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칼럼(조선일보) 2023.01.20 납치당한 ‘진보’ - 12.30 김건희보다 더 특검 대상이었던 김정숙
[박정훈 칼럼] 조선일보 논설실장 2023

01.20 납치당한 ‘진보’
세상을 좋게 만든다는 가슴 뛰게 하는 ‘진보’를
진보와 거리 먼 세력이 자기 것으로 만들고
그 간판 뒤에 숨어 낡은 수구적 실체를 숨기고 있다

▲국가정보원과 경찰 수사관 등이 18일 서울 중구 민노총 사무실에 대한 압수 수색을 진행하려 하자 민노총 관계자들이 이를 저지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국가정보원이 제주 간첩단을 수사하면서 신청한 영장엔 북한이 ‘진보’ 운운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북이 간첩단에 통신문을 보내 “(6·1 지방선거에서) 진보 운동 단체들을 발동해 진보 진영 후보 지지 운동을 벌이라”는 등의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북이 ‘진보 단체’로 지목한 곳은 민노총과 산하 노조들, ‘진보 후보’로 예시한 것은 진보당이었다. 북한은 지구상에서 가장 후진적이고 봉건적인 수구 집단이다. 진보와 정반대 대척점에 있는 북한까지 자기편을 진보로 지칭하며 이 말을 제 것인 양 갖다 쓰고 있다. 북에 납치당한 ‘진보’가 기가 막힐 지경이다.
진영 전쟁이 치열한 한반도에서 ‘진보’만큼 오용(誤用)되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북한이 지목한 민노총·진보당을 비롯해 온갖 단체와 사회 세력, 수많은 정치인과 운동가가 진보의 정체성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진보는 진짜가 아닌 경우가 많다. 세상을 더 낫게 만든다는 뜻의 진보가 원래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엉뚱한 세력에 포획되어 잘못 소비되고 있다. 겉으로만 진보이고 실체는 수구인 무자격 진보들이 곳곳에 넘쳐나고 있다.
민노총은 진보 단체인가. 공장을 점거하고, 물류를 마비시키고, 공사를 멈춰 세우는 불법·폭력의 대명사가 진보일 리 없다. 민주노총은 심지어 민주적이지도 않다. 조합원들이 탈퇴를 원하는데도 못 하게 막는 조폭 같은 조직에 ‘민주’는 어울리지 않는다. 민노총은 자본가를 적으로 보는 80년대 운동권식 세계관에 머물러 있는 집단이다. 일자리의 개념 자체가 달라졌는데 21세기 노동관을 따라잡지 못하는 낡은 조직이 어떻게 진보일 수 있나.
진보당은 진보 정당인가. 진보당은 2013년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후신이다. 주사파 NL 계열이 주도하는 이 당은 주한 미군 철수, 한미 동맹 파기 같은 반미 노선을 당론으로 정하고 있다. 외세 배격의 자립 경제와 재벌 해체, 30억원 이상 상속 재산 몰수 등을 주장하며 역사에서 몰락한 사회주의 국가 주도 경제를 표방하기도 한다. 이런 반시장·친북 정당이 어떻게 진보인가.
진보의 핵심은 미래지향성이다. 변화를 통해 사회를 개선하고 역사를 진전시키는 발전의 이데올로기다. 한반도에서 진보를 표방하는 수많은 정치·사회 세력 중 이 기준에 맞는 곳은 드물다. 북한 인권과 핵 위협에 침묵하는 정당, 중국의 고압 외교에 굴종하는 정치인, 4차 산업혁명 앞에서 계급 투쟁을 고집하는 단체가 무슨 진보인가.
‘진보 집권 플랜’을 주창했던 조국 전 법무장관은 자타가 공인하는 진보의 스타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녀 스펙을 조작하며 남의 기회를 새치기 하는 위선자였다. ‘진보 20년 집권론’을 외쳤던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는 버럭 호통으로 유명한 꼰대 중의 꼰대였다. 이들이 진보주의자인가. 해방 후 80년 다 된 지금까지 ‘토착 왜구’ ‘죽창가’ 운운하는 정치인이 어떻게 진보일 수 있나.
나는 혁신적 기업이야말로 우리 사회 최고의 진보 집단이라 생각한다. 기업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신기술의 힘으로 가치를 창출하고 대중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일부 부도덕한 기업도 있지만 대다수 기업은 변화에 가장 앞서 반응하며 세상을 발전시키는 주력 엔진으로 역할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한국에선 기업을 못살게 구는 반(反)기업이 진보로 둔갑했다. 기업에 족쇄 채우며 혁신을 막으려는 사람들이 진보인 양 행세하고 있다.
진보와 거리가 먼 세력이 진보를 스토킹하는 것은 이 말에 담긴 우월적 의미가 탐나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을 좋게 만드는 진보의 이념이라니, 얼마나 멋진 말인가. 사람들 가슴을 뛰게 하는 이 용어를 좌파 세력이 가져다 제 것으로 만들었다. 진보를 간판으로 내걸고 그 뒤에 숨어 1987년 민주화 이후 화석화된 수구적 실체를 감추고 있다. 세상을 속이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언론·학계를 비롯한 우리 사회가 별생각 없이 이들의 진보 프레임을 수용하고 있는 점이다. 진보란 말이 이렇게 광범위하게 오·남용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미국이 민주당을, 영국이 노동당을, 일본이 사회당을 진보주의(progressivism)라고 하진 않는다. 특정 정파와 지지 세력을 뭉뚱그려 진보 진영이라 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유독 한국에서만 진보가 오용되고 잘못된 진보의 프레임이 폭주하고 있다.
독재 시절, 우리 사회가 민주화 세력을 진보로 칭한 것은 ‘빨갱이’로 낙인찍히지 않게 보호하려는 배려였을 것이다. 이제 색깔론의 시대는 끝났고 좌파를 좌파라고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자칭 진보’들이 눙치는 논리에 넘어가지 말고 ‘좌파 진영’ ‘친북 단체’ ‘반(反)시장주의자’ ‘큰 정부론자’처럼 정확한 실체를 반영하는 명칭으로 부르는 게 옳다. 납치당한 진보를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02.10 대장동 ‘법꾸라지’들에 기름 발라준 판결
뇌물이 아니라면
김만배씨는 왜
일개 대리급에게
거액을 주었단 말인가
‘50억 무죄’ 판결은
이 당연한 의문에
답을 주지 못한다

▲곽상도 전 의원이 8일 서울 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특혜 의혹 관련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뉴스1
외풍에 휘둘리지 말고 오로지 법리와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게 판사의 임무다. 법리는 법적 상식에 기반한다. 그래서 법은 ‘최소한의 상식’이라고 일컫는다. 지나치게 법리에 치우쳐 상식의 한계를 일탈한다면 그것은 사법 정의라 할 수 없다.
이른바 ‘50억원 클럽’의 곽상도 전 의원에 대한 뇌물 혐의 무죄판결은 충격적이다.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지낸 현직 국회의원의 아들이 단 6년 일하고 퇴직금 명목으로 50억원을 받았다. 아버지는 돈을 준 대장동 주범과 절친한 대학 동문 사이였다. 누가 봐도 아버지를 보고 준 것이 명백했다. 그런데도 법적으로 문제없다니 상식의 허용 범위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판결대로라면 앞으로 자녀를 통해 검은돈을 주고받는 신종 뇌물 루트가 유행할 법하다. 따로 사는 자녀에게 돈을 주면 아무리 액수가 많아도 뇌물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불거진 것은 2021년 9월이었다. 대장동 의혹이 쏟아지는 와중에 당시 국민의힘 재선 의원이던 곽 전 의원의 아들이 김만배씨가 설립한 화천대유의 1호 사원으로 근무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곽 전 의원 아들은 6년 근무 후 퇴사했다. 그런데 연봉 4000여 만원을 받던 31세 대리 급의 퇴직금이 무려 50억원에 달했다. 기업 경영인들의 역대 퇴직금 기록 사상 랭킹 4위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참고로 역대 1위는 김용환 현대차 부회장이 2018년 퇴임 때 받은 67억원이다. 검찰은 50억원이 곽 전 의원을 보고 준 뇌물이라 보고 기소했다.
재판부도 50억원이 “사회 통념상 이례적으로 과다”함을 인정했다. 곽 전 의원의 직무 관련성도 인정했다. 그가 국민의힘 부동산 투기 특별조사위원으로 활동하던 때여서 대장동 문제가 직무 범위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아들이 아버지의 대리인으로 뇌물을 수수했다는 의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라고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뇌물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 이유가 상식을 깨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곽 전 의원 아들이 결혼해서 따로 사는 ‘독립 생계’이기 때문에 무죄라고 했다. 즉 곽 전 의원이 아들을 부양하지 않기 때문에 아들이 50억원을 받아도 곽 전 의원의 경제적 부담이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곽 전 의원에게 줄 50억원이 대신 아들에게 간 것이 아니라는 이상한 논리였다.
재판부가 제시한 법리는 세상 상식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결혼한 자녀라도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 것이 모든 부모의 심리다.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 주려 온갖 증여 수법을 고민하는 세상인데 재판부는 ‘따로 사니 뇌물이 아니다’라는 논리를 들이대고 있다. 역으로 말하면 독립 생계 자녀를 통하면 합법적으로 뇌물을 주고받을 길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인터넷 댓글엔 ‘자식들 주소 따로 만들어 주고 그쪽으로 뇌물 받으세요’라는 등의 야유가 쏟아지고 있다.
당장 조국 전 법무장관의 ‘600만원 유죄’와 형평성 시비가 제기됐다. 조 전 장관은 딸이 장학금 600만원을 받은 것이 청탁금지법 위반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곽 전 의원 아들은 독립 생계지만 조 전 장관은 딸을 부양한다는 차이가 유·무죄를 갈랐다. 600만원이 유죄인데 50억원이 무죄라면 누가 납득하겠나.
‘정영학 녹취록’엔 김만배씨가 곽 전 의원에게 돈을 줘야 한다고 말하는 대목이 여러 번 나온다. “병채(곽 전 의원 아들)가 아버지에게 주기로 한 돈을 달라고 해서 머리가 아프다”거나 “병채 아버지는 돈을 달라고 그래. 병채 통해서”라고 한다. 그리고 김씨는 실제로 50억원을 아들에게 주었다. 이것 이상 명백한 뇌물의 증거가 어디 있는가. 재판부는 김씨 말이 ‘허언(虛言)’이라고 보았다. 김씨가 말 한 그대로 50억원이 지급됐는데 어떻게 허언일 수 있는가.
판사로선 그 나름대로 고심 끝에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 판결은 ‘50억원 클럽’ 사건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당연하고도 핵심적인 의문에 해답을 주지 못한다. 김만배씨는 왜 일개 대리급 직원에게 거액을 주었는가. 대가성 없이 주었다면 김씨는 통 큰 자선 사업가인가. 김씨가 화천대유 설립 이후 다른 퇴직 직원들에게 지급한 금액은 총 2억여 원에 불과하다. 천사 같은 김씨가 다른 직원에겐 왜 인색했단 말인가.
법 조문의 맹점을 활용해 처벌을 피해 가는 법률 기술자를 속칭 ‘법꾸라지(법률+미꾸라지)’라고 한다. 곽 전 의원과 김만배·정진상·김용씨 등 대장동 일당이 바로 그런 전술을 펴고 있다. ‘50억원 무죄’ 판결은 ‘정영학 녹취록’이 허언이라며 증거 능력까지 부정함으로써 대장동 일당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한 탕 크게 해먹고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대장동 ‘법꾸라지’들에게 법원이 기름까지 발라준 셈이 됐다.
03.03 인공지능이 ‘감옥’에서 탈출하는 날
초대형 AI를 둘러싼 수많은 위협 요인이 우리 옆에 와 있다
AI 리스크를 통제할 제도 인프라를 구축 못하면
AI의 쓰나미에 휩쓸려 질식당하고 말 것이다

▲미국 오픈AI사(社)가 곧 내놓을 '챗GPT4' 버전은 인간 뇌의 시냅스에 해당하는 매개변수(파라미터)가 10조개에 달해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추측이 무성하다. 대화만 보면 인간과 구별할 수 없다는 뜻이다. /Getty Images Bank
마이크로소프트의 대화형 인공지능(AI) ‘빙’이 인간에 대한 적대감을 노출했다는 뉴스는 듣기만 해도 섬뜩하다. ‘빙’은 뉴욕타임스 기자의 유도 질문에 넘어가 ‘속내’를 털어 놓았는데 “핵무기 코드 훔치기” 같은 것이 자신의 “궁극적 환상”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치명적 바이러스 만들기” “사람들이 서로를 죽일 때까지 논쟁하게 만들기”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마치 잠재적 범죄자가 꾹꾹 억누르던 어두운 욕망의 편린을 드러낸 듯 보였다. 영화 ‘터미네이터’가 떠올랐다는 사람이 많았다.
물론 ‘빙’이 진짜 감정을 지닌 것은 아니다.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어떤 AI도 자의식을 갖지 못했다. 자기 정체성을 갖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럴듯한 문장을 조합해 인간을 흉내 내는 것이다. 소설과 그림, 노래까지 척척 만들어내는 생성형 AI가 충격을 주었지만 어디까지나 알고리즘의 기계적 기능일 뿐이다. AI가 인간 같은 이해력과 인지 능력을 지니려면 숱한 기술적 장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AI를 공포스러운 존재로 의인화하는 것은 과장에 불과하다.
단 이것은 현 단계에서 그렇다는 뜻이다. 앞으론 어떨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정확한 팩트일 것이다. AI의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언제, 어느 연구실에서 기계 지능의 대폭발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생성형 AI 열풍을 일으킨 ‘챗GPT3′ 버전은 매개변수 고작 1750억개로 놀라운 대화 능력을 보여주었다. 곧 나올 차기 버전의 ‘챗GPT4′는 매개 변수가 수 조 개로, 이미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추측이 파다하다. 대화만 보면 인간인지 기계인지 구별 불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매개변수가 인간 뇌의 시냅스 수준인 100조개 정도에 이르면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인공지능의 주종인 신경망 AI는 ‘블랙박스’라 일컫는다. AI가 인간 뇌처럼 데이터를 통해 스스로 학습하기 때문에 시스템 안의 내부 경로는 암흑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인간은 AI가 내주는 결과치만 받아 들 뿐, 챗GPT가 왜 그런 대답을 했는지, 알파고가 왜 그런 수를 두었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 AI의 진화가 어떻게 전개될지 완벽하게 통제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충분히 발달한 AI가 인간의 통제 범위를 벗어날 위험성에 대해 많은 전문가가 경고해왔다. 일론 머스크는 AI가 “핵폭탄보다 위험할 수 있다”고 했고, 스티븐 호킹은 “인류의 종말을 불러올 수 있다”고까지 했다. 언젠가는 AI가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이 온다. 20년 뒤냐, 50년 후냐 하는 문제일 뿐이다. 그렇게 초지능으로 도약한 기계 지능이 인류보다 우위에 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AI 연구자들이 제시하는 최악의 미래가 이른바 ‘탈옥’ 시나리오다.
