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上萬事 2024-02/ 02.01 소방관들, 매캐한 연기속 잔불 진화 - 02-29 ‘미복귀 전공의’ 엄단 않으면 의료도 법치도 흔들린다
世上萬事 2024-02/
02.01 소방관들, 매캐한 연기속 잔불 진화...“동료 잃은 슬픔 견뎌내는 중”

▲1일 오전 경북 문경시 신기동의 육가공업체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이승규 기자
1일 오전 경북 문경시 신기동의 육가공 업체 공장. 매캐한 탄 냄새가 공장 300m 앞까지 진동했다. 주차 후 현장 가까이 접근할수록 탄내가 심해 마스크를 써야 했다. 현장 주변엔 잔불을 진화하기 위해 소방관 약 50여명이 교대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들의 얼굴과 양손, 소방복 곳곳은 진화 과정에서 묻은 재로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전날 오후 7시 47분쯤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한 이 공장에서 인명을 구하려 들어간 문경소방서 소속 김수광(28) 소방교와 박수훈(36)소방사 등 2명이 순직했다.
화재 현장에는 침묵이 가득했다. 물 먹은 골판지처럼 으스러진 공장 건물에서 소방관들은 굳게 입을 다문 채 잔불을 끄기 위해 호스를 잡았다. 한 소방관은 소방 장비에 탑승해 건물 3층 높이까지 올라간 뒤 소방용수를 건물 내부로 쏘고 있었다. 또 다른 소방관은 포크레인을 가동해 수시로 무너진 건물 잔해를 정리했다.
현장에서 만난 소방 관계자는 “재발화하지 않도록 남은 불씨를 완전히 꺼뜨리고 있다”면서 “모두가 동료를 잃은 슬픔과 미안함을 견디는 중”이라고 했다. 지역 주민 정모(63)씨는 “뉴스를 보고 현장에 와 봤다”며 “소방관 두 명이 사람 살리려다 순직했다던데 자식 잃은 것처럼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순직한 김 소방교와 박 소방사는 119구조구급센터 소속으로 전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이들은 공장에서 사람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내부에 대피하지 못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에 동료 2명과 함께 수색에 돌입했다고 한다.
경북소방본부에 따르면 불길은 공장 내부 3층 작업장 내 튀김 기계 인근에서 처음 발화했다고 한다. 김 소방교 등은 출입구를 통해 공장 내부로 진입한 뒤 1층을 거쳐 3층까지 계단을 타고 인명 수색을 했다. 하지만 공장에 진입 후 불길이 갑자기 확산되면서 이들은 고립됐다. 설상가상으로 공장 건물까지 붕괴되면서 탈출이 힘들어진 것으로 소방 측은 추정하고 있다.
탈출 과정에서 함께 진입한 동료 2명은 창문으로 탈출했지만 김 소방교 등은 결국 무너진 건물 더미 속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서로 5~7m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소방관 외에 다른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불이 난 공장은 연면적 4319㎡에 4층 철골 구조 건물로 지난 2020년 5월 사용허가를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 감식 등을 통해 화재 원인과 사망경위 등에 대해 명확히 조사할 방침”이라며 “부검 여부는 유가족 의사를 고려해 판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순직한 김 소방교는 2019년 공채로 임용된 이후 지난 해엔 인명구조사 시험에도 합격해 구조대에 자원했다. 동료들은 “평소에도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사명감이 있던 친구”라고 말했다.
박 소방사는 특전사로 복무하던 중 구조분야 경력 채용에 지원해 임용됐다. 박 소방사는 생전에 소방관이 된 이유에 대해 “사람을 구하는 일로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답했다. 미혼인 박 소방사는 “나는 소방과 결혼했다”고 동료들에게 얘기했다고 한다.
경북소방본부는 순직한 두 소방관에 대한 장례를 준비하고 국립현충원 안장, 1계급 특진 및 옥조근정훈장 추서를 추진할 방침이다. 영결식은 문경실내체육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02-05 소비자물가는 2%대인데 설 과일 파동 부른 뒷북 대응
1월 소비자물가 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2.8% 올라 6개월 만에 다시 2%대 안정세를 보였다. 국제유가 하락이 큰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과일 가격이 28.1%나 치솟은 점이다. 사과(56.8%), 배(41.2%), 토마토(51.9%), 귤(39.8%) 등 신선 과일이 일제히 급등했다. “설 제사상에 과일을 빼야겠다”고 할 만큼 민심이 나빠졌다.
사실 사과·배 파동은 오래전 예고됐음에도 허겁지겁 뒷북 대응하는 모양새는 또 다른 문제다. 지난해 4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농업관측’을 통해 사과는 1.3%, 배는 2.1% 재배면적이 줄 것으로 예보했다. 9월에는 ‘농업전망’을 통해 긴 장마로 사과 탄저병이 퍼지면서 사과·배 생산량이 28% 급감할 것이라 경고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재배 지역 북상, 농촌 고령화와 수확철 외국인 인력 배정 차질 등을 주요 문제로 지적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연말이 돼서야 뒤늦게 “사과 생산량이 27.3% 줄고 배 생산량도 26.8% 급감했다”고 인정했다.
사과와 배는 정부가 국내에 병해충이 유입될 수 있다는 이유로 세계무역기구(WTO)의 동식물 위생·검역조치(SPS)에 따라 수입을 금지하고 있는 품목이다. 당연히 수급 전망을 예민하게 따져야 하는 품목인데 뒷북을 치기 일쑤다. 정부는 “계약재배 물량을 긴급 투입하고 설 성수품 가격 할인에 예산 84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가공용으로 활용하던 비정형과 출하도 지원할 방침이다. 국가·도시 비교 통계 사이트 넘베오(Numbeo)에 따르면, 한국 과일값은 6년 연속 압도적 세계 1위로 집계됐다. 유통 구조 개혁과 수입 개방 확대 등 근본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문화일보 사설
02.06 곳곳서 되풀이된 ‘대장동 비리’… 감사원, 경기도 지자체 부동산 비리 다수 적발
대장동·백현동 비리를 계기로 감사원이 경기도 지방자치단체의 부동산 개발 사업을 점검해보니, 다수의 사업에서 대장동·백현동처럼 민간 사업자에게 특혜를 주는 등의 비리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통해 민간 사업자가 부당하게 챙긴 경제적 이득은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에 달했다.
6일 감사원이 공개한 ‘지방자치단체 참여 부동산 개발 사업 추진 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총 사업비 1조8000억원 규모 ‘김포 한강시네폴리스’ 개발 사업에서 가장 많은 특혜가 있었다.
김포시 산하 공공기관인 김포도시관리공사는 2014년 이 사업에 참여할 민간 사업자를 선정했다가 사업 진행이 부진하자, 기존 사업자와의 협약을 해지하고 2019년 새 사업자를 공모했다. 새 사업자로는 IBK투자증권과 협성건설이 대표사로 참여한 컨소시엄이 선정됐다.
당시 김포도시관리공사는 대표사가 전체 지분의 48% 이상을 보유해야 하고, 대표사가 신용등급이 높고 충분한 자본을 갖춰야 한다는 조건을 걸고 있었다. 기존 민간 사업자의 규모가 작고 신용도가 낮아서 사업이 진척되지 않았다고 보고,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내건 조건이었다.
그러나 감사원이 확인해 보니, 협성건설은 명목상 대표사였고 S사가 이 컨소시엄의 실질적인 대표사였다. S사가 신생 업체이고 신용등급도 낮으며 자본도 많지 않아 S사를 내세우면 사업자로 선정되지 못할 것이라고 본 관계자들이 협성건설이 대표사인 것처럼 허위로 사업 계획서를 꾸며 제출했던 것이다. 이들은 협성건설과 ‘형식적인 대표사로서 업무를 수행하되 일체의 책임을 면책한다’는 특별 협약까지 몰래 맺어놓고 있었다.
공사를 속여 사업자로 선정된 IBK-협성건설 컨소시엄 관계자들이 사업비 일부를 빼돌린 정황도 확인됐다. 컨소시엄 관계자들과 공사 직원들은 이 사업 자금 조달을 위해 세워진 PFV(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의 이사를 맡고 있었고, 이들은 2019년 8월 PFV가 S사에 자산 관리를 위탁하는 계약을 체결하게 했다. 계약에는 S사에 사업 대상 부지의 50% 이상을 확보하면 1차 인센티브로 135억원, 100%를 확보하면 2차 인센티브로 74억원을 준다는 조항이 있었다.
하지만 사업 추진이 부진했다는 기존 민간 사업자도 이미 사업 대상 부지의 50% 이상을 확보했었던 적이 있고, PFV가 S사와 자산 위탁 계약을 체결하기 직전에도 이미 부지 재확보율이 40%를 넘던 상황이어서, S사와 1차 인센티브 계약을 하지 않아도 조만간 부지 재확보율이 50%를 넘길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컨소시엄 관계자들과 공사 직원들은 S사에 135억원을 사실상 거저 주는 계약을 승인해줬다. 2021년 1월에는 부지의 100%가 아니라 80% 이상만 확보해도 2차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게 계약 조건을 바꿔주기도 했다. 그 결과 S사는 1·2차 인센티브로 209억원 이상을 챙겨갔다.
또 S사 대표 A씨 등 컨소시엄을 주도한 관계자들은 기존 민간 사업자가 이미 사업에 투입했다고 주장하는 230억원을 그대로 주기로 미리 합의를 해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PFV는 이 합의의 당사자가 아니었으므로 이 합의에 따라 돈을 줄 의무가 없었다. 그런데도 PFV의 자산 관리를 위탁받은 S사는 기존 민간 사업자의 채권자들이 사업비를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하자 소송에 소극적으로 대응해 패소했고, PFV에 이 147억원을 대신 내달라고 했다. 컨소시엄 관계자들과 공사 직원들은 PFV 이사회에서 이 안건을 승인해줬다.
S사 대표 A씨는 자기가 59% 지분을 갖고 있는 다른 회사 B·C사를 내세워서도 사업비를 빼돌렸다. S사는 2020년 9월 B사가 특수관계에 있는 회사라는 것을 숨기고 PFV에 B사와 분양 대행 계약을 체결하게 했고, B사 잘못으로 계약이 해지됐는데도 PFV가 B사에 38억원을 정산해주게 했다. 또 PFV에 C사와 5억원짜리 연구 용역 계약을 체결하게 했다. 그러나 C사는 A씨가 소유한 페이퍼 컴퍼니로, 실제 연구 용역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회사였고 5억원은 A씨가 개인적으로 챙겼다. S사도 2020년 3월 PFV와 164억원짜리 ‘프로젝트 관리 용역’ 계약을 맺어 PFV 돈을 가져갔다. 그러나 S사가 2022년 11월까지 2년 8개월간 관리 용역에 실제로 쓴 금액은 23억원에 불과했다.
감사원은 IBK-협성건설 컨소시엄이 사업자로 선정되도록 김포도시관리공사를 속인 혐의로 컨소시엄 관계자 3명을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 이 가운데 1명은 이 과정에서 A씨 등으로부터 금품 등 875만원을 받고 자기 소속 은행이 컨소시엄에 참여하게 해,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도 받았다. 감사원은 또 S사 등에게 특혜를 주는 안건 여러 건을 PFV 이사회에서 승인해준 컨소시엄 관계자 및 공사 직원 등 4명과, S사 대표 A씨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 공사에는 S·B사 등에 PFV를 통해 부당하게 준 인센티브와 정산금, S사를 대신해 갚아준 배상금 등 259억원을 컨소시엄 관계자와 A씨 등으로부터 회수하라고 통보했다.
조선일보 김경필 기자
02.06 노조 핑계로 밥먹듯 결근...서울교통공사 민노총 간부 3명 파면

▲서울교통공사 제3노조인 올바른노조가 지난달 25일 서울시청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송시연 위원장이 기존 노조 간부들의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 준수 위반과 관련 감사원 감사와 위반자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해 말 무단 근무지 이탈과 무단 지각 등을 일삼은 노조 간부 3명을 파면하고 1명을 해임했다고 6일 밝혔다. 공사가 일부 노조 간부들에게 적용되는 ‘타임오프제(근로시간 면제)’를 위반했다며 징계를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파면 조치된 3명은 민노총 산하 노조 지회장으로, 지난해 서울교통공사의 전수 조사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상습적으로 무단 지각, 무단 결근을 한 사실이 적발됐다. 나머지 1명은 한국노총 산하 노조 소속으로, ‘타임오프 규정’을 위반해 파면보다 한 단계 낮은 해임 처분을 받았다.
타임오프 제도는 노사 교섭 등 일부 노조 활동을 근무시간으로 인정해 임금을 주는 제도이다. 서울교통공사는 전체 노조 간부 300여 명 중 32명만 타임오프 제도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전수 조사에서 지난 2022년 8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타임오프제를 어겨 허위로 근무시간을 인정받은 노조 간부가 무려 279명이나 됐다. 이번에 파면된 민노총 소속 간부 3명도 타임오프제 대상이 아닌데도 근무 태만이 심각해 중징계가 내려졌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서울교통공사는 상급 기관인 서울시로부터 ‘기관 경고’ 조치를 받기도 했다.
지난해 감사 결과에 따르면, 3호선 한 역에서 근무하는 노조 간부는 타임오프를 제외한 정상 근무 일수가 124일이었지만, 이 중 2일밖에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출근 기록이 단 하루도 없는 사람도 있었다.
공사는 감사 이후 타임오프 적용 대상이 아닌 노조 간부들의 근무 태만도 심각하다는 제보를 받아 별도의 감찰을 진행 중이다. 이번에 파면된 3명도 이 감찰 과정에서 적발된 것으로 전해졌다. 공사 관계자는 “노조 간부 중 타임오프제 적용 대상인 311명 전원에 대한 전수조사도 아직까지 진행 중이어서 조사 결과에 따라 추가 징계 인원이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서울교통공사는 이번에 징계 처분을 받은 4명이 출근하지 않고도 부당하게 타간 급여를 환수하는 조치에도 나설 방침이다.
조선일보 김휘원 기자
02.06 19년 만에 의대 증원... 내년 입학 2000명 늘려 5058명
정부가 내년 대학 입시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기로 공식적으로 밝혔다. 2006년 이후 3058명으로 동결됐던 의대 정원은 19년 만에 늘어나게 된다.
보건복지부는 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차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를 열고, 의대 정원을 2025학년도 입시에서 5058명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복지부는 “1만5000명의 수요 가운데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인력을 확충하고자 한다”며 “2025학년도부터 2000명이 추가로 입학하게 되면 2031년부터 배출되어, 2035년까지 최대 1만 명의 의사 인력이 확충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비수도권 의과대학을 중심으로 (증원분을) 집중 배정한다”며 “각 비수도권 의과대학에 입학 시 지역인재전형으로 60% 이상이 충원되도록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의사인력 수급 현황을 주기적으로 검토·조정해 합리적으로 수급 관리를 하겠다고 했다.
복지부는 이번 발표에 대해 대학,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고 했다. 복지부는 “지난해 10월 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제출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있다.
또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130차례 이상 소통했다”며 “작년 1월부터 대한의사협회와 의료현안협의체를 발족해 총 28회 소통하였으며, 대한병원협회, 종별 병원협회 등 병원계와 대한전공의협의회 등 의료계와도 적극적으로 소통했다”고 했다.

▲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차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회의에서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해 발언하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연합뉴스
한편,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오전 10시 의협 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계와의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의대정원 확대 발표를 강행할 경우, 제 41대 집행부는 총사퇴 할 것”이라며 “즉각적인 임시대의원총회 소집 및 비대위 구성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복지부는 의사 단체 반발에 대해 “비상진료 대책과 불법행동에 대한 단호한 대응 방안을 마련해놓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오유진 기자
02-06 의대 대폭 증원 만시지탄, 의사단체 집단행동 명분 없다
지난 20년 가까이 국가적 과제의 하나였던 ‘의과대학 증원’ 문제가 최종 해결 단계에 접어들었다. 의사 단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대폭 증원에 나섰다. 만시지탄이다. 의사 단체 주장에도 경청할 부분이 없지 않지만, 의대 증원은 한시도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사실에 국민이 동의한다. 최근 조사에선 증원 찬성 여론이 80%를 넘었다. 보건복지부는 6일 오후 증원 방침을 발표할 예정이다. 복지부는 “2035년이 되면 의사가 1만5000명 부족할 전망”이라며 1500∼2000명 증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몇 년에 나눠서 늘리는 점진적 증원보다 당장 충격이 크더라도 가급적 한꺼번에 늘리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의대 정원은 2006년부터 3058명에 묶여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원 확대 발표를 강행하면 총파업 절차에 돌입할 것”이라며 집단행동을 예고했다. 의사 단체들은 인구 감소에 따른 의료 수요 감소, 의료 서비스 질 저하, 의료비용 증가 가능성 등을 반대 논리로 내세운다. 하지만 2022년 기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7명)에 한참 못 미치는 현실이다. 젊은 부모들은 소아과 ‘오픈 런’에 시달리고, 곳곳에서 ‘응급실 뺑뺑이’가 다반사다. 국민에게 의사 단체들의 반대는 비뚤어진 직역 이기주의로 비칠 뿐이다.
정부는 최근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을 통해 필수 의료 수가를 집중 인상하고, 난이도·위험도·시급성을 반영하는 공공정책수가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의대 증원은 멈출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되는 시대적 대세다. 의사 단체의 명분 없는 집단행동은 국민적 반발에 직면할 것이다. 이공계 대학생 사이의 반수 열풍 등 ‘의대 블랙홀’ 부작용도 뻔한 만큼 별도의 대책도 필요하다. 의대 증원 문제를 확실히 매듭짓기 위한 모두의 협력이 절실한 때다.
문화일보 사설
02.07 의사들이 집단 이기주의 넘어서는 모범 보여주길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발표를 마친 뒤 회견장을 나가고 있다. 2024.2.6/연합뉴스
정부가 올해 대입부터 의대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기로 했다. 2006년 이후 3058명으로 묶여 있는 의대 정원을 19년 만에 5058명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비수도권 의대를 중심으로 집중 배정하겠다”고 했다.
의사가 부족해 지역 의료와 필수 의료 위기를 겪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큰 폭 증원은 불가피하다. 2021년 우리나라 임상 의사 수(한의사 포함)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OECD 회원국 중 멕시코(2.5명) 다음으로 적다. OECD 평균은 3.7명이다. 의사가 부족하면 국민이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지방 의료는 붕괴 직전이고, 소아과·외과·응급의학과 등 필수 의료 분야는 지원자가 없어 쩔쩔매고 있다. 젊은 부모들이 ‘소아과 오픈런’을 하고 환자들이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가 사망하는 사례까지 속출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구 고령화 때문에 의료 인력 수요가 급증할 것도 분명하다.
의대 정원만 늘린다고 지역·필수 의료가 저절로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의사들을 지역·필수 의료로 유인할 실효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정부는 지난 1일 지역·필수 의료 수가 인상에 10조원 이상 투입하고, 일정 기간 지방에서 근무하는 ‘지역 필수 의사제’ 도입,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무엇보다 의사들이 지방과 필수 의료 분야로 올 수 있도록 이 분야 수가를 올리고, 현재 의사들이 몰리는 미용·성형 등 분야는 부담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지금 미용·성형 등으로 의사가 쏠리는 현상은 복지부가 그동안 이 같은 조정을 소홀히 한 데 따른 것이다.
의대 증원 발표에 의사 단체들은 파업을 예고하면서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의사가 부족한 현실은 누구보다 현장 의사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의사가 더 필요한 것이 명백하고 국민 거의 모두가 원하는데, 앞으로 돈벌이에 지장 있을까 봐 의사들이 치료를 안 하고 파업한다는 것은 ‘환자 치료’라는 숭고한 직업 정신에 먹칠하는 것이다. 유럽 의사들은 “의사를 늘린다는데 의사들이 환영하지 않고 왜 반대하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정부는 의사들이 단체 행동을 벌이면 업무 복귀 명령을 내리고 이를 따르지 않을 때는 단호히 대응해야한다. 의사는 우리 사회 최고의 지식인이다. 경제적으로도 어느 직업보다 여유가 있다고 봐야 한다. 의사들이 집단 이기주의가 아니라 그 반대로 국민 고통을 더는 데 정부보다 먼저 더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한다.
이번 의대 증원으로 최상위권이 진학하는 학과 정원이 한 번에 2000명 늘어난다. 입시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서울대 자연 계열 입학생 수(1997명)와 비슷한 숫자다. 서울대·카이스트 등 최상위권 대학의 공학·과학 계열에서 자퇴해 의대에 다시 도전하는 ‘N수생’이 크게 늘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사회를 위해서도 학생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도를 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이에 대한 점검과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
조선일보 사설
02.07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의료계도 대승적 협력 해야

