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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上萬事 2024-03/ 03.01 전공의 복귀 시한 지나, - 03-28 [속보]서울 시내버스 파업 중단…오후 3시부터 운행

상림은내고향 2024. 3. 24. 16:13

 

世上萬事 2024-03/

03.01 전공의 복귀 시한 지나, ‘환자 곁 지키자’는 스승 호소 듣기를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진료 현장을 떠난 전공의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제시한 복귀 시한이 29일로 지났다. 3월부터는 현장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행정 처분과 사법 절차가 시작된다. 3월 초 연휴까지도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는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아직 일부지만 현장에 복귀하는 전공의기 늘어나는 것은 다행이다. 정부는 28일 오전 11시까지 전국 주요 수련 병원 100곳에서 전공의 294명이 복귀한 것으로 파악했다. 정부는 1~3일 연휴 기간에 복귀하는 전공의가 더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형 병원들에선 전공의들이 복귀 절차를 문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정부의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실질 복귀자’가 생각보다 많다는 얘기도 나온다.

 

전공의 복귀를 호소하는 선배 의사, 스승의 호소도 잇따르고 있다. 서울대·분당서울대·서울시보라매 병원장은 소속 전공의들에게 “진심은 충분히 전달됐다. 중증·응급 환자 등 많은 환자가 기다리고 있으니 돌아와 달라”고 호소했다. 김정은 서울대 의대 학장도 27일 졸업식에서 “국민들 눈높이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의사가 숭고한 직업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려면 사회적 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이 용기를 내 옳은 말을 한 선배, 스승의 충고를 새겼으면 한다.

 

서울대병원장 말대로 전공의들 생각은 충분히 알려졌다. 필수 의료 문제, 전공의들의 열악한 상황이 조명됐다. 정부가 그냥 넘어가지는 못할 것이다.

 

전공의들은 자신들의 집단행동이 10일을 넘기면서 환자들이 큰 고통을 겪으며 불안해하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환자들의 수술, 치료 일정이 줄줄이 연기되며 환자와 가족이 애를 태우고 있는 것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또 전공의들이 떠난 자리를 메우느라 교수·전임의들이 얼마나 힘든지도 알 것이다. 의사들이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집단 투쟁을 벌이는 것은 노조의 불법 파업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다.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전공의들이 이제 환자 곁으로 돌아오는 것이 국민들의 신뢰를 되찾고 정당한 권익을 주장할 수 있는 첫걸음일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3.02 의사 수사 시작, 병원장들 “환자에게 돌아오라” 잇단 호소

 경찰이 1일 의사협회 전·현직 간부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여 서울 의협회관 내 비상대책위 사무실 등에서 휴대전화와 PC 등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복지부도 이날 집단행동 중인 전공의 중 연락이 닿지 않은 13명에 대한 업무개시 명령을 홈페이지 등에 공고했다. 정부는 지난 29일 전공의 271명이 추가로 돌아와 이날까지 565명이 복귀했다고 밝혔다. 복귀 움직임이 더 커지긴 했지만 아직 흐름이 명확하진 않자 강제수사, 면허정지 처분 등을 위한 행동에 돌입한 것이다. 이에 맞서 의협은 3일 여의도에서 의사 2만명이 참가해 정부에 항의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의사 측이 협상 대신 한 치 양보도 없이 ‘강 대 강’ 대치로 치닫고 있다.

 

의료 현장의 위기감이 커지는 가운데 진료 현장으로 돌아오라는 선배 의사들 호소가 계속되고 있다. 서울대병원에 이어 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병원과 가톨릭중앙의료원 등 원장들도 전공의들에게 복귀를 호소하는 메시지를 냈다. 병원장들은 “여러분 메시지는 국민에게 충분히 전달됐다. 많은 환자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며 “환자들과 함께하며 그 마음을 표현해 주기를 간곡히 청한다”고 했다.

 

의료 현장에서는 환자 생명과 국민 건강이 위협받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갓난아이를 놓고 두 여인이 서로 자기 아이라고 다투는 우화 속 장면을 연상시킨다. 먼저 양보하는 쪽이 진짜 국민을 위하는 쪽일 것이다.

 

의사가 환자 생명을 볼모로 집단 투쟁을 벌이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전공의들은 의사 선배의 충언을 받아들여 일단 병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환자들을 돌보면서 의대 증원의 적정 규모나 필수·지역 의료 정상화 방안에 대해 정부와 대화해 풀어나가는 것이 의사로서의 숭고한 책무에 부합하는 길이다. 의료계와 정부가 환자를 먼저 생각한다면 의대 증원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현실적 접점을 마련하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3.02 심금 울린 해경 ‘악천후 구조’, 묵묵히 국민 생명 지키는 사람들

▲1일 오전 7시24분께 제주 서귀포 마라도 서쪽 약 20㎞ 해상에서 서귀포선적 근해연승 어선 A호(33t·승선원 10명)가 전복돼 해경이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사고 선박 모습. /제주지방해양경찰청 제공

 

1일 오전 제주 가파도 인근 바다에서 33톤급 갈치잡이 어선이 높은 파도에 뒤집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배가 전복되기 직전 선장이 긴급하게 SOS 버튼을 눌렀고 해경이 인근 어선들에 즉각 구조 요청을 보낸 덕분에 사망자 1명 포함, 8명을 구조할 수 있었다. 사고 해역엔 초속 10m 이상의 강풍과 5m 안팎의 높은 파도가 일어 구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헬기로 사고 현장에 도착한 34세의 항공구조사 박승훈 경장이 뒤집힌 선체의 에어포켓(공기층)에 실종자가 생존해 있을 가능성 때문에 인양용 줄을 이용해서 선체 위로 올라갔다. 그는 선체를 두드리며 수색 작업을 벌이는 도중 높은 파도에 휩쓸려 요추 골절의 중상을 입었다. 목숨을 건 구조 활동이 영상에도 남아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해경 조직이 매도당하는 분위기가 이어진 속에서도 밤이나 낮이나 묵묵히 바다를 지키는 해경들이 있다. 지난달 15일 밤 서귀포항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1595톤급 화물선 침몰 사고 당시에도 해경은 왼쪽으로 25도 이상 심하게 기울어진 채 침몰 중인 선박에서 선원 11명을 무사히 구조했다. 사고 해역에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최대 초속 20m의 북서풍이 강하게 불어 작업이 난항을 겪었지만 해경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해경뿐 아니다. 지난 1월 31일 경북 문경시 육가공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진압 과정에서 두 젊은 소방관이 안타깝게 순직했다. 이들은 건물 붕괴의 위험 속에서도 “안에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뛰어들었다가 고립된 끝에 숨을 거두었다. 한 해 평균 5명의 소방관이 순직하고 400명 넘게 다친다. 흉악 범죄 현장에 출동하는 경찰관들도 매년 평균 14명꼴로 순직하고 1640명꼴로 부상당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일 것이다.

 

아무리 위험해도 기꺼이 희생할 각오가 돼 있는 ‘제복’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매서운 풍랑, 거친 화마에도 현장에 뛰어드는 이들의 소명 의식 덕에 우리 사회가 지탱된다. 며칠 전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가 처우 개선과 인력 증원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지만 이들은 “죽지 않게 해달라”고 절규하면서도 결코 화재 현장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환자 곁을 떠난 의사들은 국민이 왜 소방관을 비롯한 ‘제복’들의 외침엔 공감하는지 깨달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3.02 “내 새끼 지상주의, 특권과 반칙 판치게 해… 피해자는 아이들입니다”

‘괴물 부모’에 직격탄 날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현수

 ▲지역사회 집단 트라우마·심리 치료의 권위자인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은 단순히 교권 추락이 아닌 공동체 붕괴의 관점에서 다루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진료실 밖 위기 청소년을 돕기 위해 세운 서울의 대안학교 '별의 친구들'에서 인터뷰하는 모습.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해 7월 서울 서이초등학교의 24세 여교사가 교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 압박을 견디지 못했다는 정황이 나왔다. 9월엔 대전의 40대 초등 교사, 용인 60대 고교 교사가 비슷한 이유를 담은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교사 수십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만연한 학부모 갑질에 교사들이 집단 저항한 유례없는 사태였다.

 

새 학기를 맞아 학교는 다시 문을 연다. 겨우내 상처가 아물기는 한 걸까. 청소년·청년 정신질환과 교사 등 집단 트라우마·심리 치료의 권위자인 정신과 전문의 김현수(58) 명지병원 교수는 “서이초 사건은 단순히 교권(敎權) 추락이 아닌 공동체 붕괴의 문제”라며 “내 아이만 잘되게 하겠다고 선생님을, 남의 자식을 부수고 결국 자기 자식도 망치는 ‘괴물 부모’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을 겸직하고 있으며, 진료실 밖에서 위기 청소년을 돕기 위해 만든 대안학교(별의 친구들) 교장이기도 하다. 의료계와 교육계에서 ‘사춘기 통역사’ ‘교사들의 치유자’로 불린다. 최근 저서 ‘괴물 부모의 탄생’에선 부모들이 이른바 ‘내 새끼 지상주의’에 빠져드는 환경을 해부했다.

◆누가 괴물 부모가 되는가

-괴물 부모가 뭡니까.

“2000년대 초 일본에서 나온 말입니다. 2006년 도쿄 신주쿠 초등학교의 23세 여교사가 학부모에게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대표적 사건이에요. 서이초 사건과 판박이죠. 일본 몬스터 페어런츠(monster parents·괴물 부모)는 ‘교사 사냥꾼’으로도 불렸어요. 교사에게 ‘담임 맡는 동안 임신하지 말라’ ‘내 아이는 청소시키지 말라’ ‘들판에 나가 내 아이가 햇볕에 탔으니 피부를 원상 복구 시켜라’ ‘내 아이 사진이 적으니 수학여행을 다시 다녀오고 사진을 잘 못 찍는 담임을 교체하라’고 요구했다는 사례가 보고됐습니다.”

 

-그래서 교사 사냥꾼이군요.

“홍콩에선 자녀의 왕자병·공주병을 부채질하는 부모들이 나타났고요. 한국에선 내 자녀를 특별 대우 할 것을 강요하는 ‘진상 부모’가 등장했죠.”

 

 ▲지난해 7월 한국을 충격에 빠뜨린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의 교사 사망 사건. 추모객들이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교사를 추모하고 있다. /뉴스1

 

-왜 아시아에 이런 현상이 집중되지요?

“일본과 홍콩, 한국 괴물 부모의 배경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일단 교육비와 주거비가 높은 탓에 저출생이 심각하고, 아이가 귀해지니 과잉 보호가 습관이 됐는데, 대가족 붕괴로 도덕과 가치를 훈육할 공동체는 사라졌다는 겁니다. 핵가족 안에도 가부장적 문화는 남아 있어서 아빠는 돈 벌어오고 엄마가 독박 육아 하는 경우가 많죠. 학벌 사회에서 자녀의 입시와 인생 성적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부모가 집니다. 자신의 삶을 희생해가며 육아에 올인한 부모일수록 자녀를 더 통제하려 하고, 사회에서 보상받고 싶어하며, ‘내 자식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심리가 커집니다.”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에서 지난 3년간 학부모 민원 때문에 학기 중 담임 교사가 교체된 경우는 129건이나 됐다. 이 중 초등 교사가 102명이었다. 실태 보고서엔 “급식에 나온 귤을 왜 까주지 않았느냐” “애를 하교 후 학원에 데려다 달라” “마음 다치니 틀린 문제에 빗금 치지 말라” “임원 선거에서 기호 1번으로 스튜디오 촬영을 해놨으니 기호를 바꿔 달라” “아이가 선생님을 따라 하고 싶어 하니 반지 끼지 말고 아이폰도 쓰지 말라”는 요구들이 나온다.

 

 ▲지난해 7월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에 대한 추도식 및 교사 생존권을 위한 집회를 열고 진상 규명과 교권확립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7개월여 이어진 전국 교사 시위 끝에, 서이초 교사는 지난 2월 27일에야 순직이 인정됐다. /뉴시스

 

학교 폭력 가해자의 부모가 “나도 다른 아버지들처럼 학교 찾아가 개판 쳐볼까요?”라고 교사를 위협하거나, 교실 밖에서 수업을 지켜본 부모가 “제가 전공자인데 그렇게 지도하면 안 되죠. 당장 그만두세요”라고 한 경우도 있다.

 

교육부 공무원이 교사에게 “우리 아이는 왕의 DNA가 있으니 왕자 대하듯 하라. 제지하는 말 하지 말고, 또래와 갈등이 생기면 철저히 편들어 달라”고 요구한 사건도 공분을 일으켰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부가 자녀를 의대와 로스쿨에 보내려 각종 편법과 특권을 이용한 것이 백미로 꼽힌다.

 

김 교수는 “‘내 새끼 지상주의’는 특권과 반칙, 예외를 허락해 다른 아이들과 선생님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이 사회에서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풍조, 즉 하류(下流)사회를 만든다”면서 “최대 피해자는 바로 괴물 부모의 자녀들”이라고 말했다.

◆1020 정신 질환 급증, 우연 아냐

-괴물 부모의 자녀들은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스트레스 회복력이 낮으며, 충동적이고 책임감이 부족합니다.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하지 못해 스스로 삶의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요. 이런 아이들은 보통 초등학생 때까진 순종하다가, 사춘기에 계속 부모를 대행해 살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갈등이 터져요. 그게 우울증과 자해, 중독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요즘 10~20대 정신 질환이 급증했다면서요.

“1020 세대의 정신병동 입원은 최근 2~3년 새 두세 배 늘었고요, 외래 환자는 더 폭증했어요. 다른 연령군에 비해 압도적 증가세입니다. 신규 환자는 6개월 이상 대기해야 볼 수 있어요.”

 

-성별 차이도 있습니까.

“자해나 자살 시도로 응급실에 실려오는 건 대개 여학생이에요. 남학생은 우울증이 포기나 게임 중독, 은둔으로 나타납니다. 상황이 워낙 심각하니, 이런 일을 먼저 겪은 일본 등 외국 학계에서도 한국을 연구하러 올 정도예요. 제가 청소년 우울증과 저출산 등을 주제로 2월에만 외신 인터뷰를 네 건 했습니다.”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외로움과 우울증을 느끼는 청소년이 최근 늘고 있다. 가정 내 잘못된 양육 문화와 학교 공교육 붕괴, 코로나 팬데믹 등 여러 요인이 겹친 결과로 분석된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청소년 정신질환이 늘어난 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적 현상인데요.

“그렇습니다. 어른들이 팬데믹으로 2년여 불편하게 산 정도라면,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해 사회·정서적 경험이 단절된 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예요. 사춘기는 우정을 배우고 가족 밖에서 새로운 소속감과 힘을 얻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고립이 길어지다 보니 친구와 선생님이 낯설어졌고 공동체를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코로나 때 입시만 준비해 대학에 간 친구들은 성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에요.”

 

-실제로 그런가요?

“요즘 대학생들은 자기 관리를 잘 못하고, 자유로운 의사 결정도, 단체 발표나 축제 준비도 어려워합니다. 미국·유럽 정부는 코로나로 갇혀 산 청소년들의 심리 치료를 패스트 트랙으로 지정하는 등 공동체 복구에 많은 투자를 했어요. 우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 여파가 앞으로 계속 나타날 겁니다.”

 

-괴물 부모에 코로나, 공교육 붕괴가 맞물린 거군요.

“정신과에 가야 할 아이들이 교실에 앉아 있으니 학교가 붕괴될 수밖에요. 가뜩이나 한국 교사들은 선진국에 비해 수업뿐만 아니라 여러 행정 업무를 과중하게 부담하는데요, 정서 행동 위기 학생까지 떠안게 됐습니다. 괴물 부모는 내 자식이 손해 볼까 봐 더 안달합니다. 교사 설문에선 3명 중 1명이 ‘우울감을 느낀다’고 하고, 3명 중 2명은 ‘인격 모독을 받아본 적 있다’고 해요. 교사에게 상처 주는 사람이 옛날엔 학생과 관리자였다면, 이젠 학부모입니다.”

◆‘내 전부’라면서, 대화 없는 가족

수년 전 한국·미국·일본·중국 가족의 대화 시간을 조사한 연구가 있다. 대화 시간은 한국이 압도적 꼴찌였고, ‘부모가 내 고민을 들어준다’고 답한 자녀 비율도 한국이 가장 적었다. 개인주의가 강한 미국에서 오히려 대화가 제일 길었다. 김 교수는 “자식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부모가 많은 한국에서, 정작 부모 자식 간 소통이 적다는 건 상징적인 아이러니”라고 했다.

 

-그렇게 열성적인 부모들이 자식과 대화를 안 한다니요?

“학원 왜 빠졌냐, 숙제 다 했냐,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데... 이런 일방적 지시나 질책은 대화가 아니니까요. 아이들 심리 상담을 해보면 ‘부모가 본인 체면을 중시할 뿐 내 마음은 알아주지 않는다’ ‘부모에게 솔직해질 수 없다’는 생각에 굉장히 외로워합니다. 요즘 아이들 문제 행동의 가장 큰 뿌리는 외로움이에요.”

 

-모자(母子) 동일시 사회라고 할 만큼 애착이 강해도 외로울 수 있습니까.

“한국 부모들은 자신과 자식의 삶을 분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인이 되고 결혼해도 계속 도와줘요. 자녀 양육 기간이 평균 35년이라고 해요. 세계에서 가장 길죠. 또 가정이 부부간 애정을 중심으로 유지되기보단, 자녀 사랑에 복무하기 위해 부부가 협력하는 조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서양 사람들은 이 점을 아주 이상하게 생각해요. ‘우린 너밖에 없어’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거야’란 말이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부모의 욕망을 홀로 대리해야 한다는 점을 자녀들은 상상 이상으로 부담스러워합니다.”

 

-요즘 부모들은 육아·교육 정보를 많이 모으는데, 자녀를 속속들이 알지 않나요.

“괴물 부모들은 본질적으로 자기 자녀를 잘 알지 못해요. 자녀의 순위를 착각하는 경우가 많죠. 그 착각이 깨지는 순간 책임을 떠넘길 희생양을 찾습니다. 그 손쉬운 대상이 교사죠. 괴물 부모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자녀에 대한 책임을 진심으로 부모 자신이 지는 것이거든요. 이게 괴물 부모의 중요한 역설입니다.”

 

-책임 회피가 공격성으로 나타나는군요.

“괴물 부모의 심리를 파고 들어가면, 기저엔 본인이 경쟁에서 패배했거나 패할지 모른다는 자기 증오 내지 자기 연민이 있어요. 그래서 내 자식은 고통과 좌절을 아예 겪지 않게 문제를 미리 치워주려 합니다. 이런 이들을 돌이 매끄럽게 구르도록 앞에서 열심히 비질하는 스포츠 컬링(curling)에 빗대 ‘컬링 부모’라고도 합니다. 이런 부모는 서열에 민감하고 끝없이 남과 비교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비교에서 밀려나는 순간 공격 버튼이 작동하지요.”

◆혼자 잘난 아이는 잘될 수 없다

우리보다 먼저 괴물 부모 현상으로 몸살을 앓은 일본에선 10여 년 전부터 대대적 자정 캠페인이 일어났다. 학교 폭력과 이지메(집단 따돌림), 잇따른 존속 살해, 히키코모리(은둔 청년), 무기력한 ‘하류 사회’ 등장은 잘못된 양육 문화 탓이라는 반성이었다.

 

“혼자 잘난 척하며 큰 아이는 잘될 수 없다”는 슬로건 아래 학교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 회복 운동이 전국에서 펼쳐졌고, 교사 보호 매뉴얼이 배포됐으며 교사와 학부모 모임도 활성화됐다. 또 중산층 강화 정책과 빈부 격차 해소, 입시 부담과 대학 서열 완화, 청소년 소셜 클럽 활성화 등으로 사회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고 한다.

 

 ▲2008년 일본 TV드라마 '몬스터 페어런츠(monster parents)'에서 학부모가 학교를 찾아 교사에게 행패 뷔는 장면. 일본 사회가 그릇된 양육 문화를 각성하는 계기가 됐다. /후지TV

 

 ▲일본에선 중3 학부모들이 갓 결혼한 담임 교사에게 '아이들 지도에 전념하려면 졸업 때까지 임신하지 않겠다는 서약사를 쓰라'고 요구한 경우도 있었다. /일본 KTV

 

-신주쿠 교사 사건을 교사 집단의 권익만이 아닌, 공동체 붕괴 문제로 다루니 실마리가 풀린 거군요.

“일본도 30년쯤 헛바퀴 돌다가, 결국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사람을 갈아넣는 사회에선 아이들이 마음고생을 할 수밖에 없어요. 서로 자기만 잘되겠다고 경쟁하면 불행한 경험이 쌓이고, 이런 세대가 자라나면 출산을 기피하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요즘 정부와 기업에서 저출산 대책에 현금성 지원을 많이 하는데,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극히 일부예요. 행복해야 돈도 쓰고 가정도 이루지요.”

 

-청소년을 둘러싼 공동체 붕괴가 어떤 식으로 일어난다고 봅니까?

“아이들이 믿고 대화할 어른이 너무 없어요. 청소년과 청년에겐 부모와 다른 가치를 보여주고 다른 차원의 대화를 할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현실 사회에 적응할 힘을 키워요. 그런데 밤늦게까지 학원에 매여 있고, 명절에도 시험 공부 하느라 조부모나 친척도 만나지 않죠. 종교 활동도 후순위로 밀리고요. 물질적으로 풍요로워도 정서적 풍요가 있다고 보기 힘듭니다. 그나마 갈증을 채워줄 존재가 학교 선생님인데, 중·고교에서 교사와 학생 면담이 한 학기에 1시간도 힘들다고 해요.”

 

-미국과 한국만 비교해도 학교나 동네 풍경이 너무 다르더군요.

“미국 부모들의 주요 일과 중 하나는 자녀들이 지역 커뮤니티에서 여러 사람과 어울려 스포츠·문화 활동을 즐길 스케줄 짜는 거예요.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선 스무 살이 된 아이들에게 유로패스(대륙 기차표) 쥐여주고 장기 여행을 해보게 해요. 우린 그런 기회가 거의 없죠.”

 

-학원에서 시간 보내는 건 공동체 생활이 아닌가요?

“학원은 초등학생이든 고등학생이든 심리적 영향을 거의 못 줍니다. 어떤 정서적 교감도 소속감도 느끼지 못해요. 경쟁 기술만 배우는 곳이니까요. 성인이 회사 다니는 것보다 더 삭막한 거예요. 사교육이 필요한 부분은 있지만, 그것이 공교육을 압도하고 가정의 모든 자원을 흡수하면 공동체를 파괴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료실 밖에서도 환자 돕고 싶다

- 한국은 모든 연령대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인데요.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으로서 어떻게 보십니까?

“자살률 1위에 처음 오른 게 1998년이니 25년 넘었죠. 학계에선 ‘한국은 스스로와 내전을 치르는 국가’라고들 해요. 중동 등 분쟁 지역에서 전쟁으로 죽는 사람이 국가당 연 1만5000명에 못 미쳐요. 그런데 한국에선 연 1만3000여 명이 자살하거든요.”

 

-그렇게 많은가요?

“자살률 1위라는 사실보다 더 무서운 게 뭔지 아세요? 이전에 1등 했던 나라들은 깜짝 놀라서 온갖 방법을 강구해 자살률을 낮췄어요. 10년 넘게 자살률 1위를 방치한 나라는 한국 말곤 없어요. 우린 자살을 나약한 개인의 문제로 볼 뿐 사회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둔감한 걸 넘어 잔인해요. 한국 자살 예방 정책 예산은 미 뉴욕주의 20분의 1, 일 도쿄도 예산의 10분의 1도 안 됩니다.”

 

-교수님은 행복한 환경에서 자랐습니까.

