危機의 韓半島(外交) 2024-05/ 05-01 “러-우크라 사이 왜 끼냐고? - 05-31 한일중 공동선언 사흘 만에 ‘소부장 수출 통제’ 꺼낸 中
危機의 韓半島(外交) 2024-05/
05-01 “러-우크라 사이 왜 끼냐고? 원칙·가치 중시가 한국의 ‘큰 국익’ 이자 미래”
■ 파워인터뷰 - 조태열 외교부 장관
신냉전 등 지정학적 변화 심해
보다 큰 맥락서 관계 생각해야
평화·번영의 규범질서 흔들려
경제따로·외교따로 작동 안돼
가치 따로·국익 따로도 어려워
변화 헤치고 생존의 길 찾아야
인터뷰 = 이제교 부국장 jklee@munhwa.com
정리 = 김유진 기자 klug@munhwa.com
“6·25전쟁으로 우리가 침략당했을 때…” 신중·차분, 깐깐하기로 소문난 조태열 외교부 장관의 목소리 톤이 ‘6·25’ 부분에서 높아졌다. 관록의 40년 경력 외교관답게 그는 질문을 설명으로, 다시 담론성 문제 제기로 변형시켰다. 74년 전 미국을 비롯한 6·25전쟁 참전 16개 국가가 원칙과 가치를 버리고 실리만 따졌다면 오늘날 우리 자신과 아이들,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지금의 한반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의 역질문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총선 유세에서 ‘우리가 왜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해야 하느냐’고 언급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의 답변에서 나왔다.
국가가 선택하는 최종 언어는 ‘외교 또는 전쟁(Diplomacy or War)’이다. 충돌하는 두 개의 가치는 힘과 힘이 부딪치는 냉혹한 국제정치 영역에 국가가 서 있음을 말해준다. 리스크를 피해 가면서 이익만 취하면 좋겠지만 그 같은 선택지는 현실에서는 항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조 장관은 “(이 대표가 주장한 것과) 같은 논리라면 국제사회가 우리를 도울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핵 위협은 점점 고도화되는 단계다. 조 장관을 지난 4월 12일 정부서울청사 외교부 접견실에서 만났다. 일부 질문은 추가 답변을 받았다. 조 장관은 한-호주 외교·국방(2+2) 장관회의 참석을 위해 1일 호주로 출장을 떠났다.
―먼저 한일중 정상회의 개최 여부가 궁금하다. 3국 간에 논의는 어떻게 전개되고 있나.
“개최 일자를 조율 중인 단계다. 양국 간에 조율하기도 쉽지 않은데 세 나라가 있으니까 함께 가능한 시간을 찾는 게 어렵지만 최근에 진전이 있다. 현재 서울에서의 정상회의 개최 일자를 3국 간 최종 조율 중이며, 구체적인 일자가 정해지면 적절한 시기에 관련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한일중 정상회의 개최는 한중관계의 안정적 관리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핵심 의제는 뭔가.
“미래세대의 교류다. 한일중 간에 30년 가까이 축적된 교류의 기초 위에서 계속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일중 3국 협력사무국(TCS) 역할을 강화하면서 협력을 이끌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중국이 한미관계 강화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하고 있어 3국 정상회담은 중국 입장에선 균형을 이루는 의미도 된다.”
―총선 과정에서 이 대표는 ‘왜 우리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해야 하느냐’라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가치와 국익이 분리된 것처럼 생각하는 데서 나오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지정학적 환경이 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좁게 정의된 국익만 추구해서 과연 국가가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부터 먼저 던져야 한다. 보다 큰 맥락에서 한중, 한미, 한일관계를 바라봐야 한다. 경제와 안보가 따로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실리라는 표현으로 국익을 굉장히 좁게 해석하고 정의하고 있다. 보다 큰 국익이 빠져 있는 담론이다. 국익은 변화하는 지정학적 환경의 틀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불법으로 침략했다. 국제법에 반하고 유엔 헌장에도 위배된다. 당연히 한국은 침공을 규탄하는 입장에 서야 한다. 우리가 6·25전쟁으로 북한의 침략을 당했을 때, (이 대표가 주장한 것과) 같은 논리라면 국제사회가 우리를 도울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 원칙과 가치가 중요한 것이다.”
―이 대표는 ‘우리가 중국과 갈라설 필요가 있느냐’고도 언급했다. 한중관계 전망은.
“한중관계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이후 계속 좋지 않은 상태로 있었다. 한중관계는 여러 지정학적 환경 변화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요인이 있다. 따라서 갈등 요소가 적고 협력요소가 많은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하나씩 착실하게 성과를 쌓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함께 신뢰를 쌓아가고 지속 가능한 발전 토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큰 것부터 생각하기보다는 기대수준을 낮추고 가시적 결과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한중관계는 미중 전략경쟁 등 지정학적 환경, 공급망 불안정, 북한문제 등 다양한 도전 요인에 직면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럴 때일수록 원칙을 바탕으로 일관된 정책을 펼쳐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정학적 영향을 가급적 최소화하고, 경제·인문교류 등 협력적 요소가 많은 분야에서 양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 성과를 착실히 쌓아나가면서 상호 신뢰를 증진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2월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의 통화 시 왕이 부장이 저의 방중을 초청했는데 서로 편한 시기에 중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협의할 계획이다.”
―중국 입장에서 보자. 공급망 협력 같은 한미일 밀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데.
“한미일 협력이 강화되기 이전에 북러, 북중, 북중러 협력은 최근 꾸준히 강화되어 왔다. 한미일 협력 강화로 북중러 삼각연대가 강화된다고 보는 것은 논리가 전도된 얘기다. 우리는 바로잡을 것을 바로잡고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얘기를 중국에 충분히 하고 있는지.
“이런저런 이유를 모두 중국에 설명할 필요는 없다. 상황에 따라 맞는 논리로 대응하면 된다. 우리의 외교안보 정책의 근간은 한미동맹이다. 다만 한미, 한중 관계는 제로섬게임이 아니다. 한중은 한중대로, 한미는 한미대로 관계를 강화하면 된다. 미중 전략경쟁에 따른 영향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것은 한국이 풀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미중 전략경쟁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한중관계의 협력적 요소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최근 북러 군사협력 강화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대러시아 제재를 가했고 러시아는 주러대사를 초치했는데 한러관계가 불편해지고 있다.
“우리만 관계가 불편한 것이 아니다. 모든 서방 진영의 민주적 가치를 지향하는 국가들은 러시아와의 관계가 악화된 상태다. 문제의 본질은 바로 그 부분에 있다. 북러 군사협력 강화는 우리에게 실존적 위협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고 북러 협력이 지속되는 한 한러관계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한러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나라다. 움직일 폭이 작더라도 주어진 현실과 환경에서 관리할 것은 관리해야 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대러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지난 4월 1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문화일보와 만나 한미동맹과 한중관계 등 한국의 주요 외교 현안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박윤슬 기자
“우리 외교 근간은 한미동맹… 한미-한중 관계가 제로섬은 아냐”
미중 전략경쟁 파장은 불가피
상황 따라 맞는 논리로 중국 대응
지정학적 영향은 최소화 할것
대북관계 자유·인권 가치로 봐야
북한 인권문제 외면한 정책 곤란
임무 끝난 유엔 대북제재 패널
대체 메커니즘 구축안 찾을 것
―중국과 대만, 양안관계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져 미국이 관여할 경우, 한국은 미국의 요청을 들어줘야 하나.
“대만해협의 안정은 한반도 안정에도 중요하다. 대만해협에 문제가 발생해 주한미군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할 때, 당연히 우리 한반도가 중심이 되고 우선순위가 돼야 할 것이다. 주한미군이 존재하는 이유도 우리 안보를 강화하고 한반도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거기에 우선순위를 둬서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논의를 진전시켜야 한다.”
―양안 충돌 시 주한미군이 투입된다면 우리는 난처해지지 않나.
“가정적인 상황에 대해 답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확연히 다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이 180도 달라지는 것은 문제 아닌가.
“남북 간에 교류가 있으면 관계개선이고, 없으면 문제가 있다고 보는 시각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대화가 있다고 남북관계가 나아지고 있다고 말할 순 없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강화는 팽개치고 교류협력만 한다? 그것이 남북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줄까. 글로벌 중추국가는 원칙과 가치를 중시하는 외교정책 기조다. 그 원칙과 가치는 남북관계에도 동일하다. 윤 정부는 가치 지향적이고 원칙에 충실한 대북정책을 추진해 왔다. 이런 기조는 북한 인권문제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문 정부는 북한 인권문제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는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윤 정부는 북한 인권문제를 인권보호 그 자체로 접근한다. 북핵 문제와 인권 문제는 동전의 양면이다. 모든 자원을 핵무기 개발에 쓰는 북한에서 주민 인권과 생활 개선은 이뤄지기 어렵다. 남북관계는 개선하고 북한 인권문제는 외면하는 정책은 곤란하다.”
―외교부 차관을 지낸 후 다시 컴백했는데, 가장 달라진 외교 환경과 전략은 무엇인가.
“우리가 처한 국제환경이 크게 변했다. 외교부 제2차관으로 있었던 시기(2013∼2016년)와 지금은 많이 다르다. 그때는 미중 경쟁이 지금처럼 본격적인 전략경쟁이 아니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도 한 해에 네 개나 채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의장성명도 못 내는 상황이다. 미중 전략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지정학적 환경이 지각변동을 겪고 있고, 전후 평화와 번영을 뒷받침해온 규범 기반 국제질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또한 안보·경제·기술이 상호 연동하는 새로운 지정학적 환경 속에서 과거와 같은 ‘경제 따로, 안보 따로’ 외교가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도 중요한 변화 중 하나다. 자유주의와 권위주의 진영 대립이 심화되면서 ‘가치 따로, 국익 따로’ 외교도 어려워진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북한이 최근 남북관계를 교전국 관계로 재정의하며 우리를 제1의 적대국이자 불멸의 주적으로 규정하고 핵·미사일 도발을 강화하면서 민족과 통일을 부정하는 등 남북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도 우리 외교에 커다란 도전이 되고 있다. 그걸 헤쳐나가면서 생존의 길을 찾아야 하고 번영의 길도 만들어 가야 한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전문가패널 활동이 4월 말 종료됐다.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전문가패널 임무가 종료됐지만 안보리 대북제재 자체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유사 입장국과의 공조하에 대북제재 이행 동향에 대해 많은 정보가 신속히 공개될 수 있도록 효과적인 대체 메커니즘 구축 방안을 모색하려고 한다. 최근 출범한 한미 태스크포스(TF)를 통해 북한의 대북제재 우회 차단 노력을 강화하는 한편, 국제사회의 충실한 안보리 결의 이행을 견인하기 위한 노력도 한층 강화할 계획이다. 전문가패널이 안보리 산하기구로 있었기에 정당성이 확보된 이점이 있었지만, 중러의 소극적 태도로 여러 제약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대체 메커니즘이 잘 운영되면 그런 제약에서 벗어나 오히려 모니터링 기능이 더 강화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북핵 해결을 위해 제재 위주가 아닌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대북제재 자체는 문제가 없다. 다만 국제사회를 기만하는 북한 정권에 대한 제재를 회피하고 와해시키는 일부 국가들이 문제다. 제재는 북한을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거의 유일한 비군사적, 외교적 압박 수단이다. 국제사회는 지난 20여 년 동안 중지를 모아 강력한 대북제재 체제를 구축했다.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에 사용하는 자금을 얻지 못하게 해서 핵 개발을 단념시키는 것으로, 북한의 발목에 일종의 ‘모래주머니’를 다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모래주머니’가 없다면 북한의 핵 개발 발걸음은 제어할 수 없는 속도로 빨라질 것이다. ‘모래주머니’만으로 북한의 잘못된 질주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을 압박해 나가는 한편, 대화의 문도 열어놓을 것이다. 그동안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가 대화에 소극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북한이 모든 대화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최근 북일정상회담설도 흘러나오고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하면 미북 접촉 가능성도 있는데 윤 정부의 대북정책은 그대로 유지되는가.
“우리 정부는 이미 ‘담대한 구상’을 통해 북한과의 대화의 문을 열어둔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표명해 왔다. 대화에 호응하지 않고 있는 것은 북한이다. 한미일은 대북 접촉·대화가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안정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미국·일본과 그 어느 때보다도 긴밀한 소통과 공조를 지속하고 있다.”
―한국의 2024∼2025년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활동 계획을 소개해달라.
“유엔 안보리는 글로벌 중추국가 비전을 실천하기 위한 최적의 외교무대다. 그동안 우리의 다자외교는 유엔의 3대 축인 평화·개발·인권 중 평화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에 세 번째 찾아온 안보리 이사국 수임을 계기로 국제평화 및 안보 증진을 위한 실질적 기여를 확대할 계획이다. 6·25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고 단기간 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한 우리의 경험을 토대로 평화·개발·인권 연계 강화를 통해 국제평화와 안보에 대한 통합적 접근을 모색하는 데 앞장설 것이다.”
―일본과 강제징용 문제 개선을 위한 정부의 노력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나.
“한일 과거사 문제는 일본의 식민 지배라는 불행한 과거와 연결되어 있어 늘 해결이 쉽지 않다. 긴 호흡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강제징용 문제는 양국 최고법원 판결이 상충하는 문제가 겹쳐 있어 더욱 그러하다. 작년 3월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으로 한일관계가 정상 궤도에 올라선 만큼, 양국이 함께 미래를 향해 진정성을 갖고 노력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내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 한일관계에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윤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언급했듯 한일 간 교류와 협력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고, 지난 역사의 과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노력을 통해 한일 새 시대를 열어가고자 한다. 한미일 협력을 포함하여 더 높은 차원의 양국 협력을 구체화해 나갈 계획이다.”
―윤 정부가 강조하는 경제안보 융합 외교의 의미는.
“주요국 간 전략경쟁 심화로 경제와 안보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외교부는 경제와 안보를 함께 다루며 전 세계 167개 재외공관 망을 갖고 있는 유일한 정부부처다. 경제·안보 융합 외교를 통해 민생에 적극 기여할 수 있도록 외교부의 조직문화와 업무시스템을 바꿔 나갈 것이다. 공급망 교란이 우리 산업과 민생에 미치는 파급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37개 재외공관 공급망 조기경보시스템(EWS)을 통해 공급망 위기대응 체제를 강화할 것이다. 또 경제안보 증진을 위한 국제연대 인프라 구축에도 힘써 소다자·다자 차원에서 공급망과 첨단기술 분야의 국제 공조를 공고히 하고 신규범 질서의 형성에 적극 참여할 예정이다.”
―한미일 정상회의는 올해 열리나.
“한미일은 지난해 캠프 데이비드에서 3국 정상 간 협의를 연례적으로 갖기로 합의했다. 크게 세 가지를 염두에 두고 개최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첫째, 캠프 데이비드 합의를 더욱 확대하면서 제도화된 3국 협력을 보다 구체적인 성과로 나타나도록 하고 둘째,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다. 셋째, 한미일 3국이 27년 만에 안보리 이사국으로 함께 활동하는 만큼, 안보리 틀 내에서 다양한 지역 및 글로벌 도전 과제에 대해서도 더욱 긴밀히 공조해 나갈 계획이다.”
문화일보 이제교 기자
05-02 “우리가 왜 부자 나라 한국을 지켜주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군 지원을 위해 한국이 더 많이 부담하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주간 타임이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국에서 부대를 철수할 것이냐’는 질문에 “한국이 우리를 제대로 대우하길 원한다”며 “우리 병력 4만 명(실제로는 2만8500명)이 위험한 위치에 있다. 이것은 말이 안 된다. 왜 우리가 누군가를 방어하느냐. 우리는 지금 아주 부유한 나라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은 새삼스럽지 않다. 이미 트럼프 1기 시절 주한미군 감축을 지렛대 삼아 방위비 분담금을 5배로 증액하라고 압박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그런 무리한 요구 때문에 한미 양국 정부는 제때 협상을 타결하지 못해 1년 반의 분담금 협정 공백 사태가 벌어졌고,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뒤에야 협상을 끝냈다. 한미 정부가 이달 분담금 협상을 조기에 시작한 것도 그런 ‘트럼프 리스크’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미가 서둘러 분담금 합의를 이뤄내도 ‘트럼프 2기’가 현실화하면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한미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 비용까지 청구서에 포함하려 할 수 있다. 트럼프 측 인사들은 벌써 “주한미군 2만8500명이 필요한지 솔직하게 얘기할 때가 됐다” “주한미군을 중국 견제에 활용하는 대신 한국의 핵무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주한미군의 감축 또는 역할 변화를 주장하고 있다.
동맹도 철저하게 거래 관계로 접근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인식은 비단 한국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그는 얼마 전 국내총생산(GDP) 2% 방위비 약속을 지키지 않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들에 대해 ‘러시아의 처분에 맡기겠다’는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번에도 “만약 돈을 내지 않는다면 (방어를)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라고 단언했다.
6개월 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은 여전히 반반이다. 하지만 유럽을 비롯한 많은 미국의 동맹국들은 자체 방위력 강화에 나서며 한층 사납고 거칠어질 ‘트럼프 2기’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북-미 간 직거래라도 다시 시도한다면 우리 안보는 그 협상판의 흥정거리가 될 수도 있다. 자강(自强)의 노력에 충실하면서 어떤 변수에도 휘둘리지 않는 필수불가결한 동맹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아일보 사설
05.02 주한미군 주둔비 대폭 인상 예고 트럼프…모든 리스크 대비를
트럼프, “부유한 한국, 왜 돈을 내고 싶어 하지 않나”
한국 관련 정확한 정보 사전 입력할 채널 가동해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면 한국이 부담하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인상을 요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이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뜻도 내비쳤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발간된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들(한국)은 아마 거의 돈을 내지 않고 있을 것(paying very little)”이라며 “왜 우리가 다른 사람을 방어하느냐. 그들은 부유한 나라인데 왜 돈을 내고 싶어 하지 않느냐”라고도 했다.
그가 대선 레이스에서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과 관련한 입장을 내놓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자신이 집권할 경우 한국도 ‘흥정’ 대상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한·미 양국은 5년마다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체결해 한국의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수준을 정한다. 현재 한국은 2021년 합의에 따라 당시 1조1833억원을 기준으로 삼고, 다음 SMA를 체결할 때까지 매년 한국 국방비 인상률을 반영해 올려준다. 트럼프 정부는 2019년 제11차 SMA 협상 때 당시 한국의 연간 분담금(1조389억원)의 6배에 가까운 50억 달러(약 6조9000억원)로 증액을 요구했었다는 게 외교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만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50억 달러를 기준으로 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우리 입장에선 여간 난감한 상황이 아니다. 북한이 군사적 긴장을 높이며 중국·러시아와 협력을 강화하는 데다, 한국의 경제 상황은 녹록지 않다. 한·미·일이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안보의 핵심인 동맹의 방어적 군사력을 거래의 수단으로 삼거나, 한·미 동맹보다 북·미 직거래에 나선다면 가뜩이나 불안정한 동북아 정세 속에서 안보의 위기는 커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2만8500명 수준인 주한미군의 숫자를 3만5000명이라고 부풀리거나 “한국이 거의 돈을 내지 않고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언급을 반복하고 있다. 그의 이런 언급이 의도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안보를 돈과 직결시키겠다는 뜻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 미국 대선 결과는 예측이 어려울 정도로 초박빙 상황이다. 그런 만큼 정부는 트럼프 리스크에도 철저히 대비하길 바란다. 미리미리 트럼프 캠프에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잘못된 사실 인식을 바로잡을 수 있는 채널을 만들어 가동해야 한다. 지난달 시작한 SMA를 조기에 매듭짓고, 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더라도 되돌릴 수 없는 동맹 안보의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필수다. 정치권 역시 국익에는 여야가 없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초당적 대미 외교 지원에 나서야 마땅하다.
중앙일보 사설
05-02 유럽의 K-방산 견제 본격화, 민관 원팀 대응 강화해야
한국의 무기 수출 규모가 지난해 세계 9위로 도약할 만큼 방위산업은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2019∼2023년 동안의 무기 수출을 종합한 올해 스톡홀름 국제평화문제연구소 평가에서도 10위였다. 윤석열 정부는 2027년 세계 4강 목표를 내걸었다. 이런 K-방산의 진격에 유럽이 본격적인 견제에 나섰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유럽의 자주국방을 위해 유럽산 장비를 더 많이 구매해야 한다”며 대놓고 유럽을 편들었다. 앞서 지난 3월 말에는 EU 집행위원회가 현재 약 20%인 EU 역내 무기 구매 비중을 2035년 60%로 올리는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최근 외교부에서 열린 재외공관장회의에 참석했던 유럽 각국의 대사들 역시 한국 방산의 진격을 경계하는 현지 분위기를 전하며 우려를 표명했다. 심상치 않다.
K-방산은 뛰어난 가성비, 빠른 배송, 다양한 맞춤형 옵션 등 글로벌 경쟁력이 상당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무기 수요가 커진 동구권에선 1순위다. 이런 K-방산이 유럽에서 독일에 수주를 뺏기는 형편이다. 영국은 지난달 차기 자주포 사업에서 한국의 K-9 대신 독일의 차륜형을 선택했다. 지난해에는 노르웨이가 K-2 흑표 전차를 제치고 독일 전차의 구매를 결정했다. 한국이 독일과 경쟁 중인 루마니아의 자주포 수주 결과도 낙관하기 어렵게 됐다.
이미 여파가 심각한 수준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올 1분기 어닝쇼크였다. 지난해 폴란드 수출이 활발했던 K-9 자주포와 천무 다연장로켓이 올 1분기엔 실적이 전무 해 매출은 9.3%, 영업이익은 83.2%나 급감했다. K-방산 수출을 위해 수출입은행의 자본금을 10조 원 늘렸지만, 이 정도로는 어림없다. 유럽 정상들이 직접 발로 뛰는 마당이다. 민관이 원팀이 돼 총체적 대응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5.03 강제 북송 재개한 中, 북·중 야만에 침묵 안 된다

