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上萬事 2024-07/ 07.02 유튜브 공화국 - 07-31 “의대 증원은 현재와 미래세대 위한 것… 개혁엔 인내심 필요하다”
世上萬事 2024-07/
07.02 유튜브 공화국
사용자·시간 압도적 1위
혐오 편가르기 조장하고
광고·음악·쇼핑 등
시장 독점 갈수록 심화
국내 기업 역차별 불만도
거대 플랫폼 폐해 막을
최소한의 방어막은 있어야

▲유튜브 로고를 배경으로 한 남성이 스마트폰을 하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한국인은 이제 유튜브로 뉴스를 본다. 글을 읽는 것보다 영상을 보는 게 편한 데다 마법 같은 유튜브 알고리즘은 내 구미에 맞는 콘텐츠만 골라서 보내준다. 내가 민주당 열성 지지자면 대통령과 여당을 공격하는 영상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식이다. 한번 빠져들면 점점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찾게 되는 중독 현상, ‘토끼굴 효과’가 나타난다.
유튜브의 세계에서는 사실(fact)과 다양한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불편한 진실보다는 누가 우리 편이냐가 더 중요하다. 여기에선 대통령을 “무식한 주정뱅이”라고 모욕해도, 야당 대표에게 “칼 맞은 김에 죽지”라고 저주해도 반박하는 사람이 없다. 같은 편끼리만 보는 영상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더 자극적으로, 더 극단적으로 몰아세울수록 박수를 받는다. 이런 콘텐츠를 반복해서 접하다 보면 편향성은 갈수록 강해지고 때론 가짜 뉴스가 사실로 둔갑한다.
한국인의 유튜브 중독은 뉴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출퇴근 지하철에서는 유튜브 음악을 듣고 점심때는 유튜브 맛집을 찾아다니고 유튜브로 주식·요리 공부를 하고 주말엔 15분~20분짜리 영화 리뷰 영상을 몰아 보는 게 일상이 됐다. 학교 선생님들도 책이 아닌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고 숙제를 하라고 한다. 한국의 유튜브 월간 사용자는 4547만명. 1인당 평균 사용 시간이 43시간으로 종주국인 미국(24시간)을 크게 앞선다. 토종 메신저 카카오톡(12시간), 네이버(9시간)도 이미 멀찌감치 따돌렸다. 전 국민 플랫폼인 유튜브는 수만 명의 유튜버들이 대박의 꿈을 좇아 쉴 새 없이 올리는 동영상을 기반으로 광고, 디지털 음원, 쇼핑으로 독점력을 확대하고 있다.
유튜브가 한국 인터넷 시장을 장악한 데에는 세계 최고의 한국 IT 인프라가 한몫 단단히 했다. 전 국민이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고 통신 3사가 수십조 원을 투자해 세계 최초로 5G 전국 통신망을 깔아준 덕분에 스마트폰에서도 초고화질 영상을 즐길 수 있다. 유튜브의 국내 통신망 트래픽 비율은 28.6%로 넷플릭스(5.5%), 메타(페이스북·4.3%) 네이버(1.7%), 카카오(1.1%) 등 경쟁 업체들을 압도한다. 하지만 유튜브는 막강한 콘텐츠 파워를 무기로 국내외 인터넷 기업 중 유일하게 통신망 사용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게다가 서슬 퍼런 규제의 칼날도 유튜브 앞에서는 한없이 무뎌진다. 국내 기업들은 정부 가이드라인이나 지침 형태의 수많은 규제에 시달리지만, 유튜브는 해외 기업이라는 이유로 강제 규정이 아닌 가이드라인을 요리조리 피해간다. 국회 역시 CEO의 국감 증인 채택을 앞세워 국내 기업들은 쥐 잡듯이 잡으면서도 유튜브가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숙주(宿主) 역할을 하는 것은 애써 외면한다. 또 유튜브가 광고 없이 동영상을 볼 수 있는 프리미엄 서비스에 음원 끼워 팔기를 해 단숨에 국내 디지털 음악 시장을 장악하고, 프리미엄 서비스 가격을 40% 넘게 올려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한 인터넷 기업 임원은 “최근 방송통신위원회가 유튜브에 밀려 망해가는 국내 OTT(동영상 서비스) 4사 대표를 불러 가격 인상 자제를 당부했지만, 정작 가격 인상을 주도한 유튜브나 넷플릭스에는 아무 말도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국내 기업 역차별이라는 불만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해외에서는 빅테크를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유럽연합이 유튜브·아마존·알리 등 20여 개 초거대 플랫폼 기업에 대해 불법 콘텐츠 유통 방지, 소비자 보호, 경쟁 환경 조성 의무를 부과하는 법안을 제정한 데 이어 영국·일본도 유사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가짜 뉴스나 유해 제품의 온라인 유통에 대해 사용자·생산자 탓 말고 플랫폼 스스로가 책임지고 관리하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공정거래위원회가 주도해 거대 플랫폼의 독점적 지위 남용을 제어하는 법안 제정에 착수했다가 총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보류된 상태다. 하지만 시장 경쟁과 중소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독점,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가짜 뉴스 유포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방어막은 마련해야 한다. 이대로면 빅테크가 한국 대통령을 뽑을 날이 멀지 않았다.
조선일보 조형래 부국장
07.02 '초등 의대반 금지법' 제안까지 나온 사교육 광풍

▲의대 증원 법원 결정이 나온 가운데 지난 17일 서울 시내의 한 학원가에 의과대학 준비반 안내문이 붙어 있다. 서울고등법원이 의대생과 교수, 전공의 등이 의대 정원 2천명 증원·배분 결정의 효력을 중단을 요구하며 정부를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의 항고심에 대해 기각을 결정함에 따라 27년 만의 의대 증원 최종 확정을 앞두게 됐다. 2024.05.17. /뉴시스
교육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전국적으로 초등 의대반이 성행하는 등 과도한 선행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며 ‘초등 의대반 방지법’ 제정을 제안했다. 사교육 광풍이 어제오늘의 현상은 아니지만 이제 이를 막을 법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이 단체는 10년 전 선행학습금지법을 제안한 곳이다. 실제 입법까지 됐다.
이 단체는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과 맞물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의대반이 전국적으로 과열·확산하는 추세”라며 “일부 학원은 초5부터 고2까지 7년간 배울 수학 내용을 초5학년 단 6개월 만에 끝내고 있는데 이는 정상 학교 교육과정 대비 14배 속도 선행 학습”이라고 했다. 초등생이 고교 수학의 개념과 논리에 대해 무엇을 진정으로 이해하겠나. 남보다 한발 앞서 문제 풀이 기계를 만들겠다는 것뿐이다. 선행 학습 과열로 학생들 역량이나 우리나라 학문 수준이 높아졌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요즘은 유치원생이 미적분을 배운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광풍’이란 말이 지나치지 않다.
현행 선행학습금지법은 학교 공교육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사교육은 무방비 상태나 마찬가지다. 일부 학원이 이런 허점을 노려 초등 의대반 같은 과정을 만들어 학부모 불안감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끝 모를 선행 학습 경쟁은 과중한 학습 부담을 유발해 아이들의 정상적인 정서 발달을 저해할 뿐 아니라 사교육비 부담도 가중시키고 있다. 학부모들이 지난해 학원이나 과외, 인터넷 강의 등에 쓴 돈이 무려 27조원이 넘었다. 이런 감당하기 어려운 사교육비가 교육을 왜곡하는 것은 물론 출생률 저하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도 작용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00년 과외 금지 조치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 때문에 선행학습 같은 사교육 내용까지 법으로 규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죽하면 초등 의대반 금지법 제안까지 나오게 됐는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7.02 서울시청 앞 역주행 9명 사망… "검은색차 지그재그로 인도 돌진"
4명 부상… 68세 운전자는 "급발진" 주장

▲1일 저녁 서울 중구 시청역 교차로에서 60대 남성이 몰던 차가 인도로 돌진해 최소 15명 사상자가 발생, 구조대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뉴스1
1일 오후 9시 30분쯤 서울시청 인근 교차로에서 검은색 대형 승용차를 운전하는 68세 남성이 보행자를 쳐 9명이 사망하고 4명이 다치는 사고가 났다. 경찰·소방 당국은 이날 “해당 운전자가 횡단보도와 인도를 걸어가는 보행자 등을 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운전자는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은 음주운전·약물 여부 등을 조사 중이다.
이날 사고가 발생한 시각은 저녁 식사 시간이 끝나고도 시간이 한참 지난 뒤였다. 목격자 진술을 종합하면, 플라자 호텔 방향에서 시청 방향으로 서진하던 이 차량은 교차로에 진입한 뒤 갑자기 지그재그로 돌진, 횡단보도와 인도의 보행자를 덮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목격자 신모(27)씨는 “검은색 차량이 횡단보도 건너던 사람들은 물론, 인도에 있던 사람들도 쳤다”고 했다. 길에선 사람들이 쓰러지고, 뒤늦게 출동한 구급대원들이 심폐소생술을 하는 등 아비규환이었다고 신씨는 말했다.

▲1일 오후 9시 28분쯤 차량 역주행 사고가 발생한 서울 중구 시청역 교차로에서 경찰이 차량과 보행자 통행을 통제하고 있다. 사고 차량이 인도를 덮치면서 가드레일 30여m가 부서지거나 휘여 있었다. /박상훈 기자
또 다른 목격자 김모(54)씨는 “웨스틴조선호텔 쪽에서 ‘다다다다’ 하는 소리가 나서 보니 차량이 역주행을 해서 가드레일은 물론, 사람도 다 쓸어버리고 있었다”고 했다. 보행자들은 ‘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가게 등 안쪽으로 도망갔지만 미처 피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변을 당했다고 한다. 목격자들은 “시청 앞에서 집회 관련 대기 중인 전경들이 마구 뛰어가고, 구급차가 요란스럽게 달려왔다”고 했다. 횡단보도 여기저기서 심정지된 사람들이 널려있고, 이들에게 구급대원들이 달려갔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여기저기서 “어떤 검은색 차가 역주행을 했어요!” “마구 역주행하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쳤어요!”라는 비명이 들려왔다고 한다.
인근 인도를 걸어가던 이모(64)씨는 “갑자기 쿵! 소리가 나더라”며 “사거리에서 차가 밀려 나가떨어지는 모습이 보일 정도였다”고 했다. 이씨는 “사거리에 차량이 일렬로 있었는데, 가드레일은 박살이 나 있고, 모두 범퍼가 찌그러져 있었다”고 했다. 70대 운전자가 고통스러워하고 있었고, 그의 아내로 보이는 여성이 울고 있었다는 목격담도 있었다. 한 편의점 앞에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있었는데, 여기서 피해가 대량 발생한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1일 오후 9시 28분쯤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폴리스라인을 친 채 사고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이날 사고로 9명이 숨지고, 중경상 4명 등 총 1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경찰 관계자는 “60대 운전자가 차량 급발진으로 인한 사고를 주장하고 있다”고 했다. /뉴시스
시민 최모(70)씨는 “시청 근처 갑자기 쾅! 소리가 나서 도로변으로 나와 봤더니, 차끼리 엄청나게 충돌했더라”며 “소리만 듣고도 큰 사고라는 것을 직감했다”고 했다. 그는 “2~3명이 도로에 튕겨 나가서 도로에 널브러진 채 쓰러져 있는 모습을 봤다. 심폐소생술로도 소용이 없어서, 흰 천으로 덮여 있더라”고 했다. 박모씨는 “사고 차량이 보행자고 뭐고 다 밀고 가더라”며 “참사 이후에도 조수석에 탄 여성은 운전자만 살리려 하고 다른 피해자들을 돕지 않았다”고 했다.
사고 직후 현장은 구급대원과 차량 등이 엉켜 아비규환이었다. 여기저기서 비명과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시민들이 오가던 인도의 가드레일은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다. 경찰은 “급발진을 주장하는 운전자 상태를 비롯, 여러 상황을 염두에 두고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사망자 시신은 국립중앙의료원·강북삼성병원·신촌세브란스병원·서울대병원·순천향대병원·고대안암병원·적십자병원에 분산 안치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사고를 보고받고 행정안전부 장관과 소방청장에게 “피해자 구조 및 치료에 총력을 다하라”고 긴급 지시했다고 김수경 대통령실 대변인이 밝혔다.
이번 사고와 관련, 고령자 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노인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20년 3만1072건에서 지난해 3만9614건으로 3년 새 27.5%(8542건) 증가했다.
지난해 3월 전북 순창에서는 70대 운전자가 몰던 화물 트럭이 농협 조합장 투표 현장을 덮쳐 4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운전자는 경찰 조사에서 “브레이크를 밟으려다가 가속페달을 밟았다”고 진술했다. 지난 2월에는 서울 연신내역 인근 도로에서 79세 운전자가 몰던 승용차가 9중 연쇄 추돌 사고를 냈다. 횡단보도 근처에서 보행자 한 명을 친 뒤에도 계속 달려 가드레일을 산산조각 내고 앞차를 잇따라 들이받았다. 당시 70대 남성이 사망하고 10여 명이 다쳤다. 이 운전자는 음주 상태가 아니었지만 “사고 당시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경찰에 말했다고 한다.
이에 실효성 있는 고령 운전자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매년 증가하고 있는 노인 운전자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운전면허증 자진 반납을 유도하고 있다. 서울시는 10만원짜리 교통 카드, 충북 옥천은 30만원 상당의 지역상품권 등을 답례로 준다. 하지만 경찰청에 따르면, 운전면허증 자진 반납률은 2% 수준에 불과하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내년에 65세 이상 운전자가 498만명이 될 것으로 추산했다.
조선일보 서보범 기자 고유찬 기자 박진성 기자 장윤 기자
07-02 승진한 날… 상받은 날… 역주행에 쓰러진 ‘삶’

▲추모의 국화꽃 1일 밤 차량 역주행으로 9명이 숨지고 6명이 다치는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에 2일 오전 사망자를 추모하는 국화가 놓여 있다. 백동현 기자
■ ‘남의 일 같지 않은’ 시청역 참변
사망 9명 모두 30 ~ 50대 남성
은행원 4명 승진 회식 뒤 사고
시청 팀장은 우수팀 표창받아
1일 밤 서울 중구 시청역 부근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9명이 숨지고 6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가 발생한 가운데, 사상자 상당수가 도심 한가운데서 회식을 하거나 퇴근하고 귀가하던 중 참변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사고를 낸 A(68) 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고 사고 원인 규명에 착수했다.
2일 문화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시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던 김모(50) 씨는 자신의 팀이 ‘우수팀’으로 선정돼 상을 받은 당일 참사를 당했다. 시 청사 방호를 총괄하는 업무를 맡고 있던 김 씨는 밤낮없이 일하는 성실한 팀장이었다고 한다. 팀장으로 발령받은 지 6개월 정도 된 김 씨는 업무량이 많은데도 맡은 일을 성실히 처리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날마다 시위가 열리는 시 청사 앞을 관리하는 업무를 도맡는 등, 공휴일도 없이 일에 매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광장 운영·관리 업무를 하던 김 팀장은 시 청사 앞 ‘이태원 참사 분향소’를 성실히 관리하고 현장에서 유가족들과도 소통을 잘했다”며 애통해했다.
이번 사고 사망자들은 모두 30~50대 남성이었다. 이중 은행 직원 4명은 동료의 승진과 인사발령을 축하하기 위해 함께 저녁 식사를 한 뒤 보행 신호를 기다리다 참변을 당했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는 주차 관리 요원 3명도 이날 함께 생명을 잃었다. 시민들은 퇴근 후 회사원들이 몰리는 도심 ‘먹자골목’에서 발생한 이번 사고에 대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날 경찰은 차량 운전자 A 씨에 대해 음주·마약 정황은 없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A 씨가 사고를 낸 차량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으로 보내 감정을 의뢰하는 등 사고 원인을 수사하고 있다. A 씨는 차량이 “급발진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목격자들은 “급발진은 아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A 씨는 경기 안산시 한 운송업체에서 근무하는 버스기사로, 함께 차량에 탑승했던 아내는 “현직 버스기사인 남편이 그동안 접촉 사고 한 번 안 냈는데 이런 사고가 날 줄 몰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 씨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 가능성도 열어놨다. 경찰 관계자는 “A 씨가 현장 조사관들에게 급발진을 직접 주장하지는 않은 상태”라며 “급발진을 주장한다면 수사 후 결과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일보 김군찬·조재연·조율 기자
07.03 퇴근 시간 서울 한복판서 벌어진 충격적 교통사고
승진·수상 직장인 등 9명 목숨 순식간에 앗아가
의문점 여럿 … 모든 가능성 열어 놓고 조사해야
그제 저녁 지하철 서울시청역 부근에서 승용차가 역주행하며 일으킨 교통사고로 9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했다. 도심 한복판에서 퇴근 후 식사를 마친 직장인들로 북적이는 시간에 벌어진 사건이라 더 충격적이다. 이 사고로 승진 축하 회식을 마치고 나온 은행원들, 이틀 새 상을 두 개나 받은 서울시 공무원 일행, 병원 주차관리 업체 직원 등 직장 동료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아울러 어떻게 이런 사고가 났는지에 대한 의문점도 한둘이 아니다.
사고 차량은 웨스틴 조선호텔 지하주차장을 나오며 급가속하기 시작해 4차로 도로를 넘었고, 음식점들이 몰려 있는 일방통행 도로를 고속으로 역주행하며 사람·오토바이·차량 등과 잇따라 부딪쳤다. 이어 9차로 세종대로를 가로질러 덕수궁 쪽에 멈춰섰다. 질주한 거리가 무려 200m가 넘는다.
사고 운전자는 경기도의 한 버스업체 소속 촉탁직 기사로 확인됐다. 올해 68세로 1974년 버스 면허를 딴 뒤 시내버스와 트레일러를 몬 40년 경력의 베테랑 운전자다. 경력에 비춰 믿기 힘든 사고가 난 만큼 음주운전이나 약물 복용 등이 의심됐지만 사고 직후 간이검사에선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운전자는 “출발할 때부터 차가 이상했고,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전혀 듣지 않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하지만 급발진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많다. 특히 CCTV에 찍힌 부드럽게 멈추는 장면은 전형적인 급발진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모습이다. 건물이나 차량 충돌 후 더 나아갈 수 없게 되거나 전복돼 멈추는 경우가 급발진의 대부분이라는 게 차량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반면에 충돌 과정에 차량 전자장치가 꺼졌다 다시 켜지며 리셋되는 경우도 있어 마지막 모습만으론 단정짓기 이르다는 반론도 있다. 경찰과 국과수가 철저한 분석을 통해 진위를 가려야 하겠다.
역주행하는 동안 회피 동작을 하지 않은 점도 의문이다. 보통 운전자는 마주 오는 차량이나 보행자와 부딪칠 위험이 있을 땐 핸들을 꺾기 마련인데, CCTV나 블랙박스에 찍힌 모습에선 이런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운전자가 현재 갈비뼈 골절로 입원 중이지만 이 부분은 명확히 소명돼야 한다.
일각에서는 미리 운전 미숙으로 단정짓고 고령자 운전 제한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여러 규정상 65세부터 노인에 포함되지만, 요즘 68세를 일률적으로 운전하기 어려운 고령자로 구분하는 것은 무리다. 특히 고령자 이동권에 대한 고려 없이 연령 기준만으로 운전을 제한하는 것은 쉬운 방법이긴 하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 다만 고령 운전자의 사고가 점차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인 만큼 이번 참사를 계기로 종합적 대책을 강구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중앙일보 사설
07-04 “토마토 주스 돼버린…” 시청역 참사 현장에 조롱글 ‘공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시청역 역주행 사고’로 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가운데 추모 현장에 희생자들을 조롱하는 글이 놓인 모습이 포착돼 공분이 일고 있다. 해당 글에는 “토마토 주스가 돼 버린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혀있다. 온라인에서는 “악마도 이렇게는 안 한다”는 등 강도 높은 비판이 제기된다.
4일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시청역 인근 추모 현장에 놓인 충격적인 조롱 글 사진이 공유됐다. 사진 속 현장에는 희생자를 애도하는 시민들이 두고 간 조화와 추모 메시지 사이로 빨간 글씨로 적힌 조롱 글이 놓여 있었다. 해당 글에는 끔찍한 사고로 피 흘리며 숨을 거둔 사고 피해자들을 ‘토마토 주스’라며 조롱했다.
사진을 접한 네티즌들은 “고인 능욕은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인간이길 거부한 존재들” 등 문제의 글을 남기고 간 사람을 비판했다.
한편 앞서 한 여초 커뮤니티에서도 참사로 숨진 9명이 모두 남성으로 밝혀지자 입에 담기 힘든 조롱 글들이 올라와 충격을 준 바 있다.
해당 커뮤니티의 한 회원은 게시판 올린 글에서 노인이 남자 6명을 죽였다는 뜻으로 ‘갈배(남성 노인 비하 속어)’와 ‘한남(한국 남자 비하 속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축제다. 엉덩이 흔들어”라고 썼다.
한편 지난 1일 오후 9시 27분쯤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호텔에서 나온 차량이 일방통행 4차선 도로를 역주행하다 인도로 돌진하면서 9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가해자가 ‘급발진’을 주장하는 가운데 경찰은 진상 규명을 위해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문화일보 임정환 기자
07-04 “살려야할 의사가 죽음으로 내몰아”… 환자들 사상 첫 집회

