危機의 韓半島(外交) 2024-06/ 06.01 한미일 "北 위성·미사일 강력 대비 기구 구성 - 06.28 트럼프, 미국 정계의 '21세기 히틀러'
危機의 韓半島(外交) 2024-06/
06.01 한미일 "北 위성·미사일 강력 대비 기구 구성…완전한 비핵화 확인"
1년3개월 만에 한미일 외교차관협의회
"北도발, 3국 안보협력 더 강화할 뿐"
한미일 3국은 31일 북한의 최근 군사정찰위성 발사 등 잇따른 도발을 강력 규탄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목표를 재확인했다.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가운데)이 31일 워싱턴DC 인근 자신의 농장에서 김홍균 외교부 1차관 및 오카노 마사타카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과 한미일 3국 외교차관 협의회를 개최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발언을 하고 있다. /워싱턴 공동특파원단
김홍균 외교부 1차관과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 오카노 마사타카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이날 캠벨 부장관 소유의 워싱턴 인근 한 농가에서 협의회를 갖고 북중러 밀착 강화 등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김 차관은 회의에 앞선 3국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계속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를 위반하고 있으며, 핵과 미사일로 이 지역을 위협하고 있다”며 “27일의 이른바 ‘군사정찰위성’ 발사는 이런 도발 행위의 최근 사례”라고 했다. 김 차관은 이어 “이런 행위들은 우리의 안보협력 강화 의지를 공고히 할 뿐”이라고 했다. 이어 김 차관은 “북한은 복수의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을 이어가고 있다”며 “북러는 불법적인 무기 및 석유 거래를 이어가고 있으며, 지난주 3국은 같은 생각을 공유한 나라들과 공동으로 이들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우리는 국제 사회와 함께 북러의 불법적인 협력에 대응해 하겠다”고 했다.
김 차관은 유엔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 활동이 중단된데 대한 대응책을 묻는 질문엔, “유엔 안보리 결의 이행을 감시하기 위한 새로운 감독 체계를 위해 긴밀히 작업 중”이라며 “한미일 3국이 이 메커니즘의 중심이 될 것이며, 더 효과적인 감독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날 캠벨 부장관은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재임 기간 3국의 관계에 일어난 긍정적 진전을 가장 자랑스러워할 것”이라며 “우리는 이 같은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 일종의 사무국과 같은 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 했다. 캠벨 부장관은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중국과 공조에 대한 질문을 받고 전날 마자오쉬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의 면담을 언급허고 “사전에 한국 및 일본의 친구들과 긴밀히 논의했으며, 우리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중국이 북한에 개입해 이 같은 행위를 자제하고 대화에 나오도록 설득할 것을 요청했다”고 했다.
캠벨은 중국 인권 문제가 후순위가 된 것 아니냐는 지적엔 “백악관과 국무부 모두 이 문제를 제기했다”고 했다. 한중일 정상회의 결과에 대한 설명을 청취했느냐는 질문엔 “양자 회담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상세한 설명을 듣는 것이었다”고 했다.
오는 7월 워싱턴 DC에서 예정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캠벨은 “3국 회담을 열기로 약속했지만, 정확한 날짜를 확정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조선일보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06-01 UAE 대통령이 MB 자택을 찾았다는 것
#1. 지난해 1월 윤석열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 국빈 방문을 마무리한 뒤 대통령실에선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가 나왔다. 중동 특사를 맡겨야 한다는 ‘역할론’까지 대통령실에서 제기됐다. 이를 보도했더니 “제 정신이냐”는 원색적인 욕설이 담긴 e메일을 받았다.
사후에 알려졌지만 실제로 물밑에서 MB 측 기여가 있었다. 김대기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은 윤 대통령 특사로 UAE로 날아가 양측을 조율하며 MB의 친서를 전달했다.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은 김 실장에게 “반드시 한국에 간다. 가서 MB를 만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바라카 원자력 발전소 한국인 근로자들에게 대통령 시계 100개를 선물했다. 공군 1호기 편으로 공수된 뒤 귀빈 못지않은 정성을 들여 바라카 원전까지 수송했다. 이들의 땀이 한-UAE 신뢰를 담보한다는 존경과 예우로 숫자 100을 담았다. 순방 귀국 후 무함마드 대통령이 한국에 선물한 올리브 나무 1000그루가 신뢰의 증표로 남았다. 올리브 나무는 중동에서 풍요와 번영의 상징이다.
#2. 1년여가 흘러 지난달 29일. 이번에는 무함마드 대통령이 국빈 방한했다. 그는 MB 자택까지 찾아갔다. “오 마이 갓, 마이 프렌드(Oh my God, My friend).” 이재용 정의선 최태원 등 대기업 총수들이 만나려고 줄을 서는 UAE 대통령은 빠듯한 일정을 쪼개 오랜 친구의 집을 직접 찾아가 약속을 지켰다. 오랜 시간 구축한 깊은 신뢰, 당장의 금력으로는 살 수 없는 무형 자산의 축적일 것이다.
MB 공치사를 하려는 게 아니다. 한 인격을 한 가지 사례나 특정 프레임으로 일반화하고 재단해버릴 때 우리가 놓치게 되는 것들에 대한 얘기다. 당장 MB만 해도 어김없이 ‘범죄자’ 등 원색적 비난을 야권에서 내놓지만 축적한 공과(功過)는 함께 있다. 상대에 대한 극단적 비난과 선동이 아니라 공과를 함께 보는 총체성의 토양이 마련된 뒤에야 비로소 우리는 내가 생각한 모습의 타인이 아닌, 한 인간의 온전한 모습을 바라보게 될지 모른다.
정치권에선 상대 정치 세력이 축적한 경험과 시행착오를 균형 있게 평가하기보다는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상대 진영을 매도해버리는 일들만 반복되고 있다. 극단의 언어가 수반된다. 누군가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귀태’로 비하됐고, 누군가는 ‘재앙’으로 불렸다. 상대를 악마화하는 데 성공하면 정권을 획득하는 길에 가까워지기 때문일 테다. 전직 대통령과 원로의 지혜와 경륜을 잘 활용해 성공담도 실패담도 듣는 환경은 요원해 보인다.
5년 단임제에서 상대를 죽이고 밟아야 정권 재창출이나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는 만큼 상대 정권의 레거시를 무너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지난 정부는 박근혜, 이명박을 구속했고 거대 야당은 대통령 탄핵을 입에 올리며 스텝을 밟아가고 있다. 현 여권에서도 “왜 전 정권 잘못을 캐지 않느냐”는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권력기관도 사정 정국을 굳이 마다할 것 같지는 않다. 서로를 악마화하는 증오와 거부정치만 계속된다면 국민들이 예쁘게 바라보지도 않을 것이고, 미래를 위한 발전도 없을 것이다.
장관석 정치부 차장 jks@donga.com
06.04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늦었지만 큰 미래 열 수 있다

▲2024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하루 앞둔 3일 오후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 마련된 메인프레스센터 앞에서 경찰이 순찰을 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오늘과 내일 서울에서 한·아프리카 정상회의가 열린다. 아프리카 국가들과 다자 정상회의를 갖는 건 처음이다. 아프리카 55국 중 쿠데타 등으로 제재를 받는 나라를 제외한 48국이 우리나라의 초청에 모두 응했다. 이번 행사에 대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관심을 보여준다. 국가원수가 직접 참석하는 나라가 25국이다. 윤 대통령은 25명 전원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오랜 기간 아프리카는 원조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가장 젊고 성장 잠재력이 큰 대륙이다. 14억 인구는 중국·인도와 엇비슷한 수준이지만 3분의 2가 25세 이하다. 전기차 배터리 필수 원료인 코발트의 52%를 비롯해 세계 광물 자원의 3분의 1이 사하라 이남에 묻혀 있다. 아프리카대륙 자유무역지대 출범으로 GDP 3조4000억달러 거대 단일 시장이 됐다. 2000년 EU와 중국을 시작으로 미국, 일본, 인도 등이 아프리카와 경쟁적으로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이유다.
이번 정상회의는 늦은 감이 있지만 한국만의 강점과 차별성이 있다. 신생 독립국으로 전쟁을 딛고 산업화·민주화를 모두 달성한 한국의 성공 스토리는 아프리카에 남의 얘기가 아니다. 한국은 공적 개발 원조(ODA) 수혜국에서 공여국이 된 유일한 국가다. 수혜국의 심정을 헤아리며 국가 발전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다. 마침 아프리카 국가들은 외부의 일방적 지원에서 벗어나 자기 주도적 발전을 모색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아프리카 국가들을 동등한 파트너로 인식하고 진솔한 대화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국은 그럴 수 있는 최적의 협력 파트너 중 하나다.
그동안 우리 외교에서 아프리카는 변방이었다. 주변 4강 외교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아프리카는 국제 무대에서 ‘글로벌 사우스’ 그룹의 핵심이 됐다. 세계가 자유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으로 갈라지면서 유엔 회원국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아프리카의 존재감은 매우 커졌다. 한·아프리카 간에 협력할 사항은 갈수록 많아질 것이다. 이번 정상회의 슬로건은 “한국과 아프리카가 함께 만드는 미래”다. 그 미래의 출발점이 오늘이기를 바란다.
조선일보 사설
06-04 ‘14억 젊은 대륙’으로 경제영토 넓힌다

