危機의 韓半島(外交) 2024-10/ 10.01 트럼프가 백악관에 재입성하는 날 - 10-31 [속보]한미, 北파병에 경고…韓 “총알받이”·美 “주검으로 돌아갈 것”
危機의 韓半島(外交) 2024-10/
10.01 트럼프가 백악관에 재입성하는 날
미국 대선이 다가올수록 트럼프가 재선(再選)돼 백악관에 발 디디는 장면을 자주 상상하게 된다. 당선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한국에 미칠 여파가 더욱 커서다.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그는 더 이상 눈치 볼 이유도, 자제해야 할 이유도 없다. 트럼프의 본성과 충동이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반영된 미국의 정책을 우리는 당장 마주해야 한다.
트럼프 1기 때 미국에서 근무했던 우리 당국자들은 “매일 밤이 두려웠다”고 했다. 트럼프가 새벽 2~3시까지 TV를 보면서 수시로 날리는 트윗 때문이었다. 자신을 ‘악의 대통령’ ‘늙다리 전쟁광’이라는 북의 도발에 ‘화염과 분노’ ‘핵 버튼’ ‘꼬마 로켓맨’으로 맞받았다. 20~30자 남짓한 글을 두고 전 세계 언론들이 실시간 속보와 분석 보도를 쏟아냈다. 한국 본부에서 “무슨 뜻이냐”는 전화가 빗발쳤지만 한밤중이었다. 다음 날 아침 백악관으로 달려가 고위 참모들에게 물었더니 “나라고 알겠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트럼프 재임 기간 김정은은 그와 ‘밀당’하는 법을 익혔다. 트럼프의 자존심과 불안감을 자극하는 법을 터득했다.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핵(核)실험 카드는 트럼프 취임 전까지 아낄 가능성이 크다. 취임 전후 위협 수위를 최고로 끌어올려 그를 씩씩거리게 만들려 할 것이다. “김정은과 잘 지내겠다”고 해왔던 트럼프는 표변해 분노의 ‘말 폭탄’을 쏟아낼 것이다. 약올리는 북한과 성난 트럼프 간 ‘팃 포 탯’(tit for tat·맞대응)은 브레이크 고장 난 트럭처럼 폭주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다시 만나는 날 찾아올 것이다. 대선 현장에서 만난 트럼프 참모들은 하나같이 “둘은 다시 만날 것”이라고 했다. 빠르면 취임 첫해, 아니면 내후년 국내 정치가 막다른 길로 몰리면 언제든 ‘미북 회담’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1기 때 김정은에게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걸 확인했다. 무슨 조건으로 다시 보겠다는 건가.
핵심 참모들은 “트럼프만이 안다”고 했다. 확실히 모르겠다는 뜻이다. 기자가 관찰한 트럼프는 미 본토를 노리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 핵 동결 등 북한의 제안을 언제든 그럴듯하게 포장해 “미국이 안전해졌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북핵을 지고 사는 한국의 안보는 후순위다. 트럼프 1기 때 최측근 인사가 “전쟁이 벌어진다고 해도 저쪽(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수천명이 죽는다고 해도 여기(미국)가 아닌 저쪽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했던 걸 잊어선 안 된다.
‘트럼프 2기’가 현실화되는 즉시 닥칠 수 있는 일들이다. 트럼프 취임 직후부터 단계별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를 우리 정부가 세세하게 마련해놨을 거라고 믿는다. 김정은이 트럼프를 조종하지 못하도록 한·미 소통 채널을 잘 다져야 할 것이다. 트럼프가 불쑥 들이미는 ‘거래’들에 어떤 입장을 바탕으로 대응할지도 정해놔야 한다. 당선된 뒤 생각하면 이미 늦었다.
조선일보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10-04 불안해지는 美 핵우산 공약
황혜진 국제부 차장
며칠 전 미국 워싱턴DC로 출장을 다녀왔다. 한국언론진흥재단·미국 동서센터와 함께 미국 대선, 한미동맹, 북핵 이슈에 대한 미국 내 시각을 알아보기 위한 목적이었다.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 제조 시설을 공개하며 미국 대선 전후로 7차 핵실험에 나설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던 시기였던 만큼 꽤 밀도 높은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워싱턴은 놀라울 정도로 북한 문제에 무심했다. 대선 정국이라 모든 관심이 국내 이슈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을 감안하고라도 미국에서 보도되는 해외뉴스 대부분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이슈가 차지하고 있었다. 미국 최대 공영 라디오 매체인 ‘NPR’ 관계자가 설명해주는 주요 해외뉴스 순위에서도 북한 뉴스는 우크라이나, 중동, 아이티, 수단, 중국에 밀려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이러한 분위기는 워싱턴 정계에서도 분명히 읽혔다. 워싱턴에서 가장 오래된 싱크탱크에서 한반도 전문가로 일하고 있는 한 연구원은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에 대해 “우려는 있지만 ‘소왓’(so what·그래서 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했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 역시 “예전에는 북한에서 핵실험을 하면 난리가 났는데 지금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이동발사대에서 쏴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미 의회 상원 군사위원회에 소속된 민주당 한 의원실 관계자는 “북한뿐만 아니라 러시아·중국·이란이 협력하면서 위협이 커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크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을 보면 중국도 대만에 그러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북한보다 중국의 위협에 방점을 찍는 모습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미 양국 간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북핵 문제 해결의 대전제로 여겨졌던 ‘선(先) 핵 폐기, 후(後) 보상’에 입각한 비핵화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 성향의 한 싱크탱크 관계자는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더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싱크탱크 전문가는 한발 더 나아가 “북한을 국제사회로 복귀시키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이라는 발언으로 파장을 일으킨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의 견해에 대해 워싱턴에선 상당한 공감대가 쌓인 듯했다. 이미 공화당에 이어 민주당 정강 정책에서 ‘북한 비핵화’ 문구가 사라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차기 미국 정부의 초점이 북한의 핵을 용인하는 ‘핵동결·비확산’에 맞춰질 것이란 분석이 그리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니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전략은 무엇인가. ‘워싱턴 선언’과 ‘핵 억제 공동 작전 지침’으로 미국으로부터 더 굳건한 핵우산 약속을 받아낸 것으론 부족하다. 분명한 사실은, 북한은 핵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없다는 점이다. 한반도 비핵화 원칙이 깨진다면 우리도 이에 상응하는 전략을 고심해야 한다. 미국만 믿고 있기엔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너무 불안하다.

문화일보
10.04 중국발 ‘드루킹 공작’ 두고만 볼건가
중국 공산당이 세계 각국을 상대로 영향력 공작(influence operations)을 벌인다는 것은 외교안보 분야에서 상식으로 통한다. 영향력 공작이란 특정 국가가 중국에 유리한 결정을 내리게끔 여론 환경을 조성하고, 자중지란을 유발해 국력을 소모케 하는 전략적 활동이다.
중국 안보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은 목에 걸린 가시다. 한국은 중국이 최종 방어선으로 설정한 ‘제1 도련선’ 안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군사력도 만만찮다. 게다가 베이징에서 가장 가까운 미군기지가 한국에 있다. 경제적으로도 한국과 중국이 대결을 벌이는 산업 분야가 많다. 그러니 중국이 한국을 영향력 공작의 주요 대상으로 삼는 것은 필연이다. 요즘 중국이 한국에 뿌려놓은 공작의 마각(馬脚)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중국인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뉴스 댓글 현황. 자료 김은영 교수
얼마 전 김은영(가톨릭관동대)·홍석훈(창원대)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중국 영향력 공작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한·중 간 경쟁이 치열한 전기차·배터리·e커머스 등의 분야에서 중국의 댓글부대가 조직적으로 기사 댓글을 달아 한국 여론을 호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이 지난 1년간 네이버에서 확보한 77개의 중국인 추정 계정을 분석해 보니 이들은 2개 그룹으로 나뉘어 리더의 조율하에 조직적으로 관련 산업 기사에 댓글을 게재했다. 대부분 중국을 치켜세우고 한국을 폄훼하는 내용이다. 이들은 “현대차는 안 되지… 중국 전기차가 최고” “현기차 10년 이내에 망한다에 한 표” “알리 서비스 품질 좋은데 안 좋다고 기사에 뜬 거 이해 안 감” “알리·테무에서 사야 여러분이 살아남을 텐데요 ㅋㅋㅋ”와 같은 댓글을 남겼다.
한국 겨냥 영향력 공작 마각 드러나
한국비하, 반미반일, 사회갈등 조장
중 댓글부대 차단할 체계 구축 시급
그뿐 아니라 중국 댓글부대는 한국의 정치·사회·국제 이슈에도 댓글을 달았는데, 한국의 보수 정치권을 비난하거나 사회 갈등과 반미·반일을 부추기는 내용이었다. 가령 “미국의 애완견 한국답다. 동맹이 아니라 노예다, “전쟁광 윤XX 극우로 나가네” “중국·러시아가 그래도 경상도보단 훨씬 낫다”와 같은 댓글이다.
지난해 연말 윤민우 가천대 교수 연구팀도 네이버에서 조직적으로 움직인 중국 댓글부대를 확인했다. 이들은 지난해 9~11월에만 최소 3만 개 이상의 댓글을 남겼는데, 역시 중국의 우수성을 주장하고 한국을 내리깎는 내용이었다. 특히 지역감정(“서울시민 입장에서 전라도나 경상도나 둘 다 한심”)과 남녀갈등(“한국 여자들은 돼지처럼 먹기만 함”)을 조장하는 내용도 있었다. 한국 사회의 뇌관을 의도적으로 건드린 것이다.
윤 교수팀 분석에선 ‘Chen Yang’이란 닉네임이 댓글부대를 이끄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분석 결과가 보도되자 ‘Chen Yang’은 닉네임을 ‘123456789’로 바꿨다고 한다. 이번 김은영 교수팀 연구에서도 이 ‘123456789’가 댓글부대의 핵심으로 지목됐다. 댓글부대가 군 조직처럼 지휘체계를 갖춰 활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구자들이 개별적으로 조사한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중국발 ‘드루킹’의 전체 공작 규모는 훨씬 더 방대할 것으로 추정된다.

▲2023년 2월 26~28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2차 전체회의(2중전회)에서 중앙정치국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김 교수는 보고서에서 “중국은 아시아-서태평양에서 서구 세력과 일본을 몰아내고 중화제국 질서를 재현하겠다는 전략적 목표를 갖고 있다”며 “이런 국가 비전에 따라 한국은 중화문명권에 복속시켜야 할 주요 대상이며, 영향력 공작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섬뜩한 경고다. 김 교수는 중국의 영향력 공작에 대응하기 위해 댓글부대의 정보를 담은 대용량 데이터베이스와 이들을 식별해 낼 수 있는 프로파일링 체계를 구축할 것을 제안했다. 정부 당국이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이다.
또 실효성 논란이 있긴 하지만 최근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발의한 ‘댓글 국적표기법’도 한번 검토해 볼 만하다. 어쨌든 지금처럼 한국의 사이버 공간을 중국 댓글부대의 놀이터가 되도록 방치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중앙일보 김정하 논설위원
10.04 ‘이시바 시대’ 중·일 관계와 대만, 그리고 한국
이시바 시게루(石破茂·67) 일본 총리가 취임했다. 중국은 절제된 반응을 보였다. 외교부 대변인이 먼저 “중·일 네 개의 정치문건이 확립한 각 항목의 원칙과 컨센서스를 엄수하길 희망한다”고 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당선 축전에서 똑같이 말했다.
암호 같은 축전을 해독하려면 지난 여름에 벌어졌던 ‘사건’부터 살펴야 한다. 지난 7월 26일 라오스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가미카와 요코(上川陽子) 일본 외무상이 만났다. 회담 후 “일본 측은 하나의 중국 입장을 견지하며 어떠한 변화도 없다고 밝혔다”라고 중국이 발표했다.
곧 사달이 벌어졌다. 8월 1일 일본 기자가 린젠(林劍) 중국 대변인에게 “중국 측 발표가 정확했나” 캐물었다. 린 대변인은 “하나의 중국 원칙은 국제 관계의 기본 준칙이자 국제 사회의 보편적인 컨센서스”라며 “일본은 1972년 ‘중·일 공동성명’에서 이를 승낙했다”라고 대답했다.

▲지난 8월 13일 이시바 시게루 의원(왼쪽)이 라이칭더 대만 총통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대만 총통부]
2일 가미카와 외무상이 직접 나섰다. 기자를 만나 “일본의 대만 입장은 1972년 일·중 공동성명에 적힌 바와 같다. 이 입장에 변화는 없다”라고 했다. “중국 측 발표가 일본 측 발언을 정확히 보여주지 않았다”며 중국에 항의한 사실도 확인했다.
중국은 당황했다. “일·중 공동성명에 적힌 바”라는 워딩을 “하나의 중국 입장을 견지한다”로 고친 것에 일본이 정색하고 나서서다. 일본도 중국의 저의를 의심했다. 두 나라 모두 정면을 공격할 듯 위장한 뒤 후방을 치는 병법 암도진창(暗度陳倉)을 떠올렸다.
새로운 이시바 총리는 ‘하나의 중국’을 어떻게 요리할까. 그는 대만을 줄곧 왕래한 대만통이다. 지난 8월에도 라이칭더(賴淸德) 대만 총통과 만나 “오늘의 우크라이나는 내일의 아시아”라고 했다.
이시바 총리는 ‘아시아판 나토(NATO)’ 창설을 주장한 안보통이다. 동시에 2002년 방위상 취임 이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았다. 또 “중국 최고 지도자는 10년마다 일본을 방문해야 한다”라고 주장한 중국 포용론자이기도 하다.
11월 미 대선이 끝나면 페루에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이 열린다. 시 주석과 이시바 총리의 회담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1992년 수교성명에서 ‘하나의 중국’ 입장을 존중한다고 했다. 최근 논란인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지지와 맞바꿨다. 모든 통일은 ‘현상 변경’이다. 또 대만해협과 한반도 평화는 모두 중요하다. 중국·일본 정치인의 관련 발언을 토씨 하나까지 놓칠 수 없는 이유다.
중앙일보 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10.04 [속보] 한미 방위비 협상 타결…연평균 상승율 3%대로 줄었다 [미 대선 전 방위비 협상 타결]
2026년부터 5년동안 적용될 제12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이 지난 2일 타결됐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방위비 협상 때마다 최대 쟁점이었던 첫해 총액 인상률은 8.3%로, 이후 매년 분담금을 물가에 연동해 올리기로 했다. 앞서 문재인 정부 당시 적용돼 많은 비판을 받았던 국방비 인상률 연동 방식은 폐기하기로 했다.

▲지난 3일 종로구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이태우 한·미 방위비분담 협상대표가 미국 측 린다 스펙트 국무부 정치군사국 선임보좌관과 12차 SMA에 가서명하기 위해 만나 악수하는 모습. 외교부.
"물가 연동으로 회귀…상한선 재도입"
4일 외교부는 "지난 4월 공식 협의를 시작해 5개월 동안 총 여덟 차례에 걸쳐 집중적인 협의를 한 결과 제8차 회의(지난달 25~27일, 지난 1~2일)를 통해 협상을 최종 타결했다"며 "12차 SMA의 유효기간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이라고 밝혔다. 이번 협상 수석대표는 한국 측은 이태우 한·미 방위비분담 협상대표가, 미국 측 린다 스펙트 국무부 정치군사국 선임보좌관이 맡았다. 협정 가서명은 지난 3일 이뤄졌다.
이재웅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현행 국방비 증가율 대신 소비자물가지수(CPI) 증가율을 연간 증가율로 하고, 상한선을 재도입한 것은 이번 협상의 중요한 성과"라고 강조했다. 또 "11차 SMA 유효기간 내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12차 SMA가 타결돼 안정적 이행을 담보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SMA의 유효기간은 2025년까지다.

▲지난 7월 서울 용산구 국방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제12차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5차 회의가 열리는 모습. 외교부.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21년 타결된 11차 SMA의 경우 매해 인상되는 방위비 분담금의 기준을 국방비 증가율에 연동했다. "우리 국력을 반영한 합리적 기준"이라면서다. 이런 기준에 따라 총액은 2020년 1조 389억원에서 2025년 1조 4028억원으로 35% 뛰었다. 연평균 상승률은 6.2%였다.
하지만 방위비와 국방비가 동반 상승하는 구조는 큰 결함으로 지적됐다. 한국의 국방 예산이 늘어날수록 연합 방위에 대한 한국의 기여도가 높아지는데, 상호 보완적인 두 비용이 함께 올라가는 것은 논리적 모순인 데다 한국 측의 부담이 갈수록 지나치게 커진다는 이유였다.

