危機의 韓半島(外交) 2024-08/ 08.03 ‘제2의 공자학원’ 차하얼학회의 실체 - 08-28 ‘핵재처리 권한’ 한미 협의 나설 때다
危機의 韓半島(外交) 2024-08/
08.03 ‘제2의 공자학원’ 차하얼학회의 실체
“한국 고위층과 中 연결하는 ‘박사’ 브로커 있다”(김상순 차하얼학회 고급연구위원)
⊙ “공공외교 명분으로 공산당의 통일전선 활동을 펼치는 조직”(신원식 국방부 장관)
⊙ “기자 신분으로 접근해 인계철선 정보 묻기도”(前 국방부 산하 기관 연구원)
⊙ “(차하얼학회 관련 논란이) 너무 많이 알려져서 한 걸음 물러선 상황”
⊙ “민간의 탈을 쓴 국가 기관”(국내 차하얼학회 관계자)
⊙ “공자학원은 각 지역을 대상으로 통일전선 공작을 펼치는 곳인데, 차하얼학회는 우리나라 지도층 인사들을 대상으로 삼아”
⊙ “접촉 어려운 중국 측 관리, 정부 인사, 유명 학자를 찾을 때 차하얼학회 통하면 착착 연결”(차하얼학회 행사 참석 학자)
⊙ “中 학술 단체들, 명승지에서 학술회의… 향응 베풀고 기술 정보 등 빼내”(중국 공산주의청년단 고문)

▲2019년 11월 8일 연세대학교 새천년관에서 연세-차하얼연구소(Yonsei-Charhar Institute) 개소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 추궈홍 주한 중국 대사 및 한팡밍 차하얼학회 회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사진=뉴시스
“확실히 뭔가 리포트를 쓰려고 한다는 걸 느꼈어요.”
제20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현재는 한중안보평화포럼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백승주 전(前) 의원은 중국에서 한국으로 진출한 ‘학회’ 대표와 자주 소통했다. 국방부 차관을 역임한 그는 지난 2022년 차하얼학회와 안보 분야 업무협약(MOU)을 맺은 바 있다. 백 전 의원에 따르면, 이 학회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조언까지 할 정도로 확실한 외교 채널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중국 ‘차하얼학회(察哈爾學會)’ 얘기다.

▲제20대 국회의원을 지낸 백승주 한중안보평화포럼 이사장. 사진=조선DB
그런데 이 학회, 단순히 소통 창구 역할을 하는 데 그쳤을까. 기자가 접한 국내외 차하얼학회 내부자들을 비롯한 중국 전문가들은 차하얼학회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스럽다는 목소리를 냈다. 중국 본토에서 차하얼학회 고위 연구원을 지낸 한 학자는 “차하얼학회는 진출한 나라의 고위층과 접촉해 첩보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한국 내 차하얼학회 한 현직 관계자는 “오히려 차하얼학회처럼 대놓고 통일전선 공작을 펼치는 게 상대국 입장에선 차라리 더 나을 수도 있다”고 털어놨다.
차하얼학회 내부 관계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입을 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취재에 응한 이들은 이 사안과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직책에 현직으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부는 자신의 신분으로 인해 외교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하며 익명을 요구해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통일전선조직

▲중국 차하얼학회 로고. 사진=차하얼학회
차하얼학회. 생소한 이름이지만 크고 작은 뉴스에 자주 등장하곤 했다. 지난해 6월 국내 언론 매체들은 차하얼학회에 대해 ‘통일전선(統一戰線·필요할 땐 누구와도 손을 잡되, 주도권은 공산당이 갖는 전술) 공작 조직’일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이때 차하얼학회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건, 이 무렵 싱하이밍(邢海明) 당시 주한 중국 대사의 막말 파문으로 한중(韓中) 관계가 얼어붙은 와중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중국 차하얼학회를 방문했기 때문이다.
그해 6월 15일 《문화일보》는 차하얼학회를 “표면적으로는 해외 정·재계 인사나 학자들과 교류를 도모하는 학술 단체지만, 실제로는 무려 9000만 명 이상의 당원을 가진 중국 공산당이 외국에서 통일전선 활동을 벌이는 조직”이라고 보도했다. 같은 해 6월 16일 MBN은 차하얼학회에 대해 “해외 정·재계 인사나 학자들과 교류를 도모하는 학술 단체지만, 공공외교를 명분으로 공산당의 통일전선 활동을 펼치는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고 전했다. 당시 국회의원 신분이었던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차하얼학회는 공자학원하고 똑같이 중국의 통일전선전술의 선전기구”라고 했다.
차하얼학회가 중국 공산당의 관영 선전 기관이라는 주장은 유럽 국가들과 미국을 비롯해 그간 중국 공산당의 각종 공작에 시달려온 호주에서도 나왔다. 클라이브 해밀턴(Clive Hamilton) 호주 찰스스터트대학 교수가 공동 집필한 저서 《보이지 않는 붉은 손》에 차하얼학회가 언급된다. 해당 부분을 발췌했다.
〈차하얼학회는 ‘초당적 비정부적 싱크탱크(두뇌 집단)’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학회의 설립자 한팡밍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외교 위원회 부주석이다. 그는 통일전선 공작 기구인 중국 인민 대외 우호 협회와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연구 센터에서도 직함을 갖고 있다. 차하얼학회가 독립 기구라는 주장은 사실을 호도한다. 이 학회는 당 기관과 관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 공산당이 싱크탱크를 통제한다는 게 정책 문서에 명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싱크탱크는 당 지도부를 받들고, 싱크탱크를 관리하는 당을 지지해야 한다. 국가 지침에 따르면 싱크탱크는 당과 정부의 의사 결정에 봉사한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활동을 수행해야 한다.〉(358쪽)
“국정원 요원 만나면 안전부에서 찾아와”

▲차하얼학회 고급연구위원 김상순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박사(왼쪽)와 한팡밍 차하얼학회 회장(오른쪽). 사진=김상순 박사
그런데 차하얼학회 안팎의 관계자들을 취재한 결과, 중국 공산당이 학계에 뻗는 손길은 알려진 것보다 노골적이고 과감했다. 먼저, 중국 본토에서 차하얼학회 고위 연구원으로 활동하다가 한국으로 귀국한 김상순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박사의 얘기다. 김 박사는 현직 차하얼학회 고급연구위원이다.
7월 10일 만난 그는 “베이징에 있을 때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찾아왔다”며 “국정원에서 왔다 가면 안전부(중국 국가안전부) 요원들이 찾아온다”고 했다. 김 박사의 경험담은 ‘중국의 싱크탱크는 당의 관리 감독을 받는다’는 앞의 책 주장과 합치했다.
“제가 차하얼학회에 소속돼 있고, 중국 TV 토론에 나가서 국제 정치 관련 이야기를 하고 현지 주요 매체에 기고도 하다 보니 국정원에서도 저를 주시했나 봐요. 그렇게 국정원 요원들이 찾아오고 나면 중국 국가안전부에서 ‘웨탄(約談·면담)’ 형식으로 찾아와서 저를 조사했어요. 제가 양쪽 정보 기관에 우스갯소리로 ‘너 가면 쟤 오고, 쟤 가면 너 오니까 이럴 거면 다 같이 만나자’고 했을 정도니까요. 그리고 안전부에서 제 노트북이나 휴대전화 들여다보는 거 뻔히 아는데 왜 자꾸 찾아오는지 모르겠다고 양쪽 정보기관에 항의했어요.”
이에 대해 해외 파견 경험이 있는 전직 정보 기관 요원은 “중국은 개인의 휴대전화, PC 등을 다 들여다볼 수 있어 중국 내에서 국정원 요원이 왔다 간 걸 알고 국가안전부에서 찾아오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시 김 박사에게 물었다.
― 안전부 요원들이 와서 뭘 물어보던가요.
“저한테 ‘이런 칼럼을 썼던데, 이 내용 중에 이건 무슨 뜻이냐’고 물어봐요. 그러면서 ‘그냥 궁금해서, 혹은 의견을 좀 듣고 싶어서 그런다’고 하더라고요.”
― 한국에 왔을 때도 안전부 요원들이 찾아오던가요.
“네, 저를 담당했던 안전부 요원이 2019년쯤 자기 상사를 데리고 왔었어요. 그 사람들은 제가 어느 나라에서 무슨 활동을 했고, 어디서 뭘 했고, 심지어 제가 잊어버렸던 것까지 쫙 다 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전부가 저만 감시하던 게 아니더라고요.”
― 그러면요.