“가난했고 상처가 많았어요. 부친이 사업 빚을 많이 져서, 중학교 때부턴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았어요. 친척 집에 얹혀살다 일찍부터 자취를 했고요. 그래도 사회에서 믿을 만한 어른을 많이 만났어요.”

 

-왜 정신과 의사가 됐나요.

“김천소년교도소에서 공중보건의로 의사 일을 시작했어요. 빈곤과 소외, 지적장애와 범죄의 상관성을 다루다 보니, 환자가 범죄자가 되지 않게 치료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그러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의뢰하는 지역사회 심리 치료를 많이 맡게 됐습니다.”

 

- 의사가 대안학교를 운영하는 건 이례적인데요. 사재를 털어 세웠다면서요?

“의사 해서 번 돈 학교에 다 쏟아부었죠. 제 꿈을 좇다 보니, 결혼 30년인데 아직 내 집도 없어요, 하하. 그래도 경쟁에서 뒤처진 아이들을 위해선 병원뿐만 아니라, 치유와 교육과 복지가 어우러지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갈 길은 아직 멉니다.”

조선일보 정시행 기자

 

03.02 서민규, 한국 남자 피겨 사상 첫 주니어 세계선수권 금

 피겨스케이팅 서민규(16)가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남자 싱글 선수가 역대 주니어 세계선수권 메달을 따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9일 대만 타이페이에서 ISU 세계 주니어 피겨스케이팅 선수권 대회 남자 싱글 쇼트프로그램 경기에 나선 서민규./EPA 연합뉴스

 

서민규는 2일 대만 타이페이에서 열린 대회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150.17점(2위)을 받았다. 지난 29일 쇼트프로그램 1위(80.58점)에 올랐던 그는 총점 230.75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서민규는 쇼트에선 개인 최고점을 받았지만, 이날 프리 경기 도중엔 트리플 악셀 점프를 싱글 악셀로 처리하는 실수를 했다. 그럼에도 은메달(229.31점)을 딴 나카타 리오(16·일본)를 1.44점 차로 제쳤다.

 

4세부터 피겨를 시작한 서민규는 뛰어난 스케이팅 스킬과 풍부한 표현력이 강점으로 평가 받는다. 지난 시즌 ISU(국제빙상경기연맹)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 동메달을 따냈고, 올 시즌 트리플 악셀 점프를 완성하면서 더욱 성장했다. 지난해 9월엔 2014년 이준형(28), 2016년 차준환(23)에 이어 한국 남자 싱글 선수로는 역대 3번째로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주니어 세계선수권 출전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정상까지 올랐다. 이재근(17)은 6위(212.22점)로 마쳤다.

 

한국 남자 싱글 선수가 주니어 세계선수권 시상대에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자 싱글에선 김연아(34)가 2006년 금메달, 2005년 은메달을 땄고 신지아(16)가 올해까지 3년 연속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조선일보 최수현 기자

 

03.04 의사 거리 집회, 최소한 의무 다하고서 할 주장 해야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의대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전국 의사 총궐기 대회'가 열리고 있다./뉴스1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가 3일 서울 여의도에서 ‘전국 의사 총궐기 대회’를 열었다. 경찰 추산 1만여 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반면 집단 사직한 전공의 9000여 명 중 정부가 복귀 시한으로 정한 지난달 29일까지 복귀한 이들은 565명에 불과했다. 의대 학장 등이 “의사라는 숭고한 직업이 인정받으려면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전공의 상당수는 복귀하지 않았고, 개업의들은 거리로 나와 실력 행사에 나선 것이다. ‘의사들이 버티면 결국 정부는 굴복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이날 집회를 앞두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일부 의사들이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에게 집회 참석을 강요했다는 글이 여럿 올라오기도 했다. 의사들이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려고 업무상 ‘을’의 위치인 제약회사 직원들에게 부당하게 집회 참석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의협은 의혹을 부인하면서도 “일반 회원 일탈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의사와 제약회사 직원들의 직업적 역학관계를 고려했을 때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사실이라면 의사들의 갑질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의사들이 의대 증원에 반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들이 환자 생명을 볼모로 파업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고, 이는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그로 인해 사망하거나 심각한 후유증을 겪는 환자들이 발생할 경우 그 책임은 어떻게 질 것인가. 실제 그런 조짐이 이미 의료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의사들의 존재 이유인 환자 생명을 볼모 삼아 벌이는 실력 행사에 어떤 국민이 공감하겠나.

 

정부는 엄정 대응 방침을 밝힌 상태다. 전공의 미복귀자에 대해 3개월 면허정지 처분과 사법처리에 들어가겠다고 경고했다. 예비비 1200억원을 편성해 진료 현장을 지키는 의료진에게 보상하고 대체 인력을 채용할 방침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규모 징계와 처벌이 현실화되고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의료 현장 혼란과 의료진의 피로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어떤 형태로든 파국은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전공의부터 복귀해야 한다.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면서 정부에 요구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그러면 국민들도 그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정부도 엄정하게 대응하되 대화 창구는 열어 둬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3.04 의대 증원과 의료개혁, 또 ‘의사 떼법’에 밀릴 순 없다

위기와 기회는 함께 온다. 다만, 기회는 위기에 가려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전공의 집단 업무 거부 사태가 2주일을 넘긴 가운데, 정부는 의료 공백 메우기에 부심하면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계획 및 다른 의료개혁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한 국민의 의지도 확고하다. 정부와 국민이 제대로 대응하면 의료개혁 난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 수도 있다. 앞으로 며칠이 분수령이 될 것이다.

전공의들은 대부분 업무복귀 명령을 거부했다. 정부는 3·1절 연휴 끝까지 미복귀한 전공의들에 대해 전원 면허정지와 고발·수사·기소 등 사법 처리를 예고했는데, 마땅히 그래야 한다. 2000년 의약분업에 반대한 의사 파업 때처럼 적당히 엄포로 끝냈다간 의사 정원 확대는 물론이고 비대면진료, 수가 개선, 간호사 진료보조(PA) 합법화 등 의료개혁은 향후 수십 년 간 엄두도 못 내게 된다. ‘의사 떼법’에 또 밀리면 정부 공신력도 땅에 떨어진다.

의료 파업이 2주째를 맞아 수술을 50%까지 줄인 빅5 병원은 심근경색, 뇌출혈 등 응급환자들도 가려 받기 시작하는 등 의료 과부하가 심해지고 있다. 이런데도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은 3일 시위에서 “정부가 의사의 노력을 무시하고 탄압하려 든다면 강력한 국민적 저항에 부닥칠 것”이라고 했는데, 적반하장의 궤변이다. 국민은 의대 증원을 거부하는 의사 업계에 분노하고 있다. 또 전공의들의 업무 거부를 ‘소신공양한 등신불’에 비유했다. 의사 자격을 취득한 지 얼마 안 되는 후배들에게 집단 행동을 꾀고, 심지어 스스로 불사르는 ‘등신불’ 식의 극단 행동까지 부추기는 듯한 황당한 인성 파탄 행태다.

정부는 미복귀 전공의들에게 예외 없이 면허정지 처분부터 내려야 한다. 경찰은 6일부터 김 비대위원장, 주수호 비대위 홍보위원장 등을 소환 조사할 예정인데, 불법 혐의를 엄정히 확인해 반드시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부는 4일 증원 신청 접수가 마감되는 대로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 정원 논란을 매듭짓기 바란다. 필요하다면 의대 신설 허용도 회피할 이유가 없다. 이미 준비된 곳도 많다.

문화일보 사설

 
 

03-05 “전국 40개 대학 의대정원 3401명 증원 신청”…정부 목표 2000명 넘어

▲삭발하는 강원대 의대 교수들. 연합뉴스

 

정부 목표치 2000명은 물론, 지난해 수요조사 최대치 2847명도 넘어
‘비수도권’ 증원 수요 72% 집중…‘미니 의대’들 정원의 2∼5배 신청

전국 40개 대학이 2025학년도 대입에서 의대 정원을 3000명 넘게 늘려달라고 신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대학을 대상으로 조사한 수요 조사 결과 중 최대치(2847명)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비수도권의 증원 요구가 많았으나,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대학도 모두 증원을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민수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제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2차관)은 5일 브리핑에서 “교육부에서 2월 22일부터 3월 4일까지 2025학년도 의과대학 정원 신청을 받은 결과, 총 40개 대학에서 3401명의 증원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증원 신청 규모는 정부의 의대 증원 목표(2000명)는 물론 지난해 수요조사 결과를 크게 뛰어넘는 수준이다.

당시 각 의대는 2025학년도 대입에서 최소 2151명, 최대 2847명을 증원해달라고 요구했었다. 이번 신청에서 서울 소재 8개 대학은 365명, 경기·인천 소재 5개 대학 565명 등 수도권 13개 대학이 총 930명의 증원을 신청했다. 비수도권 27개 의대는 2471명의 증원을 신청했다. 증원 인원의 72.7%를 비수도권에서 요구한 셈이다.

의료계는 연일 대학 총장들에게 증원 신청을 자제해달라고 촉구했지만, 교육부가 “신청하지 않은 대학은 임의로 증원해주지 않겠다”고 못 박은 만큼 모든 대학이 증원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1998년을 마지막으로 26년간 의대 증원·신설이 없었던 만큼 “이번이 아니면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대학 본부의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학 본부 측은 학교의 위상이나 의대 교육의 효율성 등을 고려해 증원 필요성에 공감해왔다. 정원 50명 미만의 소규모 의대들은 2배에서 5배에 달하는 증원을 신청했고, 거점 국립대 역시 적극적으로 증원에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충북대는 기존 정원의 무려 5배 이상을 신청해, 기존 49명에서 201명 늘어난 250명으로 정원을 조정해달라고 교육부에 신청했다. 울산대의 경우 기존 정원 40명의 4배에 가까운 150명으로 정원 확대 의향을 제출했다. 건국대(충주·정원 40명)는 120명으로, 강원대(정원 49명)는 140명으로 정원을 현재 대비 3배 안팎으로 확대해달라고 신청했다. 대구가톨릭대(정원 40명)는 80명으로, 동아대(정원 49명)는 100명으로, 부산대(정원 125명)는 250명으로 각각 기존 정원의 2배 수준으로 늘려 증원하겠다고 보고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대학들의 증원 수요가 확인된 만큼 의대 정원 배정 작업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심민철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은 “증원 수요와 함께 어떤 식으로 의대를 운영할지에 대한 계획도 받았다”며 “서류 검토를 하고, 선정 기준을 복지부와 협의한 후 배정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해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의대 교수들과 학생들은 의학 교육 질 저하를 우려하며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이다. 강원대 교수 10여명은 일방적인 증원 방침에 반대한다며 이날 의대 앞에서 삭발식을 열었다. 의대생들의 단체 행동도 이어지고 있다.
문화일보 곽선미 기자

 
 

03-05 가사·돌봄 외국인 ‘최저임금 차등 입법’ 불가피하다

외국인 인력 도입 확대는 초미의 과제다. 그러나 인권·차별 문제 등 해결해야 할 쟁점이 수두룩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5일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함께 개최한 ‘노동시장 구조 변화와 대응 방안’ 주제의 세미나에서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외국인 가사 도우미와 돌봄 인력에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돌봄 부담을 줄여줘야 여성 고용이 늘어나고, 그러잖으면 GDP의 2.1∼3.6%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국내 최고 싱크탱크가 이런 고언을 한 것은 용기 있는 일이다.

 오는 6월부터 필리핀 출신 가사 도우미 100명이 6개월간 서울에서 시범사업에 참여한다. 문제는 월 200만 원의 부담스러운 비용이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차별금지협약에 따라 국내 근로자와 똑같은 최저임금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간호·간병도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이 총선 1호 공약으로 간병비 급여화를 내걸었고, 정부와 국민의힘도 ‘2027년 간병비 급여화’로 맞불을 놓았다. 하지만 현재 하루 2만 원만 내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시행률이 28.9%에 불과할 만큼 만성적인 공급 부족 상황이다. 개인 간병인의 하루 일당 평균 12만1600원보다 훨씬 싸기 때문이다. 만약 여야 공약대로 간병비를 전면 급여화할 경우 연간 최대 15조 원이 필요하다. 돌봄 인력 자체도 2032년 38만∼71만 명 부족할 전망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마이클 크레이머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지난해 “한국도 싱가포르·홍콩처럼 외국 인력을 저렴한 비용으로 고용해야 저출산 문제 해결에 긍정적 효과를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1년 전 그런 취지의 가사근로자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이틀 만에 철회될 정도로 노동계와 인권 단체 반발은 여전하다. 그러나 가사·돌봄 외국인 확대는 불가피하고 최저 임금을 차등 적용해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시간문제일 뿐 피할 수 없는 길이다.

문화일보 사설

 
 

03.05 낙수 의사? 걱정 말아요 그대

의사 선생님들의 시위가 대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엊그제 서울 여의도 의사 집회에 굳이 찾아가 본 이유다. 집회 단상엔 ‘국민 부담 증가하는 의료개악 반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철폐’ ‘의대증원 정책 원점 재논의’ 등의 대형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과 의대 증원 찬성 주장을 펴 온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의 얼굴 사진을 들고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라고 적힌 검은 마스크를 쓴 참가자도 있었다. 의사들이 두 사람을 ‘공적(公敵)’으로 삼은 건데, 뒤집어 보면 이들이 그동안 의료 개혁의 최전선에 있었다는 얘기도 되겠다.

 

TV에 자주 나오던, 복지부가 고발하고 경찰이 출국 금지한 의협 간부와 집회 참석자들이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간부는 의사 고액 연봉 논란에 대해 “인턴, 레지던트, 펠로 과정을 마치고 40세 정도 돼서 개원한 의사들의 2억8000만원(개원의 국세청 신고 연수입) 수입이 비난을 받아야 할 정도로 많은 연봉이냐”고 옹호했던 인물이다.

비대면진료·타투에 간호사법까지
의사 반대로 못 하는 게 너무 많다
공급자가 증원 ‘합의’ 요구하다니

자신들을 박해받는 피해자처럼 여기는 의사들의 주장은 불편했다. 전공의를 중생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몸을 태워 공양한 등신불에 비유하기도 했다. 어불성설이다.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누가 뭐래도 제때 수술과 치료를 받지 못해 애태우는 중증 환자들이다.

 

의사들은 의대 증원이 정부의 총선용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그런 면이 있다. 분명한 건, 국민의 76%가 찬성하는 정책이라는 점이다(한국갤럽). 포퓰리즘에는 반(反)엘리트주의 성격도 있다. 엘리트주의라고 다 나쁜 건 아니지만, 엘리트의 제 몫 챙기기엔 대중의 인심이 사납다.

 

어제 신문 1면 ‘의료개혁, 마지막 기회입니다’라는 정부 광고는 틀린 게 없다. 한국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이고, 고령화로 의사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으며, 지금 의대 정원을 늘려도 전문의는 10년 뒤에 나온다. 과거 정부처럼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물론 의대 증원만이 해법은 아니다. 필수의료 수가 현실화, 지방의료 개선 등 현장의 의사들과 구체적으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 하지만 의사를 늘리지 않고는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의사 주장 가운데 ‘낙수 의사론’이란 게 있다. 의사 정원을 늘리면 인기 없는 필수의료 분야에도 의사들이 진출할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지만, 이는 지금 사명감을 갖고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바이털(생명) 의사’의 자부심에 상처를 준다는 거다. 그러면서 떠밀려서 온 ‘낙수 의사’의 치료를 누가 받고 싶겠냐고 반문한다.

 

글쎄다. 우리나라 의사는 너무 ‘큰 걱정’이 많으시다. 국민 건강은 물론이고 건강보험 재정에서 공대 교육과 산업 공동화까지 염려하신다. 의사단체의 이런 걱정 때문에 못 하는 것이 수두룩하다. 비대면 진료는 시범사업만 하고 있고, 타투 합법화는 제자리걸음이며, 간호법 제정안은 무산됐다. 그나마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무려 14년 만에 지난해 간신히 국회를 통과했다. 이쯤 되면 의사 주장의 진정성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동네 가정의학과 주치의나 친구, 선후배 등 내 주변의 의사 개개인은 대부분 호인이다. 하지만 집단으로서 의사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지적한 것처럼, 개인은 도덕적일 수 있어도 집단의 생리는 이기주의로 흐르기 때문일까.

 

의사들은 ‘의료계와 합의 없는 의대 증원 결사반대’를 외쳤다. 정부 정책의 이해 당사자가 자신들과의 ‘협의’가 아니라 ‘합의’를 주장하는 건 지나치다. 의사 면허 공급을 의사들에게 맡기라니,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 헌법은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의사가 헌법에 반하는 사회적 특수계급일 수는 없다.

중앙일보 서경호 논설위원

 

03.06 대학들, 2000명보다 훨씬 많은 3401명 의대 증원 신청

▲3월 5일 오후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 응급의료센터 입구에서 한 환자가 주저앉아 있다. 정부는 오늘부터 의대정원 확대에 반발해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절차를 집행한다고 밝혔다. / 장련성 기자

 

정부가 의대 증원 신청을 받은 결과, 40개 대학에서 3401명을 늘리겠다고 신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의 의대 증원 목표(2000명)는 물론 지난해 실시한 수요조사 결과 중 최대치(2847명)도 뛰어넘는다. 특히 비수도권 27개 의대에서 전체의 72%인 2471명의 증원을 신청했다. 의사들의 반대와 달리 자발적인 의대 증원 수요가 있음이 확인됐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고령화로 의료 수요가 날로 늘어나는데 의대 정원은 26년 동안 한 명도 늘리지 못했다. 오히려 2000년 의약 분업 도입 때 의사들 요구에 밀려 351명을 감축하기까지 했다. 의료계는 대학 총장들에게 증원 신청을 하지 말라고 요구했지만 대학들 판단은 달랐다. 의대 증원으로 의료 수요에 부응하고 대학의 위상 제고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특히 지방 대학 총장들은 “지역 의료 확충을 위해서 의대 정원 확대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대다수 국민의 뜻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이번에 대학들에 의학 교육 여건도 감안해 신청해 달라고 했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 대폭 증원 시 의학 교육 질 저하 우려도 과장된 주장일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전공의 등의 집단행동이 장기화하면서 환자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병원들은 수술 축소와 진료 연기 외에 일부 병동을 통폐합하고 있다. 그럼에도 전공의들은 복귀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전임의들 이탈 규모도 커지고 있다. 서울 상위 5개 대형 병원 의사 중 19%(1330명)가 전임의다. 일부 의대 교수들도 사직 의사를 밝히고 있다고 한다.

 

의사들이 집단 이익을 위해 환자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파업을 하는 것은 주요국 어디에도 없는 일이다. 결코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그로 인해 사망하거나 심각한 후유증을 겪는 환자들이 발생할 경우 그 책임을 질 수 있나. 많은 국민들이 쉽게 환자를 버리고 진료 현장을 떠나는 의사들을 보며 놀라고 있다. 의사들은 정부 방침에 반대하더라도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은 유지하는 등 환자 생명과 건강은 지키면서 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3-06 “지역의료 살릴 마지막 기회” 지방대 총장들 인식 옳다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에도 불구하고, 의과대학 정원 2000명 증원을 향한 정부 움직임이 구체화하고 있다. 의료계와의 대화는 계속해야겠지만,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중단해선 안 된다. 전국 의대 40곳의 증원 신청 규모가 무려 3401명에 달한다는 사실은 정부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전공의 이탈이 2주를 넘겼지만, 연합뉴스가 6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000명은 늘려야 한다’는 응답이 48%로 가장 많았다.

각 대학에서는 대학본부와 의과대학 사이에 입장 차이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역의료를 살릴 마지막 기회”라는 지방대 총장들의 절절한 설명은 파격적 증원 당위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전북대는 현 142명을 240명으로 늘려줄 것을 요청했는데, 양오봉 총장은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전북 의료 여건을 개선하려면 증원이 꼭 필요하다”면서 “일단 의료 환경이 개선돼야 젊은 사람도 전북에서 아이를 낳고 지역 소멸도 막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홍원화 경북대 총장은 “경북 대다수 지역에 의료 인프라가 부족하다”면서 “전공의 정원도 지역에 더 과감히 배정하고, 지역 수가 인상도 고려해 달라”고 호소했다. 부산 동아대 이해우 총장은 “지역 인재 전형으로 많이 뽑으면 더 많은 의사가 지역에 남지 않겠나”라고 했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1명으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다. 상대적으로 사정이 좋은 서울·수도권을 포함한 것으로, 지방은 훨씬 더 열악하다. 대구는 지방에선 부산 다음으로 큰 도시인데도 지난해 건물에서 추락한 10대 여학생이 응급실을 찾지 못해 뺑뺑이를 돌다가 사망하는 기막힌 일을 겪었을 정도다. 산부인과가 없거나 드물어 출산 중 사망하는 비율이 서울과 일부 광역자치단체는 두 배 차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만큼이나 벌어져 있다.

이런 와중에 의대 교수 일부가 제자들의 업무 거부를 부추기는 등 스승으로서 무책임하고 비윤리적 행태를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국민 생명 줄을 쥐고 있다는 ‘슈퍼 갑’ 행세 아니곤 이해하기 힘들다. 직업 선택의 자유 운운하지만, 의사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 의료법부터 제대로 읽어보기 바란다. 경찰은 이날 관련자 소환 조사를 시작했다. 사법 처리가 흐지부지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3-06 “의대증원은 국가 자살” “악마화”… 독단의 말 쏟아내는 의사들

■ 의협·전공의 왜곡된 인식 눈살

외신에 “국내언론 마녀사냥”
의대생은 세계단체에 서신
“독재 정부에 굴복 않을 것”
SNS선 증원찬성 의사색출
“정부, 의사에 협조가 정상”

의사 단체와 전공의들을 중심으로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방침에 대한 반발이 3주째 계속되는 가운데 이들의 감정이 격해지면서 갈수록 거칠고 원색적인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의 방침에 논리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외신과 해외 단체를 상대로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늘면서 ‘감정 싸움’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의사 커뮤니티에서는 전형적인 엘리트 의식과 직역 이기주의를 보여주는 왜곡된 인식도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어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6일 의료계에 따르면 박인숙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 대외협력위원장은 전날 외신 기자간담회에 앞서 페이스북에 올린 기조 발언을 통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을 두고 ‘국가 자살’로 표현했다. 박 위원장은 또한 최근의 국내 언론 보도에 대해 “마녀 사냥하듯이 개별 환자들의 감성적인 안타까운 사연들을 매일 실으면서 의사들을 악마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위원장은 의대 증원 방침에 적극적인 대학과 정치권을 겨냥해서도 강하게 성토했다. 그는 “의대 정원 확대로 금전적 이득을 얻는 대학 총장에게 증원 규모를 물어보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몇 마리 줄(받을) 거냐고 묻는 것과 같은 이치”라며 “급박한 상황도 아닌데 의대 정원을 갑자기 2000명 늘리려는 건 한 달 뒤 총선에서 표를 얻으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사단체들과 전공의들은 집단행동 이후 여론이 불리해지면서 해외 언론과 단체를 중심으로 호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임현택 대한소아과학회장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의사들의 수련 과정을 소개하며 “어린 소년 소녀들이 강제로 공장에서 일해야 했던 산업혁명 때와 비슷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공의 수련 과정에서 장시간 근로 문제를 언급한 것이지만, 강제노동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의대생들도 해외 단체들과 접촉하며 집단행동의 정당성을 호소하고 있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KMSA)는 지난 4일 세계의대생협회연합(IFMSA)에 서신을 보내 “우리는 독재적인 정부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미래의 환자를 위험에 빠뜨리도록 놔두지 않겠다”며 “국민 건강을 위해 싸우는 우리에게 지원 바란다”고 밝혔다.

