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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5/ 2024.01월 호 〈22〉 한국인에게 집과 素月의 ‘엄마야 누나야’ - 〈24〉〈끝〉 하우스를 홈으로 만들자

상림은내고향 2024. 3. 3. 20:23

끝나지 않은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5/ 월간조선 정리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2024

 

01월 호

〈22〉 한국인에게 집과 素月의 ‘엄마야 누나야’

엄마와 누나가 사는 ‘강변’은 생명과 자연의 공간

⊙ 아버지와 형님은 죽이는 공간, 싸우는 공간, 권력의 공간, 돈의 공간
⊙ 한국인의 피에는 농경민적인 욕망과 노마딕 한 ‘네오필리아’가 공존
⊙ 인간의 첫 집은 자궁(womb), 그리고 마지막 집은 묘지(tomb)
⊙ 반간은 淸風, 반간은 明月… 김장생 시조에 담긴 한국인의 생태적 건축의식
⊙ 소월 시에 담긴 이항대립… ‘뜰 앞’과 ‘뒷문 밖’, 개방과 폐쇄, 무기물(모래)과 유기물(이파리)

李御寧(1933~2022)
서울대 국문학과·同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 경기고 교사, 이화여대 교수,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논설위원,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초대 문화부 장관 역임

 

[편집자 註]
이어령 선생이 타계한 지 1년이 지났다. 선생은 생전(生前) 시리즈 ‘한국인 이야기’의 문패에다 ‘끝나지 않은’이란 수식어를 직접 붙이셨다.
생전 선생은 당신이 남긴 굵직한 저작물과 수많은 강연에서 언급한 ‘한국인 이야기’를 비록 당신이 떠나도 계속 이어가기를 희망하셨고 관련 원고와 저서의 일부를 《월간조선》에 전하셨다. 또 선생이 남긴 바탕 위에 편집자의 생각을 보태도 된다고 허락하셨다. 아주 조심스럽게 선생이 남긴 큰 발자국을 따라 연재를 이어가고자 한다. 선생에게 누(累)가 되지 않기를 소망할 뿐이다.

 

▲조선 후기 화가인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에 등장한 ‘물소리가 유명한 계곡’ 수성동(水聲洞)의 조감도. 서울시는 이곳에 전통 수목을 심고, 옛 정취를 되살렸다. 사진=조선DB

 

그 많은 민족이 모여 국가를 이뤘다는 사실은 지금 우리가 미국을 대하며 두렵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 중 하나다. 미합중국이란 나라 안에 종족이, 문화가 따로 있을 리 없고 DNA가 특별히 남다른 것도 없다.

미국의 정신은 개척정신이다. 2008년 9월 15일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을 때 전 세계가 어떻게 됐나. 금융시장이고 은행이고 다 다운됐을 때 등장한 것이 리바이스 광고였다.

이 청바지 회사는 마치 개척 시대로 돌아간 듯 “고 포스(GO FORTH), 앞으로 나가자”는 광고를 내보냈다. “우리에게는 꿈이 있다. 미국은 절대로 다운되지 않는다. 가자. 앞으로”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미국의 프런티어 정신, GO FORTH

▲184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골드 러시를 기념하는 우표.

 

서부 개척 시대 ‘포티 나이너(forty-niner·184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몰려든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을 의미-편집자)’, 금광으로 뛰어갔던 사람들처럼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사실, 청바지는 단순한 옷이 아니라 개척자들의 집이요 텐트였다. 그러니까 이런 위기가 닥칠 때마다 고 포스, 앞으로 나아가자고 외쳤던 것이다.

한국인의 마음에도 한편엔 행진하는 ‘네오필리아(neophilia·뉴 프런티어 정신-편집자)’가, 다른 한편엔 초가삼간 짓고 살던 시절을 잊지 말자는 ‘토포필리아[topophilia·장소 애(愛)-편집자]’가 있다. 두 가지 면을 균형을 이루며 살아왔다. 21세기는 융합의 시대다. 농경적인 토포필리아, 유목적인 네오필리아의 결합이 필요하다.

나는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을 지휘한 뒤 곧장 미국으로 프랑스로 일본으로 떠났다. 한곳에 머물지 않고 유목적인 삶을 산 게다. 일흔이 넘어 일본에 가니까 사람들이 쉬러 온 줄 착각하더라. 혼자 숙식하면서 일본에서 쓴 책이 《가위바위보 문명론》이다.

처음엔 장관까지 한 사람이니 머리 식히러 온 걸로 생각했지만 일본인과 똑같이 세미나 가서 토론하고, 책 읽고, 글 쓰고, 장 봐서 밥 해 먹는 것을 본 것이었다.

한국에 머물렀다면 편히 여생을 보낼 수 있을 텐데 마다하고 훌쩍 떠난 게다. 내 피에 노마딕 한 것, ‘네오필리아’가 있는 까닭이다. 나는 새로운 것을 끝없이 찾는 사람이다. 나처럼 머릿속에 옛이야기 보따리가 풍성하게 쌓인 사람도 없을 게다.

집에 가방이 많은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나? 공부 잘하는 것과 가방의 개수는 상관이 없다. 우리 집에 컴퓨터가 7대나 있다고 사람들이 놀라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까 7대가 된 것이다.

 

가방이나 컴퓨터처럼 자기 집이 있다는 게 대수가 아니다.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밥을 굶더라도 가출하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더러는 집에서 꼼짝 않고 한 우물을 파는 사람도 필요하고 더러는 집을 떠나 풍찬노숙하며 망가지는 사람도 필요하다. 간혹 그런 이들 중에 톱스타가 나오고 천재적인 인물이 탄생한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라. 리스크(위험)를 피하기보다 리스크를 감당한 채 뭔가를 해보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 오늘날의 강대국을 만들었다. 사실 우리에게는 옛날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던 나그네의 피, 몽골로이드의 피가 흐르고 있다. 칭기즈칸, 쿠빌라이칸의 피가 흐르고 있다.

우리 민족은 칭기즈칸처럼 돌아다녀야 했는데 그만 한반도로 들어오는 바람에 모 심고 정착해 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북방민족 중에 집을 지닌 채 세계를 돌아다니는 민족은 한국인밖에 없다. 한국인은 세계 10위권 디아스포라 민족으로 꼽힌다.

우리 젊은이들이 이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리바이스 같은 청바지 기업도 리먼 사태가 일어나니까 프런티어 정신으로 ‘GO FORTH, 나가자’는 광고를 한다. 그 광고 하나로 미국인의 내면에 깃든 뉴 프런티어 정신을 끄집어냈다.


한국인이 명절이면 고향에 가는 까닭

▲1000원 화폐의 뒷면 산수화인 겸재 정선이 그린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 그림 속 선비는 퇴계 이황 선생이다.

 

인간이 제일 먼저 갖는 첫 집이 아기집이다. 엄마의 자궁이다. 영어로 웜(womb)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갖게 되는 집이 묘지, 툼(tomb)이다. 웜과 툼의 차이는 w와 t뿐이다. 이처럼 집은 우리 삶의 거점이다. 어떤 집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문화가 달라지고 일상이, 일생이 변화한다.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전 세계든 홈리스든 제1 장소는 누구에게나 집이다. 제2 장소는 직장, 학교다. 제3 장소는 xbox(마이크로소프트사의 게이밍 플랫폼) 또는 트위터 또는 스타벅스로 상징되는 커피숍이다. 한자 ‘주(住)’자로 상징되는 ‘토포필리아(장소 애)’가 이처럼 소중하고 중요하며 다양하다. 어떤 집을 택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

요즘 캠핑이 대세라고 한다. 젊은 캠핑족들을 산이나 강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혹자는 왜 멀쩡한 집을 놔두고 사서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노인들도 캠핑을 한다. 캠핑카나 트레일러를 끌고 달려간다. 하늘을 지붕 삼아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 광활한 벌판에 무슨 집을 짓겠나? 그들에게는 자동차가 집이다. 홍콩이나 동남아 등에 가 보면 배 안에서 사는 사람도 많다. 우리의 고정관념과 달리 집은 여러 가지 형태다.

