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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上萬事 2024-04/ 04.02 대통령실 “2000명에 매몰 안 될 것”, - 04-30 李 “의대 증원 적극 협력”… 의사단체도 이젠 몽니 접어야

상림은내고향 2024. 4. 19. 13:07

世上萬事 2024-04/

04.02 대통령실 “2000명에 매몰 안 될 것”, 이를 대화 출발점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1일 담화문에서 ‘2000명’ 의대 증원과 의료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도 더 합리적인 방안이 있다면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2000 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면서도 “의료계가 통일된 안을 제안하면,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가져오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의대 증원 철회’만을 주장해온 의사 단체들은 “정부의 이전 발표 내용과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양쪽이 이런 입장을 내놓음에 따라 한 달 반 가까이 이어진 의사 집단행동이 총선 전에 극적인 타협점을 찾기를 기대해온 국민 바람은 실망으로 바뀌었다. 이번 사태가 더욱 장기화하면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는 걱정을 하게된다.

 

지금처럼 정부와 의사들의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지면 국민과 환자들의 두려움과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의대 교수들은 1일부터 전공의들의 업무 공백 장기화로 한계에 부딪혔다며 근무시간을 축소했다. 특히 의료 공백 장기화로 이미 기능을 축소한 대형 병원 응급실마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달 30일 충북 보은에서 물웅덩이에 빠져 심정지 상태로 구조된 33개월 아이가 상급 종합병원 이송을 거부당해 숨졌는데 이런 일이 더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환자들 진료 말고도 이대로 가면 전공의 대규모 면허정지와 의대생 대량 유급 등 의료 대혼란도 피할 길이 없다.

 

다행히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밤 KBS TV에 출연해 “2000명이 절대적 수치란 입장은 아니다”라며 “2000명 숫자에 매몰되지 않고 의대 증원 규모를 포함해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2000명이라는 숫자를 조정할 수도 있다는 점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그동안 숫자에 너무 집착해온 정부도 문제지만 비타협적 태도로 일관하는 의사들 책임도 있다. 대통령과 성 실장 발언을 출발점으로, 의료계도 대화 창구를 마련하고 조율된 대안을 내놓는 등 파국을 막을 노력을 해야 한다. 양쪽 다 양보를 패배로 여기는 생각부터 바꿨으면 한다.

조선일보 사설

 

04.05 140분 면담 후 대통령 “입장 존중”, 전공의 “미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을 대표하는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과 면담했다. 대통령실은 “박 비대위원장이 전공의의 열악한 처우와 근무 여건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고 대통령은 이를 경청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또 “윤 대통령이 의사 증원 논의 때 전공의들 입장을 충분히 존중키로 했다”고 밝혔다.

 

반면 박단 위원장은 면담 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습니다”라고 썼다. 면담 결과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는 면담 전 내부 공지에서 “기존 요구에서 달라진 점은 없다”고 했다. 기존 요구는 의대 증원과 필수 의료 패키지 전면 백지화, 의사 수급 추계 기구 설치,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등이다. 비대위는 또 “요구안 수용이 불가하면 원래 하던 대로 다시 누우면 끝”이라고도 했다. 환자들이 제대로 진료를 받지 못해 큰 고통을 받는 상황에서 전공의들이 정부가 백기를 들지 않으면 다시 눕겠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은 곤란하다.

 

전공의들의 현장 이탈이 장기화하면서 환자들의 불안과 국민 불편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아직은 상당수 의대 교수들이 현장을 지키며 전공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지만 곳곳에서 한계에 이르러 응급·중증 환자 진료마저 차질이 생기는 지경이다. 지난달 말에도 충북 충주에서 넘어진 전신주에 깔린 70대가 병원 3곳으로부터 이송을 거부당한 끝에 결국 숨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기약도 없이 하염없이 수술을 기다려야 하는 암 환자들과 가족들은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의대 증원 2000명 숫자에 대한 정부의 비타협적인 자세와 함께 의료계가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의대 증원 철회 주장만 해온 것 역시 이번 사태가 장기화된 주요 원인으로 꼽혀 왔다. 의대 증원 규모에 문제가 있다면 의료계가 합리적인 근거에 바탕을 둔 통일된 안을 갖고 와달라는 대통령 주문도 일리가 있다. 지금부터라도 전공의, 의대 교수, 개원의, 의대생 등의 의견을 모아 단일안을 내려는 노력을 더 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와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을 헤아린다면 해법 마련을 훨씬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4.05 의대 증원 최종 숫자, 반드시 고려할 과제가 있다

의료 자원 낭비의 직접적 원인
실손보험 시급히 개혁하고
의사의 필수 진료 기피 이유인
충분한 수가 인상 병행해야
노인 간병·보톡스 등 피부 미용은
굳이 의사에게 맡겨야 하나
의대 증원 숫자 최종 결정엔
이 모든 개선 과제 유념해야

 ▲지난 1일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과 대기중인 환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의대 개혁' 관련 대국민 담화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하는 의료계를 향해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가져온다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2024.4.1/뉴스1

 

주초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의 근거를 대통령으로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길고 자세하게 설명을 했고 4일에는 전공의 대표와 직접 대화했다. 이제 의사 측에서 의대 정원을 늘릴 필요가 없다는 근거를 같은 수준으로 상세하게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각한 의사 부족 현상을 일선에서 겪고 있는 병원들을 대변해야 할 병원협회도 더 이상 방관만 하지 말고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

 

논의의 핵심이 될, 장차 의사가 얼마나 부족할 것이냐에 대한 견해를 밝힐 때 양측이 모두 유념해야 할 점들을 지적하고자 한다.

 

대통령은 의료기기, 바이오·제약 분야 등 임상 진료에 종사하지 않는 의사의 필요성과 코로나 이전 이미 50만명에 이르렀던 해외 환자의 유치 등 우리 의료 산업의 글로벌화를 강조했는데 복지부의 의사 수요 전망에는 이런 수요가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 무한대일 수도 있는 이런 수요부터 추정, 반영하여야 할 것이다. 선진국 평균보다 3배 이상의 진료를 하고 있는 의사들의 노동 강도를 언제까지 그대로 둘 것인지도 양쪽 모두 입장을 밝혀야 할 것 같다.

 

현재의 의료 자원의 낭비와 수급 불일치를 초래한 직접적 원인인 실손보험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도 정해야 한다. 2020년을 전후해서 보험사들이 실손보험에서 매년 2조5000억원 안팎의 적자를 냈다는 것은 그만큼 비급여 의료에서 과잉 진료가 이루어졌다는 증거다.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분야에서 만연한 실손 진료를 많이 취급한 개원의들의 소득이 그만큼 빠르게 늘어났고, 이것이 의사들을 피안성 개원으로 쏠리게 만들었으며 그 결과가 필수 의료에서의 의사 부족이라는 데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을 것으로 안다.

 

이런 문제를 시정한답시고 만든 제4세대 실손보험조차도 손해율이 130% 정도여서 보험사들은 고객의 수요를 의도적으로 줄이는 디마케팅에 열심이다. 보험사가 손해인 만큼 가입자는 이익이니 이런 상품 구조로는 의료 남용을 막을 수가 없다. 실손보험 설계에서 당국이 손을 떼고 보험사들이 책임지고 건강보험과 같은 수준으로 진료 내용과 수가를 제한하게 해야 실손보험이 초래한 도덕적 해이와 의료 자원의 낭비를 바로잡을 수 있다.