“안전부 요원이 ‘서울에 왔다’면서 저한테 ‘한팡밍 회장이 여기(서울)를 왜 왔는지, 누가 데리고 왔는지 등을 위챗(중국 메신저)으로 물었어요. 그래서 저는 모른다고, 그 사람이 어디를 가든 저는 관여를 안 하고, 전담하는 다른 사람이 있다고 했죠. 나중에 제가 한팡밍 회장 밑에 비서장, 사무총장한테 ‘(안전부에서) 너네 다 조사하고 다닌다’고 얘기해줬어요.”
김상순 박사의 말에 따르면, 국가안전부 요원은 그를 3년 정도 ‘마킹(담당)’해 감독했다고 한다. 해당 요원은 이화여대 어학당에서 2년 동안 연수를 받은 중국인 여성으로, 한국어는 떠듬떠듬 구사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동남아 쪽으로 활동 영역 늘리려는 움직임 보여”
이처럼 차하얼학회가 사실상 중국 공산당 관영 기관이라는 점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보는 내부 관계자도 존재한다. 한국 내 차하얼학회 관계자 R씨는 “통일전선 공작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차하얼학회처럼 이렇게 대놓고 활동하는 게 상대국 입장에선 좋을 수 있지 않으냐”고 주장했다. 그는 차하얼학회에 대해 “민간의 탈을 쓴 국가 기관”이라고 주장했다.
“저는 오히려 통일전선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차하얼학회처럼 이렇게 대놓고 (공작 활동을) 하는 게 상대국 입장에서 더 좋을 수 있다고 봐요. 만약에 중국이 이런 걸 비밀리에, 비공식 조직이나 스파이를 통해 통일전선 공작을 펼친다면 그들이 뭘 하는지 파악하기가 더 어렵거든요.”
국내 차하얼학회 관계자 R씨도 “중국이 우리(한국) 측 인사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접촉하고, 어떤 얘기를 나누고, 어떻게 회유하는지를 비밀스럽게 한다면 우리 입장에선 더 대응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면서 “냉정하게 보면, 이러한 활동을 막는 게 더 손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R씨는 “우리가 차하얼학회를 궁지에 몰아서 중국이 공공외교 사업을 접는다고 해도 중국이 우리를 향한 통일전선 공작을 안 할 건 아니”라며 “그렇게 되면 지난해 ‘동방명주 사건(한국 내 중국 비밀경찰서 논란)’처럼 음지화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차하얼학회의 활동을 늘리는 주요 타깃 국가들 가운데 우리나라도 포함됐다. 최근엔 동남아시아 쪽으로 활동을 늘리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하얼학회를 이렇게 소개했다.
“말로는 차하얼‘학회’죠.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학회(學會)는 아니에요. 이름만 학회라고 단 것뿐이에요. 영어로 표기된 차하얼학회 이름을 보세요. ‘더 차하얼 인스티튜트(The Charhar Institute)’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입장에선 ‘학회가 왜 저런 활동을 하지’라며 오해할 수 있어요.”
올해 들어 활동 줄어
R씨에 따르면 한국 내 차하얼학회는 현재 활동을 줄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학회 관련 보도는 2023년 6월 민주당 의원들의 방문 소식 이외엔 눈에 띄는 게 없다. 그 이전엔 포럼을 열거나 대학에 도서를 기증하고 종교계 관계자를 만나는 등 크고 작은 소식들이 전해졌다. 지방자치단체장들도 여럿 만났다. 한팡밍 회장이 만난 지자체장들은 김동연 경기도지사(2022년 7월), 정명근 화성시장(2023년 4월), 김동근 의정부시장(2022년 7월) 등이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한국 내 지자체와 대학 등에 마스크를 10만 장 단위로 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잠잠하다.
이에 대해 R씨는 “차하얼학회의 한국 내 활동이 기존 대비 줄어드는 것 같다”며 “지난해까지는 전투적으로 많이 (활동)했지만 올해 들어 눈에 띌 만한 활동은 없다”고 설명했다. 또 “차하얼학회에 대해 한국에서 많은 논란(공작 의혹 등)이 있는 걸 차하얼학회 측에서도 모르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 교수는 “중국 측에서도 차하얼학회를 둘러싼 한국 측의 우려를 충분히 알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강 교수는 6월 2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차하얼학회의 최근 동향에 대해 “중국도 차하얼학회 관련 논란이 너무 많아 이 학회를 통한 교류를 일단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요즘 약간의 한중 관계 소통 분위기가 태동하는 가운데 다양한 형태의 학술 교류가 시작된 분위기”라며 “특히 대학 부설 연구소들과 일부 싱크탱크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고 했다. 또 “기본적으로 학술 교류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정치적 측면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의외의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선 연세대학교가 2019년 11월 교내 중국연구소 부속 연구소로 차하얼연구소를 개소한 이래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는 중국 차하얼학회가 처음으로 외국에 진출한 사례다. 연세대 차하얼연구소 관계자는 6월 2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차하얼연구소는 연세대 중국연구원 안에 소속되어 있는 부속 연구소”라며 “현재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 차하얼학회 회장은 차관급
다만 학회가 활동을 줄인 이유에 대해 R씨는 한팡밍 회장이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 겸 부주임직에서 물러나게 된 영향이 큰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팡밍 회장이 지난해까지 맡았던 이 직급은 우리나라로 치면 차관급에 해당한다. R씨는 정협 부주임이 한국에서 차하얼학회를 이끌게 된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중국에서 정협은 일종의 공산당 자문기구예요. 정협은 다른 나라에 중국의 국가 핵심 이익이 무엇인지 입장을 전파하고 설득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 중국에서 공산당과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거고요. 그래서 차하얼학회를 통해 ‘우리 공산당의 기본적인 입장은 이렇다’라든지, 사드 배치 문제가 불거졌을 땐 ‘한중 관계가 이렇게 경색돼선 안 되니 차하얼학회를 통해 소통의 물꼬를 트겠다’고 하는 거죠. 그 소통 역할을 중앙 정부가 나서서 할 순 없으니 민간이라는 탈을 쓴 국가 기관이 나서는 겁니다. 차하얼학회 구성원을 보면 전·현직 정협 위원과 전직 외교부 간부들이 한 축을 이루고 있어요. 물론 중국 내 저명한 국제관계학 교수들이 소속돼 있기도 하지만 그 사람들은 실질적인 활동을 하진 않고 이름만 올려놓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서두에서 언급한 백승주 전 의원은 7월 1일 통화에서 한팡밍 회장을 만난 소감에 대해 “자주 소통했는데 한팡밍 회장이 정협(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물러나고 연락이 없어서 지금은 (소통이) 뜸하다”고 했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는 차하얼학회의 최근 동향에 대해 “요즘은 왕성하게 활동하지 않는다”면서 “(차하얼학회) 지도부에 변화가 생긴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관련 학계에서도 차하얼학회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서울 소재 사립대학교에서 연구실장직을 맡으며 차하얼학회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는 N씨는 “접촉이 어려운 중국 측 관리, 정부 인사, 유명 학자를 찾을 때 차하얼학회를 통하면 알아서 착착 연결해준다”고 했다. 그는 “차하얼학회는 중국 대사관에서 직접 관리하는 듯하다”며 “차하얼학회와 어떤 행사를 진행하면 곧바로 중국 대사관과 연결이 된다”고 했다. 그가 참여한 차하얼학회 행사도 주한 중국 대사가 직접 방문했다고 한다.
국내 차하얼학회 관계자 R씨도 “차하얼학회를 통해 중국 측 컨택(접촉)에 도움을 받기 쉬운 건 사실”이라며 “차하얼학회가 한중 사이에 가교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사드 배치 논란 이후 소통 창구 역할을 해서 문재인 정부로부터 수교훈장 흥인장도 받았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도 국회의장부터 시작해서 주중 한국 대사, 주요 지자체장들이 한팡밍 회장과의 면담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처럼 만났다”고 덧붙였다.
“학회 등 통해 군사·과학 기술 알아내려 해”
문제는, 중국 정부가 학계를 비공식 외교 루트로 활용하는 정도를 넘어 온갖 정보 영역으로 손을 뻗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6월 28일, 중국 공산당 산하 연구 기관 소속 연구원을 지낸 A씨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A씨는 중국 공산당의 첩보 활동의 당사자라고 주장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제가 직접 당했죠. 말씀드리기 민감한 게 많아요. 우리 정·재계, 학계가 중국에 대해 너무 몰라요. 중국이 국내 주요 인사들을 매수하려고 하는 걸 굉장히 많이 봤고, 그 사람들이 저에게도 직접 찾아와서 그런 시도를 했어요.”
― 그 사람들이라면.
“중국 공산당 쪽 사람들이죠. 세 계통이 있어요. 국내 중국 교류 단체들이 있고, 공산당에서 직접 오는 경우도 있고, 중국에서 온 학자들은 일반적인 학자들이 아닙니다. 공산당에 사전, 사후 보고를 해요. 누구를 만날 때도 사전에 (공산당에) 보고를 해야 하고요.”