▲탈북자 강제 북송 반대 피켓. 2023.8.7/뉴스1
중국 정부가 자국 내 구금 시설에 가둬 놓았던 탈북자들을 지난주 기습 북송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북송 규모는 적게는 50~60명, 많게는 100~200명이라고 한다. 국정원은 “이번 중국 당국의 탈북민 추가 강제 북송 가능성을 지속 추적해왔다”며 이 보도들을 부인하지 않았다. 작년 10월 중국 당국은 코로나 봉쇄 3년간 구금한 탈북자 2000여 명 가운데 500~600명을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끝나자마자 기습 북송해 국제적 지탄을 받았다. 이를 의식해 잠시 보류했던 탈북자 북송을 재개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어떠한 경우에도 해외 체류 탈북민들이 자유 의사에 반하여 강제 북송돼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입장”이라면서도 중국에 대한 공개 대응은 하지 않았다. 이달 중 한·중·일 정상회의 성사를 위해 중국 정부를 설득 중인 상황에서 이 문제가 돌출해 난감한 상황이라고 한다. 하지만 탈북민은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이다. 이들의 생사가 걸린 문제를 이런 식으로 넘길 순 없다. 정부의 침묵을 중국은 어떻게 받아들이겠나.
탈북민은 굶주림을 피해 탈출한 국제 난민이다. 이들에게 북송은 지옥행이다. 고문·폭행을 당하다 심하면 목숨을 잃는다. 중국은 난민 지위 협약과 고문 방지 협약에 가입했으면서도 이들을 북송해 왔다. 사람을 사지로 보내는 것이다. ‘문명국’은 허울이고 야만 국가다. 야만 국가는 상대가 침묵하면 야만적 행태를 멈추지 않는다. 자성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야만적 행태를 끊임없이 고발해야 한다. 중국은 공산당 독재 정권이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이고 세계와 무역을 해야 하는 나라다. 국제사회의 평판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정부도 연초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중국을 향해 “탈북민에 대한 적절한 보호를 제공하길 권고한다”고 했을 것이다. 이런 일 자체가 처음이었다. 역대 한국 정부가 탈북민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중국에 대해 ‘조용한 외교’로 일관했던 점에 비하면 눈에 띌 만한 변화였다. 지난 2월엔 외교장관이 중국 외교부장에게 “탈북자들이 강제 북송되지 않고 희망하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대답이 추가 북송이었다. 쉬쉬하며 침묵할 상황이 아니다.
올해는 북·중 수교 75주년이다. 중국이 탈북민들을 김정은에게 ‘선물’로 주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탈북민들도 순차 북송될 수 있다. 적게는 수백명, 많게는 1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북한과 중국의 야만 행태에 침묵할 수 없다.
조선일보 사설
05-03 러·북 야합으로 무너지는 유엔 북핵 제재와 尹정부 책무
러시아가 올 들어 50만 배럴 이상의 정제유를 북한에 보냈다고 미국 백악관이 2일 직접 발표한 것은, 더 이상 묵인하면 유엔의 북핵 제재가 완전히 허물어질 것이라는 위기 의식 때문일 것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제2397호는 북한의 연간 정제유 수입을 50만 배럴, 원유 400만 배럴로 제한하고 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행태로 볼 때 대북 결의 10개가 통째로 무력화할 공산도 커졌다.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지난 30일 대북 제재 위반을 감시해온 안보리 전문가 패널은 해체됐다.
대북 제재는 핵·미사일을 억제할 최소한의 장치다. 김정은이 2019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때 제2397호 등 영변 핵시설 포기 대가로 안보리 결의 5건의 해제를 요구한 것은 효과가 있다는 증거다. 그간 중국은 비공식으로 북한에 식량과 유류를 제공해왔는데,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으로 무기와 탄약 등이 절실한 블라디미르 푸틴은 대놓고 김정은과 야합해 제재를 묵살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와 북한의 이런 거래는 당연히 대한민국에 직접적 위협이 된다. 북한 핵무기의 1차 공격 대상도 대한민국이다. 그런 만큼 윤석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하는데, 대통령실도 외교부도 뒷짐을 지고 있다. 미 백악관은 정제유 거래를 공개하고, 국무부는 무기 및 정제유 거래를 제재하기 위해 적극 나서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유엔 회원 50개국은 1일 “북한의 제재 위반 행위를 객관적·독립적으로 계속 감시해야 한다”는 공동성명을 내고 전문가 패널 대안을 마련 중이라고 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의 대북 제재 무력화 저지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으나 11월 대선이 있어 집중하기 어렵다. 대북 제재 전선이 붕괴되지 않도록 미국보다 더 앞장서야 할 윤 정부는 어디 있는가.
문화일보 사설
05.03 북한 문제 전체를 다룰 유엔 기구를 만들자

▲신각수 한반도평화워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이행을 감시해오던 전문가 패널 활동이 지난달 30일 종료됐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전문가 패널의 활동 연장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전문가 패널은 매년 북한의 제재 위반 사항을 조사해 유형별로 제시하고, 다양한 제재 회피 수단과 관련한 정보를 담은 보고서를 발간했다. 대북 제재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북한의 뒷배이자 유엔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1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제재를 해제하는 일몰조항을 추가하자는 주장을 하고, 다른 나라들이 이를 수용하지 않자 러시아는 전문가 패널의 활동 연장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러시아는 형식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이 먹히지 않아 반발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북한과의 불법 무기거래가 전문가패널 조사로 드러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작용했을 것이다.
대북 전문가 패널 30일 종료
북한 핵문제 더욱 엄중해지는데
제재 감시할 심판 역할 사라져
유엔 차원 대체 기구 설치 시급
대북 제재 결의안에 찬성했던 러시아와 중국은 최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등 안보리 결의 위반에 대한 추가 제재에 반대하고, 북한의 제재 회피를 묵인하는 등 기존의 제재를 빈 껍데기로 만들려는 시도를 이어왔다. 더 나아가 이번에 대북 제재 위반을 감시하는 심판을 없앤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2월 28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메리어트 호텔에서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관련 기자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김정은 위원장과 인상적인 이틀을 보냈으나 다른 길 택해야 할때도 있다”며 “여러가지 옵션이 있었으나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며 “북한과 좋은 친구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REUTERS=뉴스1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진행된 2차 북·미 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은 답보 상태다. 북한은 협상을 거부한 채 지속적으로 제재를 위반하며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고 있는 반면 대북 압박의 힘은 분산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적대적 남북 분리정책(2 국가론)과 무력통일 노선으로 방향을 선회하며 핵 선제 사용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한반도 무력 충돌이 핵 전쟁으로 비화할 리스크가 커졌다. 그런데도 중국은 대미 전략경쟁을 하며 북한을 카드로 활용하고, 미국은 대외 정책에서 북한 핵 문제를 우선순위에서 미뤄두고 있다. 또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는 포탄이나 미사일 등 북한의 지원을 염두에 두고 북한 편들기에 집중하고 있다.
통섭적인 대북 접근을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가 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약식 회견을 열고 한미일 등 50개국을 대표해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 산하 전문가 패널의 임기 종료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침 미국을 중심으로 유엔 회원국 50개 나라가 1일(현지시간) “대량살상무기(WMD) 및 탄도미사일 개발에 대응하기 위해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분석에 지속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전문가 패널을 대체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북핵에 한정하지 않고 북한 문제 전체를 포괄하는 통섭(統攝)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길 제안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견지해야 할 입장을 정할 필요가 있다. 우선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목표와 원칙을 다시 세우고 이를 반영한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비핵화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필요조건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실효적 억지와 방어를 위해 우리 자체 역량을 축적하고, 한·미 연합방위 체제의 강화, 가치공유 국가와의 중층적 연대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 둘째, 북한 문제는 북한의 변화 없이는 해결이 어렵다. 대북정책은 북한의 내부 변화를 촉진하는 방향이 돼야 할 것이다. 북한의 변화를 촉진할 중요한 요소는 시장과 외부 정보다. 북한의 시장화를 유도하고 북한 사회가 외부 정보와의 접촉면을 늘리는 조치들을 인내심과 지속성을 가지고 시행해야 한다. 물론 대화와 인도적 지원 용의를 밝힐 필요가 있다. 셋째, 북한 핵 문제와 인권 문제의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 재원을 북한 주민의 인권을 도외시한 불법 활동으로 충당하고 있다. 북한 인권 개선은 북한 사회의 변화를 촉진하면서 비핵화를 견인할 주요 수단이다. 넷째, 대북 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도 통합적인 접근이 중요하다. 외교·경제·군사·정보 분야의 우리 국력을 잘 결합해 정책 효과를 높여야 한다. 최근 우크라이나·가자 전쟁이 보여주듯 최신 과학기술의 활용은 큰 승수효과가 있을 것이다. 정부 관련 부처 간의 긴밀한 소통과 협업을 배가해야 한다. 다섯째, 우리는 북한 문제의 직접 당사자로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국제사회의 지원이 필요하겠지만 한국이 주도해야 한다. 여섯째, 북한 문제의 조기 해결은 어려우므로, 지속적이고 실효적인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제재 이행 강제성 부여가 관건
이런 다양한 고려 요소들을 토대로 현재 국제사회가 전문가 패널의 후속으로 검토 중인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크게 총회 결의에 기초한 기구와 유엔 체제 밖의 유사의지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 형태 기구의 두 개 방안이다. 전자는 새로 만드는 기구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비교적 북한과 연계가 덜한 ‘글로벌 사우스’(남반구나 북반구의 저위도에 위치한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의 개발도상국을 통칭)의 협조를 얻는 데 유리하다. 그러나 이는 총회 결의를 채택하는데 상당한 외교력을 들여야 하고 다양한 이해충돌로 기구 조치의 강도와 이행력이 떨어지는 약점도 있다. 후자는 제재 이행과 관련해 한국·미국·일본·유럽·캐나다·호주의 협조가 이미 축적되어 있어 손쉽게 만들 수 있고 실효적 조치를 만들기 쉽다. 그러나 유엔체제 밖이라는 점에서 정통성이 떨어지고, 불참 국가들의 협조를 얻기 어려우며, 대북 제재에 관한 국제사회의 지지가 약해서 총회 표결을 피했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

▲2022년 5월 26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회의를 열고 새 대북제재 결의안을 표결에 부쳤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부결됐다. 사진 유엔
이런 맥락에서 유엔의 대표기관인 총회 결의에 근거한 상설 기구 설치에 주목해야 한다. 향후 상당 기간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자주의가 약화하고 있지만, 범세계적 국제기구인 유엔의 정통성과 ‘힘’을 무시할 수 없다. 미국 등 우방국과 협조하여 총회 결의로 북한 문제의 핵심인 핵과 인권을 연계해서 다룰 전문가그룹을 만들어야 한다. 또는 반인도범죄 자료증거를 분석한 사건 파일을 준비해 국내법원·국제재판소에서 위반자의 형사책임을 묻는 것을 지원하는 시리아 범죄조사메카니즘(IIMM-Syria)과 같은 기구 설립도 방법이다. 이들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면 유사의지연합 형태의 기구를 병행할 수도 있다. 우리가 그동안 축적한 외교자산을 투입하면 달성 가능할 것이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말했듯이 ‘강한 그립은 약한 손의 징표’다. 미·중 대결과 북·러 밀착으로 북한 상황이 일부 개선됐다고 해도 여전히 북한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하는 길은 험난하고 내부 불만은 쌓여 간다. 북한에 끌려다니지 말고, 민주사회의 창의력과 역동성·탄력성에 기반을 둔 우리 프레임으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모색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중앙일보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외교부 차관·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
월간조선 05월 호 《불통의 중국몽》 쓴 주재우 경희대 교수
●“두 손 모아 ‘셰셰’ 하는 이재명 모습, 이완용이 떠올랐다”
⊙ “중국, 화교가 적은 한국에서는 화교 대신 親中 세력 이용”
⊙ “韓, ‘중국은 어떻게 반응할까’ ‘중국의 보복은 없을까’ 고민하며 길들여져”
⊙ “2016~2020년 중국 군함의 한반도 인근 출현 횟수 900회 이상”
⊙ “국내 ‘홍색귀족’들, 헐값에 나라 팔아먹고 있어”
⊙ “중국 고위 관계자 말이라며 인용하는 언론·학자 믿을 수 없어… 만나주지 않으니까”
⊙ “사드 사태 당시 중국 간 민주당 의원, 중국 인맥 없고 만난 정치인도 없어”
朱宰佑
1967년생. 미국 웨슬리언대 졸업, 중국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국제정치학 박사 / 한국세계지역학회 회장, 한중사회과학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미국 조지아공대 방문교수, 싱가포르국립대 동아시아연구원 방문학자, 국가안보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역임. 現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 한국국가전략연구원(KRINS) 중국연구센터장 겸 학술지 편집위원장, 한국유엔체제학회 부회장 / 저서 《한국인을 위한 미중관계사-6·25 한국전쟁에서 사드 갈등까지》 《팩트로 읽는 미중의 한반도 전략》 《북미관계: 그 숙명의 역사》 등

▲사진=조선DB
“중국 사람들이 한국 싫다고 한국 물건을 사지를 않습니다. 왜 중국을 집적거려요. 그냥 ‘셰셰’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되지. 뭐 자꾸 여기저기 집적거리고 무슨 양안 문제, 우리가 왜 개입합니까. 대만해협이 뭘 어떻게 되든 중국과 대만 국내 문제가 어떻게 되든 우리가 뭔 상관있어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3월 22일 충남 유세 현장에서 이같이 발언한 데 대해 주재우(朱宰佑·56)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는 “이완용이 오버랩(겹쳐 보임)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일합병·남북분단’ 미국 탓, 중국엔?

