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治(人) 이야기 2024-04/ 04.01 좌파 우파 그리고 대파 - 04-30 野 주류 된 혁신회의, 위선·막말·궤변 정치 걱정된다
政治(人) 이야기 2024-04/
04.01 좌파 우파 그리고 대파
집값 5억, 10억 치솟게 해 무주택자·청년 울려놓고
5000원 대파로 정권 심판한다는 야당의 부조리
황당하지만 무시할 수도 없는 민심 이반의 현 주소
22대 총선을 앞두고 좌파도, 우파도 아닌 ‘대파’가 급부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특가 판매하는 ‘875원짜리 대파’를 놓고 마트에서 나눈 발언을 앞뒤 맥락 자른 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후보들은 “5000원이랍니다. 5000원”이라며 ‘대파 인증샷’을 올리고 정권 심판론의 주요 이슈로 띄웠다. 자신의 이름과 동음인 정당으로 총선에 뛰어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정권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대파 때문에 망할 것”이라고 성토했다. 개인적 잘못으로 법의 심판대에 올라 있는 정치인들이 대통령 지지율이 낮은 정치 지형을 자신들의 법정 탈출의 천재일우(千載一遇)로 여겨 대파 높이 들고 의기양양 진군하는 모습은 한 편의 부조리극 그 자체다.
TV 개그 프로나 장터 광대극이라면 웃고 넘어갈 수 있다. 앞뒤 맥락이야 어떻든 티끌 같은 소재로도 권력자를 풍자하고 희화화하면 보는 이에게 카타르시스 효과는 있다. 문제는 한 해 600조원 넘는 나라 살림을 배분하고 법안 제·개정도 하면서 국민을 대표하겠다는 정치인과 정당이 이 수준이라면 희극이 아니라 국가적 비극이다.
집권 시절 정책 실패로 5억원 짜리 아파트를 10억원으로 치솟게 해 수많은 무주택자와 청년층을 벼락 거지 만들고 전세 사기 피해자를 쏟아냈던 정당이 정책 노선을 반성하고 제대로 된 공약을 고민하기는커녕 한술 더 떠 5000원짜리 대파 들고 민생 붕괴 운운하는 건 난센스다. 어째서 세계 속의 대한민국은 평판이 점점 높아지는데 ‘내수 상품’ 정치판은 갈수록 상식 이하의 인물과 해프닝으로 채워지면서 퇴보하는가.
역사학자 도널드 서순은 서유럽 좌파 정당의 흥망성쇠를 집대성한 저서 ‘사회주의 100년’에서 사회민주주의로 뿌리내린 유럽 좌파 정당이 지난 100년 기여한 것은 “자본주의를 문명화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복지 제도 확립에 기여했고 계몽주의의 진정한 계승자들이며 시민권과 민주주의의 수호자들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좌파의 근본 딜레마는 복지국가나 부의 재분배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강력한 자본주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서순에 따르면, 좌파는 기본적으로 시장의 힘을 규제하되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선까지 규제해서는 안 되고, 국가 재원이 고갈된 이후의 공공 지출은 억제되어야 하며, 복지국가를 수호할 수는 있지만 확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집권 정당을 경험하면서 유럽 좌파는 급진적인 반(反)자본주의 상징을 내던지고 합리성의 틀 내에서 유지돼왔다.
우리나라 좌파는 왜 그런 길을 가지 않는가. 정치 지형이 지금 같은 좌우 갈등으로 본격 쪼개진 것은 노무현 정부가 분기점이다. 첫 진보 정권인 김대중 정부는 지역색은 강했어도 국가적 위기 수습에 전력했고 대일(對日) 외교 노선도 미래 지향적인 실용주의를 택했다. 후임 좌파 정부는 김대중 대통령의 유화적 대북 정책은 계승했지만 그의 실용적인 정책 운용은 이어받지 않았다. 오랜 세월 정치 자산을 쌓아온 3김 시대가 막 내린 후, 노무현 대통령은 386 운동권과 좌파 시민단체를 지지 기반으로 대한민국은 정의가 패배한 불의의 역사이고 보수 우파를 거악(巨惡)의 기득권으로 상정하는 운동권 논리를 받아들여 증오와 갈등을 정치 동력 삼았다.
“우리의 근현대사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굴절을 겪었다”고 했다. 보수층을 비난하면 깨어 있는 시민으로 인정받고 도덕적 우월성을 부여받는 ‘좌파 비즈니스’가 지난 20년간 상당한 세력을 형성한 상수(常數)로 자리 잡았다. 그새 바뀐 건 주사파 운동권의 단골 메뉴였던 ‘반미·반정부’ ‘군부독재 타도’가 ‘반일·반기득권’ ‘검찰 독재 타도’로 앞 단어만 갈아끼운 채 반복 재생산 중이다.
이들이 합리적 좌파로 진보하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DNA를 가진 민주당 인사들은 이번 공천에서 ‘비명횡사’했다. 북한 문제는 입 닫고, 가상의 거악 앞에서 나나 내 편의 어지간한 잘못은 면죄부를 부여하니 입으로만 ‘정의와 민주’를 외치고 현실로는 편법·불법까지 동원해 빼곡히 이득 챙기는 사람들이 집결하는 도덕 불감증 정당이 되어간다.
대파 흔드는 야당의 총선 공약은 수준 이하지만 그렇다고 “대통령 발언은 대파 한 단이 아니라 한 뿌리 값이었다”는 둥 “문재인 정부 때는 한 단에 7000원이었다”는 둥 ‘대통령의 대파 발언 엄호’에 여당이 매달릴 일도 아니다. 어차피 대파든 쪽파든 깻잎이든 뭐든 흔들면서 선전·선동을 해온 퇴행적 좌파는 좀처럼 변하지 않을 것이다.
경기가 좋거나 대통령의 국정 운영이 지지를 받으면 이런 세력이 확장되기는 힘들다. 대통령이 민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선동의 볼륨을 높이고 이삭 줍듯 표를 채간다. 대통령이 자신과 부인에게 엄격하고 절제하면서 민의에는 더 유연하게 귀를 열었더라면 고작 대파 한 단의 비방에 이리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황당하지만 무시할 수도 없는 ‘대파 심판론’이 이번 총선에서 윤 대통령의 정치 성적표로 매겨지게 생겼다.

조선일보 강경희 기자
04.01 허경영 따라가는 조국 財産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선관위에 신고한 재산은 53억7700만원이다. 그가 법무부 장관에서 사퇴하고 2020년 1월 신고한 공직자 재산은 53억4800만원이다. 4년간 약 3000만원이 늘었다.
그 사이 아내 정경심씨는 징역을 살았고 남편은 서울대 교수직에서 해임됐다. 일반 서민은 한 건만 걸려도 막대한 변호사비로 패가망신한다는 형사 재판을 일가족이 4년째 받고 있지만 재산은 오히려 늘어났다.
아내는 감옥에서 지지자들에게 2년간 영치금 2억4000만원을 받았다. 남편은 북콘서트를 하고 책을 팔아 인세만 연간 2억7800만원을 받는다. 부부가 직업이 있을 때보다 되레 돈벌이가 나아졌다. 지지자들 돈으로 재판 비용을 충당하고 저축까지 하는 것이다.
조국당은 선거 비용으로 지지자 7078명에게서 54분 만에 223억원을 모금했다. 이러니 조국당 비례대표 1번 박은정 후보의 재산이 1년 새 41억원 늘어났다고 해도 조 대표는 별거 아니라는 투다. 그는 41억에 대해 “혜택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 정도는 추종자들에게 언제든 걷어도 걷을 수 있는 돈이라고 느껴졌을 것이다.
박 후보 남편 이종근 변호사는 검사장 출신 전관 경력을 앞세워 다단계 사기범 변호 한 건으로만 수임료 22억원을 받았다. “남편이 전관예우를 받았다면 160억원은 벌었어야 했다”는 박 후보의 해명은 더 충격적이다. 일반 서민은 꿈도 꿀 수 없는 돈이지만 조국당 지지자들은 “능력이 돼서 돈 많이 버는 것도 죄냐”는 분위기다.
조국당 홈페이지에는 “박 후보를 응원하기 위해 오늘도 없는 형편에 후원금을 보낸다”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지난 정권 때도 극성 지지자들은 있었다. 이들은 자산 격차를 최대로 벌린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실정 탓에 서울에서 경기도로 밀려난 뒤에도 광역 버스를 타고 서울로 출퇴근하며 귀로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듣는 모습으로 상징됐다. 김씨가 황폐화시킨 TBS 직원들은 정리 해고를 당하고 있지만 김씨는 유튜브로 간판만 옮겨 여전히 추종자들의 후원금을 받고 있다.
이러한 극성 팬덤 속에 “조국이 가야 할 곳은 국회가 아닌 감옥”이라는 상식이 설 자리는 없다. 연내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면 조 대표는 2년간 감옥에 간다.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되고 2027년 대선에 나올 수도 없다. 그럼에도 친조국 진영은 총선 이후 ‘대선 주자 조국’을 거론한다. 하루가 한 달 같은 한국 정치판에서 8년 뒤 2032년 대선을 논하는 건가.
어느 날 중단될지 모를 개인의 정치적 복수를 위해 조 대표는 지금도 지지자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 이번 총선에 출마한 국가혁명당 허경영 대표는 추종자들에게서 모은 481억원의 재산을 공개했다. 조국은 허경영의 길을 가려 하나.
조선일보 박국희 기자
04.01 [단독]박은정, 검사 때 1년9개월간 한번도 출근 않고 급여 1억 받았다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1번 후보인 박은정 전 부장검사가 검사 시절 1년 9개월 동안 단 한 차례도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급여로 1억원을 받아간 것으로 31일 전해졌다. 박 후보가 2022년 7월 중순부터 올해 3월 초까지 정신과 병원 진단서를 내고 연가, 병가, 질병 휴직을 돌아가면서 썼다는 것이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출근도 하지 않던 박 후보가 갑자기 국회의원이 되겠다며 총선에 나왔다.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1번 후보 박은정 전 부장검사./뉴스1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박 후보는 지난 2022년 7월 4일 광주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 부장검사로 발령받았다. 박 후보는 발령 직후 연가(휴식을 통해 근무 능률을 유지하고 개인 생활 편의를 위해 사용하는 휴가)를 내고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았다고 한다. 검사 등 공무원은 연간 최대 20일간 연가를 쓸 수 있다.
연가 기한이 도래하자 박 후보는 2022년 7~9월 병가(질병·부상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등에 사용하는 휴가)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공무원은 기관장의 판단, 진단서 내용 등을 고려해 연 60일 이내로 병가를 사용할 수 있다. 박 후보는 병가 사유로 정신적 원인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박 후보는 병가 기간이 끝나자 이번에는 질병 휴직(신체·정신상의 장애로 장기 요양이 필요할 때 사용하는 휴가)을 냈다고 한다. 이 휴직 기간이 2023년 10월까지 1년 동안 이어졌다는 것이다. 공무원은 최대 1년간 질병 휴직을 쓸 수 있으며, 한 차례 연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법무부는 박 후보의 질병 휴직을 추가로 연장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2023년 10월 복직 명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박 후보는 2023년 11월 서울행정법원에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복직 명령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박 후보는 법무부의 복직 명령을 즉시 정지하라며 집행정지 신청도 냈는데 그해 12월과 지난 2월 각각 서울행정법원, 서울고법에서 각하됐다. 박 후보는 지난 15일 본안 소송에 대해서도 소 취하 서류를 제출한 상태다.
박 후보는 이 소송이 이뤄지는 기간이던 작년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는 재차 병가를 썼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박 후보는 지난 정부 ‘추미애 법무부’의 감찰담당관으로 재직할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 감찰’에 관여한 의혹으로 지난 3월 법무부로부터 해임 처분을 받으면서 검찰을 떠났다.
박 후보가 2022년 7월 이후 한 번도 출근하지 않고도 그간 사용한 연가, 병가, 질병 휴직 등의 일수를 계산해보면, 급여로 1억원 넘게 받았을 것으로 추산된다. 공무원은 연가, 병가 중에는 급여 전액을 수령받으며 휴직 중엔 급여의 70%만 나온다.
한 법조인은 “박 후보가 연가, 병가, 휴직 등으로 출근하지 않으면서 광주지검 사무실이 텅 비었던 것으로 안다”며 “서류나 집기는커녕 검사와 함께 수사하는 수사관, 실무관 등도 배치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했다. 한 변호사는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공직을 우습게 보던 사람이 총선 유력 당선권인 비례대표 1번을 받은 것”이라며 “1년 9개월 동안 국민 세금만 축낸 셈”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수사와 감찰을 받고 친정집도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극심한 보복 행위에 병을 얻었다”며 “치료를 위한 휴가와 병가 등은 모두 합법적 절차에 따라 구비서류 제출과 기관장 승인을 받아 사용한 것”이라고 했다.
한편,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정부 시절 검찰에서 좌천성 인사를 당한 후 법무부에서 근태 감찰을 받기도 했다. 2020년 1월 당시 추미애 법무장관은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수사를 지휘하던 한 위원장을 부산고검 차장으로 발령냈다가 같은 해 6월 직무 배제 후 법무연수원 용인 분원으로 전보했다. 그해 10월 한 위원장을 다시 법무연수원 진천 본원으로 보냈다. 이때 법무부 감찰관실이 한 위원장이 법무연수원 용인 분원에 출근을 제대로 했는지, 출근 후 연구 업무를 제대로 했는지 등에 대해 감찰에 나선 것으로 알려지면서 ‘보복 감찰’ 논란이 일었다.
조선일보
04.01 편법 대출·황당 궤변…양문석 후보 의원 자격 있나
대학생을 자영업자로 둔갑시켜 사기 논란
공영운 후보, 아들 증여·딸 취업도 도마에
경기 안산갑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양문석 후보의 장녀 ‘불법 대출’ 논란이 일파만파다. 양 후보는 2020년 11월 31억원짜리 서울 잠원동 아파트를 샀는데, 당시엔 시가 15억원 이상의 아파트는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받을 수 없었다. 양 후보는 2021년 4월 대구시 수성새마을금고에서 대학생 장녀 명의로 11억원을 대출받아 구입비를 충당했다. 문제는 장녀가 받은 대출이 일반 주택담보대출이 아니라 사업자 대출이었다는 점이다. 대학생을 자영업자로 둔갑시킨 뒤 11억원을 대출받은 것이다.
일반 주담대는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아야 하지만, 사업자 대출은 먼저 이자만 내면 되는 만기 일시상환 방식이다. 소상공인의 사업 지원이 목적이라서 혜택을 준 것이다. 현재 양 후보가 산 잠원동 아파트 시세는 10억원가량 올랐다고 한다. 부당하게 사업자 대출의 특혜를 이용해 이자만 내는 동안 10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겼다.
법조계에선 양 후보가 아파트 매매를 위해 사업자 대출을 받았다면 ‘사기죄’ 성립이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대출 과정에서 서류조작이 있었다면 문서위조 혐의 적용도 가능하다. 설령 새마을금고 측과 공모한 대출이어도 양 후보의 혐의는 가벼워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양 후보는 30일 “우리 가족 대출로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있냐”는 황당한 궤변을 늘어놨다. 그런 논리라면 음주운전을 해도 사고만 안 내면 범죄가 아니고, 남한테 피해만 안 주면 마약에 손대도 괜찮은 것인가. 공인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힘든 망언이다.
경기 화성을에 출마한 민주당 공영운 후보의 아들 부동산 증여도 영 석연찮다. 공 후보는 2017년 6월 서울 성수동 부동산을 11억여원에 샀다. 넉 달 뒤 현대차그룹 소속 현대제철이 성수동 부동산에 큰 호재가 되는 발표를 했다. 당시 공 후보는 현대차 부사장이었다. 내부자 정보를 활용한 투기라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그 땅은 시세가 30억여원이다. 2021년 4월 공 후보는 공군 병장인 22세 아들에게 그 땅을 물려줬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성수동에 실거주하지 않을 집을 증여로 넘기는 것을 금지하는 규제가 시행됐다. 공 후보는 규제 시행을 몰랐다고 하지만 이게 정말 우연일까. 또 공 후보자가 현대차 사장 시절 딸이 현대차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에 취업한 사실도 드러났다. 공채 입사였다곤 하지만 일각에선 특혜 취업 의혹을 제기한다.
민주당은 최근 세종갑의 이영선 후보가 37억원대 갭투기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곧바로 공천을 취소했다. 그런데 이번 논란에는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해당 후보가 대응할 것”이라며 모르쇠로 일관한다. 깔아뭉개도 어차피 당선된다는 배짱인가. 유권자들은 민주당의 판단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앙일보 사설
04-01 양문석 ‘새마을금고 사기 대출’ 의혹과 민주당 책임
양문석(경기 안산갑)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사기 대출 의혹이 점입가경이다. 2020년 11월에 31억2000만 원에 서울 잠원동 45평 아파트를 매입했고, 2021년 4월 대구 수성새마을금고에서 대학생 장녀 명의로 사업자 대출 11억 원을 받았다. 15억 원 이상 아파트는 주택담보대출이 불가했던 때여서 대학생을 자영업자로 둔갑시켰다. 증빙을 위해 5억 원대 물품구입 서류를 제출했다고 한다.
양 후보는 “새마을금고가 제안해서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수성새마을금고는 “실제로 사업을 준비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양 후보의 딸은 대출 6개월 뒤 어학연수를 떠났다. 양 후보는 지난달 29일 대출금 용처에 대해 “고금리 대부업체 대출 6억 원과 개인 채무를 갚는 데 썼다”고 했다. 애초 물품 구입에 쓸 돈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대출이 주택매입용이었음을 실토한 셈이다. 대출금을 회수당하지 않으려 허위 서류를 꾸몄다고 보는 게 합리적 의심이다. 아파트 매입을 위해 사업자 대출을 받았다면 사기죄에 해당한다. 서류 조작이 있었다면 사문서위조 혐의 적용도 할 수 있다. 이자를 양 후보 아내가 대신 내왔다는데, 증여세를 내지 않았다면 탈루에도 해당한다.
양 후보는 후보 등록 때 해당 아파트 가격을 공시가격인 21억5600만 원으로 신고했다. 실거래가와 공시가격 중 높은 가격을 신고해야 하는데, 9억6400만 원이나 축소 신고해 공직선거법 위반이다. 그런데도 양 후보는 “우리 가족 대출로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있냐”는 황당한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재명 대표는 “훨씬 심한 저쪽 후보는 언급하지도 않는다”고 거들었다. 이런 후보를 공천한 민주당 책임이 무겁다. 위선과 윤리의식 문제만이 아니다. 최소 4가지 실정법 위반을 다투는 문제인 만큼 당장 수사해야 한다. 수성새마을금고 현장검사도 1일 시작됐다. 이제라도 공천을 철회하거나 후보에서 사퇴하는 게 정도(正道)다.
문화일보 사설
04.02 “이대 총장이 이대생 성상납”, 이런 사람도 국회의원 된다니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1번 박은정 후보의 남편 이종근 변호사가 대검 형사부장 재직 때 보고받고 지휘한 금융 사기 사건의 공범 중 한 명을 변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변호사는 대검 형사부장 시절 ‘브이글로벌 코인 사기 사건’을 수사하던 수원지검에 지시를 내리고 보고를 받았는데, 퇴직 후 변호사로 개업해 브이글로벌의 범죄 수익이 흘러 들어간 관계사 대표를 변호했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브이글로벌 사건과는 수사 대상과 범죄 사실이 다르다”고 했지만, 현직 때 보고받고 지시한 사건과 밀접한 사건을 수임한 것은 사실이다. 이 변호사는 다단계 사기 수사의 전문성을 내세웠는데, 변호사 개업 후에는 다단계 업체를 변호해 수임료 22억원을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박 후보는 “전관 예우라면 22억이 아니라 160억원을 벌었어야 한다”고 했다. 놀라운 얘기다.
민주당 김준혁(경기수원정) 후보는 2022년 유튜브에서 ‘이화여대 초대 총장 김활란 여사가 이화여대생들을 미군 장교에게 성상납시켰다’는 주장을 편 사실이 드러났다. 당사자와 학교는 물론, 재학생과 졸업생 전체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발언이지만 뒷받침할 사료나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김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강점기에 해외에서 위안부와 성관계를 했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도 해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박 전 대통령이 초등학생과 성관계를 했을 수 있다고도 했다. 명색이 역사학자 출신이라는 사람이 근거도 없이 충격적 주장을 내놓고 민주당은 그런 사람에게 공천장을 줬다. 김 후보는 3년 전 이재명 대표가 정조 임금 같은 사람이라는 책을 썼고 이번에 공천을 받았다. 민주당 우세 지역이니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상식이 사라진 정치판이라지만 해도 너무한다고 할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사설
04.02 아직 살길이 있다
총선 본질은 주류 교체 전쟁
1948년 건국이념 자유민주주의
87년은 산업화·민주화 세력 타협
야합 아니라 국민의 위대한 선택
하지만 野는 이를 부정하면서
대한민국 역사를 실패로 부정
지금 대로면 큰 국가 혼란 우려
나라 걱정 모든 유권자는 투표를
22대 총선을 보면 가슴이 꽉 막힌다. 파렴치하고 공중도덕에 반하는 범죄인들이 대권을 꿈꾸고, 종북 인사들이 비례대표 당선권에 배치되었다. 어떻게 범죄 집단, 종북 집단을 지지하느냐고 한다. 그러나 국민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분노하고 있다. 그 결과 ‘3년은 너무 길다. 검찰 독재 정권 조기 종식’이 목표인 조국혁신당이 급부상했다. 탄핵과 대파가 이번 총선을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길게 보면 체제와 주류 교체 전쟁이다. 1948년과 1987년, 두 시점에서 보아야 전모가 드러난다. 1948년 대한민국의 제1 건국이념은 자유민주주의이자 반공산주의고, 그게 국가 정체성의 뿌리였다. 6·25전쟁에서 300만의 피로 지켰다. 1980년대 학생운동‧노동운동이 마르크스주의와 김일성 주체사상에 장악되었지만, 공식 제도권에는 진입하지 못한 이유다. 4·10 총선에서 종북 인사들이 국회에 입성하면, 48년 체제의 근본이 무너지는 것이다.
한편 1987년 민주화는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이 타협한 ‘보수적 민주화’였다. 6·29 선언이 물꼬를 텄고, 유혈 사태 없이 민주화에 성공했다. 그렇게 1960년대 이후 흘러온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물줄기가 합류했다. 1990년 3당 합당, 1997년 DJP 연합이 그걸 공고화했다. 하지만 지금 추세라면 87년 체제는 4·10 총선으로 사라질 예정이다.
87년 체제의 와해는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되었다. 노 정부는 보수적 민주화를 야합으로 부정했다. 한국 역사를 노론, 친일파, 친미파의 특권과 반칙이 지배한 실패의 역사로 매도했다. 친노는 그 뒤 광우병 촛불 시위로 이명박 정부를 흔들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성공했다. 적폐 청산으로 200여 명이 구속되고, 5명이 자살했다. 이제 백낙청 교수는 윤석열 정부를 타도하고, 제2기 촛불 정부를 세워 촛불 혁명을 완수하자고 부르짖는다.
사실 우리 국민은 1948년 이후 세 차례 위대한 선거 혁명을 일으켰다. 1956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이기붕을 물리치고 민주당 장면을 선택했다. 그것이 4·19로 이어졌다. 1978년 총선에서 신민당은 공화당을 1.1% 이겼고, 유신 체제 종결로 나아갔다. 1985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창당 한 달 만에 제1 야당으로 올라섰다. 87년 민주화를 발화시킨 불씨였다. 놀랍지 않은가. 한국 정치의 고비 고비마다, 우리 국민은 현명하고 절묘한 선택을 했다. 운동권이 아닌 국민이 민주화의 진정한 주체였다. 1980년대 운동권은 공산 폭력 혁명을 지향했다. 그러나 국민은 공산주의에 반대하고 산업화를 지지했다. 건국과 산업화가 일단락되자 비로소 민주화를 선택했다. 그 선택의 본질이 보수적 민주화였다. 민주주의를 꿈꿨지만, 빈곤과 안보 현실의 한계를 받아들였다. 보수적 민주화는 소수 유력 정치가들의 야합이 아닌 국민의 위대한 선택이다.
하지만 지금 보수적 민주화가 무너지고 있다. 범죄와 종북이 용인되고, 탄핵이 주요 이슈가 된 게 그 예후다. 문제는 다수 유권자가 동조한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나? 이것은 왜 한국이 세계 1위 저출생국, OECD 자살률 1위 국가가 되었나와 같은 질문이다. 한국은 성공했지만 행복하지 않다. 일종의 국가 자살이 일어나고 있다. 12대88로 쪼개진 노동시장이 불행한 사회의 하부구조다. 87년 체제는 정치적 민주화를 이뤘지만, 경제적 민주화는 악화되었다. 의미 없는 고난은 분노와 복수의 감정 르상티망(ressentiment)을 낳고, 낮은 감정에 지배되게 만든다. 적에 대한 혐오, 부자에 대한 질시 같은 부정적 강령에 쉽게 결집되는 게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F. Hayek). 아이러니지만, 지금 이런 분노의 가짜 선지자가 확성기를 들고 있는 형국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근본적으로는 21세기 보수가 나와야 한다. 제2 건국 차원에서 보수의 가치를 제로베이스에서 재성찰하고, 48년·87년 체제를 넘어 새로운 체제를 세워야 한다. 다음으로 애국적이고 합리적인 보수의 대오를 정비하고, 조직을 강화해야 한다. 정서적 양극화가 극단화되어 민주적 게임 규칙이 무너졌다. 총성은 없지만 공작 정치가 일상화될 정도로 사태가 심각하다. 마지막으로 4·10 총선 이후의 국정 운영 문제다. 지금대로면, 레임덕은 물론 큰 국가적 혼란이 야기될 것이다. 보수의 궤멸을 막고 국가를 지키려면, 당이 전면에 나서 비상 대책을 세우고 내각과 함께 수행해야 한다.
앞으로 10일간 모든 일을 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국민의 아주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겠다”고 다짐하고, 대국민 담화에 나선 것은 만시지탄이다. 조해진 의원은 “아직 살길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에게 무릎 꿇는 것”, 그리고 국정 쇄신을 위한 내각 총사퇴도 요구했다. 무슨 일인들 못 하겠는가. 나라를 걱정하는 모든 유권자도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낙담하지 말고, 최후의 1각까지 선거장에 나가야 한다.
조선일보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04-02 며칠만 버티면 배지 단다는 ‘비리 막말’ 李·曺당 후보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후보들의 불법·비리 의혹과 저급한 막말 사례가 연일 쏟아지지만, 해당 정당은 공천 책임을 통감하긴커녕 뭉개기에 들어갔다. 여론조사에서 우세를 보이는 만큼 며칠만 버티면 그만이라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4·10 총선까지 본투표 기준으론 8일, 사전투표 기준으론 3일 남았다. 그런 사람들이 국회의원 배지를 단다면 여의도 정치는 더욱 저질화한다. 국회는 국민과 국익을 위한 민의의 전당이 아니라 위선자들의 소굴이 된다. 유권자들이 이런 오만한 행태를 심판할지, 아니면 저질 정치꾼들에게 지배당할지 두고 볼 일이다.
새마을금고 불법 대출 의혹을 받는 민주당 양문석(경기 안산갑) 후보는 “아파트를 처분해 대출금을 긴급히 갚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좋은 정치로 보답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 봐도 사기죄 등 불법 혐의가 짙다. 11억 원의 사업자 대출을 받아 놓고선 개인 빚 상환과 부동산 투자에 써 버렸다. 대출 유지를 위해 5억 원의 의류 등 물품 대금 증명서를 제출했다고 하는데, 본인 주장으로도 11억 원을 모두 빚 갚는 데 썼다고 했다. 물품 대금 증명은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 대학생 자녀를 대신해 부모가 이자를 내줬다면 증여세 탈루가 된다. 양 후보가 검찰에 고발되고 새마을금고 중앙회도 조사에 들어갔는데, 당은 개인 문제라며 아무 조치도 하지 않는다.
조국당의 박은정 비례대표 1번 후보 부부의 행태도 점입가경이다. 남편인 이종근 변호사는, 대검 형사부장 재직 시절 보고받고 지시했던 금융 사건에 연루됐던 일당 중 1명을 변호했다고 한다. 다단계 사기 가해자에게 22억 원의 수임료를 받고 변호한 것과 별개다. 직업윤리 위반이자 불법의 혐의도 짚인다. 박 후보 본인의 경우, 광주지검으로 발령받고도 1년9개월간 병가·소송 등을 통해 출근하지 않으면서 1억 원의 급여는 챙겼다. 병으로 검사 직무는 못하는데 국회의원 활동은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민주당 김준혁(경기 수원정) 후보는 2022년 유튜브에서 ‘이화여대 초대 총장 김활란 여사가 이화여대생들을 미군 장교에게 성 상납시켰다’는 주장을 편 사실이 드러났다. 김 후보는 이화여대와 김 여사 유족들의 명예를 훼손한 셈인데, 아무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종군 위안부, 초등학생과 성관계를 했을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펼쳐 역시 유족들이 고소한 상황이다. 비리·막말 후보들이 무더기로 국회의원에 당선된다면, 해당 지역 유권자를 수치스럽게 하고 국민을 모독하는 일도 된다.
문화일보 사설
04-02 전공의 ‘불법 집단행동’ 부추긴 의사들, 엄정 수사해야
윤석열 대통령의 1일 의료개혁 담화에 대한 의료계 반응은 냉랭하지만, 총선 뒤 의·정(醫政) 대화가 본격화할 가능성은 커졌다. 의대 증원 2000명 및 각종 의료개혁 과제에 대한 협의가 개시되더라도 법과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경찰은 전공의들의 불법적 집단 이탈과 복귀 명령 거부 등을 부추기거나 업무 복귀를 방해한 사범들을 특정했다고 한다. 신속한 수사와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본부장 우종수)는 전공의들이 의료법 위반을 피하는 방법이라며 ‘업무개시명령 송달이 오면 문을 열어주지 말라’ ‘문서를 받아도 서명하지 말라’는 등의 행동 지침을 인터넷 공간에서 공유한 군의관 2명을 최근 압수수색을 통해 확인했다고 한다. 군의관은 의사 이전에 군인 신분이다. 군의관과 공중보건의가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대거 투입된 위기 상황에서 이런 글을 올린 당사자는 물론 배후까지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
근무 중인 공보의 명단을 유출한 현직 의사와 의대 휴학생도 특정했다고 한다. ‘집단행동에 불참한 전공의 명단’‘전공의들은 병원을 떠나기 전 진료 기록을 삭제하라’는 등 이번 사태를 악화시키고 선동한 글들이 올라온 의료인 커뮤니티에 대한 수사도 상당한 진척이 있다고 한다. 의료법 위반은 물론, 업무방해교사 혐의도 짚인다. 대한의사협회 회장 당선인은 “전공의나 교수, 학생 하나라도 민형사상 불이익이나 행정처분을 받는다면 총파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겁박했지만, 이런 데 휘둘리면 법치는 붕괴한다.
문화일보 사설
04-02 유권자 얕보는 ‘부동산·전관’ 비리
부동산이 선거판을 흔들고 있다. 국민이 부동산을 비롯한 후보자의 개인 재산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공정하거나 정의롭지 못한 방식으로 부자가 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경기 안산갑에 공천된 더불어민주당 양문석 후보는 서울 서초구 잠원동 아파트를 살 때 대학생이던 딸 명의로 11억 원의 사업자금 대출을 받았다. 그 시기도 2020년 8월로 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 담보 대출을 억제할 때였다. 딸은 6개월 후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났고, 11억 원을 대출받은 딸이 평생 낸 세금은 ‘0원’이었다. 양 후보는 편법 대출을 시인하면서도 자신의 대출로 피해를 본 사람이 없다면서 무엇이 문제냐고 항변한다. 과연 그런가. 누군가는 대출을 받지 못해 사업을 접었을 수도 있다. 대학생도 11억 원을 대출받는데 나는 뭔가 하는 수많은 청년의 허탈함은 어찌할까.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재명 대표는 2채 이상의 부동산을 가진 경기도 공직자들을 승진 심사에서 모두 제외해 불이익을 줬다. 그토록 공직자의 부동산 문제에 엄격했던 이 대표가 ‘찐명’ 양 후보에 대해선 말이 없다.
그 밖에도 민주당 경기 화성을 공영운 후보는 현대차 부사장 시절 매입했던 서울 성수동의 땅과 건물을 2021년 4월, 당시 군 복무 중이던 아들에게 갑자기 증여했는데, 바로 다음 날 이 지역에 공 후보와 같은 방식의 증여는 금지됐다. 우연이라기엔 너무나 공교롭다. 민주당 서울 관악갑 박민규 후보는 본인 명의로 11채의 오피스텔과 일가 명의로 수십 채를 가지고 있고, 국민의힘 경기 수원정 이수정 후보는 서울 서초구와 용산에 아파트 4채를 가지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공직 후보자가 다수의 주거용 부동산을 갖는 것은 분명 국민 정서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후보자의 재산과 관련한 또 다른 이슈는 전관예우로 갑작스럽게 부자가 된 경우다. 법조인들의 경우가 많은데, 이미 역대 정부에서 총리를 비롯한 공직 후보자들이 전관예우로 불어난 재산 때문에 낙마한 바 있다. 조국혁신당의 비례 1번 박은정 후보의 남편 이종근 변호사는 검사장 출신으로 퇴임 후 1년 만에 160여 건을 수임하고 재산이 41억 원이나 늘었다. 비난이 쏟아지자 박 후보는 전관예우라면 최소한 160억 원은 벌었어야 했단다. 변호사들이 차고 넘쳐 6급 공무원으로 취업하는 세상에 착수금만 억대를 버는 사건을 2∼3일에 한 건 수임해 놓고도 전관예우가 아니라니 그런 억지가 어디 있는가. 같은 당 비례 2번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계약서를 다 썼으니 전관예우가 아니라는 궤변을 늘어놨다. 1년 전 그는 전관예우는 ‘전관범죄’라며 극도의 혐오를 보였었다. 두 사람이 속한 조국혁신당은 검찰 독재라며 검찰개혁을 공약했는데, 이런 고무줄 잣대로 검찰개혁을 한다니 기가 찬다.
듣기조차 민망한 막말과 궤변이 난무하니 선거판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많다. 여론조사 전화가 오면 아예 거절하거나 스팸 등록을 해 버리니 지금 100% 휴대전화로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가 맞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내 한 표가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마음으로 모두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크고 단단한 댐도 작은 구멍 하나 때문에 무너진다. 부동산과 전관예우가 선거판을 어떻게 뒤흔들지 두고 볼 일이다.