▲차준홍 기자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2117
하지만 12차 SMA에선 과거 7·8차 SMA 당시 적용하던 물가 연동 방식으로 이를 되돌렸다. 협정 첫해인 2026년 총액(1조 5192억원)을 시작점으로 2027~2030년에는 전년도 분담금에 전전년도 CPI 증가율을 반영해 총액을 결정한다.
이에 따라 2027년에는 2025년 CPI를 적용하게 되는데 해당 년도 CPI인 2% 수준이 계속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협정 마지막 해인 2030년에는 1조 6444억원으로 총액이 증가한다. 첫 해(2025년)와 비교해 17.2% 뛰는 셈이다. 연평균 상승률로 따지면 3.2%로 직전 11차 SMA(6.2%)의 절반 수준이다.
만약 12차 SMA에서도 11차 때처럼 국방비 증가율에 방위비를 연동했다면 큰 폭의 총액 증가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2015년부터 지난 10년간 연평균 국방비 증가율이 5.25%였다는 점을 감안, 매해 국방비 증가율을 5%로 적용할 경우 협정 마지막 해인 2030년에는 방위비가 1조 8466억원으로 늘어난다. 이에 따라 협정 마지막 해인 2030년에는 물가 연동 방식을 적용했을 때에 비해 약 2000억원을 더 내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차준홍 기자
이번 협정에선 연간증가율 상한선도 재도입해 5%로 설정했다. 외교부는 "이전 협정과 비교해 12차 SMA 기간 중 전체 분담금 규모의 상승률을 상대적으로 줄이고, 예상치 못한 경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급격한 분담금 증가를 방지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제도 개선 분야의 성과도 있었다고 정부는 자평한다. 대표적인 게 역외자산 정비 비용 폐지다. 한·미는 "방위비 분담금을 사용한 수리·정비 용역은 한반도 주둔 자산에만 해당한다"고 협정에 명시했다. 방위비 분담의 목적 자체가 주한미군 지원이라는 본래 취지에 맞게 한반도 밖에 있는 미군 자산의 정비를 위해 한국이 내는 분담금을 쓰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1조 5000억 돌파…소요형 달성 못 해
다만 12차 SMA에서도 첫해인 2026년에 적용되는 인상률은 8.3%로 1조 5192억원에 달한다. 한국에 무리한 방위비 인상을 압박해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2020년 5월) 한국에 13억 달러, 당시 한화 1조 5900억원을 요구했는데, 결국 이런 수준에 육박한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일(현지시간) 미시건에서 대선 유세를 하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2026년 분담금은 최근 5년간 연평균 방위비 분담금 증가율(6.2%)에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 증원 소요, 그리고 군사건설 분야에서 우리 국방부가 사용하는 건설관리비용 증액으로 인한 상승분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방위비 분담금을 투명하게 집행하기 위해 한국이 요구해온 '소요형'으로의 전환은 미측의 반대로 이번에도 무산됐다. 한국이 택한 '총액형'은 방위비의 총액부터 우선 합의한 뒤 지출 항목을 정하는 방식이다. 반면 전 세계에서 한국을 제외하고 미국과 SMA를 맺는 유일한 나라인 일본은 지출 항목을 합쳐 총액을 산출하는 '소요형'을 따른다. 외교부 당국자는 "총액형에서 소요형으로 전환하는 문제는 협상단에서 주안점을 두고 제기했지만 한·미 간에 이견이 있어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 경기 평택시 주한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에서 헬기가 비행하는 모습. 뉴스1.
한편 12차 SMA 협상은 기존 협정 만료로부터 1년 8개월 앞선 지난 4월 이례적으로 이른 시점에 시작됐다. 한국을 안보 무임승차국처럼 표현해온 트럼프가 재선할 가능성에 대비하는 목적이었다는 분석이다. 결국 미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속도감 있게 협상 타결을 이뤘지만 협정 자체가 뒤집힐 우려는 여전하다. 국가 간의 모든 협정과 조약은 이론적으로 대통령 권한으로 파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SMA가 행정 협정으로 분류돼 의회 비준을 거치지 않는 미국과 달리, 한국의 경우 국회 비준까지 거쳐 효력을 지니게 된다. 여야 합의로 국회 비준이 이뤄진다고 가정할 때 동맹국에서 국회 비준까지 받은 협정을 정당한 사유 없이 뒤집는다는 건 아무리 트럼프라 해도 부담이 클 수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트럼프 재선 시 협정이 뒤집힐 가능성과 관련해 "가정적 상황에 대해 말할 수 없다"면서도 "국제적으로 구속력 있는 조약은 한·미 모두에서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니게 된다. 법적 안정성이 확보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10.07 확인된 北의 ‘러시아 파병’… 동맹과 함께 적극 대응해야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북한군 장교 6명이 사망한 것은 한국에도 엄중한 사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6월 북한 방문 때 준동맹 수준의 북·러 신(新)조약을 체결한 뒤 가능성이 제기됐던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사실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지난 3일 러시아 점령지 도네츠크 인근에서 북한군 장교 6명이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사망했고, 북한군 3명은 부상했다고 한다. 북한군 상당수가 우크라이나 동부 러시아 점령 지역에서 활동 중임을 뒷받침하는 확고한 증거다.
북한군의 파병 규모나 역할 등은 불분명하다. 그러나 직접 전투를 벌이는 부대는 아니더라도 북한제 미사일 운용 등에 관여하는 지원단이나 공병대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식의 북한군 파병도 유엔헌장 위반이다. 유엔이 총회 결의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침략전쟁으로 규정한 만큼 파병은 곧 침략전쟁 방조 행위다. 러시아와 전략적 동맹 관계인 벨라루스나 아르메니아가 파병을 검토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푸틴·김정은이 맺은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 조약’에도 ‘양국 중 한 곳이 무력 침략을 당할 경우, 상호 지원’이 명시돼 있을 뿐이다.
북한의 파병은 대한민국 안보에 대한 직접적 위협도 된다. 첫째, 김정은이 신조약을 넘어서는 도박을 한 것은 제2의 6·25를 염두에 둔 행보일 수 있다. 러시아에 파병한 것을 근거로 유사시 러시아에 동일한 수준의 협력을 요구하고, 당장은 러시아 지원으로 북핵·미사일 위협이 더욱 악화할 수 있다. 둘째, 대러 지원 포탄 및 미사일의 데이터 축적과 함께, 북한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실전 수준의 전쟁 경험을 쌓게 되는 것도 심각하다. 북한이 최근 대남 오물풍선 도발과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전파 교란 등 대남 압박 수위를 높이는 것도 러시아와의 군사 밀착에 따른 호전 행보일 수 있다. 나토는 지난 7월 워싱턴 정상회의 때 북한의 러시아 무기 지원을 규탄한 바 있다. 정부는 북한군 파병을 심각한 사태로 인식하고 적극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 북한군 파병 실태 파악을 위한 조사단 파견은 물론, 동맹과 유엔 차원의 전방위 대책 등도 추진해야 할 때다.
문화일보 사설
10-07 방위비 협상 타결과 동맹 관리 新대책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지난 2일 2026∼2030년 미국과의 방위비 분담금을 정하는 제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이 타결됐다. 미 대선 이후의 동맹 관리를 걱정하던 차에 반가운 소식이다. 지난 4월부터 8차례 회의 끝에 최초 연도(2026) 분담금을 2025년도보다 8.3% 증액된 1조5192억 원으로 하고, 5% 이내에서 소비자물가지수(CPI) 증가율을 연도별 분담금 인상률로 하기로 양국은 합의했다.
우선, 최단 협상 기간을 기록하면서 분담금 사용의 효율성·투명성을 제고하는 방안들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이번 합의는 매우 성공적이다. 국방비 증가율(평균 4.3%) 대신 연 2% 안팎으로 예상되는 CPI 증가율을 적용하기로 한 것, 양국 간 쟁점이던 미군 역외자산 정비 지원을 폐지한 것 등이 주요 성과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번 쾌거에도 불구하고 11·5 미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동맹 관리를 위한 과제가 만만찮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이 ‘국제관계·동맹 중시’를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어 카멀라 해리스 집권 시 동맹의 무난한 재출발이 예상되지만, 버락 오바마∼조 바이든 집권 동안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은 약해지고 세계 곳곳에서 분쟁이 발생했다. 군비와 핵무기 축소, ‘전략적 인내’ 등이 강조되는 가운데 북핵은 방치되다시피 했고, 미국이 함정·잠수함·전투기 등의 부족 사태를 겪는 중에 ‘신(新) 악의 축’ 국가들은 곳곳에서 ‘무력을 통한 현상 변경’을 시도했다. 그래서 해리스 집권 시 세계가 더 위험해질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우리도 방위비 분담금 타결이 더 안전한 한반도를 보장할 것으로 믿어선 안 된다.
도널드 트럼프 집권 시 러시아·이란·중국 압박과 핵 태세 강화 및 대(對)중동 영향력 회복 등이 예상되고, 북한에 대해서도 ‘당근과 채찍’ 정책이 재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가 재부팅되면서 자유민주 가치나 동맹국의 안전보다는 미국 국익을 우선시하는 가운데 주한미군 철수가 화두로 재등장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국민이 양편으로 갈라져 다툴 이유는 없다. 우리는 누가 당선되든 미국의 새 정부와 친구가 돼 유리한 점을 활용하고 불리한 점을 보완하는 자세로 동맹을 꾸려 나가야 한다. 그것이 자강(自彊)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지정학적 여건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선택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신고립주의가 민주당과 공화당을 관통하는 전 미국적 현상임을 유념해야 한다. 미 대선 이후 굳건한 동맹 유지를 위해서는 국방에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을 투입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민주당 정부라고 해서 안심할 수 없으며, 트럼프 재집권 시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파기하려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올해 국방비로 전년 대비 3.6% 늘어난 61조6000억 원을 편성했지만, 물가인상률과 무기값 인상을 고려하면 결코 증가한 액수가 아니다. 방위력 개선비보다 전력 운영비를 더 많이 인상하고 과도한 병사 봉급 인상으로 병력 구조가 왜곡되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면 자강은 물론 유사시 대한민국을 위해 싸워줄 우방을 만드는 데도 유리하지 않다. 성공적인 방위비 분담금 타결을 축하하면서, 미 대선 이후의 동맹 관리를 위해 공백 없이 세심한 대책을 수립·이행해 나가야 한다는 점도 강조해 둔다.

문화일보
10-07 무기 판매도 모자라 파병까지?…우크라 매체 “러 점령지 공격으로 북한군 장교 6명 사망”

▲지난 8월 우크라이나군이 도네츠크 지역에서 러시아군을 향해 곡사포를 발사하고 있다. AP 뉴시스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이 접전을 벌이고 있는 동부 도네츠크 인근 러시아 점령지역에서 북한 장교 6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의 키이우 포스트는 소식통을 인용해 전날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북한군 장교 6명이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또 사망자와는 별개로 3명 이상의 북한군 병사가 다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SNS에 따르면 북한군 소속 장교와 사병들은 러시아군의 훈련 시범을 참관 중이었다.

▲키이우포스트 보도화면 캡처
북한군의 러시아 점령지역 출입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은 지난해 공병부대를 포함한 북한군 인력이 러시아 점령지역에서 복구와 같은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등 점령지역의 각종 건설 작업에 북한 노동자를 동원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이후 북한의 탄약과 미사일을 구매하는 등 북한과 더욱 밀접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러시아는 북한으로부터 100만 발 이상의 방사포, 곡사포탄을 공급받았고, 북한제 탄도미사일인 KN-23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이같은 군수물자를 인수한 것은 북한에 대해 모든 형태의 무기 거래를 금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위반이다.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북한과 이란이 무기 제공을 통해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죽이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땅을 훔치려는 것을 돕고 있다"며 북한과 이란을 러시아 전쟁 범죄의 공범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문화일보 박세영 기자
10.10 북한을 '핵 보유국' 만든 제네바 합의 30주년
美 '대화로 북핵 해결' 오판해서
망신당하고도 韓 핵무장은 반대
우리의 운명, 가까운 동맹국에도
맡기면 안 된다는 교훈 얻어야

▲1994년 10월 21일 로버트 갈루치 미 북핵대사(왼쪽)와 강석주 북한외교부 부부장이 제네바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조선일보DB
1994년 10월 21일 북한의 핵 개발 중단 대가로 경수로를 제공하는 미·북 제네바 합의가 맺어진 후의 일이다. 주미 대사관 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외교관 L씨가 그해 12월 취임한 공로명 장관 보좌관으로 일하게 됐다. 하루는 L씨가 공 장관의 관용차 안에서 제네바 합의 문제를 꺼냈다. 그러자 공 장관이 “제네바 합의에 관여한 사람들은 모두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L씨가 청와대로 유종하 외교안보수석을 찾아갔을 때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나중에 공 장관 후임이 된 유 수석은 외교부에서 제네바 합의에 관여했던 이들을 지칭하며 “윗사람에게 아부만 하고 국익은 안중에도 없던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외교부 고위직을 지낸 L씨는 2021년 출간된 공 장관의 구순(九旬) 기념 문집 ‘공로명과 나’에 이런 발언을 모두 기록해 놓았다. “공 장관은 실제로 외교부 인사 때마다 제네바 합의 관련자들을 철저히 소외 시켰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공로명·유종하 장관은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지키지 않아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미국이 북핵 위기를 봉합하기 위해 ‘(핵) 동결 대 (정치적·경제적) 보상’ 방식을 적용, 매년 50만t의 중유를 주는 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달 체결 30주년을 맞는 제네바 합의는 공·유 두 장관의 우려대로 흘러갔다. 핵무기 개발은 크게 핵연료 재처리에 의한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으로 나눠진다. 북한은 이 합의가 플루토늄을 이용하는 영변 핵 시설에 집중돼 있는 것을 악용,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 개발에 나섰다. 미국은 합의 당시부터 북한의 우라늄 농축을 의심했으나, 2002년까지는 이를 본격적으로 문제 삼지 않았다. ‘대화로 북핵 문제를 해결한다’는 미국의 오판(誤判)은 북한에 시간을 벌어주며 최근 북한이 ’핵 보유국’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줬다.
1994년 합의 당시 핵무기를 하나도 갖고 있지 않던 북한은 30년 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사실상의 핵무기 보유국’이라고 말할 정도가 됐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1990년대 초까지 미국의 전술 핵무기가 수백 기 배치됐던 한국에서는 핵 전력이 모두 철수, ‘공포의 균형’을 맞출 수 없게 됐다. 북한은 제네바 합의 때 ‘조선반도 비핵화’를 내걸었는데, 북한 비핵화 대신 남한 비핵화를 초래한 것이다. 올해 국군의 날 시가행진 후 북한의 김여정이 “핵 보유국 앞에서 졸망스러운 처사”라고 한 것은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이리라. 제네바 합의는 2002년 부시 행정부가 고농축 우라늄 문제를 제기, 파기됐으나 ‘동결 대 보상’ 프레임은 북핵 6자 회담으로 이어졌다.
북한의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과 제네바 합의를 만들어낸 미국의 로버트 갈루치 대사는 참회록을 써도 시원찮은데 반성하는 기색이 별로 없다. 그는 지난 5월 제주 포럼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이미 가진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없지만 더 이상의 핵무기는 개발하지 않는 데는 동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다시 궤변을 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것은 ‘나쁜 생각’이라고 반대하고 한국의 핵무장 방안에는 날카롭게 반응한다. 과연 제네바 합의가 미국의 핵심 이익을 다루는 문제였다면, 그렇게 허술하게 처리해 망신당하고도 이렇게 터무니없는 말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미국 행정부에서 한반도 핵 문제를 다뤄온 인사들이 갈루치와 대동소이(大同小異)한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제네바 합의라는 거대한 사기극 30주년을 맞아 우리는 뒤늦게라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가장 큰 교훈은 최근 사기 집단의 본색을 분명히 드러낸 김정은 체제에 대한 신뢰 문제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교훈은 아무리 가까운 동맹국일지라도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핵 관련 결정을 타국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
10.11 일본 이시바 총리의 '아시아판 나토' 구상을 주목한다
취임 직전이기는 하지만
중·러·북 핵 동맹 대항하여
아시아판 나토 창설하고
동맹과 미국 핵무기 공유 제안
비핵 3원칙 뛰어넘은 파격
군사 대국 日에 우리 거부감 크고
日도 개헌 의석 확보 전엔 힘들지만
한국 안보 관점서 진지한 검토를
지난 1일 취임한 이시바 시게루 신임 일본 총리는 과거사 문제에는 전향적 자세를 취해왔으나 안보 분야에서는 일본의 역할 확대를 주장해 왔다. 자민당 총재에 선출되기 직전인 9월 25일 미국 허드슨 연구소에 기고한 “일본 외교 정책의 장래”라는 제목의 글에서 중국을 억지하고 중국·러시아·북한 핵 동맹에 대항하기 위한 방안으로 ‘아시아판 나토’를 창설하여 그 틀 내에서 미국이 핵무기를 역내에 반입하고 동맹국과 핵을 공유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새로운 안보 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한 국가안보기본법 제정과 평화헌법의 개정과 함께 미·일 안보 조약을 보통 국가 간의 상호 방위 조약으로 업그레이드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시바의 지론은 10년 전 현행 헌법의 재해석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의 근거를 마련한 고 아베 신조 총리의 안보 정책과 맥을 같이하고 있지만 그 배경이 되는 동아시아의 안보 지형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특히 러·북 동맹이 출현하고 북한이 핵미사일 전력을 대폭 증강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핵전력이 여기에 가세하면 미국의 확장 억지는 무력화될 수 있다는 이시바의 전략적 안목이 눈길을 끈다.
이시바의 핵 반입 및 공유 제안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발표한 ‘비핵 3원칙’, 즉 ‘핵을 보유하지 않고, 만들지 않으며, 반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의 폐기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일본은 국가 안보를 미국의 확장 억지에 의존하면서도 일본이 공격받을 때 일본을 지키는 데 미국이 사용할 핵무기를 적재한 미국 전략 잠수함과 전략 폭격기의 일본 기항과 착륙을 금지하는 ‘비핵 3원칙’을 견지해 왔다.
이러한 비핵 근본주의는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 피폭을 당한 트라우마의 산물이지만 대한민국의 안보에는 폐를 끼치는 측면도 있다. 미국의 전략 자산이 한반도에 가까운 위치에 있을수록 대북 확장 억지의 신뢰성과 실행력이 강화되고, 그만큼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효과가 크다. 요코스카와 사세보의 미국 7함대 핵심 기지에 핵무기를 적재한 오하이오급 미국 전략 잠수함이 기항하는 데 제약이 없어지고, 요코다와 가데나 미 공군기지에 전략 폭격기가 착륙할 수 있으면 미국 전략 자산이 한반도 주변에 상시 전개하거나 더욱 빈번하게 출동하기가 지금보다 훨씬 용이해진다. 나아가 미국이 한국 및 일본과 나토 방식의 핵 공유 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전술 핵 재배치 이상의 대북 억지력 강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1970년 핵비확산조약(NPT)이 발효되기 전부터 시행되어 온 나토의 핵 공유 체제와는 달리 동아시아에 핵 공유 체제를 도입하는 것은 핵 비확산 체제를 약화시킨다는 논란을 초래할 수 있고, 국내에서도 종북·반미 세력의 거센 저항을 촉발할 것이다.
이시바 총리가 미국과의 기존 양자 동맹 체제를 업그레드하여 ‘아시아판 나토’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견해는 현실성이 의문시된다. 집단 안보 체제의 생명력은 위협 인식과 안보 이해관계의 공통성에서 나온다. 나토 회원국 간에는 소련이 공통의 적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고 회원국 하나가 소련의 침략을 당하면 다른 모든 회원국도 자국이 침략당한 것으로 간주하여 공동으로 소련과의 전쟁에 나서는 데 반대할 나라가 없었다. 또한 유럽에서는 안보 문제에 대한 다자적 협의와 해결의 전통이 1648년 웨스트팔리아 조약부터 거의 4세기에 걸쳐 축적되어 왔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는 위협 인식과 안보 이해관계가 나라마다 상이하여 집단 안보 체제 구축의 정치적 기반이 결여되어 있고 다자 안보 협력의 역사도 일천하다. 예컨대, 중국이 일본이나 필리핀을 공격했다는 이유로 한국이 중국과 전쟁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고, 한국이 중국의 공격을 받을 경우 일본이나 필리핀의 사정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결국 동아시아의 안보 문제는 미국과의 양자 동맹 체제를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고, 양자 동맹을 연결하는 소다자주의(mini-lateralism)로 이를 보완해 나가는 것 외에는 현실적 대안이 없다. 한·미·일 3자 안보 협력 체제가 핵무장한 북한과 중·러·북 3자 연대에 대항할 실질적 능력을 갖춘 유일한 소다자적 틀이지만 현 단계에서 이를 3자 동맹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시바 총리의 구상은 자민당이 일본 국회에서 개헌에 필요한 의석을 확보할 때까지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고,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에 대한 한국 내의 거부감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안보의 관점에서 진지하게 검토해 볼 여지가 있어 보인다.
조선일보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10.14 핵 재처리 권한 추진, 끈질기되 조용한 외교를

