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自主國防 2024-08/ 08-01 간첩을 ‘간첩죄’로 처벌 못하는 나라 - 08-29 ‘간첩죄’ 범위 확대할 입법 시급하다

상림은내고향 2024. 8. 15. 14:02

自主國防 2024-08/

08-01 간첩을 ‘간첩죄’로 처벌 못하는 나라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최근 정보 참사(慘事)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함께 간첩 개념은 물론 정보 활동 방식의 재정립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16일 미국 연방검찰이 중앙정보국(CIA) 북한 분석관 출신의 한반도 전문가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을 기소한 사건과 28일 국군정보사령부 군무원이 해외 첩보요원 명단 등을 유출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사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런 배경에서 조태용 국가정보원장도 29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敵國)’에서 ‘외국’ 등으로 확대하는 형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실에 맞게 간첩죄를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형법 제98조는 적국을 위하여 간첩을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면서 군사상 기밀을 적국에 누설한 자도 같은 형으로 처벌토록 하고 있다. 이 조항은 1953년 9월 형법에 명시된 후 71년간 그대로다. 그 결과 그동안 심각한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첫째, 현행 간첩죄에서 규정한 적국의 개념은 선전포고 또는 교전 상태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단속 및 처벌의 근거로 삼기엔 현실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적국이 아닌 외국 정보기관의 간첩 활동이 당국에 포착되더라도 간첩죄로 다스리기가 어려웠다.

둘째, 간첩죄의 적용 대상이 ‘적국을 위한’ 행위로 한정돼 있다. 그 결과 군사·방위산업 기밀 등을 우호 관계에 있는 외국에 유출하더라도 간첩죄 적용이 곤란하다. 지난 2018년 국군정보사령부 공작팀장이 일본과 중국에 군사기밀 100여 건을 팔아넘겼을 때 이들 나라가 적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간첩죄를 적용하지 못했다. 그런 탓에 징역을 4년만 선고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 제3국 기업에 중요한 기술정보를 넘긴 이른바 산업 스파이의 경우에도 간첩죄를 적용하지 못한다. 2018년부터 5년간 산업 기술의 해외 유출로 인한 피해액이 25조 원에 이르지만, 처벌은 솜방망이(실형 선고 9명, 무죄 선고 29명, 집행유예 36명)였다는 언론 보도도 있다. 이는 핵심 기술 보호가 국가안보는 물론 국익 수호 차원에서 절실하게 요구되는 포괄적 안보의 국제 환경에 맞지 않는다. 미국을 비롯해 독일과 프랑스 등 대다수 국가는 자국에 해(害)가 되거나 타국을 이롭게 하는 행위를 한 자에 대해 간첩죄를 적용해 중형에 처한다. 이는 적국이 아닌 동맹국이나 우방국에 산업 기밀을 유출한 때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미국은 1996년 경제간첩법(Economic Espionage Act)을 제정해 적극적으로 대처한다.

지금 세상에서는 간첩의 활동 범위가 온·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계속 확산되고 있다. 일반인도 얼마든지 간첩 행위를 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런데도 OECD 회원국 중 간첩죄를 적국에 한정한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시대착오적인 법 조항 때문에 국가안보와 국익 수호에 구멍이 뚫렸다. 이를 알고도 방치하는 건 반(反)국가요, 무능력·무책임의 소치다. 제22대 국회는 ‘외국과 외국인단체 및 비국가행위자(국적 없는 해커 포함)의 간첩 활동’도 처벌할 수 있도록 속히 간첩죄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간첩 섬멸에 여야가 따로 놀아선 안 된다.

문화일보

 

08.01북한만 아니면 간첩 아니라는 이상한 형법

▲지난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조태용 국가정보원장 등이 출석한 가운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2024.7.29/뉴스1

 

국군정보사 비밀 요원들 신상 정보 같은 군사기밀을 중국 동포(조선족)에게 유출한 혐의를 받는 정보사 군무원이 구속됐다. 정보사는 요원들 신상이 유출된 직후 신분을 위장해 활동하던 해외 파견 인원을 즉각 복귀시켰다. 수십년에 걸쳐 축적해온 정보 자산이 파괴될 위기에 처한 중대 사건이다.

 

방첩 당국은 이 군무원에게 사형 혹은 무기징역으로 처벌할 군형법상 간첩죄 대신 형량이 낮은 군사기밀 누설 혐의를 적용했다. 형법과 군형법은 간첩의 범위를 ‘적’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는 것으로 한정하고 있다. ‘적’은 북한이기 때문에 중국·러시아 같은 ‘외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것은 간첩죄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래서 10년 이하 징역·금고 처벌을 받는 기밀누설죄로 처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부분 국가는 적국이나 우방을 가리지 않고 국가 기밀을 수집·누설하는 행위를 간첩죄로 처벌한다. 미국은 미 해군에서 근무하던 재미 교포 로버트 김이 대북 정보를 한국에 알려줬다며 간첩죄로 처벌했다. 반면 우리는 중국의 비밀 경찰서 의혹을 받은 서울 중식당 운영자에게 식품위생법을 적용하는 데 그쳤다. ‘경제 간첩’도 강력 처벌해야 하지만, 간첩 범위를 북으로 한정한 법이 가로막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간첩의 범위를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법 개정을 제안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지난 21대 국회 때 간첩죄 조항을 바꾸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었다. 여야가 간첩죄 대상 확대에 큰 입장 차이가 없다. 법 개정을 늦출 이유가 없다.

 

민주당도 정보사 사건이 심각하다고 한다.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한 김민석 의원은 유출된 정보사 기밀이 북한으로 넘어갔을 것이라며 “의도적 유출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군사 기밀이 중국 동포를 거쳐 북으로 넘어갔고, 북한이 우리 군무원을 포섭했을 가능성이 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대공(對共)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야 하지만 현행법은 간첩수사 노하우를 축적한 국정원의 참여를 막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경찰로 넘겼기 때문이다.

 

국가 안보와 전략 산업을 뒤흔들 정보 전쟁이 벌어지고 우리는 그 최전선에 있는데, 법 체계는 허술하다 못해 국가적 자해(自害)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간첩죄 대상을 확대하고 대공 수사 역량을 무력화한 국정원법을 하루빨리 정상화시킬 책임이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에게 있다.

조선일보 사설 

 

08-02 北 풍선 도발 잠재울 대북 확성기 방송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

북한은 지난 5월부터 풍선에 오물과 쓰레기를 날려 보내는 기상천외한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 정상 국가라면 상상할 수 없는 저급하고 치졸한 도발이다. 북한은 우리 민간 탈북단체가 대북 전단이라는 오물을 보내고 있어 자기들도 오물을 보내 얼마나 불편한지를 체험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그들이 우리 민간단체 대북 전단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치졸한 도발을 이어가는 것은, 외부 정보 유입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준다. 북한 정권은 거짓말로 출발했고 거짓말로 유지해 왔다. 주민의 눈과 귀를 가려온 북한 정권에 가장 두려운 것이 바로 진실과 정보다.


북한 정권의 노림수는 우리 국민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하여 비난의 화살이 민간 탈북단체와 정부를 향하도록 함으로써 대북 전단과 확성기 방송을 중단시키려는 것이다. 우리 국민과 국민 사이를, 그리고 우리 국민과 정부를 이간시키려는 계책이 담긴 불순한 대남 심리전이다. 북한 쓰레기 풍선이 우리를 다소 불편하게 하는 것은 맞지만, 국민의 생명을 직접 위협한 사례는 아직 없다. 그런데도 상황을 부풀리며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정부를 비난하는 것은 북한의 노림수에 말려 들어가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북한 정권을 이롭게 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확성기 방송은 북한이 먼저 시작했다. 하지만 남북 경제력이 역전되면서 우리의 대북 확성기 방송이 진가와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북한 체제에서 좀처럼 접할 수 없는 외부 소식과 정확한 기상 정보, 감미로운 음악 등은 접경지 북한 군인과 주민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북한 정권은 확성기 방송을 체제 위협 요인으로 간주하고, 이를 중단시키려 혈안이 됐다.

지난 2004년 남북 군사 당국은 서해 충돌 방지를 위한 조치와 함께 북한이 집요하게 요구한 확성기 방송 중단에 합의한 바 있다. 이후 확성기 방송은 11년간이나 중단됐다. 2015년 8월,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에 대한 응징 차원에서 우리 군이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화들짝 놀란 김정은은 화급히 협상에 나와 도발에 사과하는 등 확성기 중단에 집착했던 전례가 있다. 확성기 방송의 효과와 위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김정은 정권은 남북 관계를 교전국 관계로 규정하고 핵·미사일 등 모든 수단으로 우리를 초토화하겠다고 협박한다. 북한이 물리적 핵폭탄으로 위협한다면, 우리는 확성기 방송을 비롯한 심리적 핵폭탄으로 맞대응할 수 있다. 이는 김정은 정권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 주민의 눈과 귀를 깨워 변화를 압박할 수 있는 효과적인 레버리지 수단이다. 아울러, 북한이 제대로 된 대응이 어렵다는 점에서 그들을 압도할 수 있는 비대칭 수단이기도 하다.

국군은 북한 정권이 보내오는 쓰레기 풍선에 대해 국민의 안전을 고려해 요격 등의 방법보다는 지상에 낙하한 후 대처하고 있다. 또한, 만일 북한 쓰레기 풍선으로 국군과 국민에게 물리적 피해를 야기한다면, ‘즉·강·끝’(즉각 강력히 끝까지) 원칙에 따라 풍선 부양 원점을 초토화한다는 확고한 입장도 재확인했다. 우리 군이 시행하는 대북 확성기 방송이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김정은 정권이 핵을 내려놓고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 해결에 나서는 등 변화를 강요하기 위해 일관된 대북 확성기 방송으로 압박해야 한다. 국군의 대응을 신뢰하고 북한 정권의 노림수에도 흔들림 없이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그들을 변화시키는 길이다.

문화일보 

 

※ 월간조선 08월 호 특집 / 한국의 핵무장 가능한가

핵무장보다 핵 잠재력 확보가 우선

일본 수준의 재처리·우라늄 농축 잠재력 확보해야

북한 핵무기의 고도화, 러–북 동맹,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 등으로 국내외에서 ‘한국의 핵무장’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7월 11일 ‘북한이 핵 도발을 할 경우 언제든 미국이 핵으로 보복할 수 있다’는 내용의 ‘한미 한반도 핵 억제 핵 작전 지침’을 발표했지만, 한국 국민의 70%는 독자적인 핵무장에 찬성하고 있다.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장은 가능할까? 북핵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 독자 핵무장 강행 시 국제 제재 하면 ‘고난의 행군’ 감내할 수 있나
⊙ 폼페이오 전 미 국무장관, ‘트럼프 집권 2기 때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협상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왜 안 되겠나”
⊙ 국회 무궁화포럼 발족해 냉철하게 핵무장 잠재력 실력 확인, 역량 확충 논의키로

유용원
1964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 《월간조선》 기자, 《조선일보》 국방전문기자·논설위원, 육·해·공군 정책자문위원, 現 국회의원·국회 무궁화포럼 대표

▲북한이 2023년 공개한 화성-17형 ICBM. 북핵 위협이 증가하면서 독자적 핵무장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 강해지고 있다. 사진=뉴스1

 

최근 푸틴의 북한 방문은 단순한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을 넘어, 유사시 군사 개입과 협력 확대를 내포한 군사조약 개념의 ‘북러조약’을 체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를 예상하며 북한의 대규모 무기 지원이 절실해졌음을 시사한다. 지금까지 러시아에 대한 북한의 무기 공급은 공공연한 사실이었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위반이므로 러시아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조약을 통해 러시아는 북한의 무기를 공식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한국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미 본토를 타격하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에 주력했던 북한은 수년 전부터 우리(남한)를 겨냥한 전술핵탄두 및 투발(投發) 수단들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북한이 지난해 공개한 화산-31형 전술핵탄두는 직경이 45~50cm에 불과, 북한의 거의 모든 신형 단거리미사일과 600mm 초대형 방사포, 중장거리 순항미사일, 핵탄두 장착 무인잠수정 ‘해일’ 등에 장착할 수 있다.

핵탄두 장착 북 운반 수단(미사일)의 빠른 양적(量的) 증가도 눈여겨봐야 한다. 지난 5월 북한은 김정은 참관하에 600mm 초대형 방사포(放射砲)를 무려 18문이나 동시 사격하는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북한은 앞서 2년 전 초대형 방사포 30여 문을 김정은에게 헌납하는 행사를 열었다. 북한은 화성-12형 중거리 탄도미사일 탄두 및 탄체(彈體) 20여 개를 공장에서 양산하는 모습과 신형 전술미사일 발사대 20기 이상이 공장에 늘어선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신형 단거리미사일들과 초대형 방사포 수십여 발을 ‘섞어 쏘기’ 하면 현재의 한미 미사일 방어망으로는 요격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북한 비핵화는 이제 연목구어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첨단화된 재래식 무기로 핵무장한 북한에 대응하려 하고 있다. 이는 냉엄한 현실을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기만족용 방어책에 불과하다. 여러 대의 최신식 전자계산기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챗GPT보다 빠르게 연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해왔다. 인정하기 싫지만 북한은 이제 엄연한 사실상의 핵 보유국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非核化) 가능성을 기대하는 것은 이제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은 일이 돼버렸다.

 

북한은 핵탄두와 운반 수단인 ICBM을 통해 미국 본토까지 타격할 수 있는 군사 능력을 확보, 미국 본토에 대해 직접적인 핵 위협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미국이 북한을 핵무기로 보복하면 북한도 핵무기로 미 본토를 공격하겠다’고 위협하면, 미국이 북한과의 핵전쟁을 감수하면서까지 북한에 핵 공격을 할 수 있을지와 핵무장을 한 북한을 상대로 ‘핵 없는 남한’이 홀로 남겨질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확장 억제 전략이 여전히 유효한지, 그리고 한국이 미국의 확장 억제 전략에만 의존해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정부도 북핵 위협에 대한 본질적인 대응책으로 외교·안보 전략을 대전환하는 중장기적 플랜을 마련해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트럼프 안보 리스크’

▲엘브리지 콜비 전 미 국방부 부차관보. 사진=퍼블릭 도메인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24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할 경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엘브리지 콜비 전 미국 국방부 부차관보는 대북 정책 목표에 대해 “김정은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설득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허무맹랑하다”고 비판하면서 “우리는 이룰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비전통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북핵 문제와 관련하여 낡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해법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가 재선될 경우 주한미군을 대폭 감축하고 한미연합훈련을 축소하는 한편, 미 전략자산 전개 비용을 한국에 청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막대한 국방비 지출로 이어질 것이다. 지난해 미국의 전략폭격기, 원자력추진잠수함, 항모전단 등 전략자산이 지난 수십 년 이래 가장 많이 한반도로 출동했지만, 현재는 이에 대한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은 물론 이들 전략자산 출동 비용까지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우리는 중대한 안보의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트럼프 재선 이후 미국의 한반도 정책 변화 가능성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향후 안보 정책 방향을 수립해야 한다.

‘트럼프 안보 리스크’를 감안할 때 당장 독자적인 핵무장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유사시 일본처럼 신속하게 핵무장을 할 수 있는 ‘핵무장 잠재력 확보’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代案)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이미 상당 부분 무력화(無力化)되었기 때문에, 대북 제재 완화를 대가로 북한의 비핵화를 압박하는 것은 실효성을 기대하기 힘든 일이 됐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에 대비해 독자적인 핵무장 잠재력 확보와 같은 안보 정책의 대전환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독자 핵무장 실현 가능성 낮아

최근 정치권에서는 국내외적 안보 위기와 변화 속에서 안보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자 이를 해결할 방안으로 한국의 자체 핵무장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사실상의 북러 군사동맹 부활로 인해 한국의 독자 핵무장론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으며, 여권 내에서도 당권 주자들을 중심으로 ‘핵무장론’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그러나 독자 핵무장을 강행할 경우,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경제·외교 제재는 불가피하며, 우리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대외 의존도가 북한보다 훨씬 높은 우리나라는 이러한 제재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국민 대다수가 ‘고난의 행군’을 일정 기간 감내할 각오가 돼 있다면 핵무장을 결심할 수 있겠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우리 독자 핵무장이 현재로서는 비현실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인 이유다. 경제적 타격과 국제사회의 압박 등을 고려할 때, 독자 핵무장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북한의 핵 위협이 급속도로 고도화함에 따라 독자 핵무장론 외에 미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 NATO식 핵 공유 등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방안 또한 미 정부와 군 당국은 실효성과 기본 정책 등을 내세우며 부정적인 입장이다.

현재까지 한미 정부가 북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핵심 전략은 확장 억제 강화다. 지난해 워싱턴 선언으로 확장 억제 강화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고 미국은 지난해 ‘끊임 없는 전략자산 한반도 출동’으로 확장 억제 강화 의지를 보여줬다. 지난 정부에 비해 진일보한 것은 분명하지만 ‘미국이 확장 억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과연 워싱턴에 대한 핵공격 위협을 감수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에 대해 근본적인 해답을 제시해주진 못하고 있다.

‘핵 잠재력 확보’해야

이에 따라 ‘현실적인 차선책’으로 핵무장 잠재력 확보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핵무장 잠재력 확보란 한국이 핵무장에 나설 경우 국제사회 제재 등 경제적 타격이 심각한 만큼 당장은 하지 않되 유사시 언제든 핵무장이 가능한 수준의 능력을 구축해두는 것을 뜻한다. 독자적 핵 보유까지는 가지 못하더라도 일본처럼 유사시 신속하게 핵무장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잠재력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미원자력협정의 개정이 필수적이다. 이미 일본은 1988년 미일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우리와 달리 국내에서 자유로운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에 대한 권한을 부여받았다. 일본이 이후 재처리를 통해 추출한 플루토늄은 47t이 넘는다. 한국도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해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분야에서 일본과 같은 수준의 핵무장 잠재력을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장기간 원전(原電) 가동에 따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사용 후 핵연료)은 2030년 이후 원전 내 저장 시설이 포화 상태에 도달해 재처리 문제가 ‘발등의 불’로 떨어진 상태다.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위해, 미국이 한국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미국이 국익(國益)을 위해 협정을 개정하게 만들 수 있는 경제·안보 측면의 대미(對美) 설득 방안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원자력 산업은 ‘평화적 이용 증진’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돼야 한다. 특히 미국과의 향후 원자력 협력 사업에서 ‘확실한 산업적 수요’에 기반한 정책기조 개발 및 대미 접촉이 추진돼야 한다.

현재 농축 우라늄 시장 점유율은 러시아 로사톰이 46%, 중국이 10~15%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세계 450개 민간 원자력발전소에 농축 우라늄을 공급하며 상업적 농축 우라늄 공급망을 과점(寡占)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미국도 자국 농축 우라늄 수요량의 22%를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나 중국이 농축 우라늄 공급 규모를 축소할 경우 글로벌 원자력 에너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이는 현실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 정부는 민간 원자력발전소에 사용할 농축 우라늄 생산 및 공급을 위한 한·미·일 3자 국제 컨소시엄 구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이끌어내는 방안도 추진돼야 한다. 일본이 우리와 달리 강력한 핵 잠재력을 구축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로부터 어떠한 제재나 불이익을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은 우리의 핵무장 잠재력 확보 방안에 소중한 가이드라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동북아에서 핵무장 경쟁이 벌어질 경우 우리는 플루토늄을 추출하고 고농축 우라늄도 만들어야 하지만 일본은 그런 단계들을 뛰어넘을 수 있다. 지난 5월 22일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 국무장관은 “핵연료 재처리나 우라늄 농축이 일본에서는 허용되고 있지만 한국은 못 하고 있다. 트럼프 집권 2기 때 협상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왜 안 되겠나(Why not)”라고 대답했다. 트럼프가 재선되면 오히려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의 기회가 넓어질 수 있으므로, 우리도 범(汎)정부 차원의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회 무궁화포럼 발족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은 7월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회 무궁화포럼 발대식과 ‘대한민국 핵 잠재력 확보 전략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필자는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등 핵 잠재력 확보 전략 추진에 있어 국회도 일정 부분 역할이 있을 수 있고, 그 역할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야 의원과 민간 전문가 및 군 관계자 등이 망라된 북핵 대응 특위(TF) 구성 등이 그 방안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필자는 22대 국회에 등원(登院)하면서 ‘국회 무궁화포럼’을 발족했다.

‘무궁화포럼’이란 이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인류 최초의 핵무기를 개발한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처럼 상징성을 담은 것이다. 무궁화는 우리나라 국화(國花)로 중요한 상징성을 갖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핵개발 시도를 소재로 한 김진명 작가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다. 군 장성들이 받는 교육도 무궁화 회의여서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현재 핵무장이 6개월~1년이면 가능하다는 낙관론도 있지만, 한국의 핵무장 능력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이 나온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희망 섞인 장밋빛 환상이 아니라 냉철하게 우리 핵무장 잠재 실력을 확인하고, 우리가 부족한 부분에 대한 역량 확충을 서두르자는 게 국회 무궁화포럼의 기본 취지다.

필자는 7월 9일 국회에서 여야 국회의원들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회 무궁화포럼 발대식 및 ‘대한민국 핵 잠재력 확보 전략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무궁화포럼은 핵 잠재력 확보 방안에 대한 여러 주제를 가지고 전문가와 국회의원들이 협력해 국회 차원에서 초당적인 협력을 통해 본격적인 핵무장 잠재력 확보 방안을 논의하고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원자력진흥법’ 개정안 발의

앞서 언급했듯이 핵무장 잠재력 확보를 위해 가장 서둘러야 할 일은 한미원자력협정의 개정이다. 핵무장은 물론 핵무장 잠재력(농축·재처리 기술) 확보에 대한 실질적인 제재는 한미원자력협정에 따른 미국의 양자 차원적 제재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 핵무장은 물론 핵무장 잠재력 확보도 미국의 양해와 협조가 필수적이다. 우리 정부는 핵 비보유를 전제로 미국과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을 신속하게 개시해 우라늄 농축 및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분야에서 미일원자력협정 수준의 개정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최근 핵무장 잠재력 확보와 관련한 내용의 ‘원자력 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한국의 핵 잠재력 확보와 관련한 법안이 발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원자력의 연구·개발·생산·이용에 관한 규정에 ‘평화적 연구·개발·생산·이용’ 및 ‘인류사회의 복지 증진’이라는 문구를 추가한 것이 골자다. 미국을 설득해 우리나라가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는 능력’ 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핵의 평화적 이용’을 전제 조건으로 명시하자는 취지다. 그동안 우리가 평화적 용도로 농축·재처리 기술 확보를 미국 측에 요구해도 미 측이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핵개발 시도 등 ‘전과’를 내세워 강한 불신감을 나타내왔던 데 대한 대응 방안이다. 핵무기는 없지만,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일본은 이미 1955년 원자력기본법을 제정하며 원자력의 연구·개발·이용을 ‘평화적 목적’으로 행한다고 규정한 바 있다. 반면 우리나라 원자력법은 1958년 제정 당시 ‘평화적 목적’을 명시하지 않았고, 1982년 개정 과정에서 ‘인류사회의 복지에 기여한다’는 문구가 ‘국민 복리 증진’으로 축소되었다. 일본과 동등하게 핵 잠재력을 확보하려면 농축 및 재처리 기술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해야 한다. 이 법이 통과되어 원자력법 안에 일본과 같이 ‘평화적 목적’을 명시하면, 미국과의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에서 평화적이라는 조건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재처리 능력 확보를 설득할 수 있는 하나의 카드가 될 것이다.

언제까지 북핵 머리 위에 이고 살아야 하나?

북한의 지속적인 핵무기 개발과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더 이상 핵무장 및 핵 잠재력 확보 논의를 금기시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국제사회와 협력하며 우리의 안보를 강화해야 할 때이다. 한국의 핵 잠재력 보유 문제가 글로벌 어젠다로 확실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김정은 정권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핵 포기는 없다”고 공언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 정책’과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믿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을 급속도로 고도화할 시간을 벌어주었고, 환상과 선의에 기댄 대북 정책은 대한민국을 안보 위기에 빠트렸다. 언제까지 북한의 노골적인 핵 위협에 소극적으로 끌려다니며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가?

북핵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겨냥하고 있다. 우리의 핵무장 잠재력 확보,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군사적 관점에서의 자체 핵무장 필요성

⊙ 북한, 핵무기 최소 45~50기 이상 보유… 매년 4~12개 핵탄두 생산 능력 가져(2023년 미핵군축연구소)
⊙ 北, 핵 무력 사용 원칙 법제화… 재래식 공격 임박 시나 전쟁 주도권 장악 필요시 핵무기 사용 가능 명시
⊙ 北, 단기간에 수도권 장악 후 한미 연합군 반격 단념케 하려 선제적으로 핵 사용할 수도
⊙ 3축(軸)체계, 핵 확장 억제, 전술핵 재배치로는 북핵 대응에 한계
⊙ 한국, 핵무장하더라도 주한미군 완전 철수는 곤란

宋雲洙
1962년생.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고려대 정치외교학 석사, 단국대 국제정치학 박사 / 777사령관, 육군정보학교장, 《국방일보》 논설위원,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사이버전략센터장 역임. 現 한국외국어대 정치행정대학원 외교안보학과 초빙교수 / 상훈 보국훈장 천수장

北, 전략핵으로 워싱턴 위협하면서 전술핵 사용 가능성 있어

▲한국군이 보유하고 있는 현무-3 미사일. 북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함대지 순항미사일이다. 사진=뉴스1

 

그동안 핵(核)개발, ICBM 개발에 주력해온 북한이 최근에는 전술핵무기 및 핵 EMP(electromagnetic pulse·전자기펄스) 실험까지 하면서 한반도 내 핵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북한은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 무기체계와 포탄 등을 공급하고 있고, 러시아는 이에 대해 미사일 및 위성 기술 지원으로 보답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지난 6월 19일에는 푸틴과 김정은이 상대국이 전쟁 시 지체 없이 상호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은 준(準)동맹 성격의 ‘포괄적안보협력협정’까지 체결했다.

중국은 지난 5월 20일 대만 독립 성향이 강한 라이칭더(賴淸德) 총통이 취임한 지 사흘 만에 육·해·공군 및 미사일을 동원한 대만 포위 훈련을 실시했다. 미국의 평가에 의하면, 중국은 최근 핵무기 90기를 추가 생산하여 현재 500여 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2030년경에는 미국과 유사한 수준인 1000여 기의 핵무기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로 핵무기를 증강하고 있다.

미국에서 나오는 한국 핵무장 허용론\

▲북한이 2023년 공개한 ‘화산-31형’ 전술핵탄두. 직경 50cm 이하로 다양한 미사일에 탑재가 가능한 것으로 평가된다. 사진=연합뉴스

 

이에 맞서 미국의 바이든 정부도 정책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도 ‘강한 미국’을 표방하면서 핵군비 경쟁과 대중(對中) 견제를 역설하고 있다.

지난 6월 미(美) 하원은 2025년 국방예산(2024년 10월~2025년 9월)을 8952억 달러(약 1243조4000억원)로 책정하고, 주한미군의 규모를 현재 수준인 2만8500명 수준으로 유지하며 한국에 대한 확장 억제 정책도 유지하도록 명시한 국방수권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번 국방수권법에 나타난 주한미군 유지 입장은 현 바이든 민주당 행정부의 기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11월 대선에서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는 공화당 트럼프 진영은 바이든 행정부와는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국방비는 한화(韓貨)로 1200조원이 넘는데 이 중 30%가 넘는 약 400조원 이상이 중국 견제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대만과 한반도 2개 전장(戰場)에서 모두 승리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대만과 한반도 2개 전장을 접하고 있는 중국, 러시아, 북한은 3개국 모두가 핵무기 보유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트럼프 진영은 주한미군 철수 문제 및 한국 독자적 핵무장 필요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트럼프의 측근으로서, 트럼프 1기 행정부 마지막 국방장관 대행을 수행했고 2기 행정부가 출범한다면 국방장관으로 유력시되고 있는 크리스토퍼 밀러는 지난 3월 18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 핵은 기대가 아니라 현실로 봐야 한다. 미북 군축(軍縮) 협상도 가능하다. 한국은 북핵 위협으로부터 스스로 지킬 능력이 있다. 한국이 1차 책임을 져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도 논의가 가능하다. 미국은 이를 지원할 수 있으며, 미국은 중국에 집중해야 한다.”

즉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집권한다면, 한국으로부터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한국은 자체 핵무장을 통해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1차적으로 알아서 방어하라는 입장으로 선회할 수 있음을 시사(示唆)한 것이다.

그러면 한국은 어찌해야 할까? 우리가 감당해야 할 북한의 핵 능력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핵무기 운반 탄도미사일 1000여 기 보유

북한은 1980년에 영변 5MW 실험용원자로(흑연감속로)를 착공하여 고농도의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시작했다. 1993년에는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하고, 2005년에는 핵무기 보유 선언을 했다. 2006년 제1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2009년 2차, 2013년 3차, 2016년 4·5차, 2017년 6차 핵실험까지 완료한 상태다.

미국 핵군축연구소가 2023년 10월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북한은 핵무기를 최소 45~50기 이상 보유하고 있고, 매년 4~12개의 핵탄두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핵무기를 운반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 1000여 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동식 발사대(TEL) 100여 기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은 또한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다종(多種)의 미사일을 개발해놓고 2016년에는 신형 고출력 엔진 개발을 완료한 상태다. 단거리미사일(SRBM)은 사거리 300~500km의 스커드(Scud)-B/C, 준중거리미사일(MRBM)은 사거리 1000~1300km의 스커드-ER 및 노동미사일, 중거리미사일(IRBM)은 사거리 3000~5000km의 무수단 및 화성-12형, 사거리 1만km 이상의 장거리미사일(ICBM)은 대포동-2호, 화성-14형·15형·17형 등을 보유하고 있다. 2023년에는 사거리 1만5000km의 화성-18형까지 공개했다.

2021년 1월 제8차 당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김정은은 “작전 임무의 목적, 타격 대상에 따라 각이한 수단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들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핵탄두 중량 50kt 이상의 전략핵무기는 주로 미국을 대상으로 하는 억지용, 탄두 중량 50kt 이하의 전술핵무기는 남한을 대상으로 실제 사용 가능한 무기로 간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로 비행장, 군사 지휘 시설, 항만 등 주요 군사 목표물에 대한 정밀타격이 목적인 이 전술핵무기들은 초대형 방사포(放射砲), 이스칸데르 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발사할 수 있다.

北, 선제적-방어적 사용 모두 가능

북한은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어떻게 사용할까? 김정은은 지난 2022년 4월 25일 조선인민군 창설 90주년 열병식에서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해 있을 수는 없다”면서 핵 사용 방침을 언급한 바 있다. 이를 통해 북한의 핵무기 사용 전략 전술을 추정해볼 수 있다.

첫째, 전략핵무기로 워싱턴을 위협하면서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 사용하는 전략이다. 즉 한반도에서 민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군사 시설 위주로 소형 전술핵무기를 사용하면서 미국이 이에 대해 핵 보복을 할 경우 북한은 전략핵무기를 통해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다고 위협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미국은 과거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언급했던 것처럼 서울을 지키기 위해 워싱턴을 포기할 수 있을까? 북한이 소형 전술핵무기를 사용하여 선택적이고 제한적인 핵공격을 할 경우 미국은 핵 보복을 회피하고 재래식 무기로 대응하고자 하는 정치적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핵무기는 그 엄청난 파괴력으로 인해 과거에는 실제 사용이 불가능한 무기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핵무기 소형화에 성공한 북한이 핵무기의 선제적(先制的) 사용 방침을 언급한 점으로 미루어볼 때 북한은 전술핵무기를 통한 선택적 공격을 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 북한은 핵무기의 ‘선제적 사용’과 ‘방어적 사용’을 모두 선택할 수 있다. 전시(戰時) 미군 전력(戰力)이 한국에 전개하기 전에 단기간에 수도권을 장악한 뒤 한미 연합군이 수도권 재탈환이나 북한 지역 반격을 단념하게 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핵을 사용할 수 있다. 또 활주로, 항만, 군사 지휘 시설 등에 전술핵무기를 사용하는 동시에 핵 EMP를 사용한다면 한국군은 군사적 지휘 능력을 상실할 수 있다. 반대로, 북한은 기습공격 후 제한적 점령이나 전략적 목표에 실패할 경우 북한 지역으로 전장이 이동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하여 휴전선 인근 지역에서 전술핵무기를 투발(投發)하거나 핵 사용 위협을 가함으로써 방어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핵무기 선제 사용 가능성 법제화

실제로 북한은 2022년 9월 8일에 핵무력 사용 원칙을 법제화하면서 핵무기 사용조건 5가지를 제시했다. 여기서 북한은 재래식 공격 임박 시나 전쟁 주도권 장악 필요시에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전술적 필요에 따라 선제적 공격용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선제 사용 원칙’을 법제화한 것이다. 이와 때를 맞추어 2022년 9~10월에 북한은 ‘전술핵 운용부대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이틀에 한 번꼴로 7차례의 다종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훈련을 실시하고 이를 공개했다. 이는 한국을 대상으로 소형 핵탄두를 탑재한 전술핵무기를 발사할 수 있다는 능력과 의지를 과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러시아의 전세(戰勢)가 불리하게 되자 푸틴은 우크라이나 영토에 전술핵무기 사용을 검토하겠다는 위협을 해서 미국과 유럽을 긴장시켰다. 과거에는 핵무기는 억지용이며, 실제 사용 가능성을 언급하는 자체가 금기시되었으나, 이제는 전술핵 차원의 소형 핵무기는 사용할 수 있다는 전략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에 대비하여 한미 양국은 최소한 두 가지 명시적인 대응 전략을 가지고 있다.

우선,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에 대해 한국은 3축(軸)체계로 대응한다는 기본 전략을 가지고 있다. 제1축은 킬체인(Kill-Chain)이다. 북한이 한국에 대해 핵미사일 공격 임박 징후를 보인다면 한국군은 이에 대해 선제타격을 통해 사전 차단한다는 전략이다. 군사위성, 공중정찰기, 신호정보 등 모든 한미연합 감시전력을 통해서 정밀 감시하고, 임박 징후 식별 시에는 한국의 지대지(地對地)미사일 및 F-35 스텔스 전투기 등으로 공격 원점(原點)의 핵미사일 자산을 무력화(無力化)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은 최근 저궤도 감시정찰 위성 5기를 한반도 상공에 띄워 운용하는 전력 배비(配備)를 진행 중이다.

제2축은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다. 선제타격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미사일이 날아오면 2단계로 공중에서 요격하는 단계다. 우리의 공중 요격에는 미군이 배치한 사드(THAAD)미사일과 한국이 최근 자체 개발에 성공한 장거리 지대공(地對空) 미사일(L-SAM), 천궁, 패트리엇 등을 통해 고고도-중고도-저고도에서 단계적으로 요격하는 전력을 운용하고 있다.

제3축은 대량응징보복체계(KMPR)다. 핵미사일에 대한 공중 요격에도 북한의 핵미사일이 떨어져 한국이 대량 피해를 입을 경우에는 한미 연합군은 F-35 전투기, 현무미사일 등 각종 탄도미사일로 북한이 감내하기 어려운 대량 보복을 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2023년 8월, 을지 자유의 방패 훈련 시 한미 연합군은 3축 체계를 기초로 하는 연합 핵 대응 훈련을 한 바 있고, 12월에는 한국군 단독으로 북한 핵공격에 대응하는 모의 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NCG, 북핵 대응 로드맵 공개

▲지난 6월 10일 한미 양국은 핵협의그룹(NCG) 회의 후 북핵 대응 로드맵을 공개했다. 사진=조선DB

 

둘째, 한미 핵 확장 억제 전략이다. 한미 양국은 2023년 4월 한미 정상회의에서 나온 워싱턴 선언에서 합의한 한미 핵 확장 억제를 구체화하기 위해 한미 간 핵협의그룹(NCG) 회의를 운용 중이다.

금년 6월 10일 열린 3차 핵협의그룹 회의에서 한미 양국은 북핵 공격에 대응하는 로드맵을 공개했다. 북핵 공격에 대응하여 미국의 핵 전력과 한국의 재래식 전력을 통합하여 일체화된 확장 억제를 수행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여기에는 미국의 ‘AGM 183’이라는 극초음속미사일 사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 극초음속미사일은 150kt 크기의 전략핵탄두까지 탑재할 수 있고, 최대사거리 1만6000km 밖에서 2분 만에 북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마하 20의 저공 초음속으로 비행하여 요격이 불가능하다. 지난 2월 미군은 괌에 있는 B-52폭격기에서 극초음속미사일을 발사하는 훈련 장면을 공개함으로써 한미 확장 억제의 공약을 실행하는 전략을 재확인했다.

이러한 한미 핵 확장 억제를 위한 로드맵은 8월에 실시되는 을지 자유의 방패 연합 훈련을 통해 적용하고, 올 하반기에도 추가적인 연합 훈련을 실시할 예정으로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재래식 무기를 중심으로 하는 3축체계 전략과 한미 간의 핵 확장 억제 전략이 얼마나 실효성(實效性)이 있을까 하는 점이다. 미국의 핵 확장 억제에 따른 핵우산은 과연 안전한가? 우산은 비가 오기 전에 써야 의미가 있다. 그런데 적이 핵공격을 하기 전에 핵우산을 먼저 펼칠 수 있는가? 핵 선제공격을 받고 나서 핵우산, 즉 핵보복을 하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만일 미국이 한국을 위하여 핵보복을 하면 워싱턴이나 뉴욕은 북한의 핵보복으로부터 안전할까? 과연 미국은 서울을 위해 워싱턴을 포기할 수 있는가? 핵우산 정책, 즉 한미 확장 억제 정책은 억제 정책으로서는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성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트럼프 재집권 시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유력시되는 엘브리지 콜비는 “한국에 대한 미국의 확장 억제는 지키기 어렵다”면서 “동맹은 비즈니스다. 한국도 미국의 안보에 기여해야 한다. 이제 한국도 자체 핵무장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그리고 이스라엘과 이란 등 중동국가들과의 교전(交戰)에서도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유사시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미국이 6·25 전쟁 때처럼 다시 직접 개입하고 도와줄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일각에서 거론하고 있는 미국 전술핵 재배치 역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한미군 부대 내에 배치하고, 미군이 통제하며, 또 언제든지 철수할 수 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한국이 자체적으로 핵 억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아무리 우리가 세계 5위의 군사력 수준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핵무기 없이 재래식 무기로는 북한의 핵무기 사용을 억제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핵무기는 핵무기로 억제해야 한다.