국방부 산하 연구소에서 고위 연구원직을 지낸 B씨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중국은 학회와 같은 단체들을 통해 한국의 군사 기술이나 과학 기술들을 알아내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관련 학계에선 최근 중국이 군사 기밀을 탈취하려 했다는 후문이 돌았다. 학계 관계자 C씨는 “얼마 전 우리 쪽 군사 전문가가 기밀 유출 혐의로 자택 압수수색을 당하고 기소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소문의 당사자 L씨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육군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L씨는 7월 7일 통화에서 압수수색과 기소를 당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해당 사안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며 “제 개인적인 실수”라고 해명했다. 또 적용된 혐의가 군 기밀에 관련된 것인지를 묻는 물음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대답했다. L씨에게 적용 혐의가 무엇인지 묻는 문자 메시지를 남겼지만 L씨는 해당 메시지를 읽고 답하지 않았다.
연구원에게 ‘인계철선’ 물어
국방부 산하 기관 연구원으로 재직한 B씨에게도 중국 공산당 정보 요원들이 접근했다고 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중국 측 요원들은 한국 내 중국 언론사 특파원(기자) 신분으로 가장해 정기적으로 찾아왔다고 한다. B씨는 그들의 실명과 소속 언론사까지 밝혔다. B씨에게 물었다.
― 그들이 진짜 기자일 수도 있지 않나요.
“물어보는 내용이 인계철선(引繼鐵線) 같은 예민한 정보들이었어요. 대만에 문제가 생기면 한국이 자동 개입할 것인지도 물었고요. 반대로 제가 그 사람들에게 중국 내부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 물으면 ‘나처럼 힘없는 무지렁이가 뭘 알겠느냐’며 대답을 피했어요. 그리고 그런 걸 물어볼 땐 꼭 선물을 들고 왔어요.”
― 그걸 받았나요.
“아니요. 그때마다 저는 그들에게 ‘왜 자꾸 이런 정보를 묻느냐, 어차피 공산당에 다 보고할 거 아니냐’고 거절했어요. 그리고 ‘대국(大國)이면 대국답게 행동해라’라고 면박도 줬고요. 사실 더 민감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건 밝힐 수 없어요. 다만 그 이후로 저에게 더는 연락이 오지 않았어요. 그리고 국정원 요원 두 명과 중국 파트를 맡는 과장까지 찾아와서 그 기자들 정체를 알려줬어요. 그래서 제가 그들과 일체 연락을 끊었어요.”
― 그 사람들과 얼마나 알고 지냈나요.
“7~8년 정도죠. 처음에 1년 정도는 전임(前任) 특파원이 저와 교류하다가 중국에서 새로 파견된 기자들에게 바통을 넘기더라고요. 그 사람들 10년 이상 한국에 있었습니다.”
명승지에서 학술회의 하는 이유
이밖에도 학계를 통한 중국의 공작 활동 유형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중국 공산주의청년단 외국인 고문을 지낸 H씨의 얘기를 들어봤다. 그는 “중국 학회의 타깃은 외국 기업”이라며 “중국의 학술 단체는 외국 기업이 가진 정치적 자원을 노린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 학회가 여는 연수회 등 행사는 그 나라 기업인과 정치인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연수나 학술 모임을 통해 인맥을 쌓는 거죠. 그런데 중국의 학술 회의는 수도권이나 대도시에서 잘 안 하는 거 아시나요? 명승지(名勝地) 이런 데서 해요.”
― 왜 그런가요.
“학술 대회는 형식적인 거니까요. 제 개인적인 경험입니다만, 1990년대 한중 수교 전후로 ‘한중 지식교류회’라는 모임이 있었어요. 그때 중국이 한국으로부터 통신 기술을 도입하고 싶어했거든요. 그럼 중국에서 통신 인프라 관련한 주제로 학술 대회를 열어요. 그땐 어디서 열었냐면, 장자제(張家界)입니다. 그땐 관광지로 개발되기 전이라서 케이블카도 없었어요. 후난성(湖南省), 장자제 이런 곳에서 2주씩 회의를 해요. 그럼 학술 회의처럼 발표하는 건 그냥 형식적인 거고, 진짜 목적은 저녁에 드러납니다. 그때 양국 기업 임원들과 정치인들이 모이는 거예요.”
― 진짜 목적이라니요.
“최고의 예우를 해서 마음을 사는 거죠. 그때 중국에 넘어간 한국 정·재계 인사들도 많아요. 지금도 이공계 연구자들은 방학 때마다 중국으로 연수를 가는 경우가 많고요. 연구 지원비를 비롯해서 향응이 제공되니까요. 학회가 그 역할을 나서서 하는 거죠. 기업 연수도 비용 다 대주며 중국어 가르쳐준다고 하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죠.”
― 구체적으로 어떤 향응이 제공되나요.
“후난성 대표 도시가 창사(長沙)예 요. 그곳에서 유흥업소 접대부를 데려옵니다. 그렇게 술과 유흥 환경을 만들어놓고 한국의 이공계 전문가들이나 정치적 결정권이 있는 사람들을 불러요. 그 사람들을 위해 아예 기차를 대절(貸切)하기도 하고요. 물론 비용은 중국 학술 단체들이 부담합니다. 그렇게 호감을 사서 정보를 빼가는 거죠. 지금 중국 공산주의청년단 핵심 주임이 회족(回族·돌궐족)인데 그 사람한테 제가 ‘한국에서 기술 빼가는 거 너무 심한 거 아니야?’라고 얘기했더니 그냥 웃고 마는데, 그건 인정한다는 뜻 아니겠어요?”
“산둥(山東) 지역을 주시해야”
중국 차하얼학회 고급연구위원인 김상순 박사도 “산둥성은 대도시에 비해 재정과 인력이 부족하다”며 “그곳 관리들도 지방에서 성과를 내야 중앙 정부로 진출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전부를 통해 첩보전을 벌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알음알음 학계를 통해 이공계 전문가들과 닿게 되면 연구비를 대주고 초청해서 처음엔 간단한 학술 활동을 한다”고 했다. 이어 “1단계에서 연구비 명목으로 돈을 찔러준 다음에 반응을 보고 약점을 잡거나 자기네 편으로 넘어올 것 같으면 푸시해(밀어붙여)본다”며 “그때 돈을 받고 객원 연구원이나 초빙 교수 등의 제안을 수락하면 코를 꿰이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김상순 박사는 1990년대 초반 당시 굴지의 국내 모니터 제조업체의 중국 지사 설립 멤버이기도 했다. 김상순 박사는 산둥 지역에 위치한 중국 대학들 이름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산둥성 자체에 있는 거의 모든 대학엔 국가안전부 소속 요원들이 다수 배치돼 있다”며 “중국과 별다른 접점이 없었던 우리나라 전문가가 산둥 지방에 있는 대학의 객원, 초빙 교수 등의 타이틀을 갖고 있다면 그 사람들 신상 정보는 중국에서 이미 털어갔다고 의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공자학원만큼 위험한 곳”\

▲공자학원실체알리기운동본부는 공자학원은 물론 차하얼학회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높이고 있다. 왼쪽 끝이 한민호 대표.
한민호 공자학원실체알리기운동본부 대표(전 문화체육관광부 미디어정책관)는 6월 2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공자학원은 각 지역을 대상으로 통일전선 공작을 펼치는 곳인데, 차하얼학회는 우리나라 지도층 인사들을 대상으로 공작을 하는 곳”이라며 “공자학원만큼 위험한 곳이 차하얼학회”라고 했다. 한 대표는 “국내 대학의 공자학원 원장과 단둘이 만났다”며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학 측에서도 교내 차하얼연구소에 잘 관여하지 않는 듯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실상 독립적으로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해당 대학 차하얼연구소 원장에게 이틀에 걸쳐 두 차례 통화를 시도하고 취재를 요청하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겼지만 회신은 오지 않았다.
중국이 학계를 통해 공작을 펼치는 과정에 대해 김상순 박사는 “한국의 박사 타이틀을 단 정치 브로커가 학계를 통해 중국 측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며 “지금도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중국 관련 학자 C씨는 몇몇 학자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정·재계 고위 인사들과 중국의 연결책 역할을 맡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들 중 한 명은 중국 정부와도 긴밀히 연락을 주고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한편 김상순 박사는 이 문제에 대해 처음 입을 연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우리나라 정치인들, 정신 차려야 해요. 중국은 예전부터 첩보전을 펼쳐왔는데 지난번 동방명주 사건 때 국정원에서 저에게 관련 정보를 요청했어요. 그래서 연계된 조직들을 쭉 말했죠. 화교(華僑) 단체 위주로 이쪽을 살펴봐야 한다고. 그런데 중국의 첩보 활동은 어쩔 수 없어요. 어떻게든 할 테니까요.”