▲2023년 6월 8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를 방문해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와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한국국가전략연구원(KRINS) 중국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는 주재우 교수는 지난 3월 18일 중국의 ‘영향력 공작’을 분석한 《불통의 중국몽》을 펴냈다. 그에 따르면 중국은 자국의 시장 규모와 군사력, 그리고 타국(他國)의 친중(親中) 세력 등을 바탕으로 ‘차이나 포비아(중국 공포증)’를 퍼트린다. 그리고 이를 영향력 공작에 활용한다. 앞에서 언급한 이재명 대표의 발언 기저에도 ‘차이나 포비아’가 존재한다는 게 주재우 교수의 시각이다. 지난 3월 26일 만난 주 교수는 이 대표의 ‘셰셰 발언’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높아졌다.
“굉장히 위험하고 문제가 있는 발언이죠. 앞서 이재명 대표는 2021년 대선(大選) 후보였을 당시 한국에 온 미국 상원의원에게 ‘한국이 일본에 합병된 이유는 미국이 가쓰라-태프트 협약을 통해 승인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어요. 이번 ‘셰셰 발언’과 ‘가쓰라-태프트 발언’을 비교해보세요. 기껏 방한(訪韓)한 미국 정치인에게 한일(韓日) 합병 책임을 들이밀면서, 중국엔 그들의 입맛에 맞는 말만 하잖아요. 저는 이재명 대표가 두 손 모아 ‘셰셰’라고 하는 모습을 보며 이완용(李完用)이 떠올랐어요. 구한말에도 그랬죠. 고위 관료들은 친일(親日), 친중, 친러, 친미(親美)파 등으로 사분오열돼 각자의 사대국(事大國)에 충성하는 데 혈안이었잖아요. 중국도 이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국 지도층을 친미 또는 친중으로 갈라 내분을 일으키려 하고 있어요.”
― 이 대표의 발언 취지는 중국의 편을 들겠다는 게 아니라 ‘괜히 중국을 건드리지 말자’는 것 아닌가요.
“그 발언을 하는 것 자체가 ‘차이나 포비아’에 길들여졌다는 의미입니다. 거대한 중국 시장을 의식해 한국 물건이 안 팔린다고 직접 얘기했잖아요. 그리고 한일합병과 한반도 분단의 책임을 미국에 덮어씌우는 것도 중국의 주장과 똑같습니다. 한반도 내 반미(反美) 정서를 고조시켜 미국을 쫓아내는 게 중국의 전략인데, 이재명 대표는 자의든 타의든 그 의도에 놀아나고 있어요. 이 대표는 지난해 6월에도 주한중국대사관을 찾아가 싱하이밍 대사의 훈계를 두 손 모아 경청했잖아요? 자신들의 비위를 거스를까 봐 노심초사하는 우리 정치인의 모습을 보며 중국은 ‘차이나 포비아’ 전략이 먹힌다고 재차 확신했을 겁니다. 이미 우리는 중국의 외교부장, 정부 부처의 수장, 주한대사, 심지어 국가주석까지도 한국의 카운터파트(counter part)와 대통령을 면전에서 압박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보고 있잖습니까.”
인터뷰 도중, 중국 언론들이 일제히 이재명 대표의 해당 발언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인터넷으로 나왔다. 주 교수에게 이를 보여주자 그는 “거 봐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 공연히 중국의 심기를 건드려서 중국 시장을 잃지 말자는 게 아닐까요.
“그게 바로 ‘차이나 포비아’라는 겁니다. 일례로 중국은 한국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결정한 2016년부터 경제 보복을 가했습니다. 파괴력은 상당했죠. 그때부터 우리는 미국의 제안, 또는 한미동맹에 관한 사안을 물을 때마다 ‘중국은 어떻게 반응할까, 중국의 보복은 없을까’를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중국의 의도대로 길들여진 겁니다.”
“영향력 공작의 목적은 ‘영토 주권 무력화’”

▲2022년 12월 21일 중국 해군은 러시아 해군과 함께 동중국해에서 합동해상훈련을 실시했다. 사진=신화/뉴시스
주재우 교수가 말하는 ‘차이나 포비아’는 ‘영향력 공작’의 일환이다. 영향력 공작은 선전·선동, 여론조작, 매수, 협박, 약점 잡기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敵)을 제압하는 전술이다. 역사도 깊다.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둥(毛澤東)은 국공내전(國共內戰) 당시 ‘통일전선 공작’을 구사해 열세를 극복하고 국민당을 몰아냈다. 통일전선 공작을 21세기에 맞게 다듬은 게 영향력 공작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를 뛰어넘는 전술’이라는 뜻의 ‘초한전(超限戰)’이라고도 불린다. 중국 공산당은 이 전술을 오랜 기간 연구하고 검증했다. 그렇다면 차이나 포비아의 상위 개념인 영향력 공작은 무엇을 목표로 하는 걸까. 주 교수는 “한국의 영토 주권을 무력화(無力化)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의 영향력 공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단연코 우리의 영토 주권 무력화입니다. 중국은 우리 영토를 위협하는 행위를 일관되게 반복하며 한국에 불감증(不感症)을 심어주고 있어요.”
국방부가 2020년 공개한 ‘최근 5년 주요 외국 군함의 한반도 인근 활동 현황’에 따르면 2019년 외국 군함이 우리 배타적 경제수역의 등거리선을 370여 차례 넘어왔다. 이 중 중국 군함이 침범한 횟수는 290여 차례로, 전체의 약 80%를 차지한다. 2016년부터 5년 동안 중국 군함이 배타적 경제수역의 잠정 등거리선을 넘어 한반도 인근에 출현한 횟수는 900회가 넘는다.
주 교수는 “중국을 일반적인 다른 국가들과 동일시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게, 2019년부터 중국이 미사일 시험 발사를 1년에 몇 번 하는지 아세요? 150~190번 해요.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 시험은 50~70번 쏘고요. 지금 이 정도로 미사일 시험 발사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요. 중국하고 북한밖에 없어요.”
이어지는 주 교수의 얘기다.
“지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중국 공군 군용기가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을 무단 진입한 횟수는 2019년 50여 회, 2020년과 2021년에 각각 70여 회, 2022년 40여 회였어요. 잠수함도 2022년에만 세 차례 들어왔고요. 랴오닝함부터 시작해서 항공모함, 핵잠수함도 우리 바다에 들어올 판이에요. 백령도 앞바다엔 이미 중국 핵잠수함이 진입했고요.”
‘홍색귀족’
‘영향력 공작’ 속엔 채찍만 있는 게 아니다. 당근도 있다. 중국은 자국에 우호적인 인사들을 대접해 포섭한다. 그 혜택을 받는 이들, 이른바 ‘홍색귀족(紅色貴族)’이다.
중국은 홍색귀족에게 ‘차이나 머니(중국 돈)’를 뿌린다. 그리고 이들을 양성해 자국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한다. 하지만 주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홍색귀족들은 그다지 윤택한 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듯하다. 한국엔 ‘당근’조차 후하게 줄 필요가 없다는 게 중국의 시각인 걸까.
― 국내에도 ‘홍색귀족’이 있습니까.
“그럼요. 물론이죠. 우리 학계에서도 풍문으로 ‘누구 누구가 중국의 지원을 많이 받는다더라, 중국 측이 이들의 가족들에게까지 호의를 베푼다더라’라는 등의 소문이 돌아요.”
― 그 ‘누구 누구’는 유명한 인물인가요.
“그렇죠. 이름을 밝힐 순 없지만, 우리나라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도 포함돼 있어요. 이름 들으면 알 법한, 지금 대충 들어도 누군지 감이 잡히실 거예요. 2014년 중국에 갔을 때 깜짝 놀랐어요. 중국에 우호적인 한국 학자들이 저보고 ‘왜 뻐꾸기 날리지 않느냐’고 하더라고요. 한국에서 중국에 우호적인 태도로 말하면 홍색귀족이 될 수 있는데 왜 그걸 포기하느냐는 소리죠.”
― 홍색귀족이 되면 자녀들도 혜택을 받는다고 하던데요.
“네, 맞습니다.”
― 예우가 극진한 듯한데, 우리나라에 있는 홍색귀족들은 실제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나요.
“꼭 그렇지도 않아요. 제가 본 홍색귀족들 가운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고요, 나머지는 전혀 홍색귀족처럼 보이지 않아요.”
― 홍색귀족이라고 해도 크게 예우하지 않는다는 건가요.
“빙고. 바로 그거예요. 그래서 제가 속이 터지는 거예요. 고작 그거 받으려고 그런다는 게 어이가 없죠. 눈 딱 감고, 중국에 이용당하는 거 좋다 칩시다. 그럼 뭐 제대로 받는 거라도 있던지. 제가 자존심이 상하는 게 이거예요. 엄청난 돈을 받는 것도 아니면서 헐값에 나라를 팔아먹고 있으니까요. 중국은 현재 비자를 단수 비자 1년짜리만 발급하고 있는데, 제가 아는 홍색귀족 중에 어떤 분은 자기가 중국대사관과 친해서 5년짜리 복수 비자를 받았다고 저한테 자랑하더라고요. 거기에 ‘해피 해피’ 하고 있는 게 참….”
“차이나 머니에 오염되기 취약한 환경”

▲2022년 8월 24일 열린 한중수교 30주년 기념 리셉션에 참석한 한중 관계자들. 왼쪽부터 김한규 21세기 한중교류협회장, 박진 당시 외교부 장관,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 임채정 한중관계 미래발전위원회 위원장. 사진=조선DB
― 참담하네요.
“마지막 자존심이 거기서 무너지는 거죠. 중국이 우리를 어떻게 보겠어요. ‘빵가루 뿌리면 잉어떼 몰려드는구나’ 하겠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에 기술 유출하는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술 가치에 비해 헐값 수준의 대우를 받고 단물만 쪽쪽 뽑아 먹히고 돌아오잖아요. 중국의 입장에선 한국을 제3세계 나라 정도로, 마치 ‘쟤네는 조금만 해줘도 돼, 그러면 넘어와’ 이렇게 보이겠죠.”
― 정치인 중에도 홍색귀족이 있나요.
“그럼요. 빌 클린턴(Bill Clinton· 77) 전 미국 대통령도 대선을 앞두고 화교(華僑) 재벌 등으로부터 거액의 후원금을 받아 의심을 샀어요. 중국 자금을 세탁해 들여온 건데, 우리나라는 특히 정치인들의 후원금 내역을 공개하지 않잖아요. 미국은 다 공개하거든요. 차이나 머니에 오염되기가 더 취약한 환경이죠. 또 우리나라는 국회의원 같은 고위 정치인들은 세관 통과도 안 해요. 저도 그들과 함께 다녀봤지만 ‘무조건 통과’입니다. X선 검사기도 거치지 않아요.”
― 국내 홍색귀족 학자들은 주로 어떤 활동을 하나요.
“일방적으로 중국을 옹호하는 발언들을 일삼습니다. 칼럼도 쓰고요. 중국에 대한 비판이 나오면 ‘중국은 그렇지 않다’며 에둘러 감싸고 나섭니다. 이들의 특징은, 마치 자기들이 중국을 잘 안다는 식으로 얘기를 한다는 겁니다.”
― 국내 중국 관련 학자들 가운데 중국 눈치 보지 않고 할 말 다하는 이들은 몇 퍼센트나 된다고 보시나요.
“0.3%입니다.”
주재우 교수는 “중국의 영향력 공작에 이용당하는 학자들이 중국 공산당 간부 등의 말을 전하며 ‘중국통’ 행세를 하지만 막상 중국 고위층 또는 의사 결정권자를 만나보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중국 공산당 간부나 정·관계 고위 인사들이 우리나라 학자들을 만나주지도 않을뿐더러, 우리나라 학자들의 네트워크도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다”고 주 교수는 지적한다.
‘대화 창구’와 ‘대답’ 정해놓는 중국
― 한국에 ‘가짜 중국 전문가’들이 많다고요?
“네. 언론에 등장하는 우리나라 학자들을 보면 ‘중국 고위 관계자에 의하면’이라며 교수가 중국 공산당 간부의 말을 전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학자들이 그럴 만한 네트워크도 없고, 거기서 만나주지도 않아요. 언론에 등장하는 학자들이 아는 (중국 정·관계) 사람들이나, 제가 아는 사람들이나 다 똑같아요. 왜냐하면 중국 공산당의 대화 창구는 항상 정해져 있거든요. 그런 학자들의 말을 받아 적는 우리 언론도 참 답답해요. 솔직히 천안함 피격 이후 우리나라 주중대사도 중국 외교부 고위 관계자를 못 만나고 있어요. 하물며 학자나 대학교수가 누구를 만나고,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죠.”
― 그렇다면 중국 고위 관계자의 이름으로 포장된 인용문의 출처는 어딘가요.
“중국 학자들의 말이죠. 그들이 자기 생각을 ‘중국 공산당 간부’ 또는 ‘중국 고위급 인사’의 전언으로 포장해요. 우리나라 중국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이걸 또 한국으로 열심히 실어 나르고 있습니다. 언제 한 번 중국인 학자 친구랑 담배를 피우면서 ‘뻥 좀 치지 마라. 당 간부는 무슨, 네 학자적 견해를 고위 관계자의 말로 둔갑시키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자기가 직접 들은 게 맞다고 우기더라고요. 그래서 ‘선수들끼리 왜 그러냐’고 한마디 했죠.”
― 중국의 다른 정부 부처들도 마찬가지인가요.
“그럼요. 외교부도, 국방부도 다 똑같고요, 당 간부는 말할 것도 없죠. 우리나라 중국 전문가들이 언급하는 한반도 관련 중국의 군사 전문가도 보면 《환구시보》(중국 언론)에 나오는 사람들이 다예요. 한국과 회의할 때 매번 나오는 지명 타자들이거든요. 그리고 그 사람들, 다 현역이 아닙니다. 예편한 사람들이에요.”
― 취재를 하다 보면 중국 측은 간단한 질문도 매뉴얼이 있는 듯 즉답을 해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럼요. 중국 외교부 대변인과 질의응답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은 공산당 최고 지도부가 결정을 해요. 담당자라고 해도 함부로 얘기를 못 해요. 매뉴얼에 따른 답변이 다일 수밖에 없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나 중국 대사관이나 중국인 특파원이나 하는 얘기들이 다 똑같잖아요.”
― 중국의 회유 내지 압박을 받아본 적이 있나요.
“저는 없었어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중국에서 모르는 연락들이 오지만 받지 않았죠. 그리고 저는 2016년쯤 한반도 안보 문제에 대해 중국 외교부 산하 중국국제문제연구원과 회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중국 측 심기를 제대로 거스른 적이 있기 때문에 회유의 대상은 아닐 겁니다. 당시에도 북한은 미사일 시험 발사를 자주 했었는데, 중국이 이를 사실상 묵인하고 있어서 저는 이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어요. 중국의 미사일 시험 발사 시기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시기가 비슷하더라고요. 양국이 서로 묻어가는 거죠. 그래서 두 나라의 미사일 발사 시기를 표로 만들어서 거기서 발표했어요. 중국 측 인사들 표정이 많이 안 좋았어요. 그다음부터 저를 부르지 않더라고요(웃음).”
“중국 간 민주당 의원들 일정표 ‘깨끗’”