한국, 핵무기 투발 능력 충분

▲실전배치를 앞두고 있는 국산 KF-21 전투기는 핵미사일 발사도 가능한 첨단 전투기이다. 사진=조선DB

 

지금 한국의 핵무장 잠재 능력은 얼마나 될까?

한국의 미사일 개발은 1979년 이후 한미 ‘미사일 지침’에 의해 40년 이상 개발 제한을 받아왔다. 하지만 네 차례의 개정을 거쳐 2021년 5월 ‘미사일 지침’이 완전 해제되면서 2023년 현무-5를 개발 완료, 공개했다. 현무-5 미사일은 사거리 300~3000km, 탄두중량 8~9t으로 지하 100m 벙커까지 파괴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급 능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사거리 최대 8000km, 탄두중량 12t 규모의 ICBM급 현무-6 미사일 개발을 추진 중이다. 이 현무미사일은 북핵미사일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 베이징(北京)까지도 타격이 가능해 그 전략적 가치가 매우 크다.

2022년 개발 완료한 국산 KF-21 전투기는 실전배치를 앞두고 현재 1000여 회 이상 비행을 통해서 성능을 시험 중이다. KF-21은 360도 공격이 가능한 레이저 무기에다, 핵미사일까지 발사가 가능하며 우수한 스텔스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중국이 최근 개발한 5세대 전투기인 J-20 스텔스 전투기 수준과 유사하고, 미국 F-35 스텔스 전투기 수준을 바짝 추격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전투기이다.

핵잠수함 개발도 현실화되고 있다. 한국은 핵무기 보유 제한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에 핵잠수함 기술 개발을 꾸준히 요구해왔고, 현재 설계까지 완성해놓고 있는 상태다.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도 2021년 9월 시험발사까지 성공했다.

이처럼 투발 수단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진짜 중요한 것은 핵무기를 만들 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답은 ‘가능하다’다. 한국은 중수로 원자로를 보유한 월성원자력발전소를 통해 매년 2.5t 규모의 플루토늄 원료를 확보할 수 있으며, 국제적인 여건만 조성되면 최소 6개월에서 1년이면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핵무장 통해 동북아 균형자 역할 가능

국제정세가 요동치면서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이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는 지금이 기회다. 위기가 곧 기회다. 잠시나마 미국 내에서 한국의 핵무장을 허용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 우리도 독자적인 핵 억제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한국이 자체 핵무기까지 보유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전략적 이익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북·중·러의 위협에 대해 ‘전략적 억제 능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핵을 보유한 한국을 대상으로 북한, 중국이 전쟁을 벌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만일 우크라이나가 모스크바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과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할 수 있었을까?

둘째, 북한의 심심찮은 대남 도발 위협은 감소하거나 사라질 것이다. 남북 간 ‘공포의 균형’이 이루어지면서 도발 및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미·중 간 대만 충돌 가능성에 대해서도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핵을 가진 한국의 미국 지원 능력을 과소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대만과 한반도에서 두 개의 전쟁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즉 한국은 미·중 간의 패권(覇權) 경쟁으로 인한 무력(武力) 충돌 가능성을 예방하는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동북아에서 북·중·러 3국과 한·미·일 3국의 세력 균형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미국의 핵우산과 주한미군 및 주일미군의 존재가 세력 균형을 유지해왔는데,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다면 3국 세력 균형에 있어 독자적인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완전 철수는 곤란

물론 이러한 균형자 역할은 핵을 보유한 다음의 문제다. 핵을 보유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기까지의 한국 핵무장의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안보 정책 차원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을 준비하고 고려해야 한다.

첫째,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되, 이제는 미국과 상호이익이 되는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보장받기 위해서 대만 위협에 대해서도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중국의 대만 침공 시 미국의 전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중국이 북한의 도발이나 남침을 부추길 가능성도 예상해봐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둘째, 한국 자체 핵무장을 보장받을 경우, 주한미군 감축은 몰라도 완전 철수는 적극 반대해야 한다. 주한미군 철수는 한미동맹의 약화를 의미한다. 핵을 가진 북·중·러시아의 밀착과 폭주가 심해지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핵무장을 한다고 하더라도 한국 혼자서 그에 맞서기는 어렵다. 한국 자체 핵무장을 주한미군 철수와 완전히 맞바꾸는 상황은 만들지 않아야 한다.

셋째, 중국의 제재와 보복을 받지 않아야 한다. 설령 중국이 어떤 공격을 하더라도 이에 보복할 수 있는 억제 능력을 갖춘 상태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즉 중국이 한국에 대하여 예방공격을 한다면 한국도 현무-5 미사일 및 KF-21 스텔스 전투기 등 전략무기로 베이징까지 타격해 중국도 감내하기 어려운 보복을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보복에 의한 억제 능력과 의지를 갖추지 못한다면 한국의 자체 핵무장 과정은 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원자력의 과거, 현재, 미래

비핵화 선언 ‘정지 선언’하고 공격원잠(原潛) 건조해야

⊙ 핵 정치가는 없고 원자력 전문가만 있는 나라
⊙ 미국과 핵 협상, 신규 원전 건설, 월성 1호기 복구, 사용 후 핵연료 중간 저장소 건설 추진해야
⊙ 이승만, 1955년 미국 주도의 제1회 원자력 국제회의에 대표단 보내 자료 수집
⊙ 박정희, NPT 가입 조건으로 재처리 가능한 중수로 건설
⊙ 전두환, 핵개발 대신 원전에 집중… 원자력 산업 강국 기초 다져
⊙ 노태우, 비핵화 선언… 원폭 고려 않고 원전만 보는 짝짝이 나라가 되어버려

이정훈
1962년생. 연세대 학사·석사, 경기대 박사(정치학) / 《월간조선》 기자, 《신동아》 편집위원, 《주간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논설위원 역임 / 저서 《한국의 핵주권》 《탈핵비판》 《그래도 원자력이다》 외 다수

▲박정희 대통령 시절 건설이 결정된 월성 원전은 중수로 방식으로 핵 재처리를 염두에 둔 원전이었다. 사진=조선DB

 

 2023년 4월 28일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한국은 핵무장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빠른 시일 내에, 심지어 1년 이내에도 핵무장을 할 수 있는 기술 기반을 가지고 있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독자 핵개발을 안 하고 NPT(핵 확산 금지조약) 체제를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조야(朝野)는 이 발언에 주목했다. 한국은 핵무장할 능력과 의지가 있지만 참고 있으니 북한처럼 한국을 위협하는 나라들은 자제하라는 요구로 이해됐기 때문이다.

지난 6월 19일 김정은과 푸틴은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로부터 무력(武力)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련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4조)’를 담고 있는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을 맺었다. 최고의 군사동맹인 상호방위를 약속한 것이다. 조약 본문은 여간해선 공개하지 않는데 북한은 만족한 듯, ‘온 세계가 보라’고 전문을 조선중앙통신에 올렸다. 이는 노태우 정부 때인 1990년 소련과의 수교로 시작한 대한민국의 북방외교가 실패했다는 뜻이 된다.

‘하버드 발언은 뭐였나?’

불법으로 핵을 가진 북한과 불법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공동방위를 약속한 것에 대해 우리가 보여야 할 첫 번째 반응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 무기 제공과 자체 핵무장이다.

북러조약 체결 직후 미국의 싱크탱크들은 바로 한국의 핵무장론을 거론했으나 대한민국에서는 유사한 주장이 나오지 않았다. 야당엔 아예 없었고 여당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국민의힘 대표에 도전한 나경원 의원 정도만 외쳤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놀랍게도 기자 간담회에서 “자체 핵무장은 고려할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핵무장론을 틀어막는 발언을 했다.

이러하니 ‘하버드 발언은 뭐였어?’라며 윤 정부의 안보관을 의심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윤 정부의 안보관이 오락가락하게 된 것은, 미국·일본은 우습게 봐 반미·반일을 외치지만 그보다 훨씬 못하고 밥 먹듯이 배신을 하는 러시아와 북한을 두려워하는 ‘야릇한’ 지식인과 정치인이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겁이 날 때는 두려움에 젖어 있지 말고 극복할 수 있는 방안부터 찾아야 한다.

 

올해 김정은은 만 40세다. 후계자 생활을 빼도 13년간 통치한 경험이 있으니 그를 애송이로 볼 수 없다. 그가 문재인을 속여 ‘꿈에 그리던’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해 강성 대국을 입증한 것은 ‘핵 정치’를 아는 이를 곁에 두고 ‘미국 포비아’ ‘한국 공포증’을 극복해낸 탓이다.

지금은 희미해진 기억이 됐지만 우리에게도 핵 정치에 밝은 지도자가 있었다. 엄혹했던 시절 그들은 4차원이나 두려움에 빠져 있지 않고, 방법을 찾아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줬다. ‘에너지 빈국’ 대한민국의 문제도 해결하면서 안보도 강화하고 통일까지 넘봤던 그 시절을 돌아보며 북러방위조약이 나온 윤석열 시대의 핵 정치를 모색해보기로 하자.

원자력잠수함에서 나온 경수로

대한민국 핵 정치의 태조(太祖)는 ‘외교의 귀신’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다. 그는 세계정세를 이용해 척박한 환경이었음에도 원자력 씨앗을 심고 묘목으로 키워냈다. 그가 직면한 세계정치는 ‘냉전’이었다. 연합국을 이끌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곧바로 연합국의 일원이었던 소련의 배신에 직면했다. 자신이 ‘해방’시킨 동유럽 제국과 북한을 공산화하며 적대적으로 나온 소련은 1949년 핵실험에 성공해 미소(美蘇) 대립을 극대화했다. 그해 중국에서는 공산당 군이 국민당 군을 대만으로 몰아내고 대륙을 차지했으니 ‘동서(東西)냉전’은 치열해졌다. 이듬해 한반도에서 6·25 전쟁이 일어나자 ‘자의식’ 있는 나라들은 핵개발에 눈을 돌렸다.

1952년 영국이 핵실험에 성공하자 이 경쟁은 가열됐는데, 이렇게 되면서 미국은 세계 통제력을 잃는다. 핵 보유국 사이의 경쟁은 3차 대전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953년 12월 7일, 이를 염려한 미국이 담대한 국제정치를 펼쳤다. 유엔을 찾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려는 나라에는 미국의 원자력 기술을 제공하겠다며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이란 제목의 연설을 한 것이다.

소련의 기세를 꺾어야 하는 미국은 평화적인 원자력 기술 제공으로 동맹국을 늘리면서 원폭을 통제하기 위해 이 제안을 한 것이다. 이듬해 미국 해군이 ‘STR 마크-2’ 원자로를 탑재한 최초의 원자력잠수함(原潛) ‘노틸러스(SSN-571)’함을 진수했다. STR-2는 핵연료와 접촉해 열을 받아 나오는 물과 그 물로부터 넘겨받은 ‘열’로 수증기를 발생하는 물을 완벽히 분리했기에 이 원자로와 같이 지내야 하는 승조원들은 안심하고 노틸러스함을 탈 수 있었다. 전기를 생산하는 상업용 원자로(상업로) 가운데 가장 안전한 것이 경수로(輕水爐)인데, 경수로는 STR 마크-2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삼일절에 원자력연구소 개소식

▲이승만 대통령은 1959년 7월 14일 한국 최초의 실험용 원자로 ‘트리가 마크–2’ 설치를 위한 기공식에 노구를 이끌고 참석, 직접 삽을 떴다. 사진=조선DB

 

이때는 6·25 전쟁이 막 끝난 직후라 다수의 우리 국민은 미국이 원폭으로 일본을 항복시켰다는 것만 알았지 원잠과 원자로, 우라늄은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아이젠하워의 유엔 연설에 주목한 ‘외교의 귀신’은 신속히 움직였다. 1955년 미국 주도로 유엔이 제1회 원자력 국제회의를 열자 대표단을 보내 자료를 모으게 한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미국을 상대로 한미원자력협정을 맺고 문교부 교육기술국에 원자력과를 설치하게 했다. 미국의 군사 원조로 상당액의 정부 예산을 꾸리고 있을 때인데 ‘상상도 못 할’ 일을 저지른 것이다.

미국이 움직인 만큼 주요 국가들은 기민하게 대응했다. 1956년 영국이 세계 최초로 상업용 원자로(상업로)인 콜더홀 원전을 준공하자, 이듬해 소련이 오브닌스크 원전, 그 이듬해 미국이 시핑포트 원전을 준공했다. 시핑포트 원전이 바로 원잠용 원자로인 STR 마크-2 기술을 기반으로 한 경수로였다. 상업로 붐에 주목한 이승만 대통령이 1957년 237명의 엘리트를 국비 훈련생(일명 원자력 유학생)으로 뽑아 미국과 영국으로 보냈다.

1958년에는 ‘가당치도 않게’ 원자력법을 만들게 하고 한양공대에 처음으로 원자력 공학과를 개설하게 했다(서울공대는 1959년 원자핵 공학과 만듦). 그리고 우리도 원자로를 가질 수 있도록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하게 했다. 1959년 그는 장관급이 이끄는 행정부 조직으로 ‘원자력원(原子力院)’을 만들면서 대한민국 최초의 국책(國策)연구소인 원자력연구소를 세웠다. 이 대통령은 과학 기술로 강국을 만들어 ‘다시는 식민지가 되지 말자’는 뜻으로 이 연구소 개소식을 삼일절에 가졌다.

박정희, 1962년부터 원전 관심

그해 7월 14일 이 연구소가 미국에서 도입하기로 한 연구용 원자로(연구로) ‘트리가 마크-2’ 설치를 위한 기공식을 가졌는데, 이승만 대통령은 “장차 원자력연구소는 훌륭한 아토믹 머신을 만들어야 합니다”란 연설을 했다. ‘아토믹 머신’은 원자로를 가리킨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때의 우리 국민들은 원폭만 알았기에 “이 대통령이 원폭을 만들라고 했다”며 설왕설래를 했다.

이 대통령이 얼마나 빨랐는지는 일본과 비교하면 분명해진다. 일본은 1955년 미국과 ‘일미원자력연구협정’을 맺고 ‘원자력기본법’을 만들었다. 1956년엔 원자력을 다루는 정부 기구로 과학기술청을 설치했다. 이승만은 일본과 엇비슷하게 원자력 토대를 닦았다.

1960년 4·19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下野)하고 민주당 집권기를 거쳐 1961년 5·16으로 박정희(朴正熙) 정권이 들어섰다.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 원자력을 성장 궤도에 진입시켜 첫 수확까지 한 태종(太宗)에 해당한다. 1962년 트리가 마크-2를 준공하자 기념우표를 발행해 경축한 그는 1963년부턴 ‘꿈도 꾸지 못한’ 원전(原電) 건설에 관심을 기울였다. 당시엔 화력발전이 원전보다 훨씬 경제성이 좋았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원전 건설을 독려한 이유는 숙원인 ‘전기 보급(에너지)’과 안보 때문이었다.

원자력발전을 하려면 자연 상태에서는 0.3% 정도로 있는 우라늄235의 순도를 높여야 한다. 0.7%대로 높이면 중수로용 핵연료, 5%대로 올리면 경수로용 핵연료, 30%대로 높이면 연구로용 핵연료, 90%대로 올리면 핵폭탄(원폭)이 된다. 이러한 핵연료를 원자로에서 태우고 꺼낸 것을 ‘사용 후 핵연료’라고 하는데, 사용 후 핵연료에는 자연 상태에서는 없는 플루토늄이 있다. 자연 상태에서는 99.7% 비율로 있던 우라늄238 중 일부가 원자로 안에서 중성자를 흡수해 플루토늄으로 변하는 것이다.

플루토늄도 우라늄235처럼 핵분열을 한다(우라늄238은 핵분열을 하지 못한다). 플루토늄은 중수로와 연구로용 사용 후 핵연료에서 많이 만들어지는데, 플루토늄을 긁어내고 나머지는 폐기하는 것을 ‘재처리’라고 한다. 따라서 원폭은, 원자로가 없다면 우라늄235의 순도를 높이는 농축으로, 원자로가 있다면 농축과 재처리로 만들 수 있다. 이 중 비용이 훨씬 적은 쪽이 재처리이다.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맺어 연구로나 상업로를 지으면 미국은 핵연료를 제공해주는데, 이를 연구로나 상업로에서 태운 다음 재처리하면 핵무기는 가장 쉽고 싸게 만들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핵무기를 만든 나라가 인도와 북한이다. 캐나다의 기술을 받아 중수로를 완공한 인도는 비밀리에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얻은 플루토늄으로 1974년,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받은 연구로 IRT-2000에서 나온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2006년 최초 핵실험을 했다. 인도의 경쟁국인 파키스탄은 지금도 원자로가 없기에 20여 년간 농축만으로 원폭을 만드는 노력을 하다 1998년 첫 핵실험을 했다. 농축으로 만든 원폭을 ‘우라늄탄’, 재처리로 만든 것을 ‘플루토늄탄’이라고 하는데, 효율(성능)은 플루토늄탄이 월등히 좋다.

이것이 현실이기에 미국 등 원자력국은 농축과 재처리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원자력협정을 맺어준다. 그러함에도 미국은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1957년 유엔에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 for Peace)’을 로고로 내건 IAEA를 만들고, 1970년엔 NPT(핵확산금지조약)를 만들어 ‘원폭 개발’을 뜻하는 핵 확산을 막으려 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맺지 않았고 NPT에도 가입하지 않았기에 핵개발을 할 수 있었다.

월성 1호기는 재처리 가능한 중수로

▲1978년 국내 첫 원전인 고리 원전 준공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고리 원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조선DB

 

북한은 소련과 원자력협정을 맺고 1985년엔 NPT에도 가입했다. 그래서 IRT-2000 연구로를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인데, 1991년 소련이 무너져 고난의 행군에 빠지자 이 연구로에서 나온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며 몰래 핵개발을 했다. 그리고 1993년 3월 12일 NPT 탈퇴 선언을 하고 3월 19일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위협을 해 엄청난 ‘북핵 공포’를 조성했다.

북한은 소련과 맺은 원자력협정을 어긴 것인데, 러시아는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우리 눈치가 보였는지 1995년 북소우호조약을 파기하고 불곰사업을 시작했다(1993년 북한의 NPT 탈퇴는 선언으로 끝났다. NPT는 가입국이 탈퇴한다고 하면 그만인 것이라, 북한은 그 후로도 몇 번 탈퇴 선언을 했다. 하지만 2006년 1차 핵실험을 한 뒤로는 확실히 탈퇴한 것으로 여기게 됐다).

북한의 핵개발 과정을 약술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핵 정치의 길을 먼저 걸으려 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초 원전인 고리 1호기 착공식을 가진 1971년 3월 19일, 그는 진해항에서 타봤던 미국 원자력잠수함을 예찬한 후 “원전은 경제성이 없지만 먼 장래를 본다면 싸게 전력(電力)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근거 없는’ 얘기를 했다.

그러함에도 국민들은 원전 건설을 반겼는데 이는 박 대통령의 설명이 먹힌 데다 원폭을 가질 수도 있다는 갈망 때문이었다. 1978년 고리 1호기 완공으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 아시아에서는 일본 다음으로 원전을 가진 나라가 됐다.

그런데 고리 1호기를 짓던 1973년 오일쇼크가 일어나 석유는 물론이고 석탄까지 값이 올라, 원전은 화전보다 단가가 싸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박정희 대통령이 말한 먼 장래가 7년도 안 돼 나타난 것이다.

재처리를 의식하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은 망설이지 않았다. 고리 1호기를 짓고 있던 1977년 월성 1호기 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고리 1호기는 경수로였지만, 월성 1호기는 재처리를 하면 제법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는 중수로였다. 박 대통령은 무서운 집념을 보였다. 월성 1호기 기공 직후 고리 2호기 공사를 시작하고, 고리 1호기 완공식을 한 1978년 7월 20일엔 함께 고리 3·4호기 기공식을 했다.

박정희, 프랑스와 원자력협정 체결

1971년 이래 그는 다섯 기의 원전을 짓게 한 것인데, 이는 국제정세 때문이다. 한국전쟁 정전(停戰) 이후 미국은 지속적으로 주한미군을 철수했는데 그때마다 안보 위기가 일어났다. 이 위기는 미국에서 1969년 닉슨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극대화됐다. 닉슨은 소련을 잡으려면 공산블록을 흔들어야 한다고 보고 ‘핑퐁외교’로 제2의 공산 대국인 중국에 접근했다. 그 후임자인 카터 대통령은 박정희를 독재자라며 싫어했으니 그의 시절 한미 관계는 최악이었다. 그런데 소련의 준동으로 유엔에서는 유엔사 해체 주장이 큰 지지를 얻었다.

이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은 해외 주둔 미군 감축에 반대하는 미국 군부를 움직여 1978년 한미연합사를 만들고 중수로인 월성 1호기도 짓게 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중수로 건설은 매우 드라마틱했다. 1973년 프랑스는 고리 1호기를 공급한 미국의 웨스팅하우스로부터 기술을 구입해 원자력 기술 국산화를 이뤘다. 그리고 1974년부턴 이라크에 오시라크 연구로와 재처리 시설을 지어주게 됐는데, 이를 위협으로 본 이스라엘이 1981년 공군을 동원한 ‘오페라 작전’으로 파괴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프랑스-이라크 밀월에 주목한 박정희 정부는 1975년 프랑스와 원자력협정을 맺고 이듬해부터는 핵연료와 재처리 연구 시설을 도입한다는 계약을 맺었다. 그해 캐나다와 월성 1호기 도입 계약도 맺었다.

문제는 이러한 노력이 인도가 핵실험(1974년)을 한 때 이뤄졌다는 점이다. 당시 대만도 주(駐) 대만 미군 철수로 안보 위기가 커졌기에 중수로 도입을 추진했다. 그러자 카터가 이끄는 미국이 강한 태클을 걸어왔다. ‘놀랍게도’ 박정희 대통령은 NPT에 가입하지 않고 고리 1호기를 짓고 있었는데 미국은 이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의도를 알고 있는 미국은 “중수로 도입을 중단하고 즉각 NPT에 가입하라”고 요구했다. 같은 압력을 받은 대만은 중수로 도입을 포기했으나, 박 대통령은 “NPT에 가입하면 중수로를 지어도 되는 것 아니냐”고 맞서 관철시켰다. 미국에 맞서는 ‘핵 외교’를 한 것인데, 이는 먼 훗날의 재처리를 위해서일 것이다. 이때부터 우리의 원자력발전소는 물론이고 원자력연구원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국방과학연구소는 IAEA의 사찰을 받게 됐다.

이러한 때인 1979년 3월 28일 미국에서 스리마일 섬-2호기 사고가 발생하자 카터는 미국 내 신규 원전 건설 중단을 결정했다. 이 사고로 방사선은 유출되지 않았고 희생자도 전무했지만 반(反)원전주의자인 카터는 이를 의도적으로 키웠다. 그리고 10월 26일 원자력 풍운아 박정희는 스나이더 미국 대사와 자주 접촉해온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시해당했다. 12·12 사건을 거치며 전두환(全斗煥) 정권이 들어섰다. 전두환 정부는 레이건 정부와 합의해 복잡해진 한미 관계를 정리했다.

가장 큰 성과는 안보 문제 해결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주한미군 철수를 중단한 것이고, 두 번째는 미국으로부터 기술을 받아 현무-1 미사일 개발을 한 것을 꼽을 수 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우리는 미국이 넘겨준 나이키-허큘리스를 토대로 ‘백곰’ 미사일을 만들었으나 정확도를 자신할 수 없었다. 카터 정부는 박정희 정권을 미워했으니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전두환 대통령은 한미연합사를 움직여 대통령이 된 레이건을 제일 먼저 면담한 후, 주한미군 철수를 중단시키고 미사일 기술을 발전시킬 기회를 잡았다.

부차적으로 일본에 압력을 넣어 우리에게 60억 달러라는 거액의 차관을 제공하게 했는데, 서울올림픽 유치를 국책과제로 삼은 전두환 정부는 한강을 재개발하고 강변도로를 만들어 서울을 탈바꿈시켰다. 도로 등 SOC 투자를 늘림으로써 간접자본을 확충해 흑자 경제의 기반도 닦았다. 대신 박정희의 꿈인 핵개발은 포기했는데, 이를 보여주기 위해 원자력연구소를 에너지연구소로 개칭케 했다. 그러나 그도 먼 훗날을 보고 핵 외교를 펼쳤다.

원전 기술 자립 기반 만든 전두환

▲1982년 10월 13일 울진 원전 9·10호기 기공식에 참석해 현장을 시찰하는 전두환 대통령. 전 대통령은 원전 국산화의 기반을 만들었다. 사진=조선DB

 

미국의 의심을 떨쳤다고 판단한 1981년 전두환 정부는 영광 1·2호기는 미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 웨스팅하우스에 주었다. 그러나 이듬해 울진 1·2호기는 기술 국산화 이후 수출을 위해 저가(低價) 공세를 하며 안달하고 있던 프랑스의 프라마톰에 맡겼는데, 이는 핵개발을 포기시킨 미국에 대한 작은 반발이기도 했다. 한국을 자기 시장으로 알고 있던 웨스팅하우스는 불만을 토로했지만, 전두환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담대한 원자력 외교를 했다. 대한민국에 원전 기술을 주는 기업이 있으면 그 기업에 영광 3·4호기를 짓게 해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때 미국에는 경수로 업체로 웨스팅하우스와 컴버스천 엔지니어링, 밥콕 앤 윌콕스가 있었는데 스리마일 원전을 지은 밥콕 앤 윌콕스는 이 원전 사고로 폐업하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미국은 물론이고 주요 국가들은 원전 건설을 중단했기에, 남은 회사들은 고통을 받았다. 웨스팅하우스는 고리 1·2·3·4호기에 이어 영광 1·2호기도 지었으니 부속품 공급 등 후속 사업을 할 수 있어 그래도 형편이 나았다. 프랑스의 프라마톰도 울진 1·2호기를 따냈기에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가장 절박한 것은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이었기에 가장 좋은 답변을 해, 1986년 전두환 정부는 이 회사를 선택했다.

그리고 에너지연구소 등에 있는 많은 연구자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원전 설계 기술을 익히게 됐다. 그렇게 습득한 기술로 만든 것이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의 시스템 80 원자로와 동형인 한국표준형 원자로 KSNP이다. 노태우(盧泰愚) 정부 이후 우리는 영광 5·6호기와 울진 3·4·5·6호기를 KSNP로 도배하면서 완벽한 기술 자립을 했다. 전두환 정부는 핵개발은 뒤로 미루고 시급한 에너지 확보를 위해 원전에 집중하게 해 대한민국을 원전 강국으로 만드는 기초를 닦았다.

우리 글 훈민정음은 세종(世宗)이 창제했다. 원전 국산화의 기반을 만들고 난제를 정리해 흑자 경제를 창출했다는 점에서 전두환은 원자력계의 세종으로 볼 수도 있다.

원전 국산화를 5공 비리로 몬 야당

서울올림픽 유치, 한미 관계 안착, 일본으로부터 받은 차관으로 비약적으로 SOC 구축, 원자력 기술 자립이란 기록을 세운 전두환 대통령이 그때로서는 ‘가장 중요한 약속’이었던 단임(單任)을 실현하겠다며 1988년 2월 퇴임하고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했다. 그러자 민주 세력으로 위장해 있던 불만 세력과 좌파 세력이 튀어나왔다. 1988년 그들이 장악한 국회는 광주 청문회와 5공 청문회를 열었다.

웨스팅하우스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전두환 정부가 상당한 자금을 받고 성능이 떨어지는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을 선택했다는 제보를 한 것이다. 때문에 5공 청문회에서 김영삼(金泳三)이 이끈 통일민주당과 김대중(金大中)이 이끈 평화민주당 의원들은 원전 국산화를 난도질해 복마전으로 만들어버렸다.

이 싸움이 있은 후 우리나라에서는 탈핵(脫核) 운동 단체가 만들어졌다. 정치적으로는 보수 정당은 친원전, 민주당 등 좌파 정당은 반원전이라는 구도도 형성됐다. 2017년 출범한 문재인(文在寅) 정부가 탈핵 운동가인 양이원영과 김제남씨를 국회의원과 기후환경비서관으로 진출시키고, 반핵 학자인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를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삼아 ‘탈핵 정책’을 펼쳤던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5공 청문회는 원전 국산화를 대표적인 5공 비리로 선정해 뒤집었기에 여러 관계자가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그러나 단 한 사람도 유죄를 받은 이는 없었다. 원전 기술을 갖춰 ‘산업 사회의 젖’인 에너지를 확보하고 안보를 보강하자는 데 원전인들은 단결했기에 부정부패가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노태우 정부는 전두환 정부가 수립한 대로 원전 건설을 추진할 수 있었다. 1990년 7월 19일 한국표준형 원전(KSNP) 건설 계획을 확정 짓고 울진 3·4·5·6호기와 영광 5·6호기를 KSNP로 지어나가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먼 미래에 있을 재처리를 위한 준비도 했다. 1991년 10월 9일 중수로인 월성 원전 2호기도 짓게 한 것이다. 이후 두 기를 더 지어 우리는 네 기의 중수로를 확보하게 되었다.

노태우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실수

▲노태우 대통령은 1991년 11월 8일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했다. 사진=조선DB

 

5공 청문회에서 원전 기술 자립이 흔들린 탓인지 노태우 정부는 핵 정치·핵 외교와 관련해 큰 실수를 했다. 1991년 12월 소련이 붕괴된 후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카자흐스탄도 러시아와 함께 핵무기 보유국이 됐다. 당시는 냉전 종식 직후라 미소 관계가 좋았기에, 미국은 세 나라에 “핵무기를 러시아로 넘겨라”며 세계적인 비핵화(非核化)를 추진했다. 인도가 이미 핵실험을 해 핵 보유국으로 있는데, 핵무기는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만 보유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친 것. 1992년 카자흐스탄과 벨라루스는 러시아로 핵무기를 넘겼고 우크라이나는 갈등을 겪다가 1994년 넘겼다.

노태우 정부는 북한의 핵개발을 막는다는 이유로 소련이 무너지기도 전인 1991년 11월 8일 우리만의 비핵화를 선언하고, 소련이 붕괴한 이듬해 1월 20일엔 북한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1990년부터 소련은 사실상 붕괴했고 노태우 정부는 중수로를 계속 지어가기로 했으니, 미국의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먼저 우리만의 비핵화를 선언했다고 볼 수는 있지만, 아무리 봐도 이 선언은 성급했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휴지가 됐는데, 우리만 비핵화 선언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것도 이상하기 그지없다. 노태우 정부 때부터 우리는 원폭은 고려하지 않고 원전만 보는 짝짝이 나라가 돼갔다. 원폭에 대해서는 확실히 약한 정권이 들어선 것이다.

북한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한 1993년 김영삼 정부는 당황했다. 김영삼 정부는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다고 봤기에 북폭(北爆)을 하겠다는 미국을 결사적으로 막았다. 그리고 미국이 북한과 제네바합의를 하고 KEDO를 만들어 북한 신포에 경수로를 지어주겠다고 하자 ‘원전 건설로 통일이 될 것 같은’ 망상에 빠졌는지, ‘신포에는 KSNP를 지어야 한다’고 고집했다. 때문에 5공 청문회에서 그들이 난도질한 KSNP를 신포에 짓는 공사가 신포에서 시작됐으나, 김대중 정부 때인 2002년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하는 것이 확인돼 제네바합의가 폐기됨으로써 중단됐다. 우리는 공사비 11억 달러를 고스란히 날린 것이다.

박근혜, 사용 후 핵연료 사용할 수 있게 원자력협정 개정

▲이명박 대통령은 UAE 원자로 수출에 큰 역할을 했다. 2011년 3월 14일 바라카 원전 예정부지 기공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 사진=조선DB

 

2006년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했다. 그런데도 한국에선 핵 정치가가 아니라 원자력 전문가만 양성되었다.

KSNP는 한국과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이 공동으로 설계한 것인데, 여섯 기를 짓다 보니 완전한 기술 습득이 됐다. 때문에 OPR-1000이라는 독자 모델을 설계해 2007년부터 신월성 1·2호기와 신고리 1·2호기를 지었다. 그리고 APR1400을 설계해 2009년 신고리 3·4호기를 지으면서 UAE에 원전을 수출(바라카 원전 4기)하는 기적을 만들었다. 이 수출에는 현대건설 회장을 하며 수주 마케팅을 많이 한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이 큰 역할을 했다. 이 정부는 UAE와 계약을 한 2009년 12월 27일을 ‘원자력의 날’로 지정해 경축했다.

그리고 우리는 농축과 재처리로 눈을 돌렸다. 그때 사용 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만 긁어내는 재처리를 하지 않아도 사용 후 핵연료에 있는 플루토늄을 이용해 다시 핵연료를 만드는 MOX(Mixed Oxide·혼합산화물)연료와 파이로프로세싱이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었다. 이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사용 후 핵연료를 손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해야 했다.

박근혜(朴槿惠) 정부 때인 2015년 우리는 미국의 동의가 있으면 우라늄을 20%대까지 농축할 수 있고 파이로프로세싱 등을 위해 사용 후 핵연료를 사용할 수 있다는 쪽으로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북한의 핵실험이 강력해졌기에 미국이 태도를 바꾼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 기술은 빠르게 앞서갔다. 2017년 6차 핵실험을 하면서 북한은 수소폭탄 개발을 선언했다. 이후로는 어뢰나 단거리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에 탑재하는 전술핵무기 개발과 고체연료를 탑재하는 ICBM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북한은 완벽한 핵 보유국이 된 것이다.

멀쩡한 월성 1호기 죽인 문재인

▲문재인 정권은 고리 원전 1호기를 영구 정지시키고, 멀쩡한 월성 원전 1호기를 죽이는 등 탈원전 정책을 강행했다. 사진=조선DB

 

 그런데 2017년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2011년에 있었던 후쿠시마 사고와 15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석굴암과 첨성대도 무너뜨리지 못한 2016년의 경주 지진을 ‘경주 대지진’ 운운하면서 ‘탈핵 정책’을 선언하고 반핵 운동가를 제도권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경제성 수치 조작을 통해 멀쩡하게 계속 운전 중인 월성 1호기를 세우고 폐로(閉爐)로 몰고 갔다. 월성 원전은 경제성만 따져 지은 것이 아닌데…. 삼척과 영덕에 마련해놓은 신규 원전 부지도 문재인 정부는 해제해버렸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던 대한민국 원전은 2022년 윤석열(尹錫悅) 정부가 등장함으로써 기사회생(起死回生)했으나 기대했던 전진은 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원자력계는 문 정권이 해제한 원전 부지를 필요로 하는데, 윤 정부는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았다.

사용 후 핵연료는 재처리를 할 수 있는 자원이다. 그렇다면 25기가 넘는 원전에서 나온 사용 후 핵연료를 한데 모아놓고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윤 정부는 사용 후 핵연료 중간 저장소 설치도 미적거리고 있다.

1989년 목포에 간 평민당의 김대중 총재는 원자력에 대한 의견을 밝히라고 하자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는 원전을 건설할 수밖에 없으나 주민과 충분한 협의를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를 김대중 지지자들은 ‘목포선언’으로 부르며 DJ를 친원전주의자였다고 주장한다. 노무현(盧武鉉) 정부는 부안사태까지 일어나며 난제가 된 방폐장을 경주에 지었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진 좌파 정권은 기본적으로 원자력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가장 심각했던 것은 탈핵 정책을 펼친 문재인 정권이었다.

NCG로 북핵 대응은 난센스

조선의 세조(世祖)는 계유정난(癸酉靖難)을 통해 세종 사후 거대해진 신권(臣權)을 제압하고 왕권(王權)을 강화했다. 지금 한국 원자력계가 필요로 하는 인물은 ‘세조’ 같은 핵 정치가이다.

핵 보유국인 북한이 핵 보유국인 러시아와 방위조약을 맺었다면 장호진 안보실장은 ‘NPT 탈퇴 선언’은 못 하더라도 미국과 상의한 후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이미 무력화(無力化)됐다. 그런데 북러조약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가중됐기에 1990년 우리만의 비핵화 선언과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효력이 정지됐음을 밝힌다”란 주장이라도 해야 한다.

 

1978년 박정희 정부가 미국이 준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을 토대로 백곰 미사일을 만들어 발사에 성공하자, 미국은 원천 기술 보유국을 주장하며 ‘한국이 보유한 미사일의 사거리는 180km를 넘어서면 안 된다’며 한미미사일지침 수용을 요구했다.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기술이 발전하자 1999년과 2012년, 2017년 이 지침을 수정해주더니 2020년에는 폐기해버렸다. 대한민국을 핵탄두만 붙이지 않으면 ICBM을 개발해도 되는 나라로 만들어준 것이다. 미국은 한국이 북한과 미사일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봤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핵을 가진 북러가 동맹조약을 맺었는데 한미가 핵협의그룹(NCG)만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난센스다. 미국 싱크탱크들은 항공기 투하 핵폭탄인 B-61을 한국에 재배치하거나 한국과 핵공유협정을 맺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동서냉전이 첨예하던 시절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의 핵무장을 용인했는데, 이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중국이 만든 남중국해와 대만 위기, 러시아가 만든 러-우 전쟁과 북러조약이 우리에게 핵개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줄지도 모른다. 미국 처지에서는 이것 외에는 동북아에서 중·북·러의 위협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공격원잠 건조해야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전범국(戰犯國)이라 일본의 핵무장을 허용하면 2차 세계대전 승전국으로 구성된 유엔 안보리는 정당성을 잃게 된다. 미국은 유엔 붕괴라는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대만의 핵무장은 중국의 자존심을 정통으로 찌르는 것이라 진짜 대만 위기를 부를 수 있다.

대한민국은 전범국도 중국의 속국(屬國)도 아닌데다 숙적(宿敵)인 북한이 핵무장을 했으니, 북한이 비핵화될 때까지 ‘조건부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둔 핵 정치가·핵 외교가들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의 원자력을 다시 한 번 조이는 세조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미국과 핵 협상을 해 안보를 강화하고 신규 원전을 짓고 월성 1호기를 되살릴 수 있는지 살펴보고 사용 후 핵연료 중간 저장소도 지어야 한다. 20% 농축 우라늄을 연료로 쓰는 공격원잠도 건조해야 한다.