▲‘글로벌 사우스’와 전략적 협력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오전 개막한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처음으로 열리는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에는 한국과 수교한 아프리카 54개국 중 아프리카연합(AU) 회원국 자격이 있는 48개국 정상 및 대표들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개막
尹, 동반성장 등 3대 방향성 제시
12개 협정·MOU 34건 체결해
윤석열 대통령이 4일 “‘글로벌 중추 국가’(GPS·Global Pivotal State)를 실현하는 데 있어 아프리카 국가들이 (우리의) 핵심적인 파트너”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동반성장, 지속가능성, 강한 연대 등 한·아프리카 협력을 위한 ‘3대 방향성’을 제시하며,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남반구에 위치한 개발도상국)와의 전략적 협력 확대 방침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아프리카 48개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공식 개막한 ‘2024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개회사에서 “오늘 회의는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아프리카 국가들을 초대해 개최하는 다자정상회의”라며 “아프리카와 함께하는 상생의 파트너십을 통해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고 내일의 번영을 함께 만들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한·아프리카는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12건의 조약·협정 및 34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날 오후에는 한·아프리카 공동선언도 발표한다.
윤 대통령은 한·아프리카 협력의 대원칙인 ‘함께 만드는 미래’의 3대 방향성으로 동반성장, 지속가능성, 강한 연대를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한·아프리카 동반성장과 관련해 “대한민국은 아프리카와의 협력을 더욱 촉진하기 위해 2030년까지 100억 달러 수준으로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를 확대해 나가고 아프리카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무역과 투자를 증진하기 위해 약 140억 달러 규모의 수출금융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지속가능성’을 위해선 아프리카의 인구 경쟁력과 자원, 한국의 첨단 기술과 경험을 결합하자고 제안했다. 윤 대통령은 “케냐의 올카리아 지열발전소 건설, 남아공의 배터리 에너지 저장장치(BESS) 건설같이 한국은 ‘녹색 사다리’를 계속 확장하면서 아프리카 국가들과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또 국제무대에서의 ‘강한 연대’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아프리카의 평화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에 적극 동참하고, 국제 무대에서도 아프리카와의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했다.
손기은 기자 son@munhwa.com
06-04 ‘트럼프 리스크’ 대비한 만반의 안보전략 세우고 있나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전미총기협회(NRA) 연례 총회에서 연설한 뒤 지지자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댈러스=AP 뉴시스
최근까지 우리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한미동맹은 공고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올해 11월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집권하더라도 한미관계는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낙관하는 이들도 있다. 70여 년을 이어온 혈맹 간 자유주의 연대와 신뢰가 쉽사리 무너질 리 만무하다는 기대가 깔린 듯하다. 하지만 갈수록 들려오는 얘기가 심상치 않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트럼프 1기 정부에서 외교안보 요직을 지낸 인사들의 발언은 한층 사납고 거칠어질 ‘트럼프 시즌2’를 예고하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주한미군의 규모와 역할의 대대적인 재편 가능성이다. 트럼프 진영 인사들은 한결같이 더는 주한미군이 필요치 않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 정부가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증액을 거부하면 주한미군은 감축하거나 철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 1기 때와 판박이 논리다. 트럼프가 다시 집권할 경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후보로 거론되는 엘브리지 콜비 전 미 국방부 부차관보는 지난달 한 인터뷰에서 주한미군을 더 이상 한반도에 ‘인질’로 붙잡아둬선 안 된다고까지 했다. 한국이 대북 방어에 전적인 책임을 지고, 주한미군은 중국 억제로 역할을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2기가 몰고 올 ‘아메리카 퍼스트’의 격랑이 한반도 외교안보 지형을 대혼란으로 빠뜨릴 것이라는 우려를 한 귀로 듣고 흘리기 힘든 상황이다. 트럼프 2기는 트럼프 1기 시절보다 더 격렬하고, 심각한 동맹 충돌과 갈등이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 관계자는 “바이든 정권에서 간신히 복원된 동맹 관계가 뿌리째 흔들리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보다 비상한 각오로 ‘트럼프 리스크’에 대비한 세심한 안보 전략을 강구해야 하는 시점이다. 무엇보다 트럼프 1기 시절 동맹 파열의 교훈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필자는 본다.
트럼프 1기 시절 우리 정부는 미국의 방위비 증액 공세에 내내 끌려다녔다. 미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등 미군 수뇌부까지 돈을 더 내라고 우리 군 지휘부를 면전에서 압박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연실색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군 고위 관계자는 “동맹은 온데간데없고, 거의 안면몰수 수준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뼛속까지 사업가이자 냉정한 현실주의자인 트럼프는 대통령에 재선되면 더 노골적으로 ‘동맹 청구서’를 들이밀 것이다. 우리로선 방위비 분담금이 ‘매몰 비용’이 아닌 최적의 외교안보 투자라는 점을 각인시키는 전략적 노력을 지금부터 경주해야 한다.
주한미군은 대북 방어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견제를 통한 역내 안보전략의 ‘린치핀(linchpin·핵심축)’임을 확실히 주지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주한미군을 ‘협상 칩’으로 한국을 압박해 얻어낸 방위비 증액분보다 그로 인해 초래될 미국의 전략적 손실이 훨씬 크다는 점도 적극 설득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주한미군의 감축·철수가 현실화한다면 ‘플랜B’를 가동하는 것이 마땅하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포대의 추가 배치나 도입, 잠재적 핵능력(우라늄 농축) 확보를 요구하는 등 안보 국익을 최대한 챙기겠다는 결기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트럼프 진영 인사들이 미국의 현 대북 확장억제가 충분치 않다면서 한국이 핵무장을 포함해 모든 옵션을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한 진의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런 사태가 빚어지면 중국 등 주변국이 반발하겠지만 고려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가용 가능한 수단과 방법을 모두 동원해 국민을 보호하고 영토를 수호하는 것은 국가의 최우선 책무이지 결코 주변국 눈치를 볼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핵무장과 미사일 무더기 도발 및 정찰위성 발사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무시로 위반하는 북한의 도발을 눈감아주는 두 나라가 임계점을 넘은 북핵 위협에 맞서 한국의 자구 노력에 시비를 거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것이다.
신냉전 기류가 현실화하고 트럼프 시즌2가 현실화되고, 이로 인한 동맹 균열로 자유진영이 지리멸렬하게 되면 북-중-러 3국은 쾌재를 부를 것이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을 뒷배 삼아 더 대담한 도발과 함께 트럼프 2기 정부와 핵동결을 대가로 주한미군 철수와 대북제재 완화를 받아내는 거래를 시도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한층 격렬해질 미중 패권전쟁 등 국제정세의 소용돌이와 북한의 파상 공세에 한국이 속절없이 휩쓸리는 사태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사태를 주도적으로 관리하고 헤쳐나갈 수 있는 국가안보 역량을 갖추는 데 이념과 진영을 떠나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이다. 안보 국익을 극대화하고, 외교적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 자강(自強)의 노력부터 경주해야 할 것이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06-04 개발·자원·외교 협력 길 넓힌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아프리카는 미래 대륙, 젊은 대륙으로 불린다. 14억 인구의 60%가 25세 이하이고, 천연자원이 풍부한 데다 경제성장과 인구 증가도 빨라 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 아프리카의 48개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4일 서울에서 한·아프리카 정상회의가 열렸다. 일본과 중국은 아프리카와 오래전부터 정례적인 정상회의를 갖고 있지만, 한국이 아프리카와 다자정상회의를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참가국 중 24개국은 정상이 직접 방문했다. 한국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각별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아프리카대륙이 한국에 호감을 갖는 이유는 분명하다. 빈곤한 신생독립국이 자동차·반도체·배터리 등 첨단 제조업을 보유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비결을 배우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극적으로 경제 발전과 번영의 길을 개척해 온 대한민국은 아프리카의 열망을 잘 알고 있다”며 개발 경험 전수 의지를 피력한 배경이다. 그런 만큼 공적개발원조(ODA)에 기반한 한국형 개발 모델로 윈윈 협력의 길을 넓혀야 한다. 지난해 ODA 중 아프리카 지원액은 4억5700만 달러로 비중은 19.9%인데, 이번 회의를 계기로 더 늘릴 필요가 있다. 자원 및 첨단 광물 약탈식 개발로 반중(反中) 역풍을 맞은 중국은 반면교사다.
아프리카는 120여 개도국이 뭉친 ‘글로벌 사우스’의 핵심으로서 유엔에서 표의 힘을 보여주는 대륙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무력화하면서 총회의 역할이 커진 상황에서 아프리카연합(AU) 소속 54개국의 위력은 더 커졌다.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계기로 아프리카와의 공조가 전방위로 확장되면 한국의 외교력 신장에도 큰 자산이 된다.
문화일보 사설
06.10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다음은 기업 차례다

▲윤석열 대통령과 아프리카연합(AU) 의장인 무함마드 울드 가주아니 모리타니아 대통령이 4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공동언론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아프리카 정상회의’가 6월 4~5일 서울에서 ‘함께 만드는 미래: 동반성장, 지속가능성 그리고 연대’라는 주제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이번 정상회의는 윤석열 정부가 개최하는 최대 규모의 국제 행사이며, 우리가 아프리카와 개최한 최초의 다자 정상회의다.
이번 회의에 아프리카연합 회원국 55개국 중 쿠데타 등으로 제재를 받는 나라를 제외한 48개국이 우리의 초청에 응했다. 25개국에서 국가원수가 직접 참석했고, 정상급 대표를 포함하면 33개국에 이른다. 윤석열 대통령은 방한한 국가원수 25명 전원과 양자회담을 했다. 다른 아프리카 대상 대규모 정상회의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이번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통해 아프리카 국가들과 관계를 다지려는 우리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지역 국가들과 첫 다자 정상회의
현대차 등 우리 기업 활발한 활동
인구·자원 등 무한한 가능성 주목
왜 아프리카인가? 오랜 기간 원조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아프리카는 최근 변화 가능성과 그 경제적 잠재력으로 인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아프리카는 14억 인구 중 60%가 25세 이하다. 전기차 배터리 필수 원료인 코발트의 52%를 비롯해 세계 광물 자원의 30%가 사하라 이남 지역에 묻혀있다. 2021년에 출범한 아프리카 대륙 자유무역지대(AfCFTA)로 아프리카는 GDP 3조4000억 달러의 거대한 단일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아프리카 54개국은 193개 유엔 회원국의 4분의 1이상을 차지하며 국제무대에서 ‘글로벌 사우스’ 그룹의 핵심이 되고 있다. 2000년 EU와 중국을 시작으로 미국, 일본, 인도 등이 아프리카와 경쟁적으로 ‘1+아프리카’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이유다.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과 아프리카 국가들은 경제협력의 틀을 다졌다. 특히, 핵심광물협력 MOU 2건, 무역투자촉진프레임워크(TIPE) 6건, 인프라·모빌리티 협력 MOU 3건, 의료·보건협력 MOU 등이 체결됐다. 신재생에너지, 정보통신기술(ICT)협력, 벼 종자 생산단지 구축 무상원조약정 등에 대한 12건의 조약·협정도 이뤄졌다.
한·아프리카 정상들은 협력 사업의 초석으로 2030년까지 대 아프리카 공적개발원조(ODA)규모를 100억 달러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또한, 한국 기업들이 아프리카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이 지역 국가들과의 무역 및 투자 촉진을 위해 2030년까지 약 140억 달러 규모의 수출금융을 한국 기업들에 지원하기로 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5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한-아프리카 농업 컨퍼런스에서 사무엘 달리초 카왈레 말라위 농업장관과 K-라이스벨트와 농업협력 MOU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농림축산식품부
이번에 아프리카 정상들이 관심을 많이 가진 부분은 정상회의와 더불어 개최된 ‘한·아프리카 비즈니스 서밋’이었다. 이번 비즈니스 서밋은 한·아프리카 주요 정부·경제계 인사와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산업발전, 무역 증진, 인프라 개선, 농업 생산성 향상, 기후변화 대응 등 아프리카 측 관심 의제에 대해 발표와 토의가 이루어진 대규모 경제인 행사였다. 이 행사에는 무사 파키 마하맷 아프리카연합 집행위원장, 웸켈레 케베츠웨 메네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 사무총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을 비롯한 우리 기업인들과 경제단체장들도 참석했다.
이번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는 그간 우리 기업이 아프리카 진출에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도 했다. 우리 대기업들이 아프리카에 사업을 펼치고 있고, 많은 중소기업도 아프리카의 잠재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아프리카 현지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것이 중요한데, 그 점에서 우리 기업의 노력은 주목할 만하다.
현대차그룹은 아프리카 연구로 유명한 영국 SOAS와 공동으로 아프리카와 장기적 협력 방안도 모색하고 있고, 아프리카 내 필요한 지역에 인프라와 성장 프로그램 등을 제공해 자립을 돕는 글로벌 사회공헌 활동도 성공적으로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와 비즈니스 서밋은 흥행하고 막을 내렸다. 이제는 한국과 아프리카 국가들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경제 영토를 넓히고, 이번 정상회의의 3대 의제인 동반성장과 지속가능성, 연대를 어떻게 실현해 나갈 것인지 함께 고민할 차례다.
우리는 아프리카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아프리카는 경제발전에 필요한 우리 기업의 투자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기업의 미래를 위한 기회 창출은 물론, 우리가 아프리카와 함께 가는 길을 열어가는 데에 이번 한·아프리카 정상회의가 매우 의미 있는 마중물이 되었다.
중앙일보 조원빈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06-13 남북 ‘기울어진 핵 균형’ 시정할 기회
한용섭 국제안보교류협회 회장, 前 국방대 부총장
세계 핵질서가 급변하고 있다. 미국과 소련(러시아) 간의 핵군축 진전과 신흥 핵무장국의 등장을 잘 통제해 왔던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덕분에 20세기 핵질서는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서는 NPT를 탈퇴하고 핵으로 무장한 북한이 핵 초강대국인 미국을 향해 직접 핵공격을 협박하고 한국을 향해 핵 사용 도발을 위협하면서 기존의 핵질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NPT를 위반한 북한으로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할 무기를 구입하는 대신 유엔의 대북 제재위원회 활동을 중단시켜 버림으로써 NPT질서를 깨뜨리고 있다. 또, 중국은 핵무기 증강을 자제하는 다른 핵보유국과 달리, 매년 100개씩 핵보유고를 늘려 2030년에는 1000여 개를 보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핵질서에 대해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는 핵군축과 비핵화만 강조하고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 9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중·러의 핵 증강에 우려를 표하면서 핵무기 증강을 건의하는 미국 전문가위원회의 초당적인 요구에 귀 기울이고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백악관의 이러한 핵 증강 다짐을 이용, 우리는 북핵 위협에 맞서 미국에 대한 추가적인 주문과 함께 우리의 군사 대응 태세를 완비해 나가야 한다.
우선, 미국이 전술핵무기를 대폭 증강하도록 주문해야 한다. 미 행정부는 2025년 국방예산에 핵현대화계획 몫으로 약 500억 달러 반영하고 있는데, 이 대부분이 전략핵무기 증강에 쓰일 예정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2000여 개 및 북한이 늘려나가는 수십 개와 비교할 때 미국의 전술핵무기 수는 턱없이 적다. 우리는 미 행정부와 의회에 요청해 괌 등 동북아지역에 미국이 전술핵무기를 증강 배치할 수 있도록 미국의 전술핵무기 수 대폭 확대를 주문해야 한다.
다음으로, 윤석열-바이든 워싱턴선언에서 약속했듯이 한·미 핵협의그룹(NCG)은 착실하게 정책 협의를 진전시키고 있다. 하지만 작전 면에서 한·미 공동 작전 기획 수준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매년 열리는 한·미 군사위원회(MC)회의에 미군 전략사령부의 고위 장성이 참석해 국군 전략사령관과의 공동 핵계획과 핵작전 채널을 상시 운영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그래야 미국의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한반도에 확실한 미국의 핵확장억제력이 보장될 수 있다.
아울러, 한반도에서 기울어진 전략 균형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우리의 핵 옵션을 키워 나가는 게 중요하다. 한·미 원자력협력협정을 개정해 우리의 상업용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능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 러시아의 저농축 우라늄 공급에 의존해 온 체제를 이 기회에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한·미·일 3자 간 농축재처리 컨소시엄 형성도 필요하다.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을 이용한 핵추진잠수함 건조도 추진해야 한다.
6·25전쟁일을 앞두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반드시 해야 할 말이 있다. 핵무장한 북한 김정은이 대남 무력 침공을 떠들고 있는 지금, 푸틴이 김정은을 독려한다면 우리 국민과 세계는 74년 전 스탈린과 공모 하에 김일성이 남침했다는 사실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각별한 주의를 요구한다.