명절 때마다 전국의 도로가 몸살을 앓는다. 귀성 인파로, 그리고 귀경 인파로 북새통이다. 고향을 떠나면 눈물겹고, 명절이면 꼭 돌아오는 유전인자가 한국인에게 있다. 고향이 아무리 멀고 힘들어도 상관없다. 강 건너 바다 건너 고향으로 돌아가려 한다. 고향이 나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도 없고 가봐야 아는 사람도 없는데도 고향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 중의 하나가 정지용(鄭芝溶·1903~1950년) 시인의 ‘향수’다.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충북 옥천의 정지용 생가 모습이다. 사진=조선DB

 

시 ‘향수’는 국민시다. 그런데 한국인은 그렇게 고향을 좋아하면서도 이민을 떠난다. 저 아프리카 사막에 가도 한국 사람을 만난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에 숨은 공간

유목민의 집과 농경민의 집, 이 두 갈래의 집 이야기를 하기 전에 미래의 도시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 한다.

언젠가 세계 17개국에서 온 31개 도시의 시장(市長)들이 서울에서 모인 적이 있다. ‘미래의 도시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어떤 집에서 살아야 하나’를 주제로 큰 콘퍼런스를 열었을 때 특별연사로 연단에 섰다.

처음엔 멋모르고 그냥 인사말이나 하면 되겠지 싶었는데 전부 내로라하는 시장들이고 건축 전문가들이 귀를 세우고 내 말을 듣더라.

인문학을 하는 사람, 그것도 문학하는 사람이 집 이야기, 도시 이야기 하는데 공감을 할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도 연설을 하게 된 이유는 나 자신이 유목민과 농경민의 피, 비류의 백제 피와 온조 백제의 피를 함께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충청도 사람이니까. 충청도 사람들이 아주 약해 보이지 않나? 농경민은 약해 보이고 순해 보이고 느리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충청도 사람은 말이 아주 느리다고 하지만 천만에! 충청도 사람처럼 급한 사람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아, 뭐 괜찮아요” “뭐 그만둡시다”고 할 때 충청도 사람은 “됐슈” 딱 두 음절로 끝낸다.

사실은 굉장히 스피드 한 사람들이다. 팔도 여성 중에서 독립운동을 가장 화끈하게 한 사람이 유관순(柳寬順·1902~1920년) 열사가 아닌가. 충청도 천안 사람이다. 백제, 고구려, 신라가 다 한반도 중부, 충청도에 포진해 있었다. 이 말인즉 유목민과 농경민의 피가 섞여 있다는 말이다.

외국의 시장들 앞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말을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김소월(金素月·1902~1934년)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가 생각났다. “나는 문학을 한 사람인데 집 짓는 것으로 치면, 도시로 치면 기가 막힌 시가 있는데 그것이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고 말했다.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

(《개벽》 1922년 1월호)

이 시는 후렴을 빼면 다 합쳐도 30자밖에 안 된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며 강변에 대한 묘사가 이어진다. 시가 어렵지 않다. 한데 왜 하필이면 엄마와 누나일까. 아버지와 형은 어디 가고.

그런데 강변 살자는 말은 곧 화자(話者)가 현재 강변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진술하는 말이기도 하다. 욕망은 결핍과 부재에서 나온다.

뿐만 아니라 ‘엄마야 누나야’라는 말투에서 드러나 있듯이 그 욕망의 주체자는 어린 아이로 되어 있지만 그 진짜 주체자는 바로 이 시를 쓴 시인 김소월이다. 그러니까 이 시의 특성은 어른이 어린 시절의 시점을 통해, 즉 미래의 시간(살자라는 미래의 바람)을 과거의 시간을 기점으로 해서 말하고 있다는 데 있다. 강변이 현실공간이 아니듯이 화자로서의 어린이 또한 현실의 주체자가 아니다. 그러고 보면 엄마와 누나 그리고 ‘강변’은 말할 것도 없고 ‘살자’고 말하는 욕망의 주체자마저도 부존한다.

이 부재하는 욕망의 공간을 시적 언어로 형상화하는 것, 그것이 시인(詩人)의 특권인 이미지라는 힘이다.

여성공간(생명) vs 남성공간(싸움, 권력, 돈)

시에 없는 아버지는 어디 있을까. 그리고 누굴까.

노마드다. 집을 떠나 공장에 있거나 아니면 전쟁터에 있다. 아버지와 형은 도시로 떠났거나 멀리 이민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엄마와 누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나? 생명의 자궁을 가지고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최초의 집이 어머니의 자궁이다.

그러니까 어머니의 자궁에서 무덤으로 가는 그 생명의 집은 딱 두 개다. 자궁하고 자연이라고 하는 강변이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고 했으니까 결국 나는 자연이 아닌 도시에서 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결과적으로 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공간은 자연의 공간, 생명의 공간에서 살자는 게다. 죽이는 공간, 싸우는 공간, 권력의 공간, 돈의 공간과는 정반대의 공간이다.

 

남자들은 강변에다 집을 짓지 않는다.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집을 뛰쳐나와 끝없이 새로운 것을 찾는다. 이런 점에서 엄마·누나의 공간은 자연 공간, 아버지·형의 공간은 비자연적 도시 공간이다.

어느 소설에 메트로폴리탄 뉴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서술이 나오는데 인용하면 이렇다.

〈이 모든 건축, 발이 남성성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맨해튼의 토지를 동서로 이어진 200개의 거리와 남북으로 이어진 12개의 대로로 인정사정없이 분할한 땅에 수직등급을 나타내는 추상적인 도장을 찍어놓았다. 또 어마어마하게 높이 솟은 건물에 공작새 깃털 같은 장식을 달아 도시는 야망과 투기, 경쟁과 지배 심지어 욕망을 상징하게 되었다. 높이와 크기 그리고 늘 그렇듯 돈을 향한 욕망이었다.〉
-《살인의 해석》 제드 러벤펠드 글, 박현주 옮김, 비채, 2007

이 광활한 땅을 직선으로 구역을 만들고 거기다가 높은 집을 때려 짓는 짓을 여성이, 엄마가, 우리 누나가 하지는 않는다. 남성이, 아버지가 형이 한다. 전쟁, 욕망, 권력, 돈은 남성과 결부되어 있다. 끝없이 새로운 공간, 새로운 도시, 새로운 공장을 만들어 전쟁을 치르는 ‘네오필리아’의 싸우는 공간으로 나아가려는 본능이 있다. 그러니까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말은 현재 살고 있는 곳이 마땅치 않으니까 우리 강변에 가서 살자는 말이다. 우리 마음속엔 끝없이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본능이 숨어 있다.

‘터’를 중요시하는 한국적 건축

▲돌담과 초가지붕. 황토와 돌로 단을 쌓고 초가지붕을 얹은 전통적인 우리의 일반 가옥 형태다. 사진=조선DB

 

소월은 ‘강변 살자’면서 어떤 집을 짓겠다는 말은 딱히 하지 않았다. 초가집인지 기와집인지 빌딩인지 알 길이 없다. 그냥 ‘언덕 위의 하얀 집’, 또는 유행가에 나오는 ‘큰 부잣집’ ‘기와집’ 그런 게 아닌 ‘강변 살자’는 ‘터’ 이야기를 한다.

나는 “건축은 건축이 아니고 터”라고 외국의 시장들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좋은 곳에 텐트를 치듯이 터가 중요하지, 집이 중요한 게 아니다.

집은 무너져도 터는 안 무너진다. 한국인은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처럼 어떤 집을 짓느냐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작 30자의 글자로 터를 만들어 뒤에는 갈잎의 노래가 들리고 앞에는 반짝이는 햇빛이 있는 데서 엄마, 누나와 살자고 노래한다. 보통 우리 같으면 “엄마, 우리 튼튼한 2층집을 짓고 살자. 남들처럼 아파트에서 살아”라고 했을 텐데 시인은, 시 속 화자는 터를 이야기한다. 터를 이야기하고 집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노마딕 한 게다. 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강변에서 살자’가 아니라 처격조사 ‘에서’마저 빼 ‘강변 살자’라고 한 이 시구는 하나의 공간이 삶 그 자체의 목적으로 나타나 있다. 사실 ‘강변 살자’는 것은 배산임수(背山臨水)를 말하는 게다. 뒤는 산이고 앞은 강이니 옛날 산수화(山水畵)가 연상된다. 대개의 산수화는 그림의 뒷배경이 산이고 앞엔 강물이 흐른다. 그 가운데 조그마한 집이 있다.