 

2000년대 들어서 개원의들에 대한 수가 인상률을 지속적으로 병원보다 높게 책정한 것도 의사들이 전문의 취득과 병원 봉직을 기피하게 만든 요인인바, 이를 시정한다면 개원 쏠림으로 인한 필수 의료 의사 부족을 많이 완화할 수 있다. 필수 의료에 대한 충분한 수가 인상도 물론 병행되어야 한다.

 

인구구조의 고령화가 의료 수요 증가의 주요인이라는데, 여기저기 아프지만 딱히 의사가 수술이나 치료를 할 것은 없는 이런 수요에 대해서 선진국에서는 이미 방문 간호 전문 기관 등 다양한 형태의 의사 없는 의료 기관을 늘리고 있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의사 수요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미국 등에서 활용되고 있다는 PA(Physician Assistant), NP(Nurse Practitioner)제도 등을 도입하여 저난도의 의료 행위를 커버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안일 성싶다. 우리는 꼭 의사가 해야 할 진료의 범위를 너무 넓게 잡고 있다. 보톡스, 레이저 시술 등 피부 미용, 문신 등도 의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의료 행위라고 고집하는 것은 국민의 상식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의사 수요를 부풀리는 요인이 된다.

 

비대면 진료나 개인용 휴대 의료기기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의사 수요를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고 AI(인공지능)를 얼마나 활용하느냐도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단지 처방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간다.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약의 종류를 적어도 선진국 평균 수준으로 확대하고, 처방전 주는 것 이외에 별로 진료할 것도 없는 만성질환자에 대해서 병원과 의사가 먼저 적극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권한다면 의사 수요도 줄이고 환자의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의사나 환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대면 진료를 요청할 수 있게 하면 된다. 병·의원 개설에 드는 엄청난 투자비를 감안할 때 비대면 진료 전문, 왕진 전문 의료 기관을 허용하라는 주장은 의사들 쪽에서 먼저 나와야 하지 않을까?

 

정부와 의사협회는 앞으로 의사 부족 전망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위에서 지적한 제도 개선 과제들에 대해서 어떤 입장이며 어떤 전제로 의사 부족을 전망했는지를 먼저 밝혀서, 양자가 동의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의사 부족 전망을 만들어 내고 이를 토대로 원만한 해결책을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조선일보 박병원 한국비영리조직평가원 이사장·한국고간찰연구회 이사장

 

04.06 사분오열 의료계의 진짜 입장은 도대체 뭔가

 윤석열 대통령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의 첫 만남 이후 정부는 “전공의와 대화의 물꼬를 텄다”며 “앞으로도 계속 대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정부 관계자들이 연일 ‘유연한 입장’을 강조하는 등 의대 증원 규모를 포함한 의료개혁 방안에 대해 의료계 등과 타협할 생각임을 밝히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가 대화할 때 의료계가 주요 현안에 대해 단일한 입장을 갖고 나오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러나 지금 의료계는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의대 증원 철회 주장만 계속하고 있다. 도대체 주요 의료 현안에 대한 의료계의 입장이 뭔지 알 길이 없다. 대통령과 면담을 놓고도 임현택 차기 의사협회장이 ‘내부의 적’ 운운하며 실망감을 드러내고 전공의들 내부에서 박 위원장을 탄핵하자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내부 갈등마저 보이고 있다.

 

전공의 집단행동이 7주째에 접어들면서 지금 의료현장은 한계 상황에 처해 있다. 현장에 남아 전공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의료진의 번아웃이 심각한 상태이고, 언제 어디서 의료진 공백에 따른 대형 사고가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서울대병원 등 대형병원들은 한 달 수백억원의 적자를 내며 비상경영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진료 쪽 말고도 인턴 등록 기간이 지났고, 의대생 대량 유급 시기도 다가와 자칫 실기하면 그 부작용이 수년간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의료계는 지금부터라도 전공의, 의대 교수, 개원의, 의대생은 물론 주요 병원 관계자들의 의견을 모아 의료 현안에 대한 단일 입장을 내려는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속이 타들어가는 환자들의 불안과 국민들의 불편에 일말이라도 책임의식을 보이는 것이다. 의대 정원을 한꺼번에 2000명 늘리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하면 대화 테이블에 나와 합당한 논리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의대 증원 규모 문제만 아니라 필수·지역 의료를 살릴 방법, 전공의들의 근무 여건과 처우 개선, 의사 사법 리스크 경감 방안 등 주요 현안들은 모두 의료계와 협의하지 않으면 풀기 힘든 문제들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건강보험과 예산 투입 의지를 밝히고 있는 지금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적기일 수 있다.

조선일보 사설

 

04.10 판도라의 상자, 새마을금고

 요즘 새마을금고는 정말 ‘바람 잘 날 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3월 말에 새마을금고 직원이 고객 통장의 비밀번호를 바꿔 5000만원을 빼돌린 사건이 터진 지 1주일도 안 돼 양문석 민주당 후보(경기 안산갑)의 불법 대출 의혹이 보도됐다. 작년 10월엔 조직의 수장인 새마을금고중앙회 회장이 사모펀드 출자 과정에서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불명예 퇴진했다.

 

새마을금고 사고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장기에 걸쳐 불법이 저질러지는데도 위에선 까맣게 몰랐다는 것이다. 충북 청주시 새마을금고 차장이 10년간 고객 정기예탁금을 중도해지하는 수법으로 10억6000만원을 횡령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번에 문제 된 양 후보의 대출도 3년 전 일이다.

 

매번 사고가 터질 때마다 새마을금고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을 행정안전부에서 금융 당국으로 이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새마을금고와 비슷한 농협·수협의 지역조합과 신용협동조합은 모두 금융 당국의 감독을 받는다. 하지만 새마을금고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바탕으로 성장한 특수성 탓에 행안부 산하에 놓여있다. 총자산 286조원으로 신협보다 몸집이 두 배 큰 금융기관인데도, 관리·감독은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받는 셈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흐지부지 지나갈 가능성이 크다. 지난 18대 국회 때부터 매 회기 때마다 감독권 이관과 관련한 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모두 폐기됐다. 행안부와 금융위원회뿐 아니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의원들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감독권을 쥔 행안부는 내려놓을 의사가 없어 보인다. 감독권을 이관할 경우 조직의 권한과 영향력이 줄어들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2월 행안부 출신 공무원이 새마을금고중앙회 지도이사로 선임돼 ‘낙하산’ 비판을 받았다.

 

금융 당국도 새마을금고를 넘겨받는 게 썩 달갑지는 않은 기류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뚜껑(감독 개시)을 열었을 때 뭐가 터질지 짐작하기 어려운 판도라의 상자”라며 혀를 내둘렀다. 신협, 수협 등이 IMF 때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이후 꾸준히 구조조정을 통한 체질 개선을 해온 데 반해 새마을금고는 ‘무풍지대’여서 누적된 문제가 상상 이상일 것이란 뜻이다.