문화일보
06.13 평양 간다는 푸틴, '레드 라인' 넘지 말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작년 9월 러시아 극동의 우주기지 보스토치니에서 만나 로켓 발사대를 살펴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 주 북한과 베트남을 순방할 것이란 외신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김일성광장에 푸틴 환영 행사 용도로 추정되는 구조물이 설치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정부 당국은 푸틴이 다음 주 초 방북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관련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 방북이 이뤄지면 김정일 집권 당시인 2000년 이후 24년 만이 된다. 김정은과 푸틴의 만남은 작년 9월 극동에서 회담한 지 9개월 만이다.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서 포탄 부족에 시달리던 러시아는 작년 북·러 정상회담 이후 어려움을 상당 부분 극복했다. 군수 공장을 풀가동한 북한의 전폭적인 탄약 지원 덕분이다. 북이 러시아에 보낸 컨테이너가 지난 2월까지 파악된 것만 6700여 개다. 152㎜ 포탄 기준 300만발 이상이 실렸을 것으로 보인다. 그 대가로 러시아는 지난 2월까지 9000개가 넘는 컨테이너를 북에 보냈다. 각종 지원 물자가 들었을 것이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유엔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과 대놓고 무기 거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러시아의 치욕이다. 러시아가 이로 인해 실추된 위상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러시아가 북한에 무기를 지원할 가능성이다. 북한은 핵 추진 잠수함, ICBM, 정찰위성, 전투기 등의 지원을 바라고 있다고 한다. 소련 시절부터 러시아는 아무리 가까운 나라에도 첨단 무기 기술을 이전한 사례가 없다지만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워낙 다급해 이 원칙이 흔들릴 수도 있다.
24년 만에 방북하는 푸틴이 빈손으로 김정은을 만나진 않을 것이다. 불리한 전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는 데 북한 덕을 본 만큼 식량 지원 이상의 성의 표시를 할 가능성이 크다. 푸틴이 김정은에게 지원하는 무기는 곧바로 한국민을 위협한다. 푸틴의 행위는 한국에 대한 직접적인 적대 행위라는 뜻이다. 푸틴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국이 이에 대응할 수단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낡은 포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치명적 수단이다.
며칠 전 주한 러시아 대사는 “한국이 레드 라인을 넘으면 양국 관계는 영구적으로 손상될 것”이라고 했다. 지금 레드 라인 근처에 서 있는 것은 푸틴이다. 모든 것은 푸틴의 행동에 달렸다.
조선일보 사설
06-13 평양 방문하는 푸틴, 김정은 ‘대남 도발’ 거들지 말라
다음주로 예상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평양 방문은 2000년 이후 24년 만이다. 이번 방북에서는 북한이 러시아에 포탄·탄약과 탄도미사일 등을 지원해준 데 대한 반대급부가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은 지난 12일 러시아의 날 기념 축전에서 “백년대계의 전략적 관계가 더 높은 단계의 국가 관계로 발전할 것”이라고 했다. 푸틴의 방북을 앞두고 지난해 9월 북·러 정상회담 합의의 토대 위에서 협력을 격상시켜 나가자는 주문이다.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퇴출된 북한과 러시아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당장 북한은 유엔의 대북 제재 무력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재래식 무기 공급을 원할 것이다. 지난해 정상회담 때 푸틴은 인공위성 제작 지원 및 군사기술 협력을 약속했다. 그러나 북한이 군사정찰위성 2호 발사에 실패한 것을 보면 한계가 있는 듯하다. 유엔 제재결의 한도를 어기고 북한에 정제유 등을 공급하면서도 핵심 기술은 이전하지 않았을 개연성이 짙다.
한국과 러시아는 1990년 수교 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발전했다. 방북을 앞두고 푸틴은 “한·러 관계 악화를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평양을 방문하더라도 악영향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란 취지다. 그러나 김정은의 핵무기 개발과 대남 도발을 거드는 어떤 지원도 대한민국에 대한 도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6·25전쟁 발발 74주년이 다가온다. 김일성의 남침은 소련 독재자의 승인과 지원에 따른 것임을 한국인들은 기억하고 있음을 깨닫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06.14 푸틴 방북 초읽기, 북의 오판과 도발 부추기지 말기를
24년 만에 방북, 단순 답방 이상의 전략적 함의
정부는 우려 메시지 보내고, 한·중 대화 활용하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북한 방문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을 수행 중인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그제 “푸틴 대통령의 방북이 며칠 안으로 다가왔다”고 언급하면서 방북은 기정사실이 되는 분위기다.
푸틴 대통령의 이번 방북은 표면적으로는 지난해 9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러에 대한 답방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2000년 7월 이후 24년 만에 성사되는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이라 단순 답방을 뛰어넘는 전략적 함의가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안보 차원에서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은 대단히 예민한 사안이다. 북한의 핵 미사일 도발과 ‘오물 풍선’ 살포로 남북 사이에 긴장이 고조된 시점이기도 하다. 푸틴 대통령이야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북한산 재래식 무기를 더 많이 받아가기 위한 계산이 앞섰을 것이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북한 역시 러시아를 끌어들여 탈출구로 삼으려는 속셈이 엿보인다. 특히 북한은 러시아가 보유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재진입 기술, 군사정찰위성 발사 노하우 등을 넘겨받으려 전력을 기울여 왔다.
이렇게 북·러의 전략적 이해가 일치한다는 것은 한반도의 안보 위협이 그만큼 가중될 수 있다는 의미다. 가뜩이나 러시아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묵인해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막중한 책임을 방기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 3월에는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의 활동 기간이 연장되지 못했다.
푸틴 대통령은 방북 기간에 북한의 도발을 부추기거나 오판을 자극하는 등의 잘못된 신호를 보내지 말아야 한다. 예컨대 1996년 러시아가 폐기한 ‘조·소 동맹조약’을 되살리려는 시도는 절대 없어야 하겠다.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의 어떤 도발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보여주기를 바란다. 지난 5일 “한·러 관계 개선을 희망한다”고 했던 푸틴 대통령의 공언 대로 한·러 관계에 찬물을 끼얹지 않아야 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북·러 밀착 동향을 예의 주시하면서 대응책을 모색해야 할 때다. 외교 채널을 통해 러시아 측에 대북 무기 기술 지원 등 위험한 거래를 하지 말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중·러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북한의 최근 움직임을 역이용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북·러가 밀착하면서 틈이 생긴 북·중 사이를 파고들어야 한다. 그러니 다음 주로 예상되는 ‘한·중 2+2 외교안보 대화’에 공을 들일 필요가 있다.
중앙일보 사설
06.15 푸틴 방북 시기에 복원되는 한·중 안보 대화

▲리창 총리와 악수하는 윤석열 대통령. /뉴시스
한·중 외교 안보 대화가 다음 주 초 서울에서 열린다. 양국 외교부와 국방부 고위 당국자가 동시에 만나는 ‘2+2′ 형식의 전략 대화로,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열린 것이 마지막이다. 이후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으로 9년간 열리지 못했다. 이것을 지난달 서울 한·중 정상회담에서 복원하기로 합의하면서 수석대표의 격을 차관급으로 격상했다. 중국이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양국 관계가 최악의 상황에선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개최 시점은 아직 조율 중이지만 18일이 유력하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러시아 푸틴 대통령도 이날 평양에 도착할 가능성이 크다. 북·중·러 3자는 서로가 오랜 우방이지만 최근엔 미묘한 긴장 관계가 조성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북·러가 무기 거래를 통해 급속 밀착하는 사이 북·중 관계는 상대적으로 소원해진 것이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비자 발급을 까다롭게 하고 북·중 친선의 상징물을 없애는 등 이상 징후도 여럿 포착되고 있다. 의도된 것은 아니겠지만 북·러 정상이 평양에서 만나는 날 서울에서 한·중이 고위급 안보 대화를 갖는 것은 상징적이다.
한·중 관계는 낙관할 수 없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근본적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을 적절히 관리하며 합리적 관계를 맺어나가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중국이 한국과 대화 복원에 나선 것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미 연합훈련이 정상화되고 한·미·일 3각 안보 공조가 긴밀해진 것과 무관치 않다. 중국 입장에서도 한국과의 관계를 관리해야 할 필요가 커진 것이다.
한·중 외교 안보 대화에선 ‘책임 있는 대국’을 자처하는 중국이 북핵 폐기에 역할을 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북핵 폐기는 중국 국익에도 부합한다. 북·러의 무기 거래 문제도 비중 있게 다뤄야 한다. 이는 우리 안보에 직접적 위협이 된다. 북·러 밀착은 중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탈북민 강제 북송에 대한 우리 입장도 재확인해야 한다.
침략 전쟁을 일으켜 외교적으로 고립된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책임과 의무를 팽개치고 있지만 중국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세계와 무역하는 나라로서 국제사회의 평판을 무시할 수 없다. 당장 중국의 전향적 행동을 기대하긴 어렵더라도 이런 문제를 한·중이 논의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
이견을 좁히고 오판을 방지하는 장치로 한·중 안보 대화를 활용한다면 양자 관계뿐 아니라 지역 정세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6-15 [단독]“70년 한미동맹, 내 가족사처럼 세대 넘어 영속하는 문화로 승화”
설경철 화백, 500호 작품 ‘동맹 70’ 올 하반기 미 국방부에 기증
美 국방부 올 하반기 SCM 계기 소개 행사 검토 중
부친은 해병대로 6·25 참전, 아들은 미 육군 장교 거쳐 주한미군 근무

▲설경철 화백이 11일 경기 양평의 자신의 작업실에서 최근 완성한 ‘동맹 70’ 작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양평=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70년을 맞은 한미동맹이 정치 외교적 차원을 넘어 세대를 이어 영속하는 문화 자산으로 승화했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습니다.”
11일 오후 경기 양평군의 한 전원주택에 마련된 미술 작업실. 설경철 화백(70·전 고신대 조형미술학과 교수)은 최근 완성한 초대형 화폭을 감회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어 가로 3.5m, 세로 2.5m로 500호(1호는 우편엽서 크기)에 달하는 이 작품의 제목은 ‘동맹 70’이라고 소개했다.
이 작품은 올해 하반기에 미국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펜타곤)에 기증될 계획이다. 설 화백은 지난해 미 국방부에 작품 기증 의사를 밝혔고, 최근 미 국방부에서 내부 검토를 거쳐 기증 승인이 났다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한국 현대미술가의 작품이 미 국방부에 기증된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방부는 올해 10월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설 화백의 작품을 소개하는 이벤트를 검토 중이다.

▲설경철 화백이 최근 완성한 ‘동맹 70’을 가까이서 본 모습. 1~2cm 크기의 이미지 조각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비롯해 한미 양국의 정치, 경제, 역사, 문화를 망라하는 인물과 사건, 기호, 표식 등이 담겨있다. 양평=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설 화백은 중앙대 회화과 졸업 후 미 뉴욕공대 대학원에서 페인팅 커뮤니케이션 아트를 전공했다. 그는 평생 극사실화를 그렸다. 디지털 기법으로 프린트 된 책 활자 위에 타자기, 종이학, 일그러진 시계 등 다양한 오브제를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시각화한 작품이다. 사진인지 그림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정밀하고 섬세하다.
그가 ‘동맹 70’을 처음 구상한 것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문득 화가로서의 나의 삶과 세계관, 작품 세계에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0여년 전 작고한 설 화백의 부친은 실향민이었다. 개성에서 태어나 1·4 후퇴 때 가족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다. 이후 해병대에 입대해 6·25 전쟁에 참전한 예비역 준위 출신이다.
“무척 과묵하셨지만, 미군과 생사를 함께 하며 공산군의 침략에서 조국을 지킨 자부심은 누구보다 크셨습니다.”
부친은 아들이 미술가보다는 의사나 군인이 되길 원했다고 한다. 아들이 고집을 부리자 ‘반국가적 작품은 그리지 않는다’. ‘어디서 뭘 하든 대한민국을 구한 미국의 저력과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잊지 말라’는 조건으로 화가의 길을 승낙했다는 것.
대학 졸업 후 미국 유학을 거쳐 1996년부터 4년간 뉴욕에 체류하며 작품 활동을 한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부친의 영향이었던 것 같다고 설 화백은 회고했다.
그는 지난해 한미동맹 70주년을 계기로 부친의 메시지가 담긴 작품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이후 18개월간 초대형 캔버스에 1~2cm 크기의 약 30만장에 달하는 이미지 조각을 꼴라주 기법으로 이어 붙이는 작업에 돌입했다. 각 이미지 조각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비롯해 한미 양국의 정치, 경제, 역사, 문화를 망라하는 인물과 사건, 기호, 표식 등이 담겨있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린든 존슨 전 미 대통령, 역대 주한미군 사령관,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배우와 부친의 해병대 시절 사진도 들어있다.

