항구 간 화물 운송을 맡을 수 있게 한 ‘존스법’에 따라 미국 조선 업체들이 외부와의 경쟁 없이 안주한 탓이다. 중국이 세계 1위 선박 건조 능력을 바탕으로 해군력을 빠르게 증강해가자 미국으로선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게 됐다. 얼마 전 미 해군이 한화오션에 군수지원함의 유지·보수(MRO)를 맡긴 것도 이 때문이다.

 

미 해군이 발주하는 함정 MRO 사업만 연간 20조원 규모에 이른다. 실적이 쌓이면 미 군함 건조까지 따낼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가 미래 육성산업으로 꼽는 미국산 천연가스 수출에서도 한국산 LNG 운반선이 필요하다. 조선뿐 아니라 K방산에도 새 기회를 열어줄 것이다.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방위비 분담 요구가 거세지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등의 자주 국방 기조가 강해지면서 무기 구매가 늘어나고, K방산의 수출 길이 더 넓어질 수 있다.

 

트럼프가 미 해군이 처한 상황과 한국 조선의 능력을 연결해 파악하고 있다는 것은 예상 외의 일이다. 이는 단순히 조선업에 머물지 않고 한미 간 경제 협력이 지금 수준에서 손상되지 않고 더 발전할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트럼프가 취임하면 국내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산업이 피해를 볼 것이란 우려가 많지만, 이익과 거래를 중시하는 트럼프의 성향을 잘 활용하면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17년 방한 때, 헬기 이동 중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을 보고 “내가 본 건물 가운데 가장 큰 것 중 하나”라며 감탄을 연발한 바 있다. 트럼프는 일본 총리보다 앞서 윤 대통령과 통화했다. 한국 경제에 대한 트럼프의 인식을 더 긍정적으로 바꾸고 양국이 윈윈 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는 과제가 던져졌다.

조선일보 사설 

 

11-08 트럼프 시대 韓美 안보·경제동맹 新동력 떠오른 K-조선

세계 1위인 대한민국의 조선업이 도널드 트럼프 2기 시대 한미동맹을 업그레이드할 새로운 동력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 당선인은 ‘모든 것을 고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당선 소감을 밝힌 뒤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미국 조선업이 퇴조해 한국 도움이 필요하다”며 손을 내밀었다. “한국의 세계적인 군함과 선박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다”면서 “유지·보수·정비(MRO) 분야에서도 긴밀하게 협력하기 위해 윤 대통령과 좀 더 얘기하길 원한다”고 했다. 이례적이고 구체적인 제안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K-조선 평가는 중국의 해양 굴기 억제에 한국이 긴요하다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미국 항공모함은 11 대 3으로 중국을 앞서지만 전투함은 280척에 그쳐 중국의 370척에 뒤진다. 더구나 중국은 매년 수십 척을 새로 건조하는데 미국은 조선소 사양화로 인해 보수 정비에 급급한 상황이다.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유지하기 위해 K-조선과의 협력이 필수가 된 것이다. 미 대선 직후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한미관계 강화를 통해 미국 조선업을 구해야 한다”는 헨리 헤거드 전 주한미대사관 정무공사의 글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는 모든 선박과 군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도록 규정한 해묵은 존스법 개정도 촉구했다. 1920년 제정된 이 법에 안주하는 바람에 미국이 선박 건조 경쟁력을 잃게 된 만큼, 양국이 윈윈 공조를 통해 위기를 넘고, 법도 개정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HD현대중공업이 미 해군과 함정정비계약을 한 데 이어 한화오션이 미 해군 군수지원함 정비 사업을 수주하면서 미 군함 MRO 협력은 이미 시작된 상태다. 올해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도 미 해군과 한국 조선소의 MRO 협력이 처음으로 명시됐다. 미 함정 MRO 사업은 연간 20조 원 규모로 ‘마르지 않는 금맥’으로도 불린다. 미국 국방력이 계속되는 한 중단되지 않기 때문이다. MRO 협력으로 다져진 신뢰가 군함 공동 건조로 나가면 동맹의 차원도 달라진다. 무기의 공동 개발·생산 단계까지 가면 동맹 결속력은 더 강고해지기 때문이다. 경제 협력 효과는 말할 것도 없다. K-조선이 그런 길을 열 수 있다.

문화일보 사설

 

11-08 한미 원전동맹은 중·러 패권 깰 최상 대안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지난 5일, 미국과의 원전 협력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라 할 만한 두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우리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가 미국 에너지부 및 국무부와 ‘한·미 원자력 협력 원칙에 관한 기관 간 약정(MOU)’에 가서명했다고 밝힌 것이다. 나머지는, 현대건설이 총사업비 20조 원 규모의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전 설계 계약을 불가리아 원자력공사와 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현대건설은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컨소시엄으로 참여하며, 수주액은 총사업비의 절반인 1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양국이 체결할 MOU는 향후 폭발적으로 성장할 세계 원전시장에 대비해 한·미가 상생할 수 있는 협력의 틀을 제공할 것이다. 그날 공교롭게도 양국의 두 회사가 원전 협력은 어떠해야 하는지 본보기를 보여줬다. 두 회사는 각자의 강점 분야에 따라 역무를 구분하고 거기에 합당한 금액의 계약을 체결했다. 서로 이익이 되는 계약이다.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협력은 어쩌다 한 번은 할 수 있지만, 지속되긴 어렵다.

세계 원전시장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시장 장악력은 압도적이다. 한국원전수출산업협회에 따르면, 2019∼2023년 중 전 세계에서 착공한 원전은 38기다. 이 중 러시아와 중국이 관여하지 않은 원전은 1기뿐이다. 러시아는 자국에 건설한 6기에 더해, 튀르키예·인도·이집트·중국에 13기를 수출했다. 러시아가 시장을 휩쓴 비결은 자금력이다. 먼저 원전 건설 사업비를 댄 다음 그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를 판매해 투자금을 회수한다. 이집트 엘다바 원전의 경우, 러시아가 총사업비의 85%를 댄다. 중국은 자국에서만 18기를 지었다. 중국은 반복 건설하면서 원전 건설 기술을 발전시키고 자체 원전 공급망을 구축, 우리에 필적할 가격 경쟁력을 갖춰 가고 있다. 여기에 국제정치력도 막강하다.

세계 원전시장에서 우리나라가 홀로 자금력과 국제정치력 등으로 무장한 러시아·중국에 맞서기란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다름없다. 세계 최강의 자금력과 국제정치력을 겸비한 미국과의 협력이 필요한 이유다. 시장 주도권을 되찾으려 하지만, 자국 원전 공급망이 훼손된 미국도 단독으로 러시아·중국과 경쟁하기가 버겁기는 마찬가지다. 서로의 약점을 메워주는 한·미 원전 협력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지난 5일의 두 사건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양국의 이번 원전 협력 모델은 미국의 신규 원전 건설에도 적용할 수 있다. 현재 미국은 94기의 원전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원전 대부분이 1970∼1980년대 운전을 시작했다. 심지어 1962년에 운전을 시작한 원전도 있다. 허가 갱신을 통해 노후 원전의 가동 기간을 연장하지만, 무한정 연장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선뜻 신규 원전 건설에 나서지도 못한다. 너무 비싸서다. 최근 운전을 시작한 보글 3, 4호기 건설에 애초 계획보다 2배나 많은 300억 달러가 들었다. 오죽하면, 5년 전 영구 정지했던 스리마일섬 원전(TMI-1)까지 재가동하려 하겠는가?

5일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에너지 분야 공약의 핵심은 ‘자국민과 기업에 에너지를 합리적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여기에 딱 맞는 현실적 방법이 한·미 원전 기업의 협력을 통한 신규 원전 건설이다. 현실주의자인 트럼프 대통령도 거부하기 힘든 매력적인 카드가 될 것이다. 이번에 물꼬를 튼 양국의 원전 협력 모델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우리의 창의적 노력 여하에 달렸다.

문화일보 

 

11.08 트럼프 상대 한국 외교, 공감 폭 넓히고 불확실성 대비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47대 대통령 당선자와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처음 통화했다.두 사람은 12분간 한반도 정세와 한미일 안보 협력,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 등을 협의했다. [연합뉴스]

 

가능하면 취임 전에 만나 한국 입장 잘 전하되

북·미 직거래 경계, 우크라이나 지원은 신중히

 

미국 대선은 불복 시비 없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다음 날 주요 국가 정상들과 통화했는데, 윤석열 대통령과는 12분간 통화했다. 첫 소통이 예상보다 일찍 성사된 것은 다행스럽지만, 안보·경제 등 여러 방면에서 트럼프 2기에 몰려올 리스크 불안감을 잠재우기엔 여전히 걱정이 많다.

 

임기 후반기를 함께할 윤 대통령과 트럼프 당선인은 통화에서 한·미·일 협력과 한·미 동맹,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 상황 등에 대해 논의했고, 이른 시일 내에 날짜와 장소를 정해 회동하기로 합의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윤 대통령을 빨리 만나고 싶다”고 했다니 내년 1월 20일 취임 전이라도 회동이 성사된다면 여러모로 유익한 소통이 될 것이다.

 

정권 교체기에는 소통의 타이밍도 중요하다. 장호진 대통령 외교안보특보가 특사로 거론되는 가운데 윤 대통령은 오는 10일부터 페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순방길에 플로리다 마러라고 별장을 깜짝 방문하는 카드도 검토해 보면 어떨까. 개인적 친분을 특히 강조하는 트럼프 당선인의 성향을 고려한다면 기대 이상의 성과가 날 수도 있어서다.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까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가동되는 75일 동안에 국가 안보와 정보 관련 중요한 브리핑을 받는다. 그 전에 한·미 동맹 현안과 엄중한 한반도 안보 상황 등에 대해 트럼프 당선인 측에게 어떤 메시지가 입력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국가안보실·외교부·국방부·국가정보원과 주미대사관 등은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트럼프 당선인 측과 긴밀히 소통해야 한다.

 

한국 입장에서는 트럼프 1기 이후 바이든 행정부의 지난 4년간 북한이 핵미사일을 얼마나 고도화해 왔는지 당선인 측에 정확히 알려야 한다. 한국 정부를 배제한 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직거래하려는 시도를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 전달도 필수다. 무엇보다 새 정부가 비핵화를 건너뛰고 핵 군축으로 직행하는 상황만은 막아야 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통령이 되면 24시간 이내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약했었다. 종전이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트럼프 2기에 전쟁의 양상은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 관련 입장 표명은 최대한 절제해야 한다. 다양한 가능성은 열어 놓더라도 트럼프 2기 정부의 입장을 정확히 파악한 이후 결정하는 것이 이롭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의 대외 전략이 어떻게 흘러갈지 아직은 불확실성이 크다. 그만큼 윤 정부의 행보는 적극적으로 접촉·설득은 하되, 매사 신중한 판단을 내려주기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

 

11.09 ‘약육강식의 정글’ 노골화할 트럼프 2기 국제질서

▲지난 6일 새벽(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 팜비치 컨벤션센터에서 연설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이번 대선 승리로 트럼프 당선인은 2025년 1월 백악관의 주인으로 컴백한다. AP=연합뉴스 

미국우선주의·신고립주의 흐름 더 거세지고

우방도 돈으로 저울질, 한·미동맹 풍파 우려

‘트럼프 리스크’ 활용할 역발상 잘 궁리해야

 

2016년 미국을 휩쓸었던 ‘트럼프 현상’은 일회성이 아니었다. 4년을 건너뛰어 트럼프가 돌아왔다. 그가 제기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는 구호는 이번 대선에서 더 넓고 깊게 먹혔다.

 

트럼프 현상은 미국 내 영향에만 그치지 않고 전 지구촌을 강타할 초대형 글로벌 태풍이다. 전임 정부들이 납세자의 돈을 지구촌 평화와 질서를 지키는 데 펑펑 써왔다고 비판하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미국 국민 다수가 공감·지지한다는 사실이 이번 선거에서 드러났다. 트럼프 2기에는 미국이 ‘세계 경찰국가’ 역할을 비롯해 기존 국제질서의 버팀목인 안전 보장과 자유무역이라는 공공재를 대폭 축소하는 방향으로 갈 우려가 커졌다.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인 로버트 케이건 박사가 『밀림의 귀환(The Jungle Grows Back)』에서 비유적으로 묘사한 대로 2차 세계 대전 이후 지난 70여년간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세계질서는 잘 가꿔진 정원 같았다. 하지만 ‘트럼프주의’에 따라 미국이 떠나려 하면서 정원은 넝쿨과 잡초로 뒤덮일 위험에 처했다. 지구촌에서 진행 중인 전쟁과 강력한 보호무역 흐름에서 보듯 국제사회는 적자생존(適者生存)과 각자도생(各自圖生)이 판치는 밀림으로 바뀌고 있다. 해리스 후보를 지지해온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예상하면서 “트럼프의 승리로 2차 대전 이후 ‘미국 리더십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고 진단했다.

 

종전 압력에 직면한 우크라이나가 트럼프 2기의 첫 시험대에 오를 상황이다.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윤석열 정부가 우크라이나 지원 카드를 신중하게 다뤄야 하는 이유다. 트럼프 당선인의 신고립주의 노선에 따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한 미국의 안보 공약이 약해지고 나토 회원국들의 방위비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동맹을 경시하고 돈으로 저울질하는 트럼프의 태도 때문에 한·미 동맹에도 적잖은 풍파가 우려된다. 핵으로 무장한 북한과 미국의 핵 군축 직거래는 우리에게 악몽이 될 수 있다.

 
 

자유무역협정(FTA)과 세계무역기구(WTO)는 1980년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 세계 통상질서를 떠받쳐온 두 축이다. 하지만 미·중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고 공급망 재편이 진행되는 와중에 자유무역은 퇴조하고 보호무역 흐름이 득세하고 있다. 트럼프의 귀환은 미국 이익 중심의 통상·산업 정책의 흐름을 가속·추동할 것이다. 게다가 인류가 직면한 기후위기 대응과 인권 촉진 노력이 미국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크다.

 

피터 피버 미국 듀크대 정치학과 교수의 진단처럼 트럼프 2기는 1기 때보다 더 위험한 세계다. 그러나 미국의 이익을 앞세운 신고립주의와 보호무역 기조를 당분간 피할 수 없다면 최대한 활용하는 쪽으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거래를 중시하는 트럼프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잘 봐달라는 읍소 작전은 하책이다. 미국에 어떤 이익을 주고 어떤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구체적이고 분명한 카드를 제시하고 설득하는 자세가 더 유용할 것이다.