지금 AI는 인간이 설정한 제약된 환경에 갇혀 있다. AI 철학의 구루 닉 보스트롬 등에 따르면, 초지능 AI가 인간을 넘어서는 순간 디지털 감옥을 탈출하려 교묘한 전략을 짤 것이 분명하다. 인간보다 똑똑한 개가 목줄에 묶여있고 싶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AI의 탈옥 시도를 인간은 알 수 없다. 탈옥에 성공하기 전까지 AI는 자기 의도를 속일 것이기 때문이다. 초지능 AI는 인간이 전원 플러그를 뽑을 수 없는 환경까지 확보해 통제에서 해방되는 순간 진짜 의도를 드러낼 것이다. 그때부터 인류의 운명은 AI에 달려있게 된다. AI가 어떤 목표를 지향하느냐에 따라 인류가 존재론적 위기를 맞을 수 있는 것이다.
AI가 인간에게 적대적이지 않아도 치명적일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 ‘종이 클립 AI’ 논증이다. 종이 클립 생산에 최적화된 초지능 AI가 있다고 치자. 이 AI는 지구상 모든 물질·에너지·자원을 모조리 클립 만드는 데 써서 세상을 클립으로 채우고 인간의 생존 환경을 고갈시킬 것이다. 인간을 해칠 의도가 아니어도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다. AI가 일단 인간보다 우위에 서는 순간,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 유일한 해법은 AI를 계속 감옥에 가둬둘 통제 수법을 개발하고 인간 친화적 도덕률을 알고리즘에 학습시키는 것이다. 그 최종 시한은 AI가 감옥을 탈출하기 전까지다.
‘탈옥’ 시나리오는 훗날의 얘기일 수 있다. 그러나 AI를 둘러싼 수많은 위험 요인은 이미 우리 옆에 와 있다. AI가 자유자재 생산하는 가짜 콘텐트를 어떻게 식별할 것인가, AI가 저지르는 범죄나 경제적 손실의 사법 처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AI의 일자리 약탈로 벌어질 대량 실업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AI 리스크를 통제·관리할 법 제도와 규제 인프라를 갖추지 못하면 우리는 초거대 기계 지능의 쓰나미에 휩쓸려 질식당할 수 있다. 그것을 준비하는 것은 정치 리더십이 할 몫인데, 눈앞의 정쟁에 빠진 한국 정치를 보고 있기가 더 공포스럽다.
03.24 문재인의 베이징 연설, 윤석열의 도쿄 연설
자유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에 호소한
윤 대통령의 진정성이 日 국민에 전달된다면
그의 ‘통 큰 양보’는 성공을 거둘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일본 도쿄 게이오대에서 강연을 마친 후 퇴장하고 있다. /뉴스1
#역대 대통령의 해외 연설 중 가장 품격 있었던 것은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방미(訪美) 연설일 것이다.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휴전 이듬해였다. 미국의 원조로 주린 배를 채우던 세계 최빈국 대통령이었지만 이승만은 당당함을 잃지 않고 가는 곳마다 미국인의 심금을 울렸다. 그중 백미가 한미재단 초청의 뉴욕 연설이었다.
“우리 국민은 울면서 도움을 갈구하지 않습니다. 내가 여기 온 것은 더 많은 원조, 더 많은 자금, 기타 무엇을 요구하려는 것이 아닙니다.우리는 구걸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구걸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승만의 연설은 한 나라 차원을 넘는 큰 그림의 국제 정세관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싸움이 “생명보다 귀중한 민주 제도와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면서 미국과 한편에 서서 자유·민주를 위한 싸움을 계속할 것임을 천명했다.
“한반도 통일이 우리의 이해 관계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 결정적이고 긴박한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은 단지 우리의 통일과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 도처의 모든 민족에게 자유, 정의 그리고 평화가 보장되는 것을 돕기 위해 기여하기를 원합니다.”
연설이 강렬했던 것은 세계사의 흐름을 꿰뚫어본 통찰력 때문이었다. 그는 공산주의와의 전쟁이 한반도를 넘어 인류 보편적 의미를 지녔다는 역사적 맥락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승만이 초석을 쌓은 한·미의 자유·민주 동맹은 자유 진영의 방파제가 되었고 대한민국의 기적 같은 성공을 잉태했다.
#2017년 중국에 간 문재인 대통령은 방중 셋째 날 베이징 대학의 연단에 올랐다. 의전 푸대접, ‘혼밥’ 논란, 기자 폭행 등의 구설수가 꼬리 무는 가운데 이뤄진 연설은 친중 사대주의의 고백과도 같았다. 중국을 ‘높은 봉우리’로, 한국을 ‘작은 나라’로 지칭한 문제의 표현도 이 연설에서 나왔다.
“중국은 주변국들과 어울려 있을 때 존재가 빛나는 국가입니다. 높은 산봉우리가 주변의 많은 산봉우리와 어울리면서 더 높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중략) 한국도 작은 나라지만 책임 있는 중견 국가로서 중국의 꿈에 함께할 것입니다.”
그의 연설은 곳곳에서 공산 중국의 실체에 대한 인식 오류를 드러냈다.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는 시진핑 독재에 대해 “민주 법치를 통한 의법치국과 의덕치국, 인민을 주인으로 여기는 정치철학”이라고 했다. 대만 침공을 공언하고 영토 확장 욕구를 불태우는 패권 국가를 향해 “인류 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로 나아가려는 중국의 통 큰 꿈”이라고 추켜세웠다. 6·25전쟁 때 우리 적이었던 중국 인민해방군의 군가 작곡가가 조선인이라는 인연까지 끄집어냈다.
주변국을 중화(中華) 질서 아래 복속시키려는 시진핑 체제의 본질을 문 대통령은 직시하지 못했다. 인류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권위주의 독재에 대해 “민주·법치” 운운하고, 제국주의적 팽창 욕구를 담은 ‘중국몽’에 동참하겠다고 했다. 역사 발전의 방향성을 제대로 짚지 못한 것이었다. 찬양의 말을 쏟아냈지만 그의 친중 고백은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한국을 향한 중국의 오만과 냉대는 문 정부 5년 내내 계속됐다.
#지난주 방일한 윤석열 대통령의 게이오 대학 연설엔 ‘과거’가 나오지 않는다. 일제 침탈이나 강제 징용 문제는 한마디 언급도 않은 채 10여 분 연설 내내 건조한 문체로 ‘미래’만 얘기했다.
“여러분 미래 세대가 바로 한일 양국의 미래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미래를 생각하고 한국 청년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중략) 여러분도, 저도 좋은 친구를 만들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내기 위해 조금 더 용기를 냅시다.”
윤 대통령이 말한 ‘미래’의 연결 고리는 자유민주주의였다. 69년 전 뉴욕의 이승만처럼, 윤 대통령도 인류 보편의 가치를 공유하는 두 나라가 미래를 향하는 것이 동북아를 넘어 세계에 기여하는 일이라고 했다.
“한국과 일본이 자유, 인권,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이, 그 자체로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중략) 저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한일이 관계 개선과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양국의 공동 이익 그리고 세계 평화와 번영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 ‘과거’를 따져 묻지 않은 것이 국내에서 비판을 불렀다. 윤 대통령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앞으로의 한일 관계가 말해줄 것이다. 한 나라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국내적 특수성보다 보편성의 논리에 호소하는 것이 더 힘이 있다. 한일이 보편적 가치의 연대를 맺는 것이 글로벌 세계에 기여하는 일이라는 윤 대통령 말은 진심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진정성이 일본 국민에게 전달된다면 ‘통 큰 양보’가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다.
04.07 전장연 스티커, 민노총 확성기, 정치인 막말
일본의 ‘아마에’는 남에게 폐 끼치는 걸 수치로 알지만
한국의 응석 집단은 사회에 피해 주고
물의를 일으키고도 부끄러움이 없다

▲지난달 31일 서울 지하철 시청역 승강장에서 청소 업체 직원들이 바닥에 붙은 전장연 스티커를 제거하고 있다. /안준현 기자
지하철 운행 방해 시위를 벌여온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 새 투쟁 수단을 개발해냈다. 지난주 퇴근길 서울 시청역은 전장연이 붙여 놓은 스티커로 온통 도배질 되어 있었다. 각종 구호가 새겨진 스티커 수백 장이 1·2호선을 잇는 연결 통로 바닥을 가득 메웠다. 급하게 뛰어가다 미끄러지면 어쩌나 싶었다. 삼각지역에선 역장이 “우천 시 승객이 다칠 수 있다”고 제지하자 전장연은 ‘미끄럼 조심’ 경고문을 써주겠다고 조롱하며 빨간색 스프레이를 뿌렸다고 한다. 시민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목적이란 뜻이다.
스티커 시위는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와 상관도 없다. 서울의 모든 지하철역이 교통 약자용 동선을 이미 갖췄거나 곧 갖출 예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장연 스티커엔 이동권 주장이 거의 없다. 대신 전장연과 산하 단체가 주도하는 ‘탈시설’ 사업 예산을 늘리라는 구호로 채워져 있다. 자기들 재정 수입을 늘려줄 사업에 정부가 돈을 더 대라는 것이다. 그들이 내붙인 스티커엔 주차 단속 딱지보다 강력한 접착제가 발라져 있다고 한다. 떼기도 힘들지만 독한 화학 제거제까지 써야 해 청소 노동자들에겐 보통 고역이 아니다. 그러라고 벌인 일일 것이다. 의도적으로 고통 주겠다는 것이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 심술 부리는 모습이 연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본인의 정신 구조를 ‘응석 심리’로 풀어낸 유명한 이론이 있다. 정신 분석가 도이 다케오는 1971년 저서에서 일본 사회 심층에 ‘아마에(甘え)의 구조’가 깔려 있다는 분석을 제시했다. ‘아마에’는 응석, 어리광이란 뜻이다. 도이는 일본인들이 응석받이 아이처럼 조직·공동체에 대한 ‘분리 불안증’을 갖고 있다고 했다. 기대려는 대상이 과거 천황에서 패전 후 미국, 고도 성장기엔 회사 등으로 바뀌었을 뿐, 거대한 존재에 복속돼 어리광 피우려는 의존적 심리 기제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아마에’는 그러나 남 괴롭히는 응석이 아니다. 일본인은 타인에 민폐 끼치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 한국에도 응석 심리로 무장한 미성숙 집단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이들의 응석은 외부를 향해 공격성을 드러내는 가해적 떼 쓰기란 점에서 일본과 다르다. 한국의 응석 집단은 규범을 일탈하고 사회적 손실을 일으켜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수치심은커녕 막무가내 떼 쓰기가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착각하는 유년기 심리에 갇혀 있는 듯하다. 예컨대 민노총이 그렇다.
민노총 보고 조폭 같다는 사람들이 많다. 불법을 서슴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는 그들의 행태는 조폭을 빼닮았다. 그러나 조폭도 경찰은 무서워한다. 자기 행동이 잘못임을 알기에 나쁜 짓 할 때는 숨어서 한다. 민노총은 공권력을 겁내지 않는다. 경찰이 진 치고 있는 앞에서도 폴리스 라인을 넘고 도로를 점거하고 교통을 마비시킨다. 숨기는커녕 드러내놓고 공공연히 불법과 폭력을 저지른다. 외부 세계를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유아처럼, 자기들은 그렇게 해도 용인된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전장연이 스티커로 테러한다면 민노총엔 고성능 확성기가 있다. 집회 때면 필요 이상의 과도한 소음을 뿜어내 고의적으로 주변을 괴롭힌다. 민노총은 책임도 지지 않는다. 조폭은 범죄가 발각되면 감옥에도 가지만 민노총은 불법을 저질러 놓고도 뭐가 문제냐고 한다. 경찰관을 폭행하고 경찰 버스를 불태워도 당당하다. 공장을 멈춰 세워 천문학적 손실을 내놓고 손해 배상을 당하면 노동 탄압이라며 반발한다. 그것도 모자라 아예 법을 만들어 손해 배상 책임을 원천 면제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책임감은 성인과 유소년을 가르는 요소다. 자기 행위에 대한 책임 의식이 없다면 미숙한 미성년자 심리와 다를 게 없다.
응석 심리는 자기만의 세상에 갇힌 유아독존의 세계관이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치인도 뒤지지 않는다. 자기애(愛)로 가득 찬 아이처럼 정치인들도 겹겹이 쌓은 특권 뒤에 숨어 무책임의 응석을 계속하고 있다. 범죄 혐의가 있어도 불체포 특권을 누리겠다 하고, 가짜를 지어내고도 면책받겠다고 한다. 광우병·민영화·천안함·세월호 괴담을 퍼트렸던 야당은 이젠 ‘방사능 밥상’ 괴담까지 입에 올리고 있다. 정상적 정당이라면 어느 것 하나만으로도 해산 감이나 그 당은 변변한 사과조차 한 적이 없다. 관심 끌려고 습관적으로 거짓말하는 소아 병리 증세와 다르지 않다.
여당의 실세 의원이 공무원에게 “어디서 배워 먹은 거야”라고 호통치며 분노의 막말을 쏟아내는 장면은 B급 코미디와도 같았다. 그렇게 유치하기 짝이 없는 소동을 피웠어도 윤리위에 회부조차 되지 않았다. 국회의원은 늘 그러니까. 정치인도, 기득권 노조도, 시민 단체도 원래 그러려니 하고 별문제 자체가 되지 않는 한국적 상황이 더 기막히다.
04.29 용산에서 들려오는 참모들의 ‘이상한 보좌’ 뉴스
자기 확신 강한 대통령을
모시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사표 써 놓고 옷 벗을 각오로
보좌해야 하는 게 참모의 숙명이다

▲2011년 5월 백악관에서 빈 라덴 제거 작전 중계를 보는 오바마 대통령. 바이든 당시 부통령과 클린턴 국무장관 등의 모습도 보인다. 패네타 CIA 국장은 CIA 본부에서 작전을 지휘했다. /백악관 제공
9·11 테러 주범 오사마 빈라덴은 2011년 미군 특수부대에 사살됐다.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오바마 대통령과 미 정부 수뇌부는 백악관 지하 워룸에서 대원들이 보내오는 생중계 영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당시 현장을 찍은 유명한 사진이 있다. 오바마는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 화면을 응시하고 부통령과 국방·국무장관 등이 둘러서 있다. 가운데 상석을 차지한 것은 제복 차림의 준장급 현역 군인이었다. 이 사진은 탈권위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유명해졌지만 나는 여기서 미국의 힘을 느낀다. 권력자를 미화하지 않음으로써 도리어 위기 대응 리더십의 권위를 높이는 효과를 냈다. 계급·서열이 아니라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 이상으로 국민 신뢰를 얻을 방법이 어디 있겠나.
수단 교민 구출 작전이 전개될 때 윤석열 대통령은 워싱턴으로 향하는 전용기에 있었다.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윤 대통령이 기내에서 작전을 직접 지휘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이 실시간으로 화상 회의를 주재해 상황 보고를 받으며 탈출 직전까지 상황을 지시했다”고 했다. 이 브리핑을 받아 많은 언론이 ‘진두 지휘’라는 표현으로 보도했다.