“총파업” 의사 단체, 89.3% 찬성 여론 수용하고
필수의료·지방의료 정상화 위해 머리 맞대 주길
정부가 내년 대학입시에서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기로 했다. 2006년부터 3058명에 묶여 있던 의대 정원이 19년 만에 65.4% 확대된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계는 “총파업 불사” 입장을 밝혔다. 대학병원 진료에 필수 인력인 전공의 단체는 88.2%가 의대 증원 시 단체행동에 참여할 의사를 밝혔다고 공개했다.
우리 의료 현실은 누구보다 의사들이 가장 잘 안다. 필수의료와 지방의료가 걷잡을 수 없이 붕괴 중이다. 아침마다 부모는 아픈 아이를 데리고 소아청소년과 앞에서 줄을 선다. 응급 환자가 병원을 전전하다 죽기도 한다. 지방의 중증 환자는 서울 대형 병원 앞에 숙소를 얻어야 치료를 받는 실정이다. 의대 증원은 이런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일부 의사는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반발하지만, 국민 대다수(89.3%)는 증원에 찬성한다는 보건의료노조의 조사결과가 나왔다.
의협은 필수의료에 대한 보상 강화와 의료인의 법적 부담 완화를 해결책으로 제시해 왔다. 이런 제안과 의대 증원을 함께 놓고 바람직한 방안을 숙의했어야 했다. 의대 정원을 1000명 이상 늘리겠다는 윤석열 정부 방침이 알려진 것은 지난해 10월 무렵이다. 이후 정부와 의협은 의료현안협의체에서만 27차례 소통했다. 그 결과 의료계 주장을 정부가 대폭 수용하기로 했다. 정부는 필수의료 수가를 집중적으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윤 대통령은 소아청소년과 기피의 계기로 지목된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으로 의료진이 구속됐던 사례를 거론했다. “의료사고 관련 고소·고발이 있다고 즉시 조사에 착수하는 것은 환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며 의사 면책에 대한 진정성을 보였다. 환자 단체의 반대를 무릅썼다. 이에 비해 의협은 의대 증원을 위해 그간 어떤 노력을 했는가. 의대 증원은 문재인 정부가 매년 400명씩 10년간 늘린다는 계획을 2020년 발표했다가 코로나19 시국에 전공의 파업으로 무산됐다. 의사 단체가 또다시 파업 카드를 꺼냈으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여론을 무시하고 직역 이기주의에 매몰돼 집단행동을 벌인다면 더 큰 민심의 비난과 불이익에 직면할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증원 계획은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 의대 쏠림이 심각한 대학 입시에서 첨단 분야 인재 확보에 차질이 생길 우려도 있다. 의대 교육의 질이 떨어질 가능성과 건강보험 부담 증가에 대한 걱정도 제기된다. 의료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의료계가 지금 해야 할 일은 환자를 볼모로 한 파업이 아니라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대승적 협력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02-07 경사노위 재가동, 3대 노동 현안 대승적 합의 서두르라
예상보다 빨리 AI 시대가 닥치는 등 노동 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재가동됐다. 경사노위 본위원회가 윤석열 정부 들어 처음으로 6일 개최됨으로써, 노사정 대화 창구가 2년8개월 만에 다시 열렸다. 근로시간 개편,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 정년연장과 계속고용 등 3대 의제와 방향을 담은 선언문 채택과 해당 위원회 설치 등이 의결됐다. 산뜻한 출발이다.
윤 대통령은 경사노위 위원 17명과의 간담회에서 “사회에 대한 애정, 후대에 대한 사랑, 국가에 대한 애국심의 측면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간다는 공동의 목적 의식으로 대화해 나간다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합리적 결론 도출을 호소했다. 김동명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도 “복합 위기 속에서 각자도생이 아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할 시기”라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호응했다. 25년째 참여를 거부하는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몽니를 뒤로하고 사회적 합의를 시도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
그렇지만 갈 길이 멀다. 쟁점마다 노사가 첨예하게 맞선다. 먼저 근로시간 개편은 정부와 사용자 측이 획일적인 현행 주 52시간제 대신 주·월·분기·연간 기준으로 유연화하자는 입장인 반면, 노동계는 최대 주 69시간 등 장시간 노동이라며 반대한다. 이중구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조,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임금과 고용 안정성의 차이가 너무 커 노동계 내부에서도 노노(勞勞) 간 착취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정년 연장은 노동계에선 법적 정년을 65세로 늘리자고 주장하지만, 정부와 사용자 측은 기업의 자율적인 정년 후 재고용 등 계속 고용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어느 하나도 타결을 낙관하기 어렵다.
노동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저출산·고령화 대응과도 직결된 만큼 더는 늦출 수 없다. 사회적 대화의 특성 상 타협이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노조의 눈치를 보며 주고받기 식으로 가서는 개혁은 어림없다. 거대 노총이 아니라 근로자 89%의 목소리를 더 반영할 필요가 있다. 미래를 위해 대승적 해법을 최대한 서둘러 도출하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02-07 결근 일삼은 민노총 간부 3명 파면… 이런 게 정상이다
노조 활동을 핑계로 밥 먹듯 결근·지각 등을 반복한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 간부 4명이 지난해 말 파면·해임된 사실이 최근 확인됐다. 대기업·공기업 등에서 노조 활동 등을 지원하기 위한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는 수시로 드러났지만, 이런 중징계는 이례적이다. 서울 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공사 측은 이번 사례를 빙산의 일각으로 보고 조사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동안 노조 위세에 눌려 노동 현장의 탈선과 불법도 눈 감아주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조치는 그런 비정상을 바로잡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여 의미가 크다.
파면된 3명은 민노총 산하 노조 지회장으로, 타임오프 적용 대상이 아닌데도 무단 결근과 지각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1명은 한노총 산하 노조 간부로, 타임오프 규정을 위반해 해임 처분을 받았다. 서울교통공사 노조원 1만4000여 명 중 32명이 타임오프를 사용할 수 있는데, 전수조사에서 2022년 8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타임오프제를 어겨 허위로 근무시간을 인정받은 노조 간부가 무려 279명이나 되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준 바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타임오프를 앞세운 무단 결근의 일상화다. 정상 근무 일수가 113일이지만 하루도 출근하지 않거나, 근무일 124일 중 2일만 출근한 경우도 있었다. 악용에 대한 엄정한 조치는 물론 근본적 제도 개선도 급하다.
02-08 파업 나서는 전공의들, 생명 최우선 본분 벌써 잊었나
내년도 의과대학 입학 정원 2000명 증원에 반발해 대한의사협회가 총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종합병원에서 수련 중인 전공의들이 파업에 나설 움직임을 보여 우려된다. 전국 221개 병원에서 수련 중인 전공의 1만5000여 명이 파업에 참여하면 종합병원의 중환자·응급환자의 진료와 수술이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된다. 사직서를 제출하며 “하루라도 빨리 나가서 돈 버는 게 이득”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환자의 건강과 인간의 생명을 최우선 배려하겠다’고 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벌써 잊은 듯하다.
‘빅5’로 불리는 상급종합병원 중 서울아산병원과 서울대병원 전공의들이 파업 참여를 결정했고, 다른 병원에서도 파업 목소리가 압도적이라고 한다. 대한전공의사협회의 회원 설문조사에서 88%가 의대 증원 시 파업 참여 의사를 밝힌 바 있고, 12일 대전협 총회 결과에 따라 파업 시점을 조율하기로 해 실제 파업이 벌어질 공산이 크다.
응급환자가 받아줄 병원을 찾아 헤매다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고, 소아환자 부모들의 ‘오픈런’ 등 필수의료 붕괴에 따른 국민 피해가 막심하다. 오죽하면 국민 여론조사에서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답변이 89%까지 이르겠나. 어려운 경쟁을 뚫고 면허를 획득한 전공의들 심정은 이해된다. 그러나 의사 본분을 잊지 말고 현명하게 판단하길 바란다. 정부는 실제 파업이 벌어지면 주동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물론, 업무복귀 명령에 불응한 의료인은 의료법에 따라 의사 면허 박탈 등 제대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2.11 배달 초밥 먹는 죄수번호 4421… 이재명 지지층, ‘살인자 ㅇ난감’에 분노
넷플릭스 신작의 비리 악역 묘사에
李 지지층 “저열하다” “가만 좀 놔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연상케 한다는 의혹을 부른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 속 형성국 캐릭터./온라인커뮤니티
넷플릭스 신작 ‘살인자ㅇ난감’이 온라인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지지층의 분노를 사고 있다. 불매 운동에 나서겠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드라마 속 비리 캐릭터 ‘형성국 회장’이 원작 웹툰에는 없는 설정까지 곁들여가며 이 대표를 연상케 만들어졌다는 이유에서다.
넷플릭스는 지난 9일 시리즈 ‘살인자 ㅇ난감’을 공개했다. 2010년 7월부터 2011년 6월까지 연재된 동명의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우연히 살인을 시작하게 된 평범한 남자와 그를 쫓는 형사의 이야기를 그린다.

▲왼쪽은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 속 형성국 캐릭터, 오른쪽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온라인커뮤니티, 연합뉴스
드라마가 공개되자 보배드림, 여성시대 등 친민주당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마다 불만 글이 쏟아졌다.
드라마 제작자가 7화의 등장 인물인 ‘형성국 회장’이란 인물을 표현하면서, 의도적으로 이재명 대표가 연상되도록 각종 장치와 설정을 넣은 것 아니냐는 것이 불만의 핵심이다.
극중 형 회장은 살인사건으로 손녀를 잃은 인물이자 금권(金權)을 바탕으로 온갖 비리를 일삼는 건설사 회장이다. 원작에도 나오는 인물이다.
네티즌들은 드라마 상 이 인물의 외모, 검은 테 안경, 백발을 뒤로 빗어 넘긴 헤어스타일 등이 이 대표를 떠올리게 한다고 주장했다.
드라마 속 형 회장은 조폭과 검사 등 인맥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극중 전직 형사는 “뒷골목에서부터 윗대가리까지 친구분들이 어찌나 많은지”라고 비꼰다.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 속 형성국이 감옥에서 초밥을 먹는 장면./온라인커뮤니티
외모보다 더욱 논란이 된 것은 드라마에서 표현된 형 회장의 설정이다.
우선 형 회장의 딸 이름이 ‘형지수’다. 원작에선 ‘형 회장 딸’로만 불렸을 뿐,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이름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이 대표의 과거 ‘욕설 논란’의 네 글자 표현 중 세 글자만 따서 만든 이름 아니냐고 네티즌들은 의심한다. 욕설 논란이 한창일 당시 온라인에선 ‘비속어 필터링’을 피하기 위해 네 글자를 순서만 마음대로 바꿔부르는 게 일종의 밈(meme·온라인 유행)이었다.
형 회장이 교도소에 수감됐을 때의 모습을 회상하는 묘사도 주목을 받았다.
과거 형 회장은 ‘횡령’과 재건축 수주 비리로 수감됐다. 수감 전 검사들로부터 “잠깐만 다녀오시면 된다”는 귀띔을 받은 상태에서였다.
수감된 형 회장은 접견실에서 부하가 사서 배달해 온 외부 음식을 먹는다. ‘초밥’이다. “장어 위주로 좀 사오지”라고 말하면서 초밥을 입에 넣을 정도로 여유있는 모습이다.
초밥은 ‘소고기’와 함께 이 대표 법인카드 유용(횡령) 음식 배달 의혹의 대표적 메뉴다. 원작에는 접견 때 음식을 먹는 장면이 없다.
이때 그의 죄수복 왼쪽에 새겨진 죄수번호는 ‘4421′이다. 이 번호도 원작엔 없다.
이 숫자에도 네티즌들은 주목했다. 성남시로부터 대장동 아파트 부지 6개 블록을 공급받은 제일건설이 올린 분양 수익금 총액이 4421억원이었다는 것이다.

▲네이버 웹툰 '살인자o난감'에 묘사된 형성국 회장의 교도소 장면./네이버웹툰
이후 형 회장은 살해 위협에 처하는데, 가해자는 형 회장 목 부위에 흉기를 들이대면서 “경동맥이다”라고 말한다. 최근 이 대표의 피습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이 내용은 원작과 동일하다.
이 대표에 우호적인 네티즌들은 불만을 쏟아냈다. “외모만 닮은 게 아니라 그냥 노렸네” “저열한 놈들” “의도적으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좀 가만 놔둬라” “목까지 찔린 제1야당 대표를 못잡아먹어 안달이 났다” 등의 글이 이어졌다. 일부 네티즌은 불매 운동을 벌이자는 주장까지 폈다.
조선일보 김자아 기자
02-13 ‘건국전쟁’ 33만 돌파… ‘대한민국 바로 알기’로 승화되길
대한민국 수립 이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분투를 담은 ‘건국전쟁’이 개봉 12일 만에 관객 33만 명을 돌파하고, 오는 16일엔 미국에서도 개봉된다고 한다. 정치·문화 환경을 고려할 때 획기적인 일이다. 저비용 다큐멘터리 영화임에도 많은 사람이 관람한 것은 작품 자체가 주는 울림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근현대사 지식이 비교적 풍부한 인사들조차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역사를 새로 알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금껏 폄훼하는 쪽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던 것과 달리 대한민국을 이 자리에 오게 한 결정적 장면이 담겼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학창 시절 잘못 배운 역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고 했는데, 많은 사람이 공감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탄생, 김일성의 6·25 남침에 맞서 국가를 지킨 과정이 객관적 사실 중심으로 소개된다는 점에서 ‘좌우 역사전쟁’을 초월한다. 6·25 때 망명 시도를 한 것처럼 ‘런승만’이라고 조롱했던 좌파의 주장과 달리, 존 무초 미국 대사의 망명 제안에 “대한민국을 지키다 죽겠다”고 거절한 사실이 공개됐다. 김일성 일가족이 만주로 도피한 것과도 대조적이다. 유상매입 유상분배 방식의 농지개혁이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함께 이승만의 대표 공적임이 소개된다. 만석꾼의 나라를 자작농 사회로 전환해 산업화시대의 토대를 닦은 것이다. 1960년대 아시아 선진국이던 필리핀이 이승만식 토지개혁을 하지 못해 도약의 계기를 잃어버렸다는 필리핀 학자 증언도 나온다.
세계 최빈국이던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여정은 미국을 잘 아는 이승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길을 인도한 지도자” “100년을 앞서간 인물”이라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이승만은 부패한 독재자, 대한민국은 친일파의 나라인 양 매도됐다. 김덕영 감독은 “우리는 이승만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했다. 건국전쟁 열풍이 대한민국 정통성과 위대한 성취의 역사를 바로 아는 국민 운동으로 승화하기를 기대한다.
문화일보 사설
02-13 의사단체 ‘증원 반대 파업’ 지나치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
정부가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숫자이고, 교육 여건을 고려하면 늘릴 수 있는 최대 규모다. 다른 나라들이 의대 정원을 늘리는 동안 우리나라는 의사협회의 요구로 의대 정원을 거꾸로 줄여왔다. 윤석열 정부가 이번에 성공하면 27년 만에 의대 증원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달성한 정부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응급실 뺑뺑이, 소아 진료대란, 지방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먼저, 의대 증원이 10년 후에 의사 배출을 늘리는 대책이 아니라 당장 국민이 응급·소아·분만 같은 필수적인 의료를 제때 받을 수 있도록 대책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늘리는 의대 정원을 대학이 아니라 지역에 배정한 뒤 그 지역의 필수의료를 책임지겠다는 의대와 대학병원에 정원을 배정해야 한다.
대학병원 혼자 모든 환자를 책임질 수 없으니 지역 병원들과 협력해 지역 필수의료를 책임지는 ‘필수의료 네트워크’를 만들게 해야 한다. 정부가 발표한 10조 원 규모의 지원대책을 ‘필수의료 네트워크’에 집중시키고, 대학병원이 교수와 전공의 인력을 지역 병원들과 함께 활용하겠다고 하면 가능하다. 시·도 단위로 필수의료 네트워크가 잘 운영되면 ‘무정부적인 의료체계’를 ‘질서 있는 시장’으로 바꿀 수 있다.
정부는 약속한 대로 실손보험을 개선하고 비급여 진료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그러잖으면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에서 응급환자와 중환자를 보는 의사들이 동네병·의원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실손보험과 비급여 진료로 동네병·의원들이 4억 원씩 버는 한 연봉 2억 원 받는 대학교수들이 동네병·의원으로 이직하는 걸 못 막는다.
대학병원은 늘어난 의대 정원을 자기 몸집을 불리는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된다. 정부가 제도를 잘 만드는 것이 우선이지만, 대학병원들도 경증환자 진료를 줄이고 응급환자와 중환자 진료에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 늘어난 의대 정원으로 경증환자 진료를 늘리면 우리나라 의료의 고질인 대형병원 쏠림은 더욱 심해지고, 환자를 빼앗긴 종합병원의 진료 기능이 더 약해지면 역설적으로 필수의료의 공백은 더 커질 것이다.
의사협회도 명분 없는 파업으로 의대 증원을 무산시키려 해선 안 된다. 정부는 지난 1년 동안 28차례나 의사협회와 만나 협의했고, 최근에는 의사협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필수의료 분야의 건강보험수가 인상을 포함해 향후 5년간 약 10조 원을 투자하고, 의료사고에 대한 의료진의 부담을 덜어주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도 약속했다.
정부가 실손보험과 비급여 진료 관리를 강화한다고, 환자 사망 의료사고와 미용성형 진료 과정의 의료사고를 특례법 대상으로 하겠다고 확약하지 않고 논의해서 결정한다고, 문신 시술처럼 꼭 의사가 할 필요가 없는 분야를 자격을 갖춘 다른 인력에 허용하겠다는 것을 이유로 파업하겠다는 건 지나치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만으로는 응급·중증·소아 환자를 진료하는 부족한 의사 수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파업의 진짜 이유라면, 파업하기 전에 대안을 제시하는 게 맞다. 그러잖으면 국민은 이것이 진짜 이유가 아니라 파업을 위한 핑계라고 생각할 것이다.