▲설경철 화백이 11일 경기 양평의 자신의 작업실에서 아들 제이슨 설 씨와 함께 최근 완성한 ‘동맹 70’ 작품 앞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동맹 70’에는 해병대로 6·25전쟁에 참전한 부친과 미 육군 장교를 거쳐 주한미군에서 근무 중인 아들로 이어지는 설 화백의 3대 가족사와 메시지도 담고 있다. 양평=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동맹 70’은 무수한 이미지 조각들이 회오리 형상으로 화폭 중앙으로 휘몰아쳐 한데 섞이면서 음양의 조화를 이룬 것과 같은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설 화백은 “70년 전 군사동맹으로 시작한 한미관계가 세대를 넘어 떼려야 뗄 수 없는 문화로 승화됐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가 ‘동맹 70’을 구상한 배경에는 아들 제이슨 설 씨(42·한국명 설세진·미 예비역 육군 소령)의 역할도 컸다. 설 씨는 미국에서 중·고교와 대학을 나온 뒤 장교 양성과정(OCS)을 거쳐 한국 등에서 미 육군 정보장교로 한국 등에서 근무한 뒤 전역했다.
지금은 캠프험프리(평택 미군기지)의 주한미군 사령부 기획참모부에서 연방 군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설 화백이 작품 기증 의사를 미 국방부에 타진할 수 있었던 것도 아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 덕분이었다.
설 씨는 “제 어린 두 자녀가 나중에 크면 한반도 평화안보를 위해 한미동맹이 계승 발전돼야 한다는 점을 말해줄 것”이라며 “아버지의 작품이 그런 메시지를 한미 양국민에게 전달할수 있는 기념비가 될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06.17 북핵 위협, 바이든의 오판 우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EPA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일 공개된 타임지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과거와 동일한 수준으로 위협적”이라고 했다. 한국인 입장에선 동의하기 어렵고 다소 무책임한 말로도 들린다. 북한은 바이든 정부 2년 차인 2022년에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포함해 역대 최다인 65차례 미사일 도발을 했다. 정찰 위성, 극초음속 무기 등 김정은이 제시한 ‘5대 과업’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진일보하고 있고 최근엔 러시아라는 우군(友軍)까지 생겼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24년 만의 방북이 임박했다.
지난해 70주년을 맞은 한미 동맹의 온도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방위 공약은 철통같다” “바위처럼 굳건한 기반 위에 계속 성과를 쌓아나가자”는 수사(修辭)들이 넘쳐흐른다.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이렇게 결의를 다지고, 양국 고위급들이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무력 충돌을 억제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게 상책이다. 그러지 못하고 이젠 저급하고 엽기적인 ‘오물 풍선’까지 겪게 됐으니, 지독한 자기도취에 빠진 독재자의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 사는 우리 국민들은 계속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정말 근본적인 해법은 무엇인가.
워싱턴에서 미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방식의 핵 공유, 나아가 한국의 자체 핵무장은 이제 주기적으로 소환돼 우리를 희망 고문하는 주제가 됐다. 얼마 전엔 상원 국방위·외교위 소속 공화당 의원들이 잇따라 관련 논의에 불을 지폈다. 그런데 미 조야(朝野)의 의사 결정자들 사이에선 이해를 못 하겠다는 답답함을 넘어 지겹다는 반응까지 감지된다. 한국 내 여론을 들먹이는 이들도 있다. 국방부 부차관보는 “한국의 최고위 인사들이 핵무기 획득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했고,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한반도 전문가는 ‘전략 전문가’ 1000명에게 친히 여론조사를 돌려 “34%만 핵 보유를 찬성한다” “한국 내 핵 보유 여론은 부풀려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확장 억제(핵우산)를 강화한 워싱턴 선언은 분명한 성과다. 동시에 NPT(핵 확산 금지 조약) 회원국 의무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명시해 우리 스스로가 ‘핵 족쇄’를 채운 건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워싱턴 선언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 미국의 선의(善意)에 의지하는 구조다. 유사시 미국 대통령이 자국민이 희생될 가능성을 감수해 가며 서울을 보호해 줄 것이라 장담하기 어렵다. 그래서 유의미한 득점을 했다고는 할 수 있어도 이게 한 나라의 전략이 될 수는 없다. 자체 핵 보유 옵션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은 채 미국 내 정치 풍향에 촉수를 들이대 우리 몫을 극대화해야 하는 이유다. 미국의 다른 우방국들은 핵도 개발해 용인을 받았고, 핵잠수함도 갖는다는데 “인도·태평양의 린치핀(핵심 축)”이라는 한국이 못 할 것이 없지 않을까.
조선일보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06-17 韓·중앙아 ‘기술-자원 윈윈’ 길 넓혔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의 가운데 위치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최근 지정학적 충돌의 여파를 크게 겪고 있다. 반면, 석유·가스·핵심 광물 등 에너지 자원안보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어느 때보다 이들 국가의 전략적 가치와 영향력이 부각된다. 지난해 5월 중국이 중앙아시아 5개국(C5)과 정상회의를 개최했고, 미국도 9월 C5+1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일본 또한 올해 C5+1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과 인도를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걸프경제공동체 등 주요국들이 정상 또는 각료급에서 C5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사절단과 함께한 윤석열 대통령의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3개국 국빈방문은 공급망 확보와 경제안보에 방점을 둔 정상 세일즈 외교를 ‘K-실크로드’ 전략을 통해 확대하는 의미가 크다.
주목할 성과는 중앙아시아와 ‘자원안보 공급망 파트너십 구축’이다. 카자흐는 크롬 매장량이 세계 1위이며 리튬과 희토류도 풍부하다. 우즈베크도 몰리브덴·텅스텐 등 핵심 광물이 다량 매장돼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핵심 광물을 가공하고 소재화하는 기술과 배터리·반도체 등 첨단 산업을 가지고 있어 중앙아시아와의 핵심 광물 협력 잠재력이 매우 크다. 이번에 우리는 카자흐, 우즈베크와 총 6건의 핵심 광물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탐사부터 제련, 소재까지 전체 가치사슬을 포괄하는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이로써 핵심 광물 공급망의 안정적 확보와 우리 첨단 산업의 경쟁력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견조(堅調)한 성장을 하는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이번 정상 순방을 계기로 통상 네트워크를 강화해 우리 산업의 무대를 확대했다. 러시아와 관세동맹으로 묶이거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 완료되지 않은 사유 등으로 개별 FTA 체결이 어려운 점을 고려해 ‘무역투자촉진프레임워크(TIPF)’를 통해 우리 기업들을 위한 안정적인 교역 투자 환경을 조성했다. 아울러, 우리 정부는 2004년부터 가입 작업반 의장국을 맡은 우즈베크와는 양자 협상을 타결해 조속한 WTO 가입을 지원하고 다자무역 체제를 통한 경제개발을 촉진했다.
이 밖에도 투르크멘의 가스 탈황 설비와 석유화학 플랜트 정상화, 카자흐의 가스 처리 플랜트, 우즈베크의 고속철도 등 대형 프로젝트 수주를 지원하는 동시에 전력·철도·교통 등 인프라 분야에서 정부와 민간 부문에서 다수의 MOU를 체결해 우리 기업의 진출 기반을 다졌다. 특히, 민간기업들이 참여한 비즈니스포럼에서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자원 에너지뿐 아니라 제조업·서비스업 등 산업 다각화를 위해 한국 기업들과 협업하고자 하는 노력과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우리 기업들과 50여 개의 의미 있는 MOU를 체결했다.
구소련의 굴레에서 벗어난 중앙아시아는 이제 각기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기반으로 나름의 성장 방식을 정착시켜 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애끊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품은 50만 고려인이 더욱 큰 역할을 맡고 있다. 동서양을 이으며 체제 전환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수행해 가는 광활한 중앙아시아에 ‘K-실크로드’가 한반도까지 이어지는 공동 번영과 평화의 신작로가 되리라 믿는다.