문화일보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04-02 이재명 “셰셰”에 담긴 위험한 세계관
“왜 중국을 집적거려요” 발상
국적도 의심케 하는 事大字小
中 대사의 중국몽 훈시도 경청
6·25도 일제 식민지도 미국 탓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 편들기
역사와 정세 인식의 왜곡 심각
지난달 22일 충남 당진 유세장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중국에 사대(事大)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그는 “양안(중국·대만) 문제에 우리가 왜 개입하느냐. 대만해협이 어떻게 되든, 중국과 대만 국내 문제가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왜 중국을 집적거려요”라고 했다. 그의 ‘사대자소’(事大字小·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섬기고, 큰 나라는 작은 나라를 사랑해주는) 세계관이 가감 없이 드러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2022년 대선 후보로 나서면서부터 대한민국 국민임을 의심케 하는 기이한 언행을 마구 해 왔다.
같은 날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반대 이유를, 러시아와 척진 순간에 한반도 안보 상황이 나빠진다고 했다. 강대국에 대한 ‘사대’를 넘어 주권 존중과 무력 사용 금지 원칙을 위반한, 불법적인 침략 행위를 묵인한 발언이었다. 2022년 2월 대통령 후보 토론에서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6개월 초보 정치인’으로 조롱하며, 나토(NATO) 회원국이 우크라이나의 가입을 반대하는데도 ‘가입을 공언’하고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러시아와 충돌했다며 러시아 침공을 정당화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또한, 그는 대선 후보 시절 예방한 미국 상원의원단과의 환담에서 이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결례를 범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일본에 한국이 합병된 것은 미국이 ‘가쓰라-태프트 협약’을 통해서 승인했기 때문”이라며 “결국, 마지막에 일본이 아니라 (태평양)전쟁 피해국인 한반도가 분할되면서 (6·25)전쟁의 원인이 됐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라고도 했다. 그의 반미(反美) 의식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이렇게 왜곡된 역사 인식과 세계관으로 ‘편 가르기’식의 외교 입장을 보인 그에게서 다시금 한반도를 구한말 시대 말기로 되돌릴 수 있는 위험성이 읽힌다. 그의 친북·종북·친중·반미·반일 인식이 우리 사회를 양분화의 늪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의 정치적 전력(前歷)을 보면 당리당략을 모티브로 이들 간의 당파싸움을 유발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우리가 대만해협의 안보 상황을 우려하는 것은, 국익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항행의 자유, 무역 항로 등보다 중국의 야망이 더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가쓰라-태프트 협약은 청의 쇠약으로 더는 한반도를 보호하지 못하는, 그리고 세계정세가 동맹 체제로 대립하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결과물 중 하나였다. 당시 강대국의 세력 다툼은 동아시아에서도 치열했다. 러시아와 프랑스 동맹, 영국과 일본 동맹, 삼국동맹 등으로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루던 국제 역학 구조가 ‘영·일·러·프 대(對)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탈리아’로 양대 블록화한 덫에 한반도가 희생됐다. 정세를 오판하면서 오해·오인한 결과다.
협약 전에 하이에나와 같았던 제국 열강들은, 청의 한반도 입장과 보호 능력을 수차례 확인하는 정지 작업을 했다. 청의 능력과 의사 부족이 감지된 데 이어 한반도를 포기하는 현실로 이어졌다. 결국, 열강들의 야합이 가능해진 결정적 이유였다. 청이 극도로 의존하는 조선을 포기한 결과로 이어지면서 하루아침에 우리는 나라를 잃었다.
오늘날 중국은 100년 전 중화민족의 부흥과 영예 회복에 전념하고 있다. 이를 ‘인류운명공동체’라는 포장지로 ‘중국몽(夢)’을 포장한다. 중국몽과 인류운명공동체가 주는 함의를 우리는 중국의 관점에서 곱씹어야 한다. 우리를 다시 예속·복속·종속시키려는 의도와 목적을 내포한다는 사실을. 이 세 단어의 의미를 제1 야당 대표는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알았다면 지난해 6월 주한 중국 대사의 훈시를 경청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외교를 잘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타고난 ‘사주(四柱)’에 국민은 통감한다. 2007년부터 국민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의 설문 결과가 증명한다. 2023년 우리 국민의 11%만이 중국을 협력 대상으로 여겼다. 나머지는 경계·경쟁·적대 대상으로 인식했다. 국민은 한·중 협력(4.5%)보다 한·미 협력(27%)을 우선시한다. 남북 협력을 포함해 균형적인 협력(43%)을 더더욱 선호한다. 국민은 왜곡되고 편향된 외교를 원치 않는다는 방증이다.

문화일보 주재우 경희대 교수·국제정치
04.03 사전 투표에 대한 불신과 불안 해소할 책임 선관위에 있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사전 투표를 사흘 앞둔 2일 오후 광주 광산구 쌍암공원에서 에코바이크 회원과 광주선관위 직원들이 자전거에 홍보물을 부착하고 투표 독려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4·10 총선 사전 투표가 5일, 6일 이틀 동안 진행된다.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국 읍·면·동마다 1곳씩 설치된 사전 투표소 어디서나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2014년 지방선거에 처음 도입됐을 당시만 해도 사전 투표를 택한 유권자는 전체 투표자의 11.5%였다. 선거를 거듭할수록 참여율이 높아져 2022년 대선에선 36.9%에 달했다. 이제 사전 투표는 우리 선거의 주요한 부분이 됐다. 이번 총선도 마찬가지다.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 부른다. 하지만 생업 등의 이유로 선거 당일 투표장을 찾기 어려운 유권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들의 선거권을 보장하는 사전 투표는 공직자 선출의 정당성을 확보해 민주주의 취지를 살리는 바람직한 제도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엔 사전 투표 제도를 불신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특히 현 여당이 참패한 2020년 총선은 사전 투표 조작설이 분출하는 계기가 됐다. 선관위는 사전 투표 시연회까지 열어 그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2022년 대선 당시 전대미문의 ‘소쿠리 투표’로 부정선거 의혹에 기름을 부었다. 급기야 이번 총선을 앞두고 사전 투표를 감시하겠다며 전국 사전 투표소 40여 곳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사람이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선관위는 사전 투표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처하기 위해 몇 가지 개선 조치를 내놓았다. 우선 사전 투표 용지 일련번호를 QR코드가 아닌 바코드로 인쇄하기로 했다. QR코드에 개인 정보 등이 담겨 조작에 활용된다는 일각의 의혹을 의식했다. 이 밖에 사전 투표함 보관 장소의 CCTV를 상시 공개하고, 사전 투표 선거인의 신분증 이미지 보관 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이런 미시적 조치들로 유권자들의 불안감을 불식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선관위는 그동안 헌법상 독립기관임을 내세워 어떤 견제도 받지 않으며 내부 비리, 직무 태만 등 적폐를 쌓아왔다. 감시 사각지대에서 자기들끼리 이익을 누리며 ‘신의 직장’을 만들었다. 그러니 본연의 임무인 선거 관리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북한의 해킹 공격을 8차례 받고도 알지 못했다. 이를 지적한 국정원의 보안 점검 권고도 거부하다 여론의 지탄이 쏟아지자 마지못해 수용했다. 선관위의 이런 모습이 선거 관리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대한 유권자의 신뢰를 갉아먹은 진짜 이유일 것이다. 선관위는 이번 총선에서만큼은 사전 투표에 대한 불신과 불안을 해소시킬 수 있도록 만전의 대비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4.03 與에 유리하게 나온 여론조사… 여심위 “표본에 문제” 공표 중단시켜
한경 ‘모바일 웹조사’ 방식에 제동
與선 “개딸들의 항의 때문이냐”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모습./뉴스1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가 한국경제신문의 여론조사에 대해 최근 공표 중단을 권고했다. ‘모바일 웹조사’ 방식으로 진행된 이 조사는 여권이 다른 조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전한 것으로 나왔다. 여당은 결과 발표를 중단시킨 데 대해 강력 반발하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2일 여심위에 따르면 여심위는 한국경제신문 의뢰로 피엠아이가 진행한 여론조사의 표본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해당 업체에 공표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피엠아이는 전화 면접이나 자동응답시스템(ARS)이 아닌, 응답자가 지지 후보 등을 체크하도록 하는 모바일 웹 조사 방식을 채용했다. 응답률을 높이고 무당층의 설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피엠아이 조사에서 일부 수도권 지역구는 다른 조사와 달리 국민의힘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심위는 피엠아이가 쓴 표본이 지역·연령·성별 비율을 동일하게 추출하지 않아 여론조사 기준 위반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세부 자료를 요구했다. 피엠아이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 등을 이유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고, 이에 공표 중단을 권고했다는 게 여심위 주장이다. 한국경제신문 측은 여심위가 이번 조사 방식에 대해 이미 인지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사실상 사전 협의를 했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여당 후보 지지율이 높아 야당 지지자들이 반대하자 편향적으로 해당 조사를 퇴출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신지호 국민의힘 미디어위원장은 논평을 내고 “이 업체 여론조사 결과 중 일부 지역에서 여당 후보 지지율이 높게 나왔다. 그러자 바로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이를 문제 삼았고, 야권 강성 지지자 항의가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김태준 기자
04.03 “이런 정부 처음…” 문재인 전 대통령이 할 말은 아니다
부동산·나랏빚·탈원전·소득주도성장·동맹 균열 등
역대급 정책 실패 반성은커녕 그런 말할 자격 있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틀 연속 윤석열 정부를 향해 “칠십 평생 이렇게 못하는 정부는 처음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일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부산 사상구, 양산시를 돈 데 이어 어제는 울산 일대를 다니며 더불어민주당 출마 후보를 응원했다. 문 전 대통령은 현 정부에 대해 “정말 무지하고 무능하고, 무도하다” “눈 떠 보니 후진국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정신 차리도록 해줘야 할 것 같다”고도 말했다.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다. 우선 직전 대통령이 퇴임 2년도 안 돼 파란 점퍼를 입고 직접 현장을 돌며 대놓고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 역대 대통령들은 국민 통합 등을 의식해 자신과 가까웠던 후보들이 사저에 찾아오면 덕담을 건네는 수준에 그쳤다. “임기가 끝나면 잊혀진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간절히 했던 말은 도대체 뭐였는지 이제는 되묻고 싶지도 않다. 다만 문 전 대통령이 현 정부에 대해 “이렇게 못하는 정부는 처음 본다”는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분명히 되물어야겠다.
문 전 대통령 시절 경제 기반은 망가졌다. 경제를 정치 논리로 풀다 보니 추가경정예산을 무려 열 번이나 편성, 나랏빚이 400조원가량 급증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도 50%대로 높아졌다. 가파르게 최저임금을 올리고 주 52시간으로 근로조건을 규제하는 바람에 인건비는 치솟고 물가는 급등했다. 세계 수준의 원자력 기술을 내팽개치고 탈(脫)원전을 한다며 어설프게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추진하다 국가경쟁력은 추락했다. 피해는 온전히 국민 몫으로 돌아왔다. 임시직과 일용직을 합한 실직자 수는 3년간 70만 명으로 폭증했고, 영세 자영업자들의 폐업 행렬도 줄을 이었다. 부동산값 폭등을 막지 못해 재임 중 발표한 부동산 대책만 무려 27차례다. 서민들에게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란 절망을 안겼다. 그래 놓고 “부동산 문제만큼은 자신 있다”고 한 사람이 바로 문 전 대통령이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정책실장 등 11명이 부동산 통계를 125차례에 걸쳐 조작한 혐의로 재판까지 걸려 있다. 말 그대로 역대급 실패의 정부였다. 그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현 정부가 불필요한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뿐인가. 5년 내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란 ‘희망적 사고’에 사로잡혀 북한의 핵 고도화를 방관한 과오는 치명적이다. 죽창가를 부르며 한·일 관계를 최악으로 치닫게 한 책임도 막중하다. 그러면서 전 정부 사람들 1000명 이상을 조사하고 200명 넘게 구속하는 희대의 보복 수사를 했다. 그 과정에서 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국민 누구나 현 정부를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총체적 정책 실패의 당사자가 몰염치하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다. 정말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전직 대통령이다.
중앙일보 사설
04-03 김준혁 “미군에 性상납” 이화여대 넘어 전체 여성 모독
국회의원은 물론 모든 공직자는 최소한 국민 평균 수준 정도의 양식(良識)은 갖춰야 한다. 정파와 상관없는 기본적 요건이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이 경기 수원정에 공천한 김준혁 후보의 막말과 저급한 행태를 보면, 술 취한 시정잡배의 ‘망언 배설’ 수준이 수두룩하다. ‘지성인의 기본적 덕목 함양’을 맨 앞에 내세운 한신대학교 평화교양대학 소속 부교수라고 하니, 더욱 어이없다. 3선에 원내대표를 지낸 박광온 의원을 제치고 ‘찐명’ 공천을 받은 김 후보의 여성 모독 행태만 봐도 국회의원 자격이 없다.
김 후보는 2022년 유튜브 방송에 나와 “이화여대 초대 총장을 지낸 김활란 씨가 미 군정 시기에 이대 학생들을 미군 장교들에게 성 상납시켰다”고 했다. 논란이 일자 “역사학자로서 증언과 기록에 바탕을 둔 내용”이라고 했는데,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그가 내세운 근거는 성공회대 이임하 교수의 ‘한국전쟁과 여성성의 동원’(2004년) 논문이지만, 1950년대 초 위문단을 조직해 부산 근처 군부대를 방문했다는 언급은 있지만 성 접대 내용은 없다.
이화여대는 2일 “본교와 재학생, 교수, 동창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시켰다”면서 “전체 여성에 대한 명백한 비하 의도를 담고 있다”고 후보 사퇴를 촉구했다. 한국 여성교육과 여성운동의 요람인 이화여대로서는 정당하고 당연한 대응이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도 후보 사퇴를 요구했다. 버티던 김 후보는 민주당에서 사과를 권고하자 SNS에 “정제되지 못한 표현”이라며 사과한다는 글을 올렸지만, 사실 자체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하진 않았다. 김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강점기에 위안부와 성관계를 했을 것’ ‘교사일 때 초등학교 학생과 성관계 가졌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쳐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고종이 그렇게 여자를 밝혔다. 밤마다 파티” “6·25전쟁 참전을 고마워하면 친미 사대주의자”라고도 했다.
자신을 ‘궁중 에로 전문가’라고 한 김 후보는 역사학자는 물론 국회의원 자격도 전혀 없다. 이재명 대표를 조선시대 정조에 비유한 책을 출간한 것 때문에 공천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인물을 공천한 민주당과 이 대표 책임이 크다. 이 대표는 김 후보 주장에 동의하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아니라면 즉각 공천을 취소하는 게 옳다.
문화일보 사설
04-03 이번엔 女후보 향해 “나베”… 李대표의 끝없는 비하 본색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나경원(서울 동작을) 국민의힘 후보를 향해 “나베란 별명으로 불릴 정도”라고 했다. ‘나베’는 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이름과 섞어 나 후보를 비방해온 조어로, 일본어로 냄비라는 뜻이며, 매춘부에 빗대는 성적 비하 표현으로도 쓰인다. 지난달 이 대표 지지자 페이스북 그룹에 류삼영 민주당 후보 사진과 함께 ‘냄비는 밟아야 제맛’ 홍보물이 올라왔고 “여성 비하” 비판을 받았다. 이번엔 이 대표가 재생했다.
나 후보는 지난 2019년 이 표현을 문제 삼아 네티즌들을 무더기로 고소하기도 했다. “이번 총선은 신(新)한일전” 주장도 해온 이 대표는 나 후보가 2004년 일본 자위대 창설 기념행사에 참석한 것을 연결하려 했을 것이다. 총선을 외교 전쟁에 비유하는 어불성설의 논리와 선동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여성 비하 표현을 기어이 다시 입에 올린 언어 습관도 본색을 의심할 정도로 개탄스럽다.
이 대표의 비하 발언은 시리즈 수준이다. 지난 1일엔 “살림은 역시 여성들이 잘하더라”며 성차별적 인식을 내비쳤고, 지난달 26일엔 “때리는 의붓아버지, 계모”라며 재혼·입양 가정 비하를 서슴지 않았다. “강원서도로 전락”(23일)이라며 강원도를 비하했고, 총검을 쓰는 흉내를 내며 5·18 민주화운동을 경박하게 비유(21일)했다. ‘2찍’ 발언(8일)으로 상대 정당 지지층 비하 논란도 있었다. 지난 대선 때 ‘형수 ××’ 발언을 사과했지만, 저급한 언동의 본색은 바뀌지 않았다는 개탄이 나오는 이유다.
문화일보 사설
04.04 여성 비하하고 공격해도 침묵하는 여성 단체들, 존재 이유가 뭔가
민주당 김준혁(경기 수원정) 후보는 2022년 유튜브에서 ‘이대 초대 총장 김활란 여사가 이대 학생들을 미군 장교에게 성상납시켰다’고 말한 근거로 성공회대 교수의 논문을 언급했다. 그러나 그 논문에 ‘성 상납’ 내용은 없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강점기에 위안부와 성관계했을 것’이라고도 했지만 아무 근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명색이 역사학자 출신이라면서 역사적 근거도 없는 ‘여성 비하’ 발언을 쏟아냈다. 이대 측이 “전체 여성에 대한 명백한 비하”라며 후보 사퇴를 촉구하고, 민주당도 선거를 감안해 사과를 권고하자 김 후보는 그제야 “표현에 신중하지 못했다”고 했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사람(김 후보)이 당선돼 정치를 한다면 망언밖에 더 하겠나”라며 “(의원) 자격이 없다”고 했다. 위안부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내놓을 분노와 반응이다. 그런데 여성 운동을 한다는 여성 단체와 여성 운동 경력을 내세우던 민주당 정치인들은 분노는커녕 기이하리만치 조용하다. 김활란 총장이 초대 회장을 맡았던 여성단체협의회 정도만 “규탄한다”고 했다.
4년 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 때도 여성 단체들은 침묵했다. 여성 단체 출신 민주당 의원들은 가해자인 박 전 시장을 ‘아름다운 분’이라고 하고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고 불러 2차 가해를 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 때도 비판에 나선 여성 단체는 드물었다. 윤미향 의원이 위안부 할머니의 고초를 이용해 돈벌이한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입을 닫았다. 오히려 “위안부 운동 훼손 우려”라며 윤 의원을 감싸기까지 했다. 이재명 대선 후보의 ‘형수 욕설’ 등에 대해선 귀를 막았다. 2018년 유명 문화 예술인의 성 추문이 잇따라 터졌을 때도 침묵하거나 마지못해 하나 마나 한 성명을 냈다. 이 땅의 여성 단체들은 왜 존재하나.
조선일보 사설
04-04 내일 사전투표… 막말·파렴치·위선 후보부터 걸러내야
4·10 총선의 사전투표가 5·6일 이틀 동안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된다.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지난 2013년 처음 도입된 이후 계속 비중이 높아져 이번 선거에선 본투표를 능가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제도 자체에 대한 찬반, 투·개표 과정의 부정 및 해킹 가능성 등의 논란이 여전하지만, 사전투표는 대세가 됐다. 국민의힘 후보와 당직자들도 5일 투표에 적극 참여한다.
이번 사전투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부실하거나 편향된 여론조사에 유권자가 휘둘리는 밴드왜건 효과가 우려된다는 사실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투표일 전 일주일 동안 실시된 여론조사를 공표하지 못하게 했는데, 사전투표의 경우엔 그런 장치가 무력화한다. 그만큼 유권자의 냉철한 판단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번 선거에선 무자격 후보들이 너무 많이 주요 정당의 공천을 받았다. 따라서 정파와 진영에 상관없이 막말·파렴치·위선 등 이른바 3대 저질 후보들에게 투표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해졌다.
막말 후보의 대표적 사례는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후보(경기 수원시정)다. 김 후보의 ‘이대생 성 접대’ 발언을 이화여대 및 전체 여성에 대한 모독으로 규정한 이화여대는 4일 사퇴 촉구 집회도 연다고 한다. 학교와 총동창회가 모두 나섰다. 김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고종까지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비난하는 바람에 유가족·후손들의 고소·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이화여대는 학교와 총동창회 차원에서 후보 사퇴를 요구한 데 이어 4일엔 교내에서 사퇴 촉구 집회도 연다. “2찍” “셰셰” 등 이재명 대표의 막말 시리즈도 만만치 않다. 나경원 국민의힘 후보를 겨냥해 “나베(매춘부 비유)”라는 멸칭을 쓰면서, 2년 전 대선 당시 이 대표의 ‘형수 ××’ 발언까지 소환되고 있다. 딸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을 해, 서민 금융기관인 새마을금고에서 거액 대출을 받아 강남 아파트를 산 양문석 민주당 후보(경기 안산시갑)의 파렴치 행태도 개탄스럽다.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일부 후보들의 행태는 앞뒤가 다른 자칭 진보의 추악한 위선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비례 1번인 박은정 후보는 1년9개월간 질병을 핑계로 출근도 않고 1억 원의 급여를 받았다가 검찰 개혁을 하겠다며 출마했다. 남편 이종근 변호사는 다단계 가해자 변호 등으로 9개월간 41억 원을 벌었다. 한미동맹을 비판했던 김준형 후보(비례 6번)는 자녀 3명이 미국 국적자로 밝혀졌다.
문화일보 사설
04-04 “性상납, 나베” 여성 비하 野 유유상종
‘당신이 솔선해서 올바르게 행동하면 누가 감히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하겠는가.’ 논어 안연편에서 공자는 정치의 정(政)과 올바르다는 뜻의 정(正)이 발음이 같은 것을 이용해 정치는 올바르게 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올발라야 하는 대상은 우선 자기 자신이다. 그런 후에 본인이 대표하고자 하는 국민을 올바르게 해야 한다. ‘대학’에서 말하는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와 같은 말이다.
제22대 국회의원 300명을 뽑는 총선이 채 일주일도 안 남았다. 욕설·비방·막말이 난무하는 정치의 현장에서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더 나은 정책을 지향하는 경쟁은 실종되고 말았다. 우리나라는 현재의 재정제도가 지속된다는 전제 아래 모든 인구 시나리오에서 장기 재정의 지속 가능성은 매우 위험한 수준이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인구 고령화로 재정지출의 경제성장 제고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노동 공급의 감소, 고령층 고용의 질 저하, 고령층 가구의 소비 성향 둔화 등이 주요 원인이다. 총선 공약 등 정치적 재정 수요 증가에도 불구하고 증세 등 재원 조달 방안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달빛고속철도, 지역 공항 등 신규 지역 투자 수요는 총선 후 국민에게 청구서로 돌아올 게 분명하다.
국정을 이끌어갈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최선의 후보 고르기가 아니라 최악을 피해야 하는 형국이 됐다. 경기 수원시정에 입후보한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경우는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유권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것은 최소한의 상식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김 후보는 2022년 한 유튜브 방송에서 이화여대 총장을 지낸 김활란 씨가 미군정 시기에 이대생들을 미군 장교들에게 성(性)상납시켰다고 했다. 역사학자로서 증언과 기록에 바탕을 둔 내용이라고 한 궤변은 사실이 아니다. 1950년대 초 위문단을 조직해 부산 근처 군부대를 방문한 것과 김 후보의 발언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이 밖에도 김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강점기에 위안부와 성관계를 했을 것, 교사일 때 초등학교 학생과 성관계를 가졌을 것이라는 등의 막말을 했다. 김 후보는 한신대 교수로서 역사학자는 물론 국회의원 자격도 없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예외가 아니다. 나경원 국민의힘 서울 동작구을 후보를 향해 ‘나베’란 별명으로 불린다고 했다. 나베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의 이름과 섞어 나 후보를 비방한 조어로, 일본어로 쓰면 냄비라는 뜻이며 매춘부를 빗대는 성적 비하 표현이다. 나 후보가 2004년 일본 자위대 창설 기념행사에 참석한 것을 연결하려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총선을 신(新)한일전이라 주장하고 외교전쟁에 비유하는 논리와 선동도 심각한 문제지만, 여성 비하 표현을 자주 입에 올리는 이 대표의 습관은 참으로 개탄스럽다.
이런 저급한 여성 비하 발언을 서슴지 않는 수준 미달의 후보들은 퇴출돼야 마땅하다. 법적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정치의 장에서 유권자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최소한의 양식도 없는 후보를 투표로써 과감하게 걸러내는 것이다. 아무리 정치가 혼탁해도 도망갈 수 없다(exit)면 목소리를 내라(voice)고 한 경제사상가 앨버트 허시먼의 조언이 새삼 가슴을 울리는 오늘이다.
문화일보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04-04 ‘저질의 전당’ 막아야 할 유권자 책임
오는 10일은 제22대 국회의원을 뽑는 날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는 그 어느 선거보다 중요하다. 대통령은 법을 준수하면서 행정부를 운영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도라는 말은 틀렸다. 국회는 대통령도 탄핵소추 하며, 대통령을 포함해 모든 국민이 지켜야 할 법을 만들고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확정한다. 국회는 해산되지도 않는다. 정치에 실망했다면 투표를 통해 올바른 국회의원을 선출해야 한다.
이번 선거가 국정을 심판하는 선거라는 주장이 있다.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국정 파탄의 책임은 국회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국회가 대통령의 비전을 입법적으로 지원하는 경우 경제가 성장했다. 반면 여소야대로 국회가 구성되면, 정치 공세로 국정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비타협적인 야당이 국회를 장악하면, 국회는 대통령과 국무위원·검사 등 행정부 요인들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끊임없이 발의하거나, 대통령의 국정 비전과는 정반대의 법안을 만들고 정부 안(案)을 계속 부결시킨다. 다수의 횡포는 국정을 파탄으로 내몬다.
국회의원의 자질도 중요하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로서 합리적 판단으로 법을 만드는 사람이다. 전과자도 이미 죄의 대가를 치르고 반성했다면 국민의 심판을 받아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 전과자가 아니어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는 사람은 국회의원이 될 자격이 없다. 입시 비리를 저지른 사람이 공정 사회를 외치고, 몹쓸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이 막말한다고 다른 사람의 공천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모순이다. 국회의원이라는 권력을 이용해 처벌을 피하려는 사람이 출마하는 것은 국민을 업신여기는 일이다. 이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면 자신을 위해 법을 악용하게 된다. 의정 활동보다 코인 투기를 하는 사람들이나, 국회에서 돈봉투 돌리거나 공천 받기 위해 아양 떠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면, 오직 자신의 영달을 위해 권력을 사용(私用)하게 된다.
입으로는 부동산 투기를 막겠다고 떠들지만, 부동산 투기를 일삼는 사람이 권력을 얻으면 어떤 일을 하겠는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인카드를 사용하는 사람이 국가의 재정을 어떻게 심의하겠는가. 법을 악용해 토지를 강제 수용하고 사적 이익을 위해 공모한 사람이 어떻게 국가사업을 돌보겠는가. 북한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자유민주주의를 폄훼한 사람이 대한민국 헌법을 수호하겠는가. 공당이라면 이런 사람들을 국회의원 공천에서 떨어뜨렸어야 하지 않는가. 이렇게 국민을 무시한 공천을 본 적이 없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이 꼭 투표해야 하는 이유는 수없이 많다.
총선에 출마한 후보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표를 하지 않는다면, 국민을 탄압하는 국회의원이 나온다. 거짓말하는 사람들을 걸러내고, 진심으로 국민을 위해 노력하는 인물을 뽑지 않고 외면한다면 나라를 망치는 사람들이 금배지를 단다. 투표장에 나가서 올바른 사람에게 한 표를 행사하지 않는다면, 국민을 업신여기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당선된다. 몸과 마음이 불편해도 꼭 선거일에 투표해야 하는 이유다.
올바른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돼야 하고, 올바른 국회의원이 국정을 이끌어야 ‘민의의 전당’이 된다. ‘저질의 전당’을 막을 사람은 유권자 국민이다.

문화일보 양준모 연세대 교수·경제학
04-05 범법·위선자 즐비 조국당이 제3당 넘보는 참담한 현실
비례대표 선거용으로 급조된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가 4일 “목표한 ‘10석+α’는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오르자, 사실상 원내 제3당을 넘보는 것이다. 사법 시스템의 신뢰를 유린하고 사회적 정의의 상식조차 저버린 기형적 정당임에도 국회 입성을 대놓고 자신하게 만드는 현실이 참담하다.
조 대표는 자녀 입시 서류를 허위로 작성·위조한 혐의 등으로 2심도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범법자다. 그런데도 자기 이름을 당명에 넣은 사당(私黨)을 만들었다. 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고 감옥 신세를 져야 하는데 “책 읽고 팔굽혀펴기하겠다”고 휴가 가는 듯이 받아 넘겼다. 첫 입법 과제로 ‘한동훈 특검법’을 공언하며 “저희 딸만큼 수사하라는 것”이라고 복수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후보 명단에는 범법·위선자들이 즐비하다. 1번 박은정 전 검사는 수사를 받고 있고, 1년9개월 동안 출근하지 않고도 1억 원이 넘는 월급을 받았다. 남편은 다단계 사기 사건 가해자의 변호를 맡아 22억 원의 수임료를 받았는데, “전관예우라면 160억 원은 벌었어야 했다”고 했다. 6번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은 줄곧 한미동맹을 비판해놓고, 장녀·차녀·장남 모두 미국 국적을 갖게 했다. 4번 신장식 변호사는 전과자, 8번 황운하 의원은 1심 유죄를 선고받았다.
조 대표는 “검찰 독재 조기 종식과 더불어, ‘제7공화국’ 건설이 공약의 양대 기둥”이라고 했다. ‘사회권’을 주장했지만 구체적 내용도, 추진 로드맵도 없이 추상적인 개념들만 늘어놓은 맹탕이다. 그러고도 거창하게 개헌 운운하는 건 유권자 현혹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입시 비리 범죄자가 ‘대학입시 기회균등’을 강령으로 내세운 모순적 언행이 그대로다. 오로지 윤석열 정부에 대한 반감,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의 틈새를 노리는 말뿐이다. 이런 퇴행적 정치 행태를 두고 봐야 하는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4-05 투표로 ‘부적격 정치인’ 심판할 시간
비방선거운동은 늘 문제였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가 도를 넘는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민의힘을 제주 4·3 학살의 후예라고 폄훼하고 이에 대해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이재명은 일베’라고 맞받아친 것을 보면 거북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지역구 후보들의 부적절한 발언들을 모으면 ‘막말 대장경’은 순식간에 완성돼 버린다. 정치의 품격을 찾아볼 수 없다.
이번 총선을 지배하는 정서를 한마디로 말하면 ‘혐오(嫌惡)’다. 상당수 유권자의 마음속에는 지지하는 정당이 이기는 것보다 경쟁 정당이 승리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이 더 간절하다. 2년 전 대선이 후보들에 대한 비호감으로 얼룩졌는데, 이번 총선도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가 진영 논리의 덫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정당과 후보자들은 자극적인 언어 구사에 환호하는 지지자들의 열광에 짜릿한 희열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선거 결과를 결정하는 중도층에는 거부감을 준다. 무당파가 주축인 중도층이 정치에 실망해 선거를 외면할수록 비난 전략의 영향력이 강해진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몰아낸다는 그레셤의법칙이 적용된다. 바로잡아야 한다. 정치 균형감을 가진 중도층이 정치인들에게 정치의 중심은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들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시민을 두려워하게 해야 한다.
본격적인 선거는 공천부터 시작되는 만큼 거대 양당의 공천 과정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본선거가 시작되면서 바로 지난달에 그리도 혼란스럽고 갈등을 양산했던 공천의 우여곡절은 모두 잊은 듯하다. 유권자들의 선택에서 공천 과정 평가가 빠진다면 정당 리더들은 다음 선거 때도 공천의 불공정은 본선거가 시작되면 다 잊힐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공천을 자기 계파가 정당을 지배하는 기회로 삼을 것이다. 그 결과 정당의 고질적 문제인 보스 중심의 당 운영이 계속되고 당내 민주화는 요원해진다.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해 정당 공천의 공정성 여부가 본선거에서 평가받는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라 할 때 그 의미는, 이들이 국민 평균이 아니라 모범적이고 바람직한 인물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유권자들은 투표 결정에 후보자의 자질을 중시하고 상당한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한다. 총선 후보들 중 과거 자신의 행위가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아도 법적 문제가 없으니 당당하다고 우기는 인물은 국민의 대표로 부적절하다.
합리적 유권자가 되려면 편협한 시선을 버려야 한다. 호감이 덜한 후보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는 균형 감각을 가져야 한다. 출마한 후보들의 정치철학이 뭔지, 제시한 공약들이 예산을 무시한 선심 공약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비교 평가하는 태도가 정치 발전을 가로막는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는 첩경이다.
기권은 침묵일 뿐, 정치인들은 경고의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기권은 어떤 결과든 그냥 수용하겠다는 소극적 추종으로 인식되며 무시될 뿐이다. 권리는 행사할 때 그 가치가 발현된다. 5일과 6일은 사전투표일이다. 유권자의 엄중함을 보여줄 시간이다. 집으로 배달된 선거공보물이 거실 구석에 뒹굴고 있다면 열어 보자.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국민 수준과 일치한다는 말을 되새길 때다.