문화일보
02.14 의료계 집단 이익 대신 국민의 존경과 신뢰 얻길

▲대한의사협회가 오는 15일 전국에서 정부의 의대증원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 예정인 가운데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건물에 의대 증원 반대 선전물이 붙어 있다. /박상훈 기자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대하는 의사 단체들의 집단행동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당장 집단행동을 결정하지는 않았지만 의료 현장의 최전선을 책임지는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나설 경우 환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의사협회도 15일 전국에서 궐기대회를 연다고 한다. 의사가 눈앞의 환자를 치료하지 않겠다는 것은 군인이 나라를 지키지 않겠다고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전공의 등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모두 불법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법 이전의 문제다.
지금 지역 의료와 소아과 등 필수 의료의 위기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의사 수 부족도 큰 원인이다. 급속한 인구 고령화로 인해 갈수록 의료 인력 수요가 늘어날 것도 분명하다. 의대 정원을 큰 폭으로 늘리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의사들이 돈벌이에 지장 있을까 봐 의사 증원에 반대하며 파업하겠다고 하는 것은 의료인의 숭고한 직업 정신을 스스로 버리는 것이다. 이번에 집단행동을 할 경우 2000년 의약 분업, 2014년 비대면 진료, 2020년 의대 증원 이슈 때 등 근래에만 벌써 네 번째다. 국민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이 마치 노조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전직 의협 회장들이 후배들을 설득하지 않고 도리어 자극하고 있다. 전 의협 회장 한 사람은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며 2000년 의약 분업 당시의 혼란을 거론했다. 다른 사람도 “의사 알기를 정부 노예로 아는 정부”라고 했다. 정부가 왜 의사들을 이기려 하겠으며, 왜 의사들을 노예로 알겠나. 지금 다수 국민은 의사 증원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현 상황은 의사들이 국민을 이기려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는 의사들이 집단행동에 나설 경우 즉시 업무 복귀 명령을 내리고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면허 취소 등 징계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집단행동이 없어야 하겠지만 만약 벌어진다면 분명히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 최고 지식인인 의사들 마저 집단행동으로 자신들 집단 이익을 지키려 한다면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그런 일만은 막아서 우리 의료계가 받아 마땅한 사회의 존경과 신뢰를 잃지 않았으면 한다.
조선일보 사설
02.14 집단행동 시동 걸었지만, 의사는 민심을 이길 수 없어
전공의협 비대위 전환, 의협도 15일 궐기대회
“정부는 못 이긴다” 자신하나 여론은 증원 찬성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지난 12일 밤 온라인 대의원총회를 열어 비상대책위 체제로의 전환을 결정했다. 즉각적인 집단행동을 천명하진 않았지만 언제든 환자 곁을 떠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정부의 ‘집단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피해 개별적으로 수련 계약을 거부하는 방안도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협은 이미 설문조사를 통해 88.2%의 전공의가 단체행동에 참여하겠다는 답을 받아놓은 상태다. 대한의사협회도 15일 지역별 궐기대회를 열고, 17일 의사대표자회의를 개최할 계획이다.

▲지난 8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전공의들을 포함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전공의들은 12일 밤 온라인 대의원총회를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의 전환을 결정했다. 당장은 아니어도 언제든 집단행동을 할 길을 열어둔 것이다. 전공의들이 집단 진료거부나 사직서 제출을 강행할 경우 진료현장의 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연합뉴스
정부의 의사 증원 방침이 확고한 상황에서 의사 단체들이 집단 대응을 고수할 경우 의료 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로 인해 환자들이 겪는 불편과 생명의 위협에 대한 책임은 의사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의사들은 집단행동의 명분으로 몇 가지 논리를 내세우지만 대체로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는 주장은 의사 스스로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적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 결과인 고령화는 의료 수요 급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증원 규모가 너무 급박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의과대학들이 가능하다고 제시한 한도 안에 있다. 늘어난 의사를 필수의료 분야와 지역으로 유도할 대책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이제 막 정부가 대책을 내놓은 만큼 서로 머리를 맞대고 협의할 사항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9.3%가 의대정원 확대에 찬성했다. 응답자의 93.4%는 "필수진료과 의사들이 부족한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답했다. 연합뉴스
특히 의사들의 최근 발언에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은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고 자신했다. 또 2000년 의약 분업 당시 파업을 언급하며 “치료 중 사망한 환자의 중환자실 의무기록을 보니 의사들이 자리를 비웠던 수일간 방치됐었다”고 했다. 환자 목숨을 볼모로 공개적인 협박을 한 것이다. 의협 회장 출신인 주수호 미래의료포럼 대표도 “지방에 부족한 건 민도”라고 적었다. 의사들의 특권의식 표출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의사들의 자신감은 2022년 파업으로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을 무산시킨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의료 현장이 긴박했던 당시와 지금은 다르다. 정부도 1년 넘게 여론을 수렴하고, 필수의료 4대 패키지를 내놓는 등 민심을 얻기 위해 노력해 왔다. 보건의료노조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9.3%가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의사는 이 같은 민심을 이길 수 없다. 의사들이 직역 이기주의나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비판을 피하려면 집단행동에 앞서 구체적인 데이터를 갖고 정부와 협의하는 게 먼저다.
중앙일보 사설
02-14 의대생 “3년 공보의보다 1년반 현역”… 의료취약지 ‘기피’ 심화

2008년 1962명→ 작년 1106명
“사회 나가면 억대 연봉 받는데
복무 길고 월급 적은걸 왜하나”
“공중보건의(공보의) 복무 기간은 36개월, 현역은 18개월. 2배나 긴데 누가 하겠어요? 하루빨리 졸업해 억대 연봉 찍는 게 낫죠.”
의대 졸업생 A(25) 씨는 동기들과 함께 수련의(인턴)에 들어가는 것을 미루고 올해 말 현역으로 입대하기로 했다. 그는 “의대생들은 현역 입대를 하면 웬만하면 의무병으로 빠지기 때문에 더욱 안 갈 이유가 없다”며 “인턴을 시작하면 현역으로 가는 게 불가능해 어쩔 수 없이 공보의로 가는 동기들도 있다”고 말했다. 치대생 B(27) 씨도 “복무 기간도 길고 도서 산간·벽지에서 일할 가능성도 있어 기피하는 게 사실”이라며 “하루빨리 복무를 끝내고 페이 닥터로 일하는 게 낫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전했다.
14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A 씨처럼 공보의 대신 현역병을 선호하는 의대생들이 늘면서 특히 의료 취약지의 인력 부족 현상이 가중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 신규 공보의 수는 지난 2008년 1962명에서 지난해 1106명으로, 최근 15년 새 44%(856명) 감소했다. 대체복무제 중 하나인 공보의는 복무 기간이 36개월에 달하지만, 현역은 육군 기준 18개월로 짧다는 게 ‘공보의 기피 현상’의 주된 이유다. 한의과 공보의 C(32) 씨는 “양의사뿐만 아니라 최근 한의대 후배 5분의 1 정도가 현역을 희망할 정도”라며 “지방에 의사 부족이 심해지면서 고정 근무지 외에 다른 곳으로 차출당하고 업무 강도가 세졌다는 게 공보의를 기피하는 또 다른 이유”라고 덧붙였다. 실제 공보의가 주로 근무하는 보건소, 국공립 병원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최근 공보의 복무를 마쳤다는 D(33) 씨는 “대부분 보건소가 인력난이 심해 타 보건소로 2∼3주씩 순회 진료를 하는데, 그러면 진료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지난해 국회에는 공보의 복무 기간을 2년으로 단축하는 병역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논의가 진전되지 않았다. 이성환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회장은 “공보의 지원율을 높여야 의료 취약지의 의료 붕괴 현상도 상당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린아 기자 linaya@munhwa.com
02-14 ‘30억대 재벌 사칭 투자사기’ 전청조, 1심서 징역 12년

▲재벌 3세를 사칭하며 수십억 원대 투자 사기를 벌인 혐의를 받고 있는 전청조 씨가 지난해 12월 10일 서울 송파경찰서에 나와 서울동부지검으로 압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사기 공모 혐의’ 경호실장엔 징역 1년 6개월 선고…오열하며 퇴정
재벌 3세 혼외자 행세로 투자자들을 속여 30억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은 전청조(28)씨가 1심에서 징역 12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김병철)는 14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상 사기, 공문서위조 및 위조공문서행사, 사문서위조 및 위조사문서행사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 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경호실장 이모(27) 씨에게는 징역 1년6개월이 선고됐다.
애초 전 씨와 이 씨에 대한 선고는 지난 8일로 예정됐지만, 공모한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이 씨를 상대로 재판부의 추가 심문 일정이 잡히면서 이날로 선고가 미뤄졌다. 앞서 지난달 31일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전 씨에게 징역 15년, 이 씨에게는 징역 7년을 각각 구형했다.
재판부는 “전청조는 수많은 사기 범행으로 징역형을 살고 나오자마자 반성은커녕 더 많은 돈을 취하기 위해 특정 유명인에게 접근해 사기 범행을 저질렀다”며 “인간들의 인지능력은 불완전하기에 그지없지만 물욕과 탐욕이 결합할 때에는 더 그렇다. 피고인은 이런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고 주위 모든 사람에게 사기 범행을 저질러 수많은 사람의 삶을 망가트렸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은 피해액을 변제하지 못했고 피해자로부터 용서도 받지 못했다. 일상이 사기였다는 피고인 본인의 말처럼, 본인의 범행을 돌아보고, 스스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반성하길 바란다”며 “피고인의 양형기준은 가중된 기준에 따라도 징역 10년이지만 이 기준을 다소 넘어서는 징역형을 선고하겠다”고 밝혔다. 공범 이 씨에 대해선 “피고인은 처음에 전 씨로부터 3500여만 원을 편취당한 피해자로 사건에 얽혔지만 2023년 7월부터 종범의 지위로 전환됐다”며 “그런데도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전 씨와 이 씨는 이날 선고 후 오열하며 퇴정했다.
전 씨와 이 씨는 지난해 3월부터 10월까지 각각 국내 유명 기업의 숨겨진 후계자와 경호실장 행세를 하면서 ‘재벌들만 아는 은밀한 투자 기회’라고 피해자들을 속여 해외 비상장주식 투자금 등의 명목으로 피해자 22명으로부터 약 27억2000만 원 상당을 뜯어낸 혐의를 받았다. 전 씨는 이와 별도로 2022년 4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같은 수법으로 피해자 5명에게서 약 3억5800만 원을 편취한 혐의도 있다. 전 씨의 사기로 인한 피해액은 총 30억7800만 원에 달한다.
한편, 서울 송파경찰서는 사기방조 등 혐의로 고소·고발된 전 씨의 전 재혼 상대이자 펜싱 국가대표 출신인 남현희(여·43) 씨를 불구속 상태로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조만간 남 씨의 공범 의혹 수사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문화일보 노기섭 기자
02-14 박수홍 큰형 1심 징역 2년, 법정구속 면해…형수는 무죄

