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의 시론(문화일보) 2023-01-27 국가보안법이 불편한 사람들 - 12-29(금) 쓰나미 몰려오는데 ‘한나땡’ 외치는 野
[이현종의 시론] 문화일보 논설위원 2023
01-27 국가보안법이 불편한 사람들
직파 간첩에서 자생 간첩 시대
주사파 부모 자녀에 사상 세습
법원도 간첩 피고인 잇단 석방
간첩 활개에 文과 민주당 책임
방첩 체계 붕괴, 국보법만 남아
안보도 끓는 물속 개구리 신세
민노총의 2인자 격인 조직국장을 비롯한 핵심 간부들이 캄보디아, 베트남 등지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 조선노동당에 입당하고 간첩들이 받는 ‘밀봉교육’까지 받았다니 충격적이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가 현실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부터 이들이 북측 공작원과 접촉하고 국내 조직도 만들었는데 국가정보원이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고도 상부 지시로 수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더 참담하다. 국가 안보의 최전선에 있는 국정원의 방첩 기능이 사실상 무력화된 셈이다.
민족민주혁명당, 일심회, 왕재산, 중부지역당 사건 등 그동안 간첩단 사건은 왕왕 있었지만, 이렇게 국내 최대 노동조합 조직인 민노총의 핵심 인사와 국회의원 보좌관 등이 관련된 것을 보면 북한의 ‘대남 간첩 사업’이 상당히 광범위하고 핵심으로까지 접근한 것을 입증하고 있다. 예전엔 북에서 직접 내려보낸 ‘직파 간첩’이 국내에서 활동했다면, 이젠 국내 종북·주사파 세력들이 해외에서 공작원들을 만나 간첩 교육을 받고 들어오는 ‘자생 간첩’이 활개 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좌파 진영에선 “남북 체제 경쟁은 끝났다”고 했지만, 이렇게 자생 간첩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끝나기는커녕 실전에서 우리가 지고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미국의 핵우산이나 방어시스템으로 대응하면 되지만, 사회 곳곳에 침투해 친북 활동을 벌이는 간첩을 막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주사파의 교과서 격인 ‘강철서신’의 저자이자 평양에 가서 김일성을 만나고 온 뒤 환멸을 느껴 전향한 김영환 씨는 최근 인터뷰에서 친북 활동을 하는 중·고생 중 상당수는 부모가 주사파 활동을 한 전력이 있다고 했다. 주사파 부모가 자녀들에게 사상을 세습시킨다는 충격적 주장인 셈이다. 북한에서만 ‘대를 이은 충성’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 주사파가 재생산되는 것이다. 자치단체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시민단체가 ‘김정은 환영단’을 만들고 북한 신년사 교육 등을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간첩이 사법처리가 돼도 민변(民辯) 변호사들이 변론 활동을 벌이고, 재판 지연 전술을 펴면서 구속 기간(6개월) 만료, 보석 등으로 풀려나고 있다. F-35A 기지가 있는 청주공항 등에 대해 간첩 활동을 하다 적발된 ‘청주간첩단’(자주통일충북동지회) 사건 관련자들이 보석 등으로 풀려난 뒤 다른 간첩 용의자들과 연락까지 하는 것이 현실이다. 법원마저 이러니 북한의 대남 공작의 장애물은 없는 셈이다.
왜 이 지경이 되도록 방첩 망 곳곳에 구멍이 나 있을까.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의 책임이 무겁다. 민주당은 최근 민노총 간첩 사건에 대해 그 흔한 성명 하나 내놓지 않고 있다. 대신 이재명 대표는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를 만나 국정원 등 수사기관의 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주장했다.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국민은 이제야 ‘막걸리 보안법’ 걱정을 안 하고 살고 있었는데 이마저도 이전으로 돌아갈까 우려된다”고 했다. 예전 군사정권 시절 술자리에서 정부를 비판하면 국가보안법으로 잡아가던 것과 지금의 간첩 사건이 비슷하다는 취지다. 캄보디아, 베트남을 수시로 드나들며 북한 공작원을 만나 교육받고, 달러 공작금을 받아 환전상에서 교환하고, 스테가노그래피라는 첨단 방법으로 북한과 교신한 행태와, 막걸리 국보법과 같다는 김 의장의 발상부터 놀랍다. 그나마 이런 국정원의 대공수사권도 문 정권이 내년부터 없애는 법안을 이미 통과시켰다.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서도 그나마 간첩을 적발할 수 있는 것은 국가보안법 때문이다. 반국가단체 구성, 잠입·탈출, 회합·통신 등을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민노총 간부 간첩단을 적발한 법적 근거로 작동하는 셈이다. 김대중 정권부터 좌파 진영은 국보법 폐지를 줄기차게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국보법만 없어지면 간첩 활동의 영역이 훨씬 넓어지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은 국보법이 전혀 불편하지 않지만 폐지를 원하는 세력은 그러지 않은 모양이다. 아주 뜨거운 물속에 개구리를 넣으면 뛰쳐나오지만, 천천히 데워지면 물속에 그대로 있다가 죽는 것을 ‘끓는 물속 개구리(boiling frog) 효과’라고 한다. 그대로 놔두면 대한민국 안보도 개구리처럼 서서히 죽게 된다.
02-22 이재명과 민주당 ‘헤어질 결심’
체포동의 부결 위해 개별 설득
대선 패배 후부터 대비 총력전
당장 구속 모면해도 신뢰 잃어
김대중 노무현과 다른 李의 길
민주당이 특권·불법 적통 위기
李는 법정으로 黨은 제 길 가야
오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이 진행된다. 169명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기 때문에 반란표가 최소 28표 이상 나오지 않으면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부결은 무난하다. 이렇게 되면 7월만 별도의 임시국회를 소집하면 다른 달은 자동으로 국회가 열리기 때문에 이 대표가 구속될 일은 없어 보인다. 이 대표가 하루 종일 비명계 의원들을 1 대 1로 만나 설득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상민 의원 등 일부 의원이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하나 이 대표 귀에는 잘 들리지 않는다.
대선 패배 이후 안팎의 비난을 무릅쓰고 3개월 만에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고, 2개월 만에 당 대표 선거, 당헌 개정(기소 시 자동으로 당직을 상실하는 8조 개정) 등을 강행한 이유가 바로 지금의 상황을 예상한 계산된 행보였다. 이 대표에게 민주당이 어느 길로 가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자신을 형사처벌로부터 막아주고 다음 대선 때까지 유지하는 것이 최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팬덤인 ‘개딸’에 당사 1층도 내어주었다. 결국, ‘이재명의 길’은 불체포특권을 거부하고 직접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갔던 ‘권성동의 길’과는 전혀 다르다. 국민의힘 권 의원은 영장이 기각되고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지금은 여권의 핵심 실세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대표 정치 멘토 역할을 하는 이해찬 전 대표는 최근 당에 체포동의안 부결을 강하게 주문했다고 한다. 총선을 1년여 앞둔 상황에 이 대표가 대표직을 상실하면 민주당은 차기 당권을 둘러싼 내분에 휩싸여 사분오열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내년 총선에서 지금보다 의석수는 적지만 최소한의 방어선을 구축하고 질서 있는 퇴각을 하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개딸’과 같은 지지세력과 뭉쳐야 한다는 것이 선거전략을 많이 짜본 이 전 대표의 구상인 것이다. 실제 최근 민주당 내에 부결 목소리가 부쩍 늘어난 것도 이런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이 대표의 법적인 생명은 다소 연장할 수 있겠지만 ‘정치인 이재명’의 생명은 연장하기 어렵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선 패배 이후 정계 은퇴와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지지자들이 자신을 부를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이런 인고(忍苦)의 시간이 축적돼 다시 대선에 도전할 에너지를 모았던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종로 국회의원이라는 보장된 미래를 뿌리치고 부산으로 내려가 지역감정 타파에 온몸을 던졌다. 낙선했지만 ‘바보 노무현’이라는 자산을 얻었고, 이후 대통령에 당선되는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이 대표는 다른 길을 택했다. 축적의 시간은커녕 낙선의 아픔 속에서도 주식 투자를 하고, 몇 달도 못 참고 선거에 다시 나섰다. 만약 이 대표가 ‘권성동의 길’을 갔더라면 극적인 회생 가능성도 있었지만 이제 자신의 방탄에 모든 정치적 자산을 다 써버렸다. 정치인에게 생명인 말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불과 1년도 안 돼 자신이 한 말을 다 뒤집고 있다.