여론으로 위장한 선동에 밀리지 않고 국가가 필요한 것을 해내는 것이 진짜 정치인이다.⊙

 

군사적 관점에서의 자체 핵무장 필요성

北, 전략핵으로 워싱턴 위협하면서 전술핵 사용 가능성 있어

⊙ 북한, 핵무기 최소 45~50기 이상 보유… 매년 4~12개 핵탄두 생산 능력 가져(2023년 미핵군축연구소)
⊙ 北, 핵 무력 사용 원칙 법제화… 재래식 공격 임박 시나 전쟁 주도권 장악 필요시 핵무기 사용 가능 명시
⊙ 北, 단기간에 수도권 장악 후 한미 연합군 반격 단념케 하려 선제적으로 핵 사용할 수도
⊙ 3축(軸)체계, 핵 확장 억제, 전술핵 재배치로는 북핵 대응에 한계
⊙ 한국, 핵무장하더라도 주한미군 완전 철수는 곤란

宋雲洙
1962년생.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고려대 정치외교학 석사, 단국대 국제정치학 박사 / 777사령관, 육군정보학교장, 《국방일보》 논설위원,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사이버전략센터장 역임. 現 한국외국어대 정치행정대학원 외교안보학과 초빙교수 / 상훈 보국훈장 천수장

▲한국군이 보유하고 있는 현무-3 미사일. 북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함대지 순항미사일이다. 사진=뉴스1

 

그동안 핵(核)개발, ICBM 개발에 주력해온 북한이 최근에는 전술핵무기 및 핵 EMP(electromagnetic pulse·전자기펄스) 실험까지 하면서 한반도 내 핵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북한은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 무기체계와 포탄 등을 공급하고 있고, 러시아는 이에 대해 미사일 및 위성 기술 지원으로 보답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지난 6월 19일에는 푸틴과 김정은이 상대국이 전쟁 시 지체 없이 상호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은 준(準)동맹 성격의 ‘포괄적안보협력협정’까지 체결했다.

중국은 지난 5월 20일 대만 독립 성향이 강한 라이칭더(賴淸德) 총통이 취임한 지 사흘 만에 육·해·공군 및 미사일을 동원한 대만 포위 훈련을 실시했다. 미국의 평가에 의하면, 중국은 최근 핵무기 90기를 추가 생산하여 현재 500여 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2030년경에는 미국과 유사한 수준인 1000여 기의 핵무기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로 핵무기를 증강하고 있다.

미국에서 나오는 한국 핵무장 허용론

▲북한이 2023년 공개한 ‘화산-31형’ 전술핵탄두. 직경 50cm 이하로 다양한 미사일에 탑재가 가능한 것으로 평가된다. 사진=연합뉴스

 

이에 맞서 미국의 바이든 정부도 정책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도 ‘강한 미국’을 표방하면서 핵군비 경쟁과 대중(對中) 견제를 역설하고 있다.

지난 6월 미(美) 하원은 2025년 국방예산(2024년 10월~2025년 9월)을 8952억 달러(약 1243조4000억원)로 책정하고, 주한미군의 규모를 현재 수준인 2만8500명 수준으로 유지하며 한국에 대한 확장 억제 정책도 유지하도록 명시한 국방수권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번 국방수권법에 나타난 주한미군 유지 입장은 현 바이든 민주당 행정부의 기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11월 대선에서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는 공화당 트럼프 진영은 바이든 행정부와는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국방비는 한화(韓貨)로 1200조원이 넘는데 이 중 30%가 넘는 약 400조원 이상이 중국 견제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대만과 한반도 2개 전장(戰場)에서 모두 승리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대만과 한반도 2개 전장을 접하고 있는 중국, 러시아, 북한은 3개국 모두가 핵무기 보유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트럼프 진영은 주한미군 철수 문제 및 한국 독자적 핵무장 필요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트럼프의 측근으로서, 트럼프 1기 행정부 마지막 국방장관 대행을 수행했고 2기 행정부가 출범한다면 국방장관으로 유력시되고 있는 크리스토퍼 밀러는 지난 3월 18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 핵은 기대가 아니라 현실로 봐야 한다. 미북 군축(軍縮) 협상도 가능하다. 한국은 북핵 위협으로부터 스스로 지킬 능력이 있다. 한국이 1차 책임을 져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도 논의가 가능하다. 미국은 이를 지원할 수 있으며, 미국은 중국에 집중해야 한다.”

즉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집권한다면, 한국으로부터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한국은 자체 핵무장을 통해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1차적으로 알아서 방어하라는 입장으로 선회할 수 있음을 시사(示唆)한 것이다.

그러면 한국은 어찌해야 할까? 우리가 감당해야 할 북한의 핵 능력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핵무기 운반 탄도미사일 1000여 기 보유

북한은 1980년에 영변 5MW 실험용원자로(흑연감속로)를 착공하여 고농도의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시작했다. 1993년에는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하고, 2005년에는 핵무기 보유 선언을 했다. 2006년 제1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2009년 2차, 2013년 3차, 2016년 4·5차, 2017년 6차 핵실험까지 완료한 상태다.

미국 핵군축연구소가 2023년 10월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북한은 핵무기를 최소 45~50기 이상 보유하고 있고, 매년 4~12개의 핵탄두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핵무기를 운반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 1000여 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동식 발사대(TEL) 100여 기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은 또한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다종(多種)의 미사일을 개발해놓고 2016년에는 신형 고출력 엔진 개발을 완료한 상태다. 단거리미사일(SRBM)은 사거리 300~500km의 스커드(Scud)-B/C, 준중거리미사일(MRBM)은 사거리 1000~1300km의 스커드-ER 및 노동미사일, 중거리미사일(IRBM)은 사거리 3000~5000km의 무수단 및 화성-12형, 사거리 1만km 이상의 장거리미사일(ICBM)은 대포동-2호, 화성-14형·15형·17형 등을 보유하고 있다. 2023년에는 사거리 1만5000km의 화성-18형까지 공개했다.

2021년 1월 제8차 당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김정은은 “작전 임무의 목적, 타격 대상에 따라 각이한 수단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들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핵탄두 중량 50kt 이상의 전략핵무기는 주로 미국을 대상으로 하는 억지용, 탄두 중량 50kt 이하의 전술핵무기는 남한을 대상으로 실제 사용 가능한 무기로 간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로 비행장, 군사 지휘 시설, 항만 등 주요 군사 목표물에 대한 정밀타격이 목적인 이 전술핵무기들은 초대형 방사포(放射砲), 이스칸데르 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발사할 수 있다.

北, 선제적-방어적 사용 모두 가능

북한은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어떻게 사용할까? 김정은은 지난 2022년 4월 25일 조선인민군 창설 90주년 열병식에서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해 있을 수는 없다”면서 핵 사용 방침을 언급한 바 있다. 이를 통해 북한의 핵무기 사용 전략 전술을 추정해볼 수 있다.

첫째, 전략핵무기로 워싱턴을 위협하면서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 사용하는 전략이다. 즉 한반도에서 민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군사 시설 위주로 소형 전술핵무기를 사용하면서 미국이 이에 대해 핵 보복을 할 경우 북한은 전략핵무기를 통해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다고 위협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미국은 과거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언급했던 것처럼 서울을 지키기 위해 워싱턴을 포기할 수 있을까? 북한이 소형 전술핵무기를 사용하여 선택적이고 제한적인 핵공격을 할 경우 미국은 핵 보복을 회피하고 재래식 무기로 대응하고자 하는 정치적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핵무기는 그 엄청난 파괴력으로 인해 과거에는 실제 사용이 불가능한 무기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핵무기 소형화에 성공한 북한이 핵무기의 선제적(先制的) 사용 방침을 언급한 점으로 미루어볼 때 북한은 전술핵무기를 통한 선택적 공격을 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 북한은 핵무기의 ‘선제적 사용’과 ‘방어적 사용’을 모두 선택할 수 있다. 전시(戰時) 미군 전력(戰力)이 한국에 전개하기 전에 단기간에 수도권을 장악한 뒤 한미 연합군이 수도권 재탈환이나 북한 지역 반격을 단념하게 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핵을 사용할 수 있다. 또 활주로, 항만, 군사 지휘 시설 등에 전술핵무기를 사용하는 동시에 핵 EMP를 사용한다면 한국군은 군사적 지휘 능력을 상실할 수 있다. 반대로, 북한은 기습공격 후 제한적 점령이나 전략적 목표에 실패할 경우 북한 지역으로 전장이 이동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하여 휴전선 인근 지역에서 전술핵무기를 투발(投發)하거나 핵 사용 위협을 가함으로써 방어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핵무기 선제 사용 가능성 법제화

실제로 북한은 2022년 9월 8일에 핵무력 사용 원칙을 법제화하면서 핵무기 사용조건 5가지를 제시했다. 여기서 북한은 재래식 공격 임박 시나 전쟁 주도권 장악 필요시에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전술적 필요에 따라 선제적 공격용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선제 사용 원칙’을 법제화한 것이다. 이와 때를 맞추어 2022년 9~10월에 북한은 ‘전술핵 운용부대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이틀에 한 번꼴로 7차례의 다종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훈련을 실시하고 이를 공개했다. 이는 한국을 대상으로 소형 핵탄두를 탑재한 전술핵무기를 발사할 수 있다는 능력과 의지를 과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러시아의 전세(戰勢)가 불리하게 되자 푸틴은 우크라이나 영토에 전술핵무기 사용을 검토하겠다는 위협을 해서 미국과 유럽을 긴장시켰다. 과거에는 핵무기는 억지용이며, 실제 사용 가능성을 언급하는 자체가 금기시되었으나, 이제는 전술핵 차원의 소형 핵무기는 사용할 수 있다는 전략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에 대비하여 한미 양국은 최소한 두 가지 명시적인 대응 전략을 가지고 있다.

우선,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에 대해 한국은 3축(軸)체계로 대응한다는 기본 전략을 가지고 있다. 제1축은 킬체인(Kill-Chain)이다. 북한이 한국에 대해 핵미사일 공격 임박 징후를 보인다면 한국군은 이에 대해 선제타격을 통해 사전 차단한다는 전략이다. 군사위성, 공중정찰기, 신호정보 등 모든 한미연합 감시전력을 통해서 정밀 감시하고, 임박 징후 식별 시에는 한국의 지대지(地對地)미사일 및 F-35 스텔스 전투기 등으로 공격 원점(原點)의 핵미사일 자산을 무력화(無力化)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은 최근 저궤도 감시정찰 위성 5기를 한반도 상공에 띄워 운용하는 전력 배비(配備)를 진행 중이다.

제2축은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다. 선제타격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미사일이 날아오면 2단계로 공중에서 요격하는 단계다. 우리의 공중 요격에는 미군이 배치한 사드(THAAD)미사일과 한국이 최근 자체 개발에 성공한 장거리 지대공(地對空) 미사일(L-SAM), 천궁, 패트리엇 등을 통해 고고도-중고도-저고도에서 단계적으로 요격하는 전력을 운용하고 있다.

제3축은 대량응징보복체계(KMPR)다. 핵미사일에 대한 공중 요격에도 북한의 핵미사일이 떨어져 한국이 대량 피해를 입을 경우에는 한미 연합군은 F-35 전투기, 현무미사일 등 각종 탄도미사일로 북한이 감내하기 어려운 대량 보복을 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2023년 8월, 을지 자유의 방패 훈련 시 한미 연합군은 3축 체계를 기초로 하는 연합 핵 대응 훈련을 한 바 있고, 12월에는 한국군 단독으로 북한 핵공격에 대응하는 모의 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NCG, 북핵 대응 로드맵 공개

▲지난 6월 10일 한미 양국은 핵협의그룹(NCG) 회의 후 북핵 대응 로드맵을 공개했다. 사진=조선DB

 

둘째, 한미 핵 확장 억제 전략이다. 한미 양국은 2023년 4월 한미 정상회의에서 나온 워싱턴 선언에서 합의한 한미 핵 확장 억제를 구체화하기 위해 한미 간 핵협의그룹(NCG) 회의를 운용 중이다.

금년 6월 10일 열린 3차 핵협의그룹 회의에서 한미 양국은 북핵 공격에 대응하는 로드맵을 공개했다. 북핵 공격에 대응하여 미국의 핵 전력과 한국의 재래식 전력을 통합하여 일체화된 확장 억제를 수행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여기에는 미국의 ‘AGM 183’이라는 극초음속미사일 사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 극초음속미사일은 150kt 크기의 전략핵탄두까지 탑재할 수 있고, 최대사거리 1만6000km 밖에서 2분 만에 북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마하 20의 저공 초음속으로 비행하여 요격이 불가능하다. 지난 2월 미군은 괌에 있는 B-52폭격기에서 극초음속미사일을 발사하는 훈련 장면을 공개함으로써 한미 확장 억제의 공약을 실행하는 전략을 재확인했다.

이러한 한미 핵 확장 억제를 위한 로드맵은 8월에 실시되는 을지 자유의 방패 연합 훈련을 통해 적용하고, 올 하반기에도 추가적인 연합 훈련을 실시할 예정으로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재래식 무기를 중심으로 하는 3축체계 전략과 한미 간의 핵 확장 억제 전략이 얼마나 실효성(實效性)이 있을까 하는 점이다. 미국의 핵 확장 억제에 따른 핵우산은 과연 안전한가? 우산은 비가 오기 전에 써야 의미가 있다. 그런데 적이 핵공격을 하기 전에 핵우산을 먼저 펼칠 수 있는가? 핵 선제공격을 받고 나서 핵우산, 즉 핵보복을 하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만일 미국이 한국을 위하여 핵보복을 하면 워싱턴이나 뉴욕은 북한의 핵보복으로부터 안전할까? 과연 미국은 서울을 위해 워싱턴을 포기할 수 있는가? 핵우산 정책, 즉 한미 확장 억제 정책은 억제 정책으로서는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성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트럼프 재집권 시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유력시되는 엘브리지 콜비는 “한국에 대한 미국의 확장 억제는 지키기 어렵다”면서 “동맹은 비즈니스다. 한국도 미국의 안보에 기여해야 한다. 이제 한국도 자체 핵무장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그리고 이스라엘과 이란 등 중동국가들과의 교전(交戰)에서도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유사시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미국이 6·25 전쟁 때처럼 다시 직접 개입하고 도와줄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일각에서 거론하고 있는 미국 전술핵 재배치 역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한미군 부대 내에 배치하고, 미군이 통제하며, 또 언제든지 철수할 수 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한국이 자체적으로 핵 억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아무리 우리가 세계 5위의 군사력 수준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핵무기 없이 재래식 무기로는 북한의 핵무기 사용을 억제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핵무기는 핵무기로 억제해야 한다.

한국, 핵무기 투발 능력 충분

▲실전배치를 앞두고 있는 국산 KF-21 전투기는 핵미사일 발사도 가능한 첨단 전투기이다. 사진=조선DB

 지금 한국의 핵무장 잠재 능력은 얼마나 될까?

한국의 미사일 개발은 1979년 이후 한미 ‘미사일 지침’에 의해 40년 이상 개발 제한을 받아왔다. 하지만 네 차례의 개정을 거쳐 2021년 5월 ‘미사일 지침’이 완전 해제되면서 2023년 현무-5를 개발 완료, 공개했다. 현무-5 미사일은 사거리 300~3000km, 탄두중량 8~9t으로 지하 100m 벙커까지 파괴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급 능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사거리 최대 8000km, 탄두중량 12t 규모의 ICBM급 현무-6 미사일 개발을 추진 중이다. 이 현무미사일은 북핵미사일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 베이징(北京)까지도 타격이 가능해 그 전략적 가치가 매우 크다.

2022년 개발 완료한 국산 KF-21 전투기는 실전배치를 앞두고 현재 1000여 회 이상 비행을 통해서 성능을 시험 중이다. KF-21은 360도 공격이 가능한 레이저 무기에다, 핵미사일까지 발사가 가능하며 우수한 스텔스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중국이 최근 개발한 5세대 전투기인 J-20 스텔스 전투기 수준과 유사하고, 미국 F-35 스텔스 전투기 수준을 바짝 추격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전투기이다.

핵잠수함 개발도 현실화되고 있다. 한국은 핵무기 보유 제한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에 핵잠수함 기술 개발을 꾸준히 요구해왔고, 현재 설계까지 완성해놓고 있는 상태다.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도 2021년 9월 시험발사까지 성공했다.

이처럼 투발 수단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진짜 중요한 것은 핵무기를 만들 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답은 ‘가능하다’다. 한국은 중수로 원자로를 보유한 월성원자력발전소를 통해 매년 2.5t 규모의 플루토늄 원료를 확보할 수 있으며, 국제적인 여건만 조성되면 최소 6개월에서 1년이면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핵무장 통해 동북아 균형자 역할 가능

국제정세가 요동치면서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이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는 지금이 기회다. 위기가 곧 기회다. 잠시나마 미국 내에서 한국의 핵무장을 허용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 우리도 독자적인 핵 억제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한국이 자체 핵무기까지 보유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전략적 이익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북·중·러의 위협에 대해 ‘전략적 억제 능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핵을 보유한 한국을 대상으로 북한, 중국이 전쟁을 벌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만일 우크라이나가 모스크바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과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할 수 있었을까?

둘째, 북한의 심심찮은 대남 도발 위협은 감소하거나 사라질 것이다. 남북 간 ‘공포의 균형’이 이루어지면서 도발 및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미·중 간 대만 충돌 가능성에 대해서도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핵을 가진 한국의 미국 지원 능력을 과소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대만과 한반도에서 두 개의 전쟁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즉 한국은 미·중 간의 패권(覇權) 경쟁으로 인한 무력(武力) 충돌 가능성을 예방하는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동북아에서 북·중·러 3국과 한·미·일 3국의 세력 균형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미국의 핵우산과 주한미군 및 주일미군의 존재가 세력 균형을 유지해왔는데,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다면 3국 세력 균형에 있어 독자적인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완전 철수는 곤란

물론 이러한 균형자 역할은 핵을 보유한 다음의 문제다. 핵을 보유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기까지의 한국 핵무장의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안보 정책 차원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을 준비하고 고려해야 한다.

첫째,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되, 이제는 미국과 상호이익이 되는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보장받기 위해서 대만 위협에 대해서도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중국의 대만 침공 시 미국의 전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중국이 북한의 도발이나 남침을 부추길 가능성도 예상해봐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둘째, 한국 자체 핵무장을 보장받을 경우, 주한미군 감축은 몰라도 완전 철수는 적극 반대해야 한다. 주한미군 철수는 한미동맹의 약화를 의미한다. 핵을 가진 북·중·러시아의 밀착과 폭주가 심해지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핵무장을 한다고 하더라도 한국 혼자서 그에 맞서기는 어렵다. 한국 자체 핵무장을 주한미군 철수와 완전히 맞바꾸는 상황은 만들지 않아야 한다.

셋째, 중국의 제재와 보복을 받지 않아야 한다. 설령 중국이 어떤 공격을 하더라도 이에 보복할 수 있는 억제 능력을 갖춘 상태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즉 중국이 한국에 대하여 예방공격을 한다면 한국도 현무-5 미사일 및 KF-21 스텔스 전투기 등 전략무기로 베이징까지 타격해 중국도 감내하기 어려운 보복을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보복에 의한 억제 능력과 의지를 갖추지 못한다면 한국의 자체 핵무장 과정은 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6개월 내 핵무장 가능’ 주장하는 서균렬 서울대 명예교수

“구멍 뚫린 핵우산… 일본처럼 핵 능력 보유가 급선무”

⊙ “지아비와 핵무기는 나눠가질 수 없는 법”
⊙ “한국과 일본,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핵무장 가능한 나라”
⊙ “150명 정예인력 투입하면 나가사키급 핵폭탄 8주면 제조 가능”
⊙ “핵개발에 1조원 비용 소요… 플루토늄, 우라늄, 기폭에 각각 3000억씩”
⊙ “플루토늄 100t 보유… 약 2만 기 핵탄두 제조 원료 비축”

徐鈞烈
1956년생.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매사추세추공과학대학(MIT) 핵·기계공학 박사 / 프랑스전력공사 객원연구원, 웨스팅하우스 선임연구원,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태평양원자력협회 회장, 한국원자력안전방재연구소 이사장, 미국원자력학회 국제이사 역임. 現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 국제원자력한림원 정회원 / 저서 《서균렬 교수의 인문핵》, 공저 《과학을 보다》, 역서 《원자력은 공포가 아니다》 등

▲사진=오동룡

 

러시아와 북한이 지난 6월 19일 군사동맹에 준하는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하면서 동북아 안보 환경이 요동치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금기를 깨고 북한의 핵 보유국 주장을 사실상 용인해준 사실이다. 가뜩이나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의 힘의 불균형을 고민하던 차에 러시아까지 가세하면서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던 ‘핵무장론’이 힘을 받는 형국이다. 국민의힘도 7·23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대표 출마자들이 저마다 핵무장의 필요성을 외치고 있다.

지난 6월 28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서균렬(徐鈞烈·68) 명예교수는 “미 대선이 다가올수록 한국의 핵무장 이슈는 미 정치권에서 쟁점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면서 “핵을 가진 러·북 두 나라가 군사동맹을 맺었다면 우리도 자구책(自救策)을 마련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서울대 원자핵 공학과를 졸업한 서균렬 교수는 매사추세추공과학대학(MIT)에서 핵·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핵 공학자다. 석사 과정은 원자핵 공학과에서 고속증식로를, 박사 과정은 기계공학과에서 플루토늄을 압축하는 기술인 ‘내파 공학’을 연구했다. 그는 프랑스전력공사와 웨스팅하우스에서 핵 관련 업무에 종사했으며, 귀국 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에서 교편을 잡다 2021년 퇴임했다. 2023년 5월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후쿠시마 핵 폐수 해양 투기를 강행하는 일본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는 등 현재 ‘핵을 문명(文明)이 아닌 문화(文化)를 위해 쓰자’는 ‘인문핵 운동’을 펼치고 있다.

“김정은, 중소형 원자로 건조 기술에 눈독”

▲북한은 2023년 신형 ICBM 화성 18호를 발사했다. 사진=연합뉴스

 

—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까지 나서 북한 핵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선 전술핵 재배치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식 핵공유는 물론이고, 자체 핵무장에 재처리 권한까지 정부 차원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다. 과거 핵무장론이 여러 차례 수면 위로 올라왔다 가라앉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때와는 많이 달라 보인다. 김정은이 중국과 소원해짐을 감수하고 러시아 쪽으로 보험 든 것을 보면 뭔가 중대 결단을 내린 것 같다.”

— 북한이 러시아에 포탄과 미사일을 제공하는 대가로 무엇을 얻어내려는 것일까.
“미사일 기술과 핵무기 기술의 완성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경우, 북한은 다탄두 개별유도(MIRV) 기술, 재진입(Re-entry) 기술을 필요로 한다. 게다가 극초음속미사일과 같이 초속 2km가 넘는 고공 활공체에 필요한 비행 제어와 목표 유도 기술을 보유한 국가는 현재 미국, 러시아, 중국뿐이다. 영국과 프랑스도 보유하지 못한 기술을 북한이 세계에서 4번째로 러시아의 도움으로 확보하려는 것이다.”

 

— 북한은 러시아와의 조약에서 평화적 핵 이용에 관해 협력하기로 했다. 북한의 불법적 핵무기 개발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것은 물론이고, 러시아가 향후 북한의 핵개발을 돕겠다는 뜻 아닐까.
“러시아가 북한 핵개발을 돕겠다는 충분한 의심을 살 만한 조항이다. 핵 원료 양산과 원자로 기술이다.”

— 북한이 러시아에 원하는 핵 기술은 어떤 것일까.
“플루토늄(Pu)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100MW(메가와트)급 실험용 경수로의 플루토늄 추출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김정은이 눈독 들이는 핵추진잠수함에 들어가는 중소형 원자로 건조 기술을 받는 것이다.”

“북, 러시아 지원 받으면 퀀텀 점프 가능”

— 우리가 개발한 이른바 ‘스마트원전’이라 불리는 소형모듈원전(SMR)을 말하는 것인가.
“핵잠수함이나 항공모함에서 사용하는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1997년 러시아 핵잠수함 제작사인 OKBM 아프리칸토프와 협력해 개발을 추진했다. 원자력연구원이 주도해 열출력 330MW, 전기출력 100MW짜리 일체형 원자로였다. 이후 핵추진잠수함의 원자로 설계 기술을 어느 정도 확보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도 러시아의 중소형 원자로 기술을 가져올 것으로 본다. 그런데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러시아가 핵추진잠수함용 원자로 기술을 북한에 제공하는 것은 ‘레드라인’을 넘는 것이다.”

— 그럼, 러시아는 어떤 방법으로 북한에 원잠 기술을 제공할까.
“인도가 2010년부터 러시아로부터 아쿨라(Akula)급 핵추진잠수함을 임대한 것처럼, 북한에 폐로(閉爐) 직전의 핵추진잠수함을 임대하는 방식을 택할 것이다. 북한은 러시아 핵추진잠수함의 원자로를 역설계해 원자로를 제작할 것이고, 러시아는 미국에 기술 제공을 하지 않았다고 ‘발뺌’을 할 것이다.”

— 푸틴 대통령은 “북한은 자체 방위력 강화와 국가안보, 주권 수호를 위해 합리적인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다”며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밖에서 핵을 개발해온 북한에 힘을 실어주면서 ‘민수용 원자력 협력’까지 약속했다. 러시아가 도와준다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양자역학적 용어로 퀀텀 점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통상 북한 스스로 한다면 2~3년이 소요될 기술과제들이 러시아의 도움을 받으면 완성 시점이 절반 정도 앞당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 현재 북한이 핵개발 과정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는 무엇인가.
“북한 영변 핵단지 내 25~30MW급 실험용경수로(ELWR)를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정상적으로 가동해 플루토늄 추출을 안정적으로 하려는 거다. 현재 실험용경수로는 추출량도 시원치 않고, 원활하게 가동되지도 않고 있다. 따라서 실험용경수로를 원활하게 가동하기 위해 ‘운전 기술’이 뛰어난 러시아와 손잡은 것이다. 북한은 플루토늄 비축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려 하고 있지만 기술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전력 생산과 원료 증식이라는 두 가지 목적으로 원자로를 설계하다 보니 정상 운전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허술한 안전 기준으로 살얼음판을 걷게 될 원자로가 한반도에 미치게 될 영향이 지금부터 우려된다.”

“북, 우라늄 농축 한계점 도달”

▲영변 핵시설은 북한 핵개발의 산실이었다. 사진=연합뉴스

 

 — 북한은 새로 건설한 실험용경수로 외에 플루토늄 추출용 핵심 시설인 영변의 흑연감속로도 가동해왔는데.
“영변의 가스 냉각 5MW 흑연감속로는 수명기한이 차고 넘쳤다. 계속 사용할 경우 화재의 우려도 있다. 이 때문에 실험용경수로를 건설해 플루토늄을 다량 확보하려 했지만, 가동이 신통치 않다. 제대로 가동된다는 신호가 잡히지 않고 있다. 원자로 운전이 핵무기 제조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북한 당국이 뒤늦게나마 깨달았을 것이다.”

— 우라늄 농축은 하지 않고 있나.
“우라늄(U) 농축은 원심분리기와 엄청난 전력이 필요하고, 플루토늄 재처리는 생산용 원자로와 방사화학 공장이 필요하다. 핵 보유국들은 두 갈래로 핵폭탄을 만들다가 지금은 거의 다 플루토늄으로 만든다. 현재 북한은 우라늄 농축도 녹록지 않다. 원심분리기는 ‘전력을 먹는 하마’다. 북한은 전력 사정이 열악하기 때문에 우라늄 농축을 지속하기 곤란한 상황이다. 원심분리기의 수명 연한도 다하고 있다.”

— 1996년 무렵부터 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원심분리기를 몇 대나 가동하고 있나.
“8000여 개 정도다. 6만RPM(분당 회전 수)의 속도를 가진 고속 원심분리기는 우라늄 원광(原鑛)을 기체로 만들어 우라늄235를 추출하기까지 4000회 이상을 마구 돌리기 때문에 마모 현상이 심각하다. 게다가 원심분리기에 들어가는 자재인 고합금 알루미늄강은 북한이 자가 생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수입도 쉽지 않다. 우라늄 농축의 한계점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 북한이 2017년 9월 3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6차 핵실험(10만~30만t 규모)을 한 이래 7차 핵실험을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북한이 남한의 총선, 미국의 대선이나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7차 핵실험 예고를 해왔었다. 그때마다 나는 북한이 더 이상 핵실험을 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 북한의 만탑산(萬塔山, 해발 2205m)의 6차 핵실험은 수소폭탄급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25배 위력이다. 한 차례 실험할 때마다 산의 가장자리가 1.5m, 산 정상이 2~3m 정도 떴다가 가라앉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 6차에 가까운 핵실험으로 만탑산 핵실험장 시설에 문제가 있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는데, 그걸 말하는 것인가.
“산도 사람처럼 피로를 느낀다. ‘산 피로 증후군(Mountain Tired Syndrome)’이라 한다. 6차 핵실험 때 균열이 많이 갔고, 갱도들도 다 무너졌다. 길주군 주변의 식수원(食水原)도 다 오염됐다. 만탑산이 히로시마나 나가사키급 5배 정도의 핵실험을 한 차례 정도는 더 견딜 수 있으나, 그 이상은 어려울 것이다.”

북한 핵무기 소형화 달성 가능성

— 북한이 핵무기 ‘소형화’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같다.
“소형화 목적은 미국을 공격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싣기 위해서다. 그동안 북한은 핵을 싣지 않은 빈 미사일만 허공에 쏘는 ‘택배 기사’ 노릇만 해왔다. 만약 북한이 핵무기 소형화(miniaturization)에 성공하면 택배 기사가 무시무시한 ‘택배 화물’을 손아귀에 넣는 셈이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 트럼프는 북한과 ‘핵동결’에 합의하고, 주한미군을 서둘러 철수할 가능성도 있다.”

핵무기의 기폭 방법에는 포신형(Gun type)과 내폭형(Implosion type)이 있다. 포신형은 우라늄탄에 사용하는데, 원통 속에 임계량의 우라늄을 2개로 나누어 넣고, 화약의 힘으로 한쪽 우라늄 조각을 다른 쪽 우라늄 조각에 합쳐 임계 상태가 되도록 해 폭발이 일어나게 한다. 반면, 내폭형은 플루토늄 같은 핵분열 물질을 공 모양으로 내부에 배치하고, 주위를 폭약으로 둘러싼 후, 한꺼번에 폭약을 폭발시켜 순간적으로 고르게 압력을 가해 임계 상태에 도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서 교수는 “소형화는 바로 이 플루토늄탄의 폭발압력장치를 작게 하는 것인데, 최근엔 소형화, 경량화돼 거의 축구공만 한 크기로 줄었다”면서 “놀라운 과학의 발전”이라고 했다.

— 북한의 소형화는 어느 정도까지 달성했다고 볼 수 있을까.
“소형화는 어려운 기술은 아니기 때문에 지금쯤 어느 정도 소형화에 성공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2006년 첫 핵실험 이후 왜 소형화에 시간이 많이 걸렸을까.
“북한의 내폭을 위한 재래식 폭약 기술이 어느 정도인지 의심스럽다. 미국은 79년 전인 1945년 첫 핵실험 이후 5년 만에 내폭 방식을 개선하며 소형화에 성공했다. 북한이 1~6차 핵실험까지 걸렸던 시간, 다시 말해 2006년 1차 핵실험부터 지금까지 17년 이상 걸렸다는 것은 그만큼 과학 기술력이 낙후돼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 북한이 소형화 기술을 확보했다면, ICBM에 실어 발사실험을 해야 하지 않을까.
“ICBM에 소형화한 핵탄두를 실어 공해상으로 쏠 수는 없을 것이다. 방사성 낙진 때문에 발각된다. 러시아와 중국도 북한 편을 들어주기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핵 물질을 ICBM에 넣되 폭발하지 않는 미임계실험(Subcritical Test·임계 전 핵실험)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 플루토늄 100t 보유

 ▲일본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 핵연료 재처리 공장. 사진=조선DB

 

— 지난해 캠프데이비드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는 ‘워싱턴 선언’을 통해 사실상 핵무기 보유를 포기하는 선언을 했다.
“우리의 핵무장 포기는 역사가 있다. 1988년 이후 정권을 잡은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은 비핵화를 추진했고, 1991년 당시 세계 3위 규모의 1000기(998기) 가까운 전술핵무기가 모두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해오던 핵무기 개발 계획도 모두 백지화됐다. 정통성이 약한 군사정부가 정권을 인정받으면서 핵 주권을 포기한 것이다.”

— 반대로 일본은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미국을 상대로 핵무장 준비를 해왔다.
“일본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 때부터 치밀하게 미국을 ‘구워삶아’ 플루토늄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권한을 확보했다. 현재 이바라키현 도카이무라에서 우라늄 농축을 하고 있고,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의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이 올해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미 약 50t 가까이 플루토늄을 국내외에 보유하고 있다. 50t의 플루토늄은 핵무기 1만2500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 우리는 원자력발전소 25기를 가동하고 있다. 특히 천연 우라늄을 농축 과정 없이 그대로 사용하는 월성 원전의 중수로는 플루토늄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고 알려졌다.
“우리나라도 사용 후 핵연료가 1만t 넘게 있는데, 발전소 내 냉각 수조와 야외 건식 용기를 통해 보관하고 있다. 그걸로 플루토늄을 추출한다면 100t가량 될 것이다. 그중 핵무기 제조 물질로 쓸 수 없는 불순물에 해당하는 플루토늄240을 제외하고 순도가 높은 플루토늄239는 100t 가운데 80t쯤 될 것이다. 약 80t이라면 핵무기 2만 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우리는 일본과 달리 한미원자력협정,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등에 묶여 있기 때문에 만들 수 없다.”

— 국제 비확산 체제에서 공공연히 한국과 일본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핵무장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분류하고 있다.
“우리도 일본 못지않은 핵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미국의 묵인하에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확보하면서 중국과 북한을 능가하는 잠재 핵 보유국이 됐다. 일본식 표현으로 ‘도라이바만 돌리면 즉시 핵무기를 조립한다’는 말이 농담이 아닌 것이다. 우리도 핵 보유 금지에 관한 국제적 규약의 제약을 받지만, 기술력으로 따진다면 단기간에 핵무기 생산이 가능한 나라다.”

땔감, 아궁이, 불쏘시개

 ▲윤석열 대통령은 작년 4월 28일 미 하버드대 연설에서 한국의 핵무장 능력에 대해 언급했다. 사진=뉴시스

 

— 윤석열(尹錫悅)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미 하버드대 연설에서 한국은 마음만 먹으면 1년 이내에 핵무장할 기술 기반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허세가 아니다. 히로시마나 나가사키급 TNT 1.5~2만t급 핵무기는 8주면 개발이 가능하고, 위력을 높인 10만t급 핵폭탄을 개발한다면 1년가량 시간이 필요하다. 국내 전문가 대다수가 ‘일단 결심하면 기술적으로 핵무기를 만드는 것은 복잡하지 않다’는 데 공감한다. 핵무기 제조 기술은 첨단 기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닥다리다.”

— 첨단 기술이 아니라니?
“핵무기 제조 기술은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인 20세기의 ‘원시 기술’이다. 나가사키에 투하한 플루토늄탄의 내폭 설계도면이, 공차(허용오차·tolerance)까지는 나오지 않지만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물론 줄리언 어산지가 만든 《위키리크스》 같은 매체를 통해 미 정부 기밀문서들이 대량으로 유출된 것이다.”

— 그렇다면 공대생도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
“핵 기술 자체는 다 공개돼 있는 단순한 기술이다. MIT 대학원생이 차고(車庫)에서 만들 수 있는 그런 기술이다. 자금(資金)과 인력(人力)만 있으면 가능하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설계도면으로 3차원 인쇄기(3D프린터)를 이용해 원자로 부품을 제작할 수 있다. 우라늄도 다국적 전자상거래 이베이(eBAY)를 통해 4kg 정도를 구입할 수 있다면 내폭형으로 저위력 핵탄두를 만들 수 있다.”

1945년 7월 16일, 미국 뉴멕시코주 사막 지역에서 인류 최초의 핵실험이 실시됐다. 이날을 기점으로 지구엔 인류가 지구 기후와 생태계를 변화시켜 만든 새로운 지질시대를 뜻하는 ‘인류세(人類世)’가 시작됐다. 당시 코드명이 ‘트리니티(Trinity)’였다. 시(詩)를 즐기던 오펜하이머가 존 던(John Dunne)의 시구를 인용한 것이다. 맨해튼 사업은 2년 8개월 만에 핵폭탄 개발에 성공한다. 서 교수는 “우라늄 농축, 플루토늄 재처리, 내폭 기술 등 3가지 기술이 합쳐지면 성경의 ‘삼위일체’처럼 완전한 합체가 된다”면서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이란 땔감에 그것을 태우는 아궁이(내폭), 그리고 불쏘시개인 중성자 발생이라는 세 가지 기술이 갖춰져야 핵연료가 잘 탄다는 뜻”이라고 했다.

— 핵무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핵심 기술은 무엇이 있나.
“크게 보면 플루토늄 추출 기술, 우라늄 농축 기술, 내폭 기술 등 3가지다. 유체역학을 이용해 핵연료를 폭파시키는 내폭 기술자를 우리는 ‘아궁이 기술자’라고 하고, 아궁이에 태울 핵연료를 제조하는 기술자를 ‘땔감 기술자’라고 한다.”

정예인력 150명만 투입하면 충분

 ▲맨해튼 계획의 주역이었던 글로브스 장군(가운데)과 오펜하이머 박사(글로브스 왼쪽)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후인 1945년 9월 9일 최초의 원폭 실험이 있었던 현장을 둘러보았다.

 

— 우리나라에 핵 관련 기술자는 몇 명 정도 있나.
“아궁이와 땔감, 두 파트의 박사급 기술자는 대체로 1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런데 아궁이 기술자 대부분은 땔감을 천천히 태우는 원전 기술자들이 대부분이다. 나의 경우, MIT 기계공학과에서 스승인 로젠하우 교수에게 특수과제로 두 학기 동안 ‘내폭 기술’에 대해 배웠다. 우리나라에도 세계적인 핵 과학자들이 있다. 나는 3세대에 해당한다. 1세대들이 외국에서 기술을 배워와 2세대에 원자력 발전을 이룩했다면, 3세대들은 이걸 4차 산업혁명에 걸맞게 정착시키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서 교수는 “인공지능과 함께 미래를 향해 발맞춰가는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한반도는 신냉전의 최전선에서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의 핵에도 대처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며 “미국의 핵우산도 좋지만 진정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독자 핵무장”이라고 했다.