 

예컨대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승리 다음 날 윤석열 대통령과 첫 통화에서 “미국의 조선업은 한국의 도움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해군 전함(219척)은 중국(234척)보다 수적으로 열세이고 조선업 기반은 무너졌다. 트럼프가 콕 찍어 언급한 한국 조선업의 선박 MRO(보수·수리·정비) 역량은 트럼프 2기에서 한국이 기여할 여지가 큰 분야다. 이처럼 트럼프와 이너서클의 귀를 잡고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트럼프 2기가 가져올 위기는 얼마든지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중앙일보 사설

 

11.10 "전쟁 처하면 상호 군사원조"… 푸틴, 북러 조약 서명

▲지난 6월 19일 북한을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오른쪽)이 양국의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대한 조약에 서명한 후 악수하고 있다. / 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와 북한 쌍방 중 한쪽이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면 다른 한쪽이 군사지원을 제공하는 상호방위조약에 9일(현지 시각) 서명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런 내용을 담은 북한과의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북러 조약)에 서명했다.

 

앞서 러시아 하원(국가두마)과 상원은 푸틴 대통령이 제출한 이 조약의 비준안을 각각 만장일치로 가결한 바 있다. 북한 역시 비준·서명에 해당하는 절차를 밟아 러시아와 비준서를 교환하면 조약의 효력은 무기한으로 발생한다. 북한이 조약을 비준·서명했는지는 대외적으로 발표되지 않았다.

 

북한은 일반적 조약을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에서 비준하는데, 중요 조약의 경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준·폐기할 수 있도록 헌법에 명시돼 있다. 이에 비준서 교환까지 특별한 걸림돌이 없을 전망이다.

 

이 조약은 지난 6월 19일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평양 정상회담 당시 체결한 것으로 양측의 관계를 군사동맹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북한이 공개한 전문에 따르면 이 조약은 총 23개 조항으로 구성된다. 핵심은 자동 군사개입에 대한 제4조다. 이 조항은 ‘어느 일방이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면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및 러시아연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한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제4조는 북한의 러시아 파병과 관련해 법적 근거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북한군 파병 정황을 뒷받침하는 위성 사진이 공개되자 파병설을 부인하지 않은 채 “우리와 북한의 관계에 관련해 여러분은 전략적 동반자 협정이 비준된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그는 “그 조약에는 제4조가 있다. 우리는 북한 지도부가 우리의 합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절대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다

 

조약은 이외에도 주권 존중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유지·발전, 상호 관심사에 대한 의견 교환과 국제적 협력, 국제 평화·안전을 위한 협력 등의 내용이 제1∼3조를 구성한다.

 

제5조부터는 상대국 이익에 반하는 협정을 제3국과 체결하지 않으며 다극화된 세계 질서 구축을 위해 협력하고 국제기구 내 공동 이익을 위한 협력, 방위 능력 강화, 식량·에너지·기후변화 등 전략적 분야에서의 협력 등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전방위적 협력을 약속한다는 취지와 함께 분야별 협력 대상도 나열돼 있다.

 

무역·투자·과학기술, 국경 문제, 농업·교육·보건·품질인증·법인 및 국민 권리 보호, 법 집행 및 제정, 테러·불법이주 등 국제적 위협, 정보 안전, 문학 및 언어연구, 언론 및 허위 정보 대응, 조약 이행을 위한 세부 협정 체결 등이 협력 분야로 거론돼 있다. 마지막 23조에는 조약이 무기한 유지되며 종료 시 1년 전 서면으로 통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조선일보 최혜승 기자

 

11.10 대북 제재 北 미술품, 국내 쇼핑몰서 버젓이 판매 중

“그림 판매 수입 대부분 김정은에게 상납”

⊙ 개인 간 그림 거래도 가능… “10점에 200만원”
⊙ “위작 가능성 높아 투자 가치 전혀 없어”라는 주장도
⊙ 만수대창작사 작가, 대북 제재 이후인 2018년 광주 비엔날레 참가
⊙ “北, 작가 소속 숨기는 방식으로 해외 전시·판매 돕고 있어”(이현승 글로벌피스재단 북한전략수석위원)
⊙ “국제사회에 대북 제재 이행 안 하는 걸로 비쳐”(박충권 국민의힘 의원)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2018년 9월 19일 평양 만수대창작사를 찾아 방명록에 글을 남기는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최근 북한의 미술 창작 단체인 만수대창작사의 그림이 국내 온·오프라인상에서 거래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만수대창작사는 1959년 북한 김일성의 지시로 설립된 단체로, 지난 2017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만수대창작사를 대북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이들은 아프리카나 동남아 등지에서 대형 조형물 혹은 동상 건립 사업 등을 도맡아 수천만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이기도 한다. 이렇게 벌어들인 외화가 핵개발 등에 활용될 수 있다는 게 유엔 안보리 판단이었다.

9월 29일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화방은 만수대창작사 소속 황영준이 그린 그림을 95만원에 판매하고 있다고 파악했다. 국내 온라인 미술품 경매 사이트도 2017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만수대창작사 소속 작가들의 그림 150점을 경매에 부쳐왔다.

“280만원까지 할인 가능"

기자는 이 화방을 찾아 해당 그림의 유통 경위에 대해 물었다. 화방 관계자는 “의뢰인 측이 그림을 화방에 위탁해 판매가 이뤄진 것”이라며 “의원실의 문제제기 후 의뢰인이 그림을 회수해갔다”고 했다. 이어 “우리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그림 판매를 중지했다”며 “더는 북한 그림을 취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럼에도 “진품임을 보증한다”고 강조하며 북한 미술품을 판매하는 업체들이 인터넷상에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기자가 확인한 미술품 판매 업체 2곳은 ‘만수대창작사 단장’ ‘만수대창작사 실장’ 등 북한 내 이들의 계급을 그대로 홍보하며 그림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 중 A 업체는 김성민의 그림 한 점을 350만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김성민은 1992년 북한 최고 예술가에게 주어지는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1994년 김일성 사망 당시엔 영결식용 대형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1999년 만수대창작사 단장에 오른 김성민은 현재 부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1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당시 만수대창작사를 찾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직접 안내하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은 만수대창작사 방명록에 ‘예술이 남과 북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기를’이라는 메시지를 적었다. 같은 해 9월부터 11월까지 광주 비엔날레가 열렸는데 이런 사회 분위기 덕인지 이 행사에 김성민의 그림 〈어머니, 막내가 왔습니다〉가 출품됐다. 이 그림은 대북 제재가 시작된 이후인 2018년 제작된 것임에도 당시 정부는 이를 국내에 반입했다.

A 업체는 그의 이력을 홍보하며 “김성민은 ‘김일성상계관인’ 칭호를 받았다. 우리로 치면 최고 훈장을 받은 것” “여러 나라에서 열린 미술전람회에서 금메달을 수여하는 등 조선화(북한 그림)를 널리 알리는 데 이바지했다”고 썼다. 다만 A 업체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북 제재가 시작되기 한참 전에 들어온 그림”이라며 “2010년 이후로는 북한 그림이 못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해당 그림 구매가 가능한지 묻는 질의에 “가능하다”며 “280만원까지 금액을 낮춰줄 수 있다”고 했다.

금융위, ‘금융거래 등 제한 대상자’ 지정

 ▲서울 인사동 일대 화방을 통해 확인한 만수대창작사 소속 오영성의 그림이다. 사진=월간조선

 

B 업체는 800여 점이 넘는 북한 그림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일부는 판매가 완료됐다며 현재 ‘품절’ 표시가 돼 있었다.

이 업체는 오영성의 그림을 70만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오영성은 화조화(花鳥畵)의 대가로 불리며 인민예술가보다 한 단계 아래인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그 역시 만수대창작사 소속으로 활동하는 작가다. 묘향산 풍경을 그린 김철의 그림도 30만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김철은 공훈예술가보다 한 단계 낮은 등급인 ‘1급 화가’ 칭호를 받은 인물로, 그의 그림 〈눈 속을 달리는 범〉 또한 2018년 광주 비엔날레에 출품된 바 있다.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인사동 일대 화방의 도움을 받아 북한 그림을 판매한다는 개인 수집가와 접촉할 수 있었다. 이 수집가가 판매를 희망하는 그림은 10점으로 모두 오영성의 그림이었다. 그는 “20여 년 전 중국을 오가며 장사를 하던 지인의 권유로 그림을 샀다”며 “당시 이 지인이 ‘오영성은 북한에서 유명한 작가니 몇십 년 뒤 비싼 값에 되팔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림 10점 전부를 총 200만원에 판다고 했다.

그러나 유엔 회원국들은 만수대창작사 작품 구매·소유·이전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도 지난 2016년 12월 테러자금금지법에 따라 만수대창작사를 ‘금융거래 등 제한 대상자’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금융위 허가 없이 해당 그림에 대해 거래를 하거나 거래 상대방이 제한 대상자임을 알면서 허가 없이 거래를 하면 형사처벌 대상(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이 된다.

인천시 1억5000만원 후원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만수대창작사는 북한 정권의 외화벌이 앞잡이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 상품 박람회가 열렸는데 이들의 그림이 전시됐다. 평양에서 러·북 정상회담이 열린 지 일주일 만이었다. 당시 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유엔 안보리에서 주도한 무기한 대북 제재는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고사 직전에 놓인 북한 경제에 숨통을 틔워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었다. 이 박람회에서 조선백호무역회사는 오영성의 그림을 포함한 만수대창작사 소속 작가들의 그림을 전시했다. 조선백호무역회사 또한 유럽연합(EU)과 우리 정부의 대북 제재 대상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에는 만수대창작사 소속 작가 그림이 여러 차례 국내에 소개되며 논란이 일었다.

2018년 인천시가 후원한 전시 〈조선화의 거장전-인천, 평화의 길을 열다〉에 만수대창작사 그림 100여 점이 전시됐다. 인천시는 이 전시에 남북교류협력기금 1억5000만원을 후원했다. 같은 해 경기도 고양시가 주최한 전시 〈남북 평화미술전 남북, 북남 평화를 그리다〉에도 김성민 등 만수대창작사 작가 6명의 작품이 전시됐다. 앞서 언급한 2018년 광주비엔날레에는 〈북한미술: 사회주의 사실주의의 패러독스〉라는 북한 미술 섹션을 만들어 김성민, 김철 등 만수대창작사 작가 그림을 대대적으로 전시했다.

북한 노동당 39호실 산하 선박무역회사 부대표를 지내다 탈북한 이현승 글로벌피스재단 북한전략수석위원은 “러시아는 대북 제재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니 해외 판매 루트로 좋은 선택지”라며 “합작회사나 러시아 대리인을 통해 유럽에 그림을 팔려는 의도가 깔렸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림 판매 수입 대부분은 혁명 자금(충성 자금)으로 김정은에게 상납된다”며 “작가들에게는 식량이나 식품, 조금의 생필품 보상이 있다. 작가들에게 공식적으로 작품 수입을 공유하는 일은 없다”고 밝혔다.

이 위원은 “만수대창작사가 국제 제재를 받으면서 북한 당국이 작가들의 소속을 숨기는 등 제재를 우회하는 방식으로 이들의 해외 전시 활동이나 그림 판매를 돕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엔이 북한 선박회사에 제재를 가하니 북한은 선박 1척당 회사 1개를 만들어 운영한다”며 “그러면 회사가 제재를 받아도 그 선박만 영향을 받을 뿐 다른 선박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같은 방식으로 미술 관련 회사도 여러 개 만들어 만수대창작사 작품임을 밝히지 않고 판매할 확률이 높다”고 덧붙였다.

“‘테러방지법’에 저촉될 수도”

이와 관련해 박충권 의원은 “만수대창작사가 제작한 그림을 사들이는 등 금융거래를 할 경우 테러자금금지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엔 제재 대상이자 국내법에서 금지한 만수대창작사의 그림이 유통된다는 것은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이 대북 제재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것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며 “유통 경로와 매수인 등의 현행법 위반 여부를 자세히 검토하고 안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9월 30일 정례 브리핑에서 “만수대창작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371호에 따른 자산 동결 및 재원 제공 금지 대상이자 우리 정부의 독자 제재 대상으로 지정돼 있다”며 “만수대창작사와 외환·금융 거래 시 한국은행 총재와 금융위원회의 사전 허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구 대변인은 또 “특정한 전제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반론적으로 만수대창작사의 그림임을 알고 북한에서 국내로 반입하는 행위가 안보리 제재 위반이 될 수 있다”며 “이를 인지하고도 개개인 간 매매하는 행위 자체는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를 이행하기 위한 국내 법률인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에 저촉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수십 년 전에 구매했고 우리 국내법에 저촉되는 사항이 없다면 문제가 없을 수 있다”면서 “저촉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할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미술 전문가들은 만수대창작사뿐만 아니라 북한산 미술품 판매 자체가 북한 정권의 외화벌이 수단 중 하나라고 말한다. 덧붙여 북한 당국의 지시를 받은 화가들이 북한 내 보관 중인 유명 그림이나 유명 화가의 그림을 모방해 수출하거나 북한 화가들이 중국 등 해외에 머물면서 수요에 따라 위작을 만들어 판매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100% 넘어 200% 위작”

 ▲골동품 수집가 박모씨가 중국 창바이에서 구매한 북한산 그림. 박씨는 이 그림을 고려 시대에 그려진 관음보살도라고 믿고 샀으나 가짜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사진=월간조선

 

한 화방 관계자는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도 중국 브로커를 통해 북한 내 미술품을 가져올 순 있다”고 말했다. 골동품 수집가가 브로커와 접촉한 뒤 이 브로커가 중국 국경수비대 내 지인과 연락, 북·중 국경에서 북한 측과 만나 그림을 넘겨받아 이를 국내로 들여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이런 식으로 북한산 작품을 얻는다고 해도 이는 100%를 넘어 200% 위작(僞作)”이라고 강조했다.

2000년대 중반 중국 창바이로 건너가 북한 그림을 산 골동품 수집가 박모씨는 “창바이엔 미술품 브로커가 많은데 이들과 접선해 ‘북한에 있는 이런 그림을 갖고 싶다’고 말하면 며칠 뒤 구해다 준다”면서 “압록강 폭이 좁은 구역에서 한밤중에 브로커와 북한 군인이 만나 고무 대야 같은 것에 그림을 넣어 강 반대편으로 전달해준다”고 말했다. 박씨는 “고려 시대 제작된 관음보살도라고 믿고 우리 돈 약 180만원에 이를 사들였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자세히 알아보니 실력 좋은 화가가 근래에 그린 가짜였다”고 말했다.