▲연합뉴스
방송인 박수홍(53·사진) 씨의 출연료 등 62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친형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법정구속은 면했다. 재판부는 연예기획사 자금 횡령 혐의는 유죄로 판단했지만 박수홍의 개인자금 유용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배성중 부장판사)는 14일 오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기소된 박수홍 씨의 큰형 박모 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배우자인 박수홍 씨의 형수 이모 씨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1인 회사, 가족회사란 점을 악용해 개인 변호사 비용, 아파트 관리비 등 사적 용도까지 회사 자금을 사용했다”며 “이 사건으로 라엘은 7억 원, 메디아붐은 13억 원에 이르는 거액의 피해를 봤다”고 밝혔다. 다만 “횡령금액 대부분을 차지하는 허위 직원에 지출한 급여 및 법인카드 사용액 중 일정액은 피고인의 부모나 박수홍의 생활비, 수익 분배 등으로 귀속됐을 걸로 보이는 정황이 확인된다”며 “따라서 피고인의 부모나 박수홍 역시 위와 같은 범행구조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인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박씨가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된 뒤 재판에 성실히 임해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고 보고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다. 재판부가 이날 인정한 박씨의 횡령 금액은 20억 원 상당이다
박 씨 부부는 지난 2011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라엘, 메디아붐 등 연예기획사 2곳을 운영하면서 62억 원에 달하는 박수홍 씨 출연료 등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문화일보 조성진 기자
02-14 4강 하루전 손흥민 이강인 멱살잡이… “대표팀 기강이 무너졌다”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손흥민(32)과 이강인(23)이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는 일이 벌어졌다. 요르단에 0-2로 충격패를 당해 아시안컵 4강에서 탈락한 바로 전날 벌어진 일이다. 이 과정에서 손흥민은 오른쪽 두세 번째 손가락이 꺾여 탈구(脫臼)되는 부상을 당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아시안컵 8강전에선 볼 수 없었던 밴드가 4강전 때 손흥민의 손가락에 감겨 있었던 이유다. 손흥민은 소속 팀 토트넘에 복귀한 뒤 출전한 11일 브라이턴과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경기 때도 같은 부위에 밴드를 감고 있었다.
64년 만의 우승에 도전했던 아시안컵에서의 졸전으로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을 경질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대표팀 선수단 내 불협화음까지 드러나 한국 축구는 아수라장이 돼 가는 분위기다.
14일 대한축구협회에 따르면 손흥민과 이강인이 서로 멱살잡이까지 하며 몸싸움을 벌인 건 요르단과의 아시안컵 준결승전 하루 전인 5일(현지 시간) 오후다. 이강인을 포함한 대표팀 일부 선수가 아시안컵 개최지인 카타르 도하의 호텔 숙소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뒤 탁구를 친 게 발단이 됐다. 손흥민과 이강인의 다툼은 영국 매체 ‘더 선’의 보도로 처음 알려졌고, 축구협회는 “아시안컵 대회 기간 선수들끼리의 마찰과 소란이 있었다”며 이를 인정했다.
외신 보도와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대표팀 주장 손흥민은 이날 이강인과 설영우(26) 등 일부 후배가 저녁식사를 먼저 끝내고 호텔 내 휴게공간에서 탁구를 치자 ‘내일 경기가 있으니 컨디션 관리를 위해 휴식을 취하라’고 말했다. 탁구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선 코치들이 4강전 대비를 위한 미팅 중이었다. 그런데 탁구를 소란스럽게 치던 선수들이 따르지 않자 손흥민은 후배들을 식당으로 불러 다시 얘기했다. 대화가 말다툼으로 이어지면서 손흥민이 이강인의 멱살을 잡았고 이강인도 손흥민의 멱살을 쥐면서 몸싸움이 벌어졌다는 게 축구협회의 설명이다. 고성과 욕설이 오갔고 이강인은 주먹도 휘둘렀는데 손흥민이 피했다고 한다. 손흥민은 자신을 말리던 대표팀 다른 선수를 뿌리치는 과정에서 손가락이 탈구됐다고 한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이강인이 선배이자 주장인 손흥민에게 도를 넘어서는 말을 했다. 선배로서는 듣기 거북한 말을 했다. 이에 화가 난 손흥민이 이강인의 멱살을 잡으면서 몸싸움이 벌어졌다”고 했다. 이강인은 손흥민에게 ‘코치들도 아무 말 않는데 왜 내 휴게시간을 방해하느냐”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낸 한 지도자는 “대표팀 동료들끼리의 유대감이나 선후배 사이의 위계가 어느 순간부터 많이 무너졌다. 유럽 리그의 이름 있는 팀에서 뛰는 선수들이 늘면서 서로 굽히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했다
손흥민과 이강인의 다툼이 있은 뒤 대표팀 내 고참급 일부 선수는 요르단과의 준결승전 출전 명단에서 이강인을 제외해 달라고 클린스만 감독에게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강인은 손흥민과 함께 요르단전에 선발로 출전했고 풀타임을 뛰었다. 손흥민은 요르단에 패해 4강에서 탈락한 뒤 “제가 앞으로 대표팀을 계속 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감독님이 저를 생각 안 하실 수도 있고 미래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손흥민의 이 발언을 두고 축구계 내부에선 이강인과의 다툼, 고참 선수들의 요청에도 이강인을 요르단전 선발로 출전시킨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김정훈 기자 hun@donga.com
02-15 축구 국대 난장판, 중징계하고 병역특례制 재검토하라
스포츠팀 내부 문제에 대해 외부에서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 성적이 가장 중요한 데다, 해당 팀과 선수의 팬들이 알아서 반응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경우는 다르다. 가위 국민스포츠임은 물론 세계인 스포츠라고 할 정도로 관심이 엄청나고, 국가대표선수에게는 유형무형의 혜택도 주어지기 때문이다. 유수의 국제대회에서 우승하면 병역특례를 인정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점에서 현 축구 국가대표팀의 상황은 스포츠 문제로만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다. 지난 7일 아시안컵 축구 준결승전에서 요르단에 패배한 데는 내분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언론 보도와 대한축구협회의 설명을 종합하면, 경기 전날 이강인(23) 등 젊은 선수들이 저녁 식사를 마치고 떠들며 탁구를 쳤고, 뒤늦게 식사하던 선수들 표정이 일그러지자 주장 손흥민(32) 선수가 “그만하라”고 말했지만, 이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화가 난 손 선수는 이 선수 멱살을 잡았고, 이 선수는 주먹을 휘둘렀다.
팀 내부 갈등은 없을 수 없다. 하지만 갈등을 인내하며 헌신하는 것이 국가대표 선수의 기본이다. 주장이면서 한참 손위인 선수에게 주먹질 한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도 국가대표 자격이 없다. 이런 인성을 용인하면 후배 선수들은 물론 그 선수를 우상으로 여기는 청소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겠는가. 가장 강력한 징계로 유사 사태 재발을 막아야 한다.
이 선수는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병역면제 혜택도 받았다. 방탄소년단 등 대중예술인과의 형평성 논란도 있다. 병역특례 제도의 재검토도 필요하다.
문화일보 사설
02.15 다크호스를 제거하는 사회
한 외국인 유튜버의 한국 여행기가 화제가 되었다. 여행기는 한국에 관한 의문으로 시작한다. 첨단기술과 문화산업의 약진으로 한국이라는 국가는 각광을 받고 있는데, 정작 한국 사람들은 왜 불행감에 시달리고 있을까. 그가 찾은 답은 압축적 성장을 거친 한국이 유교 문화와 자본주의 문화의 단점만 취했다는 것이다.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기보다 체면을 강조하는 문화 속에서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으로 사람들은 늘 불안하다는 것이다. 주범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교육문제는 우리 방 안의 코끼리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여성의 경력 단절과 출생률 급감도, 부동산 문제와 지역 소멸도, 노인 빈곤 문제에도 교육이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청소년이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행복하지 못한 청소년이 자라서 행복한 성인이 될 수 있을까.
의대 광풍이 보여준 경쟁주의 단면
청소년·부모 모두 불행하게 만들어
국가교육위원회는 무엇하고 있나
교육개혁 멈춰서면 미래도 멈춘다
인공지능의 진화로 세상의 변화는 몇 배속으로 빨라졌다. 분야를 막론하고 주어진 질문에 빨리 답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 주어진 답에 태클을 걸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미래의 리더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러한 환경에서 가장 대체 불가능하고 희소성이 있는 것은 결국 각자가 가진 ‘나다움’이다. 나다움을 바탕으로 한 개인의 성장은 낯선 상황에 나를 던져보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딴짓과 멍때리기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다. 기성세대에게 성장기의 좌충우돌이 시간 낭비였다면, 지금은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나다움이 만들어지고 불확실성을 견뎌내는 단단한 근력이 길러진다.
하버드 교육대학원 교수 토드 로즈는 저서 『다크호스』를 통해 표준화된 성공 공식을 좇는 것은 무의미할뿐더러 오히려 개인의 행복을 해친다는 점을 지적한다.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표준화된 성공공식은) 개인이 가진 잠재력을 저평가한다. 무엇보다 큰 독소는 각자가 가진 개성에 맞지 않는 길을 쫓아가라고 해놓고, 그 길 위에서 헤매면 실패라고 손가락질하며 개인의 잘못인 것마냥 자책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아이들의 눈을 경주마처럼 가리고 달리게 하고 있다.
의대 광풍 현상은 ‘한국 교육은 박찬호에게 아인슈타인이 되라고 한다’는 한 외국인 교수의 비판을 떠올리게 한다. 공부를 좀 한다는 자녀를 가진 많은 부모가 ‘의치한약수’(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를 향해 어릴 때부터 훈련에 나선다. 수도권 최고대학에서도 신입생들은 미처 전공의 맛을 보기도 전에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학원가에 초등학생 의대 반이 생긴 지는 이미 오래다. 이러한 환경에서도 내 방식대로 아이들을 키우겠다 심지 굳게 마음 먹기는 쉽지 않다. 혼자 조용히 망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마음도 이해하지만, 현재의 잣대로 미래를 살아갈 자녀의 인생을 안전한 지름길로 안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위험하고 무모하다.
대학의 문제는 더 크다. 현재의 대학은 학생들이 세상을 넓게 보고 나다움을 성찰하며 미래를 탐색할 기회를 충분히 주는 데 최적화되어 있지 않다.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 학생들은 입시만 보고 달린다. 다양한 학문의 세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에 대한 고려보다는 합격선에 맞추어 전공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대학에 와서 자신의 적성이나 선호를 발견한들 불행히도 학과 간 칸막이는 공고해서 전공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없어지거나 줄어드는 분야도 있고 새로이 구성되거나 팽창하는 분야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대학 학과와 전공 구성의 기본 틀은 30여년 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학생들은 상당히 제한된 정보와 선택지 안에 꽃 같은 시간을 욱여넣을 수밖에 없다.
교육부가 입학 후 전공을 정하는 무전공 선발의 확대를 시도했다가 반발에 부딪혔다. 제반 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거친 시도라고는 하나 기존 학과 중심의 꽉 막힌 학사제도를 대학 스스로는 개혁을 못 하니 고육지책으로 외부 자극에 나선 것이다. 현 체제를 바꾸고자 하는 시도는 여지없이 ‘취지는 이해하나 성급하다’ ‘제반 여건이 안 되어 있다’는 반발에 부딪혔고, 이것만은 물러설 수 없다는 장관의 결기도 3주 만에 기존 안을 철회하면서 꺾이고야 말았다. 방향성만 동의하고 속도가 수반되지 않는 것은 변화를 거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교육은 그 어떤 분야보다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야 하는 부문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그저 파괴로 치닫거나 혹은 파괴에 따른 반발이 두려워 첫걸음도 떼지 못하는 상황이다. 3대 개혁의 하나로 교육개혁을 하겠다던 이 정부가 중장기 교육정책의 방향을 마련한다면서 출범시킨 국가교육위원회는 중장기 정책은커녕 조용하기만 해서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다. 교육을 방 안의 코끼리로 만든 역대 정부의 무책임한 방임, 변하지 않는 대학, 불안을 먹고 사는 학원 카르텔, 이들이 원팀이 되어 기를 쓰고 미래를 이끌어갈 다크호스들을 조용히 제거하고 있다.
중앙일보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02-16 [속보]클린스만 감독 부임 1년만에 결국 경질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 꿈을 이루지 못한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이 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귀국 후 취재진의 질의에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앞서 축구 대표팀은 지난 7일(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요르단에 2대 0으로 완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 1956년 제1회 대회와 1960년 제2회 대회에서 2연패를 이룬 이래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을 해내는 데 실패했다. 2024.2.8. 뉴스1
대한축구협회가 16일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에게 경질을 통보했다. 지난해 2월 27일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하겠다고 발표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다. 클린스만 감독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모든 선수와 코치진, 모든 한국 축구 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작별 인사를 남겼다.
축구협회는 16일 오전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을 비롯한 임원진이 참석한 회의에서 클린스만 감독의 거취 등을 논의한 뒤 클린스만 감독에게 경질을 통보했다. 앞서 15일 협회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는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아 협회에 건의했다. 전력강화위원들은 회의에서 △전술적인 준비 부족 △새로운 선수를 발굴하려는 의지 부족 △선수단 내부 갈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점 △지도자로서 팀 규율을 세우지 못한 점 △한국 체류 기간이 적었던 근무 태도 등을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클린스만 감독은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 선수들과 축구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지난 12개월 동안 아시안컵 준결승전과 놀라운 여정을 함께 해주신 여러분의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한국 축구의 앞날을 응원했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02-16 명분 없는 전공의 집단 사직… 차제에 의료 규제 확 풀자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의사들 집단행동이 가시화하는데 비례해 국민의 불안과 반발도 급속히 확산하는 등 대치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심지어 ‘나는 죽어도 좋으니 진료거부 파업으로 발생하는 살인행위에 대해 엄격한 법의 잣대로 처벌해 달라’는 글이 나돌 정도로 여론은 악화일로다. 그럼에도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 등 ‘빅5 병원’ 전공의들은 오는 19일까지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부터 근무를 중단하기로 했다. 전국 의대 학생 대표들도 동반 휴학계를 내기로 결의했다.
인턴·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이 응급 당직을 주로 맡는 만큼 응급실과 수술실을 중심으로 의료 공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궐기대회에서 한 전공의는 대놓고 “내 밥그릇을 위해 사직했다”면서 “제가 없으면 환자도 없다”고 했는데, 이번 집단행동의 본질을 상징하는 듯하다. 정부는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당연한 일이다. ‘집단사직서 수리 금지’를 명령한 데 이어 개별 사직에 대해서도 사전 모의한 만큼 의료법 위반 및 업무방해죄 적용을 검토 중이다. 의료 대란에 대비해 비대면 진료를 전면 확대하고 군 의료체계도 긴급 투입할 움직임이다. 전국 1만여 명의 진료보조(PA) 간호사도 적극 활용해 폭넓은 의료서비스 지원을 강구할 방침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15일 “PA간호사들에게 수술보조를 일시적으로 허용하는 대통령 긴급명령을 발동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정부의 대응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의사들의 이번 집단행동은 명분이 없다. 의사들은 30초 진료가 일상화하면서 스스로 쉴 시간이 부족하다고 주장해 오지 않았는가. 환자 목숨을 볼모로 한 오랜 악습을 끊어내기 위해서도 차제에 원격 의료와 PA간호사 허용 등 각종 의료 규제를 확 풀 필요가 있다. 한의사, 물리치료, 미용 시술 등과의 업역 충돌 문제도 해결할 절호의 기회다. 이제 ‘정부 대 의사’가 아니라 ‘5200만 국민 대 의사’로 대결 구도가 바뀌었다. 국민 모두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이번 기회를 의료 개혁의 기회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문화일보 사설
02.17 환자 건강 생명 지키는 의사가 노조원 같을 수는 없다

▲16일 오후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 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조선대 병원에서는 전날 전공의 7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뉴스1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이른바 서울 ‘빅5′ 병원 전공의 전원이 19일까지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아침부터 근무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등 대형 병원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전공의들이 한꺼번에 병원을 떠나면 ‘의료 공백’은 불가피할 것이다. 전국 40개 의대 가운데 35개 의대 대표 학생들도 20일 휴학계를 제출하기로 했다고 한다.
빅5 병원은 전국에서 수술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 중환자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전공의들이 실제로 집단행동을 벌일 경우 중환자의 입원·수술에 큰 차질이 빚으면서 환자 생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정부는 즉시 업무 복귀 명령을 내리고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면허 취소 등 징계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번에는 사후 구제나 선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현실화할 경우 비대면 진료 전면 확대, 진료 보조(PA) 간호사 역할 확대, 군 병원 등 공공 의료기관 활용 등으로 대처하겠다고 했다. 상당수는 그동안 의사들 눈치를 보느라 시행하지 못한 의료 규제들이다. 환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런 의료 규제들을 없애는 것이 불가피할 수 있다.
여러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상위 1%의 연평균 소득은 2억원 남짓인데, 개업 의사들은 연평균 3억4200만원(2021년 기준)을 벌고 있다. 정부 발표대로 이번 대학 입시부터 의대 정원을 2000명씩 5년간 1만명 늘리더라도 실제 의사가 나오는 10년 후엔 의사 인력이 7~8% 늘어나는 수준이다. 그만큼 늘더라도 개업의 소득은 3억1000만~3억2000만원 정도라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여전히 개업의 대부분이 우리 사회 상위 1 %에 속할 수 있는 수준이다. 노조원도 아닌 의사들이 이 정도 수입 감소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환자 생명을 담보로 집단행동에 나서겠다는 것은 지나치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 생각을 물어보니 ‘긍정적인 점이 더 많다’가 76%, ‘부정적인 점이 더 많다는 16%였다. 지지 정당 간 이견도 거의 없었다. 이 정도면 의대 증원이 국민의 뜻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 뜻을 거슬러 무엇을 얻을 수 있겠나. 설사 이번에 의대 증원을 무산시킨다고 해도 더 큰 역풍이 의사들에게 불어닥칠 것이다.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잃는 것이 가장 큰 상실일 것이다. 국민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의사는 돈 더 받는 것이 최대 목표인 노조원과 같을 수 없다. 의료계가 본분을 지키며 인내하고 희생하면 결국 더 많이 얻게 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2.17 환자 볼모로 한 의료계 집단행동 용납 못 한다
‘빅5’ 병원 등 전공의 사직에 진료 공백 우려
“증원 찬성” 76%…싸늘한 국민 여론 살펴야
정부-의료계, 머리 맞대고 건설적 대안 내길
대형 종합병원 전공의들이 4년 만에 집단 행동을 예고하면서 국민 건강권이 위험에 빠질 우려가 커졌다. 서울의 5대 종합병원을 가리키는 이른바 ‘빅5’ 병원 전공의들은 오는 19일 전원 사직서를 내고 20일 오전 6시부터 근무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2000명 확대 발표에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반발하면서다. 전북 원광대병원을 포함한 다른 지역에서도 전공의 사직서 제출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국내 주요 종합병원은 현실적으로 전공의 없이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특히 응급실이나 수술실 등에서 중대한 진료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반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의대생들도 한꺼번에 휴학계를 내는 방식으로 집단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전국 40개 의대 가운데 35개 의대 대표자들은 그제 긴급회의에서 만장일치로 동맹 휴학을 결의했다고 한다. 의사 배출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가만히 두고 볼 문제가 아니다. 대한의사협회는 오늘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이후 첫 회의를 열고 앞으로 투쟁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여기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지켜봐야겠지만, 국민 건강권을 최우선에 두고 현명한 판단을 하길 바란다.
정부는 의사 면허 취소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강경한 원칙 대응 입장을 밝혔다. 전임 정부가 2020년 의대 증원을 추진하다가 실패했던 경험을 이번에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4년 전에는 코로나19가 워낙 심각했기 때문에 의료계 반발에 정부가 물러설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게 현 정부의 판단이다. 여론조사에서 의대 증원 찬성 비율이 높은 것도 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3~15일 전국 성인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국민 네 명 중 세 명 이상(76%)이 의대 정원 확대에 “긍정적인 면이 더 많다”고 응답했다. 반면 “부정적인 면이 더 많다”는 응답은 16%에 그쳤다.
의료계는 이제라도 의대 증원이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임을 인정하고 집단행동을 멈춰야 한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이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고 말한 건 오만의 극치였다. 의사가 진료 행위를 할 수 있는 건 국가에서 면허를 받았기 때문이고, 국가의 주인은 바로 국민이다. 의료계가 불만이 있더라도 정부와의 논의에 대승적으로 참여해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게 마땅하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의대 증원에 ‘무조건 반대’라면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없다.
현재 한국 의료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저출산·고령화로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내년에는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국가 차원에서 의료의 기본 틀을 새롭게 짜야 할 시점이다. 특히 응급의학과·소아청소년과 등 필수 의료와 지방 의료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의대 정원만 늘린다고 저절로 해결되진 않을 것이다.
의료계는 어떠한 경우라도 국민 건강을 볼모로 한 직역 이기주의는 용납될 수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정부는 의료계의 집단 행동에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는 동시에 대화와 설득의 노력도 포기해선 안 될 것이다. 내년부터 의대 정원을 늘려도 실제로 현장에 의사가 배출되는 건 한참 뒤의 일이다. 정부와 의료계는 당장 급한 필수 의료와 지방 의료를 살리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실효성 있는 해법을 찾아가야 한다. 정부는 정원 확대로 의대 교육의 질이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세밀한 대책을 제시하길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
02.19 의대 정원 늘린다고 파업하는 유일한 나라, 한국