이 대표 개인은 그렇다 해도 민주당은 더 나락의 길로 가고 있다. 1955년 조병옥, 신익희 선생의 민주당을 뿌리로 두고 있으며 ‘민주화의 적통’을 자부해 왔지만 이젠 ‘특권과 불법의 적통’을 내세워야 할지 모른다. 김해영 전 최고위원은 “이재명 대표 없어도 민주당은 말살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별 호응이 없고, 당 홈페이지엔 김 전 최고위원의 제명 찬성만 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을 거치면서 민주당의 정체성이 심각하게 훼손돼 왔지만 ‘이재명의 민주당’이 되면서 이젠 낯선 정당이 돼 버렸다. ‘조국의 강’보다 ‘이재명의 강’이 훨씬 깊고 빠져나오기 어렵다. 이 대표의 구속영장이 공개되면서 지지율도 최저치다.
비명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민주당의 길’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방향을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은 찻잔 속 바람이다. 공천이나 개딸이 무서워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이재명과 헤어질 결심’이다. ‘이재명의 길’은 서초동 법원으로 향하고, 민주당은 올바른 야당의 길로 가야 한다. 그 첫걸음은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을 통해 특권에 반대한다는 분명한 원칙을 보여주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03-20 탁상공론 정책과 ‘세종시 관료주의’
급제동 걸린 노동시간 유연화
尹 대통령 뒤늦게 문제점 파악
제대로 여론 수렴 없이 입안돼
반도체법과 초등 5세 입학 혼선
홍보 실패는 결국엔 정책 실패
관료·전문가 덫에서 벗어나야
요즘 대통령실발 기사 중에 윤석열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고용노동부가 지난 6일 입법 예고한 근로시간 개편 방안이다. 문재인 정부가 입법한 주 52시간제가 노동시장에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왔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노동시간 유연화의 구체적 방안이었다. 바쁠 때는 일주일에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게 하고, 쉴 때는 장기 휴가를 갈 수 있게 하는 내용인데 ‘69시간제’로 프레임이 만들어지면서 비판이 거세지자 윤 대통령이 브레이크를 건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정책 홍보 실패도 정책 실패’라는 취지의 강한 질타가 있었다”고 전했다.
반도체 육성을 위한 ‘K-칩스법’도 마찬가지다. 6%였던 대기업 반도체 시설투자 공제율을 20%로 올리려던 여당, 10%를 주장하던 야당이 맞서던 중 어이없게도 세수 감소를 우려한 기획재정부의 8% 안이 받아들여져 지난해 말 국회에서 통과됐다. 시설·연구 개발 투자의 25%까지 세금을 깎아주는 미국, 대만에 비해 지원 수준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비판이 빗발쳤고 결국 윤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 여야가 다시 합의해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 국회 통과 법안이 대통령 지시로 몇 달 만에 재개정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두 사례에서 보듯이 정책을 입안하는 정부 부처가 윤 대통령의 국정 방향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노동시장 정책의 핵심으로 MZ 근로자, 노조 미가입 근로자 그리고 중소기업 근로자 등 노동 약자의 권익 보호에 방점을 뒀다. 대기업 노조를 기반으로 하는 민노총과 한국노총의 기득권을 약화하는 대신 임금노동자 2058만여 명 중 노조가 없는 다수 노동자(86%)를 중심에 두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용부가 이런 안을 낼 때 MZ세대나 비노조 노동자의 현실과 의견을 충분히 들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한국노총 출신의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한 달 휴가 운운하면서 “요즘 MZ세대는 기성세대와 달리 ‘부회장 나와라, 회장 나와라, 성과급이 무슨 근거로 이렇게 됐냐’ (말할 정도로) 권리의식이 굉장히 뛰어나다”고 했다. 이 말이 나오자마자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대기업은 몰라도 중소기업 등에서 아무리 자기주장이 강한 MZ세대라도 한 달 휴가 갈 수 있는 강심장 직원이 어디에 있냐는 비난 글이 쇄도했다. 윤 대통령 질타가 있고 나서야 이 장관은 MZ세대와 대화에 나서겠다고 했다. 전형적인 무사안일의 관료주의 단면이다.
탁상공론에 능한 교수들이 정책의 초안을 만들면 관료들은 정권의 입맛에 맞게 포장하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대통령실 참모들은 꼼꼼히 살펴보지도 않은 채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5세 초등학교 입학’ 정책을 발표했다가 낙마한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의 사태와 똑같이 닮았다. 당시에도 맘 카페를 중심으로 맞벌이 엄마들의 반발이 엄청났는데도 교육부와 대통령실 참모들은 알지 못했다.
“그는 이 자리에 앉으면 ‘이거 해! 저거 해!’라고 말하겠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불쌍한 아이젠하워는 여기는 군대와 다르다는 걸 알게 될 것이야.”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이 당선이 유력했던 군인 출신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에게 한 말이다. 관료주의가 대통령 권력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정치에 입문하면서 정치인보다는 전문가·관료를 선호했다. 특히, 함께 일을 해본 검사 출신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이들이 정책을 잘 만들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국민을 설득할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지난 13일 국민의힘 신임 지도부와 만찬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반도체법에 반대하던 민주당이 입장을 바꾼 것을 예로 들며 “아무리 다수 의석을 가지고 있어도 국민 여론이 돌아서면 그들도 양보할 수밖에 없다”고 당의 대국민 여론 설득 강화를 주문했다. 요즘 웬만한 기업은 최고커뮤니케이션책임자(CCO)를 따로 두고 있다. 아무리 물건이나 정책을 잘 만들어도 홍보에 실패하면 말짱 도루묵이 되기 때문이다. 세종시에 갇힌 공무원의 관료주의를 극복하지 않으면 정책·홍보 실패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04-12 국민의힘 3가지 위기 신호
총선 1년 앞두고 무기력 여당
이젠 야당 福도 수명 다해가
절박함과 간절함조차 안 보여
이탈한 대선 동맹 회복 급선무
조직 아닌 개인 우선 문화 깨야
지도부부터 희생·결단 보여야
윤석열 정부의 명운이 걸린 제22대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다음 달 10일이면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이 된다. 0.73%포인트밖에 차이 나지 않는 아슬아슬한 대선 승부 때문에 야당 지지자들은 여전히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169석을 가진 거야(巨野)가 사사건건 발목만 잡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입법으로 정권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내각제 같으면 연정(聯政)으로 돌파하겠지만, 대통령제 아래서 여당으로선 내년 총선을 통해 의회 구조가 바뀌길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범죄 혐의가 차고도 넘치고, 야당 의원들의 비상식적 언행과 입법 폭주가 도를 넘는데도 민심은 여당에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야당은 장관이든 총리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탄핵을 하겠다고 달려드는 ‘탄핵 중독증’이 심각하다. 윤 대통령이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광역단체장들과 ‘일광 횟집’이라는 부산의 유명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것도 ‘일광(日光)’이 친일을 상징한다는 황당한 가짜뉴스로 공격하고, 식당에 별점 테러를 하는 일까지 버젓이 벌어진다.
이런 상태면 ‘야당 복’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국민의힘은 그렇지 못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여당이 야당에 뒤지는 결과도 나오고 있고, 한국갤럽이 지난 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이 다수 당선돼야 한다’(정부 견제론)가 50%로 집계됐다. ‘정부 지원론’(36%)보다 14%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보통 집권 1년 차엔 집권 세력에 일단 힘을 실어 줘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한 것이 상식인데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지지했던 유권자마저 등을 돌리는 상황이다.
