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한의 전쟁사] 〈321〉국제사회는 선택을 요구한다 - 〈340〉미국 우선주의와 미국의 이익
[임용한의 전쟁사] 역사학자 동아일보 2024
2024-06-25
〈321〉국제사회는 선택을 요구한다

2016년 베네치아였다. 어떤 외국인이 오더니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데 왜 여기서 놀고 있냐고 꾸짖었다. 그때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세계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기우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더니 그 사람이 펄펄 뛰었다.
이제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해도 세상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자 북한이 오물 풍선으로 다시 세계의 주목을 집중시켰고, 푸틴의 방북과 상호협력 조약으로 제대로 시선을 끌었다.
북한이 단지 관심받고 싶어서 이런 일을 벌이는 건 아니다. 북한의 생존 방식은 이제 군사력밖에 없다. 북한 체제를 유지하면서 대한민국의 경제를 따라잡기는 불가능이다. 중국식 성장조차도 북한은 용인할 수 없다. 러시아식 성장은 자원이 없고, 그 정도 경제 자유만 생겨도 러시아와 달리 북한 체제는 붕괴한다.
대한민국은 성장했지만, 불평도 늘고, 안보는 둔감해지고, 힘든 일은 싫고, 국제 정치나 국내 정치나 외골수가 되어 편안함만 추구하고 있다. 적어도 북한의 눈에는 이런 현상이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망국적이고 파멸적인 징조로 보일 것이다.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는 건 극우적 발상이다. 지금 북한의 고민이자 목적은 대한민국 병합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존이다”라고 말하는 분이 있다. 그건 궤변이다. 전쟁과 평화는 생존이라는 동전의 양면이다. 그리고 남북한의 갈등은 이미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쟁이 시작되면 세계에선 다시 블록화가 진행되고, 지구는 집단방어체제로 다시 구획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러 협정은 이런 절차를 선구적으로 보여준 사례이다.
이젠 냉정해져야 한다. 군비를 축소하면 평화가 온다는 말은 궤변이다. 우리가 남을 해치지 않으면 남도 우리를 해치지 않는다는 건 망상이다. 힘이 없는 정의는 쓰레기다. 국제사회라는 정글은 이상이 아니라 선택으로 판단한다.⊙
〈322〉선 넘는 이스라엘-헤즈볼라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연일 초고난도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초고난도 발언이란 희한한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이런 희한한 말싸움 전쟁은 처음 보아서다. 전쟁은 아무리 충분한 이유가 쌓였다고 해도 시작은 은밀하게 기습적으로 하는 법이다. 하지만 두 나라는 당장 내일, 아니 1시간 후에 전쟁을 시작할 듯한 기세로 수위 높은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렇게 말 폭탄만 던진 지가 벌써 몇 달째이다. 이젠 이런 발언들이 상대의 긴장을 늦추게 하려는 허허실실 작전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여기에 이란, 미국까지 가세했다. 이란도 지금 이스라엘과 정규전을 벌일 상황은 아니다. 지난번 양국이 한 차례씩 주고받은 공격은 전쟁 의지가 아니라 더 이상 확전은 하지 않겠다는 신호였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의 긴장이 높아지자 이란이 다시 참전 의사를 밝혔다. 미국은 전쟁을 막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정말 전쟁이 나면 우리는 이스라엘을 지원하겠다는 발언을 흘렸다. 선거철에 유대인의 지지를 잃지 않으면서도 헤즈볼라나 이란의 전쟁 의지를 막으려는 강경책인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말의 수위가 올라가는 건, 양국 모두 속으로는 전쟁이 초래할 부담과 뒷감당을 걱정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과 포격과 폭격 수준은 이미 선을 넘었다. 양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전쟁도 파멸을 앞당기겠지만, 하지 않아도 파멸을 초래하는 상황에 와 버렸다. 전쟁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문제는 충돌의 규모와 기간이다.
일각에서는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에 망신을 줄 만큼 강하다고 한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가자 전쟁에서 진을 뺀 이스라엘이라 헤즈볼라 공격은 조심스럽게 임할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더 과감하고 파괴적이고, 예상치 못한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더 높다. 중동과 세계는 더 어려워져 간다.⊙
〈323〉이란, 새로운 봄? 긴 겨울?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개혁파인 마수드 페제슈키안이 당선되었다. 1978년 호메이니의 혁명 성공 이후 이란이 이슬람 근본주의의 틀에 굳게 닫힐 때, ‘저 체제가 얼마나 오래갈까’라는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팔레비 왕조가 부패와 무능으로 악명 높기는 했지만, 이란은 자원과 성장 잠재력이 풍부한 나라였고, 미니스커트가 유행할 정도로 이슬람 국가 중에서 개방성이 제일 높은 나라였다.
그러나 거의 반세기 동안 이란은 정통 무슬림 국가로서 안정적으로 살아왔다. 국제사회에서는 시아파의 후원자로 강경 저항세력의 배경이 되었다. 그런 이란에서 강경파 대통령이 헬기 사고로 사망했다. 이런 사고에는 흔히 의심이 따르고, 보복 심리라는 게 있어서 더 강경한 인물이 선출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게다가 이란을 향한 미국의 제재는 풀어질 기미가 안 보인다. 이스라엘과는 미사일을 한 차례 주고받았고, 이란의 후원을 받는 후티, 헤즈볼라는 준전시 상태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란이 레바논이든 시리아든 지상군을 파견하는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대내외적인 전쟁 압박이 작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파 인물이 54%의 득표로 당선되었다는 건 누구도 예측 못 한 변화라고 하겠다.
이 변화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모른다. 당장 이란 사회에서 가시적인 변화가 나타난다는 기대는 성급하다. 빙산 밑의 얼음이 녹고 있어도 변화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국민 마음의 변화, 심정의 불안을 대변하는 일로 끝날 수도 있다. 마음속에 삶의 불편함이 누적되어 있는 것과 삶의 지향, 체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다르다. 아마도 다음 세대에는 변화와 방향이 확실해지긴 할 것 같다. 너무 길게 본다고? 역사로 보면 그 정도면 아주 짧은 성공이다. 그나마 이런 작은 노력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지속되어야 한다.⊙
〈324〉끔찍했던 죽미령 전투의 교훈