▲'빅5' 병원을 도화선으로 전공의들의 집단사직 확산이 예상되는 가운데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반대 포스터가 붙어 있다. 전날 의협 '의대 정원 증원 저지 비상대책위원회'는 전공의의 자발적 사직을 지지한다면서 정부가 겁박을 지속하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의협 차원의 집단행동과 관련해서는 시작과 종료를 전회원 투표로 정한다는 원칙을 정했지만 언제 시작할지는 밝히지 않았다. /연합뉴스
인턴·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이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며 집단행동에 나선 가운데 대형 병원들이 이에 대비해 수술과 입원 일정 조정에 들어가면서 환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아직 사직서를 수리한 경우는 없지만 16일 오후 기준 23개 병원에서 전공의 71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전공의들은 상급종합병원 의사 인력의 30~40%를 차지하며 교수의 수술과 진료를 보조하는데 이들이 실제 집단행동에 돌입할 경우 수술 등 진료 차질로 환자들이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은 각종 통계와 환자들의 체감을 고려할 때 굳이 논의가 필요 없을 만큼 명확한 사실이다. 2021년 우리나라 임상 의사 수(한의사 포함)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OECD 회원국 중 멕시코(2.5명) 다음으로 적다. OECD 평균은 3.7명이다. 그런데도 의대 정원은 지난 2006년 이후 3058명 수준으로 동결됐다. 2020년 등 정부가 의대 증원을 시도할 때마다 의사들이 집단행동으로 막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집단행동으로 의료 인력 확대를 막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에 대비해 의사 수를 늘리는 추세다. 독일은 공립 의대 정원이 9000명이 넘지만 1만5000명가량으로 늘리기로 했고 영국도 8639명을 뽑지만 2031년까지 1만5000명까지 늘리기로 했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를 겪은 일본의 경우 지난 10년간 의사 수가 4만3000명가량 늘어났다. 그러나 의사들이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파업에 나서는 경우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는 것이다. 외국에서도 의사들이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하는 사례가 없지는 않지만 의사 증원에 반대하며 집단행동을 하는 경우는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의사가 부족한 현실은 누구보다 현장 의사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지역·필수 의료가 위기에 처했고 전공의들이 주 80시간 이상 일하고 토요일에도 문을 여는 의원들이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의사들이 증원에 반대하는 것은 의사 부족으로 인한 환자의 피해를 전제로 돈을 더 벌겠다는 발상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조선일보 사설
02-19 생명 볼모 삼은 전공의 업무거부, 이번엔 엄정 대응해야
전공의를 주축으로 한 의사 업계의 진료 거부 움직임이 국민 수인한도(受忍限度)를 넘고 있다. 전공의들은 예고대로 19일까지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부터 집단 업무 거부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에 대비해 보건복지부가 19일 전체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진료 유지 명령을 발동한 것은 당연한 최소한의 조치다. 한덕수 총리도 이날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공공의료 비상진료 체계 가동과 비대면 진료 전면 허용,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 투입 검토 등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을 밝혔다.
의료대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 등 빅5 병원은 환자들을 중증도별로 분류하고 수술 일정 조정에 들어갔다. 말기 암 환자는 물론 뇌출혈과 뇌경색 환자에게도 수술이 어렵다는 공지가 나붙고, 신규 항암 환자의 입원도 받지 않기 시작했다. 복지부는 즉각 사직서를 반려하고, 업무를 거부하면 곧바로 업무복귀명령을 내릴 예정이다. 20일 기점으로 의대 증원이 의료 영역에서 사법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의사단체는 정부와 국민을 향해 “의료 대재앙”을 협박하고, 증원 계획 전면 백지화 등을 요구한다. 어깃장일 뿐이다. 선진국들은 고령화에 따라 의사 공급을 확 늘리고 있다. 독일은 공립의대 정원을 9000명에서 1만5000명으로, 영국도 8639명에서 1만5000명으로 확대했다. 일본 역시 10년간 의사를 4만3000명 늘렸다. 블룸버그 등 외신들은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반면, 소득은 가장 높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개업의 평균 소득은 3억4200만 원으로 변호사·회계사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의사단체는 2013년 박근혜 정부 때의 원격의료 반대, 2020년 문재인 정부 때의 10년 간 400명씩 증원 반대 등을 내걸고 집단행동에 나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의료개혁은 지체됐다. 이번엔 정부와 국민이 합심해 이런 버릇을 고쳐놓아야 한다. 대통령실이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한 것은 옳은 방향이다. 윤석열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한 대응을 주저해선 안 된다.
문화일보 사설
02.19 교사가 ‘방검복’까지 입고 출근해야 하는 교육 현장
전북 고교서 학생이 교사에 “죽인다” 협박 발언
서이초사건 뒤 법 개정에도 교권보호 미흡 여전
전북에서 학생들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은 고등학교 교사가 ‘방검복’을 입고 출근하는 일이 발생했다. 추락한 교권과 보호받지 못하는 교사의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전북 교사노조는 지난 16일 “살해 협박을 받는 교사를 보호하라”는 입장문을 냈다. 이에 따르면 해당 학교의 일부 학생이 공개된 장소에서 “(특정 교사를) 칼로 찔러 죽이겠다. 가족까지 죽인다”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협박은 여러 차례 반복됐고 “우리는 미성년자로 형사처벌을 받지 않으니 괜찮다”는 말도 했다. 지켜보던 다른 학생들이 해당 교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교사는 걱정하는 부인이 준비한 방검복을 입고 출근하는 상황까지 벌어진 것이다.
▲전북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의 살해 협박에 방검복을 입고 출근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진 전북교사노조
사랑과 존경으로 표상되는 사제지간의 도리가 깨진 지는 오래됐다. 하지만 학생이 선생님을 향해 살해 협박까지 하는 것은 금기를 넘어 사회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학교와 교육 당국의 대응이다. 교사노조에 따르면 피해 교사는 6개월 이상 휴직을 권고하는 정신과 진단서를 받았다. 그러나 학교 측은 병가 신청 수리와 학생 분리 조치에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학교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렸지만, 학생들이 사과하고 싶어 했다는 이유로 경미한 처분이 내려졌다. 이마저 학부모가 반발해 행정 심판이 진행 중이다. 학부모 측은 2년 전 일어난 일을 근거로 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했다. 그 일도 학교 밖에서 교사가 금연지도를 하던 중 학생이 반발하자 학교로 데려가기 위해 소매를 잡아끈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 서울 서초구의 초등학교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을 비롯해 비슷한 사건이 잇따랐다. 교사들이 교권을 보호해 달라며 거리로 나서자, 교육부는 적극적 해결을 약속했다. 교원지위법을 포함한 4대 교권보호 법안이 개정됐고,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학대 행위로 처벌하지 못하게 한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도 국회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 29일 정부서울청사 인근 도로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추모식 및 교사 생존권을 위한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추모 집회에 참석한 3만여 명의 교사들은 교사 처우 개선 및 교권 보호 조치등을 촉구했다. 뉴스1
하지만 여전히 교육 현장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평가가 많다. 교육 당국은 교사에 대한 민원이 접수되기만 하면 온갖 보고서를 내라며 학교를 닦달한다. 학교 측은 피해를 본 교사를 지원하기는커녕 질타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고립된 교사들은 문제 학생이 있어도 외면하는 게 상책이라며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학교에서 교육을 미루면, 결국 나중에 사회에서 범죄의 형태로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
전북교육청은 서둘러 교권 보호에 나서야 한다. 수사기관도 처리를 미루지 말고 정당한 생활지도라는 것을 확인하면 즉시 무혐의 처리해야 한다. 아울러 새 학기부터 도입되는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제가 부작용 없이 현장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교육 당국이 철저한 사후 관리를 해야 하겠다.
중앙일보 사설
02.20 어떤 경우에도 응급실과 수술실은 정상 가동돼야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전북대병원 전공의 189명 전원이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병원에 알린 19일 오후, 전북대병원 앞에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날 전북대병원 전공의들은 20일 오전 6시부터 근무를 중단하겠다고 병원에 알렸다. 이에 병원은 '진료 차질과 지연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니 양해 부탁드린다'며 '의료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안내문을 부착했다. /연합뉴스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인턴과 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이 19일 전국적으로 무더기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일부는 현장을 떠났다. 이에 따라 병원들이 진료·수술 일정 등을 조정하는 등 진료 차질이 현실화됐다. 전공의들은 20일부터 근무를 중단하겠다고 예고해 의료 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복지부는 이날 모든 전공의에게 진료 현장을 떠나지 말 것을 명하는 진료유지명령을 발령하고 의사협회 집행부 2명에 의사 면허정지 행정 처분을 통지했다. 정부와 의사들의 충돌이 본격화하는 상황이다.
의사들이 의대 증원에 반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치료를 거부해 환자가 피해를 입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법적인 문제를 떠나 인륜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일부 병원에서 전공의들이 현장을 떠나면서 암 수술, 출산, 디스크 수술 등 긴급한 수술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사례가 속출했다고 한다. 세브란스병원 등은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 부족으로 수술을 절반 이상 감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일부 병원에서는 응급실 입실이 지연되거나 아예 입실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겼다. 의사들이 당장 1분 1초가 급한 환자를 두고 떠나겠다고 하는 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어떤 경우에도 응급·위중한 수술만은 정상적으로 가능해야 한다. 수술이 급하거나 하루하루 고통받는 환자들을 방치해 피해를 입게 하는 것은 문명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부가 서둘러 의료계와 협조해 응급실과 위중한 수술만은 정상적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정부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현실화할 경우 비대면 진료 전면 확대, 진료 보조(PA) 간호사 역할 확대, 군 병원 등 공공 의료기관 진료 확대 등으로 대처하겠다고 했다. 환자 피해 최소화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부 당국과 의사들 간에 오가는 말들도 비이성적이어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정부는 “반의료 행위” “의사가 국민에게 협박한다” “타협은 없다”고 하고, 의사들은 “정부가 의사에 도전한다” “의료 대재앙을 맞이할 것”이라고 한다. 양측 다 감정을 자제해야 한다. 정부는 외과 소아과 응급실 등 필수 의료 의사들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책과 함께 보험 등 형사 책임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는 대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의사들은 의대 증원의 대폭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명백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도 인구 대비 의사 수가 OECD 최하 수준인데, 앞으로 급속한 고령화로 의사 수요가 늘어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사설
02-20 의료법 본질 저버린 전공의 집단행동
김상겸 동국대 명예교수·헌법학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이 무더기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떠나는 등 의료계의 혼란이 현실화하고 있다. 서울 소재의 대형병원들과 전국의 수련병원에 근무하는 전공의(專攻醫)의 집단사직이 이어졌다. 대한의사협회도 비상대책위원회를 열어 의대생과 전공의의 집단행동에 대해 정부가 처벌할 경우 의료 대재앙을 맞이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문제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논의됐다. 2020년에는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했지만, 당시 전공의들의 집단행동 등으로 무산됐다. 이렇게 의대 증원 계획은 매번 의사들의 반대에 부닥쳐 실행되지 못했다. 이번에는 정부가 의대 증원을 강력하게 추진해 구체화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전공의 등이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의사는 의료법에 따라 국가가 부여하는 자격을 가진 전문 자격사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국가시험에 합격해야 하며, 보건복지부 장관의 면허를 받아야 한다. 국가가 의사 자격을 국가의 전문 자격으로 관리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 및 보건에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다.
의료법은 의료인의 수급 계획을 국가에 위임하고 있다. 따라서 의대 증원은 대(對)국민 의료 서비스 등과 관련해 의료인의 적절한 확보와 공급에 관한 문제이므로, 국가가 국민의 건강과 보건 등에 관한 의료 실태를 파악해서 결정할 일이다. 의사 수급 문제는 의료법에 따라 국가에 권한이 있다. 이는 의료 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전문 자격 분야에 똑같이 적용된다. 물론 의사도 한편으로는 전문 자격을 가지고 활동하면서 소득을 올리고 생활하는 직업인이므로 국가가 일방적으로 의사 수급 계획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국가는 주어진 여건과 환경 및 사회 변화를 고려하고 국민 여론도 살피면서 의사협회의 의견도 청취해 의사 수급을 결정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해가 갈수록 출생률이 떨어지고 있지만,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의료 수요는 매년 크게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급속하게 증가하는 의료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 의대 증원을 추진해 왔다. 현재 지방은 의사 부족으로 인해 ‘응급실 (찾아) 뺑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인구의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해지면서 의료 서비스도 수도권으로 집중되고 있다.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은 이런 현실을 고려한 것이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자는 치료가 시급한 환자들이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이유를 불문하고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삼는다. 의사도 의료인의 양심으로 의료행위를 해야 한다. 독일과 일본을 비롯한 다수의 국가가 고령화에 대비해 의사 수를 대폭 늘리고 있지만, 이에 반발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없었다.
의사도 전문 직업으로 적절한 수급이 필요하지만, 의사 수가 의료 서비스를 감당할 수 있도록 적정하게 만드는 것은 국민에 대한 의무이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의사에게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정부의 수급 정책에 반발해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의사의 본분을 망각한 처사이다. 정부는 엄정하게 법을 적용해야 한다. 누구나 법 앞에서는 평등해야 한다.

문화일보
02-20 의사들, 환자 건강 최우선이라는 선서 되새겨야
전공의 집단 사직 강행으로 수술 차질 피해 속출
정부는 진료 대책 마련하고 의사는 냉정 찾아야
‘빅5’ 병원(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 전공의들이 어제 집단 사직에 돌입하면서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이 환자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열한 살 어린이의 수술이 취소되는 등 치료가 시급한 환자의 고통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전국 병원에서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사직서 제출을 강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2.5명) 다음으로 적다. OECD 평균은 3.7명이다. 우리보다 사정이 나은 나라들도 의사를 늘리기 위해 공을 들여 왔다. 토마스 슈테펜 독일 연방 복지부 차관은 “독일의 의대 정원이 충분하지 않아 연내 5000명 이상 늘리고, 추가 증원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의사는 없다고 했다. 독일 역시 지방에 의사가 부족한 현실이 증원 배경이다. 지난 20년간 의대 정원을 두 배로 늘려 온 영국이나 38% 늘린 미국에서도 의사의 집단행동은 없었다. 2008년부터 의대 정원을 23.1% 늘려 온 일본의 경우 의사회가 정책에 반대 의견은 내도 파업은 하지 않았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의대 증원 얘기가 나오면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2006년 이후 의대 정원이 3058명에서 단 한 명도 늘지 않은 이유는 정부가 증원을 시도할 때마다 의사 단체가 실력 행사로 맞선 탓이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의 붕괴가 더는 방치하기 힘든 지경인데도 의사들은 대안 없는 반대로 일관해 왔다. 정부가 이번에도 환자를 볼모로 한 의사들의 실력 행사에 굴복해 증원을 포기한다면 장기적인 국민의 피해는 너무 커진다. 어제 전국 221개 전체 수련병원의 전공의를 대상으로 진료유지명령을 내린 보건복지부는 현장을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진료를 이탈,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한 의사에 대해선 고발 등 엄정한 조치가 불가피하다. 신속한 수사를 선언한 윤희근 경찰청장은 주동자에 대해 “구속 수사까지 염두에 두겠다”는 말이 엄포가 아님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전국 409개 응급의료기관 응급실을 24시간 운영하고 12개 국군병원 응급실을 민간 개방하는 조치를 지시한 한덕수 총리는 비대면 진료 전면 허용을 포함, 환자 보호에 필요한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현 상황의 가장 절실한 해법은 의사들이 현실을 직시하고 냉정함을 되찾는 일이다.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외면하지 말고 열악한 의료 현실을 타개할 수 있도록 정부와 대화에 나서야 한다. 정부도 “이번엔 더 나은 여건에서 의사로서의 꿈을 키우도록 개선하겠다”는 진정성을 의료계에 전달해 환자 피해를 막으면서도 의대 증원을 이뤄내는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02-20 악덕 불법 사채… ‘인간 파괴’ ‘가정 파괴’ ‘사회 파괴’의 주범
최근 서민을 상대로 한 사금융업자들의 불법 추심이 심각한 수준이다. 불법 업자들이 연 8000%가 넘는 고리를 물린 뒤 피해자가 갚지 못하면 배우자나 어린 자식 등 가족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피해자에게 나체 사진이나 모욕적인 모습의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강요한 뒤 가족과 지인들에게 유포하기도 한다. 채무로 협박해 피해자의 성을 착취하는 범죄까지 저지르고 있다. 잔혹함이 이른바 ‘n번방 사건’을 떠올리게 할 정도다. 불법 추심에 쫓긴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에 내몰리거나 가정이 무너지는 비극도 잇따르고 있다.
경기 불황에 고금리까지 장기화하면서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의 불법 사금융 피해가 커지는 실정이다. 미등록 불법 대부업자가 일주일마다 원금에 맞먹는 이자를 물리고, 대출 연장비 등 갖가지 명목으로 추가 채무를 지우는 탓에 수십만 원의 빚이 몇 달 만에 수천만 원으로 불어나기도 한다. 빚을 잘 갚으면 다른 업체인 척 접근해 추가 대출을 유도하는 수법으로 피해자를 옭아맨다. 피해자는 청소년과 사회초년생, 주부, 직장인, 자영업자를 가리지 않는다. 피해 규모는 연간 8만∼10만 건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금융 당국은 소송을 지원해 반(反)사회적 불법 사채를 원천 무효화하겠다지만 이미 불법 업자에게 약점을 잡힌 피해자에겐 큰 의미가 없다. 불법 업자가 피해자의 온라인 메신저 계정 등 개인정보를 사용해 협박하는 탓이다. 부모와 직장 동료, 지인들에게 채무 사실을 알리고 욕설과 거짓 험담을 하는 등 피해자의 사회적 관계를 무너뜨리는 식이다. 피해자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해도 ‘대포폰과 대포통장이 쓰여 잡기 어렵다’는 답만 듣기 십상이다.
온라인 대부 중개 사이트엔 ‘수십만 원이 절박하다’며 돈 빌릴 곳을 찾는 서민들의 글이 이어진다. 이들 중 상당수는 불법 사금융업자가 놓은 덫에 걸려 수렁에 빠질 공산이 크다. 불법 사금융 및 악질적 추심은 개인의 인격을 짓밟고 가정을 파괴하고 우리 사회를 좀먹는 범죄다. 빚을 갚지 못했다고 서민들이 노예와 같은 지경에 내몰려선 안 된다. 정부 당국은 철저한 단속과 엄벌을 통해 이런 범죄가 우리 사회에 아예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서민을 위한 정책금융의 확대도 병행해야 한다.
동아일보 사설
02-21 전공의 복귀명령 거부… 법치 무시 끝까지 엄단해야 한다
전공의들의 집단적 업무 거부에 따라 한시가 급한 암 환자 등의 수술이 취소되는 등 생명 위협과 의료 불편이 시작됐다. 20일 오후 10시 기준 전국 전공의의 71%인 8816명이 사직서를 제출했고, 이 중 63%인 7813명이 근무지를 이탈했으며, 수술 취소·연기 등 58건의 피해 신고(오후 6시 기준)가 보건복지부 신고센터에 접수됐다고 한다. 정부는 21일 오전 기준 사직서 제출 뒤 진료 업무를 거부하는 전공의 6112명에게 업무개시 명령을 내렸다.
의료법은 의료 행위 주체를 의사들에게 국한하면서, 그 대신 진료 거부 행위를 금지하고(제15조) 집단행동 등에 대해선 보건복지부 장관이 업무개시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제59조). 그럼에도 전공의 등이 업무개시 명령에 불응하는 것은, 자신들이 버티면 국민 생명이 위협받게 되고, 결국 정부와 국민도 굴복할 것이라는 계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과거 여러 차례 그런 악습이 반복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독점적 기능을 무기로 법치와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행태를 뿌리 뽑아야 한다.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의료 개혁은 이미 20년 이상 지체됐고, 의료 현실을 보더라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문제다.
정부는 업무개시 명령에도 복귀하지 않으면 의료법에 따라 면허정지 처분을 예외 없이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번엔 빈말에 그쳐선 안 된다. 민·형사상의 책임을 포함한 모든 책임을 끝까지 물어 환자를 팽개친 반인륜적 행위를 엄단해야 한다. 주동자에 대한 고발과 구속 수사도 필요하다. 의사면허 취소는 물론 의료법과 공정거래법 위반, 병원에 대한 업무 방해 등 가능한 모든 행정적·사법적 대응을 추진해야 한다.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한 환자가 증세가 악화하거나 사망할 경우 업무상 과실치사상이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등의 혐의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과거 악선례가 되풀이돼선 안 된다. 2000년 의약분업 반대, 2014년 원격의료 도입, 2020년 매년 400명 증원 반대 사태 때 정부가 백기를 들고 전공의 고발을 취하하는등 나쁜 선례가 만들어졌다. 이러니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 “의사가 없으면 환자도 없다”는 망언이 나온다.
문화일보 사설
02-21 히포크라테스 두 번 죽었다
“진정한 중환(重患)을 만나고 싶은가?”
지난해 말 국내 최대 상급종합병원이 응급의학과 전공의를 모집하기 위해 올린 공고문이다. 주요 내용은 이랬다. “세상 모든 중환자가 몰려와 수련 과정은 정말 힘들고 고될 것이다.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험은 훌륭한 의사를 만드는 데 필수 불가결하다고 믿는다.” 대다수 누리꾼은 의사로서 자부심이 느껴진다면서 존경심을 표했다. 의사 사회에선 정반대였다. “제정신으로 올린 글이냐” “아직도 필수의료를 지원하는 바보가 있냐” 등 비웃음이 쏟아졌다. 요즘 수련병원들은 당직과 콘퍼런스를 줄여 수련이 편해졌다고 홍보한다. 전공의에게 기본기를 충실하게 가르치기를 포기했다는 얘기다. 이 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전공의를 제대로 키우겠다고 올린 글이 선후배 의사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된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일그러진 단면은 흔하다. 업의 본질을 거스르는 일도 많다. 의대 수석이 ‘메스’ 대신 ‘미용 레이저 기기’를 잡는 세태다. 한 대학병원 외과계 교수는 전공의들이 수술을 앞두고도 법정근로시간을 따진다고 토로했다. 그는 “QOL(삶의 질을 뜻하는 의료계 용어)이 중요했다면 의사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의사는 환자에 대한 책임감에 매여 있어 힘든 직업이란 이유에서다.
의대 증원에 맞서 전공의들은 가장 먼저 병원을 떠났다. 최근 한 전공의는 사직 사유로 ‘국민의 적개심’을 들었다. 국민이 의사에게 등 돌린 이유를 되돌아보지 않은 채 여론만 힐난한 것이다. 의사는 왜 외면당할까. 세브란스병원 소아과 전공의는 밥그릇만 중시한다는 비난이 괴롭다면서도 피부미용 의사로 살겠다고 했다. 소아환자들을 내버려둔 채다. 다른 전공의는 의사단체 궐기대회에서 “내 밥그릇을 위해 사직했다”며 “의사가 있어야 환자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집단행동의 본질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서글픈 건 젊은 의사들 모습이다. 전공의 수천 명은 병원을 마비시키고 환자들을 내팽개쳤다. 그 순간 모든 명분을 다 잃었다. 파업 등 위력을 과시하던 기성세대와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정부를 매번 무릎 꿇린 학습효과 탓에 집단사직도 쉽게 행동으로 옮겼다. 논리도 같다. 전공의들은 격무에 시달린다면서도 의대 증원은 반대한다. 경쟁자가 늘면 희소가치가 떨어져서다. 수익도 준다.
히포크라테스는 두 번 죽었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환자 목숨을 볼모로 삼아서다. 수십 년간 모든 파업에서 의사들은 전승을 거뒀다. 정부가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막말이 나온 배경이다. 이는 고된 현장에서 환자를 지키는 동료 의사들을 욕보이는 말이다. 금도(襟度)도 넘었다. 전 의사단체장은 SNS에 “지방에 부족한 건 의사가 아니라 민도(民度)”라고 썼다. 틀렸다. 민도가 낮은 이는 국민을 폄훼한 의사들이다. 19년째 의사 공급이 통제돼 경제적 이익과 기득권이 극대화된 결과다. 이들이 의사의 표준으로 국민 뇌리에 자리 잡아선 안 될 일이다. 이번 집단행동은 의료 개혁의 당위성을 입증하고 있다. 국민 생명이 의사의 밥그릇을 지키는 수단이 돼선 안 된다. 의사는 국민을 이길 수 없다.