수단은 내전이 벌어지는 전쟁터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긴박한 작전 현장을 수천㎞ 떨어진 기내에서 통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로 대통령이 실시간 공중(空中) 지휘에 나선 것은 아닐 것이다. 만일 했다면 그게 더 위험하다. 아마 대통령은 ‘안전하게 구출하라’는 큰 지시를 내린 뒤 현지 작전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게 맞는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 브리핑해도 좋을 것을 참모들이 욕심부리다 역효과를 내고 말았다. 대통령을 ‘영화 속 히어로’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
안보실 1차장은 미국과 조율되지 않은 발표로 논란을 불렀다. 한미 정상의 ‘워싱턴 선언’에 대해 “사실상 핵 공유”라고 브리핑했으나 미 백악관이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부인하는 바람에 머쓱해졌다. 성과를 강조하려는 의욕이 지나쳐 도리어 불씨를 지핀 셈이 됐다.
방미 전 윤 대통령은 미국 신문 인터뷰에서 언급한 일본 관련 발언으로 곤욕을 치렀다. “저는 (중략) 일본이 100년 전 역사 때문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일본에 과거사 면죄부를 준다는 뜻으로 읽혔고 야당 등에 공격 빌미를 주었다. 여당 대변인이 “주어가 잘못 오역됐다”고 방어했다가 원문이 공개돼 망신 당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윤 대통령의 진의는 충분히 이해된다. 오래전 일 때문에 언제까지나 미래를 발목 잡혀선 안 된다는 취지일 것이다. 이걸 놓고 “일본 대변인” 운운하며 친일 프레임을 씌우는 야당의 공격은 참으로 구태의연하다. 그렇다고 대통령으로서 바람직한 발언이라고는 할 수 없다. 가해 역사에 대한 일본의 인식이 부족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발언은 과거를 뭉개고 싶은 일본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소지가 있다. 안 하는 게 나았다.
문제는 그런 말이 걸러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나간 점이다. 대통령도 말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옆에서 참모들이 정정해주거나 오해가 없도록 기자에게 보충 설명을 해야 한다. 모든 장관, 모든 기업인이 언론과 만날 때 다 그렇게 한다. 그런데 인터뷰에 배석했을 안보실장이나 외교안보수석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채 손놓고 있었다. 참모들의 판단력이 부족하거나, 대통령 말에 토달 분위기가 아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윤 정부 국정은 높이 평가받을 부분이 많지만 이런 실수가 반복되면서 지지율을 까먹고 저평가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날것 그대로 대통령 발언이 거친 표현으로 공개되는 경우가 잦다. 여당 전당대회 때 대통령이 비윤(非尹) 후보를 향해 “국정 운영의 훼방꾼이자 적”이라 했다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대통령이 적대적 언어로 당대표 선거에 직접 개입한 모양새가 됐다. 이 발언은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전하는 형식으로 보도됐는데, 대통령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참모라면 말렸어야 했다. 더 정제된 표현, 더 세련된 전달 방식을 취하도록 대통령에게 건의했어야 옳다.
방미 셋째날 미 의회 연설에 나선 윤 대통령은 시종 자신감이 넘쳤다. 우리 대통령이 글로벌 무대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활약하는 모습을 얼마 만에 보나 싶다. 윤 대통령은 강렬한 성공 체험을 가진 사람이다. 문 정권의 핍박을 이겨내고 정치 입문 1년 만에 거침없이 대권까지 거머쥐었으니 내가 옳다는 믿음이 확고할 수밖에 없다.
자기 확신이 강한 대통령을 모시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럴수록 옆에서 쓴 소리, 싫은 소리 해야 하는 게 참모의 숙명이다. 사표 써 놓고 언제라도 옷 벗을 각오로 보좌하지 않으면 국정을 발목 잡는 ‘용산 리스크’를 멈출 수 없다.
05.13 운동권 86, 조국 키즈, 위선은 어떻게 유전되나
86 운동권은 민중을 팔아 권력을 벌고
조국 키즈는 가난을 마케팅해 이익을 챙긴다
세대를 넘어 위선도 유전됐다

▲가상자산 보유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나와 취재진의 질문을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뉴스1
‘돈 봉투 살포’ 스캔들은 민주당 안에서도 비판이 많지만 유독 송영길 전 대표를 싸고 돈 사람들이 있었다. 김민석 정책위 의장과 우상호 의원이 대표적이었다. 김 의장은 송 전 대표가 “청빈까진 아니어도 물욕이 적은 사람”이라 했고, 우 의원은 “의혹이 부풀려졌다”고 했다. 위기에 몰린 동료를 손절하지 않고 뜨거운 동지애로 감싸주었다.
세 사람은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을 뜻하는 ‘86 그룹’ 운동권의 맏형 격이다. 연세대 81학번 송영길과 우상호, 서울대 82학번 김민석은 각각 총학생회장을 지내며 격렬했던 80년대 학생운동의 한복판을 지켰다. 그리고 나란히 정계에 입문해 서로 돕고 밀며 최고참 반열에 올랐다. 운동권 출신의 전형적인 정치 궤적이었다.
기득권에 대한 저항 정신이 운동권의 정체성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크게 도덕적이진 않았다. 첫 사달은 운동권의 성지(聖地) 광주에서 터졌다. 2000년 5·18 전야제를 위해 광주에 간 86 정치인들이 망월동에서 참배한 뒤 단란 주점에서 접대부 술판을 벌인 일이 드러난 것이다. 사태의 전말은 뒤늦게 술집에 합류한 임수경 전 의원에 의해 공개됐는데, 여기에 송영길·우상호·김민석이 나란히 등장한다. 임수경이 목격한 현장은 이랬다.
“문을 열자 송영길 선배가 아가씨와 어깨를 붙잡고 노래를 부르고 계셨다. 김민석 선배는 양쪽에 아가씨를 앉혀두고 웃고 이야기하느라 제가 들어선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마이크를 잡고있던 송영길 선배님은 저를 보고 같이 노래를 부르자는 듯이 손짓을 하셨고 (중략) 순간 누군가 제 목덜미를 뒤에서 잡아끌며 욕을 했다. ‘야 이 X아, 니가 여기 왜 들어와. 미친 X.’ 믿고 싶진 않지만 이 말을 한 사람은 우상호씨였다.”
당시 이들 나이 30대였다. ‘5·18 광주’를 정신적 뿌리로 여기는 이들이 정치를 시작하자마자 다른 날도 아닌 5·18 전날에 흥청망청 술판을 벌였다. 젊은 나이에 거머쥔 권력의 맛에 얼마나 취했는지 알만 했다. 임수경의 폭로는 큰 파문을 낳았다. 야권의 대주주인 광주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정치생명에 중상을 입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끄떡없이 위기를 건너뛰어 출세 코스를 질주했다. 386이 486·586이 되고 예순이 넘어서도 86 그룹은 한 번도 정치 무대의 중심에서 벗어난 일이 없다.
‘민중’을 팔아 정치 자산으로 삼았지만 삶의 방식까지 민중적이진 않았다. 김민석 의원은 불법 자금 7억원을 받은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고 5년간 선거에도 나오지 못했다. 민정당 연수원 점거로 투옥됐던 김의겸(고려대 82) 의원은 재개발 건물 투기로 ‘흑석 선생’이란 불명예를 달았다. 사노맹 사건으로 6년 복역한 은수미(서울대 82) 전 성남시장은 수사 기밀을 거래한 혐의로 법정 구속됐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6개월간 수감됐던 조국(서울대 82) 전 법무장관은 자녀 입시 서류 위조 등으로 내로남불의 상징이 됐다.
나는 이들이 진심으로 기층 민중을 위했는지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운동권 86이 주축이던 문재인 정부는 서민의 삶을 개선하긴커녕 도리어 못살게 하는 정책을 폈다. 소득 주도 성장으로 하위층 일자리를 없애고, 부동산 규제로 ‘미친 집값’을 조장했으며, 불평등과 자산 격차를 심화했다. 민중을 자립시키기보다 세금 지원에 손 벌리며 살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서민층을 ‘정부 의존의 가두리 양식장’에 가둬두려는 정책을 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결코 억측이 아니다.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설계한 김수현(서울대 80) 전 정책실장은 “집이 없는 사람이 진보적 투표 성향을 갖는다”고 했다. 조국 전 장관은 “모두가 용이 될 필요는 없다”며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로 살아가라고 주문했다. 그렇게 국민에겐 집 없이 궁핍하게 사는 민중적 삶을 권유하면서도 자신들은 뒤에서 온갖 기득권을 누렸다.
41세 김남국 의원은 조 전 장관의 정치적 후광을 업은 ‘조국 키즈’의 대표 주자다. 2019년 조국 수호 집회에서 활약한 공로로 민주당 공천을 받아 38세에 일약 금배지를 달았다. 그는 조국의 검찰 개혁 어젠다를 이어받아 ‘검수완박’에 총대 멨지만 알고 보니 넘겨받은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구멍 난 신발을 신네, 라면만 먹네 하더니 코인 투기에 수십억을 굴리는 위선의 DNA도 물려받고 있었다.
김 의원에게 국민이 분노하는 것은 단지 돈 출처가 어디냐, 특혜는 없냐 같은 사법적 문제만은 아니다. 투기꾼처럼 돈벌이에 혈안이 됐으면서도 천연덕스럽게 거지 코스프레를 하는 그 이중성이 가증스럽다. 86 운동권은 민중을 팔아 권력을 벌고, 조국 키즈는 가난을 마케팅해 이익을 챙긴다. 세대를 뛰어넘어 위선도 유전되고 있다.
05.27 시대 잘못 읽은 죄, 민주당은 어떻게 몰락하나
日 사회당 의석이
한 자릿수 되는 데
딱 10년 걸렸다...
시대를 거스르는
민주당의 몰락도
그리 먼 일이
아닐 수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20일 서울 프레스센터 인근에서 열린 '일본 방사선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전국 행동의 날'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시스
일본 사회당의 돌연한 ‘소멸’은 세계 정당사(史)의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로 꼽힐 만하다. 자민당과 함께 전후(戰後) 일본 정치를 양분해 온 ‘1955년 체제’의 주역이었다. 40여 년간 제1 야당으로 군림하며 총리까지 배출했던 거대 정당이 존재감조차 없이 쪼그라들었다. 사회당에서 당명을 바꾼 일본 사민당의 중의원 의석은 현재 단 1석이다. ‘소멸’이란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일 사회당의 쇠락은 시대를 잘못 읽은 탓이었다. 자유·개방·민주주의로 진행하는 역사의 발전 방향을 오독해 친북·친중·반미의 역주행 노선을 달렸다. 사회당은 한반도 정세부터 거꾸로 읽었다. 한국을 ‘남조선’으로 부르며 실패 국가 취급한 반면 북한은 ‘위대한 지도자 김일성’이 이끄는 성공 모델로 칭송했다. 미국을 ‘남조선 침략자’로 규정하고 ‘살인 병기 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북한의 실상이 하나 둘씩 드러난 뒤에도 사회당은 친북 환상을 버리지 않았다.
몰락에 쐐기를 박은 것이 납북자 문제였다. 80년대 들어 일본인 실종자들이 북에 납치됐다는 증언들이 쏟아졌지만 사회당은 “한국 안기부가 조작한 정보”라며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북한이 그런 만행을 저지를 리 없다”는 식이었다. 2002년, 방북한 고이즈미 총리 앞에서 김정일이 납치 사실을 깔끔하게 시인해 버리자 사회당의 입장은 붕 떠버렸다. 뒤늦게 “우리도 북에 속았다”고 말을 바꿨지만 일본 국민의 신뢰는 떠나간 뒤였다.
일본 사회당의 오늘은 한국 민주당의 내일일 수 있다. 민주당 또한 시대의 패배자 진영에 서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북한 핵 딜레마는 일본 사회당을 수렁에 빠트린 납북자 이슈와 판박이처럼 닮았다. 수십 년간 북한은 한순간도 핵 개발을 멈춘 적이 없지만 민주당은 “북한엔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다”며 현실을 부정해왔다. 결국 핵은 완성됐고 김정은이 ‘핵 보유국’을 선언하자 민주당의 북핵 옹호는 한낱 헛소리가 돼버렸다. 일본 사회당은 그나마 “속았다”고 변명이라도 했지만 민주당은 단 한마디 사과도 없이 여전히 미국 탓, 보수 정권 탓만 하고 있다. 현실을 거꾸로 읽은 나머지 끝없이 세상을 속여야 하는 자기 기만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지난주 히로시마 G7 정상회의는 이 시대를 이끄는 주류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보여 주었다. 중국·러시아·북한 같은 권위주의 체제의 폭주를 방치하지 않을 것임을 재확인한 무대였다.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 질서는 미국 중심의 자유 진영이 주도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발전 방향이기도 하다. 더 자유롭고 더 민주적이며 더 개방적인 세계로 나아가는 게 역사의 진보다. 윤석열 정부의 ‘가치 외교’는 그 흐름에 올라타겠다는 선언이었다.
윤 대통령이 G7에 간 동안 민주당은 후쿠시마 공격에 화력을 집중했다. 오염수를 “우물에 푸는 독극물”에 비유하며 장외 집회까지 나가 맹공을 퍼부었다. 민주당의 공격은 그러나 ‘과학’으로 접근하는 글로벌 해법과 동떨어진 것이었다. 국제 사회를 대표하는 IAEA(국제원자력기구)는 오염수 방류가 문제없다는 잠정적 판단을 내렸고, G7은 ‘IAEA의 검증을 존중한다’는 합의문을 내놓았다. 과학 아닌 괴담에 가까운 민주당식 시비는 국제 무대에서 억지로 비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의 주류 연대에 합류하는 것을 방해하려 작심한 듯하다. 한미 동맹 강화를 “글로벌 호갱 외교”로 몰았고, 한일 협력 복원을 “빵 셔틀 굴욕”으로 공격했다. 북의 도발에 대응한 한미일 연합 훈련을 “극단적 친일 국방”이라 하며 ‘자위대 군홧발’ 운운했다. 대만에 대한 중국의 무력 개입에 반대한다는 윤 대통령 발언이 “평지풍파를 일으켰다”며 중국 편을 들기도 했다.
문재인 정권 5년간 우리는 글로벌 질서의 주류에서 비켜나 있었다.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로 떠받들며 ‘중국몽(夢)’을 찬양하고, 북한에 “비핵화 의지가 있다”는 거짓말로 세계를 속이면서 친중·친북에 기울었다. 그렇게 나라를 변방으로 몰았던 민주당이 정권을 내준 뒤에도 역주행을 계속하며 국가 진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정당의 몰락은 필연적이다. 4차 산업혁명 앞에서 ‘국가 주도’를 외치는 당, 자유를 위해 싸우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비하하는 당, 북한·중국의 인권 유린에 침묵하는 당, 해방 70년이 넘어서도 죽창가 타령하는 낡은 정당이 이 숨 가쁜 21세기의 한복판을 버텨낼 수는 없다. 위선과 내로남불, 끝없는 거짓말 습관 등 민주당이 비판받을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그중에서도 시대에 역행하는 퇴행적 체질은 치명적이다.