▲“정상진료하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 102개 환자단체 회원들이 4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의사 집단행동 금지 법안을 제정해 달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문호남 기자
■ 102개 단체, 의사집단행동 규탄
환자 400여명 서울 보신각 집결
휴진철회·재발방지법 제정촉구
“적절한 치료 받는 건 국민 권리”
“응급실·중환자실 등 필수의료
정상작동 위한 법안 마련하라”
“환자를 살려야 하는 의사가 환자를 죽음으로 몰아가면서 정부 정책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의료현장을 떠난 의료진들이 하루빨리 돌아오길 간곡히 부탁합니다.”
서울아산·세브란스병원 등 주요 대학병원이 잇달아 휴진한 가운데 환자들이 4일 대규모 집회를 열고 의사들에게 진료 현장에 복귀해 달라고 호소했다. 수십 년간 여러 차례 강행됐던 의사들 총파업 사태에도 인내하던 환자들이 길거리로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환자들은 아픈 사람이 치료를 받는 것은 국민의 정당한 권리라면서 정부 정책에 맞서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벌이는 불법행위를 금지하는 법률 제정도 촉구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환단연) 등에 소속된 102개 환자단체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의사 집단휴진 철회 및 재발 방지법 제정 환자촉구대회’를 열었다. 이날 모인 환자들은 오전 11시 기준 400여 명(경찰 추산)이다. 환자단체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아픈 사람에 대한 의료 공급은 중단돼서는 안 되며 필요한 때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라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환자에게 고통과 불안을 전가하는 주요 병원의 명분 없는 무기한 휴진을 철회하라고도 촉구했다. 이들은 “국립대병원이자 공공병원인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제자를 지켜야 한다’면서 환자에게서 등을 돌렸는데 ‘환자보다 내 식구’를 챙기는 마음은 어디 가지 않을 것”이라며 “반복되는 의정 갈등에서 매번 백기를 든 정부를 경험한 의사사회는 여전히 진료권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힘을 과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환자단체는 의사들이 어떤 집단행동을 하든 응급실·중환자실 등 필수의료는 정상 작동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 달라고 국회에 강력하게 요구했다. ‘코넬리아드랑게 증후군’ 환자로 사지기형·지적장애 등을 앓고 있는 박하은 씨를 2001년 입양한 김정애 씨는 “살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며 “대한민국에서 환자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의사 파업이 없도록 법을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
곽점순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장은 이날 집회에서 “의사들이 한 번도 무료로 우리에게 (진료)해 준 적이 없는데 (의사들) 월급을 누가 주냐”고 지적했다. 그는 “의사들이 정부 정책에 맞서서 무조건 반대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정책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환자가 있어야 의사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은영 백혈병환우회 대표도 “백혈병은 추적 관찰, 항암치료 등이 중요한데 백혈병 치료에 필수적인 골수검사는 간호사들이 할 수 없다”며 “교수들이 (전공의 대신) ‘20년 만에 해 본다’면서 직접 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화가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백혈병 환우들은 20여 명 참석했다.
최승란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부회장은 “한 환우는 유방암 수술 후 억지로 퇴원시켜 피주머니를 찬 채로 귀가했는데, 피와 고름이 나와 응급실에 갔지만 처치를 제대로 못 받아 차마 못 볼 정도로 끔찍한 상태”라고 토로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의료계는 환자 생명을 위협하는 집단행동을 멈추고 의료현장을 조속히 정상화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문화일보 유민우·권도경 기자
07.05 집값도 가계빚도 못 잡는 갈팡질팡 대출 정책, 무능 아닌가

정책성 주택 대출을 늘려오던 금융 당국이 5월 중 은행 주택담보대출이 5조원 이상 급증하자 갑자기 은행 팔을 비틀어 대출 물꼬를 조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연 2%대로 떨어졌던 주택대출 금리가 다시 3%대로 올라섰다. 한쪽에선 대출을 늘리면서 다른 쪽에선 억제하는 모순된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부동산 경착륙을 막겠다며 지난해부터 각종 저금리 주택 대출을 연 30조~40조원씩 공급했다. 대출 한도를 줄이는 규제를 당초 이달부터 2금융권까지 확대할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9월로 늦추기도 했다. ‘영끌 빚투’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정책을 연기한 것이다. 정부는 급전이 필요한 자영업자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연착륙 지원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했지만 대출 규제를 두 달 늦춘다고 이런 문제가 해결될 리는 없다. 그러더니 며칠 뒤엔 부동산 자금 공급을 막는다고 은행 대출을 조이고 있다. 갈팡질팡이다.
부동산 연착륙과 가계부채 억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정부 정책이라면 최소한의 일관성은 있어야 한다. 정부의 엇박자 행보는 정책 불신을 초래해 정책 효과를 반감시킨다. 국토교통부 장관이 “금리가 여전히 높아 갭 투자나 단기 투자를 노리고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지만, 정부의 경고가 시장에선 먹히지 않고 있다. 2030 세대가 막대한 빚을 내 아파트를 사는 현상이 다시 고개 들기 시작했다. 집값 상승 기대감에 서울 아파트 값이 13주 연속 오르면서 올해 1~5월 중 서울의 생애 첫 주택 구입자 중 30대가 1년 전에 비해 70% 급증했다.
2000조원에 육박한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인데, 정부는 부동산 연착륙과 가계부채 억제라는 엇갈린 목표 앞에서 갈지자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모순된 정책 과제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부의 고민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난제를 풀라고 존재한다. 지금으로선 무능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조선일보 사설
07.06 '84제곱미터'의 지옥
고질적 병폐 층간 소음 심각
법·제도 실효성 아직도 미미
주민끼리 잔혹 범죄 잇따라
언제까지 쿵쿵 가슴 쳐야하나
세계로 뻗어나가는 처절한 고통. 지금 넷플릭스는 영화 ‘84제곱미터’ 촬영에 한창이다. 적금·주식·대출에 모친 마늘밭까지 팔아 내 집 마련에 성공한 30대 주인공. 국민 평형, 전용 84㎡짜리 보금자리는 금세 지옥으로 변모한다. 층간 소음 때문이다. 추적과 갈등, 이제 주민은 적(敵)이다. 이 짧은 줄거리에 공포·스릴러·액션·다큐가 망라돼있다. 층간 소음을 소재로 제작 중인 또 다른 K호러 영화 ‘노이즈’는 최근 프랑스·태국 등 69국과 배급 계약을 체결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 했던가.
층간 소음은 영화적 조건을 모두 갖춘 한국식 서스펜스의 총체다. 좁아터진 땅, 다세대의 삶. 믿기 힘든 스토리가 도처에 널렸다. 영화 ‘파묘’는 한 무덤에 관짝 두 개가 묻힌 첩장(疊葬)을 다룬 허무맹랑한 오컬트지만,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결국 층간 소음에 대한 이야기”로 결론 내린다. 토크쇼에서 농담조로 언급한 것이기는 하나, 좁은 집에서 수십 년 꼼짝없이 위아래 더부살이해야 한다면 시체라도 열받을 것이다. 원한을 품을 만하다.
실화는 그러나 훨씬 끔찍하다. 반전이 없기 때문이다. 다툼은 여지없이 새드 엔딩으로 끝난다. 층간 소음 시비 끝에 윗집 주민을 1시간 가까이 160회 이상 때려 숨지게 한 전직 씨름 선수, 아랫집 주민이 소음에 항의 방문하자 액막이용 흉기로 살해한 윗집 무속인…. 층간 소음 관련 5대 강력 범죄가 2016년 11건에서 2021년 110건으로 10배 늘었다고 한다. 얇은 벽으로 서로의 가계를 지탱하는, 허접하고 값비싼 아파트에서 애꿎은 주민끼리 죽이고 죽는다. “이게 집이냐”는 절규가 메아리친다.

▲시달려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 '고요'라는 개인의 행복추구권은 매일밤 저지된다. 아무리 호소해도 바뀌는 게 없으니, 울분을 견디며 잠드는 수 밖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1일 ‘층간소음 분쟁조정위원회 운영실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10년간 갈등 조정 신청 건수는 중앙 환경분쟁조정위(환경부)가 연평균 2건, 중앙 공동주택관리 분쟁조정위(국토부)가 20건 수준이었다. 소음 측정 등을 담당하는 ‘층간 소음 이웃사이센터’ 민원만 매년 3만~4만 건인데, 분쟁조정위에서 다뤄지는 건 극소수라 유명무실하다는 지적. 지방 분쟁조정위의 경우 지금껏 단 한 건의 갈등도 처리한 적 없는 곳이 여럿이었다. 소음 신고가 세 차례 이상 반복되면 ‘퇴거’ 조치가 가능한 미국 뉴욕처럼 강제성이 있지도 않다. 경실련은 “실효성 강화 대책과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시급한 일이다.
같은 면적, 같은 구조, 같은 고통. ‘국민 평형’이라는 말에는 생활의 동질성이 내포돼있다. 그러나 층간 소음은 대개 수직의 문제이고, 계급의 문제를 드러낸다. 소설가 황정은의 단편 ‘누가’에서 소음에 질려버린 주인공은 넋두리한다. “이웃의 취향으로부터 차단될 방법이 없다는 거. 계급이란 이런 거였고 나는 이런 계급이었어.” 이를테면 의원님들 위층에서 감히 마늘을 빻거나 발망치를 찍으며 돌아다닐 간 큰 주민은 없을 것이다. 층간 소음은 늘 소시민의 애환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명백한 참사지만, 늘 개별의 비극이기에 결코 특별법은 발의되지 않는다.
몇 가지 개선책이 나오기는 했다. 신축 시 바닥을 더 두껍게 시공하는 건설사에 인센티브를 주거나, 요건에 미달하면 준공 허가를 안 내주는 식이다. 이달 17일부터는 ‘바닥 충격음 성능 검사’ 결과를 건설사가 입주 예정자에게 의무 통지해야 한다. 이를 건너뛰거나 거짓을 고할 시에는 과태료 500만원이 부과된다고 한다. 500만원! 헐값에 책정되는 재앙의 몸값, 오늘도 영화를 뛰어넘는 잔혹 실화가 쓰여지고 있다. 국민들이 쿵쿵, 낡은 집에서 가슴을 치고 있다.
조선일보 정상혁 기자
07-08 삼성전자 노조 첫 총파업… 반도체 회복에 찬물 끼얹나

▲구호 외치는 삼전노조… 8일부터 사흘간 총파업을 선언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조합원들이 이날 오전 경기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H1 정문 앞에서 총파업 궐기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백동현 기자
오늘 노조원 참여율 21.3%
노조측 “무조건 생산 차질”
사측 “생산 차질 없게 조치”
화성=이예린 기자 yrl@munhwa.com
삼성전자 최대 노동조합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예고한 대로 8일 오전 사흘간의 총파업에 들어갔지만 참여율은 전체 조합원의 21.3%로 나타났다.
전삼노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기준 총 조합원 3만657명 중 6540명이 1차 총파업 결의대회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 중 설비·제조·개발 공정 직원이 5211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손우목 전삼노 위원장은 결의대회에서 “생산 차질이 무조건 생길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생산은 차질이 없게 조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오전 8시쯤 경기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H1 정문 부근에서 초대형 스크린 및 천막 등 설치로 분주한 1차 총파업 결의대회 현장에는 일부 강경 전삼노 조합원들이 주도해 외치는 “투쟁” 소리가 울렸다. 오전 11시 시작된 결의대회는 투쟁사에 이어 ‘임을 위한 행진곡’ ‘파업가’ ‘단결 투쟁가’ 제창 등으로 진행됐다.
전삼노는 △2024년도 기본인상률(5.1%)을 거부한 조합원 855명에게 더 높은 임금 인상률 적용 △경제적 부가가치(EVA) 방식의 초과 이익성과급(OPI) 제도 개선 △유급휴가 약속 이행 △무임금 파업으로 발생한 조합원들의 경제적 손실 보상 등을 사 측에 요구하고 있다.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이 5개 분기 만에 영업적자를 딛고 회복세에 접어든 가운데 이 같은 파업은 일종의 자해 행위와도 같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5조 원에 달하는 적자를 냈던 DS부문은 올해 2분기 전체 영업이익의 약 60%인 6조 원대 이익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 관계자는 “회복기를 잘 타서 실적을 잘 내고 성과급을 받는 선순환 구조로 가야 하는 상황에서 파업을 진행하는 건 모순”이라며 “파업 장기화 시에는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귀족 노조’의 횡포라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해 직원 평균 연봉은 국내 최고 수준인 1억1522만 원에 달했다. DS부문의 올해 상반기 성과급은 최대 기본급의 75%로 사업부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명분도 실익도 없는 파업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문화일보
07.10 국민 세금까지 지원해준 대표 기업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

▲8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앞에서 열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받은 감세 혜택 6.7조원으로 압도적인 1위
여야도 반도체 지원 경쟁…무거운 책임감 느껴주길
1969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삼성전자에서 파업 사태가 벌어졌다. 삼성전자 최대 노동조합인 전국삼성전자노조(전삼노)는 엊그제 사흘간의 총파업에 돌입했다. 전삼노는 합리적인 임금 인상과 성과급의 투명한 개선 등을 요구했다. 노조는 이번 총파업의 목적을 “반도체 생산 차질”이라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당장은 생산 차질이 없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지만 15일부터 2차 파업이 예고돼 있고 조합원 대다수가 반도체(DS) 부문 소속이어서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생산 차질이 우려될 수밖에 없다. 반도체 사업장은 24시간 가동되기 때문에 잠깐이라도 멈추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삼성전자 노조도 다른 노조와 마찬가지로 파업할 권리는 있다. 임금 협상과 단체 협상은 노사의 자율적 협상에 맡기는 게 우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파업을 지켜보는 심경은 편하지 않다. 장맛비 속에 대규모 집회를 열고 현장 라이브 방송 채팅창에 ‘파운드리 클린 라인이 멈췄다’ 등의 문구가 뜨자 조합원들은 환호했다. 고객과의 신뢰가 중요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부문의 특성을 고려하면 노조의 이런 모습은 거의 ‘누워서 침 뱉기’ 란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삼성전자는 누구나 인정하는 한국의 대표 기업이다. 시가총액은 522조원(8일 종가 기준)으로 코스피 전체 시총의 22.3%를 차지한다. 무려 25년간 1위 자리다. 경제성장률이나 수출·세수 등의 경제지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삼성전자 노사는 연봉 인상률 5.1%(회사)와 6.5%(노조)를 놓고 싸우고 있다. 모처럼 돌아온 반도체 경기 회복기를 노사 갈등에 휘둘려 허비하지는 말아야 한다. 지난해 삼성전자 직원 평균연봉은 1억3500만원이다. 귀족 노조도 파업할 수 있다. 하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까진 아니어도 대한민국 1등 기업 직원답게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07.10 또 어이없는 역주행 사고, 조건부 운전면허도 검토를