 

무엇보다 법안 개정 논의를 주도해야 할 국회 행안위원들의 태도가 미적지근하다. 금융권에선 “전국 1288개에 달하는 새마을금고의 정치력 영향력이 크다 보니 행안위원들도 지역구 관리 차원에서 금고를 계속 영향권 아래에 두고 싶어 한다”는 말이 나온다.

 

관련 부처들과 국회가 소극적으로 일관하는 동안 새마을금고는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서 계속 사고를 일으키고 있다. 여론의 질타가 이어지자 최근 절충안으로, 금융위가 행안부와 손잡고 새마을금고 전담팀을 꾸렸다. 그러나 평소 관리는 행안부가 맡고, 사고가 터지면 금융 당국이 나서는 방식의 땜질식 처방으로는 복마전(伏魔殿)처럼 터지는 새마을금고 사고를 예방하기에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정부 부처들이 감독권 이관에 따른 이해득실을 따지며 주판알을 튕기기에 앞서 고객 피해 예방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

조선일보 김은정 기자

 

04-11 의대생 집단행동, 책임도 져야 한다

최근 충북 충주에서 전신주에 깔린 70대 노인이 병원의 이송 거부로 끝내 숨지고 말았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반대로 시작된 의료계 집단행동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의료개혁의 주축이 돼야 할 의료계가 집단행동으로 ‘의료 붕괴’를 초래한다.


의료계는 여전히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가 재논의를 제안한 지금에도 의료계가 계속 종전 입장을 관철하겠다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의료계 분위기에 휩쓸려 집단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의대생들이다. 집단 휴학을 신청하고 수업을 거부하는 학생들은 지금의 집단행동이 본인이 꿈꿔온 의료인의 모습에 부합하는지, 집단행동을 통해 얻으려는 게 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명분도 실리도 없이 시작한 집단행동이라도 그 선택에 따라 발생하는 불이익은 오롯이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몫이기 때문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학생들의 학습권 문제이다. 의대생들 사이에서 집단행동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에 대한 비민주적인 강요가 있다고 최근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학생들이 의료인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배워야 할 시기를 집단행동과 동료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은 집단적 강요로 덧없이 흘려보내고 있다.

집단행동 참여에 따른 학생들의 유급은 개인적인 불이익을 넘어 정상적인 교육 운영에도 피해를 초래할 것이다. 올해 발생하는 유급생은 교육과정 재이수를 위해 내년도에 정상적으로 진급하는 재학생 및 신입생들과 함께 교육을 받아야 한다. 사전에 그 규모를 예측할 수 없는 유급자의 발생이야말로 교육 여건의 악화를 가져온다. 의료계는 줄곧 의대 증원이 의학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는 주장을 펼쳤는데, 그릇된 선택으로 오히려 교육 여건의 악화를 자초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의구심이 든다.

이제는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해야 할 대학과 교육 당국이 나서야 할 때다. 자신의 선택으로 발생한 상황인 만큼 유급생들은 향후 학교에 복귀했을 때 응당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각 대학은 유급생들의 복귀로 인해 재학생과 신입생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재학생과 신입생에게 수강 신청, 실습 기회 등에 있어 우선권을 가지도록 조치를 해야 한다. 또한, 올해 집단행동 참여에 따라 발생한 유급생들은 국가고시 응시에도 제약을 받도록 의료 당국과 적극적인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의료인으로서의 신념을 뒤로한 채 집단의 이익에 동조한 학생들에게 선택에 따른 책임의 무게를 직접 깨닫게 해야 한다.

모든 선택에는 그에 따른 책임이 수반된다. 국민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계의 선택은 더욱 큰 책임감을 느끼고 이뤄져야 한다. 의료 현장을 떠난 전공의, 학교를 떠난 의대생과 교수들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정부와 함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대통령이 직접 “의료는 국민의 안전을 지킨다는 점에서 국방·치안과 동일 선상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한 바 있고, 정부도 ‘의대교육 여건 개선방안’을 수립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나서지 않는가. 제자리로 돌아와 대화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의료계의 책임감 있는 모습을 기대한다. 국민을 뒤로한 의료계의 선택에 우리 사회의 관용은 없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문화일보 장종현 백석대 총장,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장 

 

04-14 박단 전공의 대표 “교수는 착취자” 비판…의료계 내홍에 전공의·교수 세대 갈등 분출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이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의사들, 의대증원‘원점 재검토’ 반복…의협·의대교수들 "재논의가 0명은 아냐" 여지도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의정 갈등을 봉합해야한다는 분위기가 강해졌지만 의료계에는 전공의 대표가 의대교수를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새로운 갈등이 분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의 현 비상대책위원회와 차기 회장간 갈등이 불거진 가운데 전공의와 의대교수간 세대갈등도 터져나오면서 의료계 갈등 양상은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박단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2일 SNS에 의대 교수들을 ‘착취사슬 관리자’라고 표현한 글을 올렸다. 박 위원장은 ‘1만2000명에 휘둘리는 나라, 전공의를 괴물로 키웠다’ 란 제하의 한겨레신문 기사를 링크하면서 "전공의들에게 전대미문의 힘을 부여한 것은 다름 아닌 정부와 병원"이라고 기사 본문의 내용을 옮겨 적었다.

수련병원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의 글에는 "수련병원 교수들은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에게 불이익이 생기면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들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착취의 사슬에서 중간관리자 역할을 해왔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두고 의대 교수들을 비롯한 의사들 사이에서 비판이 거세졌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SNS에 "오늘 하루 종일 박단 전공의 비대위원장이 올린 포스팅 때문에 시끄러웠다"며 "워딩의(이) 부적절하다는 주장과 교수들을 비롯한 일부 의사들이 분노하거나 불쾌해하는 것에 대해 저도 동의한다"고 지적했다. 강홍제 원광대 의대 교수 비대위원장은 "자기 지지 세력에 기관총을 난사하는 것은 윤 대통령만이 아니었다. 실망이다"며 "사제지간이 아닌 직장상사와 부하직원 관계라면 더이상 전공의를 교수들이 지지할 필요가 없다"고 적었다.

이같은 양상은 사분오열된 의사들간 갈등이 증폭됐음을 뜻한다. 정부는 의료계에 의대 증원에 대한 통일된 목소리를 요구하고 있지만 전공의, 의협, 의대교수들간 비판이 난무하는 것이다.

의료계에서는 온건파와 강경파가 맞서고 있다. 의협 내에서도 현재 의협을 이끄는 비대위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다음달 취임하는 임현택 차기 회장 당선인은 강경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12일 브리핑에서 의대 증원을 원점에서 재논의하는 게 반드시 ‘0명’은 아니라고 여지를 보여줬다.

