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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主國防 2024-02/ 02-01 일부 간첩단 사건 재판부의 황당 행태 - 02-29 장교 된 ‘연평해전의 딸’에 “이게 국가” 울컥한 대통령

상림은내고향 2024. 2. 22. 16:57

自主國防 2024-02/

02-01 일부 간첩단 사건 재판부의 황당 행태

한석훈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 前 성균관대 교수

 

공공안전을 위협하는 무리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일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다. 이렇게 중요한 사건의 재판은 신속·정확하게 진실을 밝힘으로써 국민을 안심시키고 모두의 인권도 보장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이 우리나라를 제1 적대국으로 공언하는 상황에서 최근 북한 간첩단 사건들 피고인들의 상투적인 재판지연 전술에 대한 재판부의 어처구니없는 대처는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제주간첩단은 전 진보당 제주도당 위원장 등이 캄보디아에서 북한노동당 공작원과 접선해 지령을 받고 국내에서 반국가단체(ㅎㄱㅎ)를 결성해 반정부 활동을 벌인 혐의로 구속기소된 사건이다. 이들은 지난해 4월 기소된 후 재판 지연의 방편으로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고 그 배제 결정에 대해 항고 및 재항고했다. 대법원(주심 노태악)은 최초 신청 후 7개월가량이 지난 다음에야 최종 기각결정을 했고 첫 공판은 기소 후 9개월 지난 다음에야 이뤄졌다.

재판부(재판장 진재경)는 그새 1심 구속기간 6개월이 다 돼 가자 피고인들을 보석했을 뿐만 아니라, 피고인들이 원하지 않는 전자팔찌 부착 의무를 면제해 주고 신혼여행을 다녀오겠다는 피고인을 위해서는 주거지 제한도 일시 해제해 줬다. 애초에 증거인멸이나 도주 방지를 위해 구속한 게 무색할 지경이다. 국민참여재판 배제 결정에 대한 항고나 재항고 절차는 변론을 거치지 않고 항고 이유와 검사의 의견 진술만으로 판단하는 비교적 간단한 재판인데도 7개월 후에야 그 최종 결정이 나왔다는 것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청주간첩단 사건의 피고인들은 북한 공작원의 지령에 따라 ‘자주통일 충북동지회’를 결성해 북한으로부터 공작금을 받고 국가기밀과 국내 정세를 탐지·보고한 혐의로 지난 2021년 9월 구속기소됐다. 이들도 국민참여재판 신청, 그 배제 결정에 대한 항고·재항고, 4차례 재판부 기피 신청, 잦은 변호인 교체 등의 재판지연 전술을 구사해 1심 재판을 무려 2년3개월 간이나 지연시켰다. 재판부는 그새 1심 구속기간 만료를 앞두고 피고인들을 보석으로 풀어줬다. 창원간첩단 사건의 피고인들은 북한의 대남적화통일 노선을 추종하는 ‘자주통일 민중전위’를 결성하고,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지령과 공작금을 받아 6년 넘게 국내 정세를 수집해 북한에 보고하는 등의 활동을 한 혐의로 지난해 3월에 구속기소됐다. 이들도 기소 후 관할이전 신청, 국민참여재판 신청, 위헌법률심판 제청, 재판부에 대한 기피 신청 등을 하며 1심 재판을 지연시켰다. 재판부는 그동안 고작 2회 공판을 진행하고는 지난해 12월에 1심 구속기간 만료를 앞두고 이들을 보석으로 풀어줬다.

미국·영국·독일·프랑스 등 외국의 경우, 재판이 시작된 후에는 피고인의 구속기간을 제한하지 않는다.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있는 한 재판기간이 길어지더라도 구속 상태에서 재판함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국에 유례없이 1심 구속기간을 6개월로 제한한 우리 형사소송법의 개정도 필요하지만, 그 전에는 적어도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간첩단 사건의 경우만이라도 국가안보란 중대한 국익을 위해 집중심리 등 신속한 재판을 함으로써 구속기간 중 재판을 마치려는 재판부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한석훈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 前 성균관대 교수

문화일보

 
 

02.02 기·승·전·감시정찰

북한 도발 억제하고
한미동맹 개선하며
우리 우주력 키우려면
감시정찰 획기적 강화를
우주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에 폭발적 탄력
우리 안보의 기승전결이다

 ▲2023녀 11월 3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우주군기지에 우리 군 최초의 군사정찰위성 1호기를 탑재한 '팰컨9' 로켓이 기립해 있다./SpaceX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한미 동맹을 개선하며, 한국의 우주력(space power)을 키우기 위해선 감시정찰 능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필자가 윤석열 정부 국가안보실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북한의 거듭된 도발을 접하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던 단어는 ‘기-승-전-감’이다. 대한민국 안보의 기승전결(起承轉結)은 ‘기-승-전-감(監)’, 즉 감시정찰 능력 강화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고정 발사대가 아니라 불특정 장소의 이동식 발사대(TEL)에서 갑자기 핵미사일을 발사하려고 할 때, 이를 저지하거나 방어하기 위해선 실시간 감시정찰 능력과 타격 및 요격 능력이 필수적이다. 특히 감시정찰 능력은 전장(戰場)에서 눈과 귀 역할을 한다. 따라서 육·해·공·우주 감시정찰 장비를 통해 타격 정보를 신속히 획득해야 정밀한 군사작전을 전개할 수 있다.

 

한미 동맹의 대북 감시정찰 능력은 북한에 비해 월등히 우수하다. 그런데 한국만 떼어놓고 보면 감시정찰 능력의 대미 의존도가 높다. 이는 ‘미국 우선주의’ 기치 아래 동맹을 경시하는 미국 대통령이 등장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한국의 자체 역량은 꼭 필요하다.

 

한발씩 양쪽에 묶고 목표 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이인삼각(二人三脚) 경주를 어른과 아이가 한 팀을 이뤄서 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은 세계 6위 수준의 군사 강국이지만 수준 높은 자체 감시정찰 능력이 있어야 세계 1위의 군사 대국인 미국과 함께 작전할 수 있고, 동맹 간 이견이 발생했을 때 대미 협상력도 올라간다.

 

그리고 감시정찰 능력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은 우주공간과 관련된 모든 역량, 즉 ‘우주력’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다. 감시정찰은 육·해군 레이더나 유무인 정찰기로도 가능하지만, 역시 위성 능력이 핵심이다. ‘우주안보’ 차원의 우주력은 위성을 통해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적의 위협을 판단하고 군사력 건설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우주공간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로켓을 발사하고 위성을 운영하며 탐사선까지 보내게 되면 경제와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우주개발’이 폭발적 탄력을 받게 된다.

 

우리는 작년 12월 2일 미국 캘리포니아 반덴버그에서 스페이스X의 팰컨9 발사체에 정찰위성 1호기를 실어 발사한 데 이어, 12월 4일에는 우리 군이 개발한 고체 추진 발사체를 이용해 초소형 SAR(개구형 레이더: Synthetic Aperture Radar) 위성 투입에 성공하였다. 2025년까지 정찰위성을 총 5기 발사하고, 2027년까지 (국방부와 과기부가 협력해) 전천후 초소형 SAR 위성을 32기 정도 쏘아 올릴 수 있다면 약 20분 간격으로 북한 전 지역을 정찰할 수 있다. 여기에 무인기(UAV) 등 추가 자산을 확보하면 우리의 감시정찰 능력이 획기적으로 향상될 것이다.

 

미국 우주안보 정책의 중요한 비전은 미국과 동맹국의 우주 자산을 연동시킨 우주네트워크 구축이다. 우주 네트워크가 구축되면 우주에 있는 위성 자산과 지구에 있는 미사일을 포함한 육·해·공 무기체계가 실시간 초연결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한미 동맹이 완벽한 ‘미래전(未來戰)’ 능력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북한이 대한민국에 대한 ‘초토화’ 운운하면서 전쟁을 위협하지만, 작년 11월에 (해상도가 낮은) 첫 정찰위성을 쏘아 올린 초보적 감시정찰 능력으로 (국지도발은 가능해도) 한미 동맹을 상대로 본격적인 전쟁을 벌이긴 쉽지 않다. 그러나 북한도 이제 감시정찰 능력 구축 작업을 시작했으므로, 우리는 압도적 경제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초격차를 이뤄내야 한다.

 

작년 12월 국방혁신위원회 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우리 군의 감시정찰 능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 감시정찰 능력을 포함한 우주력 증강을 위해 정부와 민간의 총체적인 역량을 점검하고 민관협력 방안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 국방부와 과기부가 ‘기-승-전-감(監)’을 기반으로 합심하고 협력해 나갈 때 ‘우주안보’와 ‘우주개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前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02-02 김정은 통일 포기 맞춰 새 투쟁 벌인다는 종북단체 본색

통일 운동을 외피 삼아 친북 활동을 해온 단체들이 김정은의 ‘통일 포기’ 전략에 맞춰 조직 간판을 내리거나 새로운 방식의 투쟁을 모색 중이다. 남북한 및 해외의 3자 통일연대를 표방한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의 남측본부는 오는 17일 해산 총회 및 새 조직 건설 결의대회를 진행한다고 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발표된 6·15공동선언 이행을 표방하며 조직된 6·15남측위원회 역시 최근 총회에서 새로운 운동 방향을 찾기로 결의했다. 김정은의 대남 기조 변화에 맞춘 ‘종북 자인(自認)’ 행태다.

범민련 남측본부와 6·15남측위원회가 정상적 단체라면, 김정은이 왜 난데없이 조국통일 당위성을 저버리고 김일성·김정일 시대에 만들어진 통일 기념물까지 제거하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부터 했어야 했다. 김일성의 ‘조국통일 3대 원칙’의 근간인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을 폐기한 이유를 따졌어야 했다. 그런데 핵무기로 ‘영토 완정’을 하겠다는 김정은의 전쟁 협박에 부화뇌동했다.

이 단체들이 어떻게 변신할지 두고 볼 일이지만, 반(反)국가 투쟁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에게 존재 가치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석기식 내란음모’ 관측도 나온다. 윤미향 의원 주최 토론회에서는 “국가보안법을 넘어서는 평화통일운동”이 제기됐다. 이적행위를 막는 법을 대놓고 지키지 않겠다는 저의다. 정치권은 물론 노동계와 교육계·언론계 등 사회 각계각층에 더 깊이 침투하고, 사이버 공간을 이용한 반국가 선동도 강화할 것이다. 그런데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 폐지 등으로 대공·방첩 역량은 현저히 약화했다.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문화일보 사설

 
 

02.03 이적 단체 판결에도 버티다 김정은 한마디에 해산하는 종북 단체

 대표적 친북 단체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가 오는 17일 총회를 열어 조직 해산을 논의하기로 했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도 최근 총회를 열고 조직 개편을 비롯한 향후 노선 문제를 토론했다. 친북 단체들이 자진 해산 절차에 들어간 것은 최근 북한의 갑작스러운 노선 전환 때문이다. 김정은은 작년 말 노동당 전원 회의에서 “대한민국 것들과는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 “북남 관계는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며 고려연방제 통일 방안과 조국 통일 3대 헌장을 폐기했다. 그 후속 조치로 북한 당국이 범민련 북측본부, 6·15 북측위 등을 정리한다고 발표하자 국내 친북 단체들도 보조를 맞추고 있는 것이다.

 

범민련은 북이 대남 공작을 위해 1990년 남·북·해외의 시민 단체들을 베를린에 소집해 결성한 친북·반한(反韓) 통일전선 조직이다. 남측본부는 노동당에서 국내 친북 운동에 대한 지도권을 받아 종북 단체 수장 역할을 해왔다. 주한 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며 반미·반정부 활동을 주도했다. 2012년엔 부의장이 무단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님은 민족의 어버이”라고 했다. 준비위 시절이던 1992년을 시작으로 1997년, 2012년 등 법원에서 세 차례 이적 단체 판결을 받고도 해산하지 않았다. 간판을 바꾸는 방식으로 조직을 보전한 다른 이적 단체와 달리 범민련은 김일성이 직접 이름을 지어줬다며 개명(改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에 김정은이 한마디 하자 스스로 없어진다고 한다.

 

국내 친북·종북 단체들은 김정은의 통일 노선 폐기로 충격과 혼란과 빠진 상태다. 가장 먼저 해산에 나선 범민련 남측본부는 ‘새 조직 건설 결의 대회’를 예고했다. 범민련 간판은 내리지만 종전 반미·반정부 투쟁은 이어나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른 친북·이적 단체들도 범민련의 뒤를 따를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유사시 우리 국가 기간 시설을 타격하는 제2, 제3의 ‘이석기식 내란 선동’을 모의할 수 있다.

조선일보 사설

 

02.03 김정은 核 공갈, ‘Talk less·Do more(말은 아끼고 대비는 철저히)’

6·25 기억하는 世代 78만 명,
전 인구 1.5%뿐
김정은 핵폭탄과
대통령 부인 디올백 사이
夢遊病者처럼 헤매서야

 내게 누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안 건 거의 스물이 다 돼서였다. 우연히 중학교 5학년(현재의 여고 2학년) 때 누이와 한 반이었다는 누이 친구를 만나고서다. 어머니 대답은 한마디였다. ‘어디서 들었냐. 6·25 때 죽었다.’ 누이의 죽음이 나와 관계가 있다는 것, 정확히는 나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 후 스무 해가 더 흘러서다. 여러 사람들 기억을 끌어모아 맞춰본 그날 그림은 대강 이러했다.

 

‘1948년 7월에 태어난 내가 두 돌을 맞기 전 6·25가 터졌다. 숲속 마을로 피란을 갔으나 모두가 궁(窮)한 시절이라 친지라 해도 오래 의지하기 어려웠다.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적 치하(治下) 도시엔 간간이 공습 사이렌이 울렸고 사람들은 일제강점기 주민을 동원해 파놨던 작은 방공호에 몸을 피했다.

 

그날은 가만있어도 땀범벅이 될 만큼 지독히 무더웠다고 했다. 비좁은 방공호에 수용 능력 몇 배가 넘는 사람들이 몰려 다들 앉지 못하고 선 채로 폭격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거기서 숨이 막혔던지 징징대던 내 울음소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까무러칠 듯 더 커졌다. 모두가 신경이 곤두선 상태였다. 결국 어머니는 폭격이 그친 듯하자 나를 안고 밖으로 나왔고, 누이가 따라 나섰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폭탄 하나가 떨어져 지붕이 내려앉고 불길이 솟았다. 동네 사람들이 달려왔을 때 어머니는 나를 몸으로 덮고 있었고 누이는 어머니 위에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누이는 숨이 끊어졌고, 대들보에 깔린 어머니는 허리를 크게 다쳐 혼절(昏絶)했으나, 나는 무사했다. 누이의 주검은 집안일을 돕던 친척 한 분이 수레에 실어 도시 경계선 밖 야산 자락에 묻고 돌 더미로 표시를 해뒀다고 했다. 그러나 한 달 만에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어머니가 그분을 앞세워 딸이 묻힌 곳을 찾았으나 그분은 이곳저곳 헤매다 끝내 묻은 곳을 찾지 못했다.’ ‘나의 6·25′가 이랬다.

 

잿더미가 된 집에 사진 몇 장이 남았다. 그중 하나가 도민증(道民證) 비슷한 데 붙은 엄지손톱 크기 누이 사진이다. 어머니는 타지(他地)에 출타할 때 그 사진을 지갑에 넣어 다녔고, 집에선 머리맡에 두었다. 그러면서도 딸 이야기를 한 번도 꺼내지 않은 채 46년을 더 사셨다.

 

이건 한국인이면 서너 집 건너 한 집은 품고 산 전쟁의 파편이다. 나는 6·25를 기억하지 못한다. 내 기억은 뒤에 들은 이야기로 짜 맞춘 간접 체험이고 간접 기억이다.

 

전쟁 당시 열 살, 초등학교 3~4학년은 됐어야 자기 기억이 있다. 현재 나이로 여든다섯 이상이다. 그런 분이 이 나라에 77만7432명(2022년 통계)이 생존해 있다. 지금은 더 줄었을 것이다. 전 인구의 1.5% 정도다. 그분들은 전쟁을 일으켰던 자의 포악(暴惡)과 국민을 보호하는 데 속수무책(束手無策)이었던 정치의 무능(無能)을 잊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엔 이제 이런 기억이 소멸(消滅)됐다.

 

북한 GDP는 245억달러, 대한민국은 1조7000억달러 가깝다. 김정은은 대한민국 경제력의 60분의 1밖에 안 되는 나라에서 작년 20차례 넘게 각종 미사일을 발사했고, 올해 들어선 더 잦아졌다. 러시아에 무기를 팔아 돈이 조금 돈다지만, 경제와 민생(民生)에는 엄청난 부담일 것이다. 말은 더 포악해졌다. ‘핵무기로 대한민국을 평정(平定)하겠다’고 한다.

 

워싱턴에선 김정은이 ‘최소한 국지전(局地戰)은 도발할 작정’이라는 설과 ‘공갈과 협박으로 그칠 것’이란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전쟁 억지력(抑止力)이 약화됐다’는 건 양측이 인정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1960년생. 그 옆에서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이재명 대표가 1964년생이다. 전쟁 기억이 없는 세대다. 김정은은 1984년생이다. 6·25 때 미국의 개입, 특히 그 공군력에 밀려 코앞에 온 통일 기회를 놓쳤다고 교육받았다. 핵폭탄과 미사일에 대한 병적(病的) 집착의 한 원인이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에서 1000만 명이 전사, 800만 명이 행방불명, 2000만 명이 부상했다. 그러고 20년 후 5000만 명이 사망한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을 벌인 게 어리석은 인간이다.

 

한국은 더 이상 김정은 핵폭탄과 대통령 부인 디올백 사이를 몽유병자(夢遊病者)처럼 헤매선 안 된다. 대통령이 정리를 해야 한다. ‘Talk less(말은 아끼고) Do more(대비는 많이 하라)’. 제1차 세계대전이 유럽인에게 남긴 교훈이다. 지금 우리는 그렇게 가는가, 거꾸로 가는가.

조선일보 강천석 기자

 

월간조선 02월 호

北 도발로 거론되는 김정은 제거론

“김정은 제거, 언제든 가능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

⊙ 軍, 戰勝 위한 戰時 제거 작전·‘전쟁 방지’ 위한 平時 제거 작전 보유
⊙ 韓에도 美 SIA 유사 조직 존재… 특수 공작 통해 北 내부 소행으로 위장 가능
⊙ 군사적으로 가능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불가능… 제거 이후 대안 없다는 지적도
⊙ “10세 딸 방패 삼는 김정은… 어차피 당뇨 합병증으로 2030년 못 넘길 것”(정보기관 북한 파트 관계자)

2023년 8월 28일 한미 양국 특수전사령부 장병들은 강원도 양양군 해상침투전술훈련장에서 ‘UFS/TIGER’의 일환으로 침투 작전 훈련을 실시했다. 사진=조선DB

 

북한의 도발 수위가 심상치 않다. 김정은은 지난 연말 전원회의에서 남북을 ‘적대적인 교전국(交戰國) 관계’로 규정하며 “핵 무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박차를 가하라”고 주문했다. 지난 1월 8일에도 남한을 주적(主敵)으로 지칭하면서 “전쟁을 피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군사적 위협도 뒤따랐다. 12월 17일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에 이어 연초에는 1월 5~7일 사흘 연속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포격을 감행했다. 이에 따라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른 남북 해상완충구역은 사실상 무력화(無力化)됐다.

군사·안보 관계자들은 “향후 도발 수위는 더 높아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정은이 지난해 천안함·연평도 도발의 주역인 김영철 전 정찰총국장과 목함지뢰 사건을 주도한 이영길 총참모장·박정천 군정지도부장을 일선에 복귀시킨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김정은이 언급한 ‘대사변’은 전면전(全面戰)을 의미한다. 전직 정보기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연초 도발은 핵 전면전 준비와 연계된 도발이라는 것을 상정해야 한다”면서 “2024년은 북한 핵 폭주의 원년(元年)이 될 것으로, 어느 때보다 실전 대응이 중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2023년 10월 미국 랜드(RAND)연구소와 아산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핵탄두 보유 수는 최소 180기다. 여기서 2030년대까지 300~500기까지 늘릴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일본, 괌은 물론 한반도 주변 미군 전략 자산들을 요격할 핵미사일까지 고려한 수치다. 올해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7차 핵실험을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022년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7차 회의에서 채택된 ‘핵 무력 정책’ 법령 6항에 따르면 북한은 대북 핵 공격이나 대량살상무기(WMD) 공격이 감행되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핵을 사용할 수 있다. 또 전쟁 확대와 장기화를 막고 전쟁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도 핵을 동원할 수 있다. 사실상 김정은 자의적(恣意的) 판단에 의해 핵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셈이다. 김씨 체제가 무너지지 않으면 비핵화(非核化)가 요원하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김정은 제거론

이것이 한반도 안보 위기설이 고조되는 가운데, 대북(對北) 문제 해결 방안으로 ‘김정은 제거론’이 거론되는 배경이다. 도발 원점타격, 전술핵 재배치, 자체 핵무장론에서 나아가 김정은과 수뇌부 세력을 직접 제거하는 작전까지도 고려하게 된 것이다.

전직 정보기관의 한 관계자는 “비핵국가가 핵국가에 대항하려면 상대방이 핵 발사 버튼을 누르기 전 적 지휘부를 무력화시키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 연말 신원식 국방장관은 북한의 도발 확대 움직임에 ‘참수(斬首)’라는 용어도 꺼냈다. 신 장관은 12월 18일 한 방송에 출연해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참수 작전 훈련이나 전략 자산 추가 전개를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참수(작전 훈련)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다”면서도 “두 가지 다 옵션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참수는 말 그대로 목을 벤다는 뜻으로 편의상 사용하는 말이다. 순화해 쓰면 ‘적 지휘부 제거’나 ‘적 지휘부 무력화’다. 위험 부담이 큰 만큼 적극 고려 사안은 아니지만, 우리 군(軍)은 전시(戰時)는 물론 평시(平時)에도 김정은 제거 작전을 수행할 전력(戰力)을 보유 중이다.

전시 상황에서 김정은 등 북한 지도부 제거 임무를 수행하는 곳은 지난 2017년 12월 1일 출범한 특수전사령부(특전사)의 제13 특수임무(특임) 여단이다. 특임여단의 적 지휘부 무력화 임무는 북한에 대한 대량응징보복(KMPR) 작전의 일환으로, KMPR은 북핵에 대비하는 3축(軸)체계 중 킬 체인(Kill Chain)과 함께 공격에 해당한다. 1000명 안팎으로 알려진 이들은 전시에 수중 및 지상 공동작전이 가능한 소총과 특수수송헬기, 폭파 장비, 특수무기 등을 이용해 지도부를 제거하는 작전을 수행한다.


전쟁 방지·통일 위한 평시 제거 작전

2017년 4월 15일 열병식에 등장한 북한군 특수작전군. 사진=연합뉴스

 

평시 제거 작전을 펼치는 곳은 ○○사령부로,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 특전사가 특수작전부대라면, 이곳은 비밀작전부대다. 규모는 대령급 부대 기준 특전사의 두 배 이상인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사령부 장교 출신 한 인사는 “전시에 제거 작전을 수행하는 특전사와 달리 평시에 제거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게 ○○사령부”라면서 “침투, 교란, 폭파, 암살, 납치, 공작 등 군사작전 및 블랙옵스(Black operation·흑색작전: 대외적으로 외교적, 국제법상 마찰이 일어나는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공식적으로는 인정·인증되지 않는 비밀 작전)에 특화된 부대”라고 했다.

물리적 전력 사용에 앞서, 휴민트(HUMINT·인간정보)를 통한 ‘특수공작’ 역량이 이들의 주 무기다. 전직 정보기관 고위 관계자는 “전면전은 전비(戰費) 소요, 인명피해 등 손실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전쟁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북핵 위협에 적극 대비하기 위해서는 평시 작전적으로 활용 가능한 특수공작 역량이 필수”라면서 “이들 공작요원은 미국의 정보지원단(ISA)과 CIA의 특수공작단(SOG)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했다. ISA는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작전의 주역인 합동특수전사령부(JSOC) 산하 비밀정보부대다. 당시 작전에서 JSOC의 ‘눈과 귀’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SOG는 CIA 내 준(準)군사부서인 비밀공작국(SAC) 예하 단체로, 냉전 시대부터 제3세계권에서 각종 쿠데타를 유도하는 것을 비롯해 요인 체포와 암살 등의 업무를 담당해오고 있다.

北 내부 소행으로 완벽 위장 가능

전시 제거 작전이 ‘전승(戰勝)’을 목표로 한다면, 평시 제거 작전은 ‘전쟁 방지’와 ‘통일’에 방점이 찍혀 있다. 군 정보 소식통은 “흔히 군인을 전시 전투 병력이라고 생각하지만, 국방(國防)의 본뜻처럼 군의 존재 제1목적은 전쟁의 방어”라면서 “전쟁을 막으려면 ‘정보’가 필수”라고 했다.

수집한 정보 등에서 김정은의 전쟁 결행 의지가 읽힐 경우 선제타격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소식통은 이어 “평시 제거 작전은 전쟁 전(前) 타격이 목적”이라면서 “그러나 선제타격 후 만일 전쟁이 나지 않으면 우리가 먼저 도발한 게 돼버리기 때문에 고도의 정보전이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이때 제거 방법은 극비(極祕)다. 다만 군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러시아 장비를 이용해 북한 내부 소행으로 완벽히 위장할 수 있는 전략과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가령, 러시아산 인명 살상용 화학무기의 사용과 출발 지점이 모호한 무인기 공격 등으로 추정되지만 확인된 사항은 아니다. 지난 2019년 5월 미국 또한 이란의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정예군사령관을 MQ-9 리퍼 무인공격기로 암살했다. 해당 사령부 장교 출신 한 인사는 “흔히 쓰는 ‘자살당한다’는 표현처럼, 흔적 없이 제거하는 병술(兵術)을 갖추고 있지만, 이미 실행됐거나, 공개된 방식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실행에는 정예부대 인력이 동원된다고 한다. 부원들을 한 번 써먹고 잡아먹는다는 의미에서 ‘▲▲부대’로 불리는 인원도 포함된다고 한다. 이들은 북침 대비 훈련 시 인민복을 착용하고, 매일같이 북한의 혁명 찬양가를 부른다고 전해진다. 이 인사는 “해당 부대는 이른바 ‘가미카제 자폭부대’로 가는 계획만 있고, 오는 계획은 없다”면서 “대원들은 애초 ‘있어서는 안 될 조직’의 업무를 수행하므로 국제협약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고 했다.

제거 작전, 가장 중요한 건 ‘정보력’

평시 제거 작전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정보자산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북한 수뇌부의 동태(動態)와 동선(動線)을 알아내 타격 시점과 위치를 정확히 짚는 게 핵심이라서다.

우리 군은 자체 정찰기를 운용 중이고, 휴민트나 테킨트(TECHINT·기술정보), 시긴트(SIGINT·신호정보)를 통해 김정은 동선 정도는 수집이 가능하지만, 한·미·일 정보 협력을 통하면 좀 더 정확한 위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미국은 수백 대의 군사정찰위성이 있고, 그중에서는 해상도가 5cm인 것도 있다. 우방국(友邦國)인 일본도 정찰 위성을 7개나 가지고 있다. 김정은은 평양 외 지방에 30여 개 특각(별장)을 보유 중이고, 지하 100m 깊이의 대피소와 유사시 중국으로의 도주를 위한 터널까지 파놨다고 한다.

반면 북한의 정찰 감시 기능은 다소 취약하다는 분석이다. 2022년 12월, 북한 무인기가 5년 만에 한국 영공을 침범, 서울 상공까지 비행해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당시 한국 군 당국은 그날 오후 즉각 유·무인 정찰기를 비무장지대(DMZ)와 군사분계선(MDL) 이북으로 급파해 북한의 주요 군사시설을 촬영하는 등 강경 대응을 했다. 정보기관 북한 파트 한 관계자는 “그러나 북한은 우리 군의 이 같은 대응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면서 “한국 신문 보도를 통해 이를 알게 된 김정은이 방공 및 경계 책임자들을 모두 숙청했다는 정보도 있다”고 했다.

 

김정은의 위치가 파악되면 본격적인 잠입이 이뤄지는데, 이에 앞서 내부 협조자 구축은 필수다. 한국의 수도방위사령부에 해당하는 평양방어사령부와 김정은의 신변을 경호하는 호위사령부를 뚫고 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보기관 소식통은 “우리 정보기관에서 포섭 후 장기간 관리 중인 북한 내부 반체제 인사와 북한 군 고위 관계자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내부 협조자가 ‘이중간첩’일 가능성도 배제해선 안 된다. 북중(北中) 접경지에서 장기간 블랙(흑색공작) 요원으로 활동했던 한 인사는 “심복(心腹)에게 언제든 칼을 맞을 수 있는 게 이 세계”라면서 “이 바닥에서 지피지기(知彼知己)는 ‘누가 아군(我軍)이고, 누가 적군(敵軍)인지 알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했다. 실제로 심복의 배반으로 작전 실패는 물론 북한으로 끌려가 고문을 당한 사례도 있다. 이 인사는 이어 “일반인들은 결코 알 수 없는 공작 기술이 있다”면서 “구체적인 내용은 남북통일 이전에는 절대 알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제거 후 대안이 없다’

군 정보 소식통은 “현재 기조는 북 도발에 대해 즉·강·끝(즉시 강력히 끝까지 응징)에 더해 두 배 이상의 응징을 하는 것으로, 아직까지 제거 작전 수행은 시기상조”라면서 “그러나 북의 도발이나 위협 강도에 비례해 (평시 제거 작전은) 충분히 검토 가능한 수단”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지금처럼 남북한 극도의 긴장 상황에서는 전시 정규전 무력보다는 평시에 활용 가능한 전력이 훨씬 중요하고 의미 있다”면서 “이를테면 ○○사령부 외에도 △△사령부, □□사령부의 전력 등으로, 이런 전력들이 평시 북한 수뇌부 제거에 사용될 것”이라고 했다.

한편 또 다른 군 관계자는 “군사적으로는 가능한 얘기지만, (국군 통수권자의 승인이 필요한 만큼) 정치적으로는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어떤 종류의 제거 작전이든 결국 일종의 위협 수단이자 억제전략(抑制戰略)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또 “도발에 대한 단호한 응징은 군의 당연한 의무”라면서도 “다만 군은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겁먹은 개가 짖는 꼴’인 북한에 똑같이 대응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군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권을 거치며 초토화(焦土化)된 전력으로는 애당초 제거 작전 수행이 불가능하다”는 회의적 시각도 존재했다.

막상 제거 후 대안(代案)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김정은을 ‘핀셋 제거’한 후 개혁 세력이 응집한다면 이상적이지만, 강경파 군부 등에 의한 핵 무력 보복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제거 후 북한 권력을 장악할 민주화 대안 세력이 불분명하다는 우려도 상존한다. 월레스 그렉슨(Wallace C. Gregson) 전 미 국방부 차관보는 “김정은 제거 후 만일 김여정이 권력을 승계받는다면 과연 실익(實益)이 있다고 볼 수 있겠느냐”면서 “또한 김정은의 제거가 중국에 도발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북한 내 친중(親中) 정권이 수립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이땐 중국과 더 큰 전쟁을 치를 수도 있다.


보위부, 10년간 김정은 암살 미수 사건 26회

굳이 제거 작전과 같은 극단적 방안을 쓸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정보기관에서 심리전을 담당했던 한 인사는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전단’”이라면서 “김씨 일가의 실상을 알리는 대북 전단을 적극 활용한다면,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김씨 일가를 축출(逐出)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는 “김정은 체제 출범 후 고위 간부의 숙청과 처형이 반복되면서 평양 군 간부 포함 핵심 세력들 또한 김정은에 대한 반발심이 크다”면서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제거하는 시나리오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했다. 지난 2019년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서 근무하다 탈북한 모(某)씨에 따르면, 2009년부터 10년간 김정은의 암살 미수 사건이 26차례나 있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이어 “김정은에게는 아들 하나와 딸 둘이 있는데, 아들(첫째)이 변변치 않고, 막내딸은 너무 어려 둘째 딸인 김주애를 늘 공개 대동한다”면서 “열 살짜리 딸을 지근거리에 두는 이유 중 하나는 암살 등 공격으로부터 방패 삼으려는 속셈”이라고 했다.

머지않아 자연사(自然死)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보기관 북한 파트 한 관계자는 “평양 핵심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은이 다리를 가끔 절뚝거리는 이유가 발에 당뇨 합병증이 왔기 때문”이라면서 “이대로라면 2030년을 못 넘길 것이라는 진단도 나온다”고 했다.⊙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김정은의 새해 협박과 도발 가능성

드론 테러부터 핵전쟁까지 모든 형태의 도발 대비해야

⊙ 평화시에는 핵무기 믿고 局地도발·테러·사이버 공격 등 非전통적 低강도 도발 감행할 가능성 있어
⊙ 책임 부인하기 위해 해외 테러단체, 국내 체류 외국인, 탈북자, 내국인, 드론 등 無人체계 활용 가능성도
⊙ 전쟁 시 사이버 공격·인지전·영향력 공작 통해 혼란 조성, 정보통신망·핵심기반시설 작동 無力化
⊙ 개전 시 전선 돌파·서울 공격·미군 투입 막기 위해 핵부터 사용할 것
⊙ 김정은의 전쟁 의지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 전쟁·도발 방지는 김정은의 선의나 대화 노력이 아니라 우리의 물리적 억제력에 달려 있어

윤민우
1972년생.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 인디애나주립대 범죄학과 석사, 샘휴스턴주립대 형사사법학대학 범죄학 전공 박사, 서울대 외교학과 국제정치학 박사 / 가천대 경찰정보학과 교수, 現 국가정보원 자문위원, 국군방첩사령부 자문위원 / 저서 《폭력의 시대 국가안보의 실존적 변화와 테러리즘》

▲김정은은 작년 12월 3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전쟁 의지를 밝혔다. 사진=뉴시스/조선중앙TV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3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5일 차 회의에서 남북관계와 관련된 중요한 내용을 선언했다. 이는 국내 언론에서 김정은의 ‘새해 협박’으로 보도되었다. 보도된 김정은의 해당 언급은 두 가지 핵심 기조를 담고 있다.

첫째는 한국과 북한 관계의 재정의이다. 김정은은 한국을 ‘통일을 지향하는 동족(同族)’이 아니라 ‘전쟁 중인 두 교전(交戰) 국가’로 재정의하였다. 이는 한국과 북한을 각각 독자적인 두 개의 국가로 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는 북한의 대남(對南) 정책에 있어서의 근본적 방향 전환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김정은은 “우리 제도와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괴뢰들의 흉악한 야망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사실상 한국 내 정권교체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들의 대남 정책 스탠스를 앞으로 변함없이 유지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美日과 직접 대화 추구

김정은의 이 같은 대남 정책 전환은 앞으로 한국과는 일절 협력, 회담 등을 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과 ‘직거래’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생각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기조의 변화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김정은이 김정일과 한국의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그리고 자신과 문재인 정부 사이에 이뤄졌던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지향 정책 등의 노력들을 깎아내리며 통일전선부(통전부)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등 남북관계 관련 공식 기구들을 개편, 정리, 폐지하는 뜻을 내비쳤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김정은은 한국에 대해 “미국의 식민지 졸개에 불과한 괴이한 족속들과 통일 문제를 논한다는 것이 우리의 국격과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언급하였다. 이는 한국은 전쟁의 대상에 불과하며, 대화와 담판은 ‘(북한이 보기에) 식민지 졸개의 우두머리’에 해당하는 미국과 직접 하겠다는 김정은의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김정은이 이례적으로 지난 1월 5일 일본 강진과 관련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게 위로 전문을 보내면서 ‘기시다 각하’라는 표현을 쓴 것은 김정은의 이 같은 인식을 보여주는 한 사례이다. 이는 이른바 ‘김정은의 새해 협박’과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김정은은 강대국의 국가 원수로 스스로를 인식하며, 격에 맞는 일본과 같은 다른 강대국과 직거래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식민지의 졸개에 해당하는 한국을 대화의 대상이 아닌 무력(武力)을 통한 소탕의 대상으로 보고, 그 식민지 졸개의 우두머리인 미국과의 대화가 여의치 않을 경우 플랜B로 또 다른 한국의 뒷배인 일본과 직접 대화하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여기에는 물론 대북(對北) 한·미·일 공조 압력을 줄이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 일차적으로는 한·미·일 파상(波狀) 압박으로 인한 체제의 위기에서 벗어나 정권 안정을 도모하고, 이를 발판으로 미국 또는 일본과 담판을 시도하여 한국을 고립시켜 한국과의 체제 대결에서 우위를 확보할 뿐만 아니라 한국과의 전쟁 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전략적 사고와 연결되어 있다.

무력 사용 원칙 분명히 해

▲북한 조선중앙TV는 김정은이 지난 1월 8~9일 중요 군수공장들을 현지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공장 벽면에 ‘원쑤들은 전쟁도화선에 불을 달고 있다. 침략자 미제와 대한민국 것들을 쓸어버릴…’이라 적힌 구호판이 붙어 있다. 사진=뉴시스/조선중앙TV

 

두 번째 핵심 기조는 핵을 포함한 무력 사용의 원칙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국과의 전면전(全面戰)을 내포한 원칙이다. “유사시 핵 무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라”고 김정은이 지시한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정은은 이를 ‘영토완정(領土完整)’으로 표현하면서 필요하다면 전쟁으로 달성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핵’ 사용을 주저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사실상 핵 무력의 선제적·공세적 사용을 명확히 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와 함께 김정은은 새해 주력해야 할 군사 과업으로 핵 무력 증강, 해군 전력(戰力) 향상, 정찰위성 추가 발사 등을 꼽았다. 또 김정은은 현재 정세와 관련해 “압도적인 전쟁 대응 능력과 철저하고도 완전한 군사적 준비태세를 완벽하게 갖추기 위한 사업에 계속 박차를 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핵무기 생산을 지속적으로 늘릴 수 있는 믿음직한 토대를 구축해나가며, 2024년도 핵무기 생산계획 수행을 위한 힘 있는 투쟁을 전개해나갈 데 대해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김정은의 언급들은 북한이 ICBM, 전술핵, SLBM을 탑재한 핵추진잠수함 등의 핵전력을 수적인 측면과 질적인 측면 모두에서 지속적으로 증대시켜나가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정은도 자녀의 생명 걸어야

김정은의 ‘전쟁’과 ‘핵 무력 사용’ 의지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차분하고, 신중하고, 냉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김정은이 과거 김일성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에라도 당장 (또는 가까운 미래에) 한국을 향해 핵 공격을 포함한 전면전을 일으킬 것이라고 추정하거나, 한국을 무력으로 적화(赤化) 통일하겠다는 의지에 가득 차 있는 비합리적인 전쟁광(戰爭狂)으로 인식하는 것은 곤란하다.

김정은의 1차 목표는 자신의 정권 안정과 체제 유지이며, 가급적 자신의 자녀(김주애 또는 다른 자녀)에게 정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는 것이다.

그에게 한국과의 전쟁을 통한 ‘영토완정’은 2차 목표이다. 1차 목표에 베팅해서 불확실한 2차 목표를 달성하려는 전략가는 없다. 2차 목표에 대한 베팅은 그러지 않으면 1차 목표조차 달성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판단될 때만 그렇게 한다.

북한이 ‘핵’을 사용해 한국을 ‘불바다’로 만들 수는 있지만 그 ‘불바다’는 그들의 땅과 사람과 재산 또한 삼킬수 있다. 한국인들과 그 자녀들의 생명을 해치고자 한다면 김정은 자신 및 자녀들의 생명도 ‘전쟁’이라는 도박판의 베팅에 내어놓아야 한다. 이런 면에서 그가 상호확증보복의 위험성을 무릅쓰고 무모한 전쟁 도발을 벌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김정은이 핵 사용을 포함한 전쟁 의지가 전혀 없다거나 단지 ‘위협’과 ‘언급’, 한국, 미국, 또는 한·미·일을 압박하여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단순하고 지엽적인 ‘전술적 메시지’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해서도 안 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방 메시지의 숨겨진 진의를 분석하고 파악해야 될 때도 있다. 하지만 어떨 때는 이 같은 숨겨진 뜻을 지나치게 찾다 보면 자기 꾀에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즉 지나친 해석과 비약이 상대방이 직설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객관적 실체를 못 보게 눈을 가리기도 한다.

‘타임테이블의 함정’

이번 김정은의 메시지는 북한 내부의 ‘대상 청중’이 가장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전달 대상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가급적 간결하고 명료한 문장으로 전달하고자 했을 개연성이 커 보인다. 이번 김정은의 메시지에서 한국이나 미국 등은 2차적인 ‘대상 청중’이다. 김정은은 가급적 분명하고 직접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전달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김정은의 전쟁 의지와 핵 무력 증대, 그리고 핵 사용 결심은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물론 자신이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상대방도 전쟁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간주관적(間主觀的·intersubjective) 가정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어떤 상대방은 전쟁을 원하기도 하고 어떤 상대방은 전쟁을 원하지는 않지만 당신보다 더 쉽게 전쟁을 결심한다. 우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사례들을 통해 전쟁은 한쪽의 결심과 판단으로 불시에 현실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김정은의 인식과 의지, 한·미·일 대북 억제력의 효과로 인한 북한 경제의 한계 상황, 북한 내 외부 문화 유입과 세습체제 장기화로 인한 북한 주민들의 피로도 증가 등으로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이 증대되고 있다. 또 북한의 핵 무력 고도화,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의 한계 상황 등의 복합함수의 결과는 한반도에서의 전면적 핵전쟁 가능성을 키운다. 전략 환경과 조건이 그러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요인 때문이다.