의사들이 중심이 된 SNS 커뮤니티에서는 “의사가 주도하고 정부가 의사들에게 협조하는 게 정상” “의사는 전교 1등만 모여 6년 내내 유급 압박감 이겨내며 공부만 한 결정체임을 아는 사람도 없고, 관심도 없다” 등의 글을 곳곳에 공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젠 (병원에) 들어가면 xxx고 안 들어가면 감옥에 들어가게 생겨’ ‘그냥 노예로 살아란다’ ‘직업 선택보다 국민의 생존권이 우선이란다’와 같이 격한 표현도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글들은 많은 의사가 ‘좋은 글이다, 읽어봐라’며 단톡방에 돌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폐쇄형 의사 커뮤니티에선 의료 현장에 복귀한 전공의와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입장인 의사들의 실명을 올리며 이른바 ‘색출 작업’도 행해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의료계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집단행동 논의의 중심이 된 의사 커뮤니티 ‘메디스태프’에서는 대학 병원에 복귀한 이들의 신상이 올라와 공유되고 있다.
문화일보 정철순·김린아 기자

 
 

03-06 성균관 “근친혼금지 4촌 축소하면 인륜 무너져”…대규모 집회 예고

▲지난 2월 28일 성균관유도회총본부 상임위원들이 성균관 대강당에서 친족 간 혼인 금지 범위를 현행 8촌 이내에서 4촌 이내로 축소하는 것에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박성재 법무부 장관 면담도 신청…전국 유림들 대거 상경할 듯

정부가 친족 간 혼인 금지 범위 변경을 염두에 두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성균관과 유림이 이에 반발해 집단 행동에 나섰다.

5일 성균관유도회총본부에 따르면, 유림은 혼인 금지 축소와 관련한 법무부 연구 용역 철회를 요구하며 전날부터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출근 시간대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전날에는 김기세 성균관 총무처장이 시위했고, 이날은 박광춘 성균관유도회총본부 사무총장이 오전 8시부터 9시까지 피켓을 들고 나선다. 6일 이후에도 성균관 구성원들이 돌아가며 릴레이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최영갑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과 최종수 성균관장은 박성재 법무부 장관과 면담을 신청했다.

성균관과 유림은 다음주에 서울 여의도에서 친족 간 혼인 범위 축소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근친혼 범위 축소에 반대하는 유림이 각지에서 상경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8촌 이내 혈족 간 혼인을 일률적으로 무효로 보는 민법 조항(815조 2호)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시대변화와 국민 정서를 반영할 수 있는 개정안’을 마련하기 위해 친족간 혼인 금지에 관한 기초조사를 하는 등 법률을 재검토하고 있다. 헌재는 민법 815조 2호가 과잉 금지의 원칙을 어긴 것이라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올해 12월 31일까지 해당 조항을 개정하도록 권고했다.

이런 가운데 혼인 금지 범위와 관련한 정부의 연구 용역을 위탁받은 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촌 이상의 혈족과 가족으로서 유대감을 유지하는 경우가 현저히 감소했다’는 등의 이유를 들면서 "혼인 금지 범위가 현행 8촌 이내 혈족에서 4촌 이내 혈족으로 축소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 교수가 제출한 용역 보고서 내용이 알려지자 성균관 및 유도회총본부와 전국 유림은 "인륜이 무너지고 족보가 엉망이 되고, 성씨 자체가 무의미해지게 될 것"이라며 "가족을 파괴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법무부는 "법 개정 방향이 정해진 것이 아니다"라며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문화일보 노기섭 기자

 
 

03.07 지나친 의사 위주 의료체계 바꿔 나가야

정부가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입학정원을 2000명 늘려 내년부터 5000여 명을 뽑기로 했다. 이에 의대 증원 반대 시위에 참석한 전공의가 “나 없으면 환자 없다”고 항의하고,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이런 나라가 싫어 용접을 배우는 의사가 있다”면서 전공의 집단사직을 지지하고 있다. 그사이 치료받아야 할 환자들은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의사는 환자가 있어 존재하고, 환자 곁에 있을 때 직업인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생명은 치료 골든타임을 놓치면 회복이 불가능하다. 재판처럼 세 번 할 수 없다. 국가는 높은 수준의 교육, 장기간 수련을 거친 의사에게 365일 24시간 환자의 생명을 실시간 보호하도록 진료 의무를 부여하였다. 대신 의료인에게만 진료독점권을 주어 직업적 안정과 수익을 보장해주고 있다. 의사의 생명유지 의무, 환자안전 배려 의무는 절대적 의무이다. 진료독점권을 갖는 의사들이 조직적으로 진료를 거부하는 행위는 어떤 변명으로도 허용될 수 없다.

변명 못할 의사들의 진료거부
지나친 의료행위 독점이 문제
위험 없는 분야는 문호 넓혀야

 ▲[일러스트=김회룡]

 

일부 의사들이 집단휴업, 사퇴 등의 방식으로 투쟁하는 악습관은 의료행위의 독점권을 지나치게 의사 중심으로 준 데서 비롯된 부작용이다. 의료행위를 구체적으로 정의한 법은 없다. 단지 의료법 제12조에 ‘의료인이 행하는 의료·조산·간호 등 의료기술의 시행’이라고만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동안 대부분의 의료행위는 의사가 하고 있다. 임상에서 이른바 ‘PA(진료보조) 간호사’들이 수술 보조, 골수채취 등을 진료 보조업무로 하고 있지만, 이러한 행위 역시 의사만 수행할 수 있는 것이라 하여 무면허 의료행위로 고발되고 있다. 또한 침습성이 크지 않은 안마, 문신 등도 보건위생상 위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의료행위에 포함해 의사만 할 수 있게 규제하고 있다. 이런 구조 아래서 전공의들이 환자를 보지 않겠다고 하면 병원 진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강성투쟁이 가능하다.

 

이제 의료행위에 대해 의사 중심이 아닌 환자 중심으로 해석을 완화할 때가 됐다. 정부도 ‘간호사 진료 지원 시범사업’을 통해 대법원 판례를 통해 명시적으로 금지한 자궁질도말세포 병리검사 검체 채취, 프로포폴 마취, 사망 진단 이외에는 간호사의 의료업무 범위를 넓힌다고 발표했다. 뒤늦은 감이 있다. 세계적으로 보건위생상 위험이 적은 안마, 문신, 임상심리치료, 접골, 침구 등 유사 직종을 허용하는 것이 추세다.

 

대법원은 의료인 상호 간의 업무영역 제한을 완화해주는 경향을 보인다. 몇 가지 예를 보자.

첫째, 의사가 행한 근육 내 침자극 치료행위에 대해 “한방 침술의 하나인 경근자법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의료행위와 한방의료행위의 개념은 시대적·사회적 상황 변화에 따라 변할 수 있다”며 허용했다. 대법원은 “첨단과학기술의 발전과 학문 간 융합으로 의료기술과 한방의료기술이 진일보하는 시대에 의사와 한의사 간 업무 범위의 해석을 너무 엄격하게 하면 기술 발전을 막고 국민건강권의 침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둘째, 치과의사가 행한 얼굴 주름 제거 목적의 보톡스 주사도 허용했다. “안면부 치료는 치과 의료행위 대상이고, 의학과 치의학은 학문적 원리가 다르지 아니하고, 치과대학에서 보톡스 시술 교육을 하고 있어 보톡스 시술이 의사만의 업무 영역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셋째, 한의사가 행한 초음파검사 진단에 대해서도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법 규정이 없고, 한방의료행위를 하면서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보건위생 상 위해가 생길 위험이 없다”며 허용했다. 넷째, 간호사가 의사 지도로 행한 심장 초음파 촬영행위, 물사마귀 큐렛 제거술, 고주파 온열치료, 요역동학검사 카테터 삽입술, 골절환자 부목 처치술 등은 진료보조행위로 허용했다. 다섯째, 일반인이 행한 수지침에 대해 “일반인에게 관용되고, 위험 발생이 적어 사회 통념상 용인될 수 있다”고 하여 허용했다.

 

일본은 이미 타투 아티스트의 문신 시술에 대해 “문신이 의사로부터 받아야 할 보건위생상 위험이 적고, 역사적으로 문신사들이 해왔고, 의과대학에서 문신시술교육을 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허용한 바 있다.

 

지금까지 의료는 과학 기술 발전과 학제 간 융합으로 급속도로 진보했다. 이런 시대적 추세에 맞춰 위해가 없는 분야는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전문 영역은 의료인 간 칸막이 없는 협업을 통해 환자의 생명이 더 보호될 수 있도록 통합적으로 운용되어야 한다. 국민은 의사를 위한 나라가 아니라 환자를 위한 나라에서 살고 싶어 한다. 집단사직을 거부하고 응급실과 수술실을 지키는 의사가 존경받는 이유다.

 

중앙일보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법학박사

 

03.08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의료 시스템을 위해

의사들의 역량과 선의 믿지만 수련의 전공의 개업의는 물론
의대 대학병원도 각각 셈법 달라 납득할 만한 로드맵 안 보여
잘못된 의료 시스템 모두 피해자… 부디 의사들도 역지사지해달라

 ▲정부가 의료 현장을 집단 이탈한 전공의 7000여 명에 대한 면허정지 절차에 돌입한 4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 옆으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미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영화다. 줄거리를 떠올려 보자. 멜빈 유달(잭 니콜슨)은 인기 로맨스 소설가지만 그의 일상은 정반대다. 강박장애 환자인 데다 괴팍한 성미로 남이 상처받을 소리만 해댄다. 옆집 사는 화가 사이먼(그레그 키니어)이 동성애자라고 대놓고 조롱하며 그의 개를 쓰레기통에 버리기까지 한다. 멜빈을 상대해주는 건 세상에 단 한 사람, 단골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 캐럴(헬렌 헌트)뿐이다.

 

어느 날 사이먼이 강도에게 두들겨 맞아 입원하면서 멜빈이 사이먼의 개를 돌봐주게 되었다. 동물과 소통하며 공감 능력을 조금씩 배워나가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캐럴이 일을 그만뒀다는 것이다. 캐럴의 집까지 찾아간 멜빈은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에 오래 시달려온 아들을 돌봐야 하는 캐럴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다.

 

캐럴의 아들이 앓던 병은 심각한 게 아니었다. 캐럴이 가입한 의료보험으로는 정상적인 검사를 받을 수 없어 응급실에서 증상만 치료했을 뿐이다. 멜빈 덕분에 캐럴의 아들은 제대로 치료받고 완치했다. 나쁜 의료 시스템이 한 여성과 아이의 삶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의 전개도 의료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매너리즘에 빠진 사이먼의 작품은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큰 수술을 받게 생겼다. 막대한 의료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어서 파산할 지경에 놓인 그는 자신을 쫓아낸 부모를 찾아가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세 사람은 서로를 길동무 삼아 뜻밖의 여정에 오르게 된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사회 고발물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캐릭터가 미국 의료 체계의 어두운 면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비싼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인간의 생명에 필수적인 진단과 치료마저 받을 수 없고, 난데없는 사고를 당하면 목숨을 건져도 ‘의료 파산’이 기다리고 있다.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는’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을 보며 나는 문득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떠올렸다. 물론 한국은 미국과 다르다. 하지만 관객들은 공감할 수 있다. 내 아이가 아픈데 원인을 모르거나 치료받지 못해 발을 구르거나 사고나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 건 누구에게나 악몽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나나 내 아이가 사이먼이나 캐럴, 그 아들 같은 처지가 될까 불안하다. 의대 정원 확대에 국민의 80% 이상이 찬성하는 건 그래서다.

 

문제는 의사들의 반응이다. 나는 의사 여러분의 역량과 선의를 믿는다. 의료 사고 면책 보장 등 의사들의 요구 사항에는 합리적인 부분이 있다. 의대 정원 확대가 필수 의료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할 것인가? 여기서부터 문제가 난삽해진다. 수련의, 전공의, 개업의, 의대, 대학병원 등이 각기 다른 셈법을 굴리고 있는 가운데, 납득할 만한 대안 로드맵 제시는커녕, 그저 ‘일단 정책 철회하라’는 목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몇몇 의사들은 미국에서 푸드트럭을 하겠다는 둥, 용접을 배워 이민을 가겠다는 둥, 보는 사람이 더 부끄러운 자기 연민을 공적으로 늘어놓는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것은 숭고하고 힘든 일이다. 그러므로 의사는 용접공을 신세 한탄의 소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픈 용접공의 병상을 지켜야 한다. 고소득 전문직인 의사가 타 직업을 그런 식으로 언급하는 것 자체가 평범한 국민에 대한 조롱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왜 이 간단한 역지사지를 못 할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마저 짚어보자. 멜빈의 처지는 여러모로 다르다. 부자고, 독신이며, 심지어 한 다리 건너 의사 친구가 있다. 하지만 잘못된 미국 의료 시스템의 피해자가 아닌 건 아니었다. 멜빈에게 의사는 무신경하게 약만 처방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캐럴을 만나지 못했다면 약물 중독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잘못된 의료 시스템이 빚어내는 비극 속에서, 몹시 삐뚤어진 못된 남자가 공감 능력을 익히며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되어간다. “당신은 내가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들어요.” 우리의 현실도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바란다.

조선일보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03-08 빅5 파행에 버팀목 된 2차 병원…의료체계 정상화 계기다

 전공의들의 집단 업무 거부가 3주 가까이 이어지면서 의료 전달체계에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 3차 진료 의료기관인 이른바 빅5(서울대·서울아산·삼성서울·세브란스·서울성모) 병원은 파행 운영되고 있지만, 많은 중견·중소 종합병원 등 2차 의료기관이 그 공백을 메우는 버팀목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이들 병원에 상대적 경증 환자들이 몰리면서, 여러 이유로 인해 크게 왜곡됐던 의료 전달체계가 정상화하는 조짐까지 보인다. 빅5 병원의 전공의 비중은 37%에 이른다. 비정상이다. 중견·중소 병원은 전문의 비중이 81%를 넘어 전공의 이탈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의사 수도 2만2401명으로, 3차 상급 종합병원의 2만3346명과 맞먹는다.

이들 중견·중소병원들은 의대 정원 확대를 요구해 왔다. 의사 공급이 달리면서 봉직의(페이 닥터) 연봉이 급상승해 인건비 부담이 지나치게 커졌기 때문이다. 전공의 사태와도 거리를 두고 있어 의료 붕괴를 막고 있다. 2000년 의약분업 반대 당시 2차 병원들은 물론 1차 동네 의원들까지 92% 휴진에 가담해 의료대란이 일어났던 것과 비교된다. 보건복지부도 1차 의료기관에서 진료 의뢰서를 갖고 3차 의료기관으로 바로 가는 대신 2차 병원 진료 의뢰를 제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응급 환자에 집중하고, 웬만한 질병은 2차 병원에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도 “전적으로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한시바삐 정착되도록 협력할 필요가 있다. 상급 종합병원 응급실에 ‘걸어들어오는(walk-in)’ 경증 환자는 못 받도록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차제에 의사들의 과도한 진료 독점도 손질할 필요가 있다. 현행 의료법은 문신·피어싱·안압검사·초음파검사·물리치료 등 생명에 관계 없고 의료 기계만 있으면 간단히 할 수 있는 일도 의사들만 시술하게 돼 있다. 의사 지도 없이는 간호사들이 욕창 제거나 심폐소생술도 하기 어렵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급증하는데 지난 3년간 전남에서 왕진에 참여한 의사는 단 한 명에 그쳤다. 진료 독점에 따른 의료 왜곡과 소외 현상이 심각하다. 영국이나 미국의 일부 주들은 일정한 자격증을 딴 간호사들에게 보톡스·필러 주사를 허용한다. 약국에서 코로나 백신 주사를 놔준 선진국도 적지 않다. 한국 의료가 고인 물이 된 지 오래다. 더 썩기 전에 정상화 길로 나선다면 전화위복이 된다.

문화일보 사설
 
 

03-08 환자 지키는 동료 협박하는 전공의 일각의 인성 파탄

이번 전공의 사태를 거치면서 ‘인술(仁術)을 베푸는 선생님’으로 불리던 의사에 대한 신뢰가 크게 무너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의사도 생활인인 만큼 어느 정도의 집단이기주의는 불가피하겠지만, 최근 일부 젊은 의사들의 행태는 인성(人性) 파탄을 걱정하게 할 지경이 됐다.

의사와 의대생들이 사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환자 곁을 지키는 전공의 리스트가 공유되고, 그들을 협박하는 글이 올라와 있다. 병원에 남은 전공의를 ‘참의사’라고 비꼬면서 ‘남은 전공의 이름을 다 확보’ ‘평생 박제’ ‘배신자’ ‘개××’ 등의 댓글도 달았다. 수업을 재개한 의대 교수에게 욕설도 서슴지 않는다. 환자를 저버린 것 자체가 직업윤리 배신이지만, 다른 소신을 가진 동료를 조리돌림 하는 것은 저질 조폭 짓과 다름없다. 오죽하면 어느 전공의가 ‘3개월 면허정지보다 제가 속한 집단이 더 무섭다’고 했을까. 자신의 알량한 능력을 과시하는 사람이 일탈하면 사회적 폐해가 더 크다. 그런 심성을 가진 사람이 의사가 될 수 없도록, 면허 기준과 방식도 바꿔야 한다.

서울대 의대 김정은 학장은 7일 ‘누구도 복귀를 비난하거나 방해해선 안 된다’는 이메일을 발송했다고 한다. 일말의 희망을 보여주는, 당연하지만 용기 있는 행동이다. 전공의 복귀를 막는 건 중대 범죄다. 명예훼손과 업무방해죄로 처벌해야 한다. 사회악의 싹은 빨리 자를수록 좋다.

문화일보 사설

 
 

03-08 생명 볼모 겁박과 국가 책무

지난달 18일 의사 집단행동 조짐이 일자 한덕수 국무총리는 빠르게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다음 날 “의료계는 국민을 이길 수 없다”고 했고, 그다음 날 “국민생명을 볼모로 한 집단행동은 안 된다”는 메시지를 연이어 내놨다. 예정된 독일·덴마크 순방 취소 사실도 이날 알렸다. 21일에는 수사 당국이 한데 모여 엄정 수사 방침을 밝혔다. 의사 집단행동이 장기전 양상을 띨 것으로 예상하고, 단계별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지속 설득하되, 불법 행위는 엄정 대응한다’는 대원칙도 일찌감치 수립했다. 용산 사정에 밝은 인사는 “윤 대통령의 눈빛이 변했다. 대통령이 세세한 내용 하나하나 다 챙기고 있다”고 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의사 집단행동을 ‘헌법적 책무’를 저버린 행위로 규정했다.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해 국가 보호를 받게 돼 있다.(헌법 제36조 3항) 국민 생명·안전을 다루는 의사 집단행동은 국민 보건을 해친다. 이는 반법치·반자유적 행위에 해당한다’는 논리를 세웠다. 의사들의 행동이 왜 문제인지 국민에게 직관적으로 설명한 것이자, 의사 집단행동을 ‘헌법 프레임’ 안으로 가둬 안 그래도 빈약한 의사 집단행동 명분을 단번에 삭제한 것이다. 동시에 생명권 수호가 대통령의 헌법적 책무란 점도 강조하면서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는 집단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윤 대통령이 이처럼 절박한 대응에 나서는 이유가 무엇일까. 용산 참모들은 “이번에 물러서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말을 대통령이 자주 하신다”고 했다. 국민이 병원 이용 제약으로 인내심을 발휘하는 상황에서 목표한 의료개혁을 완수 못 하면, ‘응급실 뺑뺑이’ 등의 난맥상이 또다시 반복된다. 또, 의사 집단행동 대응 성적표가 윤 정부 남은 개혁에 고스란히 연동되는 점도 포인트다. ‘개혁’을 기치로 내건 윤 정부는 노동·연금·교육 등 3대 개혁에 연이어 나서야 한다. 의사 대련에서 힘없이 물러나면, 남은 개혁의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최근 만난 법조계 원로는 “기득권 세력에 맞서다 힘없이 물러나는 선례를 윤 대통령이 결코 남기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여론도 대통령 편이다. 병원 이용에 제약이 생기는 등 일부 불편이 있음에도, 국민 절반가량이 정부의 2000명 의대 증원안을 찬성하고 있다. 국민이 정부의 의료개혁 방향성과 대응 방식에 대해 폭넓게 공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1981년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항공 관제사들이 파업에 돌입하자 관제사 1만1000여 명을 전원 해고하고, 다시 연방공무원으로 취업할 수 없도록 했다. ‘공공성’을 볼모로 한 파업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윤 대통령 역시, 법 위에 군림하려는 의사집단에 결코 물러서서는 안 된다. 차제에 국민 생명을 볼모로 겁박하는 집단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 대응이 일관되게 이뤄진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 국민도 명분 없이 실력행사를 하는 집단에 대해 일관된 대응을 하는 정부에 넉넉한 지지를 보낼 것이다.

문화일보 손기은 정치부 차장

 
 

03.08 “심신미약·반성 이유로 감형...사법체계가 괴물 만들어”

‘부산 돌려차기’ 피해자 인터뷰

 ▲김진주씨가 얼굴 공개를 원치 않아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사진을 찍었다. 김씨는 “피고인의 방어권은 보호받으면서 피해자의 방어권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나는 피해자인데 법원에 내 피해의 심각성을 구걸하고 눈치 보며 ‘잘 봐주세요’ 아첨을 떨어야 하는 상황이 너무 괴로웠다”고 했다./김지호 기자

 

“범죄와 아무런 관련 없는 반성, 인정, 불우한 가정환경이 도대체 재판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겠다는데 왜 판사가 마음대로 용서를 하겠다고 하는 겁니까. 사법부가 그렇게 하면 안 되죠.”

 

지난해 10월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장. 가림막 뒤 참고인의 질타에 장내가 숙연해졌다. 참고인 김진주(가명·28·프리랜서 디자이너)씨는 일명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그는 2022년 5월 새벽 귀갓길에 일면식도 없는 30대 남성에게 무차별 폭행당하고 바지 지퍼가 열린 채 실신한 상태로 발견됐다. 검찰은 1심에서 가해자에게 살인미수 혐의로 징역 20년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가해자의 반성 등을 이유로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김씨가 끈질기게 재조사를 요구한 끝에 2심에서는 검찰이 강간 등 살인미수 혐의로 공소장을 변경해 징역 20년으로 형량이 늘었고, 이 판결은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1년 4개월간 투쟁의 기록을 최근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라는 책으로 펴낸 김씨를 지난 6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160㎝가 채 안 되는 자그마한 체구. 활짝 웃으며 활달한 부산 말씨로 “만난 기념이에요” 하며 푸른색 폼폰국화 한 송이를 내밀었다.

◇피해자인 나, 사법부는 ‘방해물’로 여겨

–끔찍한 일을 당했는데 굴하지 않고 투쟁했다. 맞서 싸운 이유는.

“나는 피해자인데 마치 사법부가 나를 ‘방해물’로 여기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다. 내가 뭔가를 알고 싶다고 하면 법원 직원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피해자는 재판의 당사자가 아니에요.’ 형사사건의 원고는 검사이기 때문이란다. 경찰이 개인 정보라며 가해자 이름도 알려주지 않아 재판 방청을 가서야 이름을 확인했다. 공판 기록 열람 및 등사를 요청했지만 판사에게 거절당했고, 공소장 열람만 겨우 허락받았다. 법원에서 재판 기록을 보려면 가해자에게 민사소송을 걸어 문서 송부 촉탁을 하라고 해서 진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신상 정보가 가해자에게 노출됐다. 구치소에 있는 가해자가 내 주소를 달달 외우며 나를 죽여버리겠다고 했다는 걸 가해자 감방 동기들이 출소해 내게 알려주더라. 1심 중간에 CCTV 등 재판 기록을 요청했는데 1심이 다 끝나고야 받을 수 있었다. 재판부가 귀찮아했고, 잡음이 생기지 않길 바라서라 생각한다.”