▲2017년 1월 4일 사드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중국을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왕이 외교부장 등 중국측 관계자들을 만났다. 왼쪽에서 둘째부터 박찬대·유은혜·유동수·송영길 의원, 왕이 부장, 박정·신동근·정재호 의원, 박선원 전 청와대 비서관. 맨 왼쪽 여성은 통역. 사진=연합뉴스
중국은 모든 정부 부처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인다. 주재우 교수는 1999년 중국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 과정에서 있었던 일화를 꺼냈다. 당시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는 WTO 가입을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국에 도착해서 조인식에 서명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때 미국 측은 한 가지 요구 조건을 추가했다. 주룽지를 태운 비행기는 이미 날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주석은 주룽지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오라고 했다. 그만큼 중국에선 고위 관료들조차도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는 재량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주재우 교수는 “중국에서 외부인이 정부 관계자를 만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며 “바로 이 점 때문에 중국과의 핫라인(hot line·긴급 직통 연락)이 가동되기 어렵다”고도 지적했다.
주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나라에 중국 정부 관계자, 또는 의사 결정자에 상응하는 고위 인사의 말을 전하는 언론과 학자들이 많은데 솔직히 묻고 싶어요. 정말 만나봤습니까?”
― 2016년 사드 사태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중국에 갔는데, 그들은 중국 정부 관계자들을 만났을까요.
“원래 그 부분도 제 책에 다 썼는데 삭제했어요. 제가 강조했다시피 중국 공산당의 의사 결정자를 만난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예요. 공식 초청이 있지 않는 한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때 중국에 간 민주당의 A의원은 저와 잘 아는 사이입니다. 중국에서 함께 공부한 사이니까요. A의원은 중국에 네트워크도 거의 없어요. 그래서 중국에 간다는 얘길 들었을 때 ‘이거 쇼(show)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더라고요. 그때 중국에 간 민주당 의원들이 언론사 특파원들에게 자기들 일정을 보냈어요. 저도 그걸 받아 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만나는 사람이 없어요. (일정표가) 깨끗해요. 일정 가운데 베이징(北京)대 방문이 있더라고요? 저도 베이징대에서 공부했는데, 민주당 의원이 거기서 만난 사람은 30대 교수와 그에게 박사 과정을 받고 있는 제자 한 명이었어요.”
― 중국 정치인은 결국 한 명도 못 만났네요.
“그렇죠. 아무도 못 만났죠. 만나주질 않으니까. 중국 정치인들도 공산당의 허가가 필요하고 명분이 확실해야 하잖아요.”
“관영 언론사는 사실상 정보기관”
앞서 언급했듯 중국의 모든 정부 기관은 똑같은 대답, 정해진 말만 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더 나아가 관영 언론은 정보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게 주 교수의 경험담이다. 그는 2010년 봄, 중국 베이징에 있는 신화통신사(新華通訊社) 본사에 방문했을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국가정보원을 보는 것 같았다”며 혀를 내둘렀다.
“신화사 기자들은 특파원 중심으로 이뤄져 있는데, 거의 정보요원이라고 보면 됩니다. 거기서 북한 문제만 30~40년 다룬 원로 기자를 만났어요. 신화사는 우리나라 국가정보원처럼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에요. 아무나 못 들어가고 거기 사람들도 아무나 안 만나줘요. 저도 지인을 통해 신화사 입구 문턱만 넘었지 내부까지는 못 들어갔어요. 게이트(입구) 밖에 접견실이 따로 있어요.”
― 일반적인 언론사 건물은 그렇지 않을 텐데요.
“네, 입구엔 경찰들이 서 있었어요. 인터뷰도 게이트 밖 접견실에서 한다고 하더라고요. 신화사 재직자들에게 접근할 수도 없고, 그들과 만나려면 명분과 중국 공산당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 혼자 갔나요.
“네, 혼자 갔어요. 신화사 기자 한 명을 게이트 밖 접견실에서 만났죠. 특파원들도 거기까진 못 가봤을 거예요. 신화사 기자들이 우리 특파원을 만나주지도 않을 거고요.”
한편 주재우 교수는 실제 중국 정보기관을 방문한 적이 있어 두 기관의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99년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 재직 당시 베이징에 있는 중국 국가안전부 산하 기관에 갔을 때였다. 이때는 아예 머그샷(mug shot·피의자 식별 사진)을 촬영해야 했다. 사방이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방에서 좌우로 돌며 상반신의 정면, 측면 모습이 찍혔다.
“화교 대신 친중 세력 활용”
이처럼 중국은 정부 부처와 관영 언론까지 하나로 뭉쳐 철저한 대내 방첩을 유지하는 한편 대외 공작까지 전방위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에 주 교수는 중국의 영향력 공작에 대비한 여덟 가지 대비책을 제시했다. ▲외국인 간첩 방지법 제정 ▲이적 행위 개념의 재정립 ▲사이버 안보법 제정 ▲대(對)중국 원칙 마련 ▲중국과의 레드라인 설정 ▲방첩 기능 법제화 ▲중국인의 국내 활동 모니터링 ▲국내 주류 세력의 중국 인식 개선 등이다.
― 영향력 공작을 펴는 중국 입장에서,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만이 갖는 특징이 있나요.
“서구 등 다른 나라들과 다르게 화교를 이용하지 못하죠. 우리나라에 화교가 별로 없으니까요. 우리나라 주류 사회에 진출한 화교가 누가 있나요. 기업가, 정치인으로 큰 화교가 없죠. 외국에선 화교 사회가 발달했고 인구도 많아요. 이들이 주류 사회에서 엘리트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서 중국도 그들을 이용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그럴 수 없으니 친중 세력을 이용해요. 그들을 통해서 정치인들을 소개하고 연결하는 식이죠.”
주재우 교수는 중국을 혐오하거나 폄훼하고 싶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주 교수는 “나는 중국을 좋아한다. 중국의 문화, 역사, 전통, 음식 등을 좋아한다”며 “중국에 20년 지기, 30년 지기 친구들도 많다. 지도교수님 댁과는 한 식구처럼 지내고 중국을 30년 넘게 오가면서 제2의 고향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오늘날의 중국은 내가 좋아하던 중국이 아니다. 미쳐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부터 중국에 아는 학자들, 지인들, 심지어 중국인 친구들까지 한국을 소국(小國)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술자리에서 제가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마라’고 하니 미안하다고 사과하더라고요.”
― 그 전에는 달랐습니까.
“제가 중국에 처음 간 게 1990년이에요. 그때 중국의 논문을 보면 ‘배울 건 배우자’는 생각이 느껴졌어요. 서구의 것도 실용적이면 받아들이고 개방적이고 유연한 접근 방식을 택했죠. 1990년대, 21세기 초만 하더라도 중국은 주변국과의 관계를 굉장히 중요시했어요. 한중(韓中) 관계에 관한 회의도 많았는데 2010년 중국이 경제 규모에서 일본을 제치고 2위에 오르자 분위기가 바뀌었어요. 외교도 대외 공세 기조인 전랑(戰狼) 외교를 채택했죠. 전랑 외교의 전술 속엔 고압적이고 비상식적인 외교, 위압적인 태도, ‘무시’도 포함돼 있습니다.”⊙
글 : 김광주 월간조선 기자 kj961009@chosun.com
05-07 대북 제재 감시 ‘한미일 기구’ 시급성
한국과 미국 일본 등 유엔 50개 회원국은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의 활동이 끝난 지 하루 만인 지난 1일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 요지는, 북한의 대량파괴무기(WMD) 및 탄도미사일 개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접근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핵심은, 한미일 주도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이행 여부를 감시할 대체기구를 설립하는 일이다.
전문가 패널은 대북 제재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전문가 집단으로서 제재 위반 혐의를 추적·조사하는 데 특화됐는데,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4월 30일 임기가 끝났다. 일각에서는 대북 제재를 감시할 카메라를 러시아가 부쉈다고 해석했다. 사실상 범죄자가 CCTV를 파손한 격이다. 지난 2009년 설치된 전문가 패널 보고서는 북한이 유엔 제재를 위반하며 핵을 개발하고 그 우방들이 북한과 불법적 수출입 및 금융 거래 등을 해온 사례를 조사, 폭로해 왔다.
2022년 위성사진을 판독해 북한이 2018년 파괴된 풍계리 핵시설을 복원하는 정황과 2020년 북한 정보기술(IT) 노동자들의 ‘외화벌이’ 및 사이버 해킹 등을 밝혀내 국제사회의 경각심을 높였다. 각종 제재를 위반하고 김정은 위원장의 고급 외제차,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명품 가방 등이 북한으로 유입된다는 사례도 찾아내 발표함으로써 김정은과 측근들을 압박하는 역할도 했다.
러시아가 전문가 패널 임기를 종료시킨 것도 패널의 혁혁한 감시 역할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해 9월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할 포탄 100만 발, 최신 미사일 수십 발 등 무기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과의 모든 무기 거래는 유엔 안보리 결의의 정면 위반이다.
그동안 전문가 패널은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유엔 상임이사국과 한국·일본·싱가포르 등 8국이 파견한 전문가 8명으로 구성·운영돼 왔다. 전문가 패널이 해체되면서 한국과 미국이 자체적으로 파악한 제재 위반 현황을 개별적으로 발표하는 방안도 검토됐지만, 북한과 러시아 등에서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고 치부해 버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대응 방안으로는 부족하다.
대체기구가 성공하려면 몇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우선, 대체기구에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뿐만 아니라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인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등 ‘서방+α’ 국가의 호응을 끌어내야 한다. 다음은, 독립 기구를 유엔총회 산하 또는 유엔 외부에 설치하는 방식과 우방 중심의 메커니즘을 만드는 방식 등의 장단점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비록 중·러의 거부권이 있지만, 국제사회의 경각심과 주의 환기를 위해서는 유엔 내부 설치가 효율적이다.
마지막으로, 대체기구의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 중·러가 다른 말을 할 수 없도록 북한이 제재를 어기고 있다는 확실한 팩트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확대해야 한다. 확실한 물적 증거 확보를 위한 한미일의 정보협력 공동체(intelligence community)의 가동은 매우 중요하다. 대북 제재는 조태열 외교부 장관의 표현대로 북한의 발목을 잡는 ‘모래주머니’다. 모래주머니가 터질 경우 거침없는 북한의 행보는 핵무기를 앞세워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흔들 것이다.

문화일보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05-09 윤 “미 대선 상관없이 한·미 탄탄… 북한 무기수출 국제대응”
■ 취임 2년 기자회견 - 외교·안보 분야
“우크라 전쟁은 불법 공격
러시아와는 사안별 협력”
윤석열 대통령은 9일 ‘윤석열 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일본과의 안보·경제적 공조 강화를 주된 성과로 꼽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미국의 유력한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최근 한국의 방위비 분담 인상을 언급했다. 차기 방위비 협상 등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다른 나라의 대선 결과를 예측하고 가정해서 언급하는 것은 한 국가의 대통령으로서 적절하지 않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미동맹에 관해 미국 조야, 상원·하원, 행정부의 강력한 지지가 있다. 한미의 탄탄한 동맹 관계는 변치 않을 것이다.”
―현재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했다는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는데, 정부 대응 방안은.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법상 허용되지 않는 불법 공격이다. 우리나라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재정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북한의 무기 수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북핵 대북제재 결의에도 위반되기 때문에 국제사회를 통해 필요한 대응을 하고 있다.”
―러시아의 관계 개선 복안은 없나.
“러시아와의 관계는 사안별로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입장 차이에 따라서 반대하거나 경계할 것은 그렇게 해야 한다. 러시아와의 관계는 가급적 원만하게, 경제협력과 공동의 이익은 함께 추구해 나가는 좋은 관계로 잘 관리해 나갈 것이다.”
―일본의 조선인 강제징용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과거사와 일부 현안에 대해 양국 국민의 입장차가 확실히 존재한다. 그러나 한일관계는 양국의 미래와 미래 세대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북핵 대응과 경제협력을 위해, 또 인도태평양 지역과 글로벌 사회에서 양국의 공동 어젠다에 대한 리더십 확보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
권승현 기자 ktop@munhwa.com
05.10 新냉전 세계 활보하는 일본과 우물 안의 한국
중국의 세력 팽창 와중에
우리가 北만 쳐다보는 동안
일본의 국제적 위상 급변
국방 예산 2배로 늘리면서
인도·태평양 전 지역에서
美와 자유 진영, 전방위 연결자로
대한민국은 우물 안 개구리
‘한반도 천동설’ 비웃음까지 있다
한국이 한반도라는 우물 안에서 북한만 쳐다보는 사이 일본의 국제적 위상이 급변하고 있다. 일본은 2006년 아베 내각 때부터 대외 군사력 투사가 가능한 ‘보통 국가’를 지향하는 개헌을 추구했으나, 2차 대전 패전국의 재무장에 대한 주변국의 우려와 국내 반대 여론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 체제에서도 핵심은 단연 한미 동맹이었고, 일본의 역할은 한반도 방어를 위한 지원에 그쳤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미·중 패권 경쟁이 시작된 이래 일본은 자유민주 진영의 동아시아 방어 체제에서 지위와 역할이 급상승하는 추세다.
2010년 중국 GDP가 일본을 추월하고 대만 인근 센카쿠 열도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시작된 데 이어 2013년 시진핑 체제 출범으로 중국의 급속한 군사력 증강이 시작되자, 일본은 중국을 견제할 유일한 수단인 미·일 동맹의 대대적 강화에 나섰다. 2010년 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센카쿠 열도가 미·일안보조약 적용 대상이라는 공동선언을 발표한 데 이어, 2012년엔 센카쿠 열도를 국유화해 레이더 기지와 미사일 기지를 건설했다. 미국이 중국의 남중국해 불법 점유를 막고자 2015년 시작한 다국적 ‘항행의 자유 작전’에도 적극 참여 중이고, 국방 예산 2배 증액도 진행 중이다.
국내 정치적으로 일본은 아베 내각이 2014년 평화헌법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 방침을 발표함으로써 해외 군사행동을 합법화한 데 이어, 2022년엔 기시다 내각이 전후 77년 만에 3대 안보 문서를 개정해 적국에 대한 선제공격을 포함하는 ‘군사적 반격 능력’의 보유를 공식화했다. 외교적 측면에서도 일본은 2020년 중국을 포위하는 미·일·호주·인도 4국의 QUAD 결성에 앞장섰고, 2022년에는 일·호주 신안보공동선언을 통해 준동맹 수준의 안보 협력 격상에 합의했다. 2023년엔 한·미·일 안보 협력체 출범에 일조했고, 최근엔 미·일·필리핀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을 겨냥하는 3국 안보 협력 체제를 출범시켰다. 일본은 조만간 미·영·호주의 오커스(AUKUS) 활동에도 동참할 전망이다.
이처럼 일본은 NATO 같은 단일 지역 동맹체가 없는 인·태 지역에서 미국의 충실한 동맹국으로서 중국의 세력 팽창에 대항하는 자유민주 진영 국가들을 상호 연결하는 전방위 연결자 역할을 수행 중이다. 단지 외교적 역할에 그치지 않고, 대중국 긴장이 고조된 남중국해에서 보란 듯이 미국과 합동 해상 훈련을 벌이고 중국의 대만 침공 시 참전을 공언하는 등 군사적 관여도 확대 중이다. 과거엔 일본의 이런 행보가 주변국의 우려를 불러오기도 했으나, 중국의 노골적 군사 위협에 직면한 미국, 호주, 동남아 어디에도 그런 우려의 조짐은 없고 환영과 지지 분위기 속에 역할을 확대해 가고 있다. 이를 비판하거나 우려하는 역내 국가는 중국·러시아와 남북한 정도뿐이다.
급변하는 신냉전의 국제 질서 속에서 전방위 안보 협력 강화와 대외 군사 활동 확대를 추구해 온 일본의 이런 움직임은 한국이 보여온 대외 행보와는 대조적이다. 그 시기에 한국은 남북 관계와 북핵 문제에 몰입해 스스로 국제적 입지를 위축시키면서 국제사회의 대세와 동떨어진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를 선택했고, 북한과 중국을 의식해 중립적 모호성을 유지하려 애썼다. 대미 방위비 분담금도 일본은 1996년부터 거의 전액을 부담해 온 반면, 한국은 분담률 50%를 넘기지 않으려 노심초사했다. 미·중 대결이 시작된 이래 인·태 지역 도처에 거미줄 같은 안보 협력망이 형성됐지만, 그 속에서 한국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존재하는 한·미·일 안보 협력도 중국 눈치 살피느라 다분히 외교적 수사 차원에 머물고 있다.
이러다간 훗날 미·일을 주축으로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이 참여하게 될 아·태 광역 안보 협력체 형성에서 한국만 소외되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요즘 ‘한반도 천동설’이라는 자조적 용어가 국내 일각에서 유행이다. 중세 시대 사람들은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을 믿었다는데, 한국인은 아직도 우주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돈다는 환상 속에 살고 있다는 의미다. 국제사회에서 잊혀가는 북핵 문제를 지상 최대의 안보 현안이라 여기면서 그보다 한결 중요한 남중국해, 대만, 우크라이나 문제엔 철저히 무관심한 한국인의 자국 중심주의, 그건 그들이 비난하는 트럼프의 자국 중심주의와 얼마나 다를까.

조선일보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前 외교부 북핵대사
05.11 [단독] “文, 북한에 너무 양보하려 해 싱가포르 회담서 제외시켜”
트럼프 이너 서클 16명이 집필 ‘아메리카 퍼스트 접근법’ 발간

▲2018년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열린 첫 미·북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북한 김정은이 공동 합의문에 서명한 뒤 발언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DB
백악관 재입성을 노리는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대거 집필에 참여한 책 ‘미국 안보를 위한 아메리카 퍼스트 접근법(An America First Approach to U.S. National Security)’이 9일 출간됐다. 워싱턴 정가에서 사실상의 ‘트럼프 인수위원회’로 통하는 친(親)트럼프 싱크 탱크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연구소(AFPI)’가 기획한 342페이지 분량의 이 책에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철학과 방향성이 담겨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무역대표부(USTR) 대표, 릭 페리 전 에너지부 장관, 채드 울프 전 국토안보부 장관, 로버트 윌키 전 국가보훈부 장관 등 16명이 이 책의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모건 오테이거스 전 국무부 대변인은 2018~2019년 미·북 대화와 두 차례 정상회담을 “아메리카 퍼스트 외교의 성공 사례”라고 책에 적었다. “미국의 국력, 대통령의 리더십, 힘에 의한 평화, 동맹과 같이 일하지만 때론 미국이 국익에 따라 혼자 행동할 수 있다는 경고 등이 어우러진 결과”라고 했다. 오테이거스는 문재인 당시 대통령에 대해 “미국은 문 대통령의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가 원했던 것보다 더 북한에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며 “문 대통령이 너무 북한에 양보하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고의로 그를 싱가포르 회담에서 배제시켰다”고 했다.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에 대해선 “트럼프와의 개인적인 유대가 미·일 관계를 강화하고 공통된 목표를 추구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키스 켈로그 전 국가안보보좌관 대행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미래에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할지 여부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평화 협상에 참여하느냐에 연동시켜야 한다”고 했다. “영토 전부를 돌려 받지 못하는 결과를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할 수 있지만 ‘더 이상 사람이 그만 죽었으면 좋겠다’는 트럼프의 말이 우리의 생각”이라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침공당한 영토를 수복하지 않고도 평화 협정을 체결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어 “러시아가 대화에 응할 유인이 되도록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미루는 대신,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방위 공약을 설계하는 게 낫다”고 했다.
저자들은 중국을 “가장 당면한 국가 안보 위협이자 미국의 최강대국 지위를 대체하려는 곳”이라 규정했다. 울프 전 장관은 중국 학생들의 미국 비자 발급 제한, 데이터 유출이나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가 있는 틱톡 등 중국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금지 조치 등을 제안했다. 또 “국가 기간 인프라를 보호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소유한 자산에서 50마일(약 80km) 이내에 있는 부동산을 중국 국적자가 구매하는 것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했다.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는 “중국이 미국산을 수입하는 만큼만 중국산 제품을 들여와야 한다”고 했다. 책은 2016년 대선 당시 바로 정무직에 임명할 수 있는 인력이 25명에 불과했다고 전하며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1기 때의 인사 난맥상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고도 강조했다.
조선일보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05.15 한·중·일 정상회의에서도 ‘탈북민 강제 북송 중단’ 촉구를