영국의 전사가(戰史家) A. J. P. 테일러(A. J. P. Taylor)는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으로 타임테이블(timetable)을 꼽았다. 그는 당시 유럽 각국의 철도 건설로 인한 군사력의 전선(戰線) 투입의 타임테이블이 혁명적으로 빨라진 점에 주목하였다. 그는 전쟁의 타임테이블이 빨라졌기 때문에 유럽 각국이 적대국의 군사력 전개를 다소 냉철하게 지켜보고 숙려(熟慮)할 여유를 갖지 못했고, 가급적 자신들의 군사력을 적대국보다 빠르게 전선에 투입하고 공세로 나서야 하는 압박에 직면했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이 같은 타임테이블의 압박이 아무도 원하지 않았음에도 유럽 각국이 서둘러 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북한의 전략적 취약성

흥미롭게도 이 같은 타임테이블의 함정이 오늘날 김정은의 북한에 적용되는 것처럼 보이며, 김정은도 이 같은 북한의 전략적 취약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은 한미동맹의 선제(先制)공격을 받았을 때 회복탄력성이 전혀 없다. 이는 협소한 영토와 군사력·경제력의 취약성으로 인해 북한이 전략적 종심(縱深)을 거의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미동맹의 선제타격을 받을 경우 (이른바 킬 체인으로 표현되는) 2차 응징보복 타격 수단으로써의 북한의 핵전력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 또한 취약한 북한의 재래식 전력은 사실상 압도적인 한미동맹의 군사력을 상대로 전략·전술적 가치가 거의 없다.

이는 러시아와 비교할 때 두드러진다. 넓은 국토면적과 억센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인한 깊은 전략 종심과 압도적인 핵 능력은 적국의 선제타격의 압박으로부터 전략적 자율성을 러시아 당국에 제공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핵 무력 없이도 러시아 재래식 전력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효과적인 전쟁 수행 수단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러시아가 아니다. 북한은 핵 없이 전쟁을 수행할 여력도 없고, 선제공격을 받게 되면 그나마 갖고 있는 핵전력을 써보지도 못하고 ‘전쟁의 끝’을 맞이할 수도 있다. 따라서 북한은 가급적 빨리 선제적으로 핵 무력을 한국 또는 한미동맹을 상대로 사용해야 한다. 북한의 타임테이블은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매우 빠르게 돌아갈 것이다. 이는 북한이 전략적 자율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北, 재래식 전력에서 한미동맹보다 열세

 북한의 군사력 현황은 북한의 적극적·선제적 핵 사용 개연성을 높인다. 전투력을 구성하는 양대 축은 병력(兵力)과 화력(火力)이다. 핵을 제외하면 이 둘에서 북한은 한미동맹과 비교해 압도적 열세를 보인다.

병력은 단순히 현역병의 수로만 측정되지 않는다. 현역병의 수 이외에도 육체적·정신적으로 가용한 인적(人的) 자원이 얼마인지 또한 평가 대상이다. 따라서 인구 규모가 중요하다. 유사시에는 약 15세에서 65세까지의 남녀 모든 인구가 징집 대상이 된다. 단순한 인적 자원의 수만이 아니라 징집 제도, 신체적 조건, 복무기간, 예비역 제도, 병력의 전선으로의 투입을 위한 운송시스템 등도 주요한 평가 대상이다.

영양상태, 신체상태, 심리적 상태 등 병력의 질적 측면도 고려 대상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투로봇의 수도 포함될 수 있다. 따라서 병력의 측면에서 북한은 한미동맹에 절대 열세이다.

화력 측면에서도 핵을 제외한 북한의 재래식 전력은 한미동맹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미군을 뺀 한국군과 단순 비교해도 북한군의 재래식 전력은 절대 열세이다.

따라서 병력-화력의 절대 열세 구도를 타개할 유일한 선택지가 북한으로서는 핵 무력밖에 없다. 핵 무력 사용 없이 북한이 전쟁을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북한의 군사전략 역시 세 층위의 전략적-작전술적-전술적 측면 모두에서 핵의 적극적 사용 개연성을 높인다.

우선 북한은 전략적 측면에서 미국의 한반도 전쟁 참전(參戰)을 차단하고 한국을 고립시켜야 한다. 북한은 이를 위해 미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충분하고 신뢰할 만한 핵 역량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지속적으로 증대시키려고 하는 ICBM, SLBM, 미사일, 핵추진잠수함, 극초음속 활공체(hypersonic glide vehicles), 다탄두각개목표재돌입체(multiple independently targetable re-entry vehicle·MIRV), 군사정찰위성 등은 이 같은 미국 본토 타격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들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핵 위협 수단들을 활용해 미국의 대상 청중 사이에서 반전(反戰) 분위기를 조성하여 미국의 한국에 대한 전쟁 지원을 차단하려고 할 것이다.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미국 내 반전 여론, 미군의 개입 반대, 그리고 반이스라엘-친팔레스타인 지지 시위 등은 김정은에게 어떤 영감(靈感)을 줄 수 있다.

북한은 작전술적 측면에서도 미군 증원 전력의 한반도 전개를 차단하려고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도 핵 무력 사용이 필요하다. 미군의 한반도 전개의 스프링보드인 괌이나 일본의 미군기지들을 타격하거나 위협하기 위해서는 핵전력이 필요하다. 자연스럽게 일본 내 반전 여론을 조장할 수 있으며 일본의 한반도 전쟁 지원 노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개전 초 전선에서 전술핵 사용 가능성

마지막으로 북한은 한국을 상대로 한 전술적 차원의 전쟁 수행에서도 핵 무력 사용을 필요로 한다. 북한의 군사 전략은 소련-러시아의 군사 전략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사례를 보면 북한의 대남 전쟁 전략의 대략적 그림을 추정할 수 있다. 러시아의 군사 전략의 핵심틀은 ‘OMG(Operational maneuver groups)’ 또는 ‘종심작전이론’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단계에 따라 수행된다.

먼저 사이버 공격과 인지전(認知戰) 또는 영향력 공작을 통해 적의 전쟁지휘부와 대중을 혼란시키고, 적의 정보통신망과 핵심 기반 시설의 작동을 무력화(無力化)시킨다. 다음으로 화력을 통해 적의 저항 전선에 균열을 내고 적의 저항 전투력을 와해시킨다. 다음 단계에서는 와해된 적의 종심을 기계화 보병과 탱크 등으로 구성된 집단군(集團軍)으로 돌파하고 적의 종심 깊숙이 기동하는 전격전(電擊戰)을 수행한다.

북한이 한국을 상대로 이 같은 종심작전을 수행할 것이라고 가정할 때, 전쟁 개시 초기에 북한은 휴전선 인근에 배치된 강력한 한국군을 화력으로 와해시키고 한국군의 저항 전선에 균열을 내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전술핵 이외에는 북한으로서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 따라서 북한은 전쟁 개시 초기에 전술핵을 사용할 개연성이 높다.


서울·남부 지역도 핵 공격 할 것

▲북한은 개전 초기에 핵무기를 포함한 화력을 집중해 전선을 무너뜨리려 들 것이다. 사진은 북한군의 화력습격훈련 모습. 사진=뉴시스/조선중앙TV

 

또한 와해된 한국군의 저항 전선을 돌파하여 북한군이 기동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도 서울을 전술핵으로 대량 살상 파괴할 개연성이 있다. 오늘날 전쟁에서 거대광역도시는 옛날 전쟁에서의 성(城)에 비견된다. 초고층 건물과 복잡한 미로(迷路)로 이어진 도심 환경은 침공군이 점령하기 결코 쉽지 않다. 참혹한 도심 전투가 일어날 경우 점령군은 도심 정글의 수렁에 빠져들게 된다. 병력과 화력이 열세인 북한군이 서울에서 도심 전투를 벌일 경우 이는 전술적 자살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서울을 핵 공격으로 대량 파괴 섬멸하고 북한군은 이를 우회하여 한국의 남쪽으로 종심 깊숙이 빠르게 기동(機動)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북한의 서울에 대한 핵 공격도 가급적 전쟁 초기에 나타날 개연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성공적으로 한반도 완정을 하기 위해서는 부산 등 한반도 남단의 주요 항구들을 무력화시켜야 한다. 이는 미군 증원 전력이 들어올 수 있는 입구를 차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전쟁처럼 낙동강 방어선이 형성될 위험성을 사전에 차단해야 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열세한 북한군의 병력과 화력, 기동성을 감안하면 신속히 한반도 끝단까지 북한의 재래식 전력이 ‘완정’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따라서 한반도 남단의 경우 조기 핵 공격으로 사실상 폐허로 만드는 편이 전술적으로 북한에 더 유리하다. 이 경우에 한국군 또는 한미동맹의 전략적 종심이 매우 얇아지는 위험성을 초래한다. 반면에 북한군의 경우 ‘영토완정’의 깊이가 짧아지는 이점이 생긴다. 따라서 한반도 남단의 부산을 포함한 주요 항구들 역시 전쟁 초기에 북한의 핵 공격을 받을 개연성이 매우 크다.

국지도발·테러 대비해야

▲북한은 특수부대를 이용한 테러나 국지도발을 감행할 수도 있다. 사진은 북한군 특수부대의 ‘인민군 특수작전부대 강화 및 대상물 타격경기대회’ 모습. 사진=뉴시스/조선중앙TV

 

북한의 핵 무력 완성은 ‘전쟁 이전 단계(즉 평화시)’에서 다른 형태의 안보 위협을 한국에 들이밀게 될 것이다. 김정은은 이를 “강대강, 정면승부의 대미대적투쟁 원칙을 일관되게 견제하고 고압적이고 공세적인 초강경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는 말로 표현했다. 이미 북한은 이를 입증하듯 지난 1월 5일부터 7일까지 3일간 계속해서 서해 최북단 서북도서 인근에서 포사격을 실시했다.

핵무기를 기반으로 한 군사력 강화와 그에 따른 자신감은 북한의 국지(局地)도발과 테러 공격, 사이버 공격 등의 비(非)전통적 저강도(低强度) 도발의 위험도를 높인다. 핵 무력 보유로 한국과 미국의 전면 공격을 받을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체제의 안정성을 확보했다고 북한이 판단할 경우 북한은 보다 공세적인 도발로 태세를 전환할 수 있다. 북한이 비교적 대남 군사력 우위에 있다고 판단했던 1960~1980년대에 대남 게릴라 도발과 테러 공격에 집중했다는 점을 복기(復棋)해보면 이와 같은 위협을 한국의 정부 및 군(軍) 당국은 선제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사례들을 돌아보면 북한이 한국을 상대로 저강도 도발을 할 선택지는 국지도발, 테러, 핵 실험 및 미사일 발사 시험과 같은 도발, 사이버 공격, 드론 침투 등으로 추릴 수 있다.

국지도발의 경우 NLL을 포함한 해상에서의 포격이나 한국 해군 함정이나 민간 선박에 대한 공격, 휴전선 인근에서의 총격 및 포격 등이 예상된다.

테러의 경우 주요 인사 암살이나 폭탄테러, 도심테러, 드론테러 등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미사일 발사 시험, 핵 실험 등과 같은 익숙한 도발 패턴도 지속될 것으로 예견된다.

마지막으로 국내 원자력발전소 등을 포함한 국가 핵심 기반 시설과 정부 주요 기관, 불특정 민간을 향한 사이버 공격 그리고 국내 대중, 청중을 타깃으로 한 대규모 사이버 영향력 공작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북한의 저강도 도발은 책임을 부인하기 위해 해외 테러단체나 국내 체류 외국인, 탈북자, 또는 내국인 등 제3자를 고용 또는 사주하거나, 기만하여 활용하는 방식으로도 수행할 수 있다. 지난번 나타난 것처럼 드론과 같은 무인(無人)체계를 활용한 도발의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다양한 가능성들을 열어두고 북한의 도발에 대응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체제 성격상 김정은의 분명한 대남 도발 정책 기조로 인해 북한의 주요 지휘부와 간부들은 자신의 지위 유지와 출세를 위해서라도 김정은의 의지를 수행하고 구체적인 업적을 내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 ‘공세적 방어’ 외에 대안 없어

김정은은 각종 대남도발을 자신이 직면한 체제 불안정 국면 타개를 위한 방편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김정은이 한·미·일의 대북 억제력 강화에 대해 이처럼 강경한 반응을 내놓은 것은 국제사회의 대북 억제력이 사실상 작동한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국내외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고 있는 북한의 경제적 한계 상황과 한류(韓流) 등의 해외로부터의 문화 유입으로 인한 (특히 북한의 MZ 세대를 중심으로 한) 민심의 이반 등 다중적(多重的) 위기에 직면한 김정은 체제로서는 자국 내 대중의 집단결속력과 충성심을 고양하고 대외적 봉쇄에 대처할 타개책을 내놓아야 할 필요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저강도 대남도발로 위기 국면을 조성함으로써, 국내적으로는 대내(對內) 결속과 체제안정을 끌어올리고, 대외적으로는 ‘공포의 조장’으로 한국 및 국제사회의 여론을 압박해 한·미·일의 공세적 대북 압박의 수위를 떨어뜨리고 경제협력을 포함한 대북 유화 정책 기조로 남한 정책을 변화시키려 할 개연성이 있다. 핵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는 김정은은 ‘핵’과 함께 김정은 지배 체제의 양대 축인 ‘경제’ 건설을 위해서는 대남도발과 같은 ‘공세적 방어’ 이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을 것이다.

北 도발에 대등한 수준으로 응징해야

결국 한국 정부와 국민은 당분간 (어쩌면 꽤 오랫동안) 위기와 갈등의 국면을 견디고 북한 도발에도 일상을 유지하는 회복탄력성을 유지해야 할지도 모른다. 북한의 도발에 대등한 수준으로 응징하겠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이를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 핵전쟁에는 핵전쟁으로, 전면전에는 전면전으로, 무력도발에는 그에 상응하는 보복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점을 북한에 분명히 해야 한다. 대응보복을 통한 억제력이 갖추어지기 위해서는 보복을 할 수 있는 ‘능력’, 같은 정도와 수준으로 되갚아주는 ‘비례성의 원칙’, 그리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신뢰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한국이 억제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판단될 때 김정은은 쉽게 무력도발을 시도하지 못할 것이다. 핵전쟁이든, 전면전이든, 아니면 저강도 무력도발이든 전쟁의 발발 여부는 김정은의 선의(善意)나 한국의 진심 어린 대화와 협력 노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한국의 물리적 억제력에 달려 있다.

결국 김정은은 힘과 힘, 강대강, 무력을 통한 문제 해결을 선택했고, 이제 한국의 남은 과제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이다. 힘과 무력에 같은 정도의 힘과 무력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그다음에 올 힘과 무력에 의한 괴롭힘의 정도는 더 커지게 마련이다. 만약 일부에서 제기하듯이 김정은의 강경 기조 발언이 진의가 아니고 대화와 협력을 끌어내기 위한 의도로 나온 것이라면, 그 진의는 제3의 전문가들이 추론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김정은이 직접적으로 해명하고 밝혀야 하는 부분이다. 김정은의 명백한 발언이 있기 전까지는 적어도 최근 김정은의 무력대결 발언은 그의 진심으로 간주하고 그에 맞추어 한국과 한미동맹의 대응이 이루어져야 한다.

‘공포의 조장’은 ‘저항 의지’ 부른다

김정은이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핵 공격과 전쟁 시도, 대남무력도발 등의 결과에는 그가 치러야 할 비용이 따른다는 사실이다.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려면 평양도 불바다가 되는 것을 감내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겠다면 그것은 그의 선택이다.

또한 역사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무력을 통한 ‘공포의 조장’이 오히려 ‘저항 의지’를 일깨우는 역효과(逆效果)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공포의 조장’을 노린 히틀러의 런던 공습은 영국민의 저항 의지를 불러일으켰다. 9·11 테러는 미국인의 응징과 보복의 의지를 일깨웠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지금도 싸우고 있고, 하마스의 선제공격은 이스라엘의 강력한 보복을 가져왔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사는 사람들은 얼핏 보면 나약해 보인다. 하지만 그 나약해 보이는 사람들의 무도한 폭력에 맞선 회복탄력성은 독재 체제의 침공자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다. 그들의 저항 의지에 야만적 폭력으로 불을 지필 때 그 불은 ‘분노의 화염’이 되어 그 무도한 침공자들을 집어삼킨다.⊙

 

김일성의 ‘국토완정’, 김정은의 ‘영토완정’

김일성, 1949년 신년사에서 ‘국토완정’ 선언한 후 남침 준비 박차

⊙ 김일성은 美帝와 대한민국, 김정은은 대한민국을 敵으로 상정
⊙ 김일성은 전쟁 준비 덜된 상태, 김정은은 핵·미사일 갖춘 상태에서 ‘국토완정’ 주장
⊙ 김일성은 박헌영 등과의 경쟁, 김정은은 김주애 후계구도 마련 문제
⊙ 김정은, 국제정세상 유엔 개입이나 미국 지원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

 南廷屋
1958년생. 단국대 대학원 박사(사학과)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도서·연구실장, 유엔평화기념관·육군군사연구소 자문위원 역임 / 저서 《대한민국과 함께한 국군과 주한미군 70년》 《북한 남침 이후 이승만 대통령의 3일간 행적》 《대한민국을 지킨 영웅들》 등

김정은은 2023년 8월 29일 한국과의 전면전을 가상한 ‘남(南) 점령’ 전군 지휘 훈련을 하는 지휘소를 방문, 작전 상황을 보고받았다. 사진=연합뉴스

 

2024년은 안보 면에서 어느 해보다 국제 상황이 좋지 않다. 유럽에서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인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그칠 줄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중동에서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대만 점령’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여기에 북한도 적극 가세하고 있다. 북한은 2024년 새해 벽두부터 미사일 도발과 서해안 지역에서 해안포 사격을 연일 강행하며 한반도를 긴장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작년 말 김정은이 행한 ‘영토완정(領土完整)’ 발언은 6·25 전쟁 이전 김일성이 ‘국토완정(國土完整)’을 주장하면서 소련·중공과 결탁하여 남침(南侵) 전쟁을 일으켰던 것을 연상케 한다.

김일성은 1949년 1월 신년사에서 ‘국토완정’을 부르짖었다. 1948년 9월 9일 북한 정권 수립 이후 첫 번째 맞이하는 신년사에서 김일성은 이렇게 주장했다.

“인민군은… 조국과 인민을 팔아먹으려는 반동 세력을 분쇄하며 우리 조국 강토의 ‘완정’과 안전을 보장하기에 항상 준비되어 있도록 되어야 하겠습니다. 조국을 식민지화하려는 미 제국주의자들의 정책과 조국과 민족을 팔아먹는 남조선 민족반역자들의 소굴인 ‘매국적 괴뢰정부’를 타도 분쇄하고, 멀지 않은 장래에 ‘국토의 완정’과 자주독립국가를 쟁취하리라는 것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김일성과 김정은의 차이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2023년 12월 30일 김정은은 느닷없이 ‘영토완정’을 들고 나왔다. 김정은은 노동당 전원회의 5일 차 회의에서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동족(同族)’이 아니라 ‘적대적인 교전국(交戰國) 관계’로 재규정하고, 유사시 핵 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박차를 가해나가겠다”고 했다.

김일성의 ‘국토완정’과 김정은의 ‘영토완정’ 발언은 그 표현만 다르지 의미는 ‘무력을 이용하여 한반도를 적화(赤化) 통일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 한반도를 공산주의 체제로 완전히 정리하여 통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아가 김정은의 ‘영토완정’은 단순히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그들의 2023년 ‘수정 헌법’에 명시해놓기까지 했다.

김일성의 국토완정과 김정은의 영토완정 발언에서 몇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먼저 김일성은 타도 대상을 미 제국주의 정책과 ‘괴뢰정부(대한민국 정부)’로 규정한 반면 김정은은 미 제국주의를 제외하고 대한민국과 국민 전체를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적화 통일 수단도 김일성은 ‘인민군(북한 정규군)’을 통해 달성하려고 한 반면, 김정은은 ‘핵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핵을 포함한 북한의 모든 무력 수단)’을 통해 이룩하겠다고 한다. 전쟁 발발 시기도 김일성은 ‘멀지 않은 장래(1년 6개월 후 남침)’라고 한 반면, 김정은은 그 시기를 못 박지 않으면서 남북관계를 ‘적대적 교전국’으로 규정함으로써 ‘언제든지 남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위와 같은 점을 고려할 때 김일성의 국토완정 주장은 ‘인민군’에게 곧 있을 전쟁에 대비해 준비하라는 ‘전쟁준비명령’의 성격이 강한 반면, 김정은의 영토완정 발언은 북한의 모든 무력집단에게 교전국으로 규정한 대한민국과 전쟁에 돌입했음을 알리는 ‘전쟁선포’의 성격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김일성, 스탈린에게 남침 승인 요청

김일성(왼쪽 두 번째)은 1949년 3월 부수상 겸 외무상 박헌영(세 번째), 부수상 홍명희(네 번째)와 소련을 방문, 스탈린에게 남침 승인을 요청했다. 사진=조선DB

 

김일성이 1949년 신년사에서 밝힌 ‘국토완정’ 발언은 남침 공식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김일성은 이를 기점(起點)으로 남침 준비에 몰두했고, 그로부터 18개월 후인 1950년 6월 25일 불법 남침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국토완정을 선언할 당시 김일성은 북한의 당·정·군을 완전히 장악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남침을 위한 충분한 군사력을 갖추지는 못했다. 남침의 핵심 전력(戰力)인 ‘조선인민군’은 병력과 무기 및 장비 그리고 훈련 면에서 아직 전쟁을 수행할 만한 충분한 전력을 보유하지 못한 상태였다. 6·25 전쟁 당시 북한은 10개 보병사단과 전차 242대, 각종 항공기 226대를 동원하여 남침을 감행하였는데, 국토완정 발언 당시 북한은 전투기와 전차를 갖추지 못한 채 단지 4개 보병사단만 보유하고 있었다. 남침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전력이었다.

전차와 전투기 등 현대식 무기를 생산할 수 없었던 당시 북한으로서는 소련의 절대적인 지원과 남침 승인, 그리고 중국 대륙의 공산화를 앞두고 있던 중공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런데도 김일성은 남한을 무력으로 적화 통일시키겠다는 ‘국토완정’을 선언했다.

김일성이 이렇게 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그로서는 북한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해줄 수 있는 ‘한반도 공산화’와 같은 불멸(不滅)의 업적이 필요했다고 볼 수 있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중국 대륙을 공산화한 것처럼 김일성도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국토완정 발언 후인 1949년 3월 김일성은 남침 준비를 위한 첫 단계로서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소련공산당 서기장 겸 수상 스탈린에게 ‘남침 승인’ 요청과 필요한 무기 및 장비 지원을 요청했다. 이때 스탈린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며 남침을 승인하지는 않았으나, 전쟁에 필요한 전투기를 포함한 각종 항공기 98대를 비롯하여 T-34전차 87대, 자주포 102문, 견인포 91문, 장갑차 57대, 모터사이클 122대 등 공격용 무기는 지원했다. 이에 따라 김일성은 전쟁에 필요한 추가 사단 창설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중공군 내 한인부대, 북한군 편입

김일성은 소련 방문에서 많은 성과를 얻자 다시 중공의 마오쩌둥에게 특사를 보내 중공군 내 한인(韓人) 병사들을 북한으로 복귀시켜 북한군에 편입하려는 협상을 전개, 이를 성사시켰다. 그 결과 중공군 3개 사단과 1개 연대가 부대 명칭만 바꾼 채 그대로 북한군으로 편입되었다. 그 수가 무려 남침 당시 북한군 육군의 절반에 해당하는 6만 명에 달했다. 이때 중공군에서 북한군에 편입된 사단이 북한군 5사단, 6사단, 12사단이고, 연대는 서울에 제일 먼저 들어온 4사단 18연대이다. 이 외에도 중대 및 대대 단위로 들어온 중공군 내 한인 병사들이 있었다. 국공내전(國共內戰)을 거친 그들은 전투 경험이 풍부해 6·25 전쟁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김일성이 남침을 위한 광폭 행보를 하는 과정에서 한반도 주변 정세도 북한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1949년 주한미군이 철수한 데 이어 1950년 1월에는 미 극동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한다는 애치슨 미 국무장관의 발언이 나왔다. 이는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를 낮게 평가한 미 합참의 잘못된 판단과 미국이 후원해 세운 대한민국을 감히 소련이 침략하지 못할 것이라는 미 국무부의 오판(誤判)에서 비롯된 조치였다. 또한 중공이 중국 대륙을 완전히 공산화한 후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고, 이에 앞서 소련은 그해 8월에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하며 미국의 핵무기 독점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김일성의 입장에서는 호재(好材)의 연속이었다.

김일성은 그 틈새를 적극 이용했다. 미 극동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시킨 애치슨 미 국무장관의 발언이 있은 지 얼마 안 된 1950년 3월 김일성은 다시 모스크바를 방문해 남침의 승인을 스탈린에게 요청했다. 스탈린은 미국이 한국을 포기한 것으로 오판하고 남침을 승인해줬고, 다시 북한에 필요한 전투기와 전차 등 현대식 공격용 무기를 대량으로 지원함은 물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투 경험이 풍부한 전략가 20여 명을 북한에 보내 남침공격계획을 작성해주도록 했다. 나아가 김일성에게 전쟁 승리를 확실히 하기 위해 중공의 마오쩌둥으로부터 동의를 받을 것을 종용했다.

김일성의 정치적 목적

스탈린으로부터 남침 승인을 얻은 김일성은 그 길로 부수상 겸 외무상인 박헌영을 대동하고 중국의 베이징(北京)으로 달려가 마오쩌둥에게 남침 지지를 요청했다. 이때 마오쩌둥은 스탈린으로부터 전문(電文)을 통해 남침 승인을 확인한 후 김일성에게 “만약 미국이 참전하면 병력을 보내 지원하겠다. 그러나 미국은 이 ‘조그마한 땅덩어리(한반도 지칭)’를 위해 다시 오지는 않을 것”이라며 남침을 지지하고 나섰다.

국공내전 시기 북한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만주 지역을 장악할 수 있었던 중공의 입장에서는 김일성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마오쩌둥은 6·25 때 중공군을 파병하면서 “‘오성홍기(五星紅旗)’에는 북한 인민의 선혈(鮮血)도 포함되어 있다”고 할 정도로 북한에 우호적이었다.

소련의 남침 승인과 중공의 동의를 받은 김일성은 스탈린이 파견한 바실리예프 중장을 비롯한 소련 군사전략가 20여 명의 도움을 받아 1950년 5월 말에 남침공격계획을 완성하고 북한 주재 소련 대사 스티코프를 통해 스탈린에게 보고해 승인을 받았다. 그때가 남침을 불과 10일 정도 남겨둔 6월 16일이었다. 남침 일자는 김일성의 요구대로 1950년 6월 25일로 정해졌다. 이때 북한은 소련으로부터는 무기와 장비를, 그리고 중공으로부터는 전투병력을 지원받아 병력 20만 명에 10개 보병사단, 1개 전차여단(전차 242대), 전투기를 포함한 각종 항공기 226대, 대포 748문, 모터사이클 540대로 남침을 감행했다.

이로써 김일성은 신년사에서 밝힌 ‘국토완정’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민족 최대의 비극인 6·25 전쟁의 참화가 김일성의 국토완정에 의해 촉발된 셈이다.

스탈린의 낙점(落點)과 소련 군정(軍政)의 비호(庇護)하에 북한 정권을 거머쥔 김일성이 국토완정을 거론하며 남침을 일으킨 것은 순전히 전공을 쌓기 위한 공명심에서 나온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국내 공산주의 거두인 박헌영이나 중국 연안파를 대표하는 김원봉과 무정, 그리고 소련파의 허가이에 비해 공산주의 투쟁과 경력에서 밀렸던 김일성 입장에서는 그들을 능가할 만한 ‘절대적 성과’가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국토완정에 의한 남한의 공산화였다.


김정은의 김일성 따라 하기

김정은은 2023년 12월 말 74년 만에 ‘영토완정’을 꺼내 들었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부터 유난히 김일성 흉내 내기에 몰두했다. 복장에서부터 걸음걸이, 외모, 말투, 행동거지, 정적 제거 및 숙청에서의 잔인함에 이르기까지 김일성 따라 하기에 열중했다. 김일성은 북한 정권의 공동 주주(株主)이자 최대의 정적(政敵)인 박헌영을 숙청할 때 외딴집 오막살이에 가둬놓고 사흘을 굶긴 독일산 셰퍼드를 집어넣어 물어뜯게 하는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고문을 해 미국의 간첩임을 자백하게 해서 사형에 처했다. 김정은도 고모부(장성택)를 비행기 격추에 사용하는 고사포로 폭살하는 포학성을 드러냈다. 이런 김정은이 이제는 김일성이 미완성으로 남겨놓은 국토완정을 들고 나왔다. 그것도 국토완정 선언 75주년(2024년)과 6·25 전쟁 발발 75주년(2025년)을 앞두고 내놓은 배경이 단순한 정치적 선언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의 영토완정 발언은 김일성의 국토완정과 비교할 때 정황 및 상황 논리상 몇 가지 특징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 김일성은 전쟁 준비가 잘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선언을 해놓고 소련과 중공을 방문하여 남침 준비를 하나씩 준비해간 반면, 김정은은 핵과 투발(投發) 수단인 각종 미사일을 개발한 상태에서 영토완정을 선언하였다. 김일성 때와 달리 전력 면에서 중국이나 러시아의 추가 지원 없이 눈치를 보지 않고 독자적으로 남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둘째, 김정은이 전면전쟁을 일으켜도 유엔 차원의 집단안보 제재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유엔안보리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고 나올 경우, 6·25 때처럼 한국에 대한 유엔 차원의 대규모 군사적 지원이 어려울 것이란 점을 방증한다. 다만 대한민국 입장에서 한미동맹은 유효한 상황이다.

셋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중국과 대만 문제 등을 고려할 때 한반도에서의 전쟁에 미국의 지원과 역할이 제한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개연성이다. 작금의 복잡다기한 국제 상황에서 김정은이 도발을 했을 때 미국의 의지와 역할이 커다란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과 푸틴과의 군사 및 군수(軍需) 협력, 대만 문제를 놓고 벌어진 미국-중국과의 대립, 북한과 중국과의 전통적 우호협력 관계 복원 등을 고려할 때 북한-중국-러시아 동맹축 강화는 결코 대한민국에 있어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다. 김정은은 영토완정 발언을 하면서 이러한 것을 계산에 넣었을 것이다.

후계자 계승 문제도 엮여 있어

김정은이 불쑥 영토완정을 74년 만에 꺼내 든 속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해볼 수 있다.

첫째는 국토완정 75주년과 6·25 전쟁 발발 75주년을 앞두고 핵과 미사일을 완성한 단계에서 김일성의 미완성 과제이자 동시에 북한의 지상목표인 국토완정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선언함으로써 북한체제의 결속을 다져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잡고 미국과의 대화를 시도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를 위해 북한은 유리한 상황을 차지할 때까지 다양한 방법과 수단을 통해 한반도를 긴장 상태로 몰고 갈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건강 상태가 나쁜 김정은이 영토완정에 의한 한반도의 긴장 상태를 이용하여 당·정·군 특히 군부의 강력한 지지하에 후계자 계승 문제를 자연스럽게 그리고 공고히 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김정은이 계속해서 딸 김주애를 대동하고 그 역할이 강조된다면 가능성이 충분한 설이라고 본다.⊙

 

과학기술자들이 말하는 한국의 핵무장

“초기 수준 핵무장은 2년, 수준급 핵무장에는 10년 이상 소요”

⊙ 低級 플루토늄탄 18개월, 우라늄농축탄 43개월 걸려(핵실험 생략 시)
⊙ “원심분리기(P2급) 개발과 관련 시설 건설에만 4~11년 걸려”(황일순 서울대 명예교수)
⊙ “핵 실험,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할 수 없어… 투발 수단 따라 실험해야”(이춘근 박사)
⊙ “중국, 한국이 핵탄두 갖는 데만 최소 2년 걸릴 것으로 분석”
⊙ “원자로급 플루토늄으로 핵탄두 만들 수 있지만, 불안정해 무기로는 사용 못 해”
⊙ “핵개발 인력은 산업·학계 인력 끌어모으면 가능… 기폭 장치 당장 개발할 인력은 없어”

▲이란 핵시설에 설치된 원심분리기. 사진=뉴시스/AP

 “마음먹으면 1년 이내 핵(核)무장 가능하다.”
(윤석열 대통령, 2023년 4월 28일 하버드대 강연)

지난해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은 하버드대 강연에서 “한국은 핵무장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빠른 시일 내에, 심지어는 1년 이내에도 핵무장을 할 수 있는 기술 기반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를 두고 당시 국내에서는 ‘가능하다(6개월 이내)’는 주장과 ‘불가능하다(최소 2년 이상)’는 주장이 엇갈렸다.

과학기술 분야 전문가 중 대다수는 “핵무장은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쳐야 하며 1년 이내 핵무기 확보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취재를 위해 접촉한 원자핵공학과 교수들은 ‘핵무장’이라는 단어를 꺼내자 “핵무기는 또 다른 전문 영역”이라며 “쉽게,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했다. 우리나라 원자력 전공자의 절대다수는 원자력 발전(소)을 공부했다. 원자력 분야 전문가들조차 말을 아끼는 이 민감한 문제를 두고 우리나라에선 문과 출신 학자들이 매체에 등장해 핵무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국내 핵 전문가들의 의견을 소개하기에 앞서 해외에서 바라본 한국의 핵무장 능력을 분석한 보고서를 먼저 짚고 넘어가자.


퍼거슨 보고서

플루토늄·우라늄 핵무기 제조 과정. 사진=조선DB

 

2015년 4월 찰스 퍼거슨(Charles D. Ferguson) 미국과학자협회(FAS) 회장은 비확산 전문가 그룹에 비공개로 회람한 보고서 〈한국이 어떻게 핵무기를 획득하고 배치할 수 있는가〉에서 한국의 핵무장 역량이 충분하며 기초적인 핵무장에 필요한 시간을 5년 이내로 추정했다.

보고서는 한국 정부의 핵보유를 ‘초기 단계(5년 이내)’와 ‘초기 단계 이후’로 나눠 명시했다. 초기 단계는 한국이 핵개발을 시작해 주변국에 신호를 보내며 비핵화(非核化)를 압박하는 (외교적) 과정을, 초기 단계 이후는 한국이 수준급 핵무기를 고도화하는 단계이다.

보고서는 명시적으로 밝히진 않았으나 핵 개발 초기에 필요한 핵물질을 확보(연간 플루토늄 50kg, 핵무기 약 8개 분량)하는 데만 최소 1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다.

핵무장은 핵폭탄(핵탄두)과 투발(投發) 수단을 확보한 상태를 말한다. 크게 ▲핵분열 물질(원료, 고농축우라늄·플루토늄) ▲핵탄두 디자인(기폭 장치) ▲핵탄두 운반 체계(미사일 등 투발 수단)를 보유해야 한다.

‘퍼거슨 보고서’는 한국이 이 세 가지를 모두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여기에 수소탄과 같은 발전된 형태의 핵무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중수소와 삼중수소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고 봤다. 또 보고서는 한국이 핵분열 물질을 얻기 위해서는 고농축우라늄(HEU) 방식보다는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는 방식으로 플루토늄을 활용한 핵물질 확보가 더 빠르고 가능성 높은 조건이라고 분석했다.

핵탄두 재료에는 고농축우라늄(HEU, 농축도 20% 이상)과 플루토늄이 있다. HEU는 천연 우라늄 중 0.7%만 존재하는 우라늄-235를 원심분리기 등으로 농축한 것이다. 핵무기용 HEU는 농축도가 90% 이상이어야 한다. 원자력 발전에는 농축도가 3~5%인 저농축우라늄(LEU, 농축도 20% 이하)을 연료로 사용한다.

 

원자로에서 사용한 폐핵연료를 재처리해 얻은 플루토늄(Pu-239, 순도 93% 이상)을 핵탄두 원료로도 쓸 수 있다.

핵·미사일 전문가인 이춘근 박사(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초빙전문위원)에 따르면, 핵탄두 1개를 만드는 데 통상 플루토늄은 5~7kg, HEU는 20~25kg이 필요하다. 이론상 플루토늄(Pu-239) 1kg이 완전하게 반응하면, TNT 19.5kt의 위력을 낸다. 이는 나가사키에 떨어진 ‘팻맨’의 위력이다.


우라늄탄 1개 = 천연 우라늄 2t

 ▲한국군이 보유한 지대지 미사일 현무-2. 고폭탄이 장착된 탄두를 핵탄두로 교체하면 핵미사일이 된다. 사진=합동참모본부

 

우라늄 핵폭탄을 1개 만드는 데 천연 우라늄 약 2t이 필요하다. 기폭(起爆) 장치 성능이 우수하면 위력이 더 센 핵탄두를 만들 수 있다.

‘퍼거슨 보고서’는 한국이 핵무장을 하면 중수로(重水爐)를 사용하는 월성 원전(原電) 1~4호기(1호기는 2019년 폐쇄)에서 핵물질을 확보할 것으로 봤다. 경수로(輕水爐)와 달리 감속재와 냉각수로 중수를 사용하면, 경수만큼 중성자를 많이 흡수하지 않아 우라늄 연료 안에 있는 우라늄-238을 플루토늄-239로 바꿀 수 있는 중성자가 더 많이 남는다. 이는 중성자가 충돌해 플루토늄으로 전환되는 양이 많음을, 플루토늄-239 함량이 높음을 뜻한다.

‘퍼거슨 보고서’는 한국이 플루토늄 생산력 제고를 위해 중수로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퓨렉스(PUREX)’ 방식으로 재처리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퓨렉스는 습식 방식으로 화학 공정을 거쳐 유효한 우라늄, 플루토늄을 확보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이 방식을 통해 주당 약 1kg, 연간 약 50kg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봤다. 더 나아가 재처리 전용 공장을 신설하면 연간 최고 800t을 재처리할 수 있으나 시설을 마련하는 데 6개월 이상 소요될 것이라고 했다.

‘퍼거슨 보고서’는 한국이 핵폭탄을 터뜨리는 기폭 장치에 필요한 기술은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핵폭발에 필요한 고폭탄 등은 한화 등을 통해 마련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비핵실험(시뮬레이션 등)을 여러 번 할지, 핵개발을 공언하고 실제 핵실험을 1회 이상 진행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핵실험을 하면 대규모 탐지망으로부터 핵실험 증후를 숨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핵탄두를 실어 나를 투발 수단은 충분하다고 봤다.

“테러용 低級 플루토늄탄 개발에만 18개월”

황일순 서울대 명예교수(원자핵공학과).

 

‘한국의 최단 핵무장 소요 기간’을 알아보기 위해 원자력·핵무기 전문가를 만났다. 이들은 모두 공학도로서 해당 분야의 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

황일순 서울대 명예교수(원자핵공학과)는 핵탄두를 최초 1개 보유하는 시점으로 ‘테러용 저급 플루토늄탄’은 최소 약 18개월(핵실험 시 30개월), 우라늄탄은 43개월(핵실험 시 55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황 명예교수는 국내 중수로에 사용후핵연료가 약 1만5000t 저장돼 있으며 사용후핵연료 3t을 재처리하면 플루토늄 9kg(6개월)을 추출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원전에서 사용하고 남은 사용후핵연료는 Pu-239의 비율이 80% 이하, Pu-240이 18% 이상이다. Pu-240 비율이 높으면 폭발을 통제하기 어렵고 그 위력도 약하다. 황 명예교수는 핵실험(1년 소요)을 하면 테러용 저급 플루토늄 핵탄두 1개를 갖는 데도 30개월이 걸린다고 봤다. 플루토늄탄은 반드시 핵실험을 1회 이상 해야 한다. 일부 우라늄탄(포신형)은 핵실험을 생략할 수 있으나 그 위력이 약하다. 지금까지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는 모두 핵실험을 6회 이상 실시했다.

아래 소개하는 소요 기간은 한국이 NPT를 탈퇴하고 개발 과정을 지연시키는 돌발 변수는 없으며 국가 비상상황이라는 가정하에서 최단 소요 시간을 추정한 값이다.

▲재처리 시설 설계·건설/핵물질 운송 용기 설계·제작/핫셀 제작(3개월) ▲재처리 시설 안전성 검증/핵탄두 설계(3개월) ▲재처리 시설 검증 및 준공/핵연료 이송/고폭장치 개발(3개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연간 탄두 1개분)/고폭장치 검증(6개월) ▲플루토늄 pit(핵물질 중심부) 제조/탄두 성형 및 검사(2개월) ▲핵탄두 조립(1개월) ▲핵실험(12개월).

위에 나온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에 활용되는 방식은 퓨렉스(PUREX·습식)이다.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분리하는 데 가장 많이 사용된다. 하지만 한국은 한미원자력협정에 따라 ‘재처리’를 할 수 없어 퓨렉스를 활용할 수 없다.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20% 미만 저농축은 모두 미국의 사전(事前) 동의를 받도록 정했기 때문이다. 한국이 이 기술을 습득하고 적용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포함하지 않았다.


핵탄두 1개에 HEU 20kg 필요

정경운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전문연구위원.

 

저급 플루토늄탄이 아닌 무기급 핵폭탄(플루토늄 순도 93% 이상)을 갖기 위해서는 시간이 얼마나 더 필요할까. 1년 이상 추가로 소요된다.

무기급 플루토늄(순도 93%)은 핵연료를 짧게 연소한 것을 재처리해야 한다. 통상 원전에 쓰는 핵연료는 발전 효율을 높이기 위해 오랫동안 연소한다. 이렇게 되면 Pu-239의 비율이 떨어지고 Pu-240의 비율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기존에 저장된 사용후핵연료를 사용할 수 없다. 우라늄을 전량 수입하는 우리나라가 대량 생산을 위해 국내 우라늄 광산을 발굴하고 정제 시설을 추가한다면 개발에 수년이 추가로 소요된다.

고농축우라늄은 원심분리기로 천연 우라늄에 있는 U-235와 U-238의 미세한 질량 차를 이용해 확보한다. 핵탄두 1개에는 HEU가 20kg 필요하다.

