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主國防 2024-01/ 01.01 ‘햇볕정책’에 대한 본심 드러낸 김정은, 애초에 환상이었다 - 01.31 김정은 "남한이 제1의 적"…경찰, 북한 해외공작 막을 수 있나
自主國防 2024-01/
01.01 ‘햇볕정책’에 대한 본심 드러낸 김정은, 애초에 환상이었다
북한 김정은이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며 “유사시 핵무력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박차를 가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북남 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교전국 관계”라고 했다. 남북 관계의 민족적 특수성을 부정한 것이다.
김정은이 선대 수령들의 통일 유훈인 고려연방제의 폐기까지 시사하며 대남 핵공격을 위협한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지금까지 북은 입으론 ‘우리 민족끼리’를 말하면서 민족을 공멸시킬 핵무기 개발에 몰두해왔다. 누가 봐도 모순인데 주사파를 비롯한 좌파와 이른바 진보 세력은 ‘대미 협상용’ ‘민족의 핵’이란 궤변으로 두둔했다. 이를 비웃듯 김정은은 지난 몇 년간 대남 공격용 전술핵 개발을 공개 지시하고 핵 선제공격을 법제화·헌법화했다. 진작에 ‘우리 민족끼리’의 가면을 벗어던진 것이다. 이번 발언은 이를 재확인한 것일 뿐이다.
김정은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다를 바 없었다”며 역대 한국 정부의 모든 대북·통일 정책을 싸잡아 “우리를 붕괴시키겠다는 흉악한 야망”이라고 했다. 사실상 햇볕정책에 대한 사망 선고다. 애당초 북에 선의를 베풀면 핵을 버리고 개혁·개방에 나설 것이란 가설 자체가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순진한 발상이었다.
국가의 통일 대계를 우화에서 찾는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이런 사람들이 ‘같은 민족에게 핵을 쓸 리 없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대북 퍼주기에 몰두했다. 지난 정부는 존재하지도 않는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대신 선전해주며 전 세계를 속이고 트럼프에게 보증까지 섰다. 그 결과가 미 본토를 공격할 ICBM과 한국을 잿더미로 만들 전술핵의 완성이었다.
대북·통일 정책은 북의 실체를 냉철히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북한 정권의 유일한 관심사는 김씨 왕조의 영구 집권이고, 이를 위해선 주민에 대한 극도의 감시·통제·억압이 필수 불가결하다. 외부의 위협을 끊임없이 과장·부각하는 것도 내부 결속의 명분으로 삼기 위해서다. 북한이 유화 정책을 구사하는 것은 고강도 제재로 조여드는 숨통을 틔우거나 핵무력 고도화의 시간을 벌기 위한 위장 평화 공세일 뿐이다. 이런 북한과도 협상을 안 할 순 없다. 다만 ‘남북 쇼’ 하고 ‘눈물 쇼’ 하는 TV용 이벤트가 아니라 김정은이 핵을 고집하면 죽고, 버리면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협상이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1-01 김정은 “남북, 적대적 두 국가”… 광포한 도발 철저 대비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새해 대미·대남 관계에서 ‘고압적이고 공세적인 초강경 대응’을 위협했다. 김정은은 지난해 말 닷새간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전쟁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현실적 실체로 다가오고 있다”며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남북 관계를 ‘적대적이고 교전 중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대남 노선의 근본적 전환을 선언했다.
‘남조선 영토 평정’을 운운한 김정은의 초강경 노선 천명은 새해 북한의 한층 과감하고 난폭한 도발을 예고하고 있다. 이미 재작년부터 ‘강 대 강 정면승부’ 노선에 따라 거침없는 핵·미사일 도발을 일삼아 온 북한이다. 한반도 주변은 물론이고 미국 본토까지 사정권에 둔 핵미사일을 개발하고 지난해 말 군사정찰위성까지 쏴 올린 자신감을 바탕으로 더욱 공세적인 대결 노선을 걷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김정은은 새해에도 정찰위성 3기 추가 발사와 해군 수중·수상 전력 강화, 각종 무인기와 전자전 수단 개발 같은 전방위 도발을 예고했다.
북한은 4월 총선을 앞두고 남북 관계를 더욱 거친 대결 국면으로 몰고 갈 작정인 듯하다. 김정은은 “남북 관계가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했다. 북한이 진작부터 남측을 향해 ‘대한민국 족속’ ‘대한민국 것들’이라 칭하며 조롱해 왔는데, 이번에 김정은은 한국을 ‘적대 국가’로 단언하며 통일전선부 등 대남 기구들의 정리까지 공식화했다. 이 같은 대적 선언은 무력시위 수준을 넘는 실제 군사 도발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 정부와 군의 단단한 대비가 필요하다.
동아일보 사설
01.01 핵무기는 더 이상 북한 주민 삶의 해법 아니다
북한이 새해를 맞아 대대적인 긴장 조성에 나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그제 폐막한 노동당 전원회의(8기 9차)에서 한국은 동족이 아니고, 통일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어제 북한 매체가 소개한 그의 발언은 어느 때보다 핵과 관련한 수위가 높았다. “전쟁이라는 말은 이미 우리에게 현실적인 실체”라거나 “핵전쟁 억제력은 주저없이 중대한 행동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계속 박차를 가하라”고 주문했다.
이 같은 방향에 맞춰 북한은 올해 내내 핵을 앞세운 긴장 고조와 전쟁 분위기 조성에 나설 전망이다. 북한은 지난해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비롯해 다양한 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핵 다종화를 통해 핵강국을 이뤘다며, 이를 김 위원장의 ‘치적’이라고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핵무기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김 위원장은 되새겨야 한다. 중국은 1970년대 덩샤오핑 주석이 “흰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을 앞세운 개혁·개방 정책의 결실로 G2 국가로 부상했다. 떠오르는 세계의 공장으로 꼽히는 인도 역시 1990년대의 핵 개발이 아니라 2014년 나렌드라 모디 총리 집권 이후 단행한 경제개혁으로 ‘잠에서 깨어난 코끼리’가 됐다. 모두 핵을 가지고는 있지만 핵의 덕이 아닌 거대한 개방적 국제질서와 경제개혁의 대세에 올라탔기에 민생의 향상이 가능했다.
세계 두 번째로 핵무기를 개발한 소련이 경제적으로 몰락하고,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쩔쩔매는 모습 역시 이를 대변한다. 끊임없이 핵무장을 추진해 온 이란은 세계 10대 원유 생산국이지만 국제적 제재 속에 심각한 경제난을 걱정하는 실정이다. 인도와 핵개발 경쟁을 벌였던 파키스탄도 마찬가지다.
김 위원장은 지금이라도 한반도의 8000만 주민 모두를 핵의 인질로 삼으며 공멸하자는 역사적 오류의 노선을 접고, 대화의 테이블로 나와 평화와 공존, 공영의 길을 찾길 기대해 본다.
중앙일보 사설
01.01국정원 대공 수사권 넘겨받은 경찰, ‘간첩 수사’ 준비돼 있나
국가정보원의 대공 수사권이 오늘부터 경찰로 이관된다. 문재인 정권이 국정원법을 개정해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올해부터 폐지한 데 따른 것이다. 경찰은 안보수사단을 신설해 간첩 수사의 핵심 역할을 맡기기로 했다. 하지만 규모가 142명에 불과하고 안보수사단 수장은 대공 수사 경험이 없다고 한다. 얼마 전 발표된 경무관 승진 예정자 31명 중에도 안보 경찰 경력자는 한 명도 없었다. 간첩 수사가 제대로 되겠느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경찰은 시도 경찰청 소속 안보 수사 인력도 261명 증원해 985명까지 키웠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대공 수사 경험이 거의 없고, 수사를 지휘할 간부 80여 명 중 절반가량은 안보 수사 경력이 3년 미만이라고 한다. 경찰은 초보인데 간첩들 활동은 날로 진화하고 있다. 비밀 메시지를 음악 파일 등으로 위장하는 스테가노그래피 같은 첨단 수법까지 활용한다. 최근엔 국내 감시망을 피해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들과 접촉하고 있다. 해당국 정보기관과의 협력이 필요한데 경찰로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수사의 연속성도 문제다. 간첩 사건의 특성상 수사에 10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얼마 전 기소된 창원·제주 지역 간첩단의 존재를 국정원이 알아차린 것도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이런 수사가 가능했던 것은 국정원 수사관들이 오랜 기간 같은 자리에서 근무하며 쌓아온 전문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은 인사이동이 잦아 장기간 수사하기가 어렵다. 정부는 시행령을 통해 국정원이 해외에서 간첩 활동 증거를 수집해 경찰에 넘길 수 있게 땜질식 처방을 했다. 하지만 수사권이 사라지면 증거 수집도 어려울 수 있다.
간첩 수사 경험과 해외 방첩망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십 년 쌓은 국정원의 노하우를 없애면 북한만 좋아할 것이다. 법을 다시 개정해 국정원이 간첩을 수사하도록 원상회복하는 게 옳다.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 반대로 법 개정이 어렵다면 우선 국정원이 경찰 수사에 적극 협력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국정원과 경찰의 대공 수사 인력을 합쳐 별도의 안보수사청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조선일보 사설
01.01 총선과 미 대선 겨냥한 북한의 '도발 꿍꿍이'

“2024년 초 남조선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발하면 즉각 보복 대응하고 나중에 보고하기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전후해 측근들에게 한국의 4월 총선을 앞두고 모종의 도발을 지시했다.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며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단호한 응징을 주문해온 윤석열 정부를 압박하겠다는 꿍꿍이가 엿보인다.
김 위원장의 공격적 야심과 윤 대통령의 강한 응징 의지가 '치킨게임'처럼 정면충돌하는 모양새가 위태롭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북한이 노골적으로 총선 개입 의지를 표명한 만큼 민주당도 더 이상 경솔한 말과 행동으로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정은, '남한 큰 파장 방안' 지시"
하마스 같은 기습 공격 등 우려
선거 개입하려는 의도 분쇄해야
북한의 도발 야욕이야 새로울 것도 놀라울 것도 없다. 그보다 국정원의 민감한 첩보가 사실이라면 김 위원장이 왜 내년 초를 도발 기회로 노리는지 주목해야 한다. 4·10 한국 총선과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큰 장이 설 때 판을 흔들어 최대한의 이익을 챙기려는 속셈 아닐까.
국정원 1차장을 역임한 한기범 북한연구소 석좌 연구위원은 "2025년 10월 노동당 창건 80주년과 2026년 1월로 예상되는 9차 당 대회를 앞둔 북한은 2024~2025년에 지난 2017년과 유사한 군사도발주의 노선에 따른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있는 오는 3월과 8월 사이에 도발을 집중하고, 가을쯤에는 북한이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 도움이 될만한 신호를 보낼 것 같다고 전망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말연시를 맞아 12월 28일 경기도 연천군 중부 전선 육군 제5보병사단 열쇠전망대를 찾아가 국군 장병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윤 대통령은 '선조치 후보고'를 지시했다.[사진=대통령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지난 31일 끝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핵 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계속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하겠다"면서 2024년에 정찰위성 3기를 추가로 쏘겠다고 공언했다. 앞서 2016년 북한은 총선을 앞두고 4차 핵실험, 무인기 침투, 대포동 미사일 발사, 전자기파로 인천공항 GPS 교란 등 도발을 잇달아 감행했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그해 3월엔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네 번이나 쐈다.
북한은 이미 천안함·연평도·목함지뢰 도발을 지휘한 '대남 도발 3인방'(김영철·리영길·박정천)을 각각 통일전선부·총참모부·당군사위에 포진시킨 상태다. 그렇다면 북한은 올해 정찰위성 외에 구체적으로 어떤 유형의 도발을 획책할까. 2010년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 백령도 근해에서 벌인 천안함 폭침형 도발일까, 2015년 비무장지대(DMZ)에서 일으킨 목함지뢰형 도발일까, 아니면 은밀한 사이버 도발일까. 7차 핵실험 카드도 거론되는 가운데 전혀 경험하지 못한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동원할까.
4성 장군 출신의 두 예비역 육군 대장의 경험과 직관을 들어봤다. 이홍기(육사 33기) 전 3군사령관은 "북한은 핵 능력 고도화 방향에 맞으면서 한·미·일에 영향을 주는 행동을 계속해 나갈 것 같다"고 관측했다. 정찰위성 추가 발사는 상수이고, 핵 추진 잠수함 개발 가속화, 7차 핵실험 등을 전략적 도발 유형으로 거론했다.
이 전 사령관은 "북한이 9·19 군사합의를 전면 폐기한 이후 DMZ에 전투력을 계속 투입 중이어서 NLL보다 DMZ에서 국지 도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특히 이스라엘을 공격한 하마스처럼 개성공단 입주 업체의 패러글라이더를 이용하거나 무인기를 통한 기습 침투 가능성도 언급했다. 그는 "북한의 도발 양상별로 대응하기 위해 전방 부대별로 마련한 실병기동훈련(FTX)이 문재인 정부 시절 크게 위축됐는데 북한의 도발 우려가 큰 만큼 신속 대응이 가능하도록 서둘러 대비태세를 복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천안함 폭침 당시 합동조사단장을 역임한 박정이(육사 32기) 전 1군사령관은 "김정일 시대에 신설된 수많은 사이버 부대에 의한 사이버 공격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하철과 KTX 등 교통망, 전력망과 원자력 시스템, 금융과 통신망도 공격할 수 있다"며 "서둘러 '사이버 기본법'을 제정하고 미국처럼 사이버사령부가 민·관을 통합 컨트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4월 총선과 미국 대선의 불확실성만큼이나 새해에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가 불안하게 전개될 공산이 크다. 그래도 여야가 정치적 이해득실을 넘어 국민 생명과 국가 안보를 위해 한목소리를 낸다면 북한은 감히 도발하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기초인 선거에 개입하려는 북한의 불순한 의도와 공격은 반드시 분쇄하고 응징해야 한다.

▲2018년 6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할 때의 모습. 북한은 거래가 가능한 트럼프의 재선을 원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AFP=연합뉴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01.02 北을 ‘적’이라 표현했다고 호통 쳤던 文정부 국방차관

▲독도를 '영토 분쟁' 지역으로 기술해 논란이 된 국방부 새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 /뉴스1
안녕하세요, ‘밀리터리 시크릿’ 구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소원성취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최근 군 장병 정신교육교재의 독도 표기 문제가 파문을 일으키고 ‘내부 위협세력’ 표현 문제도 논란이 있었는데요, 오늘은 이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 현 군 정신전력교재, 북한에 대해 ‘적’ 대신 ‘현실적 군사위협’ 표현
이번에 문제가 된 군 장병 정신교육교재는 5년마다 발간되는 것으로, 병사들을 직접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병사들에 대해 정신교육을 실시하는 간부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지난 정부, 즉 문재인 정부 시절 만들어진 교재가 사용되다 새 정부 출범을 맞아 지난해부터 연구·집필에 착수해 신원식 장관 취임 전인 지난 8월쯤 인쇄 의뢰에 들어간 상태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지난 정부에서 만들어진 장병 정신교육교재는 ‘북한=적(敵)’이라는 표현을 빼고 북한에 대해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교류와 협력 대상임과 동시에 여전히 현실적인 군사적 위협’으로 기술해 일각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내부 세력으로 규정했던 ‘종북’ 관련 내용도 없앴었지요.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3년 발간된 교재에선 ‘사상전에서 승리하는 길’ 주제로 종북세력을 ‘국론 분열과 사회 혼란을 조성하며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내부 세력’이라고 규정했었습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2024년 새해 첫날인 1일 해병대 제2사단(청룡부대)를 찾아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신 장관은 취임 후 장병 정신전력 강화를 역점사업으로 강조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지난 2017년 국방부는 ‘북한에 대한 적 개념을 유지해야 한다’는 한국정치학회의 용역보고서를 받고도 ‘북한은 현실적 위협’이라는 수준으로 표현해 논란이 됐습니다. 국방부는 당시 ‘정신전력교육 기본 교재’ 제작을 위한 용역보고서를 한국정치학회에 발주했고, 정치학회는 “우리에게 핵심적이고 직접적인 적은 북한 정권과 북한군”이라며 “북한의 대남 적화 기도를 지원·동조하는 세력도 적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국방부는 이를 ‘외면’했던 것입니다.
◇ 새 정신전력교재, ‘내부 위협세력’도 상세 기술
문재인 정부 시절 국방부에서 근무했던 한 장성은 당시 정부와 군 수뇌부의 기류를 엿볼 수 있는 믿기 힘든 얘기를 전했습니다. “국방일보에 공군 F-15K 정밀폭격 훈련 기사가 실렸는데 ‘적 진지 초토화’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런데 당시 국방차관이 북한을 적이라고 표현했다고 호통을 쳐 이를 수습하느라 애를 먹은 적이 있습니다.” 일부 군 수뇌부까지 이런 지경이다보니 일선 지휘관들이 장병들의 정신교육에 실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최근 논란이 된 새 정신교육교재는 대적관이 대폭 강화돼 “우리 국군에게 있어 대한민국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주체인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명백한 우리의 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현 교재에는 없는 ‘내부 위협세력’의 위험성도 상세히 기술하고 있는데요, 내부 위협세력에 대해 “북한의 대남적화 획책에 따라 우리 내부에는 대한민국 정통성과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부정하고, 북한 3대 세습 정권과 최악의 인권유린 실태, 극심한 경제난 등에 대해서는 침묵하며 북한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세력”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 내부의 북한 추종세력을 선동하고 지원해왔다”며 “특히 한반도 공산화의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고자 남한 내부에 지하당을 구축하는 데 힘을 쏟아왔다”고 기술했습니다.
◇ 우크라이나전에서도 정신전력의 중요성 재입증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정권이 바뀌면 교재 내용이 또 바뀌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교재 내용은) 사실과 역사적·객관적 내용들을 기술한 것”이라며 “정치적으로 또는 진영 논리에서 해석하는 것 자체에 동의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는 또 “자유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기본적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며 “안보상황과 대북관계가 계속 변해가는 상황 속에서 5년마다 발간되는 교재가 어떻게 똑같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습니다.
각종 첨단무기의 역할이 커진 현대전에서도 정신전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2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전에서 잘 입증되고 있는데요, 그런 점에서 새 정신전력 교재 발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새 정신전력교재의 독도 ‘영토분쟁 지역’ 표기는 대통령실과 국방부도 질책하고 사과했듯이 명백한 잘못이고 재발 방지를 위해 철저히 살펴봐야 할 사안입니다. 신원식 장관도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전방부대 시찰 때) 제가 대통령을 수행했고, (정신교육 교재 독도 기술과 관련해) 질책받았다”며 “(윤 대통령께서) 그런 기술을 한 것에 대해 어이없어하셨다”고 전했습니다.
◇ “정신전력 강화라는 새 정신전력교재 기본 취지 잘 살려야”
신 장관은 “제가 꼼꼼히 살폈어야 하는데 마지막 발간 때 살피지 못한 것에 대해 (대통령께) 사과드렸다”며 “전량 회수하겠다고 보고드리고 차관에게 지시해 선조치했다”고 밝혔습니다.
새 정신전력 교재의 오류와 문제는 당연히 시정되고 보완돼야 합니다. 하지만 대적관 등 장병들의 정신전력 강화를 위한 새 정신전력 교재의 기본 취지는 잘 살려야 한다는 일각의 지적과 우려에 대해서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조선일보 유용원 기자
01-02 김정은 “핵으로 南 평정”…압도적 대응 외에 대안 없다
북한 김정은이 신년사 성격의 노동당 전원회의 결론에서 남북관계를 민족관계가 아닌 “적대적이고 교전 중인 두 국가”로 규정한 뒤 “남조선 전(全) 영토 평정을 위한 대사변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또, 김정은은 한미 양국을 겨냥해 “군사적 대결을 기도하려 든다면 우리의 핵전쟁 억제력은 주저 없이 중대한 행동으로 넘어갈 것”이라고도 했다. 한미가 계획 중인 ‘핵전쟁 대비 훈련’ 등을 빌미 삼아 핵 공격으로 적화통일을 하겠다는 협박이다.
김정은의 주장은, 남북관계를 ‘민족 내부의 특수 관계’로 규정한 남북기본합의서를 부정하고, 동시에 김일성의 ‘고려연방제’ 통일, 즉 1국가 2체제 통일론의 폐기를 뜻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다. 특히, 한국의 역대 모든 정권의 대북 정책을 흡수 통일 정책으로 규정했다. 어떤 후속 조치가 있을지 지켜봐야겠지만, 기본적으로 협상에 의한 통일론을 청산하고 무력통일 노선을 추구하겠다는 의지임은 분명하다. 북한 내부 상황을 고려할 때, 군비 경쟁은 과거 소련처럼 파멸을 앞당길 뿐이다. 한국은 압도적 경제력과 무력으로 대응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다만 총선을 앞두고 진보 진영 등에서 ‘전쟁이냐 평화냐’ 식으로 국론 분열 상황을 조성해 사실상 김정은에 동조하는 결과를 낳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상반기까지 한미확장억제체제를 완성하겠다”고 했고, 신원식 국방부 장관도 ‘즉·강·끝’(즉시 강력히 끝까지 응징) 정신을 강조했는데 실행에 차질이 없어야 한다. 한국의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 임기도 시작된 만큼, 유엔에서 대북 제재 고삐를 더 좨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1.03 ‘제2의 창군’ 국방혁신 4.0 ①
“병력은 줄어도 군사력은 증강할 것”
⊙ AI 기반 첨단 과학기술, 국방혁신 4.0의 핵심
⊙ ‘北 핵·미사일 발사 전 교란·파괴’ 킬웹 발전시킨다
⊙ ‘우주 경쟁 본격화’… 중장기적 관점에서 우주 전력 강화
⊙ 전력 증강 프로세스 재정립… 10~15년 걸리는 무기 획득 프로세스 단축
⊙ 2027년 초급 간부 연봉 2023년보다 14~15% 상승(일반 부대 기준)
⊙ “국방혁신 4.0, 우리 군에 주어진 시대적 사명”

▲2023년 1월 경기 파주 무건리훈련장에서 열린 ‘아미타이거 시범여단 연합훈련’에서 육군 아미타이거 시범여단 대원들이 분대 전술훈련을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국방부가 ‘제2의 창군 수준’의 개혁에 돌입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5월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방혁신위원회 출범식에서 ‘제2의 창군 수준’으로 국방태세 전반을 재설계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국방혁신 4.0’으로 이름 붙은 국방개혁이 2024년부터 본격화될 전망이다.
《월간조선》의 취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국방혁신 의지는 매우 큰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7월 정부 출범 이후 2개월 뒤 발간한 《윤석열 정부 120대 국정과제》 보고서에 국방혁신 추진 계획을 명시했다. 이어 대통령 직속 국방혁신위원회가 만들어졌다. 2023년 5월 위원회 출범에 앞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국방혁신위 부위원장으로 ‘깜짝’ 내정됐다. 김 전 장관이야말로 국방혁신을 성공으로 이끌 적임자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방혁신 4.0 기본계획은 첨단 과학기술을 군에 적용해 전쟁에서 이기는 강군 육성을 골자로 한다. 오는 2040년 완성을 목표로 하는 중장기 프로젝트다. 2028년까지 진행될 제1차 5개년 추진 계획에 약 110조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국방부는 “국방혁신 4.0 이행을 위한 소요를 충실히 반영해 선택과 집중을 통한 재원 배분을 이뤘다”고 설명했다.
국방혁신 4.0은 5대 중점과 16개 과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5대 중점 분야로는 ▲북핵·미사일 대응 능력 획기적 강화 ▲군사전략·작전개념 선도적 발전 ▲AI 기반 핵심 첨단 전력 확보 ▲군 구조 및 교육훈련 혁신 ▲국방 R&D(연구개발)전력·증강체계 재설계가 꼽혔다. 각 분야 모두 기반구축-가시화-가속화의 3단계로 추진된다.
《월간조선》은 6회에 걸쳐 국방혁신 4.0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본다. 2024년 1월호에서는 국방혁신 4.0의 개념과 실시 배경, 필요성, 주요 내용 및 추진 전략 등을 분석한다.
국방혁신 4.0, 文 국방개혁 2.0 대체

▲국방혁신 4.0 로드맵.
우리 군은 미래 국방환경이 유례없는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래 국방환경이 맞닥뜨릴 도전 요인으로는 ▲북핵·미사일 비대칭 위협의 현실화 및 고도화 ▲미중패권 경쟁에 따른 불안정성 증가 ▲전쟁 패러다임 변화와 기술패권 경쟁 심화 ▲인구절벽에 따른 병역자원 감소를 꼽았다. 군은 문재인 정부 시기 추진한 기존 국방개혁 2.0 접근 방식으로는 이런 도전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새로운 대응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 바로 국방혁신 4.0이다.
국방혁신 4.0과 국방개혁 2.0은 ‘위협’을 어떻게 인식하느냐를 두고 큰 차이를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7월 27일 국방개혁 2.0을 발표하며 상비병력 및 부대 수를 대폭 감축했다. 북한의 위협이 점진적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예측은 완전히 어긋났다. 2020년 6월 북한은 개성공단 내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고, 그해 9월 서해에서 표류된 우리 공무원을 피살(被殺)했다. 그럼에도 문 정부는 이듬해 5월 보도자료를 내고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가 추진해온 다양한 정책 개혁 가운데서도 가장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분야”라고 자화자찬(自畵自讚)했다.
4차 산업혁명 첨단 과학기술 적용
반면 국방혁신 4.0은 북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현실화됐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무인로봇, 3D 프린팅, 빅데이터, 인공지능, 드론 등 유·무인 복합 전투체계를 활용해 군의 질적 향상을 극대화할 방침이다. 국방혁신 4.0은 4차 산업혁명 첨단 과학기술이 우리 안보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봤다. 한국의 발전된 과학기술 역할이 군의 질적 향상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방혁신 4.0의 ‘4.0’ 또한 4차 산업혁명 첨단 과학기술과 역대 4번째 국방개혁 계획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실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20년도 기술 수준 평가에 따르면, ICT·SW, 국방, 소재·나노, 우주·항공·해양 등 11대 중점 과학기술 분야를 종합한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은 미국의 80.1% 수준이다. 80.0%인 중국을 앞선 수치다. 2022년 1월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발간한 〈2021 국가별 국방과학기술 수준 조사서〉 역시 한국의 국방과학기술 수준을 세계 9위 수준으로 집계했다. 1~3위는 각각 미국, 프랑스, 러시아가 차지했다. 중국은 6위, 일본은 8위였다.
군은 우리나라의 강점인 4차 산업혁명 첨단 과학기술력을 활용해 한국형 3축체계 능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전 영역 통합작전을 구현해 병역자원 감소 해결은 물론 전시 인명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군사 위성 역량 강화
군의 최우선 과제는 북한의 핵·미사일 대응 능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먼저 한국형 3축체계 운영 태세를 강화한다. 국방부는 “고도화되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은 가장 심각하고 현실적인 위협”이라며 “이에 대한 확실한 억제 대응 능력을 최우선으로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한국형 3축체계는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 움직임에 선제 타격하는 킬체인(Kill Chain), 북한 미사일을 공중에서 탐지·요격하는 한국형 미사일 방어(KAMD), 북한 핵·미사일 공격 시 보복하는 한국형 대량응징보복(KMPR)으로 구성된다. 국방혁신 4.0은 여기에 더해 킬웹(Kill Web)을 발전시키기로 했다. 킬웹은 사이버 작전 등을 이용해 북한의 핵·미사일을 발사 전에 교란·파괴할 수 있는 작전 개념이다. 그물망이나 거미줄처럼 지휘통제체계를 구축해 최적의 타격 수단을 찾아내도록 인공지능(AI)이 실시간 의사 변경을 도와주는 체계다. 기존의 킬 체인이 최정상 지휘자의 판단에 따랐다면, 킬웹은 중간 지휘자들도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 작전 도중 표적 타격 수단을 더 적합한 것으로 변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의 경우 최근 ‘발사의 왼편(Left of Launch)’이란 개념도 쓰고 있다. 발사의 왼편이란 상대국이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 사이버 공격, 전자기탄(EMP) 등을 통해 교란을 일으켜 미사일 발사 자체를 막거나 엉뚱한 곳에 떨어지도록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선 해킹이나 컴퓨터 바이러스로 적 미사일의 지휘통제소나 표적장치를 공격해야 하는데, 이는 미국이 정찰위성을 포함한 압도적 감시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작전이다. 우리 군 역시 발사의 왼편이나 소프트 킬(Soft Kill) 방안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북한의 미사일 변칙 발사 전술에 대비해 기반체계 역시 강화된다. 이를 위해 군사 위성을 띄워 정보감시정찰(ISR) 역량을 확충하고, AI 기반 지능형 통합 전술지휘자동화체계(C4I)를 발전시킬 계획이다.
효과적인 전략 운용을 위해 군은 지휘체계도 개편한다. 합참 내 ‘핵·WMD(대량살상무기) 대응센터’를 ‘핵·WMD 본부’로 확대할 방침이다. 이어 2024년 전략사령부가 창설된다. 전략사는 우주·사이버·전자기전을 포함한 주요 전략자산의 지휘체계를 일원화해 한국형 3축체계의 효과적인 지휘통제 및 전력 발전을 주도한다.
‘바다부터 우주까지’
군사전략과 합동 작전 개념 등 ‘소프트웨어’도 변화한다. 군사전략은 미래 안보 위협에 대비해 전 영역 역량을 통합하는 형태로 고도화된다. 합동 작전 개념 역시 ‘전 영역 통합 작전’ 형태로 발전한다. 북한의 무인기 침투, 사이버심리전 등 비대칭 도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이를 바탕으로 해양-지상-공중-우주로 이어지는 종적 영역과 해안-해상-군항-기지로 연결되는 횡적 영역에 유·무인 복합 전투체계를 구축해 빈틈없는 안보망을 갖추게 된다. 경계 작전의 경우, 경비여단을 중심으로 AI 기반 무인경계체계가 시범운영된다. 이후 평가를 거쳐 확대 여부가 결정된다.
AI 기반 첨단 과학기술은 국방혁신 4.0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핵심 중의 핵심이다. 군은 AI에 기반을 둔 유·무인 복합 전투체계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미 각 군은 시범부대를 운영하고 있다. 육군25보병사단 아미타이거(Army TIGER)여단은 유·무인 복합 지상전투 작전을, 해군5기뢰·상륙전단은 유·무인 복합 기뢰제거 작전을, 공군20전투비행단은 유·무인 편대기 운용을, 해병대1사단은 유·무인 복합 상륙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앞으로도 군은 유·무인 복합 전투체계를 단계별로 구축할 예정이다. 1단계 원격통제형 중심, 2단계 반자율형 시범, 3단계 반자율형 확산 및 자율형 전환 등 총 3단계로 구성된다.
南北, 우주 패권 두고 경쟁 본격화