지난 4·5 재·보궐선거 결과는 여당에 큰 위기 신호가 온 것이다. 관심이 떨어지고 투표율이 저조해도 선거는 선거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 정치적 의사를 피력하는데, 여당은 민심의 명백한 경고 신호가 있는데도 마치 쓸모없는 ‘소음’으로 인식하고 있다. 여당이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첫째, 집권 여당에 절박함과 간절함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텃밭이라고 하는 울산마저 교육감과 기초의원을 민주당에 내주었다. 투표율이 저조하면 조직 표가 좌우하는데 한마디로 일선 당 조직이 뛰지 않았다는 의미다. 김기현 대표가 전주을 유세 지원을 갔을 때 나온 당원이 20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김경민 후보는 대선·지선에서 얻은 15%의 반인 8%밖에 얻지 못했다. 100명이 넘는 의원이 선거 지원 한번 가지 않았다. 뽑힌 지 얼마 안 되는 최고위원들은 연일 사고만 치고 있다. 웰빙당으로 다시 돌아갔다.
둘째, 동맹군이 없다. 우리나라 선거는 자기 세력만으로 승부를 내기 어렵다. 동맹 세력 없이 독자 생존은 힘들다. 지난 대선에선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 진보에 있다가 조국 사태를 계기로 돌아선 ‘조국 흑서팀’ 등 동맹 세력이 지지했기에 승리가 가능했다. 그런데 김 대표가 내건 연·포·탕(연대·포용·탕평)은 끓이기도 전에 없어져 버렸다. 또, 원내대표 선거에서도 영남 지역 의원들이 똘똘 뭉쳐 대구 출신의 윤재옥 의원을 선출했다. 당 대표,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모두 영남 일색으로 해 놓고 전국 정당을 강조할 수 있을까. 전광훈 목사로 상징되는 강경 보수 세력과의 관계 설정도 고민이다.
셋째, 조직보다 개인을 우선하고 대통령만 쳐다보는 조직문화다. 당 대표를 선출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비대위 운운하며 당을 흔드는 세력이 있다. 대통령실만 쳐다보고 스스로 대안을 만들어 움직이지 않는다. 아예 지역에 거주하며 서울은 가끔 오는 의원도 있다고 한다. 당이야 이기든 말든 나만 당선되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팽배하다.
이런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선 김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희생과 결단을 보여줘야 한다. 민주당에선 초선인 오영환(35)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 신선한 충격을 주는데 여당엔 이런 사람이 보이지도 않는다. 당초 공천 보장용으로 최고위원에 출마한 원초적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새로운 인물 찾기도 절실한데, 벌써 ‘검사 공천론’으로 시끄럽다. 사즉생 하지 않으면 내년 4월 10일 총선 날 피눈물을 흘릴지 모른다.
05-08 청년 정치 욕보이는 김남국類 의원들
젊은 피 586, 이제는 퇴진 대상
대체할 청년 정치인들의 민낯
60억대 코인 부자 金의 이중성
‘빈곤 포르노’ 張의 후안무치
악성 진화하는 청년 정치 암담
합리·상식 가진 새 인물 기대
지금 국민적 지탄 대상이 된 586 국회의원들도 한때는 정치권의 ‘새 피’ ‘젊은 피’라고 불리며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정치가 기득권 기성세대의 입장만 대변하는 데서 탈피해 청년층의 고충을 반영하고 청렴한 정치를 펼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16대(2000년), 17대(2004년) 총선 때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경쟁적으로 86세대를 영입했고 이 때문에 16·17대 2030 청년 의원이 각각 13명, 23명으로 늘었다. 그런데 이후 18대 국회(7명)를 비롯해 19대 국회(9명), 20대 국회(3명)에선 한 자릿수에 그쳤다.
돈 봉투 사건으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송영길 전 의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원내대표를 지낸 우상호 의원, 이인영 의원과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대표적이다. 한때 주목받았던 86세대는 이제 그들의 무능과 편향성, 종북적 사고 등이 드러나면서 거센 퇴진 압력을 받고 있다.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586 퇴진을 주장하며 “독재를 타도하면서 독재를 배우셨을까요? 독재는 타도하셨지만, 민주주의는 이루지 못하신 것 같다”라고 일갈했다.
그런데 앞으로 이들을 대체할 ‘청년 정치인’에게 미래를 걸어도 될까. 21대 국회에서 2030은 13명으로 다소 늘었다. 21대 당선인 10명 중 6명이 50대이고 평균 연령도 54.9세인 상황에서 이들 2030 의원은 한 줄기 희망이었다. 민주당 전용기(1991년생), 정의당 류호정(1992년생) 의원은 20대, 민주당 장경태(1983년생), 김남국(1982년생) 의원은 30대에 국회의원이 됐다. 2021년 기준 40세 이하 청년 의원 비율은 조사가 이뤄진 136국 중 우리나라가 126위에 불과한 상황에서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청년 정치 미래가 달렸다.
전남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 1기 출신인 김남국 의원은 방송 패널로 이름을 알리다 조국 사태 때 서초동 조국 수호 집회에서 사회를 보면서 정치의 길로 접어들었다. 조 전 법무부 장관의 사진을 책상 앞에 두고 매일 기도하며 잔다는 김 의원은 ‘조국 수호’를 상징하며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러다 국회에 들어와서는 이재명 대표로 줄을 갈아타며 핵심 측근인 ‘7인회’ 일원이 됐고, 대선 땐 수행 실장이 됐다. 그런데 법제사법위 상임위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질문하면서 ‘이모(李某)’를 ‘이모(姨母)’로 잘못 알고 질문을 하다가 ‘이모’가 별명이 돼 버리는 수모를 당했다.
평소 “진짜 편의점 아이스크림도 안 사 먹고 아꼈다”고 하면서 ‘한 푼 줍쇼’라며 후원금을 모금했다. 이 덕분에 2022년도에 후원금을 3억3014만 원 모아 전체 1등을 했다. 돈 없는 젊은 국회의원이 이재명 대표를 도와 활동한다는 것이 지지층에 호소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김 의원은 60억 원 상당의 가상화폐를 소유하고 있었던 ‘재력가’였다. 코인을 대량 보유하고 있는 와중에 과세를 연기하는 법안을 공동 발의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문제가 불거지자 ‘한동훈 검찰’을 배후로 지목한 것도 김 의원이 ‘보스’로 모시는 이 대표와 많이 닮았다. 대선 패배 직후 집에서 방산(防産) 주식 투자에 여념이 없었던 보스를 닮았는지, 그도 대선 직후 거래 실명제가 되기 직전 코인을 인출했다고 한다.
최고위원인 장경태 의원도 뒤지지 않는다. 반지하 방에 살면서 힘들게 정치를 한다며 짠한 동정심을 얻었던 그는 돈 봉투 사건이 터지자 “50만 원은 한 달 밥값도 안 된다”고 했다. 국회의원이 돼서 형편이 좋아졌는지 이제 50만 원은 푼돈인가 보다.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 방문 때 심장병을 앓는 어린이를 안아주고 국내 치료를 알선한 것을 두고 그는 ‘빈곤 포르노’라고 비난했다. 사진 촬영 때 조명을 쓰지도 않았는데 계속 조명을 썼다고 우긴다. 또, 윤석열 대통령 미국 방문 때 화동(花童)의 볼에 입을 맞춘 것을 두고 “성적 학대”라는 황당한 비난을 쏟아냈다. 심지어,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위반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법률 개정안까지 제출하는 그의 충성심도 남다르다.
“재정은 쌓아두면 썩는다”는 고민정 의원, 태극기를 두르고 독도를 방문하고 한일정상회담에 독도를 의제로 삼으라는 전용기 의원…. 이런 사람들이 미래의 대한민국을 이끈다면 나라가 어디로 갈까.
06-05 文정권이 키운 ‘선거가족위원회’
박정희 초도순시 막은 위원장
우여곡절 많았지만 성과 있어
文정권 특보출신 조해주 임명
내로남불·비례한국당 불허
아빠찬스 형아찬스 채용비리
감사원 감사로 비리 전모 규명
1963년 선거관리위원회가 헌법기관으로 발족한 이듬해 박정희 대통령은 선관위를 순시하겠다고 했다. 당시 대통령은 초도순시(初度巡視)라는 형태로 매년 각 부처와 지방을 찾는 관례가 있었다. 그런데 사광욱 초대 중앙선관위원장은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이 헌법상 독립기관을 순시해도 되느냐”며 순시를 거부한다. 취임한 지 불과 몇 달밖에 되지 않고 권력이 펄펄 살아있을 때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것은 거의 직을 내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사 위원장의 반대로 박 대통령의 ‘순시’는 무산됐다.