올해는 장마가 유달리 일찍 시작되었다. 7월 초순부터 내내 비 소식이다. 1950년 7월도 그랬던 것 같다. 7월 4일경, 경기 오산 죽미령 일대는 비가 내렸다. 죽미령 도로에 차단선을 치고 북한군을 기다리던 미 24사단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원들은 온몸과 마음이 비에 홀딱 젖었다.
다음 날 미군과 북한군 사이에 벌어진 최초의 전투는 미국의 전사에서 언급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한 것이었다. 전차에 돌파당하고, 공포에 무너진 건 오히려 이해할 만했다. 병사들은 총기 손질을 할 줄 몰라 전날 내린 비와 진흙으로 소총의 절반 이상이 발사되지 않았다.
장교들 3분의 2가 전투 경험도, 제대로 된 지휘 경험도 없어서 공황에 빠진 병사들을 효과적으로 통솔하지 못했다. 한 소대장은 죽미령 전투에서 패하고 후퇴하는 중에 물이나 음식을 찾아보겠다고 자원한 병사들을 떠나보낸 걸 후회했다. 그들 절반은 탈주병이었고, 절반은 지리도 모르는 곳을 헤매다가 죽거나 포로가 되었다. 그 장교는 전장에 있는 부대는 어떤 경우도 개별 행동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그렇게 배웠다.
몇 년 전 그 죽미령을 방문한 적이 있다. 기념비와 전차, 전투기가 전시되어서 이곳이 과거의 전적지임을 말해 주고 있다. 여기뿐 아니라 6·25전쟁의 전적지 곳곳에 이제는 거의 빠짐없이 기념시설이나 비가 들어서 있다.
하지만 이 기념시설들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말 그대로 기념뿐이거나 감상적, 이념적 교훈뿐이라면 여기에 전시된, 이제는 실전에 사용할 수 없게 된 낡은 무기와 다를 바가 없다.
도로는 넓어지고 숲은 울창해져서 과거 전투의 현장을 상상하기도 어렵다. 이젠 디지털 기술도 선진국인데, 전투를 느끼고 교훈을 찾고, 승리했든 패배했든 이곳에서 생명을 걸었거나 잃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곳이 될 수는 없을까?⊙
〈325〉한국전쟁에 관한 2개의 해석

소년에서 청년이 되어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려는 아들, 갓 결혼한 신랑, 갓난아기를 안아 든 초보 아빠, 전쟁은 이런 사람들을 전선으로 호출한다. 그리고 이들 일부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다. 자식이나 남편을 잃은 어머니가 강인하게 살아가고, 아버지의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아기가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가족의 불행을 극복하고, 아무리 탁월한 삶을 성취한 사람이라도 삶에 파인 자국을 지울 수는 없다.
한국전쟁의 원인에 대해서 미국 학계에 두 가지 해석이 있다. 냉전체제가 빚어낸 비극이라는 시각과 광복 전부터 한국 사회에서 갈등해 온 이념 대립이 빚어낸 내전이라는 해석이다. 후자를 수정주의라고 하는데, 남의 나라 전쟁에 애꿎은 미국 청년들이 희생되었다는 감정이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
유가족의 고통과 남은 사람들의 일그러진 삶을 생각하면 “왜 우리가 다른 나라의 전쟁에 희생과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가?”라는 수정주의적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아니, 그런 감정도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수정주의는 절반의 진실이다. 현대 세계는 국내적 현상과 국제적 현상이 흙과 물을 나누듯이 구분되지 않는다. 식물은 그 땅의 흙에서 자라지만, 비는 지구를 도는 대기의 산물이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계의 원리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약진하면서 미국 사회에서 수정주의적 감성도 약진하고 세계가 동요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절반의 진실이란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트럼프가 당선된다고 해도 그의 말 역시 10%의 진실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선동이 트럼프의 전유물은 아니다. 수정주의적 감성이 미국인만의 이기주의나 피해의식도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이성도 똑같은 시험대 위에 서 있다.⊙
〈326〉편견과의 전쟁