▲11일(현지시간) 워싱턴 DC의 주미대사관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대사관 국정감사에서 조현동 주미대사와 대사관 간부들이 위원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자리해있다. /연합뉴스
조현동 주미 대사가 워싱턴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차기 미 행정부가 출범하면 사용 후 핵연료(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재처리 시설 확보를 위한 대미(對美) 설득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일본 수준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질의하자 나온 답변이었다. 그는 자체 핵무장이나 미국 전술핵의 재배치는 정부 입장이 아니라고 전제하면서도 핵연료 재처리를 “(내년 1월) 미국 신정부 출범 후 우선 추진 현안으로 삼겠다”고 했다.
핵무기를 만들려면 우라늄을 고농축하거나 원자력 발전 후 남은 핵연료를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추출해야 한다. 한국의 핵물질 처리 권한은 한미 원자력협정의 제약을 받는다. 2015년 협정을 개정했지만 여전히 사용 후 핵연료에 대한 재처리 권한을 확보하지 못했다. 우라늄도 비군사용인 20% 미만으로 농축하는데도 미국 동의를 얻어야 해 군사적 사용은 원천 봉쇄돼 있다.
일본은 1988년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으로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권한을 확보했다. 이후 일본이 재처리로 추출한 플루토늄은 47t이 넘는다고 한다. 일본 역시 당장은 핵무기를 제조할 수 없다. 그러나 재처리 권한을 통해 유사시 즉각 핵무장에 나설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잠재적 핵 능력’이라고 한다. 북핵과 직접 맞서는 우리에게 일본 수준의 ‘잠재적 핵 능력’ 확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는 안보뿐 아니라 산업과 환경을 위해서도 불가피하다. 원전 가동으로 발생한 사용 후 핵연료는 2030년 이후 원전 내 저장 시설이 포화 상태에 도달하게 돼 재처리가 불가피하다.
최근 러시아 외교장관은 “북한 비핵화는 종결된 이슈”라고 했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도 “북한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핵 폭주에 국제사회가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핵우산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은 유효 기간이 20년이지만 한미가 합의하면 언제든 개정할 수 있다. 일본 수준의 ‘잠재적 핵 능력’은 자위권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수준이다. 미국의 경계심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설득력 있는 외교를 끈질기게 추진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0.14 中共의 국내 침탈 독버섯 ‘공자학원’ 왜 방치하나
“中공산당 통일전선공작부 직접 관리 공작 기관”
중·고교장 대상 향응·접대는 ‘청탁금지법 위반’
설립 계획 막은 영명고 학생·학부모 모범 사례
해외 대학과 중·고등학교 등 교육 현장을 파고든 중국 공자학원의 문제점을 전 세계가 인식하고 있는 가운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해당 학원이 성행하고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본지 단독 기사에서도 다뤄졌듯이 공자학원은 국내 유수 대학은 물론 중·고등학교에까지 물질 공세를 펼치며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공자학원이 이름처럼 ‘공자’ 등 중국 철학이나 문화를 널리 알리고 나아가서 상호간 문화 교류를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면 해외 여러 나라에서 경계심을 높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공자학원 혹은 공자아카데미·공자학당 등으로 불리는 이 기관의 실체는 중국 공산당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 공자학원의 실체 규명에 매달려 온 한민호 공자학원실체알리기운동본부(공실본) 대표는 “공자학원에 ‘공자’는 없다”고 주장해 왔다. 공실본은 공자를 간판으로 내세운 ‘공자학원’이 사실상 중국 공산당이 공산주의와 모택동 사상을 선전하고 중국에 대한 환상 유포를 목적으로 한다고 보고 있다. 공자학원 강사는 중국 공산당이 선발·교육해서 파견하고 교재도 중국 공산당이 제작·배포한다.
이뿐 아니다. 주재국 정보를 수집하고 해당 지역 내 중국인 사회를 감시하는 것도 활동 목적에 포함된다고 한다.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것은 온라인 여론 조작을 통한 정치·선거 개입 등을 수행하는 선전·첩보 공작 기관이라는 점이다.
공자학원 운영비를 중국 공산당에서 전액 부담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 대표는 “전 세계 500여 개소 공자학원에 중국 공산당이 투자하는 이유는 결국 친중 세력이라고 불리는 ‘간첩’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공작기관이 교육기관이란 가면을 쓰고 우리나라 주요 대학들과 자라나는 청소년의 사상을 물들일 목적으로 중·고등학교까지 버젓이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도대체 이 나라 정부와 정치인들은 이들의 정체를 모른다는 건지, 아니면 알고도 묵인하는 건지, 둘 중 어느 하나라도 국민으로선 용서하기 어려운 일이다.
최근엔 대학에 설립된 공자학원과 연계하여 중·고교에 설립하는 일종의 자매기관인 공자학당을 늘리기 위해 고등학교 교장들을 상대로 접대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해당 교장들을 대상으로 청탁금지법 위반 여부 논란이 일면서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다.
공자학원이 공자학당을 유치하기 위해 학교장 등을 중국으로 초청해 향응·접대를 한다는 내용이다. 초대받은 한국 학교장들은 항공료만 자기 부담하고 중국에 체류하는 동안의 숙식비 등은 모두 중국 공산당이 제공한다고 한다. 즉 극진한 대우를 미끼로 결국 공자학당 설립이라는 목적을 달성한다는 중국 공산당의 수법에 우리 교육계가 놀아나는 셈이다.
공자학원은 중국 공산당 간부 출신이 수장을 맡고 있다. 우리나라엔 2004년 서울공자아카데미가 설립된 데 이어, 연세대·한양대 등 전국 22개 대학과 인천국제고·충남 아산고 등 중·고교에 약 40개 공자학원이 설립됐다. 미국은 연방수사국(FBI)이 중국 간첩 활동의 거점이라고 판단한 후 공자학원 추방 바람이 불면서 118개였던 공자학원이 10개 이내로 줄었다. 유럽 주요 국가들도 마찬가지 움직임을 보이는데, 국내에선 여전히 건재한 상황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공자학원 설립 계획을 추진하고 있던 충남 공주 영명고가 학생·학부모·시민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설립 계획을 무기한 보류했다는 소식이다. 학생·학부모들은 “중국의 침투 창구인 공자학원을 왜 우리 학교에 세워야 하느냐”고 반발했다고 한다. 우리 국민이 깨우치면 어떤 거대한 음모도 무산시킬 수 있다는 걸 보여 준 고무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스카이데일리 사설
10-15 日 이시바 안보관과 힘 받는 핵 공유론
박영준 국방대 국가안보문제연구소장
20년 전부터 강한 자위대 주장
아베·기시다 거치며 적극 반영
최근 아시아판 나토 구상 피력
괌에 전술핵-자위대 배치 방안
11월 美 대선 뒤 논의될 가능성
한국도 적극적 활용 검토해야
국내 안보 전문가 중 다수가 11월 5일 미국 대통령 선거의 결과가 한미동맹이나 국제 안보 질서에 미칠 영향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한국 안보정책에 대한 영향이라는 측면에서 이달 초 취임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의 안보정책 구상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시바 총리는 일본 정치인들 가운데서 안보정책에 관해 가장 전문적인 식견과 경험을 가진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 시기이던 2002·2004년에는 방위청 장관도 지내면서 실제 정책 경험을 쌓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국방’이란 책도 집필한 바 있다.
2005년에 발간한 저서 ‘국방’에서 그는,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과 달리 현대 일본에서 군에 대한 민간 통제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민간 정치인들이 군을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강력한 자위대를 건설하는 것이 억제 태세를 강화하는 것이고, 전쟁을 방지하는 중요한 방책임을 역설했다. 이 같은 입장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그가 강력하게 추진했던 안보정책은 ‘집단적 자위권’의 실제적 행사와 ‘적기지 공격능력 보유’였다. 당시로서 이 같은 정책 구상들은 기존 일본 안보정책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으로 간주돼 수용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2014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 방침으로의 전환을 선언했고, 2022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내각은 국가안보 전략서를 통해 ‘적기지 공격능력’ 개념을 반영한 ‘반격능력’ 보유를 명문화하기에 이르렀다. 이시바 총리는 아베 전 총리와 정치적으로 줄곧 대립각을 세워 왔으나, 보통국가론적 안보정책 추진에서는 적극 공조하면서 일본의 안보정책 변화를 주도해 왔다.
이시바 총리는 이제 그가 방위청 장관으로 재직했던 시기보다 엄중한 안보 환경에 직면하게 됐다. 자민당 총재 선출 직후인 지난 9월 말, 미국 허드슨연구소에 기고한 글을 통해 그는 북한 및 중국의 핵능력 강화, 그리고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동맹 체결 상황에서 미국이 일본에 제공하는 확장억제 태세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안보 불안감을 보였다. 이 같은 안보 상황에 대응해 그는 ‘아시아판 나토(NATO)’의 결성 및 미국과의 핵공유 체제 구축이라는 새로운 안보정책 구상을 제시한다.
‘아시아판 나토’ 구상은 미국 외에 캐나다, 호주, 필리핀, 인도, 프랑스, 영국, 한국까지 포함하는 국가들과 준동맹 관계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이미 일본은 한국을 제외한 이들 국가와 외교 및 국방 관련 장관들이 참가하는 2+2회담 체계를 가동하면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공유하는 안보협력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아시아판 나토’ 구상이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실현에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이다.
한국이 주목해야 할 점은 미국과의 핵공유 및 전술핵 재배치에 관한 그의 구상이다. 사실, 아베 전 총리도 그의 사망 직전인 2022년 5월 ‘분게이?주(文藝春秋)’에 기고한 글을 통해 나토식 핵공유 구상을 제안한 바 있어, 이 구상이 자민당 내 중진들 사이에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허드슨연구소 기고문을 볼 때 이시바 총리는 일본이 견지해 온 비핵 3원칙을 고려해 미국령 괌에 전술핵을 배치하고, 일본 자위대를 괌에 주둔시키는 방식으로 미·일 핵공유 체제를 구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구상은 11월 대선을 통해 미국의 차기 대통령과 행정부가 출범한다면 미·일 간의 외교적 어젠다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시바 총리발 파격적인 안보정책 구상은, 캠프데이비드협정 이후 한·미·일 안보 협력 태세를 구축하면서 한·미 간 핵협의그룹(NCG) 체제를 통해 확장억제 태세를 강화해 온 한국에 새로운 과제를 던져준다. 국내에서도 일부 싱크탱크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아래서 우리나라가 추구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핵정책의 하나로 나토식 핵공유론이 제안된 바 있기도 하다. 글로벌 핵확산금지 질서의 동요 속에서 더 고도화하는 북핵 능력을 억제하기 위해 이시바 총리의 새로운 안보정책 구상을 한·미·일 공동 핵억제 태세의 일환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문화일보
10-16 북한 위협·북러 밀착속 ‘트럼프 리스크’ 확산

▲분담금 언급하는 트럼프 15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소재 ‘시카고 경제클럽’에서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를 하면서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 달러를 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방위비 분담금 13조원 언급
트럼프 “주한미군 규모 4만명
한국, 아무것도 내지 않아” 등
사실 호도하며 노골적인 요구
미국은 협정 비준절차 없기에
대통령이 재협상 지시 가능해
워싱턴=민병기 특파원 mingming@munhwa.com
최근 여론조사에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국을 향해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대가로 “아무것도 내지 않는다. 이건 미친 일”이라며 노골적으로 방위비의 대폭 인상을 요구하고 나서며 ‘트럼프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다. 북한이 노골적으로 위협을 가하고 북·러 밀착이 강화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재집권을 염두에 두고 일찌감치 마무리 지었던 방위비 분담금마저 재협상 테이블에 오를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시카고 소재 ‘시카고 경제클럽’에서 블룸버그통신과 가진 대담에서 “우리는 그들을 북한으로부터 보호하는데 한국은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았다”며 “이건 미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왜곡에 가까운 1기 트럼프 행정부 당시 방위비 분담금 증액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나는 한국에 ‘미안하다. 당신들은 당신들 군대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우리 군인 4만 명이 거기 있다. 당신들은 비용을 내야 할 것이다. 당신들은 매우 부유한 나라가 됐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어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들은 ‘안 된다. 우리는 지불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한국전쟁 이래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다’고 했고, 나는 ‘안 된다. 당신들은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이 위험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2만8500명 수준인 주한미군 규모를 ‘4만 명’으로 거론한 것은 가짜뉴스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간 수차례 주한미군의 주둔 규모를 4만 명 이상으로 언급해 왔다.
한국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의 국방비 가이드라인인 국내총생산(GDP)의 2%를 넘는 2.5% 수준의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고, 주한미군 주둔 비용도 거의 한·미가 비슷하게 부담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아예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것도 가짜뉴스다. 그간 한국이 안보에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인식이 여전함을 보여주는 셈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발언을 한 바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으로 이달 초 마무리 지은 제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의 재협상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국은 협정의 의회 비준 절차가 없어 대통령이 재협상 지시가 가능하다. 조현동 주미대사도 최근 국정감사에서 트럼프 당선 시 재협상 요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또 이날 대담에서 북한이 경의선 및 동해선 남북 연결도로의 일부 구간을 폭파한 사실을 소개하면서 “(국가 간 도로 교통의 측면에서) 한국이 지금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여러 곳으로부터 단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마치 한국이 육로로 중국, 러시아와 왕래 중인 것처럼 말한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SNS에 올린 글에서 “북한이 막 철로(실제로는 도로)를 폭파했다. 이것은 나쁜 소식”이라며 “오직 트럼프가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화일보 민병기 기자
10-17 러에 대규모 파병 김정은, ‘우크라 전범’ 푸틴 2중대 됐다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 지원에 이어 대규모 병력을 파견했다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6일 의회 연설에서 밝힌 뒤, “푸틴의 범죄자 연합에 북한이 포함됐다”고 말했다. 북한 김정은이 전쟁범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대열에 들어섰음을 강조한 것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북한 병사 3000명 이상이 러시아에서 훈련 중이며, 교전 지역에 배치될 것이라고 한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은 푸틴과 김정은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포탄이 부족해지자 식량·경제 지원 대가로 포탄·미사일 지원을 받았는데, 이젠 아예 수천 명 북한 용병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노동신문이 이날 “140만 명의 청년이 인민군 입대·복대를 탄원했다”고 한 것도 대러 파병 분위기 조성과 무관치 않다. 무기 지원을 넘어 대규모 파병은 유엔이 불법으로 규정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공식 개입과 다름없다. 김정은이 푸틴의 2중대를 자임함으로써 스스로 ‘전범(戰犯)의 공범(共犯)’이 되는 길로 들어선 셈이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2014년부터 ICC에 북한의 반인도범죄행위 조사를 촉구해왔다. 이번 파병으로 ICC가 김정은을 ‘전쟁범죄 조력자’로 규정, 조사할 근거가 마련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의 파병을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에 정부조사단을 파견해 북한군 투입 실태를 파악하고, 동맹 및 나토와 공조해 대러 압박책 마련은 물론, 유엔헌장을 짓밟는 북한의 유엔 회원국 자격 정지 등도 공론화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10-18 [단독]북한군 1만2000명 러 파병 합의…선발대 1500명 블라디서 훈련중

▲북한군의 열병 행진 모습.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군 푹풍군단 10개 여단 중 1만2000명에 해당하는 4개 여단을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을 위해 러시아에 파병하기로 북한과 러시아가 합의한 것으로 18일 알려졌다.
정보 소식통은 “이들 중 선발대 1500명이 함흥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 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10.19 "북한군 1만여 명 파병 결정", 러시아 반대급부는 뭔가
정부는 18일 “북한이 특수부대 등 네 여단 총 1만2000여 병력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하기로 최근 결정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은 “1500여 명이 이미 이동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긴급 안보 회의를 주재했다. 과거 북한은 베트남전·중동전 등에 병력을 보낸 적이 있지만 전투기 조종사 등 소규모였다. 1만여 명 파병 결정은 북한 역사상 처음이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은 큰 피해를 보고 있다. 2022년 개전 이후 죽거나 다친 러시아 병사만 70만명에 이른다. 러시아는 전국 교도소 수감자까지 전쟁터로 내몰고 있다. 파병할 북한군은 러시아군보다 무기·장비가 열악하고 러시아 부대와 언어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지형지물까지 생소한 전장에서 싸우면 떼죽음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 곧 겨울이다.
김정은은 북한군 1만여 명이 받을 월급에 관심이 많을 것이다. 지금 북한은 중국과 관계가 나빠지며 경제난에 계속 허덕이고 있다. 지난여름 수해 복구도 아직 끝내지 못했다. 전투병은 해외 파견 근로자보다 임금을 몇 배 더 받는다고 한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우크라이나 참전은 북한 장교들이 현대전 경험을 쌓고 신형 무기에 익숙해질 기회”라고 했다. 김정은은 통치 자금을 마련하고 대남 공격력을 키우기 위해 1만여 명 북한 청년을 총알받이로 내몰려 한다. 기가 막힌다.
병력을 받은 러시아는 안보리 제재를 무시하고 북한이 원하는 것을 줄 가능성이 크다. 북한과 군사 동맹을 부활시킨 러시아는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겠다는 뜻을 계속 밝히고 있다. 북한은 아직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ICBM을 완성하지 못했고, 군사 정찰위성 능력도 초보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 다탄두 ICBM과 첨단 위성 등은 김정은이 개발하겠다고 공언한 무기다. 대한민국 안보에 치명적 위협이 된다.
파병한 북한군 다수가 죽거나 다쳐서 귀국하면 민심이 동요할 수밖에 없다. 전장에서 탈영해 망명할 수도 있다. 장마당에서 자란 북한 MZ 세대는 김씨 체제의 통제를 호락호락 따르지 않는다. 대규모 파병은 김정은에게도 도박일 것이다. 최근 북한이 ‘무인기 전단’을 들고나와 대남 적개심을 고취하고 경의선 폭파 쇼 등으로 한국과 단절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도 러시아 파병 결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 북·러 동향을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0.19 北, 靑 습격 후신 폭풍군단 파병...러 군복·위조신분증도 줬다
최정예 특수부대 보냈다

▲김일성 광장 행진하는 ‘폭풍군단’ - ‘폭풍군단’으로 불리는 북한 특수작전 부대가 2017년 4월 15일 평양 김일성 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폭풍군단은 국가정보원이 18일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한 부대라고 밝힌 특작부대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 연합뉴스
북한이 러시아를 돕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한 부대는 특수작전부대인 11군단 중 일부다. 우리 군의 특수전사령부와 유사한 부대로 ‘폭풍군단’으로 불리는 최정예 부대다. 폭풍군단 예하에는 경보병여단(번개)과 항공육전단(우뢰), 저격여단(벼락) 등 10개 여단이 있고 규모는 4만~8만명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하기로 한 병력은 이 중 4개 여단 1만2000명으로, 전체 폭풍군단의 15~30% 규모다. 최정예 병력 상당수가 북한을 떠나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가게 된 것이다. 북한은 과거 베트남이나 중동에 전투기 조종사나 군사고문단을 파견한 적이 있지만, 이번과 같은 대규모 지상군 파병은 처음이다.
평안남도 덕천시에 주둔한 것으로 알려진 폭풍군단은 특수 8군단이 모체다. 특수 8군단은 1968년 1·21 청와대 습격 사건을 일으킨 124부대를 중심으로 1969년 창설됐다. 북한은 1983년 이를 확대·개편해 폭풍군단을 만들었다. 최정예 특수부대인 이들의 임무는 전방 지역 진격로 확보와 후방 교란이다. 군 관계자는 “그동안 북한은 주로 공병 활동 등 러시아에 대한 후방 지원 활동을 하거나 무기만 지원해 왔다”며 “폭풍부대 파병은 러·북이 연합군을 형성해 전쟁에 나선다는 뜻”이라고 했다. 위험 지역에서 활동하는 부대인 만큼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총알받이’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북한군이 본격적으로 우크라이나전에 발을 담근 만큼 전쟁이 끝날 때까지 러시아에 대한 파병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전 때 한국군도 미군의 참전 요청에 따라 1965년부터 1973년 철군 때까지 8년 5개월 동안 총 32만여 명을 파견했었다.