의대 교수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도 백지화가 ‘0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다만 정작 두달 가량 의료 현장을 떠나 있는 전공의들이 의협 비대위와 전의교협에 동조할 지는 미지수다. 전공의 내부에서도 대전협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공의들이 입을 닫은 가운데, 차기 의협 회장인 임 당선인 역시 의협 비대위의 움직임에 동의하지 않는 모양새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을 줄여야 한다는 쪽이다. 의료계 내분이 격화되다보니 통일된 안을 만들거나, 정부와의 소통 창구를 단일화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문화일보 권도경 기자
 

 

04.16 충북대 총장 “의대 정원 4배 늘어도… 교육 질 안 떨어질 자신 있다”

의대 증원 폭 전국 최대
충북대 고창섭 총장 인터뷰

 ▲고창섭 충북대 총장은 “충북 지역은 의사 수는 가장 적고 필수·응급 의료 부족으로 사망한 환자 비율은 전국에서 제일 높은 수준”이라며 “충북의 숙원 사업인 의대 증원을 정부가 지원해 준다는데 기회를 잡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신현종 기자

 

고창섭 충북대 총장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의대 증원은 낙후한 지역 의료를 살릴 수 있는 다시 없는 기회”라며 “의료 교육의 질이 떨어지지 않게 준비할 자신이 있다”고 했다. 충북대 의대는 정원이 49명밖에 되지 않는 ‘미니 의대’였다. 정부는 내년도 충북대 의대 정원을 200명으로 4배 이상 늘리겠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전국 의대 중 증원 폭이 가장 크다. 1년 만에 서울대(135명)나 연세대(110명) 등 기존 ‘메가 의대’보다 덩치가 커지는 셈이다.

 

충북대는 의대 증원 폭이 가장 큰 만큼 대학 본부와 의대 구성원 간 마찰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 상황이다. 새로 들어올 의대생 200명을 제대로 교육시킬 여건이 안 된다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고 총장은 “증원에 대비해 이미 계획을 철저히 준비해놓았다”고 했다. 그는 “의대 강의실 등 부족한 공간 문제는 기존의 의대 2호관 건물을 2개 층 증축하고, 오는 9월 개관하는 오송캠퍼스를 이용해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며 “2호관은 애초 증원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건물인 만큼 공간 문제가 생기진 않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고 총장은 또 “이것도 부족하다는 얘기가 있으면 의대 1호관까지 증축하겠다”고 했다.

 

가장 논란이 됐던 해부학 실습실 확보 문제에 대해서도 “지금 해부학 실습실에 실험대 10개가 있는데 공간을 확대해 3~4개를 추가로 놓고 똑같은 크기의 실습실을 하나 더 만들 것”이라며 “임상수기센터와 종합실험실 등 실습 공간도 이런 방법으로 늘려 부족함이 없게 하겠다”고 했다. 충북대는 의대 교수(현재 131명)도 100명 정도를 추가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고 총장은 “시설비 등으로 약 400억원 안팎을 투자할 계획”이라며 “내년 예과 1학년으로 들어오는 200명 신입생이 본과 실습을 시작하는 2027년 전에 충분한 교육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고 총장은 “열악한 지원 환경 등의 이유로 충북 유일 상급종합병원인 충북대 병원이 올해 발표된 세계 병원 순위에서 국내 52위로 하위권을 기록했다”며 “의사 수는 가장 적고, 필수·응급 의료 부족으로 사망한 환자 비율은 전국에서 제일 높은 수준”이라고 했다. 2022년 충북의 인구 10만명당 치료 가능 사망률은 46.41명으로 전국 17개 시도 중 다섯째였다. 작년 기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1.58명(14위)으로 1위인 서울(3.61명)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지난달 충북 보은군에서 물웅덩이에 빠졌다가 심정지 상태로 구조된 생후 33개월 여아가 ‘인력·병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지역 병원 이송을 거부당하며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고 총장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며 “10년 넘게 이어온 충북의 숙원 사업인 의대 증원을 정부가 지원해준다고 나섰는데 어떻게든 발전의 기회를 잡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충북대는 의대 졸업 후 지역에 남는 의사 수를 늘리기 위해 지역인재전형 비율도 현행 40%에서 정부가 권고한 60% 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고 총장은 “의대 교수님들과 논의해야 할 사안이기에 아직 비율을 섣불리 못 박기는 어렵다”며 “정부와 국회가 ‘지역의사제’에 필요한 법적인 근거를 마련해주면 이 역시 추진할 계획이 있다”고 했다. 지역의사제는 지역 의대를 다니는 학생에게 얼마간 혜택을 주고 지역 근무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오는 17일 취임 1주년을 맞는 그는 ‘의대 증원’ 이외에도 ‘지방대 개혁’ 등 굵직한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작년부터 대학 개혁을 추진하는 지방대에 5년간 1000억원을 지원하는 ‘글로컬 대학’ 사업을 시작했다. 충북대는 작년 한국교통대와 통합을 전제로 이 사업을 따냈다. 고 총장은 “저출생, 학령인구 감소로 지방대는 지역과 함께 몰락하느냐 마느냐 갈림길에 서 있다”며 “그러나 의대 교수를 비롯한 구성원 마음을 돌리지 않는다면 개혁에 동력이 생기기 어렵다. 간절한 마음을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조선일보 표태준 기자

 

04-16 ‘의대 증원·유연 협의’가 총선 民意, 의료계는 왜곡 말라

의·정 갈등이 두 달째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중앙재난안전수습본부는 일주일째 브리핑조차 못한다. 여당이 총선에서 참패하자마자 대한의사협회는 터무니없이 “의대 증원 반대가 총선 민의(民意)”라는 주장을 폈고, 이탈 전공의들은 15일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소했다. 안철수 의원 등은 증원 1년 유예와 책임자 처벌을 타협안이라며 내놨다. 하지만 이는 눈앞의 위기만 넘기고 의대 증원을 가로막는 꼼수로서,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들 뿐이다.

이젠 시간적 여유가 없다. 대학들은 5월 말까지 학과별 모집 요강을 발표해야 하고, 기한을 넘기면 의대생들은 집단 유급된다. 25일이 지나면 의대 교수들이 낸 사직서도 효력을 발생한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일 여야와 정부, 의료계,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보건의료계 공론화 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한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지역의사 양성법’과 ‘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법’을 국회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통과시킨 바 있다. 이번 총선에서도 지역의사제와 공공·지역의대 신설을 공약한 만큼 의대 증원에는 현 정부와 방향성을 같이한다. 찬반이 갈리는 의료 공공성 확대 문제는 의료개혁의 큰 틀에서 수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의대 증원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면서도, 2000명에 집착하고 소통보다 행정처분 같은 거친 추진 방식에 우려를 표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사회적 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바 있다. 의료 소비자인 국민과 의료계 및 정부가 참여하는 이 협의체에 여야를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참여 대상을 넓히고 정치권이 한목소리를 낸다면 의료계도 호응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4.16 의대 증원 반대가 총선 민심이라는 의사들의 착각

민심은 증원엔 찬성, 일방적 추진에 대한 우려일 뿐

‘증원 백지화’는 아전인수, 정부도 적극 대화·협상을

의료 개혁을 추진하던 정부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의료계에선 “이번 총선 결과가 의대 정원 확대를 거부하는 민심을 확인한 것”이란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온다. 착각이자 자가당착이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2일 “여당의 총선 참패는 국민이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정부에 내린 심판”이라고 주장했다. 주수호 전 의협 회장도 총선 결과에 대해 “14만 의사와 2만 의대생, 그 가족들을 분노하게 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는 잇따른 인사 검증 실패와 과도한 거부권 행사, 대파로 상징되는 물가 관리 실패, 도주 대사 임명 등 실책을 거듭해 왔다. 독선과 불통에 대한 불만이 이번 총선에서 투표로 표출된 것도 맞다. 그러나 의료 개혁의 경우 국민의 입장은 압도적인 찬성이었다. 다만 뚜렷한 근거 없이 2000명이란 숫자에 집착하고, 설득과 협의 없이 행정 처분과 의사들에 대한 비난으로 일관하는 정책의 추진 방식에 대한 우려가 컸다.