문화일보
02-22 전공의 사태 본질과 엄중한 병원 책임
전공의는 ‘수련생’이다. 의학교육과 면허 자격시험만으로는 부족했던 임상 경험을 선배 의사로부터 전수(傳受)한다. 대부분 고난도 수술 경험이 많은 큰 병원에서 수련하기를 원한다. 큰 병원에 몰리는 이유다. 전공의는 동시에 ‘인건비가 싼 의사’다. 경영에 도움이 되니 병원은 전공의 배정에 목맨다. 전공의가 전문의를 대체하면서 ‘빅5 병원’의 전공의 비중은 높아졌다. 서울대병원은 전체 의사의 절반 가까이가 전공의다.
국민보건계정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병원(의원 제외)의 2022년 수입은 86조 원이었다. 병원은 이 86조 원의 수입에서 절반 남짓을 의사와 간호사 등의 인건비로 쓰고, 나머지는 재료비·행정관리비 등에 사용했다. 6만 명의 병원 의사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18조 원이다. 1만3000명 전공의의 평균 연봉 7000만 원을 참작하면, 의사는 평균 3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은 것이다.
의사 봉급을 얼마나 지급할지는 병원 경영의 판단이다. 하지만, 우리 건강보험은 의사의 높아진 인건비를 사후에 반영해주는 기전(機轉·mechanism)을 가진다. 매년 건보공단과 병원협회 사이에 이뤄지는 ‘환산지수 계약’이 그것이다. 모든 의료행위에 대한 일률적 인상 외에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매월 개별 수가를 신설, 가산해 준다. 그러면 이 돈은 누가 낼까. 국민보건계정은 이 돈의 재원도 보여준다. 병원 수입 86조 원 중 22조 원은 환자가 병원을 나오면서 낸다. 56조 원은 건강보험료와 세금으로, 8조 원은 실손보험이 지급한다. 하지만 건보료도, 실손보험료도 결국은 국민의 부담이다. 미리 내니까 의료 이용 단계에서 내는 것보다 부담을 가볍게 느낄 뿐, 의사의 높은 인건비는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이다.
현 구도에서는 전공의의 근무시간이 길수록 병원 경영에 도움이 된다. 전공의는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지만 배우는 처지라 견딘다. 적은 인건비 불만은 미래 수입 기대로 삭인다. 본인의 낮은 인건비 덕분에 선배 의사가 높은 연봉을 받아도, 몇 년 참으면 나도 저만큼 받으려니 했을 터. 그런데 ‘의대 2000명 증원’ 소식은 ‘울고 싶은데 뺨 맞은’ 상황일 것이다. 미래 수입을 나눠 가질 사람이 많아진다니? 변호사의 수입 감소를 보던 기시감이었을 것이다.
근로소득 4000만 원 남짓으로 살아야 하는 보통 국민은 보상이 적다고 떼쓰는 고액 연봉의 응석을 받아줄 여유가 없다. 미래 몸값이 떨어질까봐 벌이는 ‘사다리 걷어차기’를 어른들이 용납해선 안 된다. 의료법에서 정한 원칙을 지키도록 하면 된다. 병원은 의료법대로 적정 수의 의사를 투입해야 한다. 수련생인 전공의가 없다고 업무가 마비되면 병원 책임이다. 입원한 환자의 생명과 건강에 지장이 오면 병원장이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 의사에게는 면허의 특권에 상응한 의무가 있다. 의사의 진료 일탈은 병원장이 고발을 통해 개별 의사와 형사상의 책임을 다투고, 민사상의 구상권을 행사하면 된다.
정부는 병원이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지, 건강보험공단이 지급하는 돈에 합당한 의료를 제공하는지를 확인할 의무가 있다. 전공의를 배치할지 전문의를 배치할지는 병원 내부의 문제다. 정부가 이 모두를 해결할 수도 책임질 수도 없다. 원칙대로 하도록 하면 국민이 이긴다.

문화일보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
02.23 의사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1. 이번 의사 파업으로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2024년 의대 입학 정원 3058명은 35년 전인 1989년의 입학 정원과 같은 규모라고 한다. 그사이 한국 인구는 4244만 명에서 5175만 명으로 21.9% 증가했는데 의사 배출은 제자리란 것이다. 의대 정원은 1990년대에 3253명까지 늘었지만 2000년 의약분업 파업 사태를 계기로 다시 줄었다. 김대중 정부가 의사들을 달래기 위해 의대 정원을 축소했다. 그래서 2006년 이후 의대 전체 정원이 18년간 3058명으로 묶여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의료 수요가 급증하는 65세 이상 노인층의 규모다. 89년 당시 65세 이상 인구는 205만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해는 993만 명이나 된다. 노인 인구가 5배 느는 동안 의사 양성은 동결해 왔으니 앞으로 큰 문제가 안 생길 수 있을까.

▲전북의사회 회원들과 의대생들이 22일 전주종합경기장 앞에서 '의대정원증원, 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궐기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2.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지난 20일 성명서를 통해 “전공의들이 주 80시간 이상 근무하면서 최저임금 수준의 보수를 받고 있음에도 정부는 이제껏 이를 외면했으면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 의료 마비가 된다고 한다”고 항변했다. 병원들이 전공의를 착취에 가깝게 부려먹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정부가 의대 정원을 대폭 늘려 가련한 전공의들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건데, 전공의들이 그건 왜 반대하는 건가? 힘들어 죽겠다면서도 인력 지원은 마다하는 모순을 이해해 달라니 참으로 난감하다.
노인 5배 늘어도 의사배출 제자리
병원 밖 민심은 잘 모르는 의사들
의사파업, 윤 정부에 위기이자 기회
3. 의사단체는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한국이 2.6명으로 일본(2.6명)이나 미국(2.7명)과 비교해도 크게 부족한 편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한국의 2.6명은 한의사까지 포함한 수치고, 한의사를 제외하면 2.18명이 돼 OECD 최하위로 떨어진다. 의사단체가 평소엔 한의사를 자신들과 동렬로 대우하지도 않으면서, 이럴 땐 슬쩍 동료로 끼워 넣는다.

▲지난 17일 서울 대한의사협회 대강당에서 열린 의료정원 증원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김택우 비대위원장(가운데)은 "단 한명의 의사라도 이번 사태와 연관해 면허와 관련한 불이익이 가해진다면 의사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간주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행동에 돌입할 수 있음을 강하게 경고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4. 의사들은 의대생 시절부터 은퇴까지 줄곧 병원에서만 활동하고 대부분의 인간관계도 병원에서 형성된다고 한다. 미셸 푸코는 병원은 의사가 권력을 행사하는 공간이라고 했다. 대통령ㆍ재벌도 병원에 가면 의사 말에 순종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의사들은 병원 밖 민심에 대해선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 같다. 최근 의협 전직 간부가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고 주장하거나, 파업에 나선 한 전공의가 “제가 없으면 환자도 없다”는 선언한 것은 국민 여론을 자극하는 오만한 언행이었다. “면허 불이익은 의사에 대한 정면 도전”(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이란 말도 기가 막혔다. 의사가 정부의 상전인가.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나 ‘낭만닥터 김사부’는 역시 드라마에 불과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5. 2000년 의약분업 반대 투쟁이나 2020년 공공의대 설립 반대 파업은 진보 정권과 의사들의 충돌이었다. 그래서 의사들에겐 보수 진영이 우군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보수 정권이 의사들을 압박하는 상황이다. 지금 의사들은 고립무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의사 정원 이슈를 총선에 써먹으려는 윤석열 대통령이 얄밉긴 하지만 그렇다고 의사 파업을 지지할 순 없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평소 의사와 사이가 나빴던 간호사ㆍ한의사ㆍ치과의사ㆍ약사가 이 시점에서 의사를 편들 리 없다. 심지어 불법 파업의 대명사인 민주노총마저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아무런 정당성이 없다”며 파업 철회를 촉구할 정도다. 의사들은 외로운 길을 걸어가야 한다.
6. 의사 파업은 윤석열 정부에게 위기이자 기회다. 의사들의 저항을 뚫고 큰 폭의 의사 증원을 관철한다면 정부의 큰 업적이 될 것이다. 하지만 파업이 장기화하면 여론의 화살이 정부를 향할 수도 있다. 윤석열 정부가 대책도 없이 일을 저지른 것인지, 아니면 파업을 조기 종식할 정교한 시나리오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윤석열 정부의 실력이 드러날 진실의 순간이다.

중앙일보 김정하 논설위원
02-24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 준 판사
지난달 24일 부산지법 동부지원 법정. 형사1단독 박주영 부장판사가 이른바 ‘무자본 갭투기’로 전세사기를 벌인 혐의를 받는 50대 여성 최모 씨에 대한 판결문을 읽기 시작했다. 최 씨는 오피스텔 등 건물 9채를 사들여 세입자 229명에게 보증금 180억 원을 받은 뒤 돌려주지 않은 혐의(사기 등)로 재판에 넘겨졌다.
박 판사는 먼저 “선고 내용이 길다”며 공지한 뒤 피해자 40여 명이 제출한 탄원서를 하나하나 요약해 읽어갔다. 40대 중반에 전세금을 마련해 독립했다가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는 “잘못한 게 없는데 잘못한 것 같다”고 자책했고, 결혼을 앞둔 피해자는 상견례 전날 파혼을 당했다. 부모님이 전세금에 보태라고 준 1600만 원을 고스란히 날린 딸도 있었다. 박 판사가 탄원서를 읽는 동안 피해자들은 하나둘씩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탄원서를 다 소개한 박 판사는 “이 사건의 주된 책임은 자기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임대사업을 벌인 피고인에게 있다”고 최 씨를 꾸짖으며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검찰 구형보다 2년 더 많은 형이었다. 최 씨를 법정에서 내보낸 박 판사는 방청석에 앉아 있던 피해자들에게 “잠깐 할 말이 있으니 그대로 계셔 달라”며 이렇게 당부했다.
“절대로 여러분 자신을 원망하거나 자책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는 지극히 평범하고 아름다운 청년들입니다.”
박 판사의 당부는 한동안 계속됐다. 박 판사는 “한 개인의 욕망과 탐욕을 적절히 제어하지 못한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이 여러분과 같은 선량한 피해자를 만든 것”이라며 “결코 여러분이 뭔가 부족해서 피해를 당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 달라”고 했다. 이어 “하루하루 견디기 힘든 나날이겠지만, 빛과 어둠이 교차하듯 암흑 같은 시절도 다 지나갈 것”이라며 “여러분의 마음가짐과 의지에 따라서는 이 시련이 여러분의 인생을 더욱더 빛나고 아름답게 만들어 줄 것이라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엄중한 모습으로만 생각했던 판사의 위로와 당부에 법정은 눈물바다가 됐다. 재판이 끝나고 법정을 나서던 한 피해자는 “형량보다도, 우리의 잘못이 아니란 걸 인정받았다는 점이 큰 힘이 된다”고 했다. 박 판사의 진심 어린 위로와 당부가 피해자들이 눈물을 닦을 수 있는 힘이 돼 준 것이다. 박 판사는 지난해 12월 특수협박 혐의로 기소된 50대 노숙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건강을 챙기고 어머니 산소에 꼭 가보라”며 현금 10만 원과 중국 작가 위화의 대표작 ‘인생’을 선물하기도 했다. 보호관찰소가 재판부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피고인이 평소 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는 게 취미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법과 판결이 도덕적일 필요는 없다. 법을 해석하고 사법적 판단을 내리는 법관이 감정과 도덕에 휘둘린다면 법적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 하지만 법관은 범죄 피해자들이 가장 마지막으로 기대고 의지하는 버팀목이다. 가해자를 엄단하면서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 주는 박 판사 같은 법관이 많아진다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훨씬 단단해질 것이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02-26 “환자 갈 곳 없어선 안 돼” 전공의 先복귀 後대화가 옳다
전공의 의료거부 사태가 1주일로 접어든 가운데, 정부가 오는 29일을 복귀 시한으로 제시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23일 보건의료재난 경보단계를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격상했다. 정부의 이런 조치는 의료법에 따른 복귀 명령 거부 등 불법 행위에 대한 사법 처리가 임박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당연한 절차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2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며 “29일까지 병원으로 돌아온다면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밝혔다. 의료 상황은 심각하다. 국민의 불안과 불만도 높아간다. 대화와 협상으로 파국을 막으라는 주문도 있지만, 이번에 ‘의사 불패’ 악습을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찬성하는 의대 증원에 반대해 환자를 내팽개친 의사들의 반윤리적 행태에 대한 여론 비난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의대 교수들이 뒤늦게 대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초심을 되새겨 무조건 의료 현장에 복귀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전공의들은 우선 업무에 복귀한 뒤 요구 조건을 내거는 게 옳다. 정부는 마지막 순간까지 설득하지만, 그래도 불응하면 국민과 소통하면서 엄정한 법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
이 와중에 환자를 내팽개칠 수 없다는 의사가 적잖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경기 부천의 중급 병원인 뉴대성병원 의료진은 지난 23일부터 24시간 긴급 근무 체제에 돌입했다고 한다. 이 병원 의사들은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건 아니지만, 응급 환자가 갈 곳이 사라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평소보다 응급실 환자가 2∼3배 늘고, 전문의 17명 전원이 돌아가며 당직을 서는 등 업무도 훨씬 힘들어졌다고 한다. 그래도 “편찮으신 분들을 도울 수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이런 게 의사의 정도(正道)다.
문화일보 사설
02-26 의료 현장 돌아와 7대 부조리 고치자
전공의들이 환자 곁을 떠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첨단 시설을 자랑하던 초대형병원들이 혼란에 빠지고 환자들은 망연해하고 있다. 최고 수준의 재난경보까지 발령된 이번 사태는 단순히 의대 정원 문제를 넘어 그간 방치해 온 대한민국 의료의 부조리가 그 원인이다.
첫째, 영리적 운영의 문제다. 병·의원이 환자 유치에 몰두하고 의대 병원조차 수익 추구에 진력하느라 소홀해진 교육과 수련은 일부 교수만의 몫이다. 교수는 외래진료에 바빠 중증인 입원환자는 전공의 등에게 맡긴 지 오래다.
둘째, 의료기관 간의 협력이 어렵다. 병·의원이 서로 경쟁하는 데다 대형병원은 분원 설립과 병상 확충으로 고비용 의료를 부추기며 지역 의료를 무너뜨린다. 급속한 규모 확충에는 전공의의 인력 풀 형성과 노동력 제공이 필수다.
셋째, 전문의의 개원 쏠림이다. 힘든 과정을 거쳐 전문의가 되고도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필수 분야보다 쉽게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개원가로 모인다. 실손보험으로 치솟은 개원의 수입은 의사들 간 격차를 키워 중증 환자를 지키고자 뜻을 품은 젊은 의사의 사기를 꺾는다.
넷째, 의료 분쟁과 과도한 법적 책임이다. 과실 입증이 어렵고 공적 보상의 길이 없는 환자 상황은 이해되나, 의사는 소송의 두려움에 응급 중환자를 꺼린다. 선의의 의료행위로 발생한 분쟁의 공적 해결과 보상 기제가 필요하다.
다섯째, 부족한 공공의료 역량이다. 지역거점 공공병원이야말로 젊은 의사들이 보고 배울 현장이다. 그런데도 그 수와 규모는 턱없이 부족하다. 재난 때마다 동원되지만, 막상 지나고 나면 아무도 관심이 없는 공공병원에는 미래가 없다. ‘공공’을 뺀 ‘필수’의료는 빈 구호임을 아는 정부지만, 공공병원 강화에 투자하지는 않으려 한다.
여섯째, 무책임한 정부다. 필수의료 붕괴와 인력 부족은 한참 전에 예견됐지만 한 일이 없다. 코로나 팬데믹에서 드러난 공공의료 부족도 잊은 지 오래다.
일곱째, 젊은 의사들이 병원을 떠나게 한 책임은 선배 의사들에게도 있다. 공정한 의료 체계를 만들지 못했고, 사회적 책무를 후순위에 두고 수가 인상만 외치다 이익만 좇는 이기적 집단으로 몰렸다. 부모 세대의 잘못도 있다. 선진 시민의 책임과 품성을 못 가르치고, 세계 무대에서 활동할 뛰어난 인재들을 의대만이 인생의 목표처럼 성적 올리기에만 힘써, 기대보다 못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절망에 빠지게 했다.
정부는 진정성과 인내를 가지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 필수의료 강화는 절체절명의 국가적 과제임을 설득하고, 향후 필요한 지원을 약속해야 한다. 의료 공공성 강화와 필수의료 정상화는 모두에게 필요한 국가적 가치임을 선언해야 한다. 선배 의사는 젊은 의사에게 존경받는 의사로서 비전을 제시해 줘야 한다.
전공의들이여, 이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라. 의사는 환자 옆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고 강하며 존경받는다. 젊음의 패기와 총명함으로 적폐를 고쳐 나가자. 지식 기술자가 아닌 진정한 지식인으로서 국가 의료 체계를 만들어 가자.
시간이 별로 없다. 환자들의 간절한 기다림이 기대와 희망에서 실망과 원망으로 변하기 전에 환자 곁으로 빨리 돌아오길 다시 한 번 부탁한다. 전공의 여러분은 나라의 미래다.