— 미국의 핵개발 프로젝트 사업인 ‘맨해튼 프로젝트’처럼 집중적으로 개발한다면 150명 정도의 정예요원이 8주가량이면 플루토늄 기반 시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핵무기 개발까지 8주면 가능하다고 말한 근거는.
“원자력 학계의 한 원로와 함께 계산한 것이다. 우리가 나가사키에 떨어진 플루토늄탄을 얻는 기간에 1.5배를 곱해서 나온 시간이다. 오펜하이머가 주도한 맨해튼 사업처럼 3000여 명의 과학 기술자가 모일 필요도 없다. 150명의 기술자면 충분하다고 한 까닭은 내폭 기술에 50명, 우라늄 농축에 50명, 플루토늄 재처리에 50명을 투입하려는 것이다. 만약을 대비해 우라늄과 재처리 양쪽에 인력을 투입하는 것으로 상정했다.”

— 유사시 핵무기를 즉각 제조하려면 정부에서 핵심 인력을 파악하고 있어야 할 텐데.
“우리나라에 1만 명 정도의 기술자가 있다. 고급 기술 인력은 여러 영역에서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지금 사방에 흩어져 있다. 한화, 삼성, LG, 현대, 두산, 원자력연구원, 국방과학연구소…. 관현악단으로 치면 현악기, 타악기 주자들이 있는데, 이분들을 다 모아야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된다. 무선통신 시대여서 정부가 확실하게 파악만 하고 있다면 국가 위기 상황일 때 일주일이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브레이크 아웃 타임’

— ‘브레이크 아웃 타임’이란 핵무기 제조를 결심한 시점부터 ‘무기급 핵 물질’을 확보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일컫는다. 맨해튼 사업엔 대학, 연구소, 군대를 비롯해 연인원 13만 명에 20억 달러가 투입됐다. 실전배치까지 포함해 핵무기 개발의 전 과정에 소요되는 비용은 얼마나 들까.
“1조원가량으로 산출했다. 기본적으로 플루토늄 재처리, 우라늄 농축, 내폭 기술에 3000억원씩 잡고, 예비비로 1000억원을 생각했다. 이렇게 하면 TNT 2만t급 3기를 만들 수 있다. 실전배치까지는 1년 정도 소요될 것이다. 실제로 내폭보다 우라늄 농축, 플루토늄 재처리에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간다. 맨해튼 사업 때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전력의 3분의 1 정도를 우라늄 농축에 써야 했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다. 플루토늄 추출을 위해 원자로를 건설한 것에도 상당 비용이 들어갔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천만다행으로 가동 중인 원자로가 있어 시간과 비용이 상당 부분 절약된다. 게다가 원전 부지엔 발전용으로 들여온 저농축 우라늄도 다량 쌓여 있다. 비록 소량이지만 레이저 농축과 플루토늄 추출도 몇십 년 전 이미 해본 경험이 있다. 그때 얻었던 지식이 아직 어딘가 살아 있을 것이다.”

— 북한은 핵개발에 얼마나 들였을까.
“이런저런 여건을 따져봤을 때 1조~2조원의 비용이 들지 않았을까 싶다. 핵실험에도 회당 1000억원, 2023년 기준으로 총 6회 시험을 했으니 6000억원이다.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라 대략 1만여 명의 기술자가 동원됐을 것으로 보이나 인건비는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개발 비용이 총 2조원은 넘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 8주 만에 핵무장 가능하다는 교수님 주장이 신빙성이 없다고 하는 분들도 꽤 있더라.
“특히 학계에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죽하면 적(籍)을 두고 있는 서울대 원자핵 공학과에서도 축출하겠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우리는 한미원자력협정이란 큰 우산 아래서, 핵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것 자체가 금기다. MIT 원자핵공학과 워렌 로제나우 교수에게 배운 핵무기 관련 유체역학을 기술적으로 이해하는 학자는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플루토늄과 우라늄은 ‘식자재’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조리하는 솜씨에 따라 ‘슈퍼탄’이 될 수도, ‘불발탄’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이 내가 배운 내폭 공학이다.”

‘88 프로젝트’

— 우리의 핵무기 연료를 88%까지 확보하자는 취지에서 김영삼(金泳三) 정부 시절 ‘88 프로젝트’라고 해서 플루토늄 재처리를 시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군 복무를 마치고 1979년 봄 원자력연구소에 들어가 노심계통연구실에서 일했는데, 실장은 MIT 출신 임창생(林昌生, 작고) 박사였다. 앞서 얘기했지만 여기서 훗날 몇몇 과학자가 호기심 차원에서 우라늄을 농축하고, 플루토늄을 추출해보았다. 아주 적은 양이었다. 그 실험 이후 벌써 4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핵 관련 기술의 진보는 상상을 초월한다.”

서 교수는 “얼마 전 미국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LLNL) 핵융합 연구 시설에서 레이저 핵융합에 성공했다”며 “레이저란 기술이 이 정도로 상용화되고, 그 절반만 가더라도 레이저로 대량 농축이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LLNL) 별칭이 ‘Laser, Laser, Nothing but Laser’인데 미국처럼 우리도 레이저법을 이용한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내폭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했다.

— 과거의 우라늄 미량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결과물이 남아 있나.
“물론 IAEA에 신고하고 청소한 상태라서 결과물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 결과치가 누군가의 머릿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의 경우, 탄두를 만들어 미임계실험으로 핵무기 개발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준이다. 그것을 슈퍼시뮬레이션이라고 한다. 요즘 유체역학 도구가 발전해 전산 도구를 통해 내폭을 계산하는데, 유체역학 계산 도구도 자체적으로 개발했다.”

내폭 기술

 ▲이란 핵시설에 설치된 원심분리기. 사진=뉴시스

 

내폭은 기체역학인데, 다시 말해 충격파 공학이다. 핵폭탄은 30만 기압 정도의 압력을 가해야 핵분열이 가능한 질량이 된다. 자몽만 한 플루토늄 덩어리가 압력을 받아 자두만큼 작아지는데, 이 크기가 핵반응을 위한 임계 체적이다. 30만 기압은 6t 무게의 코끼리 50만 마리가 1000만분의 1초 동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입체각 360도로 정확한 구(球) 모양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누르는 것이다. 30만 기압의 압력을 만드는 방법이 바로 RDX나 TNT 등 재래식 폭약이다. 내폭에 성공하면, 자두만 한 플루토늄에 중성자를 쏘아 핵분열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 그동안 내폭 기술은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혹자는 내폭(內爆)보다 내파(內破)라고도 한다. 다시 말해 내폭에 100만분의 1초, 핵폭발에 100만분의 1초(정확히는 1억분의 83초) 도합 100만분의 2초 내에 핵폭발 과정이 종결되는 것이다.”

— 우라늄탄이 플루토늄탄에 비해 불발 가능성이 적다고 알려졌다.
“우라늄탄은 거의 확실하게 터진다. 우라늄은 자연계 원소(元素)라 모아놓으면 안정돼 있다. 1977년 난생처음 맑은 물속에서 파랗게 빛을 내뿜는 우라늄에 첫눈에 반했다. 처음으로 핵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플루토늄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원소다. 우라늄235가 분열해서 열을 내고, 우라늄238은 중성자를 하나 받아 플루토늄239로 원자로에서 태어난다. 일단 플루토늄239였다가 중성자 하나를 잡아먹어 플루토늄240이 되면서 잘 타지 않는 성질로 바뀐다.”

— 플루토늄은 질산 등 화학적으로 추출하기 때문에 유효기간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맞는 이야기다. 핵분열이 잘되는 플루토늄은 플루토늄239인데, 중성자에 노출되면 금세 플루토늄240이 돼버린다. 불발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리가 우라늄을 농축도(濃縮度)로 이야기하고, 플루토늄을 순도(純度)로 표시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래서 플루토늄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을 넘기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불순물을 포함한 플루토늄도 태울 수 있는 고도의 내폭 기술이 중요한 것이다.”

“북한 플루토늄탄 사용 못 할 수도”

— 북한이 1990년대 중반부터 만든 플루토늄탄은 시간이 갈수록 문제가 생기는 것인가.
“북한이 보유한 50여 기 중 상당수에 해당하는 플루토늄탄은 시간이 지나면서 순도가 계속 떨어질 것이다. 북한은 아직 핵탄두를 만들기에 급급한 상황이라 유지에 관해서는 신경을 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 자신도 시간이 갈수록 플루토늄탄의 성능에 대해 불안감을 갖게 될 것이다. 북한이 공급한 미사일과 포탄이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불발률이 상당한 것을 보면, 핵무기의 불발 가능성 또한 매우 높을 것이다.”

— 핵 유지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미국의 경우, 매해 천문학적 예산을 들인다. 미 의회예산처(CBO)가 지난해 추계한 2023~2032년 미국의 핵전력 유지 비용은 7560억 달러(약 1050조3100억원)로 나타났다. 한국 연간 국방비(약 57조원)의 20배에 가까운 수치다.
“플루토늄은 유지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불순물이 나오는 플루토늄을 잘 태울 수 있는 내폭 기술의 중요성이 그래서 주목받는 것이다. 유지 관리비용 때문에 핵 보유국들은 내폭 기술 향상 쪽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리고 100만t급, 50만t급이 아닌 10만t, 1만t, 100t 등 저위력 탄두로 가고 있다. TNT 100t이라고 해도 엄청난 파괴력이다. 미국이 투하한 재래식 폭탄 중 가장 큰 폭탄인 마더 오브 올 폭탄(MOAB)도 11t 위력에 불과하다.”

구멍 뚫린 핵우산

— 한미원자력협정만 해도 한국의 사용 후 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재처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우라늄은 20% 미만까지만 협의하에 농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국과의 합의 없이는 핵개발 시도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맞다. 미국 의회의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다. 지난 5월 24일 워싱턴 미 외교협회(CFR) 주최 포럼에 나온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은 현재의 억제력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이건 무슨 뜻인가. 한국의 자체 핵무장 주장은 물론, 미 의회 등에서 제기된 전술핵 재배치와 핵공유 요구에도 선을 그은 것이다. 아직은 꿈도 꾸지 말란 이야기다.”

— 이명박(李明博) 정부 때도 핵물질 확보를 위해 영국과 협의도 벌였고, 2015년 원자력협정 협상 때 박근혜(朴槿惠) 정부가 핵 재처리 능력 확보를 위해 부단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지만 미국은 요지부동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베트남전 참전을 결단한 것처럼, 국가안보를 위해 미국과 사생결단의 담판을 벌여야 한다. ‘너희가 허락하지 않으면 우리가 은밀하게 할 수도 있다’는 암시를 주어야 한다. 일본의 경우 러시아와 중국 세력의 안보 방파제를 자처하면서 미국이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올 초 북한이 극초음속미사일을 성공적으로 시험발사 했다고 발표했다. 핵탄두를 장착한 극초음속미사일이 60초면 우리 머리 위로 날아오고 핵우산은 구멍이 뚫린 판국에 무엇을 망설인단 말인가.”

서균렬 교수는 “지아비와 핵폭탄은 절대 나눠가질 수 없다”며 “처음부터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잠재력을 갖추는 쪽으로 갔어야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핵공유, 전술핵 재배치, 전략무기 전개는 우리에게 평화시엔 안정감을 주겠지만, 근본적 처방이 아닌 ‘진통제’에 불과하다”며 “자체 핵무장만이 실효적으로 북핵 억제 효과를 낼 수 있는 ‘항생제’”라고 했다.⊙

 

‘6개월 내 핵무기 제조 가능’ 주장에 대한 반론

“원자로급 핵연료로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은 선동적 발언”(함형필)

⊙ ‘6개월 핵무장’ 주장 서균렬 교수, 핵무기와는 무관한 분야 전공
⊙ “선동적 핵무장론의 가장 큰 피해 집단은 과학 기술자들”(이춘근)
⊙ 6개월 핵무장설, 1977년 기사와 2000년 실험 해프닝이 합쳐져 탄생
⊙ 월성 원전에 저장된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해도 핵무기용으로 못 써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회원들이 핵무장을 촉구하는 시위에 참가해 핵무장 푯말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방류 반대 운동을 하는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 공학과 명예교수는 이른바 핵무장론자이다. 여러 매체에 등장해 ‘6개월이면 핵무장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서 교수는 핵무기 제조와는 무관한 분야를 전공했다.

서균렬 교수는 2016년 9월 ‘생존을 위한 핵무장국민연대’ 출범식에서 자신이 핵무기 설계 도면, 3차원 도면을 갖고 있다며 1조원의 예산과 연구 인력 1000명, 기술 인력 1000명, 1000만 명의 뜨거운 가슴이 있으면 핵을 개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6개월의 시간을 주면 원자폭탄, 6개월 더 주면 수소탄, 전술·전략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도 했다. 또 고농축 우라늄을 확보하기 위해 북한은 20세기 기술인 원심분리기 2000기를 돌리지만 우리는 (약 50평 규모의 공간에서) 21세기 기술인 레이저를 쏘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화학공학 기술이 좋아 사용 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Pu)-240을 그대로 둔 채 재처리 없이 플루토늄-239만 빼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한국이 삼성전자가 있는데 인도, 파키스탄보다 못하겠느냐, 북한의 경제적 가치 때문에 트럼프(당시 미국 대통령)가 제재할 수 없다, 무서워할 것 없다고 했다.

원전에서 나온 사용 후 핵연료, 핵무기용으로는 못 써

▲한국국방연구원 함형필 책임연구위원. MIT에서 핵무기를 주제로 핵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핵무기 분야를 전공한 전문가들은 서균렬 교수를 비롯한 일부 핵무장론자들의 주장이 허위라고 말한다. 원전을 가동하는 데 쓴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 없이 무기용인 플루토늄인 Pu-239, 241만 빼낼 수 있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국방연구원(KIDA) 함형필 책임연구위원은 지난 7월 9일 국회에서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실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핵 잠재력 확보 전략 정책토론회에서 “(핵무장론자 중 일부는) 원자로급 플루토늄 50t으로 6000기 이상의 핵탄두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나 이는 과학적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존 핵 보유국은 플루토늄 순도(Pu-239, 241 비율) 94% 이상의 무기급 핵연료만으로 핵탄두를 제조한다. 원자로급 핵연료로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은 선동적 발언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함형필 책임연구위원은 육사를 수석 졸업한 뒤 MIT에서 핵무기 분야를 전공해 핵공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국방부 초대 북핵대응정책과장 등 북핵 대응 실무를 담당했다.

왜 핵무장론자들은 월성 원전 등에 저장된 사용 후 핵연료를 핵무기 원료로 사용하자고 주장할까. 핵무기 분야 전문가들은 “핵무기는 워낙 어렵고 전문적인 분야다. 그렇다 보니 무책임한 주장, 근거 없는 이야기를 해도 이를 지적할 사람이 없어 핵무장 선동꾼들이 활개 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핵무기 전문가 A씨는 이렇게 말했다.

“플루토늄에도 급이 있습니다. 플루토늄 239, 240, 241, 242. 홀수인 239나 241의 순도가 93% 이상이면 무기급이라고 합니다. 순도가 60%면 원전의 원자로에 사용돼 ‘원자로급’이라고 합니다. ‘원자로급 플루토늄’으로도 핵탄두를 만들 수는 있지만 폭발 위력이 작고 불안정해 무기로는 쓸 수 없습니다.

원자로급 플루토늄(순도 60%)에는 240, 242가 많습니다. 이것들은 중성자가 자발적으로 발생해 다루기도 어렵고 엄청난 붕괴열이 발생합니다. 통제가 안 되는 중성자가 자발적으로 막 튀어나오니까 작동자가 원하지도 않는 시점에 조금씩 폭발이 생깁니다. 이를 방지하려면 핵물질을 식히기 위해 핵탄두 그 자체보다 더 큰 냉각 장치를 달아야 합니다. 어떻게 무기로 쓰겠습니까. 월성에 있는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핵무기를 만들겠다는 주장은 기본적인 원리도 모르는 상태에서 말하는 겁니다.”

6개월 핵무장說의 출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이춘근 초빙전문위원.

 

서균렬 교수는 핵 물질 확보에 왜 하필 6개월이 걸린다고 했을까? 이 의문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초빙전문위원인 이춘근 박사가 밝혀냈다.

《동아일보》 1977년 5월 26일 자 4면 과학란에는 미국이 연구 중인 원자법 레이저 농축 동향 기사가 등장한다. 여기에 ‘3.5일, HEU 20kg 생산 가능’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하지만 이 기술은 전열 후드로 금속 우라늄을 증발시키는 방법인데 3000도가 넘는 고열을 견디지 못해 곧바로 포기했다.

2000년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전자총으로 우라늄 극소량을 증기화해 레이저로 농축한 실험이 있었다. 3회에 걸쳐 총 10시간을 가동해 무기급(농축도 90% 이상)에는 미치지도 못하는 우라늄(약 30%) 0.2g을 얻었다. 이를 쉬지 않고 1년 내내 가동해도 얻을 수 있는 우라늄은 175g에 불과했다. 핵탄두 1개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분량인 HEU 20kg을 얻으려면 이런 설비가 680대 이상 필요하다. 이런 설비를 갖춘 나라는 세상에 없다. 레이저 실험 직후 미국 등 국제사회는 한국의 핵무장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길들이기 차원에서 사건을 키웠다. 이 때문에 관련 설비들도 모두 폐기했는데 설령 장비가 그대로 남아 있더라도 불가능하다.

이렇게 1977년 기사와 2000년 한국 연구진의 레이저 실험 해프닝이 합쳐져 근거 없는 ‘6개월 핵무장설’이 탄생했다.

전문가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이른바 ‘1년 이내 핵무장(2023년 4월 28일 하버드대 강연)’ 발언에 대해 대통령실 외교·안보 라인이 과학적 근거도 내세우지 못하는 핵무장론자에게 휘둘려 벌어진 사건이라고 비판한다.

이춘근 박사는 과학 기술계의 의견은 무시한 채 국민감정만을 앞세우는 섣부른 핵무장론이 과학 기술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 ‘한국이 마음먹으면 6개월 내에 핵무장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는 주장은 사실입니까.
“그런 주장이 나올 때면 참 답답해요. 굉장히 위험한 이야기예요. 관련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나 정책을 경험해본 사람은 2년 이내도 어렵다고 봐요. 실제로 3~4년 걸리겠죠. 또 ‘마음만 먹으면’이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이냐는 겁니다.”

― 과학 기술자 입장에서 핵무장(론)을 어떻게 보십니까.
“핵무장론의 가장 큰 피해 집단은 과학 기술자들이에요. 정치권에서는 핵무장 여론이 70%라고 주장하며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해요. 국민감정을 자극해왔죠. 그 반대급부로 원자력계가 가장 큰 피해를 입어왔습니다. 불필요한 의심을 사 평화적인 원자력 연구에도 제한을 받아왔죠. 반면 일본은 국제사회의 신뢰와 협력을 얻어내 자유로운 연구와 농축·재처리를 다 하고 있습니다. 실리를 챙긴 거죠. 저는 핵무장을 반대하는 사람도, 찬성하는 사람도 아니에요. 이런 상황에서 비과학적인 조기 핵무장 가능설을 주장해서 얻을 것이 무엇인가요?”⊙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liberty@chosun.com

 
 

■핵무기 개발의 선택과 대가–이스라엘·남아공·대만의 사례

 이스라엘, ‘농업용’ 명목으로 원자로 도입… 남아공과 핵실험?

 ⊙ 이스라엘, 유대인 네트워크 활용… 핵 폐기물 처리 회사 통해 농축 우라늄 확보 추정
⊙ 1979년 미국 인공위성, 남아공과 남극 대륙 사이에서 두 차례 폭발 섬광 포착… 이스라엘-남아공 합동 핵실험이었나?
⊙ 남아공, 1980년대까지 총 여섯 발의 10~18kt급 핵무기 만들었지만, 미·소 압박으로 핵무장 포기
⊙ 대만, 1970~1980년대 핵무장 시도했지만 미국의 압력으로 포기
⊙ 미국, 정권에 따라 친미와 반미 성향이 극단적으로 오간 한국의 핵개발 찬성 어려워

윤상용
1979년생.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서강대 국제대학원 석사,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박사, 육군 통역사관 2기 /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 대위 예편, 現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 / 역서 《이런 전쟁》(공역), 《명장의 코드》(역서),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 《은경이일기》(영문판) 외 다수

▲이스라엘 디모나에 있는 핵 시설. 이스라엘 핵개발의 산실이다. 사진=AP/뉴시스

 

2024년 현재, 동아시아 지역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대만의 민주진보당(민진당) 대선(大選) 승리로 양안(兩岸)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고,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와 밀착하면서 중국과의 종속적인 관계를 대체하고 있다. 이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올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선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후보 모두 대중(對中) 정책에서는 강경한 입장이지만, 누가 백악관에 재입성하게 되느냐에 따라 미국의 향후 동아시아 정책은 대만 지원 문제나 한미동맹, 한·미·일 삼각 협력 등의 사안에서 차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갑작스럽게 화두로 떠오른 것은 한국의 핵(核)무기 보유 문제이다. ‘테러와의 전쟁’ 이후 미국은 더 이상 ‘두 개의 전쟁’을 감당할 여력이 없음을 인식했으며, 오바마 행정부 이래로 정당과 관계없이 해외 개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 역시 미군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방어 태세의 자립성을 높이기를 바라고 있어 핵무장까지도 허용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반면, 이제는 한국의 경제적·외교적 위상에 있어 잃을 것이 많으므로 핵무기 하나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맞선다.

이 논의 과정에서 자주 언급되는 사례가 이스라엘의 핵무기 개발 과정이다. 핵무기 선두주자들의 보유체제가 정립된 뒤 핵개발에 착수한 후발(後發)주자이고, 국제사회가 수평 핵 확산을 금지하는 분위기 속에서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 비(非)공산권 국가이므로 한국과 배경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농토 개간’ 명목으로 원자로 도입

이스라엘은 건국 순간부터 중동(中東)에서 ‘가장 불안한’ 국가였다. 현재도 안전한 국가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 체결되어 이집트·요르단과 수교하기 전까지는 전후방의 개념이 없고 육로로는 오로지 적국과만 맞닿은 육지 위의 섬이었다. 이스라엘은 1948년 유엔분할계획안을 수용하며 건국한 이후부터 4차 중동전쟁까지 사실상 자신을 둘러싼 중동의 모든 국가를 상대로 싸웠다.

건국 후 첫 전쟁인 이스라엘 독립전쟁(1차 중동전) 때는 약 1년 남짓한 전쟁 기간 동안 민간인 포함 약 6300명의 피해를 입었지만 아랍 측은 최대 2만 명의 병력 손실을 입고 전쟁이 끝났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1대 3의 교환 비율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 전쟁을 통해 주변국 모두가 이스라엘의 멸절(滅絶)을 원하고 있으며, 앞으로 단 한 차례의 패배도 용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은 1950년대부터 절대적인 열세를 깨기 위해 핵무기 개발을 비밀리에 시작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네게브 사막을 개간해 농토로 활용하겠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1956년 프랑스로부터 24MW급 원자로를 도입했다. 이 원자로를 이용하여 바닷물을 담수화(淡水化)해 농업용수를 공급하겠다는 것이 표면적인 계획이었다. 이 사업을 추진한 ‘건국의 아버지’ 다비드 벤구리온(Ben Gurion·1886~1973년) 총리는 사실 처음부터 핵무기 개발을 염두에 두었지만 이를 은닉할 목적으로 ‘사막 개간’을 내세웠다.

이츠하크 라빈의 반대

▲이츠하크 라빈 전 이스라엘 총리.

 

그러나 ‘농업용’ 원자로 도입이 추진되자 이스라엘 내에서도 ‘이 사업은 사실 핵무기 개발을 위한 것’이라며 반대가 일었다. 특히 이츠하크 라빈(Yitzhak Rabin·1922~1995년, 전 총리) 장군은 두 차례 중동전을 치르면서 이스라엘에 영국·프랑스 등 열강의 지원이 없다면 아랍 국가들과의 전쟁에서 버티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불필요한 핵개발로 이러한 국가들과 척을 지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원자로 도입 계획에 반대했다.

그러나 벤구리온의 강력한 의지로 사업은 강행되었고, 프랑스로부터 도입한 원자로는 네게브 사막의 소도시인 디모나(Dimona)에 건설되어 1963년부터 본격적으로 가동에 들어갔다.

이스라엘은 디모나에 원자로를 설치했으나,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원료 물질인 플루토늄 혹은 우라늄이 필요했다. 이스라엘은 핵무기 개발을 정식으로 선언하거나 공개한 적이 없기 때문에 플루토늄 확보 과정은 다소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일부에서는 프랑스가 이 원료까지 제공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나, 플루토늄이나 고농축 우라늄은 수평 핵 확산에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기존 핵 보유국들(미국, 영국, 소련, 프랑스, 중국)이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주장은 신뢰하기 어렵다. 냉전(冷戰) 기간 중 미국과 소련조차 제3국의 핵개발 시도를 막기 위해 협력했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핵 원료 확보에 대해서는 또 다른 주장이 있다. 바로 전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유대계 조력자들을 통해 원료를 확보했다는 설이다.

핵 폐기물 처리 회사 통해 원료 확보(?)

세계 정보기관의 스파이 활동 분야 전문 작가인 고든 토머스(Gordon Thomas)의 저서 《기드온의 스파이(The Gideon’s Spies)》에 따르면, 이스라엘 해외첩보기관 ‘모사드’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州)의 아폴로시(市)에 위치한 ‘뉴멕(Nuclear Materials and Equipment Corp.·NUMEC)’이라는 업체를 핵물질 확보 수단으로 삼았다.

이 회사는 유대계 미국인인 잘만 샤피로(Zalman Mordecai Shapiro·1920~2016년) 박사가 운영하고 있었으며, 그는 존스홉킨스대에서 화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사에서 근무하면서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인 노틸러스(USS Nautilus, SSN-571)함의 원자로 개발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었다.

이스라엘 정부가 그의 회사를 눈여겨본 이유는 이 회사가 농축 우라늄 원료 제조뿐 아니라 핵 폐기물 관리 및 처리 업무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뉴멕은 미 정부 외에도 국제 원자력위원회(Atomic Energy Commission·AEC)와 계약을 맺고 산업용 원자로용 농축 우라늄을 공급하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원자로에서 발생한 핵 폐기물을 관리 및 처리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 핵 폐기물 처리 과정이다. 보통 우라늄은 재처리 과정에서 증발하거나 땅에 스며들면서 어느 정도 자연 손실이 발생하는데, 이 양은 일정하지가 않다. 따라서 이를 이용해 미 정부나 핵 관련 감시기구의 눈을 피해 이스라엘에 필요한 양을 은밀히 제공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뉴멕이 원료를 공급했다는 의혹은 1960년대 미 정부뿐 아니라 국제 원자력위원회, 미 연방수사국(FBI), 미 중앙정보국(CIA)까지 동원되어 뉴멕사를 조사했을 때 이 회사가 보관 중이던 고농축 우라늄(HEU)의 양이 서류상의 기록과 불일치했기 때문에 제기됐다. 뿐만 아니라 조사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핵개발에 참여했을 것으로 보이는 이스라엘 고위 관리들이 뉴멕사를 방문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그중에는 이스라엘 방위군 장성 출신으로 훗날 이스라엘 핵개발 프로젝트와 관련이 있는 인물로 알려진 라파엘 에이탄(Rafael Eitan)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여러 사법기관의 면밀한 중첩 수사에도 불구하고 뉴멕에 대한 혐의는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고, 수사는 결국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IAEA 사찰을 美 정부 사찰로 대신

▲벤구리온 전 이스라엘 총리.

 

이스라엘이 정확하게 어떻게 핵물질을 얻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단계가 되자 미국도 이스라엘의 핵개발 시도를 눈치채고 견제에 들어갔다. 특히 네게브 사막 한가운데에 건설한 원자로가 단순히 ‘사막 개간용’이 아니라고 판단한 케네디 행정부는 이스라엘이 핵을 보유하게 될 경우 중동 지역의 역학(力學)관계가 심각하게 뒤틀릴 것을 우려했다. 수평 핵 확산에 절대적으로 반대하던 케네디 대통령은 이스라엘 정부에 친서를 보내 디모나 원자로 시설이 IAEA의 정기 사찰을 받아야 한다고 압박했고, 벤구리온 총리에게도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이 핵을 보유하면 중동 지역의 균형에 심각한 손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이스라엘 측은 미국의 유대계 인사들까지 동원한 전 방위 로비를 벌여 미 정부와 절충안을 이끌어내면서 디모나 시설이 IAEA 대신 미 정부의 사찰을 받는 것으로 합의했다. 이 절충안은 유대계 미국인의 자금력을 무시할 수 없었던 미 정치권의 입장 때문에 성사될 수 있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미 정부 사찰단이 오기 전 디모나 시설에 위장용 통제 시설을 만들어 민간용 농업 원자로 시설로 보이도록 위장했고, 핵심적인 시설은 방사선 때문에 출입할 수 없는 곳으로 표시하여 사찰단의 접근을 차단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앞서 언급한 뉴멕으로부터 외교행낭 편으로 컨테이너 몇 개를 받았는데,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었는지는 외교 관례상 아무도 확인할 수 없었다. 같은 기간 뉴멕이 ‘자연 손실’로 기록한 농축 우라늄은 약 45kg이었으나, 미국은 이것이 이스라엘로 넘어갔다는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다.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이 1967년 6일 전쟁 발발 전까지 약 1~2발의 핵무기를 완성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이스라엘은 아랍연맹 4개국 연합국을 상대하면서도 이 전쟁에서 핵을 사용하거나 핵의 존재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 당시 완성된 핵무기를 보유했는지도 불분명하지만, 만약 보유했더라도 충분한 실험이 이루어지지 않아 실전(實戰)에서 운용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모든 핵무기 개발에는 실험 과정이 필수적인데, 이스라엘은 가시적으로 어디에서 핵실험을 한 정황이 없어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 추측이 존재한다. 첫 번째 추측은 디모나 핵 시설 인근 네게브 사막 지하에서 미임계 실험(sub-critical test)만 했을 가능성이다. 이는 핵폭발 없이 고폭탄으로 핵물질의 반응만 테스트하는 방법이므로 외부에 포착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두 번째는 백인 정권 시절 이스라엘과 군사 기술 면에서 긴밀한 협력 관계에 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지원했을 가능성이다. 이 주장은 1979년 9월 22일 미국의 벨라(Vela) 인공위성이 인도양 특정 지점(남아공과 남극 대륙 사이)에서 두 차례 폭발 섬광을 포착한 ‘벨라 사건’으로, 이를 두고 이스라엘과 남아공이 합동 핵실험을 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뒤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남아공 역시 백인 정권 시절 핵무기를 완성한 적이 있기 때문에 신빙성이 높은 추측이긴 하나 ‘벨라 사건’이 핵실험과 직접 연관됐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이 외에도 핵폭발까지 필요 없는 유체역학 테스트로만 실시했을 것이라는 설, 기존 핵 보유국들로부터 핵실험 데이터를 제공받아 물리적 테스트 단계를 건너뛰었을 것이라는 주장 등도 있지만, 이스라엘 정부가 핵 보유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 어떤 방식을 썼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스라엘 원자력 기술자의 폭로

▲모르데하이 바누누

 

이스라엘 정부가 핵 보유를 철저히 부인하는 상황에서 ‘보유’가 기정사실화된 것은 과학적 근거와 핵개발 참여 과학자의 ‘양심선언’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적지 않은 양의 핵무기 개발 관련 연구 결과와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과학계에서는 이스라엘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또 하나는 1986년 이스라엘 원자력 기술자로 근무했던 모르데하이 바누누(Mordechai Vanunu)에 의한 폭로였다. 그는 1977년부터 1986년까지 이스라엘 핵개발 시설에서 근무했다고 주장했으며, 이스라엘이 100여 발의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간접 증거로 다수의 사진과 서류를 영국 언론사를 통해 공개했다. 그는 이후 이스라엘 정보당국에 의해 체포된 뒤 종신형(終身刑)을 선고받고 구금됐다.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은 필요한 경우 핵무기 보유 사실을 ‘암시’하지만, 공식적으로 보유 사실을 인정한 적은 없다.

이스라엘이 핵을 보유하게 된 이유는 온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절체절명의 지정학적 상황, 그리고 단 한 번의 패배가 국가 소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선택 때문이다. 또한 아직 건국 초였던 이스라엘은 경제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잃을 것이 적었고, 무엇보다 주변의 적 모두를 상대로 한 ‘생존’이 지상 과제였다.

핵무기 포기한 舊소련 국가들

이런 맥락하에 이스라엘과 달리 핵을 거의 완성했거나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핵 보유에 대한 교환가치가 너무 커 포기를 한 사례도 있다. 우선 구(舊)소련 연방에서 탈퇴하면서 독립해 갑작스럽게(?) 핵 보유국이 됐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가 있다. 이들 국가는 구소련 시절 소련 정부가 이곳에 핵을 배치하거나 저장했기 때문에 독립하면서 핵 보유국이 됐으나, 갓 건국했을 당시 이들은 핵무기를 유지할 능력도 없었고, 핵보다는 국가의 기틀을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 과제였다. 따라서 이 세 국가는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가 천연자원 제공과 경제 지원을 약속하고, 분쟁 가능성이 있던 국경을 확정하는 조건으로 핵무기 반환을 요구하자 모두 러시아에 핵무기를 이관했다.

반면 앞서 언급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기존 핵 보유국 및 국제기구의 압박과 정치 환경 변화에 따라 핵무기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핵을 포기한 사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인종 분리 정책) 철폐로 백인 정권이 무너지기 전까지 아프리카 대륙의 ‘유일한’ 백인 국가였다. 따라서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주변 국가 모두가 잠정적인 적이었으므로 이미 1948년부터 남아공의 원자력에너지주식회사(Atomic Energy Corporation·AEC) 주도로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다.

美蘇 공조로 남아공 핵무장 저지

하지만 본격적으로 핵무기 개발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 말로, 미국을 통해 산업 및 연구 목적으로 원자로를 제공받으면서부터 본격적인 핵무기 개발에 돌입했다. 이 시기는 이스라엘이 본격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와 일치하는데, 이 때문에 군사적으로 가까웠던 이스라엘과 상부상조하면서 핵무기를 공동 개발했을 가능성도 크다. 특히 남아공에서는 우라늄을 국내에서 확보할 수 있었으므로 이를 활용하여 1980년대까지 총 여섯 발의 10~18kt급 핵무기를 만들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러 기존 핵 보유국들이 남아공의 핵무기 개발 시도를 눈치챘다. 1977년 8월경 남아공의 핵개발 징후를 읽은 소련 정보기관이 먼저 남아공의 핵실험 징후를 포착했고, 이 사실을 미국과 공유했다. 남아공은 주로 칼라하리 사막과 인도양 망망대해에서 핵실험을 실시했는데, 미국은 우선 의심되던 칼리하리 사막 상공에 정찰기를 띄워 광범위한 수색 끝에 실험 시설을 찾아냈다. 또한 인도양에서는 앞서 언급한 ‘벨라’ 위성이 두 건의 연속적 폭발을 포착했다. 이는 아직까지도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고 있으나 미국은 남아공의 핵실험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의 강력한 압박이 들어오자 남아공 정부는 결국 개발 사실을 인정했으며, 개발 중단의 의미로 핵실험용 갱도(坑道)까지 모두 폐쇄했다. 남아공은 이후에도 1988년까지 계속 핵실험을 진행할 기회를 엿봤지만 이미 미국을 비롯한 열강과 국제기구의 감시가 집중된 뒤라 실행할 수 없었다.

이러다 남아공의 정치 환경이 변했다. 1989년, 데 클레르크(F. W. de Klerk·1936~)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인종 분리 정책을 철폐하기 시작했고, 그간 국제사회에서 고립적이던 위상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게다가 냉전까지 종식됐기 때문에 전략적인 핵 억지력의 중요성이 낮아져 절박한 안보 문제가 줄었고, 미국이 남아공이 핵을 포기할 경우 영토 방어에 대한 안보 지원을 약속해 클레르크 정권은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의 공식 폐기를 선언했다. 남아공은 1991년부터 여섯 기의 핵을 모두 해체했으며, 핵확산금지조약(Non-Proliferation Treaty·NPT)에 재가입하면서 IAEA 등 국제기구가 핵무기 해체를 검증했다.

남아공이 핵을 완성하고도 포기한 것은 남아공이 우선시하는 안보 가치가 변화한 탓이 크다. 초반에는 안팎으로 백인 정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생존’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했지만, 나중에는 정권 변화와 함께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일원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 더 컸기에 핵 보유 역시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물론 냉전기 ‘초강대국’들에 포착됐기 때문에 더 이상 비밀리에 개발을 진행할 수가 없었던 이유도 있다.

대만, 1988년까지 핵무장 시도

대만도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다 좌절된 국가다. 이는 미국이 1970년대 기밀 해제를 하면서 밝혀진 내용으로, 대만 역시 1960년대부터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다. 중국이 1964년 10월 신장(新疆)에서 첫 핵실험에 성공하면서 세계에서 다섯 번째 핵 보유국이 되었기 때문에 대만은 이를 견제할 필요성을 느꼈다.

당시 장징궈(蔣經國·1910~1988년) 총통은 해외에서 핵무기 기술을 도입했고, 자체적으로 농축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하지만 미국의 제럴드 포드 행정부가 대만의 핵개발 시도를 포착하면서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대만 정부는 1976년 9월 핵개발을 중단하겠다고 확약했지만, 바로 다음 해 IAEA 사찰단이 조사를 실시하던 중 대만이 연구용 원자로의 사용된 연료를 시설 밖에서 전용하고 있는 것을 포착했다. 그다음 해인 1978년에는 미국의 핵 전문가들이 대만에 방문했다가 이들이 무기화(武器化) 용도가 분명한 레이저 우라늄 농축 기술을 연구 중인 것을 포착했고, 이에 새로 들어선 지미 카터 행정부는 대만 원자력발전소를 위한 장비의 수출 허가를 취소하겠다면서 압력을 넣었다.

미 정부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대만의 핵무기 개발 시도에 압력을 가하는 한편 오키나와에 핵무기를 배치해 한국-일본-대만에 ‘핵우산’을 제공했지만, 정작 대만 정부는 1988년까지도 계속 핵무기 개발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미국과 관련 국제기구의 집중적인 감시 속에서 더 이상 핵무기 개발이 어렵다고 판단한 대만 정부는 결국 핵무기 개발을 포기했다.

대만의 사례는 특히 눈여겨볼 사례다. 개발 당시의 환경이 한국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당시 대만은 미국과의 중미상호방위협정(Sino-American Mutual Defense Treaty·SAMDT)이 살아 있던 때였고, 중국이 계속 중국 해안에서 불과 4km 떨어진 진먼다오(金門島)에 지속적으로 포격을 가하며 국지(局地)도발을 자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핵무기 보유가 기정사실화되면서 안보 위협도 심각하던 때였다. 뿐만 아니라 당시 대만에는 미-타이완 방어사령부(US-Taiwan Defense Command·USTDC)가 주둔하면서 대만 방어에 헌신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현재의 한국과 유사점이 많다. 물론 대만은 미-중 수교로 외교적인 고립이 가속화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으나, 미국에 있어 대만은 직접적인 안보 위기에 직면한 동맹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수평 핵 확산은 허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사례이기 때문에 연구해볼 만하다.