 

이런 우려가 다른 정책 실패에 대한 실망감에 더해진 것일 뿐이다. 선거 전체가 오롯이 의대 정원 확대 이슈에 좌우됐고, 더구나 그 결과가 의대 정원 확대를 오로지 거부한 것이란 결론은 아전인수식 해석일 뿐이다.

 

환자들의 고통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의사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구급차 뺑뺑이를 돌다 숨지는 사례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고 있다. 의사들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만 했을 뿐, 켜켜이 쌓인 의료 현장의 문제에 대해 어떤 대책도 내놓은 게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민심은 의사들 편일 것이란 생각은 착각이다. 의사들도 증원 백지화만 외칠 게 아니라 열린 자세로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원점 재논의’ ‘1년 유예’ 주장은 지금의 위기만 넘겨 영원히 증원을 막으려는 꼼수라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도 침묵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오는 25일이면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를 낸 지 한 달을 채워 법적으로 언제든 병원을 떠날 수 있게 된다. 의대생 유급 시한도 코앞이다. 내달 입시요강을 발표해야 하는 대학들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수험생과 학부모도 하루하루가 초조하다. 더 시간을 지체하면 의대 정원 확대 실패를 넘어 의료체계 붕괴와 입시제도 대혼란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한다.

 

사태를 풀려면 우선 2000명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증원 규모는 의사들과 협의해 유연하게 결정하겠다고 천명해야 한다. 대화를 위해 의사들에 대한 징계부터 풀어야 한다. 아울러 밀실 협의가 되지 않도록 환자와 전문가를 협상에 포함해야 한다. 지레 포기해서 어렵게 지핀 의료개혁의 불씨를 꺼뜨리지는 않기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

 

04.17 방석 대신 의자… 조계사 대웅전 풍경 바꾼 주지스님

담화 스님, 고령 신도 위해
매달 사흘 ‘의자 법회’ 실험

 ▲지난주 음력 3월 초하루~초사흘 법회 때 조계사 대웅전에는 방석이 사라지고 의자가 설치됐다. 무릎이 아파 앉았다 일어서기가 힘든 고령 신도들을 위한 조치다./조계사

 

‘방석 대신 의자.’

최근 대한불교조계종 총본산 서울 조계사(주지 담화 스님) 대웅전 풍경이 바뀌었다. 음력 3월 초하루(4월 9일)부터 초삼일(4월 11일) 법회까지 사흘간 대웅전 마루에서 좌복(방석)이 모두 사라지고 그 자리에 접이식 의자가 놓인 것. 무릎이 아파 바닥에 앉았다 일어서기 힘든 고령 신도를 위한 시범적 시도였다.

 

그동안 불교계에서는 법당에 방석 대신 의자를 설치하는 방안이 부분적으로 시도돼왔다. 법당 앞쪽에는 절을 할 수 있도록 방석을 깔고 뒤편에는 의자를 비치하기도 했고, 사십구재를 올리는 전각 등 사찰 내 특정 공간에만 의자를 놓기도 했다. 일부 사찰에선 6~7명이 앉을 수 있는 일명 ‘교회 의자’를 도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계사 대웅전에 의자를 설치하는 시도는 없었다. 조계종 총본산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방석 대신 의자 설치를 결정한 주지 담화 스님. /조계사

 

조계사의 실험은 지난해 10월 주지로 취임한 담화 스님의 결단에 따른 것. 조계사도 대웅전을 찾는 신도의 70%는 60대 이상이라고 한다. 담화 스님은 8년간 조계사 부주지를 맡은 것을 비롯해 10여 년간 조계사에서 포교·교무국장 등 소임(보직)을 살면서 법회 때 고령의 신도들이 점차 엎드려 절하는 것은 물론 앉았다 일어서는 것도 힘들어 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래서 일단 한 달에 사흘, 초하루~초사흘 법회 때에 한해 대웅전 마루에 방석 대신 의자를 놓아보기로 했다. 그 첫 무대가 지난 9~11일이었던 것. 담화 스님은 “조계사는 한국 불교의 얼굴이라는 점에서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며 “그렇지만 전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르신 신도님들의 불편을 해소해드릴 방안을 고민하다 시범적으로 의자를 놓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십 년 된 인사동 한정식 식당들도 이제는 방바닥에 앉아서 먹는 곳이 없지 않으냐”며 변화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2016년 8월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에서 신자들이 방석에 가부좌를 하고 수능 기도를 올리는 모습. /조선일보 DB

 

시범 실시 결과, 법회 풍경은 다소 변했다. 우선 수용 인원이 늘었다. 대웅전에 방석은 300개 정도 놓을 수 있었는데, 의자를 깔아보니 최대 400개까지 가능했다. 조계사 측은 빔프로젝터와 스크린을 설치해 신도들이 종이로 된 경전을 펼쳐 읽지 않아도 전면 스크린을 보면서 법회 순서를 따라 할 수 있도록 했다. 법문 전 스님들께 바닥에 엎드려 올리던 큰절 3배(拜)는 의자에 앉은 채 합장 삼배하는 것으로 바꿨다. 법회 시간 외에는 의자를 치워 평소처럼 마룻바닥에서 절을 올릴 수 있도록 했다.

 

신도들은 “무릎이 아파서 기도 동참이 어려웠는데 의자에 앉으니 감사하다”는 의견이 많지만 한편에선 “그래도 대웅전에서 열리는 법회 때는 절을 할 수 있어야지”라는 의견도 있다고 한다. 담화 스님은 “막상 의자를 놓고 보니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서 6개월 정도 시행하면서 개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풍경이 바뀐 것을 서운해하는 신도님들에겐 ‘한 달에 사흘만 이해해달라’고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고령화가 더욱 심해질 텐데 의자 외에도 고령의 신도님들께 절이 더 해드릴 부분이 없는지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조계사의 변화 시도가 전체 불교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모은다.

조선일보 김한수 기자

 

04-19 환자의 오늘, 의사의 미래

환자들에게 마지노선이 되는 곳이 있다. 병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이자 마지막 보루인 응급실이다. 20년 넘게 응급실을 지킨 한 의사에게 그 공간은 시간과의 전쟁터다. 한계점은 없다. 언제 환자 몇 명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극한 환경에서 의사들 처치는 분초를 다툰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곳에서 그가 얻고자 했던 건 ‘환자의 시간’이다. 환자가 빨리 치료받지 못하면 수술과 회복시간은 그만큼 길어진다. 그는 “응급실에 왔을 때 의식을 잃은 시간을 3∼4시간만 줄여줘도 환자가 퇴원하는 시기를 하루 이틀 앞당길 수 있다”며 “환자에겐 굉장히 큰 시간”이라고 말했다.

응급실이 흔들리면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이들은 중증환자다. 최근 치료받을 병원을 찾아 헤매다가 숨진 환자가 여럿이다. 예고된 희생이다. 전공의들은 2020년 의사 총파업 때와 달리 응급실과 중환자실마저 비웠다. 응급의학과 교수들은 ‘집단사직’과 ‘응급의료 중단’을 앞세워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의사들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어야 할 곳을 떠나겠다는 것이다.