대한명인 배첩장(서화에 종이·비단 등을 붙여 족자·액자·병풍 등을 만드는 기능 보유자) 출신의 한 미술품 복원 전문가는 “북한에 실제 국보, 보물급 작품이 여럿 존재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북한 당국도 유명 작가의 산수화나 불교화 등이 우리나라와 해외 시장에서 수십억, 수백억원에 거래된다는 것을 잘 알 텐데 몇백만원 헐값에 판매하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종종 중국에서 귀한 북한산 그림을 샀다며 복원을 요청하는 손님을 상대한다. 그런데 그간 본 모든 북한산 작품은 위작이었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인민예술가 지위에 올라도 당국으로부터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니 본인의 위작을 만들어 암암리에 해외에 판매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런 이유로 국내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만수대창작사 그림 역시 위작일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의 한 화방 관계자는 “북한 그림이 향후 값이 오를 가능성은 ‘제로’”라며 “투자 가치가 전혀 없고 대부분 위작이니 절대 사지 말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월간조선 11월 호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11.10 중공군 참전 74주년에 다시 보는 중국 공산당의 6·25 인식

당내 논쟁, 미중 갈등, 시진핑 독재 강화 때마다 ‘항미원조’ 소환

⊙ 중국 교과서, “조선 내전 발발”… 마오쩌둥의 남침 모의 참여 은폐
⊙ 마오쩌둥, 휴전 직후 “세계대전 발발 지연시킨 중국의 위대한 승리”로 규정
⊙ 시진핑, “항미원조 전쟁은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 주장(2010년)
⊙ “국력 압도적으로 우세한 미국의 무력 위협에 직면한 국가적 위기… 가정을 보호하고 나라를 지킨 역사적 결정”(2021년 중국 공산당 역사결의)

서상문
1959년생. 대만 국립정치대학 역사학 박사(중국 근현대사, 중국공산당사, 한국전쟁 전공) / 前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베이징대학 및 대만 중앙연구원 방문학자, 現 환동해미래연구원장 / 저서 《毛澤東과 6·25전쟁》 《혁명러시아와 중국공산당 1917~1923》 《중국의 국경전쟁 1949~1979》 《6·25전쟁 : 공산진영의 전쟁지도와 전투수행》(상·하) 《돌파 : 정의를 향한 한 역사학자의 고군분투!》 등

 

▲시진핑은 2020년 10월 19일 베이징 인민혁명군사박물관에서 열린 ‘항미원조 전쟁 70주년 기념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 “중국 인민지원군이 항미원조 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고 주장했다. 사진=신화/연합뉴스

 

10월 19일은 중공군(중국은 국가 군대가 없고 중국 공산당에 소속된 군대이기 때문에 ‘중국군’은 잘못된 용어임)이 한반도에 발을 디딘 지 74주년이 되는 해다. 1950년 이날 1차로 25만748명의 중공군이 북한으로 극비리에 잠입해 들어왔다. 최초로 한국 땅을 밟은 중공군은 그보다 3일 전인 10월 16일 밤 정찰 임무를 띠고 먼저 잠입한 ‘선발대’ 제12사단 제370연대 병력이었다. 따라서 정확하게 말하면 중공군의 한반도 파병 날짜는 1950년 10월 16일이었다.

참전 후 중공군은 군사적·정치적 남북통일을 목전에 둔 한국군과 유엔군의 북진(北進)을 저지함으로써 통일을 가로막았다. 1953년 7월 휴전 후 중공군은 철수를 시작, 1958년 10월 25일에 마지막 부대가 북한 땅을 떠났다.

중국 공산당(중공) 정권은 한국 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라고 부른다. 왜 그럴까? 그 이면에 중공의 역사 왜곡과 은폐된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 중공 정권은 북한과의 관계, 미국과의 관계에 따라 적절하게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애국 의식과 중화주의를 고취하면서 공산당 1당 독재, 시진핑(習近平)의 장기 집권 필요성을 선전하는 데 ‘항미원조 전쟁’을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항미원조 전쟁’에 대한 기술(記述)을 살펴보는 것은 중공 수뇌부의 한국 전쟁에 대한 인식, 중국의 국내 정치 및 국제관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조선 전쟁’ ‘항미원조 전쟁’

▲중국은 ‘항미원조 보가위국’을 명목으로 한국 전쟁에 중공군을 투입했다.

 

최근 중국의 한국 전쟁 기술은 시진핑 제3기에 들어온 뒤부터 북한과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게 되면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도 중공 일당 전정(專政·독재의 중국식 표현)이라는 국가 권력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변하지 않을 게 있다.

첫째, 한국 전쟁은 남북한 간의 내전(內戰)으로서 중국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중국은 자기들이 군대(중국인민지원군) 파병을 개시한 1950년 10월을 기준으로 그 이전 북한의 남침 및 유엔군의 참전과 북진까지를 ‘조선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 단계까지의 전쟁은 중국과 관련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중공군 개입 이후는 ‘항미원조 전쟁’이라 한다.

둘째, 마오쩌둥(毛澤東)은 스탈린 및 김일성(金日成)과 한국 전쟁 사전(事前) 모의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셋째, 중국이 6·25 전쟁에 파병 개입한 것은 미(美) 제국주의의 중국 안보 위협 때문이며, 이 개입은 국가 차원의 파병이 아니라 “미국에 저항하고 조선(북한)을 돕고, 가정을 보호하고 나라를 지킨다”는 ‘항미원조 보가위국(抗美援朝 保家衛國)’을 위해 스스로 자발적으로 북한에 들어간 지원병이라는 입장이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항미원조 전쟁’이라는 용어는 1950년 10월 중국 최고 권력자인 마오쩌둥이 중공당 내외 다수의 반대를 물리치고 중공군을 파병하기로 결정한 전후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이 말은 당시 마오쩌둥의 의지를 실현시킬 수 있도록 고안해낸 정치적 선동 용어였다. 한국 전쟁 파병 전후부터 시작된 ‘미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한 규탄대회를 전국적 규모의 정치 운동으로 연계시켜서 항미원조 운동을 벌인 마오쩌둥의 구상과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

마오쩌둥의 참전

2021년 2월 중공 중앙당사연구실에서 펴낸 《중국공산당 간사(中國共産黨簡史)》에도 1950년 6월 25일 “조선 내전이 폭발했다(朝鮮內戰爆發)”고 기술돼 있다. 중국이 한국 전쟁에 개입한 이유로는 두 가지가 제시돼 있다.

첫째, 당시 미국 정부가 즉각 조선 내전에 무장 간섭을 하기로 결의를 하면서 미 제7함대를 대만해협에 파견해 중국 내정에 노골적으로 간섭했고, 중국의 통일대업을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둘째, 10월 초 미군이 중국 정부의 두 차례 경고를 무시하고 38도선을 넘어 전화(戰火)를 중국-북한 변경 지역으로 확대해 직접 신(新)중국의 국가 안전을 위협하는 위급한 상황에서 북한 조선노동당과 정부가 중국의 출병(出兵) 지원을 요청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마오쩌둥이 6·25가 일어나기 전 김일성, 스탈린과 함께 남침을 모의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대군을 보내 김일성을 군사적으로 도우면서 전쟁의 성격까지 비틀어버린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1950년 5월 15일, 마오쩌둥은 베이징(北京) 중난하이(中南海)로 찾아와 한반도 적화(赤化)를 위한 남침 전쟁에 동의해줄 것을 요청한 김일성과 부수상 박헌영(朴憲永)에게 “중국은 대만을 해방한 후에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으나, 스탈린이 이미 한반도 적화 통일 문제에 동의한 이상 준비 중인 타이완 해방 작전을 뒤로 미루고 한반도 무력(武力) 통일을 제1순위로 두기로 했다”면서 김일성의 3단계 침공 방안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마오쩌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김일성에게) 몇 가지 전술적 충고까지 했다. 또 국공내전(國共內戰)에 참전했던 조선족 병력 5만 명 이상을 김일성에게 흔쾌히 넘겨주기로 했다.

마오쩌둥은 유엔 결의에 따라 참전한 미군의 목표는 북한 침략군을 격퇴해 남침 전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라는 점, 즉 38도선을 넘어 중국을 위협할 의사가 없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참전을 강행한 것은 과거 소련이 획득한 중국 내 권익을 돌려주겠다는 스탈린의 약속을 보장받고, 몇 가지 자신의 국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미국이 북한 점령 후 중국으로 공격해올 것이라고 예단(豫斷)하고, 미군을 기다리기보다는 압록강을 건너 북한 땅의 일부 지역에 미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자국 영토를 이중으로 방어할 수 있는 지대(glacis)를 확보할 요량으로 참전했다. 그는 유엔군이 북진하면서 중공 수뇌부에게 중북(中北) 국경 지역에서의 중국의 안전과 이익을 보장할 것이라고 통보했음에도 ‘미국위협론’을 부풀리고 ‘정의의 전쟁’으로 호도하면서 대군을 북한에 들여보냈다.

마오쩌둥의 6·25 인식 벗어나면 투옥

중국의 ‘정의롭지 못한 전쟁 개입’으로 한반도 통일은 성사 일보 직전에 무산됐고, 남북 분단은 고착화되었다. 하지만 마오쩌둥은 한국 전쟁 휴전 직후인 1953년 9월 12일 중앙인민정부위원회 제14차 회의에서 ‘항미원조 전쟁’에 대해 “영웅의 인민 전쟁”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미국에 이겼다고 주장하면서 “중공의 ‘위대한 승리’로 세계대전의 발발 시간을 지연시키게 됐다. 만약 적이 다시 전쟁을 걸어온다면 중국은 더 자신 있게 대적(對敵)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마오쩌둥의 발언은 이후 중공의 공식 당론이 됐다. 이는 역사가들에게도 마오쩌둥이 말한 틀 속에서 역사를 기술하라는 지침이나 다름없었다. 역사학계나 교육계, 언론에선 아무도 이와 다른 얘기를 하지 못해왔다. 필자가 아는 중국 내 일급 한국 전쟁 전문가는 중공의 가이드라인을 벗어난 주장을 했다가 체포되어 오랫동안 투옥되었다.

각급 학교의 교과서도 마찬가지였다. 1950년 6월 25일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라고 겉보기에는 중립적으로 기술하고 있지만, 이는 다분히 북한의 입장을 의식한 것이다. 오히려 이는 마오쩌둥이 김일성의 남침 전쟁에 동의하고, 병력까지 보태주었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중국 교과서는 ‘미 제국주의’가 군대를 한반도에 보내 북한을 침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중국까지 침략하려고 위협하는 중대한 위기 상황에서 마오쩌둥의 현명하고 과단성 있는 결단으로 항미원조 전쟁에 참전해서 ‘미 제국주의’를 물리치고 승리했다고 가르쳐왔다.

후진타오 시기 ‘항미원조 전쟁’ 다시 소환

이러한 마오쩌둥의 가이드라인과 중국의 한국 전쟁 관련 교육은 마오쩌둥 이후 덩샤오핑(鄧小平)-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를 거쳐 시진핑 제1기 집권 시기까지 지속되었다. 이 시기는 미중(美中) 관계가 상대적으로 양호했으며, 중·북 관계도 큰 마찰이나 갈등이 없었다. 이에 따라 중공 수뇌부는 한국전쟁에 대한 기존 마오쩌둥 및 중공의 입장을 그대로 견지해왔다. 1992년 8월 한중 수교 시 중국이 우리 정부에 중국의 참전에 대해 한마디도 사과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후진타오 집권기에 들어서면서 노골적으로 한국 전쟁 참전 용사들을 소환하는 일이 잦아졌다. 6·25 전쟁 60주년이던 2010년 10월 25일,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거행된 ‘항미원조 전쟁 참전 제60주년 좌담회’가 그 예(例)다. 참전 군인들에 대한 훈·포장 수여, 최고 지도자가 주최하는 좌담회 개회 및 격려가 이어졌다. 전몰용사에 대한 대규모 추모제도 거행했다. 미국을 물리쳤다는 내용의 영화나 드라마들이 나왔고, 항미원조전쟁기념관을 통한 선전 활동도 벌어졌다.

 

1958년 개관한 단둥(丹東) 소재 항미원조전쟁기념관은 대대적인 개편 및 수리를 마치고 2020년 9월 재개관됐다. 필자가 가본 바에 따르면 이곳에 전시되고 있는 항미원조 전쟁의 내용은 어구(語句)만 약간 다를 뿐, 내용은 여타 매체나 교과서에서 소개되고 있는 것과 천편일률적으로 같다.

시진핑, “항미원조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

당시 중국 국가부주석으로 후진타오의 후임으로 확정된 상태였던 시진핑은 후진타오 주석과 함께한 회합에서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중공군 노병들을 위무하면서 “위대한 항미원조 전쟁은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으로서 “제국주의가 중국 인민에게 강요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논란이 일자 중국 외교부는 이 발언이 시진핑의 사견(私見)이 아니라 ‘중국 정부의 정론’이라고 못 박았다.

그때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부 내에서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수차례 주장한 정치 개혁 여부를 둘러싸고 힘 겨루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정치 개혁 주장은 곧 후진타오-원자바오 체제 이후의 당내 역학(力學) 관계와 맞물려 있었다. 중공당 내에는 ‘정치개혁파’를 중심으로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하고 있었다. 시진핑의 발언은 6·25 전쟁에 대한 중공 당론과 참전 노병들을 정치적 ‘오브제’로 활용하면서 중·북 혈맹을 강조한 성동격서(聲東擊西)였던 셈이다. 중국으로서는 ‘한국 길들이기’라는 부차적 효과도 거둘 수 있었다.

시진핑은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에 소장되어 있는 중공 최고 기밀을 제한 없이 열람할 수 있는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으로 6·25의 진실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한국 전쟁의 발발 원인과 성격을 이런 식으로 왜곡한 것은 그만큼 한국을 안중에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방증(傍證)한다. 그가 후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한 것도 그래서였다.

중공당 ‘역사결의’에 소환된 ‘조선 전쟁’

▲2021년 10월 개봉해 흥행에 성공한 중국 영화 〈장진호〉. 미·중 갈등이 심해지면서 중국공산 정권은 ‘항미원조 전쟁’을 자주 소환하고 있다.

 

마오쩌둥 이래 이어져 온 6·25 전쟁에 대한 원칙적인 평가와 입장은 바뀌지 않았지만, 시진핑 2기부터는 미·중 관계와 중·북 관계의 변화에 따라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기술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1950년 6월 25일 조선 내전이 발발했다. 조선인민군은 신속히 서울을 점령하고 남쪽으로 밀고 내려갔다. 한국군은 절절히 패퇴했다”고 기술한 것은 미묘하게나마 북한의 남침을 시사(示唆)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2021년 11월 11일 중공 제19차 6중전회 두 번째 회의에서 통과된 ‘역사결의’에 대한 11월 30일의 부연 설명과 지시를 내리는 자리에서 시진핑은 ‘항미원조 전쟁’에 대해서 또다시 거론했다. 중공 지도부는 매년 항미원조 전쟁 기념일마다 기본 입장을 확인해오곤 하지만, 이를 중공당의 역사결의에까지 삽입한 건 이례적이다. 중공당은 중대한 고비 때마다 역사를 소환해 ‘역사결의’로 당의 기강을 잡고 인민들에 대한 통제의 고삐를 다잡아 왔다. 물론 실제로는 당내 노선투쟁이나 권력투쟁에 이긴 자가 역사를 개필(改筆)하는 것이다. 권력을 잡은 자가 과거도 장악하는 전형적인 예다. 하여튼 이때 시진핑은 이렇게 천명했다.