 

–가해자 전 여자 친구와 친해져 재판 기록 일부를 받아볼 수 있었다고 했는데.

“피고인 방어권 덕에 피고인은 대부분의 재판 기록 열람이 가능하다. 가해자의 전 여자 친구는 가해자를 숨겨준 혐의로 공범이 되어 피고인 신분이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그에게 연락했는데 첫마디가 ‘미안하다’였다. 남자들끼리 다퉜다는 가해자 말만 믿고 숨겨줬다고 하더라. 그가 도와줘 일부 재판 기록을 볼 수 있었다. 가해자에겐 국선 변호사가 있었는데, 내겐 없었다. 성범죄 피해자는 국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지만 1심에서 가해자의 성범죄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직접 변호사를 선임해 24개월 카드 할부로 수임료를 결제했다.”

◇‘12년 뒤 저는 죽습니다’ 글 써 사건 공론화

–온라인 게시판에 ‘12년 뒤에 저는 죽습니다’라는 글을 올려 사건을 공론화했다.

“1심 재판에서 가해자가 받은 형량은 12년이었다. 검찰이 구형한 20년보다 8년이 적었는데, 가해자가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했기 때문이라 하더라. 사법 체계에 배신당한 것 같았다.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형량이 올라갔을 텐데. 많은 범죄 피해자들이 너그러운 양형 기준에 절망하며 ‘판사가 살아 있는 피해자를 죽였다’고들 말한다. 1268장에 달하는 가해자 관련 재판 자료를 받아보니 거짓말투성이였다. 법정에서 가해자가 너무 차분한 게 이상했는데, 전과 18범으로 사법 체계의 모든 혜택을 다 받은 사람이었다. 소년 보호처분, 반성, 인정, 합의 등. 사법 체계가 만든 ‘괴물’이었다. 반성, 인정, 심신미약, 초범 등으로 디스카운트해 주는 ‘형량 아웃렛’에 얼마나 익숙해졌겠나. ‘범죄자가 시스템을 학습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감형이 다른 피해자들을 낳을 수도 있으니까.”

 

–가해자의 성범죄 가능성을 조사해 달라고 검찰과 법원에 요구했다.

“그가 무엇 때문에 나를 죽이려 했는지 알고 싶었다. 모든 범죄가 그렇지만 특히 살인(미수)죄는 동기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 범행 당시 CCTV를 보니 7분의 사각지대가 있었다. 속옷이 벗겨져 있었던 것 등 성범죄 정황이 있었다. 나는 범행 충격으로 당시 기억을 잃었다. 2심 공판 전부터 나는 성범죄가 추가돼야 한다고 했고, 공판 때 검사님이 바지에서 검출된 DNA 재감정을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항소심에서 공소장도 없는 죄명을 대상으로 추가적인 감정은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2020년 5월 22일 부산 서면에서 발생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 당시, 피해자를 따라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온 가해자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갑자기 돌려차기를 하고 있다(왼쪽 사진). 가해자는 쓰러져 의식을 잃은 피해자를 어깨에 메고 CCTV가 없는 곳으로 가(오른쪽) 성폭행을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유튜브

 

–언론 보도 이후 법원의 태도가 확연히 바뀌었다고 책에 썼다.

“한 방송사 시사 프로그램이 내 사건을 보도한 이후 두 번째 공판이 열렸는데 재판부가 갑자기 피해자 탄원서를 봤다며 DNA 재감정을 허락해 줬다. 진짜 씁쓸했다. 이래도 사법부가 과연 독립적인 기관인가. 사법부가 제 할 일을 하면 어떤 피해자가 시간 들여가며 언론을 찾겠는가.”

 

–국민 신문고에 법원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는데.

“‘신림동 공원 살인 사건’ 가해자 최윤종이 ‘부산 돌려차기 사건’을 모방한 거라는 보도가 나왔다. 내가 CCTV 영상을 언론에 공개한 영향일까봐 마음이 너무 괴로웠는데 유가족들은 오히려 그런 생각하지 말라며 나를 위로했다. 그런데 ‘부산 또래 여성 살인 사건’ 가해자 정유정 사건을 맡은 재판부가 ‘부산 돌려차기 사건 모방 범죄 사건 등이 일어나고 있으니 자극적인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했다’는 뉴스가 떴다. 그 재판부가 바로 내 1심 재판부였다. 내가 언론을 찾은 게 재판 기록을 보여주지 않은 1심 재판부 때문이었는데, 감히 판사가 내게 잘못했다고 하다니…. ‘모방 범죄는 영상 때문이 아닌 판사님들의 너그러운 양형 기준 때문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가해자 아닌 세상의 시선과 싸워

–본인이 성범죄 피해자라는 걸 입증해 공소장을 변경했다. 여성으로서 쉬운 일이 아니다.

“1심 끝날 때까지 성범죄는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사건 당시 입었던 바지에서 가해자 DNA가 검출된 것 같다는 이야길 들었을 때 기쁘면서도 눈물이 났다. ‘성범죄 피해자라는 걸 내가 스스로 세상에 알렸네’ 싶어서. 법정에서 바지를 다시 봤는데 구멍이 송송 나 있었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대검 유전자 감식실에 121부위의 광범위한 정밀 감정을 지시했다고 하더라. 바지 안쪽서 가해자 DNA가 나왔을 때, 담당 검사인 김태훈 검사가 결과를 알려주며 내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사건 이후 가해자 전 여자 친구에 이어 내가 받은 두 번째 사과였다. 나는 정작 가해자랑은 싸운 적이 없다. 사람들 시선, 언론, 경찰, 법원과 싸웠고 결국 나 자신과도 싸웠다. 외롭고 힘들었다.”

 

–가해자 공판을 방청하러 법원에 간 경험을 적으며 “나는 법원에서 가장 밝고 색채로운 사람이었다”고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처음 재판장에 갔을 땐 위축돼 있어서 모자도 쓰고 후줄근하게 하고 갔다. 돌이켜보니 그 모습이 너무 싫었다. 내가 그 누구보다 ‘멋진 피해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반항심이 들어서였는지는 몰라도 이런 피해자도 있다는 걸 재판부에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두번째 공판부터는 최대한 화려하고 근사하게 꾸미고 갔다. 화장도 진하게 하고, 원피스도 입었다. 튀는 가발을 쓰고 간 적도 있다. 죄수복 차림의 가해자에게 ‘너는 패션에 선택권이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기도 했다. 나중에 가해자가 ‘피해자X이 법원에 원피스를 입고 왔더라’고 발언했는데, 내 전략이 ‘먹혔다’ 싶었다. 너는 감옥에 있는 거지 궁궐에 있는 게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씨가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지호 기자

◇살아 있어 다행… 다른 피해자 도울 수 있으니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과 통화한 이야기를 책에 적었다.

“지난해 대법원이 2심 결과를 확정한 후 박용진 민주당 의원, 조정훈 시대전환(현 국민의힘) 의원 등에게서 국감 출석 제안이 왔다. 조정훈 의원이 법무부 국정감사 때 한동훈 장관에게 영상 편지 보낼 기회를 마련해주겠다고 했다. 유튜브 라이브로 국감을 봤는데 한 장관이 내 영상 끝난 후 조 의원에게 질의받고 ‘피해자께서 많이 부족한 점을 느낀 것에 대해 죄송하다’고 하더라. 잘못 들은 건가 했다. 법무부 최고위직에 있는 사람이 민간인인 내게 죄송하다니. 눈물이 핑 돌았다. 매번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 회피하며 잘잘못을 따지기 바빠하는 사법체계였는데 장관이 내게 사과를 하다니, 진짜 살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장관님이 전화를 걸어와 피해자 보호 제도가 미흡한 점을 이야기해 달라고 하길래 ‘메일로 정리해 보내겠다’ 했더니 흔쾌히 메일 주소를 주셨다. 그간 준비했던 내용을 A4 8장짜리 문서로 정리해 보냈다. 2차 피해(보복 범죄)를 막고, 사건과 관련 없는 양형 기준을 빼고, 피해자들의 알 권리를 챙겨달라고 했다. 말만 하고 끝나는 거 아닐까 불안했는데 법무부에서 범죄 피해 지원 TF를 만들더라. ‘결국 윗사람이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구나’ 깨달았다.”

 

–한 전 장관이 책에 추천사도 썼던데.

“장관이었으면 공직자라 못 쓰는데 그만둬서 써줄 수 있다고 했다더라. 그만두셔서 다행이다(웃음).”

 

–당신 덕에 피해자 재판 기록 열람·등사를 강화하는 개정안도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당신을 버티게 한 힘은 무엇인가.

“내 사람들. 소중한 사람들이 피해자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버티고 싸웠다. 피해자들이 숨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피해자들을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었고, 교육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내가 죽었어야 법이 바뀌었을텐데’, 생각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살아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다른 피해자들을 도울 수 있으니. 가해자가 20년 후 출소하니 내 삶엔 20년의 ‘유통기한’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삶을 가성비 있게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20년 뒤에 죽을 사람에게 돈이 중요할까, 명예가 중요할까. 내일 당장 내가 죽어도 아쉽지 않은 일,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책을 쓰면서 많이 치유받았다. ‘내 잘못이 아니다’라는 메시지, 그 일념이 흔들리지 않아 힘들었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2022년 5월 22일 새벽 귀가하던 김진주씨를 30대 남성이 무차별 폭행하고 성범죄를 저지른 사건. 작년 9월 대법원에서 가해자에 대해 강간 등 살인미수 혐의로 20년형이 확정됐다. 김씨가 피해자 권리를 위해 노력해 피해자가 재판 기록을 열람·복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강화하고, 가해자 신상 공개를 확대하는 등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 개정안이 최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조선일보 곽아람 기자

 

03.11 문신·보톡스·드레싱, 의사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은 풀어야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9일 오전 전공의 집단 사직 공모 의혹과 관련해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로 출석하기 전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현행법상 의료인만 할 수 있는 문신 시술을 비의료인도 자격증을 따면 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지난 8일부터는 정부 지침으로 일부 간호사들도 응급 환자에 대해 심폐소생술과 응급 약물 투여 등을 할 수 있게 했다. ‘의료 파행’을 계기로 의사들이 독점해온 권한을 분산시키려는 시도들이 하나둘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국내에서 이뤄진 문신 650만건(추정) 대부분은 문신 시술사(타투이스트) 25만여 명이 시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신 시술을 하는 의사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현행법상 문신은 의료 행위여서 시술사들은 불안하게 음지에서 일하고 있다. 의사 단체들이 “문신은 의료인만 할 수 있다”며 법 개정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문신을 의료로 보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고 한다. 최근 하급심에서는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을 불법으로 간주하는 대법원 판례를 따르지 않고 시술사들에게 잇따라 무죄를 선고하고 있다. 법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것이다.

 

이런 분야가 한둘이 아니다. 보톡스나 필러 같은 미용 시술도 우리나라는 의사가 독점하지만 영국이나 미국의 일부 주들은 일정한 자격을 갖춘 간호사들에게도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자격을 갖춘 물리치료사도 의사가 고용하지 않으면 개업할 수 없다. 수술 보조를 하는 PA 간호사의 경우 미국에선 15만명이 활동하고 있지만 국내 PA 간호사는 의사들 반대로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병원에서 간호사가 관행적으로 하는 채혈, 삽관, 콧줄 제거, 소변줄 제거, 드레싱(소독), 수술 동의서 작성 등도 의사 영역이다. 이 때문에 고령화로 왕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활성화가 되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는 매년 1000만건 정도 방문 진료가 이뤄지고 있다. 안전장치를 마련한 후 간호사들에게 허용해도 재택 환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의사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들, 더구나 의사들이 다 할 수도 없는 일인데도 의사들의 의료 독점에 묶여있는 분야들을 폭넓게 개방해야 한다. 모든 의료 행위를 의사에게 몰아주는 구조이다 보니 국민들은 충분한 서비스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의사들이 의사들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 결국 필수·지역 의료를 살리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3.11전공의 4944명에 행정처분 통지...복귀자 피해 신고 핫라인 만든다

 ▲정부가 집단사직 후 의료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정지 절차에 돌입한 가운데 6일 서울 한 우체국에서 관계자가 수취인 부재로 되돌아온 면허정지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지난 8일까지 전공의 4944명에게 사전통지서를 발송했다. 전병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11일 오전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한 전공의에게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순차적으로 발송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부는 오는 12일부터 ‘전공의 보호·신고센터’도 운영하기로 했다. 전 실장은 “의료현장을 지키고 있는 전공의와, 환자 곁으로 복귀를 희망하는 전공의가 집단 괴롭힘 등 직·간접적으로 겪을 수 있는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며 전화, 문자메시지로 피해 신고를 접수할 수 있는 핫라인을 구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복지부가 8일 오전 11시 100개 수련 병원을 점검한 결과, 계약을 포기하거나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총 1만1994명(92.9%)으로 나타났다. 전 실장은 “전공의가 의료현장을 이탈한 지 4주차에 접어든 현재 중증, 응급환자 중심으로 비상진료체계는 유지되고 있다”며 “상급종합병원의 중등증 이하 입원환자 수는 35% 감소했으나, 중환자실 환자 수는 평소와 유사한 3000명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지난 10일 기준 휴학을 신청한 의대생 수는 5446명(29%)으로, 동맹휴학에 대한 허가는 한 건도 없었다. 정부는 최근 이주호 교육장관이 40개 의대생 단체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의대협) 대표에게 대화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전 실장은 “오는 13일 오후 6시까지 참여 의사를 밝힌다면, 학사운영 정상화와 학생의 학습권 보호에 대해 학생들과 함께 논의하겠다”고 했다.

 

심민철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은 “교육부는 지난 두 차례 실무 차원에서 의대협 대표에게 전화 또는 문자를 통해서 만나자고 제안한 바 있다”며 “의대협에서는 아직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주셨고, 따로 만나자고 회신이 온 사례는 아직 없다”고 했다. 이어 “직접 의대협 학생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현재 교착된 학사 운영 관련 부분들을 풀어나가고자 하는 의지로 만남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오유진 기자

 

03-11 ‘전공의 이탈 3주’ 원칙 대응과 의료개혁 병행해야 한다

전공의 집단 이탈이 3주일을 넘기면서 전공의 의존율이 높은 대형병원의 의료 차질이 심각하다. 그나마 의대 증원의 당위성과 이를 지지하는 압도적 여론, 그리고 중견·중소 병원의 역량 등으로 의료대란까지는 이르지 않고 있어 불행 중 다행이다. 당장 이탈 전공의들이 복귀할 가능성이 없는 만큼, 정부는 국민의 의료 불편을 최소화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면서, 의사 직역 이기주의에 밀려 수십 년 동안 방치된 의료개혁을 병행해 추진해야 한다.

의사라고 해서 법과 국민 위에 군림해선 안 된다. 미복귀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정지 사전 통보를 시작한 정부는 이번 주에 미복귀자 1만1994명에게 통보를 완료하고, 의견 제출이 없는 경우 오는 25일부터 정지 처분을 할 방침이다. 예외 없이 차질 없이 실행해야 한다. 정부는 11일부터 빅5 상급종합병원을 포함한 20개 대형병원에 군의관·공중보건의 158명을 투입해 중증·응급 환자 수술과 진료 등을 지원하는 등 비상진료체계를 강화했다. 가용 인력이 더 있다면 2차 투입도 필요하다. PA(진료보조) 간호사 역할 확대 등도 제대로 이뤄지게 해야 한다.

정부는 또 대형종합병원은 중증·응급환자 진료에 집중하도록 경증 환자를 전원(轉院)받는 ‘회송전담병원’을 100곳 지정하기로 하고 수요 조사를 하고 있다. 차제에 2차 병원의 진료 비중을 키워 대형병원에 쏠린 기형적인 의료전달체계도 확 뜯어고쳐야 한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검토 역시 거부권 사유를 보완하면 가능하다. 비대면 진료 전면 확대는 물론이고 간호 서비스 수요가 급증한 환경에 맞춘 의료개혁이 절실하다. 필수 의료 붕괴와도 관련된 피부·미용 분야 등에 대해 자격증 제도 등으로 개혁해야 한다.

일각에선 정부가 2000명인 의대 정원 규모를 축소해 전공의들과 타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범법 상태의 전공의들과 대화는 어불성설이다. 무조건 복귀 후 필수의료 분야의 수가 개선, 전공의 처우 개선 등을 논의하는 게 옳다.

문화일보 사설

 
 

03.12 교사는 학원서 거액 받고 제자들은 학원으로, 사교육 요지경

반민심 사교육 카르텔 척결 특별조사 시민위원회(반민특위), 한국대학교수협의회(한교협) 등 시민단체 구성원들이 지난 1월 30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국민 기만하는 사교육 카르텔 척결 위한 국민감사 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현직 교사들이 사교육 업체에 모의고사 문제를 제공하고 거액을 받았다는 이른바 ‘사교육 카르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감사원 감사 결과, 수능 출제 또는 EBS 수능 연계 교재 집필에 참여한 다수 교사가 거액을 받고 사교육 업체와 문항을 거래한 사실이 밝혀졌다. 혐의가 드러나 수사 의뢰된 교사와 학원 관계자가 지난해 9월 교육부 발표 때보다 30여 명 늘어난 56명이다.

 

감사원이 발표한 내용은 충격적이다. 수능과 모의평가의 검토위원으로 참여한 고교 교사는 같이 합숙한 교사 8명을 모아 문항 공급 조직까지 만들었다. A씨는 2019~2023년 이들 교사들과 모의고사 문항 2000여 개를 만들어 유명 학원강사 등에게 주고 6억6000만원을 받았다. 상당수 교사들은 사설 업체에 문제를 판 이력을 숨기고 수능·모의평가 출제 위원으로 참여했다. 2023학년도 수능 영어 문항이 대형 입시학원 유명 강사가 만든 사설 모의고사 지문이나 EBS 수능 교재 감수본과 같았던 배경에도 이런 ‘사교육 카르텔’이 있었던 셈이다.

 

사교육 시장에서는 수능과 비슷한 문제를 만드는 학원일수록 수험생이 몰려 큰돈을 번다. 이 카르텔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현직 교사들이 거액을 챙기는 가운데 제자들은 사교육으로 밀려 들어가고 있었다. 일부 교사들은 학원에 판 문제를 그대로 학교 중간·기말고사 문제로도 출제했다. 고교 내신은 대입 합격 여부를 가르는 중요한 입시 평가 자료다. 교사들이 학원 다닌 학생들이 좋은 내신을 받을 수 있게 한 것으로 범죄와 다름없다. 이들 교사들이 사교육 시장에서 돈을 버는 열성 이상으로 자기 학생들을 가르쳤을 리 없다. 드러난 사례가 빙산의 일각은 아닌지 더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사례는 우리나라 대학 입시 제도의 기본 원칙인 공정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수능의 공정성과 신뢰도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수능 출제·감독 기관인 교육과정평가원은 수능 문제 검증을 부실하게 한 데다 영어 문항 등에서 유착 가능성이 명백한데도 “우연” 운운하면서 유야무야 넘어가려 했다.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3.12 범죄 단체를 방불케 한 교사들의 시험문제 장사

문제 공급 조직 만들고 탈세·리베이트까지 동원

교육 당국에도 의혹…문제 거래 법으로 막아야

 

감사원의 사교육 카르텔 관련 감사 결과, 일부 교사들의 일탈이 단순한 금품 거래를 넘어 범죄 집단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현직 교사 27명 등 56명에 대해 어제 수사를 요청했다. 적발된 교사 대부분은 사교육 업체와의 거래 사실을 숨긴 채 수능 출제나 EBS 교재 제작에 참여했다. 일부 교사는 수능이나 모의고사, EBS 문제집 출제 경력이 있는 다른 교사들을 모아 ‘문항 공급 조직’을 만들었다. 이런 조직을 여럿 적발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큰 조직엔 무려 35명의 현직 교원이 참여했고, 20억원 가까운 금액을 받아 나눠 가졌다.

 

이 과정에서 차명계좌 사용, 배우자 명의 출판사를 이용한 세탁, 문제를 넘겨주지 않은 교사에게 출제비를 주고 나중에 돌려받는 리베이트와 이 교사에게 거짓 답변을 요구하는 증거 조작까지 온갖 범죄가 총동원됐다. 발간도 되지 않은 EBS 교재 내용을 빼돌리거나, 학원에 건넨 문제를 내신 시험에 그대로 출제한 사례도 나왔다.

▲사교육 업체와 유착한 현직 교사들이 모의고사 문제를 제공하고 금품을 받는다는 이른바 '사교육 카르텔' 의혹이 감사원 감사에서 사실로 확인됐다. 감사원이 파악한 경위를 보면,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문제' 관련 논란은 대형 입시학원의 유명 강사가 만든 사설 모의고사 교재에 나온 지문이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에 그대로 출제되면서 불거졌다. 연합뉴스

 

이런 거래의 하이라이트가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문제다. 이 문제의 지문은 국내에서 출판되지 않은 ‘『Too Much Information』(TMI·투 머치 인포메이션)’이란 책에서 발췌됐는데, 수능 이전에 한 일타 강사의 모의고사에 나온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됐다. 감사해 보니 EBS 교재 집필 과정에서 친분을 쌓은 두 교사 중 한 사람이 나중에 발간될 EBS 교재에 문제를 내고, 다른 사람은 똑같은 지문을 학원 강사에게 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수능 출제위원으로 위촉된 다른 교수가 규정을 어기고 EBS 미발간 교재를 미리 보고 같은 지문을 수능에 내면서 사달이 났다.

 

일타 강사와 학원은 교사와의 검은 거래를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았다. 교재를 본 학생들은 점수가 높고, 그 학원과 강사에게는 아무리 비싸도 수강생이 몰리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를 감독해야 할 교육부와 평가원은 무능을 넘어 공모 의혹까지 받고 있다. 23번 문제의 사전유출 의혹에 대해 숱한 이의신청이 들어왔지만, 평가원 담당자들이 중복 출제 여부를 다루는 회의 안건에서 아예 빼버린 것으로 밝혀졌다. 우연이라기엔 수상한 대목이 너무 많다.

 

교육부는 올해 초 교사와 학원 간 문제 거래를 전면 금지하는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 하지만 약발이 먹힐지는 미지수다. 2016년에도 문제 거래가 경찰 수사로 드러나자 교육부는 관리를 철저히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공염불이었다. 수능 출제자뿐 아니라 현직 교사와 학원 간의 문제 거래는 철저히 막아야 할 사회악이다. 가이드라인 정도로는 부족하다. 검은 돈의 공여자인 학원과 강사를 엄벌하기 애매하기 때문이다. 교육 당국이 정말 사교육 카르텔을 깰 의지가 있다면 범죄를 차단할 입법부터 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03.13 전공의 사직 사태로 환자들 전문·종합병원으로, 이게 정상

▲3월 12일 오전 인천 계양구 인천세종병원 뇌혈관센터 접수실이 환자들로 붐비고 있다. / 장련성 기자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인한 ‘의료 파행’은 하루빨리 해결돼야 하지만 이 파행이 역설적으로 상급종합병원, 중형병원(병원·종합병원), 의원으로 이어지는 의료 전달 체계를 정상으로 돌려놓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서울 ‘빅5′ 병원 등 상급종합병원들은 수술실 가동률을 절반으로 줄이고 중증·응급 환자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증상이 경미한 환자들은 중형병원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환자가 자연스럽게 ‘분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정상적인 의료 전달 체계 모습이다.