환자의 시간은 사그라들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병상에 누워 의사를 기다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중증환자들이 있다. 어떤 환자들은 평생과 맞먹을 몇 달을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전공의들이 병원 밖에서 흘려보내는 시간이 환자에겐 온 세상일 수 있다. 전공의의 관심사는 10년 후다. 의사 수가 늘어나면 한국 의료는 퇴보한다는 우려에서다. 의사의 미래가 환자의 ‘오늘’보다 중요한 까닭이다. 미래 손익은 따져도 환자 피해는 안중에 없다.

의사들 세계관에 대한 인내심은 임계점에 다다랐다. 전공의들은 병원으로 돌아오는 조건으로 의대 증원 백지화 외에 보건복지부 장·차관 경질과 군 복무 기간 단축을 내걸었다. 집단 이익만 내세운 이기적인 요구다. 같은 저울에 올릴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국민 정서에도 맞지 않는다. 이들 행태는 노조보다 비겁하다. 노동자들은 파업 조건, 단 몇 줄을 알리기 위해 타워크레인에 오른다. 자기 목숨을 걸고 고공농성을 벌이는 것이다. 의사들은 집단사직은 해도 의사 면허를 내놓진 않는다. 이들은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환자 생명을 볼모로 잡았다.

의료 정책은 의사들 전유물이 아니다. 의사들은 27년간 의대 증원을 막아섰다. 반면, 과잉 진료와 미용 의료에 대한 자정 노력은 하지 않았다. ‘인술’은 없고 ‘상술’만 남았다는 자조도 나온다. 건강보험료와 세금, 진료비로 의사들 월급을 대는 건 국민이다. 지난해 취재차 만났던 독일 의사는 “국민이 내는 보험료로 월급을 받고 있다”며 “의대 증원을 반대할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의료 체계는 달라도 의업의 본질은 같다. 이제 국민은 전공의들이 초래한 진료 공백 비용까지 떠안고 있다. 의료 파행을 수습하기 위해 건보 재정 등으로 투입된 비용만 5000억 원이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전문직이 집단이익만 추구하면 국민 삶은 피폐해진다. 의료개혁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의사단체 요구대로 중단될 일도 아니다. 의사들에게 피할 수 없는 외통수란 의미다. 환자들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문화일보 권도경 사회부 차장

 

04.20 한국계 첫 美화폐 인물 부모 “딸, 하늘서 기뻐할 것”

장애인 인권 향상에 앞장섰던 故 스테이시 박 밀번 부모 인터뷰

미국의 25센트(쿼터달러) 동전은 주차장·자동판매기·패스트푸드점 등 일상에서 널리 쓰인다. 내년부터 한국계 미국인 장애인 인권 운동가 스테이시 박 밀번(1987~2020·한국 이름 박지혜)의 얼굴이 새겨진 25센트 동전을 볼 수 있게 된다. 미 연방 조폐국이 미국 사회에 공헌한 여성 20명을 선정해 2022~2025년 발행되는 25센트 뒷면(앞면은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에 얼굴을 새겨 넣어 기리는 ‘아메리칸 위민(American Women·미 여성) 쿼터 프로그램’의 헌정 대상자로 지난해 선정됐기 때문이다. 미국 화폐에 한국계 인물이 등장하는 최초의 사례다. 밀번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은 총 5억개 이상 발행이 예정돼 있다.

 

▲활짝 웃고 있는 스테이시 박 밀번. 부모는 "배려와 따뜻한 마음으로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는 아이였다"고 회고했다. /스테이시 박 밀번 부모 제공.

 

밀번은 주한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지체장애를 앓으면서도 장애인 인권 운동에 앞장서다가 2020년 5월 신장 수술 합병증으로 서른셋에 세상을 떴다. ‘아메리칸 위민 쿼터 프로그램’ 선정 인물들이 대부분 19~20세기에 활동하며 세계적 명성을 쌓은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밀번의 존재는 더욱 주목받고 있다. 장애인의 날(20일)을 이틀 앞둔 18일 미 노스캐롤라이나주(州) 페이에트빌에서 본지와 전화로 인터뷰한 어머니(진 밀번)와 아버지(조엘 밀번)는 “내년에 동전이 나오면 딸아이를 기억하는 가족·친구들에게 쥐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어머니 진씨는 2년 전 연방 조폐국에서 연락받던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고 했다. “25센트 동전 뒷면에 새길 여성 인물 후보로 (딸을) 추천했는데 동의해줄 수 있겠느냐는 거예요. 처음엔 ‘가짜 뉴스’인 줄 알았습니다.” 부부는 1년 반 정도 이어진 추천·심의·선정 결과를 차분히 기다리면서 딸과 함께한 33년을 돌아봤다. 1987년 5월 용산 기지 내 121 미군 병원에서 태아가 거꾸로 들어서 있다고 해 제왕절개로 얻은 첫딸이었다. 태어난 후 팔다리에 유난히 힘이 없던 아기가 5만명 중 한 명꼴로 걸리는 근육 퇴행성 질환(선천성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이후 진씨는 18년 동안 딸을 자전거나 휠체어에 태워 통학시켰다.

 

진씨는 “힘들었지만 아이의 미소를 볼 때마다 기운이 솟아났다”고 했다. “햇살처럼 밝은 아이였어요. 말투에는 친절함과 배려가 있어 주변의 모두를 미소 짓게 했죠. 제 아빠를 닮아서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말했죠. 글로 생각을 풀어 쓰는 솜씨는 또 얼마나 뛰어난데요. 인권 운동을 안 했으면 워싱턴 DC로 가서 정치인이 됐을 거예요.” 부모는 아이가 혹시라도 남들과 다른 처지에 주눅 들까 염려해 늘 성경 구절을 인용한 말로 용기를 북돋워줬다. “하나님께서 너를 만들어 엄마 배 속을 통해 세상에 보내주신 건 뜻하신 바가 있어서란다. 이 얼마나 놀랍고 신비한 일이니.”

 

▲미국 수도 워싱턴DC에서 열린 장애인 인권 집회에 참석해서 연설하고 있는 스테이시 박 밀번. /스테이시 박 밀번 부모 제공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겪은 낙상 사고를 계기로 ‘장애인이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의 문제에 눈뜬 밀번은 문제 의식을 담은 블로그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하면서 청소년 장애인 인권 운동가로 지역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부모가 거주하는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대학을 마치고 4500㎞ 떨어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장애인 인권 운동가로 활동했다.

 

아버지 조엘씨는 “딸아이는 장애인들에게 ‘아무도 우리를 구해주러 오지 않는다’며 스스로 권익을 찾자고 독려했다”며 2019년 샌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에서 장애 학생들을 상대로 한 강연의 한 토막을 들려줬다. “우리의 지금 모습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이니까요. (모습이 이렇다 해서) 우리가 성장할 수 없거나, 미래를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없다는 걸 뜻하진 않습니다. 우리는 사랑받아 마땅한 아름다운 인간이니까요.” 밀번은 미국 젊은이인 동시에 한국 젊은이였다. 1990년 걸프전이 발발한 이라크로 아버지가 급파되자 육아를 도우러 한국에서 건너온 외할머니와 가깝게 지냈다. (할머니는 이후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 머물렀다.) 덕분에 한국말도 곧잘 하고 호박을 숭숭 썰어 넣어 걸쭉하게 끓인 수제비에 환호하는 ‘된장 입맛’이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인권 운동을 할 때는 한인 입양 청년들을 집으로 불러 명절 음식을 먹이며 각별히 돌봤다.