그 집이 기와집이냐, 부잣집이냐, 가난한 집이냐, 초가집이냐, 다 소용이 없다. 그저 거기 사는 게 제일 행복한 일이고 꿈이었다. 한국인은 배산임수, 터를 중시했다. 이런 이야기를 외국 시장들 앞에서 한 게다.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UN Headquarters) 빌딩은 허드슨강을 보고 있는데 남향이 아니다. 유엔본부에 가면 제일 햇빛 많이 들어오는 데가 화장실이다. 사진=조선DB

 

“당신네는 터 개념이 없다.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UN Headquarters) 빌딩을 보면 남향이고 북향이고가 없다. 유엔본부 빌딩은 허드슨강을 보고 있는데 남향이 아니다. 유엔본부에서 제일 햇빛 많이 들어오는 데가 화장실이다. 유엔 본 회의장이 제일 어둡더라.

당신네가 한국의 도심을 둘러보고 무질서하고 판잣집 같은 쪽방촌이 아직도 있다고 흉볼지 몰라도 이런 도시는 어디에도 없다. 한국인은 집을 지을 때 조금이라도 남쪽으로 틀어서 짓는다. 한때 우리나라의 제일 큰 건물이던 코엑스 빌딩만 봐도 그렇다. 애초 설계한 방향은 남향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큰 건물의 방향을 남쪽으로 하려고 건설 당시 많은 수정을 했다고 한다. 다른 큰 건물들도 대개 남향으로 지어졌다. 배산임수가 잘된, 즉 뒤에 산이 있고 앞에 강이 있는 터에 있는 집이 제일 비싸다. 한국인은 무덤을 쓸 때도 터를 본다.”

십년(十年)을 경영(經營)하야 초려 한 간 지어내니
반간은 청풍(淸風)이요 반간은 명월(明月)이라
강산(江山)을 드릴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김장생(金長生·1548~1631년)의 시 ‘십 년을 경영하여’

십 년을 경영하여 초려 삼 간 지어내니
나 한 간 달 한 간에 청풍 한 간 맡겨두고
강산은 드릴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송순(宋純·1493~1582년)의 시 ‘십 년을 경영하여’

두 시에서 ‘십 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었는데, ‘반은 청풍이요, 반은 명월’이란다. 이게 말이 되나?

집을 지었는데, 그것도 10년 동안 애써서 지었는데, 반은 청풍이고 반은 명월이라니…. 그런 바람이 불고 달이 보이는 집이라면 그게 지붕이 있는 집일까.

산천을 병풍처럼 둘러친다는데 담도 없는 집이란 얘기다. 청풍과 달이 안으로 들어오고 울타리조차 없는 집을 강산이 에워싸고 있다는 게다.


한국의 생태적 건축, 자연과의 조화를 생각하다

▲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에 곡을 붙여 가장 널리 불리는 동요로 만든 월북 음악가 안성현(1920~2006)을 기리는 노래비. 전남 나주 남평읍 지석강변에 세워졌다. 사진=나주시

 

터만 있지, 집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은 에콜로지컬(ecological)한, 소위 생태적 공간에 대한 시각이다. 우리가 도시에서 도시인과 어울려 살면서도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자연과 생명 공간을 추구하는 마음이 우리 피 안에 있는 게다. 한쪽으로는 아버지와 형처럼 도시로 나가서 어마어마한 욕망을 이야기하면서도 말이다.

나는 외국의 시장들에게 “건축 없는 건축, 터가 중요하니까 앞으로 도시를 디자인할 때는 집이 어떻고 시설이 어떻고를 이야기할 게 아니라 도시를 얼마만큼 자연과 가깝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때 소월을 데려오는 게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것처럼 ‘강변’으로 생각하고 배산임수를 따져서 설계하는 게다. 나는 시장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시(詩)를 짓지 말고 시(市)를 만드시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고 하는 생명의 공간, 엄마와 누나의 자궁과 같은 그런 생명의 공간을 만드시오. 아버지와 형만으론 안 되겠소. 자꾸 공장을 때려 짓고 마천루나 올리고, 이게 사람 사는 곳이오? 시멘트로 전부 이어붙인 이런 곳에 어찌 살라고 하오?”

 

▲정선이 1755년경에 그린 〈인곡유거도(仁谷幽居圖)〉. 간송미술관 소장.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를 머릿속으로 그려보자. ‘뜰’ 앞에는 강물이 흐르고 ‘뒷문 밖’에는 산이 솟아 있다. 앞과 뒤 수평적인 것과 수직적인 것 그리고 ‘뜰’은 열려져 있는 세계를 그리고 ‘뒷문 밖’은 닫혀져 있는 세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항적 대립을 더욱 첨예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 ‘금모래 빛’과 ‘갈잎의 노래’의 대조이다.

‘반짝이는’에서도 드러나 있듯이 뜰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모래는 시각적인 것이다. 그래서 모래는 금모래가 되고 빛이 된다. 또한 모래의 그 물질적 이미지의 뒤에는 태양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뒷문 밖 산을 덮고 있는 것은 모래와 대조를 이루는 이파리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금모래 빛’의 빛과는 달리 ‘갈잎의 노래’라고 하여 청각적인 것을 나타낸다. 앞뒤로 분할되어 있던 공간은 ‘빛’과 ‘노래’의 시각과 청각의 감각 공간으로 대응관계를 띠고 있다. 모래에서 태양빛을 느꼈던 사람들은 이제 ‘갈잎의 노래’에서는 숨어 있던 바람소리를 듣게 된다.

앞과 뒤,개방과 폐쇄,무기물(모래)과 유기물(이파리), 수평성과 수직성(강과 산), 그리고 시각과 청각… 음악의 대위법처럼 시의 병렬법(패럴렐리즘)에 의해서 만들어진 공간,대체 살고 싶은 그 공간이란 어떤 곳인가.

사실, 한국의 모든 건축물은 노마드적인 것과 농경적인 것, 북방적인 요소와 남방적 요소 등이 전부 섞여 있다. 북구와 남구, 농경과 유목, 유동적인 것과 정착하는 모든 것의 모순 위에, 인간의 근거, 존재의 근거를 마련하는 도시를 만들어 그 위에 문화를 꽃피우는 집을 짓고 있다.⊙

 

 

02월 호

〈23〉 초가삼간의 온돌과 마루

하늘의 모습을 구조화한 한국인의 건축, 서까래

⊙ 추울 때는 고구려式 온돌을 쓰고 더울 때는 남방계 구조인 원두막식 樓마루 지어
⊙ 서까래는 자연의 곡선 지니면서 가장 인공적인 기하학적 선으로 짜여
⊙ 여름이면 대청마루에 서늘한 바람이 뒤에서 불어… 앞마당은 통풍이 이뤄지는 공간
⊙ 한국의 문은 ‘문틈’으로 집 내부 훤히 볼 수 있어… 서양은 ‘열쇠 구멍’으로
⊙ 정자는 하늘과 땅 이어주는 매개항… 삼태극(三太極) 사상 담은 팔각정
⊙ 나지막한 돌담은 안에서 밖이 반은 보이고, 바깥에서도 안이 반은 보여
⊙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것은 단순한 ‘집(house)’ 혹은 터가 아니라 ‘홈(home)’을 뜻해

▲전남 해남군 황산면 연호리에 있는 초가집이다. 방과 방 사이 대청마루가 있다. 사진=조선DB

 

우리의 옛 가인(歌人)이 “십 년을 경영하여 초가집, 초가삼간을 지었다”고 했다. 한 칸은 안방, 다른 한 칸은 건넌방, 가운데 칸은 누(樓)마루 혹은 마루방이었다. 다락처럼 높게 만든 마루를 누마루라고 한다.