 

이번 사태로 대형병원들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2021년 기준 상급종합병원 의사 인력의 37.8%가 전공의였다. 특히 서울대병원은 무려 46%에 달한다. 상급병원이 비용 절감을 위해 수련생에게 과도하게 의존한 것이다. 그러다 전공의들이 파업을 하니 입원실·응급실에서 경증 환자를 중형병원 등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평소 응급실을 찾는 환자의 절반 안팎이 응급실에 올 필요가 없는 경증 환자라고 한다. 전공의 집단 사직이 상급종합병원이 제 역할을 찾게 한 것이다. 대형병원들은 하루빨리 전문의 중심으로 바꾸고 이번 사태가 끝나더라도 중증·응급환자 중심으로 운영해야 한다.

 

이번에 역할을 재발견한 곳이 전문병원을 비롯한 중형병원이다. 중형병원은 평소에도 전문의 위주로 운영해 전공의들 집단행동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번 사태와 관계없이 정상 진료와 수술도 가능하다. 대형병원 수준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곳도 많아 대형병원의 공백을 잘 메우고 있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특정 질환이나 진료 과목에 대형병원 수준의 전문성을 갖춘 ‘전문병원’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번 사태로 그동안 빅5 병원에 경증 환자가 지나치게 많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정부는 대형병원이 중증 환자만 보더라도 경영에 문제가 없도록 해주고, 중형병원은 더 경쟁력을 갖도록 지원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3.13 전문의만으로 하루 1600명 진료... 의료 공백 메우는 2차 병원

지역 의료 중추 인천세종병원 심장·뇌혈관 등 21개 전문센터
심장 수술만 하루에 2~4건… 빅5 못지않아

 ▲12일 오전 인천 계양구에 있는 '2차 병원' 인천세종병원에서 의료진이 수술을 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2차 병원 중 전문성을 갖춘 병원들에 대해 상급 종합병원(3차 병원) 만큼 의료 수가를 높여주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장련성 기자

 

12일 오전 10시 인천 계양구 인천세종병원 6층 수술실에선 61세 중증 심장 질환 환자가 승모판(심장 판막) 치환·부정맥 수술을 받고 있었다. 집도를 맡은 심장혈관 흉부외과 박표원·김영환 과장이 환자 심장을 열고 인공판막을 고정하는 동안 의료진 4명이 수술을 도왔다. 다른 의료진 5명은 환자의 심장·폐 기능을 대신하는 ‘인공 심폐기’를 확인하면서 수술 도구 등을 수시로 전달했다. 온도를 16도로 맞춘 수술실에서 의료진 11명이 한 팀으로 움직이며 4시간 동안 수술을 진행했다. 같은 시각 옆 수술실에선 선천성 근이영양증으로 중증 심부전을 앓는 20세 환자의 좌심실 보조장치(인공 심장) 삽입술이 이뤄졌다.

 ▲그래픽=김현국

 

인천세종병원은 이런 심장 수술을 하루 2~4건씩 한다. 2017년 3월 326병상 규모로 문을 연 ‘2차 병원(중형 병원)’이지만, 심장 분야만큼은 서울 ‘빅5′로 불리는 대형 병원(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학병원이 넘기는 중증 환자도 있고, 심근경색 등 응급 환자도 많이 들어온다. 올해 2월까지 7년간 1340건의 심장 수술이 이곳에서 이뤄졌다.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은 “심장이식·인공심장 등 수술 건수 기준으론 서울·경기·인천 지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며 “수술 후 생존율은 100%”라고 말했다.

 

인천세종병원 같은 2차 병원은 전공의(인턴·레지던트)는 거의 없고, 전문의 위주로 운영한다. 인천세종병원은 전문의 90여 명이 간호사 등과 함께 하루 1600명 넘는 환자를 보고 있다. 중환자실 당직도 전문의 세 명이 돌아가면서 맡는다. 심장이식센터·뇌혈관센터·내과센터·외과센터·소아청소년센터 등 21개 전문센터를 두고 지역·필수 의료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병원 운영은 쉽지 않다. 현재 수가(건강보험이 병원에 주는 돈) 체계가 병원 규모가 클수록 많이 주는 구조여서 같은 진료를 해도 상급 종합병원보다 적은 돈을 받기 때문이다. 김 센터장은 “서울 대형 병원들은 이번 (전공의) 사태로 적자를 보게 됐다고 하지만 지역의 ‘작지만 강한’ 2차 병원 상당수는 만성적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대형 병원으로 인력이 빠져나가는 것도 고민이다. 전문의를 많이 채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업무 강도가 높다 보니 전공의가 ‘손발’ 역할을 해주는 서울 대형 병원으로 이직이 잦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우리 병원의 숙련된 의사와 간호사들이 수시로 빠져나가면서 ‘심장 사관학교’라는 말까지 듣는다”며 “필수 의료는 원 팀으로 호흡을 계속 맞추는 게 중요한데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이어 “지금도 경기·인천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대학병원 분원이 문을 열고 있는데, 2차 병원의 인력 이탈이 더 가속화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그간 정부 지원이 대형 병원에 집중되는 동안 2차 병원들은 소외된 면이 있다”면서 “의사 수를 늘리는 것보다 중요한 건 지역·필수 의료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의료진이 마음 놓고 환자를 볼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을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열심히 일하는 지역·필수 의료 전문의들을 제대로 대우해 사명감을 갖고 일하도록 해줘야 그 분위기가 전공의로도 이어지고, 지역·필수 의료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취지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전공의를 중심으로 한 의사 집단행동의 중단을 촉구와 현업 복귀 호소 발언을 하고 있다. 2024.3.12 /연합뉴스

 

정부는 이날 2차 병원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중소·전문 병원을 키워 ‘빅5′에 의존하는 기존 의료 체계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에서 “지역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지역 의료에 투자를 확대하고, 필수 의료를 유지하기 위한 정당하고 합당한 보상 체계도 만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현재도 상급 종합병원 수준으로 전문성을 갖고 중증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강소 전문 병원들이 있다”며 “정부는 병원 규모가 아니라 실력에 따라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전문성 갖춘 강소 전문 병원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현재 상급 종합병원들이 전공의 이탈로 수술·입원을 절반으로 줄였지만, 그 공백을 2차 병원들이 메워주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경증 환자도 상급 병원에 몰리는 기형적 의료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선 중형·전문 병원을 키워야 한다”며 “빅5 병원은 전공의 비중이 전체 의사의 약 40%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데, 중형·전문 병원을 키우면 전공의 이탈로 의료 현장이 마비되는 사태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병원 규모에 따른 현재 수가 체계를 실제 각 병원의 실적 등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시스템으로 바꿔나갈 것으로 보인다.

 

한 총리는 전날엔 뇌혈관 질환 전문 병원인 서울 명지성모병원을 찾아 “규모가 작은 전문 병원도 실력이 있으면 상급 종합병원만큼 수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보건복지부는 전문 병원이 수준 높은 진료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 방안을 검토하라”며 “문화체육관광부는 대국민 홍보를, 소방청은 일선 구급요원과 119 구급상황실 등에 뛰어난 진료 실적을 보인 전문·강소 병원에 대한 정보 공유와 교육을 확실히 하라”고 했다. 한 총리는 “필수 의료와 지역 의료가 붕괴해 전 국민이 이른바 ‘빅5′ 병원에 가는 모순을 해소하고, 국민 누구나 ‘우리 동네 빅5′를 믿고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안준용 기자

 

03-13 “의대 교수까지 목숨 갖고 장난치나” 정당한 환자 분노

전공의들의 집단적 진료 거부 사태가 4주 차에 접어들면서 환자와 국민의 피로도가 점차 높아진다. 이런 와중에 이들의 복귀를 설득해야 할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을 위협하고 나섰다. 환자 생명과 국민 건강을 돌봐야 할 의사의 직업윤리도, 제자를 바른길로 인도해야 할 스승의 도리도 저버리는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는 행태다.

전국 19개 의대의 교수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들이 12일 심야에 모여 15일까지 사직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전공의 복귀를 더 어렵게 해 사태를 최악으로 내모는 반윤리적·반교육적 작태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이 소식을 접한 환자와 가족들은 “환자는 어떻게 하라는 거냐” “의사들이 환자 목숨 가지고 장난치면 어떻게 하나” 등의 절규를 쏟아낸다. 지난 11일에는 한국중증질환연합회가 서울대병원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수련의 단체와 교수 단체의 집단 의료 거부 상황은 어떠한 정당성도 없는 범죄 행위에 불과하다”면서 ‘이탈 전공의’ 명단 공개도 요구했다. 대다수 국민이 공감하는 정당한 분노다.

종교계 지도자들도 12일 윤석열 대통령과 만나 “의료개혁이 전 국민적 지지를 받는 상황에서 물러서선 안 된다”는 등의 입장을 전달했다고 한다. 정부는 불법적으로 현장을 이탈한 의료진에 대한 설득을 계속해야겠지만, 업무복귀 명령과 면허정지 처분 등 법과 원칙에 따른 대응도 주저해선 안 된다. 수가 인상 등을 통해 2차 의료기관에 대한 지원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중견·중소 병원들의 역할 확대는 의료 정상화의 길이기도 하다. 전공의 사태를 의료개혁 동력으로 삼기 위해 국민적 역량을 모을 때다.

문화일보 사설

 
 

03-13 의대 증원은 의료개혁 필요조건일 뿐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체계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2025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을 2000명 증원하는 정부의 조치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집단 근무지 이탈이 3주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여러 병원에서 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 정부는 오는 25일부터 병원으로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에 대해 행정처분을 할 방침이라고 밝힌 상태다. 그 결과 의료체계의 혼란 가중과 그로 인한 의료대란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필수·지역 의료체계가 크게 약해져 곧 붕괴할 수 있다는 위험성에 정부와 의료계 사이에 공감대가 있는 만큼 일반 국민은 실력 행사와 처벌이 아닌 협상과 타협을 통해 해법을 찾기를 바란다.


필수의료는 응급·외상·심뇌혈관 등과 같은 생명과 직결되거나 산모·어린이·장애인 등 의료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 감염병·공중보건 위기대응 등 사회에 꼭 필요한 의료 활동을 말한다.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정부가 반드시 책임지고 확보해야 하는 공공 서비스다. 또한, 모든 국민이 전국 어디서나 의료 서비스를 고르게 받을 수 있도록 지역 의료체계를 구축하는 일도 정부의 책임이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체계를 통해 소득에 따라 보험료를 부과하고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 일정한 비율로 의료비를 지원하는 공적 의료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환자가 부담하는 의료비 상당 부분이 국민이 납부한 건강보험료로 충당된다.

따라서 의료 서비스를 직접 공급하는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의 공적 역할과 책임은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매우 크다. 우리의 의료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공공재이며, 이를 제공하는 의사들은 본질적인 의료 책무와 더불어 공적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필수·지역 의료체계 확보에 필요한 의료개혁에 대해 전공의들이 실력 행사로 반대하는 것은 올바른 선택이 아니다.

오히려 의료계와 정부는 필수·지역 의료라는 공공재를 확보하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추계에 따르면, 의료 인력 공급이 현 수준에서 유지된다면 2035년에 2만7200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의대 정원 확대가 필수·지역 의료체계의 붕괴를 막고 국민의 의료 수요에 대해 적절한 공급을 보장하는 충분조건이라고 할 순 없다. 수가체계 개선, 의료사고 보상 강화, 전문의 교육비 부담 완화와 같은 제도적 개선책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의료계가 적극적으로 입장을 개진하고 관철을 위해 싸워야 할 내용이 바로 이 부분이다.

이와 함께 의료체계 내에서 역할 분담도 효과적으로 재조정해야 한다. 의료 전달체계를 더욱 확실하게 구축하고 집행해 종합병원으로 환자가 집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과거의 사회적 환경에서 맞춰 정착된 의사와 간호사의 역할 분담도 재검토해 간호사가 행하는 최소한의 의료행위를 합법화해 의료 인력 부족을 메우는 방안도 논의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저출생·초고령화 시대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고정관념과 기득권에 집착해서는 지속 가능한 사회 발전을 도모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의료개혁에 의료계가 앞장설 것을 촉구한다.

문화일보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03-13 ‘증원’ 하자 지방변호사 늘었다… 의사도 ‘낙수효과’ 기대

▲빼곡한 전공의 업무개시 명령서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 집단행동이 4주째 이어지는 가운데 13일 오전 대구의 한 대학병원 인턴 숙소 앞 복도에 보건복지부 장관 명의의 업무개시 명령서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 ‘의대증원 모델’인 10년간 변호사수 변화 분석해보니

변호사 2배·지방등록도 2배↑
지방서도 양질의 법률서비스
한총리 “정부 증원근거 명확”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 등으로 지난 10년간 변호사 숫자가 2배가량 증가하면서 지방 변호사도 2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지역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체 의사 수를 늘린다면 법률 시장과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13일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기준 전국 등록변호사는 3만4697명으로 10년 전인 2014년 1월 말 1만6620명에 비해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서울 등록 변호사 수는 1만2376명에서 2만6251명, 지방 등록 변호사는 4244명에서 8446명으로 각각 2배 정도로 늘어 ‘낙수효과’가 일어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변호사 수는 2012년 로스쿨 출신 1451명을 배출한 이후 꾸준히 증가세를 보였다. 2019년 1691명, 2020년 1768명, 2021년 1706명, 2022년 1712명의 신규 변호사가 배출됐다.

 

 

 변호사 시장은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대 증원의 모델로 자주 언급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1977년 이래 의대 정원이 1380명에서 3058명으로 겨우 2.2배로 증원됐는데, 같은 기간 연간 변호사 수는 58명에서 1725명으로 30배가 늘어났다”며 “우리 국민은 전국 어디서나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받고 있는데, 의료 서비스는 오히려 후퇴했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주재한 중대본 회의에서 의대 증원 규모 2000명에 대해 “정부의 결정 근거는 명확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일부 의료계의 반발에 밀려 의료개혁을 통한 의료체계 정상화를 하지 않는 것은 쉬운 선택이고, 계획대로 추진하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선택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 용어설명

◇낙수효과 = 정부가 투자를 늘리면 고소득층의 소득이 먼저 늘어나고 저소득층의 소득이 함께 증가한다는 경제학 용어로, 전체 숫자가 많아지면 소외된 분야의 숫자도 늘어난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문화일보 이현웅김유진

 
 

03-13 ‘건폭’ 몰아낸다 했는데, 건설노조 불법 다시 기승

 
 

건설 현장 곳곳에서 노조의 불법 행위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건폭(건설 현장 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특별단속을 벌인 뒤 주춤했던 노조의 채용 강요, 공사 방해, 금품 요구 등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건설노조의 압박이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져 가뜩이나 치솟고 있는 공사비를 부채질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수십 년간 불법 관행으로 행해졌던 타워크레인 기사의 월례비는 최근 초과근무 수당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부활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일부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한 달에 10시간 초과근무를 하고도 5, 6배 더 일한 것처럼 해 수백만 원의 수당을 받아가는 식이다. 지난해 3월부터 급여 이외의 금품을 받은 타워크레인 기사에 대해 최대 1년간 면허 정지 처분이 가능해지자 이런 편법이 등장했다.

건설노조의 시위나 집단 민원에 치여 조합원을 울며 겨자 먹기로 채용하는 사례도 여전하다. 비노조 레미콘 기사를 고용했던 경기 지역의 한 현장은 주변을 마비시키는 차량 시위에 시달리다 노조 소속 기사 15명을 다시 뽑았다고 한다. 하도급업체들은 마지못해 고용한 노조원의 일당이 통상 비노조원보다 20% 이상 비싸다며 원자재값과 더불어 공사비 상승에 영향을 준다고 하소연한다.

 

이런데도 건설노조의 불법 행위를 막기 위한 법안들은 10개월 가까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노조의 채용 강요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금품 수수를 처벌하는 법안은 국회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안 됐다. 건설 현장의 불법 행위를 전문적으로 수사·감독할 수 있는 국토교통부 산하 특별사법경찰 신설 법안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경찰이 지난해 건폭을 몰아내겠다며 특별단속 기간에만 힘을 쏟다가 사실상 손을 놓은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노조의 불법 행위는 건설업체의 피해를 넘어 공사비 상승, 공사 지연, 부실 시공 등으로 이어져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철저한 단속과 엄중한 처벌이 일시적이 아니라 일관되게 이뤄져야 건설 현장의 법치를 바로 세우고 건설 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동아일보 사설

 

03.14 휴일에 대형 마트 영업하니 시장도 활성화

▲알리익스프레스 홈페이지에 개설된 'CJ제일제당 공식 스토어' 화면./알리익스프레스 제공

 

서울 동대문구가 재래시장, 유통 업계와 상생 협약을 맺고 휴무일 변경에 합의해 대형 마트 일요일 영업을 허용했더니 인근 재래시장 매출도 함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마트에 쇼핑하러 갔다가 인근 시장에 들러 장도 보고 근처 음식점에서 식사도 하는 등 유동 인구가 늘었다. 전체 상권 활성화에 긍정적 효과가 있는 것이다. 작년 2월 대구시가 전국 최초로 대형 마트 휴업일을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바꾼 이후 6개월간 인근 소매업 매출이 20% 가까이 늘어났다고 한다. 서로 좋아지는 효과가 확인되자 청주시와 서울 서초구·동대문구, 부산광역시 등도 대형 마트 의무 휴업을 일요일에서 평일로 속속 전환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재래시장 살리기를 위한 법 규제가 도입되면서 대형 마트는 매달 공휴일 이틀 문을 닫도록 의무화했다. 하지만 법 시행 10년이 넘도록 재래시장은 살아나지 않았다. 오히려 소비자 불편만 커지고 온라인 유통 업체에 유리한 환경이 되면서 대형 마트와 재래시장의 동반 하락을 앞당겼다. 현재 온라인 유통 업체는 24시간 무제한 배송을 허용하는 반면, 대형 마트는 월 2회 의무 휴업일이나 영업 제한 시간(밤 12시~오전 10시)에는 매장 제품을 온라인으로 배송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재래시장 보호를 위해 만든 규제로 정작 혜택 본 것은 시장 상인이 아닌 온라인 유통 업체다. 국내 1위 유통 업체가 오프라인 유통 기업에서 온라인 유통 기업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알리, 테무 같은 중국 온라인 유통 업체들도 국내에 공격적으로 진출하면서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알리는 최근 국내 식품 대기업도 속속 입점시키고 딸기, 토마토 등 신선 식품까지 판매하고 있다.

 

온·오프라인 유통 경계도, 국내외 유통 경계도 없어지는 판에 대형 마트만 규제하는 유통산업발전법은 실효성부터 의문스럽다. 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민주당이 대기업만 유리하다는 논리로 반대해 국회에서 자동 폐기될 처지다. 정치권이 ‘재래시장 대 대형 마트’라는 시대착오적 논리에 사로잡힌 사이에 재래시장을 포함한 국내 유통 산업 전체가 경쟁력을 잃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3-15 사전 경고 묵살과 정책 실패가 키운 ‘金사과·배’ 파동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당의 ‘주적’은 야당이 아니라 물가가 될 것이라던 전망은 현실이 됐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경고가 쏟아졌는데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다가 이제 와서 호들갑을 떤다는 사실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4일 부산 구포시장의 과일 가게를 찾아 “물가가 너무 올라 죄송스럽다. 물가를 잡고 잘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민생물가는 총선 판세를 흔들 지경이 됐다.

이날 국내 사과 도매가격은 10kg에 9만 원, 배는 15kg에 10만 원을 넘겼다. 전년 대비 각각 123.4%, 134.0% 올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는 ‘관측보’를 통해 지난해 사과·배 작황 부진을 예고한 바 있다. 5월호에는 ‘사과 개화 시기가 평년보다 5일 빨랐으나 꽃이 핀 직후 기온이 갑자기 크게 떨어져 개화 상태가 불량하다’고 분석했다. 6월호에는 ‘저온과 서리 피해로 결실이 불량하고, 밀식 과원 고사율이 증가하고 있다’며 ‘사과 착과수가 전년 대비 16% 감소했다’고 경고했다. 배에 대해서도 ‘저온으로 착과수가 19% 줄었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당시 원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 동향에 집착해 이런 경보음을 묵살했다. 지난해 추석과 올해 설에 과일 값이 급등하자 공급량 확대 대신 납품 단가 인하와 할인 지원에 나섰다. 예산 519억 원 중 납품 단가 인하에 289억 원, 소비자 할인 지원에 230억 원이 나갔다. 이것이 과일 구매 수요를 더 늘리는 부작용을 불렀다. 뒷북 대응과 정책 실패가 ‘금(金)사과·배’ 파동을 더 키운 셈이다.

지난주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햇과일이 나오는 7월 말까지 사과·배 가격의 강세는 불가피하다”며 “일본산 사과 수입도 검역 문제로 당장은 어렵다”고 말했다. 사실상 대책이 없다는 이야기다. 민심이 악화하자 장·차관들이 농산물시장을 찾아 물가 쇼를 펼친다. 진솔한 대국민 사과부터 한 뒤 국민이 믿을 만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3.15 ‘벚꽃 엔딩’ 농담 아니었다…1년에 한 곳씩 지방대 폐교

2000년 이후 21번째 폐교-태백 강원관광대

또 한 곳의 대학이 문을 닫았다. 이번엔 강원도 태백의 강원관광대(옛 태성전문대)다. 1995년 개교한 사립 전문대인 이 학교는 지난달 말로 29년 역사의 마침표를 찍었다. 2000년 이후 대학 폐교는 전국에서 21번째, 강원도에선 동해시 한중대에 이어 두 번째다.

 

남은 학생의 대부분은 태백에서 자동차로 2시간가량 떨어진 충북 음성의 사립 전문대인 강동대로 편입했다. 태백 지역 사회에선 ‘먹튀’라는 말까지 꺼내며 강하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일부 시민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폐교 인가 취소 소송 등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YS 정부 때 개교한 사립 전문대
한때 학생 2500명 넘기며 활기

재단 비리, 교직원 파업에 휘청
마지막 남았던 간호학과도 폐지

“땅도 기부하고 장학금도 줬는데”
비대위 출범 등 지역 반발 커져

 

학생 사라지자 주변 상권도 썰렁

 ▲지난달 27일 강원도 태백의 강원관광대 교문 앞에서 바라본 풍경. 주정완 기자

 

지난달 27일 오후 태백 황지동의 강원관광대 캠퍼스를 찾아갔다. 교문 앞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텅 빈 운동장에는 눈만 쌓여 있었다. 다른 학교 같으면 봄학기 개강을 앞둔 시점이지만 모든 학생이 떠나간 캠퍼스는 썰렁하기만 했다. 빨갛게 녹슬어 가는 교내 안내판은 폐교의 차가운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골프산업과와 실용음악과 등이 있던 산학관 입구는 단단한 쇠사슬로 묶여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다. 카지노과·호텔관광과 등 특성화 학과가 있던 관광관 건물도 굳게 잠겨 있었다. 한때 신입생 입학 원서를 받던 웅비관 건물로 발길을 옮겼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졸업 가운과 학사모가 놓인 탁자가 눈에 띄었다. 그 옆에는 ‘2024년 학위수여식 포토존 운영 안내’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졸업생들이 각자 알아서 기념사진을 찍고 가라며 임시로 설치한 사진 촬영 구역이었다.

 

학생이 사라진 대학 주변 상권은 활기를 잃었다. 대학길로 불리는 교문 앞 거리엔 문을 닫은 식당과 카페 등이 수두룩했다. 어쩌다 영업하는 곳이 있어도 손님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한중대 캠퍼스 ‘공포 체험장’ 전락

 ▲폐교한 강원관광대 운동장과 지성관(본관) 건물 모습. 주정완 기자

 

같은 날 오후 동해시 지흥동의 한중대 캠퍼스도 둘러봤다. 6년 전 강원도 폐교 1호였던 대학이다. 여러 차례 매각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무산되고 아직도 새 주인을 찾지 못했다. 그사이 대부분 시설은 폐허로 방치됐다. 일부 개인 유튜버들은 흉물이 된 건물 안을 돌아다니며 공포 체험 영상을 찍기도 했다. 폐교 이후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한 대학 캠퍼스가 어떤 모습으로 전락하는지 보여줬다.