▲지난 1일 밤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역주행 사고를 낸 차량. /박상훈 기자
60대 운전자의 서울 시청역 역주행 참사로 9명이 숨진 이후에도 고령 운전자의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9일 경기 수원에서 70대가 몰던 승용차가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하는 사고가 또 발생했다. 사고 차량은 반대편 1차로에 신호 대기 중이던 차량을 들이받은 이후에도 그대로 달려 다른 승용차 4대를 더 들이받고서야 멈춰 섰다. 4명이 부상을 입었다. 지난 6일엔 80대가 몰던 승용차가 서울 용산구의 주유소를 빠져나가다 갑자기 인도도 돌진하면서 보행자 2명이 다쳤고, 지난 3일엔 70대 운전자가 몰던 택시가 서울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 외벽을 들이받아 3명이 다쳤다.
아직 이들 사고 원인이 무엇인지는 불분명하다. 시청역 역주행 사고를 낸 운전자는 여전히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고, 수원 역주행 사고 운전자도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들 사고의 공통점이 하나같이 어이없다는 것이다. 역주행 사고는 말할 것도 없고, 6일 주유소에서 발생한 사고도 차량이 주유소 출구로 나와 차로로 진입하다 갑자기 인도로 돌진한 것이다.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발생한 사고도 택시기사가 손님을 내려주고 회전하다 발생했다. 일반적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사고다.
한편에선 운전자가 고령이라는 점을 사고 배경으로 지목한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인지 능력과 반응 속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 전체 교통사고 중 65세 이상 운전자 비율이 2020년 14.8%에서 2022년 17.6%로 늘었다. 사회 고령화에 따라 비율이 늘어나는 측면이 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증가 추세다. 하지만 요즘은 젊은이 인지 능력 못지않은 노년도 흔하다. 노년의 인지능력에 못 미치는 청장년도 있다. 나이는 중요한 변수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고령’이 아니라 ‘고위험’ 운전자를 가려내는 것이 중요하다.
마침 경찰도 고위험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일정 나이 이상의 고령자만이 아니라 질병·장애 등으로 인지 능력이 낮아져 사고 위험이 높은 고위험 운전자의 야간이나 고속도로 운전 등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이미 유럽 몇몇 나라와 미국 일부 주에서 시행하고 있다. 우리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 사설
07-11 이탈 전공의·의대생 대거 미복귀 전제로 대책 세울 때다
정부가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을 철회한 데 이어 수업 거부 중인 의대생의 집단 유급을 막기 위해 의대 학사운영기준을 바꿨다. 의료 인력 수급 차질을 막기 위한 조치라지만, 전체 대학생의 1%인 의대생만을 위한 특혜이다. 법치 포기라고 할 정도로 의료법 등에 규정된 원칙도 훼손됐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0일 ‘의과대학 학사 탄력 운영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현행 1년, 2학기제를 학년제로 전환해 1학기 수업을 듣지 않은 의대생들이 학년 말까지 수업을 마칠 수 있게 했다. 1학기에 듣지 않은 과목은 F 학점 대신 I 학점을 부여해 역시 학년 말까지 성적을 받게 하는 등 거의 모든 학사 규제를 풀었다.
이런 정부의 계속된 후퇴와 양보에도 이탈한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대거 복귀할 가능성은 작다. 정부는 지난 2월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 후 법과 원칙에 따른 강력 대응을 천명했으나 전공의에 끌려가며 땜질 양보책을 내놓다 원칙과 실리 모두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전공의 1만 3000여 명 미복귀, 의대생의 집단 유급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전제로 후속 대책을 마련해 추진해야 할 때다.
상급종합병원을 전문의 중심병원, 중증 환자 중심으로 바꾸는 일이 시급하다. 의료개혁특위는 11일 상급종합병원의 일반 병상을 줄이고 중환자 병상은 늘려 중증 중심 진료 구조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당연한 조치다. 필수의료 수가 조정도 시급하다. 교육부는 내년에 의대 신입생과 복귀 학생들이 함께 배우는 상황에 대비한 지원책도 강구해야 한다. 이미 2025학년도 입시전형이 시작됐다. 의료라는 특수직역이라고 해서 국민과 환자가 마냥 휘둘릴 순 없다.
문화일보 사설
07-11 최저임금, 상징적 인상에 그쳐야 한다
박영범 한성대 명예교수·경제학
노동계가 최초 요구안 제시 후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그 수준을 절반으로 줄인 것은 지난 최저임금 결정 때의 쓰라린 경험에 기인한 듯하다. 지난해 심의에서 공익위원들은 9920원을 중재안으로 제시했는데, 공익위원 중재안에 노동계가 반발하며 노사 최종안을 표결에 부친 결과 올해 최저임금은 중재안보다 60원 떨어진 9860원으로 결정됐다.
노동계는 고물가 기조 속에서 2022·2023년도 실질임금이 줄었기 때문에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인 반면, 사용자 측은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이 주요 7개국(G7)보다 월등히 높아 소상공인들의 좌절과 고통이 크다며 동결을 주장한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일자리에 미치는 파괴적인 효과는 문재인 정부에서 이미 입증됐다. 취임 첫해 최저임금이 16.4% 올랐고 이를 감당할 수 없었던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감원하거나 폐업하면서 2018년에 새로 만들진 일자리는 10만 명 밑으로 떨어졌다. 일자리 정부를 지향했던 문 정부의 일자리 성적표는 초라하다 못해 창피할 정도였다. 대통령이 집무실에 상황판까지 만들었지만 2017∼2019년 중 신규 일자리는 박근혜 정부 2014∼2016년 중 창출된 40만 개보다 적었다. 60대를 제외하면 2018·2019년에는 전체 일자리가 오히려 줄었고 40대 일자리는 33만 개가 사라졌다. 2018·2019년 최저임금을 30% 가까이 올렸기 때문이다. 문 정부는 핵심 공약인 임기 내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 때보다도 어렵다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처지를 고려하면, 지난 2년간 실질임금이 떨어졌기 때문에 내년도 최저임금을 10% 이상 올려야 한다는 노동계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지난해 5월 기준 최종 학교 졸업자 중 미취업 청년이 126만 명이고 이들 중 25.4%는 집 등에서 그냥 시간을 보낸다. 최저임금을 더 올리면 상당수의 소상공인·자영업자가 무너지고, 그러면 청년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며, 무너진 소상공인·자영업자와 미취업 청년들이 파트타임 일자리라도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업종별 차등 최저임금 적용이 무산된 상황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은 동결에 가까운 수준으로 인상돼야 한다. 1인 이상 상용근로자를 기준으로 실질임금이 오히려 떨어졌던 2020년에도 이듬해 최저임금을 1.5% 인상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코로나19로 온 국민이 고통받는 것을 노사공익 모두 잘 알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이 대폭 올라도 일자리를 지킬 수 있는 대기업과 공공기관 근로자는 문제가 없다. 우리나라 최저임금 결정의 가장 큰 문제는, 그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소상공인·자영업자와 노조에 가입할 수도 없는 영세 사업장 근로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결정에 참여한 노동계가 자신들의 조직 근로자보다는 고용 취약계층 근로자의 처지를 우선 고려하는 용단을 내려 주길 기대한다.

문화일보
07-12 건보 개혁 핵심은 과잉 진료 차단 대책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최근 발표된 김윤희 인하대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 재정수지는 2024년부터 적자로 전환되고, 현재 28조 원 안팎인 적립금이 2029년에 완전히 소진된 이후 누적 적자액이 2042년에는 563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 누적 적자 발생 규모는 건보 지출이 현재 추이로 계속 늘어나고 건강보험료가 현행법대로 소득의 8% 상한이 유지된다는 전제에서 분석됐기 때문에 향후 크게 높아질 건강보험료와 국가 재정의 부담에 주목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문케어’로 통칭되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정책을 추진할 때 건보 재정의 우려가 제기됐었지만, 코로나19 발생 이후 의료 이용량 증가가 주춤하고, 정부의 건보 재정 관리 노력으로 건보 재정이 다소 개선돼 적립기금도 늘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 노인인구의 빠른 증가로 건보 지출은 급속히 늘어날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회계 공시자료에 따르면 올 한 해의 건강보험 급여비는 96조 원인데, 건강보험료 수입(84조6000억 원)과 정부 지원금(12조9000억 원)으로 충당되고 있다. 그러나 건강보험 급여비 외에 2022년 국민 의료비는 200조 원을 넘어 GDP의 9.7%로 추산되고, 이는 OECD 회원국 평균을 이미 넘었다.
노인인구가 늘어나는 데 따른 의료비 증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지금 건강보험 급여 지출 증가를 걱정하지만, 건강보험 보장률은 65%를 겨우 넘는 데 불과하다. 역대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이기 위해 다각적 노력을 해 왔지만 뚜렷한 성과를 보지 못했다. 본인 부담금과 비급여를 축소해야 보장률이 높아질 수 있으나 실손보험 등 민영 보험의 존재 등으로 비급여가 줄지 않는 게 가장 큰 원인이다. 민영 보험 역시 손해율이 100%를 훨씬 뛰어넘어 골칫덩어리지만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건보 재정 위기는 노인 의료비 증가 등 의료 수요 요인에 더해 의료 공급 요인이 크다. 우리나라는 사회보험인 국민건강보험 중심으로 의료 시스템이 운영되지만, 병상수 기준으로 공공의료기관 비중은 10% 수준에 불과해, 민간 의료기관 중심으로 의료 서비스가 제공된다. 민간 의료기관은 비영리로 운영토록 돼 있으나, 재정수지를 맞추기 위해서는 적극적 경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민간 의료기관이 직면한 현실은 낮은 건강보험수가이고, 저수가에 대응하는 방법은 의료 이용량의 조절과 비급여 확대이며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행위별 수가제다. 의료 이용자는 이용자대로, 공급자는 공급자대로 이익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의료비가 빠르게 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에 대한 국제적 평가는 높다. 의료의 질은 세계적 수준이고, 긴 대기시간 없이 진료를 빠르게 받을 수 있으며, 건강보험료는 아직 높지 않다. 총체적으로 우수한 성과를 보이는 현행 의료 시스템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초고령 시대에도 지속 가능하도록 차분하게 개편해 나가야 한다. 의료 서비스의 질적 수준을 유지하면서 의료비 상승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1차적으로 해야 할 일은, 불필요한 과잉 진료가 원천적으로 차단될 수 있도록 건강보험 수가를 비롯한 진료비 보상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고, 국민건강보험과 민영 의료보험이 상보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문화일보
07-12 ‘식물회장’ 된 임현택… 의협 내부 탄핵 움직임
막말·독단적 의사결정 신뢰추락
전공의와 간담회선 보이콧 당해
시·도의사회장들도 성토 목소리
임 회장, 운영위에 사과문자 진화 나서
2014년 총파업땐 노환규 탄핵 전례

대한의사협회(의협) 내부에서 임현택(사진) 회장에 대한 탄핵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임 회장이 잇단 막말과 독단적인 의사결정으로 회원들의 신뢰를 잃은 데 이어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의협이 꾸린 범의료계 기구 참여를 보이콧하면서 사실상 ‘식물 회장’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임 회장이 의정 현안에 대해 2주가량 침묵하는 가운데 의협 내부에서 임 회장을 탄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3일 열리는 16개 시·도 의사회장단 회의에서는 임 회장을 성토하는 의견이 본격적으로 개진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임 회장은 의협 대의원회 운영위원회 20여 명에게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지난달 무기한 총파업을 결정해 미안하다’는 취지로 사과 문자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임 회장이 취임 100일도 안 돼 탄핵 위기에 빠진 것은 잦은 구설과 리더십 문제 때문이다. 임 회장이 지난달 18일 의협 총궐기대회에서 내부 논의 없이 같은 달 27일부터 무기한 전면 휴진하겠다고 발표하자 회원들은 크게 반발했다. 부적절한 언행으로 법조계, 정치권, 언론과도 날을 세웠다. 지난달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청문회에서는 임 회장의 막말 탓에 의대 증원 논의는 묻혔다는 지적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협 고위 관계자는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이냐가 문제”라며 “최근 의협 내부에서 대의원회 역할(탄핵 발의)에 대한 요구가 많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 상황에 대한 집행부 대응이 부족하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고 이에 대해 대의원회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의협 대의원은 “임 회장 탄핵 절차 돌입에 대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지만 내부적으로 탄핵 얘기가 많이 나오는 건 사실”이라며 “임 회장 개인의 부적절한 발언들이 회원들이나 의료계에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고 국회 청문회 발언도 상당히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의협은 전공의와 의대생들에게도 보이콧을 당하면서 의정 갈등 정국에서 주도권을 상실한 모양새다. 의료계에 따르면 의협이 전공의와 의대생을 찾아가는 전국순회 간담회에 참석자가 ‘0명’인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범의료계 기구를 표방한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가 의협 주도로 출범했지만 이번 사태 열쇠를 쥔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의대생 단체는 임 회장에 대해 “의료계 지위를 실추시키고 학생들의 목소리를 훼손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올특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편, 의협 회장을 탄핵하려면 대의원 3분의 1 이상이 집행부 불신임(탄핵)안 발의에 동의해야 한다. 불신임안이 발의 요건을 갖췄다고 확인되면 임시대의원총회가 열리고 총회에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해야 한다. 이후 출석한 대의원 중 3분의 2 이상이 탄핵에 찬성해야 한다. 현재 의협 대의원 수는 250명이다. 지난 2014년 비대면 진료를 반대하는 총파업 당시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이 탄핵당한 바 있다.
문화일보 유민우·권도경 기자
07.12 삼성전자 노조 파업 참여자 100~150명... 내부서도 "이럴 때냐"

▲11일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8인치 라인 건물 앞에서 총파업 동참 홍보 집회를 벌이는 삼성전자 노조원들. /전국삼성전자노조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간 삼성전자 노조의 집회 참여자 수가 갈수록 줄고 있다. 12일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HBM(고대역폭메모리) 라인 건물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참석 인원은 회사 추산 100~150여 명이다. 노조는 참여자 수를 밝히지 않았다. 하루 전 기흥 8인치 생산라인에서 열린 집회에는 회사 추산 150여명, 노조 추산 350여명이 참여했다. 지난 8일 총파업 결의대회에는 회사 추산 3000여 명, 노조 추산 6500여 명이 모였었다.
HBM 라인 건물에서 집회를 벌인 전삼노는 “HBM 장비를 세우면 사측에서 바로 피드백이 올 것”이라며 투쟁 장소를 이곳으로 정했다. HBM은 인공지능(AI)에 필수적인 반도체로 꼽힌다. 핵심 공정 직원들의 파업 참여를 독려해 생산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겠다는 계획이다. 전삼노는 파업으로 인해 일부 라인에서 물량 하향 조정 등의 영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측은 현재까지 생산 차질 없이 정상적으로 라인이 가동되고 있다고 밝혔다.
파업이 이어질수록 직원들의 반응은 냉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 직원들이 모인 비공개 커뮤니티에는 “작년 대규모 적자 이후 올해 겨우 반도체 경기가 좋아져서 이제 막 상승세를 탔는데 지금 시점에 파업을 해야하느냐”며 “노조에서 요구하는대로 라인 멈추면 있는 고객들마저 경쟁사로 떠날까 걱정된다”는 글이 올라왔다. 또 “이정도 했으면 이제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아 정상적인 협의를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도 나왔다.
전삼노는 15일에는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8인치 라인 건물 앞에서 재차 집회를 벌이고 16일에는 화성캠퍼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H3 지역을 찾아 집회를 열 계획이다. 전삼노는 올해 초 노사협의회에서 합의된 연봉 인상률 5.1%보다 높은 5.6% 연봉 인상과 성과급 지급 기준 변경, 노조창립휴가 1일 보장 등을 주장하며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조선일보 이해인 기자
07.13 유튜브, 야수들 돈벌이 놀이터로… 쯔양 사건서 드러난 민낯
쯔양 협박 사태로 드러난 '사이버 레커'들 실체
구독자 1010만을 보유한 ‘먹방 여신’ 유튜버 쯔양을 협박하기로 모의한 사건으로 유튜브 세계의 민낯이 드러났다. 폭로 영상으로 조회수를 올리는 이른바 ‘사이버 레커’들은 쯔양이 전 남자친구에게 폭행과 협박당했다는 사실을 약점으로 잡아 거액을 편취하려고 했다. 한국인들이 월 평균 40시간 이상 이용하고 있는 유튜브가 ‘야수들의 돈벌이 놀이터’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이 조회수를 올리려고 가짜 콘텐츠와 폭로성 콘텐츠를 만들어 수익을 얻는 범죄 혐의 행위를 벌이는데도 유튜브는 이를 방치하고 있다.
유튜브에서 스포츠 스타·연예인·정치인 등의 치부를 들춰내거나 이를 영상으로 올리지 않는 조건으로 돈을 뜯어낸 사례는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5월 범죄 의혹 등을 폭로하지 않는 조건으로 수억 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유명 유튜버 엄태웅(30)씨를 구속 기소했다. 격투기 선수 출신으로 구독자 29만명을 가진 엄씨는 이른바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 가해자 신모씨의 고등학교 선배인 A씨에게서 신씨와의 친분이나 A씨의 별도 범죄 의혹을 방송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3억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고 있다.
유튜버들의 폭로성 콘텐츠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22년 유튜버 ‘잼미’는 일부 유튜브에 의해 극단적 페미니스트 성향이라는 지목을 받은 뒤 인터넷상에서의 ‘사이버 불링’으로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같은 해 2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조회 수를 올리기 위해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일부 유튜버를 강력 처벌해달라는 글이 올라와 사흘 만에 10만명 넘게 동의를 받았다.