우리 선조들이 달에까지 지어놓고 살고 싶어 했던 초가삼간은 최소 단위의 작은 집이다. 온돌방은 지붕 천장이 낮다. 그런데 마루방은 지붕이 높다. 천장이 낮은 공간은 북방형 집의 특징인데 그 바닥은 온돌이다. 전 세계에서 바닥이 온돌로 되어 있는 곳은 한국밖에 없다. ‘센트럴 히팅(중앙식 난방)’을 누가 제일 먼저 했는가를 찾아보면 한국인으로 나온다.

 

▲고구려 오녀산성에서 4세기 말~5세기 초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온돌의 흔적들(복원). 당시 온돌은 백성들과 변경의 병사들이 널리 애용했다. 사진=서울대출판문화원

 

중국 《후한서(後漢書)》 《구당서(舊唐書)》에 보면 온돌은 고구려의 특징적 문화라고 소개한다. 한민족의 보편적 살림집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온돌이다. 고구려 사람들은 항상 높은 데다 집을 짓고 온돌을 사용했다고 적고 있다. 북방계 고구려 사람이 세계 최초로 센트럴 히팅, 소위 온돌방을 만든 게다.

그런데 한반도 남쪽으로 내려와 정착해 살며 변형이 일어났다. 남부 지방의 여름은 무척 무더웠기 때문이다. 그러니 추울 때는 고구려식으로 온돌을 쓰고 더울 때는 남방계 구조인 원두막식 누마루, 마루방을 지었다. 한국의 건축은 온돌의 폐쇄성과 마루의 개방성을 동시에 지닌다. 마치 발효 음식처럼 서로 모순되는 것을 결합하고 융합시킨다. 한국 문화의 패러다임을 잘 나타내는 사례다.


초가삼간의 수평적 분할과 서양 가옥의 수직적 분할

▲전통 한옥의 천장 위 서까래.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 전통의 미를 느낄 수 있다. 사진=조선DB

 

서까래는 목조건축물의 골격이 완성된 다음, 도리와 도리 사이에 도리와 직각이 되게 걸쳐놓는 건축 부재(部材)를 말한다. 서까래 나무와 회벽(또는 황토흙)이 교차하고, 그 아래로 도리·대공·대들보 등 목재의 지붕가구가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대개 남방형 집이 그렇다.

서까래는 통나무를 모양 그대로 약간 깎은 것으로 그 자체가 자연과 문화의 접경을 이루고 있다. 서까래들은 자연의 곡선을 지니면서도 가장 인공적이라 할 수 있는 기하학적 선으로 짜여 있는 데서 독특한 아름다움을 갖는다.

평행귀서까래와 말굽서까래 그리고 부챗살처럼 펼쳐져 있는 선자서까래는 모두가 자로 그은 듯한 형을 이룬다. 그러나 선 하나하나는 자연 그대로의 곡선을 가진 나뭇등걸이다. 그러므로 마루에 누워 있으면 방 안에서도 바깥에서도 맛볼 수 없는 복합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서까래는 텅 빈 허공에 뼈의 구조를 부여한다. 한국인은 하늘의 모습을 그렇게 구조화한 것이다.

다 쓰러져 가는 집이지만 이 서까래로 남방하고 북방을 합친 아주 드문 집의 형태가 초가집이다. 눈이 많이 오는 스위스의 집 형태가 북방형, 태국의 집이 남방형 형태로 지어졌다. 한국만 굳이 말하자면 남북방형이다. 21세기 글로벌 시대는 모든 것이 결합하고 융합해야지만 평화롭게 살 수 있다. 나는 북방계, 너는 남방계, 너는 노마드, 너는 농경족이라고 나눠 살 수 없다.

 

한국인은 서로 다른 사람끼리 융합하고 결합하며 사는 훈련을 수천 년 동안 해온 문화자원을 지니고 있다. 아메리카 대륙에 살든 아프리카 고원지대에 살든 세계 어디서도 살 수 있는 융합적인 자원을 타고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즘 우리 사회가 양극단으로 치달으면서 한국적인 것을 상실하고 있다. 결합의 마음, 융합의 마음을 잃어가고 있다.

전통적인 한국의 집은 안방-마루-건넌방 구조의 초가삼간으로 수평적 분할을 했다. 바슐라르는 《공간의 시학》에서 집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그는 지하실(cave), 지붕 밑 다락방(grenier),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주거 공간의 세 층위로 분할된 집의 수직적 상상력을 통해 프로이트 이후 인간의 심리를 분할하는 무의식, 자아, 그리고 초자아의 세계를 탐구했다.

바슐라르의 시학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서양의 집은 수직적 분할을 한다. 우리나라 초가삼간의 수평적 분할과 대조적이다.


대청마루, 한국의 집은 절충형

한국의 마루는 바깥과 안을 잇는 매개적인 공간이다. 밖에서 방 안으로 들어오거나 안에서 밖으로 나갈 때 우리는 반은 방 같고 반은 누대 같은 마루의 양의적 공간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빛도 바깥과 방 안의 중간인 어슴푸레한 반영(半影)이다.

마룻바닥은 장판 아니면 흙바닥인 양극단이 아니라 나무판으로 깔려 있다. 그리고 기둥 역시 밖으로 드러나 있는데 나무 형태의 일부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반듯하도록 깎아놓은 양면성을 갖고 있다.

대청마루가 있는 한국의 집은 여름이면 서늘한 바람이 뒤에서 불어온다. 앞마당은 통풍(ventillation)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밤에는 낮은 천장 아래의 방에서 자니까 따뜻하다. 가운데 마루방은 큰 방, 작은 방을 정신적으로 갈라놓는 차단 공간이다. 여기서 대청마루는 요즈음 개량식 주택의 마루방처럼 가족들이 모였다가 떠나는 거주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제사를 지내고 식량을 저장해두는 신성(神聖) 공간이다. 물리적인 벽보다 더한 정신적 차단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마루는 사방이 트여 있어 북방 양식의 온돌방과 정반대로 개방적인 남방 양식을 하고 있다.

한국의 門

한국의 건축물은 여름에도 살고 겨울에도 살 수 있는 절충형 구조다. 북쪽으로 올라가면 집들이 바람을 막으려고 문살이 좁다. 남쪽으로 갈수록 문살이 넓다. 이게 요즘 말하는 환풍기와 같다. 에어컨처럼 “누구야, 너무 춥다. 온도 좀 올려라” “얘, 덥지 않니? 실내온도 좀 낮춰~”라며 조절할 수 있다. 과거엔 문살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문이 닫히면 바람이 못 들어온다. 문과 문짝이 딱 붙으면 별로 좋을 게 없다. 그래서 한국 문은 제대로 안 닫혀 있다. 그러니까 ‘문틈’으로 집 내부를 훤히 볼 수 있다.

다른 나라는 문과 문짝 사이에 간격이 없다. 그러니까 서양 사람들은 ‘키홀’, 즉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보는데 한국의 문은 허술해서 문틈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그렇다고 문틈 때문에 칼바람이 스며 겨울에 방이 꽁꽁 얼까? 아니다. 문풍지를 여름에는 터놓고 겨울에는 발라서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막았다. ‘바람이 불면 문풍지 우는 소리’라는 시 구절도 있지 않은가.

문풍지는 한국 특유의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이 아니면 문풍지 소리를 들으며 깊고 깊은 겨울밤을 보내는 그 정취가 무엇인지를 모른다. 한마디로 문풍지는 치수의 부정확성에서 생겨난 산물이다. 말하자면 문풍지 문화는 무엇이든 재고 따지고 계산하는 자(尺)의 문화와 양극을 이루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한국인을 미화하려고 집 이야기를 꺼낸 게 아니다. 대륙의 달리던 북방계 사람들이 이상적인 농업의 적지(適地)인 한반도로 내려와 정착하면서 노마딕 한 유목민의 삶과 농경민의 정착 문화를 함께 다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한국인의 심성과 뿌리 속에 융합적인 문화자원이 있어서 한국의 건물은 폐쇄적이면서도 개방적이요, 더위에 견딜 수 있게 시원하면서도 겨울의 온기를 유지할 수 있는 구조다.