▲그래픽=김현국
선발대 격인 북한군 1500명은 러시아 해군의 도움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 하바롭스크, 블라고베셴스크에 분산돼 러시아 군부대에 주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적응 훈련을 마치는 대로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은 “조만간 2차 수송 작전도 진행될 예정”이라고 했다. 북한군은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이용해 우크라이나 전선이 있는 서부 지역으로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11일과 이달 2일 파병에 앞서 폭풍군단을 두 차례 참관했다고 한다.
러시아와 북한은 북한군 파병 사실을 숨기려고 기만책을 쓰고 있다. 북한군은 러시아 군복과 러시아제 무기를 지급받았고, 동양계인 시베리아 야쿠티야·부라티야 지역 주민 위조 신분증도 발급받았다고 한다. 국정원은 “북한군의 전장 투입 사실을 숨기기 위해 러시아군으로 위장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국정원은 북한군 주요 인사를 감시하다가 이번 북한군 파병 수송 작전을 포착하게 됐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최근 우크라이나 정보기관과 협력해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활동 중인 북한군 추정 인물의 사진을 확보했다. 사진에는 도네츠크 지역 인근에 있는 북한산 ‘KN-23′ 탄도미사일 발사장에서 러시아 군인과 나란히 앉아 있는 러시아군 복장의 동양인 모습이 담겼다. 국정원이 이 인물의 사진에 인공지능(AI) 안면 인식 기술을 적용한 결과, 이 사람은 작년 8월 김정은의 전술 미사일 생산 공장 방문을 수행한 북한군 미사일 기술자로 파악됐다.
북한이 파병하는 1만2000명의 병력은 이번 전쟁에 러시아군이 투입하는 총병력에서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할 전망이다. 러시아는 2022년 침공 초기에 15만~20만명을 투입했고, 전쟁이 장기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병력 수를 늘려왔다. 바그너그룹 등 용병 단체를 통해 5만여 명,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 분리주의 괴뢰 정부에서 4만~6만명의 병력을 동원한 것으로 파악된다. 또 죄수 4만~5만명을 자원병 명목으로 모집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24년 6월 기준으로 우크라이나에 약 70만명의 병력을 투입하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양승식 기자
10.19 국제안보 질서 뒤흔드는 북한의 러 파병 도발
우크라이나 전쟁에 4개 여단 1만2000명 투입
대가로 군사기술 전수 가능성…중대 안보 위협
우방들과 긴밀 공조 통해 강력 대응책 세워야
북한의 대규모 러시아 파병설이 사실로 확인됐다. 국가정보원은 어제 “북한이 특수부대 등 4개 여단 총 1만2000명 규모 병력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하기로 하고, 이미 병력 이동을 시작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와 관련 긴급 안보 회의를 주재했다. 대통령실은 “러·북 군사 밀착이 파병으로까지 이어진 현 상황은 우리나라는 물론 국제사회를 향한 중대한 안보 위협”이라고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지난 17일 “북한이 러시아 편에 서서 우크라이나와 맞서 싸울 병력 1만 명가량을 준비하고 있으며, 일부 북한군 장교는 이미 러시아에 일시 점령당한 우크라이나 영토에 배치됐다”고 말했다.
북한이 포탄과 탄도미사일 같은 무기를 지원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대규모 병력을 전선에 보낸 것은 국제법을 정면으로 어긴 불법 참전 행위다. 국제 안보 질서를 뒤흔들 수 있는 위험한 도발로 철회돼야 마땅하다. 무엇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6월 평양에서 ‘북·러 군사 동맹 조약’ 복원에 합의한 이후의 파병이라 더욱 주목된다. 새 북·러 조약 4조에는 한쪽이 침략당하면 다른 한쪽이 군사 원조를 포함해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도록 하는 ‘유사시 자동 개입 조항’이 들어 있다. 러시아는 그동안 “전쟁을 일으킨 것은 서방”이라는 억지 주장을 펴왔는데, 이를 북한의 파병 명분으로 삼았을 개연성이 있다.
북한의 우크라이나 참전은 북한 스스로 국제법상 전범(戰犯) 대열에 합류한 것과 다름없다. 지난해 2월 유엔총회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주년에 맞춰 압도적 다수 회원국의 찬성으로 러시아의 무조건적이고 즉각적인 철군을 결의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같은 해 3월 전쟁 범죄 혐의로 푸틴 대통령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태다.
대한민국 안보에도 북·러의 군사적 밀착은 초미의 위협 요소다. 러시아 외교부가 평양 상공에 출현한 무인기(드론)에 대해 사실 확인도 없이 “한국의 도발적 행동”이라 단정하면서 “북한이 침략당하면 군사 원조를 하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이번 파병의 대가로 러시아가 북한에 대해 정찰위성, 원자력 추진 잠수함, 핵무기 기술 등의 전수에 합의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군이 6·25 이후 본격적인 현대전 경험을 쌓음으로써 도발 능력을 키울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우리 정부가 지금까지 거절해왔던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 무기 지원을 개시하라는 국제 사회의 압력이 커질 수도 있다.
경의선과 동해선 남북 연결 도로를 멋대로 폭파한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서울 작전 지도를 펴놓고 “주권을 침해하면 물리력을 거침없이 사용하겠다”며 재차 협박했다. 북한의 도발에는 국제사회의 제재 강화로 대응해야 한다. 물론 러시아의 무책임한 거부권 행사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 활동이 지난 5월부터 중단돼 어려움이 생겼다. 다행히 지난 16일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호주 등 11개국으로 구성된 ‘다국적 제재 모니터링팀(MSMT)’이 출범했다. 우방과의 공조를 통해 대북제재 감시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
국가정보원은 국방부(정보본부·정보사령부) 및 외교부(외교전략정보본부)와 함께 북·러 군사 밀착 동향을 면밀하게 추적해야 한다. 지리적 고립 속에서도 자국의 안보를 지켜온 이스라엘 모사드의 정보 능력을 본받아야 한다.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는 물론이고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의 외교 및 군사 정보 공조 노력을 다각도로 전개하기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
10.21 北에 러 무기 기술 지원되면 상응하는 조치 검토 불가피

▲지난 18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군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가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군인들이 줄을 서서 러시아 보급품을 받고 있다고 공개한 영상. /우크라군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 X(옛 트위터)
러시아가 파병 온 북한군에게 군복·군화 등을 지급하기 위해 한글 설문지까지 준비한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 CNN이 입수한 설문지에는 한글로 ‘모자 크기, 군복 치수와 구두 문서를 작성해 주세요’ ‘조선식 크기’라고 적혀 있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러시아군 훈련장’이라며 공개한 영상에서도 동양인 군인들이 줄지어 보급품을 받는 가운데 북한 억양으로 “넘어가지 말라” “나오라 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담겼다. ‘북한군 1만여 명 파병’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김정은이 파병 대가로 현금이나 식량·석유만 챙기려 하진 않을 것이다. 지난 6월 김정은을 만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북·러 군사동맹을 복구하며 “군사 기술 협력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했다. 작년 9월엔 ‘북한의 위성 개발을 도울 수 있다’고 했는데 위성 기술은 ICBM 완성 및 정찰위성 개발과 직결된다. 북한이 러시아 지원으로 정찰위성을 보유하게 되면 한미 연합군 움직임을 실시간 훑어볼 수 있다.
북이 ICBM을 완성해 미 본토를 핵 타격할 능력을 갖출 경우 한국에 대한 미 핵우산이 제때 펴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은밀히 핵 공격할 수 있는 핵 추진 잠수함까지 손에 넣으면 한반도 안보 균형이 급격히 무너지게 된다. 고철 수준인 북 전투기가 신형 러시아제로 교체되거나 참전한 북한군이 쌓을 실전 경험도 김정은의 오판을 부를 수 있다. 전쟁 수렁에 빠진 푸틴은 총알받이 병력을 보내준 김정은의 요구라면 무엇이든 들어주려 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트럼프는 대선에서 이기면 내년 1월 취임 전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 등 서방 지원이 끊기면 오래 버티기 어렵다. 최근 러시아 영토인 쿠르스크까지 진격했지만 동부 전선에선 계속 고전하고 있다. 김정은은 트럼프 당선 등으로 전쟁이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보고 ‘파병 도박’으로 러시아의 핵·ICBM·위성·잠수함 기술과 첨단 무기 등을 얻으려는 계산일 것이다.
러시아가 알아야 할 것은 한국도 북·러 위협에 대응할 군사·안보적 수단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K방산은 러시아어 소통이 불가능한 북한군이나 구식 포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공격 자산이다. 무의미한 전장에서 북한군 이탈을 한국어로 설득할 수단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세계 최빈국인 북한과 10대 무역 강국인 한국 중 누구와의 관계가 더 중요할지 러시아는 알아야 한다. 미국도 북한의 첨단 무장화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안보를 직접 위협하는 세력에게는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0.21 北의 러 파병, 뒤따를 급변사태도 대비해야
전략무기 기술 이전 노리고 러시아에 '올인'한 북한… 결국 관건은 ICBM 재진입 기술
우크라전 조기 종전이 최선이고 차선은 이 전쟁을 더 오래끌어 북 무기·병력 최대한 소진하는 것
이제는 북 급변사태 주목할 시점
북한 김정은 정권의 행태가 ‘도발’을 넘어 ‘도박’으로 치닫고 있다.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선언한 이후, 휴전선과 북·중 국경의 담장을 높이고 경의선과 동해선을 차단하더니, 급기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돕기 위해 북한군을 파병했다. 전략 무기 기술 이전이라는 ‘대박’을 노리고 러시아에 ‘올인’한 것이다.
국정원은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북한군 특수부대가 이달 8-13일 러시아 해군 수송함을 통해 블라디보스토크로 옮겨 갔으며, 북한군의 참전 개시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특수부대 등 4개 여단 총 1만2000명 규모의 병력을 파병하기로 최근 결정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북한은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이라는 호재를 만나, 한국은 물론 중국과도 담을 쌓고 있다. 정권의 안위를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핵무기라고 믿는 김정은은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는 핵·미사일 능력의 완결을 위한 기술을 얻기 위해 러시아에 파병까지 감행했다. 우리의 관심은 북한의 파병 자체보다, 그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무엇을 받느냐에 있다. 푸틴이 김정은에게 어떤 ‘선물’을 줄지 모르나, 군사 위성 지원 및 방공 시스템 구축, 군 현대화와 핵추진 잠수함 건조, 그리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재진입 기술 지원까지 단계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현재는 북한군 파병 초기 단계이므로, 푸틴이 ‘협상의 달인’이라면 ICBM 재진입 기술을 당장 북한에 넘겨주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북·러 군사 협력이 지속되고 심화한다면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은 현대화하고 핵·미사일과 같은 전략 무기 능력이 완성 단계에 도달할 거라는 점이다. 특히 북한은 이미 핵·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는 사거리를 확보했으므로, ICBM 재진입 기술을 통해 미국 본토의 목표 지점을 정확히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면 미국이 협상 테이블로 나올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러시아가 북한의 군사 지원에 대한 보상을 단계적으로 제공하는 ‘살라미 전술’을 구사한다면, 북한은 포탄과 미사일 지원은 물론 파병의 규모와 속도를 높여야 한다.
북한은 한국이 과거 베트남전 파병을 통해 주한 미군 철수를 막고 경제적 이득을 얻었던 사례를 따라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베트남전 당시 미국의 GDP는 전 세계 GDP의 40%에 달했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GDP는 2023년 기준 1.5%에 불과하다. 러시아의 충분한 지원을 바탕으로 북한군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은 무기 및 병력 지원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우리는 국제사회와 연대해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적 연결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조기에 끝내는 게 최선이다.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자유 진영이 연대해 역할을 분담한 후 우크라이나를 단기간 집중적으로 지원해 우크라이나가 유리한 조건에서 러시아와 휴전 또는 종전에 임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방어용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고, 이후 북한이 러시아의 지원으로 ICBM 재진입 기술을 증명해 보일 때 살상 무기를 지원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오래 끌어 김정은이 푸틴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무기와 병력을 ‘충분히’ 소진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미국 및 우방국들과 협의할 문제다.
최근 북한은 주민을 죄수처럼 가두고 외부와 격리하는 거대한 ‘교도소’로 변모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이렇게 빗장을 걸어 잠근다고 해서 ‘김씨 왕조’의 안전이 보장되진 않는다. 국가 통제와 장마당 경제가 부딪치는 체제 모순이 심화할수록 대중적 불만과 좌절은 비등한다. 그런데 북한은 북한 전체를 교도소로 만든 것도 모자라, 교도소를 감시하는 병력의 일부를 빼내 해외에 용병으로 보내기로 했다. 이들이 벌어오는 돈이 교도소에 갇힌 ‘억울한’ 죄수들을 위해 사용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한이 돈보다 군사 기술 지원을 기대한다면, 용병들이 돈을 받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우크라이나전 휴전으로 인해 러시아에 대한 북한의 몸값이 내려가면 북한 내부의 압력 지수는 급격히 올라갈 것이다. 멀어진 북·중 관계가 신속히 회복되지 않으면 철옹성과 같은 장벽이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질 것이다. 우리는 북한의 무모한 도박으로 발생할 수 있는 ‘급변 사태’에 대처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지붕이 뻥 뚫린 교도소 담장 위로 자유의 씨앗을 날려 보내야 한다.
조선일보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前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10-21 북한의 러시아 파병 역이용할 전방위 대응 본격화할 때
북한군 전투병력의 러시아 파병은 위험천만한 불장난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이 국제전으로 번질 뇌관이 되는 것은 물론, 반대로 러시아-북한 ‘불량국 혈맹’의 심각한 허점이 드러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한국은 러시아가 북한에 첨단 기술을 제공하거나, 유엔의 북핵 제재를 허무는 행태를 막아내야 한다. 그럴 경우, 러시아는 대한민국의 적국이 된다는 사실을 러시아 측에 분명히 알리고, 단계별로 엄중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국가정보원은 18일 북한 특수부대 병력이 러시아로 이동 중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에 따르면, 1차 수송 병력은 1500명 수준인데, 2차 수송도 곧 이어져 총 파병은 특수부대 등 4개 여단 1만2000명 규모가 될 것이라고 한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은 그 자체로 국제법 위반이다. 유엔은 총회 결의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벨라루스와 시리아, 에리트레아가 러시아 편을 들면서도 파병하지 않은 배경인데, 김정은은 대규모 파병으로 전범 편에 선 것이다. 러시아가 “가짜뉴스”라며 부인하고, 북한은 아예 입을 닫은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 말투 군인이 등장하는 러시아군 훈련장 영상에 군복·모자 치수 등이 한글로 쓰인 서류 등 물증도 공개됐다.
윤석열 정부는 러시아 측에 북한군 파병에 대한 입장을 요구하고, 이것이 한·러 관계 레드라인임을 통보해야 한다. 특히 북한군을 강화할 어떤 불법적 지원도 없어야 함을 분명히 통보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역이용할 대책도 수립해 추진해야 한다. 북한군이 그러지 않아도 부족한 러시아 측의 보급을 받아 전투에 임할 경우, 머지않아 심각한 문제가 드러날 것이다. 이미 러시아군 사상자는 60만 명이 넘었고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언어 장벽으로 전투 공조도 어려울 것이다. 탈영이 잇따를 수도 있다. 파병 북한군 대상 심리전을 펼치면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10-21 러-北 ‘불량 혈맹’ 허점과 ICC 회부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법률분석관
북한이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한 데 이어 대규모 파병까지 했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최근 우리 국민의 혈세 1800억 원이 투입된 남북 연결도로 폭파를 선전하면서 ‘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국가’로 명시한 새 헌법까지 슬쩍 언급했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은 전략적 오판일 수 있으며, 우리도 북한이 예상 못 한 카드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북·러 밀착의 본질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벌이고 있는 유엔헌장에 반하는 침략전쟁과 잔학행위로 국제 고립과 제재를 자초하면서 원조 ‘왕따 국가’ 북한에 손을 벌린 것으로, 이러한 관계가 지속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1980년대 초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집권에 따른 미·소 냉전 격화로 소련발(發) 지원이 늘자 북한은 쾌재를 불렀지만, 곧 이은 소련 붕괴로 북한은 최악의 경제난·식량난을 맞았다. 당장 북·러 밀착으로 북한의 가장 중요한 후원국인 중국과의 관계가 삐걱대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3월 거부권 행사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의 이행을 감시해온 전문가패널의 활동을 종료시켰고, 6월에는 북한과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이 담긴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했다. 러시아에 ‘올인’하는 북한의 환상을 깨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거부권이 통하지 않는 유엔총회에서 북한의 러시아 파병을 규탄하는 결의를 추진해야 한다.
유엔총회 결의에서는 최근 한·미·일을 비롯한 11개국이 설립 의사를 표명한 다국적 제재 모니터링팀(MSMT)의 임무를 지지하고 유엔 회원국들의 참여와 협조를 요청하는 내용을 담을 수 있다. 또한,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와 함께 유엔총회 북한인권결의 이행 모니터링까지 추가하는 방안도 있다.
북한군이 러시아 점령 지역을 포함한 국제법상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전쟁범죄를 저지를 경우,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이에 대해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 일대에 이미 파견된 것으로 알려진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노예화·고문·구금 등의 잠재적 반(反)인도범죄도 ICC의 관할권 안에 있다. 물론 ICC 수사 실현을 위해서는 우크라이나와 협력해 북한 군인과 노동자들의 귀순을 유도하는 정보 유입과 함께 귀순자를 대상으로 한 증거 수집이 필요하다.
또한, 정부는 북한의 범죄 증거만 갖춰지면 로마규정 제14조에 따라 단독으로, 또는 다른 ICC 회원국과 함께 ICC에 사건을 회부하겠다는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 이는 북한의 엘리트층을 동요시킬 뿐만 아니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처럼 ICC 체포영장이 발부돼 해외 정상 방문조차 어려워질까봐 전전긍긍하게 만들 수 있는 카드가 된다.
유엔, ICC 차원의 조치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국가안보의 위협이 될 러·북 군사동맹을 견제하고 이들의 협공에 맞서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 군을 지원하기 위해 포탄과 미사일 등 저항 수단을 제공하는 ‘민주주의의 병기창’(arsenal of democracy) 역할도 모색해야 한다. 특히, 러시아의 인공위성 등 첨단 군사 기술 대북 공여가 확인되면 우리도 즉시 대러시아 군사 견제책을 발동해야 마땅하다.
문화일보
10-21 北 우크라전 파병으로 러 경협차관 2800억원 상환 난망

▲한국이 러시아에게 제공한 경협차관의 현물상환으로 국내 도입돼 산림청 산불진화용으로 사용 중인 러시아산 카모프 헬기(KA-32).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부품 수급 문제로 2027년까지 15대가 가동 중단될 위기다. 산림청 제공
러 ,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2023 년 6월부터 상환 지연 중
정부 "러시아 측과 외교 서한, 실무협의 통해 상환 촉구"
안도걸 의원,"러·우 전쟁 장기화, 국제제재 강화로 상환 쉽지 않을 것"
산림청 러시아산 카모프헬기, 2027년까지 15대 가동중단 전망
러·우 전쟁으로 헬기부품 수급 어려워
우리나라가 러시아에 빌려준 2800억 원 상당 (2억 1000만 달러)의 경협차관 상환이 지연되는 가운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 장기화에 따른 북한군의 대규모 러시아 파병으로 한·러 관계가 악화 조짐을 보이면서 상환이 점차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1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수출입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안도걸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991년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의 일환인 ‘불곰사업’으로 러시아에 총 14억 7000만 달러의 차관을 제공했으며 차관의 상환이 수차례 지연되며 현재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정부와 러시아 정부는 2003년 채무 재조정을 통해 15억 8000만 달러의 상환에 합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남은 2800억 원 상당 (2억 1000만 달러 )의 상환이 2023년 6월부터 지연되고 있다 .
당초 러시아는 2025년 12월까지 모든 원금을 갚기로 했으며, 이에 따라 매년 두 차례, 6월 1일과 12월 1일마다 원금 35000만 달러와 리보 (LIBOR·런던 은행 간 금리 )에 0.5% 포인트를 가산한 이자를 상환하기로 약정했다 .
그러나 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 강화로 인해 달러화 송금이 어려워지자, 현재까지 2023년 상·하반기, 2024년 상반기에 받았어야 할 원리금 약 1600억 원(1억 2000만 달러 )이 연체되며 전체적인 상환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
안도걸 의원은 "러·우 전쟁 장기화와 국제적 제재가 더욱 강화될 가능성도 있어 상환 문제의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러시아 측과 외교 서한, 실무협의 등을 통해 상환을 촉구 중으로 외교채널을 통해 계속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산림청의 주력 산불진화 헬기인 러시아산 카모프 헬기(KA-32)가 부품수급 문제로 잇따라 가동 중단될 것으로 전망된다.
21일 산림청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국민의힘 서천호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산림청이 보유한 29대의 카모프 헬기 중 2027년까지 15대가 가동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 산림청은 산불진화 헬기를 미국산·러시아산·한국산·프랑스산 등을 보유하고 있는데 러시아산이 29대로 가장 많다. 카모프 헬기는 한국이 러시아에게 제공한 경협차관의 현물상환으로 1995년~2006년에 걸쳐 국내에 도입됐다.
카모프 헬기 가동중단 여파로 헬기 가동률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어, 2023년 기준 산림청이 보유한 전체 헬기 가동률은 71.1%에 불과하다. 가동중단 주요 원인은 러·우 전쟁으로 인해 헬기 부품을 수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국산부품으로 대체하기에는 제조국별 기술표준이 달라 호환이 안 되고, 비인가 부품은 사용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서천호 의원은 "산림청의 헬기 관리 부실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이는 산불 진화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만큼, 산림청은 국산 헬기를 도입하는 등 즉각적인 개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10-24 북 파병은 체제 존립 몸부림… ‘김정은 돈줄’ 위해 러시아 전쟁 지원