미국의 ‘주한미군 철수’가 불붙인 한국의 핵 보유 시도

▲카터 정권의 주한미군 철수 정책에 따라 1978년 12월 13일 미 2사단의 일부 병력이 한국을 떠났다. 사진=조선DB

 

한편 한국 역시 냉전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던 1970년대 중후반, 미국의 급작스러운 동맹 정책 변화 때문에 핵무기 개발을 고려한 적이 있었다. 단초는 베트남 전쟁 장기화에 따른 미국 여론의 반전(反戰) 움직임이 커지면서 리처드 닉슨 행정부가 주한미군 철군(撤軍)을 고려하면서부터였다. 이때 닉슨이 제창한 통칭 ‘닉슨 독트린’은 미국의 동맹국들은 스스로 안보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골자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 제7보병사단이 1971년에 한국에서 철수하는 것을 목격한 한국은 캐나다나 프랑스로부터 중수형 원자로 도입을 추진했고,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다. 하지만 정보기관을 통해 이 사실을 포착한 미국은 한국이 핵무기를 갖도록 용인하지 않았다. 미국은 경제적 지원과 다양한 안보 패키지를 제시하면서 한국의 핵무기 개발 중단을 요구했고, 반대급부로는 미국의 핵 억지력을 한반도까지 확장하겠다고 제시했다. 사실 당시 박정희(朴正熙) 정부는 미군의 철군에 대비하여 핵무기 개발을 고려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국제사회와 척을 질 의향은 없었으므로 이 자체를 동시에 협상 카드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한국은 미국과 지속적으로 밀고 당기는 힘 싸움을 하며 미국과 협상했고, 미국은 국제기구를 통해 한국에 지속적인 압박을 가해 결국 주한미군의 철군 중단과 미국의 확장된 안보 패키지 제공을 약속받으면서 IAEA로부터 핵 사찰을 받는 데 동의했다. 한국은 종국적으로 1975년에 NPT를 비준했으며, 이후에는 10·26사건으로 정치 환경이 변화해 핵무기 개발 시도도 완전히 중단됐다.

미국, 혈맹에도 핵무기 이전 안 해

‘궁극의 비대칭(非對稱) 무기’인 핵무기는 역사상 단 두 차례만 사용된 후 더 이상 사용된 예가 없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이유는 ‘국가의 생존성’ 문제와 직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기존 핵 보유국과 적대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이를 견제하려는 목적이거나, 안보가 심각하게 불안해 국가 존폐의 위기에 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핵무기는 그 어디에서도 ‘방어용’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한 번 투발(投發) 시 전투원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 ‘대량살상무기’의 잔혹성, 사용 후 오랜 시간 동안 영향력이 잔류하는 환경적·생물학적 문제 등으로 비도덕적인 무기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뿐만 아니라 핵무기의 위력은 다른 핵무기로 견제되는 순간 효과가 반감하므로, 기존 핵 보유국은 타국(他國)의 핵무기 개발 및 보유에 절대 반대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실질적 ‘혈맹(血盟)’으로 간주되는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국가들도 자체 핵을 개발한 영국 정도만 핵을 보유하고 있을 뿐,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도 핵무기나 기술을 이전하지 않는다. 특정 국가에 핵무기를 이전하거나 핵무장을 허용할 경우, 훗날 해당 국가와 이해관계가 갈리거나 적대관계가 될 경우 그 핵이 자신을 향해 날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핵무기와 관련은 없지만, 미국은 중동 지역의 동맹국이던 이란이 이슬람 혁명으로 단 한순간에 최악의 적대국으로 돌아서는 것을 지켜본 경험이 있다.

‘우군’에게 믿음 심어주는 게 우선

또 하나의 문제는 한국이 이제는 ‘잃을 것이 많아진’ 나라라는 점이다. GDP는 1조6000억 달러에 달해 세계 10위권 경제국가가 됐고, ‘K-팝’과 첨단 스마트폰과 반도체로 한국을 수출 대국으로 올려놓았다. 또한 외교적으로도 이제는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상에 올라 있다. 여기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핵무기’ 하나만 바라보고 모든 것을 포기하기는 어렵다. 핵개발과 동시에 시작될 국제사회의 외교적 고립과 경제제재는 실질적으로 잃을 것이 없고 국민의 삶을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는 북한에서나 가능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또한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한국은 지난 50년간 정권의 변화에 따라 친미(親美)와 반미(反美) 성향이 극단적으로 오간 전례(前例)가 있다는 점도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의 핵무기 보유를 찬성하기 어렵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섣부른 핵무장 시도는 손해 볼 것은 잃을 대로 잃고, 핵무기는 핵무기대로 완성하지 못한 채 저지당하는 최악의 상황을 야기할 수도 있다.

한국의 핵 보유 논의는 최근 안보 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미국의 해외 개입 축소, 북한-러시아의 위협 증대와 맞물리면서 증폭됐다. 하지만 핵무기 개발이 야기할 국제적 고립과 경제 제재를 감당하기에 한국은 이제 너무나도 잃을 것이 많은 국가가 됐다.

이런 맥락에서는 오히려 한미동맹을 주축으로 한 우방국과의 동맹체제 확장이나 국제사회와의 협력이 핵 보유보다 더 효과적인 안보 보장을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한국에 있어 핵무장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우군(友軍)’들에게 믿음과 신뢰를 심어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미국의 ‘한국 핵 허용론’과 대미 핵 외교

 독자적 핵무장의 가장 큰 걸림돌은 동맹으로서의 ‘신뢰 상실’

 ⊙ 2016년 트럼프의 ‘한일 핵무장 허용’ 발언은 “미국이 계속 쇠퇴한다면, 자체 핵무장을 원할 것”이라는 의미
⊙ “미국이 북핵에 직접 맞서 싸울 생각이 없다면 한국 핵무장을 허용해야”(더그 밴도)
⊙ 1940년대 쑹메이링 앞세운 중국 장제스 정부의 대미 외교처럼 총력 외교 펼쳐야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한국이 핵무장을 하려면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등 대미 핵 외교가 필요하다. 사진은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5년 4월 22일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가서명식. 사진=조선DB

 

‘너 자신을 알라(Know Yourself).’ ‘지나친 것보다 나쁜 것은 없다(Nothing in excess).’ ‘맹세 이후 남는 것은 수많은 문제들뿐이다(Give a pledge and trouble is at hand).’

2600여 년 전 고대(古代) 그리스 델피신전 정문에 걸려 있던 세 개의 아포리즘(Aphorism), 즉 경구(警句)다. 첫 번째인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소크라테스를 통해 유명해졌다. 이 경구들은 최근 북한-러시아 동맹과 같은 급변하는 안보 상황 속에서 한국의 외교·안보가 나아갈 길을 시사(示唆)해준다. 한국 아니 한반도 전체를 한순간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북핵 문제가 30여 년간 표류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놀라기는 하지만, 언제부턴가 ‘북핵=강 건너 불’로 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북핵에 집착할수록 냉전(冷戰) 시대 꼴통으로 보는 분위기도 나타났다. ‘설마 같은 민족에게 핵무기를 쏘겠느냐?’는 말을 믿거나, 믿고 싶어 하는 ‘우리 민족끼리 신자’들도 곳곳에서 출현하고 있다.

북핵은 결코 ‘우리’로 해석할 문제가 아니다. 북핵을 개발, 강화해온 김정은은 대한민국의 명백한 적(敵)이다. 북핵에 정면으로 대응할 방법은 ‘남핵(南核)’뿐이다.

수많은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의 90%는 북한 비핵화(非核化) 가능성을 10% 이하라고 보고 있다. 한국 독자 핵무장에 찬성하는 여론은 70%를 넘는다.

앞에서 본 델피신전 신탁(神託)의 첫 번째 경구는 ‘너 자신을 알라’다. 한국은 한국을, 한국인은 한국인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핵무장에 찬성하는 여론 70%는 스스로의 자세와 운명을 제대로 파악한 뒤 내린 판단일까? 자기 자신은 모른 채, 일회성 군중심리에 기초한 국뽕으로서 핵무장을 주장하는 것은 아닐까?

북한, 공병부대 파병

▲북한과 러시아는 6월 19일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체결했다. 사진=로이터/뉴스1

 

한국의 핵무장 여론을 재점화시키는 계기가 된 것은 지난 6월 19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간에 체결된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이다.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 안보구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는 ‘초특급 태풍’에 해당하는 사안이다. “한쪽이 무력 침공을 받을 시 지체 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것이 이 조약의 핵심이다. 구체화하기까지 여러 조건이 필요하겠지만, 조약으로만 보면 사실상 동맹 수준까지 갔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미동맹에 맞선 북러동맹이 2024년 6월 갑자기 탄생한 셈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북한의 지원에 대한 선물이 바로 이 동맹 조약이다.

김정은은 푸틴의 생각에 맞춰 무기만이 아니라, 인적 지원도 감행할 수 있다. 7월 초 나온 영국발 뉴스에 의하면, 1만5000명에 달하는 북한 공병여단이 우크라이나 돈바스에 파병될 예정이거나, 이미 파병됐을 수 있다고 한다. 이 뉴스를 접하면서 1960년대 한국군의 월남 파병이 떠올랐다. 전투요원이 아닌 병원지원팀과 태권도 교관으로 시작된 파병은 건설 및 후방 지원 부대(비둘기부대) 파병을 거쳐 결국 전투부대인 맹호·청룡·백마부대 파병으로 이어졌다.

북한의 파병 부대가 공병부대에서 전투부대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조만간 우리는 우크라이나군의 포로가 된 북한군의 모습을 보게 될 수도 있다.

김정은은 북한군의 피를 대가로 선물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제7차 핵실험 지지와 핵 관련 기술 확보, 나아가 실험 후 닥쳐올 후폭풍에 대한 푸틴의 안전보장 약속이 그것일 것이다. 무기뿐 아니라 북한군을 많이 보낼수록 푸틴의 보답과 약속은 보다 확실해질 것이다.

中, 北의 7차 핵실험에 부정적

6월 19일 새벽 2시38분 푸틴의 심야 평양 방문과 관련해, 일본 안보 관계자들이 주목한 사안 하나가 있다. ‘김정은이 갑자기 결정된 푸틴의 방북(訪北) 소식과 북러조약 내용을 중국 시진핑(習近平)에게 미리 알렸을까?’ 하는 점이다. 일본 안보 관계자들은 김정은이 아니라 푸틴이 ‘먼저’ 시진핑에게 방북 소식을 전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의 제7차 핵실험은 미국뿐 아니라 중국도 막고 있다. 김정은이 제7차 핵실험에 나설 경우, 중국의 대북(對北) 지원이 ‘왕창’ 축소될 것이란 경고도 주기적으로 북한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중국은 왜 북한 핵실험에 반대할까? 북한이 제7차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김정은과 미국 간의 대화는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북한이 담판에 들어갈 경우 중국의 영향력은 대폭 축소될 것이다.

푸틴의 방북은 이런 상황에서 이뤄졌다. 김정은이 시진핑을 아예 패스하거나, 대충 통보하는 시늉만 했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다. 김정은의 입장에서 북러조약 체결은 한국과 미국에 맞서는 생명보험인 동시에, 중국의 등을 찌르는 비수(匕首)다. 아마 북한이 가까운 시일 내에 푸틴의 지지·지원을 바탕으로 하지만 중국 생각에는 반하는 제7차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핵무장 나서는 순간 국제적 왕따 시작

6월 이후 한국 미디어에서 쏟아져 나온 한국 독자 핵무장 여론은 이런 배경하에서 나온 것이다. 제7차 핵실험 후 북한과 미국이 대화에 나설 경우, 중국은 물론 한국도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 있다. 미국은 북한의 ICBM 제한에 주력할 것이고, 한국을 노리는 북한 전술핵은 논외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미동맹이 한국의 안보를 어디까지 보장할지도 의문이지만, 설상가상으로 트럼프 재등장은 문제를 한층 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국가 존망에 관한 문제는 국내 정치, 경제성장, 국제 외교보다 훨씬 중요한 최우선 국가 정책이다.

국가 존망 이슈의 최종 해결자는 해당 국가의 국민과 정치가다. 동맹국 미국이나 이웃 중국이나 일본이 문제의 최종 해결자가 되어줄 수는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화려한 외교 수사(修辭)와 함께 재래식 무기와 돈으로 도와줄 수는 있다. 그러나 결국 최후에 현장에 남는 것은 우크라이나 국민들뿐이다. 북러조약 체결 후 독자적 핵무장 지지 여론이 높아진 것도 이런 인식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누울 공간을 보고 몸과 다리를 뻗어야 한다. 워싱턴은 한국의 생각과 여론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한국인 절대다수가 핵무장을 지지한다 해도, 미국이 반대하는 한 불가능하다. 북한처럼 ‘고난의 행군’을 감수해서라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한국이 미국의 지지·지원 없이 핵무장에 나서는 순간 국제적 왕따가 시작될 것이다. 단계를 밟아 올라가겠지만 미국만이 아닌 국제기구를 통한 에너지 봉쇄나 금융 제재가 이어질 것이다. 한국인의 해외여행도 제한될 수 있다. 한국은 핵무장에 나서는 순간부터, 단 하루도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이다. 핵무장을 하려면 미국의 도움과 승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에 핵을 줘라’


 흥미롭게도 미국에도 한국 독자 핵무장을 지지하는 발언들이 존재한다. 많지는 않지만 주로 워싱턴 싱크탱크 연구원들이나 전직 관료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의견이다. 대개는 한국의 핵무장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한 얘기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일정한 조건이나 한반도 환경 변화를 전제로 한 논의일 뿐이다. 무조건 찬성이나 지지는 없다. 2022년 3월 나와서 주목을 받았던 〈한국에 핵을 줘라(Give South Korea Nuclear Weapons)〉는 도전적인 칼럼은 그 대표적인 본보기다. 한반도 핵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온 워싱턴의 싱크탱크 케이토(CATO) 연구소 상급연구원 더그 밴도(Doug Bandow)는 ‘미국이 북핵에 직접 맞서 싸울 생각이 없다면 한국의 핵무장을 허용해야만 한다’는 칼럼을 썼다. 다시 말해 한국에 핵을 허용해, 북핵에 대한 ‘남핵’으로 미국에 튈 핵공격을 막아야만 한다는 논리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국가 존망의 순간에 의지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으로서의 핵무기가 아니라, 미국을 대신해 북핵에 맞설 나라에 허용해주는 핵이란 의미다.

한국 핵무장이 허용될 경우 미군의 위상이나 기능 변화는 필연적이다. 미군이 북핵에 맞서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은 곧바로 미군 철수로 이어진다. 한국에서 보도되는 워싱턴발 ‘한국 핵무기 용인’ 뉴스의 대부분은 더그 밴도의 생각과 거의 비슷하다. 미국 본토에 대한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을 피하기 위해 남핵으로 북핵을 막겠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이 핵무장에 나선다고 해도 여러 가지 전제조건이 달려 있다. 한미연합사 기능과 지휘권 문제, 일본과의 협력체계 구축, 주한미군 위상 변화 등이다. 기승전결(起承轉結) 없이, 곧바로 결(結)로 나타나는 핵무장이 아니란 말이다. 분명한 것은 미국 전체가 ‘남핵’에 반대하지는 않는다는 점에 있다.

한국 핵무장 문제를 언급한 인물 가운데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있다. 공화당 예비선거 후보들 간의 정책 경쟁이 활발하던 2016년 5월 26일, 《뉴욕타임스》는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 한국의 핵무장에 대한 생각을 트럼프에게 물어봤다. 8년 전 발언이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때 나온 트럼프의 말은 올 11월 대선에서 그가 재선될 경우에도 ‘한국의 핵무장에 대한 모범답안’으로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사람, 특히 나이 든 사람의 생각은 잘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 일본과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것은 어떤 시점에는 우리가 논의해야 할 문제이고, 미국이 계속 쇠퇴한다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할지에 관계없이, 그들(일본과 한국)은 어쨌든 자체 핵무장을 원할 것이다. 왜냐하면 두 나라는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서 자국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일본과 한국이 미군 주둔 비용을 증액하지 않을 경우, 미군을 철수할 것인가.
“물론이다. 기쁘진 않겠지만 그렇게 할 의지가 있다.… 우리는 미군 주둔과 관련된 수십억 달러의 막대한 손실을 감당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그들(한일)이 미군 주둔 분담금 상당액을 올릴 것이라는 느낌이 있다(생각한다). 나는 양국이 분담금을 올리리라 생각하지만, (만약) 올리지 않는다면 정말로 그렇게 (미군 철수를) 해야만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때 트럼프는 한일 핵무장을 지지하지는 않았다. ‘미국이 약해진다’는 전제하에,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서 한일 핵무장이 이뤄질 수 있다는 ‘동조적 시각’의 얘기였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다른 결론이 나온다. ‘미국이 강해질 경우’에는 한일 핵무장 논의가 불필요하다는 논리다.

이 인터뷰의 핵심은, 트럼프가 자위책(自衛策)으로서의 한일 핵무장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점이다. 만약 오늘 당장 한국이 핵무장 프로젝트를 발표한다 해도 트럼프는 ‘결코’ 놀라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약한 미국을 못 믿어서’ 그러는 것인지 추궁할 것이다. 반면에 이런저런 이유로 미군이 철수할 경우, 한국의 핵무장은 필연적인 정당성을 갖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트럼프도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은 신뢰의 문제

‘맹세 이후 남는 것은 수많은 문제들뿐이다.’


델피의 신탁 제2 경구는 약속에 관한 것이다. 타자(他者)와의 관계 속에서의 맹세·약속은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점을 강조한 아포리즘이다. 맹세·약속을 아예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맹세·약속을 한 이상 그 어떤 상황이 닥쳐도 지키라는 의미이다. 동맹은 맹세·약속을 기초로 한다. 한 번 한 이상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월간조선》 2023년 9월호를 보면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미국과의 전략자산 참여 훈련 횟수는 실질적으로 3회에 불과했다고 한다. 북한의 핵공격에 대비하는 한미군사훈련이 3번이라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집권 1년 동안엔 15회의 훈련이 실시됐다.

워싱턴이 문재인 정권을 어떻게 대했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문 정권은 한미동맹이라면서 미국이 요청하는 훈련 자체를 무시했다. 북한의 핵 위협을 얘기하면 김정은에게 결례라는 생각에서였을까?

이때부터 한미동맹의 의미가 정권 입맛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안 좋은 전례가 만들어졌다. 문재인 정권 시절에는 맹세와 약속은 있었지만, 책임과 의무는 없었다. 문재인 정권의 한미동맹 무시는 워싱턴에서 한국의 좌파 정권만이 아닌, 한국 정치·외교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의 핵무장에 대한 논의가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이 문제는 결국 ‘한국은 믿을 수 있는 나라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맹세와 약속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 상대는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사실 이것이 한국의 핵무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모래알 국가’ 한국

협상의 기본은 우군(友軍)은 늘리고 적군은 줄여나가는 것이다. 한국이 정말로 독자 핵무장을 원한다면, 먼저 워싱턴 내 우군을 늘리는 데 주력해야만 한다. 한국에 대한 신뢰 회복, 신뢰 확장은 기본이다.

먼저 미국 내에 아직은 몇 안 되는 ‘남핵’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을 하나로 연결한 종합 네트워크를 설립해야 한다. 기승전결 없이 곧바로 핵무장으로 갈 수는 없다. 장기적·종합적인 사전(事前) 준비가 필요하다. 집 하나를 구입하는 데도 수많은 서류와 보증이 필요하다. 핵무장은 전 세계인 모두와 만나 신뢰를 주면서 동의를 받는다는 심정으로 행해야 한다. 외교·안보나 정치·경제뿐 아니라 교육·에너지·환경 등의 문제들까지 감안한 전방위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필자가 워싱턴에서 경험한 바로는 언제부터인가 한국은 머리·손·발·몸통·다리가 전부 따로 노는 ‘모래알 국가’가 된 느낌이다. 정권이 바뀌면 사람도 달라지고, 종전의 네트워크도 전부 끊어진다.

 

문재인 정권이 워싱턴 내 아시아 전문가들과 불화를 빚거나 그들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 것은 그 좋은 사례다. 문 정권은 국내 정치에서 그러던 것처럼 워싱턴에다 ‘문재인 외교 용비어천가’를 열심히 퍼트렸다. 이 과정에서 워싱턴의 지한파(知韓派) 대부분이 한국으로부터 멀어졌다. 10년은커녕, 1년 앞을 내다본 외교 전략마저 없었다. 요즘은 뜸해졌지만 유엔에 아이돌을 불러 K-팝을 부르게 하는 것을 외교라고 믿는, ‘당일치기 쇼 이벤트’가 벌어지곤 했다.

한국이 핵무장을 원할 경우 워싱턴을 무대로 하는 ‘핵 외교’는 장기적·입체적·개방적·쌍방향 차원에서 전개되어야 하는 총력전(總力戰)이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나로 모아 한국의 핵무장 논의를 활성화·가속화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워싱턴의 백악관·의회·국무부·국방부·싱크탱크·미디어 등을 아우르는 ‘남핵 프로젝트’를 가동할 대통령 직속기구라도 만들어야 한다. 한국의 핵무장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이러한 노력이 미국 전역, 나아가 자유세계 전체에 널리 전파(傳播)되어 공감대를 형성한 후에야 가능할 것이다.

쑹메이링의 대미 외교

▲제2차 세계대전 중 중국 대미 외교의 상징이었던 쑹메이링은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의 지원에 감사하다는 라디오 연설을 했다. 사진=퍼블릭 도메인

 

방법론적 얘기지만, 이러한 핵 외교에는 직업 외교보다는 영어가 가능하고 교양을 쌓은 사람들을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외교부를 뛰어넘는 국가 총력 대응이 필요하다. 외교관 가운데는 워싱턴을 물 좋은 순환보직 근무처로만 생각할 뿐, 잘못할 경우 나라 전체가 날아갈 수도 있다는 긴장감은 갖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표 내고 척한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와인 마시는 법과 음식을 주문하는 수준만으로도 그 사람의 외교적 능력을 판단할 수 있다. 정상(頂上)회담의 최고봉은 다른 나라 정상을 자택으로 초대해서 펼치는 ‘잡담 외교’다. 외교는 우등생 시험이 아니라, 웃고 마시고 떠들면서 이뤄진다. 나폴레옹 전쟁 후의 유럽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비인 회의가 왈츠와 코냑 때문에 10개월이나 걸렸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생각해보길 바란다. 왈츠와 코냑 덕분에 2~3년 걸릴 회의를 1년 안에 끝낼 수 있었다고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1940년대 중국(중화민국)의 대미(對美) 외교는 좋은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이 곧잘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사용하는 ‘판다 외교’는 사실 장제스(蔣介石) 총통의 부인 쑹메이링(宋美齡)이 뉴욕 브롱스 동물원에 판다 한 쌍을 기증한 데서 비롯되었다.

미국에서 기독교 계통의 웰즐리대학을 나온 쑹메이링은 투박하지만 세련된 미국 남부 악센트 영어를 구사했다. 지금도 미국에서 남부 악센트는 신뢰·전통·복음(福音)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쑹메이링은 이런 점들을 활용해 미국 전국을 순회하면서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사투(死鬪)를 벌이고 있는 중국을 지원해달라고 호소했고,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쑹메이링은 당대 ‘아시아의 여성 스타’였다. 쑹메이링은 이후 장제스의 통역으로 활동하는가 하면, 전 세계를 누비면서 서방 지도자들과의 개인적 친분을 쌓았다. 쑹메이링을 앞세운 외교는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당시 중국(중화민국)의 핵심 국가 프로젝트였다. 엄청난 돈과 인맥이 동원됐다. 이런 과정을 통해 축적된 외교 자산은 국공내전(國共內戰)에서 패한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밀려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고, 1972년 닉슨 미국 대통령이 베이징(北京)을 전격 방문할 때까지 대만의 안전을 보장하는 방파제가 되었다.

‘지나친 것보다 나쁜 것은 없다’

한국 핵무장 이슈는 어린 아기가 이제 막 일어나 걷기 시작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나 우라늄 농축이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또한 핵무장 시도에 따르는 ‘고난의 행군’을 감내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기에 앞서 미국과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이 필요하다. 협상이 얼마나 걸릴지, 조건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워싱턴을 무대로 한국의 핵무장에 대한 논의와 여론 조성, 확산이 필요하다.

델피 신탁 가운데 두 번째 경구는 ‘지나친 것보다 나쁜 것은 없다’다. 북핵을 강 건너 불처럼 대해서도 안 되고, K-테크놀로지를 자랑하면서 한국이 금방 핵무장을 할 수 있을 것처럼 자만해서도 안 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그 끝을 기약할 수 없는 ‘남핵 프로젝트’지만, 여기서 필자의 고교 시절 때까지만 해도 상식으로 통하던 한국식 아포리즘을 하나 떠올려본다. “하면 된다!”

 
 

하동환 前 국정원 대구지부장

 “조사권도 박탈당하면 국가안보는 완전히 無力化”

 ⊙ “63년간 쌓인 국정원 간첩 수사 경험… ‘뚝딱’ 경찰에 넘겨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 이해되지 않아”
⊙ 대공 수사권 넘겨받은 경찰에 강의 다니는 근황…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 “경찰, 해외 내사 및 과학 수사와 관련해서 매우 난감해한다는 느낌”
⊙ “간첩 수사, 10~20년 걸리기도… 인사이동 잦은 경찰이 완벽히 할 수 있겠나”
⊙ “중국 공안에 잡히면 고문, 심하면 사형까지도”

河東煥
1967년생. 부산대 영문학과 졸업, 美 워싱턴주립대 로스쿨 국가안보학 수료 / 국가안전기획부 대공수사국, 국가정보원 수사과장, 국가정보원 수사처장, 국가정보원 수사단장, 국가정보원 대구지부장 / RO사건·왕재산 사건·범민련 사건 담당 과장 / 간첩수사 유공 국정원장 표창 3회 / 저서 《우리가 몰랐던 간첩 잡는 이야기》

▲지난 7월 2일 만난 하동환 전 국정원 대구지부장이 자신이 쓴 저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간첩 잡는 데만 30년을 보냈다.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국내외를 넘나드는 방첩 전선에서 치열하게 싸웠다. 남산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에 입사한 이래, 왕재산 간첩단 사건, 통합진보당 내란 음모 사건 등 굵직한 대공 사건들을 맡아오다가 2022년 3월 국가정보원 대구지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

지난 7월 2일 서울시청 앞 커피숍에서 하동환 전 국정원 대구지부장을 만났다. 그는 요즘 바쁘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넘겨받은 경찰을 상대로 간첩 수사 강의를 하러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2020년 12월 13일,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그로부터 3년의 유예 기간이 지난 올해 1월 1일부터 국정원은 간첩 사범에 대한 각종 증거 수집 내사(內査·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조사) 및 수사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하 전 지부장은 지난 6월 19일 경찰청 본청 안보수사국 소속 경찰 100명을 상대로 강의를 진행했다. 7월 3일 경기남부경찰청 경찰 80명에게, 7월 8일 경찰 간부후보생 60명에게 ▲간첩의 존재 ▲간첩 수사의 방식 ▲간첩 사범의 특징 등 수십 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수사 기법들을 전수했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간첩 수사는 정해진 ‘매뉴얼’보다, 오랜 간첩 수사 경험에서 나오는 수사관 개인의 역량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경찰이 간첩 수사를 전담하기엔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며 “60여 년간 축적된 국정원의 간첩 수사 노하우(기법)가 꼭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하동환 전 지부장을 만나고 며칠 뒤 7월 6일, 그는 “주말에 연락드려 죄송하다”며 급하게 연락을 해왔다. 정치권에서 국정원 무력화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건 말도 안 된다”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국가정보원 수사권에 이어 조사권까지 박탈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해외 내사 및 과학 수사와 관련해서, 경찰이 어떠한 노하우로 어떻게 증거를 수집해서 간첩 사범을 처리해야 할지 매우 난감해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동환 전 지부장이 경찰에게 간첩 수사 기법을 강의하며 들었던 생각이다. 예전엔 국가보안법 위반 간첩 사범을 국정원과 경찰이 이원화해서 처리해왔다. 경찰은 국보법 제7조 위반 사범, 즉 국내에서 자생(自生)한 이적 단체 사범만 전담했고, 국정원은 북한 상부선 간첩과 연계된 국내 지하당 간첩조직 사건을 맡아왔다. 지하당 조직 관련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선 해외 간첩 수사 기법과 암호 해독 역량이 필요한데, 이 분야는 확실히 국정원이 경찰과 차별화된 전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덜컥 수사권을 모두 받아버린 경찰이 난감해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는 게 하 전 지부장의 시각이다.

 

― 강의를 듣는 경찰의 반응은 어땠나요.
“경찰청 본청 안보수사국 요원들을 대상으로 1시간30분 정도 진행했는데, 반응은 대단히 좋았어요. 강의가 끝나고 보안 수사 경력에 따라 초급자 과정, 심화 과정으로 나눠서 교육을 진행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어요.”

― 강의를 어려워하진 않았나요.
“경찰청 안보수사국 안에서도 보안 수사에 종사한 경력이 매우 다양했어요. 경력이 짧은 분들은 ‘간첩들의 해악성이 이렇게까지 심했구나’라는 반응을 보였고요. 특히 간첩 수사를 지휘하는 경찰 중간 간부들을 보안 수사 대장이라고 하거든요. 직책은 주로 경정급이고요. 이런 분들은 국보법 위반 사건의 증거 수집과 관련된 질문들을 많이 하더군요.”

“간첩 사건 수사 전문성 차이 커”

▲지난해 3월 4일 제주교도소 앞에서 ‘공안탄압저지 및 민주수호 제주대책위’ 관계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뉴시스

 

― 국정원과 경찰의 간첩 사건 증거 수집 역량이나 전문성 차이가 큽니까.
“네. 매우 큽니다. 특히 해외에서 이뤄지는 북한 상부선 간첩과 국내 간첩 간의 은밀한 접선 관련 증거 수집 활동은 국정원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었죠. 게다가 국가보안법도 제4조(반국가단체 목적수행), 5조(반국가단체 지원 또는 금품수수), 6조(잠입, 탈출) 등의 조항별 범죄 양식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경찰에서 관련 질문이 와도 사건 기록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영양가 있는 답변을 해줄 수 있어요.”

― 그럼 국정원의 수사권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두 기관 사이의 공조는 효율성이 떨어지겠네요.
“그렇죠. 그리고 경찰의 경우, 간첩 수사만 10년 이상 오래 해본 사람이 드물다 보니 어떤 증거를 어떻게 수집해야 하는지 어려워하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아직은 국정원 현직에 있는 전문 수사관들이나 베테랑 요원들의 조력이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긴밀히 협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의 강의 자료에선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에 대한 애통함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PPT(파워포인트) 자료 첫 페이지부터 빨간 글씨로 “올해부터 모든 간첩은 경찰이 잡아야 합니다”라며 국정원 로고와 함께 “님은 갔습니다”라고 써놨다. 이어 “국정원 간첩 수사권 폐지, 이젠 경찰이 전담한다”며 “정상이 아니다. 국가 안보가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 국정원 업무를 이어받을 경찰 구성원은 어떻게 되나요.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경찰청 본청 산하에 안보수사국을 신설하고 대공 수사 인원을 대폭 확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건 처리에 있어 일반적인 형사범과 국가보안사범은 결이 완전히 다릅니다.”

일반 형사범과의 차이, 利敵知情

― 뭐가 다른가요.
“법 적용 방식이 다릅니다. 일반 형사 사건의 피의자는 자백을 하거나 증거가 나오면 바로 처벌이 이뤄지잖아요. 그런데 국가보안법을 적용할 경우, 외국에 가서 북한 고위 간첩을 만나고 온 사진이 있어도 처벌받지 않습니다.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정(情·사정 또는 정황)을 알면서 북한을 이롭게 하기 위해 만났다는 ‘이적지정(利敵知情)’도 입증해야 처벌이 가능합니다. 안 그러면 북한 고위 간첩을 만났어도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벌금형만 적용돼요.”

― 이적지정을 입증하는 증거는 무엇이 있나요.
“예를 들면, 피의자의 수첩이나 메모장에 김정은을 찬양하는 내용이나, 주체사상에 입각한 조국 통일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내용 정도는 있어야 재판부에서도 이적지정이 있었다고 인정합니다. 국가보안법은 처벌이 강하기 때문에 그만큼 엄격한 증거가 요구되죠.”

― 이적지정을 입증하기 위해 일련의 행위 전말을 설명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간첩 수사의 경우, 보통 5년 이상 걸리고 12년, 15년 걸리는 것도 있어요. 오랜 기간 지켜봐야 하고,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은 90% 이상이 재범(再犯)이라고 봅니다. 이 확신범들은 감옥에 다녀오면 투쟁성이 더 강해집니다. 그렇게 감옥에 다녀오면 수사기관에서 어떤 방식으로 추적하고 수사하는지 잘 알게 되기 때문에 증거 수집이 더욱 어려운 상대가 됩니다.”

― 간첩들도 갈수록 교묘해지겠네요.
“우리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때문에 재판을 할 때 검찰이나 국정원, 경찰에서 제출한 모든 수사 서류를 복사해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쪽 수사 서류도 다 볼 수 있습니다. 제가 RO(통합진보당 내란 음모) 사건 당시 압수수색을 하러 나갔는데, 핵심 간부에게서 민혁당 사건 당시 국정원에서 수집한 증거와 해당 증거 수집 과정까지 담은 자료가 나오더라고요. 밑줄까지 그어가며 통째로 학습한 흔적도 발견됐어요. 이런 사람들이 감옥에 들어갔다 나오면 증거를 수집할 때 굉장히 힘듭니다.”

간첩 잡는 뒷이야기

하동환 전 지부장은 지난 4월 24일 국정원 재직 수기를 담은 저서 《우리가 몰랐던 간첩 잡는 이야기》를 냈다. 수사와 관련해, 책에 나오지 않는 뒷이야기들을 물었다.

― 간첩 사범을 대상으로 현장에서 증거를 수집할 땐 어떤 어려움이 있나요.
“국내에서 활동하는 간첩은 길을 다닐 때도 습관적으로 뒤를 돌아보거나 ‘역감시’를 해요. 예를 들어, 은밀하게 비밀 회합을 하러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탈 때는 우리가 미행을 한다는 걸 그들도 알아요. 그래서 맨 앞 칸이나 맨 끝에 타요. 플랫폼 양쪽 끝에 서 있으면 따라가는 사람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죠. 그리고 지하철 문이 열려도 바로 안 타요. 그럼 미행하던 수사관으로선 들키지 않기 위해 그 지하철을 탈 수밖에 없잖아요. 이런 식으로 놓치는 경우를 우리끼리는 ‘탈미(脫尾·꼬리를 놓침)’라고 합니다. 내릴 땐 문 앞에 서서 내릴 것처럼 있다가 수사관이 내리면 본인도 내렸다가 갑자기 다시 타기도 해요.”

―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직접 지령을 받는 경우는 어떤가요.
“국내 지하조직을 이끄는 간첩은 주로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북한 상부선 간첩과 만납니다. 그간의 국내 간첩 활동에 대한 보고도 해야 하고, 새로운 지령도 받아야 하니까요. 거액의 공작금도 받습니다. 해외로 나가서 외사(外事)를 할 땐 더더욱 용의주도함이 느껴집니다. 예를 들면 베이징 공항에서 간첩은 택시를 타기 위해 줄을 설 때 자기 차례가 와도 바로 타지 않고 뒷사람 보고 먼저 타라고 해요. 그래서 많이 놓치게 돼요.”

― 물리적 충돌을 빚는 경우도 있나요.
“후배 수사관이 ‘RO’ 조직원에게 역감시를 당해 몸싸움이 벌어진 적이 있었어요. 서로 고소하고 그랬죠. 그런데 이들을 무력으로 제압을 해선 안 됩니다. 차라리 맞는 게 나아요. 조금만 대응해도 국정원이 민간인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다며 악의적인 여론전을 펼칩니다.”

이름 없는 별

▲국정원 순직 요원들을 기리는 ‘이름 없는 별’ 추모석. 사진=뉴시스

 

하 전 지부장은 살얼음판 같은 음지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줬다. 그는 “국정원은 이렇게 싸워왔다”며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정체를 밝힐 수 없는 순직자들은 19개의 별이 되어 국정원 한곳을 수놓고 있었다.

― 중국에서의 활동은 수사관에게도 위험할 것 같습니다.
“국정원 직원들은 해외 내사를 위해 출국할 때 엄청난 심적 부담을 느낍니다. 특히 중국의 경우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큼 힘듭니다. 왜냐하면 중국 정부는 대놓고 한국의 외교부 영사들을 도청할 만큼 국내인과 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한 사찰을 하니까요. 저도 간첩 사범 추적을 위해 중국에 출장 갈 때가 가장 부담스러웠습니다. 수사관들이 중국 호텔에 투숙할 때도 본인 여권을 제시해야 해요. 이걸 ‘주숙 등기’라고 하는데, 내 신분을 중국 당국에 오롯이 노출하는 것이니 찜찜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중국에는 ‘반(反)간첩법’이라는 게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간첩을 중국 영토 안에서 추적하다 중국 공안에 발각되는 경우, 이 반간첩법에 따라 처벌받습니다. 국정원 수사관이 노출될 경우 곧바로 구속될 수 있고 감옥에서 엄청난 고문을 받기도 합니다. 반면 중국이 북한과는 관계가 좋으니, 북한이 벌이는 첩보 활동은 눈감아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숨 걸고 중국 갈 수 있겠나”

하 전 지부장은 자신이 겪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2009년, 북한 상부선 간첩과 접촉하러 중국에 간 국내 간첩 A씨를 미행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출장을 갔을 때였다.

“(간첩 혐의자가) 택시를 타러 줄을 서기에 제가 따라갔어요. 뒷사람 몇 명을 보낼 걸 예상해서 중간에 두 사람을 사이에 두고 뒤에 섰는데 이 사람(간첩 혐의자)이 갑자기 후다닥 택시를 타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앞에 두 사람에게 급하게 미안하다고 하고 바로 가서 택시를 탔거든요. 그래서 급하게 택시기사에게 ‘요금은 두 배로 줄 테니 저 택시를 따라가 달라’라고 영어로 말했어요. 그런데 제가 탄 택시기사가 저를 수상하게 여기고 도로 한복판에 서 있던 중국 공안 쪽으로 차를 몰더라고요.”