▲우라늄 농축 시설 설계/원심분리기 설계/육불화우라늄(UF6) 변환 시설 설계(3개월) ▲우라늄농축 시설 건설/원심분리기 시제품 제작/UF6 시설 건설(3개월) ▲우라늄 농축 시설 인허가/원심분리기 시제품 최적화/UF6 생산/핵탄두 설계(3개월) ▲우라늄 농축 기기 설치/원심분리기(P2급) 전량 생산/UF6 공급/기폭장치 개발(6개월) ▲우라늄 농축 및 원심분리기 시험 및 기동/기폭장치 검증(12개월) ▲HEU 20kg 생산(18개월) ▲핵탄두 조립(1개월) ▲핵실험(내폭형, 12개월).

황 명예교수는 “핵개발 국가 사례를 참고할 때 원심분리기(P2급) 개발과 관련 시설 건설에만 4~11년이 걸린다”고 했다. 우라늄탄(HEU 20kg) 1개를 확보하는 데 P2급 원심분리기 최소 800기(1년 가동 기준)가 필요하다.

핵무장은 핵탄두뿐만 아니라 투발 수단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의 핵무장, 한국적 핵무장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합동참모본부에서 북핵 대응 실무를 맡았던 정경운(예비역 육군 중령,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전문연구위원) 서울안보포럼(SDF) 연구기획실장은 “한국이 핵무장을 하는 순간 북한뿐만 아니라 주변국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전술핵뿐 아니라 전략핵(위력 TNT 수백kt)도 가질 수밖에 없다. 투발 수단(IRBM 등)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 투발 수단 없어”

이춘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초빙전문위원.

 

투발 수단에 대해서는 “전 세계를 상대로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며 “적이 공격한 후 반격할 수 있는 능력, ‘2격(Second strike) 능력’을 갖춘 SLBM 등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정 실장은 “국가적 역량을 모으면 초기 수준의 핵무장은 2년(5발 이내), 주변국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투발 수단을 갖춘 상태인 수준급 핵무장에는 10년 이상 소요될 것”이라면서 “핵물질을 확보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개발 기간은 순차적인 것과 병행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면 좀 더 선명하게 추정할 수 있다”면서도 “이 역시 변수가 워낙 많다”고 했다.

이춘근 박사는 “투발 수단을 갖추지 못한 상태는 핵능력을 확보하거나 핵무장을 했다고 볼 수 없다”며 “핵무장에 대한 기준이나 평가는 그 나라가 처한 환경과 보유한 투발 수단에 따라 달라지기에 상대적이다. 미국·러시아에 적용되는 관점과 이스라엘과 같은 나라에 적용되는 기준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 우리나라는 투발 수단을 갖추고 있습니까.
“아니요, 미사일용 핵탄두를 개발했다고 칩시다. 이게 정상적으로 작동되는지 시험 평가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사일 개조도 해야 합니다. 이 기간이 상당히 오래 걸립니다. 무기체계를 통합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투발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죠. 이 통합 과정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죠.”

“핵실험은 많을수록 좋아”

— 핵실험을 몇 번이나 해야 합니까.
“여러 번,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인도·파키스탄 사례처럼 한 번 할 때 여러 개를 터뜨려 밀도 있게 진행하는 방식도 있죠.”

—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하면 안 됩니까.
“안 돼요. 우리나라처럼 전술 환경이 복잡할 때는 핵탄두의 종류나 위력이 다양해야 해요. 다양하게 보유하려면 그에 맞는 실험을 해야 해요. 여기에 투발 수단이 달라지면 이에 알맞게 또 실험을 해야 해요. 미사일에 장착하는 핵탄두와 SLBM에 장착하는 핵탄두는 분명 다르니까요.”

— HEU 방식은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HEU를 택한다면 15~20년 정도 걸릴 겁니다. 시간을 절약하려면 유렌코(URENCO)에서 저농축우라늄을 들여오거나 우라늄 관련 다국적 기업의 지분을 일부 보유해 활용하는 방법이 빠를 겁니다. 운송 물량도 줄어들고 환경 오염도 덜하니까요.”

— 재처리 방식은요.
“시간을 절약하고자 한다면 기술력이 검증된 프랑스 설비를 도입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과거 박정희 정부에서 추진하던 방법이죠. 핵물질 확보에 드는 시간은 차치하고 원자력을 규제하는 각종 법률과 주민 수용성에 큰 영향을 받기에 사실상 시설 가동이 힘들 것이라고 봐요. 각종 위험과 위법을 감수한다면 핵물질 확보에만 2년은 걸릴 거라고 봐요.”

— 국가 총력전 차원에서 마음먹으면 6개월이면 핵무장을 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 주장이 나올 때면 참 답답해요. 굉장히 위험한 이야기예요. ‘마음만 먹으면’이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이냐는 겁니다. 전시(戰時)에는 그 긴급성 때문에 ‘맨해튼 프로젝트’처럼 진행할 수 있겠죠. 그런데 전시에는 우리 작전통제권이 미군(한미연합군사령부)으로 넘어갑니다. 평시(平時)에 개발하겠다? 더더욱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예요. 지금 후쿠시마 처리수 방류(放流)에도 이 난리인데….”

— ‘퍼거슨 보고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신뢰하지 않아요. 오히려 중국이 우리 핵무장 역량을 정확히 분석하고 있다고 봐요.”

“핵무장론으로 원자력계가 가장 큰 피해”

— 중국은 어떻게 봅니까.
“핵탄두를 갖는 데만도 최소 2년이라고 분석합니다. 저도 이게 맞다고 봐요.”

— 과학기술자 입장에서 핵무장(론)을 어떻게 보십니까.
“핵무장론의 가장 큰 피해 집단은 과학기술자들이에요. 정치권에서는 핵무장 여론이 70%라고 주장하며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해요. 국민감정을 자극해왔죠. 그 반대급부로 원자력계가 가장 큰 피해를 입어왔습니다. 불필요한 의심을 사 평화적인 원자력 연구에도 제한을 받아왔죠. 반면 일본은 국제사회의 신뢰와 협력을 얻어내 자유로운 연구와 농축·재처리를 다 하고 있습니다. 실리를 챙긴 거죠. 저는 핵무장을 반대하는 사람도, 찬성하는 사람도 아니에요. 이런 상황에서 비과학적인 조기 핵무장 가능설을 주장해서 얻을 것이 무엇인가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는 무기급 확보 못 해”

 ▲경북 경주에 위치한 월성 원자력본부. 둥근 지붕의 건축물이 원전으로, 맨 왼쪽부터 월성 1~4호기다. 사진=한국수력원자력

 

핵무기 분야에서 30년간 일하며 이론과 실무를 겸한 A씨. A씨는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한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무기급 플루토늄(순도 90% 이상)으로 사용한 국가는 없었다”며 “월성 원전에 저장된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무기급 플루토늄을 확보한다는 주장은 거짓”이라고 했다. A씨의 설명이다.

“플루토늄에도 급이 있어요. 플루토늄 239, 240, 241, 242. 홀수인 239나 241의 순도가 93% 이상이면 무기급이라고 합니다. 순도가 60%면 원자로에 사용돼 ‘원자로급’이라고 합니다. ‘원자로급 플루토늄’으로도 핵탄두를 만들 수는 있어요. 그런데 폭발 위력이 작고 불안정해 무기로는 쓸 수 없어요.

원자로급 플루토늄에는 240, 242가 많아요. 이것들은 중성자가 자발적으로 발생해 다루기도 어렵고 엄청난 붕괴열이 발생해요. 통제가 안 되는 중성자가 자발적으로 막 튀어나오니까 내가 원하지도 않는 시점에 조금씩 폭발이 생겨요. 이를 방지하려면 핵물질을 식히기 위해 핵탄두 그 자체보다 더 큰 냉각 장치를 달아야 해요. 어떻게 무기로 쓰겠습니까. 월성에 있는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핵무기를 만들겠다는 주장은 기본적인 원리도 모르는 상태에서 말하는 겁니다. 월성 원전을 활용하려면 새로운 핵연료를 장전해 용도에 맞게 연소(燃燒)시켜야 합니다.”

— 그럼 무기급 플루토늄을 확보하는 데 얼마나 걸립니까.
“‘(국가 비상사태이니) 사람 죽어나가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해도 핵물질을 얻는 데만 3년이 걸려요. 이것도 재처리 시설 확보 능력과 재처리 전문가가 있다는 전제하에서요. 이렇게 해서 3년 동안 얻을 수 있는 플루토늄 239가 고작 핵탄두 1기 만들 수 있는 분량입니다.”

북한이 흑연감속로 이용하는 이유

— 북한은 왜 효율도 높지 않은 5MW급 흑연감속로로 핵물질을 확보합니까.
“핵연료에는 ‘연소도’라는 단위가 있습니다. 보통 핵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사용후핵연료의 연소도가 1000MWD입니다. 만약 원자로 출력을 100MW로 설정하고 열흘을 가동하면 이 사용후핵연료의 연소도는 1000MWD입니다. 그런데 영변의 흑연감속로는 출력(5MW)이 낮아 연소도도 낮아요. 핵연료봉을 한 번 장입하면 2~3년씩 가동하죠. 플루토늄 239는 원자로를 오래 가동하면 할수록 많이 생깁니다. 핵물질 확보에는 제격이죠. 월성에 있는 중수로의 사용후핵연료는 연소도가 8000MW/t입니다. 원자로 출력이 높으면 그만큼 연료봉을 자주 교체해야 하죠. 짧게 가동하니 플루토늄 239는 적을 수밖에 없고요. 영국도 러시아도 흑연감속로를 통해 핵물질을 확보했습니다.”

북한은 흑연감속로를 활용해 순도 98%인 플루토늄을 확보한다. 흑연은 우라늄-238과 중성자의 충돌을 촉진해 플루토늄-239의 생성량을 증가시킨다. A씨는 “흑연감속로는 적은 양의 우라늄을 투입해도 훨씬 많은 플루토늄이 나온다”며 “애초에 북한이 흑연감속로를 만든 것은 발전 목적이 아니라 핵무기용으로 활용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핵무기 개발국은 플루토늄 생산 전용 원자로를 만든다. 우리나라에는 없다”고 했다.

— 경수로는 어떻습니까.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앞서 ‘북한이 경수로에서 핵연료인 플루토늄을 생산할 가능성은 낮다’고 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경수로에서도 플루토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다만 투입하는 핵연료량에 비해 플루토늄이 적게 나올 뿐이죠. 한국처럼 우라늄이 부족한 나라는 재처리보다는 우라늄 농축 방식이 알맞습니다.”

우라늄, 北 자체 조달, 南 전량 수입

— 우라늄 농축 방식은 얼마나 걸립니까.
“원심분리기의 성능에 따라 그 기간은 천차만별이에요. 3년 이내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것도 딱 1발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에요. 우리가 억지력을 갖는 수준의 핵무장을 하려면 핵탄두 수량이 충분해야 합니다. 그런데 HEU를 만들기 위해 우라늄 수입량을 갑자기 2배, 3배 늘리면 외부에서 의심하겠죠. 어떻게든 1발은 만들어도 미국의 묵인 없인 지속적으로 만들 수 없어요. 그래서 핵무장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 우리나라에도 우라늄 광산이 있지 않습니까.
“이미 품위가 좋지 않아 채산성이 없는 걸로 밝혀졌어요. 품질이라도 웬만큼 괜찮으면 진작에 캐냈죠. 북한은 자체 우라늄 확보가 가능하지만 우리는 없다고 보면 돼요.”

— 기폭 장치는요.
“핵물질 확보 과정과 병행하면 시간을 줄일 수 있죠. 그런데 기폭 장치를 만들면 이게 실제 작동하는지 실험해봐야죠. 그것도 여러 번 해야 해요. 첫 핵탄두 하나를 완성하는 데 플루토늄탄 기준 5년 이상 걸릴 것 같아요.”

 

— 이스라엘은 핵실험을 안 했는데 우리도 핵실험 과정을 생략하면 안 됩니까.
“이스라엘은 프랑스가 대리 실험을 해줬다는 게 정설입니다. 개발자 입장에서 핵실험 횟수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에요. 어떤 성능이 나오는지를 알아야 수정 보완하고 무기로서 신뢰성을 갖고 실전에 써먹을 수 있죠.”

공식 핵 보유국 중 핵실험을 가장 적게 한 나라는 인도·파키스탄으로 6회다.

— 핵개발 인력은 충분합니까.
“우리 산업·학계의 인력을 끌어모으면 가능은 해요. 건식 재처리 방식인 ‘파이로 프로세싱’을 연구했던 인력이 재처리에 투입되면 되고요. 다만 기폭 장치를 당장 개발할 만한 인력은 없어요. 재래식 탄두를 개발했던 인력과 핵을 전공한 이들이 모여 공부하며 극복해야죠.”


“핵무장, 10발로도 충분”

 ▲히로시마에 투하된 우라늄탄 리틀보이. 당시만 해도 투발 수단은 항공기가 유일했다. 이후 미국은 소련을 겨냥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B-52 폭격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투발 수단으로 개발했다.

 

— 핵무장을 한다면 수량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북한을 상대로 하면 10발이면 충분합니다. 보유량이 중요한 게 아니라 김정은에게 억지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10발을 보유하는 데에도 1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야 할 겁니다.”

— ‘퍼거슨 보고서’가 처음 나올 때랑 지금을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그 보고서가 가치가 있나요? 달라진 게 있다면 북한의 핵미사일이 고도화됐다는 정도? 우리의 핵무장 잠재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습니다.”

A씨는 “핵개발 소요 기간이 계획보다 훨씬 늦어질 순 있어도 단축되긴 어렵다”고 했다. 투발 수단에 대해서는 “현무 미사일 등을 활용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본적인 핵무기 원리도 모르는 이들이 국민감정을 자극한다”며 “핵무장론의 가장 큰 피해자는 과학자와 국민, 대한민국”이라고 했다. A씨의 이야기다.

“오늘날 세계적 수준의 원자력 강국이 된 것은 비확산 체제에서 혜택을 본 덕분입니다. 그 수혜자인 한국이 이제 와서 비확산 체제를 흔드는 것은 신뢰를 훼손하는 일입니다. 과학계가 아닌 외교·안보 분야에 있는 이들이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과 재처리, 농축을 언급하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 볼 때 ‘핵무장을 하겠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는 우리 과학기술의 자율성만을 훼손할 뿐입니다.”


‘6개월 핵무장설’의 기원

 ▲대표적인 핵무장론자인 서균렬 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원자력계는 서 교수에 대해 비판적이다. 사진=유튜브 캡처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방류 반대 운동을 하는 서균렬 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이른바 핵무장론자이다. 여러 매체에 등장해 ‘6개월이면 핵무장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씨는 2016년 9월 ‘생존을 위한 핵무장국민연대’ 출범식에서 자신이 핵무기 설계 도면, 3차원 도면을 갖고 있다며 1조원의 예산과 연구 인력 1000명, 기술 인력 1000명, 1000만 명의 뜨거운 가슴이 있으면 핵을 개발할 수 있다고 했다. 6개월의 시간을 주면 원자폭탄, 6개월 더 주면 수소탄, 전술·전략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도 했다. 또 고농축우라늄을 확보하기 위해 북한은 20세기 기술인 원심분리기 2000기를 돌리지만 우리는 (약 50평 규모의 공간에서) 21세기 기술인 레이저를 쏘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화학공학 기술이 좋아 사용후핵연료에서 플루토늄-240을 그대로 둔 채 재처리 없이 플루토늄-239만 빼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한국이 삼성전자가 있는데 인도, 파키스탄보다 못하느냐, 북한에 부동산이 있어 그 경제적 가치 때문에 트럼프(당시 미국 대통령)가 제재할 수 없다, 무서워할 것 없다고 했다.

서 전 교수는 왜 하필 6개월이 걸린다고 했을까? 이 의문을 이춘근 박사가 밝혀냈다.

《동아일보》 1977년 5월 26일자 4면 과학란에는 미국이 연구 중인 원자법 레이저 농축 동향 기사가 등장한다. 여기에 ‘3.5일, HEU 20kg 생산 가능’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하지만 이 기술은 전열 후드로 금속 우라늄을 증발시키는 방법인데 3000도가 넘는 고열을 견디지 못해 곧바로 포기했다.

2000년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전자총으로 우라늄 극소량을 증기화해 레이저로 농축한 실험이 있었다. 3회에 걸쳐 총 10시간을 가동해 무기급(농축도 90% 이상)에는 미치지도 못하는 우라늄(약 30%) 0.2g을 얻었다. 이를 쉬지 않고 1년 내내 가동해도 얻을 수 있는 우라늄은 175g에 불과했다. 핵탄두 1개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분량인 HEU 20kg을 얻으려면 이런 설비가 680대 이상 필요하다. 이런 설비를 갖춘 나라는 세상에 없다. 레이저 실험 직후 미국 등 국제사회는 한국의 핵무장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길들이기 차원에서 사건을 키웠다. 이 때문에 관련 설비들도 모두 폐기했는데 설령 장비가 그대로 남아 있더라도 불가능하다.

이렇게 1977년 기사와 2000년 한국 연구진의 레이저 실험 해프닝이 합쳐져 근거 없는 ‘6개월 핵무장설’이 탄생했다.

전문가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이른바 ‘1년 이내 핵무장(하버드대 강연)’ 발언에 대해 대통령실 외교·안보 라인이 과학적 근거도 내세우지 못하는 핵무장론자에게 휘둘려 벌어진 사건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국민감정만을 자극하는 발언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했다.⊙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liberty@chosun.com

 

●최일 잠수함연구소 소장

 “北, 核어뢰로 부산항 타격할 수 있어”

 ⊙ “북한이 ‘전술핵공격잠수함’이라고 한 ‘김군옥영웅함’은 ‘핵무기 탑재 재래식 잠수함’”
⊙ “한국, 디젤잠수함은 단점만, 핵잠수함은 장점만 부각”
⊙ “핵잠수함 도입 노력 절반만이라도 디젤잠수함에 투자했다면 유럽 디젤잠수함 능가했을 것”
⊙ “지난 정부에서 연합훈련 참여 기회 줄인 것은 잠수함 전력에도 극도로 부정적”
⊙ “일본, 해마다 잠수함 한 척씩 주문… 미쓰비시·가와사키가 격년·교호 건조”

 崔逸
1963년생. 해군사관학교(40기) 졸업, 경남대 박사 / 예비역 해군 대령, 한국 최초의 잠수함 인수선발대원, 이천함 초대 음탐관, 손원일함 초대 함장, 세계 잠수함협회 회원, 現 해군사관학교 ‘잠수함 공학’ 초빙교수, 잠수함연구소장, 페이스북과 유튜브 채널에서 잠수함연구소 운영 / 《잠수함 리얼리티》 《칼 되니츠의 삶》

 ▲최일 잠수함연구소 소장이 독일에서 입수한 서적을 배경으로 잠수함 모형을 들고 있다. 왼편에 있는 책은 1910년대 만들어진 책이다.

 

지하철역 근처에서 볼 수 있는 샌드위치 패스트푸드 업체 써브웨이(Subway). 써브웨이가 ‘잠수함(submarine)’과 관련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예비역 해군 대령인 최일 잠수함연구소장(해사 40기)은 경남 김해에서 국내 유일 잠수함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설명을 들으면 써브웨이의 기다란 원통 모양 샌드위치가 지하철이 아닌 잠수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될 거다. 또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1969)에 등장하는 폰트랍 함장이 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유보트 함장이라는 것도 알게 될 거다.

최일 소장은 알고 싶지만 알려진 게 많지 않은, 진입장벽이 높은 잠수함 세계를 많은 이에게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유튜브 채널 ‘잠수함연구소’ 등을 활용해 대중에게 잠수함을 전파하고 있다. 책 《잠수함 리얼리티》도 썼다. 최 소장은 “항공기에 쏟는 관심의 10분의 1만 투자해도 누구나 잠수함 전문가가 될 수 있다”며 “잠수함 연구는 최고의 취미”라고 말한다.


아버지도 해사 출신 해군 중령

 ▲경남 김해시 장유에 있는 잠수함연구소. 사진=최일

 

잠수함연구소는 건물 3·4층에 있다. 3층에는 잠수함 관련 각종 서적과 1·2차 세계대전 당시 자료가 있는데 독일에서 가져온 것이 상당수다. 1911년 독일군이 만든 함정 식별 컬러 서적부터 양차 대전 당시 잠수함에 탑승했던 인물 정보까지 유보트(잠수함의 독일식 표현)에 대한 웬만한 정보는 다 있다. 이러한 자료가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최 소장은 예편 후 유보트를 더 공부하기 위해 독일로 유보트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4층은 세계대전 당시 게양됐던 함기부터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상징하는 유보트 유물로 전시됐다. 한국 잠수함의 역사도 한눈에 볼 수 있다. 한국 해군의 잠수함 선체를 만들 때 쓰는 강철판을 잠수함 모형으로 절단한 것부터 세계 각 해군의 휘장도 구경할 수 있다. 꼼꼼하게 봐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누구든 잠수함을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다. 원하면 해군 정복과 근무복을 입고 사진도 찍을 수 있다. 군복 계급장에는 별이 네 개나 달려 있다.

최일 소장은 우리나라가 독일에서 공격용 잠수함을 처음 도입할 때 독일로 파견된 잠수함 인수 요원이었다.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이 국내에서 처음 건조한 209급 2번함 이천함(1200t)에서 음탐관을 지냈고 HD현대중공업(구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214급 1번함(선도함) 손원일함(1800t)의 초대 함장을 지냈다.

— 어떻게 해서 군인, 그것도 해군이 됐습니까.
“아버님이 해군사관학교(해사) 5기였는데 중령 시절 순직(殉職)하셨어요. 제가 두 살 때였죠. 그래서 저는 아버지 얼굴을 몰라요. 집안이 해군 집안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해군이 되겠다’고 생각했죠. 다른 꿈을 가진 적은 없습니다.”

잠수함 요원 선발돼 독일 유학

— 해군에도 여러 직무가 있는데 왜 잠수함을 택했습니까.
“해사 생도 시절 조선공학을 전공했어요. 2학점짜리 잠수함 공학을 배운 적은 있는데 그때만 해도 잠수함을 타게 되리라곤 몰랐죠. 1986년 임관해 이듬해부터 해군에서 잠수함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요. 새로운 무기를 들여오니 그곳에 가면 앞길이 창창하리라 생각했죠. 당시 잘나가는 사람들은 잠수함 승조원으로 많이 지원했죠. 해사 28~40기를 대상으로 지원받았는데 운 좋게 잠수함 요원으로 선발돼 독일로 갔죠.”

최일 소장은 현역 시절 독일에 3차례, 약 5년을 체류했다. 소령 시절 2년간 독일 지휘참모대학에서도 공부했다. 이때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보트 승조원으로 활약했던 이들, 유보트 연구를 취미로 하는 이들과 인연을 맺었다. 독일 유보트협회에서 자료 지원을 받아 귀국 시 《칼 되니츠의 삶》을 출간했다. 잠수함에 대한 최 소장의 열정에 감동한 한 독일인은 자신이 평생 소장한 자료를 최 소장에게 기증하기도 했다.

 

— 독일 유보트에 관심을 둔 이유가 있습니까.
“현대 잠수함의 원형 격이기 때문이죠. 유보트에 활용된 기술을 바탕으로 오늘의 잠수함이 탄생했습니다. 예전 잠수함에 함포가 있었는데 현대 잠수함에는 포가 없죠. 포를 없앤 게 유보트 타입-21 때부터입니다. 현대 잠수함은 선체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줄이고 음파 탐지를 방지하기 위해 흡음(吸音)타일을 붙이잖아요. 이것도 유보트에서 출발합니다.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의 개념도 유보트에서 시작했어요. AIP(공기 불필요 추진 체계)도 유보트에서 개념이 출발했고요.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잠수함이 500여 척 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만 유보트가 1170여 척 있었습니다.”

— 잠수함에 대해 알고는 싶지만 진입장벽이 높습니다.
“잠수함은 어렵지 않아요. 전 세계적으로 군용·전투용 잠수함이 많을까요, 민간 잠수정(함)이 많을까요. 민간 잠수정이 훨씬 많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잠수함’을 군함으로만 한정해서 생각해요. 비행기를 떠올리면 군용 비행기만 떠올리지 않잖아요? 그런데도 유독 잠수함에 대해서는 좁고, 왜곡된 인식이 있습니다.”


해군에서 가장 깊이 내려간 잠수함장

 ▲정박 중인 해군 214급 잠수함 손원일함 모습이다. 사진=해군

 

— 왜 그렇습니까.
“비틀스가 부른 ‘옐로 서브마린’, 롤렉스(Rolex)의 ‘서브마린’ 시계 등만 봐도 해외에는 잠수함이 하나의 문화입니다. 이와 달리 우리는 잠수함에 대한 문화를 경험할 기회가 적습니다. 잠수함에 승조했던 우리나라 예비역들 사이에도 잠수함을 연구하거나 알리는 문화가 없어요. 참 아쉽죠. 국가적으로 잠수함을 비밀스러운 무기로 묘사하는 풍토도 영향을 끼쳤고요.”

— 잠수함은 실전 배치되기 전 딱 한 번 가장 깊이 내려간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조선소에서 잠수함을 진수해 인도하면 실전 배치하기 전에 성능을 검증합니다. 강도 높고 위험한 시험을 하죠. 제가 214급 손원일함 초대 함장을 했을 때 최대잠항심도까지 내려갔죠. 우리나라 해군에선 아직도 그 기록을 깬 사람이 없어요. 잠수함은 이후에 최대작전심도(~400m)에서만 활동해요.”

— 최대잠항심도는 어느 정도입니까.
“500m 정도 됩니다.”

— 영화에서는 깊이 내려가면 잠수함으로 물이 새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그렇습니까.
“잠수함이 작전심도 아래로 내려가면 외부 압력으로 인해 약한 밸브나 배관이 터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잠수함은 작전심도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습니다.”

— 스노클을 하지 않은 최장 잠항 기록은 어떻게 됩니까.
“손원일함 시절 AIP만 사용해 2주 이상 잠항했죠.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만큼 인류의 기술이 발전한 걸 느꼈어요.”


잠수함 생활

— 잠수함 승조원이 갖는 징크스나 버릇 같은 게 있습니까.
“그런 것도 잠수함에 대한 오해죠. 잠수함 생활도 물 밖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밖이 보이지 않을 뿐이죠. 모든 승조원이 그렇다고 할 순 없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냄새나 소리에 민감해요. 그리고 씻는 걸 좋아해요. 배를 타면 자주 씻지 못하거든요.”

— 수상함과 비교하면 잠수함 생활은 어떻습니까.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큰 수상함도 큰 파도를 만나면 속수무책입니다. 수상함에 비해 공간은 좁습니다만, 조용해서 집중하며 공부할 수도 있죠. 유학 시험을 보면 잠수함 장교들이 상대적으로 더 좋은 점수를 얻습니다. 수상함은 실시간으로 지휘통제가 이뤄집니다. 하지만 잠수함은 예외적 상황을 제외하곤 물속이라 전파가 통하지 않아 TV도 못 보고 전화도 못 하지만 나름대로 자율적으로 생활할 수 있죠.”

— 잠수함 승조원은 전체 군 생활 중 얼마나 수중에서 생활합니까.
“수상함 요원은 항상 배에서 생활하지만 잠수함 요원은 입항하면 육상 사무실과 개인 책상이 있습니다. 보통 장교 정년까지 근무하면 약 30년이 되는데 실제 잠수함을 타는 기간은 약 10년입니다. 더 타고 싶어도 못 타요. 나머지 20년은 교육을 받거나 육상 부대나 정책 부서에서 근무합니다.”

— 잠망경으로 보는 바다는 어떻습니까.
“잠망경은 그 존재를 들키지 않기 위해 짧은 시간에 필요한 것만 빨리, 잘 봐야 해요. 볼 수 있는 시야각도 25도에 불과합니다. 일출이나 일몰을 감상하는 그런 낭만적인 건 없어요. 잠망경으로 보는 장면은 빛이 여러 번 반사돼 들어오는 상(像)이기에 실제 모습과는 차이가 있고요. 우리가 눈을 갖고 세상을 본다는 것만큼 행복한 게 없어요.”


“다른 나라와 협력하며 배워야”

 ▲2023년 7월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군 통수권자로는 처음으로 미 해군 전략핵추진잠수함(SSBN) 켄터키에 승선했다. 사진=뉴시스

 

— 해군이 처음 잠수함을 도입할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예전에는 잠수함부대 지휘관이 대령이었지만 이제는 소장(少將)이 지휘하는 부대가 됐죠. 잠수함도 많이 늘었고요.”

— 발전한 것과 발전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습니다.
“전력(戰力) 규모도 늘고 경험도 많이 축적돼 요즘 후배들은 선배보다 많은 일을 합니다. 선배로서의 바람은 이젠 좁은 공간에서 서로 배려하는 잠수함 문화가 정착돼 직무 만족도가 높은 부대가 됐으면 합니다.”

— 우리 해군이 다국적 연합훈련(림팩 등)에서 미국 항공모함을 격침하는 등 우수한 결과를 거둔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우리는 연합훈련에 참가를 굉장히 적게 하는 편이에요. 다른 나라와 협력하며 배워야 해요. 유사시에는 연합해 전투해야 하니까요. 우리만 빼고 미국, 영국, 일본, 호주, 인도는 계속 연합훈련을 해요. 지난 정부에서 연합훈련 참여 기회를 확 줄였잖아요. 잠수함 전력에도 극도로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결정입니다.”

— 연합훈련에 자주 참가하는 바람에 우리 전력이 노출되는 것은 아닙니까.
“잠수함 세계는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배워야 할 게 아직도 많죠. 작은 성공에 도취해 우물 안 개구리가 돼선 안 됩니다.”


“독일, 잠수함에서 맥주 팔아”

— 연합훈련을 할 때 실제 어뢰는 사용하지 못할 텐데 어떻게 평가합니까.
“훈련은 전투 국면을 설정하고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진행돼요. 바다 위에는 항공모함이 있을 테고 이를 호위하는 함정이 있겠죠. 또 가상의 적군 역할을 하는 잠수함이 있을 테고요. 각 함정에 국가별 관찰관이 탑승해 훈련 장면을 지켜봅니다. 잠수함에서 실제로 어뢰를 쏠 순 없으니 어뢰를 쏠 수 있는 거리가 되면 잠수함에서 신호를 보내는 거죠. 항공모함에서는 잠수함을 포착했는지를 확인하고요. 가상 전투가 종료되면 각 함정이 보낸 신호 기록과 잠수함이 가상 표적(상대 함정)을 본 방위, 거리, 시간 등을 한데 종합해 당시 상황을 함께 맞춰보는 거죠. 그러면 어뢰가 어느 배에 적중했는지, 혹은 잠수함이 발각됐는지 알 수 있죠.”

— 다른 나라 잠수함도 많이 탑승해보았습니까.
“상대적으로 외국 잠수함을 경험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정박 잠수함 방문 기회는 수십 척이 넘고, 실제 편승해서 항해한 경우도 꽤 됩니다. 전역 후에는 외국 잠수함 박물관들을 찾아 다니고 있죠. 모든 잠수함이 연구할 가치가 있고 배울 게 많습니다.”

— 특이한 사례가 있나요.
“독일은 잠수함에서 담배·맥주를 팔아요. 물론 함장의 허가가 필요합니다만 하루 2병까지 허용합니다.”

지난 1월 5일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에 여군(女軍) 승조원이 배치됐다. 잠수함은 활동 공간이 좁아 근무 환경이 열악하다. 신체 접촉도 많고 출동 기간도 길다. 전 세계적으로 여군이 마지막으로 진입하는 곳이다. 이를 두고 최일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신분별 구역 분리’라는 개념이 깨집니다. 모든 함정은 장교, 부사관, 병의 영역·공간이 있습니다. 전 세계 모든 함정이 동일합니다. 공간이 협소하고 위계질서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잠수함의 경우, 병(兵)은 승조하지 않는데, 잠수함에 여군이 승조하면 기존의 장교의 영역, 부사관의 영역이 바뀌게 됩니다. ‘여군의 영역’이 생기는 바람에 여군 장교·부사관이 분리 없이 생활하게 됩니다.”

“김군옥함은 핵무기 탑재 재래식 잠수함”

 — 다른 나라는 어떻습니까.
“일본·호주·캐나다는 여군만을 위한 공간이 따로 있습니다. 반면 노르웨이·이탈리아·독일·네덜란드 등은 성(性)이 아닌 ‘원 크루(one crew)’라는 관점에서 운용합니다. 어떠한 배려도 없죠. 여자, 여군이 아니라 ‘군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2023년 9월 6일 김정은이 참석한 가운데 ‘김군옥영웅함’ 진수식을 갖고 ‘핵잠수함’ ‘전술핵공격잠수함’이라고 표현했다. 최일 소장의 설명이다.

“2019년 7월 김정은이 신형 잠수함 건조 현장을 순시한 지 4년이 지나 그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김군옥영웅함은 ‘핵추진잠수함’이 아닌 ‘핵무기 탑재 재래식 잠수함(디젤엔진 잠수함)’입니다. 만일 크기가 큰 북극성 계열의 대형 SLBM을 탑재했다면 ‘전략핵공격잠수함’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 로미오급은 1800t급인데 어떻게 김군옥함은 3000t급이 됐습니까.
“우리 언론은 ‘북한 잠수함은 3000t’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t수를 말할 때는 ‘수상배수량’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세계 기준입니다. 로미오급은 수상 1475t, 수중 1830t입니다. 아무리 새로운 부분을 추가한다고 해도 500t 이상 되지 않을 겁니다. 김군옥함의 수상배수량은 2000t, 수중배수량은 2200~2300t으로 봐야 합니다.”

— 김군옥함에 ‘핵어뢰 해일(海溢)’도 탑재할 수 있습니까.
“언론은 그렇게 다루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북한이 2023년 전승절 열병식에 공개한 실물을 보면 길이 약 16m, 폭 1.5~1.6m입니다. 김군옥함에는 이를 탑재할 공간이 없죠.”

— 전체적으로 김군옥함을 평가한다면 어떻습니까.
“기존 로미오급 잠수함도 세계 잠수함계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구식입니다. 아주 열악하죠. 김군옥함은 로미오급보다 정숙도나 항해 능력이 더 저하됐을 것입니다. 함수부를 일부 제거하는 바람에 어뢰발사관이 없어지고 여기에 함수부에 탑재하는 소나 기능까지 저하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함 중량 증대로 인해 배터리 성능에 과부하(過負荷)가 올 것이기에 더 많은 스노클을 해야 합니다. 이는 탐지되기 더 쉽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소형 SLBM, 핵어뢰 도발 가능성”

— 김군옥함은 언제 작전 배치됩니까.
“적어도 수개월 걸립니다. 함 형상이 변경돼 항해 시험, 발사 시험 등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때마다 북한은 대대적인 선전을 할 겁니다. 이러한 시험이 끝나면 정상 작전에 투입될 겁니다.”

최일 소장은 “그럼에도 북한이 육상에서 대폭 개조한 잠수함을 물에 띄운 자체는 기술적인 성과”라며 “이러한 잠수함이 한 척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여러 척 나올 수 있으므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최일 소장은 “최근 북한이 소형 핵탄도미사일과 핵어뢰를 앞세우고 있다”며 “열병식에서 대형 SLBM(북극성 계열)을 공개하며 재미를 봤지만 대형 SLBM을 탑재할 잠수함은 준비되지 않았고, 김군옥함 같은 소형 SLBM과 순항미사일(SLCM) 탑재용 잠수함을 건조(개조)하고 있다. 핵어뢰도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핵어뢰는 SLBM과 달리 모함(母艦)이 필요 없어 크게 만들 수 있다. 부산항 등 주요 항구를 공격할 수도 있다”고 했다.

— 도산 안창호함은 전략무기입니까.
“아닙니다. SLBM 장착 공격잠수함(SSB)에 불과합니다. 전략무기란 ‘핵무기[핵탄두+투발 수단(SLBM, ICBM, 폭격기)]’를 갖춰야 하죠. SSBN(전략핵잠수함)이 전략무기입니다. ‘N’은 동력원이 핵추진(Nuclear)이라는 의미입니다. 공격핵잠수함(SSN, 핵추진 공격잠수함)도 전략무기는 아닙니다.”

 

— 공격잠수함(SSN)과 SSBN이 싸우면 누가 이깁니까.
“당연히 공격(핵)잠수함이 이깁니다. 위험 해역에서 SSBN은 SS나 SSN의 보호를 받습니다. 전략핵잠수함이 공격잠수함의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기능이 다른 잠수함으로 보는 것이 정확한 시각입니다. SS·SSN은 수중에서 상대방과 싸우는 잠수함이고 SSBN은 핵무기를 발사하는 플랫폼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미사일을 많이 실어야 하니 선체가 큰 겁니다. 물속에 있다고 다 같은 잠수함이 아닙니다.”

— 잠수함은 클수록 좋습니까, 작을수록 좋습니까.
“각국이 처한 환경과 목표에 따라 달라집니다만 교과서적 정의는 ‘같은 기능이면 작을수록 좋다’입니다. 꼭 선체가 커지는 것에 비례해 생존성이 떨어진다고는 할 수 없어요. 선체에 더 많은 탐지 장비를 탑재해 생존성을 보강하면 되니까요.”


“우리나라의 단점은 핵추진잠수함만 부각하는 것”

— 도산 안창호급(3000t) 1척을 도입할 가격이면 손원일급(1800t) 3척을 도입할 수 있습니다.
“A라는 함정은 건조 기간 1년, 건조비 1000억원, 다양한 작전을 오래 할 수 있고 무장도 뛰어납니다. B는 A의 절반 가격에 건조 기간과 선체 크기도 절반인데 작전은 A만큼은 할 수 없습니다. A를 100척 만들 때, B는 200척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선택권이 있다면 무엇을 고르시겠습니까?”

— A를 고를 것 같습니다.
“전사(戰史)를 연구한 사람들은 후자(B)를 선택해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도 그랬고요. 전쟁은 시급한 문제이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기 때문이죠. 한 척을 갖고 큰 역할을 맡기기보다는 작더라도 많은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에요.”

— 그럼 도산 안창호급이 아닌 손원일급 잠수함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합니까.
“일반화해 O, X로 답할 문제가 아니에요. 필요하면 잠수함을 크게 만들어 무장도 강화해야죠. 잠수함에도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다양합니다. 국가 전략과 해양 전략을 구현할 최적의 잠수함 유형과 보유량을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재래식 잠수함과 핵추진잠수함으로 잠수함을 양분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실제 재래식 잠수함도 너무나 종류가 많고, 핵추진잠수함도 종류가 많습니다.”

— 북한이 SLBM 탑재 잠수함을 보유했으니 우리도 디젤잠수함보다 속력이 빠른 핵추진잠수함을 가져야 한다는 여론이 있습니다.
“너무 단순한 접근이에요. 마치 ‘핵추진잠수함은 KTX, 디젤잠수함은 완행열차’라는 식이죠. 우리나라는 특히 디젤잠수함의 단점을 침소봉대(針小棒大)하고 핵추진잠수함의 장점만을 부각해요.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이런 식의 주장은 안 해요. ‘핵추진잠수함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주장을 하는데 지금 전 세계 약 40개국 중 3개국만 제외하고 모두 디젤잠수함을 써요. 왜 다른 나라는 핵추진잠수함을 갖지 않는지를 생각해야죠.”

“선택과 집중 필요”

 ▲최일 잠수함연구소 소장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집한 잠수함 부대 마크를 보여주고 있다.

 

— 우리가 보유한 디젤잠수함으로 북한 SLBM 잠수함에 대응할 수 있습니까.
“성능 면에서 우리 잠수함이 절대 우위에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잠수함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수중에서 잠수함이 잠수함을 대응하는 데에는 많은 제약이 있기 때문이죠. 이를 마치 ‘핵추진잠수함이 있으면 북한 잠수함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호도하는 이들이 있는데 틀린 말입니다.”

— 미국, 영국, 프랑스가 디젤잠수함을 폐기하고 핵추진잠수함을 운용하고 있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디젤잠수함은 자국 연안 방어에 유리하고, 핵추진잠수함은 원해(遠海) 작전에 유리합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는 인근에 적이 없고 해양전력을 투사해야 할 곳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원거리까지 빨리 기동할 수 있는 핵추진잠수함이 필요한 것이죠. 이들 나라가 경제적인 디젤잠수함을 병행하지 않는 이유는 잠수함 건조 산업 인프라의 효용성 때문입니다. 건조 난이도가 높은 핵잠수함 건조국이 재래식 잠수함을 쉽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입니다. 세계 최다 핵추진잠수함 보유국인 미국이 디젤잠수함 몇 척을 쉽게 만들어 캐나다나 호주, 대만 같은 우방국에 왜 주지 못하는 걸까요. 그만큼 잠수함 건조 산업 인프라는 한 번 형성되면 바꾸기가 힘들기에 신중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최일 소장은 자신이 핵추진잠수함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취지이다. ‘경항공모함 보유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물었으나 같은 답을 했다. 그러면서 “이전 정부에서도 대통령 공약으로 핵추진잠수함 도입을 추진했으나 그 성과는 미미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세계 여론은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도입에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호주가 오커스(AUKUS)를 통해 핵추진잠수함을 도입해 핵잠수함이 세계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규제의 대상이 되고 있어요. 미국과 영국은 IAEA에 호주를 제외하고 핵잠 확산 방지를 공약했습니다.

브라질은 프랑스와 전략적 파트너십 체결로 핵잠 원자로 설계 기술을 전수받고 자체 건조하고 있습니다만, 브라질-프랑스 간의 외교 관계가 한국에도 적용되기는 어렵습니다.

현 시점에서는 핵잠수함 도입 시 과다한 예산 지출뿐 아니라, 외교적·기술적 문제 등 수많은 난관이 예상됩니다. 국가적으로도 상당한 출혈이 있으므로 도입 시기에 대한 완급 조절이 필요합니다.”

— 수출을 준비하는 도산 안창호급을 해외에선 어떻게 평가합니까.
“긍정적입니다.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지난 10년간 우리가 핵추진잠수함을 도입하려고 쏟았던 노력의 절반만이라도 경쟁력 있는 디젤잠수함을 만드는 데 투자했다면 지금쯤 유럽의 디젤잠수함을 능가했으리라 확신합니다.