문화일보
06.19 푸틴-김정은 '치명적 거래', 반드시 저지해야
러의 ICBM·잠수함·정찰위성 기술
한반도 군사적 균형 근본 흔들어
푸틴 방북 의미 축소하면
상황관리 더욱 힘들어져
한·러 외교회담 및 특사 파견하고
한미 전술핵 공유 방안도 검토
지금은 전략적 유연성 발휘할 때
러가 잘못하면 중과 긴밀 협의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 새벽 북한 평양에 도착해 국빈 방문을 시작했다. 사진은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악수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푸틴과 김정은의 만남을 계기로 전개될 러·북 군사 협력의 향배에 국제적 시선이 쏠리고 있다. 우리는 러시아가 한반도의 현상 변경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에 군사 기술을 이전하는 ‘치명적 거래’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일단 방점을 찍고 있다. 하지만 반대 방향으로 사태가 전개될 경우를 대비해 비상한 각오로 임해야 한다.
북한의 포탄과 로켓 지원 덕분에 우크라이나 전황을 개선한 러시아는 올해 3월에 북핵 저지를 목적으로 활동해 온 유엔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Expert Panel)의 활동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는 유엔 대북 제재 결의가 금지하는 불법행위에 러시아가 직접 가담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동시에, 미국의 핵 비확산 정책에 협조해 온 러시아의 오랜 정책 기조를 폐기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기대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원자력잠수함, 정찰위성 기술 등은 한반도의 군사적 균형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다. ICBM에 실린 북한의 핵탄두가 대기권 밖으로 나갔다가 재진입(reentry)하여 미 본토의 목표물을 타격하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실은 원자력잠수함이 태평양을 잠항해 미 서부 해안에 접근한 후 핵 공격을 할 수 있다면,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게 된다.
2022년 12월 북한 무인기 남하 시 비례적 대응을 위해 우리 군 무인기 3대가 북쪽으로 올라가도 북한은 감지조차 못 했고, 미군 정찰기가 동해안 쪽 북한 영공을 위협해도 김정은은 까맣게 모른 채 원산 앞바다 특각(特閣)에서 휴식을 즐겼다. 이러한 북한이 러시아 도움으로 정찰위성을 비롯해 한미 동맹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는 눈과 귀를 갖게 된다면, 위협이 배가된다.
따라서 한미 양국은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를 위반하는 러·북 군사 협력을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 지금까지 북한은 핵·미사일 고도화 능력과 한계를 거의 다 보여주었다. 따라서 푸틴의 방북 이후 새롭게 선보이는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러시아의 기술적 지원에 따른 결과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는 북한의 기술적 진보가 북한의 자체 노력의 결과인지 러시아 덕분인지 구분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한미 양국은 러·북 간 ‘치명적 거래’를 가정해 전략적 ‘추가 조치’를 논의해야 한다. 한·러 관계를 의식해 푸틴의 방북 의미를 축소하고 대충 넘어가면 상황 관리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우선 우리의 강력한 의지를 모스크바에 전달하기 위해 신속히 한·러 외교장관 회담을 개최하거나, 특사를 파견할 수 있다. 그리고 한미 양국은 대북 핵 억제를 강화하는 조치를 해야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억제하기 위해 한미 양국이 작년에 출범시킨 ‘핵협의그룹(NCG)’이 한미가 함께 핵무기를 운용하는 ‘일체형 확장억제’를 보여줘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미 NCG에 일본과 호주까지 참여시키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핵무기 감축을 거부하는 러시아와 중국을 보면서, ‘핵무기 확대’ 정책으로의 대전환을 검토 중이다. 미국이 전략핵과 더불어 전술핵 숫자를 대폭 늘릴 예정이라면 NCG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전술핵을 한미가 ‘공유(sharing)’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NCG는 (필자가 용산 국가안보실에 근무할 때) 북한이 아직 ICBM 재진입 기술을 획득하지 못하고, 원자력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았으며, 정찰위성 기술이 미진한 단계일 때 한미가 합의한 것이다. 만일 북한이 러시아의 도움으로 상기 기술들을 획득하여 전략적 위협을 가해 온다면, 이에 걸맞은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 7월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나토의 글로벌 파트너인 AP4(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가 우크라이나 지원 정책을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거시 전략 차원에서 러시아와 중국을 우리가 동시에 상대할 필요는 없다. 러시아가 잘못할 때는 중국과, 중국이 잘못할 때는 러시아와 협조하는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현재 중국이 러·북 밀착을 달가워할 리 없다. 따라서 우리는 중국과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한·러 관계가 한국의 안보보다 우선할 수 없고, 러시아의 불법행위가 중국의 역내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푸틴-김정은 간의 ‘치명적 거래’와 그 이행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조선일보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前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06.19 '지각 대장' 푸틴, 평양도 새벽 도착...결국 당일치기 방북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 새벽 북한 평양에 도착해 국빈 방문을 시작했다. 사진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을 맞이하는 모습./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평소 외교무대에서 잦은 지각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당초 계획보다 하루 늦은 19일 새벽에야 평양에 도착했다. 이로써 24년 만에 이뤄지는 푸틴 대통령의 방북 일정이 당일치기로 끝나게 됐다. 푸틴 대통령은 19일 오후에는 베트남 방문이 예정돼 있다.
푸틴 대통령은 전날(18일) 러시아 극동지역 사하(야쿠티야) 공화국 야쿠츠크 방문 일정을 마친 뒤 전용기를 타고 북한으로 이동했다.
러시아 크렘린궁이 18일 텔래그램 채널을 통해 공개한 푸틴 대통령의 극동 지역 방문 사진과 영상을 보면 푸틴은 야크추크 도착 이후 정보통신(IT) 전시회를 방문한 뒤 지역에서 일하는 교사, 의사들과 만나 대화를 나눴다. 이후 지역 주지사와 만나 환담을 나눈 뒤 러시아에서 개최되는 아시아 어린이 국제 스포츠 경기장을 방문했다.
러시아 타스 통신과 국영TV 소속 방송사 기자가 공개한 영상을 보면 푸틴 대통령은 스포츠 경기장에서 시민들과 만나 ‘즉석 대화’를 나눴다. 관계자들의 설명을 들으며 경기장을 둘러보던 푸틴은 경기장 밖에서 기다리던 젊은이들, 시민들에 둘러싸여 대화를 나눈다. 타스 통신은 푸틴이 자동차 행렬에서 내려 소규모 경호원만 대동한 채 경기장 밖에 모인 시민들에게 다가가 대화를 나눴고 한 아이에게는 “챔피언이 될거야”라는 덕담도 했다고 전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러시아 매체에 야크추크에서 푸틴의 자동차 행렬이 중단되는 건 계획되지 않은 일이었다”고 했다.
러시아 타스 통신 보도 등에 따르면 이날 공항에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나와 푸틴 대통령을 맞이했다.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이날 정오부터 공식 환영식을 갖고 북러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조선일보 김명일 기자
06-19 푸틴의 기괴한 방북과 ‘유엔 북핵 제재’ 허물기 야합
북한 국빈방문에 나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 새벽 평양에 도착, 방북 일정을 시작했다. 푸틴의 방북은 당초 1박2일로 예정됐지만, 도착이 늦어지는 바람에 당일치기 국빈방문이 됐는데 김정은은 공항에서 직접 영접했다. 국빈방문임에도 새벽 2시46분에 도착한 푸틴이나, 그를 공항에서 맞이한 김정은의 ‘기괴한 모습’은 양측 모두 비정상 국가임을 상징한다. 시베리아의 사하공화국 방문 다음 일정임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푸틴 방문을 계기로 양국 관계는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될 것이라고 한다. 푸틴은 18일 보도된 노동신문 기고문에서 소련이 한반도를 해방시키고, 조선인들 앞에 발전의 길을 열어주었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 6·25전쟁을 조국해방전쟁이라면서 김일성 지원 사실도 숨기지 않았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푸틴이 서방에 의한 ‘일방적 비합법적 제한 조치들을 공동으로 반대해 나가겠다’고 약속한 사실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거부권을 행사해 북핵 제재를 허물겠다는 공언이다. ‘불가분리적 안전구조 건설’도 내세웠는데, 상호방위조약은 아니더라도 준(準)동맹 격상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북한 핵은 대한민국에는 제1의 안보 위협이다. 대북 제재는 마지막 저지 버팀목이다. 제재가 허물어지지 않도록 미국 및 자유 진영과 공조를 강화하고, 북·러 밀착을 견제하는 중국과도 공감대를 넓혀야 한다. 푸틴이 방북에 앞서 “한·러 관계 악화를 원치 않는다”고 밝힌 만큼 러시아가 북한에 핵·미사일 첨단기술 제공 등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강력한 상응 조치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알려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6-19 북·러 밀착에… 요동치는 ‘세계 안보지형’
■ 김정은·푸틴 오늘 회담
우크라전 무기·ICBM 협력 논의
군사·경제 등 냉전 수준의 연대
동북아 넘어 세계정세에 큰 파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용기를 타고 19일 오전 2시를 넘겨 평양에 도착했다. 푸틴 대통령의 북한 방문은 2000년 7월 이후 24년 만이다. 애초 18∼19일 국빈 방문을 예고했으나 전날 극동 사하 공화국 방문 일정이 지연돼 ‘당일치기’ 방문이 됐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연쇄 확대·비공개 정상회담을 갖고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포함해 북·러 관계를 준동맹급으로 격상하는 문서 등에 서명할 것으로 보인다. 자동 군사개입 조항 복원 등 양측 군사협력 수위에 따라 동북아 정세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특히 북·러가 우크라이나 공격용 무기 수출과 잠수함·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을 맞바꾸는 협력 강화에 합의한다면 이는 동북아를 넘어 전 세계 안보 구도를 크게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극동 사하(야쿠티야) 공화국 야쿠츠크에서 일류신(IL)-96 전용기를 타고 오전 2시 46분쯤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 데니스 만투로프 제1 부총리, 알렉산드르 노바크 에너지 부문 부총리, 안드레이 벨루소프 국방장관 등 고위급 수행단도 함께했다. 공항까지 영접 나온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두 차례 포옹하기도 했다. 이후 북·러 정상은 러시아산 ‘아우루스’ 리무진 차량에 동승한 채 숙소인 금수산 궁전으로 이동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두 나라 최고 수뇌분들의 또 한차례의 역사적인 상봉이 평양에서 이루어졌다”고 보도했다.
북·러 정상은 이날 정상회담에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 체결 등 전방위적 협력을 추진한다. 서방 제재에 따라 국제고립 상태인 북·러는 안보뿐 아니라 경제 분야에서까지 옛 소련 시절 동맹 수준으로 연대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화일보 김규태·권승현 기자
06.20 北 포탄 얻자고 對韓적대 러시아, 대가 치르게 해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월 19일 오전 북한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 회담 중 미소를 짓고 있다. / AP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19일 정상회담을 하고 ‘북·러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에 서명했다. 푸틴은 “쌍방 중 한쪽에 대한 공격 시 상호 지원을 제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했다. 김정은도 “두 나라가 동맹 관계라는 새로운 높은 수준에 올라섰다”고 말했다.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을 되살린 것이다.
북·러는 1961년 우호 조약을 맺으면서 ‘한쪽이 공격당하면 지체 없이 군사적으로 돕는다’는 내용을 넣었다. 같은 해 북·중도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이 들어간 동맹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난 2000년 북·러는 자동 군사 개입이 빠진 친선 조약에 서명했다. 동맹 관계 폐기였다. 이날 김정은과 푸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지지와 감사를 교환했다. 포탄 부족에 허덕이던 러시아는 북한의 포탄 500만발 지원 덕분에 전황을 개선했다. 앞으로도 러시아에 필요한 포탄·미사일을 공급해줄 곳은 북한뿐이다. 김정은도 푸틴의 군사 기술·식량 지원이 절실하다. 두 독재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자 냉전 시대 유물이 다시 튀어나왔다.
푸틴은 이날 “북한과 군사 기술 협력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정은이 완성하려는 정찰위성과 ICBM, 핵 추진 잠수함 등은 러시아 도움이 절실하다. 작년 9월 푸틴은 ‘북한의 위성 개발을 도울 수 있다’고 했는데 위성 기술은 정찰위성 및 ICBM 개발과 직결된다. 이날 북·러 회담에는 러시아 우주공사 사장이 배석했다. 북이 러시아 지원으로 정찰위성을 보유하게 되면 한미 연합군 움직임을 실시간 파악할 수 있다. ICBM 완성으로 미 본토를 직접 핵 타격할 능력을 확보할 경우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이 제때 펴지지 않을 수 있다. 북·러의 동맹 격상은 우리 안보에 치명적이다.
푸틴은 방북 전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직접 공급하지 않기로 한 결정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그래 놓고 한국의 최대 적인 북한과 군사 동맹을 맺은 것도 모자라 무기 기술까지 넘겨줄 수 있다고 했다.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의 북핵 제재를 대놓고 무시하기도 했다. 우리의 선의에 대한 배신이자 한국민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다. 푸틴이 알아야 할 것은 한국도 북·러 위협에 대응할 군사적 수단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옛날 포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수단이다. 푸틴과 김정은의 ‘위험한 거래’를 대충 넘기려 한다면 우리 안보는 더 위험해질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절대 안 된다.
조선일보 사설
06.20 북러 "전쟁상태 처하면 지체없이 군사 원조"…조약문 공개
북한과 러시아가 한쪽이 무력 침공을 받으면 지체 없이 군사적 원조를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자동 군사개입’으로 해석될 수 있는 조항이어서 양국 간 동맹관계가 28년 만에 복원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앙통신은 20일 북한 김정은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날 평양에서 체결한 ‘포괄적인 전략적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 전문을 보도했다.
조약 제4조에는 “쌍방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러시아연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유엔 헌장 51조는 유엔 회원국에 무력 공격이 있을 경우 개별적·집단적 자위권을 가질 수 있다고 규정한다.
앞서 양국 언론은 조약문의 상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김정은과 푸틴 대통령이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체결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김정은은 “동맹관계”라고 선언했고 푸틴 대통령은 ‘동맹’이라는 표현은 없이 “침략당할 시 상호지원”한다고 밝혔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해당 조항에 관해 “방어적인 입장일 뿐”이라며 “두 국가(러시아와 북한) 중 하나를 침공하려는 사람들만 이 조항에 반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리영진 주러시아 북한대사관 차석은 “우리는 푸틴 대통령의 북한 방문 결과에 매우 만족한다”며 “북한은 어려운 국제 정세 속 러시아와 전략적 소통을 더욱 강화하고 러시아 지도부의 모든 정치적 지침을 항상 무조건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이가영 기자
06.21 정부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 지원 검토" 러시아가 자초한 일
대통령실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문제를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규탄하고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우크라이나에 살상용 무기를 직접 지원하는 것은 자제해 왔다. 지원 물품은 의료품, 전투식량, 방탄 헬멧 등 비살상용 군수물자 위주였다. 전후 한·러 관계를 고려한 고심어린 결정이었다. 이제 러시아가 유사시 자동 개입을 골자로 하는 신(新)조약을 북한과 체결하고 북한에 대한 군사기술 지원까지 예고한 이상 상응하는 대응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미국·유럽 등 한국의 우방 대부분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는 상황에서 한국 홀로 군사 지원에 선을 그은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최근 서방 국가 절대 다수가 보이콧한 푸틴 대통령의 5번째 취임식 때도 한국은 현지 대사를 보내 축하했다. 러시아는 그 의미를 숙고하고 신중히 행동해야 했다. 푸틴은 방북하기 전 회견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 것을 언급하며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지만 말뿐이었다. 이번에 북·러가 맺은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엔 냉전 시절 유지되다 1996년 폐기된 자동개입 조항이 부활했다.
조약에 명시되진 않았지만 푸틴은 회견에서 “북한과 군사기술 협력을 배제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자신이 만든 안보리 결의를 무시하겠다는 것이다. 낡은 소련제 무기를 현대화하는 것은 북의 숙원이다. 북은 ‘전략무기 5대 과업’ 이행을 위해 핵 추진 잠수함, ICBM, 정찰위성 등의 기술 이전도 희망하고 있다. 이제 그런 일들이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북·러 군사 협력이 현실화하면 한국민의 안보를 직접 위협한다. 우리의 선의에 대한 배신일 뿐 아니라 한·러 관계의 레드라인을 넘는 것이다.
무기 지원은 방공 시스템 같은 방어용으로 시작해 북·러의 ‘위험한 거래’가 계속될 경우 살상용으로 강도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작년부터 한국은 미국에 155㎜ 포탄 수십만 발을 대여·판매해왔다. 미국은 이것으로 자국 무기고를 채우고 재고탄을 우크라이나에 보냈다. 러시아와 미국 입장을 모두 감안한 우회 지원이었다. 이제 이것을 직접 제공한다 해도 러시아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 상황은 러시아가 자초한 것이다. 한국은 북한의 낡은 포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성능 무기들을 대량생산할 능력이 있다. 러시아는 그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6-21 북·러 조약 심각하지만 尹정부 ‘외교 오판’도 문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일 베트남 방문 도중 전날 평양에서 체결한 ‘북·러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과 관련, “(1961년 조약에 비해) 어떤 새로운 것도 없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 제공 가능성을 시사한 윤석열 정부를 향해 “아주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겁박했다. 새로운 것이 없다는 푸틴 주장은 거짓이다. 명칭만 보면 동맹 조약에서 동반자 조약으로 완화한 것 같지만, 내용은 훨씬 구체화했기 때문이다.
우선, 6개 조항이 23개 조항으로 늘어나면서 상호 지원 규정이 훨씬 촘촘해졌다. ‘지체 없이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군사동맹 조항은 완벽히 되살아났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북한이 핵무기 보유와 고도화에 나섰다는 상황의 변화다. 이번 조약으로 핵무기 협력 길까지 열렸다. 김정은이 “조·러 역사상 가장 강력한 조약”이라고 주장한 그대로다. 한국은 하루아침에 북·러의 이중 핵 공갈에 내몰리는 위기 상황을 맞게 됐다.
이런 우려는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게다가 사전에 협의할 외교 공간도 있었다. 푸틴은 방북 직전에 “한국과의 관계 악화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북·러 신조약 전문이 발표된 뒤에 대통령실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문제 재검토” 발언을 하고, 살상 무기 지원을 시사하는 등 뒷북 호들갑을 떨 것이 아니라, 사전에 단계별 대응 카드를 제시하고 러시아를 압박했어야 했다. 외교 당국은 1961년 북·러 조약에는 훨씬 못 미칠 것으로 헛다리를 짚었다. 러시아 측은 한국 반발을 예상하고 기정사실화(조약 발표) 이후 수습하는 전술을 구사했을 것이다.
안보도 외교도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러시아 사탕발림에 속은 듯하다. 지난해 2030부산엑스포 유치 참사 때 정보·분석·판단에 모두 실패한 것과 판박이다. 윤 대통령이 “모두 저의 부족 탓”이라고 사과했으면 외교 라인은 스스로 물러나는 게 도리다. 그런데 정반대였다. 이러니 외교적 오판(誤判)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미리 철저히 대비하고, 그래도 어쩔 수 없으면 실효성 있게 대응하는 외교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화일보 사설
06-21 北 경거망동 위험성과 심모원려 외교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장, 국민대 석좌교수
신(新)조약을 근거로 러시아가 한반도 전쟁 상황에 쉽게 개입할 법적 근거를 확보했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매우 우려스럽다. 그러나 북·러 양자협정 제4조를 문면 그대로 ‘자동개입 조항’으로 해석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조문 해석상 근거가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조건부 개입’이라고 봐야 한다. 푸틴은 20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필자의 해석과 유사한 주장을 했다. 제2차 대전 중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공산주의를 해외에 수출할 의사가 없다고 일관되게 거짓말한 이오시프 스탈린 이후 소련 및 러시아 지도자의 말을 기본적으로 믿을 수는 없다. 그러나 푸틴 발언의 행간 의미를 찾아봐야 한다.
조약 내용 자체보다 북·러 신조약은 우리의 현재 안보 상황을 직격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첫째, 유엔을 포함한 국제 공조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상당 부분 침식했다. 유엔의 대북 제재라는 전선에서 러시아가 탈영·이탈을 공식화한 것이다. 둘째, 북한이 북·러 신조약을 과잉 해석하고, 경거망동하는 도발을 할 가능성이 커졌다. 셋째, 북한 체제의 내구력이 극적으로 강화됐다.
우리 정부는 냉정하고 의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정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러시아의 침략전쟁으로 규정하고, 우크라이나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 방향은 헌법정신과 정확히 일치했고, 콘텐츠는 국민적 동의를 받고 있다. 당연히 러시아의 반발이 예상된 선택이었다. 많은 전문가는 러시아의 반발이 북측과 새로운 준군사동맹조약으로 발전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정부는 자신감을 가지고 단기 아닌 장기 대처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북·러 신조약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신냉전질서가 만들어낸 사생아 성격의 양자 조약으로 해석된다. 러시아 측에는 전쟁 관련 단기 처방으로, 김정은과 북측은 체제 내구력을 강화할 장기 처방으로 인식할 것이다.
북·러 신조약 중 제23조 폐기 조항에 우리의 대러 정책이 장기적으로 끼어들 공간이 있다. 제23조는 ‘쌍방 중 어느 일방이 이 조약의 효력을 중지하려는 경우 이에 대해 타방에게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한다. 조약의 효력은 타방이 서면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1년 후에 중지된다’고 돼 있다. 쌍방의 합의가 없으면 폐기할 수 없는 반(半)영구적 북·중 군사동맹조약과 다른 내용이다.
신냉전 위기 속에 우리 외교는 북측의 경거망동을 예방하고 북핵 폐기, 통일 준비를 만들어가야 한다. 단기 대응에 골몰하지 말고, 냉정하게 심모원려(深謀遠慮)의 방향성을 유지하고, 태산 같은 무게감을 유지해야 한다. 힘들지만, 우크라이나전을 끝낸 러시아 정부가 신조약 폐기 조항을 만지작거리도록 러시아와 물밑 대화를 유지하고 전략적 의존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단기 대응 집착은 심모원려 외교의 독이 된다.