▲2023년 11월 24일 북한 조선중앙TV는 김정은이 23일 첫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 발사 성공 경축 연회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이 자리에는 딸 김주애와 부인 리설주도 참석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처, 뉴시스
국방혁신 4.0은 우리 군의 활동 영역을 우주로 넓혀 작전수행 능력 향상을 도모한다. 최근 각국은 우주 패권을 두고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요국은 이미 군·정부용 고해상도 정찰위성을 우주에 보내 주변국의 군사 동향을 들여다보는 정찰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 군과 북한 역시 우주 패권 경쟁에 뛰어들었다. 2023년 11월 북한의 군사정찰위성(만리경-1호)과 12월 우리 군의 정찰위성 1호기가 지구 궤도에 진입했다. 군이 개발한 고체 추진 우주발사체의 위성 발사가 성공하면서 남북 간 군사 대결이 우주까지 확대된 것이다. 군은 우주 전력을 중장기적 관점에서 발전시킬 방침이다.
사이버전력 또한 고도화된다. 사이버전력 강화를 위해 군은 민간 전문가들과 교류하며 방향과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석좌교수는 2023년 9월 국방부 주최로 열린 ‘제18회 국방보안컨퍼런스’에서 “기술적 조치만으로는 AI에 기반을 둔 군 사이버보안 역량 강화를 달성하기 어렵다”며 “군 지휘부의 전반적인 인식 개선과 의지가 바탕이 돼야 전군 사이버보안 강화 역량 추진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자기 스펙트럼 작전, 北 지통체계 무력화
전자기 스펙트럼 작전 수행 역량도 증진한다. 전자기 스펙트럼은 주파수와 파장에 따라 고도로 분화된 전자기파의 연속체로, 무기체계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현재 세계 각국은 전자기 스펙트럼을 다영역 작전 수행의 핵심 요소로 인식하고 있다. 군은 북한의 인터넷 기반이 약하다고 판단해 방해 전파를 이용, 지휘통제체계 무력화를 노리고 있다.
이에 따라 전자기 스펙트럼 무기체계 개발 및 그에 맞는 조직 편성을 계획하고 있다. 이미 육군은 2022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 주도로 전자기 스펙트럼 발전계획을 수립했다. 2023년 6월에는 ‘전자기 스펙트럼 작전 전투발전 TF’가 교육사령부에 창설돼 작전 수행 개념을 정립해왔다. 군 관계자는 “국방혁신 4.0 추진과 연계해 전자기 스펙트럼 작전의 개념·교리 발전은 물론 조기 전력 보강 달성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운영하고 있는 지휘통제체계도 개편된다. 군은 합동 지휘통제·통신(JADC2) 종합발전 계획을 완성하고, 핵심 능력을 전력화해 JADC2 구축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JADC2는 전장의 모든 요소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실시간 전장 가시화와 상황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AI가 지휘 결심을 보좌하며 작전 흐름의 속도를 높인다. 지상, 해상, 공중, 우주, 사이버 공간의 전투 정보를 통합해 합동군 관점에서 신속히 대응하는 것이 핵심이다. JADC2는 킬웹 운용을 도울 수단으로도 평가된다. 미군 역시 JADC2를 미래전의 승패를 가를 핵심 전력으로 분류해 전력화에 나서고 있다. 주한미군이 가장 공들이고 있는 분야 역시 JADC2 구축이다.
‘제2의 창군 수준’이라는 말답게 국방혁신 4.0은 군 구조를 송두리째 바꾼다. 먼저 합참·연합사·각 군 본부의 지휘구조가 최적화된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비하고 무기 획득체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2023년 11월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계획(COTP·Conditions-based OPCON Transition Plan)’에 명시된 이행 과업 추진 경과를 검토한 후 미래연합사로의 전작권 전환을 위한 추진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지난 2015년 한미 국방장관은 전작권 전환의 안정적 추진을 위해 기존 ‘시기에 기초한 전환 방식’을 ‘조건에 기초한 전환 방식’으로 변경하고,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계획’에 합의한 바 있다.
부대구조 역시 개편된다. 특히, 드론 전력을 대폭 끌어올린다. 2023년 9월 1일부로 드론작전사령부가 창설된 것도 이 때문이다. 군은 드론작전사령부를 필두로 일선 부대까지 드론 전력을 배치·운용할 계획이다.
인구절벽에 대비해 병력구조도 개편된다. 무인체계의 병력 대체효과, 병력자원 공급 확대를 위한 제도 시행 가능성 등을 판단해 점진적인 전환을 추진할 예정이다. 군 관계자는 “병력은 줄어도 군사력은 증강하겠다는 것”이라면서 “실질적인 병력 감축이 이루어지기 전에 첨단 과학기술 기반 전력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초급 간부 복무 여건 개선

▲2023년 10월 1일 윤석열 대통령이 경기도 연천군 육군 제25사단을 찾아 철책을 시찰했다. 사진=대통령실
교육훈련 분야에서도 혁신은 이뤄진다. 군은 가상모의훈련체계 및 과학화 훈련장을 구축하고, 데이터 분석 기반체계를 마련할 예정이다. 또한 사관학교와 각급 부대에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해 과학기술 전문인력을 육성한다.
예비전력 정예화를 위한 개혁도 추진된다. 지역예비군 전투수행 개념을 재정립하고 예비전력용 무기·장비·물자 지원도 이루어진다.
군은 병과 초급 간부 복무 여건도 개선한다. 2027년 일반 부대 초급 간부 연봉은 2023년보다 14~15%, 전방 경계부대 초급 간부는 28~30% 오른다. 이에 따라 소위의 연 총소득은 2027년까지 일반 부대 3900만원, 경계부대 5000만원 수준으로 인상되고, 하사의 경우 일반 부대 3800만원, 경계부대 4900만원 수준까지 늘어난다. 주거 및 생활 개선도 추진된다. 기존 8~10명이 사용하던 병사 생활관은 2~4인 통합형 생활공간으로 조정되고, 간부숙소는 1인 1실이 제공된다. 간부 가족이 거주하는 관사의 경우 4인 기준 28평형에서 32평형으로 늘어난다.
美, 신속 획득 프로세스 도입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중국 춘추시대 오나라의 명장(名將) 손자는 ‘속전속결(速戰速決)’을 강조했다. 빠른 결정과 적극적인 행동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군의 신기술 수용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무기 소요를 결정하고 이를 실전에 배치하기까지 평균 10~15년가량 소요된다. 국방혁신 4.0이 국방 R&D전력·증강체계 재설계를 5대 중점 과제에 포함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군은 첨단 과학기술의 신속한 적용을 위해 평가 요소 중 중복되는 항목을 삭제해 획득 프로세스를 단축할 방침이다.
관련 연구 기관 역시 우리 군의 무기 획득 프로세스가 오래 걸린다고 지적한다. 장원준 산업연구원(KIET)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 연구위원은 2022년 12월 보고서를 발간하며 “정부가 강력히 추진하는 국방혁신 4.0의 성공적 추진과 민간 IT 기업의 방위산업 진입 활성화를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한국형 신속 획득 프로세스’ 정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신속획득법(가칭) 제정, 신속 획득 무기체계 유형 신설, 신속 획득 전담기관 지정, 관련 예산 확대 및 각종 규제 제거, 인센티브 강화 등의 다각적인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 역시 무기 획득 프로세스를 단축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왔다. 주변국들이 첨단 무기체계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어 군사적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14년부터 신속획득법을 개정해왔다. 그리고 신속 획득 프로세스 신설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 신속획득법은 2~5년 내에 무기체계 개발이나 개발된 무기의 실전 배치를 가능하게 한다.
R&D 예산도 2027년까지 전체 국방 예산의 10% 수준으로 확대한다. 또 군·산업·학계·연구기관의 다자 협력체계와 한미 국방과학기술협력 협의체를 구성해 국방 전력을 극대화할 방침이다.
국방혁신위는 출범 이후 혁신에 대한 각계각층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움직여왔다. 혁신 방향과 추진 계획을 놓고 군 내 제대별·신분별 현장 토의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또 국회 정부 부처를 대상으로 20차례, 예비역 단체 및 유관 기관을 대상으로 16차례 설명회를 개최하며 국방혁신의 필요성을 설명해왔다. 국방혁신위는 “설명회와 교육을 통해 각계각층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국방개혁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해 국방혁신 4.0을 현실화할 계획이다.
혁신 위한 공감대 형성
‘선진 정예 강군 육성’을 기치(旗幟)로 내건 국방개혁은 창군 이래 지속돼왔다. 1980년대에는 장기 국방태세 발전방향이, 1990년대 5개년 국방발전계획이, 2000년대는 국방개혁이 추진된 바 있다. 그러나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는 것이 국방혁신위의 판단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강력한 개혁 의지와 김관진 국방혁신위 부위원장의 전문성과 경험이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혁신위는 보다 현실성 있는 혁신을 위해 무기 획득 프로세스 개선과 한국형 3축체계 강화를 이번 5개년 계획의 우선순위에 두겠다는 방침이다. 국방부 역시 “국방혁신 4.0은 우리 군에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라면서 “전투력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 강군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 국가 성장에 기여하도록 국방혁신 4.0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병법 36계는 전쟁에서 가장 이상적인 전략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不戰而勝)’이라고 말한다. 또한 만약 전쟁이 벌어진다면 ‘적의 우두머리를 잡아야 한다(擒賊擒王)’고 가르친다. 국방혁신 4.0의 핵심 역시 병법 36계의 전략과 들어맞는다. 과연 국방혁신 4.0은 북한 김정은의 숨통을 조이고, 수뇌부를 타격해 승리를 거둘 필승 공식이 될 수 있을까.⊙
월간조선 2024년 01월 호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01.03 국방부 ‘정책통’ 유무봉 미래혁신특별보좌관
“북핵·미사일 위협에 확실한 대응 능력 갖출 것”
⊙ “軍, 4차 산업혁명 첨단 과학기술을 접목한 강군으로”
⊙ “尹, 개혁 의지 커… 국방혁신 성공 기대감 커”
⊙ ‘평균 14년 이상 소요’… “무기 획득 프로세스 대폭 단축할 것”
⊙ “군 위성·드론 운영 역량 증진”
柳茂俸
1963년생. 육군사관학교 졸업(42기), 미국 해군대학원 운영분석 석사, 미국 지휘참모대학 군사학 석사, 미국 육군대학원 전략학 석사 / 연합사령부 전쟁기획 과장, 국방부 장관실 정책과장, 국방부 장관 군사보좌관, 20기계화보병사단 사단장,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장, 국방부 미래혁신특별보좌관

▲유무봉 국방부 미래혁신특별보좌관
국방부는 과학기술 강군을 건설하기 위한 ‘국방혁신 4.0’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형 3축체계를 고도화해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태세를 구축할 계획이다. 병사 봉급 인상과 초급 간부 복무 여건 개선 등 장병 복지 강화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국방혁신은 특수한 영역을 다룬다. 이에 따라 전문성을 갖춘 인력 배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무봉 미래혁신특별보좌관은 국방혁신 4.0의 성공을 견인할 적임자로 꼽힌다. 그는 국방부 내에서 ‘정책통’으로 불린다. 육군사관학교(42기), 미국 해군대학원, 지휘참모대학 및 육군대학원에서 공부하며 운영분석과 군사전략 분야 전문성을 갖췄다. 야전 경험 역시 풍부하다. 기계화보병부대 사단장을 거치며 병사들과 동고동락(同苦同樂)했다.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유 특별보좌관은 육군 미래형 전투체계인 아미타이거를 기획했다. 또 국방혁신 기본계획 작성을 주도했다. 2019년 소장으로 전역한 뒤 윤석열 정부의 첫 국방개혁실장으로 부임했다. 현재 국방혁신 4.0의 실무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12월 6일 유무봉 국방부 미래혁신특별보좌관을 만나 국방혁신 4.0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소위 시절 김관진 만나

▲윤석열 대통령과 김관진 국방혁신위원회 부위원장이 2023년 5월 1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국방혁신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한 모습. 사진=뉴시스
― 군내 요직(要職)을 두루 맡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업무를 담당했습니까.
“중위 때 미국 해군대학원에 유학해 운영분석을 공부했습니다. 전쟁 게임(War Game)을 분석·연구하는 분야였지요. 중령 때는 한미연합사령부에서 전쟁 기획과장을 맡아 전쟁기획을 전담했습니다. 대령으로 진급해서는 합동참모본부에서 근무하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비한 한국군 주도 공동 작전 계획을 설계했습니다. 그 뒤엔 국방부에서 정책과장을 지냈고, 이후 사단장을 거쳐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장으로 육군 전력 건설과 예산 운영을 담당했습니다.”
―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셨네요.
“네. 국방부·합참·연합사·육군본부에서 모두 근무하며 전쟁기획, 국방정책, 군사력 건설 업무를 두루 경험했습니다.”
― 2023년 5월 국방혁신위원회 부위원장으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내정됐습니다. 오랜 기간 김 전 장관을 모셨는데,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습니까.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전방사단에서 소위로 근무했을 당시 김 전 장관이 사단 작전참모로 계셨습니다. 김 전 장관이 GOP 철책 순찰을 왔을 때 처음 뵀습니다. 20여 년이 흘러 대령으로 진급하고 난 뒤 합참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당시 저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준비하기 위한 한미 공동작전계획을 작성하는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김 전 장관은 합참의장으로 계셨지요. 작전 계획 초안을 만들어 보고하러 갔더니 김 전 장관이 저를 보고 ‘너 어디서 많이 봤다’ 그러시더라고요. 그 후,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을 계기로 김 전 장관이 국방부 장관에 취임했습니다. 저는 장관실 정책과장으로 임명돼 2년을 근무했고, 장군으로 진급해 군사 보좌관 자격으로 1년을 또 모셨습니다.”
“文, 준비 안 된 상태에서 일방적 병력 감축 잘못”
― 국방혁신 4.0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군 혁신 의지는 어느 정도입니까.
“윤 대통령의 국방혁신 의지는 매우 강력합니다. 취임 50여 일 만에 전군주요지휘관 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제2 창군 수준의 국방혁신’을 언급했지요. 이후 군 관련 행사 때마다 국방혁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통령 직속의 ‘국방혁신위원회’를 설치했습니다. 올해만 해도 3번이나 국방혁신위원회를 주관했습니다. 김 전 장관을 국방혁신위 부위원장에 임명한 것도 김 전 장관이야말로 국방혁신을 성공적으로 이끌 적임자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 문재인 정부 당시 ‘국방개혁 2.0’으로 불린 개혁이 추진됐습니다. 이번 국방혁신 4.0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위협’에 대한 인식에서 가장 큰 차이가 납니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 간 긴장이 완화됨에 따라 북한의 위협이 점차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지요. 그러나 전력이 보강되지 않은 상태에서 병력과 부대를 감축했습니다.”
― 당시 국방개혁 2.0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인구 감소와 과학기술 발전을 고려했을 때 병력 규모는 줄이되 군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방향성은 공감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를 실현하는 절차와 방법은 잘못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개혁은 큰 그림을 그리고 치밀한 계획에 따라 검증을 하고 보완하면서 추진해야 합니다. 첨단 무기체계가 보급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대와 병력을 계획대로 감축한 것은 잘못이지요. 장군 수를 줄인다거나 병사 휴대폰 허용 등 외형적 성과에 치중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보면 잘 준비된 부대가 국가 안보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강군 만들 것”
― 이번 국방혁신 4.0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전쟁에서 이기는 정예강군을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를 위해 4차 산업혁명 첨단 과학기술을 군에 적극적으로 접목할 계획입니다. 지금의 국제 정세를 보면 미중 패권 경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미국 대외 전략의 최우선순위 역시 중국에 대한 견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도 고도화되고 있고요. 반면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병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따라서 군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첨단 과학기술을 군에 적용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 지금과 같은 ‘인구 절벽’ 시대에 군 병력 구조 개편을 위해서 가장 시급하게 추진돼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군은 작전, 교리·장비·물자·훈련·리더 양성이 모두 밀접하게 연계된 조직입니다. 단순히 한 분야만 콕 짚어 바꿀 수는 없습니다. 예컨대 육군 분대 병력을 10명에서 8명으로 줄이면 무기, 전술, 훈련뿐만 아니라 근무형태, 생활관 시설까지 바꿔야 합니다. 하나를 바꾸면 전체가 영향을 받습니다.”
“KF-21 보라매 실전 배치까지 24년 소요”
― 새로운 무기를 실전에 배치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칩니까.
“우리 군이 새로운 무기를 도입하는 방법은 2가지가 있습니다. 자체 연구 개발과 구매입니다. 두 방법 모두 군과 기관으로부터 새로운 무기체계에 대한 소요를 받아 합참이 결정해야 합니다. 이 과정을 ‘무기 획득 프로세스’라고 부릅니다.”
― 자체 연구 개발의 경우, 실전 배치까지 평균 몇 년 정도 걸립니까.
“40여 개의 육군 무기체계를 분석해보니 소요 결정부터 야전 배치까지 평균 14년 이상 걸리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이보다 더 걸리기도 합니다. 예컨대 K2 전차는 1992년에 소요가 결정되었지만 2014년이 돼서야 최초로 야전에 배치됐습니다. 22년이 걸린 겁니다. KF-21 보라매 전투기의 경우엔 소요결정은 2002년에 됐는데 실전 배치는 2026년으로 예정돼 있습니다. 24년이 걸리는 셈이지요.”
― 무기 획득 프로세스가 이처럼 오래 걸리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방위사업 비리를 예방한다는 명분으로 지나치게 많은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기체계를 연구개발하기 위해서는 소요결정부터 소요검증, 사업타당성 조사, 시험평가 등 150~200단계의 세부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 과정을 모두 통과한 ‘100점짜리 무기’만 실전에 배치될 수 있습니다. 99점짜리도 안 됩니다. 소요부터 배치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이처럼 오랜 시간이 걸려 무기를 실전 배치하면 정작 첨단 과학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잡기 힘듭니다.”
시험평가 절차 경직… 전력화 지연

▲KUH-1 수리온 헬기. 사진=뉴시스
― ‘99점’을 맞아 실전 배치가 늦어진 예가 있습니까.
“시험평가 단계에서 핵심 성능과 부수 성능이 모두 합격해야 야전 배치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부수 성능의 작은 결함으로 무기체계 전체가 전력화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지요. KUH-1 수리온 헬기가 대표적입니다. 이 헬기를 평가할 당시 기체 결빙(結氷)이 문제가 됐습니다. 영하 40도 이하의 안개 낀 지역에서 장시간 비행하면 기체에 얼음이 생겨 비행 성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평가에는 합격했는데, 이것만 문제가 됐던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극한 환경이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설령 그런 환경을 만난다고 해도 그 지역을 신속하게 벗어나면 됩니다. 애초에 기체 결빙은 필수 평가요소도 아니었지요. 문제는 이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장소가 국내에 없었다는 겁니다. 해외 여러 장소를 물색하다가 미국 오대호(五大湖) 지역으로 헬기를 가져갔습니다. 영하 40도의 안개 끼는 날을 기다렸다가 평가를 받아야 했지요. 이 과정에 수백억원의 예산이 들었습니다. 실전 배치 역시 늦어졌지요.”
― 이번 국방혁신 4.0을 통해 무기 획득 프로세스에 어떤 변화가 생깁니까.
“소요검증, 사업타당성 조사 등 중복 항목 검증 절차를 개선해 전력화 기간이 대폭 단축될 것입니다. 또 첨단 과학기술을 신속하게 도입하는 절차를 만들고 있습니다. 반도체, 위성, 통신, 드론, 인공지능 등 민간 첨단 과학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민간 기술을 빠르게 활용하는 절차를 확립할 계획입니다. 핵심 성능을 충족한 무기라면 실제로 사용해보면서 성능을 향상시킬 예정입니다.”
― 실전 배치된 무기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연구개발 과정보다 수월합니까.
“그 역시 어렵습니다. 현행 규정상 무기의 주요 성능을 바꾸려면 소요제기부터 시작해 획득 절차를 다시금 거쳐야 합니다. 비효율적이지요. 이를 단축할 수 있는 방안도 국방혁신위에서 다룰 예정입니다.”
― 그렇게 되면 효율성은 증진되겠지만, 안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안전 관련 사항은 필수 평가항목에 들어가 있습니다. 첨단 무기가 부수 성능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해서 전력화를 미루면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무기를 사용해야 합니다. 예컨대 우리 군은 1970년대 도입된 구형 미제 M48 계열 전차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일부 성능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K2 전차를 보급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최신 무기인 K2 전차를 사용하는 것이 전투력 향상은 물론 전장에서 장병의 생존 보장에도 훨씬 효과적입니다.”
― 이 과정을 다른 국가와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무인기 개발의 경우 튀르키예는 우리보다 10년 늦게 시작했는데, 지금은 10년 정도 앞서 있습니다. 바이락타르 TB2 무인기는 현재 28개국에 수출하는 세계적인 히트 상품이 되었습니다.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2020)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큰 활약을 했습니다. 튀르키예는 바이락타르 TB2를 2014년 초도(初度) 비행을 마친 그 해에 군에 실전 배치했습니다. 실전에서 사용해가며 성능을 업그레이드하고 있지요. 반면 우리는 아직까지 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군사 위성 발사 권한이 과기부 장관에게?