이와 관련해 주한 중국 대사관 관계자에게 질문을 보냈다. 지난 6월 28일 이 관계자에게 ▲차하얼학회를 통한 ‘공작 논란’에 대한 입장 ▲차하얼학회가 중국 정부의 관영 단체인지 여부 ▲주한 중국 대사관과 한국 차하얼학회의 협력 관계 등을 물었지만, 앞서 기자의 다른 취재에 응했던 이 관계자는 질문을 읽고 답하지 않았다.⊙
월간조선 08월 호 글 : 김광주 월간조선 기자 kj961009@chosun.com
08-06 한반도 ‘지정학적 재편’ 직시할 때다
박영준 국방대 국가안보문제연구소장
21세기 강대국들도 영역 설정
근세 및 20세기 냉전시기처럼
국가목표 추구하는 본질 불변
中은 ‘9단선’으로 영향력 확대
일본에선 서태평양연합 대두
한국도 상응한 전략 수립해야
미국의 안보전문가 가운데 한 사람인 앤드루 크레피네비치 박사가 최근 외교전문 저널 포린 어페어스에 흥미로운 에세이를 발표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냉전 시기 미국은 서유럽에 대한 소련의 지상군 공세 가능성에 대응하여 육군과 공군 전력이 결합하는 공지전(空地戰) 전투 교리를 개발했고, 해상에서는 그린란드-아이슬란드-영국을 잇는 이른바 GIUK 방어선을 형성해 소련 잠수함의 대서양 진출을 차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21세기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해 미국이 냉전 시기와 같은 전략적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국 내 대중 강경론의 핵심 싱크탱크이기도 한 허드슨연구소 소속인 크레피네비치 박사의 주장이 미국 안보정책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고 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역사적으로 강대국들이 자신의 국가이익이 확보돼야 할 지정학적 영역을 은연중에 설정하면서, 국가목표를 추구해 왔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일본이 대륙 진출 정책을 추진할 무렵,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총리는 의회 연설을 통해 일본이 방어해야 할 영역이 일본 본토에 해당하는 주권선과 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곽의 이익선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이익선에 해당한다고 본 한반도에서 청국의 종주권적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청일전쟁을 도발했고, 이어 러일전쟁도 일으킨 바 있다.
1930년대 후반 미국은 일본이 아시아에서 중일전쟁을 도발하고,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정권이 유럽에서 체코 수데테란트 등을 병합하자, 그간의 고립정책을 벗어나 자국의 안보와 국가이익을 방어하기 위한 보다 광범위한 지정학 전략을 구상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는 해리 야넬 제독 등의 건의를 수용해, 대서양·태평양 방면에서 독일과 일본의 세력확장 대응용으로 해군 전력을 대폭 증강하고, 외교적으로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과 협력하는 ‘레인보우 플랜’을 수립한 것이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유럽 전선과 태평양 방면에서 동시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은 대체로 이 플랜에 따른 것이었다. 냉전기 미국은 다시 소련 공산주의 세력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아시아에서는 애치슨 라인과 같은 방어선을 설정했고, 유럽에서는 크레피네비치가 언급한 GIUK 라인을 그렸다. 한반도가 그 지정학 구상의 영향 아래 놓였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1세기 신냉전 상황에서도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은 지정학적으로 자신들의 국가이익과 안보가 확보되어야 할 영역을 설정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군사력 증강과 외교 네트워크 확대의 경쟁을 추구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서태평양 방면에서 제1도련선과 제2도련선을, 남중국해에서는 이른바 9단선을 설정하고,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최근 일본에서도 동맹국인 미국을 지원하면서 중국을 억제하려는 지정학적 구상이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해상자위대 자위함대 사령관을 지낸 고다 요지(香田洋二) 제독은 중국의 야심적인 해양 진출에 대응하기 위해 쿼드(Quad) 국가들이 방어해역을 분담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즉 일본 해상자위대는 오키나와에서 필리핀까지 이어지는 해역을, 미국은 필리핀 남동방 해역을, 호주 해군은 인도네시아와 호주 사이 롬복 해협을, 인도는 말라카 해협과 순다 해협의 방어를 각각 담당하자는 것이다. 기타오카 신이치(北岡伸一) 도쿄(東京)대 명예교수는 일본 주도 아래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태평양 도서국가들을 규합한 서태평양 연합을 구성하자는 제안을 내놓은 바도 있다.
이 같은 주장과 제안들이 실제 미국이나 일본, 호주, 인도 등 쿼드 국가들 사이에 어느 정도 수용되고 공식적인 정책으로 채택되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강대국 간 전략적 경쟁 시대에 주요 국가들이 지정학적 구도의 재편 구상을 논의하고 있는 점을 주시하면서 그 구상들이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 것인가 숙고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국가이익이 확보될 수 있는 지역 질서 구상이나 안보 전략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문화일보 사설
08-08 ‘재일교포 강제 북송’ 인권 차원에서 해법 찾자는 제안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가 6일 재일교포 강제 북송에 대해 “북한 정권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에 의한 인권 유린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피해자 보호 조치를 권고했다. 늦었지만 의미 있는 일이다. 진실위는 북송 관련 공문서와 외교 전문 등을 통해 이같이 판단하면서, 일본 정부 및 일본 적십자사에도 책임이 있다고 적시했다. 조총련뿐아니라 일본 정부에도 북송 재일교포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한 것이다.
재일교포 북송은 1959년 시작되어 25년간 9만3340명이 원산 등으로 보내졌다. 한국의 반발에도 지속된 것은 노동력이 부족한 북한, 무국적 상태인 240만 명의 재일교포를 부담스러워 한 일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측면이 크다. 조총련은 자발적 선택이라고 하지만 상당수가 속았음을 알고 일본으로 되돌아오려 했음에도 그럴 수 없었다는 점에서 강제 북송임은 물론 유인·납치의 성격도 있다.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도 2014년 보고서에서 재일교포 북송을 납치·강제실종 범죄로 분류했다.
재일교포의 일본인 부인 1831명도 피해자라는 점에서 일본 정부도 직접적 피해 당사국이다. 지난해 일본 고등법원은 북송 피해자 4명이 제기한 소송에서 “관할권이 일본에 있다”고 판결, 조총련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길도 열렸다. 국내에서도 지난 3월 북송 재일교포 출신 탈북자 5명이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북송 교포 문제를 인권 문제에서 접근하는 것은 친일·반일 시비도 극복할 좋은 해법이다. 당장은 북송 교포와 후손의 생사확인 및 자유왕래 등을 위해 한·일 정부와 유엔이 함께 노력할 때다.
문화일보 사설
08.10 동맹? 비용을 지불하세요!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핵심 참모들과 함께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맨 왼쪽부터 크리스 라시비타, 수지 와일즈 트럼프 캠프 공동선대본부장, 트럼프, 공보 담당 제이슨 밀러 등. /로이터 뉴스1
지난 한 달간 미국 대선판을 뒤흔든 사건 현장에서 트럼프 핵심 참모들과 대화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제도권 정치를 혐오하는 이들을 워싱턴 정가에서 마주치긴 쉽지 않았다. 트럼프 의중을 가장 잘 파악한다고 평가받지만, 미 주류 매체들과도 인터뷰를 하지 않아 베일에 가려진 인물들이다. 바이든의 후보 사퇴를 초래한 TV 토론장, 총알을 피한 트럼프가 대관식을 치른 공화당 전당대회장 등에서 이들을 만나 질문을 쏟아냈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다시 만날 것인가, 여전히 주한 미군을 철수하고 싶어 하나, 한국의 핵 무장을 용인할 의향이 있는가.
그런데 답변이 불분명하거나 중구난방이었다. 중국, 유럽 문제엔 거침없이 명쾌한 답변을 내놓던 이들이 한국 질문을 받자 얼버무리기 시작했다. 트럼프 2기 외교·안보 사령탑으로 유력 거론되는 한 인사는 기자와 인터뷰를 약속했다가, 예상 질문지를 받은 직후 ‘무기한’ 연기하자고 했다. 애초에 북한 문제 등을 두고 트럼프와 진지하게 상의하거나 방침을 정한 적이 없는 듯했다.