문화일보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04-05 서울 12곳·경기인천 13곳 ‘박빙’… 곳곳 1~2%P차 승부

서울 용산 강태웅 vs 권영세
기관 따라 승패 엎치락뒤치락
분당갑 이광재vs안철수 1%P차
4·10 국회의원 총선거가 5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여야는 모두 전국 50여 곳을 박빙 지역으로 꼽으며 막판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각 당의 판세 분석과 여론조사상 수도권 25곳이 최대 격전지로 꼽힌다. 5%포인트 안팎에서 승부가 갈릴 이 지역의 승패에 전체 총선 성적도 결정될 전망이다.
◇접전지 된 한강벨트 = 5일 여야의 판세 분석과 3일까지 조사돼 공표된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서울 48개 지역구 중 12곳이 접전지로 분류된다. 접전지는 주로 한강벨트에 집중돼 있다. 지난 총선 때는 용산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을 모두 더불어민주당이 싹쓸이하며 총선 압승의 교두보가 됐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이 수성에 나선 용산은 여론조사마다 결과가 엇갈릴 정도다. 2∼3일 서울경제 의뢰로 한국갤럽이 무선전화면접 조사를 실시한 결과 강태웅 민주당 후보가 47%, 권영세 후보가 40%였고, 같은 날 매일경제 의뢰로 넥스트리서치가 무선전화면접 조사를 실시한 결과 강 후보 45%, 권 후보가 46%였다.
마포갑과 중·성동갑과 을, 광진갑·을 지역은 대체로 민주당 의원이 다소 앞선 것으로 조사되지만 막판 보수층의 결집과 오리무중인 20∼30대의 표심에 따라 언제든 결과가 뒤집힐 수 있는 지역으로 여야 모두 꼽고 있다. 나경원 국민의힘 후보와 류삼영 민주당 후보가 맞붙은 동작을은 민주당이 총공세를 벌이고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동작을에서 승리할 경우 국민의힘을 강남권에 묶어두는 효과와 한강벨트 수성의 이중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4년간 지역구를 다진 나 후보의 개인기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김민석·황희 두 현역 의원이 나선 영등포을과 양천갑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영등포을에는 오래 지역을 챙겨온 박용찬 국민의힘 후보의 저력이 만만치 않고, 양천갑에서는 당내 공천에서 두 현역 의원을 꺾은 구자룡 국민의힘 후보의 상승세가 뚜렷하다는 게 여야의 공통된 판단이다. 강남3구 중 유일하게 민주당이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송파병, 현역 의원끼리 맞붙은 강동갑도 접전지로 꼽힌다.
◇경기·인천 접전지는 13곳 = 상대적으로 국민의힘의 상승세가 뚜렷한 서울에 비해 경기와 인천은 여전히 민주당이 다소 우세한 판세다. 국민의힘은 경기 60개 선거구 중 지난 총선에서 7석을 얻는 데 그쳤다. 그나마 지난 총선 때 국민의힘이 의석을 차지했던 지역도 곳곳이 접전지로 분류된다. 동두천·연천·양주을, 양평·여주, 포천·가평, 이천 등 국민의힘이 승리했던 지역에서 국민의힘은 경합우세로 판단하고 있다. 김준혁 민주당 후보의 막말이 계속 논란이 되고 있는 수원정도 이수정 국민의힘 후보와 백중세다.
성남분당갑·을 두 지역 모두 각 캠프의 자체 분석이나 여론조사상으로도 딱 붙어있다. 분당갑에서는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수성에 나서지만 이광재 민주당 후보의 상승세가 무시 못 할 상황이다. 김병욱 민주당 의원에게 김은혜 국민의힘 후보가 도전장을 낸 분당을 역시 조사마다 오차범위 내에서 경합 양상이다. 인천에서는 현역 의원이 나선 중·강화·옹진과 동·미추홀을이 국민의힘 입장에서 해볼 만한 지역으로 꼽힌다. 연수갑도 오차범위 내에서 여야 후보가 혼전을 벌이고 있다.
민병기 기자 mingming@munhwa.com
04.06 퇴직하자 피의자 방패로 나선 국수본부장과 검사장의 염치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이 2월 2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뉴스1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남구준 경찰청 초대 국가수사본부장이 대형 입시 업체 메가스터디의 사외이사로 선임됐다고 한다. 지금 메가스터디는 ‘사교육 카르텔’ 비리 혐의로 국수본 수사를 받고 있다. 2023학년도 수능 영어 지문이 메가스터디 소속 ‘일타 강사’의 모의고사 지문과 일치해 교육부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다. 사교육 수사는 남 전 본부장 퇴임 이후 시작됐지만 수사 대상인 교육 업체가 교육과 무관한 직전 수사본부장을 영입한 이유는 불 보듯 뻔하다. 1년 전까지 국수본부장을 하며 맺은 후배 경찰들과 연분을 이용해 전관예우 특혜를 받고 수사에 영향을 주려는 계산일 것이다. 그런데도 4급 이상 퇴직 공무원의 재취업을 심사하는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취업 후 경찰에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작다”고 했다. ‘전관예우 허가장’을 내준 것이다.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1번 박은정 후보 남편인 이종근 변호사는 부장검사를 하던 2016년 코인 업체 회장과 부회장을 다단계 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대법원 유죄 확정까지 이끌어냈다. 그런데 사기범들이 지난해 다른 ‘코인 다단계 사기’로 구속되자 이번엔 변호사로 나섰다. 그는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고 했다. 검사로 수사했던 ‘동일 사건’을 수임하면 불법이지만 ‘동일 피의자’를 변호하면 합법이라는 주장이다. 이 변호사는 대검 형사부장 때 보고받고 지휘한 금융 사기 사건의 일당 중 한 명 변호도 맡아 거액을 챙긴 적도 있다.
전직 고관들의 전관예우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래도 종전엔 갈 곳과 못 갈 곳을 분별하고 사건을 가려 수임하는 등 선을 지키려는 노력은 보였다. 요즘은 최소한의 양식마저 사라지고 있다. 권순일 전 대법관은 퇴임 직후 대장동 사건 핵심인 김만배씨의 부동산 회사에서 고문으로 일했다. 김씨와의 특별한 인연이 아니라면 대법관 출신이 갈 만한 자리가 아니다. 권 전 대법관은 김씨와 관련한 뇌물,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변호사 등록을 했다.
국수본부장은 전국 18개 시도경찰청의 수사를 총괄하는 자리다. 계급도 경찰청장(치안총감) 바로 아래인 치안정감이다. 수사 경찰 3만명을 지휘했던 ‘초대 본부장’이라면 후배 경찰들이 부담을 느낄 자리는 피하는 것이 상식인데도 남 전 본부장은 국수본이 수사하는 교육 업체로 옮겼다. 검사장까지 지낸 이 변호사는 검사와 범죄자로 만난 연줄까지 돈벌이에 이용하려 한다.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조선일보 사설
04-06 [단독]“범죄 국회의원 사퇴하라”…일타강사 전한길의 일침

▲난공TV 쇼츠화면 캡
全, 최근 강의 도중 “과거 범법 행위자, 현재 법적 문제자 정계 은퇴 선언하라”
2030 정치 무관심 원인으로 ‘정치인 도덕적 결함’ 꼽기도… “롤 모델이 없다”
총선 임박하며 영상 관심 급증… 조회수 123만 명 돌파
공무원 한국사 ‘일타강사’ 전한길(53) 씨가 최근 강의 도중 “과거 범법행위를 했거나 범죄행위 했거나 지금도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정계 은퇴를 선언하라”고 촉구한 영상이 4·10 총선을 앞두고 재조명되고 있다
제22대 국회의원 총선 사전투표 둘째 날인 6일 메가공무원의 공무원 수험 전문 유튜브 채널 ‘난공TV’에 따르면, 전 씨는 지난 2월 26일 게재된 ‘국회의원 범죄자 사퇴해라’라는 제목의 쇼츠 영상에서 “보고 있나. 정치하지 말라고”라며 4·10 총선에 출마한 전과 경력 정치인을 직격했다. 그는 “너희 때문에 국민이 실망하고, 국민이 분열된다”며 “되먹지 않은 국회의원 때려치워라”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해야 만이 우리나라가 살아난다”고 강조했다. 해당 쇼츠는 이날 오전 10시 현재 123만3155회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전 씨는 2030 세대 청년들의 ‘정치 무관심’ 현상의 원인으로 ‘정치인의 도덕적 결함’을 꼽기도 했다. 그는 “MZ(밀레니엄+Z세대) 청년들이 지금 정치에 관심 없다, 욕한다, 왜 그렇게 됐느냐”며 “정치하는 지도자들이 전부 다 되먹지 않는 XX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진짜 제대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애쓸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고, 지도자가 돼야 하는 것”이라며 “그러면 국민이 하나로 뭉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아들, 딸 보고 ‘너도 앞으로 이런 사람 되어라’하고 롤모델로 삼아야 하는 사람이 돼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범법자 정치인)을 어떻게 롤모델로 삼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저는 절대 (정치) 안 한다는 전제로 이런 발언을 한다. 대부분 국민 대신해서 이야기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https://www.youtube.com/shorts/Yb6xHOfuQMA?feature=share
전 씨는 최근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애와 업적을 조명한 영화 ‘건국전쟁’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자 “관람과 평가는 자유”라는 식의 입장을 거듭 밝히기도 했다. 영화를 봤다는 그는 당시 “보지 말라는 사람이 더 이상하다. 그건 혹세무민”이라며 “역사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공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건국전쟁’을 비판하는 일부 역사 전문가들을 겨냥해 “네가 알고 있는 걸 전부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X무식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 씨는 “농지개혁 잘하고 6·25전쟁과 공산화 잘 막아내지 않았는가. 그 덕분에 우리나라가 지금 북한보다 GDP가 30배가 높다”며 “이 전 대통령이 공산화 막은 덕분에 기초가 다져지고 전쟁이 없는 것이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그다음 ‘독재는 독재다’라고 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화일보 김성훈 기자
04.08 사전 투표율 역대 최고, 선거 수준은 사상 최저
5~6일 실시된 제22대 총선 사전 투표의 투표율이 31.3%로 나타났다. 지난 총선의 26.7%보다 4.6%포인트 높고, 역대 총선 중 최고치다. 국민의힘은 “비리·범죄자를 거부하는 민심”이라고 했고, 민주당은 “정권 심판 민심”이라고 했다. 총선 사전 투표율은 2016년 본격 도입된 이후 계속 높아져 왔다. 여야의 아전인수식 해석보다는 유권자들이 갈수록 사전 투표에 익숙해진 결과라고 보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투표율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여야의 선거운동 수준은 최악이다. 여야 대표들은 선거를 시작하면서 “절제된 언행을 하자”고 해놓고 막상 선거가 시작되자 듣기 민망한 말을 자신들이 앞장서 쏟아내고 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살 만하면 2번 찍든지 아니면 집에서 쉬시라”고 하더니 ‘회칼 발언’을 흉내 낸다며 칼로 허벅지를 찌르는 시늉을 하고, “몽둥이로 뒤통수 때려서 대XX 깨진”이라고 했다. 상대 당 여성 후보를 일본어로 ‘냄비’를 뜻하는 ‘나베’라고 비하하기도 했다. 한동훈 위원장도 시간이 흐를수록 거친 말을 쏟아내고 있다. 야당 후보들을 겨냥해 “정치를 같이 하는 사람이 문제” “쓰레기 같은 극단주의자” “구질구질하고 지질하다”고 했다. “3년은 너무 길다”를 선거 구호로 내건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는 “윤 대통령 레임덕, 나아가 데드덕을 만들겠다”고 외치고 있다. 5년 임기의 반환점도 돌지 않았고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직무 행위가 아무것도 없는 대통령을 임기 도중에 끌어내리겠다고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선거는 시작부터 약속 위반이었다. 여야 모두 위성정당 폐지를 공약해 놓고 이를 어겼다. 유권자에게 허수아비를 찍으라고 강요한 것과 같다. 함량 미달 후보도 과거 어느 때보다 많았다. 대학생 딸 이름으로 11억원을 대출받아 강남 아파트를 산 후보, 군 복무 중인 아들에게 30억원 부동산을 증여한 후보, 이대 총장이 미군에게 이대생을 성 상납했다고 주장한 후보도 있었다. ‘5·18 폄훼’, ‘난교 발언’ 등으로 공천이 취소되자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사람도 있다. 유권자들이 불쾌감을 넘어 모욕감을 느낄 정도다.
어떤 선거든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말과 행동이 거칠어진다고 하지만 이번 선거는 유독 그 정도가 심하다. 그래도 투표는 해야 한다. 투표는 국민의 주권 행사이자 정치권에 대한 견제 수단이다. 저질·막말 정치를 꾸짖기 위해서라도 오는 10일 투표장에 가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4.08 사전투표율 신기록…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사전투표율 신기록 31.28%
“윤 정권 심판하는 민심” 對
“범죄자에게 분노하는 마음”
결국은 결집… 누구 마음 더 클까
우리는 잘 잊는다. 집단 기억력은 더 허술하다. 2017~2022년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잊어버린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문 전 대통령의 취임사 제목이기도 했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나라에서 줄줄이 겪어냈던 비참지경을 글 쓸 때마다 반복하기도 이젠 지친다. 인상적이고 비유적인 한 문장으로 문 정권의 특징을 요약해놓지 않았던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삶은 소대가리, 미친 집값, 울산 선거공작, 이런 말들이 소태처럼 입안을 감돌 뿐이다. 모레 총선 결과에 따라 그 시절로 더 과격하게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을 잊는다.
만약 이재명과 조국이 입법부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면 십중팔구 원수를 갚으려 할 것이다. 원수를 갚는다, 이 말처럼 사악하면서도 강력한 에너지를 분출하는 슬로건도 없다. 범죄 혐의자인 그들이 응분의 대가로 치러야 했던 수사와 재판 과정을 탄압과 고난으로 분칠하면서 새 세상을 맞은 팔뚝 완장을 으스댈 것이다. 당장 초여름부터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비롯한 두어 개 특검법 발의, 국정조사 발동, 국무위원 해임안, 탄핵안 발의 그리고 가을쯤 선제적 개헌안을 꺼내려 들 것이다.
지금껏 그들이 입에 달고 살았던 정권 심판이란 말은 윤석열 정권의 국정 운영을 비판하는 것처럼 들리겠으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원수 갚기다. 심판은 원래 종교적 의미가 먼저다. 세상 끝 날에 하나님이 지상의 악인들을 쓸어버릴 때 심판이라고 한다. 아마겟돈이다. 인간은 인간을 심판할 수 없다. 우리 정치판에서는 이 심판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쓴다.
2011년 문재인 자서전에는 ‘정치 보복의 먹구름’이란 챕터 제목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후임 이명박 정권의 정치 보복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때 문재인이 우리 정치판에 걸어놓은 정치 보복이란 주술은 도무지 풀릴 기미가 없다. 이번엔 이재명과 조국이 거기에 올라탔다.
그들은 국민이 가진 분노의 감정을 선점하고 부추겼다. 윤 정권의 아쉬운 점을 극화해서 분노의 심판이라는 프레임으로 확대재생산했다. 어느 정권이든 평가 받을 부분과 미진한 부분은 함께 존재한다는 점을 잊게 만들었다. 그들은 겁 없이 오만했다. 명품백 스캔들, 이거 하나만 붙잡고 있으면 총선은 치르나 마나라고 떠들었다. 꽃놀이패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특검을 받아들여도 생큐, 거부해도 생큐라고 했다. 그러다 작년 말 한동훈 비대위원장 등판을 계기로 여당에 역대급 컨벤션 효과가 반전의 계기를 만들었다. 새해 들어 이재명 사당화,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야당 최악의 악재가 여당에 반사 이익을 몰아줬고, 공천 파동은 곧 야당 파탄의 법칙이라도 되는 것 같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 이후는 잘 아는 스토리다. 여권에서 빌미를 제공한 이종섭 황상무 사건, 의료 사태, 그리고 대파값 구설이 판세를 또 뒤집었는데 막판에 김준혁 양문석 공영운 박은정 같은 야권 후보가 전대미문의 극단적 망언, 위법적 사기 대출, 내로남불 대물림, 40억 전관예우로 국민의 성정에 엄청난 상처를 내면서 우파의 재역전 결집 현상을 불러오고 있다.
그제 31.28%라는 사전투표율 신기록은 이재명과 조국이 유세장에서 흔들어대고 있는 파우치백과 대파보다는 김·양·공·박이 밑뿌리부터 흔들어버린 공정과 상식의 파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봐야 옳다. 민주당은 “윤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성난 민심이 확인됐다”고 했고, 국민의힘은 “우리가 범죄자들에게 화가 났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했는데, 민심은 그 어디쯤에 움직이고 있다.
문제는 결집이다. 대통령 이승만은 광복을 맞이한 나라로 돌아오면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다. 그 말이 무려 80년 뒤에 한동훈의 입에서 이토록 절박하게 되살아날 줄은 몰랐다.
조선일보 김광일 기자
04.08 김숙희 “한국 여성 모독 ‘더러운 입’… 그들 국회 보내면 역사에 죄짓는 일”
[김윤덕이 만난 사람]
불편한 다리 끌고 ‘김준혁 시위’
87세 김숙희 전 교육부 장관

▲불편한 왼쪽 다리를 이끌고 시위에 나온 87세 김숙희 전 장관은 “이화여대와 김활란 총장을 모독한 더러운 입에 침묵하는 건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다./김지호 기자
87세 김숙희 전 교육부 장관이 지난주 이화여대에서 열린 ‘김준혁 규탄 대회’에 나선 건, 모교와 김활란 초대 총장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더불어민주당 수원정 김준혁 후보가 “김활란이 종군위안부를 보내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했고, “이화여대생들을 미 장교에게 성상납시켰다”고 주장한 데 분노한 노(老)교수는, 뇌졸중으로 마비됐던 왼쪽 다리를 이끌고 시위대에 합류했다.
이화여중·이화여고·이화여대를 나와 “내 이력서에서 이화를 빼면 아무것도 없다”는 김 전 장관은 김활란 박사에게 강의를 들은 마지막 세대다. “내가 참어른으로 존경하고 따른 김활란 박사에 대한 폄훼와 모욕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는 그는 “거짓 선동, 여성 비하를 밥 먹듯 하는 자들이 국회로 들어간다면 이 나라엔 미래가 없다”고 했다.
◇머리에 性만 가득한 역사학자
-몸이 불편해 보이신다.
“다리는 이 모양이지만 절뚝거리며 나갔다. 내 위 선배들은 거의 돌아가셨거나 누워 계시니 나라도 나가야지. 그런 소리를 듣고 어떻게 그냥 앉아 있나.”
-왜 그토록 화가 나셨나?
“내가 김활란 박사에게 배운 마지막 제자다. 4학년 때 ‘여성과 직업’이란 강의를 그분께 직접 들었다. 당시 김활란은 이대생뿐 아니라 한국의 모든 여성이 앙모하던 롤모델이었다. ‘나도 이다음에 김활란 박사처럼 될래’ 하며 자랐다. 그런 어른에게 듣도 보도 못한 역사학자가 국회의원 후보라고 나와서 더러운 소리를 했다기에 내가 나섰다.”
-한신대 교수로 역사학자인 김준혁 후보는 김활란 총장이 종군위안부를 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는 김활란 박사가 이화전문학교 교장이었다. 일본 놈들이 이화생들도 전쟁에 동원되도록 연설을 하라고 그분을 옛날 체육관 있던 건물의 큰 나무 아래로 강제로 끌고 내려갔다. 그러나 일본 놈들이 떠나자마자 기숙사로 쫓아 올라가셔서는 학생들에게 여기서 빨리 도망가라고, 고향 가서 결혼을 하든지 초등학교 교사라도 해서 강제 동원을 피하라고 하셨다.”
-김준혁은 김활란이 낙랑클럽을 통해 이화여대생들을 미 장교에게 성상납시켰다고도 했다.
“그 사람이 신학대 교수가 맞나? 어떻게 머리엔 든 거라곤 성(性), 섹스밖에 없나. 낙랑클럽 같은 건 나는 모른다. 다만 김활란 박사는 유엔이 6·25에 참전해 준 걸 무척 감사히 여기셔서 우리에게 ‘유엔데이(10월 24일)’를 그냥 보내지 말고 정성껏 기념하라고 당부하셨던 기억이 난다.”
-김준혁은 이임하의 논문 ‘한국전쟁과 여성성의 동원’을 근거로 성상납을 주장했다.
“전쟁으로 이화대학이 부산으로 피란 갔을 때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너무 기뻤던 김활란 박사가 미군 장교들을 불러 식사 대접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미국인들에게 밥을 주려면 몇 마디라도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하니 교수들과 영어과 상급반 학생들을 불렀을 것 아닌가. 낙랑클럽인가 하는 것도 그런 차원이었을 것이다.”
-논문이 인용한 1953년 미국 CIC 보고서 원문에 ‘엔터테인(entertain)’ ‘호스티스(hostess)’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더라.
“영어도 모르는 것들이 흉측한 쪽으로 해석을 했겠지. 미국에서 엔터테인을 섹스와 연결해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컬럼비아대에서 학위를 받은 김활란 박사가 영어가 유창하니 이승만 대통령이 뭔 일이 생기면 의견을 구하고 이화대학에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다. 두 분 다 독실한 크리스천인데 그 과정에 어떻게 성상납이란 행위가 있었다는 건가. 그런 더러운 상상만 하는 이가 국회의원 후보라는 건 유권자에 대한 모독이다. 그 후보의 대학 선배란 사람이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겠다고 하더라.”

▲이화여대 총동창회 회원들이 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 앞에서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경기 수원정 후보의 '이대생 성상납' 막말을 규탄하고 후보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천 쪼가리로 기워 입은 두루마기
-김활란 총장은 어떤 사람이었나.
“말씀 한마디를 해도 참 캐주얼했다. 권위를 가지고 덤비는 사람이 아니라 순박하고 겸손했다. 내가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식품영양학) 포스트닥터를 하다 이화여대 교수로 왔는데 당신 집으로 나를 잠깐 와보라고 하시더라. 과학 얘기 좀 해보라며. 그때만 해도 외국에서 사이언스(과학)를 공부하고 온 여성이 거의 없었다. 선생이 늘 입고 다니시던 두루마기도 잊을 수 없다. 안쪽을 보니 군데군데 천 쪼가리로 기웠더라. 검약하기도 하셨지만, 당신은 오래 입어 몸을 폭 감싸주는 옷이 좋다고 했다. 박마리아처럼 폴리티컬(정치적)한 분이 아니었다.”
-김활란은 한국YWCA 창립자이기도 하다.
“1922년에 베이징에서 만국기독학생회의가 열렸다. 그곳에 대한민국 대표로 김활란 박사가 가셨다. 일제강점기인데도 세계 청년들이 모여 만국 회의를 하는 곳에서 이분이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로 당당히 등록하고 인증을 받아 오셨다. 한국 YWCA가 일본보다도 규모가 크다. 2022년 4월이 100주년이었다.”
-여성운동의 기초를 그때 마련한 셈인가.
“한국YWCA를 세운 뒤 김활란 박사가 펼친 생활 운동이 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선 다들 외상(床)에 밥을 먹었다. 할아버지 밥상 따로, 아버지 밥상 따로 차리다 보니 여자가 부엌에서 헤어날 시간이 없는 거다. 그래서 김 박사가 다 같이 둘러앉아서 먹는 둥글레 밥상을 생활화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여성들을 부엌에서 끄집어내려고. 그런 세세한 것까지 다 이분의 아이디어로 나왔다.”
-해방 이후에는 한국여성단체협의회를 창립했다.
“김활란 생각에 우리나라 여성들이 이화대학만 쳐다보고 있어선 안 되니 일종의 풀뿌리 운동을 시작한 거다. 전국 곳곳에 크고 작은 여성 단체들이 생겨나도록 도왔고, 그들을 한 협의체로 연결한 게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여협)다. 그뿐 아니다. 대학 나온 여성들이 힘을 합해야 한다고 생각해 여학사협회를 만드셨고, 대한주부클럽연합회도 결성했다. 여성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분이다.”
-여협이 너무 보수적이라며 진보 성향 여성들이 만든 단체가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이다.
“김활란 박사는 ‘여성과 직업’을 강의하실 때 프로페셔널한 여성으로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정사도 잘 병행하는 지혜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런 점이 보수적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 역시 일과 가정의 균형, 건강한 가족을 만드는 것이 직업의 성공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불어민주당 김준혁 후보가 유튜브에 나와 김활란 이화여대 초대 총장이 학생들을 성상납시켰다고 주장하는 모습. 이화여대는 김준혁 후보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유튜브 영상 캡처
◇김준혁은 사퇴로써 사과해야
-여연은 이화 출신 여성운동가들이 주축이 돼 결성됐는데, 김준혁 후보에겐 침묵하고 있다.
“처음엔 좋은 뜻으로 시작했는지 몰라도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힘과 돈(지원금)이 많아지다 보니 제 역할을 잊은 것 같다. 청와대 가고 국회로 가면서 여성을 대표한다는 사명은 까맣게 잊고 자기 당에만 아부하는 사람들이 됐다.”
-민주당의 이대 출신 국회의원 후보들도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당선 욕심에 이화 출신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138년 역사의 이화가 있어, 선배들의 피와 눈물이 있어 오늘의 자신이 있다는 생각은 요만큼도 안 할 것이다.”
-모교가 자랑스럽지 않은 걸까.
“일제강점기라는 험한 세상을 자기 방식으로 저항하며 살아낸 선배들이 이 나라를 일궜다. 툭하면 친일파 딱지를 붙이는데 개떡 같은 소리다. 물려받은 세상을 후배들이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야 나라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텐데, 그저 물어뜯고 깎아내리고만 있으니 개탄이 절로 나온다.”
-김준혁 후보가 사과했다. 그래도 사퇴해야 하나.
“입으로 나불대는 사과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사과를 행동으로 보여야지. 그런 사람을 공천한 사람도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여성 혐오’ 판치는 천박한 세상
-이화여중, 이화여고, 이화여대를 나오셨더라.
“내가 고향 천안에서 다닌 제일감리교회 유치원도 이화학당 설립자인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가 세웠다. 윤치호씨가 당시 천안 군수였는데, 평소 친하게 지내던 스크랜턴이 이화학당을 만든다고 하니 천안에도 유치원을 세워달라고 부탁했단다. 그 유치원 100주년 때 내가 끌려 내려가서 축사를 했다(웃음).”
-천안에서 살다 서울로 이사한 건가?
“세브란스를 나온 아버지가 천안에서 병원을 하셨는데 6남매가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서울로 유학을 보내셨다.”
-어머니도 이화여고를 나왔다던데.
“그러니 내 머리통 속이 온통 이화 아니겠나. 큰오빠가 사업을 하다 망쳐서 빚을 잔뜩 지고 있을 때 날 미국으로 유학 보낸 것도 어머니였다.”
-씩씩한 딸이었나 보다.
“오빠 셋을 타고 넘는다고 많이 맞았다.”
-남동생인 도올 김용옥 교수와는 잘 지내시나.
“꼴딱지 보기 싫어 안 만난 지 오래됐다. 이승만 대통령을 폄훼해 내가 화가 났다. 나보다 열한 살 아래인 제가 뭘 안다고. 난 이승만 박사와 악수도 한 사람이다. 9·28 서울 수복 기념식 때 이화여고 대표로 가서 인천상륙작전에 공을 세운 군인들에게 꽃다발을 걸어드렸는데, 조그만 학생이 까치발로 꽃 걸어주는 모습이 귀여웠는지 이승만 대통령이 악수를 청하시더라. 손이 엄청 크고 따뜻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 ‘건국전쟁’이 이 박사의 공을 바로세워줘 감사하다.”
-이화여대에선 호랑이 선생이었다던데.
“김옥길 총장 호출에 급히 귀국해 김포공항에 내리자마자 이화여대 C관 306호로 가서 첫 강의를 했다. 애들이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 욕부터 한 선생이다.”
-한국 여성교육의 산실인 이화가 왜 이렇게 공격받는다고 생각하나.
“여성 혐오, 그리고 머저리들의 열등감 때문이지. 참으로 천박하지 않은가.”
-역대 최악의 후보들이 난립한 총선이라고 한다.
“돈 밝히고, 입만 열면 거짓말하고, 죄 짓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자들을 국회로 보낸다면 우리는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 나라의 운명이 기로에 섰다.”
-격정의 말씀 그대로 써도 될까.
“물론이다. 이 늙은이한테 총 들고 올 사람은 없을 테니!”
☞김숙희
1937년 충남 천안 출생. 이화여중, 이화여고, 이화여대를 졸업한 뒤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38년을 재직했다. 김영삼 정부 때 교육부 장관을 지냈고, 한국YWCA 회장, 한국식품화학회 회장,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화학자였던 김용준 고려대 교수,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와 남매지간이다. 현재 이화여대 명예교수다.
조선일보 김윤덕 기자
04-08 삼겹살 쇼 이어 “일하는 척했네” 이게 李대표 본심인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자신의 지역구(인천 계양을) 유세를 마치고 “일하는 척했네”라고 말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유튜브 ‘이재명TV’를 보면, 이 대표가 지난 6일 오후 11시쯤 자신의 차량에 탑승해 차창 밖 시민을 향해 손을 흔든 뒤 “일하는 척했네. 아이고 허리야. 허리 너무 아파”라고 말했다. 웃기도 했다. 앞자리 보좌진이 “(카메라를) 이리 주세요” 하는 것을 보면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밤 늦게까지 유세했으니 힘들었을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무심코 한 말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본심을 드러냈을 수 있다. 아무리 유세가 힘들어도 유권자에 대한 생각이 진심이라면, 돌아서자마자 그런 말을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대표의 최근 언행을 보면 더욱 단순 실언으로 볼 수는 없다. 이 대표는 지난 1일 SNS와 유튜브에 ‘계양 밤마실 후 삼겹살. 눈이 사르르 감기는 맛. 이원종 배우님과’라는 글과 함께 사진·영상을 올렸다. 사진에는 쇠고기가 있었고, 이 대표는 “손님이 왔으니 소고기 좀 먹을까?”라고도 했다. 소고기를 먹으면서도 ‘서민 코스프레’를 하려 거짓말을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삼겹살도 파는 식당”이라고 해명했으나 참 군색하다. 지난달 30일에는 이 대표 비서실이 SNS에 굽이 떨어진 이 대표의 구두 사진을 올리면서 “절박함이 오롯이 녹아 있다”고 했으나, 운동화를 신은 사진 등과 함께 진정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이 대표는 지난 2월 공천 마무리 시점부터 시작된 전국 순회에다 공식선거운동 돌입 후 10일이 지나면서 체력적으로 힘든 시점일 것이다. 하지만 밤늦은 시간 유세를 듣고 떠나는 순간까지 응원해준 지지자들에게 ‘일하는 척’ 했다는 태도는 상식적으로 예의가 아니다. 골프도 같이 쳤던 고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을 “모른다”고 한 것이나, “존경하는 박근혜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고 말한 사실까지 소환되면서, 드러난 언행과 본심은 다른 것 아니냐는 의문을 이 대표 스스로 키우는 셈이다.
문화일보 사설
04-08 판세 유리하다며 엽기적 김준혁 막말까지 뭉개는 오만
계속 새롭게 드러나는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후보(경기 수원정)의 발언과 주장은 엽기적·성도착적 수준까지 이르렀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황당한 성적 발언과 “이화여대생 미군 성상납” 주장 등과 관련해 유족·동문 등으로부터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고발을 당했다. 이번엔 저서에서 ‘유치원 뿌리는 친일의 역사’라고까지 주장한 것에 대해,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8일 규탄 집회를 갖는 등 막말 파문이 커지고 있다. 이런데도 민주당은 “판세에 지장이 없다”며 뭉개고 갈 태세다.
김 후보의 막말은 자신의 유튜브와 저서에 널려 있다. ‘김준혁 교수가 들려주는 변방의 역사’라는 저서에는 “유치원의 뿌리는 친일의 역사에서 시작됐다. 친일파가 만든 최초의 유치원은 경성유치원이다. 오늘날 한유총이 보수화되어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나온다. 근대 교육제도가 수입되면서 만들어진 유치원에 ‘친일 프레임’을 씌운 것이다. 유튜브에 나와서는 “다부동 전투는 패전” “백선엽 장군은 병법도 모르고 미군 덕분에 이겼다” “육사는 나라를 팔아먹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성장 우려” 등 역사 왜곡과 함께 국군 모독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입에 담을 수 없는 성적인 발언도 수두룩하다. 윤석열 대통령을 연산군에 비유하며 “연산 시절에 스와핑(상대를 바꿔가며 하는 성관계)이 많이 있었다” “윤석열 부부는 암수 구분 안 되는 토끼”라는 말도 했다. 이재명 대표는 정조·정여립·김구에 비유했다. 이러면서도 역사학자를 자칭하니, 여성은 물론 학계와 교수 사회 모독도 된다.
김 후보는 물론, 불법 대출 의혹의 양문석 후보(경기 안산갑)에 대해 민주당은 “뛰고 있는 후보를 뺄 수 없다”며 사실상 옹호했다. 이대로 가도 당선된다는 오만의 극치다. 이화여대 출신인 김숙희(87) 전 교육부 장관은 “돈 밝히고, 입만 열면 거짓말하고, 죄짓고 부끄러운 줄 모르는 자들을 국회로 보내면 역사의 죄인”이라고 일갈했다. 노학자의 분노에 찬 외침에 공감하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4.09 “한국이 북한보다 못한 무역 적자국”이라는 이 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근 선거 유세에서 “한국이 (윤석열 정부 이후) 1년 10개월도 안 되는 기간에 북한보다 못한 무역 적자 국가가 되고 말았다”고 되풀이 주장했다. 또 “외환 부족으로 다시 외환 위기를 겪게 될 수 있다”고도 했다. 한국은 작년 6월부터 지난달까지 반도체와 대미(對美) 수출 증가로 10개월 연속 무역 흑자를 내고 있다. 문재인 정부 말기부터 윤 정부 초까지 반도체 경기 침체와 대중(對中) 수출 부진으로 무역 적자를 봤지만 지난 얘기다. 이번 달 외환 보유액도 4192억달러로 세계 9위다. 고물가와 내수 부진에 서민 경제가 어렵지만 무역 적자와 외환 위기 주장은 근거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과 반대다.
한국이 북한보다 못하다는 말은 황당하다. 지금 세계에서 국민이 굶어 죽는 나라는 북한 등 극소수 몇 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이 그런 나라보다 못하다는 얘기는 과장의 차원을 넘어섰다. 세계 10위권 경제국인 한국을 북한과 비교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북한도 무역을 하지만 한국의 작은 기업 한 개의 수준이다. 2022년 수출은 1억5900만달러, 수입은 14억2661만달러로 무역 적자가 12억6761만 달러였다. 무역 적자가 수출의 8배다. 또 무역의 96.7%는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통계상 경제 규모는 한국의 60분의 1이라지만 실제로는 수백분의 1일 것이다. 무역 규모는 400배 넘는 차이다. 비교 자체가 안 된다. 아무리 선거가 임박해 아무 말이나 한다고 하지만 이 대표 주장은 귀를 의심케 한다.
이 대표는 국회 입법권을 독점해 온 과반 다수당 지도자다. 이번 총선에서도 독자 과반이 유력하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경제 상황과 상식에 전혀 맞지 않는 엉뚱한 생각을 갖고 있다. 우려할 일이다.
조선일보 사설
04-09 범법·거짓이 국회 지배하게 할 건가
양승함 前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흔히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들 하지만, 선거는 민주주의를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선거는 민주주의를 위한 필요한 제도적 장치일 뿐 민주주의를 반드시 보장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최근 민주주의의 세계적 퇴보 현상에 주목하는 정치학자들은 민주주의는 총에 의해서만 죽는 게 아니라, 선거에 의해서도 죽을 수 있다고 한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규범, 즉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를 상실하면 민주주의는 사라지고 권위주의 또는 전체주의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내일 치러지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는 한국 민주주의의 운명을 가름할 것이다. 민주적 선거의 필수 요건인 정책선거가 실종된 지 오래고, 오로지 상호 날 선 비방과 독설만이 판을 친다. 범법 행위는 물론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까지도 확정판결이 나진 않았다고 주먹을 치켜 흔들며 지지를 호소한다. 오로지 정치 보복만을 위해 증오심을 불태우는 행색이 영락없는 파시스트를 연상케 한다. 법 위에 군림하는 오만한 ‘정의’가 민중을 구도할 것 같은 태세다.
공당인 전통 야당이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사당화한 이후 친명계 후보들의 갖가지 추문과 잡음은 민주적이어야 할 선거 과정을 오염시켰다. 시스템 공천이라는 허울 속에서 탄생한 후보들이 제대로 검증됐을 리 만무하다. 당 대표에게 과도한 아부성 발언을 하거나, 편법이자 불법적일 수도 있는 대출 특혜를 받아 놓고 적반하장의 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후보들은 선거를 혼탁하게 한다. 게다가, 사학자 출신의 후보는 연산군과 현직 국가원수를 연계하는 황당한 논리로 혹세무민하고 특정 여성 집단을 폄훼하는 괴담을 늘어놨다. 알량한 지식으로 유권자를 현혹해 표를 구걸하는 천박한 지식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상호 존중의 가치를 훼손하는 행태의 시발은 수많은 사법 의혹에 싸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로부터 비롯됐다고도 할 수 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법 조치를 지연시키거나 방해하는 방패 공작을 당과 국회를 통해서 해왔고, 검찰의 정당한 법적 행위를 ‘악마화’하는 과정에서 온갖 비방과 허무맹랑한 논리를 전개했다. 최근의 ‘대파’ 논란도 전후 맥락을 절미하고 민생 실패의 여론을 호도하려는 정략에 불과하다. 정권심판론에 함몰돼 야당으로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원색적 비방과 증오심을 유발하는 데 몰두한다. 자신의 사법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권력투쟁에 집중하는 것이다.
총선은 국회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지도자를 뽑는 선거다. 따라서 총선은 정권심판이기도 하지만, 국회심판도 이뤄져야 한다. 특히 여소야대의 국회 구조였다면 국회심판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다수결의 원리를 활용해 정부를 적절하게 견제하고 균형을 이뤘는지, 아니면 다수 횡포로 입법 독주를 일삼고 정부를 무력화했는지 심판해야 한다. 만일 후자라면, 이는 제도적 자제라는 민주적 규범을 심각하게 저해한 것이다. 거부권 남발이라는 정부보다는 입법독주라는 국회 책임이 우선돼야 한다.
4·10 총선은 증오와 적대감으로 한국 민주주의를 종식시킬지, 관용과 자제로 반전함으로써 선진화시킬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정치판을 새롭게 짤 정치인이 누구인지 잘 판단해서 찍어야 한다.