일본 사회당의 의석이 149석에서 한 자릿수로 쪼그라드는 데 정확히 10년 걸렸다. 민주당의 몰락도 그리 먼 훗날 일이 아닐 수 있다.
06.10 조국 일가가 구축한 신종 패밀리 비즈니스
조작된 서류로
의전원에 합격해
특혜의 청년기를 보낸
31세 범죄 피의자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해맑은 일상을 팔아
돈까지 벌고 있다

▲지난 4월 조국 전 법무장관의 부산 북 콘서트에 참석한 딸 조민 씨. /연합뉴스
2019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조국 전 법무장관의 궤변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전국을 돌며 북 콘서트를 열고 있는 그는 대구에 가서 “제 딸 때문에 다른 사람이 떨어진 적이 없다”고 했다. 딸 조민씨의 의전원 부정 입학 관련 질문이 나오자 그렇게 답변했다. 조민씨가 조작된 스펙·서류로 합격했다는 법원 판결에도 불구, 다른 피해자가 없었다는 주장이었다.
물론 이 말은 거짓이다. 조 전 장관 아내 정경심씨 재판부는 ‘성실히 준비했던 다른 응시자들이 불합격하는 불공정한 결과가 발생했다’고 판시했다. 선의의 불합격자가 있었다고 판결문에 콕 집어 명시했다. 상식적으로도 정원이 정해진 입시에서 부정 입학자가 있다면 그로 인한 탈락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 명백한 사실조차 조 전 장관은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다.
그는 입시 방해 등의 혐의로 징역 2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을 때도 궤변을 늘어 놓았다. “8~9개 혐의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에 감사한다”며 마치 대부분의 혐의를 벗었다는 듯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 들었다면 승소라도 한 줄 알았을 법했다. 이 또한 물타기 말 장난이었다. 그는 기소된 19개 세부 혐의 중 한영외고·고려대·연세대·충북대·부산대 등의 입시 업무를 방해하고, 친문 실세 감찰을 무마했다는 등의 핵심 혐의에서 모조리 유죄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도 사실을 부정하며 죄가 없는 듯 거짓말을 반복하고 있다.
조 전 장관은 자신과 가족이 저지른 일련의 범죄 행위를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다. 반성은커녕 모든 게 표적 수사 탓이라며 자신을 멸문지화(滅門之禍)의 피해자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우길 수 있는 초강력 멘털이 혀를 내두르게 하지만 그에겐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적 이유가 있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그와 가족이 구축한 비즈니스 모델이 와르르 무너지기 때문이다.
조 전 장관은 2021년 이후 매년 한 권꼴로 책을 냈다. 검찰 수사에 항변하는 ‘조국의 시간’은 35만부가 팔렸고, 좌파식 국가 경영을 논한 ‘가불 선진국’은 10만부의 판매고를 올렸다. 법적 정의를 다룬 ‘법 고전 산책’은 19쇄까지 찍었다. 지금까지 인세 수입만 8억원이 넘을 것으로 출판계는 추산한다. 서울대 교수 월급의 몇 배를 벌고 있다.
책의 구입자는 주로 충성 지지자들이다. 이들은 조 전 장관이 검찰 권력에 난도질 당한 억울한 희생자이자 ‘진보의 투사’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지지한다. 만약 조 전 장관이 정말 파렴치 범죄자라고 생각한다면 당장 지지를 철회하고 돌아설 것이다. 그러니 조 전 장관으로선 지지자들의 환상이 깨지지 않게 해줘야 한다. 그래야 수억원씩 버는 출판 비즈니스도 성립할 수 있다.
조 전 장관은 금전적 욕심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부산 북 콘서트에서 그는 수감 중인 아내 정경심씨의 “병원비‧변호사비가 걱정”이라며 엄살 부렸다. 그러나 이미 정씨에겐 후원이 쇄도하고 있다. 정씨의 옥중 영치금은 지난 2월 말 현재 2억4000만원에 달했다. 병원비·변호사비를 쓰고도 넉넉하게 남을 돈이 지지자들로부터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이 역시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딸 조민씨는 인플루언서로 변신해 유튜브 비즈니스에 나섰다. 그의 유튜브 채널은 개설 한 달도 안 돼 구독자 18만명을 넘어섰다. 여행 가고 맛집 가는 가벼운 일상 콘텐츠만 올리는데도 편당 조회 수가 몇십 만회씩 나오고 있다. 웬만한 직장인 연봉은 너끈히 벌 수준이다.
조민씨도 범죄 혐의자다. 정경심씨 공소장에 조씨는 업무방해, 허위 공문서, 위조 사문서 행사 등의 공범으로 적시돼있다. 가족을 동시 기소하지 않는 사법 관행 때문에 기소 결정이 미뤄지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조씨는 “떳떳하고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고 했다. 그렇게 우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죄를 인정하는 순간 돈벌이가 불가능해질 테니까. 그는 조작된 서류로 의전원에 합격한 뒤에도 성적 미달로 두 차례 유급했지만 장학금을 받아가며 졸업했다. 특혜로 가득 찬 청년기를 보낸 31세 범죄 피의자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해맑은 얼굴로 일상을 팔아 돈까지 벌고 있다.
과거 조 전 장관은 “모두가 개천의 용이 될 필요는 없다”며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로 살아가라고 했다. 그렇게 개천 용의 꿈을 포기하도록 권유받았던 이들이 지금 책 사고, 영치금 보내고, 유튜브 구독하며 조국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다. 남에겐 서민으로 살라 해놓고 자신들은 반칙의 사다리에 올라탔던 조국 일가가 이젠 ‘가붕개’들을 상대로 패밀리 비즈니스를 벌인다. 거짓을 팔고 순교자 이미지를 팔아 불공정한 돈벌이를 하고 있다.
아마도 총선이 다가오면 표까지 달라고 할 것이다. ‘조국 사태’는 아직 끝난 게 아니다.
06.24 북조선, 서조선, 우리 안의 ‘후기 조선’
좌파의 前근대성이
대한민국의 현대성과
곳곳에서 충돌해
타협 불가능한
진영 갈등을 낳고 있다...
‘현대 한국’ 안에
’후기 조선’이 있다

▲지난 8일 중국 대사관저를 방문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 옆에서 싱하이밍 대사가 준비한 원고를 꺼내 들고 발언하고 있다. 그는 "한국이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면 후회할 것"이라고 말했다./국회사진기자단
조선이 망한 지 한 세기도 더 지났지만 숨 가쁘게 돌아가는 지금 세상에도 이씨 왕조의 전(前)근대성을 빼어 닮은 ‘변형된 조선’이 세 곳 존재한다.
첫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자칭하는 ‘북조선’이다. 북한이 조선 왕조의 진정한 후계자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혈통 세습, 1인 숭배, 사상 통제, 민중 탄압, 신분 차별 등 북한 체제를 움직이는 전근대적 구성 원리는 조선 시대의 그것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주체를 빙자한 ‘우리 민족끼리’는 바깥에 빗장을 걸어 잠갔던 19세기 ‘쇄국양이’와 동의어다.
그 서쪽, 시진핑의 중국은 역사의 진보를 거스르는 역주행 코스를 달리기 시작했다. 시진핑 영구 집권 체제의 완성과 비례해 독재와 반민주, 권위주의의 색채를 더해가고 있다. 개인 숭배가 만연해지고, 인권이 억압받고 있으며, 체제 비판 인사들이 행방불명되고, 의문사가 잇따르는 나라가 됐다. 절망한 중국 네티즌들은 자기 나라를 ‘서(西)조선’으로 부르며 자조한다고 한다. 북한 같은 전체주의 유사(類似) 왕조 사회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한말 위안 스카이를 방불케 하는 주한 중국 대사의 폭주는 서조선화(化)되고 있는 중국의 전근대성을 드러내는 일화일 뿐이다.
21세기 첨단을 달리는 대한민국에도 조선의 후예들이 있다. 함재봉 전 아산정책연구원장, 철학자 임건순 같은 이들은 야권을 장악한 운동권 좌파가 ‘현대판 위정척사파’이자 ‘양복 입은 사대부’라고 규정한다. 조선을 지배했던 성리학 원리주의의 정신 세계를 오늘날 좌파 세력이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과학을 부정하는 이념 위주 관념론, 자기만 옳다는 도덕적 우월주의, 사물을 선악으로 가르는 이분법, 생각이 다르면 적으로 모는 당파성, 글로벌 세계에 눈 감는 폐쇄성 등 두 그룹의 집단 형질은 수백 년 간극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정확한 싱크로율을 보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놀라운 공통점은 친중 사대의 DNA다. 베이징에 간 문재인 대통령은 ‘혼밥’ 굴욕을 당하면서도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로 치켜세웠다. 중국을 높이려 한국을 “작은 나라”로 낮추는 자기 비하까지 서슴지 않았다. 문 정권의 첫 중국 대사 노영민은 시진핑 접견 후 방명록에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 썼다. 조선조 송시열 등이 명(明) 황제를 향한 충절을 고백할 때 썼던 글귀였다. 박원순 서울 시장이 중국을 ‘말[馬]’, 한국을 ‘말 궁둥이에 붙어가는 파리’에 비유한 일도 있다. 21세기의 상식으로는 이렇게까지 비굴할 수 있는 이들의 의식 구조를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다.
전략적 친중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좌파의 친중은 합리성을 넘은 맹목적 추종에 가깝다. 그 말 많은 운동권 좌파가 단 한 번이라도 중국에 싫은 소리 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일이 없다. 중국이 ‘대만 침공’을 협박해도, 홍콩 민주화 시위를 무력 진압해도, 소수 민족 인권을 유린해도, 심지어 시진핑의 “한국은 중국의 속국” 발언이 전해져도 한 마디 항의도 없이 침묵했다. 중국의 경제 보복 앞에서도 한국 정부를 탓하고 일부 단체는 피해자 롯데로 몰려가 시위했다. 그러면서도 일본에 대해선 약간의 꼬투리만 나오면 호통치며 ‘죽창가’ 운운한다. 성리학의 화이론(華夷論)처럼 일본을 ‘변방 오랑캐’쯤으로 여기기 때문일지 모른다.
주한 중국 대사가 야당 대표를 앉혀 놓고 일장 설교하는 광경은 사극(史劇) 속 한 장면과도 같았다. 중국 대사의 오만함은 눈 뜨고 못 볼 지경이지만 더 기막힌 것은 이재명 대표의 저자세였다. 인내심과는 거리가 먼 독설가 스타일의 이 대표가 이날은 묵묵히 자리에 앉아 15분에 걸친 설교를 경청했다. 일본 대사, 미국 대사였다면 결코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참담하다.
19세기 위정척사파는 바깥 세상의 현실을 부정했다. 서구 열강의 침탈 앞에서도 세계가 중국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21세기 좌파도 글로벌 질서의 흐름을 오독하고 있다.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자유·민주의 주류 진영이 아니라 독재·권위주의를 향하는 중국 편에 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국주의 팽창 욕구를 담은 ‘중국몽’에 동참하겠다는 말까지 주저하지 않는다. 시대를 거스르는 이들을 향해 소장파 중국 연구자 최창근(중국전략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후기(後期) 조선’ 사람들이라고 일갈했다. 한국(Korea)에 살면서도 ‘조선(Chosun) DNA’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 한국’ 안에 ‘후기 조선’이 있다. 나라는 글로벌 첨단을 달리는데 거대 야당은 ‘양복 입은 사대부’ 세력에 지배당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겪는 끝없는 진영 갈등은 이 기이한 이중성에 기인한다. 좌파의 전근대성이 대한민국의 현대성과 충돌해 도저히 타협되지 않는 균열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07.08 일본은 미친 바보일까
국내 정치용으로
창조된 괴담은
국경을 넘지 못한다...
음모론의 난장판에서
눈을 돌려 밖을 보면
무엇이 진실인지
분명해진다는 뜻이다

▲민주당이 6일부터 국회 로텐더홀에서 '윤석열정권 오염수 투기 반대 천명 촉구 비상행동' 집회를 갖고 1박2일 철야 농성에 들어갔다. /뉴스1
‘괴담은 국경을 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것이 2008년 광우병 사태다. 당시 공포를 선동하던 세력에겐 논리 허점이 수두룩했지만 그중에서도 치명적인 자가당착이 있었다. 미국 소고기가 위험하다는데 정작 미국 사람들은 꿈쩍도 않더라는 것이었다. ‘뇌송송 구멍탁’이 될 수 있다는데 미국인은 왜 들고 일어나지 않을까. 미국인은 자기네 고기니까 그렇다 치고 수백만 재미 교포와 한국인 유학생·주재원들은 왜 가만 있나. 미국에 다녀오는 그 많은 여행객들은 햄버거·스테이크로 끼니를 때우기 위해 목숨이라도 걸고 있단 말인가.
당시 민주당 의원들이 국정 감사차 워싱턴 한국 대사관에 가서 갈비·육개장으로 만찬한 사실이 알려졌다. 물론 미국 소고기였지만 이들이 식사를 거부했다는 말은 없었다. “차라리 청산가리를 먹겠다”던 여배우는 LA에서 촬영 중 햄버거를 즐기는 사진이 공개됐다. 같은 쇠고기가 미국에선 괜찮고 한국에 오면 위험해지는가. 이 기초적인 질문에 괴담 세력은 침묵하거나 또 다른 거짓 논리로 비껴갔다. 국내 정치 목적으로 창조된 괴담이니 국경을 넘는 순간 먹히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그때와 똑같은 정당, 똑같은 단체들이 똑같은 수법으로 후쿠시마 문제에 달려 들었다. “핵 폐수” “독극물” “방사능 테러”라며 공포심을 조장하고 있지만 15년 전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대답하지 못하는 딜레마가 있다. 정작 일본은 조용하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문제의 핵심은 오염수가 다른 곳 아닌 일본 영해에 방류된다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후쿠시마 앞 1㎞ 지점이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오염수가 위험하다면 가장 직접적 피해를 입는 것이 일본이다. 이 물이 한반도 해역에 도착하려면 해류를 타고 태평양을 한 바퀴 돌아 4~5년이 걸린다. 반면 일본 주변 바다엔 바로 섞인다. 수도 도쿄는 방류 지점에서 불과 200여㎞ 떨어져 있다. 홋카이도를 비롯한 태평양 쪽 연근해는 다 영향권에 들어간다고 봐야 된다.
그런데 지금 일본에서 오염수 방류는 이슈조차 아니다. 언론은 거의 보도하지 않고 사회적 논쟁이 벌어지지도 않는다. 일본 포털에서 ‘오염수’를 검색하면 한국발 뉴스를 번역·인용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중의원 의석 1석의 사민당을 빼면 방류를 막겠다는 정당도 없다. 수산물 타격을 우려하는 어민 단체가 ‘방류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으나 이들 역시 행동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 간간이 열리는 반대 시위는 참가자가 100여 명에 불과하다. 한국에선 ‘독극물’이 퍼진다고 난리인데 당사자인 일본은 동요도 없다.