문화일보
06.22 핵 가진 북·중·러 독재자들 핵 없는 韓 위협, 핵 공유로 대처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20일 "러시아연방 대통령을 환영하는 의식이 6월 19일 김일성광장에서 거행됐다"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수십만 평양 시민들이 떨쳐나 최대의 국빈으로 맞이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일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제공한다면 매우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에 고정밀 무기 공급을 배제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우리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재검토’를 밝힌 데 대한 위협이다. 그동안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보내지 않았다. 이런 배려에 대해 러시아는 북한과 ‘자동 군사 개입’ 조약을 맺으며 뒤통수를 쳤다. 북한에 군사 기술을 줄 수 있다고도 했다. 정부의 ‘무기 지원 재검토’는 러시아가 자초한 것인데도 푸틴은 적반하장이다.
푸틴은 이번 북·러 조약이 “(1961년 조약과 비교해) 새로운 것이 없다”고 했다. 거짓이다. 종전 6개 조항이 23개 조항으로 늘었고 군사 지원을 ‘지체 없이’ 한다는 표현도 추가됐다. 무엇보다 1961년 북은 핵이 없었지만 지금은 있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핵 보유국이다. 푸틴은 핵 사용 문턱을 낮추는 “핵 교리 변경을 검토 중”이라고도 했다. 핵을 가진 독재자들이 핵이 없는 한국을 겁박하고 있다.
미 상원 군사위 공화당 간사인 위커 의원은 북·러 조약과 관련 “동맹국인 한국·일본·호주와 핵 공유 협정을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나토 32개 회원국 중 독일·터키·이탈리아·벨기에·네덜란드 등 5국에는 150~200기의 미 전술핵(B-61)이 배치돼 있다. 이 국가들은 미국과 맺은 ‘핵 공유 협정’에 따라 핵 사용 결정 과정에 의견을 반영할 수 있고 핵 투하도 자국 전투기로 한다. 핵폭탄 최종 활성화 권한은 미국 대통령이 갖고 있지만 핵 보유 및 통제권은 공유하는 것이다.
세계 질서를 유린하는 북·중·러가 전부 핵 보유국이다. 중국은 2030년까지 핵탄두 1000기 보유가 목표이고 북·러는 내놓고 핵 협박까지 하고 있다. 이번에 러시아는 북핵을 인정하는 듯한 태도도 취했다. 그런데 이들과 머리를 맞댄 한국만 핵이 없다. 핵 확산을 무조건 막아온 미국의 기존 정책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핵은 핵으로만 막을 수 있다. 미국도 핵 공유 카드를 테이블에 올릴 때가 됐다.
조선일보 사설
06.22 한국, 하늘도 도울 수 없는 나라 돼가나
핵 先制공격 公言한
푸틴·김정은 야합은
한국 生存 위협
동북아 急所에 위치한
한국 한눈팔면
나라와 번영 순식간에 끝나

▲지난 19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환영하는 의식이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북한을 방문해 한반도 유사시 자동 개입할 문(門)을 열어놓고 다음 행선지인 베트남으로 향했다. 푸틴은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 지원은 북한이 다른 나라로부터 ‘침략’을 받았을 때만 적용될 것이므로 북한을 침략할 의도가 없는 한국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김일성과 손잡고 6·25 남침 전쟁을 일으킨 스탈린 후계자다운 궤변이다.
현대 전쟁은 침략한 나라와 침략 당한 나라를 구분하는 경계선이 희미해졌다. 푸틴이 통치하는 러시아가 표본이다. 푸틴은 2014년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를 기습 공격해 러시아 영토로 만들고 침략을 고토(古土) 회복이라고 정당화했다. 러시아는 10년 후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고 이번에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러시아계(系) 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억지를 썼다. 푸틴이 시범을 보인 침략 전쟁 정당화 수법은 한국을 적대(敵對) 국가로 규정하고 각종 도발을 증가시키고 있는 김정은에게 교과서 역할을 할 것이다.
푸틴과 김정은은 자기네 국가가 ‘실존적(實存的) 위협’으로 느끼면 상대 국가를 핵무기로 선제(先制)공격 할 수 있다고 공언(公言)한 세계에 단 두 명뿐인 국가 지도자다. 이들의 야합(野合)은 대한민국의 생사(生死)를 가를 수도 있는 ‘실존적 위협’이다. 그러나 한국은 핵무기가 없고 핵무기 개발에 접근할 통로조차 미국에 의해 완전히 봉쇄돼 있다.
북한과 북한 뒷배를 봐주는 국가들이 제멋대로 한반도 긴장을 높이거나 낮추는 것은 한국과 북한 사이 핵무기 균형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북한이 위협을 키울 때마다 미국이 전략무기를 한국에 보내는 것은 아스피린 같은 해열제(解熱劑)에 지나지 않는다. 러시아가 독일을, 중국이 일본을 핵무기로 선제공격하겠다고 협박한다면, 독일과 일본이 한국처럼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먼 산만 바라보고 있겠는가. 주권 국가로서 제정신이 있다면 ‘근본’을 생각해야 한다.
북한 방문을 끝내고 베트남에 도착한 푸틴은 북한에서의 언동(言動)과 완전히 달라졌다. 푸틴은 평양에서 발언 절반은 미국 공격, 나머지 절반은 북한 지원 약속으로 채웠었다. ‘평양의 푸틴’과 ‘하노이의 푸틴’이 딴 사람처럼 바뀐 것은 한반도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한 벨트로 묶여 돌아가기 때문이다.
북한은 러시아의 바닥난 탄약·포탄·로켓을 메워주는 탄약고(彈藥庫) 노릇을 하고 있다. 푸틴은 북한에 대한 대가(代價)를 지불하고, 미국의 우크라이나 집중 지원을 분산시키기 위해 한반도 긴장을 고조(高潮)시켰다. 미국은 푸틴이 러시아로 돌아가자마자 우크라이나가 미국이 공급한 패트리엇 미사일 등으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는 것을 전격 허용했다. 러시아가 미국 급소(急所)는 한국이라 보고 찌르자, 미국은 러시아 급소 우크라이나에서 반격했다.
베트남은 석유 자원이 풍부한 남지나해 섬 영유권을 놓고 중국과 긴장이 높아지자 과거 전쟁 상대인 미국과 관계를 강화했다. 이를 아는 푸틴이 하노이에서 미국 공격을 펴긴 어려웠다. 대신 한국을 자극했다. 푸틴은 월남전 때 소련이 베트남을 도왔던 이야기만 하다 돌아갔다.
베트남은 한국과 달리 동맹 관계가 절박하지 않다. 북쪽 국경을 맞댄 중국과의 관계만 조절하면 된다. 이런 지정학적 이점(利點) 때문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 러시아를 지지하지도 규탄하지도 않는 외교가 가능했다. 이 차이를 무시하고 한국이 베트남식 외교를 따라 한다면, 한국은 전쟁터에서 길 잃은 미아(迷兒)가 되고 만다. 그러나 베트남 국가 지도자들이 중국과 영해(領海) 분쟁을 벌이는 와중에서도 중국을 언급할 때 단어 하나에도 극도로 신중을 기했던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나라들은 한반도가 자기네 나라 안보의 급소(急所)라고 여긴다. 목구멍과 명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듣기 좋은 말로 요충(要衝)이라고 한다. 역사가 보여주듯 남의 목구멍에 위치한 요충 국가는 나라 수명(壽命)과 번영의 기간이 길지 못했다. 한눈을 파는 순간 끝이다.
남이 목구멍으로 생각하는 위험천만 낭떠러지 나라에서 대통령은 부인을 보호하려다 거부권 하나에 정권을 의지한 형편이 돼가고, 국회 3분의 2에 육박하는 의석을 가진 정당 대표는 자신이 감옥에 가지 않으려고 국회의원을 사병(私兵)처럼 부리는 병정놀이에 빠져있다. 스스로 돕지 않으면 하늘도 돕지 못한다. 한국은 하늘도 도와줄 방법이 없는 나라가 돼가고 있다.
조선일보 강천석 기자
06.22 김정은 위원장이 기억해야 할 역사
지난 19일 평양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은 어느 모로 보나 정상적인 것이라 하기 어렵다. 의전만 봐도 그렇다. 두 나라 정상의 만남에는 정교한 조율이 선행되기 마련이다. 북한 측에서 상대방이 새벽 3시 가까워 공항에 도착하는 식의 방문을 마련하였을 리 없다. 양측은 좀 더 정상적인 시간에 도착하는 일정에 합의하였을 것이고 주인인 북한 측은 공항에서 귀빈을 위한 성대한 환영식을 준비하였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손님이 이런 합의된 절차를 무시하고 주인이 새벽 잠을 설치면서 공항에 서서 기다리게 한 것은 무엇때문이었을까. 내막을 알 수 없지만 북한 측의 심기를 헤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외교적인 결례의 이유가 무엇인지는 추측밖에 할 수 없지만 푸틴의 마음 속에 북한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를 시사하는 것이라 보면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푸틴 방북에 고무된 김정은 위원장
“북·러 관계 최고조기” 평가했지만
6·25때 김일성의 거듭된 도움 요청
스탈린에 거절당한 역사 되새겨야