올해는 유별난 무더위가 찾아올 것 같다. 그래도 수은주의 숫자로는 중동의 뜨거움을 따라잡지는 못한다. 중동 사람들도 더위는 견디기 힘들어서 아프리카인들을 잡아 와 농사일에 노예로 부렸다. 이들은 중동보다 더 더운 곳에 살고, 피부도 검으니 자신들보다 더위를 잘 이겨낼 것이라고 믿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팽유격의 휘하에 흑인 병사가 한 명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그 병사를 바다귀신이라고 기록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는 수영의 귀재로 바닷속에 잠수해서 적선을 공격할 수 있고, 며칠 동안 물속에서 살 수 있다는 어이없는 이야기를 기록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이 햇빛에 그을려 피부가 검어지니까 피부색이 검은 만큼 바다와 물에 더 적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선 후기에 청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사람이 러시아인을 보았다. 백병전의 시대였다. 하얀 피부와 거대한 체격이 인상적이면서 공포감을 주었다. 청은 시베리아 지역에서 러시아와 국경분쟁을 벌이던 중이었다. 조선도 효종 때에 이 전투에 정예군을 파견한 적이 있었다. 사신이 물었다. “저런 체격을 가진 사람들과 전쟁을 어떻게 합니까?” 청나라 관원이 웃으며 말했다. “전술로 싸우면 됩니다.” 근육이 남달리 발달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두뇌가 발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대표적인 편견의 하나인데, 청나라에는 이런 믿음이 광범위하게 퍼졌던 모양이다. 하긴 한중일 3국에서 100년 가까이 유행하고 있는 믿음이 서양인은 육체가 강하고 동양인은 정신이 강하다는 낭설이다.
인류의 지성사는 편견의 역사이다. 위인의 저서에서 거리의 유머까지 편견이 없는 곳이 없다.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정보사회가 이런 편견을 해소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인 듯하다. 사회의 갈등과 분쟁에는 언제나 그런 편견이 선두에 있다. 이제 이 문제에 모두가 심각하게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327〉대화를 거부하는 이유

1∼4차 중동전쟁의 주역 국가는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었다. 현재 이스라엘과 싸우는 상대는 팔레스타인, 이란, 헤즈볼라, 후티다. 전면전이든, 미사일 공격이든, 테러든, 이들의 갈등은 형태를 바꾸면서 오래 진행될 것 같다. 당장 휴전이나 어떤 가시적인 중재가 있다고 하더라도 무엇에 의한 폭발이든 폭발음이 완전히 멎을 것 같지는 않다.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전쟁보다는 양보와 대화로 해결하자는 원칙에 다들 동의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일어난다. 왜 그럴까? 대화와 양보로는 얻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무언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무언가는 참 여러 가지 단어로 표현된다. 정의, 생존, 번영, 신의, 미래, 영토, 자원, 보호, 안전, 응징, 보복, 자존심, 나아가 진정한 혹은 항구적인 평화도 있다. 누구도 탐욕, 정권, 권력욕, 명예, 재산, 기만, 선동, 이기심이 이유이자 목적이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진실로 내가 정의고 합당한 이유와 명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전쟁은 피와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게다가 한 번 흘린 피는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이런 지적을 하면 마지막 논리가 있다. “우리도 안다. 하지만 이 상황과 이 분노, 이 한은 대화와 양보로 해결할 수 없다.”
막상 전쟁을 치르고 나면 이 부분을 반성하는 경우도 많다. 양보와 타협의 여지가 많았는데, 우리가 보지 못했다고 말이다. 현재의 중동은 이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어떤 방식이든 편과 이유를 바꿔 가면서 최소 한 세대는 포성이 그치질 않을 것이다.
답을 찾을 수 없는 중동이 답답하다면 우리 사회의 갈등은 어떨까? 엄청난 여지가 있음에도, 정치와 선동이 이를 거부한다. 땅이 없어서 울부짖는 것이 아니라 땅이 있는데 눈과 귀를 가리고 분노한다. 이런 상태가 이미 한 세대를 경과하고 있다.⊙
〈328〉쿠르스크 전투

우크라이나군이 기습적으로 쿠르스크로 치고 들어갔다. 쿠르스크는 독소전쟁 중에 최대의 격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쿠르스크에서 모스크바 간 거리는 약 500km이다. 전체가 평원이라 방어 지형이 적고, 방어에 많은 병력을 요구한다. 독일군은 모스크바까지 진격할 여력이 없었지만, 쿠르스크를 확보하면 스탈린을 위협하는 효과는 있다고 생각했었다.
전황은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지만, 우크라이나군의 병력이나 전력 규모로 보아 점령지를 오래 유지하지는 못할 것 같다. 이런 대담한 작전을 시도한 목적은 무엇일까?
결정적인 이유를 한 가지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이유들을 나열할 수 있을 것 같다.
동부전선에서 러시아군의 전력을 분산시킨다. 이 전쟁의 전선은 1000km에 가깝다. 아직 미흡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이 제공권까지 보강하면 이런 공세를 더 자주 취할 수 있다. 러시아는 방어에 상당한 병력을 투입해야 한다.
우크라이나가 그만큼 절박하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충분한 전력, 제공권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침공은 기습 효과가 사라지면, 공격부대가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러시아의 전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죽음을 각오한 비장한 공격을 시도한 것일 수도 있다.
러시아 국민들에게 전쟁의 심각성을 느끼게 하고, 반전 여론을 일으키려는 의도일까? 러시아도 파괴된 지역이 생기고, 피란민이 모스크바로 밀려든다. 러시아 정부가 휴전협정에 보다 적극적이고 양보적으로 나오게 하려는 속셈도 있을 수 있다. 휴전이든 정전이든 양보가 필요하다. 양보는 더 큰 손실을 막으려는 자세에서 나온다.
러시아 본토 공격의 제한이 풀린 우크라이나군의 탐색전일 수도 있다. 전투 경험 없이 군대의 전술 능력은 발전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군이 제한 없이 움직일수록 러시아군의 전쟁은 더 어렵고 복잡해지고, 우크라이나군의 재정비에 대한 부담이 커진다.⊙
〈329〉전차 백병전