1963년 6월 5·16 쿠데타 세력이 헌법을 개정해 중앙선거위원회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격하시키고, 선거 업무를 대통령의 통치 행위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을 때 사 위원장의 일갈은, 선관위가 민주적 선거를 정착시키는 데 밑거름이 됐다. 일제강점기인 1943년 경성지방법원 판사에 임명된 사 위원장은 해방 후 서울지법 부장판사, 고법 부장판사를 거쳐 1961년 대법원 판사에 재직하면서 선관위원장을 겸임했다.
1967년 보성군 벌교읍 공개투표 사건, 1987년 구로구청 부정투표 사건, 1992년 한준수 전 충남 연기군수와 이지문 중위의 관권선거 폭로 등 선관위는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난 제21대 총선 때의 부정선거 논란은 여전히 식지 않고 있고, 지난해 ‘소쿠리 투표’로 사무총장과 노정희 선관위원장이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대한민국의 선거 관리는 그래도 다른 나라의 모범이 돼 관리 기법을 수출하는 ‘선거 선진국’을 자부할 만했다. 정치권력과도 늘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그나마 중립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선관위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문재인 정권 들어서다. 2020년 3월 더불어민주당은 임기가 만료된 선관위원 자리에 김대년 전 선관위 사무총장을 앉히기로 야당과 합의했다가 돌연 번복했다. 30년 넘게 선관위에 근무하며 자타가 공인하는 베테랑이었던 김 전 사무총장은 2018년 정권의 실세였던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정치 후원금 ‘셀프 기부’를 위법으로 판단했다. 이 때문에 김기식이 낙마하자 보복을 한 것이다.
김 전 사무총장은 퇴임사에서 “차기 상임위원은 정치에 오염된 선관위 내부 출신이 아닌 덕성과 품성을 두루 갖춘 중립적인 외부 인사께서 오셔서 선관위를 더욱 발전시켜 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정반대로 문재인 대선 캠프에서 특보를 지낸 경력(본인은 착오라고 주장)이 있는 조해주 씨가 임명됐다. 선관위원장이 비상임인 관계로 사실상 일인자인 조 상임위원이 임명되면서 편파성이 두드러졌다.
2020년 21대 총선 전 자유한국당이 위성 비례정당을 만들면서 ‘비례자유한국당’ 명칭을 사용하기로 했는데 선관위가 불허했다. 기성 정당과 헷갈릴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앞서 더불어민주당이 창당했을 때 기존 민주당이 반발했지만 선관위는 “유권자들이 민주당과 더불어민주당을 구별할 줄 안다”며 명칭을 허용했다. 2021년 4·7 재·보궐선거 때는 국민의힘이 ‘내로남불·무능·위선’ 등의 단어가 들어가는 현수막을 사용하려 했으나 “내로남불 등의 표현이 특정 정당을 유추할 수 있다”며 불허했다. 그러나 1년 뒤 대선 때는 사용이 가능하다고 입장을 180도 바꿨다.
이번 선관위의 ‘아빠 찬스’ ‘형아 찬스’ 채용에 대해 노태악 선관위원장만 모르고 선관위 내에선 다 알고 있었다는 얘기도 나올 지경이다. 노정희 전 선관위원장은 선거날 출근도 하지 않고 집에서 쉬고 있었고, 대법관을 겸임하고 있는 노태악 위원장은 선관위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선관위가 아니라 ‘선거가족위원회’가 된 지경인데도 말이다. 지금이라도 감사원 감사를 자청해 뿌리까지 썩어버린 조직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환부가 어디까지 퍼져 있는지 확인하는 게 필수다. 명문화된 규정도 없는 대법관의 선관위원장 독식도 재검토해야 한다. 더 이상 허수아비 선관위원장은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민주주의를 유지 발전시키는 핵심은 선거의 공정성이다. 이를 맡은 기관의 부패가 만연한다면 누가 선거에 승복하겠는가. 이번 기회에 선관위 조직에 대한 전반적인 대수술이 필요하다.
06-30 오염수 선동 안 먹히는 3가지 이유
가장 성공한 선동 광우병 사태
野 선거 3연속 지고도 또 괴담
혁신보다 손쉬운 오염수 선택
예전 같지 않은 분위기에 당혹
학습효과로 국민 판단도 성숙
전문가들의 용기 있는 목소리
‘뇌 송송 구멍 탁’. 지난 2008년 광우병 사태 당시 이 여섯 글자의 위력은 대단했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난다는 것인데 2005년에 나온 ‘파송송 계란탁’이라는 영화 제목을 패러디한 이 구호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큰 호소력을 가졌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느니 청산가리를 먹겠다”는 어느 여배우의 발언도 매우 선동적이었다. MBC ‘PD수첩’이 방영한 광우병 관련 영상을 본 사람이라면 도저히 미국산 쇠고기를 먹을 수 없다. 젖소들이 푹푹 쓰러지는 장면은 100마디의 말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 야당이 앞장서고 공영방송과 좌파 시민단체 900여 개가 합작한 광우병 선동은 근래 가장 성공한 선동으로 기록될 것이다. “선동은 한 문장으로 가능하지만, 반박하려면 수십 권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고 한 독일 나치의 선전장관 괴벨스의 이론이 100% 효력을 발휘했다.
출범한 지 얼마 안 된 이명박 정권은 광화문으로 몰려나온 군중의 위력에 눌려 ‘항복 선언’을 할 정도로 완패했다. 정권교체로 의기소침했던 좌파 진영은 광우병 사태로 전열을 재정비할 수 있었다. 이런 ‘성공의 기억’ 때문일까. 보궐선거, 대선, 지방선거에 3연패 한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어려운 개혁·혁신 대신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문제를 부각해 반일 감정을 부추기면 손쉽게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래서 선동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러나 오염수 선동이 생각처럼 진행되지 않고 있다 보니 당내에서 적잖게 당황하는 분위기다. ‘선동의 달인’들이 뛰고 있는데도 성과가 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장외집회를 매주 열고 서명운동, 현수막 부착, 단식 등 안간힘을 써도 분위기가 뜨지 않자 이젠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태평양 연안국에 서한을 보내 공동 보조를 호소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믿을 수 없다면서 이젠 유엔에 가서 시위라도 할 태세다. ‘BTS 보유국’ 대한민국의 제1당이 뉴욕 유엔본부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는 해외토픽감 뉴스를 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야당과 좌파 단체들의 선동이 공감을 얻지 못하는 데는 3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학습효과(studying effect)다. 천성산 도롱뇽, 제주 해군기지 붉은발말똥게, 광우병, 사드 전자파 참외 등 지난 20년간 일부 환경단체와 민주당이 주도한 선동의 결과는 모두 허위로 드러났다. 지금도 도롱뇽과 말똥게는 잘살고 있고, 미국산 쇠고기는 수입액이 1조 원에 달한다. 성주 참외는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반면, 광우병 선동으로 본 손해액은 3조7000억 원이나 된다. 모두 국민 부담이라는 사실이 더는 선동에 속지 않는 시민의식의 배경이 됐다.
둘째, 전문가들이 적극 나서고 있다. 광우병 때만 해도 더불어시민당 공동대표를 했던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명예교수 같은 인사들이 공공연하게 광우병 위험성을 지적했고, 좌파 연예인이 대거 동조했다. 선동이 제대로 먹혔다. 그러나 이번엔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 광우병 사태 때 앞장섰다 입장을 바꾼 민경우 대안연대 대표, 서울대 물리학과 출신의 운동권으로 군산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함운경 씨 등이 나서 허구성을 전문가적 시각에서 지적하고 있다. IAEA 같은 국제기구가 조사하는 점도 영향이 있다.
셋째, 정부가 후쿠시마 문제에 대해 일일브리핑을 하며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정부 시찰단이 직접 현장에 가 조사를 했고, 인근 해역에서 방사성 물질을 계속 관측하고 있다. 투명한 정보 공개가 괴담의 확산을 막고 있다. 지난 2011년 사고 당시 아무런 정화 장비 없이 오염수가 배출됐는데 지금까지 우리 해산물에 방사능이 검출됐다는 얘기는 없다.