또 다른 문제도 있다. 푸틴은 지난 24년 동안 한번도 북한을 방문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값싼 노동력의 확보 이외에 북한에 큰 관심을 보인 일이 없었다. 유엔에서는 북한의 핵무장에 일관하여 반대하였다. 솔직하게 말해서 푸틴은 전쟁을 시작한 후 생각했던대로 전황이 풀리기는커녕 현재도 끝모르는 출혈을 강요 당하는 상황에 있다. 급한 군수물자의 공급 때문에 갑자기 다른 여러가지 문제를 제쳐두고 친 북한 노선으로 선회한 것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우크라이나 전쟁이 푸틴의 계산대로 진전되었더라면, 그리고 예상 못했던 군수 보급의 실패에 직면하지 않았더라면 갑자기 친 북한 노선으로 선회하였을까 생각해 봐야 한다.
그보다는 더 오래된,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금 두나라의 관계는 과거 조·소 관계시절과도 대비할 수 없는 최고조기”라고 자평하였다고 한다. 혹시 70여년 전의 쓰라린 기억에 생각이 미친 것인가. 지난 일의 기억, 역사는 이럴 때 매우 요긴한 것이다.
1949년 이 지역의 정세는 다시 큰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는 오랜 기간 혼미 상태이던 중국 내전이 드디어 공산 측의 승리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이러한 사태 전개에 대하여 두 초강대국 미국과 소련은 각기 대처에 부심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국은 먼저 국민당 측을 지원하였고 그 다음에는 국공 화해를 추진하여 보았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마침내는 맥아더와 펜타곤 일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공산 정권과의 화해와 관계 정상화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대만의 국민당 세력과는 손절하는 정책이었다.
다른 한편, 중국 대륙의 새로운 현실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이념적 동지인 소련의 스탈린이었다. 스탈린은 중국이 내란 와중의 어려움에 처하여 있을 때 약체인 국민당 정부를 압박하여 특히 동북 지역에서 많은 이권을 확보하였다. “얼마나 좋소! 뤼순항도 우리 것이고 다롄도 우리 것이야, 동청 철도도 우리 것이고 ….” 대전 후 스탈린이 지도를 펴놓고 측근들에게 자랑한 것이다.(펠릭스 추에프 『스탈린을 위한 변명』, 『몰로토프 회고록』)
중국이 통일된다는 것은 그에게는 가장 나쁜 소식이었다. 그는 공산 측에 창장(장강) 이남으로는 진격하지 말라는 사려 깊은(!) 충고를 하였다. 미국이 개입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마오쩌둥은 이를 일축하고 계속 남진하여 대륙을 통일하여 버렸다. 남은 것은 대만에 있는 국부군 세력이었는데 해·공군이 열세인 공산군으로선 이를 평정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념의 동지인 소련 측에 도움을 요청하였지만 스탈린은 조롱같은 태도로 이를 끝내 거절하였다. 그 뿐 아니었다. 그해 말 모스크바를 방문한 마오쩌둥의 끈질긴 요청에도 동북 지역의 이권을 돌려 주는 문제에는 쉽게 답을 하지 않았다. 마침내 중국 측이 마지막 내키지 않는 카드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가능성을 비추자 물러섰다. 그러나 조용하게 물러선 것은 아니었다. 스탈린의 마지막 카드는 한반도에서의 전쟁이었다. 결과로 중국의 대만 통합은 적어도 한동안 물건너 간 셈이었다.
물론, 김일성의 간절한 요청에 응하여 한반도에서 전쟁을 허락한 스탈린의 의도는 한반도의 공산화 통일이 아니었다. 우선은 중국의 대만 통합을 저지하고 미국의 한반도 참전을 유도하여 가능하면 미·중 간의 충돌 상황을 연출한 후 자신은 유럽에서 영향력 확대를 모색하는 것이었다. 전세가 바뀌어 궁지에 몰린 김일성이 소련의 도움을 청하자 스탈린은 한마디로 거절하고 대신에 중국으로 후퇴하여 게릴라 전을 하라고 답을 한다.
김 위원장은 지나간 날을 뒤돌아 보며 다시 생각할 수는 없을까. 땀흘려 이룩한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취를 위태롭게 할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적어도 남한에는 없다. 북한 핵 위기 초기 미국이 이 지역 군 대비태세를 증강하자 혹시나 전쟁이 일어날까 극구 반대한 것은 남한 정부와 민간이었다. 북한이 먼저 전쟁을 시작하지 않는 한 한반도에는 전쟁의 위협은 없다. 푸틴과의 목전의 협력에만 기뻐하지 않고 잔혹한 현실의 앞뒤를 돌아보며 올바른 추론을 이끌어 낼 지혜는 과연 없나. 현실의 어려움과 어리석음을 모르진 않지만, 적어도 지난 세기의 어리석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정도의 정치적 능력을 남과 북이 보여 주길 기대한다.
중앙일보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
06-24 푸틴의 北 지원 대응해 우크라에 천궁-Ⅱ 지원 나설 때다
장호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23일 “러시아가 고도의 정밀 무기를 북한에 준다면 우리가 더 이상 어떤 선이 있겠느냐”면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했다. “국민 여론도 그럴 것”이라면서 “그런 부분은 러시아 측이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0일 “북한에 대한 초정밀 무기 공급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한 데 대한 대응으로, 결국 한국을 겨냥할 대북 무기 공급과 연계됐음을 밝힌 것이다.
러시아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정부는 유엔총회 결의에서 러시아의 침략 행위를 규탄하면서도 미국 및 유럽연합(EU)처럼 직접적인 무기 지원을 하지 않았다. 대러 관계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북한에 첨단 무기 지원에 나선다면 대한민국도 러시아가 두려워할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이 ‘북·러 신조약’ 체결 후 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지원을 시사한 배경인데, 정부는 관련 법적 검토도 마쳤다고 한다.
우선, 대러 경고용으로 국산 탄도탄 요격 미사일 체계인 ‘한국형 패트리엇’으로 불리는 천궁-II 지원부터 시작해볼 만하다. 전형적인 방어용 무기인데다, 러시아 S-400 지대공 미사일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측이 사회기반시설 방어에 요긴하다며 계속 요청해왔다. 더구나 아랍에미리트(UAE)에 35억 달러 수출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에도 32억 달러를 수출계약을 한 만큼 K-방산의 우수성을 과시할 수 있다. 또, 미국에 대여 방식을 취해온 155㎜ 포탄을 직접 제공하면 우크라이나 전황(戰況)변화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나아가 러시아가 대북 군사 밀착을 지속하면 동유럽 등에 수출한 K9 자주포, K2 전차 등도 추가 지원 옵션임을 분명히 전해야 할 때다.
06-25 방위비 협상과 트럼프 변수
민병기 국제부 차장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1월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유력한 국무장관 후보로 거론된다. 오브라이언의 발언에서 2기 트럼프 정부의 안보 정책 청사진을 엿볼 수 있다. 그는 23일 미 CBS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납세자들은 홀로 중국을 억지할 수 없다”며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의 미군 주둔 비용 분담액을 포함한 국방비용 지출 증액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4월 30일 더 노골적으로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대대적 인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한국이 우리를 제대로 대우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기존의 5∼6배 수준으로 올려 달라고 요구했었다. 버티고 버티다 문재인 정부는 미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패한 후 조 바이든 행정부와 그나마 덜 인상된, 그러나 역대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에 비하면 파격적인 인상안에 합의했다.
2기 트럼프 정부 출범 가능성이 낮지 않은 상황에서 더 큰 우려는 동맹을 대하는 트럼프 진영의 인식 수준에서 나온다. 오브라이언은 “한국과 일본, 호주, 유럽 국가들이 모두 트럼프 (전) 대통령 때문에 국방비 지출을 크게 늘렸다”며 “가족끼리도 가끔은 약간 터프하게 해야 하듯, 가끔은 동맹들에도 ‘터프한 사랑’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간 관례를 깡그리 무시하고 밀어붙인 게 ‘터프(tough)함’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에 국방비를 더 쓰라고 압박한 게 결과적으로 ‘나토의 자강(自强)’을 이끌었다고도 평가했다. 궤변이다. 물론 나토를 포함한 동맹들이 미국의 엄청난 국방력에 ‘무임승차’한 측면이 있고, 불확실성이 커져가는 국제 정세 속에서 미국의 ‘절대적인 힘’이 예전만 못해진 상황이라 해도 무리한 요구를 당연한 듯이 하고, 그 결과물에 대해 곡해하는 것은 ‘동맹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합리적 외교의 영역’도 아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행보는 안보에서도 그대로다.
한국과 미국은 제12차 SMA 4차 회의를 25일부터 27일까지 서울에서 열기로 했다. 11월 대선 전 결론을 내기 위해 협상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관측이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를 염두에 둔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SMA는 행정협정으로 간주, 대통령의 일방적인 파기가 가능한 만큼 바이든 행정부의 모든 게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를 그대로 두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4년 내내 시간끌기·버티기로 대응할 수도 없다. ‘트럼프의 귀환’을 염두에 둔 윤석열 정부의 진지하고 꼼꼼한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트럼프가 내세울 ‘힘에 의한 평화’에서 한국의 역할과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차분히 설득하는 한편, “방위비 분담금이 턱없이 늘면 미국 무기를 구매할 여력이 부족하다”(미국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고 맞설 배짱도 필요하다. 동맹을 팽개친 ‘미국우선주의’는 옳지도, 성공할 수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일 필요도 있다. 일방의 시혜가 아닌 호혜적 관계로 유지해 온 한미동맹 71년의 힘을 믿어야 한다.

문화일보
06.26 푸틴 취임식 참석하고 뒤통수 맞는 외교
'유사시 자동개입' 북·러 조약… 낙관론 펴다 헛다리 짚은 龍山
최악에 대비하는 게 안보인데 러시아 기만 전술에 넘어갔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5월 7일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모스크바 크렘린궁 대(大)궁전의 안드레옙스키 홀에 박수를 받으며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지난달 초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다섯 번째 취임식에 현지 대사를 참석시킨다고 했을 때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이웃 국가를 침략하고 정적을 제거한 독재자가 영구 집권을 자축하는 자리였다. 푸틴은 국제형사재판소가 체포 영장을 발부한 전범(戰犯)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의 보이콧 요청에 자유 진영 전체가 괜히 응한 게 아니다. 한국의 돌출 행동을 두고 외교가에선 뒷말이 무성했다.
한 달 뒤 푸틴은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 점을 거론하며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 한·러 관계 파탄을 경고하던 어조가 많이 누그러졌다. 말뿐이긴 했지만 한국의 선의에 호응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푸틴이 올리브 가지를 내밀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푸틴 방북설은 이런 분위기 속에 본격 확산됐다.
외교가와 학계에선 ‘북·러가 소련 시절 군사 동맹을 복원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유사시 자동 개입 조항이 부활한다는 얘기였다. 이 조항은 1961년 북한과 소련이 맺은 동맹 조약의 핵심이다. 1990년 한·소 수교로 사문화됐고 1996년 조약 자체가 폐기됐다. 이것이 되살아난다는 것은 한·러 관계가 수교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얘기다. 한국 대러 외교의 실패를 의미했다.
대통령실은 의아할 정도로 낙관적이었다. 군사 동맹 부활까진 아니라고 보는 분위기가 강했다. 러시아 측 언질을 받은 듯했다. 안보실장은 TV에 나와 “러시아 측에 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한 바 있다”고 했다. 러시아와 소통 중이며 결국 우리 뜻이 관철될 것이란 메시지로 해석되기에 충분했다.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푸틴은 회담 직후 회견에서 “침략당할 경우 상호 지원하는 조항이 포함됐다”고 했다. 김정은은 “군사 동맹”을 거듭 얘기했다. 두 사람 말을 합치면 유사시 자동 개입 조항이 부활했다는 얘기였다. 무슨 까닭인지 대통령실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한 고위 관계자는 주요 언론사들에 전화를 돌려 “자동 군사 개입으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다음 행동을 미리 알았다면 그렇게까지 하진 못했을 것이다.
회담 이튿날 북한은 조약 전문을 전격 공개했다. 제4조가 ‘어느 한쪽이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할 경우 다른 한쪽은 지체 없이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였다. 명백한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이었다.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하는 조항도 있었다. 우리 뒤통수를 친 정도가 아니라 등에 칼을 꽂았다는 평가가 전혀 과장이 아니다.
그제야 안보실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 무기 지원을 검토하겠다며 부산을 떨었다. ‘오판’으로 시작해 ‘현실 부정’을 거쳐 ‘뒷북 대응’으로 막을 내린 한 편의 촌극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사전에 조약 내용을 파악해 보고했지만 상부의 판단은 바뀌지 않았다”고 했다. 대통령실이 러시아의 립서비스를 맹신했다는 취지였다. 전직 고위 관리는 “러시아의 기만전술에 당한 것 같다”고 했다.
예전의 러시아가 아니다. KGB 요원 출신인 푸틴은 ‘소련의 영광’을 재현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법 위반, 거짓말, 속임수, 사실 은폐 따위를 예사로 해치워야 한다”는 레닌의 교시를 따른다. 이런 집단을 상대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게 희망적 사고다. 푸틴 취임식에 참석하면 러시아가 알아줄 거란 기대, “한국에 감사하다”는 푸틴 발언에 반색하는 태도가 이에 해당한다. 존재할 리 없는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철석같이 믿고, 가망 없는 부산 엑스포 유치에 외교 자원을 쏟아부은 결과가 어땠나. 안보는 최악에 대비하는 것이다. 희망 회로 돌리는 것은 외교가 아니라 기복 신앙이다. 푸틴의 방북이 한국 안보팀의 실력을 백일하에 드러냈다.
조선일보 이용수 논설위원
06-27 북한판 ‘영향력 공작’ 대비할 때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북한과 러시아 군사동맹 복원
더 임박한 위협은 심리·인지戰
중·러 노하우 北 전수 가능성
국정원의 관련 기능 강화 시급
외국대리인 등록법 제정하고
국가보안법 보완에도 나서야
지난 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평양을 국빈방문했다. 비록 ‘당일치기’라는 짧은 여정이었지만, 북한과 러시아 정상은 ‘포괄적인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조인하면서 24년 이전으로 양국 관계를 되돌려놨다. 우리의 이목은 조약의 제4조에 모두 집중됐다. 일명 ‘자동 군사개입 조항’이다. 핵무기와 핵 반격 능력을 갖춘 나라들이 다시 동맹이 되면서 국내외 일각에서는 우리의 핵무장이나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주장을 제기한다.
이들의 주장도 설득력이 없는 건 아니다. 최근 북·러 군사 협력 정황 증거를 보면 말이다. 이들은 앞으로 북한의 핵탄두 소형화와 경량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핵잠수함 등 핵무기 능력과 위력 향상을 위한 양국의 군사 기술 협력 강화를 예측한다. 그 논거는 지난해 북·러 고위급회담 이후 추정되는 결과에서 비롯된다. 가령, 7월의 러시아 국방장관 방북과 9월의 김정은 위원장 러시아 방문 이후 이들의 주장이 틀리지 않는 정황적 증거가 포착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 임박한 북·중·러의 위협은 심리전과 인지전을 동원한 이들의 영향력 공작이다. 우리가 간과하는 부분이다. 모든 관심과 이목이 가시적인 무기 성능 향상 가능성에 집중된 탓이다. 반면, 심리·인지전은 3국이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큰 효과를 노릴 수 있는, 가성비 최고의 군사작전이다. 여기에 국내외 전문가들도 이견이 없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등용 가능성이 큰 인물로 추정되는 엘드리지 콜비 전 국방부 차관보 역시 이 점을 가장 심각히 우려한다. 그는 자신의 2021년 저서 ‘거부 전략(The Strategy of Denial)’에서 중국의 영향력 공작 심각성을 제기하며 미국의 대응을 촉구했다.
그런 그의 미래 군사·국방 전략 구상에 우리는 무관심했다. 오히려 트럼프가 당선되면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기능 및 역할 조정, 우리의 방위비 부담과 방위 분담 제고 등의 가능성에 더 민감해했다. 그러나 그의 전략 구상 비전과 아이디어의 기초이자 근간은 중국의 영향력 공작이다. 심리전·인지전·법률전 등 이른바 ‘3전(戰)’을 선제적으로 대응한 전제에서 중국의 군사력에 대비해야 한다는 게 그의 핵심 주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의 한미동맹 기능과 역할의 조정 당위성이 제기된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세계를 대상으로 영향력 공작을 오랫동안 진행해 왔다. 그 때문에 세계 최고 수준의 노하우와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이를 북한에 전수하면 북·중·러 3국의 동시다발적인 심리전과 인지전 작전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올해 미국의 대선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도 2년 후면 지방선거와 대선 정국에 진입하기 때문에 이들의 심리·인지전 공세가 예측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의 영향력 공작이 선거철에만 집중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영향력 공작은 평시에 전개된다. 장기간 지속적인 공작을 통해 누적 효과를 보는 것이 영향력 공작의 핵심 전략이고 목표이기 때문이다.
우리에 대한 북·중·러 3국의 심리·인지전에 효과적인 대응을 위한 정부 당국과 국회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정부는 국가정보원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정치적인 이유로 실추된 국정원의 명예 회복이 시급하다. 그래야만 우리 정보원들이 다시 사명감을 되찾고, 국가안보에 헌신할 수 있다.
국회는 외국의 영향력 공작 대응 관련 법안 마련에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사이버와 현실 공간에서 외국의 영향력 공작에 대응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법제의 부재는 세계 사이버 안보 질서 구축 과정에서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국제법의 구축은 국내법에서 출발한다. 국내법에 의거해 세계의 사이버 안보 질서가 확립된다. 그리고 공조 체계가 형성된다. 우리 법안이 마련돼야 우리의 발언권과 지분이 보장된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외국인 대리인 등록법(FARA)’ ‘외국인 방첩법’ ‘사이버 안보법’ ‘정보법’ 등도 없다. 국가보안법도 심리·인지전 등 영향력 공작에 대응할 수 있도록 보완돼야 한다. 우리의 안보와 국익을 위한 당·정의 긴밀한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요구되는 시기이다.