▲그래픽=양인성
◇수익 올리려고 조작 영상까지 제작
가로세로연구소가 공개한 ‘쯔양 협박 모의’ 녹취에는 구제역, 전국진, 카라큘라 등 3명의 유튜버가 등장한다. 이들의 총 구독자 수는 12일 기준 160만명을 훌쩍 넘어선다. 이들의 월 추정 수익은 약 3000만원에 달한다. 이번 사태가 터지지 않았다면 최소 연 3억6000만원을 벌어들이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유튜브는 10분 분량 유튜브 영상에 광고가 붙고 200만뷰를 얻으면 200만원 정도의 이익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튜버들은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선정적인 영상을 만들고, 이 과정에서 조작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 2020년 12월 유튜버 A씨는 또 다른 유튜버 B씨가 지하철 역사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영상을 촬영했는데, 이 과정에서 서울교통공사 소속 역무원이 시위를 저지하며 자신들을 때렸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후 인근 지구대에서 “1인 시위를 하다가 폭행을 당했으며, 역무원을 강력히 처벌하기 원한다”는 내용으로 신고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폭행은 없었으며 시위를 벌이면서 단속 나온 역무원의 폭행을 고의로 유도하는 것까지 모두 사전에 모의된 것이었다. 서울중앙지법은 작년 10월 유튜버 A·B씨에게 무고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지난해 6월 구독자 2만여 명의 한 유튜브 해외 토픽 채널에 파리 생제르맹(PSG) 소속 축구 선수 킬리안 음바페의 한글 자막 인터뷰 영상이 올라왔다. 일본 기자가 “이강인이라는 한국 선수가 (PSG에) 오는 것은 마케팅을 위한 영입이라고 생각하는가”라며 이강인 선수를 평가절하하는 질문을 던졌고, 음바페는 고개를 저으며 “(이강인을) 신뢰하고 있다. 재능을 가졌기에 여기에 올 수 있는 것이다”로 답변한다. 이 영상은 ‘반일(反日) 코드’와 결합해 1100만명의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지만, 음바페가 2021년 ‘유로 2020′ 기자회견에 참석해 답변한 영상 앞부분에 일본 기자 음성을 만들어 넣은 조작된 영상이었다.
◇‘정의’로 포장해 기부금 챙기고 약점 잡아 돈 갈취
이들은 ‘우리 사회 정의 구현’이란 슬로건을 가지고 사람들의 치부를 드러내면서 늘어난 조회수와 광고로 수입을 얻는다. 수의대생 유튜버 박모(30)씨는 유기 동물을 거둬 기르는 ‘천사 콘셉트’로 유튜브를 운영하다 거짓말이 폭로되며 사기 등 혐의로 기소당했다. 펫숍에서 구매한 동물들을 유기·파양 동물인 것처럼 유튜브 콘텐츠를 조작해 기부금을 챙긴 혐의다. 그는 사죄 영상을 통해 “(구조했다고 한) 레이, 노루, 절구가 펫숍에서 왔다는 보도는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 “관심이 좋아 더 큰 채널을 바라게 됐고 그러면서 거짓 영상을 찍게 됐다”고 고백했다.
유튜버들의 공갈 및 협박 사건은 과거에도 있었다. ‘탁재훈 사생활 폭로’ 등 수많은 연예인의 사생활 의혹을 제기하며 ‘시민들의 알 권리’를 주장하던 유튜버 김용호씨는 지난 2022년 8월 가수 김건모 전 아내 장모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박수홍 허위 사실 유포, 강요 미수, 모욕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이후 김씨는 지난해 10월 부산 해운대의 한 호텔에서 투신해 숨졌다. 그의 소식을 접한 다수의 커뮤니티에서는 “이게 사이버 레커의 말로”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만들고 무사할 줄 알았나” 등의 비난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법적 처벌 받아도 계속 영상 만들어 올려
법적 처벌도 이들에겐 무용지물이다. 과거 130만 구독자를 보유했던 유튜버 송모(31)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배달 음식이 도착했는데 배달 내용물을 누가 빼 먹었다’는 영상을 올렸다. 당시는 배달원이 음식을 몰래 빼 먹는다는 이른바 ‘배달 거지’가 이슈가 된 상황. 송씨는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영상을 제작했다. 하지만 이는 송씨가 콘텐츠를 제작하려고 일부러 음식을 빼 먹은 뒤, 지인과 미리 짜인 각본에 따라 통화를 나누고 마치 점주가 부적절한 응대를 한 것처럼 조작한 영상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송씨는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로 2022년 10월 1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럼에도 송씨는 현재 새로운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복귀해 구독자 10만명을 보유하고 있다.
쯔양 협박 모의에 연루된 구제역도 허위 사실 폭로 등으로 이미 재판 4건을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3월 부산지방법원에서 손해배상 2000만원, 2022년 7월에는 수원지방법원에서 명예훼손 혐의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세연 녹취에서 구제역이 “고소당해 봤자 끽해야 벌금 몇백 나오고 끝난다”고 했던 발언으로 볼 때 그가 상습적으로 송사에 휘말려 왔음을 알 수 있다. 구제역은 이번 사태로 또다시 서울중앙지검 조사를 받게 됐다.
조선일보 김광진 기자 주형식 기자 박강현 기자 박정훈 기자
07-15 갈취·협박 난무하는 유튜브 무법지대, 언제까지 방치하나

유튜버 ‘구제역’(본명 이준희)은 구독자 1000만 명을 보유한 유명 ‘먹방’ 유튜버 쯔양이 전 남자친구에게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하고 거액을 뜯긴 사실을 알아내 이를 폭로하겠다며 협박·갈취한 혐의로 결국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됐다. 구제역처럼 폭로 영상으로 조회수를 올리는 유튜버를 ‘사이버 레커’라고 부른다. 교통사고가 나면 난폭하게 달려오는 사설 견인차에 빗댄 말이다. 처음에는 이슈를 신속히 다룬다고 해서 이런 별명이 붙었으나 유명인의 치부를 알아내고는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돈을 뜯어내는 일도 비일비재해졌다.
쯔양 사건은 폭로 협박의 폭로라는 중층 구조 속에서 드러났다. 구제역과 또 다른 ‘사이버 레커’ 유튜버 ‘카라큘라’(본명 이세욱)가 쯔양 협박에 대해 주고받은 대화의 녹취를 우파 유튜브 사이트 ‘가로세로연구소’가 입수해 공개하고 카라큘라가 자신은 폭로를 말렸다고 주장하면서 두 쪽 다 각각 10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올렸다. 폭로로 먹고사는 유튜버들이 서로 물고 뜯는 난타전 속에 쯔양은 공개를 원치 않은 사생활이 알려지고 본인 입으로 전모를 밝히게 되는 2차 피해까지 입었다.
우리나라에 사이버 레커 유튜버가 많은 건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구제역은 다른 명예훼손 건으로 손해배상이나 벌금을 수천만 원까지 문 적이 있지만 녹취에서 ‘고소당해봐야 별것 아니다’는 식으로 말했다. 사이버 명예훼손은 징역이 아니라면 3000만 원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큰돈이지만 고소득 유튜버라면 두어 달이면 벌 수 있는 돈이다. 유튜브에 돈이 몰리는 사실을 고려하면 보다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가면을 쓰는 등 신원을 감춘 사이버 레커는 해외 플랫폼 본사가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고소해도 처벌 자체가 쉽지 않다.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폭로가 선량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할 경우 수입 창출을 차단하는 일시적 중단 조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유튜브 등은 해외에서 운영된다는 이유로 정부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다. 유럽연합(EU) 등지에서는 역외 플랫폼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효과적인 처벌과 신속한 구제의 채널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플랫폼을 상대로 한 입법적 수단이 강구돼야 한다.
동아일보 사설
07.15 삼성전자 파업 참가 급감, 근로자들의 상식이 반갑다
삼성전자의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무기한 총파업을 선언했지만 파업 집회 참여자 수가 사흘 만에 거의 2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지난 8일 전삼노가 화성사업장 정문 앞에서 벌인 총파업 결의 대회에는 노조 추산 6500여 명(회사 추산 3000여 명)이 참석했다. 사흘 뒤인 11일 집회에는 노조 추산 350여 명(회사 추산 150여 명)이 참가했다. 약 3만2000명에 이르는 전삼노 소속 조합원의 1%다.
전삼노는 총파업 닷새째인 지난 12일에는 HBM(고대역폭 메모리) 생산 라인을 찾아 파업 동참을 호소했다. 15일에는 화성 캠퍼스 파운드리 H3 지역을 찾아가 집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전삼노가 파업 동참을 호소한 HBM 라인은 인공지능(AI)에 필수적인 반도체를 생산한다. 삼성전자는 HBM 생산에서는 SK하이닉스에 뒤처진 상태다. 부지런히 개발하고 열심히 생산해도 따라잡을까 말까다. 이런 상황인데도 전삼노는 “HBM 장비를 세우면 사 측에서 바로 피드백이 올 것” “EUV 파운드리를 멈춰달라”는 등 반도체 생산 차질을 목표로 무기한 파업을 이어간다. 파업 참가자를 늘리고 회사 대응을 어렵게 하겠다고 ‘회사에 파업 참여를 밝히지 말고 무단 결근하라’는 지침까지 내렸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사 측은 “아직 보고된 생산 차질은 없다”고 한다. 경쟁사인 대만 TSMC, 미국 인텔 등은 반도체의 특수성과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무노조 경영을 한다. 세계 주요국이 반도체 전쟁에서 총력전을 펴는 이 중대한 시기에 삼성전자 노조가 돈 더 받겠다고 “반도체 생산 차질”을 목표로 무기한 파업을 하겠다는 것에 국민 시선은 곱지 않다. 국내 최고 대우, 최고 복지 혜택을 자랑하는 삼성전자는 일반 직장인들 사이에서 ‘꿈의 직장’으로 불린다. 그런 곳에서 노사 협의체에서 합의된 것보다 돈을 더 달라며 파업을 벌이는 것은 정당한 노조 활동으로 보기 힘든 억지다. 하지만 파업 집회 참가자 숫자가 사흘 만에 급감했다는 것은 노조의 명분 없는 파업에 동조하지 않는 근로자가 그만큼 많다는 것으로 비친다. 상식을 지키는 근로자가 많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조선일보 사설
07-15 동력 상실한 삼성전자 노조의 ‘자해 파업’, 당장 멈춰야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8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반월동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열린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7.8/뉴스1
8일 시작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의 총파업이 일주일이 지났지만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당초 3일 동안 파업하겠다고 했던 전삼노 측은 ‘무기한 파업’을 선언하며 수위를 높이고 있다. 노조가 총파업의 목표로 ‘생산 차질’을 내세웠지만 다행히 아직 생산 라인은 정상 가동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파업의 동력은 떨어지고 있다. 파업 첫날 결의대회에는 노조원 6500여 명이 참석했는데, 12일 집회에선 200여 명으로 급감했다.
당장은 파국을 피했지만 파업이 장기화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24시간 돌아가는 반도체 생산라인은 잠시라도 멈추면 정상화하는 데 막대한 시간과 인력, 비용이 들어간다. 2018년 삼성전자 평택 사업장에서 단 28분 동안 정전이 발생했는데도 피해 금액은 500억 원에 달했다. 안정적 공급이 생명인 부품산업에서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기업의 대외 신뢰도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분초를 다투는 반도체 전쟁 중에 공장이 멈출 수도 있는 회사와 누가 거래를 하려 하겠나.
특히 노조 측이 회사가 명운을 걸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장비를 멈춰 세우겠다고 나선 것은 우려할 만하다. 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핵심인 HBM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현재 열세를 보이고 있어 빠른 추격이 필요한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납품을 준비 중인데, HBM은 범용 메모리와 달리 맞춤형 제품이어서 고객사와의 신뢰가 더욱 중요하다. 아무리 파업이 근로자의 권리라지만 회사의 미래까지 볼모로 잡는 것은 ‘자해 파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삼성전자는 단순한 민간 기업이 아니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의 최선두에서 싸우고 있는 국가대표 기업이다. 잘 싸워 달라고 국민들이 혈세를 들여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받은 각종 세금 감면액은 6조7000억 원에 이른다. 지난달 정부는 17조 원 규모의 반도체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도로·용수·전력 등 기반 시설 지원을 약속했다. 여야도 반도체 산업에 대해 앞다퉈 지원 법안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가 잘돼야 나라도 잘된다며 응원해 온 국민들이 임금 인상을 위해 반도체 라인을 멈추자는 파업을 어떻게 볼지 노조는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동아일보 사설
07.15 영웅이 필요한 나라는 불행하다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많다면
영웅은 구태여 필요 없다
묵묵히 일하는 '윤석덕'들이
한국 사회를 이만큼 지탱한다