 

 ▲졸업생 기념사진을 위한 포토존. 주정완 기자

 

현재 본관 건물 입구는 두꺼운 합판을 여러 장 덮어 사람의 출입을 막았다. 그 앞에는 고장 난 트럭 한 대가 욕설이 적힌 낙서와 함께 버려져 있었다. 문이 열린 작은 건물을 들여다봤더니 안쪽 벽에는 곰팡이가 가득 피어 있었다. 캠퍼스 안에서 온전한 곳은 동해시 창업보육센터로 쓰는 건물뿐이었다. 원래 대학 시설이었지만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하는 시설로 바꾼 덕분에 살아남았다.

 

“학생도, 학부모도 싫다고 한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한다는 ‘벚꽃 엔딩’의 속설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서울에서 거리가 먼 순서대로 신입생 모집이 어려워져 폐교 위기에 놓인다는 얘기다. 최근에는 한 해에 한 곳꼴로 문을 닫는 추세다. 2020년 부산 해운대구의 동부산대, 2021년 전북 군산의 서해대, 2022년 전남 광양의 한려대에 이어 지난해엔 경남 진주의 한국국제대가 폐교했다.

 

강원관광대도 처음부터 부실 대학이었던 건 아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개교하고 2년 뒤 입학 정원이 1280명까지 늘었다. 한때 재학생 2500여 명으로 태백 지역 인구 유지와 경제 살리기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교비 횡령이란 학교법인(분진학원) 비리가 발목을 잡았다. 2002년부터 8년간 교육부가 파견한 임시이사(관선이사)가 학교를 맡았다. 2010년에는 기존 법인 임원이 복귀하고 이사장 부인인 원재희 총장이 취임했다. 당시 원 총장은 태백시민 토론회에서 “법원 판결에서 ‘교비를 법인비로 전환한 것이 횡령’이라고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단 한 푼도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019년에는 교직원 노동조합의 장기 파업 등으로 극심한 학내 갈등을 겪었다. 당시 노조는 ▶‘유령 학생’ 등 재학생 충원율 조작 ▶보복성 인사 조처 등으로 학교 운영이 위기를 맞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재학생 충원율을 조작해 정부 지원금을 받은 혐의로 원 총장을 기소했다. 이후 법원은 “피고인이 구체적 지시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는 사이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은 커졌다. 2020년에는 간호학과만 남기고 호텔관광과 등 여섯 개 학과를 모두 없애기로 결정했다. 2022년에는 정부의 재정지원 제한 대학으로 꼽히면서 학생들에 대한 국가장학금 지원과 학자금 대출이 끊겼다. 지난해 9월에는 올해 신입생 모집을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1월 16일 강원관광대 폐교에 대한 공청회에서 원 총장은 “학생도, 학부모도 싫다고 한다. 지역 여건이 나빠서, 태백이라는 게 싫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교육부는 지난달 6일 이 학교의 자진 폐교를 인가했다.

 

“공청회는 요식행위, 시민 염원 배신”

학교 근처에서 송대섭 강원관광대 살리기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났다. 송 위원장은 태백에서 30년가량 시민단체 활동을 하며 강원관광대의 개교에서 폐교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과거 강원관광대 창업보육센터에서 특허 출원 지원 등 창업 컨설턴트로 활동한 적도 있다. 만학도로서 이 학교 골프산업과를 다니기도 했다. 다음은 송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비대위가 ‘먹튀’라고 주장한 근거는 뭔가.

“1994년 대학 설립 인가를 받을 때부터 태백 시민들은 한마음으로 학교가 잘되기를 응원했는데 배신 당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지역 유지는 당시 16만5290㎡(약 5만 평)의 땅을 기부하며 학교 설립을 도왔다. 태백시와 강원도가 학생 장학금 등으로 지원한 금액도 88억원이 넘는다. 학교가 살아야 지역이 산다는 애향심에서 만학도로 학교에 등록했던 시민들도 적지 않다. 학생 충원율 지표를 맞추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시민들에게 최소한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폐교를 결정했다.”

 

▶폐교에 앞서 공청회를 열지 않았나.

“지난 1월 12일 금요일 학교 측이 공문을 돌리고 나흘 뒤 화요일(지난 1월 16일) 오전에 공청회를 열었다. 생업이 있는 시민 대부분은 평일 오전에 참석이 어렵다. 현장에 가보니 학교 관계자와 취재진을 제외한 일반 시민은 거의 없었다. 나중에 교육부 보도자료를 보니 학교 측은 공청회 나흘 전에 이미 교육부에 폐교 인가를 신청했다. 공청회는 요식행위였을 뿐이다.”

 

▶폐교 말고 학교를 살리는 대안이 있었을까.

“학교를 매각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강릉영동대는 조건이 맞으면 학교를 인수하려고 했는데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과거 강원랜드가 학교 인수를 추진한 적도 있다. 2003년 태백지역 현안대책위원회와 강원랜드의 합의사항 중 여섯째 항목이 강원관광대 인수였다. 하지만 학교 측에서 매각 가격을 높게 부르는 바람에 무산된 것으로 안다. 이제는 지역 사회가 학교 공간을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강원랜드의 지원을 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문 닫아야 할 대학 절반도 안 닫았다”

▲양정호

벚꽃 피는 순서와 대학 폐교 위기의 상관 관계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연구도 있다. 양정호(사진)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가 지난해 9월 발표한 보고서(‘지역 인재육성과 경제활성화를 위한 지방대학 발전방안’)다. 양 교수는 “2040년에는 지방대 절반 이상이 사라질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양 교수와의 일문일답.

 

▶지금까지 21개 대학이 폐교했다.
“21개가 많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여태까지 문 닫은 대학이 왜 21개밖에 안 되나, 그걸 고민해야 한다. 내가 보기에 벌써 50개 정도는 문을 닫았어야 한다. 다른 50개 대학도 간당간당하다. 현재 정원을 그대로 가져가면서 신입생을 채운다는 건 불가능하다. 출생아 수 통계만 봐도 간단하게 알 수 있다. 학생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나.”
 
▶대학의 ‘벚꽃 엔딩’은 어떻게 분석했나.
“서울 광화문을 기점으로 각 대학까지 거리를 일일이 계산했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입시 경쟁률이나 신입생 충원율, 졸업생 취업률 등이 떨어지는 상관 관계가 분명히 나타났다. 그동안 말은 많았지만 이런 식으로 검증한 건 처음일 것이다. 다만 예외도 있었다. 부산의 한국해양대와 전남의 목포해양대가 대표적이다. 대학 특성화의 좋은 사례다.”
 
▶지방대학을 살릴 방법은 없을까.
“한계대학은 빨리 문을 닫게 해야 한다. 늦으면 늦을수록 사회적 비용이 더 커진다. 정부가 학교에 직접 돈을 주지 않아도 학생에 대한 국가장학금 등으로 돈이 들어간다. 이런 학교가 끝까지 버티지 않도록 출구를 열어줘야 한다. 살아남고 싶은 대학은 특성화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지방 학교끼리 뭉치는 건 잘못하면 같이 망하는 길일 수도 있다. 학생들이 원하는 게 뭔지 제대로 파악하고, 필요하면 서울의 대학과 연계해야 한다.”
중앙일보 주정완 논설위원

 

03.15 정부 "이탈 전공의 10여명, 타병원 중복 근무…고용 개원의도 처벌"

▲전병왕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통제관(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이 지난 11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관련 중대본 회의 내용 등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15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정례 브리핑에서 “명령이 유효하므로 모든 전공의는 진료를 유지할 의무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전 실장은 “전공의 수련계약은 ‘기간의 정함이 있는 계약’이므로 계약관계에 따르더라도 전공의의 사직은 제한될 수 있다”며 “전공의는 전문의 수련규정에 따라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고 수련병원 외의 다른 의료기관에 근무하거나 겸직 근무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의료계에서는 민법 660조를 근거로 한 달이면 사직서 효력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지만, 정부는 사직서가 수리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민법 제660조는 “‘고용기간의 약정이 없는 때’에는 당사자는 언제든지 계약해지의 통고를 할 수 있다. 상대방이 해지의 통고를 받은 날로부터 1월이 경과하면 해지의 효력이 생긴다”고 명시하고 있다.

 

전 실장은 “의료기관 관계자분들께서는 기존의 유효한 행정명령 등을 검토하지 않고, 전공의의 일방적 주장에 따른 사직 처리가 되지 않도록 유의하시길 바란다”며 각 의료기관에 해당 사안을 재공지하겠다고 밝혔다.

또 사직 처리가 안 된 전공의는 ‘전문의 수련규정’에 따라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고, 수련병원 외 다른 의료기관에 근무하거나 겸직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전 실장은 “현재 10명 이내의 전공의가 다른 의료기관에 중복으로 인력신고된 사례가 파악됐다”며 “수련중인 전공의가 의료기관을 개설하거나 다른 병원에 겸직근무하는 경우, 수련규칙에 따라 수련병원장으로부터 징계를 받을 수 있으며, 타인 명의로 처방전이나 진료기록부를 작성할 경우 의료법에 따라 처벌될 뿐만 아니라 전공의를 고용한 개원의도 형법에 따라 처벌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전 실장은 오늘부터 응급실 과밀화를 방지하기 위해 ‘경증환자 분산 지원사업’을 시행한다”며 “전국 43개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경증·비응급환자를 인근 의료기관으로 안내하는 경우 정책지원금을 지급한다. 이 부분에는 예비비 67억5000만원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각 병원의 진료협력센터 인력의 인건비를 지원한다. 신규채용 시 월 400만원 한도 내 실비를 지원하고, 기존 인력에 대해서는 1인당 최대 200만원을 지원한다. 상급종합병원에서 입원, 수술·처치, 방사선치료 등 예약 환자를 치료 가능한 진료협력병원으로 연계하는 경우, 회송병원 수가를 100%에서 150% 인상하고 상급종합병원과 진료협력병원에 정책지원금을 제공한다.

 

전 실장은 “정책 시행을 위해 전날 상급종합병원 및 진료협력병원을 대상으로 회의를 진행했다”며 “오늘 중 지침을 안내하고, 다음주부터 본격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의대 교수들에게 전 실장은 “환자의 호소에 귀기울여 주시고 환자와 그 가족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주시기 바란다”며 “제자를 위해 환자를 포기한다는 것은 의사로서의 소명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전공의들을 의료 현장으로 돌아오도록 설득하는 것”이라며 “환자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전공의들이 더 나은 여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의료 개혁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 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03.16 건대 충주병원, 대형병원 중 처음으로 “정상 진료” 선언

전공의 13명 중 12명 사직 의사
공백 메우려고 전문의 더 뽑고
7명이 응급실 24시간 교대 근무

 ▲지난 14일 전국 대형 병원 중 처음으로 환자들을 위한 ‘정상 진료’를 선언한 건국대 충주병원. 15일 오전 외래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강우석 기자

 

건국대 충주병원이 전국 대형 병원 중 처음으로 환자들을 위한 ‘정상 진료’를 선언했다. 이 병원은 전공의 13명 중 12명이 사직 의사를 밝혔다. 전공의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이번 달부터 응급 의학 전문의 2명을 영입했고, 전문의 7명이 24시간 교대로 응급실을 지키고 있다.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는 한 달째로 접어들고 있고, 의대 교수들도 줄줄이 사의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건국대 충주병원에서는 사직서를 낸 교수·전문의가 없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전공의가 적은 지역 대형 병원이 지역 의료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건국대 충주병원은 “진료 공백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는 시기에 우리 병원은 전문의를 충원하는 등 충북·충주 시민 의료를 책임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지역 대학병원으로서 정상 진료와 수술은 물론 환자가 입원할 수 있는 병상 등 진료 공백을 메울 충분한 여력이 있다”고 했다. 이 병원은 인턴 11명이 모두 지난달 임용을 거부했고, 레지던트 2명 중 1명만 근무 중이다. 이 병원 의사 62명 중 전문의 49명은 모두 현장을 지키고 있다.

 

15일 오전 찾은 건국대 충주병원 응급의료센터 입구 앞에는 ‘365일 24시간 전문의 상주, 대기 시간 없는 응급 환자 신속치료’라고 적힌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병원 입구엔 응급의료센터에서 새로 근무하게 된 두 전문의를 환영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신장 투석을 위해 내과를 찾은 80대 A씨는 “일주일에 3번씩 병원에 다니고 있지만 치료가 취소되거나 지연된 적은 없었다”며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걸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전공의 파업 전후 달라진 점을 못 느끼고 있다”고 했다. 췌장에 이상이 있어 CT 촬영을 한 뒤 병원에 검사 결과를 확인하러 왔다는 이모(72)씨는 “서울에서 진료를 받을까 고민하다가 집 근처인 이 병원에 왔는데, 진료나 검사가 한 번도 지연된 적 없이 예정된 날에 받고 있다”며 “의료 대란이 일어났다고는 하지만 이곳 병원은 큰 문제가 없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고 했다. 이모(25)씨는 “오늘 새벽부터 배가 찢어질 것처럼 심한 고통이 느껴져 응급실에 방문했는데, 대기나 진료 거부 없이 곧바로 들어왔다”며 “다행히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었고 병변이나 이상이 없다고 해서 퇴원하려고 한다”고 했다.

 

이날 병원에서 만난 신경외과 교수는 “인턴이나 레지던트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나머지 의료진이 추가 근무를 하며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며 “의료 대란이라고 하지만 현장에서 버티고 있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환자들이 체감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 병원 영상의학과 직원은 “애초에 전공의 수가 상대적으로 서울 병원보다 적기도 하고, 나머지 의료진들이 빈자리를 메우고 있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건국대 충주병원 관계자는 “우리 병원은 충북 중북부 지역의 유일한 대학병원”이라며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앞으로도 진료·병상 현황을 수시로 체크하며 환자를 관리할 것”이라고 했다. 건국대 충주병원 측은 전공의 사직 사태 장기화에 불안해하는 지역 주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병원의 의지가 담긴 입장문을 발표했다고 밝혔다. 전공의는 물론 전문의·교수까지 사의를 밝히는 병원이 많지만, 이 병원에선 사직서 제출을 거론하는 전문의·교수가 없다고 한다. 아내의 갑상선 초음파 촬영을 위해 병원을 찾은 이모(81)씨는 “전공의 파업 때문에 병원을 찾을 때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며 “하지만 병원이 의료 정상화를 선언하고 환자에 대한 의지를 보인다고 해서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문석우 원장은 “지역사회 의료 공백을 해소하고 응급 환자 진료를 활성화해 충주 시민뿐만 아니라 충북 중북부 지역 주민에게 진료받고 싶은 병원, 신뢰받을 수 있는 병원, 환자 중심 병원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전 의료진이 본연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건국대 충주병원은 이번 의사 집단 행동과 관계없이 전체 의료진이 정상 진료를 유지하겠다고 했다”며 “지역 주민의 생명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고, 환자 진료에 최선을 다하는 건국대 충주병원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조선일보  강우석 기자 신지인 기자

 

03-18 의료계 ‘위선적 카르텔’ 기로에 섰다

아파서 병원에 가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가운 입은 의사 선생님의 중요성을. 그의 한마디가 눈빛 하나가, 희망이고 두려움이고 천사인 줄을….

젊은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정책에 반기를 들고, 의사 선생님만 바라보는 환자들을 떠난 지 한 달이다. ‘2000’이란 숫자 마법에 걸려 있다. 의사라는 전문직들만의 세계라고 하지만, 그들만의 ‘집단사고’를 갇혀 있는 것 같다. 의료 행위는 그들의 방식대로 자율적으로 해야 한다는 점에는 100% 동의한다. 하지만 의대 정원 결정과 같은 대학정책에도 손대지 말라는 식의 사고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서울대 의대만 하더라도 윤리적이고 존경스러운 명의가 많고,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그들이 전국적인 진료 거부에 동참한다는 것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마저 망각한 위선 아닌가? 의사들만의 조직화 현상을 이해해야 한다. 의료 현장을 깊이 들여다보면 ‘교수-전공의-의대생’으로 이뤄진 군대와 같은 계서적(階序的) 조직이다. 병원별·전공별 단위로 포도송이같이 이뤄진 조직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의사들만 뭉칠 수 있는 철옹성이다. 전공의들은 그들 스승의 행동대원들이고, 휴학계를 낸 의대생들은 볼모인 수직적 조직이다.

선한 사람들이지만, 혹독한 근로 조건에서 일하면서 조직적으로는 느슨한 형태이나 외부의 위협에는 고슴도치 가시 같은 이중성이 있다. 이 조직이 역대 정권이 손들게 한 전문의사 카르텔이다.

정부에 의사 카르텔은 대체 불가능한 인적자원이다. 국민의 건강권을 지켜야 할 책무가 있는 국가지만 이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행정의 중요 요건 중 하나인 계속성은, 마치 전기가 1초라도 끊기지 않고 공급돼야 하듯이 적어도 필수의료는 잠시라도 중단돼선 안 된다. 정부가 지난달 29일부터 수차례 현장 복귀 시한을 번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의사 카르텔의 독점성 때문이다.

정부는 건강권을 보장해야 하는 법적 책무가 있다. 그런데 의사 카르텔은 세계인권선언 제25조에 명시된 건강권을 지키라고 국가가 준 면허를 가지고, 거꾸로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한다.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이 시작된다는 오는 25일은 위선자가 아니고, 카르텔이 아님을 입증할 마지막 기회다.

인구절벽은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젊은이들이 떠나서 아기 울음소리가 먼 전설이 돼 버린 지방 소멸의 원인 중 하나가 적절한 의료 서비스의 부재이다. 증원하는 의대 정원을 ‘지방 80 대 서울 20’으로 배정하는 것도 좋은 방향 설정이다.

다만, 정부도 반성해야 할 점이 있다. 30년 이상을 담는 국가인적자원계획(National Human Resource Plan)과 같은 장기 비전이 없다는 것이다. 국가 자원이라곤 인재(人材)밖에 없는 나라에서, 쏠림 현상이 대입·구직 시장에서 우수 인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그 결과 그 대열에 끼이지 못한 젊은이들은 낭떠러지로 내몰린다. 국가적으로 필수 분야의 인력에 관한 장기 비전 부족이 낳은 사회적 비용이다. 국가 차원의 교육과 직업보상 체제가 고쳐지지 않으면, 대학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국가인적자원위원회’를 설치해 사회 각 필수 분야에 적합한 사람들이 배출되고 활용되도록 총괄 작업을 해야 한다.

문화일보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03-18 “의대 교수 집단사직 부적절” 78%

 

■ 문화일보 ‘의대증원’ 여론조사

73%는 “의사들 집단행동에도
계획대로 의대 증원 추진해야”

정부, 20일 의대정원배정 발표

국민 10명 중 8명은 의대 증원에 반발한 의대 교수의 집단 사직이 부적절하다고 인식했고, 10명 중 7명은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지속돼도 정부가 의대 증원을 계획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봤다. 의대 2000명 증원 안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77%가 찬성했으며, 응답자 절반가량은 2000명 이상 대규모 의대 증원을 원했다. 다만 의사 집단행동에 대한 조치 방식에 대해선 ‘원칙 대응’과 ‘대화’가 팽팽하게 맞섰다.

18일 문화일보가 의사 집단행동 1개월째를 맞아 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5일부터 이틀간 전국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국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8%는 의대 교수 집단사직을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이중 ‘매우 부적절하다’란 응답은 50%에 달해 의사 본분을 저버린 집단행동에 대해 국민 반감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전공의 보호를 내세운 의대 교수들은 오는 25일부터 집단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결의한 상태다. 응답자 10명 중 8명 이상(84%)은 전공의 집단행동 역시 부적절하다고 봤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에도 불구하고 의대 증원은 예정대로 추진돼야 한다는 응답은 73%에 달했다. 이는 반대 의견(25%)보다 3배 가까이 많았다. 의사집단이 강하게 반발해도 의대 증원 등 의료 개혁을 완수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풀이된다. 응답자 10명 중 7명 이상(77%)은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는 정책을 찬성했다. 적정 증원 규모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 2명 중 1명(51%)은 2000명보다 더 늘려야 한다고 봤다. 의대 2000명 증원 안에 찬성하는 주된 이유로는 필수·지역의료 위기 해소를 꼽았다.

한편, 정부는 2025학년도부터 늘어날 의대 정원 배정안을 20일 발표하기로 최종 확정했다. 당초 이달 말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전공의에 이어 의대 교수들까지 집단행동 조짐을 보이고 있고 대학들의 조기 배정 요구가 많아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이다.
문화일보 권도경·손기은 기자

 
 

03-18  77% “의대 2000명 증원 찬성” … 필수·지역의료 위기에 공감대

 

■ ‘의대 증원’ 여론조사

반대 21%불과…3배이상 差
“2000명 이상 늘려야” 51%
“2000명 미만” 45%… ‘팽팽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찬성하는 국민 여론이 80%에 달해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에 따른 의료 현장 혼란이 1개월간 지속됐는데도 증원 지지 여론이 여전히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은 전공의 등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계속되더라도 의대 증원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응답해 앞으로도 정부 정책을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18일 문화일보가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5일부터 16일까지 진행한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의 찬반을 묻는 질문에 ‘찬성한다’가 전체의 77%(매우 찬성 41%, 찬성하는 편 36%)로 ‘반대한다’는 의견 21%(매우 반대 9%, 반대하는 편 12%)에 비해 크게 높았다. 조사에 따르면 의대 증원 방침에 대해 전 연령·성별에서 70% 이상이 찬성 의견을 나타냈다.

국민은 의사들의 반발이 지속되더라도 정책 추진이 계속돼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73%(매우 찬성 37%, 찬성하는 편 36%)로 반대 의견 25%(매우 반대 11%, 반대하는 편 14%)보다 크게 높았다. 이 같은 찬성 비율은 의료 수요가 높은 60대(78%)와 70대 이상(80%)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의대 증원 확대에 찬성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이유를 묻는 질문(1·2순위 복수응답)에 ‘응급실,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 기반 확충’(62%)과 ‘수도권-비수도권 간 의료이용 불균형’(60%)을 꼽은 이들이 가장 많았다.

정부가 의대 증원과 함께 내놓은 4대 의료개혁 과제 중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지에 대한 질문(1·2순위 복수응답)에 ‘필수 의료 분야 의료인력 확충’(70%)과 ‘국립대병원 등 각 지역 최상급병원 의료체계 강화 및 지역의료 육성’(68%)이 비슷하게 높은 비율을 보였다. 다만 의사의 처우개선 등을 내용으로 하는 ‘필수의료 수가 인상 등 보상체계 개편으로 정당한 보상’과 ‘의료사고특례법 등 의료사고 사법 부담 완화’ 등은 각각 34%와 22%로 답해 상대적으로 낮았다.

국민 대부분이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정책’에 찬성하고 있지만, 적절한 증원 규모를 묻는 세부 질문에는 ‘2000명 이상’ 51%, ‘2000명 미만’ 45% 등으로 갈린 것으로 나타났다. 적절한 의대 증원 규모와 관련해선 응답자의 26%가 ‘2000명’으로 답했다. ‘1000명 미만’(24%)과 ‘1000명∼2000명 미만’이 21%로 그 뒤를 이었다. ‘2000명∼3000명 미만’·‘3000명 이상’은 각각 13·12%였다.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


■ 어떻게 조사했나

이번 조사는 문화일보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5∼16일 양일간 전국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전화 면접조사로 실시했다. 대상은 성·연령·지역별 할당 후 유·무선전화 국번별 0000∼9999까지 랜덤 생성한 전화번호 중에서 추출했다. 6917명을 통화해 1000명이 응답을 완료했다. 2024년 2월 말 행정안전부 발표 주민등록인구 통계를 기준으로 성·연령·지역별 가중치를 부여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포인트다.