잠수함 수출 시장에서 우리의 장점은 ①우수한 잠수함 건조 산업 인프라 ②높은 국민적 관심과 국가적 지원 ③유럽 조선 경기 하향세 ④20척 이상 내수용 잠수함 운용입니다. 단점이라면 ①수출용 잠수함의 국제적 인지도 부족 ②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 미흡 등이 있죠.”


“경쟁력 있는 디젤잠수함에 투자했다면…”

최 소장은 “수입 희망 국가마다 자신들이 처한 환경과 작전 개념에 적합한 잠수함으로 개조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를 바로 수용해 제안할 수 있는 (응용) 능력이 필요하다. 10년 뒤를 내다보는 핵심 역량을 키워야 한다. 가격 경쟁력을 높일지, 품질 우위로 갈지를 정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한정된 자원으로 우리 해군은 군사력을 어떻게 건설해야 할까. 제1·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유보트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참고해볼 만하다. 독일은 지금도 디젤잠수함 수출 최강국이다. 최 소장이 정리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료에 따르면, 독일 잠수함은 당시 수상함 대비 인원수 32배, 배수량 기준 21배, 건조 비용 36배, 연료비 41배 절감 효과를 냈다고 한다.

최 소장은 독일 사례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이렇게 정리했다.

▲잠수함 설계 전문가 체계적 육성 ▲유사시 새로운 기술 즉각 적용해 최단 시간 내 생산·성능 개량 역량 확보 ▲평시 잠수함 소요 단순화해 소수 모델 대량 생산 체계 정립 ▲잠수함 조달 조선소 2개 이상 구축해 건조 공백 방지 ▲신속한 의사 결정으로 전장 교훈을 개발과 생산에 즉각 반영 ▲주요 장비 생산 공급망 강화.

최 소장은 “서방은 함종을 단순화해 발전시키고 러시아, 중국 등은 다양한 함종으로 잠수함 전력을 구성하고 있다”며 “서구식 일원화된 잠수함 전력을 택할지, 고가 잠수함(도산 안창호급)과 저가 잠수함(손원일급)을 기조로 한 2축 체계나 다축 체계로 나아갈지 기조를 정해야 한다. 함종을 다양화하는 것보다는 단순화해 발전시키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장차 디젤잠수함 시장을 두고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일본 잠수함을 두고는 이런 분석을 했다.

“일본은 산업체(조선소·협력 업체)에 매년 한 척씩(미쓰비시·가와사키 조선소) 건조 물량을 보장하고 연구 기관은 설계한 잠수함의 건조가 시작됨과 동시에 그다음 세대 잠수함을 연구합니다. 군에는 일정한 주기로 전력을 보장해 부담을 줄여줍니다. 이를 바탕으로 전력 운영 계획을 세워 산업체, 연구기관, 운용 군의 잠수함 획득 사업이 체계적으로 진행됩니다. 한국도 관련 기관이 잠수함 건조 기술과 인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일본은 이러한 기조를 바탕으로 차세대 잠수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외형도 공개했죠. 한국은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 이후의 주력 잠수함을 아직 정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잠수함 정책 주도할 국가적 컨트롤타워 필요”

최 소장은 “잠수함 전략을 국방 전략의 하위 개념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잠수함 전략은 국가 전략의 일환입니다. 모든 잠수함이 전략무기인 것은 아니지만 모든 잠수함은 전략적 운용이 가능하므로 일반 무기체계와 구분됩니다. 잠수함 전략을 국방 전략의 하위 개념인 해군 전략으로만 이해하면 혼란이 생길 수 있습니다.

북한의 낡은 재래식 잠수함에 핵무기를 탑재하였을 때 이를 우리 해군만의 대응으로 일임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국내 잠수함 상식에 관한 수준은 우리가 보유한 잠수함 역량을 감안할 때 매우 미흡한 실정입니다. 잠수함과 관련된 사실관계가 왜곡된 내용이 주요 언론 매체에 보도되고 잠수함 관련 세미나에서 발표되고 있는 실정이죠. 잠수함 획득을 위해서는 작전 효율성에 추가해 산업 인프라와의 연계성, 수출 가능성도 같이 보아야 합니다. 전력 건설과 수출까지 망라한 잠수함 정책을 주도하는 국가적 컨트롤타워가 필요합니다.”⊙

 

●K-방산 지평 넓힐 ‘잠수함 宗家’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K-방산의 다음 주자는 K-잠수함”

⊙ 한국형 3000t급 重잠수함, 한화오션만 원천 설계 능력 확보
⊙ 우리 해군 운용 잠수함 24척 중 17척 수주
⊙ 군함 연구 개발 인력만 400명
⊙ 디젤잠수함 시장(폴란드, 캐나다 등), 향후 60조원 이상 추정
⊙ 잠수함 1척당 100여 개 협력업체에 4000억원 이상 경제 유발 효과
⊙ “10년, 20년 뒤에는 회사 규모 3~8배가량 커져 있을 것”

 ▲2018년 9월 14일 한국 독자 기술로 만든 3000t급 도산 안창호함 진수식이 열렸다. 사진=한화오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노량해전(露粱海戰, 경남 남해·1598년)을 그린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가 지난해 12월 개봉됐다. 임진왜란을 끝나게 한 노량해전은 충무공의 마지막 23번째 전투이자 그가 숨을 거둔 전투이다.

이순신의 ‘23전 23승 신화’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했을까. 1592년 경남 거제 옥포만(玉浦灣) 일대에서 벌어진 옥포해전이 그 출발이다. 충무공의 첫 승전지인 옥포에는 우리나라 조선해양산업을 이끄는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 거제사업장(옥포조선소)이 있다.

1960년대 말부터 정부는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했다. 구미 전자공업단지, 포항 철강산업단지, 여수 석유화학단지 등 국가산업단지가 그렇게 생겨났다.


박정희가 택한 造船 최적지 거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전경. 사진=한화오션

 

충무공의 첫 승전을 기념하기 위함일까. 왜 국토 남동쪽 끝, 구불구불한 섬에 조선소를 지었을까. 1971년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거제 저도(豬島) 별장에 갔다가 거제 옥포 일대를 둘러보고는 배를 만들기에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전문가들도 헬기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거제가 조선업에는 최적지라는 결론이 나왔다. 특히 옥포만 일대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여름철에는 태풍을 막아주고 수심도 깊어 대형 선박을 만드는 데도 적합하다고 봤다.

당시 정부는 거제도에 조선소 3곳을 세우려 했으나 현대는 울산을 택했다. 중화학공업 육성을 담은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3년)에 따라 국영(國營)인 대한조선공사(1978년 대우그룹 인수)는 1973년 10월 옥포항 일대에서 공사를 시작했고 1981년 옥포조선소(옥포 국가산업단지)가 준공됐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방문하기 위해 부산에서 출발해 거가대교를 건너 거제도로 들어갔다. 거제도(382k㎡)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1845k㎡) 다음으로 큰 섬이다. 굴곡진 도형(島形) 때문에 면적은 제주도의 5분의 1 수준이지만 해안선(거제 443km, 제주 253km)은 한국의 섬 중에서 가장 길다.

거제사업장은 거제도에서 3시 방향, 장승포항 뒤편에 있다. 해안선을 따라 옥포대첩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니 왼편으로 바다 위에 큰 배가 떠 있었다. 조선소를 상징하는 골리앗 크레인도 눈에 들어왔다. 3년 전 거제를 찾았을 땐 노란색을 칠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한화의 상징인 주황빛 오렌지색을 칠한 채 육중한 쇳덩이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주황색이 주는 산뜻함 때문인지 3년 전보다 분위기도 밝아지고 따뜻해진 느낌이 들었다.

 

옥포대첩로를 따라 조선소 밖을 반바퀴 돌아 정문을 통해 ‘야드(yard)’로 진입했다. 조선소 일대를 모두 야드라고 부른다. 야드로 향하는 길목 초입에는 ‘신용과 의리’가 각인된 표지석이 서 있었다. 신용과 의리는 한화그룹의 정신이다. 대중의 기억에는 대우조선해양 거제사업장이 익숙할 테지만 ‘신용과 의리’를 접하는 순간 거제사업장이 한화그룹의 일원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지도에서 옥포조선소(거제사업장)를 찾으면 옥포 국가산업단지라는 명칭과 함께 ‘ㄷ’자로 조선소가 놓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의도 1.67배 면적(약 495만㎡)으로 축구장 686개를 합친 크기다. 수심은 25~30m인데 배를 만들고, 또 내보내는 데도 최적이다.

12년 만에 선박 수주 세계 1등

 ▲1992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제작한 잠수함인 209급 이천함. 사진=한화오션

 

조선소 구성원들이 직책과 직무는 달라도 모두 같은 유니폼에 안전화를 신고 있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의 역사를 한데 정리한 전시관으로 향했다. 대한조선공사(1973~1978), 대우조선공업(1978~1994), 대우중공업(1994~2000), 대우조선공업(2000~2001), 대우조선해양(2002~2023.05.22)을 거쳐 한화오션(2023.05.23~)으로 이르는 역사가 정리돼 있었다.

한화오션은 조선소 운용 12년 만인 1993년 상선 분야 선박 수주 세계 1위를 달성했다. 2019년 세계 최고, 두께 2.1m의 북극 빙하를 뚫고 운항하는 쇄빙 LNG선 15척을 성공적으로 인도했다. 2020년 4월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인 컨테이너 운반선도 만들었다. 6m 길이 컨테이너 2만4000개를 한 번에 나를 수 있다. 2021년에는 브라질 최대 에너지 기업인 페트로브라스로부터 FPSO(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를 수주했다. 계약 금액은 약 1조948억원이었다. 지금은 조선업 호황을 맞아 3년 치 물량을 벌써 수주해놓았다. 호황 덕분에 ‘저가 수주’가 아닌 ‘골라서’ 수주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한화오션은 한국 해군이 보유한 24척 잠수함 중 17척을 수주했다.

 

민간 선박뿐만 아니라 특수선(군함) 분야에서도 기록을 세워나가고 있다. 옥포대첩 승전 400주년인 1992년 대한민국 최초로 전투 잠수함인 장보고급(배수량 1200t) 잠수함 2번함인 이천함 건조를 시작으로 우리나라가 보유한 잠수함 24척 중 17척을 수주했다.

2011년에는 인도네시아에 잠수함을 수출해 세계 5번째 잠수함 수출국이자 잠수함 건조 기술 도입국으로는 세계 최초로 잠수함 수출에 성공한 기록을 세웠다.

전시관 왼편에는 세계 최고의 조선 건조 실력을 갖춘 인력을 양성하는 기술교육원이 있었다. 이곳에서 각종 기술(용접, 도장 등) 교육과 실습이 이뤄진다. 배를 만드는 데 용접과 도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60~70%이다.

스마트 야드

한화오션은 ‘스마트 야드(smart yard)’를 구현하기 위해 중앙연구원 산하 디지털솔루션연구센터와 생산혁신연구센터를 통해 용접과 도장 직무 등을 중심으로 자동화·첨단화를 추진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극 활용해 고위험 공정에는 로봇 등을 활용해 근로자의 안전을 보호하고 고품질 선박 제작에 힘쓰고 있다. 덕분에 예전에는 여러 명이 해야 할 작업을 이제는 첨단 기술의 도움을 받아 근로자 혼자서도 담당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안전교육센터에서는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해 사고 상황을 미리 체험, 실제 벌어질 각종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을 하고 있다.

드넓은 야드는 한눈에 봐도 작업 효율을 극대화시켜줄 것만 같았다. 야드에는 블록(block), 모듈(module)이 질서 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마치 레고 블록을 연상케 하는 모듈에는 용접할 때 참고했을 듯한 흰색 글자와 숫자가 어지러이 적혀 있었다. 이 모듈을 용접하고 여기에 각종 내부 장치를 달아 도장한 뒤 물에 띄우면 전 세계를 누비는 상선이 된다.

한화오션은 IoT를 기반으로 일련의 공정을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덕분에 선박을 약속한 시기에 인도하고 있다.

거제사업장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뉜다. 옥포만을 바라보고 오른편은 해양플랜트, 나머지 구역에선 상선과 특수선이 건조된다. 야드에는 ‘119’와 같은 ‘2119’도 있었다. 각종 재난에 신속하게 우선 대응하기 위한 자체 소방서였다.

‘트랜스포터’라고 부르는 대형 이동 트럭이 블록을 싣고 다음 공정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전거를 탄 신호수들이 앞뒤로 각각 2명씩 붙어 트랜스포터를 인도했다. 근로자들은 드넓은 야드를 자전거나 한화의 상징인 오렌지색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출퇴근 때가 되면 자전거를 탄 근로자들로 가득 찬다. 다른 조선소와는 달리 거제사업장은 안전을 위해 야드 내 오토바이 주행을 금지하고 있다. 차량도 시속 30km 이내로만 달려야 한다.

각종 블록을 조립해 배가 외형을 갖추면 안벽(岸壁·quay wall)으로 이동한다. 이쯤 되면 공정의 60~70%를 마친 상태다. 안벽에서 도장을 덧칠하고 내부 시설을 설치하는 작업이 이어진다. 공정이 진척된 배의 선수(船首), 선미(船尾)에는 선명(船名)이 페인트로 적혀 있었는데 ‘함부르크(Hamburg)’ ‘부산(BUSAN)’처럼 익숙한 항구 도시 이름을 넣거나 선사(船社)의 명칭을 따 배 이름을 짓는다.


기네스북에도 오른 초대형 독

 

  

거제사업장에는 골리앗 크레인 4기와 3600t을 들어 올리는 해상 크레인 2기가 설치돼 있다. 900t을 들어 올리는 골리앗 크레인(높이 103m, 자체 무게 5500t)이 설치된 거제사업장 1독(선박건조장). 약 7만㎡의 넓이로 5층 높이 건물 826채(84㎡ 기준)가 들어가는 면적이다. 한때 가장 큰 독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었다. 이곳에선 현재 액화천연가스(LNG) 추진선과 원유 운반선 등 대형 선박 4척을 동시에 건조 중이었다. 주위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나 볼 수 있는 타워크레인 10여 대가 둘러싸 함께 작업 중이었다. 대각선 2독에서도 분주하게 조립이 진행되고 있었다. 야드에 자리한 크레인 수는 총 747대였다.

거제사업장에서는 협력업체 직원을 포함해 2만여 명이 야드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함께 일하고 있었다. 구내식당만 곳곳에 26개로 하루 소비되는 쌀만 217포, 4.3t이다.

상선 건조 구역을 지나 특수선 건조 구역으로 들어갔다. 연간 잠수함 3척, 수상함 2척을 동시 건조할 수 있는 규모였다. 보안 시설이라 출입이 까다로웠다. 사전에 출입 허가를 받았지만 현장에서 다시 한 번 출입 절차를 확인하는 등 보안에 신경을 썼다.

한화오션이 만드는 군함만을 따로 전시해놓은 공간도 있었다. K-방산에 관심이 있는 해외 인사들이 찾아 한화오션의 기술력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한 공간이다. 잠수함에 실제 설치되는 배터리부터 한화오션이 그간 만든 함정의 모형은 물론 수출형 모델도 볼 수 있다.

 

 

 

한화오션은 2011년 인도네시아 잠수함 수출 이외에도 방글라데시 호위함(1998년), 말레이시아 훈련함 2척(2010년), 영국 군수지원함 4척(2013년), 노르웨이 군수지원함(2013년), 태국 호위함(2013년) 등을 수출했다.

특수선은 모두 커다란 시설물에 가려진 채 건조되고 있었다. 밀폐 작업을 하는 이유는 보안 유지뿐만 아니라 날씨의 영향 없이 공정을 일정하게 유지해 고품질 함정을 적시에 인도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특히나 잠수함은 고난도 건조 기술이 필요하다. 수상함과는 달리 협소하고 한정된 공간(선체)에 수많은 파이프와 전선, 무장체계 등이 복잡하게 설치되기 때문이다. 작은 장비 하나만 바뀌어도 관련 시스템 설계를 연쇄적으로 변경해야 한다. 또한 수중 작전 환경에서 승조원 안전 등을 고려한 수밀성이 확보된 압력선체 건조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 특수선 건조 현장에서 일하는 현장 작업자들의 경력은 대체로 20년 이상이라고 한다.

도산 안창호급 배치-II, 3척 모두 수주

 ▲한화오션 기술 인력이 독일 현지에서 잠수함 건조 기술을 배우던 시절 모습. 사진=한화오션

 

특수선 3공장에선 잠수함 건조가 한창이었다. 3공장에서 작업 중인 잠수함은 ‘도산 안창호’급 배치(Batch)-II 1·2번함이었다. ‘배치’는 같은 등급으로 건조되는 함정들의 묶음을 말한다. 배치-I(3척, 1~3번함)→배치-II(3척, 1~3번함)→배치-III(3척 예정)으로 갈수록 성능 개량이 이뤄진다. 한화오션은 도산 안창호급 배치-I 2척[도산 안창호(1번함)·안무함(2번함), 척당 약 1조원]과 배치-II 3척을 수주해 역량을 입증했다.

우리 해군은 전투용 잠수함으로 디젤엔진을 사용하는 209급(장보고급, 1200t, 9척), 214급(손원일급, 1800t, 9척), 도산 안창호급(3600t, 9척 도입 예정, 6척 계약)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다. 209·214급은 독일 잠수함 제조사인 TKMS(구 독일 HDW)에서 잠수함 설계·건조 기술을 이전받아 만들었다. 잠수함 설계 모델명이 ‘type 209’ ‘type 214’여서 그 이름이 붙었다. 209·214급은 실전 배치돼 활약하고 있다.

 

 ▲한화오션 기술자들이 독일에서 기술 전수를 받던 당시 모습.

 

209급을 장보고급, 214급을 손원일급이라고도 표현한다. 이는 선도함(1번함)의 이름을 따 함정을 분류하는 방식이다. 209급 잠수함의 1번함이 장보고함(SS-061), 214급 잠수함의 선도함이 손원일함(SS-072)이기 때문이다. 통상 함정은 같은 종류(배치)를 여러(3~6) 척 생산해 운용한다. 우리 해군이 도입 중인 3000t급 잠수함은 선도함인 도산 안창호함의 이름을 따 도산 안창호급이라는 호칭이 붙는다. 도산 안창호함(SS-083)은 2021년 실전 배치됐다.

손원일급부터는 AIP(공기 불필요 추진 체계)가 탑재돼 잠항 시간이 늘었다. 우리 잠수함은 수중에서 디젤엔진을 돌리는 것이 불가능해 평소 미리 충전한 전지로 잠항해야 했다. 하지만 배터리 용량의 한계로 인해 재충전을 위해 수면 가까이에서 스노클을 해야 했고, 이는 잠수함에 있어 적에게 노출되는 가장 취약한 시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AIP는 이러한 문제를 해소, 수중에서 추가 산소 공급 없이 동력을 공급할 수 있어 더 오랫동안 잠항할 수 있게 해준다.


세계 8번째 3000t급 이상 잠수함 독자 개발

우리나라는 AIP 탑재 디젤-전기 추진 잠수함인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을 통해 잠수함 독자 설계·건조 기술을 보유한 12번째 국가이자 세계에서 8번째로 3000t급 이상 잠수함을 독자 개발한 나라가 됐다.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은 설계부터 진수까지 약 10년이 걸렸다. 도산 안창호급 배치-I 2번함인 ‘안무(SS-85)’함은 2018년 4월 건조해 2020년 11월 진수됐다. 2023년 4월 해군에 인도돼 올해 실전 배치될 예정이다.

도산 안창호함 내부는 기존 잠수함(209·214급)보다 커진 덕분에 침대 또한 승조원 수에 맞게 설치돼 있다. 장보고급과 손원일급은 침대 수가 승조원 수의 3분의 2에 불과해 승조원들이 번갈아가며 잠을 잤다. 잠수함은 동일 성능이라면 크기가 작을수록 생존에 유리하기에 되도록 선체를 최소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도산 안창호함에는 최신 소나(음파탐지기)가 장착돼 생존성 또한 향상됐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도산 안창호급 배치-II는 배치-I과는 완전히 다른, 신기술이 적용된 새로운 잠수함”이라며 “길이와 무장, 연료전지체계, 말굽형 소나, 관통형 공격잠망경, 디젤엔진 기종 변경, 보조추진기 추가 및 리튬전지 체계 적용 등으로 작전 성능과 잠항 시간이 더욱 진일보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배치-II를 통해 완벽한 잠수함 모델을 완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캐나다, 폴란드, 필리핀 등 세계 시장 선진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가져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보고-III급 배치-II(이하 배치-II)는 배치-I보다 크기와 배수량이 커지고 무장 능력도 강화됐다. 배치-I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장착할 수 있으며 국산화율은 76.8%다. 납축전지를 사용해 잠항 시간은 100시간가량 된다. 하지만 배치-II는 SLBM은 물론이고 국산화율도 80%에 이르며 납축전지가 아닌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해 잠항 시간이 기존보다 3배 이상 늘었다. 여기에 잠수함의 ‘귀’ 역할을 하는 소나도 개량돼 수중 작전 능력·탐지 능력도 개선됐다.


잠수함 절단해 내·외부 정비

특수선 구역에서 한창 건조 중인 장보고-III급 배치-II는 기다란 원통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무를 썰어놓은 듯 토막이 나 있었다. 잠수함 건조는 용도에 따라 ‘섹션(section)’을 나눠 제작해 특수용접을 거쳐 하나로 연결한다. 모듈을 조립해 하나의 배를 만들 듯 잠수함은 섹션을 이어붙여 잠수함 형태를 갖춰 나간다. 이 때문에 고난도 용접 기술이 필요하다. 배치-II는 임무별로 7개 섹션으로 구성돼 있다. 수상함과 달리 잠수함은 원형 모양의 넓지 않은 섹션에 각종 장비와 배관, 전선을 설치해야 한다.

공장 한편에는 온전한 잠수함 형태를 갖춘 비교적 작은 잠수함도 있었다. 209급 6번함 정운함(SS-067)이었다. 잠수함은 일정 기간(약 6년 6개월)마다 잠수함을 절단해 모든 구조물을 뜯어내고 내·외부를 정비한다.

 

정운함은 앞서 10년 전인 2013년 9월 창정비를 위해 이곳을 찾았었다. 당시에도 선체 정비, 축전지 교체, 추진전동기 분해 정비 등 총 1905건을 정비한 뒤 약 두 달간 최대작전심도 시험 등 총 85개 항목을 시험해 최종 성능을 확인했다. 창정비에는 모두 14개월이 걸렸다.

한화오션은 경쟁사는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 방산, 세계 최정상급 K-방산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결심했다. 지난해 11월 유상증자(약 1조5000억원)를 했는데 이 중 42%를 방산(특수선) 분야에 활용할 계획이다.


超격차 防産

한화오션의 특수선사업을 관리하는 김규백 상무를 만나 한화오션의 경쟁력과 미래, 차기 K-방산 수출 품목인 잠수함에 대해 물었다.

— 초격차 방산을 위해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우선 건조 시설을 확충할 예정입니다. 잠수함은 기존 4척에서 최다 7척(신조 4척, 창정비 3척), 수상함은 4척(기존 2척)을 동시 건조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실내 조립 공장도 신축해 건조 기간도 단축하고 함정의 품질도 높일 계획입니다.”

— 경쟁사와 비교할 때 한화오션의 특장점은 무엇인가요.
“우리 해군이 운용하는 잠수함(장보고·손원일·도산 안창호급)을 모두 건조한 경험이 있습니다. 24척 중 17척을 만들었죠. 한국이 독자 개발하고 설계한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의 원천 설계 기술도 오직 한화오션만 갖고 있습니다.”

— 경쟁사도 도산 안창호급 배치-I 3번함을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원천 기술이 있느냐, 없느냐는 큰 차이입니다.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잠수함을 응용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화오션이 배치-II 3척을 모두 수주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원천 기술 덕분에 수출용 잠수함을 만들 때도 한화오션은 해당 국가의 요구 사항을 반영해 응용 설계를 할 수 있습니다.”

 

— 어떻게 잠수함 설계 원천 기술을 확보했나요.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독일에서 처음 장보고급(209급) 잠수함(1번 장보고함)을 들여올 때 당시 저희 회사는 대규모 인력을 독일로 파견했습니다. 당시로는 쉽지 않은 굉장한 투자였죠. 이후 독일이 제공한 209급 잠수함 도면을 바탕으로 2~9번함을 거제사업장에서 만들었습니다. 214급(손원일급) 잠수함도 독일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면허 생산 방식으로 건조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역설계와 기술 전수 등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노력하며 설계 능력을 확보했습니다. 독일 이외에도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잠수함 선진국에도 인력을 파견해 기술을 분석하고 역량을 키웠습니다.”

— 특수선 설계, 계약, 건조, 진수까지 일련의 기간이 얼마나 소요됩니까.
“함정의 크기, 탑재 장비의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어 단순히 수상함과 잠수함을 구분해 기간을 특정할 수는 없습니다. 최근 수주한 최신예 도산 안창호급 배치-II 잠수함 3번함은 계약 후 약 90개월이 소요될 예정입니다. 선도함은 설계 기간이 추가돼 후속함보다 기간이 늘어납니다.”

“연구 개발 인력만 400명”

▲경기 시흥에 위치한 한화오션 R&D센터에 있는 국내 유일 음향수조. 이곳에서 최첨단 잠수함 기술을 연구 개발 한다. 사진=한화오션

 

— 한화오션의 특수선 분야 연구 개발 인력 규모는 어떻게 되나요.
“약 400명입니다. 우수한 연구 인력을 지속적으로 채용할 계획입니다.”

— 2011년에는 잠수함 기술 이전국으로는 최초로 수출에 성공했습니다.
“당시 독일과 경쟁해 이겼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수출한 모델은 기존 209급을 한화오션 연구개발진이 대폭 개량해 수정 설계한 것입니다. 이 경험이 도산 안창호급 독자 개발에도 기여를 많이 했습니다.”

— 폴란드에서는 3000t급 잠수함 3척을 도입할 계획입니다. 폴란드 요구 조건을 충족하나요.
“대부분 충족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특히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은 디젤잠수함으로는 세계 최장 잠항 기록이 있습니다.”

— 수출 계약 과정에서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면 기술이 유출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상용화, 보편화된 기술과 최첨단 핵심 기술을 구분해 협상 과정에서부터 협의하기 때문입니다. 계약 단계에서 양국의 상호 이익과 기술 보안을 동시에 고려해 기술 보호 대상을 정합니다.”

— 폴란드, 캐나다 등의 잠수함 수주 경쟁에서 가장 강한 경쟁자는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입니다. 폴란드는 무장 체계와 금융 지원 패키지를 잘 마련한 업체를, 캐나다는 절충교역 이행 계획을 잘 준비한 업체를 선호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 폴란드, 캐나다 실사단이 지난해 거제사업장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한화오션의 건조 역량과 잠수함 성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특히 우리 해군의 30년 무사고 운용 노하우가 반영된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은 폴란드, 캐나다뿐 아니라 서방 선진 해군도 경쟁력 있는 잠수함으로 인정합니다.”

— 한화오션뿐 아니라 국내 방산 업체와의 벨류체인에 따른 경제적 효과도 궁금합니다.
“70여 국내 기자재 업체를 비롯해 전문 협력 업체 100여 곳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 1척을 건조하면 국내 기자재 업체에 4000억원 이상의 비용이 집행되는 경제 유발 효과가 있습니다.”

— 특수선 건조 이외에도 창정비 분야(MRO)에서 한화오션이 거둔 성과를 말씀해주십시오.
“잠수함 창정비 25척, 성능 개량 6척을 했습니다. 수상함 분야에서는 한국형 구축함(KDX-I, 3200t급) 3척의 성능을 개량했습니다.”

— 앞으로는 무인잠수함도 등장할 듯합니다.
“한화오션은 2022년 9월부터 2023년 10월까지 해군 함정설계기술처와 함께 전투용 UUV(무인잠수정) 개념 설계 사업을 수행했습니다. 초대형급 무인잠수정에 적용할 다목적 모듈형 무인잠수정용 에너지원 과제를 국방과학연구소와 함께 개발 중입니다. 한화오션은 대한민국의 ‘Navy Sea GHOST’ 목표에 맞춰 해상 유무인 복합체계의 전력화를 위해 연구 개발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유럽·미국 등 선진 시장 진출”

 ▲2023년 9월 폴란드 국제방위산업전시회에서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왼쪽 두 번째)이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왼쪽 세 번째)에게 한화오션이 독자 개발한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한화오션

 

— 10년, 20년 뒤의 한화오션은 어떤 모습일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겁니다. 회사 규모도 3~8배가량 커져 있을 겁니다. 글로벌 안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무인·첨단 기술과 함께 해외 생산 거점을 확보해 유럽·미국 등 선진 시장에도 진출할 것입니다. ‘초격차 방산’ 솔루션을 확보하고 해외 함정 사업을 선도하는 방산 ‘최강자’로 자리 잡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2023년 11월 29일 한화오션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현지 언론 매체를 대상으로 폴란드 해군 잠수함 현대화 사업인 ‘오르카 사업’ 수주를 위한 행사를 개최했다.

 

 

 

 한화오션은 거제사업장에서 만든 잠수함을 세계 방산 시장에 내놓기 위해 지난해 해외사업단을 신설했다. 2023년 9월 폴란드에서 열린 국제방위산업전시회에 참석한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에게 한화오션이 독자 개발한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을 직접 설명하며 그 우수성을 자랑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정부의 수출 금융 지원과 여러 산업체의 협력이 절실하다”며 “각자 맡은 역할을 잘 해내면 K-방산 수출의 다음 주자는 잠수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liberty@chosun.com

 

●대한민국 유도탄의 아버지 이경서 박사

 “저희는 정말 목숨 걸고 했어요”

 ⊙ “핵무기는 국가적 노력이 투입되어야 만들 수 있다”
⊙ “박정희 대통령의 궁극적인 목표는 핵 개발… 프랑스에서 재처리시설 들여오는 프로젝트가 실패한 후에는 구체적인 움직임 없었다”
⊙ “나이키 미사일을 유지·보수하는 것처럼 하면서 지대지 미사일 개발”
⊙ 미국에서 추진제 믹서, 영국에서 관성 유도장치 도입
⊙ “내 제안을 대통령이 100% 이해하고 지지한다는 느낌만큼 짜릿한 경험은 없었다”

이경서 박사
1938년생. 서울대 공과대학 2년 수료, 미국 MIT공대 기계공학과 졸업, 同 대학원 석사·박사, 미 BBN사 선임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 국방과학연구소(ADD) 유도탄 개발 담당 부소장 겸 대전기계창장, 국제화재해상보험㈜ 사장, 한국중공업㈜ 부사장, 단암전자통신㈜ 회장, 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한국과학재단 부이사장,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 역임. 현 단암시스템즈㈜ 회장 / [수상] 보국훈장 천수장, 국민훈장 모란장 국방과학장려 특1 대통령 표창 등

 
 

“기적은 행동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남이 잘사는 비법을, 다만 지식으로 삼는다거나 감상만 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노릇이냐.”(박정희, 《국가와 혁명과 나》 1963)

“나라의 명운(命運)이 걸린 문제다. 즉각 유도탄(誘導彈) 개발에 착수하라!”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긴급 밀명(密命)이 떨어졌다. 1969년 7월 ‘닉슨 독트린’이 나온 직후의 일이다. 1969년 7월 25일 닉슨 미국 대통령은 괌에서 백악관 수행기자단과 기자회견을 했다. 닉슨은 단호했다. 동맹국들의 ‘자주국방 능력 강화’를 역설하고, 미국의 부담 감축 방침을 천명했다.

“길지 않은 기간 동안 미국은 세 번이나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에서 싸워야 했다. 일본과의 태평양 전쟁, 한국 전쟁, 그리고 아직도 끝이 나지 않은 베트남 전쟁이 그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처럼 미국의 국가적 자원을 소모시킨 지역은 일찍이 없었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직접적인 출혈은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닉슨 독트린은 대한민국에 있어 청천벽력(靑天霹靂)이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직접적인 군사적 도움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러한 회견 내용은 즉각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다.

닉슨은 우방 및 동맹국들에 대한 조약상의 의무는 지키겠지만, 핵(核) 공격 이외의 공격에 대해서는 당사국이 그 1차적 방위를 책임지라고 했다. 핵우산과 경제원조는 계속하겠지만, 군사적 개입은 줄이겠다는 선언이었다. 한반도에 관해서는 ‘한국 안보의 한국화(Koreanization of Korea Security)’라는 말을 들고 나왔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과 다름없었다. 국산 무기라고는 소총(小銃) 한 자루도 못 만드는 나라에서, 무슨 수로 1차적 방위를 책임진다는 말인가. 그런데 이 불가능한 일을 수년간의 불철주야(不撤晝夜) 분투를 통해 가능으로 바꿔낸 사람들이 있다. 이 중 한 명이 유도탄 개발의 총책임자 이경서(李景瑞·85) 박사다.

‘서울이 맞으면 평양을 때린다’

― 박정희 대통령이 유도탄을 꼭 만들어야 한다고 단호히 명령한 배경은 뭡니까.
“그 당시에 상호주의 원칙, 비례폭격 비례대응이라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북이 도발해서 소총 한 발 쏘면 우리도 소총 한 발만 쏜다는 원칙이죠. 예를 들어, 저쪽에서 포 한 발 쏘면 우리도 포 똑같은 것으로 한 발 쏜다는 1대 1 개념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소련제 프로그(Frog)라는 사정거리(射程距離) 70km인 로켓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 로켓을 휴전선 인근에서 쏘면 서울에 떨어질 수 있었죠. 박 대통령은 대응 수단이 꼭 필요하다고 본 듯합니다.”

― 북한이 서울을 향해 쏘면 우리도 평양을 향해 쏜다는 개념이군요.
“그렇습니다. ‘서울이 맞으면 평양을 때린다’가 상호주의에 의한 비례대응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비행기를 보낼 수는 없죠. 그건 에스컬레이션(Escalation), 즉 상황 확대니까 그건 안 된단 말이죠. 그러니까 우리도 로켓, 즉 유도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겁니다.”

 

― 사거리를 200km로 늘려 잡은 이유는 뭡니까.
“서울에서 평양까지가 약 170km거든요. 대통령이 원한 미사일은 바로 이 용도로 유사시 직접 평양을 때릴 수 있는 지대지(地對地) 유도탄이었습니다.”

― 당시는 소총 한 자루도 제대로 못 만들던 시절인데, 아무리 대통령 지시라고 해도 단기간에 개발이 가능했나요?
“불가능했지만, 국가의 생존이 걸린 문제인데 포기할 수는 없었죠. 보고서를 낼 때 ‘국가적으로 달려들면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꼬박 6년이 걸렸지만 결국은 해냈습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이 세계 유수의 방위산업 선진국이지만, 시작은 미천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방위산업 육성이 자주국방(自主國防)의 첫걸음이자 긴급히 필요한 사업이라고 인식했다. 그래서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세워 무기 생산 연구를 지시했다. 당시 북한은 탱크까지 자체 생산하던 수준이었다. 닉슨 독트린이 발표된 이상, 무기 생산에 관한 남북 격차를 하루라도 빨리, 무조건 줄여야 했다.


‘번개사업’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재직 시절 이경서 박사가 200km 사정거리 유도탄을 개발할 당시의 모습이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제일 먼저 한 과제가 ‘번개사업’입니다. 3개월 안에 기관총, 소총 등 시제품(試製品)을 만들어보라고 지시했죠. 역설계(逆設計)를 하든, 카피하든 일단 비슷하게 만들어라. 단, 생산시설을 새로 만들지 말고 현재 국내의 인력과 장비를 활용하라. 성능이 많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겉은 비슷한 소총과 기관총 시제품을 3개월 안에 만들어냈습니다.”

― 3개월 가지고 될 일입니까.
“불가능하죠. 하지만 당시는 대통령뿐 아니라 일반 국민, 과학자 모두 국가 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을 때였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손 놓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어요. 박 대통령께서 당시 우리 기술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봅니다.”

기관총 부품은 1/10,000mm 수준의 정밀도를 가져야 한다. 당시 우리나라는 1/100mm 정밀도 부품도 생산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장난감(?) 수준의 모조품 무기였지만, 시연회(試演會)가 끝나자 자신감이 생겼다. 크고 작은 사고는 있었지만, 어쨌거나 총알은 발사되었다. 표적도 비슷하게 맞히는 데 성공했다. 제대로 된 무기를 양산(量産)하는 수준까지 가려면 갈 길이 멀었지만, 노력하면 우리 능력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그 한계의 경계가 늘어난 것이었다.

“번개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미국의 협조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기술지원단이 와서 도와주기 시작했어요. 기술 도면 등 자료도 주고, 그래서 우리나라 무기 제조 기술이 갑자기 확 올라갔습니다.”

미국은 한국의 무기 개발 계획이 이 수준에서 멈추길 바랐을 터이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국익(國益)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지는 지도자였다. 번개사업 직후, 장거리 유도탄을 개발할 능력이 있는지 검토해서 보고하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내려왔다. 다들 번개사업에 정신이 없을 때였다. 이에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ADD로 막 옮겨온 이경서 박사에게 ‘책임지고 보고서 만드는’ 역할이 주어졌다.

“유도탄 만들 수 있느냐고 하는데 ‘만들 수 없습니다’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KIST에 있는 교수 두 분한테 연락을 했죠. 조그만 여관방 하나 빌려서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나라에 보답해야 한다는 것을 늘 의식하며 살아”

이경서 박사는 MIT에서 석·박사를 하고 미국 BBN사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던 중 국가의 부름을 받고 귀국길에 올랐다. 해외 과학자 유치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 미국에서 전문직 연구원이었고, 귀국하면 연봉도 25% 수준으로 낮아지는데, 가족의 반대라든가 갈등은 없었습니까.
“전혀 없었어요. 왜냐하면,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 사람들의 영어나 관습이 지금과 또 달라서 미국 생활이 그렇게 편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언젠가는 꼭 귀국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았죠. 미국에서 평생 산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실향민(失鄕民)이라, 나라에 보답해야 한다는 것을 늘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이경서 박사는 1938년 평양 태생이다. 아버지의 고향은 평안남도 강서군(江西郡), 어머니의 고향은 대동강 하류의 진남포(鎭南浦)다. 아버지는 금융업에 종사했다. 일제(日帝) 때 발령받은 곳이 평양. 이경서는 평양에서 초등학교 1학년까지 다녔다. 지금 김일성경기장 인근에 있던 기림리국민학교다.

― 월남(越南)은 언제 한 겁니까.
“해방된 다음 해 1946년에 했습니다. 김일성이가 제일 먼저 한 일이 화폐개혁이었죠. 1946년 1월에 소위 조선중앙은행을 만들고 1947년 12월에 화폐개혁을 했습니다. 금융기관에 계셨던 제 아버님이 이에 반대했는지, 언젠가부터 공산당이 저희 가족을 감시하기 시작했어요. 아버지가 먼저 혼자서 월남하셨고, 나머지 가족이 부친의 연락을 받고 38선을 걸어서 넘었습니다.”


인당수 넘어 越南

― 얼마나 뒤에 출발한 겁니까.
“제가 어렸을 때라 잘 기억은 못 하지만, 한 10개월 정도 뒤였을 겁니다.”

가족 10명이 함께 떠났는데 감시를 피하다 보니 서로 흩어졌다. 할머니, 형[이봉서(李鳳瑞) 전 동력자원부 장관]과 셋이서 38선을 건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밤 열두 시, 한 시쯤 됐는데 38선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었죠. 그때가 장마철이라 개구리가 엄청나게 울었습니다. 요즘도 밤에 개구리 소리가 들려오면 그날의 광경이 정확하게 떠오릅니다.”

38선 경비병은 민간 경비대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뇌물도 통했고, 밀수꾼 등 여러 차례 남북을 오가는 사람이 그래도 여럿 있던 시절이다. 경비대는 장사꾼에게는 심하게 굴었지만 일반인들에겐 “다시 돌아가십시오”라며 그냥 풀어줬다. 풀려난 사람들은 다른 길로 우회해서 38선을 넘었다.

―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걸어갔습니까.
“평양에서 사리원까지 기차를 탔고, 사리원에서부터 해주까지 걸어서 38선 넘어 옹진(甕津)까지 왔죠. 옹진반도가 38선 이남이니까, 그때는 대한민국 영토였습니다. 거기서 배 타고 인천으로 왔습니다.”

어선을 빌렸다. 소위 말하는 똑딱선을 타고 넘어왔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있어요. 선장이 ‘여기가 〈심청전〉에 나오는 인당수입니다’라고 그러는데 정말 파도가 험했어요. 바닷물도 파랗지 않고 누렇더군요.”

국민학교 6학년 때 6·25가 터졌다. 피란을 못 가서 적치하(赤治下)에서 3개월을 살았다. 집 옆으로 탱크가 지나가기도 하고, 어린아이라서인지는 몰라도 크게 위협을 당한 일은 없었다. 영화관이 공짜였던 것도 기억한다. 소련 영화 등 공산주의 선전 영화를 무료로 상영했다. 평생토록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광경도 목격했다.

“집에서 나와 창경궁 쪽으로 가는데 시체 태우는 것을 봤어요. 육군들, 병원에 입원했던 사람들인지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죠. 소각장보다도 시체 쌓아놓은 높이가 더 높았어요. 시신은 전부 팬티만 입은 채로 켜켜이 쌓여 있었습니다.”

추산 1000여 명이 학살당한 ‘서울 의대 부속병원 학살 사건’의 목격담이다. 이경서 박사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쇼킹한 장면이었다’고 증언한다.

“다른 길 가고 싶어서 기계과 선택”

1·4 후퇴 때 대구와 부산으로 피란을 갔다. 부산에서 ‘천막학교’에 다니다 바뀐 제도에 따라 제1차 국가시험을 봤고, 경기중학교에 합격했다. 경기중고에서 각별히 친했던 동기동창으로는 훗날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내는 정근모(鄭根模)가 있다.