 

▲내년 발행될예정인 25센트 동전의 시안. /미 연방 조폐국

 

2020년 코로나가 전 세계에 확산하고 미 전역이 봉쇄되자 밀번은 응급 의료에서 소외된 중증 장애인과 저소득층을 돌보기 위한 긴급 대응팀을 꾸려 활동했다. 하지만 지병인 신장 질환 수술 합병증으로 몸 상태가 급속히 나빠지면서 33살 생일이던 그해 5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밀번의 장례식 책자 표지에는 장애인 인권 운동을 함께 하는 동료들을 향해 하던 말이 인쇄됐다. “우리는 있는 모습 이대로 강하고 아름답습니다.” 외손녀에게 수제비를 끓여주던 외할머니도 그해 7월 눈을 감았다. 둘은 밀번 부부의 집 부근에 나란히 잠들어 있다.

 

밀번은 고향 한국을 사랑해 생전에도 여러 차례 다녀갔다. 장애인 기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점을 늘 안타깝게 여겼다 한다. 지난해 11월 연방 조폐국이 스테이시 얼굴을 새긴 25센트 동전 발행을 공식 발표했을 때 부부는 마침 서울에 있었다. “예전에 비해 휠체어를 타고 자연스럽게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이 많았고, 몸이 불편한 분들을 위한 여러 시설들이 많이 생겼더라고요. 우리 딸이 하늘에서 이걸 보면 참 좋아하겠구나 싶었습니다.”

조선일보 정지섭 기자

 

04-23 “의대교수 집단사직은 쇼에 불과… 면허 못 버려”

■ 정영인 부산대 명예교수 작심비판

소방관 죽음 각오하고 국민보호
의사들 희한한 논리로 진료거부
정부 자율조정 양보하자 더 강경

소아투석병원 교수 사직 예고에
중증환아 부모들은 불안감 커져

 

정부가 ‘의대 2000명 증원 자율 조정’으로 한발 물러서자 의사들이 ‘증원 백지화’를 요구하며 더 강경하게 돌변한 가운데 의대 교수 사회에서 실효성 없는 집단 사직을 멈춰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면허를 반납하는 등 의사를 그만둘 의향이 없는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을 앞세워 정부와 환자를 압박하는 것은 교육자로서 올바르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대병원 교수들은 주 1회 휴진하는 방침을 논의한 데 이어 국내 유일한 소아 전용 투석실을 갖춘 이 병원 소아신장분과 교수 2명이 오는 8월 31일 사직하겠다고 공지해 중증 환아와 부모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정영인(사진) 부산대 의대 명예교수는 23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의대 교수의 집단 사직은 진정성 없는 쇼에 불과하다”며 “이제라도 쇼를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정 교수는 4·6대 국립부곡병원장을 역임했다. 정 교수는 “이참에 개원가로 떠나고 싶은 봉직의들도 있겠지만, 의대 교수들 성향상 많은 노력을 들여 힘들게 취득한 의사직과 교수직을 쉽게 버릴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의대 교수들이 전공의를 보호하기 위해 집단 사직하겠다는 건 교육자로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소방관은 자신의 죽음까지 각오하고 국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화재 현장에 뛰어든다”며 “반면 의사들은 국민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진료 현장을 떠난다는 희한한 논리로 진료 거부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래 의료를 책임질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교육 현장 이탈을 방조하고 그들에게 불이익이 가해질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대 교수들의 겁박은 교육자로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전공의들과 의대생들도 의사를 할 생각이 있다면 병원과 학교로 돌아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사 사회가 조금 더 대승적이고 전향적인 방향에서 의대 증원을 숙고해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정 교수는 “정부가 교대 정원을 늘린다고 교사들이 집단행동을 하냐”면서 “정부가 정책을 결정하면 의대 교수들은 전문가로서 의대 증원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의사는 다른 직업과 달리 생명을 직접 다루다 보니 대체재가 없다”며 “의대 증원이 의사의 존재 가치를 부정할 정도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정 교수가 제시한 의대 증원 당위성은 필수 의료 위기를 제외하고도 여러 가지다. 우선 의사 1인당 진료 환자 수가 너무 많다는 점을 꼽았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의사 외래진료 횟수(연간 15.7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5.9회)의 약 3배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다.

의과학과 바이오산업을 위해서도 의사들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 교수는 “의사들 대다수가 임상 분야에 종사해 전문성을 요하는 보건정책 분야 의사들이 드물다”며 “기초의학 연구와 제약 분야에 종사하는 의료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고, 바이오산업에서 의료 인력 수요가 증가할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의사의 자질로는 환자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품성을 꼽았다. 정 교수는 “좋은 의사란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 내에서 환자와 공감하고 의사소통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의사들의 엘리트주의와 특권 의식은 유별나다”며 “겸손함은 능력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는 부채 의식과 책임감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

 

04-24 전공의 사태 두 달, 가닥 잡힌 의료개혁

국민과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정책 당국은 지난 수십 년 미뤘던 의대 증원을 이뤄냈다. 2000명 증원은 2월에 정해졌고, 3월에는 이 인원이 대학별로 배정됐다. 이제 대학의 모집 인원 미세 조정만 남았다. 많은 사람이 ‘전공의 미복귀’와 ‘대학교수 사직’을 걱정한다. 일부 의사는 ‘한국 의료의 붕괴’를 얘기한다. 하지만 의료 현장은 이것이 기우요 과장임을 알고 있다.


돌이켜보자. 지난 몇 년간 의사들은 의대 증원 절대 불가를 외치며 모든 논의를 거부했다. 정부가 2000명 증원을 발표하니, 일부 의사는 ‘증원 자체’는 찬성하나 ‘과격한 증원 규모’가 문제라 했다. 최근 정부가 증원 규모의 미세 조정 가능성을 비치자 그러한 변화 자체가 ‘2000명은 근거 없음’의 증거라고 억지를 부린다. 의사 단체는 ‘수용 불가’를 외친다. 의대 증원의 수용 여부를 의사가 결정하겠다니 기가 막힌다.

의료정책은 현장 의료 인력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하면 좋다. 의사·한의사·간호사 등 의료 인력은 서로 협조하기도 하지만, 상호 영역 다툼을 하기도 한다. 정책이 한쪽의 요구만 경청하면 다른 쪽의 불만이 커진다. 한편, 의료 인력의 서비스에 대한 보상에 필요한 자금은 국민 일반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의료비의 재원은 의료 현장에서 내는 본인 부담만이 아니다. 평상시에 내는 건강보험료나 실손보험료도 다 국민의 부담이다. 필수의료 의사가 성형 미용으로 빠지지 않게 충분히 보상하자고 한다. 말은 쉽다. 그 돈은 누가 부담하는가. 가장 중요한 당사자는 국민이다.