‘팔각정’은 터 사상을 보여주는 건물

▲몇 해 전 눈 온 뒤의 서울 남산 타워 팔각정이다. 눈이 온 모습이 마치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사진=조선DB

 

산수가 좋은 곳에서 쉬거나 풍류를 즐기며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 정자(亭子)다. 벽 없이 기둥과 지붕만 있게 지어 바닥을 마루로 깐 것도 있고, 바닥의 한 부분에 온돌방을 둔 것도 있다.

정자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매개항이다. 지붕의 그 팔각은 끝없이 원을 향해 진행하거나 혹은 반대로 네모진 각으로 돌아가려 하거나 양방향의 긴장 속에 있다. 한국전통사상의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사상 가운데 정자는 인(人)을 나타낸 것으로 하늘과 땅의 양극을 연결하고 조화를 이룬다.

삼태극(三太極) 사상의 중심을 이루는 팔각정은 한국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다. 평면이 정팔각형으로 된 정자 건물로 지붕면은 8면으로 되어 있다.

한국의 전통건축물은 대단히 폐쇄적인 것 같지만 개방적인데 다른 나라에서는 여간해서는 볼 수 없는 구조다. 지금도 시골마을에 팔각정이 없는 곳은 드물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다. 팔각정은 그야말로 바람이 불고, 앞에는 금모래가 있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같은 건물이다. 팔각정에는 놀기도 하고 장기도 두고 술도 먹고 시도 읊고 경치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심성이 담겨 있다. 집은 집이로되 소유하지 않는 집! 집은 집이로되 문짝이 없는 집이 팔각정이다.

사방이 터져가지고 동서남북 아무 데고 전망대처럼 보이는 집이 팔각정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내가 팔각정에 앉아서 경치를 즐기지만 저쪽 편 사람도 팔각정을 바라보면 그 경치가 기가 막히다고 느낀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인터렉션, 즉 상호성을 중시한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사람과 도구 간의 상호작용을 조정하여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한다. 팔각정이 그렇다.

전망대에서 경치를 내려다보면 기가 막히다. 남산 타워에서 내려다보면 정말 아름답지만, 아래에서 남산타워를 올려다보면 별로 아름답지 않다. 파리 에펠탑도 그렇다. 그러나 팔각정은 다르다. 저쪽에서 팔각정을 봐도, 이쪽에서 봐도 그 모습이 아름답다. 내려다봐도, 올려다봐도 다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우리 민족은 팔각정을 가장 전망이 좋은 곳에다 터를 잡았다. 팔각정은 바깥 풍경을 “바라보기 위한 공간”이면서도 동시에 “바깥에서 바라보이도록 한 공간”이기도 하다.


돌담, 개방과 폐쇄의 융합

▲제주도의 전통가옥과 돌담장이다. 저마다 다른 모양의 돌을 쌓았으나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넘어지지 않는다. 사진=조선DB

 

외국에서 놀라는 점은 서양 사람들이 노마딕 해서 그런지 담이 없다. 빌딩은 물론 공공건물이고 주택이고 담이 없다. 만약 내가 서울시장이라면 담 없애기 운동을 펴겠다. 과거 대구에서 담 없애기 운동을 한 적이 있긴 하다.

광화문 하나만 남겨놓고 경복궁 앞까지 주욱 터놓으면 기가 막힌 광장이 생긴다. 그러니까 고궁의 어느 담 한쪽만 남겨놓고 툭 터놓으면 미래의 현대와 고궁이 함께 사는 게다. 한때 동서 베를린을 가르는 비감(悲感)의 문인 저 브란덴부르크 문도 문 하나만 남겨놓았다.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도 문 하나만 남겨놓았다. 그런데 우리는 남긴다 하면 그냥 다 남기고, 없앤다고 그러면 전부 부숴버린다.

한국의 돌담은 나지막해서 안에서 밖이 반은 보이고, 바깥에서도 안이 반은 보인다. 도적이 들어오지 말라고 돌담을 쌓은 게 아니다. 개구멍으로 사람도 드나들 수 있다. 사립문이라는 게 발로 툭 차면 열린다. 마음으로 ‘나’와 ‘너’를 가르면서도 완전히 가르지 않은 것이 돌담이다. 돌들을 전부 이어 붙인 게다. 그러니까 그 돌담은 네모난 벽돌처럼 짓는 것이 아니라 제각기 다른 것을 어울려서 지었기에 하나의 개성을 살리면서 주위와 어울린다.

지금도 시골에 가보면 담은 있어도 막상 대문이나 문을 잠그는 자물쇠 같은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집들이 많다. 돌담은 있어도 문은 없는 게 제주도의 특징이라고 하지만 한국의 담은 모두가 본질적으로 이와 비슷한 데가 있다.

한국인의 돌담은 단지 안과 바깥을 나누는 상징적 의미 공간을 보여주는 역할만 한다. 아무리 가난하다고 해도 한국인들은 한집안 식구가 성을 쌓고 지내는 것 같은 정신적인 자기 영토를 갖고 살아온 셈이다. 그러므로 일본인같이 한 지붕 밑의 울타리 없는 나가야(長屋·몇 개의 소규모 주택이 나란히 연결되어 있는 서민의 주택 형식)에서 살기에는 부적합한 사람들이다.


배산임수의 정신으로!

오늘날의 도시는 모순이다. 한자로 모순(矛盾)은 창과 방패다. 길은 창이다. 뚫고 나가려 한다. 빌딩은 벽이자 방패다. 길과 빌딩, 창과 방패가 부딪힌 게 오늘날의 도시이고 모순이다.

사람들이 건축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김소월의 시 한 편에 미래의 도시 계획이 다 들어 있다는 것을. 시 안에는 무수한 공간이 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속 앞과 뒤, 개방과 폐쇄, 무기물(모래)과 유기물(이파리), 수평성과 수직성(강과 산), 그리고 시각과 청각….

뒤에는 청산을 지고 앞에는 강물을 끌어안고 있는 초가삼간이야말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원형이다. 한국인들이 몇천 년 동안,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삼았던 공간이 어디인가?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강이 있는, 그 한가운데에서, 강도 산도 아닌 강변에서 살자고 한 게다. 그런데 일부는 산속으로 들어갔다. 퇴계 이황은 ‘청량산가’에서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는 나와 흰 기러기(白鷗)뿐이며 어부(魚舟子)가 알까 하노라’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은둔 생활하면 안 된다. 그것은 도피다. 그렇다고 자연을 잃고 도시로만 나갈 수가 없다.

강변이야말로 바로 배산임수다. 뒤는 닫히고 앞은 열린 공간! 이 정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의 새로운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집은 가정이 아니다

동화 《성냥팔이 소녀》. 동화 속 아버지는 폭군의 모습으로 가정이나 가사일을 외면하는 서구 아버지 상(像)을 담고 있다.

 

하우스와 홈은 엄연히 다르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모두 집으로 통칭한다. 하우스도 집이고 홈도 집이다. “집 식구(食口)가 얼마냐?” 하고 묻는다. 집하고 식구, 하우스와 홈을 구별하지 않았다. 영어는 반드시 ‘어 하우스 이즈 낫 어 홈(A house is not a home)’이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것은 단순한 집이 아니라, 터가 아니라 홈을 뜻한다. 어머니와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게다. 주인공 ‘성냥팔이 소녀’는 길거리에서 왜 얼어 죽었을까? 몸 녹일 곳이 없어, 집이 없어서 얼어 죽었을까? 또는 가난해서,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성냥이 떨어져서 죽었을까?

사실 성냥팔이 소녀에게는 성냥 파는 애니까 집이 없는 게 아니었다. 거지가 아니니까 집이 있었다. 성냥이 많이 팔렸으면 빨리 집으로 귀가했을 게다. 그런데 성냥이 잘 안 팔렸을 뿐인데 왜 길거리에서 얼어 죽었을까? 아버지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걸 놓친다.