문화일보 양승함 前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04-09 내일 선택이 ‘국민의 내일’ 좌우한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정치적 한풀이 후보는 부적격
범죄자의 명예회복 운운 황당
부동산 전관예우 비리도 심각
여성 비하 망언 해놓고 버티기
이대로 두면 망국적 국회 예고
최악 후보 걸러내는 투표 중요
유권자의 시간이다. 지난 5, 6일 이틀간 치러진 사전투표는 총선 사상 최고의 투표율을 보였다. 전국 3565개 투표소에서 진행된 사전투표에 전체 유권자 4428만11명 가운데 1384만9043명이 참여해 사전투표율은 31.28%를 기록했다. 전국단위 선거로는 지난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처음 도입된 사전투표 사상 두 번째로 높았고, 총선만 비교하면 가장 높은 투표율이다. 2020년의 제21대 총선(26.69%)보다 4.59%포인트(p)나 올랐다.
내일 전국에서 제22대 총선 본투표가 진행된다. 유권자가 누구인지를 보여줄 때다. 유권자의 힘은 투표에서 나온다. 유권자의 행동이 필요하고, 그 출발은 투표 참여다. 벌써 ‘사상 최악으로 전망되는 국회’라고들 한다. ‘교착과 파행 그리고 대립과 갈등의 국회’가 되지 않을지 걱정된다. 내일 유권자의 선택이 중요한 이유다.
첫째, 헌정 파행과 정치적 한풀이가 국회의원의 최우선 목표는 아니다. “아홉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독재정권 없다”며 “이제는 멈춰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더 강하게, 더 빠르게, 선명하게 행동하겠다”고 말한다. 대통령 탄핵이나 임기 단축을 말한다. “윤석열 검찰 독재정권의 조기 종식이라는 국민적 바람을 대변한다”고 자임한다. “대한민국이 더 망가지게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게 그 이유다. “검사 독재의 조기 종식”을 내세운 비례 1번 후보는 “국회에 가면 가장 먼저 할 일로 윤석열 대통령 사퇴촉구 결의안을 내겠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정치를 그만두면 나도 의원직을 내려놓겠다”고도 약속한다.
더 안타까운 일은, 공공연히 탄핵이 언급되는데도 반향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수 국민이 대통령 탄핵을 원하지는 않지만, 적은 수라도 공감하는 유권자는 있다. 원인 제공의 책임은 분명하다. 임기 단축과 탄핵을 내세우는 게 지지율로 나타나게 한 것은 대통령과 여당의 잘못이다. 그들을 불러낸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일이다.
둘째, 기소되거나 재판 중이거나 실형을 선고받은 후보들은 아니다. 기소돼 재판 중인 사람은 물론 1심에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은 사람도 있고, 2심에서 이미 실형을 선고받고 대법원 최종 판결을 앞둔 사람도 있다. “비법률적 방식”의 정치적 명예회복으로 합리화돼서는 곤란하다.
셋째, 일반 국민의 상식과 눈높이에 맞아야 한다. 비례 1번 후보는 “(전관예우) 착수금을 검사장 출신은 5000만 원에서 1억 원 정도 받는다”며 “전관으로 한다면 160억 원을 벌었어야 한다”고 변명하고, 당 대표는 “윤석열 검찰 체제로부터 혜택을 받았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그를 옹호한다. ‘그들만의 리그’다. 부동산 편법 또는 사기 대출 의혹을 산 후보와 개발 예정지 주택의 매입과 증여를 한 후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버티고 있다.
넷째, 국회는 ‘아무 말 대잔치’하는 곳이 아니다. 말과 행동은 어떤 인식과 태도를 갖고 있는지 상징한다. 어떤 의정활동을 할지도 짐작하게 한다. 만약 당선되면 면책특권도 갖게 된다. “이화여대 초대 총장 김활란 씨가 이대 학생들을 미군 장교들에게 성 상납시켰다”거나 “관동군이던 박정희가 종군위안부와 성관계했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은 상식도 근거도 없는 망언(妄言)이다. 지금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게 내버려두면 안 된다. 강성 지지층을 향해 흥분과 분노를 자극하는 선동 정치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라는 악순환의 입구다. 그래서 충성파 전사들로 구성될 국회가 걱정되는 것이다.
다섯째, 미래 지향적이어야 한다. 국가적 과제에 대한 합리적 검토와 논의, 그리고 대안을 제시하는 국회여야 한다. 그 출발점은 책임과 반성 그리고 성찰이다. 미래의 다짐과 약속은 그다음이다.
끝으로, 정치 복원과 공동체 통합에 기여해야 한다. 누가 쇄신과 변화의 약속을 실천하려는 의지와 실현 가능성을 보여 주느냐가 핵심이다.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과 차악이라도 가려내야 한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도저히 못 봐주겠다면 투표장에 가서 무(無)기표라도 행사해야 한다. ‘4류 정치’의 오명을 벗어날 출발점이라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문화일보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04.10 오늘 총선 ‘내 편, 네 편’ 아닌 정책과 후보 자질로 판단을
오늘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는 날이다. 이후 2026년 지방선거까지 2년 넘게 전국 선거가 없다. 오늘 결정되는 민심의 무게추가 상당 기간 정국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국민을 거역한 정권에 엄정한 국민의 심판을 내려달라”고 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무도하고 뻔뻔한 야당을 견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석을 달라”고 했다.
여야는 이번 선거에서 각각 ‘이재명·조국 심판’과 ‘윤석열 심판’을 내세웠다. 심판론이 선거의 가장 큰 이슈가 된 것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심판은 과거로 향하는 것인데, 선거는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국내외적 도전을 맞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나라의 발전과 성장에 필요한 각종 개혁을 이뤄내야 한다. 고금리 고물가라는 어려운 현안도 풀어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미·중 갈등 속에서 국가적 활로를 찾고 북의 위협에도 대처해야 한다. AI(인공지능), 반도체·배터리 등 미래 성장 동력을 둘러싼 소리 없는 전쟁에도 국가 총력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총선만큼 나라의 미래는 안중에 없고 저질 네거티브와 막말·위선이 기승을 부린 선거도 드물었다. 역대 최악의 저질 선거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여야 모두 위성정당 폐지 공약을 어기는 것으로 선거전을 시작했다. 그 결과 위헌 정당 심판을 받고 해산된 당이 되살아나고, 각종 비리 혐의로 수사·재판을 받은 사람이 당을 만들고 출마해 길이가 51.7cm나 되는 역대 최장 투표용지가 만들어졌다. 각 당이 공천한 후보도 국민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겉으로는 정의와 공정을 말하면서 뒤로는 자신과 가족의 사익을 챙긴 후보, 상대 당과 후보를 비난하며 서슴없이 막말을 하는 후보, 확인되지 않는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성적 비하 발언을 일삼는 후보, 자질 문제로 공천이 취소됐는데도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 등이 유권자에게 표를 호소하고 있다.
그럼에도 투표는 해야 한다. 오늘 투표로 앞으로 4년간 국민을 대표할 국회의원이 정해진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는 유권자가 많다. 현실적으로 지지 정당만 보고 투표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지역구 의원 선거는 후보자에게 하는 투표다. 후보가 살아온 과정, 그가 내세운 공약의 현실성 등을 살펴보고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져 내 편이면 무조건 지지한다고 하지만 오늘만큼은 정책과 후보 자질이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4.10 헷갈리는 비례… 위성정당, 민주 3번·국힘 4번
[오늘 선택의 날] 투표소 가기 전 이건 알아두세요
4·10 총선이 10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국 투표소 1만4259곳에서 실시된다. 지난 5~6일 사전투표와 달리 이날 투표는 자신의 주소가 있는 정해진 투표소에서만 할 수 있다. 투표소 위치는 각 가정에 배송된 투표 안내문, 중앙선거관리위원회(www.nec.go.kr)나 각 구·시·군청의 홈페이지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민등록증·운전면허증·여권 등 관공서나 공공기관이 발행하고 사진이 붙은 신분증을 준비해야 한다. 모바일 신분증도 가능하지만, 화면 캡처 등으로 저장한 이미지 파일은 사용할 수 없다.
투표 사무원에게 신분 확인을 마친 유권자들은 국회의원을 뽑는 흰색의 ‘지역구 투표용지’와 각 정당의 비례대표 의석수를 결정하는 연두색 ‘비례대표 투표용지’를 받는다. 다만, 재·보궐선거가 시행되는 지역(기초단체장 2, 광역의원 17, 기초의원 26)에 주민등록이 된 선거인은 관련 투표용지를 추가로 받게 된다.

▲그래픽=백형선
기표소에 들어가서 각각 한 명의 후보자와 하나의 정당에만 투표해야 한다. 투표용지 오른쪽에 있는 빈 기표란에 기표 용구로 도장을 찍으면 된다. 후보자·정당 기표를 잘못하는 등 자신이 실수했을 때는 새 투표용지를 받을 수 없다. 특히 비례대표 투표용지는 38개 정당이 등록해서 길이가 51.7cm로 역대 최장이다. 정당 사이의 여백이 작으므로 기표할 때 2개 이상 정당란에 겹쳐 찍으면 무효표가 되니 주의가 필요하다. 다만, 한 후보자란에는 여러 번 기표해도 유효 투표로 인정된다. 기표소에 비치된 용구로 기표하지 않거나, 투표용지에 이름을 적는 등 낙서하면 무효 처리된다.
후보자 기호는 다수 의석 순으로 결정된다. 의석수가 가장 많은 더불어민주당과 둘째로 많은 국민의힘이 이번 총선에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으면서 비례대표 투표용지에는 1번과 2번이 없다. 이 때문에 민주당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기호 3번)이 투표용지 첫자리에, 국민의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기호 4번)가 두 번째 칸에 배치됐다. 이어 5번 녹색정의당, 6번 새로운미래, 7번 개혁신당, 8번 자유통일당, 9번 조국혁신당 등 순이다. 국민의미래는 ‘28청춘(지역구는 2번 국민의힘, 비례는 8번 자유통일당)’ 캠페인을 펼친 자유통일당을 선관위에 고발하고 “8번은 국민의미래와 아무 관계 없는 번호”라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도장을 찍은 투표용지를 접은 후 기표소 밖으로 나와 투표함에 넣으면 된다. 투표용지를 촬영해 공개하는 것은 금지된다. 기표소 안에서 투표용지를 촬영할 경우 공직선거법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투표 인증샷’은 투표소 내에서 촬영할 수 없다. 투표소 밖에 설치된 표지판·포토존 등을 활용해 인증샷을 찍을 수 있다. 또 인터넷·소셜미디어에 ‘엄지척’ ‘브이’ 등을 하거나 기표 용구를 손바닥이나 손등에 찍어 촬영한 투표 인증샷을 올리는 건 가능하다. 특정 후보자의 선거 벽보나 선전 시설물 등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올려도 된다.
혼자서 투표소에 가기 어려운 중증장애인은 선관위에 전화해 이동 지원을 신청하면 된다. 손을 움직이기 어려운 유권자는 버튼을 눌러서 도장을 찍는 기표 용구를 이용하는 등 투표소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조선일보 김동하 기자
04.10 ‘민생 소홀’과 현금
금권·관권 개입 논란은 선거 때마다 등장한다. 중앙 또는 지방 권력이 현금을 뿌리거나 선심성 정책을 노골적으로 내놓는 걸 말한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관권선거라고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 토론회를 연 것과 사전투표 첫날 부산을 찾은 것 등을 사례로 들었다. 윤 정부는 이것 말고도 몇 가지 현금 혜택성 정책을 내놨다. 소상공인 대출이자 1200억원 환급, 영화 관람료에 부과하던 입장권 부담금(관람료의 3%) 폐지 등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에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다.

▲2020년 5월 대전 지역화폐(온통대전) 출시 기념식이 열렸다. 지역화폐를 사용하면 일정 비율의 현금을 돌려준다. [사진 대전시]
왜 그런지는 문재인 정권 때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문 정권과 민주당이 장악한 지방 권력은 ‘역대급’으로 돈을 뿌렸다. 당시는 코로나19 사태 극복이라는 그럴듯한 명분도 있었다. 지역화폐(지역 상품권) 발행 등 코로나19와 직접 관련이 없는 현금 혜택도 많은 국민이 누렸다. 규모도 엄청났지만, 지급 방식도 윤 정부와 달리 피부와 와 닿게 했다. 바로 개인별 계좌 입금이었다.
대전시 재난지원금도 그중 하나였다. 대전시는 2020년 4~5월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을 나눠주면서 가용(可用) 재원을 거의 털었다. 정부 재난지원금 중 대전시가 부담해야 할 예산은 555억원이었다. 대전시는 재해구호기금과 예비비 등으로 이 돈을 마련했다. 또 민간보조사업비 일부를 삭감해 재난지원금으로 돌려쓰고, 그래도 모자라자 지방채까지 발행했다. 대전시는 당시 정부 재난지원금만으로는 부족했던지 대전형 긴급재난생계지원금을 별도로 지급했다. 여기에만 약 700억원을 썼다.
지역화폐도 현금 나눠주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지역화폐는 사용한 금액의 일정 비율(7~10%)을 현금(세금)으로 돌려주는 구조다. 대전시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지역화폐인 온통대전 예산으로 국비 등 4701억원을 투입했다. 지역화폐는 대전은 물론 전국 대부분의 자치단체가 도입했다. 몇 년간 해마다 국가 예산 수조원이 지역화폐에 쓰였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와 2022년 6월 국민의힘으로 교체된 지방 권력은 이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세금낭비 성격이 있어서였다.
윤 정부 집권 이후 “왜 재난지원금이나 지역화폐 같은 돈을 안 주냐”는 목소리가 퍼졌다. 일종의 금단현상 처럼 일단 현금 맛을 보면 끊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게 이번 총선의 ‘민생 소홀’ 논란을 더 달구었을지 모른다.
이런 가운데 문 전 대통령이 선거판에 갑자기 등장해 “칠십 평생에 이렇게 못하는 정부는 처음 본다”라며 윤 정부를 겨냥했다. 많은 사람이 문 전 대통령의 이런 행태를 비판했지만, ‘현금 나눠주기’ 만 놓고 볼 때 그의 주장이 그럴싸해 보인다. 물론 이런 식의 현금 포퓰리즘은 나라 살림살이와 국민정신을 망가뜨리지만 말이다.
중앙일보 김방현 내셔널부장
04.11 민주 174~175, 국힘 109...사상 최대 격차 여소야대
조국혁신당 12석 전망... 민심, 尹정부·여당 엄중한 심판
10일 실시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이 174~175석을 얻으며 압승을 거뒀다. 국민의힘은 집권당으로는 민주화 이후 최소 의석을 얻는 데 그쳤다. 사상 최대 격차의 여소야대(與小野大)로 나타난 총선 결과는 정부와 여당에 대한 민심의 엄중한 심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전반 2년뿐 아니라 남은 3년도 거야(巨野)와 함께해야 하는 만큼 국정 운영 스타일에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민주당은 전국 지역구 254곳 중 161곳(63.4%)에서 승리했다.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예상 의석 13~14석을 합치면 174~175석을 차지할 전망이다. 민주당은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거푸 패배했지만 2년 만에 ‘정권 심판론’을 앞세워 대승을 거뒀다.
국민의힘은 영남과 강원 등 지역구 90곳에서 당선자를 냈다.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예상 의석을 합치면 109석 안팎이다. 서울 일부에서 선전했지만 경기 ‘반도체 벨트’를 비롯한 수도권 탈환에는 실패했다. 인천 계양을에 출마한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 경기 수원병에 출마한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경기 용인갑에 출마한 이원모 전 대통령실 인사비서관 등도 낙선했다. 반면 서울에서 나경원(동작을), 김재섭(도봉갑) 후보 등이 당선됐다.
46석이 걸린 비례대표 정당 투표에서 11일 새벽 4시 40분 현재 국민의미래가 37.62%, 더불어민주연합이 26.33%, 조국혁신당이 23.69%, 개혁신당이 3.50%를 득표 중이다. 12석 안팎을 얻을 것으로 예상돼 3당이 유력한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방송사 출구조사 발표 직후 “국민이 승리했다”며 5월 국회가 개원하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딸 논문 대필 의혹을 조사할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했다. 조국혁신당을 더하면 범야권 의석은 190석에 근접할 전망이다. 개혁신당은 경기 화성시 을에서 이준석 후보가 당선됐고 비례대표로 1~2석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례 의석 배분은 현행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따라, 비례 투표에서 3% 이상을 득표한 정당들 간 득표율 비중이 소수점 아래에서 조금만 변하더라도 달라질 수 있다. 이에 따라 각 당의 최종 의석 수는 비례 개표가 완전히 끝난 뒤에나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04.11 ‘反尹 바람’ 반사이익 민주 다시 국회 장악, 국정 책임감 가져야
22대 총선이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지역구 의석만으로 과반을 달성했다. 조국혁신당도 10석 넘는 의석을 얻었다. 민주당은 텃밭인 호남 전 지역을 싹쓸이하고 전국 의석수의 절반이 몰려 있는 수도권을 석권하다시피 했다. 2021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등 전국 규모 선거에서 3연패 후 첫 승을 올린 것이다. 민주당이 잘해서라기보다는 윤석열 정부의 오만과 불통, 국민의힘의 지리멸렬에 실망한 민심의 심판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 국회에 이어 이번에도 어떤 법안이든 강행 처리할 수 있는 의석을 갖게 됐다. 국회법을 개정해 조국혁신당을 원내교섭단체로 만들고 상임위마다 안건조정위에 투입할 수도 있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른 숙의 절차는 무시하고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도 24시간 만에 강제 종료시킬 수 있다. 한 정당이 8년 연속 입법 권력을 이처럼 완전히 장악한 적은 없었다.
민주당이 이번 선거 결과를 자신들에 대한 국민의 절대적 신임으로 해석하면 앞으로 4년은 지난 4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은 4년 전 국회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뒤 입법권을 독점해 공수처를 만들고 검찰 수사권을 박탈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불법 파업을 조장한다는 ‘노란봉투법’, 공영방송을 자기들 편으로 만드는 방송법, 남아도는 쌀을 매년 정부가 사도록 강제하는 양곡법 등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는 시도조차 하지 않던 법들을 강행 처리했다. 그러면서 의원 특권 포기는 거부하고 위성정당 폐기 공약은 뒤집었다. 새 국회가 시작되면 정쟁을 유발하는 각종 특검법을 줄줄이 통과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일이 다음 대선 때까지 끝도 없이 되풀이될 수 있다. 유권자들은 윤 대통령에게 반발해 야권에 압승을 안겼지만, 무소불위 입법 독재에 불안감을 느끼는 국민도 적지 않다.
민주당의 4년 전 총선 압승은 결과적으로 민주당에 독이 됐다. 압승으로 인한 오만과 방심으로 온갖 문제가 이어졌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옹호하다 커다란 역풍을 맞은 것이 대표적이다. 입법 폭주를 거듭한 끝에 결국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5년 만에 정권을 넘겨줘야 했다. 민주당이 이번 선거 민심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해 국회에서 지난 4년과 똑같은 일을 벌인다면 3년 뒤 대선에서 다시 국민의 심판을 받을 수 있다. 윤 대통령이 힘을 잃은 만큼, 반윤석열 바람에 따른 반사이익은 이번 선거가 마지막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 우리나라는 안보·경제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다. 내부적으로는 노동·교육·연금 개혁 등 나라의 발전과 성장에 필요한 각종 개혁을 이뤄내야 하고, 대외적으로는 고조되는 미·중 갈등 속에서 활로를 찾고 북핵 위협에도 대처해야 한다.
민주당은 이제 윤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을 보고 정치를 해야 한다. 이재명 대표가 앞장서기 바란다. 당리당략이 아니라 오로지 나라의 미래만 생각하며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는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 민주당은 지금 노동 개혁, 연금 개혁, 규제 개혁 등 국가에 필요한 모든 개혁을 반대하고 있는데 이제는 국정을 책임진다는 자세로 이 시급한 현안들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민주당이 막강한 힘을 사용하면 정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그로 인한 숱한 문제는 민주당에도 유리할 것이 없다. 이 기회를 협치로 활용하면 3년 뒤 정권을 맡을 수 있다. 아니라면 전혀 다른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4.11 압승한 야당, 이제 국정 함께 책임지는 자세 보여야
민주, 힘자랑보다 수권 능력 입증해야 할 때
조국당도 특검 남발 등 보복의 정치 자제하길
21대에 이어 22대 국회도 더불어민주당이 절대 과반 의석을 확보해 입법부의 주도권을 쥐게 됐다. 민주당의 대승은 윤석열 정부의 실정(失政)을 혼내고 싶다는 국민들의 심판 욕구가 원동력이다. 다시 말해 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것은 평소 자신들의 의정 활동에 대한 호평이었다기보다는 정권심판론에 따른 반사이익을 엄청나게 누린 것으로 보는 게 정확하다. 그래서 민주당은 이번 선거 결과에 너무 들뜨거나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거대 의석엔 거대한 책임이 뒤따른다. 민주당은 입법부를 명실상부하게 장악했다. 그 때문에 동시에 이젠 국정의 큰 책임을 떠안게 됐다. 22대 국회에서 자신들의 수권 능력을 입증해야만 차기 대선도 노릴 수 있다. 지난 21대 국회의 4년 동안 민주당이 보여준 입법 독주나 탄핵안 남발을 22대 국회에서도 관성적으로 되풀이할 경우 국가적 대혼란은 자명하다. 그렇게 되면 국민의 심판은 다시 야당을 향하게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민주당은 21대 총선에서 180석의 의석을 차지했지만 4년간 이룬 의정 실적이 뭔지 도무지 기억나는 게 없을 정도다.
국가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승자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승적 차원에서 윤석열 정부에 도울 것은 돕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는 대승적 자세를 보이는 게 바람직하다. 그게 이 대표 본인의 대선 가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중대한 사회적 현안은 민주당도 독자적 입장을 제시하고 적극적으로 국면을 이끌어가기를 기대한다. 이번 의료계 파업 사태에 대해 민주당은 사실상 수수방관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제 선거도 끝났으니 정부와 의사들의 중재자 역할을 민주당이 떠맡으면 어떨까. 그런 성숙한 제1당의 모습을 보여야 진정한 수권 정당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특히 22대 국회의 최대 과제가 될 국민연금 등의 개혁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는 원내 과반 1당인 민주당이 깊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지난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 의석이었음에도 이 문제를 손놓는 바람에 국민연금의 재정 위기가 더욱 심화했기 때문이다. 또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저출생 대책을 비롯한 노동개혁·교육개혁 등 민주당이 능동적으로 나서 해결해 줘야 할 국가적 과제가 수두룩하다.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조국혁신당에 대한 당부도 빼놓을 수 없다. 조국당은 선거 기간 중 1호 공약으로 22대 국회가 열리면 한동훈 특검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 보복 논란만 야기할 게 뻔한 정략적 법안을 밀어붙여 새 국회 초반부터 정국을 경색시키는 건 민생, 국리 민복과는 한참 거리가 멀 뿐이다. 조국당도 이제 원내 정당인 만큼 그에 걸맞은 성숙한 국정 동반자의 자세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중앙일보 사설
04-11 巨野, 입법 폭주와 ‘李 방탄’ 계속 땐 바로 역풍 맞는다
더불어민주당이 4·10 총선에서 비례의석을 포함해 175석을 얻어 21·22대 연속 단독 과반의 거야(巨野) 정당이 됐다. 개혁신당을 뺀 범야권은 189석을 확보하게 됐다. 한 정당이 8년 동안 국회선진화법도 무력화할 입법 권력을 쥐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하지만 어떤 권력도 오만과 독선에 빠져 폭주하면 곧바로 민심이 심판한다는 사실을 경고한 것도 이번 총선임을 명심해야 한다.
민주당의 압승은 잘 해서가 아니다. 애초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방탄, ‘비명 횡사’ 공천 파동, 사당화 논란 등으로 한때 원내 2당 전락 전망까지 나왔다. 승인(勝因)은 이번 총선 자체가 중간 평가 성격인 데다, 조국혁신당이 불과 한 달 새 정권 심판론에 다시 불을 지펴준 덕분이라고 봐야 한다. 민주당은 국회의장, 상임위원회 운영 등 국회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 야권 연대를 통해 국회선진화법 절차도 건너뛸 수 있다. 오는 5월 30일 제22대 국회가 개원하면 이 대표가 별러왔던 김건희·이종섭·채모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려 할 것이다. 조국혁신당의 한동훈 특검법은 물론 진보당 등 좌파 연합의 ‘입법 청구서’까지 받아 반(反)자유·민주·시장 입법으로 대통령을 거부권 행사 외통수로 몰아갈 수 있다. 이미 21대 국회에서 여실히 보여준 바 있다. 노란봉투법·방송법·양곡법 등을 힘으로 밀어붙여 정국을 벼랑으로 몰았다. 타협의 정치가 실종돼 각종 민생법안 처리가 지연·방치됐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아야 했다. 민주당도 국정 운영의 한 축이라는 책임 의식을 갖지 않으면 민심 역풍은 한순간이다.
민주당은 사실상 ‘이재명당’으로 재창당됐다. 8월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 재출마가 거론될 정도다. 그러나 정당 민주주의를 거스르고 자신의 사법 리스크 대응에 당력과 국회 특권을 활용한다면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 될 수 있다. 이미 조국 대표와 비교되기 시작했다는 게 중론이고, 대선 전망이 불투명해질수록 급속히 원심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 3건의 재판 중 어느 하나라도 2027년 3월 대선 이전 유죄가 확정되면 대선 출마가 불가능하다. 총선에 압승하고도 대권에 실패하는 전례를 되풀이할 텐가.'
문화일보 사설
04-11 ‘반윤비명’ 조국당, 정치적 복수 위해 民意 오용 말라
비례대표로만 12석을 확보, 원내 3당이 된 조국혁신당은 한국 정치사에서는 없던 기록을 세웠다. 애초 더불어민주당도 거리를 둘 정도로 민심을 얻지 못했지만, 이재명 대표의 ‘비명 횡사’ 공천과 윤석열 대통령의 불통, 준연동형 선거제도를 교묘히 이용해 ‘반(反)윤석열, 비(非)이재명’ 세력을 결집하고 이런 성과를 이뤄냈다. 조국 대표부터 2심에서도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고, 당선자 절반 가까이가 형사 사건의 피고인·피의자임을 고려하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정치 병리 현상으로도 보인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당분간 조국당이 민주당을 정치적으로 견인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조 대표는 윤 대통령 탄핵, 개헌, 한동훈 특검법을 주장하는 등 정치 보복적 행태를 노골화했다. 전 가족이 가담한 입시 비리 수사에 복수하겠다는 주장도 가당찮지만, 국회의원직이 그런 사적 원한을 앙갚음하는 자리가 돼선 더더욱 안 된다.
조 대표는 수감에 대비한 발언을 하는 등 유죄 확정을 예상하고 있는 듯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도 심각하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동병상련 신세이다.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 박은정 전 부장검사, 차규근 전 법무부 출입국본부장 등도 있다. 두 정당 행태는 사법부에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 정치적·법률적 복수를 위해 정당을 동원한다면, 민의(民意)를 오용하는 잘못된 일이다.
문화일보 사설
04-11 용산의 ‘5大 대응실기’ … 선거 참패 불렀다

▲‘참담’ 한덕수 국무총리가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자리에 앉고 있고, 이관섭(오른쪽) 대통령 비서실장은 같은 날 22대 총선 관련 브리핑을 하기 위해 브리핑실로 이동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연합뉴스
‘명품백 의혹’ 사과·해명 미흡
이종섭·황상무 논란 시간끌기
대파 물가·의료계 파업도 한몫
22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11일 ‘정권 심판’에 이르기까지 용산 대통령실은 5가지 주요 국면에서 대응 시기를 놓치는 모습을 보였다. 김건희 여사, 이종섭 전 주호주대사,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등의 각 논란 그리고 대파·사과 등 고물가, 의료계 파업이 꼽힌다.