▲평택~제천고속도로 대소분기점에 설치된 분홍색과 초록색 '노면 색깔 유도선'. 차로 변경하느라 우물쭈물하는 시간이 줄어 정체 해소에 도움이 되고 교통사고도 줄여준다. /한국도로공사
차량 내비게이션은 2018년부터 “분홍색 차선을 따라 주행하세요”라고 알려준다. 길눈이 어두운 운전자에게는 복음과 같다. ‘노면 색깔 유도선’이 없던 시절에는 방향을 잃고 엉뚱한 길로 가는 바람에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복잡한 고속도로 분기점에서 짧은 구간에 차로를 변경하다가 교통사고도 일어난다. 더러 목숨까지 잃는다.
2011년 3월 안산분기점에서 방향을 다투다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도로공사 윤석덕 차장은 그날 “초등학생(초보자)도 쉽게 길을 찾도록 대책을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다. 표지판과 점멸등을 추가하는 진부한 방식으론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사망 사고가 일어났으니 도로 시설물을 미비하게 설치한 내 잘못 아닐까, 하는 우울한 기분으로 귀가한 그는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고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도로에 색칠을 하면 되잖아!
하지만 당시 도로에는 흰색, 노란색, 청색, 적색 등 4가지만 칠할 수 있었다. 길을 안내하겠다고 다른 색상을 사용하는 것은 도로교통법 위반. 분홍색(우회전)과 초록색(좌회전) 유도선을 그리자는 윤 차장의 제안은 동료들과 전문가들의 반대에 부닥친다. “불법이고 위험한 발상이다” “그로 인한 사고와 피해는 당신이 책임질 거야?” “너무 앞서 가지 마라, 나라면 안 한다”....
자포자기할 무렵 마지막으로 문의한 경찰관이 “좋은 아이디어다.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뭣인들 못 하겠냐”면서 조력자로 나섰다. 경찰청 승인을 얻어 그해 5월 안산분기점에 최초의 색깔 유도선을 그렸다. 도색 롤러로 수작업을 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교통 체증이 발생했고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본분을 다하고도 욕을 먹었다.
이런 진통 끝에 탄생한 노면 색깔 유도선은 국민을 더 편하고 안전한 세상으로 이끌었다. 전국 고속도로 분기점과 나들목, 도심 교차로에도 설치되면서 사고 위험을 크게 줄였다. 말 그대로 ‘도로 위의 혁명’. 하지만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거둔 공기업 직원은 색깔 유도선이 불법이라 오랫동안 노심초사했다. 도로교통법은 2021년에야 개정됐다. 이 사례는 우리 사회에서 혁신이 얼마나 어려운지 증명한다.
색깔 유도선은 “누가 고안했는지 국회의원 100명보다 낫다”는 호평을 받는다. 윤 차장을 인터뷰한 기사에 댓글이 1500개 붙었다. 불편을 해소해야 할 국회는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질타와 냉소, 불신…. 정치인들이 “국민 뜻에 따르겠다” “국민과 함께 싸우겠다”고 외칠 때 그 ‘국민’은 대체 누구인가? 이 군집 명사의 모호성과 익명성을 끌어와 당파적 욕망의 민낯을 가리는 철판으로 삼는 것인가?
윤석덕 차장은 지난 5월 국민훈장을 받았다. 길치들을 구원하고 교통사고를 줄인 공로. 그가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안주하는 사람이었다면, 색깔 유도선은 더 늦어지거나 등장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을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누구는 윤석덕을 작은 영웅으로 부른다. 조난당한 배에서 선장이 마지막으로 떠나야 하는 것 같은 직업의 기본 원칙조차 지키지 않는 모습을 도처에서 목격하기 때문이다.
영웅을 갖지 못한 나라가 불행한 게 아니다. 영웅이 필요한 나라가 불행하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이 많다면 영웅은 구태여 필요 없다. 그런 보통 사람들이 없는 나라는 필사적으로 영웅을 찾기 마련이다. 한국 사회가 이만큼 지탱되는 것은 알아주든 말든 일터에서 분투하는 ‘윤석덕’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분홍색 차선을 따라 주행하세요”라는 안내문은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을 향한 응원가처럼 들린다.
조선일보 박돈규 기자
07-15 의사를 ‘천룡인’ 만든 정부
권도경 사회부 차장
당시 의대생 대다수는 지금 전공의다. 가장 먼저 병원을 무단이탈한 후 다섯 달 내내 의료 파행 사태를 강경하게 주도한 세력이다. 최근 이들은 두 차례에 걸쳐 ‘대사면’을 받았다. 보건복지부는 각종 명령을 어긴 전공의들을 병원으로 복귀시키기 위해 행정처분 철회, 수련 기회 보장 등 온갖 특혜를 줬다. 의료계 대응은 더 거칠어졌다. 전공의들은 법적 걸림돌이 사라지자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면서 역공에 나섰다. 의대생들은 올해 국시를 거부하고 있다. 의대 증원을 백지화시키기 위해서다.
정부가 열어준 퇴로가 의사들 기세를 올리는 계기로 작용한 현실은 아이러니하다. 이는 의사가 뭉치면 정부는 백기를 든다는 선례 탓이다. 똑같은 방법은 늘 통했다. 국시 거부만 해도 2000년 의약분업 파업 당시 의대생들이 썼던 투쟁 수단이다. 그때 국시 구제를 받았던 의대생과 파업을 이끌던 전공의들이 얼마 전 무기한 휴진을 강행한 의대 교수들이다. 적당한 타협이 불러온 결과다.
정부의 ‘결단’은 의사가 법 위에 있다는 걸 입증했다. 의사에게 매번 굴복한 정부의 이유는 늘 같다. 의사 배출에 차질이 생긴다는 명분이다. 정부가 눈앞에 닥친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원칙을 저버리자 국민 생명은 의사 집단이익을 지키기 위한 볼모로 전락했다. 대체재가 없다면 대책을 만들었어야 했다. 의료 행위를 독점한 의사 파업을 막는 장치를 진작에 법제화했어야 할 일이다. 몇 차례 파업을 겪고도 정부는 20여 년간 손 놓고 있었다. 덕분에 의사는 죄를 지어도 처벌받지 않는 ‘천룡인’으로 불린다.
원칙이 무너지면 당위성은 흔들린다. 막강한 민·형사상 권한을 가진 정부가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업고서도 전공의들에게 무릎 꿇었다. 환자 곁을 끝까지 지켰던 전공의들 헌신은 무의미해졌다. 대학가에선 교육부의 의대 학사 일정 특혜를 두고 분노가 터져 나온다. 의사 수만 늘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의대 증원은 끝이 아니다. 비급여 진료 통제 등 의료개혁 과제가 수두룩하다. 이번 면죄부는 정부가 개혁 행보를 펼치는 데 족쇄가 될 것이다. 의사들은 알고 있다. 그들이 가운을 벗으면 국가 정책은 손바닥 뒤집히듯이 번복된다는 사실을. 다음 수순은 국시 구제다. 데자뷔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지 않다. ‘의사 불패’ 역사는 되풀이될 것이다.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
문화일보
07-16 1만명 끝내 미복귀… ‘전공의 가운’ 벗긴다
■ 빅4 병원, 금명 일괄사직처리
서울성모병원도 “내부 논의중”
마감시한 복귀 44명에 불과해
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병원 등 빅4 병원이 15일까지 복귀와 사직 여부를 응답하지 않은 전공의들을 금명간 일괄 사직 처리하기로 했다. 정부의 온갖 유화책에도 다섯 달째 병원 밖에서 버티고 있는 전공의 대다수가 복귀할 조짐이 거의 없어 1만 명 대량 사직 사태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16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은 보건복지부 지침에 맞춰 사직 처리 마감 시한인 전날까지 돌아오지 않은 전공의에 대해 일괄 사직 처리를 한다는 방침이다. 서울아산·삼성서울·세브란스병원도 전공의 일괄 사직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다수 수련병원은 이날 회의를 열고 구체적인 방침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성모병원 등을 수련병원으로 둔 가톨릭중앙의료원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전공의 사직) 처리 방향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고려대의료원은 아직 전공의 사직서 수리 방침을 정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윤을식 고려대의료원장(대한수련병원협의회 회장)은 이날 “(전공의 사직서 일괄 수리 방침은) 교수회의가 끝나고 결정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각 수련병원에 전날까지 미복귀 전공의 사직 처리를 완료하고, 17일에는 하반기 전공의 모집 인원을 확정해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이를 지키지 않은 병원은 내년도 전공의 정원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대다수 병원은 정부 방침을 따를 것으로 보인다.
마감 시한까지 병원으로 돌아온 전공의는 44명에 불과하다. 복지부에 따르면 15일 기준 전체 수련병원 211곳의 전공의(인턴·레지던트 1만3756명) 출근율은 8.4%(1155명)다. 12일 1111명에서 44명 늘어나는 데 그친 것이다. 레지던트 사직률은 0.82%(1만506명 중 86명)로 12일보다 25명 늘었다. 정부가 하반기 모집에 응시하는 전공의들에겐 ‘1년 내 동일연차·과목 복귀 불가’ 규정에서 제외하는 특례를 주는 등 복귀를 독려하고 있지만 효과는 전무하다.
문화일보 권도경·유민우 기자
07-16 환자단체 “의대 교수들, 전공의 편만 들며 갈등 악화시켜”
“중재 노력도 안해” 비판 목소리
의대생, 수업거부 등 강경 태세
5개월째 의료 현장을 이탈 중인 전공의들의 복귀를 설득해야 할 의대 교수들이 ‘제자 보호’만 앞세우며 의정 갈등을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환자단체는 “의정 갈등 해소 역할을 자처한 교수들이 중재를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의대생들도 정부의 행정처분 철회와 특례 조치에도 복귀 움직임이 거의 없는 전공의들에게 동조해 수업 거부와 의사 국가고시 응시 거부 등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사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16일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회장은 문화일보에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전날 기자회견에서 ‘사직을 선택한 전공의의 결정을 존중해 달라’고 밝힌 것은 교수로서 제자들에게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선언한 것과 같다”면서 “발표를 접하면서 환자들이 지켜왔던 일말의 신뢰와 희망은 산산조각이 났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지난 3월부터 의정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고 자처해 왔는데, 정작 환자들에게 기다려 달라고만 했지 구체적으로 전공의와 어떤 논의를 해 왔고 설득 과정을 거쳤는지는 말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는 전날 “사직을 선택한 전공의의 사직서 수리 일자는 전공의의 의사를 존중해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5개월째 수업 거부를 이어가고 있는 의대생들도 여전히 학교 현장에 돌아가지 않겠다며 버티고 있다. 수도권 의대에 재학 중인 2학년 김모 씨는 “개인으로서는 학교에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며, 의대생 협의체 결정만 기다리고 있다”며 “아무래도 선배인 전공의들과 함께 맞춰 움직일 것 같다”고 말했다. 의대생 대표 단체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는 최근 본과 4학년들의 의사 국시 거부 입장을 밝히며 “의대생들이 원하는 바(증원 재검토)는 이미 전달한 바 있고 문제 해결을 위해선 정부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요지부동인 의대생들 사이에서는 오는 2025학년도 대입 수시 접수 시점인 9월 이전에는 정부가 의대 증원 정책을 돌이킬 여지가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는 2025학년도 의대 입시 일정이 이미 지난 8일 재외국민전형 원서 접수를 기점으로 시작됐다며 ‘정책 재검토 불가’ 입장을 재확인했다.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
07.16 '文정부 때 댐 중단 안 했더라면' 수해 입은 뒤 나오는 한탄

▲지난 9일 오후 대청댐이 수문을 개방하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이날 오후 2시 초당 700t을 방류했으며 하천수위 상황에 따라 최대 1300t 이내에서 방류할 예정이다. /뉴스1
최근 폭우로 수해가 발생한 충청 지역에는 2012년 이명박 정부의 ‘댐 건설 장기 계획’에 따라 상촌댐과 지천댐 등을 건설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해당 댐들은 2018년 문재인 정부의 ‘국가 주도 댐 건설 중단’ 발표로 건설이 무산됐다. 환경 단체와 일부 주민이 반대한 데다 문 정부는 대규모 토목 사업에 부정적이었다. 그렇게 치수 대책을 등한시한 대가는 지금 치르고 있다.
상촌댐은 충북 영동군 초강천 부근에 지을 예정이었다. 지난 6~10일 충청권을 강타한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5시간 동안 120㎜의 집중호우가 내리면서 하천이 범람해 1명이 실종되고, 경부선 영동선 기차 운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상촌댐이 있었으면 상류에서 지방 하천으로 내려가는 물을 잡아둘 수 있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충남 청양에 계획됐다가 무산된 ‘지천댐’ 일대에는 올해도 홍수가 발생했다. 만약 지천댐이 예정대로 건설됐다면 지천 수위를 낮추어 제방 붕괴 등 피해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예정대로 댐을 지었더라면 하는 탄식이 나오는 곳은 이곳만이 아니다. 정부는 태풍과 큰비로 충주댐 상류 일대가 피해가 생기자 ‘장전댐’ 건설을 추진했다. 이곳도 2018년 건설 추진이 무산됐다. 결국 2020년 8월 영월·단양, 지난해 7월 충주·단양이 집중호우로 침수 피해를 보았다. 섬진강 수계의 내서댐을 만들어 놓았으면 지난해 봄 이 유역에서 발생한 극심한 가뭄 피해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2022년 9월 태풍 힌남노 때 범람 피해를 입은 포항 냉천도 상류에 항사댐이 있었더라면 범람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 많았다.
우리나라는 한두 달 정도에 1년 강수량의 대부분이 내리는 지역이다. 기후변화로 앞으로 어떤 극한 가뭄, 극한 호우가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다. 나라 곳곳에 물을 가두는 ‘물 그릇’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어떤 피해가 발생할지 모른다. 특히 댐은 건설에만 6~7년이 걸리고, 후보지 선정과 토지 보상 등을 감안하면 10~20년이 필요한 장기 프로젝트다. 환경부는 작년 홍수와 가뭄 피해를 계기로 10개 안팎의 신규 댐 건설과 리모델링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대상 지역도 발표하지 못했다. 서둘러 물 관리 계획을 내놓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7-19 동성부부 법적권리 첫 인정… 대법 판결 ‘중도’가 갈랐다
내달 1일 진보 2·보수 1인 퇴임
전원합의체 중도 성향 더 세져
동성 부부의 법적 권리를 처음으로 일부 인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대법관들의 이념 지형도가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진보 성향 대법관들은 동성 부부와 사실혼 이성 부부가 사실상 차이가 없다고 봤고, 보수 성향 대법관들은 혼인의 본질을 이성 간 결합으로 판단한 가운데 중도 성향 대법관들의 선택이 결과를 좌우한 것이다. 진보·보수 성향이 뚜렷한 대법관 3명이 조만간 퇴임해 대법원의 중도 성향은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대법관 김선수)는 사실혼 관계 동성 부부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 한 변호사는 19일 “사건이 동성 부부의 성격에 대한 판단을 전제로 하고 있어 이념 성향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며 “중도 중심 ‘조희대 코트’의 성격이 잘 드러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세부적으로 봤을 때 전원합의체를 구성하는 13명의 의견은 9 대 4로 갈렸다. 진보 성향 김선수·노정희·김상환·이흥구·오경미 대법관과 중도 성향 조희대 대법원장, 서경환·신숙희·엄상필 대법관이 다수 의견을 구성했다. 이들은 “동성 동반자는 부부 공동생활에 준할 정도로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으로 사실혼 관계와 차이가 없다”면서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어 “동성 동반자를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합리적 이유 없이 불이익을 줘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보수 성향 이동원·오석준 대법관과 중도 성향 노태악·권영준 대법관은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배우자는 이성 간 결합을 본질로 하는 혼인을 전제로 하는데 동성 간 결합에는 혼인관계의 실질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건강보험공단은 배우자에 해당하지 않는 동성 동반자를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라고 별개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은 동성 동반자 피부양자 인정은 입법이나 위헌 법률 심판으로 결정해야 한다고도 의견을 냈다.
이번 전원합의체에 참여한 대법관 중 김선수·노정희·이동원 대법관은 오는 8월 1일 자로 임기가 만료된다. 세 사람 모두 이념 성향이 뚜렷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의 후임으로 지명된 노경필·박영재·이숙연 후보자는 모두 과거 판결 등에서 특별한 성향을 보이지 않아 중도로 분류된다. 이들이 임명되면 ‘진보 3, 보수 1, 중도 9’로 전원합의체가 재편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강한 기자 strong@munhwa.com
07.20 클라우드로 묶인 세계… 초연결 사회가 부른 '블루스크린 쇼크'
세계 마비시킨 'IT 블랙아웃 사태'

▲19일 인도 뉴델리에 있는 델리 국제 공항에서 한 승객이 오작동하는 안내 화면을 보고 있다. /EPA 연합뉴스
19일 IT 시스템 먹통 사고는 국가와 기관을 가리지 않고 세계 곳곳에서 나타났다. 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미국 사이버 보안 업체의 프로그램 업데이트 오류였다. 하지만 피해를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킨 것은 클라우드(가상 서버)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클라우드는 외부 저장 공간에 데이터와 시스템을 구축해 놓고, 필요할 때 인터넷 등으로 접속해 사용하는 개념이다. 사람과 사물, 서비스 등 모든 것이 이어지는 ‘초연결 사회’의 핵심 인프라 역할을 한다. 하지만 오류가 발생하는 순간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재앙의 진원’이 되기도 한다. 이번에 피해를 본 항공사·금융사·방송사 등도 자체 시스템과 PC 소프트웨어를 클라우드에 구축해 두고 사용했다. 시장조사 업체 시너지리서치그룹에 따르면 아마존웹서비스(AWS)가 글로벌 클라우드 점유율 31%로 1위이며,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마이크로소프트(MS)의 애저가 25%로 2위다.

▲그래픽=김현국
◇보안 프로그램 업데이트 문제
이번 사고는 보안 프로그램 업데이트 과정에서 발생했다. 미국 업체 ‘크라우드 스트라이크(crowd strike)’의 보안 프로그램 ‘팰컨 센서’가 업데이트되면서 MS의 윈도 시스템과 충돌했다. 크라우드 스트라이크는 2011년 세워진 미국의 사이버 보안 기업으로, 2014년 소니 픽처스 해킹 사건, 2015~2016년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사이버 공격 사건 등 주요 사건들을 조사하면서 주목받았다. 팰컨 센서는 실시간으로 사이버 위협을 탐지하고 보호하는 이 회사의 대표 보안 프로그램이다. 이희조 고려대 교수는 “업데이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철저히 테스트를 하긴 하지만, 사용자들마다 환경이 달라서 테스트 중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윈도10 사용자들을 중심으로 피해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기업들은 윈도 같은 PC 소프트웨어도 개인 기기가 아닌 클라우드에 접속해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들은 윈도 접속 화면이 푸른색으로 나타나는 ‘블루 스크린’ 현상을 겪고 있다. 정상적으로 부팅이 안 되는 상황이다.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글로벌 데스크톱 PC OS(운영체제) 가운데 MS 윈도의 점유율은 72%를 넘는다.
◇사고 피해 키운 클라우드
보안 프로그램과 윈도가 충돌한 공간이 MS의 클라우드 ‘애저’다. 기업들은 이런 클라우드에 핵심 시스템과 소프트웨어를 올려두고, 직원들이 필요할 때 접속해 사용한다. PC 같은 개별 기기마다 이런 시스템을 저장해 두는 것보다 훨씬 비용이 적게 든다.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 규모는 올해 7524억4000만달러(약 1045조원)에서 2030년 2조3902억달러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이번 사고도 클라우드에 있던 MS 윈도와 보안 프로그램이 충돌해 먹통이 발생했다. 클라우드에서 발생한 사고가 사용 기업들의 피해로 번진 것이다. 하나의 클라우드를 여러 개의 기업들이 사용하면 그 피해 규모는 도미노처럼 확대될 수밖에 없다. 다만 MS도 클라우드를 단 하나만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몇 개로 나누어 서비스한다. 한국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던 것은 주로 이용하는 클라우드에서 오류가 발생하지는 않았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이런 사고가 앞으로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AWS와 MS가 세계 클라우드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더구나 빅테크들은 클라우드에 인공지능(AI)을 접목하는 등 관련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김승주 고려대 교수는 “갈수록 다루는 데이터의 양이 많아지면서 빅테크의 클라우스 서비스를 이용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며 “그만큼 클라우드 오류로 인한 피해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유지한 기자
07.20 MS 클라우드 먹통, 세계 항공·금융·통신 대란
美보안기업, 업데이트 작업중
윈도와 충돌하며 시스템 장애
PC 화면 파랗게 변하며 마비