“1950년 조선 전쟁도 국력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미국의 무력 위협에 직면한 국가적 위기였다. 가정을 보호하고 나라를 지킨(保家衛國) 역사적 정책 결정으로 침략자 군대의 국경 진입 위험을 면했으며, 신중국의 안전을 수호했다.”

시진핑의 위 발언은 “당내 분파를 가차 없이 처리하라”는 지시와 함께 중공의 이념과 이론을 다루는 기관지 중의 한 유력 매체인 《구시(求是)》 2022년 1월호에 머리기사로 게재됐다. 시진핑의 발언은 자신의 3연임(連任)을 정당화하면서, 자신을 마오쩌둥과 동급으로 올려놓은 것에 대해 반발과 잡음이 없도록 당내 기강을 잡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이는 미국과의 갈등과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애국주의, 혁명영웅주의, 중공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함으로써 중국인들의 결집을 호소하고 미국에 대한 적대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중국이 이런 식으로 버젓이 한국 전쟁사를 마음껏 비틀고 있는데도 국내 정치권은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대응을 자제해왔다. 2010년 시진핑의 ‘항미원조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 발언 당시 이회창(李會昌) 자유선진당 대표가 “한국과 한국 국민을 무시한 발언”이라면서 중국 측에 해명과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고 정부에 촉구한 적만 있을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라진 줄 알았던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事大主義)가 아직도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월간조선 11월 호

 

11.10 트럼프 재집권 시 한미동맹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한국, 국방비 대폭 증액하면 트럼프와의 동맹 관리 용이해질 수도”

⊙ 트럼프에 대한 인식 전환 필요… ‘주고받기’식 거래해야
⊙ “한국은 트럼프 2기 내내 대외 정책의 조준점 될 수 있다”(앨런 김 CSIS 선임연구원)
⊙ “돈밖에 모르는 트럼프, 주둔군 비용 협상 결렬을 주한미군 철수 기회로 사용할 수도”(데이비드 맥스웰 前 미 특전사 대령)
⊙ 트럼프, “앞으로도 김정은과 잘 지낼 것”… 김정은과 종전 선언할 가능성 있어
⊙ “한일 국방비, 미국처럼 (GDP 대비) 3%나 3.5%까지 올려야”(로버트 오브라이언 前 안보보좌관)
⊙ 민주당의 ‘국민 1인당 25만원’ 공약에 들어가는 비용(약 13조원)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10년 치
⊙ “트럼프 당선되면 바로 전화하고, 틈날 때마다 전화로 그의 의견 묻는 게 좋아”(존 볼턴 前 안보보좌관)

宋義達
1963년생. 서울대 외교학과·同 대학원 외교학과 졸업, 동국대 정치학 박사 / 《조선일보》 홍콩특파원·디지털뉴스부장·산업1부장·편집국 부국장·조선비즈 대표이사(CEO). 現 서울시립대 자유융합대학 초빙교수 / 저서 《신의 개입-도널드 트럼프 깊이 읽기》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혁명》 《미국을 로비하라》 《세상을 바꾼 7인의 자기혁신노트》 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자유의집. 사진=연합뉴스

 

오는 11월 5일 실시되는 2024 미국 대통령 선거의 최종 승자(勝者)를 놓고 미국과 전 세계가 긴장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7월 21일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후보 전격 사퇴 후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카멀라 해리스(Kamala Harris)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전 대통령이 맞붙은 이번 대선은 미국과 세계사의 변곡점(變曲點)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데이나 배시의 신간 《미국의 가장 처절한 선거》.

 

데이나 배시(Dana Bash) CNN 앵커가 지난 9월 초 발간한 《미국의 가장 처절한 선거(America’s Deadliest Election)》에서 지적한 대로, 올해 대선 결과에 따라 세계 최강국 미국의 진로와 미래 모습이 확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두 후보는 소속 정당 차원을 넘어 미국인들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둘러싸고 좌·우파 진영이 사활(死活)을 걸고 싸우는 문화전쟁(Culture War)의 총사령관이다.

‘세기의 대결’로 불리는 이번 대선의 파장은 한반도에도 직접 미칠 전망이다. 미국 새 대통령 임기 첫해인 2025년은 북한 정권 국방력발전 5개년 계획의 마지막 해로 핵 무력 강화를 정조준한 신무기 개발이 절정에 이른다. 이에 맞서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도발 시 몇 배로 ‘즉·강·끝(즉각 강력하게 끝까지)’ 보복”을 공언하고 있다.

2년 후인 2027년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4연임 여부가 결정되는 해로 중국인민해방군 건군 100주년이기도 하다. 시진핑이 2027년까지 대만 침공 준비 완료를 지시한 상태여서 2025~26년에는 대만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할 전망이다. 한반도와 대만을 포함한 동아시아 정세가 1950~53년 한국 전쟁 이후 최악의 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승리 가능성 배제 못 해

이런 중차대한 사안을 다룰 주인공을 뽑는 올해 미국 대선은 유례없이 ‘엄청난 접전(接戰)’ 양상을 보이고 있다. 40여 개 미국 여론조사 기관들의 데이터를 매일 업데이트하는 선거 관련 포털사이트 ‘리얼 클리어 폴리틱스(Real Clear Politics)’ 집계를 보면, 2024년 10월 7일 기준 전국 단위 조사에서 해리스(49.1%)는 트럼프(46.9%)를 평균 2.2%포인트 앞서고 있다. 그러나 7개 경합주(swing states)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48.4%)가 해리스(48.3%)보다 근소한(평균 0.1%포인트) 우위에 있다.

‘리얼 클리어 폴리틱스’는 “현재 기준 양측이 확보한 것으로 추정되는 선거인단 수는 트럼프가 219명으로 해리스(215명)보다 4명 더 많다”고 밝혔다. 민주당 후보 공식 지명(8월 22일)과 트럼프와의 대선 TV 토론(9월 10일) 이후 나돌던 해리스 대세론이 주춤하고 개표 마지막 순간까지 결과를 예단하기 힘든 초(超)박빙의 혼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막판 최종 결과를 좌우할 변수로는 ▲여론조사에서 드러나지 않는 숨은 트럼프 지지자들(shy Trumpians)의 존재 ▲대선 최종 투표율이 민주당에 유리한 60% 선을 넘을지 ▲미국 최초의 여성·흑인 대통령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 ▲‘옥토버 서프라이즈(October surprise)’ 같은 이변(異變) 발생 등이 꼽힌다. 선거 전문가들은 “지금 흐름이 끝까지 이어진다면 트럼프가 4년 만에 백악관에 재입성(再入城)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

해리스, “한국은 우리의 동맹국”

 ▲2022년 9월 29일 방한한 카멀라 해리스(오른쪽) 미국 부통령은 경기 파주시 오울렛OP와 판문점을 찾아 한국 방위를 다짐했다. 사진=뉴스1

 

따라서 향후 대한민국의 생존과 안보를 고려한다면 해리스는 물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경우도 상정하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게 합당하다. 특히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복귀할 경우 엄청난 변화가 몰아칠 수 있는 만큼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반대로 카멀라 해리스 후보와 그의 외교·안보 핵심 참모들은 한미(韓美) 동맹의 중요성을 공감하고 동맹 관계의 유지·발전 의지를 수차례 천명해 한국 입장에서 부담이 훨씬 덜하다.

해리스는 2024년 9월 8일 공개한 정책 공약 웹사이트인 ‘새로운 길을 향한 전진(A New Way Forward)’을 통해 “북한의 위협에 맞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확고한 공약을 확인하기 위해 한국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했다”면서 한국 지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의 소속 정당인 민주당은 올해 8월 21일 공개한 새 정당 강령에서 한국을 가리켜 ‘우리의 소중한 동맹(our valued ally)’ ‘우리의 동맹국(our allies)’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동맹을 포함한 모든 국가 관계를 ‘금전적인 거래 관계’에서 판단하는 트럼프가 백악관 주인이 된다면 사정은 180도 달라진다. 그도 그럴 것이 집권 1기 4년간(2017년 1월~2021년 1월) 트럼프는 한국을 상대로 역대 어느 미국 대통령도 하지 않았던 파격적인 말과 행동, 정책을 내놓았었다.

북한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과의 세 차례 정상회담에다 2018~19년 2년 동안 최소 27차례 ‘연서(戀書·love letter)’에 가까운 사적(私的) 편지 교환, 주한미군(駐韓美軍) 방위비 분담금 5배 인상 요구, 한미연합 군사훈련 전격 중단, 주한미군 철수 주장 등이다. 그런데 트럼프 2기에는 이보다 몇 배 이상 강력한 혁명적 변화가 벌어져 한국 정부와 기업 등이 홍역을 치르게 될 공산이 크다.

트럼프, “미군 주둔 비용, 왜 미국이 부담해야 하나”

이런 분석은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 존 켈리 전 국토안보부 장관,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처럼 경험 많고 노련한 각료들, 이른바 ‘어른들의 축(Axis of Adults)’이 트럼프 2기엔 발을 못 붙일 것이란 관측에 근거한다. ‘맹목적인 트럼프 충성파’들이 견제받지 않고 ‘매가(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이념에 투철한 대외 정책들을 쏟아내 한미 간에 오해와 불편함이 터져 나올 수 있을 것이란 말이다.

이 가운데 한미 양국이 충돌하기 쉬운 가장 발화점(發火點) 높은 사안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다. 트럼프 본인부터 이 문제에 강한 의욕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2021년 11월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대통령 재임 중 아쉬웠던 일”을 묻는 피터 베이커(Peter Baker) 《뉴욕타임스》 백악관 취재팀장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독일 수입차에 관세를 제대로 매기지 못한 것과 한국으로부터 방위비 분담금 50억 달러를 받아내지 못한 것이 가장 유감스럽다. 이 두 가지 일은 다음번 백악관에 들어가서 추진해 마무리할 생각이다.”(피터 베이커, 《The Divider》 646쪽)

수미 테리(Sue Mi Terry) 전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한미군에 비용이 많이 든다. 이걸 왜 미국이 부담해야 하는가’는 말을 2024년 5월까지 125차례 반복했다”고 말했다. 일관성 없고 변덕스러운 트럼프가 이 사안에 관한 한 10년 넘게 분명하고 일관된 입장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한미 동맹 종식, 갑자기 비극적으로 닥쳐올 수도

 ▲마크 에스퍼 전 국방장관. 사진=조선DB

 

2019년 6월부터 2020년 7월까지 미국 국방장관을 지낸 마크 에스퍼(Mark Esper)는 2022년 발간한 자신의 회고록 《신성한 맹세(A Sacred Oath)》에서 이렇게 밝혔다.

“트럼프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과정에서 ‘한국인들은 다루기 끔찍하다’면서 여러 차례 미군을 한국에서 철수시켜야 한다고 압박했다. (중략) 트럼프가 방위비 분담금 문제 해결을 위해 주한미군 전면 철수를 자꾸 주장하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주한미군 철수는 두 번째 임기 우선순위로 하라고 제안했고, 트럼프는 ‘그렇지 두 번째 임기’라고 했다.”

이처럼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문제에 집착하는 트럼프가 백악관 입성 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강하게 압박하고 이에 한국이 소극적으로 임한다면, 트럼프의 감정과 비위가 크게 뒤틀릴 수 있다. 이러면 최악의 경우 주한미군 철수 엄포에 이은 결행으로 한미 동맹이 흔들릴 수도 있다. “돈밖에 모르는 트럼프가 주둔군 비용 협상 결렬을 주한미군 철수의 기회로 사용할지 모른다. 한미 동맹의 종식은 갑자기 비극적으로 닥쳐올 수 있다”는 데이비드 맥스웰(David Maxwell) 전(前) 미 육군 특수전사령부 대령의 경고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트럼프, SMA 합의 무효화할 수도”

이런 측면에서 한미 양국이 2026년부터 적용되는 제12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협상을 1년 정도 빠른 2024년 10월 4일 서둘러 타결한 것은 악수(惡手)가 될 개연성이 있다. 더욱이 양측은 이번 협상에서 기존의 ‘국방비 증가율 연동’ 기준을 폐기하고 2%대 소비자 물가지수(CPI) 증가율 개념을 도입하고 ‘5% 연간 증가율 상한선’을 설정했다.

대폭 인상을 주장해온 트럼프의 발언이 무색할 정도로 소폭 인상이라는 족쇄를 채운 셈이다. 로버트 랩슨 전 주한 미국 대사 대리는 ‘미국의 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이번 협정을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행정부를 우회하기 위해 1년 일찍 체결한 합의로 여길 것이다. 트럼프가 재선되면 이번 합의를 무효화하고 더 까다로운 조건으로 재협상하려 할 것”이라고 했다.

2010년 7904억원이던 한국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은 2019년(1조389억원)에 처음 1조원을 돌파했다. 이어 다시 7년 만인 2026년(1조5192억원) 사상 처음 1조5000억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그러나 이는 재임 중 50억 달러 분담금을 한국 측에 압박했던 트럼프의 기대치에 견줘보면 민망할 정도로 적다.

에스퍼 전 국방장관은 “2020년 봄 한국 측의 13% 인상안을 트럼프와 백악관은 ‘모욕적’이라며 거부했다”고 증언했다. 한국 정부가 이번 합의안대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고수한다면, 재집권한 트럼프는 한국을 향해 거침없는 불만과 섭섭함, 어쩌면 분노를 쏟아낼 게 분명하다.

트럼프, 종전 선언 합의 가능성 있어

이 외에도 트럼프 재집권 시 한반도 안보 지형을 뒤흔들 만한 사안은 여럿 더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이슈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정상회담을 포함한 미북(美北) 직접 대화 재개(再開)다. 트럼프의 발언을 보면 분명한 의도와 입장이 드러난다.

“김정은은 매우 영리하고 매우 거칠지만(very smart, very tough) 나를 좋아했다. 그와 정말 잘 지냈고 그래서 안전할 수 있었다.”(2024년 1월 14일·아이오와주 유세),

“김정은은 비전을 갖고 있는 사람(he’s got visions of things)이다.”(같은 해 4월·미국 《타임(TIME)》지 인터뷰), “나는 김정은과 아주 잘 어울렸다. 앞으로도 그와 잘 지낼 것이다.”(같은 해 7월 18일·공화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

따라서 트럼프 2기에서 미·북 정상회담 재개는 사실상 기정사실이며 시간과 방법의 문제일 뿐이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워싱턴DC 혹은 뉴욕으로 초청하거나, 그가 평양을 방문해 두 사람이 한반도 종전(終戰) 선언과 불가침·평화 체제 구축 같은 극적인 합의를 한다면, 이는 노벨평화상 수상 등으로 이어져 트럼프의 에고(ego)와 과시욕을 충족하는 최적(最適)의 그림이 된다.