―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어떻게 하기는… 택시에서 급하게 내려서 냅다 쭉 뛰었죠. 공안한테 잡히면 어떻게 될지 아니까요. 빨리 차 세우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차 속도가 줄었을 때 얼른 내려서 도망갔어요. 제가 만약 중국 공안에 체포되었다면 국정원과 우리나라 정부에도 큰 부담을 주는 것이니 이런 바보 같은 상황은 결코 만들어서는 안 되겠지요.”

더 자세히 밝힐 수 없는 이야기는 이쯤 하고, 그가 맡았던 대표적인 간첩 사건을 들어보기로 했다. 사건 중엔 ‘왕재산 간첩단’ 사건이 있다. 사소하지만, 그때 있었던 일도 처음 공개한다.

왕재산 간첩단 총책은 ‘수집광’

왕재산 사건은 북한 대남공작부서 ‘225국’의 지령을 받은 주사파(주체사상파) 출신 총책 김모씨 등 조직원들이 약 20여 년간 대한민국에서 간첩 활동을 전개하다 국정원에 적발된 사건이다. 이들은 1990년대 초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됐고, 2011년 6월 구속됐다. 수사 당시 하 전 지부장은 설득 끝에 김씨의 자백 약속을 받아냈지만 다음 날 아침 변호인을 만난 김씨는 돌연 입을 다물었고, 끝내 자백하지 않았다.

― 김씨가 자백하지 않았는데, 이후 어떻게 수사했나요.
“왕재산 사건의 경우, 증거 자료가 워낙 많았습니다. 김씨가 ‘수집광’이었기 때문이죠. 서울 마포구에 있는 그의 집을 압수수색했을 때 방에서 이틀 전에 코 푼 휴지도 나올 정도였어요. 그래서 10년 동안의 북한 지령문과 왕재산 조직원들의 대북 보고문들을 CD나 USB(이동식 저장 장치)에 저장하고 있었어요.”

― 지령문은 보통 읽고 나서 흔적을 없애지 않나요.
“그렇죠. 북한은 지령문을 보내고 나면, 그걸 불에 태운 모습을 찍어서 다시 보고하라고 해요. 그걸 ‘소각 정형’이라고 해요. 불에 태운 모양이라는 뜻이죠. 그런데 이 ‘수집광’ 김씨는 그 지령문을 태우기 전에 그걸 찍어서 보관한 거예요. 다행이었죠. 10년 동안 보관한 북한 지령문과 대북 보고문 덕분에 묵비권을 행사한 나머지 관련자들에 대한 혐의도 입증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지금이다. 하동환 전 지부장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충북동지회 사건 ▲자통 창원조직 사건 ▲자통 제주조직 사건 등을 언급하며 “간첩 사건 전모를 규명하기 위해 이들을 더 지켜볼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앞서 언급했듯, 간첩 수사는 십수 년이 걸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 전 지부장은 “지난해 자통 창원조직이나 제주조직 사건은 올해부터 국정원의 수사권이 폐지되는 상황이니 그 상태로서 처리했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리고 수사권을 넘겨받은 경찰도 이 분야에서 아직 완숙한 수사 역량을 갖추지 못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지금도 지하당 간첩 많아”

“지금도 우리 사회 각 분야엔 지하당 간첩이 많다”며 “지난해 국정원이 찾아낸 간첩은 북한 직파 간첩을 만났거나 지령을 받거나, 금품을 수수한 정도인데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어떤 국가 기밀까지 탐지됐는지는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만약 해외 내사가 필요한 간첩 사건들을 경찰에게 넘겨도 당장 수사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찰은 아직 해외 간첩 수사나 과학 수사의 전문성이 국정원만큼 체계적으로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경찰이 하루빨리 해외 수사 역량과 암호 해독을 전담할 과학 수사 역량을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 전 지부장은 “저처럼 입사 후 30년간 간첩 수사만 하는 국정원 직원과 달리, 경찰은 안보 관련 수사를 하다가도 2~3년에 한 번씩 정보, 경비, 아동청소년 등 다른 보직으로 바뀐다”고 했다. 그만의 수사기법을 좀 더 자세히 들어봤다.

― 피의자를 대할 때, 정해진 수사 매뉴얼이 있나요.
“수사관 개인의 역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잖아요. 성격이 급한 사람이 있고, 순한 사람도 있고, 외향적인 사람도, 내향적인 사람도 있으니까요. 사람에게 접근하는 방식도 개개인마다 다릅니다. 제 경우엔, 30년 동안 수사를 하면서 ‘이런 피의자는 이런 유(類)에 속한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됐죠. 내성적이고 예민한 사람에게 거칠게 다가가선 안 되는 것처럼요. 수사관의 경험에 따라 각종 사건들을 각자 다르게 접근해야지, 반드시 매뉴얼화하는 것이 정답이 아닙니다. 사람이라는 게 물건처럼 규격화하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1961년 창설 이후) 63년간 쌓인 국정원 간첩 수사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뚝딱’ 경찰에 넘겨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 왕재산 간첩단 사건 주범을 신문(訊問) 조사하며 자백을 이끌어냈을 때도 개인기를 발휘했나요.
“아, 자백은 다릅니다. 자백을 받는다는 건 말의 기법이나 다른 노하우, 자기 개인기가 들어가는 영역이 아닙니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교감해야 해요. 왕재산 간첩단 사건 주범은 저와 같은 80년대 학번입니다. 저도 대학 시절 학보사 기자 생활을 하면서 김영환(金永煥)씨의 《강철서신》이나 막심 고리키(Maxim Gorky·1868~1936년)의 《어머니》와 같은 사회주의 서적을 탐독했기 때문에 그 당시의 추억을 공유했죠. 간첩 사범들은 자신의 사상이나 신념이 강합니다. 그래서 이를 부정하기보다는 ‘나도 당신처럼 한반도 통일을 간절히 바라지만 통일을 이루려는 그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교감하는 방식으로 대해야 해요. 저는 피의자들을 거칠게 대하지 않았어요. 조직폭력배들이야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사실 멘털이 약한 애들이라서 겁을 주면 자백할지 몰라요. 하지만 국보법 위반 사범들은 사상범이자 확신범이기 때문에 약해 보여도 더 까다로운 상대예요.”

굿바이, 국정원 수사국

하동환 전 지부장은 국정원이 빼앗긴 ‘수사권’의 개념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수사권이 없는 국정원은 사실상 민간인과 다를 게 없었다.

“간첩 혐의자의 휴대폰을 감청하거나, 통신 제한 조치, 위치 추적을 강제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수사권입니다. 근데 국정원은 이제 그런 걸 못 하고 어떤 사람에 대해 북한 관련 혐의가 있는지 없는지 정보 수집만 해서 경찰에 넘기라는 거예요. 과연 강제적 증거 수집 권한 없이 국정원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간첩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예전 민주당의 모(某) 국회의원이 ‘개정 국정원법상 국정원은 수사권만 사라졌지, 정보 수집이나 조사 권한은 보유하기 때문에 경찰과 정보 공유만 잘 하면 된다’는 황당한 주장을 했습니다. 지난 7월 3일엔 민주당에서 ‘국정원의 조사권이 광범위한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며 이 조사권도 폐지하는 내용의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정말 기가 막힙니다.”

― 국정원 대공 수사권 폐지로 인한 다른 부작용은 무엇이 있나요.
“국정원에서도 북한 공작원들이 해외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지켜보고 있는데, 예를 들어 동남아 A국에서 한국인 홍길동(가명)씨가 북한 공작원을 만나면 바로 홍길동의 이메일을 들여다보거나 통신을 감청한 뒤 혐의점이 발견되면 곧바로 수사관들이 증거 수집 활동에 돌입합니다. 그런데 이젠 그런 권한이 전혀 없으니 구체적인 증거 수집 자체가 하세월이 되겠지요”

― 북한이나 중국의 정보기관 역량은 어느 정도라고 평가하시나요.
“그쪽은 우리가 판단하기 어려워요. 중국과 북한 정보기관은 우리와 교류할 일이 없잖아요. 다만 우리와 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미국, 일본, 이스라엘 등의 정보기관과는 교류가 있어서 알 수 있죠. FBI 서울 거점장 등과도 업무 협의를 했는데, 그들의 역량은 대단합니다. 반대로, 우리가 받는 평가도 알 수 있어요. 특히 미국과 일본에선 국정원의 간첩 수사 역량을 대단히 높게 평가합니다. 아주 아주 높이요. 그런데 그런 국정원이 수사권에 이어 그나마 남은 조사권도 박탈당한다면 국가 안보 체계는 완전히 무력화(無力化)되는 겁니다. 수사권 폐지로 두 손이 묶였다면, 조사권 폐지로 두 발이 묶이는 겁니다. 북한은 환호하겠죠.”⊙

글 : 김광주 월간조선 기자 kj961009@chosun.com

 

08.04 간첩 활동비도 훔쳐다 썼나...北 자금 통로 된 '바이낸스' 정체

▲photo 게티이미지

 

‘바이낸스’로 대표되는 해외 가상자산거래소가 북한 해킹집단과 테러단체 등에 불법적으로 활용되는 등 국제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 이에 미국, 일본, 독일 등 세계 각국의 금융당국은 적극 규제에 나선 상태지만 한국의 경우 영업금지 경고문 발송 수준의 소극적 대응을 고집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최근 블랙요원 정보 등 군사기밀이 북한에 유출되고, 한국서만 접속이 가능한 암호화폐 모금 링크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자금 창구로 이용되는 등 부실한 사이버 안보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북한이 먹잇감으로 삼은 미인가 해외거래소를 신속히 차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은 최근 스파이 위장 활동 자금을 조달하거나, 해킹을 통해 핵무기 개발 자금 등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불법 가상화폐 거래에 주력하고 있다. 이때 바이낸스와 같은 해외거래소는 불법활동을 위한 ‘좋은 무대’가 된다. △해킹을 통해 해외거래소를 ‘직접’ 해킹하여 가상자산을 탈취하거나, △정부기관이나 은행을 공격해 탈취한 자금이나 스파이 위장 활동에 대한 지원금을 바이낸스 같은 해외거래소를 통해 세탁하여 현금으로 바꾸는 경로로 사용하는 식이다.

 

 북한 자금 통로 된 ‘바이낸스’의 정체

바이낸스는 세계 최대 가상자산거래소이지만 설립자가 중국계 캐나다인이라는 점 외에는 국적과 소재가 불분명한 데다 국내에서 정식 인가를 받지 않은 해외 거래소다. 북한이 국내 거래소를 피해 바이낸스와 같은 해외 거래소를 이용하는 이유는, 해외 거래소의 가상자산 거래는 국제 금융거래망 및 정상적인 환전 절차를 거치지 않는 등 은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해외 거래소가 보유 중인 가상자산에 대해서는 치외법권이 적용돼 국가별 과세체계 및 관련 규제를 적용받지도 않는다. 이에 따라 자금 추적도 어렵다.

 

가상자산 데이터분석 기업인 체이널리시스 창립자 겸 대표인 마이클 그로내거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거래소는 규제가 적용되어 자금세탁방지(AML), 테러자금조달방지(CFT)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자금이 언제든 동결될 수 있다”면서 “북한이 한국 거래소를 이용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이러한 위험을 피해 바이낸스 같은 국적불명의 미인가 거래소를 이용해 충분히 자금세탁을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황석진 동국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역시 “미인가 해외 거래소의 암묵적 허용은 탈세와 불법행위를 방조하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바이낸스는 북한, 이란, 시리아, 우크라이나, 크름반도 등 제재 대상 지역에 있는 사용자와 거래하는 것을 중개했고, 이렇게 제재를 위반한 가상자산 거래 총 166만여건(총 7억달러 상당)에 중대한 혐의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바이낸스, 7억달러 상당의 제재 위반 거래

전문가들은 특히 바이낸스가 ‘미국 고객과 북한에 거주하는 사용자’ 간에 총 80건, 437만달러 상당의 가상자산 거래를 중개해 대북 제재를 위반한 사실에 주목했다. 바이낸스를 창업한 자오창펑 최고경영자(CEO)는 이 같은 혐의를 인정하고 지난해 CEO직을 사임한 바 있다. 이와 함께 43억달러(약 5조5000억원) 상당의 벌금을 내기로 미국 정부와 합의했다. 이는 미국 정부가 기업에 부과한 역대 최대 액수의 벌금으로 꼽힌다. 2022년에는 바이낸스가 북한 해커집단이 해킹을 통해 가상자산을 탈취한 사실을 파악하고, 북한 해커 가상자산 계좌의 500만달러어치 자금을 동결한 후 미 정부에 신고한 적도 있다.

 

북한은 유엔 안보리의 제재와 코로나 19 여파 등으로 정상적 무역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사이버 공격을 외화벌이의 주 수입원으로 삼아왔다. 실제로 북한 해커들의 가상자산 탈취는 점점 더 늘어나는 모양새다. 해킹·사이버 공격 등 불법 활동이 북한 전체 외화 수입의 50%를 조달했다는 분석은 최근 크게 늘어난 북한의 사이버 공격 규모를 가늠케 한다.(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보고서·2024) 또한 체이널리스트에 따르면 2017년 2900만달러였던 북한 해커들의 도둑질 총액은 6년 만인 2023년 10억달러를 기록해 기하급수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마이클 그로내거 대표는 “북한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가상자산거래소 등 무엇이라도 공격한다”라며 “최근 러시아와 관계가 강화되면서 러시아 거래소를 현금화 통로로 주로 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탈취한 자금으로 북한은 1발 발사에 수백억원이 드는 탄도미사일 도발을 계속하고, 지도부가 고가 명품 등을 착용하는 등 대북 제재가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지 않음을 대외에 과시했다. 이러한 의도에서도 북한은 사이버 도둑질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의 대북제재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해킹·사이버공격과 같은 불법 활동을 통해 탈취한 자금으로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재원의 40%를 충당하고 있다. 후계자설에 휩싸였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는 극심한 식량난과 경제난에도 최소 수천 달러에서 수만 달러 상당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버버리, 디올 등 유럽 최고급 명품 브랜드 옷을 입고 언론에 노출돼 화제가 됐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는 바이낸스와 같은 미인가 거래소의 영업 활동에 대한 제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바이낸스의 한국 서비스는 2021년 9월 종료된 상태다.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상 바이낸스와 같은 미인가 해외 거래소는 내국인 대상 영업행위를 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바이낸스는 한국어 서비스와 원화 결제만 종료한 채 우회적으로 한국인을 위한 서비스를 여전히 제공 중이다.

 

 해외거래소 통해 핵무기 자금 확보

또한 미인가 해외 거래소에 가상자산을 보유하는 행위 자체가 국부 유출에 해당하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바이낸스 거래 규모는 여전히 막대한 수준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이 국내 5대(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가상자산거래소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내국인이 해외 거래소 등에 이체한 가상자산 규모는 약 20조원에 달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지난해 5월 한 달 동안 한국인이 바이낸스를 통해 거래한 금액은 전체 거래량의 약 13%에 해당하는 583억달러(약 76조원)인 것으로 추산됐다.

 

해외 거래소에서의 부적절한 거래는 대부분 ‘외국환 거래법’에 위반되는 범죄 행위로 처벌이 가능하다. 그러나 해외 거래소에서의 범죄행위가 발각돼 처벌까지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주간조선에 “특금법 위반 사항은 금융정보분석원(FIU) 소관이다. FIU가 특금법 위반 혐의로 수사기관에 의뢰해야 하는데 아주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2023년 10월부터 FIU는 디지털 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를 통해 미인가 가상자산 사업자 검토 및 수사기관 통보 등의 업무 협조를 요청하는 수준에서 소극적 대처를 이어오고 있다.

전문가들 “내국인 거래 원천 차단해야”

이에 국내 가상자산 업계에선 국적이 불투명한 바이낸스 등 미인가 해외 거래소에 대한 내국인 거래를 원천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일본 등 주요 국가의 경우 금융당국의 적극적 개입을 통해 바이낸스 회원가입 및 IP접속을 차단하는 등 자국민에 대한 영업을 아예 할 수 없도록 제지하고 있다. 예컨대 독일의 경우 지난해 바이낸스의 가상자산 라이선스 신청을 불승인했고, 네덜란드는 신규 가입을 차단했다. 이 같은 규제 국가에서는 바이낸스가 현지 법인을 세워 정식 인가를 받고 영업을 하는 등의 보완이 이뤄져 왔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여전히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음성적인 영업 행위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황석진 교수는 “최근 발생한 국군정보사령부 군무원 군사기밀 유출 사건 같은 경우도 해외 거래소를 통해 관련 자금이 오갔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해외 거래소 가입이 여전히 가능하기 때문에 신원불상인 자가 얼마든지 접근해 테러자금 지원, 적성국(敵性國) 지원 등의 행위를 할 수 있다. 하루빨리 규제를 통해 해외 거래소를 차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이를 위한 규제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언했다. “국내 미인가 무국적 해외 가상자산거래소 차단 방안에는 크게 4가지가 있다. 첫째는 FIU 공문을 발송해 미인가 해외 거래소를 대상으로 한국인 회원가입을 제한하도록 지시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해당 사이트로의 국내 IP 접속을 원천 차단시키는 것이다. 세 번째는 DAXA 미이행 거래소를 단속하는 것인데, 제보로 파악된 거래소의 특금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인가 해외 거래소가 불법영업을 지속할 경우 수사기관이 직접 수사하고 통보하는 것이다.”

 

한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해외 주요 국가들의 미인가 해외 거래소 차단 사례를 참고해 바이낸스뿐 아니라 미인가 무국적 해외 거래소 전체에 대해 국가 안보 차원의 적극적 제재가 필요하다”며 “바이낸스 거래소만 제한할 시 풍선효과가 발생하여 동일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관계자는 “국내 거래소, 지갑사업자 등 가상자산과 관련해 국내에서 활동을 하려면 가상자산사업자 라이선스(VASP)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해외 거래소는 이 라이선스를 받을 필요도 없이 운영하고 있으니 역차별이라 느낀다. 저희(국내 거래소들)는 규제를 다 준수하고 있는데, 해외 거래소는 그렇지 않으니 불만이 나온다. 해외 거래소가 완벽하게 차단이 되면, 해외로 빠져나가는 돈이 막히고, 국내 거래소만 쓸 수 있게 되니 국내 산업을 살리는 측면에서 좋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가 가상자산 업계에 관심이 적고 부정적으로 보는 측면이 있어 관련 논의나 플랜이 부재했다. 이제 막 가상자산사업자이용자 보호법이 시작된 단계다. 규제도 필요하지만 정당해야 할 것이고, 2단계 법에서는 이 업계를 어떻게 바람직하고 공평하게 개선하고 키울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함께 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미·일은 전면 차단… 한국은 이용 가능

북한과 관련된 역할 외에도 해외 가상자산거래소는 다양한 불법 행위의 통로로 활용될 여지가 다분하다. 지난 7월 26일 주간조선(2819호)이 단독보도한 ‘한국 시민단체 인사들, 러 정보기관 위장언론에 尹 비난 기고’ 기사에서 소개된 러시아 전쟁자금 코인 기부 또한 미인가 해외 거래소를 통해 이루어졌다. 주간조선 취재에 따르면 러시아 정보기관 FSB(연방보안국)와 SVR(해외정보국)이 사실상 운영하는 매체인 사우스프런트(Southfront)는 국제적으로 거래가 제재되고 있으나 한국에서는 자유롭게 접속이 가능하며, 이 매체로의 코인 기부도 가능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 캐나다 등 주요 우방국가에서는 정부와 OFAC(해외자산통제국) 차원에서 이 매체에 대해 대선 개입과 허위사실 유포 등의 이유로 제재를 가하고 있다. 자국인과의 자산 거래 금지, 자산동결 및 금융거래 제재 조치 등을 취한 상태다. 하지만 주간조선이 해당 사이트의 전자지갑을 추적한 결과 국내에서는 최근까지도 활발하게 모금이 이뤄졌으며, 기부된 코인은 주로 바이낸스, 코인베이스, MEXC 등 해외 가상자산거래소를 통해 이체됐고, 모스크바를 거쳐 우크라이나 키이우까지 흘러들어갔다.

 

이러한 문제와 관련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주간조선에 “(바이낸스 등 해외거래소 사이트를) 국내에 거주하는 사람이 접속을 못하도록 막을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 따라 국내에 신고된 거래소 내에서 코인이 거래될 때 시세조종이나 미공개 정보 이용 등 불공정 거래 행위를 적발하고 제재하는 게 소관 업무다. 이를 하다 보면 해킹이나 해킹물량의 국내 거래소 매각 등과 같은 사기적 부정행위가 부가적으로 발각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이 국내거래소와 연루됐다면 파악이 되겠지만, 해외 거래소에 대한 소관은 FIU고 특금법 관련이기 때문에 파악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해킹을 통해 벌어들인 물량을 우리 거래소로 가져와서 팔았다고 해도 불공정거래 행위는 아니다. 취득한 경위가 불법이긴 하지만 코인을 정상적인 가격에 팔았다면 그 행위 자체는 불법이 아닌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자가 사우스프런트 사례를 설명하자 “해외 거래소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해외 거래소를 거치지 않고서도 메타마스크 등의 서비스를 통해 독립적인 지갑에서 지갑으로 코인 이동이 가능하다”라고 했다.

 

한편 경찰청 공안문제연구소 연구관을 지낸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은 북한이 전개하는 사이버상 금전탈취 등 안보위협이 심각한 상황인데도 이를 차단할 법적 근거조차 제정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짚으며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향후 더욱 공세화될 북한 및 해외 해커들에 의한 사이버 공격을 억지하기 위해서는 탐지, 차단, 복구 등의 방어 차원에서 벗어나, 사이버 공격원점을 추적하여 철저히 응징하는 공세적 사이버 대응 시스템의 구축과 실행이 필요하다. 또 미국 등 국제사회와 공조해 북한 내 사이버 공작부서인 정찰총국이나 해외거점에 대한 물리적 파괴공격 등과 김씨 정권 자체를 고립화시켜 무력화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주간조선 권아현 기자

 

08-06 정보司도 엉망… 국가 정보기관 총체적 재정비 절실하다

국군정보사령부는 군 첩보전의 최전선 부대다. 최근 소속 군무원이 해외 ‘블랙 요원’ 명단을 유출한 사실이 드러나 큰 충격을 주었는데, 이번엔 정보사령관(육군 소장)과 ‘인적 정보(휴민트) 부대’ 여단장(준장)이 정면 충돌해 맞고소전을 벌이는 사태가 발생했다. 정보사 비밀 사무실을 정보사 출신 예비역 단체가 사용하는 것을 둘러싼 갈등이 직접적 계기였다고 한다. 잘잘못은 수사 당국에서 따져볼 문제이지만, 정보사 내부 상황과 기강이 엉망임을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게다가, 명단 유출 사실도 내부 감찰 등으로 알아낸 것이 아니라 국내 정보기관의 화이트 해커가 북한 사이트를 해킹하는 과정에서 적발했다고 한다.

정보사는, 국가정보원 및 국군방첩사령부와 함께 국가 정보기관의 핵심 축이다. 과거엔 북파공작 등을 주도해 ‘평시에도 전쟁하는 조직’으로 불렸다. 정보사 조직이 망가진 배경엔 문재인 정부의 적폐몰이가 있다. 대북 정보·첩보전을 이끈 핵심 요원들을 적폐로 몰아 손발을 묶고 비전문가들로 조직을 채우면서 역량도 기강도 무너졌다. 문 정부는 이에 더해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했고, 북한의 대남 공작기관이 가장 싫어하는 국군기무사령부의 핵심 정예요원 1000여 명을 감축하는 식으로 사실상 조직을 와해시켰다. 명칭도 안보지원사령부로 바꿨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지원사를 국군방첩사령부로 바꿨지만 갈 길이 멀다. 지난 1월 1일부터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이 박탈됐는데, 경찰의 대공 역량은 한심한 수준이다. 대한민국은 더듬이 잘린 곤충 신세다. 국가 정보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정보기관의 총체적 업그레이드가 절실하다. 사이버 공간 확장으로 정보 수집과 공작 환경도 급변했다. 정보사 사태를 전화위복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9·11테러와 중앙정보국(CIA) 요원 명단 유출 사태 등이 국가정보국(DNI) 출범으로 이어졌다.

문화일보 사설 

 
 

08.07 정보는 유출, 사령관·여단장은 고소전, 여기도 '군대'라니

▲국군정보사령부 부대 마크

 

대북 정보 최전선에 있는 국군정보사령부에서 할 말을 잊게 만드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정보사 군무원이 해외 비밀 요원들 신상을 유출했다. 세계 정보기관이 혀를 찰 일이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정보사령관(소장)과 ‘인적 정보 부대’ 여단장(준장)이 다른 일로 충돌해 서로 고소를 했다. 창군 이래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사령관과 여단장은 예비역 민간단체가 정보사 영외 사무실을 무료로 사용하는 문제를 놓고 갈등했다고 한다. 사령관은 ‘하극상’이라고 하고, 여단장은 폭행·직권남용을 당했다고 한다. 둘 사이의 근본 문제는 육사 후배인 사령관이 선배인 여단장을 제치고 먼저 진급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요 군부대의 지휘관들이 부대 임무는 엉망인데 낡은 기수 문제로 감정싸움이나 하고 있다.

 

정보사는 군무원이 비밀 요원의 목숨을 위협하는 정보까지 빼내 유출했는데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지난 6월 유관 정보기관의 통보를 받고서야 요원들을 급히 귀국시켰다. 이 사건이 외부에 노출된 시기와 사령관과 여단장의 충돌 시기가 겹친다. 이 때문에 누군가 고의로 노출시켰다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한다.

 

정보사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북한 김정은이 핵 미사일을 앞세워 4대 세습을 본격화한 상황에서 정보사의 강점인 ‘인적 정보’는 결정적 순간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2006년 1차 북 핵실험 당시 핵 실험장 인근 흙을 직접 가져온 것도 정보사였다. 정보사는 군사 분쟁 지역 정보도 수집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전운, 대만해협 위기 정보 등은 대한민국 안보와 직결된다. 대북·군사 첩보에선 국정원 이상 중요한 기관이다. 그런 정보 부대의 요원 명단이 유출되고 사령관과 ‘인적 정보’ 담당 여단장은 감정싸움을 하다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니 이것을 군대라고 할 수 있나.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 이 부대뿐인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일보 사설

 

08.07 정보사 사령관·여단장 소송 벌이다 軍기밀 암호명 노출했다

요원 신상 유출 이어 또 구설수

 국군의 해외·대북 첩보 기관인 국군정보사령부의 사령관과 정보여단장이 충돌하면서 정보사 기밀이 외부에 드러나는 일이 6일 벌어졌다. 정보사 사령관 A 소장(육사 50기)과 여단장 B 준장(육사 47기)이 폭로전 수준의 법적 공방을 벌이면서, 정보사의 기밀 공작명 ‘광개토 사업’, 안가를 활용하는 공작 방식까지 외부에 알려지게 됐다. B 여단장은 ‘휴민트(인적 정보)’를 담당하고 있다.

 

이런 일은 지난 6월 이후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 요원’ 정보 유출로 방첩사 수사를 받고 구속되는 사건이 터진 와중에 벌어졌다. 기밀 유출에 책임지고 조직을 추슬러야 할 정보사 사령관과 여단장은 지난 6~7월 다른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국방부 조사본부에 서로 고소·고발장을 냈다. 안보 전문가는 “가장 은밀해야 할 첩보 조직이 연일 구설에 오르내리고 있다”며 “향후 첩보 활동이 가능하겠느냐”고 했다.

 

6일 본지가 입수한 B 여단장의 고소장 등에 따르면 두 사람은 올 초부터 정보사 출신 예비역 단체 ‘군사정보발전연구소’의 정보사 영외 사무실 이용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 B 여단장은 고소장에서 “해당 단체는 정보사의 기획 공작인 ‘광개토 사업’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사령관을 설득하고자 노력했다”며 “영외 사무실은 공작 업무 지원용으로 운용하고 있고 유관 연구소 지원은 공작 교육 및 공작 활동 인프라 확보에 지대한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B 여단장 측 고소장에는 “다음 보고 시 광개토 기획 사업을 문서로 구체화하고 해당 영외 사무실에 여단 공작팀을 상주시키는 방향으로 사무실 지원에 대한 정당성과 명분을 보강하는 쪽으로 보고를 하겠다”고 했다.(5월 22일) “여단 참모 회의에서 ‘광개토 기획 사업 계획을 구체화해서 작성할 것과 해당 오피스텔 상주 공작팀 구성’도 지시했다”(5월 23일) 등 구체적 내용도 적시했다.

 

‘광개토 사업’이라는 극비 공작 사업의 코드 네임은 물론 정보사가 서울 시내에 안가를 마련해 상주 공작팀을 운영하는 정황 등의 추진 경과가 고소장에 담겨 정보사 바깥으로 드러난 것이다. 민간 사단법인인 ‘군사정보발전연구소’가 정보사 공작 업무와 관계가 있음도 고소장에서 드러났다. 광개토 사업의 세부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명칭으로 볼 때 중국 지역에서 진행될 대북 공작 기획으로 추정된다.

 

군 소식통은 “B 여단장이 과거 정보사 주도로 2016년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을 성사시켰을 때 공작 관련자였다”고 했다. 육사 3기 후배를 정보사령관으로 ‘모시는’ 입장인 B 여단장이 확실한 성과를 내기 위해 정보사령관은 허용하기 어려운 무리한 공작에 나섰던 것이 갈등의 시작이었다는 해석도 군에서 나온다.

 

B 여단장 측은 “광개토 기획 사업은 국방부 장관에게 독대 보고해 이미 추진 중이었던 사안”이라며 “공작 업무 특성상 사령관에게 보고하지 않고 장관에게 독대 보고한 것을 사령관이 나중에 알았고, 이에 대해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고도 고소장에서 주장했다. 직속상관인 정보사령관과 국방정보본부장을 두 단계나 건너뛰고 국방 장관에게 직보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정보사 임무 특성상 장관에게 직보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건이 불거지기 전까지 B 여단장이 주장하는 사업에 대해 신원식 장관은 보고받은 바가 없다”고 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조만간 이번 사건에 대해 B 여단장 기소 의견으로 군검찰에 송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은 완전히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국정원과 정보사 등에 분산된 정보 기능을 통합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블랙 요원 명단을 중국인에게 흘린 의혹을 받는 정보사 군무원은 돈을 받고 정보를 건넨 정황이 수사에서 확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보사령부

해외·대북(對北) 군사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국방부 직할 부대. 국방정보본부 산하에 있다. 사업가·유학생 등으로 신분을 위장해 현지에서 활동하는 ‘블랙 요원’ 등 정보 네트워크를 활용한 휴민트(인간 정보) 확보가 핵심 기능이다. 국군방첩사령부가 적국 등의 한국군 관련 첩보 활동을 막는 ‘방패’ 역할을 한다면, 정보사는 해외·대북 정보를 확보하는 ‘창’ 역할을 한다.

조선일보 양지호 기자

 

08.07 국가 뒤흔드는 정보 참사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최고 정치지도자 이스마엘 하니야 암살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역량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이스라엘이 이란에서 요인을 암살해 이란 주권을 훼손하고 이란의 보복 가능성으로 중동 정세를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모사드는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외신에 따르면 하니야는 지난달 30일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뒤 귀빈용 숙소에 돌아갔다가 다음날 새벽 2시쯤 방에 설치된 AI(인공지능) 폭탄이 원격 조종으로 터지며 경호원 1명과 함께 숨졌다. 폭탄은 2개월 전 하니야의 방에 설치됐다고 한다.

 수미 테리, 블랙 요원 명단 누출

모사드 정보 역량과 크게 대조

정권 영향 줄이고 전문성 키워야

 

이란 정예 공화국수비대가 지키는 귀빈용 숙소에 미리 폭탄을 설치하고 하니야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었던 건 모사드가 적성국 이란에 심어놓은 휴민트(인적정보)·시긴트(신호정보)·이민트(영상정보) 역량이 뛰어났다는 증거다. 모사드의 다비드 바르네아 국장은 올해 1월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을 공격한 하마스 지도자를 추적하는 건 모사드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이란은 폭탄이 어떻게 공화국수비대가 지키는 숙소에 반입돼 폭발할 때까지 발각되지 않았는지 파악하지 못해 충격에 빠졌다.

 

지난달 30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수장의 최측근 푸아드 슈크르 암살도 모사드가 주도했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의 혼잡한 거주 지역 내 아파트에 슈크르가 머물고 있는 사실을 확인한 모사드는 미사일을 발사해 그를 제거했다.

 

모사드는 과거에도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2차 대전 후 아르헨티나로 도망간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 체포 작전(1960년),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 납치돼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 착륙한 에어프랑스 여객기 인질 구출 작전(76년), 프랑스와의 협력으로 이스라엘 디모나 핵 시설에 필요한 자재·기술 밀반입(50년대 후반~60년대 초반) 등이 대표적이다.

 

모사드와 달리 한국의 정보기관은 아마추어 행태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미국 법무부에 등록하지 않고 한국 정부를 위해 일한 혐의로 지난달 15일 미 연방법원에 기소된 사건이 대표적이다. 테리에게 접근한 국가정보원 요원들은 미 국무부 비공개회의 내용을 넘겨받는 과정에서 국무부 앞에 한국 외교관 번호판이 노출된 차량을 주차했다. 이들이 대낮에 테리와 함께 명품 매장에서 쇼핑하고 도심을 활보하는 장면은 폐쇄회로 TV에 그대로 찍혔다. 정보요원의 기본인 보안과 은밀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달 30일에는 해외에서 신분을 감춘 채 활동하는 ‘블랙 요원’ 명단 등을 유출한 혐의로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이 구속됐다. 이 군무원은 중국 국적자 등에게 ‘블랙 요원’과 ‘화이트 요원’(합법적 신분의 요원) 명단 등을 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비밀 요원 정보가 통째로 유출된 정황이 나오자 중국·러시아·동남아시아 비밀 요원들이 급거 귀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신변 위협 때문에 기밀 서류만 소각하고 현지의 집과 차는 물론 운영하던 업체까지 그대로 놔둔 채 3국을 통해 급히 귀국했다고 한다. 현재 정보사는 사령관과 대북 공작 담당 여단장이 정면충돌하며 하극상 조사와 고소가 이어지는 등 기강 해이가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2030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도 뼈 아픈 정보전 실패 사례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 등 정부와 민간이 모두 나서 엑스포 유치에 나섰으나 부산은 29개국의 지지를 얻어 119개국의 지지를 얻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대패했다. 애초에 오일머니를 앞세운 사우디가 지지국을 상당수 확보했는데도 한국 정보기관 등은 이를 파악하지 못했거나 윤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한국이 뒤늦게 유치전에 뛰어들며 어이없는 대패를 당했다.

 

한국의 잇따른 정보 참사는 그만큼 정보 역량이 부족하고 보안 의식이 허술하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이유 등으로 고위직을 포함해 국정원 직원 수백명이 물갈이된다. 정권 입맛에 맞는 코드 인사가 많다 보니 정보요원들의 전문성이 떨어지고 자질이 부족한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 등 주요국에서는 정보요원들이 24시간 감시될 수 있음에도 기본이 안 된 사람들이 정보 최전선에서 근무하며 어설프게 노출되고 있다.

 

정보 참사를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 미·중 전략 경쟁의 세계 격변기에 잘못된 정보는 국가 생존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국정원 등이 경쟁력 있는 정보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정권 영향을 최소화해 전문가들이 존중받도록 해야 한다. 옛 국정원 원훈처럼 ‘정보는 국력이다’.

 

중앙일보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08.08 장군들 고소장에 담겨 만천하에 알려진 대한민국 군 기밀

 

국군정보사령부 사령관과 여단장이 폭로전 수준의 고소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군 기밀이 줄줄 새고 있다. 존재 자체가 비밀인 특정 공작의 명칭, 구체적인 공작 수행 방식 등이 고스란히 고소장에 적혀 외부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소속 군무원이 비밀 요원들의 명단을 유출하는 심각한 사고가 난 부대의 지휘부가 서로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것도 모자라 국가 안보와 직결된 군사 기밀을 마구 유출하고 있다.

 

두 사람은 ‘광개토 사업’이란 극비 공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예비역 민간단체가 영외 사무실을 사용하는 문제를 놓고 갈등했다. 여단장이 국방부 조사본부에 제출한 고소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광개토 사업’이란 공작명뿐 아니라 예비역 단체를 동원하고 오피스텔을 안가로 운영하는 방식 등은 모두 기밀에 해당한다. ‘광개토 사업’은 외국에서 진행될 대북 정보 수집으로 추정된다. 이번 기밀 유출로 현지 정보 업무 수행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자칫 외교 문제로 비화할 소지도 있다. 이를 제일 잘 아는 장군이 고소장을 군사 기밀로 도배하고 변호인을 통해 여론전까지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유출된 기밀들은 대부분 여단장 쪽에서 나왔다고 한다. 사령관은 아직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은 상태다. 사령관도 변호사를 구해 맞불 대응에 나선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정보사 1·2인자가 이렇게 싸우는데 조직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현재 정보사는 어떤 상태인가. 국방부는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 예정인가.

 

해병대원 순직 사건으로 해병대가 갈라져 서로 싸우고, 국회에선 육사 출신 의원들이 여야로 갈라져 싸우고 있다. 싸우는 내용도 치졸한 경우가 많다. 최근 북한 김정은은 미사일 1000발을 한꺼번에 쏠 수 있는 발사대들을 휴전선 인근에 배치했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한미 동맹에 문제가 생길 것이란 우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지는 군의 한심한 행태와 내분은 혀를 차게 한다.

조선일보 사설

 

08.08 정보사 지휘부 내홍 뒤엔 류경식당 탈북사건이…

 한국군의 해외·대북 첩보 부대인 국군 정보사령부의 A 사령관(소장·육사 50기)과 B 여단장(준장·육사 47기)이 서로 하극상·폭행을 주장하며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은 표면적으로 예비역 단체의 영외 사무실 이용 문제를 둘러싼 이견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갈등은 대북 공작 방식을 둘러싼 두 사람의 의견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B 여단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중국 저장성 닝보시 소재 북한 식당 ‘류경식당’의 종업원 13명이 집단 탈북한 사건에 관여했던 대북 공작 베테랑이다. 류경식당 집단 탈북 사건은 당시 연쇄 탈북 움직임을 일으킬 정도로 파장이 컸다. 하지만 B 여단장은 정권이 바뀐 뒤 문재인 정부에서 군 법정에 섰다. 횡령·배임·사기·허위 공문서 작성·허위 보고 등 11개 혐의가 적용됐다. B 여단장 주위에선 “훈장을 받을 사람이 정권 교체 이후 역적으로 몰렸다”는 말이 나왔다. 남북 관계를 최우선했던 정권과 코드가 맞지 않아 무리한 수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B 여단장은 2022년 1월 3년 만에 무죄가 확정됐다.