▲19일 인도 뉴델리의 델리 국제공항에서 이착륙 항공편 정보를 안내하는 화면이 시스템 오류로 정지된 채 파랗게 변해 있다. 이날 사이버 보안 기업 ‘크라우드 스트라이크’가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가상 서버)에서 보안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하는 과정에서 윈도 운영체제와 충돌하는 오류가 발생해 세계 곳곳의 항공·열차·병원·은행 업무가 마비됐다. 이 여파로 이날 스페인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에서는 항공권 발권이 지연돼 승객들 발이 묶였고(가운데 사진), 프랑스 파리 인근의 디즈니랜드는 놀이기구 대기 시간을 알리는 스크린이 먹통이 됐다(아래 사진). /EPA 연합뉴스·로이터뉴스1·로이터 연합뉴스
마이크로소프트(MS)의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보안 프로그램 업데이트 도중 오류가 발생, 전 세계 곳곳에서 항공·은행·병원 등의 업무가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주요 시스템이 멈추면서 항공·기차편이 무더기로 지연되고, 방송이 중단되는 등 ‘IT 블랙아웃(정전)’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19일 세계 곳곳에선 MS의 운영체제(OS) 윈도를 사용하는 PC에서 갑자기 화면이 파랗게 변하는 ‘죽음의 블루 스크린’ 현상이 일어났다. 업무용 PC가 먹통이 되자, 각 기업들은 대혼란에 빠졌다. 인천공항을 포함한 세계 곳곳 공항에서 PC와 연결된 체크인 카운터에 블루 스크린이 뜨고, 발권 및 탑승 수속이 ‘올스톱’됐다. 독일 북부 도시 뤼베크와 킬에 있는 두 병원에선 예정됐던 수술이 취소됐고, 북아일랜드에선 환자 기록을 열람하지 못해 의원의 3분의 2가 진료에 차질을 빚었다. 런던 증권거래소는 서비스 중단에 직면했고, 호주 최대 은행인 커먼웰스 은행도 송금 업무 일부가 일시 마비됐다. 카드 결제가 안 돼 문을 닫은 매장이 세계 곳곳에 속출했다. 영국 뉴스 방송사인 스카이 뉴스는 생방송이 갑자기 중단됐고, 호주 국영 ABC방송사 역시 대규모 네트워크 중단으로 방송에 차질을 빚었다. 개막을 일주일 앞둔 파리올림픽도 취재 승인 시스템 오류 등 운영에 차질이 생겼다.
이번 장애는 미국 대형 사이버 보안 기업 ‘크라우드 스트라이크’가 MS의 클라우드 ‘애저’에서 보안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하는 과정에서 윈도와 충돌을 일으키며 일어났다. 이번 사태는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이어진 ‘초연결 사회’의 위험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김승주 고려대 교수는 “MS의 애저를 쓰는 기업들이 대부분 피해를 당했다”며 “지금까지 개별 국가 차원에서 IT 시스템 장애를 일으킨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전 세계적으로 피해가 발생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세계 경제가 특정 소프트웨어에 얼마나 취약하게 의존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충격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날 미 연방항공청은 시스템 다운과 함께 즉시 델타, 유나이티드, 프런티어 등 주요 항공사의 비행을 전면 중단시켰다. 네덜란드 KLM과 독일 루프트한자 등 유럽계 항공사는 물론, 국내에서도 제주항공·이스타항공 등 다수가 영향을 받았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온라인으로 발권하면 1인당 5분이면 끝날 업무를 직원이 수기로 발권을 진행하며 비행편 운항이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X(옛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는 발이 묶인 대규모 승객들이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거나, 카운터 앞에 모여 항의하는 사진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항공 업계에선 항공사별로 적게는 수백 명, 많게는 수천 명의 승객 발이 묶인 것으로 보고 있다. BBC 방송은 “전 세계적으로 항공기 1390편이 결항됐다”고 보도했다. 영국 철도도 지연이 속출했고, 호주·영국에선 카드 결제 시스템이 중단되기도 했다.
의료·구조 현장의 마비도 심각했다. 영국 웨스트요크셔 브리그하우스의 한 병원은 X에 “병원 시스템이 마비돼 환자의 기록에 접근할 수 없고, 예약과 같은 정보를 확인할 수도 없다”고 했다. 미국에선 오하이오·알래스카 등 일부 주에서 응급 구조 전화 911 센터에서도 컴퓨터가 다운되며 교환원들이 구조 전화를 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오하이오주에선 “경찰이나 소방 지원이 필요할 경우 911이 아닌 경찰서로 전화해 달라”는 긴급 공지가 올라오기도 했다. 다만 한국 공공기관들은 보안 문제로 국산 클라우드를 사용해 국내 행정망에는 피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번 충돌 사태가 이토록 큰 피해를 입힌 것은 문제가 된 업체의 서비스들이 시장 독점적 지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MS의 애저는 글로벌 클라우드 2위인 데다,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크라우드 스트라이크는 포천(Fortune) 500 기업의 약 60%를 고객사로 거느리고 있다. 이들의 서비스에 의존하는 기업이 많은 만큼 피해의 범위가 컸다는 것이다. 크라우드 스트라이크는 이날 문제점을 찾아 수정에 나섰지만, 완전 정상화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클라우드(cloud·가상 서버)
거대한 데이터센터의 저장 공간으로 외부 이용자들이 데이터와 소프트웨어 등을 넣어 두고 필요할 때 꺼내 쓰는 것을 말한다. PC처럼 눈에 보이는 특정 기기에 고정돼 있는 게 아니라 구름처럼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는 의미로 ‘클라우드’라는 이름이 붙었다. 초창기에는 주로 데이터와 프로그램 저장 용도였지만, 최근엔 기업들이 각종 시스템까지 넣어둔다. 10여 년 전부터 빅테크들이 이런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조선일보 실리콘밸리=오로라 특파원
07-23 김범수 구속…책임감과 도덕성 저버린 기업에 경종 돼야
네이버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포털 업체인 카카오의 창업자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23일 구속됐다. K-팝 선구자로 불리는 이수만이 세웠던 연예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의 시세를 조종, 하이브의 주식 공개 매수를 방해해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혐의가 인정됐다. 서울남부지법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거쳐 “증거인멸과 도주의 염려가 있다”며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재계 순위 15위인 카카오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카카오 총수인 김 위원장의 전격 구속은 충격이다. 검찰은 김 위원장이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 시세조종 계획을 사전에 보고받고 승인했다고 본다. 법원의 구속 결정은 혐의 내용이 어느 정도 소명됐음을 의미한다. 김 위원장은 보고를 받고 승인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매수 방식·과정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수용하지 않고, 반대로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까지 인정했다.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는 같은 혐의로 이미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카카오는 초비상이다. 검찰은 이번 혐의 외에도 드라마 제작사 고가 매입 의혹, 카카오모빌리티의 ‘콜 몰아주기’, 블록체인 플랫폼 임원들의 횡령·배임 등도 수사 중이다. 사법 리스크가 심상치 않다.
카카오는 147개였던 계열사를 124개로 줄이고, 경영쇄신위원회 출범 등 기업 쇄신에 나섰지만 만시지탄이다. 혁신을 주도해야 할 신성장 기술 기업이 기본에서 일탈해 화를 스스로 키웠다. 시장 지배적 지위를 이용한 문어발식 확장으로 이·미용 등 서민 업종까지 넘보고, 경영진이 상장 후 스톡옵션을 매각해 거액을 챙기는 등 사회적 논란과 물의가 끊이지 않았던 터다. 이번 사태는 책임감과 도덕성을 경시해 기대를 저버린 기업에 대한 경종이다. 카카오는 SM엔터 재매각 등을 통해 잘못을 시정하는 것은 물론, 혁신 초심으로 돌아가 새 출발하는 계기로도 삼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07.24 카카오 김범수 구속, '혁신' 상실이 진짜 위기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의혹을 받는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이 22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2024.7.22/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공동의장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김 의장은 SM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경쟁사였던 하이브의 공개 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시세를 조종한 혐의를 받는다. 김 의장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로 벤처 신화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김 의장이 시세 조종 혐의를 받게 된 것은 충격적이다. ‘흙수저’ 출신 김 의장은 대기업 직장을 떠나 창업한 뒤 혁신의 DNA로 거대 기업 카카오를 일궜다. 지난 2020년엔 매출 3조원에 불과한 카카오가 매출 100조원도 넘는 현대차를 누르고 시가총액 10위권에 진입했다. 그만큼 미래 성장성에 기대가 컸다. 2021년에는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선언도 했다.
하지만 카카오가 ‘공룡 기업’으로 크는 과정에서 혁신 DNA는 흐려졌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혁신 대신 플랫폼 사업자로서의 지위를 이용하는 데 주력했다. 소상공인이 주를 이루던 헤어숍·꽃배달 사업까지 진출하며 기존 재벌 그룹을 능가하는 과도한 문어발식 확장과 골목 상권 침해로 비판받았다. 2018년 60여 개이던 카카오 계열사는 지난해 말 기준 138개에 달한다. 몸집 축소를 약속하면서 40여 곳을 정리했지만 계열사 수는 다시 늘어나고 있다.
카카오는 도덕성 시비도 끊이질 않았다. 카카오페이 경영진은 상장 직후 스톡옵션 행사로 취득한 주식을 팔아치워 800억원을 챙겼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알고리즘을 조작해 자사 가맹택시에 배차 콜을 몰아준 혐의로 공정위 과징금 257억원을 부과받았다. 분식회계 의혹으로 80억원 수준의 과징금 부과와 함께 금감원 제재도 임박했다. 혁신 기업이 기존 대기업과 비슷한 행태를 보인 것이다.
문어발식 확장으로 덩치를 키우면서도 IT 기업이라면 승부를 걸어야 할 AI(인공지능) 같은 미래 성장 투자는 적기를 놓치고 경쟁에서 뒤처졌다. 급기야 기업 인수 경쟁을 벌이다 총수 구속 사태까지 맞았다. 카카오의 진짜 위기는 혁신의 상실일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7.25 최저임금제 개선 필요성 보여주는 필리핀 도우미 문제

서울시가 9월부터 시범 실시하는 ‘필리핀 가사 관리사(도우미)’ 신청자가 5일 만에 1500명을 넘어섰다. 이번에 들어올 필리핀 도우미는 100명이고, 서울시가 300가구에 연결해 줄 예정인데, 신청 마감일(8월 6일)이 열흘 이상 남아 있는 상황에서 벌써 경쟁률이 5대1을 웃돌고 있다.
필리핀 도우미 신청 열기는 우리 사회에 저비용 가사 도우미의 수요가 얼마나 많은지 보여준다. 지난 3월 한국은행은 가사 도우미와 간병인 등 돌봄 서비스 인력이 2042년이면 155만명 부족해진다면서 외국인 근로자를 활용할 것과 이들에 대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는 정책 대안을 제시했었다.
맞벌이 부부의 가사·육아 도우미 비용은 월평균 264만원에 달한다. 한 사람 버는 수입을 전부 육아 도우미 비용으로 지불해야 하는 실정이다. 한국이 세계 최악의 저출생국이 된 데는 과도한 육아 비용도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출산·육아 등의 사유로 직장을 그만둔 경력 단절 기혼 여성이 140만명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 가사 도우미 고용은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고, 저출생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 높은 도우미 임금 수준이다. 이번 필리핀 가사 도우미의 시간급은 최저임금(9860원)과 4대 보험료를 감안해 시간당 1만3700원으로 책정됐다. 홍콩(2797원), 싱가포르(1721원)의 5~8배에 이른다. 싱가포르는 외국인 가사 도우미의 최저임금을 8개 파견국과 협의해 결정한다. 홍콩은 최저임금 적용에 외국인 가사 도우미는 예외를 뒀다. 그런데도 가정에서 숙식하며 월 77만원 정도 받은 홍콩의 외국인 가사 도우미들은 매우 만족하면서 절대다수가 계속 일할 의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월 100만원 수준이면 우리도 도움을 받고 그들에게도 도움이 될 방안이 될 것이다.
정부는 내·외국인 임금 차별을 금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때문에 최저임금을 보장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대안으로 제시한 대로, 개별 가구가 외국인을 직접 고용하는 사적 계약 방식을 활용해 ILO 협약을 우회하는 방안도 있다. 맞벌이 부부들이 저렴한 비용에 외국인 가사 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도록 최저임금 제도를 정비했으면 한다.
조선일보 사설
07.25 티몬·위메프 사태 확산, 공정위·금감원 적극 나서야

앱 사용자 900만 명 육박…지난달 1조원 넘게 결제
‘제2의 머지 사태’되지 않도록 피해 최소화 노력을
온라인 쇼핑몰 티몬·위메프의 판매자 정산금 지연 사태의 후유증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플랫폼에 입점했던 여행·유통업체들은 상품 판매를 중단하거나 이미 판매한 상품을 취소하면서 소비자 피해도 늘어나고 있다. 티몬과 위메프는 쿠팡·11번가·G마켓에 이어 국내 4, 5위 이커머스 업체다. 두 쇼핑앱 사용자가 각각 437만 명, 432만 명에 달한다.
이번 사태는 모기업 큐텐의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인한 자금 흐름 악화 때문이다. 큐텐은 2022년 티몬을, 지난해 인터파크쇼핑과 위메프를 인수했다.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큐텐은 올해 2월 미국 쇼핑 플랫폼 위시를 1억7300만 달러(약 2300억원)에 사들이면서 유동성 문제가 불거졌다. 위메프에서 시작된 정산 지연은 티몬으로 이어졌고, 휴가철을 맞아 이 쇼핑몰에서 항공권과 호텔 숙박권 등 여행상품을 산 소비자들은 구매가 취소되고 환불이 지연되는 등의 피해를 보고 있다. 두 쇼핑몰에선 현재 신용카드 결제가 안 되고, 결제를 취소해도 환불이 어렵다. 소비자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제2의 머지 사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21년 머지포인트는 ‘무제한 20% 할인’을 내세우며 머지머니를 팔았지만 결국 현금 부족으로 대규모 환불 중단 사태가 터졌다. 위메프·티몬은 선불충전금인 ‘티몬 캐시’와 각종 상품권을 할인 판매했다. 이들 업체가 부족한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티몬 캐시와 상품권을 적극적으로 할인 판매한 것이라면 머지 사태와 다를 게 별로 없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어제 국회 업무보고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 “미정산 문제는 민사상 채무불이행 문제라 공정거래법으로 직접 의율이 어렵다”고 말했다. 법학교수 출신이니 그의 말에 법적으로 틀린 데는 없을 것이다. 민사 문제라면 당사자 간 해결이 원칙이다. 하지만 지난달 두 회사를 합해 1조원이 넘게 결제된 쇼핑몰에 사고가 터졌는데 정부가 손 놓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두 회사는 공정위가 관할하는 전자상거래법이 적용되는 통신판매 중개업자다. 표시 광고나 소비자 보호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또 이들 업체가 전자금융업자이기도 한 만큼 금융감독원도 현금 유동성을 꼼꼼하게 모니터링해야 한다.
위메프·티몬은 고객이 결제하면 대금을 최대 두 달 후에 판매자에게 정산해 준다. 정산 대금을 다른 데로 돌려 쓰면서 현금이 부족해진 끝에 이번 사태가 터졌다. 두 회사는 뒤늦게 제3의 금융기관에 자금을 안전하게 거치하는 새로운 정산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고칠 바엔 확실하게 고치고, 정부도 필요한 점검을 신속하고 책임있게 해야 할 시간이다.
중앙일보 사설
07.25 퓰리처상 받은 사진가 김경훈
김 기자는 2018년 11월 멕시코 티후아나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최루탄을 피해 절박하게 도망가는 엄마와 아이들을 포착했다.
그중 한 아이는 기저귀를 찬 채였다.

▲2018년11월 2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김경훈 기자가 촬영한 사진. 이 사진이 전 세계 미디어와 네티즌들에게 캐러밴(중미 이민행렬) 사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로이터=연합뉴스]
이 한 장의 사진은 세계적은 주목과 함께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 세계 언론이 다투어 그 가족을 취재했으며,
그의 말처럼 사진 한 장이 일으킨 파문이 세상의 틀을 바꾼 터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07-25 보이스피싱 업체까지… 문정부 코로나 지원금 3.2조 줄줄
■ 감사원 감사 결과
팬데믹때 소상공인에 61조 지원
코로나 무관 업체에도 세금 투입
폐·휴업 6만 곳엔 1102억 뿌려
대포통장 법인까지 지원금 꿀꺽
정부가 2020∼2022년 코로나19 기간 소상공인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3조 원이 넘는 혈세를 부당하게 지급했던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에서 소상공인을 돕겠다는 취지로 도입한 것과 달리 부실한 정책 설계와 현금 나눠주기식 행태로 막대한 세금이 낭비된 사실이 처음 밝혀진 것이다. 현금성 퍼주기식 지원의 맹점이 고스란히 나타났다는 비판이 커질 전망이다.
감사원은 중소벤처기업부를 대상으로 ‘소상공인 지원사업 추진 실태’를 감사한 결과, 코로나 사태 3년간 3조2323억 원의 세금이 부당하게 지급됐다고 25일 밝혔다. 앞서 정부는 2020년 코로나가 확산하고 정부의 방역조치로 소상공인이 경영상 어려움에 처하자, 추가 예산을 편성해 2020년부터 3년간 11차례에 걸쳐 총 61조4000억 원(재난지원금 52조9000억 원·손실보상금 8조5000억 원)을 투입했다. 소상공인은 상시 근로자가 5∼10명 미만인 사업장을 말한다.

그러나 감사원은 코로나 피해가 확인되지 않거나, 지원 대상이 아닌 경우에도 무차별적으로 세금이 지원됐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코로나 피해 미확인 △피해액 대비 과다 지원 △피해 무관 △영업요건 미충족 △지원 비대상 등에 3조1200억 원(55만8831곳)의 세금이 부당하게 투입됐다. 정부의 사전 점검 부실로 피해액 대비 과다 지원한 사례가 가장 많았다.
실례로 태양광 발전소를 운영하는 A 업체는 매출이 27만 원밖에 감소하지 않았는데도 재난지원금으로 1340만 원을 타갔다. 매출 감소액의 50배 가량을 지원받은 셈이다. 이같이 과도하게 높은 지원금을 받은 사업장은 36만6764곳(2조6847억 원)에 달했다. 코로나 피해 여부도 확인하지 않은 채 신청만 하면 지급된 지원금도 3007억 원(8만6217곳)이었다. 감염병과 관계없는 태양광 발전 등 사업장 1만5574곳에도 1205억 원이 지원됐다. 감사원은 “코로나 피해 여부를 확인하지도 않았고, 매출액이 단 1원이라도 감소한 경우에도 지원금을 지급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폐업이나 휴업한 사업장 등 지원 요건을 갖추지 못한 6만3890곳에도 1102억 원의 혈세를 투입하면서 세금이 줄줄 샜던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택시업자인 B 씨는 택시면허를 양도한 이후 3년간 재난지원금 1240만 원을 받았다. 심지어 보이스피싱, 대포통장 유통 등 유령법인 21곳도 지원금을 부정 수령했다. 2020년 8월 대포통장 유통 목적으로 설립된 C 법인은 법원 해산명령 판결을 받은 이후 1900만 원을 재난지원금으로 받아갔다. 지원 제외 업종인 부동산임대업자에게 지원금을 지급한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이 같은 불법 수급 업체가 전국 321곳(21억 원)에 달했으나 사후 점검도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감사원은 당시 정부가 코로나 피해에 대해 ‘폭넓고 신속한 지원’에 방점을 뒀던 만큼, 개별 공무원에 대한 징계 요구는 하지 않기로 했다. 중기부엔 추후 현금지원사업 정책에 참고할 수 있도록 관련 자료를 통보했다.
김규태 기자 kgt90@munhwa.com
07.26 마약 범죄, 위장 수사 허용하라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필로폰 16kg을 밀반입한 태국인이 최근 경기 화성시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태국에 있는 총책에게 5000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범죄에 동참했고, 반죽기 안에 필로폰을 숨겨 국제 탁송 화물로 배송받았다고 한다.
필로폰 16kg은 53만3000명이 한 번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시가로 533억원에 달한다. 이 태국인은 필로폰 2kg을 지방의 한 대도시에 있는 한국인에게 ‘던지기’ 방식으로 판매했는데, 그중 일부가 이미 시장에 유통됐다고 한다. 경찰은 구매자를 추적 중이다.
최근 만난 한 일선 부장검사는 “이제 마약 범죄는 임계점을 넘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과거엔 외국인의 마약 범죄가 외국인 근로자들의 커뮤니티 안에서만 이뤄졌다. 그런데 이제는 국제 마약 조직이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통해 수도권에 대량의 마약을 유통시키고 있다”고 했다.
작년 한 해 압수한 마약류는 998㎏이었다. 4년 전인 2019년(362㎏)보다 2.8배나 늘었다. 마약 범죄가 대표적인 암수 범죄(드러나지 않은 범죄)임을 감안하면, 실제 국내에 유통되는 마약은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국내에서 압수된 마약류 대부분은 해외에서 밀수입된 것이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마약이 늘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국내 마약 시장이 커졌다는 뜻. 지난해 마약 사범 수가 처음으로 2만명을 넘었는데, 올해에는 처음 3만명이 넘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시가 수백억 원어치 필로폰이 수도권에 밀반입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현장에서 만난 검사들은 종종 “급증하는 마약 범죄에 대응할 시스템이 갖춰지지 못했다”는 자조를 한다. 약한 처벌, 컨트롤 타워의 부재 등도 거론되지만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는 마약 범죄에 대한 위장·잠입 수사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대면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는 마약 유통 조직 특성상, 조직의 상선(총책)을 수사하려면 수사관이 조직 내부에 직접 잠입해야 한다. 그런데 위장·잠입 수사가 위법이니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한다. 결국 구매자나 운반책 등 하선만 덜미를 잡힌다.
한 검사는 “요즘은 텔레그램으로 조직원을 뽑을 때도 신분증 검사를 하는데, 위조 신분증을 낼 수 없어 우물쭈물거리다 강퇴당하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 속 경찰의 위장 수사는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일 뿐이다.
위장·잠입 수사를 허용하자는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1대 국회에 마약류 범죄에도 위장 수사를 허용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게다가 당시 발의된 법은 경찰에만 위장 수사를 허용하자는 취지였다.
22대 국회에선 검경 모두에 위장 수사를 허용하자는 논의가 이뤄졌으면 한다. 그래야 마약에 오염된 대한민국을 막을 수 있다.
조선일보 유종헌 기자
07.26 미정산액 1700억원...'티메프' 대란, 6만 영세업체 비상
금감원·공정위 긴급 현장 조사
업체 미정산액 1700억원 달해 "줄도산 우려"
소비자 민원도 이틀간 2000건