쿠르스크는 약간의 탄광을 보유한 것 외에는 특별하지 않은 조용한 도시였다. 1943년 7월 5일부터 8월 23일 사이에 쿠르스크 돌출부를 두고 독일군과 소련군 간에 혈전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보통 사람들이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었을 곳이다. 그러나 독일군 80만 명, 소련군 200만 명이 동원된 쿠르스크의 혈전으로 전쟁사에 관심이 있다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도시가 되어 버렸다. 특히 대규모 전차전은 1500대가 넘는 전차들이 서로 뒤엉켜 백병전을 벌인 혈투로, 전차전 역사상 가장 처절하고 장렬했던 그리고 다시는 벌어지지 않을 전투로 알려져 있다. 전차 백병전이란 생소한 단어지만, 말 그대로 전차들끼리 근접 혈투를 벌이는 전투다. 포탄을 발사할 수 없거나 불붙은 전차들은 적의 전차에 육탄으로 충돌하기도 했다. 한 세대 지나 로봇이 전투를 대신 하게 된다면 우린 이런 광경을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전쟁사 마니아에게나 기억되던 지역이 갑자기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또다시 전쟁 때문이다. 이번의 쿠르스크 전역 역시 극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가장 주목받는 전투가 될 것 같다.
그야말로 치킨 게임이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정예 전력을 투입했고, 러시아의 2선 부대로는 감당이 안 된다. 러시아는 동부전선의 주력을 빼 올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사이에 우크라이나군은 방어 진형을 확보할 시간을 벌 수 있다. 아니면 동부전선에서 모험을 벌일 수도 있다. 10월까지 버티면 가을비 맞은 땅이 진흙탕으로 변하는 ‘라스푸티차’가 된다. 쿠르스크는 평원이라 방어에 불리한 곳 같지만 그 반대다. 오히려 공격 부대가 완전히 노출되고 약간의 구릉, 숲, 도랑이 훌륭한 방어 지형이 된다. 1943년 독일군은 충분히 요새화된 쿠르스크 돌출부에 뛰어들었다가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을 입었다.⊙
〈330〉여름 전쟁, 겨울 전쟁

올해 무더위가 기상청 창설 이래 최악의 폭염이었다는 2018년 기록을 깨뜨렸다. 전쟁은 잔혹하지만 무더위나 혹한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더욱 잔혹하다. 철모와 방탄조끼는 총알을 막는 대신 열사병을 일으킨다. 강철로 만든 갑옷을 입어야 했던 옛날에는 더위와 추위의 고통이 더했다. 여름이면 갑옷은 화상을 입힐 정도로 달아오르고, 겨울이면 살이 달라붙을 정도로 얼었다. 로마군은 천하무적인 듯했지만, 열사의 스텝 지역에 가면 갑옷도 입지 않은 경기병대에 번번이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항복했다.
거란이나 몽골 같은 유목군대와의 전쟁은 주로 겨울에 벌어졌다. 병농일치인 유목군대는 봄에서 가을까지는 생업에 종사해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살수대첩이나 안시성 전투는 7, 8월 삼복더위에 진행되었다. 수나라, 당나라처럼 재정이 튼튼하고 징병한 병사를 사용하는 군대는 1년 내내 군대를 운영할 수 있었는데, 겨울보다는 여름이 편했던 모양이다. 봄여름에는 마초가 풍부하고, 농사철에 침공하면 농사를 망쳐 상대국에 기근의 고통을 선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임진왜란은 봄에 시작했다. 임진년 여름에 선조는 의주에 피란 가서 명나라 원군을 기다리고 있었고, 왜군은 평양성을 점령하고 의주를 노려보고 있었다. 반면에 만주족인 후금과 청의 침공은 겨울에 행해졌다.
6·25전쟁은 어땠을까? 여름과 겨울을 가리지 않고 혹서와 혹한기에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날씨든 지형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최고의 전술이다. 눈과 비를 맞으며 행군하게 하고, 폭염이나 혹한에 최대한 노출시킨다. 편히 잠자지 못하게 하고 굶주리게 한다. 그래서 군대는 몰상식해 보이지만 고통을 감내하는 훈련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편하게 지내면서 기능 훈련만 하는 군대는 승리할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인생도 마찬가지 아닌가.⊙
〈331〉당신은 최선을 다했습니까