문화일보 조승연 인천광역시의료원장,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
02.27 수련생 없으면 대형 병원 마비, 이런 나라 또 있나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사직서를 낸 전공의가 주요 수련 병원 100곳에서 1만명을 넘어섰다. 해당 병원 전공의의 80%다. 현장 이탈자도 9000명을 넘어섰다. 인턴, 전임의(전문의 자격 딴 뒤 수련하는 의사)도 이탈 움직임을 보인다고 한다. 정부는 전공의들에게 29일까지 복귀하라고 했다. 거부할 경우 면허정지 처분과 위법에 대한 수사로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20일부터 전공의 집단 사직이 일주일째 이어지면서 서울 주요 대형 병원이 수술을 절반까지 줄이고 응급실조차 의사가 없어서 환자를 돌려보내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전공의는 전체 의사의 11%에 불과하다. 전공의는 아직 배우는 피교육생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업무를 거부하면 바로 대형 병원들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휘청거리는 것이 우리나라 의료 현실이다. 2000년 의약 분업 사태 이후 벌써 네 번째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니 의사들이 집단행동이 필요하면 항상 수련의들을 앞세우고 있다. 현재 대형 병원들 상황은 기업으로 치면 수습 사원들이 일을 안 하면 회사가 마비된다는 것과 같다. 이런 기업이 있다면 심각한 비정상일 것이다.
이런 일은 대형 병원들이 낮은 임금에 장시간 근무를 시킬 수 있는 전공의 의존도를 지나치게 높였기 때문이다. 특히 ‘빅5′라고 하는 서울 상급 종합병원 의사의 30~40%가 전공의일 정도다. 서울대 병원은 이 비율이 무려 46%에 이른다. 이들이 주당 80시간 가까이 일하며 병원 업무량의 70% 정도를 처리한다고 한다.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일본 도쿄대 부속 병원은 전공의 비율이 10%, 미국 메이요클리닉도 레지던트 비율이 10%라고 한다.
의사 수를 늘리면 대형 병원의 이 잘못된 구조도 고쳐야 한다. 전공의 숫자와 근로시간을 줄이는 대신 전문의 숫자를 늘려야 한다. 수련생들이 집단행동으로 병원 전체 진료를 흔드는 기형적 구조는 이번이 마지막이 돼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2-27 의사 불법 끝까지 책임 묻고 ‘의료 왜곡’ 是正 나설 때다
전공의 업무 거부가 1주일을 넘기면서 응급실 뺑뺑이 사망 사고가 발생하는 등 의료 공백이 현실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의사 불패’ 악습을 고치는 것은 물론, 수십 년 미뤄진 의료 개혁을 본격화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의대 증원에 대한 정부 의지와 국민 여론이 이처럼 확고한 적은 없었다. 더는 의사단체 겁박에 휘둘려선 안 된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대형 병원 응급실 수요를 최소화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중증이 아닌 대다수 환자들을 중급 및 동네 병원에서 진료할 수 있게 하고, 그런 병원이 성장해 대형병원 의료 집중을 완화할 수 있도록 적극적 지원책도 펼쳐야 한다.
정부는 근무 거부가 확인된 전공의 7038명에게 업무개시 명령을 내리고 29일까지 업무에 복귀하지 않으면 예외 없이 3개월 면허정지 처분하겠다고 했는데, 엄포로 그쳐선 안 된다. 의료법 위반 등의 행태에 대해선 면허정지를 넘어 고발과 수사, 기소를 통해 형사 처벌도 받게 하고, 금고형 이상을 선고받은 의사에겐 면허취소 처분도 내리는 등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의사라고 해서 국민과 법치 위에 군림하는 듯한 행태를 방치해선 안 된다.
곳곳의 의료 시스템 왜곡도 바로잡도록 해야 한다. 대형종합병원의 전공의 과잉 의존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필요한 자격을 획득한 기능인들이 특정 분야 시술을 할 수 있게 해 의사 독점 구조를 깨야 한다. ‘눈꺼풀 재봉사, 피부 마사지사, 보톡스 주입사, 피부레이저 지짐사, 들창코 받침사, 문신바늘사’ 등 6가지 기능 분야를 열거하면서 자격 시험을 통한 시술을 허용하자는 ‘어느 애국시민’의 신문 광고도 있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18∼2022년 일반의가 개원한 동네 의원 979곳 중 86%가 피부과를 진료 과목으로 신고했다. 진료보조(PA)간호사 합법화와 비대면 진료 확대도 만시지탄일 정도로 시급하다.
문화일보 사설
02-27 전공의 복귀 거부와 레이건式 해법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과 근무 거부로 인한 의료대란이 가시권에 접어들었다. 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확대에 반대해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인턴, 레지던트)가 국내 주요 100개 수련병원에서 1만 명을 넘어섰고, 의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도 9000명을 넘었다. 전체 전공의가 1만3000명이라니 80% 이상이 사직서를 제출했고, 출근하지 않는 전공의도 72%를 넘었다는 얘기다. 정부가 오는 29일까지 의료 현장에 복귀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지만, 얼마나 복귀할지는 미지수다. 급기야 26일 대전에서 80대 심정지 환자가 병원을 찾아 돌다가 치료를 받지 못해 결국 사망했다.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내세운 것은, 현재도 5000명 정도 모자라는 의사 수가 10년 뒤에는 1만 명 이상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재 고령화율은 19.1%인데, 속도가 너무 빨라 2035년 30%, 2050년에는 40%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1인당 의료 수요가 급증해 2021년 대비 2050년에는 입원 2.4배, 외래 1.2배의 환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또, 2035년 70세 이상 의사가 3만2000명으로 예상되는데, 10년간 새 의사는 3만 명에 불과할 것으로 보여 순감소한다. 결국, 의료 수요의 가파른 증가와 의사 공급 부족을 고려하면 지금부터 매년 2000명씩 5년간 증원해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반면 의료계는, 현재도 의사 수는 충분하고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어 의대 증원은 의사 과잉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또, 의사 수가 늘면 경쟁 심화와 과잉 진료가 나타나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을 줄 것이고, 의대 증원의 이유 중 하나인 지방·필수 의료 확충은 증원해도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동시에 과다(연 2000명) 증원으로 의료 교육 부실화가 불가피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공공의료기관에선 이미 은퇴한 의사들을 재채용하는가. 전문의 채용 공고에 평균 의사 연봉이 4억 원에 이르고, 지방으로 갈수록 더 높아지는 이유는 뭔가. 대기업 직원의 평균 생애소득은 20억 원인데, 의사들은 140억 원에 이르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래서 의사협회의 주장은 밥그릇을 지키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2020년에도 전공의를 시작으로 의사 파업이 있었다. 당시 의사협회는 의사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 반대를 내걸고 파업을 주도했고, 결국 정부는 의사고시를 거부한 졸업생은 물론 유급이 불가피한 의대생들까지 모두 구제했다. 그때의 학습효과가 이번에 나타나고 있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항공관제사들의 불법파업을 ‘국가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즉시 업무복귀를 명령하면서 48시간 내 복귀하지 않으면 해고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동시에 퇴직자와 군 관제사 등을 동원해 항공 관제를 했고, 주요 노선을 제외한 항공편의 절반을 줄였다. 이틀 뒤, 48시간 내 복귀한 1650명을 제외한 나머지 1만1359명(87%)의 항공관제사는 즉각 해고됐고, 동시에 동일 업종 재취업은 영구적으로 불가능해졌다.
지금은 레이건 같은 강한 결단과 의지가 필요한 때다. 증원 규모와 속도, 전공의 처우 개선, 전문의 중심 운영 등 개선을 위한 세부 사항은 논의할지언정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볼모로 한 파업을 또다시 묵인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

문화일보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02-27 의사 집단사표는 反헌법적… 정부 업무개시명령, 기본권 침해 아냐

의사 집단행동과 헌법정신
정부의 명령, 공공성 해치는 ‘직업행사의 자유’ 제한… 기본권인 ‘직업선택의 자유’ 침해와는 달라
목적 정당성·방법 적절성·법익 균형성 등 ‘과잉금지원칙’ 합치… 국민 적대시하는 행동, 공감 못얻어
의료활동은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것이기에 특별한 존중을 받는다. 세계 어느 나라든 의사라는 직업이 선호되는 것도 그 때문이며, 이에 상응하는 공적 역할을 다할 것을 다짐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수천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의사들의 규범으로 인정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오늘날 의사에 대한 존경심이 예전과 같지 않지만,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돌보는 의사라는 직업과 직분의 의미와 중요성은 여전하다.
이런 가운데 전공의 집단 사표로 촉발된 사실상의 대규모 의사 파업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의사사회의 집단행동에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으로 대응하는 것을 놓고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 즉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은 ‘직업의 자유’ 전체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직업행사의 자유’만을 제한하는 것이어서, 이를 기본권에 대한 본질적 내용 침해로 볼 수는 없다.
◇직업행사의 자유
의사라는 직업은 법적으로 여타의 직업과 달리 취급된다. 헌법상 보장된 직업의 자유가 인정되면서도, 그 공공성으로 인해 특별한 제한의 가능성이 더욱 크게 인정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비단 의사만은 아니다. 예컨대 공무원에 대해서는 직업의 자유, 특히 직업행사와 관련한 집단행동에 대해 특별한 제한이 인정되고 있다. 노조원이 파업할 경우에도 쟁의행위의 요건과 절차를 갖춰야 하며, 공공성이 강한 직종일수록 제한의 강도는 높아진다.
최근 의사사회의 집단행동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점증하는 가운데 전공의들의 집단 사표 등에 대한 논란도 첨예화하는 중이다. 집단 사표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논의에 앞서 과연 집단 사표의 의미는 무엇이고 이를 법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의료대란을 발생시킨 주된 행위는 전공의들의 집단 사표이다. 이를 직업선택의 자유를 행사한 것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정확한 해석이 아니다. 헌법 제15조 ‘직업선택의 자유’라는 문구에도 불구하고 헌법학계의 통설과 헌법재판소 판례는 이를 ‘직업의 자유’로 넓게 해석하며, 이를 다시 ‘직업선택의 자유’와 ‘직업행사의 자유’로 나눈다. 의사가 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지만, 의사의 개업이나 직장 변경 등을 제한하는 것은 직업행사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다.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매우 엄격한 요건하에, 즉 매우 중대한 공익적 필요성에 따라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직업행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건 그보다 완화된 요건으로도 가능하다. 예컨대 의사가 될 수 없게 의대 정원을 제한하는 건 중대한 제한이어서 엄격한 요건을 필요로 하는 반면, 의사들의 직장 변경을 제한하는 건 그보다 덜 엄격한 요건으로도 가능하다.