▲이커머스 기업인 티몬과 위메프의 ‘정산·환불 지연’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진 가운데, 25일 서울 삼성동 위메프 본사에 피해자 수백 명이 해결책을 요구하며 몰려온 모습. 류화현 위메프 대표는 이날 “1순위로 소비자, 2순위로 영세 소상공인의 피해가 없게 하겠다”고 했다. /전기병 기자
온라인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사고파는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체인 티몬과 위메프가 판매자에게 제때 정산을 해주지 못하면서 발생한 사태가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판매자들에 대한 정산도, 소비자들에 대한 환불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다 일부 환불, 정산조차 원칙 없이 진행되자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위메프 측이 25일 “소비자 환불이라도 먼저 하겠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실제 현장에서 환불은 지지부진했다. 이날 금융감독원과 공정거래위원회 등은 합동조사반을 꾸려 티몬과 위메프에 대한 긴급 현장 조사에 나섰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중앙회도 피해 중소기업 사례 취합에 착수했다.
티몬과 위메프에 입점한 업체는 6만개에 달한다. 이 업체들의 대부분은 영세 판매자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시기를 겨우 버텼는데, 이번 사태로 영세한 업체들의 줄도산이 벌어질 게 우려된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티몬과 위메프의 미정산액이 1700억원이라고 밝혔다. 뒤늦게 언론을 통해 이번 사태를 접한 사람들이 늘면서 23~24일 양일간 1372 소비자상담센터를 통해 접수된 티몬, 위메프 관련 민원은 2000건을 돌파했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위메프 본사 앞에는 70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이커머스 기업인 티몬과 위메프가 판매자에게 제때 정산을 해주지 못한 사태가 소비자 피해로 이어지면서 환불과 정산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몰린 것이다. 현장에는 여름 휴가를 위해 여행 상품을 결제한 사람이 특히 많았다. 한모(43)씨는 “다음 주 월요일(29일) 가기로 한 호텔 예약이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환불이 안 돼서 무작정 찾아왔다”고 말했다. 위메프는 이날 수기로 환불 절차를 진행했지만, 피해자들이 몰리면서 안전사고를 우려해 오전 10시 30분부터 현장 접수를 중단하고 QR코드를 통한 온라인 접수를 안내했다. 티몬 피해자들은 직원들이 재택 근무에 들어간 서울 강남구 신사동 티몬 사옥에 진입해 항의를 했다.

▲그래픽=양인성
티몬에서 가공식품을 판매하는 A(39)씨는 지난 19일 입금됐어야 할 대금 7억원을 받지 못했다. 그동안 최대 두 달이 걸리는 정산 대금을 마냥 기다릴 수 없어 티몬과 제휴된 은행에서 먼저 정산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번에 문제가 터졌다. 그는 “은행에서 당장 10억원을 갚으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이미 판매를 마쳐 8~9월에 들어와야 할 대금까지 합치면 수십억 원이 물려있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A씨 같은 사람에게 티몬과 위메프 등 이커머스 플랫폼은 생명줄이다.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 입점하거나 직접 홈페이지를 만들어 판매에 나설 경쟁력과 힘이 없다. 티몬과 위메프의 6만여 판매사 대부분은 A씨처럼 수수료, 긴 정산 주기를 감수하고 입점을 택했다. 티몬에서 물건을 파는 한 업체 사장은 “티몬 같은 큰 기업이 판매 대금을 떼어먹지는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는데, 이번에 그 믿음이 깨져버렸다”고 말했다.
특히 거래 금액과 이커머스 업체에서 판매되는 비중이 큰 여행, 가전 등의 판매자들이 심각한 자금 상황에 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100만원짜리 상품을 팔면 여행사는 1만원을 가져가는 구조”라며 “이커머스 업체가 제때 정산을 해주지 않으면 소형 여행사는 곧장 자금난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행업계에 따르면 티몬과 위메프에 입점한 여행사는 30여 사로 이 중 5~6곳을 제외한 대부분 업체가 항공사, 호텔 위약금을 지불하고 나면 사업을 이어갈 수 없는 영세 여행사다.

▲25일 서울 강남구 티몬 본사 앞에 피해자들이 모여 있는 모습. /조인원 기자
◇소비자도 복불복
소비자들은 티몬과 위메프의 대응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판매사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복불복’이다. 자금 여력이 있는 판매사는 손해를 감수하고 소비자들을 구제하겠다고 나섰지만, 대부분의 업체는 소비자를 신경 쓸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SPC그룹은 티몬과 위메프에서 판매한 모바일 상품권에 대해 전액 환불 가능하도록 했다. 시몬스는 티몬에서 소비자가 결제한 제품을 문제없이 배송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시몬스가 오는 8~9월 티몬 측으로부터 지급받아야 하는 정산 금액은 1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11번가는 소비자가 위메프에서 구매한 기프티콘을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나투어, 모두투어, 참좋은여행 등 여행사들은 티몬과 위메프에 대한 계약 해지에 나섰다. 이와 함께 대부분의 여행사가 소비자들에게 “다시 여행사에 결제해야 여행이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다. 야놀자는 29일부터 예약한 숙박 상품에 대해 일괄 사용 불가 처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야놀자는 소비자들에게 “취소 환불 절차는 티몬/위메프 고객센터를 통하여 진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공지했다. 티몬·위메프 여행 예약 피해자가 모인 채팅방에는 1500명이 넘는 인원이 모였다.
◇또 다른 뇌관 상품권
티몬, 위메프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상품권 시장도 혼돈에 빠지고 있다. 티몬과 위메프는 업계에서 유난히 상품권 할인 판매를 많이 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티몬과 위메프는 해피머니 상품권 5만원권을 4만6250원에, 컬쳐랜드 상품권 5만원권을 4만6400원에 각각 판매했다. 사실상 ‘깡’ 시장 역할을 한 것이다.
상품권 시장은 소비자가 구입한 상품권을 상품권 제휴사에서 쓰면 제휴사가 상품권 발행업체에 다시 돈을 청구하는 구조다. 티몬과 위메프가 상품권 발행업체에 판매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상품권 제휴사들이 상품권 발행업체의 자금난이 벌어질 것을 예상하고, 상품권 사용을 막은 것이다. 상품권 제휴사 관계자는 “사태가 정상화될 때까지 티몬과 위메프에서 판매가 많았던 상품권의 사용을 막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07.27 티몬·위메프 사태, 기업 탐욕과 정부 무사안일의 합작품

▲26일 서울 강남구 티몬 사옥에서 '판매 대금 미정산 사태'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이 환불 접수 창구 앞에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뉴시스
전자상거래 4·5위 업체인 티몬과 위메프가 상품 거래 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해 6만여 입점 업체들이 자금난에 빠지고,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들이 환불 중단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휴가철을 맞아 비행편과 호텔을 예약한 소비자들은 항공·숙박권이 취소되는 바람에 휴가를 망치기도 했다. 기업의 탐욕, 도덕적 해이가 1차 원인이지만, 정부의 무사안일이 사태를 더 키운 면이 있다.
두 기업의 모(母)회사인 큐텐은 국내 최초의 오픈마켓(판매자와 구매자를 직접 연결해주는 온라인 쇼핑몰)인 G마켓 창업자가 설립한 회사로, 본사를 싱가포르에 두고 있다. 큐텐은 2022년 티몬, 지난해엔 위메프와 인터파크쇼핑, 올 2월엔 미국 쇼핑 플래폼 위시를 인수하는 등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왔다. 큐텐은 무리한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자금난에 몰렸고, 티몬·위메프도 완전 자본 잠식에 빠졌다. 지난 4월 위메프의 회계감사 법인은 ‘기업 존속이 어려운 상태’라고 판정했다.
현재 두 기업의 자본금은 마이너스 9000억원에 이른다. 두 기업은 판매 대금을 최장 두 달 뒤 입점 업체에 정산하는 시스템을 악용해 부족한 운영 자금을 판매 대금으로 돌려막기해 오다 한계에 부딪힌 것으로 보인다. 두 기업은 막판엔 급전을 조달하기 위해 10% 할인 상품권을 남발,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거래 후 40일 이내 결제하도록 의무화한 법 규정이 있지만 온라인 업체들은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온라인 유통업체가 결제를 두 달씩 미루며 판매 대금을 다른 곳에 유용하는 것을 막을 장치가 없는 것이다. 상품 판매 즉시 정산하게 하거나, 고객 결제 자금을 금융사에 예치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의 무사안일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금융감독원은 2년 전 두 업체가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지자, 경영 개선 협약을 맺었는데, 이후 적극적인 감독과 대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 관련 부처들은 책임을 느껴야 마땅하고 늦었지만 법적, 제도적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7-29 구영배 대표의 꼬리자르기 의혹…검찰 즉각 수사 나서야
티몬과 위메프를 지배해온 구영배 대표가 지난 27일 핵심 물류 계열사인 큐익스프레스 최고경영자(CEO)에서 사퇴해 꼬리 자르기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큐익스프레스도 “우리는 미정산 사태와 직접적 관련이 없으며, 그 영향도 매우 적다”며 “그동안 계열사 물동량 비중을 낮춰 동남아 e커머스 중심의 해외 물량이 90%에 이른다”고 선을 그었다. 이번 사태는 큐익스프레스를 나스닥에 상장시키려 인수합병(M&A)과 자금 돌려막기로 무리하게 덩치를 키우다가 일어났다. 6만여 입점 업체를 자금난에 몰아넣고 알짜 계열사만 챙기겠다면 파렴치한 일이다.
구 대표는 29일 “제 재산의 대부분인 큐텐 지분 전체를 매각하거나 담보로 활용해 사태 수습에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제 뒤에서 입장문만 내놓을 게 아니라 사태 해결의 전면에 나서 최종 책임을 져야 한다. 구 대표는 전방위 M&A 때마다 티몬과 위메프의 판매 대금을 끌어다 쓴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횡령·배임 혐의가 성립될 수 있는 대목이다. 공격적 마케팅으로 유동성이 부족한데도 계속 입점 업체와 계약을 유지하거나 소비자들에게 상품을 판매했다면 사기나 다름없다.
정부가 지난 주말부터 소비자와 영세 셀러(판매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카드사, 전자결제대행(PG)사, 대형 셀러들에게 소비자 환불과 이미 주문한 제품의 정상 배송을 압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티몬과 위메프가 파산을 선언해 버리면 피해자들끼리 ‘빚잔치’를 벌이게 될지 모른다. 검찰이 즉각 수사에 나서야 한다. 필요하면 관련자들의 출국 금지도 이뤄져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온라인 업체들도 오프라인 업체처럼 40일 이내 결제를 의무화하거나 상품 대금을 금융사에 예치하도록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잘나갈 때 이익은 사유화하고 경영 잘못에 따른 손실은 사회화하는 행태가 더 이상 용납돼선 안 된다.
문화일보 사설
07-29 女양궁 올림픽 10연패 신화, 공정 경쟁과 첨단 훈련의 힘
한국 여자 양궁이 올림픽 단체전에서 10연패(連覇) 신화를 만들며 올림픽 역사를 새로 썼다. 남수현(19), 임시현(21), 전훈영(30)으로 이뤄진 대표팀은 28일 파리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 결승에서 세트 스코어 5 대 4로 중국을 물리치고 우승했다. 이 종목이 생긴 1988년 서울대회부터 파리대회까지 36년간 올림픽 10연패라는 대업이다. 특정 종목 연속 10연패는 미국 남자 수영 대표팀의 400m 혼계영이 유일하다. 국제양궁연맹은 세계 최강인 한국의 독주를 막기 위해 거리와 발사 횟수를 바꾸는 등 6번이나 제도를 바꿨으나 한국 신궁들을 막지 못했다.
이는 선수와 코치진의 피땀 흘린 노력과 함께 슈팅로봇까지 동원된 첨단 훈련과 공정 경쟁 시스템이 만든 결과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정몽구 현대차 그룹 명예회장에 이어 대한양궁협회장을 맡은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양궁 훈련에 모빌리티 기술을 쏟아부었다. 현대차 그룹은 인공지능, 증강현실, 3차원 프린팅 등 첨단 기술 도입은 물론 슈팅 로봇과의 대결도 진행했다. 국가대표 2차 스페셜 매치에 투입된 슈팅 로봇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대결로 ‘멘탈 게임’인 양궁 선수들의 실전 감각을 끌어올렸다.
무엇보다 한국 양궁은 ‘올림픽보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어렵다’고 할 정도의 공정 경쟁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이번에도 2020도쿄올림픽 3관왕 안산이 탈락하는 등 선수가 완전히 교체됐다. 세 선수 모두 올림픽 첫 출전이다. 임시현은 세계 랭킹 2위, 전훈영은 21위, 남수현은 61위로 선수들 간 격차 때문에 우려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세 번에 걸친 국가대표 선발전과 두 차례 평가전을 거친 선수들은 가장 큰 무대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이번 올림픽에서 개최국 프랑스를 포함해 8개국이 한국인 감독을 선임했지 만 한국을 넘지 못한 이유이다. 양궁에 이어 펜싱과 사격 금메달로 한국이 ‘총·칼·활’에서 독보적이라는 평가도 흥미롭다. 한국 양궁이 증명한 한발 앞선 혁신, 공정한 경쟁은 정치·경제 등에 큰 메시지와 울림을 던져준다.
문화일보 사설
07-29 가장 뜨거운 ‘7월의 밤’… 온열질환 엿새간 289명