― 고교 졸업 후 서울 공대로 진학했는데, 공학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무엇입니까.
“저희 집안 분들이 대부분 상과(商科)를 나오셨습니다. 아버님도, 형도, 큰아버님도 사촌들도 대부분 금융계로 가셨어요. 저는 다른 길을 가고 싶어서 기계과를 선택했습니다.”

이경서는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유학길에 오른다. MIT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했으니 상당한 인정을 받은 셈이다. MIT는 학문적 혼종교배(混種交配)를 지향해 자교(自校) 출신 석·박사 진학률을 20% 내외로 제한하기 때문이다.

“억지로 쫓아갔는데 운이 좋았죠. 4학년 때 지도교수께서 실험을 시켰는데, 제가 이론적 해결책이 떠올라서 혼자 도서관에서 자료 찾고 공부해 정해진 일정을 확 앞당겨 마무리했습니다. 제 이름으로 논문을 내자고 하시기에 교수님을 주요 저자로 하고, 저를 제1저자로 내자고 말씀드렸습니다. 기계공학의 제일 권위 있는 저널에 논문이 실렸고, 그분 덕분에 대학원에 들어가게 됐죠.”

미국 생활을 같이 했던 인사로는 친구 정근모 외에 배순훈 전 대우전자 사장, 이태섭 전 과학기술처 장관 등이 있다.

결혼은 미국에서 했다. 교회에서 만난 유학생 아가씨다. 유학생 하나가 약혼을 하자, 처녀 총각들 마음에 불이 붙어 수많은 커플이 결혼에 이르렀다. MIT에서 박사를 마치고, 3년 동안 연구소에서 일했다. 하버드대, MIT 교수들이 공동으로 세운 연구소였다. 귀국 제의를 받고 미련 없이 짐을 쌌다. 1969년, 도미(渡美) 10년 만이었다. 군말 없이 뜻에 따라준 아내에게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늘이 도와서 성공한 프로젝트’

▲이경서 박사가 1974년 미국 국방부를 방문했을 때다. 유도탄 개발 대신 퇴역한 미사일을 유지·보수하는 것처럼 속였다고 한다.

 

귀국 후 첫 프로젝트는 ‘기계공업 육성 방향’ 수립. 우리나라 여건에 맞는 리더 인더스트리(leader industry) 딱 하나만 중점 육성해야 한다는 안(案)을 마련했다. 산업 기반이 총체적으로 부실한 상황에서 여러 산업을 동시에 육성한다는 것은 욕심이 지나쳐 성과를 내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기계공업 육성 방향은 첫째, 국산 무기 개발, 둘째 중후장대(重厚長大)한 산업을 만들어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었다. 이 국가적 프로젝트에 매달려 있는데 갑자기 국내외 안보 상황이 급변한 사정은 전술(前述)한 바와 같다. 이제는 유도탄 개발에 일생을 걸어야 했다.

“보고서 내고 한 달쯤 있다가 상세한 계획서를 내라고 지시를 받았습니다. ‘유도탄 개발 계획’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 ‘항공공업’이라는 위장 명칭을 썼죠. 아파트 하나 빌려서 군(軍)에 계신 박사분들 몇 분하고 3개월 동안 작업했습니다. 극비 보안 사항이라 가족들한테 연락도 못 했어요. 정보 당국에서 저희 숙소를 지키고 있었죠.”

대통령이 사인하자 일 처리에 탄력이 붙었다. 연구비가 나오고, 대전에 유도탄연구소도 만들었다. 미국에서 어느 정도 눈감아준 면도 있다.

― ‘200km 사정거리 유도탄을 개발한다’, 이것이 말은 간단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첩첩산중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사실 아이디어도 없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운이 좋아서, 하늘이 도와서 성공한 프로젝트입니다. 저희 기술이 좋아서 성공한 것이 아니에요.”

― 그때 낸 아이디어 가운데 하나가 ‘나이키 미사일 개조 프로젝트’였다고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보다는 우리 상황과 여건을 살피고 시작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잖아요. 사정거리 200km 유도탄을 개발한다 하면 미국이 주목할 것이고, 우리 군(軍)이 보유한 나이키 미사일을 유지·보수하는 것처럼 하면 감시망이 헐거워질 거라 생각했죠. 또한 나이키는 당시 미국에서 거의 퇴역(退役)한 상태였어요. 우리가 나이키 관련 정보를 달라는 명분도 확실했습니다. 나이키는 지대공(地對空) 유도탄이지만, 지대지로서도 한 140km는 날아갑니다. 이걸 개조하면 사정거리 200km 유도탄이 충분히 나오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美, 유도탄은 용인, 核은 不容”

― 미사일 사거리에 미국이 자꾸 제한을 두고 여기까지는 해도 되고 이거는 안 되고 이렇게 제동을 거는 이유는 뭡니까.
“군비증강(軍備增强)을 원하지 않는 거지요. 남북이 서로 경쟁하면 군사적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커지니까요. 또 우리 무기 성능이 좋아지면, 미국은 한국이 자기들의 바운더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여기지 않겠습니까.”

― 혹시 비거리(飛距離)를 늘려주면 우리 미사일이 핵탄두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봐서 그런 거는 아닐까요.
“당시 미국의 기본 정책은 노 에스컬레이션(No Escalation)이었어요. 지금은 우리가 700km까지 사정거리를 늘렸지만, 여러 과정을 거쳐서 늘어난 겁니다. 한 번에 쉽게 된 것이 아니에요.”

― 그렇다면 한국의 핵 개발은 실제로 추진이 됐습니까.
“저는 그렇게 봅니다. 하지만 제가 조금 아는 바에 의하면, 그때 프랑스에서 재처리시설 들여오는 프로젝트가 실패한 후에는 구체적인 움직임이 없었어요. 처음에 박정희 대통령의 궁극적인 목표는 핵 개발이었죠. 하지만 중간에 하도 미국이 감시하고 견제하니까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 겁니다. ‘원자탄 제조 기술이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온다’ ‘간단한 실험장비로도 얼마든지 제조 가능하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핵무기는 국가적 노력이 투입되어야 만들 수 있습니다. 미국은 프랑스가 우리나라에 재처리시설을 팔았을 때 생기는 이익을 물어주면서까지 한국의 핵 개발을 막았습니다.”

― 미사일과 핵에 대한 미국의 대응 수준 자체가 달랐다, 그런 말씀이시네요.
“그렇죠. 재래식 유도탄 개발은 어느 정도 인정한 겁니다.”


처음부터 고체 연료 개발

― 미사일 개발 당시 가장 어려웠던 기술적 난제(難題)는 뭐였습니까.
“유도탄은 추진기관과 유도장치가 제일 기본적입니다. 자동차로 비유하면 추진기관은 엔진이고 유도장치는 조종(操縱)입니다. 목표물을 정확하게 타격하는 장치죠.”

― 그 두 가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사실 막연했어요. 하지만 ‘선진국 기술이 뭐 하늘에서 떨어진 건 아니지 않으냐, 이건 우리로서는 꼭 해야 하는 일이다’ 하는 막무가내 정신과 사명감으로 밀고 나갔습니다.”

1차적인 문제는 추진제였다. 우리에겐 기술이 전혀 없으니, 외국에서 도입하는 길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추진제는 액체와 고체가 있는데, 액체는 비교적 쉬워요. 고체는 어렵죠. 가루로 만드는 거니까. 북한도 최근에서야 고체 추진제를 씁니다. 그 전에는 전부 액체를 썼어요. 액체는 쉽지만 안정성이 떨어집니다. 안정성뿐만 아니라 군 장비로서의 효율도 떨어지죠. 왜 그런가? 액체 추진제는 발사하기 24시간 전에 충전(充塡)해야 한다든지,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난 다음에 24시간 지난 후에나 쏠 수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 그래서 우리 유도탄은 처음부터 어려운 줄 알면서도 고체로 간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액체 연료는 처음부터 생각도 안 했어요.”

기술 팔 곳을 찾아 사방으로 돌아다니는데 다행히 프랑스에서 기술을 팔겠다는 연락이 왔다.

― 미국 회사들은 연락이 없었습니까.
“팔려면 팔 수도 있는데, 미 국무부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미국 회사들은 ‘얼마든지 팔겠다’고 그러는데 국무부에서는 절대 불가라고 했죠. 프랑스 회사는 미국과 상관없이 기술을 팔겠다고 했는데, 여전히 문제가 있었습니다.”

― 뭡니까.
“추진제 재료들을 섞는 거대한 믹서가 있어요. 여러 가지 물질을 아주 균질하게 섞어주는 정밀 기계입니다. 사정거리 200km용 추진제를 만들려면 크기가 300갤런 정도 되는 믹서가 필요하죠. 프랑스에서 파는 건 50갤런 정도였어요.”

― 50갤런짜리를 여섯 번 돌리면 안 됩니까.
“그건 최후의 도박인데, 성공률이 떨어집니다. 균일성(均一性)이 미세하게 떨어져도 실패 확률은 확 올라갑니다. 유도탄은 한 번 발사에 막대한 비용이 들고, 실패는 폭발로도 이어져 큰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 적은 용량 믹서를 여러 번 돌린다고 될 일이 아니네요.
“그렇지요. 추진제는 금속 재료들을 아주 균질하게 섞어서 만듭니다. 많은 양을, 정말 분가루 같은 것을 잘 섞어야 하는 거죠. 조그만 것은 쉬운데 용량이 크면 클수록 굉장히 더 어려워집니다. 그걸 다 정말 골고루 섞어야 하니까. 그게 사실 제일 어려운 노하우인데 미국에선 그걸 못 주겠다는 거였죠.”

횡재

▲1978년 9월 26일 백곰미사일 시사회(試射會)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이 국산 무기들을 살펴보고 있다.

 

이 난관 역시 기적적으로 해결했다. 폐기 직전의 공장설비를 시세의 10분의 1 가격으로 사 올 수 있었다. 도저히 방법이 없으니 일단 프랑스에서 50갤런짜리 믹서를 들여오고 나중에 우리가 개발하든지 그때 가서 해결하자고 생각했다. 위험하더라도 대안이 없었다. 50갤런짜리 믹서 계약을 하러 프랑스로 한 팀이 출장을 떠났는데 기적이 일어났다.

“저는 미국에 다른 일로 출장 중이었어요. 비행장에서 추진체 원료를 취급하는 회사 사장을 만났죠. 원료 구입이 목적이었는데, 이분이 눈이 번쩍 뜨이는 얘기를 하더군요.”

― 뭐였나요.
“추진제를 만드는 회사가 수요가 없어 공장을 몇 년째 놀리고 있다. 그래서 설비를 처분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경기가 나빠서 급하게 팔려고 하니, 잘하면 싸게 살 수도 있다고 해요. 비행장에서 바로 공장으로 찾아갔습니다. 가서 그 회사 부사장을 만났는데, 공장엔 사람 하나 없고 그냥 시설만 있었어요. 완전히 버려둔 지 2년 정도 지났다고 하더군요. 얼마에 팔겠냐고 하니까 200만 달러면 오케이래요. 국무부 허가 얘기도 했더니 그건 자기들이 해결하겠다고 했어요. 그거, 제대로 사려면 2000만 달러 주고도 못 사는 겁니다.”

― 횡재하셨네요.
“그렇지요. 바로 프랑스로 전화해서 계약하는 거 조금 미루라고 하고 프랑스로 갔습니다. 미국에서 설비 들여오게 된 이야기는 안 하고, ‘1단계, 2단계, 3단계로 나눠서 계약하자’고 했죠. 처음에 5갤런짜리 믹서로 추진제 만드는 기술 배우고, 다음에 50갤런짜리로 기술 전수하고, 뭐 이렇게 몇 단계로 나눠서 계약했습니다.”

― 이 기술도 상당히 싸게 도입하신 거네요.
“그렇죠. 쌍방 중에 한쪽만 거부해도 단계별 계약을 자동 해지(解止)하는 것으로 서류를 만들었으니까요. 프랑스에서 우리 핵심 인력이 기술을 배우는 동안 다른 팀은 미국에 가서 낡은 공장을 통으로 뜯어왔습니다. 5개월 걸렸어요. 300갤런짜리 믹서기를 들여오고 설치하던 날의 그 감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 공장 설비를 들여오는 데도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그쪽에서 기술을 안 주려고 그랬는데, 우리 팀들이 가서 싸우다시피 매뉴얼 등을 다 들고 왔습니다. 국무부에서 반출을 허가한 기계에만 테이프가 붙어 있고 그것만 가져올 수 있는데, 안 붙어 있는 것까지 그냥 싹 다 들고 왔죠. 하여튼 가져올 수 있는 건 다 가지고 왔어요. 쓰레기까지 다 가져왔습니다.”

쓰레기까지 가지고 왔다는 소문은 청와대에까지 들어갔다. 대통령이 현장 점검을 나와 300갤런 믹서기 앞에서 딱 멈춰 섰다. ‘이거 돌려 봐!’ 믹서가 제대로 돌아가는 걸 본 대통령은 흡족한 얼굴을 하며 자리를 떴다.

유도장치 도입 비화

유도장치 도입도 비화가 많다. 나이키는 레이더로 목표를 잡아 맞히는 미사일이다. 비거리가 늘어나면 레이더 성능도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물론 기존 나이키 미사일을 제어하는 장비는 있었다. 하지만 비거리를 늘려 개조한 후의 나이키를 제어하려면 다른 차원의 장비가 필요했다.

“그걸 전부 생각하면 골치 아프죠. 모든 문제는 일단 해결하는 대로 해결하고, 우선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돈 주고 살 수 있는 기술이 무엇인지 다 알아보자고 했어요. 문제 하나 하나 해결하는 과정이 하늘이 도와줬다는 것 말고는 설명이 안 됩니다.”

― 어떤 일이 또 있었습니까.
“당시 미국 방위산업이 굉장히 곤란한 상황이었어요. 월남 전쟁도 끝나고, 무기 쓰는 곳도 없고 말이죠. 그래서 부도 직전까지 몰리니까 나이키 허큘리스 만든 회사에서 우리한테 제안이 왔어요. ‘한국에서 사정거리 200km 유도탄을 만든다는데, 아예 우리가 나이키를 240km 지대공 유도탄으로 개조해서 주겠다. 그걸 사라’는 겁니다. 단, 기술 제휴는 없고 자기들이 만들어서 팔겠다, 한 발에 얼마씩이다고 말이죠.”

이 문제는 ADD가 아니라 국방부 차원에서 논의가 오갔다. 나중에 의견을 묻기에 이경서 박사는 ‘야, 이거 무슨 방법이 있겠다’는 느낌이 왔다.

“국방부에다 ‘일단 사겠다고 그러십시오’라고 했어요. 한데 국방부 측에서는 ‘구입은 간단하다. 하지만 대통령께서 원하시는 건 우리가 자체적으로 기술을 확보하는 것 아니냐. 사 오는 걸로 만족하시겠느냐?’고 하더군요. 물론 미국 회사에다 ‘사기는 사는데, 우리가 이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한 프로젝트인지 미국 회사하고 우리 팀하고 같이 예비 설계를 하자. 어떻게 고치겠다는 연구를 함께 해서, 그것이 타당하다고 결론이 나면 사주겠다’ 이렇게 제안을 할 것이라고 했죠.”

―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이네요.
“네. ‘처음에는 예비 설계를 하고, 우리가 검증을 끝내면 그다음에 디테일한 설계를 하자. 모두 합격하면 그때 주문하겠다’, 그러니까 미국에서도 거절할 수가 없었죠. 미국 회사 사정도 급했고요. 미사일 만든 회사에서 국방부, 국무부를 설득했습니다. ‘이건 예비 설계 정도니까, 디테일한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니까 기술 유출도 없다.’ 그래서 허가가 떨어졌습니다.”

“나중에는 보고서 훔쳐내 밤새 복사”

이경서 박사를 포함한 한국 엔지니어 6명은 미국으로 건너가 6개월 동안 ‘전투’를 치렀다. 맥도널 더글러스사에서 전자 장비를 비롯한 노트 하나 못 가져가게 막고 기록 또한 일절 불허(不許)했지만, 우리 연구원들은 ‘모든 정보를 최대한 머릿속에 담아 오자’는 정신으로 낮에 보고 온 것을 밤에 숙소로 돌아와 기록으로 남겼다.

“처음엔 그러다가 나중엔 한계가 와서 정말 못 할 짓을 하기도 했어요. 보고서를 훔쳐 나와 밤새 복사했어요.”

― 이 사실을 지금 공개해도 되는 건가요.
“괜찮습니다. 저희는 정말 목숨을 걸고 했어요. 적발됐다면 외교적 문제는 물론이고 미국에서 감옥에 갈 수도 있었어요.”

― 6개월 후에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안 사겠다고 했죠. 조사 결과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163만 달러 주고 예비 설계만 하고, 나머지 본 설계 내용까지 다 뽑은 겁니다. 이 계약도 단계별로 계약해서 돈을 아꼈습니다.”

맥도널 더글러스사에서 처음에 부른 가격은 1단계 예비 설계 공동연구 180만 달러, 2단계 시스템 설계와 3단계 시제품 제작은 맥도널 더글러스사 단독 설계 제작으로 2000만 달러였다. 개조한 양산품의 구입 비용은 물론 별도였다. 이경서 박사 팀은 체재비 포함 200만 달러 안쪽에서 기술만 다 가져오는 것으로 외화를 절약한 것이다.


영국에서 관성유도장치 도입

▲이경서 박사가 대전기계창장에 재직 시이던 1979년 7월 3일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을 받으며 악수하고 있다.

 

― 영국에서도 기술을 도입했죠.
“관성(慣性)유도장치를 들여왔는데, 정말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겁니다. 그 기술을 갖고 있는 나라가 미국, 영국, 프랑스뿐인데 미국과 프랑스에선 말도 꺼내지 말라고 했어요.”

무작정 스코틀랜드로 날아가 관성유도장치 구입을 타진했다. 20개를 사겠다고 하니 깜짝 놀랐다. 엄청난 고가품을 갑자기 나타난 동양인이 대량으로 구입한다고 하니 그쪽 회사에서도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다. 국제거래 허가 품목이었지만, 이경서 박사에게는 복안(復案)이 있었다.

“이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었느냐. 당시 일본이 비행기를 개발했는데, 관성유도장치를 미국이 팔았어요. 저는 영국 회사에 가서 ‘미국도 일본한테 팔았는데 왜 너희는 우리한테 못 파느냐’고 했죠.”

영국 페란티(Ferranti)사에서는 당연히 팔 수 있다고 했다. 회사의 소개로 메이슨(Mason) 영국 국방부 과학고문을 만났다. 런던에서 미팅을 마치고 메이슨 교수가 우호적인 답을 줬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내가 한 번 검토하겠다’고 했다. 한 달 후 메이슨 교수가 한국에 와서 실사(實査)를 했다. ADD는 메이슨 교수를 밤낮으로 극진하게 모셨다. 관성유도장치의 항법장치에는 미국 기술이 들어가 있었다. 미국의 허락 없이는 영국 정부도, 페란티사도 마음대로 판매가 불가능했다. 궁하면 통하는 법. 이경서 박사가 물었다.

“당신들이 우리하고 계약한 다음에 이 사실을 미국에 언제까지 알려줘야 하느냐?”

돌아온 대답은 “6개월 내에만 알려주면 된다”였다. 이경서 박사는 “우리 연구원을 영국으로 파견할 테니 설계 및 생산 기술을 전수해줘라. 미국에는 6개월의 마지막 날 통보하면 협정 위반은 아니지 않으냐”고 했다. 워낙 국제적으로 민감한 문제라 청와대에도 보고하지 않고 은밀하게 처리했다.

“그러니까 청와대에서도 몇 사람만 알고 아무도 몰랐습니다. 계약하고 연수 마치고 6개월 딱 되는 날 미국에 알려줬어요.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야단이 나가지고, 청와대 오원철(吳源哲) 경제 제2수석비서관에게 전화를 했죠. 오 수석이 저에게 전화했기에 그때 제가 실토했습니다. 처음엔 오 수석이 화를 내더니 이내 조용해요.”

― 왜 그랬습니까.
“오 수석이 보니, 우리도 관성유도장치 기술을 갖게 됐으니까 앞으로 인공위성도 올리고 다른 것도 할 수 있게 된 거잖아요? 대통령께도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박정희, 깨끗하고 이해력 빨라”

▲1978년 9월 26일 백곰미사일 시사회(試射會)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이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아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그래서 우리 유도탄 ‘백곰’은 언제 완성이 됐습니까.
“1978년입니다. 본격 개발부터 6년 걸렸어요. 수많은 연구원이 집에도 제대로 못 들어가고 오로지 유도탄만 생각한 결과입니다.”

1978년 9월 26일, 마침내 백곰이 하늘을 날았다. 대통령을 포함한 참석자들은 모두 일어나 만세를 부르고 서로 부둥켜안았다. 부둥켜안고 울었다.

― 그날 정말 감격스러웠겠네요.
“그때는 북한의 전력(戰力)이 훨씬 더 강했죠. 재래식 무기도 강했고 유도탄도 훨씬 더 많이 보유하고 있었고, 우리는 별다른 대응 수단이 없었고요. 백곰 개발은 우리에게 자신감을 심어줬습니다. ‘하면 된다’는 정신은 정말 중요해요. 백곰을 성공시키고 나니, 다음부터는 뭘 해도 우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또 기본 기술을 가졌으니까 다음번 유도탄 개발하는 것도 훨씬 수월했어요.”

― 박정희 대통령의 자주국방 의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하나의 국가가 있기 위해서는 자주국방은 절대적인 겁니다.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박 대통령이 자주국방을 하기 위해 기계공업을 육성했고 산업화의 틀도 세우셨죠. 그분이 이렇게 기틀을 다졌기에 지금 우리 대한민국이 국가다운 국가일 수 있는 겁니다.”

― 직접 겪은 박정희 대통령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깨끗해요. 그리고 이해력이 빠릅니다. 전문가의 의견이 있다면, 핵심이 뭔지 바로 아시고, 정확하게 지시하셨죠. 전문가 입장에선, 자신의 전문성을 최대로 인정해주고, 전문성을 살려 일할 환경을 만들어주는 리더가 최고입니다. 평생을 두고, 제 제안을 대통령이 100% 이해하고 지지하신다는 느낌만큼 짜릿한 경험은 없었습니다.”

‘박정희의 꿈’ 이룬 이경서

▲이경서 박사는 미사일 개발 공로를 인정받아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보국훈장 천수장을 받았다

 

자주국방(自主國防)과 자립경제(自立經濟) 달성은 박정희 평생의 꿈이었다. 국가 예산의 48%를 미국의 원조로 채우던 나라가 1950~1960년대의 대한민국이다. 박정희는 경제적·군사적으로 자립 능력이 없는 나라는 끝까지 남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봤다. ‘국력에 비해 과도한 규모의 군을 유지하며 동시에 경제개발도 해야’ 하는 모순적 과업을 필사적으로 수행하던 박정희 대통령은 무슨 방법을 쓰든 혈로(血路)를 뚫어야 했다. 그중 하나가 무기 개발, 특히 유도탄 개발이었다.

세종은 4군(郡) 6진(鎭) 개척으로 변방을 안정시킨 역사적 승전(勝戰)을 두고 ‘내가 없었다면 김종서가 이 일을 주창하지 못했을 것이요 김종서가 없었더라면 내가 이 일을 실행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말한다. 박정희가 없었다면 이경서는 유도탄 개발을 하지 못했을 것이요 이경서가 없었더라면 박정희는 유도탄 개발을 실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글 : 장원재 (주)戰後70년 생생현대사TV 대표

 
 

김관진 국방혁신위 부위원장

 “김정은 전쟁 발언, 허풍이라 치부해선 안 돼”

 ⊙ “방심한 순간 6·25 전쟁,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처럼 앉아서 당한다”
⊙ “북한은 선거 때가 되면 항상 이를 이용”… 南南갈등 전략 시동
⊙ “핵개발·도발 계속할 경우 김정은, 지금 누리는 호사스러운 생활 더는 못 누릴 것”
⊙ “北의 ‘회색 지대’ 노리는 전술 대비해야”
⊙ “우리 군사정찰위성, 김정은 숨어 있는 지점 타격 가능”
⊙ “윤석열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국방혁신 직접 주도”
⊙ “무형전투력은 국방혁신의 시발점이자 종착점”

▲사진=월간조선

 

김관진(金寬鎭·75) 국방혁신위 부위원장은 평생 야전(野戰)의 강골(强骨) 군인으로 살았다. 국방부 장관 시절 집무실에 김정은과 북한군 수뇌부 사진을 걸어놓고 매일 적장(敵將)의 생각을 읽었다. 적에게 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며 주말에도 집무를 봤다. 인터뷰를 위해 사무실을 방문한 날에도 김 부위원장은 합참의장을 지낸 이순진(李淳鎭·70·전 합참의장) 국방혁신위 특별자문위원, AI 기반 전문가 등과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국가에 대한 헌신이 김 부위원장의 숙명이란 생각이 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김관진 전 장관을 국방혁신위 부위원장(위원장 대통령)으로 임명했다. 윤 대통령은 김 부위원장을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분”이라며 “반드시 모셔오라”고 했다고 한다. 김 부위원장을 윤석열 정부의 국방혁신을 이끌 적임자로 판단한 것이다. 정부의 첫 국방개혁실장으로 부임한 유무봉 국방부 미래혁신특별보좌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김관진 부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준 지금이 국방혁신의 적기”라고 했다.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유명한 김관진 부위원장을 설득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김 부위원장은 북 침공 대비 태세는 국방부 장관 관할인 만큼 자신은 ‘입’이 없는 사람이라고 거절의 거절을 계속했다. 아끼는 후배(신원식 국방부 장관)가 잘 해나가고 있는데, 자신이 나서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국방혁신 과제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기로 약속을 하고서야 겨우 마주 앉을 수 있었다. 1월 9일이었다. 북한 김정은을 이야기할 때 불꽃이 쏟아지는 특유의 눈빛은 여전했다. ‘김관진이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심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가 실감이 났다.


“언제 전쟁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 무슨 토론 중이었나요.
“4차 산업혁명 첨단 과학기술을 군에 적극적으로 접목할 계획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 김정은이 “북남 관계는 더는 동족(同族) 관계가 아닌 적대적 교전국(交戰國) 관계”라고 선언했습니다.
“김정은의 말을 허풍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대비해야지요. 제가 항상 강조하는 게 있습니다.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전투형 강군(强軍)’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강인한 정신 전력과 높은 수준의 교육 훈련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지요.”

 

― 허풍이 아니라면 전쟁 가능성도 있는 건지요.
“우리나라는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우리가 잘 억제해와서 그렇지 벌써 전쟁이 났어도 몇 번은 날 수 있었죠.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김 부위원장은 “AI 기반 첨단 무기가 개발되고 전쟁 양상도 바뀌고 있지만, 중요한 건 선명한 대적관(對敵觀)과 강인한 전투 의지 등 정신 전력(戰力)”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월 10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 김정은은 “조선반도에서 압도적 힘에 의한 대사변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지는 않겠지만, 전쟁을 피할 생각 또한 전혀 없다”고 했다. 지난 8~9일 중요 군수공장을 현지 지도한 자리에서 “대한민국 족속들을 우리의 주적(主敵)으로 단정”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이 우리 국가를 상대로 감히 무력(武力) 사용을 기도하려 들거나 우리의 주권과 안전을 위협하려 든다면, 그러한 기회가 온다면 주저 없이 수중의 모든 수단과 역량을 총동원해 대한민국을 완전히 초토화해버릴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과 장관이 아주 잘 대응”

▲윤석열 대통령과 김관진 부위원장이 지난해 12월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방혁신위원회 3차 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전쟁이 일어난다면 북한은 어떤 식으로 침공해올까요.
“한미 연합 정보 자산으로 북한이 어떤 식으로 공격해올지 미리 감지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움직임을 대부분 파악할 수 있지요.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방심만 하지 않으면 과거 6·25전쟁이나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때처럼 앉아서 당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미국 랜드(RAND)연구소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북한이 남한을 이기기란 쉽지 않다. 북한의 군사력 순위는 세계 20~30위 정도로 (남한보다) 아래”라며 “핵무기를 포함해 따진다면 북한 전투력 순위는 이보다 올라간다”고 했다.

― 올해 초 북한군이 백령도 북방 장산곶 일대와 연평도 북방 등산곶 일대에서 200여 발 이상의 해안포를 쐈을 때 우리 서북도서 주둔 해병대는 K9 자주포와 K1E1 전차포 등을 동원해 북 포탄의 2배인 400여 발의 대응 사격을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아주 잘 대응했다고 봅니다. 우리 해병대를 보셨나요? 국군 통수권자와 장관이 힘을 실어주니, 북한 도발 응징에 대한 열정과 열기가 강하게 느껴지더군요.”

신 장관은 현역 시절(소령) 육군대학 정규과정(1년)을 수석 졸업한 인물이다. 국방부 정책기획관(2011~2012년)으로 김 부위원장의 눈과 귀 역할을 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대북(對北)·대적관은 동일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국방부 장관 때 “북 도발 시 10배 보복하고 적 지휘부와 원점(原點)을 타격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적이 도발해온다면 ‘선 조치 후 보고’ 원칙하에 즉각적이고 단호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쏠까요, 말까요’를 물으면 대응이 지연되고, 소극적인 대응을 할 수밖에 없지요. 역사적으로 지도자와 국민이 적국에 비굴한 태도를 취한 경우와 단호한 의지를 보인 경우를 비교해보면 상반된 결과가 나온 적이 많았습니다.”

― 최근 북한의 도발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꼭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건 북한은 선거 때가 되면 항상 이를 이용했다는 사실입니다.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키면 불안해하는 국민이 생겨날 것이고, 우리 사회에 ‘전쟁이냐, 평화냐’ 같은 남남(南南) 갈등이 벌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북한이 바라는 결과지요.”

“‘회색 지대’ 노리는 전술 구사할 수 있어”

▲박근혜 정부는 2015년 북한의 목함지뢰 및 포격 도발 이후 단호하게 대처했다. 북한은 황병서 총정치국장을 보내 대화를 요청했고, 결국 유감표명을 했다. 사진=통일부

 

 

실제 북한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3월에 천안함을 폭침한 데 이어 같은 해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을 벌였다. 당시는 지방선거(2010년 6월), 재·보궐 선거(2011년 4월) 등 중요 선거가 있는 시기였다. 이에 맞춰 북한은 연쇄 도발을 벌인 것이다. 도발을 통해 한국 내에 ‘전쟁이냐, 평화냐’ 하는 논란을 일으켰고, 여론을 흔들었다.

북한 김여정은 1월 3일 담화를 내고 윤 대통령의 신년사에 대해 “당장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고 안보 불안이 대한민국의 일상사가 된 것은 전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공로”라고 했다. 총선을 앞두고 남남 갈등 전략에 시동을 걸었다는 분석이다.

― 북한의 도발 방식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우리가 즉각 대응하기 어려운 ‘회색 지대’를 노리는 전술을 구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목함지뢰 도발 같은 것이지요. 심증으론 북한의 소행이 분명한데, 발뺌하면 즉각 대응하기 애매해집니다. 다만 우리 국방부는 이 같은 경우도 철저하게 대비하는 것으로 압니다.”

― 과거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을 단번에 정리한 경험이 있습니다.
“목함지뢰 사건이 있고 16일 뒤 북한이 우리 영토에 고사포 3발을 발사했습니다. 우리는 이보다 약 10배 많은 고폭탄 29발을 날렸습니다. 북한은 전면전(全面戰) 불사(不辭)까지 외쳤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저는 북한 협상단에 단호하게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결국 북한은 유감을 표명했지요. 북한의 의미 있는 사과는 당시가 처음이었습니다.”

― 당시 모델을 항상 염두에 둬야겠습니다.
“군사 문제가 정치적 문제로 옮겨가 성공적으로 종결된 사례입니다.”

― 북한 문제를 다루다 보면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논란이 생길 것 같은데요.
“윤 대통령이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했지 않습니까. 평화는 9·19 군사 합의와 북한의 선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전쟁을 두려워하는 국민은 역사적으로 적국의 노예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확고한 대비 태세를 갖춰 북한이 감히 도발할 생각조차 못 하도록 해야 합니다.”

“北, 9·19 합의 중에도 3600회 위반”

― 북한이 9·19 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했는데요.
“9·19 합의가 있다고 북한의 우발적 도발을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보세요. 북한은 최근 5년간 해안포 실사격, 포문 위협 개방 등 약 3600회 9·19 합의를 위반하면서 마음대로 행동했습니다.”

9·19 군사합의는 문재인 정부 당시인 지난 2018년,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이뤄진 일종의 남북 평화 협정이다. 윤석열 정부가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3차 발사에 따른 대응 조치로 지난해 11월 22일 9·19 군사합의 중 ‘비행금지구역 설정’(제1조 3항)의 효력을 정지하자, 이튿날 9·19 군사합의 전면 파기를 선언했고 이후 파기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는 행태를 지속하고 있다.

― 국방혁신을 이루고자 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얼마나 됩니까.
“대단히 강합니다. 사실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앞장서 국방혁신을 추진하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혁신 대상이 제 살을 도려내야 하는 희생을 감당해야 하는 만큼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경우도 그간 국방부가 주도해서 혁신을 이루려 했으나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윤 대통령은 국방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킨 뒤 위원장을 맡아 혁신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역대 대통령 중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윤 대통령처럼 국방혁신 분야에 관심을 갖고 직접 주도하는 대통령은 없었습니다.”

― 대통령이 앞장서니 난제들이 해결되는 모양이군요.
“국방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타 부처와의 협력이 필수입니다. 혁신이 국방부 중심으로 이루어지면 현실적으로 타 부처의 도움을 받기 어렵지요.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께서 혁신위원들과 토론, 소통을 거쳐 타 부처에 협조를 구하니 국방혁신 관련 일이 신속하게 풀려나갈 수 있는 겁니다. 대통령의 의지가 강한 이 시기야말로 국방혁신이 성공할 수 있는 적기라고 봅니다. 지금 국방혁신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안보후진국으로 전락한다는 위기감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분골쇄신의 심정으로 국방혁신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AI 기반 과학기술 강군 육성”

▲한국형 3축체계

 

― 국방혁신위원회 회의 결과를 보면 여러 성과가 눈에 띕니다.
“앞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도 많지만, 지금까지는 한국형 3축체계 실행력 제고를 위해 국방재원 재조정, 드론작전사령부 창설, 기반체계 조기 구축, 국방획득체계의 획기적 개선 등의 성과를 이뤘습니다.”

― 윤석열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국방혁신 4.0’의 핵심 어젠다는 무엇입니까.
“‘AI 기반 과학기술 강군 육성’입니다.”

― 좀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전쟁에서 이기는 AI 기반 과학기술 강군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를 위해 4차 산업혁명 첨단 과학기술을 군에 적극적으로 접목할 계획입니다. 지금의 국제 정세를 보면 미중 패권 경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습니다. 미국 대외 전략의 최우선순위 역시 중국에 대한 견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도 고도화되고 있고요. 반면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병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군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첨단 과학기술을 군에 적용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 국방혁신위원회 3차 회의에서 한국형 3축(軸)체계의 기반체계를 조기 구축하기로 했습니다. 한국형 3축체계가 무엇입니까.
“한국형 3축체계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공세적 방어체계로 킬 체인(Kill Chain), 한국형 미사일 방어(KAMD), 대량응징보복(KMPR)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 ‘킬 체인’, 용어부터가 뭔가 있어 보입니다.
“킬 체인은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 징후를 탐지·추적하여 공격 징후가 보이면, 발사 전에 북핵·미사일을 선제적(先制的)으로 제거하는 공격체계입니다. 인공위성·조기경보레이더·공중감시자산 등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 징후를 탐지하고 추적해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전술 지대지 유도무기·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등으로 타격하는 것을 뜻합니다.”

― KAMD는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까요.
“네. KAMD는 북한의 다양한 미사일을 탐지·요격하는 체계입니다. 저고도·중고도·고고도 복합 다층 방어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향후 탄도탄 추적 능력을 갖춘 전력을 전력화해 탄도탄에 대한 중첩감시 능력을 강화할 예정입니다. 또 장사정포요격체계·M-SAM-Ⅲ(사거리와 요격률이 크게 향상된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L-SAM-Ⅱ(한국형 사드인 장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등을 개발해 복합·다층 방어체계를 구축할 계획입니다.”

― KAMD는 방어체계인데, 이스라엘 아이언 돔이 연상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초기,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아이언돔은 무력화됐지요.
“하마스 측에서 미사일을 약 5000발 쐈다고 주장하는데, 만약 아이언돔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측 피해는 훨씬 컸을 겁니다. 다만 이스라엘의 아이언돔은 하마스의 로켓과 같은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체계입니다. 반면 우리의 KAMD는 북한의 저·중·고고도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체계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결과를 KAMD 성능 평가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 군은 이스라엘의 아이언돔보다 효율성 높은 방식으로 KAMD에 장사정포요격체계(C-RAM)를 보강, 오는 2020년대 후반까지 실전 배치할 방침입니다. 이 체계가 완성되면 우리 군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은 한층 강화될 것입니다.”

“김정은의 도발이야말로 소탐대실”

▲북한이 포격 도발을 일으킨 지난 1월 5일 서북도서부대 K-9자주포가 백령도에서 해상사격훈련을 실시했다. 사진=국방부

 

― 언론 보도를 보니 평양 주석궁을 초토화할 ‘괴물 미사일’ 현무-5가 KMPR의 핵심 수단으로 꼽히더군요.
“KMPR은 북한이 핵이나 대량 살상 무기(WMD)를 사용할 시 압도적·전략적 타격 능력으로 응징 보복하는 체계입니다. 고위력 탄도미사일·F-35A 스텔스기·잠수함 및 특수부대 등을 활용해 북한 종심 지역 및 지도부를 원점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할 것입니다. 아울러 확실한 응징 보복을 위해 고위력·초정밀·장거리 미사일을 지속적으로 개발·확보하고 있습니다. ‘현무-5’도 그중 하나지요.”

― 김정은이 겁 좀 먹겠습니다.
“김정은이 도발한다면 지금 누리는 호사스러운 생활과 3대 세습 권력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점을 각인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김정은이 도발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소탐대실(小貪大失)하는 것이지요. 신원식 장관도 ‘북한의 핵개발과 잇단 도발은 고립과 제재를 강화하는 죽음의 독배(毒杯)라며 김정은도 이를 깨달아야 한다’고 강력한 응징 의지를 표현하지 않았습니까.”

― ‘전투형 강군’으로 거듭나기 위해 강인한 정신 전력과 높은 수준의 훈련을 강조했는데, 한국형 3축체계 관련 훈련도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지난해 우리 군은 한국군 단독으로 킬 체인 운용 연습을 시행했습니다. 합동참모본부에서 개최한 도상훈련(TTX)이었습니다. 올해는 한미 간 민감정보 공유를 위한 보안절차와 핵 운용 관련 협의체계를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도상훈련은 물론 북한 핵 공격 시뮬레이션(TTS), TTX 등을 강화할 예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 한국형 3축체계를 가능케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지요.
“우선순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감시 정찰 능력이 먼저 갖춰져야 합니다. 감시 정찰 능력이 확보되면 적 기습을 방지하고, 위협을 차단함과 동시에 지휘 결심 보장 및 실시간 타격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2월 초 우리 군은 군 정찰위성 1호와 고체연료추진 우주 발사체 발사에 성공하면서 북핵·미사일 위협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독자적 감시 정찰 능력 확보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올해 역시 추가 위성체계를 전력화하고 정보자산을 확보해 한반도 전역에 대한 감시 정찰 및 고해상 탐지 능력을 강화해나갈 예정입니다.”

― 취재를 해보니 군사위성 발사의 경우, 발사 권한이 국방부가 아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있던데요.
“네. 하지만 지난 국방혁신위 3차 회의에서 군 발사체 발사 권한 및 군 전용 발사장을 국방부가 확보하는 것으로 윤 대통령이 결단을 내렸습니다.”

“김정은 숨어 있는 지점 타격 가능”

 국방부가 최근 발표한 ‘2024~ 2028년 국방중기계획’에 따르면 군은 오는 2030년을 전후로 약 40기의 초소형 정찰위성을 궤도에 올릴 계획이다.

― 북한은 우리보다 10여 일 빠른 2023년 11월 21일 밤 정찰위성 3차 발사를 통해 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남북이 우주의 군사적 활용을 놓고 경쟁에 불이 붙은 형국입니다.
“윤석열 정부 임기 내 총 5기의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할 계획입니다. 추가 발사 위성은 기상에 관계없이 전천후(全天候) 운용이 가능한 합성개구(合成開口)레이더(SAR·Synthetic-Aperture Radar) 위성입니다. 군사정찰위성 5기가 모두 발사되면 우리 군은 근실시간 한반도 및 주변 지역 감시 능력을 확보하게 됩니다. 감시 정찰 초소형위성체계도 2030년 목표로 40기가 전력화할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김정은의 이동을 식별할 수 있고, 필요시 김정은이 숨어 있는 지점을 타격할 수도 있습니다. 우주 작전 수행과 군사 작전을 지원할 수 있도록 AI 등 첨단 과학기술 기반의 전력을 확충해나갈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우주 발사체와 위성으로 구분해 봤을 때 정찰위성 등 위성 분야와 고체로켓(발사체) 분야는 아직 우리가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고 평가한다. 우선 해상도 등 정찰위성의 감시 정찰 능력에서 차이가 크다. 북한은 정찰위성(만리경1호)이 주한 미군기지는 물론 미 워싱턴과 본토 해군기지 등의 촬영에 성공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진을 공개하지 않아 실제 성능은 미지수다. 군 당국은 북 정찰위성이 3m 이상의 해상도를 가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해상도 3m는 수백km 상공에서 가로·세로 3m 크기의 물체를 하나의 점으로 식별할 수 있다는 의미로 군사적 효용성은 크게 떨어진다. 반면 우리 정찰위성 1호기의 해상도는 30cm 미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수백km 상공에서 대북 감시 정찰 최우선 표적인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 등 미사일 이동식 발사대는 물론 달리는 차량의 종류까지 식별할 수 있다.