문재인 정권 때도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방류가 생태계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정권이 바뀌자 마치 국민이 ‘핵 폐수’를 마시는 것처럼 선동하는 것이야말로 내로남불이다. 사드 전자파가 인체에 전혀 영향이 없다는 것이 밝혀지자 이 대표는 “다행이네요”라며 한마디로 넘겨 버렸다. 후쿠시마 문제도 몇 년 뒤 전혀 영향이 없는 것이 드러나면 똑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무심코 정치권이 던진 돌에 어민들과 횟집은 맞아 죽을 수도 있다.
07-28 진짜 탄핵 대상은 국회다
李 행안, 헌재 전원일치 기각
민주당의 습관성 탄핵소추病
한동훈 원희룡 이동관도 별러
재난·참사 법안은 손도 안 대
政爭 법안만 죽기살기식 투쟁
민생·재난 법안에 열정 쏟아야
국무위원으로서는 처음으로 탄핵 소추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9명 재판관 전원 일치로 기각 결정을 내림으로써 167일간의 장관 공백이 끝났다. 이미 야당이 탄핵안을 낼 때부터 내부에서조차 인용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진보 성향 재판관 몇 명은 인용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엇나가고 말았다. 결정문에서도 이 장관의 부적절한 발언이 공무원의 품위 유지를 위반했다고 지적한 일부 재판관도 직을 그만둘 만큼은 아니라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탄핵은 공직자가 헌법과 법률의 명백한 위반이 있을 때 하는 것인데 이미 특별수사본부가 이 장관에 대해 무혐의 처리를 내리는 등 정무적 책임은 있지만,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 법 상식이다.
그런데도 야당이 무리하게 밀어붙인 것은 당시 대장동, 성남FC,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 등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라는 정치적 상황이 크게 고려됐다. 또, 세월호처럼 핼러윈 참사가 윤석열 정권을 흔드는 유용한 수단이 될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에서 ‘모든 법 위반을 이유로 공무원을 탄핵한다면 국정 공백, 국민 간의 갈등 등으로 국익에 반한다’라며 탄핵 소추에 신중해야 한다는 경구(警句)도 민주당엔 들리지 않았다. 168석과 친야 무소속 등을 합하면 개헌과 대통령 탄핵을 빼놓고는 뭐든지 할 수 있는 힘을 주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관 공석 167일 동안 대형 수해가 발생하는 등 국정 공백이 있었지만, 야당의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이재명 대표는 전원 일치 기각에도 “책임지라고 요구한 것이 그렇게 잘못됐습니까. 이렇게 뻔뻔한 정권 보셨습니까. 후안무치에도 정도가 있습니다”라고 되레 큰소리쳤다. 마치 각종 사법 리스크와 주변인들의 잇단 극단적 선택·구속에도 대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신에게 한 얘기처럼 들린다. 무리한 탄핵 소추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찾아볼 수 없다. 나아가 민주당은 ‘검수완박’ 헌재 결정을 비판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을 중단시킨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에 대한 탄핵을 공공연하게 주장한다. 심지어 이동관 대통령 특보가 방송통신위원장이 되면 바로 탄핵안을 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젠 민주당에서 탄핵은 습관성 고질병이 돼 버렸다.
야당은 이 장관이 재난총괄 책임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탄핵 소추까지 했다. 그렇다면 국회에서 제1 당인 민주당은 자신들의 직무를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핼러윈 참사 이후 최근까지 여야 국회의원들이 재난 및 안전 관련 법안을 제출한 것이 약 40건에 이른다. 이 중 20건 이상이 핼러윈 참사처럼 인파 재난 예방과 관련된 것이다. 수해 관련 법안도 지난 3년 동안 30여 건이 발의됐다. 그러나 대부분 법안이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이번 수해가 심각하니까 몇몇 법안을 부랴부랴 처리하고 있는데, 그때뿐이다. 수해 소관 국회 상임위인 민주당 소속 박정 환경노동위원장은 이 와중에 베트남 외유를 떠났다가 하루 만에 돌아왔다. 장관에게 그렇게 호되게 추궁하던 이들이 정작 자신들의 입법 임무는 내팽개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장관에게 들이댄 잣대를 적용한다면 직무유기를 한 국회가 탄핵감이다.
민주당은 진짜 재해나 참사에 필요한 법안은 무시하고 ‘이태원참사특별법’ 처리에만 집중하고 있다. 지난 9년 동안 세월호 참사에 대한 검찰·경찰·감사원·특검 등 각종 조사가 9차례 진행됐지만, 특별히 새로운 내용이 밝혀진 것은 없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무려 4년 가까이 547억 원의 예산을 쓰고 지난해 9월에야 활동을 마무리했다. 심지어 해난 사고는 더 늘어난 것이 현실이다. 이태원특별법도 세월호와 똑같은 궤적을 밟아갈 가능성이 크다.
재난이나 참사가 발생하면 법과 제도를 고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재난의 정치화’로 이득만 보려는 행태가 문제의 핵심이다. 민주화유공자법처럼 정쟁 이슈는 죽기 살기로 단식·농성까지 하면서 관철하려는 열정의 10분의 1이라도 민생과 재난에 쓴다면 보다 나은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08-18 ‘징비’ 못하는 나라엔 미래 없다
왜란 7년의 기록 담은 징비록
조선은 禁書, 일본에선 인기
미국도 아프간 판 징비록 기록
잼버리 망신 잠깐 사과 후 정쟁
‘전북도가 피해자’ 황당 주장
尹대통령부터 읍참마속 해야
가톨릭 미사 중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는 기도가 있다. 가슴을 가볍게 치면서 하는 이 기도는 나로 인한 모든 죄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의미가 있다. 남 탓을 하기 전에 나에게는 문제가 없는지 살피는 과정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생존해 계실 때 가톨릭은 ‘내 탓이오’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런데 요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길거리로 나와 입에 담기 힘든 악담으로 윤석열 정부를 비난하는 행태를 보면 그들에겐 기도가 별 효과가 없는 듯하다.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내 탓이오’ 운동은 한마디로 ‘징비(懲毖)’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잘못을 스스로 꾸짖어 후에 환란이 없도록 삼간다’는 뜻으로 시경(詩經)의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7년을 겪으면서 쓴 ‘징비록’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다시는 전란을 겪지 말아야 한다는 심정으로 임진왜란의 원인과 경과, 자신의 잘못과 조정의 실책, 백성들의 조정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 그러나 이런 징비록에도 당시 조정은 계속 정쟁에 매몰돼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을 겪으며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게 된다. 징비록은 되레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끈 반면, 숙종(1712) 때 조선의 정보가 일본으로 유출될 것을 우려해 금단서로 지정돼 누구도 읽지 못했다.
역사 속에서 징비를 구현하지 못하는 국가의 존속은 어렵다.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으면 소를 키울 수 없다. 위기 뒤에 제대로 징비를 하는 것이야말로 국정 리더십의 핵심이다. 실패하고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 고치지도 않는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쫓기듯 철군했던 미국은 다시는 이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연방 정부 내 독립 감찰 기관인 ‘아프간재건감찰관실(SIGAR)’에서 철저한 반성과 분석을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분기마다 활동 내역을 담은 보고서를 연방 하원에 제출하고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올린다. 60번째 보고서까지 낸 이 활동은 미국판 징비록인 셈이다.
전북 새만금에서 열린 ‘2023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에서 준비 부족으로 세계적 망신을 당한 정부와 조직위원회, 전북도는 지금 징비록은커녕 ‘남 탓’에 여념이 없다. 말로는 다들 반성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책임 문제가 나오면 모두 현 정권, 전 정권, 전북도 탓만 하고 있다. 집행위원장을 맡은 김관영 전북지사는 “잼버리 화장실·폭염 대책, 우리 책임 아니다”고 발뺌했다. 심지어 SNS 때문에 오해를 키웠다고 책임을 엉뚱한 데 돌렸다. 전북 지역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전북이 가장 큰 피해자”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잼버리 행사 종료 후 16일 처음으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민주당이 김 지사의 출석을 막는 황당한 행태 때문에 26분 만에 파행됐다. 민주당 소속 김 지사가 나오면 전북도와 문재인 정권 책임으로 비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5년 동안 공정률 37%밖에 못해 놓고 문 전 대통령은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이 됐다”고 마치 남 얘기하듯 했다.