문화일보 정철순 기자

 
 

03.18 尹, 의사들 만나 “정부 믿고 대화 나와 달라, 의료질 저하 없을 것”

의대 증원 갈등 이후 첫 병원 방문
“역대 정부, 정치적 리스크에 엄두 못내”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을 방문해 의료진을 격려하고 있다.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은 18일 의료진들과 만나 “(의대 정원) 증원 수를 조정하지 않으면 대화에 응할 수 없다고 고수하지 마시고, 앞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후배들을 설득해 달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을 방문해 의료진 간담회를 열고 의대 정원 2000명 확대에 반대하는 의료계를 향해 “정부를 믿고 대화에 나와 달라”며 이같이 밝혔다.

 

윤 대통령이 직접 병원을 방문한 것은 정부가 지난 2월 의대 정원 확대 등 의료 개혁 정책을 발표한 이후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증원을 단계적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이뤄졌다면 좋겠지만 정치적 리스크 때문에 역대 정부들이 엄두를 내지 못해 너무 늦어버렸다”고 했다.

 

이어 “매번 이런 진통을 겪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며 “의사들께서 걱정하시는 것처럼 의료 질 저하는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또 “의료 개혁 완수를 위해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개선이 필요한지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의사와 간호사 여러분들께서 의견을 주셔야 한다”고 했다.

 

또 “필수 의료 분야 의료진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고 보람을 느끼며 일하고, 병원이 재정난을 겪지 않을 수 있도록 정부가 확실히 챙기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필수·중증 의료 분야를 위한 정책 지원 방안도 제시하면서 “지난해 한 차례 늘린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의 정책지원 수가를 앞으로는 더 상향해 초진은 물론 재진까지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현장에 배석한 참모진에게 “제대 후 전임의로 병원에 복귀 예정인 군의관들은 제대 전이라도 병원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방안을 즉시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필수 의료와 중증 진료 분야는 국가 안보와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며 “국가 안보를 위해 쓰는 재정을 아까워해서는 안 되듯이, 국민 생명을 위해서도 예산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급종합병원의 중증 환자 진료에 대해 확실한 보상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현장 방문은 의료계 집단행동 상황에서도 소아의료 현장을 묵묵히 지키는 의료진을 격려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김수경 대변인이 전했다.

 

윤 대통령은 참석한 의료진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한 명 한 명으로부터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의료진들은 “전공의 사직 등 비상 상황에서도 의료 공백 최소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필수 분야 의료인력 확충, 의료수가 현실화 등을 통해 필수 분야 의료진들이 마음 놓고 보람을 느끼며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윤 대통령의 이날 어린이병원 방문에는 서울아산병원 박승일 병원장, 이제환 진료부원장, 박수성 기획조정실장, 고태성 어린이병원장 등 의료진이 참석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 등도 함께했다.

조선일보 김동하 기자

 

03.18 공개 사과한 의대 교수 비대위원장 “겁나지만 사직서 내는 이유는…”

▲방재승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HJ비즈니스센터에서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 총회 집단 사직 여부 논의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전공의에 이어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의료 현장을 떠나겠다고 밝힌 가운데, 방재승 서울대의대 비상대책위원장이 방송을 통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환자와 전공의에게 “죄송하다”고 밝힌 방 위원장은 사직서 제출이 양측의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카드”라며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일”이라고 했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방 위원장은 1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발표한 대국민 사과문을 통해 “국민 여러분 의료 이용에 불편을 끼쳐 대단히 죄송하다. 아픈 몸을 이끌고 진료를 받으러 오셨는데 이번 사태로 인하여 진료에 차질이 빚어짐은 물론 불안한 마음으로 사태의 향방을 지켜보게 만든 것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전공의에도 사과드린다”며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게 한 것 저 역시 그러한 환경에서 배웠기에 문제의식을 제대로 가지지 못했고 인력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다라는 말로 넘어간 것, 특히 사직이라는 선택을 전공의들이 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소통을 해주지 못한 점에 대해 스승으로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또 “무엇보다 환자분들에게 사과드린다”며 “그간 의사들은 왜곡된 의료 환경에도 세계 제일이라 평가받는 한국 의료를 위해 우리 의사들이 희생한 부분만을 생각했지 환자들이 왜곡된 의료 환경에서 겪는 고충에 대해 소통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죄송하다”고 했다.

 

방 위원장은 이 같은 사과문을 준비한 것과 관련 “소통 없이 2000명이라는 인원 증가를 하는 데에 대해 의사들이 설득을 하면 국민이 들어주고 지지해줄 거로 알았는데 아니었다”며 “국민들이 큰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이어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고 답을 얻었다. 기형적인 의료 환경의 작은 희생자이자 어쩌면 방관자인 저희의 자기 연민으로 가장 큰 희생자인 국민의 아픔을 돌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방 위원장은 “교수 집단도 정말 잘못했다. 국민 없이는 저희 의사도 없다는 걸 잊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국민 여러분과 그간 미흡했던 소통을 하고자 한다. 여러분의 고충과 어떠한 부분을 개선해야 할지 듣겠다”고 했다.

 

방 위원장은 서울대 비대위가 중재안을 만들어 정부와 중재를 시도했으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비대위가 제안한 중재안은 정부와 의사협회 양측에 ‘의대 증원 2000명’과 ‘의대 증원 반대’ 의견만 고집하는 대신, 대화협의체를 통해 원점에서 재논의하자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전공의가 병원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게 서울대 비대위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방 위원장은 “교수 집단이 중재해서 정부하고 의협이 대화협의체를 구성한다고 했을 때 전공의들이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다는 걸 몰랐다”며 “그만큼 전공의들이 가슴에 상처가 많이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처음엔 기성세대 입장에서 ‘야, 너희 때보다 우리가 더 힘들었지’ 이렇게 생각을 했었다”며 “그런데 전공의들이 안 돌아오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 한국의료 미래의 필수 의료 인력의 비전이 안 보인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 결심과 관련해서는 “정부와 국민들은 ‘교수라는 집단이 그러면 전공의들을 가르치고 설득해서 다시 데리고 들어와야지 교수들 너네들까지 환자를 버리고 가면 어떻게 하냐’는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다”면서도 “자기의 인생 모든 걸 걸어서 온 교수직을 던지는 건데 오죽하면 그러겠는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태를 3월 안에 해결하지 못하고 4월로 넘어가면 의대생 유급부터 전공의 행정처분 명령 그리고 대형병원 줄도산 파산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의료는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며 “여기서 그냥 ‘나는 환자를 지키는 의사니까 병원을 떠나지 않겠다’ 하는 건 오히려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서 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방 위원장은 “정부에서 교수들에 대해서도 사법적 조치와 행정명령을 하겠다고 얘기했다. 겁 안 나는 교수가 어디 있겠는가. 나도 정말 겁난다”며 “이번 사태는 4월이 넘어가기 전에 해결을 해야 의료 파국을 막는데 아무도 양보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교수들이 쓸 수 있는 마지막 카드를 써서 진심을 보여준 거다. ‘제발 대화의 장을 좀 나오세요. 전공의 선생님들 돌아오세요’ 라는 일종의 호소”라고 덧붙였다.

 

앞서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5일 회의에서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이 25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하고 의료현장을 떠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비대위 회의에는 강원대·건국대·건양대·계명대·경상대·단국대·대구가톨릭대(서면 제출)·부산대·서울대·아주대·연세대·울산대·원광대·이화여대·인제대·전북대·제주대·충남대·충북대·한양대 등 20개 의과대학이 참여했다.

 

이와 관련 방 위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사직이 완료되기 전까지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환자 진료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도 “지금까지는 교수들을 포함한 병원 의료진의 희생과 헌신으로 대학병원이 버티고 있지만 이들로만 버티는 건 한계가 있다. 오래지 않아 대학병원이 무너지면 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 의료시스템이 장기간 지속되는 커다란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김자아 기자

 

03.19 정부·의사들 접촉 시작, 이렇게 실마리 풀어가야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을 방문해 병원 관계자들의 설명을 청취하고 있다./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아산병원 어린이 병원을 방문해 의료진과 간담회를 갖고 의대 정원 2000명 확대에 반대하는 의료계를 향해 “정부를 믿고 대화에 나와 달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의대) 증원 수를 조정하지 않으면 대화에 응할 수 없다고 고수하지 말고, 앞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후배들을 설득해 달라”며 이렇게 말했다. 윤 대통령이 병원을 방문하기는 정부가 지난달 의대 정원 확대를 발표한 이후 처음이다. 정부와 의사들의 대화가 없는 사이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진료 공백이 발생했고, 의대 교수들마저 집단 사직하겠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의사들을 만나 감사를 표하고 대화를 요청한 일부터가 사태를 푸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의사들은 ‘2000명 증원’ 풀기를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걸고 있다. 하지만 국민 다수는 불안과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정부 측 방안에 동의한다. 의료계는 이를 주목해야 한다. 마침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도 이날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기조와 관련해 “그 의제에 대해서 저희는 열려 있다”고 말했다. 원론적 얘기라고는 해도 타협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대통령과 면담하면서 의료진은 필수 분야 인력 확충과 의료 수가 현실화 등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선 정부와 의료계 간 이견이 없다. 구체화 방안이 필요할 뿐이다. 의료계는 대표성을 가진 협상단을 만들어 정부와 조건 없는 대화에 나서고, 정부 역시 ‘성역‘을 설정하지 말고 모든 것을 논의한다는 자세로 문제를 풀어가기 바란다.

조선일보 사설

 

03-20 의대 증원 배분 발표…의료개혁 위해 국가 역량 모을 때다

정부가 20일 오후 전국 의대별 정원 배분을 발표함으로써 2000명 증원 정책은 중요한 고비를 넘어섰다. 전공의 이탈 사태가 한 달을 넘겼고, 다음 주에는 의대 교수들 사퇴가 예고됐으며, 3주 앞 총선에 따른 정치적 부담이 없지 않음에도, 대학입시 등 일정을 고려하면 더 늦출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의·정(醫政) 갈등은 당분간 악화하겠지만, 원칙 대응 기조가 흔들려선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19일 국무회의에서 “의료개혁은 국민의 명령이고,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끝까지 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에서도 충분한 의료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늘어나는 입학 정원 2000명 중 80%(1600명)가 비수도권에 배분되고, 수도권에는 20%(400명)만 배정된다. 지방 거점 국립대 9곳의 정원은 최대 200명까지 늘어나고 이들도 해당 지역 고교를 대상으로 ‘지역인재 선발전형’ 비율을 60%까지 높이겠다고 화답했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파국적 결과” 운운하며 반발한다. 이런 와중에 의협 새 회장을 뽑는 선거가 20∼22일 실시된다. 후보 5명 중 4명이 파업 불사를 외친다고 한다. 전공의와 의대 교수들 집단 행동에 이어 일반 병·의원이 실제 파업에 나설지는 불분명하다. 2차 진료 의료기관 활성화, 비응급 환자의 응급실 이용 감소 등 의료 전달 시스템의 정상화 조짐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여론이 싸늘하다. 지난 18일 문화일보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7%가 의대 증원 등 정부 입장을 지지했다.

의료계가 실력 행사로 의대 증원을 저지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나갔다. 의료 현장에 복귀한 뒤 의료개혁에 머리를 맞대는 게 옳다. 정부는 의료계 요구를 이미 많이 수용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의료계와 협의에 나서기로 약속했다. 수십 년 지체된 의료개혁을 위해 국가적 역량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문화일보 사설

 
 

03-20 적나라한 의료계 민낯과 도약의 기회

의대 정원 2000명 확충에 대한 반발이 수련전공의의 사직을 시작으로 의대생과 교수들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정원 규모의 결정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며, 원칙에 따라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연일 강공을 펴고 있다. 확정된 대학별 정원 발표로 중요한 위기가 올 것이 걱정되지만 그 속에 기회도 있다.


최근 미국 뉴스위크가 세계 10대 병원에 우리나라 병원 3곳을 포함했다. 세계 최상위권에 속한 전문 진료 분야 또한 여러 개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수련생에 불과한 전공의가 자리를 비우자 이들 최고의 병원 대다수가 경영 위기에 빠지고, 전공의 없이 환자를 지키던 교수들마저 지쳐 간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해외 대다수의 대형·상급·대학 병원은 중증·전문 병원 형태다. 분야별로 많은 전문의가 합심해서 최중증 희귀·난치 질환을 진료하고, 의학 연구에 매진하며, 후진 의사 양성에 노력한다. 외래진료는 최소한만 유지하며, 교수가 병동에서 직접 환자를 보살피고, 지역 2차 병원에 기술과 의료 인력을 지원한다. 일반적인 응급·외상은 물론 입원·수술·정밀검사가 필요한 대개의 질환은 지역의 2차 병원이 맡고,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과 가벼운 질환은 1차 의료기관인 동네 의원에서 포괄 1차 전문의(가정의학과)가 진료한다.

우리나라의 대형·상급·대학 병원은 입구부터가 다르다. 화려한 로비에 멋진 안내 직원, 복잡한 대기실을 가득 메운 환자들을 뚫고 오래 기다린 끝에 겨우 만난 진료 교수의 피곤한 모습은 불과 3분 설명조차 송구하다. 교수인 전문의는 외래환자 진료에 매달려 막상 중요한 입원환자는 전공의 없이 돌보기 어렵다. 각종 수술·시술은 전공의의 보조 없인 불가능하다. 주당 80시간 이상 일해야 하는 수련·전공의의 낮은 임금과 땀방울 없이 우리의 대형 수련병원은 유지될 수 없다. 이것이 전공의 사직 사태가 보여준 우리 의료의 민낯이다.

대학별 정원 배정은 정부로선 교육 행정상 한 단계의 종결을 의미한다. 정원 발표로 큰 산 하나를 겨우 넘은 정부의 다음 과제는, 전공의의 이탈로 ‘강제적’으로 이뤄진 대형 수련병원의 ‘정상적’ 체계가 지속되게 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대형 수련병원은 예정된 수술을 연기하고 입원환자를 줄였다. 하지만 결국은 의료 대란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불신과 의구심이 가득하다. 외래 비중을 줄이고, 중증 입원환자에 집중하며, 교수 정원을 늘려 연구와 교육에 몰두하고, 지역 병원의 인력과 기술 지원에 앞장서는 진정한 ‘권역 책임 의료기관’으로서 면모를 갖추도록 정부의 통 큰 지원이 절실하다.

떠났던 전공의가 다시 돌아올 명분은 2000명을 줄이는 숫자의 양보에 있지 않다. 전공의를 노동력으로 대하지 않는 정상적인 환경에서, 수익보다 국민의 건강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참다운 교육 수련병원이 전공의들의 진정한 바람임을 믿는다. 팬데믹 당시 공공병원에 대한 지원 약속이 결국 허언(虛言)이 된 전철을 밟지 말고, 수련병원들이 체질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계기가 되도록 정부가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 환자의 불안과 국민의 마음 졸임이 과연 대한민국 의료의 도약으로 승화할 것인가. 가장 중요한 순간이 다가온다.

문화일보 조승연 인천의료원장,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

 

03.20 의대 증원 서울 0·경인 361·지방 1639명...충북대 151명 최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3일 전북 전주시 전북대학교에서 총장, 교무처장, 의대 학장 등과 '의대 운영대학' 현장 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4.3.13/뉴스1

 

올해 치러지는 2025학년도 입시부터 전국 의과대학 입학 정원이 2000명 늘어난다. 전국 의대 40곳 입학 정원은 3058명에서 5058명으로 65% 증가한다.

 

교육부는 20일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고, 경기·인천 지역 대학에 361명(18%)을, 비수도권 대학엔 1639명(82%)을 신규 배정한다고 밝혔다. 서울 지역 의대엔 신규 정원을 배정하지 않았다.

▲그래픽=이동운

 

지역별 증원 인원은 경기·인천(5개교) 361명, 강원(4개교) 165명, 경북(1개교) 71명, 대구(4개교) 218명, 경남(1개교) 124명, 부산(4개교) 157명, 울산(1개교) 80명, 전북(2개교) 115명, 광주(2개교) 100명, 제주(1개교) 60명, 충남(2개교) 137명, 충북(2개교) 211명, 대전(3개교) 201명 등이다.

 

학교별로는 충북대가 가장 많은 인원(151명)을 배정받았다. 현재 49명 정원에서 200명으로 늘어난다. 경상국립대도 124명이 증원돼 입학 정원이 200명으로 늘었다. 경북대(90명 증원), 충남대(90명 증원), 부산대(75명 증원), 전남대(75명 증원), 전북대(58명 증원) 등 지방 국립대들도 큰 폭으로 증원돼 입학생 200명을 받는다. 서울대(135명), 연세대(110명) 등 서울 주요 의대보다 규모가 커지는 것이다. 정원 50명 미만 ‘미니 의대’ 정원도 큰 폭으로 늘었다. 가톨릭관동대는 51명이 추가 배정돼 정원이 100명으로 늘었고, 40명 규모인 단국대(천안)는 80명이 증원돼 정원 120명이 됐다.

 

현재 전국 의대 40곳 정원 3058명 중 수도권 정원은 13곳 1035명(33.8%)이고, 비수도권은 27곳 2023명(66.2%)이다. 이번 증원으로 비수도권 의대 정원은 전체 의대 정원(5058명)의 72.4%까지 높아진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의료격차 해소가 핵심 배정 기준이었다는 설명이다. 교육부는 “수도권 내에서도 서울과 경인 지역 간의 의대 정원 불균형과 의료여건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경인 지역에 신규 정원을 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교육부는 “학교별 신청자료 등을 토대로 각 대학의 현재 의학교육‧실습 여건과 향후 계획의 충실성, 그간 지역‧필수의료에 대한 기여도와 향후 기여 의지 등을 종합 검토했다”며 “학교별 신청 규모를 넘지 않는 선에서 증원분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조선일보  표태준 기자 윤상진 기자

 

◇연세의대 교수들 “여건 무시한 증원 배정안 반대...철회하라”

◇경남 유일 의대 경상국립대 정원 200명 확정...경남도 등 ‘환영’

◇전북지사·전북대총장 “의대 증원, 수도권 쏠림 완화될 것”

 
 

03.20 연봉 3억은 대한민국 상위 1%... 5000만원은 몇 등일까

2000만 직장인 월급통장 피라미드 봤더니
억대 연봉 받는 직장인 132만명 역대 최대
[왕개미연구소]

“코스트코 계산대에서 과일과 야채, 고기가 가득 담긴 쇼핑카트를 보고 너무 부러웠어요. 돈을 얼마나 벌어야 저렇게 맘껏 장을 볼 수 있을까요?” “요즘 일반인 짝짓기 프로그램을 보면 억대 연봉 출연자들이 정말 많네요. 파인다이닝에 수입차까지 씀씀이도 굉장히 커서 우리집만 이 모양인가 우울해요.” “인천공항에 갈 때마다 정말 나만 통장에 돈이 없다는 사실을 실감해요.”

 

직장인 삶의 만족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월급통장. 생활 물가가 다락같이 오르면서 ‘월급통장 피라미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월급통장 피라미드란, 대한민국 2000만 직장인 중에서 내 근로소득이 상위 몇 %에 속하는지 알려주는 등급표다. 인터넷에 떠도는 ‘카더라 통신’이 아니라 국세청 통계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신뢰도가 높다.

 

지금 내가 받는 연봉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상위 1% 직장인들은 얼마나 받고 있을까. 먼저 나의 정확한 위치부터 알아야 앞으로의 커리어 방향을 잡기에도 수월하다. 조선일보 [왕개미연구소]가 2000만 직장인의 연봉 현실에 대해 알아봤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억대 연봉자는 상위 7%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직장인 2053만명 중에서 상위 1%에 속하려면 연봉(총급여)으로 평균 3억3000만원은 받아야 한다. ‘성공한 직장인’이라고 부러움을 받는 억대 연봉 샐러리맨은 상위 7%에 속한다. 또 1년에 3200만원을 벌면 상위 50%로, 딱 중간이었다. 지난해 국세청에 신고된 2022년 직장인 근로소득 기준 ‘월급통장 피라미드’를 분석한 결과다.

 

피라미드의 최고 정점에 위치한 직장인 상위 0.1%는 1년에 평균 10억원을 벌고 있었다. 국세청 관계자는 “재벌 총수나 대기업 임원 등이 주로 직장인 상위 0.1% 계층에 속한다”면서 “몇 년 전만 해도 7억~8억원 정도였는데 연봉 인플레 여파로 지금은 0.1%가 되려면 10억은 벌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체 억대 연봉자 추이를 보면, 한국 사회의 임금 상승 기조는 뚜렷하다. 2017년만 해도 억대 연봉자는 전체 직장인 중에서 상위 4%에 해당돼 문턱이 꽤 높았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억대 연봉자가 늘어나면서 2022년엔 7%까지 내려갔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조만간 억대 연봉자라도 상위 10%에 명함조차 못 내밀지 모른다. 또 2022년 기준 억대 연봉을 받은 직장인은 132만명으로 역대 최대였다. 1년새 17% 넘게 증가했고, 5년 전(80만명)과 비교하면 52만명이 새로 억대 연봉자 대열에 진입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한유진

✅1억 연봉자, 실수령액은 月 650만원

국세청 통계를 토대로 만든 ‘월급통장 피라미드’는 직장인들의 세전 근로소득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따라서 억대 연봉이라고 해도 실제 통장에 찍히는 금액은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 고용보험에 근로소득세, 지방소득세 등 기본 공제 항목이 많기 때문이다(노조조합비, 사우회비, 협회비 등까지 포함하면 실수령액은 더 줄어든다).

 

국민연금은 매달 월급의 4.5%를 내야 하고, 건강보험 역시 월급의 3.545%가 원천징수된다. 장기요양보험료는 건강보험료의 12.95%다. 세전 소득에서 이것 저것 다 공제하면, 연봉 1억인 직장인의 실수령액은 월 652만원 정도다. 억대 연봉자라고 하면 처음엔 ‘우와’하다가 실수령액을 듣고서는 ‘애걔’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고소득자일수록 월급이 끊기면서 등수가 쭉 미끄러질 은퇴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황명하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연구위원은 “억대 연봉자는 대출 상환 부담이 없다면 월 75만원(소득공제 한도)씩 노후 대비 연금에 납입하는 것이 좋다”면서 “맞벌이라면 부부가 각각 900만원씩, 총 1800만원을 채우는 것이 절세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한유진

 

그런데 ‘월급통장 피라미드’는 오로지 국세청에 신고된 근로소득만 따지므로, 개인별 전체 소득 수준을 파악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부업·아르바이트나 월세·이자·배당 소득 등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회사원 김모씨는 “평균 연봉만 놓고 보면 상위 10%에 끼지도 못하지만, 재테크를 잘해서 월세와 배당 소득이 나오기 때문에 전부 더하면 상위 5%는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대기업 부장 황모씨는 “부서를 옮기기 전엔 성과급이 많아서 상위 2%(1억6500만원)에 속했었는데, 부서가 바뀐 지금은 성과급이 나오지 않아 7%선까지 떨어졌는데 괜히 착찹하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이경은 기자

 

03-22 인성 중시 ‘의대 無수능 전형’ 주목 받는 제주대 구상

전공의 사태가 한 달을 넘기면서 중대한 변곡점에 접어들었다. 과거의 ‘의사 불패’ 사태들과 달리 의료 거부 비판 여론은 확고하고, 의료계 내부에서 합리적 목소리도 커간다. 의대 증원 2000명 발표에 대해, 일부 의사집단을 뺀 국민 대다수가 호응하고 지역 의료계도 호평한다. 27년간 정원 확대를 막아온 의사 횡포에 대한 반발이자 필수·지역의료를 되살릴 출발점으로 삼을 만하다는 의미다.