윤석열 대통령은 김 여사의 소위 ‘디올 백 수수’ 의혹이 불거진 지 3개월 만이던 지난 2월 KBS와의 사전 녹화방송으로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도 박절하게 대하긴 참 어렵다”며 별도의 사과 언급은 하지 않았다. 시점과 내용뿐 아니라 사전녹화라는 일방향 방식도 국민 눈높이에서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총선 이후 시점으로 특별검사 수사를 수용하자는 여권 일각의 주장에도 윤 대통령은 관련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거부권 행사)를 했다. 김 여사를 공식 보좌하는 제2부속실 설치도 대통령실이 검토하겠다고 했으나 이날까지 후속 조치가 없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이 전 대사의 면직안을 재가한 것도 임명 25일 만으로 총선을 열흘 남겨둔 때였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조사에 대한 외압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상태였는데, 굳이 총선을 앞둔 시점 이 전 대사의 호주 출국을 두고도 “이해할 수가 없다”는 반응이 여권에서 나왔다. 이른바 ‘회칼 테러’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황 전 수석의 사의 또한 6일 만에 수용됐다. 그사이 황 전 수석 본인과 대통령실 참모진의 수차례 건의에도 윤 대통령이 결정하지 않자 수도권에 출마한 국민의힘 후보 중심으로 공개 비판 목소리가 쏟아졌다.
총선을 보름 앞두고 불거졌던 때아닌 ‘대파값 논란’ 대응도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 875원 대파를 두고 윤 대통령이 “다른 데는 이렇게 싸기 어려운 것 아니냐”고 되묻기는 했으나, 그 본질은 대통령실의 의전 실패로 시중 가격과 동떨어진 대파를 집은 데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04-11 [속보]‘원외정당’ 추락 녹색정의당 심상정, 정계 은퇴 선언…“25년 진보정치 소임 내려놓겠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특별기자회견에서 심상정 녹색정의당 공동선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녹색정의당 충격의 ‘0석’...심상정도 낙선
진보정당 최초 5선 의원에 도전했던 녹색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졌다. 녹색정의당은 정당 지지율이 2%대에 머물며 20년 만에 원외 정당으로 밀려나게 됐다.
1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개표 결과 경기 고양갑에서 심 원내대표는 더불어민주당 김성회(45.3%), 국민의힘 한창섭(35.34%) 후보에 밀려 18.41% 득표율에 그치며 3위로 낙선했다. 심 원내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낙선 인사를 올리며 “하늘의 뜻으로 생각하고 주민 여러분의 선택을 겸허한 마음으로 받들겠다”고 밝혔다.
심 원내대표는 “오늘의 결과는 전적으로 저의 부족함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고양갑 주민들은 소수 정당 소속 정치인을 3번이나 당선시켜주는 등 소신 있고 정직하고 유능한 정치인이라면 정당과 이념을 넘어 늘 응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고양갑 국회의원으로서의 심상정은 여기서 멈추지만 12년간 고양갑 주민 여러분이 보내주신 따뜻한 성원과 사랑은 결코 잊지 않겠다”며 “그동안 절실한 마음으로 열과 성을 다해 응원해 주신 당원, 지지자 여러분께 송구스러운 마음이 그지 없다. 깊이 감사드린다”고 했다.
당선된 김성회 후보를 향해선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 지난 12년 동안 고양시 균형발전을 위해서 제가 추진해 온 일들을 받아 안아서 잘 감당해달라”고 요청했다.
17대 국회 때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원내 입성한 심 원내대표는 고양갑에서 내리 3선(19·20·21대)을 했지만 끝내 5선 도전에 실패했다. 그밖에 여영국(경남 창원성산) 후보, 장혜영(서울 마포을) 등 녹색정의당의 주요 후보들도 낙선했다.
앞서 20대와 21대 총선에서 6석을 확보했던 정의당은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녹색당과 선거연합정당을 꾸리고 지역구 후보 17명, 비례대표 후보 14명을 공천했다. 이들은 민주당이 주도하는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합류를 거부하고 독자 노선을 걸었으나 결국 거대 양당 대결 속에서 자리를 잃었다.
녹색정의당은 정당득표율 2.14%로 비례대표 의석을 한 석도 얻지 못했고, 심상정 의원(4선)을 비롯한 지역구 도전자도 모두 낙선한 결과를 얻으며 원외 정당으로 추락하는 처지가 됐다. 이날 오전 국회 본청에서 열린 해단식에서 김준우 정의당 상임선대위원장은 “어제 국민들께서는 압도적 다수로 정권 심판이라는 시대 정신을 투표로 실현해주셨다.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여의도에서 정권 심판 역할을 담당할 정치세력으로 녹색정의당을 선택해주지는 않았다. 유권자분들이 보여준 준엄한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록 이번 총선에서 원내에 입성하지 못했지만 많은 언론과 학계, 전문가 집단에서 녹색정의당의 정책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주요 정당들이 22대 국회를 구성하고 운영하면서 녹색정의당의 정책을 한 번 숙고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오는 5월 차기 지도부 선출까지 당대표직을 수행할 예정이다. 그는 “기존의 문법으로는 제가 사퇴하는 것이 정답일 것 같다”면서도 “그러나 숙고 끝에 현 시점에서 즉각 사퇴보다는 차기 지도부 선출까지 대표로서 역할을 다 하는 것이 선거 결과에 대한 더 책임감 있는 자세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문화일보 박세영 기자
04-11 압승한 야당, 이제 국정 함께 책임지는 자세 보여야
민주, 힘자랑보다 수권 능력 입증해야 할 때
조국당도 특검 남발 등 보복의 정치 자제하길
21대에 이어 22대 국회도 더불어민주당이 절대 과반 의석을 확보해 입법부의 주도권을 쥐게 됐다. 민주당의 대승은 윤석열 정부의 실정(失政)을 혼내고 싶다는 국민들의 심판 욕구가 원동력이다. 다시 말해 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것은 평소 자신들의 의정 활동에 대한 호평이었다기보다는 정권심판론에 따른 반사이익을 엄청나게 누린 것으로 보는 게 정확하다. 그래서 민주당은 이번 선거 결과에 너무 들뜨거나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거대 의석엔 거대한 책임이 뒤따른다. 민주당은 입법부를 명실상부하게 장악했다. 그 때문에 동시에 이젠 국정의 큰 책임을 떠안게 됐다. 22대 국회에서 자신들의 수권 능력을 입증해야만 차기 대선도 노릴 수 있다. 지난 21대 국회의 4년 동안 민주당이 보여준 입법 독주나 탄핵안 남발을 22대 국회에서도 관성적으로 되풀이할 경우 국가적 대혼란은 자명하다. 그렇게 되면 국민의 심판은 다시 야당을 향하게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민주당은 21대 총선에서 180석의 의석을 차지했지만 4년간 이룬 의정 실적이 뭔지 도무지 기억나는 게 없을 정도다.
국가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승자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승적 차원에서 윤석열 정부에 도울 것은 돕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는 대승적 자세를 보이는 게 바람직하다. 그게 이 대표 본인의 대선 가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중대한 사회적 현안은 민주당도 독자적 입장을 제시하고 적극적으로 국면을 이끌어가기를 기대한다. 이번 의료계 파업 사태에 대해 민주당은 사실상 수수방관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제 선거도 끝났으니 정부와 의사들의 중재자 역할을 민주당이 떠맡으면 어떨까. 그런 성숙한 제1당의 모습을 보여야 진정한 수권 정당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특히 22대 국회의 최대 과제가 될 국민연금 등의 개혁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는 원내 과반 1당인 민주당이 깊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지난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 의석이었음에도 이 문제를 손놓는 바람에 국민연금의 재정 위기가 더욱 심화했기 때문이다. 또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저출생 대책을 비롯한 노동개혁·교육개혁 등 민주당이 능동적으로 나서 해결해 줘야 할 국가적 과제가 수두룩하다.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조국혁신당에 대한 당부도 빼놓을 수 없다. 조국당은 선거 기간 중 1호 공약으로 22대 국회가 열리면 한동훈 특검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 보복 논란만 야기할 게 뻔한 정략적 법안을 밀어붙여 새 국회 초반부터 정국을 경색시키는 건 민생, 국리 민복과는 한참 거리가 멀 뿐이다. 조국당도 이제 원내 정당인 만큼 그에 걸맞은 성숙한 국정 동반자의 자세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중앙일보 사설
04-11 총선 끝나도 이재명-조국 사법리스크는 사라지지 않는다
1972년 11월 미 대선은 공화당 재선 후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압승이었다. 50개 주중 49개 주를 싹쓸이해 선거인단 537명 중 520명을 독식했다. 적수인 민주당 후보 조지 맥거번의 고향 사우스다코타까지 차지했다. 맥거번은 충격으로 영국 망명 계획까지 세웠을 만큼 궤멸했다.
반년 전 워싱턴포스트의 특종으로 불거진 ‘워터게이트’는 닉슨 태풍에 묻혀 뉴스 화면에서 사라졌다. 워터게이트가 뭔지조차 모르는 미국인이 50%를 넘었다. 의기양양해진 닉슨 행정부는 “국민이 닉슨의 무고함을 인정한 것”이라며 워싱턴포스트를 ‘매카시즘’이라 맹공했다.
조국, 내년 2월 내 3심 선고 전망
이재명도 세 가지 재판 결과 주목
법원, 흔들림 없이 ‘법대로’해야
그럼에도 워터게이트에 대한 미 법원의 재판은 흔들림 없이 진행됐다. 닉슨 압승 두 달만인 1973년 1월 존 시리카 연방 판사는 한밤중 민주당 사무실에 침입한 워터게이트 주범 5명에게 법정 최고형인 30년 징역형을 선고했다. 닉슨 행정부가 권력을 동원해 이들의 입을 막을 것을 꿰뚫어본 강수였다. 경악한 5명은 감형을 받기 위해 “‘윗선’이 도청기 설치를 지시해 침입한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사장될 뻔했던 워터게이트는 이 판결로 재부상했고, 탄핵 위기에 몰린 닉슨은 1년 반 뒤 사임하고 만다. 시리카 판사는 ‘법정 최고형 존’이란 별명과 함께 타임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다. 대선에 압승한 대통령의 파워에 굴하지 않고 ‘법대로’만 직진한 판사 덕분에 민주주의의 이정표가 된 워터게이트 신화가 탄생한 것이다.
대한민국 야권을 대표하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역시 총선 와중에 법원의 재판을 받아왔다. 한데 두 사람을 대하는 법원의 행태를 보면 상식 밖인 경우가 많다. 대통령 지지율이 낮고 ‘개딸’의 기세가 등등하니 두 사람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리카 판사가 봤다면 어떤 평가를 내릴지 궁금하다.
우선 조국 대표는 지난 2월 8일 2심에서 뇌물수수·직권남용 등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는데도 구속되지 않았다. 1·2심 다 실형을 선고받고도 구속을 면하고, 당을 창당해 금배지까지 넘보는 건 일반인은 상상조차 못 할 일이다. 2심 김우수 재판장은 “(조 대표가)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면서도 방어권 보장을 위해 구속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3심은 피고인이 방어권을 행사할 필요가 특별히 없다. 피고인이 불출석한 가운데 그가 낸 상고 이유서를 대법관들이 검토하고 판결을 내리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러니 “김 판사야말로 법원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한 사람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제 국민의 눈은 대법원을 향하고 있다. 1·2심 다 유죄 판단에다 양형까지 같은 만큼 법률심인 3심에서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극히 작다는 게 법조계 관측이다. 하지만 예상 밖의 판결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3심 확정까지는 길면 1년이 걸릴 전망이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3심 처리에 평균 11.7개월이 걸렸기 때문이다.
대장동 게이트와 선거법 위반, 검사 사칭 위증 교사 혐의 등으로 세 개의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대표에게도 법원은 ‘특별 대우’를 해 구설에 올랐다. “위증교사 혐의는 소명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부터 논란이었다. 또 선거법 사건은 복잡한 내용도 아닌데도 재판이 16개월이나 늘어진 끝에 재판장이 사표를 내는 바람에 총선 전 1심 선고가 불발됐다. 수사기록이 간단해 8~9월께 1심 선고가 점쳐져 온 위증교사 재판도 지연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한다.
법원은 이제라도 두 사람에 대해 오직 법리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총선에서 이기건 지건 사법리스크는 사라지지 않는다. 닉슨에 압승을 안겨준 미국인들은 “FBI(연방수사국)가 워터게이트에 끼어들지 못하게 해”란 닉슨의 말이 녹음된 테이프를 법정에 제출하라는 시리카 판사의 결정을 닉슨이 거부하자 대선 1년도 안 돼 그의 탄핵에 찬성하며 등을 돌렸다. 내가 뽑은 사람이라도 법을 어기거나 법원을 능멸하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건 미국 유권자나 한국 유권자나 똑같은 생각일 것이다.
우리 민주당은 워터게이트를 언급하기 좋아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 참사’를 비판하며 “워터게이트 닉슨을 거울삼으라”고 한 성명(2022년 10월 2일)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보수 공화당 대통령이 진보 민주당 의회의 탄핵 압박에 굴복해 사임한 사건이기 때문일 터다. 그러나 선거에서 압승한 세력의 눈치를 보지 않은 ‘법대로’ 판사가 없었다면 워터게이트는 실현될 수 없었을 것임도 명심해야 한다.

중앙일보 강찬호 논설위원
04.12 범죄자, 막말꾼, 투기범 다 당선시킨 선거

▲더불어민주당 김준혁, 양문석 당선인./뉴스1
4·10 총선에서 경기 수원정에 출마한 민주당 김준혁 후보가 당선됐다. 김 당선자는 ‘이대생 미군 성 상납’ ‘박정희가 위안부와 성관계’ ‘퇴계는 성관계 지존’ 등 천박한 언사와 막말로 물의를 일으켰지만 당선됐다. 천안함 46용사 유족들이 ‘망언 5적’으로 지목한 민주당 후보들도 대부분 당선됐다. “천안함이 폭침이라고 쓰는 언론은 다 가짜”라고 한 노종면 후보, 전 천안함장을 향해 “무슨 낯짝으로 얘기하나. 부하 다 죽이고”라고 한 권칠승 후보 등 ‘5적’ 중 4명이 당선됐다. 국민의힘에선 유세 때 “문재인 죽여야 돼”라고 해 논란이 된 윤영석 후보가 경남 양산갑에서 승리했다.
경기 안산갑 민주당 양문석 후보는 주택담보대출이 금지됐던 2020년 서울 잠원동 아파트를 사기 위해 대학생 딸을 사업자로 꾸며 새마을금고에서 11억원을 대출받았다. 재산 신고 때 이 아파트를 낮은 가격에 신고해 선관위로부터 고발도 당했다. 문제가 되자 “집을 팔아 대출금을 갚겠다”고 했는데 중개업소에 내놓은 가격이 역대 최고 실거래가보다 3억원 이상 비쌌다. 그런 그도 당선됐다.
조국혁신당은 비례대표 당선자 12명 중 최소 5명이 전과자 또는 피의자·피고인이다. 자녀 입시 비리 등으로 1·2심에서 징역 2년을 받은 조국 대표,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받은 황운하 원내대표가 대표적이다. 비례 1번 박은정 전 부장검사는 검사장 출신 남편이 다단계 사기 피의자를 변호하며 거액의 수임료를 받아 전관예우 논란이 일었다. 한미 동맹을 비하한 김준형 당선자는 자녀 3명과 아내가 미국 국적자로 확인됐다. 당선되진 않았지만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혐의로 구속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감옥에 있으면서 17%를 득표했다.
과거 같으면 논란이 불거진 즉시 그만두는 게 마땅했을 사람들이 대부분 선거에서 이겼다. 지지자들은 “버티라”며 응원했다고 한다. 이들은 김건희 여사와 형평성을 얘기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런 사람들이 정당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유권자의 선택은 존중돼야 하지만 정말 이래도 되느냐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일보 사설
04-12 국회가 ‘도덕성 붕괴’ 집합소 전락, 획기적 대책 급하다
4·10 총선 기간 내내 범법·위선·막말 논란의 중심에 섰던 후보들이 무더기로 제22대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 역대 선거를 보면 그 정도 인사들은 당연히 공천과 선거에서 걸러졌을 텐데, 이번엔 지독한 진영 대결에 편승해 당선됐다. 당선 직후 행태를 보면, ‘민의의 전당’이 국민의 평균적 윤리의식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도덕성 붕괴’ 인사들의 집합소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더 커진다.
대학생 딸 명의로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매입한 양문석 당선인(경기 안산갑)은 선거 다음날인 11일 “대통령실, 정치 검사들, 보수 언론이 3대 악의 축”이라며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1호 법안”이라고 했다. 정부와 언론도 부정하는 궤변일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한 데 대해 대놓고 보복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금융감독원이 수사를 요청했고, 선관위는 아파트 가격 축소신고를 고발한 상황이다. 당선이 불법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김준혁 당선인(경기 수원정)은 ‘이대생 미군 성 상납’ ‘박정희 위안부 성관계’ ‘퇴계 성관계 지존’ 등 막말 논란에도 금배지를 달게 됐다. 그는 “정치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라고 했다. 줄줄이 고발당할 정도로 물의를 일으켰는데, 잘못 인정도 시정 의지도 안 보인다. 무효표가 다른 선거구 평균의 4배 넘게 나온 이유가 뭐겠는가. 위선의 ‘끝판왕’들도 입성한다. 조국혁신당의 박은정 당선인은, 남편이 다단계 사기 피의자를 변호하며 거액 수임료를 받아 전관예우 논란이 일었다. 한미동맹을 비하한 김준형 당선인은 자녀 3명과 아내가 미국 국적자로 확인됐다.
당장은 국회 내 자정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밖에 없다. 윤리특별위원회가 만들어진 13대 이후 징계안 291건 중 윤리특위 가결은 12건, 본회의 가결은 1건에 불과하다. 윤리특위를 민간 위원으로 구성하고, 조사·고발권 등 강제성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현 국회가 임기 만료일인 5월 29일 이전에 관련 법 개정안을 처리하면 역대 최악 국회라는 불명예를 조금이나마 씻을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4-12 야권 ‘발등의 불’ 李·曺 재판… 흔들려선 안 될 사법시스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의 정치적 위상이 한껏 고양됐다. 다음 대선의 야권 주자로서 신경전을 벌이는 조짐도 보이지만, 피선거권이 박탈될 수도 있는 사법 리스크가 ‘발등의 불’이다. 여러 건의 범죄로 재판과 수사를 받고 있고, 조 대표는 2심에서 징역 2년 형까지 선고 받았다. 대법원 판결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대선 출마는커녕 상당 기간 수감 생활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국회 의석과 권능을 이용해 온갖 방안을 동원할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사법권과 검찰권이 정치 외풍에 휘둘릴 가능성도 커진다.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재판이 12일 열렸다. 이 대표는 “김문기 성남도개공 처장을 성남시장 때는 몰랐다” “백현동 토지 용도 4단계 상향은 박근혜 정부 협박 때문이었다”는 발언으로,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받고 있다. 사안이 간단한데도 1년7개월째 끌고 있다. 16일엔 대장동·백현동·성남FC 재판, 다음 달 13일엔 위증교사 재판도 열린다. 위증교사 사건도 증인은 물론, 통화 녹취록 등 증거물도 다 확보돼 오래 끌 이유도 없는데 지연되고 있다.
선거 다음날인 11일 조 대표는 대검찰청 앞에서 김건희 여사 수사 촉구 시위를 벌였다. 김 여사 수사를 한다고 조 대표의 범죄가 사라지지 않는데, 치졸한 한풀이이면서 대법원 재판을 앞두고 사법부에 대한 간접 압박으로도 읽힌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날,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이 유죄가 돼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이 선고된 조 대표의 상고심 재판이 대법원 3부에 배당됐다. 야당 독주 국회가 예상되는 만큼 사법부는 더더욱 흔들려선 안 된다.
문화일보 사설
04-12 ‘선거 판돈’ 된 국가 재정
11일 공개된 2023년 국가결산에 따르면 지난해 나랏빚(국가채무)이 전년보다 59조4000억 원이 늘어난 1126조7000억 원을 기록, 헌정 사상 처음으로 1100조 원을 돌파했다. 2017년 국가채무는 660조2000억 원이었는데, 6년 만에 500조 원 이상이 불었다. 국민 1인당 갚아야 하는 빚(국가채무/인구수)은 약 2177만 원꼴이다. 총선 전 이 같은 살림 결과가 공개됐다면 정치권이 공약의 수위를 좀 조절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도 들지만, 공개했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국민은 이번 총선처럼 비이성적인 선거를 본 적이 없다. 주요 양당 후보들은 양측을 향해 날 선 막말을 던졌고, 그사이 책임 있는 공약은 실종됐다. 양당의 무차별적 퍼주기 공약 살포에 이성적인 공약은 질식사했다. 폐허가 된 전장을 수습하는 것은 오롯이 재정 당국의 몫이다. 숙제를 떠안은 기획재정부의 머리는 복잡할 것이다. 사상 처음으로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절반을 넘어 정부의 재정 상태는 바닥인데 풀지 못할 숙제는 산더미다. 특히, 가장 우려스러웠던 점은 경제공약이 도박판 판돈처럼 희화화됐다는 점이다. 선거에 패배하면 형사처벌을 감당해야 하는 야당 대표의 무모하리만큼 과감한 베팅에 여당도 맞대응하듯 공약을 남발했다. 선거가 사활을 건 도박판으로 전락한 마당에 국민 경제를 담보물로 거는 것은 큰 문제도 아니었다.
경제 원칙도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던진 공약들은 국민 경제를 더욱 위태롭게 한다. 야당은 지난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풀린 유동성 탓에 인플레이션 장기화 상황임에도 4년 전 전국민재난지원금 지급과 동일한 ‘전 국민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 공약을 내놨다. 여당은 야당의 무모한 베팅에 판을 접을 순 없었는지 울며 겨자 먹기로 생필품 부가가치세 인하 등 각종 감세 정책을 던졌다. 이미 전년도 세수 부족을 겪은 상황에서 세수 추계 없이 표심을 잡기 위한 도구로 감세를 내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이번 총선 과정에서 여야가 던진 공약이 2239개였으며, 이에 수반하는 예산은 최소 554조 원으로 추산된다. 이런 정치권의 공약 남발에 정부도 부화뇌동했다. 24번의 대통령 민생토론회를 통해 장담한 선심성 지역 정책들은 물론, 비싼 사과를 사 먹을 수 있도록 1500억 원가량의 가격안정자금을 투입했다. ‘용산’의 판단이었겠지만, 생산량이 부족해 가격이 오르면 소비를 줄여 가격이 내려가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이 정부 역할인데, 세금으로 가격을 보전해 없는 사과를 더 사 먹게 한 선례를 만들었다.
정부는 야당의 압승 앞에서 총선 뒷정리는 물론 질러놓은 공약까지 이행해야 한다. 그래서 기재부의 역할은 다른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개혁의 추진보다 개악·퇴보를 막는 일에 무게가 실릴 것이다. 폐기처분 위기의 재정준칙 입법화를 재추진하는 한편, 야당의 무리한 재정 남용 요구를 버텨내야 한다. 총선 과정에서 나온 선심 공약은 현실성을 따져 본 뒤 여당의 약속, 아니 용산의 약속이라도 반대할 수 있는 결기가 필요하다. 봄이 아닌 또 다른 겨울을 눈앞에 둔 기재부의 정책 대응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문화일보 박정민 경제부 차장
04-12 여소야대 시즌2, 국가 불행 막을 4원칙
공천과 총선 과정 문제점 심각
지난 4년보다 저급한 국회 우려
국회가 개인 한풀이場 위험성
낭만적 안보관부터 청산 시급
民生 괴롭힐 민생 입법 수두룩
특정인 대상 소급입법도 안 돼
제22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67%의 투표율로 끝났다. 지역구·비례 의석을 합쳐 더불어민주당 175석, 국민의힘 108석, 조국혁신당이 12석 등을 얻었다. 압도적으로 야권이 우세한 결과다. 당선자들에게는 축하를, 낙선자들에게는 위로를 드린다.
이번 총선 유세에서는 상호 간의 비방과 막말이 유달리 많았고, 한국의 미래를 꿰뚫어 보는 식견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유권자로서 실망을 넘어 자괴감이 들 정도로 낮은 수준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제 총선은 끝났지만, 이후에도 여야 간, 그리고 진영 간 다툼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그런 다툼이 한국의 발전과 평화를 위한 지적 경쟁이 아니라 감정에 사로잡혀 치고받는 양상을 보일까 봐 걱정이 앞선다.
많은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는 오랜 기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형성된 질서 아래서 사람들 간의 협동으로 문명을 이룩하지만, 이기적인 사람들 간의 충돌과 반목도 많이 일으킨다. 이를 완화하고 조정하는 것이 정치일진대 국회가 앞장서서 충돌과 반목을 일삼는다면, 이는 정치의 의미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회는 의원들의 한풀이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우선 마음속에 새기기 바란다. 그렇다면 한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국회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가?
첫째, 의원들은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의 보호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하루라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북핵 문제는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는 대한민국의 생존 문제가 됐다. 도덕과 법이 존재하지 않는 자연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국가 간의 관계에서 물리적 힘의 뒷받침 없이는 평화가 없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잘 아는 사실이자 역사적 교훈이다. 어린 시절 막연하게 꿈꾸던 낭만을 넘어서지 못하고 상대방의 자비에 자신의 생존을 의지하려는 개인이나 집단은 지적 성장이 멈춰 버린, 어리석고 가련한 존재이다.
둘째, 인간은 구조적으로 무지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국민을 위한다는 언설로 의원들의 선호나 한 줌의 지식에 기대어 남발하는 입법이 사람들 간의 다툼을 불러오고, 결국 모두의 삶을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정권은 무지한 부동산 정책으로 집값을 다락같이 올려놨고, 다주택자를 대거 규제하면서 대규모의 전세 사기 사태를 초래했다. 이른바 ‘민생 법안’이 민생을 괴롭힌 대표적 사례다. 이는 국가를 경영의 대상으로 여긴 탓이다. 국가는 학교·병원·기업 등과는 달리, 구체적 목적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국가 경영을 위한 철학 운운하는 것은 오만이다. 인간 이성이 무지한 만큼 인간은 매사에 겸손해야 한다.
셋째, 오늘날의 민주정에서 법은 의회의 입법으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법은 사람들 간의 다툼을 줄이고 협동을 통해 평화로운 사회질서 형성을 돕기 위해 생긴다. 따라서 법은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친 인간의 역사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특정인이나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입법이나 과거로 소급(遡及)하는 입법은 이미 법의 일반성과 추상성을 상실한 것이다. 법은 구체적 목적을 가져서는 안 되며, 특정 법으로 말미암아 미래에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볼 것인지를 미리 알 수 없어야 한다. 입법 남발을 막기 위해 의원들의 법에 대한 깊은 성찰이 요구된다.
넷째, 의회는 전쟁이나 자연재해 극복 등을 위해 군주가 귀족이나 평민들로부터 세금을 걷고자 할 때, 이를 논의하기 위해 상원과 하원 구조로 생겼다. 의회의 기원이 조세에 있다는 말이다. 이는 오늘날의 민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난 정권에서처럼 세금을 올리기 위해 국회가 앞장섰던 것은 의회의 본분을 모른 수치스러운 일이다. 제22대 국회는 이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와 관련해 국회 권력의 상호 견제를 위한 양원제 검토가 필요하다.
의회는 성숙하지 못한 정의감을 앞세우거나 선의의 경쟁자를 증오하는 의원들이 분노를 터뜨리며 싸우는 곳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생기는 사회질서를 법으로 뒷받침하는 기구다. 제22대 국회의원들의 지적·도덕적 수준 향상을 촉구한다.

문화일보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04.13 5.4%p 차이로 입법 독식, 0.7%p 차이로 행정 독식

이번 총선 지역구에서 민주당은 161석, 국민의힘은 90석을 얻었다. 그러나 두 정당의 실제 득표수 차이는 그보다 훨씬 적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역구 득표는 1475만8083표 대 1317만9769표로 157만8314표 차였고, 득표율로는 50.45% 대 45.05%였다. 득표율 차는 5.4%포인트인데 당선자 수는 두 배 가까이 벌어진 것이다. 승자 독식 체제인 소선거구제로 인해 박빙 승부가 많았던 수도권 122석 중 103석을 민주당이 가져갔기 때문이다. 서울의 경우 양당 득표율 차이는 5.9%포인트였지만, 48석 중 37석이 민주당 차지였다. 전체 득표율에서 5.4%포인트 이긴 민주당은 22대 국회를 마음대로 좌우하게 됐다.
4년 전 21대 국회도 마찬가지였다. 총선 지역구 투표에서 민주당은 49.9%,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은 41.5%를 득표해 8.4%포인트 차이였지만 지역구 의석수는 163 대 84석으로 거의 두 배 차이가 났다. 민주당은 ‘8.4%’는 생각하지 않고 ‘두 배’만 믿고 폭주했다. 입법권을 독점하며 공수처 신설, 임대차 3법 강행, 대북전단금지법, 경제계가 한사코 반대한 경제 3법 등 폭주를 거듭했다. 그러다 정권을 잃었지만, 전세가 폭등 등 국민이 입은 피해는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에서 불과 0.73%포인트 앞섰다. 불통의 제왕적 대통령이 되지 않겠다며 청와대를 나왔지만 그 과정 자체가 ‘제왕적’이라고 느낀 국민이 적지 않았다. 그에 이어 많은 문제에서 오만과 독선, 불통이 이어지다 이번 총선에서 기록적 참패를 당했다.
지역구마다 국회의원 1명을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와 대통령제는 단 1표만 이겨도 모든 권력을 독점한다. 2·3등 후보를 찍은 절반 가까운 국민의 표는 전부 무의미하게 된다. 민의 반영이라고 할 수 없다. 승자 독식, 패자 절망 구조는 여야와 지지자 간 극한 대립을 부르게 된다. 그런 갈등으로 누가 무슨 이익을 얻었나. 여야와 국민 모두에게 결국 해로울 뿐이다. 소선거구제와 대통령제의 근본적 문제에 대해 모두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 사설
04.13 호남 유권자 투표 성향 ‘정말’ 전략적인가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 ‘뻐꾸기 정치인’ 호남 둥지에 알 낳아 지역의 현재와 미래, 다음 世代·국민·국가와 오래 共生할 길이 올바른 전략적 선택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면 언론에 ‘호남’이란 단어의 등장 횟수가 부쩍 늘어난다. 호남표의 쏠림 현상이 좌·우파 정당의 승리와 패배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분석한다. 허물없는 사이는 고향이 그곳인 기자에게 그 이유를 묻곤 한다. 같은 답변을 하도 되풀이했기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1963년 박정희 후보와 윤보선 후보가 맞붙었던 5대 대통령 선거 때다. 당시 중학생이던 나는 어머니에게 누굴 찍었는지 물었다. 어머니는 ‘박정희 찍었다’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만석(萬石)꾼 아들이 세상을 뭘 알겠냐. 박정희는 농부 아들이란다.” 어머니는 중학교를 서울에서 다녔다. 학교가 윤보선씨 집 바로 곁 지금 헌법재판소 자리에 있었다. 등·하굣길에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윤씨 댁 앞을 지나며 어린 머리에도 무슨 생각이 엉켜갔던 모양이다. 이 선거에서 박정희는 윤보선을 15만 표 차이로 이겨 승리했고, 어머니 같은 호남 유권자는 박정희에게 35만 표를 더 줬다.
호남 밖 사람들 대부분은 호남 표 쏠림이 과(過)하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강도(强度)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기자도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런 나를 그곳 사람들은 ‘네가 80년 5월 광주 안에 있었느냐’고 묻는 듯한 눈길로 바라본다. 그해 5월 며칠 동안 나는 이 기관 저 회사를 정신없이 찾아다니며 광주와의 전화선(電話線)이 살아있는지를 묻고 다녔다. 노모(老母)와 연락이 닿지 않아서다. 그러다가 정구영(鄭銶永·훗날 검찰총장) 선배의 호의로 어머니와 연결됐다. “나는 무사하다.” 그 한마디에 다리가 풀렸다. 이랬던 기자는 스스로를 “‘물속의 물고기’라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기자를 ‘물 밖의 물고기’라서 그날을 모른다”는 식으로 대한다.
표 쏠림의 근본 원인은 아직도 그날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느끼는 ‘물 안 사람들’과 밝힐 수 있는 것은 다 밝혀졌다는 ‘물 밖 사람들’ 사이의 생각 차이다. 이 차이가 쉽게 좁혀질 전망은 밝지 않다. 극우(極右) 인사의 ‘광주의 북한군’ 운운이 초를 치기도 한다. 한국 역사보다 피가 흥건했던 유럽 근현대사에는 100년 200년이 흘렀는데도 사상자 규모나 진상에 대해 지금도 엇갈린 주장과 해석이 나오는 사건이 수두룩하다.
딱 한 번 기회가 김영삼-김대중 정권으로 이어졌던 10년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군화(軍靴) 발소리가 채 멀어지지 않던 시점에 수사를 지시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그 결과를 토대로 사건을 종결(終結)지었다. 만일 그들에게 시민 설득의 시간이 좀 더 주어졌더라면 사태는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김대중 이후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호남 정치인은 맥(脈)이 끊겼다. 여론에 기생(寄生)하는 정치인뿐이다.
호남의 표 쏠림을 ‘호남 유권자의 전략적 투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얼핏 들으면 귀에 감기는 말 같지만 독(毒)이 담겨 있는 표현이다. 노무현·문재인·이재명처럼 자기 고향에 둥지를 틀 수 없었던 ‘뻐꾸기 정치인’들은 그곳에 알을 낳았다. 선거기간 내내 부인을 상주(常住)시켰다. 그런 정치인과 그들과 선이 닿은 일부 정치인에겐 입신(立身)의 기회가 됐다. 하지만 대다수 호남 사람들이 그들만의 전략적 선택에 따르는 후유증과 불이익을 감당해야 했다.
보수 일각에서 제시하는 ‘민주당=호남+좌파(左派)에 물든 세대+하류(下流) 계층’이란 도식(圖式)은 고향을 떠나 사회생활, 공무원 생활, 회사 생활을 개척해야 하는 자녀와 손자 세대에겐 편견의 장벽으로 다가섰다. ‘무(無)전략’보다 해로운 ‘반(反)전략’이었다. 이제 호남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국가와 국민이 공생(共生)할 호남 유권자의 ‘진짜 전략적 선택’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보수 정당은 통계청 통계 숫자만 보고 선거전략, 국정 운영 전략, 인사(人事) 정책을 짠다. 2022년 호남 인구는 남한 전체의 9.84%, 영남 인구는 24.9%이다. 경북대 총장을 지낸 고 박찬석 교수(지리학)에 따르면 1939년 영남 인구는 남한 전체의 35.5%, 호남은 30.0%였다. 두 지역 출산율은 거의 같았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80년 후 호남 인구 비율은 30%에서 10%로 줄었다.
20%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일자리를 찾아 서울·경기와 공단(工團)이 들어선 영남 지역으로 떠난 것이다. 전국에 흩어진 영남 유래(由來) 인구와 호남 유래 인구 비율은 옛날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보수 정당이 선거전략, 특히 수도권 전략에서 이걸 놓치면 언제든 뒷덜미를 잡히게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조선일보 강천석 기자
04.13 200석

▲금주의 키워드
국회에서 의결 기준은 여러 개다. 가장 널리 쓰이는 건 재적 과반 출석에 출석 과반 찬성이다. 현재 재적이 300석이니 151명 이상 본회의장에 출석하고 이중 ‘절반+1’명이 찬성 버튼을 누르면 안건이 통과된다.
비교적 최근 도입된 건 의원들 간 육탄전 끝에 나온 재적 5분의 3 조건(180석)이다.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한 방책들을 단번에 뛰어넘게 할 수 있다(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무제한 토론을 강제 종료하는 마법 키도 180석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진보 성향 야당들과 함께 20대 국회에서 선거법 등을, 이번 국회에서 쌍특검법을 처리할 때 180석의 위용을 자랑했었다.
4·10 총선에서 민주당은 단독으로 180석을 할 뻔했다(175석). 1987년 헌법 체제에서 선거로 달성한 최대 의석이다.
가장 까다로운 의결 정족수는 재적 3분의 2로 200석이다. 대통령의 법률안 비토권을 무효로 할 수 있고 대통령 탄핵 소추안도 처리할 수 있다. 무소불위라 할 수 있다. 이번 출구조사 때 잠시 민주당 단독 197석 예측이 나왔다. 87년 체제에선 1990년 민정당·민주당·자민련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이 한때 217석이었다.
중앙일보 고정애 기자
04.15 反尹 정서 덕 본 野, 압승을 ‘황당 정책’ 면허로 착각 말아야
총선 이후 은행, 원전 기업 주가가 급락했다. 총선에서 압승한 야권이 은행에 대해 횡재세를 도입할 것이란 전망이 은행주에 악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횡재세는 과세 형평성 문제로 윤석열 정부가 반대해 온 세목이다. 민주당은 재생에너지 비율을 현재 10% 선에서 2035년까지 40%로 끌어올리겠다는 공약을 내놨는데, 과거 ‘탈원전’ 악몽을 떠올리게 하면서 원전 관련 기업 주가를 끌어내리고 있다.
거대 의석을 쥐게 된 야당이 자기 입맛대로 정책을 입안해 밀어붙일 우려 때문에 경제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연초 윤석열 대통령이 발표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는 없던 일이 될 전망이다. 민주당이 ‘부자 감세’라는 이유로 반대하며, 원래 예정대로 내년부터 금융투자소득세 부과를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양곡관리법, 노란봉투법 재입법 의사를 밝히고 있다. 양곡관리법은 쌀이 남아돌아 매년 10만톤 이상을 사료·주정용으로 처분하는 상황에서 쌀값을 떠받치기 위해 매년 1조원 이상 예산을 쓰겠다는 황당한 법이다. 노란봉투법은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 때 기업이 노조원 개인별로 피해액을 계산해 제출하도록 하고, 하청업체 직원이 원청인 대기업에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파업도 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담겨 ‘불법 파업 조장법’이란 지적을 받아왔다.
민주당은 총선 공약으로 전 국민 1인당 25만원씩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약속했다. 민주당 정책위 의장은 “추경을 통해 신속하게 지급하겠다”고 했다. 최소 13조원이 필요한데 또 적자 국채를 찍을 수밖에 없다. 2020년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전 국민 재난지원금 100만원(4인 가구 기준)을 뿌렸지만, 국책 연구 기관 분석 결과 30%만 소비에 활용되고, 나머지는 저축, 채무 상환에 쓰였다. 민주당은 총선 10대 공약 중 첫째로 ‘기본 주택 100만 가구 조성’을 제시한 바 있다. 가구당 조성 원가를 2억원씩만 잡아도 200조원이 드는데 이 돈을 무슨 수로 마련하나.
우리나라 헌법은 3권 분립 정신을 바탕으로 국회의 입법 전횡을 막기 위해 정부에 예산권, 대통령에 법안 거부권을 각각 줬다. 야당이 반윤 정서에 힘입어 총선에서 압승했다고 ‘황당 정책’을 밀어붙일 입법 폭주 면허장을 받았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
조선일보 사설
04.15 빨간 점퍼를 입은 3040 개천 용

▲지난 2월 14일 김재섭 후보가 선거운동을 위해 도봉갑 지역구 곳곳을 다니고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김재섭 국민의힘 후보가 4·10 총선 서울 도봉갑에서 당선된 비결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가 서울법대를 나온 것도 큰 역할을 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강남에 안 살면 서울대는커녕 ‘인서울대’도 못 갈 것처럼 학군 격차와 박탈감이 나날이 심해지는 시대에 오롯이 도봉구에서 공부해서 서울법대에 진학했다는 김 후보의 이력은 자칭 타칭 별명 ‘도낳스(도봉구가 낳은 스타)’로 불릴 만했다. 성장 가능성을 증명한 그였기에, 선거 때마다 민주당을 찍던 동네에서 “어디 한번 해보라”고 기회를 줬다.
김 후보 말고도 이번 총선에 빨간 점퍼 입고 여당 후보로 나선 ‘3040 개천 용’들이 여럿 있었다. 본인이 나고 자란 고향의 개천을 잊지 않고 연어처럼 돌아와 출마를 자청한 용들이다. 박상수 후보(인천 서갑)와 전상범 후보(서울 강북갑)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어려운 집안 환경에도 각각 가좌동과 수유동의 공교육으로 서울법대를 나와서 법조인이 됐다. 박은식 후보(광주 동남을)도 쇠락한 광주 구도심에서 초·중·고교를 나와 의사가 된 경우다. 직접 출마는 안 했지만 전 국가 대표 축구 선수 이천수씨도 “고향을 바꿔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원희룡 후보(인천 계양을)의 후원회장을 맡아 선거운동을 함께 뛰었다.