파병 최대 동인은 경제난… 북·러조약 따른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군 자동 개입이 안보 위협
분단국이자 통상국가 한국, 평화와 시장이 필수… 한미동맹 근간으로 對중·러 외교지평 넓혀야
최근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과 관련된 소식이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놨다. 북·러 밀착은 전통적인 북·중 우호 관계 및 북의 핵·미사일 전력과 함께 한국 대외·안보정책의 위협 요인들이다. 보다 분명한 정보와 사실관계를 토대로 단계별·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확인된 파병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23일(이하 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우리는 북한이 10월 초에서 중반 사이에 최소 3000명의 군인을 러시아 동부로 이동시켰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도 이날 이탈리아 로마에서 “DPRK(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병력이 러시아에 있다는 증거가 있다”고 했다. 미 정부가 북한의 러시아 파병 사실을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1일 “조사 중이다” “조만간 미국의 입장을 밝히겠다”고 한 지 이틀 만이다.
이는 우리 국가정보원의 분석과 일치한다. 국정원은 이날 국회 정보위 비공개 긴급간담회에서 북한이 지난 8∼13일 1차로 1500명을 수송한 이후 1500여 명을 추가로 파병해 현재까지 러시아에 병력 3000여 명을 보냈다고 밝혔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역시 같은 날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한 증거를 동맹국들이 확인했다”며 “동맹국들과 이 문제에 대해 협의 중”이라고 북의 러시아 파병을 공식 확인했다.
당초 북한의 러시아 파병론은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 17일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참석해 우크라이나의 ‘승리계획’을 설명하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전폭적인 지원을 호소하면서 “북한군 인력이 러시아를 위해 참전하고 있다”고 언급한 데서 시작됐다.
윤석열 정부는 최근 1주일 사이 북한군 파병론에 기민하게 대응했다. 젤렌스키의 최초 발언이 보도된 다음 날인 18일 긴급안보회의를 열어 북한군 파병을 서둘러 공식화했다. 대통령실은 향후 상황 전개에 따라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를 지원할 수 있다고도 했다. 북한과 러시아는 그동안 젤렌스키의 주장에 대해 “근거 없는 소문” “터무니없다” 등으로 강하게 반격하면서 파병 사실을 극구 부인했는데, 전쟁 당사국이 아닌 미국과 나토 등의 공식 확인으로 주장의 설득력을 잃게 됐다.
◇북한의 계산
북한은 러시아의 우방국 중 유일하게 무기와 병력을 모두 지원한 케이스가 됐다. 김정은은 미·중 갈등과 미·러 대립이 동시에 진행되는 신냉전 구도를 체제 존립의 활로로 삼으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의 파병은 체제 존립을 위한 몸부림으로 해석된다. ‘ 하노이 노딜’ 이후 김정은에겐 다른 방식으로 생존의 길을 모색할 필요성이 커졌고, 북·중 관계가 다소 소원해진 상황에서 북·러 밀착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김정은은 무엇보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풀릴 가능성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러시아 전쟁 지원·파병으로 에너지·식량 문제 해결과 첨단 군사기술 획득 등을 동시에 노릴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북·러 밀착을 가져오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난인 것으로 보인다. 점증하는 에너지·식량 부족과 경제적 어려움이 이런 형국을 부채질 중이다.
북·중 관계에 밝은 소식통들에 따르면 최근 사이버 범죄를 일삼던 중국 내 북한 정보기술(IT) 인력들이 중국 당국의 강력한 압박에 따라 대규모로 러시아로 이동했다고 한다. 김정은의 ‘돈줄’을 막은 건데, 이런 상황도 북으로 하여금 러시아와 밀착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젤렌스키도 22일 북한군 파병 움직임에 대해 “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북한이 목숨을 건 파병의 대가를 요구하면서 청구서를 들이밀 경우 거절하기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북한군 파병 대가는 1인당 월 2000달러(약 276만 원)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1만 명이 파병된다면 한 달에 약 2000만 달러(약 276억 원), 연간 3300억 원 이상이 북한에 흘러들어 간다는 의미다. 국정원 1차장 출신이며 국회 정보위 야당 간사인 박선원 의원은 국정원이 추정한 북한의 러시아 파병 의도와 관련해 “경제난 돌파구 마련이 크게 작용했다”고 전했다. 이 외에도 북한은 파병 대가로 또 다른 경제적 보상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위협받는 안보
북한의 러시아 파병 의도는 경제난 이 외에도 △북·러 군사동맹 강화 △유사시 러시아의 한반도 개입 △군 현대화 가속화 필요성 등을 들 수 있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특히 한국 안보를 위협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북한의 파병 대가로 러시아의 첨단 군사기술과 장비가 북으로 넘어가는 것, 둘째 북·러 조약 에 따라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군의 자동 개입이 일어나는 것. 국회 정보위에 따르면 국정원은 “최근 새로 북·러 조약 을 체결한 후부터 파병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러시아의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안보회의 서기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이미 파병 절차 논의를 개시했다는 뜻이다.
이는 거꾸로 한국과 북한이 전쟁하면 북한을 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바로 이것이 이번 북한군 러시아 파병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제 북한은 전통적 동맹인 중국이라는 뒷배, 전쟁 지원으로 돈독해진 러시아와의 밀착, 그리고 자체 핵·미사일 전력을 갖고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면서 미국과의 협상력을 키울 수 있게 됐다.
북한군의 전투 현장 배치를 통한 실제 참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커비 보좌관은 “북한군이 러시아군과 함께 전투에 임할지 아직 모르지만, 그것은 분명히 매우 우려되는 가능성”이라며 “만약 북한군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싸우는 데 배치된다면 그들은 정당한 사냥감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러시아에 대한 반대급부 요구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참전과 관련해서는 아직 사실관계가 완전히 확인되지는 않았다. 외교·안보정책은 ‘선험적 판단’에 기대어서는 안 된다. 확실한 정보와 사실관계를 토대로 판단하고 이에 기초해 정책을 세우지 않으면 부작용이 발생한다.
◇대외정책의 기본
한국은 분단국가이자 통상국가이다. 평화와 시장이 필수적인 나라다. 정부는 정확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단계적 대응과 단계적 조치를 만들어가야 한다. 1988년 노태우 정부 이후 보수·진보 정권을 막론하고 외교·안보·대외정책은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는 잘 관리한다는 묵계를 지켜왔다. 북한의 의도를 경계하고 대비하면서 중·러와의 외교 공간을 넓혀가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장 플라자 프로젝트 이사장
■ 용어설명
‘하노이 노딜’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트럼프·김정은 간의 두 번째 정상회담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난 것을 말함. 미국과 북한이 합의점에 이르지 못했다며 ‘노 딜’을 선언한 것.
‘북·러 조약’은 2024년 6월 김정은·푸틴 정상회담에서 이뤄진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 유사시 군사적 수단을 포함해 지체 없이 상대에 군사 원조를 제공한다는 4조가 핵심.
■ 세줄 요약
확인된 파병 : 미 백악관과 국방장관이 잇달아 북한의 러시아 파병을 공식 확인. 미 정부가 북의 파병 사실을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 이는 우리 국정원 분석과 일치. 윤석열 정부는 북한군 파병론에 기민하게 대응해옴.
북한의 계산 : 북의 러시아 파병은 체제 존립을 위한 몸부림으로 해석됨. 북·러 밀착을 가져오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난. 북한이 목숨을 건 파병의 대가를 요구하면서 청구서를 들이밀 경우 러시아는 거절하기 힘들 것.
위협받는 안보 : 북의 파병은 북·러 새 조약에 따른 것으로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군의 자동 개입 가능성을 말함. 분단국이자 통상국가인 한국에 평화와 시장은 필수. 한·미동맹 근간으로 對중·러 외교 지평 넓혀가야.
문화일보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장 플라자 프로젝트 이사장
10.24 절박한 푸틴과 초조한 김정은의 ‘신냉전 도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폭풍군단이 선을 넘었다. 북한 특수작전군 제11군단 소속 1500명이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상륙함과 호위함을 이용해 극동지역으로 전개했다는 소식이다. 여기에 1만명 규모의 북한군 본대가 다음 달 러시아의 특별군사작전에 투입될 예정이라 한다. 국가정보원은 북한군 동향을 밀착 감시하던 중에 북한이 러시아 태평양함대 소속 군함을 이용해 특수부대를 극동 지역으로 수송하는 것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해군 수상함이 북한 영해에 진입한 것은 소련이 해체되기 직전인 1990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6월 북·러 조약 이후 예견된 수순
국제사회와 전방위 공조 나서고
국회, 북 파병 중단 강력 촉구하길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평양에서 정상회담 뒤 서명한 조약을 들어 보이고 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해 “러·북 군사 밀착이 군사 물자의 이동을 넘어 실질적 파병으로까지 이어진 현 상황은 중대한 안보 위협”이라고 규정했다. 지난 21일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과의 통화에서 북·러 불법 협력에 공동으로 대응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한국이 나토의 ‘전장 정보수집 활용체계(BICES)’에 조속히 가입하기로 합의했다. 윤 대통령은 “러·북 군사협력의 진전에 따른 단계별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해 나가겠다”고 밝혀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파병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던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은 지난 21일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전격 방문해 러시아의 침략 방어에 필요한 안보 자원을 제공한다는 공약을 재확인했다. 미국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인정하는 순간 상응하는 실질적 조치를 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서방이 우선적으로 취할 수 있는 카드는 러시아 본토를 겨냥한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무기 사용을 승인하는 시나리오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등 우크라이나 정치 엘리트들이 ‘세계대전을 향한 첫 단계’, ‘북한의 유럽 침공’ 등 강도 높은 표현으로 비판하는 것은 북한군 참전 국면을 활용해 서방이 지원하는 장거리 미사일의 사거리 연장 해제를 촉구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하지만 서방의 대응 조치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확전하거나 최악의 경우 핵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 대선을 불과 10여일 앞둔 미국 민주당 정부 입장에서는 ‘두 개의 전쟁’이 버거운 상황에서 북한군의 참전이라는 돌출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듯하다. 대선까지는 최대한 ‘전략적 인내’를 통해 현상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급선무로 보인다.
지난 6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년 만에 평양을 방문해 김 위원장과 유사시 자동 개입 조항이 담긴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에 서명하면서 파병 등 군사협력 가속화가 예견됐다. 하지만 국정원이 특정한 전투 병력과 전쟁 물자의 수준과 규모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다음 달 5일 치르는 미국 대선 이후 글로벌 리더십의 불확실성이 제거되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논의도 가속도를 낼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이 북·러 군사협력이 ‘악마와의 거래’임을 알면서도 무리수를 둔 것은 평화협상을 선호하는 러시아 국민 여론과 전시경제의 한계를 언제까지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군 참전을 계기로 최대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려는 푸틴 대통령의 절박한 상황과 극한의 고립에 내몰려 출구전략이 부재한 김 위원장의 초조함이 결합하면서 한반도에 신냉전 그림자를 키우고 있다.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중대 도발이다.
북한군 파병은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의 군사적 개입을 의미한다. 나아가 군사정찰위성 능력 고도화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 김 위원장의 ‘버킷 리스트’가 실현될 수도 있다. 더는 잃을 것도, 갈 곳도 없는 김 위원장이 북한의 미래에 대한 답을 러시아에서 찾겠다는 결심으로 북한군 젊은이들을 희생양 삼아 출구전략을 노린 셈이다.
북한군 파병을 계기로 한반도가 격랑에 휩싸일 개연성이 커졌다. 윤석열 정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국제사회와 전방위적으로 공조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국회는 조속히 북한의 파병 중단 촉구 결의안을 처리해야 마땅하다. 대한민국의 사활적 이익 수호를 위해 여야의 초당적 협력이 필요한 시기다.
중앙일보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KIDA) 국제전략연구실장
10.24 러, 북한과의 新동맹조약 비준…'합법적인 척 나쁜짓' 길 열렸다
러시아가 북한과 체결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북·러 협력조약)을 24일 비준하면서 북한 역시 조만간 해당 조약 비준을 공식화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의 동맹 관계를 규정한 조약이 발효하면 양 측은 파병 등 불법적인 행위를 정당화하며 더 속도를 붙일 가능성이 크다.
24일 타스, 로이터 등 외신에 러시아 하원(두마)은 이날 북한과 체결한 북·러 협력조약을 비준했다. 레오니드 슬루츠키 두마 국제문제위원장은 “하원 본회의에서 조약을 심의하고 만장일치로 가결했다”고 밝혔다. 이 조약은 지난 6월 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평양 정상회담에서 체결했다. 푸틴은 지난 14일 조약 비준안을 하원에 제출했다.
바체슬라프 볼로딘 두마 의장은 이번 합의가 “양국 관계 발전의 결과이자 완전한 상호 이해”라고 평가했다. 볼로딘 의장은 “북한은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항상 러시아를 지원하는 입장을 취해왔다”며 “특별 군사 작전 기간 동안 크림 반도의 진입, 루간스크, 도네츠크, 헤르손, 자포로자 지역에 대한 결정을 지지했다”고 설명했다. 안드레이 루덴코 외무차관도 조약은 “제3국의 안보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며, 전적으로 방어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부연했다.
북한의 경우 지난 7~8일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했으나 비준 여부에 대한 보도는 나오지 않고 있다. 다만 북한 사회주의 헌법은 국무위원장(김정은)이 다른 나라와 맺은 중요조약을 비준 또는 폐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관련 절차는 사실상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일각에선 김정은이 러시아와 ‘발맞추기’ 의도로 최고인민회의에서 비준을 완료하고도 공개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해당 조약은 비준서가 교환된 날부터 효력을 지닌다고 규정한다. 조만간 외교채널 등을 통한 교환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양측은 조약 비준을 근거로 뒤늦게 파병을 정당화는 작업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조약 4조는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러시아 연방의 법에 준해 지체 없이(without delay)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with all means in its possession)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shall provide)”고 규정하고 있다.

▲러시아 극동 연해주 지역에 파병된 것으로 보이는 북한군 추정 동영상이 또 공개됐다. 러시아 독립 언론기관이라고 주장하는 '아스트라'는 지난 22일(현지시간) 텔레그램 채널에 북한군으로 보이는 군인들이 건물 외부에 서 있는 모습을 촬영해 게시했다. 아스트라는 해당 영상에 대해 "블라디보스토크 '세르기예프스키에 위치한 러시아 지상군 제127자동차소총사단 예하 44980부대 기지에 북한군이 도착한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아스트라(ASTRA) 텔레그램 채널 캡처=연합뉴스
이미 이뤄진 파병도 해당 조항을 근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양 측은 현재 파병 사실 자체를 부인하거나 숨기고 있는데, 조약이 발효하면 뒤늦게나마 조약에 따른 군사 원조를 제공한 것이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공격을 러시아가 ‘무력 침공’을 당한 것이라고 이유를 댈 수 있다.
양측이 이번 조약 비준을 근거로 파병을 넘어 군사협력의 범위를 넓혀나갈 가능성도 거론된다.특히 김정은이 지난해 12월부터 남북 관계를 “교전 중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있는 상황이라 이론적으로는 언제든 러시아의 군사적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또 조약은 ‘우주와 평화적 자력 이용 등 과학기술 분야’에서 교류와 협조를 하도록 명문화했다. 이를 명목으로 위성이나 핵 기술 이전이 이뤄질 수도 있는 셈이다.
중앙일보 정영교·이근평·한지혜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10-25 푸틴도 ‘北 용병’ 시인… 우크라와 공동 심리전 필요하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 실상이 더 구체적으로 확인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러시아는 “가짜 뉴스”라고 부인했지만, 미국이 파병 사실을 확인하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사실상 시인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24일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 결산 기자회견에서 북한군 파병 관련 인공위성 사진에 대해 “위성 사진이 존재한다면 무엇인가를 반영한 것이 틀림없다”면서 “북한과 무엇을 할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북한군의 실상 역시 ‘동맹국의 파병’이 아니라 ‘국적 없는 용병’이라고 봐야 할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미 백악관은 북한군 3000여 명이 이달 중순 러시아 동부로 이동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북한군 약 1만2000명이 러시아에 있으며, 일부는 전장인 쿠르스크에 배치됐다는 보도까지 나온다. 이런 북한군에 대해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24일 국정감사에서 “통상 파병이라면 그 나라 군대의 지휘 체계를 유지하고 군복 복식 국기를 달고 자랑스럽게 활동한다”면서 “북한은 러시아 군복으로 위장하고 러시아군 통제 하에 아무런 작전 권한도 없이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면서 “총알받이 용병에 불과하다”고 했다. 합리적인 판단이다. 북한군은 포로로 잡힐 경우 등에 대비해 러시아 군복에 위조 여권을 소지한다고 한다.
용병이든 파병이든, 이제 푸틴까지 시인한 만큼, 한국은 더 엄중하게 대응해야 한다. 러시아의 대북 경제적·군사적 지원은 말할 것도 없고 전투 경험 자체로도 한국 안보엔 치명적이다. 당장 우크라이나와 북한군 대상 심리전에 대대적으로 나서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벌써 북한군 상대 심리전을 시작했다. 투항 권고 전단을 뿌리고 한국어 방송도 진행 중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과 별도로 군의 대북심리전 팀과 국가정보원의 전문가를 자문단 형태로 우크라이나에 파견해 북한군 상대 심리전을 펴야 할 때다. 아울러 총알받이로 내몰리는 실태를 북한군 병사가 알 수 있게 휴전선에서도 전단과 확성기 등으로 전파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10-25 러시아가 한국의 적국(敵國) 자초하고 있다
김숙 前 駐유엔 대사
북한은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파병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침략전쟁 지원에 대한 명분 결여와 국제사회의 비난 때문에 은밀히 지원하려다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됐지만 뻔뻔함으로 모면하려는 태도다. 과거에도 북한은 남의 전쟁에 비밀스럽게 개입한 사례가 많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에서 이집트에 전투기 조종사를 보내고 반대급부로 소련제 스커드 미사일을 받아 역설계를 통해 자체 미사일 개발의 단초를 마련하기도 했으며, 이란·이라크·시리아에도 군사 지원을 했다. 2000년대 초 체첸전쟁 때는 러시아에 파견된 벌목공들 중에 북한 특수전 부대 출신 일부가 개별적으로 러시아군에 입대해 나중에 블라디미르 푸틴으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훨씬 엄중하다. 러·북 간 포괄적 전략동반자 조약에 따라 전쟁 시 상호 군사 및 기타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근거를 확보했고, 성격이 불법적 침략전쟁인 데다 사단급 규모 파병은 교착된 전황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김정은은 병사들을 위험한 최전선으로 보낼수록 절박한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받게 될 군사·경제적 보상이 더 크다고 계산할 것이고, 결국 무고한 젊은이들만 희생돼 외화벌이용 총알받이 용병이 될 것이다.
러·북 간 군사 협력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의 상호 편의적 불법 거래이므로 전쟁이 끝나면 효용도 소멸될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사소한 안일이 최악의 위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언제나 있는 것이 전쟁이다. 주고받기 내용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대기권 재진입 기술이나 핵잠수함과 군사정찰위성 핵심 기술 등이 포함된다면 우리 안보에 치명상을 주는 게임 체인저가 된다. 북한이 이미 남북을 전쟁 중인 두 교전국 관계로 정의해 놓은 이상 우리도 자세와 전략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할 때다.
우선, 더는 용인할 수 없는 것이 러시아의 태도다. 러시아는 북핵은 이미 종결된 사안이라며 완전한 비핵화라는 우리의 핵심 입장을 정면으로 훼손했고, 북한과 손잡고 공공연히 이적행위를 자행한다. 이로써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격을 도덕적으로 상실했다. 주한미군은 한반도 전쟁 시 러시아의 파병을 억지하는 작용을 하겠지만, 러시아는 이미 적국 행세를 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대국으로서 신중함을 견지하며 러·북 간의 군사 협력에 거리를 두고 있는 듯함에 비춰 우리는 한반도 안보 상황과 관련, 중국과 큰 틀에서 전략적 협조를 위한 외교적 대응책을 모색해야 할 때다. 김정은 정권의 핵미사일 개발과 불법 전쟁에의 파병 같은 범죄가 계속되는 데는 공격적 자세로서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소, 유엔헌장 제5, 제6조에 따른 회원국 자격 정지 또는 축출 등에 대한 적극 검토도 필요하다.
북한이 나토(NATO) 동맹국에 직접 위협으로 다가온 만큼 우리도 나토와 더 직접적이고 긴밀한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 강 대 강 구도는 북한이 자초한 것이며, 검증도 안 된 핵·미사일에만 매달리는 당랑거철(螳螂拒轍)에 위축돼선 안 된다. 강한 자가 망설임으로 약해지거나 약한 자가 무모함으로 강하게 보이는 것처럼 기가 막히는 세상도 없다고 한 비스마르크의 한탄이 오늘날 우리 사정을 말하는 것처럼 들려서야 되겠는가.