“투명성 중심에서 효율성 중심으로”

― 윤 대통령은 “전력 획득 절차를 대폭 단축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군의 무기 전력화는 평균 14년이나 소요됩니다. 기존의 투명성 중심에서 효율성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합니다. 적의 위협에 즉시 대응하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죠.”

― 획득 절차가 지연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국방 예산 확보에 따른 문제점도 있습니다만 방위사업 비리를 예방한다는 명분으로 지나치게 많은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기체계를 연구 개발하기 위해서는 소요결정부터 소요검증, 사업타당성 조사, 시험평가 등 100단계 이상 세부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 과정을 모두 통과한 ‘100점짜리 무기’만 실전에 배치될 수 있습니다. 99점짜리도 안 됩니다. 투명성만을 강조하다 보니 소요부터 배치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무인기 개발의 경우 튀르키예는 우리보다 10년 늦게 시작했는데, 지금은 10년 정도 앞서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안보는 속도가 중요하다”며 “안보를 위한 전력의 획득은 통상적인 정부 조달 절차와 엄격히 차별화되어 속도감 있게 획득 절차가 추진돼야 한다. 공정한 접근 기회, 부패 소지 방지 등을 고려한 일반적 절차를 획득 전력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뒤늦게 철 지난 무기를 배치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것은 재정 낭비일 뿐 아니라 안보 무능”이라며 “군의 소요 제기 이후 가장 이른 시일 안에 실전 배치가 될 수 있도록 불필요한 절차를 과감하게 혁파하고 효율화해야 한다”고 했다.

김 부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직접 앞장서는 덕에 무기 획득 프로세스가 터무니없이 오래 걸리는 투명성 중심에서, 효율성 중심으로 변화해 획득 절차 지연이 해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국민에게서 성원받아야 추동력 생겨”

▲지난 1월 5일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합참 전투통제실에서 우리 군 서북도서부대의 해상사격훈련을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사진=국방부

 

― 올해 전략사령부가 창설될 예정입니다. 어떤 역할을 하게 됩니까.
“전략사령부는 북핵 미사일 위협을 보다 능동적으로 억제 대응하기 위해 합동성 차원에서 우리 군의 전략 자산 통합, 한국형 3축체계의 효과적인 지휘 통제와 전력 발전을 주도할 것입니다. 이에 더해 우리 군의 우주·사이버·전자기 분야 역량도 통합 운영할 계획입니다. 또한 한미연합방위체계 내에서 미 전략사령부와 협조체계를 유지할 것입니다.”

― ‘국방혁신 4.0’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뒷받침돼야 할까요.
“첫째, 지금처럼 국군 통수권자의 관심과 의지가 지속해야 합니다. 그래야 범정부 차원의 협력과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둘째, 군 지도부가 미래 안보 환경과 전쟁 양상을 냉철하게 분석, 국방혁신 전략과 전력 우선순위 설정을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성과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혁신은 희생과 변화가 요구될 수밖에 없습니다. 군 스스로 혁신의 노력이 전제되지 않는, 외부 압력에 의한 혁신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군 내외부와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에게서 성원을 받고 추동력이 생깁니다.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내면 혁신 작업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무형전투력은 국방혁신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입니다. 전투력 발휘에서 위협적인 분야는 필요조건이고, 무형전력 분야는 충분조건입니다. 무형전력 분야의 경우 전투 의지 한 부문에만 한정하지 않고 정신전력, 교육훈련, 간부 획득, 장병 복지 등의 혁신도 이뤄내야 한다고 봅니다.”⊙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woosuk@chosun.com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02.05 줄줄 새는 K방산 기밀, 기술 방호벽 더 높이 세워야

▲한국·인니 국기 새겨진 KF-21 -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공동 개발한 KF-21 1호기가 태극기와 인도네시아 국기를 나란히 새긴 모습으로 경남 사천시 비행장에 계류해 있다. /뉴스1

 

한국이 인도네시아와 공동 개발 중인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 기밀 자료를 인도네시아 연구원이 빼돌리다 적발됐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파견된 인도네시아 국영기업 소속 연구원이 기밀 정보가 담긴 USB를 외부 반출하려다 붙잡힌 것이다. KF-21 사업은 인도네시아가 일부 기술을 이전받고 자국에서 48대를 생산하는 조건으로 개발비의 20%인 1조6000억원을 부담하는 사업이지만 인도네시아는 이 중 1조원을 미납 중이다. 비용 분담은 안 하면서 기술만 빼가려 했다는 의혹이 나온다.

 

지난 2022년엔 한국 잠수함 설계도가 통째로 대만에 유출됐다는 의혹이 불거져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해군 대령 출신이 대표인 국내 컨설팅 업체가 대만의 첫 독자 잠수함을 진수한 대만국제조선공사와 생산 컨설팅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법원이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했지만 의혹은 풀리지 않았다. 2020년엔 신무기 연구·개발을 주관하는 국방과학연구소의 퇴직 연구원들이 첨단 로켓 ‘비궁’ 등 각종 무기 기밀 기술을 대거 유출한 사건도 있었다. 이들은 인공지능·무인 비행체 등 기밀 연구자료 60여 만 건을 USB에 담아 국외 유출했다. 적발되지 않고 외국에 넘어간 정보도 수두룩할 것이다.

 

첨단 무기는 국가가 최소 10년 이상 꾸준히 지원하고, 최소한의 생산 물량도 보장해야 개발이 가능한 품목이다. 한국 방산은 국가의 전폭적 지원과 민관 협력체계 덕에 눈부신 발전을 거듭, K2 전차, K9 자주포, FA-50 전투기, 잠수함, 천궁·현무 미사일 등 세계적 수준의 무기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첨단 성능에다 합리적 가격, 납기를 맞추는 생산 능력 등 차별화된 경쟁력 덕분에 폴란드에 30조원 수출 계약을 체결하는 등 세계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한국이 방산 선진국 대열에 올라가면서 KF-21 기밀 자료 유출 같은 사건이 더욱 빈발할 수 있다. 정부와 정보 당국은 K방산 기술이 유출돼 국익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퇴직자·외국인에 의한 기밀 유출 방지 대책을 더욱 면밀히 세워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2.05 북한은 전쟁을 결심했는가?

김정은의 지금 무기로는
한미의 보복, 감당 못 해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고 있어
물론 안심·환상은 금물
다가오는 양국 선거에서
자신의 존재감 더욱 드러내려
재래식 도발 더 자주 시도할 것

 지난 몇 주간 언론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북한이 외교를 포기하고 한반도에서 전쟁을 준비하기로 결정했다는 추측이 많이 나왔다. 나는 2024년 북한을 낙관적으로 전망하지는 않지만, 다섯 가지 이유 때문에 미국이나 한국 정부가 이런 평가를 믿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한다.

 

첫째, 전면전까지 가지 않고도 김정은이 할 만한 도발의 단계가 많다. 북한에 대한 미국 정보기관들의 공통적 견해를 담은 ‘국가정보판단서’가 최근 기밀 해제됐는데, 이를 보면 북한 정권이 다양한 호전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여기에는 국경 지대나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의 재래식 도발이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전쟁의 제1성으로 볼 수는 없다. (급속한 확전을 막으려면 그렇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둘째, 김정은이 빠른 속도로 무기를 시험·개발하고 있지만, 한미가 도발에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지 그가 알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런 무기들이 한미의 보복을 억제할 수 있다고는 아직 완전히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김정은이 다르게 생각한다면 심각한 망상에 빠져 있는 것이다.

 

셋째, 지난 8월 캠프 데이비드 3국 정상회담 이후 더 빠르고 다양해진 한·미·일 군사훈련이 보여준 역량과 군사적 대비태세는 김 위원장이 동맹이 전쟁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억지할 수 있다는 오판이나 잘못된 기대를 하지 않도록 보장하기에 충분하다.

 

넷째, 평양의 레토릭에 상응하는 현장 활동이 보이지 않는다. 북한 정권이 선전하는 내용을 주의 깊게 듣고 보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군의 기획자들은 전쟁 목적의 동원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다. 북한이 재래식 전쟁이나 핵전쟁을 수행할 정도의 준비를 한다면, 미국이나 동맹국이 못 볼 리가 없다. 작은 예를 하나 들자면, 만약 김 위원장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하도록 수백만 발의 탄약을 판매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섯째,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전쟁에 나설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나리오로 김 위원장이 전쟁을 하지 않으면 죽는(fight or die) 상황을 제시한다. 북한은 현재 그렇게 코너에 몰려 있지 않을 뿐더러 트럼프와의 정상회담 직후보다 훨씬 더 나은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노이 회담 실패와 그에 이은 코로나19로 인한 3년간의 봉쇄로 김 위원장은 고립되고 굴욕을 당했다. 그러나 이후 그는 이득이 되는 러시아와의 새로운 관계 그리고 중국과의 풍부한 무역으로 봉쇄에서 벗어났다.

 

이것이 우리가 북한과의 전쟁에 대한 우려를 떨쳐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인가? 절대 그렇지는 않다. 북한의 호전적 행동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2024년은 미국과 한국에 매우 어려운 해가 될 것이다. 지난 두 번의 미국 행정부에 걸쳐 북한의 도발은 추세적으로 증가해 왔다. 최근 CSIS 한국 석좌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부터 바이든 행정부까지 북한의 호전적 행위는 총 두 배 이상 늘었다. 이처럼 (도발이) 증가한 것은 무기 개발과 세밀한 보완을 위한 시험의 가속화 때문도 있지만 완성된 무기의 작전 연습과도 관련이 있다. 같은 CSIS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미국의 주요 선거(대통령 선거나 총선)가 있는 해에 항상 군사 도발을 고조시킨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더욱 그랬다. 김정일 집권하의 북한은 미국 선거 기간에 평균 4회 도발했다. 김정은 시대에는 이것이 3배 이상 늘어났다.

 

외교적 상황도 북한의 호전성 수준에 영향을 미친다. 지난 30년 동안 북한은 미국과 활발한 외교를 하고 있지 않을 때마다 늘 더 많은 도발과 군사 시위를 했다. 미국과 양자 또는 다자 협상이 진행되면 북한의 호전성이 감소하는 것을 볼 수 있다(그러나 남북 외교에는 동일한 상관관계가 적용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올봄 곧 있을 한미 연례 군사훈련은 북한의 대응을 이끌어낼 것이 확실하다. 이러한 모든 요인은 북한의 행동이 매우 나쁜 해가 될 것을 시사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과 외교 채널을 열려고 20여 차례에 걸쳐 진심 어린 노력을 했다고 알려져 있는 만큼 이는 바이든 행정부 잘못이 아니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경제제재를 해제하고 북한의 비핵화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워싱턴의 정책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현상 유지를 지향하는 상대방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자면 그것이 올바른 전략일 수도 있지만, 김정은은 타협안에 만족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그는 한반도의 세력균형을 변화시키고 미국의 안보 공약을 약화시키려는 수정주의적 목표를 갖고 있으며, 이 때문에 미국의 일방적 양보는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대한 굴복이나 다름없게 될 것이다. 이는 또한 바이든이 양자 및 (일본과의) 삼자 동맹 연대 구축, 워싱턴 선언, 미국의 핵 억제 공약을 강화하기 위한 핵 협의체 구축 등에 기울인 모든 노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한국에 전쟁이 임박한 것은 아니지만, 2024년이 평온한 해가 될 것이라는 환상은 없어야 한다. 2017년 ‘화염과 분노’의 속편으로서, 김정은은 미국과 한국의 의지를 모두 시험할 것이고, 다가오는 양국 선거에서 자신이 느껴지도록 만들 것이다.

조선일보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

 

02-05 “北 비핵화 불가능” … 작년 77.6% → 올해 91.0%

최종현학술원·갤럽 여론조사
“韓 독자 핵개발 필요” 72.8%

최종현학술원이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불가능하다고 보는 응답자가 9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반도 유사시 미국이 핵 억지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는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60.8%였다. 북핵 대응책으로 한국의 독자적 핵 개발 필요성이 있다는 인식은 72.8%로 집계돼 1년 전과 같이 높은 수준을 보였다.

학술원은 5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런 내용이 포함된 ‘제2차 북핵 위기와 안보상황 인식’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불가능하다’는 응답은 전체의 91.0%로 지난해 1차 조사 당시 응답률(77.6%)을 웃돌았다. 미국이 한반도 유사시 핵 억지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는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60.8%였다. 1년 전 조사에서 미국의 핵 억지력 행사에 대한 긍정 응답이 51.3%였던 점을 고려하면 신뢰도가 떨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의 독자적 핵 개발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72.8%로 지난해 조사 결과인 76.6%에 이어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북핵에 대응할 구체적인 정책으로는 한국의 ‘핵 잠재력 강화(20.6%)’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식 핵 공유와 유사한 미국과 한국의 핵 공유(20.4%)’ ‘한국형 3축 체계 강화(18.7%)’ ‘한반도에 미국 전술 핵무기 재배치(16.2%)’ 등이 거론됐다. 이번 조사는 학술원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성인 1043명에 일대일 면접조사 방식(95% 신뢰 수준·표본오차 ±3.0%포인트)으로 실시했다.
김유진 기자 klug@munhwa.com

 
 

02-06 종북·이적 차단할 인프라 강화할 때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몸은 서울에 있지만, 마음은 항상 평양에 있다. 대한민국의 법질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지만 평양의 방침에는 군말 없이 순응한다. 마치 1945년 해방 이후 남한의 정국을 연상케 한다. 당시 박헌영은 평양의 김일성과 조선공산당 주도권 경쟁을 벌이며 소련 군정의 지지를 얻는 데 혈안이었다. 서울의 법질서는 박헌영의 무장봉기와 테러 사주로 혼란의 연속이었다. 2024년 서울에서 79년 전 어두운 정국이 재현되고 있다.

향북(向北) 성향의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가 오는 17일 총회를 열어 조직 해산을 논의한단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도 향후 노선 문제를 토론했다. 친북 단체들의 이런 움직임은 김정은의 대남 노선 전환 때문이다. 김정은은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대한민국 것들과는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 “북남관계는 적대적 두 국가관계”라며 고려연방제 통일 방안과 조국통일 3대 헌장을 폐기했다. 북한 당국이 범민련 북측본부, 6·15 북측위 등을 정리한다고 발표하자 국내 친북 단체들이 발 빠르게 보조를 맞춘다.

범민련은 북한이 대남 공작을 위해 1990년 남·북·해외의 시민 단체들을 베를린에 소집해 결성한 친북·반한(反韓) 통일전선 조직이다. 남측본부는 노동당에서 국내 친북 운동에 대한 지도권을 받아 종북 단체 수장 역할을 해왔다.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며 반미·반정부 활동을 주도했다. 2012년엔 부의장이 무단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님은 민족의 어버이”라고 했다. 준비위 시절이던 1992년을 시작으로 1997년, 2012년 등 법원에서 세 차례 이적 단체 판결을 받고도 해산하지 않았다. 간판을 바꾸는 방식으로 조직을 보전한 다른 이적단체와 달리 범민련은 김일성이 직접 이름을 지어줬다며 개명(改名)도 하지 않았었다.

향후 평양의 구체적인 지령이 이들의 활동 방향을 정할 것이다. 우선, 통일전쟁론 등 1단계로 북한의 2국가론을 추종하는 선전전에 나설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통일정책이 잘못됐다는 반정부 투쟁에 격렬하게 나설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무력화하며 형식적으로는 평화통일운동이라고 홍보한다. 그러면서 감성형 통일전선전술로 MZ세대 등을 공략할 것이다. 2단계로 ‘이석기식 내란음모’ 방식을 내세워 무장투쟁도 불사한다. 김정은이 남한 영토의 점령, 평정 및 수복의 헌법 명기를 선언한 만큼 투쟁 방식도 과거 운동권들의 공공건물 점거 사태 등을 재연할 수 있다.

김정은의 2국가론과 남측 종북 단체의 활동 방향 변경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종북 본색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적(利敵) 행태를 파악할 기초 인프라마저 무너져 버렸다. 지난 1월 1일부터 국가정보원의 간첩 수사권이 경찰에 이관됐다. 63년간 축적한 간첩 수사 역량은 하루아침에 전수되지 않는다. ‘스테가노그래피’와 같은 고도화된 암호는 휴민트(인적정보)를 통해서만 해독할 수 있다.

평양은 간첩 수사 이관 이후에 대놓고 국가보안법 폐지와 주한미군 철수 공작을 전개할 것이다. 국내 좌경 세력들은 평양의 지시를 받아 더 극악하게 움직일 것이다. 해방 정국 같은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평양의 공세적인 통일전선전술을 차단하는 보완책이 절박하다.

 

문화일보

 

02.07 6·25 이후 한반도 가장 위험? 2024년과 1950년은 다르다

美 일부 전문가, 김정은의 과격 발언 놓고 전쟁 위기 심각 주장
6·25 때와 달리 한국 군사력 세계 5위… 강력한 한미 동맹도 존재
北 전면전 수행할 상황 안 돼… 서해 도서 점령 등은 도발 가능성

 ▲일러스트=박상훈

 

새해 들어 김정은의 광기(狂氣)에 찬 발언으로 한반도의 긴장감이 높아졌다. 대중 강연 때마다 혹시 전쟁 나는 것 아니냐는 질문도 심심찮게 나온다. 여기에 더해 미국 미들베리 국제연구소의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시그프리드 헤커 교수는 “한반도 상황이 1950년 6월 초반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 국무부 북핵 특사로 활동했던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명예교수도 “2024년 동북아시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 전문가들의 공통점은 과거 북한과의 협상 경험이다. 반면 2007년 이후 10년 동안 평양에서 근무한 셰퍼 전 독일 대사는 “1950년 이후 한반도 전쟁 위기가 가장 심각하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북한의 강경 태도는 오래된 협상 패턴”이라고 지적했다. 전쟁 위기론과 협상 패턴론이 대립하고 있다. 과연 2024년 갑진년은 1950년 경인년만큼 혹은 더 위험한지 따져보자.

 

우선 남북한의 군사력부터 비교해보자. 1950년 3월 31일부터 4주간 김일성은 박헌영, 홍명희 등과 함께 모스크바에서 스탈린에게 최종 남침 계획을 승인받았다. 모스크바의 러시아 연방 대통령 문서보관소에는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남침 승인을 집요하게 요청하는 전보 48통이 보관되어 있다(웨더즈비 ‘다시 본 한국전쟁’ 1999). 당시 최강의 소련제 T-34 탱크 242대 지원도 확약받았다. 북한군은 야포 726문, 전투기 211대와 함께 각종 장비를 지원받아 기갑 전력을 증강하였다. 만주에서 국공(國共) 내전에 참전했던 조선족 병력 4만여 명 등 총병력 20만명이 전차를 앞세워 전면 남침을 감행하였다.

 

반면 남한은 국토 방위 전력을 전혀 갖추지 못하였다. 당시 남북한의 전력은 완전 비대칭이었다. 해방 후 미국의 대한(對韓) 군사 원조 정책(1948~1950)에 따라 10만명이 안 되는 국군의 기능은 ‘국내 치안 유지’였다. 전차가 단 1대도 없었고, 미국이 원조해 준 M8 장갑차 27대와 M2/M3 병력 수송용 장갑차 24대가 기갑 연대에 배치되어 있었다. 남침 사흘 만에 북한군 주력 105 전차 부대가 서울을 점령하였다. 무기와 병력 면에서 중과부적이었고 불가항력이었다.

 

 ▲그래픽=박상훈

 

김일성은 1946년 3월 토지개혁으로 군량미를 확보하면서 1948년부터 남침을 단계적으로 준비하였다. 1949년부터는 모스크바를 뻔질나게 드나들며 스탈린의 재가를 채근하였다. 1950년 1월 미국 국무장관 애치슨의 한반도 방위 제외 선언으로 남침은 시간문제였다. 미군 참전 시 중공(中共) 마오쩌둥의 참전 약속 확보만이 최종 변수로 남았다. 김일성은 5월 25일 북경에서 인민해방군의 참전을 확약받았다. 평양에 대한 중·소의 완벽한 백업이 형성되었다.

 

당시 서울의 시국은 아수라장이었다. 일부는 서울에서 평양의 김일성과 연락하며 남한 정국을 흔들었다. 남로당 박헌영은 무장 봉기와 테러를 선동하였다. 신생 민주주의 국가가 감당하기 어려운 혼란이었다. 해방 후 정국 혼란 속에서 국군도 체계가 잡히지 않았다. 남침 후 4개월이 지나서야 전차의 필요성을 절감한 국군은 미군의 M36 대전차 6대를 교육용으로 인수받아 전차 부대를 창설하였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남북한의 군사력은 균형을 이루어 일진일퇴를 거듭하였다. 피를 흘리며 미군의 군사 교리에 따라 군령 체계를 구축하고 적을 격퇴할 각종 부대를 창설했다. 1951년 6월 이후 정전협정 체결까지 2년간은 38선을 중심으로 한 고지전(hill battle)이었다.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 중령 페렌 바크는 “힘을 시험한 전쟁이 아니라 의지를 시험한 전쟁이었다”고 했다(‘이런 전쟁’, 1963). 그는 공산주의자들은 우세한 군사력으로 남한을 적화하려는 야망이 강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훈련받지 못하고 기강이 부족한 한국군과 미군의 피해가 적지 않았다고 한탄하고, 군(軍)은 내일 축구 시합에 나가는 선수들처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나마 미국을 비롯한 자유주의 세계가 지상군을 파견하여 즉각 대응한 것은 대한민국을 수호하려는 신의 가호였다.

 

전쟁 발발 후 70년이 지나면서 남북한 간에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다. 미국 군사력 평가 업체 글로벌파이어파워(GFP)의 2024년 세계 군사력 평가 순위에서 한국은 5위에 올랐다. 반면 북한은 36위를 기록했다. 국방 예산 항목에서 한국은 약 53조원으로 11위, 북한은 4조6000억원으로 58위다. 여기까지는 남한의 군사력이 북한을 압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평가는 북한의 핵무기를 포함하지 않았다. 재래식 무기에서는 남한이 앞서지만 핵무기를 포함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핵무기의 비대칭성(asymmetric)은 재래식 무기의 우세를 무력화한다. 한미 동맹의 확장 억제 전략으로 북한군의 핵 공격을 방어해야 하는 과제는 우리 안보의 심각한 도전이다.

 

전쟁 수행 능력에서도 남한의 경제력은 북한을 압도한다. 최근 김정은은 묘향산에서 북한 지도부에게 지방 경제의 고난과 기본적인 물자 부족 등을 질책했다. 군수산업에 주력하고 인민 경제를 경시한 결과이다. 북한은 1946년 토지개혁 결과로 6·25 남침 직전 식량 생산량이 해방 당시와 비교해서 2배에 달하는 240만톤에 도달했다. 전쟁 수행 능력이 구비된 1950년과 기초 생활 물자도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는 2024년은 상황이 다르다.

 

다만 작금의 국내 정치 분열은 해방 정국 당시 못지않게 우려스럽다. 눈에 안 보이는 안보(安保)에서 정치권의 분열은 국가의 방어능력을 약화시킨다. 김정은은 남한 영토 점령, 수복의 헌법 명기를 선언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처럼 기습 공격에 그치지 않고 서해 취약 도서를 일시적으로 점령하는 비상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서해 지도를 펼쳐 놓고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쟁은 억지(deterrence)가 최우선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략이 상책(上策)이다. 다만 ‘싸울 수밖에 없다면 이겨야 한다’는 것이 클라우제비츠 전쟁론의 핵심이다. 평양은 모스크바와 베이징을 한 묶음으로 엮어서 한미일과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를 형성하고자 한다. 훈련된 군사력을 바탕으로 스마트 외교를 추진한다면 적은 ‘치명적 타격’은 물론 국지적 도발도 감행하지 못할 것이다.

조선일보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02.09 간첩단 피고인들의 5번째 ‘판사 기피’ 즉각 기각, 처음부터 그랬어야

 간첩단 ‘충북동지회’ 사건 피고인들이 5번째로 낸 법관 기피 신청을 재판부가 “소송 지연 목적이 명백하다”며 판단을 다른 재판부로 넘기지 않고 즉각 기각했다. 1심 선고 날짜도 2월 법관 인사가 나기 직전으로 잡았다.

 

판결을 다른 재판부에 떠넘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피고인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2017년부터 북한 공작원 지령을 받아 지하 조직을 결성한 뒤 지역 인사를 포섭하고 국가 기밀을 탐지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로서도 이런 중요 재판을 더는 미뤄선 안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 사건 피고인들은 그동안 위헌 심판 신청, 법관 기피 신청 등 온갖 재판 지연책을 동원해왔다. 피고인 4명중 3명이 뭉쳐 3차례 법관 기피 신청을 내고, 나머지 1명이 따로 기피 신청을 내는 ‘쪼개기 신청’ 수법까지 썼다. 신청이 기각되면 항고·재항고를 반복했다. 그 사이 재판은 중단됐고 피고인들은 구속 기간 만료와 보석 등으로 다 석방됐다. 도저히 재판이라고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현행법엔 재판 지연 의도가 명백한 법관 기피 신청은 해당 재판부가 바로 기각하고 재판을 진행할 수 있게 돼 있다. 이 사건 피고인들이 낸 신청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재판부가 판단을 다른 재판부로 넘기고, 그 판단까지 늦어지면서 재판이 심각하게 지연된 것이다. 사건을 맡은 재판부가 처음부터 신청을 바로 기각했다면 이 상황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간첩단 사건도 마찬가지다. 피고인들은 법관 기피 신청과 국민참여재판 신청 등 온갖 수단 동원해 재판을 지연시키면서 이미 다 풀려났고, 1심 재판도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제주 간첩단 사건 피고인들은 재판 한번 안 받고 다 석방됐다. 판사들이 각종 신청에 대한 결정을 미루고 재판도 형식적으로 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얼마 전엔 제주 간첩단 사건 피고인들이 기소된 지 9개월 만에 열린 첫 재판에서 25분 만에 판사 허가도 받지 않고 무단 퇴정하는 일도 있었다. 감치 명령을 내릴 수 있지만 판사는 그냥 지켜봤다. 조금만 정치적 부담이 있는 재판이면 판사들이 재판 시늉만 내다가 인사 때 ‘도망’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재판 파행을 막고 사법 정의를 세우려면 판사들이 책임감을 갖고 단호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2.09 김정은의 ‘헤어질 결심’은 자기 방어적 패배 선언일 뿐

‘두 국가’ 선언한 북한의 속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연말과 연초 회의 석상에서 터뜨린 한국과의 ‘헤어질 결심’ 및 전쟁 불사 발언의 파장이 크다. 지난해 12월 말에 개최된 노동당 전원회의(8기 9차)와 지난달 15일 최고인민회의(14기 10차) 시정 연설을 통해 김정은은 남북 관계가 더는 동족 관계가 아닌 전쟁 중인 ‘두 국가’임을 선언했다. 한국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한반도의 전 영토를 점령하기 위한 “대사변(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북한 전 주민에 선언했다. 미국 내 일부 전문가는 김정은의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해 6·25 전쟁 이후 처음으로 북한 지도자가 실제 전쟁을 결심했다면서 올해 동북아 핵전쟁 가능성을 우려했다.

전쟁 불사 언급해 긴장 높이지만
한미 확장억제로 핵 효용 낮아져
미국 의식 중국은 북·러 선긋기
군 아니라 경제 우선만이 살길

국내 통일 단체들은 김정은의 발언에 당황하고 놀랐다. 이들은 김정은의 두 국가론이 남북관계를 파탄시키는 반통일적, 반민족적 행태라면서 북한에 정책 전환을 주문하기도 했다. 동시에 윤석열 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을 남북 긴장 고조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북한이 김일성 시기부터 내려온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포기한 ‘김정은식 독립선언’은 결론적으로 자기방어적 패배 선언이다. 김정은이 자신감에 넘쳐, 이른바 강국 콤플렉스에 따라 공격적으로 노선을 전환했다는 주장을 자세히 뜯어보면 답이 나온다.

 

김정은의 강국 콤플렉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진수한 김군옥영웅함을 둘러보고 있다. 북한 매체들은 이 잠수함이 수중에서 핵미사일 발사가 가능한 전술핵공격 잠수함이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핵과 미사일 개발에 성공한 북한이 자신감을 토대로 공세적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했다고 보는 공세론자들은 북한이 주도권 확보를 시도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북한이 한국을 겨냥한 핵을 실전에 배치했고,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포함한 다양한 사거리의 미사일을 개발함에 따라 자신들이 원하는 정책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는 주장이다. 북한이 군사적으로 자신감을 갖게 됐으니 현실성 없는 고려연방제 따위의 통일론은 효용성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 능력이 확장된 것은 분명하지만, 김정은이 체제의 종말을 각오하지 않는 한 핵을 먼저 사용할 수 없다. 북한은 핵을 재래식 무기와 섞어서 언제든지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심지어 관련 법을 만들기도 했다. 북한이 핵 사용을 강행한다면 미국의 막강한 핵전력 즉 핵우산으로 대규모 응징 보복을 받는 자살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이가 김정은일 것이다.

 

북한이 핵을 쓰면 정말 미국이 핵으로 대응할지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지난해 한·미 워싱턴 선언과 핵협의그룹(NCG)을 통한 확장억제가 제도화됐다. 이에 따라 한국의 독자 핵무장론의 주장도 힘을 잃게 됐다. 미국이 보유한 대륙간탄도미사일 미니트맨 III는 발사 후 34분 만에 평양을 초토화할 수 있다. 북한은 미국 미사일의 발사 움직임을 사전에 탐지할 능력이 없고, 발사한 미사일을 막을 요격미사일과 같은 방어 체계도 전무하다. 한·미는 한국의 재래식 전력과 미국의 핵전력을 함께 사용하는 ‘핵재래식통합작전’(Conventional & Nuclear Integration: CNI)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고 있다.

 

군사적 효과를 판단하기 어려우면 상대방의 반응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빠르다. 그런데 김정은의 입으로 불리는 김여정은 이미 미국의 확장 억제를 비판하는 담화를 수차례 발표했고, 김정은도 연말 연초 회의에서 정권 종말, 핵협의그루빠(그룹), 미국 핵전략 자산, 한미연합훈련, 일본과 한국의 군사적 결탁 등을 조목조목 언급하면서 ‘신경이 쓰인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김정은·김여정 남매가 확장 억제를 견제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북한은 핵무기 보유로 주도권 확보를 기대했지만, 오히려 핵의 효용성이 더욱 감소하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나는 상황이다.

 

신냉전은 북한의 ‘희망사항’일 뿐

북한 공세론의 두 번째 근거는 세계 질서의 변화와 연계된 신냉전의 도래다. 미국의 주도로 한·미·일의 협력 소위 남방 삼각관계의 강화가 진행되고 있으니 이에 맞서 북·중·러가 힘을 합쳐 대응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지난해 9월 연설을 통해 “제국주의 반동 세력에 의해 전 지구적 범위에서 ‘신냉전’ 구도가 현실화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 러시아, 이란 등 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국가가 연대해 미국 주도의 1극 체제를 분쇄하고 다극 체제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게 김정은의 주장이다. 북한과 러시아는 지난해 유난히 밀착하는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북·중·러를 한 축으로 하는 신냉전은 북한이 만들고 싶은 희망 사항일 뿐이다. 최근 나타나는 북·중·러 협력은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라기보다 ‘편의에 의한 결합’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특히 북한과 러시아의 협력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라 조성된 일시적인 관계 증진일 가능성이 크다. 북·중·러 간에는 최고지도자에게 권력이 집중된 권위주의 정치 체제라는 특성과 미국을 적대시하는 인식 외에는 공유할 만한 가치나 공통점도 없다. 경제적으로도 상호 보완적이지 않다.

 

지난해 러시아와 관계를 다졌던 북한은 올해 수교 75주년을 맞는 중국과도 밀월을 유지하려 하지만 미묘함은 여전하다. 김정은이 지난해 9월 북·러 정상회담에서 “조·로(북·러) 관계를 우리 대외정책에서 제1순으로 제일 최중대시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것은 중국에 보내는 압박 메시지로 들린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북은 기정사실화된 반면 북·중 정상회담 이야기는 아직 없다. 비공개회의에 참석했던 중국 측 인사가 “북·중·러가 하나로 묶일 경우, 가장 불리한 것은 중국”이라고 한 발언은 북한 및 러시아와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하다는 중국의 고민을 보여준다. 중국은 북한·러시아와는 달리 현재 국제질서의 노골적인 파괴를 원하지 않고, 특히 미국과의 경쟁을 위해서라도 유럽 국가와의 관계를 중시한다.

 

통일 담론 대체할 비전은 전무

북한 공세론 중 가장 흥미로운 주장은 ‘북한 신세대론’이다. 북한의 신세대인 ‘장마당 세대’는 물론 김정은·김여정도 선대(先代)와 달리 통일에 대한 ‘갈망’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는 견해다. 북한은 정권 출범 이래 사회주의 건설과 조국 통일을 역사적 사명으로 선전해 왔지만, 김정은 남매는 통일론과 결별을 하더라도 별로 문제가 없다고 인식한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북한이 그동안 최고의 가치를 부여해 온 통일론을 대체할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다. 북한의 신세대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나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외부 문물과 사조에 익숙하다.

 

통일론을 대체할 수 있는 건 경제발전론이지만 현재 북한의 상황으론 녹록지 않다.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는 무너진 지 오래다. “사(私)경제 종사율이 급격히 증가했고, 국가의 배급이 아닌 장마당 활동이 주된 소득원이 됐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통일부가 최근 발표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가 이를 잘 보여준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조선노동당보다 더 센 당이 장마당”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북 주민 결속했던 통일론 무용해져

통일을 걷어낸 상태에서 경제상황도 마이너스의 길을 걷게 된다면 모든 책임은 김정은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김정은이 2021년 8차 당 대회 때 공표한 2025년 말까지 북한 경제를 1.4배 성장시키도록 하겠다는 목표는 그 이행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김정은은 매년 4%대 성장을 제시했는데, 이를 위해선 지난해와 올해 두 자리 숫자의 경제 성장율을 달성해야 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북한은 2021년 -0.1%, 2022년 -0.2%로 역성장했다.

 

결론적으로 김정은이 선포한 남북한 두 국가론과 통일 포기 선언은 패착으로 볼 수 밖에 없다. 북한 내에서 조직적인 반발이 당장 일어나진 않겠지만, 북한이 그동안 최상위 가치로 강조해온 통일·평화·민족을 근간으로 하는 ‘혁명’이 사라진 자리는 결코 메워지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통일을 위해 고난을 감수하자’고 주민들을 설득했지만, 이마저도 더는 할 수 없게 됐다. 김정은의 새 노선은 통일 대의에 익숙한 북한 주민들을 혼란으로 빠뜨릴 뿐만 아니라 남북간 체제 경쟁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군사력 건설만으로 바깥 세상이 궁금한 북한 주민을 극장에 잡아둘 수 없다. 결국 선군(先軍)을 포기한 선경(先經) 만이 답이다. 김정은도 이를 잘 알기에 잠 못 드는 밤이 길어지고 있다.

 

중앙일보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02.09 “북한이 전쟁할 결심했다”는 분석은 틀렸다

로버트 칼린 미들베리국제연구소 연구원과 지그프리드 해커 몬테레이연구소 박사의 최근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이 이목을 끌고 있다. 제목은 ‘김정은, 김일성처럼 전쟁 결심한 듯’이었다. 그들의 주장에 화들짝 놀란 미국 정부는 백악관 고위급에 보고까지 했다.
 

두 사람은 이런 주장의 근거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호전적 수사와 통일 포기 선언, 그리고 격화하는 미·중의 지정학적 긴장을 거론했다. 그중에서도 지난 2019년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에게 더 나은 딜을 제공하지 않은 당시 트럼프 행정부와 취임 이후 대북 강경책을 구사하는 윤석열 정부를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했다.

동의 힘든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
미국 정부 당국자도 가능성 일축
무리한 북한 요구 들어주면 안 돼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주장이다. 해커 박사는 그동안 가장 크게 대북 유화 정책을 주장해온 학자다.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 소장을 지낸 그는 핵무기 개발과 비확산 노력에 참여했다. 그는 외교와 억제 정책이 북한의 지속하는 도발을 저지하지도 못했고 핵무기 개발을 위한 자체 우라늄 농축 기술 개발도 막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국제사회가 이런 사실을 인정하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려면 군축협정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30년 동안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1991년)부터 북핵 6자 회담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약속도 지킨 적이 없다. 북한이 가짜 군축 협정에 따른 데탕트(긴장 완화)를 이용해 무기 개발을 위한 자금과 기술 확보를 노렸을 뿐이라는 사실은 이미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다시 그 길을 간다면 북한의 무기 위협과 요구만 들어주는 양보만 하다 다시 끝날 것이다. 해커 박사의 주장은 기술 전문가의 시각을 담고 있지만, 정치적 고려는 부족하다. 이들의 임박한 전쟁 주장에 대해 백악관이 브리핑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필자가 만난 수많은 미국 당국자는 그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최근 김정은의 화법이 달라진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는다. 11월 미국 대선 시기에 호전적 위협과 언론의 조명을 받는 데 목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후보는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는 김정은에 대응할 가능성이 크고, 김정은은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과 진배없다.

 

두 학자의 예견이 틀렸다 하더라도 이를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북한이 얼마나 위험한 국가인지 깨달았다. 북한은 최근 국제정치의 역학 구도가 재조정에 들어감에 따라 훨씬 더 큰 공간을 확보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미·중 갈등은 김정은이 거의 면죄부를 들고 한국과 국제사회를 테스트하고 도발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스 한·미·일 정상회담 이후 3국 협력이 공고해져 한반도 억제와 준비태세가 강화됐지만, 러시아와 중국은 동시에 북한을 압박하려는 동인이 없다.

 

미국 대선 정국도 불확실성을 더한다. 트럼프 후보의 비전과 언행은 재앙적이다. 김정은과의 ‘브로맨스’는 물론 주한 미군의 철수 고집도 여전하다. 헛된 계획이고 현실적 전략이 아니다. 미국 의회와 트럼프 참모들은 트럼프 1기 때는 트럼프의 이런 생각을 저지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재집권 시에도 과연 그럴지는 알 수 없다.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도 문제다. 북한 문제를 우선순위에 놓는 순간 유권자들이 바이든 대통령 집권 기간에 전 세계가 통제 불능 상태로 빠지고 있다는 우려를 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는 점을 백악관도 알고 있다. 이 지점이 바로 트럼프가 북한 문제를 부풀리고자 하는 동인이며, 동시에 바이든에겐 그 반대의 동인으로 작동할 테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다행히 한·미 동맹은 구조적으로 여전히 튼튼하다. 한·미 동맹에 대한 여론 지지는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높다. 한·미 연합군의 압도적 군사력은 대북 억지로 작동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미국 의회의 지지도 강력하다.

바로 이것이 한반도 안정의 토대다. 앞으로 1년은 김정은의 강한 언사에 휘둘려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한 헛된 방안을 새로이 찾는 데 쏟을 것이 아니다. 한·미 연합군의 역량을 강화하고 한·미 동맹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강화하는 데 써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

 

02.12   4대 세습 포기? 김정은의 전면전 도발이 어려운 진짜 이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딸 주애와 지난 8일 조선인민군 창건(건군절) 76주년을 맞아 국방성을 축하 방문했다고 북한 조선중앙TV가 9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캡처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우리를 ‘불변의 제1주적’으로 규정하면서 ‘유사시 영토 점령, 평정’ 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극초음속 미사일과 장거리 순항 미사일 등 신무기 시험발사 도발을 지속하면서 한반도 전쟁설(說)이 국내외에서 확산되고 있습니다. 야당 대표는 이번 설 인사 영상에서 “혹시 전쟁나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는 말까지 했는데요, 오늘은 북한의 전쟁 도발 가능성이 실제로 얼마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김정은의 높아진 대남 위협 수위와 한반도 전쟁설

김정은은 조선인민군 창건일인 지난 8일 건군절 오후에 국방성을 축하 방문한 자리에서도 올들어 계속해온 대남 위협적인 언사를 되풀이했다는데요, 한국이 제1적대국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고 합니다.

 

노동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국방성에서 연설하며 “얼마전 우리 당과 정부가 우리 민족의 분단사와 대결사를 총화짓고 한국 괴뢰 족속들을 우리의 전정에 가장 위해로운 제1의 적대 국가,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고 유사시 그것들의 영토를 점령, 평정하는 것을 국시로 결정한 것은 우리 국가의 영원한 안전과 장래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천만 지당한 조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앞서 김정은은 ‘선대의 유훈’인 조국통일 3대 헌장(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을 헌법에서 삭제했고, 한국을 ‘제1의 적대국’ ‘전쟁 중인 교전국’이라고 규정하면서 남북 민간 교류를 담당했던 조직과 단체들 정리에 나섰습니다. 김정은은 또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박차를 가하라”고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종전과는 차원과 성격이 다른 언급이어서 주목을 받았지요.

 

◇ 미 대북 대화파 전문가들의 잇딴 북 전쟁 도발 가능성 경고

올들어 국내외에서 부각된 ‘한반도 전쟁설’은 지난달 11일 로버트 칼린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 연구원과 시그프리드 헤커 미 스탠퍼드대 명예교수가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에 게재한 공동 기고문에서 촉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이들은 “한반도 정세는 1950년 6월 초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며 김정은이 “언제 방아쇠를 당길지 알 수 없지만 위험의 수위는 한미일의 일상적 경고를 넘어선 상태”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지나치게 극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는 김정은이 그의 할아버지(김일성)가 1950년에 그랬듯 전쟁을 하기로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고 본다”고도 했습니다.