▲인천서구갑 국민의힘 박상수(왼쪽) 후보와, 서울강북갑 국민의힘 전상범 후보./연합뉴스·뉴스1
이들이 정치에 눈뜬 배경엔 ‘조국 사태’가 있다. 모두가 용이 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개천에서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 만들자던 조국 전 장관이 자기 딸·아들은 각종 증명서 위조에 대리 시험까지 쳐줘가며 용으로 만들려다 발각된 사태는 소위 진보 진영의 민낯을 드러냈다.
용꿈만큼은 누구나 꿀 수 있어야 한다고, 사다리 함부로 불태우지 말라고 아득바득 개천에서 용 되어본 자들이 말한다. 이들은 ‘노오오력’의 힘을 여전히 믿기에, 보수의 빨간 점퍼를 입고 총선을 뛰었다. 나랏돈으로 뿌리는 25만원을 넙죽 받기보다는,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더라도 스스로 용이 되는게 좋다고 본인 체험에 기반한 ‘사다리 청사진’을 설계해서 고향에 들고 왔다. 각종 심판론이 휘몰아친 이번 총선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묻혔다.
여당이 참패했지만, 눈여겨봐야 할 것은 ‘108석’보다도 여야의 전국 득표율 격차에 있다. 4년 전 총선에서 약 8%포인트였던 여야 격차가 이번엔 약 5%포인트로 줄었다. 디올백과 대파 태풍을 한바탕 겪고도 이런 결과라니. ‘흙수저 드라마’의 정직한 흥행을 기다리는 시청자가 여전히 많다고 느낀다. 앞으로 보수가 풀어야 할 숙제는 달콤하기 그지없는 용꿈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실현시킬지, 권위적이거나 우악스럽지 않게 널리 알리는 일일 테다. 정치는 용꿈 꾸는 가붕개들을 한 명이라도 더 밀어 올려주는 힘이어야 한다.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고향에서 계속 뛰겠다는 여당 낙선인들을 보면서 나지막이 외쳐본다. 꿈★은 이루어진다.
조선일보 양지혜 기자
04.15 김경율, 한동훈 때린 홍준표에 “이 증상은 개통령 강형욱이 답해야”

▲김경율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 /연합뉴스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108석을 얻는 대패를 당한 것을 두고 홍준표 대구시장이 연일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책임론을 주장하는 가운데, 김경율 전 비상대책위원은 15일 “홍 시장의 ‘일련의 증상들’에 대해 강형욱씨가 답변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개통령’(개와 대통령의 합성어)으로 알려진 강형욱씨는 개의 행동을 교정하는 전문가다. 김 전 비대위원이 홍 시장의 최근 발언을 개의 행동에 비유한 것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6일 대구 중구 삼덕동 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홍 시장은 총선 이틀 뒤인 지난 12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천신만고 끝에 탄핵의 강을 건너 살아난 야당에 깜도 안 되는 황교안이 들어와 대표 놀이 하다가 말아 먹었고, 더 깜도 안 되는 한동훈이 들어와 대권 놀이 하면서 정치 아이돌로 착각하고 ‘셀카’만 찍다가 말아 먹었다”며 한 전 위원장을 비난했다. 다음날에도 글을 올려 “선거는 당이 주도해 치른다”며 “선거가 참패하고 난 뒤 그걸 당의 책임이 아닌 대통령 책임으로 돌리게 되면 이 정권은 그야말로 대혼란을 초래하게 되고, 범여권 전체가 수렁에 빠지게 된다”고 했다. 이어 “이번 선거는 자기 선거를 한 번도 치러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 주도해 치른 것으로, 오로지 철부지 정치 초년생 하나가 셀카나 찍으면서 나 홀로 대권 놀이나 한 것”이라고 했다. “우리에게 지옥을 맛보게 해준 한동훈이 무슨 염치로 이 당 비대위원장이 됐다는 거냐”며 “내가 이 당에 있는 한 그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한동훈 비대위’에서 비대위원으로 활동했던 김경율 전 비대위원은 15일 오전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홍 시장님께 답변, 혹은 반응을 해드려야 될 것 같다”면서도 “사실은 개인적으로 ‘이걸 반응해야 되나’(하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이어서 “홍 시장의 일련의 증상들에 대해 내가 굳이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라며 “저건 강형욱씨가 답변하는 게 맞을 것 같다. 홍 시장에 대한 정확한 반응은 강형욱씨가 제일 정확히 알 것이고, 저나 혹은 다른 사람들이 따질 계제는 아니다”라고 했다.
김 전 위원은 홍 시장이 한 전 위원장 책임론을 제기하는 데 대해 “차기(대권)에 대한 고려 속에서 (한 전 위원장이) 경쟁자라는 것 아니겠느냐”며 한 전 위원장을 이번 기회에 억제하려고 하는 주장이라고 평가했다. 이어서 “이 분이 계속 ‘김경율 좌파’ ‘한동훈 좌파’ 얘기를 하는데, 그러면서 본인이 주장하는 것이 도대체 뭔지 상당히 의문스럽다”고도 했다.
김 전 위원은 “선거 패배는 대통령실의 책임이 크다”며 “선거를 주도하는 당의 책임이 아예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20대80에서 30대70 정도로, 20~30% 정도가 당의 책임”이라고도 주장했다. 그는 이종섭 전 호주 대사나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을 두고 벌어진 논란과 관련해 대통령실이 대응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국민들의 눈에 비친 모습”으로 인해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패했다고 진단했다.
김 전 위원은 이어서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문제와 답안이 똑같이 주어졌었고, 그런 의미에서 아주 좋은 예방주사였음에도 똑같은 시나리오가 재현됐다”며 “강서구청장 선거를 치르고 나서 국민들 눈에는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 부분을 대통령실이 실천으로 보여줌으로써 뭔가 내비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경필 기자
04-15 대의민주주의 위협하는 선거제 결함
이번 총선은 야권의 압승과 여당의 참패로 끝났다. 압승한 야권은 의기양양하고 참패한 여당은 기가 죽어 있다. 선거의 생리는 늘 그런 것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 결과는 잘못된 선거제도의 필연적 귀결이다. 주권자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54개 지역구에서 압도적인 의석수 161석으로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과 90석에 그친 국민의힘의 득표율 차이는 5.4%포인트(p)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의석수에서는 71석의 차이가 난다. 비례대표까지 포함한 득표율 차이는 2.4%p로 줄어드는데 의석수 차이는 여전히 67석이다. 선거제도의 맹점이 표본적으로 나타난 불합리한 결과다.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국회가 구성됐다고 볼 수 없다. 지역구에서 5.4%p 더 얻은 정치 세력이 득표율보다 과대 대표되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는 대의제도의 본질에 어긋난다. 자유민주주의가 기능하기 위한 대의제도는 국민의 정치적인 의사를 균형 있게 국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국회가 구성돼야 한다. 따라서 대의제도의 이러한 당위적인 요청을 충족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필수적인 기능적 전제 조건이다.
국민의 뜻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이 불합리한 선거제도는 이번 제22대 국회에서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군소 정당의 난립으로 최대 50㎝가 넘는 비례투표용지로 혼란을 겪지 않도록 난수표 같은 준연동형 선거제도도 이전의 병립형 선거제도로 바꿔야 한다. 위성정당이란, 본래 공산독재국가에서 다당제를 위장 표방하기 위해서 만드는 관제 정당을 말한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여야가 인위적인 위성정당을 만드는 준연동형 선거제도는 한시바삐 폐기해야 한다. 이 제도는 야당을 배제한 채 여당 단독으로 만들어 탄생 과정부터 절차적으로 비민주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선거제도는 반드시 여야가 합의해서 만드는 것이 자유세계의 공통된 정치윤리이다. 선거제도의 개혁에서는 이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선거제도의 중대한 결함으로 인해 과대 대표된 민주당은 모든 입법 및 정책 결정에서 45% 여당 지지 국민의 뜻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국민을 위하는 정치다. 지나친 오만과 독주에는 역풍이 따르기 마련이다. 정부·여당도 45%의 국민이 지지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지킬 것은 지켜나가야 한다.
주기적인 선거는 항상 가변적이어서 다수 관계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따라서 오늘의 다수가 소수가 되고 그 반대 현상도 생길 수 있다. 또, 불합리한 제도로 인해 참패한 것도 패한 것이다. 제도 탓만 할 수는 없다. 정부와 여당은 하루속히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 야당을 지지한 다수 국민의 뜻에 따라 고칠 것은 고치면서 국정을 차질없이 추진해야 한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 속에는 다수의 민심뿐 아니라 소수의 민심도 들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민심은 언제나 변할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정부·여당에 반대한 민심이 조속히 지지하는 민심으로 바뀔 수 있도록 자세를 낮춰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치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앞으로는 모든 일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도록 한층 더 노력해야 한다.

문화일보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헌법학
04.16 비례 무효표 130만표 역대 최대, 이 선거법 폐지해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종료된 10일 오후 대구 남구 영남이공대 천마체육관에 마련된 개표장에서 개표사무원들이 비례대표 투표용지를 수개표하고 있다. /뉴스1
이번 총선 비례대표 투표에서 나온 무효표가 130만9931표로 전체의 4.4%에 달했다. 역대 가장 높은 수치라고 한다. 비례대표 2석을 얻어 제4당이 된 개혁신당의 득표율이 3.6%였다. “무효당이 제4당”이란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무효표는 단순 오기(誤記)일 수도 있지만 상당 부분 어디를 찍어야 할지 몰랐거나, 아무도 찍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로 볼 수 있다.
비례대표 무효표 비율은 18~20대 총선에서 각각 1.6%, 2.2%, 2.7% 수준이던 것이 현행 선거법이 적용된 21대 총선 때 4.2%로 뛰었다. 이 선거법의 핵심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의원들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누더기 내용이다. 전 국민 중에 이 제도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이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떴다방’식 위성정당의 난립을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이 위성정당은 기존 민주당, 국민의힘 등의 이름을 쓸 수 없어 그와 비슷한 다른 이름을 사용했다. 그러니 유권자들은 현장에서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실제 당황했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난 총선엔 35개 위성 비례정당이 나와 투표용지 길이가 48㎝였다. 이번엔 38개 정당이 난립해 51.7㎝였다. 1% 이상 득표한 당은 7개뿐이었다. 21개 정당은 득표율이 0.1%에도 미치지 못했다.
문제의 선거법은 민주당이 4년 전 21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을 배제한 채 군소 정당들과 강행 처리한 것이다. 공수처를 만들려고 무리수를 둔 것이다. 군소 정당들의 협조를 얻는 대가로 멀쩡한 선거법을 뜯어고쳐 준연동형을 도입했다. 그렇게 도입한 공수처는 세금만 쓰며 하는 일 없는 기관이 됐고, 그런 선거법을 주장한 정의당은 존재도 없어지다시피 했다. 위성정당 기호를 앞당기기 위한 ‘의원 꿔주기’도 횡행하고 있다.
윤미향, 최강욱, 김의겸, 양이원영, 김홍걸 등 21대 국회에서 각종 논란을 일으킨 의원 상당수가 비례 위성 정당 출신이다.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후보 12명 중 최소 5명이 전과자 또는 피의자·피고인이다. 종북 논란을 빚은 진보당 출신 2명도 위성정당으로 당선됐다. 이 선거법은 이번 총선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4.16 ‘강남 사람’ 양문석의 안산 살기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안산갑에 출마한 양문석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지난 10일 오후 경기 안산시 상록구에 위치한 선거사무소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보며 기뻐하고 있다./뉴스1
‘사기 대출’ 논란 끝에 경기 안산갑에서 22대 국회의원에 선출된 더불어민주당 양문석 당선자. 지난 11일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1호 법안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지난달 28일 본지 통화에서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았던 20대 딸이 어떻게 11억원 대출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좀 봐달라”고 했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당시 양 당선자는 이렇게 말했다. “좀 살살 하자. 나 진짜 너무 힘들다. 정말 부탁한다. 어떻게 안 되겠느냐. 한 번만 빼달라.”
4·10 총선 안산갑에서 나온 무효표는 2308표(2.2%). 안산을(1789표), 안산병(1367표)보다 많았다. 야권 지지층조차 곧 피의자가 될 양 당선자를 선뜻 찍기 어려웠다는 의미다. 대학생 딸을 자영업자로 둔갑시켜 사업자 대출을 받은 양 당선자는 검찰 수사를 앞둔 처지다. 31억원대에 산 강남 아파트 가격을 21억원대로 축소 신고한 혐의도 선관위로부터 고발당했다.
그는 본지 통화에서 ‘사기 대출’ 논란과 관련, 자기 가족이 방배·반포 전셋집을 전전한 불쌍한 세입자라는 식으로 말했다. “전셋값이 폭등하면 또 쫓겨났다”고 했다. 셋집 한 곳은 방배롯데캐슬이었다는데 소형 평수 전세가가 10억원대다. 양 당선자는 문제의 대출을 일으켜 31억원대에 매입한 잠원동 아파트를 39억원에 내놨다. 역대 최고가다.
경남도지사와 통영 국회의원에도 출마했던 그는 “제가 통영과 서울을 오가니까 강남고속터미널에서 가까운 데로 간 것”이라며 “가장 싼 데가 거기(잠원동 아파트)였던 모양”이라고 했다. 월 수백만원 이자는 아내가 낸다고도 말했다. 안산에서 10억원이 넘는 아파트 단지는 딱 한 곳. 5억~6억원대 신축도 많은 지역이다.
양 당선자는 선거 며칠 전 세월호 10주기 행사 연습장을 찾았다. “제대로 기억하겠다”고도 했다. 10년 전 세월호에서 학생 250명이 숨진 단원고가 안산에 있다. 그 학생들이 딱 양 당선자의 딸 또래였다. 그는 지난해 팽목항을 방문해 “아비의 심정은 그저 눈물밖에 없었다”고 했다.
2014년 진도체육관에서 한 단원고 어머니는 “내가 능력이 없어서, 8학군 학부모가 아니라서 자식이 죽었다”고 했다. 양 당선자는 과거 시민 단체 시절 “한국에는 강남·분당 사람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지녔다”는 칼럼을 썼다. 그러면서 전셋집마저 강남을 고집했고 딸은 8학군에서 중학교를 나왔다.
양 당선자는 안산에 보증금 500만원짜리 방이 있다. 하지만 국회 출퇴근은 안산보다는 강남 아파트가 더 편하지 않을까. 오늘 열리는 세월호 10주기 행사에 아마 양 당선자도 참석할 것이다. 2014년 4월 16일에 시간이 영원히 정지한 아이들과 유족들 앞에서 양 당선자가 무슨 말을 할지 조금은 궁금해졌다.
조선일보 원선우 기자
04.17 정의 버리고 민주당과 야합했다가 몰락한 정의당

▲장혜영 녹색정의당 원내대표 직무대행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뉴시스
이번 총선에선 진보 정당인 정의당도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녹색당과 연합한 녹색정의당은 지역구에 17명의 후보를 냈지만, 심상정 대표 등 전원이 낙선했다. 비례대표 투표에서도 2.14% 득표에 그쳐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6석을 가진 원내 3당에서 ‘0석’의 원외 정당으로 밀려난 것이다. 정의당 0석은 2012년 창당 이후 12년 만에 처음이고, 뿌리인 민주노동당의 2004년 10석까지 거슬러 가면 20년 만이다. 이번에 정의당은 지역구와 비례 득표의 평균이 1%대에 머물면서 정당 보조금도 한 푼 못 받게 됐다. 국민에게서 퇴출 명령을 받은 것이나 같다.
정의당 몰락은 자초한 것이다. 2019년 위선과 반칙이 드러난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해 처음엔 반대 입장이다가 찬성으로 돌변했다. 알고 보니 민주당이 원하는 공수처 신설과 정의당에 유리한 선거법을 맞바꾸는 야합을 한 것이었다. 누더기 선거제를 만들어놓고 심상정 대표는 ‘국민은 몰라도 된다’고 했다. 이에 청년층이 반발하자 병사 월급 인상으로 무마하려 했다. 정작 2020년 총선에선 비례용 위성정당을 만든 민주당 때문에 6석을 얻는 데 그쳤다.
정의당 대표는 2021년 같은 당 의원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자 바로 사퇴했다. 그런데 정의당은 박원순 전 시장 성추문 때는 당 차원에서 박원순 조문을 강요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성추행 가해자 옹호당’이란 비판을 받았다. 노예나 다름없는 북한 주민의 인권에 침묵했다. 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강행 때도 처음엔 “동의하기 어렵다”며 반대했다가 정작 표결 때는 모두 찬성으로 돌변해 ‘민주당 2중대’ 노릇을 했다. 한때 소수 목소리를 대변한다며 적지 않은 지지를 받기도 했던 정의당이 정의를 버렸으니 몰락은 필연적이었다.
조선일보 사설
04.17 “이 당에도 산화하는 사람 있다는 걸 보여주려 했다”
8.62%.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광주 동·남을에 출마한 박은식 전 비상대책위원의 득표율이다. 더불어민주당 안도걸(70.16%), 무소속 김성환(16.15%) 후보에 이어 3등에 그쳤다. 세브란스 병원 내과 의사였던 그는 비례대표를 주겠다는 당의 제안을 뿌리치고 패배가 뻔한 고향에서 출사표를 던졌다. 동·남을은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 문충식 후보가 한자리 득표율로 낙선한 데 이어 2020년 총선에선 미래통합당이 공천을 포기한 불모지 중 불모지다.
▷‘달걀로 바위 치기’였던 건가요.'
“부족한 제가 두 달 만에 고향 광주의 마음을 얻으려 했는데, 욕심이 과하지 않았나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선거비용 보전 기준인 15%는 넘겨 동생뻘 청년들이 보수 후보로 광주에 도전할 자신감을 주고 싶었는데 아쉽습니다. (상대 당에 표 안 주기는 영남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민주당은 대구·경북에서 30%, 부산·경남에선 40% 표가 나와요. 부산·울산·경남에서 5석 얻었잖아요. 여기처럼 9 대 1 구도면 정치가 존재하기 힘듭니다.”
‘총선서 보수 지면 망국’ 위기감에 고향 출사표 결심
보수 후배들 길 열어주려 강남·비례 출마 제안 거절
호남서도 여당 존재감 키워야…5·18 매도 이제 그만
지역 유권자도 보수에 최소한의 관심 보여주셨으면…

▲국민의힘을 상징하는 붉은 점퍼 차림으로 유세 도중 인터뷰에 응한 박은식 전 후보. 그는 “등 뒤의 건물 벽처럼 견고한 호남 정서를 넘지 못했지만, 여당에도 대의를 위해 산화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택한 길인 만큼 후회는 없다”고 했다. 강찬호 기자
▷선거 운동, 어떻게 했나요.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뛰었습니다. 출퇴근 인사하고, 경로당 찾아다니며 ‘40년간 민주당만 찍어 좋아진 게 뭐 있나. 인구(142만)마저 대전(144만)보다 줄어 광역시 타이틀을 뺏길 판이다. 여당 찍어야 예산이 온다’고 했어요. 그러면 어르신들은 ‘윤석열 꼴 보기 싫다’는 말만 하세요.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득해도 ‘됐어. 그래도 민주당이야’ 하세요. 사전 투표 때도 힘들었어요. ‘난 민주당 찍고 왔어’ 하시니 기운 빠지죠. 여기 민주당 후보들은 공천되면 휴가 간다고 해요. 경선 끝나면 선거 끝난 거예요.”
▷대통령 욕에 뭐라고 답했습니까.
“국회 가서 대통령에 할 말 할 테니 찍어달라고 했죠 (웃음). 저도 솔직히 의·정 갈등 못 푸는 것 보면서 (대통령에) 약간 실망했어요. 또 하고많은 사람 중에 하필 이종섭을 대사로 보내나요. 물가도 그래요. 국민도 정부 탓만은 아닌 걸 아는데 굳이 ‘대파’ 논란을 만들 필요가 있었냐고요.”
첫 여론조사 5% 지지율에 경악
▷힘들었던 기억이 많았을 것 같은데.
“명함 받으면 내던지고 찢거나, 침 뱉고 ‘비켜’ 하는 분들이 있었지만 손 꼽을 정도였죠. 정말 힘들었던 건 지지율이 5%로 나온 첫 여론조사 때였습니다. 멘탈이 흔들리더라고요. (편 들어준 사람은 없나요?) 하루 많으면 7명 정도였습니다. ‘우리도 바뀌어야 해. 찍어줄게’ 하시더라고요. 참 고마웠죠.”
▷당 전략의 문제점은 뭐였나요.
“선거는 바람이잖아요. 언론의 주목을 받는 후보가 저 외에 광주, 전남·북에서 5명씩은 있어야 했어요. 그나마 ‘한동훈 바람’을 기대했는데, 불 뻔하다 꺼져버렸고…. 어젠다도 실종됐어요. 586 청산? 이재명이 알아서 청산했잖아요. 민생? 대통령이 대파 흔드는 순간 종쳤죠. 이명박 정부 때 ‘뉴타운’처럼 보수 가치에 충실한 카드 하나만 던졌더라도 좋았을 텐데….”
▷낙선하니 주변에서 뭐라고 하나요?
“‘여당 비대위원이 꽃길 마다하고 왔는데 너무하다’ ‘여기는 여당의 희망이 없는 곳’이라고들 하시더군요. 서운하긴 했지만 그래도 지지해준 많은 분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지금 광주에선 ‘야권이 대통령 탄핵선(200석) 얻지 못해 아깝다’는 분위기예요. 막판에 영남이 국민의힘으로 결집한 건 호남에서 이정현·정운천조차 안 되니까 ‘우리도 여당으로 뭉치자’는 심리가 작동했기 때문 같습니다.”
“한나라당 호칭 여전, 여당 존재감 0”
▷여당도 5·18 참배 등 제스처를 하지만, 진정성이 안 보인다는 지적을 받지 않나요.
“국민의힘도 잘해야겠지만, 광주 유권자들도 생각을 바꿨으면 합니다. 5·18을 기념일로 지정한 대통령은 김영삼이었잖아요. 국민의힘도 이번 총선에서 호남 전 지역구에 후보를 냈고요. 집권당을 활용해야지, 배척만 하면 계속 고립되죠. 선거해보니 대권이 정말 중요하더라고요. 제가 아무리 뛰어봤자 ‘윤석열 싫어! 꺼져’ 하면 끝이에요. 명함 드리면 ‘왜 빨간 당으로 나왔냐’고 하세요. 당명도 기억 못 해요. 국민의당, 심지어 한나라당이라고 하는 분도 있어요.”
▷잊을 만하면 5·18 망언이 여권에서 나오는 것도 문제 아닌가요.
“5·18 때 광주 시민은 ‘북괴는 오판 말라’는 플래카드를 걸었고, 미국의 개입을 바라는 등 헌정 수호·친미 시위를 했어요. 그런데도 북한군 개입설을 퍼뜨리고 ‘폭도’라 매도하니 대화 자체가 안 돼요. 이게 지속되니 호남이 여당에 정서적으로 가까워지기 힘들고, 민주당에 반대하는 광주 시민들이 국민의힘 아닌 조국 신당으로 가버렸어요. 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개혁당 찍은 비율이 여기가 제일 높아요. 답답합니다.”
▷광주 출마에 가족들 반응은.
“지난해 김기현 대표가 혁신위원장 맡아달라고 했지만 거부했어요. 가족들 반대가 심했죠. 당에서 ‘비례 의원 아니면 텃밭(강남) 공천해 주겠다’라고도 했지만, 그것도 거부하고 ‘정치하게 된다면 광주 출마하겠다’고 했어요. 이어 비대위가 출범하면서 한동훈 위원장이 비대위원직을 제안했는데, 이건 가족들도 동의해줬어요. 보수진영에서 인정받았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때 광주 출마 결심을 굳혔죠.”
▷꽃길을 거부하고 험지 출마를 결단한 이유는.
“누군가는 산화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여당 사람들이 자극받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죠. 이 당은 호남 출신들이 고향 대신 양지만 찾아 출마하잖아요. 그러다 낙선해 명분도 실리도 잃고…. 호남 출신으로 자존심 상하죠. 그래서 비대위원 맡는 순간 내 소명은 광주 출마라고 확신했습니다. ‘박은식이 비대위원 되더니 결국 비례 공천받더라’는 말 듣고 싶지 않았죠. 내가 광주에 출마하면 여당의 수도권 득표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도 있었고요.”
▷의사로서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고행길을 택한 심적 배경은 뭔가요.
“‘총선에서 여당이 지면 나라가 망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있었어요. 사회과학과 역사를 공부하면서 보수의 가치에 확신을 갖게 됐고, 한국은 해양세력 주도의 자유시장 경제로 가야지, 중국에 굴종하던 과거로 돌아가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 출마를 결심한 거죠.”
▷망국을 걱정할 만큼 절박했나요.
“과거 민주당은 그래도 헌정사는 존중했는데, 지금의 민주당은 나라에 애착심 자체가 없다고 봤어요. 나라에서 꿀 빨 거 다 빨고, 아이들 미국 유학 보내면서 사상은 사회주의·친북·친중이니, 애착심이 없는 거예요. 이런 사람들이 또 권력 잡으면 대륙에 종속됐던 조선 시대로 퇴행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광주 출마로 이어진 거죠.”
“박정희 덕에 기생충 소멸” 듣고 보수로
▷성장사가 궁금합니다.
“아버지는 무안 출신 대학 강사, 어머니는 화순 출신 교사로 광주에서 사셨어요. 저도 초중고를 광주에서 나왔고요. 유복하진 못했지만 단란한 가정이었죠. 처가는 대구인데, 장인어른이 자식들과 5·18 묘지를 참배했을 만큼 열린 분입니다. 어릴 때는 당연히, 그냥 민주당이었죠. 한데 의대 입학해 기생충학을 배우는데, 교수님이 ‘박정희가 기생충 다 없애 우리 일자리가 없어져 버렸다’고 하시더라고요. 옛날엔 오물이 그대로 들어간 우물물 먹고 너도나도 기생충에 감염됐잖아요. 이거 막으려면 하수도 깔아야 해요.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 수교의 배상금으로 받은 돈으로 자재를 마련하고 하수도를 만들게 하니까 기생충 유병률이 확 떨어진 겁니다. 그때 처음 박정희의 긍정적인 면모를 깨달았어요. 또 의사가 돼보니까, 누군가 일을 해 가치를 창출해야 분배도 가능하다는 걸 알았죠. 최전방에서 군의관 복무하며 북한군의 현실을 목도하고, 보수 이념이 잘못된 게 아니란 확신을 얻었습니다.”
▷보수 논객이 된 건 조국 사태가 전환점인가요?
“제 전문 분야잖아요. 조민 씨가 썼다는 의학 논문은 레지던트도 못 써요. 교수가 박사 조교들 데리고 피 뽑고, 동의서 얻고, 기계 돌려야 겨우 쓸 수 있어요. 그런 논문을 고교생이 썼다니 진짜 분노했죠. 그런데도 문제없다고 넘어가는 민주당 보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선거비용을 한 푼도 보전받지 못했는데 어려움은 없나요.
“후원금이 1억5000만원 들어와 큰 손해는 면했습니다. (거취는?) 일단 일상으로 돌아갈래요. 가정을 건사해야죠(웃음).”
중앙일보 강찬호 논설위원
04-17 국회의장 非중립, 법사위원장 차지… 野 의회 독재 신호탄
현재의 제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의회 운영 행태는 ‘폭주’ ‘독주’로 비판받았다. 그런데 22대 원구성 협상을 앞둔 상황에서 민주당은 훨씬 강경한 입장을 내놓기 시작했다. 개원 협상을 해봐야 하겠지만, 그런 입장이 관철되면 민주당은 뭐든 맘대로 할 수 있는 ‘의회 독재’로 귀결될 것이다.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이 그런 과정을 거쳐 히틀러 체제로 바뀌었다. 위성정당과 합친 의석이 175석으로 압도적인 과반을 차지한 만큼 더 많은 지분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 의석도 결코 적지 않고, 득표율 차이는 더욱 근소한 만큼 의회 권력을 양분한다는 취지를 저버리면 의회주의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정청래·고민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16일 “국민의힘에 법제사법위원장을 절대 내주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김용민 의원은 “그게 총선 민심”이라고 주장했다. 법사위원장은 법안 처리 속도를 조정할 수 있다. 고위공직자 탄핵소추안에 대해선 ‘검사’인 소추위원도 맡는다. 그래서 상호 견제 차원에서 제1당이 국회의장을 차지하면, 2당이 법사위원장을 맡는 게 관례였다. 법사위에서 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60일 계류 후 본회의에 직회부하거나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해 6개월을 넘기는 우회를 할 수밖에 없다. 결국, 4년 전처럼 여당의 유일한 견제 수단마저 빼앗아 마음대로 입법권력을 휘두르겠다는 의도다.
국회의장 후보로 꼽히는 추미애 당선인은 “의장은 중립이 아니다”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따지겠다”고 했다. 또 다른 후보인 조정식 의원은 “개혁 국회 실천에 필요한 어떤 일도 하겠다”고 했다. 국회의장은 본회의 사회자이면서 여야 갈등의 최종 중재자이다. 그래서 국회법에 ‘탈당’을 못 박은 것인데, 이런 원칙조차 뒤엎으려 든다.
문화일보 사설
04.18 빚내서 빚 갚는 나라서 “1인당 25만원” 주장, 총선 사례금인가
내년에 만기가 돌아와 정부가 갚아야 할 국채가 101조7631원에 달해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선다고 기재부가 발표했다. 2021년 45조원 수준이었는데, 4년 만에 2.2배로 불어나게 됐다. 문재인 정부가 방만한 돈 뿌리기로 국채 발행 잔액을 5년간 400조원이나 늘린 탓이 가장 크다. 국가 부채가 1000조원대로 불어난 상황에서 국채가 속속 만기 도래하며 재정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빚을 갚기 위해 더 많은 빚을 내야 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국채 이자 상환에만 들어간 예산이 지난해 24조원에 이어 올해는 29조원으로 늘었다. 전체 예산의 4.4%를 원금도 아닌 이자 갚는 데 쓴 셈이다. GDP의 2.6배에 달하는 빚을 껴안고 1년 예산의 8.6%를 이자 상환에 사용하는 일본에 버금가는 수준까지 국가 재정 상황이 악화된 것이다.
집권 당시 나라 재정을 엉망으로 만든 민주당은 야당이 돼서도 현금을 뿌리는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씩 총 13조원을 지급하고, 소상공인 대출 이자를 1조원 깎아주는 등의 민생 회복 긴급조치를 시행하라고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국민 세금으로 총선 압승 사례금을 주자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무분별한 현금 지원과 포퓰리즘은 나라의 미래를 망친다”고 하자 이 대표는 “국민 다수에게 필요한 정책을 누가 포퓰리즘이라고 하냐”고 했다.
현 상황에서 이 대표 요구대로 전 국민에게 현금을 지급하려면 또 빚을 내는 수밖에 없다. 빚을 내 현금을 뿌리고 그 빚은 또 빚을 내 갚는다. 결국엔 쓰러질 것이다. 모두 지금 청년 세대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미래는 생각하지 않고 당장의 인기를 위해 국민에게 설탕물을 뿌리는 행태를 포퓰리즘이라고 부른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때 기본소득, 기본대출, 기본주택 등 이른바 ‘기본 시리즈’ 정책을 대거 제시했다. 여기에 더해 아동·청년·상병 수당, 학자금 무이자 대출, 쌀값 부양, 무료 생리대, 탈모 치료까지 온갖 포퓰리즘 정책을 선보였지만, 선거에서 패배했다. 그런 이 대표가 이제 총선 대승으로 마음대로 예산을 주무를 수 있게 됐으니 국가 재정과 경제 미래가 포퓰리즘으로 인한 위기 상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일보 사설
04-18 다수결 지상주의는 시대착오적 발상
다수결 원칙은 초기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다. 1인 전제정이나 엘리트 과두정과 달리 다수 대중의 민의를 받들려니 자연히 다수결 지상주의가 힘을 얻었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고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다수결은 더는 절대시되지 않게 됐다. 단순한 다수결 원칙을 보완하는 여러 정교한 민주주의 모델이 학계에서 제시됐고, 그 노력은 구미 민주주의 국가들의 실제에도 상당 부분 반영됐다. 우리 국회도 그런 흐름을 타고 다수결 지상주의에 제한을 두는 운영 제도와 원내 규범을 부분적으로 키워 왔다.
그런데 제22대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게 된 더불어민주당에서 시대착오적 다수결 지상주의를 되살려 원(院) 구성에 적용하겠다는 소리가 들린다. 통상 제2당이 맡던 법제사법위원장을 절대 내줄 수 없다거나 심지어 모든 상임위원장을 가져와도 된다는 소리도 들린다. 당의 현직 최고위원들, 전현직 원내대표들이 연이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을 보면 원 구성 협상의 기선 잡기용이 아니라 속내를 드러낸 말로 들린다.
거대 야당이 이를 실제로 이행하려 한다면 국회와 정치권 전체는 격랑에 빠지게 된다. 원 구성 단계에서부터 극한적인 여야 갈등이 벌어질 것이며, 국회는 제때 개원하지 못하고 입법 과정은 교착에 빠질 것이다. 만약 민주당이 정말로 숫자로 밀어붙여 상임위원장 직을 ‘싹쓸이’한다면 입법 독재가 현실이 돼 한국 민주주의와 국정 거버넌스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입법 과정에서 권력 균형과 다원성이라는 민주주의의 가치는 사라질 것이다. 국회와 대통령·행정부 간의 관계는 얼어붙어 국정이 거의 멈추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다수결 지상주의라는 낡고 거친 흉기로 무장한 입법 독재는 민주주의와 국정만 망가뜨리는 게 아니고 거대 야당에 양날의 검으로서 예상치 않은 자해(自害)를 가할 수도 있다. 입법권의 완전한 장악과 독주는 선호 의제의 통과라는 전리품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국정 교착과 정국 불안정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지는 문제를 촉발한다. 이런 책임 문제는 2년 후 지방선거와 3년 후 대선을 준비해야 하는 정치인과 정당이라면 결코 직면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다수결 지상주의에 따른 입법 독재는 순탄하게 작동해서 좋은 성과를 내기 힘들다. 사회의 파편화와 양극화가 교차하며 체제 전반에 복잡성·급변성·불확실성·갈등이 커지다 보니 국정 성과가 잘 나오지 않는다. 유권자는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고 각종 형태의 권력과 권위를 불신한다. 이런 유권자를 어떤 입법과 국정 운영으로도 지속해서 만족시키기는 힘들다. 특히, 주도권을 쥐고 있는 측은 행정권을 행사하는 대통령이든 입법권을 휘두르는 거대 정당이든 유권자가 불만·불신을 넘어 분노를 터뜨리는 과녁이 되기 쉽다.
학자들이 단순한 다수결 지상주의를 괜히 비판하는 게 아니다. 시대 상황상 여러 민주주의 가치를 놓칠 뿐 아니라, 유권자의 호응을 얻는 국정 성과를 낼 수도 없고 통치 주체가 자칫 책임 문제만 걸머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수주의와 합의주의를 어떻게 배합할지, 승자독식 제도를 어떻게 완화해 소수 측도 포용할지, 다수결에 앞서 어떤 숙의 과정을 거칠지 등을 연구하는 것이다. 거대 야당도 여기서 교훈을 얻으면 좋겠다.