성냥을 못 팔고 들어오면 아버지가 때렸다. 하우스는 있는데 자기를 돌봐주고 따뜻하게 해줄 어머니가 없었던 것이다. 할머니마저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있긴 한데 소녀가 성냥을 못 팔고 집에 가면 때려서 못 들어갔다. 그러면 아버지는 가족이 아닐까? 여기에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같은 가족인데 아버지가 딸을 돌보지 않고 앵벌이처럼 내몰았다. 둘째는 이 아버지라는 존재가 왜 그렇게 됐을까다.

성냥팔이 소녀는 딱성냥을 팔았다. 벽에다 대고 그으면 불이 붙는 성냥이다. 안데르센이 이 동화를 쓸 무렵 발명되었다고 한다.

이 동화는 그러니까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에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에서 아버지하고 어머니가 다르듯이 말이다. 아버지는 전쟁하고 싸우고 경쟁하니까 가정이라는 ‘홈’은 어머니가 여성들이 이끌어왔다. 애 낳고 기르고 젖 먹이고….

모든 짐승 중에 아빠, 아버지 노릇을 하는 짐승이 거의 없다. 새들은 더러 아버지 노릇을 하기도 한다. 펭귄은 이런 면에서 좀 특이하다. 펭귄 아버지는 부성(父性)이 대단하다. 자기가 먹은 것을 토해서까지 새끼를 먹인다. 펭귄은 워낙 사는 환경이 가혹하니까 부부가 아니면 못 키운다. 부모 중 하나가 먹이 가지러 가면 또 하나는 지켜야 되고 하니까 꼭 부부가 기른다.

발에 알을 품은 펭귄 수컷들은 서로 몸을 맞대어 밀집된 커다란 똬리를 튼다. 먼저 몸으로 방풍벽을 친 펭귄들은 서로의 체온을 모아 바깥보다 10도나 높은 따뜻한 내부의 공간을 만든다. 하지만 바깥 외벽을 친 펭귄들은 영하 50도 추위에 노출되어 있다. 어떤 펭귄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얼어 죽게 될 것이다. 그런데 아니다. 밖에 있던 펭귄이 안으로, 안에 있던 펭귄이 밖으로 조금씩 무리 전체가 소용돌이처럼 돌면서 교대를 한다. 인간들이 희구해온 공동선(共同善)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펭귄에 있어서 그렇다. 보통 짐승들에게 아버지는 그냥 번식 수단으로만 있고 애 낳으면 그다음에는 나몰라다.

서양에서 아버지가 부모 역할을 못 한 것은 가정과 공동체 사회가 완전히 분할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우스 이즈 낫 어 홈! 집이 홈이 아니라는 게다.


가정은 아내가, 아버지는 정치만 했던 그리스 문화

희랍의 아버지, 그리스의 아버지, 로마의 아버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아버지가 아니다. 그리스 문화든 로마 문화든 나쁘게 말하면 아버지가 없는 문화였다. 소크라테스가 아들을 키웠다는 이야기 들어봤나? 우리는 내 아들 지키다가 죽지만은 소크라테스는 남의 청년을 데리고 다녔다.

경제학이라는 말이 이코노미(economy)다. 이코노미는 그리스말로 집, ‘오이코스(oikos)’에서 나온 말이다. 이 오이코스에 법을 뜻하는 ‘노모스(nomos)’를 합치면 가사(家事)의 뜻이 된다. 표면 그대로는 아니지만 아테네의 시민들은 이 가사의 영역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노예와 아녀자가 하는 일(노동)로 생각했다. 먹는 것을 위해서 노동을 하는 ‘의식주’의 일상성에 매달려 사는 사람은 바로 이 오이코노미아(가사경영)를 맡은 노예와 같은 것이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나 희랍 사람들은 오이코스에 얽매인 사람들이 아니라 폴리스라고 하는 도시의 법규를 더 중시했다.

어머니, 아이들, 노예가 집안일을 도맡을 때 남자들은 집에 있지를 않고 아침밥 먹으면 광장에 나가 정치를 이야기하고 정의를 이야기하고 명예를 이야기했다. 모든 먹고사는 문제는 어머니, 어린 아이, 노예들이 한 게다. 그러니까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는 노동과 경제를 말하지 않았다. 가사는 노예들이 하는 거니까.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노동이 중요하다는 말을 했고 젊은이들에게 일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은 죄목 중의 하나에 걸린 게다.

남자는 집 안에서 애 키우고 집안 살림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폴리스의 명예와 폴리스를 지키고 군대가 되고 외침을 막아주고 폴리스의 명예에 가장 아름다운, 가장 씩씩한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여성들이여! 주방과 안방과 아들과 노예들과 함께 집일을 봐라. 나는 나랏일을 볼란다’고 했던 게다.

 

희랍인들은 폴리스를 건설하고 지키는 공론의 장과 공공 영역에서 일하는 시민들의 일을 노동과 구분했다. 여성과 노예의 노동과 구분해 공적인 일을 하는 것을 ‘행위의 활동(비바 액티바·Viva Activa)’이라 규정했다. 남자들은 폴리스에 가서 온종일 궤변철학자가 되어야 했다.

우리가 ‘생태학’이라 번역하는 이콜로지(ecology)도 오이코스다. 집을 중시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집의 역할과 남자들의 역할이 달랐다는 게다. 전사가 되어야 했고 철학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빵이 잘 구워졌냐고 말해선 안 됐다. 남자들이 밥 먹다가 반찬투정하고 뭐 하면 안 되듯이 말이다.

아버지가 없는 사회, Fatherless Society

‘어 하우스 이즈 낫 홈’이라고 한다면 홈에는 무엇이 있어야 할까? 집에 무엇이 있어야 할까? 집에는 아버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아버지 없는 사회가 되었다. 이를 ‘파더레스 소사이어티(Fatherless Society)’라고 부른다. 아버지가 없는 게 아니라 아버지 역할이 아주 미미하다. 자녀 진학 문제를 두고 과거엔 학교에서 학부형을 불렀다. 아버지도 포함된다. 그런데 지금은 자모회가 역할을 대신한다. 지금까지 인류를 떠받쳐왔던 부-모-자의 삼각구조가 무너지고 가족 자체의 붕괴를 의미한다.

우스갯소리 하나를 하자면, 어느 ‘기러기 아빠’가 죽어라고 돈을 벌어 아들의 유학비를 댔다. 그 아이는 한 번도 아버지에게 감사를 표한 적이 없었다. 늘 어머니하고만 이야기했지 아버지는 상대 자체를 안 한 게다. 한 번은 그런 아버지가 불쌍해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가 받더니 “엄마 바꿔줄게” 한다.

“아니에요, 오늘은 아버지와 이야기하려고 그래요.”

“왜 돈 떨어졌냐?”

“아뇨. 아버지하고 대화가 하고 싶어서 그래요.”

“…. 너, 술 먹었냐?”

아들이 전화하면 아버지는 교환수다. 어머니한테 전화기를 바로 건네준다. 가부장 제도는 21세기에 적폐(積弊)가 되었다. ‘홈이 없는 아버지’! 가정의 붕괴는 아버지가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아버지 없는 사회’로 만들었다. 한국의 남성이 죽은 날은 월급봉투가 온라인으로 아내에게 직접 송금되었던 바로 그날이라는 농담이 있듯이 교육도 경제권도 모두 아내가 장악하면서 잠자는 ‘가시고기’가 되었다. 지금이라도 주택은 집이 아니라 홈이어야 한다.⊙

 

 

03월 호

〈끝〉 하우스를 홈으로 만들자

아파트를 사랑의 공동체, 협력의 공동체로 만들려면…

⊙ 아파트 어원은 ‘어 파트(a part)’. 따로따로 나뉘어 있다는 의미
⊙ 아파트 문화를, 하우스를 홈으로, 컴파트먼트(compartment)로 만들자
⊙ 누가 어린애를 낳으면 그 집에 깃발을 올려주자. 애국했다는 감사의 표시로…
⊙ 3D프린팅 기술로 초가집의 아름다운 곡선, 능선과 어울리는 집을 지으면 어떨까
⊙ 제조지식이나 설비 없어도 전 국민이 제조업자가 될 수 있는 ‘一人 메이커’ 세상 도래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주거 형태가 아파트다. 이어령 선생은 아파트를 ‘집(하우스)’이 아닌 ‘가정(홈)’으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일러스트=조선DB

 

‘[ ]이(가) 없으면 집이 아니다(house is not a home without [ ])’고 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사랑’이다. 사랑이 없으면 집이 아닌 게다. 이때 집은 주택(하우스)이 아니라 가정(홈)이다.