 

이어 몇몇 전직 미 정부 고위관계자들도 북한의 물리적 도발 가능성을 경고한 데 이어 미 뉴욕타임스(NYT)도 지난달 25일 복수의 백악관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북한이 몇 달 안에 한국을 향한 모종의 치명적인 군사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하면서 한반도 전쟁설은 더욱 증폭됐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헤커 스탠퍼드대 교수를 비롯, 북 전쟁 도발 가능성을 경고한 미 전문가 중에는 이른바 대북 대화파가 많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실제 북한의 전쟁도발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우선 전면전과 국지도발을 나눠서 봐야 할 것입니다. 전면전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의 침공 움직임이 사전에 탐지됐듯이 사전에 징후가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병력과 장비의 이동이 불가피하고, 탄약·유류 등이 일정 수준 이상 비축돼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미 정보 당국이 파악한 바로는 이런 특이 징후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 러시아에 포탄 230만발 이상 제공한 북한이 전면전을?

더구나 우크라이나전에서 그 중요성이 새삼 부각되고 있는 탄약의 경우 북한은 지금까지 컨테이너 5000개 이상, 152㎜포탄 기준 230만발 이상을 러시아에 수출했다고 합니다. KN-23 등 신형 미사일들도 러시아에 수출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원식 국방장관도 언론 인터뷰에서 비슷한 취지의 언급을 한 적이 있습니다만, 정상적인 머리를 가진 통치권자가 전면전을 도발하려 한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거지요.

 

특히 김정은이 김주애든 다른 누구든 4대 세습을 추진하고 있다는 게 기정사실화하고 있는데요, 김정은이 자기 자식에게 북한을 온전하게 물려주려면 전면전을 도발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이 전면전을 도발한다면 미 핵우산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한·미 양국군이 최소 1000발 이상의 미사일, 수천발 이상의 정밀유도폭탄 등으로 평양을 비롯, 주요 지역과 목표물을 초토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선박이 북한에서 컨테이너를 싣고 운송하는 모습을 촬영한 인공위성 사진을 2023년 10월 미국 백악관이 공개했다. 북한은 2024년2월초까지 포탄,미사일을 탑재한 컨테이너 5000개 이상을 러시아에 수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스1

 

현상태에서 북한의 전면전 도발이 어려울 것이라는, 가능성이 매우매우 희박하다는 점은 상당수 국내외 정부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는 듯한데요,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자문인 시드니 사일러 전 미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정보위원회(NIC) 북한 담당관은 지난 2일 북한이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일각의 관측에 대해 “북한의 공격이 임박했다고 볼 수 있는 지표는 전혀 관찰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북 국지도발, 전략도발 가능성에는 철저히 대비해야

지난 6일 동북아외교안보포럼과 자유총연맹, 전직 국정원 직원들의 모임인 양지회 공동주최로 열린 ‘2024 대한민국-남북관계 전망과 K-방산의 전략적 확충 방안’ 강연회에서 남주홍 자유총연맹 고문은 “현재 북한의 전면전 도발 문제는 ‘위험’이 아닌 ‘위협’ 수준”이라며 “우리의 자세와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천안함 폭침사건이나 연평도 포격도발 같은 고강도 국지도발 가능성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등 미사일 시험발사와 7차 핵실험 등 이른바 ‘전략도발’ 가능성에 대해선 우려하는 시각이 많습니다. 특히 천안함 폭침 사건 같은 초고강도 국지도발은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사일 발사와 같은 전략도발보다 우리 국민들에게 주는 충격의 강도가 훨씬 클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다만 초고강도 국지도발은 우리 군의 강력한 응징보복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현재로선 그 가능성이 높지 않고, NLL(북방한계선) 인근 포격, DMZ(비무장지대) 총격, 무인기 침투 등 중저강도 국지도발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57차 중앙통합방위회의를 주재하며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6일 동북아외교안보포럼 강연회에서 최지영 동북아외교안보포럼 이사장은 “북한의 모든 대남 도발 행위는 우리 국민의 심리 조작을 통한 영향력 공작의 일환”이라며 “2024년은 슈퍼 선거의 해로 북한의 대남도발이 증가할 것에 대비해 국민 모두가 북한의 의도와 목적을 정확히 인지하고 투철한 안보 의식으로 무장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조용할 때가 오히려 더 위험?

저는 지난 30년간 국방부를 출입하며 북한의 6차례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은 물론, 제 1·2차 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포격도발, 잠수함정 침투사건 등 수많은 도발을 가까이서 지켜봐왔습니다. 그동안의 도발 양상을 보면 대체로 북한이 금방 고강도 도발을 할듯이 협박을 했을 때보다 한동안 조용했을 때 고강도 국지도발이 이뤄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신원식 장관이 방송에서 언급했듯이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속담처럼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중앙통합방위회의에서 “연초부터 북한 정권은 도발을 계속하고 있고 민족 개념을 부정한 채 대한민국을 교전 상대국이자 주적으로 못 박았다”며 “접경지 도발, 무인기 침투, 가짜뉴스, 사이버 공격, 후방 교란 등 우리 선거 개입을 위한 여러 도발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북한의 ‘말폭탄’보다는 실제 행동과 능력에 초점을 맞춰 냉철하게 분석하고, 윤 대통령도 언급한 다양한 예상 도발 양상에 대해선 의도하지 않은 확전 방지를 위해 ‘오버’하지 않으면서 냉정하되 단호한 대응 시나리오를 만들어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조선일보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02-12 난공불락 UAE·사우디 ‘한국형 패트리엇’ 9조원대 수출 대박 비결은

▲국산 중거리 지대공 유도미사일 천궁-Ⅱ 사격 모습. LIG넥스원 제공

 

천궁-Ⅱ, UAE 35억달러 이어 사우디 32억달러 대규모 수출 계약
‘드론·미사일’ 유전 공격 노출, KAMD 요격 시스템 벤치마킹 원해
시험사격 100% 명중률·가격경쟁력·국가차원 세일즈 ‘3박자’

‘한국형 패트리엇’으로 불리는 국산 중거리 지대공 유도미사일 ‘천궁-Ⅱ’(M-SAM Ⅱ)가 중동의 벽을 뚫으며 수출 효자 무기로 각광받고 있다.

지난 2022년 1월 아랍에미리트(UAE)와 약 35억달러(4조 6500여억원) 규모의 수출계약을 중동국가로는 처음 체결한 데 이어 지난해 11월 윤석열 대통령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당시 LIG넥스원이 사우디 국방부와 약 32억달러(약 4조 2500억원) 규모의 천궁-Ⅱ 요격미사일 체계 수출 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신원식 국방부 장관의 최근 사우디 방문을 통해 처음 공개된 것이다.

국방부는 신원식 장관의 UAE·사우디·카타르 방문(2월 1∼7일) 결과를 설명하면서 "이번 중동 3개국 방문을 통해 지난해 우리 대통령의 중동 국빈방문 이후 국방분야 후속 조치를 구체화했다"며 "앞으로 우리 방위산업이 보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천궁-Ⅱ를 비롯한 L-SAM(장거리 유격미사일), 다련장 요격체계인 K-239 천무, 드론 타격체계 등 다양한 미사일·드론 요격 및 타격 무기들이 폭넓게 수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사우디아라비아를 공식 방문한 신원식(왼쪽) 국방부 장관이 지난 4일(현지시간) 사우디 세계방산전시회(WDS) 전시장에서 칼리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 국방 장관과 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탄도미사일 요격을 위해 뒤늦게 개발에 뛰어든 국산 천궁-Ⅱ 지대공 유도미사일 체계가 중동을 비롯한 세계 각국으로부터 인정받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적 탄도탄이 지상에 떨어지기 전에 요격하는 무기체계는 일부 방산 선진국에서만 성공했을 정도로 개발 과정에서 고도의 첨단 기술을 요구해 개발이 쉽지 않다. 음속의 4∼7배로 낙하하는 탄도탄을 공중에서 요격(Hit-to-Kill)하려면 탐지추적과 요격탄 위치 변경 등 고난도 기술이 있어야 한다. 풍랑과 강우, 구름 등 다양한 기상 조건도 극복해야 한다.

북한의 스커드 단거리 미사일이나 이 미사일을 개조한 예멘 후티 반군의 ‘부르칸(Burkan)-2’와 같은 기종은 낙하 속도가 마하 4∼5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고속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기술을 개발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설령 개발했더라도 일부 방산 선진국이 독점하고 있는 요격무기체계 수출 시장을 뚫기는 더더욱 어렵다.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요격미사일체계 수출 시장을 한국이 연거푸 뚫은 것은 미사일 요격기술 등 K-방산의 우수한 성능과 가격 경쟁력, 국가 차원의 세일즈 등 3박자가 딱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적 항공기를 요격하는 중거리 지대공유도무기(M-SAM) ‘천궁’을 기반으로 탄도탄까지 요격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된 체계가 M-SAM Ⅱ, 이른바 천궁-Ⅱ다. 2012년부터 국방과학연구소(ADD) 주관으로 개발이 시작돼 2017년 6월 전투용적합 판정을 받았다. 한 해 전인 2016년 ADD 안흥시험장에서 10여차례 시험사격에서 100% 명중률을 기록했다.

2021년 7월에는 UAE 공군 관계자들이 천궁-Ⅱ 품질인증사격을 참관하고 성능을 직접 확인했다. 그해 7월과 8월 ADD 안흥시험장에서 군에 납품예정인 양산품을 대상으로 탄도탄과 항공기 대상 요격 시험을 했는데 두 차례 사격 모두 표적에 명중했다. 이후 UAE는 구매 협상을 본격화했고 결국 계약으로 이어졌다. 우리 측은 최근 몇차례 방한한 사우디 측 인사들을 초청해 천궁-Ⅱ 시범사격을 했고 그때마다 표적을 명중시켜 사우디 인사들이 ‘엄지척’을 했다고 국방부의 한 당국자는 11일 전했다.

▲천궁 포대 작전요원들이 2022년 7월27일 호국훈련의 일환으로 실시한 ‘전구탄도탄 대응훈련’에서 천궁-Ⅱ 발사대로 신속하게 이동하고 있다. 공군 제공

 

LIG넥스원 측은 "미국, 유럽, 이스라엘과 같은 글로벌 방산업체들을 제치고 천궁-Ⅱ를 수출한 것은 우수한 성능을 인정받은 결과"라고 설명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요격무기체계를 독자 개발한 국가는 미국과 한국이다. 이스라엘과 유럽은 미국과 합작으로 개발했다. 우리가 미국과 합작으로 개발했다면 수출하는데 미측이 온갖 조건을 내걸어 이처럼 속전속결이 어려웠을 수도 있다. 독자적으로 개발한 덕에 수출이 쉬워진 것이다.

독자 개발했으니 수출 협상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후속 군수지원이나 공장 설립, 운용 요원 교육훈련 등의 토탈시스템 차원으로 접근해 협상이 쉬웠다는 것이다.

미국의 패트리엇(PAC-3)과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이스라엘 방공무기 등과 비교했을 때 가격 경쟁력이 우수하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미사일 1발당 가격은 사드가 150억원, PAC-3가 40억∼60여억원인데 천궁-Ⅱ는 1발당 15억∼17억원 수준이다. 사우디와 UAE는 PAC-3를 도입해 운용하고 있고, 사우디는 사드체계까지 갖추고 있다. 그런데도 후속 방공무기체계 도입 사업에서 한국의 천궁-Ⅱ를 선택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와함께 사우디와 UAE 측은 주변국 위협도를 북한이 남측을 위협하는 강도와 유사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이 북한의 위협에 맞서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를 구축하고 있는 것을 ‘모델’로 삼고, 특히 상층·하층 구간별로 요격무기가 다른데도 이를 통합 운용하는 한국군의 능력을 배우고 싶어 한다고 군 관계자는 전했다. 사우디와 UAE의 천궁-Ⅱ 요격무기 수입은 KAMD 방어시스템 전반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한국과 연결고리를 만들고 싶어한 셈이다.

사우디와 UAE는 예멘 후티 반군의 탄도미사일과 드론, 무인기 등의 실질적 공격 위협을 상시적으로 받고 있다. 후티 반군이 2022년 1월 ‘줄피가르’ 탄도미사일과 드론으로 UAE를, 같은 해 3월에는 드론으로 사우디 정유시설을 각각 공격한 것이 최근의 사례다.

군 관계자는 "중동 일부 국가들은 한국이 북한 위협에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굉장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중동 국가들이 우리 미사일방어체계의 핵심무기인 천궁-Ⅱ에 눈을 돌린 것도 이런 상황이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정상 등 국가 차원에서 세일즈와 마케팅을 지원한 것도 큰 힘이 됐다.

지난해 10월 사우디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은 칼리드 빈 살만 알 사우드 국방장관과 압둘라 빈 반다르 알 사우드 국가방위부 장관을 접견했다. 당시 대통령실은 "사우디와의 국방·방산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는 계기"라고 평가했다.

여기에다 윤 대통령과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국방·방산 분야 협력 강화 등이 포함된 ‘한-사우디 공동성명’도 채택했다. 당시 윤 대통령을 수행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리야드 현지 브리핑에서 "대공 방어체계, 화력 무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규모 방산 협력 논의가 막바지 단계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사우디와 천궁-Ⅱ 계약은 이런 정상외교가 바탕이 됐다고 국방부는 평가했다.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이번 신 장관 방문을 계기로 사우디·UAE와의 정상외교 후속 조치를 계속 협의해나갈 계획인데, 이들 국가와 후속 무기체계 계약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국방부 관계자는 전했다.

천궁-Ⅱ는 항공기보다 크기가 작고 높은 고도에서 고속으로 날아오는 탄도탄을 요격하는 첨단 기술이 망라됐다. 고속의 탄도탄을 포착하기 위한 탐지추적 기술이 레이더에 적용됐고, 종말단계에서 유도탄의 위치를 신속히 변경하는 ‘측추력기술’과 고에너지 파편 탄두로 탄도탄을 직접 파괴하는 기술도 들어갔다.

‘측추력기술은’ 천궁 개발 과정에서 어려운 과제 중 하나였다. 요격미사일을 발사한 후 초기 진행 방향을 바꾸고, 종말단계에서 위치를 변경하는 기술인데 당시 어느 개발국에서도 시도한 적이 없는 ‘측추력기’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최대 사거리가 40㎞인 천궁-Ⅱ는 고도 40㎞ 이하로 접근하는 적 항공기와 미사일 요격에 쓴다.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에서 핵심 무기로, 1개 발사대에서 유도탄 최대 8기를 탑재해 연속 발사할 수 있다. ADD를 비롯해 요격탄 생산 및 체계통합을 맡은 LIG넥스원, 레이더 개발사인 한화시스템, 포대 제작을 맡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모두 개발 성공의 주역이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02-14 “北, 주체·원점 불명확한 사고위장 원전테러 등 ‘지하드’식 회색지대 도발 가능성”

▲1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통일연구원 통일정책포럼 ‘북한 대남노선 전환 평가 및 대응 방안’에서 오경섭(가운데) 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장, 조한범(오른쪽)선임연구위원 등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일연구원 조한범 연구위원 "북한판 지하드 회색지대 도발…남한 동조세력 동원 개연성"
정성윤 통일정책연구실장 "사고 위장한 원전 테러 가능성도"

지난해 말 대남노선 전환을 선언하며 연일 긴장을 끌어올리는 북한이 남한 내 동조세력을 동원해 ‘북한판 지하드’ 테러를 벌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4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통일연구원 주최 ‘북한 대남노선 전환 평가 및 대응 방안’ 주제 포럼에서 북한이 남북관계를 교전국 관계로 전환한 후 군사적 긴장을 고조하고 윤석열 정부의 책임론을 확산하려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조 연구위원은 북한의 재래식 전력 절대 열세와 한국군의 응징 의지를 고려할 때 주체·원점이 불확실하면서도 군사적 피로감을 극대화하는 ‘회색지대’ 도발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남파간첩 등 우리 사회 내 북한 동조세력을 전시 동원요원으로 전환해 ‘북한판 지하드’ 형태로 테러를 시도할 개연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지하드는 이슬람 교리에서 이교도를 상대로 하는 성스러운 전쟁을 뜻하나 일상적으로는 이슬람 원리주의에 경도된 급진주의자의 테러활동을 가리킨다. 북한 정권의 우상화에 경도돼 잘못된 신념을 갖게 돼 자행하는 공격도 이와 비슷해 ‘북한판 지하드’로 명명했다고 조 연구위원은 설명했다.

그는 북한이 남한 내 간첩 등에 공격 지령을 내리거나, 남한의 동조세력이 자발적으로 테러를 감행하는 이른바 ‘외로운 늑대’형 공격이 모두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조 연구위원은 대북 전단 살포단체의 트럭이 방화된 사건 등을 거론하면서 북한에 의한 테러가 단순히 가능성에 그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정성윤 통일정책연구실장은 ‘북한 핵무력 활용 전략’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남한의 원전시설에 대한 테러를 저지르고 이를 원전의 결함에 의한 사고로 주장하며 즉각적인 핵 보복을 회피하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장은 발표자로 나서 우리 사회 내부의 일부 친북 세력이 북한의 2국가론과 무력통일론에 동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 실장은 "북한은 한국 내 간첩망과 지하당을 통해 친북 성향 단체와 인사들을 관리하면서 남한 내에서 자신들의 무력통일을 지지·지원하는 임무를 부여하고 활용할 것"이라며, 총선 국면에서 윤석열 정권 타도와 윤석열 정부 탄핵을 추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통일연구원은 "북한의 도발적 움직임에 동조해 국가 분열과 민족 분리를 하려는 한국 사회 내의 일부 인사들의 활동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한편, 북한이 대남 기구를 폐지했지만 외무성 등에서 남한 내 지하당 등 관리를 계속할 것으로 예상됐다. 통일전선부의 남북대화와 남북협상 기능은 외무성으로 이관하고, 재일 조총련과 재중 총련 등 해외 친북조직 관리와 대남 심리전 업무는 정찰총국으로 이관하거나 문화교류국(225국)과 통합해 대외연락부를 신설할 것으로 보인다고 오 실장은 말했다.

김천식 통일연구원장은 포럼 인사말에서 "북한이 한반도 2국가 체제를 추구할 때 우리마저 2국가 공존론으로 나간다면 한민족은 영구 분단이 된다"며 "영구분단 위기를 돌파하려면 우리는 더욱더 민족공동체론을 강조하고 대외적으로 통일의 권리와 의지를 발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02-14 北 39호실 ‘도박사이트’ 한국 범죄조직에 납품

■ 국정원, 北과 거래한 조직 적발

김정은 개인 비자금 조달용 조직
中 단둥서 제작·판매→北에 송금
韓서 유지비로 月3000달러 받아

국내조직, 중국보다 제작비 싸
북한인인줄 알고도 거래 지속


북한 노동당 39호실 산하의 해외 정보기술(IT) 조직이 불법 도박 사이트를 제작해 국내 사이버범죄조직에 판매한 것이 국가정보원에 적발됐다. 국정원은 이들 조직원의 신상 정보도 공개했다.

14일 국정원은 “노동당 39호실 산하 조직으로 중국 단둥(丹東)에서 활동 중인 ‘경흥정보기술교류사’가 15명 조직원 분업을 통해 성인과 청소년 대상 도박 사이트 등을 제작, 1인당 월평균 500달러씩 평양에 상납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국정원에 따르면 경흥은 김정은(국무위원장)의 개인 비자금 등을 조달하는 39호실 산하 조직이다. 대남 공작 업무를 하는 정찰총국 소속으로서 39호실에 파견된 김광명 단장 아래 15명의 조직원은 중국인 개발자로 위장한 뒤 IT 업계 종사자의 경력증명서를 도용했다. 이들은 불법 도박 사이트 제작 일감을 수주한 뒤 사이트를 만들어 한국인 범죄조직에 납품해 왔다.

경흥 조직원들은 사이트 제작 건당 5000달러, 그 외 유지·보수 명목으로 월 3000달러가량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또 대북제재를 피하기 위해 중국인 명의 은행 계좌나 차명 계좌, 그리고 해외 송금이 용이한 ‘페이팔’ 서비스 등을 통해 개발 대금을 받고, 이를 중국 내 은행에서 현금화해 북한으로 송금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정원은 “한국인 범죄조직들은 이들이 요구하는 사이트 제작 비용이 한국·중국 개발자보다 30∼50%가량 저렴하고 한국어 소통이 가능했던 만큼, 이들이 북한인임을 알면서도 거래를 계속해 왔다”고 전했다.

또 “이들이 사이트를 유지·보수하는 과정에서도, 회원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심지어 악성코드를 심어 회원정보도 탈취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이렇게 확보한 한국인 회원의 이름, 연락처, 계좌번호 등의 개인정보 1100여 건을 판매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국정원 발표는 최근 국내에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사이버 도박 범죄 배후에 북한이 깊숙이 개입해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국민에 공개된 첫 사례다.

지난 2022년 10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 보고서’에 북한 로케트공업부 산하 IT 조직 ‘비류강 해외기술협조사’ 단장 송림의 보이스피싱 해킹 앱 밀매 관련 내용을 수록하기도 했다.
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

 
 

02.14 북한의 반통일론에 더 적극 맞서야

드디어 북한이 남북통일은 불가하며 남북은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라고 선언했다. 한 민족이나 통일이라는 용어도 금하고 관련 조직을 철폐 했다. 과거에 남북은 유엔에 함께 가입함으로써 국제적으로 두 국가로 인식되었으나, 남북끼리는 기본합의서를 통해 나라와 나라 관계가 아닌, 통일될 때까지 잠정적인 특수관계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후 국제적 인식과 남북 간 인식이 병립하는 이중적 상황이 지속되었다. 이제 당사자인 북한이 입장을 바꿨으므로 두 인식 중에서 특수관계라는 인식이 동력을 잃을 상황에 처했다. 한국의 통일정책에도 큰 애로가 예상된다. 그만큼 이번 북한의 선언은 남북관계와 통일 추진에 중차대한 의미를 갖는다.

영구 분단의 함정을 피하려면
국내의 통일 여론 규합 나서고
미·일·중·러 대한 설득 외교 필요
관련된 헌법 개정도 검토해야
 

이에 대하여 정부는 ‘한 민족으로 함께해온 오랜 역사를 부정하는 반민족적 반역사적 행태’라는 입장을 천명했다. 남북이 일차 응수를 교환한 셈인데, 북한이 후속조치를 할 것이므로 논란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미 북한은 헌법개정을 예고했다. 알려진 대로 북한은 헌법에 한국을 제1적대국으로 규정할 것이고, 북한의 주권행사 영역을 영토로 정할 것이다. 전쟁이 날 경우 남쪽을 ‘평정’하여 북한에 편입시킬 근거도 마련할 것이다. 나아가 북한은 중·러 등을 상대로 두 국가론을 선전할 것이다. 중·러는 미국과의 대립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자신 주변에 북한이라는 우호적 완충국이 있는 것이 유익하므로 북한에 동조할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미·일도 내심 한국이 통일 불가론과 두 국가론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한·미·일 공조에 집중하기를 바랄 수 있다. 한·미·일과 북·중·러 간 대립구도 하에서, 미·일은 한국을 한·미·일 진영의 일원으로 확고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이래저래 두 국가론이 세를 얻을 소지가 있다.

 

이런 상황 전개는 결코 한국에게 좋은 일이 아니다. 통일과 관련한 한국의 운신 여지가 줄고, 분단이 영구화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서는 남북이 특수관계이고 한국은 북한에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으며, 남북은 통일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야 유리할 것이다. 예컨대 북한에서 인도적 재앙이 생기거나 북한 주민이 극심한 박해에 직면하여 사방으로 집단 탈북하는 위기가 생길 때, 한국이 이를 동족의 일이 아닌 남의 나라의 일로 여겨야 한다면 우리 대처는 크게 제약받을 것이다. 그때 한국이 이들을 외면한다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책임이나 가치 외교를 운운할 권위를 잃는다.

 

1945년의 분단은 강대국들이 갓 해방된 한반도에 38선을 그은 데에서 비롯되었다. 80년이 지난 이제 세계 10위권의 중견국이 된 한국이 다시금 마냥 영구분단의 길로 휩쓸려가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상황에 대해 비상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는 북한의 주장에 반대하는 입장 천명에서 더 나아가 이를 막아내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우선 남북은 특수관계이며 궁극적으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명제의 동력을 살려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국내적으로 우리 입장을 견고히 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좋다. 다행이 이 문제에 대해 주요 정파 간 이견은 없다.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도 ‘북한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고,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그러나 국내에는 통일에 소극적이고 무관심한 여론이 상당하다. 이런 여론을 망라하여 범사회적 담론을 일으킴으로써, 차제에 남북 간의 특수관계와 통일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면 우리 입장이 견고해질 것이다.

 

다음으로는 이러한 입장을 기초로 미일을 설득하여 한국의 입장을 지원하도록 외교적 노력을 치열하게 전개해야 한다. 동시에 중·러에 대해서도 분단을 고착화하고 북핵을 돕는 일을 마구 하지 못하도록 교섭해야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한·중, 한·러 관계를 지금처럼 악화일로로 끌고 가서는 안 된다. 중·러와의 외교공간을 열어 필요한 협조를 하고 우리 입장을 반영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한편 북한의 헌법개정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우리 헌법개정도 검토해야 한다. 이는 우리의 입장을 견고히 하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북한이 헌법에 유사시 한국을 북한 영역에 편입시키는 조항을 신설한다고 하니, 한국도 서독의 기본법 23조처럼 통일 시에 북한 지역을 한국에 편입시킬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우리가 지금 적극 대응하지 않으면 한반도는 분단의 영구화라는 또 다른 100년의 길로 갈 수 있다. 지금이 그 순간일 수 있다. 개탄할 것은 그 전기를 북한이 제공했다는 점이다. 걱정할 것은 주변 주요국 간 역학이 통일을 저해하는 쪽으로 흐를 소지가 큰 가운데 정작 국내에선 통일에 대한 소극적 여론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정치인과 사회지도층의 각별한 의지가 요구된다. 당사자인 우리가 나서야 한다. 한국 말고는 나설 나라가 없다.

 중앙일보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02.15 간첩단 피고인들이 재판 농락하다 ‘망명 요청’까지

▲충북동지회 조직원들이 지난 2021년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청주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뉴스1

 

간첩단 ‘충북동지회’ 사건 피고인들이 유엔에 재판 중단과 제3국으로의 망명 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들은 기소된 뒤 2년 5개월 동안 위헌 심판 신청, 5차례 법관 기피 신청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1심 재판을 지연시켜왔다. 그러다 최근 재판부가 “소송 지연 목적이 명백하다”며 5번째 법관 기피 신청을 바로 기각하고 선고일을 오는 16일로 정하자 유엔에 이런 신청을 냈다는 것이다.

 

이들이 내세운 신청 사유는 “오랜 탄압으로 인권과 건강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초 구속됐던 이 사건 피고인들은 재판을 지연시킨 뒤 다 석방돼 재판을 받아왔다.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2017년부터 북한 공작원 지령을 받아 지하 조직을 결성한 뒤 지역 인사를 포섭하고 국가 기밀을 탐지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대한민국 법 절차를 이용해 재판을 농락해 놓고 무슨 인권 침해를 당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들은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에 간첩 조작에 대한 진상조사단 구성과 파견도 요구했다. 이는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한다. 회원국 재판에 개입할 권한도 없다. 그런데도 이런 신청을 한 것은 중형 선고가 예상되자 어떻게라도 재판에 흠집을 내려는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 사건 변호인 중엔 민변 출신이 포함돼 있다. 피고인들이 유엔에 신청했다지만 민변 출신들의 조력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얼마 전엔 민변 출신 변호사가 맡고 있는 제주 간첩단’ 사건 피고인들이 기소된 지 9개월 만에 열린 첫 재판에서 25분 만에 무단 퇴정하는 일도 있었다. 이 변호인은 2011년 간첩단 ‘왕재산’ 사건 변호를 맡았다가 핵심 증인에게 묵비권 행사를 종용해 논란이 됐던 사람이다. 민변 변호사들의 재판 농락과 안하무인 행태에 판사들이 더는 흔들려선 안 된다.

조선일보 사설

 

02.15 “더 강한 훈련 받고 싶다” 가슴 뚫어준 해병

정말 위험한 것은
김정은 아닌 트럼프
미군 철수 시작하면
해병 지원율 치솟을 것
누가 무슨 짓 해도
우리 청년들이 있다

 고금리로 경기가 좋지 않은데 정치 갈등은 혼탁하다. 저출생은 악화 일로다. 요즘 우리 사회의 공기가 무겁다고 느끼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그중에서도 많은 식자(識者)들이 미국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트럼프를 걱정하고 있다.

 

트럼프는 최근 나토(NATO) 국가들의 방위비 인상을 요구하며 “나는 당신네를 보호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가 원하는 것을 내키는 대로 모조리 하라고 격려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식으로 함부로 내뱉은 말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생각이 그의 머릿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트럼프는 침략자 푸틴 손을 들어줘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낸 다음 자기 공적이라고 할 것이다. 트럼프 시절 백악관 안보보좌관, 국방장관은 주한미군 철수가 말이 아닌 실제 상황이었다고 증언했다. 정말 위험한 것은 김정은이 아니라 트럼프다.

 

답답하던 중에 의외의 곳에서 며칠이 지나도 계속 생각나는 한마디를 들었다. 처음 들었을 때 ‘이게 뭐지?’라고 의아해 했다가 나중에는 가슴이 뚫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김포 해병 2사단(청룡부대)을 격려 방문했을 때였다. 병영 생활관에서 진행된 장병 간담회에서 한 병사가 “강도 높은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고 건의했다. 윤 대통령은 “여러 부대를 다녀봤지만 (병사가) 고강도 훈련을 지원해 달라고 하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고 했다. 필자도 처음 듣는다.

 

믿기지 않아서 확인해 봤는데 사실이었다. 대학에서 공학을 공부 중인 스무살 해병 상병은 “제가 해병에 지원한 이유는 강한 해병대 때문입니다. 강한 해병대는 강한 훈련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한 훈련을 지원해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했다. 막힌 것이 뚫린 듯한 시원한 여운이 지금도 가시지 않는다.

 

이 해병 한 사람만이 아니다. 북한 여군 출신 탈북민은 해병 병사들에게 안보 강연을 갔다가 강연장에 가득한 해병대원들의 땀 냄새와 지휘관의 지시에 엄청난 함성으로 대답하는 병사들의 기세에 그야말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 분은 “그 기세가 북한을 넘어뜨릴 것처럼 느꼈다”며 혀를 내둘렀다. 필자는 초년병 기자 시절 대학생들의 백령도 방문을 동행 취재했다. 그곳 해병대의 헌신적 근무 자세는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당시 학생들은 “해병대가 지키는 곳은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작년엔 대부분 미달이었던 해병대원 지원율도 김정은이 “전쟁” 운운한 뒤에 올라 1월엔 2대1을 넘어섰다고 한다. 작년 수해 지원 나갔던 해병대원이 순직한 후엔 0.2대 1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해병대 지원율은 북한의 위협이 커지면 커질수록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해병대원 2명이 전사한 직후 해병대 지원율은 4대1을 넘어 역대 최고를 기록하기도 했다. 해병대 중에서도 가장 힘들다는 수색대는 경쟁률이 10대1에 달한다. 한 전문가는 “적이 위협하면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청년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라고 했다. 세계에 이런 나라는 많지 않다.

 

군인들만이 아니다. 식당에서 육군 병장의 고등어 백반 식사값을 대신 내준 20대 여성, 군인이 주문한 음료 뚜껑에 ‘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손글씨를 적은 카페 알바생 등 나라의 소중함을 알고 군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젊은이들이 어디에나 있다.

 

필자는 우리 청년들에 대한 사회 일각의 여러 우려에 대부분 동의하지 않는다. 후진국에서 태어난 필자 세대와 달리 선진국에서 태어난 지금의 청년들은 단군 이래 최고의 환경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과학 지식과 외국어, 국제 감각 등 능력만이 아니라 시민 의식에서도 우리 역사상 가장 낫다고 생각한다. 아직 최고 선진국 시민 수준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한반도에 이렇게 교양 있고 정직한 세대는 없었다. 30~40년 전 우리 모습을 떠올려 보면 누구나 인정하게 된다. 나약하고 국가관이 없을 것이라는 지레 짐작도 사실과 다르다. 청년들은 우리 사회를 ‘헬 조선’이라고 자조하기도 하지만 외적의 침략이나 강압에는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한다. 중국에 대한 반감이 기록적일 정도로 높아진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가장 두려워하는 한 명을 꼽으라면 김정은일 것이다. 왕권과 부(富) 등 잃을 게 가장 많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두려워하는 또 하나는 우리 청년들이라고 생각한다. 탈북민 한 분은 북한군을 ‘노예 병사’라고 했다. 그분은 “싸워 지켜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납득한 한국 청년들을 북한 노예 병사들이 당할 수 없다”고 했다. 핵과 우리 청년들 중 택일해야 한다면 우리 청년들을 택하겠다. 윤 대통령은 해병의 건의를 듣고 “올해는 국운이 뻗치려나 보다”라고 했다. 대한민국은 국운이 있는 나라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돼 미군 철수를 시작하면 해병대 지원율이 사상 최고를 기록할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우리에게는 극복할 힘이 있고 건강하고 지혜로운 청년들이 있다.

조선일보 양상훈 기자

 

02-16 北 연평도 도발 때 軍 응급 헬기 안 떴다는 충격적 사실

중증 외상 진료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의 15일 발언은 군인과 의사의 본분이 무엇인지 새삼 일깨워준다. 같은 날 김정은의 북방한계선(NLL) 도발이 예고되고, 국내에서는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의사들이 시위에 나선 것과 대비되면서 더욱 돋보였다.

우선, 2010년 11월 발생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때 군 의무 지원이 없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다. 이 원장은 이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연평도가 쑥대밭이 돼가고 해병대원들이 죽어가는데 의무 헬기가 뜨지 않고 의료진이 증파되지 않은 것은 망신이자 치욕”이라면서 “(유사 사태가 발생하면) 저희가 들어가서 옥쇄를 각오하는 심정으로 적 도발이 멈추는 순간까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민과 국군 생명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이런 결기가 절실한 때다.

김정은은 NLL을 “유령선(線)”이라고 조롱하며 “해상 국경선을 적이 침범할 시에는 무력 도발로 간주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15일 북한 매체가 보도했다. 북한이 주장하는 경계선은 NLL 훨씬 남쪽 해역까지 포함하고 있어 언제든 한국 해군의 정상적 활동을 트집 잡아 도발하겠다는 예고나 다름없다. ‘아덴 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치료해 국민적 관심도 끌었던 이 원장은 정치권의 여러 영입 제안을 물리치고 지난해 12월부터 국군대전병원장을 맡고 있다.

문화일보 사설

 
 

02.16 대통령의 동선이 북한에 해킹당하다니…

북한, 대통령실 직원의 e메일 계정 콕 찍어 노려

국정원 사이버 보안, 경찰 대공 수사 분리 재검토를

대통령의 일정이 북한으로 추정되는 세력으로부터 해킹당했다. 충격적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영국·프랑스 순방 직전 대통령실 행정관의 e메일이 북한에 의해 해킹 당한 것을 국가정보원이 출국 직전에 파악했다고 한다. 이후 영국 현지에서 긴급 대책회의가 열렸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무 일이 없었으니 망정이지 자칫하면 대통령의 안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해킹당한 e메일에 극비 사항인 대통령 동선, 행사 시간표 등이 포함돼 있었으니 말이다.

 

▲국가정보원이 지난 7일 최근 북한 등 사이버 위협 세력 도발 가능성이 증대함에 따라 사이버 위기관리 대비 태세 점검 회의를 개최했다고 8일 밝혔다. 사진은 사이버 위기관리 대비 태세 점검 회의가 열리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의 해킹이 대통령실 직원의 e메일까지 뚫은 사례가 드러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통령실은 “해당 행정관이 실무 준비 과정에서 대통령실 e메일과 개인 메일(네이버)을 번갈아 사용했는데, 이 중 개인 e메일을 북한 추정 세력이 해킹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e메일 계정이 뚫리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건 알겠지만, 단지 행정관 개인의 부주의로 넘길 문제는 아니다. 무엇보다 대통령실 근무자가 방화벽 등 보안망이 갖춰져 있는 대통령실 계정이 아닌 개인 계정을 썼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대통령실 전체의 보안의식이 얼마나 해이해져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이 공적인 업무에 개인 e메일을 사용해 미 연방수사국(FBI)의 수사를 받았고, 지난해에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대통령실 도청 의혹이 불거져 보안 강화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사례들을 반면교사로 삼지 못했다.

 

이번 사건은 북한의 사이버 해킹이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인당 3개까지 만들 수 있는 네이버 e메일 계정 수를 다 합하면 수천만 개가 넘을 것이다. 북한은 그중 특정 대통령실 행정관을 콕 찍어 해킹하고 있었다. 우리의 핵심 정보들이 이미 북한에 노출돼 있음을 보여준다. 국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공공 분야에 하루 평균 162만여 건의 해킹 시도가 있었다. 이 중 80%는 북한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비상사태나 전시에는 더할 것이다. 당장 사이버 보안 투자를 늘리고 공공기관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국정원이 북한의 해킹을 사전에 걸러낸 시점도 주목해야 한다. 국정원이 갖고 있던 대공수사권은 올 초부터 경찰로 이관됐다. 여전히 일부 사이버 보안 기능은 국정원이 갖고 있다지만, 사이버 보안과 대공수사가 분리된 형태는 비정상적이다. 이번 북한의 해킹이 대통령 동선을 파악해 만에 하나 해외에서 테러라도 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똑같은 상황이 재연될 때 경찰만의 힘으로 해결 가능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참에 대공수사권의 재조정이나 효율적 연계 방식을 재검토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02.16 ‘국보법 위반’ 충북동지회 3명, 각 징역 12년... 기소 883일 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충북동지회’ 사건 피고인들이 16일 1심 재판에서 중형(重刑)을 선고받았다. 지난 2021년 9월 기소된 지 883일 만이다. 이는 이 사건 재판을 맡고 있는 청주지법의 형사 1심 합의부 전체 사건 평균 처리 기간(203일)의 4배를 넘긴 것이다.

 

▲충북동지회 조직원들이 지난 2021년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청주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뉴스1

 

이날 청주지법 형사11부(재판장 김승주)는 충북동지회 고문 박모(60)씨, 부위원장 윤모(53)씨, 위원장 손모(50)씨에게 각각 징역 12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박씨 등은 지난 2017년부터 북한 공작원의 지령을 받아 지하조직을 결성한 뒤 충북 지역 인사 60여 명을 포섭하려 하고 국가 기밀 탐지 등 각종 안보 위해 행위를 한 혐의를 받는다.

 

재판부는 “박씨가 중국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한 사실, 윤씨가 북한 지령문을 수신한 사실, 세 사람 등이 충북동지회를 결성한 사실, 북한 지령문을 수신하고 대북 보고문을 전달한 사실, 북한으로부터 공작금 2만 달러를 수수한 사실 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은) 북한 구성원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하고, 회합·통신했다”며 “북한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국내 정보를 수집한 후 보고문을 작성했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런 범행은 대한민국의 존립 안정과 자유민주주의 체제 존립을 침해한다. 장기간 동안 치밀하고 은밀한 방법으로 범행했다”면서도 “피고인들이 수집한 정보의 가치가 그다지 크지 않으며, 포섭한 사람들도 (피고인들의) 가족이 전부”라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또 재판부는 이날 재판 초반에 상당한 시간을 들여 이 사건 1심 재판이 지체된 원인을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진행하면서 다른 사건도 진행했어야만 했다”며 “그동안 저희 재판부는 487명의 1심 재판, 743명의 2심 재판을 마쳤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판이 신속히 진행되기 위해선 법원 인력과 자원이 보충돼야 한다”며 “최근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하지만 정말 부족한 것은 판사 수”라고 말했다.

 

이어 “1심 재판의 구속 기간 만료는 6개월밖에 안 된다. 중요한 사건은 6개월 안에 끝낼 수 없다”며 “구속 기간을 늘려주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뿐. 국회가 조속하게 법을 개정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들은 재판 전후 검찰이 제출한 증거 등이 조작됐으며 국가정보원 등의 불법 사찰이 이뤄진 불법 수사라며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재판부가 징역형을 선고하자 윤씨는 “2024년 대한민국에서 국보법 위반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국보법은 폐지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중형을 선고받은 피고인 3명은 법정에 출석하기 전에 청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들이 ‘30년 사찰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국가정보원과 검찰은 이미 2000년에 사건을 만들어놓고 20년 넘게 불법 사찰, 조작을 시도했으며 2021년 비로소 조작을 완료했다”며 “국회와 법원, 헌법재판소가 국정원과 검찰의 농단을 방기하고 조작의 공범으로 전락했다”고 했다.

 

한편, 지금까지 이 사건 피고인들은 총 5차례 법관 기피 신청을 내면서 총 11개월간 재판을 중단시켰다. 또 피고인들은 선고를 이틀 앞둔 지난 14일 유엔에 ‘재판 중단’ ‘망명 지원’ 등을 위한 특별 절차를 요청했다. 유엔이 특정 국가의 재판에 개입할 권한 등이 없어 이 요청은 사실상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한다. 법조계에서는 “각종 법기술로 재판을 지체시키던 국보법 위반 사범들에게 엄벌이 내려진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 사건의 피고인은 총 4명이다. 이 가운데 3명은 이날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나머지 피고인 한 명인 연락책 박모(여·53)씨는 따로 재판을 받고 있다. 박씨가 작년 10월 뒤늦게 별도의 법관 기피 신청을 냈는데 이에 대한 판단이 늦게 나오면서 박씨의 재판만 분리된 것이다. 박씨에 대한 별도 재판은 오는 21일 열리는데, 선고는 이르면 다음달 초 나올 전망이다.

조선일보  신정훈 기자 이세영 기자

 

02.17 간첩단 2년 5개월 만에 징역 12년, 이런 재판 지연 더는 없어야

 간첩단 ‘충북동지회’ 사건 피고인 3명이 1심에서 각각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기소된 지 2년 5개월 만이다. 이 사건 피고인들은 그동안 위헌 심판 신청, 5차례 법관 기피 신청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1심 재판을 지연해 왔다. 그러다 최근 재판부가 5번째 법관 기피 신청을 바로 기각하고 선고한 것이다. 중형을 선고하긴 했지만 너무 늦었다.