“저로서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가 맡은 일에 성공했을 때나 실패했을 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최선을 다했다는 표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쏟아부을 수 있는 힘과 노력을 다했다는 의미와 그 방법이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의미이다. 보통은 후자의 의미로는 잘 사용하지 않거나 전자의 의미에 포함해서 사용하는 듯하다. 그러나 결과가 만족할 만한 성과이든 실패이든 간에 우리는 후자의 의미를 늘 반문해야 한다.
한니발과 나폴레옹은 눈 덮인 알프스를 넘어 전쟁사에 불멸의 명성을 남겼다. 그러나 대가는 가혹했다. 한니발은 절반 이상의 병사를 잃었고, 코끼리는 한 마리만 남았다. 지치고 줄어든 병사로 로마군의 봉쇄선을 우회하다가 한니발은 한쪽 눈을 잃었다. 한니발이든 나폴레옹이든 해로로 병사를 운송할 수 있을 만큼 제해권과 수송선을 확보할 수 있었다면 굳이 알프스를 넘는 무리수를 감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해상 이동과 상륙작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알프스 횡단은 불멸의 명성을 안긴 부분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해상 이동을 포기하고 알프스 횡단이 공인된 최선의 선택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한계가 한니발을 패망시켰다. 반면 제해권을 확보하고 있었던 라이벌 스키피오는 바다를 통해 한니발의 본거지 스페인을 침공했고, 결과적으로 2차 포에니 전쟁의 승자가 될 수 있었다.
후대의 지휘관들은 한니발과 나폴레옹에게 알프스 횡단이 최선의 선택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탐구해야 한다. 그런 고민 속에 제해권을 극적으로 역전시킬 수 있는 기술이나 전술적 방법을 찾아내거나 전설의 목우유마처럼 산악지대를 쉽게 통과하고 보급을 유지할 수 있는 장비를 발명할 수도 있다.
모든 집단은 이런 노력을 통해 발전한다. 모든 성공은 수많은 실패의 주검 위에 서 있다. 아무리 성공적인 결과를 거둔 사람이라도 더 나은 최선을 가로막았던 이유를 반문하고 궁리해야 한다. 그것이 명장의 특징이자 조건이다.⊙
〈332〉실체적 깨달음

육군 과학화 전투 훈련단에서는 레이저를 이용한 마일즈 장비로 모의 전투 훈련을 시행한다. 이 훈련 장비로 민간동호회를 대상으로 하는 경연대회도 매년 개최하고 있다. 우연한 계기로 이 행사에 초청받아 참가하는 기회를 얻었다.
와서 두 번 놀랐다. 젊은 예비역이나 특수부대 출신들이 주축을 이루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배 나온 아저씨들도 많고, 학생들도 있었다. 군대도 가보지 않은, 처음 참가했다는 중학생이 예비역 어른보다 더 의연하고 침착하게 전투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놀랐다.
아무리 게임이라도 실총을 들고 공포탄을 쏘며 싸우는 전투라 참가자들이 항의하거나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현역 군인들도 이보다 더 통제를 잘 따르고 화기애애할 것 같지 않다고 느낄 정도로 그런 문제는 없었다.
필자가 여기에 참가한 이유는 책으로는 다 알 수 없는 실전 분위기와 교훈을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이틀간 탄약 냄새를 맡으며 전장을 달려보고, 두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첫째는 내가 알던 사실들의 확인이다. 역사학자들이 제일 많이 받는 빈정거림이 “당신 그 시대를 살아보기나 했어?” “전쟁터에 가 봤어?” “그거 직접 해 봤어?”라는 말이다. 이런 공격에 대해서 참 할 말이 많지만, 책에서 배우는 지식이라고 다 현실과 동떨어진 허상이 아니다. 이번에 그런 일체감을 수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전장의 분위기와 병사의 심리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다. 새로운 깨달음이란 꼭 모르던 사실을 아는 것이 아니다. ‘아무개는 거인이다’라는 추상적 정의를 키가 2m에 체중이 140kg이라는 실체적 모습으로 발견하는 것이다.
진정한 지식은 실체적 지식이어야 한다. 추상성, 막연함으로 포장된 지식이 지금 우리 사회가 이분법과 극단적 비난, 선동, 내로남불이란 몰염치로 고통받는 이유이다.⊙
〈333〉민간인이 군사령관이 될 수 있을까