▲조태열(왼쪽)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13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외교부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베이징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 탈북자 강제 북송 문제를 공식 제기했다. 이 문제에 대한 국내외의 우려를 전달하면서 탈북자들이 강제로 북송되지 않고 희망하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중국 측의 각별한 관심과 협조를 요청했다. 왕 부장은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 변함이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탈북자 북송 관행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예상된 반응이다. 유엔 규정상 명백한 난민을 지옥으로 내모는 중국 공산당의 반문명적 행태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다. 그럼에도 강제 북송 중단 요구는 계속해야만 한다.
지금까지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탈북자 북송 문제가 다뤄진 적이 없었다. 역대 모든 한국 정부가 중국을 자극하면 탈북자의 한국행에 필요한 협조를 받을 수 없다며 이른바 ‘조용한 외교’를 펴왔기 때문이다. 그런 결과가 작년 10월 탈북자 500~600명 기습 북송이었다. 중국 정부의 야만성 못지않게 한국 정부의 무기력도 지탄받을 수밖에 없었다. 조용한 외교도 필요할 때가 있겠지만 중국이 야만 행태를 노골화하는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최근 중국 정부는 또다시 탈북자들을 기습 북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적게는 50~60명, 많게는 100~200명이라고 한다. 작년 10월 대규모 북송을 두고 쏟아진 국제적 비판을 의식해 잠정 보류했던 강제 북송을 재개하려는 것으로 의심된다. 올해는 북·중 수교 75주년이다. 탈북자들을 김정은에게 ‘선물’로 넘기는 것이다. 앞으로도 탈북자들이 계속 북송될 가능성이 있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가진 수단은 많지 않다. 우리는 중국의 야만성을 끊임없이 지적해 중국에 부담을 지워야 한다. 이로 인해 중국이 실질적 피해를 입을 수 있도록 끈질기게 나아가야 한다. 중국은 공산당 독재 정권이지만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고, 세계와 무역해야 하는 나라다. 국제사회의 평판을 무시할 수 없다. 정부는 모든 국제회의에서 탈북자 북송 문제를 제기한다는 각오로 외교에 임했으면 한다. 이달 하순 서울에선 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린다. 과거 이 회의에선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내용이 공동성명에 들어갔다. 탈북자 강제 북송 문제가 거론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조선일보 사설
05.17 한·미·일 중심축, 한·중·일 보조축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프·러가 독일과 소통했다면 1차대전은 안 일어났을지도
지금의 최대 화약고는 대만해협… ‘도전국’ 중국과의 긴밀한 소통은 지역 평화와 번영 위해 필수
이달 말의 한중일 정상회담은 그런 의미에서 새 전략적 과제
한·미·일 협력이 우리 외교의 중심축이라면, 한·중·일 협력은 보조축이다. 미국과 중국 중에서 하나만 택할 수 없는 한국으로선, 한·미·일이 한·중·일 협력을 견인하도록 해야 한다.
북한 핵 위협을 억제하고 첨단 기술을 보호하는 포괄 안보의 핵심 기제는 한·미·일 협력이다. 그러나 경제적 상호 의존도가 높은 한·중·일 간의 협력을 배제할 수는 없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일 관계 개선을 통한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에 힘쓴 결과,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역사적 전기를 마련했다. 이젠 이를 토대로 (코로나 사태로 미뤄졌던) 한·중·일 정상회담을 재개해야 한다.
치열한 전략 경쟁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이 동조 세력을 규합해 가는 작금의 국제 정세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유럽의 상황과 유사하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중국·러시아·이란과 미국·EU·영국이 대립하고, 동북아에서 북한·중국·러시아와 한국·미국·일본이 반목하는 상황은 1차 세계대전 이전에 ‘3국 동맹’(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과 ‘3국 협상’(영국·프랑스·러시아)이 경쟁하던 것과 비슷하다.
당시 유럽의 불행이 시작된 지점은 독일이었다.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이긴 프로이센은 1871년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독일연방 내 모든 회원국을 통합해 독일제국을 세웠다. 독일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동맹을 맺었고, 이를 이탈리아로 확대해 1882년 삼국동맹(triple alliance)을 결성했다. 이는 중국이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후 동남아에 침투하고 21세기판 실크로드인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추진하며 러시아와 연대하고 이란과 협력하는 것과 유사하다.
20세기 초 영국은 패권(覇權)을 향한 독일의 야망을 간파하고 유럽 내 세력 균형 유지 전략에 돌입했다. 영국은 프랑스·러시아동맹(1894)을 기반으로 1904년 프랑스와, 1907년 러시아와 연대하여 영국·프랑스·러시아 간 삼국협상(triple entente)을 탄생시켰다. 이는 미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서 나토 핵심 동맹국을 규합하고, 아태 지역 내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의식해 미국·일본·호주·인도 간 쿼드(Quad)를 만들며, 미국·호주동맹에 영국까지 불러들여 오커스(AUKUS)를 결성한 것과 비슷하다.
20세기 초 유럽의 ‘화약고’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가 세력 다툼을 벌인 발칸반도였다. 오스트리아는 발칸의 맹주 세르비아가 군침을 흘리고 있던 보스니아를 병합해 동남부 유럽에 영향력을 확대했고, 러시아는 세르비아를 지원해 오스트리아의 야심을 저지하려 했다. 현재 대만에 대한 무력 통일 의지를 숨기지 않는 중국과, 동중국해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는 일본의 모습과 유사하다.
결국 1914년 6월 28일 세르비아 청년이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부부를 암살하자 오스트리아와 러시아가 충돌했다. 오스트리아의 동맹국인 독일은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프랑스와 러시아를 침공했다. 이를 좌시할 수 없었던 영국은 독일에 전쟁을 선포했다.
당시 발칸반도에 해당하는 것이 현재의 대만해협이다. 대만해협에 ‘변고’가 생긴다면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부부 암살 사건 못지않은 파장을 인태 지역에 몰고 올 것이다. 미일동맹은 중국에 의한 대만해협의 현상 변경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고, 한반도에 미치는 여파로 인해 한미동맹도 관여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일 1차 세계대전 전 오스트리아와 러시아가 발칸반도를 놓고 경합하는 가운데 (오스트리아 뒤에 버티고 있던) 독일이 야망 실현을 위해 이를 악용하지 않도록, 프랑스와 러시아가 독일과 ‘긴밀한’ 소통 채널을 유지했으면 어떠했을까? 독일은 (이러한 소통을 통해) 섣불리 유럽의 현상을 변경하면 독일제국의 몰락을 가져올 수 있다는 냉철한 판단을 내려, 우리 모두 세계대전을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패권국’ 미국과 동맹 관계에 있는 한국과 일본이 ‘도전국’ 중국과 긴밀한 소통 채널을 유지하는 건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필요하다. 따라서 이달 말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인 한·중·일 정상회담은 그 의미가 크다. 한·미·일 중심축을 보완하는 한·중·일 보조축이 덜컹거리지 않게 한국이 잘 관리해야 할 전략적 과제가 생겼다.
조선일보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前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05-17 60명 신분 도용해 92억원 번 北 IT노동자…美, 67억 현상금 걸었다

▲미국 국무부가 운영하는 테러정보 신고 프로그램 ‘정의에 대한 보상 (Rewards for Justice)’의 한국어 공식 계정에 16일(현지 시간) 북한 IT 근로자들의 위장취업과 관련된 제보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사진출처 미 국무부
미국 국무부가 미 회사에 위장 취업해 680만 달러(약 92억 원) 이상을 벌어들인 북한 ‘외화벌이’ 정보기술(IT) 종사자들에 대해 최대 500만 달러(약 67억 원)의 현상금을 걸고 공개 수배에 나섰다.
16일(현지 시간) 미 국무부에 따르면 한지호와 진천지, 쉬하오란이란 이름을 쓰는 이들은 60여 명의 가짜 미국인 신분을 만들어내 무려 300개 안팎의 현지 회사에 불법 취업했다. 한지호 등은 일반 기업뿐 아니라 미 정부기관 두 군데에도 최소 3차례에 걸쳐 위장 취업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 사람은 미 회사 측에 자신들이 미국에서 거주며 재택근무하는 소프트웨어·앱 개발자인 것처럼 위장했다. 하지만 미 국무부는 이들이 실제로는 탄도미사일 개발 등을 관장하는 북한 군수공업부와 연관된 ‘숙련된 IT 종사자’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의 불법 취업이 가능했던 건 미국에서 그들을 도운 현지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 법무부는 16일 “애리조나 주에 거주하는 미국인 크리스티나 채프먼(49)을 공범으로 전날 체포했다”고 밝혔다.
미 법무부에 따르면 채프먼은 2020년 10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한지호 등을 위해 미 기업과 정부기관들의 채용공고 조건에 맞는 가상 프로필을 만들었다. 운전면허증이나 사회보장카드 등 지원에 필요한 신분증도 조작했다고 한다. 수표로 지급된 임금을 불법 세탁하는 과정에도 관여했다.
이날 법무부가 공개한 기소장은 채프먼의 집을 이른바 ‘노트북 공장(laptop farm)’이라 묘사하고 있다. 가짜 미국인 수십 명의 주소지로 조작한 뒤, 각 회사에서 지급한 업무용 노트북 수십 대을 동시에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채프먼이 어떻게 북한과 연루됐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다만 그는 2020년 3월 비즈니스 플랫폼인 링크드인에서 신원 미상의 인물이 “위장 취업을 위해 미국인 보증인(face)가 되어달라”고 요청한 것을 받아들이며 범죄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지호 등이 위장 취업한 곳은 유명 기업도 적지 않다. 미 법무부는 “경제매체 포천이 선정한 미 500대 기업도 포함됐다”며 “5위 안에 드는 전국 TV네트워크와 항공 방위산업체, 실리콘밸리 기업, 자동차업체,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회사 등도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미 법무부는 채프먼 등에게 가짜 계정을 만들어 넘긴 우크라이나 국적의 올렉산드르 디덴코(27) 등 5명도 기소했다. 디덴코는 7일 폴란드에서 체포됐다. 법무부는 “북한 정부는 수 년간 핵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미 시장에 침투하려는 작전을 벌여왔다”며 “이번 사건은 IT ‘인력 사기’와 관련해 기소한 최대 규모”이라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1984년부터 테러정보 신고포상 프로그램인 ‘정의에 대한 보상’을 통해 테러나 사이버 공격 등에 대한 제보를 받고 있다. 미 대북제재 위반으로 처음 이 프로그램에 이름을 올린 건 2022년 싱가포르 국적자 궉기성(kwek kee seng)이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05.18 “한국, 文정부 때 친중 대가 치르는 중”...한일 ‘반도체 지경학’ 분석
日 지경학연구소장 “연공서열, 낮은 임금 구조부터 깨야”

▲그래픽=김의균
올 초 일본 닛케이평균이 ‘거품 경제’ 시절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우는 등 일본 경제가 장기 불황 터널에서 벗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분위기 속 일본은 반도체 등 첨단산업 육성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 부활’을 내걸고 자국 내 반도체 매출액을 2030년 15조엔으로 2020년 대비 세 배로 끌어올린다는 목표까지 세웠다.
하지만 일각에선 아직 일본 경제의 발목을 붙잡는 내부 문제들도 적잖다는 평가가 나온다. 스즈키 가즈토 도쿄대 공공정책대학원 과학기술정책 교수는 WEEKLY BIZ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일본은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이 미래 세대를 책임질 ‘핵심’이라 여기고 관련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인적 자원 부족, 낮은 임금, 연공서열 등이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말했다. 스즈키 교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이란 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지리적 환경과 경제를 중심으로 국제질서를 분석하는 일본의 ‘지경학 연구소(IOG·Institute of Geoeconomics)’ 연구소장으로 일본 내 최고 지경학 권위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스즈키 카즈토 도쿄대 교수/일본 지경학연구소 제공
◇“‘연공서열’ ‘낮은 임금’에 발목 잡혀”
-일본은 최근 반도체 산업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 같다.
“반도체는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디지털경제 등 모든 미래 산업에 필요한 핵심 기술이다. (수퍼컴퓨터를 뛰어넘는 초고속 연산능력을 가진) 양자컴퓨터가 기존 컴퓨터들을 대체하는 날이 올 때, 이를 구현할 수 있는 반도체를 만들지 못하면 기술 발전에 뒤처지고, 다른 나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 수소 연료 등 에너지 산업에도 집중하고 있는데, 이 역시 모두 다음 세대를 위한 기술력과 산업적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다.”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최대 과제는.
“투자 자본과 인적 자원 확보다.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고령화,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 비록 최근 반도체가 주류 산업으로 떠오르면서 젊은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적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게다가 일본은 임금 수준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한참 못 미칠 정도로 낮고, 최근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다른 선진국과의 실질 임금 격차)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안팎으로 인재 확보가 어려워진 셈이다.”
-임금 외 다른 문제가 있다면.
“연공서열도 변화가 필요하다. 일본은 1950년대부터 근속 연수가 길수록 임금을 많이 주는 연공서열을 도입했고, 고속성장 속에서 기업들은 이를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조직을 관리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연공서열 탓에 젊은 사람들은 능력이 있어도 돈을 적게 받을 수밖에 없는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고, 이는 유능한 인재 확보가 핵심인 첨단 산업에는 치명적이다. 일부 스타트업들은 성과제를 도입하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안정성을 중시하는 대기업들은 아직 주저하고 있다. 일본 경제 버블 붕괴 당시에도 기업들은 이를 바꾸지 못했는데, 아직도 달라지지 못하고 있다.”

▲그래픽=김의균
◇일본도 미·중 갈등 속 고민 깊어
-미·중 갈등이 격화하는데 일본의 선택은.
“미국은 중국이 첨단 반도체를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할 여지가 있다고 보고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에 나섰고, 일본에도 일찍이 동참을 요구해왔다. 일본은 이런 주장을 수용했지만, 만약 미국이 압박 수위를 계속 높여 간다면 미국과 독립 노선을 걸을 가능성도 있다. 일본은 이념적·군사적으로는 미국과 같은 편이지만, 경제적으로는 노선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현실적으로 미국과 다른 노선은 어렵지 않나.
“개인적 의견이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불가피하다면 가능하다고 본다. 일본은 반도체 산업 육성에 힘을 쓰고 있는데, 미국의 대중국 수출 통제에 계속 동참하다 보면 성장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된다면 관세 인상 등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설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일본은 우리의 이익을 위해 미국을 제외하고서라도 뜻이 맞는 국가들과 자유 무역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한국, 친중(親中) 대가 치르는 중”
-한국의 지경학에 대해 평가하자면.
“한국 경제는 지난 정부의 ‘친중’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본다.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절엔 친중 정책에 치우쳤다는 평가가 많다. 중국이 거대한 내수시장을 갖춘 경제 대국이란 점을 감안하면 당시 정책이 이해는 되지만, 이에 대한 리스크는 고려하지 못했다고 본다. 한국은 반도체가 주력 산업인데, (중국에 너무 의존적이었다가) 지금처럼 미·중 갈등으로 인해 대중국 수출이 어려워지면 타격이 커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도 현 정부는 지경학적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현대차,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들을 앞세워 미국에 공장을 짓는 등 투자를 하고 있다. 뒤늦게라도 리스크를 수습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한국과 일본의 협력 방안은.
“한국과 일본은 산업 구조에서 상호 보완적인 부분도 많다. 일본은 제조 장비, 화학 원료를 잘 만드는 반면, 한국은 제품 생산, 디자인, 연구·개발에 장점이 있다. 협력했을 때 엄청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삼성이 일본 요코하마에 연구 거점을 만들어 일본 기업과 힘을 합쳐 칩렛(다양한 기능의 반도체를 하나로 결합한 반도체)을 생산하는 것과 같은 사례가 늘어나야 한다. 한국과 일본이 손잡고 하나의 경제 공동체로 세계 시장에 접근했으면 한다.”
조선일보 채제우 기자
05.22 중국·러시아 눈치 보는 ‘글로벌 중추 국가’
대만 총통 취임식은 외면하고 푸틴 취임식엔 참석한 정부
자유민주 진영과 계속 엇박자… 중·러 환심 사도 결국엔 毒 될 것