윤석열 정부도 책임 떠넘기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1년 6개월 동안 어떤 사전 경고도 없었다. 행사를 맡은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국회에서 “폭염·폭우 대책이 다 마련돼 있다”고 했는데 현실은 정반대였다. 대통령실 참모 그 누구도 이런 문제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당연히 윤 대통령에게 보고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징비록을 써도 모자랄 판에 이대로라면 아예 쓰지도 못하고 흐지부지될 듯하다. 정치권은 문제 해결 능력을 상실했다. 수해나 대형사고, 학교 폭력 등 사고가 발생하고 나면 늘 따라오는 얘기가 이미 국회에 대비책을 담은 법안이 올라가 있는데도 한 번도 논의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를 뒤늦게라도 반성하고 고치면 기본은 할 텐데 이젠 잠깐 반성 모드 이후엔 아무 관심이 없다. 지자체의 무능은 치유 불가능 상태에 왔고, 정부의 무책임도 심해지고 있다. 국회는 문제 해결이 아닌 문제 유발자가 됐다. 윤 대통령은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자신에게 가혹할 만큼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부터 징비록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09-18 통계 조작은 文정권의 조직범죄다
선·후진국 나누는 기준은 신뢰
그리스 아르헨 통계 조작 전과
文정권 심각한 조작은 충격적
잘못된 정책 피해 감추려 분식
집값 상승 민간보다 4배나 차이
‘국사범’으로 엄중 처벌해야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단지 경제적 빈부 차이만으로 나뉘지 않는다. 정부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가 결정적이다. 정부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국제 신인도를 평가하는 핵심 기준은 정부가 발표하는 각종 통계 수치이다. 인구, 소득, 부동산 가격, 취업률, 실업률 등 기초적인 통계 수치가 틀리기 시작하면 ‘못 믿을 나라’로 규정돼 국가 신인도는 급락하기 마련이다.
그리스 정부는 지난 2000년 6월 유럽연합(EU)에 가입하기 위해 12.5%에 달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6%로 축소했다. 그런데 이런 조작은 2009년 EU 회계 실사에서 적발됐다. EU 가입 이후 국가 부채만 늘어나던 그리스는 결국, 2010년 국가 부도 위기에 몰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아르헨티나도 마찬가지다. IMF는 2013년 아르헨티나를 ‘경제지표 조작국’으로 규정하고 자금 지원을 중단했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25%대에 이르는 인플레이션을 10.8%로 축소해 고의로 대외 채무를 줄였기 때문이다.
얼마 전 코로나19가 창궐했을 때 중국은 사망자 수를 줄여 발표, 국제사회 비난을 샀다. ‘워싱턴포스트’는 위성 사진으로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화장터 차량을 토대로 계산해 사망자가 중국 정부 발표보다 훨씬 많다고 보도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하고 있는 러시아도 전사한 병사 수를 줄여서 발표한다는 의혹을 샀다. 그래서 러시아 독립 언론매체는 ‘초과사망(excess death)’ 개념을 기반으로 사망자 수를 추정했다. 초과사망은 특정 이유 때문에 통상 예상되는 수준을 넘는 사망자가 나왔을 때, 그 늘어난 만큼의 사망자 수를 의미한다. 조사팀은 상속기록과 소셜미디어 게시물, 러시아 전역의 묘지 사진 등을 통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해 15∼49세 사이 남성의 상속 사례가 예상보다 2만5000건 많은 것으로 파악했다. 사망자 수가 대략 2만 명이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미국 오클라호마 출신의 코미디언 윌 로저스는 “오클라호마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사람들 덕분에 오클라호마와 캘리포니아 양쪽 주(州)에 사는 주민들의 평균 IQ 지수가 모두 상승했다”고 말했다. 이주한 농부의 IQ가 오클라호마 평균보다 낮고 캘리포니아 평균보다 높다면 가능한 얘기다. 두 주의 전체 평균은 그대로지만 개별 평균은 달라지는 것인데, 교묘한 통계 조작을 말할 때 ‘윌 로저스 효과’라고 한다.
그리스, 아르헨티나, 러시아, 중국처럼 지난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이들 나라보다 훨씬 심한 수준의 통계 조작이 있었다는 감사원 발표는 충격적이다. ‘마차가 말을 끈다’는 황당한 소득주도성장, 가구당 보유 집이 1 대 1에 가깝기 때문에 주택 공급을 억제해야 한다는 주택 정책을 펼치다 실제 집값, 소득, 취업률 등이 악화하자 이를 속이기 위해 범정부 차원의 통계 조작이 있었다는 것이 1년여 동안 조사 끝에 감사원이 내린 결론이다. 집값 상승 통계를 민간보다 4분의 1이나 낮게 잡아 놓고 집값이 안정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통계와 현실이 다르다 보니 이를 분칠하기 위해 27번이나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다.
악성인 것은 권력을 이용해 통계청과 한국부동산원을 상대로 협박까지 했다는 점이다. “조직과 예산을 날려버리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조폭과 다름없다. 원칙을 지키면서 제대로 통계를 냈던 통계청장을 경질하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통계청장을 임명했는데, 이 청장은 정확한 통계가 아닌 “좋은 통계로 보답하겠다”고 했다. 이러니 문재인 전 대통령은 “부동산 정책은 우리 정부에서 자신 있다” “최저임금 증가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거짓말을 서슴지 않고 했다. 조작에 앞장섰던 장관, 차관, 청장들의 책임이 크지만, 이렇게 하도록 내몬 최고 책임자인 문 전 대통령의 죄책(罪責)은 엄중하다. 통계 조작은 국가적 법익을 침해하는 국사범(國事犯)과 다름없다.
거짓 통계로 피해를 본 것은 끝모르는 집값 상승에 내몰렸던 서민들이다. 한 푼 두 푼 모아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웠지만, 조작된 통계 탓에 현실은 전혀 달랐다. 이제 검찰은 어떤 정치적 고려와 치우침도 없이 엄정히 수사해 역사의 교훈을 남겨야 할 것이다.
10-18 여당은 이재명 생각하지 마
세리머니 하다 1등 놓친 선수
정치도 오만하면 반드시 패배
여권은 마치 강자처럼 행동해
李는 지팡이 짚고 약자인척 쇼
회초리 맞고도 그대로인 與
총선까지 6개월 민생 챙겨야
항저우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롤러스케이트 한국 대표팀은 선두로 달리다가 결승선 코앞에서 성급하게 우승 세리머니를 하다 뒤따라 오던 대만팀에 0.01초 차이로 금메달을 놓쳤다. 끝까지 방심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한순간 실수로 메달 색깔이 바뀌었다. 발을 뻗어 우승을 차지한 대만 선수는 “그들이 세리머니를 하고 있을 때 나는 계속 싸우고 있었다”고 의미 있는 소감을 밝혔다. 그런데 당시 우승했던 대만의 황위린 선수는 지난 13일 대만 전국체전 경기에서 자신이 우승 세리머리를 하는 바람에 뒤따라 오던 선수에게 1위를 내줬다. 아시안게임에서 자신과 똑같은 행동을 한 선수에게 역전패를 당한 것이다. 체험으로 확인한 교훈을 금방 잊어버린 셈이다.