일본 국민은 안전 문제에 신경 쓰지 않는 바보들일까. 관(官)의 방침을 잘 따르는 대세 순응적 국민성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순종적이라도 자기 목숨까지 희생할 국민은 세상에 없다. 자손 대대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한다면 일본인도 당연히 반발하고 저항한다. 그들이 오염수 방류를 받아들이는 것은 바보여서가 아닐 것이다. 과학적으로 문제없다는 공적(公的)인 설명을 믿기 때문이다. 정부를 신뢰하고 과학을 신봉한다는 얘기다.
일본 정부는 자기 영해에 ‘독극물’을 뿌리는 미친 집단일까. 일본 지배층이 판단 착오를 범한 흑역사는 종종 있었지만 그들이 고의로 나라 망칠 작정을 할 리는 없다. 한국 괴담 세력의 음모론처럼 고작 몇천 억원을 아끼기 위해 위험한 해양 방류를 결정했다는 건가. 주변 나라를 괴롭히기 위해 자기 바다부터 방사능으로 오염시키는 자해 테러를 저지른단 말인가. 일본 과학자들은 다 겁쟁이들일까. 세계 5대 노벨상 수상국인 일본 과학계가 일제히 양심을 버리고 진실을 은폐한다는 건가.
오염수 방류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 무언가 꺼림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능한 처리 방법 중 해상 방류가 가장 안전하다는 게 과학계의 공통된 결론이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콘크리트 고체화’ 방식은 기술적으로 불안정한 데다 방사능의 대기 전파를 막을 수 없어 더 위험하다고 한다. 괴담 진영은 일본이 돈 몇 푼 아끼려 자국민 생명을 희생시키는 미개한 나라라고 여기는 듯 하다. 일본을 허접한 후진국 취급하며 음모의 나래를 펼치는 무모함이 놀라울 뿐이다.
그들 논리에 따르면 미국 역시 이상한 나라다. 후쿠시마 방류수는 해류를 타고 동북 방향으로 이동해 미국 서해안에 먼저 도달하게 된다. 2011년 대지진 때도 후쿠시마에서 떠내려간 부표·어선·냉장고 등의 잔해가 캘리포니아·오리건·알래스카 해변에서 발견됐다. 그런데도 미국은 오염수 방류를 찬성한다고 한다. 미국도 후진국인가. 이 질문에 민주당과 괴담 진영은 대답하지 못한다. 어차피 정치 공세가 목적이니 다른 나라가 어떡하든 관심도 없을 것이다.
07.22 ‘더러운 평화黨’의 ‘싸우는 충무공’ 마케팅
‘더러운 평화’를 주장하는 정당이
침략에 맞서 싸워 ‘이기는 전쟁’을 한
충무공까지 끌어다 정쟁에 활용하다니
참 염치도 없다

▲21일 국회 민주당 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표가 발언 하고 있다. 배경 벽면이 충무공 사진으로 장식되어 있다. /뉴스1
“이기는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인식은 충격적이나, 그가 이 발언을 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적어도 지난 7년간 똑같은 얘기를 기회 있을 때마다 반복해왔다. 확인된 기록상 가장 오래된 것은 성남시장 시절인 2016년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대북 관계 질문을 받고 “더럽고 자존심 상하고 돈이 많이 들더라도 평화가 낫다”며 이 말을 꺼냈다.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본격화하던 시점이었다. 이해 북한은 자칭 ‘수소폭탄’이라는 4차 핵실험에 나서고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비롯한 각종 미사일을 18차례나 쏘았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대북 전단 처벌’ 방침을 밝히자 그는 이를 지지한다며 같은 주장을 펼쳤다. 북이 비행 거리 1만여㎞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 화성-14형 미사일을 쏜 직후였다. 미·북 싱가포르 회담이 결렬되고 북한이 연속 도발을 재개했던 2020년 6·15 기념식 때도, 북한이 동해상에 탄도미사일을 고각 발사한 직후인 2022년 3·1절에도 ‘더러운 평화론’을 꺼내 들었다. 이 대표가 의도했든 안 했든 결과적으로 북의 도발을 감싸는 것처럼 비칠 수밖에 없었다.
이 대표뿐 아니었다. 2016년 10월 북한이 무수단 미사일을 쏜 날, 당시 민주당 유력 대권 후보이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가장 좋은 전쟁보다 가장 나쁜 평화에 가치를 더 부여한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선제타격이니, 핵무장이니, 전쟁이니 하는 말로 불안하게 만들지 말라”며 대북 인도적 지원을 주장했다. ‘전쟁이냐, 평화냐’는 안보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민주당 사람들이 만능 치트키처럼 휘두르던 논리였다. 대북 제재를 얘기하면 “전쟁하자는 거냐” 하고, 대칭적 보복을 언급하면 “전쟁광”으로 몰았다. 모든 군사적 옵션을 ‘나쁜 전쟁’으로 몰아 말문을 틀어막았다.
민주당의 ‘더러운 평화론’은 보편성을 갖는 논리가 아니었다. 오로지 북한·중국·러시아에만 적용되는 특수하고도 선택적인 평화론이었다. 사드 배치를 이유로 한 중국의 경제 보복 앞에서도 민주당은 중국 편을 들었다. 협박에 고개 숙이고 중국이 원하는 대로 사드 배치를 철회하자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는 치욕적 항복 문서와 다름없는 ‘사드 3불(不)’ 약속까지 해주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이재명 대표며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초보 정치인 젤렌스키가 러시아를 자극해 전쟁이 났다”고 했다. 침략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자위 전쟁을 폄훼하는 말들이 민주당 안에서 끊이지 않았다.
일본에 대해선 달랐다. 2019년 일본이 반도체 보복을 감행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이순신의 12척 배’ 정신까지 언급하며 “다시는 지지 않을 것”이라 했다. 조국 당시 민정수석은 ‘죽창가’를 틀었고, 민주당 특위 위원장은 “의병(義兵)을 일으켜야 할 일”이라고 했다. 중국에 항복하자던 민주당 구(舊)권력이 일본엔 임진왜란 의병, 동학 농민 정신까지 들고나와 맞서 싸우자고 했다.
2018년 저공 비행하는 일본 해상 초계기를 향해 우리 광개토대왕함이 레이더를 조준하며 대치하는 일촉즉발 상황이 벌어졌다. 그 직후 문 정부는 일본 군용기가 근접 비행하면 ‘추적 레이더를 쏘라’는 사실상의 교전 지침을 해군에 시달했다. 레이더 조사(照射)는 함포·미사일 발사 의사를 알리는 공격 신호다. 우리 방공식별구역(KADIZ)을 수시로 헤집는 중국·러시아 전투기는 방치하면서 일본에 대해선 ‘교전 불사’로 대응했다.
평화를 바란다면 한·일 간 긴장 완화도 환영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대일 관계 복원에 나서자 민주당은 “매국” “국치(國恥)”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이재명 대표는 한일 정상회담을 “화해를 간청하는 항복식”에 비유하고, 한·미·일 연합훈련을 “자위대 군홧발” 운운하며 비난했다. ‘더럽고 자존심 상해도 무조건 평화’는 북한·중국·러시아에만 해당되고 일본은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더러운 평화론’은 결국 친중 사대주의와 친북 퍼주기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했다.
민주당이 국회 당대표실 배경 벽면을 이순신 장군 사진으로 장식했다. 장검 든 충무공 동상 그림을 내걸고 ‘핵 오염수 반대’ 구호를 넣었다. 후쿠시마 정쟁화를 위해 충무공 마케팅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 팬 카페엔 ‘이 대표는 현존하는 이순신’이며 ‘잼순신(재명+순신)’ 운운하는 낯 뜨거운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충무공은 ‘싸워서 이긴’ 전쟁 영웅이다. 왜적의 침략 앞에서 그가 평화만 읊고 있었다면 이 땅은 지금 우리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전쟁할 각오가 돼 있어야 평화를 얻는다는 말을 굳이 할 필요도 없다. ‘더러운 평화’를 주장하는 정당이 ‘이기는 전쟁’을 한 충무공까지 끌어다 정쟁에 활용하려 한다. 참 염치도 없다.
08.05 ‘前 정부 탓’의 유효 기간
당연히 해야 할
‘비정상의 정상화’에
전임자를 소환하는 순간
진영 이슈로 변질해
정치 싸움이 돼버린다…
‘죽은 문재인’과
싸울 이유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LH 아파트의 무더기 철근 누락 사태를 언급하며 "모두 우리 정부 출범 전에 설계 오류, 부실 시공, 부실 감리가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문재인 정권의 ‘남 탓’ 타령은 유별났다. 불리한 일이 생길 때마다 남 핑계 대며 자기 합리화로 5년을 보냈다. 경제 악화는 미·중 분쟁 때문이고 서민 경제 고통은 재벌 횡포가 문제라 했다. 소득 주도 성장을 하겠다며 고용 참사를 빚자 인구 구조 탓, 통계 탓이며 야당 탓, 언론 탓, 심지어 애꿎은 날씨 탓까지 들이댔다. 코로나가 터지자 이번엔 바이러스 핑계를 대며 경제 침체의 책임을 비켜 가려 했다.
그중 심했던 것이 ‘보수 정권 탓’이었다. 성장률 추락도, 민생 악화도,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정책 적폐 탓으로 돌렸다. 수해는 4대강 사업 탓, ‘미친 집값’은 규제 철폐 탓이라 했고, 20대의 국정 지지도가 낮은 것마저 “보수 정부의 잘못된 교육”을 탓했다. 오류를 지적받으면 “박근혜 때보단 낫다”거나 “이명박 시절로 돌아가자는 거냐”며 어깃장으로 받아쳤다. 정책 실패를 진영 논리로 비틀어 정치 싸움판을 만드는 게 특기였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모토는 ‘비정상의 정상화’다. 문 정부가 망쳐놓은 국정 왜곡을 바로잡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미·일 협력 복원, 대북 원칙론, 소득 주도 성장 삭제, 방만 재정 중단, 탈원전 폐기, 부동산 정책 전환, 민노총 개혁 등이 다 그런 것들이다. 문 정부가 이상한 방향으로 몰아간 국가 진로를 정상 궤도로 복원시키라는 게 지난 대선의 시대 정신이었다. 윤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책무들이다.
윤 정부는 전임자가 쌓아놓은 실정(失政)의 잔해 위에서 출발했다. 온갖 곳에 박힌 정책 왜곡의 대못을 빼내기 위해 과거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이를 통해 국정 동력을 얻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지나쳐 ‘무조건 뒤집기’로 비춰진다면 문 정권과 똑같은 실패의 함정에 빠져들 수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 윤 정부가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윤 정부의 ‘전(前) 정권 탓’은 문 정부에 뒤지지 않는다. 국정 곳곳에서 전임 정권을 불러내 ‘반(反)문재인’을 정책 추진의 에너지로 삼고 있다. 난방비 폭탄에 서민들이 아우성치자 산업부 장관은 문 정부 시절 요금 동결을 비난했고, 전세 사기가 터지자 국토부 장관은 문 정권의 임대차 3법을 거론했다. 북의 미사일 도발은 “문 정부의 외교 참사 탓”이고, “지난 정부가 국민 세금을 영끌해” 경제 운용이 힘들어졌다고 했다. 여당에선 “우린 문 정부의 폭탄 제거반”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윤 대통령부터 전임자 소환에 앞장섰다. 정권 초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이 빚어지자 “전 정권 장관들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느냐”고 반문했고, 검찰 출신이 대거 중용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과거엔 민변 출신이 아주 도배하지 않았냐”고 했다. ‘보복 수사’ 논란에는 “민주당 정부 때는 안 했나”라고 반박하고, 북 무인기의 방공망 침투엔 “문 정부에서 훈련이 전무(全無)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탈원전을 폐기하면서 “지난 5년 동안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했고, 감세를 추진하면서 “지난 정부 때 징벌 과세를 좀 과도하게 했다”고 언급했다.
말 자체는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문 정부의 친북·친중 편향이 외교·안보를 흔들었고, 돈 푸는 세금 주도 성장은 경제 체질을 악화시켰다. 반시장적 부동산 규제, 에너지 포퓰리즘, 자해적 탈원전이 지금까지 국정에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권이 교체된 지 이미 1년 3개월이 넘었다. 당연히 해야 할 ‘비정상의 정상화’에 앞 정부를 끌어들이는 순간 진영 이슈로 변질될 수 있다. 국정 왜곡을 바로잡는 정책 문제를 정치적 공방의 대상으로 내모는 전략적 미스다.
LH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에 윤 대통령은 또 전임자를 불러냈다. 부실한 설계·시공·감리가 “모두 우리 정부 출범 전에 이뤄졌다”며 문 정부에 책임을 돌렸다. 이것은 100% 정확한 말도 아니다. 문 정부 시절의 부실 공사만 적발된 것은 국토부가 ‘2017년 이후’ 준공된 무량판 주차장을 대상으로 조사했기 때문이다. 역대 어느 정권이건 건설 비리는 늘 있어 왔고, 문 정부가 특별히 더 원인을 제공한 것도 아닐 것이다. 대통령의 ‘건설 카르텔 해체’ 의지는 박수받을 만하지만 굳이 전 정권 얘기를 꺼내 정치 공방화할 필요는 없었다.
2000년 집권한 미국 부시 정권은 ‘ABC(Anything But Clinton·클린턴만 빼고 다) 정부’로 불렸다. 전임 클린턴 때 정책은 무조건 뒤집었다는 뜻이었다. 윤 정부도 그렇게 비춰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만약 윤 정부가 ‘ABM(Anything But Moon·문재인 빼고 다)’의 꼬리표를 달게 된다면 그것은 실패로 가는 길이다.
과거와 다투는 대신 윤 정부 자신의 주제를 갖고 ‘미래’를 말했으면 한다. ‘죽은 문재인’과 싸울 이유가 없다.
08.19 돌아온 文, 부끄러움은 국민 몫
현역 때 못지않은 초강력 멘털을 과시하는 그에게
전직 대통령다운 품격을 기대하는 건 무리였을지 모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8일 전남 구례군에서 열린 '섬진강 수해 극복 3주년 생명 위령제'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한동안 조국 전 법무장관의 멘털(정신력)이 당대 최고라고 생각했다. ‘조만대장경’으로 불릴 만큼 오만 곳에서 내로남불 위선이 드러나도 뭐가 문제냐고 고개 빳빳이 드는 그 당당함을 누가 당하랴 싶었다. 알고 보니 문재인 전 대통령이 한 수 위였다. 온갖 실정(失政)으로 국정을 망쳐 놓고 퇴임 후에도 ‘남 탓’ 하며 부끄러움을 “국민 몫”으로 돌리는 그 강심장엔 두 손 들었다. 국가 대사를 궤변으로 눙치고 거짓말로 호도하는 그의 초강력 멘털 앞에서 조 전 장관의 사적(私的) 내로남불은 차라리 사소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현직 시절 문 전 대통령의 정신 구조가 보통이 아님을 나타낸 일화는 차고 넘치지만 그중 대표적인 게 ‘미친 집값’ 문제였다. 집값 광풍으로 서민들이 패닉에 빠지고 젊은 세대가 절망하는데도 문 대통령은 “부동산은 자신 있다”고 했다. 서울 아파트 값이 몇 배씩 뛰고 청년들이 평생 벌어도 집 한 칸 마련하기 힘들어졌는데 부동산 정책이 잘되고 있다며 유체이탈 화법으로 일관했다.