이들이 입을 맞춘 듯 반복한 단 한 가지 주제가 있었다. 트럼프와 김정은 간 친분이었다. “트럼프의 외교 능력 덕분에 한반도는 지금보다 훨씬 안전했다”는 식이었다. 북한 문제에 대한 이들의 인식은 여기까지다. 트럼프 진영 내부에 합의된 한반도 정책이란 건 역시 없다는 게 최근 내린 결론이다. 트럼프 2기 파고(波高)에 대비해야 하는 우리로선 난감한 상황이다. 결국 2기에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의 ‘충동적 결정’이 한국을 정면 타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트럼프 측근’을 자처하는 인사들이 한국을 안심시키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가 재집권하더라도 양국 관계에 금 갈 일은 없을 거라는 게 요지다. 정말 그럴까. 언론에 보도되는 이른바 ‘참모’들 중 트럼프와 대화 한번 못 해 본 사람도 많은 걸로 안다. 트럼프 2기가 현실화할 경우 그가 휘두르는 ‘아메리카 퍼스트’의 칼날이 언제 유럽에서 한국으로 향할지 모른다. 순간의 판단과 기분에 따라 한국·북한에 어떤 ‘거래’를 들이밀지 트럼프 자신도 모를 수 있다.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는 불확실성을 상수(常數)로 두고 한국 정부는 대비해야 한다.
비교적 확실해 보이는 건 있다. 공화당 전당대회 기간 트럼프 최측근 리처드 그레넬 전 주독 대사가 주요 동맹국인 프랑스 기자와 설전을 벌이는 모습은 상징적이었다. 동맹 간 ‘연대’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기자 말을 중간에 자르면서 “나에게 설교할 생각 말라”고 했다. 그는 “전 세계 어떤 클럽에서 회비 안 내고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느냐”며 “약속된 비용을 지불하면 그만(Simply pay your bills)”이라고 했다. 말 많던 프랑스 기자가 반박하지 못하고 눈을 껌뻑거렸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동맹을 다루는 장면이 그려졌다.
조선일보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08.12 한일 관계, '아킬레스건'에서 '전략자산'으로
작년 국방비 총액 비교하면
한미일 9500억불, 북중러 3230억불
尹정부 대표적 외교 성과는
한일 관계 개선, 한미일로 연결한 것
미국 안보대화체 여럿 있지만
능력과 의지 면에서
한미일 능가할 연대 없어
지속가능성, 결국 한일 관계 달렸다
한·일 관계 개선을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로 연결한 것이 윤석열 정부의 대표적 외교 성과라는 데 한·미·일 여론 주도층 대다수가 동의한다.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한·미·일 안보 협력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11월 미 대선 결과를 기다리기에 앞서 한·일 협력을 공고히 해야 한다. 한·미·일 협력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면, 이를 거부할 미 대통령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한·일 관계는 양국 모두에 ‘아킬레스건’이었다. 그러나 한·일 관계 정상화와 한·미·일 캠프데이비드 정상회담 이후 한·일 관계는 ‘전략자산’으로 변모하고 있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전략폭격기나 전략핵잠수함보다도) 한·일 관계 개선을 한·미·일로 확대해 인도-태평양 지역 내 미국의 리더십 유지를 위한 강력한 전략자산으로 활용했다. 한국의 윤석열 정부와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정부 역시 한·일 관계 개선을 계기로 한·미·일을 역동적 삼각관계로 발전시켰다. 한·미·일 3국은 자유민주적 가치를 공유하고, 첨단 기술 협력을 주도하며, 정보 공유와 공동 훈련 등을 통해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는 미국·일본·호주·인도 간 안보 대화체인 쿼드(Quad), 미국·영국·호주 간 안보 협의체인 오커스(AUKUS),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간 정보 공동체인 파이브 아이스(Five Eyes)와 같은 자유주의적 소다자(小多者) 협력, 그리고 북·중·러 협력과 같은 권위주의적 연대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통합적 ‘능력’과 미래를 향한 ‘의지’ 면에서 한·미·일을 능가할 수 없다.
북한이나 중국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한·미·일 안보 협력은 한·일 관계 개선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한·일 관계 악화로 한계가 있었다. 이제는 한·일 정보 공유나 대북 압박, 3국 무력시위 및 공동 훈련 등이 더욱 촘촘하게 이뤄진다. 작년 8월 캠프 데이비드 합의를 이행하는 차원에서 한·미·일 국방 당국은 다년간의 3자 훈련 계획을 수립했고, 올해 1월 제주 남방 공해상에서 공동 해상 훈련을 실시했다. 북핵 대응과 더불어 서태평양 해양 안보 위협 대응 및 질서 유지를 위한 3자 협력의 신호탄이란 점에서 중국을 긴장케 했다.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2020년 8월 쿼드를 출범시켰을 때 ‘아시아판 나토’라고 맹비난했지만, 이후 일본, 호주, 인도에 대화를 제의하며 미국과의 관계를 벌리려는 이간계(離間計)를 쓰진 않았다. 그러나 중국은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이 개최된 후 작년 말 한·중·일 정상회의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그 결과 금년 5월 서울에서 4년 반 만에 9차 회의가 열렸다. 중국은 한·일이 중국과의 협력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미국에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한·미·일의 2023년 국방비 총액은 9500억달러로 북·중·러의 3230억달러를 크게 상회한다. 중국의 실질 국방비를 공식 국방비의 두 배로 쳐도 북·중·러 국방비(5480억달러)는 한·미·일의 58% 정도다. 2024년 GFP(Global Fire Power) 인덱스에 따르면 미국·한국·일본의 군사력은 세계 1위·5위·7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미 중국이 ‘대양해군(大洋海軍)’을 지향하며 해군 함정 수가 미국을 추월한 상황에서 한·일의 도움 없이 미국이 서태평양 지역에서 패권을 유지할 순 없다. 그리고 미국이 대만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대만해협 유사시 한반도 파급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고, 이 경우 미국은 한국 및 일본과 긴밀한 공조가 필요하다. 한·미·일 안보 협력은 북한은 물론 역내 도전을 억제하기 위해 경제·기술·안보 등 포괄적 힘을 결집하는 ‘통합 억제(integrated deterrence)’ 시스템을 지향해야 한다.
한·미·일은 대만과 함께 반도체 생산 및 공급망 협의를 넘어 4차 산업혁명을 견인하는 기관차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 10대 과학기술 클러스터 중심 도시 중에서 한·미·일에 7개(미국 4개, 일본 2개, 한국 1개), 중국에 3개가 위치한다. 미국이 반도체 생산 분야 ‘월드클래스’인 한국, 일본, 대만의 능력을 버리고 혼자서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독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미·일 모두 경제·기술·안보 능력을 한데 합쳐야 돈도 벌고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 이 점을 한·일 양국의 민·관 지도자들이 함께 미국의 양당 후보 진영과 여론 주도층에 강조하고 설득해야, 차기 미 대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한·미·일 협력이 지속 가능할 것이다.
조선일보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前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08-15 바이든 “대한민국과 함께해 자랑스러워”…세계 각국서 광복절 축하 메시지

▲14일 경기도 화성시 독립운동기념관에 걸린 종이로 제작된 대형 태극기. 기사와 무관한 사진. 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광복절을 맞아 "미국은 대한민국과 함께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양국 관계를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길 기대한다"고 했다.
15일 외교부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전날 기준 미국, 중국, 인도, 교황청, 우크라이나, 사우디아라비아, 부탄, 스리랑카, 투르크메니스탄, 헝가리, 바레인, 벨기에 등 각국 정상들로부터 광복 제79주년 축하 메시지를 접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광복절을 맞아 윤 대통령과 대한민국 국민에게 축하를 전한다"며 "한미동맹은 70년 이상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번영의 핵심축이 되어 왔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간 양국이 민주적 가치를 옹호하고 북한의 무모한 위협에 굳건히 맞서온 데 이어, 이제는 우주·신기술·청정에너지 등 새로운 영역으로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며 "미국은 평화, 안보 및 자유를 위해 대한민국과 함께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양국이 국제사회의 가장 시급한 도전에 함께 대응하면서 양국 국민 간의 끈끈한 유대 관계도 더욱 심화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시진핑 주석은 "양국은 가깝고 중요한 이웃이자 협력동반자"라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양국 관계를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드라우파디 무르무 인도 대통령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한국과 인도 간) 협력은 양국 국민 이익을 확대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과 전후 재건에 참여하겠다고 한 데 대해 사의를 표하고 "윤석열 대통령과 대화를 계속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문화일보 권승현 기자
08.19 미·일 리더십 교체기에 맞는 캠프 데이비드 1년

▲윤석열 대통령이 작년 8월 18일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통령실
한·미·일 3국 정상이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나 3국 안보 공조를 강화하는 동시에 3국 협력의 외연을 넓히고 이를 정례화하기로 합의한 지 1년이 지났다. 이후 3국 안보 협력을 제도화하는 국방 당국 간 문서가 채택되고 최초의 3국 연합 훈련인 프리덤 에지가 실시됐다. 북한 사이버 위협에 대응하는 회의체도 출범했다. 3국 외교·국방장관 회의가 빈번해지고 산업·재무장관 회의체가 발족하는 등 과거 안보 분야에 국한됐던 3국 협력의 영역이 경제·기술 분야로도 확장되고 있다.