문화일보
06.28 中 대사 말에서 얻은 '뼈아픈 교훈'
화성 화재 사망자 다수가 조선족
우리 동포 희생에 싱하이밍 '훈계'
주변국에 수탈·착취당한 민족사
나라 빈약하면 언제든 되풀이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 24일 경기 화성시에 위치한 일차전지 제조 공장 아리셀 화재현장을 방문하고 있다./뉴스1
화성 배터리 공장 화재로 숨진 23명 중 17명이 중국인이다. 대부분 20~40대 젊은 조선족이다. 현장을 찾은 싱하이밍 중국 대사는 “중국 당과 정부가 우려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들이 뼈아픈 교훈을 얻어 다시는 유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화재 원인 규명과 피해 수습, 재발 방지는 싱 대사 말이 아니라도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의 ‘훈계’를 들으며 떠오른 것은 민족의 기구한 운명이다. 조선족은 중국인이기에 앞서 한민족이다. 먹고살기 위해 조국을 떠났다가 먹고살기 위해 돌아왔다. 우리 민족이 우리 땅에서 숨졌는데 중국이 큰소리를 친다.
19세기 조선은 기근이 끊이지 않았다. 순조 때인 1809~1810년과 1832~1833년, 고종 때인 1876년 기근이 기록에 남아 있다. 1832~1833년 기근은 순조가 백성의 20~30%가 줄었다고 할 만큼 심각했다. 굶어 죽은 사람도 많지만, 나라를 떠난 사람도 많았다.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땅은 비옥한데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소문난 간도로 갔다. 간도의 한인은 1860년대에 7만7000명에 달했다. 경술국치 후 일제의 수탈과 압제를 피해 온 사람이 합류했다. 1940년 간도 한인은 145만명으로 늘었고, 지금 중국 내 조선족은 190만명이다. 이 중 70만명이 한국에 들어와 있다.
연해주 이주도 비슷한 시기 시작됐다. 1937년에 18만명의 한인이 극동 러시아 지역에 살았다. 그해 스탈린은 이들 거의 모두를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일본과 전쟁을 앞두고 한인이 일본 첩자 역할을 할 것이라는 우려, 중앙아시아 낙후 지역을 한인 노동력을 이용해 개간한다는 경제적 목적이 함께 작용했다. 지금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고려인은 50만명이고, 이 중 8만명이 국내에 들어와 산다.
150여 년 전 나라가 가난하고 힘이 없어 조선족과 고려인이 생겼다. 화성 화재로 조선족이 겪는 고통의 씨앗은 그때 뿌려졌다. 국제사회를 지배하는 원칙은 예나 지금이나 ‘힘’ 아니면 ‘돈’이다. 급할 때는 돈보다 힘이다. 구한말 역사는 주변국의 한민족 수탈사라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의 전쟁과 노역에 한인을 이용했다. 일제 강점기 국내외에서 강제 동원된 한인이 780만명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다. 간도의 한인은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 내전에 6만3000명이 참여해 3500명이 숨졌다. 스탈린의 강제 이주 과정에서 한인 2만여 명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숨졌다.
민족 수탈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19세기만큼 먹고살기 어려운 북한 주민이 대상이다. 중국의 수산물 가공회사에서 일하는 북 주민 1000여 명은 하루 18시간 냉동 생선을 손질한다. 공장 관리자는 수시로 때리고 “도망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인다”고 협박한다. 이 생선들은 대부분 한국으로 수출된다. 한인의 노동을 착취해 만든 상품을 한인에게 팔아 중국인이 주머니를 채운다. 러시아 건설 현장은 북한 인력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2017년 유엔 제재 직전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는 3만명, 전체 외국인 노동자의 20%였다. 이들은 1년에 3일 쉬고 하루 16시간 노동해 한 달 100달러를 손에 쥐었다.
조선족의 죽음을 보며 50년, 100년 후 우리 후손이 어디서, 어떤 대접을 받으며 살지 상상해본다. 그때까지 대한민국이 선진국일까. 과연 나라가 존재하기는 할까. 자식이 자기보다 못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려면 나라가 빈약해 주변국에 유린당한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게 싱 대사 발언에서 얻어야 할 ‘뼈 아픈 교훈’이 아닐까.
조선일보 황대진 사회부장
06.28 트럼프, 미국 정계의 '21세기 히틀러'
트럼프와 히틀러 공통점은 '정치적 연기 예술가'
거짓말로 위기 모면하며 지지기반 공고히 다져
지난 임기 4년 동안 허위·왜곡·과장발언 3만회
트럼프가 대통령 되면 진실·정의라는 가치 약화
大選까지 남은 4개월… 세계로 확산될까 두렵다
요즘 셰필드대학의 헹크 데 베르크 교수가 쓴 ‘트럼프와 히틀러’라는 제목의 책이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와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를 비교·분석하는 책이다. 결론은 이 두 사람이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하다는 것이다. 베르크 교수는 이들을 ‘정치적 연기 예술가(Political Performance artist)’라고 지칭한다. 무슨 이야기인가.
한마디로 위기에 빠진 정치가가 ‘정치적 연기를 통해 자신에게 닥친 위기 상황을 극복해 냄으로써 도리어 전화위복을 만들어 낸다’는 뜻이다. 도리어 더 공고한 지지 기반을 만든다는 것이다.
히틀러를 보자. 그는 비록 투옥되고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적이 있지만, 재판 과정에서 그는 당당함과 논리성, 신념 등으로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것이 지지자를 획기적으로 늘려 주면서 히틀러는 일약 국가적 지도자로 부상하게 되었다. 트럼프도 최근 34개 범죄 행위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긴 했지만, 그는 시종일관 당당했고 덕분에 지지율에도 타격을 입지 않았다. 오히려 후원금이 획기적으로 늘어났었다.
데 베르크 교수가 말하는 핵심은 이것이다. 트럼프의 모습과 약 100년 전 히틀러의 모습이 대단히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상 ‘화’를 ‘복’으로 전환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두 사람에게 다 ‘정치적 연기 예술가’란 타이틀을 붙여준 것이었다.
사실 트럼프는 약점이 많다. 가장 큰 것은 거짓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의도적이라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가 분석한 결과는 우리를 놀라게 하는 수준이다. 트윗을 포함한 트럼프의 소통 수단들을 분석해 봤더니 그가 선거 직전에 보낸 트윗들 중에는 무려 503개의 거짓이 있었다. 대통령 취임 후 첫 100일 동안 보낸 것 중에는 무려 492개의 거짓, 왜곡, 또는 오류가 포함되어 있었다.
워싱턴포스트는 또한 그가 대통령 재임 4년간 사용한 여러 소셜 미디어와 공개 석상에서 발언을 조사했더니 무려 3만개가 넘는 거짓과 왜곡이 담겨 있었다고 했다. 이 분석에서 트럼프의 하루 평균 허위 발언은 취임 첫해에는 6차례였지만, 임기 마지막 해에는 39차례에 달했다. 사실 20세기 들어 가장 거짓에 많이 의존한 국가 지도자는 히틀러였는데, 트럼프가 그 기록을 깬 것이다. 정말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넘치는 거짓 메시지들이 대부분 트럼프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나는 트럼프의 거짓말 통계를 보면서 닉슨 대통령 생각이 났다. 그는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해 간단한 거짓말을 한 번 했다. 보고받아 놓고 받지 않았다고 했던 것이다. 그것이 거짓으로 탄로 나면서 그는 결국 탄핵 위기에 처해졌고, 그 절차가 진행 중일 때 사임했다. 사실 탄핵될 가능성이 너무 컸기 때문에 스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닉슨과 비교하면 트럼프는 훨씬 더 많은 거짓말을 했는데도 위축되지 않고 버티고 있다. 세상과 정치 풍토가 이렇게 달라져도 되는 것일까.

▲일러스트=이철원
사실 트럼프는 영웅주의가 강한 사람이다. 대통령 재임 중 그가 시도했던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는 만약 성공했다면 역사가 기억할 만한 것이었다. 만일 그때 그가 김정은과의 대화를 통해 북·미 관계 정상화를 이뤘다면, 미·중 관계는 물론 동북아 전체의 번영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트럼프는 어떻게 될까. 트럼프는 본질적으로 ‘세계인의 시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세계인의 의식을 갖지 않은 사람이 미국의 다음 대통령이 된다는 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2차 대전 이후 계속 발전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도적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들이 거의 전부가 소위 ‘세계인’이었기 때문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업적을 남긴 사람은 다 ‘세계인’의 시각을 갖고 있었다. 아이젠하워, 트루먼, 케네디가 그랬고 레이건, 클린턴, 오바마 등이 다 그랬다. 보수·진보를 망라하고 그랬다. 그것은 사실 인류 전체에게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 반면, 트럼프는 임기 2기를 시작할 경우 그가 쭉 천명해왔듯 ‘세계인’이 아니라 ‘미국인’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가 승리한다는 건 그의 습관적인 거짓말이 심판받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이렇게 되면 세계를 이끄는 나라 미국에서 진실과 정의라는 숭고한 가치의 기반이 약해질 수 있어 걱정스럽다. 미국이란 강대국에 대한 신뢰가 저하될 수 있다. 게다가 부정적인 연쇄 파장이 미국 밖으로 전파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의 정치 리더들도 자신의 말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기보다는 거친 언어로 남을 비난하거나 거짓말로 순간을 모면하는 쪽으로 유혹받을 가능성이 커질까 봐 두렵다.
11월 초에 열리는 미국 대선까지 4개월 남짓 남았다. 중요한 변곡점을 향해 매일매일 더 가까이 가는 듯한 느낌이다. 사실 나는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할까 하는 깊은 걱정과 두려움이 있다. 현재의 추세로 봤을 때 가능성은 정확히 반반인 것 같다. 미국의 이번 대선은 지구촌 역사,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에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우리같이 미국과 참으로 다양하고도 깊은 군사, 경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에 미국 대통령의 자질과 방향성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무게감을 지니는 이슈다.

조선일보 전성철 변호사·글로벌스탠다드연구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