▲지난 19일 라이칭더 대만 신임 총통이 취임식 대표단 환영 리셉션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틀 전 라이칭더(賴淸德) 대만 총통 취임식에 한국 정부는 경축 사절단을 파견하지 않았다. 폼페이오, 아미티지 등 전직 장·차관으로 사절단을 꾸린 미국을 비롯해 호주, 캐나다, 일본, 유럽연합 등 서방 전체가 고위급 대표단을 타이베이에 보냈다. 총 51국이었다. 대만 전체 수교국(12국)의 4배가 넘는다. 이들은 별도의 축하 메시지도 냈다. 서울에선 아무 메시지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윤석열 정부는 외국 정상 취임식에 어김없이 경축 특사단을 파견했다. 출범 첫해 필리핀을 시작으로 콜롬비아, 케냐, 브라질, 나이지리아, 파라과이에 이어 지난 1월엔 과테말라에 사절단을 보냈다. 권성동, 정진석, 원희룡 같은 유력 정치인들이 단장을 맡았다. 지구 반대편의 경조사까지 살뜰히 챙겨 온 정부가 가장 가까이 있는 6위 교역국의 경사는 외면했다. 외교부는 “관례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해온대로 중국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겠다는 뜻이다. 대만은 윤 대통령 취임식에도 초청받지 못했다.
대만은 1949년 1월 신생 독립국이던 대한민국을 가장 먼저 국가로 승인하고 수교했다. 북한이 남침한 건 이듬해 6월이다. 유엔 안보리는 즉각 유엔군 한국 파병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중화민국(대만), 소련이었다. 소련이 표결에 불참한 것도 천운이지만 대만이 없었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과거 인연은 차치하고서라도 대만은 한국과 자유민주주의, 인권,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다. 외교 용어로 ‘유사 입장국’(like-minded group)이다. 이런 나라들이 50개쯤 된다. 익숙한 말로 ‘자유민주 진영’이다. 이들이 대만 총통 취임식에 대표단을 보냈다. 한국만 이 대열에서 이탈했다. 대만은 섭섭하고 유사 입장국들은 의아했을 것이다. 작년과 재작년 유엔 총회 제3위원회에서 신장·위구르 인권 침해를 규탄하는 성명이 나왔을 때가 연상된다. 그때도 동참한 나라가 50~51개였고 한국만 발을 뺐다. 모두 이번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런 일은 생각보다 자주 반복되고 있다. 2주 전 모스크바에선 푸틴 대통령의 5번째 취임식이 열렸다. 크렘린궁은 각국 대사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자유 민주 진영, 즉 유사 입장국 대부분은 취임식을 보이콧했다. 이웃국가를 침략하고 정적을 제거한 독재자가 영구 집권을 자축하는 자리라고 봤다.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연대의 의미도 담았다. 한국 정부 생각은 달랐다. 이도훈 주러시아 대사를 참석시켰다. 프랑스 대사도 함께라 민망함은 좀 덜했을지 모르겠다.
임기 초반의 단선적 외교를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일 수 있다. 그런 것이면 다행이겠다. 대만 총통 취임식 1주일 전 베이징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 열렸다. 중국은 “대만 문제를 신중히 처리하길 희망한다”고 했다. 중국을 설득해 이달 안에 한중일 정상회의를 성사시켜야 하는 정부로선 흘려듣기 어려웠을 것이다. 얼마 전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활동하던 한국인 선교사를 간첩 혐의로 구금했다. 중국을 겁내는 공중증(恐中症)과 ‘러시아 포비아’는 한국 외교의 고질병이다.
권위주의 정권을 상대할 때 중요한 건 유사 입장국의 단합된 언행이다. 한국은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이자 ‘글로벌 중추국가’를 자처하는 나라다. 안보리를 능멸한 푸틴 대관식에서 손뼉치고 대만 총통 취임식을 모른 척 해선 곤란하다. 당장 중국·러시아의 환심을 살 순 있겠지만 결국엔 우리 외교에 독(毒)이 될 것이다. 9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은 톈안먼 망루에 올라 중국 전승절 열병식을 지켜봤다. 자유민주 진영 전체가 보이콧한 행사였다. 중국의 화답은 무자비한 사드 보복이었다.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도 똑같은 잘못을 반복한다면 ‘외교 지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이용수 논설위원
05.22 “北 비핵화 어려워… 한미 핵공유·전술핵 진솔한 논의하자”
[제15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美 대선 이후 한미·대북관계 전문가들 채텀하우스 토론회
제15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개막을 하루 앞둔 21일, 사전 행사로 마련된 채텀하우스 토론회에서 한·미 전문가들은 미 대선 이후 양국 관계와 미·중 경쟁 속 한국의 선택을 놓고 허심탄회한 의견을 나눴다. 이날 토론은 양국의 전현직 정치인과 정부 당국자,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브루킹스연구소 등의 소속 한반도 전문가 25명이 참여해 3시간 동안 진행됐다.
◇”北 비핵화 전망 어두워… 韓 자력 대응 준비해야”
오전에 열린 외교·안보 분야 토론회의 공통 화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된다면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였다. 참석자 대부분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되더라도 미·북 대화가 즉각 재개될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미국 측 참석자는 “어떤 대통령이든 새로 취임하면 첫 100일 동안 완수할 과제를 선정하는데 북한이 지금부터 11월 미국 대선까지 도발 수위를 매우 높이지 않는 이상 거기에 북한 문제가 들어가진 않을 것”이라며 “북한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또는 이란과 (미국의 관심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참석자는 “트럼프가 김정은과 대화하려 하지 않을 수 있지만, 김정은이 트럼프와 대화를 원하지 않을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며 “김정은은 하노이 회담에서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고, 러시아와 밀착해 대량살상무기 능력을 진작하고 싶어 할 수 있다”고 했다.
참석자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인한 중동의 혼란 등이 북한에 유리한 정세를 조성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 측 참석자는 “북한의 핵무기고가 현재보다 훨씬 확대될 것에 대비해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강화하고, 한·미 간에 전술핵 재배치나 핵 공유 등도 진솔하게 논의해야 한다”며 “한국의 핵무장까진 아니더라도 한국이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등을 할 수 있도록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하는 문제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한국이 원전 연료인 저농축 우라늄의 33%를 러시아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공급망이 매우 불안정한데,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측 참석자는 “북한이 1950년대 이후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며 “북한이 핵무기를 100개 이상 갖게 되고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다고 하면 (미국의 확장 억제를 공약한) 워싱턴 선언이 그런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시진핑이 (대만 탈환 등) 무언가를 하기 전에 김정은이 어떤 행동을 취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주한 미군은 중국을 더 의식해야 하고, 북한이 공격해 오더라도 대만 전쟁에 대비해 (개입을) 보류해야 할 수 있다”며 “(유사시) 한국은 북한에 스스로 대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사드 보복, 지금이라면 美 대응 달랐을 것”
오후 경제 안보 세션에서는 미·중 경쟁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 등을 논의했다. 한 참석자는 “미국이 중국의 틱톡을 금지한 것은 잘한 일”이라며 “한국에서도 중국 플랫폼 회사들이 영향력을 넓히고 있는데 한국 사용자 관련 정보가 중국으로 넘어가는 건 시간문제일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미국은 어떻게 중국과 경쟁해야 하는가와 관련해 중국의 기술 발전을 저하시켜야 한다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다”면서도 “하지만 한국, 일본, 대만 전문가들과 대화해 보면 아직 이 목표에 완전히 동의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한국 측 참석자는 “2016년 사드 배치 이후에 중국은 많은 한국 기업들에 보복을 했다”면서 당시 미국의 대응이 없었던 점을 지적했다. 그러자 미국 측 참석자는 “2016년의 미국은 경제적 강압을 이용한 중국의 공격적인 압박을 깨달아가는 과정에 있었다”며 “만약 2024년에 중국이 한국에 비슷한 행동을 한다면 미국의 대응은 완전히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채텀하우스 룰
채텀하우스는 영국 왕립 국제문제연구소의 별칭이다. 세계 최정상급 외교·안보 분야 싱크탱크인 채텀하우스에선 1927년부터 전문가들의 자유롭고 속 깊은 토론을 위해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 비밀에 부치고 있다. 이 규칙을 ‘채텀하우스 룰’이라고 부른다.
05-23 한중일 정상회의 제1 과제는 ‘정례화’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국제정치학
한·중·일 3국 정상회의가 오는 26∼27일 서울에서 열린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고 경제 협력 및 관계 개선, 초국적 협력 등의 강화를 목적으로 2008년 시작된 연례 정상회의다. 중국이 한미동맹 및 한미일 공조 강화에 대한 거부감으로 회의 재개에 소극적이었지만, 주최국 한국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5년 만의 재개에 성공했다.
한중일의 경제 규모 및 동북아 정세 등을 고려할 때 3국 정상회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세 나라는 전 세계 인구와 GDP, 교역액 면에서 각각 5분의 1을 차지할 만큼 강력한 국제적 영향력도 갖고 있지만, 과거사 인식과 체제 상이성, 북핵에 대한 시각 차이 등 이해관계 대립으로 협력이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3국 간 대화와 협력이 동북아 지역은 물론 세계의 평화·안정·번영에도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회의는 기본적으로는 상호 협력 필요성과 시너지 효과 창출에는 공감하지만, 체제 및 정치·안보 문제에 대한 공감대 확보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욱이 미·중 갈등의 심화와 북핵·미사일 준동에 따른 한미동맹 및 한미일 공조 강화 등 정치·안보 문제가 부상하면, 3국 협력은 구심점을 잃고 표류할 수밖에 없는 선천적 약점도 안고 있다. 이는 높은 수준의 합의 도출과 3국 협력의 질적인 도약을 방해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성과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제도적으로는 2011년, 3국 협력 사무국(TCS)을 서울에 설치해 정례화의 기초를 마련했고, 3국 간 외교·통상·교통물류·문화·보건·환경·스포츠 장관회의 등 21개의 회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경제개발이나 지속가능 개발 및 투자·무역, 과학 교류, 문화·인적 교류 등 분야의 다양한 협력 프로그램도 개발해 3국 협력의 당위성과 지속적 동기 부여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제도적 자율성 확보가 어려운 것은 협력 우선순위의 인식차 때문이다. 한국은 한반도의 안정과 북핵 문제 해결을 중심으로 동북아 지역 협력에 목표를 두지만, 중국은 미국과의 패권 경쟁을 위한 지역 협력과 해양력 강화가 우선이다. 일본은 역내 주도권 확보를 위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다자 협력과 ‘동아시아’ 협력을 더 중시한다. 한국은 여전히 북핵 위협 타개가 최우선이나, 최근 국제 정세 변화 속에서 중국은 다자무역 체제의 지속과 공급망 및 산업 협력을,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통한 중국 견제를 강조한다.
이 상황에서 3국은 새로운 ‘관리 방안’을 찾아야 한다. 어떤 상황에도 회의를 여는 정례화가 급선무다. 실질적 정례화를 통해 경제·사회·문화 교류 확대는 물론 대규모 재난 및 인도적 구호, 기후변화, 감염병 예방, 국제 대테러 공조, 에너지 안보 등 초국적 연성 안보 분야의 협력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역사·영토 문제 및 지정학적 경쟁 등 갈등 요소가 해소되기 전에는 본질적 협력이 어렵다는 인식도 극복해야 한다.
특히, 북핵은 3자 간의 직접 문제가 아님에도 압박성이 크다. 북핵 문제에 대한 방향성을 잡지 못하면 3국 간에 공유된 비전을 마련하기 어렵고, 협력의 지속성 보장도 어렵다. 어렵게 재개되는 회의인 만큼 확고한 정례화 방안과 함께 3국 협력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새로운 기준점을 찾는 논의를 기대한다.
문화일보
05-24 韓, 10년만에 유엔 안보리 의장국 맡아…“北도발 긴밀 대응할 것”

▲황준국 주유엔 한국대사가 2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주유엔 한국대표부에서 “앞으로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으로서 북한 이슈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사이버 안보에 대한 국제적 논의에 앞장서겠다”고 밝히고 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다음달부터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의장국을 맡는 한국이 북한 이슈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북한 등과 관련된 사이버 테러를 안보리에서 적극 다루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황준국 주유엔 한국대사는 2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주유엔 한국대표부에서 간담회를 갖고 “북한이 핵 위협을 지속하는 만큼 의장국으로서 언제든 관련 회의를 소집할 것”이라며 “올해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공식 회의 개최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안보리에선 2017년 이후 6년 만에 북한 인권 회의가 열린 바 있다.
안보리 선출직 비상임 이사국인 한국이 의장국을 맡는 건 2014년 5월 이후 10년 만이다. 안보리 의장국은 15개 이사국이 나라 이름의 알파벳 순서대로 한달씩 돌아가며 맡는다. 의장국은 안보리 공식회의는 물론 비공식 협의도 주재하며, 회의 소집에 대한 절차적 권한을 갖는다. 관례에 따라 중요 이슈를 정해 시그니처 이벤트(대표 행사)를 열 수도 있다.
한국은 의장국으로서 ‘사이버 안보’를 주제로 고위급 공개토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유엔을 직접 방문해 회의를 주재할 계획이다. 황 대사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 자금 확보를 위해 가상화폐 탈취 등을 적극 활용하고 있어 사이버 안보 이슈는 북핵 문제와도 연계된다”며 “사이버 테러 상황에서 각국의 자위권을 어떻게 인정할지 등 논의할 내용이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해체된 유엔 대북제재위 산하 전문가패널에 대해서는 “미국과 일본 등과 긴밀하게 대체 매커니즘에 대한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05-25 [단독]“트럼프 ‘그×는 기회 생기면 날 찌를 것’… 김정은에 불신 드러내”
트럼프가 발탁한 前대사, 대화 공개
“차타고 가던중 물었더니 속내 밝혀”
친서 등 브로맨스 과시와 다른 모습
싱가포르 1차 북미회담 후 대화인듯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열렸던 북미 정상회담 당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동아일보DB
“그 X는 기회가 생기면 내 배를 칼로 찌를 것이다(That fxxker would knife me in the stomach if he had the chance).”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시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다는 전언이 나왔다. 고든 손들런드 전 유럽연합(EU) 주재 미국 대사는 23일(현지 시간)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나눈 대화를 이같이 공개했다.
이는 올 11월 대선을 앞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세에서 자주 김 위원장을 “똑똑하고 터프한 친구”라고 치켜세운 모습과 다르다.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갖고 친서 27통을 주고받으며 ‘브로맨스’를 과시했지만, 속내는 불신이 가득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손들런드 전 대사는 FP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중에 ‘말도 안 되는 얘기 말고(Cut the bullshit), 김(위원장)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고 주장했다.
손들런드 전 대사는 이 대화가 언제 이뤄졌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호텔 사업가였던 그를 EU 대사로 발탁한 시점이 2018년 7월인 걸 감안하면, 그해 6월 열린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일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거친 설전을 벌인 이력이 있다. 2017년 트럼프 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꼬마 로켓맨’ ‘병든 강아지(sick puppy)’라 폄하했으며, 김 위원장 역시 ‘늙다리’ ‘겁먹은 개’ ‘불망나니’라고 맞섰다. 하지만 2018년 친서 외교가 시작된 뒤 분위기는 반전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김 위원장을 “터프하고 스마트한 좋은 협상가”라고 불렀다.
손들런드 전 대사는 김 위원장이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에 대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칭찬을 “벨벳 장갑을 낀 미치광이 이론(Madman theory)”이라고 설명했다. 리처드 닉슨 전 미 대통령의 외교전략 중 하나인 미치광이 이론은 자신을 비이성적 인물로 꾸며 상대가 예측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벨벳 장갑’은 상대에게 격식을 갖춘 화려하고 부드러운 수사(修辭)를 일컫는다.
또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푸틴 등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며 “그들을 공개 칭찬하는 건 역발상 전략(contrarian strategy)”이라고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탈퇴 언급 역시 “쇼비즈니스일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대선 유세 등에서 북한을 거의 빼놓지 않고 거론하고 있다. 그는 20일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 재판에 출석한 뒤엔 “북한은 점점 기운이 넘친다(frisky)”며 “나는 그(김 위원장)와 잘 지냈지만 현 정부는 이름도 모른다”고 했다. 이에 재집권하면 북-미 대화 재개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 측근들은 북한이 대화에 나서지 않으면 강한 압박을 가할 것이란 경고를 보내고 있다. 트럼프 2기 국무장관 후보로 꼽히는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3일 “미국이 단호하게 압박하지 않으면 김정은 정권은 한국 등 동맹국을 계속 위협한다”며 “미국이나 동맹을 공격하면 (북한 정권은) 최후를 맞을 것”이라고 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05.27 중국, '한반도 비핵화' 원칙이라도 확인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중정상회담에서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와 악수 뒤 자리를 권하고 있다./연합뉴스
2019년 12월 이후 4년 5개월 만에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 공동선언 초안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공통 목표로 삼는다”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한다. 초안에는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을 위해서는 대화와 외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이행이 중요하다”는 문구도 포함됐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실무자들이 초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이 안보리 결의를 위반했을 경우 제재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는 사안에 있어선 반대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 중국의 리창 총리가 참석하는 27일 3국 정상회의를 통해 공동선언 최종 문안이 확정된다.
현재 한국에는 아무런 핵무기가 없다. 따라서 북한과 한국을 모두 겨냥하는 듯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는 정확한 표현도 아니다. ‘북한 비핵화’가 맞는 말이지만,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양비론에 가까운 표현을 써왔다. 2019년 마지막으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당시 리커창 총리는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 동아시아의 항구적 평화가 3국 공동의 목표임을 재천명했다”고 말했다. 국제 사회가 요구하는 상식 수준의 언급이었다.
그러나 지난 4년 사이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중국의 북한 핵에 대한 태도가 크게 후퇴했다. 중국은 2021년 러시아와 함께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완화 결의안을 제출하더니, 이제는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처럼 노골적으로 안보리 결의를 위반해도 제재에 반대하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가 무기를 거래하고 러시아는 유엔의 대북 제재 이행을 감시하는 전문가 패널의 활동을 15년 만에 중지시켰다.
현재 북한은 45기 이상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전략 및 전술핵을 탑재할 수 있는 미사일이나 잠수함의 성능을 계속 향상시키고 있다. 유엔 안보리 이사국인 중국이 대북 제재에 손을 놓자 최소한의 눈치를 볼 것도 없어진 상황이다. 여기서 중국이 한·일과 함께 한반도 비핵화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의 이행을 약속한다면 의미 있는 행동이 될 수 있다. 중국이 한·일과의 실질적 협력을 원한다면 미흡한 수준이지만 ‘한반도 비핵화’와 유엔 결의 이행이라는 기본 중의 기본으로 돌아와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5.27 다시 동북아시아를 생각한다
14년 전 제주서 한일중 정상회의… 그때 구호도 "We are One"
하나의 동북아, 오랜 꿈이지만 현실은 끔찍했던 근현대사
6·25 이후 평화 유지했지만 성찰·반성 아닌 미국 힘 덕분
5년 만의 한중일 정상회의… 이제는 매년 대화·협력해야
2010년 5월 말, 제주도의 날씨는 싱그럽고 아름다웠다. 그곳에서 제3차 한일중 3국 정상회의가 열렸다. 회의 둘째 날 ‘3국 비즈니스 서미트’ 연설에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총리는 벽에 걸린 ‘We are one’이라는 현수막을 손으로 가리키며 세 나라의 우애(fraternity)와 동아시아 공동체의 이상을 호소했다. 그의 조부인 전 총리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郎)는 하나의 유럽을 제창한 쿠덴호페 칼레르기(R. N. Coudenhove-Kalergi)의 정신적 후예였다.
‘하나의 동북아시아’, 삼국의 오랜 꿈이다. 세 나라는 모두 벼농사를 짓고, 젓가락을 쓴다. 한자와 유교, 불교라는 문화유산을 공유한다. 외모만 보아서는 국적을 가릴 수 없다. 이른바 ‘동문동종(同文同種)’이다. 지정학적으로는 영원히 이사 갈 수 없는 이웃들이다. 말 그대로 운명공동체다.
하지만 세 나라 사이에 벌어진 근현대사는 끔찍했다. 1894년 청일전쟁 이래 1950년 6·25전쟁까지 동북아의 대지는 세 나라 국민의 피로 적셔졌다. 일본은 1904년 러일전쟁에 이어 조선을 식민지화하고, 중일전쟁을 일으켰다. 중국은 6·25전쟁에 135만의 병력을 보냈다. 삼국 간에는 그 상처와 원한의 강이 여전히 도도히 흐르고 있다.
하지만 하나의 아시아에 대한 열망도 작지 않았다. 일본의 대표적 근대 사상가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김옥균 등 한국 개화파를 지원했다. 동양 3국이 합심해 서구 제국주의에 대항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유민권주의자 미야자키 도텐(宮崎滔天)은 쑨원(孫文)의 중국 혁명에 헌신했다. 쑨원도 대아시아주의를 외쳤다. 1924년 일본 고베(神戸)고등여자학교에서 그는 중‧일이 함께 서구의 패도를 물리치고, 아시아의 왕도를 회복하자고 호소했다. 김옥균은 후쿠자와에게 동조해 동양 3국이 단결하자는 삼화주의(三和主義)를 주창했다.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윤치호는 황인종의 승리를 기뻐했다.
하지만 일본과 중국의 아시아주의는 쉽게 자국 제일주의나 대국주의로 변질되었다.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후쿠자와는 유명한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을 주장했다. 중국과 조선에 더 이상 희망이 없으니, 일본은 서구의 일원이 되고 두 나라를 희생양으로 삼자는 것이었다. 대동아공영권 이념은 그냥 가짜였다. 영‧미에 대항해 아시아를 해방한다고 했지만, 실은 “동아의 여러 민족의 단물을 빠는 것”이었다. 쑨원도 조공을 받던 옛 중국을 자랑스러워했고, 한국은 잃어버린 영토로 생각했다. 안중근은 한때 일본의 아시아주의를 믿었다. 그 믿음이 무너지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동양 평화를 위하여 결행”했다고 천명했다. 사형을 앞두고는 “앞으로 한일 두 나라가 화합하여 동양 평화에 이바지하기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다.
6·25전쟁 뒤 지난 70여 년간 동북아시아는 평화를 지켰다. 하지만 유럽처럼 역사를 철저히 성찰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미국의 강력한 힘 덕분이었다. 일본에서는 대동아공영권의 이념이 부활했다. 자유주의 사관에 따르면,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침략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자학일 뿐이다.”(石原愼太郞, 전 도쿄도지사) 1985년 이래 다수의 일본 총리들은 태평양전쟁 전범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고 있다. 중국은 이런 일본을 비난한다. 하지만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했다.
지금 중국의 꿈은 세계 패권이다. 그 구상이 인류 운명 공동체(2012), 아시아 운명 공동체(2015), 중화민족 공동체(2017)의 비전에 담겼다. 문제는 그 질서가 화이 체제적 중화사상 위에 서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국제 질서는 모든 나라가 평등한 베스트팔렌 체제(Westphalian system)다. 하지만 중화 체제는 위계적이다. 사드 위기를 겪으며, 한국은 그 진상을 똑똑히 목격했다. 중국은 생각이 다르면 ‘공격성과 강압(coercion)’으로 굴복시키려 한다.
오늘날 ‘하나의 동북아시아’를 가로막는 첫 번째 장애는 왜곡된 역사 인식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 긴장은 문명(civilization)과 정치체제를 둘러싼 대립이다. 현대 중국을 지탱하는 두 기둥인 중화주의에는 평등이, 공산주의에는 자유가 결여되어 있다. 그냥 ‘셰셰‘하면 끝날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나라는 대화를 이어가고 협력해야 한다. 신냉전의 세계가 점차 2차대전 발발 직전인 1930년대를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제9차 한중일 3국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4년 5개월 만이다. 이 회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내년은 물론 해마다 열려야 한다. 그런 노력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값진 헌신이다.
조선일보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05-27 한중 채널 ‘사드 前 상태 복원’ 관건은 中 진정성이다
한·일·중 3국 정상회의가 4년5개월 만에 27일 서울에서 열린 것은 늦었지만 바람직한 일이다. 미중 대결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글로벌 정세 변화에도 불구하고 3국이 머리를 맞대야 할 과제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중 관계는 3국은 물론 미중 관계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핵심 관계’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리창 중국 총리의 26일 회담이 3국 회의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다.
윤 대통령과 리 총리가 양국의 외교 및 통상 당국 협의체 복원에 합의함에 따라 일단 양국 관계의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2+2 외교안보 대화’ 신설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외교부 차관과 국방부 국장 레벨이긴 하지만, 경제 관계에 치중했던 양국 관계에서 실질적 안보 대화의 중요성을 인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2011년 이후 열리지 않았던 투자협력위원회는 장관급 협의체로 재가동되며, 공급망 문제를 다룰 수출통제 대화체도 만들어진다. 중국의 사드 보복 사태 후 중단된 자유무역협정(FTA) 2단계 협상도 재개된다. 대화 기구 가동은 중국 측이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향후 중국의 자세가 더욱 주목된다.
1992년 수교 후 정경분리 원칙을 지키면서 급속히 발전해온 한중 관계는 2016년 급랭했다. 시진핑 주석은 2013년 서울을 평양에 앞서 방문할 만큼 한국을 중시했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 사드 배치 후 표변했다. 이런 양국 관계의 정상화는 물론, 글로벌 공급망·기술 경쟁이 보여주듯 안보와 경제가 통합되면서 새로운 관계 설정이 더욱 시급해진 상황이다. 한중 관계의 미래는 중국의 진정성에 달렸다. 중국은 여전히 한한령(限韓令)을 풀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 핵무기 개발을 사실상 두둔하며 유엔 제재를 방해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리 총리에게 “중국이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평화의 보루 역할을 해 달라”고 주문한 배경이다. 시 주석 답방도 중요한 시금석이다.
문화일보 사설
05-27 한일중 FTA협상 가속·지식재산 성명 채택… 경제협력 복원 본격화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한·일·중 정상회의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리창 중국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3국 공동선언문 발표
한중 FTA 2단계협상 재개
한일은 수소협력대화 출범
지식재산 활용 10년 비전
공동성명 부속문서로 채택
기후변화·보건·재난문제 등
국민체감할 실질협력 확대