▲우리 군 최초 군사정찰위성 1호기가 탑재된 로켓이 2023년 12월 2일 새벽(한국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반덴버그 우주군기지에서 발사되고 있다. 군사정찰위성 1호기 발사가 성공하면서 우리 군은 독자적인 우주감시정찰 능력을 확보했다. 사진=Space X
― 군사 위성 발사의 경우, 발사 권한이 국방부가 아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있는 것으로 압니다. 군사 작전을 펼치는 데 어려움이 있진 않습니까.
“네. 군사 위성 발사는 과기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현재 우리 군이 보유한 위성은 많지 않아 당장의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군을 첨단 과학기술 강군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앞으로 100여 개의 저궤도 초소형 위성을 발사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나라가 갖게 될 전체 인공위성의 80% 수준입니다. 초소형 위성은 수명이 3~5년 정도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위성을 발사해야 합니다. 국방부는 군사용 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발사 권한이 과기부에 있기 때문에 국방부에서 위성 발사가 필요할 때마다 과기부에 심의위원회 개최를 부탁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다 보니 필요한 시점에 위성을 발사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 군사 기밀이 유출될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네. 아무래도 과기부에서 심의위원회를 주관하다 보면 군사 기밀 사항이 유출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요?
“국방부가 군사 위성 발사 승인 권한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과기부를 배제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국방부에서 발사심의위원회를 주관하더라도 과기부는 핵심 위원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과기부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습니다.”
“드론 능력 개발해나갈 것”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보면 드론이 중요한 전력으로 자리매김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 군의 드론 전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우리 군 역시 드론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2023년 9월 1일 드론작전사령부가 창설됐습니다. 다만 우리 군이 보유한 드론은 아직까지 대부분 정찰용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드론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입니다. 이에 따라 공격·전자전·보급품 수송·환자 후송 등 다양한 목적으로 드론을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제대, 병과, 군에서 드론을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사업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하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까요.
“첨단 과학기술이 집약된 형태의 전투와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소모전이 동시에 진행되리라 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모두 그런 패턴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 역시 도시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입니다. 도시 지역에서 작전을 수행해야 할 텐데 땅굴과 건물을 하나하나 파괴해가면서 싸워야 합니다. 개인의 전투 능력 강화는 물론, 로봇, 드론 등 유무인 복합전투체계를 구비해 장병의 생존성을 향상시킬 계획입니다.”
― 군에 첨단 과학무기체계가 도입되더라도 이를 운용할 고급 인력이 없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군내 과학기술 인력은 충분합니까.
“국방혁신의 중심은 바로 사람입니다. 첨단 무기체계의 소요제기, 개발, 작전운용, 정비지원 등 분야에 과학기술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춘 인력이 필요합니다. 인재를 선발, 양성하고 재훈련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사관학교에는 인공지능 관련 학과를 개설했습니다. 오는 2026년까지 간부 1000명, 병사 5만 명에게 AI 교육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北 미사일 대비 선제 타격·방어·응징 체계 갖춰”
― 북한의 미사일 위협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초기,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아이언돔이 무력화되는 것을 보고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한 우리 군의 대응 능력이 믿을 만한가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형 3축체계’로 대표되는 미사일 대응 역량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이스라엘의 아이언돔이 실패했다고 보진 않습니다. 하마스 측에서 미사일을 약 5000발 쐈다고 주장하는데, 만약 아이언돔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측 피해는 훨씬 컸을 겁니다. 아이언돔이 상당한 방어 효과를 발휘했지만, 하마스의 미사일 공격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거지요. 우리 군은 한국형 3축체계를 강화해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계획입니다. 한국형 3축체계는 적의 미사일 공격 징후를 감지하여 선제 타격하는 킬체인(Kill Chain), 북한 미사일에 대응하는 한국형미사일 방어체계(KAMD), 그리고 적 공격 시 압도적 능력으로 응징하는 대량응징보복체계(KMPR)로 구성됩니다. 우리 군의 미사일 능력은 정확도와 파괴력 면에서 세계 최정상급입니다. 국방혁신의 최우선 과업은 한국형 3축체계 강화입니다. 이를 위한 예산도 우선 배정했습니다. 한국형 3축체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선 감시, 정찰과 초고속 통신망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군사 위성이 많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더해 장사정포 요격체계(LAMD)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 장사정포 요격체계요?
“네. 북한의 장사정포는 우리 수도권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 LAMD입니다. LAMD는 레이더, 교전통제소, 발사대 등으로 구성됩니다.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의 하부층을 보완하지요. LAMD를 통해 미사일 방어체계를 더욱 두껍게 할 계획입니다.”
― 장사정포 요격체계는 어떤 식으로 운영됩니까.
“북한이 기습 대량 공격을 할 수 없도록 북한의 공격 징후를 실시간으로 감시합니다. 북한이 첫 발을 쏘면 2차 타격을 할 수 없도록 즉각 응징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군은 전술지대지유도무기(KTSSM), 천무 등을 활용해 수도권에 위협이 되는 장사정포를 최단 시간 내에 파괴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 문재인 정부 당시 우리 군의 미사일 사거리 제한이 해제됐습니다. 실제 우리 군 전력 강화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다만, 우리 정부는 1979년부터 꾸준히 미국과 미사일의 사거리와 탄두중량 제한을 해제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역대 모든 정부가 노력해 조금씩 제한을 해제해왔지요. 문재인 정권에 들어서야 미사일 사거리 제한이 완전히 해제된 거지요. 따라서 미사일 사거리 제한 해제는 특정 정부만의 성과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초급 간부, 각종 경제적인 보상으로 사기 증진”
― 초급 간부 복무 여건 개선도 국방혁신 4.0의 주요 과제 중 하나입니다. 초급 간부의 복무 여건이 병(兵)보다 못하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의 복무 여건은 어떤 방향으로 개선될 예정입니까.
“2020년대 들어 초급 간부 지원율이 급감하고, 이들의 사기도 떨어져 있습니다. 병의 복무기간 단축과 봉급 인상, MZ 세대의 의식 변화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초급 간부의 복무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선 두 가지가 이뤄져야 합니다. 이들에 대한 각종 인센티브 제도가 필요합니다. 초급 간부 대부분은 격오지의 어려운 환경에서 근무합니다. 현재 국방부는 시간외근무수당, 특수지근무수당, 주택수당, 장려수당 등을 인상하고, 독신숙소 개선, 장기복무 선발률 향상 등 각종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둘째, 초급 간부가 비전을 갖고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경험이 많지 않은 초급 간부에게 병력관리, 부대관리 등 과도한 책임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책임을 경감하고 전투준비와 교육훈련, 자기계발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합니다. 초급 간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실질적인 복무여건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국방혁신 4.0은 2040년까지 진행되는 중장기 프로젝트입니다. 그만큼 정책의 연속성이 중요할 수밖에 없을 텐데요.
“그렇습니다. 국방혁신 기본계획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린 계획입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한 세부실천 계획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국방혁신의 성공을 위해선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각군 참모총장 등 리더의 위기의식, 국가 차원의 재원 투입, 법규 정비 역시 필요합니다. 이런 합의가 이루어질 때 국방혁신계획은 일관되게 추진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번 정권 내에서 달성할 수 있는 실질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무기 획득 프로세스 개선을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무기 획득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한국형 3축체계를 실질적으로 구현할 계획입니다. 또한 유·무인 복합전투체계 전환 시범 역시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분입니다. 특히, 한국형 3축체계 강화를 위해 ‘기반체계’를 잘 구축해야 합니다.”
― 기반체계요?
“네. 기반체계는 북한 전 지역을 실시간 감시·정찰해 결심·타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뜻합니다. 특히 군사 위성 능력을 갖추는 것은 우리 군의 작전수행 능력 및 지휘통신 능력을 극대화하는 필수 요소이지요. 이런 점에서 지난 12월 초 정찰위성 발사 성공은 소중한 첫걸음이었습니다.”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 지금이 국방혁신 적기”
― 일각에서는 ‘육군만을 위한 혁신 아니냐’는 비판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국방개혁 2.0 기간 중 육군만 병력과 부대 수를 대폭 감축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군은 엄청난 도전과 마주할 것입니다. 이런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것은 시대적 소명이지요. 전군이 혁신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습니다. 육군만을 위한 혁신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혁신은 최대한 투명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방혁신과 관련한 모든 정책 결정 과정에 육·해·공군·해병대를 모두 참석시키고 있습니다. 예비역 단체 역시 혁신에 비판을 제기할 수 있겠지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육해공군 사관학교 총동창회를 포함한 각종 예비역 단체를 찾아가 여러 차례 설명회를 개최했습니다. 방산 업체에도 방문해 혁신 추진 방향에 대해 설명했지요. 이들의 건의사항을 수렴하며 꾸준히 소통하고 있습니다.”
― 그럼에도 국방혁신에 걸림돌이 있다면요?
“국방혁신은 분야마다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습니다. 국방혁신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자기 조직의 이해가 걸리면 반대하곤 합니다. 그간의 국방개혁이 좌절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무기 획득 프로세스가 대표적이지요. 획득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점은 동의하지만, 막상 자기 조직이 담당하는 절차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 때문에 전력화 일정에 차질이 생기고 생산라인이 멈추는 상황이 발생하지요. 각각의 절차는 완벽하지만, 이를 합쳐놓으면 마치 ‘괴물’처럼 변합니다. 완벽한 인간을 만들기 위해 완벽한 부분을 모아놓았더니 도리어 괴물이 된 프랑켄슈타인처럼 말입니다.”
― 대통령의 혁신 의지가 강하신데 여기에 대한 부담은 없습니까.
“성공적인 국방혁신을 위해서는 법, 제도, 조직, 예산 등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국방부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정부 부처와 국회의 협조가 뒤따라야 합니다. 윤 대통령이 앞장서 혁신을 추진하고 있으니 실무자 입장에서는 큰 힘이 됩니다. 국방혁신은 미래를 내다보고, 국가를 위해 꼭 해야 하는 일입니다.”
― 국방혁신 성공을 위해 지금이 적기라고 봅니까.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 군은 창군 이래로 계속 국방개혁을 해왔습니다. 정권이 바뀌거나 국방부 장관이 바뀌면 개혁의 목소리가 더 커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개혁을 하려고 하면 여기저기서 저항이 생기고, 그 저항을 극복하지 못해 용두사미 모양새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국방혁신을 성공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적기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 김관진 국방혁신위 부위원장의 경험과 전문성, 신원식 국방부 장관의 추진력이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각 정부 부처, 국회 등과 협업하고, 국민과의 소통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해가며 국방혁신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월간조선 01월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woosuk@chosun.com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01-04 13년 만에 부활한 천안함, NLL 수호 상징이다
서해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북한 어뢰 공격으로 2010년 3월 26일 폭침됐던 천안함이 훨씬 더 강력해진 위용으로 서해 바다로 복귀해 첫 해상 기동훈련을 했다. 초계함이었던 천안함이 13년 만에 신형 호위함으로 부활, 지난해 말 서해 및 수도권 해안을 방어하는 해군 제2함대에 작전 배치된 후 가진 첫 훈련이다. 구축함, 유도탄 고속함 등 함정 13척과 항공기 3대가 투입됐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사수한 천안함 46용사를 기리는 의미도 크다.
새 천안함은 2800t급으로, 배수량 1220t에서 두 배 이상 커졌고 5인치 함포, 함대함유도탄, 전술함대지유도탄, 장거리 대잠어뢰는 물론, 해상작전 헬기도 탑재했다. 특히, 천안함 폭침 때 전사한 고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 여사가 내놓은 유족보상금 등으로 제작한 ‘3·26 기관총’도 탑재됐다. 문재인 정부는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한 책임을 제대로 규명하지 않았고, 윤 여사는 2020년 당시 문 대통령에게 다가가 “누구 소행인지 말해 달라”고 절규하기도 했다. 그만큼 천안함은 NLL 수호의 상징이다.
정초부터 김정은은 “핵무기로 남한 평정” 등을 협박한다. 김여정은 “안보 불안이 대한민국의 일상사가 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공로”라는 궤변으로 남남 갈등까지 부추긴다. 천안함 폭침 주역인 김영철이 지난 7월 통일전선부 고문으로 복귀한 것도 심상치 않다. 일일이 말대꾸할 필요도 없이 압도적 위력으로 응징할 태세를 갖추면 된다. 천안함 부활은 이런 결의를 다지게 하는 또 하나의 계기다.
문화일보 사설
01-04 北, 총선 영향력과 남남 갈등 노린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연초부터 김정은의 말폭탄이 쏟아지고 있다. 극장정치(cinema politics)로 인민들의 혼을 빼는 그의 최근 대남 도발 위협과 적대 발언 저의는 뻔하다.
우선, 북한의 심각한 민생 파탄에 대한 눈속임과 책임 전가 전술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인민들의 민생은 나락으로 추락했다.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실질 GDP가 3년 연속 감소하면서, 남북간 1인당 소득 격차가 30배까지 벌어졌다. 김정은도 이를 의식했는지 “인민의 기대에 늘 보답 못하는 우리들의 불민함을 깊이 반성하고 뉘우치며…”라고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경제적 해법은 없다. 인민들의 삶이 도탄에 빠졌지만, 전쟁 준비 강화와 대남 위협으로 초점을 돌린다.
다음은, 한국과 미국의 내정에 개입하려는 노림수다. 북한은 4월 서울과 11월 워싱턴의 정치 일정에 국가정보원 예상대로 ‘큰 파장’을 일으키는 게 유리하다는 속셈이다. 남한 총선 전에 도발로 긴장을 조성해야 선거가 ‘평화냐 전쟁이냐’ 구도로 갈 수 있으며, 9·19 군사합의의 효력을 정지한 현 정부·여당을 궁지로 몰 수 있다는 전술이다. 미국과는 ‘강 대 강’ 구도 형성이 목표다. 핵 능력을 최대한 높여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월에 당선된다면 2018년 싱가포르와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을 재현하겠다는 복안이다. 2017년처럼 긴장을 고조시켜야 미국과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고 본다.
끝으로, 남남 갈등 심화 전략이다. 김정은은 “북남은 더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인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었다”고 선언했다. 김여정의 전현직 대통령 갈라치기도 시작됐다. 남측의 좌경 세력을 겨냥한 묘한 메시지다. ‘우리민족끼리’ 정책을 포기한 듯한 발언을 쏟아내는 저의는 분명하다. 한반도의 긴장은 정부·여당의 한미동맹 강화와 대북 강경정책 탓이라는 선전 선동으로, 지난해부터 사용하는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의 연장선이다. 동족 관계가 아니니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명분 축적도 가능하다. 2022년 핵무력 법제화를 통해 핵을 방어용이 아닌 공격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선언한 만큼 남한도 예외가 아니라는 우회적 협박이다.
북한은 적화통일 전략을 포기한 게 아니고, 자신들만의 남조선 전(全) 영토 평정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복안을 드러냈다. 김정은이 사용한 ‘대사변’이란 용어는 6·25 남침을 의미한다. 김정은은 간부회의 때마다 한반도 남측 지도를 가리키며 언제든 공격할 수 있다는 대남 가스라이팅(심리조종)을 해왔다.
북한의 기괴한 입장에 대한 유일한 대응은 강력한 군사적 억지력이다. 압도적 경제력과 국방력으로 평양의 도발이 초래할 결과는 김정은 체제의 붕괴라는 시나리오를 보여줘야 한다. 한미 확장억제 체제를 실효적으로 가동해 핵 위협을 무력화해야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충돌 등 지구촌 포성이 계속되는 중에 동북아, 특히 한반도는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지역이다. 평양의 극장정치와 협박에 일비일희하지 말고 우리 영토에 대한 철저한 방어태세를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 적(敵)은 공격했을 때 더 큰 피해를 본다고 판단하면 결코 섣부른 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건 동서고금 전쟁론의 핵심이다.
문화일보
01-04 한미, 혹한 속 새해 첫 연합사격훈련…“오늘 밤 당장 싸울 준비”

▲한국군 대대장이 미 육·공군 자산을 통합 운용하는 새해 첫 한미 연합·합동훈련에서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조승재(중령) 대대장·가운데)이 경기 포천 승진훈련장에서 훈련에 참가한 미군 장병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육군 제공
신년 벽두에 전방부대 포사격, 동·서·남해 해상기동훈련도
한국군 대대장이 미 육·공군 자산 통합 운용 연합·합동훈련
北 " 남 군사훈련 맹비난, 올해 격돌 위험성이 가장 높은 해" 위협
한미는 지난달 29일부터 일주일간 새해 첫 연합전투사격훈련을 실시했다고 4일 육군이 밝혔다.
앞서 육군 포병·기갑부대가 새해 벽두인 2일 전방 동·서부 전선에서 포탄사격 및 기동훈련을, 해군이 3일 동·서·남해 전역에서 해상기동훈련과 사격훈련을 펼친 가운데 한미연합훈련도 동시다발로 개시한 것이다.
경기 포천 승진훈련장에서 진행된 이번 훈련에는 육군 수도기계화보병사단(수기사) 예하 번개여단과 미 2사단·한미연합사단 예하 스트라이커 여단이 참가했다.
육군 산하의 사단 기갑·포병·공병·화생방·방공부대를 비롯해 스트라이커 여단 예하 1개 대대가 연합전투단을 구성하고, 여기에 주한미군 604 항공지원작전대대도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K1A2전차와 K200장갑차, K600장애물개척전차, K30비호복합, AVLB(교량전차), KM9ACE(장갑전투도저) 등 사단 장비와 A-10 공격기, 스트라이커 장갑차 등 미군 장비 총 110여 대가 투입됐다.
육군은 한미연합 전투단의 기동·화력·지휘통제 자산에 대한 상호운용성을 검증하고 이를 통해 동맹의 작전수행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훈련의 목표였다고 설명했다.

▲수도기계화보병사단 K1A2전차가 경기 포천 승진훈련장에서 올초 전차포 사격을 실시하고 있다. 육군 제공
훈련은 ‘탱크 킬러’로 불리는 주한 미 공군 공격기 A10 정밀타격을 시작으로 비호복합과 K1A2전차 사격, 복합장애물지대 극복, 미 스트라이커 장갑차의 초월공격 순으로 진행됐다. 항공자산 폭격과 전차·방공 통합사격도 병행했다.
비호복합은 30㎜ 자주대공포 ‘비호’에 지대공유도무기 ‘신궁’을 최대 4발 결합해 교전 능력을 강화한 무기체계다. 궤도차량에 실린 비호복합은 저고도로 침투하는 북한 무인기와 AN-2기 등을 파괴하는 임무에 동원된다.
육군은 "이번 훈련은 한국군 대대장이 미 육·공군 자산을 통합 운용하는 연합·합동훈련"이라며 "한미 간의 통합된 지휘통제능력과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한 정밀한 연합작전수행 절차에 숙달하고 강화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훈련을 지휘한 수기사 전승대대 조승재(중령) 대대장은 "혹한에서도 최상의 전투준비태세를 유지한 가운데 적 도발 시 즉각, 강력히, 끝까지 응징할 수 있는 한미연합 결전태세를 확립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미군의 트래비스 스텔폭스(중령) 대대장은 "지금 당장이라도 싸울 수 있는 ‘파이트 투나잇(Fight Tonight)’의 자세를 보여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북한의 도발 위협이 증가되고 있는 가운데 13년 만에 부활한 호위함 천안함( 2800t·맨 앞)과 을지문덕함(3200t급, 앞에서 두 번째) 등 함정들이 3일 서해상에서 새해 첫 해상사격훈련을 하고 있다. 해군 제공
한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계속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한다"며 핵 전면전을 거론한 데 이어 북한은 4일에도 거친 표현으로 한국의 군사훈련을 비난하며 위협 수위를 높였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우리 육군 포사격 및 기동 훈련, 해군 함포사격 및 해상기동 훈련 등 최근 국군의 훈련 상황을 거론하면서 "대결 의식이 골수에까지 들어찬 괴뢰들은 전쟁을 부르는 도발적인 선택으로 새해 벽두를 장식했다"면서 "각종 전쟁책동이 전례 없는 규모로 강행될 올해가 격돌의 위험성이 가장 높은 해"라고 한반도 긴장 격화 책임을 떠넘겼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01-05 잠수함 설계도 통째로 대만 유출, 엄단해야 할 反국가 범죄

▲뉴스1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개발한 잠수함의 설계 도면이 통째로 대만에 유출되는 일이 벌어졌다. 2000쪽 분량의 이 설계 도면은 대우조선이 독자 개발해 한국을 세계 다섯 번째 잠수함 수출국으로 올려놓은 기술이다. 반도체를 비롯해 조선·자동차·디스플레이 등 한국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인 업종에서 해외 기술 유출이 잇따르고 있다.
경찰은 대우조선 전 직원 2명을 산업기술 유출 혐의로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 이들은 대우조선 근무 당시 설계 도면을 빼돌리고 잠수함 개발 컨설팅 업체로 이직한 뒤 대만 측에 넘겼다고 한다. 대만 정부와 컨설팅 계약을 맺은 이 업체를 통해 설계 도면을 비롯해 한국 잠수함 기술의 상당수가 현지로 유출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해당 도면은 대우조선이 인도네시아에 11억 달러(약 1조4000억 원) 규모로 수출하며 한국 방위산업의 위상을 높인 잠수함 모델이다. 대만 정부가 첫 자국산 잠수함을 개발하는 데 이 도면과 기술들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기술 유출을 단순히 국내 산업 경쟁력을 훼손하는 문제를 넘어 안보 자산인 핵심 기술을 해외로 팔아넘긴 중대 범죄로 봐야 하는 이유다.
2000년대 들어 세계 1위에 오른 한국 조선업은 중국 등을 중심으로 기술과 인력을 빼돌리는 시도가 많은 대표적 업종이다. 고부가가치 선박 관련 핵심 기술을 중국 경쟁업체에 넘기려다 적발된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방위산업 분야 또한 최근 수출이 늘고 기술이 축적되면서 새롭게 기술 유출 범죄에 노출되고 있다. 지난해 2∼10월 경찰이 적발한 해외 기술 유출은 20여 건으로 최근 10년 새 가장 많았는데, 그동안 없었던 방산 기술 유출이 처음으로 포함됐다고 한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가열되면서 미래 핵심 기술을 빼돌리려는 산업스파이 범죄는 점점 더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 각국의 군비 경쟁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방산 기술 유출 시도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부 유출이나 다름없는 기술 유출 범죄를 엄벌로 근절해야 하는 이유다. 미국, 일본, 대만처럼 핵심 기술 유출을 사실상 반역 행위에 준해 처벌할 수 있도록 법체계를 서둘러 정비해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 사설
01.06 북 도발은 대남 정치 심리전, 강력하되 냉정한 대응을
북한이 5일 오전 9시부터 두 시간에 걸쳐 서해 백령·연평도 쪽으로 200여 발의 포사격을 했다. 모두 NLL 이북 해상에 떨어졌다. 우리 군의 대응 사격은 6시간 뒤인 오후 3시쯤 이뤄졌다. 북의 2배인 400여 발을 쐈다지만 너무 늦은 게 아니냐는 의문도 든다. 북한 도발 시 ‘선조치 후보고’ ‘즉·강·끝’(즉각·강력히·끝까지) 원칙에 따라 대응한다더니 실제로는 이뤄지지 않았다.
북이 새해 벽두부터 무력 시위에 나선 것은 김정은이 지난달 “내년 초 남한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북한은 대남 도발로 우리 사회에 부담을 지워 존재를 과시하고 향후 협상 국면에서 우세한 위치에 서려고 한다. 휴전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는 대남 전략이다. 그런 도발 시점으로 가장 좋은 것이 한국의 선거다.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한 것도 우리 지방선거를 앞둔 시기였다. 4월 총선을 앞두고도 우리 사회에 안보 불안 심리를 증폭시키고 그 책임을 정부에 돌리려는 시도가 이어질 것이다. 천안함 공격과 같은 은밀한 군사 도발, 사이버 공격, 전술 핵탄두 실험, 투개표 시스템 해킹 등이 예상된다. 11월에는 미국 대선이 있다. 태평양을 향해 ICBM을 정상 각도로 발사하는 도발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한·미의 주요 정치 일정을 겨냥한 북의 도발이 이어질 경우 우리 사회에 다시 ‘전쟁이냐, 평화냐’ 같은 남남(南南) 갈등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북이 바라는 결과다. 북의 도발 목적은 군사적 전과라기보다는 이와 같은 대남 정치, 심리전이다. 북은 우리 군의 본격적 반격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 우리 군이 그런 반격에 나서게 될 선을 넘지는 않으면서 대남 정치적 심리적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한다. 이 의도를 정확히 읽어야 한다. 강력하게 대응하되 냉정함을 유지해 북의 의도에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1.06 연평도 쐈던 北 4군단 소행… 6년만에 대응한 軍, 2배 갚아
北 해안포 도발… 軍 대응 포격

▲5일 북한의 서해상 포격 도발에 5일 서북도서에서 우리 군이 대응 사격훈련에 나섰다. 군은 이날 북한의 2배인 400발의 포탄을 발포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
군은 5일 북한의 서해 포격 도발에 대응해 이날 오후 3시부터 북방한계선(NLL) 남방 해상을 향해 포탄 400여 발을 발사했다. 이날 포격에는 백령도 해병 6여단과 연평도 소재 연평부대에 배치된 K-9 자주포와 전차포가 동원됐다. 군 관계자는 “북한이 도발 시 자위권 차원에서 충분히 응징한다는 원칙에 따라 북한 포격의 2배로 대응했다”고 말했다.

▲그래픽=양인성
우리 군이 서북 도서에서 포를 쏜 것은 2018년 이후 6년 만이다. 남북은 2018년 9·19 남북 군사 합의에 따라 서해에 ‘완충 구역’을 설정하고 포 사격을 금지했다. 하지만 북한은 9·19 합의 이후 총 16차례에 걸쳐 해상 완충 구역으로 포를 발사하며 합의를 위반했다고 국방부가 밝혔다. 우리 군은 그간 북한군이 옹진반도 해안과 서해 도서에서 해안포를 쏘더라도 대응 포격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북과의 합의를 지키기 위해 연평도·백령도에 배치된 K-9 자주포를 바지선 등에 싣고 경기도 포천, 경북 포항 등까지 옮겨 사격 훈련을 실시했다.
군 당국 관계자는 “우리 군이 6년 만에 대응 포격에 나선 것은 ‘자위권’ 차원으로 정당한 조치”라면서 “북한이 9·19 합의를 전면 파기 선언하고 군사 도발을 벌이는 상황을 억제하기 위해서라도 충분한 응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응 포격은 연평도·백령도에 주둔한 해병대가 K-9 자주포, K-2 전차 등을 동원해 실시했다고 합참은 밝혔다. 인천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우리 군 대응 사격 3시간 전부터 연평·백령도 주민들에게 대피소로 이동하라고 안내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합참 전투통제실에서 서북 도서 부대의 해상사격 훈련을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우리軍 대응 포격 - 북한이 5일 200발 포사격을 하자, 백령도 소재 해병 6여단 소속 K1E1 전차가 대응 포격을 하고 있다. /국방부
군과 정보 당국은 최근 옹진반도 일대에 주둔한 북한 4군단의 도발 징후가 포착돼 예의 주시해 왔다. 4군단은 다수 보병사단과 포병여단 등으로 편성됐는데, 240㎜ 방사포를 비롯해 다수의 야포·해안포를 보유하고 있다. 2010년 고(故) 서정우 하사 등 총 23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도 4군단 소행이었다. 북한은 도서 지역 바로 뒤에 병풍처럼 쳐져 있는 황해도 해안을 적극 활용해 언제든 제2의 연평 포격을 감행할 태세를 유지해 왔다.
군은 이날 대응 포격을 마친 뒤에도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비하기 위해 포신을 덮개로 막지 않고 개방 상태를 유지했다. 군은 북한이 성동격서(聲東擊西) 전술로 다른 지역에서 기습 도발을 벌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대비 태세를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기습 발사가 가능한 신형 고체연료 기반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8형 발사대 생산 공장을 딸 주애와 함께 시찰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우리가 쉼 없이 추진하는 방위력 강화의 수행에서 이 공장이 차지하는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하며 공장 확장을 지시했다.
군과 정보 당국은 북한이 앞으로도 4월 한국 총선, 11월 미국 대선 등 한미 주요 정치 일정에 맞춰 고강도·하이브리드(고·저강도 혼합형) 도발에 나설 것으로 보고 대비 태세를 강화했다. 정부 관계자는 “군은 북한이 해상 도발뿐 아니라 금융·통신망을 마비시키는 사이버 공격, 최전방 일부 지역을 침투해 주민 납치극을 벌이는 하마스식 도발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면서 “한미 공조하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01.07 “해병대가 해병대했다” 연평도서 北에 2배로 되갚던 날
[노석조의 外說]
해병대, 北 200발 도발에 400발로 응수
올해 달력에 2010년 연평도 포격 반격 사진
이들에게 위문편지 보내면 어떨까

▲해병대가 9·19 군사합의 이전인 2016년 백령도에서 발칸 야간 사격훈련을 하는 모습. /해병대사령부
지난 5일 200여발에 달하는 북한의 포격 도발에 400여발의 포로 응수한 군은 ‘귀신도 잡는’ 해병대였습니다. 해병대 백령도 6여단과 연평부대는 용산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의 지시에 따라 K-9자주포와 K1E1 전차로 대응 포격을 퍼부었습니다.
군이 국방기자단에 공개한 대응 포격 영상을 보면, 해병대의 상징색인 붉은색 이름표를 철모에 단 장병이 숙달된 자세로 포탄을 장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눈빛은 흔들림이 없고, 구호 소리는 우렁찹니다. 포탄이 바로 코앞에서 “쾅!”하고 굉음을 내는데도 해병은 의연합니다.
새해 인사를 포격으로 하는 북한의 도발에 당황하거나 허둥지둥할 법도 한 데 해병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북한 포격의 2배인 400여발의 대응 포 사격을 완수했습니다.
군 안팎에서는 “역시 해병대”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해병대가 ‘해병대’했다는 뜻입니다.

▲지난 5일 해병대가 연평도와 백령도에서 북측을 향해 포 사격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북한의 포격 도발에 대한 대응 조치였다. /국방부
해병대는 북한의 턱밑을 겨눈 비수(匕首)와 같은 전략적 요충지인 백령도와 연평도를 사수하고 있습니다. 정예 부대 중의 최정예 군이 해병대입니다. 북한 4군단은 ‘병풍’처럼 펼쳐진 옹진반도와 서북 도서에 해안포·야포·방사포 등을 해안 절벽 굴 속 등에 쫙 깔아놓고 백령도와 연평도를 겨누고 있습니다.
연평도와 백령도를 사수하는 해병대는 수적으로 열세입니다. 연평도와 백령도 뒤에는 바다밖에 없습니다. 받쳐주는 지상군이 없습니다. 목숨을 걸고 외딴 섬을 지키고 있습니다. 지도를 보면 북한군이 연평·백령도를 상륙 점령 시도를 하려면 할 수 있겠구나 싶을 정도로 북한 측에 가깝습니다.

▲한반도의 전략적 요충지 백령도. 백령도는 한국 본토보다 북한 내륙에 더 가깝다. 황해도 장산곶까지는 13.5km에 불과하다. 북한은 백령도, 연평도 등 서북도서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연평도 포격, 천안함 폭침 등도 이런 배경에서 벌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연평·백령도에서 해병대가 포 사격을 한 것은 2018년 9·19 남북 군사합의가 체결된 이후 무려 6년만입니다. 북한은 서북도서에서 포 사격 훈련 등을 말자는 9·19 합의를 무시하고 그간 수차례에 걸쳐 해안포를 쏘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응 포격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북과의 합의를 지키기 위해 연평도·백령도에 배치된 K-9 자주포를 바지선 등에 싣고 경기도 포천, 경북 포항 등까지 옮겨 사격 훈련을 실시했습니다.

▲2023년 건군 75주년 국군의 날 기념 시가행진에서 해병대원들이 상륙돌격장갑차에 탑승해 광화문 광장에 나온 시민들을 향해 경례하고 있다. /해병대
그러다 이번에는 연평도와 백령도에서 대응 포격에 나섰던 것입니다. 북한이 지난해 11월 23일 9·19 합의를 전면 파기 선언했는데다 그후 처음으로 해안포 도발을 해왔기 때문에 자위권 차원의 대응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6년 만의 연평·백령도 현장 포격이었지만, 해병대는 완벽하게 해냈습니다.
해병대는 올해 북한이 한미 주요 정치 일정에 맞춰 갖가지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커져 ‘당장 오늘 밤이라도 싸울 대비태세’를 갖추기 위해 심기일전해왔다고 합니다.
해병대는 달력을 만들면서 11월 달력 사진으로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당시 불길 속에서도 반격에 나서는 K-9자주포와 여기에 탑승한 해병대원의 사진을 실었습니다.
해병대에 물어보니 “그때 그 정신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고른 사진이라고 답했습니다.
달력 아래에는 간결한 일곱 글자가 쓰여 있었습니다.
호국충성해병대.
해병대가 있는 한 백령도와 연평도는 끄떡없습니다.
요즘 군인에게 위문 편지 쓰는 ‘미풍양속’이 사라져가고 있다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최전방 중의 최전방에서 묵묵히 ‘호국 충성’하는 해병대원들에게 위문 편지를 써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상 뉴스레터 외설(外說)이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
01.08 北도 사망선고 내렸는데 여전히 ‘햇볕 타령’하는 사람들
지난 5일 백령도·연평도 방향으로 약 200발의 포격을 퍼부은 북한군은 그날 밤 총참모부 보도를 통해 “민족, 동족이란 개념은 우리의 인식에서 삭제됐다”고 선언했다, 북은 6일과 7일에도 서해상으로 포탄 수십발을 난사했다. 일련의 도발은 일주일 전 김정은이 “북남 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교전국 관계”라고 선언한 것의 연장선에 있다. 김정은은 “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다를 바 없었다”며 역대 한국 정부의 모든 대북·통일 정책을 싸잡아 비난했다. 민주당을 비롯한 이른바 진보 세력이 신봉해온 햇볕정책에 대한 사망 선고와 다름없었다.
북이 동족 개념을 폐기한 것은 입으론 ‘우리 민족끼리’를 말하면서 민족을 공멸시킬 핵무기 개발에 몰두하는 자기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다. 북은 한국을 핵공격할 의지는 물론 능력까지 갖춘 게 사실이다. 햇볕정책을 맹신하는 세력이 정권을 잡을 때마다 북한에 현금을 퍼주며 방조한 결과다. 이들은 북핵을 ‘대미 협상용’ ‘민족의 핵’이란 궤변으로 두둔하고, 있지도 않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선전해 주며 핵 개발 시간을 벌어준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북한 정권에 이들은 ‘쓸모 있는 바보’였을 것이다. 달라진 북의 대남관은 핵에 집착하는 이상 되돌릴 방법이 없다. 북이 민족적 특수성을 인정하는 기존의 남북 관계로 돌아가려면 북핵 폐기가 급선무란 뜻이기도 하다.
북한의 민족 개념 폐기가 햇볕정책의 근거 자체를 원천 무효화시켰지만 민주당과 이른바 진보 세력은 제대로 된 입장 표명도 하지 않은 채 정부 비판만 쏟아내고 있다. 포격 첫날 민주당 국방 대변인은 “윤석열 정부의 강경 일변도 대북정책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했다. 국회 외통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정부의 개성공단지원재단 해산 방침에 대해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성명을 냈다. 6일 김대중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행사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김대중 정신을 되살리자” “평화의 가치 아래 단합하자”고 했다. 북한·북핵을 규탄하거나 햇볕정책을 반성하는 말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북에 토사구팽 당하고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른 채 여전히 ‘평화 타령’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1-08 북 하이브리드戰 본격화, 과감한 전방위 대응 나설 때다
북한 김정은이 새해 들어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교전국 관계’로 새롭게 규정한 후 벌이는 대남 및 대외 공세가 예사롭지 않다. 북한군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5일부터 사흘 연속 포격 도발을 했다. NLL을 무력화하고 최북단 백령도·연평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려는 의도다. 김여정은 7일 담화를 통해 “군의 방아쇠는 안전장치를 해제한 상태”라고 엄포를 놓으면서 국군을 “군복 입은 광대들”이라고 조롱했다. 6일 연평도 북서방에서 북한은 실제 포 대신 포성을 모의한 발파용 폭약을 터뜨렸는데 국군이 속아 넘어갔다는 주장이다. 국군의 무능을 조작해 이간시키려는 대남 심리전이다. 합동참모본부는 “군 신뢰를 훼손하려는 상투적 수법”이라고 일축했다.
김정은이 5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심심한 동정과 위문을 표한다”는 지진 피해 위로 전문을 보낸 것도 이례적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1995년 고베 지진 때엔 강성산 총리가 나섰던 것과 달리 김정은이 직접 ‘일본국 총리대신 각하’라고 호칭하며 격을 높였다. 20%대로 지지율이 추락한 기시다 총리에게 정상회담 미끼를 던져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 이후 공고해진 3국 안보 협력을 흔들려는 이간책이다. 이런 가운데 친북 성향 단체는 6일 대통령실 경호구역에 난입하고, 윤석열 퇴진을 외쳤다.
4·10 총선을 3개월 앞둔 상황에서 북한의 이 같은 군사적·비군사적 공세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하이브리드 전쟁’ 전술과 빼닮았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 때 무력시위와 함께 가짜뉴스로 민심을 흔들었고, 사이버 공격 등으로 기간시설을 무력화하며 혼란과 불안을 부추겼다. 러·북 밀착에 대한 자신감에서 김정은도 푸틴의 도발 교본에 따라 NLL 인근 무력 도발로 안보 불안을 증폭시키며, 남남갈등을 유도하는 하이브리드전을 본격화한 것이다.
과감한 하이브리드 응전에 나서야 할 때다. 군사 도발에는 즉각 몇 배로 응징하고, 사이버 공격 및 가짜뉴스 유포 등 비군사적 공세에도 전방위 대응을 해야 한다.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포함, 북한에 외부 정보를 전달할 다양한 경로를 열어야 한다. 백령도와 연평도, 전후방 주요 시설에 대한 하마스식 기습공격에 대비하는 것은 기본이다.
문화일보 사설
01-08 2024 안보 쓰나미와 김정은 과대망상