어제 3국 정상은 1주년을 맞아 공동성명을 내고 “캠프 데이비드에서 우리가 수립한 원칙은 전례 없는 협력의 로드맵”이라며 “3국 협력은 오늘날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하고, 번영하는 미래의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가 3국 협력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는 과장이 아니다. 우려되는 점은 그 주역 세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이 퇴임을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달 재선 출마를 포기했고 기시다 일본 총리도 다음 달 사퇴를 예고한 상태다.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가능케 한 결정적 동력은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의 외교 정책 기조였다. 미국 리더십의 교체는 3국 협력의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동맹을 금전 논리로만 보는 공화당 트럼프 후보가 재집권할 경우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 성과들은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는 진단까지 나온다. 민주당 후보인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든의 치적을 중시하고 계승할지 오히려 차별화되는 대외 정책을 들고 나올지도 예단하기 어렵다. 이런 불확실성에 대비하려면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의 성과들을 제도화하는 데 속도를 내야 한다.
그에 못지않게 한일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일도 긴요하다. 미국 대통령이 아무리 동맹을 중시해도 한일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선 한·미·일 공조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정상적인 한일 관계가 한·미·일 협력의 전제 조건인 셈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한일 관계는 역대 최악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선제적으로 징용 배상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며 관계 개선에 나서지 않았다면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미국, 일본이 동시에 리더십 교체기를 맞는 상황에서 ‘캠프 데이비드’ 협력을 이어 나가야 하는 지난한 과제가 한국 외교를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8-19 北 핵공격 대비 첫 한미훈련, 도발 의지 꺾을 만큼 강해야
한미 양국 군이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을 19일 0시 시작했다. 오는 29일까지 진행될 UFS 연습은 전면 남침에 대비한 지휘소 연습(CPX)과 연합 기동훈련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핵 공격 대비 훈련이 처음으로 진행된다. 2023년 4월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워싱턴선언, 지난 7월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 공동성명’을 통해 한미동맹이 핵 동맹으로 확장된 이후의 첫 훈련이다. 미국 핵 작전에 한국 첨단 재래식 전력을 더한 일체형 확장억제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는 별도의 을지훈련을 나흘간 일정으로 진행한다. 여기에도 핵 공격 대비 훈련을 추가했다. 정부와 민·군의 총력 대응이 중요하다. 윤 대통령은 19일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무모하고 비이성적인 북한의 도발과 위협에 마주하고 있다”면서 “정규전, 비정규전, 사이버전은 물론 가짜뉴스를 활용한 여론전과 심리전이 혼합된 하이브리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우리 사회 내부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면서 국가 기간시설 방호 훈련과 회색지대 도발에 대한 대응을 강조했다.
미국은 1949년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하자 이듬해 연방 민방위관련법을 만들어 소련의 핵공격에 대비한 훈련 준비를 했다. 1962년 쿠바 위기 때 핵전쟁 대비 훈련을 실시한 것을 돌아볼 때 이번 훈련은 늦은 감이 있는 게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가 한미훈련을 컴퓨터게임 수준으로 축소하는 등 안보 축을 허무는 동안 김정은은 핵 개발에 매진했다. 북한이 공격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강력한 응징 역량을 과시하는 일이 중요하다. 북한 정권이 일순간에 가루가 된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핵 도발 의지를 꺾을 수 있다.
문화일보 사설
08.19 美 민주당 강령 공개 "트럼프, 동맹 한국 위협…우린 함께 갈 것 "
트럼프 150번 언급 "김정은에 아첨" 경제·안보 전 분야서 비판
"한·일과의 3각 협력 강화…한반도 평화와 안정 유지"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부부가 18일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국제공항에서 비행기에 오르면서 나란히 손을 흔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을 후보로 앞세운 민주당이 ‘해리스 행정부’ 핵심 정책 방향을 적시한 정당 강령(綱領)을 18일 공개했다. 강령은 임기 초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를 핵심 외교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조 바이든 대통령 외교 정책 기조를 이어받아 “동맹국을 외면하지 않겠다”며 한국 등 인도·태평양 국가들의 중요성을 수차례 언급했다. 이 강령은 민주당전국위원회(RNC)가 전당대회를 개최하는 다음날 투표를 통해 정식 채택될 예정이다.
이날 저녁 공개된 92쪽 분량의 강령은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150차례 언급하면서 “민주당 행정부는 트럼프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강령은 특히 한반도 정책과 관련해서 “트럼프는 북한 독재자 김정은과 ‘러브레터’를 주고받으며 그에게 아첨하는 등 세계 무대에서 미국을 당혹스럽게 했다”며 “또 트럼프는 무역 분쟁 및 주한미군 철수 등으로 우리(미국)의 소중한 동맹인 한국을 직접 위협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의 동맹국, 특히 한국의 편에 서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강령은 바이든이 지난달 21일 사퇴하기 5일 전 작성돼 여전히 바이든이 후보로 명시돼 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및 ‘동맹 경시’ 기조와 차별화해 미국이 동맹 중시 노선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선언으로 해석됐다.

▲지난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악수를 나누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AP 연합뉴스
민주당 강령엔 북한이 여섯 차례 등장한다. 강령은 작년 8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와 작년 4월 한·미 정상이 채택한 워싱턴 선언 등을 언급하고 “바이든의 지도력 하에 3국은 역사적인 회의를 개최했고, 한국과 워싱턴 선언을 채택했으며, 일본과 3국 억지력 논의를 확대했다”며 “두 번째 임기에도 바이든은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연결되고 번영하고 안전하며 회복력 있는 인도·태평양 정책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했다. 강령은 북한을 여섯 차례 언급하면서 “북한의 불안정한 핵 및 미사일 프로그램 개발로 인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동맹국들과 함께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NBC방송은 “공화당은 동맹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지만 민주당 강령은 (총 92쪽 중) 14쪽을 외교 정책에 할애하고 있다”며 “유럽, 중동, 중국, 아프리카, 인도태평양 지역 등 전세계 지역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했다”고 했다.
강령은 경제 문제에 대해서도 “트럼프는 억만장자 기부자들을 위해 정책들을 조작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했며 트럼프 비판에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강령은 “이번 선거는 서로 매우 다른 두 가지 경제 정책간 선택”이라며 “(트럼프의 별장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의 (비싼) 컨트리클럽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트럼프와 (고향인)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의 식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바이든 중 한 명을 선택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강령은 해리스가 정식 후보로 등판하기 이전에 작성된 만큼 해리스가 내세우는 새로운 경제 정책 등은 반영되지 않았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CNN은 “사실상 강령이 바이든 재선 캠페인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만큼 해리스가 모든 정책들을 100% 지지할 지는 확실하지 않다”며 “(바이든 사퇴 후 시간이 촉박했던만큼) 강령 세부 내용을 두고 민주당과 해리스 캠프간 이견이 있더라도 노출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08-20 180도 다른 美 민주·공화 동맹관… 외교 역량 강화해야
미국 민주당이 19일 시카고 전당대회 개막일에 발표한 새 강령에서 한국을 ‘소중한 동맹(valued ally)’으로 규정하면서 여러 차례 직접 언급한 뒤, “동맹과 함께 서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적시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20년 대선 때 도널드 트럼프 시대의 동맹 정책을 비판하며 내걸었던 ‘미국이 돌아왔다’ 선언에서 한발 더 나아간 셈이다. 동맹 정책에 관한 민주당 강령은 지난 7월 밀워키 전당대회 때 나온 공화당 강령과 180도 다르다. 공화당은 미국 우선주의를 재확인하면서 동맹에 대해선 “공동 방위 의무” “투자 의무 이행”을 요구한 바 있다.
민주당의 새 강령은 트럼프에 대해 “북한 독재자 김정은과 러브 레터를 주고 받으며 아첨했고, 무역분쟁 및 주한미군 철수 등으로 한국을 직접 위협했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국익은 독재자가 아닌 동맹과 협력할 때 확보되는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최근 경합주에서 트럼프 지지율을 앞서고 있지만 11·5 대선까지 여론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정반대 상황에 신속히 대응할 플랜 A·B가 필요한 이유다.