2019년 2월 17~18일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빈손 귀국’으로 체면을 구긴 김정은은 확실한 보장 없는 정상회담에는 선뜻 응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측에서 적당한 ‘당근’, 즉 위상을 세울 ‘보상 패키지’를 제시한다면, 김정은이 미·북 정상회담을 마다할 까닭은 없다.

남북 간 주종 관계 형성될 수도

 

 문제는 트럼프 측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김정은과의 회담을 서두르거나 북한의 요구를 지나치게 많이 수용할 경우, 한반도 안보에 허점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걱정은 트럼프 측이 북한과의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중간 단계(interim steps)’ 수준을 뛰어넘는 제안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더욱 현실이 될 수 있다.

‘중간 단계’는 북한이 추가 핵무기 생산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전력(戰力) 확대를 중단하는 대가로 북한에 제재 완화를 포함한 경제·재정적 지원을 제공한다는 구상으로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로선 트럼프 측이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더라도 한국 정부와의 깊은 조율 없이 일방 진행하는 경우를 막아야 한다. 만약 이에 실패한다면, 핵 보유국 북한이 상전(上典)으로 군림하고 한국은 끌려다니는 남북한 간의 주종(主從) 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다.

트럼프 2기 국방장관 유력 후보인 크리스토퍼 밀러(Christopher Miller) 전 국방장관 대행은 지난 3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핵 용인 후 군축 협상’ 아이디어에 대해 “나는 ‘왜 안 되느냐’라는 의견에 찬성하는 편이다. 제재 완화를 바탕으로 한 북핵 협상은 검토해볼 만하다. 한국 정부가 폭넓은 시각을 가져야 한다. 과도한 우려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는 한국 정부의 의사(意思)나 희망과 무관하게 트럼프 2기 정부가 한반도 관리 차원에서 미·북 대화를 추진할 것이라는 방증(傍證)이다.

한국 정부는 따라서 미·북 정상회담 개최와 이에 따른 미국의 북한 핵 보유국 인정이 ‘트럼프 2기 중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로 간주하고 유형별 주도면밀한 대비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주한미군 역할·규모 변화 가능성

70년여 동안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전쟁 억지를 위한 기축(基軸) 역할을 해온 주한미군의 역할과 규모 등도 변경될 수 있다. 트럼프 진영의 외교·안보 핵심 참모들은 이와 관련해 일치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먼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후보인 엘브리지 콜비(Elbridge Colby) 전 국방부 전략·전력 개발 담당 부차관보는 “주한미군의 주 임무는 (북한의 남침 위협으로부터 한반도 방어가 아니라) 중국 억제로 전환해야 한다. 더 이상 한반도에 미군을 인질로 붙잡아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국무장관 후보로 꼽히는 로버트 오브라이언(Robert O’Brien)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한국 등 인도·태평양 역내 모든 동맹국의 과제는 공격적인 중국에 대응하는 것”이라며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병력과 항공기, 함정 같은 전력은 중국을 더 억지하는 방식으로 분산될 수 있다”고 했다.

크리스토퍼 밀러 전 국방장관 대행은 개인 의견을 전제로 “한국이 여전히 2만8500명의 주한미군을 필요로 하는지, 아니면 변화가 필요한지 솔직하게 얘기할 때가 됐다”고 했다.

이들은 트럼프 2기 정부 국가 안보 전략의 최우선 순위로 중국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꼽으면서 주한미군의 역할과 규모, 성격 등을 과감하게 조정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여기서 외교·안보 당국자들의 고민과 국민들의 불안이 동시에 커질 수 있다.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이 성사되고 주한미군 감축 또는 이전(移轉)이 과연 벌어질까? 이런 상황이 전개되는 과정을 한국 정부는 물샐틈없이 잘 관리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한국 국민들은 이를 동요 없이 수용할까? 미국·북한 관계가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한미 동맹이 느슨해진 틈새를 노려 북한이 기습적인 대남(對南) 침공을 감행한다면, 미국은 한국을 도와 북한 격퇴에 나설 것인가?

이런 의구심 자체가 들지 않고 만의 하나 대한민국 안보가 벼랑 끝 위기로 치닫지 않도록 한국 정부는 지금부터 트럼프 후보 진영과도 끈끈하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다지는 데 총력을 다해야 한다.

일각에서 거론되는 트럼프 재집권 시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 가능성도 폭발성 높은 사안이다. 한국의 핵무장과 관련해 트럼프 2기가 주목받는 이유는 트럼프 본인이 지금까지 한국의 핵무장을 명시적으로 반대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2016년 3월 《뉴욕타임스》와의 두 차례 총 100분에 걸친 외교·안보 분야 집중 인터뷰에서 “미국이 지금처럼 약한 모습을 계속 보인다면 한국과 일본은 매우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나와 토의하든 하지 않든 간에 핵무장을 하려 할 것”이라고 했다.

같은 해 3월 29일 CNN 주최 타운홀 미팅에선 “미국은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를 지키느라 너무 많은 돈을 쓴다. 우리는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다. 일본 같은 나라들의 핵무기 보유는 어떻게든 현실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핵무장 용인은 비현실적”

즉 미국이 그 나라의 국방을 전적으로 책임지지 못한다면, 한국·일본·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의 자체 핵무장 시도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트럼프는 인정하고 있다. 그의 최측근 참모들도 비교적 입장이 열린 편이다.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다면 과거 논의 불가(不可)로 여겨졌던 (한국의 독자 핵무장 같은) 여러 분야를 살펴볼 수 있을 것”(크리스토퍼 밀러 전 장관 대행), “한국이 핵무장을 하지 않는 대안(代案)을 훨씬 선호하지만, 한국의 핵무장을 배제하지는 않는다”(엘브리지 콜비 전 부차관)는 발언이 증거다.

2021년 12월 미국 시카고카운슬부터 2024년 5월 통일연구원까지 국내외 6개 기관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국민 중 66~76%가 독자적인 핵무장을 지지(支持)하고 있다. 하지만 독자적인 핵무장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6자회담 차석대표를 지낸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트럼프 재집권 시 미국이 한국의 독자 핵무장을 용인할지도 모른다는 일각의 생각은 비현실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가정(假定)”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묵인하면 이란, 일본, 독일, 대만, 브라질, 튀르키예, 사우디아라비아, 우크라이나 등의 핵무장을 저지할 명분이 없어진다. 세계적 핵무장 도미노가 발생할 개연성이 커지는데, 트럼프가 그런 선택을 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북 직접 대화가 급물살을 타고 주한미군의 변동이 가시화한다면, 한국 안에서 독자 핵무장론 분출은 필지(必至)의 사실이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는 신중하고 사려 깊은 접근을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학)는 “중국·러시아·북한이 일제히 핵전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핵 보유는 미국의 글로벌 안보 전략에 도움 된다는 측면을 강조해야 한다. 일본과의 군사 협력 및 공동 핵개발, 핵 프로그램 분업 같은 카드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한미 원자력 협력 협정을 1988년 개정된 미일(美日) 원자력 협정 수준으로 격상시키고 미국을 비롯한 자유민주 국제 진영 국가들에 신뢰를 얻어 한국의 핵보유 시 제기될 불안감을 잠재울 필요성도 제기된다.

‘터프한 사랑’

 ▲D 밴스 미국 공화당 부통령 후보. 사진=AFP/연합뉴스

 

트럼프 2기가 각국의 국방비 대폭 증액을 공공연하게 요청하는 점도 주목된다. 미국 공화당은 2024년 7월 15~18일 위스콘신주 밀워키 전당대회에서 발표한 10개 항의 정강(政綱)에서 “동맹국들이 공동 방어에 대한 투자 의무를 이행하도록 한다”고 못 박았다. 전당대회장 안팎에선 “미국인의 자비를 배반하고 무임승차(free-ride)하는 동맹이 더 이상 없게 할 것”(JD 밴스 부통령 후보 수락 연설), “세계의 어떠한 회원제 모임 클럽도 회비를 안 내면 시설을 쓸 수 없다”(리처드 그레넬 전 독일 주재 미국 대사)는 발언들이 쏟아졌다.

이 말들은 미국의 모든 동맹국 앞으로 보내는 비용 분담(cost sharing) 확대, 즉 ‘국방비 증액 청구서’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2024년 6월과 9월 잇따라 관련 메시지를 직접 던졌다. 그의 말이다.

“우리는 막대한 연방정부 적자(赤字)를 안고 있고, 인플레이션도 있고, 국내적 부담도 있다. 동맹국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동맹국들도 우리가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참여하길 원한다. 우리는 국내총생산(GDP)의 4%를 방위비로 지출한다.”(6월 23일 美 CBS방송 〈Face the Nation〉 프로그램)

“일본은 국방비를 크게 올렸다. 한국도 국방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2.5%가 넘는다. 우리는 핵 게임에 복귀해야 한다. 우리가 부담을 분담할 수 있도록 한국과 일본의 국방비는 미국처럼 (GDP 대비) 3%나 3.5%까지 올라가야 한다.”(9월 26일 미국 싱크탱크 AEI 대담)

그는 그러면서 “가족끼리도 가끔은 약간 터프(tough)하게 해야 하듯, 가끔은 동맹국들에 터프한 사랑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한국의 경우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포함한 국방비 확충을 강력 추진할 것임을 밝힌 발언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가 GDP 대비 국방비를 지금보다 1%포인트 늘리면 약 170억 달러(약 22조4400억원·환율 달러당 1320원 적용 시)의 재원이 더 필요하다. 2024년도 대한민국 정부 예산(총 638조원)을 감안하면, 22조원은 적지 않은 부담이다. 관건은 이렇게 해서 우리가 원하는 효과를 얻어낼 수 있느냐이다.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은 “한국이 한반도 방어를 책임진다는 자세에서 국방비를 대폭 증액해 ‘미국 등에 올라타서 자기 이익만 챙기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떨쳐낸다면 중장기적으로 트럼프 신정부와의 동맹 관리가 생각보다 용이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미국 일자리 창출 기여 34개국 중 1위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경제·무역 측면에서도 큰 파장이 예상된다. 그는 대통령 재임 시절 ‘미국을 상대로 많은 무역 흑자를 내면서 방위비를 적게 쓰는 동맹국’을 가장 경멸(輕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의 GDP 대비 국방비 지출은 2022년 기준 2.7%로 미국의 동맹국 중 상위권에 속하지만, 한국의 대미(對美) 무역 흑자가 최근 기록적으로 급증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 첫해인 2021년 227억 달러이던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2022년 280억 달러, 2023년 444억 달러로 2년 만에 배 가까이 늘었다. 이를 빌미로 트럼프는 ‘한국 때리기’를 할 수 있다. 그는 집권 1기에도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가 너무 많다”면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개정 같은 모든 채널을 동원해 한국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2016년 232억 달러였던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그의 집권 3년 차인 2019년 114억 달러로 반토막(51% 감소) 났다.

 

한국 정부와 기업이 바이든 행정부 내내 ‘충실한 협조자’로 활동했다는 사실도 트럼프를 불쾌하게 만들 소지가 있다. 한국은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Inflation Reduction Act)과 반도체 과학법(Chips & Science Act)에 적극 호응해 현지 공장 건설 등으로 대미 직접 투자를 크게 늘렸다.

실제로 미국 백악관 집계를 보면 2021년 1월부터 2023년 11월까지 아시아·태평양 국가가 미국에 투자를 약속한 2000억 달러(약 259조원) 가운데, 한국은 555억 달러(약 72조원)로 단일 국가 중 1위였다. 한국 기업들은 2023년 미국에 새로 생긴 일자리 약 28만 개 중 14%(2만360개)를 만들었다. 이로써 한국은 미국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 34개국 중 1위에 올랐다.

한국, 트럼프의 ‘시범 케이스’ 될 수도

트럼프가 대통령 행정명령 등을 발동해 IRA와 반도체법이 규정한 보조금 제공을 차단하거나 어렵게 할 경우, 미국에 거액을 투자한 삼성·LG·SK·현대차 등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트럼프 개인과 그의 진영을 상대로 한 정교하고 치밀한 물밑 작업이 없다면, 트럼프 집권 후 한국이 손보기 대상 또는 시범 케이스로 곤경에 처할 가능성이 상당하다.

미국 워싱턴DC 소재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엘렌 김(Ellen Kim) 선임연구원은 지난 9월 26일 공개한 〈2024년 미국 대선의 세계적 영향(The Global Impact of 2024 U.S. Presidential Election)〉 보고서에서 “한국은 트럼프 2기 임기 내내 그가 주도하는 대외 정책의 조준점(crosshairs)이 될 수 있다”며 이런 우려를 뒷받침했다. 그의 말이다.

“트럼프 후보는 지금도 한국을 무역에선 적대자(敵對者), 안보에선 무임승차자(free loader)로 본다.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그가 집권 2기에 1기 때와 똑같이 굴지 않으리라고 믿을 이유가 없다. 그는 (무역수지 적자 축소를 위해) 한국에 10~20% 보편적 관세 부과 및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내지 중단을 추진할 수 있다.”

상식을 초월한 언행과 예측을 불허하는 충동적인 결정을 수시로 내리는 트럼프 후보가 백악관에 다시 들어간다면, 재취임 후 초기 1~2년 동안 한국 정부와 기업은 큰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이를 최소화하려면 한국 정부와 기업은 트럼프 진영을 상대로 직간접적인 인맥을 구축하고 트럼프 정책을 철저히 해부해 이를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역이용 방안을 세밀하게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 실패한다면 한국은 자칫 메가톤급 충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일례로 재집권한 트럼프가 한국과의 깊은 조율 없이 김정은과의 직거래를 통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북한과 종전 및 평화 협정을 맺는다면, 한국의 대외 신인도(信認度) 추락과 자본·인력의 한국 대탈출 같은 재앙(災殃)적 참사가 벌어질 것이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했을 때,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연구와 공부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미국의 가까운 동맹국들 가운데 한국만큼 지도층과 지식인, 언론인들이 하나같이 트럼프를 범죄자·정신병자·거짓말쟁이 정도로 무시 또는 폄훼하는 나라는 드물다. 이는 트럼프에 비판적인 미국 주류(主流) 언론 매체들이 의도적으로 악마화한 이미지를 한국인들이 맹신(盲信)한 결과다.