 

 ▲그래픽=백형선

 

B 여단장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복권’돼 2023년 대령에서 준장으로 승진해 정보사에서 ‘휴민트(인적 정보)’를 총괄했다. 하지만 육사 3기 후배인 A 사령관과 대북 공작 방식을 놓고 여러 차례 충돌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 장교 출신이지만 직접 공작을 한 적은 없는 A 사령관은 정보 수집을 중요시한 반면, B 여단장은 집단 탈북식의 적극적 대북 공작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B 여단장은 과거 재판에서 “류경식당 같은 제2의 집단 탈북을 추진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가능하다면 추진할 의도를 갖고 있었다”는 입장을 밝힌 적도 있다. 두 사람의 법적 공방 속에서 최근 공작명이 공개된 ‘광개토 계획 사업’ 역시 집단 탈북 방식의 대북 공작과 관련된 것이라는 추정이 나오는 이유다. B 여단장은 올 초부터 정보사 출신 예비역 단체 ‘군사정보발전연구소’에 서울 충정로의 정보사 영외 사무실을 사용하게 했는데, 이와 관련해 고소장에서 “해당 단체는 기획 공작인 ‘광개토 사업’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영외 사무실은 공작 업무 지원용으로 운용되고 유관 연구소 지원은 공작 교육 및 활동 인프라 확보에 큰 도움을 준다”고 했다. 해당 민간 단체는 정보사령관과 국방정보본부장을 지낸 모 예비역 장군이 이사장으로 있는 연구소다.

 

 ▲지난 2016년 중국에서 집단 탈북한 ‘류경식당’ 종업원들이 한국에 입국해 경기 시흥시 북한이탈주민 보호센터로 이동하는 모습. /통일부

 

영외 사무실을 이 단체에 내준 것을 사후에 보고받은 A 사령관은 지난 5월 본인 승인 없이 사무실 사용을 지원한 것을 질책하며 지원을 중단할 것을 명령했다. 이후 6월 재차 보고를 하는 과정에서 A 사령관이 결재판을 던지고, B 여단장은 폭언을 하는 등 ‘사달’이 났다는 것이다. B 여단장은 A 사령관을 폭행 혐의로 국방부 조사본부에 고소했고, A 사령관은 B 여단장에게 상관 모욕 혐의가 있다면서 국방부 조사본부에 수사를 의뢰했다.

 

A 사령관 측 관계자는 “사령관은 무리한 대북 공작에 제동을 걸고 예비역 민간 단체에 무상으로 안가 공간을 제공하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으려고 했었던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B 여단장은 사령관에게 보고도 하지 않았고 항명한 정황도 있는데 고소장을 통해 기밀까지 유출하며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며 “A 사령관은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고 있고 이번 사안과 관련해 언론 접촉도 극히 자제하고 있는 데 대비된다”고 했다.

 

반면 B 여단장 측은 “지난 2월부터 진행된 공작인데, 5월에 뜬금없이 A사령관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며 “공작 업무를 전혀 모르는 사령관이 무리하게 관여했다”고 했다. B 여단장이 고소전을 불사하며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은 지난 정부 시절 3년에 걸친 법정 싸움 끝에 무죄로 결론 난 자신감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B 여단장은 A 사령관에게 지난 5월 “조사를 하든 수사를 하든 마음대로 하세요. 이전에도 경험해 보았는데 무혐의로 끝났어요”라고 발언했다고 한다.

 

군 일각에선 ‘블랙’(신분을 위장해 활동하는 요원) 업무 담당 출신이 정보사령관이 되기 어려운 승진 문화도 이번 갈등의 한 원인이라고 말한다. 통상 이 계열에선 준장이 진급 상한선으로 꼽힌다. 상대적으로 진급도 늦는 편이라 A 사령관과 B 여단장처럼 기수 역전 현상도 종종 벌어진다고 군 관계자는 전했다.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탈북 사건

2016년 4월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의 북한 류경식당에서 일하던 북한 종업원 13명이 집단 탈출해 국내에 들어온 사건. 탈북한 13명 중 지배인을 제외한 20대 종업원 12명은 이후 한국에서 대학에 특례 입학해 정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양지호 기자

 

08.08 새 軍 교재에도 백선엽이 없다

▲6·25전쟁 당시 백선엽 1사단장이 참모들과 작전을 협의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국방부가 지난해 우리 고유 영토인 독도를 ‘영토 분쟁 지역’이라고 기술해 전량 회수한 군 정신 전력 교육 기본 교재를 최근 새롭게 펴냈다. 대다수 언론은 ‘독도’에만 집중했지만 교재를 살펴보니 6·25전쟁 관련 기술 문제도 심각했다. 있어야 할 이름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20쪽 분량의 6·25 전사(戰史)에는 백선엽(1920~2020) 장군이 등장하지 않는다. 6·25 당시 낙동강 전선을 돌파하려는 북한군을 사투 끝에 막아낸 다부동 전투는 언급하지만 정작 “내가 후퇴하면 너희가 나를 쏴라”라고 말하며 작전을 승리로 이끈 백 장군은 등장하지 않는다. 전쟁 발발 당시 1군단장으로 한강선과 낙동강선에서 지연전을 벌이며 유엔군이 참전할 시간을 번 김홍일(1898~1980) 장군에 대한 설명도, 춘천-홍천 전투에서 북한군 진공을 차단하며 김일성의 전쟁 초기 전략을 좌절시킨 6사단장 김종오(1921~1966) 장군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사단 활약상은 소개하면서 부대 지휘관 이름은 적지 않았다.

 

국방부 관계자는 “전역(戰域·campaign) 단위 지휘관만 서술한다는 원칙 아래 6·25전쟁의 큰 줄기를 설명하다 보니 개별 지휘관은 언급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기준에 따라서 미8군 사령관 워커 장군의 낙동강 전선 사수와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결행은 교재에 담겼다고 한다. 우리 군 교재에 맥아더·워커는 있지만 백선엽은 없다. 우리 군 영웅들은 오히려 푸대접을 받고 있다.

 

교재에는 우리 군 관련 지휘관 이름도 사진도 실려있지 않다. 그렇지만 미국 출신 종군기자 마거릿 히긴스는 사진과 함께 ‘유비무환’을 강조하는 인용구로 등장한다. 생전 백선엽 장군도 유비무환을 수없이 강조했다. 참전 군인 육성보다도 외국인 기자를 택한 까닭은 알기 어렵다. 백 장군 등 우리 국군 영웅을 조명하는 설명이 들어가야 할 자리로 보인다.

 

6·25 때 활약한 무수한 국군 장병 중 백선엽 장군은 특히 우리 군 최초 4성 장군이다. 역대 주한 미군 사령관조차도 입을 모아 ‘한국군의 아버지’라 칭송했다. 하지만 그는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 교재에도, 2018년 문재인 정부 시절 교재에도, 2023년 윤석열 정부 교재 2권(개정 전·후)에도 없다. 국방부는 그동안 별도 참고 자료를 작성해 백 장군의 업적을 교육해 왔다고 한다. 하지만 50만명에 이르는 장병을 교육하려고 국방부가 편찬한 ‘바이블’인 정신 전력 교재에서는 언급조차 없다.

 

지난해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이 벌어졌을 당시 백 장군 흉상을 그 자리에 건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했고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한 백 장군을 육사 생도들이 본받아야 한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정신 전력 ‘기본’ 교재에 마땅한 백 장군의 자리를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조선일보 양지호 기자

 

08.08 北, 수학 영재 총동원 해킹… 130만 건 막을 대책 있나

 휴전선 북쪽 밤하늘은 캄캄하다. 극심한 전력난에 도심 한복판도 어둡다. 대북제재로 항공유가 부족한 북한은 해가 떨어지면 전투기도 못 띄운다. 공중급유훈련까지 하며 밤하늘을 밝히는 우리 공군과 달리 레이더에 포착되는 북한 전투기 야간 항적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숫자다.

그런 북한에도 24시간 불철주야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이 있다. 창문도 없는 공간에서 낮인지 밤인지 모른 채 24시간 슬롯머신이 돌아가는 카지노처럼 이곳에선 검은 열기를 내뿜으며 환한 모니터 아래 밤낮없이 작업이 이어진다. 김정은은 전력 낭비 걱정 따윈 필요 없는 이 ‘미친’ 가성비 끝판왕 작업에 백두혈통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국가 인재 총동원령을 내렸다.

북한 해킹 얘기다. IT 최빈국인 북한은 해킹 능력만큼은 선진국 뺨치는 반열에 올랐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선 해킹이란 작업의 성격부터 봐야 한다. 고위 정보당국자는 “해킹은 언뜻 떠올리면 기술 집약적 작업 같지만 사실 노동집약에 훨씬 가깝다”고 했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얼마나 집요하게 하느냐에 사이버 범죄의 성패가 좌우된다는 의미다. 유명 해커들의 수명이 30대를 넘기기 힘든 것도 그래서다. 그런 면에서 김정은의 한마디에 남녀노소 총동원이 가능한 북한 체제의 골격은 해킹에 최적화돼 있다. 북한 당국은 체력 팔팔하고 장시간 집중이 가능한 청소년들을 사이버 범죄자로 마음껏 키울 수 있다. 노골적으로 컴퓨터 앞에서 부릴 수 있다. 국가 시스템 자체가 해킹에 최적화된 집단인 것이다.

이런 환경에 집요한 노력까지 더해졌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수학·컴퓨터 새싹들을 조기 발굴해 해커 양성 과정에 투입한다. ‘기초→전문→고급 단계’를 거쳐 실전 해커로 기른 뒤 외국 대학에 보내주고, 성과를 낸 해커에겐 금전적 혜택까지 적지 않게 제공한다. 사실상 정규 교육 같은 사다리가 마련된 데다 신분이 아닌 능력 위주로 평가하는 어둠 속의 직업. 보너스로 화끈한 혜택까지 제공하니 북한 청소년 중 자발적 해커 지원자들까지 최근 늘고 있다는 게 우리 당국의 판단이다.

김정은이 해킹 ‘올인’을 공언한 2016년부터 올해 2월까지 해킹으로 탈취한 가상화폐 규모만 2조4000억 원에 달한다. 그동안 우리 군·정보당국도 손을 놓고 있진 않았다. 사이버 담당 파트 예산·인력을 늘렸고, 북한 해커를 역으로 해킹하는 ‘화이트 해커’까지 동원해 대응에 나서고 있다.

다만 물리적 한계는 분명해 보인다. 김정은의 진두지휘 아래 하루 평균 130여만 건씩 퍼붓는 해킹 물량 공세를 모두 틀어막긴 쉽지 않다. 정보 소식통은 “정부 기관이 사명감 하나 내세우며 민간기업들과 경쟁해 우수한 IT 인력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결국 정부 기관이 북한 해킹을 모두 막아낼 수 없다면 전문기관, 민간기업 등과 협업 체제를 정교화해 피해 최소화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우수한 IT 인재들이 정보기관의 엄격한 신분 조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IT 인력의 특수성을 고려해 내부 규정이나 채용 방식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등 사고의 전환도 필요한 시점이다.
신진우 정치부 차장 niceshin@donga.com

 
 

08-08 역대 좌파정부, 대북 정보·작전 무력화… 기무사 인력 30% 방출

▲긴장하는 국방위 참석자들 신원식(왼쪽) 국방부 장관과 김명수(가운데) 합동참모의장이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있다. 문호남 기자

 

 ■무너지는 ‘정보 안보’ - (上) 정치권 무책임이 결정적

김대중·노무현 정권 거치면서
대북공작 금지하고 조직 축소
문 정부, 국정원 전현직 350명
적폐청산 명목으로 검찰 조사

정보유출 군무원 구속 송치

 

미국의 대북 전문가 수미 테리 기소와 국군정보사령부 ‘블랙 요원’ 신상정보 유출 사건, 정보사 수뇌부 맞고소전으로 이어진 ‘정보안보’ 위기가 입맛에 맞게 정보기관을 길들이려 한 역대 정권과 정치권의 책임이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정치권이 정쟁을 위한 도구로 악용하면서 정보기관이 권력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기구로 전락했고, 정치인 원장 임명과 잦은 교체 인사가 수사·방첩 전문성·역량을 현저히 떨어뜨렸다는 지적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 등 좌파 정부에서 국가정보기관 시스템이 크게 약화됐으며, 이게 현재의 해체에 가까운 수준의 위기를 불렀다고 평가하고 있다.

8일 전문가와 정보기관 등에 따르면 국가정보원과 정보사 등 정보·첩보기관은 정권에 따라 내부 인사들의 부침이 잦았다. 가장 가까운 사례가 문 정부 당시로, ‘적폐 청산’ 명목으로 국정원 전·현직 직원 350여 명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국정원 직원 100여 명은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했다. 문 정부는 2020년 12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도 박탈하면서 정보기관의 방첩 조직 및 역량은 사실상 무너졌다. 또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의 ‘계엄 대비 문건’ 논란을 계기로 기무사 인력의 30%인 1400여 명의 방첩인력도 방출시켰다. 앞서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대북공작 업무가 사실상 금지됐고, 대북 심리전을 담당하는 부서는 반으로 축소됐다.

정보사령관과 정보여단장의 맞고소전 배경에도 문 정부의 무더기 경질 인사가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령관과 여단장의 기수가 역전된 데는 여단장이 문 정부의 ‘적폐 청산’ 인사 여파로 군검찰에 기소되면서 승진 기회가 날아갔기 때문. 무죄를 받고 복귀한 뒤 공작·첩보 전문가인 여단장이 이 분야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령관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잦은 교체·경질 인사는 정보기관을 권력 향배만 좇는 기구로 전락시켰다. 기밀을 유출한 정보사 군무원이 뒤늦게 지난 6월 적발돼 이날에서야 군검찰로 구속송치된 것도 ‘보신주의’로 바뀐 조직 문화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직 정보사 요원은 “정보기관 요원들이 정권이 바뀌면 숙청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상황이 됐다”면서 “국가를 위해 목숨 바쳐 일했는데, 정권 교체 후 불법적 일을 했다며 감옥에 갔는데도 정보기관이 변호사 비용은커녕 아무도 뒤를 봐주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문 정부 때 북한에 맞추려 대북 정보망·대공 수사력을 무력화했고, 이 때문에 정보사 군무원 기밀유출 사건의 경우도 국정원이 수사에 참여하지 못해 방첩사가 정보를 분석·추적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08-09 70년 된 ‘적국·기밀’ 조항… 첨단정보전쟁 미아 전락

 

■ 무너지는 ‘정보 안보’ - (下) 시대착오 간첩법 개정 시급

외국에 기밀 넘겨도 처벌 못해
현대엔 우방끼리도 스파이 암약
미국처럼 외국대리인 등록법 필요

적과 우방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 스파이들이 암약하며 국가 사활을 건 정보전을 벌이는 가운데, 주요국 중에서 우리나라만 ‘외국’을 제외한 ‘적’만 간첩으로 간주하는 70년 전 낡은 간첩법에 발목이 잡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간첩법 개정과 방첩 법제체제·기구 개편이 없다면 21세기 정보전의 미아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9일 정보당국 및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간첩죄 관련 법 조항들은 최소 32년에서 70년 전에 제정된 시대착오적 법제다. 대표적인 법 조항은 △형법 제98조 △군형법 제13조 △국가보안법 제4·5조 등이다. 모두 간첩의 개념·범위를 북한을 지칭하는 ‘적국’으로만 한정해놓고 있는 것. 또 국가보안법 4·5조의 경우에는 간첩 행위 대상을 ‘국가기밀’로만 협소하게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국군정보사령부 군무원의 ‘블랙요원’ 신상정보 유출 사건이 터지면서 시급히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사법부의 ‘국가기밀’에 대한 엄격한 해석까지 겹치면서 사실상 북한에 군사기밀을 넘긴 군무원을 간첩죄로 처벌하기 쉽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산업 스파이에 대해서도 현행 법률로는 간첩죄 처벌이 불가능하다.

이에 전문가들은 간첩죄 법 조항에 미국·독일·중국 등과 마찬가지로 ‘외국’ 등을 추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국보법 제4·5조의 간첩죄를 개정하면 북한이나 반국가세력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전개하는 해킹 등도 앞으로 간첩죄로 처벌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미국의 대북 전문가 수미 테리 피소 당시 적용된 외국대리인 등록법(FARA)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또 미국처럼 방첩 법제 체계를 재구성하고, 국가정보원의 대공 보안정보 기능을 즉시 부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장석광 국가안보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중국이 지난해 7월 개정 반간첩법을 통해 제3국을 겨냥한 간첩 활동에도 적용 가능하도록 했는데, 우리도 법제 개편 및 안보기관 역할 재정비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정원 대공수사권 복원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새로운 효율적인 정보기관 창설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08-09 대북정찰 ‘백두·금강’ 기술 유출… “북한에 해킹당한 방산업체 더 있다”

 정찰기 운용 기밀 북한서 빼간 듯
KAI, 백두사업 해킹 내부조사

최근 해외 첩보요원의 신상 정보가 북한에 대거 유출된 데 이어 우리 군의 핵심 대북 공중정찰자산인 ‘백두·금강’ 정찰기 관련 기밀 자료 상당수가 북한에 의해 해킹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올해 초부터 사이버 공세를 강화하면서 군 기밀이 무방비로 유출되고 있다는 우려와 함께 대책 마련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9일 방산업계와 경찰에 따르면, 백두·금강 정찰기 등 군 장비 운용과 정비 매뉴얼이 담긴 교범을 만드는 A 방산업체가 최근 해킹 공격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백두·금강 정찰기의 기밀 내용 중 일부가 유출된 정황이 포착됐다. 해당 업체는 신형 정찰기를 도입하는 백두체계능력보강 1·2차 사업에 모두 참여한 바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기술 자료가 얼마나 넘어갔는지 확인되지 않았다”며 “나름 타격이 큰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백두·금강 정찰기는 독자적인 대북 정보 수집을 위해 2002년 실전 배치돼 대북 정보 수집 관련 핵심 임무를 수행한다.

금강 정찰기는 전방 일대 북한군 관련 영상정보를 수집하고, 백두 정찰기는 북한군 간 통신·장비 운용 상황을 실시간 감시하는 역할을 맡는다. 한 전직 국가정보원 간부는 “북한이 기술 자료, 운용·정비 등 핵심 기밀을 탈취해 자신의 정찰 자산을 개량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킹 피해를 입은 방산업체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항공우주(KAI)는 2026년까지 진행 중인 백두체계능력보강 2차 사업에 연관된 업체가 다수 해킹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내부 조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도 피해가 여러 건인 것을 확인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정보 당국에선 북한이 해킹을 주도했다고 보고 있다. 실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해 초 우리 정찰자산에 대한 대남 공작을 지시한 이후 사이버 공격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보안체계가 허술한 중소 방산업체와 협력 업체들이 주 타깃이 되고 있다.

윤오준 국정원 3차장도 지난 7일 간담회에서 “(해킹에) 취약한 방산업체가 많고, 협력 업체에도 보안 취약 요소가 많기 때문에 공격을 많이 당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문화일보 김규태 기자, 정충신 선임기자

 
 

08.10 사고 터질 때마다 "별일 아니다"라는 軍, 정말인가

▲백두체계능력보강사업으로 개발된 신형 백두정찰기. 2021.7.1/뉴스1

 
 

우리 군의 대북 정찰 자산인 ‘백두·금강 정찰기’ 관련 자료가 북한에 해킹당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방위사업청은 9일 “정비·운용 교범 등 일반 자료가 해킹된 것은 확인됐으나, 핵심 기술 해킹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일반 자료’는 도둑맞았지만 ‘핵심’ 유출은 아직 모르니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해명한 것이다. 백두 정찰기는 북한 전역의 통신 정보, 금강 정찰기는 전방 일대 북한군 영상 정보를 수집하며 대북 감시의 ‘눈과 귀’ 역할을 한다. 북한이 정찰기 운용 자료를 손에 넣으면 우리 감시를 피할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방사청은 ‘일반 자료’라고 한다.

 

신원식 국방장관은 8일 국군정보사령부 군무원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사건에 대해 “정보 업무에 큰 공백은 없다”고 했다. “대부분 다 정상화됐다”고도 했다. 그런데 같은 날 이 군무원은 간첩죄 위반 혐의로 송치됐다. 간첩죄 적용은 군무원이 빼돌린 블랙 명단이 북한으로 넘어갔다는 의미다. ‘정보 공백은 없고, 대부분 정상화됐다’는 국방장관의 답변은 믿을 수 있나.

 

지난 2016 년 국방통합데이터센터가 해킹당했을 때 국방부는 작전 계획 등 민감한 자료는 유출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1년 만에 김정은 참수 작전이 포함된 ‘작전 계획 5015′를 비롯, 2~3급 군 기밀이 대거 북으로 넘어간 사실이 드러났다. 미군 측이 북한 정보 공유 차원에서 우리에게 준 기밀 자료와 사진까지 유출됐다. 북한이었으면 전부 처형됐을 관련 군인들이 ‘별일 아니다’라면서 태평하다. 2019년 북한 목선 귀순 당시 해경은 ‘삼척항 입항’이라고 상부에 보고했다. 그런데 국방부는 ‘삼척항 인근’이라고 발표했다. 북 주민이 항구에 내려 ‘노크 귀순’할 때까지 경계가 뚫린 것을 숨기려 한 것이다. 이듬해 북이 우리 GP에 총격을 가했을 때 군은 “적절히 대응했다”고 했다. 알고 보니 당시 우리 군의 기관총 원격 사격 체계는 먹통이었다. 군은 거짓말하다 사실이 드러나자 사과했다. 이런 일은 너무 많아 열거할 수도 없다.

 

군의 축소·은폐와 거짓말은 상습적이고 고질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이런 일이 쌓이면 전투력을 갉아먹을 수밖에 없다. 군에 대한 국민 신뢰도 떨어진다. 북한 집단을 눈앞에 둔 군대가 이래서는 안 된다.

조선일보 사설 

 

08-12 대북 흑색작전 파탄 공범들

정충신 정치부 선임기자

대북 비밀 임무 수행으로 ‘최고의 첩보장교’로 불린 정모 예비역 대령은 대위 시절 인간정보(HUMINT) 담당 북파공작부대(HID) 팀장을 맡은 이후 2017년까지 26년간 국내외 험지를 마다하지 않고 조국을 위해 헌신했다. 처자식 떠나 혈혈단신으로 북·중·러 국경지대서 ‘블랙작전’을 수행하며 풍찬노숙했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남북관계 정보 라인이 파괴되자, 연평도 포격 도발 후 대북 핫라인을 구축하기 위해 중국에 급파됐다.


그런 그의 운명은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바뀐다. 2019년 3월 말 전역한 그의 아파트에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들이닥쳐 22시간 동안 쑥대밭을 만들었다. 하루아침에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 간첩으로 몰렸고, 2020년 2월 기밀누설죄 무혐의 통보를 받았으나 “군사기밀보호법상 비인가자가 기밀을 탐지·수집·점유하고 있다”며 별건 기소됐다. 그는 “전역 전 컴퓨터 소장 자료를 모두 삭제했는데 국정원이 포렌식으로 복구해 검찰에 무리하게 ‘기소 청탁’했다”며 반발했다. 1심 징역 6월·집행유예 1년, 2심 징역 10월·집행유예 2년·사회봉사 160시간이 선고됐다.

그는 “37년간 군인으로 일하면서 앞에서 날아오는 적의 총알은 피할 수 있었지만, 뒤에서 내리찍는 아군의 도끼날은 피할 수 없었다”며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첩보전 최전선에서 목숨 바쳐 일한 대가는 간첩 혐의 역적죄였고, 연금마저 반쪽이 났다. 비밀해제된 것을 비밀이라 우겼고, 국정원·검찰·법원도 이 사건 원인을 모른다고 할 정도니 조작 가능성이 크다.

국군정보사 휴민트 총괄 P 여단장은 2016년 중국 저장(浙江)성 북한 식당 류경식당 종업원 13명 집단 탈북 사건에 관여한 대북 공작 베테랑 블랙요원이었다. 그 역시 대북 평화 프로세스를 시행한 문 정부에 ‘찍혀’ 법정에 섰다. 횡령·배임·사기 등 11가지 혐의가 적용됐다. 주위에선 “훈장을 받을 사람이 정권 교체 후 역적으로 몰렸다”는 말이 나왔다. 문 정부 당시 군검찰이 현직 정보사 대령들을 대상으로 무리한 수사를 벌이면서 대북 공작 베테랑 요원들이 법정에 서며 역적 신세로 몰린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정보사 내 핵심 휴민트망은 붕괴되다시피 했다. 이들이 수사와 재판을 받던 중 탈북어민 북송 사건과 서해 공무원 이대준 씨 피격 사건이 발생했다. 모두 대북 정보망 마비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는 간첩을 국가영웅으로 대우한 북한 사례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군 침투 및 국회프락치사건 등에서 종횡무진 암약한 남파 간첩 성시백은 김일성이 ‘공화국 영웅 1호’ 호칭을 주며 자손들까지 극진히 대우했다. 2000년 9월 2일 63명의 비전향 장기수가 북한으로 송환됐는데, 이들은 남조선혁명전략을 수행하기 위해 파괴·전복 활동을 벌이다 검거된 무장공비·남파 간첩들이었다. 북한은 판문점 통일각에 김용순 당 비서, 김일철 인민무력상 등 500여 명을 도열시켜 혁명영웅들 귀환을 환영했다.

파리평화협정 체결 후 사이공경찰청장에 임명된 프락치가 공산 월맹에 정보요원(IO) 명단을 넘겼고 베트남은 패망했다. 대공·방첩 분야가 무너지면 나라가 망한다는 교훈이다.

문화일보

 

08.12 연이은 군 정보 전력의 기강해이, 총체적 쇄신 나서라

▲북한 전역의 무선통신 정보를 수집하는 백두 정찰기. [사진=뉴스1]

 

북, 최근 금강·백두 정찰기 운용 정보 해킹까지

민·군 가리지 않는 정보 유출, 군내 분란 이어져

 

북한이 한국군의 정보 수집 자산인 금강과 백두 정찰기의 운용 정보를 해킹한 사실이 최근 확인됐다. 군은 전방 지역의 북한군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첨단 영상 장비를 탑재한 금강 정찰기를 운용하고 있다. 또 북한 전역의 무선통신을 감시하고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백두라는 정찰기도 가동 중이다. 이는 그동안 미국에 의존했던 북한 지역의 영상과 무선통신 정보 자료를 군 자체적으로 수집하기 위해 한국군의 눈과 귀 역할을 하게 한 핵심 정보 수집 수단이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건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이를 정비하고 운용하는 자료가 넘어갔다니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북한엔 눈엣가시와 같은 감시자의 도발 대응 ‘방패’ 자료를 그대로 넘겨준 셈이다.

 

문제는 군 당국이 이런 상황의 심각성을 가볍게 여기는 듯하다는 점이다. 북한의 해킹 소식이 알려지자 방위사업청은 지난 9일 “정비·운용 교범 등 일반 자료가 해킹된 것은 확인됐으나, 핵심 기술 해킹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서둘러 무마에 나섰다. 방사청의 설명대로 유출된 자료가 아무것도 아니길 바라지만 과연 북한이 ‘아무것도 아닌 자료’를 애써 탈취하려 했는지도 의심스러울 뿐이다. 무엇보다 이런 핵심 정보 자료 관리의 체계에 구멍이 났다는 점 자체가 무마의 대상이 아니라 반성해야 할 사안이다.

 
 

이뿐이 아니다. 최근 우리 군의 정보 관리 기강 해이 사고들이 잇따르고 있다. 군에선 드러나지 않아야 할 정보 요원의 신상 자료를 중국 조선족에게 넘기는 사고도 발생했다. 정보사령부의 사령관과 여단장은 서로 고소·고발을 하는 등 있을 수 없는 내분도 벌어졌다. 정보 관리 책임자들인 이들의 상호 고발 과정에서 서울시내 정보 수집 활동의 거점인 안가를 드러내고, 진행 중인 비밀 공작의 암호명까지 공개됐다. 차세대 먹거리인 KF-21 전투기 개발 정보가 인도네시아 기술자들에게 뚫린 정황이 포착된 데 이어 K-2 전차의 핵심 기술을 유출하려던 연구원들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군사 정보 관리의 총체적인 난국이다.

 

유사시 미래의 전장은 치밀하게 수집된 적의 사전 정보를 바탕으로 한 사이버 전쟁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사이버 보안회사인 레코디드 퓨처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6년간 30억 달러(약 4조원) 이상의 가상화폐까지 해킹해 탈취했다. 2022년부터 추적한 북한 사이버 공격은 98억 건에 달하며, 공격 목적은 대부분 정보 탈취, 외화벌이였다. 첫 번째 주 타깃은 물론 한국이라는 게 이 회사의 분석이었다. 그러나 최근 드러난 우리 정보 전력의 난맥상으론 이 같은 사이버전의 승리를 담보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즉각 정보 전력 분야의 와해된 기강을 바로잡고, 보안 대응 능력을 강화할 전면적 쇄신에 나서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08.17 요즘 세상에 간첩? 북은 오늘도 양성 

‘전직 남파간첩’ 김동식 북한전략센터 이사장

대북 정보전의 최일선에서 활약하는 ‘블랙요원’들의 명단과 신상정보가 중국인을 거쳐 고스란히 북한으로 넘어간 정보사 기밀유출 사건으로 허술한 방첩망이 도마위에 올랐다. 긴 시간과 막대한 자금을 들여 어렵사리 구축한 대북 첩보망이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됐다. 나의 실패는 상대방의 성공으로 직결되는 법이다. 이번 사건을 뒤집어 보면 북한의 대남공작이 여전히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북의 입장에서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김동식(61) 사단법인 북한전략센터 이사장만큼 북한의 대남공작 실태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 자신이 20대에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고 차관급 대우를 받았던 거물 남파공작원 출신인데다, 전향 후 최근까지 국군기무사와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30년 가까이 북한의 대남 공작과 정보 분석에 종사해 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파란만장’이란 표현이 딱 들어맞는 그의 개인사는 최근 중앙일보의 프리미엄 콘텐트 서비스인 더중앙플러스에 ‘스파이전쟁’이란 이름으로 연재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9년 훈련, 공화국 영웅 칭호·차관급 입지

▲남파 공작원 출신인 김동식 북한전략센터 이사장은 북한은 여전히 남파 공작을 하고 있다며 “북한은 여전히 칼을 벼리고 있는데 한국의 방패는 무력화되고 있다는 게 큰 문제”라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1990년대 남파공작원으로 내려와 충남 부여에서 군경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체포되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당시 침투 임무는 무엇이었나.

“나는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 들어가서 4년, 졸업 후 5년간 혹독한 훈련을 받고 공작원이 됐다. 1990년이 되자 임무가 떨어졌다. 남한에서 암약하던 여성 고정간첩 이선실과 접선하고 지하당 조직을 구축하라는 명령이었다. 이선실은 노동당 서열 22위의 거물이었다. 1990년 5월 30일 새벽에 제주도 남쪽 바다로 이동해 서귀포시 인근 해안을 통해 상륙했다. 당의 명령대로 이선실과 접선에 성공하고 복귀할 때 그를 데리고 갔다. 또 노동운동가 황모와 운동권 출신 손모를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무전연락과 암호해독 등 초보적 지식에서부터 지하당 결성, 관리 방법까지 하나하나 지도하고 황모를 북으로 데려가 교육시켰다. 내 임무 수행은 대성공이었다. 남로당 이후 최대 규모의 지하간첩망을 구축했다고 평가받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으면 차관급 대우를 받는다. 고작 28살 때 신분이 수직상승한 것이다.”

 

▶남파는 한 차례였나.

“1995년 8월에 2차 침투 명령이 내려왔다. 이번에는 운동권 인사들을 대거 포섭하라는 명령이었다. 명령에 따라 1995년 9월 2일에 반잠수정을 타고 또 다시 제주도로 잠입했다. 그 때 이인영· 허인회·우상호·함운경 등 학생운동 출신과 시인 고은씨 등 명망가들을 각각 만났다. 그들은 수배 중이거나 물밑에서 활동하고 있어서 행방을 알아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인물들인지라, 나중에 수사관으로부터 ‘우리도 찾아내기 힘든 사람들을 만났다니 참 대단하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의 제의를 이런 저런 이유로 거부했다. 나를 프락치로 생각한 사람도 있었고, 민주화 운동은 (북의 도움없이) 우리 힘으로 한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 그 뒤 충남 부여 정각사에서 ‘봉화 1호’를 만나라는 당의 지령을 받고 갔는데 정보가 새는 바람에 매복해 있던 경찰들과 총격전이 벌어졌다. 나는 장딴지에 총을 맞고 체포됐다.”

▲김동식씨가 1996년 1월 26일 서울중앙지법에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전향하게 된 계기는.

“처음에는 전향을 거부했다. 생포 위기에서 자결하지 않은 것만 해도 배신자인데 전향하면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이 위험해진다. 그러다가 2년 정도 지난 뒤 남파 간첩으로 검거된 최정남을 만나 가족들이 모두 숙청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노동당 간부로 30년간 당에 충성을 다한 사람인데 아들이 체포됐다고 하루아침에 숙청하는 게 말이 되나. 내게 남파를 지시한 것은 당인데, 평생을 당에 충성한 부모에게 책임을 지운 것에 배신감을 느끼고 전향을 결심했다.”

 

▲공작원은 어떻게 양성하나.

“내 경우를 설명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황해남도 용연에서 고등중학교를 다니던 중 18살 때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 선발됐다. 한국에서는 김일성종합대학을 북한 최고의 대학이라 여기지만, 진짜 엘리트는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 모인다. 북한 내에서 유일하게 노동당이 직접 관장하는 대학이다. 매일 20㎏짜리 배낭을 메고 구보로 행군한다. 태권도·유도·합기도 등을 혼합한 종합 무술인 격술(擊術)을 4년 내내 훈련했다. 무도를 배우는 게 아니라 실대련 위주다. 수업은 김정일 혁명역사와 주체철학 등 사상 무장과 함께 국사·지리·역사·철학· 한문·영어·경제학·수학·물리·화학·군사학 등 다양한 과목을 듣고 남조선 정세도 공부한다. 교육이 혹독한 만큼 최상의 생활수준이 제공된다. 1인용 침대를 제공하는데 호텔처럼 침구를 갈아주고 음식도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다. 그러니 자부심을 안가질 수 없다. 남파공작원으로 선발되는 인원은 연간 5~6명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판사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의 독립기관으로 대우하는 것처럼, 북한에선 공작원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의 기관처럼 대우한다. 가령 명절 때 북한에선 각 기관 명의로 최고 영도자에게 축전을 쓰는데, 공작원은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이 쓴다.”

 

▲충남 부여에 침투한 무장간첩 사건을 보도한 중앙일보 1995년 10월 25일자 1면. [중앙포토]

 
 

김 이사장의 ‘개인사’를 듣는 동안 의문이 들었다. 그건 30년 가량 지난 ‘옛날 이야기’에 불과한 게 아닐까. 요즘 같은 정보화 시대에 굳이 리스크가 높은 남파 공작을 할 필요가 있을까. 김 이사장은 “북한이 남파 공작을 중단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전혀 사실과 맞지 않다”며 “북한은 여전히 칼을 벼리고 있는데 한국의 방패는 무력화되고 있다는 게 큰 문제”라고 말했다.

 

“물론 신문, 인터넷 등을 통해 굳이 사람을 보내지 않아도 많은 정보를 얻어 낼 수 있고, 이미 남한에 포섭해둔 사람들을 통해 북으로 정보가 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직접 공작원을 내려보내야만 하는 일도 있는 법이다. 포섭해 둔 남한내 간첩은 어떻게 관리하고 지령을 내리나. 해외에서 만나기도 하지만, 직접 국내에 잠입해 포섭해 둔 조직을 관리하는 공작원도 있다. 예전만큼 무장 남파간첩의 침투가 포착되지 않을 뿐이지 여전히 공작은 진행되고 있다. 요즘은 해외를 우회해 침투하는 방법을 선호한다. 국적을 세탁하고 제3국 여권을 확보해 합법적으로 한국에 입국하는 방식이다. 물론 공작선으로 침투해 접경 해안지역 인적 드문 곳에 공작금을 묻어두고 도로 넘어가는 사례도 여전히 있다.”

 

북, 공작원 한 사람을 한 기관처럼 대우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최근 수년 간 청주간첩단, 창원간첩단, 제주간첩단 등을 적발했다. 그런데 막상 잡고보니 직위가 높은 거물급이 아닌데다가, 그들이 실제로 한 일이 대단치 않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딨냐, 혹은 있어봤자 무슨 위협이 되냐는 생각들이 퍼진 것 같다.