한·일·중 3국은 ‘3국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가속화’에 공감대를 보이는 등 3국 국민의 생활 수준 및 삶의 질 제고를 위한 경제 협력을 획기적으로 증진하기로 합의했다. ‘경제·민생’ 협력 강화에 주안점을 둔 3국은 ‘6대 분야’에 걸쳐 3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으며 미래지향적인 실질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7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3국 정상회의 모두발언에서 “3국의 협력을 통해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 생활 수준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세 나라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실질 협력방안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3국 정상 간 협의를 통해 경제·통상과 관련한 가능한 모든 합의를 도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경제적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3국은 특히 공동선언문에 ‘3국 FTA 협상 가속화에 공감대’라는 합의를 이뤘다. 윤 대통령은 전날에도 한·일, 한·중 정상회의를 열고 상호 경제 협력을 약속한 바 있다. 한·중 양국은 FTA 2단계 협상을 재개하기로 하고, 올 하반기 양국 간 공급망 협력 조정 협의체를 가동하기로 합의했다. 한·중 투자협력위원회도 13년 만에 재개한다. 내달 중 고위급 외교안보대화도 처음 신설한다. 한·일 양국은 ‘한·일 수소협력대화’를 내달 중순 출범시키기로 했다. 양국 간 글로벌 수소공급망을 확대하는 취지다. 또 양국 정상은 최근 논란이 된 라인 야후 지분 매각 논란과 관련해 일본 총무성의 최근 네이버에 대한 행정 지도가 라인 야후 지분 매각 요구와는 관련이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3국은 향후 10년을 대비한 중·장기적 합의도 내놨다. 3국은 ‘3국 지식재산 협력 10년 비전에 관한 공동성명’을 부속문서로 채택, 산업·기술 융합과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예상되는 향후 10년을 대비해 지식재산 창출·활용 촉진 및 보호를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에 더해 ‘미래세대 간 교류’를 중점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3국은 2030년까지 3국 간 인적 교류 4000만 명 달성을 목표치로 설정했다. 이를 위해 대표적 인적교류 프로그램인 ‘캠퍼스 아시아’(CAMPUS Asia) 사업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한·일·중 정상은 이번 회의에서 △기후변화 대응 협력을 통한 지속 가능한 발전 도모 △보건 및 고령화 대응 협력 △과학기술 디지털 전환 협력 △재난 및 안전 협력 등 6대 분야에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3국 정상은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서는 공동선언에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안정·번영이 공동이익이자 공동책임”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중국의 입장 등을 고려해 공동책임에 따른 ‘구체적 노력’에 대해서는 적시하지 않고, 3국이 각각 중요시하는 입장을 공동선언문에 기술하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일보 손기은·김규태 기자
05-27 “김정은, 러-우크라 전쟁 종범… 국제법정 세워야”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이 지난 24일 그가 명예회장으로 봉직하는 서울 마포구 한국유니세프빌딩 내 집무실에서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하면서 ICC의 전범 체포 사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 송상현 前 국제형사재판소장
北, 포탄·KN-23 등 러에 수출
우크라 현장조사 때 증거확보
증거따라 金, 공동정범 될수도
체포영장 땐 외교적 입지 축소
文정권 탈북어민 강제 북송은
ICC규정 ‘반인도적 범죄’ 해당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이 “블라디미르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주범이라면 김정은은 종범”이라고 말했다. 송 전 소장은 지난 24일 그가 명예회장으로 봉직하는 서울 마포구 한국유니세프빌딩 집무실에서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전쟁 지원과 기여가 확실하고 충분한 증거가 확보된 만큼 김정은을 전범으로 국제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ICC는 전쟁 등 국제범죄를 범한 개인을 체포·기소·심리·처벌하는 상설 기관으로, 유엔 외교회의에서 채택된 로마규정에 의해 2002년 설립됐다. 송 전 소장은 아시아인 중 최초로 소장직(2009∼2015년)을 수행했다. 독립운동가 송진우의 손자인 송 전 소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은사다.
―ICC는 국가 간 법적 분쟁을 취급하는 국제사법재판소(ICJ)와는 다르다고 알고 있습니다. ICC의 역할과 기능을 좀 더 설명해 주시죠.
“ICC가 관할하는 범죄는 4가지입니다. 전쟁범죄, 집단학살, 침략범죄, 반인도 범죄.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 개인을 국제 법정에 세워 단죄하는 거죠.”
―미국은 협약에 서명했다가 이를 철회했어요.
“미국이 협약에 서명했다가 철회하면서 영어에 없는 단어를 새로 만들었어요. ‘unsign’이란 말입니다. 미국엔 예외주의 같은 게 좀 있습니다. 우월 의식, 우월 콤플렉스도 있고요.”
―북한이 러시아에 포탄뿐 아니라,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단거리 탄도미사일 KN-23을 수출했다고 합니다.
“북한의 대러시아 무기 제공은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 떨어진 폭탄 파편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확인됐습니다. 북한 표기식 한글이 쓰여 있었죠. 러시아는 전쟁범죄를 저지른 것이고, 포탄과 무기가 모자라는 판에 북한이 병참 위기를 해결해준 거죠.”
―우크라이나는 ICC 회원국이 아닌데 수사팀들의 조사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로마규정에 회원국이 아니라도 해당 정부가 특정 사건에 대한 검증을 받겠다고 ‘수락(acceptance)’하면 이는 협약 비준과 똑같은 효과가 있어서, ICC 검찰 수사관들이 현장을 다니면서 조사할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수락한 거죠. 그래서 수사팀이 하르키우 지역에 들어가 전쟁범죄와 관련한 직접 증거를 수집할 수 있었던 거죠. 이후 북한 무기가 사용된 것도 추가로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ICC가 지난해 3월 푸틴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할 수 있었군요. 하지만 푸틴의 신병 확보는 불가능한 것 아닌가요. 러시아가 ICC 회원국도 아니고요.
“푸틴이 당장은 영장 발부를 무시할 수 있겠죠. 문제는 ICC 체포영장에 시효가 없다는 겁니다. 죽을 때까지 따라다닙니다. 또 ICC 회원국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회원국은 즉시 그를 붙들어서 헤이그(ICC 본부)로 압송하게 돼 있습니다. 지난 2월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브릭스 정상회담이 열렸는데, 푸틴은 끝내 안 갔습니다. 체포영장이 푸틴의 외교 활동의 반경을 좁힌 겁니다.”
―체포영장 발부가 실질적인 ‘인신 구속’은 못 하더라도 외교 환경을 어렵게 하고 심리적 압박 효과를 거두게 한다는 거군요. ICC가 김정은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면 그 역시 지도자로서의 행세가 힘들어지겠네요.
“영장 발부만 해도 김정은은 꼼짝 못 할 겁니다. 중요한 건 김정은 체포영장 발부를 위한 이론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입니다. 법리에 맞게 이론 구성을 해야 합니다. 전쟁범죄 자체는 로마규정 제8조에 규정돼 있고 제25조 3항을 보면 전쟁범죄에 대한 다양한 종범 규정이 있습니다. 푸틴, 국방부 장관 등이 주범입니다. 그럼 무기나 탄약, 미사일을 준 김정은은 뭐냐. 해당 조항에는 범죄를 지원하는 여러 행위 유형을 ‘abet’ ‘aid’ ‘assist’, 혹은 ‘contribute’ 등으로 표현하는데, 종합적으로 보면 김정은은 최소 종범은 되겠다는 판단이 섭니다. 증거는 충분합니다. 법대 제자들과의 모임에서 이 얘기를 꺼냈더니 한 현역 재판관이 ‘김정은은 푸틴과 공동정범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증거 수집과 상황 발전에 따라 김정은이 공동정범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이 지난 24일 인터뷰를 갖기에 앞서 허민 문화일보 전임기자에게 ICC 소장 시절 에피소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푸틴에 대한 체포영장에 적시된 혐의가 ‘아동 강제 이주’입니다. 그런데 김정은에게 전쟁 공범 혐의를 씌울 수 있을까요.
“푸틴에게 적용된 혐의와는 관계없이, 김정은이 무기를 팔아 인명을 살상하는 건 명백한 사실이고 그 점을 부각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푸틴의 ‘아동 강제 이주’ 역시 전쟁범죄의 일부죠.”
―전임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11월 ‘탈북어민 강제 북송’ 사건이 있었어요. 귀순 의사를 밝힌 대한민국 국민을 강제로 돌려보낸 사건의 적법성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로마규정상 ‘반인도적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문 정부의 ‘북한 퍼스트와 중국 중심’ 정책과는 달리 윤석열 정부는 자유와 연대를 내걸었어요.
“윤 대통령은 대학 시절부터 독서량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이를 토대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자유시장경제로 가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요. 그의 외교정책에 동의합니다. 다만 국민에게는 이성보다 좀 더 감성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설명하고 소통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문화일보 허민 전임기자, 김규태 기자
05.28 성과와 함께 아쉬움도 남긴 韓日中 정상회의