문화일보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04.19 벌써 입법 폭주, 국회가 민주당 부속 기관 된 듯

▲18일 국회에서 열린 농해수위(위원장 소병철)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농해수위 위원들이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본회의 부의 요구의 건 등 5건의 안건을 처리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 여당 의원들은법안에 반대하며 불참했다. /이덕훈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상임위에서 양곡관리법과 농산물 가격 안정법 개정안 등 5개 법안을 단독 처리해 국회 본회의에 넘겼다. 양곡관리법은 쌀 가격을 떠받치기 위해 정부의 쌀 매입을 의무화한 내용이다. 쌀이 남아돌아 매년 10만t 이상을 사료·주정용으로 처분하는데 이 법을 시행하면 쌀이 더 남아돌게 된다. 쌀값을 떠받치는 데 매년 1조5000억원의 세금을 더 쏟아야 한다. 작년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민주당은 일부 수치만 고쳐 재발의한 것이다.
농안법은 배추·고추·사과·배 등의 최저 가격을 예산으로 보전해 주는 내용이다. 주요 5대 품목 보상에만 매년 1조1900억여 원의 예산이 든다. 하지만 재원 조달 방안도 제출하지 않았다. 전세 사기 피해자에 대해 정부가 먼저 보상하고 나중에 구상권을 청구토록 한 전세 사기 특별법도 이미 본회의에 직회부됐다. 2조원의 예산이 든다. 총선에서 압승한 민주당이 새 국회가 열리기도 전에 다시 입법 폭주를 시작한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불법 파업 조장법이라는 노란봉투법, 의료 직역 간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간호법, 공영 방송을 자기들 편으로 만들려는 방송 3법 등도 처리 예고했다. 모두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는 부작용 때문에 추진하지 않았던 법들이다. 이 역시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었다.
이재명 대표는 전 국민에게 25만원씩 민생회복지원금을 주는 총선 공약을 정부가 반대하자 아예 법률로 밀어붙이려고 한다. 예산(13조원) 부담이 크고 삼권분립 취지에도 어긋난다. 노동·연금·교육·규제 개혁 등 국가적 과제나 기업·민생 살리기용 법안은 외면한 채 포퓰리즘 법안들만 앞세워 추진하려는 것이다.
민주당은 헌정 질서를 뒤흔들 극단적 주장도 쏟아내고 있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윤호중 의원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제한하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했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국회의장은 중립이 아니다”라고 했다. 중립적 국회 운영을 위해 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한 국회법 취지를 부인한 것이다. 이 대표의 대장동 사건 변호사를 지낸 한 당선자는 “사법부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법원까지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4년 전에도 총선에서 압승한 뒤 공수처를 만들고 검찰 수사권을 박탈하는 법안을 밀어붙였다. 각종 쟁점 법안들을 위장 탈당 등 온갖 편법을 동원해 통과시켰다. 결국 국민 심판을 받아 4년 만에 정권이 교체됐다. 그런데 또 같은 전철을 밟으려 한다. 반윤석열 바람으로 승리해 놓고 입법 폭주 허가를 받은 것처럼 생각한다. 민주당의 입법 폭주는 거의 모두 국민의힘 의원들이 없는 가운데 단독 처리하는 것이다. 이 광경을 보면 국회가 마치 민주당 부속 기관이 된 것 같다.
조선일보 사설
04.19 이제 혁명적 정치개혁이 필요하다
22대 총선의 과정과 결과는 한국 정치의 환부를 전부 드러냈다. 이의 본격적인 수술과 치료를 모색해야 할 때다. 무엇보다 민심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헌법과 정치 개혁이 중요하다.
먼저 공천 과정의 혁명이다. 당연히 주권자가 공천권을 행사해야 한다. 더 이상 당 지도부에 의한 위로부터의 공천을 지속해선 안 된다. 아래로부터의 공천이 제도화하지 않는다면, 아무나 아무 지역에 꽂아서 출마하게 된다. 나아가 주민의 대표 및 헌법기관으로서의 국회의원의 독립성과 자율성보다는 친(親)·비(非)·반(反) 같은 수식어가 붙는 파당인의 위치와 역할이 너무 커진다.
22대 총선, 비례·대표성 왜곡 극심
정치 개혁 외면한 여당의 자업자득
제도적 리스크와 개인 리스크 결합
선거·정당·헌법 혁명적 개혁 절실
대표성·비례성·등가성 보장을 위한 선거제도 혁신은 말할 필요도 없다. 민주화 이후 21대까지 총선의 사표(死票)는 전체 투표의 49.3%에 달했다. 유효표는 단지 50.7%였다. 주권의 절반이 행사 즉시 사표가 된 것이다.
게다가 제1당의 의석율은 득표율보다 평균 9.9%포인트나 높아 거의 30석이 초과 의석이었다. 지금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지역구 득표 차이는 8.4%포인트(49.9% 대 41.5%)에 불과했으나, 의석수 차이는 79석(163석 대 84석)이 됐다. 8.4%는 겨우 21석에 값할 뿐이다. 득표수 대비 1당은 14.53%의 의석 이득을, 2당은 8.3%의 의석 손해를 본 셈이다. 22대 총선도 같다. 사표는 41.52%에 달하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득표는 5.4%포인트(50.5% 대 45.1%) 차이였으나 의석수는 71석이나 차이(90석 대 161석) 났다. 5.4%는 단지 14석에 값한다.
의석과 권력 배분이 ‘민심 그대로’ 반영되려면 이토록 큰 사표와 의석 불비례는 바로잡혀야 한다. 이를 위해 특별히 보수정당의 혁명적 의식 전환을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개혁과 정치개혁을 위한 국회 특위 기간, 민의를 반영하고 표의 비례성·대표성·등가성을 지키기 위해 ‘연동형’을 받아들이라는 설득에도 국민의힘 계열 의원들은 난공불락이었다. 여러 객관적 선거 지표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표심 왜곡방지와 민주주의 원리는 고사하고라도, 왜 자해적 선택인 연동형 반대와 위성정당 창당이라는 이중·삼중의 악수(惡手)를 선택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영남당·부자당·노인당 추세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지표를 무시하는 비민주적, 반과학적 선택이었다. 그 자업자득이 이번 총선 결과다.
22대 국회에서 ‘연동형 비례’ 대표의 본질에 합당한 의석은 2석(개혁신당)에 불과하다. 나머지 44석은 지역구 후보가 없는 위성정당이나 단독정당·가설정당의 의석이다. 대체 무엇과의 연동이고 비례인가? 즉 44석은 지역구 표심과 의석의 불비례성을 보정하는 비례대표 제도의 본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지역대표와 비례대표 간 최악의 불비례·불연동 선거가 아닐 수 없다. 화급히 바로잡혀야 한다.
표의 등가성·대표성·비례성 및 정확한 민심 반영을 위한 선거·정치개혁은 권력구조 개혁과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선진국 한국은 이제 나라이건, 국민이건, 정당(여당)이건, 더 이상 ‘대통령제 리스크’와 ‘대통령 리스크’를 동시에 안고 갈 수 없는 한계상황에 도달했다. 전자는 ‘제도’ 리스크이고, 후자는 ‘인물’ 리스크다. 최근 들수록 제도 요인과 인물 요인이 만나서 한국 사회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은 불안을 넘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이 위험 요인으로부터 나라와 국민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 애국자라면 진영을 넘어 함께 직시해야 한다.
민주화 이후 탄생한 모든 대통령의 득표율은 유효투표 대비 평균 44.65%, 선거인 수 대비 34.03%였다. 유효 투표의 절반 이상이 반대표 내지는 사표였다. 전체 선거인을 따지면 3분의 1 지지에 불과하다. 대화와 타협이 절대 필수임에도 불구하고 승자 독식을 지속한 결과 한국은 최고 갈등 국가가 되고 말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최소 비율 및 득표 차인 0.73%포인트, 24만표 차이로 당선됐다. 그런데도 대화·타협·협치 거부와 일인독주·승자독식 정치를 고수하다 통치 불능 상태에 가까운 심판을 받고 말았다.
선진 한국의 자율성과 다양성, 창의성과 가능성이 더 이상 한 제도와 한 사람에 의해 좌우돼선 안 된다. 대통령 선거는 결선 투표를 도입해 대표성을 높이고 연립·연합정부의 경로를 열어놓아야 한다. 동시에 지지 민심의 크기만큼만 권력을 행사하도록 일체의 승자 독식과 대권 요소를 철폐해야 한다. 인사 및 정책의 독임과 전횡, 초법성과 불가예측성을 제거할 최소한의 장치가 필수다. 총리의 국회 복수 추천, 국무회의 의결기구화, 장관 임명동의제는 그 최소 요건이다.
행정권과 입법권, 최고 행정권자와 최고 입법권자가 서로 다른 상황을 맞아 22대 국회는 정책 연합과 입법 연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꼭 그리해야 한다. 나아가, 주권자의 민심만큼만 권력을 획득하고 배분하고 행사하는 정치개혁을 위한 혁명적 결단과 행동도 함께 기대한다.
중앙일보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04-19 전방위 폭주·위력 과시가 국민 요구라는 野 오만과 착각
더불어민주당이 총선 과반 압승의 여세를 몰아 제22대 국회가 개원하기도 전에 입법·행정·사법 전방위로 위세를 부리고 있다. 18일 국회 농해수위에서 양곡관리법 등 5개 개정안을 표결로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단 18분 만에 해치웠다. 양곡관리법은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인데 일부 숫자만 바꾼 것이다. 농산물 과잉생산 조장 등 정부의 우려는 들을 필요도 없다는 식이다. 23일엔 정무위원회를 열어 경찰관 7명이 사망한 동의대 사건 관련자도 포함하는 민주유공자법을 직회부할 방침이다. 임오경 대변인은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할 생각”이라고 했다. 차기 국회에서 펼쳐질 입법폭주 예고편 같다. 원구성 협상에서 국회의장과 법제사법위원회는 물론 17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겠다는 뜻을 서슴없이 밝히고 있다.
정부를 향해선 이재명 대표가 제안한 1인당 25만 원의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해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압박한다. 아예 입법만으로 집행 가능한 ‘처분적 법률’까지 거론하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예산(13조 원) 부담은 차치하더라도 삼권분립의 원칙 훼손이다. 이날 민주당 의원들은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 앞에 몰려가 수사팀 감찰을 촉구했다. 이화영 전 경기 부지사의 ‘검찰청 술판’ 발언이 연일 오락가락인데도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대장동 변호사’ 김동아 당선자는 선거운동 기간에 이 대표를 재판에 출석시키자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고 했었다.
국회 의석 과반을 차지했다고 국가 통치권을 위임받은 듯이 생각한다면 오만이자 착각이다. 총선 지역구 득표율 5.4%포인트 차이로 71석이나 더 가져간 것은 선거제 탓도 있다. 야당에는 국정 견제만이 아니라 권력 분립·균형의 헌정 질서 유지 의무가 있다. 더욱이 협치를 요구하면서, 다수의 힘으로 몰아붙이는 행태는 이율배반이다.
문화일보 사설
04.22 윤미향은 결국 4년 세비를 다 받아 간다
대한민국 좌파 그들이 살아가는 법… 말로만 정의
국회 입성해 특혜 누리며 횡령과 비리 드러나도
마녀사냥이라며 버틴 생계형 좌파의 교본

▲윤미향 무소속 의원./뉴시스
21대 국회의원 임기가 한 달여 남았다. 눈 뜨고 코 베인 심정으로 황당한 행태들을 지켜봐야 했다. 시작부터 논란이었던 윤미향 의원도 임기를 다 채우게 된다.
4년 전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옛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이사장이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인이 되자 오랫동안 함께 활동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후원금 횡령 의혹, 12·28 한일 위안부 합의의 사전 인지 등을 폭로했다. “국회의원 하면 안 된다”고 했다. 비리 의혹 보도가 쏟아졌다. 여론조사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응답이 70.4%였지만 윤씨는 의혹을 부인하며 국회의원이 됐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고 함께 활동했던 마포 쉼터 소장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업무상 횡령 등 8가지 혐의로 기소된 지 2년 5개월 만인 작년 2월에 혐의 7개는 무죄, 1억35만원의 횡령 혐의 중 1700여 만원은 유죄인 1심 판결이 나왔다. 작년 9월 2심에서 형량은 높아졌다. 횡령액 8000만원, 보조금관리법 위반 등도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판결이다. 의원직 상실에 해당되나 윤씨가 “무죄를 입증하겠다”며 상고 의사를 밝혀 국회의원 임기를 다 채운다.
이용수 할머니가 주장했던 12·28 한일 위안부 합의의 윤씨 사전 인지설도 그새 사실로 밝혀졌다. 변호사 단체가 소송을 통해 외교부에서 면담 기록을 넘겨받았다. 당시 외교부는 합의 타결 전날까지 윤씨를 총 4차례에 걸쳐 만나 내용을 미리 공유했다는 문건까지 있었다.
굳건히 버틴 ‘의원 윤미향’의 4년 의정 활동은 어땠을까. 21대 국회는 법안 2만5000여 건을 무더기로 쏟아냈다. 법안 통과율은 35%였다. 국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윤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은 109건. 가결은 2건이고 16건은 일부 내용이 반영됐다. 위안부 관련 법안 중에는 위안부 피해자뿐 아니라 관련 단체의 명예훼손도 금지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에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는데 ‘윤미향 보호법’이라는 논란이 일자 법안이 철회됐다.
국가보안법 폐지, 한미 군사훈련 중단 등에 줄곧 강한 목소리를 내왔다. 2022년 11월 북한이 우리 영해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120여 발을 퍼부은 날, 북한 규탄 대신 한미 연합 공중 훈련 중단을 촉구했다. 작년에는 외교부 차량 의전을 받아 친북 단체 조총련이 주최한 관동 대지진 100주기 행사에 참석했다. 논란이 되니 “색깔론으로 갈라치기하지 말라”고 했다. 작년 11월 국회에서 재석 의원 260명 중 253명 찬성으로 중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 중단을 위한 결의안이 통과됐는데 기권한 7명 중 한 사람이다. 올 초에는 친북 성향 인사들을 모아놓고 국회 토론회를 열었다. “윤석열 정부의 반북·멸북 정책이 우리에게 걸림돌”이라고 인사말을 했다. 이 자리에서 “북은 완전 자주국방이고 교육·의료·주거는 남쪽은 경쟁, 북은 무상, 친일 청산도 남쪽은 완전히 실패, 북쪽은 성공했다. 어디가 제대로 사는 것이냐”는 발언도 나왔다. 이 발언자는 최근 김준혁 민주당 후보의 ‘이대생 미군 성 상납’ 발언을 옹호하려고 “이대 정외과에 다녔던 이모(1935년생)가 1948년 무렵 낙랑클럽에서 김활란한테 걸렸다”고 황당 주장을 폈던 바로 그 여성 활동가다. 이런 성향의 좌파 단체와 인사들을 국회에 모아놓고 임기 막바지까지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지난 3월엔 ‘전쟁을 부르는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즉각 중단하라’는 사회단체 합동 기자회견, ‘구시대 정치, 색깔·이념, 종북 공세 중단! 국가보안법 폐지’ 기자회견, “적대와 색깔론을 넘어 주권과 평화의 22대 국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잇달아 열었다.
사실 윤미향씨 논란은 복잡할 것도 없는 사안이다. 국내외에서 드물지 않게 보이는 시민 단체의 불투명한 운영, 교조주의에 빠지면서 성역화된 활동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잘못을 바로잡고 조직과 목표를 재정비하면 된다. 2008년 별세한 고(故) 심미자 할머니가 생전에 정대협 활동에 문제 제기한 적도 있지만 덜 부각됐다. 윤씨가 국회의원이 되려 하자 함께 활동해 온 ‘내부인’ 이용수 할머니가 비리를 폭로해 낱낱이 드러난 것이다.
본인과 조직 운용의 문제점이 드러난 것인데 책을 내고는 “과거사의 진실 규명을 추구하는 운동을 억압하는 화살촉에 나를 끼워 공격하는 것이 저들의 진짜 목적일 것”이라고 했다. 1700만원 횡령 유죄가 난 1심은 “무죄, 무죄, 무죄로 끝난 마녀사냥”이라 했고 형량 높아진 2심은 “비록 유죄를 선고했지만 나 스스로 여전히 무죄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새삼스러울 것 없는 윤미향 논란을 되돌아본 건 21대 국회 종료를 앞둔 시점에 일본의 짤막한 뉴스 때문이었다. 한 일본 중학교 교장이 편의점에서 레귤러 사이즈 컵에 라지 분량의 커피를 내려받아 회당 70엔(약 630원), 7차례 490엔(약 4410원) 이득을 본 것으로 30년 몸담은 교직에서 쫓겨나고 억대 퇴직금도 못 받게 됐다. 경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지만 교육위원회는 최고 수준 징계로 파면했다고 한다. 법적 판단보다 엄격한 개인 윤리, 직업 윤리가 작동하는 사회라는 뜻이다.
우리는 어떤가. 이런 일본을 상대로 사죄받고 역사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시민 단체 출신이 자신의 비리나 잘못에는 관대한 몰염치에, 문제가 드러나니 언론과 검찰의 마녀사냥이라고 한다. 최소한의 법적 정의조차 지연됐고 4년간 국회에서 받아 간 세비를 회수할 장치도 없다. 22대 국회에서는 이런 행태를 또 얼마나 봐야 할까.
조선일보 강경희 기자
04.22 ‘전 국민 25만원’ 아닌 서민용 민생 패키지 마련해야

▲물가 상승으로 저소득층의 밥상물가 역시 타격을 받은 가운데 서울 종로구 원각사 무료급식소(사회복지원각)에서 어르신들이 무료 급식을 받고 있다./남강호 기자
이번 주 예정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첫 영수 회담에서 이 대표가 민생 회복 명목의 ‘전 국민 1인당 25만원’ 지원을 요구할 것이라고 한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가처분 소득이 부족한 서민에게 현금을 쥐여주면 소비를 진작해 경기 활성화에 도움 된다는 논리로 돈 풀기를 주장해왔다. 민주당은 이를 위한 소요 재원 13조원을 마련하기 위해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하라고 정부·여당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추가 세수가 없는 상황에서 추경을 편성하려면 빚을 낼 수밖에 없다. 이미 올해 예산의 4.4%에 해당하는 29조원을 국채 이자 갚는 데 써야 할 만큼 재정 상태가 악화돼있다.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문재인 정부 5년간 국가 부채를 400조원이나 늘려놓은 민주당 쪽에 있다. 그런데 또 13조원의 빚을 낸다면 국가 재정은 더욱 부실화될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물가가 급등하는 인플레이션 국면이어서 재정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은 맞지 않다. 현금을 뿌리는 것은 급등하는 물가를 더욱 자극할 우려가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전 국민 현금 지원이 아니라 저소득층을 위한 맞춤형 민생 대책이다. 물가고에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서민과 자영업자, 영세 상공인 등의 고통이 심화되고 있다. 예산을 쓰더라도 정말 아껴서 진짜 어려운 계층에게 도움 되는 지원책을 우선순위를 정해서 펴야 한다. 정부는 그간 민생 지원 방침을 밝혀왔지만 국민 피부에 와닿게 민생을 챙긴다는 신뢰를 주지 못했다. 대통령은 올해 들어서만 24차례 민생 토론회를 열었고 총 240개의 후속 조치에 속도를 내라는 지시도 내렸지만 이름만 ‘민생’이지, 가덕도 신공항 건설, 산업은행 부산 이전, 의료 개혁 및 지역 의료 강화 등 국민 실생활과는 거리가 먼 거대 정책이 상당수다. 농림부에 맡겨놓은 물가 관리도 별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반도체 수출 등이 회복되면서 전체 경제 지표는 개선되는 듯 보여도 고금리, 고물가,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내수 경기는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장바구니 물가가 오르고 자영업자, 소상공인의 체감 경기도 빙하기다. 야당의 무리한 돈 풀기를 설득하고 저지하려면 물가 관리와 소상공인 대책 등 타깃을 세분화한 핀셋형 민생 대책을 추려 집중할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은 민주당의 ‘전 국민 25만원’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민생 대책의 대안을 갖고 이 대표를 만나야 한다. 민주당 요구 중 전세 사기 피해자 우선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나 소상공인 정책 자금, 저금리 대환 대출 확대 등은 전향적으로 검토할 만하다.
조선일보 사설
04-22 한국 보수에는 美 골드워터 없는가
미 공화당 1964년 대선 참패 속
보수 재정립과 ‘남부 전략’ 추진
젊은 보수와 차기 인재들도 키워
국민의힘,고령화에 지역도 고립
세대 포위론·선거 연합 복원해
보수 정립하고 북진 전략 펴야
4·10 총선 참패로 한국 보수가 갈 길을 잃었다. 집안싸움으로 날을 지새우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의 가장 큰 위기라고 한다. 에이브러햄 링컨 이후 미국 보수의 적통인 공화당도 그런 적이 있다. 링컨은 1860년 당선된 첫 공화당 출신 대통령으로, 동북부를 근거지로 노예 해방과 도시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반면 민주당은 노예제를 찬성하고, 남부 농경지대가 텃밭이었다. 그러나 1932년 대공황 시절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당선된 게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민주당은 뉴딜 정책으로 도시 노동자·유색 인종의 민심을 사로잡고 동북부로 진격했다. 이후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까지 민주당 황금시대였다.
미 보수 최악의 흑역사는 1964년 대선이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 1년 뒤 대선에서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는 민주당의 린든 존슨에게 참패했다. 선거인단 486 대 52로 처참하게 무너졌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제임스 레스턴은 “골드워터는 대선 패배를 넘어 공화당 자체를 완전히 망가뜨렸다”고 썼다. 그러나 골드워터는 그 참담한 폐허 속에서 보수 혁명의 씨앗을 뿌렸다.
당시 대선 캠프 재정 책임자였던 윌리엄 미덴도프의 회고다. “골드워터는 패배가 뚜렷해지자 직접 정치광고를 중단시켰다. 대선 캠프가 집단 반발했다. 하지만 그는 ‘차라리 그 자원을 아껴뒀다가 보수 정치의 재건에 요긴하게 쓰자’고 버텼다.” 골드워터는 대선 공약으로 작은 정부와 감세, 반공주의 등 선명한 보수 노선을 내걸었다. 미래를 이끌 재목들도 키워냈다. 캘리포니아주의 B급 배우였던 로널드 레이건은 감동적인 TV 찬조 연설로 단박에 전국구 스타가 됐다. 2년 뒤 제2차 세계대전 영웅인 조지 H W 부시도 텍사스 하원의원에 당선시켰다.
무엇보다 미국의 보수가 젊어졌다. 골드워터 대선 캠페인에 젊은 지지자 50만 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150만 명이나 소액을 헌금했다. 1965년 뉴욕의 20대 지식인들이 계간 잡지를 창간해 시장경제와 가족을 옹호했고, 대학생들도 자발적으로 ‘자유를 위한 젊은 미국인들’을 조직했다. 이들이 세운 젊은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은 개인의 자유, 작은 정부, 감세, 시장경제 등 새로운 의제들을 장악해 들어갔다. 과감한 ‘남부 전략’을 가동해 보수의 근거지를 북동부에서 텍사스·애리조나 등 남부로 옮겼다. 이른바 ‘정당 재편성(Party Realignment)’이다. 미덴도프는 40년 뒤 ‘영광의 참패’를 출간하면서 당시의 패배를 ‘영광스러운 재앙(Glorious Disaster)’이라 복기했다. 새롭게 거듭난 미 공화당은 그 이후 14차례 대선에서 8차례나 이겼다.
국민의힘에 총선 참패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과연 미래와 희망이 있느냐는 것이다. 오랫동안 한국의 보수는 반공과 산업화 신화에 안주해 지지계층이 60∼90대로 노령화됐다. 지역적으로 양남(영남·서울 강남)에 고립됐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에 따르면 그동안 ‘민주 동맹’은 선거에 이길 때마다 더불어민주당·민주노총·시민단체·전교조 등이 전리품을 나누며 동맹 결속을 강화했다. 반면, 보수 정당은 전리품을 독차지하기 위해 선거연합을 해체하며 위기를 자초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진박 공천’, 윤석열 대통령의 이준석 축출이 대표적이다. 이로 인해 보수 정당의 자생력이 바닥나고 인재가 고갈되면 선거 때마다 이회창·황교안·윤석열·한동훈 등 외부 인사를 불러들이는 ‘기생 정당’이 체질화됐다.
국민의힘에 제대로 된 가치관이나 노선 투쟁이 안 보인다. 양남권 당선인 중심으로 눈치만 살필 뿐 무기력한 모습이다. 이제 진보 진영은 1996년 이후 처음으로 항상 2∼5% 표를 잠식하던 정의당이 사라져 민주당 중심의 단일 대오가 됐다. 반면, 지난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이로 간신히 이긴 보수 진영은 비례대표 3.61%를 득표한 개혁신당과 분열해 버렸다. 미 공화당의 남부 전략처럼 ‘양남’에서 수도권을 향한 북진 전략도 안 보인다. 지난 대선 때 위력을 발휘한 2030과의 ‘세대 포위론’도 실종됐다. 국민의힘이 다시 일어서려면 재창당 수준의 근본적 수술이 절실하다. 선거연합 복원과 미 공화당 식의 ‘정당 재편성’도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국민의힘에는 눈을 씻고 봐도 한국판 골드워터가 보이지 않는다.

문화일보 이철호 논설고문
04-22 정치경험 풍부한 5선 비서실장… 막힌 용산~여의도 길 튼다

▲팔 벌리며 직접 소개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팔을 벌리면서 정진석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을 취재진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 비서실장 정진석 임명
尹, 이례적 직접 인선 발표
鄭 “통합 정치 노력할 것”
국회법상 의원직은 사퇴
중도성향 친윤계로 분류
MB정부 정무수석 경험도

윤석열 대통령이 신임 비서실장에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을 22일 임명한 것은 꽉 막혔던 용산과 여의도 사이 길을 열 ‘정무형’ 비서실장 역할을 할 적임자로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정 신임 실장 인선을 이례적으로 직접 발표하며 “용산 참모진뿐 아니라 당, 야당, 또 언론과 모든 부분에 원만한 소통을 해 직무를 아주 잘 수행해 주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안팎에서는 5선 의원 출신의 정 실장이 경륜을 바탕으로 여권 총선 참패로 어수선해진 대통령실을 재정비하고 야당과의 협치에도 본격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직접 정 신임 비서실장 임명 사실을 전하며 “정진석 전 국회부의장은 사실 소개가 필요 없을 정도로 여러분이 잘 아실 것이라 생각한다”며 “한국일보에서 기자로 시작해 한국일보에서 15년간 일하고, 16대 국회에 진출을 해서 5선 국회의원을 하셨고, 청와대 정무수석을 비롯해서 당에서도 비대위원장과 공관위원장을 하셨고, 국회부의장과 사무총장도 하셨다”며 “우리나라 정계에서도 여야 두루 원만한 그런 관계를 가지고 계시다고 여러분도 잘 아시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의 소개를 받은 정 실장은 “여소야대 정국상황이 염려되고 난맥이 예상된다”며 “어려운 시점에서 윤석열 정부를 돕고 윤 대통령을 돕는 것이 저의 책임이라 느낀다”고 했다. 정 실장은 이어 “더 소통하고 통섭하고 통합의 정치를 이끄는데 미력이나마 보좌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정 신임 실장은 ‘의원은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 직 외의 다른 직을 겸할 수 없다’는 국회법 29조 1항에 따라 윤 대통령의 임명 재가 전에 의원직을 사퇴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일찌감치 정무형 비서실장이 필요하다고 보고 정 실장을 신임 비서실장으로 고려했다고 한다. ‘친윤(친윤석열)계’ 의원인 정 실장은 중도성향으로 분류된다. 정 실장은 국회부의장을 지낸 5선 의원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에서 정무수석을 지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 주요 당직을 지냈다. 여권에서는 ‘수직적 당정관계’를 해소하고 당정 간 소통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적임자로 손꼽는다. 정 실장이 이번 선거에서 민심이 대거 돌아선 충청 출신인 점, 야당 의원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점 등이 인선 과정에 크게 고려됐다고 한다. 또 윤 대통령과 친분도 두터워 현안마다 가감 없는 조언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 실장은 당장 ‘윤·이 회담’ 배석을 시작으로, 야당과의 전방위 협치 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부친은 정석모 전 내부부 장관이다.
정 실장은 야당의 거부감도 상대적으로 덜한 인사로 평가된다. 윤 대통령은 여권의 총선 참패 이후 낮은 자세로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에서, 야권이 반발하고 국민들이 조금이라도 의아해할 수 있는 인사는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손기은 기자 son@munhwa.com
04-22 ‘펄펄 끓는 물가’에 기름 붓겠다는 이재명 대표
尹 정부 출범 후 첫 영수회담
李 “13조 민생회복지원금 주로 논의”
현 경제상황선 물가만 부채질할 우려
궁극적으론 민생회복 ‘지연금’ 될 것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이 이번 주 열린다. 현 정부 출범 후 1년 11개월 만에 처음 보게 될 장면이다.
이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윤 대통령의 회담 제안이 총선 참패와 지지율 폭락에 떠밀려서 하는 ‘액션’인지, 그간의 독선과 불통을 걷어내고 협치에 나서려는 ‘진심의 일보(一步)’인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대통령실이 무슨 의제를 내놓을지도 아직은 명확지 않다.
먼저 의제를 밝힌 쪽은 이 대표다. 이 대표는 전화로 초청을 받은 19일 당일 유튜브를 통해 “(민생회복)지원금 문제 등 이런 얘기를 주로 해야 한다”면서 “개헌 문제 이런 것들도 여야 간에 대화가 가능하면 최대한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여기에 더해 민주당 안에서는 “채 상병·김건희·이태원 특검법 수용을 촉구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개헌이든, 동시다발 특검이든 회담 테이블에 올리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민생회복지원금만큼은 이 대표가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경제와 민생을 위하는 길이라고 본다.
민생회복지원금은 이 대표가 이번 총선 과정에서 내놓은 공약이다. 이 대표의 주장대로 1인당 25만 원, 가구당 100만 원씩을 지급하려면 13조 원이 필요하다. 기존 예산을 조정해서 마련할 수 있는 ‘쌈짓돈’이 아니다. 국채를 발행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데, 결국은 또 만만한 미래세대의 주머니를 털자는 얘기다.
이 대표의 민생회복지원금은 문재인 정부가 2020년 4·15총선을 앞두고 추진했던 1차 재난지원금과 일견 흡사해 보인다. 소득 수준을 가리지 않고 전 국민에게 현금을 살포한다는 점이 그렇고, 4인 가구 기준 지원금을 100만 원으로 잡았다는 점이 그렇다. 그러나 실질적으론 전혀 다르다. 4년 전에는 나름의 불가피성과 정책적 정합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시곗바늘을 잠시만 돌려보자.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2020년 2월부터 공급망 쇼크가 글로벌 경제를 강타했다. 팬데믹 공포가 금융으로 파급되면서 3월 9일에는 전 세계 증시가 ‘검은 월요일’을 맞았다. 유가도 폭락을 거듭해 4월에는 석유 선물가격이 마이너스까지 떨어지는 전대미문의 일이 벌어졌다.
한국에서는 2월부터 자영업 점포들이 줄줄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가계가 지갑을 닫으면서 1분기 민간소비는 환란 이후 최악의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나마 물가가 안정돼 있다는 것이 천행이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9년 0.4%로 54년 만에 최저치를 찍은 데 이어 2020년에도 0.5%에 그쳤다. 현금을 아무리 뿌려도 당장은 물가 걱정을 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팬데믹 기간 중 살포된 현금이 불붙인 인플레이션과 전 세계가 사활을 건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한국의 올해 2,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두 달 연속 3%대를 찍었다. 2022년 5%대에 이어 작년 3%대 중반의 고물가를 버티면서 대응 여력을 소진한 상태에서 질질질 이어지는, 숨차고 끈적끈적한 인플레이션 국면이다. 한쪽에서는 고물가 처방약인 고금리가 숨통을 조여온다.
농산물의 경우는 사과와 배가 1년 전보다 80%가 넘게 올랐다. 이달 총선이 끝나기가 무섭게 치킨·햄버거 업체들은 ‘이젠 눈치 볼 게 없다’는 식으로 앞다퉈 인상된 가격표를 내다 붙이고 있다. 조미김 값이 오르면서 구내식당이나 백반집에서는 김 반찬이 사라지는 중이다.
앞으로도 문제다. 천재지변과도 같은 두 ‘고물가 변수’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국제유가의 경우 이스라엘-이란 간의 확전 움직임으로 19일 WTI 기준 배럴당 86달러까지 치솟았다. 4년 전 1200원대 초반이던 원-달러 환율은 1400원을 위협하고 있다. 단순한 환율 변동 효과만으로도 해외에서 들여오는 물건과 서비스 값이 4년 전보다 11.6% 비싸졌다.
지금 가장 시급한 민생 현안은 성장도, 고용도, 부동산도 아닌 물가라는 데 이견의 여지가 거의 없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그렇다. 선거가 있는 나라에서는 예외 없이 ‘바보야, 문제는 물가야’라는 아우성이 터져 나온다. 민생이 곧 물가고, 물가가 곧 민생이다.
이 대표가 주장하는 민생회복지원금의 효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양보해서 소비 진작 효과가 있다고 치자. 하지만 일회성 반짝 효과가 사라지면 고물가에 기름을 부어 인플레이션 탈출을 더디게 만드는 부작용만 남게 될 것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민생회복‘지원금’이 아니라 민생회복‘지연금’이 맞는 이름일 것이다. 민생 협치를 하자는 영수회담 테이블에 올릴 ‘메뉴’가 아니다.