‘워싱턴은 인맥, 뉴욕은 돈맥’이라는 말이 있다. 백악관과 국무부 등을 제대로 움직이려면 오랜 네트워크가 필수다. 그런데 국가안보실 인사를 보면 이런 준비를 제대로 할지 의문이다. 신원식 신임 국가안보실장과 김태효 1차장, 인성환 2차장, 왕윤종 3차장은 군인 또는 학자 출신이고, 외교통은 전무하다. 어느 정부에도 없던 기이한 팀이다. 외교적 화법도 모르고 네트워크도 미미한 맨파워로는 불안하다. 부산엑스포 전망 망신의 기억이 여전한데,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 같은 불필요한 논란까지 자초한다. 윤석열 정부와 대통령실의 외교 역량 강화가 급하다.
문화일보 사설
08.21 美 민주·공화 모두 사라진 '北 비핵화', 우리는 이대로 문제없는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9일(현지시각) 일리노이주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첫날 무대에 올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손을 잡아 들어 올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 민주당이 11월 대선을 앞두고 채택한 새 정강에서 ‘북한 비핵화’라는 문구를 지웠다고 한다. 2020년 작성된 기존 정강엔 “우리는 (북한) 비핵화라는 장기 목표를 진전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외교 캠페인을 구축할 것”이란 표현이 있었지만 이것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지난달 발표된 공화당 정강에서도 한반도와 북한에 대한 언급은 물론 비핵화란 표현도 나오지 않았다.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미국이 주도해 온 북한 비핵화가 동력을 잃어가는 듯한 모습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어느 당이 집권하든 차기 미국 정부가 북한 비핵화 대신 핵 군축을 목표로 북한과 협상할 수 있다는 의미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핵 군축은 북한이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 대북 제재가 해제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그런 상황이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북한은 우리를 마음대로 쥐고 흔들려 할 것이다. 핵보유국이 돼 한국 위에 올라서겠다는 북의 오랜 집념이 이뤄지게 된다. 국가적 위기라고 봐야 한다.
작년 한미는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핵협의그룹(NCG)을 가동했고, 지난달엔 미국의 핵과 한국의 재래식 전력을 통합해 대응하는 ‘일체형 확장 억제’ 핵 작전 지침에 합의했다. 현재 진행 중인 한미 연합 ‘을지 자유의 방패’ 연습에선 사상 처음으로 북한의 핵 공격을 가정한 대응 훈련이 이뤄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미국의 핵우산이 이전보다 강화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결정적 순간에 미국은 ‘서울을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하겠느냐’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할 것이다.
북한은 지금 이 시각에도 핵무기를 만들고 있다. 2년 전 합참은 북한이 2027년쯤 핵무기 200기 이상을 보유할 것이란 판단을 내렸다. 지금은 그 시기가 더 앞당겨졌을지 모른다. 이것이 현실이 되면 미국은 북한 비핵화보다 한국의 핵무장을 막는 데 주력할 가능성이 있다. 핵이 없는 한국은 북한뿐 아니라 더 많은 핵을 가진 중국·러시아의 위협까지 받고 있다. 북·러는 한쪽이 공격당하면 자동 개입한다는 사실상의 동맹 조약에도 서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민주·공화당이 모두 정강에서 ‘북한 비핵화’ 문구를 지웠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가능성을 열고 우리를 지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8-21 “민주주의 수호” 외친 바이든 품격과 한국 정치 시사점
전 세계적 정치 저질화 풍조 속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19일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은 지도자의 품격과 함께 미국 민주주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바이든은 대선 후보 사퇴에 대해 “미국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라면서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대선 후보 사퇴가 미국과 민주주의를 위한 결단이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또 “도널드 트럼프는 취임 첫날 독재자가 되겠다고 했다”며 “2020년처럼 2024년에도 민주주의를 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재선 저지는 대의(大義)이기 때문에 과거엔 출마, 이번엔 사퇴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바이든 정치의 키워드다. 2017년 극우 트럼프 지지자들의 샬러츠빌 폭동 때 미국의 위기를 직감하고 대선 출마를 결심한 것이나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자신이 희생할 차례라고 판단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민주주의를 구하는 데는 아무것도 방해가 될 수 없으며 여기엔 개인적 야망도 포함된다”는 지난 7월 후보 사퇴 백악관 대국민 연설 그대로 선공후사(先公後私) 정치를 실천해왔다.
바이든식(式) 정치는 한국 정치에도 시사점을 준다. 지도자라면 개인보다 당과 나라, 민주주의를 앞세우는 정치를 해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트럼프 지지자들과 유사한 행태를 보이는‘개딸’의 지지를 업고 재선된 데다 일극 체제를 형성, 민주당엔 민주주의가 없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 대표가 당 대표직을 트럼프처럼 ‘사유화’할 경우, 2027년 대선 필패 우려도 당내에서 제기된다. 이 대표는 선거법·대장동·대북송금 등 총 7개 사건 11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중 선거법 재판의 1심 판결은 10월 중 선고될 전망이다. 민주주의와 당을 위해 물러날 때를 알고 실행하는 것, 정치인 바이든이 위대한 이유다.
문화일보 사설
08.27 맥매스터 "文, '김정은에게 핵은 방어용'이라고 말하더라"
트럼프 1기 국가안보보좌관 회고록
2017년 한미정상회담 비화 등 공개
"트럼프, 사드 재배치 文공약에 격노"

▲문재인(왼쪽)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017년 6월 30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첫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후 공동 언론 발표를 위해 로즈가든으로 입장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재임 당시인 2017년 6월 첫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방미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은) 방어를 위해 핵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고 허버트 R 맥매스터(62)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7일 밝혔다. 당시 문 대통령은 김정은을 핵을 포기한 뒤 축출됐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등의 독재자들과 비교해 이같이 말했지만, 즉각 미측 인사들의 반발을 불러왔다고 맥매스터는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두 번째 안보보좌관(2017년 2월~2018년 3월)을 지냈던 3성 장군 출신의 맥매스터는 이날 공개된 회고록 ‘우리 자신과의 전쟁: 트럼프 백악관에서의 나의 임무 수행’에서 트럼프 재임 초기 한·미 간 긴장 관계를 자세하게 기술했다. 358페이지 회고록에서 한국 및 북한은 221차례 등장한다.

▲2017년 2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자신의 별장 플로리다 마러라고에서 새롭게 임명된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과 만나 악수하고 있는 모습. /로이터

▲북한 김정은(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북한 노동신문, 뉴스1
책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그해 6월 30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트럼프와 공동 기자회견을 진행한 이후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후세인이나 카다피처럼 김정은은 방어를 위해 핵이 필요하다고 믿었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펜스는 문 대통령에게 “이미 북한은 서울을 겨냥하고 있는 재래식 포를 보유하고 있는 데 왜 핵이 필요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펜스는 이어 “우리는 김정은이 ‘공격적 목적’으로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올해 초 김정은은 “유사시 핵 무력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박차를 가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의 공언과 정반대로 핵무기로 전쟁을 일으켜 한반도 전역을 공산화하겠다는 속내를 밝힌 것이다.
맥매스터는 첫 정상회담부터 한미가 대북 정책 방향을 두고 이견(異見)을 보였다고 전했다. 그는 “양국 간 공동성명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한국 측은 지속해서 북한과의 협상 전망을 강조하는 표현을 고수했다”며 “반면 (백악관 안보팀은) 비핵화가 김정은에게 최선의 이익이라는 점을 설득하기 위해 제재 이행을 강조하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했다.
맥매스터는 문 정부가 북한의 거듭된 미사일 도발 수위를 축소하려고 급급했다고 밝혔다. 첫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지 불과 사흘 만인 7월 4일 북한이 동해상으로 미사일을 발사하자 맥매스터는 자신의 카운터파트였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정 실장은 “우리는 아직 도발에 사용된 미사일이 ‘탄도미사일(ICBM)’이라고 규정하는 데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했다고 한다. ICBM 발사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위반이다. 맥매스터는 이에 자신이 “의용, 당신이 ICBM이라고 부르지 못한다고 해서 그 미사일이 ICBM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따졌다고도 했다. 북한이 한국을 겨냥해 도발을 감행한 상황에서도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를 비판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를 재검토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데 대해 트럼프가 격노했다고도 맥매스터는 전했다. 그는 “당시 10억달러(약 1조3310억원)에 달하는 요격 미사일 시스템 배치를 다시 고려하겠다는 문 후보 발언을 들은 트럼프는 나에게 (사드 배치 비용을) 한국이 스스로 내게 해야겠다고 말했다”며 “이에 사드는 미국 군과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수습하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사드 문제에 대한 트럼프의 ‘분노’는 문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에도 이어졌다고 맥매스터는 전했다. 2017년 6월 첫 정상회담 당시 문 대통령이 사드 배치와 관련, “정식 배치를 하려면 환경영향평가를 거쳐야 한다”고 하자 트럼프가 헛기침을 한 뒤 “환경영향평가는 시간 낭비”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맥매스터는 만찬 당일 오전 정의용 실장에게 “문 대통령에게 ‘사드 배치가 환경영향평가의 결과에 달려 있다’는 최근 그의 발언을 반복하지 말아달라고 말해달라”며 “부동산업자 출신인 트럼프는 환경영향평가를 정말 싫어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편 맥매스터는 임명되자마자 그의 외교·안보팀과 논의를 거친 뒤 “북한 정권이 억지력만을 위해 핵무기를 원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이를 트럼프에게 보고했다고 밝혔다. 맥매스터는 “한반도를 (적화) 통일하는 것이 김정은의 (최종) 목표라고 보고했다”며 “(이를 들은 트럼프는) 북한을 철저히 고립시키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을 지원한 대가를 치르게 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그는 “트럼프 초기 행정부의 대북(對北) ‘최대 압박 전략’(Maximum pressure campaign)의 윤곽은 이렇게 드러났다”고 했다.