스포츠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정치판과 똑같다. 오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정치인에게 유권자들이 표를 던지는 것과 닮았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는 이미 김태우 후보를 공천할 때부터 결과는 예정됐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성 추문으로 물러나면서 2021년 4월 7일 치러진 보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자신들의 귀책사유로 실시되는 재·보선에는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당규를 당원투표를 통해 개정, 무리하게 후보를 냈다가 대패했다. 이후 민주당은 선거에 연전연패했다. 이런 과거를 모를 리 없는 국민의힘은 김태우 전 구청장의 대법원 확정판결로 열린 보선에 김 전 구청장을 무리하게 사면·복권해 출마시켰다. 성 비위와 공익제보는 다르다고 강변했지만, 결론적으로 강서구 유권자를 우습게 본 것이다. 불과 얼마 전 상대가 했던 일을 그대로 답습할 정도로 망각의 힘은 강하다.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서 0.73%포인트의 근소한 차이로 정권을 가져와 놓고 금방 이런 사실을 잊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자신들이 ‘소수 여당’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이번 강서구청장 선거의 구호도 ‘힘 있는 여당 후보’였다. 대통령과 바로 전화할 수 있는 핫라인이 있는 구청장이라는 사실을 부각했다. 그러나 유권자는 국민의힘이 스스로 법안 통과 하나 못 하고 대법원장 후보자도 가결 못 하는 ‘힘없는 여당’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면 국민에게 이런 점을 호소하고 다시 힘을 달라고 했어야 마땅하다. 반면, 압도적 의석으로 폭주하던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는 24일간 단식하고 지팡이를 짚고 법원에 출석하는 약자 코스프레를 했다. 이 대표의 영리한 이미지 연출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가 구속되면 모든 일이 다 될 듯이 당력을 집중했다. 이 대표만 구속되면 총선 승리는 따놓은 당상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그러다 법원이 이해하기 어려운 법리이기는 하지만 영장을 기각하자 스텝이 급속히 꼬이기 시작했다. 이 대표 사법 리스크에 기대어 그럭저럭 버텨 가던 여권이 우왕좌왕하면서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영남 일색의 지도부가 선거 전략을 짜니 정치적 험지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았다. 차출된 의원들은 선거 운동 시늉만 하고 SNS에 올리는 인증 샷만 찍었다.
이 대표는 이제 3개 사건이 기소돼 일주일 내내 재판을 받아야 할 처지다. 검찰의 시간을 지나 ‘법원의 시간’이다. 지루하지만, 이 대표의 정치적 운명은 법원에서 결정될 수밖에 없다. 이제 여당의 상대는 이재명이 아니라 내부의 적이다. “송파구청장 선거였으면 이겼을 것” “윤 대통령 잘하고 계신다”와 같은 중증(重症) 민심 불감증이다. 수도권에 집중하겠다고 해 놓고, 또 경북 출신 사무총장(이만희 의원)을 임명하는 무신경에 놀랄 뿐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자신의 지역구(영천시장) 선거도 무소속에 뺏긴 인물이 전국 선거를 지휘한다는 것은 패배하기로 작정한 듯하다. 김기현 대표는 “내년 총선에 패배하면 정계 은퇴를 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의 정계 은퇴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죽느냐 사느냐의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오직 자신만 공천받고 당선되면 된다는 안이함을 버리지 못하면 ‘강서구 선거의 전국화’가 이뤄질 게 뻔하다. 민생을 살려야 하는 윤 정권에 주어진 시간은 불과 6개월뿐이다.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말처럼 이재명을 생각하지 말고 오직 민생에 집중하는 게 낫다.
11-10 인요한이 불러온 나비효과
의사 출신 정치 초년생의 도발
메시지 쉽고 핵심 정확히 찔러
상대에 대한 칭찬과 유머 신선
전국 종횡무진하고 실천 빨라
구체적인 성과가 나와야 성공
투쟁적 정치문화 바꾸는 계기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대기에++ 영향을 주고, 이것이 커져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이론을 ‘나비효과’라고 한다. 나비의 날갯짓 같은 작은 움직임이지만, 큰 사회적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는 의미인데 많은 사례가 있다.
의사 출신의 정치 초년생인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지난달 23일 임명되고 3주째인데도 매일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역대 어느 혁신·비대위원장에서 볼 수 없었던 파급력이다. 광주·부산·대구·제주 등 워낙 행보가 광폭이어서 담당 기자들이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혁신위원회가 발족하기 전 결국 얼마 못 가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김은경 혁신위’ 실패 경험이 있는 민주당은 인 위원장이 등장하고부터 뉴스 중심에서 사라지면서 속수무책이다. 다시 탄핵 정국으로 회귀시켜 주도권을 잡고 싶겠지만,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겉모습은 미국인이지만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영락없는 한국 사람인 인 위원장이 정치 고단수들이 해내기 어려운 일을 현재까지는 성공적으로 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인 위원장이 몰고 온 나비효과가 단지 국민의힘에 한정되지 않고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진흙탕 같은 여의도 정치권에서 인 위원장이 이렇게 주목받는 비결은 뭘까.
우선, 당 대표, 중진 의원들도 어려워하는 메시지 발신 능력이 탁월하다. 정치를 처음 해보는 인 위원장이 원고 하나 보지 않고 말을 하는데 귀에 쏙쏙 들어올 정도로 쉬우면서도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취임 일성으로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말을 인용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고 일갈했는데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자신을 임명한 김기현 대표와 영남 중진 주호영 전 원내대표를 겨냥, ‘영남 스타’는 수도권으로 오라고 직격했다. “국민의힘에서 전라도 출신 대통령을 만들겠다”는 그의 발언에 앞으로 여당이 나아가야 할 ‘통합’의 목표를 명확히 담고 있다. 말이 쉬우면서도 전하고자 하는 뜻은 분명하다.
둘째, 우리 정치인들에게 부족한 유머와 상대방 칭찬이 풍부하다. 이준석 전 대표를 만나기 위해 부산을 찾아갔지만, 이 전 대표가 면전에서 영어로 말하는 것을 듣고 기분이 많이 상했을 법도 하다. 그런데도 “이 전 대표가 나보다 영어를 더 잘한다”고 웃어넘겼다. 이 전 대표가 “환자는 서울에 있다”며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을 겨냥하자, 그는 “내가 의사여서 환자는 더 잘 안다. 환자는 부산에 있다”고 응수했다. 유승민 전 의원을 만나서는 ‘코리아 젠틀맨’ ‘애국자’라고 치켜세웠고, 홍준표 대구시장에게는 “귀여우시다. 유머가 너무 좋다”고 칭찬했다. 이 전 대표에게 그렇게 수모를 당하고도 “계속 만남을 요청하겠다”고 한다.
셋째, 놀라운 실천력이다. 자신의 임명 소식을 듣고 “국민의힘이 타락했다”는 혹평을 한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도 찾아가 칭찬했다. 매일 2∼3군데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광주·대구 등을 종횡무진하고 있다. 이 전 대표를 만나기 위해 그의 아버지에게도 연락할 정도로 열정적이다. 매일 당 중진들에게 전화를 걸어 ‘용단’을 촉구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인 위원장의 행보가 정치권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민주당이 인 위원장의 약점을 캐기 위해 그의 고향인 순천과 직장인 세브란스병원 측을 뒤졌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고 한다. 이젠 인 위원장의 혁신 바람이 민주당으로 넘어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민주당의 이원욱·김두관 의원은 인 위원장이 던진 ‘험지 출마’를 이재명 대표에게 요구하고 있다.
인 위원장의 언행은 상대방을 공격하기에 여념이 없는 정치권에 상대를 칭찬하는 문화를 이식하고 있다. 상대방 모욕 주기, 비틀기 등으로 ‘여의도 금쪽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준석 전 대표의 ‘영어 사건’이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것이 상징적이다. 내달 끝나는 인 위원장의 혁신이 성과를 내고 해피 엔딩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모처럼 국민에게 정치를 지켜보는 재미를 주고 있다. 인요한의 날갯짓이 여의도 정치권을 흔드는 태풍이 될지 주목된다.
12-04 윤 대통령에게 ‘레드팀’ 필요하다
정부가 확증편향 빠지면 재앙
엑스포 표결 직전까지 낙관론
질 수 있다는 보고 누구도 못 해
악마의 변호사 역할 설정한 뒤
대통령에게 다양한 정보 주고
결정 전 치열한 찬반 토론 필수
사람들은 보통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이를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이것에 빠지면 반대되는 증거나 새로운 정보는 무시해 버린다. 선거 때가 되면 “내 주변에는 A당을 지지하는 사람밖에 없는데 어떻게 B당이 이길 수 있지”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자기 생각과 같은 사람만 만나고, 같은 주장을 하는 매체를 집중적으로 접하다 보면 흔히 생기는 확증편향이다. 개인은 몰라도 기업이나 정부가 여기에 빠지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표결 며칠 전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우리가 20석 정도 앞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최종적으로 보고된 예측은 2차 투표에서 우리가 사우디아라비아를 7∼10표 차이로 앞서는 것이었다고 한다. 언론도 정부를 믿고 2차 결선투표에서 역전극이 가능할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결과는 사우디가 119표, 우리가 29표로 예측과 완전히 빗나갔다. 130표 정도 얻을 것이라는 사우디의 예측은 대충 맞았다. 도대체 어디서 잘못돼 이런 참사를 낳았을까.