유비가 삼고초려 끝에 백면서생인 제갈량을 스카우트하는 데 성공하고 그에게 군사 지휘를 맡기자 관우와 장비는 분노한다. 이 이야기는 소설의 설정이긴 하지만 정말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과연 제갈량을 인정할 사람이 있을까? 실제 현실에서 제갈량은 문무를 겸비한 리더가 꿈이었고, 군사 지휘에도 욕심을 냈지만, 소설과 달리 유비가 만류했다.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의 명감독이었던 토니 라루사는 변호사 출신으로 메이저리그를 제패했다는 사실로 유명해졌지만 실은 그도 메이저리그 선수 출신이었다. 보잘것없는 성적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 뒤에 변호사가 되었던 것이다. 스포츠든 전쟁이든 격렬한 승부의 세계, 그것도 최정상급 승부에 제갈량처럼 전혀 실전 경험이 없는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면 장수는 반발하고 병사와 국민은 불안해질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살던 시절에 이런 일이 실제로 발생했다. 아테네는 시민투표로 사령관을 선출했는데, 니키마키데스라는 역전의 장수가 안티스테네스라는 부자이자 수완 있는 경영자로 유명한 인물에게 지고 말았다. 금권선거가 만연하던 시절이라 안티스테네스의 재력이 위력을 발휘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더욱 분개하던 니키마키데스가 소크라테스를 만났다. 아테네의 양심이자 지혜인 소크라테스는 어이없게 안티스테네스가 훌륭한 지휘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의 지론은 이렇다. 능력 있는 인재를 찾아내 적재적소에 등용하고, 국가를 위해 자신의 노력과 재산을 공여하고, 상벌을 공정하게 하고, 부하들의 인망을 얻는 것은 리더의 공통된 미덕이자 의무이다.
현대의 군대는 고대 그리스의 군대와 다르다. 아무리 소크라테스의 말이라도 민간인이 군사령관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 고대 아테네에서 사령관이 된다는 건, 곧 정치지도자로 등극한다는 의미였다. 소크라테스의 시대에 아테네는 추락하고 있었다. 그의 진의는 몰락하는 사회를 구할 리더상에 있었다. 너무 뻔한 미덕 같다고? 세상을 둘러보라. 이런 리더가 어디에 있는지.⊙
〈334〉헤즈볼라의 패착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전쟁을 시작했을 때, 이란과 헤즈볼라가 개입하면 중동전쟁으로 확대되고 이스라엘이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들 했다. 그때 필자는 헤즈볼라나 이란이 전면전 형태의 전쟁을 벌일 수 없다고 주장했었다. 필자는 오히려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칠 가능성이 있으며, 7월에는 이스라엘이 예상치 못한 과감한 행동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했었다. 결과는 무서울 정도로 놀랍다. 이스라엘의 삐삐 테러는 최소 수년은 걸린 공작이다. 결정적 순간을 위해 수년에 걸쳐 불확실한 작전을 준비한 것도 대단하지만, 이런 공작을 시행하려면 헤즈볼라 내부에 상당한 첩보망과 내부 협력자를 심어 놓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삐삐 테러가 헤즈볼라의 중간 지휘관들을 제거하려는 목적이라는 추정도 있지만 필자는 훨씬 더 중요한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제일 권력 집단이지만 토착 레바논인도 아니다. 혁명 조직, 비밀 결사의 성격을 가진 권력 집단이라 레바논 내에 다양한 세포 조직을 양성했어야 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 역으로 약점이 잡힌 것이다. 이들이 갑자기 정체가 탄로 나고 제거되면서 레바논 내 헤즈볼라 조직이 와해되고, 반헤즈볼라 세력들이 용기를 가지게 된다. 동시에 헤즈볼라에 대한 불신이 커진 조직원, 동조자, 협력자들이 이스라엘에 협력하거나 정보를 제공하기 쉬워진다.
이스라엘은 기다렸다는 듯이 폭격으로 단숨에 헤즈볼라의 지도자부터 주요 사령관을 손쉽게 제거했다. 대이스라엘 투쟁은 성전이고, 믿음과 신념을 가진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헤즈볼라 내부의 권력 투쟁, 레바논 여러 세력의 반헤즈볼라 활동 역시 왕성해질 것이다.
어쩌면 이스라엘은 레바논에 지상군 투입을 하지 않거나 격렬한 지상전을 벌이지 않고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젠 이란이 나설 차례라고 하는 예상도 있는데, 이란의 참전 가능성은 낮고, 시아파 전위대들의 신뢰도 이미 떨어졌다.⊙
〈335〉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중동 정세가 계속 요동치고, 주가와 원유 가격을 들썩거리게 하고 있다. 사람들은 현실 전쟁 앞에서 정의와 인권, 양심 따위가 얼마나 하찮은 것이 되며, 입으로 외치는 평화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그리고 지구 건너편 사람의 고통과 파괴보다 내 생활물가의 앙등을 더 진지하게 걱정한다는 사실을 매일 보고 느낀다. 계몽주의 시대 이래로 지식인들의 무기가 된 인류의 양심, 지성이란 단어는 이기심, 좁은 세계관, 편협한 자기만족, 한마디로 하면 무지와 몰상식의 포장지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매일매일 목격한다.
정말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걱정하고 분노하는 것인지, 자신의 세계관과 이념의 배출구로 여기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게 하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존경받는, 아니 당연히 존경받아야 할 것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필자에게도 이런 질문이나 공격이 날아온다. 당신은 뭐가 다르냐? 당신도 설명, 해설만 하고 있는 방관자, 구경꾼에 불과하지 않냐. 정말 세상을 걱정한다면 대안을 내놓아라, 아니면 이런 해석과 이런 주장, 이런 결론을 지지해라.
답이 있다면, 혹은 이런저런 주장이 진실한 답이라면 왜 동조하고 지지하지 않겠는가. 지금 중동의 분쟁들은 답이 없다. 반세기 동안 전쟁과 테러, 폭력이 뒤섞이면서 강자와 약자 모두 서로 피해자의 논리로 무장하고 있고,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더 많은 피해를 본 쪽과 더 강한 쪽을 판별할 수 있지만, 그들이 화해하고 어울려 살아갈 방법은 요원하다. 혹 어떤 천재가 세계인이 동의할 만한 비결을 찾아낸다고 해도 중동의 당사자들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중동 문제의 본질이다.
이번 전쟁이 세계대전, 5차 중동전쟁으로 확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헤즈볼라와 하마스가 어떻게 되든 중동분쟁은 끝나지 않는다. 중동 문제 해결의 첫걸음은 불완전한 미봉책부터 시작하는 방법뿐인 것 같다.⊙
〈336〉플라타이아이를 기억하라