그런데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혼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혼자니까 대화 없이 지내겠지. 더러는 애완견을 가족처럼 여기며 살기도 한다. 그런 분들에겐 ‘하우스 이즈 낫 어 홈 위드아웃 도그(house is not a home without dog)’, 개 없으면 집이 아닐 게다. 상상력을 발휘해 개(dog)를 뒤집으면 갓(God)이 된다. 신이 없으면 집이 아니다?(house is not a home without God?) 목사님이나 신부님, 열심인 신자에겐 ‘갓’이 집이고 가정이다.

고약한 상상도 가능하다. 돈 없으면 집이 아니다?(house is not a home without the money?)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어쨌든, [ ]에 무엇을 넣든 개인의 자유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넣겠는가?

내가 지금껏 집 짓는 법을 말하고, 미래도시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여전히 ‘[ ]’가 비어 있다. 여러분 스스로 채워 넣어야 한다. 다만,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에 담긴 생명력, 사랑, 애정을 집에 채워 넣어야 한다는 말을 우선하고 싶다.

우리 집에 족집게 과외 선생을 모셔와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그만이라 여기는 집, 아버지가 돈 버는 기계가 된 집, 그런 가정이 되어선 안 된다. 엄마와 누나, 아버지, 형이 오순도순 모여 앉아 된장국이 보글보글 끓는 정다운 집이어야 한다. 희랍시대에 소크라테스가 제 자식이 아니라 갑남을녀(甲男乙女) 자식을 가르쳐 폴리스 공동체를 만들려 했던 아버지의 역할, 그리고 오이코스(oikos)로 불린 가사 일로 가정을 지켜낸 어머니 역할이 집이자 홈, 그리고 가정이다. 제주 돌담처럼 뾰족한 돌, 둥근 돌이 합쳐져 거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집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하우스를 홈으로 만들자’고 외친다.


미래의 집, 사랑과 협력으로 이루는 집

▲우리나라 산업화 초기에 지어진 성냥갑 모양의 아파트. 이어령 선생은 소통이 단절된 아파트먼트를 서로 협력하는 컴파트먼트로 만들자고 말한다. 사진=조선DB

 

많은 사람이 강변에 모여 살 수 없어서 요즘엔 아파트 생활을 한다. 아파트의 어원은 ‘어 파트(a part)’다. 따로따로 나뉘어 있다는 의미다. 층간소음이라는 게 위층에서 나는 소리 때문일까. ‘머리가 흔들리면 싸움 난다’는 말이 있듯이 잠을 자는데 머리 위에서 소리가 나면 몹시 기분이 나쁘다. 옛날 쥐가 많던 시절, 천장에서 난리를 치는 격이다. 그래도 그 시절, 사람들은 잠자코 살았다. 아파트 층간소음을 쥐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현대인의 주거를 대표하는 아파트는 주행을 멈추는 자동차 차고(車庫)처럼 활동이 멈춘 인간을 수납(受納)하는 공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외침은 순전히 재미로 하는 이야기도, 한국의 전통문화를 재건하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아파트를 강변으로 옮기거나 강변에 아파트를 짓자는 것도 아니다. 아파트 문화를, 하우스를 홈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사실 아파트는 일본식 외국어다. 아파트먼트가 바른 표현인데 미국에서나 쓰는 말이고 다른 곳에선 플랫(plat)이라 부른다.

어쨌든 이 아파트먼트에 반대되는 의미가 컴파트, 혹은 컴파트먼트(compartment)다. 기차를 여럿이 타는 것을 컴파트먼트라고 한다. 혼자만의 독식이 아니라 여럿이 하는 것을 뜻한다. 요새 사람들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근황을 알고, 심지어 대화도 나눈다. 그런데 정작 옆집에 대해선 누군가 홀로 죽어도 알지 못한다. 사체 썩는 끔찍한 냄새를 맡고서야 무관심을 탄식하게 된다. 그렇기에 앞으로 하우스를 홈으로 만들고, 아파트를 컴파트먼트로 만들면 기가 막힌 홈, 가정을 꾸밀 수 있다.

지금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은 직업이나 연령이 제각각이다. 공무원도 살고 자영업자도 살고 전문직 일을 하는 이도 있다. 그렇다면 이 아파트를 컴파트먼트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트라넷(intranet·조직 내부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환경)에 주민들을 다 등록하는 게다. 예를 들어 ‘나는 미술 선생이야. 무슨 자동차를 타고 주말마다 산에 올라’ ‘나는 서울시청에 근무하는데 광화문 방향으로 날 태워주면 별풍선 하나를 줄게’ ‘나는 목공사인데 요즘 일거리도 없어서 집에서 논다. 혹시 선반이 부서졌다면 연락을 달라. 금방 고쳐드리겠다’고 글을 올리면, 이걸 인트라넷 시삽(SYSOP·System Operator·시스템 운영자란 뜻)이 서로 공유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만약 잘 모르는 사람과 카풀을 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이런 방법은 어떤가. ‘나는 영어 선생인데 아이들을 틈날 때 공짜로 가르쳐줄 용의가 있다. 대신 가끔 주말과 휴일에 당신들 놀러갈 때 가끔 묻어가자’고….


아파트 1동은 셰익스피어, 2동은 정철, 3동은 이어령…

▲서울 모 아파트의 꽃밭에서 아이들이 뛰돌고 있다. 130여 평 정도 되는 꽃밭으로 사계절 꽃이 가득하다고 한다. 사진=조선DB

 

아파트먼트는 분리되어 있지만, 컴파트먼트는 공동체다. 가족처럼 내가 없는 걸 저 사람이 가지고 있고, 내가 지닌 것이 저 사람에게 없을 때 ‘워크셰어링(work-sharing)’이 가능하다. 아파트에 몇백 명씩 살지 않나? 잘만 하면 워크셰어링 가정이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 있다.

주민들이 모두 모여 “우리 아파트를 책 읽는 동네로 만들자. 아파트 이름을 전부 작가 이름으로 짓자”고 하면 어떨까. 투표를 통해 득표 순으로 아파트 1동(棟)은 셰익스피어 동, 2동은 정철 동, 3동은 이어령 동으로…. 어떤가? 뭔가 신선하지 않나?

또 아파트 마당을 관리인에게 맡길 게 아니라 한 평씩 전 주민에게 나눠주면 어떨까. 원하는 사람은 거기다 꽃도 심고 나무도 심을 것이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가가호호(家家戶戶) 꽃씨를 나눠주고 모종삽도 빌려주면 ‘셰익스피어 동’ 주민들은 봉선화를 심고, ‘정철 동’ 사람들은 목련을 심어 그렇게 분양받은 땅에서 꽃과 나무를 심은 뒤 가을이 되면 얼마나 잘 가꾸었나 품평회를 해서 1등상을 주는 게다.

그리고 무슨 좋은 일이 있으면, 예컨대 누구 집에서 어린애를 낳으면 그 집에 깃발을 올려주자. 애국했다는 감사의 표시로 말이다. ‘우리 손자가 합격을 했습니다’ ‘오늘 제가 환갑입니다’ ‘오늘 우리 아이의 첫니가 빠졌습니다’ 하고 깃발을 세워주는 게다. 서로 안 친해도 몇 동 사는 사람이 어린애를 낳은 소식을 원치 않아도 알게 된다. 이렇게 되면 아파트가 아니라, 서로 헤어진 파트가 아니라, 컴파트먼트가 된다. 하우스가 아니라 홈들이 모여서 타운이 되는, 홈타운이 된다.