문화일보
12-26 러의 대북 군사 지원에 비례해 우크라 지원을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 및 의원들이 25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윤석열 정권의 전쟁조장, 신북풍몰이 규탄대회'를 갖고 있다. /이덕훈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일(현지 시각)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정황을 담은 위성사진에 대해 질문을 받고 “우리가 무엇을 하든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했다. 북한이 러시아에 군 병력을 보냈고, 이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될 수 있다는 점을 사실상 시인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전선 중 한 곳인 러시아 서남부 쿠르스크주에서 북한군이 목격됐다는 보도도 현지 정보당국발로 나오고 있다.
북한이 이번 파병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ICBM 탄두 재진입 기술, 핵추진 잠수함 기술, 첨단 대공미사일, 신형 전투기 등을 받으면 우리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다. 파병으로 받을 수억 달러의 돈도 결국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투입돼 우리를 겨눌 것이다. 이런데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다면 안보 포기나 다름없다. 북한과 러시아는 완전히 대놓고 우리 안보를 위협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을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하고, 적기에 실행해야 한다.
지금 러시아는 북한으로부터 용병과 포탄을 얻고 돈과 무기 기술을 주면서 한국의 반발은 위협적 언사로 적당히 넘어갈 수 있을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그럴 수 없다. 러시아에 우리가 당하는 만큼의 고통을 주지 않으면 러시아는 멈추지 않는다. 일단 우크라이나가 가장 원하는 천궁 등 대공미사일 지원을 검토할 수 있다. 방어용 무기이고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을 지키는 장비다. 러시아가 북한에 무기나 기술을 넘기는 정황이 확인되면 우크라이나에 공격 살상 무기 지원도 검토해야 한다. 우리 군 장비의 화력과 정확성은 러시아가 잘 알 것이다.
다만 러시아와의 장기적 관계도 염두에 둬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젠가는 끝나고 러시아와 다시 관계를 맺어야 한다. 러시아가 우리 안보를 위협하는 만큼 대응하되 지나칠 필요가 없고 앞서갈 이유도 없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힘 의원이 국가안보실장에게 우크라이나 북한군을 폭격해 대북 심리전에 이용하자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그것이 카메라에 찍혀 논란이 된 것은 부적절했다.
민주당은 이를 빌미로 정부가 “전쟁을 조장”하고 “신북풍 몰이”를 하고 있다며 규탄대회까지 열었다. 지금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총알받이로 파병하고 오물 풍선을 보내는 북한과, 이런 북에 군사 무기를 지원하려는 러시아다. 규탄을 하려면 북한과 러시아를 규탄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0-28 日 여당 참패, 美 대선 요동… 비상한 각오 절실한 尹정부
일본 집권 자민당이 27일 중의원 총선에서 참패하고, 1주일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 판세가 요동치면서 ‘트럼프 리스크’도 더욱 커진다. 확전 자제 양상을 보이긴 하지만 이스라엘·이란 타격전이 이어지고, 북한군 파병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은 한국 안보에도 발등의 불이 됐다. 이런 글로벌 안보·경제 정세의 불안정성은, 동맹과 수출이 중요한 한국에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이런 외생변수에 대해 외교 역량과 국론 통일을 통해 대응해야 하는데,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과 김건희 여사 문제를 둘러싼 여권 자중지란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191석밖에 얻지 못해 과반 233석에 미달했다. 정치자금 스캔들과 고물가 등으로 유권자의 불신을 받은 탓인데, 자민당 집권은 연정을 통해 유지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국정 동력은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내년 한일수교 60주년을 앞두고 과거사 진전 및 경제·안보 협력도 힘들어져 윤 대통령의 최대 치적인 한일관계 정상화의 추가 진전도 어려워졌다. 미국 대선 기류도 심상치 않다. 선거일인 다음 달 5일이 코앞이지만,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초접전을 벌이고 있다. 해리스가 당선되면 조 바이든 행정부의 동맹 중심 외교정책이 지속되겠지만, 트럼프의 경우 외교·안보·통상 측면에서 더 거세진 미국우선주의 정책을 견지할 것이 분명하다.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를 통해 다져진 외교·안보·첨단기술 등 전 분야에 걸친 한·미·일 3국 공조가 어려워질 수 있다.
러시아에 보내진 북한군 5000여 명이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최전선인 쿠르스크에 투입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물론 남북 대결의 양상을 근저에서 흔들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북한이 반대급부로 러시아의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받으면 유엔의 대북 제재는 물론 한국 안보에 대한 직접적 위협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최악이고, 거대 야당은 ‘이재명 방탄’에 집중하면서 사사건건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심지어 국회는 북·러 군사 밀착에 대한 결의안조차 내지 못한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20%(한국갤럽 10월 넷째 주 정기조사)이고, 김 여사 문제가 부정 평가 이유의 가장 큰 비중(15%)을 차지했다. 리더십 회복을 위한 결단이 급하다.
문화일보 사설
10.28 국정원 패싱… ‘노벨상 공작’ 청와대서 주도
2000년 12월10일,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 김대중은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공로, 그리고 남북화해와 평화에 대한 노력”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것은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온 게 아니라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핵탄두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김대중이 전 세계를 상대로 어떻게 가짜 평화를 만들어 노벨상 사기극을 벌였는지, 어떻게 노벨평화상과 핵무기를 뒷거래했는지… 양심 증언으로 미국에서 정치적 망명을 허락받은 유일한 한국인 김기삼 변호사와 한반도 전문 국제 저널리스트 도널드 커크가 밝히는 아찔하고도 끔찍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 김기삼 전 국정원 내부고발자

▲ 도널드 커크(Donald Kirk) 국제 저널리스트
노벨상 100주년 기념전
‘노벨상 100주년 기념전, 1901~2001’이라는 제하의 대대적인 전시회에 대해 1999년 10월 이병춘이 보고한 전문은 이 전시회가 노벨상 작업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라는 기대를 담고 있다. 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박람회의 한국 개최는 국내의 과학분야 선진화를 위해 일반 국민에게 큰 자극제가 될 수 있으며, 창의성 개발에 관심을 둔 교육과정 정착 등에도 상당한 파급효과가 기대되는 바, 정부 차원에서의 관심 표명 및 가능한 한 지원을 통해 동 전시회의 성공적 개최와 함께 노벨 재단과의 유대를 더욱 제고해 나가는 계기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
요점은 노벨 재단에 대한 한국 정부의 관심 표명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2000년 3월에 작성된 국정원 내부 문서도 “이 전시회는 인류의 창조성 고양을 목적으로 한다”면서 “알프레드 노벨의 사진 및 노벨상 수상자 약 50명의 저서·실험 장비·옷을 비롯한 개인물품 등이 전시물 목록에 들어 있다”고 소개한다. 또한 “전시 행사의 초반에 한국이 포함된 것은 볼보·에릭슨·ABB 등 스웨덴 주요 기업들이 한국과의 무역 및 투자 확대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행사 안내 책자는 “이 행사를 통해 모든 연령의 사람들에게 의미 있고 교육적인 풍부한 자료들을 접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와 함께 책자 맨 뒤의 ‘재정’ 항목에 “행사를 후원하는 스웨덴 기업들은 각 지역 후원사들이 참여하는 것에 대해 동의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노벨 재단의 린드비스크 서울 방문
실제로 노벨 재단의 스반테 린드크비스트 박물관장은 1999년 11월 재정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다. 그는 삼성문화재단을 비롯해 외교부·경희대학교 등과 지원 문제에 관해 논의했다. 대략적으로 책정된 예상 비용은 전시장 임대료 등 경비를 제외하고도 약 135만 달러였다. 하지만 실제 비용은 200만 달러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린드크비스트가 1999년 11월22~26일 서울을 방문한 후 이병춘은 관련 동향을 본국에 보고했다.
“스반테 린드크비스트 관장이 11월25일 외교통상부 김승의 문화국장을 면담하여 동 전시회 계획을 설명하고 한국 정부의 참여 의사를 타진했지만 김 국장은 제반 여건상 정부 차원에서는 지원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다만 민간 차원에서의 참여 여부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린드크비스트는 김 국장에게 한국 정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며, 향후 전시회 개최 관련 진행 사항을 한국 측에 알려 주겠다고 대답했다.”
외교부, 범정부 차원의 지원 거절
또한 “린드크비스트는 11월24일 삼성문화재단 한용외 부사장을 면담하고 전시회 계획을 설명했는데, 이 자리에서 한 부사장은 ‘삼성 측에서는 당초부터 동 전시회의 개최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면서 검토 후 통보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한편 이병춘은 린드크비스트의 방한 결과를 보고한 데 이어 “민간 레벨보다는 범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함을 외교통상부에 역설했으나 상기 김 국장의 면담 결과 정부 지원이 불가하다는 답을 듣고 매우 실망하고 있다”면서 스웨덴 공관의 강경한 입장을 전달했다.
그는 이어서 “특히 공관장은 동 전시회와 병행하여, 세계 석학 등이 참여하는 과학 학술 심포지엄 등의 개최를 통해 국민, 특히 학생들에게 과학의 중요성을 일깨워 줄 수 있다며 외교부의 결정에 불만을 표하고 있다”면서 주 스웨덴 공관의 부정적인 기류를 덧붙였다.