“트럼프는 가슴이 따뜻한 커다란 원숭이 같다”

 ▲트럼프 정권 시절이던 2019년 11월 18일, 좌파단체들은 제11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 회의 기간 중 분담금 반대 시위를 벌였다. 사진=조선DB

 

비정상적인 측면이 일부 있는 트럼프의 백악관 재입성 가능성이 상당한 만큼, 한국인들은 그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줄이고 그의 강·약점과 힘의 원천, 그리고 그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지를 분석·터득하려 애쓰는 게 더 현명한 자세일 것이다. 일례로 “그(트럼프)는 거친 남자가 아니다. 그는 가슴이 따뜻한 커다란 원숭이 같다(He wasn’t a tough guy. he was a big warm-hearted monkey)”라는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의 발언에 주목해 트럼프의 진면목과 공략법을 찾을 수 있다.

“트럼프는 거칠고 상대방을 무시한다”는 선입견을 뛰어넘어 그의 약하고 인간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입체적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트럼프에 대한 인식과 발상의 전환을 토대로 한국은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그를 상대로 한 ‘주고받기’ 협상과 발생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상정해 대비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국내 부정선거 음모론을 살리기 위한 불쏘시개 목적에서, 또는 미·북 정상회담 등을 통한 북한에 유리한 한반도 정세 조성을 위해 트럼프를 열렬 지지하는 국내 일부 보수·진보 세력의 행태는 우려스럽다. 이들은 한국의 국가 이익이라는 잣대는 팽개친 채 트럼프를 자기 진영에 유리한 쪽으로만 받아들이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트럼프 2기에 분출할 각종 돌발 상황을 한국이 효과적으로 제어하고 해결하려면, 지도층이 대한민국의 세계사적 존재 의의(意義)와 미래 비전을 확고하게 재정립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국가 정책의 우선순위 조정과 대(對)국민 설득도 가능하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 해결이 대표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국민 1인당 25만원씩 민생회복 지원금 공약에 들어가는 비용(약 13조원)만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10년 치가 넘는다. 한국 정부가 2023년도에 낸 방위비 분담금(1조2896억원)을 총인구(5000만 명)로 나누면 1인당 2만5792원으로 커피(평균 4000원) 7잔 값보다 적다.

매년 수조원의 선심성(善心性) 복지 예산과 고속철도 같은 인프라 건설에 예산을 펑펑 쓰면서 1000억~2000억원의 방위비 분담금을 줄이는 걸 애국(愛國)으로 여기는 풍토도 되돌아봐야 한다. 안보는 경제·문화·복지보다 상위에 있는 가장 중요한 사안이다. 지도층이 핵심 국가 이익과 주변 이익을 분별하려면 한국의 세계사적 역할과 사명을 제대로 자각해야 한다. 미국·중국이 생사를 걸고 벌이는 ‘신냉전’ 대결에서 한국은 자신의 성장과 독립·번영의 토대인 자유민주 국제 진영을 수호·강화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아베의 ‘트럼프 다루기’ 배워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트럼프와 자주 골프 회동을 갖고, 그 사실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릴 정도로 트럼프에게 공을 들였다. 사진=아베 신조 트위터

 

마지막으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대한민국은 경제력과 국방력 외에 외교력(外交力) 강화에 배전의 노력을 쏟아야 한다. 세계 최고의 정치력과 기만술(欺瞞術)의 소유자이자 ‘말 폭탄의 대가(大家)’인 트럼프를 상대하려면,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외교·안보 참모 및 실무자들의 긴밀한 팀워크와 집중력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래야만 그의 협박과 치켜세움 같은 현란한 공세에 휘둘리지 않고 한국의 경제·국방력 같은 국가 이익을 지키고 강화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국제사회로부터 ‘트럼프의 푸들’이라는 조롱을 들으면서도 3년 8개월간 14차례 대면(對面) 정상회담과 37차례 공식 전화통화로 트럼프를 움직인 고(故)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 진용의 행보는 눈여겨볼 만하다.

총리실과 외무성을 중심으로 구성된 트럼프 팀은 ‘트럼프 연구자(Trumpologist)’로 불릴 만큼 트럼프의 저작물과 트위터 글, 연설·언어·전화통화 습관과 패턴, 최신 가족 동향까지 전모(全貌)를 파헤쳐 아베에게 제공했다. 아베가 트럼프 다루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심도 깊은 분석 자료에다 모의 연습 같은 완벽한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존 볼턴(John Bolton)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트럼프를 상대하는 일엔 반복과 끈기가 중요하다”며 이렇게 조언했다.

“혹시라도 트럼프가 당선되면 망설이지 말고 대선 다음 날 바로 전화하고, 틈날 때마다 전화로 그의 의견을 묻는 게 좋다. 이를 통해 그가 한국을 경시(輕視)하는 게 얼마나 위태로운 일인지 이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는 트럼프가 아니라 카멀라 해리스가 백악관의 새 주인이 되더라도, 한국 정부가 유념하고 반드시 실천해야 할 대목일 것이다.⊙

월간조선 11월 호

 

11.11 '턴 투워드 부산'…세계가 부산을 향해 1분간 고개 숙였다

6·25 전쟁 때 산화한 유엔군 참전용사 추모
태국군 참전용사 첫 안장식도

▲11일 오전 11시 부산 남구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에서 6·25 전쟁에 참전, 산화한 유엔군 용사들을 추모하는 '턴 투워드 부산' 행사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부산시

 

6·25 전쟁 때 참전, 희생된 유엔군 용사들의 희생을 기리며 부산 남구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을 향해 1분간 묵념하는 ‘턴투워드 부산’ 행사가 11일 거행됐다.

 

이날 행사는 오전 10시 30분 ‘유엔군 무명용사 유해 안장식’으로 시작됐다. 이 유해는 지난 2010년 경기 연천군 백령리에서 발굴됐으나 국적과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17∼25세 유럽계 남성 유엔군 전사자이다.

 

재한유엔기념공원관리처는 “정전 이후 발굴된 무명용사 유해가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전 11시 정각 유엔기념공원과 부산 전역에 추모 사이렌이 울려졌다. 행사에 참석한 20개국 참전용사와 그들의 가족, 유족, 국내 참전용사, 유엔군사령부 장병,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 박형준 부산시장 등 800여 명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묵념했다. 미국, 캐나다, 튀르키예 등 6·25 참전 20여국에서도 현지 상황에 맞춰 묵념 행사를 가졌다.

 

또 이날 같은 시각 서울시청에서 열린 ‘UAM·AI·양자 신기술 협력 콘퍼런스’에 참석한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선호 국방부차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정진팔 육군교육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이 부산유엔기념공원을 햫해 추모 묵념을 하는 등 국내 곳곳에서도 ‘턴 투워드 부산’ 행사에 동참했다.

 

행사에선 참전용사를 추모하는 조포 21발이 하늘을 향해 발사됐고 참전용사를 기리는 추모 공연과 블랙이글스의 공연도 펼쳐졌다.

 

강 보훈부 장관은 이날 추모사에서 “유엔군 전몰장병의 숭고한 희생에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해 깊은 감사와 존경을 보내며 용사들을 끝까지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대한민국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턴 투워드 부산 행사는 지난 2007년 캐나다 참전용사인 ‘빈센트 커트니’씨의 제안으로 시작돼 매년 열리고 있다.

▲11일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인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서 태국군 참전용사 '롯 아사나판'씨의 유해 안장식이 거행되고 있다./연합뉴스

 

‘턴 투워드 부산’ 행사에 이어 이날 낮 12시 태국군 참전용사 ‘롯 아사나판’씨의 유해 안장식이 거행됐다. 아사나판씨는 태국인으로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첫 번째 참전용사다. 그는 1922년 8월 14일에 태어나 태국군 ‘리틀 타이거’ 부대 소속으로 1952년 11월 18일~1953년 10월 28일까지 한국에서 복무했고 지난해 6월 14일 100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고인의 딸, 쏨송씨는 “아버지를 더욱 영예롭게 기리기 위해 한국 정부에 유엔기념공원 안장을 신청했다”며 “아버지의 유해가 여러 나라의 용감한 영웅들이 모인 이곳에 안치된 것에 깊은 영광과 감사의 마음을 느낀다”고 밝혔다.

 

안장식에는 강 보훈부장관과 타니 쌩랏 주한태국대사 그리고 해외 참전용사와 유엔 평화봉사단 소속 학생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강 장관은 안장식에서 “대한민국의 품에서 영원히 안식하기를 빈다”면서 “용사님의 숭고한 인류애와 헌신을 기억하고,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바친다”고 밝혔다.

이날 고인이 안장으로 유엔기념공원에 잠든 유엔군 참전용사는 13국 2329명에서 14국 2330명으로 늘어났다.

조선일보 박주영 기자

 

11-12 트럼프 측의 방위비 압박 구체화…역제안 준비할 때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안보 분야 고위직 후보로도 거론되는 빌 해거티 공화당 상원의원은 10일 “일본은 방위 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1%에서 2%로 늘릴 것”이라면서 “(동맹국들은)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하고,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과 6·25 전쟁 이래 그 지역(한국)을 도우려고 병력 주둔을 지원했다”면서 “이 투자는 경제가 붕괴됐을 때 이뤄졌지만, 이제 한국은 완전한 선진국”이라며 방위비 및 주한미군 문제의 틀 자체를 바꿀 가능성을 시사했다. 트럼프 1기 때의 주한미군 철수 검토 지시를 상기시키면서 “그게 사업가 트럼프의 협상 방식”이라고 했다.

실제로 트럼프 측 인사들은 한국 국방비를 현재 GDP의 2.5% 수준에서 3.0∼3.5% 수준으로 증액해야 한다는 압박(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대놓고 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명목 GDP가 2400조 원임을 감안하면 국방비를 70조 원 이상으로 대폭 늘릴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최근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1조 5192억 원으로 타결했지만, 트럼프가 목표치 100억 달러(14조 원, 12일 오전 9시 5분 환율 1400원 기준)를 꺼낸 만큼 측근들은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1기 때도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주한미군 전면 철수 카드를 동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이 “두 번째 임기 때 우선순위로 하자”고 설득해 겨우 막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트럼프가 방위비 분담 5배 증액을 꺼냈던 2020년 리처드 그리넬 전 주독 미 대사는 주한 미군 철수 주장을 했다. 트럼프는 내년 1월 20일 취임 후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과 주한 미군 감축 카드를 동원할 것이다. 좋든 싫든 이게 현실이다. 상응하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가능한 수준에서 요구를 수용하는 대신, 원자력협정 개정 등 리스트를 만들어 역제안할 준비를 해야 할 때다.

문화일보 사설

 

11-12 트럼프 2기는 안보 강화할 계기다

박영준 국방대 국가안보문제연구소장

美 국민이 선택한 트럼프 시대
불확실성도 기회도 함께 커져
주한미군 역할 변화 추진할 것

트럼프 정책에 선제 대응 필요
원자로와 조선업 등 윈윈 가능
1기 때 日 아베 역할 尹이 해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 재선됐다. 미국 역사상 자신의 1차 임기 이후 징검다리 대통령이 된 사례는 19세기 말 그로버 클리블랜드 이래 132년 만이다. 제1기 재임 기간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에 미국이 체결했던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파리기후변화협약 등 국제조약에서 탈퇴하고, 한미동맹과 나토 동맹에 대해 과도한 방위비 분담 증대를 요구하면서, 그에 응하지 않을 경우 주둔 미군의 철수나 지원 삭감을 추진하기도 했다.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던 존 볼턴의 회고록이나 밥 우드워드의 저서 ‘공포’ 등에 설명됐듯이, 당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나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도 당혹해 하면서 이 정책들을 변경시키려고 했을 정도다. 그 같은 기억을 갖고 있는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 및 우방국들이 트럼프 시대의 재등장에 대해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 국민이 선택한 정치적 변화를 깊게 이해하면서, 트럼프 시대에서도 한미동맹이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성균관대 차태서 교수는 저서 ‘30년의 위기-탈단극시대 미국과 세계질서’에서 미국 정치사상의 관점에서 트럼프 현상을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탈냉전기의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등 전직 대통령은 윌슨적 국제자유주의 및 개입주의 전통에 따라 다자간 제도 및 동맹관계를 중시해 왔으나, 트럼프의 등장은 이를 대체해 포퓰리즘과 국제적 반개입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잭슨주의적 전통의 부활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트럼프의 재등장은 미국 주도의 단극적 국제질서의 종식으로 이어지고, 국제질서의 불확실성은 가중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중견 언론인으로서 미국과 중국을 오래 관찰해온 서울시립대 송의달 초빙 교수는 최근 저서 ‘신의 개입-도널드 트럼프 깊이 읽기’에서 트럼프의 저서와 연설 등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송 교수는 트럼프가 가장 사랑하는 고전이 ‘손자병법’이라고 소개하면서, 그가 중국이나 러시아, 북한에 대해 손자의 지론인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부전승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 2기 때엔 손자병법에 입각한 대중 전략을 구사하며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를 추진하고, 한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 증대 등을 요구할 것이지만, ‘힘을 통한 평화’ 정책이나 제조업 이니셔티브 정책 등을 잘 활용하면 제2기 트럼프 시대는 오히려 한국에 축복이 될 수 있다는 게 송 교수의 시각이다. 한국이 미국을 중시하는 ‘안미경미(安美經美)’의 국가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협력한다면 한국의 경제 및 방위태세 강화에 유용한 변화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분명히 트럼프 시대의 재등장은 제1기 시대 이상으로 미국발 대외정책이나 국제안보 질서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킬 것이다. 그러나 그때와 달리 지금의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창했던 인도·태평양 전략에도 적극 참가하고 있고, 한일관계를 극적으로 개선시켜 한미일 안보협력체제도 공고하게 구축하고 있다. 이 같은 정책 변화와 증진된 국제적 위상을 바탕으로 우리의 국가이익과도 부합되는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적 목표를 지원할 수 있다면, 한미관계는 제1기 트럼프 시기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구축했던 미일관계와 같은 양호한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손자병법에 따르면, 상대방이 의도하지 않는 곳을 공략해야 한다. 트럼프 당선인이 추진하려 하는 핵심 정책 분야에 대해 우리가 선제적인 협력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역점을 두는 조선업 재건이나 소형원자로 개발을 통한 전기 및 에너지 증산 방향에 대해 한국이 보유한 관련 기술을 활용해 적극 동참한다면 동맹국 미국의 필요도 충족해 주고, 우리의 경제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한일관계 개선 및 한미일 협력 강화를 바탕으로 동맹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 증대 압력 가능성에 대해 한일이 공동 대응해야 한다. 나아가 한일 양국이 미국 협력 아래 오커스(AUKUS)에도 참가한다면 한미일 공동의 안보태세도 강화될 수 있다. 트럼프 시대에 예상되는 불확실성을 한미동맹 및 한미일 협력 강화의 기회로 바꿀 수 있는 면밀한 대외 전략 강구가 필요하다.

문화일보 

 

11-12 [속보]“전쟁시 상호 군사원조”…김정은-푸틴, ‘북러 조약’ 서명

러시아 서명 이틀 만에 北 김정은도 푸틴 이어 북러조약 서명

북한이 지난 6월 러시아와 체결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비준했다.