▲뜨거운 한반도… 28일 밤사이 강원 속초시 등에 최저기온이 30도를 웃도는 ‘초열대야’가 나타난 가운데 이날 서울 여의도한강공원에서 ‘2024 한강 무소음 DJ 파티’ 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 그래픽=전승훈 기자
■ 올 열대야 30년 만에 ‘최다’
밤 최저 강릉 30.3·동해 29.8도
올 환자 925명으로 전년비 6%↑
경북지역 등서 사망도 4명 발생
닭 등 가축 폐사 11만마리 달해
강원 속초시에 29일 오전 최저기온이 30.6도를 기록하는 등 강원·경북 지역 곳곳에서 밤사이 최저기온이 역대 최고치에 달해 가장 무더운 밤을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6월 1일부터 지난 28일까지 전국 평균 열대야 일수는 7.1일로 1994년 6~7월 8.6일 이후 30년 만에 최다를 기록했다. 이날 수도권과 강원 지역에 가끔 비가 올 것으로 예보됐지만 비로도 열기를 식히지 못해 체감 기온 35도를 웃도는 ‘사우나 더위’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강원 속초시의 일 최저기온은 관측 사상 가장 높은 30.6도를 기록했다. 종전 최고 기록인 지난 2002년 29.2도보다 1.4도가 높은 것이다. 강원 동해시(29.8도)와 영월군(26.0도), 경북 봉화군(24.5도)에서도 일 최저기온이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전날에는 경남 창원시와 경기 파주시, 충남 보령시 등에서 최저기온 기록이 다시 쓰인 바 있다.
최근 한낮 더위를 방불케 하는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고온다습한 남풍이 계속 유입되면서 낮에 오른 기온이 밤에도 내려가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강원 지역의 경우에는 남풍이 태백산맥을 넘어가며 열기를 더 머금어 밤사이 기온이 30도를 넘는 ‘초열대야’가 곳곳에서 목격됐다.
가끔 비가 오는 흐린 날씨에도 사우나 같은 더위는 당분간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이날부터 30일 오후까지 수도권과 강원 내륙·산지를 중심으로 가끔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된 상태다. 기상청은 “비가 내리는 지역에서는 일시적으로 기온이 내려가겠지만, 비가 그친 뒤에는 습도가 높은 상태에서 낮 동안 다시 기온이 올라 무덥겠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30일과 31일에도 낮 최고기온이 평년을 훌쩍 뛰어넘는 29∼36도에 이를 것으로 예보됐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무더위로 인해 인명 및 재산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의 온열질환 발생통계에 따르면, 전국 507개 응급실 운영 의료기관이 신고한 온열질환자는 △22일 41명 △23일 30명 △24일 60명 △25일 95명 △26일 29명 △27일 34명이다. 집계가 시작된 지난 5월 20일부터 이달 27일까지 온열질환자는 누적 925명으로, 전년 동기(872명) 대비 6%가량 증가했다.
지난 24일 경북 지역에서 온열질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그동안 4명이 사망했다. 온열질환자의 79.7%가 남성, 20.3%가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대별로는 50대(18.9%)와 60대(17.5%)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발생 장소는 대부분 실외(82.7%)였다. 질환별로는 △열탈진(53.8%) △열사병(20.9%) △열경련(15.4%) △열실신(8.9%) 순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6월 11일부터 이달 28일까지 폭염으로 폐사된 가축은 10만8847마리에 달했다. 이 중 가금류는 9만8271마리, 돼지는 1만576마리였다.
문화일보 인지현·유민우·김윤림 기자
07-31 1조 원 피해에 ‘배 째라’식 具, 공적자금 투입 안 된다
서울회생법원이 30일 티몬과 위메프의 기습적인 회생 신청을 받아들여 즉시 보전 처분과 포괄적 금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두 회사를 실질 지배해온 구영배 대표가 충분한 자금 조달 계획을 제시하지 못하면 파산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구 대표는 이날 국회 정무위에 출석해 “미정산액을 메울 돈이 없다”며 ‘배 째라’식으로 나왔다. 그는 “(미국 기업 위시 인수에) 티몬과 위메프의 (판매) 자금도 동원됐다”고 인정했으나 “판매 대금의 대부분은 프로모션에 써 남은 게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두 회사의 입점 업체들이 정산을 받지 못해 줄도산 위협에 직면하자 5600억 원의 긴급 유동성 지원에 나섰다.
눈여겨볼 대목은 구 대표가 “송구하지만 6개월만 시간을 주고 지원해 주면 정상화시키겠다”고 한 점이다. 티몬·위메프도 회생 신청을 하면서 ‘ARS 프로그램’(자율구조조정)과 ‘구조조정 펀드 차입’ 가능성을 언급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이 낮은 이자율로 회생 기업에 빌려주는 구조조정 펀드 지원을 요구한 것이다. 준(準)공적자금 투입이나 다름없는 손실의 사회화다. 판매 대금을 정산하지 못하면 소상공인들이 큰 피해를 보는 만큼 간접적으로 정부 지원을 요구하는 협박이나 마찬가지다.
그동안 e커머스 업체들이 적자를 감수하고 성공 신화를 이룬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티몬과 위메프는 지난 봄부터 상품권을 터무니없는 헐값에 팔아 현금을 모았고, 티몬의 경우 선불충전 방식의 ‘티몬캐시’ 할인 행사까지 열었다. 계획된 사기나 다름없다. 이런 범죄의 뒷설거지에 세금을 낭비할 순 없다. 금융감독원은 사라진 판매 대금 1조 원을 추적해 최대한 환수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계획적 사기로 피해자를 양산한 뒤 이들을 앞세워 정부에 손 벌리는 악순환은 끊어내야 한다. 정부도 절도 있는 지원에 그쳐야 한다. 공적자금 투입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7-31 “의대 증원은 현재와 미래세대 위한 것… 개혁엔 인내심 필요하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2일 정부세종청사 집무실에서 의대 증원을 비롯한 의료 개혁의 당위성, 지역 의료를 되살리기 위한 해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 파워인터뷰 -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내달발표
전문의·PA간호사 중심으로 운영
필수의료 환경 개선 위해서라도
전공의 돌아와서 머리 맞댔으면
획기적 투자로 지역의료 살릴것
네트워크 강화·필수의사제 도입
인터뷰 = 권도경 사회부 차장, 정리 = 유민우 기자
최근 보건복지부는 정부 부처 중에서 가장 현안이 많은 곳이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끝난 후 의대 증원, 국민연금 개혁, 필수의료 붕괴 등 굵직한 의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코로나19 사태가 막바지였던 2022년 10월 조규홍 장관은 복지부 수장을 맡았다. 이후 헤쳐온 현안은 간호법, 비대면 진료, 미신고 출생 영유아 사건 등이다. 올 들어 조 장관은 27년 만에 의대 증원을 이끌어낸 데 이어 의료개혁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있다.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 1만여 명이 다섯 달 넘게 병원으로 돌아오지 않는 상황에서 전공의들에게 복귀를 위한 면죄부를 주면서 시민사회 비판도 한몸에 받았다. 22대 국회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국민연금 개혁도 논의된다. 조 장관이 주도하는 연금과 의료 개혁은 역대 정부가 손대기 싫어하던 국정 과제다. 개혁 당위성은 크지만, 어느 누구 하나 반길 리 없는 개혁안이라서다. 지난 22일 정부세종청사 집무실에서 조 장관을 만나 개혁 청사진을 들어봤다. 그는 “이렇게 해도 반대, 저렇게 해도 반대하는 사안이 많아 인내심을 갖고 개혁을 추진하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의대증원이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우리 자신 그리고 미래세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의대 증원뿐만 아니라 의료개혁이 추진되고 있다. 의료개혁을 두고 일각에서 ‘지금 우리 의료 수준이 세계 최고다’ ‘의대 증원을 하는 바람에 전공의들이 집단사직했다’ 등 비판도 나온다. 지금 의료개혁을 하지 않으면 몇 년 내 필수의료는 붕괴될 수 있다. 최근 몇 년 새 의료 수요는 폭증했다. 건강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 고령화로 의료 수요도 늘었다. 의대 정원은 27년간 늘리지 못했는데 의사들은 나이 들어가고 있다. 열악한 근무 여건과 공정하지 못한 보상 탓에 필수의료 인력은 줄었다. 의료 공급이 한순간에 한계점에 부딪힐 수 있다는 의미다. 그대로 두면 의료 수급 불균형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절박한 심정으로 의료개혁에 나섰다. 의사들이 진료 현장에서 제대로 된 능력을 발휘하려면 최소 10년이 필요하다. 의대 증원은 지금도 많이 늦었다.”
―전공의 없는 수련병원이 ‘뉴노멀’이 됐다. 전문의 중심 병원에 대한 로드맵은.
“환자에게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그간 전공의들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던 구조를 고쳐야 한다. 이건 의대 증원과는 별개로 반드시 추진해야 할 사안이다. 현재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이 논의되고 있다. 핵심은 상급종합병원이다. 상급종합병원이 중증 진료에 집중하면서도 충분히 운영될 수 있어야 한다. 전문의, 진료지원(PA)간호사 등 숙련된 인원 중심으로 운영되게끔 지원할 것이다. 구체적인 인력 기준이나 원내 업무 분담 보상 체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는데 이르면 다음 달 발표할 듯하다.”
―하반기 전공의 모집 지원율이 저조해 전공의 배출에 차질을 빚는다면 전문의 중심 병원 구축도 힘들다는 우려가 나오는데.
“전문의가 되기 위해선 전공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전공의들 복귀가 늦어지면 전문의 배출에는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전환하는 것은 중증·응급 등 필수 의료 분야 수련을 받고도 이미 병원을 벗어난 전문의를 다시 유입시키고, 병원을 지키고 있는 전문의들 소진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아도 방향성을 갖고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의료 행위를 독점한 의사의 집단행동을 막는 장치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는데.
“국민 생명을 담보로 한 반복적인 집단행동 탓에 환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그간 의료법 제59조에 따라 진료유지명령, 업무개시명령 등을 집행했다. 하지만 명령 발동부터 위반자에 대한 행정처분까지 최소 한 달에서 길면 넉 달 이상 걸리는 등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정부는 유사 입법례를 참고해 제도적 보완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의료계는 헌법상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조치라고 반대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 생명권이다. 이는 다른 기본권에 우선한다. 국민 생명을 보호하는 건 정부의 기본 의무다. 각계각층 의견을 수렴한 후 국회와 협의해 의사 집단행동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겠다.”
―전공의들이 병원으로 돌아와도 필수의료로 가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데.
“필수 의료 기피 현상은 의대 증원을 발표하기 전부터 이미 시작됐다. 의대 증원 때문만은 아니다.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 열악한 근무 여건, 왜곡된 보상 체계가 맞물린 현상인데 이를 같이 풀어가야 한다. 의대 정원만 늘린다고 의사 인력이 필수의료로 유입되는 건 아니라고 여러 번 말씀드렸다. 의료개혁 과제가 같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엔 의료개혁특위 논의를 통해서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의료분쟁 조정제도 개선 등 필수의료 지원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다. 전공의가 복귀해 더 나은 여건에서 수련 받을 수 있도록 연속근무 단축 시범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전공의 수련에 대한 재정투자도 강화할 계획이다. 전공의들이 돌아와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논의 테이블에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금개혁, 정치 유불리 안 따져야… 지급보장·자동안정화 논의 필요”
연금개혁에 사회적 공감대 생겨
초당적 협력과 정부 지원 필요
인구변화 따라 유연히 급여지출
OECD 24개국 안정화장치 도입
해외선 수급연령 연장하는 추세
고용여건 등 고려해 신중히 접근
―의료계는 2025년 의대 증원을 되돌릴 수 없는데도 의대 증원 백지화 요구를 굽히지 않는데.
“입시 일정상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은 불가역적이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백지화를 복귀 조건으로 내세우는 건 ‘투쟁을 이어가면 지금이라도 변경 가능하다’란 잘못된 정보에 기인한 것 같아 안타깝다. 2026학년도 경우에도 의대 2000명 증원은 지난 5월 2일 대입전형 시행계획에서 이미 공표됐다. 다만 2026학년도 이후 의료계가 합리적인 단일안을 내놓는다면 언제라도 마음을 열고 논의할 수 있다고 수차례 말씀드렸다. 의료개혁특위가 의료 인력 수급 추계 방법, 절차 등 수급 추계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의료계가 의료개혁특위에 참여해 의견을 개진한다면 2026학년도 의대 증원을 논의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필수의료 의사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비급여 진료와 실손보험 규제 등 개혁과제를 어떻게 이끌어갈 건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와 실손보험 규제는 정부보다 필수의료 의사들이 필요성을 더 많이 언급하고 있다. 그만큼 시급한 문제다. 우선 올해부터 전체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비급여 보고 제도’를 확대했다. 실질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선 비급여 항목을 표준화한 후 모니터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비급여 진료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미용 의료는 서비스 범위, 시술자 등 실태 파악이 필요하다. 연구 용역 등을 통해 종합적인 관리 체계를 만들 예정이다. 실손보험은 건강보험과 합리적으로 역할 분담이 되지 않아 국민 의료비 부담을 늘리고 있다. 실손보험 개선 방안은 금융위원회와 논의할 계획이다. 의료개혁 과제는 의료현장 의견을 듣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방향성이 나오기 힘들다. 의료계가 의료개혁특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이유다.”
―수도권에 모든 의료 자원이 쏠린 상태에서 지역의료를 되살릴 복안은.
“지역의료 문제도 복합적이다. 의료인력 충원의 어려움, 인구감소로 인한 의료수요 급감, 의료전달 체계 왜곡으로 인한 수도권 쏠림 등이 얽혀있다. 의료개혁 과제에 포함된 지역의료 강화 방안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사는 곳에서 충분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역 내 병·의원 간 역할을 재정립하고 네트워크를 강화할 예정이다. 둘째, 지역 병원에 우수인력이 종사할 수 있도록 정부가 여건을 조성할 계획이다. 정주지원과 연계한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필수의료특별회계·지역의료발전기금 신설 등 지역의료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획기적으로 확대하려고 한다.”
―필수·지역 의료를 되살리기 위해 10조 원을 투입한다는 정부 계획을 두고 건강보험 재정이 부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데.
“필수·지역 의료를 살리기 위한 투자 여력은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건보 재정은 지난 2023년 말 28조 원 준비금을 보유한 안정적인 상황이다. 3년 연속 당기수지 흑자를 내면서 역대 최대치다. 투자 재원은 보험료 수입 증가, 재정 우선순위 조정, 지출 효율화 노력 등을 통해 확보할 수 있다. 건보재정만 투자하면 건보료 인상 우려가 나올 수 있다. 이에 정부는 내년부터 국가 예산을 통해서 인프라 확충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르면 다음 달 구체적인 윤곽이 나올 것 같다. 국가 재정도 의료를 치안, 국방과 같은 반열에 놓고 필수의료특별회계·지역의료발전기금 신설을 통해 재정을 투입한다는 취지에서다. 단기적으로 국민 부담이 늘어날 수도 있지만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가까운 미래에 더 많은 지출이 발생할 수 있다.”
―국민연금 개혁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바람직하다고 보나.
“연금개혁 논의는 세 가지로 좁혀진다. 첫째 지속가능성, 둘째 적절한 노후소득 보장, 셋째 세대 간 형평성이다.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국민연금제도는 솔직히 어려운 게 사실이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입해 연금개혁 공론화를 실시했다. 그 결과, 재정안정과 소득보장 강화가 모두 필요하다는 국민 여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더 내고 더 받는’ 방안이 공론화 안으로 채택됐다. 옛날과 달리 노후소득은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개인연금이나 기초연금과 연계된다. 결국 구조개혁을 논의해야 한다. 구조개혁을 한 번에 손댈 순 없다. 내는 돈(보험료율)과 받는 돈(소득대체율)을 결정하기 위해선 구조 개혁 청사진도 같이 논의해야 한다.”
―2026년 지방선거, 2027년 대선 등 정치변수가 많아 연금개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많은데.
“연금제도는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연금 수급자는 682만 명, 가입자는 2238만 명으로 18세 이상 성인 10명 중 7명(65%)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역대 정부의 개혁 추진 경과나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복잡한 이해관계 탓에 정치적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하지만 연금개혁은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서는 안 될 시급한 국가적 과제다. 윤석열 정부는 임기 내 연금개혁을 완수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현재 연금개혁 필요성에 대해 우리 사회 내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됐다고 판단된다. 국민도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선거 정국에서 국민연금 개혁 논의를 회피하면 오히려 정치적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본다. 국회가 초당적으로 협력하고, 정부가 지원한다면 임기 내 개혁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22대 국회에서 정부안을 별도로 낼 계획은 있나.
“지난해 10월 국민연금 5차 종합운영계획을 내놓을 당시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명시하지 않아 정부안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 당시 5대 분야 15개 과제를 통해 정부 개혁 방향성을 제시한 바 있다. 여기엔 소득보장, 세대 형평성 제고, 재정안정, 기금운용 개선, 다층 노후소득체계 정립 등에 대한 정부 고민이 담겼다. 22대 국회에서 정부안 제출 여부를 두고 굉장히 많이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여태껏 정부안을 제시해서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정부가 어떤 안을 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국민연금 개혁은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여야 합의를 통해 입법으로 완성되는 만큼 국회를 중심으로 논의하고 충분히 공론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국회 상임위원회에 가면 여야 모두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한다. 22대 국회가 지속 가능한 연금개혁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할 계획이다.”
―구조 개혁 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은 어떻게 연계할 건가.
“우리 노후소득보장체계는 기초연금, 국민연금, 퇴직연금 등 다층적으로 구성돼 있다. 구조개혁은 이 같은 체계 내에서 제도 간 정합성을 높여 노후소득 보장을 강화하고 노인빈곤을 완화할 수 있는 설계가 필수적이다. 지금 노령연금 수급자가 약 500만 명인데 기초연금 수급자는 약 650만 명이다. 기초연금을 어떻게 가져가느냐가 노인의 소득보장과 직결된다. 기초연금은 최근 노인 인구 증가, 소득수준 향상,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등을 고려해 지급대상, 급여 수준 등을 의논할 필요가 있다.”
―국가의 국민연금 지급에 대한 의무를 법제화하자는 의견도 상당한데.
“국민연금은 국가가 운영하는 공적사회보험이다. 국가가 존재하는 한 연금은 반드시 지급된다는 뜻이다. 최근 기금소진 우려가 커지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노후에 연금을 받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이 있는 점은 잘 알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제5차 종합운영계획을 수립하면서, 국민 신뢰 확보를 위해 국가의 지급보장 근거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을 추진과제에 포함했다. 다만 지급보장 조항을 개정할 경우, 보험료율 인상 없이 국가 재정투입만으로 제도가 유지된다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이에 연금개혁 동력이 약화될 우려도 상존한다. 국가 지급보장은 연금개혁과 함께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연금개혁이 매번 정치변수로 좌초됐는데 ‘자동안정화장치’ 도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24개국이 자동안정화장치를 운영하고 있다. 해외 여러 나라들도 저출생·고령화 등에 따라 보험료 인상 등 연금개혁을 추진해 왔다. 보험료 인상 여력이 없어 택한 방식이 자동안정화장치다. 이는 인구구조 변화와 경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급여지출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보험료율 인상 여력이 아직 있는 편이다. 다만 우리도 인구구조가 악화돼 재정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는 만큼 자동안정화장치는 논의해 볼 만한 사안이다. 자동안정화장치는 연금 급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이 역시 22대 국회 연금개혁 과정에서 심도있게 논의됐으면 한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가입상한·수급개시 연령을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는데.
“소득 크레바스(은퇴 후 소득 공백)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가입상한 연령과 수급개시 연령을 일치시키는 게 바람직하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은 59세까지 보험료를 내야 하며, 연금은 63세부터 받을 수 있다. 수급개시 연령은 1998년 연금개혁으로 5년마다 1살씩 연장돼 2033년에는 65세부터 연금을 받는다. 다른 나라들은 기대여명이 늘어나자 수급개시 연령을 높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고령자 경제활동이 늘어나면서 수급개시 연령을 연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다만 연령 조정은 고령자 계속 고용 여건, 노후 소득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정년 연장은 고용노동부와 함께 논의해야 할 사안이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