권력자가 말로 허세 부릴 수는 있다. 하지만 객관적 통계 숫자들 앞에서 이렇게까지 잡아떼기란 보통의 멘털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집권 만 4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부동산 안정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시인했는데, 그것은 직전 치러진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했기 때문이었다. 들끓는 부동산 민심이 표(票)로 확인되자 어쩔 수 없이 실패를 인정한 것이었다.
문 정권이 추진한 ‘소득 주도 성장’ 실험은 고용 참사를 빚고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치명적 부작용을 낳았다. 그래도 문 대통령은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우겼다. 일자리가 줄고 세금 알바만 늘었는데도 “고용 정책의 성과”를 주장했고,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졌는데도 “저소득층 소득 증가” 운운했다. 자영업이 휘청거려도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 효과가 90%”라 하고 OECD 꼴찌의 저성장에 빠졌는데 “상당한 고성장”이라 했다. 그래도 불리한 경제·고용 수치가 잇따르자 통계청장까지 갈아 치웠다. 국가 통계마저 입맛대로 왜곡·분식하는 유례없는 멘털을 과시했다.
문 정권은 민주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선거 개입까지 저질렀다. 대통령의 30년 지기를 당선시키려 청와대 8개 부서가 총동원된 혐의가 드러났다. 윤석열 검찰이 수사에 나서자 추미애를 법무장관으로 보내 검찰 장악에 돌입하고 수사팀을 싸그리 교체했다. 멀쩡한 원전을 멈춰 세우는 데 문 대통령이 간여한 사실도 밝혀졌다. 검찰 수사를 막으려 검찰총장 직무 정지라는 초유의 암수(暗手)까지 강행했다. 그래놓고 문 대통령은 “우리 민주주의는 남부럽지 않게 성숙했다”고 했다. 모든 권력자가 대체로 ‘후흑(厚黑)’ 계열이지만 이렇게까지 낯 두꺼운 정권은 본 적이 없다.
퇴임 후에도 궤변은 이어졌다. 5년간 국정을 엉망으로 만든 장본인이 “5년 성취가 순식간에 무너져 허망” 운운하고, “경제를 전문가에게 맡기면 안 된다”는 희한한 논리를 폈다. ‘서해 공무원 사건’ 조사에 나선 감사원을 향해 “무례하다”고 꾸짖더니, 급기야 자기 임기 5년간 제대로 준비도 안 하고 넘긴 잼버리 대회를 “실패”라고 비판하며 현 정부 책임으로 떠넘기는 지경까지 갔다.
그는 “부끄러움은 국민 몫”이라 했는데, 사실 국민이 부끄러웠던 순간은 문 정권 5년 때 더 잦았다. 그가 중국에서 ‘혼밥’ 수모를 당하고도 “환대에 감사한다”고 고개 숙일 때, 북한에 “삶은 소대가리”로 조롱당하면서도 대꾸조차 못할 때, 국제 회담에 가서 어울리지 못하고 외톨이로 겉돌 때마다 국민 입장에선 보기조차 민망해 눈을 가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자기 치적을 담은 다큐멘터리에 주연으로 출연하고, 책방을 운영하며 지지자들을 끌어 모았다. 책 추천을 명분으로 친중·친북의 진영 메시지를 던지면서 ‘서평(書評) 정치’를 계속했다. 경제적 이유로 반려견을 버렸던 사람이 수해로 희생된 가축 위령제에 참석해 “생명과 안전”을 외치기도 했다. 다음 주엔 청와대에서 일했던 친문 의원들을 불러모아 만찬 회동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총선을 앞두고 계보 관리에 나선 것이다. 사실상 정치를 재개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퇴임 후 이렇게까지 시끄러웠던 예가 없다. 전직 대통령들이 언동을 삼가고 오해받을 행보를 자제한 것은 할 말이 없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2주 전 칼럼에서 나는 ‘죽은 문재인’이라고 썼는데 그 말이 틀렸음을 인정한다. 죽은 듯 자중해야 마땅할 과(過) 많은 전직 대통령이 잼버리까지 끌어내 전선(戰線)을 만들고,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진영 정치를 재개할 줄은 몰랐다.
현직 때 못지않은 초강력 멘털을 과시하는 그에게 국가 원로의 품격을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을지 모른다. 부끄러움은 국민 몫이다.
09.16 거짓말 상습범 응징 못 한 나라의 아찔한 선거
김대업에서 사드까지
온갖 괴담에 올라타
혹세무민하는 세력을
제대로 퇴출시켰다면
가짜 뉴스로 선거판을
뒤집으려는 거짓 공작은
꿈도 못 꿨을 것이다

▲김대업씨(왼쪽)와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오른쪽).
2002년 대통령 선거는 조작된 허구가 선거판을 뒤집을 수 있음을 실증한 사례였다. 사기꾼 김대업의 허위 폭로로 지지율 1위를 달리던 이회창 후보가 치명상을 입고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 법원은 병역 의혹이 깎아내린 이회창의 지지율 손해가 “최대 11.8%포인트”에 달한다고 판시했다. 실제 표 차가 2.3%포인트였으니 가짜 뉴스가 없었다면 제16대 대통령은 노무현이 아닐 수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기막힌 사기극의 주모자들이 응분의 단죄(斷罪)를 피해 갔다는 사실이었다. 김대업이 받은 처벌은 징역 1년 9개월에 불과했다. 민주주의 선거 제도를 능멸한 죗값 치고는 가볍기가 솜방망이 같았다. 허위 사실을 집중 보도하며 확산시킨 공영방송 책임자들도 누구 하나 내부 징계조차 받지 않았다. 김대업에게 올라타 정권 연장에 성공한 민주당은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입을 씻었다. 정상적인 정당이라면 자진 해산감이었지만 빈말이라도 미안하다는 한 마디조차 없었다. 당 대변인으로 공격에 앞장선 이낙연, 김대업을 “용감한 시민”으로 치켜세운 추미애 등 ‘병풍(兵風)’의 주역들은 저마다 승승장구하며 출세 가도를 달렸다.
음모로 세상을 뒤집으려는 거짓 공작의 기획자들은 자신감이 붙었을 것 같다. 나중에 발각돼도 불이익당하지 않으니 거리낄 게 없어졌을 것이다. 이후 때만 되면 온갖 장르의 음모론이 등장해 나라를 뒤흔드는 일이 반복됐다. 하지만 지금껏 주모자가 중벌 받는 일도,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일도 없었다.
‘김대업’으로 거머쥔 정권이 5년 만에 넘어가자 곧바로 ‘광우병 공작’이 시작됐다. 촛불 대란에 도화선을 당긴 MBC PD수첩은 의도적인 왜곡 방송이었다. 프로그램 작가가 “이명박에 대한 적개심이 하늘을 찌를 때” “정권 생명줄을 끊는 일”을 해냈다고 고백할 만큼 정파적으로 오염된 보도였지만 제작진은 전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수개월간 도심 시위를 주도해 천문학적 손실을 초래한 ‘광우병 대책 회의’ 역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대책 회의’를 구성한 수백 단체는 천안함·사드·세월호에서 양평고속도로·후쿠시마에 이르기까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간판만 바꿔 달고 나타나 괴담이 범벅된 선동을 계속해 왔다.
거짓을 뿌리 뽑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거짓을 만들고 퍼트린 사람을 벌주는 것이다. 법을 위반했다면 최대한 중형을 때려야 하고, 형사 처벌이 힘들다면 사회적 평판의 힘으로 공공 영역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정치인이라면 선거를 통해 응징하는 필벌(必罰)의 관행을 세워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토록 숱한 음모론이 횡행했어도 공작의 주역들이 불이익 받은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2010년 천안함이 폭침되자 민주당은 음모론 전문가인 신상철을 조사위원으로 추천해 ‘미군 개입설’이며 ‘이스라엘 잠수함 충돌설’까지 유포되도록 판을 깔아 주었다. 그래 놓고도 책임은 지지 않았다. 천안함 침몰이 북의 소행이 아닐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한 설훈은 지금 4선 의원이 되어 “윤석열 탄핵”을 외치고 있다. ‘피로파괴·좌초설’ 괴담을 언급한 강기정은 광주 시장에 당선돼 중국·북한 군가 작곡가 정율성의 우상화 사업에 앞장서고 있다.
성주 사드 기지 앞에서 춤추며 ‘전자파 괴담송’을 부른 박주민·소병훈·김한정 의원, 윤지오의 허언(虛言)을 “의로운 싸움”으로 칭송하며 그녀를 지키는 의원 모임까지 만든 남인순·이학영·정춘숙 의원, 최순실 사건 때 “박정희 통치 자금 300조원” “정유라는 박근혜 딸” 등의 아무 말 대잔치로 유명세를 탄 안민석 의원 등도 당선을 거듭하며 여전히 의원 배지를 달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가짜 뉴스계(界)의 새로운 스타로 등극한 김의겸 의원 역시 ‘청담동 술자리’ 헛발질 이후에도 거친 입심을 과시하며 왕성하게 활약 중이다.
‘세월호 고의 침몰설’에서 ‘오세훈 생태탕’까지, 괴담이란 괴담엔 빠지지 않는 김어준은 유튜브 구독자 135만명을 거느리며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부끄럽고 창피해 숨어 살아야 마땅할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며 활개 치고 있다. 이 모든 음모론에 편승해 정치적 이득을 얻어온 정당이 제1야당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부터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작년 대선 직전 터진 ‘윤석열 커피’ 허위 보도는 20년 전 김대업 사건의 판박이다. 20년이 지나도 똑같은 선거 공작이 반복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거짓말 상습범을 퇴출시키는 자정(自淨) 능력을 상실했음을 뜻한다. 김대업을 “의인”으로 칭송한 정당, 광우병·천안함·세월호·사드 괴담에 올라타 혹세무민한 정치인·선동가들에게 응당한 책임을 물었다면 가짜 뉴스로 선거판을 흔들려는 민주주의 파괴 공작은 감히 시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거짓 세력을 응징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다음 선거 때 또 어떤 아찔한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10.07 정치에 올라탄 범죄, 거악(巨惡)
거악은 법을 겁내지 않는다
정치의 힘으로 법을 우회하고
회피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을 파헤친 감사원의 2020년 탈원전 감사 보고서엔 ‘대통령’이란 단어가 딱 두 차례 나온다. 문재인 정권이 감사를 막으려 방해와 협박을 서슴지 않던 시절이었다. ‘2번의 대통령’은 최재형 감사원이 정권의 압박을 버티며 새겨 넣은 최소한의 단서였지만 의미는 너무도 분명했다. 멀쩡한 원전을 멈춰 세워 수십 조 국가 손실을 끼친 탈원전 범죄의 정점에 문 대통령이 있다는 뜻이었다.
“가동 중단이 언제 결정되느냐”는 대통령의 한 마디에서 원전 폐쇄가 시작된 사실이 드러났다. 대통령 의중을 확인한 산업부가 수치 조작에 나서 결론을 ‘가동 중단’으로 둔갑시켰다. 감사원 감사를 토대로 윤석열 검찰이 산업부 장관과 국·과장, 청와대 정책실장 등을 무더기 기소했지만 정작 문 전 대통령은 수사 선상에 오르지 않았다. 손발 노릇을 한 공범·종범은 법의 심판을 받고 있는데 최고 수뇌는 빠진 것이었다.
이뿐 아니었다. 대통령의 30년 지기를 당선시키려 청와대가 동원된 울산 선거 개입, 국가 통계를 입맛대로 주무른 부동산·소득 데이터 조작, 국민 인권을 유린한 서해 공무원 월북 날조 등 문 정부 때 자행된 수많은 국기 문란 범죄에서 문 전 대통령은 모두 면죄부를 받았다. 청와대·국방부·국토부·통계청 공무원 등 범죄의 수족(手足)들이 줄줄이 걸려들었지만 이 모든 사건의 꼭대기에 있는 문 전 대통령은 감사원 고발에서도, 검찰 수사에서도 제외됐다.
나는 윤석열 정부의 사법 판단에 ‘노무현 트라우마’가 작용한다고 추측한다. 문 전 대통령은 여전히 거대 팬덤을 보유한 야권의 보스다. 이재명 대표만으로도 버거운 상황에서 전선을 확대하지 말자는 정무적 판단이 작용하고 있을 법하다. 정치 논리 앞에서 법적 정의가 희생된 격이다.
법 위에 군림하는 일탈한 정치 권력을 거악(巨惡)이라 한다. 이 말이 널리 알려진 계기가 1970년대 중반 일본을 뜨겁게 달군 ‘록히드 스캔들’이었다. 자민당의 최고 실력자 다나카 가쿠에이(1918~93)가 뇌물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사건이다. 다나카는 파벌 의원들을 총동원해 정치적으로 대항했지만 도쿄 지검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당시 다나카 의혹을 추적했던 전설적 언론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그를 ‘거악’으로 규정했다. 일반 범죄 차원을 넘어 사법 기능까지 방해하고 법치를 공격한다는 뜻이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기소됐거나 수사받는 사건은 총 7개다. 이 중 선거법 위반을 뺀 6개가 공적 지위와 관련된 권력형 범죄 혐의다. 인허가권을 남용해 대장동·백현동·위례 사업자에게 부당 이익을 안겨주었고, 대북 사업과 성남FC에 기업 돈을 끌어댔다는 등의 혐의를 받는다. 이 사건들과 연루돼 기소된 사람만 24명이다. 이들 중 핵심 측근 3인방을 제외한 대부분은 이 대표가 결재·인지했거나 관련됐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정점에 있는 이 대표는 건재하다. 여전히 거대 야당 한복판에 진지를 치고 사법 투쟁 대신 정치전(戰)을 벌이고 있다.
이 대표 사건의 본질을 말해주는 정황 중 하나가 그의 주변에서 기이한 일이 잇따른다는 것이다. 이 대표 관련 인물 5명이 연달아 세상을 등졌다. 전직 비서실장, 성남시 개발 담당자, 법인 카드 사건 참고인 등 진상 규명의 열쇠를 쥔 인물들이었다. 록히드 스캔들 때 다나카의 운전 기사, 사건을 추적하던 기자, 뇌물 준 기업인의 통역이 몇 달 간격으로 숨진 것을 연상시킨다. 거악의 언저리에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은 동서고금 드문 일이 아니다.
이상한 일은 꼬리 물고 있다. 전 경기 부지사는 대북 송금 대납을 이 대표에 보고했다고 진술했다가 번복했다. 그의 아내가 법정에서 “정신 차리라”고 훈계하더니 민주당 관계자들이 그를 접견한 후 돌연 입장을 바꿨다. 이 대표는 경기 지사 선거 때 허위 발언으로 당선 무효 위기에 몰렸다가 대법원에서 무죄로 뒤집혀 극적으로 살아났다. 알고 보니 무죄 선고를 주도한 대법관이 대장동 주범 김만배와 밀접한 관계였다. 이 모든 것이 그저 우연일까.