김숙 前 駐유엔 대사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와 북한 간 긴밀한 군사 협력을 급속히 촉발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전략적 지각변동을 야기했다. 러시아는 북한의 탄약 지원으로 전쟁 지속 능력이 향상됐고, 북한은 그 대가로 경제적 숨통을 트고 첨단 군사기술을 전수받았으며 외톨이 외교 전선에서의 뒷배를 확보하게 됐다. 이 모든 것이 국제법과 제재를 위반한 결과이며, 그 행태는 범법자 둘이 술에 취해 서로 부축하며 비틀비틀 걷는 위험한 형국이다. 중국도 북한 핵 문제를 핵확산금지 차원이 아닌 미국과의 강대국 갈등 구도에서 다루는 입장으로 선회하며 북한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런 것들이, 북한 김정은이 지난 연말 ‘대한민국은 교전국’ ‘남조선 영토 평정’ ‘내년 초 큰 파장과 대사변 준비’ 등 강경 발언을 토하고 ‘이제 우리의 시간이 왔다’고 호언케 한 배경이기도 하다. 지난 5일부터 연사흘 백령도와 연평도 인근의 포격 도발은 스스로 파기한 9·19 군사합의에 대한 북한의 확인 사살이다. 집권 13년 차, 40세의 젊은 독재자가 무모하게 추진하는 핵·경제의 병진정책은 경제보다는 핵에 대한 집착으로 ‘김정은의 시간’이라는 정신분열적 과대망상증으로 변했다. 붕괴 전에 나타나는 만용이다. 북한의 위기 고조 행위는 분명히 의도적이며 무력 충돌 위험도 커졌으나, 그나마 윤석열 정부가 지난 정부와 달리 단호하고 압도적인 반격과 보복을 할 것으로 북한이 내심 인정한다면 과거 천안함 폭침과 같은 직접 도발은 엄두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지난 1일부터 2년 임기의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활동을 개시했다. 10년 전 활동하던 때보다 사뭇 불리해진 환경이다. 2017년 이래 대북 안보리 제재 결의안은 줄곧 중·러의 거부권 행사로 불발에 그쳤으며, 이들이 대북 제재에 동참할 가능성은 작다. 다행히 한미일 3국은 지난해 8월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 후 태동시킨 새로운 3각 안보 협력을 안보리에서 조율해 나갈 수 있게 됐다. 가치 공유 상임이사국인 영국·프랑스와도 호흡을 맞춰 북한의 핵·미사일·인권에 대해 단호히 대응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북한 비핵화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핑계로 핵군축으로 목표를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대두되는 상황에 대응하기에 안보리는 권위 있고 적합한 장소다.
올해는 수년간 누적된 국제안보의 도전적 요소들이 임계에 이르러 동시 폭발을 일으키는 위험한 한 해가 될 수도 있다. 러시아 볼셰비키혁명을 주도한 레닌은, 수십 년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도 있고 몇 주 동안에 수십 년의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했다. 오는 13일 대만 선거 결과에 따른 유동적 상황, 국제 안보의 블랙홀과 같은 미·중 대결, 3년 차 우크라이나 전쟁, 계속되는 중동의 테러 전쟁, 향방 모를 미국 대선 전망으로 볼 때 올해 중 닥칠 동시다발적 안보 쓰나미에 대비해야 한다. 북한의 교묘한 도발 양태와 미 대선 일정과 연계된 7차 핵실험 가능성 등에 대비하며, 글로벌 중추국가를 위한 지평 확대 노력 속에서도 핵심은 자강과 동맹의 국가 안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비상임이사국으로 활동하는 우리에게 외교는 거친 투박함과 뻔한 상투성을 경계하며 섬세와 담대의 자질을 동시에 갖추고 취하는 치열한 생존책이어야 함을 명심할 때다.
문화일보
01-08 9·19 군사합의 완전 파기…“남북 지·해·공 적대행위 중지 완충구역 사라져”

▲6일 오전 인천 옹진군 대연평도 망향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도의 한 해안마을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연합뉴스
북, GP 시범철수·JSA 비무장화·해상 완충구역 등 연이어 위반
합참 "해상·지상의 적대행위 중지구역서 사격 등 정상 실시"
2018년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을 위해 체결된 ‘9·19 군사합의’가 휴지조각으로 전락했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9·19 군사합의 전면 파기를 선언한 이후 군사합의로 파괴된 최전방 감시초소(GP) 복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재무장, 해상 완충구역(적대행위 중지구역) 내 포병사격 재개 등 합의 위반 행위를 계속해왔다.
우리 군도 8일 9·19 군사합의에 따른 지상 및 해상의 적대행위 중지구역은 북한의 위반 행위로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 군사합의는 사실상 파기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9·19 군사합의 무력화가 본격화한 계기는 지난해 11월 21일 북한의 3차 군사정찰위성 발사였다. 우리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 위반인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에 대응해 9·19 군사합의 중 우리 군의 감시, 정찰 활동을 제한하는 ‘비행금지구역 설정’의 일시 효력정지를 11월 22일 결정했다.
이에 북한은 11월 23일 9·19 군사합의 전면 파기를 선언하고 합의를 무력화하는 조치를 단행하기 시작했다. 군사합의로 파괴된 GP에 감시소를 설치하고 병력과 장비를 투입했으며, JSA 경계 병력을 무장시켰고, 군사합의로 금지된 적대행위 중지구역 내 해안포 포문 개방 횟수를 크게 늘렸다.
급기야 지난 5∼7일 사흘 연속으로 서해 해상 완충구역에서 포병 사격을 실시했다. 우리 측도 북한군의 9·19 군사합의 위반에 대응해 시범철수 GP 복원을 추진하는 가운데 JSA 경계 병력을 무장시켰고, 9·19 군사합의로 금지된 해상 완충구역 내 함포 포구 덮개 개방 조치를 취했다.
아울러 지난 5일 북한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포 사격에 대응해 서북도서에 있는 해병부대도 해상 완충구역으로 포 사격을 실시했다.
군 당국은 9·19 합의로 중단됐던 서북도서 해병대의 정례 해상사격을 재개할 방침을 밝혔다. 아울러 해상 및 지상 완충구역에서 함정 및 육상 부대 기동, 포병사격 등 훈련도 재개하기로 했다.
합참은 이날 "북한은 9·19 군사합의 파기 선언 이후 최근 사흘 동안 서해 적대행위 중지구역(완충구역)에서 사격을 실시해 적대행위 중지구역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행동으로 보여줬다"며 "이에 따라 우리 군도 기존의 해상 및 지상의 적대행위 중지구역에서 사격 및 훈련 등을 정상적으로 실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9·19 군사합의는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로 2018년 9월 19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북 국방부 장관이 체결한 군사 분야 합의서다.
합의서에는 ▲ 육상 및 해상 완충구역 설정 ▲ 비무장지대(DMZ) 내 GP 철수 ▲ 전방 지역 비행금지구역 설정 ▲ JSA 비무장화 ▲ 남북 공동 6·25 전사자 유해 발굴 ▲ 한강 하구의 평화적 이용 등의 내용이 담겼다.
9·19 군사합의에 따라 육상 및 해상 완충구역에서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해 포 사격 및 기동 훈련이 금지됐다. 아울러 남북은 DMZ 내 GP의 완전 철수를 목표로 각각 10개의 GP를 파괴하고, 1개씩은 원형을 보존한 채 장비와 인력을 철수시켰다.
이런 시험철수에 따라 북측 GP는 기존 160여개에서 150여개로, 남측 GP는 78개에서 67개로 줄었다. 그러나 북한은 9·19 군사합의 체결 이후에도 이듬해인 2019년부터 해상 완충구역 내 포 및 미사일 사격, 우리측 GP에 총격, 소형 무인기 남측 관할지역 침입 등 크고 작은 합의 위반 행위를 해왔다.
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8일 국방부 정례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에 "북한은 3600여회 9·19 군사합의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9·19 군사합의 중 남북 공동 6·25 전사자 유해 발굴과 한강 하구의 평화적 이용 등의 공동 사업은 이미 중단된 지 오래됐기 때문에 군사합의는 사실상 파기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합참 “北이 해상 완충구역 무력화…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아”

▲6일 오전 인천 옹진군 대연평도 조기역사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도 한 해안마을 인근에 설치된 해안포의 포문이 열려있다. 북한은 이날 오후 연평도 북서방 개머리 진지에서 방사포와 야포 등으로 포탄 60여발을 발사하고 장전 폭탄을 터뜨렸으며, 이 중 일부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북 해상 완충구역에 낙하했다.연합뉴스
합참 "북 9·19 남북군사합의 3600여회 위반…사흘 연속 포사격"
정부차원서 ‘육상’ 적대행위 중지구역 무효화도 검토될 듯
북한군이 지난 5일부터 사흘 연속으로 서해 최북단 서북도서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해안포·방산포 등 포 사격을 실시하면서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른 해상 완충구역이 사실상 사라지게 됐다.
우리 군은 북한군 도발에 일일이 대응하기보다는 자체 계획에 따라 해상사격과 해상기동훈련을 재개한다는 방침이다.
이성준 합참 공보실장은 8일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은 9·19 군사합의를 3600여회 위반했고 서해상에서 사흘 동안 포병 사격을 실시했다"며 "이에 따라 (해상) 적대행위 중지구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도 ‘해상 적대행위 중지구역의 효력이 없어진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게 보시면 될 것 같다"고 답했다.
국방부가 2020년 12월 발간한 ‘2020 국방백서’에 따르면 9·19 군사합의에 따라 남북은 해상에서 무력충돌 방지를 위해 NLL 일대의 일정구역을 해상 완충구역으로 설정해왔다.
또 지상에서 총 10㎞(군사분계선 기준 남북으로 각각 5㎞)의 완충지대를 형성해 군사적 긴장 완화를 꾀해왔다.
이 실장은 ‘우리 군도 해상 완충구역에서 사격을 정기적으로 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우리 군은 서북도서 일대에서 적의 행위에 일일이 대응하기보다는 우리 군 자체의 계획에 따라서 사격 훈련을 실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지난 5일 북한이 해안포 위주로 200여발 이상의 사격을 했을 때 우리 해병부대는 K9 자주포와 전차포 등을 동원해 대응사격을 했다. 그러나 지난 6일과 7일에는 북한군 사격이 대체로 측방으로 실시돼 대응 사격을 하지 않았다.
다만 또 다른 군 관계자는 ‘육상에서의 적대행위 중지구역도 무효가 되는 것이냐’는 질의에 "정부 차원의 논의가 더 필요한 부분"이라며 즉답을 삼갔다.
앞서 북한은 우리 정부가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3차 발사에 따른 대응조치로 지난해 11월 22일 9·19 군사합의 중 ‘비행금지구역 설정’(제1조 3항)의 효력을 정지하자, 이튿날 9·19 군사합의 전면 파기를 선언했고 이후 파기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는 행태를 지속해왔다.
한편 군은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 6일 서북도서 지역에서 포탄을 쏜 게 아니라 포성을 모방한 폭약을 터뜨렸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닌 "기만"이라고 일축했다. 이 공보실장은 "우리 군은 북한군의 발포와 포사격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며 "발포하는 정황과 포사격하는 정황을 각각 포착해 포사격 정황에 대해서 횟수와 장소를 말씀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여정 담화에 대해 "민심 이반을 방지하고 대내 결속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심리전 등을 통해서 ‘남남 갈등’을 유발하기 위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군사정찰위성 2·3호기 전천후 SAR위성, 4·11월 美 플로리다서 발사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소재 반덴버그 우주군 기지에서 우리 군 첫 정찰위성 1호기를 탑재한 미국 스페이스Ⅹ사의 우주발사체 ‘팰컨9’이 지난해 12월1일(현지시각) 성공적으로 발사되고 있다. 스페이스X 제공/연합뉴스
고성능 영상레이더(SAR) 탑재 악천후에도 북한 동향 관측
1호위성 EO(전자광학)·IR(적외선) 위성과 차별화
우리나라 군사정찰위성 2호기와 3호기가 오는 4월과 11월 미국 플로리다 케이프커내버럴 우주군기지에서 발사된다고 방위사업청이 8일 밝혔다.
군은 내년까지 총 5기의 군사정찰위성을 확보할 방침이다.
군사정찰위성 2, 3호기 발사체로는 지난해 12월 쏘아 올린 1호기와 마찬가지로 미국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펠컨9’이 활용된다.
2·3호기에는 고성능 영상레이더(SAR)가 탑재된다. 전자파를 지상 목표물에 쏜 뒤 반사돼 돌아오는 신호 데이터를 합성해 영상을 만드는 방식이어서 날씨와 관계없이 북한의 동향을 면밀히 관측할 수 있다.
가시광선을 활용해 지상을 직접 촬영하는 EO(전자광학)·IR(적외선) 위성인 1호기와 함께 운용되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징후 탐지나 종심지역 전략표적 감시 역량이 강화될 것이라고 방사청은 설명했다.·
2·3호기 개발은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주관하고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한화시스템 등 국내 우주항공전문기업이 참여했다.
425사업 2호 위성 개발 초기부터 총괄 책임자로 참여해 지금은 ADD 국방우주업무 책임자인 전병태 국방우주센터장 전병은 "고해상도 전천후 위성인 2호 위성의 발사 성공은 국방 감시정찰전력의 수준을 높이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우리 국민에게 국방우주기술의 우수성을 알려 북한 등 외부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고 있다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사청 우주지휘통신사업부는 군정찰위성 1호위성 발사 준비단계부터 국방부·국방정보본부·국과연 등이 참여하는 위성발사 준비위원회를 가동해 2·3호 위성 발사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위성발사 준비위원회를 통해 국내에서 미국 발사장까지 위성 항공운송 관리, 현지 발사장에서의 최종시험 등 발사 전 준비사항 점검 및 이행여부를 확인하고 있다고 방사청은 소개했다.
또 미국 발사장 현지에서의 위성발사 관리단을 운영을 통해 발사 연기 우발상황 등에 대응하고, 1호 위성 성공 발사에 이어 2·3호 위성의 연속적인 성공 발사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예정이다.
방사청 정규헌 우주지휘통신사업부장은 "425사업 2·3호 위성 발사가 성공하게 되면 우리의 우수한 우주 개발기술을 전 세계에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어 우방국간 우주기술 협력 및 우주정보 교환 등 을 대규모로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우주개발 기술 및 위성의 해외 수출 등을 통해 국내 우주산업의 비약적인 성장 및 국가 경제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軍 “김여정 기만작전 주장은 코미디…6일 포사격 전후로 10여회 폭약 터트려”

▲북한 조선중앙TV는 7일 오후 8시 정규보도 시간에 김여정 담화 보도중 인민군 기만작전 폭약발파 장면(44초)을 공개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7일 담화에서 지난 6일 서북도서 지역에서 포탄을 쏜 적이 없다며, 포성을 모방한 폭약을 터뜨리는 기만 작전에 한국군이 속아 넘어갔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폭약 기폭장치 연결하고 있는 인민군의 모습. 연합뉴스
‘쏜 적 없다’는 김여정 발언은 "사실 아냐…방사포탄 비행궤적 등 포착돼"
북한은 지난 6일 서북도서 지역에서 포사격을 감행하기 전후로 10여 차례에 걸쳐 폭약을 터트린 것으로 군은 파악했다.
당시 포사격은 하지 않고 폭약만 터뜨리는 기만 작전을 폈다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코미디 같은 거짓 선동’이라는 군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났다.
8일 군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군은 지난 6일 연평도 북서방 개머리 진지에서 방사포와 야포 등 포탄 60여발을 사격했다. 특히 당시 폭약을 먼저 터트리고 포사격을 했으며, 포사격이 끝난 뒤에 다시 한번 폭약을 터트렸다.
포사격 전후 폭약이 터진 횟수는 10여회라고 소식통은 설명했다.
소식통은 "처음 폭약을 터트린 다음 60여발의 포사격을 감행했고, 사격이 끝난 이후에 또 폭약을 터트렸다"면서 "이런 행위는 처음이었고 결과적으로 우리 군을 기만하려는 의도였다"고 밝혔다.
북한 조선중앙TV가 전날 오후 8시 정규보도 시간에 방영한 당시 폭약을 터트린 장면을 보면 20여명의 북한 군인이 상자에 담긴 폭약을 논밭에 매설한 뒤 기폭장치를 누르며 "폭파"라고 외쳤다. 이후 14차례 굉음과 연기가 솟구쳤다.
이와 관련,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7일 조선중앙통신에 공개한 담화에서 "우리 군대는 130㎜ 해안포의 포성을 모의한 발파용 폭약을 60회 터뜨리면서 대한민국 군부 깡패무리들의 반응을 주시했다"며 "해당 수역(해상완충구역)에 단 한 발의 포탄도 날려 보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7일 오후8시 정규보도 시간에 김여정 담화 보도중 인민군 기만작전 폭약발파 장면(44초)을 공개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7일 담화에서 지난 6일 서북도서 지역에서 포탄을 쏜 적이 없다며, 포성을 모방한 폭약을 터뜨리는 기만 작전에 한국군이 속아 넘어갔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폭약 구덩이를 파고 있는 인민군의 모습. 연합뉴스
이에 군 소식통은 "당시 방사포탄의 비행궤적도 포착됐다"며 "우리 군이 북한 포사격 발수까지 비교적 정확하게 맞추면서 상당히 당황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합참도 김 부부장의 담화에 대해 "코미디 같은 저급한 선동"이라고 일축했다.
한편 군 소식통은 김 부부장이 담화에서 북한 도발 시 대응 원칙인 ‘즉·강·끝(즉각, 강력히, 끝까지)’을 거론한 것에 대해서는 "북한이 우리 군의 대응 행동 및 원칙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김 부부장은 담화에서 "최근 들어 군깡패들이 입버릇처럼 떠드는 그 무슨 대응원칙이라는 ‘즉시, 강력히, 끝까지’라는 낱말이 계속 그렇게 오기를 부리다가는 ‘즉사, 강제죽음, 끝장’이 될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01-09 활개 치는 北 공작, 손발 묶인 대공·방첩

주재우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북한 지령 따르는 간첩단 속출
4·10 총선용 심리전 명약관화
이미 北 막말 복창 사례 수두룩
국정원 수사권 없애 속수무책
외국대리인法 시급히 만들고
대공 수사권이라도 복원해야
지난 5일부터 사흘 연속 계속된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1997년 대선 이후 한때 사라졌던 북한의 이른바 ‘북풍(北風)’ 공작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전통적으로 북한에 강경한 보수 정권을 심판하는 데 북한도 한목소리를 내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과거에 이들은 군사적 도발은 물론이고 우리 민심을 선동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했다. 여기에 중요한 선거를 앞둔 대만과 미국 등지에서도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의 선거 개입을 우려하고 있다. 오는 4·10 총선도 이들의 교란 작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란 분석 전망이 쏟아져 나온다.
수많은 간첩 사건에서 밝혀졌듯이, 국내의 여러 개인과 단체들이 북한의 지령에 따라 심리전·여론전·거리시위·집회 등의 방식을 동원하면서 선거전을 펴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북한과 전체주의 정권의 영향력 공작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북한의 대남 간첩 행위를 전담해온 국가정보원이 지난 1일부터 간첩 수사를 더는 할 수 없게 됐다.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이 폐지됐기 때문이다. 이날, 대통령령으로 국정원 대공 업무의 지속성을 위한 ‘안보 침해 범죄 및 활동 등에 관한 대응업무 규정’의 시행을 알렸다.
외국, 특히 전체주의 국가의 영향력 공작을 저지·조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없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이들의 선거 개입에서부터 간첩 활동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통령령으로 존속해온 이른바 ‘방첩업무 규정’만으론 역부족인 게 현실이다. 이 영(令)으로는 의심되는 외국의 간첩 활동을 수사할 수가 없다.
2개의 대통령령은 공통된 맹점이 있다. 조사는 할 수 있으나 수사권이 없다는 점이다. 어떠한 처벌 규정도 없다. 즉, 내외국인의 간첩 활동 정보 수집 차원에서 의심되는 이들에 대한 조사는 허용된다. 그러나 이렇게 수집된 정보에 근거해 해당 영이 규정하는 안보 침해나 외국의 간첩 활동을 수사하지는 못한다. 그럴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수집된 정보를 국정원장에게 전달하면 유관기관(경찰)에 이첩하는 구조다.
가령, 2022년에 스페인의 인권 단체 ‘세이프가드 디펜더스’가 중국 비밀경찰의 국내 정황을 알렸다. 몇 달 뒤 국내에서도 ‘동방명주’라는 중식당이 이런 의심을 받았다. 간첩 활동이 의심됐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수사권이 없는 상황에서 사건은 석연찮게 종결됐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북한의 ‘막말’ 비방 문구와 구호가 우리의 반정부 세력 입에서 그대로 전해진다. 우리 대통령을 ‘역도놈’, 정부를 ‘괴뢰역적패당’, 그 지지 세력을 ‘보수패거리’ ‘보수패당’ ‘역적패당’이라 한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워싱턴선언을 ‘친미 구걸행위’라고도 했다. 이런 표현을 간첩단으로 의심받은 일부 ‘국민’과 단체가 고스란히 받아쓴 행적이 공개수사 자료에서도 밝혀졌다. 이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는 방증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대공과 방첩 수사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우선, 지난해 6월에 발의된 ‘외국대리인에 관한 법률안’의 입법이 시급하다. 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활동하는 개인과 단체의 등록 의무화가 목적이다. 외국인 개인이 운영하는 단체의 목적과 취지에 관한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국정원에 대공과 방첩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대공과 외국인 방첩 활동은 이제 불가분한 관계다. 국가보안법에만 의존하는 대공 수사는 무의미하다. 북한의 대남 공작이 외국의 대남 영향력 공작의 목적과 의도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폐기, 반일운동 등이 이들의 공통된 최종 목표다.
끝으로, 여의치 않으면 대공 수사권만이라도 회복하는 것이다. 경찰을 불신하거나 능력을 폄훼하는 게 아니다. 조직의 업무에는 그만의 문화가 있다. 이런 문화는 오랜 세월 축적된 사고와 인식·기법·기술과 마음가짐의 결과다. 영향력 행위는 24시간, 365일, 수년 수십 년 동안 장기적으로 진행되는 특성이 있다. 사건·사고와 같이 우발적이고 우연적이고 즉흥적이지 않다. 경찰은 우리 사회의 치안 불안이 더욱 기승하는 상황에 더 집중하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게 우리의 국익을 위하는 일이다.
문화일보
01-10 “남북 완충구역 없다”… 불시 도발에 철저 대비를

▲국방장관, 드론작전사령부 방문 신원식 국방부 장관(가운데)이 8일 경기 포천시 드론작전사령부를 방문해 이보형 드론작전사령관(왼쪽)으로부터 ‘소형 스텔스 무인기’ 등의 전력 현황을 보고받고 있다. 국방부 제공
우리 군이 8일 “남북 간 지상·해상의 적대행위 중지구역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2018년 평양 정상회담을 통해 완충지대를 만들었던 9·19 군사합의는 5년 반 만에 사라지게 됐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을 쓰는 군사 정찰위성을 발사할 때 “군사합의 파기”를 먼저 선언한 바 있다. 군은 북한이 숱하게 합의를 위반하는 상황에서 우리만 지키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말 “남북은 적대적 두 국가 관계이며, 무력 충돌을 기정사실로 하라”는 위협적 지시를 내렸다. 북한군은 지시대로 새해 벽두 서해상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사흘 연속 해안포 수백 발을 발사하고, 감시초소(GP) 재무장을 완료했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신년사를 통해 “상대 선의에 의존하지 않는… 힘에 의한 진정한, 항구적 평화” 원칙을 밝혔다. 이번 완충지대 무효 선언도 그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북한이 우리 선언을 핑계 삼아 육해공에서 불시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공기부양정을 동원한 서해 도서 기습상륙이나 각종 기만전술 대비 필요성을 합참은 거론했다. 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철책선 목함지뢰, 서울 상공 무인기 침투 등 도발은 중단된 적이 없다. 특히 북한은 미국 대통령선거를 전후로 기획 도발을 반복해 왔다. 대선 후보를 향해 북한 문제를 안보의 우선순위에 올려놓으라는 전술이다. 11월 미 대선을 맞아 과거의 패턴이 반복될 수 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그제 드론 작전사를 찾아 “적에게 공포를” 주문했다. 북한의 도발 위협에 대한 강력한 대응은 말로만 되는게 아니다. 강경 대응에 필요한 빈틈없는 전략과 조치를 마련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국과의 외교 확대, 우발 충돌 가능성 차단 및 확전 방지 노력, 그리고 남남 갈등 같은 사회적 혼란 예방까지 종합 대책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럴 때라야 ‘힘에 의한 평화’가 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동아일보 사설
01-12 3년 동안 간첩 수사 인력도 시설도 완비 못한 무능 경찰
안보 전문가들의 거듭된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난 1일 0시부터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이 폐지돼 간첩 수사는 경찰이 전담하게 됐다. 그런데 간첩 수사를 위한 인사 발령과 시설 보안 조치조차 완료되지 않았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가 2020년 12월 국가정보원법 전면 개정을 강행하면서, 대공수사권 폐지를 3년 유예토록 한 것은 그 기간에 경찰의 대공 역량을 강화하라는 취지였다. 전·현 정부 당국의 직무유기 책임을 엄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1월 1일자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산하에 안보수사단이 신설됐지만, 소속 인력 142명 중 80여 명만 발령이 났다고 한다. 경찰 조직 전반의 운영 문제와 연계돼 있어 1월 말 정기 인사에 맞춰 나머지 인력을 충원할 것이라는데, 어이가 없다. 지난 3년 동안 뭐 했는가. 국정원의 이첩 대상 사건과 관련 자료도 1일을 기해 안보수사단으로 넘어갔지만, 일부 시·도 지방경찰청 산하 안보수사대가 2·3급 비밀자료를 보관할 수 있는 수준의 보안 시설을 갖추지 못했다고 한다. 제주·창원간첩단 사건처럼 지방청 안보수사대로 자료 이관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는데, 일부 시설의 보안 결함이 드러났다고 한다. 황당한 일이다.
한국을 교전 중인 적대국으로 규정한 북한이 4월 총선을 겨냥해 다양한 도발을 자행할 공산이 큰데, 대공수사 체제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이런 경찰이 간첩 수사를 전담해선 안 된다. 그러잖아도 간첩 천국 우려가 쏟아진다. 국정원 대공수사권 복원이나 안보수사청 신설이 더 절실해졌다. 간첩죄 대상국을 ‘적국’에서 ‘외국’으로 바꾸고 외국대리인 등록법 제정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문화일보 사설
01-12 김정은 “주적” 협박과 친북세력 환상

송종환 경남대 석좌교수, 前 주파키스탄 대사
북한 김정은은 지난 11일 ‘대한민국 족속들을 주적(主敵)’들 이라고 규정한 데 이어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단정하면서 자신들의 주권과 안전을 위협하면 초토화해 버릴 것이라고 협박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는 “통일을 지향하는 동족이 아니라 적대적인 교전국 관계”라면서 “핵 무력을 포함하여 남조선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지난 5∼7일에는 사흘 연속 서해상 완충 구역에서 포사격을 했다.
이런 북한의 도발은 한반도 공산화 통일전략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북한에는 남북한이 당사자가 돼 한반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자는 민족자결 원칙은 없고, 남북한 민족이 단결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자는 민족해방 투쟁만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역사가 말해준다. 100여 년 전 블라디미르 레닌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은 전쟁과 폭동 등으로 기존 체제를 무너뜨려 세계 공산화를 노렸지만, 위기에 처하면 화해를 구걸했다. 러시아 율리우스력으로 1917년 10월 25일 볼셰비키혁명으로 수립된 소비에트 정권이, 경제적 파탄과 군대의 사기 저하로 제1차 세계대전의 교전국인 독일과 더는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위기에 빠졌을 때다. 소비에트 정권의 존립 위기를 맞은 협상파 레닌은 1918년 3월 3일 자기 정권에는 지나치게 가혹할 정도의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독일 등과 체결했다. 이 조약의 가혹성은 △유럽 영토의 절반 △인구 5600만 명 △석탄산업 90% △철강산업 70% △산업 54%와 △철도 26%를 빼앗기고 △60억 마르크의 배상금을 금으로 지급하는 것이었다.
레닌은 굴욕적인 결과를 맞게 될 독일 등과의 협상을 앞두고 이렇게 선언했다. “현재 우리보다 강한 적(敵) 앞에서 싸우겠다는 것은 어리석음 그 자체일 뿐만 아니라, 혁명적인 일이 아니다”라면서 “적에게 유리한 게 분명하고 우리 측이 불리한데도 전투를 하는 것은 범죄행위다. 명확하게 불리한 전투를 피하기 위해 타협을 할 수 없는 혁명계급의 지도자는 쓸모가 없다.”
8개월 후 11월 9일 독일제국이 붕괴되자 소비에트 정권은 그 나흘 뒤 조약의 무효화를 선언, 파기하고 유럽 내 이전의 러시아 영토 대부분을 회복했다. 1922년 11월부터는 외세로부터의 ‘민족해방’ 및 봉건 잔재와 싸우는 ‘인민민주주의 혁명노선’을 핵심으로 하는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전술로 당시 제국주의 국가들이 지배하던 동아시아 식민지들의 공산화를 추진했다.
레닌의 교시대로,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와 남측에서의 공산당 활동 자유화를 통해 남한의 민주 체제를 전복해 한반도를 김일성 왕조의 지배 아래 두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다. 북한을 도우면 정권도 변할 것이라며 ‘햇볕’ 타령을 하던 좌편향 인사들은, 2000년 북한을 방문한 후 김정일이 “휴전선 비상사태 때 주한미군이 조정자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면서 “북한은 핵을 개발한 적도 없고 개발할 능력도 없다. 만약 북이 핵을 개발하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한 대통령의 정신을 되살리자고 주장한다. 그들 중에는 2018년 4월 27일 회담 후 김정은이 1년 내 ‘비핵화’를 약속했다고 거짓을 전한 대통령도 있다. 그것이 거짓으로 확인된 지금 국민 앞에 반성하고 석고대죄해야 한다.
체제 존립 위기에 빠진 레닌처럼 김정은의 도발 태도를 바꾸게 하려면, 대한민국으로서는 김정은도 선제공격을 받거나 즉각 반격을 받아 절멸될 수 있다는 위협을 주는 ‘공포의 균형’에 의한 억지력으로 북한이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전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동시에 북한 주민들이 외부 세상을 알 수 있도록, 특히 3대 세습에 충성도가 높지 않은 40대 이하 젊은이들에게 외부 정보가 계속 유입되도록 하는 노력을 강화해 북한의 수령체제 붕괴를 추진하는 공세적 전략을 강구해야 한다.
문화일보
01-14 “어금니 5개 빼· 밤마다 치킨 라면”…SNS 병역기피 장난 글 올리면 패가망신

병무청, 특사경 60명으로 확대, 빅데이터 등 첨단기법 동원해 색출
특사경이 12년 간 송치한 병역면탈 범죄자 총 747명
"어금니 5개 빼면 된다", "밤마다 치킨과 라면 6개월만 드세요", "어깨를 강제로 탈골 시킨다"…
이른바 ‘군대 안 가는 법’이라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장난 삼아 이같은 수법들을 올렸다간 앞으로 패가망신하게 된다.
요즘 세상에 이런 수법이 그대로 통하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돈벌이 목적이든, 장난으로 하든간에 온라인상에 이런 글을 올렸다간 큰 낭패를 당하거나 패가망신까지 각오해야 한다.
올해 5월부터 온라인에 병역 면탈 수법이나 행위를 조장하는 글을 게시하거나 유통하다가 적발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사이버상에서 병역면탈 조장 정보·게시 유통 금지 및 위반자 처벌 조항이 신설되는 등 병역법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 손목연골 훼손·자전거 경적으로 청력 일시 마비…면탈행위 백태
14일 병무청에 따르면 2012년 4월 도입된 병무청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이 지난해까지 송치한 병역면탈 범죄자는 총 747명이다.
유형별로 보면 고의 체중 조절이 176명으로 가장 많고, 정신질환 위장(175명), 뇌전증 위장(136명), 고의 문신(101명), 안과 질환 위장(23명), 학력 속임(22명) 등이 뒤를 이었다. 청력장애 위장과 허위 장애 등록, 허위 생계감면, 고의 수술 등의 수법도 114명이나 됐다. 병역판정검사를 앞두고 한 달 만에 약 20㎏을 늘리거나, 끼니를 거르는 방법으로 약 6㎏ 체중을 감량한 사람들도 적발됐다.