▲ 6.15 남북공동선언은 2000년 6월 13~15일 평양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에 이뤄진 분단 55년 만의 첫 남북정상회담에서 나온 선언문이다. 연합뉴스
김한정 등장으로 상황 반전
그런데 2000년 1월, 김한정이 청와대에 입성한 지 한 달 되는 시점에 전시회 개최를 둘러싼 상황이 극적인 반전을 맞게 된다. 김한정이 노벨상 프로젝트를 총지휘하는 위치에 앉자마자 모든 관련 부서를 휘어잡고 노벨상 수상 공작에 전적으로 협조하도록 강력하게 주문했기 때문이다.
변화의 첫 조짐은 2000년 2월 미카엘 슐만 노벨 재단 사무총장의 방한에 맞춰 나타났다. 슐만 총장의 방한은 그때가 두 번째로, 그는 이미 1998년 3월 권영민 외교안보실장의 초청으로 방한해 이종찬 국정원장을 예방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외교부가 아니라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초청한 것이다. 즉 이것은 DJ와 김한정이 주도한 행사였다.
갑작스러운 기류 변화에 당황한 국정원
이즈음 국정원은 갑작스러운 기류 변화에 몹시 당황해했다. 2000년 1월 말 박종재가 본부로 보낸 보고 전문을 보면 이러한 정황이 뚜렷이 읽힌다.
“한영우가 1월20일 청와대 김한정 제1부속실장과 전화 통화 후 제보한 바에 의하면 동 전시회 개최 건은 대통령께 기(旣)보고되어 대통령님의 재가를 이미 받은 사항이기 때문에 당연히 개최되는 방향을 추진될 계획이다.”
또한 “동 전시회 개최 문제는 기존의 외교부 입장과는 달리, 청와대 쪽에서 이미 개최 추진 쪽으로 방침이 결정되어 정부 지원의 범위 및 참여기업 선정 등 실무적인 문제로 진전되어 갈 것으로 보인다”고도 보고한다.
연결고리 한영우에 대한 국정원의 오판
국정원이 2000년 1월25일 작성한 ‘노벨상 100주년 기념전시회 재정지원 관련’이라는 제하의 내부 보고서도 상황 변화의 긴박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보고서는 “스웨덴 원로 교포 한영우 박사는 노벨평화상 100주년 기념 한국 전시회 재정지원 관련, 청와대 측이 기존 입장을 변경하여 정부 차원의 재정지원을 추진키로 확정하였음을 제보해 왔다”고 하면서 “이 내용은 한영우가 1월20일 김한정 제1부속실장과의 전화 통화에서 확인한 사항이며, 또한 김한정 실장은 이미 대통령님의 재가를 받은 상황이라고 언급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보고서는 국정원의 검토 및 조치 의견과 관련해 “김한정 박사가 청와대 부속실장으로 취임하면서 노벨상 100주년 기념전시회 재정지원 문제를 노벨평화상 수상 로비 활동의 일환으로 추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평가하면서 “현재 미결 단계임에도 한영우 박사가 진전 동향을 확대 해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결론 맺고 있다.
하지만 국정원의 이러한 판단은 오판이었다는 것이 금세 드러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영우가 확대해석한 것이 아니라 국정원이 축소 해석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김한정이 슐만을 방한 초청하면서 스웨덴 공관이라는 공식 채널을 거치지 않고 스웨덴 교민으로 노벨상 프로젝트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던 민간인 한영우를 통해 모든 일정을 준비하는 동향이 포착된 것이다. 이는 국정원을 패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배제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국장 앞으로 보낸 박종재의 비밀전문
당시 박종재가 본부에 보고한 비밀전문 내용을 보면 그런 낭패감과 위기감이 더 잘 읽힌다. 2000년 2월 초 ‘한상철 방한 계획 관련 (국장님 친전)’이란 보고서에 의하면 “한상철은 지난 1월 말 김 교수로부터 당지에서 추진 중인 사업에 대해서는 파견관에게도 철저히 보안을 유지해 달라고 부탁받았다”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전문 보고서에 언급된 ‘한상철’과 ‘김 교수’는 각각 한영우와 김한정의 코드네임이다.
특히 박종재의 전문에서 주목되는 점은 “김 교수 및 박지원 장관은 자신(한상철)이 당지에서 추진하는 상기 사업들에 대해 국정원이 관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지하는 것조차도 싫어한다고 하는 만큼, 상기 보고 내용에 대한 대외 보안 및 파견관의 입장에 대해 배려해 주실 것을 건의드립니다”라며 이례적으로 극도의 보안 유지를 부탁했다.
△김기삼 변호사의 블로그(https://niswhistleblower.tistory.com/)를 방문하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스카이데일리 김기삼
10.29 우크라이나의 남북 대리전쟁?
우리가 살상 무기 지원하면
코리안 대리전쟁 인상 줄 수도
게다가 트럼프 재집권하면
현 전선 올스톱, 러 사실상 승리
타이밍상으로도 적절치 않아
파병된 북한군 전선 이탈하도록
심리전 펼치는 게 우리 할 일
북한군이 러시아의 용병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에게 또 다른 양상으로 변모하고 있다. 60여 년 전 한국이 미국 요청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것과 비교되면서 이번에는 북쪽의 ‘코리안’이 또 다른 남의 전쟁에 들러리를 서는 상황이 됐다.
북한의 참전에 가타부타할 생각은 없다. 다만 한국의 대응이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주 방한 중인 폴란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군의 활동 여하에 따라 한국의 ‘살상 무기’를 지원할 수도 있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제까지 인도적 또는 비전투용 물자 지원에 머물렀던 데서 크게 변화한 것이다. 만일 살상 무기를 지원한다면 남북의 코리안이 이역만리 유럽 땅에서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모양새가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살상 무기 제공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가 대한민국의 군사력을 키우고 각종 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우리 국민의 생명과 국토를 지키고 보전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다른 나라를 위해 또는 남을 공격하는 데 우리 무기를 빌려주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그런 국가 보전의 연장선상에서 정당화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살상 또는 전투용 무기를 제공하는 것은 그 범주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그것은 자칫 유럽 땅에서 코리안끼리 대리(代理)전쟁을 하는 것처럼 비치거나, 본질을 벗어나 남북한끼리 적대적 대립 의식을 발산하는 분출의 시연장으로 변모할 가능성마저 있다. 서구 언론, 특히 친우크라이나 언론들이 북한군의 참전을 크게 또는 미주알고주알 상세히 보도하는 데서 우리는 마치 한국의 어떤 대응을 기대하는 것 같은, 또는 부추기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특히 우크라이나 지도층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는다.
우리가 그동안 우크라이나를 비전투적 차원에서나마 지원하고 우크라이나 편을 든 것은 서방 민주 사회 특히 미국과 맺은 연고를 고려한 일종의 ‘우정 출연’이었다. 하지만 살상 무기 제공은 별개 문제다. 무력적 적대(敵對) 행위, 즉 전쟁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남북한이 공히 ‘나토 대(對) 러시아’의 ‘꼭두각시’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심각한 것은 우리의 살상 무기가 불가피하게 러시아군을 ‘살상’할 수도 있다는 문제다. 전장에서 살상 무기는 북한군이건 러시아군이건 식별할 수 없다. 이런 사태는 급기야 러시아 또는 러시아 국민과 적대 관계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러시아는 지난번에 북한과 동맹 관계를 맺었지만 푸틴은 이것이 곧 한국을 배척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을 내비친 바 있다. 그는 북·러 동맹은 북한이 침공받았을 때의 문제이며 한국이 북한을 침공할 리는 없지 않으냐고 반문조로 말했다. 군사력의 대비는 중요하다. 하지만 군사 행위에 선행하는 것은 안보 외교이며, 지금 러시아와 군사적으로 충돌하거나 척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안보가 아니다.
미국과 얽힌 문제도 중요한 변수다. 지금은 막바지 선거전이 치열한데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의 대외 정책은 많이 요동칠 것이다. 그중 하나가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 자신과 푸틴의 우호적 관계를 언급하며 자신이 대통령이었으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예 없었을 것이라고 말해 왔다. 즉 트럼프가 복귀하면 우크라이나전쟁 양상은 전면 달라질 것이다. 미국이 지원을 끊으면 우크라이나는 현 전선에서 올스톱이고 결국 러시아의 승리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그런 긴박하고 민감한 시점에 우리가 섣불리 살상 무기 지원 운운하는 것은 타이밍상으로도 적절치 않다.
근자에 우리는 우리의 방산 무기 능력에 많이 고무돼 있다.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다. 긴 역사에 남의 침략만 받고 살아온 우리가 이제 우리 손으로 우리를 지킬 고도 무기를 개발하고 생산할 능력을 키웠다는 것은 크게 자부해도 좋다. 하지만 무기는 본래 상대를 무력화하거나 파괴하는 도구다. 자신을 지킬 때와 남을 해칠 때 무기의 정당성이 다르다. 살상 무기이기에 더욱 그렇다. 방산 외교와 공개적인 대외 홍보에 너무 몰두하는 것은 ‘무기 잘 만드는 나라’의 이미지를 키운다. 나라를 운용하는 책임자들은 이 문제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파병된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전선을 이탈해 자유를 찾도록 유도하는 심리전이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닐까 한다.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니스트
10.29 트럼프 변수, 북·러 밀착, 日 정국 혼돈… 한반도 안보 '복합 쓰나미'
한국 둘러싼 안보 환경 급변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 북한군 파병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신(新)냉전으로 끌고 가는 러시아, 윤석열 정부와 우호적 관계가 예상됐던 일본 이시바(자민당) 총리의 중의원 선거 과반 실패 등 한국을 둘러싼 외교·안보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미국이 가장 경계하던 유럽·중동 ‘두 개의 전쟁’이 동시에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미국의 대외 정책에서 한반도는 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전례가 없는 4중, 5중 복합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는 셈이다. 한 전직 외교부 장관은 28일 본지 통화에서 “현재 한반도 주변은 복합적이고 비상한 상황인 만큼 여기에 맞는 비상한 대응이 필요하다. 옛날 입던 우비를 입고 우산을 쓰고 나가서 될 상황이 아니다”라고 했다.
국제 정치 전문가들은 최근 한반도 안보 상황이 근래 유례없이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는 점에 대부분 동의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역설적으로 우리나라를 둘러싼 외교·안보 정세가 장기간 불확실해질 것이라는 점만큼은 확실하다”며 “그 방향이 부정적일 것이라는 점도 확실하다”고 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체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핵 개발에 나선 북한과 개혁·개방으로 내부 문제에 정신 없던 러시아, 한국의 역할 확대론이 나오던 미국 등 현 상황 자체는 1980년대 후반과 매우 비슷한 점이 있다”면서도 “당시는 냉전이 해체되는 안정적 방향으로 요동쳤다면, 지금은 그 역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1주일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에서는 한국과 주한 미군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진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부상하고 있다.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윤석열-바이든-기시다 체제에서 급속한 진전을 이룬 한·미·일 3국 협력 체제가 다시 후퇴하거나, 바이든 정부가 약속한 확장 억제(핵우산)도 안심할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그간 글로벌 국제 질서의 핵심 역할을 해온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 등은 결코 새로운 게 아니라는 분석이다. 서정건 경희대 정외과 교수는 “미국은 원래 비개입주의, 미국 우선주의를 하던 나라였고 소련과 이념 전쟁을 하며 국제주의를 취했던 그 기간이 오히려 미국 전체 역사에서 극히 예외적인 기간”이라고 했다. 한국의 국력이 과거와 달라진 만큼 능동적이고 실용적 접근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불확실성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 수석은 “대미(對美) 관계에서 견고한 시스템이 작동하는 민주당보다 개인적 취향이 의사 결정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트럼프가 우리에게 더 용이한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와는 ‘거래’를 통해 한국이 원하는 핵연료 재처리, 우라늄 농축 권리 등을 확보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박인국 전 주유엔 대사는 “한미 공동 컨소시엄을 구성해 러시아가 지배하고 있는 농축 우라늄 공급망을 재편하거나 영국·독일이 독과점하는 잠수함 시장에서 기술 동맹을 맺자는 비즈니스적 거래 제안은 오히려 해리스보다 트럼프가 수용할 확률이 높다”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은 이르면 이번 주부터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의 관심이 우크라이나에 쏠려 있는 동안에 북한이 ‘스모킹 건’을 찾기 어려운 2010년 천안함 폭침식의 도발을 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전쟁 장기화로 러시아 국력이 소진되고 있는 점과 북한군의 대남 군사적 대응이 일시적이나마 여의치 않을 수 있다는 점 등은 우리한테 나쁘지만은 않다는 분석이다. 천 전 수석은 “차제에 우크라이나와 방산 협력을 본격화하고 북한군이 투입된 러시아 영토에 우리 무기를 제공하기보다는 북한군이 배치되지 않은 지역에 제공하는 등의 지혜를 발휘할 요소는 많이 있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는 작년 3월 강제징용 관련 제3자 변제안으로 한일 관계를 정상화한 후 주로 자민당 지한파를 상대로 내년 한일 수교 60주년을 대비해 왔다. 하지만 27일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 여당이 참패해, 정계 개편이 될 경우 모든 것을 새롭게 논의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이 이 혼란을 틈타 대만해협에서 군사행동을 감행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국 정부는 시진핑 주석 3연임을 계기로 대만을 자국 영토로 간주하며 통일 의지를 지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박인국 전 대사는 “일본은 오키나와 서남쪽 요나구니섬이 대만에서 116㎞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중국과 대만 전쟁이 일어나면 자동적으로 개입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이 이 문제에 대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전략을 연구해야 한다”며 “트럼프 집권 시에도 한일이 혼자 말하는 것보다 ‘원 보이스’를 내면 강해지기 때문에 오히려 한일 연계 활동 전략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대외적으로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식의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우는 시기가 지나갔다고 본다. 또 지금 같은 비상 시기에 대통령실과 외교부가 위기 의식을 갖고 대외 전략을 전면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현재의 위기 상황을 넘기 위해서는 대통령실이 더 전략적이어야 한다”며 “용산 내부 소수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생각만으로는 이 파고를 넘기 힘들다. 안보 위기를 극복하는 특별 조직이 필요할 수 있다”고 했다.
10-29 트럼프 “반도체 보조금 대신 관세 폭탄”… 최악 대비해야
미국 대선일을 1주일 앞두고, 한국 경제의 주축이면서 한미 ‘경제안보 동맹’ 상징이기도 한 반도체 문제가 선거 쟁점이 되면서 격랑에 휩싸였다.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칩스법(반도체지원법)을 공격하면서, 기존의 보조금 정책을 백지화하고 ‘관세 폭탄’으로 대체할 뜻을 표명했다. 트럼프 후보는 지난 25일 인터뷰에서 “높은 관세를 부과해 (대만·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제 발로 들어와 공장을 짓게 하겠다”면서 “그들은 우리가 보호해 주길 원하면서 제대로 돈을 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돈을 내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앞서 지난 7월 “대만이 우리 반도체 사업의 거의 100%를 가져갔다”며 TSMC 등을 향한 강경 대응을 시사했는데, 이제 한국 반도체로까지 전선을 확대했다.
예상치 못했던 미국의 ‘말 바꾸기’가 충격적이다. 미 정부의 보조금 지원(후불제) 약속을 믿고 이미 미국 내에서 수십조 원이 들어가는 대규모 공장 건설에 착수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반도체는 1997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정보기술협정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무관세로 수출입이 이뤄지는 게 현실이다. 프럼프 후보의 관세 폭탄 발언은 이런 글로벌 합의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다. 곧 있을 대선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강력한 동맹국인 미국이 약속을 깨고 뒤통수를 칠 판에 이른 것이 개탄스럽다. 일각에선 ‘국제 사기’라는 거친 지적도 나온다.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감이다. 글로벌 경제 전체가 혼돈에 빠질 상황에 직면했다.
막판에 접어든 미 대선 경쟁의 일과성 해프닝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새로 출범할 미 정부가 민주당·공화당 어느 쪽이든, 중국 제재는 상수로 여겨졌지만, 이를 넘어 우리 반도체까지 위협받는 지경이다. 미국의 방위비 분담 확대 요구와 함께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급증한 대미 무역흑자도 공격받을 수 있다. 정부와 업계 모두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플랜B 등 비상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 ‘트럼프 경보’가 동맹 관계까지 흔든다. 이런 식이면 유럽도 가만 있기 힘들다. 누가 이기든 미 대선 후폭풍은 심각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10-29 “우크라에 고문 기술 전수하러 가나” 李, 북·러 편드나
북한군이 러시아·우크라이나 격전지인 쿠르스크주에 배치됐다고 미 국방부와 나토가 공식 확인한 가운데,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참관단’ 파견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러시아의 침략 전쟁 성격이나 우크라이나 지원의 당위성을 따질 것도 없이, 전투 현장에서 북한군 사상자와 포로, 이탈병이 생길 경우 등에 대비해 정부가 이런 대책을 세우는 것은 당연하다. 북한군도 헌법상 우리 국민인 데다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쓰는 무기나 전술, 교리 등에 대한 파악은 한반도 유사시 대비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가정보원 요원 파견을 거론하면서 “고문 기술을 전 세계에 전수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제정신인가”라면서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고문 기술 전수 운운하는 것은 사실 왜곡이자 대한민국 국격과 정보기관에 대한 모욕이다. 이탈 북한군 신문 활동 자체를 말라는 것은 ‘파병은 국제법적 규범에 부합한다’는 북한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북한 편들기로 비친다. 이 대표는 자신에게 제정신인지 물어봐야 할 상황 아닌가.
이 대표는 정부의 우크라이나에 무기 제공 시사와 관련해서도 “남의 나라 전쟁에 공격 무기를 제공하면 전쟁에 끼어드는 것”이라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유엔이 불법으로 규탄한 러시아의 침략을 우리와 무관한 전쟁으로 치부함으로써 블라디미르 푸틴을 두둔한 것이다. 파병 대가로 러시아의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받으면 유엔의 북핵 제재는 무너지고, 대남 살상 공격력은 증강된다. 대한민국이 ‘러시아·북한 불량 동맹’에 앞장서 싸워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윤석열 정부와 검찰·법원이 아무리 밉더라도 러·북이라는 적국 편에 선다면 그것은 매국이다.
문화일보 사설
10-29 러시아 격변史와 슬기로운 북방외교
고상두 연세대 명예교수
북한 용병까지 쓰는 최악 상황
서방은 러 국력 소진에도 관심
전쟁 뒤엔 국제관계 급변할 것
한국 당연히 우크라 편들면서
북·러 밀착 깰 포석도 펼쳐야
40년 전 북방외교 경험이 유용
러시아가 북한 용병을 쓰는 절박한 상황에 이르렀다. 그동안 블라디미르 푸틴은 높은 급료를 주며 가난한 시골 청년들을 전쟁터로 보냈고, 전쟁의 와중에도 모스크바는 늘 평화로웠다. 번개 작전을 개시했던 러시아는 예상치 못한 서방의 지원으로 전쟁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서방의 지원 목표는 러시아가 국력을 소진해 다시는 유럽의 평화를 깨뜨릴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1945년 전후 독일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재무장관 헨리 모겐소 플랜이었다. 이 정책은 독일이 다시는 전쟁할 수 없도록 모든 산업을 해체해 농경 국가로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1947년 냉전이 시작되면서 2년 만에 국무장관 조지 마셜 플랜으로 뒤집혔고, 반(反)인륜범죄를 저지른 독일은 전쟁배상금 지불이 아니라 경제 원조를 받게 됐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똑같은 혜택을 봤다.
국제정치에는 영원한 적(敵)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영원한 것은 국익이다. 우리 정부가 대(對)러시아 제재를 하고 우크라이나를 돕는 것은 침략당한 아픈 경험을 가진 국가로서 침략을 규탄하기 때문이고, 자유 우방과의 결속 때문이다.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서방과 함께 우크라이나 편에 서는 게 맞다. 그러면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예산이 지난해 5.9%에서 올해 7.1%로 늘어나고, 부족한 전비를 충당하느라 연기금을 소진하고 있다. 강대국이 전쟁부채로 붕괴하는 것은 역사에서 흔한 비극이다. 1905년 러일전쟁 후 경제난의 고통을 떠안은 러시아 민중은 겨울궁전 앞에서 평화시위를 벌였고, 유혈 진압됐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이 ‘피의 일요일’을 차르 정권을 붕괴시킨 볼셰비키혁명의 위대한 전초전이라고 평가했고, 집권 후 대내외 채권을 무효화함으로써 폭증한 전쟁부채를 정리했다.
푸틴 정권의 앞날은 억눌린 사회 불만과 늘어나는 국가부채의 해결에 달렸다. 크림전쟁에서 패한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는 1867년 알래스카를 팔아 재정난을 타개했다. 당시 미국 의회는 윌리엄 H 수어드 국무장관이 쓸데없는 땅을 샀다며, 알래스카를 ‘수어드의 냉장고’라고 비꼬았지만, 지금은 역사상 최고의 거래로 평가받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후 연해주 땅을 팔지는 않을 것이니, 상당한 재정난에 시달릴 것이다. 재정난을 극복하는 길은 서방과의 관계 복원이나, 서방의 완전한 제재 해제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는 동방에서 협력 상대를 찾을 것이며, 한국은 동방의 빛이 되리라.
러시아가 북한과 체결한 포괄적 전략동반자 조약을 무력화시킬 ‘불곰 플랜’이 필요하다. 러시아의 운명을 가르는 대외 협력이 군사전략이 아니라, 경제 분야가 되는 시점이 오면 한국은 절실한 동반자로 부상할 것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예르미타시 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은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이다. 죄가 묻은 옷을 갈아입혀 주는 일은 윈윈게임이다.
현재 러시아는 한국을 비(非)우호국으로 취급한다. 우리가 서방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등 첨단 제품의 대러 수출 통제로 우리는 현대자동차가 부품 수급 문제로 러시아에서 철수하는 손실을 봤다. 반면에 K-푸드는 전쟁 특수를 누리고 있다. 유럽 식료품의 수입이 보복 차원에서 금지되면서, 도시락 라면과 초코파이 등이 러시아 국민의 식탁을 점령하고 있다.
러시아는 자원 대국이며 거대 시장으로서 우리의 경제 발전에 필요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향후 우리가 누리게 될 협상 우위를 활용해 북극 항로 개발권을 확보하고, 시베리아 벌판에서도 작물 재배가 가능한 스마트 팜을 수출하며, 한국 어선의 러시아 수역 조업권을 확대하는 등 러시아 시장에 재진입할 기회가 오고 있다.
경제 협력은 상호 의존성의 증대, 신뢰의 축적, 공동 이익의 창출 등을 통해 외교·안보 협력으로 확대된다. 노태우 정부가 추진했던 북방정책의 교훈은 경제의 힘으로 강대국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약 40년 전 우리는 소련과 북한의 동맹 관계를 해체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러시아에 대한 실용적 포용을 하기 위해 북방외교를 재가동할 때, 우크라이나 전쟁이 초래한 러·북 밀착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일보
10.30 6·25 北 귀순병 33%가 심리전 덕분에 살았다
유엔군 뿌린 심리전단 25억장
투항 북한군이 만들면 효과 커
'폭풍군단' 출신 탈북민 있어
파병 북한군도 살려야 한다
6·25 때 미 극동사령부가 전단(삐라)을 처음 뿌린 건 남침 사흘 만인 6월 28일이었다. 일본에서 날아온 비행기가 서울 상공에 ‘미군과 유엔이 한국을 돕기로 했다’는 전단을 쏟아냈다. 민심 동요를 진정시키려는 심리전이었다. 전쟁 기간 유엔군이 뿌린 전단이 25억장이다. 당시 전 세계 인구에 한 장씩 나눠줄 분량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측근으로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 부대를 총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영복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부참모장이 지난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2020년 10월 10일)에서 인민군 특수작전군 사령관으로서 열병 대오를 이끌고 있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효과는 컸다. 전단을 보고 귀순한 북한군과 중공군이 셀 수도 없다. 당시 포로 심문에서 투항한 이유로 ‘심리전 영향’이 33%로 ‘전쟁 상황’(38.6%)에 이어 둘째였다는 미국 조사 결과가 있다. 전단에는 자식과 남편을 기다리는 어머니와 아내, 사랑하는 여인, 따뜻한 쌀밥 등을 그려 넣은 경우가 많았다. 혹한의 전선에는 “얼어 죽기 전에, 다쳐 죽기 전에, 굶어 죽기 전에 도망하라”고 적어 뿌렸다. 담배를 말아 피울 수 있는 전단도 있었다. 고립된 북한군의 마음을 흔들었다. ‘안전 보장 증명서(Safe Conduct Pass)’라고 인쇄해 투하했더니 그걸 소중히 품고 줄줄이 넘어오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투항한 북한군이 개입한 전단의 효과가 가장 확실했다고 한다. 북한군 OO사단과 대치할 때면 그 사단 출신 귀순병이 죽은 전우 이름이나 부대 관련 불만을 구체적으로 밝히면서 ‘같이 살자’고 호소하는 내용을 담아 뿌렸다. 당시 북한은 ‘조국 해방’ 같은 선전전을 펼쳤지만 최전선의 병사는 ‘맞춤형’ 전단에 더 끌렸다. 이런 심리전 덕분에 귀순한 북한 청년들은 목숨을 보전했고 이후 김씨의 노예 생활을 겪지 않아도 됐다.
김정은이 북한군 1만여 명을 러시아로 보냈다. 현재 전황과 러시아의 ‘고기 분쇄기’식 병력 투입을 보면 북한군은 총알받이로 떼죽음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 배치됐다는 쿠르스크 지역은 몸을 숨길 데가 없는 평원이다.
겨울이 닥치면 나폴레옹의 프랑스군, 히틀러의 독일군처럼 얼어 죽는 청년도 속출할 것이다. 파병 부대가 특수전 훈련을 받은 ‘폭풍군단’이라고 하는데 “북한에서 힘든 부대는 서민의 자식들만 간다”(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박사)고 한다. 북에서 힘 있고 돈 있는 자들의 자식은 빠졌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서민 자식들의 피 값으로 호주머니를 채우고 대한민국 안보에 치명적인 무기 기술을 얻고 있다.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하나.
국내 탈북민 3만4000여 명 중에는 북한군 경력자가 적지 않다. 폭풍군단 출신도 있다. 왜 전쟁하러 나왔는지도 모를 북한 청년의 마음을 가장 잘 알 것이다. 심리전을 준비하는 우크라이나를 도울 수 있다. 살상 무기로 북한군을 죽이자는 것이 아니다. 살리자는 것이다. 한두 명이 귀순하면 북에 인질로 잡힌 가족들이 걱정되겠지만 수백 명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드론전이다. 러시아군 귀순도 드론으로 안전 보장과 행동 요령을 적은 전단을 뿌린 뒤 드론을 따라오라고 유도하고 있다. 이런 전단은 6·25 때 ‘안전 보장 증명서’와 유사하다. 러시아와 뿌리가 같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효과적인 심리전을 펼치고 있다. 북한 사람은 본 적도 없을 것이다.
좌파·진보 세력은 생명 가치가 최우선이라고 해왔다. 생명을 내걸고 반전(反戰)·반핵(反核) 시위를 하곤 했다. 그런데 김정은의 파병에 대해선 형식적으로 철회를 요구하거나 “아직 불분명하다”고 하고 있다. 북핵 개발 때 ‘우리 북한이 그럴 리 없다’고 하던 태도와 똑같다. 북한에 대해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해놓고 ‘우리 민족’인 북한 청년을 살릴 수 있는 우크라이나 심리전 지원을 말하면 “한반도 전쟁 획책”이라고 흥분한다. 김정은이 파병한 생명의 가치는 다른 건가.
조선일보 안용현 기자
10.30 中 反간첩법으로 우리 교민 구속, 우리는 당하기만 할 건가