천광암 논설주간 iam@donga.com
04.23 민주당 “협치 거부” 2.8%p 국민만 떠나면 ‘역전’ 명심해야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전략기획위원장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지워야 된다”고 했다. “협치를 대여(對與) 관계의 원리로 삼는 건 총선 압승이란 민심을 배반하는 행위”라고도 했다. 그게 차기 민주당 원내대표의 조건과 자질이라는 것이다. 야당 원내대표는 각종 쟁점 법안과 의사 일정 등을 놓고 여당과 협상·조율을 책임지는 자리다. 그런 사람에게 ‘협치하지 말라’고 주문한 것이다.
원내대표에 출마한 박찬대 최고위원은 “21대 국회 때 (국민이) 모아준 압도적 의석에 우리가 부응하지 못했다”며 “단호한 자세로 개혁에 매진해야 될 것”이라고 했다. 22대 국회에서 폭주의 수위를 한층 높이겠다는 얘기인가. 앞서 차기 국회의장으로 거론되는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국회의장은 중립이 아니다”라고 했다. 중립적 국회 운영을 위해 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한 국회법 취지까지 부인하며 민주당 폭주에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모두가 ‘협치 거부’ 메시지다.
아무리 여야가 대립·갈등해도 주요 정당 정치인들은 협치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정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협치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 있어도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그런 상식이 지금 민주당엔 통하지 않는다. 반(反)윤석열 바람으로 압승했는데 ‘협치 부정’ ‘폭주 면허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지역구 161석, 국민의힘은 90석을 얻었지만 득표율은 50.45% 대 45.05%였다. 득표율 차는 5.4% 포인트에 불과하다. 2.8% 포인트의 국민만 생각을 바꿔도 민주당 우위는 역전된다. 4년 전 21대 총선에서 득표율은 8.4%포인트 차였는데 지역구 의석수는 거의 두 배 차이가 났다. 이후 4년간 민주당은 각종 쟁점 법안들을 위장 탈당 등 온갖 편법을 동원해 통과시켰다. ‘두 배’만 믿고 폭주하다 국민 심판을 받아 정권을 내줬다. 그때 위장 탈당한 사람이 민형배 의원이다. 지금 협치 거부를 공언하는 민주당을 보면 다시 그 길을 걷는 것 같다.
조선일보 사설
04-23 무능한 與, 오만한 野, 표류하는 나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지 2주일이 돼 간다. 총선 3연속 패배에 간신히 개헌 저지선을 지킨 국민의힘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 같다. 하다못해 학기말고사의 성적이 떨어져도 학생들은 무엇이, 왜, 어떻게 잘못됐는지 되돌아보고 반성해 다음에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한다. 관리형과 혁신형 비대위를 두고 아직 방향을 잡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위기의식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정도라면 선거 바로 다음 날, 국민 앞에 무릎이라도 꿇고 처절히 반성하는 모습이라도 보였어야 했다. 반성은커녕 당선자들끼리 모여 덕담을 주고받으며 서로 축하했고, 초선 간담회에는 절반 이상이 참석조차 하지 않았단다. 백서는 고사하고 반성조차 없는 집권 여당을 바라보는 지지자들은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 175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은 어떤가. 선거 후 가정 먼저 나온 얘기가, 그동안 대통령의 거부권에 막혀 입법화하지 못한 양곡관리법, 노란봉투법 등 다수의 법안을 제21대 국회에서 완결짓겠다며 단독으로 상임위를 통과시켰다. 그것이 나라를 위해 필요한 법률이라면 말도 안 한다. 자신들이 여당일 때는 국회의 3분의 2 의석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입법 시도조차 하지 않다가 대선에서 패배해 행정 권력을 잃자 갑자기 나서서 추진한 법안들이다. 이제 총선에 이겨 제22대 국회에서도 마음대로 국회 운영을 할 수 있게 되자 다시 입법을 시도해 지지도가 떨어진 대통령이 또 거부권을 행사하게 하겠다는 속셈이다. 안하무인 격으로 힘자랑 좀 해보겠다는 심보인데, 동네 아이들끼리 싸움도 이렇게 하지는 않는다.
민주당 압승이 확정되자 차기 국회의장 세평이 나오더니 급기야 법사위원장도 민주당이 맡겠다는 소리가 들린다. 21대 국회 전반기, 법제사법위원장은 야당이 맡아 오던 관례를 깨고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이 위원장을 내놓으라고 몽니를 부리며 합의가 이뤄지지 않자 결국 압도적 다수 의석으로 밀어붙여 모든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했던 민주당이다. 이제 22대 국회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모양이다. 게다가 6선으로 최다선인 추미애 전 의원은 국회의장은 중립이 아니라면서 확실하게 민주당 편을 들겠다고 공공연히 주장하고 나섰다. 다수 의석이니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국회는 다수결보다 합의를 우선하는 게 원칙이다.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 등 다양한 제도를 통해 합의를 추구해야 한다. 21대 국회 전반기,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이 자당 소속 의원들을 탈당시키거나 징계로 인해 출당된 의원들을 야당 몫으로 배정해 신속처리안건 제도를 무력화시킨 것도 의회법을 위반한 폭거였다. 이젠 아예 국회의장까지 나서서 절대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의 의회 독재를 선도하겠다는 식이다. 추 의원은 6선이면서 국회 운영의 기본 원칙을 모르진 않을 텐데 힘자랑에 앞장서겠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번 총선에서 얻은 압도적 다수 의석은 야당에 힘자랑하라고 주어진 게 아니다. 국민은 윤석열 정부를 심판한 것이지, 민주당이 좋아서 찍은 게 아니다. 힘자랑 계속하면 다음번 심판은 민주당을 향하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문화일보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04-23 민심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다
‘민심이 천심’ 王 변덕 견제용
지금도 포퓰리즘 亡國 수두룩
양문석 김준혁 당선 마찬가지
상식 정의 입각한 정치가 중요
광주의 5·18묘역 참배에 앞서
영광 염산교회 ‘北 학살’ 보라
지난 10일 치러진 총선 패배로 사퇴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민심은 언제나 옳다”는 말이 곱씹힌다. 선거 결과에 승복했으니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민심이 언제나 옳다고는 볼 수 없다. 민심이 언제나 옳다면, 민주국가는 올바른 정치로 영원히 번영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실패한 민심이 수두룩하다.
민주주의의 고향인 고대 아테네만 하더라도, 짧은 전성기를 빼고는 늘 흔들리는 민심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진흙탕을 헤맸다. 마지막에는 최후의 결전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지휘관들을 헛소문에 홀려 사형시켜 버렸다. 곧바로 치명적인 실수를 깨닫고 가슴 쳤지만, 이미 떠나버린 버스에 손 흔드는 격이었다. 현대에는 잘못된 민심으로 민주정치가 무너진 경우가 무척 많다. 지난 세기에 독일의 나치 히틀러는 국민의 대대적인 지지를 얻고 집권해 민주제도 자체를 깨 버렸다. 낙농 선진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는 국민의 잘못된 판단으로 허름한 나라가 됐고, 석유 수출로 풍요를 누렸던 베네수엘라는 빈곤의 악순환을 겪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는 선거 민심이 옳다고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대학생 딸을 개인사업자로 탈바꿈시켜 ‘사기 대출’을 받은 경기 안산갑의 양문석 후보나, ‘이화여자대학생 미군에 성(性)상납’ 주장이나 위안부 피해자들을 ‘성적 노리개’로 비하하는 망언을 한 경기 수원정의 김준혁 후보가 반듯한 상대 후보들을 제치고 당선됐다. 지역구의 선택은 존중돼야 하지만 안타깝다.
서울 종로구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후보가 부인의 명의로 산 미국 아파트 매매대금의 명세를 밝히라는 유권자에게 “모욕죄에 해당한다”며 위협하고, 의혹을 제기하는 상대 후보에게 “감옥에 갈 수 있다”고 협박했다. 그는 애국심과 청백리로 소문난 최재형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물론 인천 계양을에선 수많은 범죄 혐의로 법원을 제집 드나들듯이 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민심이 천심’이라든가 ‘국민의 목소리는 신의 목소리(vox populi, vox dei)’라는 정치 잠언(箴言)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해진다. 이것은 고대 군주 시대에 최고 권력자인 왕의 오만과 변덕을 견제하기 위한 말이었다. 최고의 권력자에게는 거리낄 바가 없어서 도덕 준칙조차도 구속력이 없는 법이다. 그러기에 최고의 권력자를 견제하고자 민심이나 국민의 목소리를 동원했던 것이다.
민주사회에서는 민심이나 국민의 목소리로 최고 권력자를 견제할 수 없다. 최고의 권력자가 국민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민심은 천심을 닮아야 한다’거나 ‘국민의 목소리는 신의 목소리를 닮아야 한다’며 도덕성의 최후 보루인 하늘이나 신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천심이나 신의 목소리도 변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고대 중국의 은나라에서는 큰일이 있을 때마다 하늘의 뜻을 알아보고자 갑골로 점을 쳤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하늘이 변덕스러웠기 때문이다. 고대 서양에서도 신들은 변덕쟁이였다. 늘 서로 시기·질투해 싸우고, 최고의 신인 제우스가 나서야 잠잠해졌다. 인간사에도 간섭했는데, 사람들은 신의 약속을 믿고 나섰다가 낭패하기 일쑤였다.
만일, 한국의 자유주의 정치가들이 변덕스러운 민심의 바다를 헤쳐 나가려면, ‘민심이 천심이라며 언제나 옳다’는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마키아벨리의 충고처럼 천심의 변덕스러운 포르투나(Fortuna·행운)보다는 자신들의 꿋꿋한 비르투스(Virtus·덕성)를 믿고, 용감하게 자유주의 정치 문법에 맞는 정치를 해야 한다.
선거 때에 당일치기하듯 변덕스러운 민심을 좇지 말고, 미리부터 자유주의 정치 상징들을 드높이고 자유 이념에 맞는 정책들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이왕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된 5·18 묘역에 가려면, 먼저 자유 세력의 상징 자산인 전남 영광의 염산교회나 충남 논산의 병촌성결교회를 들러야 한다. 6·25 때 인민군이 홀로코스트를 저질렀던 곳이다. 상대 세력의 무리한 포퓰리즘 정책에 대해서도 상식과 정의에 맞는 자유주의 정책으로 적극 맞서야 한다.

문화일보 김주성 前 한국교원대 총장
04.24 어제는 ‘민주유공자법’ 일방 처리, 매일 폭주 민주당

▲23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위원장 백혜련) 전체회의에서 가맹사업법(가맹사업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민주유공자법(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대한 국회 본회의 직회부 안건이 가결되고 있다./이덕훈 기자
민주당이 23일 국회 정무위에서 ‘운동권 셀프 특혜법’으로 불리는 민주유공자법과 가맹점주에게 단체교섭권을 부여하는 가맹사업법을 본회의에 직회부하는 안건을 단독 처리했다. 국민의힘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법사위를 우회하려는 것으로 정상적인 법안 처리 절차라고 할 수 없다. 국민의힘은 “의회 폭거”라고 했지만 표결을 막을 수 없었다. 민주당은 총선 승리 후 일주일 만에 윤석열 대통령이 이미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법 등 5개 법안을 상임위에서 단독 처리한 데 이어, 다시 5일 만에 2개 법안을 또 밀어붙였다.
민주유공자법은 민주화 운동 관련자 본인은 물론 부모와 자녀까지 지원해주는 법이다. 2000년 이후 민주화 유공자 4988명이 받은 보상금이 1100억원이 넘는데, 추가로 국민 세금을 들여 그 가족까지 도와주자는 것이다. 이 법이 제정되면 방화로 경찰관 7명을 죽인 동의대 사건, 운동 자금 마련한다고 무장 강도 짓을 한 남민전 사건, 무고한 민간인을 ‘프락치’로 몰아 감금·폭행한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 관련자들까지 민주 유공자 심사 대상이 된다. 게다가 유공자 특혜를 받을 대상자 명단과 공적은 개인 정보라는 이유로 비밀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국가유공자는 자격 여부를 보훈심사위원회가 심의·의결하지만 ‘민주’ 유공자는 이마저도 건너뛸 수 있게 했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때에도 같은 법안을 냈다가 2021년 스스로 철회했다. 국민의 시선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승리하자 안면 몰수하고 다시 밀어붙인다.
가맹사업법은 가맹점주들에게 노동조합처럼 단체교섭권을 부여하고, 가맹본부는 반드시 응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반발하고 주무 부처인 공정위도 “가맹본부의 부담이 지나치게 커질 수 있다”며 반대한다. 이렇게 상반된 주장이 부딪히는 법안은 숙의가 필요한데 요즘 한국에선 숙의는 실종이다.
민주당이 두 법을 처리한 날 국회에선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 만남에 앞선 양측 실무 회담이 열렸다. 앞에선 협치를 하자면서 뒤로는 문제 법안을 일방 통과시켰다. 민주당은 ‘노란봉투법’, 방송3법 등도 곧 처리하겠다고 한다. 당 전략기획위원장은 “협치를 머릿속에서 지우자”고 했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회담은 왜 하자는 것인가.
조선일보 사설
04-24 민주당 입법 폭주는 ‘45% 국민’ 무시
지난 19일 공개된 한국갤럽의 정례 여론조사(4.16∼18, 전국 18세 이상 1000명 대상 전화 면접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p, 응답률 12.1%)에 나타난 대통령 지지율은 직전 조사 대비 11%p 폭락한 23%였다. 이는 총선 결과에 대한 여론의 ‘동조 현상’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장래 정치지도자 선호도’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4%를 기록했는데 이는 직전 조사 대비 1%p밖에 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론의 ‘동조 현상’이 차기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도 영향을 미쳐야 정상인데, 총선에서 완승한 상황치고는 이상할 만큼 선호도가 오르지 않은 것이다. 이런 현상은 정당 지지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조사에서 국민의힘은 30%, 민주당은 31%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직전 조사 대비 국민의힘은 6%p 빠졌고, 민주당 지지율은 1%p 오른 것이다. 이 역시, 민주당이 총선 압승에 따른 여론의 동조 현상 영향 밖에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 보면,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게 된 것은 유권자들이 민주당을 선호해서가 아니라 국민의힘과 대통령에 대해 실망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점은, 254개 지역구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각각 얻은 득표율의 차이는 5.4%p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런 상황을 잘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상황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독선과 독주를 일삼으면, 이것이 부메랑이 돼 민주당을 덮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의 ‘자기중심적 상황 해석’이 또 발동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국회의장 후보들은 ‘기계적 중립’은 안 지켜도 좋다는 식으로 말하고, ‘협치’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보이는 인사가 있는가 하면, 상임위원장 배분과 관련한 국회의 관습과 관례가 무시될 우려마저도 있다. 이런 상황을 연출하며 민주당은 “압도적 과반의석을 만들어 주신 국민의 뜻”을 내세운다.
압도적인 의석을 만들어 준 국민은 전체 국민이 아니라, 민주당에 투표한 50.45%의 유권자다. 국민의힘에 투표한 나머지 유권자 45.05%는 민주당의 ‘압도적 의석’ 형성에 ‘기여’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국민’이란 이름으로 자신들이 추구하는 일들을 단독 처리한다면, 이는 ‘자당(自黨) 지지자’만 국민이라는 뜻밖에 안 된다.
민주주의의 가장 근본 가치는 소수의 목소리를 제도에 반영하는 것인데, 현재 민주당의 태도는 ‘소수처럼 보이는 다수’의 목소리도 외면하는 셈이다. 평소에는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 필요성을 그렇게도 외치더니, 정작 여당 지지층의 의견과 목소리는 외면하는 것이다. 민주당의 ‘소수 정당’ 또는 ‘소수의 목소리’는 ‘같은 진영’에만 국한되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그뿐만이 아니라 제22대 국회에서 처리해도 되는 사안을 굳이 제21대 국회 막바지에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 총선 압승이라는 분위기 속에 정권의 기를 죽이고 이를 통해 대통령의 레임덕을 조기에 발생시키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민주당이 차기 대선 승리를 원한다면 45%의 국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이 점 명심하길 바랄 뿐이다.

문화일보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학
04-26 되살아난 현금살포 망령
이번 제22대 총선에서 인천 서갑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국민의힘 박상수 후보(변호사)는 자신의 패인에 대해 “왜 이번 선거에는 재난지원금이 없느냐. 윤석열 정부 들어 지역 화폐 환급이 깎였다는 유권자들의 불평불만을 많이 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장 와 닿는 현금성 복지에 대한 효용감이 선거 전체를 강하게 지배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같은 당 낙선자인 강철호 전 HD현대로보틱스 대표(경기 용인정 출마)도 “왜 국민의힘은 현금 지원 공약이 없냐는 말을 수차례 들었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하던 2020년, 온 나라가 재난지원금 지급 여부를 두고 논쟁을 벌이던 때가 있었다.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전 국민에게 현금을 나눠 준다는 초유의 일이었기 때문에 경제적 효과 여부 등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소란스러웠다.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제21대 총선을 며칠 앞두고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나눠 주자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 하위 70%, 4인 가족 최대 100만 원을 나눠 주는 ‘선별 지원’을 주장했으나, 여당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총선 결과는 ‘180석 획득’이라는 압승이었다. ‘현금 살포’의 위력을 실감한 것이다.
코로나19도 사실상 막을 내린 지금, 느닷없이 또다시 현금 지원 논란이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이번에는 ‘민생지원금’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이번 논쟁의 중심에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있다. 이 대표는 코로나19 사태 때도 전 국민에게 현금을 나눠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었다. 이미 21대 총선에서 ‘현금’의 파괴력을 맛봤던 민주당도 이 대표를 거들고 있다.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이유가 어디 이것뿐이었겠는가마는, 막판 이 대표가 들고나온 ‘전 국민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은 여당 후보들이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이제 이 대표는 전 국민 현금 지급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13조 원 예산’을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받아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하지만, 과연 지금 우리 상황이 13조 원의 현금을 살포해야 할 처지인지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7일(현지시간) 발표한 ‘재정점검보고서(Fiscal Monitor)’에서 올해 한국의 정부 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56.6%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오는 2029년에는 60.0%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됐다. 혹자는 우리나라 정부 부채 비율이 선진국들에 비해 여전히 낮다면서 아직 돈을 쓸 여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정부 부채 비율(2023년 기준, 55.2%)이 일본(252.4%)이나 미국(122.1%), 영국(101.1%) 등 선진국에 비해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달러와 유로화·엔화 등 기축통화국에 속한 이들 선진국과 우리나라를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 약한 통화를 보유한 우리나라는 내부 재정이 튼튼하지 못하면 작은 외풍에도 경제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투입 대비 현금 지급의 경제적 효과가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것도 이미 증명된 판이다. 이제 선거철만 되면 여야 할 것 없이 ‘전가의 보도(寶刀)’처럼 현금 살포 공약이 등장하지 않을지 걱정된다.

문화일보 임대환 경제부 부장
04.27 민주유공자 되면 자녀 대입특례, 국보법 위반자도 혜택 본다니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3일 국회 법사위를 건너뛰고 본회의에 직회부한 민주유공자법이 시행될 경우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사람들도 국가유공자에 준하는 대접을 받게 된다고 한다. 지금까지 민주당은 국보법 위반자들을 법 적용 대상에서 원천 배제했다고 해왔다. 법안에 그런 내용이 담긴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단서 조항을 보면 ‘제외된 사람을 보훈심사위의 심의·의결을 거쳐 법 적용 대상자로 결정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국보법 위반자도 얼마든지 민주유공자가 될 수 있도록 뒷문을 열어 놓은 것이다. 이렇게 유공자가 될 수 있는 국보법 위반 전력자가 1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 법은 기존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민주화 운동 관련자 9844명 중 사망자·부상자·행방불명자 911명을 추려 민주유공자로 예우하자는 게 골자다. 2000년 이후 4988명이 받은 보상금이 1100억원이 넘는다. 이것으로도 부족해 유공자 본인은 물론 부모와 자녀에게도 의료·양로 지원을 비롯해 각종 혜택을 주자는 내용이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때도 같은 법안을 냈다가 스스로 철회했다. ‘운동권 셀프 특혜법’을 만드는 데 대한 국민의 비판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 바로 같은 법을 들고 나왔다. 그러면서 자녀 대입 지원 조항은 삭제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실질적 특혜가 많지 않다는 걸 부각해 법 통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뒤집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유공자가 되는 순간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유공자 본인과 자녀들은 자동적으로 대입특별전형 대상이 된다는 게 보훈부의 설명이다. 민주당이 이를 몰랐을 리 없다.
이 법이 제정되면 방화로 경찰관 7명을 죽인 동의대 사건, 운동 자금 마련한다고 무장 강도 짓을 한 남민전 사건, 무고한 민간인을 ‘프락치’로 몰아 감금·폭행한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 관련자가 민주유공자가 돼 대를 이어 온갖 혜택을 누리게 된다. 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법안대로라면 국보법 위반 전력자들까지 그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조선일보 사설
04-29 민주화 욕보이는 野 ‘유공자법’ 독주
민주화 관련자 가운데 ‘민주유공자’를 선별해 본인과 자녀에게 ‘국가유공자’에 준하는 혜택을 주는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이 지난주 여당이 불참한 가운데 야당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됐다. 이처럼 절차적 무리수를 두면서 이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것은 민주유공자에 대한 명예 훼손이다.
왜 민주유공자법이 필요한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희생되신 분을 국가유공자로 예우하자는 정책을 무조건 반대하는 국민은 없다고 본다. 지난 2021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이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고, 당시 민주당은 이 법안을 냈다가 차가운 여론에 스스로 철회했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승리한 후 법안 통과를 또 강행한다.
그렇다면 민주유공자는 누구인가. 이번 법안은 대상자를 ‘1964년 3월 24일 이후 반민주적 권위주의 통치에 항거해 헌법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확립에 기여한 희생 또는 공헌이 명백히 인정돼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대상자 중 민주유공자를 어떤 기준으로 선별할지에 대한 구체적 지침이 없다는 점이다. 이른바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결정된 사람은 1만364명이고, 이들 중 심의 대상자가 911명 정도인데 향후 늘어날 전망이다.
어떠한 예우가 필요한가. 민주유공자법은 민주화운동 관련자 본인은 물론 부모와 자녀까지 지원하는 법이다. 이 법에 따라 민주유공자로 인정되면 본인과 자녀가 대학 입시전형에서 특별전형의 대상이 되고, 재활 서비스와 민간 노인요양시설 이용료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자녀에게 대입 우대 혜택을 주는 것은 과도한 특혜다. 2000년 이후 민주화 유공자 4988명이 받은 보상금이 이미 1100억 원이 넘는다.
어떻게 선별해 지원할 것인가. 가장 큰 한계는 법률에 구체적인 심사 기준이 없어 유공자 선정 과정에서 사회적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권위주의 정권 아래 부당하게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은 이들을 구제하기 위함이지만, 국가보안법 위반자도 보훈심사위원회의 심의·의결에 따라 민주유공자로 선정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또한, 법안에 심사 기준을 명시하지 않고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고, 보훈심사위 심의·의결을 의무 사항이 아닌 재량 사항으로 두고 있는 점도 문제다.
민주유공자법이 국민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투명성·형평성·공정성이 전제돼야 한다. 우선, 투명성 제고를 위해서 법안의 독소 조항과 중대 흠결을 보완하는 등 사회적 합의를 충분히 거쳐야 한다.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반국가·반체제 인사들이 민주유공자로 선정돼서는 안 된다. 또한, 형평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민주유공자가 북한군에 맞서며 조국을 지킨 국가유공자와 유사한 예우를 받는 것은 안 된다. 나아가 이런 중차대한 법안을 야당이 수적 우위를 악용해 제21대 국회 막바지에 강행 처리한다면 그 행위 자체가 공정성을 훼손하는 우(愚)를 범하는 것이다.
민주유공자에게 명예와 혜택을 주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제22대 총선 결과가 민주유공자법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의미하진 않는다. 국가유공자법안 상정에 앞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려는 여야의 노력을 기대한다.

문화일보 이상환 한국외국어대 교수, 前 한국국제정치학회장
04-29 우여곡절 끝에 열린 尹·李회담과 초당적 국가 개혁 과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29일 오후 회담은, 만남 그 자체에 가장 큰 의미가 있다. 2년 전 대선 승패에 따라 국정 최고책임자와 야당 최고지도자로 신분이 바뀌었지만, 입법 독주와 거부권 발동 등 대선 연장전 같은 대치가 이어지면서 국가 시스템이 표류해왔는데, 이런 상황을 개변(改變)할 계기이기 때문이다. 그간의 우여곡절이 말해주듯, 엄청난 합의를 기대할 수는 없다. 여야의 정책과 노선도, 두 사람의 정치적 노림수도 크게 다르다. 그런 만큼 국가 지도자 입장에서 초당적 협력이 필요한 국가 개혁 과제에 초점을 맞추는 게 옳다. 윤 대통령은 거대 야당 협력을 필요로 하고, 이 대표는 국정 책임을 공유하고 수권 역량을 입증하는 일이 중요하다.
우선, 두 사람이 2년 동안 만나지도 않았다는 것은 지극히 비정상이다. 과제가 산적한 만큼 구체적 접점을 찾기는 더욱 어렵다. 앞선 사전 실무회담에서 야당은 ‘전 국민 25만 원 지원금’ 등의 확답을 요구했지만, 대통령실의 거부로 결렬 위기까지 갔었다. 이 대표 결단으로 만남이 성사된 만큼 정부와 야당이 수시로 다양한 레벨에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윤 대통령은 불통 이미지를 벗는 이벤트 정도로 여긴다면 패착이다. 이 대표도 정치적 실체를 과시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재판과 수사에 영향을 미치는 등의 사법 리스크 완화를 기대한다면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간의 회담에서 의약 분업 합의를 이뤄낸 것은 좋은 선례다. 김 대통령 재임 시절 7차례나 영수회담이 열린 것은 김 대통령의 정치력과, 매번 ‘배신’당했다고 하면서도 국가적 과제 앞에 만남을 이어간 이 총재의 노력 덕분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때보다 훨씬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전공의 사태로 촉발된 의료개혁, 그리고 연금개혁은 발등의 불이다. 저출생은 국가 소멸을 걱정할 정도다. 반도체 산업은 강대국 협공에 위협받는다. 중동과 유럽에서 벌어지는 두 개의 전쟁에 안보도 불안해진다. 이런 도전에 초당적으로 힘을 모을 때다. 민생과 국익을 추구하고 포퓰리즘과 법치 훼손에 맞서는 길을 함께 모색하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04.30 尹·李 의대 증원 연금 개혁 협력하기로, 정치 복원 희망 줬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9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첫 영수회담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대통령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어제 윤석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의대 정원 확대 같은 의료 개혁은 반드시 해야 될 주요 과제이기 때문에 민주당도 적극 협력하겠다”며 “여야와 의료계가 함께 논의한다면 좋은 해법이 마련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고도 했다. 두 달째 이어지고 있는 의료 파행 사태는 국민 건강과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인데도 그동안 민주당은 양비론식 태도로 일관해왔다. 이번에 여야가 의대 증원 자체에 대해 의견을 같이했다는 사실은 의료계를 설득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표는 연금 개혁에 대해서도 “대통령께서 과감하게 약속하고 추진한 점에 대해 매우 감사하다”며 “정부·여당이 책임 의식을 갖고 개혁안 처리에 나서도록 독려해 주시고, 민주당도 적극 협력하겠다”고 했다. 연금 개혁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다. 안 하면 국가 재정과 복지 제도 자체가 무너진다. 하지만 민주당 협조 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가기 어려운데 중요한 첫걸음이 떼어졌다. 이 대표는 경제의 도약을 가로막고 있는 노동과 규제의 개혁에도 발 벗고 나서주기를 바란다.
이 대표는 해병대원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 특검법 수용을 요구했다. 김건희 여사를 겨냥해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들도 정리하고 넘어가면 좋겠다”고 했다. 앞으로 해병대원 사건 특검과 김 여사 특검은 정국의 현안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윤 대통령은 부정적인 태도였다고 한다. 이 대표의 ‘전 국민 25만원 지원금’도 수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다. 윤 대통령은 “어려운 분들을 더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 대표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두어야겠다”고 했다. 그러나 두 사람 회동의 의미는 작지 않다.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2년 가까이 만나지 않은 것 자체가 정상이 아니다. 두 사람이 만나니 의료 파행 사태와 연금 개혁안에 대한 협력이 원칙적으로 합의됐다. 이를 정치 복원의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대통령실은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도저히 이견을 좁히지 못할 것 같은 사안에서도 양측이 서로 얼굴을 보며 대화하면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다. 그렇게 하라는 것이 총선 민심이기도 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4.30 입법 폭주 전문 민주당이 “다수당 폭거” “반민주” 항의한다니

▲2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23회 임시회 제3차 본회의에서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이 가결되고 있다. 2024.4.26/뉴스1
국민의힘이 다수 의석을 가진 서울시의회가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자 민주당 시의원들이 “다수당 폭거” “반민주적”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시의회 구성은 국회와 정반대로 전체 111명 중 75명이 국민의힘 소속이다. 3분의 2가 넘는다.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은 국민의힘 시의원들로 구성한 특위에서 의결했고 국민의힘 출신 의장이 긴급 안건으로 상정한 데 이어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가결됐다. 민주당 시의원들은 “양당 교섭단체의 사전 합의도, 의회 운영의 기본 절차도 모두 짓밟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서울시의회보다 더 넓고 더 크게 영향을 미치는 국회에서 민주당에 의해 거의 매번이다시피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은 헌정 사상 초유의 선거법 단독 처리를 시작으로 공수처 설치,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대북전단 금지법까지 무수한 입법 폭주를 거듭했다. 그 과정에서 이번에 서울시의회에서 국민의힘이 행한 절차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반민주적이고 반의회적인 일들이 벌어졌다. 위장 탈당, 회기 쪼개기, 안건조정위 무력화 등이 일상화됐다.
민주당의 입법 폭주는 거의 모두 국민의힘 의원들이 없는 가운데 단독 처리한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압승하자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도 일부 수치만 바꿔 본회의에 다시 올렸다. ‘운동권 셀프 특혜법’이라는 민주유공자법은 국민의힘이 위원장인 법사위를 우회하기 위해 본회의 직회부를 일방 처리했다. 새 국회가 문을 열기도 전에 입법 폭주를 시작했다.
최근 민주당 국회의장 후보들은 “국회의장이 중립은 아니다”라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 국회법이 의장의 당직 보유를 금지한 것은 최소한의 균형은 맞추라는 뜻인데 대놓고 무시하고 있다.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도 독식하겠다고 한다.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은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고 했다. 앞으로 민주당은 국회에서 일찍이 보지 못한 반민주 폭주를 할 것이다.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단독 처리는 “횡포” “반민주”라는 비판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다 이렇게 비판한다 해도 민주당만은 그런 비판을 할 수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민주당 서울시의원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4-30 野 주류 된 혁신회의, 위선·막말·궤변 정치 걱정된다
더불어민주당 내 강성 친명 모임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가 29일 당선인 간담회를 열고 세를 과시했다. 4·10 총선에서 50명이 출마해 31명이 당선됐다. 이재명 대표를 지지하는 원외 조직에서 제22대 국회의 민주당 171석 중 18%가 넘는 ‘원내 친위대’로 탈바꿈했다. 주요 당직도 차지했다. 혁신회의는 “검사 독재 정권에 맞서 이 대표를 지켜냈고, 부화뇌동했던 당내 기득권 세력들을 공천 혁명으로 이겨냈다”고 했다. ‘이재명당’ 주류 선언이다.
문제는, 혁신회의 인사들의 자질과 품격이다. 음주 운전 논란 등으로 출마를 포기했던 강위원 공동대표가 당선인을 호명했는데, 위선·막말·궤변 논란 인사들에도 환호가 쏟아졌다고 한다. “미군에 이대생 성 상납” “퇴계 이황은 성관계 지존” “고종 섹스 파티” 발언 등으로 지탄 받았던 김준혁 당선인을 두고 강 대표는 “보란 듯이 역사학 특강을 듣겠다”고 했다. 대학생 딸 명의로 사업자 대출을 받아 서울 강남 아파트를 31억 원에 산 양문석 당선인 소개 때는 “멋지다”는 연호가 나왔다. 김 당선인은 “언론의 무지한 탄압”이라고 했고, 양 당선인은 “가짜뉴스로 여론을 조작하는 부분을 제어해 나갈 생각”이라고 했다.
김 당선인은 이미 명예훼손 고소·고발을 당했고, 양 당선인은 서류 위조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국회의원 특권을 최대한 활용해 자신들의 리스크에 대응하려 할 것이다. 21대 국회에서는 김의겸 의원 등 몇 사람이 문제였는데, 22대 국회에선 더 심각한 집단적 저질화가 걱정된다.
문화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