지난 2월 22일 자 이 코너에서 필자는 ‘전공의 사태’의 본질을 규정하고 ‘국민’을 위한 정책 당국의 흔들림 없는 대응을 강조했다. 전공의들은 본인들의 처지를 알리는 데 성공했다. 수련의 수당 예산도 확보되기 시작했다. 전공의는 배우는 처지라 임상 ‘수련’에 충실해야 함에도, 임상 ‘의사’로서의 복무에 과잉 투입돼 왔음을 확인해 줬다. 잘했다. 의료개혁의 방향성이 분명해졌다. 병원에서 수련의는 배우는 데 집중하고, 전문의가 치료의 중심이 돼야 한다.

한편, ‘증원 정책의 성공’은 우리 국민이 ‘수련의의 떼쓰기’와 이를 앞세운 의사 집단에 이길 수 있음도 확인해줬다. 정책 당국이 이해당사자와 정치인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난 두 달, 우려하던 수준의 의료대란은 다행히 없었다. ‘큰 병원 환자 쏠림’은 놀라울 정도로 해소됐다.

상황은 분명해졌다. 전공의 개개인은 현장 이탈로 수련 기회를 잃고 수익을 상실한다. 다음 달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금년도 수련 기회는 사라진다. 내년도에 수련 과정에 복귀하려 해도 신규 전공의와의 경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병원 수련은 전공의의 특권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책 당국도 수련 환경의 개선을 다짐했다. 예산 당국도 합의했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위에 관련 부처도 참여해 개혁 과제를 논의한다. 반면, 미복귀가 전공의에게 줄 실익은 없다.

의대 증원은 돌이킬 수 없다. ‘대학교수 사직’은 과장이다. 병원은 수입이 줄어 간호 인력을 권고휴직 하게 하는 판이다. 교수들에게도 월급 깎자고 할까봐 걱정이다. 의사들은 실익이 뭔지 돌아봐야 한다. 정책 당국이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성공한 정책을 회수할 리 없다.

 

문화일보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

 

04.27 축구 너마저… 몰락한 한국 스포츠

축구, 인도네시아에 충격 패
40년 만에 올림픽 본선 좌절
단체 구기, 女핸드볼만 진출
48년 만에 선수단 규모 최소

▲한국 축구 대표팀이 26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AFC U-23 아시안컵 8강전에서 인도네시아에 승부차기 끝에 패해 올림픽 본선 진출이 좌절되자 한국 스트라이커 이영준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남자 축구마저 탈락하면서 한국은 7월 파리 올림픽에 1976년 이후 가장 적은 150여 명 선수를 보내게 됐다./뉴시스

 

한국 남자 축구가 U-23(23세 이하) 아시안컵 8강에서 탈락했다. 4강에 올라야 올림픽 본선을 바라보는데 무산됐다. 축구 10회 연속 올림픽 출전 기록도 불발됐다. 믿었던 남자 축구마저 올림픽에 나서지 못하면서 한국은 7월 26일 막을 올리는 파리 올림픽에 150여 명 정도가 나갈 전망이다. 1976 몬트리올 올림픽 50명 이후 48년 만에 가장 적다.

 

황선홍(56) 감독이 이끄는 남자 축구 대표팀(23세 이하)은 26일(한국 시각)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24 AFC(아시아축구연맹) U-23 아시안컵 8강전에서 신태용(54) 감독이 지휘한 인도네시아에 무릎을 꿇었다. FIFA 랭킹 23위 한국은 134위 인도네시아에 내내 끌려다니다 2대2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10대11로 졌다. 1988 서울 올림픽부터 2020 도쿄 올림픽까지 개근하며 축구 종목 세계 최다 연속 올림픽 출전 기록(9회)을 가졌던 한국이 무너졌다. 1984 LA 올림픽 이후 40년만에 올림픽 무대를 못 밟게 됐다.

 

축구마저 쓰러지면서 한국은 파리에 주요 남녀 단체 구기 종목 14개 중 여자 핸드볼만 보내게 됐다. 구기 종목 몰락이 48년 만에 선수단 규모를 200명 아래로 떨어뜨린 원흉이다.

 

규모도 초라해졌지만 메달 전망도 어둡다. 2021년 열렸던 2020 도쿄에서 한국은 1984 LA 6개 이후 가장 적은 6개 금메달에 그쳤다. 종합 순위는 16위. 1976년 몬트리올 19위 이후 가장 낮았다. 파리에선 금메달 5~6개를 바라보는데 순위는 20위권 밖까지 밀려날 수 있다. 일본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 3개 이후 절치부심, 2020 도쿄에서 27개로 반등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는 한국 스포츠가 저출생 여파로 선수 자원이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에서 이를 만회할 체계적인 청사진을 내놓지 못하는 데서 비롯됐다는 게 분석이다. 일부 종목은 국내 프로 리그 시장이 활성화하면서 선수들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안주하는 경향 속에 전반적인 기량이 하향 평준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선일보 장민석 기자

 

04-30 李 “의대 증원 적극 협력”… 의사단체도 이젠 몽니 접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의료개혁, 특히 의대 증원 문제에 대해 예상보다 적극적 입장을 밝힘으로써 전공의 사태는 2라운드로 접어들게 됐다. 이 대표는 29일 윤석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의대 정원 확대 같은 의료개혁은 반드시 해야 할 중요한 국가적 과제이기 때문에 민주당도 적극 협력하겠다”고 했다. 국민이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현안이긴 하지만, 집권 세력의 총선 참패로 의료개혁 동력 상실이 우려되던 때여서 윤 대통령에게는 ‘정치적 선물’ 의미가 작지 않다. 정부는, 의사단체들이 총선 결과가 의대 증원 백지화 민의라고 우기는 상황에서, 예정대로 의대 증원을 추진할 확고한 정치적 근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물론 협력을 위한 세부 문제에서 어떤 난관이 있을지 예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큰 방향에서 초당적 의료개혁의 길이 열린 것은 확실하다.

시기적으로도 매우 중대한 때다. 30일에는 서울대·세브란스·고려대·경상국립대병원 의대 교수들이 하루 휴진했다. 내년도 의대 모집 정원도 대부분 30일 확정된다. 1일에는 대한의사협회 ‘강성’ 지도부 임기가 시작된다. 임현택 차기 회장은 지난 28일 열린 의협 대의원총회에서 “국민의 건강과 의료의 미래를 위해 최전선에서 사투하고 있는 전투병의 심정으로 대응하겠다”며 “의료를 사지로 몰아가는 정책에 대해서 죽을 각오로 막아낼 것”이라고 했다. 거친 말투도 문제이지만, 중요한 의사 ‘법정 단체’ 대표로서 국민에 대한 책임감도 찾아보기 어렵다. 의대 정원 등 의료 정책은 정부와 국회가 결정한다는 당위는 차치하고, 여야가 공감하는 현안에 대해 ‘전투’ 운운하는 것은 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하겠다는 폭언과 다름없다.

의사단체의 ‘증원 백지화’ ‘원점 재검토’ 주장은 갈수록 국민의 지지를 잃어가고 있다. 28일 열린 한국피부비만성형학회 학술대회 참가자의 35%가 전공의라는 언론 보도는 돈을 찾아 필수의료를 떠나는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제라도 명예로운 회군 방법을 모색하기 바란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없던 병도 생길 지경” “진료 일정이 더 미뤄질까 봐 불만 표현도 못 하고 있다”는 환자들 절규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정부는 의료계와 대화를 계속하면서 의대 증원 문제 등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