▲병무청, 병역면탈 예방과 단속 홍보영상. 병무청 홈페이지 캡처
온라인상에 게시된 병역 회피 조장 글을 따라 한 사례도 있다. 인터넷 검색으로 정신질환 위장 방법과 그에 따른 병역판정검사 판정 기준을 인지하고 검사장의 전담의사 진료 때 ‘사람을 피하고 집에만 있었다’며 자살 충동 등 허위 증상을 호소해 4급을 받았다. 이 사람은 추적 검사에서 직장에 다니는 등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병역판정검사 전 자전거 경적과 응원용 나팔 등을 이용해 청력을 일시 마비시켜 의사를 속인 사례도 있었다. 아령 등을 들고 손목을 돌리거나 과도하게 꺾어 고의로 손목연골을 훼손한 사례도 드러났다.
병무청은 지난해 서울남부지검과 합동수사를 펼쳐 가짜 뇌전증으로 병역 면탈을 시도한 130여 명과 브로커들을 적발한 바 있다. 이 사건은 ‘지인이 군 출신 행정사에게 돈을 받고 뇌전증이 있는 것처럼 위장한 내용을 전수받아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제보가 병무청에 접수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직업군인 출신 브로커가 강남구에 마련한 사무소에서 1인당 수천만 원을 받고 병역 면제 방법을 알려준 혐의로 구속됐다. 또 다른 브로커는 인터넷에 병역상담카페를 개설해 병역 의무자, 그 가족 등을 유인해 컨설팅비 명목으로 수억 원의 금전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범죄가 들통난 것은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브로커와 병역면탈자, 공범자 사이에 주고받은 문자나 통화 내용 등을 분석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병역 면탈 범죄 행위를 색출하는데 디지털 포렌식의 중요성이 입증된 사례였다고 병무청은 설명했다.

▲병역면탈 유형별 송치 현황. 병무청 제공
◇ "뛰는 놈 위에 나는 놈"…병역기피자 색출 고삐
병역 면탈 조장 수법은 갈수록 은밀하고 고도화하고 있다. 음성적이고 불법적으로 형성된 시장 규모도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병무청이 적발한 병역 회피 조장 행위는 연간 2000건에 달하며, 실제로 매년 40명가량이 병역의무 기피나 면탈로 적발돼 처벌받고 있다.
지난해 병무청과 검찰의 합동수사에서 적발된 108명이 ‘불법시장’ 브로커 2명에게 건넨 돈은 16억원이 넘었다. 1인당 1500만원꼴이었다.
병무청은 올해 초 본청에 사이버조사과, 경인청에 병역조사과를 각각 신설하고 특사경 인력을 40명에서 60명으로 확대했다. 특사경은 본청에 22명(병역조사과, 사이버조사과 각 11명), 지방청에 38명이 근무한다.
특사경의 직무 범위가 확대되고,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는 위법 행위를 더 정밀하게 감시하기 위한 필요성이 높아진 데 따른 인력 증원이다.
특사경의 직무 범위는 올해 하반기부터 ▲ 병역을 기피하거나 감면받을 목적으로 도망가거나 행방을 감춘 자 ▲ 병역의무 기피·감면 등 관련 정보의 게시·유통금지 위반자 ▲ 병역판정검사 등 신체검사와 징·소집 등 병역기피자 수사로 확대된다.
병무청은 병역판정검사 후 신체 등급 4∼6급 판정을 받은 사람 중 중점관리 대상 질환자는 지난해부터 의학자문단의 자문을 거쳐 위법 행위 의심자를 걸러내고 있다.
이와 함께 앞으로 4∼6급 판정자들에 대해서는 빅데이터 기법도 적용해 질병별 데이터와 진료기록 조회, 자격·면허 취득 등 다양한 자료를 통합 수집함으로써 핀셋 검증에 나선다. 이를 통해 걸러지는 의심자는 특사경의 수사 대상이다.
병무청은 공직자(4급 이상)와 그 자녀, 연예인, 체육선수, 고소득자와 그 자녀 등의 병역판정검사에서 입영까지 병역이행 과정을 확인하고자 2017년 9월 병적 별도관리 제도를 도입했다. 그간 고의로 체중을 불리거나 의도적으로 손목인대를 수술해 병역면탈을 시도한 축구선수 등 총 33명을 적발해 검찰에 송치했다.
이 제도를 통해선 4급 이상 공직자와 그 자녀, 연예인, 체육선수, 고소득자와 그 자녀의 병역판정검사에서 입영까지 병역이행 과정이 확인되고 있다. 이들 관리대상 병역면탈 적발건수는 총 33명으로, 체육선수 26명, 공직자 2명, 연예인 5명으로 드러났다.
병무청은 고의로 체중을 불리거나 의도적으로 손목인대를 수술해 병역면탈을 시도한 축구선수 등 총 33명을 적발해 검찰에 송치했다. 특히, 지난해 발생한 ‘허위 뇌전증 병역면탈 사건’을 계기로 병역이행과정 적정성 검증에 의사가 참여하고, 데이터 분석·통계를 활용한 이상 징후 포착으로 병역면탈 예방 기능을 강화하였다. 이들 병역면탈 시도자 중 ‘뇌전증 위장’이 10명으로 가장 많았고, ‘고의 손목수술’‘정신질환 위장’이 각각 7명, 고의 체중조절 4명, 청력장애 위장 2명 등이었다.
이와함께 온라인상에 게시된 병역 회피 조장 정보를 자동으로 검색·분석하는 시스템도 구축하고, 위법 행위 의심자에 대해서는 2017년 11월 도입된 디지털 포렌식 수사 장비 등을 동원해 색출한다.
병무청 관계자는 14일 "병역 면탈 범죄는 언젠가는 꼭 밝혀진다"면서 의심자에 대해서는 디지털 포렌식, 빅데이터 분석, 확인신체검사 등을 통해 추적하고, 온라인상의 병역 면탈 조장 정보를 지속해서 검색해 범죄 행위를 색출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병역면탈 고위험자 등에 대한 병역처분 적정성을 핀셋 검증해 청년들이 병역면탈이라는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예방 활동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입징이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01-15 도발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징검다리’ ‘돈줄’ ‘동네북’.
기분 나쁘지만 북한에 한국의 용도는 위의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징검다리는 미국에 접근하기 위해 한국을 이용한다는 의미다. 대표적 사례가 2018년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한 뒤 관계 회복 가능성을 엿본 북한은 한국을 징검다리로 이용하려 했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된 뒤 북한에 가장 중요한 전략적 생존 과제는 미국과 손을 잡는 것이었다.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양다리 외교로 수십 년을 살아오다가 한 축이 부러지자, 이번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양다리를 타려 한 것이다.
북한은 소련 붕괴 직후부터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줄기차게 문을 두드렸다. 1차 북핵 위기도 미국의 시선을 끌기 위한 시도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2000년 말 북한은 그토록 원하던 북-미 수교라는 목표에 거의 근접했지만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과 9·11테러로 미국의 관심을 중동에 빼앗겼다. 중동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 후 첫 외교적 업적을 쌓을 곳으로 북한을 주목하자 김정은은 대담하게 문을 열고 나왔다. 2018년 급작스러운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와 4월 판문점 회담 모두 미국에 보내는 러브콜이었다.
북한은 미국과의 수교 없이는 대북 제재를 풀 수 없고 경제난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정상 국가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미국에서 대통령이 인권 탄압으로 악명 높은 북한 세습 독재자와 손을 잡는다는 것은 재선을 포기하는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다. 북한의 시도는 체제의 획기적인 변화 없이 이뤄지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다.
북-미 수교나 대북제재 해제, 국제사회 진출 등 북한에 절실한 것들은 모두 미국이 쥐고 있다. 그 대신 한국에는 대북 경제 지원을 할 능력 정도는 있다. 2002년부터 시작해 2009년까지 북한은 매년 식량 40만 t, 비료 10만 t 등 각종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 북한은 ‘밥값’은 하려고 노력했다. 지원 기간 인명 피해를 초래하는 어떠한 도발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위의 두 용도로 사용하기 어렵거나, 내부에 더 중요한 일이 생기면 북한은 한국을 가차 없이 동네북으로 사용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직전 3년이 그랬다.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김정일은 죽음이 다가옴을 직감했다. 그는 사망 전까지 3년 남짓을 오로지 후계 구도를 완성시키는 데 몰두했다. 대문을 열고 비밀스러운 집안일을 처리할 수는 없는 법. 이명박 정부가 대북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한 것도 아니지만 김정일은 한국의 용도를 다른 곳에서 찾았다.
2010년의 천안함 공격과 연평도 포사격은 내외부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의도적인 도발이었다. 사람들은 북소리가 요란한 곳을 쳐다보기 마련이다. 2010년의 도발은 김정은이 업적을 쌓기 위해 한 짓이라는 분석들도 있지만 북한 시스템에서 김정일의 지시 없이 후계자가 단독으로 그런 일을 저지를 수는 없다. 이런 도발의 결과 북한은 스스로 내부 빗장을 걸어 잠그고 세습에 필요한 시간을 벌고, 김정은을 강력한 지도자로 미화시켰다. 북한 사람들이 전쟁이 터질까봐 걱정하는 사이 김정일은 아들에게 당과 군, 비밀경찰과 금고 등을 차례로 물려주었고, 세습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을 숙청했다.
올해 북한은 다시금 한국을 동네북으로 활용하려 한다. 김정은은 새해 벽두부터 한국을 주적, 적대적 교전 국가로 규정하고 가용한 무력을 총동원해 초토화하겠다며 위협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의도는 뻔하다. 6년째 이어지는 사상 최강의 대북제재, 3년간의 코로나 셀프 봉쇄로 경제가 파탄 난 상황에서 김정은은 김주애로의 후계 구도를 완성시키려 하고 있다. 민생이 도탄에 빠졌는데 열한 살짜리 어린 딸을 위한 4대 세습에만 집착하고 있느냐란 원성을 누르기 위해 김정은에게 필요한 것은 비상계엄령과 시선을 돌리기 위한 북소리다. 전쟁 위기를 고조시켜야 ‘준전시 상태’ ‘전시 상태’로 내부 통제 수위를 높일 수 있다.
그러면 김정은은 주애를 위한 시간도 벌고, 주민들의 시선도 돌리며, 4대 세습에 반대하는 ‘눈빛이 불량한 자’들을 전시 상태에 준하는 즉결처분으로 제거할 수 있다. 새해 벽두부터 김정은은 그 방향으로 판을 깔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이 북한이 울릴 포성에 대비해야 할 순간도 다가오고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01-15 北 GP 지하시설 ‘파괴 확인’ 뭉갠 文정부…진상 밝혀야
2018년 9·19 군사합의에 따라 진행된 ‘비무장지대 안 상호 1㎞ 이내 감시초소(GP) 철수’와 관련, 문재인 정부가 그해 12월 북한 GP의 완전 파괴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군사적으로 불능화됐다”고 발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합참 등 군 당국은 ‘불능화에 대한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았다’고 반발하고, 심지어 국방부 등이 제대로 된 현장 검증 자체를 훼방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이적행위는 물론 여적죄(與敵罪) 여부까지 따져봐야 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북한 GP 지하시설이 파괴되지 않아 최근 신속히 복구되고 있다는 의문을 제기했고, 현장검증에 참여한 군 관계자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북측 주장만 듣고 불능화됐다는 정부 입장이 나갔다”고 증언하는 실정이다. 남북은 당시 GP가 군사적 긴장감을 고조시킨다는 이유로 전면 철수키로 하고, 시범적으로 군사분계선(MDL)에서 남북으로 1㎞ 이내에 있는 GP 각 11곳을 우선 철거·폐쇄 조치했다. 그해 12월 12일 남북은 검증단을 각각 파견해 철거 여부를 확인했는데, 우리 측은 77명으로 이뤄진 검증단이 북측 GP를 조사했다.
북한이 GP 지하를 요새화해 운영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바 있다. 그러나 북측은 지표투과레이더(GPR) 등의 장비 반입부터 거부했다. 또 북측이 “폭파로 파묻혀 있다” 등의 핑계를 대며 거절해 1시간30분 만에 검증을 마쳤다. 구경만 하고 돌아온 셈이다. 이런 사정을 군이 국방부에 설명하고, 합참과 국방부 관계자 간의 다툼도 있었지만, 5일 뒤 “병력과 장비가 완전히 철수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지하시설 은닉 여부를 포함해 검증부터 발표까지 의혹투성이다. 9·19 자체가 심각한 안보 자해이지만, 북한 GP 파괴 여부 조사를 뭉갰다면 망국적인 범죄행위다. 감사·수사를 총동원해 진상을 밝히는 게 시급하다.
문화일보 사설
01.15 文, 북 ‘GP 해체’ 검증도 않고 믿어버렸다니

▲북한이 2018년 11월 20일 오후‘9·19 남북 군사 분야 합의’에 따라 시범 철수키로 한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10곳을 폭파 방식으로 파괴했다고 국방부가 밝혔다. 사진은 중부전선 북측 GP의 폭파하는 모습./국방부 제공
문재인 정부가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 이행 차원에서 북한 최전방 감시초소(GP)를 현장 검증할 때 지하 시설 파괴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고 한다. 문 정부는 같은 해 12월 “북 GP 지하 시설이 폭파되거나 매몰됐음을 확인했다”며 “감시 초소로서 임무 수행이 불가능하게 됐다”고 발표했는데 부실 검증 후 허위 발표했다는 것이다. 최근 국방부가 이 의혹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남북은 9·19 합의에서 비무장지대의 모든 GP에서 철수하기로 하고 우선 남북 간 거리가 1km 이내인 양측 GP를 11개씩 시범적으로 철수하기로 했었다. 우리 측 검증단은 북이 GP 파괴 후 20여 일 만에 현장 검증에 나섰으나 북한군의 반대로 지표투과레이더(GPR) 등의 지하 관측 장비를 휴대하지 못했다. 내시경 장비를 이용한 확인도 없었다. 과학 장비를 통해 검증하지 못하고 1시간 30분간 육안으로 살펴본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지상 요새가 주축인 우리와는 달리 북한은 감시 초소를 지하 요새화해서 운영하기에 지하 시설 파괴 여부를 확인해야 했지만 수박 겉핥기에 그친 것이다. 당시 현장 검증단은 북에 다녀온 후 ‘불능화에 대한 의구심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보고도 올렸지만 묵살됐다. 당시 문 대통령이 “남북 상호 GP 철수와 검증은 그 자체만으로 65년 남북 분단사에 새로운 획을 그은 사건”이라고 자찬했다. 문 정부는 있지도 않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대신 홍보해주기도 했다.
이미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불능화했다던 GP 지하시설을 사용 중인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북한만이 아니라 세계의 공산당 체제는 기만을 국가 전략의 기본으로 사용하고 있다. 북한은 1994년 제네바합의 때부터 비핵화할 것처럼 국제사회를 속여 왔다. 북한이 2008년 6월 당시 미 국무부 관계자들이 참관한 가운데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한 것도 기만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북한은 지금도 영변 핵시설을 가동하고 있다. 북한의 기만도 문제지만 우리 내부에 그 기만에 기꺼이 속아주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조선일보 사설
01-16 ‘북 GP’ 검증 훼방한 文정부 이적성

현광언 前 한미연합사 작전차장, 예비역 육군 소장
원래 2018년 9·19 군사합의는 그 자체가 북측의 위계(僞計)였다. 군사적으로 대치한 북측으로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지만, 문제는 그런 위계를 당시 문재인 정부가 거들었다는 정황이 갈수록 뚜렷해진다는 사실이다. 9·19 합의에 따라 진행된 ‘비무장지대 내 상호 1㎞ 이내 감시초소(GP) 철수’를 이행하면서, 북측 GP 파괴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음은 물론 군 당국의 검증을 훼방한 사실까지 드러났다고 한다. 이적행위나 마찬가지다. 지금이라도 철저한 감찰·조사·수사를 해 성역 없이 엄정히 책임을 묻지 않으면 안 된다.
9·19 합의는 군사적 충돌 위험을 줄이고 상호 평화적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미명 아래 서로 군사 활동을 감시하는 공중정찰의 범위를 매우 불평등하게 조정했다. 그리고 포사격 훈련을 비롯한 각종 훈련의 비합리적인 통제, 해상 활동의 불평등성 등 우리 측에 불리한 게 뻔한 약속을 평화협정이란 이름으로 선언했다. 또한, 이를 실행하면서 우리는 철저하게 준수하고 북측은 적당히 무시해 가며 지키는 비평화협정이었다. 그로 인해 수도권 안보부터 취약해졌다.
군사분계선에 너무 근접해 있던 남북 GP 각 11개를 동시에 철거 및 철수하기로 한 것도 문제다. 그런데 이를 이행하며 검증단이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것은 그 자체가 큰 잘못이기도 하지만, 북한이 시설을 제대로 철거하리라고 믿은 선의부터 잘못이었다. 군사분계선의 GP는 우리 것은 80여 개였던 반면 북측은 160여 개로, 우리의 2배가 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11개 철거하면 북측은 22개 정도는 철거했어야 했다.
우리는 시설 전체를 철저하게 폭파했지만, 북측은 적당히 폭파하는 척해서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남겨 놓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북측과의 대화에 조금이라도 경험 있는 사람(대북 협상 전문가)이라면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도 윗선의 잘못된 입김으로 이를 전혀 수행할 수 없었던 게 근본 문제였다.
당시에 이미 한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에서 9·19 합의의 문제점과 관련, 당시 국방부 장관을 이적죄로 고발했지만, 문 정부 검찰은 이를 기각해 버렸다. 다행히 지금이라도 이 문제가 불거진 만큼, 그때 알면서도 문제 삼지 않고 속아 넘어간 관계자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책임 추궁이 있어야 마땅하다.
1972년 7·4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도 남침용 땅굴을 파기 시작한 북한이다. 국제사회의 끈질긴 비핵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갖은 억지와 속임수로 핵실험을 하더니 이제는 핵무장을 완성, 한국을 향해 ‘적대적인 교전국’이라고 위협한다. 공산주의 집단은 어떤 국가든 태생적으로 선전선동의 명수이며 거짓말은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게 그들의 전략전술이다.
북한이 9·19 합의를 파기한 이상 우리도 군사분계선상의 필요한 지점에 군사시설을 재건해야 마땅하다. 그곳이 비무장지대(DMZ)인 만큼 유엔사와 협조 아래 우수한 우리 건설 기술을 총동원해 단기간에 최상의 경계 진지와 장비 및 최선의 병영시설을 갖춰야 한다. 종전에 GP 근무 장병들이 겪던 갖은 고충을 해소해 우리 병사들에게는 근무하고 싶은 곳으로, 북측 경비병들에게는 간담이 서늘케 하는 홍보 효과를 함께 거둘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필요도 있다.
문화일보
01-16 김정은 “헌법에 南 수복 명시”, 총선용 심리전 경계해야
6·25전쟁을 일으킨 북한은 한시도 적화통일 전략을 버린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김정은이 15일 헌법에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는 문제를 반영해야 한다”고 한 것에 새로운 실질적 의미는 없다. 헌법보다 상위 규범인 노동당 규약에는 이미 미제 무력 철거와 통일 투쟁이 명시돼 있다. 안보에 관한 한 남북한이 서로 주적(主敵)이라는 사실도 자명하다. 대한민국도 헌법 제3조에서 북한 수복을 규정해 놓았다.
문제는, 최근 김정은이 도발 강도를 높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정은은 핵무력의 제2의 사명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면서 “전쟁이 다가온다면 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한미훈련을 전쟁연습이라 했던 행태를 볼 때 언제든 대남 핵 공격을 할 수 있음을 협박한 것이다. 김정은의 이 같은 주문은 “책임 있는 핵보유국” “전쟁 억제 및 평화 수호”를 명시한 지난해 9월 개정 헌법 때와 달리 완전히 호전적이다. 북한은 이미 2021년 개정한 노동당 규약에서 ‘우리민족끼리’를 삭제했다. 이번에는 헌법을 다시 개정해 핵이 협상용이 아니라 공격용임을 아예 분명히 하겠다는 뜻이다.
극초음속 중장거리 미사일 도발에 이은 북한의 대남 공세는 대만 총통선거에 앞서 중국이 벌인 압박과 유사하다. 시진핑처럼 김정은도 4월 총선, 11월 미국 대선을 겨냥해 대대적인 심리전에 돌입한 것이다. 대만 유권자들은 “민진당 후보를 뽑으면 전쟁 난다”는 협박을 이겨냈다. 북한의 대남 공세는 남남갈등도 노린다. 야당은 과거 선거 때처럼 ‘전쟁이냐 평화냐’ 식으로 안보 국론을 분열시키지 말아야 한다. “북한이 도발하면 몇 배로 응징할 것”이란 윤석열 대통령 언급대로 군사적 응징 태세는 기본이다.
문화일보 사설
01-16 총선판 흔드는 ‘김정은 전쟁 협박’
金 “전쟁시 대한민국 완전 점령, 헌법에 명시할 것”
尹 “불안 조장 정치도발 용납 안해… 몇 배로 응징
北 스스로 반민족 반역사적 집단 자인” 강력 경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조선반도(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 평정, 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개정 헌법에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명기하고, ‘평화 통일’ 표현을 삭제할 것을 지시하는 등 4월 총선을 앞둔 남측에 군사위협의 수위를 계속 높여가고 있다.
16일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15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의 시정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우리는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결코 피할 생각 또한 없다”며 “전쟁은 대한민국이라는 실체를 끔찍하게 괴멸시키고 끝나게 만들고, 미국에는 상상해보지 못한 재앙과 패배를 안길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어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으로, 불변의 주적으로 확고히 간주하도록 교육교양사업을 강화하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드러났던 남북관계의 ‘패러다임 대전환’을 헌법 개정으로 법제화하는 동시에, 적화통일 위협을 극대화하고 4월 총선을 앞둔 한국 내 안보 불안을 조성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남북교류협력의 상징인 경의선 북측 구간의 물리적 파괴와 평양에 위치한 조국통일 3대헌장기념탑 철거도 지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최근 북한의 위협을 “우리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대한민국을 균열시키기 위한 정치 도발 행위”라고 규정했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것과 관련해 윤 대통령은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우리는 이를 몇 배로 응징할 것”이라며 “‘전쟁이냐 평화냐’를 협박하는 재래의 위장 평화 전술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며 강력하게 경고했다. 윤 대통령은 통일부에 ‘북한이탈주민의 날’을 제정할 것도 지시했다.
문화일보 조재연·손기은 기자
01-17 김정은 “통일·동족 개념 지워야”… 옛 동독 같은 ‘자멸의 길’ 가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같은 표현을 헌법에서 삭제하고 한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간주하는 내용을 명기하라고 지시했다. 또 “전쟁이 일어나면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해 편입시키는 문제”도 반영하라고 했다. 김정은은 특히 선대(先代)의 남북 합의를 부정하고 그 상징물까지 철거할 것을 지시하며 “공화국의 민족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 버려야 한다”고도 했다.
김정은의 발언은 작년 말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이래 헌법까지 그에 맞춰 개정함으로써 남측과의 단절을 되돌릴 수 없는 확고한 노선으로 만들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새해 벽두부터 해안포 사격과 탄도미사일 발사 같은 도발을 감행한 데 이어 대남 정책과 이념, 역사까지 바꾸는 노선 변경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대남 대화기구와 선전매체를 정리한 데 이어 할아버지 김일성의 ‘조국통일 3대 원칙’ 삭제, 나아가 아버지 김정일의 대남 성과를 상징하는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 철거까지 지시하며 선대의 유산까지 건드리고 있다.
이 같은 김정은의 노선 전환은 한미를 동시에 위협하는 핵무장을 이뤄냈다는 자신감, 그리고 러시아와의 무기 거래 등을 통해 신냉전의 유리한 국면에 올라탔다는 정세 판단의 결과일 것이다. 더욱이 4월 한국 총선과 11월 미국 대선을 앞둔 올해는 정치적 유동성의 시기인 만큼 국제정세의 판을 흔들 절호의 기회라는 계산도 엿보인다. 하지만 그처럼 무모해 보이는 호전성의 근저엔 체제 유지에 대한 불안감이 깔려 있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내부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는 공세야말로 주민들의 불만을 차단하기 위한 독재체제의 만능 수법이다.
동아일보 사설
01.18 일상에서 군인 헌신에 감사하는 풍토, 이것이 보훈이고 국방

▲한겨울 밤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도 초병은 잠들지 않는다. 강원도 철원군 6사단 육군 청성부대 최전방 초소를 지키는 병사들은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능선을 따라 굽이치는 철책선 위로 어둠을 밝히는 경계등의 불빛이 눈부시다. /김지호 기자
휴가를 나온 육군 병장이 부대로 복귀하던 길에 식당서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우연히 합석한 20대 여성이 그 식사비를 대신 내준 사연이 전해졌다. 먼저 식당을 나온 이 여성은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급히 달려온 군인이 “고등어 백반 결제해주신 분 맞으시죠? 안 그러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라고 하자 웃으며 “군인이셔서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군인은 “오로지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선행을 받으니 가슴 한구석이 벅차올랐고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고 SNS에 썼다. 몇 달 전엔 군인이 주문한 음료 뚜껑에 ‘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손글씨를 적은 카페 알바생의 사연이 전해져 보훈부 장관이 직접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군인의 식사비를 대신 내거나 “당신의 헌신에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것은 뉴스가 되지 않는다. 군인에게 감사해하는 게 일상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웬만한 식당과 상점, 쇼핑몰에선 군인과 제대군인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줄을 서게 되면 대부분 군인에게 양보한다. 공항에선 “군인은 먼저 탑승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승무원들은 이코노미석에 앉은 군인을 찾아 “일등석이 비었으니 옮기시라”고 권한다. 관공서와 은행에선 일반 민원인보다 군인의 업무를 먼저 처리해준다.
그래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가 군인들의 헌신과 희생 덕분이란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모든 강대국이 상무 정신과 그를 뒷받침하는 보훈 위에서 생존과 번영을 누린 건 우연이 아니다.
한국에서 군인은 오랜 기간 비하와 조롱의 대상이었다. ‘군바리’란 멸칭이 더 익숙했다. 어떤 대통령은 “군대 가서 썩는다”는 말까지 했다. 군사 독재의 영향일 수도 있고, 미군 주둔 탓에 안보관이 느슨해진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 풍토 속에서도 우리 젊은이들은 군에 입대해 국방의 의무를 수행했다. 희생에도 여러 유형이 있지만 20대 청년의 군 복무에 비할 건 없다.
1990년대 이후에도 우리 군의 희생은 끊이지 않았다. 1996년 강릉 무장 공비 침투 때 12명이 전사했다.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한 2002년 연평해전, 46명이 전사한 2010년 천안함 폭침, 2명이 전사하고 16명이 다친 연평도 포격 도발, 부사관 2명이 다리를 잃은 2015년 DMZ 목함 지뢰 도발 등이 이어졌다. 이들의 희생 없이 우리의 일상은 존재할 수 없다.
군인은 우리 가족, 친구, 이웃이고 이들의 희생이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준다는 사실은 평범하지만 너무나도 절실한 진실이다. 일반 시민들의 작은 감사 표시로도 군인들의 사기는 충천한다. 이제 김정은은 핵무기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고 건강한 우리 청년들이 전선을 지키고 있다. 이들의 헌신을 감사히 여기는 국민이 버티고 있는 한 김정은의 협박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1-18 간첩천국 7대 허점 빨리 메워야 한다