윤 정부 들어 사우디보다 1년 늦게 유치전에 뛰어들 때만 해도 막강한 오일머니를 갖고 있는 사우디에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기업과 함께 정부가 본격적인 유치전에 뛰어들면서 긍정적인 보고들이 이어졌다. 윤 대통령이 외국 정상과 만날 때도 좋은 반응이 많았다고 한다. 또, 역대 엑스포에서 1차 투표 때 결론이 난 적이 없다는 것도 긍정 판단을 하는 데 작용했다. 확증편향과 경험편향이 동시에 오다 보니 자꾸 전망치가 높아졌다. 새만금 잼버리 사태를 만회하고 국민 지지를 높이기 위해선 엑스포 유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믿음에다, 윤 대통령 특유의 추진력이 더해지면서 그 누구도 안 된다고 말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공무원들은 대통령실 분위기를 간파하고 유치가 어렵다는 정보는 무시해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렵다고 하면 마치 열심히 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여겨졌다.
잼버리 사태도 마찬가지다. 현장에선 대회를 지속하기가 어려운 상황들이 속출했지만, 전북도와 여성가족부는 수습이 되고 있다는 긍정적 보고만 대통령실로 보냈다. 질책이 두려워 제대로 된 보고를 못 한 것이다. 언론에 현장 상황이 보도되고 대통령이 화를 낸 뒤에야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중세시대에 로마 교황청에는 성인으로 추대될 후보자의 흠집을 찾아내는 임무를 수행했던 ‘악마의 변호사’가 있었다. 현대에 들어 기업에서는 ‘레드팀(red team)’을 만들어 중요한 판단을 할 때 반대편에 서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요인을 집중 분석하고, 반대 의견을 주장하는 의무를 갖는다. 원래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개발했다고 한다. 정보 판단의 오류를 막기 위해 의무적으로 반대 의견을 피력해야 한다.
지금 대통령실에는 레드팀이 없다. 레드팀은커녕 누구 하나 대통령의 말에 토를 달지 못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고 한다. 장관들도 윤 대통령에게 보고하러 가면 보고보다 말을 듣는 시간이 더 많다고 한다. 대통령실의 분위기를 전하는 관계자들이 ‘격앙’ ‘분노’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런 것이 반복되다 보면 참모들은 대통령의 심기를 먼저 살필 수밖에 없다. 긍정적인 보고를 하는 참모를 자주 찾고, 그러지 않는 참모는 찾지 않다 보면 점점 확증편향이 깊어진다. 이번 엑스포 사태는 바로 이런 분위기가 낳은 최악의 참사다. 윤 정부는 이제 ‘신뢰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윤 정부 출범 초기에도 어떤 참모가 레드팀을 만든다는 얘기를 언론에 했다가 질책을 들었다고 한다. 지금이야말로 대통령실에 레드팀이 절실하다. 상대편 입장에서 현장 상황을 직접 보고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처음엔 장관들에게 권한을 넘겨 내각 중심의 국정 운영을 한다고 했지만, 부처가 발표한 일을 대통령실이 번복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장관의 말이 먹히지 않게 됐다. 궁여지책으로 예전처럼 정책실을 만들었지만, 이미 수동적이 된 공직사회가 움직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 집무실 책상엔 ‘The Buck Stops Here(내가 모든 책임을 지고 결정한다)’라는 명패가 있다. 결정은 대통령이 하지만, 그 과정에 치열한 토론이 필요하다.
12-29(금) 쓰나미 몰려오는데 ‘한나땡’ 외치는 野
보선 패배 후 與는 혁신 몸부림
野 ‘이대로 쭉’ 외치며 변화 無
올해 마지막까지 여야는 대립
정치 교체 요구 목소리 높아져
惡貨가 良貨를 구축하는 모양
천수답 정치로는 민심 못 얻어
연말연시가 되면 기업들은 대대적 인사와 더불어 신년 계획을 짜는 데 여념이 없다. 유능한 CEO라도 한 해 시장에서 실패하면 여지없이 책임을 져야 한다. 수익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매년 말이면 두둑한 보너스를 받아 부러움을 샀던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직원들은 올해 반도체 불황에 연말 보너스가 ‘0’이라고 한다. 그만큼 기업은 냉혹하고 내년에는 매출 회복을 위해 신제품을 개발하고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런데 민심을 먹고 사는 정치권이 이에 가장 둔감한 것은 황당하다. 선거에서 패배한 뒤에야 뼈를 깎는 반성을 한다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잊어버린다. 지난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국민의힘은 김기현 대표가 사퇴하고, ‘윤핵관’ 장제원 의원이 불출마하는 등 큰 변화가 있었다. 1973년생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등장은 30대 이준석 전 대표 당선보다 더한 정치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야말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식이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반면, 압도적인 승리를 한 더불어민주당은 ‘이대로 쭉’만 외치고 있다.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최고위원들이 돌아가며 한 위원장을 비난하고 여전히 ‘한나땡(한동훈이 나오면 땡큐)’을 경쟁적으로 외친다. 그나마 이재명 대표 측근인 정성호 의원은 “한나땡이라고 하는 것은 1차원적 사고”라며 “수평선 너머에서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 파도만 보지 말고 그 너머 바람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지만, 소귀에 경 읽기다. 예전 친박·진박 감별이 지금 민주당에서 친명·진명 논쟁으로 부활하고 있다. ‘뜨거운 물속의 개구리’처럼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는데도 자신의 운명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2023년 마지막까지도 ‘김건희 특검법’을 야당이 단독 처리한 것처럼 올 한 해는 민생과 법치는 온데간데없고 방탄, 사법 리스크, 단독 처리, 특검, 신당 창당 등의 말만 무성했다. 국회가 민생 회복과 국가 발전에 되레 발목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이면서 정치판 자체를 갈아엎는 근원적인 ‘정치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욕구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요구가 2024년 4·10 총선을 계기로 분출할 가능성이 크다.
선거 승패는 절대 평가가 아니라 상대 평가로 결정된다. 늘 여야를 비교하기 마련이다. 여당은 한동훈 비대위 체제가 들어서면서 혁신의 물꼬를 트고 있지만, 야당은 그 반대다. 워낙 정치예비군이 많다 보니 외부인사 영입도 시들하다. 한 위원장이 86 기득권 정치 청산을 주장한 바로 다음 날 민주당은 86 운동권 출신의 ‘반미 자주파’인 박선원 전 국정원 1차장을 인재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늘 그 진영에 있었는데 인재 영입이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절대 변하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이 대표는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 파기에 이어 선거제 약속도 파기할 조짐이다. 이제 이 대표가 무슨 말을 해도 “진짜 그런 줄 알았느냐”는 비아냥만 들린다. 여의도를 제발 떠났으면 하는 의원들은 필사적으로 공천을 노리는 반면, 그나마 합리적이라고 평가받던 초선의 경제전문가 홍성국, 판사 출신 이탄희, 소방관 출신의 오영환 의원은 정치의 환멸을 느끼며 불출마 선언을 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셈이다. 신진들은 떠나는데 7080인 박지원, 정동영 등은 컴백을 노린다.
이 대표는 일주일에 2∼3회 서초동 법원으로 출근하는데 한동훈 위원장은 여의도의 최대 관심 인물이 되고 있다. 동교동계와 전직 총리 3인방(이낙연·정세균·김부겸)의 원심력은 갈수록 커지는 형국이다. 이들의 만남은 잦아지는데 이 대표의 대화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만약 친명 공천이 노골화하면 이낙연 전 총리가 추진하는 신당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돈봉투, 코인, 고문치사 등 부정적 이미지들만 떠오르는데 그저 윤석열 정부의 실정과 ‘김건희 특검법’에만 사활을 걸고 있으니 답이 없다. 세대교체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당내에서는 친명 vs 비명 얘기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 모든 난제의 해법은 이 대표 본인만이 갖고 있다. 그러나 당 대표직, 계양을 지역구 의원직 등 그 어느 것 하나 내려놓기 힘들다. 상대방 실수만 기다리는 ‘천수답 정치’로는 민심을 얻기 어렵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