◇헌법적 해석
물론 직업행사의 제한이라고 해도 함부로 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모든 기본권 제한은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라는 목적을 위해서만, 법률에 근거해서만, 또한 ‘과잉금지원칙’에 따라서만 제한될 수 있으며,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의사의 집단행동을 제한하는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은 어떻게 봐야 할까. 전공의 집단 사표에 따른 의료 공백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며, 따라서 공공복리라는 기본권 제한의 목적은 충족된다(목적의 정당성). 의료법 제59조에 의해 법률적 근거가 있다는 점도 확인된다.
가장 조심스럽게 평가해야 할 것 중 하나는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의사의 직업행사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업무개시명령을 통해 의사들이 의료 현장에 복귀하도록 하는 것이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위협을 해소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은 명백하다(방법의 적합성). 또한 현재로는 업무개시명령보다 더 효과적인 다른 대안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침해의 최소성).
나아가 과잉금지원칙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더 중요한지, 아니면 의사의 직업행사의 자유가 더 중요한지를 비교·형량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누구도 국민의 생명·건강보다 의사의 직업행사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법익의 균형성).
이런 상황에서 의대 정원 확대를 막기 위해 집단 사표 제출 등 집단행동에 나선 의사들에 대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 것이라고 보는 건 가당치 않다.
◇집단행동의 문제점
의사 집단행동의 시발점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추진이었다는 점은 국민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인구 대비 의사 숫자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많이 부족하고, 그로 인해 의료서비스의 제공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점은 로스쿨제도 도입을 결정할 당시의 법조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응급실 뺑뺑이’ 같은 감당하지 못할 상황을 체감한 국민 대부분은 바로 이런 점에서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하고 있다. 의사협회 쪽에서는 정부가 충분한 협의 없이 의대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주장에는 세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충분한 협의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 그동안 협의 절차가 없었던 것은 분명히 아니며, 단지 의사협회 쪽에서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인데, 그렇다면 의사협회가 수용할 수 있을 때까지 협의해야 할 충분한 협의라는 건 무엇인가.
둘째, 정부의 일방적인 추진을 막기 위해서는 설득력 있는 대안이 제시되고 이를 통해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의사 숫자가 충분하며 출산율 저하 등으로 향후 의사 증원이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만으로는 고령화 사회에 따른 의료서비스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국민을 납득시킬 수는 없다.
셋째,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집단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비도덕적이다. 그로 인해 사망하거나 심각한 후유증을 겪는 환자들이 발생할 경우 그 책임은 어떻게 질 것인가. 그것이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정신에 맞는가.
◇국민 공감 얻었나
의사사회는 “의사 이기는 정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국민이 그들의 편에 섰을 때이다. 지금 의사 집단행동은 국민을 적대시하는 행동이다. 이런 행동은 국민의 공감대를 얻을 수 없고, 성공할 수도 없을 것이다.
■ 용어설명
‘업무개시명령’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 중단, 집단 휴업, 폐업하는 경우 업무를 개시하도록 명령하는 것. 의사법과 약사법 등에 규정. 국민 생명권과 직결됐다는 점에서 합헌 의견이 지배적.
‘과잉금지원칙’이란 기본권 제한이 정당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헌법적 원칙. ‘비례성 원칙’이라고도 함.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으로 구성됨.
■ 세줄요약
직업행사의 자유:의사는 상당한 공공성을 갖는 직업. 의사 집단행동에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으로 대응한 것이 ‘직업의 자유’ 침해라는 지적이 있지만, 실은 공공성을 해치는 ‘직업행사의 자유’만을 제한하는 것으로 봐야.
헌법적 해석:직업행사의 자유 역시 기본권인 만큼 ‘과잉금지원칙’으로만 제한할 수 있어.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은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이라는 과잉금지원칙 구성 요건을 충족시켜.
국민 공감 없이는:의사사회는 “의사 이기는 정부 없다”고 하지만 국민 이기는 의사도 없어. 지금 의사사회의 집단행동은 국민을 적대시하는 행위. 이런 집단행동은 국민의 공감대를 얻을 수 없고, 성공할 수도 없을 것.
문화일보 장영수 헌법학자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02.28 사람 생명을 투쟁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절대 안 될 일이다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진료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이어지며 병원의 의료 공백이 커지고 있다. 집단행동 이후 상급종합병원의 신규 환자 입원은 24%, 수술은 상급종합병원 15곳 기준으로 50%가량 줄었다. 전공의의 빈자리를 전임의와 교수들로 메우는 중인데, 이들의 피로가 커져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것이 현장 분위기라고 한다. 지난 25일 경남 창원에서는 영아가 호흡곤란 등 위급 증세를 보였지만, 대형병원 5곳이 의료진 부족을 이유로 진료를 거절해 3시간 만에 60㎞ 떨어진 대학병원으로 옮겨지는 일도 있었다.
정부가 전공의들에게 29일까지 병원에 돌아올 경우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시한을 제시한 가운데 일부 복귀 움직임도 있지만 아직 뚜렷한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정부는 미복귀자에게 면허정지와 사법 처리 등을 하겠다며 엄정 대응 원칙을 강조하는 한편 의사들이 원해온 의료사고특례법을 조속히 제정하겠다며 29일 공청회를 열기로 했다.
의사들이 의대 증원에 반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들이 현장을 떠나 환자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법적인 문제를 떠나 의사 직업윤리 측면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민 생명을 지키라는 의사의 존재 목적을 부인한 것이고, 이는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이런 반윤리적인 결정을 쉽게 하고, 또 다수의 전공의들이 서슴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데 많은 국민들이 놀라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한 집단이 단체행동으로 집단의 이익을 취하려는 것은 도처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환자의 생명을 투쟁 수단으로 삼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그로 인해 사망하거나 심각한 후유증을 겪는 환자들이 발생할 경우 그 책임을 어떻게 지려고 하나.
환자 생명과 건강을 집단 이익의 도구로 사용하면 설사 이번에 의대 증원을 무산시킨다 하더라도 더 큰 역풍을 맞을 것이 분명하다. 의료 활동은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것이기에 특별한 존중을 받는다. 그런데 지금 의사들은 국민의 존중과 신뢰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의사들은 환자 생명과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요구와 주장을 하기 바란다.
조선일보 사설
02.28 차라리 의사 파업법을 만들자
응급실조차 서슴없이 떠나고
업무개시명령도 무시 속수무책
철도 파업도 필수인력 남기는데
필수 의료진은 남게 입법이라도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전국 의사 대표자 확대 회의 및 행진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대통령실 방향으로 행진하며 의대 정원 증원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의사들의 의대 증원 반대 집단행동을 보면서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우선 다른 사안도 아니고 의대 정원을 늘리는 데 반대하며 파업 등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 놀랍다. 다른 나라에서도 의사들이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하는 일은 있다지만 의사 증원에 반대하며 파업하는 사례는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 얘기다.
그 결과 응급환자가 치료받을 병원이 없어서 구급차에 실려 ‘뺑뺑이’를 돌고 중환자 수술이 기약 없이 미뤄지는 일이 의료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단체인 대한응급의학의사회가 일찌감치 “(진료 환경)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응급의료 현장을 떠날 것”이라고 한 것도 이번 사태에서 놀라운 장면 중 하나다. 응급실만은 의사들이 진짜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곳 아닌가.
의사들이 이렇게 나오는 것은 그동안 집단행동을 할 때마다 정부가 양보했기 때문일 것이다. 2000년 의약분업 때도 의료계가 대규모 파업에 돌입하자 정부는 수가 인상, 전공의 보수 개선, 의대 정원 10% 감축 등 다양한 양보안을 내놓았다. 이 때 정원 감축을 안 했더라면 지금의 의사 부족 걱정을 안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2014년에는 정부가 원격의료를 추진하다 의료계가 집단 휴진에 나서자 취소했다. 2020년엔 정부가 10년간 총 4000명의 의대 증원을 추진하자 전공의를 중심으로 전면 파업을 벌였다. 정부는 코로나 기간이라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경험들 때문에 노환규 전 의사협회 회장은 소셜미디어에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 “의료대란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글을 올렸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모골이 송연해지는 표현이다.
우리나라 노조법은 철도·병원·통신·항공운수·수도·전기·가스·혈액 등 10가지 사업을 필수공익사업으로 규정하고 파업을 하더라도 필수인력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파업을 해도 공중(公衆)의 생명·보건이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하는 분야는 최소한의 업무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간호사 등이 주축인 보건의료노조는 법적인 파업권을 갖고 있지만 파업할 때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분만실 등 필수인력은 유지하고 있다. 철도노조가 총파업을 선언하더라도 필수 유지 인력 9200여 명을 제외한 약 1만3000명이 파업에 참여하는 식이다.
항공사 노조는 파업해도 운항률을 국제선 80%, 제주노선 70%, 내륙노선 50% 이상을 각각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파업에 돌입하는 일이 드물다. 이런 조항이 노조의 파업권을 제약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우리나라 노조들은 비교적 잘 지키고 있다.
의사들이 하는 일은 이런 업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고 직접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보건을 다룬다. 의사 단체들은 노조가 아니어서 파업권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런 의사들이 협회나 의사단체 결의로 서슴없이 파업에 돌입하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파업을 해도 응급실 등 명백한 필수 유지 업무도 가리지 않고 필수 인력 유지라는 개념도 없다. 의료법에 따라 업무개시 명령을 내릴 수 있으나 이번 경우에서 보듯 집단으로 거부할 경우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물론 집단 사직 등 형식이니 법적인 문제는 더 따져봐야 할 것이다. 의사 말고는 약사, 화물기사에게 업무개시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지금 의사들에게 어떻게 환자 곁을 떠날 수 있느냐며 직업윤리를 들이대는 것은 무의미할 것 같다. 지금처럼 파업을 몇 년 주기로 반복하고 응급실까지 떠난다면 차라리 의사들에게 파업권을 주면서 파업 절차를 지키게 하고 필수 인력이나마 유지하게 하는 ‘의사 파업법’을 만드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조선일보 김민철 기자
02.28 의사란 어떤 직업인지 묻는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의사는 어떤 직업인가. 20세기 미국의 의료 교육 개혁에 기여한 에이브러햄 플렉스너 교수는 “의학 교육은 대학에 거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직업들과 비교해 의사의 주된 가치관으로 이타주의를 역설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공의 사태’를 접하면서 의사란 직업에 대해 곱씹어 본다. 일부의 일탈이라고 믿고 싶지만, ‘전공의 사직 매뉴얼’에 처방전 등 의료 자료를 삭제하고 비밀번호를 바꾸고 나오라는 행동 지침까지 등장한 것은 충격적이다. 대체 인력의 접근을 막고 돌보던 환자의 치료를 방해하려는 행태가 선을 넘었다.
스타는 개인능력 발휘해 고소득
의사는 희소성 덕분에 큰돈 벌어
첨단 과학기술 분야도 인재 가길
지대(Rent)는 토지를 사용한 대가인데, 토지와 노동 모두 생산요소이니 노동에 대해서도 지대라 부른다. 노동을 공급한 근로자도 지대를 받을 수 있는데 이 경우는 ‘경제적 지대’라 표현한다. 필자가 교수로 일하면서 월 1000원을 버는데 만일 다른 일(직업)을 했다면 300원밖에 벌지 못한다고 가정해보자. 두 금액의 차이, 즉 700원이 필자가 추구한 지대이자 교수 직업을 하면서 받는 일종의 웃돈인 셈이다.
개인의 전체 소득에서 경제적 지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직업마다 다르다. 직업의 희소성이 클수록 경제적 지대가 커져 소득이 높아진다. 인기 연예인과 프로 선수, 의사·변호사 같은 직업이 그렇다. 스타 연예인이나 프로 선수는 탁월한 기량으로 유명인이 되고 고소득자가 된다.
하지만 의사나 변호사의 경우는 경로가 좀 다르다. 정부가 의대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입학 정원을 규제하고 희소성을 높여준 덕분에 지금까지 높은 경제적 지대를 추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대표적 고소득 전문직인 의사나 변호사는 공급을 늘리려는 정부의 증원 정책에 완강하게 저항해왔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의료업 종사자의 연평균 소득은 2021년 기준 2억6900만원이었다.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14년 1억7300만원과 비교하면 7년 동안 55.5% 증가했다. 반면 변호사업 종사자의 연평균 소득은 같은 기간 1억200만원에서 1억1500만원으로 올라 12.7% 증가에 그쳤다. 의사와 변호사의 연간 소득 격차는 7년 사이 1억5000만원(의사가 변호사의 2.5배)까지 벌어졌다.
한국 의사의 소득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3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 병·의원 봉직의의 연간 임금 소득은 2020년 19만2749달러(약 2억6200만원)로 회원국 가운데 1위였다. 한국 개업 전문의의 연봉 수준은 전체 노동자 평균 임금보다 6.8배 높았다. OECD 회원국 중 격차가 가장 컸다.
이처럼 한국 의사들의 소득이 높은 것은 의사 수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에서 한국은 2.6명인데, 이는 OECD 평균치(3.7명)에 크게 못 미친다.
변호사의 소득 증가 속도가 둔화한 것은 2009년 로스쿨 도입으로 변호사 수가 큰 폭으로 증가한 때문으로 보인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 합격자는 연간 1500명(기존 사시 합격생은 1000명 수준)에서 꾸준히 증가해 지금은 1700명대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된 변호사 수는 2010년 무렵 1만명 남짓에서 지금은 3만명을 넘었다. 변호사 단체들도 합격자 수를 1200명 이하로 줄여 달라고 촉구한다. 하지만 법무부는 매년 로스쿨 입학 정원(2000명) 대비 75% 이상 범위에서 합격자를 결정한다.
대한의사협회 간부가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고 한 말은 정부 위에 의사 집단이 군림한다는 것처럼 들린다. 과거 의약분업과 비대면 진료 논란, 그리고 코로나19 시기에 의대 증원 문제가 일어났을 때 환자를 볼모로 한 위협이 먹혔던 학습효과일 것이다.
필자는 이번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정책으로 의사의 희소성이 누그러져 의대 인기가 좀 떨어지길 바란다. 그래서 최고의 두뇌 집단이 의대에만 쏠리지 않고 국가 발전을 위한 첨단 과학기술 산업 분야에도 관심이 높아지길 기대한다. 최고의 위상을 누리는 의사라는 직업이 지대를 챙기는 수준을 넘어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자리로 돌아오길 바란다.
중앙일보 강혜련 이화여대 명예교수·국가교육위원회 위원
02-28 “받은 혜택 사회에 돌려줘야” 서울대 의대 학장의 고언
서울대 의과대학의 김정은 학장은 27일 의대 졸업식 축사를 통해 “지금 의료계는 국민의 따가운 질책을 받고 있다”면서 “의사가 숭고한 직업으로 인정받으려면, 경제적 수준이 높은 것이 아니라 사회적 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여러분은 자신이 열심히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지만, 사회에 숨어 있는 많은 혜택을 받고 이 자리에 서 있기 때문”이라면서 “받은 혜택을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진 의사가 될 때 국민 신뢰 속에 우리나라 의료·의학계를 이끌어갈 수 있다”고 했다. 김영태 서울대병원장도 “대한민국 의료계가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의료인으로서 환자의 건강이 최우선이고, 환자 치료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런 당연한 이치가 집단 의료 거부 등으로 부정되고 있다. 전공의들은 당장 업무에 복귀해 의사의 직분을 다해야 한다. 정부가 통보한 현장 복귀 시한이 29일이다. 의대생들은 집단 수업 거부에 나섰다. 정부는 27일 김택우 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 등 전·현 의협 간부 5명을 의료법 위반, 업무방해 교사·방조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한편으로는, 의료 사고 발생 때 의사의 법적 책임을 대폭 줄여주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에도 나섰다. 환자가 중상해를 입어도 명백한 과실이 없으면 형사 처벌을 받지 않고, 과실로 사망 사고를 내도 형을 감면해 주는 내용 등이 담겼다.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의사 특혜법이라고 할 정도다. 이런데도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으면, 면허 정지 등 단호한 후속 조치를 머뭇거려선 안 된다.
전국 의대 학장 단체는 “350명 증원”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신고했던 2000여 명은 과장이라고 했다. 기존 의대 입장이 그렇다면 의과대학 신설을 망설일 이유가 없다.
02.29 복지부 “전공의 294명 복귀 ... 한 병원은 66명 복귀”
28일 기준 의료 현장에 복귀한 전공의는 모두 294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대 66명이 복귀한 병원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보건복지부는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을 열고 이 같은 전공의 복귀 현황을 발표했다. 복지부는 “전국 100개 수련병원이 지난 28일 오전 11시 기준으로 보고한 서면 자료에 따르면 소속 전공의 294명이 복귀했다”고 밝혔다.
복지부에 따르면 32개 병원엔 1명 이상의 전공의가, 10개 병원엔 10명 이상의 전공의가 복귀했다. 최대 66명이 복귀한 병원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환자 곁으로 돌아온 전공의들이 있어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복귀를 결정한 것은 현명한 판단이라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돌아오지 않은 전공의들은 오늘까지 진료와 수련의 자리로 돌아오기를 촉구한다”고 했다.
28일 오후 7시 기준 전국 100개 수련병원 소속 전공의 중 사직서를 제출한 이들은 모두 9997명(80.2%)인 것으로 확인됐다.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9076명(72.8%)이다.
박 차관은 “근무지 이탈자 비율은 모수의 차이가 있어 정확한 비교는 어렵지만 전일인 27일 73.1%보다 소폭 감소했다”며 “이틀 째 연이어 이탈률이 감소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02.29 삶의 마감도 기본권, 조력존엄사 공론화하자
얼마 전 93세 동갑의 드리스 판 아흐트 전 네덜란드 총리 부부가 동반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불법이다. 국민은 궁금해한다. “왜 우리는 안되는가?” 2022년 6월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조력존엄사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말기 환자로서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환자들의 경우에는 본인이 희망하는 경우 담당 의사의 조력을 받아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네덜란드 전 총리 부부는 안락사
한국, 법 발의에도 논의 지지부진
말기 환자 자발적 선택 존중해야
사회적 타살 막을 예방 장치 필요
이는 의사의 적극적 행위에 의해 삶을 중단하는 ‘안락사’와는 다르다. 안락사는 말기 환자에게 의사가 직접 치명적인 약물을 주입함으로써 환자의 생명을 단축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반면 조력존엄사(의사조력자살)는 의사가 환자에게 치명적인 약 또는 수단을 제공하여 환자 스스로 생명을 끊는 것을 도와주는 행위를 말한다.
이 법안은 국회에 상정된 채 낮잠을 자고 있다. 천주교, 대한의사협회, 보건복지부는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았고 생명 경시가 우려되며, 호스피스 인프라 확충이 선행해야 한다는 이유로 입법에 반대했다. 필자 역시 처음엔 조력존엄사에 반대했다. 취약 계층 말기 환자에 대한 사회적 안전장치와 호스피스 인프라 확충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이미 실효성을 잃었다.
2021년 서울대 의대와 2022년 한국리서치 등의 여론조사를 보면 조력존엄사에 대해 국민 10명 중 대략 8명이 찬성했다. 국민뿐 아니라, 국회의원, 의사도 찬성한다. 지난해 7월 KBS와 서울신문의 공동 조사에서 국회의원 300명 중 100명이 참여한 조사결과 87%가 찬성했다. 지난해 두 번의 의사 대상 조사에서도 의사 절반 혹은 약 80%가 찬성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반대 입장을 보였지만, 천주교 신자도 70% 이상 찬성한다. 판 아흐트 총리도 가톨릭 신자였다.
2022년 10월 필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존엄사 관련 ‘입법 부작위(不作爲)’에 대한 위헌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하라는 정책 제안을 했다. 현재 헌재에는 존엄사를 위한 법제화를 하지 않은 ‘입법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이 접수돼 심판 회부 결정이 나왔다. 인권위는 서둘러 존엄사에 대한 의견을 헌재에 제출할 책임이 있다. 에콰도르 헌재는 “안락사 처벌은 위헌”이라고 판결함으로써 루게릭병 환자의 손을 들어줬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콜롬비아 등 여러 국가에서도 위헌 결정이 이루어졌다. 우리나라 헌재 결정 결과가 주목되는 이유다.
물론 입법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입법을 하지 않은 것에서 오는 피해는 더 심각하다. 대책을 마련하지 못해 질병으로 인한 간병 살인과 극단적 선택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한 언론사의 취재에 따르면, 현재 한국인 300여 명이 스위스 의사조력자살 단체에 가입해 있으며, 최소 한국인 10명이 의사조력자살을 선택했다. 항공료를 포함해 대략 1500만원이 든다니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마저 꿈같은 이야기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마저 경제적 차이로 인한 불공정이 벌어지고 있다. 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임종을 지킬 수 없게 다른 나라에서 세상을 떠나야 할까.
조력존엄사 입법화는 다가올 미래다. 국가는 다가올 미래를 감당하기 어려운 쓰나미처럼 맞이할 게 아니라 안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적절한 대책을 마련할 책임이 있다. 엄격한 심사와 구제 제도를 통해 의학적, 사회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함으로써 취약 계층의 사회적 타살을 예방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종교계나 의료계가 우려하는 극단 선택이나 간병 살인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유명 배우 알랭 드롱이 스위스에서 의사조력자살을 하기로 결정하고, 누벨바그 영화의 거장 장뤼크 고다르 감독이 의사조력자살로 타계하자, 프랑스의 공론화 기구인 시민의회는 정부에 안락사의 합법화를 권고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임종 선택 모델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말기 환자가 의학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극심한 고통이 지속할 경우, 자발적이고 합리적이며 진정성 있는 조력 존엄사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 줘야 한다. 이는 종교·정치·양심의 자유를 허용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삶의 가치와 존엄함을 가진 국민의 마지막 권리로서의 선택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력존엄사 입법화는 국가가 국민의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를 명시한 헌법 제10조에 근거하고 있다.
대통령과 국회의장은 입법화를 위한 사회적 공론화를 서둘러주시기 바란다. 죽음을 향한 존재인 인간이 존엄한 진정한 이유는 생명만이 아닌 삶이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단지 자리 비움의 끝이 아니다. 삶의 완성으로서의 정신적 유산을 남길 수 있는 희망을 줄 수 있도록 웰다잉 정책을 보완한 입법이 되어야 한다.

중앙일보 윤영호 서울대 기획부총장·의대 교수
02-29 ‘미복귀 전공의’ 엄단 않으면 의료도 법치도 흔들린다
전공의들의 집단 업무 거부를 바라보는 국민의 눈길은 싸늘하다. 유사 이래 의사는 인술(仁術)을 펼치는 사람이라는 존경심이 있었지만, 그런 신뢰를 스스로 허물고 있다. 2024년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나는 의사의 이익과 특권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로 바뀌었다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국민’의 자발적 신문광고(문화일보 28일자 30면)까지 게재될 정도다. 일부 의사 집단을 제외하면 이번 의료 거부 사태에 동조하는 국민은 없다.
집단 사직한 전공의에 대해, 정부는 의료법 제59조에 의거해 29일까지 복귀하라는 명령을 이미 전달했다. 그러나 1만 명 가까운 사직 전공의 가운데 극히 일부가 복귀하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미복귀 전공의에 대해선 단호한 행정적 사법적 조치를 망설여선 안 된다. 그 대상이 수천 명이 되더라도 정부는 국민에게 실상을 설명한 뒤 협조를 요청하고, 국민도 ‘의사 불패’ 악습을 뿌리 뽑기 위해 최대한 협력해야 한다. 죄질이 나쁜 전공의들에 대해선 수사·기소 등 사법 처리도 병행해야 한다. 환자 생명과 국민 건강을 인질로 한 반인륜적 행태를 이번에도 엄단하지 않으면 의사 정원 확대는 물론이고 비대면진료, 수가 개선 등 의료 개혁은 향후 수십 년 동안 엄두도 못 내게 된다.
의사라고 위법 행위를 용인하면 법치도 흔들린다. 대형종합병원 응급실·수술실의 중추 인력인 전공의들이 대거 떠나면서 수술 연기 등 304건의 피해신고가 정부 센터에 접수됐다고 한다. 임신부가 병원에서 수술을 거부당해 아기를 유산했다는 신고가 들어오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민·형사 책임을 엄정히 물어야 한다. 이런 사태를 초래하고도 의사들은 ‘2000명 증원 전면 백지화’ ‘부당 명령 전면 철회’ 등 수용 불가능한 요구를 계속한다.
다행히 서울대병원장 등이 28일 전공의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돌아와 달라”고 호소했다. 정부 대응이 엄포에 그쳐선 안 된다. 의사 수가 줄고 의료 수요는 늘면서 의사는 특권층이 됐지만, 그에 반비례해 직업윤리를 잃었다.
문화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