염돈재 前 국정원 1차장, 前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김정은의 최근 ‘대한민국 완전 점령·평정·수복’ 발언 등으로 북한의 대남 지하당 구축 같은 간첩 활동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의 단호한 대응으로 군사적 수단 사용이 어렵게 돼 대남 공작 활동이 유일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1일부터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이 폐지되고 경찰이 전담하지만, 수사 역량 부족과 그간의 준비 부실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더 심각한 문제는, 현재 우리 상황이 경찰 역량 강화만으론 도저히 대응할 수 없는 ‘간첩 천국’이 됐다는 점이다.
첫째, 잘 알려진 대로 경찰은 태생적 한계 때문에 대공수사 업무를 제대로 감당하기가 어렵다. 정보기관과는 달리 경찰의 외국 내 정보·수사 활동은 주권 침해여서 즉각 제재 대상이 된다. 국정원의 협조를 받는다지만, 수사권 없는 국정원 요원이 수집한 채증 자료는 증거능력을 갖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법원의 재판 지연과 관대한 대처가 북한 간첩의 비옥한 토양이 된다. 간첩 변호인들이 증거인멸과 묵비권 행사를 사주하고 법관 기피 신청, 위헌심판 청구 등 지연책으로 법원을 농락한다. 하지만 재판부가 이를 방치해 2021년 9월 시작된 충북간첩단사건은 아직도 1심 재판 중이다. 이 때문에 간첩 혐의자가 구속기간 만료나 보석으로 풀려나와서 재판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안보 사범의 경우, 미국은 묵비권 행사를 제재하고 독일은 구속요건 완화 특례 규정을 두는 것과 대조적이다.
셋째, 적국(북한)을 위한 간첩 행위만 처벌토록 된 형법 규정 때문에 북한을 제외한 외국의 간첩 행위는 처벌할 수가 없다. 중국·러시아인이 자국이나 제3국을 위해 군사기밀 탐지와 선전·선동 공작을 해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가 없다. 재미교포 로버트 김 사건에서 보듯이 미국은 우방을 위한 간첩 행위도 보석 없이 엄격히 처벌한다.
넷째, 안보 사범의 휴대전화 감청이 불가능하다. 통신비밀보호법에는 안보 감청을 위해 수사기관이 통신사에 감청 장비 설치를 요청할 수 있게 돼 있으나 강제 조항이 아니어서 통신사들이 감청 장비 설치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감청이 불가능한 통신 장비는 아예 제조도 판매도 금지하고 있다.
다섯째, 법원이 국가보안법 제7조 찬양·고무죄 적용 기준을 엄격히 제한해 간첩 활동에 유리한 여건을 제공하고 있다. 독일은 형법으로 나치의 깃발·문장·구호·제복 사용도 엄격히 처벌하는데 우리는 친북 활동에 너무 관대하다.
여섯째, 국내 간첩의 북한 공작원 접선이 매우 쉽게 됐다. 지난해 7월에 개정된 중국의 반(反)간첩법에 자국에서 벌어지는 제3국에 대한 간첩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이 신설돼 우리 대공수사 요원들이 중국에서 감시 및 채증 활동을 하는 데 큰 제한을 받게 됐다.
일곱째, 북한의 사이버 공간 점령으로 북한의 간첩 공작에 더욱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문재인 정부 때 이른바 ‘댓글 사건’을 처벌해 국정원과 군이 사이버 공간에서 북한의 선전·선동 공작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게 된 탓이다.
이제 형법과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복원, 안보 사범 재판 특례 규정 제정, 북한 사이버심리전 견제 대책 추진 등 종합적인 대간첩 체제 구축이 더욱 화급해졌다.
문화일보
01.19 앞으론 ‘제2의 이석기 사건’ 수사 어려워져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 안보 문제 없을까
#2018년 4월 28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왓 바텀 공원. 한 남성이 계단에 앉아 생수병 마개를 따 물을 마시고 있다. 7~8m 떨어진 곳에 서 있던 다른 남성은 선글라스를 벗어 손수건으로 안경 렌즈를 닦는다. 둘의 눈빛이 허공에서 마주치더니 북적대는 인파 속을 헤치며 걷기 시작했다. 미행을 따돌리기 위해 간격을 유지한 채 이동하던 두 사람은 각각 오토바이와 택시를 타고 공원 주위를 한 바퀴 돌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잠시 후 둘은 어느 한적한 호텔의 객실로 들어섰다. 북한의 대남공작 조직이 해외 거점으로 쓰던 곳이다. 감시의 눈을 피했다고 판단한 L씨 등 북한 공작원 2명과 한국에서 온 Y씨는 숙식을 같이했다. 그러나 ‘매의 눈’으로 이들을 주시해 온 국가정보원 요원들에 의해 덜미가 잡히고 말았다. Y씨 등 일당 3명은 이로부터 3년 뒤인 2021년, 간첩죄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보안·대공·대정부 전복’ 직무 삭제
공청회 없이 민주당, 법 단독 처리
경찰, 해외 정보망 없고 수사 한계
국정원-경찰 신뢰 강화해 나가야
전직 국정원 직원 A씨가 전한 간첩단 사건의 전말은 한편의 대하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A씨는 “몇 년 전부터 이들 핵심 피의자들을 추적해 왔지만 뚜렷한 증거를 잡지 못하다가 중국·캄보디아 등지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하는 현장을 포착했다. 사진·동영상을 촬영하고 접선 경로를 추적하는 등 핵심 증거를 채집, 본격 수사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통상 간첩 사건은 최초의 첩보와 혐의 포착→내사를 통한 증거 수집→본격 수사→검거 및 기소→재판까지 수년에서, 길게는 십수 년이 걸린다. 국정원이 수집한 정보가 단서가 되지만 압수수색·감청 등 수사를 통해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 위의 간첩단 사건에서도 이들이 북한으로부터 F-35 스텔스 전투기 도입을 반대하라는 등의 지령문을 받은 사실이나 2만 달러의 공작금을 받은 정황 등은 수사 착수 후 압수수색에서 드러난 것이다.
간첩 확실하지 않으면 정보 수집 못 해
▲퍼스펙티브
하지만 이런 패턴의 간첩 수사가 이젠 어려워졌다. 국정원법 개정으로 올 1월 1일부터 국정원이 직접 간첩 사건을 수사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또 국정원의 직무 범위에서 ▶국내 보안정보 ▶대공 ▶대정부 전복 관련 업무가 삭제되고, ▶국외 및 북한 ▶사이버 안보 ▶위성 자산 정보의 수집·작성·배포만 할 수 있게 했다. 다시 말해 ‘북한과의 연계가 확실하거나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면 수사는 물론 정보 수집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국정원 대공 수사파트에서 근무했던 정구영 한국통합전략연구원 부원장은 “간첩 의심자의 행적을 추적하고도 북한 공작원과 접선 현장을 포착하지 못하거나 증거 인멸로 북한 연계를 입증하지 못하면 그간의 정보 수집 활동은 불법이 된다. 그런데도 이를 각오하면서 간첩을 추적하고 채증 활동을 할 직원이 있겠느냐”며 “국정원(정보 수집)-경찰(수사)-검찰(공소 유지)의 3축 중 한 축이 무너지면서 나머지 두 축도 자동으로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상 해외에서 간첩 잡는 활동을 하지 말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어느 나라든 정보 요원은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동하는데, 채증 자료를 법정에 제시할 수 없고 되레 불법 활동 혐의로 불이익을 받는다면 정보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동영상 촬영이나 사진 증거를 확보했다 하더라도 ‘수사관’ 신분으로 채증된 것이 아니면 법정에서 유의미한 증거로 채택되지 못하는 것도 장애 요인이다.
친북 세력 해외로 불러 사상교육
국내에 자생적 친북세력, 이른바 주체사상파(주사파)가 생겨나면서 북한은 간첩 직파보다 친북 세력을 해외로 불러내 사상교육을 하고 지령을 내리는 방식으로 전환했다는 게 당국의 분석이다. 정 부원장은 “경찰이 국정원이 넘겨준 첩보를 받아서 과거 국정원이 하던 방식대로 해외에서 현장 채증을 해야 하는데, 한국 경찰 신분으로 외국에서 수사하는 건 주권 침해에 해당해 외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이 해외에서 대공 수사를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국정원 대공수사단장을 지낸 황윤덕 양지회(전직 국정원 직원들 모임) 부회장은 “버젓이 친북 반국가 활동을 한 게 드러나도 북한과의 연결고리를 밝혀내지 못하면 국정원이 관여할 여지가 없게 됐다”며 “제2의 이석기 RO(Revolutionary Organization) 수사 같은 건 이제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전 의원은 지하혁명 조직을 결성, KT 혜화지사 등 국가 기간시설 파괴 등을 모의한 혐의로 고발됐으나 대법원은 “RO의 실체는 인정되지 않는다”며 내란음모에 대해 무죄 판결했다(내란선동, 국가보안법 위반은 유죄).
“국민 설득 없이 안보부서 없애는 나라”
▲신재민 기자
국정원법 개정은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20년 12월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국회 정보위·법사위와 본회의 모두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이 단독으로 처리했다. 국정원 출신의 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개정안을 발의했고, 전해철 정보위원장은 “국정원이 불법 행위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개혁 법안이라며 법안 통과를 강행했다. 하지만 공청회 한 번 없이 다급하게 졸속 처리를 밀어붙인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소속 정보위원이던 조태용 국정원장은 “어떤 나라가 국가안보의 핵심적 기능을 수행하는 부서를 없애는데 국민 설득 없이 일단 없애자고 하나? 국가 핵심 기능을 수행하는 부서를 없앤 다음 이게 어떻게 될지는 나중에 보자는 식의 국가안보는 없다”고 비판했다. 실제 여론조사기관 ‘공정’이 지난해 5월 11~12일 전국의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3%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에 대해 ‘모른다’고 답변했다.
경찰청 정보국장 출신의 이철규(국민의힘) 의원은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이라는 건 사실을 왜곡하고 국민을 속이기 위해 만들어낸 레토릭에 불과하다”며 “이관이라면 국정원의 장비와 예산·인력 등 권한과 역량을 넘겨줘야 하는데, 하나도 넘어간 게 없지 않느냐. 국정원이 대공수사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해체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공수사를 전담하게 된 경찰청은 국가수사본부 산하에 안보수사국과 안보수사단을 신설하고 경무관급을 단장에 임명하는 등 조직 정비에 한창이다. 안보수사 인력은 지난해보다 56% 증가한 1127명, 이 중 대공수사 인력은 700명이다. 수사관 역량 강화를 위해 안보수사 경력자를 전임안보수사관(5년 이상)과 책임안보수사관(7년 이상)에 발탁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일각에선 경찰이 그동안도 유관 수사를 해왔다는 점을 들어 수사 역량에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찰의 안보 수사는 국가보안법상의 찬양 고무, 집시법 위반, 탈북민 관리 등 치안 질서 침해 사범 위주였다. 국정원과 달리 해외 정보망이 없는 데다 다단계 보고 체계의 공개 조직이라 수사기밀 보안유지가 허술해질 수 있다. 입사부터 퇴사 때까지 대공수사만 전담하는 국정원 수사국과 달리 경찰은 순환인사제여서 전문성과 업무 연속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북한이라는 특수 집단을 상대하는 장기적인 간첩 수사를 해 본 적도, 전문성도 없다”(이철규 의원)는 게 결정적 취약점이다. 인력을 늘린다 해도 수사 역량을 하루아침에 끌어올릴 순 없다.
안보범죄 정보 협의체 효율 가동해야
정부와 여당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복원이 필요하다”(조태용 원장)는 입장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협조 없이 법 개정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안보 공백 최소화를 위해 국정원·경찰·군·검찰 등 유관기관이 참여하는 ‘안보범죄 정보 협의체’의 효율적인 운영 모델을 구축하는 게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황윤덕 부회장은 “수사의 착수와 종결권이 경찰에 있는 만큼 첩보 이첩 후 수사 진척 상황 등을 경찰이 성실히 브리핑해 주는 등 기관 간 신뢰 유지가 관건”이라며 “보안 누설이나 조직 간 갈등이 생겨 정보의 질이 낮아지지 않도록 지휘부가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을 조절하는 자제력과 지혜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올해 들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남북 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국가’로 규정,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 대남 기구를 폐지하고 서해상 도발에 나서는 등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의 안보 역량이 취약해진 틈을 타 간첩 공작 등을 본격 강화하겠다는 의미”라고 우려했다. 게다가 4월 총선을 앞두고 진영 간 갈등과 대립도 고조되고 있다. 간첩망을 통한 요인 암살이나 폭력적 파괴 행동 같은 후방교란 도발을 벌일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9·11테러 사건에서 보듯 안보의 최전선이 무너지면 순식간에 국민 희생이 따르는 대형 안보사건으로 비화할 수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겠다.
이정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01-19 광주의 ‘6·25 전범’ 정율성 사업 시정, 만시지탄이다
광주광역시 등이 ‘6·25 전범(戰犯)’인 정율성을 떠받드는 사업의 시정(是正)에 나섰다고 한다. 광주시는 “정율성 사업의 내용 등에 이견이 많아, 시민들 의견을 들어 새로운 방향을 잡으려고 한다”고 밝힌 것으로 19일 보도됐다. 오는 3월 완공을 목표로 시민 혈세 49억 원을 들여 진행 중인 ‘정율성 역사공원’의 명칭, 콘텐츠, 운영 방안 등을 완전히 바꾸겠다는 취지로, 만시지탄이다.
정율성은 북한군 장교로 6·25 남침에 직접 가담한 뒤 중국으로 귀화했다. 북한군의 행진곡, 중공군의 해방군가 등도 작곡했다. 출신 지역인 광주시 등이 10여 년 전부터 그를 기리는 사업을 벌여온 발상부터 반(反)대한민국이다. 지난해 8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우리에게 총과 칼을 들이댔고, 적들의 사기를 북돋웠던 응원대장 역사공원을 저지하겠다”고 천명한 이유다.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등이 “공산주의자 정율성 공원사업 철회”를 촉구해온 배경도 다르지 않다.
광주시가 2005년부터 매년 2억∼4억 원씩 지원하던 ‘정율성 음악축제’ 예산을 올해 전액 삭감한 것도 뒤늦게나마 당연한 조치다. 광주 남구청이 ‘정율성 전시관’ 대신에 지역 예술인 창작공간 ‘양림 문학관’을 조성하기로 한 것도 마찬가지다. 광주시가 2009년 지정한 ‘정율성로(路)’ 개명, 그 거리의 ‘정율성을 묘사한 동판 조각’ 철거 등도 서둘러야 한다. ‘정율성 지우기’ 전면화의 관철은 더 늦춰선 안 될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모두의 국가적 책무다.
문화일보 사설
01-19 北 총선 개입 공작에 총력 대응할 때다

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2018년 영국에서 출간돼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스파이와 배신자’는 냉전 당시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 스파이였지만 영국 정보기관인 MI6에 협조한 올레크 고르디옙스키(1938∼ )의 일대기를 다루었다. 여기엔 KGB가 1983년 영국 총선에서 눈엣가시 같던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총리의 재선을 막기 위해 어떻게 개입했는지가 담겨 있다. 결과적으로는 고르디옙스키로부터 이 정보를 입수한 MI6에 의해 공작이 무산되고 재집권함으로써 ‘영국병’ 치유에 성공하고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손잡아 소련을 무너뜨리는 데 기여했다.
북한은 새해 벽두부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으로, 불변의 주적으로 확고히 한다”며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등 공공연히 도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몇 배로 응징할 것”이라고 강경 대응 원칙을 분명히 했으며, 정부도 북한의 움직임이 4·10 총선을 겨냥한 ‘남남분열’ 심리공작일 가능성에 주목하며 대응팀을 꾸렸다고 한다. 선거철마다 부는 ‘북풍(北風)’에 잔뜩 긴장하는 모양새다.
북한의 선거 개입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1987년 KAL-858기 폭파, 1992년 강원 철원 무장공비 침투, 1997년 부부간첩 사건, 2010년 천안함 폭침 등은 선거를 앞둔 대표적인 도발 사례다. 1997년 ‘총풍 사건’은 남북이 선거판을 흔들기 위해 함께 공작한 흑역사다. 통일부는 2012년 대남 선전전, 2016년 위성항법장치(GPS) 교란, 2020년 탄도 미사일 연쇄 발사 등을 총선 개입 선전활동으로 꼽는다. 김정은이 2012년에 내놨던 ‘대남명령 1호’나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틀 앞두고 발표된 “남조선의 진보애국 역량은 강력한 투쟁으로 보수패당(한나라당)의 독재통치의 집권연장 기도를 저지·파탄시켜야 한다”는 ‘우리민족끼리’의 사설 등은 아예 노골적이었다.
북한 대남 심리공작이 우리 정치에 끼치는 영향을 지표·지수화한 자료는 아직 없다. 하지만 최근 미국과 프랑스, 독일 등에서는 적성국의 선거 개입 특징과 그 파급력을 정량화한 ‘영향력 공작·확대 지표’를 발표한다. 미 의회는 선거 개입 예상 국가로 러시아·중국·이란과 더불어 북한을 지목, 정보 제보자에 대한 포상금을 지급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도발과 심리전보다 더 무서운 것은 대남 침투 공작원들이다. 북한은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직파 간첩이 줄어든 반면, 자생 및 토착 간첩을 육성하는 신규 공작으로 바꿨다. 이들은 확신범을 가장해 반국가활동을 하기 때문에 심증은 가지만 물증 확보가 어렵다. 합법적인 신분으로 국회 등 정치권에 접근하는 직장인 스타일이다.
이들이 이번 총선에 어떤 장난을 칠지는 가늠키 어렵다. 냉전 당시 MI6가 KGB에 심어놨던 고르디옙스키 같은 존재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나마 지난 정부의 정보사 공작관들에 대한 무리한 수사 등으로 대북 휴민트가 붕괴돼 우려가 크다. 국정원 대공수사권 복원이 해법이겠으나 그럴 겨를이 없다. 정파적 이해를 따질 일이 아니다. 국방부와 통일부·경찰·검찰·방첩사·정보사·국정원 등 대공 전선이 총결집해야 한다. 소련의 대처 총리 제거 공작이 성공했다면 KGB의 끄나풀이나 다름없던 노동당 당수가 총리가 됐을 것이고, 역사는 뒷걸음쳤을 것이란 가정은 총선을 앞둔 지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문화일보
01.20 생존 위해 萬難 각오해야 敵도 同盟도 움직인다
남-북 핵·미사일 격차 그대로면 김정은 핵 공갈 계속
3軸 체계로 北 핵공격 막을 수 없다는 사실부터 출발해야
연말 연초 김정은은 남쪽을 향해 온갖 거친 말을 쏟아냈다. 전쟁과 피 냄새 범벅이었다. 김정은은 ‘유사시 핵무력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大事變) 준비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했다. 그는 ‘북남 관계는 더 이상 동족(同族) 관계가 아닌 전쟁 중인 두 교전국(交戰國) 관계’라고 규정했다.
3대 세습 절대 권력자 김정은 말은 중요 정보다. 그러나 그의 말 전체가 통째로 진짜 사실은 아니다. 전쟁 도발 전과자(前科者)를 상대할 때는 그들의 ‘입’과 ‘손’을 동시에 쳐다봐야 한다. 하나만 보면 오판(誤判)한다.
전쟁 범죄자들은 항상 한 말에 두 가지 상반(相反)된 뜻을 담았다. 히틀러는 전쟁을 위협하면서 그 안에 평화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떼놓지 않았다. 상대국 국민을 자기 말(협박과 회유)에 호응할 세력과 반발할 세력으로 나눠 그들이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저마다 편리하게 해석할 함정을 팠다. 상대방의 내부 분열을 유도했다. 히틀러와 스탈린에게 무릎 꿇은 나라는 모두 이 미끼를 물었고 안에서 분열했다. 지금 김정은도 누가 미끼를 무는지 지켜볼 것이다.
‘정보’에는 ‘사실’과 사실에 토대를 둔 ‘해석’이 같이 들어 있다. 정보를 접할 경우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해석’인가를 분간해야 한다. 북한은 러시아에 탄약과 무기를 대규모로 수출하고 있다. 전쟁을 준비하는 나라가 할 짓은 아니다. 그런가 하면 핵폭탄과 미사일 숫자를 늘리는 데 국력을 쏟아붓고 있다. 화살표 중 하나는 ‘전쟁 의사 없음’을, 또 하나는 ‘전쟁 준비 압박 강화’라는 각기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이 혼란된 신호가 한국 안에서 혼란을 불러온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옆집에서 돌멩이 던진다고 더 큰 돌을 던져서야 무슨 도움이 되냐’고 했다. 김정은의 핵폭탄은 ‘돌멩이’가 아니다. 김정은은 ‘이러다가 전쟁 나겠다’는 이 대표 발언을 ‘압박하니 내부 분열이 생기는구나’라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총선 승패에 따라 이런 생각은 더 굳어진다.
‘사실’과 ‘해석’의 중간지대에 ‘상대 의도(意圖) 추측’이 있다. 사실 수집이 충분하지 않으면 ‘의도 추측’ 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 김정은 체제는 ‘최악(最惡) 독재’ ‘최악 가난’ ‘최악 부패(뇌물)’가 결합된 ‘3악 체제’다. 더 악화됐을 수는 있지만 갑자기 출현한 현상은 아니다. 정부가 핵공갈을 ‘체제 결속용’이라던가 ‘흡수통일 공포 때문’으로 예단(豫斷)해서는 안 된다. ‘과잉 대응’과 ‘과소평가’는 다 위험하다.
김정은의 ‘동족(同族) 부인’ 발언을 남·북이 동·서독식 독립국가 관계로 변화하는 계기로 삼자는 일각의 해석 역시 너무 가볍다. 그럼 탈북(脫北) 동포는 어디로 가란 말인가. 김정은은 ‘평화 통일’ 구호 속 ‘평화’는 포기해도 뒤에 감춘 ‘적화(赤化)’는 포기하지 않는다.
이번 핵 위기는 1회적 현상이 아니다. 반복되고 더 악화될 것이다. 핵 위기 근본 원인이 핵무기의 ‘있고 없음’과 미사일 남·북 격차이기 때문이다. 북한 핵폭탄을 80~100개 안팎으로 추정한다. 과거의 미사일 고정(固定) 발사 기지에서 이동식 발사대로, 미사일 추진체도 액체 연료에서 즉각 발사 가능한 고체 연료로 전환하고 있다. 극(極)초음속 미사일도 시험한다. 한국의 대응 수단인 3축(軸) 체계로 ‘3~5분 안’에 사전(事前) 탐지해 요격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최종 수단이 ‘대량 응징 보복 수단’으로 북이 공격을 단념토록 하는 것이다. 핵심 무기가 폭탄 8톤을 적재할 수 있는 ‘현무-5′ 미사일이다. 북한이 보유한 히로시마급 핵폭탄 폭발력은 ‘현무-5′의 1500배다. 김정은은 이 격차를 이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재래식 무기로는 핵무기를 억제할 수 없다. 이 사실을 외면하면 국제 정세가 요동칠 때마다 김정은에게 끌려다닌다. 한국군은 2028년까지 41조 예산을 3축 보완에 투입한다. 그래도 격차는 메워지지 않는다. 미국 항공모함과 대형 폭격기의 한국 전개는 국민 마음을 안심시키긴 해도 북의 핵과 미사일 개발 속도를 늦추진 못한다. 대안(代案)이 핵 개발 또는 전술핵 배치인데 미국은 비협조하고 중국은 보복할 것이다.
국민이 눈떠야 눈먼 정치인이 깨나고, 둘이 합쳐져야 대통령이 결단할 수 있고, 국민·정치인·대통령이 하나 돼 밀고 나갈 때 미국도 ‘한국 비상(非常) 상황’을 외면하지 못한다. 생존을 위해 만난(萬難)을 무릅쓸 각오가 서야 적(敵)도 움찔하고 동맹국도 움직인다. 그래야 주권국가다.
조선일보 강천석 기자
01.22 ‘평화 위해 北 비판 안 된다’... 文정부 때 만든 교원 연수 시험문제 논란

▲교육부 산하 중앙교육연수원이 지난달 교사 대상으로 진행한 다문화 연수에서 출제한 문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해야 할 행동으로 옳지 않은 것’을 묻고 정답은 ‘북한 체제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을 제시했다. /인터넷 화면
현직 고등학교 교사 A씨는 작년 12월 교원 법정 연수를 받다가 황당한 문제를 풀어야 했다. ‘통일 시대 대한민국’이란 주제의 인터넷 강의를 듣고 시험을 치는데 “한반도 평화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행동으로 옳지 않은 것은?”이란 질문의 문제를 받았다. 그런데 정답이 “북한 체제에 대한 적극적 비판”이었다. A 교사는 21일 “한반도 평화를 위해선 북한 체제를 비판해선 안 된다는 것이 어떻게 정답일 수 있는지 기가 찼다”며 “이런 문제와 답이 교원 의무 연수 시험에 나왔다는 것 자체가 더 어이없다”고 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옳은 보기로는 ‘남·북의 평화적 교류와 협력 지속’ ‘스포츠 대회 단일 팀 구성을 통한 협력’ ‘지속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제시됐다.
해당 문제는 교사와 교육 공무원이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하는 ‘다문화 관련 연수 프로그램’에서 출제됐다. 연수 시간을 인정받으려면 강의 내용에 대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 한 교사는 “다문화 학생 지도를 위해 문화 다양성을 강조하는 연수에서 ‘통일 시대’가 나온 것부터 뜬금없다”고 했다. 헌법상 북한 지역은 우리 영토다. 현행 다문화지원법에도 북한과 북한 주민은 다문화로 정의하지 않고 있다.
‘평화 위해 북 비판 안 된다’는 시험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2018년 만든 것이다. 다문화 연수를 운영하는 교육부 소속 중앙교육연수원과 교육부 산하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담당했다. 정부 관계자는 “해당 연수와 시험 문제는 국립대 사대 교수 1명과 현직 교사 6명이 제작했다”며 “논란이 된 문제를 누가 만들었는지는 확인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교원 연수 프로그램과 시험 문제는 모두 중앙교육연수원 등 정부의 검증을 통과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한 비판을 해선 안 된다’는 강의 내용과 시험 문제는 당시 아무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아 ‘합격 판정’을 받은 것이다.
2018년 당시 문 정부는 평창 동계 올림픽을 시작으로 ‘남북 이벤트’를 하는 데 몰두했다. 북한 김여정이 왔던 평창에선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 팀을 만들기도 했다. 그해 남북 정상회담에서 우리 군의 대북 감시와 정찰 능력을 약화시키는 군사 합의까지 서명했다. 2019년 이후 북이 문 정부를 향해 ‘삶은 소대가리’ 등 막말을 퍼부으며 우리를 겨냥한 핵과 미사일 능력을 키웠는데도 제대로 항의조차 못 했다. 그런데도 “평화가 왔다”고 했다. ‘평화를 위해 북 비판하면 안 된다’는 시험은 문 정부의 ‘평화 쇼’가 한창일 때 나온 것이다. 해당 연수는 작년 말까지 전국 교사 수만 명이 참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작년 서울시교육청에서만 1만명 이상이 연수를 신청했다고 한다.
중앙교육연수원은 올해 해당 연수를 중단했다. 논란이 된 문제도 삭제한 상태다. 연수원 관계자는 “다문화 연수 프로그램이 5년을 넘겨 오래됐기 때문에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며 “북을 비판하면 안 된다는 문제는 연수 주제가 ‘다양성과 평화’였기 때문에 적극적 비판은 상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취지인 것 같다”고 했다.
교원 연수 내용이 논란이 된 것은 이뿐이 아니다. 2019년 전국 유치원·초등·중등 교원을 대상으로 한 직무 연수에선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교사의 리더십 부족’으로 돌리는 자료가 사용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의 교사 B씨는 “온라인 연수 대부분이 상식 수준 내용이라 자기계발에 도움이 안 된다”며 “엉터리 내용이 들어가거나 특정 정권의 이념에 치우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윤상진 기자
01.22 김정은 민족·통일 부정에 주사파 '멘붕 침묵'

남북관계가 험악해질 때마다 북한은 '삶은 소대가리' 등 엽기적 언사로 협박했고, 다양한 수단과 방법으로 무력 도발해 한반도 평화를 위협했다. 그런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말 연초 '폭탄 발언'은 과거와는 차원이 전혀 달라 비상한 대응이 필요하다.

▲지난해 9월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북한 정권 수립 75주년 열병식에서 박정천 당 군정지도부장이 무릎을 꿇은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주애(11)와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조선중앙TV 화면, 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3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북남 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고착됐다"고 단언했다. 지난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는 "우리 공화국의 민족 역사에서 통일·화해·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 버려야 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기존 북한 헌법에 있는 자주·평화·민족대단결 표현을 삭제하고, 향후 헌법에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으로 명기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민족경제협력국·금강산국제관광국 등 대남 기구를 없앴다.
김일성·김정일 유훈에도 어긋나
조총련 문의에 통전부 회신 없어
김씨 정권의 기만성 널리 알려야
북한의 이런 조치들은 1972년 7·4 남북공동 선언의 자주·평화·민족대단결 등 3대 정신을 훼손한 것이라고 대북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라고 규정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의 평화·통일·화해 원칙을 전면 부정한 것으로 해석한다.