현실이 이런데도 환자를 버리고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은 1개월이 넘도록 대부분 돌아오지 않고 있고, 복귀를 설득해야 할 교수들마저 25일부터 집단 사직하고 다음 달 1일부터는 외래진료도 최소화하겠다고 한다. 직역 이기주의에 대한 국민의 따가운 질책 따윈 신경 쓰지 않겠다는 태도다. 새 회장 선출을 앞둔 대한의사협회의 간부는 “14만 의사의 지지를 모아 윤석열 정권 퇴진 운동에 나서기로 했다”고 했다. 법치와 국민은 아랑곳 않는 행태다.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하루아침에 전공의 대다수가 환자 곁을 떠난 사태를 보면서 국민 대다수는 공부를 잘해 환자 생명과 건강을 다루게 된 의사들이 인성과 공감 능력은 수준 이하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인성과 사회성을 중시해 의대 신입생을 뽑겠다는 김일환 제주대 총장의 구상이 더욱 주목 받는 배경이다. 국가 거점 국립대 총장협의회 회장이기도 한 김 총장은 2026학년도 입시에선 의대 지역인재 전형 정원의 10%는 수능 최저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학생부와 심층 면접으로만 뽑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궁극적으로 학생 선발은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하겠지만, 그 이전에 이런 시도를 해보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문화일보 사설
 
 

03-22 의사에 대한 시대적 물음

스웨덴은 코로나19 방역에 실패한 나라다. 자율방역을 택했지만 전 국민의 약 0.2%가 숨졌다. 사망자는 이웃 나라 노르웨이의 5배에 달했다. 사망자의 90%가 70세 이상 노인이었는데 한 세대가 사라졌다고 평할 정도다. 정권도 휘청거렸다.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된 지난해 스웨덴 한 여론조사기관은 각 기관 신뢰도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1위는 병원이었다. 코로나19 방역엔 참패했지만, 의사를 향한 믿음은 견고했다.


이는 의사들 헌신으로 쌓은 결과다. 스웨덴 의사는 다른 나라에 견줘 상대적으로 박봉을 받는다. 전문의 연봉이 1억 원대다. 이들은 처우 문제로 단 한 번도 파업을 하지 않았다. 의사들 스스로 환자 곁을 떠나는 집단행동에 대한 거부감이 강해서다. 스웨덴에서 의사가 되려는 이유는 돈이 아닌 소명의식이다. 의사들도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일을 한다고 여겨 돈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평균 30분인 진료시간 내내 의사는 환자 얘기에 귀 기울인다. 환자가 진료실을 나서려는 순간에도 의사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스웨덴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는 노교수는 “마지막에는 의사가 환자에게 개인 전화번호를 건넨 후 혹시라도 궁금하거나 알려줄 게 생기면 꼭 연락하라고 당부한다”며 “의사가 환자를 정성스럽게 대하는 마음을 국민은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의사의 본질은 시대적 물음이 됐다.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와 전임의들은 자신이 누군가에겐 마지노선이란 걸 알면서도 병원을 떠났다. 의대 교수들도 곧 집단사직한다. 명분은 전공의 보호다. 환자는 그 어디에도 없다. 불편한 장면은 여럿이다. 의사 커뮤니티엔 병원으로 돌아간 전공의 명단이 나돌았다.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파견된 군의관과 공보의를 겨냥한 업무거부지침도 올라왔다. 의사들 스스로 악마화됐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몇몇 의사는 포도농사를 짓거나 용접이나 배우겠다고 했다. 농사와 용접, 어느 하나 쉬운 직업은 없다. 한 사람의 인생이 담긴 지엄한 일이다. 사회적 역할이 의사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모든 직업이 제 역할을 다 해야만 사회는 온전히 돌아간다.

의사는 직업일 뿐 계급이 아니다. 국민이 분노하는 지점은 높은 연봉이 아니다. 의사집단이 국가권력도 건드릴 수 없는 특권층처럼 굴고 있어서다. 정부 대응 방식이 거칠어도 의사보다 정부를 지지하는 이유와도 같다. 법적 권한이 없는데도 어린 의대생까지 나서 국민 생명이 걸린 정책을 좌우하려 든다. 의사들은 진 적이 없다. 그 승리는 환자 희생 위에 서 있다. 증원 규모가 500명, 1000명이었다면 지금과 달랐을까. 4년 전 400명 증원을 추진할 때도 환자는 버려졌다. 환자의 아픔과 고통은 늘 논외다. 환자 피해에 대한 법적 책임도 지지 않았다.

한국 사회가 입은 내상이 깊다. 의사에 대한 신뢰도 한동안 회복되기 힘들지 모른다. 한 의대 교수는 “의사들은 정부와의 ‘전투’에 이길지 몰라도 국민과의 ‘전쟁’에선 반드시 질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가 있기에 의사는 일할 수 있다. 사회적 존경 역시 환자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의사란 무엇인가. 국민이 묻고 있다. 직업 가치를 다시 세우는 건 의사들 몫이다. 이제 의사들이 답할 차례다.

문화일보 권도경 사회부 차장

 

03.25 尹 “전공의 면허정지 유연한 처리”, 의료개혁은 협상으로 풀어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4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전국의대교수협의회 회장단 간담회를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정지 행정처분과 관련해 “당과 협의해 유연한 처리 방안을 모색해 달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이 이날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요청을 받고 이같이 밝혔다. 윤 대통령은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의료인과 건설적 협의체를 구성해 대화를 추진해 달라”고도 말했다. 한 위원장은 이날 전국의대교수협의회 회장단과 만난 후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필요한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전공의들이 지난달 19일 병원을 떠나기 시작한 지 한 달여 만이다.

 

지금 의정 갈등은 중요한 고비에 있다. 정부는 원래 이르면 26일부터 전공의들에게 면허정지 처분을 내릴 방침이었다. 현재 전공의 90% 이상인 1만여 명이 면허정지 대상이다. 여기에다 의대 교수들도 25일부터 집단 사직과 근무 축소에 돌입하기로 했다. 정부와 의사들 사이에서 환자와 가족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극심한 불편을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서 제출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자 대통령이 한발 물러서고 여당 대표가 의사들을 만난 것이다.

 

정부와 의사들은 끝까지 협상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지금 의대 정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데 공감하는 국민이 압도적이다. 의사들은 의대 증원 필요성을 인정하고 기본적으로 의대 증원 규모는 정부의 권한임을 인정해야 한다. 정부는 이미 지난 20일 늘린 의대 정원 2000명에 대한 대학별 배정까지 마쳤다. 또 어떤 경우에도 의사가 환자 생명을 투쟁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점도 이번 기회에 분명히 해야 한다.

 

하지만 여권 내부에서도 정부와 의료계가 서로 한 치의 양보 없이 맞서는 상황이 장기화되는 것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의대 증원은 이해 당사자가 있는 문제인데 어느 한쪽이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형태로 해결될 수 없을 뿐더러 그런 결말엔 상당한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이 유연한 처리를 지시하고 여당 대표와 의사 단체 간에 대화의 문이 열렸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장 타협점이 찾아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서로 협상의 끈을 놓지 말고 절충할 수 있는 방안을 끈질기게 모색해 나가야 한다. 정부도 의료계도 환자들의 치료 받을 권리가 최우선 고려사항이라는 전제 조건을 잊지 않는다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3.26 교수들은 사표 철회하고 정부는 증원 규모도 절충을

▲25일 오전 서울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열린 ‘고려대학교 의료원 교수 총회’에서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을 연기하고 의사들과 대화에 나설 방침을 밝혔지만, 전국 의대 교수들은 집단 사직서 제출을 시작했다. 이 의대 교수들 중 정말 교수직을 떠날 결심을 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사표를 투쟁 수단으로 쓰는 것은 지식인이 할 일은 아니다. 더구나 의사가 할 일은 아니다. 의사 숫자 늘린다고 교수가 사표 낸다는 것을 이해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환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사표 제출을 거절한 이미정 단국대 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정부의 ‘면허정지’가 의사들에게 협박으로 보이듯 교수들 사직서도 일부 국민에겐 협박으로 비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누가 틀리는 말이라 하겠나.

 

정부가 대화 의사를 밝히는데도 의대 교수들이 원래 예고한대로 사표를 내기 시작하는 것은 ‘의대 2000명 증원 백지화’를 정부와 대화하는 전제 조건으로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절차를 거쳐 대학에 정원 배정까지 마친 정책에 대해 완전 백지화까지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지나치다.

 

정부도 의료계와 대화하겠다면서도 2000명 증원은 양보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2000명 증원을 양보할 수 없다면 무엇으로 대화하겠다는 건가. 대화하는 척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양측 다 겉으로는 대화하자고 하지만 ‘2000명 증원 불변’과 ‘2000명 증원 백지화’를 서로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니 대화가 되기 어렵다.

 

24일 국민의힘과 의료계가 만난 후 의정 대화를 모색하기 시작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실질적 대화가 이뤄지려면 의대 증원 숫자 2000명을 논의 테이블에 올려놓지 않을 수 없다. 정부안은 ‘2000명 5년 증원’이지만 ‘1000명 10년 증원’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의료계 일각에선 먼저 2000명 증원으로 시작하고 다음 해에 객관적으로 검증해 보자는 제안도 나왔다. 다 논의할 가치가 있는 방안이다. 교수들은 환자와 국민을 위협하는 사표 제출을 철회하고 정부는 의대 증원 규모에 대해 신축적 태도로 대화 테이블에 나와야 한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아집과 감정으로 키우지 말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3-27 “의대 1000명 감축, 복지장관 파면” 막가는 의협 새 회장

대한의사협회 차기 회장에 당선된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의 공약과 발언은,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본색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의협은 26일 임 차기 회장이 결선 투표에서 65%의 득표율로 당선됐다고 발표했다. 역시 강경 주장을 이어온 경쟁 후보에 비해 두 배 가까운 득표를 한 셈이다. 임기는 오는 5월 1일부터 3년이다. 임 당선자는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개혁 민생 토론회에 들어가려다 대통령 경호처 직원에게 입이 틀어 막혀 끌려나간 이른바 ‘입틀막’ 장본인이다.

임 차기 회장은 “저출생으로 인해 의대 정원을 지금보다 오히려 500∼1000명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와 협상에 앞서 “보건복지부 장·차관 파면과 윤 대통령의 사과, 안상훈 전 사회수석의 비례대표 공천을 취소해야 한다”는 조건도 내걸었다. 그는 의대별 정원 배정이 발표된 20일엔 “파시스트적 정부에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했고, “당선되면 (임기 개시 이전이라도) 의사 총파업을 주도하겠다”고 밝힌 초강경파다. 의사에게 유리하도록 의사면허 취소 및 수술실 CCTV 설치 등과 관련된 법률을 개정하고, 진료보조(PA) 간호사의 의사 대행을 금지시키겠다는 직역이기주의 공약도 내놓았다. 대화에 앞서 윤 정부의 완전 굴복과 의료개혁 정책의 전면 백지화를 조건으로 내건 셈이다. 진료를 독점한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불안해하는 환자와 국민을 볼모로, 정부를 겁박하고 법치 위에 군림하겠다는 오만하고 개탄스러운 행태다.

실현될지 두고 봐야겠지만, 개원의들이 집단 휴진에 들어가면 의료대란과 국민 불편이 심각해진다. 하지만 의사 증원은 고령화에 따른 시대적 요구이자 국민이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사안이다.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의대 2000명 증원’ 찬성 47%, ‘증원 규모와 시기 조정’ 41%인 반면, ‘현행 유지’ 응답은 6%뿐이었다.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의료인들은 정부와 대화에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고 당부했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의료계와 의제 제한 없이 대화하겠다”고 나서면서 간신히 의·정 대화의 문이 열릴 조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 의협 회장이 초강경 노선으로 막 나간다면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의사들의 대정부 투쟁은 결국 의사와 국민의 전면전으로 비화할 수밖에 없다. 의사들이 일시적으로 정부를 압박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국민을 이길 수는 없다. 의료계가 요구해온 협상을 위해서도 명분과 현실성이 전혀 없는 무분별한 주장부터 접어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3-27 의대 증원 ‘정치적 흥정’ 대상 아니다

보건복지부가 2월 초 2025년 의대 입학정원을 3000명에서 5000명으로 늘리는 정책을 내놨고, 교육부는 지난주 증원분 2000명을 대학별로 배정했다. 의대 정원이 의료정책의 장에서 교육·입시의 장으로 확장된 것이다. 지난 2개월, 국민 모두 의료정책 현장의 복잡함을 ‘인식 당했고’, 한편으로 의사 집단의 민낯을 봤다. 어쨌든 의대 증원이라는 대성과를 냈다. 지난 2000년대 초 의대 정원 축소 이후 20년 만이다.


의사 부족 문제와 의대 적정 규모에 대한 논의는 십수 년 계속돼 왔다. 모든 조사가 보여주듯, 국민의 절대다수가 의사 부족 상황과 의대 증원의 필요성에 동의한다. 의대 증원 여부와 그 규모의 결정은 ‘정책 당국’의 몫이다. 의술의 전문가인 임상의사가 결정하거나 ‘허락’할 사항은 아니다. 의사나 전공의들의 ‘의술 전문성’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간의 승리’에 기고만장한 의사들은 자기들의 승인 없이 정책을 결정했다고 분기탱천한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환자는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그동안 정부와 관료는 의사 측의 주장에 매몰돼 있었다. 그새 의사 부족의 심각성은 여기저기 분출했다. 지난 정부는 400명 증원을 추진하다 포기했다. 현 정부도 지난해엔 증원 정책을 실기했다. 보건복지 관료들은 “내년에 의대 정원 늘린다고? 쇼하는 것”이라는 비난까지 들었다. 양쪽의 비난을 받아온 관료들이 지난해 말부터 작심하고 나섰다. 의사 단체가 생각하는 적정 규모를 제출해 달라고 했다. 이번에도 이들은 정부의 요구를 일축했다. 오히려 정원 축소까지 얘기했다. 복지부 관료들의 일 처리는 치밀했다. ‘필수의료 패키지’의 내용도 균형감각이 돋보였다. 마침내 교육부의 정원 발표까지 이뤄냈다.

계속되는 의사들의 반발과 환자의 불안은 남은 산통이다. 수술도를 든 전문가 직역(職域)의 떼쓰기가 만만찮다. 하지만 필자는 낙관적이다. 집단 이기주의를 질타하고 이겨낼 성숙함이 우리 국민에게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첫째, 의사들은 그동안 의대 증원 자체를 거부하다가 이제야 ‘과학적 추계’ 작업을 한 뒤 진행하자고 한다. 일단 내년 증원은 막아 보자는 의도로 보인다. ‘2000명’ 규모의 적정성 논란이 있긴 해도, 이는 이미 절차를 거쳐서 확정된 대국민 공표 사항이다. 2026년 이후의 증원 규모에 대한 속도 조정은 협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전공의 문제가 안정된 시점에서 가능하다.

둘째, 정치인들은 불필요한 개입을 중단해야 한다. 야당은 스스로 하려다 실패한 정책의 성공을 아낌없이 평가해 주는 것이 성숙한 자세다. 여당은 전공의 면허정지에 선처를 요구하는 것을 넘어, 사안의 핵심인 의대 증원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셋째,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관료들은 의사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하되, 의료개혁의 방향이 정해지면 뚝심 있게 밀고 가야 한다. 이번 성공 사례를 교훈으로 해서 한 직역에 휘둘리는 관행을 깨야 한다.

마지막으로, 성숙한 시민의식만이 이 사태를 원만히 마무리할 원동력이다. 의사 수의 확대는 필수의료 확충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이제 소모적 논쟁을 뒤로하고 건강보험 보상체계 개편 등 의료제도의 개혁에 한 발 더 나갈 시점이다.

문화일보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

 

03.28 “의대 정원 줄여야”라는 의사협회장, 도 넘지 말길

▲제42대 대한의사협회 회장에 선출된 대한소아청소년과회장인 임현택 후보가 26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당선증을 들고 있다. /뉴스1

 

의대 정원 증원을 놓고 정부와 대립 중인 의사협회 차기 회장 결선투표에서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65%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임 당선자는 의대 증원과 관련해 “오히려 저출생으로 인해 정원을 500명∼1000명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 후보였다. 이번에 출마한 후보 중 가장 강성으로 분류됐다.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 개혁 민생 토론회에 들어가려다 경호처 직원에게 입이 틀어막혀 끌려 나간 이른바 ‘입틀막’ 장본인이기도 하다.

 

임 당선자는 당선 후 ‘대화의 조건’으로 대통령 사과와 복지부 장관 파면 등을 내걸며 강경 투쟁을 예고했다. 그는 “전공의·의대생, 병원을 나올 준비를 하는 교수들 중 한 명이라도 다치는 시점에 총파업을 시작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대화에 앞서 의료 개혁 정책 후퇴 등 정부의 완전 굴복을 조건으로 내건 셈이다. 정부와 협상을 통해 이번 의료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의사들이 이렇게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을 대표로 뽑은 것은 국민과 환자들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지금 의대 정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데 공감하는 국민이 압도적이다. 빈사 상태인 지역 의료와 필수 의료의 심각성을 모두 알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한꺼번에 2000명 증원이 무리라고 생각한다면 대화 테이블에 나와 합당한 논리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 의대 증원을 줄이자고 주장하니 누가 합리적 의견이라고 하겠나. 감정적인 막무가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의사가 아니라 불가능한 주장을 하는 노조원 같다. 복지부 장관 파면 등 주장도 지나치다.

 

지금 많은 국민과 환자는 전공의 이탈에 이어 의대 교수들까지 사직서를 내면서 정상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해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정부도 문제지만 비타협적 태도로 일관하는 의사들 책임도 크다. 이번 사태 해결은 의사들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누가 의사 목소리를 대변하는지 알 수 없고 전공의, 의대 교수 등이 제각각 단편적인 목소리만 내면서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의사들 법정 단체인 의협이 차기 회장을 정하면 그나마 대표성 있는 대화 창구가 생길 줄 알았더니 엉뚱한 주장을 하는 대표가 나왔다. 조속한 진료 정상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바람에 찬물을 끼얹었다. 의사들이 이런 식이면 이번 문제가 어떻게 귀결되든 국민 존중과 신뢰를 크게 잃을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사설

 

03-28 12년만의 버스파업… 빗속에 지각 속출 ‘출근길 패닉’

▲버스 전용차로 ‘텅텅’ 28일 12년 만에 서울 시내버스 총파업이 시작된 가운데 이날 오전 서울 마포구 마포역 인근 버스 전용차로가 텅 비어 있는 반면 도로는 출근 차량으로 극심한 정체를 보이고 있다. 윤성호 기자

 

■ 기습 파업에 시민 ‘발동동’

정류장서 버스 기다리며 ‘울상’
“올스톱 수준… 30분 넘게 걸어”
지하철로 몰려 ‘아수라장’ 방불
콜 2~3배 늘어 택시도 안 잡혀

“오늘 서울 시내버스가 파업이라고요? 병원에 가려고 720번 버스를 20분 넘게 기다리고 있는데….”

 

서울 시내버스가 12년 만에 총파업에 돌입한 28일 오전 8시쯤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김문수(여·85) 씨는 “버스 파업에 대한 안내를 못 받았다”며 “택시비도 비싼데 집에 갈 때도 문제”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이날 서초구 염곡동에서 만난 권모(72) 씨도 “파업을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배차 간격이 늘어나는 정도인 줄 알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며 “무릎이 좋지 않은데 가까운 지하철역은 다 도보로 30분이 넘게 걸리고 버스 아닌 다른 교통 이동법은 잘 모르는데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회사원 황모(45) 씨는 “오전 9시 회의인데, 지금 지하철을 타도 지각일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2시 20분쯤 서울시 버스노조가 사 측과의 협상 결렬을 선언한 뒤 오전 4시부터 전체 서울 시내버스의 97.7%에 해당하는 7210대가 운행을 멈추면서 시민들은 갑작스러운 버스 운행 중단에 큰 혼란을 겪어야 했다. 지하철 역사는 버스 대신 지하철을 이용하려는 시민들이 몰리면서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출근하는 김모(28) 씨는 “평소보다 증차한 것으로 아는데도 오늘은 숨쉬기 힘들 만큼 사람이 많았다”며 “아무리 파업을 한다고 해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거의 모든 버스가 운행을 중단해버리는 방식은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 충정로역에서 만난 류모(41) 씨는 “출근길이 평소에도 2시간에 달해 힘든데 파업 때문에 지각 위험까지 신경 써야 해 너무 피곤하다”고 말했다. 대학생 유모(21) 씨는 “지하철역까지 버스로 40분인데, 오전 수업을 듣긴 글렀다”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12년 만에 서울 시내버스 총파업이 시작된 28일 오전 서울 지하철 4·7호선 환승역인 노원역에서 시민들이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 긴 줄을 서서 계단으로 내려가고 있다. 백동현 기자

 

일부 시민들은 대중교통 대신 택시를 선택하기도 했지만 평소보다 2∼3배로 콜이 몰리면서 택시를 잡기도 쉽지 않았다. 논현역 인근에서 신촌으로 등교한다는 A(25) 씨는 “집에서 인근 지하철역까지 가려 택시를 잡아보려고 했지만 40분째 잡히지 않아 따릉이와 전동 킥보드까지 찾았는데 주변에 모두 동나 있더라”며 “비가 오는 이 날씨에 20분을 걸어야 했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김상재(52) 씨는 “파업 가능성에 택시들이 평소보다 많이 나온 것으로 아는데도,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고 있다” 며 “오늘 같은 날엔 1만 원 이하의 거리는 택시가 잘 잡히지 않아 시민들의 불편이 극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원 송모(29) 씨는 “버스를 못 탄다는 생각에 오전 7시에 차를 끌고 나왔는데, 도로가 너무 막혀 출근만 1시간 반 이상 걸렸다”며 “노사협상이 결렬된 피해를 왜 항상 시민들이 봐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시는 25개 자치구에 셔틀버스를 배치해 주거지에서 인근 역으로의 이동을 돕겠다고 나섰지만, 시민들은 긴 배차 간격과 맞지 않는 노선 등으로 불편을 호소했다. 마을버스를 타고 강남역에 도착한 김재욱(34) 씨는 “셔틀버스 관련 문자를 확인했지만 배차 간격이 너무 길고 몇 시에 어느 정류장에 도착하는지 시간 안내도 없어 탑승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마포구에 거주하는 대학생 B 씨는 “셔틀버스 노선을 봤는데, 우리 동네를 지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며 “노선이 너무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문화일보 조율·김린아·전수한 기자

 

03-28 [속보]서울 시내버스 파업 중단…오후 3시부터 운행

서울시내버스 노·사가 임금 인상안을 두고 협상을 벌인 끝에 28일 오후 합의에 성공했다.

서울시는 서울시내버스 노사간 임금협상 합의와 파업 철회에 따라 이날 오후 3시부터 시내버스 전 노선이 즉시 정상 운행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시 관계자는 "서울시의 지속적인 소통과 중재 노력 끝에 28일 오후 3시에 임금 인상률 4.48%, 명절수당 65만 원으로 노사간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시는 파업 대비 추진했던 비상수송대책을 즉시 해제하고, 대중교통 정상 운행에 돌입한다. 연장 예정이었던 지하철, 전세버스 등 대체 교통 투입은 현행 운행으로 변경된다.

앞서 노사는 27일 오후 2시 30분부터 28일 새벽 2시까지 진행된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조정회의에서 임금 인상 등에 대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12년 만에 파업으로 서울 시내버스의 약 98%가 이날 첫차부터 운행을 중단했다.
문화일보 임정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