아테네가 페르시아군의 침공에 맞서 마라톤에서 전투를 벌일 때 아테네를 도와준 유일한 폴리스가 플라타이아이라는 작은 폴리스였다. 아테네는 감격했고, 이들을 우방으로 예우했다. 이렇게 시작된 페르시아 전쟁에서 아테네는 승리했고, 그리스의 강국이 되었다. 아크로폴리스에 파르테논 신전이 세워지고 그 앞에는 황금으로 만든 아테네 여신상이 섰다. 이 여신상에 입힌 금만 1t이 넘었다.
아테네가 과하게 번영하자 다른 도시가 반발했다. 이렇게 해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란 내전이 발발한다. 플라타이아이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테베로 가는 일종의 십자로였다. 스파르타와 테베가 동시에 플라타이아이를 노렸다. 플라타이아이는 오래된 의리를 지켜 아테네 편에 서기로 한다.
스파르타와 테베가 대병력으로 플라타이아이를 포위하고 공격했다. 플라타이아이인들은 도시 중앙 요새에 들어가 농성했다. 이 성은 긴 쪽 너비가 440m, 짧은 쪽이 350m밖에 되지 않는 타원형의 성이었다. 사람은 남자 480명, 여자 110명뿐이었다.
이 병력으로 반년 넘게 버텼다. 하지만 믿었던 아테네 군대는 소식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육전을 포기하고 해전으로 승부를 내기로 결정했다. 플라타이아이 수비대 중에는 아테네 주민 80명도 있었지만 구출을 포기한다.
결국 플라타이아이인 절반은 야밤에 포위망을 뚫고 탈출해서 아테네로 도주한다. 나머지 병력은 몇 달을 더 버티다가 식량이 떨어져 항복하고 만다. 승리한 자들은 이 작은 성의 항전에 분노했던 모양이다. 이전의 포로 살해를 구실로 남자들은 모조리 죽이고, 여자들은 노예로 삼았다.
2000년도 전의 사건이지만 국제 정치는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의리는 없고, 약자에게 정의는 없다.⊙
〈337〉신와르의 죽음이 초래할 미래

신와르가 죽었다. 며칠 전 지리산 빨치산 지도자 이현상의 최후를 다시 살펴보았다. 왠지 ‘신와르의 최후도 이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 때문이었는데, 정말 그렇게 됐다. 이현상의 마지막 순간은 여러 가지 미스터리가 남아 있지만, 국군의 토벌전에 더는 산속도 안전하지 않자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다 우연히 토벌대와 조우해 사살됐다.
신와르도 사령부 조직과 경호대가 와해되고, 안전지대가 사라지자 겨우 2명의 경호원을 대동하고, 이스라엘군을 피해 다니다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 2선에서 활동하던 병사들과 조우했던 것 같다.
신와르의 죽음은 가자 전쟁을 중단시킬 수 있는 호재일까? 세계는 그렇게 믿거나 만들고 싶어 하는데, 정작 당사자들인 네타냐후나 하마스는 그럴 마음이 없어 보인다. 이란과 주변국 시위대는 신와르의 죽음으로 저항정신은 더 불타오를 것이고 100명을 죽이면 1000명이 가세할 것이라고 외친다.
반은 맞는 말이다. 가자의 정치세력, 조직으로서 하마스는 거의 와해된 듯하지만, 힘으로 저항을 억누를 수는 없다. 억압에 대한 분노는 영원히 재생된다. 생존한 일부는 극단적 테러 조직으로 변할 것이다.
그러나 테러도 조직과 준비가 필요하다. 당장은 행동력이 크게 줄어들 것 같기는 하다. 이스라엘도 뒤로는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이란과 헤즈볼라의 대응이 아직 변수로 남아 있지만, 이란도 이스라엘과 더 이상 물리적 충돌을 원하지는 않고, 하마스와 헤즈볼라가 더 이상 약화되기를 원치는 않을 것이다. 회복의 시간이 필요하다. 헤즈볼라는 헤즈볼라대로 지금 자신의 앞가림이 중요하다.
문제는 이스라엘의 손익 계산이다.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내부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증명한 이스라엘이다. 그들이 최고점이라고 생각하는 지점이 여기일까? 대략 이쯤이라고 생각되지만, 또 다른 분노의 테러가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338〉북한은 왜