▲북한에 봉건적 3대 세습 체제를 구축한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왼쪽부터)[중앙포토]
'민족과 통일 부정' 발언을 접한 북한 주민들과 친북 세력은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울 것이다. 김일성 주석 이래 지속돼온 북한 정권의 선전·선동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급변침'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일본 조총련 사정에 밝은 고위 대북 소식통은 "그동안 북한의 지침에 따라 통일 운동을 해온 조총련 측이 당황한 나머지 '이제 통일을 안 하겠다는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거냐'며 다급히 통일전선부에 문의했으나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종북 주사파들이 침묵하는 것은 더더욱 놀랍고 의아하다. 그동안 진정으로 통일을 외쳐왔다면 김정은 정권의 반통일 노선 천명에 대해 비난하는 대규모 규탄 집회라도 열어야 할 텐데 아직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의 대남 전략 돌변으로 갑자기 방향 감각을 잃고 '멘붕'에 빠진 것일까.
서울대 법대 재적생 시절이던 1986년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강철서신'의 저자이자 지금은 북한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는 김영환(61)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종북 주사파들이) 지금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태일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1991년 5월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해 김일성을 직접 만났던 '주사파 대부'였다.

▲2018년 9월 19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 합의문 서명식을 지켜보고 있다. '평화 타령'이 끝나자 북한은 '전쟁 불사'를 떠들고 있다.[평양사진공동취재단]
-6·25전쟁을 일으켰으나 적화 통일에 실패한 김일성이 살아 있다면 손자의 민족과 통일 부정 발언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김일성은 아마 엄청 분노했을 거다. 김정일은 조금 다를 것이다. 김정일은 북한 주도의 통일이 과대망상이라 여겼지만, 6·25 참전 노(老)간부들이 살아 있을 때라 김정은처럼 공개적으로 통일을 부정하는 입장을 밝히지는 못했다."
-김정은은 왜 이 시점에 민족과 통일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을까.
"북한은 1980년대 이전까지는 공세적 차원에서 통일을 주장했지만, 그 이후에는 남한을 반통일세력으로 몰아가는 방어적 차원에서 통일을 이용했다. 지금은 남한을 반통일 세력이라고 비난해도 북한 주민들에게 잘 먹히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는 남북 교류·협력과 통일이 김정은 체제의 안정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남파 간첩들에게 지령을 내리던 평양방송이 중단된 때문인지 종북 주사파들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여전히 나름 생존력이 있는 이석기(전 통진당 국회의원)의 경기동부연합 계열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나도 궁금하다. 아마도 북한을 부정하지 않는 선에서 괴상한 논리를 만들어 이번 난관을 적당히 돌파하려 할 것이다. 북한의 통일 선전·선동을 맹목적으로 추종해온 감성적 종북 세력은 앞으로 구심력을 잃고 떨어져 나갈 것으로 보인다."

▲2013년 9월 4일 당시 국회에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찬성 258표, 기권 11표, 반대14표, 무효 6표로 통과되자 이 의원이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내란선동 등 혐의에 대한 대법원의 2015년 유죄 판결(징역 9년, 자격정지 7년)로 복역해오던 그는 20대 대선을 앞둔 2021년 12월 24일 문재인 정부의 가속방 조치로 풀려났다. 이후 공개 장소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중앙포토]
새해 들어 남북 관계가 패러다임 전환이라 할 정도로 아주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북한의 도발 기류는 심상치 않다. 국방부와 합참은 물론이고 국정원과 통일부는 이럴 때일수록 북한의 숨은 의도와 내부 동향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 역사 발전 흐름에 역행하는 봉건 세습 독재 정권의 시대착오적 거짓 선전·선동과 반민족·반통일 행태의 본질을 북한 주민과 국내외에 널리 알려야 한다. 북한의 돌변은 우리에게 위기이자 기회일 수 있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01.23 남풍(南風)에 흔들리는 북한의 생존전략
김정은의 통일·민족 포기
‘대한민국 주적’ 협박 발언은
심각한 내부 이완 보여주는 것
北 MZ세대, 드라마 보며 한국 동경
‘南風’ 방치할 수 없는 지경
지금 북한은 도발할 여건 아니지만
핵무기 쓸 가능성은 남아 있어
우리도 핵무기 가져야 할 이유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은 연초 한반도 앞날에 관해 중요한 발언을 했다. 그는 최고인민회의 시정 연설에서 북한 “헌법에 명기된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이라는 표현이 이제는 삭제돼야 한다”며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포함시키는 문제를 헌법에 반영할 것”을 지시했다. 발언은 이중 구조로 돼 있다. 하나는 한국을 집어삼키려는 허세를 더 이상 부리지 않겠다는 ‘뜻밖의’ 전환이고 다른 하나는 하지만 한국이 그것을 북한의 열세로 보고 “전쟁을 일으키는 경우 단호히 대처해 한국을 초토화하겠다”는 ‘구태의연한’ 것이다.

▲북한에서 2022년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 '한국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10대 소년 2명에게 12년 노동형을 선고하는 모습./BBC
우리도 두 갈래로 대처해야 한다. 하나는 북한이 이제 비로소 세상 돌아가는 형세를 긍정하고 더 이상 한국을 침략하는 등의 허장성세를 버리는구나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이 ‘초토화’ ‘대사변’ ‘주적’ 등의 표현을 쓰는 ‘협박’에도 대응을 늦추지 않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북한의 양동작전에 시달려 온 우리는 김정은의 말 몇 마디에 홀려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학습 효과를 터득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우리는 김정은이 왜 이제 와서 우리를 ‘대한민국’ 정식 국호로 호칭하면서 통일 포기, 민족 포기의 표현을 써가며 남북 공존의 개념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는가를 살펴야 한다. 동시에 왜 굳이 가정법(假定法)을 동원해가며 ‘한국이 전쟁을 일으키면’ 하는 식으로 말하고 있는가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지금 북한은 심각한 내부 변화에 직면해 있다. 김정은은 연설에서 “대한민국을 제1 적대국, 주적(主敵)으로 간주하도록 교육 교양 사업을 강화할 것”을 언급했다. 한국을 주적으로 지목하는 대목에서 왜 난데없이 ‘교육 교양 사업’이 등장하는가? 그들이 말하는 교육 교양 사업은 북한의 인민, 특히 청소년들이 한국의 자유로운 생활상과 문화에 크게 심취해 북한 사회가 흔들리고 있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씨는 10여 년 전 “북한의 미래는 영영 암울하기만 한 것이냐?”는 질문에 “북한에도 밀레니엄 세대가 있다”며 “그들이 사회의 중심적인 구성원이 될 때 북한의 독재 체제는 심각한 난관에 봉착할 것”이라고 했었다. 태 의원은 엊그제 조선일보 인터뷰에서도 “지금 북한의 MZ세대는 몰래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한국을 동경하면서 통일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다”며 “김정은이 헌법에서 ‘민족’ 개념과 ‘평화통일’을 빼면서 MZ세대에게 ‘통일은 없다’고 단념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TV 프로에 나온 탈북민들의 증언을 봐도 지금 북한 사람, 특히 젊은 세대는 한국 열풍에 빠져있다. 철저한 단속과 과도한 처벌에도 불구하고 온갖 기기를 동원해 ‘한국’을 학습하고 동경하고 있다. 북한 당국자들의 부정부패는 이런 상황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제 이 남풍(南風)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래서 통일, 민족 또는 그 어떤 것을 포기하고라도 ‘한국의 모든 것’과 결별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때마침 북한 청소년 2명이 한국 드라마를 봤다는 ‘죄목’으로 12년의 감옥형이 내려지고 북한 여성의 두발과 복장이 문제가 되는 뉴스가 등장한 것은 북한 당국이 사회 이완 문제에 얼마나 신경질적인지를 말해준다.
나는 지금 북한은 한국을 도발할 여건에 있지 않다고 본다. 제일 중요한 것은 앞서 지적한 내부의 이완과 남한 동경심이다. 아무리 군대가 강해도 전 사회적, 전 국민적 결속이나 각오가 없으면 전쟁할 수 없다. 게다가 김정은은 러시아 푸틴의 방북을 앞두고 있다. 푸틴은 동아시아에 러시아의 전쟁 동력을 분산하는 또 다른 전선이 조성되는 것을 달가워할 리가 없다. 특히 그 ‘전쟁’이 미국의 초토화 전력을 불러올 것이 뻔한 마당에 푸틴은 그런 일에 휘말릴 이유가 없다.
친미 반중 노선을 택한 대만의 총선 결과는 북한 문제에 관한 중국의 시선과 여유를 앗아갔으며 김정은의 러시아 밀착이 달가울 리 없다. 김정은의 도발 우려를 트럼프의 재집권과 연관 짓는 시각도 있는데 트럼프는 김정은을 끌어들여 자기 손아귀에 넣는 것을 바라지 김정은의 전쟁 쇼에 들러리 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 주변 상황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 도발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핵무기는 전쟁을 한 방으로 해결한다. 현대전에는 전선(戰線)이 없다. 미사일, 드론 그리고 거기에 얹혀진 핵탄두가 대세를 가른다. 막다른 골목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쓸 가능성은 언제나 남아있다.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현재로서 북한이 우리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오로지 핵무기다.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니스트
01.23 비웃는 얼굴로 돌아보라
1970년 3월 31일, 일본 학생운동 전공투(全共闘) 적군파(赤軍派) 조직원들이 하네다 공항을 출발해 후쿠오카로 향하던 여객기 요도호를 납치했다. 이들은 김포공항에 비상착륙했다가, 사흘간 협상 끝에 탑승객들을 석방하는 대신 야마무라 신지로 운수성 정무차관을 인질로 태우고 평양으로 날아갔다. 공산혁명의 국제 기지를 북한에 건설하려고 그랬다는 건데, 대동강에서 물고기나 잡는 등 시시껄렁하게 살거나 기죽은 채 죽었다. 그들이 자기들 정체성에 대해 남긴 말이 “우리는 내일의 조다”이다. ‘내일의 조’는 야부키 조라는 소년이 주인공인 권투 만화다. 나는 이 유치함이 국적 불문 ‘운동권’이라는 정신세계의 중요한 기조라고 본다.
1972년 2월 19일 일본 나가노현에 있는 아사마 산장에서, 혁명 좌파와 적군파가 결합한 연합적군 조직원들이 산장 관리인의 아내를 인질로 삼고 10일간 경찰과 대치했다. 혁명 좌파는 총포 가게에서, 적군파는 은행에서 강도질을 한 뒤였다. 이들이 진압되는 과정은 TV로 생중계됐는데, 9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했다. 경찰은 산장 부근에서 남자 8명 여자 4명 총 12구의 시체를 발견했다. ‘총화(總和)’라는 사상 교육 중에 살해당한 거였고, 죄목에는 ‘연애질’도 있었다. 그 시절 일본 학생운동 유파에서는 이런 일이 많았다. 그들을 하나로 만든 건 ‘과격성’과 ‘황당무계(荒唐無稽)’였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일본 국민에게 환멸을 주었고, 적군파는 소멸됐다.
1980년대 초 한국 운동권 역시 폭력으로 치달았고, 계속 그대로였다면 비슷한 행로를 걸었을 공산이 있다. 이걸 교화해 새로운 투쟁 노선을 지시한 것이 ‘한민전’이다. 1987년 민주화 시위에서 화염병을 던지는 대신 손뼉을 치게 하고 ‘대통령 직선제’라는 모토로 주사파 운동권에게 선량한 가면을 씌워준 것도 한민전, 곧 북한이었다. 후일 ‘군자산의 약속’을 통해 민노당을 장악, 합법적으로 국회에 진출하라고 지도한 것도 북한이었다. ‘아직 대중화되지는 못한’ 이런 팩트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누구라도 충분한 증거자료들을 접할 수 있다.
2015년 3월, 마크 리퍼트 미 대사가 개량 한복 아저씨에게 칼로 테러를 당했을 때, 나는 아, 이제 386 운동권이 정치 문제를 넘어서 ‘사회문제’가 됐구나 하고 생각했다. 전공투가 한국 운동권보다 괜찮은 것은, 민주주의자라고 ‘뻥’을 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중에 밝혀진 바, 요도호 납치범들의 무기는 전부 장난감 모조품이었다. 한국 사회는 민주화 운동권이라는 가짜 총에 협박당해 납치됐다. 개량 한복에서 양복으로 갈아입은 채 대통령의 손을 강압적으로 잡고 고함을 지르는 ‘구석기인’을 비장하게 대해주면 안 된다. 비웃어야 소멸시킬 수 있다.
조선일보 이응준 시인·소설가
01.23 마하 14, 1000㎞ 날아갔다...北이 쏜 극초음속 미사일의 실체

▲북한이 지난 1월14일 발사한 신형 고체연료 극초음속 미사일. 최대 비행고도가 100km에 육박했고 비행거리는 1000km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1
북한과 김정은이 연일 ‘말폭탄’을 퍼붓는 가운데 북한이 최근 신형 고체연료 극초음속 미사일을 시험발사해 그 실체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요, 오늘은 이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 북, 가오리형과 원뿔형 극초음속 미사일 2종 개발중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15일 “극초음속 기동형 조종 전투부를 장착한 중장거리 고체연료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14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보도했는데요, 미사일의 최대 고도·비행거리 등 시험발사 세부사항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보통 음속의 5배(마하 5) 이상에 달하는 속도로 비행하는 초고속 미사일로,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고 지난 2011~2022년 세차례 있었습니다. 지난 2021년9월28일에 처음으로 쐈는데 당시 최대 고도 30km, 비행거리 500km로 추정됐고요, 2022년 1월 11일 쏜 극초음속 미사일은 한·일 분석으로 최대 고도 60km, 비행거리 700km였습니다.
▲북한 열병식에 등장한 극초음속미사일 '화성-8형'. 중국 DF-17과 비슷한 가오리형 탄두를 장착하고 글라이더처럼 활강비행을 한다. 지난 2021년 첫 시험발사가 이뤄졌지만 실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스1
반면 당시 북한은 비행거리가 1000㎞였다고 발표했습니다. 며칠 앞서 2022년 1월 5일 발사된 극초음속 미사일은 최대 고도 50km, 비행거리 700km를 기록했습니다. 지금까지 공개된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은 두가지 형태가 있는데요, 탄두가 가오리처럼 생긴 화성-8형(가오리형)과, 탄두가 원뿔처럼 생긴 화성-11나형(원뿔형) 등입니다. 가오리형은 중국이 실전배치중인 극초음속 미사일 DF-17과 비슷한 형태인데 지난 2021년9월 한차례만 발사됐고 실패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美 정보로 북 극초음속 미사일 1000km 비행 확인
반면 원뿔형은 지난 2022년 두차례 발사된 뒤 북한이 ‘완전 성공’을 주장했는데요, 이번에 1단 추진체를 액체연료에서 고체연료로 바꿔 발사한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고체연료는 액체연료에 비해 기습적인 즉각 발사가 가능해 한·미 대응이 어렵다는 점이 강점이자 위협 요소입니다.
그러면 북한이 이번에 쏜 극초음속 미사일은 전보다 얼마나 진화(발전)한 걸까요? 합참은 이번에 발사된 미사일의 비행거리가 1000㎞라고 밝혔지만, 최대 고도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방위성은 최대 고도가 50㎞라고 밝혔는데 비행거리를 500㎞라고 발표해 우리 합참 발표의 절반에 불과했습니다.
올들어 한·미·일이 북 미사일 발사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데도 이런 차이가 생긴 겁니다. 일본측이 파악한 비행거리가 짧은 것은 북 극초음속 미사일이 낮은 고도로 변칙 기동해 500㎞ 이상에서는 추적을 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실 지구 곡면 때문에 우리가 일본보다 북 미사일의 후반 비행 궤적은 파악하기 힘든 데 어떻게 500㎞ 이상 날아간 것을 알았을까요?
◇ “북 신형 극초음속 미사일 최대고도 100km 육박”
짐작하시겠지만 당연히 미국의 도움 덕택입니다. 미 정보제공이 없었더라면 우리도 북 미사일이 1000㎞나 날아간 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일각에선 이번에 일본이 미 정보를 무시하고 자신들이 파악한 정보에 집착하다 ‘망신’을 당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지난 2022년1월 북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 때도 한·일은 700㎞로, 북한은 1000㎞로 발표했는데 당시에도 북 미사일이 낮게 변칙기동으로 날아가 후반부 300㎞ 가량의 궤적은 놓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정통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이번에 북 미사일의 최대 고도는 100㎞에 육박했고, 최대 속도도 마하 14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는 지금까지 쏜 북 극초음속 미사일중 가장 높은 고도로, 중·러의 활공체형 극초음속 미사일에 육박하는 수준입니다. 현재 전세계에서 개발중인 극초음속 미사일은 두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탄도 미사일과 극초음속 미사일의 궤도 비교. 극초음속 미사일은 낮은 고도로 지그재그형 변칙기동을 해 요격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다. /조선일보 DB
우선 극초음속 활공체(글라이더)로, 초기엔 탄도미사일처럼 상승했다가 일정 고도에서 활공체가 추진체와 분리된 뒤 마하 5 이상의 초고속으로 활강하는 방식입니다. 둘째는 스크램제트 엔진으로 비행기처럼 날아가는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입니다.
◇ 북 미사일은 지그재그 회피비행 아닌 선회 변칙기동 수준
특히 극초음속 활공체는 지그재그 방식으로 계속 경로를 바꿔가며 초고속으로 비행하기 때문에 요격이 어려운데요, 중국이 실전배치중인 DF-17이나 북한의 화성-8형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탄두가 활강에 유리한 가오리형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북한이 이번에 쏜 것은 중국 DF-17보다는 떨어지는 수준인데요, 탄두가 원뿔형이어서 본격적인 지그재그 활강 변칙기동은 어려운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전문용어를 쓰자면 기동탄두(MARV)에 가까운 형태로 상하좌우 지그재그형 기동이 아니라 좌우로 크게 도는 ‘선회 기동’을 하는 형태입니다. 북 극초음미사일은 지난 2022년1월 마지막 단계에서 240㎞의 선회기동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선회기동은 지그재그형 활강 변칙기동보다는 덜 하지만 일반 탄도미사일보다 요격을 어렵게 하는 요소임은 분명합니다. 야구에서 좌우로 휘어져 들어오는 슬라이더를 쳐내기 힘든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 ‘100% 요격불가’ 수준 아니지만 위협적으로 진화중
극초음속 미사일은 평양에서 서울을 1~2분 내에 타격할 수 있는 속도여서 ‘요격 불가 게임 체인저’ 무기로 부각되고 있는데요, 지그재그형 활공 탄두형 미사일이라면 현재 한·미군 능력으로 요격불가가 맞습니다. 하지만 ‘선회비행’ 탄두라면 100%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군 당국은 보고 있는데요, 우크라이나전에서 사상 처음 실전투입된 러시아의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이 우크라이나군의 미국제 패트리엇 미사일에 여러 차례 요격된 사례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은 위협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현재까지 ‘100% 요격불가’라고 포기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북한이 이미 활공탄두형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성공한 중·러 기술을 해킹해 개발을 앞당길 가능성 등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조선일보 유용원 기자
01.23 北이 핵이냐 생존이냐 택하도록 안보국론 결집해야

▲14일 평양 일대에서 고체연료를 사용한 극초음속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이 발사되고 있다. 노동신문 뉴스1
미국의 북핵 전문가인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저서 ‘핵의 변곡점’에서 자신이 ‘핵 기술자’라는 점을 내내 강조한다. 2004∼2010년 일곱 차례나 북한을 방문해 영변 원자로와 우라늄 농축시설 등 ‘북핵 심장부’를 관찰한 기록과 자신의 견해가 정치적·이념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최대한 경계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북한의 입장에 과도하게 치우치거나 핵 개발의 정당성을 두둔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북-미 핵협상 초기부터 북측 요구를 수용했다면 북핵 문제가 이처럼 악화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을 반복한다. 제네바 합의 무산과 하노이 회담 결렬 등 북핵 문제의 주요 변곡점마다 미 강경파의 이데올로기와 오판으로 북핵을 억제할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김씨 정권이 오로지 핵 개발의 시간을 벌기 위해 외교의 장에 나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북한은 애초부터 핵 개발과 외교적 합의라는 ‘이중 경로’를 채택했지만, 미국이 협상에 미온적이고, 합의도 깨버리는 바람에 핵 고도화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페이스북에 “북핵의 실체와 이를 억제하기 위해 기울인 외교적 노력이 실패를 거듭해온 이유를 알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필독서”라고 쓰며 거들었다.
책장을 덮으면서 북한이 그를 누차 초청한 의도를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필자뿐일까. 객관적 분석이 아닌 북한의 입장, 소위 ‘내재적 접근법’으로 북핵을 바라보면 모든 책임은 미국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것은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자 당연한 수순이라는 식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북한의 핵은 실제 사용 목적이 아닌 대미 협상용 수단이고, 핵·미사일 도발도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이벤트로 순화된다. 미국이 한국과 상의 없이 대북 군사행동에 나설 수 없고, 북한이 핵 개발 이유로 내세우는 ‘안보 우려’도 김씨 일가의 독재체제 영속화를 위한 허울에 불과하다는 ‘팩트’는 발붙일 자리가 없게 되는 것이다.
과거 동맹보다 민족을 앞세운 대북 유화기조의 진보정권에서 “북한의 핵은 자위적 수단이자 방어용” “5000개의 핵무기를 가진 미국이 북한과 이란에 대해 핵무기를 갖지 말라고 강요할 수 있나” 등 일부 정치인의 발언 논란이 벌어진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필자는 본다.
북핵 위협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내재적 접근을 넘어 ‘스톡홀름 증후군’(인질이 경찰 대신 납치범을 편드는 현상) 관점으로까지 오독하는 정치인과 전문가들은 지금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인식은 ‘더러운 평화가 이긴 전쟁보다 낫다’는 평화지상론으로도 이어진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숱한 기습 도발로 우리 장병과 국민의 생명을 빼앗고, 영토를 유린한 북한 정권에 굴종해서라도 평화를 구걸하라는 얘기와 다름없다.
북한 김정은이 최근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간주하고, 전쟁이 일어나면 점령·평정·수복해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겠다고 위협했다. 지난해 12월 말 당 전원회의에 이어 한국은 핵을 사용해서라도 괴멸시킬 대상이지 이 더 이상 ‘민족, 동족’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협박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집권 전후로 북한이 저지른 일련의 무력도발은 ‘민족’ ‘동족’이라는 단어가 사탕발림이었음을 진즉에 증명한 터다. 군 관계자는 “4월 총선을 앞두고 긴장 고조의 책임을 현 정권에 전가하는 동시에 한국 내 북한 옹호 세력을 부추겨 남남갈등을 유도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9·19 남북 군사합의의 일방적 전면 파기 선언에 이어 최전방 감시초소(GP) 복원과 경의선 일대 지뢰 대량 매설,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연쇄 포격 등 북한이 도발 수위를 고조시키는 것도 이런 저의가 깔려 있다.
대남 핵 공격용 단거리미사일과 ‘핵 어뢰’, 미 본토를 때릴 수 있는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이어 미 전략폭격기 출동기지인 괌을 사정권에 둔 고체연료 극초음속 중거리탄도미사일(IRBM)까지 개발 중인 김정은은 4월 총선과 11월 미 대선을 겨냥해 7차 핵실험 등 전례없는 도발 폭주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선의에만 기대어선 비핵화도, 진정한 평화도 요원할 뿐이다. 우리 국민의 생명과 영토를 향해 도발하면 단호히 응징하고, 여야와 이념적 진영을 떠나 국론을 결집해 대응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그것이야말로 북한 정권과 그 추종 세력에게 핵이냐 생존이냐를 선택하도록 압박하는 첩경이 될 것이다.
동아일보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01-25 “우리 북한” 이재명의 속내
정충신 정치부 선임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9일 당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발을 멈춰야 한다며 “선대들, 우리 북한의 김정일, 또 김일성 주석의 노력이 폄훼되지 않도록, 훼손되지 않도록 애써야 할 것”이라고 한 ‘친북성’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서는 ‘적대적 강경 정책’을 쓰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김 위원장 부친 김정일과 조부 김일성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해왔다는 취지로 읽힌다. 대한민국 원내 제1당 대표 발언이 맞는지 의심이 드는 건 당연하다. ‘선대(先代)’ 표현은 북한이 김일성과 김정일을 ‘선대수령’이라고 높이 부를 때 쓰는 존칭어다. 서해수호 55용사 전사자 유족회 및 참전용사 등이 “6·25전쟁에서 희생된 호국 영령 유족, 장병들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망언”이라며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 사과 요구 성명을 냈다.
급기야 대학생 단체 신전대협은 “한국전쟁을 주도한 김일성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주장은 오로지 북한만이 주장하는 ‘북침설’을 선전 혹은 동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이 대표가 안보위기 상황의 책임 주체를 대한민국에 돌렸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22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신전대협은 “제1야당 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준비된 자료를 통해 위 발언을 한 것은 우발적인 말실수가 아님을 주목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우리 북한’과 ‘선대 주석의 노력’이 불쑥 튀어나온 건, 이 대표도 제어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친북감정 외에는 설명되지 않는다”며 86운동권 정치세력의 골수에 박힌 친북 의식을 질타했다. 이 대표의 역사관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2021년 7월 대선 후보 경기지사 시절 ‘미군은 점령군’ 망언으로 역사논쟁을 촉발시켰다. 당시 그는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며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출발에 부정적인 반미 의식을 드러냈다.
새해 벽두부터 김 위원장이 직접 “영토 평정” “대한민국 제1 적대국” 등 ‘핵전면전 위협’ 발언을 퍼붓는 건 우리 국민의 핵전쟁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한 ‘북풍(北風)’이다. ‘전쟁-평화’ 이분법적 프레임 강요는, 대북 강경정책을 쓰는 윤석열 정부 등 보수 정부 출범 후 선거 때마다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극심한 경제난으로 동요하는 북한 주민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한 목적도 있다. 북의 공갈·협박이 통하려면 이 프레임에 동조하는 우리 내부 친북 세력 호응이 필수적이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김정은의 ‘전쟁’ 발언을 “공갈 위협에 의한 심리전”이라며 포탄과 신형 무기를 러시아에 무더기 수출하는 것을 근거로 제시했다. “진짜 전쟁하려면 성능 좋은 미사일을 전량 수출하겠냐”는 것이다. 한·미 핵동맹 한·미·일 군사협력이 강화된 마당에 핵도발은 김정은 정권 붕괴를 재촉하는 자살행위다. 신 장관은 최근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대북 경각심이 약한 것도 문제지만 과잉 공포를 갖게 되면 북한의 저질평화쇼에 너무 잘 속게 된다”며 “북한은 수십 년간 무대 위 마술쇼를 하고 있고, 해를 거듭할수록 쇼 질은 낮아지는데 거기에 너무 감동 받고 있다”며 ‘북풍과 과잉공포’를 경계했다.

문화일보
01-25 北 “어제 신형전략순항미사일 ‘불화살-3-31’ 첫 시험발사”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해 3월 24일 공개한 사진에 같은달 22일 함경남도 리원군 해안에서 북한의 전략순항미사일 ‘화살-2형’이 시험 발사되고 있다. AP 뉴시스
북한은 미사일총국이 개발중에 있는 신형전략순항미사일 ‘불화살-3-31’형 첫 시험발사를 24일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5일 보도했다.
통신은 “해당 시험은 주변 국가의 안전에 그 어떤 영향을 주지 않았으며 지역의 정세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사일총국은 이번 시험이 무기체계의 부단한 갱신과정이며 총국과 산하 국방과학연구소들의 정기적이며 의무적인 활동이라고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합동참모본부는 전날 오전 북한이 서해상으로 순항미사일 여러 발을 발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이 2021년과 2022년 선보인 화살-1·2형은 장거리순항미사일로, 전술핵탄두 탑재가 가능해 한반도 전역을 겨냥한 핵 공격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일보 조성진 기자
01-26 北 변화 유도用 입체적·공세적 접근법
전성훈 K-정책플랫폼 국제관계위원장, 前 통일연구원장
새해 벽두부터 한반도에 거센 풍랑이 몰아친다. 북한은 이달 초 사흘간의 서해 포사격으로 9·19 남북 군사합의 백지화를 행동으로 보여준 데 이어 중순에는 극초음속미사일 발사와 수중 핵무기 해일, 순항미사일 발사를 했다. 최선희 외무상이 러시아를 방문해 양국 간에 “전략적 협조와 전술적 협동”을 강화하기로 한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지난해에 수백 명의 아사자가 발생했고, 최근 함경남도 단천에서 열차 전복 사고로 수백 명이 숨졌으며, 중국 지린(吉林)성에서 임금 체불에 반발한 북한 노동자 수천 명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국가정보원은 대남 도발 주역들이 복귀해서 한국과 미국의 선거를 앞두고 군사 도발 가능성이 커졌다고 예측하고, 미국 정부도 북한의 군사 동향을 매우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다.
이 와중에 북한 김정은은 대남전략을 완전히 바꾸는 초강수를 뒀다. 한국 내 친북 세력 구축과 통일전선전술에 입각한 통일 방식을 포기하고 대남사업 기관을 모두 폐지했다. 더 나아가 한국을 ‘주적’으로 규정, 먼저 전쟁을 걸어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한국을 초토화하겠다고 협박한다. 이런 상황은 그가 처한 딜레마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잇단 군사 도발과 과감한 대남정책 전환은 핵이라는 절대 무력이 있어 가능했다. 북한의 ‘화산-31’ 전술핵 한 발의 위력(1만t)이 우리 ‘현무’ 탄도미사일(8t)의 1250배나 된다. 북한의 핵·미사일 증강은 올해도 계속될 것이다. 김일성과 김정일도 하지 못한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한 김정은이기에 선대(先代)의 대남정책을 180도 뒤집는 일이 가능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김정은이 “지방에 생필품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정치적 문제”라고 자인할 정도로 경제 상황이 나쁘다. 물론, 무기 지원을 계기로 러시아를 경유해 북한제 무기를 수출하는 북한판 방산 수출 길이 열리면 경제는 물론 정권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김정은이 경제난보다 더 우려하는 것은 한국의 소프트파워다. 2020년 외부 사조 침투를 막기 위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했을 정도다. 핵도 소련 붕괴를 막지 못한 것을 잘 아는 그로서는 전 세계를 휩쓴 K-팝, K-푸드 열풍이 북한을 삼키게 되면 소련처럼 무너질 수 있다고 걱정할 것이다.
핵을 앞세운 북한의 무모한 대남 도발은 계속될 것이다. 북한의 도발에 단호하게 대응함과 동시에 위기관리와 긴장 완화를 위한 대북 접근을 병행하는 고도의 양면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북방한계선(NLL)을 부정하며 영토를 침범한다면 전쟁 도발로 간주하겠다는 김정은의 발언에 유의하면서 서해 5도에 대한 철통 같은 방어와 항공기·선박의 안전을 위한 만반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북한은 미군이 없는 서해 5도를 미국과의 교전을 피하고 정전 체제를 무력화할 좋은 타깃으로 삼을 수 있다.
아울러, 김정은의 남북관계 단절 선언은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정말로 두려워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정부는 이 선언이 북한 내부와 남북관계 및 동북아 정세에 미칠 파장을 입체적으로 점검하고, 우리의 강점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북한 사회를 건설적으로 변화시키는 공세적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정부와 국민 모두 초당적으로 힘을 모을 때다.