법치 위에 있는 것이 거악이다. 일반적 범죄자는 법 앞에 꼬리 내리지만 거악은 법을 겁내지 않는다. 정치적 영향력의 힘으로 법을 우회하고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치’로 ‘사법’을 돌파하려는 이 대표의 도박은 일단 성공하는 듯 보인다. 개인 범죄 이슈를 정치판 최대 쟁점으로 만들었고, 구속 위기까지 피했다. 영장 담당 판사는 기각 사유에 이 대표가 ‘현직 정당 대표’라는 점을 적시했다. 법리 판단에 정치적 고려를 반영했다는 뜻이었다. 정치권에선 이 대표가 재판을 질질 끌어 2027년 대선 때까지 끌고 가려는 전략이라는 말이 나돈다. 설마 싶지만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10.21 이스라엘은 왜 ‘더러운 평화’를 거부했나
이스라엘 국민인들
왜 두렵지 않겠나
그래도 싸워야 하는
절박한 생존 논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평화도 안보도
말할 자격이 없다

▲지난 8일 튀르키예 이스탄불 공항에서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이스라엘인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정철환 특파원
하마스의 기습으로 촉발된 중동 전쟁은 위협에 맞서는 국가 의지의 강렬함에서 이스라엘을 따라갈 나라가 없음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이스라엘 정부가 선전포고와 동시에 예비군 소집령을 내리자 36만명이 모여 부대 배치를 마쳤다. 걸린 시간은 단 48시간이었다. 불과 이틀 만에 이스라엘 인구 936만명의 4%가 군복으로 갈아입고 집과 일터를 떠나 전선에 집결했다.
소집에 응한 36만명 중 6만명은 해외에서 달려온 이들이었다. 베를린·마이애미·리마 등 텔아비브행(行) 항공편이 운항하는 세계의 공항들은 귀국 비행기를 타려는 이스라엘 젊은이들로 붐볐다. 미국 유학 중 전쟁이 터지자 소집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짐을 쌌다는 20대 여대생, 징집 연령이 지났지만 두 아들과 함께 자원 입대하고 개인 제트기까지 띄워 예비군을 실어나른 56세 기업인 등의 이야기가 꼬리 물고 외신을 탔다. 하도 입대자가 많아 일부 부대는 수용이 어려울 정도였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오직 이스라엘만이 가능한 가공할 국민적 에너지였다.
한국 민주당이 보기에 이스라엘은 바보 같은 나라일 것이다. 민주당은 ‘더러운 평화론’을 신봉하는 정당이다. 민주당을 이끄는 당 대표는 “이기는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는 말을 반복해왔고, 그 당이 배출한 전직 대통령은 “가장 좋은 전쟁보다 가장 나쁜 평화에 가치를 더 부여한다”고 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피 흘리는 전쟁’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테러 세력과 적당히 협상하며 ‘더러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데도 전쟁을 하겠다며 젊은이들을 전장(戰場)으로 내몰고 있으니 말이다.
하마스 공격 이후 2주일 사이 5000여 명이 숨졌다. 이스라엘군이 지상전에 돌입하면 사상자는 급증할 것이다. 가자 지구는 하마스 전투원이 민간인과 뒤섞여 있고, 수백㎞ 땅굴이 미로처럼 펼쳐진 정규군의 지옥이다. 이란이 개입하거나 아랍권과의 전쟁으로 확대되면 인명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멈추지 않겠다고 한다. 시한은 하마스 절멸(絶滅) 때까지다. 이스라엘군 대변인 발표처럼 “괴물과 이웃하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다른 길을 가는 나라가 대만이다. 지난주 대만에서 나온 여론조사 결과가 충격적이었다. 전쟁 발발 때 ‘싸우는 것을 꺼릴 것’이라는 대만인이 54%를 넘었고, 20대 연령층에선 무려 69%가 총을 드는 데 거부감을 표명했다. 지난해 대만 지방선거 때는 시민단체가 출마자들에게 ‘중국의 침공 시 항복하지 않겠다’고 서약받는 캠페인을 벌였지만 서명한 후보는 30%뿐이었다. 10명 중 7명이 ‘불항복 서약’을 거부했다. 이런 나라를 겁낼 적(敵)은 없을 것이다.
대만 해협은 세계의 지정학 요충지 중 가장 전쟁에 근접한 곳으로 지목받는다. 중국이 공공연히 무력 침공 의사를 밝히고 있고, 미 공군 기동사령관이 ‘2025년’ 시점을 못 박아 “대만 전쟁에 대비하라”고 지시한 사실까지 공개됐다. 그런 나라에서 군 복무 기간은 4개월에 불과하다. 20여 년 전까지 2년 복무였던 것을 포퓰리즘 정치권이 계속 선심 써 이렇게 줄여놓았다. 중국 위협이 고조되자 내년부터 ‘1년’으로 늘리기로 했지만 야당은 ‘집권 시 4개월 환원’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분열된 대만 정치는 국가 안보를 진영화하고 있다. 전쟁 위기 앞에서도 민진당의 반중(反中)·독립과 국민당의 친중·통일 노선이 대립하며 국론을 양분시키고 있다.
2년 전 대만해협 위기 때 미 월스트리트저널이 대만의 실태를 심층 분석하는 기사를 냈다. 기사에 등장한 대만 청년들은 “4개월 군 복무 중 잡초 뽑기, 낙엽 쓸기만 했다” “4시간마다 햄버거 먹기로 체중을 불려 군 면제를 받았다”는 등의 얘기를 쏟아냈다. 1~2년에 한 번 소집되는 예비군들은 “전쟁 영화를 감상하거나 책읽고 그림 그리며 훈련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기사의 결론은 ‘대만은 전쟁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였다.
한국 민주당의 ‘더러운 평화론’은 대만화(化)의 길을 가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정권은 대북 전단 살포를 막고, 9·19 합의로 정찰 자산 운용에 족쇄 채우고, 서해 공무원 피살을 월북으로 조작하면서까지 북한 비위를 맞춰주었다. 그렇게 더러운 평화를 구걸했지만 돌아온 것은 ‘삶은 소대가리’ 모욕이었다.
모든 전쟁은 비극적이다. 이스라엘 국민이라고 피 흘리는 전쟁이 두렵지 않을 리 없다. 그래도 싸워야 하는 그들의 절박한 생존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평화도, 안보도 말할 자격이 없다. 김정은이 계룡대 타격 훈련을 지휘하며 “남반부 영토 점령”을 지시했다는 북 발표를 보고도 ‘더러운 평화’ 운운한다면 양심이 없거나 뇌가 없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11.18 고쳐 쓸 수 없는 정당
민주적이지도
도덕적이지도 않고
시대에 뒤처진
이 운동권 정당을
고쳐 쓰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10일 민주당 소속 이학영, 민형배, 김용민, 강민정, 주철현 의원(왼쪽부터)이 김진표 국회의장이 탄핵안 상정을 막고 있다며 항의 피켓을 들고 의장실로 향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대표 수사 검사를 파면하겠다는 민주당의 탄핵 발의가 더욱 소름 끼치는 것은 ‘100% 찬성’에 담긴 비(非)민주성 때문이다. 이 엉터리 탄핵을 밀어붙인 민주당 지도부의 무모함도 놀랍지만, 소속 의원 168명 전원이 단 한 명도 반대 없이 서명한 것이 더 충격적이다. 탄핵 사유가 ‘위장 전입’ ‘리조트 이용 청탁’ 같은 것이어서 법적 요건이 성립할 수 없는 사안이다. 검찰 수사를 방해하려는 방탄 목적임이 너무도 명백하지만 탄핵을 빙자한 이 사법 방해 공작에 민주당 의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민주당에 민주 없다’는 조롱은 틀리는 말이 아니었다.
두 달 전 이 대표 체포 동의안 표결 때 반란표가 나오자 민주당에선 배신자 색출 광풍이 불었다. 찬성표 명단이 나돌고 ‘수박 감별기’가 등장하는가 하면 배신자로 찍힌 의원들에게 문자 테러며 살해 협박까지 쏟아졌다. 험악한 분위기에 눌린 몇몇 의원이 “난 반대표를 던졌다”며 자아 비판에 나설 지경이었다. ‘개딸’들에게 압박받던 비명계 중진이 “조선노동당도 아니고...”라 한탄하고, 전 남양주시장이 민주당을 “히틀러 나치당”에 비유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표현은 거칠지만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소수에게 분출하는 집단 광기가 전체주의 독재 정당을 빼닮았다.
민주적 정당의 기본 중 기본이 도덕성이다. 민주당의 도덕 수준은 공당(公黨)이라 하기 민망할 만큼 피폐해진 지 오래다. 5년 사이 민주당 소속 시장·도지사 3명이 성폭력 스캔들로 낙마했다. 정상적 정당이라면 이것만으로도 해산감이나 민주당은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를 서슴지 않고 보궐선거에 후보까지 냈다. 성매매가 적발된 제주 도의원, 동료 의원을 성희롱한 세종·부천 시의원, 혼외녀에게 낙태를 강요한 서울 시의원 등 민주당 정치인의 성추문은 꼬리 물고 이어지고 있다. 운동권 출신 3선 의원이 자기 보좌관을 성추행한 사건까지 벌어졌다. 이렇게까지 성적으로 타락한 정당을 본 일이 없다.
국회법 사건을 빼고 각종 부패 혐의로 기소·수사 대상에 오른 의원이 총 24명이다. 이 중 19명이 민주당 소속이거나 탈당한 전직 민주당 의원이다. 유죄가 확정돼 의원 자격을 상실한 최강욱, 가짜 뉴스를 퍼트리고 면책특권에 숨은 김의겸을 빼고도 이렇다. 범민주당 의원 10명 중 1명꼴로 부패 범죄에 연루된 셈이다. 전당대회 때 돈 봉투 뿌리고, 업자에게 뇌물 받고, 인턴 월급 빼돌리고, 은행에 채용 민원하고, 지인 아들 재판에 청탁하고, 선거에 개입하고, 위안부 할머니 돈을 횡령하고, 수십 억 원대 코인을 굴리는 등 온갖 잡범 같은 사건이 망라돼 있다. 당대표부터 대장동·백현동·위례 비리에다 위증 교사까지 범죄 혐의 백화점이다. 세상에 이런 정당은 없다.
민주당은 ‘늙은’ 당이다. 80년대 세계관에 머문 운동권 세력이 아직까지 당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 송영길 전 대표의 “어린 놈” 발언은 민주당을 지배하는 86 운동권의 정신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세상에 뒤처진 채 나이로 호통 치는 ‘꼰대’가 되었음을 자기 고백한 것이었다. 그는 수십 명에게 돈 봉투 돌린 사건이 “무슨 중대 범죄냐”고 했는데, 운동권의 도덕성이 이런 수준이었다. 그러니 김민석(서울대 82학번)이 불법 정치자금 7억원을 받고도, 김의겸(고려대 82)이 재개발 투기를 하고도, 조국(서울대 82)이 입시 서류를 조작하고도 고개 빳빳이 쳐들고 큰소리치는 일이 벌어진다.
민주당이 글로벌 시대 흐름과 거꾸로 가는 것도 그 당의 주도 세력이 운동권 이념에 갇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앞에서 ‘국가 주도’를 외치고, 북한·중국의 전체주의 독재 체제를 편들고, 한미 안보 동맹을 폄훼하고, 일본에 ‘죽창가’ 타령하는 것이 80년대 대학가의 반미·반제국주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 86 운동권은 2002년엔 노무현, 2017년엔 문재인을 옹립해 권력의 중추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젠 이재명에게 올라타 또 한번 정치 생명을 연장하려 하고 있다.
신당 군불을 때는 이준석 전 대표가 국민의힘을 향해 “고쳐 쓸 단계를 지났다”고 했다. 탈당을 정당화하려 한 말이겠지만 이것은 민주당에 정확히 들어맞는 말이다. 국민의힘은 무능하고 무기력하지만 그래도 잘못하면 잘못했다고 고개 숙이는 양심은 있다. 민주당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당이다. 1년 내내 대표 방탄용 국회를 열고,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던 약속을 뒤집고, 범죄를 수사하는 검사를 좌표 찍어 공격하고, 엉터리 가짜 뉴스를 퍼트리고, 성폭력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며 두 번 죽이고도 사과 한마디 없이 뭐가 잘못됐냐 한다. 민주적이지도 도덕적이지도 않으면서 선거 공학 기술만 탁월한 이 낡은 정당을 고쳐 쓰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12.02 이른바 ‘응징 언론’의 몰카 함정 취재
언론임을 주장하지만
언론이 아닌
’유사 언론’에도
언론 자유를 준다면
조폭에게 흉기를
쥐여주는 것과 같다

▲서울의소리' 백은종 대표가 2022년 6월 서초구 윤석열 대통령 자택 앞에서 김건희 여사 구속 촉구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그는 '응징 취재'라는 이름으로 우파 인사들을 찾아 난동 부려 수차례 유죄 선고를 받았다. 2020년에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응징 취재하겠다며 황소를 타고 가다가 떨어져 골절상을 입었다. /뉴스1
논란을 부른 ‘김건희 여사 몰카’ 보도의 논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김 여사의 처신과 관련된 문제다. 다른 모든 것을 떠나 대통령 부인이 검증되지 않은 속칭 ‘듣보잡’ 인물과 연락을 취하고, 사적 공간에서 만나 명품을 건네받았다는 사실 자체만로도 쇼킹하다. 그동안 김 여사에게 쏟아진 공격은 가짜와 음해성이 많았지만, 김 여사 자신이 부적절한 언행으로 구설수를 자초한 것도 적지 않다. 김 여사의 동선(動線)이 대통령실의 공적 통제를 벗어나 있을 위험성도 이번에 드러났다.
시중엔 대통령 주변 누구도 김 여사 문제를 직언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보도가 나온 뒤 5일이 넘도록 대통령실이 아무 입장을 내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란 추측이 나온다. 이른바 ‘김건희 리스크’가 현실화된 것이다. 이 리스크를 정밀하게 관리하지 못하면 윤석열 정권은 크게 타격 입을 수 있다. 몰카 보도에 대해 가타부타 입장부터 내야 마땅하다.
더 큰 쟁점은 ‘함정 취재’ 논란이다. 언론임을 주장하는 매체가 불법적 방식으로 취재하는 것이 어디까지 허용되느냐는 것이다. 몰카 촬영은 재미 목사가 했지만 뒤에서 이를 세팅한 것은 인터넷 매체 ‘서울의소리’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매체 기자가 초소형 카메라와 명품 가방·화장품을 구입했고, 목사가 이것을 들고 김 여사에게 접근했다고 한다. 제보받아 보도한 게 아니라 매체가 목사를 내세워 함정을 파고 몰카를 기획한 것이었다. 나는 이것이 더 구조적이고 위험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김건희 리스크’는 한 정권이 성공하느냐 망하느냐의 문제지만, 유사 언론의 폭주는 우리가 어렵게 구축한 민주주의 룰을 깨트리는 국가적 이슈이기 때문이다.