북한이 러시아와 군사동맹을 맺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병력까지 파견했다. 남북한은 두 개의 국가이며 대한민국은 북한의 제일의 적대국가라고 선언했다. 북한이 갑자기 이러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북한 간에 당장 전쟁의 위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쟁 중인 러시아가 북한에 군사력을 지원할 여력도 없다. 오히려 북한이 러시아에 군수품을 제공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은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한 것 같다. 남북한의 체제 경쟁에서 북한이 승리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민족 한 국가론은 남한의 흡수통일을 지지할 뿐이다.
그러면 북-러 동맹 속에 내포되어 있는 북한의 장기적인 생존 전략, 승리 전략은 무엇일까?
핵은 가공할 무기지만 핵이 있다고 일방적 승리를 거두기는 힘들다. 여기에 이런 메뉴를 더하면 어떨까?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고 미국과 중국이 경제 대결, 군사 대결을 벌인다. 트럼프 이후로 미국은 점점 더 자국 이익에 치중하고 세계의 분쟁에서 손을 뗀다. 미국은 두 개의 전쟁을 치를 능력도 없고, 중국과의 경제, 군비 경쟁을 대처하기도 벅차다.
미래, 러시아가 힘을 회복한 후에 한국과 북한의 대결이 벌어졌을 때, 미국이 손을 놓는다면 러시아의 지원은 북한에 큰 힘이 된다.
그 사이에 대한민국은 계속 나약해진다. 국민은 풍요에 젖어 안락만을 추구하는 비겁한 국민이 되어간다. 인구절벽으로 젊은이는 줄어들고 사회에 대한 불만은 커진다. 이상주의자, 낭만적 사회주의자들은 늘어갈 것이다. 북한 정권이 정말 이런 때가 온다고 믿고 미래 전략으로 구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우크라이나 파병은 당장 절박한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는 목적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 전략은 미래 구상이 없을 수 없다. 실현 가능성이 1%라도 그것이 최대치라면 1%의 가능성을 따를 수밖에 없다. 막다른 길에 있는 북한의 처지, 현재의 국제 정세, 항상 아전인수 격으로 세상을 보는 북한의 폐쇄증후군 등을 대입하면 정말 이런 구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339〉유엔평화유지군의 고난

이스라엘군이 헤즈볼라를 공격하면서 유엔평화유지군 기지를 침공했다. 세계가 이스라엘의 만행을 규탄했다. 그런데 유엔평화유지군의 역사를 보면 이런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과거 수많은 분쟁지역에서 막상 충돌이 시작되면 평화유지군은 힘없이 밀려나기 일쑤였다. 오래전부터 이런 말이 돌고 있다. “유엔평화유지군은 평화로운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군대이다.” “평화유지군은 있는 평화를 유지하는 군대이지, 없는 평화를 만들어 내는 평화조성군이 아니다.”
미리 말하지만 유엔평화유지군의 가치와 노력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다. 평화유지군은 인류 역사에 없었던 가상하고 기념비적이며 숭고한 노력이다. 평화유지군이 허약해 보이고, 실전 상황에서 전쟁억지력이 없어 보이는 건 평화유지군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가 평화유지군의 역할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오해는 물리적으로 전쟁을 막는 방법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과 관련된다.
물리적으로 분쟁을 해결하려면 물리력을 행사해야 하고, 몇 개국이 실제 전쟁을 치러야 한다. 그러다 보면 유엔의 다국적군 투입이 하나의 전쟁이 되고 국가 간에 앙금이 남는다. 유엔군이 투입된 6·25전쟁은 우리에겐 운이 좋았던 사례이다. 이런 대규모 다국적군을 편성하기는 쉽지 않다. 여기에 중요한 전쟁은 죄다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얽힌다. 이런 문제가 없다고 해도 분쟁지역마다 실전 군대를 투입하면 어쩌면 유엔은 1년 365일 전쟁을 치르는 전쟁기구가 되며, 세계의 모든 나라를 전시 상태로 몰아넣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세상만사를 너무 쉽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전쟁 없는 세상이란 목표는 너무나 높은 산이다. 평화유지군은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작고 힘겨운 한 걸음이다. 그들의 노력과 수고를 평가절하하거나 무용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2024-11-11
〈340〉미국 우선주의와 미국의 이익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제 한국이 큰일 났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다. 트럼프 측에서는 선거 기간 동안 ‘한국은 머니 머신이다’, ‘방위비 부담을 크게 올려야 한다’, ‘유럽, 대만,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미국은 모두 개입할 수 없다. 한국은 나중 순위다’라는 발언도 했다. 사실은 나토에 대해서도 비슷한 발언을 했었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우크라이나 사정은 ‘나는 모른다. 무조건 이 상황에서 전쟁 끝내라’는 식의 행동도 하고 있다.
트럼프의 행동을 미국 우선주의, 신고립주의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이 말을 19세기 미국의 먼로주의로의 회귀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당시 미국은 신생국가였고, 미국은 유럽에서 이민 온 1, 2세대 주민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미국이 유럽의 전쟁에 개입하면 그것은 미국의 분열을 초래한다. 지금도 그런 현상은 존재하지만 이미 국가적 정체성이 확고한 지금과 먼로 대통령 시대는 다르다.
미국 우선이든 고립이든 이런 주장의 근간은 미국의 이익이다. 과거 미국이 나토의 방위를 사실상 책임지고, 세계의 분쟁에 개입한 이유도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였다. 지금 고립주의를 들고나오는 이유는 개입보다 고립이 미국의 이익을 보장한다는 생각이 미국 유권자들 사이에 만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세계는 이미 경제로 얽혀 있다. 미국이 국내의 석유로 에너지를 충당할 수 있다고 해서 중동 유전이 모두 파괴된다거나 한국과 일본이 전쟁에 휘말리고 심지어 핵공격까지 받아서 초토화된다면 미국의 이익도 심대한 타격을 입는다.
트럼프와 해리스 누가 되었든 한국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방위비 부담이 늘면 다른 곳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바람이 부는 걸 탓해서는 바다에 나갈 수 없다. 역풍이든 순풍이든 이용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