▲중국의 반간첩법 달라진 것들. /조선DB 그래픽=양진경
중국에서 반도체 관련 일을 하던 한국 교민이 지난해 12월 간첩 혐의로 체포돼 구금 중인 것으로 28일 전해졌다. 중국이 지난해 7월 간첩 혐의 적용 범위를 확대한 ‘개정 반간첩법’을 시행할 때부터 우려되던 일인데, 첫 한국인 적용자가 나왔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출신인 이 교민은 한때 몸담았던 중국 반도체 회사의 정보를 한국으로 유출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고 한다. 미·중 간 반도체 전쟁에 끼어있는 한국 반도체 인력 중에서 비슷한 사례가 또 나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올 1월 러시아에서는 북한 벌목공과 탈북민을 돕던 우리 선교사가 간첩죄로 현지 당국에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 사안의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지난 7월 동맹국인 미국에서도 우리 국가정보원 요원들과 가깝게 지냈던 한반도 전문가가 미국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한국 정부를 위해 일했다는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몇 달 새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과 중·러의 대립, 그에 따른 신냉전 양상, 기술 경쟁의 격화,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전쟁 등으로 세계는 지금 정보 전쟁 중이다. 그만큼 타국의 정보 활동에 각국이 민감해져 있다. 일부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외국인을 간첩 혐의라며 체포한 뒤, 상대국과의 협상에 이용하고 있다. 외국에 사는 교민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외국이 우리 국내에서 벌이는 반국가 정보 활동을 처벌할 법적 근거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아직도 우리 형법과 군형법은 ‘적국(북한)’을 위하는 행위만 간첩죄로 처벌하고 있다. 국군정보사령부 군무원이 중국 동포에게 우리 첩보 요원 신상을 유출한 사건을 계기로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이 아닌 ‘외국’으로 바꾸자는 논의가 정치권에서 있었다. 그러나 법 개정은 무소식이다. 외국을 대리해 국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외국대리인’으로 등록하게 해서 누가 어느 나라를 위해 일하는지 분명히 알게 하자는 외국대리인등록법 제정안도 발의됐지만 모두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미국의 동맹이면서 북·중·러에 둘러싸여 있는 한국은 치열한 정보전의 대상이다. 대공수사권을 박탈당하고 외국 간첩도 기소할 수 없는 우리 국정원은 손발이 묶였다. 우리 국민은 외국에서 간첩 혐의를 쓰고, 우리는 외국인 진짜 간첩을 처벌하지 못한다. 국회의 법 개정이 시급하다.
조선일보 사설
10-30 ‘러 용병’ 쉬쉬 김정은, 한국이 北 주민에게 실상 알려야
북한이 비밀리에 러시아에 보낸 1만여 병사의 일부가 우크라이나 영토에 진입했고, 교전을 개시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파병 후 북한 내부 동향이 심상치 않은 듯하다. 국가정보원은 29일 비공개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왜 남의 나라를 위해 희생하느냐, 강제 차출될까 걱정된다는 등 주민과 군인 동요가 감지된다”고 보고했다. 북한 당국이 파병 소식 전파를 막기 위해 장교의 휴대전화 사용 금지 및 차출 부대 병사 입단속을 하고 파병 군인 가족에겐 훈련을 간다고 거짓 해명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북한은 파병을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했으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시인한 뒤에야 “파병은 국제 규범에 합당하다”고 입장을 바꿨다. 그러나 공식적인 파병 의식조차 없이 러시아 군인인 양 위장해 쉬쉬하며 보낸 것은 김정은도 정당하지 못한 ‘용병’임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북한의 방첩기관인 보위성은 주민 동요를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 소식 유포자 색출 작업까지 시작했다고 한다. 북한이 숨기려 할수록 김정은의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 부당성을 주민들에게 알리고, 북한군이 러시아의 총알받이가 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전파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좀 더 체계적인 방식으로 북한군의 참전 및 사상자 상황 등을 실시간 북한에 전파해야 한다. 그간 탈북자 중심 단체들이 김정은 체제 비난 전단을 북한으로 보냈지만, 북한 주민이 대러 파병 문제점을 깨닫도록 정보를 들여보내 파병이 김정은 체제의 동티가 되도록 해야 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30일 북한의 대러 불법 파병을 의제로 회의를 소집했고, 유럽의회에서도 ‘유럽에 대한 북한의 공격’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런데도 국회는 북한의 러시아 파병 규탄 결의안조차 못 낸다. 여당의 규탄 결의안과 달리 더불어민주당은 파병한 북한보다 정부 비판에 열을 올리는 결의안을 내 조정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대체 어느 나라 정당인지 의심스럽다.
문화일보 사설
10-30 [속보]“북한군, 우크라와 교전해 한 명 빼고 모두 전사”…우크라 지원 NGO 주장

▲지난 18일 우크라이나 문화정보부 산하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가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군인들이 줄을 서서 러시아 보급품을 받고 있다고 공개한 영상. 유튜브 캡처
북한군이 러시아에서 지난주 이미 우크라이나군과 첫 교전을 벌였으며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전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리투아니아 비정부기구(NGO) 블루/옐로 대표 조나스 오만은 28일(현지시간) 현지 공영방송 LRT 인터뷰에서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 25일 우크라이나군이 점령 중인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 지역에서 이미 북한군과 첫 전투가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군을 지원해왔다. 우크라이나의 의사 결정권자뿐만 아니라 최전선 정보에도 직접 접근할 수 있다고 한다. LRT는 오만 대표가 이전에도 여러 차례 우크라이나 정보원 및 군 정보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후 사실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오만 대표는 “우리가 지원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부대와 북한군 간에 첫 번째로 눈으로 확인된 교전은 10월25일 쿠르스크에서였다”며 “제가 아는 한 한국인(북한군) 중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생존한 한 명은 부랴트인이라는 서류(신분증)를 갖고 있었다”고 부연했다. 브랴트족은 동남 시베리아 토착 몽골계 민족이다.
그는 또 북한의 러시아 지원 첫 징후는 이미 6개월 전에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당시 북한군은 벨라루스에서 103공수여단 등과 연합훈련을 실시했다고 했다.
아울러 러시아가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에 북한군이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고 전했다. 그는 정보장교부터 러시아군의 요새 건설을 도울 엔지니어까지 소수의 인원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가 알기론 몇 달 전 우크라이나에서 블루/옐로가 인도한 드론에 의한 (첫 번째) 한국인(북한인)이 사망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오만 대표는 이번 북한군 파병과 관련해서도 “몇 주 전 (북한군이) 러시아로 갈 준비를 하고 있으며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하고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 처음엔 1500명, 그 다음엔 1만1000명~1만2000명이었다”며 “8만8000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단순히 길거리에서 수집한 데이터가 아닌 첩보정보”라고 밝혔다.
다만 그의 주장은 아직 공식 확인되진 않았다.
문화일보 박준우 기자
10.31 러, 핵잠수함·ICBM·전투기 북한 제공 '레드 라인' 넘지 말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19일 북한 평양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로이터 뉴스1
국방정보본부가 30일 국회에 “북·러 관계가 혈맹으로 근본적 변화를 하는 과정에서 상호 군사 지원을 교환하고 있다”며 “특히 북한이 러시아의 우주·첨단 군사 기술뿐 아니라 재래식 전력 현대화도 추진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보고했다. 북한군 일부가 이미 전선에 투입됐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는 가운데 북한 최선희 외무상이 이날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러시아와 파병 대가를 논의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 CIA 출신인 데니스 와일더 전 백악관 선임보좌관은 핵 추진 잠수함과 ICBM 재진입 기술 등을 언급하며 “북한의 핵잠수함이 서태평양을 누비고 다닌다면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엔 골칫거리가 아니라 심각한 안보 위협이다.
김정은은 작년 9월 수중 핵 공격이 가능한 전술핵공격잠수함 진수식에서 “해군의 핵 무장화는 절박한 과업”이라고 했다. 지금 북은 수중 발사 핵미사일은 있지만 원자력 추진 잠수함 기술은 없다. 만약 러시아가 원자력 추진 잠수함 기술을 북에 주면 무제한 잠항이 가능한 핵 잠수함에 핵미사일을 싣고 바닷속에 숨을 수 있다. 우리에겐 재앙이다.
김정은이 핵 추진 잠수함까지 보유하게 돼 미국이 북 핵 미사일을 100% 막지 못하게 되면 미국이 북한을 대하는 자세도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북한 핵 보유를 인정하면서 대북 제재를 일부 해제하고 상황 관리에 들어갈 수 있다. 이 역시 우리에게 재앙이다.
국방정보본부는 “11월 북의 ICBM 도발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북은 ICBM을 정상 각도·거리로 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대기권 재진입 기술은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러시아가 김정은에게 ICBM 재진입 기술을 제공하면 북 핵 미사일은 완성된다. 북이 원하는 미국과 ‘핵군축’ 협상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다 만들어진다.
김정은이 북한군 1만여 명을 그냥 사지로 보냈을 리 없다. 지금 다급한 건 60만명 넘는 사상자를 낸 푸틴이다. 김정은의 어떤 요구라도 들어주려 할 것이다. 만약 푸틴이 핵 추진 잠수함이나 ICBM 재진입 기술, 최신형 전투기와 같은 첨단 무기를 넘겨준다면 우리 국민에게 직접 칼을 겨누는 적대 행위다. 이 경우 한국도 비상한 대처를 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가 ‘레드 라인’을 넘지 않기를 바란다.
조선일보 사설
10.31 한반도뿐 아니라 국제 평화도 위협하는 북·러 야합
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이 끼어들면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에 1만 명의 병력을 보냈다고 미국 국방부가 발표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민간 트럭까지 동원해 북한군을 최전선으로 신속히 옮기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는 국경에서 40~60㎞ 떨어진 곳에 머물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군의 실전 투입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이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 정치판도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정부 대표단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의에서 관련 정보를 브리핑했다. 정부는 또 우크라이나와 ‘전략적 협의’를 추진하기로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 파병에 대해 논의하려고 30일(현지시간) 열린다. 최선희 북한 외무상은 러시아를 방문했다.
북한·러시아가 손잡는 게 대수롭지 않을까. 결코 아니다. 두 국가의 ‘불장난’이 전 세계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군 1만 명 러시아 파병
쿠르스크 최전선에 속속 배치
남의 전쟁 위한 ‘총알받이’ 신세
냉정하고 단호하게 대응해야
우선 ‘신냉전’ 대결 구도가 분명히 그려지게 된다. 북한군 파병은 자칫 미국·나토의 더 적극적 개입을 부를 수 있고, 그러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대전으로 커진다. 북한이 파병의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받은 기술로 핵·미사일을 고도화한다면 한국 안보뿐만 아니라 국제 평화도 위협할 수 있다. 핵 확산 금지(NPT) 체제가 무너진다. 북한이 외화를 벌려고 핵·미사일 기술을 수출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과 ‘혈맹’으로 묶이게 될 러시아는 앞으로 한반도 문제에 큰 목소리를 내려고 할 것이기에 우리로선 달갑지 않다. 또 북핵을 해결할 수단인 대북 제재망은 러시아에서 구멍이 뚫리면서 사실상 무력화하게 된다. 실전으로 단련된 북한군도 부담이다.
중화기 없는 ‘알보병’ 보내

▲2020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북한군 경보병. 경무장에 도보로 기동하며 방탄모를 쓰지 않는다. [조선중앙TV 캡처]
그렇다면 북한군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어떤 활약을 할까. ‘총알받이’로 남의 전쟁에 끌려가 결국 ‘대포밥’으로 생을 끝낼 공산이 크다.
파병 북한군은 쿠르스크 전선에 전개 중이다. 지난 8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영토인 쿠르스크의 상당 부분을 점령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공세에 더 집중하면서 쿠르스크에서 전력이 모자란 데 이를 북한군이 메우고 있다. ‘무력침공을 받으면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북·러 조약 4조에 따른 조처라고 우길 수도 있다.
북한군은 러시아 군복을 입고 러시아 무기로 무장했다. 독립 부대로 편제되지 않고, 러시아 부대 아래로 들어갔다. 양국은 연합훈련으로 합을 맞춰본 적이 없다. 북·러는 언어가 다르다. 북한군은 러시아 군사 용어 100여 개를 급하게 배웠지만, 러시아와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는 북한군 30명에 통역사 1명을 붙이며, 러시아군 3명도 함께 배치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그렇다고 러시아가 북한군을 ‘동맹군’으로 대우할 성싶지 않다. 우크라이나는 전장 환경이 한반도와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현지적응할 시간도 없이 바로 북한군을 쿠르스크로 보낸 것을 보면 그렇다.
러시아는 북한군을 죄수로 꾸려진 형벌대대(Storm-Z)처럼 써먹으려는 듯하다. 형벌대대는 10~15일 기본적 훈련만 받고 바로 전투에 나간다. 적의 사격을 유도해 우크라이나 방어진의 위치를 드러내는 게 임무다. 그래서 생존율은 7%다.
국가정보원은 러시아 파병 병력이 ‘폭풍군단’ 또는 ‘11군단’이라 불리는 특수부대가 중심이라 분석했다. 그러나 앳된 모습의 파병 북한군은 소속만 특수부대지 실제는 경보병으로 보인다. 유사시 두발로 산을 타고 한국 후방으로 침투해 교란전을 펴는 부대다. 그래서 중화기가 없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은 평원에서 참호를 파고 화력을 주고받는 소모전이다. 드론이 늘 날아다니면서 감시하고 공격하는 21세기 전쟁이다. 북한군이 참호를 박차고 나가면 바로 우크라이나의 포화를 뒤집어쓰기에 십상이다.
방종관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전력개발센터장은 “북한군이 파병 규모를 늘려도 ‘알보병’이라 보급은 물론 화력도 러시아에 계속 의존해야만 한다”며 “러시아가 북한군을 챙겨줄 여력도, 의사도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병 쉬쉬하는 북한의 속사정
그래서인지 파병 여부에 대해 북한은 “그러한 일이 있다면 국제법적 규범에 부합되는 행동”(외무성 입장)이라고 흐리터분하게 둘러댔다. 국정원에 따르면 북한은 내부적으로 파병 소식을 쉬쉬하고 있다. 군 장교의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장병에게 “훈련을 간다”고 가족에게 거짓말하라고 지시했다. 파병 장병의 가족이 오열해 얼굴이 상하자 이들을 다른 곳에 격리했다. 그래도 알음알음 퍼져 “왜 남의 나라에서 희생해야 하나”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남북 고위급 군사회담 대표를 지낸 문상균 서울사이버대 교수는 “북한이 최근 무인기로 트집을 걸고 남북 연결로를 폭파하면서 긴장감을 높여 내부를 단속하려는 것 같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고 북한군 희생이 커지면 북한 체제가 동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러시아 파병은 김정은에게 도박이다. 러시아라는 뒷배를 얻어 독재 체제를 지킨다는 데 크게 걸었을 것이다.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돼 우크라이나 전쟁을 조기에 종식한다면 승산이 높아진다고도 생각했을 것이다.
김정은이 딸 판돈을 줄이는 데 우리의 대응 전략이 시작한다. 북한 내부에 파병 소식을 널리 알리고, 파병 북한군을 상대로 심리전을 벌여야 한다.
또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더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무기 제공도 방법이다. 러시아가 윽박지르지만, 한국을 내치는 게 쉽지 않다. 종전 후 경제를 되살리려면 러시아는 한국에 손을 내밀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적극적 관여는 나토를 우군으로 끌어올 수도 있다. 전경주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나토는 북한 파병으로 한반도 상황을 유럽의 안보와 동조화할 필요성을 인식했다”고 말했다.
이제 북·러 야합은 한국의 실존 위기다. 냉정하면서도 단호한 대응이 답이다.
중앙일보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
10-31 ‘러 용병’ 쉬쉬 김정은, 한국이 北 주민에게 실상 알려야
북한이 비밀리에 러시아에 보낸 1만여 병사의 일부가 우크라이나 영토에 진입했고, 교전을 개시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파병 후 북한 내부 동향이 심상치 않은 듯하다. 국가정보원은 29일 비공개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왜 남의 나라를 위해 희생하느냐, 강제 차출될까 걱정된다는 등 주민과 군인 동요가 감지된다”고 보고했다. 북한 당국이 파병 소식 전파를 막기 위해 장교의 휴대전화 사용 금지 및 차출 부대 병사 입단속을 하고 파병 군인 가족에겐 훈련을 간다고 거짓 해명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북한은 파병을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했으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시인한 뒤에야 “파병은 국제 규범에 합당하다”고 입장을 바꿨다. 그러나 공식적인 파병 의식조차 없이 러시아 군인인 양 위장해 쉬쉬하며 보낸 것은 김정은도 정당하지 못한 ‘용병’임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북한의 방첩기관인 보위성은 주민 동요를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 소식 유포자 색출 작업까지 시작했다고 한다. 북한이 숨기려 할수록 김정은의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 부당성을 주민들에게 알리고, 북한군이 러시아의 총알받이가 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전파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좀 더 체계적인 방식으로 북한군의 참전 및 사상자 상황 등을 실시간 북한에 전파해야 한다. 그간 탈북자 중심 단체들이 김정은 체제 비난 전단을 북한으로 보냈지만, 북한 주민이 대러 파병 문제점을 깨닫도록 정보를 들여보내 파병이 김정은 체제의 동티가 되도록 해야 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30일 북한의 대러 불법 파병을 의제로 회의를 소집했고, 유럽의회에서도 ‘유럽에 대한 북한의 공격’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런데도 국회는 북한의 러시아 파병 규탄 결의안조차 못 낸다. 여당의 규탄 결의안과 달리 더불어민주당은 파병한 북한보다 정부 비판에 열을 올리는 결의안을 내 조정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대체 어느 나라 정당인지 의심스럽다.
문화일보 사설
10-31 [속보]한미, 北파병에 경고…韓 “총알받이”·美 “주검으로 돌아갈 것”

▲황준국 주유엔 대사, 유엔TV 캡처
황준국 대사 “파병 北병사 월급 김정은 주머니로 갈 것…연민 느껴”
美 대표 “북한군 파병, 유럽 넘어 인도·태평양 안보 중대 위협”
러 “나토는 우크라 지원, 러 동맹은 왜 못하나”…北 “러 안보 위협시 대응”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30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개최한 회의에서 한국·미국 정부 대표와 러시아·북한 정부 대표가 북한의 러시아 파병을 놓고 거센 공방을 벌였다.
안보리는 이날 우크라이나 평화와 안보 유지를 주제로 최근 북한의 러시아 파병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열렸다.
황준국 주유엔대사는 이 자리에서 북한의 러시아 파병에 대해 “북한군은 정당한 군사 목표물이 돼 총알받이 신세가 될 우려가 있고, 병사들이 러시아로부터 받아야 할 돈은 김정은의 주머니에 들어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황 대사는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 장병에 대해 “같은 한민족으로서 이들에게 개인적으로 연민을 느낀다. 이들이 휴전선 이남에서 태어났다면 훨씬 더 좋은 삶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자국민을 소모품으로 사용하는 북한 정권은 결코 용서받아선 안 된다”라고 비판했다.
황 대사는 북러 간 군사협력은 북러 간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에도 불구하고 불법이자 다수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것이라고 강조하며 “북러 간 전례 없는 군사협력으로 유라시아 동서 양쪽의 지정학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한국은 국제 사회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불법적인 북러 군사협력에 단호하게 대응해 나가고 상황 발전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버트 우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북한군이 전장에 투입된다면 이는 갈등의 심각한 확산을 의미한다”며 “또한 러시아가 점점 절박해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가 이란과 북한에 점점 더 군사적으로 의존하면서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며 “특히 인도·태평양 지역과 중동 지역을 위협하는 북한과 이란의 능력이 재앙적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세르히 올레호비치 키슬리차 우크라이나 대사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북한 병사들은 현대전에서의 경험을 가지고 북한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우리 모두 평양의 정권이 이 경험 많은 부대를 어떻게 활용할 계획인지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안보리가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존재로 움직일 수 없다면 다른 형식과 행동 방식을 찾아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반면 북한과 러시아 정부 대표는 북한군 파병을 명시적으로 확인하지 않으면서도 파병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나서 사실상 파병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북한군 파병에 대해 “놀랄 필요가 없는데 그것은 모두 거짓말이기 때문”이라며 “서방은 국제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키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동맹국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정권에 군사력과 정보를 지원할 권리가 있는 반면 러시아의 동맹국은 비슷한 일을 할 권리가 없다는 논리를 모두에게 강요하고 있는가 질문을 던지고 싶다”라며 북한군 파병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네벤자 대사는 이날 서방측 대표의 발언 도중 휴대전화를 보며 딴청을 피우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날 회의에선 북한 유엔 대표도 참석해 러시아의 주장을 거들었다.
김 성 주유엔 북한 대사는 이날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미국과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다양한 전차, 전투기 등 다양한 군사장비를 공급을 확대해왔다”며 “중요한 점은 우크라이나가 지난 6월 러시아 영토를 향해 미사일 공격을 시작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과 러시아는 정치, 경제, 군사 및 문화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양자 관계를 발전시킬 권리가 있고, 이는 북러 조약에 따라 국제법상 규범에 완전히 부합한다”며 “만약 러시아의 주권과 안보 이익이 미국과 서방의 지속적인 위험한 시도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면 우리는 그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김 대사의 발언이 끝나자 우드 미 차석대사는 답변권을 행사, 북한의 러시아 파병을 언급하며 “이런 (안보) 불안정 행위들은 유럽뿐만 아니라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고 거듭 우려했다.
이어 “만약 북한군이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진입한다면 그들은 확실히 주검으로 복귀(return in body bags)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미로슬라우 옌차 유엔 사무차장보는 이날 회의에서 북한의 러시아 파병에 대해 “유엔은 이 같은 발전에 대해 추가적인 세부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제기된 주장이나 보고를 검증하거나 확인할 위치에 있지 않다”라면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확전과 격화로 이어질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삼가해 줄 것을 관련 당사자 모두에 촉구한다”라고 말했다.
문화일보 박준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