그런데 이걸 무슨 통반으로 나눠 주민 대표자가 나서서 강제한다면 지옥이 된다. “셰익스피어 1동 3반 사람들은 어디어디 모여서 무얼 해야 한다”고 숙제를 내면 사람들이 기를 쓰고 도망칠 게 뻔하다. 자율적인 커뮤니티가 되어야 사회주의 국가가 실패한 공동체 운동을 아파트에서 할 수 있다.

좋아하는 음악과 미술을 공유하듯 아파트에 살며 기쁨과 슬픔마저 나눌 수 있다. 그런 셰어링(공유)을 큰소리내지 말고, 대한민국 전체 말고, 작은 아파트 한 동, 한 층에서라도 시작한다면 세상이 바뀌는 게지. 큰돈 들인 무슨 국가기념일을 만들어봐야 안 먹힌다.


3D프린터로 하는 건축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아시아나 C.C. 클럽하우스 전경이다. 초가집의 부드러운 곡선을 살려 디자인했다. 미국 골프 플랜사(社)의 로날드 프레임(Ronald W.F.ream)이 설계했다.

 

어느 나라에 가든 그 나라만의 건축이 있고 건축 양식이 있다.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건축물, 인도네시아 하면 떠오르는 수상가옥,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하면 떠오르는 땅밑 암굴 교회….

여러분은 한국 하면 어떤 집이 생각나는가? 한국적인 집이란 게 있을까? 초가집? 기와집? 이제는 시골에 가도 초가집을 볼 수 없다.

초가지붕을 허물고 슬레이트를 얹었기에 슬레이트집이라 해야 할까? 그렇지만 슬레이트집은 아무런 특징도 찾을 수 없는 무국적 집 같다.

지금은 3D프린터 시대다. 3D프린팅으로 초가집을 얼마든지 스캔할 수 있는 세상이다. 비도 안 새고 썩지도 않는 집…. 3D프린터로 찍으면 초가집하고 똑같이 만들 수 있다. 벌써 중국에서는 3D프린터로 집을 짓고 있다고 한다.

지금 수십 층짜리 아파트가 들어서고 고층 빌딩이 세워지는 판에 초가집을 짓는다고 하면 누가 좋아할까. 하지만 어느 유명 외국인 건축가의 경우, 한국의 초가집이 너무 아름답다며 유명 골프장 클럽하우스에다 초가지붕을 올렸다고 한다.

이렇듯 3D프린팅 기술로 초가집 지붕의 아름다운 곡선, 능선과 어울리는 집을 지으면 어떨까. 한 마을을 그렇게 만들면 잃어버린 옛 마을의 풍경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달나라에 집을 짓겠다고 우주선에다 시멘트나 벽돌을 실어서 로켓을 쏠 필요가 없다. 로봇과 3D프린터를 실은 우주선을 달에 착륙시키면 된다. 그럼 로봇이 알아서 프로그램에 따라 3D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달에 우주비행사가 살 기지, 착륙시설을 만들 것이다. 사진은 미국 NASA가 만든 달 착륙기지의 상상도다.

 

달나라에 집을 짓겠다고 우주선에다 시멘트나 벽돌을 실어서 로켓을 쏠 필요가 없다. 로봇과 3D프린터를 실은 우주선을 달에 착륙시키면 된다. 그럼 로봇이 프로그램에 따라 알아서 3D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달에 우주비행사가 살 기지, 착륙시설을 만들 것이다. 어떻게? 로봇이 달의 토양과 암석 등을 채취한 뒤 3D프린터에 집어넣고. 3D프린터는 평면으로 된 문자나 그림이 아닌 디지털 정보로 물체를 인쇄한다. 물체를 제작하는 시간과 비용을 모두 줄일 수 있다. 2024년 달 표면에 사람을 보내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 미국 나사(NASA)는 달의 토양을 기반으로 다양한 3D프린팅 건축 기술을 시험할 계획이라고 한다.

만약 현실화되면 달에 3D프린팅 건축 기술로 세운 우주 착륙기지가 들어설 수 있다. 생각만 해도 놀랍다. 이 3D프린팅 기술을 이용하면 한국의 풍경이 달라지고 농촌이 달라지지 않을까? 비록 초가집이지만 안에는 최첨단 기기가 꽉 들어찬 초가집….

3D프린터를 모든 학교에 나눠줘서 학생들이 저마다의 공장장, 회사 사장이 되면 어떨까. 모두가 홈페이지를 하나씩 만들어 자신의 아이디어로 만든 물건을 파는 게다.

5000만 명의 한국인이 ‘메이커스(Makers: The New Industrial Revolution)’가 되는 것이다. ‘메이커스’라는 말을 처음 만든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의 생각처럼 누구나 집에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개인 제작(personal fabrication)’ 환경…. 기발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제조지식이나 설비가 없어도 누구나 ‘일인(一人) 메이커’, 전 국민이 제조업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할 수 있다. 메이커스가 국력의 바탕이 되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아파트 생활을 인정이 넘치는 집단으로

내가 이야기하는 ‘[ ]이 없으면 집이 아니다(House is not a home without [ ])’는,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니라 양쪽(both, and)을 다 갖는 시대를 여러분이 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게다.

그렇게 됐을 때 여러분은 한국에 태어난 것이 가난의 전통을 물려받은 게 아니라 가장 풍요한 문화자본을 지니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의미가 된다.

이것은 절대로 꿈이 아니다. 지금 이야기한, 하우스를 홈으로 만들고 아파트먼트를 컴파트먼트로 만들면 가능하다.

 

이미 만들어진 아파트 생활에다 세계 어느 나라도 못 하는 사랑의 공동체, 협력의 공동체를 더하면 되는 게다.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가난하면서도 사람답게 살아왔던 인정(人情)이 있는 집단을, 이익의 집단이 아니라 정(情)의 집단을 만들었을 때, 한국의 아파트에서는 고아도 독거노인도 모두 외롭지 않을 게다.

이렇게 되면 동화작가 안데르센에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당신의 〈성냥팔이 소녀〉를 한국으로, 한국의 아파트먼트로, 컴파트먼트로 보내시오. 성냥팔이 소녀는 성냥을 많이 팔 게 틀림없소. 겨울 추운 날에도 아파트 주민들이 그 성냥을 다 사줄 테니까. 이제 당신의 동화는 끝났소.”

이렇게 여러분은 한국인 이야기를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나와 네가 함께 짓는 집
산은 그 높이가 아니라
신선이 살아야 명산이고

강은 그 깊이가 아니라
용이 살아야 신령한 강이라 했다.

그래 집은 커서가 아니라
나누는 정과 사랑이 있어야
비로소 내 집이라 할 수 있으니

너의 흙
그리고 나의 돌로 집을 짓자.

낮에는 햇빛
밤에는 별과 달이
우리 집 창문과 뜰을 만든다. 〈끝〉

 

 

연재를 마치며…

이어령 선생이 타계하시기 직전에 시작한 〈끝나지 않은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는 3월호 연재를 끝으로 모두 24차례 진행되었습니다. 더러 지면 사정으로 한두 달 쉬었을 망정 2021년 10월호부터 쉬지 않고 걸어왔습니다. 간혹 독자님들이 물으셨습니다. “이 글이 선생의 글인지, 기자의 글인지 헷갈린다”고요. 저도 헷갈립니다.

선생께서는 도저히 당신이 집필하실 수 없는 지경에 이르시자 평생 탐색하신 ‘한국인 이야기’ 텍스트를 기자에게 건네시며 “주춧돌을 삼아 기자의 생각을 보태어 완성하라”고 맡기셨습니다. 워낙 병세가 하루가 다르게 위중하셔서 부득이 그런 결정을 내리신 것이었습니다. 부족한 줄 알면서도 선생이 남기신 큰 발자국을 따라 걸으려 노력하였습니다. 오직 선생에게 누(累)가 되지 않기를 소망할 뿐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정리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