이후로도 트럼프는 수시로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조했지만, 동시에 여러 차례 “김정은과 기꺼이 만날 수 있다”고도 말했다고 맥매스터는 전했다. 맥매스터는 트럼프 행정부 초기 “대통령에게 북한과의 대화에 서두르지 말고 대북 제재를 섣불리 해제해서도 안 된다고 보고했고 트럼프도 동의했었다”면서도 “일관성은 그의 강점은 아니었다”고 했다. 북한의 압박을 강조하다가도 김정은과의 ‘톱다운’식 대면 회담의 필요성을 꺼내면서 입장이 수시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실제 트럼프는 김정은을 세 차례 대면했고 최근 대선 국면에서도 김정은과의 ‘브로맨스’를 수시로 거론하고 있다.
조선일보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08-28 안보·통상·지정학 복합 위기… 동맹 확장이 한국의 활로
미·중 신냉전에 이어 유럽과 중동에서 동시다발적 분쟁이 지속되는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는 시기에 대한민국 국가 전략을 모색하는 시의적절한 행사가 열렸다. ‘충돌하는 세계와 한국의 길’을 주제로 27일 개최된 ‘문화미래리포트(MFR) 2024’ 국제콘퍼런스에서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을 “유라시아 대륙이 장기전에 돌입하면서 세계가 대혼란에 빠져드는 국면”으로 진단하면서 “한국이 충돌에 휘말리지 않고 활로를 열려면 동맹과의 공조, 나아가 동맹 틀의 확장이 필요하다”는 제언을 쏟아냈다.
할 브랜즈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한미 워싱턴선언 채택은 큰 성과이지만, 지정학적 불안정성을 볼 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며 동맹 심화·확대와 함께 북핵 대응력 강화를 주문했다. 북핵 고도화 때 미국이 자국 보호에 치중하게 되면 한국에서 자체 핵 개발론이 더 강화될 수 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핵우산 신뢰를 역설했다. “북핵 위기 때 주한 미국인 17만5000명이 희생되는데 미국이 좌시하겠느냐”면서 전술핵 재배치나 핵 공유에 대해선 ‘한국이 감내하기 어려운 비용’을 이유로 선을 그었다. 그대신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잘 활용해 핵무기 사이클을 완성할 수 있다”고 밝혀 ‘워싱턴선언 플러스’를 주문한 브랜즈 교수와 입장을 같이했다.
더글러스 어윈 다트머스대 교수는 “경제안보 시대엔 가치공유 국가들의 무역이 중요하다”며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제언했다. 특히 유엔에 이어 세계무역기구(WTO)도 무력화하면서, 지정학과 안보 문제가 경제와 효율 이슈를 압도하고, 통상도 규칙 기반(rule-based)에서 힘 기반(power-based)으로 바뀌었음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 설명했다.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 부회장은 “이젠 동맹국들이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한·미·일 3국이 주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올해 MFR 특징 중 하나는 중국 회의론이 전면화했다는 점이다. 브랜즈 교수의 ‘중국 피크론’을 비롯해 “시진핑의 중국은 안보 통상 면에서 협력 대상국이 아닌 위기 유발국”이란 진단이 지배적이었다.
문화일보 사설
08-28 ‘핵재처리 권한’ 한미 협의 나설 때다
원자력협정 협상 5개월 실랑이
前文에 재개정 요구권 명문화
이젠 日 수준의 권한 요구해야
한국 독자 핵무장은 비현실적
막 내리는 값싼 한미동맹 시대
분담금 더 내고 반대급부 확대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나요?”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은 그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다. 대신 얼굴에 살짝 미소를 머금고 2015년 6월 한미 원자력협정 타결 당시 문구 하나를 집어넣기 위해 5개월 동안 실랑이 벌였던 일화를 이어갔다. 결국, 그 문구는 협정 전문에 들어갔다. ‘각 당사자의 주권에 대한 침해 없이(without prejudice to the sovereignty of each party)’였다. “협상에 관여했던 그 미국 측 인사가 제게 ‘가장 터프한 협상가’라고 말하더군요.” 지난해 가졌던 윤 전 장관과의 인터뷰에서 들었던 얘기다.
한미동맹은 3개의 기둥으로 지탱된다. 1953년 상호방위조약, 1974년 원자력협정, 그리고 2012년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유효기간이 41년이었던 원자력협정은 2011년에 재협상을 시작했다. 난제 중 난제로 타결을 보지 못한 채 4년6개월을 끌었다. 미국은 깐깐했다. 한국에 핵연료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포기하는 골드 스탠더드 원칙을 지키라고 요구했다. 동맹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였다. 칼자루는 국내 첫 상업용 원자로인 고리원전 1호기에 원천기술을 제공한 미국이 쥐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협정은 타결됐고 한국은 재개정 요구권을 갖게 됐다. 협정 유효기간도 20년으로 반으로 줄였다.
국회에서는 26일 의미 있는 토론회가 열렸다. 주제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필요한가’. 국내 원자력 연구 양대 산맥인 한국원자력학회와 한국핵정책학회가 참여했다. 의견은 둘로 갈렸다. 한 쪽은 핵연료 재처리를 하려면 2035년에 협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봤고, 다른 쪽은 그 전이라도 미국 동의가 있으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협정 전문과 협상 과정을 복기하면 후자가 맞다.
핵연료는 평화와 파괴,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원자력 발전의 필수재이면서 핵무기의 원천이다. 원전 가동 후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확보하면 핵물질이 된다. 원심분리기를 돌려 순도 95%의 고농축우라늄(HEU)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 미국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핵연료 재처리와 원심분리기, 우라늄 공급을 통제하는 이유다. 하지만 세상은 변한다. 국제질서도 바뀐다. 2015년과 2024년의 세상은 다르다. 무엇보다 북한은 핵보유국이 됐다. 그런 면에서 한국에 핵개발의 족쇄를 항구적으로 채우려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하지만 한국은 핵질주에 나설 경우 부닥칠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국제사회 제재로 한국 경제는 핵폭격을 맞는다.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도 탈퇴해야 한다. 미국은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NPT가 붕괴되는 상황은 절대적으로 막고 나설 것이다. 핵무장론은 지금 한국의 선택지가 아니다.
그보다 먼저 윤석열 정부는 한미 원자력협정 재개정을 미국에 요구해야 한다. 일본 수준의 권한이 필요하다. 일본은 1988년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권한을 확보했다. 일본은 되고 한국은 안 된다는 것은 북핵 위협 상황에서 주권의 불평등 침해다. 일본은 플루토늄 47t을 갖고 있다. 고리·한빛 원전의 경우 사용후핵연료 저장률이 각각 90.8%와 81.5%다. 2028년과 2030년이 되면 저장공간도 없다. 지속가능한 원자력 발전을 위해서도 재처리는 시급하다. 핵연대 조짐을 보이는 북한-중국-러시아에 맞서 한국은 조건만 충족되면 1∼2주일 안에 핵무기를 제조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필요도 있다. 공포의 잠재적 균형이다.
미국 대선의 종착역이 어디일지 몰라도 동맹에 방위비분담금 인상을 외치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등장은 원자력 주권, 나아가 핵잠재력을 확보할 기회다. 서울에서는 28일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7차 회의가 열리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1조2896억 원을 부담했다. 반면, 일본은 2조2000억 원을 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한 장기적 안목에서 분담금을 합리적으로 더 내고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받아내는 딜이 필요하다. 한국은 세계 11위권의 경제 대국이다. 머리 위에 핵폭탄을 이고 사는 나라가 돈을 아까워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외교와 안보는 국가의 흥망과 성쇠에 직결된다. 주는 것이 있어야 받는 것이 있다. 값싼 동맹의 시대는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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