지난 6월 19일 평양에서 체결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러시아 연방 사이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령으로 비준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통신은 “국가수반이 11일 정령에 서명했다”고 전했는데, 국가수반은 김정은 위원장을 지칭한다.

조약은 북러가 비준서를 교환하는 날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9일 조약에 서명했다.

북한과 러시아가 6월 체결한 신조약은 북러 중 어느 한 나라가 전쟁상태에 처하면 다른 한쪽이 군사 지원을 제공하는 내용으로, 사실상 군사동맹을 복원한 것으로 평가된다.
문화일보 박세영 기자

 

11-13 트럼프 랠리 한국만 역주행… AI법·전력망법 서둘러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세계 대부분 주식시장에서 ‘트럼프 랠리’가 벌어지는 것과 달리, 한국은 나 홀로 역주행 현상을 보인다. 지난 1주일 동안 미 나스닥 지수는 6.2% 올랐고,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 주가는 35%나 급등했다. 비트코인도 30% 넘게 올랐다. 미·중 통상전쟁이 예고된 가운데 상하이 종합지수도 3.4% 올랐는데, 한국 코스피는 5.3% 넘게 떨어졌다. 코스닥 지수는 장중 700선이 무너졌고 환율도 달러당 1410원을 넘나드는 위험 수위다. 13일 오전에도 급락 장세가 이어졌다.

이런 ‘트럼프 포비아’는 반도체·배터리 등 한국 주력 산업들이 집중 타격을 받을 것이란 예상 때문이다. 미 관세 폭탄이 떨어지면 수출이 448억 달러 줄고,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0.67∼0.24% 감소할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2%로 하향 조정했고, 내년 성장률도 2.0%로 내렸다. KDI는 고금리·고물가로 인한 소비 위축 등 내수 회복 지연을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더 큰 문제는 미국과 잠재성장률이 역전될 만큼 성장 엔진이 식어버린 것이다.

미국의 ‘레드 스위프’로 트럼프노믹스가 더 빨리 더 강하게 현실화하고 있다. 시장 반응도 더 빨라지고 더 뜨거워지면서 미국이 ‘머니 블랙홀’이 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서둘러 기준 금리를 내려야 하겠지만, 가계부채와 집값 불안에 발목이 잡혀 있다. 연구·개발을 통한 생산성 제고와 서비스업 규제 완화를 통한 내수 부양이 근본적 처방이지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외생변수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국내 조치들마저 정쟁에 가로막혀 있다는 게 문제다. 인공지능(AI) 기본법은 방송통신위원회 파행을 둘러싼 여야 힘겨루기로 논의조차 못 하고, 반도체 공장에 필수적인 전력망 확충법도 마찬가지다. 이런 화급한 법안들이라도 이달 말 본회의 통과를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문화일보 사설 

 
 

11-13 美 대중·대북 초강경팀 등장, 더 중요해진 尹·트럼프 회동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국무장관에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이 기용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국가안보보좌관에 육군 특수부대원 출신 전쟁영웅 마이클 왈츠 하원의원이 지명됐다. 미 상원과 하원에서 중국과 북한에 압박 정책을 주문해 온 대표적인 강경파 인사들이 외교·안보 투 톱에 나란히 오른 것은 향후 4년 트럼프 행정부가 어디에 집중할 것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트럼프 당선인이 왈츠를 지명하면서 “힘을 통한 평화 추구의 옹호자”라고 소개한 데에서도 중국과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 의지가 엿보인다. 국방장관과 중앙정보국장도 ‘충성파’를 지명함으로써 일사불란한 팀워크를 발휘하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루비오는 신장 위구르족 강제노동방지법안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중국 당국의 제재 대상에 오른 인물이란 점에서, 트럼프 2기의 지향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왈츠도 중국 간첩으로부터 미국 대학 등을 보호하는 법안을 주도한 대중 매파다. 북핵에 대해서도 두 사람은 “싱가포르 회담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개발 시간만 벌어 줬다”(왈츠), “하노이 회담은 김정은이 비핵화를 내걸고 벌인 쇼”(루비오)라고 할 정도로 닮은꼴이다. 북한의 사기극에 다시 말려들 가능성은 줄어든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정책은 조 바이든 시대의 ‘디리스킹(탈위험)’에서 외교·안보·통상·기술 등 전 분야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디커플링(탈동조화)’으로 갈 듯하다. 외교·안보 참모들은 대중 연합전선 구축에 필요한 핵심 거점 국가를 열거하면서 한국을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꼽았다. 긍정적 측면이 많아 보이지만, 미국과 중국 양측으로부터의 압박도 급격히 커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더 정교한 외교가 절실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트럼프 당선인과의 회동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두 사람이 가급적 빨리 만나 양국 관계의 큰 그림에 대한 공감대를 마련하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11-13 트럼프와 피터 틸, 美 신보수주의 온다

이제교 편집국 부국장

귀환한 트럼프 미국 치유 역설
페이팔 마피아 손 잡고 승리해
미국 국민은 신보수주의 지지

국방 기술과 패권 정치의 결합
밴스는 마가 제국 후계자 유력
미국 알아야 한국의 길도 보여

4년 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을 쫓기듯 떠난 날, 폭스 뉴스의 터커 칼슨 앵커는 트럼프 유세 실황을 내보냈다. 수만 명이 모인 집회는 “유 에스 에이”를 외치는 열기로 가득했다. 칼슨의 내레이션이 이어졌다. “트럼프 시대가 끝나갑니다. 분열과 대립, 증오주의자…. 그에게는 비판적 언론이 달아준 수식어가 따라다녔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대중을 좋아하고 이해한 리더였습니다. 또 많은 사랑을 받았죠. 미 역사에서 이런 정치인은 없었습니다.”

트럼프가 귀환했다. 제47대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선거인단 312 대 226으로 압승을 거뒀다. 7개 경합주에서 모두 이겼고 50.4%(7487만 표) 득표율을 기록했다. 상·하원도 장악했다. 세계 언론에서 역사적 승리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당선 확정 후 트럼프는 “강하면서 안전하고 번영하는 미국을 위해 쉬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치유를 돕겠다(help our country heal)”고 외쳤다.

이번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했던 최고의 거래는 ‘페이팔(Paypal) 마피아’ 세력과의 결탁이다. ‘신의 개입’이라는 암살 모면도 있고, 맥도날드 알바로 대중 마음을 잡고, 청소 트럭 운전사로 푸에르토리코 쓰레기섬 발언 위기도 넘겼지만, 압권은 JD 밴스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의 부통령 후보 발탁이었다. 페이팔 마피아는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보수주의 그룹’을 칭한다. 정신적 지주는 온라인 결제서비스 페이팔 창립자인 피터 틸이다. 노동자 출신인 밴스는 2011년 틸을 예일대 로스쿨 강연회에서 처음 만난 뒤 틸의 현실 진단에 공감했고 정계 입문 도움도 받았다. 틸은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의 모방욕망 이론에 뿌리를 두고 미국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바라봤다. 지난 7월 플로리다로 날아가 트럼프에게 밴스를 부통령 후보로 추천한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 크래프트 벤처스의 데이비드 색스 대표, 인공지능(AI) 방산기업 앤두릴 설립자 팔머 러키도 페이팔 마피아의 일원이다. 억만장자인 그들은 가상화폐 옹호론자들이다.

페이팔 마피아는 좌경화되는 민주당을 보면서 미국의 몰락을 예견했다. 트럼프 역시 그들의 명성과 돈이 필요했다. 머스크가 대선에 쏟아 부은 돈만 1억3200만 달러다. 틸은 국방부에 AI 빅데이터를 납품하는 팰런티어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현실의 정치와 국방 정보기술산업의 교차점에서 양측의 이해는 맞아떨어진다. 그들에게는 좌파 성향 직업 관료와 여기에 동조하는 학계·언론계의 리버럴 그룹, 이른바 ‘딥 스테이트’ 청소라는 공동 목표도 있다. 미국은 치유 대상의 병든 국가고, 딥 스테이트는 암세포 덩어리로 여겨졌다. 트럼프를 대변자로 생각하는 군중은 환호하고 열광했다.

둘의 결합은 트럼프 2기 미국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예고한다. 첫째, 값싼 동맹 시대의 폐기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국제안보의 플레이어이자 곳간지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 국가부채가 35조 달러, 무려 4경8496조 원이다. 어느 나라도 이 같은 천문학적 빚더미 속에서 생존할 수 없다. 둘째, 러스트 벨트 노동자들이 원하는 제조업 부흥과 중산층 부활이다. 미 우선주의에 입각한 관세전쟁은 필연적 수순이다. 셋째, 불법 이민자 추방과 국경 통제.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1500만 명(추정)의 불법 이민자가 유입됐고 미국민들은 사회 전반적으로 불안을 느꼈다. 넷째, 우클릭 행보로 과도한 기후환경 정책과 성 정체성 선택권 등 PC주의(정치적 올바름) 통제가 예상된다. 다섯째, AI 국방기술 혁신과 패권주의 강화다. 중국 견제를 위해 대서양보다는 아시아 지역 동맹이 중요해지고, 한국과 일본·호주와의 협력 증진은 필수적이다.

미국민은 미국 예외주의를 선택했다. 단순한 고립주의가 아니다. 자유의 횃불을 치켜들 세계 유일 국가,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세계의 리더 자리를 유지하려면 번영을 지속해야 한다. 트럼프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전면에 내걸고 돌아왔다. 페이팔 마피아가 뒤를 봐주는 밴스는 4년 후 마가 제국의 후계자로 나설 것이다. 신보수주의 국제질서가 밀려오고 있다. 미국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한국의 길도 보인다.

문화일보 

 

11.14 '어른들의 축' 견제도 사라진 트럼프 2기의 한국 안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시절인 2017년 4월 6일 백악관에서 폭스뉴스 진행자 피트 헤그세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트럼프는 12일 헤그세스를 국방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 로이터

 

트럼프 2기 외교·안보 라인이 예상대로 철저한 미국 우선주의 ‘트럼프 충성파’들로 채워지고 있다. 안보에서 미국 우선주의는 동맹보다 미국 이익을 더 우선한다는 의미다. 마이크 왈츠(50)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 피트 헤그세스(44) 국방장관 내정자는 트럼프의 충실한 이론가이자 행동파들이다. 인력풀이 빈약해 장성 출신들을 기용했던 트럼프 1기와 달리 이번에는 내부자들로 외교·안보 라인을 구축했다.

 

두 사람의 이력 자체가 파격적이다. 둘 다 장군 출신이 아닌 영관급 출신이다. 대부대를 지휘해본 경험이 없다는 뜻이다. 외교 측면까지 고려한 거시적 군사 전략을 입안하고 실천해 본 적이 있을 리 없다. 국방장관 지명자는 군 전역 후 폭스뉴스 진행자로 트럼프·김정은 회담을 적극 지지했던 사람이다. 그는 방송에서 “세상을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면 김정은이 원하는 걸 주자”고 말해 논란이 된 적도 있다.

 

트럼프 1기 때는 해병대 4성 장군 출신의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육군 3성 장군을 지낸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처럼 풍부한 경험과 시야를 가진 장성급 인사들이 포진됐다. 이들은 ‘어른들의 축’이라 불리며 주한 미군 철수나 김정은과의 거래 같은 트럼프 당선인의 충동적 발상에 “두 번째 임기로 미루자”며 말리고 억제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어른들의 축’이 사라진 2기는 주한 미군 철수나 상식 밖 방위비 인상 요구, 김정은과의 핵 거래 같은 상황이 아무런 견제나 억제 없이 벌어질 수 있다.

 

우려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왈츠 안보보좌관 지명자는 “북한 위협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위협”이라고 했고, 국무장관으로 검토되는 마코 루비오 상원 의원은 “북한은 정부가 아니라 범죄 집단”이라는 원칙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미 공화당 정책 지침 자료에도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 한국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도 유세 때와 달리 안보 및 동맹에 대해 아직은 신중한 발언과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첫 통화 때는 미 해군 함정의 보수, 수리, 정비 분야에서 한국의 협력이 필요하다며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익을 주고받는 거래에 능한 트럼프 당선인과 그의 충성파들로 이뤄진 외교안보 진영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대비가 있다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도 있다. 정부뿐 아니라 기업을 포함한 민간의 자원을 통합해 트럼프 2기에 대비할 리더십이 절실해졌다.

조선일보 사설

 

11.14 한국인이 中서 정보기관 촬영했다면 어떻게 됐겠나

▲지난 6월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CVN-71)함이 한국·미국·일본 3국의 최초 다영역 군사훈련인 '프리덤 에지'(Freedom Edge)에 참가하기 위해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서 출항하고 있다./ 김동환 기자

 

지난 9일 국가정보원 청사를 드론으로 촬영한 40대 중국인이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그는 인천공항으로 입국하자마자 렌터카를 타고 서울 국정원으로 가 드론을 띄웠는데 경찰에는 “세계문화유산에 관심이 많아 헌인릉을 촬영하려고 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헌인릉은 내곡동 외진 곳에 있어 내국인 방문도 드문 곳이다. 헌인릉을 핑계로 인근 국정원을 찍은 것이다. 지난 6월 부산 해군 기지에 입항한 미 항공모함을 드론으로 찍던 중국인 3명이 붙잡혔는데, 이들의 디지털 기기를 분석해 보니 최소 2년간 다른 군(軍) 시설을 촬영한 정황이 포착됐다고 한다. 당시 이들은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했지만 믿기 어렵다.

 

정보기관이나 군사시설, 전략 무기를 몰래 찍는 건 간첩 행위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국내 중국인들은 대담하게도 백주에 드론을 띄워 국정원과 미 항모를 촬영했다. 이는 한국 형법과 군 형법이 ‘적국(북한)’을 위하는 행위만 간첩죄로 처벌하고 있어 외국인이 한국에서 벌이는 반국가 정보 활동은 처벌할 근거가 마땅치 않다는 사실을 중국이 잘 알기 때문이다. 실제 국정원 촬영 중국인은 ‘항공안전법’ 위반, 미 항모 촬영자는 ‘군사시설보호법’ 위반 혐의 정도만 받고 있다. 중국 비밀경찰서의 국내 거점 의혹을 받아 온 서울 중식당 운영자도 간첩죄가 아닌 식품위생법 위반 등 혐의만 적용돼 기소됐었다.

 

반면 중국은 반도체 관련 일을 하던 우리 교민을 작년 12월 간첩 협의로 체포해 지금껏 구금하고 있다. 간첩죄 적용 범위를 확대한 ‘개정 반간첩법’을 한국인에게 처음 적용한 것이다. 중국에서 찍은 사진에 군 시설 등이 일부 들어갔다고 간첩으로 억류된 외국인이 수두룩하다. 북·중 국경에서 북한 모습을 촬영해도 간첩으로 몰릴 수 있다. 만약 한국인이 중국에서 중국 정보기관이나 해군 기지에 드론을 띄워 촬영했다면 어떻게 됐겠나.