▲윤석열 대통령과 리창 중국 총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9차 한·중·일 정상회의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한·일·중 정상이 어제 막을 내린 3국 정상회의 공동선언에서 “우리는 역내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납치자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각각 재강조했다”는 표현을 썼다. ‘역내 평화와 안정’은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는 한국이, ‘납치자 문제’는 일본이 각각 강조했으며, 이들 문제에 대한 인식 차를 좁히지 못한 채 각자의 입장만 개진했다는 뜻이다. 9회째를 맞는 역대 한·일·중 정상회의를 통틀어 이 정도로 확연한 입장 차를 노출한 적은 없었다. 합의된 내용을 담는 공동선언문에 ‘각각 재강조했다’(reiterated respectively)는 표현을 쓴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당초 공동선언문 초안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공통 목표로 삼는다”는 문구가 들어갔지만 중국이 완강히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선언문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다”(2018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2019년)는 표현을 쓴 과거에 비해 크게 후퇴했다. 최근 미·중 갈등 격화에 따라 중국의 북핵 정책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어제 정상회의 직전 북한은 정찰위성 발사 계획을 일본 정부에 통보했다. 기술적으로 ICBM 발사와 다를 게 없는 위성 발사는 안보리 대북 제재 위반이다. 한·일 정상은 회의 모두 발언과 기자회견을 통해 이 점을 지적하며 “단호한 대응”을 강조했지만 중국 리창 총리는 언급을 피했다. 북한의 도발 예고는 중국공산당 서열 2위의 인사가 서울에서 한·일 정상과 회의 중인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규탄을 해야 마땅한데도 북을 두둔했다.
5년 만에 열린 3국 정상회의와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많은 합의도 이뤄졌다. 한·중 FTA 2단계 협상과 13년째 중단된 한·중 투자협력위를 재개하기로 한 것은 성과다. 한·일은 안보에서 미국과의 협력을 크게 강화하고 있지만 중국과의 관계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국제 관계의 양면성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은 외교의 기본이다. 앞으로 미국 대선에 따라 미·중 관계는 크게 출렁일 가능성이 있다. 어떤 경우에도 미국과의 안보 동맹에 흔들림이 없도록 하되 중국과의 기본 관계 역시 잘 관리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5.28 이대로 계속 가도 괜찮은 것인가?
이번 한·중·일 3국 정상 회의, 북핵·안보 문제는 손도 못 대
우리의 길은 궁극적으로 두 가지… 한국의 핵 능력 향상과 이를 위한 대미 교섭력 확보
주한 미군 주둔비 먼저 올리고 차라리 '핵연료 재처리' 달라 하자
2024년 올 한 해에 한국의 정치 지형(地形)에 중대한 의미를 지닌 선거 두 개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나는 우리 국회의원 선거고, 다른 하나는 미국 대통령 선거다. 4·10 총선에서 현 집권 세력은 패했고 11·5 미국 선거에서는 한국에 결코 이롭지 않은 정권 교체가 임박한 분위기다. 윤석열 대통령의 정부로서는 안팎으로 고난의 행군이 예고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정치적 복고풍이 불어 유럽은 극우에 가까운 우파 세력이 속속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근자에 ‘유럽에 번지는 극우 세력의 위협’이라는 기사에서 프랑스, 이탈리아, 폴란드, 헝가리, 북유럽 국가들이 그동안 유럽을 지배한 전통적인 자유·민주 보수 노선을 버리고 이민 통제, 경제 이기주의, 인종차별 등을 내세운 극우 정치를 표방하고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심지어 지구적 환경 개선에도 적대적이고 러시아의 푸틴을 배척만 하지 말고 수용할 것은 수용하자고 화해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런 경향은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에 근거한다.
지난 2022년 한 해 유럽의 난민은 510만명으로, 그 전해의 배가 넘는 숫자다. 포퓰리스트들은 유럽이 더 이상 세계의 리버럴 근거지도 아니고 환경과 문화의 보전장도 아닌, 세계 난민의 온상이 되고 있다며 외국 출신자의 참정권을 제한하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처럼 서구사회에 이기주의가 지배적이 되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승리로 귀결될 것이고 나토는 사실상 무의미해지며 바이든이 주도한 대(對)중국 봉쇄는 연합 전선을 잃게 될 것이 뻔하다.
우리는 지금 이런 세계적인 변화를 제대로 읽고 그에 대처하고 있는가? 특히 트럼프가 당선되는 경우를 상정하고 정책 변화를 구상하고 있는가? 미국 조야의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백악관에 다시 들어온다면 미국은 우리가 아는 ‘세계적 미국’이 아니라 ‘패권적 독불장군’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공짜가 아니며 모든 대외 관계는 대가를 지불하는 거래의 관계로 변한다는 것이다.
안보도 마찬가지다. 중국 시진핑 주석은 5월 초 중국을 방문한 블링컨 미 국무 장관에게 이런 경고를 했다. “미국은 제로섬 게임이나 소규모 블럭 외교를 하지 말기 바란다. 우리 미국이나 중국은 각기 친구나 파트너를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상호 간에 타깃으로 삼거나 서로를 해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바이든이 최근 일본 기시다와 필리핀 마르코스를 만나 중국의 대만 침공과 남중국해 봉쇄를 경고하고 ‘연대’를 도모한 것에 대한 불만이지만 우리에게도 해당한다.
근자에 윤 정부가 집권 전반기 기조와 달리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방중해서 왕이와 회담하고 대만 총통 취임식에는 정부 차원의 축하를 자제한 것이 중국의 심기를 헤아린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반면 푸틴의 취임식에는 다른 서방 민주국가와는 달리 대표를 보냈다. 이런 것을 두고 윤 정부의 미국 주축의 동맹 외교가 변화하는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사실 한국 안보·외교는 심각한 국면에 처하고 있다. 미국을 주축으로 한 자유 진영의 동맹 외교 라인에 줄기차게 서 있을 것이냐 아니면 그 블럭 외교에서 한발 빠지면서 중국이나 러시아의 눈치를 보는 줄타기 외교를 할 것이냐의 문제다. 초기 동맹 외교의 복원에 치중해 우리 외교를 이끌었던 윤 대통령으로서는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한국의 좌파적 성향, 민주당이 표방하는 이른바 ‘쎄쎄 외교’의 눈치를 보는 것 같다. 엊그제 서울에서 한·중·일 3국 최고위의 회동이 있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동북아시아에서 경제협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북핵과 안보 문제다. 3국 회의는 그 문제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3국이 모여봤자 안보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야 하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한국의 핵 능력 향상이고, 그것을 얻어내기 위한 대미 교섭력 확보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물론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는 차제에 주한 미군 주둔비를 일본 수준(75%)으로 부담하는 선제적 조치를 취하고 그 대신 핵연료 재처리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주둔비의 50% 선인 1조1883억원을 지불하고 있는데 우리의 수준에서 몇% 가지고 실랑이하기보다 상당액을 우리가 내고 대신 핵 재처리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온당하다 생각한다.
총선 후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연임 기자 간담회에서 “이제까지 해왔던, 이 기준대로 계속 가면 대한민국이 괜찮은 것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 질문을 윤 대통령에게 던지고 싶다. 윤 정부는 이제까지 해왔던 대로 계속하면 안 된다. 안보·외교·경제 그리고 정치 면에서도 그렇다.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니스트
05-28 中이 北 도발 계속 두둔하면 한일중 FTA도 신기루일 뿐
북한이 서울에서 한일중 정상회의가 열린 27일 당일에 발사체 도발을 자행했다. 새벽에 정찰위성이라고 주장하는 발사체 도발을 예고한 뒤 오후 10시44분쯤 발사했다. 2분 뒤 공중 폭발해 실패하긴 했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를 정면으로 위반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정상회의에 참석한 리창 중국 총리를 난처하게 하려는 노림수는 물론, 한·중 접근을 막으려는 이간책 의도도 비친다. 그런데도 중국은 이를 묵인했다. 리 총리는 도발 예고에 대해 “관련 측 자제”를 주문했을 뿐이다. 탄도미사일 발사를 금지한 유엔 결의를 위반한 북한과 이에 대응하는 한·미·일을 동렬에 놓은 것은 북한 두둔이다.
더 심각한 것은, 2019년 3국 공동선언 때의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노력’이 이번 공동선언에서는 “각각 재강조”로 격하된 사실이다. 리 총리는 기자회견 때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주장했다. 북한 비핵화에는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 3국 정상이 회의 정례화에 합의하고 교육·문화·감염병 등 비정치적 이슈에 합의한 것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중국이 북핵 해결의 협력자가 아니라는 점이 명확해진 만큼 3국 정상회의의 한계도 분명해졌다.
공동선언엔 ‘3국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가속화’가 포함됐다. 3국 FTA 협상은 2012년 시작돼 2019년에 중단된 상태인데 이것을 재개하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미·중 신냉전으로 그 적실성은 많이 떨어졌다.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효율성을 우선했던 세계화 시대가 저물고 이제는 경제·안보 문제가 분리될 수 없는 시대에 진입했다. 따라서 중국이 북한 도발에 대해 두둔하는 등 한국·일본의 안보 우려를 불식시키지 않으면 기술·투자 등 전방위 협력을 담을 3국 고강도 FTA도 신기루일 뿐이다. 이미 한중 간에는 FTA가 있고, 한일중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회원국이다. 중국과의 관계 재설정이 절실하지만, 윤 정부의 과도한 의욕과 무모한 과속은 한미동맹을 저해하고 자유민주국가들의 신뢰 상실도 자초할 수 있다.
문화일보 사설
05-28 北, 한중일 회의 맞춰 위성 발사… 中 옆구리까지 찔렀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에 앞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리창 중국 총리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대통령실제공
북한이 어젯밤 군사정찰위성을 실은 장거리로켓을 발사했으나 실패했다. 북한은 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리는 날 새벽에 위성 발사 계획을 일본 측에 통보한 지 하루도 안 돼 발사를 감행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3국 정상회의에서 “명백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라며 단호한 대응 방침을 밝혔다. 반면 리창 중국 총리는 직접적 언급을 피하며 “관련 측은 자제를 유지하고 사태 악화를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위성 발사는 한중일 정상회의가 4년 5개월 만에 다시 열리는 날에 맞춰 3국 협력 프로세스의 복원을 훼방 놓겠다는 명백한 도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자신의 뒷배로 여기는 중국의 의표를 찌르며 한일과의 틈새를 만들어 갈라치기 하겠다는 대담한 배짱까지 보였다. 그런데도 북한의 도발을 감싸는 중국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그간에도 북한 핵·미사일 도발 때마다 한일과 중국은 전혀 다른 목소리를 냈지만, 어제는 한중일 정상이 나란히 한자리에 서서 분명한 인식 차이를 드러내는 장면이 연출됐다. 북한으로선 3국 협력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며 한반도 정세를 다시 긴장시키는 효과를 거둔 셈이다.
이 같은 ‘한일 대 중국’ 대립 구도는 정상회의 뒤 채택된 공동성명에서도 나타났다. 성명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역내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납치자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각각 재강조했다’고 했다. 그간 3국 회의 때마다 지지를 표명했던 ‘한반도 비핵화’마저 이번에는 어떤 합의도 이루지 못한 채 각자 주장을 되풀이했음을 드러낸 것이다. 이에 따라 공동성명이 당면 안보 현안을 배제하거나 뒷순위로 미룬 맥 빠진 성명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한계에도 한중일 정상회의 복원은 필요하다. 북한은 여전히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의 한쪽에 의탁한 채 갈등과 긴장을 고조시키려 할 것이다. 중-러의 북한 비호로 유엔 대북 제재는 너덜너덜해진 지 오래다. 이번 북한의 위성 발사 준비에도 러시아 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은 정황이 나오고 있다. 그렇게 북한이 신냉전 기류에 편승해 생존을 연장하고 있지만 그게 오래갈 수는 없다. 중국이 마냥 북한 도발을 감싸주는 데도 한계가 있다. 북한이 한중일 테이블에 앉은 중국을 자극하는 것도 초조함의 방증일 수 있다. 한미일 협력을 통한 대북 억제 못지않게 북한발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한중일 협력 외교가 중요한 이유다.
동아일보 사설
05.28 중국, 한일중 정상회의까지 재 뿌린 북한의 실태 직시해야
북, 정상회의 10시간 전 “군사용 정찰위성 쏠 것”
북핵 위협 고조에도 중국은 한·일에 자제만 요구
한·일·중 정상이 어제 3국 정상회의에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안정·번영이 공동 이익이자 공동 책임”이라는 데 합의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 리창(李强) 중국 총리는 어제 3국 정상회의에서 3국 간 협의체 운영의 제도화 등을 담은 38개 항의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그러나 관심을 모았던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선 기대를 밑돌았다. “우리는 역내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납치자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각각 재강조했다”는 게 전부다. 회담을 앞두고 한·일 양국에선 “한반도 비핵화는 공동의 목표”라는 문구가 공동선언 초안에 포함됐다는 얘기가 돌았다. 중국의 반대로 막판에 이 표현이 빠진 셈이다. 3국 정상이 회의 이후 기자회견에서도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 북한의 비핵화를 지목한 반면, 리창 총리는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인 해결”이라거나 “관련 측의 자제”를 주문했다. 안보 위협의 원인을 제공한 북한에 대한 경고는커녕 한·일의 자제를 촉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북한은 어제 회의를 10시간 앞두고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겠다고 예고했다. “북한이 한·일·중 협력의 균열을 노리고 회의에 재를 뿌리기 위해 도발을 예고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같은 장면을 현장에서 목격한 중국 리창 총리의 그 같은 소극적 입장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의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다. 중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과 한·미 연합훈련을 동시에 중단해야 한다는 ‘쌍중단 원칙’을 견지한다 하더라도 어제 상황은 분명 다르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술을 적용한 발사체의 활용을 금지토록 한 유엔 안보리의 결의에는 중국도 찬성했었다.
북한은 최근 러시아와 밀착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대북제재를 허물려 하고 있다. 러시아가 유엔의 전문가 패널 활동기간 연장에 반대해 ‘대북 감시의 눈’ 기능도 사라졌다. 여기에 중국마저 북한 편들기로 일관한다면 북한의 오판을 불러올 뿐이다. 중국은 이런 엄중한 동북아 현실을 인식하고 북한의 비핵화에 성의를 보여주길 바란다. 2003년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개최에 북한이 버티자 원유 공급을 중단하며 북한을 압박해 회담을 성사시켰던 중국이 아닌가.
한국은 지난 1월부터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활동을 시작했다. 또 다음 달 1일부터는 안보리 의장국을 맡는다. 안보리 의장국으로서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 번영을 위한 역할을 우리가 주도적으로 찾아나가야 할 기회다. 전문가패널을 대신할 조직을 만들어 국제사회가 참여토록 하고, 북한의 ‘질주’에 제동을 거는 게 의장국 한국의 역할이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05.29 한·UAE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체결... 아랍국가 중 처음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 국빈 방한 공식 환영식에서 기념 촬영을 마치고 손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UAE 측의 300억달러(약 40조원) 투자 약속을 재확인했다.
한·UAE는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을 체결했다. 한국과 아랍 국가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체결은 UAE가 처음이다.
대통령실은 이날 정상회담을 통해 UAE 국부펀드의 ‘300억달러 투자 공약’ 성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무바달라 등 UAE 기관은 투자 협력 채널을 통해 한국 시장에서 60억달러 이상의 투자 기회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작년 1월 UAE를 국빈 방문 했을 때 무함마드 대통령은 한국에 300억달러 투자를 약속했었다.
대통령실은 CEPA 체결에 대해선 “교역 자유화 및 투자 확대를 포함한 포괄적 분야에서의 양국 간 경제 파트너십을 강화해 나가기 위한 제도적 토대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에너지 분야에선 아부다비국영석유공사(ADNOC)과 한국 기업 간 ‘LNG 운반선 건조의향서’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 한국 기업이 최소 6척(약 15억달러 규모, 추가발주 옵션 별도)의 LNG 선박을 수주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양국 간 현재 400만 배럴인 공동 원유 비축사업 확대 논의를 위한 양해각서(MOU)와 수소 협력사업 지원 체계 마련을 위한 양해각서도 체결됐다.
대통령실은 원자력 분야에 대해선 “바라카 원전을 통한 성공적인 양국 간 협력에 기반해 후속 호기 건설, 원자력 연료 공급망, 소형모듈원전(SMR) 등 분야에서 미래 협력 가능성을 계속 모색해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첨단기술 분야에선 중동 IT지원센터 등을 통한 기업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글로벌 AI(인공지능) 연구거점을 통한 공동 R&D(연구·개발) 확대, 우수인재 교류 등을 추진키로 했다.
국방·국방 기술 분야에서는 아크 부대를 중심으로 한 국방 협력 심화, 양국 간 논의 중인 방산 협력의 조기 성과 도출 등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국방·방산 협력 강화에 대한 공감대를 확인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 “중동 국가와의 활발한 정상외교를 통해 조성된 ‘새로운 중동붐’의 모멘텀을 강화하고, 구체적 결실을 이뤄가는 경제외교, 민생외교를 시현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열린 국빈 방한 공식 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상공에는 블랙이글스가 비행을 하고 있다. /뉴시스
윤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에 앞서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공식 환영식을 열고 무함마드 대통령을 맞았다.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축하 비행에 나섰고 전통의장대와 취타대, 아크부대원 등이 무함마드 대통령 방한을 환영했다.
윤 대통령과 무함마드 대통령은 환영식 후 대통령실 2층으로 이동해 방명록에 서명한 후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이후 두 정상은 양국 간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등을 체결했다.
조선일보 김동하 기자
05-30 UAE 대통령의 MB 사저 방문과 ‘국익 위한 국정’의 길
진정한 국가 지도자는 임기 중에 효과를 보기 힘들더라도 국가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과제의 씨앗을 뿌리는 일을 해야 한다. 포퓰리즘이 판치는 상황에서,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의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私邸) 방문은 그런 책무를 새삼 일깨운다. 한국을 국빈방문한 무함마드 대통령은 29일 이 전 대통령과 서울 논현동 사저에서 반갑게 재회했다. 외국 정상의 전직 대통령 사저 방문은 외교 의전상 매우 이례적인데, 한국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퇴임 뒤 이 전 대통령이 당했던 사법적·정치적 고초를 고려하면 더욱 의미가 크다.
기업가 출신으로 중동 경험이 풍부한 이 전 대통령은 재임 때이던 2009년 당시 왕세제였던 무함마드 대통령을 설득해 프랑스로 거의 낙점됐던 UAE 최초 원전을 수주했다. 무함마드 대통령은 “이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일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신의 뜻’ 아니겠나”라고 했다. 총 20조 원 규모의 바라카 원전은 지난 3월 마지막 4호기까지 상업운전에 들어갔다. UAE는 중동 지역 변화를 주도하는 나라여서, 이 전 대통령의 업적은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의 제2 중동 붐에도 기여하고 있다.
실제로 바라카 원전 성공이 윤석열 정부 들어 이집트, 폴란드, 루마니아, 체코 등의 원전 프로젝트 진출에 디딤돌이 됐다. 양국은 이번에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을 맺은 것은 물론 협력 대상을 원전·방산에서 문화·게임 영역까지 확대했다. UAE 대통령의 이 전 대통령 사저 방문이 윤 대통령은 물론 국가 지도자를 꿈꾸는 정치인에게 ‘국익을 위한 국정’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문화일보 사설
05-31 한일중 공동선언 사흘 만에 ‘소부장 수출 통제’ 꺼낸 中
중국 정부가 한일중 정상회의에서 공급망 협력 강화에 합의한 지 사흘 뒤인 30일, 우주항공·조선 분야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수출을 7월 1일부터 통제한다고 예고했다. 군사 용도 전용을 막는다는 핑계를 댔지만, 3국 정상 간의 ‘시장의 개방성을 유지하고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며 공급망 교란을 피한다’는 공동선언 제25항의 잉크도 마르기도 전에 빗장을 걸어 잠근 것이다. 중국의 어떤 국제적 약속도 믿기 어렵게 만드는 모순된 조치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 8월부터 ‘국가 안보’를 내세워 반도체 제조용 갈륨과 게르마늄의 수출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작년 12월부터는 배터리 음극재의 핵심 소재인 흑연 수출도 통제에 나섰다. 중국이 첨단 산업용 핵심 광물을 무기화하면서 한국이 집중적으로 유탄을 맞고 있다. 언제 제2의 요소수 사태가 벌어질지 모를 살얼음판이다.
중국은 지난해 시진핑 주석이 ‘새로운 고품질(新質) 생산력’을 강조한 이후 기존 설비에다 정책 대출을 통해 첨단 기술의 최신 설비까지 지으면서 과잉생산이 구조화하고 있다. 급증하는 재고는 알리·테무·쉬인 등을 통해 저가로 전 세계에 밀어내고 있다. 여기에다 중국은 최근 64조원 규모의 반도체 3차 펀드를 조성하는 등 한국의 미래 먹거리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보다 중국발 저가 밀어내기 수출과 원자재 리스크에 훨씬 많이 노출돼 있다. 하지만 중국의 보복 우려 때문에 과감한 수입 규제도 하기 어렵다. 보다 치밀하고 정교한 대책이 절실하다. 국가통합인증마크(KC)가 없는 경우 해외 직구 금지 같은 설익은 정책으로 더는 헛발질할 때가 아니다.
문화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