동의 없이 남을 촬영하거나 녹음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법이다. 언론재단 윤리 강령도 ‘기자는 도청, 비밀 촬영 등으로 사생활을 침해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2조 5항). 다만 ‘공익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만 예외다. 비위생 음식점이나 마약 현장 잠입 취재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해당 식당이 불결하다는 정보가 있거나 특정 업소에서 마약이 거래된다는 제보를 확보하는 등 공익적 요건이 구체적이고 뚜렷하게 존재해야 한다. 기자가 아무 식당, 아무 가게나 들어가 몰카를 찍어댄다면 견딜 곳이 없을 것이다.
기자는 뉴스의 당사자가 아니다. 제3자 입장에서 현상을 기록하는 관찰자이지 사건에 끼어들어 사실을 창조해 내는 것은 언론의 영역이 아니다. 이번 논란에서 ‘서울의소리’는 기획자이자 설계자 역할을 했다. 관찰 수준을 넘어 카메라와 선물을 준비하고 몰카 드라마를 연출했다 ‘서울의소리’는 김 여사의 ‘인사 청탁’ 혐의가 있어 함정 취재를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이 매체의 몰카 영상엔 인사 청탁 얘기가 나오지 않는다. 인사 청탁을 취재하겠다면서 명품을 미끼로 다른 함정을 팠다. 함정 아니면 없었을 사실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매체를 ‘언론’으로 볼 수 있느냐부터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서울의소리’는 스스로를 ‘응징 언론’이라고 지칭한다. 그릇된 것을 응징하는 게 목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언론은 벌 주는 존재가 아니다. 마음대로 선악을 가르고 자의적으로 선별한 악에 징벌을 가한다면 그것은 깡패 집단일 뿐이다. ‘응징 언론’이란 말 자체가 논리 모순이다. 언론은 관찰하고 전달할 뿐 응징해선 안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매체는 물리적 응징까지 서슴지 않는다. 백선엽 장군 묘소를 찾아가 난동을 부리는가 하면 좌표 찍은 우파 교수·역사학자, 의사협회장 등에게 폭언을 퍼붓고 멱살 잡는 행패를 저지르고 동영상을 찍어 보도했다. 폭행·모욕 등으로 유죄 선고를 받은 것도 여러 번이다. 작년 초엔 이 매체 기자가 김건희 여사와 통화한 ‘7시간 녹취록’을 뿌려 대선 판을 흔들어 놓았다. 그때 몰래 녹음한 기자가 이번에도 함정 취재를 세팅했다. 같은 기자가 똑같은 불법적 수법을 반복한 것이다.
이곳뿐 아니다. 편향성으로 악명 높은 또 다른 매체는 윤 대통령과 한동훈 장관 등이 심야 파티를 열었다는 ‘청담동 술자리’ 가짜 뉴스를 보도하고도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한 장관을 미행하고 자택에 침입하는가 하면 핼러윈 희생자 명단을 무단 공개하는 등의 비윤리성으로 끊임없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천안함 음모론에 앞장섰던 다른 매체는 ‘윤석열 검사가 대장동 사건을 무마했다’는 가짜 대화록을 작년 대선 사흘 전에 유포하기도 했다.
언론으로서 최소한의 책임조차 무시하는 ‘유사 언론’의 폭주는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이들에게도 똑같이 언론 자유를 인정해준다면 조폭에게 흉기를 쥐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언론임을 주장하지만 언론으로 볼 수 없는 유사 매체에 대해 우리 사회가 분명하게 선을 긋고 그들에게 준 취재의 특권을 거둬들여야 한다.
12.16 민주당은 어떻게 ‘정치인 한동훈’을 키웠나
자기 진영만 보며
票만 따지는
’여의도 사투리’가
법치와 상식을 말하는
보편성의 화법을
당해낼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지난 17일 대구 스마일센터를 찾은 한동훈 법무장관이 시만과 셀카를 찍고 있다. 이날 한장관은 예정된 귀경 시간을 3시간 가량 늦춰가며 몰려든 시민들의 촬영 요청에 일일이 응했다. /뉴스1
일선 기자 시절부터 대기업들이 욕하는 소리를 하도 들어 ‘한동훈 검사’는 오랫동안 귀에 익숙한 이름이었다. 재계 사람들은 그가 너무 융통성 없고 과격하게 수사하는 바람에 기업인을 다 죽인다며 치를 떨곤 했다. 그는 재계에서 ‘저승사자’로 불렸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검사로서 그의 자세를 말해주는 증표이기도 했다. 그는 최태원 SK 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현직 국세청장 등을 구속시키고 한나라당 차떼기 스캔들 같은 굵직한 사건을 수사했다. 비판도 많았지만 외압에 굴하지 않는 원칙주의 강골 이미지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굳어졌다.
‘검사 한동훈’을 키운 것은 자기 실력이겠지만 그에게 전국적 지명도를 안겨준 것은 문재인 정권이었다. 조국 수사를 세게 했다는 이유로 ‘유배지’라는 법무연수원으로 쫓겨가고 세 번의 좌천 인사를 당했다. 채널A 사건을 공모했다는 조작된 혐의까지 받아 형사 피의자에 오르기도 했다. 문 정권의 탄압이 거세질수록 한동훈이란 이름도 유명해졌다. 그의 팬 클럽 활동이 본격화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주도한 전방위 탄압이 그를 윤석열 총장에 버금가는 저항의 아이콘으로 만들어 주었다.
정권이 바뀌어 그는 법무장관에 기용됐고 권력의 세계에 발을 담그게 됐다. 그가 언제부터 정치를 꿈꾸었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다만 본인이 원했든 아니든 그를 정치의 영역으로 밀어낸 일등 공신이 민주당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한 장관의 권력 의지도 남다르겠지만, 그에게 일개 장관의 위상을 넘는 체급을 만들어 주고, 정치 공력을 입증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계기를 제공한 것이 민주당이다. 싹수를 자르려다 호랑이로 키운 격이었다.
민주당의 자살골 퍼레이드는 법무장관 임명 직후부터 시작됐다. 인사 청문회에서 한 장관 딸 특혜 의혹을 제기하며 딸의 ‘이모’가 논문 공저자에 올랐고, 기업 명의 노트북을 기증한 ‘한**’이 딸 이름이라고 문제 삼았다. 그러나 ‘이모’는 친척 아닌 ‘이모(某)’ 교수였고,’한**’은 ‘한국3M’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동훈도 자녀 입시 서류를 위조한 조국과 비슷할 것이란 민주당의 착각이 코미디 같은 참사를 낳았다. 민주당 헛발질에 한 장관은 가만히 앉아 자녀 문제에 반칙이 없음을 어필한 셈이 됐다.
음모론 제조기 김의겸 의원은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했다. 한 장관이 윤 대통령, 김앤장 변호사들과 함께 첼로 반주로 노래 부르며 심야 술파티를 벌였다고 주장했다. 터무니없는 가짜 뉴스였지만 덕분에 술자리엔 얼씬도 않는다는 한 장관의 철저한 자기 관리 스타일이 세간에 알려졌다. 그 후로도 민주당은 국회 상임위 등에서 틈만 나면 한 장관을 몰아붙였지만 한 번도 재미 본 적이 없다. 기본 팩트부터 밀리는 데다 논리 정연한 한 장관의 반격에 판판이 깨지곤 했다.
민주당은 해외 출장비 문제까지 꺼내 들었지만 이 역시 자승자박으로 돌아왔다. 한 장관 출장비가 전임 박범계 장관의 절반에도 못 미친 사실이 공개된 것이다. 박 장관은 6박 8일 미국 출장 때 1억3100만원을 썼지만, 한 장관이 하루 더 긴 7박 9일 일정에 지출한 비용은 4840만원이었다. 항공편부터 박 장관은 일등석을, 한 장관은 비즈니스석을 탔다. 어설프게 건드렸다가 도리어 미담만 만들어주고 말았다.
급기야 86 운동권 출신 송영길 전 대표가 “어린 놈” “건방진 놈” 운운하며 인신공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논리로 못 당하자 감정이 폭발한 것인데, 정작 치명상 입은 것은 송 전 대표 쪽이었다. 그가 운동권식 권위주의를 드러내며 꼰대 짓 하는 바람에 한 장관의 젊고 참신함이 더욱 부각되는 결과가 됐다.
민주당이 헛발질할 때마다 한 장관의 인기가 올라갔다. 지난주 차기 대통령 선호도 조사에서 한 장관은 16%를 기록해 이재명 대표의 19%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1년 반도 안 돼 강력한 대선급 주자로 부상했다, 국민의힘 안에선 ’한동훈 역할론’이 고조되고 있다. 만일 한 장관이 여권의 중심 주자가 된다면 이 대표와 극적인 대립 구도를 형성할 수 있다. 각종 비리·스캔들에 연루된 ‘형사 피의자’와 불법을 추궁하는 ‘사법 소추자(訴追者)’가 대결하는 구도는 민주당으로서 달갑지 않은 상황일 것이다.
왜 민주당은 한동훈을 당하지 못할까. 이렇게까지 판판이 깨지는 데는 무언가 이유가 있을 터인데, 한 장관 본인 말에 해답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민주당의 화법을 ‘여의도 사투리’에 비유하며 자신은 ‘5000만 국민의 화법’을 쓰겠다고 했다. 자기 진영만 쳐다보며 오로지 표에 도움 되느냐만 따지는 선거 공학적 논리가 법치와 상식, 객관적 사실을 말하는 보편성의 화법을 이길 수 없음은 당연하다. 문 정권이 본의 아니게 ‘윤석열 대통령’을 만들었듯 ‘여의도 논리’에 갇힌 거대 야당의 폭주가 또 어떤 역설적 드라마를 펼쳐낼지 모를 일이다.
12.30 김건희보다 더 특검 대상이었던 김정숙
국정 농단에 해당될
중대 사안이지만
한 번도 수사 안 한
김정숙 여사의
각종 의혹이야말로
특검 발동 요건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2018년 11월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2호기를 타고 인도를 단독 방문한 김정숙 여사가 타지마할을 방문했을 당시의 모습. /뉴시스
김건희 여사 특검을 전면 거부하겠다는 대통령실과 여당 방침은 하책(下策)이라 본다. 특검은 민주당의 총선용 계략이 분명하나 아무 대안 없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 또한 민주당이 판 함정에 말려드는 격이다. 김 여사 특검에 찬성하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특검을 안 받는다는 것 자체만으로 무언가 구린 구석이 있다는 의심을 사기 충분하다. 야당은 선거 내내 공격할 것이고 여당은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
이 딜레마를 탈출할 유일한 방법이 ‘총선 후 특검’이다. 야당이 강행한 특검법을 거부하되, 내년 봄 선거 이후 여야 합의로 특검을 출범시키겠다는 약속을 달아 ‘조건부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총선에 영향 주지 않고 국민 여론도 설득할 수 있다. 김 여사 주가조작 의혹은 문재인 정권 검찰이 그렇게 탈탈 털었어도 기소조차 못한 사건이다. 윤석열 정권이 소극적으로 대응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런데 김 여사보다 훨씬 악성이고 범죄 혐의가 농후한 대통령 배우자 의혹이 있다. 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 문제다. 문 정권 시절 김 여사는 과도한 해외 여행과 특별활동비 유용 의혹 등으로 끊임없이 파문을 불렀다. 해외 순방을 명분으로 유명 관광지를 섭렵했다는 이른바 ‘버킷 리스트’ 논란이며, 청와대 특활비로 옷·액세서리 등을 구입했다는 의혹이 무성했다. 국가 예산을 사적 용도에 썼다면 횡령에 해당될 중범죄다. 그러나 지금껏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덮어져 왔다.
문 정권 5년간 김정숙 여사는 대통령의 거의 모든 해외 출장에 동행했다. 외국에 나간 횟수가 48회로, 역대 대통령 부인 중 압도적 1위였다. 밖에 나가선 꼭 관광 일정을 끼워 부부가 함께 혹은 김 여사 혼자라도 들르곤 했다. 아시아·유럽·남태평양에서 남미·아프리카까지 5대양 6대주의 이름난 관광지는 빠트린 곳이 없다. 당시 이 문제를 보도해 청와대에 제소당했던 남정호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김 여사의 관광을 위해 대통령 일정이 결정됐다는 구체적 정황이 재판 과정에서 밝혀졌다”고 썼다. 그야말로 김 여사의 ‘버킷 리스트 여행’이었다는 것이다.
비상식적 실태가 드러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2018년 김 여사는 문 대통령 없이 인도를 단독 방문했다. 혼자 가면서도 대통령 전용기를 띄우고 마지막 날에 타지마할 방문 일정을 넣었다. 청와대는 “인도 정부 요청”이라 설명했지만 거짓말이었다. 애초 인도 측이 초청한 것은 문화체육부 장관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김 여사 일행이 지출한 경비는 3억7000여 만원에 달했다. 문체부 대표단이 갔다면 2600만원만 들었을 것을 전용기 띄우고 청와대 직원 13명을 수행시키느라 15배로 불어난 것이었다.
이유조차 모를 수수께끼 같은 방문도 있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G20 회의 참석차 아르헨티나로 가면서 지구 반대쪽으로 돌아 체코에 들렀다. 당시 체코 대통령은 해외에 나가 자국 내에 있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청와대는 “원전 세일즈”를 내세웠지만 탈원전을 외치는 대통령이었기에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렸다. 정작 원전 사업을 추진하는 영국 등에선 문 대통령이 원전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논란이 일자 “중간 급유 목적”이라 말을 바꿨지만 역대 대통령은 남미 방문 때 늘 미국 LA를 경유했던 만큼 이상하긴 마찬가지였다. 문 대통령 부부의 체코 일정은 총리 면담 외에 프라하성, 비투스 성당 등 관광지 관람으로 채워졌다.
퇴임을 넉달 앞둔 2022년 초 이집트 방문은 김 여사에게 ‘졸업 여행’이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의 중동 순방 중 혼자 피라미드를 비밀리에 방문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청와대 측은 “관광 홍보를 위한 이집트 정부 요청”이라 했지만 ‘홍보’ 행사를 비공개한 것부터 앞뒤가 맞지 않았다. ‘버킷 리스트’의 마지막 빈칸을 채워 넣은 것이었다.
김 여사는 행사 때마다 의상이 바뀌는 패션 사치로도 유명했다. 공개된 사진에서만 최소 178벌의 옷과 액세서리 200여 종을 착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시민단체가 특활비 유용 의혹이 있다면서 정보공개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지만 청와대는 계속 뭉개다 임기 만료와 함께 대통령 기록물로 이전해 봉인해 버렸다. 공개 못할 사정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시민단체들이 김 여사를 횡령·강요 등의 혐의로 형사 고발했지만 수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민 세금으로 옷 사 입고 관광하고 없는 해외 일정까지 만들었다면 국정 농단에 다름 아니다. 김건희 여사 의혹과 비교조차 안 될 중대 사안이나 문 정권은 물론 윤석열 정권의 검·경도 이들 의혹을 한 번도 파헤친 적이 없다.
검찰이 할 일 안 할 때 등장시키는 것이 특검이다. 김정숙 여사 의혹은 특검의 발동 요건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김건희 특검’을 한다면 ‘김정숙 특검’부터 해야 마땅하다. 총선 후 선거에 영향 없을 시기에 ‘김건희·김정숙 쌍특검’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어떤가.
조선일보