 

국회가 간첩죄 적용 범위를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형법 개정안 심사에 착수했다. 여야 입장 차도 크지 않다. 하루빨리 간첩죄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대공 수사 역량을 무력화한 국정원법도 정상화시켜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1-14 중국의 대미 지구전과 한중관계 숨통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중국학

미국의 제47대 대통령으로 돌아온 트럼프 2.0 시대의 본격 개막을 앞두고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앞세워 의회 상·하원까지 공화당이 장악하는 ‘슈퍼 트럼프’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이제 트럼프 2.0은 의회의 법적 지원까지 받으면서 강력한 대내외 정책을 펼칠 수 있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적 불안과 불법 이민자 문제, 그리고 미국의 정체성 회복을 통한 미국의 자주성 회복을 내세워 승리했다. 향후 보호주의와 고관세 정책을 통해 경제 안정을 도모하면서, 대외적으로 적에게는 공포를, 동맹이나 우방국에도 양보를 강요하는 선별적 고립주의를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에는 60% 이상의 고율 관세 부과를 공언하며, 재임 실패로 중단됐던 대중국 탈동조화(decoupling) 기조의 부활을 천명했다. 기본적으로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이 훔친 기술과 비정상적으로 습득한 기술로 물건을 제조할 뿐 아니라 막대한 음성적 보조금까지 지원해 미국 제조업과 일자리를 붕괴시켰고, 국제 무역 질서도 해쳤다고 인식하고 있다. 게다가 그 이익으로 미국의 달러와 군사력에 도전하고 있어 반드시 제압해야 할 대상이라는 논리를 편다.

이 점에서 트럼프식 대중 압박은 더욱 강력하게 전개될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독재 중국과 민주 국제사회’ 프레임으로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Rules-Based International Order)’를 전개해 일정한 효과를 거둔 점도 향후 트럼프 2.0의 대중 압박 정책에 참고가 될 것이다. 결국, 트럼프 2.0의 대중 압박은 1기의 대중 압박 방식과 바이든식 대중 견제의 효율성을 참작하는 새로운 형태의 강력한 견제로 출현할 공산이 크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대중 견제와 압박이 계속될 것을 아는 중국은 트럼프의 당선을 미국의 내정이라며 최대한 말을 아끼고 있다. 사실 중국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트럼프의 당선에 대해 더 면밀한 준비를 했다. 시진핑 주석은 어쩌면 트럼프의 당선을 더 기대했을 수도 있다. 강 대 강으로 부딪힐 수도 있지만, 트럼프가 선호하는 정상회담을 통한 톱다운식 논의가 문제 해결에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은 트럼프 1기 4년과 바이든 4년을 견뎠기 때문에 일단 지구전을 전개할 것이다. 트럼프 2.0이 과도한 미국주의로 흐를 경우, 미국과 갈등하는 국가들에 접근해 강력한 제조업 능력과 경제적 영향력을 이용해 미국의 동맹을 와해시키는 접근을 할 수도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24시간 종식이 만일 우크라이나의 일방적 양보를 겨냥한 것이라면, 유럽연합(EU)는 이를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고, 이는 중국에 보다 넓은 외교 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까닭이다.

이 점에서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너무 과민할 필요는 없지만, 최근의 일방적인 비자 면제 조치 등 한중 관계 회복을 강조하면서 한미동맹이나 한미일 균열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2.0에 대한 불필요한 선입견에 따른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양자 협력이 우선시되는 북핵 문제나 공급망 안정, 경제 협력 분야 발굴 등의 현안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11-15 “관세 싫으면 美에 공장 지어라”… 보호무역 거세진다

 

트럼프가 꺼내드는 ‘보편 관세’
동맹도 예외없이 투자압박 예고
AI·반도체 자국 생산 드라이브
美기업까지 본국회귀 늘어날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행정부 2기에서는 1기 때보다 훨씬 거센 보호무역주의가 몰아칠 것으로 예상된다. 충성파를 내각에 임명하고, 공화당이 상·하원을 장악하면서 1기 때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을 가로막았던 정부 내 반대나 의회의 심의 등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꺼내 든 것은 ‘보편 관세’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동맹들에 ‘당근’을 통한 미국 내 투자를 유도했다면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은 무지막지한 관세 부과를 통한 ‘채찍’에 가깝다. 동맹이라고 예외가 안 될 가능성도 크다. 중국 등을 염두에 둔 공급망 재편 방향도 달라질 수 있다. 자칫 트럼프 당선인의 미국우선주의와 동맹에 대한 거친 행보에 글로벌 공급망 구도 자체가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관세 장벽으로 동맹에도 투자 압박=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기간 내내 외국 기업의 미국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만든 IRA와 반도체법을 비판하고 “매우 높은 관세를 부과해 그들이 미국에 기업을 설립하도록 하겠다”며 관세를 해법으로 내놓았다. 보편 관세를 통한 관세 장벽을 세워 외국 기업들이 미국 내 공장을 짓고 미국 내에서 고용을 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기치에 기반한 트럼프 2기의 보편 관세 정책은 공화당의 가치에 무게를 뒀던 1기 당시 정책과 완전히 다르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장벽 정책에는 한국 등 동맹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점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9월 유세에서 “적국보다 동맹국이 미국을 더 부당하게 대우했다”며 “우리가 동맹들을 지켜주지만, 그들은 무역에서 우리를 뜯어냈다”고 주장했을 정도다. 트럼프 당선인이 1기 행정부에서 미국무역대표부(USTR)를 이끈 로버트 라이트하이저가 차기 행정부에서 ‘무역 차르’가 되길 원한다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도 이 같은 기조를 뒷받침한다. 극단적 보호무역주의자로 평가받는 라이트하이저 전 USTR 대표는 트럼프 1기 당시 무역적자를 줄이고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를 무기로 주요 교역국과 협상해 미국에 유리한 무역 합의를 끌어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도 불가피=트럼프 당선인의 이 같은 극단적인 보호무역주의 정책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움직임에도 충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중국 견제를 염두에 두고 민주주의 가치에 기반해 동맹과 함께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는 이른바 ‘경제 안보’를 내세웠다. 최대 경쟁 상대로 떠오른 중국을 배제하는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을 구성하겠다는 의도였다. 반면 트럼프 당선인은 인공지능(AI)이나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핵심 기술의 제품에 대해서는 자국 내 생산을 확대해 이를 해외로 수출하는 방식, 즉 미국 위주로 공급망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레 미국 제조업 기업들의 리쇼어링(본국 회귀)도 늘어날 전망이다.

봉영식 연세대 통일연구원 전문위원은 “트럼프 당선인 등장으로 향후 글로벌 무역에 대대적인 변화의 바람이 일 것”이라며 “다만 보편 관세 시행 시 피해가 미국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중간선거가 있는 2026년 이후 미국 정치 상황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워싱턴=민병기 특파원 mingming@munhwa.com

 
 

11.15 강경파 일색 트럼프 2기 외교·안보 진용, 불확실성 대비를

영관급 중용, 전략적 안목 갖춘 장성급 배제 인사

다양한 한·미 동맹 채널 구축해 긴밀히 소통 필요

 

내년 1월 20일 출범하는 트럼프 2기 정부에 참여할 외교·안보 진용의 인선 작업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젊은 40·50세대 발탁, 영관급 장교 중용, 플로리다 인맥, 대중 강경파 색채가 두드러진다. 트럼프 당선인의 주류 기득권 세력 교체 의지가 강하게 반영됐는데, 대한민국 안보 관점에서 보면 그만큼 불확실성도 커졌다.

 

가장 눈에 띄는 인사의 특징은 장성급 배제와 영관급 중용이다. 특수부대인 그린베레 대령 출신인 마이클 월츠(플로리다) 하원의원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하고, 예비역 육군 소령으로 폭스뉴스 진행을 맡았던 피트 헤그세스를 국방장관에 내정했다. 현역 여성 중령인 털시 개버드는 국가정보국(DNI) 국장에 발탁했다.

 

이들은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참전과 쿠웨이트 파병 경험이 있지만 영관급이라는 한계가 있다. 영관급은 전투 경험이 많고 전술에는 능하겠지만, 장성급 눈높이에서 큰 그림을 그리며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정무적으로 조율하는 역량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특히 주한미군사령부를 비롯해 한·미 동맹과의 직접적 인연이 없거나 약한 것도 아쉽다.

 

트럼프 1기 시절엔 제임스 매티스(해병대 4성 장군) 국방장관, 허버트 맥매스터(육군 3성 장군) 국가안보보좌관 등 경험 많은 장성급 출신이 중용됐다. 전략적 마인드를 갖춘 이들 베테랑은 주한미군 철수론 등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돌출적 행보에 맞서 직언하고 위험을 완충해 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런 장성급 원로들의 견제가 불편했는지 트럼프 당선인은 2기 외교·안보 진용을 짜면서 의식적으로 장성급 출신을 멀리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국무장관에 내정된 마코 루비오(플로리다) 상원의원은 중국 외교부의 제재 리스트에 두 차례 오른 ‘기피 인물(Persona non grata)’이다. 틱톡 금지법과 위구르 강제노동방지법 제정을 주도해 의회에서 대표적 반중 정치인으로 꼽힌다. 월츠 국가안보보좌관도 대만의 무장 강화를 주장해 온 대중 강경론자다. 이들은 미·중 관계를 위험관리(De-risking)에서 탈동조화(De-coupling)로 몰고 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만약 반중 성향의 트럼프 2기 외교·안보 실세들이 북한 핵 문제 해결을 후순위로 미루고 중국 때리기에만 집중할 경우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입지가 많이 축소되고 적잖은 유탄이 튈 수 있다. 무엇보다 북·미 핵 군축 직거래, 주한미군 철수론 등이 제기될 수도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처럼 불확실성이 커진 트럼프 2기 외교·안보 인사들을 상대해야 하는 큰 숙제가 생겼다. 기존에 구축된 다양한 한·미 동맹 채널을 십분 활용 또는 확장해 긴밀히 소통해야 한다. 새로운 핵심 실세들과 조속히 선을 연결해 트럼프 2기가 몰고 올 외교·안보 리스크 최소화에 집중할 때다.

중앙일보 사설

 

11.15 트럼프 귀환 이후 국제정치와 세계경제 풍향계

도널드 트럼프가 이끄는 공화당이 이번 미국 선거에서 주요 격전지와 의회를 모두 휩쓸었다. 그러나 트럼프만 바라보다 앞으로 있을 변화의 구조적 원인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미국인은 변화에 표를 던진 것이지 ‘트럼프주의’에 표를 던진 것이 아니다.

 

출구 조사에서 75%의 유권자는 양당 후보자 모두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공화당 유권자의 3분의 1만이 트럼프의 ‘MAGA’ 운동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3분의 2 이상 유권자는 미국의 방향이 잘못됐다고 본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충성파·파격적 인사 등용 예상

대중국 관세 60% 후폭풍 주시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 대비해야

▲박용석 일러스트

 

장기적 관점에서 트럼프는 미국 정치를 재편했다고 보기 어렵다. 지난 수십 년 어떤 공화당 대통령 후보와 비교해도 트럼프는 흑인·히스패닉·청년·여성·노동조합 유권자층에서 민주당을 앞섰다. 소도시·서민과 동떨어진 민주당에 울리는 경종이다.

 

민주당이 할리우드나 맨해튼 같은 소수 엘리트층이 환호하는 사회정의 이슈보다 실질적으로 유권자의 삶에 영향을 주는 문제에 집중한다면 다시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집권 이후 치르는 첫 중간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은 의례 패해 왔고, 만약 트럼프가 낙태나 이민 문제에서 과도한 정책을 편다면 2026년 의회 선거에서 2018년의 참패를 다시 겪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해리스만큼 진보적이지도 트럼프처럼 보수적이지도 않다.

 

정책 전문가가 아니라 연예인 기질을 가진 트럼프를 볼 때 앞으로 관건은 트럼프 내각 구성이다. 트럼프는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신임이 두터운 수지 와일스를 임명했다. 국무부와 재무부 장관에는 ‘트럼프 충성파’ 임명 가능성이 있지만, 제도권 인물보다 파격적인 인사들이 검토될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6일 새벽 승리 연설을 하면서 수지 와일즈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소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아시아 관련 국방 정책은 변화보다 안정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1기에서 아시아 정책을 진두지휘했던 인사들은 막후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아시아 정책 담당자들과 가까웠다. 아시아의 미국 동맹국들에 대한 미국민과 의회의 지지는 강력하다.

 

물론 리스크도 있다. 우크라이나가 가장 크다. 의회의 대다수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겠지만, 많은 트럼프 참모는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벗어나 중국의 위협 대응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일본·호주·대만은 미국이 나토를 버리면 아시아에서 억지력이 약화할 것임을 트럼프 2기 행정부에 강하게 호소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리스크는 주한 미군에 대한 트럼프의 태도다. 김정은과의 또 다른 대타협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번처럼 협상 테이블에 주한 미군을 올릴 수도 있다. 직접 중국 억제에 관여하지 않는 미군에 대한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압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주한 미군이 주요 의제로 다뤄지지 않았고, 그 어떤 싱크탱크도 주한 미군 철수를 트럼프에게 제안하지 않았다. 공화당은 의회의 승인 없이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미군 철수를 결정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준비해왔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이 문제가 재차 불거질 때를 대비해야 한다. 미국 의회와 지속해 긴밀하게 교류하고 일본·호주 등 미국의 동맹국들과 협력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트럼프는 대중국 관세 60%, 그 외 국가들에 대한 관세 20% 를 공약했다. 다만 유권자가 인플레 때문에 민주당에 벌을 줬는데, 인플레를 악화시킬 새로운 관세를 트럼프가 과연 도입할지 의문이다. 관세를 대폭 올릴 경우에 중국과 다른 국가들이 미국 대두 수출업자 등 트럼프의 중요한 지지층에 보복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트럼프 당선 이후 뉴욕 증시는 지난 2년 동안 가장 뜨거운 활황세를 보인다. 시장은 트럼프가 집권하면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로 기업의 이익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 것이다.

 

미국은 변화를 약속하는 대담한 후보를 선호한다. 동시에 그런 변화를 가로막는 견제와 균형도 중시한다. 트럼프가 무모한 아이디어를 내고, 독재자 같은 언사를 보여도 독재자가 될 가능성은 없다. 의회에서 공화당이 트럼프 2기 행정부를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미국의 동맹국은 때론 소모적이고 때론 위협적인 순간이 오겠지만, 미국인 3분의 2가 말했듯이 미국 최고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본다.

 

중앙일보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