문화일보
01.27 공존과 평화:두 번째 70년을 향해
한반도 문제가 예사롭지 않다.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을 막 지나 두 번째 70년의 벽두에 평화와 공존의 전망보다는 적대와 전쟁의 언명이 넘쳐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부와 최고 지도자의 정책과 언설은 특히 그러하다. 민족과 화해와 통일의 노선을 전면 폐기하고, 한국과 조선의 두 국가론을 공식 제기했다. 더 문제는 군사주의와 영토평정 기치의 결합이다. 당연히 통일과 대남 담당부서와 기구들은 철폐된다. 한국과 조선은 동족 관계에서 적대적 두 국가관계, 전쟁 중인 두 교전국 관계로 규정된다. 즉 군사관계(라는 인식)만 남는다.
남북을 교전국으로 규정한 북한
한국전쟁 당시 국토완정론 연상
대북 제어 위해 중·러와 협력해야
정부 각 기관의 조율된 역할 필요
대한민국은 국가이자 괴뢰로 호명된다. 반복되는 ‘괴뢰’ 규정은 동족과 남북 특수관계론은 물론 두 국가론조차 부인하는 자기모순의 극치다. 괴뢰론과 영토평정론의 동시 등장은 한국전쟁 이후의 모든 접촉과 관계 개선을 그 이전 상태로 돌리는 총체적 회귀로 비친다. 마치 한국전쟁 당시 한국에 대한 괴뢰 낙인과 국토완정론 결합의 시대착오적 재연처럼 보인다.
불행하게도 제반 상황은 한반도 문제를 군사관계로 선회시키려는 북한의 운신 공간을 넓혀주고 있다. 오늘날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는 양자 대화를 시작한 이래 최장 단절상태에 놓여있다. 한반도의 두 기축 관계가 이리 길게 동시 단절상태인 것은 처음이다. 북한의 고립과 폐쇄, 북핵과 미사일 문제의 방치와 자율이 장기화하고 있다. 군사위협의 고조 상태에서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더 이상의 방치는 안 된다.
최근 북·러 밀착과 북·중 관계 복원 역시 중대한 함의를 갖는다. 탈냉전 이후 한반도 안보 구도의 가장 큰 전환이 아닐 수 없다. 이미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중·러의 반대로 시작된 북핵 관련 대북 제재의 이완과 붕괴는 한층 가속되고 있었다. 한·중 및 한·소 수교 이래 견지되어 온 중·러의 한반도 균형정책과 부분적 한국 편향 정책이 다시 북한 편향으로 복귀한 것이다.
짧게는 탈냉전, 길게는 한국전쟁 이후 가장 주목할 변화는 북·러 군사밀착이다. 이는 핵 국가 사이의 밀착이라는 점에서 크게 위험하다. 근대 이후 유럽 국가로서 러시아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전쟁으로 인해 잃을 게 없는 나라다. 한반도는 말할 필요도 없다. 러·일 전쟁 전후 근대 이래 한반도 분할의 의지와 정책 적극성 측면에서, 그리고 실제로 현대 한반도의 분단고착(1945~48년)과 한국전쟁 개시(1950년) 과정에서 가장 큰 군사적 역할을 한 나라는 단연 러시아(소련)였다. 자국 국익을 위해 다른 국가와 국민에게 피를 흘리게 하는 방혈(放血) 전략의 산물이었다.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동아시아에 진출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한 이후, 러일전쟁에서 한국전쟁 종전까지 동아시아는 처음 ‘세계전쟁 시대’에 진입했다. 그 과정에서 대륙과 해양의 경계국가 한국은 최대 피해국가였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지금 한반도 전쟁방지 및 대북 제어·압박·견제를 위한 중·러와의 대화와 협력은 필수이자 화급하다. 거기에는 이익의 교환은 물론 국제규범의 준수, 호의와 유인이 모두 포함된다. 중·러와의 한반도 안전과 전쟁방지 대화는 빠를수록 좋다.
공존과 평화를 위해 북한에 대한 정책은 두 가지의 결합이 요체다. 먼저 두 국가론을 우리가 더욱 공식화·국제화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한국과 북한의 체제와 이념, 국력과 위상에 비추어 더 늦출 필요는 없다. 이를 위해 유엔 동시 가입 당시의 주도성을 다시 발휘할 필요가 있다. 주권국가이자 유엔 회원국인 동시에, 종족·혈통·언어가 같다는 점만 빼고 주권·국가·이념·체제가 분리되거나 정반대인 정치공동체가, 두 독립국가가 아닐 이유와 필요는 전혀 없다.
다른 하나는 적극적 안보관리다. 충돌방지를 위한 합의를 공식 파기하는 전략은 실익이 없을뿐더러, 긴장을 고조시키려는 상대에게 말려들 수가 있다. 북한이 수없이 정전협정을 위반하고 또 백지화 선언까지 하였지만, 한국은 공식 파기를 언명하지 않았다. 또한 북이 핵 개발과 핵실험을 반복하여도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을 폐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한국에 합의 준수라는 국제적 위신의 확보를 넘어 대북 우위와 안전 유지라는 실익을 제공해주었다.
1·21 사태, 랭군(양곤) 사태, KAL기 폭파 등 연속적 폭력에도 불구하고, 압박과 대화의 확고한 결합을 통해 전쟁 방지, 남북 대화, 대북 우위라는 3중 목표를 달성한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부의 지혜로부터 오늘의 우리 정부가 깊이 배우기를 간청한다. 특히 당시 최고지도자들이 정보·안보·남북·외교를 담당하던 정부 각 기관의 서로 다른 판단을 지혜롭게 결합하여 어느 한 극단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잘 조율된 전략을 추진하였음을 윤석열 대통령이 꼭 유념하길 빈다.
정전체제와 한미동맹을 축으로 한 전후 첫 70년 동안 한국 국가전략의 최대 성공은 전쟁방지였다. 이제 두 번째 70년을 시작하며, 전쟁방지를 넘어 항구적인 평화와 공존의 주춧돌을 놓을 때다.
중앙일보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01-29 北 ‘핵잠’ 3년간 진도 못내다가… 러와 밀착후 속도전

▲북한이 28일 신포항 일대에서 시험발사한 신형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SLCM)이 동해상으로 발사되고 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김정은, 건조 현장 방문 독려
2021년 1월 “독자 개발” 선언
푸틴 만난 뒤 기술제공 받은 듯
핵추진잠수함 건조는 시간문제
전문가 “韓도 서둘러 만들어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1년 1월 핵추진잠수함(핵잠) 독자 개발을 선언한 지 3년 만에 잠수함기지가 있는 함경남도 신포조선소 핵잠 건조 현장을 둘러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러시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가진 정상회담에서 포탄 및 신형 미사일 지원 대가로 소형 원자로 핵잠 기술 등을 제공받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 지 4개월 만에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핵잠 개발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은(오른쪽) 국무위원장이 SLCM 시험발사를 지도하는 모습. 평양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지난 28일 신포 인근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SLCM) 시험발사를 지도하면서 “핵잠 건조 사업을 구체적으로 료해(파악)했다”며 “김 위원장이 핵동력 잠수함과 기타 신형 함선 건조 사업과 관련한 문제들을 협의했다”고 29일 보도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2021년 1월 “새로운 핵추진잠수함 설계연구가 끝나 최종 심사단계에 있다”며 핵잠 개발을 공식 선언했다. 하지만 핵잠 개발이 지지부진하자 그해 10월 설계 참여자 등 기술자 전원에게 징계를 내리기도 했다. 이후 지난해 9월 6일 디젤잠수함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4발과 SLCM 6발 탑재가 가능한 것으로 추정되는 ‘전술핵공격잠수함(SSBN)’ 진수식을 가지며 핵잠 건조도 계속 추진하겠다고 했다.

문근식 한양대 특임교수는 “북한은 2010년부터 핵잠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며, 원자로를 탑재할 중(重)잠수함 등 잠수함 기술은 보유하고 있지만 원자로 소형화 및 연동 기술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 대북제재로 관련 부품 등 구성품 도입이 안 돼 개발 진도가 나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러시아가 핵잠 관련 기술 및 부품을 북한에 제공할 경우 핵잠에 필요한 소형 원자로 및 건조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현재 전략핵추진잠수함을 보유한 국가는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인도 등 모두 6개국이다. 문 교수는 “북한도 이들 군사 강국 반열에 진입하기 위해 기를 쓰고 핵잠 개발에 나서고 있으며, 핵잠은 디젤잠수함보다 속력, 장기간 잠항 능력, 공격 능력, 보복 능력 등에서 비교 불가할 정도로 우수하기 때문”이라며 “수중의 SLBM, SLCM은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몰라 요격이 어려워 가장 은밀하고 위협적인 전략무기”라고 설명했다. 문 교수는 “북한은 핵잠 건조가 지연되면서 일단 디젤잠수함에 SLBM을 탑재했지만, 이제 러시아와 기술 협력이 된다면 핵잠 건조는 시간문제로 보인다”며 “북한이 핵잠을 만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서둘러 핵잠을 만들어 출항 전 북한 잠수함기지를 봉쇄하고, 출항 후에는 수중에서 추적·감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01.31 병력 감소 국가 위기, 병력 확충 방안 논의 절박하다

▲자랑스런 대한민국 여군/뉴시스
개혁신당이 이르면 2030년부터 경찰과 소방, 교정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은 남녀 성별에 관계없이 병역을 치러야만 지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이준석 대표는 “시험에서 한두 문제 더 맞는 것이 아닌 국가를 위해 1∼2년 군 복무 할 수 있는 진정성과 성실성을 지원 자격으로 두는 것”이라며 “병역 수행이 어려운 일부는 예외를 두겠다”고 했다. 앞서 금태섭·류호정 전 의원이 만든 신당 ‘새로운선택’도 남녀 병역 평등을 제안했다. 이들은 우리 사회 성별 갈등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며 여성 징병제까지 논의해 보자고 했다. 국민의힘, 민주당이 침묵해 온 병력 자원 감소 대책을 신당이 먼저 들고나왔다. 찬반이 첨예하겠지만 국가적으로 시급한 문제를 공론화한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 출산율을 보면 병력 자원 감소는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일이 아니라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2023년 현재 우리 지상군이 36만여 명이고 북한이 110만여 명이다. 10년 뒤 우리 육군은 29만명, 20년 뒤엔 19만여 명에 불과할 것이라고 한다. 반면 북한은 그때도 육군 100만명 이상을 유지할 것이다. 10년 뒤엔 3배, 20년 뒤엔 5배 많은 적을 맞아 어떻게 전선을 지킬 수 있겠나. 드론과 AI 등을 활용해 병력 부족을 메운다고 하지만 인간 병력은 전쟁에서 영원히 바뀔 수 없는 승패의 기본 요소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고전하는 것도, 처음에 기습당한 이스라엘이 결국 하마스를 제압할 수 있는 것도 압도적 병력 차 때문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첨단 군사력을 가진 미군이 130만명 넘는 병력을 유지하는 이유가 뭐겠나.
조선일보 사설
01.31 재판 지연 간첩 피고인들 무단 퇴정, 방치한 판사 탓 크다
제주 간첩단 사건 피고인들이 기소된 지 9개월 만에 열린 첫 재판에서 25분 만에 무단 퇴정했다. 자신들의 요구를 재판장인 진재경 부장판사가 받아들이지 않자 변호인과 피고인이 단체로 나가 버린 것이다. “퇴정을 불허한다”는 재판장 명령도 무시해 버렸다. 감치 명령을 내릴 수 있지만 진 판사는 그냥 지켜봤다. 법정 권위를 무너뜨린 변호인과 피고인의 안하무인 행태도 문제지만 이를 방치한 판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피고인들은 신분 확인도 거부했다. 마스크를 쓰고 나온 피고인에게 재판장이 마스크를 벗고 일어서 달라고 하자 변호인이 재판장에게 “판사님이 와서 직접 신분증을 확인하라”고 했다. 결국 검찰이 신분증을 대신 확인해줬다. 민변 출신인 이 변호인은 2011년 북한 지령을 받아 활동한 간첩단인 ‘왕재산’ 사건의 변호를 맡았다가 핵심 증인에게 묵비권 행사를 종용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됐던 사람이다. 그런 변호인에게 판사가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니고 있다.
이 사건 재판은 재판이라고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작년 4월 기소된 피고인들은 재판 한번 안 받고 작년 9월 다 석방됐다. 이들은 국민참여재판 신청, 항고·재항고를 반복했다. 작년 11월에야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 결정이 나왔고, 그 사이 재판은 중단됐다. 6개월 구속 기간 내에 재판을 못 끝내면 피고인을 석방하게 돼 있다. 그 법을 이용해 사법을 농락하는데 판사가 이를 막지 못했다. 9개월 만에 열린 첫 재판에서 피고인들이 무단으로 나가 버리는데도 무력했다.
진 판사는 대법원의 국민참여재판 기각 결정이 나왔는데도 두 달 만에 첫 정식 재판을 잡았고, 피고인들이 무단 퇴정한 뒤 다음 재판도 한 달 뒤로 잡았다. 진 판사는 다음 달 법원 인사 때 교체 대상이라고 한다. 그러니 재판하는 척 시늉을 하며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이다. 다른 간첩단 사건도 마찬가지다. 간첩 피고인들 재판 농락을 판사들이 돕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1.31 [단독] 윤미향 주최 국회 토론회서 “평화 위해서라면 北 전쟁관도 수용”

▲무소속 윤미향 의원이 지난 24일 국회에서 개최한 남북관계 근본변화와 한반도 위기 "평화의 해법 모색, 어떻게 할 것인가?"토론회에서 한 패널 참석자가 북한 김정은 전쟁 수용 관련 발언을 했다./윤미향 TV
무소속 윤미향 의원이 국회에서 주최한 공개 토론회에서 ‘통일 전쟁으로 평화가 만들어진다면 수용해야’ ‘북한의 전쟁은 정의(正義)의 전쟁관’ ‘북이 전쟁으로라도 통일을 결심한 이상 우리도 그 방향에 맞춰야’ 같은 발언이 나온 것으로 30일 나타났다. 북한 김정은은 지난달 조선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동족’이 아니라 ‘적대적 교전국 관계’로 재규정하고 “유사시 핵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겠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국회 공개 석상에서 이를 수용하는 듯한 발언이 나온 것이다.
윤미향 의원실은 지난 24일 국회 의원회관 회의실에서 ‘남북 관계 근본 변화와 한반도 위기 이해–평화 해법 모색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긴급 토론회를 개최했다. 겨레하나, 국가보안법7조폐지운동 시민연대, 전대협동우회, 남북민간교류협의회 민족위원회 등 20곳에 이르는 시민 단체가 공동 주최했다. 사단법인 ‘부산 평화통일센터 하나’의 김광수(58) 이사장은 ‘북의 인식 변화와 평화통일 운동’을 주제로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섰다.

▲무소속 윤미향 의원이 지난 24일 국회에서 개최한 남북관계 근본변화와 한반도 위기 "평화의 해법 모색, 어떻게 할 것인가?"토론회에서 김광수 부산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이 북한 김정은 전쟁 수용과 관련한 발언을 했다./윤미향 TV
김 이사장은 최근 북한의 대남 기조 변화와 관련, “최후의 방법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전쟁이 일어난다면, 통일 전쟁이 일어나 그 전쟁으로 결과의 평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그 전쟁관도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인식의 대전환’이라고 표현한 김 이사장은 “저는 조선 반도에서, 분단된 한반도에서의 평화관은 바로 이런 평화관이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고 했다.
북한 김정은은 지난달 노동당 회의와 재작년 9월 ‘핵 선제공격 법제화’ 발표에서 ‘영토 완정(完整)’ 방침을 명확히 했다. 완정은 완전히 정복한다는 뜻이다. 그는 “북의 전쟁관은 정의의 전쟁관이다. 마다하지 않는 것”이라며 “영토 완정을 통해 점령하고 평정하고 수복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김 이사장은 30일 본지에 “북한의 전쟁 주장에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 학자로서 북한 입장에 ‘내재적 접근’을 한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입장에서 이해를 해보자는 것이었단 설명이다.

▲무소속 윤미향 의원이 지난 24일 국회에서 개최한 남북관계 근본변화와 한반도 위기 "평화의 해법 모색, 어떻게 할 것인가?"토론회에서 윤의원이 인사말을 하고있다./윤미향 TV
김 이사장은 이날 강연에서 북한이 최근 대남 기조를 전환하며 6·15 북측위원회, 범민련 북측위를 폐지한 것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당연히 6·15 남측위와 범민련 남측위의 존재 이유가 상실된다”고 했다. 그는 “북은 80년 동안 이 방식의 평화통일 운동에 사망 선고를 내린 것”이라며 “그러면 우리는 국가보안법을 넘어서는 평화통일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국보법) 핑계에 숨어선 안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국회 회의장에서 약 15분간 이런 발언이 이어졌음에도 별다른 제지나 항의는 없었고, 김 이사장의 발제가 끝나자 박수가 나왔다.

▲그래픽=김현국
이런 김 이사장 발언은 사실상 한국의 친북(親北) 성향 단체들이 북한 김정은의 ‘적대적 교전국 관계’ 발언에 반응하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 이사장은 한총련 2기 정책위원장, 6·15부산본부 공동대표, 문재인 정부 통일교육위원 등을 지냈다.
이날 행사에서 상당수 참가자가 현 정부와 한미 동맹 체제에 불만을 드러냈다. 윤미향 의원은 이날 인사말에서 현재 남북 긴장 상황을 언급하며 “윤석열 정부의 반북·멸북 정책이 우리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고 이를 이용하고 이득을 취하는 미국과 일본의 군사 동맹 체제를 해결할 길을 이 토론회에서 열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신대 장창준 평화통일정책연구센터장은 “한반도 전쟁 위기는 실재한다”며 “실재하는 근원은 북 때문이 아니라 한미 동맹 때문”이라고 했다. 겨레하나 이연희 사무총장은 “우리가 부끄럽지 않은 정부, 주권을 가진 정부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평화어머니회 고은광순 이사장은 “북은 완전 자주국방이고 교육·의료·주거는 남쪽은 경쟁, 북은 무상”이라며 “친일 청산도 남쪽은 완전히 실패, 북쪽은 성공했다. 어디가 제대로 사는 것이냐”고 했다. 그는 “남쪽이 자주의식 없이 헬렐레 하고 있으니까 맨날 외세가 군홧발로 들어와 좌지우지한다”며 “국보법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미국의 검은 속셈이 드러나는 가짜 유엔사 존재 자체에도 침묵한다”고 했다.
남북민간교류협의회 이한용 이사장은 현 정부를 ‘짐승 같은 정치 세력’으로 지칭하며 “새로운 평화의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또 희망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일단 4월 10일 선거 잘해서 200석 이상 확실히 만들고 금년 말에는 (현 정권을) 몰아내야 한다”고 했다.
윤미향 의원실 측은 ‘김 이사장의 통일 전쟁론 등 주장에 의원실도 동조하느냐’는 본지 질문에 “김 이사장 발언은 개인 견해일 뿐”이라며 “어떠한 경우에도 한반도에 전쟁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의원실 입장”이라고 했다. 토론회 개최 취지에 대해서는 “최근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평화를 모색하자는 의도로 연 것”이라고 했다.
김광수 이사장은 본지 통화에서 “북한의 전쟁에 동조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북한의 현재 주장에 학자로서 ‘내재적 접근’을 통해 이론적 전개를 시도한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전쟁관을 수용한다고 말한 맥락을 묻는 질문에 그는 “주어와 술어 사이의 맥락이 약간 제가 흐릿하게 이야기했을 수는 있는데, 정의의 전쟁에 입각해서, 전쟁을 통해서도 통일을 이루면 북의 입장에서는 수용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김 이사장은 “분단 구조하에서 완전한 평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은 맞다”고도 했다. 그는 “북은 최후의 수단이긴 하지만 전쟁을 통해서도 통일을 하겠다는 결심을 한 것인데, 북은 국가보안법 내의 합법적인 통일 운동에 사망 선고를 내렸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방식으로 통일 운동을 해봐야 북이 전쟁으로 통일을 하겠다는 결심을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통일 전쟁론’이 남로당식 전쟁 호응 논리와도 유사하다는 지적에 그는 “유사한 측면이 있겠지만 북한이 전쟁으로 통일을 하려고 하니 역설적 의미에서 국보법을 넘어서는 통일 운동을 강조한 것”이라고 했다. ‘현 대한민국 체제로는 그런 통일 운동이 어려운가’라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했다.

▲윤미향 의원실이 지난 24일 주최한 토론회 포스터./윤미향 의원실
조선일보 원선우 기자
01-31 국회에서 “北의 전쟁은 정의” 종북 판 깔아준 책임 물어야
대한민국 국회에서 북한 김정은의 전쟁관을 편드는 토론회가 열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인 위성정당’ 더불어시민당의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한 윤미향 의원은 지난 24일 남북관계 토론회를 개최했다. 민주당은, 윤 의원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후원금 횡령 등으로 사법처리 대상이 되자 출당 조치로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 토론회 내용을 보면 평양 만수대 최고인민회의 의사당이 아닌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첫 번째 발표자인 김광수 ‘부산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은 “최후의 방법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전쟁이 일어난다면, 결과의 평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그 전쟁관도 수용해야 한다”면서 “북의 전쟁관은 정의의 전쟁관”이라고 했다. 또 “조선반도에서, 분단된 한반도에서의 평화관은 이런 평화관이어야 한다”면서 ‘인식의 대전환’이라고 했다. 최근 김정은이 ‘민족의 평화통일’ 개념을 버리고 ‘적대적 교전국’으로 대남 기조를 전환하는 입장을 밝힌 것과 관련, 김 이사장은 “80년 동안 평화통일 운동 방식에 사망 선고를 내린 것”이라며 “국가보안법을 넘어서는 통일운동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고도 했다.
윤 의원도 “윤석열 정부의 반북·멸북 정책이 우리에게 걸림돌”이라고 했다. 고은광순 ‘평화어머니회’ 이사장은 “북은 완전 자주국방이고, 교육·의료·주거는 남쪽은 경쟁, 북은 무상”이라고 했다. “한반도 위기의 근원은 한미동맹” “선거 잘해서 금년 말에는 (현 정권을) 몰아내야 한다”는 등의 주장도 나왔다. 윤 의원은 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지만, 4년 임기를 다 채울 수 있게 됐다. 의원만 예약이 가능한 국회 시설을 빌려 ‘종북 판’을 깔아줬다. 이런 의원이 설칠 수 있게 한 민주당의 책임도 무겁다.
문화일보 사설
01.31 김정은 "남한이 제1의 적"…경찰, 북한 해외공작 막을 수 있나
새해가 시작되면서 국가정보원 대공수사 활동이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정치사찰과 비민주성을 이유로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수사 권한을 경찰에 독점시켰다. 국민 대다수는 국정원을 ‘간첩 잡는 기관’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국민 73.9%가 올해부터 국정원에 대공수사권이 없다는 것을 모른다는 지난해 여론 조사(자유민주연구원 등)가 있었다. 60.9%가 간첩수사는 국정원이 해야 한다고 답했다. 국민이 몰랐다는 것은 전 정부에서 정치적 암산(暗算)에 따라 국가 안보 생태계를 무너뜨렸다는 의미다.
국민 다수 "간첩 수사 국정원이 해야"
1990년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대소(對蘇) 정보담당자가 옛 소련의 정보기관인 KGB의 첩자로 활동하다 적발된 사건이 있었다. 알드리치 에임즈란 인물이 그 주인공이다. 십수년간 KGB 첩자로 암약하면서 수십 년에 걸쳐 구축한 CIA의 모스크바 내부 협조자 10여 명을 밀고하고, 비밀공작 200여건을 와해시켰다. 정보 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례로 평가받는 이 사건은 오히려 CIA 해외 공작 기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가정보원 전경. 사진 국가정보원
참혹한 9ㆍ11 사건도 정보활동 관련 법령을 강화하고, 국가정보국(DNI)을 신설하며 안보체계를 강화했다. 그래서 CIA는 오늘날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이 될 수 있었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국회가 발끈하며 비난하고 책임을 추궁하는 우리의 모습과는 사뭇 상반된다.
많은 국민이 경찰이 과연 국가안보 수사를 잘 감당할 수 있을까를 우려하고 있다. 국정원에 상응하는 전문성과 지식과 기술을 구비하고 있는지 걱정한다, 북한-해외-국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수사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가 염려한다. 올해 내 인력을 증원하고 기구를 개편하겠다고 하지만 조직의 내재적 한계상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무엇보다 대통령 직속 기관인 국정원과 달리 경찰청은 행정안전부 산하 외청 기관으로 국회, 언론, 시민단체의 개입에 큰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둘째, 높은 정치 지향적 특성으로 정치권에 휘둘리기 십상이다. 셋째, 낮은 보안성이다. 간첩 및 안보 위해 사범 수사에 가장 필수적인 기밀성 유지가 힘들다. 넷째, 안보수사에 무관심하거나 냉대하는 분위기다. 그 예로 대공수사권 유예 3년 동안 조직이나 인력 개선이 전혀 없었다. 다섯째, 국정원과 원활한 공조 협력이 어렵다. 출처를 보호해야 하는 국정원 업무 특성이나 다층적 업무구조가 이를 어렵게 한다.
경찰 안보수사 전문성과 활동기법 한계
현재 경찰의 안보수사 능력에서 나타나는 한계도 있다. 경찰은 간첩과 안보 사범 수사에만 전념할 수 없다. 탈북자 관리, 산업스파이, 테러 사범 및 남북교류업무 지원까지 감당해야 한다. 전문성과 활동기법도 부족하다. 채용과 동시 대공수사로 특화되는 국정원이 가진 고도의 수사기법과 오랜 세월 축적한 경륜과 전문성은 경찰이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없다.
해외활동 여건 역시 미비하다. 중국과 동남아 중심으로 글로벌화하는 북한 대남 공작에 대응한 경찰의 해외 활동은 사법 주권 침해와 외교 분쟁을 유발할 수 있다. 해외 정보기관과 협력하는 것이 어렵고, 과학 및 사이버 수사가 취약하다. 이에 반해 국정원은 인간정보(HUMINT)를 중심으로 신호정보(SIGINT), 계측정보(MASINT)와 통신정보(COMMINT)를 비롯한 기술정보(TECHINT)까지 결합하는 정보를 지원받고 있다. 결론적으로 경찰은 국정원과 같은 수사 역량을 구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 안보사범 검거 4분의 1로 떨어져
문재인 정부 집권 5년 동안 검거한 안보 사범 건수는 이전의 25% 수준에 불과했다. 지난해 국정원이 ‘ㅎㄱㅎ 조직’ 등 일련의 사건에 수사 권한을 행사한 것이 단장을 끊는 듯한 몸부림이 되고 말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정원 수사권 폐지는 잘못”이라며 “경찰의 대공수사권 전담은 살펴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간첩사건은 충격적 안보위협” “종북 주사파는 반국가, 반헌법 세력”이라며 단호한 척결 의지를 밝혀 왔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김정은이 최근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으로 선언하면서 윤 대통령의 안보 의지는 더욱 부각되고 있다. 여당 일부에서는 다가오는 총선에서 압승해 대공수사권을 복원시키자고 한다. 하지만 다수당의 위력으로 복원하게 되면 역사는 되풀이될 것이다. 안보의 미래는 국민적 지지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런 상황에선 ‘국가안보기능정상화위원회(가칭)’ 같은 기구가 구성돼야 한다. 정부, 국회, 국정원을 비롯한 경찰 등 관계기관을 고루 참여시켜 전략과 이론을 개발하고, 국민 인식을 제고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헨리 키신저는 “국가는 안전보장과 국민안전을 기본으로 하면서, 궁극적 포부와 가치를 실현해 나가는 주체”라고 했다. 국정원은 이를 위한 국가 핵심 조직이다. 변화하는 안보 위협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국정원의 대공수사 권한 복원이 꼭 필요하다. 국정원이 가진 안보위협 예방과 저지 기능을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국정원의 역할을 폄훼해서는 안 된다. 수주대토(守株待兎·되지도 않을 일을 기다림)하다가는 치유 불가능한 ‘말기 안보 암(癌)’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중앙일보 윤봉한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