 

이 사건 피고인들은 2017년 중국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한 뒤 지하 조직을 결성해 지령문과 공작금 2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이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다만 이들이 민중당 권리 당원 명부를 수집하고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면담한 내용을 북한에 보고한 것 등은 국가 기밀로 보기 어렵다며 간첩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북한을 위해 정보를 수집해 보고한 행위 자체가 심각하다. 이것이 간첩 행위가 아니라고 한다면 법률상 허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심각한 문제는 간첩 피고인들의 재판 농락이다. 간첩 등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재판은 집중 심리 등을 통해 1심 구속 기한인 6개월 안에 1심 재판을 마치는 게 상식이다. 그래야 피고인들이 재판 도중 풀려나 국가 안보를 해치거나 증거를 없애는 일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간첩 피고인들은 국민참여재판 신청, 법관 기피 신청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재판을 지연하고 있다. 제주 간첩단 사건 피고인들은 재판 한번 안 받고 다 석방됐다. 이것은 정상적인 재판이 아니다. 판사들이 재판 농락을 위한 각종 행위에 대한 결정을 미루고 재판도 형식적으로 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이번 사건 재판장은 1심 판결 선고 전 이례적으로 재판 지연 이유를 설명했다. 다른 사건들도 함께 재판하느라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판사가 부족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국회가 법을 개정해 1심 구속 재판 기한도 늘려야 한다고 했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2013년 내란 선동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 사건은 1심 유죄 선고가 5개월 만에 나왔다. 당시 재판장은 일주일에 네 차례씩 공판을 진행했고, 변호인이나 검사가 공판과 관련 없는 발언을 하면 강력히 제지했다. 판사 증원이나 제도 개선도 필요하지만 판사들이 재판을 신속히 진행하겠다는 의지와 책임감이 먼저다.

조선일보 사설

 

02-19 압도적 응징 태세가 NLL 도발 막는다

김혁수 대한민국잠수함연맹 초대회장, 초대 잠수함전단장


북한 김정은이 지난 14일 신형 지대함미사일 ‘바다수리-6’을 시험발사한 이후 ‘해상국경선’을 주장하고, 이를 침범하면 무력도발로 간주하겠다며 도발 명분을 쌓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무력화 야욕을 드러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당시 지상에서는 쌍방이 대치하고 있는 선을 휴전선(MDL)으로 획정하고 이 선을 중심으로 남북 각각 2㎞씩 후퇴해 비무장지대(DMZ)를 설정했다.

해상의 경우 1953년 8월 30일 마크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이 우리 측 전력(戰力)의 북한 해역 진입을 막기 위해 북방에 경계선/한계선을 설정했다. 정전협정 당시 대치선을 분계선으로 한다는 원칙에 따라 동해는 휴전선 끝단에서 연장선을 그어 북방경계선(NBL)이라 했다. 서해는 북한의 모든 섬을 우리가 점령했으므로 한국의 땅이 돼야 했지만, 백령도와 연평도 등 서해 5개 도서를 제외하고 전부 북한에 돌려줬다. 당시 영해 기준 3마일을 적용해 쌍방의 중간선인 NLL을 설정했다. 그리고 1996년 7월 1일 유엔사 교전규칙 변경 시 동서해 공히 NLL로 통일했다.

6·25전쟁 후 북한 해군은 궤멸해 방어 능력이 없었는데, 울타리까지 쳐주니 고맙게 생각하고 20년간 NLL을 준수해 왔다. 1970년대 초 국제적으로 영해를 12마일로 인정하게 되고, 북한 해군도 능력을 갖추면서 스틱스 함대함 미사일, 실크웜 지대함 미사일을 보유하게 되자 NLL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1973년 북한이 백령도 등 서해 5개 도서가 자기네 영해 내에 있다며 입출항 시 사전 승인을 받으라고 해서 긴장이 크게 고조됐다. 우리 해군은 폭뢰를 개량해 백령도 연안에 매설하고 여객선을 근접 호송하며 적극 수호에 나섰다.

제1연평해전 이후인 1999년 9월 2일 북한은 서해 5개 도서로의 진입로만 남겨두고 황해도 등산곶과 충남 격렬비열도 간 중간선을 ‘해상경계선’이라며, 백령도와 연평도 이남 해역을 북한 해역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해상경계선을 인정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NLL을 피 흘려 사수해 왔다.

이번 ‘바다수리-6’ 발사 이후 김정은의 ‘해상국경선’ 주장은 1973년 함대함·지대함 미사일을 확보하며 주장했던 경우와 비슷하지만 해상국경선을 정확히 제시하지 않았는데, NLL보다 남쪽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그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해군력을 포함한 우리 국방력은 강해졌다. 북한 지상군의 휴전선 침범이나 북한 공군기의 영공 침입은 바로 전쟁으로 갈 수 있지만, 해상에는 아무런 경계선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도발하기 쉬우며, 그동안 두 차례 연평해전, 대청해전, 천안함 피격 등 크고 작은 해상 도발이 끊이지 않았다.

김정은이 대한민국을 ‘불변의 주적’으로 헌법에 명기했으며 해상국경선을 핑계로 총선을 앞두고 서해상 도발이 예상된다. 국군도 NLL이 분명한 해상경계선이며, 해상국경선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음을 천명했다. 하지만 북한에 종속된 이들은 여전히 ‘평화’와 ‘민족’을 주장하며 국가 수호에 대한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앞으로, 한·미 정보 공유로 도발을 사전에 차단하고, 북한이 도발할 경우 정부의 의지대로 ‘즉각 강력히 끝까지’ 응징해 우리의 바다와 대한민국을 수호해야 한다.

 

문화일보  김혁수 대한민국잠수함연맹 초대회장, 초대 잠수함전단장

 

02.21 北 상대 손배소 기각, 너무 지나친 기계적 잣대

▲/뉴스1 서해에서 북한군에게 피살된 해수부 공무원의 유족들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향후 법적 대응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년 서해에서 북한군에게 사살된 해수부 공무원의 유족이 북한을 상대로 낸 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법원이 각하했다. 유족은 법원이 관보 등에 소장을 올리면 소송 상대방에게 서류가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공시송달을 신청했다. 현실적으로 당사자에게 소송 서류를 전달하기 어려울 때 쓰는 제도다. 그런데 재판부가 이 사건은 공시송달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청을 기각한 것이다. 몇 년 전 국군 포로와 전시 납북자 가족 등이 북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공시송달을 받아들여 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과 배치되는 판결이다.

 

현행법은 당사자 주소 등을 알 수 없거나 외국에서 해야 하는 송달의 경우 공시송달을 허용한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유족 측이 북한 주소를 알고 있고, 헌법상 북한은 우리 영토여서 공시송달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분단된 현실을 무시한 결정이다. 법 규정에만 얽매여 너무 기계적으로 판단했다.

 

현재 국군 포로 등은 법원에서 배상 판결을 받은 뒤 북한에 줄 저작권료를 보관 중인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을 상대로 돈을 달라고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경문협의 돈은 북한 정권이 아닌 북한 주민 개인과 단체 돈이라는 취지다. 전 주민이 정권의 노예인 북에서 무슨 개인 저작권이 있나. 너무나 현실을 무시한 탁상공론이다. 법원이 이제 공시송달까지 인정하지 않는다면 정의라고 할 수 없다.

 

미국 법원은 2015년 북에 억류됐다가 숨진 미국 청년 오토 웜비어의 부모가 낸 소송을 여러 차례 받아들여 배상 판결을 내리고, 배상금 충당을 위해 억류된 북한 화물선 강제 매각도 승인했다. 우리 법원의 태도와는 너무나 다르다. 이러니 김정은이 반인도적 만행에 부담을 느끼겠나.

조선일보 사설

 

02.22 전에도 김정은에게 소장 보냈는데…

▲북한피격 공무원 형인 이래진씨./뉴시스

 

국내 법원에서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한 민사 소송을 제기하는데 있어 ‘송달’은 오랜 난관이었다. 원고가 제출한 소장 등을 피고에게 송달해야 재판이 시작되는데, 북한은 주소지도 불분명하고 전달하는 방식도 마땅치 않아서다.

 

2016년 10월 국군 포로 노사홍·한재복씨가 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재판부도 이 문제에 부딪혔다. 이 재판은 선고까지 45개월이 걸렸는데, 북한에 소장을 어떻게 보낼지를 두고 32개월을 고민했다고 한다. 당시 법원은 국가정보원을 통해 김정은의 북한 주소를 문의하고,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나 외국 북한 대사관을 통해 소장을 전달하는 방안도 모색했다.

 

고심 끝에 법원은 북한과 김정은의 주소를 ‘평양시 중구역 창광동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로 정하고, 공시송달(公示送達)하는 방식으로 소송을 진행하기로 했다. 공시송달이란 소송 상대방의 주소가 불분명할 때 소장 등을 법원 홈페이지 등에 올리고, 2주가 지나면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이를 통해 재판이 겨우 시작됐다. 2020년 7월 북한과 김 위원장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 이후 다른 국군 포로들과 6‧25전쟁 당시 납북 피해자 유족, 제2연평해전 전사자 유족 및 참전 용사 등이 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연이어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법원은 이 사건들도 공시송달로 재판을 진행했다. 북한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국민들이 승소하는 판결이 하나씩 늘었다. 대부분 장‧노년층이 된 원고들은 뒤늦게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 민사 210단독 재판부는 서해에서 표류하다 북한군에 총살된 고(故) 이대준씨 유족이 북한을 상대로 낸 2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공시송달이 허용되지 않는다”며 재판을 열지도 않고 각하했다. 소송 시작 2년이 다 돼서다. 이씨 유족은 국군 포로 판결 때와 같은 피고 주소(평양시 조선노동당 청사)를 소장에 썼는데, 재판부는 이에 오류가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민사소송법은 당사자 주소 등을 알 수 없거나, 외국에서 해야 하는 송달의 경우 공시송달을 허용한다”면서 “그런데 이씨 유족은 북한 주소를 알고 있고, 헌법상 북한은 우리 영토라서 공시송달 요건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의 논리는 치열한 검토와 고민 끝에 북한의 공시송달 방법을 찾은 법원의 기존 판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 논리에 따르면 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한 모든 소송은 불가능하다. 평양에 소장을 전달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유일한 최후 수단인 공시송달이 막혔기 때문이다. 그럼 조선노동당 청사로 어떻게 소장을 보내라는 것인가. 법 문언에만 얽매인 기계적 판단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유족 측 변호인은 즉시 항고했다. 항고심 재판부가 깊이 고민할 문제다.

조선일보 방극렬 기자

 

02.22 북한이 또 서해에서 도발한다면…자폭 무인정에 주의하라

지난 14일(이하 현지 시간) 러시아 해군의 대형 상륙함인 체자르 코니코프함(3800t)이 흑해 크름반도 연안에서 사라졌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강력한 폭발음이 들리고 거대한 연기 기둥이 피어올랐다. 1986년 건조돼 조지아 침공과 시리아 내전에 참전했던 이 상륙함은 노보로시스크를 떠나 세바스토폴로 군수물자를 수송하던 중이었다.

해군 열세 우크라의 비밀 무기
러시아의 흑해함대에 큰 피해
김정은, 북방한계선 도발 엄포
예상치 못한 곳 허 찌를 가능성

 러시아는 상륙함의 실종에 대해 입을 다물었지만, 우크라이나는 이를 격침했다고 발표했다. 체자르 코니코프함을 가라앉힌 우크라이나의 무기는 자폭 무인정인 마구라(MAGURA) V5였다. 길이 5.5m의 마구라 V5는 최대 1t의 폭발물을 싣고 60시간, 400㎞까지 항해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이 무선으로 조종해 최고 속도 시속 80㎞로 적 목표물에 돌진한다. 우크라이나가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여러 척의 마구라 V5가 상륙함을 협공했고, 상륙함 좌현에서 두 차례 폭발이 일어났다. 러시아 헬기 조종사가 “잔해와 기름띠만 보인다”고 교신한 걸 우크라이나가 감청했다.

 

러시아 요격 시도 지그재그로 피해

 ▲지난 1일 흑해에서 우크라이나 자폭 무인정이 러시아 이바노베츠함에 돌진해 폭발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우크라이나는 마구라 V5를 포함, 다양한 종류의 자폭 무인정을 운용하는 ‘그룹 13’이라는 전문 부대를 창설했다. 그룹 13은 지난 1일에도 자폭 무인정으로 러시아의 미사일 초계함인 이바노베츠함(550t)을 습격했다. 우크라이나의 동영상에선 초계함이 빠르게 이동하면서 근접방어무기체계(CIWS)인 30㎜ AK-630M으로 자폭 무인정을 요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자폭 무인정이 지그재그로 움직여 포탄을 피하면서 애먼 물기둥만 솟아올랐다. 곧 화염이 세 번이나 튄 뒤 이바노베츠함이 침몰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한 전쟁은 아직 진행형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보다 군사력이 매우 뒤졌는데, 특히 해군에서의 격차가 가장 컸다. 우크라이나 해군에선 3500t급 미사일 호위함 1척만이 그나마 쓸만한 전력이었다. 이 호위함도 개전 후 러시아 손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우크라이나가 자침했다.

 

그러나 2년이 돼가는 전쟁에서 러시아는 해상에서도 우크라이나를 밀어붙이지 못하고 있다. 침공 주역 중 하나인 러시아 흑해함대는 우크라이나의 해로를 봉쇄하거나 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엎기는커녕 생존을 걱정할 처지다. 21일 현재 흑해함대는 전체 함정 70척 중 14척을 잃었다. 흑해함대는 우크라이나 공격이 두려워 거점을 세바스토폴에서 노보로시스크로 옮겼다. 영국 국방부는 흑해함대 사령관인 빅토르 소콜로프 제독이 보직해임된 것으로 파악했다. 이바노츠함과 체사르 쿠니코프함의 피격에 대한 책임성 인사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자폭 무인정 마구라 V5. [유튜브 캡처]

 

절대적으로 밀릴 것만 같았던 우크라이나가 해전에서 오히려 러시아에 우세한 이유는 비대칭 전력 덕분이다. 우크라이나는 구축함이나 잠수함이 전무하지만, 대신 무인기와 미사일, 그리고 자폭 무인정으로 러시아에 맞서고 있다. 이중 자폭 무인정이 가장 유용했다. 우크라이나의 무인 자폭정은 2022년 10월 29일 초계함과 소해정 습격을 시작으로 끊임 없이 러시아 흑해함대의 함정을 타격했다. 크름반도와 러시아를 잇는 크름대교는 지난해 7월 17일과 8월 5일 우크라이나 무인 자폭정의 공격으로 교통이 잠시 끊어지기도 했다.

 

이같은 우크라이나 자폭 무인정의 활약상을 눈여겨보는 데가 바로 북한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해상전력 차이보다 한·미와 북한 간 차이가 훨씬 더 심하다. 그래서 북한은 자폭 무인정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 소식통은 “북한이 자폭 무인정을 개발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기묘하고 영활한’ 도발 노리는 북한

최근 북한이 서해에서 무력 도발을 벌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4일 신형 지대함미사일 시험발사 현장에서 “(한국이) 국제법적 근거나 합법적 명분도 없는 유령선인 ‘북방한계선’을 고수하려 각종 전투함선을 우리 수역에 침범시키며 주권을 침해하고 있다. 우리의 해상주권을 실제적 무력행사로 지켜야 한다”고 말하면서다. 김정은은 앞서 지난달 15일 최고인민회의에선 “불법 무법의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영토·영공·영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도발로 간주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이 북방한계선(NLL)을 수호하는 활동을 영해침범과 전쟁도발로 보고 북한이 무력행사하겠다는 엄포다. 앞으로 NLL에서의 도발에 대한 사전 명분 쌓기라는 분석이다. 김정은은 후계자였던 2010년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전의 배후였다. 그런데 북한은 기존과 똑같은 도발을 벌인 적이 없다. 김일성이 강조했다는 ‘기묘하고 영활한 전술’에 따라 예상도 못 한 곳에서 허를 찌르려 한다. 천안함 피격처럼 진범을 가려내기 힘들고, 한국 사회를 분열시킬 수 있다면 더 선호할 것이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자폭 무인정일 게다. 군 당국도 북한이 자폭 무인정으로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관련 대책을 마련 중이다. 하지만 자폭 무인정은 작고 빨라 이를 탐지하고 조준하는 게 어렵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해군은 NLL 해상을 공중에서 감시하다, 자폭 무인정을 발견하면 즉시 영격(迎擊·맞받아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대형 무인기에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자(攻者)는 시기와 장소, 방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정할 수 있는 반면 방자(防者)는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자폭 무인정과 같은 신기술은 전쟁에서 공격을 이롭게 한다. 군 당국이 ‘창을 베고 갑옷을 깔고 앉는다’는 침과좌갑(枕戈座甲)의 전투태세를 항상 갖춰야 하는 이유다.

 중앙일보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

 

02.27 북한이 가장 두려워한 김관진 "난 대한민국이 있어 행복하다"

특별사면 김관진 전 국방장관의 고백

국가 헌신이란 군인의 마음가짐 싹 부정되는 게 힘들었다
군 체계 혁명 가져올 AI 기반의 과학 강군 육성 이뤄내겠다
북한, 총선 전 '전쟁이냐 평화냐' 남남갈등 도발 가능성 짙어
박근혜 회고록은 진실을 말해...억울하게 옥살이했다 생각

"저런 눈뜬 소경들에게 안보를 맡기고 막대한 혈세를 섬겨 바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참 불쌍하다. 차라리 청각, 후각이 발달한 개에게 안보를 맡기는 것이 열 배는 더 낫다." 얼마 전 북한군 포사격 직후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한국에 내놓은 원색적 비난 속에 '개'가 등장한 걸 들으며 새삼 떠올린 인물이 있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74).

 

▲김관진 국방혁신위원회 부위원장이 20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2013년 북한 대남선전 매체는 당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의 가면을 쓴 인형을 등장시켰다. 그리곤 북한 군견들이 으르렁거리며 달려들어 무자비하게 물어뜯게 했다. 이처럼 북한은 눈엣가시를 제거하는 해결사로 '개'를 등장시키곤 했다. 북한이 얼마나 김관진을 무서워하고 껄끄러워했는지 알 수 있다.

 

▲북한의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가 2013년 공개한 김관진 당시 국방부장관을 겨냥하고 실시한 훈련 모습. [사진 우리민족끼리]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북한의 도발은 끊이질 않는다. 최근 한 달 사이 다섯번의 미사일 도발이 있었다. 서해 5도에선 긴장 수위가 높아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선 북한제 무기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이런 북한의 움직임에 대해 북한이 가장 두려워했던 김관진 전 장관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궁금했다. 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무려 6년 8개월 동안 무자비할 정도의 수사와 재판을 겪으면서 느낀 소회를 듣고 싶었다.

김 전 장관은 공직 재임 중에도 그랬지만 언론과의 인터뷰에 거의 응하지 않았다. 특히 지난 6일 특별사면 후에는 인터뷰와 강연 요청이 셀 수 없을 정도로 쇄도하지만 사양하고 있다고 했다. 김 전 장관은 "지난해 5월부터 (부위원장을) 맡은 국방혁신위원회 일이 너무 많고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20일 찾아간 그의 사무실에는 이순진 국방혁신위 특별자문위원(69·전 합참의장)도 있었다, 투철한 애국심과 강한 리더십으로 '작은 거인'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화제는 AI(인공지능) 기술부터 드론에 이르기까지 넓고 깊었다. 김 전 장관은 장관 재임 중 '이 시간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를 늘 고민하며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기 위해 집무실에 김정은과 북한군 수뇌부의 사진을 걸어두었다고 한다. 대신 이제 그의 사무실 벽에는 '국방혁신으로 과학기술 강군 육성'이란 휘호가 걸려 있었다. 세월이 지나도 영원한 군인이란 느낌이 들었다.

 

AI를 군의 정보참모 겸 작전참모로

문:추진 중인 '국방혁신 4.0'의 핵심 과제는 AI를 기반으로 한 과학 강군 육성이라는데, 쉽게 예를 들자면.

 

   쉽게 말해 드론 로봇 군대를 만들고, 최전선에 유·무인 복합 전투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앞으로는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거나 혹은 선제타격을 가할 때 AI가 어떤 탄약으로 어디에 어느 사거리의 탄약을 어느 정도 쏟아부으면 될지 데이터를 제공해주는, 말하자면, 정보참모와 작전참모의 역할을 하게 된다. 쉽게 말하면 택시를 부르는 앱이라 생각하면 된다. 삼각지에서 상암동을 간다고 하면 먼저 앱을 열고 목적지 입력을 하면 주변에 있는 택시 중 가장 가까이 있는 적합한 택시가 매칭되고 자동결제가 이뤄지지 않느냐. 마찬가지로 적이 식별되면 아군의 대전차 미사일이나 드론의 위치를 실시간 체크해 바로 연결해 준다. 이 결정까지 기존 20분 걸리던 게 1분으로 단축된다.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의 군 체계가 완전히 달라지는 혁명이 이뤄진다.

 

문:금방 현실화될 수 있나. 그렇다면 북한군의 AI 수준은 어는 정도인가.

 

예전부터 과학기술강군 구호는 있었지만, 현재처럼 실질적으로 국방혁신을 추진한 적은 없었다. AI기반 과학기술강군 육성은 한 번에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계화하여 추진하고 있으며, 현재는 기반체계 구축과 각 군 시범부대를 운용중에 있다. 참고로 작년 과학화전투훈련단(KCTC)에서 실시한 아미타이거여단의 전투 모의실험 결과, 기존 부대보다 훨씬 더 강한 부대가 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북한군은 아직 드론을 제외하곤 현실적으로 AI를 활용할 여건은 안 된다고 본다. 다만 AI-드론-로봇이 결합하려면 인공위성이 필요한데 북한도 지난해 인공위성을 최초로 발사하면서 감시정찰 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0일 윤석열 대통령이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방혁신위원회 3차 회의에 입장하며 김관진 국방혁신위 부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문:윤석열 대통령이 국방혁신위 부위원장을 맡기면서 특별히 당부한 부분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국방혁신을 획기적으로 강화해달라, 그리고 4차 혁명의 시기에 부합하는 새로운 전쟁의 양상에 대비해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소프트웨어가 6개월에서 1년이면 계속 업데이트되는 시대다. 군사무기체계가 우리의 경우 평균 14년이 걸리는데 이를 절반인 7년 안에 완성될 수 있도록 국방획득체계를 획기적으로 혁신해달라고 말씀하셨다. 박정희 대통령 이후 윤 대통령처럼 국방혁신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고 선두에서 이끌어가는 분은 없었다.

 

문:군의 첨단화도 좋지만, 군의 사기와 마음가짐도 문제 아닌가.

 

맞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싸우겠다는, 승리하겠다는 자신감이 더 중요하다.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수가 있겠어?" '우린 한미동맹이 있잖아'라 안심해버리면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들은 무기력해진다. 그래서 군은 전투력 향상에 매진해야 한다. 드론과 AI가 있어도 그런 정신적 부분이 없으면 이기기 힘들다.

 

문:인구절벽 위기에 따른 병력 부족 현상도 국방혁신위 구성의 한 원인이 됐다. 그렇다면 저출산 고령화에 맞춰 실버 아미(55~75세의 재입대) 도입 혹은 모병제 구상은 어떤가.

 

인구절벽 문제에 따른 여러 리스크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구체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 50~60대들은 위기 대응 능력이 상당히 체계적이다. 다만 상명하복, 동원체계 등 문제점도 있다. 또 모병제를 채택한 국가 중 전투능력이 뛰어난 국가가 거의 없다고 본다.

 

▲김관진 국방혁신위원회 부위원장이 20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발언하는 모습. 김현동 기자

문:초급장교 복무여건 및 전술제대 지휘관(대대장~사단장)들의 지휘여건 개선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임관 5년이 안 된 초급 간부들은 군 최전방 전력의 핵심이면서도 낮은 보수와 잦은 비상대기로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게 사실이다. 사관학교 생도들의 자퇴율도 증가하고 있고, 학군 사관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율도 급감하고 있다. 작년에 시간외근무수당 확대, 당직 근무비 인상 등의 성과가 있었지만, 아직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야전에서 전술제대 지휘관들이 전투임무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복무여건을 개선하는 것 또한 시급한 과제다. 신성한 국가방위 임무를 수행하는 지휘관들에게 국가가 오직 개인의 희생만을 더 이상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휴일없이 항상 대기하는 긴장감과 병력관리의 어려움, 전투준비를 위한 예산 부족 등 지휘관만의 고충과 애로사항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국민적 관심과 정치권의 지원이 절실하다.

 

총선 앞두고 북한 도발 가능성 크다

문:북한의 도발이 진짜 전쟁할 생각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한국을 교란하려는 의도인지.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 중 가장 결정적인 건 지도자의 성격이다. 얼마나 조급한가, 공격적인가에 따라 다르다. 전쟁을 결심해버리면 끝나는 것이다. 북한의 경우 내부적으로 여러 문제가 있어 도발을 통해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려는 측면이 있다. 다만 문제는 그 도발에 대응하고 응징하고, 또 거기에 도발하는 과정에서 전면전으로 갈 수도 있다. 그래서 전쟁이라는 것은 항상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더군다나 북한은 핵무기를 갖고 있어 강하게 도발하면 우리가 제대로 대응 못 할 것이라고 계산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북한의 도발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응징하지 못한다면 북한의 도발은 한층 더 심각해질 것이다.

 

문:북한은 과거에도 선거를 앞두고 남남 분열을 노린 도발을 했는데.

 

북한은 늘 선거에 개입해왔다. 뚜렷한 전략적 목적, 심리적 목적을 갖고 있다. 전쟁이냐 평화냐의 논리로 한국 내부의 갈등을 일으키려 했다. 이번 총선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북한은 우리가 도발 주체를 판단하여 즉각 대응하기 모호한 방법으로 도발할 것이다. 과거에는 북한이 도발하면 보수 정권에 더 유리했지만, 이제는 그런 도발을 통해 군의 국가안보 태세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초래하고 '전쟁이냐 평화냐'의 프레임으로 남남갈등을 조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5년 8월 22일 북한의 포격도발로 인한 대치상황과 관련해 열린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우리측 대표인 김관진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북측 대표인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가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 통일부

문:서해5도가 매우 불안하다고들 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최근 '해양국경선'이란 단어도 썼는데.

 

북한은 전에부터 우리 북방한계선(NLL) 훨씬 남쪽으로 자기네들의 경계선을 주장해 왔다. 다만 해양국경선이란 단어를 쓴 건 처음인 것 같다. 우리는 서해5도 NLL을 1인치도 내줄 수 없다. 우리가 지금까지 주장했던 NLL에서 1mm라도 더 북한군이 넘어오면 우리 군이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매우 잘 대응하고 있다고 본다.

 

문:많은 군인들이 김 전 장관을 존경하고 따른다. 평소 '창을 베고 적을 기다린다'는 ‘침과대적(枕戈待敵)’의 자세를 부하들에게 강조했는데.

 

올바른 국가관, 대적관, 그리고 필승 군인정신의 신념화가 필요하다. 미래에 대한 준비도 게을리해선 안 된다. 아무리 전력이 잘 갖춰져 있어도 이를 실 전투력으로 승화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도 군에 성원과 신뢰를 보내줬으면 한다. 얼마 전 시민들이 휴가 나온 장병에게 식사와 커피값을 대신 내줬다는 기사를 봤다. 사실 군은 사기를 먹고 자라는 집단이다. 고개 숙인 군은 적과 싸워 이길 수 없다. 국민이 보내는 작은 응원이 초급간부를 비롯한 군 장병들에겐 기쁨과 자부심이 된다. 당연히 군은 확고한 국가방위로 이에 보답해야 한다.


문:북한은 유독 '김관진 공격'에 혈안이었다. 군견이 '김관진 인형'을 물어뜯는 사진도 공개했는데 당시 어떤 느낌이었나.

 

북한에선 그렇게 하면 내가 굴복할 거로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난 그 모습이 방영된 이후 더 강해졌다. 더 굽히지 않고 더 세게 북한을 압박했다. 그즈음 해병대 사령관이 내게 와서 북한 전단에 5적인가 6적인가가 나오는데, 거기에 나뿐 아니라 자기도 포함됐다며 아주 자랑스럽다고 하더라. 그게 바로 우리 군의 정신이다. 내가 북한의 테러 타깃이 돼 기자들에게 '내 옆으로는 오지 말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웃음).

▲북한군이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의 얼굴 사진을 놓고 사격 훈련을 하는 모습. [사진 우리민족끼리]

짜맞추고 몰아간 수사, 진실·진심을 왜곡

문:문재인 정부 들어서자마자 시작된 수사와 재판이 무려 6년 8개월 걸렸다. 전체 혐의 7가지 중 5가지(차기 전투기 기종 결정, 제주 해군기지 정치중립 위반, 계엄령 문건, 세월호 유족 사찰, 사드 추가반입 보고 위반)가 수사단계에서 무혐의 처분되고 세월호 조작 혐의도 무죄가 났다. 그리고 사이버 사령부 군 댓글 사건만 구속, 적부심 석방, 재영장 청구, 기각, 파기환송, 상고 포기 등을 거쳐 지난 6일 특별사면됐다. 이 긴 세월 동안 무엇이 가장 억울했는가.

 

사실 이건 북한의 사이버 심리전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댓글을 통해 사이버 심리전을 한 것이다. 그게 정치에 관여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안 듣더라. 이미 정치적으로 목표와 결론을 정해놓고 짜 맞춰 몰아갔다. 원래 군인은 다시 태어나도 제복을 입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는 법인데, 그게 싹 부정되는 것이 안타깝고 힘들었다. 진실과 진심이 왜곡됐다.

 

문:2018년 이후 출석한 재판만 50차례 가까이 된다. 그 힘든 세월을 지탱하게 한 힘은 무엇이었나.

 

우국충정의 마음 하나다. 난 군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역시 날 평가하고 응원해주는 군 선후배, 국민으로부터의 편지와 메시지가 큰 힘이 됐다. 그들의 격려와 응원의 편지를 읽으면서 6년 8개월을 참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지난 2019년 11월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작년 7월 파기환송심 결심 공판 때 최후 진술이 인상적이었다. "난 육사 입교 이래 46년간 나라를 지키는 일에 몰두했다. 강한 군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군대를 만들고자 노력했고 지킬 수 있는 나라가 있어 행복했으며 발전하고 있는 조국 대한민국에 있어서 큰 보람이 있었다. 뜻하지 않게 정치 관여라는 죄목으로 피고인이 돼 오로지 적과 싸워 이기는 군인다운 군인이 되고자 했던 나의 삶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됐다. 나와 비슷한 이유로 피해받는 후배들이 더는 나오지 않기 바란다." 어떤 기분에서 그랬나.

 

지금 읽은 그 내용 그대로의 기분이었다. (웃음). 책임은 내가 다 진다는 그런 생각이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초급장교 소위 때 전방 철책선에서 경계를 서고 있을 때 왔다 갔다 하던 토끼조차 북한에 넘어가지 않도록 애썼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 토끼가 북으로 갔으면 어떻게 됐겠는가. 나는 대한민국이 있어서, 대한민국에 있어서 행복했다.

 

박근혜 회고록은 진실을 말했다

문:이달 초 대구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북 콘서트에 참석했다. 어떤 생각이 들었나.

 

내가 국가안보실장 할 때 곁에서 보면 굉장히 진솔한 분이고 애국심이 강한 분이었다. 사리사욕을 위해 뭘 한다는 것은 아예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철저한 분이었다. 참 억울하게 옥살이까지 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회고록은) 국민에게 정확한 것을 일깨워주기 위한 목적에서 쓴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5일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이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호텔에서 열린 '박근혜 회고록 출간기념 저자와의 대화'가 끝난 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건강은 어떤가.

 

허리가 좀 안 좋고 지병도 있지만, 국방혁신을 통해 강한 군을 만들어 간다는 생각에 엔도르핀이 돈다. 보람과 즐거움을 갖고 임하고 있다.

중앙일보 김현기 논설위원

 

02.28 김정은의 전쟁, 푸틴의 전쟁

1970년대 후반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브다(Pravda)는 애완동물에게 육류를 먹이지 말자는 이색적인 캠페인 기사를 게재했다. 미국 전문가들은 이를 소련 정권의 프로퍼갠더로 해석했다. 개와 고양이에게도 고기를 먹일 만큼 소련은 이제 소비에서도 미국을 따라잡았음을 선전하려고 거짓 기사를 썼다고 보았다. 하지만 기사가 허구만은 아니었다. 육류값이 너무 싸다 보니 고기를 사서 애완동물에게 먹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진실은 감췄다. 육류값이 싼 이유는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 때문이었다. 생필품 가격은 일정해야 한다는 공산주의 이념에 따라 소련은 1970년대 말에 국민총소득의 무려 7%를 식품 가격을 낮추는 보조금으로 썼다. 그 결과 불어나는 재정적자와 부족한 투자 재원으로 경제는 망가지고 있었다. 프라브다는 내부의 고통스러운 진실은 감추고 일부 사실만 외부에 드러내어 전체적인 그림을 왜곡하는 교활함을 보였다. 그리고 미국 전문가는 감추어진 진실을 보지 못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김정은, 대남 적대와 전쟁론으로
북한 주민들의 남한 동경을 막고
한국 손 묶어 푸틴을 도우려는 듯
북한 사상전, 푸틴의 전쟁과 연결

 독재자의 권력 기반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전쟁이나 외부의 개입이 임박하지 않은 상황에서 독재자의 행동과 정책 대부분은 내부를 향한 것이다. 이 내부를 모르면 독재자의 모든 언행을 대외용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러면 무엇이 김정은 입에서 한국을 초토화하겠다는 말을 내뱉게 했을까. 새해 초부터 서해 NLL에 포격을 감행하게 했을까. 선대 유훈인 남북통일마저 저버리고 적대적 2국가, 나아가 남한 정복까지 들먹이게 했을까.

 

김정은이 벌이고 있는 내부 사상전이 그 이유다. 5년 전 하노이회담 결렬 후 그가 부르짖은 자력갱생이 사상전의 신호탄이었다. 자력갱생하려면 내부가 단합해야 하지만 실상은 반대였다. 시장 활동을 통해 북한 주민 상당수가 남한 문화와 자본주의로 심적인 전향을 했던 상태였다. 상인들은 라벨을 떼고 남한산 제품을 몰래 팔았다. 최고 혼수품인 남한 밥솥을 구하려고 국경을 오가는 밀수업자에게 부탁하는 일도 많았다. 김정일의 말대로 “시장은 자본주의의 본거지”인 동시에 남한 문화의 서식처이기도 했다. 그런데 2020년부터 코로나로 시장 활동이 어려워지자 김정은은 이를 ‘시장, 자본주의, 남한 문화’라는 3종 세트를 타격할 호기로 간주했다. 이 중 주민의 저항이 가장 적을 법한 남한 문화를 거세게 제거하려 했다. 다량의 남한 문화를 유포할 경우, 사형까지 가능하게 만든 ‘반동사상문화 배격법’이 그 시도 중 하나였다.

 

김정은의 전쟁론은 북한 주민의 남한 동경을 마음에서부터 지우려는 자기 완결적 시도다. 평화통일이 북한의 국시인 이상 남한 문화는 제거가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다. 평화통일하자면서 왜 신통방통한 남한 문화를 배격해야 하냐며 장마당 세대는 마음으로 반발했다. 이에 대응해 북한 정권은 논리적 일관성과 법적 완결성을 갖출 필요를 느꼈다. 남한 문화의 연성권력을 이기기 위해서는 남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적대국의 문화이니 버려야 하며 이를 어긴다면 엄히 처벌한다고 위협하는 강경책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더해 전쟁을 언급하며 포까지 쏘아대야 북한 주민의 마음속에 남한이 정말 적국임을 각인시킬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만큼 북한 내 사상전은 치열하며 김정은의 위기감은 고조돼 있다.

 

김정은의 전쟁 허풍에는 푸틴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의 협박이 먹힐 경우, 가장 큰 혜택을 볼 사람은 푸틴이다. 한국은 민주국가 중 우크라이나에 대량의 포탄을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이다. 그런 한국이 전쟁 대비를 위해 포탄을 비축하려 한다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포탄 지원 가능성은 사라진다. 러시아로서는 현재 자국에 유리한 전황을 바꿀 수 있는 결정적인 변수 하나를 제거하는 셈이다. 미국도 북한을 감시하느라 우크라이나에 관심을 집중하지 못한다. 이렇듯 김정은의 의도를 잘못 해석하면 한국의 손은 묶이고 미국의 눈은 분산돼 결국 러시아에 큰 도움이 된다.

 

김정은의 언행은 푸틴의 요청일까. 이심전심일까. 같은 시기 러시아의 외교관들도 한국 외교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언급하고 경고를 날리는 동시에 기대를 표시하며 한국이 현 상태를 유지하도록 유도, 압박했다. 북·러가 긴밀히 조율하고 같이 움직인다는 생각은 기우인가. 북·러 간 어떤 거래가 있고 어떤 거래를 기대하길래 김정은이 이렇게 움직이고 있을까.

 

김정은의 전쟁은 대내 사상전, 푸틴의 전쟁은 대외 열전(熱戰)이지만 이 둘은 얽혀 있다. 우리는 북한의 내부를 관통할 뿐 아니라 그 내부와 지정학이 접하는 지점을 정확히 읽어내야 한다. 김정은의 말만 듣고 북한의 문건만 읽는 수준이 아니라 그가 감추려는 진실을 통찰하는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 우리 정부는 북·러 밀착의 결과 북한에 군사기술이 제공될 때는 한국의 우크라이나 정책에 중요한 변화가 있을 수 있음을 러시아에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알려야 한다.

중앙일보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경제학부

 

02.29 위기의 ROTC, 국방 포퓰리즘 없애지 못하면 백약이 무효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충북 괴산군 육군학생군사학교에서 열린 2024년 학군장교(ROTC) 임관식 뒤 임관 소위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학군장교(ROTC) 임관식에 참석했다. 현직 대통령의 참석은 16년 만이라고 한다. ROTC 후보생 지원율이 가파르게 하락하는 등 초급 장교 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국방부가 ROTC 후보생들을 위한 각종 처우 개선 조치들을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복무장려금과 학군생활지원금을 인상하고, 연간 40명인 해외 연수 규모를 160여 명으로 늘린다는 내용 등이었다. 근본적 해결책이 되긴 어렵다.

 

ROTC로 충원되는 우리 군 초급 장교가 전체의 70%다. 2015년 4.8대1이던 ROTC 지원율은 작년 1.8대1까지 떨어진 상태다. 수도권에선 정원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는 대학들이 수두룩하다. 이미 문 닫은 학군단도 여럿이다. 작년 육군은 ROTC 후보생을 추가 모집했다. 창군 이래 처음이었다. ROTC를 중도 포기하고 일반 병으로 입대하는 사례도 속출한다. ROTC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관학교, 육·해·공군 부사관의 인기도 땅에 떨어졌다.

 

이렇게 된 근본 원인은 사병 복무 기간을 줄이고 월급을 더 줘 청년 표를 얻겠다는 국방 포퓰리즘에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 때마다 복무 기간 단축 경쟁이 벌어져 일반 병은 이제 18개월 복무한다. 기초 전술도 익히기 전에 전역한다. ROTC는 28개월 복무다. ‘병사 월급 200만원’ 대선 공약에 따라 2025년엔 장교와 병사의 월급에 차이가 없어진다. 근무 여건은 열악한데 당직 수당은 경찰·소방관의 5분의 1 이다. 누가 장교가 되려 하겠나.

 

일선 소대장과 중대장, 부사관 등 초급 간부의 애국심과 자질은 군 전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들의 사기가 떨어지면 아무리 많은 병사도 오합지졸이고 아무리 우수한 무기도 무용지물이다. 한국 정치인들은 표가 많은 병사들 인기에만 영합하며 초급 장교·부사관의 박탈감을 자극했다. 일각에선 초급 장교도 복무 기간 단축을 거론한다. 포퓰리즘이 만든 문제를 포퓰리즘으로 덮겠다는 안보 자해 행위다. 북한 위협을 받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다. 여야가 국방 정책만은 정치 포퓰리즘의 예외 지대로 두는 데 합의하고 병사 복무 기간 등을 표가 아니라 안보 차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2-29 장교 된 ‘연평해전의 딸’에 “이게 국가” 울컥한 대통령

 최일선에서 국방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장교와 부사관은 ‘호국의 간성’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학군장교(ROTC) 통합 임관식에 참석해 2776명의 신임 육·해·공군 및 해병대 소위를 격려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현직 대통령의 ROTC 통합 임관식 참석은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이후 16년 만이다. 군통수권자로서 호국의 간성을 최대한 예우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여러분이 우리 군의 미래이자 대한민국의 미래”라고 했다.

이번 임관식엔 2002년 제2연평해전 전사자 고 조천형 상사의 딸 시은 씨가 해군 학군사관후보생으로 참석해 더 각별했다. 윤 대통령은 이를 언급하다 울컥해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각자의 위치에서 대한민국을 지키는 여러분을 보니 정말 든든하다”고 했다. “이게 바로 국가라는 생각이 든다”고도 했다. 22년 전 북한 경비정의 기습 공격으로 산화한 아버지, 그 유지를 이어 바다 수호에 나선 딸이 있기에 안보는 더 든든해졌다. 툭하면 ‘이게 나라냐’고 비아냥대던 친북 시위꾼들에 대한 일침이기도 하다.

2010년 천안함 폭침 때 전사한 고 김태석 해군 원사의 장녀 해나 씨도 지난해 5월 해군 장교 후보생이 됐다. 바다의 수호신이 된 아버지에 이어 영해 수호에 나선 것이다. 학군장교 임관식엔 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입대한 청년과 3대 군인 가족, 6·25 유공자 후손도 있었다. 윤 대통령은 “대를 이은 대한민국 수호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며 이들 가문의 애국을 기렸다. 독립과 건국, 호국 모두 중요하다. 3·1절 105주년을 맞아 시은 씨 같은 청년의 애국심이 나라를 지키는 근간임을 다시 한 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