 

“얼핏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안이한 생각이다. 가령 민노총 간첩단 사건에서 북한이 민노총 산하 건설노조를 통해 청와대 전기 배선, 구조도 등을 수집하도록 지령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얼마만큼의 정보가 넘어갔는지 알 수 없지만, 청와대를 한방에 마비시킬 수도 있다는 얘기다. 나는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와 용산으로 옮긴 이유 중 하나로 이런 보안상의 고려가 있었던 건 아닌가 생각한다. 그 뿐 아니다. 해군 2함대 사령부가 있는 평택의 군사기지와 국가기간시설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LNG 보관 탱크와 부두를 마비시킬 준비를 하라는 지령이 실제로 전달됐다. 포섭된 사람이 거물급이 아니라고 해서 위험하지 않다고 할 수 있나.”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08-19 尹 “무모한 北 도발 맞서 국가 총력전 태세 필요”

▲美 아파치 출격 ‘을지 자유의 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 연습이 시작된 19일 오전 경기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미 육군 공격헬기 아파치가 이륙하고 있다. 백동현 기자

 

을지프리덤 국무회의에서 강조
“우리 사회에 반국가 세력 암약”

한·미 연합훈련인 ‘을지 자유의 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 연습이 시작된 19일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무모하고 비이성적인 북한의 도발과 위협을 마주하고 있다”며 “모든 구성원이 하나로 힘을 모으는 국가 총력전 태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을지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정규전, 비정규전, 사이버전은 물론, 가짜뉴스를 활용한 여론전과 심리전이 혼합된 하이브리드 형태로 (전쟁의 양상이) 진행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부터 22일까지 나흘간 을지 자유의 방패 연습 등 국가 비상 대비 태세 확립을 위한 전국 단위 을지연습이 개최된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 앞서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에서 을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국가 총력전 수행능력을 점검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 사회 내부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며 “북한은 개전 초기부터 이들을 동원해 폭력과 여론몰이, 선전·선동으로 국민적 혼란을 가중하고 국민 분열을 꾀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러한 분열을 차단하고 전 국민의 항전 의지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교통, 통신, 전기, 수도와 같은 사회 기반 시설과 원전을 비롯한 국가 중요 시설은 우리 사회의 안정을 지키고 전쟁 지속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전시에도 기능을 유지해야 한다”며 “이런 시설에 대한 방호 대책을 철저하게 마련하고 대응 훈련을 강화하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올해 을지훈련은 한·미 연합야외기동훈련을 대폭 확대해 시행할 예정”이라며 “연합작전 수행 능력을 향상시키고, 한·미동맹의 위용을 드러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손기은 기자 son@munhwa.com

 

08.20 北 核실험 18년 만에 처음으로 정부 대응 훈련하는 나라

▲한미연합 군사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 (UFS·을지프리덤실드) 연습이 시작한 19일 경기 평택시 팽성읍 주한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 상공에서 MQ-1C 그레이이글 무인 정찰·공격기가 이륙하고 있다. 이번 UFS는 이달 19일부터 29일까지 1·2부로 나뉘어 실시되며 1부는 정부연습(을지연습)과 연계해 19~23일에, 2부는 군 단독으로 26~29일에 진행된다. /뉴스1

 

한미 양국군이 19일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을 시작했다. 이번 연습 기간에 북한의 핵 공격을 가정한 정부 대응 훈련을 처음 실시한다고 합참이 밝혔다. 주민 대피와 피해 지역 판단, 사상자 구조 등을 연습한다. 주민 대피 훈련에는 군부대도 참여할 계획이다. 올해 연습은 북핵 공격 시 구체적 조치 숙달이 목적이다.

 

북한이 1차 핵실험에 성공한 것이 2006년이다. 처음부터 우리를 목표로 한 것이었다. 2017년 6차 실험 이후엔 아예 대놓고 ‘남한 핵 공격’을 위협하고 있다. 김정은은 핵을 쓰면 자신도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가능성은 극히 낮다. 그러나 이 세상에 그 가능성이 ‘0′이라고 확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핵은 위험하고 반대로 효용성도 있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해선 최악 경우를 상정하고 대비하는 것이 기본 책무다. 그런데 역대 정부는 북핵 위협에 대해 마치 그런 위협이 ‘없는 것’처럼 해왔다. 그런 태도가 전략상 필요할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차원이 지났다. 문재인 정부는 북핵 대피 훈련까지 ‘정부가 나서서 위험을 조장한다’며 거부했다. 핵 공격 위험과 불안에 눈감는다고 그것이 없어지나. 미국은 1949년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하자 바로 이듬해에 핵 대비 훈련에 관한 민방위법을 만들었다. 반면 우리는 북의 1차 핵실험 18년 만에 정부가 처음으로 대응 훈련을 한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22일엔 전 국민이 참여하는 민방위훈련이 예정돼 있다. 공습 상황을 가정해 훈련 사이렌이 울리고 주민 대피와 차량 통제 훈련 등을 한다. 작년에 이런 민방위훈련이 6년 만에 재개됐지만 내용은 매우 미흡했다. 공습경보가 울리는데도 사람들은 거리를 걸었고 1200가구 아파트 대피소에 초등생 1명만 대피한 경우도 있었다. 정부는 인터넷에 대피소를 소개했지만 실제 핵 공격 상황에선 인터넷부터 끊길 가능성이 크다. 우리 국민이 가진 핵 대피 지식은 ‘무조건 지하로 가야 한다’는 수준이다. 구체적 대피 요령이나 대피 장소를 아는 국민은 거의 없다. 핵 공격 때 사이렌이 1분간 물결치듯 울린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도 거의 없을 것이다.

 

미국·일본은 물론 중국도 핵 대응법 등을 국민에게 알리고 있는데 우리만 태평이다. 훈련 목적은 반복을 통해 실제 상황에서도 기계적으로 행동해 안전을 확보하는 데 있다. 정부뿐 아니라 국민도 실질적 핵 대비 지식을 갖고 훈련에 참여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8.21 우크라戰이 '헬기 무덤'인데 아파치 헬기에 4조7000억 써야 했나

▲한미연합 군사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 (UFS·을지프리덤실드) 연습이 시작한 지난 19일 경기 평택시 팽성읍 주한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 상공에서 AH-64 아파치 헬기가 이륙하고 있다. /뉴스1

 

군이 4조7000억원어치의 아파치 공격 헬기(AH-64E)를 미국에서 구입한다. 아파치는 이론의 여지 없는 세계 최강의 공격 헬기다. 우리 군은 2017년 아파치 36대를 실전 배치했으며 이번에 같은 대수를 추가 도입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헬기는 무용론이 나올 정도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군 공격 헬기인 Mi-28이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을 받고 추락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공격 헬기가 실전에서 드론에 당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200억원이 넘는 러시아군 Ka-52 공격 헬기 등도 1000만원 안팎인 휴대용 미사일에 걸려 줄줄이 격추됐다. 지난 2월 러시아가 공격 헬기의 40%를 잃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우크라이나 전장은 ‘헬기 무덤’이 됐다. 미국 아파치는 러시아제 헬기보다 안전 측면에서 낫다고 하지만 지대공 방어망에 걸리면 격추를 피하기 어렵다. 원래 공격 헬기는 적의 전차나 진지를 파괴해 아군의 작전을 용이하게 하는 근접 지원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드론과 휴대용 미사일의 발달로 기존 운용 교리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다.

 

올 초 미 육군은 이미 20억달러를 투자한 차세대 공격 정찰 헬기 사업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미 육군 참모총장은 “(헬기의) 공중 정찰이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배우고 있다”고 했다. “무인 시스템이 더 멀리 도달하고 더 저렴해졌다”고도 했다. 미군은 헬기 대신 무인기와 유·무인 복합 시스템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미국부터 유인 헬기 운용을 재검토하는 것이다. 일본 자위대도 우크라이나 전쟁 전에는 아파치 헬기를 추가 도입하려 했다. 그런데 전쟁 양상이 전례 없이 흐르자 헬기 계약을 취소하고 무인 공격기를 증강하기로 했다.

 

방위사업청은 “드론은 신뢰성 있는 타격이 어려워 한계가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와 한반도는 지형이 다르고 공격 헬기의 유용성도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우크라이나 전쟁 전에 추가 도입을 결정한 것을 바꿀 수 없었던 탓일 것이다. 실제 전쟁보다 더 큰 교훈을 주는 것은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드론 전쟁 시대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 군이 타성이 아니라 혁신적 사고로 국민의 막대한 혈세를 사용했으면 한다.

조선일보 사설 

 

08.23 "北은 종교 자유 보장" 이런 사람을 대통령 부인이 만났다니

▲최재영 목사가 17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민원실 앞에서 사법정의세우기시민행동의 윤석열 대통령 내외에 대한 샤넬 화장품 세트와 디올 명품백 수수 관련 뇌물수수 및 김영란법 위반,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을 직무유기 등 고발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2024.6.17/뉴스1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에게 명품 백을 준 최재영씨가 대표로 있던 온라인 매체가 있다. 지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고 최근 압수 수색도 받았다. 이 매체 홈페이지는 최근 수해 현장을 찾은 김정은에 대해 “숭고한 위민 헌신의 정신을 천품으로 지니신 총비서님”이라고 했다. “감개무량해 눈물이 앞을 가렸다”고도 했다. 북한에 대해선 “참으로 멋지고 위대한 나라” “영도자도, 인민도 모두 인간 승리의 본보기”라고 했다. 매체는 “미제 침략 세력의 괴수인 윤석열을 끝장내는 것은 가장 중요한 투쟁 과제”라면서 미군 부대 앞 시위 사진을 올렸다. “윤석열 타도, 탄핵” “대북 확성기 당장 중단하라”고도 했다. 북한 정권도 놀랄 내용이다.

 

3만5000여 탈북민의 증언으로 이제 북한이 지옥 그 자체라는 사실을 모르는 국민은 거의 없다. 초등학생들에게 공개 처형 장면을 단체로 보여 공포심을 심어주는 체제가 북한이다. 최씨 매체의 황당한 주장은 반론할 가치도 없지만 그중에서도 어이가 없는 것은 자칭 ‘목사’라는 최씨가 “북한은 종교의 자유를 철저히 보장한다”고 한 말이다.

 

원래 북한 땅에서는 기독교 신앙이 번성했지만 김씨 일가의 종교 탄압은 일제보다 훨씬 가혹했다. 종교인을 재판 없이 처형했고 지금은 성경만 갖고 있어도 처형한다. 탈북민이 중국에서 잡혀 북송될 경우 어떤 고문에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 ‘목사를 만났다’ ‘성경을 봤다’는 것이다. 그 즉시 죽은 목숨이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종교는 아편’이라고 했다. 1968년엔 “종교는 완전히 멸절됐다”고 선언했다. 신(神)이 있어야 할 자리에 ‘김씨 일가’를 올려놨다. 북에는 ‘자유’가 아예 없는데 무슨 ‘종교의 자유’가 있나. 목사라면 북의 종교 탄압에는 분개해야 하는데도 최씨는 거짓과 궤변으로 ‘북한의 종교 자유’를 칭송한다.

 

최씨가 어떤 사람인지는 인터넷만 검색해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때 국보법 위반 혐의로 조사받은 이력도 공개돼 있다. 최씨 관련 문제에서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런 사람이 윤 대통령 부인을 아무런 과정 없이 수차례나 만났다는 사실이다. 대통령 부인의 부친과 친분 있음을 주장했다는 것이 전부다. 대통령 부인은 이런 사람을 대통령 취임식 만찬장에 초대해 대기업 총수는 물론 대통령과도 사진을 찍게 했다. 말문이 막히는 일이다.

조선일보 사설 

 

08.27 北 자폭 드론 실용화 단계, 우리 군은 무슨 준비 하고 있나

▲(평양 노동신문=뉴스1)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 24일 국방과학원 무인기연구소에서 조직한 각종 무인기들의 성능시험을 현지에서 지도했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6일 보도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북한이 자폭 드론(무인기)으로 우리 국군 전차 모형을 타격해 폭파하는 장면을 26일 공개했다. 북한이 2014년 남쪽으로 침투시킨 드론은 조악했다. 상용 카메라를 붙인 수준으로 공격은커녕 정찰 능력도 의심됐다. 그러나 2017년에 이어 2022년 내려 보낸 드론은 중국제를 모방해 진일보했으며 서울 대통령실 인근까지 침투했다.

 

이번 자폭 드론의 형태는 러시아제와 유사하다. 작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 북·러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자폭 드론 5대와 정찰 드론 1대를 선물받았는데 북한이 러시아의 기술을 이전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드론은 핵·위성 기술에 비해 러시아가 넘겨주는데도 부담이 적다. 북 드론이 실질적 안보 위협으로 부상했다.

 

현대전은 드론 전쟁이다.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드론이 맹활약한 데 이어 우크라이나 전황도 드론이 좌우하고 있다. 러시아 병사들은 드론이 무서워 전방 대신 하늘을 쳐다보고 있고, 미국·영국이 제공한 최신 전차가 러시아의 값싼 드론에 파괴되고 있다. 북한이 이를 모두 지켜보고 연구했을 것이다.

 

북은 재래식 전력에서 우리의 상대가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창의적 무기와 새로운 전술 개발에 전력하고 있다. 드론이 대표적이다. ‘수중 드론’도 개발 중이다. 김정은이 2021년 드론 개발을 전략 과제로 명령한 만큼 어떤 드론이 등장할지 알 수 없다.

 

이에 비해 우리 군에서 가장 뒤처진 분야가 드론이라고 한다. 드론 선진국에 비해 10년 이상 뒤처졌다. 실용적이고 가성비 높은 드론을 대량 보급해 실전 훈련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싼 고급 드론을 개발하고 수입하는 데 신경을 더 쓰고 있다. 훈련도 극소수 부대에서 보여주기 쇼를 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조선일보 사설 

 

08-27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이란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우발’의 뜻을 찾아봤다. ‘우연히 일어남 또는 그런 일’, ‘예기치 않게 우연히 발생함’이라고 풀이돼 있었다. 반대말은 ‘고의’라고 소개하고 있다. 사실 한자인 ‘偶發’을 그대로 풀어 봐도 금세 뜻을 알 수 있는 단어다.

 

그런데도 국어사전을 굳이 펼쳐 본 것은 휴가 기간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 올 5월에 발간한 외교안보 분야 회고록을 다시 보면서 생긴 의문을 떨쳐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자신이 재임 중 체결한 9·19 남북 군사합의를 현 정부가 전면 무효화한 데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과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막아 주는 안전핀 역할을 스스로 무력화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 남북 간, 북-미 간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다가도 접경지역에서 우발적인 충돌이라도 발생하면 다시 국면이 얼어붙어서…”, “접경지대에서 빈번히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도발이나 군사적 충돌로 인한 전쟁 위협을 원천적으로 없애는 것이야말로…” 등 우발적 충돌이라는 표현은 회고록 곳곳에 등장한다.

20여 년간 국방부를 출입하면서 북한의 숱한 도발을 취재한 필자로선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주장이다. 단언컨대 북한의 대남 도발은 단 한 번도 우발적으로 발생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고 지휘부의 지시나 묵인 아래 우리 군 장병과 국민의 생명을 노리고 사전에 치밀히 계획한 도발이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은 말할 것도 없고, 군사분계선(MDL)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벌어진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이 ‘의도적 기습’이라는 실체적 증거는 차고도 넘친다. 우발을 가장한 기만술로 우리 군의 대응을 유도한 뒤 남측이 도발했다면서 남남갈등을 노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전에서 산화한 서해수호 55용사를 비롯해 북한 도발에 희생된 우리 국민은 ‘우발적 충돌’의 피해자가 아니다.

과거 북한의 도발 징후를 우발적 상황으로 간과했다가 군은 뼈아픈 대가를 치러야 했다.

2002년 6월 29일에 발생한 제2연평해전이 대표적 사례다. 도발 몇주 전부터 북한 경비정이 잇달아 서해 NLL을 침범했지만, 군은 북한 어선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우발적 월선으로 속단했다. 필자를 비롯한 취재 기자들이 “아무래도 이상하다. 도발 징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지만, 군은 긴장을 풀었다. 결국 북한 경비정이 우리 해군 고속정을 기습 포격하는 도발로 꽃다운 나이의 우리 장병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후과를 치렀다.

2015년 8월 목함지뢰 도발 20여 일 전 북한군 10여 명이 강원 철원 인근 MDL을 침범했다가 아군의 경고사격을 받고 돌아간 것도 ‘도발 예행연습’으로 볼 수밖에 없다. 최전방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켜 우리 군의 대응을 유도한 뒤 이를 구실로 도발을 일삼는 것도 북한의 ‘단골 수법’이다.

그런데도 문 전 대통령이 ‘우발적 충돌’을 언급하는 것은 북한의 선의에 기대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안정을 이룰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그의 회고록을 보면 2018년 9월 평양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수만 명의 평양 시민이 보여준 환대가 진심이었다고 믿는 듯하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가족과 함께 귀순한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남측의 모든 대통령들은 북한에 의해 철저히 속았다. 마지막에 별 수모를 다 받지 않았느냐”고 했다. 그렇게 당하고도 대한민국의 국군통수권자가 북한 정권의 실체를 이다지도 모를 수 있냐는 일갈로 들린다.

이 같은 비판의 책임에서 군도 자유로울 수 없다. 진보정권이 집권하면 대북 유화 코드에 맞춰서 북한의 도발과 위협을 ‘수위 조절’하거나 축소하기에 급급했던 사례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쏜 탄도미사일을 ‘단거리 발사체’라고 발표하고, 구체적인 내용도 비공개로 일관하면서 ‘안보 불신’을 자초했다는 질타를 받았던 교훈을 군은 곱씹어 봐야 한다.

미사일 발사와 무인기 침투,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교란에 이어 대남 오물풍선까지 잇달아 살포하는 등 북한의 대남 도발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달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삐라)을 빌미로 “새로운 대응”, “처참하고 기막힌 대가”를 위협한 점에서 지금껏 보지 못한 허를 찌르는 도발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한민국을 ‘변할 수 없는 적’으로 규정하고 선제 핵공격을 위협하는 북한 정권이 변하지 않는 한 군은 도발 대비에 한 치의 빈틈도 보여선 안 될 것이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08.28 병장과 하사 월급 역전되면 군대가 유지되겠나

▲김선호 국방부차관이 지난 2일 육군부사관학교를 방문해 국방부 및 각 군 인사관계관들과 '부사관 복무여건 개선'을 위한 간담회를 갖고 있다. /국방부 제공

 

내년 병장 월급이 처음으로 200만원을 넘어선다. 정부는 내년 병장 월급을 125만원에서 150만원으로 대폭 올리기로 했다. 전역 때 자산 형성 지원금 55만원까지 합치면 월 205만원이 된다. 이는 내년 하사 1호봉 기본급(193만원)보다 높고, 각종 수당을 합한 실급여와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군 내부에선 ‘병장과 하사 월급이 역전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크다고 한다.

 

올해 하사 월급은 각종 수당을 합쳐 252만원이지만, 각종 공제를 뺀 실수령액은 200만원대 초반이다. 국회의원실이 공개한 하사 3호봉의 7월 급여 명세서를 보면 ‘기본급+수당’에서 세금과 건강·연금보험료 등을 뺀 액수는 203만여 원이었다. 영외 거주 간부는 영내 제공 식사비까지 매달 20만원가량 따로 내야 한다. 반면 일반 병사는 세금이 없어 월급과 실수령액이 같다.

 

국방부는 내년 하사 월급이 273만원으로 올라 병장과 하사의 월급 역전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선 초급 간부들은 “하사 월급은 3% 인상에 그친 반면 병장 월급은 24%나 급등해 사실상 차이가 없어졌다”고 말한다. 초급 간부는 일반 공무원 월급 인상률에 묶였는데 병장 월급은 4년 만에 3.3배가 됐으니 상대적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다. 박봉에 시달리는 데다 주거, 근무, 자녀 교육 여건도 열악하다. 혜택은 적고 책임만 많다.

 

이 때문에 초급 간부의 군 이탈 현상이 심각하다. 경력 5년 이상 장교·부사관 9500명이 지난해 군을 떠났다. 전년보다 24% 늘어난 역대 최다였다. 2015년 4.8대1이던 학군장교(ROTC) 지원율은 작년 1.8대1로 떨어졌다. 전국 대학 학군단 108곳 중 81곳이 정원을 못 채웠다. 1호 학군단인 서울대는 지원자가 5명뿐이었다. 육·해·공군 사관학교 지원율도 매년 떨어지고 자퇴생은 3년 새 2배로 늘었다. 부사관 선발 인원도 4년 새 25% 감소해 육군은 정원의 절반도 못 채웠다. 의무 복무 기간은 긴데 월급 차이는 없으니 누가 초급 간부를 하려 하겠나.

 

초급 간부는 군의 중추이자 핵심이다. 전쟁의 승패는 소대장·중대장·부사관의 자질이 가른다. 이들이 사기가 꺾이거나 군을 떠나면 병사가 아무리 많아도 오합지졸이다. 최첨단 스텔스기나 이지스함도 무용지물이다. 병사 월급 200만원대 인상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지만 숫자에 집착할 일은 아니다. 이젠 초급 간부들 처우를 개선하고 자질을 높이는 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8.28 중국 방벽은 2.5m, 북한은 2.3m… 홍수 나면 모든 물은 신의주로 온다 

이번 압록강 홍수 피해는 北 최고 지도자의 직무유기가 원인
고질적 후진국형 人災… 10년간 기상 재해로 1600명 넘게 숨져
핵·미사일 개발 대신, 그 돈으로 홍수 방지 대책부터 세워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채 보트를 타고 신의주시 침수 지역을 시찰했다. 조선중앙통신이 31일 공개한 사진에서는 군인 2명만 구명조끼를 착용했고, 김 위원장과 김덕훈 총리 등 다른 인물들은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모습이 확인됐다. 지난 29~30일 신의주시 피해 현장에서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2차 정치국 비상확대회의가 진행되어 평안북도와 자강도의 홍수 피해에 대한 긴급 복구 대책을 논의했다./노동신문 뉴스1

 

북한은 대북 확성기 방송에 대해 극도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그 이유 중에는 의외로 날씨 예보도 있다. 당국은 방송 내용이 거짓 선동을 위한 가짜 뉴스라며 병사와 주민들을 교육했다. 하지만 남쪽에서 들리는 날씨 예보가 북한 기상수문국의 예보보다 정확했다. 확성기 방송으로 “인민군 여러분, 오늘 오후에 비가 오니 빨래를 걷으세요”라고 하면 북한군 부대에서 실제로 빨래를 걷었다고 한다. 날씨 예보에 대한 신뢰는 다른 방송에 대한 호기심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확성기 방송은 점차 북한 정권의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북한 기상수문국 출신으로 전방에서 근무했던 탈북자 K의 증언이다.

 

모든 국가가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으로 폭우와 홍수 및 가뭄 등을 경험하지만 사전 대응 체계에 따라 피해는 천양지차다. 대응 체계가 부실한 북한은 기상이변에 의한 재해가 심각한 후진국 국가로 분류된다.

 

이번 여름 평안북도 신의주와 의주군 및 압록강 상류 자강도 일대에서 발생한 수재(水災)는 북한의 재해 대응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김정은이 이달 초 다닥다닥 설치된 천막 숙소를 찾아, 아이들을 끌어안고 주민들의 손을 잡아주는 모습이 영상으로 소개됐다. 천막에 빽빽이 들어찬 수재민들은 김정은 전용 열차에 싣고 온 구호 물품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수해 복구 기간 어린이 등 1만5000여 명을 평양으로 데려가 보호하겠다는 중대 조치와 피해 복구를 약속했다. 김정은은 애민 이미지를 부각하려고 수해 아이들을 만나고 평양에서 특식을 제공했지만 깡마른 아이들은 당황한 모습이다. 1500여 명 이상의 사망 및 실종자를 감추기 위한 민심 조작 전술이다.

 

당국은 김정은의 애민 지도자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고무 보트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을 조선중앙TV로 내보냈다. 강물이 불어난 상태가 예사롭지 않아 혹시 보트가 나뭇가지에 걸려 전복될 경우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김정은이 수영을 할까 하는 호기심으로 여러 차례 화면을 돌려 보았다. 나뭇가지에 이마가 가볍게 부딪히는 경미한 접촉 사고(?) 이외에 별 특이 사항은 없었다. 김정은이 연설한 전용 열차에는 출시 4개월 된 3억원짜리 신형 벤츠 마이바흐 전용차가 실려 있었다. 차량 번호판 넘버는 ‘7·271953′였다.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일을 의미했다. 가난이 덕지덕지 붙은 국경 지대 수재민들에게 웅장한 마이바흐 전용차는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이라 놀란 표정들이었다.

 

북한의 수재 대응책 중에서 특이한 부분은 남한에 대한 이례적인 비난이다. 김정은은 “한국 쓰레기 언론들은 날조 자료를 계속 조작해내면서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라고 남측 언론들을 맹비난했다. 그는 “피해 지역 실종자가 천 명이 넘는다느니, 구조 헬기가 여러 대가 추락했다는 허위 보도를 하고 있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특히 “수해 인명 피해는 한 명도 없다”고 항변했지만 현장에서는 매일 시신을 치우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위성사진과 방송에 나타난 침수 피해를 과장 왜곡 보도를 할 이유도 없다. 사태가 심각하니 오히려 남한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폭우로 침수된 북한 신의주·의수군 수해 현장 /노동신문 뉴스1, 그래픽=김성규·Midjourney

 

김정은이 목소리를 높인 대남 비난의 저의는 두 가지다. 우선 구체적인 피해 실상이 외부로 알려지는 데 대한 불안감과 열등감의 발로다. 일반 주민들이 알기 어려운 남측 보도를 최고지도자가 직접 반박하는 것은 민심 이반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내부 결속을 해칠 가능성이 있는 조짐은 사전에 철저히 차단하는 것이 시급하다. 김정은은 정부가 지원 의사를 밝힌 바로 이튿날 “적은 변할 수 없는 적”이라며 “이러한 모략 선전에 집착하는 서울 것들의 음흉한 목적은 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작정 자력 복구를 강조했다.

 

다음은 자연재해가 빈발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역할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현장을 둘러보고 빈약한 구호 물품을 던져 주는 것 이외에 애민 지도자가 추가로 하는 일은 없다. 상당한 예산을 투입하여 기상 예보 체계를 개선하고 제방 구축 및 관개 시설 개선 등 종합적인 홍수 관리 대책은 구호에 불과하다. 미사일 등 엄청난 무기 개발 예산을 전용하여 근본적인 홍수 대책을 추진하는 과업은 절대 하지 않으니 기상 재해는 반복된다. 특히 밀가루 등 구호 물품을 푸틴 대통령이 보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평양 수뇌부가 강조하는 ‘애민’은 허망해졌다.

 

과거부터 압록강 위화도 등 의주 일대는 홍수 침수 지역으로 유명했다. 큰 비가 올 때마다 서해 만조로 물이 역류하여 제방이 무너지고 저지대가 침수되는 피해가 발생해서 중국은 단둥 쪽 홍수 방지 방벽을 2.5m로 높였다. 반면 신의주 쪽은 2.3m라 홍수가 나면 모든 물이 신의주로 밀려들어 온다. 압록강 홍수 피해는 최고지도자의 직무 유기가 원인이다.

 

북한의 자연재해는 고질적인 연례 행사다. 과거 1990년대 중반 홍수와 왕가뭄에 의한 기근으로 최소 100만명 이상이 사망한 ‘고난의 행군’ 시기는 제외하더라도 최근 3년 동안에만도 홍수, 가뭄, 해일 및 태풍이 계속 발생했다. 세계재해정보센터 통계에 따르면 1991∼2023년 간 북한의 기상 재해는 총 43회 발생하여 연평균 1.3회 수준이다. 2003년 이후 10년간 기상 재해로 인한 총 사망자 수는 1672명으로 연평균 167.2명 수준이다. 미확인 실종자까지 포함하면 사망자는 배로 증가한다.

 

자연재해는 사전 대응이 우선이다. 대책이 부실하면 자연재해에 그대로 노출되고 미봉책으로 대응한다. 김정은은 2020년 9월 태풍 ‘마이삭’으로 피해가 발생한 함경도 지역을 시찰한 뒤 평양시 노동당원 1만2000명으로 구성된 ‘최정예 수도 당원 사단’을 현장 복구에 파견했다. 하지만 피해는 매년 반복되며 북한 당국은 자연재해에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는 만큼 무대책의 후진국형 대형 인재(人災)는 불가피하다.

 

북한은 1975년에 세계기상기구(WMO)에 가입했으나 국제 협력은 제한적이다. 기상 정보를 민감한 군사 정보로 여기다 보니 외부와 기상 정보 공유가 어렵다. 북한 기상수문국은 기상 예보율 정확성이 90%라고 선전하고 있으나 주민들의 신뢰는 바닥이다. 북한의 기상 예보는 자체 정보를 토대로 세계기상기구(WMO)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한다. 러시아제 구호 물품을 가지고 현장을 방문하기보다는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지하고 그 돈으로 홍수방지 대책을 세우는 것이 흉흉한 민심을 달래는 첩경이다. 평양은 성난 민심이 언젠가 수령의 고급 외제 승용차를 한 번에 뒤집어 버릴 수 있다는 동서고금의 전례를 망각해서는 안된다.

조선일보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08.28 정보사 군무원, 7년 전 中에 포섭... 1억6000만원 받고 기밀 유출

 국방부검찰단은 28일 “정보사 군무원 A(49)가 2017년 중국 정보요원(추정)에게 포섭돼 군사기밀을 유출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A는 군검찰 조사에서 2017년부터 군사기밀을 다수 유출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다만 조사과정에서는 2022년 이후 유출한 30건만 확인이 가능했다고 한다.

 

▲자료=국방부

 

국방부검찰단은 지난 27일 A를 군형법상 일반이적,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군사기밀보호법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이번 사건을 수사해온 국방부검찰단 관계자는 28일 기자들과 만나 “A가 수차례에 걸쳐 억대 금품을 차명계좌로 수수하면서 군사기밀을 유출했다”며 “정보사 내부 보안 취약점을 악용해 군사기밀을 지속 탐지·수집·누설해왔다”고 했다.

 

정보사에서 팀장 역할을 맡고 있던 A는 자신이 취급 가능한 군사 기밀과 정보사에서 ‘대출’ 형태로 확보한 군사기밀을 메모하거나 무음카메라로 촬영해 영외 개인 숙소에서 중국 인터넷 클라우드 서버에 올리는 방식으로 기밀을 누설했다고 한다. 또 인터넷 게임 음성 메시지를 활용해 중국 측에 정보를 유출하기도 했다.

 

검찰단 관계자는 “2022년 6월부터 비문 12건, 음성 메시지 방식으로 18건 총 30건의 기밀을 유출한 것이 확인됐다”며 “본인은 2017년 연말부터 기밀유출을 해왔다고 진술했는데, 관련 내용은 현 시점에서는 확인이 제한된다” 했다. A가 2022년부터 유출한 기밀에는 정보사 일부 블랙요원 신상정보, 정보사령부 전반적 임무와 조직 편성, 우리 정보부대 작전 방법 및 계획, 특정 지역에 대한 정세 분석 등이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A는 초기 조사에서 “2017년 중국 공항에서 중국 정보요원에게 체포되는 과정에서 한국에 있는 가족의 신변 위협을 당해 회유됐다” 주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에는 “중국 요원에게 돈을 더 주면 자료를 더 보내겠다”는 말을 하며 적극성을 보였다. 군검찰 관계자는 “사실상 돈이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A가 중국 측에 약 40회 돈을 요구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했다.

 

군검찰이 A의 차명계좌를 분석한 결과 2019년 이후 약 1억6200만원을 받은 정황이 발견됐다고 한다. 2017년~2018년에는 A가 중국을 방문할 당시 현금을 건네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물증이 없어 해당 기간 받은 금품 액수는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군검찰은 전했다.

 

A 진술에 따르면 그를 포섭한 중국 요원 B는 공안이 아닌 정보기관 요원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조선족 말씨를 쓰는 남성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가명을 사용하고 있어 B의 정확한 신원 등은 파악하지 못했다고 군검찰은 전했다.

 

한편 사건을 초동 수사한 국군방첩사령부는 지난 8일 A를 군검찰에 송치할 때 북한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사람에게 적용하는 군형법상 간첩죄도 포함했다. 하지만 기소 단계에서는 간첩죄가 빠졌다. 군 검찰은 “구속 기간 내에 북한과의 연계성을 입증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군검찰은 국과수 등에 요청한 추가 분석 자료 등을 통해 북한과의 연계성이 입증될 경우 간첩죄 적용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군검찰은 현재까지 A의 단독 범행으로 보고 있다.

 

A는 2017년부터 기밀유출을 해왔지만 방첩당국은 지난 6월 기밀유출 사실을 인지해 수사에 나섰다.

 

군 검찰은 A의 범행을 장기간 포착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A 자체가 정보활동 전문가인데다 수법이 워낙 치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군 검찰은 방첩사가 사건을 자체 인지해 2개월 여만에 혐의를 규명했고, 이 과정에서 A가 삭제한 2000여개의 음성 메시지를 포렌식 복원하는 등 강화된 방첩역량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양지호 기자 

 

08.29 군 기무사 해체 뒤 정보사 기밀 집중적으로 팔아 넘겨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대북 첩보 기관인 국군정보사령부 군무원이 2017년 중국 정보 요원 추정 인물에게 포섭돼 돈을 받고 우리 비밀 요원 정보 등을 넘겼다고 군 검찰이 27일 밝혔다. 그는 중국 공항에서 체포돼 가족 관련 협박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도 부대에 신고하지 않고 중국을 여러 차례 오가며 정보를 팔았다. 40여 차례에 걸쳐 4억원을 달라고 했고 실제 받은 돈은 1억6000여만원이다. “돈을 더 주면 자료(정보)를 더 주겠다”는 말까지 했다. 비밀 요원은 신분이 드러나면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10년 이상 쌓은 정보망도 한순간에 무너진다. 다른 사람도 아닌 정보사 요원이 동료 목숨을 돈에 팔아넘기고 국가 정보망을 통째로 흔드는 반역 행위를 7년이나 해온 것이다.

 

정보사는 기밀을 취급하는 기관인 만큼 본인 담당이 아닌 정보에는 접근 자체를 제한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문제의 군무원은 다른 부서 기밀문서도 ‘대출’이라며 쉽게 접근했다. 메모를 하거나 정보 부대에서 금지한 ‘휴대전화 무음 앱’을 깔아 사진을 찍은 뒤 외부로 빼돌렸다. 이런 간첩 행위가 7년간 반복됐는데도 정보사는 모르고 있었다. 특정인이 다른 부서 기밀을 계속 요구하는데도 의심하지 않고, 휴대폰 보안 검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세계에 이런 정보 부대도 있나. 간판에 ‘정보’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유출된 군사 기밀은 북한으로 대거 넘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군 검찰은 “군무원이 접촉한 중국 요원은 실제 북한 요원일 가능성이 있다” “북한 정보기관과 연계됐다고 볼 사정이 있다”고 했다. 대북 첩보 기관의 기밀이 중국에 넘어간 것과 북한 손에 직접 들어간 것은 차이가 크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기존 대북 정보 활동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정보사 조직과 운영 방식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꿔야 한다.

 

정보사 군무원이 정보를 본격적으로 빼돌린 것은 2018년부터다. 그해 문재인 정권은 군 방첩과 보안 감시를 하는 국군기무사령부를 해체했다. 이어 국정원의 대공수사권도 없앴다. 작년 초 간첩 혐의 등으로 구속된 민노총 전현직 간부들이 북한 공작원들에게 포섭된 것이 대부분 문 정부 시절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조선일보 사설

 

08.29 尹 "6·25때도 반국가·종북세력이 앞잡이 노릇…경계심 가져야"

윤석열 대통령은 8·15 경축사 등에서 언급한 ‘반국가 세력’이 누구를 지칭하느냐는 물음에 “간첩활동을 하거나 국가기밀을 (적국에) 유출하거나, 북한정권을 추종하면서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열린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시스

 

윤 대통령은 29일 국정브리핑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한 뒤 “오래 됐기 때문에 연세 드신 분들이나 알 수 있을 것”이라며 “6·25 때도 북한군이 남침했을 때 반국가·종북세력들이 앞잡이를 하면서 국민들 힘들게 하는데 많이 많이 가담했다. 8·15때 말씀드린 것도 그런 차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요새 전쟁을 보면 군사적 공격에 앞서 가짜뉴스로 온라인에서 공격을 먼저 시작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도 그랬듯 세계 어느 나라나 하이브리드 전쟁을 염두에 두고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우리(국민)도 100% 대한민국 헌법과 국체에 충성하는 분만 있는 게 아니니, 그런 사람에 대해 늘 경계심을 가져야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선일보 양지호 기자

 

08-29 ‘간첩죄’ 범위 확대할 입법 시급하다

이상환 한국외국어대 교수, 前 한국국제정치학회장


국군정보사령부 요원이 중국 정보요원에게 포섭돼 최소 30건의 군사기밀을 유출하고, 그 대가로 1억6000여만 원을 받았다고 한다. 정보사 요원의 이적·간첩 행위로 인해 해외에서 신분을 숨기고 활동하는 우리 ‘블랙’ 요원의 신상 정보 등을 포함한 2·3급 군사기밀이 중국 요원에게 넘어간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점은, 해당 요원이 2017년부터 포섭돼 이 같은 활동해 왔는데도 올해가 돼서야 상황 파악을 했다는 사실이다.

정보 업무를 수행하는 요원의 해외 업무 수행에는 늘 위험이 따르고, 때로는 체류국 정부와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정보사 해당 요원은 중국 당국에 의해 체포·포섭된 후 중국 정보요원의 지시를 받고 각종 매체를 동원하는 수법으로 대담하게 간첩 행위를 해 왔다. 특히, 수사 당국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여러 계정으로 클라우드에 접속하고 다양한 비밀번호 설정 및 대화 기록 삭제 등 치밀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국방부검찰단과 국군방첩사령부는 해당 요원을 군형법상 일반이적·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및 군사기밀 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군형법상 간첩죄는 기소 단계에서 적용되지 않았다. 간첩죄를 적용하려면 ‘적(북한)’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북한과의 연계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이제 간첩죄를 오늘에 맞게 적용하기 위해 1953년 형법에 명시된 조항(제98조)을 개정해야 한다. 예컨대, 간첩죄의 적용 대상을 ‘적국’에 한정하다 보니 우호 관계에 있는 외국에 군사기밀을 유출하더라도 간첩죄 적용이 어렵다. 또한, 적국이 아닌 외국 정보기관의 간첩 활동이 당국에 포착되더라도 간첩죄 적용이 쉽지 않다. 오늘날 선진국 중 간첩죄를 적국에 한정해 적용하는 국가는 드물다. 간첩 행위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무한대결의 시대에 현실에 안 맞는 법 조항으로 인해 국가안보가 위협 받아서는 안 된다.

지난해 7월 간첩 행위의 상대를 ‘적국(북한)’으로 한정한 형법 조항을 개정해 ‘외국 정부 또는 외국인 단체에 소속된 외국인’ 등으로 확대하려던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제동이 걸렸다. 당시 법원의 우려로 법사위 통과가 무산되면서 중국·러시아 등의 외국인 간첩들이 우리나라 국가기밀을 수집하는 등의 행위를 처벌할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오늘날 각국 정보기관원들이 들어와 온갖 정보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번 정보사 요원에 의한 군사기밀 유출 사태를 계기로 간첩 행위를 간첩죄로 처벌하지 못하는 현행 간첩죄 조항 개정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아울러 최고의 보안이 요구되는 정보사의 허술한 보안 체계 실태가 이번 기밀 유출 사건으로 고스란히 드러나서 이에 대한 전면적인 개선도 요망된다.

한편, 지난달 미국 연방 검찰이 한반도 전문가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을 기소하면서 우리의 대미 정보활동도 문제점이 드러난 만큼 이에 대한 시정 조치도 필요해 보인다. 이번 정보사 요원의 군사기밀 유출 사건을 계기로 이적·간첩 행위에 대한 제도 정비와 철저한 보안 체계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지금이 이들 모두를 바로잡을 적기이다. 더 미뤄선 안 된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